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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몸으로 쓴 희망 메시지

    ‘경추 5, 6번 사이 신경이 눌려 / 세상으로 뻗는 길이 막혔습니다 / 영영 걸을 수 없겠습니다 / 목숨은 명치끝에 숨겨두십시오’(‘처방전’) 30년 전 여고시절, 불의의 사고로 시인은 전신이 마비됐다. 물론 거동은 불가능하다. 손가락도 움직이기 어려워 골무를 끼고 ‘독수리타법’으로 타자를 쳤다. 그렇게 나온 ‘산골소녀 옥진이 시집’(1987년)은 100만 독자를 울렸다. 신체의 불편을 딛고 20년 넘게 꿋꿋이 창작활동을 해온 시인 김옥진(47)의 아홉 번째 시집이 나왔다. 4년 만에 출간된 새 시집 ‘무덤새’(천년의시작 펴냄)에서 시인은 여전히 소녀적 감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작품은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해 시로 옮긴 시·청각 이미지가 돋보인다. ‘빗소리 머리맡에 앉혔다 / 마을을 삼킬 듯 호흡이 거칠다 / 땅껍질 들썩이다 / 창틀이 삐걱 허리가 부서진다’(‘비 맞으며 쓰다’)나 ‘먼지 한 톨 날릴 수 없는 바람이 / (중략) / 어머니 무릎뼈에 무덤 팠다 // 무덤 속 귀신들 / 싸각싸각 쇠톱 가는 소리’(‘골다공증’)처럼 오래 주목하고 고민한 표현들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물론 시집 곳곳에서 불편한 자기 신체의 흔적이 드러난다. 예컨대 ‘살아 있다고 / 손톱발톱이 자란다 / 여자라고 / 달거리가 달마다 온다 / (중략) / 살에 박힌 삽날을 뽑아 / 훨훨 34도에 묻는다’(‘무덤새’)에서 시인은 얼핏 자조적인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낙엽의 발효열을 이용, 34도의 무덤에서 알을 깨고 태어난다는 무덤새처럼 시인의 자조는 곧 희망의 메시지로 변한다. 그러면서 ‘시인의 말’에 쓴 ‘반납하자 / 주문한 수의가 도착되었다 // 비가 그쳤다 / 이제 걸어야겠다’처럼 끊임없이 생활에의 욕망을 보여준다. 해설을 붙인 유영금 시인은 “적당한 아픔에 기교를 버무린 작위적인 시를, 근사한 포장지에 감아 내놓는 시인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그녀는 찾아보기 드문 진짜 시인”이라면서 “그녀의 시쓰기는 도망칠 수 없는 운명적인 행위”라고 평가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It´s True!(릭 윌킨스 외 글·믹 루비 외 그림, 윤소영 외 옮김, 민음인 펴냄) 공룡, 우주, 비행기, 패션, 범죄, 쓰레기 등 아이들이 궁금해할 만한 모든 것을 풀어주는 교양도서 시리즈. 외국에는 현재 27권까지 나왔으나 국내에는 10권이 완간돼 나왔다. 아이들이 정한 주제에 쉬운 글과 그림으로 이해를 돕는다. 8500원. ●임금님과 아홉 형제(박지민 옮김, 아카바 수에키치 그림, 북뱅크 펴냄) 중국의 소수민족 가운데 ‘이’족의 옛 이야기를 담은 책. 자식 없어 고민하던 할머니가 선녀가 준 약을 먹고 졸지에 아홉 자식을 낳는다.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태어난 아홉 자식이 못된 임금님을 통쾌하게 혼내 준다. 8500원. ●새사냥(이민희 글·그림, 느림보 펴냄)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해 통째로 지구와 사람들을 삼킨다. 외계인들은 새장에 있는 새만 구해 내고 인간은 쓰레기처럼 우주선 밖으로 쏟아낸다. 자연과 생명을 파괴하는 인간의 행태를 강렬한 그림으로 비판했다. 9800원. ●멍멍 금붕어(질리언 쉴스 글·댄 테일러 그림, 김라합 옮김, 주니어김영사 펴냄) 강아지를 못 사준다는 엄마. 가지고 있던 금붕어를 강아지처럼 생각하고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편다. 막대를 던져 물어 오는 훈련을 시키고 산책도 하고. 갖고 싶은 것은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요즘 아이들, 만족하는 법을 은근히 배우지 않을까. 9800원. ●땅굴 파는 두더지 마구마구(시라타니 유키코 글, 이규원 옮김, 한울림어린이 펴냄)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굴 파는 기술을 전수받는 새끼 두더지. 엄마표 지렁이 튀김을 먹기 위해 땅을 파고 또 파고 들어가는데, 어라~, 부엌 대신 펭귄과 기린이 나오다니! 책을 이리저리 뒤집고 돌려가며 읽는 재미가 있다. 1만원. ●태양이 주는 생명 에너지(몰리 뱅 글·그림, 이은주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식물이 햇빛으로 영양분을 만드는 광합성 작용을 어떻게 하면 쉽게 가르칠까. 이 책을 고르면 된다. 칼데콧상을 세 번이나 거머쥔 작가는 파랑, 노랑, 초록을 주로 사용한 강렬한 그림으로 아주 쉽게 광합성 작용을 이해시킨다. 9500원.
  • 日 게임계, ‘드래곤퀘스트’ 신드롬에 빠져

    日 게임계, ‘드래곤퀘스트’ 신드롬에 빠져

    일본 게임계가 돌아온 장수게임 ‘드래곤퀘스트’ 신드롬에 빠졌다. 최신작인 ‘드래곤퀘스트9’의 출시가 최근 전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더니 급기야 구동 플랫폼인 ‘닌텐도 DS’의 판매량도 견인하고 나섰다. ‘드래곤퀘스트9’은 지난 11일 발매돼 현재 출하량 기준 300만장을 넘겼고 ‘닌텐도 DS’ 본체(신형 포함)는 이번주 들어 약 15만대 가까이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드래곤퀘스트9’의 이러한 성과는 올해들어 일본시장에서 100만장 이상 판매된 게임이 전무한 상황에서 대단한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발 ‘드래곤퀘스트9’ 열풍은 국내에도 영향을 미쳐 일부 마니아들이 ‘드래곤퀘스트9’와 함께 ‘닌텐도 DS’의 신형 모델인 ‘닌텐도 DSi’의 국내 출시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대가 큰 만큼 불만의 소리도 높다. 이전에 등장한 ‘드래곤퀘스트’ 시리즈와 비교해 볼 때 그래픽과 게임성이 낮다는 게 주된 이유다. 여기에 전통적인 거치형 비디오게임기로 등장하지 않고 휴대용게임기로 등장한 것에 불만을 표시한 게임 이용자들도 상당수 있다. 일부 게임 이용자는 이를 가리켜 ‘아홉수의 발목’으로 묘사하고 있다. 고전 명작게임인 ‘울티마’, ‘마이트앤매직’ 등도 9탄에 이르러 힘을 잃은 것과 비슷하다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래곤퀘스트9’에 거는 게임 이용자들의 기대는 상당하다. 시리즈 중 최고의 판매량이 예상되는 만큼 침체된 비디오게임 시장에 새로운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편 ‘드래곤퀘스트’ 시리즈는 1986년 닌텐도의 가정용 비디오게임기 ‘패미콤’으로 첫 등장했다. 이 게임 시리즈는 이번 ‘드래곤퀘스트9’의 출하량에 힘입어 전세계 통산 5,000만장 이상의 출하량을 기록하게 됐다. 사진제공 = 공식 홈페이지 캡쳐 서울신문NTN 최승진 기자 shai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지리산댐 수혜는 경남·피해는 전북”

    “지리산댐 수혜는 경남·피해는 전북”

    부산·경남지역 상수원이 될 지리산댐 건설 계획을 백지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전북도의회 이상현(남원시) 의원은 15일 도정질의에서 “민족의 영산이자 자연자원의 보고인 지리산에 댐건설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면서 “전북도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 중앙정부에 지리산댐 건설계획 중단을 건의하라.”고 촉구했다. 이 의원은 “정부가 낙동강 취수원 대이동 계획에 따라 부산·경남지역 식수원 확보와 낙동강 홍수조절을 위해 지리산댐 건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경남도 역시 취수대책으로 지리산댐 건설을 재추진하고 있다.”며 강력 대처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앞서 지리산댐백지화추진위원회는 지난달 17일 부산국토관리청을 방문해 “정부의 밀실행정과 지자체의 일방적인 여론몰이를 통해 지리산댐 건설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낙동강유역종합치수계획에서 지리산댐을 삭제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전북도는 댐 건설로 인한 주변지역 환경변화와 농작물, 문화재 피해 조사 용역을 실시해 대책을 수립할 방침이다. 또 지역주민들의 뜻을 중앙정부에 전달하기로 했지만 지리산댐은 전북도가 아닌 경남 함양군에 건설되고 전북은 간접영향권이어서 자칫 지역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남원시와 환경단체 등은 지리산댐이 건설될 경우 상류지역인 남원시 4개 면이 기후변화로 영농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으로 지정돼 생활터전마저 상실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남원시 관계자는 “댐이 건설되면 안개일수 증가로 남원지역 한봉, 사과 생산에 나쁜 영향을 주고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축산 등 영농이 불가능해 지역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받는다.”고 말했다. 1984년 기본계획이 수립됐으나 주민과 종교단체,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2001년 댐 후보지에서 제외됐다가 2007년 댐 건설 장기계획 변경안에 다시 포함돼 검토되기 시작했다. 댐 건설 예정지역은 칠선계곡과 백무동, 뱀사골의 물이 합수되는 낙동강유역 최상류 지천이다. 칠선계곡과 용담은 지난해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자연문화유산 아홉 곳’ 가운데 으뜸으로 꼽은 곳이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멤버 모두 90년대생…진짜 걸(Girl)그룹은?

    멤버 모두 90년대생…진짜 걸(Girl)그룹은?

    “우리야 말로 진짜 걸(Girl)그룹!” 포미닛이 현재 활동 중인 아이돌 그룹들 중 유일하게 모든 멤버가 90년대 생인 것으로 밝혀졌다. 포미닛의 소속사 큐브 엔터테인먼트는 “포미닛의 평균 나이는 18.8세로 다섯 멤버는 모두 90년대 생이다. 이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 중 가장 어린 나이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포미닛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멤버는 리더 남지현(20)으로 90년 1월생. 빠른 생일로 인해 일찍 대학교(상명대 무용과 1년)에 진학한 그를 제외하고는 포미닛은 모두 중·고등학생이다. 막내 권소현(16)은 중 3으로 걸그룹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속한다. 타 걸그룹의 경우 80, 90년대 생 멤버가 고루 섞여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소녀시대는 아홉 멤버 중 6명이 89년 생으로 태연, 유리, 제시카, 티파니, 써니, 효연이 이들에 속한다. 또 카라는 박규리와 한승연이 88년생으로 세 동생들을 이끌고 있다. 2NE1은 걸그룹 중 가장 고른 나이 분포를 보인다. 박봄과 산다라 박은 84년 생이지만 막내 공민지는 94년생으로 무려 10살 차이가 난다. 씨엘은 91년생이다. 물론 예전 어린이 그룹인 스위티는 평균 나이가 10살 이었으며, 이외에도 칠공주, 오렌지 등의 그룹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가요계에 이름을 올린 걸그룹 중에는 포미닛이 가장 어린 셈이다. 포미닛은 인터뷰에서 “학교 생활과 연예 생활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수면 시간이 부족하지만 학생으로서 본분을 잊지 않기 위해서 학교 수업도 최대한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글로벌시대] 건국 60주년, 중국지식인은 살아있는가/ 민귀식 한양대 중국 정치경제 연구교수

    [글로벌시대] 건국 60주년, 중국지식인은 살아있는가/ 민귀식 한양대 중국 정치경제 연구교수

    건국 60주년을 맞은 중국이 더욱 크게 보이는 한 해이다. 중국은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도 6%대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고, 최대 외환 보유국답게 각국의 채권을 거침없이 사들이고 있다. 미국 국채 매입에 신중하겠다는 중국의 방침에 미국 행정부가 눈치를 보고 있다. 그래서 미국 중심의 국제경제 질서를 재편해야 한다는 중국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리는 것도 당연해 보이기까지 하다. 중국이 국제질서 재편의 중심축 역할을 하겠다는 이런 자신감에 대해 세계는 기대와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우려에는 중국이 과연 세계를 이끌 만한 시대가치를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중국이 경제규모에 걸맞은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국제사회가 인정할 만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자유와 인권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문인 셈이다. 그런데 현실은 오히려 중국의 정신문화가 경제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사회를 향한 가치기준 제시는 고사하고, 중국 내부의 시민의식도 성숙되지 못해 국가에 대한 시민의 영향력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인터넷을 통제하기 위해 ‘그린 댐’이라는 검색 프로그램을 모든 컴퓨터에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요구하는 것이 오늘날 중국의 현실이다. 이런 국가통제 강화와 시민역량의 미숙에는 중국 지식인의 책임이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지식인은 항상 비판적인 눈으로 사회를 감시해야 하고 특히 변혁기에는 시대방향 제시라는 엄중한 책임이 부여된다. 그러나 중국 지식인은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화두를 제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정책에 대한 비판기능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홍콩에서는 천안문사건 20주년을 맞아 20만명의 추모인파가 모여 중국의 민주화를 촉구했지만, 중국의 지식인은 이런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국왕 앞에서 역성혁명론을 펼치고도 무사할 수 있었던 춘추전국시대의 지식인의 위상은 한무제가 유학을 관학(官學)으로 흡수한 이래로 지속적으로 하락되어 왔다. 문화혁명 시기에는 아홉 가지 사회악(臭九)으로까지 그 위상이 추락되었던 중국지식인은 아직도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지식인의 이런 무기력은 권위주의체제인 중국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지만,현실을 바꾸는 위험보다는 현실과 타협하는 안전책을 선호하는 전통적인 중국지식인의 생활태도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도(道)가 있으면 세상에 나아가고, 도가 없으면 물러나는 것이 군자의 자세라는 논어의 구절이 바로 이런 책임회피에 면죄부를 주는 주문이 되고 있다. 그래도 과거에는 ‘문관은 간언하다 죽고, 무관은 전쟁터에서 죽는다(文死諫, 武死戰)’는 기개를 내세워 황제에게 직언하는 선비도 종종 나왔다. 황제에게 직언은 목숨을 거는 경우도 있었으니 봉건시대의 현실비판은 지금과 비교하면 훨씬 강한 기개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법과 제도로 움직이는 현대국가에서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생명을 담보로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시대방향을 제시하는 중국지식인을 찾을 수 없다. 지금의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국력에 어울리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국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지식인이 소명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지식인의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고, 지식인이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건국 60주년을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중국의 희망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지식인의 기개는 사회의 소금이다. 그래서 문사간(文死諫)을 문사간(文事奸:일을 간사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풍자하는 것을 중국지식인들은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한국의 지식인은 어떤 모습일까? 민귀식 한양대 중국 정치경제 연구교수
  • 박정자의 연극인생 50년 회고

    박정자의 연극인생 50년 회고

    연극배우 박정자는 한국연극사 100년 중 절반을 함께 했다. 연극인생 외길 50년을 걷고 있는 그의 열정과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그는 7일 오후 11시30분에 방송하는 KBS ‘낭독의 발견’에 출연해 지난 연극인생을 되돌아 보며 카리스마 넘치는 낭독무대를 펼친다. 먼저 박정자는 70년대 초 30대의 나이로 온달의 노모 역을 맡았던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최인훈 작)의 한 구절을 읊는다. 그는 그토록 공주 역할을 하고 싶었지만 젊은 나이에 노모를 연기했다며 아쉬움을 전한다. 그러면서 기나긴 연극인생의 출발점을 회고한다. 연극을 처음 접한 건 1950년. 연극을 하는 큰오빠에게 도시락을 전해주러 갔다가 우연히 본 연극무대는, 여덟살이던 그에게 ‘감동을 넘어선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연극에 빠진 그녀는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대에 서왔다. 그는 “몇 작품을 했는지, 몇 년 동안 연극을 했는지, 내가 몇 살인지도 세어 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난 시간 미련하게 바보처럼 연극만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연극이었다.”고 회상한다. 더불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꺼내 놓는다. 자신의 연기는 그저 “엄마의 몸짓을 따라했을 뿐”이라는 그는 이충걸의 ‘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의 한 구절을 낭독하면서 옛 추억을 더듬는다. 그리고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면 더도 말고 딱 두 시간만 이야기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또 이날 방송에는 연극 ‘19 그리고 80’에서 박정자의 열아홉 살 어린 애인 ‘헤롤드’ 역을 맡았던 뮤지컬 배우 이신성도 함께 출연한다. 그는 “박정자의 삶을 그대로 보여 주는 글”이라면서 이병률의 산문 ‘열정’을 낭독한다. 그리고 ‘19 그리고 80’의 하이라이트인 헤롤드가 모드 할머니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마지막 장면을 박정자와 함께 보여 준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다시 만난 그의 삶 그의 꿈]사막에 10억 그루의 줄기세포를 심는다

    [다시 만난 그의 삶 그의 꿈]사막에 10억 그루의 줄기세포를 심는다

    지구의 허파, 그리고 악성종양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에는 두 개의 허파가 있다고 한다. 그 하나는 남미의 아마존 밀림이고, 다른 하나는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의 밀림이다. 지구에 발생하는 전체 산소량의 70% 이상이 이들 두 개의 밀림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에서 나온다. 그러니 지구의 허파인 이들 밀림의 나무들은 말하자면 허파꽈리인 셈이다. 우리는 이 푸르고 건강한 허파꽈리들로 숨 쉬고 살면서도 필요할 때마다 이들을 베어 집 짓고 신문 찍고 책을 만든다. 이처럼 인간은 모두가 이들에게 평생을 빚지고 사는 빚쟁이인 동시에 일방적인 가해자이기도 한 셈인데, 그러면서도 이들에 대한 고마움이나 미안함은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 기껏 몇 해 동안 수발해 기르던 애완동물의 아픔이나 죽음에는 기꺼이 눈물 흘리면서도, 몇 십 년을 우리에게 봉사만 하다 쓰러지는 한 그루 나무의 장엄한 최후 앞에서는 슬퍼하기는커녕 도리어 현실적인 용도나 경제성만 셈한다. 이에 반해 그 크기가 나날이 확대되어 가는 지상의 사막들은 이를테면 지구의 악성종양이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는 사막이 없지만 그렇다고 사막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지도 못한 실정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시야를 부옇게 흐려 놓는 흙먼지 속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는 황사. 심한 날엔 학교가 임시 휴교를 하고, 어쩔 수 없이 길에 나서면 숨이 턱 막힌다. 중국의 사막에서 서해를 건너 황사를 몰고 오는 편서풍을 거대한 장벽으로 틀어막을 수도 없고, 자연 현상 앞에 불가항력으로 묵묵히 현실을 내맡기고 체념하고 있을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다. 가속화 되어 가는 지구의 사막화에는 분명 인간의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10년째 보여주고 있는 분이 있다. 이분의 방법이 사막화를 막는 최선의 대안이냐 아니냐를 따져 묻는 것은 필요하지도 중요하지도 않다. 보다 소중한 건 사막화 방지를 위한 실제적이며 지속적인 이분의 노력이고, 이러한 노력이 맺어가고 있는 긍정적인 결과가 아닌가. 의욕과 의지, 권병현 전(前) 주중대사 비 내리는 날 찾아간 ‘미래숲’ 사무실에서 만난 이 어른을 재작년에 처음 뵈었으니,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다. 1992년 한중 수교를 이루는 역사적인 일을 한국 측 수석대표로 진두지휘했고, 공직에서 은퇴한 지금은 2001년에 설립한 한중문화청소년협회인 ‘미래숲’을 이끌며 우리나라 황사의 발원지인 중국 쿠부치 사막에 나무를 심는다. 사막에 나무 심기. 세계의 어떤 관련 학자들이나 환경운동가들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을 해내고 있다. 이른바 ‘한중우호 녹색장성’ 프로젝트로 이미 1천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고, 250만 그루에 이르는 나무들이 쿠부치 사막에서 자라고 있다. 황막한 죽음의 땅에다 열 그루의 나무를 심어 여덟 그루를 살려낸 의지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 이식한 나무들의 생존율이 팔십 퍼센트 이상이다. 이는 정상적인 토양에서도 이루기 어려운 놀라운 수치. 일찍이 한중 수교의 초석이었듯이 이번에는 사막과의 전쟁을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하며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사랑하는 후손들이 황사 없는 깨끗한 봄날을 호흡할 날이 오기를 고대하면서, 세계인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사막 식수 사업을 내일의 주인공인 우리 청년 대학생들과 함께 해오고 있다. 환경보호 사업은 국가도 국경도 없는 인류 공동의 과제라는 분. 한국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일흔 번이 넘는 황사의 봄을 경험한 이분의 의지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던 사막을 푸른 물결 일렁이는 생명의 바다로 바꾸어 가고 있다. 내 이름을 새긴 나무 ‘미래숲’의 지속적인 쿠부치 사막 식수 사업은 많은 중국인들의 반성과 각성을 일깨웠다. 작년 12월 중국의 《인민일보》는 한 면 전체를 할애해 이분에 대한 특집 기사를 냈다. “한 한국 노인의 녹색 열정”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쓴 장문의 기사는 이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조목조목 다룬, 말하자면 자신들 중국과 관계된 권병현의 일생을 ‘요약한 일대기’라 할 만하다. 전례가 없던 한 외국인에 대한 이 신문의 전면 기사에는 오래 전 한중 수교의 과정에서 이 분이 했던 역할과 중국의 사막 식수 사업을 하게 된 계기, 그간의 과정과 현재의 성과,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이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기사를 읽고 나면 자존심 강한 중국이 관심과 감동을 지나 이분에 대한 경이로운 존경의 마음마저 갖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고, 무엇이 진정으로 보도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알고 있는 중국은 역시 대단한(?) 나라다. 이분에 대한 《인민일보》의 기사를 꼼꼼히 읽어가다 보면, 유난히 눈길을 잡아끄는 대목이 나온다. 기사가 너무도 귀에 익은 익숙한 이름들을 줄줄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나오고, 기사에는 실려 있지 않지만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세계적인 명사들이 모두 ‘미래숲’의 사막 식수 사업에 기부금을 낸다. 자신들과 자신들 가족의 이름으로 사막에 나무를 심어달라고 한다. 분신일 수도 있을 ‘자신의 이름을 새긴 나무’가 불모의 사막에서 자란다는 건 얼마나 감동적이고 가슴 뿌듯한 일인가. 선생은 진정한 수목장(樹木葬)은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물론 유명인들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원하면 이 보람된 일에 참여할 수가 있다. 당연하다. 이 일은 사회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닌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쿠부치 사막’의 정체 한국 크기의 아흔아홉 배에 이르는 거대한 땅 중국에는 6대 사막이 있다. 선생의 눈길이 한시도 떠나지 않는 쿠부치 사막은 이중 중국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해 있는 사막으로 최근에 생겼다. 끊임없이 동진을 계속하며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살아 움직이는 사막으로 지구 사막화의 한 표징이다. 수도인 베이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처럼 죽음의 땅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중국인들도 미처 감지하지 못하고 있던 때, 선생은 지독한 황사를 경험했던 1998년 주중대사 재임시절 당시에 이미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 쿠부치 사막이 매년 봄 편서풍이 불 때 베이징을 거쳐 우리나라에 황사 현상을 가져오는 황사의 발원지라는 사실을. 쿠부치 사막을 떠난 황사 군단이 24시간이 지나면 베이징에, 48시간이 지나면 한국에까지 진군해 온다는 것을. 이 쿠부치 사막의 막무가내 동진을 저지하고 황사를 없애기 위해 선생이 구상한 방법이 바로 사막의 동쪽 끝을 남에서 북으로 나무들의 숲으로 가로막는 ‘녹색장성건설’이었다. 하지만 선생과 함께 사막 현지를 답사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한결같이 부정적이었다. 이론에 의거해 모든 가능성을 판단하려는 지식인들의 한계에 선생은 의지와 실천으로 맞섰다. 그리고 지금 중국 대륙의 황야 쿠부치 사막은 한 한국 노인의 손에 의해 생명의 땅으로 변해가고 있다. 푸른 지구별의 꿈 선생은 앞으로 10억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의 힘으로 혼수상태에 이르고 있는 지구에 온전한 새 숨을 불어넣을 수는 물론 없겠지만, 이러한 노력에 있어 지상의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선생의 말씀대로 우리가 숨 한 번 내쉴 때마다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일생 공기 속을 떠돌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모두가 지구의 세입자이며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채무자들이다. 그런데도 갚아나가려는 의지와 실천은 고사하고 채무감마저 잃어버린다면 어찌 될까. 현대인들은 너나없이 마음에 사막 하나씩 지니고 산다. 권병현 ‘미래숲’ 대표가 사막에 나무를 심는 일은 곧 우리의 마음 사막에 푸름을 덧입히는 일이다. 흙먼지 대신 나무와 풀을 자라게 하고 크고 작은 생명체들을 보금자리 틀게 하는 일이다. 이건 참말로 기쁘고 아름다운 희망이다. 희망은 이루라고 존재하는 것. 머지않아 10억 개의 줄기세포를 이식한 지구의 악성종양 쿠부치 사막은 건강한 예전의 모습으로 부활하리라. 황사 없는 봄의 ‘미래숲’이 ‘현실숲’으로 그 이름을 바꿀 날이 멀지 않았다. 글 최준 기획위원
  • [프로야구]한화, 이길 때도 됐는데…

    [프로야구]한화, 이길 때도 됐는데…

    2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SK-한화전. 한 여성팬이 “이길 때까지 단식투쟁”이라고 쓴 카드를 들고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다른 한화 팬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터. 하지만 한화는 3-11로 완패했다. 1986년 팀창단 이후 최다인 11연패. ‘국민감독’ 김인식도 손 쓸 도리가 없었다. 1991년 쌍방울을 맡아 프로에 뛰어든 김 감독 개인적으로도 프로 16년 동안 최다연패. 선발 김혁민은 5회를 채우지 못하고 강판당했다. 4와3분의1이닝 8피안타 5실점. 다이너마이트로 불리던 타선도 11안타를 몰아쳤지만, 점수는 모두 홈런으로 뽑을 만큼 집중력이 부족했다. 한화의 패전공식이 고스란히 이어진 셈. 꼴찌 한화는 24승46패3무(승률 .329)로 6연승을 달린 선두 SK(46승26패5무·승률 .597)와 21경기차로 벌어졌다. 그나마 한화는 뇌진탕 후유증에 시달리던 4번 김태균이 지난달 17일 롯데와의 더블헤더 2차전 이후 46일 만에 홈런포를 쏘아올린 것을 위안삼아야 했다. 경기 뒤 김인식 감독은 “타격이 SK 투수진에 밀렸고 김혁민이 나아지는 것 같으면서도 밸런스가 안 맞는다.”고 총평했다. 연패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대구에서는 3위 KIA가 ‘새끼호랑이’ 안치홍의 연타석 홈런 등 장단 19안타를 폭발시킨 덕분에 4연승을 노리던 6위 삼성을 14-9로 무너뜨렸다. 열아홉번째 생일을 맞은 안치홍은 5-5로 맞선 7회 2사 뒤 솔로홈런으로 균형을 깨뜨린 데 이어 10-5로 앞선 8회에도 쐐기 홈런을 때렸다. 타격부문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울 태세인 양준혁(삼성)은 역대 첫 개인통산 450번째 2루타를 때렸다. 사흘째 명승부가 이어진 잠실에선 4위 롯데가 7위 LG를 4-3으로 꺾었다. LG는 올시즌 팀 첫번째 선발전원안타를 때리고도 무릎을 꿇었다. 목동에선 5위 히어로즈가 덕 클락의 끝내기 안타로 2위 두산에 3-2,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히어로즈는 1-2로 뒤진 9회말 2사 뒤 황재균과 클락의 연속안타로 구원 2위 이용찬을 무너뜨렸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美언론 “소녀시대 컴백…더 예뻐졌네”

    美언론 “소녀시대 컴백…더 예뻐졌네”

    “태연·티파니 예뻐졌네” 한국 여성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의 컴백에 미국 온라인 매체도 관심을 보였다. 미국 대중문화 웹진 ‘콤플렉스닷컴’은 최근 소녀시대의 신곡 ‘소원을 말해봐’ 뮤직비디오를 게재하고 이들의 컴백을 보도했다. 콤플렉스닷컴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의 슈퍼그룹 아홉 소녀들’(South Korean nine-girl pop super-group)”이라고 소녀시대를 소개했다. 이어 신곡 ‘소원을 말해봐’를 “두 번째 미니앨범의 첫 싱글”이라고 알리며 “‘Gee’만큼 귀를 잡아끌지는 않지만 썩 괜찮은 곡”이라고 평가했다. 또 뮤직비디오 속 멤버들의 새로운 모습에 “윤아나 수영은 새로울 것이 없지만 태연과 티파니는 이전보다 나아졌다. 유리는 역시 ‘매우 예쁘다.’(dimepiece)”라는 코멘트를 썼다. 이 기사에서는 원더걸스의 미국 활동도 언급됐다. 콤플렉스닷컴은 “원더걸스도 ‘노바디’ 영어 버전을 발표하고 미국 활동을 시작했다.”고 알리고 노바디 뮤직비디오를 함께 게재했다. 한편 콤플렉스닷컴은 지난 1월 소녀시대 각 멤버들을 평가한 기사로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이 사이트는 당시에도 소녀시대를 ‘한국의 슈퍼 걸그룹’이라고 소개했다. 사진=콤플렉스닷컴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낙락장송 사라져 송이따러 7부능선 넘어야

    낙락장송 사라져 송이따러 7부능선 넘어야

    27일 토요일 아침. 춘양목과 송이의 마을로 잘 알려진 경북 봉화군 소천면 고선2리 구마동계곡으로 향했다. 충북 청원에서 경북 상주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이용, 봉화에 도착했다. 시원스럽게 뻗어있는 춘양목 숲이 나왔다. 이 지역에서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손석익(63)씨의 안내로 구마동계곡을 찾았다. 31번 국도에서 고선2리 방면으로 9.2㎞ 정도 올라간 해발 600m 지점. 그곳에서 70여년째 살고 있다는 안세기(84)옹을 만났다. 안 옹의 집은 계곡의 중간 부분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는 “외지인들은 소나무가 많은 곳이라서 신비롭다고 하는데 과거에 비하면 볼품없이 망가진 거야. 왜정(일본강점기) 때 베어낸 소나무는 어른 둘이서 손을 맞잡아야 할 정도로 굵고 실했지만 요즘 그런 나무는 보기 힘들어.”라며 아쉬워했다. 구마동계곡은 태백산에서 흘러내린 계류가 20㎞에 걸쳐 흐른다. 아홉 마리 말이 한 기둥에 매여 있는 구마일주(九馬一柱) 명당이 있다는 곳이다. 집 마루에서 바라본 계곡에는 수십년은 자랐을 소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저 나무들은 일본이 배를 만든다고 잘라간 뒤 자란 소나무”라며 “어릴 때 일본인이 운영하는 조선임업소에서 일했는데 그때는 36자(1자는 30㎝)나 되는 소나무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고 운을 뗐다. 산에서 나무를 자르는 인부 4명이 잘린 소나무 밑둥에 도시락을 올려놓고 먹었다는 말도 덧붙인다. 마을사람들은 “전에는 집앞 숲에 들어가서 송이를 한 자루씩 따왔다.”면서 “지금은 소나무가 많이 사라져 송이를 따려면 7~8부 능선까지 올라가야 겨우 구경할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마을에서는 소나무를 ‘적송’ ‘구마동나무’라고 불렀다. 구마동계곡에는 잡목 없이 소나무만 자랐는데, 산림녹화 사업을 한다고 낙엽송과 잣나무 등을 심다 보니 지금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숲에 소나무가 끼여 있는 꼴이 돼버렸다. 잡목들은 성장 속도가 빠르지만 가치는 소나무에 비할 바가 못된다. 마을 사람들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사라지면서 예전에 없던 산사태도 자주 발생한다고 한탄했다. 구마동계곡은 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지난해 집중호우 때 도로가 유실되고 수많은 나무들이 쓸려내려갔다고 한다. 그런 혼란 속에도 70~80년생 큰 소나무들은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큰 소나무가 버티는 곳에는 자연재해가 없다는 걸 스스로 입증해 보이는 듯했다. 봉화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맵씨·맘씨·솜씨] 술자리의 저 맑은 바람이여

    [맵씨·맘씨·솜씨] 술자리의 저 맑은 바람이여

    상촌 신흠(申欽, 1566~1628)의 《야언》(野言)은 ‘한국의 팡세’라 이를 만하다. 세계적 팡세는 프랑스의 파스칼(pascal, 1623~1662)의 에세이집이다. 단편·단상적인 글들이 매력적이다. 긴 여운까지를 안겨 준다. 상촌은 우리나라 당대 한문 4대가의 한 분이다. ‘계월상택(溪月象澤)’의 ‘상’이 바로 신흠이다. 성인들의 술 풍류 생각이자, 먼저 《야언》의 술 이야기가 떠오른다. 왜 하필 술 이야기인가. 맞갖잖은 오늘의 음주문화 탓이다. 《야언》을 되챙겨 본다. “음주에는 아취가 있다. 그것은 취함에도 있지 않고, 취하지 않음에도 있지 않다.” “음주는 정서를 부드럽게 푸는 정도로 그쳐야 한다. 지나치면 뒤집혀 질탕하게 되고 만다.” “음주는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남의 흥취만을 따라야 한다면 이는 감옥처럼 답답한 일이다.” 상촌의 주량은 얼마나 되었을까. 그는 <장진주사>로 유명한 송강 정철(鄭澈, 1536~1593)의 양호체찰사 시절 그 종사관의 일을 맡은 바 있다. 송강과의 술자리도 자주 있었을 터, 그는 뒷날 송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술회한 바 있다. “송강께서는 때로 반쯤 취기가 돌면 입으로 읊조리며 손으로 쓰는데 장시며 단가가 올섞여 연신 이루어졌다. 부드러운 말씨가 도란도란 끊임이 없고, 자리를 함께한 사람들은 친숙해져 무릎 가까이 나아감을 깨닫지 못하였다. 나는 여태껏 많은 사람을 대했어도 이분과 같은 높은 품격과 운치를 아울러 지닌 이를 보지 못했다”며 술에 거나한 송강을 신선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선비들의 술자리엔 으레 시와 노래가 따랐던 것인가. ‘꽃 꺾어 산(算) 놓고’의 술자리가 아닌 ‘유상곡수(流觴曲水)’에도 시와 노래가 따랐음을 볼 수 있다. 아홉 굽이 맑은 물 흐름에 술잔을 띄워 ‘한 잔 술에 시 한 수 읊는(一觴一詠)’ 술자리는 상상만으로도 멋스럽다. 이 멋스러운 술자리의 유래는 중국 왕희지의 <난정기>(蘭亭記)에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우리 선인들도 이러한 술자리를 즐겨왔다. 경주의 ‘포석정’이나 태인의 ‘유상대’가 이를 말하여 준다. 경주의 포석정은 왕후장상과 문무백관이 즐긴 술자리였다면, 태인의 유상대는 이 고을의 태수였던 고운 최치원의 풍류에서 이루어진 술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고운은 9세기 말엽, 이 고을 태수직을 떠났어도 그가 이루어 놓은 유상대는 그 후에도 고장 선비들에게 풍류의 기풍을 함양하는 터전으로 이어져 왔다. 이는 오늘에 전하는 <유상대비문>(1688)이나 <유상대중수기>(1784)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에 유상대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영조 11년(1735)의 대홍수로 매몰되어 버린 것이다. <유상대중수기>도 유상대의 실체는 드러내지 못하고, 어림잡은 냇둑의 보수만을 하고서의 비문일 뿐이다. 비문의 끝은 다음과 같다. “아 또 몇 백 년의 후인이 능히 이어 보수하고, 유상곡수의 물을 다시 이 인간세계에 회복할 수 있을까. 이는 가히 알 수 없는 일이다.”의 한탄이었다. 이 비문으로부터 220여 년이 지난 오늘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태인 유상곡수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져 올 뿐, 그 실상은 찾아볼 길이 없다. 풍류는 우리나라의 ‘현묘한 도로서 유·불·선 삼교를 내포한 것이다. 이로써 모든 생명과 접촉하면 이들을 감화시킨다고 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상촌의 술 이야기나, 송강의 <장진주사>를 읊조리면서의 술자리, 그리고 고운의 유상대에서의 저 운치 있는 정경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오늘의 술자리에 어디 저렇듯 맑은 바람 한 점 흐를 틈새라도 있는가. 나는 지난 주말 잠시 틈을 내어 태인의 유상대 옛터를 찾아나선 바 있다. 오늘날 볼 수 없는 곡수의 옛 풍류에 상상으로나마 가까이 젖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헛일이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선 길에 늙수그레한 한 사람을 만났다. 허실삼아 유상대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대를 이어 이곳 대인에 살고 있다고 했다. “정읍시에서 유상대를 복원한다는 말은 몇 해 전부터 있었지라우. 그런데 아직도 감감 소식이랑깨.” 글 최승범 전북대학교 명예교수
  • 홍상수 영화 ‘잘 알지도… ’ 손익분기점 넘겨

    홍상수 영화 ‘잘 알지도… ’ 손익분기점 넘겨

    지난 5월 14일 개봉한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홍상수 감독 영화 중 처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지난 26일 기준으로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약 3만7천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는 약 1억8000만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가운데 극장수입으로 약 2억5천900만원을 벌어들여 영화 제작비 및 마케팅 비용을 회수하게 됐다. 배급사는 영화가 현재 전국 7개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어 앞으로 4만 관객까지는 무난히 동원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홍상수 감독의 아홉번째 장편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김태우 고현정 엄지원 하정우 정유미 유준상 등의 배우들이 노 개런티로 출연해 화제가 됐다. 사진설명 = 영화 포스터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마이클 잭슨 전설속으로] 44년간 지구촌 우상으로…팝의 ‘History’ 되다

    [마이클 잭슨 전설속으로] 44년간 지구촌 우상으로…팝의 ‘History’ 되다

    영국 런던에서의 컴백 콘서트를 불과 2주일가량 앞두고 세상을 떠난 마이클 잭슨은 ‘팝의 황제’라는 수식어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던 뮤지션이다. 13개의 넘버원 싱글, 7억 5000만장에 달하는 전체 앨범 판매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 보유, 그래미상 13차례 수상 등 그를 따라다니는 기록들은 헤아릴 수가 없다. 춤, 노래, 연주, 작사·작곡에 이르기까지 천재적인 면모를 과시했던 그는 세계 팝 음악의 흐름을 바꿔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혁신적이고 현란한 춤사위는 1980년대 MTV의 등장과 함께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열었다. 그가 끼친 영향은 음악적인 테두리 안에만 머무른 게 아니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백인이 지배하던 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긍지와 자신감을 높여줬다는 점에서 단순한 대중음악가를 뛰어넘어 사회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로 봐야 한다.”면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도 빚을 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1958년 8월 잭슨가(家)의 아홉 형제 가운데 일곱째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이미 스타였다. 6살 때인 1964년 형제들로 구성된 그룹 ‘잭슨 파이브’의 리드보컬이 됐으며, 5년 뒤 잭슨 파이브 소속으로 자신의 첫 번째이자 역사상 최연소 빌보드 1위 히트곡인 ‘아이 원트 유 백’을 발표하며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1979년에는 전설적인 음반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손잡고 솔로 앨범 ‘오프 더 월’을 내며 독립했다. 이때부터 흑인 소울 음악에 백인 음악의 록적인 요소까지 크로스오버시키며 아우라를 만들어냈다. 1000만장 이상 팔렸던 ‘오프 더 월’은 그러나, 황제 등극을 위한 서곡이었을 뿐이다. 1982년 발표한 앨범 ‘스릴러’는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괴물로 변신하는 파격적인 영상을 보여줬던 ‘스릴러’를 비롯해 트레이드 마크가 된 안무 ‘문워크’를 선보인 ‘빌리 진’, 뮤직비디오 사상 처음으로 집단 군무를 등장시킨 ‘비트 잇’, 폴 매카트니와의 듀엣곡인 ‘걸 이즈 마인’ 등이 담긴 이 앨범은 현재까지 1억 400만장 이상 팔리며 그를 살아 있는 전설로 만들었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 상상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마이클 잭슨식’ 투어를 시작한 3집 ‘배드’(1987)와 퀸시 존스와 결별한 뒤 자신의 작곡과 제작 능력을 뽐낸 4집 ‘데인저러스’(1991)에 이르기까지 고공 행진을 거듭했다. 잭슨은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며 음악 외적인 일로 구설수에 오르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1993년 아동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해 그동안 쌓아올린 명예에 먹칠을 했다. 이 사건은 2330만달러의 합의금으로 무마됐지만, 그는 2003년 또다시 비슷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1994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와 결혼해 화제를 뿌렸으나 2년도 안돼 파경을 맞았고, 이후 간호사 데비 로우와 재혼했으나, 역시 갈라섰다. 1995년 ‘히스토리’ 이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2001년에 마지막 정규앨범 ‘인빈서블’을 발표했으나 명성을 되찾는 데는 실패했다. 잦은 성형수술도 도마에 올랐다. 흑인의 우상이었음에도 얼굴을 하얗게 만들어 백인이 되려한다는 조롱이 끊이지 않았다.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인한 건강 이상설로도 이어졌다. 잇단 소송과 건강 문제로 돈을 잃었고, 빚도 불어나 자신의 저택을 파는 등 파산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아홉수 여자들 꿈과 현실사이

    아홉수 여자들 꿈과 현실사이

    20대와 30대 끝자락에 선 여자들의 꿈과 현실을 진솔하고 유쾌하게 그린 2편의 창작극이 7월 무대에 나란히 오른다. 스물아홉 동갑내기 세 미혼 친구의 결혼 해프닝을 다룬 뮤지컬 ‘웨딩펀드’와 전업주부, 이혼녀인 서른아홉의 세 친구가 등장하는 연극 ‘울다가 웃다가’는 그 나이 즈음에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사실적인 이야기와 솔직한 심리 묘사로 여성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결혼과 자아실현이란 인생의 숙제 앞에서 허둥대고, 좌절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두 작품속 주인공들은 마치 서로의 10년 후, 혹은 10년 전을 보는 것처럼 꼭 닮은 모습이다. ●내가 먼저 결혼할거야-뮤지컬 ‘웨딩펀드’ 나보다 공부도 못하고, 얼굴도 별로였던 친구가 잘 나가는 킹카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겉으론 축하하는 척 해도 속에선 질투심이 샘솟기 마련이다. 애인도 없이 서른을 코 앞에 둔 나이라면 더더욱. ‘웨딩펀드’(김효진 원작, 황재헌 각색·연출)는 여자들의 이런 심리를 얄미울 정도로 콕 집어낸다. 제일 먼저 결혼하는 친구에게 적금을 몰아주기로 하고 10년간 3800만원을 모은 고교 단짝 친구 세연, 정은, 지희. 그런데 학원강사인 세연, 만화가인 정은과 달리 별 직업없이 지내던 지희가 한달 전 선을 본 남자와 결혼한다는 폭탄 선언을 하면서 이들의 우정은 금이 간다.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먼저 결혼하는 것도 배 아픈데 게다가 축의금 3800만원까지 뺏길 생각에 기가 막힌 세연과 정은은 어떻게든 지희보다 먼저 결혼하려는 계획을 짠다. 대학로에서 입소문이 난 연극 ‘오월엔 결혼할거야’를 뮤지컬로 옮긴 ‘웨딩펀드’는 얼떨결에 결혼이 지상목표가 돼버린 세연과 정은의 좌충우돌 결혼 해프닝을 통해 20대 후반의 여성이 결혼에 대해 품고 있는 환상과 그리고 환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현실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유나영, 박혜나, 김민주가 결혼과 우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세 친구의 모습을 연기하고, 청일점 배우 전병욱이 1인 다역을 소화하는 멀티맨으로 등장한다. 7월9~8월16일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1관. 3만 5000~4만 5000원. 1588-5212. ●남편이 뭘 알겠니-연극 ‘울다가 웃으면’ “왜, 난 말을 못할까….왜 17년 동안 돼지고기를 좋아한단 말도 못하고 산 거야.” 스물두살에 결혼해 시할머니, 시어머니에 딸 셋까지 돌보는 서른아홉의 주부 재연.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창 소영과 현수에게 돼지고기를 싫어하는 시댁 때문에 자신도 돼지고기를 못 먹는다는 신세한탄을 하다 끝내 울먹인다. “그냥 좀 알아주면 안되니. 꼭 말로 해야 아니? 자기 마누라가 소고기를 좋아하는지 돼지고기를 좋아하는지, 신 김치를 좋아하는지 겉절이를 좋아하는지.” 연극 ‘울다가 웃으면’은 결혼과 육아에 파묻혀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잊어버리고 사는 30대 후반 여성들의 헛헛한 속내를 질펀한 수다로 풀어낸다. 결혼이 인생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가족 챙기느라 정작 자신은 투명인간이 돼버린 재연이나 가족보다 일을 우선한다는 이유로 이혼당한 현수, 그리고 경제적 능력은 없으나 연애하는 능력은 뛰어난 영화감독 남편을 대신해 생활전선에 뛰어든 소정 모두 마찬가지다. 홍콩 배우를 닮은 연극영화과 남자 선배를 좋아했던 20대의 찬란한 젊음은 속절없이 사라지고 이제 불혹의 나이인 마흔 고개를 눈앞에 둔 이들에겐 결혼의 의미도 지극히 현실적으로 변했다. “영원히, 평생,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서로 사랑하는 게 어디 쉽니? 그렇지 못한 게 오히려 당연한 거지. 그러니까 증인이 필요한 거야.”(현수) 다양한 인터뷰에서 건져올린 현실밀착형 에피소드와 대사들이 맛깔스럽다. 대본을 쓰고 연출한 우현주를 비롯해 배우 정재은· 정수영은 극의 주인공들처럼 실제 오랜 친구사이다. 7월3~8월30일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2만 5000~3만원. (02)2233-2784.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기고] 6월, 애국으로의 회귀를 바라며/노재동 서울 은평구청장

    [기고] 6월, 애국으로의 회귀를 바라며/노재동 서울 은평구청장

    “오늘 나는 빛나는 햇살과 자유, 그리고 스피드를 즐겼다!” 이것은 어느 화가의 즐거운 비명만은 아닐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오늘날 즐기는 일상입니다. 이 일상에 함몰돼 자칫 빛바래져서는 아니될 6월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이 있어 이를 기려보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9년 전 우리는 6·25전쟁을 치렀습니다. 국방부 전사편찬 자료에 의하면 이때 희생된 사람이 무려 185만명이 넘습니다. 모두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나라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초개같이 던졌던 것이지요. 그 가운데 우리 은평구에 비석 하나를 남기고 스물아홉의 꽃다운 나이에 떠난 벽안의 젊은이를 필자는 이렇게 소개하곤 합니다. “세계적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안다면, 우리의 윌리엄 쇼도 알아야 한다.” 윌리엄 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동족은 아닙니다. 그는 평양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서위렴 1세(William E Shaw)의 아들로 1922년 6월5일 태어나 평양에서 고교까지 마친 후 해군에 입대하여 2차 세계대전과 1945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에서 활약하고 해군 중위로 제대한 미국인이었습니다. 제대 후 본국으로 돌아가 하버드대 박사과정을 수학하던 중 윌리엄 쇼는 제2의 조국이라고 생각하던 한국에서의 전쟁발발 소식을 듣고 심각한 번민을 합니다. 결국 그는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는 성경에 따라 한국전 참전 뜻을 굳히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1950년 9월15일 전개되는 인천상륙작전 맥아더사령관 부관으로 참가합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서울탈환작전에도 자원하여 9월22일 녹번리전투 중 중무장한 공산군에 저격당하여 장렬하게 산화합니다. 그의 나이 29세, 서울탈환을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지요. 지금 그는 부모와 함께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외국인 묘역에 잠들어 있습니다. 이런 그를 필자가 호국보훈의 표상으로 강조하는 이유는 그가 녹번리전투에서 전사했음은 물론 1956년 9월 그의 공적을 아는 독지가들이 뜻을 모아 그가 전사한 녹번리 기슭에 세웠던 작은 기념비가 오늘까지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를 기억하는 이들도 사라져 갔고, 비마저도 도시계획에 밀려 응암동 85의41 응암어린이공원 한 귀퉁이를 지키는 신세로 전락했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지난해 필자는 이방인으로서 우리나라를 위해 몸 바친 윌리엄 쇼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윌리엄 쇼 추모공원’을 건립하기로 계획하고 박세직 재향군인회장, 이성호 제5대 해군참모총장과 공동으로 발기인대회를 가졌습니다. 때맞춰 우리 구가 역촌역 부근 5700㎡ 부지에 녹번천광장 조성을 계획하고 있어서 이곳에 윌리엄 쇼의 비를 이전설치하고 충혼탑을 함께 세우기로 했습니다. 광장은 추모공간 및 녹색쉼터, 부대시설, 지하주차장 등과 함께 1년여 공사를 거쳐 내년 6월 현충일에 맞춰 개장할 것입니다. 공원에서 윌리엄 쇼가 어떤 사람인가를 잠깐이라도 생각할 수 있다면 그의 죽음은 더욱 값질 것이며, 녹번천광장 또한 훌륭한 애국의 장이 될 것입니다. 이런 공간이 있음으로써 우리나라가 자유수호와 평화애호국으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주체로 위상을 다져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남의 탓만 하고 갈등의 골을 표출하기에만 급급한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나를 조금 양보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앞설 때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이룩될 것입니다. 모쪼록 호국영령들이 남기고 간 구국정신을 본받아 갈등의 골이 화합의 한마당으로 승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노재동 서울 은평구청장
  • [보고 듣고 즐기세요] 연극·뮤지컬

    ●오월엔 결혼할거야 28일까지 나온씨어터. 10년간 함께 모은 적금을 제일 먼저 결혼하는 친구에게 몰아주기로 한 스물아홉 세 여자들의 결혼 작전. 서른을 눈앞에 둔 미혼 여성들의 심리를 유쾌하게 그렸다. 1만 2000~2만원. (02)3675-3677. ●이 7월8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 아름다운 광대 공길과 비운의 왕 연산, 진정한 광대 장생의 안타까운 사랑.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 연극이다. 2만~5만원. (02)3675-3677. ●마이스케어리걸 7월19일까지 더스테이지. 얼떨결에 연쇄살인을 저지른 여인 미나와 극소심 남자 대우의 아슬아슬한 연애담을 그린 로맨틱코미디 뮤지컬. 4만 5000원. 1544-1555.
  • 세기의 中문인 36명 비명횡사 왜?

    세기의 中문인 36명 비명횡사 왜?

    “중국에는 300명이 넘는 황제가 군림했지만 황제들 가운데 비교적 교양이 있었던 사람은 문인을 질투했고, 교양이 없었던 사람은 문인을 증오했으며, 반푼이 같은 이들은 아예 문인을 괴롭혔다.” 지식인들은 시대정신을 가장 치열하게 여긴다. 특히 문인들은 촌철살인의 문장과 세상의 흐름을 꿰뚫는 통찰로 대중의 뜨거운 호응을 끌어내고, 권력에 맞서는 혁명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을 통치하는 황제에겐 문인들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특히 유교문화 속에서는 앞장설 자와 뒤따를 자, 먼저 입을 열 자와 의견을 덧댈 자 등 순서와 자리를 따지는 것이 당연했기에 ‘제 잘난 맛에 사는’ 문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중국의 원로 문인 리궈원(79)은 ‘중국 문인의 비정상적인 죽음’(김세영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펴냄)의 서문에서 옛 문인들이 왜 그렇게 고단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는지 명쾌하게 설명한다. “중국에는 300명이 넘는 황제가 군림했지만 그 속에서 지식인을 높이 평가하고 진정으로 대접한 현군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황제들 가운데 비교적 교양이 있었던 사람은 문인을 질투했고, 교양이 없었던 사람은 문인을 증오했으며, 반푼이 같은 이들은 아예 문인을 괴롭혔다.”(10쪽) 저자가 말하는 ‘비정상적인 죽음’은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비명횡사한 경우다. 책에서는 중국 황제의 정치 보복 등으로 희생양이 된 36명의 문인을 다룬다. ●사마천 거세당하는 궁형 받아 가장 먼저 언급되면서 가장 치욕적인 삶을 산 이는 역사학자 사마천으로, 그는 무장 이릉이 흉노에게 항복한 일을 변호하다가 한 무제의 노여움을 사 거세를 당하는 ‘궁(宮)’ 형을 받았다. 국사관장 사마천이 노예봉건제 초기에 성행했던 궁형을 당한 것은 “장이 하루에도 아홉번이나 꼬이고 생각할 때마다 식은땀이 흘러 흥건히 옷을 적실 정도로 모욕적인 것”이었다. 저자 역시 “군주가 이처럼 비열한 방법으로 지식인에게 복수한 것은 중국사의 치욕”이라고 평가한다. 후한 시기에 문화계의 큰 별로 칭송받던 채옹도 무리하게 박학다식함을 드러내다 주변 사람들에게 질투를 샀다. 폭군이었으나 채용만은 존중했던 동탁의 죽음을 두고 울다가 왕권을 접는 왕윤의 미움을 받고 황당한 이유로 처형당했다. “한 무제가 사마천을 죽이지 않아 그(무제)를 비방하는 서적이 후세에 전해졌다.”가 그것이다. ●여색에 빠진 이욱, 태종에 독살당해 문인이 권력을 좇고 정치병에 걸리면 약도 없다고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두 시인 이백과 이욱이다. 이백은 현종에게 수준급의 아첨을 하고 허풍떠는 시를 바치며 고위관직의 맛을 진하게 봤다. 이형이 즉위하자 반란을 꾀한 이형의 동생 이린과 손잡았다가 실패하고, 유배까지 갔다 온 뒤 이백은 목숨을 버렸다. 술에 취한 채 달을 잡으려다 강물에 몸을 던진 것이 아니라 참담함에 목숨을 버린 것이라고 말한다. 또 이욱은 시인으로서 남당의 왕위에까지 올랐지만 급박한 정치 정세는 나몰라라 한 채 여색에 빠져 결국 송 태종에게 잔인하게 독살당했다. ●저자도 우파로 낙인… 22년간 붓 꺾어 리궈원 자신도 정치의 희생양이 된 현대의 문인 중 한 사람이었기에 이들의 모습에 스스로가 투영됐을지 모른다. 저자는 1957년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단편소설 ‘재선거’를 내놓았다가 우파로 낙인 찍혀 20여년 동안 사상개조 작업의 일환으로 철도공사의 인부로 살다가 1976년에야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저자는 “문인들이 권력자의 탄압에 목숨 걸고 맞서는 장면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오고 무릎이 쳐지는 반면 그들이 서로 원수 대하듯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면 슬프고 비통하다 못해 눈물이 다 나온다.”면서 “목구멍에 가시라도 걸린 듯 내뱉지 않고서는 마음이 편하지 않은 이 문제가 결국은 필자로 하여금 붓을 들어 문인의 죽음을 적어가도록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제1회 마오둔 문학상, 루쉰문학상, 올해의 산문대상 등 많은 상을 받은 저자는 이 작품으로 중어권 문학 미디어 대상, 산문대상을 수상했다. 2만 5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제 인상 강하게 전달하기보다 깊이 있는 음악 전하고 싶어요”

    “제 인상 강하게 전달하기보다 깊이 있는 음악 전하고 싶어요”

    귀에 크리스털 피어싱을 달고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얼굴이나, 협연하는 ‘형들’(디토 앙상블) 앞에서 엉덩이를 씰룩대는 모습은 영락없이 발랄한 10대다. 그러나 음악 얘기를 하는 순간은 더없이 점잖다. 지난 16일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지용(18)은 인터뷰 내내 ‘유쾌’와 ‘진지’ 모드를 오갔다. 아홉살 때부터 미국 뉴욕에서 살았기에 한국말보다는 영어를 편하게 느끼지만 한국말로도 ‘나름대로 또박또박’ 할 말은 다 하는 소년의 이미지다. “디토 앙상블에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재미있겠다 싶어서 선뜻 수락했어요. 실내악은 무척 매력적이거든요.” 지난해 여름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실내악에 눈을 떴다는 그는 실내악 예찬론을 술술 펴낸다. “연주자들이 서로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함께 호흡하고 섬세하게 연주하는 게 실내악이지요. 오케스트라만큼 웅장하지는 않지만 청중들이 집중해서 볼 수 있고 연주자들이 조화롭게 연주하면 듣기도 좋죠. 특히 디토 멤버들은 다들 대단한 솔리스트잖아요. 그런데도 협연하면서 서로 존중하며 튀지 않으려고 절제하는 모습이 무척 흥미로워요.” 27~28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디토 페스티벌을 기다리는 팬들만큼 그도 이 연주회를 무척이나 기대하는 이유이다. “어렸을 때부터 무대에 서는 것이 떨리기보다는 너무 편했다.”는 그는 무대를 ‘또 다른 집(home away from home)’이라고 표현한다. “음악을 하는 게 너무 좋다. 음악이 없으면 못살 것 같다.”고 엄살을 떨다가도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려고 하는 것보다 진정 음악을 즐기고, 섬세하면서도 깊이 있는 음악을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어른스럽게 말한다. 공연이 끝난 뒤 “넌 정말 음악을 즐기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쁘단다. 요즘은 하루에 4~5시간 연습하고 주말에는 친구를 만나며 논다. 음악만 아는 ‘건방진 음악가’가 되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삶에 대해 알고 싶어 라마포와 미들랜드 파크 같은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해 많은 친구를 만났다. 이런 생각에는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늘 겸손하고, 음악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하라고 하셨죠. 제가 가진 재능은 하느님의 선물이니 다시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한다고요.” 그래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타이즈 재단을 통해 ‘지용 펀드(The Ji-Yong Fund of the Tides Foundation)’를 만들어 자선공연이나 기부 행사를 하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뉴욕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영아티스트 콩쿠르 최연소 우승, IMG의 최연소 연주자 등 늘 ‘최연소’라는 수식어를 달았던 그는 이제 줄리어드 음대에 진학하며 어엿한 대학생이 된다. 올해 국내에서는 8월과 10월 공연이 잡힌 상태. 내년에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누비며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할 예정이다.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정윤수의 종횡무진]포스트 이운재, 지금 발굴하라

    1990년대 스페인 최고의 골키퍼는 산티아고 카니자레스였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고 발렌시아로 옮긴 후에는 자국 리그 우승과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일궈냈다. 그의 축구 인생에서 단 하나 불운이 있었다면, 바로 2002년 월드컵이다. 당시 스페인은 막강한 우승 후보였다. 공격의 라울, 허리의 멘디에타, 수비의 이에로를 포함해 무엇보다 카니자레스가 골문을 지킬 예정이었다. 하지만 카니자레스는 대표팀 소집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로션 병이 발등에 떨어져 힘줄이 손상된 것이다. 항간에는 축구선수답게 떨어지는 로션 병을 발로 차올리다가 부상을 입었다고 하는데, 어쨌든 그는 우리 대표팀과 맞붙은 스페인의 월드컵 8강전을 광주경기장 관중석에서 쓸쓸히 지켜봐야 했다. 다행히 스페인에는 이케르 카시야스가 있었다. 물론 그들은 8강전에서 우리 대표팀에 덜미를 잡혔지만, 21세의 카시야스는 ‘무적함대’의 골문을 지키는 성인식을 훌륭히 치렀고 그 이후 대표팀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에서 세계적인 골키퍼로 성장했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역시 경기장의 냉혹한 실전을 통해서이다. 야구의 포수와 함께 축구의 골키퍼는 성장기의 선수들이 기피하는 위치로 꼽힌다. 투수나 공격수처럼 화려하게 빛나는 자리가 아니다. 아홉 번 잘 하다가 단 한 번만 실수해도 큰 상처를 입는다. 한번 이 포지션을 맡게 되면 다른 위치로 옮겨 가기가 어렵다는 점도 있다. 한 명의 유능한 골키퍼가 탄생하기 위해 팀 전체의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한국 축구 대표팀의 수문장은 이운재(36·수원)다. A매치 120회에 빛나는 대표팀 최고령 선수다. 골키퍼 후배인 정성룡과 띠동갑이다. 2007년 아시안컵 음주파문으로 인한 징계로 1년간 대표팀을 떠나 있었지만, 역시 이운재는 술집이 아니라 그라운드에 섰을 때 가장 아름다웠다. 단 한 차례의 패배도 없이 대표팀의 7회 연속 월드컵 진출의 역사를 일궜다. 이운재가 아니었다면 어쩔 뻔했겠는가 싶은 장면이 너무나 많았을 만큼 그는 ‘슈퍼 세이브’의 진가를 보여줬다. 그러나 지금부터 ‘포스트 이운재’를 구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이운재는 틀림없이 한국 축구사의 빛나는 명장면을 빚어낼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김영광과 정성룡이 그 뒤를 받치고 있지만 골키퍼란 오랜 경험 속에서 단련되는 특수한 자리다. 공을 정확히 처리하는 일 이상으로 경기 전체를 관장하면서 팀 전체의 리듬과 밸런스를 유지해 나가는 가장 중요한 위치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의 황선홍이나 2002년 때의 카니자레스가 겪었던 뜻밖의 사고는 결코 일어나지 않아야 하지만 그 같은 만일의 사태도 대비해야 한다. 언젠가 이운재라는 거목이 은퇴한 이후에 대표팀의 골문이 너무 넓어보여서는 곤란하다. 스포츠 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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