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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미애 “윤석열 사단, 하나회 연상…언론이 신비주의로 키웠다”

    추미애 “윤석열 사단, 하나회 연상…언론이 신비주의로 키웠다”

    “윤석열, 美뉴욕 검사장 전기 배포?‘정치 검사’가 그렇게 멋 부릴 것 아냐”“박근혜·최순실 언론 검증 실패인데 또 재연”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23일 유력한 차기 야권 대권주자로 급부상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겨냥해 “(검찰 내 인맥이) 과거 군대의 하나회를 연상시킨다”면서 “언론이 윤 전 총장의 행태에 비판적 시각은 배제하고 신비주의에 가깝게 키워준 면이 크다”고 비판했다. “검찰당이란 지적 결과 과장 아냐” 추 전 장관은 이날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에서 “장관으로 지명 받아 들어보니 검찰 내 특수수사 인맥이 윤 전 총장 중심으로 ‘윤 사단’을 구축했다고 하던데, 그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추 전 장관은 “검찰당이라는 지적도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고도 주장했다. 추 전 장관이 언급한 하나회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포함된 일부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주도로 비밀리에 만든 군사조직으로 12·12 군사반란, 5·17 쿠데타를 주도하고 광주항쟁 탄압 과정에 참여해 핵심 인사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윤 전 총장이 마치 검찰 조직을 비밀리에 불법적으로 이끌면서 군사 쿠데타 등 국가에 반란을 꾀해 집권한 정치 세력처럼 부당하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윤 전 총장이 미국 뉴욕 검사장의 전기를 배포했다는 이야기에는 “촛불로 민주주의를 회복한 나라에서 ‘정치 검사’로 등장하는 아이러니를 스스로 저질렀으면서 그렇게 멋 부릴 것은 아니다”라면서 “선출로 뽑힌 검사장은 조직에 충성한다는 망언을 할 수가 없다”고 깎아내렸다. 이어 “박근혜·최순실 사태에 대해 언론의 검증 실패라고 하지 않느냐”라면서 “그런 일이 또 일어나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라고 주장했다.윤석열 “‘거악에 침묵하는 검사는동네 소매치기도 못 막는다’ 말 명심” 尹, ‘전설의 美검찰’ 모겐소 검사장 전기 배포“법 집행 의지로 美 법치주의 온전히 작동” 앞서 윤 전 총장은 사퇴 전 일선 검사들에게 미국 뉴욕 맨해튼 검찰의 전설인 고(故) 로버트 모겐소 검사장의 전기를 배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이 대검찰청에 배포를 지시한 책은 모겐소 전 뉴욕 맨해튼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일대기를 다룬 ‘미국의 영원한 검사 로버트 모겐소’로, 대검 국제협력담당관실이 제작을 맡고 윤 전 총장이 직접 발간사를 썼다. 1960년대 케네디 행정부 시절 맨해튼 연방검사로 임명된 모겐소는 1974년 지역 시민들의 투표로 맨해튼 지방검사장이 된 후 아홉 차례 연임에 성공해 35년간 검사장 자리를 지켰으며, 화이트칼라 범죄 수사의 아버지로 불린다. 지병을 앓던 그는 2019년 7월 향년 99세로 사망했다. 윤 전 총장은 책 발간사에 “모겐소는 ‘거악에 침묵하는 검사는 동네 소매치기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외치면서 거악 척결을 강조했다”면서 “무모하다고 비춰질 수 있는 그의 법 집행 의지가 결과적으로 미국의 지역사회와 시장경제에서 법치주의가 온전히 작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모겐소가 일평생 추구한 검사의 길이 우리나라 검사들에게도 용기와 비전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윤석열, 대권 지지율 39.1% 최고치이재명 21.7%, 이낙연 11.9% 전날 여론조사에서는 윤 전 총장이 차기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40%에 육박하는 지지를 받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 19∼20일 전국 18세 이상 1007명에게 대선 후보 적합도를 물어본 결과, 윤 전 총장이 39.1%로 1위를 차지했다. KSOI의 지난 15일자 조사(37.2%)보다 1.9%포인트 상승한 지지율이다. 지금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집계된 윤 전 총장의 지지율 중 가장 높은 수치이기도 하다. 10% 중반에 머물던 윤 전 총장 지지율은 총장직 사퇴 이후 30%대로 수직상승한 바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1.7%,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11.9%로 뒤를 이었다. 이번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KSOI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야만적이고 위험한 이집트 페미니스트 엘사다위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야만적이고 위험한 이집트 페미니스트 엘사다위

    “사람들이 날 보고 야만적이고 위험한 여자라고 말해요. 난 진실을 말하거든. 그리고 진실이란 야만적이고 위험하거든.” 이집트의 페미니스트 나왈 엘사다위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는데 21일(현지시간) 노환 때문에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가 이집트 언론을 인용해 전했다. 고인의 페이스북은 “나왈 엘사디위, 안녕”이라고만 밝혔다. 의사이며 페미니스트이며 작가였다. 소설, 에세이, 자서전에 자신의 주장을 담았고 수다에 열정적으로 끼어들었다. 무서울 정도로 솔직했고 여성의 정치적, 성적 권리를 신장시키는 데 지칠 줄 모르고 헌신했다. 위험 수위를 넘나든 발언 때문에 논란도 일으켰고 살해 위협에다 수감된 일도 적지 않았다. 친구이며 통역이던 옴니아 아민은 지난해 BBC 인터뷰를 통해 “타고난 싸움꾼”이라면서 “그녀와 같은 사람은 보기 드물다”고 했다. 1931년 카이로 외곽 마을에서 아홉 자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난 그는 13세에 첫 소설을 낼 정도로 조숙했다. 아버지는 여유롭지 않은 정부 관리였고, 어머니는 부자 집안 출신이었다. 가족은 10세의 그를 시집 보내려 했는데 어머니에게 대들어 단념시켰다. 아버지는 그에게 교육받아야 한다고 했다. 어느날 할머니가 “사내 하나는 적어도 딸아이 열다섯 만큼의 가치가 있어. 딸들은 쓸모없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피가 거꾸로 솟았다고 돌아봤다. 아민 박사는 “그는 잘못된 것이 있으면 입밖에 냈다. 뒤를 돌아보는 일이 없었다”고 했다. 6세 때 여성 할례하는 곳의 비위생적인 환경을 세세하게 적어 고발했다. 그의 책 ‘이브의 숨겨진 얼굴’을 보면 할례를 받으며 욕실 바닥에 딩굴며 괴로워하는데 옆에서 어머니가 지켜보는 장면이 나온다. 해서 그는 평생에 걸쳐 할례를 없애자고 주장했다. 이집트에서 할례가 금지된 것은 2008년이었는데 그는 끔찍한 일이 그렇게 오래 지속된 점을 개탄했다. 1955년 카이로대학 의대를 졸업한 뒤 정신과 전문의가 됐다. 이집트 정부 공중보건 책임자에 임명됐지만 1972년 넌픽션 ‘여인들과 성’을 출간하자 경질됐다. 몇년 전에 창간했던 잡지 ‘헬스’도 1973년 문을 닫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 목소리를 높였고 집필을 이어갔다. 1975년 감옥에서 만난 여자 사형수들을 소재로 한 소설 ‘우먼 앳 포인트 제로’를 발간했다. 2년 뒤 내놓은 ‘이브의 숨겨진 얼굴’은 마을 의사로 일하며 목격한 성 유린이나 명예살인, 성매매 실태를 고발했다. 남자들은 광분했는데 비평가들은 아랍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킨다는, 어처구니없는 비평을 해댔다. 1981년 9월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에 반대하는 인사 명단에 포함돼 3개월 옥살이를 했다. 감옥에서 화장실 휴지에 눈썹펜으로 적어 회고록 원고를 만들었다. 눈썹펜은 성매매를 하다 수감된 이들이 밀반입한 것들이었다. 아민은 “그는 진실을 말한다면 규칙이나 규제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다트가 암살되자 풀려났는데 검열과 출판 금지는 풀리지 않았다. 근본주의자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거나 법정에 불려가는 일이 몇년 이어지자 결국 미국으로 망명했다. 물론 그곳에서도 종교, 식민주의, 서구의 위선을 까발리고 무슬림 베일(가리개)을 반대하고 화장과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입자고 해 동료 페미니스트들과도 불화를 겪었다. 제이납 바다위 BBC 앵커가 2018년 만나 세상을 보는 눈이 너그러워진 것 같다고 떠보자 엘사다위는 “아니, 난 더 직설적이어야 해. 더 공격적이어야 해. 왜냐하면 세상이 더 공격적이게 되거든. 해서 사람들은 정의롭지 못한 일에 대해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해. 난 화가 났기 때문에 더 크게 얘기해야 해”라고 말했다.그의 책은 4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돼 국제적인 명성도 누렸다. 런던에서 출판 에이전시로 일한 카디자 세사이는 “사람들이 모두 그의 정치관에 동조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알지요. 하지만 날 가장 고무시키는 것은 그녀의 저작, 그녀가 이룬 것들과 여성을 위해 할 수 있었던 일들”이라면서 “특히나 아프리카 여성이나 유색인종이라면 그의 활동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여러 대학의 명예 학위를 받았다. 지난해 타임이 선정한 ‘올해 100명의 여성’에 들었고 커버 스토리로 다뤄졌다. 하지만 고인은 한 가지 이루지 못한 일이 있다고 했다. 아민 박사는 “정작 조국에서 제대로 된 인정을 못 받아 그것이 유일한 꿈이자 희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1996년 일시 귀국했으나 논란이 뜨거웠다. 2004년 대선에 출마했고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에 저항한 ‘아랍의 봄’ 봉기 때 카이로 타히르 광장에 서기도 했다. 세사이는 세대를 넘어 젊은이들이 고인을 롤모델로 삼는 이들이 적지 않다면서도 “엘사다위는 누군가의 영웅이 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녀라면 ‘스스로의 영웅이 되라’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DNA 일치에도 “인정하지 않는다”…임신거부증 가능성 [이슈픽]

    DNA 일치에도 “인정하지 않는다”…임신거부증 가능성 [이슈픽]

    지난달 10일 경북 구미 한 빌라에서 3세 여아 시신이 미라 상태로 발견됐다. 최초 신고자 석모(48)씨는 당시만 해도 사망한 아이의 외할머니로 알려졌지만, DNA 검사 결과 아이의 친모였다. 경찰은 석씨가 신고하기 전날 숨진 아이를 발견하고 유기를 시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석씨와 그의 남편 김씨는 여전히 “임신과 출산은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편 김씨는 이번 주말 MBC와 SBS의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내가 3년 전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3년 전 아내 석씨의 사진을 보여주며 “출산했다는 시점의 한 달 반 전 모습인데 만삭이 아니다. 집사람은 절대로 출산하지 않았다. 몸에 열이 많아 집에서 민소매를 입고 있는데, 내가 임신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다. 구속 수감된 석씨 역시 편지를 보내 ‘있지도 않은 일을 말하라고 하니 미칠 노릇이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아. 진짜로 결백해. 결단코 나는 아이를 낳은 적이 없어’라고 적었다. 그러나 유전자는 속일 수 없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4차례 유전자 검사를 했고 정확도가 99.9999% 이상이라고 밝혔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틀렸을 경우는 사실상 ‘0’이라는 것이다.만삭 모습도, 진찰 기록도 없다는데… 경찰 관계자는 “석씨가 산부인과 등 의료기관에서 임신 관련 진찰을 받은 기록이 없다”고 말했다. 석씨 남편 주장대로 만삭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면 산모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임신거부증’ 가능성도 제기된다. 임신거부증은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을 느끼는 여성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임신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임신하지 않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상상임신의 반대 개념인데, 충격적인 것은 몸의 변화다. 임신부가 자신의 임신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고 임신을 하지 않았다고 믿으면 태아도 알아서 조용히 숨어서 큰다. 자궁도 둥글게 커지는 것이 아니라 길게 커지고, 태아는 태동도 없이 아홉 달 동안을 최대한 엄마에게 방해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크기 때문에 남편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막달까지 월경이 지속되는 경우도 일부 있고, 배가 별로 나오지 않고, 입덧이나 태아의 움직임도 없어 임신을 자각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임신거부증을 가진 산모의 경우 출산을 하더라도 아기에 대한 모성애를 전혀 갖지 못한다고 말한다. 낳기 직전까지 임신 모르는 경우도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인 가엘 게르날레크 레비는 ‘나는 임신하지 않았다’라는 책을 통해 임신거부증에 대해 조명했다. 여성이 자신의 임신 사실을 출산 직전까지 거부하거나 억누르거나 전혀 모를 때 대개 임신 상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기를 낳기 3일 전까지 농구 선수로 출전을 한 브라질 여성의 사례도 있었다. 의사들은 이러한 경우 태아가 엄마의 신체 기관들 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세로로 자라거나 복강의 맨 위쪽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자란다고 말한다. 태아는 모성을 느낄 사이도 없는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세계에서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장명(배에서 나는 꾸르륵 소리)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프랑스의 경우 연간 800~2400 건의 임신거부증이 보고된다. 임신거부증은 일종의 정신적 증상으로 분류된다. 임신거부증은 크게 1) 임신과 출산의 공포로 인한 무의식적 거부(예를 들어 아기가 혼외정사 혹은 성범죄 피해로 인한 결과일 때) 2) 가족에 대한 부담(정신과의사들은 임신 징후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무의식 속에서 상징적으로 아기를 없애는 것과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3) 아이를 더 낳을 수 없다는 생각(출산시 힘들었던 일을 겪은 경우)으로 나타날 수 있다.서래마을 영아 살인사건 속 여성 우리나라에서 임신거부증이란 개념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사건은 2006년 한국에 거주 중인 프랑스 여성 베로니크 쿠르조가 일으킨 ‘서래마을 영아 살인사건’이다. 이 여성은 “내가 낳은 것은 아이가 아니었다. 내 뱃속에서 나온 내 신체의 일부이던 무언가를 내가 죽였다”고 말했다. 아이의 아빠는 미국 자동차 부품 회사의 임원으로 서울에 파견된 프랑스인 엔지니어 장 루이 쿠르조였다. 당시 임신 사실을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고, 쿠르조는 3년 전 자궁절제술을 받아 더 이상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쿠르조는 세 차례의 영아 살해를 자백했다. 쿠르조는 한국에서 영아 두 명을 살해한 뒤 냉동실에 넣어 보관했는데, 당시 그는 임신거부증을 앓고 있었고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도 자신이 임신 중이었던 사실을 몰랐다. 지난해 6월 영국 데일리메일은 출산 직전까지 임신 사실을 알지 못한 32세 여성의 이야기를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미 세 명의 아이를 낳은 이 여성은 변기에 앉은 후 양수가 터지면서 압력이 느껴지자 자신이 출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더 이상의 아이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의 정관수술 예약일까지 피임약을 복용했고, 실제 월경이 있었으며 그 외 임신과 관련한 증상들도 없어서 임신 사실을 알 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10월 20대 여성 A씨가 중고물품 거래 애플리케이션 ‘당근마켓’에 자신이 낳은 신생아를 20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됐고, 당시 A씨는 출산 당일에야 임신 사실을 인지했다고 주장하는 일이 있었다.거부된 임신에 대한 예방·대책 마련 신생아 학대와 살인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임신거부증의 예방에 대해서도 논해야 한다고 저자(‘나는 임신하지 않았다’)는 말한다. 저자는 은밀한 출산, 고통, 두려움, 그리고 어머니 자신의 생명의 위협이 이루어지는 여건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채 신생아 살해사건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법조인들을 비판한다며 모성학 전문의인 베르트랑 슈나이더의 말을 옮겼다.영아살해 여성들을 벌해서 우리가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 여성들을 감옥에 가두는 까닭은 여론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의학적인 측면에서나 사회적인 측면에서나 그렇게 해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죽은 아이를 대신해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그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에게 어떤 빚이 있는지 그리고 그 빚을 해결하는 일이 정의와 관계가 있는지 알아 볼 일이다. 그 어머니들이 치르는 대가는 어떤 형벌보다 훨씬 더 무거울 것이다. - ‘나는 임신하지 않았다’ 본문 中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윤석열, 사퇴 전 ‘美 모겐소 검사장’ 전기 배포... “거악 척결 강조”

    윤석열, 사퇴 전 ‘美 모겐소 검사장’ 전기 배포... “거악 척결 강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퇴 전 일선 검사들에게 미국 뉴욕 맨해튼 검찰의 전설인 고(故) 로버트 모겐소 전기를 배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사퇴 전 대검찰청을 통해 전국 검사들에게 ‘미국의 영원한 검사 로버트 모겐소’라는 제목의 책을 배포하라 지시했다. 지난 12일부터 총 2300부가 전국 검찰청에 배포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해 채널A 사건 관련 윤 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한 지난해 7월, 윤 전 총장의 지시로 대검 국제협력담당관실이 전국 검찰청 배포용으로 제작했다. 이후 윤 총장 징계 국면과 법-검 갈등 악화 등으로 출간이 미뤄졌지만, 윤 총장은 사퇴 약 일주일 전 참모들에게 책을 계획대로 배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총장은 직접 쓴 발간사에 “모겐소는 ‘거악에 침묵하는 검사는 동네 소매치기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외치면서 거악 척결을 강조했다”며 “무모하다고 비춰질 수 있는 그의 법 집행 의지가 결과적으로 미국의 지역사회와 시장경제에서 법치주의가 온전히 작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고 적었다. 뉴욕 맨해튼 검찰의 전설로 유명한 모겐소는 1960년대 케네디 행정부 시절 맨해튼 연방검사로 임명됐다. 이후 1974년 지역 시민들의 투표로 맨해튼 지방검사장이 된 후 아홉 차례 연임에 성공해 35년간 검사장을 역임했다. 윤 전 총장은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와 관련해 강한 반대의견을 피력한 언론 인터뷰에서도 모겐소 검사장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모겐소 검사장이 미국 갑부들의 탈세와 내부거래 등을 엄단하며 미국 자본주의 시장의 투명화에 기여했다고 짚으며 검찰의 중대범죄 수사 역량을 강조했다. 또한 대검이 지난달 낸 ‘주요 각국 검찰의 중대범죄 수사수사-기소 분리가 글로벌 스탠더드’ 자료에서도 모겐소 검사장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해당 자료에는 모겐소 검사장이 재임 기간 공직부패범죄, 중대경제범죄, 조직범죄 등에 대한 적극적인 검찰 직접수사를 촉구했으며, 특히 중대범죄에는 검사들이 수사의 처음부터 재판까지 담당하도록 하는 수직적 기소를 도입, 범죄율을 획기적으로 낮췄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강남 은퇴자 종부세 폭탄?… 1주택 고령·장기보유 최대 80% 감면

    강남 은퇴자 종부세 폭탄?… 1주택 고령·장기보유 최대 80% 감면

    재산세 전국 아파트 92% 작년보다 감소공시가격 6억 넘어도 증세액은 30% 이하집값 올랐어도 차익 안 남겨 부담 될 수도 부동산원 집계 아파트값 상승률은 7.57%공동주택 공시가격 19.08%와 2.5배 괴리올해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19.08%나 급등하면서 이에 따른 세금 부담과 산정 방식 등에 대해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 일선 세무사 등의 설명을 참조해 주요 쟁점을 18일 팩트체크로 정리했다. ①공시가격 상승 탓 재산세 부담 크게 는다(△) 전국 아파트 열에 아홉은 해당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개정된 지방세법에 따라 공시가격 6억원 이하 아파트는 재산세율이 구간별로 0.5% 포인트씩 인하됐는데, 이를 비율로 따지면 22.2~50%가 감면된 것이다. 또 세 부담 상한 조치를 통해 전년도 대비 5~10% 이상 늘어날 수 없도록 했다. 인하된 비율(22.2~50%)이 세 부담 상한비율(5~10%)보다 높기 때문에 올해는 공시가격이 얼마든 간에 지난해보다 재산세가 적게 나온다. 이처럼 재산세 인하 대상인 6억원 이하 공동주택은 전국적으로 92.1%(서울 70.6%)에 달한다. 공시가격 6억원을 초과한 경우도 세 부담 상한이 30%로 설정돼 있어 그 이상은 부과되지 않는다. 다만 개인별로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집주인이 있을 수 있다. 집값이 올랐으니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아니냐는 시각이 있으나 실제로 시세차익을 남긴 것은 아니다. ②‘강남 은퇴자’는 종부세 ‘폭탄’을 맞는다(X) 오랫동안 집 한 채를 소유한 나이 지긋한 사람이라면 종부세가 ‘폭탄’ 수준으로 부과될 수는 없다. 종부세는 고령자 공제가 있어 ▲60~65세 20% ▲65~70세 30% ▲70세 이상 40%를 각각 감면해 준다. 이와 별도로 장기보유 공제도 있는데 ▲5년 이상 20% ▲10년 이상 40% ▲15년 이상 50%를 깎아 준다. 고령자와 장기보유 공제 혜택을 둘 다 누릴 수 있으며 이 경우 최대 80%까지 감면된다. 다만 종부세 부과 대상이 이번에 크게 늘어난 건 사실이다. 올해 1가구 1주택 기준 종부세 부과 공동주택은 52만 4620채로 지난해보다 21만채 이상 증가했다. 서울만 놓고 보면 전체 공동주택 258만 3392채 중 16.0%(41만 2950채)가 종부세 대상이다. ③공시가격·정부 발표 집값 상승률 큰 괴리(○) 실제로 그런 면이 있다. 정부가 공식 통계로 삼는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의 집계를 보면 지난해 전국 아파트값 평균 상승률은 7.57%다. 하지만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19.08%나 뛰어 2.5배에 달한다. 특히 서울 아파트값은 3.01% 오른 게 부동산원의 통계인데, 공시가격 상승률은 19.91%다. 국토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공시가격은 지난해 말 시세에 구간별로 ‘현실화율(시세반영률)+α(현실화제고분)’를 곱해 결정된다. 올해 현실화율은 지난해에 비해 1.2% 포인트(69.0%→71.2%), ‘+α’는 최대 6% 포인트 상승했다. 이를 감안해도 부동산원 통계보다 공시가격 상승률이 가파르다. 부동산원 통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간 정부는 야당이 KB국민은행 등의 민간자료를 인용해 집값 상승 책임을 물었을 때 부동산원 통계를 들이대며 “그렇게 크게 오르지 않았다”며 반박했다. 이번 공시가격 산정을 보면 정부도 부동산원 통계가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인정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부동산원은 올해부터 아파트 시세조사(월간) 표본 수를 1만 7190가구에서 3만 5000가구로 2배 확대한다. 세종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그’가 된 인셉션의 그녀 “이제 온전한 내가 됐다”

    ‘그’가 된 인셉션의 그녀 “이제 온전한 내가 됐다”

    아역부터 여성스러운 모습 강요당해인셉션·엑스맨 촬영 땐 공황장애까지사진·영화 속 내 모습도 보기 힘들었다 영향력 큰 인사들, 잘못된 인식 퍼뜨려차별받는 성소수자들에게 도움 줄 것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최신호 표지를 트랜스젠더 배우 엘리엇 페이지(34)로 장식했다. 타임 표지에 커밍아웃한 트랜스 남성이 실린 것은 처음인데 미국, 영국 등 서구 사회는 물론 한국과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트랜스젠더 차별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6일(현지시간) 타임에 실린 인터뷰에서 페이지는 어릴 때부터 느낀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배우 생활을 하며 겪은 어려움, 트랜스젠더 인권을 위한 투쟁에 대해 얘기하며 “이제 나는 온전한 내 자신”이라고 했다. 지난해 12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트랜스젠더라고 밝힌 이후 처음 이뤄진 인터뷰다. 페이지는 커밍아웃 당일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40만명 늘어나는 ‘파장’을 경험했고, 또한 최근작인 넷플릭스의 ‘엄브렐러 아카데미’에서 맡았던 배역을 올해 촬영되는 시즌3에서도 계속 연기하도록 ‘지지’를 받았다. 인터뷰에서 ‘그’(He·him)로 지칭되는 페이지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받아들이는 것과 남들이 인식하는 모습 사이 괴리가 컸다고 돌아봤다. 그는 “아홉 살 무렵 머리를 짧게 자른 뒤 처음 느낀 성취감을 기억한다”며 “다른 사람이 보는 소녀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역 배우로 데뷔하며 자주 ‘여성스러운’ 모습을 강요당했고 그때마다 불편함을 느꼈다. ‘엑스맨’ 시리즈와 ‘인셉션’ 등 블록버스터 영화를 촬영할 때는 스트레스가 너무 커 우울증, 공황장애까지 앓을 정도였다. 그는 “오랜 시간 사진 속 내 모습을 제대로 못 봤다. 내가 출연한 영화도 보기 힘들었다”며 “그저 존재하는 것에 지쳐 연기를 그만둘까도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에 트랜스 남성임을 공언하며 도덕적인 책임감도 일부 느꼈다고 털어놨다. 자신이 성소수자로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과 함께 만연한 트랜스젠더 차별을 없애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는 등 정책 변화를 이끌었지만, 한편에선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영국 작가 조앤 롤링 등의 과격한 비난이나 조롱도 계속되고 있다. 사회 구성원으로 환영받지 못하고 실업과 빈곤을 겪으며 의료 서비스를 거부당하는 일도 많다. 이에 대해 페이지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트랜스젠더에 대해 잘못된 신화를 퍼뜨린다. 우리는 매일 우리 존재에 대한 논쟁을 보고 있다”며 “트랜스젠더는 실재하는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이어 “나는 (백인이며 경제적으로 부유한) 특권을 누리며 현재의 위치에 있게 됐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른 성소수자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다”며 “인간의 정체성은 복잡하고 불가사의하다. 사람들의 다양성을 축하할 수 있다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따뜻하게 냉철하게… 40년 詩인생

    따뜻하게 냉철하게… 40년 詩인생

    연륜이 빚어낸 온기가 깃든 시는 가슴을 따스하게 적셔 준다. 분단과 군사독재로 점철된 현대사를 마주하며 혼을 다해 쓴 시는 억압에 시달려 온 민중의 아픔을 함께 나눈다. 전통적 서정을 바탕으로 인간 본래의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해 온 곽재구 시인이 등단 40년을 맞아 아홉 번째 시집 ‘꽃으로 엮은 방패’를 펴냈다. 곽 시인은 이 시집에 대해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많은 모순이 존재해 고통과 모순의 창칼을 막아 내는 아름다운 ‘방패’를 생각했다”고 밝혔다. 오롯이 시의 길을 걸어온 곽 시인의 눈길은 따뜻하다. “천지사방 꽃향기 가득해라/ 걷다가 시 쓰고/ 걷다가 밤이 오고”(‘세월’)에선 어느덧 노년에 이른 시인이 순박하고 무구한 시심을 가다듬는다. “저녁의 항구에서 모여드는 세상의 모든 시를 읽을 것이다”(‘세상의 모든 시’)라고 다짐하며 “사람은 좀 느리게 살아야 해”(‘기차는 좀 더 느리게 달려야 한다’)라고 삶의 여유를 찾을 것을 권한다. 그러나 시인은 냉철한 역사의식도 함께 보여 준다. “돌아오는 저물녘/ 우리는 언제부터 형제가 아니었던가/ 생각하고 생각하였다”(‘형제’)에선 분단 현실로 고통을 겪는 한민족의 동포애를 체감한다. 특히 여행길에서 만난 고려인들의 한 맺힌 삶 앞에서는 왜 그들이 중앙아시아에 버려졌는지 한 번도 묻지 않은 조국의 무정함을 부끄러워한다. ‘저녁의 꽃 냄새’에선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먹잇감이 되지 말자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 준다. 이번 시집에는 용오름마을, 소뎅이마을, 파람바구마을, 선학, 초적, 쇠리 등 정겨운 지명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삶의 안식처이자 마음의 고향인 이곳에서 시인은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외로움을 달래는 손편지를 띄운다. 시 71편 이외에 시인이 해설 대신 곁들인 산문도 새겨 읽을 만하다. 1980년 5월 광주를 겪은 일은 뭉클하고, 한국 시문학사에 길이 남을 ‘사평역에서’가 세상에 나오게 된 이야기는 흥미롭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KCC, 아홉수에 걸렸나… 남자농구 1위 자리도 위태위태

    KCC, 아홉수에 걸렸나… 남자농구 1위 자리도 위태위태

    프로농구 전주 KCC가 30승 고지를 앞두고 아홉수에 걸렸다. 리그 정상권 수비력을 뽐내는 팀인데 2경기 연속 100점 안팎의 점수를 내주며 무너졌다. 선두 자리도 위태한 모양새다. 9일까지 29승15패를 기록하며 1위에 올라 있는 KCC는 전날 올 시즌 네 번 만나 모두 이겼던 부산 kt에 95-104로 패하며 30승 달성에 또 실패했다. 지난 6일에도 꼴찌팀 창원 LG에 3점슛 21방을 얻어맞으며 75-97로 무릎 꿇기도 했다. KCC는 팀 창단 최다 13연승 도전에 실패한 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이후 13경기에서 2연패와 2연승을 오가며 6승7패를 거두며 보통 팀이 됐다. 여전히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2위와의 차이가 4.5경기에서 1경기로 좁혀졌다. 아시아컵 예선 휴식기를 거쳤는데도 2승3패로 폼은 여전히 올라오지 않고 있다. 지난 1일 원주 DB를 상대로 시즌 첫 100득점 이상 경기를 펼치기도 했지만 1월 중순까지 12연승 할 때의 모습은 분명히 아니다. KCC가 흔들리는 것은 공수 밸런스가 깨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치른 44경기를 보면 KCC는 경기당 평균 82득점에 76.9실점으로 10개 팀 중 팀 득점 3위에 최소 실점 2위다. 그런데 12연승 시점까지 31경기에서는 81.4득점(3위) 73.8실점(1위)이었으나 이후 13경기에선 83.5득점(4위)에 84.2실점(8위)으로 다른 팀이 됐다. KCC의 수비력은 타일러 데이비스와 라건아를 중심으로 한 제공권 장악이 바탕이었는데 리바운드가 뚝 떨어졌다. KCC는 앞서 31경기에서 경기당 39.1리바운드를 따내며 전체 1위였으나 최근 13경기에서는 32.8리바운드로 공동 7위다. 8경기를 치른 5라운드만 따지면 9위(30.8개)로 더 떨어진다. 전창진 KCC 감독은 kt전 뒤 “대인 방어, 지역 방어 등 수비가 전혀 안 됐다”면서 “다음 경기에서 연패를 끊을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KCC는 12일 만만치 않은 화력을 자랑하는 3위 고양 오리온과 격돌한다. KCC는 올 시즌 2라운드에서 딱 한 번 3연패를 기록한 바 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이의진의 교실 풍경] 나중에 온 일꾼에게도 품삯을 주시오

    [이의진의 교실 풍경] 나중에 온 일꾼에게도 품삯을 주시오

    어느 날 포도밭 주인이 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 집을 나선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자기 포도밭으로 보낸다. 다시 아홉 시쯤에 나가 역시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는 포도밭으로 보낸다.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같은 일을 한다. 그런데 오후 다섯 시쯤에 나가 보니 여전히 하는 일 없이 서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당신들은 왜 온종일 여기 서 있소?” 묻자 그들이 말한다.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다른 이들에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라고 말한다. 저녁 때가 되자 주인은 관리인에게 ‘품삯을 내주라’고 지시한다.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으니, 맨 먼저 온 이들은 자신들이 더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들에게도 한 데나리온씩만 주어졌다. 당연히 투덜거릴 수밖에.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받는군요.” 성경에 나오는 포도밭 주인과 일꾼들의 이야기다. 젊은 날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발끈했다. 무슨 소리인가, 어떻게 이른 아침부터 일한 사람과 오후 늦게 일을 시작한 자가 똑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분개했다. 그런데 차차 ‘오후 다섯 시’까지 ‘일을 얻지 못하고 서 있던 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에 생각이 닿았다. 하루종일 ‘아무도 사 가지 않은 자’, 오늘날로 치자면 노동력을 상실했거나 혹은 다른 이들보다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신체가 불편하거나, 나이가 많거나, 너무 어리거나, 아이가 딸린 여성이었거나. 해가 지기 직전까지 아무도 ‘사 가지 않던 자’들에게 기계적으로 주어지는 노동시장의 평등한 기회는 정말 공정한 기회였을까? 많은 이가 공평하게 교육받고 각자 최선을 다해 경쟁하는 사회를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경쟁의 결과로 얻게 된 불평등은 오롯이 무능하고 게으른 개인이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암묵적으로 전제한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높은 성적을 얻을 수 있고 모두가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얼마나 달콤한가. 모든 것이 오로지 ‘너’의 무능함 때문이라고 하면 마음은 또 얼마나 편안한가. 그러나 자기 방을 가진 아이와 반지하 셋집에서 공부방은커녕 머물 공간 하나 확보하지 못한 아이가, 학원가가 형성된 도시에서 공부하는 아이와 벽촌의 아이가, 장애가 있는 아이와 건강한 아이가, 정규직 부모를 가진 아이와 비정규직 부모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공부할 수 있는 아이가 처음부터 공정한 경쟁을 하기는 어렵다. 출발선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한다면 기회의 평등이 곧 공정으로 이어진다고 쉽게 말하지 못한다. ‘21세기 자본’에서 토마 피케티는 “과거가 미래를 잡아먹는다”고 했다. 심지어 눈에 보이는 경제적 부, 계급, 학력, 지역 격차만이 아니라 학습능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문화자본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는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이란 ‘눈 가리고 아웅’이기 쉽다. 우리 사회가 인간다운 삶을 지향해야 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정작 중요한 걸 잊고 있다. 모두에게 출발선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도착 지점은 비슷하거나 최소한 차이가 적은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걸 말이다. 지금의 격차가 단지 한 개인의 노력 부족을 탓할 문제만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중에 온 일꾼에게 얼마의 품삯을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합의는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초·중·고를 거치는 12년 동안 공교육 현장에서 교육과정과 토론을 통해 고민하고 발전시켜야 할 시민사회의 핵심 과제다.
  • 8세 딸 숨지게 한 부모 구속… 홀로 된 아홉살 오빠는

    언제쯤 끝날까… 지독한 아동학대의 굴레 8살 딸을 학대해 숨지게 한 20대 부부가 지난 5일 구속되면서 홀로 남은 9살 오빠는 외조부모나 친부에게 맡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7일 인천경찰청에 따르면 부모의 학대로 숨진 A(8)양의 오빠 B(9)군은 지난 2일 친모 부부가 긴급체포되면서 현재까지 인천의 한 아동일시보호시설에 머물고 있다. 아동일시보호시설은 보호 아동을 잠시 머물게 하면서 향후 양육 대책 등을 강구하는 곳이다. 보호 기간은 3개월 이내지만 관할 구청장 승인을 받아 최대 6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 B군은 보호자였던 친모와 계부가 판례에 비춰 20년 전후의 징역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추후 가정법원에서 접근 금지나 친권 행사마저 제한할 가능성이 있어 장기간 양육해 줄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B군에게는 2017년 친모와 이혼한 친부와 외조부모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 중구청과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B군에 대한 심리치료 후 친부와 외조부모 등 가장 가까운 친인척을 상대로 양육 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다. 인천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조만간 B군에 대한 보호명령을 인천가정법원에 청구할 방침이다. 법원은 구속된 친모 및 계부의 접근 제한, 친권 행사 제한·정지 등 9가지 명령을 중복해 내릴 수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다른 학부모에 세뇌당해 5세 아들 굶겨죽인 日30대 여성

    다른 학부모에 세뇌당해 5세 아들 굶겨죽인 日30대 여성

    30대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정신적인 지배를 당해 자녀 양육을 내팽개쳤다가 결국 영양실조로 숨지게 하는 보기드문 사건이 일본에서 일어났다. 3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후쿠오카현 경찰은 2일 5세 남아에게 충분한 식사를 주지 않아 영양실조로 사망하게 한 혐의로 아이의 어머니인 이카리 리에(39)와 그의 지인 아카호리 에미코(48) 등 2명을 보호책임자유기치사 혐의로 체포했다. 이카리 등은 2019년 8월부터 아이에게 주는 식사의 양과 횟수를 줄여 아이가 지난해 4월 굶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숨진 아이는 이카리의 3남으로 사망 당시 몸무게가 또래의 절반 정도인 12㎏에 불과했다. 두 사람은 2016년 4월 아이를 같은 유치원에 보내는 학부모로서 처음 접하게 됐다. 이들은 비정상적인 종속관계로 발전했다. 아홉살 많은 아카보리는 이카리의 생활과 3자녀 육아 등에 깊숙히 개입, 아이들에게 주는 식사의 양까지 통제할 정도였다. 경찰 관계자는 “이카리는 아카보리에게 심리적으로 지배되고 있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카리는 당국에서 나오는 생활보호비 등 매월 20만엔가량 돈이 들어왔지만, 이를 아카보리가 받아 가로챘다. 그는 이카리의 집에는 1주일에 몇차례 빵과 쌀, 과자를 넣어 줬을뿐 나머지 돈은 의류 구매 등 자기를 위해 탕진했다. 특히 아카호리는 이카리에게 “당신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속여 2019년 5월 이혼을 시켰다. 이어 “남편의 불륜과정을 조사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돈이 필요하다”며 이카리의 현금 및 예금통장을 가로챘다. 이카리는 “전 남편의 불륜 이혼 소송에 이기기 위해서 검소한 식생활을 해야 한다”는 엉터리 지시에도 그대로 따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카리는 뒤늦게 경찰에서 “남에게 속아 엄마로서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며 후회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프로당구(PBA) 투어 조별리그 2위들의 합창…4전5기, 명예회복, 결혼선물

    프로당구(PBA) 투어 조별리그 2위들의 합창…4전5기, 명예회복, 결혼선물

    “4전5기”(강민구), ’명예회복”(오성욱), “결혼선물”(김재근).출범 2년 만에 첫 챔피언을 가리는 프로당구(PBA) 투어 월드챔피언십 조별리그를 턱걸이로 통과한 ‘2위’들의 기세와 각오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 1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서울 호텔에서 끝난 대회 32강 조별리그는 8개조 각 1, 2위 16명을 확정하고 사흘 열전을 마무리했다. 3일부터 열리는 16강전은 1-1로 겨루는 ‘녹아웃’ 토너먼트 방식이다. 5전3선승제로 승부를 겨뤄 승자는 8강에 진출해 챔피언의 꿈을 한껏 더 키우지만 패자는 곧바로 짐보따리를 싸야 한다. 16강 토너먼트의 대진은 미리 준비한 ‘Z꼴’의 대진표에 따라 1위와 16위, 2위와 15위 등 조별리그 상위와 하위 선수들이 순차적으로 짜여졌다. 조별리그 순위는 통과한 전체 16명의 승수와 세트득실, 에버리지, 하이런 등을 따져 매겼다. 나란히 투어 2승씩을 챙긴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그리스)와 프레데릭 쿠드롱(벨기에) 등 강호들이 예상대로 조별리그를 1위로 거뜬히 통과했지만 강민구(38)와 오성욱(43), 김재근(49) 등 어렵사리 2위로 16강을 일궈낸 토종 ‘3명’이 더 눈에 띈다. 강민구는 PBA 투어 출범 때부터 우승 후보 다섯 손가락에 꼽혔다. 원년 개막전 결승에 올라 카시도코스타스를 상대로 초대 챔피언을 노크했지만 9-8로 앞선 마지막 7세트 두 포인트 남긴 상황에서 ‘1억짜리 옆돌려치기’가 깻잎 한 장 차이로 불발돼 무산됐다.4차대회인 TS샴푸 챔피언십에서 다시 결승에 올랐지만 프레데릭 쿠드롱(벨기에)에게 또 우승컵을 내줬다. 이번 시즌 크라운해태 챔피언십 결승에 세 번째 올랐지만 이번엔 하비에르 팔라존(스페인)에게 무릎을 꿇었다. 정규투어 마지막인 5차대회 웰컴저축은행 챔피언십 결승에 최다 결승 진출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카시도코스타스와 다시 만난 맞섰지만 1-4로 또 눈물을 뿌렸다. 지난 1일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사와시 불루트(터키)를 3-2로 따돌리고 힘겹게 16강을 확정한 강민구는 “네 차례 결승에서 모두 돌어섰던 건 경험 부족 탓이 크다”면서 “더욱이 두 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체력 소모가 컸던 이유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일부에서는 멘털이 약하다고 하는데, 사실 난 강하다”면서 “번번히 졌기 때문에 정신력이 약하다는 평을 듣는 것 같다. 5번째 결승에선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드리겠다. 4전5기를 증명해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16강전 상대는 비롤 위마즈(터키)다. 올 시즌 개막전에서 정성윤을 체치고 투어 첫 승을 신고했던 오성욱(신한금융투자)은 ‘명예 회복’을 나선다. 그는 신한금융투자의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가 걸린 팀리그 6라운드 크라운해태와의 최종전 5세트에서 박인수에게 14-15, 한 점차로 지는 바람에 5위 탈락의 빌미를 제공했고, 이후 ‘트라우마’에 걸린 듯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1승1패로 조별리그 통과가 불투명했던 오성욱은 최종전에서 김봉철을 3-0으로 완파하고 단박에 16강 티켓을 따냈지만 공교롭게도 16강전에서 같은 팀의 마민캄(베트남)과 8강 티켓을 다투게 됐다.김재근은 ‘늦깎이 새 신랑’이다. 월드챔피언십이 모두 종료되는 다음날인 오는 7일 마흔 아홉에 신부를 맞아들인다. ‘당구계의 젠틀맨’으로 불리며 예술구도도 능한 그는 2017년 세계팀선수권대회에서 최성원과 호흡을 맞춰 우승했던 주인공이다. 역시 1승1패로 16강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크라운해태 대회 우승자인 ‘당구장 사장님’ 서현민을 최종전에서 3-1로 돌려세우고 16강을 밟았다. 대회 시작 전부터 “결혼 선물은 우승컵과 상금 3억원”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 노총각이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독립 헌신한 열사들… 후대가 그려낸 애국

    독립 헌신한 열사들… 후대가 그려낸 애국

    “할아버지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이기도 해요.”(심산 김창숙 선생 손녀)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어느덧 100년을 훌쩍 넘겼고 당시 독립운동을 했던 생존자는 이제 20여명에 불과하다. 이제 남은 것은 기억뿐. 그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가장 오래 생각해 온 후손들은 애국열사들의 핏줄인 동시에 입과 귀로 대대로 역사를 옮기는 기억전달자이기도 하다. EBS ‘다큐프라임’은 1~2일 밤 9시 50분 3·1절 특집 다큐멘터리 ‘후손’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독립운동의 순간들을 밀도 있게 전달한다. 1부 ‘그날 이후’에서는 백범 김구 선생, 심산 김창숙 선생, 백암 박은식 선생, 나석주 지사 등의 후손 9명을 만나 독립운동을 하나의 사진처럼 생생하게 그려낸다.역사 속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애국열사들이 각자 다른 시기와 현장에서 독립을 위해 싸우고 목숨을 바친 ‘그날’을 가족의 눈으로 전달한다. 3·1운동에 참여했다 갖은 고초를 겪은 할아버지와 한국전쟁에서 실종된 아버지를 둔 가수 송대관부터,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나석주 지사를 잃고 아홉 살부터 아버지 없이 자란 딸, 다시 그 아래서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자라온 나 지사의 손자 이야기 등이 이어진다. 독립운동에 방해가 된다며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한지성 광복군 대장은 그 조카들이 유지를 잇고 있다. 그래도 후손들은 “아비 없는 설움보다 나라 잃은 설움이 컸다”고 말한다. 2부 ‘애국가족’은 애국지사 손녀이자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인 엄정화 감독이 광복군 임시정부 경위대를 지낸 할아버지의 시간들을 기록하기 위해 5년 넘게 카메라에 담은 자기 반영적 다큐멘터리로 풀어 간다. 99세 나이로 생존해 있는 애국지사 오상근 선생의 역사와 함께 4대 가족들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모습들이 담겼다. 엄 감독이 화면에 담은 가족들 중엔 이른바 ‘태극기 부대’로 불리는 보수 성향도 있고 그와 반대로 진보주의를 지향하는 가족도 있다. 일본에 유학 가 일본인 여성과 결혼하고 대학교수가 된 이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 서로의 갈림과 다름을 이해하면서 공존한다. 올해 설날 아침, 오상근 선생 앞에 화상으로 모인 수십명의 가족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면서도 결국엔 ‘애국’이라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 같다. 이들의 모습은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반목하며 갈등을 겪는 대한민국 현실에서도 다름을 넘어 따뜻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우리의 자화상이자 바람이기도 하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코로나 이겨낸 105세 할머니 “묵주 기도, 진 술에 담근 흰건포도 아홉 알”

    코로나 이겨낸 105세 할머니 “묵주 기도, 진 술에 담근 흰건포도 아홉 알”

    “기도, 기도, 기도. 한번에 한 걸음만. 정크 푸드는 말고.” 미국 뉴저지주에 살고 있는 105세 할머니 루시아 드클레르크는 장수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주저할 새도 없이 또박또박 답했다. 그런데 일간 뉴욕 타임스(NYT) 기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되고도 완치된 비결을 보태달라고 주문하자 하나를 더했다. “단지를 채워라. 일평생 매일 아침 흰 건포도 아홉 알을 아흐레 진 술에 담갔다가 마시는 것이라우.” 자녀들과 손주들도 할머니의 습관 중 하나가 알로에 주스를 용기째 들이키는 것과 베이킹 소다로 이를 닦는 것이라고 전했다. 친척들은 할머니가 아흔아홉 살이 될 때까지 틀니를 끼지 않을 정도로 치아 건강이 좋았다고 전했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손녀 숀 로스 오닐(53)은 “우리는 ‘할머니, 뭘 하려는 거에요? 미쳤군요’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지금은 우리가 웃음거리가 됐다. 할머니는 할머니 만의 방식으로 모든 일을 헤쳐나오셨다”고 말했다. 그의 인생 얘기를 하자면 한없이 길다. 1916년 하와이에서 콰테말라와 스페인 출신 부모 아래 태어났다. 스페인 독감과 두 차례 세계대전을 지켜봤고 세 남편과 아들 하나를 먼저 하늘로 보냈다. 두 아들, 다섯 손주, 12명의 증손주, 11명의 고손주를 거느린 다복한 할머니였다. 미국 와이오밍주, 캘리포니아주를 거쳐 큰아들과 함께 뉴저지주에 살다가 아흔 살 넘어 해변에 있는 마나호킨 요양시설에 머무르고 있다. 4년 전 낙상해 다치기 전까지 아주 활동적이었다고 했다. 오닐은 “할머니는 끈기(마침 NASA의 화성 탐사로버 이름이 perseverance)의 대명사”라며 “정신이 똑바라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릴적 얘기까지 기억하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5일이 105번째 생일이었는데 하필 그날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화이자 백신을 접종 받은 다음날이었다. 처음에는 무섭다고 했다. 혼자 격리되고 싶어하지 않았고 입소자 120명과 매일 수다를 떨지 못하는 일을 두려웠다. 별 증상이 없었던 할머니는 2주 뒤 묵주를 들고 선글래스와 니트 모자를 쓴 채 자신의 방에 돌아왔다. 오닐은 “105년 먹은 망나니가 코로나마저 걷어찼다”고 표현했다. 필 머피 주지사가 22일 코로나 브리핑 도중 전화로 연결해 “사기를 북돋는 대화”를 나눠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아들 필립 로스(78)는 “많이 걱정했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끈질긴 분”이라며 “늘 지니는 염주 덕”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덮치기 전 요양원에서 매주 묵주 기도를 주도했다. 요양원에서 62명이 감염돼 4명이 목숨을 잃었다.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하느님이 날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드클레르크 할머니보다 더 많은 나이에도 코로나를 이겨낸 할머니가 있다. 얼마 전 국내에도 알려진 프랑스 남동부 툴룽에서 117회 생일을 맞은 앙드레 수녀님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윤석년의 소통 가게] 김태호와 나영석

    [윤석년의 소통 가게] 김태호와 나영석

    몇 해 전 일이다. 신입생 수시 면접을 할 때 종종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였다. 프로듀서가 되고 싶은 지원자는 열에 여덟아홉은 MBC의 김태호 PD와 tvN의 나영석 PD처럼 되고 싶다는 답변이었다. 김태호와 나영석은 현재 양 방송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버라이어티 장르의 한 획을 그을 만큼 남긴 족적들이 뚜렷하다. 김태호는 ‘무모한 도전’으로 시작했다가 ‘무한도전’이란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무한도전’은 거의 매주 포맷을 바꾸면서 10여년 동안 토요일 저녁 주시청 시간대에 인기몰이를 했다. 나영석도 KBS 재직 시 ‘1박2일’을 제작하면서 일요일 저녁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김태호는 ‘무한도전’의 막이 내리고 거의 1년 4개월간의 충전을 마치고 나서 2019년 7월 말 ‘놀면 뭐하니’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유튜브 등 인터넷 환경까지 고려한 ‘놀면 뭐하니’는 초창기의 시행착오를 몇 개월 겪은 후 ‘본캐’ 유재석의 ‘부캐’ 활동인 ‘유산슬’을 트로트 가수로 데뷔케 해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지난해 ‘싹쓰리’와 ‘환불원정대’ 등 유명 가수와의 컬래버레이션을 내세워 토요일 저녁 예능 버라이어티의 예전 인기를 빠르게 되찾았다. 나영석은 ‘1박2일’의 PD로서 상종가를 달리던 중 CJ ENM에 당시 거액의 스카우트 비용을 받고 옮겼다. 나영석이 tvN에서 새로 기획한 여러 프로그램이 공전의 히트를 쳤다. ‘꽃보다 ~’ 시리즈와 이어 ‘알쓸신잡’, ‘신서유기’, ‘삼시세끼’, ‘윤식당’ 그리고 최근 방영된 ‘윤스테이’ 등 각각 다른 포맷으로 승부를 펼쳐 유료채널임에도 불구하고 금요일 저녁 9시 동시간대에 지상파방송의 경쟁 프로그램을 제쳤다. 방송 프로그램의 성격상 근엄함보다는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을 선호하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두 PD의 프로그램들은 그리 선정적이고 자극적이지도 않으면서 시청자의 주말을 편안하게 하는 내용과 형식을 갖추고 있다. 프로그램의 시청률도 예능 버라이어티 중에서 상당히 높은 편이다. 두 PD가 제작하는 프로그램이 동시간대에 맞대응 편성을 한다면 분명 흥미진진할 것이다. 각 방송사 편성 담당자들은 동시간대의 상대적ㆍ절대적 우위를 통해 얻게 되는 광고 수입과 PPL 수입뿐 아니라 인접효과를 통한 수익까지 고려한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김태호는 숱한 경쟁 방송사의 스카우트 제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MBC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연이은 성공을 통해 방송사의 수입 확대를 가져온 이른바 MBC의 일등공신이다. 매년 수십억원의 인센티브를 받는 나영석에 비해 경제적인 혜택은 상대적으로 박하다. 지난해 ‘놀면 뭐하니’의 인기로 인한 MBC의 수익 확대에 대한 보상으로 1억원의 특별 포상금을 받은 것에 대해 혹자들의 이러쿵저러쿵하는 얘기들이 흘러나온다. 두 PD는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예능 부문 수상 경력도 막상막하다. 김태호는 한국방송협회에서 주최하는 2015년 방송대상을 ‘무한도전’으로 수상했고, 2020년 PD부문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나영석도 2015년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하다. 두 방송사에서 이들이 예능을 ‘쥐었다 폈다’ 하는 시청자뿐 아니라 각 방송사의 조직과 인력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들의 창의성이 후배들 아니 미래의 방송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방송 한류의 경쟁력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들이 기획하고 제작한 예능 버라이어티가 오랜 기간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시청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두 사람 간의 아름다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경쟁이 거듭될수록, 프로그램 장르와 포맷의 진화가 되면 될수록 시청자의 눈높이도 높아질 것이다. 두 PD에 대한 평가가 다소 엇갈리기도 하지만, 이들의 실험정신과 프로그램의 진화가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 외인구단 일으킨 원더우먼 캡틴… 편견 향해 ‘이단옆차기’

    외인구단 일으킨 원더우먼 캡틴… 편견 향해 ‘이단옆차기’

    태권도인들은 이들을 ‘여자 국군 체육부대’라거나 ‘여자 상무팀’이라고 부른다. 이런 별명의 팀을 이끄는 ‘아마조네스 군단’의 ‘원더우먼’이라고 한다. 선수와 코치진 모두 여성이지만 2013년 3월 창단한 태권도팀이 창단 다음달부터 거둔 성적이 빛나기 때문이다. 이들을 이끄는 박은희(42) 경북 성주군청 여자태권도 선수단 감독은 23일 “훈련량이 다른 팀의 두세 배”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태권도 30개 실업팀 중 유일한 여성 감독이다. 훈련장 한편에는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태권도대회인 국방부 장관기 우승기가 자리하고 있다.●女지도자協, 10년 만에 30명→70명 박 감독은 여성지도자로서의 어려움을 묻자 더 큰 그림에서의 고충을 말했다. “실업팀 감독이지만 예산을 따려고 접촉하는 군청과 군의회, 대회 관계자 등 만나는 사람 대다수가 남성이다. 더 가까이 다가가 진정성 있는 대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자 하지만 식사자리를 포함해 일대일로 만나는 자리를 피하는 게 보인다. 이런 면이 답답하지만 극복하지 못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내 태권도 여성 지도자는 실업팀 및 초·중·고·대학의 코치까지 포함해 약 100명이다. 이들 중 여성 지도자로서 어려움을 공유하고 지혜를 모으는 여성태권도지도자협회에 가입된 이는 70여명이다. 박 감독은 자신이 태권도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2011년의 30여명과 비교하면 여성 진출이 많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체육계의 요즘 최대 현안인 스포츠 폭력에 대해 물었다. “나는 선수들과 스킨십을 많이 한다. 손을 잡고 산책하거나 차를 마시면서 눈을 맞춘다. 폭력은 원시적이다. 선수나 코치의 스트레스 관리가 정말 중요하고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대표 상비군이나 청소년 선수를 지도하면서 감성적인 부분을 어떻게 다스려 주는지가 선수의 마음에 많은 영향을 준다.”●“현 체육계 인권교육, 고작 1년에 1시간” 박 감독은 현재의 교육 체계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스포츠에서 폭력 및 성폭력, 선수 인권 문제에 대해 정부든 대한체육회든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만들어 코치와 감독을 대상으로 꾸준히 교육해야 한다. 현재는 1년에 한 시간가량 강당에 300여명을 한꺼번에 앉혀 놓고 강사 한두 명이 강연하는 게 전부다. 현실적으로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만들고 코칭 및 티칭 교육을 강화해 그런 폭력 문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코치나 지도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빨리 개발됐으면 한다.” 창단 때부터 성적이 놀라웠다. “당시 신생팀 선수 구성에 애로가 컸다. 각 팀에서 방출된 선수, 자퇴한 선수 등을 모아 구성한 말 그대로 ‘외인구단’이었다.” 기량이 부족한 것을 훈련으로 보충해 창단 다음달에 열린 전국대회 단체전 준우승을 거뒀다. “나도 선수들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됐다.” 이후 해마다 전국대회 단체전과 3인조 지명전 등에서 우승을 도맡았다. 2016년에 이어 지난해 열린 유일한 대회인 경찰청장기 무도대회에서 소속 선수가 우승하면서 경찰 공무원으로 특채됐다. 박 감독은 “격투기 종목은 특성상 부상이 많아 30세가 되면 대개 은퇴할 수밖에 없다. 그 이후 진로 문제에서 (경찰 특채는) 굉장히 의미 있는 성과”라고 자랑했다. ●전국대회 승승장구… “우리 강점은 연습” 이런 성과의 비결에 대해 박 감독은 한마디로 선수들이 흘린 땀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우리 팀은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가 오기에는 처우나 여건이 매우 열악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연습뿐이다. 선수들에게 ‘포기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세상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반대로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게 없다. 다시 한번 해 보자’고 말한다.” 은퇴한 선수들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말이 있다. “박 감독을 만나면 세상에 안 되는 게 없다는 걸 알게 된다. 행운으로 여겨라.” 박 감독은 훈련량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체계적인 교육법도 개발해 뒀다. 그러면서도 선수들이 타격감을 익히도록 하고자 스스로 스파링 파트너가 돼 머리와 몸통 등을 맞는다. 박 감독은 초등학교 3학년이던 아홉 살 때 허약 체질인 남동생을 따라 도장에 갔다가 태권도의 길로 들어섰다. “중학교 시절엔 육상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했고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 그런데 체육교사의 권유로 태권도 선수생활을 했다. 2000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과 2002년 아시아선수권대회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십자인대, 무릎 등의 부상이 겹쳐 2003년 은퇴했다. “당시엔 태권도가 인생의 전부였다. 대학교 2학년 땐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부도나 가족이 모두 흩어져 살았다. 그때 학교 훈련장으로 건장한 남성 7~8명이 나를 찾아왔다. 빚쟁이에게 쫓기는 게 너무 창피했는데 선배들이 나를 친오빠처럼 보호해 줬다. 뒤늦게 돌아온 코치님이 이를 알고 나에게 ‘러닝머신 10㎞를 뛰라’고 했다. 무섭고 창피했는데 혼자 10㎞를 울면서 뛰었다. 태권도로 성공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이런 태권도에서 은퇴하자니 아쉬움이 더 컸다. 은퇴 후 한 5년 정도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거나 훈련하는 꿈을 꿨다.” 이후 태권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다 아프리카 서부 가봉의 대통령 경호실로 2년 파견 나가는 등 5년여가 흐르면서 못다 이룬 꿈에 대한 서운함을 달랠 수 있었다. “올해 목표? 모두 다치지 않고 즐겁게 운동했으면 좋겠다. 2019년처럼 소속 선수 모두 국방부장관기 대회에서 메달을 따고 경찰청장기 무도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올해 처음으로 예산·선수 늘어 기쁨 두 배 성주군청 태권도팀은 창단 후 9년차인 올해 처음으로 예산이 늘었다. 그래서 선수 한 명을 더 선발해 모두 6명이다. 박 감독은 거의 매일 군청과 군의회에 들어가 의원과 직원에게 태권도와 다른 팀의 동향, 선수의 연봉 문제 등을 이야기한단다. 재정이 열악한 시골 군청에서 실업팀을 운영하는 것만도 감사할 만한 일이라고 한다. 태권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자신의 세계대회 금메달보다 팀 창단 5년 만인 2017년 전국대회 금메달을 서슴없이 꼽는다. 이런 고마움에 박 감독은 성주군을 알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재능기부로 태권도 수업을 진행하고 2019년엔 전국노래자랑에 나가 본선에 진출하기도 했다. 박 감독은 사실 성주군과 직접적인 연고는 없다. 서울에서 태어나 은광여중고를 거쳐 2002년 2월 경희대를 졸업했다. 성주군청에 실업팀이 생긴다는 선배의 귀띔에 기대 없이 제출했던 지원서가 인연이 됐다. 2018년엔 체육학 박사학위도 취득했다. 몇 단이냐고 묻자 7단이라는 박 감독은 “영화처럼 날고 그런 건 없다. 오랜 기간 꾸준히 수련했다는 징표일 뿐”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K2에서 돌아오지 못한 파키스탄 산악인 알리 사드파라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K2에서 돌아오지 못한 파키스탄 산악인 알리 사드파라

    파키스탄 등반가 무함마드 알리 사드파라는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간) 아이슬란드인 욘 스노리, 칠레인 후안 파블로 모어와 함께 세계 두 번째로 높으며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산으로 악명 높은 K2(해발 고도 8611m)을 오르다 베이스캠프와 교신이 두절됐다. 지난 18일 세 사람 모두 공식 사망한 것으로 선언됐다고 영국 BBC가 다음날 전했다. 물론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조난 당한 지점이 정상 바로 아래였으며 체감 온도 영하 80도에 이르는 날씨, 희박한 공기, 조난된 지 한참의 시간이 흐른 점 등을 종합했을 때 생환 가능성이 전혀 없어서다. 알리는 국제 산악계에서도 다재다능한 등반가로 유명했으며 조국에서는 영웅으로 여겨지던 인물이었다. 세상의 8000m 이상 고봉 14좌 가운데 8개 봉우리를 발 아래 둔 유일한 파키스탄인이었으며 겨울철에 세계 아홉 번째이자 파키스탄 두 번째 봉우리인 낭가 파르밧(8125m)을 오른 첫 번째 산악인이었다. 아들 사지드는 아버지와 함께 K2 정상을 산소통 없이 겨울에 올라 세계 최초 기록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사지드는 정상을 불과 300m 앞둔 일명 보틀넥(Bottleneck·병목), 죽음의 구역(death zone)에서 산소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포기하고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목숨을 잃지 않았다. 사지드는 군이 조직한 구조팀에 협력해 아버지가 남긴 흔적을 샅샅이 뒤졌으나 아버지는 물론 두 동료 누구의 흔적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군대는 구조 작업을 재개할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희망을 많이 가질 필요는 없다는 점을 잘 안다. 해서 지난주 초 그는 “모두가 수색에 동참해준 것에 감사드린다. 그들이 지금 살아있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해서 수색은 시신을 찾아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알리는 1976년 이 나라 오지 중에서도 오지인 히말라얀 발티스탄 지역의 사드파라 마을에서 태어났다. 중학 교육을 마친 뒤 하급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고교 진학을 위해 스카르두 마을로 이사했다. 형과 달리 곧잘 공부를 해 좋은 교육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다. 그는 가정 형편 때문에 일찍 학업을 접고 2003년이나 2004년쯤 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투어 조직자로 나서자마자 성공했고 그가 이끈 탐사는 대부분 성공을 거뒀다. 특히 2016년 3인조 팀을 구성해 겨울에 낭가 파르밧을 초등하자 국제적 명성을 누리게 됐다. 지난 3년 동안 프랑스와 스페인을 여행하며 대학생들에게 등반 교육을 시켰다. 그러면 왜 그는 산소통 없이 K2를 오르겠다고 결심했을까? 하나의 이론은 스노리의 고산 짐꾼으로서 계약서에 서명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을 것이란 해석이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속임수이고, 몇 주 전 니르말 푸르자 등 네팔 셰르파들이 겨울철 K2 세계 초등의 업적을 달성하는 바람에 그들을 능가하는 새 기록에 욕심을 낸 것이라고 친척이자 친구이며 현지 언론인인 니사르 압바스는 해석했다. 아들과 함께 한다면 더욱 깊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란 얘기다. 사지드는 25~30명의 다국적 등반대와 함께 출발했는데 나머지는 모두 8000m 지점에 이르기 전에 정상을 포기하고 돌아섰다고 현지 언론에 털어놓았다. 사지드가 보틀넥에 이르렀을 때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아버지는 비상용으로 챙겨온 산소통을 쓰라고 했다. 사지드가 실린더를 연결했을 때 산소가 새나오기 시작했다. 이 때 아버지와 두 외국인은 이미 보틀넥을 오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뒤를 돌아보며 계속 올라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들은 실린더가 샌다고 외쳤다. 아버지는 ‘걱정 마라. 계속 올라와. 그러면 나아질 거야’라고 했다. 하지만 사지드는 더 이상 쥐어짤 힘도 없어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5일 정오 무렵이었다. 그게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계속 올라오라고 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사지드는 “네팔인들이 몇주 전에 그 일을 해냈다. 그 역시 그 일을 원했다. 왜냐하면 K2는 우리 산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세 사람이 보틀넥을 넘어 정상으로 향하는 모습을 봤기에 아마도 그들이 정상에 이르렀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사고는 하산 때 일어나며 아주 살짝만 몸의 균형을 잃어도 엄청난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알리를 아는 이들은 그가 그런 실수를 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은 한 파트너나 아니면 둘 다 사고를 당해 그가 돕다가 하산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영원히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아들 사지드는 “등반 역사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해서 우리는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의 사망이 선언된 뒤 “아버지를 존경했던 모든 등반가들에게 아버지의 꿈과 소명을 좇아 그의 발자취를 따라 계속 걷겠다고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알리 일행의 비극 말고도 이번 겨울 시즌 K2는 숱한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있다. 셰르파 등반대와 같은 날 K2을 등반하던 스페인 산악인 세르히 밍고테는 정상을 밟지 못하고 베이스캠프로 하산하던 중 목숨을 잃었고, 알리 일행이 조난된 지난 5일에도 불가리아 산악인 아타나스 스카토프가 해발 7400m에서 5500m 지점으로 추락해 세상을 등졌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미 의회 폭동 가담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최악 땐 30년 복역할 수도

    미 의회 폭동 가담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최악 땐 30년 복역할 수도

    지난달 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의회 의사당 폭동에 참여한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의 혐의가 대폭 늘었다고 영국 BBC가 12일 전했다. 클레트 켈러(38)는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과 4년 뒤 베이징올림픽 남자 2x400m 자유형 릴레이에서 미국 대표팀이 2연패하는 데 힘을 보탰다. 키가 1.9m나 되는 그는 폭동 일주일 뒤 쉽게 눈에 띄는 체격과 대표팀 유니폼 자켓을 걸친 사진과 동영상 때문에 쉽게 특정돼 제한구역 침입, 의사당 난동, 사법기관 방해 등 비교적 경미한 세 혐의로 기소됐는데 워싱턴 지방검찰은 경찰관 업무 방해 등 일곱 가지 새로운 혐의를 추가하는 것으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일단 한달 동안의 조사로는 그가 직접 의사당에 난입하는 과정에 폭력을 행사했다는 결정적 증거는 찾지 못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다른 많은 난동 기소자들과 마찬가지로 대배심원단으로 하여금 그의 유무죄를 판단해 보도록 했다고 일간 워싱턴 포스트(WP)가 전했다. 신문은 새로운 혐의들에 대한 유죄가 모두 인정되면 30년 가까이 복역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조 바이든 대통령을 죽이겠다고 백악관에 협박전화를 한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사는 27세 남성 데이비드 카일 리브스의 상세한 범행 정황이 드러났다. 그는 지난달 28일 오후 백악관에 전화를 걸어 교환원에게 “전부 죽여버리겠다. 머리를 베어버리겠다”고 말한 데 이어 지난 1일 비밀경호국(SS) 요원 존 로빈슨이 전화를 걸어오자 한 술 더 떠 대통령을 죽이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어 하고 싶은 말은 어떤 것이나 할 수 있고 잘못한 게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로빈슨 요원에게 같은 날 재차 전화를 걸어 처벌이 자신을 막을 수 없고 사람들을 협박하는 건 불법이 아니라고 하더니 다시 전화를 걸어와 의회에도 협박 전화를 했으며 로빈슨 요원도 죽이겠다고 했다.리브스는 백악관에도 전화를 또 걸어 대통령 얼굴을 가격하고 대통령의 의자에 앉아 죽어가는 걸 지켜보고 싶다는 말도 했다. 결국 리브스는 대통령 협박 혐의로 5일 체포돼 기소됐다. 변호인은 리브스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으며 무죄를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009년 이후 10여 차례 체포 및 기소된 전력이 있으며 작년에만 아홉 차례 가정폭력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미국에서는 의회 폭동 이후 대통령을 비롯한 요인 경호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지난달에는 코네티컷주에 사는 남성이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죽이겠다고 협박한 혐의를 포함해 9년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0월엔 바이든을 죽이겠다며 폭발 물질과 총기를 모은 19세 남성이 체포됐다. 미국에서 대통령 협박은 최대 징역 5년 및 벌금 25만 달러에 처할 수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록밴드 푸 파이터스, 3년 만에 정규 10집 발매

    록밴드 푸 파이터스, 3년 만에 정규 10집 발매

    결성 26년차인 미국 록 밴드 푸 파이터스(Foo Fighters)가 열 번째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유통사 소니뮤직코리아는 푸 파이터스가 지난 5일 정규 10집 ‘매디슨 앳 미드나잇’(Medicine at Midnight)을 발매했다고 8일 밝혔다. 2017년에 발매한 ‘콘크리트 앤드 골드’(Concrete and Gold)부터 함께한 프로듀서 그레그 커스틴이 다시 한번 푸 파이터스와 손잡고 선보였다. 커스틴은 폴 매카트니, 리암 갤러거 등과 협업한 거물 프로듀서로 아델을 슈퍼스타로 키운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은 기존 앨범보다 팝 사운드가 강하게 녹아 있다. 동명의 타이틀곡은 모두가 춤추고 노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데이비드 보위의 1983년 앨범 ‘레츠 댄스’(Let’s Dance)를 참고해 만들었다고 유통사는 설명했다. 보컬 데이브 그롤은 “힘차고 거대하며 함께 부르는 노래들로 가득 찬 재미있는 앨범”이라고 신보를 소개했다. 이 밖에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멋진 미래를 줘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웨이팅 온 어 워’(Waiting on a war) 등 뚜렷한 메시지를 담은 아홉 곡을 실었다. 푸 파이터스는 1990년대 록 음악의 상징인 밴드 너바나의 드러머 데이브 그롤이 결성한 밴드다. 1995년 데뷔앨범을 낸 뒤 ‘런 투 플라이’(Learn to Fly), ‘올 마이 라이프’(All My Life), ‘더 프리텐더’(The Pretender) 등 히트곡을 남겼고 최근까지도 투어를 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미국 최고 권위의 음악 시상식 ‘그래미 어워즈’에서 총 11회 상을 받았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주가 버블, 어떻게 형성되나

    [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주가 버블, 어떻게 형성되나

    최근 실물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주가가 급등하면서 주식시장에 ‘버블’이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 주가가 폭락한 다음에 예전 가격이 버블이었다고 사후적으로 평가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현재 주가가 버블이라고 사전에 확언하기는 어렵다. 현재 주가가 버블이라고 판단하려면 시장 가격이 기업의 본질 가치에서 이탈했다고 확신해야 하는데, 이러한 평가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자산가격 이론에서는 기업의 본질 가치를 해당 기업이 미래에 벌어들일 현금 흐름의 현재 가치로 파악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미래의 현금 흐름을 현재 시점에서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쉽지 않다. 오히려 이론적으로 시장 참여자의 전망치가 주식의 시장가격을 형성한다고 본다면 시장가격 자체가 미래 현금 흐름의 전망치여서 버블은 아예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 된다. 하지만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버넌 스미스는 경제학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 가운데 하나인 ‘이코노메트리카’(Econometrica)에 ‘버블, 붕괴, 그리고 실험적 현물자산시장에서의 내생적 기대’라는 제목으로 자산시장 버블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연구에서는 주식의 성격과 현금 흐름을 통해 기업의 본질적 기대 가치를 쉽게 계산할 수 있는 상황을 실험으로 구성한 후 시장 참여자가 어떻게 투자하는지 그리고 이에 따라 형성되는 가격의 움직임은 어떤지를 살핀다. 그런데 22번의 실험 가운데 14번에 걸쳐 ‘현금 흐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주식 가치와 주가의 괴리’, 즉 버블이 형성됐고 여러 후속 연구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확인된다. 주식 보유로 얻을 수 있는 미래 현금 흐름을 알 수 있어 기업의 본질 가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환경에서도 버블이 형성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전문적으로 시장에서 주식을 거래하는 경험 있는 ‘트레이더’들이 참여한 실험에서도 이러한 패턴이 관찰된다. 가장 큰 이유는 미래의 현금 흐름은 알 수 있더라도 다른 시장 참여자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여전히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버블이 발생하는 것이다. 다만 전문적인 트레이더들이 참여하는 경우에는 주가가 현금 흐름에 대한 평가에서 이탈하는 정도는 감소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문 투자자의 존재가 버블 자체를 제거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거래에 참여하는 상황에서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면 버블로 발전할 가능성을 높인다고 해석될 수는 있다. 특정 직업을 이야기하며 이분들까지 주식에 직접 투자할 때면 시장 붕괴의 전조라는 속설이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 버블의 존재 여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가격의 급락 가능성 때문이다. 특히 최근처럼 주식의 신용 거래가 급등하는 등 부채를 이용한 주식 투자가 번지는 상황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자체 재원으로 투자한 경우는 변동 장세에서도 장기 투자로 전환할 수 있지만, 대출에 기반한 투자 자금은 원리금 상환 압력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채에 의존해 투자된 주식이 매물로 쏟아지면 걷잡을 수가 없다. 특히 이러한 미래 현금 흐름과 괴리된 가격의 움직임을 보면 대개 가격이 빠른 속도로 상승한 후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다가 결국 급락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하는데, 부채를 이용한 투자가 확대될 수 있는 환경에서 자산 가격 버블의 생성이 보다 용이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한다. 1970년 미국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던 폴 새뮤얼슨 교수는 ‘주식시장은 지난 다섯 번의 경기침체 가운데 아홉 번을 예측했다’는 재미있는 어록을 남겼다. 주식시장이 실물경제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단순한 의미일 수도 있지만, 아홉 번의 주식시장 급락 가운데 다섯 번은 실물경기 과열을 반영한 주식시장 급등이어서 주가와 실물경기 조정이 함께 발생한 반면 나머지 네 번은 실물과 무관하게 주가가 형성된 후 급락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사전적으로 주가의 특정 수준 자체를 버블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실물경기와 괴리된 채 투자 경험이 많지 않은 개인투자자들이 시장에 유입되는 가운에 미래 현금 흐름이 불투명한 종목까지 가격이 상승하며 부채에 기반한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면 주가 급변동 위험의 전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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