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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길세만은 초저녁에 옹골진 육공양으로 삭신을 노골노골하게 만들었던 갈보와 같이 곯아떨어졌다. 그런데 그 계집은 온데간데없고, 난데없는 사내가 그의 뱃구레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는 힐끗 지게문을 바라보았다. 시각은 축시 초쯤으로 보였다. 창호에 아직 어둠이 짙게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집의 농간에 당한 것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궐자가 뱃구레 위에서 몸을 비틀어 빼더니 길세만의 팔을 뒤로 돌려 뒷결박을 지었다. 그사이에 궐자의 괴춤에 찔러둔 비수를 목격하였다. 그러나 이 순간 궐자에게 결박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계집에게 당한 것이 너무나 분했다. 이자는 필경 무슨 담판을 짓자고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무일푼이었기 때문에 이 무뢰배가 담판을 짓자고 대들어도 꺼내놓을 것은 목숨 하나뿐이었다. 그것을 익히 알고 있을 계집이 이 불한당에게 자신을 팔아넘긴 것은 악귀나 저지를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많은 시간이 흘러간 것 같은데, 아갈잡이에 뒷결박까지 한 궐자는 도무지 말이 없었다. 그러니 온전한 눈만 부릅뜨고 궐자의 처분을 누운 채로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간이 흘러가면서 방안으로 새어드는 희미한 밤빛으로나마 궐자의 형용이 어른어른 집혀오기 시작했다. 패랭이는 쓰지 않았으나 상투가 어엿한 것을 보면 저잣거리에 횡행하는 소악패거리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아갈잡이하고 뒷결박을 짓는 솜씨가 날렵한 것으로 보아 산골의 얼치기 무지렁이는 아니었다. 소금 상단처럼 엄장이 들썩 크지 않았으나, 눈매가 날카로운 위인이라는 것은 알아챌 만하였다. 군소리가 없는 것으로 보아 주둥이가 헤픈 위인도 아니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길세만을 밖으로 끌고 나갈 심산인데, 그 시각을 가늠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일단 길세만을 잡도리하고 난 뒤 게으름을 피우는 거조가 바로 적실한 시각을 재는 것이었다. 사경 축시가 되었다. 위인의 입에서 딱 한마디가 떨어졌다. “일어나 밖으로 나서. 허튼 생각 말고.” 목소리에 묵직하게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러고는 군소리 한마디 없었다. 일어서는 길세만의 무릎에서 우두둑 하고 뼈 맞추는 소리가 들렸다. 이 위인은 도대체 누구이며 어째서 자신을 엮을 생각을 한 것일까. 밖으로 나서면 도대체 어디로 갈 작정인가. 오만가지 상념들이 뇌리에 어지러웠으나, 지금은 아무 소용없었다. 밖으로 나서자 차가운 한뎃바람이 옷깃 속으로 스며들었다. 소피가 마려웠다. 고개를 들고 위인을 쳐다보았다. 위인이 알아채고 뒷결박을 풀어주며 색주가 마당가에 있는 울바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울바자 틈 사이로 소피를 보는 동안 사위는 쥐죽은 듯 적막하고 먼 데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다 말았다. 하늘에는 별빛만 총총할 뿐 달은 떠 있지 않았다. 괴춤을 추스르고 돌아서는데, 다시 뒷결박을 지우고 아갈잡이한 것은 풀어주었다. 숨 쉬고 고개 돌리기가 한결 손쉬워졌다. 위인이 저잣거리 반대쪽을 가리켰다. 임소가 있는 쪽이고, 더 나아가면 여울이 있고 여울을 건너면 으악새들이 길게 이어지는 길이었다. 길세만은 수백 번을 다녀 눈감고도 걸을 수 있는 그 길로 들어섰다. 개울을 건너고, 갈밭을 지나쳤다. 그제야 멀리 두고 온 저잣거리에서 개 짖는 소리가 자지러졌다. 모래재를 지나면 몇 행보 지나지 않아 10리 상거에 있는 검은 돌 마을이 나타날 것이었다. 그곳에 이르면 위인이 어디를 겨냥하는지 얼추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 술청거리에는 사방으로 흩어지는 세 갈래 길이 있기 때문이었다. 등짐도 없는 단출한 몸이라 몇 행보하지 않아서 검은 돌 마을에 당도하였다. 그러나 위인은 조금도 주저하는 법이 없이 마을 뒤쪽 곧은재를 가리켰다. 그때까지도 한밤중이었다. 숫막 앞을 지나쳤으나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흡사 두 사람이 무사히 지나치라고 길을 내주는 것 같았다. 좀처럼 벗지 않는 방갓에 두툼한 괴나리봇짐을 진 채 등 뒤를 바싹 따라오고 있는 이 위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관원이나 보부상도, 전대를 털려는 무뢰배도 아닌 것은 적실했다. 그런데 홀딱 벗겨보아야 먼지밖에 없는 자신을 인질 삼고 십이령길로 들어서는 이 위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게 궁금해서 가슴이 답답하고 아렸다. 여명이 희뿜하게 밝아올 무렵이 된 것은 내성에서 산길 40리 상거에 있는 씨라리골에서였다. 씨라리골에도 딱 두 집의 숫막이 있었다. 한 집은 울진 갯마을에서 고기를 잡다가 여의치 않아 내외가 이곳에 들어와 숫막을 내었고, 한 집은 십이령을 넘나드는 원상이었는데, 겨울에 고개를 넘다가 실족하여 다리를 절게 된 이후부터 씨라리골에 정착하여 숫막을 낸 것이었다. 두 숫막 모두가 울진 소금 상단과는 정리가 돈독하여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처음부터 두 숫막 모두가 사시사철 물이 흐르는 개울 옆에 자리 잡았고, 그 개울 옆 개활지를 따라 길길이 자라서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기는 갈대숲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을이 되면 연둣빛 갈꽃이 피기 시작하여 개활지는 온통 은구슬을 뿌려놓은 듯 시선이 어지럽도록 빛나고 그 갈숲 사이 오솔길 속으로 보였다가 사라지는 등짐 장수들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찬 서리가 내리는 초겨울로 접어들면 수만 갈래로 흩어진 갈꽃 송이들이 가파르기로 이름난 살피재 쪽으로 날아 멀리서 보면, 마치 부들솜들로 뭉쳐진 하얀 구름송이들이 새떼처럼 산등성이를 넘는 듯 보였다. 한겨울이 되어 북풍이 몰아치기 시작하면, 꽃은 떠나가고 겨릅처럼 혼자 남은 갈대들이 서로 비벼대며 마치 배고픈 짐승처럼 밤새워 울어대어 숫막에서 등걸잠을 자며 객고를 겪는 길손들로 하여금 눈물을 짜내게 한다. 십이령 고개를 넘나드는 행상꾼들에게 회자하는 노래에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라는 후렴이 있는 것은 바로 씨라리골의 갈대들이 모질고 혹독한 겨울바람을 안고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것을 되풀이하면서 슬피 우는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었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소금을 구우려면 먼저 염전 바닥에 왕피천에서 가져온 뻘을 넣고 평평하게 다진다. 그 위에 산에서 채취한 마사토를 깐 뒤 바닷물을 퍼붓고 말린 다음 써레질을 해서 뒤집는 작업을 7, 8일 동안 반복한다. 그다음에는 마사토와 함께 응축된 소금을 긁어모아 다시 바닷물을 부어 표면 아래 뻘로 만들어 웅덩이에 흘러내리게 하여 마사토와 소금물을 분리한다. 염부 두 사람이 한 열흘 동안 작업을 하면 소금물 200초롱을 얻게 되는데, 이 소금물을 솥에 부어 주야로 쉬지 않고 달이면 소금 80말을 얻어 낸다. 이런 토염이 햇볕에 의존하여 수분을 증발시켜 얻는 천일염이나 바닷물을 끓여서 얻어 내는 화염에 비하여 맛이 달다. 이 토염이 워낙 고품질이기 때문에 이웃 고을뿐만 아니라, 십이령을 넘어 경상도 안동과 상주, 강원도 내륙 영월과 태백에, 고초령을 넘어 영양, 진보, 청송, 심지어 고령 개포(開浦) 장시의 원상들까지 내성에 있는 어물 객주에 눈치 빠른 거간을 넣어 거래를 틀 만큼 천세난 물화였다. 고령뿐만 아니었다. 낙동강에서 손꼽히는 나루터 장시로는 고령 외에도 밀양의 삼량진(三梁津), 의령의 박진, 초계의 율지(栗旨), 현풍의 세암(洗巖), 성주의 명덕진, 대구의 사문진, 안동의 외관, 선산의 비산, 상주의 낙동과 같은 포구들이 있었다. 이런 포구에서 열리는 최고의 갯벌장에서도 울산 포구 염막에서 나온 토산염이 거래될 정도였다. 이들 갯벌장을 드나드는 부상들도 울진 포구의 염전이나 해물 저자까지 오면, 좀 더 값이 눅은 물화를 매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십이령을 넘자면, 섶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경난을 겪기 마련이어서 쓸개 빠진 위인이 아니라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낙동강 하구에서도 소금이 생산되었다. 이들은 배에 소금을 싣고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각 포구에 도착하여 소금을 팔았다. 그러나 사공들이 직접 팔 수는 없었고, 수산 도방, 남지 도방 등 각 포구에 있는 도방의 객주가 물건을 중매해 그곳에서 쌀, 보리, 채소, 과일 같은 낙동강 유역에서 재배되는 곡물과 상품을 바꾼 뒤 다시 강을 내려갔다. 그러나 그 품질이나 맛에 있어 울진 포구의 염호에서 생산되는 토염을 따르지 못했다. 토염이든 자염이든 소금의 수요가 이처럼 많았던 것은 소금으로 열두 가지 반찬을 만든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우리 생활에 너무나 깊숙하게 소용되기 때문이었다. 소금은 부정을 씻어 주고 병을 낫게 하며 재액까지 막아 준다고 했다. 사람이 죽으면 배꼽에 소금을 수북하게 놓고 마당에 차리는 상에도 소금 사발을 두었다. 배꼽의 소금은 바람이 배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주고 소금을 먹은 저승사자가 목이 말라 쉬어 가게 되므로 죽은 자도 힘들이지 않고 저승까지 당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초상집에 갔던 사람은 집으로 돌아와 소금을 뿌려 악귀를 쫓았다. 나쁜 병으로 사람이 죽으면 집 안에 소금을 뿌렸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낙네는 성주 단지 안에 있는 소금을 먹으면 아이를 낳게 된다고 믿기도 하였다. 울진 포구 소금 장시에서 내륙으로 왕래하는 길목은 통틀어 세 곳이었다. 남쪽으로는 온정에서 구슬령을 넘어 영양과 안동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고, 중로에는 원남 갈면에서 고초령(高草嶺)을 넘어서 영양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북으로는 흥부장에서 십이령을 넘어 내성과 영주로 넘어가는 길이 있었다. 흥부장에서 내성으로 넘어가는 십이령길은 강원도 해안에서 경상도 북부 내륙 장시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였다. 이 고개는 험준하고 가파르기가 마치 낙타 열두 마리를 세워 둔 것과 방불하여 정한조가 향도하는 원상과 그를 따르는 담꾼들 외에는 언감생심 넘을 엄두조차 못 내는 험준한 산길이었다. 그들 고개 중에서 코치비재나 곧은재는 그 가파르기가 사람의 콧등이 땅에 닿을 정도였다.
  • 5집 낸 클래지콰이·블루스의 모든 것

    5집 낸 클래지콰이·블루스의 모든 것

    음악성으로 똘똘 뭉친 음악인들을 초대해 최고의 공연을 보여주는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는 오랜만에 음반을 낸 클래지콰이와 감성에 충실한 블루스를 선사하는 음악인들을 만난다. 4일 밤 12시 5분에 방송되는 ‘공감’에서 클래지콰이는 지난 2월 3년 6개월 만에 낸 5집 음반 ‘블레스드’에 수록된 다양한 음악을 선사할 예정이다. 섬세하고 감성적인 가사와 세련된 사운드로 한국 일렉트로닉팝의 새 장을 연 클래지콰이는 2002년에 데뷔해 정규 음반 4장과 기획 음반 4장을 냈다. 지난 10년간 하우스, 라운지, 애시드재즈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을 선보인 그룹이다. 클래지콰이는 이번 음반에 밝고 경쾌한 하우스 비트와 달콤한 노랫말을 접목한 음악을 담고 잔잔한 어쿠스틱팝부터 강렬한 록 사운드까지 다채로운 장르의 리듬과 구성으로 무장했다. 타이틀곡 ‘스위트 네임’을 비롯해 3월의 신부가 된 보컬 호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연상되는 ‘러브 레시피’, 알렉스의 시원한 보컬이 매력적인 ‘꽃잎 같은 먼지가’, 라틴 리듬과 팝의 멜로디를 가미한 ‘사랑도 간다’, 어쿠스틱 사운드가 매력적인 이별 노래 ‘여전히’까지 풍성한 만찬이다. 이번 음반을 두고 “사랑으로 충만한 앨범”이라고 소개한 클래지콰이는 5집에 수록된 달콤한 러브송을 비롯해 그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던 히트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새벽 1시에 이어지는 방송에서는 ‘그야말로 블루스, 더욱더 블루스’를 주제로 블루스의 모든 것을 선사한다. 깜악귀, 김대중, 박형곤, CR태규, 림지훈, 하헌진×김간지, 강산에, 강허달림, 로다운30, 김마스타, 김태춘, 조이엄 등 음악인 12팀은 지난해 블루스 컴필레이션 앨범 ‘블루스 더, 블루스’를 내기도 했다. 고전적인 1930년대 미국 컨트리 블루스부터 한국식 정서를 담은 포크 블루스, 독특한 카바레풍 블루스까지 각 팀의 다양한 해석이 담긴 음반에서는 블루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느낄 수 있다. “블루스는 언제나 새롭다. 블루스는 멀지 않고 언제나 아주 가까이에 있다”고 말하는 깜악귀는 블루스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무대를 선사한다. 깜악귀, 김대중, 박형곤, CR태규 등 일명 ‘블루스 사방신’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음악을 뒷받침하는 음악인들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오르가니스트 림지훈만의 독특한 블루스와 하헌진×김간지의 특별 무대가 준비돼 있다. 그저 과거의 장르로 남거나 기성곡을 재해석하는 수준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활발하게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음악 장르로서 블루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 산책] 강원 횡성군 ‘전통 숯가마’를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 산책] 강원 횡성군 ‘전통 숯가마’를 가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탓에 겨울이 유난히 더디게 가는 듯하다. 어릴 적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길고 심했다. 머리맡에 놓아둔 자리끼가 아침이면 꽁꽁 얼어붙었고, 세수한 후 방문 고리를 잡으면 쩍 하고 들러붙었다. 부엌에서 지핀 불기는 겨우 아랫목에만 온기가 미칠 뿐이었다. 그래서 안방에는 늘 화롯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빨간 숯을 담아 묻어 둔 화로는 그 시절 최고의 난방 기구였다. 또 고구마나 밤을 굽는 도구 역할도 톡톡히 했다. 이 땅에서 숯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600여 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일찍이 신라는 숯불로 밥을 지었고, 석굴암의 습도를 숯으로 조절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도 장을 담글 때는 숯을 넣어 옹기 안의 독소와 냄새를 제거한다. 또한 아기가 태어나면 악귀와 잔병을 물리치기 위해 금줄에 숯덩이를 매다는 풍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나 다름없던 숯은 석유, 가스 등의 연료에 자리를 내주면서 쓰임새가 크게 줄었다. 그러다 숯의 효능이 새롭게 드러나고, 건강과 자연에 대한 관심 즉, 이른바 ‘웰빙’ 붐 속에 숯이 다시금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숯이 뜨고 있는 것이다. 강원 횡성군 갑천면 포동리 초입에 들어서자 먼발치 굴뚝에서 흰 연기가 새벽 찬 공기를 가르며 피어올랐다. 전통 방식대로 숯을 굽는 가마에서 뿜어내는 연기다. 강원참숯 고문 서석구(75)씨는 50년 가까이 전통 참숯을 고집하고 있다. 내화벽돌을 쓰지 않고 천연석과 나무로만 제작된 숯가마에 참나무만을 넣고 숯을 굽는 것이다. 숯을 굽는 과정은 가마에 장작을 차곡차곡 쌓는 일부터 시작된다. 하나의 가마에 채워지는 참나무는 10t가량이다. “아궁이에 종잣불을 넣어 가마가 정확히 280도가 될 때까지 불을 땝니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만 봐도 숯의 상태를 알 수 있어요.” 서씨의 말이다. 다른 한쪽 가마에서는 인부들이 긴 철봉으로 참숯을 꺼내고 있었다. 시뻘건 장작불에 1주일 동안 가마가 달궈지면 최고 1300도에 이른다. 열기에 숨이 턱 멎을 정도다. 다가설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가마 밑을 열고 산소를 넣으면서 달궈진 숯을 꺼낸 후 흔히 마사토(磨沙土)로 불리는 화강토로 덮어 식히면 비로소 질 좋은 백탄(白炭)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숯을 거둬낸 가마 안에는 은은한 스모크 향이 감돌았다. 12시간 정도 열을 식힌 뒤 하루 동안 일반인들에게 찜질방으로 개방되고 있다. 숯이 구워지며 내뿜은 많은 원적외선이 고스란히 남아 손님들의 피로를 풀어준다. 원적외선은 혈액순환을 촉진시키고 피로 회복, 신경통, 근육통을 완화시켜 주는 효능을 지녔다. 서씨는 “‘숯쟁이’라고 얕보고 무시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면서 “전통 참숯이 제대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공장장인 외아들 정원(43)씨는 백탄에 매료되어 대를 이어 20년째 전통 숯을 굽고 있다. 정원씨는 “불을 대면 순식간에 타올랐다 꺼지는 중국산 숯들과 달리 참숯은 한번 불이 붙으면 좀처럼 꺼지지 않는다”며 백탄을 예찬했다. “전통 숯가마들이 자꾸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는 정원씨는 참숯 굽는 방식을 보존·유지하기 위한 문화 체험장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숯 철학’이 실현될 때까지 가마에 참나무를 채우고 불을 넣는 일을 계속할 겁니다.” 서씨와 정원씨는 시원스레 웃었다. 글 사진 jongwon@seoul.co.kr
  • ‘해맞이 명소’ 궁산에 둘레길 조성

    ‘해맞이 명소’ 궁산에 둘레길 조성

    해맞이 명소인 강서구 가양동 궁산에 둘레길이 조성된다. 구는 올해 초 개화산 둘레길을 조성한 데 이어 한강을 바라보며 역사와 문화를 탐방할 수 있는 궁산둘레길을 만든다고 19일 밝혔다. 궁산은 조선 후기 화가인 겸재 정선(1676~1759)이 진경산수화를 완성한 곳으로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구는 이 같은 자연환경과 문화자원을 활용해 1.8㎞에 이르는 1시간 코스의 둘레길을 이달 착공해 8월 말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구는 공암나루에서 시작하는 궁산둘레길에는 급경사 탐방로에 목재데크를 설치하고, 정상부에는 수려한 한강을 조망할 수 있도록 전망대를 설치하기로 했다. 공원 산책로를 따라 쉼터, 주민 편의시설, 명상의 숲, 디딤목계단, 안내판 9곳이 설치된다. 쉼터 주변에는 주민들이 운동할 수 있는 체육시설이 들어선다. 궁산 입구에서 10분쯤 오르다 보면 정선의 산수화 ‘금성평사’의 소재가 된 소악루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당시 수려한 한강변의 모습을 담아낸 정선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확 트인 한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정상부는 해맞이 명소로 소문난 곳이다. 가을에는 높은 하늘과 억새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둘레길에서는 민초들의 번영과 행복을 이루도록 도와주고 악귀를 쫓아내 주는 도당할머니를 모신 성황사 사당과 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 등 문헌 기록에 등장하는 옛 성터인 양천고성지 등도 만나볼 수 있다. 둘레길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면 바로 겸재 정선 기념관과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 유일의 향교인 양천향교도 관람할 수 있다. 노현송 구청장은 “하이힐을 신고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여행(女幸·여성 행복) 공원’으로 조성하겠다.”면서 “주민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지역의 명소로 가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혼령 정보·경험 공유… 카페 100여개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대학생 살인 사건의 뒤에는 ‘사령(死靈)카페’가 있었다. 사령카페란 말 그대로 죽은 사람의 넋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또 실제로 영혼을 부르는 방법이나 그 경험 등을 공유하는 인터넷 모임을 말한다. 특수한 문자를 반복해서 그리면서 주문이나 주술을 외면 일반인도 어렵지 않게 사자의 넋을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주로 초·중·고교생들을 중심으로 몇 년 전부터 회원이 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사령’이라는 명령어로 검색하면 관련 카페 100여개가 검색된다. 이 중 대표적인 S카페는 2010년 만들어진 후 회원 수가 1300여명에 이른다. 재미 삼아 가입하기도 하지만 소위 ‘진성 회원’이라는 사람들에게 이 카페는 일종의 ‘종교’라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진성 회원들에게 사령은 신과 동등한 존재이며 사령을 믿는 것은 마음가짐에 달렸다고 주장한다. 회원들이 나누는 정보도 매우 구체적이다. 예를 들어 사령을 부른 뒤 손가락이 따갑다든지 이상하고 꺼림칙한 소리가 들리면 악귀이니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식이다. 회원들은 영에도 종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정령, 혼령, 귀신, 사령 등이 그것인데 이 중 사령은 신내림 등을 관여하는 영혼을 말한다. 또 사령은 사악한 기를 갖고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수호신의 역할을 한다고 카페 회원들은 주장한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안동-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찾아서

    안동-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찾아서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찾아서 안동 여행은 ‘내 나라 여행’의 절정이다. 고리타분한 것으로 오역되곤 하는 전통은 안동에서 비로소 제자리를 찾고 있었다. 하회탈, 고택 모두 오랜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지만, 가까이에서 본 ‘옛 것’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안동 여행은 선비정신을 강조하는 유교의 고고함과 자연과 하나 되라는 도교의 온화함을 배우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곳을 지나간 개개인의 발자취가 조상들이 흩뿌려놓은 과거의 시간과 공존한다. 글 구명주 기자 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PnJ 커뮤니케이션즈 www.pnj21.com 탈 일상을 뒤집는, 해학의 美 민중의 삶을 위로하다 안동 하면 탈, 탈 하면 안동이다. 한국 탈의 진수를 느껴 볼 참이면 ‘안동 하회별신굿 탈놀이’의 공연장인 하회마을 내 탈춤 전수관으로 곧장 달려가야 한다. 공연 전 만난 선비 역할의 권순찬 연출국장은 “탈을 딱 쓰면 본연의 나를 버리고 탈의 캐릭터에 도취되는데, 이게 중독인기라. 일단 보이소”라며 명당을 지정해 준다. 공연장 곳곳에는 일본인, 중국인은 물론이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위스에서 온 서양인도 보였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관객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시선을 집중시키던 사회자가 사라지자, 사물놀이가 울렸다. 강신, 무동마당,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양반·선비마당 등으로 이어지는 공연 내내 야외 공연장을 이러저리 누비는 광대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오리나무를 곱게 도려내 깎은 반달 모양의 인자한 미소는 보는 이의 마음을 치유해 준다. 특히 턱밑이 미완성된 이매의 웃음은 사실적일 뿐더러 그의 대사 또한 코믹해 등장만으로도 공연장은 웃음바다가 된다. “이매 이놈아야, 니 여서 머하노. 내가 아까 니보고 선비 데리고 오라 안 카더나” 초랭이의 핀잔에도 이메는 연신 “머라꼬 히히히 흐흐흐”라 받아칠 뿐이다. 탈놀이가 가장 성행했던 때도 신분질서가 사람 위에 군림했던 조선 중기가 아니었던가. 기존 질서에서 권위를 내세우는 양반, 선비, 중은 탈놀이에서 희화화의 대상에 불과하며 가부장제, 신분제 등으로 억압받던 할미, 초랭이, 백정 등은 오히려 주도적으로 제 할 말을 당차게 내뱉는다. “분홍치마 눈물 되고 다홍치마 행주 되네, 삼대독녀 외동딸이 시집온 지 사흘 만에 저 양반집 씨종살이, 씨종 살고 얻은 삼을 짜투리고 어울쳐도 삼시세때 좁싸래기” 할미의 한 서린 타령부터 “중놈이 부네하고 요래요래 춤추다가 중이 부넬 차고 저짜로 갔잖니껴”라는 간들간들 초랭이의 주접까지 대사 하나하나가 압권이다. 민중의 삶을 긍정하고 위로했던 우리네 탈의 힘이다. 양반들도 평민들의 탈놀이를 암묵적으로 인정했다고 하는데, 탈놀이로나마 억압됐던 감정을 표출하고 다시 순응하는 삶으로 돌아올 것을 종용했기 때문이란다. 탈춤이 끝나고 누구는 다시 안동 여행길로, 누구는 집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촐랑촐랑 초랭이 역할을 했던 서봉교씨의 얼굴에는 땀이 흥건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배운 탈놀이를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하고 있다. 고향인 안동을 훌쩍 떠났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 봉교씨에게 탈놀이는 숙명이 되었다. 그는 안동을 지키며 춤을 출 거라 말했다. 그날의 탈놀이는 끝났지만 내일도 모레도 새 공연의 막이 오를 것이다. 1 한국적인 멋은 ‘조화’라는 단어에 응축된다. 특히 안동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다 2 ‘초랭이’ 서봉교씨 3 ‘선비’ 권순찬 연출국장 4 가부장제를 꼬집는 할미의 타령 5 턱밑이 미완성된 이매탈은 웃음이 사실적이다 가장 한국적인 탈이 세계적이다 탈의 신비로움을 일찌감치 알았던 인간들은 문명이 발달하기 전부터 탈을 이용했다. 탈은 전세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세계인의 유산’인 셈이다. 그러나 세계 공통으로 얼굴에 쓰는 ‘탈’이라 할지라도 저마다 생김새와 기능은 천차만별이다. 탈을 절대적이고 상대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하회마을 입구에 위치한 하회동 탈 박물관을 가야 한다. 총 3개의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는 탈 박물관을 둘러보면 ‘세계 속의 한국 탈’이 보인다. 탈은 악귀를 쫓거나 자신이 믿는 신을 향한 일종의 의식에 이용됐다. 박물관 제2전시실의 아시아 탈이 이를 반증한다. 중국의 ‘나희가면’이 붉은 기운을 담아 역병과 잡귀를 몰아내는 역할을 했는가 하면 티벳, 몽골 등지의 챰가면은 라마교 사원에서 연행되는 종교 의식 때 활용됐다고 한다. 서양의 탈은 아시아의 탈과도 약간 다른데, 귀족문화를 반영해 겉이 상당히 화려하지만 정작 표정은 추상적이고 밋밋하다. 제1전시실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던 한국 탈은 달랐다. 한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탈 역시 다른 나라의 탈처럼 잡귀를 쫓거나 장례의식에 이용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본주의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한국의 탈은 종교적으로 편향돼 있지 않을 뿐더러 단지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형상화한다. 그것은 계층과 계급을 뒤집고, 양과 음의 융합을 이루는 ‘조화’를 추구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 clip. 2011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속으로 따라와~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문화체육관광부가 4년 연속으로 선정한 ‘대한민국 대표 축제’다. 올해 축제에서도 신명나게 놀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탈을 쓰고 행진하는 ‘미친 퍼레이드’에 어울리거나, 총 상금 7,000만원이 걸려 있는 세계 탈놀이 경연대회의 우승을 노려 봐도 좋겠다. 일시 매년 9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열흘간(2011년 9월30일~10월9일) 주최 안동축제관광조직위원회 장소 안동 시내, 탈춤공원, 하회마을 등 문의 054-841-6397 www.maskdance.com 고택 불편해서 매력적인 역설의 美 고택古宅을 한자어 그대로 직역하면 옛 집이다. 옛 것이라면 손을 저으며 새 것을 찾는 사람들이 갑자기 왜 고택을 찾는단 말인가. 안동의 어느 고택 주인은 도시인들이 고택에 대한 환상으로 숙박을 시도했다가 벌레, 화장실 등을 이유로 하루도 안 돼 떠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물론 최근에는 현대인의 입맛에 맞춰 새로 지은 고택도 많지만, 고택을 잘 꾸며진 한옥 펜션 정도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불편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불편해도 끌린다. 무섭게 하늘로 치솟은 아파트 숲에서 살던 도시인에게 고택은 가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넉넉하게 터를 잡고 옆으로 널찍하게 들어서 있는 ‘고택의 아우라’. 그저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고택의 본고장 안동에는 몇백년에 걸쳐 제 자리를 지켜 온 ‘명품 고택’이 있다. 1 ‘간재정’은 간재종택의 정자로 투숙객들의 인기 휴식처다 2 간재종택의 종손인 변성렬씨 가문의 향기 ‘원주 변씨 간재종택’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의 마을은 금제琴堤, 검제黔堤라는 별칭과 더불어 영원히 재앙이 없는 땅으로 불려 왔다. 안동 3대 성씨인 안동 김씨, 권씨, 장씨의 시조묘가 들어선 이곳에 간재종택도 마을을 지키고 있다. 원주 변씨 간재종택은 임진왜란의 공신이자 ‘하늘이 내린 효자’로 불렸던 조선중기의 학자, 간재 변중일의 종택과 정자다. 종손인 변성렬씨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매 주말 종택을 찾고 있었다. 11남매와 그 가족들이 다 모이는 날에는 종택이 꽉 찬다. 제사만 14번이다. 반복되는 하행길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그는 “종손의 삶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 했다. 간재종택은 투숙객들이 원할 경우 다도시간을 마련한다. 방문했던 날에도 때마침 일일 차茶교실이 열리고 있었다. 차를 연구하며 경주에서 찻집을 운영 중인 강청원 선생은 1인 다기로 차를 우려먹는 방법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차 뚜껑을 열 때는 안에서 밖으로, 잎차를 뜰 때는 항아리 벽을 향해 왼쪽으로 틀면서, 거름망을 뺄 때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떨어뜨린 후에….” 규칙의 연속이었다. 차 예절이 낯설기만 한 간재종택 투숙객들도 자신의 앞에 놓인 1인 다기를 이용해 잎차를 우려냈다. 1분30초. 차가 가장 맛있게 우려내지는 시간이란다. 1분30초라는 시간은 길게만 느껴졌다. 티백 차에 익숙한 탓이기도 했지만 종택에서는 유독 시계바늘이 느리게 걸었다. 종택에 머무는 동안은 느리게 가는 시간을 그저 즐기면 된다. 종택 구경 자체가 타지인에게는 하나의 볼 거리였다. 간재종택은 정침, 별당, 사당, 정자가 하나를 이룬다. 가옥은 ㅁ자형으로 ‘근심을 없앤다’는 뜻의 무민당無憫堂과 안채, 사랑방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사당이 안채 뒤쪽에 서 있다. 종택을 나오면 바로 앞에 국화 다랑이 밭이 있다. 선비의 기상을 빼닮은 국화꽃뿐만 아니라 분홍빛 흠뻑 머금은 백일홍이 마을 곳곳에서 하늘하늘 가지 손을 흔든다. 마치 백일홍이 몸을 간질간질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국화밭을 따라 올라간 끝에 호젓이 앉아 있는 간재정은 투숙객들의 이색적인 쉼터가 되고 있다. 객실료 큰방 4실 4~5인 기준 10만원, 작은방 4실 2~3인 기준 5만원 찾아가는 길 | 자가용 서안동 톨게이트→송야사거리(봉정사, 서후 방면)→원주 변씨 간재종택 대중교통 안동 초등학교 정문 서쪽편 버스 정류장에서 51번 버스 이용(30분 소요) 주소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162 문의 054-852-2345 www.간재종택.com 3 간재종택은 주변 경관과 묘하게 잘 어울린다 4 병산서원의 만대루나 입교당에 올라서면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5 부용대 층길에서는 하회마을과 줄기차게 흐르는 낙동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한 폭의 그림 속 ‘병산서원 주사’ 병산서원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권율 등 명장을 등용한 문신 겸 학자 서애 류성룡 선생이 후학들을 양성하던 곳이다. 서애선생이 세상을 뜬 후 제자들이 ‘존덕사’를 지어 위패를 모셨다. 병산서원은 유생들이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던 입교당, 기거하며 공부하던 동재와 서재, 행사를 치르던 만대루, 인쇄 목판을 보관하는 장판각 등으로 이뤄져 있다. 만대루나 입교당에 올라서면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병산이 이름 그대로 병풍처럼 자리하고 있고 낙동강이 그 앞을 잔잔하게 흐른다. 병산서원의 우측에 들어선 것이 바로 병산서원 주사廚舍다. 병산서원 주사는 서원이 지어질 때부터 병산서원 관리인의 집이었다. 병산서원의 현 관리인도 본래 이곳에서 생활을 했으나 지금은 병산서원에서 가까운 곳에 따로 기거 중이다. 일반인이 고택을 찾기 전 이곳은 빈집인 셈이다. 사람의 온기가 없어서인지 병산서원 주사는 적막하다. 적막을 깨는 것은 사람들의 웃음소리였다. 대청마루에서 주전부리를 즐기며 피우는 ‘이야기 꽃’은 평소보다 더 소중하다. 도시보다 빨리 찾아오는 시골의 밤, 잠자리에 들면 한옥 특유의 향이 코 끝을 미세하게 자극하고 풀벌레 소리가 귀에 맴돈다. 방에 놓인 작은 TV에는 온갖 채널들이 나온다. 타임머신을 타고 고택을 갔건만, 속세의 시끄러운 소리에 자유롭기란 힘들다. 실제 낯선 온돌방에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리모컨을 돌리다 자신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든다고 한다. 3칸 대청이 마당과 바로 마주하고 있으며 큰 방 하나, 작은 방 3개가 있다. 마당을 기준으로 좌우가 정확히 대칭을 이뤄 안정감을 준다. 객실료 큰 방 4~5인 기준 8만원, 작은 방 3~4인 기준 5만원, 전체 대여 28만원 찾아가는 길 | 자가용 서안동 나들목→34번 국도(예천 방향)→하회마을 방면→병산서원 대중교통 안동시외버스터미널 길 건너편에서 46번 버스 이용 주소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 문의 054-853-2172 www.byeongsan.net T clip. 안동 음식 4대 천황 1. 헛제사밥 각종 나물이 아삭아삭 씹히는 비빔밥과 삼삼한 탕국이 일품이다. 헛제사밥은 제사음식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2. 간고등어 내륙지방까지 생선을 옮기다 보니 염장처리가 필수였다. 안동 간고등어 한 마리면 밥 한 공기 뚝딱. 3. 버버리찰떡 버버리찰떡의 버버리는 벙어리의 안동 방언이다. 1920년대 김노미 할머니가 안동시 안흥동 철길 밑에서 찰떡에 고물을 묻혀 팔던 것이 원조로 지금도 손으로 직접 떡메를 치고 고물을 일일이 붙여 만든다. 4. 안동찜닭 찜닭의 고유명사가 되어 버린 안동찜닭. 간장이 배인 한입 크기의 닭과 감자, 대파, 시금치가 잘 어울린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이야기] (36) 삼척 궁촌리 음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이야기] (36) 삼척 궁촌리 음나무

    나무도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생명체인 이상 생로병사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수명을 다한 뒤에 저절로 스러지는 게 모든 생명이 맞이하는 섭리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과 보호가 보태진다면 더 오래 지켜 낼 수 있는 것도 분명하다. 나무가 사람의 마을에서 오랫동안 그러했던 것처럼 이제 사람이 나무를 지켜야 한다. 사람보다 먼저 이 땅에 터 잡고 사람살이를 지켜 준 나무를 지켜 내는 건 곧 우리 사는 세상의 평화를 지키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땅의 나무를 돌보기 위해 길을 재촉하는 많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건 그래서 고마운 일이고 나무의사라는 생소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고려 멸망사의 흔적을 간직 “땅속의 뿌리가 숨을 쉬어야 하는데, 이 나무는 뿌리 부분에 흙이 많이 덮여 있어서 불편했을 거예요. 세월이 오래 흘러서 이제는 스스로 적응한 듯하지만, 더 불편하지 않도록 보살펴 주어야 해요. 멀리 뻗어낸 바깥 쪽 뿌리를 편하게 해서 전체적인 생명력을 북돋워 주려는 거예요.” 강원 삼척 궁촌리 음나무 곁에서 포클레인을 동원해 작업에 열중하던 나무의사 이태선(38·솔뫼나무병원) 원장이 땀을 닦으며 한창 진행 중인 작업을 설명한다. 나무 뿌리가 숨을 편하게 쉴 수 있도록 공기 구멍이 있는 굵은 관을 촘촘히 박고, 논이었던 땅의 흙을 부엽토로 교체하는 작업으로 나무가 더 오래 살 수 있는 체력을 돋우는 일이라는 이야기다.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작업 상황을 점검하며 분주히 오가던 이 원장이 작업 기사들과 이야기를 바삐 나누는 틈에 이 마을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부녀회장 이금옥(66)씨가 찾아와 나무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려 때의 공양왕이 살던 집에 있던 나무라고 해요. 나는 이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그 집을 본 적은 없고,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만 들었지요.”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1345~1394)이 이성계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쫓기는 신세로 전락했을 때 이 음나무 곁에 숨어들어 집을 짓고 살았다는 이야기다. 살해 위협의 공포에 시달리던 중 공양왕은 더 안전한 곳을 찾아 삼척 궁촌리로 왔다. 그가 살 집을 지은 곳이 바로 이 음나무가 있는 자리였다. 당시에도 큰 나무였다고 하니, 이 나무의 나이는 1000살쯤으로 보아야 한다. 궁촌리 음나무는 근처의 공양왕릉과 함께 고려의 멸망사를 증거하는 중요한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잡귀 잡신을 막아주는 신통한 나무 공양왕은 자신에게 다가올 불행을 예감한 듯, 악귀를 막아 주는 커다란 음나무에 기대어 자신의 거처를 지었다. 그가 음나무 있는 집에서 살며 죽음의 공포를 이겨 내고자 한 데에는 까닭이 있다. 음나무는 죽음의 사자를 비롯한 온갖 귀신을 막아 준다는 오래된 믿음이 있어서 집안에 심고 기른 나무다. 여의치 않으면 음나무의 가지를 꺾어 대문이나 대청 마루 위에 걸어 놓기라도 했다고 한다. 귀신들이 도포자락이나 긴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담을 넘어 들어올 때 음나무 가지에 걸려 놀라서 되돌아간다는 생각이었다. 여느 나무와 달리 귀신의 옷자락이 음나무 가지에 잘 걸리는 건 촘촘히 돋아난 가시 때문이다. 가시는 초식동물의 공격을 막으려는 생존전략이다. 채 자라기도 전에 먹히기 십상인 음나무는 가지에 여기저기 가시를 내밀어서, 짐승의 접근을 막은 것이다. 하지만 1000년 가까이 살아온 궁촌리 음나무의 가지에는 가시가 전혀 없다. 이제 이 음나무는 초식동물이 다가와도 감히 꺾어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크게 자랐다. 굳이 가시를 내밀지 않아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몸피가 됐다는 이야기다. “이 나무가 아주 무서운 나무예요. 부러진 가지를 주워다가 집에서 불이라도 때면, 그 집안에 재앙이 생겨요.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요즘도 그렇다니까요. 누가 아프다든가, 망한다든가, 꼭 안 좋은 일이 생기지요.” 나무를 바라보며 이씨는 이 음나무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이자 상징이어서, 마을에는 음나무 한 그루씩 안 심은 집이 없다고 덧붙인다. 정월 초하루에서 사흗날 사이에 날을 잡아 치르는 정월 당산굿과 오월 단오에 벌이는 단오굿이 죄다 나무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가득 담긴 행사라고 한다. 단오굿은 특히 삼척시에서도 지원하는 큰 행사이기도 하다. ●나무 돌보는 건 마음 안식처를 돌보는 일 점심 시간을 좀 넘기면서 쉬는 시간 없이 계속된 부엽토 작업이 마무리됐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 원장은 곧바로 예정된 다른 나무 치료 작업 일정을 짚어 보고 떠날 채비로 발길을 재우친다. 떠나기에 앞서 잠시 이 원장은 나무의사의 신중한 눈길로 공양왕의 최후를 지켜 준 늙은 음나무를 수굿이 바라본다. 아픈 데나, 더 치료해야 할 곳이 없나를 짚어 보는 그의 그윽한 눈길이 마냥 따뜻하다. “사람 사는 곳에 나무 없는 곳은 없지요. 크고 오래된 나무들은 시골 마을의 수호목이라든가 당산목으로 사람들을 지켜 주는 상징이에요. 그래서 나무는 마음의 안식처이자 고향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고향을 생각하는 누구라도 마을 어귀의 큰 나무부터 생각하는 것은 그래서일 겁니다.” 결국 나무를 치료하는 건 곧 사람의 안식처를 돌보는 일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이 번득 다가온다. 듬성듬성 세월에 찢긴 가지를 드러낸 나무도 금세 흐뭇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오랫동안 나무가 사람에게 큰 안식을 제공했던 것처럼 이제는 거꾸로 사람이 나무의 안식을 돌볼 차례다. 나무의사 이태선 원장의 손길이 더 없이 고마운 까닭이다 글 사진 삼척 고규홍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강원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452. 삼척 시내 남쪽에는 동해 바다열차의 종점인 삼척역이 있다. 삼척역에서 바다가 내다보이는 아름다운 국도 7호선을 이용해 15㎞ 남짓 남쪽으로 가면 궁촌교차로가 나온다. 궁촌 방면의 나들목으로 나가서 좌회전하여 500m 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유턴하듯 좌회전하여 100m 간다. 우회전하여 700m 더 가면 궁촌리 마을회관이 나온다. 회관을 지나자마자 우회전하라는 천연기념물 음나무 안내판이 나온다. 개울을 타고 200m쯤 가면 마을 길가에 나무가 있다.
  • 김일성 생일 만찬 만든 리만카이 요리사의 홍콩 설 음식

    김일성 생일 만찬 만든 리만카이 요리사의 홍콩 설 음식

    “궁혜이파초이! 궁혜이파초이!(恭喜發財·홍콩 광둥어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뜻)” 홍콩의 설은 우리보다 훨씬 시끌벅적하다. 홍콩 거리 어디에서나 ‘궁혜이파초이’를 외치는 사람들과 함께 악귀를 쫓는다는 사자 탈춤을 볼 수 있고 폭죽놀이도 곳곳에서 벌어진다. 한국의 설 음식은 떡국을 대표로 강정, 전 등이 있지만 홍콩을 대표하는 요리인 딤섬(點心)은 종류가 더 다양하다. 설을 앞두고 홍콩의 세계적인 요리사 리만카이가 서울 역삼동 리츠칼튼 호텔을 찾아 딤섬 요리의 진수를 알려주고 갔다. 리는 1988년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의 생일에 초청되어 전세기를 타고 평양으로 가 40일 동안 요리를 한 적이 있다. 그는 21일 “북한 당국이 모든 재료가 신선해야 된다고 요구해 살아 있는 닭과 생선을 가져갔다. 하지만 직항편이 없어 중국 베이징에 들렀다 갔더니 시간이 너무 지나 모두 죽어버렸다.”며 당시 일화를 회고했다. 평양에 머무는 동안에는 자정에도 불려 나가 요리를 했을 정도로 “감옥에 머물며 요리만 하다 풀려난 기분”이라고 기억했다. 리는 한국의 설을 위해 모두 다섯 가지의 딤섬 요리를 소개했다. 가장 대표적인 설 딤섬은 ‘② 화개부귀’(花開富貴)와 ‘③ 복주머니’. ‘화개부귀’는 미니 양배추에 십자로 칼집을 넣은 다음 다진 돼지고기를 그 안에 넣고 다진 홍피망으로 장식해서 찌면 된다. 찐 양배추는 마치 꽃이 피는 것처럼 살짝 벌어져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다. 그는 “돼지고기는 칼로 다져서 손으로 치대면 된다. 믹서나 도깨비 방망이로 갈면 고기가 뻑뻑하고 맛이 떨어진다. 삼겹살 부위를 다져 넣으면 씹는 맛이 더 좋다.”고 설명했다. 고기 양념은 기본인 소금, 후추를 입맛에 따라 하면 되지만 이금기 굴소스나 치킨 파우더를 넣으면 훨씬 홍콩 특유의 딤섬 맛이 살아난다. ‘복주머니’는 부를 상징하는 게, 건강을 뜻하는 생선, 가족을 의미하는 새우를 넣고 계란 흰자 피로 싼 것이다. 속 재료를 넣고 물에 한번 데친 파로 묶어주면 그 모양이 마치 복주머니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계란 흰자 피는 옥수수 전분을 조금 섞어주면 잘 찢어지지 않는다. 흰자에 옥수수 전분을 섞어 약한 불에 숟가락으로 적당량을 동그랗게 프라이팬 위에 두른다. 팬케이크를 만들 때처럼 거품이 살짝 생기면 뒤집지 말고 이쑤시개로 걷어내면 피가 완성된다. 집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딤섬으로는 ‘⑤ 버섯+소고기’가 있다. 말린 표고버섯은 한 번 삶은 뒤 다진 소고기를 얹어서 쪄내기만 하면 된다. 소고기를 다지고 양념하는 법은 돼지고기와 같다. 여기에 고수와 말린 귤 껍질을 넣으면 향이 더해진다. 귤 껍질은 중국에서는 진피라 하여 시장에서 팔지만 가정에서 말렸다가 물에 불려서 써도 된다. 다진 새우와 돼지고기를 넣어서 만든 만두인 ‘① 쇼마이’도 위에 귤 껍질로 장식하면 훨씬 모양이 예쁘다. 그가 소개한 딤섬 가운데 가장 손쉬운 것은 ‘④ 배추잎으로 싼 오리고기’다. 마트에서 파는 훈제 오리고기를 한번 삶은 배추잎으로 싼 다음 살짝 쪄내기만 하면 끝이다. 홍콩관광청의 정세영씨는 “홍콩 음식은 감칠맛이 나고 중독성이 있다.”고 소개했다. 게다가 설에 먹는 음식에는 좋은 일(好事·호우씨)과 발음이 같은 ‘말린 굴’로 만든 수프 등 발음, 모양, 색깔 등에 모두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오는 설에는 재미있는 모양의 만두(딤섬)를 만들며 승진과 부를 기원해 보는 것은 어떨까.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독기 품은 홍명보호 짜릿한 역전銅

    독기 품은 홍명보호 짜릿한 역전銅

    24년 만에 금메달은 놓쳤다. 그러나 빈손으로 돌아가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후반 33분 1-3의 스코어. 패배의 그림자가 대표팀을 덮었다. 그러나 준결승전의 아쉬움이, 한국 축구의 자존심이 태극전사들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12분 만에 3골. 동메달. 아시안게임 최고의 반전 드라마. ‘준결승전에서 마지막까지 이렇게 했다면’ 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한판이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25일 광저우 톈허스타디움에서 치러진 이란과의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3·4위전에서 박주영(AS모나코)의 추격골을 시작으로 지동원(전남)의 동점골과 역전골이 잇달아 터지면서 4-3으로 승리, 동메달을 따냈다. 지동원은 헤딩으로 두골을 성공시키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한국은 경기 시작 5분 만에 중앙에서 이란의 모흐센 모살만에게 볼을 뺏겼고, 모살만의 스루패스를 받은 레자에이 골람레자에게 선제골을 헌납, 힘들게 경기를 끌어갔다. 박주영을 원톱으로 내세워 반격을 시작한 대표팀은 전반 28분 조영철(니가타)이 골망을 갈랐지만 부심이 오프사이드를 선언해 무위에 그쳤다. 홍명보 감독은 전반 32분 측면 공격수로 나선 홍철(성남)이 부상당하자 지동원을 투입, 공격을 강화했지만 추가시간에 알리아스가리데하기 하미드레자에게 추가골을 내주며 전반전을 마쳤다. 0-2. ☞[아시안 게임 화보] 광저우 정복한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 홍명보 감독이 하프타임 때 입을 뗐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이렇게 경기를 하면 안 된다.” 짧고 무거운 주문이었다. 그래서일까 후반은 달랐다. 대표팀은 후반 3분 구자철(제주)이 페널티 지역 오른쪽 부근에서 시도한 왼발 중거리 슛이 성공하면서 추격의 발판을 마련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곧바로 안사리 파르드 카림에게 세 번째 골을 허용하며 다시 이란에 무릎을 꿇는 듯했다. 한국은 2006년 도하대회 때도 3·4위전에서 이란에 0-1로 져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번엔 박주영이 있었다. 후반 추격골로 패배의 그림자를 떨쳐냈다. 그리고 지동원이 날았다. 후반 43분 서정진이 오른쪽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를 골 지역 왼쪽에서 머리로 방향을 바꿔 동점골을 터트렸다. 지동원은 1분 뒤 왼쪽 측면에서 올라온 윤석영(전남)의 크로스를 페널티 지역 정면에서 강하게 머리로 받아 극적인 역전 결승골을 꽂았다. 준결승전 막판 아랍에미리트전에서 보였던 무력함은 없었다. 경기가 끝난 후 박주영은 “지금까지 축구하면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소중한 깨우침을 선물해 준 후배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선수들도 이번 대회에서 값진 경험을 얻었다. 투지를 잃어버렸던 준결승에서 통한의 5초. 악귀처럼 포기하지 않고 달라붙은 3·4위전에서의 대역전승. 무엇이 승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지를 알았다. 이제 홍명보호의 목표는 2012년 런던올림픽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번 대회에서 배웠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이유다. 한편 일본은 아랍에미리트를 1-0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일본 남자축구가 아시안게임에서 따낸 첫 금메달이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생명의 窓] 나이 세는 법/이성택 학교법인 원광학원 이사장

    [생명의 窓] 나이 세는 법/이성택 학교법인 원광학원 이사장

    유식무식, 남녀노소, 선악귀천을 막론하고 치매에 걸리지 않은 이상 자기 나이를 셀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나이 세는 법을 말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나이 세는 법이 생명 사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리 전통의 나이 세는 방법과 서양의 나이 계산법은 서로 차이가 있다. 그래서 만 몇 세라는 말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이 서구식 나이 세는 법이 보통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계산법의 차이는 어디에서 유래된 것일까? 그것은 임신한 때를 기준으로 하느냐, 아니면 세상에 태어난 때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임신한 날을 기준으로 하면 갓 태어난 아기는 한 살이 된다. 그러나 출생을 기준으로 하면 태어나서 1년이 지나야만 한 살이 된다. 나이 계산법은 태아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 조상들은 슬기롭고 지혜로워 어머니 뱃속에서 장양되는 열 달을 이미 나이로 계산하였다. 그래서 한국 전통사상에서는 태교라는 말이 공공연히 사용되어 왔다. 즉, 어머니의 마음 작용과 몸가짐이 태아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태교를 하는 사람은 음식을 조심하고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정중히 하여 뱃속 아기가 건강한 심신으로 자라도록 배려하였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고 착한 마음을 가지면 태아에게 그대로 영향을 준다. 이런 조상들의 미풍양속은 잘 계승되어야 한다. 요즘은 의술과 과학의 발달로 태교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서구의 나이 계산법이다. 대구에서 대학을 다닐 때 같은 학년, 같은 나이의 여학생이 있었다. 졸업 후 나는 성직자의 길을 걷고 그분은 속 깊은 신심을 가진 교도가 되어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다. 몆 년 전 미국을 방문하여 반가운 만남이 이루어졌다. 지난 과거를 회상하며 우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얘기 꽃을 피우다 분명 동갑내기인 그가 나보다 두 살이나 적게 자기 나이를 말하지 않는가!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동·서양의 나이 계산법이 이처럼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도 이제 서양식 나이 계산법을 따르고 있다. 이런 셈법은 나이가 한 살이나 두 살 적어지니 기분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여기서 제기 하고 싶은 것은 서구식 나이 계산법을 가지고 지금 성행하는 ‘낙태’라는 사회적 문제를 과연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임신부터 생명체로 인정하면 낙태는 당연히 죄악이다. 그러나 세상에 태어난 시간부터 생명체로 인정한다면 낙태는 용납될 수도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낙태를 인정하자는 게 결코 아니다. 우리 선조들은 일찍이 임신과 함께 태아를 이미 생명체로 인정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낙태라는 행위는 죄악이며 살인에 해당함에 재론의 여지가 없다. 나는 신문이나 TV 뉴스에서 원정출산, 원정낙태 사실 보도를 보고 탄식을 금치 못한다. 의학의 발달로 낙태는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였다. 의학의 발달이 우리에게 이로움을 제공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잘못 사용하면 그것은 하나의 해독에 불과하다. 지금은 태아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존귀함을 함께 강조할 시점이다.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나이 세는 법을 주위에 다시 상기시켜 나가자. 그래서 태아교육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크게 부각해 나가야 한다. 뱃속에 든 아이부터 교육하는 그 슬기를 배워야 한다. 나는 요사이 드라마에서 태교문제로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에 갈등하는 것을 보고 크게 걱정한다. 저런 드라마를 보고 시청자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자기 의사와는 다른 대사를 소화하고 감정을 담아 연기한다는 것이 태아에게는 악영향을 미칠것이다. 태교가 중요하다면 오히려 상호 갈등과 상극의 모습은 빼버리자. 그리고 상생과 화합·협력의 모습을 보여주자. 이 작은 실천이 생명 운동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데 일조할 것이다.
  • ‘여우누이뎐’ 칼 든 양부인 광기 섬뜩...결말 관심집중

    ‘여우누이뎐’ 칼 든 양부인 광기 섬뜩...결말 관심집중

    ’내 사랑이 피가 되어 흘러내린다/ 온 세상을 모두 빨갛게 물들인다/ 이제 너만 없으면 돼/ 입술을 물고 피눈물을 닦는다/ 나의 사랑을 피눈물로 닦는다’극의 후반부를 향해 치닫고 있는 KBS 2TV 월화드라마 ‘구미호 : 여우누이뎐’(극본 오선형 정도윤, 연출 이건준 이재상) OST 중 극중 인물 구산댁(한은정 분) 주제가인 ‘피눈물’의 가사다. 구미호의 모정을 표현함과 동시에 인간과의 허망한 사랑이 덧없음을 노래하고 있다. 극중 구산댁과 대립구도를 이루는 양부인(김정난 분)이 느끼는 감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16일 방송분이 ‘피눈물’ 가사가 의미하는 바를 여실히 보여줬다. 16일 방송에서 양부인은 마침내 딸 초옥(서신애 분)의 몸에서 연이(김유정 분)를 몰아내기 위해 칼을 뽑아들었다. 양부인(김정난 분)은 밤중에 몰래 연이의 방에 들어가 어미를 용서하라며 이불로 덮여있는 딸을 칼로 찔렀다.순간의 잘못을 후회하며 이불을 걷어 보니 칼이 박힌 것은 연이의 심장이 아닌 베게더미.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찰나 갑자기 나타난 두수(장현성 분)에 의해 그 장면이 발각되고 양부인은 마침내 집에서 쫓겨났다.연이를 되돌리기 위한 양부인의 집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고 계향(임서연 분)에게 나뭇가지 묶음을 쥐어주며 연이를 사정없이 때려 악귀를 쫓아내 달라 부탁하는 등 정상적인 행동의 범주를 벗어난 듯 보였다.결국 양부인은 박수무당 만신(천호진 분)이 일러준 대로 연이를 납치했지만 구산댁은 이를 알고 뒤따라왔다. 육신은 인간, 영혼은 짐승인 딸을 둘러싼 두 어미의 몸싸움 과정에서 구산댁을 찌르려던 양부인의 칼이 연이의 가슴팍에 내리꽂혔다. ’이제 너만 없으면 돼’라는 ‘피눈물’ 가사처럼 반인반수인 딸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어미간의 광적인 집착의 그림자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던 셈.구산댁은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은 연이를 품에 안고 달아났고 이를 뒤 杆아가던 양부인은 마침내 구미호의 정체를 알게 됐다.한편 16일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양부인의 집착이 도를 넘어섰다. 구미호보다 무서울 지경”, “연이는 죽는 건가요?”, “만신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요?” 등 종방을 앞두고 과연 어떤 결말이 그려질 지 뜨거운 관심과 반응을 보였다. 사진 = KBS 2TV ‘구미호 : 여우누이뎐’ 화면 캡처서울신문NTN 오영경 인턴기자 oh@seoulntn.com 서울신문NTN 오늘의 주요뉴스▶ 황정음 "실리콘 넣었다 빼..돌아온 자연미인"▶ 배두나 "10년 지기 강세미, 첫인상 ‘쟨 아냐’"▶ 솔비, 다이어트 성공? V라인턱+S라인몸매 뽐내▶ 비, 론칭 의류브랜드 ‘6to5’ 창고정리 굴욕▶ 신세경, 가을 속옷 화보촬영..가슴골 아찔▶ ’열애’ 지드래곤 "키키키" 열애설 이미 예언했다▶ 곽현화, 춤·노출·재킷·체조..뭘해도 선정성논란
  •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 ‘아이스 사케’ 특별 혜택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 ‘아이스 사케’ 특별 혜택

    [서울신문NTN 이규하 기자]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 일식당 ‘슌미(SHUNMI)’는 여름 특선으로 시원하게 즐기는 ‘아이스 사케’를 7월 14일부터 9월 13일까지 제공한다. 매월 4일, 14일, 24일을 사케 마츠리(축제) 데이로 정해 50% 특별 할인혜택을 제공하고 있는 슌미는 7월 14일을 ‘아이스 사케’ 축제일로 정해 또 한 번 일본 전통식 가가미비라키 이벤트를 펼칠 예정이다. 가가미비라키는 일본에서 축하 할 일이 있을 때 술독의 뚜껑을 깨서 여는 행사로 악귀를 쫓고 행운을 빈다는 의미가 있다. 슌미가 제공하는 여름 특선 ‘아이스 사케’는 아오케키 타루사케, 쇼치쿠바이 타쿠죠, 시즈쿠 긴죠, 사사라츠키, 메이보 요와노츠키의 등 5종류의 아이스 사케와 식전주로도 손색이 없는 스파클링 사케인 오제키 하나아와카를 4만원에서 7만원의 부담 없는 가격대에 선보인다. 주중(월~금) 디너 이용 고객에게는 특별 서비스로 아이스 사케 한잔을 무료 제공한다. 사케는 알코올 도수가 15~17도로 쌀의 전분을 누룩이 당으로 바꾸고 다시 효모가 알코올로 바뀌면서 은은하고 섬세한 맛을 느낄 수 있고 목 넘김이 좋아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한편 슌미는 사케 전용 셀러(Celler)를 통해 43개의 일본 전국 각 현의 사케 명주들을 즐길 수 있는 사케 전문 별실 사케룸을 갖추고 있으며 총 130석 규모의 넓은 공간에 8개의 PDR(프라이빗 다이닝 룸), 5개 일본식 다다미형 좌실 자시키룸, 스비사 등 최고급 시설과 서비스를 자랑한다.이규하 기자 judi@seoulntn.com
  •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 혣미, ‘사케 축제’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 혣미, ‘사케 축제’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 일식당 혣미(旬味, SHUNMI)는 지난 24일 ‘사케 마츠리(축제) 데이’행사 일환인 ‘가가미비라키’ 오프닝 이벤트를 펼쳤다.가가미비라키는 일본에서 축하 할 일이 있을 때 술독의 뚜껑을 여는 행사로 악귀를 쫓고 행운을 빈다는 일본 전통의식이다.노보텔 앰배서더 강남 제롬 스투베르 총지배인은 이날 일본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혣미의 사케 비즈니스 행운을 기원하고자 술독 뚜껑을 깬 후 사케를 잔에 담아 현장을 찾은 고객들에게 직접 무료시음의 기회를 서비스했다.또한 혣미는 사케룸 오픈과 함께 사케 애호가들을 위해 사케의 앞 글자인 ‘사(4)’자를 따서 매월 4일, 14일, 24일 특별 프로모션 ‘사케 마츠리 데이’를 펼친다.프로모션 사케 주문 시 50%의 파격적 할인 혜택을 제공하며 24일부터 오는 6월 30일까지 니가타 현을 테마로 한 니가타 사케 세트 메뉴를 75,000원(부가세 별도)에 제공한다.문의 및 예약 :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 ‘혣미’ 02-531-6477사진=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서울신문NTN 이규하 기자 jud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49) 충남 홍성 용봉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49) 충남 홍성 용봉산

    용봉산은 만만해서 좋다. ‘용의 형상에 봉황의 머리를 얹어 놓은 형국’이란 이름의 용봉산(龍鳳山)이 만약 강원도에 있었다면 설악산 수준이겠지만, 충남 내포 지방에 솟아난 덕분에 낮고 친근한 산이 됐다. 용봉산은 내포의 수호신 가야산(678m)과 고찰 수덕사를 품은 덕숭산(495m)의 그늘에 가려져 그다지 알려진 산이 아니었다. 밑에서 보면 밋밋하기 그지없어 산행 욕구가 발동하지 않지만, 일단 올라가면 설악산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기암괴석이 빼어난 산이다. 옹골찬 암릉길이면서도 위험하지 않아 아이들을 데려 가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바위미 빼어난 충남의 소금강 용봉산 산행은 용봉초등학교와 용봉사 들머리 코스가 대표적이지만, 몇 년 전부터 용봉사 입구 왼쪽에 자리 잡은 용봉산 청소년수련원에서 오르는 코스가 개발됐다. 이 길을 따르면 최영 장군 활터 부근에서 빼어난 바위미를 즐길 수 있고, 용봉사로 내려오면 원점 회귀가 가능해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청소년수련원을 들머리로 용봉산 암릉을 즐기고 용봉사로 내려오는 길은 약 4㎞. 넉넉하게 3시간쯤 걸린다. 홍성읍에서 609번 지방도를 타고 10분쯤 올라가면 용봉산이라 씌여진 거대한 돌비석을 만난다. 이곳이 용봉사 입구다. 널찍한 주차장 옆 시멘트 도로를 따라 200m쯤 올라가면 용봉산 청소년수련원이다. 수련원 건물과 간판이 커서 주차장에서 쉽게 눈에 띈다. 차를 가져왔으면 수련원의 널따란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등산로는 수련원 뒷길을 따르는데, 용봉산 자연휴양림 영역이다. 등산로는 핸드볼 골대 옆 화장실 앞에서 시작된다. 솔숲을 따라 100m쯤 오르면 휴양림에서 세운 나무의자가 많이 보이고 길이 갈린다. 왼쪽은 최영 장군 활터를 거쳐 정상, 오른쪽은 노적봉을 경유해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호연지기 솟아나는 최영 장군 활터 왼쪽 길로 15분쯤 오르면 서서히 암릉이 보이기 시작하고 멀리 악귀봉과 병풍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좀 더 오르면 봉우리마다 온통 바위들로 뒤덮여 있는데, 마치 고슴도치 몸통에 돋아난 가시 같다. “허어 참! 바위 좋네!” 절로 감탄을 흘리며 제법 가파른 비탈을 오르면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최영 장군 활터다. 그가 정말로 이곳에서 활을 쏘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용봉산 동쪽 노은리에서 태어난 최영 장군이 이곳에서 호연지기를 길렀음은 짐작할 수 있겠다. 활터를 지나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이 주릉이다. 정상은 왼쪽으로 50m 정도 떨어져 있다. 불룩한 바위가 있는 정상은 조망이 좋지 않아 산꾼들에게 인기가 없다. 다시 삼거리로 내려와 악귀봉으로 향하는 주릉을 탄다. 이곳에서 악귀봉까지가 용봉산의 제1경에 해당하는 아름다운 암릉길이다. 삼거리에서 노적봉까지는 불과 300m에 불과하지만 빼어난 주변 풍경이 발목을 잡아 걸음이 더딜 수 밖에 없다. 노적봉의 바위 지대를 우회하면 대왕봉. 이곳은 마치 축소한 울산바위처럼 아름다운 바위가 지천이다. 대왕봉 북쪽으로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길쭉하고 딱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인상적인 바위가 눈에 띄는데, 그곳이 악귀봉이다. 악귀봉 너머로 용봉저수지와 수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잘 보인다. 그러고 보니 지나쳐온 봉우리들의 이름들이 참 재밌다. ●병풍바위를 두른 소박한 용봉사 악귀봉 정상은 오를 수 없고 오른쪽으로 우회하게 된다. 나무계단을 내려오면 정자를 만나면서 암릉 지대가 끝나고 부드러운 능선이 20분쯤 이어진다. 이어지는 병풍바위 입구 삼거리. 여기서 계속 능선을 타면 예산 수암산으로 이어지고, 용봉사로 내려가려면 오른쪽 병풍바위로 가야 한다. 다시 시작되는 암릉을 10분쯤 가면 널찍한 암반이 일품인 병풍바위다. 앞쪽으로 드넓은 내포 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병풍바위에서 충분히 쉬었으면 이제 하산이다. 험한 길을 조금만 내려오면 용봉사에 닿는다. 용봉사는 병풍바위를 배경으로 앉은 모습이 단아하면서도 힘이 있다. 조선 후기까지 근처 수덕사에 견줄 만한 큰 절이었다고 하지만, 절터에 조상묘를 쓰려는 세도가의 횡포 때문에 지금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용봉사의 보물인 영산회괘불탱(보물 제1262호)을 구경하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늘어선 진입로를 콧노래를 부르며 내려오다 부처님과 딱 눈이 마주쳤다. 일주문 직전의 작은 암벽에 새겨진 잘 생긴 부처님(용봉사마애불)은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건넨다. ●가는 길과 맛집 승용차는 서해안고속도로 홍성나들목으로 나와 29번 국도~홍성~용봉사 입구로 간다. 서울에서 2시간20분쯤 걸린다. 서울에서 홍성행 버스는 동서울터미널에서 06:40, 08:30, 10:00, 11:40, 13:20, 14:40, 16:00, 17:10, 19:00에 있다. 기차는 용산역(장항선)→홍성역 무궁화호와 새마을호가 매일 17회(05:30~20:55), 홍성터미널에서 용봉사 입구로 가는 시내버스는 매일 20분 간격(07:30~20:40)으로 운행한다. 산행을 마치고 근처 덕산면 온천지구의 세심천온천호텔(041-338-9000), 홍성 읍내의 홍성온천(041-633-6666)에서 피로를 풀 수 있다. 홍성은 한우가 유명해 여러 식당에서 저렴하게 즐길 수 있고, 읍내에서 20분쯤 걸리는 남당항에 가면 겨울철 별미인 새조개를 맛볼 수 있다. 글 사진 mtswamp@naver.com
  • 나이들면 욕심도 미움도 사라질줄 알았는데…

    정진홍(72)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나이를 먹으면, 그것도 일흔이 넘으면, 나는 내가 신선이 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온갖 욕심도 없어지고, 이런저런 가슴앓이도 사라지고, 남모르게 품곤 했던 미움도 다 가실 줄 알았다고 했다. 후회도, 안타까움도, 두려움도, 죽음의 절망도 아침 안개처럼 걷힐 줄 알았다고 했다. 종교학자이기도 한 그는 나이 일흔은 ‘드문나이’라고 해서 고희(古稀)라고 했는데, 성숙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남자이길, 여자는 여자이길 그만두고,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을 나누는 갈래짓기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일흔이 되고 보니 욕심도 가시지 않고 가슴앓이도 삭지 않고, 미움도 여전하고 고집은 신념이란 이름으로 더 질겨지고, 과거의 보람은 고함처럼 커간다고 했다. 예순 때보다 쉰 때보다 더 철저하게 사람 구실을 하나도 놓지 않고 더 질기게 사람노릇하는 나 자신을 확인한단다. 그는 일흔에 자신의 스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그것이 민속지에 나오는 민담(民譚)과 다르지 않고, 다른 종의 생물이 인간의 언어로 여긴다고 증언한다. 일흔이 발언하면 일흔을 함께 사는 사람 말고는 아예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고 했다. 노인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기 위해 고안해 놓은 사회복지도, 종교도, 공동체와 혈연마저도 노인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증오는 신념으로 승화하고, 갑자기 지사(志士)가 되기도 한다. 돈 문제로 치사스럽고,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조바심에 바짝 건강을 염려하는데, 옆에서 볼 때는 다 늙은 노인네가 주책스럽다고 여긴다고 속상해한다.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어사연 글, 궁리 펴냄)에서 정 교수가 70대를 대표해서 글을 쓴 것이 서문이 됐다. 이 책은 10대부터 80대까지 10년씩 잘라서 각 연령대마다 노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개인적 경험에 비춰 적어내려간 책이다. 어떤 은퇴한 부부가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들 부부를 불러 저녁식사를 하면서 “잘 다녀 오마.”하고 인사를 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까지 아들 부부를 배웅 나간 부모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힌 뒤 빨리 내려가지 않아서 듣지 않은 만 못한 소리를 듣게 된다. 아들은 “노인네들이 벌어놓은 것 다 쓰고 세상 뜰 모양이지.”라고 말한 것. 상심한 늙은 부부가 주변에 하소연했더니, 다른 집 자식들도 마찬가지라고 하더란다. 늙음과 젊음, 이렇게 서로의 형편과 처지가 다르다. 평소 공자의 말씀에 귀기울여왔던 동양인들은 최소한 40세가 되면 불혹, 50세 지천명, 60세 이순의 순으로 유혹을 떨쳐내고, 하늘의 뜻을 이해하며, 어떤 소리에도 희로애락하지 않는다고 알아왔는데 70세가 넘어서도 떨쳐왔다고 생각해 온 그 세계가 악귀처럼 달라붙어 있다니 실소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근력과 육체를 사랑하는 산업자본주의시대에 늙는 일은 서럽기 짝이 없다. 쏟아지는 과학문명에 자신들의 지혜는 설 자리를 내주고 폐기물로 돌아서야 하기 때문이다. 1만 2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생쥐와 해바라기 / 이동렬

    [엄마와 읽는 동화] 생쥐와 해바라기 / 이동렬

    생쥐네 집은 재원네 집 마당 끝에 있었습니다. 마당과 밭이 잇닿는 밭둑 굴속이 생쥐네 집이었습니다. 주변에는 먹이가 많았기 때문에 생쥐네 창고는 언제나 먹이로 가득했습니다. 덕분에 생쥐들의 털빛도 늘 윤이 났습니다. “아빠, 이게 무슨 곡식이에요?” 호기심 많은 막내 생쥐가 콩알만 한 먹이를 물고 와 아빠 생쥐한테 물었습니다. “글쎄다! 이런 곡식 낟알은 나도 처음 보는데? 이건 생긴 모양이 콩도 아니고 그렇다고 팥도 아니고……. 무슨 곡식 모양이 꼭 수류탄같이 생겼을까?” 아빠 생쥐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그건 위험한 먹이일지도 모르니 그냥 창고에 놔둬라.” “그렇게 할게요. 그런데 이런 먹이가 달렸던 곡식은 어떤 모양인지 궁금해요.” 막내 생쥐는 이상하게 생긴 먹이를 굴 속 창고 한 쪽에 놓았습니다. 놓고 돌아서면서도 궁금증은 가시지를 않았습니다. 잠시 후 밖에 나갔던 아빠 생쥐는 조금 크고 넓적한 씨앗을 물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신바람이 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얘들아, 내가 호박씨를 구해왔다. 저 밭둑에 잘 익은 큰 호박이 썩었지 뭐냐. 그래서 내가 그 호박 속으로 들어가 씨를 먹어보니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었어. 우리 다 같이 호박씨를 더 가지러 가자.” “나도 그 호박을 어제 봤어요. 가는 김에 그 옆에 있는 해바라기 씨도 따옵시다. 고소하기로는 해바라기 씨가 더 고소하지요.” “해바라기 대궁을 타고 올라가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맛은 어떻고요. 우리는 땅으로만 기어 다녀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보는 재미를 전혀 모르잖아요. 우물 안 개구리라고요. 더 넓은 세상을 구경해야 해요. 우리 대궁에 올라가 멀리 내다볼래요.” “그런 데 함부로 올라가면 안 돼. 실수로 떨어질 수도 있고, 들고양이나 너구리한테 걸리는 날에는 끝장이라구.” “그래도 저는 올라갈 거예요. 해바라기 대궁을 타고 꽃에 올라가 먼 세상을 바라보면 가슴이 탁 트여요. 새로운 꿈도 생기고요. 온 세상이 다 제 것 같은걸요.” 막내 생쥐는 자꾸 고집을 부렸습니다. “꿈도 좋지만 여기 밭둑이 어때서 그러니? 배부르면 그만이지. 자자, 그만 하고 어서 호박씨나 가지러 가자.” 아빠 생쥐의 말에 온 식구들은 뒤를 따랐습니다. 막내 생쥐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쥐네 식구들은 쉬지 않고 호박씨를 물어다 이리저리 파놓은 땅굴 창고마다 쌓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낟알도 많이 물어다 쌓았습니다. 깨알보다 더 작은 씨앗들은 젖은 호박씨에 묻어오기도 했습니다. 가을이 가고, 겨울도 갔습니다. 드디어 봄이 되었습니다. “아빠, 우리가 창고에 쌓아 놓은 먹이에서 싹이 나와요.” “그래! 그럼 먹지 마라. 싹이 나지 않은 새로운 곡식이 얼마든지 널려 있는데 굳이 그걸 먹을 필요가 없지.” 생쥐네 창고 먹이에서 싹튼 새싹은 땅밖으로 고개를 쏙 내밀고 커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밖으로 나가던 엄마 생쥐가 놀라서 들어오면서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얘들아, 지금은 위험하니 나가지 마라. 재원이 할머니가 이리로 오고 있어.” 그 말에 생쥐네 식구들은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는 죽은 듯이 엎드렸습니다. “참 이상하다! 아무도 여기다 화초 씨를 심지 않았는데 이렇게 여러 가지 꽃모가 나오다니! 이건 분꽃, 이건 채송화, 이건 봉숭아, 그리고 이건 해바라기네! 어이구, 호박과 옥수수, 땅콩도 싹을 내밀었네! 이 씨앗들이 바람에 날려 왔나? 그렇지 않으면 누가 흘렸나? 나도 미처 만들 생각을 못했던 꽃밭이 생기다니…….” 재원이 할머니는 꽃모 사이에 난 풀을 일일이 뽑아주며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그 새 생쥐네는 정말로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엎드린 채 할머니가 다른 곳으로 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할머니는 꽃밭의 풀을 다 매고야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여보, 우리가 물어온 것들 중에 꽃씨가 많았던 모양이에요?” “그런가 보구먼.” “애들아, 앞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조심해야 한다. 알았지? 저 할머니가 꽃밭에 자주 올 거야. 그러면 너희들이 할머니의 눈에 띌 수도 있잖니?” “그것뿐이 아니야. 이곳에는 들고양이와 너구리들이 늘 찾아오는 곳이야.” 생쥐 부부는 아기 생쥐들한테 단단히 일렀습니다. “그래도 해바라기 꽃에는 올라가 보고 싶어요. 저는 거기서 먼 세상을 보면서 해바라기 꽃처럼 크고 아름다운 꿈을 키울 거예요.” “그건 위험한 일이라고 했지!” 아빠 생쥐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생쥐네 식구들은 그날부터 조심해서 먹이를 찾으러 다녔습니다. 햇살이 점점 따뜻해졌습니다. 낮의 길이도 점점 길어졌습니다. 그러자 꽃모들의 키도 몰라보게 커갔습니다. 생쥐들은 거기서 어떤 꽃이 필지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흥분한 재원이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고, 그새 분꽃이 폈네! 어머나, 맨드라미와 봉숭아꽃도 피었네! 야, 꽃 색깔이 곱기도 하다! 여긴 호박이 두 개나 맺혔네! 옥수수도 곧 달리겠고…….” “할머니, 어느 게 봉숭아고 어느 것이 맨드라미예요?” 쪼르르 달려 나온 재원이의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여태 그런 것도 모르니? 이 닭 벼슬처럼 생긴 빨간 꽃이 맨드라미고, 빨간 꽃잎이 여럿 뭉쳐 핀 건 봉숭아지. 이 할미가 어려서는 봉숭아 꽃잎을 찧어서 손톱에 물을 들였단다. 손톱에 물을 들이면 악귀와 병마를 물리친다고 했지. 그리고 이 분꽃 좀 봐라. 꼭 작은 나팔 같지? 이 나팔 모양의 꽃이 지면 까만색의 작은 수류탄 같은 열매가 열린단다.” “정말요?” “그럼. 그런데 귀신 곡할 노릇이다. 우리 식구 중에 누구도 꽃을 심은 사람은 없는데 이렇게 훌륭한 꽃밭이 됐으니. 히야, 저 키 큰 해바라기는 곧 꽃을 피우겠는걸!” 생쥐네 식구들은 굴속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입이 간지러웠습니다. 금세라도 달려나가 자기네가 심었다고 말하고 싶었거든요. “아아, 해바라기 꽃요! 그 꽃이 해님을 따라서 고개를 돌린다는 꽃인가요?” “그렇지. 해바라기는 비가 오거나 날이 흐린 날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해만 나면 고개를 바짝 쳐들고 해만 바라보고 있지. 한평생 해님을 사모하며 쳐다보는 그 모습이 얼마나 멋지다구.” 해바라기에 대해서 자세히 안 것은 재원이뿐이 아닙니다. 굴속에서 엿듣고 있는 생쥐들도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 나는 뭘 존경할까? 해바라기 꽃이 평생 사모하는 해님처럼 하늘에 떠 있는 별을 사모할까. 아예 내가 하늘에 올라 생쥐별이 되면 어떨까.” “그건 아주 위험한 일이야. 이뤄질 수도 없고.” “형, 위험한 일이라도 나는 해보고 싶어. 그 꿈을 향해 더 큰 생각을 하고 싶어.” “왜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니?” 생쥐 형제는 티격태격 말씨름을 했습니다. 생쥐네 꽃밭은 여름 내내 풍성했습니다. 생쥐들이 오줌과 똥을 싸 거름이 됐는지 꽃모들은 아주 튼튼하게 자랐습니다. 피어난 꽃들도 오래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바라기의 꽃잎이 마르고 얼굴에 박힌 씨앗이 여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어디선가 까치 한 쌍이 날아왔습니다. 날아온 까치들은 해바라기 얼굴에서 잘 익은 씨앗만 콕콕 쫘서 빼내 까먹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아빠 생쥐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 해바라기를 가만 두지 못해! 그 해바라기는 우리가 씨를 물어다 여기 심어서 키웠단 말이야!” “생쥐야, 너도 이제 보니 아주 쓸 만한 녀석이구나. 우리를 위해 그렇게 좋은 일을 미리 한 것을 보니.” 까치는 하얀 뱃바닥과 어깻죽지를 흔들어대면서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러면 너희를 잡아먹게 부엉이나 수리를 불러온다. 과일농사를 다 망쳐놓은 이 도둑까치들아!” “농작물 망치기로 치면 고라니나 멧돼지들이 더하지. 그래도 그 녀석들은 사람들한테 보호만 받으면서 살던데? 사람들이 너희 생쥐한테는 도둑이라 불러도 우리에겐 그렇게 부르지 않아.” “흰소리는! 그러니까 ‘까치 뱃바닥 같다.’는 속담까지 생겨났지.” “입은 살아서 나불대기는. 가만히 있다가 우리가 먹고 남은 찌꺼기나 차지하시지. 저 잡아먹을 들고양이가 다가온 것도 모르는 주제에 뭐 우리를 어쩌고 어째!” 막내 생쥐는 들고양이란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래 아래를 내려다보자마자 하얗게 질려버렸습니다. “야옹, 캭!” 살금살금 다가온 들고양이는 높이 점프하여 앞발로 막내 생쥐를 쳐냈습니다. 그리고는 생쥐와 같이 떨어지면서 생쥐를 한입에 물었습니다. “찍찍, 찌지직! 찍” 막내 생쥐는 고양이한테 꼬리를 잃고 정신없이 굴속으로 도망쳤습니다. “아니, 막내야! 어머머, 배와 등에 난 이 들고양이 이빨 자국 좀 봐! 흑흑…….” “막내야! 우리들이 뭐랬어? 엉엉엉…….” 생쥐네 식구들은 막내 생쥐의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막내 생쥐는 아픔을 이기지 못해 괴로워했습니다. 감긴 눈을 뜰 줄 몰랐습니다. “나는 이제 살아나기는 틀렸어요! 그러니 내 혼이라도 해바라기를 타고 별나라로 가게 해바라기 뿌리 밑에 묻어 주세요!” “얘얘, 정신 차려! 죽으면 안 돼! 너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했잖아?” “미안해요! 하지만 내 영혼은 틀림없이 해바라기를 타고 별나라에 오를 거예요. 거기 가면 힘없는 생쥐들끼리만 모여서 행복하게 사는 곳이 있을 거예요! 자기 꿈을 맘 놓고 키우며 사는 행복한 마을이……!” 막내 생쥐는 마지막 말을 마치고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하더니 이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남은 생쥐들은 슬픔 속에서도 막내 생쥐의 유언대로 해바라기 뿌리 밑에 묻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조심조심 들고양이와 너구리를 피해 해바라기 씨앗을 물어다 먹지 않고 굴속에 묻었습니다. 이듬해도 꽃을 피워 막내 생쥐의 영혼이 별나라로 가는 것을 돕기 위해서. 몇 년 후부터 생쥐 가족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습니다. 밤마다 해바라기의 대궁을 타고 꽃에 올라가 하늘을 보며 막내 닮은 별을 찾곤 했습니다. 생쥐네 꽃밭에는 해가 갈수록 해바라기 수가 자꾸 늘어만 갔습니다. ●작가의 말 생활동화가 널리 읽히는 때라 일부러라도 순수 동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면서도 결국은 사람이야기인 것을. 그런데 맘만큼 잘 써지지 않았다. 꿈을 갖고 실천하려면 넓은 세상을 봐야 한다. 그리고 도전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현재의 환경이나 행복에 만족해서는 더 나은 생활, 더 넓은 세상에 나가 꿈을 펼칠 수가 없다. 설사 자기 꿈을 이루지 못할지라도 도전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도전을 포기한다는 것은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다. ●약력 1950년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에서 출생해 성장했으며,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에 동화가 당선되었다. 세종아동문학상· 이주홍아동문학상·소천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동화책으로 ‘위대한 그림’, ‘새가 되어 날아간 할아버지’ 외 다수와 전공서적 ‘동화창작의 실제’, ‘아동 글쓰기 지도의 이해와 실제’, ‘그림동화 한 편 써 보자’ 등이 있다. 현재 장안대· 협성대·덕성여대 대학원 등에 출강하고 있다.
  • 귀신들마다 좋아하는 떡 다르다

    손각시(처녀 귀신), 몽달(총각) 귀신, 하리가망(간악한 여자 귀신), 상문(喪門·죽은 지 한달이 넘지 않은 귀신), 말명(구천을 떠도는 여자 귀신), 수비(악귀를 따라온 귀신), 영산(靈山·참혹하고 억울하게 죽은 귀신)…. 귀신은 그 종류가 실로 다양하다. 이들 귀신은 대체로 먹을거리에 쉽게 유혹받는다. 그런 만큼 귀신을 불러낼 때는 맛있는 음식을 상이 휘어지도록 차려야 한다. 하지만 음식만 차려 놓았다고 강림하지는 않는다. 풍악을 울리면서 주문을 외워야 하는 등 일련의 제의(祭儀)가 따라야 한다. 그러다 보니 굿판은 그 자체가 볼거리다.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전국 굿판의 전 과정과 그에 동원되는 음식을 설명과 함께 사진으로 상세히 기록한 ‘무(巫)·굿과 음식’(삼척 내미로리 산메기와 병굿, 제주 동김녕마을 잠수굿’ 편) 을 펴냈다. 강원도 삼척 내미로리는 산간마을로, 이 지역 사람들에게 산은 곧 신이다. 마을 사람들은 일년에 한번 날을 받아 산에 올라 굿판을 벌인다. 산을 먹인다는 뜻에서 이 굿을 ‘산메기’라 한다. 이 굿에서 가장 중요한 제수음식은 시루떡과 군웅떡. 시루떡은 산신, 군웅떡은 마굿간신인 군웅을 위한 것이다. 제주도 해안 지역 동김녕마을은 해녀들의 해산물 채취를 생업으로 삼는다. 이 지역에서는 일년에 한번 풍요로운 해산물 채취와 자신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잠수굿판을 펼친다. 해녀들은 흰쌀을 동그랗게 빚어 기름을 바른 돌레떡이란 음식을 나눠 먹고, 무당은 이 떡을 해녀들에게 팔면서 그들의 행운과 안전을 축수해 준다. 이 보고서는 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www.nricp.go.kr)에 PDF파일로 올라 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열린세상] 국민이 절로 신바람 나게 하라/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열린세상] 국민이 절로 신바람 나게 하라/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올림픽이 끝난 지 꽤 여러 날이 지났지만 아직도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 가슴에 감동의 밀물을 전하는 경기가 있다면 야구와 핸드볼일 것이다.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 한 사람이 물었다.“야구가 금메달 딸 것 같아?”그에 “냉정하게 보면 동메달만 따도 잘한 거지.”라고 답해 놓고는 “또 알아? 신바람이 나면…”이라고 덧붙였다. 신바람 야구와 핸드볼에 우리보다 월등히 우세했던 강호들이 모두 무너졌다. 월드컵 4강 때도 그랬다. 신바람은 반만 년 역사의 축적이다.21세기 오늘에도 무당이 20만 명에 달하고 대부분의 절에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이 남아 있을 정도로 한국적인 샤머니즘-나는 이를 삼재 풍류도(三才 風流道)라 명명한다-의 흔적은 강하다. 무당은 ‘巫’라는 글자의 생김대로 위로 천상계와 신, 아래로 지상계와 인간을 이어주는 자이자 사람과 사람을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게 하는 자이다. 혹 누구인가 착하게 살아왔는데도 불행과 재앙이 닥친다면 이는 세계의 부조리다. 이 부조리를 맞아 무당을 찾으면, 그는 신의 힘을 빌려 ‘지금 여기에서’ 재앙을 없애고 복을 불러와 다시 삶의 행복과 평안, 세계와 조화를 이루게 한다. 이를 의례화한 것이 굿이다. 평범한 사람인 무당이 신의 말씀을 전하고 악귀를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신이 그의 몸에 내리기 때문이다. 신이 내리면 방울, 칼 등 무구(巫具)가 저절로 진동하고 맨발로 시퍼런 작두 위에서 펄쩍펄쩍 뛰어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다. 그 순간 무당만이 아니라 굿판에 모인 모두가 신바람이 든다. 그렇게 판이 끝나면 가슴에 맺혔던 한이 풀리고 재앙이 사라져 모두들 돌아가 행복한 일상을 되찾는다. 그렇게 수 천 년을 살아와서일까. 우리에겐 신바람의 문화유전자가 있다. 평범한 사람도 신바람이 나면 자신이 가진 능력의 100% 이상을 발휘한다. 내전을 치른 가난한 나라가 세계 11위의 무역대국으로 부상하고,IMF 환란 때 애지중지 소장하던 금을 기꺼이 나라를 위해 내놓고, 태안반도에 100만 송이가 넘는 자원봉사의 꽃을 피우게 한 것도, 일부 국가주의에 동원된 것도 있지만, 그 근본 바탕은 신바람이다. 서너 명이 모인 집단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그 집단을 잘되게 하는 길은 간단하다. 구성원에게서 신바람이 나게 하면 된다. 구성원 모두가 동의하는 구체적인 비전, 구성원을 먼저 섬겨 절로 섬김을 받는 지도자, 개인의 흥(興)을 한껏 돋울 수 있는 마당과 시스템-이 세 가지가 형성되면, 술 한 잔 노래 한 가락에 어깨가 절로 흥청거리듯 신바람은 절로 난다. 야구와 핸드볼팀엔 이것이 있었다. 금메달과 국위선양, 개인의 자기실현이란 비전, 선수들에게 밥을 해주며 섬기고 슬럼프에도 끝까지 믿어 주고 마지막 1분을 주부 선수들에게 배려해 주는 지도자, 병역면제와 포상 등 각종 제도적 뒷받침 속에서 고참과 신참이 한데 어울려 한번 일을 내보자는 흥이 있었다. 하지만 MB정권엔 ‘신바람의 리더십’이 없다.21세기에 토건국가로 되돌리고 모든 제도를 군사독재 시대로 회귀시키고 있으니 비전은커녕 퇴행이다. 국민을 무시하고 권위에 의존하여 통치를 하고, 정치에서 경제, 사회문화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흥을 억압하는 국가장치들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신바람은 절대 나지 않는다. 게다가 MB 정권은 연일 상위 1%만을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핸드볼팀이 아무리 신바람을 냈어도 오심 하나로 동메달로 만족해야 했다. 야구도 9회 말에 오심이 한번만 더 행해졌다면 선수는 물론 온 국민이 신바람날 일은 없었다. 오심까지 하면 생계 때문에 간신히 신바람을 낸 사람도 좌절한다. 지금이라도 대오각성하고 국민들이 신바람이 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한다면 우리의 앞길은 밝다. 반면에 그렇지 않을 경우 위기와 파국은 불 보듯 뻔하다. 이제 제발 우리 국민에게서 절로 신바람이 나게 하라.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 [미래도시 상암DMC는 지금] IT ‘상암러시’… 2년새 145곳 입주

    [미래도시 상암DMC는 지금] IT ‘상암러시’… 2년새 145곳 입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서울은 물론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동력이 될 디지털 콘텐츠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여의도 면적의 5분의1 규모인 상암 DMC(디지털미디어시티)다.2014년 완료를 목표로 첨단 기업들이 속속 입주하면서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2008년 7월 현재 입주 현황과 미래 도시의 면모, 경제적 효과 등을 중간점검해본다. “가정집 이사처럼 손 없는 날에 이사 오려는 회사들이 많아요. 이번 주처럼 손 없는 날에 주말이 겹치면 정신이 없습니다.”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디지털 미디어 센터 북쪽 끝에 위치한 DMC첨단산업센터의 빈사무실. 이번 주말 이곳으로 이사오는 업체의 인테리어 공사가 분주하다. 칸막이 설치가 한창인 걸 보면 인테리어 공사는 마무리 단계다. 특히 이번 주 토요일인 12일은 7월 중 유일하게 주말과 ‘손 없는 날’(민간신앙에서 악귀나 귀신이 움직이지 않는 날. 음력 9,10,19,20,29,30일)이 겹쳐 일이 많다는 것이 인테리어 업체 직원들의 설명이다. 그렇게 첨단 산업의 메카를 지향하는 상암DMC 속에서도 아날로그의 흔적은 공존했다. ●임대료 저렴해 기술 갖춘 中企들에 인기 상암 DMC가 IT업체들의 뉴타운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인지도 상승과 더불어 경제적이란 입소문이 나면서 입주 기업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덕분에 DMC 전체가 활기를 띠는 분위기다. 실제 지난해 53%대에 머물던 입주율은 최근 70%대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145개 기업이 들어갔다, 종사인원만 1만 2000여명.2년전 같은 시기 5개 업체,214명이 근무하던 것과 비교하면 비약적인 성장이다. 특히 다음달에는 LG텔레콤이 역삼동 GS타워에 있는 본사와 가산동, 독산동의 사업부를 DMC로 한 데 모으는 초대형 이사를 준비 중이다. 특수교육용 소프트웨어를 생산하는 ERC네트웍스사는 지난주 입주해 상암DMC에서 첫 주를 보냈다. 이 업체가 상암을 찾게 된 가장 큰 매력은 경제성. 회사관계자는 “새 사무실은 214㎡나 넓어졌지만 임대료가 이전과 비슷해 실제 100만원을 덜 내는 셈이 됐다.”면서 “머지않아 명품단지로 자리잡을 것이란 점도 이주를 감행한 이유”라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가 운영 중인 DMC첨단산업센터 빌딩의 경우 ㎡당 보증금 8만 5000원, 월 임대료는 3900원(벤처기업 기준)이다. 하지만 테헤란 밸리에서 비슷한 조건의 건물을 찾는다면 보통 보증금 60만원, 월임대료 6만원은 치러야 한다고 부동산 업체들은 말한다. 상암DMC 사업은 올해로 대장정의 반환점을 돌았다.2014년까지 총사업비 6조 8000억원을 들여 마포구 상암동 57만㎡에 12만명이 일하는 첨단 디지털미디어 콘텐츠의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목표.2002년 5월 용지공급을 시작한 이후 전체 DMC용지 48곳 중 33곳의 공급이 완료됐고, 그 자리에 현재까지 18동의 최첨단 빌딩이 들어섰다. 남은 15곳도 초고층 건물부지(2필지)를 포함해 업무단지(8〃), 상업시설(4〃), 외국인학교(1〃)등의 공급대상자를 선정 중이다.63빌딩의 19배 규모인 ‘상암DMC 랜드마크타워(가칭)’도 2014년 완공된다.DMC사업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지하 9층, 지상 133층 규모로 높이 640m 연면적 72만 4675m1/3에 이른다. 높이로 봐서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가장 높은 건물이다. ●2013년 경전철 건설 등 인프라 투자 계속 단지를 관통하는 지하철이 없어 불편하다 지적이 나오는 교통문제에는 현재 버스가 우선 투입되고 있다.5월부터 4개 노선 117대의 시내버스가 투입되면서 현재 DMC를 오가는 버스(마을버스 포함)는 총 13개 노선 296대로 늘었다. 서울시는 2013년까지 내부순환 경전철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내년에는 경의선 성산역이,2010년 12월이면 인천공항과 서울역을 연결하는 공항철도 DMC역이 완공될 예정이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DMC의 핵심 디지털 미디어 거리는 가는 곳마다 문화·정보 넘쳐 상암 DMC는 국제적인 비즈니스 허브의 면모와 함께 디지털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자리잡기 위한 움직임이 한창이다. 근린공원과 문화공원, 광장,DMC를 상징하는 첨단조형물 등 DMC 곳곳에 여유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다음달에는 디지털연못, 음악분수 등이 설치될 예정이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DMC 중심을 가로지르는 디지털 미디어 거리(Digital Media Street·DMS)이다. 1140m 길이의 이 거리는 97억 2000만원을 들여 2010년까지 첨단 디지털기술과 콘텐츠가 집약된 곳으로 조성된다. 가로등과 LED를 심은 보도블록은 보행자의 움직임과 무게에 따라 색상이 변하고 음악이 흘러나온다. 마치 공연 무대에 올라선 듯 감성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또 유비쿼터스 시범거리로 모양을 갖춘다.24시간 무료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고 곳곳에 설치된 e보드(e-Board)에서 DMC 주변 지리와 버스정보, 기상정보, 뉴스영상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입주기업의 미디어보드는 업체를 홍보하는 기능에서 벗어나, 사용자가 제작한 이벤트를 연출하고 예술적인 동영상을 제공하는 쌍방향 매체로 활용하는 등 거리를 찾는 이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거리로 꾸밀 계획이다. DMC가 지향하는 ‘첨단 디지털문화 중심지’의 가능성은 지난달 17∼22일에 열린 ‘서울 디지털컬처 오픈(SeDCO)’ 행사에서 엿볼 수 있었다. 20년 후의 생활 속에 녹아든 디지털 기술을 총망라한 디지털파빌리온, 문화콘텐츠센터가 국내영화 100년사를 풀어놓은 상설전시와 최초의 극장을 재현한 ‘원각사’에서 경험하는 옛 영화, 다양한 장르의 디지털아트 작품을 감상하는 서울 디지털아트 축제 등 ‘문화의 미래’를 주제로 엄선한 20여개 행사를 줄줄이 선보였다. 이 기간동안 입장료 없이 시설을 즐기도록 하고, 기업의 공간을 개방하는 적극적인 참여로 관람객 3만 4000여명이 찾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DMC 경제파급효과는 미래도시 생산유발효과 15조원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32만여㎡ 규모로 조성되는 ‘미래 도시’는 과거 도시개발과 다른 의미를 갖는다. 단순한 부동산 개발이 아니라 특수한 기능과 목적을 가진 개발이라는 것이다. 과거 강남 개발은 서울 도심의 기능을 한강 이남 지역으로 확산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또 여의도는 상암 DMC 부지와 마찬가지로 불모지이기는 했지만 생활권이 확산되면서 아파트를 중심으로 개발이 이뤄졌고, 이후에 금융사들이 몰리면서 오늘날의 금융 타운을 형성했다. 반면 상암DMC는 말 그대로 디지털미디어시티(DMC)라는 테마를 갖고 멀티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디지털 콘텐츠의 전문 클러스터라는 특징을 갖는다. 처음부터 구획을 정해 입주기업을 선정해 시너지 효과를 최대한 끌어올리도록 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추산한 상암DMC의 경제적 생산유발 효과는 무려 15조원에 이른다. 전문 기업들이 몰려 있으면서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부가가치는 8조 5000억원이라는 것이다. 또 2000개 기업이 입주해 서로 경쟁 또는 보완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12만 1255명의 신규고용 유발 효과도 기대된다. 이에 따라 법인세 등 국세 1350억원, 재산세 등 지방세 4380억원의 세원이 확보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취임 당시에는 5개 기업에서 214명이 일했으나 올 3월에는 139개 기업에서 1만 833명이 근무하고 있다. 단순히 세원 증대 등의 효과에만 그치지 않는다. 입주 기업들이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쏟아냄으로써,2010년 콘텐츠 시장의 규모(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추산)가 전 세계 5565억달러 중 우리나라가 155억 4500만달러를 차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중 서울은 상암DMC 덕분에 124억달러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김용환 기술경제연구원 원장은 “서울의 성장동력이 지식기반산업으로 변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면서 “DMC에 미디어와 정보기술(IT) 분야의 좋은 기업들이 모여서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내느냐가 서울의 미래성장동력을 찾는 데 큰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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