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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곁 ‘괴물’들은 홀로 태어나지 않는다

    우리 곁 ‘괴물’들은 홀로 태어나지 않는다

    촉법소년·성착취물·인공지능…논쟁적인 주제들 담은 소설집파편화된 인간성의 민낯 그려충격 반전에 영화 보는 듯 생생지난달 의정부 경전철에서 중학생들이 노인들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가해자들이 만 13세로 형사처벌이 면제되는 ‘촉법소년’(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 미성년자)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갈수록 늘어나는 소년범죄를 예방하려면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여론이 재점화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에 개설된 단체 채팅방에서 불법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n번방’의 존재는 더 큰 충격을 줬다. 최근엔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가 여성·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조장하고 개인정보를 유출한 사실이 드러나 AI 기술 남용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우리 사회에서 논쟁적 주제인 촉법소년, 성착취, AI가 독보적 작품 세계를 가진 작가 아홉 명에게서 소설로 태어났다. ‘낯익은 괴물들’은 이들 문제가 일상에서 촉발하는 이야기를 다채로운 서사로 펼친다.‘시골악귀’(김종광 작가)와 ‘테임’(김이설 작가)은 촉법소년 문제에 질문을 던진다. ‘시골악귀’에선 시골 마을에서 절도와 성폭행을 일삼아 소년원에 들어간 강수의 행각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청소년이 더 악귀다. 어른이고 청소년이고 본성이 문제다. 세 살 본성 여든 살까지 간다”(25쪽)는 성폭행 피해자의 독백은 ‘어린 나이가 면죄부가 될 수 있냐’는 정당한 문제 제기를 대변한다. 강수의 악마성에는 가정불화가 한몫했음을, 그를 단죄하는 주체도 결국 부모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암시한다. ‘테임’의 주인공 지훈은 사이코패스 소년 태현과 어울리다 충동 조절에 실패하고 파국을 맞는다. 정신을 차린 지훈이 문득 떠올린 생각은 ‘열네 번째 생일이 일주일 뒤였다’(70쪽)는 것이다. 어리지만 악하게 변모하는 그들은 과연 누구인지 물으면서 우리 아들딸들도 언제든 환경에 따라 괴물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천국의 낮’(주원규 작가)은 마치 n번방 사건을 밀착 취재한 듯 온라인상에서 은밀히 자행되는 성착취의 참혹한 현장을 날것 그대로 그려 낸다. 여고생 ‘미’는 악마와도 같은 ‘구’에게 성착취를 당하지만, 결국 유일한 혈육인 아빠에게도 외면받아 혼자 남겨진다. 끔찍하고 암울한 성착취의 공범은 이를 은밀히 즐겨 온 대중과 주변의 무관심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AI와 함께할 우리 미래가 과연 진보인가 퇴보인가. ‘헤어지는 중’(김희진 작가)은 결혼 생활에 활력을 주려고 구매한 AI 애견로봇 ‘로이’를 두고 드러난 관계와 감정의 변화, 갈등을 이야기한다. 소설들은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하다. 반전의 등장도 만만치 않은 충격이다. 단편소설 특유의 여운과 서사적 재미도 갖췄다. 모종의 두려움을 주는 ‘괴물’을 통해 공통적으로 현대 문명사회가 가져온 소외와 박탈감, 파편화된 인간성의 민낯을 그려 냈다. ‘열다섯 살이 지난 뒤에도’(서유미 작가) 말미의 ‘매번 새롭게 고통스럽다는 게 삶의 숨겨진 비밀이겠지’(104쪽)라는 대목은 이 같은 실존이 가져온 후유증은 시간이 지나도 치유하기 힘들다는 점을 의미한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고통스럽게 사는 현실에서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n번방 방지법’ 도입을 놓고 홍역을 치른 우리 사회가 곱씹어 볼 대목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온택트로 만나는 국립합창단… 아홉 빛깔 콘서트 詩~ 作!

    온택트로 만나는 국립합창단… 아홉 빛깔 콘서트 詩~ 作!

    현대시 접목한 ‘미디어아트’ 선사합창의 다양한 색채 담은 콘텐츠무대를 벗어난 합창단이 빛과 색을 입었다. 지난해 유독 만나기 어려웠던 합창을 새로운 공간에서 다양한 색깔로 꾸며 하모니의 매력을 눈으로도 담을 수 있게 됐다. 국립합창단은 오는 10일 네이버TV를 통해 ‘미디어 콘서트-포에틱 컬러스(Poetic Colors)’를 올해 첫 정기공연으로 선보인다. 김영랑, 김소월 등 대표 현대 시인들의 시를 아름답게 풀어낸 곡에 미디어아트와 조명예술을 더한 영상 콘텐츠로 랜선 관객들에게 보다 다채로운 합창음악을 선사한다. 단순히 무대를 기록한 영상이 아니라 오롯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래한 첫 시도다.윤의중 단장 겸 예술감독과 함께 미디어 콘서트를 준비한 안지선 연출가는 지난 2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물론 현장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게 가장 좋지만 관객과 만나지 못해도 합창을 보여 줄 수 있는 콘텐츠를 고민하다 음악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조명을 통해 합창의 다양한 색채를 담아 보고 싶었다”면서 “한 번 하고 끝나는 공연이 아니라 자료로 남아 그 자체로 소비될 수 있는 콘텐츠가 되려면 한 곡만으로도 가치가 있어야 하니 노래 안에 각각의 색을 담아 표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정적인 시에 우효원, 오병희, 조혜영 등 국내 대표적인 합창음악 작곡가들이 선율을 입혔고 소프라노 임선혜, 베이스 바리톤 길병민, 첼리스트 문태국 등이 협연으로 합창단 화음에 정점을 찍은 9개 곡에 서로 다른 빛깔이 채워졌다. ‘엄마야 누나야’에선 파랑과 금모래빛(노랑) 빛깔과 물안개를 표현한 드라이아이스, 무빙 조명으로 물결치는 강변이 묘사되고 그 위를 합창단원들이 거닐며 노래한다. ‘꽃 파는 아가씨’의 발랄한 리듬에 따라 색이 변하기도 하고 ‘내 마음 아실 이’의 잔잔함은 정적인 카메라 워킹으로 더욱 실감나게 느껴진다. 지난해 11월 경기 파주의 한 촬영장에서 특수촬영용 배경인 화이트 호리즌(white horizon)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5t 트럭 규모의 조명 장비가 들어와 4일간 각각의 질감을 빛으로 꾸미는 촬영이 이뤄졌다. 안 연출가는 “그동안 합창 뮤지컬을 연출하며 무대에서 조명 하나로 환상적인 장면을 그려낼 수 있는 조명예술의 아름다움을 봤는데 정작 영상에 담으면 색에 괴리감이 있어 아쉬웠다”면서 “곡마다 담긴 색감을 영상에 그대로 담는 게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음악과 합창을 좋아했으면서도 그동안 왜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뜨끔하기도 했다”고도 말한 그는 “도전을 시작했으니 음악에서 더 다양한 시도가 있을 것이고 그때마다 예술과 기술 사이 통역가 역할을 잘 해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냉정한 맨유, 9명 싸운 사우샘프턴에 아홉골 퍼부어

    냉정한 맨유, 9명 싸운 사우샘프턴에 아홉골 퍼부어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9명이 싸운 사우샘프턴에게 9골을 퍼부었다. 맨유는 3일(한국시간) 영국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2020~21 EPL 22라운드 사우샘프턴과 홈 경기에서 멀티골을 넣은 앙토니 마르시알과 1골 2도움을 올린 브루노 페르난데스 등의 활약을 앞세워 9-0으로 대승했다. 맨유는 상대 자책골 한 개에 모두 7명이 득점포를 가동하는 골잔치를 벌였다. 승점 3점을 보태 44점을 쌓은 맨유는 1위 맨체스터 시티와 승점이 같아졌으나 골득실에서 5골 뒤져 2위에 머물렀다. 맨유는 경기 시작 2분 만에 사우샘프턴의 알렉산드레 얀케위츠가 퇴장 당하며 승기를 잡았다. EPL 첫 선발로 나선 얀케위츠는 스콧 맥토미니의 다리를 가격해 레드카드를 받았다. 맨유는 전반 18분 에런 완-비사카의 결승골을 시작으로 25분 마커스 래시퍼드가 한 골을 더했고, 9분 뒤에는 래시퍼드의 크로스를 차단하려던 사우샘프턴의 얀 베드나레크가 자책골을 기록하며 3-0으로 앞섰다. 여기에 전반 39분 에딘손 카바니의 득점포가 터졌다. 후반 들어서도 맨유의 득점 행진은 계속 됐다. 24분 페르난데스의 크로스를 받은 마르시알이 추가 골을 꽂았고, 2분 뒤 맥토미니가 골망을 흔들었다. 후반 41분 사우샘프턴은 베드나레크가 페널티 지역에서 마르시알에게 태클을 걸어 퇴장당했다. 페널티킥 키커로 나선 페르난데스가 점수를 7-0으로 만들었다. 이후에도 맨유는 마르시알, 대니얼 제임스가 9골 차 승리를 완성했다. 축구 통계 전문 사이트 옵타에 따르면 EPL에서 9골 차 이상의 승부가 난 건 1995년 맨유-입스위치타운전(맨유 9-0승), 2019년 레스터시티-사우샘프턴전(레스터 9-0승)에 이어 세 번째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빛고을, 4차 산업혁명 선도하는 AI 중심도시로 빛날 것”

    “빛고을, 4차 산업혁명 선도하는 AI 중심도시로 빛날 것”

    광주에서는 최근 10일 새 코로나19 확진자가 350여명이나 무더기로 쏟아졌다. TCS 국제학교와 대형교회, 성인오락실 등을 통해 전방위로 확산되는 추세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2일 “확진자가 한 자리 숫자로 떨어질 때까지 비상 근무를 하겠다”며 지난 5일간 24시간 시장실에서 쪽잠을 자면서 방역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시민 모두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9일 시청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광주·경기·부산 등이 참여한 ‘인공지능(AI) 헬스케어 플랫폼 구축 결성식’이었다. 광주의 AI 집적단지 슈퍼컴퓨팅·데이터센터와 경기 판교테크노밸리, 부산의 스마트헬스케어 분야 등을 연결하는 초광역 국책 사업이 첫발을 내디뎠다. 이렇듯 중대한 현안이 순풍에 돛을 달았지만 코로나19 사태에 가려 자기가 아무리 잘해도 남이 알아주지 못한다는 ‘수의야행’ 꼴이다. 백신 보급이 시작되는 봄이 지나야 산업 전반에 활기가 돌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을 만나 시정 전반에 대해 들어 봤다.-‘AI 광주시대’를 선포한 지 1년이 됐다. “코로나19는 비대면 디지털 시대를 가속한다. AI는 새로운 기회다. 지난해부터 첨단 3지구에 국내 유일의 국가 AI 융복합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2025년까지 4116억원을 들여 데이터센터 등 AI 핵심 기반시설을 구축한다. 조만간 세계 ‘톱10’ 수준의 국가 AI 데이터센터도 착공한다. 현재 국내 최대 슈퍼컴퓨터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누리온 5호기’로 성능이 25.7펩타플롭스(세계 17위)다. 광주에 구축되는 것은 88.5펩타플롭스로 3배 이상 높다. 이에 힘입어 새해에도 AI 전문기업인 ㈜데이터스트림즈 등 5개 사가 광주에 둥지를 틀기로 협약했다. 70번째 기업이다. 이 가운데 36개 업체가 지역에 법인을 설립하고 연구소 문을 열었다. 인공지능사관학교를 운영해 155명의 실무형 인력도 배출했다. 광주과기원과 전남대 등 지역 대학도 AI 관련 학과를 개설하고 있다. AI 스타트업들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멘토단을 비롯해 법률, 특허, 국제회의 등을 원스톱으로 지원한다. AI 창업 캠프와 1000억원 규모의 AI 투자 펀드도 운영 중이다.” -최근 광주경제자유구역청이 문을 열었다. “민선 7기 1호 공약으로 전국에서 아홉 번째로 개청했다. 성공 여부는 광주의 미래와 직결된다. 최근 몇 년간 지지부진한 광주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광주경제자유구역청은 앞으로 지역 핵심 전략산업 거점인 4개 산업단지를 기반으로 투자 유치 활동을 주도한다.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산업단지에는 각종 기반시설이 확충되고 규제 특례 적용과 조세 감면 등 다양한 혜택을 준다. 이를 토대로 첨단 3지구 AI융복합산업단지를 비롯해 미래형 자동차를 생산할 빛그린산업단지, 스마트에너지가 주력인 도시첨단산업단지 1·2 지구 등을 활성화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상징인 AI 관련 기업은 지난해부터 ‘광주 러시’가 이어진다. 기업의 애로를 파악해 성공의 디딤돌을 만드는 것도 광주경제자유구역청이 주도한다. 친환경 자동차와 자율 주행, 스마트그리드 분야 등에 대한 투자 유치 계획도 마련 중이다.” -광주글로벌모터스(GGM) 공장 건립 진행 상황은. “2019년 1월 31일 현대자동차와 투자 협약한 지 2년여 만에 공정률이 83%에 이른다. 오는 4월 준공식을 갖고 9월쯤부터 연 10만대 규모의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양산 체제를 갖춘다. 지자체 주도의 사회 대통합형 노사상생 일자리가 구체화하고 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사례다. 이 공장은 일부 친환경 자동차 생산을 염두에 두고 설계돼 언젠가 미래 자동차 전진 기지로 발돋움할 수 있다. 이번 사업으로 직접 일자리 1000개, 협력 부품업체의 간접 고용까지 합하면 1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광주형 일자리는 ‘취업절벽’ 시대를 맞아 청년들의 걱정을 덜고,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한국 경제 체질을 바꾸는 새로운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본다. 노사 갈등으로 국내 투자를 꺼렸던 해외 공장이 되돌아 오는 ‘리쇼어링 효과’도 기대된다.” -광주형 그린 뉴딜 사업의 추진 계획과 기대 효과는. “도시 경쟁력이 안전과 환경으로 바뀐다. 이에 국내 최초로 2045년까지 탄소중립 에너지 자립 도시를 실현하기 위한 광주형 AI 그린 뉴딜 사업에 착수했다. AI를 기반으로 ▲녹색에너지를 생산하고 이용하는 녹색전환도시 ▲재난재해로부터 안전한 기후안심도시 ▲친환경 신산업 중심의 녹색산업도시를 지향한다. 2030년까지 기업이 필요한 전력을 전량 친환경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2030 기업 RE100’을 달성해 온실가스를 45% 감축한다. 이어 2035년까지 도시 전체 에너지를 신재생으로 바꾸는 ‘2035 광주 RE100’을 이뤄 낸다. 유럽연합 등보다 5년이나 빠른 2045년엔 탄소중립 에너지 자립 도시를 선포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시민들이 태양과 건물 등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사고파는 민간 중심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 중이다. 시가 ‘그린에너지 에너지저장장치(ESS) 발전 규제자유 특구’로 지정된 것도 관련 비즈니스 활성화에 보탬이 될 것이다. 건축·건설 등 일정 규모 이상의 예산 사업에 대해 ‘에너지영향평가제도’도 도입한다.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클러스터 지정을 받은 공기산업도 적극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아이 낳기 좋은 도시 만들기’에도 관심이 많다는데.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도시는 미래가 없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구문제연구소는 대한민국이 지구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꼽을 만큼 저출산이 심각하다. 좋은 일자리 확충에 이어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 광주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올해부터는 출생축하금 100만원과 2년간 매월 20만원씩 480만원의 양육비를 지급한다. 맞벌이 가정의 육아 고충을 덜어 주기 위해 돌봄서비스의 공공성 강화와 육아종합센터 기능도 확대한다. 지난해 12월엔 ‘광주 아이키움’ 통합 플랫폼을 개통했다. 예비 엄마 등이 원스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광주·전남 행정 통합이 군 공항 이전 문제에 막혀 동력을 잃은 듯하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상생과 동반성장’이다. 광주·전남은 1000년을 함께해 온 공동운명체다. 따로 가면 완결성도 경쟁력도 확보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난해 9월 ‘통합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평소 생각을 밝혔다. 통합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절차와 시간이 필요하다. 논의를 시작한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양 지역의 대표적 상생 과제인 군 공항 및 민간 공항 이전 문제도 시도 간 통합 논의가 진정성 있게 진행되거나 통합이 이뤄지면 지금과는 다른 해법이 나올 수 있다. 광주·전남 주민의 60%가량이 행정 통합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시민의 60%가량은 군 공항과 민간 공항의 동시 이전을 바라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도 상생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언젠가 이견이 좁혀지고 절충점이 나온다.” -코로나19 확산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지난해 2월 광주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을 때 해당 병원을 곧바로 코호트(동일집단) 격리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했다. 대구에 많은 감염자가 발생했을 때는 ‘병상나눔’으로 사회적 연대에 앞장섰다. 외국 입국자의 생활치료센터 격리 등 선제 대응으로 K방역을 선도했다. 방역 사각지대를 중심으로 철저하게 점검하고 있다. 마스크 착용 등 기본 방역 수칙만 지켜도 확산을 막을 수 있다. 백신 접종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시민 모두가 밀집·밀접 자제 등 한마음으로 대응해 주길 바란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한국 전통 약재 ‘홍삼’이 폐암의 전이까지 억제한다

    한국 전통 약재 ‘홍삼’이 폐암의 전이까지 억제한다

    홍삼은 인삼을 쪄서 말린 것으로 피로회복이나 면역기능 개선 등의 효능 때문에 대표적인 건강기능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국내 연구진이 홍삼이 암의 전이도 막을 수 있다는 효과를 발견해 주목받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 천연물소재연구센터와 서울아산병원 공동연구팀은 홍삼에 포함된 진세노사이드라는 물질이 폐암의 전이를 억제하는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농·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인삼연구’(Journal of Ginseng Research)에 실렸다. 한의학 분야에서 주요 약재로 사용돼 온 홍삼은 최근 건강기능성 식품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홍삼은 다양한 가공법에 따라 성분과 효능이 달라지는 특성이 있다. 이에 연구팀은 아홉 번 찌고 말리는 구증구포법과 달리 전자레인지와 같은 원리의 마이크로파 가공법을 개발해 홍삼의 주요 활성성분인 진세노이드 중 Rg3, Rk1, Rg5를 기존 방법보다 20배 이상 늘리는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마이크로파 가공법으로 만들어진 홍삼에 ‘KMxG’라는 이름을 붙이고 항암효과를 추가 연구했다. 연구 결과 Rk1과 Rg5가 폐암 전이를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것을 확인했다. 암 세포는 체내 세포 증식과 분화를 촉진하고 염증반응에도 관여하는 사이토카인 단백질 때문에 사멸하지 않고 다른 조직으로 전이돼 발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Rk1과 Rg5 성분이 TGF-β1라는 사이토카인 단백질의 활성을 억제하고 사멸을 유도함으로써 암의 성장과 전이를 효과적으로 차단한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함정엽 KIST 박사는 “이번 연구는 홍삼 성분이 암 전이를 억제해 항암효과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천연물 유래 항암제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는데 의미가 있다”라며 “마이크로파를 이용한 제조법으로 홍삼 유효성분의 함량을 조절할 수 있게 돼 다양한 질환의 맞춤형 기능성 소재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미소를 띄우며 보낸 그 모습처럼

    미소를 띄우며 보낸 그 모습처럼

    1970~1980년대 선구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 스물아홉 살에 세상을 떠난 천재 뮤지션. ‘비운’이라는 단어에 가려졌던 장덕의 음악과 삶이 다음달 4일 그의 31주기를 앞두고 재조명되고 있다. 후배 여성 아티스트들의 노래 리메이크와 영화를 통해서다. ●리메이크앨범·다큐멘터리·음악 영화까지 봇물 그의 명곡들은 지난해 30주기를 계기로 루비레코드가 시작한 트리뷰트 프로젝트를 통해 되살아났다. 지난 14일 인디 싱어송라이터 모트는 장덕의 ‘점점 더 가까워져요’(1988)와 ‘소녀와 가로등’(1977)을 미니앨범으로 냈다. 서정적인 가사와 복고 분위기를 담아 ‘요즘 감성’에 딱 맞는 다. 지난달 22일 ‘님 떠난 후’를 낸 그룹 레인보우 노트도 ‘얘얘’(1988)를 다음달 선보인다. 이 곡들을 묶은 LP도 상반기 나온다. ‘현이와 덕이’로 함께 활동하며 ‘한국의 카펜터스’라는 별명을 얻었던 장현의 아들이자 장덕의 조카인 장원씨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와 고모가 음악적으로 오래도록 기억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계획 중 하나”라며 “동시대에 살았던 분들과 요즘 세대가 함께 들으며 소통하는 음악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계기를 밝혔다. 6개월 사이 팬들을 떠난 남매를 기억하는 작업은 지난해부터 준비해 왔지만 코로나19로 미뤄져 올해 빛을 보고 있다. 지난달에는 장덕의 유해가 뿌려진 춘천 남이섬에 추모 노래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중학교 때 습작 크게 히트… 프로듀서로 명성 장덕은 제1회 MBC 서울가요제에서 가수 진미령이 부른 ‘소녀와 가로등’의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습작한 곡이 크게 히트한 이후,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1986) 앨범 수록곡 대부분을 쓰는 등 프로듀서로서 역량도 펼쳤다. 심수봉 외에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거의 없었던 시절, 그야말로 큰 도전을 한 셈이다. 1980년대 미국에 머물면서도 음악 공부를 하며 현지 컨트리 가수에게도 곡을 주는 등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김성환 음악저널리스트는 “가사가 담고 있는 감정 표현, 그리고 이은하의 앨범에서 이미 선보였던 세련된 편곡과 가벼운 신시사이저와 건반 활용은 3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고 정감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멜로디와 정서에 2021년 비트와 리듬을 입힌 리메이크곡에도 참신함은 녹아 있다. 80년대식 팝발라드 ‘점점 더 가까워져요’는 포크록, 모던록으로 변신했다. 모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그 시절을 걸어오신 분들, 현재를 살아내신 분들에게 따뜻하고 나긋한 노랫말로 마음을 나눠 드리고 싶다”고 소감을 붙이기도 했다. 시티팝 듀오 레인보우 노트도 세련됨을 더한다. 김 저널리스트는 “신시사이저 연주와 리듬 편곡이 원곡보다 세련되게 들리지만 이 사운드도 1980년대라는 감성과 맞닿아 있기에 두 아티스트 간 정서적 교감이 자연스레 시대를 이어 가는 효과가 있다”고 평했다. ●“좋은 추억 가진 분들께 선물 같은 작품 되길” 올해 악보집 출간과 다큐멘터리, 음악 영화 제작도 이어진다. 장원씨는 “2013년 KBS ‘불후의 명곡’ 때 고모의 영상을 보면 ‘예쁘다’, ‘노래가 너무 좋다’는 댓글이 많다”며 “좋은 추억을 가진 분들에게 선물 같은 작업을 계속 해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2017년 동료와 후배 가수들이 참여했던 ‘현이와 덕이 오마주’를 마무리하는 것도 그의 목표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원조 여성 싱어송라이터’ 장덕의 감성, 30년만에 되살아나다

    ‘원조 여성 싱어송라이터’ 장덕의 감성, 30년만에 되살아나다

    30주기 계기 추모 작업 활발…리메이크 앨범 나와1970~1980년대 선구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 스물아홉 살에 세상을 떠난 천재 뮤지션. ‘비운’이라는 단어에 가려졌던 장덕의 음악과 삶이 그의 31주기를 앞두고 재조명되고 있다. 후배 여성 아티스트들의 노래 리메이크와 영화를 통해서다. 그의 명곡은 루비레코드가 지난해 30주기를 계기로 시작한 트리뷰트 프로젝트를 통해 되살아났다. 지난 14일 인디 싱어송라이터 모트는 장덕의 ‘점점 더 가까워져요’(1988)와 ‘소녀와 가로등’(1977)을 다시 불러 미니앨범으로 냈다. 서정적인 가사와 복고 분위기를 담은 ‘요즘 감성’에 딱 맞는 곡이다. 지난달 22일 ‘님 떠난 후’를 낸 그룹 레인보우 노트도 ‘얘얘’(1988)를 다음달 선보인다. 이 곡들을 묶은 LP도 상반기 나온다. ‘현이와 덕이’로 활동하며 ‘한국의 카펜터스’라는 별명을 얻었던 장현의 아들이자 장덕의 조카인 장원씨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와 고모가 음악적으로 오래도록 기억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계획 중 하나”라고 계기를 밝혔다. 이어 “두 분과 동시대에 살았던 분들과 요즘 세대가 함께 들으며 소통하는 음악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6개월 사이 팬들을 떠난 남매를 기억하는 작업은 지난해부터 준비해왔지만, 코로나19로 미뤄져 올해 빛을 보고 있다. 지난달에는 장덕의 유해가 뿌려진 춘천 남이섬에 추모 노래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중2때 쓴 ‘소녀와 가로등’ 히트...프로듀싱 능력도 갖춰장덕은 1977년 제1회 MBC 서울가요제에서 가수 진미령이 부른 ‘소녀와 가로등’의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습작한 곡이 크게 히트한 이후,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1986) 앨범 수록곡 대부분을 쓰는 등 프로듀서로서 역량도 펼쳤다. 심수봉 외에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거의 없던 시절, 그야말로 큰 도전을 한 셈이다. 1980년대 미국에 머물면서도 음악 공부를 하며 현지 컨트리 가수에게도 곡을 주는 등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김성환 음악저널리스트는 트리뷰트 앨범 소개에서 “가사가 담고 있는 감정 표현, 그리고 이은하의 앨범에서 이미 선보였던 세련된 편곡과 가벼운 신시사이저와 건반 활용은 3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고 정감 있다”고 설명했다. 세련된 음악, 요즘과 정서적 교감... 악보집·다큐 제작당시 멜로디와 정서에 2021년 비트와 리듬을 입힌 리메이크곡에도 그의 참신함은 녹아 있다. 80년대식 팝발라드 ‘점점 더 가까워져요’는 포크록, 모던록으로 변신했다. 모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그 시절을 걸어오신 분들, 현재를 살아내신 분들에게 따뜻하고 나긋한 노랫말로 마음을 나눠 드리고 싶다”고 소감을 붙이기도 했다. 시티팝 듀오 레인보우 노트의 곡들도 요즘 청춘들의 감성과 어울린다. 김 저널리스트는 “신시사이저 연주와 리듬 편곡이 원곡보다 세련되게 들리지만 역시 이 사운드도 1980년대라는 감성과 맞닿아 있기에 두 아티스트 간 정서적 교감이 자연스레 시대를 이어 가는 효과가 있다”고 평했다. 트리뷰트 앨범에 이어 올해 악보집 출간과 다큐멘터리, 음악 영화 제작도 이어진다. 장원씨는 “2013년 KBS ‘불후의 명곡’ 때 고모의 영상을 보면 ‘예쁘다’, ‘노래가 너무 좋다’는 댓글이 많다”며 “좋은 추억을 가진 분들에게 선물 같은 작업을 계속 해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2017년 동료와 후배 가수들이 참여했던 ‘현이와 덕이 오마주’를 마무리하는 것도 그의 목표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미 메릴랜드주 쇠락한 탄광 마을의 누군가 8049억원 ‘돈벼락’ 맞아

    미 메릴랜드주 쇠락한 탄광 마을의 누군가 8049억원 ‘돈벼락’ 맞아

    미국 메릴랜드주의 쇠락한 탄광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이 7억 3110만 달러(약 8049억원)의 잭팟을 터뜨렸다. 메릴랜드 복권위원회는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 파워볼 로또 추첨 결과 40-53-60-68-69의 다섯 숫자에 파워볼 숫자 22를 모두 맞힌 로또가 메릴랜드주 로나코닝의 알레가니 카운티 마을에 있는 편의점 코니 마켓에서 발매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다음날 밝혔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아직 누가 엄청난 횡재를 거뒀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메릴랜드주는 당첨자가 끝까지 신원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300가구 정도 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이고 전체의 20%가 빈곤층으로 분류돼 미국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지역이라 대박을 터뜨린 사실을 숨기기 쉽지 않은 일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이 마을은 과거 탄광으로 번성했으나 지금은 쇠락했고 야구 레전드 레프티 그로브의 고향이란 점만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곳이었다. 그로브는 메이저리그 17시즌을 뛰었는데 아홉 시즌은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 여덟 시즌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였다. 1947년 야구 명예의전당에 입회했으며 1975년 세상을 떠났다. 물난리가 주기적으로 덮치고 폐광들에서 나온 독극물이 흘러 내려와 살기 좋지 않은 곳이었다. 2001년 지역 주민들이 모금 운동을 펼쳐 탄광 유적 관광을 위해 박물관을 지어 관심을 끌었다. 당첨 로또를 판매한 편의점에는 미국 역사에 다섯 번째로 높은 당첨금을 따낸 복권을 판매한 공로로 10만 달러의 보너스가 주어진다. 주인 리처드 레이븐스크로프트는 AP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누군가 행운을 거머쥐었다니 정말 기쁘다. 그 사람에게 축하를 보내고 싶어 안달이 난다. 누가 됐든지 당첨금을 현명하게 써서 다른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갔으면 하고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파워볼 당첨자가 지난해 9월부터 나오지 않아 당첨금이 늘어났다. 그런데 22일 메가밀리언 로또 추첨에서 다시 대박이 터질 수도 있다. 전날 추첨 결과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당첨금은 9억 7000만 달러(약 1조 860억원)로 불어났다. 두 로또가 동시에 7억 달러를 넘긴 일도 처음이다. 미국에서 역대 최다 복권 당첨금은 15억 8000만 달러였는데 2016년 세 명의 당첨자가 나눠 가졌다. 당첨자는 일시 수령하거나 30년 이상에 걸쳐 연금 형식으로 받을 수도 있다. 물론 대다수는 한번에 찾아간다. 메가밀리언 당첨자가 한번에 찾아가면 7억 1630만 달러, 파워볼은 5억 4680만 달러가 된다. 물론 연방세에다 주 정부 세금까지 떼내야 한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정상 10m 앞두고 네팔 국가 함께 불러” 겨울철 K2 초등 순간

    “정상 10m 앞두고 네팔 국가 함께 불러” 겨울철 K2 초등 순간

    “우리는 정상을 10m 앞두고 모두 멈춰서 우리 국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함께 정상에 발을 디뎠습니다.” 네팔인 10명으로 구성된 등반팀이 처음으로 겨울철 히말라야 K2(해발 고도 8611m) 등정에 성공해 등반 역사를 새로 쓴 순간의 감격을 영국군 구르카 용병 출신인 니르말 푸르자는 이렇게 돌아봤다. 지난 16일 오후 5시(현지시간) 등정에 성공한 이들은 각기 다른 네 팀의 일원으로 정상 도전에 나섰는데 8000m 이상의 고봉 14좌 가운데 누구도 겨울에 오르지 못했던 마지막 봉우리인 K2를 서구인들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양보하지 않겠다며 한 팀으로 뭉쳤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86m)를 비롯해 14좌 초등의 영광은 늘 서구 등반가들의 차지였다. 선등해 루트를 개척하고 장비를 심고 로프를 까는 궂은 일은 티베트 출신 산악 부족인 셰르파들의 몫이었지만 그들은 철저히 가려졌다. 에베레스트를 초등한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세계 언론의 각광을 받았지만 그보다 앞서 세계 최고봉에 올랐던 텐징 노르가이의 이름이 알려지고 진가가 드러나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해서 이날 겨울철 K2 초등에 성공한 네팔 등반대원 10명의 이름은 귀하디 귀하다. 니르말 님스 푸르자, 다와 텐지 셰르파, 밍마 G 다와 템바 셰르파, 펨 치리 셰르파, 밍마 데이비드 셰르파, 밍마 텐지 셰르파, 님스다이 푸르자, 겔제 셰르파, 소나 셰르파 등 아홉 사람의 이름만 전해지고 있다. 나중에 한 이름이 확인되면 추가하겠다. 파키스탄 북부의 중국 국경 지대 카라코람 산군에 자리잡은 K2는 에베레스트에 이어 세상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야만의 산’(savage mountain)으로 불릴 정도로 등정 난도가 높은 봉우리로 꼽힌다. 이 별칭은 1953년 정상 등정에 실패한 미국 산악인이자 인간 유전체 게놈 분석 프로젝트로 노벨상까지 수상한 조지 벨이 남긴 말이었다. 산악인 사이에서는 에베레스트보다 더 등정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8년 8월에는 11명의 산악인이 K2 등정에 나섰다가 눈사태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특히 겨울철 K2는 ‘난공불락’이었다. 정상 부근의 풍속은 시속 200㎞ 이상까지 올라가고 기온은 영하 60도까지 내려가는 등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블루 아이스’가 산위에서 등반가를 향해 떨어져 치명적인 부상을 입힐 수 있다. 네팔 등반대를 제외하고는 겨울철 K2 등정에서 7650m 이상 오른 사례도 없었다. 네팔 등반대도 지난 11일 정상 공략을 시도하려 했으나 눈폭풍 등 기상 악화로 인해 계획을 수정했다. 카트만두 포스트는 “당시 해발 6760m 지점에 있던 등반대의 캠프2가 강풍에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며 “텐트가 바람에 완전히 찢겨 나갔고 장비마저 분실됐다”고 보도했다. 에베레스트를 24차례나 등정해 세계 최고 기록을 갖고 있는 카미 리타는 AFP 통신에 “수십년 동안 네팔인들은 외국인들이 히말라야 정상에 닿는 일을 도왔지만 우리가 응당 받아야 할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털어놓은 뒤 “오늘 10명의 네팔인들이 K2에서 역사를 새로 쓰고 우리의 용기와 힘을 제대로 보여준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반겼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어머니가 눈 감기 전 외삼촌들·이모와 연락 닿게 도와주세요”

    “어머니가 눈 감기 전 외삼촌들·이모와 연락 닿게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저희 어머니가 생명유지 장치에 의존하고 계세요. 한국에 계시는 어머니 가족을 찾는 데 도움이 필요해요.” 미국 공군에서 근무하다 퇴역해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에 살고 있는 이사벨레 현 두샤르메(DuCharme)가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간)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어머니 황현추 두샤르메(50)가 지난해 성탄절에 사고로 입원했는데 다음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용태가 나빠져 생명유지 장치에 의존해 의료진으로부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한국의 외삼촌들, 이모와 연락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아는 이들의 연락을 기다린다고 했다. 인터넷 매체 넥스트샤크의 16일 보도에 따르면 이사벨레는 15일 (아마도 주한 미국) 대사관이 서울 중구 황학동 122번지가 어머니와 연결된 주소란 사실을 확인해줬다며 어머니가 이곳에서 자랐으며 나중에 가족과 함께 강원 춘천시로 이사 간 것으로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녀에 따르면 1970년 9월 24일이 생일인 어머니는 1989년 1월 20일 서울에서 아버지와 결혼해 같은 해 4월 미국으로 이민 왔다. 외할머니는 한때 춘천에서 청화다방을 운영했으며 1995년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난 외할아버지 황영부씨의 생년월일을 1941년 5월 4일(4월 5일일수도)이라고 밝혔다.2012년까지 어머니는 두 살 위 오빠 황세민씨 등과 가끔 연락을 하고 지냈으나 그 뒤 어떤 이유에서인지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오빠는 창호 설치하는 회사에 다녔고, 4~6년 터울의 여동생으로 1월이 생일이며 1남2녀를 둔 황현미씨는 경기 의정부시에서 일식집을 운영했는데 아홉 살 아래 남동생이며 9월이 생일인 황세원씨는 요리사로 일한 것으로 어머니는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이사벨레는 성조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머니가 형제자매들과 아주 가깝게 지내다 연락이 끊기자 아주 낙담해 하셨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연결이 되면 마지막 한마디라도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그녀의 페이스북에는 한글까지 병기하는 절실함이 엿보이고 조부모와 어머니가 외삼촌들, 이모와 어울려 찍은 사진까지 실었다. “만약 당신이나 누군가 어머니의 가족에 대해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가능한 빨리 연락이 닿았으면 좋겠다”면서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이 많이 공유하거나 유명인들이 더 많은 관심을 환기할 수 있도록 앞장서 달라고 호소했다. 트위터 팔로어가 많지 않았지만 이사벨레의 트윗은 15일 아침만 해도 3만 6000회 리트윗됐는데 이날 저녁에는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을 포함해 5만 1000명이 리트윗했다고 성조지는 전했다. 또 세계적인 팝 밴드 방탄소년단(BTS)의 한국말 아는 팬들이 그녀의 트윗을 한글로 번역하는 한편, 아시아 전역의 소셜미디어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해시태그 #현을 도와주기(HelpForHyon)가 유행하고 있다. 이사벨레의 이메일은 belle.hyon@gmail.com 인스타그램은 @belle.hyon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메가밀리언 1등 안 나와 파워볼 1등과 합치면 1조 4255억원

    메가밀리언 1등 안 나와 파워볼 1등과 합치면 1조 4255억원

    1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메가밀리언 복권 추첨에서도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당첨금이 7억 5000만 달러(약 8224억원)로 늘어나 미국 로또 사상 다섯 번째 당첨금 기록을 쓰게 됐다고 일간 USA 투데이가 전했다. 다음 추첨은 15일이어서 1등이 나오면 다음날 파워볼 1등 당첨금 5억 5000만 달러(약 6031억원)까지 합치면 13억 달러(약 1조 4255억원)로 치솟는다. 이날 1등 당첨 번호는 다섯 숫자 12, 14, 26, 28, 33에 메가볼 9였다. 맞히면 6억 2500만 달러(약 6853억원)를 쥐는 것이었는데 아홉 티켓 구입자가 다섯 숫자만 맞혀 2등에 머물렀다. 이 당첨금으로도 역대 메가밀리언 네 번째 액수다. 7억 5000만 달러는 로또 역사 다섯 번째 당첨금이며 메가밀리언 역대 두 번째였다. 지난해 9월 위스콘신주에서 1억 2000만 달러 당첨자가 나온 이후 34차례 연속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계속 이월돼 당첨금이 누적됐다. 우리 잣대로는 엄청난 돈벼락이지만 메가밀리언 역대 최다 당첨금은 2018년 15억 4000만 달러(약 1조 6700억원)여서 이번 당첨금은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딴 세상 얘기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지난해 중반부터 국내에서도 미국 로또 구매를 대행하는 사이트들이 성행하고 있어서다. 캐롤 겐트리 메릴랜드주 로또게임위원회 대변인은 “새해 즐길 만한 거리가 없어서” 복권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 당첨금이 훌쩍 늘고 있다고 추정했다. 지난 6일 파워볼 추첨에서도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당첨금이 5억 5000만 달러(약 5160억원)가 됐다. 역대 파워볼 10번째 당첨금이다. 지난해 9월 뉴욕에서 1등 당첨자가 9400만 달러를 딴 뒤 당첨자가 없어서 이월됐다. 역대 파워볼 최다 당첨금은 2016년 1월 세 사람이 당첨금을 나눈 15억 9000만 달러(약 1조 7200억원)다. 두 로또 당첨 확률은 3억 분의 1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박찬호 은사‘ 토미 라소다 전 LA 다저스 감독 93세로 타계

    ‘박찬호 은사‘ 토미 라소다 전 LA 다저스 감독 93세로 타계

    한국인 1호 메이저리거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은사인 토미 라소다 전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 감독이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 93세로 별세했다고 AP 통신이 다음날 보도했다. 다저스 구단은 라소다 전 감독이 캘리포니아주 풀러턴 자택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는 도중에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고 전했다. 고인은 지난해 11월 건강 문제로 입원한 뒤 두 달 가까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며칠 전 건강을 회복해 퇴원했는데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976년 다저스 사령탑으로 부임한 라소다 전 감독은 1996시즌 중에 심장병을 이유로 사퇴할 때까지 21년 동안 다저스를 지휘했다. 1994년 다저스에 입단해 한국 선수로는 처음 메이저리거가 된 박찬호를 지도하며 남다른 인연을 쌓았다. 라소다 전 감독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뒤 이듬해 명예의전당에 올랐고, 다저스 구단 부사장과 고문으로 그라운드를 자주 찾는 등 많은 애정을 드러내 왔다. 다저스와의 인연은 무려 71년 이어졌다. 1954년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 투수로 데뷔한 고인은 빅리그 마운드에서 세 시즌만 던지고 은퇴한 뒤 다저스 스카우트로 시작해 감독까지 올랐다. 총 3040 경기를 지휘하며 1599승 1439패 승률 .526를 기록했다. 월드시리즈 우승 2회, 준우승 2회, 내셔널리그 우승 4회, 서부지구 우승 8회의 굵직한 업적을 쌓으며 다저스의 레전드가 됐다. 등번호 2번은 다저스에서 영구결번됐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대표팀 감독을 맡아 우승을 일궈내 미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열정적 리더십과 선수들과의 스스럼없는 소통으로 팀을 강하게 만들었다. 마이너리그의 많은 선수를 발굴해 메이저리거로 키워내고,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아홉 명이나 길러냈다. 다저스 구단주 마크 월터 회장은 “라소다는 훌륭한 야구 홍보대사였고, 선수들과 코치의 멘토였다. 그는 항상 팬들을 위해 시간을 내 사인을 해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며 “(모두가) 그를 몹시 그리워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스탠 카스텐 다저스 사장은 “라소다만큼 다저스 정신을 구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그는 결정적 순간에 팀을 승리로 이끄는 챔피언이었다”고 말했다. 박찬호가 처음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았을 때도 물심 양면으로 지원하며 그의 정착과 성공에 든든한 배경이 됐다. ‘박찬호의 양아버지’를 자처해 국내 야구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일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가 끝나는 날”, “내 몸에는 파란 피가 흐른다” 등의 명언을 남겼다.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을 달성한 박찬호도 지난해 6월 미 비영리 단체인 코리아소사이어티가 개최한 온라인 간담회에서 “할아버지뻘인 라소다 감독은 마치 동년배처럼 친구같이 대해줬다”고 회고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스스로 통조림 뚜껑 열어봐야지” 아홉살 딸 훈육시킨 아빠

    “스스로 통조림 뚜껑 열어봐야지” 아홉살 딸 훈육시킨 아빠

    미국인 아빠가 아홉 살 딸에게 스스로 콩 통조림 뚜껑을 열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배를 곯지 않으려면 직접 열어보라고 했다. 해서 딸은 할 수 없이 6시간 동안 통조림 뚜껑을 열려고 매달렸다. 아빠는 소셜미디어에 훌륭한 훈육법의 시범을 보였다고 자랑했다. 당연히 아동 학대라고 비난이 들끓었고, 결국 아빠는 포스팅을 삭제했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콩대가리 아빠(bean dad)”라고 빈정거렸다. 일부는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관종 짓을 하려고 얘기를 지어낸 것이라고 짐작하기도 했다고 영국 BBC가 4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팟캐스트 방송 ‘내 형제, 내 형제와 나’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존 로더릭이 주인공이다. 지난 2일 트위터에 사연을 올렸다. 딸이 먼저 배가 고프니 콩을 구워달라고 아빠에게 부탁했다. 통조림 따개와 콩 통조림을 가져왔다. 아빠는 통조림 따개 사용법을 아느냐고 물었고, 딸은 모른다고 답했다. “아이에게 가르침을 전해야 할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묵시록에 나올 법한 아빠는 너무 즐거웠다.”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 설명했는데 딸아이는 여는 데 6시간이 걸렸다. “딸아이는 내 옆에서 툴툴거리고 징징대기만 했다. 공간을 파악하고 과정을 그려보며 작업 명령을 내리는 것 같은 일이 아니라 그애가 직관적으로 해내길 바랐다고 말해야겠다. 난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딸은 결국 열어서 콩을 먹었다고 설명했다. 언론인 제이슨 슈라이어는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며 다른 이에게 도와주거나 응원해달라고 요청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일은 엄청 값어치 있는 일이라고 느낀다”고 적었다. ‘브루클린 아빠’는 로더릭의 접근법은 “아둔한 짓”이라며 딸을 먹이며 어떻게 통조림 따개를 사용하는지 방법을 보여줬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그애는 아홉 살이다. 우리 중 몇몇은 배가 고프면 나이에 상관 없이 잘 배우지 못한다. 깜짝이야(Jeez)”라고 덧붙였다. 극히 소수는 로더릭이 자녀들을 제대로 훈육하는 모범을 보여줬다고 했다. “독립심과 개인의 성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준다. 그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으며 난 이보다 더한 것도 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만들었다”고 적은 이도 있었고 팟캐스트 팬 중에는 마치 배우가 연기하듯 쓰여져 있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정작 로더릭은 댓글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포스팅을 삭제한 뒤 따로 해명의 글을 올렸다. “6시간은 끼니와 끼니 사이를 말한다. 정오에 점심을 들고 저녁을 6시에 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동학대라고 낙인 찍는다”고 억울해 하며 이런 반응이 “뜨악하다. 우리 애는 좋기만 하다”고 했다. 교사라고 밝힌 여성은 “아이들은 배가 고프지 않을 때 가장 잘 배운다. 모두는 각자 다르게, 다른 접근법으로 배운다. 누군가 애를 먹고 있을 때 돕는 손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 아이가 좌절해 눈물을 보이면 가르칠 순간을 잃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작가인 라첼린 말티즈는 아마도 아이가 배운 것은 부정적인 교훈일 것이라면서 “로더릭이 아이에게 가르친 것은 음식은 벌어서 먹는 것이며, 쟁여뒀다 먹는 것은 옳지 않으며, 먹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징계해야 하며,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은 헛된 일이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이전 트윗을 샅샅이 뒤져 인종차별주의, 성차별, 동성애 혐오 등이 엿보인다고 비판하는 이도 있었다.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잡학의 대가‘ 켄 제닝스는 로더릭에 대해 “사랑 넘치고 애정이 많은 아빠”라며 “내가 그로부터 반유대 견해를 들은 적이 있다는 스크린샷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팟캐스트는 앞으로 로더릭의 음악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문 대통령 “모든 디젤 여객기관차, 2029년까지 KTX-이음으로 대체”

    문 대통령 “모든 디젤 여객기관차, 2029년까지 KTX-이음으로 대체”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029년까지 모든 디젤 여객기관차를 KTX-이음(EMU-260)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4일 문 대통령은 저탄소·친환경 고속열차 KTX-이음을 시승한 자리에서 “파리기후협약 첫해인 올해를 저탄소·친환경 열차 보급의 원년으로 삼겠다”며 이같은 철도교통 혁신 구상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올해 세계 철도시장은 240조원에 달하며, 고속철도 시장은 연평균 2.9%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하며 “우리 철도가 세계 시장으로 뻗어갈 수 있도록 최고의 기술과 안정성을 바탕으로 해외로 진출하는 데 발 벗고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철도를 비롯한 교통인프라 강국이 되고 디지털 뉴딜로 안전하고 스마트한 교통혁신 국가로 거듭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KTX-이음을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의 결합으로 평가하며 “앞으로 한국판 뉴딜이 더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탄소중립 사회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2025년까지 70조원 이상을 투자해 고속철도, 간선철도망, 대도시·광역도시 철도사업에 더욱 속도를 낼 것이며, 이를 통해 전국 주요 도시를 2시간대로 연결하고 수도권 통근 시간을 30분 내로 단축하겠다”며 “철도망을 확대해 국가균형발전을 앞당기겠다”고 말했다.한편, 문 대통령은 중앙선 복선화로 경북 안동 임청각이 복원되는 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임청각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로 1941년 일제가 중앙선을 놓으며 아흔아홉칸 고택의 오십여칸이 허물어졌다. 임청각 앞으로 하루에도 수차례 기차가 지나다닌 것은 물론, 인근 신라시대 국보인 모전석탑이 훼손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중앙선 선로 변경으로 임청각을 복원할 수 있게 돼 뜻깊다. 올 6월부터 임청각 주변 정비사업에 착수해 2025년까지 온전한 복원을 할 것”이라며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고 민족정기가 흐르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손흥민 마침내 ‘아홉 수’ 풀었다 ¨ 리즈 유나이티드전에서 ‘토트넘 100호골’

    손흥민 마침내 ‘아홉 수’ 풀었다 ¨ 리즈 유나이티드전에서 ‘토트넘 100호골’

    손흥민(29)이 지긋지긋하던 ‘아홉 수’를 풀고 마침내 ‘토트넘 100호골’의 사나이로 이름을 올렸다.손흥민은 2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2020~21시즌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17라운드에 선발 출전, 팀이 1-0으로 앞선 전반 43분 추가골을 넣었다. 2015년 8월 토트넘에 입단한 뒤 정규리그를 비롯해 각 경기에서 넣은 100번째골. 손흥민은 후반 43분 오른쪽에서 해리 케인이 넘겨준 땅볼 크로스를 골 지역 오른쪽에서 방향만 바꾸는 슈팅으로 마무리해 골망을 흔들었다. 손흥민은 EPL에서 65골,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에서 12골, 리그컵에서 3골,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14골, UEFA 유로파리그(예선 포함)에서 6골을 넣어 100골을 채웠다.지난해 12월 17일 리버풀과의 13라운드에서 99호골을 넣은 뒤 네 경기 연속 덜미를 잡았던 ‘아홉 수’에서도 벗어났다. 리버풀전 사흘 뒤인 20일 레스터시티전에서 공격포인트 없이 돌아섰던 손흥민은 24일 스토크시티와의 리그컵(카라바오컵) 8강전에서는 골을 넣고도 애매한 오프사이드 판정에 걸려 또 뜻을 이루지 못했다. 28일 울버햄프턴과의 EPL 15라운드에서 헛심만 쓰고 다시 돌아선 손흥민은 2020년 마지막날인 31일 풀럼과 EPL 16라운드에서 전에서 발끝을 갈았지만 최근 영국의 변이바이러스 창궐과 추가 확산으로 이 경기가 연기되는 바람에 네 차례나 이어진 ‘99호골의 악몽’에 또 울어야 했다.손흥민은 이날 100호골로 EPL 올 시즌 12번째 골까지 기록, 득점 부문 공동 2위에서 단독 2위로 올라섰다. 선두 무함마드 살라흐(13골·리버풀)와의 격차는 1골로 좁혀졌다. 후반 5분 동료 수비수 토비 알데르베이럴트의 헤더골을 정확한 크로스로 도운 손흥민의 올 시즌 공식전 공격포인트 기록도 이날 1골 1도움을 포함해 모두 15골 8도움(EPL 12골 5도움·유로파리그 3골 3도움)으로 늘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트럼프 거부권 첫 무효로, 공화 주도 상원마저 국방수권법 재의결

    트럼프 거부권 첫 무효로, 공화 주도 상원마저 국방수권법 재의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행사한 법안 거부권이 의회에서 처음 무효가 됐다. 미국 상원은 새해 첫날(이하 현지시간) 본회의에서 주한미군을 줄이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포함된 2021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을 찬성 81표에 반대 13표로 재의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지난달 28일 하원이 찬성 322표,반대 87표로 NDAA를 재의결해 무효로 한 데 이어 공화당이 주도하는 상원마저 이날 거부권을 무효로 만들어버렸다. 이에 따라 대선 결과를 의회에서 뒤집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타격을 입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양원의 재의결로 효력을 잃은 것은 처음이다.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효로 하려면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이 법안은 7400억 달러(약 807조원) 규모의 국방·안보 관련 예산을 담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지난달 23일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앞서 지난달 하원(찬성 335표, 반대 78표)과 상원(찬성 84표, 반대 13표)은 각각 압도적 지지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법안이 해외 주둔 미군을 미 본토로 데려오려는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어긋난다면서 아프가니스탄과 독일, 한국에서 군대를 철수할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국방수권법에는 주한미군 규모를 현재의 2만 8500명 이하로 줄이는 예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또 트럼프 행정부가 이미 감축 계획을 발표한 독일과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축소에도 제동을 거는 내용이 담겼다. 이 밖에 구글·트위터·페이스북 등의 대형 소셜미디어 기업이 이용자 콘텐츠에 법적 책임을 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통신품위법 230조 폐지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고, 노예제를 옹호한 ‘남부연합’ 장군의 이름을 딴 미군기지 명칭을 바꾸는 내용이 포함된 것도 거부권 사유로 꼽았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여덟 차례 거부권을 행사해 인정됐지만, 아홉 번째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화당의 제임스 인호프 상원 군사위원장은 이날 NDAA는 군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고 미국을 더 안전하게 만든다면서 상원이 다시 한번 초당적으로 투표해 기쁘다고 밝혔다. 상·하원이 초당적 공감대 속에 거부권을 무효로 만들어 임기가 3주도 남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AFP 통신은 “의회는 거부권을 무효로 하기 위한 압도적 표결로 트럼프 집권 말기에 굴욕적인 타격을 입혔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도 “공화당이 주도하는 상원이 거부권 무효 표결을 하면서 의회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 말에 큰 패배를 안겼다”고 전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탐사 신기원…美·中·UAE 탐사선 2월 화성 도착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탐사 신기원…美·中·UAE 탐사선 2월 화성 도착

    우주선을 화성 궤도에 올리기 좋은, 이른바 ‘발사의 창’이 열린 지난해 7월, 3개의 우주선이 잇달아 발사됐다. ​7월 20일, 23일, 30일 차례대로 발사대를 박차고 화성으로 떠난 아랍에미리트(UAE)와 중국 그리고 미국의 탐사선은 2월이면 속속 화성 궤도에 도착한다. 화성으로의 대장정에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UAE의 화성 궤도선인 ‘아말’(희망)은 예정대로라면 UAE 건국 50주년에 맞춰 2월 9일 가장 먼저 화성 궤도에 도착할 예정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탐사로버 퍼시비어런스(Perseverance)도 트위터를 통해 “아말 발사 축하해! 나도 서둘러 이 여행에 동참하고 싶어!”라는 축전을 보냈다. 아말이 화성 궤도 진입에 성공하면, UAE는 미국, 러시아, 인도에 이어 네 번째로 화성 진입에 성공한 국가가 되는 만큼 세계의 시선이 이를 주시하고 있다.​두번째로 발사된 중국의 톈원(天問) 1호는 궤도선, 착륙선, 로버(탐사차량)로 이뤄져 총 무게가 5t에 이른다. 미국이 여러 차례 나눠서 성공한 일을 중국이 한꺼번에 시도하는 대담한 도전이다. 톈원은 ‘하늘에 묻는다’라는 뜻으로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 굴원의 시 제목에서 따온 이름이다. ​중국국가우주국(CNSA)은 지난 10월 1일 중국 국경일을 기념하기 위해 톈원 1호가 화성으로 향하던 도중 찍은 ‘셀피’ 2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톈원 1호는 2월 11~24일 화성 궤도에 도착한 뒤 4월 23일경 착륙선과 로버를 화성 표면에 내려놓을 계획이다. 톈원 궤도선은 화성 고도 265㎞에서 1만 2000㎞ 사이를 오가는 극타원궤도를 돌며 1년간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착륙 예정지는 화성 북부의 유토피아 평원이다. 지름 3300㎞의 유토피아 평원은 많은 양의 얼음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태양전지판을 장착한 로버는 240㎏ 무게로 약 90일간 임무를 수행하도록 설계됐다. 착륙선과 로버는 화성의 토양과 지질 구조, 대기, 물에 대한 과학 조사를 진행한다. 중국이 화성착륙과 탐사까지 성공할 경우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화성착륙에 성공한 국가가 되며 명실공히 우주 강국반열에 오를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중국은 지난 2011년 화성탐사선 ‘잉훠 1호’를 러시아 화성 탐사선과 함께 러시아 소유스 로켓에 실어 발사했으나, 지구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실패한 바 있다. 올해 최대의 화성탐사 도전은 7월 30일 아틀라스V 로켓에 실려 발사된 NASA와 유럽우주국(ESA)의 합작 탐사로버 ‘퍼시비어런스’다. 퍼시비어런스는 발사 57분 뒤 아틀라스 로켓과 분리된 데 이어 1시간 25분 뒤에는 지구와 교신에도 성공하며 성공적으로 화성으로 향하고 있다. 퍼시비어런스가 발사에 성공함으로써 올해 인류가 화성에 보내기로 예정한 세 탐사선이 모두 성공적으로 화성으로 향하게 됐다. 2월 18일 ‘예제로 크레이터’에 착륙할 예정인 무게 1043㎏의 대형 로버인 퍼시비어런스는 고대 미생물의 흔적을 찾고 다음 우주선이 회수해 지구로 가져올 수 있게 토양·암석 샘플을 채취, 보관하는 임무를 맡았다. 퍼시비어런스는 1997년 최초의 화성 탐사로버로 착륙에 성공한 ‘소저너’와 2004년 착륙한 ‘스피릿’ ‘오퍼튜니티’, 2012년 ‘큐리오시티’에 이은 NASA의 5번째 화성 탐사로버다. 기존 탐사로버들이 화성의 기후와 대기, 물의 흔적, 암석 조사 등의 임무를 수행한 것과 달리 퍼시비어런스는 화성 토양을 수집해 지구로 다시 가져오는 임무를 맡고 있다. 미국이 화성에 도전하는 것은 이번이 아홉 번째다.또 다른 대형 ‘우주 이벤트’는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 발사다. 허블 우주망원경의 뒤를 이어 우주를 더 멀리, 더 깊이 들여다보는 제임스웹 차세대 우주망원경은 여러 차례 연기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10월 31일 우주로 향한다. NASA는 프랑스령 쿠루 기아나 우주센터에서 아리안 5호 로켓에 실어 발사할 예정이다. 처음 개념 설계를 시작한 1996년부터 따지면 무려 25년 만에 우주로 올라가는 셈이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은 18개의 육각형 거울을 벌집처럼 이어붙인 독특한 형태로도 유명하며, 로켓에는 거울을 접어 싣는다. 접힌 거울은 우주 공간에서 로켓과 분리되면 펼쳐진다. 망원경의 이름은 아폴로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NASA 과학자인 제임스 웹에서 땄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늘 마스크 썼던 래퍼 MF 둠, 죽은 지 두 달 지나 부고

    늘 마스크 썼던 래퍼 MF 둠, 죽은 지 두 달 지나 부고

    늘 마스크를 쓰고 연주하던 영국 래퍼 MF 둠(49)이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부인 재스민 두밀은 지난 31일(이하 현지시간) 인스타그램에 성명을 올려 남편이 지난해 10월 31일 세상을 떠난 사실을 공개했다고 피플 등이 전했다. 어디에서 어떻게 죽음을 맞았는지는 물론, 사인도 밝히지 않았다. 또 왜 두 달이 지나서야 남편의 사망을 뒤늦게 알리는지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았다. 그의 대변인 리치 애봇은 잡지 롤링스톤에 고인의 죽음을 확인해줬다. 본명이 대니얼 두밀인 그는 런던에서 태어나 어릴 적 미국 뉴욕주로 건너와 롱아일랜드에서 자라났다. 1980년대 래퍼 활동을 시작해 1988년 힙합 트리오 KMD에서 ‘제브 러브 X’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그룹이 해체된 뒤 솔로로 독립했다. KMD에서 함께 활동했던 남동생 딩길리즈웨(DJ 스브룩)가 1993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홀연히 무대를 떠났다. 한동안 노숙자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1997년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에 다시 등장해 이듬해 MF 둠이란 이름으로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마블 만화 시리즈의 캐릭터 닥터 둠에서 따왔으며 마스크를 쓰는 것도 닥터 둠을 따라 한 것이었다. 마지막 솔로 앨범은 2009년 ‘번 라이크 디스’까지 아홉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하지만 래퍼들에게 레전드로 통하며 영향력도 있어 고스트페이스 킬라, 마들립, 댄저 마우스 등과 콜래브레이션을 하며 꾸준히 활동해 왔다.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하는 절묘한 펀치라인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우리 시대 최고의 리릭리스트란 평판을 들었다. 2017년 그는 인스타그램에 14세 아들 킹 말라치 에제키엘 두밀이 세상을 떠났다는 글을 올렸다. 부인 재스민 외에 다른 유족이 있는지 역시 알려지지 않았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전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연우의 재밌는 일기쓰기 기계/김상화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연우의 재밌는 일기쓰기 기계/김상화

    “이번에는 머리에 연두색 리본을 달고 있는 우리 연우가 나와서 읽어 볼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연우는 수업 시간에 곧잘 손을 들어 발표를 했지만 일기를 읽는 시간에는 아직 한 번도 발표를 한 적이 없습니다. 일기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담임 선생님은 일기 검사를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일주일에 세 번 아이들이 스스로 발표하게 했습니다. 4학년이 되고 나서 연우의 일기를 본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선생님은 11월이 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꼬박꼬박 숙제도 잘하는 연우가 일기를 쓰지 않을 리는 없을 텐데 왜 발표를 하지 않는지 궁금했습니다. 선생님은 11월이 되어도 발표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연우에게 발표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우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바로 오늘입니다. 선생님이 연우의 이름을 불렀을 때, 연우는 땋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머뭇거렸습니다. “일기 썼지?” “네, 썼어요.” “그럼 나와서 읽어 봐. 쓴 걸 그대로 읽기만 하면 돼.” 연우는 일기를 쓰긴 했지만 발표를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스스로 부끄러운 모습을 꺼내서 보여 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쭈뼛쭈뼛 앞으로 나가서 겨우 어제의 일기를 읽었습니다. “11월 11일 수요일. 낮에 공부를 좀 하다가 소파에 누워 있었는데, 누워 있으니 잠이 조금씩 왔다. 누워서 이제 무슨 공부가 남았지 하고 생각해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연우의 일기는 딱 두 줄뿐이었습니다. 일기를 다 읽었을 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계속 읽어.” “다 읽었어요.” 아이들이 ‘와하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으니 연우는 부끄러웠습니다. “그것밖에 못 썼어?” 연우는 선생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거 봐, 그냥 읽기만 하면 된다고 하더니, 그게 아니잖아.’ 선생님은 연우의 원망을 들으셨는지 더 원망스러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연우는 내일 다시 일기 발표를 하도록 하렴.” 이어서 연우의 단짝인 아연이가 손을 들어서 세계 명작 동화 읽는 것처럼 일기를 아주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연우와 집으로 가는 길에 아연이는 일기를 잘 써서 칭찬받으면 기분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 일기에 거짓말도 조금 있다고 했습니다. “거짓말?” “별로 재미가 없었던 일도 모두 재미있었다고 쓰는 거야.” 아연이는 속삭였습니다. “사실 거짓말은 아니야. 재미없었지만 재미있었다고 상상하는 거야. 맛없을 때도 맛있다고 상상하는 거야.” “쳇, 그게 뭐야. 거짓말이나 마찬가지잖아. 일기를 쓰기 위해서 맛도 없는 걸 맛있다고 상상한다고? 우웩, 토할 것 같아.” 연우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보여 주어야 하는 일기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듣는 사람들 생각도 해 주어야 하니까요. 연우는 예쁜 새 일기장을 사서 오늘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우는 아연이에게 전화기를 빌렸습니다. 연우에게도 전화기가 있습니다. 그건 오빠가 쓰던 스마트폰인데 개통을 하지 않아서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만 톡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연우는 아연이의 스마트폰으로 회사에 계신 엄마에게 전화했습니다. “엄마, 나 새 일기장 사게 돈 좀.” “아우, 연우야. 지금은 정신이 없으니까 내일 체크카드에 입금해 줄게. 엄마 지금 회의 들어가야 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알았지?” 연우는 엄마가 정신이 없다는 말을 돈이 없다는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냥 쓰던 일기장에 계속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연우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바쁜 엄마를 귀찮게 하지 않기 위해서요. 아연이에게 지고 싶지 않았지만, 일기를 잘 쓰기 위해서 꼭 새 일기장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괜찮았습니다. 연우는 오늘이 끝나기 전에 일기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하루 종일 잊지 않았습니다. 오늘만큼은 시간이 천천히 가길 바랐지만 금방 밤이 되어 버렸습니다. “연우, 이제 티브이 그만 보고 방에 들어가거라.” 아빠가 설거지하다가 말씀하셨습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아홉 시 반이었습니다. 이제 오늘이 끝난 걸까요? 오늘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연우가 일기를 써야 할 시간이라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재미난 일기를 쓰기 위해서 뭔가 사건이 벌어져야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각이어서 이제 새로운 사건을 일으키기란 어려웠습니다. 늦은 밤 학교에 다시 갈 수도 없고 어디로 놀러갈 수도 없었습니다. ‘도둑님이시여, 제발 우리 집에 와 주세요.’ 연우는 이런 나쁜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늘 있었던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일은 내일 일기를 발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이 일을 일기로 쓰려니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연우가 텔레비전을 끄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일기 쓰는 거 잊지 말구.” 아빠가 고무장갑을 벗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만 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텐데 연우는 그만 방문을 쾅 닫고 말았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일기장을 펼쳤습니다. 말똥말똥 일기장을 쳐다보았습니다. 한숨을 쉬며 양손을 턱에 괴고 생각했습니다. ‘일기를 대신 써 주는 기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필을 너무 세게 쥐는 바람에 연필심이 탁 부러졌는데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전화가 안 되는 스마트폰을 떠올린 것입니다. 전화는 안 되지만 와이파이만 되면 자동완성 기능이 작동됩니다. 연우는 자동완성 기능으로 일기를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오빠가 쓰던 기계이기 때문에 스마트폰은 오빠가 쓰던 말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뭔가 흘리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오빠는 스마트폰을 초기화해 놓지 않고 자기가 쓰던 흔적을 남겨 놓았습니다. 친구들과 톡을 할 때에도 연우는 오빠가 쓰던 스마트폰 자동완성 기능의 재미를 톡톡히 보았습니다. 연우는 이 자동완성 기능이 일기를 쓰는 기계가 되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스마트폰의 메모장을 열어 아무 글자나 썼습니다. ‘신’이라는 글자를 입력하자 이 기계는 자기 마음대로 말을 만들어 내기 시작합니다. “신, 이시여, 제발, 저에게, 힘을, 주세요, 꼭.” 연우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11월 12일.” 스마트폰은 11월과 12일만 쓰는데도 13, 14 이러면서 자동완성 기능으로 어서 일기를 써 주고 싶어서 안달복달 난리였습니다. “그래, 맞아. 바로 이거야.” 목요일을 쓰려고 ‘모’까지 썼을 때, ‘모기’, ‘목요일’, ‘목소리’라고 자동완성 기능이 세 낱말을 띄워 주었습니다. 그중에서 연우는 ‘목요일’이 맞다는 것을 자동완성 일기쓰기 기계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스마트하긴 하지만…, 많이 똑똑하지는 않아. 그러니까 내가 잘 골라 주어야 해.” 그래도 다른 자동완성 기능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ㅋ’ 하면 다른 자동완성 기계들은 ‘ㅋㅋㅋㅋ’밖에 모르지만 연우의 일기쓰기 기계는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오빠가 쓰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빠가 쓰던 말들을 많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겨우 날짜와 요일만 썼을 뿐인데도 연우는 가슴이 두근두근했습니다. ‘오늘’이라고 쓰자 ‘오늘은’, ‘오늘도’ 하고 보기를 내 주었습니다. “오늘도 일기를 읽는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이라고 쓰자 ‘선생님께서’라고 자동완성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내 이름을’이라고 썼을 때, 일기쓰기 기계는 ‘불렀다’와 ‘외쳤다’ 두 가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맞습니다, 선생님은 분명 연우의 이름을 부른 게 아니라 외쳤습니다. 그건 천둥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렸거든요. 하지만 연우의 귀에만 그렇게 들렸을 뿐이라는 걸 연우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우는 이렇게 썼습니다.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천둥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렸다.” 연우의 일기쓰기 기계는 가끔 연우와 대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연우가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쓰면 “어떻게 써야 할지 다 알겠다”라고 뜹니다. 연우가 ‘모르겠어’를 지우고 ‘알겠어’라고 쓰면, “나도”라고 대답합니다. 막막함 속에서도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것밖에 못 썼어?’라고 쓰려고 ‘못’을 썼을 때 일기쓰기 기계는 ‘못이 박이도록’, ‘못지않다’, ‘못뽑이집게벌레’, ‘망치’를 보여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이것밖에 못 썼냐고 말씀하셨을 때, 못 말고 망치 썼다고 대답할걸 그랬어.’ ‘그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던’이라고 쓰려고 했는데 연우의 손가락이 조금 굵어서일까 ‘던’ 대신 ‘단’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단’이라는 말은 바로 ‘그동안 왜 일기를 쓰지 못했단 말인가!’라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연우는 자동완성 일기쓰기 기계와 함께 오늘의 일기를 썼습니다. 한 낱말을 쓰면 다른 낱말이 이어지고, 그걸 일기에 쓰면 또 다른 말을 알게 되고, 또 새로운 일이 생겼습니다. 끝말잇기처럼 계속 말들이 생겨났습니다. 연우는 방 안에서 혼자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안 자니? 엄마가 아이스크림 사왔다. 나와서 아이스크림 먹어라.” “네.” 연우는 대답하고 나서도 발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다음 글이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했습니다. ‘새 일기장을 사려고 엄마에게 돈’까지 쓰고 멈추었습니다. ‘돈’이라는 글자를 쓰자마자 바로 ‘돈 돈 돈’이라고 변했기 때문입니다. ‘돈 돈’ 두 글자를 지우자마자 바로 또 ‘돈’은 자동으로 ‘돈 돈 돈’ 하고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새 일기장을 사려고 엄마에게 돈 돈 돈을 달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이런 문장이 되어 버리고 말았는데 다음 문장은 더 재미있었습니다. “엄마가 돈 돈 돈이 없다고 내일 체크카드에 돈 돈 돈 입금해 준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연우의 일기는 이렇게 되었습니다. 11월 12일 목요일 오늘도 일기를 읽는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께서 나를 불렀을 때, 너무 무서워서 천둥소리처럼 크게 내 이름을 외치는 것같이 들렸다. 일기를 다 읽었을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것밖에 못 썼어?” 나는 못을 쓰지 않았는데, 선생님은 왜 못 썼다고 하시면서 망치처럼 내 마음을 때릴까? 나는 못이 아닌데, 그동안 왜 일기를 쓰지 못했단 말인가! 일기를 쓸 수 있는데도 두 줄밖에 쓰지 않았던 이유는 노력을 안 해서 그랬던 거다. 새 일기장을 사려고 엄마에게 돈 돈 돈을 달라고 했지만, 새 일기장이 아니라도 새 마음으로 일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부터 일기 쓰는 일이 정말 재미있어졌다. 다음 날, 연우는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도 전에 손을 들어 일기 발표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연우에게 못을 쓰지 않았는데 못 썼다고 말해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루 만에 일기가 풍년이 들었다며 칭찬도 해 주셨습니다. 친구들에게 박수도 받았습니다. 쉬는 시간에 아연이가 연우에게 뛰어왔습니다. 아연이는 연우에게 귓속말로 물었습니다. “내 말 맞지? 거짓말 아주 조금 섞어서 쓰니까 진짜 잘 써지지?” “무슨 거짓말?” 연우는 잠깐 생각하다가 아연이가 어제 일기에 쓰려고 맛없는 것도 맛있다고 상상한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아연이는 연우가 일기 쓰는 일이 정말 재미있어졌다는 말이 진짜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 정말 재밌어졌다는 말? 그거 거짓말 아닌데?” “쥐꼬리만큼도?” “응.” “손톱만큼도?” 아연이가 자꾸 물으니까 연우는 일기 쓰는 일이 정말 재미있어졌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연우가 말했습니다. “어쩌면 오늘 밤에는 맘이 바뀔지도 몰라. 하지만 어제는 분명히 진짜였어.” 연우와 아연이는 둘이 함께 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블랙(ABOUT THE DARK)/우솔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블랙(ABOUT THE DARK)/우솔미

    등장인물 수용 29세/ 벽을 허무는 집주인 이리 30세/벽을 허무는 집주인의 친구옥형(노파) 88세/벽이 허물어지는 집 아랫집 거주자 때2017년 어느 가을 곳수용의 집 무대 벽이 있다. 벽의 좁은 면이 관객을 향하고 있다. 벽을 가운데 두고 하수로 붉은 조명, 상수로는 햇살 같은 밝은 조명. 붉은 조명은 빌라 주민들이 삼삼오오 돈을 모아 만든 ‘특수학교 설립 반대’ 현수막의 붉은 천에 빛이 투과된 것이다. 무대 뒤쪽, 현관문이 벽과 같은 방향으로 있고 문과 이어지는 계단은 불투명한 박스와 닿는다. 박스는 사람 하나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옥형의 집이다. 옥형은 수용의 집 아래층에 사는 노파이지만, 우리가 만드는 것이 무대이니만큼 상상력을 발휘하여 수용의 집보다 위에 있다고 약속하자. 공업용 마스크를 낀 수용 하수 등장. 낡은 후드와 트레이닝 바지 차림의 수용은 어딘가 무기력해 보이지만 분무기와 김장비닐을 든 손에는 비장함이 은근하게 뿜어져 나온다. 수용, 비닐을 바닥에 깐다. 아주 꼼꼼히. 그사이 이리, 상수 등장. 붉은 천을 허리와 목에 두르고 양손에 커다란 망치를 하나씩 끌고 온다. 옆이 트인 롱스커트 사이로 보이는 다리와 팔뚝의 타투들과 붉은 천, 망치의 조화는 길거리 행위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이리 (붉은 방을 둘러보며 기운을 한껏 느껴본다) 느껴져. 느껴져, 느껴져! 느낌이 팍! 온다, 와. 수용 … 이리 딱이야, 딱. 아주 먹고 죽기 딱이야. (손을 까딱거리며 허공에서 술잔을 넘긴다) 뭐랄까, 아주 옥보단스러워. 수용 일조권을 침해받는 참혹한 현장이야. 전혀 옥보단스럽지 않아. 이리 하루만 빌려줘라. 네가 우리 집에 가서 자. 수용 얼마 줄 건데. 이리 얘 봐라. 무슨 돈을 달래. 서울 살더니 양아치 다 됐다. 수용 나 원래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이리 서울시장은 뿌듯하겠어. 서울시민이 이렇게 우정보다 돈이 먼저인 양아치라서. 수용 (가만히 생각에 빠져든다) 뿌듯하기보다는 머리 아프지 않을까. 네 말대로 서울에 살면 돈만 밝히는 양아치가 되면, 서울시민은 곧 양아치란 말인데. 이 많은 양아치들을 다 관리하려면 시장은 최고의 양아치가 해야겠네. 이리 하여튼. 또 이상하게 진지해지지. 으, 진지충. 헛소리는 됐고, 하루만 빌려줘. 수용 (마스크를 하나 주며) 네 룸메 코 골아서 싫어. 이리 오랜만에 나비랑 오붓하게 시간 좀 보내 보자. 수용 나비? 이리 말 안 했나. 애인. 뉴 원. 수용 그새? 울고불고할 땐 언제고. 체력도 좋다. 이리 능력이 좋은 거지. 수용, 비닐을 다 깔고 일어서는데 비틀 이리 (곰곰이) 체력도 좋긴 해야겠다. 하여튼, 진짜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하루만 빌려줘. 어? 알겠지? 수용 너 오늘 우리 집에 왜 왔어? 이리 네가 오라며 새끼야. 수용 내가 왜 오라고 했어? 이리 하, 진짜 장난치나. (가만 돌이켜보다 손에 망치를 보고) 아… 벽…! 수용 그래, 오늘이면 옥보단도 안녕인데. 뭘 자꾸 빌려 달래. 수용, 마스크를 끼고 벽 앞에 선다. 이리 진짜 하게? 수용, 이리에게 마스크 하나를 주고 망치 하나를 받는다. 심호흡. 수용, 벽을 내리친다. 엄청난 진동과 소음 그리고 뿌옇게 이는 먼지. 삭막함이 감돈다. 수용, 다시 벽을 내리치려는데 이리 말린다. 이리 야, 잠깐만. 수용 왜? 이리 아니, 아랫집에서 올라오겠어. 진동이 장난 아닌데? 수용 아랫집만 올라 오냐. 엄청 커다란 직사각형 박스 하나에 벽을 댄 게 다인데. 다 쫓아오겠지. 이리 그냥 저번처럼 해. (몸에 두르고 있던 붉은 천을 흔들며) 두 번 했는데 세 번은 쉽지. 수용 세 번짼 수선비를 청구하겠대. 이리 얼만데, 얼마면 되는데. 누나가 해결해 줄게. 멀쩡한 벽을 허무는 것보다는 수선비가 낫지 않냐. 수용 빛 없이 사는 삶을 네가 알아? 숲세권 남향에 사는 네가 빛이 없어서 사람이 바싹바싹 말라가는 기분을 알 리가 없지. 머리랑 마음이 건조해지다 못해 바스러지는 기분이야. 이리 빛이 많아야 바싹바싹 마르지 없는데 왜 말라. 그냥 문을 열어 놓고 살던가. 수용 문이라는 건, 열고 닫으라고 있는 거야. 그게 문의 역할이지. 한 번 열면 언젠간 닫아야 제 역할을 다하는 거라고. 닫히지 않는 문은 문이 아니지. 그럴 바엔 없는 게 나아. 이리 그럼 창문을 만들자. 수용 (벽을 치며) 만들고 있잖아. 엄청 커다란. 창틀도 없고 유리판도 필요 없는 실용적인 창문. 이리 극단적인 놈. 수용 뭐든 확실한 게 좋잖아. 수용, 다시 벽을 허물기 시작 이리 어떻게 세상이 모 아니면 도, 흑 아니면 백으로 굴러가. 너 그거 강박이야. 괜히 바짝바짝 마르는 게 아니라고. 그래도 뭐 마른 장작이 잘 탄다더라. (쿵) 수용 이렇게 살다 죽겠지 뭐. 이리 무모한 놈. (쿵) 수용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나는 자살할 것 같아. 이리 또 데드타임! 웬일로 그냥 넘어가나 했다. 수용 데드타임? 이리 그래, 너 죽는다는 소리 하는 거. 수용 왜 사람들은 이름 짓길 좋아할까. 이리 언젠 병에 걸려 죽을 것 같다며. 수용 엄밀히 말하면 병이긴 하지. 내 죽음의 원인은 내 안에 우울이니까. 있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대. 말이 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세상을 그렇게 살아질 수가 있는 건가. 이리 오늘은 아니지? 수용 뭐가? 이리 데드타임. 수용 오늘은 벽을 허물어야지. 그때, 관리실 방송. 수용과 이리, 방송이 나오는 천장을 가만 본다. 방송 아아, 관리실에서 알려드립니다. 잠시 후 2시부터 특수학교 설립 반대 관련 7차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회의 후 시위가 바로 시작되니 참석을 희망하시는 모든 주민들은 2시, 아니 정정하겠습니다. 1시 50분까지 늦지 않게 관리실로…. 수용 다 저기 가느라 벽이 무너지는지, 빌라가 무너지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경도 안 써. 그러니까 오늘 끝내야 돼. 수용, 다시 망치질을 시작하고 이리, 소음과 먼지 속에서 분무기로 물을 뿌려 먼지를 잠재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이리, 수용의 얼굴에 물을 뿌린다. 수용 야! 이리 바싹바싹 마른다길래. 그때, 무대에 노파 등장. 노파가 있는 곳은 수용과 이리가 있는 공간과 다른 공간. 지팡이를 짚고 느린 걸음으로 나오는 노파는 명절에 자식이 사준 듯한 빳빳한 꽃무늬 재킷에 펑퍼짐한 배바지를 입고 낡은 크로스백을 맨 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무대를 둘러 계단으로 향한다. 이리 (창밖을 보다) 야, 근데 저기에 아랫집 할머니는 없는 것 같다? 수용 네가 아랫집을 알아? 이리 오다가다 몇 번. 그 할머니가 좀 인상적이잖아. 정제되지 않은 순수함이 있다고 해야 되나? 직설적이면서 약간 자기 방어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게 꽤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았겠다 싶지. 괜히 과거를 상상하게 만들잖아. 수용 순수는 무슨. 그냥 괴팍한 할머니야.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척만 하는 딱 옛날 사람. 이리 와우. 노인 혐오야? 수용 무슨 내가 그런 몰상식한 사람이야? 이건 정당한 혐오야. 이리 (웃음이 터진다) 세상에 정당한 혐오도 있어? 수용, 상의를 걷어 올리자 시퍼런 멍이 배에 크게 있다. 이리 그래, 언젠가 너 맞을 것 같더라. 수용 야. 이리 누구야, 누가 이랬어. 남의 집 귀한 자식을…. 왜 맞고 다니냐 너는, 속상하게. 수용 정제되지 않은 순수함을 갖고 계신 분. 이리 할머니한테? 이게 할머니가 만든 멍이라고? 수용 어. 이리 역시 호기심을 자극한다니까. 아니 그렇잖아.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서 걷는 할머니가… 또 네가 싹수없게 굴었지. 수용 내 싸가지도 가릴 건 가려. 이리 근데 진짜 왜 그런 건데? 수용 이름 석 자 부탁한 대가야. 이리, 한쪽에 놓인 빈 서명지를 들어 본다. 이리 자가인가? 수용 뭐? 이리 아니, 그 정도로 반대하는 거 보면. 강경한 표현이잖아. 수용 강경한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폭력적이지. 이리 너무 텅 비었다. 나라도 서명 해줄까? 학교 설립 찬성해. 수용 너는 우리 구민이 아니라서 소용없어. 빌라 주민들의 소란스러운 소리. 장애학교 반대 시위가 시작됐다. 이리 서명이라는 게 굉장히 순수한 방식이야. 동시에 직설적이기도 해. 굉장히 너답다. 수용 내가 순수하고 직설적이라고? 이리 나 이사 올까? 그럼 나도 지역구민 되잖아. 수용 됐어. 이리 나도 해본 말이다 뭐. 수용 불편과 불만을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을 해야 해소되는 건 맞지. 그게 옳은 방향이야. 하지만… 그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지만, 과연 옳은 방향인가 의문을 던질 수는 있잖아. 저 사람들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어떻게 확신하고 있는 거지. 저 확신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건데. 나는 그게 무지라고 생각해. 그사이, 노파 집 앞에 도착해 가방을 뒤지고 깜빡깜빡하는 현관 비밀번호를 적어 놓은 노트를 찾는다. 이옥형이라 커다랗게 적힌 노트를 꺼내는데 노트 사이에서 날이 시퍼런 과도가 뚝! 떨어진다. 떨어진 건 작은 과도지만 운석이 떨어진 듯한 소리와 진동이 무대를 흔든다. 수용과 이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하고 잠시 사이. 노파가 과도를 주워 넣는 그사이, 무대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 노파 천천히 과도를 집어넣고 비밀번호를 확인하곤 집으로 들어간다. 밖에 소리가 무대를 환기하고 이리 (창밖을 보곤) 열정적이네. 그래도 생각해 보면 너무 비난만 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해. (수용의 시선을 느끼고) 야, 레이저 나오겠다. 분명히 말하는데 옹호하는 거 아니야. 그냥 공감능력을 지닌 인간으로서 감정이입을 해보자는 거지. 사실 그렇잖아. 누가 좋아해, 동네에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말도 있고. 수용 부동산이 떨어진다는 실질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 집값이 떨어진다는 가설은 무지에서 시작된 삐뚤어진 믿음이야. 수용, 망치질을 시작한다. 이리 그래 좋아, 뭐가 됐든. 그 믿음이 아틀라스처럼 세상을 지탱하고 있잖아. 저 자리가 원래 학교 부지란 이유 말고 다른 이유는 뭔데. 학군 빵빵한 동네가 지하철로 네 정거장만 가면 되잖아. 그렇게 멀지도 않아. 공사부지 맞은편은 곱창에 포차, 막걸리 온갖 술집이 줄 서 있더만. 워싱턴 노래방 간판이 애들 하굣길을 밝혀 주겠지. 이 동네보다는 그 동네가 백 번 나아. 안 그래? 수용 …. 이리 기시감 들지 않아? 수용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리 한국전쟁 이후 국가적으로 밀고 있는 꽤 전통적인 방식인데. 그놈의 낙수효과야말로 삐뚤어진 믿음 아니야? 이게 진짜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뿌리 깊은 믿음. 네 말대로 무지에서 비롯된 거지. 될 놈만 건지고 나머지는 버리겠다는 걸 그럴듯하게 이름 붙여서 포장을 해요. 항상 그럴듯해 보이는 게 사람 눈 돌아가게 만들잖아. 난 그놈의 낙수효과가 대한민국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해. 수용 가부장제의 근본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이리 야 너. 짜식, 평소에 내 말을 아주 허투루 듣는 건 아니었구나. 수용 그럼. 귀는 문이 아니잖아. 닫히질 않아. 이리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수용 가끔은 닫혔으면 좋겠지만…. 이리 삐뚤어진 세상을 바로잡는 건 중요해. 근데 이 망할 놈의 세상은 밑 빠진 독이라서 어딘가는 새게 되어 있잖아. 수용 왜 날 봐. 계속해. 이리 성장이 제1의 명분이 되는 시대는 흘러가고 있어. 이젠 희생의 이유도 살펴봐야 할 때가 왔다는 거지. 최소한의 납득과 보상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야. 수용 애들만으로는 부족한 거야? 이리 뭐가? 수용 아이들이 배울 곳이 필요하다. 이걸로는 최소한의 납득과 보상으로 부족해? 이리 무엇보다 중요하지 수용 꼭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더라도 인류애적인 충만함을, 정신적인 보상을 얻을 수도 있어. 안 그래? 이리 …. 수용 왜 아무 말도 안 해? 이리 것도 능력이야. 한 번에 양쪽을. 수용 양쪽을 뭐. 이리 아냐. (쿵) 이리 하여튼 지금은 어떤 이유도 저 사람들한텐 먹히지 않을 수도 있어. (쿵) 이리 (밖을 보며) 한껏 쫄아 있으니까. 나는 저 사람들의 확신이 무지에서 나온 게 아니라 이번에도 버려질 거란 공포에서 나왔다고 봐. (쿵) 수용 시끄럽지? 수용, 음악을 튼다. life is killing - type O negative 수용 소음에는 락이지. 소음은 음악소리에 묻히고 뿌연 먼지 사이로 둘, 망치질. 벽을 타고 온 진동이 노파의 아크릴 박스를 사정없이 흔든다. 노파, 공포에 질린 비명이 락에 묻히고 노파의 사정과는 별개로 망치질을 하는 수용과 이리의 모습은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등록금 인상에 반대 시위를 하는 프랑스 청년들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하고 어느 삭막한 공사장의 인부 같아 보이기도 하다. 일순간 음악이 멈추고 노파가 있는 불투명 박스에 조명 노파 아주 발광을 허네! 수용, 노래를 멈춘다. 이리 왜? 수용 뭐라고 하지 않았어? 이리 아니. 수용 (귀를 파며) 아닌가. 이리 살살해, 스윙에 감정이 실렸다. 누구 생각해? 수용 여럿 (쾅) 생각하지. 이리, 분무기로 먼지를 잠재운다. 수용 사람들이 타격감에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잖아. 복싱이나 야구공 치는 것처럼. 아무래도 난 때리고 (쾅) 던지고 (쾅) 치고 박으면서 (쾅) 스트레스 푸는 거엔, 적합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수용, 손목을 턴다. 이리 (덥다. 옷을 펄럭) 너도 참, 손목 아프단 말을 장황하게 한다. 수용 (보곤) 옷 빌려줄까? 이리 아니, 됐어. 수용 먼지 엄청 붙었네. 이리 블랙이 적나라하지. 수용 하나 가져다줄게. 이리 아냐, 됐어. 수용 아냐 가져다줄게. 이리 아니 괜찮아. 수용 불편해 보여. 가져다줄게. 이리 진짜 괜찮다고. 수용 나도 진짜 괜찮아. 이리 아니. 괜찮다니까? 수용 왜 화를 내. 이리 화를 낸 게 아니라. 됐다고 했는데 못 알아들으니까. 크게 얘기 해준 거지. 수용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이리 남자들 종족 특성이야? 왜 노를 못 알아듣지? 강요하지 마. 수용 내가 언제 강요를 했다고 그래. 이리 방금. 수용 그냥 물어본 거잖아. 불편해 보이니까. 이리 필요 없다고 분명히 말했잖아. 일곱 번째로 말해줄게. 됐어. 필요 없어. 난 이 옷이 좋아. 불편하든 더러워지든 이미 나랑 한몸이라고. 네가 신경 쓸 거 아니란 거지. 알겠어? 수용 그래. 그럼. 이리, 망치질 이리 넌. 매사에 모든 걸 통제해야 속이 시원해? 왜 그래? (쾅) 이리 무지에서 나온 삐뚤어진 믿음? 웃기네. 야, 이름 짓기 좋아하는 건 나보다 네가 더해. 벽을 마구 치며 쏟아낼 대로 쏟아낸 이리, 숨을 고르고 이내 머쓱해진다. 수용 …. 이리 야. 미안하다. 수용 …. 이리 미안하다고. 수용 어. 이리 된 거지? 수용 …. 이리 미안해. 너도 알잖아. 내가 한 번씩 예민해지는 거. 수용 한 번씩이 아니잖아. 항상 예민해. 이리 항상은 아니지. 수용 맞아. 그리고 네가 알아둬야 할 게 있는데, 나도 너 못지않게 예민해. 난 화장실에 앉아서도 생각하는 걸 멈출 수 없어. 잘 때도 먹을 때도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서 미쳐버릴 것 같아. 어쩌면 이미 미쳐버린 걸지도 모르지. 차라리 미쳐버렸으면 좋겠다 싶어. 그게 더 확실하잖아. 어중간하게 미쳐 있는 것보단 명백한 환자가 되는 게 낫지. 이리 무슨 그런 말이 있냐. 수용 나는 그렇다고. 정상도 아니고 비정상도 아닌 경계에 서서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은 기분을 네가 알아? 이리 알지. 내가 여자 좋아하는 걸 알았을 때 그랬지. 수용 … 말이 나와서 말인데. 어머니한테 커밍아웃 언제 할 거야? 이리 갑자기 그 말이 왜 나와? 확실한 건 네 인생만,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수용 말이 나올 만하니까 하는 거야. 성 서방 밥은 잘 먹고 다녀? 불쑥불쑥 연락 올 때마다 무시도 못하고 답장도 못하고 얼마나 난감한 줄 알아? 3년이야. 이사 도와준 대가가 이렇게 부담스럽고 죄책감 드는 건 줄 알았음 도와 달라고도 안 했지. 커밍아웃을 하느냐 마느냐는 네 선택이지만 나까지 죄책감 들게 만들지는 말아 주라. 이리 … 말을 하지 그랬냐. 둘 다 입 꾹 다물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수용 나는 그렇다 쳐도 너희 어머니는 아니었을걸. 네가 보기에 내가 무모하고 강박적으로 보이겠지만 내가 볼 때 넌 무책임하게 도망만 다니는 걸로 보여. 시간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아. 그냥 유예시킬 뿐이지. 편한 선택은 그만할 때도 됐잖아? 이리 내가 편하게 사는 것 같아? 수용 최소한 네 멋대로 사는 걸로는 보여. 이리 진짜 멋대로 사는 게 누군데. 세상이 어떻게 모 아니면 도로 돌아가. 불가능한 걸 바라면서 이게 왜 불가능하지 왜 이렇게 안 되지, 사람들이 왜 서명을 안 해 주지. 하루라도 징징거리는 걸 멈추고 저 사람들이 왜 저러는지 궁금해하긴 해봤어? 아니지. 네가 생각할 때 저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니까. 안 그래? 그렇게 결론지었잖아. 왜? 그게 쉽고 편하니까. 수용 그래! 맞아! 왜냐고? 누구나 배울 권리가 있으니까! 이리 정신적 보상 같은 소리하고 있네! 누가 아니래? 수용 아니라잖아! 그러니까 저러지. 수용과 이리 사이에 침묵이 잠시 흐른다. 이리 내 말 듣긴 했니? 수용 내 귀는 문이 아니니까. 이리 칸트도 너보단 융통성 있을 거야. 알지 칸트? 골방에 틀어박혀서 글만 쓰던 외톨이. 제발 사람 좀 만나. 글로 배우지 말고. 그러다가 너도 청혼 승낙만 7년 고민하는 수가 있어. 결혼해야 하는 이유 354가지,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350가지 쓰면서. 수용 … 내내 날 그렇게 생각했어? 이리 언제부터 내 생각이 중요했냐. 넌 너 이외의 사람들은 다 멍청하고 덜떨어졌다고 생각하잖아. 수용 내가 언제. 이리 자신을 한 번 돌아봐. 수용 … 그만 가주라. 이리 왜 도와 달라며. 아, 그래서 불렀니? 옛말에 무식한 놈이 힘세다고 이런 일엔 내가 나서야지. 수용 됐어, 가. 네 도움 필요 없어. 이리 정말? 수용 그래. 이리 후회 안 하지? 수용 그래! 정말 진짜로 필요 없어. 이리 그래 그럼! 이리, 돌아갈 채비 하는데 초인종 소리. 수용, 현관으로 가(계단의 문이 아닌 객석을 향해) 손님을 확인하는데 이리 간다 수용, 이리를 잡고 숨을 죽인다. 이리 왜? 문 두드리는 소리 이리 놔. 수용 (속삭이듯) 아랫집. 이리 이런 게 자승자박이란 거다. 이리, 문으로 향하고 수용 어디 가. 이리 가라며. 수용 할머니 가면 가. 이리 벽은 허물면서 저깟 문은 하나 못 여냐. 수용 그게 아니라. 손에 뭐가 있어. 이리 뭐? 수용 몰라. 뾰족하고 날카로운 걸 쥐고 있어. 송곳이나 드라이버 같아. 이리, 현관(객석을 향해)으로 가 보면 커다란 스크린에 할머니의 모습이 뜬다. 모니터로 보이는 노파는 인터폰 렌즈에 왜곡된 모습이다. 괴이하고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이리 진짜네…. 수용 잘못하다간 오늘 피 보겠어. 이리 피는 무슨. 수용 말했잖아 전형적인 옛날 사람이라고. 이리 나도 난데 너 너무 고정관념으로 뚤뚤 뭉친 거 아니냐. 그냥 할머니야.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라고. 수용 네가 안 맞아 봐서 그래! 이리 쫄았구만. 수용 … 얼마나 아픈데. 이리, 다시 현관으로 가 동태를 살피곤 이리 안 가시네…. 수용 그냥 없는 척하자. 층간소음에 살인도 난다잖아. 이리 그 난리를 쳤는데 없는 척이 돼? 수용 해보고 말해. 왜 안 해보고 그래? 이리 넌 이상한 데서 긍정적이다? 수용 넌 남 일에만 용기를 내잖아. 이리 그래, 알겠어. 집주인 마음대로 해. 말 그대로 집주인이 주인이니까. 이리, 가방을 대충 던지곤 의자에 털썩 앉는다. 가만 보던 수용은 멀찍이 떨어진 바닥에 앉는다. 이리 왜 바닥에 앉아? 수용 왜. 이리 지금 눈치 주냐. 수용 그건 무슨 피해망상이야. 이리 네가 나중에 또 뭐라고 할까 봐 그러지. 불만 있을 땐 말 안 하고 한참 지나서 말하잖아. 수용 내가 쌓아 두는 게 아니라 네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거지. 이리 실수가 실순지 어떻게 알아, 말을 안 하는데. 수용 어떻게 몰라? 이리 넌 아니? 수용 당연하지. 내가 네 입장이었으면. 이리 그런 가정은 하지 말자. 넌 내가 아니잖아. 나도 네가 아니고. 수용 상식에 대한 얘기야. 이리 이젠 내가 상식도 없다? 수용 (난감하지만 거짓말을 할 순 없지) 가끔. 이리 너한테 난 대체 뭐냐? 수용 친구. 이리 원래 친구한테 이래? 아님 나한테만 이래? 수용 내가 뭘…. 이리 방금! 수용 조용히 해. 이리 내가 상식이 없다며 아까는 정상 아니라고 하더니 넌 상식도 없고 정상도 아닌 애랑 왜 친구 하냐. 노파 (문 쿵쿵) 안에 없어? 있지? 수용 가끔 그렇다고. 왜 이렇게 발끈해? 나도 가끔은 상식 없이 굴어. 이리 정말 박수를 보낸다. 노파 있네. 문 좀 열어봐, 총각! 이리 저 할머니 말귀 어두운 거 맞아? 별로 크게 말 안 하는데 다 들어. 수용 그래 내가 미안하다. 미안해. 이리 아이고, 엎드려 절 받기다. 수용 그래, 그것도 내가 미안해. 이리 할머니 아니었음 절대 안 했을 말이지. 노파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수용, 무릎을 꿇는다. 이리 뭐하냐? 수용 미안. 이리 일어나…! 수용이 일어나지 않자 이리도 같이 무릎 꿇고 이리 뭐 하자는 거야. 수용 네 방식대로 사과하잖아. 이리 이게 무슨 내 방식이야. 수용 날 감정적으로 굴복시키고 싶어 하잖아. 이리 날 그런 쓰레기로 봤어? 수용 내 사과를 사과로 인정하질 않잖아. 이리 그건 맞는데. 수용 그것 봐. 이리, 노파가 만들어 내는 소음과 수용의 행동에 머리가 터질 듯하다. 이리 나중에 하자. 제자리걸음이야. 차라리 저쪽을 선택할래. 수용, 이리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이리 뭐해…! 수용 가지 마. 이리 왜 이래, 얘가…! 수용 이대로 나갔다가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이리 하지 마. 기분 되게 이상해. 두 사람 잠시 실랑이를 벌인다. 그 순간 노파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멈춘다. 두 사람 문을 가만 바라보고 노파, 집 안 소리를 듣기 위해 문에 귀를 대 본다. 이리 봐, 조용해졌어. 수용 안 갈 거지? 이리 어! 수용, 이리를 놓아 준다. 이리, 문으로 향하니 수용은 움찔거리고 이리 안 가! 이리, 문에 귀를 대 본다. 수용 (조심스레) 갔어? 이리 (속삭이며) 몰라. 노파 이봐! 이리, 화들짝 놀라 되돌아온다. 수용 거 봐. 이리 오늘 무슨 날이냐. 미치겠네. 벽하고 말하는 것 같아. 수용 나 말하는 거야? 이리 총체적으로 다. 노파, 문틈에 종이 한 장을 끼워 놓고 돌아간다. 수용 내가 벽이면, 나도 이렇게 부숴버릴 거야? 이리 부수는 건 네 아이디어잖아. 귀찮게 뭐 하러 그래. 나였음 그냥 이사 갔어. 수용 … 지금 절교 선언한 거야? 이리 아니. 뭐래 정말. 지금 벽 얘기하던 거 아니었어? 수용 그래, 벽 얘기하고 있었지. 네가 벽이랑 얘기하는 것 같다며. 이리 아니, 내가 말한 벽은 이 벽이고, 나라면 그냥 이사를 갔을 거라고! 네가 말한 벽은 그러니까 너고 네가 벽이라면 나는 이사를 가는 게 아니라, 그냥 문을 하나 내든가 창문을 하나 뚫든가 어? 뭐가 이렇게 어렵지. 울어? 이리, 적잖이 당황스럽다. (이쯤 노파는 자리를 뜨고) 수용 …. 이리 미안해. 수용 네가 왜 사과하는데? 이리 내가 남자 눈물에 약하잖아. 몰라, 그냥 튀어나왔어. 넌 왜 우는데. 무슨 일 있어? 오늘이 그날은 아니지? 아까 분명히 아니라고 했다? 수용 무슨 날. 이리 데드타임. 수용 아니야. 그냥…. 조기 갱년기 같아. 이리 이제 스물아홉이 웃기네. 수용 아예 가능성 없는 얘기는 아니지. 요즘 애들 사춘기 일찍 온다며. 아니면 비타민D 부족 우울증이든가. 모르겠어. 세상에 거대한 벽이 느껴져. 이리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고? 수용 너도 그래? 이리 생리 전 증후군이 딱 그래. 너도 정신적 생리하니? 수용 장난치지 마. (사이) 나는 그냥 햇빛을 보며 살고 싶어.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가. 이리 내가 아까 했던 말은…. 수용 동구에 특수학교 설립이 2012년에 결정됐어. 근데 어떻게 된 줄 알아? 예정대로라면 올해 3월에 개교를 해야 했거든? 근데 아직 벽돌 한 장 못 얹었어. 여기는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희망이 안 보여…. 이리 희용소는 눈에 보이는 게 아니지. 수용 희용소? 이리 희망, 용기, 소망. 희용소. 수용 (한숨) 오늘은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 이리 장난치는 거 아냐. (잠시 생각을 고른다) 사랑이 눈에 보이니? 느끼는 거지. 사람을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사소해. 아주 작은 떨림이면 충분하거든? 나는 내가 처음 좋아했던 애를 떠올리면 지금도 손끝이 떨려. 심장은 말할 것도 없지. 여기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파동이니까. 내가 그 애랑 잘되지 않았다고 해서 걜 사랑하지 않게 되는 걸까? 내 첫사랑은 지독한 이성애자고 나는 더 지독한 레즈비언이라서 영원히 평행선에 설 수밖에 없지만, 걘 여전히 내 첫사랑이야. 결과가 본질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희망도 똑같아. 느끼는 거지. 수용 그러면 더 확실하네. 왜냐면 내가 요 근래 느끼고 있는 건 절망과 인류에 대한 혐오뿐이거든. 이리 진동을 만들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네가 심장인가 보지, 네가 망치인 거야. 아까 망치질해 봐서 알잖아. 망치질하는 놈 손목은 아 나는 거라고. 그래서 네가 지금 힘들고 또 뭐냐, 절망과 인류에 대한 혐오를 느끼는 거야. 누군가는 네가 만든 진동을 느끼고 있어. 수용 … 희망사항이다. 이리 최소한 나는 느껴.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마. 이리, 수용의 곁으로 가 가만 안아 준다. 수용, 이리의 어깨에 머리를 가만 기댄다. 이리의 서툰 위로가 마음에 닿는다. 수용 내가 여자가 되면 날 사랑해 줄래? 이리 무슨 소리야. 수용 몰라, 그냥 튀어나왔어. 이리 난 널 사랑해. 네가 나에게 주는 스트레스와 삶의 충만함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어. 수용 스트레스는 알겠는데 삶의 충만함은 뭐야? 내가 너한테 그런 걸 줘? 이리 응. 수용 …. 수용,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느끼며 일어서 문으로 향한다. 이리 왜? 수용 좀 덥지 않아? 난 좀 덥네. 이리 열게? 수용 어. 열어드리게. 이리 이제 안 무서워? 수용 아니. 어. 아니. 내가 언제 무서워했다고 그러냐. 그냥, 혼란스러웠던 거지…. 가신 것 같기도 하고. 아직 계시면 나한테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걸 테니까…. 이리 갑자기 용감해졌네. 수용 도와주겠지 뭐…. 이리, 그런 수용을 보며 미소 짓고 수용, 머쓱하게 돌아서며 현관문(계단에 있는 문)을 연다. 무대 위 작은 무대, 노파는 종이 한 장을 날려 보낸다. 종이는 수용 앞으로 떨어진다. 특수학교 설립 찬성 서명서다. 이리 뭐가 적혀 있는데? 수용과 이리, 적힌 글을 보고 내가 배움이 짧아 글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게 되어 늦게나마 표를 줍니다. 내 이름 석 자가 좋은 일에 쓰여 참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프게 해서 미안합니다. 이웃사촌 김옥형. 옥형이 있는 아래를 본다. 글쓰기 연습을 하는 옥형의 모습에서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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