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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 장애인의 재활과 사회통합

    4월은 열아홉번째 맞는 ‘장애인의 달’이다.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환기시키고,이들을 위해서 실시해 온 국가정책과 제도를 점검하고 평가하는계기가 되는 달이기도 하다. 1981년 유엔은 ‘완전 참여와 평등’의 주제 아래 ‘세계장애인의 해’를선언했다.장애인의 인권존중과 사회통합을 겨냥한 정책적 함의를 지닌 선언이었으며,장애인도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생활과 사회발전에 완전히 동참할수 있어야 하고,사회적·경제적 발전의 결과로 이룩된 생활조건의 향상 역시 장애인들에게 평등하게 배분돼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리고 장애인들이 충분히 사회에 통합될수 있도록 이들의 사회적 적응을 도와야 하고 재활을 통해서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실천강령도 포함됐다. 그간 우리나라도 정부차원에서 장애인의 복지향상과 재활 및 직업을 통한사회통합을 위해서 꾸준히 정책적 관심과 배려를 해왔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서는 상당히 개선되고 향상된 결과를 낳고 있다.그 가운데서도 1991년부터실시되기 시작한 ‘장애인 의무고용제’와 ‘장애인 고용촉진공단’의 출범은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위한 가장 대표적인 제도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국민의식과 관행,제도적 측면에서 장애인의사회통합을 가로막는 숱한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다.이들 요소의 제거야말로사회통합을 위한 필수조건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현재 100만명을 넘는 장애인이 어렵게 생활하고 있으며,장애 발생의 88%가 각종 사고와 재해 등 후천적 원인에 의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한국인의 의식구조에는 동질적이고 평균된 보편성의 인간상에 가치를 부여하는 성향이 강하게 내재돼 있어 이질적인 개성을 지니고 있는 장애인들을비가치화하고 멸시와 편견의 눈으로 보는 경향이 일반화돼 있다해도 과언이아니다.이러한 부정적인 멸시와 편견의식은 하루빨리 불식돼야 한다.그리고이들을 이질성과 특유의 잠재력을 지닌 개성있는 인간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의식전환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아울러 장애인 가족과 장애인 스스로도 장애 사실을 현실로 인정하고 낙심이나 비관할 것 없이 자기 나름대로 창조적인 발전책을 모색하는 긍정적인태도를 가져야 한다.긍정적인 태도야말로 자신을 재사회화(再社會化)하여 적응능력을 높여주는 길이며,사회통합에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이다. 장애인을 사회에 연결해 통합을 촉진시키는 가교의 역할을 하는 주택,공공시설,교통수단 등 공간구조적,물리적 환경의 조성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지금껏 계획과 투자면에서 미흡했고,또한 이들의 생활환경과 관련된 대부분의법률이 의무규정이 아닌 선언적 규정으로 되어 있다는 점도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잠재능력의 일부가 결손되어 있는 장애인의 경우,잔존 능력의 개발과 촉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알맞은 특수교육이 필요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직업 재활능력을 높이고 사회적 참여와 통합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데도 이를 실시하기 위한 특수학교의 수용능력은 크게 부족하다. 또한 시설과 설비 및 실습자료비 부족,그리고 전문적 기술지도교사의 확보난 등으로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보편화돼 있는 개별화(個別化)와 최적화(最適化)의 교육방법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회통합의 핵심적 제도인 장애인 의무고용제를 회피하고 그 대신 부담금을 납부하고 있는 점이다.최근까지의 장애인고용실태를 살펴보면,공공기관과 민간기업체 할 것 없이 법적 고용률 2%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용의무사업체의 장애인 고용률은 0.46%에 불과하고,정부 및 공공기관 1.15%,정부투자기관 0.79%,정부출연기관 1.27%이다.솔선수범해야 할 정부와공공기관마저 의무고용비율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사실은 장애인들을 크게실망시키고 있다. 장애인 사회통합의 최선의 길은 재활과 직업교육을 통해서 정상인과 동일한 자격으로 스스럼없이 사회에 진출하여 취업하는 것이다.이런 맥락에서 능력있는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 지역별로 정부출연의 보호작업장(Samhall)을 마련해 취업기회를 극대화하고,제품의 유통까지도도와주고 있는 스웨덴의 장애인 통합정책은 오늘의 한국 장애인정책에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文石南 전남대 교수·사회학]
  • KBS ‘남북의 창’냉전사고 그대로

    현재 북한관련 프로그램으로는 유일한 KBS‘남북의 창’이 냉전 이데올로기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10년이상 방송된 장수프로인 이프로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남북한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이질감을 좁혀 통일에 기여해야 한다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언론위원회 모니터팀의 분석결과 제기됐다. 지난 2월과 3월,두 달에 걸쳐 ‘남북의 창’을 모니터한 KNCC모니터팀은 과도한 전쟁관련, 군사훈련 장면,군 고위층 동정관련 화면으로 오히려 남북간의 긴장감과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남북의 창’을 비판했다. 매주 아홉 건이 방송되는 뉴스 부분에서는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과 폭격장면 등이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는데 일례로 3월 26일의 경우 한미 공조와 국가 이익을 설명하면서 군사훈련 화면으로 일관,곧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위기 의식을 갖게 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보고서는 또 남북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좁히려는 방송사의 노력이부족하다고 지적했다.‘도라지꽃’‘보심록’등 북한영화를 소개한 것은 높이 살 만한 일이지만 북한영화와 우리 영화의 차이를 인식시키려는 노력이없었고 ‘중년층에서 즐기는 군중무용’을 소개할 때도 이를 이해시키려는해설이 한마디도 없어 오히려 이질감만 더했다는 것이다.그밖에 동질성을 저해한 뉴스의 예로 3월 12일의 ‘춤출 때는 치마’는 북한에선 사상성의 표현으로 여성에게 바지를 못 입게 한다고만 소개,우스꽝스러운 느낌이 들게 했으며 청바지 착용이 금지돼 발각되면 가장 심하게 처벌된다고 소개하면서도‘청바지=자본주의 문화’라는 상징적인 의미나 그 외 또다른 이유는 덧붙이지 않아 의아스런 느낌을 주었다. 보고서는 연말쯤이면 북한TV의 개방도 예상되고 있는 만큼 ‘남북의 창’은 남북의 차이점을 너그럽게 받아 들이려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허남주기자 yukyung@
  • 세계적 기타리스트 폴 길버트 내한공연

    ‘미스터 빅’의 멤버로 두차례 한국을 방문했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폴길버트(사진)가 이번에는 자신의 밴드를 이끌고 방한,공연한다. 75년 아홉살 때부터 기타연주를 시작한 그는 고교졸업후 LA할리우드의 기타학교(GIT)에 들어가 1년만에 전과정을 익히고 바로 강사로 일할 만큼 뛰어난 재능을 과시했다.미스터 빅을 결성해 ‘와일드 월드’‘투 비 위드 유’등복고적인 하드록으로 국내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렸다. 이번 공연은 97년 첫 솔로앨범 ‘킹 오브 클럽스’에 이어 최근 낸 2집 앨범 ‘플라잉 도그’의 국내 발매를 기념하기 위한 것.국내 헤비메탈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블랙신드롬이 함께 나온다.2집은 다양한 스타일의 록뿐만 아니라 바흐의 곡을 기타로 연주한 ‘길베르토 콘체르토’,경쾌한 멜로디의 오프닝곡 ‘겟 잇’등이 실려있어 팬들의 귀를 즐겁게 한다. 폴 길버트는 이번 공연에서 윌리암 모리스3세,스콧 존슨,그룹 넥스트의 멤버였던 김세황 등 세명의 기타리스트와 협연을 펼친다.전설적인 기타리스트지미핸드릭스 트리뷰트 앨범,미스터빅 앨범과 자신의 개인앨범에 수록된 곡을 골고루 선사할 예정.14일 대전 엑스포 아트홀,15일 부산KBS홀,18일 서울여의도KBS홀.(02)3446-0527
  • 중국 반체제작가 위화 ‘허삼관 매혈기’ 번역

    중국의 90년대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위화(余華·40)의 장편소설 ‘허삼관매혈기(許三觀 賣血記)’가 중문학자 최용만씨의 번역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도서출판 푸른숲.중국 절강성 항주 출신인 위화는 장이모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소설 ‘활착(活着,살아간다는 것)’의 작가.‘허삼관 매혈기’는 ‘활착’이후 4년만에 발표한 작가의 두번째 장편으로 위화를 중국의 대표적인 반체제 작가 반열에 들게 한 작품이다. 소설은 국공합작과 문화혁명으로 이어지는 중국 현대사의 거센 물살을 배음(背音)으로 살아가기 위해 피를 파는 한 사나이의 고단한 삶을 그린다.주인공 허삼관은 생사공장에 누에고치를 대주는 일을 하는 가난한 노동자.그는삶의 양식(良識)을 지키고 또한 양식(糧食)을 구하기 위해 아홉 차례나 피를 판다.한마디로 비극적 연민을 자아내게 하는 격정의 드라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비극적 삶의 여정은 독자들에게 무겁게만 다가오지 않는다.눈물과 웃음을 적절하게 뒤섞는 작가의 치밀한 서사 전략 탓이다.작가가 밝히고 있듯이 이 소설은 평등에 관한 이야기다.마오쩌뚱이 집권한이래 중국 공산당 정부가 그토록 집요하게 갈구했던 평등이념,그러나 그것은 결국 핏빛 이상에 머물고 만다.평등이란 죽음에 의해서만 다다를 수 있는유토피아적 이상인가.독일 시인 하이네가 “죽음은 상쾌한 저녁,삶은 고통의 한낮”이라고 죽음을 찬미한 것도 사실은 죽음만이 유일한 평등임을 알았기 때문이다.‘허삼관 매혈기’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 역시 평등이라는 이상이 지닌 현실적 한계 혹은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이다. 인민공사,대약진운동,제강생산운동 등 가파른 중국 현대사의 단편들이 등장하는 ‘허삼관 매혈기’는 철지난 중국 이야기일지 모른다.그러나 가장 중국적인 이야기이기도 한 이 소설에는 보편적인 공감을 끌어낼만한 요소들도 적지않다.그 중 하나가 찰가난 속에서도 항심(恒心)을 잃지 않는 주인공의 캐릭터다.그는 비록 ‘자라대가리’(중국에서 무능하고 바보같은 남자를 일컫는 최악의 욕)라는 소리를 들을 망정 양심만큼은 가난해져서 안된다고 믿는인물이다.그늘의 그늘은 양지가 될 수 있듯이 세상 후미진 곳에 내던져진 허삼관의 그늘에서 우리는 밝은 양심의 빛을 발견할 수 있다.그러한 것이야말로 소설 읽는 재미요 기쁨이다.‘허삼관 매혈기’가 96년 출간 이후 중국에서 드물게 3판까지 나오고 유럽권에서도 큰 호응을 얻은 것은 바로 그런 연유에서다.金鍾冕 jmkim@
  • 춘천 소양호 맵싸한 겨울 낭만 물씬

    뱃길과 등산로가 함께 어우러지는 곳.거기에 겨울 별미인 빙어 낚시의 독특한 체험을 곁들일 수 있는 곳.강원도 춘천 소양댐만이 갖추고 있는 겨울 풍광이다. 호반의 도시 춘천시내를 지나 동북쪽으로 12㎞를 가면 신북면 천전리의 소양강 하류를 막아 이루어진 소양강 다목적댐을 만난다.춘천 홍천 양구 인제군에 접해있어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국내 최대의 인공호수.양구 인제까지 60㎞의 긴 물길을 따라가는 관광쾌속선이 운항돼 설악산과 동해안을 이어주고 있는 물길이기도 하다. 북쪽으로 끝없이 뻗어가며 마치 한반도 지도를 연상시키는 호수의 물굽이.댐에 서면 ‘해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으로 시작되는 유행가 ‘소양강 처녀’ 한소절쯤 불러보고 싶은 상념에 젖게 된다. 댐에서 선착장까지 가는 길 왼편엔 간이 음식점 20여개가 뭇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집집마다 철을 만나 수족관에 가득 채워놓은 빙어떼들이 은빛 장관을 이룬다.청평사로 바로 닿는 배와 소양호를 일주하는 관광선,그리고 양구로 이어지는 배편이 쉼없이 오가며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호수위에 떠있는 유람선 위에서 바라보는 낚시꾼들의 모습은 더욱 낭만적이다.피라미며 빙어를 잡아 올리는 낚시꾼들은 매서운 소양호의 바람 따위는아랑곳하지 않는다.소양댐에 갇힌 소양호물은 강추위에도 얼지 않는다.그래서 낚시꾼들에겐 꾸준히 사랑받는 장소이기도 하다. 청평사 오봉산은 소양댐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답사코스.코스가 험하지도 않으면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볼거리들이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에겐 아주 만족스런 체험을 제공한다. 소양댐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0분쯤 호수를 가르고 가면 청평사 선착장에닿는다.여기에서 오봉산 기슭에 포근히 안겨 있는 청평사까지는 25분가량이소요된다.숲 속으로 이어지는 계곡의 오솔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제일 먼저거북바위가 나타난다.그 뒤로 아홉가지 소리를 낸다는 높이 7m의 구성폭포가 이어지고 환희령 마루의 바위 언덕에 평양공주와 상사뱀의 전설로 유명한공주탑(삼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다.청평사 바로 못미쳐 있는 고려정원은 오봉산의 모습을 한폭의 동양화로 담아내고 있다.선동교를 넘어 거북머리 모양의 석조에서 생수를 받아마시면 천년 고찰 청평사에 온 기분이 한결 상쾌해진다. 청평사까지가 답사코스라면 청평사 윗쪽의 오봉산 산행은 본격적인 등산로.모두 3개의 등산로가 형성돼 있는데 모두 화천쪽으로 통한다.기암절벽 사이에 박힌 노송의 송진 내음이 물씬 풍기는 오봉산은 이름 그대로 5개의 기암봉이 절묘하게 이어져 부드러운 주변산세를 압도한다.청평사에서 부드러운오솔길을 10분쯤 오르면 해탈문이란 편액이 걸린 커다란 문이 있고 문을 지나자마자 오른쪽 계곡으로 향한다.계곡을 따라 10분쯤 오르면 커다란 턱진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턱진 바위를 올라서면 길이 세 갈래로 갈린다.대부분 계곡으로 난 길을 택한다.여기에서 5분쯤 가면 계곡이 절벽처럼 가팔라지는데 비탈을 40분쯤 오르면 능선 잘루목에 올라설 수 있다.남쪽으로 암봉을넘으면 688봉을 지나 청평사로 갈 수 있고 북쪽으로 가파르게 솟은 암봉을택하면 정상으로 갈 수 있다. 소양호를 뒤로하고 북쪽으로 방향을 잡는다.능선 좌우로 까마득한 벼랑이펼쳐져있고 중간 중간 암릉도 도열해 있다.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홈통바위를 지나 10분쯤 가면 평탄한 길이 이어지며 곧이어 정상인 배후령에 닿는다. 정상에서 뒤돌아보면 발 아래 소양호가 넘실대고 오봉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암봉이 삐죽삐죽 솟아 있는 모습이 절경이다.청평사에서 해탈문∼정상∼배후령∼청평사 산행코스에 걸리는 시간은 3시간30분.
  • 사랑 다듬는 가위손 26년/서울 길음동 이발사 閔基朋씨 선행인생

    ◎양로원·고아원 찾아 일주일 5∼6일 ‘무료 출장’/87년 ‘무궁화봉사회’ 조직,전국 17곳 정기방문/“단칸 셋방 살지만 남 도울수 있어 너무 기뻐” “제가 가진 작은 기술로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기쁠 뿐입니다” 서울 성북구 길음2동 ‘칠칠 이발관’ 주인 閔基朋씨(55)는 1주일에 하루 이틀밖에 문을 열지 못한다.5∼6일을 장애인 시설이나 고아원,양로원 등을 찾아다니며 무료 이발 봉사를 하기 때문이다. 閔씨가 이발도구를 들고 정기적으로 찾는 곳은 17곳이나 된다.충북 음성과 경기도 가평의 꽃동네,서울 구산동 갱생원,한빛맹학교에 한달에 한번씩 들러 머리를 깎아준다.수도통합병원,은혜장애인요양원 등에도 정기적으로 가서 이발을 해준다. “아홉살 때 아버지를 잃은 뒤 배고파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습니다.그때 크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천안이 고향인 閔씨는 17세 때 상경,이발 기술을 배웠다.29세 때인 72년 지금의 칠칠 이발관을 열고 어릴 때의 결심을 26년째 실천에 옮기고 있다.처음에는 ‘장애인 무료’라는 글을 써붙이고 동네 불우이웃들에게 무료로 이발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뒤 불우시설을 찾아가 이발을 해주며 뜻을 같이하는 이발사들을 하나 둘 만날 수 있었다.이들과 함께 87년 ‘무궁화봉사회’를 만들었다.대한적십자사에서 자원봉사시간 1만시간 돌파 인정서를 받기도 했다. 요즘 무료이발 봉사에는 20∼30여명의 이미용사들이 함께 나간다.95년 7월 이발사 10여명과 명일동 시립직업훈련원에 갔을 때는 하루 종일 700명이 넘는 훈련생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손발이 퉁퉁불어 움직이지 못할 정도가 된 적도 있었다. 음성꽃동네에 갈 때는 새벽 6시30분에 서울을 떠난다.한 이발사가 70여명씩 2,100여명의 머리를 깎아준다. 영업을 거의 하지 못하는 閔씨는 한달 수입을 밝히기도 꺼린다.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인 이발관안의 단칸방에 부부가 산다.부인 李種源씨(55)도 척추를 다쳐 몸이 불편하다.두 아들을 두었고 장남(26)은 고려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복무중이다.그는 “돈에 욕심이 있었다면 봉사활동을 할 수 없었겠지요”라고 말한다.처음에는 가족들과의 갈등도 많았지만 지금은 ‘존경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 19일 이슬람 최대 절기 라마단 시작

    ◎메카 향해 예배·코란 가르침 실천/한달간 동틀때부터 해질녘까지 금식·금연/국내 10만여 신도 전국 5개 성원 등서 모임/어기면 중죄… 미성년자·임산부·환자는 제외 19일은 이슬람 최대 절기인 라마단이 시작되는 날이다.전세계 16억 모슬렘들과 함께 10만여명의 국내 이슬람신도(외국인 노동자 7만명 가량포함)들도 한달동안 동틀 때부터 해질 녘까지 금식에 들어간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서울 성원(聖院:모스크)을 비롯,부산·전북 전주·경기도 안양 및 광주 등 5개 성원,그리고 제주와 서울 마천동 임시성원 등에선 라마단 성월동안 저녁을 맞아 단식을 중단하는 아프타르모임을 매일 갖는 한편 남서서쪽 메카를 향해 타라위흐 예배를 올리며 형제애를 나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 이슬람국가 대사 등도 한남동의 모스크를 자주 찾아 코란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모슬렘들이 해가 떠있는 동안 먹고 마시는 것은 물론 성교와 흡연 등을 완전히 삼가는 것은 인내심과 하느님에 대한 복종심을 고취시키고 심신단련과 함께 건강한 생존의 기초를 닦아주는 한편 투명한 영혼으로 초월의 경지에 들수 있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 모슬렘들은 1년이 354일인 태음력을 따르는데 이슬람력으로 아홉번째 달이 ‘라마단’이다.올해는 19일에 시작해 내년 17일께 끝나고 12월8일께 또다시 라마단이 시작된다. 라마단은 육안으로 초승달이 보일 때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나라마다 기간이 다르며 우리나라에서도 음력 초하루인 19일에 달을 보지 못하면 20일부터 시작된다.끝나는 날 역시 29일째 달이 안 보이면 하루를 더 하도록 돼 있다. 라마단 금식은 이슬람의 지주이기 때문에 이를 어기는 것은 중죄이나 미성년자와 환자,임산부,수유중인 산모,50마일(약 80㎞)이상 여행하는 사람은 면제된다.그러나 면제사유가 해제되면 빠진 날만큼 금식기간을 채워야 하며,이를 고의로 어기면 벌로 60일동안 금식하거나 무효된 날짜만큼 금식하는 동시에 가난한 사람 60명을 흡족하게 먹여야 한다. 라마단이 끝나는 이슬람력 10월1일에는 ‘이둘피트르’(破斷祭)란 이름의 축제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불우이웃을 위해 특별자선을베푼다. 개신교인들은 92년부터 라마단 기간에 맞춰 이슬람 복음화를 기원하는 ‘역라마단 운동’을 펼치고 있다.창교 이래 이슬람이 기독교에 가장 큰 위협이 돼온데다가 아랍족이 유태인의 형제자손(아브라함의 서자인 이스마엘이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의 조상이라고 전함)이라고 믿기때문에 이들의 개종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이슬람교 중앙회 이주화 사무차장은 “기독교인의 금식기도나 불교신자들의 참선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라마단금식에 대해선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면서도 “해를 거듭할수록 이슬람교에 대한 인식이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선교는 희망적”이라고 낙관했다.
  • 간사이·덴버공항의 교훈(인천신공항 성공을 위해서:3­1)

    ◎거듭된 개항연기 막대한 경제손실/美 덴버공항 설계과정/관광객 급증 예측 못해/19억弗 이상 추가 지출 【덴버(미 콜로라도주) 崔哲昊 특파원】 하늘에서 내려다본 덴버국제공항(DIA)은 마치 사막의 대상들이 잠시 쉬어가기 위해 쳐놓은 천막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만큼 편안한 쉼터의 모습으로 와닿았다. 덴버의 진짜 위력은 시내에 들어서면서 찾아볼 수 있었다. 80년대 말 불어닥친 오일쇼크로 광산촌인 덴버는 그야말로 찬바람이 일었다. 시내 중심가의 브로드웨이에는 문닫은 상점이 열이면 아홉이었다. 지금은 열에 아홉이 다시 문을 열었다. 덴버공항의 효과가 시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콜로라도주립대 보고서에 따르면 약 9조달러의 상승효과를 가져다 주었다고 돼있다. 이러한 덴버공항에도 ‘수난’은 있었다. 덴버공항의 당초 개항일은 93년 10월. 그러나 무려 16개월이나 늦은 95년 2월28일에야 비로소 문을 열었다. 전반적인 규모의 확대때문이었다. 공항 신축 당시의 이용인구를 기초로 삼은 것이 큰 불찰이었다. 미국경제가 되살아나면서 컴퓨터,전화회사 등 첨단산업이 속속 유치되고 로키산맥을 찾는 관광객도 늘어날 것이란 예측을 못했다. 이용인구 예측이 바뀌면서 가장 먼저,그리고 가장 규모가 확대돼 바뀐 계획은 수하물자동운송장치. 여기에만 무려 2억9,000만달러의 추가 비용이 들어갔다. 회전식 수하물자동운송기계인 ‘캐로셀’의 추가설치가 급선무였다. 또 9월부터 눈 내리는 로키산맥의 밑동네 덴버는 스키족들이 크게 몰리기 때문에 일반 화물과 크기가 구별되는 스키를 처리하는 별도의 화물운송기계가 더 많이 필요했다. 자연히 승강장의 규모도 늘려야 했으며 비행기가 일시정지하거나 움직이는데 필요한 계류장도 확대됐다. 여기에 각각 2억5,000만달러와 3억5,000만달러가 더 들어갔다. 이밖에도 당초 계획했던 전기계기들이 속속 신형으로 바뀌면서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건설비 지출계획은 89년 9월 착공이후 무려 6차례나 수정됐다. 애초 13억4,000만달러로 책정된 공사비는 30억400만달러로 불어났다. 16억6,400만달러가 추가된 것이다. 결국 추가비용에 손실액을 합치면 모두 19억6,400만달러,우리 돈으로 무려 3조원 이상이 더 들어간 셈이다.
  • 김만중 ‘구운몽’ 현대소설로 재탄생

    ◎줄거리·인물 차용… 한승원씨 장편 ‘꿈’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소설가인 서포 김만중의 국문소설 ‘구운몽’이 현대소설로 새롭게 선보였다. 소설가 한승원씨(60)가 ‘구운몽’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창작한 장편 ‘꿈’(전 2권,문이당)을 펴냈다.‘구운몽’은 한국의 고전소설과 현대소설을 통틀어 해외에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 작가는 ‘꿈’을 ‘이설본(異說本) 구운몽’이라고 부른다.소설의 줄거리 일부와 등장인물을 ‘구운몽’에서 빌려온 만큼 두 작품의 얼개는 비슷하다. 남악 형산의 연화봉에 있는 도량에서 불도를 닦던 열아홉 살의 주인공 성진은 그를 후계자로 삼고자 하는 육관대사의 뜻에 따라 인간세상에 태어난다.시대는 중국의 당나라.소유라는 이름을 얻은 성진은 과거에 급제한 뒤 토번족의 침략을 막아내는 등 공을 세운다.그 덕에 천자의 공주 등 무려 여덟 여자와 질펀한 사랑을 나눈다.아들 하나와 딸 일곱을 둔 그는 사위들이 역적모의에 연루돼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벼슬을 그만 둔다.인생의 허무를 느끼던 그는 마침내 육관대사의 호통소리에 꿈을 깨고 만다. 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인도·중국 등에 흔한 환몽(幻夢)구조의 이야기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동정호의 용왕이나 팔선녀 등 황당한 내용도 적지 않지만 아기자기한 얘깃거리가 시선을 끈다. 작가는 “구운(九雲)은 아홉 사람이 꾼 한바탕의 허무한 꿈만을 뜻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도교의 초월세계나 불교의 극락,혹은 기독교의 천국을 의미하기도 한다.따라서 ‘꿈’은 현재의 욕심에서 벗어나 참된 삶의 세계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 활짝 열린 금강산 뱃길­이모저모

    ◎“구룡폭포 물줄기 하늘서 쏟아지는 듯”/북,관광객 점심식사 장소 제공/3개조 나눠 코스별 등반/민간인 첫 통화 1분37초 ●금강산 관광 첫날인 19일 장전항의 기온은 영하 1도로 당초 예상보다 따뜻했다.오후들어 기온은 영상 6∼7도로 오르며 관광하기에 안성마춤인 맑고 쾌청한 날씨를 보였다. ●18일 오후 5시30분 동해항을 출발한 금강산 관광선은 19일 오전 7시30분쯤 장전항의 임시계류장에 무사히 정박.오전 9시부터 30여분간 입북 수속을 마친 관광객들은 구룡연,만물상,해금강 등 3개 관광코스로 나뉘어 버스에 타고 본격적인 금강산 관광에 나섰다.버스는 현대가 미리 북한에 보낸 것으로 이날 35대가 운행됐다. 관광객들의 점심은 코스별로 마련된 식당에서 현대측이 준비한 보온도시락(반찬 4가지)으로 해결.북한측은 구룡폭포코스는 목란관,만물상코스는 금강산호텔,해금강코스는 단풍관을 식사장소로 제공하고 물과 국을 나눠줬다. 만물상코스에서 일부 연로한 관광객들은 등산을 포기,버스에서 비디오를 시청하며 일행을 기다리기도.관광을 마친관광객을 태운 첫 버스가 오후 4시30분쯤 유람선에 도착해 오후 6시에 모든 관광객들이 승선을 완료. ●소설가 이문열씨는 구룡폭포를 다녀온 뒤 전화로 ‘역시 절경이었다”며 “설악산이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고 소감을 피력. 그는 또 아홉마리 용이 서로 싸우다가 쫓겨가 숨었다는 전설이 담긴 이 폭포는 “두개의 커다란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마치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면서 “좌우로 붙어있는 얼음과 함께 장관을 이뤘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는 “금강호로 돌아오는 길 양 옆에 있는 철조망과 군복차림의 사람들은 낯선 이국땅이라는 사실을 절감케 했다.”고 지적. ○정 명예회장 북 인사 접촉 안해 ●북한측 고위인사의 재접촉 가능성 때문에 언론의 촉각을 곤두세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관광을 가지 않고 금강산 초대소에서 하루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측은 “장전항 도착 이후 가장 먼저 하선한 정 명예회장이 조선아태평화재단 황철 감사관의 영접을 받았으며 다른 북한측 인사와는 접촉하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고 전언. ●금강산관광 첫 날 일정을 무사히 마친 현대측은 북측과 실무회의를 갖고 관광불편사항을 점검.이날 만물상으로 가는 도로가 일부 얼었다는 지적에 따라 19일 밤 북한과 현대 양쪽 근로자들이 투입돼 모래 등을 뿌렸다. ●순수한 관광을 조건으로 내건 북한측은 우리쪽의 일부 취재진이 점심을 먹다 식당봉사원들과 대화를 시도하자 즉각 제지.기자들은 이후 관광코스로 이동하면서 만나는 북한 주민들과 끈질기게 접촉하려 했으나 번번이 북한지도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북 주민과 접촉 제지 ●북한의 입국거부자 숫자를 놓고 현대그룹의 PR사업본부와 대북사업단이 집계한 숫자와 거부경위가 서로 틀리는 등 오락가락해 한동안 혼선. PR사업본부측은 금강호에는 24명이 남아있으며 KBS기자 15명,조선일보 기자 5명,통일부 관계자 4명이라고 밝혔다.또 KBS기자 15명 가운데 4명이 배에서 무단하선,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조사받고 있으며 이들의 거취는 아직 알수 없다고 설명했다.그러나현대 대북사업단은 입국거부자로 분류돼 배에 잔류해 있는 인원이 20명이며 KBS기자 4명은 거부자 명단에 들어있지 않아 관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최종 확인. ●금강호에 남아 있는 인원은 총 25명으로 확인.이 가운데 애초부터 하선이 금지된 금강호 호텔지배인과 러시아 여성무용수 4명 등 5명을 제외한 언론사관련자는 20명.승선이 거부된 KBS관계자 11명 가운데는 ‘사랑의 리퀘스트’팀 5명이 포함돼 있는데 이중에는 원로 코미디언 송해씨도 있어 눈길. 현대측에 따르면 송씨는 북한측에 제출한 신청서의 직장난에 KBS라고 기재,억울한 잔류자가 됐다고. ○20일 671명 떠나기로 ●관광객들은 북측 영해에 들어서기 전까지 선내에 마련된 공중전화 4대를 이용,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했다.장전항 입항부터는 4개 회선의 국제전화를 통해 남쪽 가족과 통화. 처음으로 북한에서 남한으로 전화를 한 관광객은 黃규연씨(68·동아수산회장·서울 송파구 문정2동)로 밝혀졌다.黃씨는 19일 오전 8시58분쯤 장전항에 정박 중인 금강호에서 온세통신 교환원을 통해 서울에 사는 아들 黃인성씨(49·동아수산사장)와 1분37초 동안 통화.이날 통화는 분단이후 50여년만에 민간인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이뤄진 것. ●20일 출항하는 현대봉래호의 승선인원은 관광객 671명,관광안내원 34명,승무원 288명 등 모두 1,011명.봉래호에 승선할 내·외신 취재진은 88명으로 주로 잡지·지방지 기자로 구성됐다.입북거부 소동을 빚고 있는 조선일보는 출판국 기자 4명이 들어갈 예정이며 KBS는 신청하지 않았다.
  • 신용 부족한 기업 정부가 보증을/은행문을 열어라

    ◎기업 “돈 구경좀 하자”/은행 “줄곳 없어 답답” 돈이 안 돈다. 금융권에서만 맴돌 뿐 정작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대기업은 빚을 갚으려 하고 중소기업은 돈가뭄 타령이다. 금융기관들은 빌려줄 곳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정부는 9월 말 금융 구조조정이 일단락되면 신용경색이 풀릴 것이라고 장담했으나 10월 들어서도 달라진 것이 없다. 신(新)신용경색의 실태를 점검하고 대책을 알아본다. ■시중자금이 넘쳐도 중소기업엔 ‘그림의 떡’=서울 구로동에서 자동차 부품회사 S기공을 운영하는 吳모사장. 중소기업에 무역금융을 지원하겠다는 정부 말만 믿고 지난 23일 가까운 K은행을 찾았다가 속만 상했다. 일본으로부터 3,000만원 어치를 주문받아 하청대금 1,000만원을 빌리려 했는데 무산됐다. 은행 관계자는 상품 발주서는 보지 않고 일반대출만 권유했다. 거래실적이 미미하고 신용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대신 재산세를 낸 보증인과 함께 인감증명서 등 서류를 갖고 오면 대출해주겠다고 했다. 吳사장은 정부와 은행에 배신감을 느꼈다. 자동차 수리공구를 수출하는 태영의 申利撤 사장은 시설운전자금 7,000만원을 받기 위해 최근 은행을 찾았다. 수출실적과 기술력을 설명했으나 담당직원은 신용보증기관의 보증서만 요구했다. 신용보증기관은 이미 보증한도를 넘었다며 거절했다. 연구개발자금 보증대출은 가능하냐고 묻자 벤처기업 허가와 기술특허 등의 절차를 밟으라고 했다. ■부실대출 공포에 사로잡힌 은행들=나중에 업계 관계자들에게 얘기하자 “왜 담당직원에게 미리 인사를 하지 않았느냐”고 면박을 줬다. 申사장은 “은행이 부실대출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며 “기술력과 장래성을 담보로 한 대출심사가 정말 불가능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시화공단의 중소 수출업체인 K전자는 최근 거래은행에서 신용보증기금의 8억원짜리 보증서를 내 10억원의 운전자금 대출을 받았다. 그러나 은행은 자체 신용제공이 2억원뿐인데도 우대금리에 3.5%의 가산금리를 물렸고 매달 1,000만원씩 5년간 정기적금 가입과 직원 40여명의 급여이체를 요구했다. 수출업체니까 외환 네고실적도 더 높여줘야 한다고 했다. 이 회사 Y모 자금담당 상무는 “보증기관을 통해 대출받았는데도 은행은 엄청난 폭리를 취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출해줄 만한 기업도 많지 않아=시중은행들은 최근 각 지점에 ‘대출세일’을 독촉하고 나섰다. 시중금리가 내려가는 상황에서 대출을 늘리지 않으면 역마진(예금금리가 대출금리를 웃도는 현상)이 발생,경영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선 지점장들은 답답해한다. 한 상업은행 지점장의 얘기.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시한부 생명’인지 알수 없다. 부실대출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당국은 하지만 신용이 나쁜 기업에 마구 대출해 줘도 괜찮다는 얘기냐. 돈이 돌게 하려면 정부가 지금보다 기업신용의 좀더 많은 부분을 책임져야 한다” 기업은행 鞠台模 무교지점장은 “지금같은 불경기에 기업이 대출금리 이상의 수익을 올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 은행 자금담당 임원은 “돈이 금융기관에서 공(空)회전하는 게 은행의 책임만은 아니다”며 “중소기업에 돈을 주려고 모니터링하면 열 가운데 아홉이 신용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리스크 관리차원에서 금리를 더 요구하려 해도 당국의 금리인하 방침때문에 대출이 무산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30대 그룹에도 무역금융 허용해야”=무엇보다 경기를 활성화해야 한다. 정책 당국자는 사견(私見)임을 전제로 수출진작을 위해 필요하다면 30대 그룹에도 무역금융을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은행과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신용이 나쁜 기업에 정부가 보증을 서야 하며 이를 위해 신용보증기금의 보증한도를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姜柄晧 한양대교수는 은행직원의 신분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금융 구조조정을 더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의 일선 지점장들은 중소기업이 신용대출을 요구하기 앞서에 투명한 회계기준을 바탕으로 자체 신용을 높이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朴聖熙 세종증권 압구정지점장은 부동산을 담보로 한 ‘모기지 본드(mortgage bond)’의 발행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 기생 송설이와 이용교(秘錄 南柯夢:28)

    ◎텅빈 국고 채우려 황실선 매관매작/탐관오리 들끓어/당시 전국 군수·도지사 3분의 2가 돈으로 벼슬/‘개혁’ 빌미 과거제 폐지 실업자도 날로 늘기만/이름난 한 ‘백수’ 이용교 돈 많은 과부기생에 접근/돈 꾸러미 슬쩍 던져준뒤 일부러 애간장 태우는데…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해가 1897년이니 지금으로부터 101년 전의 일이었다.왕국이 제국이 됐으니 이름으로 본다면,발전이다.마치 국민소득 1만달러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같은 기분이었으나 속된 말로 속빈 강정이나 다름없었다.국고는 텅 비어 마치 IMF사태와 같았다. 도무지 세원(稅源)이 없어 황실에서는 벼슬을 팔아 국고를 충당할 수 밖에 없었다.이른바 매관매작(賣官賣爵)이란 악습이 생겨난 것이다.어떤 뜻에서 이 악습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하겠다. 무술년(戊戌年 1898년)과 기해년(己亥年 1899년) 사이에 국가재정이 아주 어려워 매관매작으로 날을 지샜다.그때 전국의 수령(守令=군수) 방백(方伯=도지사)중 3분의 2가 벼슬을 돈으로 산 관리들이었다.그래서 경향(京鄕)의 돈있는 재산가들은 거의 벼슬자리를 사려고 혈안이 되었는데 무턱대고 돈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요령이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헛돈만 쓰고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매관매작이 대한제국 초년에 심했던 것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갑자기 과거제도를 폐지해버린 때문이기도 했다.아무 후속조처도 없이 과거제도를 폐지해버리자 요즘처럼 실직자가 늘어나고 사정으로 자리가 많이 비었으나 탐관오리만 자리를 메우게 되었다.이런 때는 머리는 좋을 지 모르지만 자질은 형편없는 사람이 요직을 차지하게 마련이다.여기 기생 송설(松雪)이와 기둥서방 이용교(李容敎)의 이야기를 들어보면,구한말 탐관오리의 실상을 역력히 들여다볼 수 있다. 하루는 박상우(朴相雨)가 와서 기생 송설(松雪)이는 “영감님의 고향사람이 아닙니까”하고 물었다.“그렇습니다.그러나 본시 송설이는 전북 고부(古阜) 여자였는데,아홉 살때 그 어미를 따라 우리 고향(김천)으로 온 여자입니다.너무 가난해 남의집 셋방살이를 하며 품팔이와 절구질로 어렵게 살았고 심지어 어미가 딸 송설이를 관기(官妓)로 팔았습니다.그때 송설의 나이 열여덟이었으니 뭇 사내가 탐을 냈을 것이 아닙니까.아전 백가(白家)놈도 그 중의 하나였는데,송설이를 하루밤을 데리고 자보더니 그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는지 공금을 유용하면서까지 송설이를 속량(粟良=관기에서 해방해줌)해주었습니다” 송설이 이렇게 해서 관기 신세를 면하게 되었고,그 뒤 김천시장에서 술집을 차려 이름을 고부댁이라 했다고 하며 배문옥(裵文玉)이라는 그곳 재산가의 첩이 돼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송설이는 김천시장에서 술파는 영업을 하다가 백모라는 아전 놈과 헤어지고 배문옥이라는 자의 첩이 되어 수천금의 돈을 벌었는데,배문옥과도 재산문제로 다투다가 헤어지고 말았지요.그러나 불과 10년 사이 부동산이 1만여금에 이르러 김천에서는 그녀를 탐내는 사내가 많았다고 합니다.그런데 엉뚱하게 이용교(李容敎)라는 상주(尙州)사람이 나타나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용교는 일찍이 무과(武科)에 합격하여 한때 오위장(五衛將)으로 날렸으나 개혁바람에 직을 잃고 실업자가 되었다.이곳저곳 배회하다 김천에 당도했는데,돈많은 과부 송설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작전을 개시했다.돈 좋아하는 여자는 돈으로 유혹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형님에게서 300냥을 꾸었다.그리고 그 돈을 송설이에게 맡겼다. 정랑(正郞=六曹의 正五品) 이홍교(李弘敎)는 이용교의 친형이었다. 이홍교 역시 개혁에 밀려난 빈털털이라 서울에서 놀고 먹는 무업자(無業者=실업자) 신세였다.그러나 다행히 전판서 김선근(金善根)과 친하게 지냈다.김선근은 구정권때 송경유수(松京留守,개성시장)로 부임해 떼돈을 벌었다.그가 이홍교에게 묻기를 “자네 고향 경북 상주에는 땅값이 싸지 않겠나”고 했다. 이홍교는 “경기지방보다야 싸지요.매두락(斗落)에 상답(上畓)이 1백여금이고,중답(中畓)이 80금,하답(下畓)이 50금 정도밖에 안됩니다”고 하였다. 김선근이 다시 묻기를 “가령 1두락에 1백금을 주고 상답을 사면 도지(賭地=소작료)는 얼마나 받는가”하기에 대답하기를 “대두(大斗)로 열한말(斗) 가량 됩니다”고 하였다.김선근이 또 묻기를 “장마와 가뭄이 든 해에도 도지를 받을 수가 있을까” 하면서 “내가 상주에 몇천마지기 사 우리집 식량으로 삼을 터이니 자네가 거간꾼이 되어 좋은 땅을 물색해주게” 이렇게 해서 이홍교는 김선근의 부탁을 받고 김천·개녕(開寧) 등지에 땅을 사서 매년 도지를 받아 서울로 보내고 있었다.이 사실을 알고 동생 이용교가 형을 찾아갔다. “형님,급히 쓸일이 생겨 돈이 필요하니 3백금만 꾸어주시오.곧 갚으리다” 하였다. 형은 동생의 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3백금을 꾸어주었다. 이용교는 이 돈을 송설이에게 보냈다.불시에 3백금을 횡재한 송설이는 이용교가 자기집을 찾아와 주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석달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이용교는 그때 금산군수(金山=김천)인 민영집(閔泳集)과 사귀면서 군청에만 자주 드나들뿐 송설이의 집을 일부러 외면하였다. 그러기를 3개월,어느날 길에서 두사람이 만났다.송설이는 반색하며 “영감님 왜 우리집에 오시지 않습니까.오늘은 저와 함께 우리집으로 가십시다”하면서손을 잡아 끌었다.그러나 이용교는 시치미를 떼고 말하기를 “요즘 관청일이 바빠 몸을 뺄수가 없네그려.당장 지금이라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오늘은 못가겠네” 몸이 단 송설이는 이용교의 손을 잡은 채 “그렇지만 잠깐이면 됩니다.가십시다”하고 억지로 잡아 끌었다.이용교가 마지 못한척 끌리어 송설이 집에 갔는데, 송설이는 돈 한푼 없는 이용교를 상좌에 모시고 주안상을 내놓았다. 원래 김천 과하주(過夏酒)라면 전국에서도 이름이 나있는 향주(香酒)였다.거기다 해산물에 산나물이 나와 진수성찬이었다.한잔 한잔 들다 5,6배에 이르러 이용교는 크게 취했다. 그러나 이용교는 고맙다고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그쯤에서 취하면 연극이 들통날까 두려워 벌떡 일어난 것이다.송설이는 그것도 모르고 한사코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걸려든 것이었다. 송설이는 아래 위 의복과 갓을 벗겨 옷장 속에 넣고 자물쇠를 채운 다음 저녁상을 내왔다.이용교가 눈을 들고 보니,식전방장(食前方丈=고배로 고여 놓은 음식)이었다.그러나 벌써 술에 취해 다 먹지 못하고 상을 물리치면서 이용교는 또다시 집에 간다고 일어섰다.그러나 송설이는 이용교의 의관을 내주지 않고 한사코 만류했다.이용교는 세부득해 유숙하는 척 했다. 이용교앞에 다시 과하주가 나오고 그는 어느 덧 취하여 골아 떨어졌다. 이것이 무슨 세상인가.드디어 안아다가 요 위에 누인 뒤 솜이불을 덮더니 송설이 알몸이 돼 이불속으로 들어왔다.누가 남자만 여자를 좋아한다 했던가.여자도 남자를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이용교는 술에 취하여 몽롱한 가운데 정신이 없다가 점점 깨어보니 곱고 따스한 여자의 살이 닿지 않는가. 이용교는 송설인줄 알면서도 시침을 떼고 “이 집이 뉘 집이며 오늘밤이 무슨 밤인가” 하면서 일어나 앉으려 하였다. 송설이가 말하기를 “영감님께서는 무산양대(巫山陽坮=운우의 정)를 모르십니까.아침에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돼 조석으로 양대로 내려간다는 구절을 모르십니까.비록 연꽃과 같은 젊은 기생 보다야 못합니다마는…” 하면서 다음 말을 잊지 못하였다.
  • 총격전이 벌어졌다면?/한충목 열사 범추위 집행위원장(굄돌)

    지난 대통령선거 때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이회창후보가 비선조직을 통해 판문점에서의 총격을 요청했다는 안기부의 주장은 참으로 가공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일어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선거를 하루이틀 앞둔 상황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면 국가 전체는 준전시 상태로 되고 국민은 공포에 질린 상태로 투표장에 가야만 했을 것이다. 기표소에서 붓뚜껑을 들고 우리 구민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열 중 아홉은 후보자의 공약이나 정견을 판단기준에서 제외시키고 유일하게 북을 상대로 한판 싸움을 벌일 수 있는 절대 반공주의자를 선택하리라는 상상은 너무 지나친 것일까? 1987년 6월항쟁의 성과로 이룬 대통령 직선 때 양김은 분열했다. 거기에다 KAL기 격추사건의 주범 김현희가 김포공항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전국에 TV를 통해 생중계되었고 바로 며칠후 투표가 있었다. 선거결과는 노태우 후보의 승리였다. 만약에 양김이 분열하지 않고 단일후보로 선거에 나선 상황이라도 김현희가 등장했다면 단일후보가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라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지난 50년동안의 분단상황은 분단에 기생하는 권력층을 형성해왔고,지금도 그러한 상태는 지속된다. 통일이 없는 민주화나,민주화가 없는 통일에서는 모두 절름발이 민주화나 절름발이 통일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지난 군사독재 시절 반공으로써 국민을 길들이고,선거 때만 되면 간첩이 등장하는,그래서 현재 대통령이 되어 있는 분조차 한때는 용공조작에 시달린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4,000만 국민과 7,000만 겨레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5년동안의 집권을 보장받으려 했다면 이는 천형에 처해도 부족할 민족적 반역행위다. 안기부의 고문설을 포함하여 이번 사건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하고,관련 책임자를 엄하게 다스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漢字 교육/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한자(漢字)를 둘러싼 실수나 웃지 못할 희비극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얼마전 전주시의 한 외곽에서 차량을 검문하던 의경이 운전자가 제시한 주민등록증의 이름중 ‘설(卨)’자를 보고 경찰청 상황실에다 “탱크처럼 생긴 한자인데 어떻게 읽느냐?”고 물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자깨나 공부했다는 사람도 읽을 때와 쓸 때가 헷갈릴 적이 많다. 어쨌든 한자문맹 현상은 지식수준 탓이 아니라 학교에서 제대로 한자를 가르치지 않은 때문이다. 지난해 전국 4년제 49개대학 61개 학과 졸업생 100명을 대상으로 한국 한자능력검정회가 치른 한자시험에서 아홉 구(九)자를 못쓰는 사람이 무려 55%나 된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자신의 이름을 정확하게 쓰지 못하거나 부모이름을 쓰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했다. 전에는 대학생들이 교재에 나오는 한문을 읽지 못하면 창피하게 여겼으나 지금은 ‘한글세대’를 내세워 모르는 것을 당연시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지금은 동북아(東北亞)가 새 세기의 문화경제를 함께 이뤄가는 시대다. 베이징(北京)이나도쿄(東京)를 여행하면서 한자로 된 간판이나 표지판을 읽지 못한다면 전혀 자랑스러울 것이 못된다. 북한은 68년이후 문화경제적 고립을 실감하여 고교와 대학과정에서 각각 1,500자씩 3,000자의 한자교육을 시키고 있고 일본은 중학교까지 상용한자 1,945자,사회에서는 3,000여자를 이용하여 문자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우리도 정식과정에는 없지만 초중고에서 학교재량으로 1,800자를 가르치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방치된 감이다. 경찰청은 주민등록증에 기재된 한자이름을 읽지 못하거나 잘못 읽어 업무수행의 어려움을 겪는 일이 잦아지자 전국 5만여명의 의경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한자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자를 모르면 한자가 7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말의 참된 의미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우리 전통을 제대로 아는데도 도움이 되지못한다. 한자를 읽지못하는 층의 85%가 ‘한자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한 것만 봐도 한자교육의 불가피성을 절감할수 있다. 한글전용이니 국한문 혼용이니의 논쟁을 떠나 실생활에서 불편한가 아닌가가 먼저 문제다. 일시적 혼란이 따르더라도 실용적인 한자교육의 시급성은 눈앞에 닥친 현실이라는 생각이다.
  • 연하 남편/李啓弘 논설위원(外言內言)

    서른 아홉살 노처녀 탤런트 김미숙씨가 결혼한다고 한다. 그의 결혼 뉴스보다 4살 연하의 남자와 결혼한다고 해서 화제다. 이에 앞서 이혼경력이 있는 황신혜씨가 얼마전 두살 연하의 총각과 결혼했고,역시 이혼경력이 있는 탤런트 견미리씨도 지난 4월 두살 아래의 총각과 결혼했다. 리즈 테일러가 20몇살 연하의 남자와 결혼한 것에 비하면 이들은 좀 ‘손해’본 부분도 있지만 우리네 현실에선 복받은 여성들로 부러움을 살만하다. 연예인 뿐아니라 일반 여성들도 요즘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 때문인지 어느 화장품회사는 ‘연하의 남자가 좋다. 연하의 피부가 좋다’는 메시지의 TV 광고를 내보내 재미를 보았다. 연상의 여인과 결혼하는 풍조는 우리만이 ‘특허’를 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계적 조류가 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상의 아내가 70년 16%이던 것이 87년 22%,90년대초에는 26%로 늘었다. 일본도 연상의 아내가 70년 10.3%에서 95년 17.7%로 배가까이 중가했다. 우리의 경우최근 한 결혼전문업체 조사에 따르면 20,30대 미혼남녀중 70%안팎이 연상의 여성,연하의 남자와 결혼해도 상관이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어느 직장에서 있었던 일. 37세 노처녀 직장인이 결혼을 하려고 발버둥을 쳐도 마땅한 남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결혼조건은 까다로운 것도 아닌 그저 자신보다 두세살 위의 남자라는 것. 그런데도 상대가 없었다. 체념한 나머지 잠시 눈아래로 시선을 돌렸더니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손쉽게 4살 연하의 남자를 골랐으며,지금은 아이 하나와 함께 세식구가 ‘날마다 축제’처럼 살고 있다는 것. 이를 근거로 하면 올드 미스라고 해서 가족이나 본인이 애가 달아 있을 필요는 없을 것같다. 따지고보면 우리는 연상의 아내 역사가 깊다. 그러나 그것은 다분히 노동력을 얻는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 동기의 전부였다. 지금은 그 동기가 여러가지로 나온다. 성취욕구가 강한 여성이 일에 파묻혀 결혼적령기를 놓친뒤 남자를 찾지만 머리는 반쯤 벗겨지고 배가 불룩한 볼품없는 가장들만 만나게 돼 아예 어린 남성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많은 사람은 경제능력 사회적신분확보 등의 상품성이 있으나 이젠 여성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고,무엇보다 정형파괴,장르파괴,영역파괴라는 개성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선택의 폭은 넓어졌다. 가부장적 권위의식 대신 친구처럼 누나처럼 살 수 있는 풍토도 조성됐다. 한때 최상의 남편상으로 헝그리 정신의 생존력과 돌파력을 쳤지만 지금은 이런 강인함보다 섬세한 동반자로서의 가치,상호 보완의 의미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더니 이젠 결혼에는 규격이 없는 시대인 것같다.
  • 대중음악(한국문화 50년:11·끝)

    ◎60년대 금지곡 양산… 최대위기/최근 랩·댄스 주류로… 日 가요 상률 초읽기 우리 대중가요의 빈약한 하드웨어를 채운건 해방의 감격과 정부수립 의욕이었다. 레코딩조차 힘든 상황에서도 ‘귀국선’‘고향만리’등 대중가요로 시름을 달랬다. 6·25전쟁은 소프트웨어를 바꾸어 ‘전우여 잘자라’‘전선야곡’‘단장의 미아리고개’ 등 전선주제 노래들이 폐허의 서러움에서 피어났다. 60년대에는 미8군무대 출신 가수들의 팝음악은 트로트 일변도의 풍속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노란샤쓰의 사나이’의 한명숙,현미,최희준,패티김,신중현 등이 활약했다. 하지만 대세는 트로트였다. 50년대 후반 ‘열아홉 순정’으로 명성을 얻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비롯,‘안개낀 장충단공원’의 배호,‘빨간 구두 아가씨’의 남일해가 뒤를 이었다. 이 흐름은 70년대 나훈아·남진 라이벌시대를 거쳐,80년대 주현미 송대관 태진아 등으로 맥을 이었다. 5·16군부정권은 62년 방송윤리위원회에 칼을 댔다. ‘동백아가씨’를 비롯, 수많은 곡들이 금지곡으로 지정돼 가요계의 위기를 맞는다. 누르면 튀는게 청년문화. 70년대의 암울함을 청바지와 통기타·장발로 상징되는 포크음악은 억압을 참을 수 없었다. 한대수를 비롯해 서유석,김민기,양희은,송창식 등이 포크선풍으로 자유의 몸짓과 대항문화를 주도했다. 그러나 이들이 공안당국의 괘씸죄에 걸리고 설상가상으로 70년 중반 ‘천재적 아티스트’ 신중현 등이 대마초사건에 휘말리면서 대중가요는 침체일로를 걷는다. 80년대는 조용필의 시대.70년대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스타는 대마초 은둔의 세월을 보상하려는듯 ‘창밖의 여자’로 한을 푼 뒤 80년대 중반까지 가요계를 휩쓴다. 변진섭·신승훈 등의 발라드로 문을 연 90년대는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광풍으로 새 국면을 맞는다.‘난 알아요’로 시작된 노도 앞에서 가요사는 새로 씌어진다. 랩·댄스뮤직이 주류로 떠오르고 10대가 소비시장의 주고객으로 등장한 것이다. H.O.T,젝스키스,영턱스 클럽,지누션 등의 댄스그룹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왔다. 왜색·표절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대중가요는 여전히 백척간두의 앞날을 맞고 있다. 일본 대중가요의 공식적인 ‘한국상륙’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개방을 앞둔 대중음악의 제일 큰 과제다.
  • 초기대응/소극적 대처… 범인에 당하기 일쑤(위기의 경찰:2)

    ◎‘과잉진압’ 비난 우려… 가스총·공포탄만/체계적 교육도 안돼 올 검거중 54명 사상/“총기 사용 재량·면책범위 확대 필요” 제기 지난해 11월 광주시 서구 양동의 한 여관방에서 절도 피의자를 잡기 위해 급파됐던 서울 동대문경찰서 소속 형사 두명이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옆구리를 찔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범인이 가스총을 맞고도 끄떡 없이 흉기를 들이댄 것이다. 당시 현장을 지휘했던 한 경찰 간부는 “그 때는 공권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초기 대응이 적절치 못했다고도 털어놓았다. 우리 경찰의 범인 체포나 검문 과정은 너무 안이하고 느슨하다.경찰청에 따르면 올들어 범인을 붙잡으려던 경찰관 2명이 숨지고 52명이 크게 다쳤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시행령에는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거나 범했다고 판단되면 총기를 사용할 수 있게 돼있다. 그러나 일선 경찰관은 통상 6발이 장전된 권총으로 두발의 공포탄을 쏜 뒤 상황에 따라 실탄을 쏘기 때문에 민첩한 범인에게는 당하기 십상이다.경찰관 가운데 열에 아홉은 실제로 범인과 맞닥뜨리면 당황한다.검거요령 실전교육을 거의 받지 못해 일을 그르치기 일쑤다. 탈옥수 申昌源도 지난해 10월 천안에서 대치하던 경찰에게 가스총을 맞았으나 밀치고 달아났다.퇴로 차단 등 사전조치 없이 어설프게 대응했다가 눈앞에서 놓친 것이다.지난 16일 서울 포이동에 나타난 申을 놓친 것도 초기대응을 잘못했기 때문이다.申을 검문한 경찰관은 공포탄조차 쏘지 않았다.물론 실탄은 쏠 엄두도 못냈다. 우리 경찰이 초기 대응에 소극적인 이유는 국민 감정과도 관련이 있다.자칫하다가는 ‘과잉 진압’이라는 비난을 각오를 해야 한다. 申昌源 사건을 계기로 상당수 경찰관들은 범죄 용의자와 처음부터 강력히 맞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이를 위해 체계적인 초기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미국에서처럼 총기 사용 재량권을 확대하고 경찰의 면책 범위도 넓혀야한다는 것이다.범인 검거 요령에 관한 모델을 만들어 교육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수사관은 “가차 없이 실탄을 쏘는 미국과 총기 사용을 자제하면서도검거에 실패하는 일이 적은 일본 등 외국의 사례를 연구,초기대응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金 대통령­전경련회장단 합의문

    △첫째,외환시장의 안정과 외채문제 해결의 근본은 수출증대에 있으므로 기업은 수출증대에 매진하고 정부는 수출입 금융이 정상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한다. ­수출보험기금에 대한 재정출연을 확대,L/C를 수취한 모든 중소·중견기업에 수출신용보증을 제공하며 D/A수출 환어음매입이 확대되도록 한다. ­신용보증기관에 대해 하반기중 5천억원을 추가 출연,수출중소기업의 신용보증여력을 확대한다. △둘째,정부는 금융산업의 구조조정 작업을 신속하게 진행하고 그 추진과정에서 금융시스템이 안정되도록 노력한다. △셋째,재계는 구조개혁 5대원칙을 재확인하고 구조조정노력에 박차를 가한다.대기업간의 사업교환은 해당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정부는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신속히 추진되기를 희망하며 제도적 지원방안을 강구한다. △넷째,재계는 부당한 내부거래를 통한 계열사 지원 관행을 청산하여 한계기업을 정리하고 공정한 경쟁풍토를 조성한다. △다섯째,정부와 재계는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고 제2기 노사정위원회에서 고용안정과 근로자의 생활안정을 위해 실효성있는 방안을 논의한다. △여섯째,정부는 중소기업의 자금난 해소에 노력하며 재계는 중소기업과의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구축해나간다. △일곱째,정부는 적정수준의 내수기반이 확보될 수 있도록 정부 예산과 공기업예산을 조기집행하고 통합재정수지적자가 지난 4월 IMF와 합의한 1.7%수준에서 4%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자동차·가전제품 등은 특별소비세 탄력세율의 인하적용을 검토한다. △여덟째,정부는 공기업 민영화와 경영혁신을 과감히 추진,구조개혁에 솔선하고 현행규제의 절반수준을 금년내 철폐 또는 완화한다. △아홉째,재계는 정부와 힘을 합쳐 경제살리기에 새로운 각오로 임할 것이며 정부는 기업들이 구조조정과 경쟁력 향상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 金 대통령 訪美­미국과의 인연

    ◎72·82년 망명 이어 10번째 방문/61년 의원 신분으로 처음 찾아/71년엔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뉴욕=梁承賢 특파원】 金대통령으로서는 이번이 열번째 미국 방문이다.金대통령은 지난 60년대말 의원신분으로 미 국무부의 초청을 받아 처음 미국과 인연을 맺었다.미국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신민당 대통령 후보자격으로 방문한 71년 두번째 방문부터였다.이 때만 해도 박해와 탄압의 상징과는 꽤거리가 있었다. 세번째는 국내에 10월 유신이 선포된 72년 10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의 이른바 ‘1차 망명’때였다.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등 미국내 지우(知友)가 생긴 것도 이 무렵이었다.金대통령은 당시 해외 민주화단체를 결성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을 분주히 왕래했다.그러다 일본 도꾜에서 납치돼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동교동에서 가택 연금생활에 들어갔다. 80년 사형수로 수감된뒤 풀려난 82년 12월부터 85년 2월까지는 네번째이자 ‘2차 망명’시기였다.全斗煥 전 대통령의 방미 대가로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91년 10월의 다섯번째는 야당총재 자격으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92년 4월에는 LA폭동으로 비탄에 빠진 동포들을 위로하기 위해 찾았다.당시 빌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후보와 면담했다.93년 9월과 10월에는 애틀란타 뉴욕 피츠버그를 방문했다. 95년 4∼5월에는 뉴욕 워싱턴 휴스톤을 차례로 찾았으며,부시 전 미 대통령과도 환담했다.97년 4월 국민회의 총재로 뉴욕과 워싱턴을 방문,조지타운 대학과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네번째 대권도전 의사를 밝혔던 때가 아홉번째의 방미였다.
  • 신작성가 합창곡 발표회

    한국교회음악작곡가협회(회장 백태현)가 주최하는 제29회 신작성가 합창곡 발표회가 28일 하오 7시30분 서울 예닮교회에서 열린다.출품한 작곡가는 이성옥·이원정·이민수·김영철·한재희·임기재·김창재·한태근·김은석·김인철·조영배·주성희·이중화·홍권옥·백태현·오진득 씨 등.석성환씨가 지휘하는 아가페 앙상블이 ‘어머님의 믿음’ 등 아홉곡을,백선용씨가 지휘하는 크리스찬 코럴이 ‘하나님의 꽃송이’ 등 아홉곡을 각각 들려준다.김두완씨 작곡의 ‘찬양하여라’는 작곡자가 직접 지휘,연합합창으로 듣는다.449­8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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