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아프가니스탄
    2025-12-24
    검색기록 지우기
  • 후쿠다 야스오
    2025-12-24
    검색기록 지우기
  • 동계올림픽
    2025-12-2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043
  • 아프간,1년만에 비상해제/의회 곧 소집… 대대적 개혁 추진

    【카불 AFP 연합】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오는 20일 비상사태를 해제할 것이며 나지불라 대통령은 지난 11년간 계속돼온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헌정상의 일대 개혁을 단행할 것이라고 아프간의 한 정치국원이 30일 발표했다. 집권 인민민주당(PDPA)의 핵심 의원인 파리드 마즈닥(32)은 이날 기자들에게 비상조치가 해제되는 대로 곧바로 로야 지르가(의회)가 소집될 것이며 아프간 의회가 헌정상의 과감한 변혁을 채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간은 지난 89년 2월 아프간 주둔 소련군 철수가 완료된 지 수일만에 비상조치를 내렸었다.
  • 데탕트 여파… 소 군부 심한 내홍

    ◎감군 잇달자 위기감 고조… 장교들 불만 팽배/민족분규 진압출동 잦아 “경찰전락” 불평도 국제적인 화해분위기 조성과 소련내 민족간 갈등심화에 따라 「국내경찰」로 전락되다시피한 소련군부내에 위기의식이 팽배해가고 있다. 잇따른 병력감축조치와 함께 상하장교들간의 분란 및 탈영병속출 등 산적한 내부문제들 때문에 소련군의 존립자체가 위협받는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 소련문제전문가들의 거의 공통된 시각이다. 미매사추세츠대(MIT)의 스티븐 마이어교수와 랜드사의 방위문제분석가인 존 하인스씨는 25일 미하원 군사위 방위체결소위 증언을 통해 소련군지도부는 국가의 경제난국과 아프가니스탄 침공사태를 야기한 장본인들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가운데 소련사회로부터 소외돼있다고 지적했다. 마이어교수는 『현재 소련의 각 군부대와 상하장교집단간에 내분이 빚어지고 있으며 젊은 장교들은 봉급수준이 더 나은 민간직종으로 옮기기 위해 군을 떠나는 등 체계상의 위기가 여러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앞으로 5∼8년 사이에사태는 한층 악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인스씨는 소련군고위소식통의 말을 인용,『금년말까지 약 50만명이 감축되고 앞으로 수년에 걸쳐 1백만 병력이 일방적으로 추가감축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일단 동구권에서 철수한 소련군이 재진주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오는 2천년에 가서는 소련군이 지금의 3분의1이나 2분의 1수준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은 소련군지도부에 곧 대대적인 변화가 초래돼 소장파장교들의 지위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소연방내 일부공화국들에서 빚어지고 있는 소요사태는 군부를 국내위기에 깊숙이 개입시키는 결과를 초래,상당수 군인들의 불만을 야기시키고 있다. 한 젊은 공군장교는 『나는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군인이 되었지 소련시민과 싸우려고 군인이 되지는 않았다』고 강한 반발을 보였다. 소련의 일방적인 감군조치로 약10만명의 장교가 제대하고 있으며 그들은 심각한 주택난과 함께 사회에서 마땅한 일자리를 찾는데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편이다. 소련군은 지난 1월 아제르바이잔공화국의 수도 바쿠에서의 시위진압과 리투아니아공화국의 분리독립 움직임에 대한 현재의 무력시위 등 국내경찰역을 떠맡으면서 위신이 더욱 떨어져 있다. 지난해 4월 그루지야공화국 수도 트빌리시에서 무장군인들이 독립을 요구하며 평화적인 시위를 벌인 시민들에 대한 무력진압에 나서 20명의 사망자와 수백명의 부상자를 낸 참사는 지금까지 군에 가장 깊은 상처를 심어준 사건이었다. 그루지야 공화국에서의 참사사건을 둘러싼 공방전은 소련의 엘리트층을 계속 흔들어 놓고 있으며 이로인해 그루지야 출신의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과 보수파 정치국원 예고르 리가초프간의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의 한 조사결과 특히 우수하고 총명한 젊은 장교들사이에 군부에 대한 불만이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련 개혁파 주간지 아르구멘티 이 파크티(논거와 사실)는 최신호에서 여론조사결과,고도의 훈련을 받은 많은 젊은 장교들이 25년간 군에 복무키로 한 서약을 파기하길 바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 신강폭동은 민족분규의 전주곡/소수민족 불씨 중국에 인화

    ◎소ㆍ몽고 개혁바람 편승,불만 표출/반한 감정 쌓인 티베트ㆍ내몽고에도 확산 가능성 중국 소수민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3월 티베트 수도 라사에서 대규모 소요가 발생한데 이어 지난 6일 최서북 변방인 신강위구르 자치구의 이슬람교도 위구르인들이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폭동을 일으킴으로써 인종분규는 이제 민주화 운동과 함께 북경 당국을 괴롭히는 새로운 발등의 불로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 위구르인들의 폭동에 북경측은 즉각 군대를 투입,무력진압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수백명의 시위군중 가운데 얼마만큼의 사망ㆍ부상자가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또 이번 사건은 지난해 6ㆍ4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안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최대규모의 소요인데다 종교문제까지 포함된 것이어서 그 불길이 쉽사리 잡히지 않을 것이란 예측을 낳게 하고 있다. 신강위구르 자치구는 역사상 한족 아랍 터키 러시아 몽고제국들의 격전지였으며 면적은 1백60여만㎢로 중국대륙의 6분의1을 차지하는 중국 최대의 민족자치구. 1천5백만 주민 가운데 6백만명이 이슬람교를 믿는 위구르인이며 같은 수의 한족과 기타 카자흐ㆍ타지크ㆍ우즈베크 등의 소수민족들이 섞여 살고 있는 인종의 모자이크 지역으로 유명하다. 특히 동북과 서남으로 소련ㆍ몽고ㆍ아프가니스탄ㆍ파키스탄ㆍ인도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민족분규 발생의 소지가 많았던 곳이다. 이번 폭동은 소련과 동구 및 몽고의 민주개혁을 발생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더욱이 소련내의 아르메니아ㆍ아제르바이잔 분쟁,발트 3국의 분리독립요구 시위 등을 시발로 확대되고 있는 인종 분규는 키르기스ㆍ리투아니아 공화국으로 번져가고 있으며 이러한 대변혁의 파장이 신강위구르에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함께 지난 10년간의 개방ㆍ개혁정책 추진으로 중국의 중부 및 동남지역이 크게 발전한데 비해 서북부는 심한 낙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신강위구르는 물론 티베트ㆍ내몽고등지 소수민족의 반한 감정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88년12월에도 위구르 대학생들이 자치구 수도인 우르무치에서 북경당국의 소수민족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었다. 위구르인들의 이번 폭동은 또 지난 연말 소련ㆍ동구변혁의 국내 파급을 크게 의식,이붕총리 등 중국 지도자들이 『소수민족 독립을 주장하는 반혁명 분자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고 소요발생 가능지역에 대한 군사적 경계를 강화했음에도 일어 났다는 사실이 크게 주목을 끌고 있다. 중국은 헌법 4조에 「중화인민 공화국은 통일된 다민족 국가이다」라고 명시,그동안 소수민족들에 대해 꾸준히 동화정책을 펴 왔다. 11억 인구인 중국의 민족구성은 지배계층인 한족이 92%정도이고 나머지가 55개의 소수민족으로 돼있다. 때문에 숫자로는 9천만명에 지나지 않으나 이들이 차지하는 지역은 전국토의 60%에 이르고 각종 부존자원이 풍부하므로 국가전략적 가치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북경당국은 강ㆍ온 양면의 정책으로 이들을 회유해 왔고 소수민족 자치구에 한족을 이주시킴으로써 일체감을 조성하려고 애써 왔던것이다. 그러나 인종ㆍ역사ㆍ종교 등 여러가지 면에서 뿌리깊게 내린 반한의식이 완전히 씻겨질 수는 없는 것이고,게다가 국제적 대세인 민주개혁을 거부하는 현중국지도층의 강경ㆍ보수적인 국가 운영 등으로 해서 이들 소수민족의 항쟁은 끈질기게 되풀이될 전망이다.〈홍콩=우홍제특파원〉
  • 대통령 고르비의 과제 특별기고/이기택(연대교수ㆍ국제정치학)

    ◎“「경제개혁」 속도가 소앞날 좌우”/대서방협력위한 합법적 기반 일단확보/러시아 농노체제 탈피,근대화추진해야/“연방 공중분해”위험도사린 민족문제에도 능동대응 필요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새로운 개정헌법 제127조에 따라 「소련국가」의 「소연방대통령」에 올랐다. 고르바초프가 권력구조를 바꾸고 재편성하는 과정을 보면 과연 능숙한 정치곡예 또는 예술을 보는 듯하다. 그리고 그 속도을 보는 듯하다. 그는 우선 일당독재의 핵심인 공산당과 고르바초프개혁에 저항하고 보수파가 웅거하고 있는 정치국을 격파하였다. 소련헌법6조가 보장하던 공산당의 권력핵인 「지도적 역할」,즉 일당독재권력을 대통령에게 이동시켰다. 고르바초프의 권력은 이미 미국의 대통령의 권한과 미국의회의 권한,그리고 프랑스의 비상 대권을 합친것에 버금간다. 그는 소련의 권력적 상징과 실질상의 권력자가 되었다. 이번 권력구조개편은 서방측의 소련접근에 가장 큰 장애였던 고르바초프의 실각의 불안을 일단씻고 고르바초프가 서방과의 협력을 할수 있는 권력적인「적법성」의 기반을 확고히 과시하게됐다는 점이 그 핵심이다. 고르바초프의 최대의 적은 서방이 아니었다. 그의 적은 소련내의 공산당통치의 타성에 젖은 특권계급이라는 보수파였으며 스탈린36년과 브레즈네프20년의 통치에서 인간성을 잃고 공산통치의 최면에 걸려있는 소련인민대중이었다. 또하나의 적은 소련의 돌이킬수 없게 보이는 경제적 낙후인 것이다. 이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페레스트로이카의 핵심인 정치개혁과 경제개혁을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는 대내외의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고르바초프권력은 이제 소련연방을 공중분해시킬 위험성이 있는 민족문제와 고르바초프이래 도리어 후퇴한 소련인민의 생활 수준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 하는 경제개혁의 문제에 직면해있다. 이미 소련의 중앙아시아의 소련회교도 민족문제나 코카서스 민족문제,나아가서 발트3국문제등은 소연방분해의 위기를 느끼게 하고 있었다. 이유는 소연방의 민족문제가 이미 국내문제가 아니라 국제문제로 확산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할때에 중앙아시아회교도에 속하는 소련군부대를 일차 투입하였으나 이들은 싸움할 생각은 않고 코란성경책을 사가지고 고향갈 생각만 하였기에 2주만에 그지역의 종족이 아닌 타타르족으로 신속히 교체하였던 것이 그 예였다. 국경을 트고 종족적으로 통합하려는 소연방문제는 지금은 국제적인 영역으로 확산돼 가는 소연방의 위기인 것이다. 소련이 민족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리투아니아에 서 보듯이 공산당과 정치국의 붕괴로 권력적인 연방이탈을 막을 권력적인 수단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비상대권을 갖고 연방이탈을 막을 합법적인 수단을 갖게된 것이다. 대통령이 된 고르바초프는 이제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는 권한(헌법127조2항)을 갖고 있는 이상 연방이탈을 대내차원에서 억지할 수 있는 정치적 방법이 생긴 것이다. 물론 국내적으로 페레스트로이카에 완강한 저항세력이었던 특권계급을 억압하고 인민을 통제할 수 있는 정치력이 생겼음은 말할필요도 없다. 보수파의 집결체이었던 공산당에 거부권을 행사할수 있게 되었기때문이다. 인민이 말을 안들을 때에는 특히 민족문제등에서 의견의 차이가 심각할때에는 최고회의의 개선(헌법127조2항16)을 제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련최고회의를 해산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르바초프의 권력재편성도 민족문제와 함께 본격적인 주문제는 페레스트로이카의 핵심인 소련의 경제재편성에 있는 것이다. 이미 고르바초프는 이를 위한 소유권법과 토지기본법을 지난 6일 통과시켰다. 소유권법은 거의 자본주의체제의 사유재산제도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다. 소련내의 외국인의 소유도 인정(소유권법 제4조1항)하고 있기까지 하다. 토지기본법에서는 종신점유물로 상속(토지기본법 제5조)도 허용하고 있다. 1917년볼셰비키혁명이래 가장혁명적인 고르바초프의 권력재편성을 고르바초프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라는 전통적 국가회복에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현재 직면하는 러시아적 문제의 핵심은 차르때나 볼셰비키소비에트시대나 지금이나 러시아의 농노체제로부터 어떻게 근대화를 하는가에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권력의 기반은 소련의 군부에 의해서 전복될수 없다. 그 까닭은 단순히 고르바초프의 동생이 군의 핵심간부로서 KGB와 군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 뿐만이 아니다. 이제 소련의 군부가 미국의 우주방위계획(SDI)을 따라잡기 위해 군사적이며 경제적 경쟁을 다시 한번 할 경우 소련의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점과 그렇게 될 경우 소련의 군사력은 기술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완전히 3등 군사국가로 전락할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고르바초프의 권력과 체제를 지지할 수 밖에 없다는데 고르바초프의 권력장악이 이번과 같이 문제없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적인 근대화라는 측면에서는 이번과 같은 권력 기반의 강화와 준비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거의 희망이 없다. 오늘의 소련경제 어디를 보아도 희망적인 돌파구는 없다. 소련탄광노동자에게 몸을 씻을 비누가 없으며 시장에서 돌연 그 많은 부탄가스가 사라지는 것이 소련의 경제이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가 서방 즉 미국 서유럽 일본등에 기대를 절대적으로 걸고 있는이유이며 이번 소련의 근본적인 권력 재편성도 실제에 있어서 서방에 대한 권력적인 대응이라는 점에서 최종적인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고르바초프의 권력이 권력적인 합법성을 그 기반으로 한다는 서방에 대한 과시이기도 하다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고르바초프와 소련의 문제는 이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 부토총리 방한 초청 약품등 30만불 제공/최 외무,회담서 밝혀

    파키스탄을 공식방문중인 최호중외무부장관은 14일 상오(현지시간) 부토총리및 야쿱 칸 외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한중 수교에 파키스탄이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현지공관이 이날 외무부에 보고해온 바에 따르면 최장관은 부토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부토총리의 영도아래 파키스탄이 민주발전을 이룩하고 아프가니스탄주둔 소련군철수에 공헌한 것을 치하한다』면서 『파키스탄내 아프간난민 3백60만명의 지원을 위해 금년중에 30만달러 규모의 차량ㆍ의약품 등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최장관은 또 빠른 시일내 부토총리의 한국방문을 초청하는 노태우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 「신사고」 앞세워 동서데탕트시대“견인”/고르바초프 집권5년의 평가

    ◎새로운 「자결원칙」 제시,동구 대변혁 “촉발”/강력한 대통령제 신설,개혁 가속화의 기틀 다져/“발등의 불”경제난ㆍ민족분규등 현안 “첩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겸 최고회의의장이 11일로 집권 5주년을 맞았다. 고르바초프는 그동안 사고의 대전환을 통한 대담한 개혁정책 추진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역사적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소연방내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민족주의 물결과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경제난 때문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르바초프는 12ㆍ13일 열리는 인민대표대회에서 비상대권 등 막강한 권한을 지닌 소련 최초의 서방식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취임 5주년 기념일인 11일에는 리투아니아공화국 최고회의가 독립국가를 선포하기 위한 표결을 준비하는 등 그에대한 도전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이같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는 개혁정책과 신사고외교를 성공리에 추진,소련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아니라 끝없는 군비경쟁으로만 치닫던 냉전체제에 종지부를찍으며 국제적인 데탕트 기류를 몰고 온 장본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대담하게 개혁 추진 지난 85년 체르넨코 서기장 사후 그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고르바초프는 지난 88년말 유엔총회연설에서 일방적인 국방비삭감과 50만명의 소련군 감축을 선언,세계의 군비경쟁에 결정적 브레이크를 걸었다. 또 소련의 동구개입을 뜻하는 브레즈네프독트린을 폐기하고 이른바 시내트러독트린(프랭크 시내트러의 히트곡「My Way」처럼 각국이 제갈길을 찾아가라는 의미)이라 불리는 새로운 자결원칙을 제시,지난해 동구의 민주화변혁을 가능케 했다. 고르바초프의 신사고가 없었다면 베를린장벽의 제거와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몰락도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함께 아프가니스탄 주둔 병력을 철수시키는등 지역분쟁 해결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ㆍ재편)와 글라스노스트(개방ㆍ정보공개)를 세계적인 유행어로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세계평화의 위협자에서 수호자로,동구제국의 지배자에서 해방자로,혁명수출국에서 분쟁중재국으로 소련의 역할전환을 이룩해낸 것이다. 시사주간 타임지는 고르바초프를 지난 8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플라톤의 정치의 도를 터득한 사람』이라고 극찬하면서 「80년대의 인물」로 선정했다. 지난달 미CNN방송이 고르바초프의 서기장직 사임설을 보도하자 뉴욕ㆍ도쿄등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 증권시장에서 주가폭락을 초래했을 정도로 그는 이미 전세계의 기대와 희망을 한몸에 받고 있다. ○군비경쟁에 쐐기 국내에서도 국제무대에서 만큼 가시적인 효과를 얻어내지는 못했으나 나름대로 소련의 정치체제를 뒤흔드는 일련의 개혁정책을 성공리에 추진하고 있다. 볼셰비키혁명이후 70년이 넘도록 유지돼온 공산당 권력독점을 포기,고질적인 관료제를 타파하고 정치적 다원주의의 물꼬를 텄다. 강력한 대통령직을 신설,개혁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기틀도 마련했다. 인민대표대회의 권한을 강화,자유로운 토론의 장으로 변모시켰는가 하면 각급 선거를 복수후보경쟁에 의한 비밀투표로 실시토록 했다. 정치범 석방,언론ㆍ종교ㆍ출입국 자유화 등의 민주화 조치도 취했다. 경제적으로도 관료적인 중앙집중식 계획경제의 비능률성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의 독립채산제를 채택하고 협동조합기업(코페라티브)설립과 합작을 통한 외국자본의 유입을 허용하는등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침체의 늪에 빠져든 소련 경제를 소생시키지는 못했다. 생산수단 사유화및 임금노동과 토지의 개인영구임대 및 상속을 허용하는등 보다 실질적인 조치들이 곧 입법화될 예정이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물자부족등 피부에 와닿는 경제혼란으로 인해 주민들의 불만과 급진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팽배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정보의 공개와 언론자유에 힘입어 소수민족공화국들의 민족적 자각과 그에 따른 분리독립요구가 높아져 연방해체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이같은 페레스트로이카와 신사고에 대해 고르바초프는 관료체제를 타파하고 「인간의 얼굴을 가진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발전을 위한 제2의 혁명이며 「보편적 인간 가치」를 위한 자본주의 국가와의 협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역 분쟁해결 앞장 일부 서방전분가들이 지적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마르크스­레닌주의의 포기」「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의 재생이라는 주장이다. 개정된 공산당 강령은 레닌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여도 안되지만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국유 또는 사회소유에 반하는 사적소유와 인간노동의 착취행위로 금지돼왔던 임금노동을 허용하는 문제들을 놓고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던 것처럼 아직도 사회주의적 「사회정의」와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상반된 개념중 어느 것을 취할 것인지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소련과 동구의 변혁이 일방적이 아닌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것처럼 소련내의 개혁도 집권층과 국민들간의 상관관계속에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에측불허인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개혁작업이 어떤 동기에 의해 추진됐건간에 전임자들도 똑같이 느꼈던 문제를 고르바초프만이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단 그의 대담한 실천력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고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제 대통령으로서 집권2기를 맞으며 앞으로 4년의 임기동안 실각의 우려를 덮어둔채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게 된다. ○부분적 시장경제로 개혁을 가속화시켜 국민들로부터 계속 지지를 받게될지 아니면 일부의 우려처럼 독재자로 변신할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오는 94년의 2대 대통령은 국민들의 직접비밀투표에 의해 선출된다는 점에서 스탈린식 강권통치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자유의 맛을 느낀 소련국민들도 두번다시 과거행 타임머신에 동승하기를 거부할 것이다. 강제이주 이전 거주지인 크림반도로 돌아가겠다는 타타르족등의 단순한 요구로부터 발트해연안 3국의 즉각 분리독립요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민족문제들이 고르바초프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또 루블화의 태환성 부여,가격ㆍ금융제도의 개선,완전자유시장의 도입등 근본부터 흔들어 놓아야 할 경제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세기의 영웅 고르바초프가 70년동안 타율성과 의욕상실증에 찌들대로 찌든 국민들을 다독거려 이같은 난제들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해나갈 것인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취임5돌 고르바초프 공과 ■외교 정책 ▲동구 각국에 대한 불간섭정책을 선언함으로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등 동유럽에 엄청난 변혁이 일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 ▲핵전쟁 발발 가능성의 공포와 유럽 및 중국에 대한 소련의 선제공격 우려를 현저히 불식. ▲국방비를 삭감하고 병력 50만명과 탱크 1만대 감축을 일방적으로 선언 ▲중부유럽 주둔 병력의 철수를 미국과 잠정적으로 합의 ▲미국과 중거리핵미사일 폐기를 합의한데 이어 오는 90년까지 장거리 핵미사일도 절반으로 삭감한다는 목표를 협상중. ▲아프가니스탄에서 병력 11만5천명을 철수. ▲앙골라ㆍ나미비아ㆍ캄보디아ㆍ니카라과 등 분쟁국에 대해 협상을 종용 ■민주화 ▲지난 89년 경선제를 도입하고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지도부를 설득,동의얻어냄. ▲강력한 대통령제 도입을 제안. ▲언론ㆍ집회ㆍ종교의 자유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법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 ▲정치범 수백명을 석방하고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에 대한 탄압을 종식 ■경제정책 ▲일반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생화수준 개선을 위한 노력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 ▲당지도부가 공장의 개인소유제도를 받아들이게 하는데 성공 ▲개인이 토지를 임대차하는 것은 물론 이 권리를 상속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으나 개인의 토지소유는 거부. ▲합작을 통한 외국자본의 유입을 대폭 완화. ▲90년도 적자가 1천5백억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함으로써 재정적자를 처음으로 공개. ■국내정책 ▲발트해연안 3개 공화국의 독립요구 운동을 묵인.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등 일부 공화국에서 민족분규가 발생해 진압군 수십만명을 파견. ▲관료들의 부정 근절 실패,폭력범죄도 계속 증가. ▲환경보호주의자들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환경개선에는 아직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음.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성과는 별로 나타나지 않았음.
  • 쿠데타 완전 진압/아프간 정부 발표

    【카불ㆍ이슬라마바드 외신 종합 연합】 아프가니스탄의 나지불라 대통령(43)은 타나이국방장관이 주도한 쿠데타 정부군에 의해 완전 진압됐다고 8일 발표했으며 관영 카불방송은 쿠데타 주동자 타나이 국방장관등 최고국방평의회 의원 4명과 현 모스크바 주재 대사등 모두 8명의 당ㆍ군 고위간부가 쿠데타와 관련,「국가에 대한 불충죄」로 해임됐다고 보도했다.
  • 소,아프간 쿠데타 무력 개입/영BBC 보도

    ◎“무기 적재 소기 카불 도착”/“아프간 정부군 수송대 이미 항복” 파키스탄 외상 【런던 로이터 연합】 6일 발생한 쿠데타로 폐쇄됐던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공항이 8일 재개됐으며 무기를 적재한 것으로 믿어지는 소련 항공기들이 카불시내에 도착했다고 영국의 BBC방송이 이날 보도했다. BBC방송은 쿠데타 주모자인 샤 나와즈 타나이 국방장관의 행방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가 현재 20여명의 장교들과 함께 7일 파키스탄으로 도주,파키스탄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파키스탄내 소식통들을 인용,보도했다. 이 방송은 카불 공항이 재개됐으며 소련 항공기가 도착했다는 외무부 보고를 인용,이같이 보도하고 카불 수도 북쪽에 위치한 바그람 공군기지의 상황은 분명치 않다고 말했다. 카불 주재 BBC방송 특파원은 쿠데타 발발 후 24시간 동안 반군으로부터 맹렬한 공습이 있었으나 7일 저녁부터 평온을 되찾고 있다고 말하고 시장들은 다시 문을 열었으나 정부 청사와 군사 시설 주위에는 탱크들이 포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슬라마바드로이터 연합 특약】 아프간회교 반군들은 타나이 전국방장관의 쿠데타에 힘입어 동부지역의 정부군 전략요충지 호스트를 포위,공격하고 있으며 정부군의 항복조건을 놓고 양측간에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탄비르 아마드 칸 파키스탄외무장관이 8일 말했다. 호스트는 지난 수년간 반군이 점령을 시도해 온 곳이다. 그는 뉴스 브리핑에서 『호스트 인근지역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칸장관은 또 호스트에 보급품을 공급하려는 정부군 수송대가 이미 항복했다고 전했다.
  • 아프간 국방,파키스탄 도피/정부군,거점 탈환… 사태장악

    ◎쿠데타군,수도 곳곳서 저항 계속/소기도 진압작전 지원 【이슬라마바드 UPI 연합 특약】 아프가니스탄에서 나지불라 정권 전복을 위해 쿠데타를 주도했던 샤 나와즈 타나이 국방장관이 7일 군 헬기를 이용해 그의 가족과 함께 파키스탄에 도착,당국에 체포됐다고 정부 소식통들이 전했다. 소식통들은 타나이 국방장관과 그의 부인및 2남2녀의 자녀들과 다른 11명이 탄 MI­17헬기가 7일 하오 아프간 접경 페사와르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이들 일행 도착 즉시 지방당국에 억류됐으며 타나이 장관은 망명을 하려는 것이 분명하다고 소식통들은 말했다. 【이슬라마바드ㆍ뉴델리 AP AFP 연합】 나지불라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정부군들이 7일 쿠데타군의 본거지였던 국방부 청사를 탈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쿠데타군은 아프간 최대의 공군기지를 장악했다는 보도가 나오는등 아프간의 쿠데타 상황은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인도주재 아프간 대사 아마드 사르와르는 이날 새벽 정부군이 6일 하오부터 쿠데타군의 장악하에 있던 국방부 청사를 탈환,쿠데타군 장성 8명을 체포했다고 전하고 이제 대통령궁 주변의 카불시 중심가에서 더 이상의 전투는 발생하지 않고 있으며 국방부 탈환과 함께 상당수의 쿠데타군들이 투항했다고 덧붙였다. 나지불라 대통령은 하룻새 두번째로 가진 카불 라디오 방송을 통한 발표에서 국방장관 샤 나와즈 타나이가 주동한 이번 쿠데타는 진압되고 상황은 정상을 되찾고 있으며 정부군과 쿠데타군간의 교전에서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고 밝혔다. 나지불라는 이어 이번 쿠데타 기도는 국방장관 타나이 및 회교반군 지도자와 파키스탄 정부의 합작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말하고 쿠데타의 주동자들은 곧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지불라의 이같은 발표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 주재 외교관들과 회교반군 소식통들은 이날 쿠데타군이 카불 북방 50km지점에 위치한 아프간 최대의 바그람 공군기지를 장악했으며 쿠데타군 공군기들이 6일에 이어 이틀째 정부군측의 치열한 대공화망 속에서 카불에 대한 공습을 실시했다고 전했다. 외교관들은 카불에서 7일 현재 정부군과 쿠데타군간에 전투가 계속되고 있으며 중국 및 인도,이탈리아 대사관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고 반군이 장악한 것으로 알려진 바그람 공군기지에 대한 정부군의 대대적인 공격이 벌어지고 있으며 남부의 칸다하르,북서부의 헤라트시에서도 전투가 벌어졌다고 전했다.
  • 아프간 불발 쿠데타/국방장관이 정부전복 기도

    【이슬라마바드ㆍ모스크바 AP AFP 연합 특약】 나지블라 아프가니스탄대통령은 6일 아프간국방장관 샤 나와츠 타나이장군이 현정부를 전복시키기위한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했다고 발표했다. 나지블라대통령은 이날 이슬라마바드에서 청취된 라디오 카불의 특별방송을 통해 타나이장군이 무자헤딘 반군지도자이며 정통 헤즈브 이슬라미당의 대표인 굴부딘 레크마티야르야와 공모하여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고 밝히고 그의 체포를 군과 국민들에게 명령했다고 말했다. 이 방송은 타나이 국방장관은 도피중에 있으며 아프간 보안군이 타나이장군과 그의 추종자들을 추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북한,핵운반 미사일등 보유”/프랑스 국제연 보고서 지적

    ◎한반도 군비경쟁 가속… 「핵전」 가능성/대치상황 해소위해 유럽식 군축 필요 한반도는 남북한간의 군비경쟁으로 세계 분쟁지역 중 핵분쟁 발발 가능성이 높은 곳 가운데 하나이며 한반도에서의 무력대치상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대유럽 군축방식이 동일하게 적용돼야 할것이라고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IFRI)가 최근 한 보고서에서 지적했다. 프랑스의 대표적 국제문제연구기관인 IFRI는 최근 발간한 「아시아에서의 핵군축」이라는 전략군사문제 보고서에서 한반도 핵상황에 언급,이같이 강조하면서 북한에는 핵운반가능 탄도미사일외에 최근 전술핵의 위력에 맞먹는 소련제 신형 재래식 무기들이 배치된 것으로 보이며 한국내에서도 북한의 우세한 재래전력에 맞서기위해 핵무기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군사전략전문가인 티에리 베르텔로 연구원은 「한반도,한 지역분쟁의 전략적 이해」라는 제목의 한반도 관련 보고서에서 북한은 현재 공식적으로는 핵무기가 없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보유중인 프로그 5,7및 스쿠드B미사일 등은 유사시 소련으로부터 핵탄두를 제공받아 한국을 공격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를텔로 연구원은 사정거리 70km의 프로그 탄도미사일은 서울은 물론 10개 사단본부와 2개 해군기지등 반경 70km이내의 예민한 지역을 공격할 수 있다면서 나아가 사정거리 3백km인 스쿠드미사일로는 광주와 남해안지역을 제외한 남한 대부분의 지역을 공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또 경우에 따라 유사시 소련으로부터 SS21 미사일이 이동,가세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어 소련이 북한에 최신예 미그29전폭기 등 신형무기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인도에 이어 두번째로 북한에 미그29기를 제공한 것은 북한의 맹방으로서의 신뢰도에 대한 소련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또 탄도미사일외에 재래식 무기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는 소련의 대외협력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면서 가스탄과 같은 전술핵에 맞먹는 위력을 갖는 신형 재래식 무기가 북한에 배치됐을 가능성도 지적했다. 폭탄 또는 탄두방식의 가스탄은 소련이 지난84년부터 아프가니스탄에 배치한바 있는데 소련은 최근 탄두형태의 가스탄을 SS21미사일 장착용으로 개발했다. 보고서는 이어 국제핵조약에 따른 철저한 현장검증등 국제적 핵기준이 한반도에서 적용되기 위해서는 당사국들의 결단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한편으로 북한측이 주장하고 있는 3자회담은 고르바초프를 만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한반도의 무력대치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유럽에 대해 행했던 것과 같은 원칙들이 한반도에도 적용될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그 구체적 방안으로 ▲전술핵을 비롯한 기타 공격무기를 철수시킴으로써 북한군의 전진배치를 해소하고 ▲경무장및 비무장지대를 설치함으로써 서울지역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편 ▲외군기지를 철폐하되 남한주둔 미군철수를 위해 북한내의 소련전력도 상응하는 철수조치를 취해야 할 것등을 제시했다.
  • KGB,지아 대통령 참사 주도/미 망명 전요원 셰이모프 폭로

    ◎“교황 암살ㆍ누레에프 습격도 계획/공산주의는 가장 억압적인 체제” 소련 크렘린 당국은 지난 79년 바르샤바 주재 KGB(국가보안위원회) 지국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암살하는데 이용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수집토록 명령했었다고 미국으로 망명한 전 KGB요원이 2일 폭로했다. 지난 80년 부인과 자녀들을 데리고 제3국을 통해 미국으로 망명한 전KGB요원 빅토르 셰이모프(43)는 이날 워싱턴 포스트지와의 회견에서 자신이 KGB통신국의 암호 해독전문가로 바르샤바에서 근무할 당시 한 KGB장군으로부터 『교황에게 「신체적으로 가까이 접근(KGB용어로 암살을 지칭)」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입수하라』는 유리 안드로포프 당시 KGB국장이 보낸 전문에 관한 얘기를 들었으며 망명직후 이 사실을 미국 CIA(중앙정보국)측에 귀띔해 주었다고 밝혔다. 셰이모프는 또 KGB요원들이 지난 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당시 아프간 지도자였던 하피줄라아민을 살해했으며 88년 지아 울 하크 파키스탄 전대통령의 비행기 폭발사고도 아마 KGB의 소행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소련 KGB는 또 지난 61년 망명이후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공개발언을 한 소련의 발레 스타 루돌프 누레예프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계획을 한때 고려했었다고 셰이모프는 밝혔다. 85년 미국 시민권을 얻어 현재는 가명을 사용하며 살고 있는 셰이모프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다시 공부한 결과 공산주의 체제는 지구상에서 가장 억압적인 체제임을 깨달았다고 말하고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알리고 영원한 비밀이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이같은 비밀을 공개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 미ㆍ가 연구소장 소 아르바토프,소 잡지 기고

    ◎“소,군비 과다지출 계속땐 후진국 전락”/현재 국방비는 「안보 적정선」 초과/병기개발 치우쳐 서방과의 경제격차 심화/군조직등 관련법,데탕트 걸맞게 정비해야 소련의 미국문제 전문가로 미국ㆍ캐나다 연구소 소장인 게오르그 아르바토프는 소련의 군사지도자들이 미국의 방위비 지출내용을 왜곡,소련으로 하여금 과도한 군사력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발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다음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노브스티 통신을 번역하여 25일 소개한 아르바토프의 기고문 내용이다. ▷신정치적 사고◁ 새로운 정치적 사고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의 주요 요소이자 외교정책의 새로운 개념이기도 하다. 이는 또 군부의 역할과 군사력 사용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필자는 기왕에 우리가 옹호해왔던 정치나 전쟁에서의 군사력 이용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아니나 소련은 너무 자주 제국주의적 야심에서 나온 정책을 추구해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스탈린이 1939년 히틀러와 맺은 비밀협정이나 1968년 체코에서 소련과 그동맹국들이 군사력을 사용한 것,그리고 1979년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낸 결정을 비난함으로써 그것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정치적 태도와 개념에 대한 검토는 전쟁위험의 감소와 군사적 독트린 및 전략에 대한 재고를 이끌어내게 유도한다. 새로운 정책은 그같은 거대한 군사력이나 거대한 군비의 지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군사력의 과잉은 결코 안전의 요소가 될 수 없다. 이는 어느 한쪽이 다른쪽에 대한 평가를 할때 군사적 능력만 갖고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군사력은 합당할만큼 충분하면 되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치 않다. 이는 한쪽이 자신을 방어하기에 충분하면 되지 다른 쪽을 자극하는 것이어서도 안된다.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공격하고 제압하기에 충분한 군사력을 유지해서는 안되며 상대방에게 위협을 주거나 자기편의 정치인들이 무모한 행동을 취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도 안된다. ▷열악한 경제사정◁ 빚을 지고 있을 때나 꼭 필요한 물건을 살 돈이 없을때 수입의 범위안에서 필요한 지출을 포기하면서 살아가는 일반 가정주부들의 방식대로 처신해야 한다. 필자는 한 나라도 가정주부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빠른 시일내에 자금회전이 되지 않는 거대한 자본투자나 거대한 관료조직의 유지,아무도 사기를 원하지 않는 겉만 번지르르한 상품이나 또는 과도한 군비에 대한 지출과 같은 모든 사치와 낭비는 포기해야 한다. 필자는 오늘날 우리의 군비지출이 안보 요구와 적정선을 초과하는 것이라 확신한다. ▷과도한 군국주의◁ 경제 과학 심지어 교육과 같은 많은 분야에서 사회주의 사회를 위한 군국주의가 만연돼 있다. 이는 넓게 보면 군국주의가 상당부분을 차지했던 스탈린주의의 자연스런 결과이다. 이와 동시에 이는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나 많은 자유를 가진 고위장성과 무기제조 관련 인사들이 스탈린 사후 시대에 추구했던 정책의 결과이기도 하다. 전국방장관 브레즈네프와 우스티노프 안드레이 그레츠코 같은 군사령관들이 요즘들어 비효과적인 것으로 판명난 그같은 전쟁기구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같은 거대한 전쟁기구를 만들어얻은 이익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먼저 70년대에 데탕트 정책에도 불구,우리는 우리에게 대항하는 전 세계를 겁주는데 성공했다. (놀랍게도 우리의 공식자료에 따르면 소련은 소련을 제외한 전 세계가 보유한 것보다 많은 6만4천대의 탱크를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착취당했으며 경제와 재정이 흔들리고,끝내는 사회적 긴장마저 야기시켰으며 생활수준마저 떨어지게 했다. 이에따라 서방공업국과의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또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난하면서 우리는 미국의 군수산업체로 하여금 냉전을 15년 또는 그 이상 지속되도록 했으며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군축과 비군사적 논의 자체를 지연시켰다. 이같은 모든 사실은 우리가 개방을 시작해야 하고 병력 군사정책 및 방위비 지출에 대처,가능한한 빨리 정직하게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분야에서의 과감한 개혁은 역시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아는 바를 되풀이하면, 85년이래 미군의 병력은 꾸준히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국도 소련과 마찬가지로 더욱 빠른 속도로 병력을 감축해야 하겠지만.) 미국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미국의 방위비는 1989년 불변가격으로 85년 3천2백55억달러였던 것이 86년엔 3천1백19억달러,87년엔 3천18억달러,88년엔 2천9백28억달러,89년엔 2천9백8억달러로 줄어 지난 5년 사이에 금액으로 3백50억달러,비율로는 1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병력의 감축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50만명을 감축하더라도 미국병력보다도 1백50만명이 많다. (오브치니코프 장군은 미국병력에 비해 소련측이 46만명이 많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차제에 우리를 더욱 위협하는 것이 외국의 간섭인지 아니면 점증하는 국제난국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같은 사태가 계속되면 우리는 종국에 가서는 후진국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무슨 법에 의거해 이 나라의 군사력을 거느리고 누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병력을 조직하는 것을 결정하며,또 누가 이에 필요한 자금을 관장하고 지출하는가를 결정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필자는이 모든 질문을 소연방최고회의 구성 및 기능에 관한 문제와 함께 우리들의 의회에 가능한한 빨리 상정,논의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제2차 인민대표대회에서 군사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지만 필자는 이 논의를 최고소비에트회의에서 계속되도록 해 결국엔 법의 채택과 정치적 및 예산결정으로 이끌어 가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군의 이익이자 국가의 이익이 될 것이며 나아가 경제나 방위력 향상에도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 “「개혁바람」 한반도 유도”신호/소 외무의 “장벽제거”발언의 의미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지난 10일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을 마친뒤 기자회견을 통해 한반도의 「장벽」 제거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촉구해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데탕트분위기가 무르익은 가운데 소련의 고위관리로서는 처음으로 한반도의 남북교류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일단 한반도평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언의 배경과 의미를 국내전문가들과 도쿄의 시각을 종합해 정리한다. ◎한국정부의 시각/「장벽」보도 엇갈려 공식적 논평유보/대소외교 강화… 새 대북채널도 가동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이 10일(현지시간)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과의 양국외무장관회담후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한반도장벽철거」를 촉구한데 대해 외무부와 통일원등 정부관계부처는 「장벽」의 의미가 확인안돼 일단 공식논평을 유보한 채 사태추이를 관망하고 있다. 현재까지 셰바르드나제외무장관의 정확한 발언진의를 알수 없는데다 「한반도장벽」에 대한 APㆍ로이터등 서방진영통신과 소련관영 타스통신의 보도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방통신은 단순히 「한반도장벽」이라고 표현했지만 타스통신은 『한반도를 두부분으로 분할하고 있는 군사분계선지역의 콘크리트장벽 해체와 주민의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하는데 대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의 제의에 적절한 반응이 없다』고 밝혀 북한측이 주장하고 있는 휴전선남쪽의 콘크리트장벽을 지칭했다. 그의 발언에 대한 정부의 시각도 크게 둘로 나뉘어지고 있다. 첫째로는 북한 김일성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혔듯이 휴전선남쪽에 콘크리트장벽이 존재한다는 북한측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시각이고,분단이후 40년 넘게 계속돼온 장벽을 단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분단」의 의미로 언급했을 뿐이라는 다분히 축소적인 해석이 두번째 시각이다. 전자의 경우는 미소 외무장관회담을 앞두고 북한측이 콘크리트장벽철거와 자유왕래문제에 대해 소련측과 사전협의를 거쳐 소련측이 앵무새처럼 북측입장을 대변한 것을 의미하며 국제적인 여론을 유리하게 전개시키기위한 북측의 술책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우선 셰바르드나제의 기자회견전문을 미국측을 통해 입수,「장벽」의 의미를 정확히 분석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상호 교환설치된 주소 한국영사처와 주한 소련영사처라는 한소간 공식외교채널을 통해 콘크리트장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사실을 소측에 납득시킬 방침이다. 또 소련의 고위관리가 때 맞춰 문익환목사,임수경양등 밀입북 인사에게 중형을 내린 남한정부를 비난한 사실도 한반도 문제해결에 대한 소측의 편향된 자세를 보여준다는 것이 정부측의 분석이다. 반면 정부내에서는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의 발언이 대체적으로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간의 직접대화촉구등 한반도문제해결에 적극성을 띠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기류도 많다. 즉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철수 문제에 대해 「완전철수의 분위기가 아직 조성되지 않았다」고 밝힌 점은 소측이 그전보다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균형을 찾아간다고 볼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이같은 관점에서 셰바르드나제의 발언은 북한개방을 유도하기 위한 대 한반도정책의 또 다른 표현으로 향후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결국 정부는 셰바르드나제의 이번 발언으로 한반도문제가 베를린장벽과 함께 국제적인 문제로 격상됐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남북관계의 정확한 현실을 알리는 홍보외교에 주력하는 한편 북한개방유도를 위해 기존의 대화와 함께 새로운 대화채널을 가동시키는등 남북회담에서의 이니셔티브를 잡아 남북관계를 주도해 나가기로 했다. ◎일본 언론의 시각/크렘린의 「정치ㆍ경제적 이해」직결/태평양지역서의 군축촉진도 겨냥 합의내용에 있어서 획기적 진전을 가져온 이번 미소외무장관회담에서 지역분쟁문제의 하나로서 한반도문제가 구체적으로 거론됐다는 사실을 일본외교소식통들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특히 공동성명에서 『미소 양국은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바라며 남북대화 지지를 표명했다. 소련측은 북한이 가까운 장래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보장조치협정을 맺을 전망이라고 말했다』라며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언급한 사실을 중요시하고 있다. 더구나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10일상오 모스크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재차 한반도긴장완화에 대해 소신을 밝힌 것은 소련의 한반도정책자체를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도쿄(동경)신문은 모스크바 특파원 해설기사를 통해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한반도문제에 관해 국제사회는 남북한간의 벽을 헐기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자유왕래 실현에 강한 의욕을 표명한 것은 한국과의 경제교류를 촉진하고 유럽군축의 흐름을 극동에 파급시키며 남북한의 국경개방,나아가 남북통일을 목표로 하는 소련정책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셰바르드나제외무가 미소 외무장관회담 석상에서 한반도의 벽철거구상에 지지를 요청했을뿐만 아니라 기자회견에서도 그 실현을 위한 여론조성을 당부한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배경에는 크렘린의 정치ㆍ경제적 이해관계가 한반도ㆍ극동지역과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상기시켰다. 고르바초프서기장의 아시아ㆍ태평양지역구상에 따라 시베리아극동부의 경제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소련은 경제대국 일본과의 경제ㆍ과학기술교류를 바라고 있으나 「북방영토 반환문제」가 장애로 되어있기 때문에 급진전의 전망은 없다. 따라서 소련은 극동제2의 경제대국인 한국과의 경제교류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더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사회주의동맹국 북한 김일성정권에의 정치적 배려가 필요하다. 만일 이벽을 헐고 남북교류ㆍ대화가 진행된다면 북한이라는 정치적 걸림돌은 없어지게 된다. 소련의 남북한장벽제거 주장에는 또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일본언론들은 지적한다. 그것은 미제7함대,필리핀,오키나와(충승)등 미측이 압도적 우세에 있는 극동ㆍ태평양 지역에서 긴장완화ㆍ군축을 촉진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베를린장벽의 철거등 동서유럽에서의 긴장완화는 유럽군축을 크게 촉진시켰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성공한 외교수법을 아시아에도 적용해 온 고르바초프정권은 이와 같은 한반도장벽의 철거에 의해 극동ㆍ태평양군축에 미치는 정치ㆍ심리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일본의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아사히(조일)신문은 11일자 사설에서 『종래 미소간에는 제안­역제안­비난­결렬이라는 패턴이 많았으나 이번에는 그것이 무너졌다』며 양보에 의한 획기적인 미소대화의 전진을 높이 평가하고 한반도를 비롯한 독일재통일문제,아프가니스탄ㆍ중미ㆍ중동ㆍ일본의 북방영토문제등 세계의 지역문제를 또하나의 중요테마로 삼았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요미우리(독매)신문도 사설에서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관련,우려를 표명했다. 우리들은 이미 이 문제에 관해 북한이 하루빨리 국제원자력기구의 전면사찰을 받아들일 것을 당부했다. 새삼 북한의 조치를 촉구한다』며 북한측에 화살을 겨누었다. ◎미소외무 공동성명 한반도관련 부분 미소 외무장관회담에서 발표된 공동성명중 한반도 관련부분은 다음과 같다. 『미국무장관과 소련외무장관은 태평양 및 동북아시아문제를 논의했다. 이들은 이 문제들에 관해 조속히 미소협상을 벌이기로 합의했다. 양국 외무장관들은 한반도의 긴장을 줄이고 남북대화를 지지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소련측은 북한이 핵안전문제에 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정을 맺을 직전단계에 와 있다는데 유의했다. 미국측은 이 협정이 속히 체결돼 성실히 이행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표시했다』 ◎국내 전문가들의 반응/대한교류 확대ㆍ대북 개방압력 시도/장기적으론 남북관계의 안정에 기여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한반도의 「장벽」제거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소련이 자유개혁 및 냉전종식의지를 극동으로 확산시켜보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미소간의 핵무기 감축 및 유럽주둔군 대폭 감축에 상당한 의견접근이 이뤄졌고 동구의 민주화개혁과 베를린장벽의 붕괴에 따른 동서독간의 통일논의가 한껏 무르익은 시점에서 이제 유일하게 청산돼야 할 냉전의 유산은 한반도문제 뿐이기 때문이다. 서울신문논평위원 서병철교수(외교안보연구원)는 『소련은 현상태에서 동서독의 경쟁상황이 동구동맹국들의 성장과 소련의 개혁진전에방해가 된다고 판단,통독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로 전환한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한반도에서도 동서독과 같은 진전을 기대하고 있다』고 이번 발언의 의미를 분석했다. 셰바르드나제의 발언은 소련의 최대 관심사를 유럽에서 극동까지 확대한다는 의미와 함께 유일하게 개혁을 거부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개방압력 시도라고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소련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한국과의 교류확대를 절실히 희망하는 소련의 속사정도 이번 발언의 의도에 내포돼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한반도의 긴장완화 및 안정을 통해 소련은 한국과의 교류확대 및 북한에 대한 경제ㆍ군사원조 부담 경감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소련은 이번 발언을 계기로 앞으로 북한에 대한 개혁ㆍ개방 압력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4월초로 예정된 김일성의 방소때도 이같은 문제가 주요관심사로 대두될 것으로 예상된다. 셰바르드나제의 이번 발언에 대해 로이터통신등 서방언론들은 한반도의 「장벽」을 상징적인 의미로해석,분단상황 그 자체로 전달하고 있는 반면 소련관영타스통신은 김일성이 올해 신년사에서 공세를 폈던 구체적인 콘크리트장벽을 지칭,셰바르드나제의 이번 발언이 북한을 거들어 주기 위해 사전협의를 거친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셰바르드나제가 설령 남한의 콘크리트장벽(실제로 있지도 않지만)을 지칭했다 하더라도 이는 북한의 반발을 다소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한 언어구사일뿐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북한의 개방과 무력도발의지 포기를 통한 한반도의 안정추구가 발언의 주목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의 향후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북한이 당장 개혁정책을 받아들이기에는 지난 40여년에 걸친 강권통치의 유산이 너무 뿌리깊이 박혀있어서 대혼란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단기간내에 북한의 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일단은 지배적이다. 북한이 소련의 예속국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발언을 계기로 오히려 중국과의 밀월관계 유지쪽으로 돌아서리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경제의정체,국제정치의 변화,김일성사후 격하운동의 소지를 사전에 예방하고 김정일에게도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게 대두되고 있다. 서울신문 논평위원 최평길교수(연세대)는 『이번 발언은 소련의 한반도개입 및 북한에 대한 개방압력의지를 보인 것이기 때문에 당장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안정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쨌든 이번 발언으로 한반도문제는 이제 국제적인 최대관심사로 부각됐다. 한반도의 긴장완화는 주변강대국들의 협조없이는 이뤄지기가 쉽지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남북한 양측의 성실하고도 적극적인 노력과 대화라 하겠다.
  • 베이커 “소 민주화 시위 지지”

    【워싱턴 AP UPI 연합】 미국 정부는 5일 제임스 베이커국무장관이 군축,독일통일,아프가니스탄,동서관계의 장래 등 광범위한 문제들을 소련 지도자들과 논의하기 위해 워싱턴을 떠나 모스크바로 향한 가운데 4일 모스크바에서 벌어진 민주화요구 시위와 정치적 다원주의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국무부대변인 마거릿 터트 와일러는 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가 검토하고 있는 당개혁조치에 직접 논평하기를 피하고 모스크바의 시위자들은 소련의 정치적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주장하고 있었다고 지적하고 소련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위한 우리의 꿈은 정치적 다원주의와 자유시장경제라고 말했다.
  • 「소의 통독방안」속셈 타진/베이커,왜 모스크바 가나

    ◎미 고위관리론 처음 의회서 연설도/교착상태 전략무기협상 타개 논의 미 관리들이 군축협정의 타결과 골치아픈 지역분쟁의 해결을 갈망하며 동구의 급변에 대처하기위해 뜀박질을 계속하는 가운데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은 5일(미국시간)프라하와 모스크바 방문길에 오른다. 소련외무장관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와의 3일간 회담(7∼9일)으로 절정을 이룰 베이커의 이번 유럽방문은 유럽의 장래와 군축협정 토의의 핵심인 독일통일문제를 둘러싸고 지난 1주일간 격렬한 외교활동이 벌어졌던 직후의 나들이여서 관심을 끈다. 가속되고 있는 통독움직임에 미소가 어떻게 선두를 유지할 것이며,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스크바에서 7일밤부터 시작되는 베이커­셰바르드나제 단독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것이 확실하다. 통독문제는 동독의 급속한 정치ㆍ경제사정 악화와 3월18일 총선 때문에 최근 수주일사이에 상당히 긴박한 과제로 부상했다. 겐셔는 동독선거가 끝나면 『자유롭게 선출된 동독정부』와 통일회담을 즉각 개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지난주 모스크바에서 고르바초프와 만난 동독총리 한스 모드로브는 통독반대 입장을 철회하면서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화 통일안을 내놓았다. 겐셔는 이 제안을 거부하면서 통일된 독일은 나토에 잔류해야 하나 현재의 동독지역이 나토 군사구조에 편입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부시 미행정부는 베이커의 이번 모스크바방문에서 전략무기협상의 교착상태가 타개되기를 바라고 있다. 미소는 장거리미사일과 폭격기의 검증방법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여온 복잡한 기술ㆍ정치적 문제를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미국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금년초여름까지 해결,금년말엔 새로운 전략무기협정을 체결한다는 일정을 공약해 놓고 있다. 이번 미소 외무장관회담에서는 미소간 무역문제로부터 중동분쟁,아프가니스탄ㆍ중미ㆍ캄보디아ㆍ앙골라 등의 내전에 이르기까지 많은 다른 문제들도 논의된다. 양측은 또 이번 회담을 나토­바르샤바조약회의에서 추가 협상을 준비하는데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베이커는 오는 10일 이례적으로 소련의 입법기관인 최고회의의 국제문제위원회에 나가 간단한 연설을 한뒤 소련대의원들로부터 질문을 받을 예정이며 하루앞서 미하일 고르바초프서기장도 만날예정이다.
  • 오늘의 유럽 판도 어떻게 변화할까/아스거 라슨(해외 특별기고)

    ◎동구개혁 새 지도… 희망과 혼란 공존/「고도」 알바니아 붕괴는 “시간문제”/민주에 목말랐던 시민들,새 지도부 불신/민족갈등 표면화… 불확실성으로 치달아 『다음 차례는 어느 나라일까』 지난 6개월동안 전세계 언론인들은 바로 이러한 심정으로 소련과 동유럽에서 일어난 혁명적인 변화들을 지켜보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동유럽에서 유일하게 남은 스탈린주의의 요새는 인구 3백50만의 소국 알바니아 뿐이다. 여러가지 면에서 이나라는 유럽의 최후진국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유럽에서 벌어지는 이 혁명의 속도에 놀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지난해 12월22일자 서울신문 기고문에서 작가인 인권운동가 바클라프 하벨을 체코의 차기 지도자로 부각시켰던 것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그 글을 쓴 뒤에 하벨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경제건설등 난제로 현재와 같은 속도로 사회주의와 마르크시즘이 붕괴돼 간다면 지금 쓰는 이 글이 신문지상에 실릴때쯤 알바니아도 온전치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놀라운 변화의 속도는 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새로이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바로 어떤 모습의 세계가 새로 만들어질 것인가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자유가 인류의 궁극적인 선이라는 서구민주주의적인 입장에서 볼때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의 붕괴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붕괴 사실만 가지고 최고의 이상적인 세계질서가 성취되었다고 할 수 는 없다. 새로 자유를 되찾은 모든 동유럽국들에 있어서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비록 이들 나라에 공산주의가 또다시 통치제도로 도입되리라고 믿을 사람은 없지만 아직은 불안하다. 풀어야 할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다. 민주적인 정부를 구성해야 하고 건전한 경제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될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민족간의 갈등과 반목을 푸는 문제이다. 동유럽과 소련내 많은 국가ㆍ공화국이 이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위태위태한가는 1월초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공식적인 외교일정을 취소했을 때 그대로입증되었다. 그 일로 인해 세계 최대의 도쿄증권시장에서 주가급락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소련에서 진행되는 자유화 과정이 어느 때라도 반전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국제 재계의 우려를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동독과 루마니아에선 새 지도부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넓게 자리하고 있다. 한달전 니콜라이 차우셰스쿠 부부의 처형으로 루마니아의 압제정치는 일시에 막을 내린것 같지만 이와 관계없이 새 지도부에 대한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다. 민족문제는 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민과 강제이주ㆍ전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종교적인 대립과 관련돼 있다. 1월 한달동안 소련내 많은 지역이 정치적 불안상태에 놓여 있었다. 가장 심각한 곳은 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 등 발트해 3개 공화국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공산당이 모스크바 중앙당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가 하면 주민 모두가 소연방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소연방에서의 분리독립 요구가 거세지면 그것은 분명 고르바초프의 개방ㆍ개혁정책에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소연방의 약체화라는 것은 공산당내 보수파들에게 개혁주의자 고르바초프를 타도할 수 있는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연방공화국들의 불만은 수세기전 구차르왕정의 전제정치 때부터 계속된 러시아인 지배체제에 대한 저항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 체제가 시작된 이래 72년간 알게 모르게 당해온 폭압과 테러에 대한 저항을 나타내는 것이다. 구 러시아제국을 지배한 러시아 민족은 소연방 곳곳에서 여전히 지배 이민족으로 간주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발트해 3국뿐이 아니고 몰다비아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멘 우즈베크 타지크 키르기스 그리고 카자흐 공화국 등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러시아인 지배체제에 항거해 주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어떤 곳에서는 많은 사람이 그로 인해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도 공산주의세력이 점차 사라지고 있고 서반구에서 현재 마르크스주의 정부가 유지되고 있는 곳은 쿠바와 니카라과 뿐이다. 그외에 공산주의를 통치원리로 고집하고 있는 나라들을 손꼽자면 베트남ㆍ중국ㆍ아프가니스탄ㆍ몽고 그리고 북한 정도가 있을 뿐이다. ○후퇴론은 거의 없어 세계지도는 이제 다시 그려지고 있다.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극적인 저항은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가능성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새 희망은 혼란과 불확실성을 함께 가져다 주었다. 과거 선명하게 실체를 드러내던 「적」이 사라짐으로써 서구의 지도자들은 이제 누구와 함께 정치ㆍ경제적인 문제들을 논의해야 할지 알기 힘들게 되었다. 2백여년 전 독일의 군사전략가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모든 작전중에서 가장 힘든 것이 「후퇴」라고 말한바 있다. 독일의 작가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씨는 클라우제비츠의 이 후퇴론을 동유럽의 변화에다 적용시켰다. 그는 군사작전에서 후퇴와 꼭 필요한 경우 패배의 길을 택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진짜 영웅이라고 주장한다. 클라우제비츠의 후퇴론을 이런식으로 공산정권 변혁기의 인물들에게 적용시키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스스로의 권력을 내놓는 사람보다는 권력을 잡기위해 몰두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온게 우리사회이다. 그런 점에서 엔첸스베르거 식으로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쁠것은 없다고 본다. 이런 「고차적」인 정의론에 화답하듯 몇몇 독재자들의 동상과 기념물들이 철거되었다. 스탈린의 대형동상이 곳곳에서 부서졌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상징인 낫과 망치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아직도 일반국민들의 희생을 디디고 전체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 정권을 세워놓고 개인숭배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독재자들이 있다. ○하벨 신망 본받아야 이들 모두 언젠가는 스탈린의 동상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될 것이다. 일생동안 개인숭배를 강요한 절대 독재자일수록 그의 몰락은 더욱더 돌연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다시 한번 바클라프 하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고통과 겸손속에 원하지 않는 사이 권력에 접근해간 사람이다. 엔첸스베르거가 말한대로 스스로의 권력을 포기한 영웅은 물론 아니다. 그는 항상 뛰어난 용기로 자유를 위한 투쟁을 일관되게 전개해 왔다.그러나 그는 자신의 권력보다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더 귀하게 여긴 사람이다. 1968년부터 1989년말까지 하벨의 작품은 그의 조국 체코에서 금서로 묶여 있었다. 하지만 서구에서 그의 희곡작품 「선전」(1967년작)은 거의 20년간 공연돼왔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관료주의와 권력의 횡포에 대한 신랄한 풍자는 끊임없이 화제에 올랐다. 「선전」에서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관료주의가 묘사되고 있다. 권력을 쥔 자들은 신종 인공언어를 개발해 모든 사람을 혼란에 빠뜨려 놓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말을 해독하기 시작할 때쯤이면 또다시 새 언어를 개발한다. 그리고 권력자들의 작위성이 법을 대신할 때 이 언어는 권력자들의 좋은 동지가 된다. 이 작품의 정신이 앞으로 체코의 새 대통령 바클라프 하벨을 지켜줄 것이다.
  • 미 베이커 국무ㆍ체니 국방ㆍ파월 합참의장,상원 증언요지

    ◎“소 군축 불구,한국안보 위협 상존”/우방과 협조,전진배치군 존속시켜야/북한의 대남 적화야욕 포기 조짐 없어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과 딕 체니 국방장관,콜린 파월 합참의장 등 부시 미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은 1일 미 상원 외교위 및 국방위에서 각기 1991회계연도 예산안 제출과 관련한 외교ㆍ국방정책에 관해 증언했다. 베이커 장관은 이날 증언에서 미국의 대한 안보공약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긴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으며 파월 합참의장은 북한이 계속 가공할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으나 한미 안보관계는 한반도에 대한 도발을 계속 저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음은 베이커 국무,체니 국방장관과 파월 합참의장 증언의 요지이다.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 미국 정부는 미ㆍ북한간의 관계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88년 10월 이래 북한에 대해 대화재개 등의 조치를 취해왔다. 미국은 남북한과 미ㆍ북한간의 관계개선을 가져올 수 있는 꾸준하고 상호주의적 원칙에 따른 과정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의 대한 안보공약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긴요하며 미국은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궁극적인 통일의 요체는 남북한간의 생산적인 대화에 달려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북한을 고립으로부터 끌어내기 위한 노태우 대통령의 노력을 지지한다. 카스트로의 쿠바와 중국처럼 민주적 가치를 봉쇄하려는 정부들은 국민들의 발전을 지연시킬 뿐이고,모든 국가들이 자유롭고 공개적인 발전을 이루기를 원한다. 소련군이 완전철수한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자유의사로 결정,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부를 지원해 항구적인 평화정착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이를 위해 소련과 유엔 및 이해 당사자들과 대화를 가질 용의가 있다. 또한 10여년간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 캄보디아 사태와 관련,크메르 루주의 재집권을 저지하고 이 지역에서 유엔 주관 아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실시돼 진정한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된 정부가 들어서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 지난 1월16일 파리에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대표들이 만나 캄보디아 문제를 논의,이 지역의 평화정착을 위한 16개항의 원칙에 합의해 앞으로 유엔의 활동이 크게 기대된다. ▷딕 체니 국방장관◁ 미국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가 전세계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가장 큰 변화가 소련과 동구에서 일어나고 있으나 소련은 강력한 군사력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동구와 소련의 최근 사태는 소련의 계획적인 대서구 공격 위험성을 감소시켰다. 그러나 상황의 가변성과 예측불허성 때문에 다방면에서 우발적인 분쟁의 기회가 증대되고 있다. 현재 공산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장차 어디로 갈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지적했듯이 긍정적인 변화가 뒤집어지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지금처럼 불확실한 과도기에 미국이 취할 최선의 자세는 단기적으로 확고한 방위정책을 견지하는 것이다. 향후 10년간 미군은 다음 도전들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①소련=우리는 소련군의 축소를 예상하지만 지금까지 소련군의 감축은 최소한에 그쳤고 그들의 중요한 군사능력은 그대로 남아있다. 소련의 핵무기 비축시설은 현대화되고 있으며 소련군의 효율성 제고작업이 진행중이다. 모스크바가 현재와 같은 군사적 억제를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라고 가정할 수 없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소련 당국의 중앙집권성 때문에 크렘린은 언제라도 군사정책의 방향을 신속히,그리고 결정적으로 바꿀수가 있다. ②잠재적 적대국으로의 군비확산=최소한 6개 국가가 핵능력 획득작업을 진행중이며 적지않은 숫자의 제3세계 국가들이 장거리 미사일과 화학ㆍ생물학 무기를 포함한 신무기 병기창을 보유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 국가의 일부는 미국에 대해 적대적이며 근린해역에 대한 지배권 주장을 시사하고 있다. ③반미정권=파나마의 마누엘 노리에가가 그랬듯이 몇몇 제3세계 국가들은 승산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미국과 군사적 대결로 나갈지 모른다. ④비국가 위협=미군은 미국의 이해관계와 가치관에 적대되는 마약밀매,반민주적 모반,테러리스트 그룹 등과의 대결이 요청되고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은 세계적으로 개입이냐 고립이냐의 선택을 계속해야 한다. 미국은 핵심지역인 유럽ㆍ지중해ㆍ아시아ㆍ태평양의 우방 및 우호국들과 협조하여 전진배치군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소련 군사력의 감축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해관계는 한국과 페르시아만 지역에서처럼 지속적으로 큰 위협에 직면할 것이다. 미국은 전쟁억지력,신축적 대응,전진방어,안보동맹,신중한 군비감축등의 독트린을 전략으로 고수해야 한다. 1989년의 이례적인 사태가 미국으로 하여금 이같은 전략적 기초를 포기케 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콜린 파월 합참의장◁ 태평양에서 소련이 미국의 이해관계를 위협하는 적대행위를 주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련의 관심은 중국과의 상호관심사에 집중돼 있다. 소련은 일반적인 병력감축의 일환으로서 몽고와 캄란만 주둔지상군 및 공군의 감축을 개시했다. 소련 태평양 함대는 노후함정의 퇴역으로 인해 다소 약화됐다. 그들 함대의 역외배치도 계속 축소될 것이다. 한반도에서 대화를 바라는 신호가 있어왔지만 서울과 평양간의 대화는 북한이 대결관계의 변화를 원한다는 것을 미국에 전혀 확신시키지 못했다. 북한은 강력한 군사력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한미안보관계는 한반도에서 침략을 계속 억제시킬 것으로 미국은 판단하고 있다.
  • 카불시서 폭탄테러/시민 1백10명 사상

    【카불 로이터 연합】 31일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시 중심가에서 강력한 차량폭발 사고가 발생,5명이 사망하고 1백5명이 부상했다고 아프가니스탄 정부 대변인이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이날 폭발사고가 혼잡한 점심시간에 발생,부상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중태이기 때문에 사망자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하고 『이번 폭발이 소련의 지원을 받고 있는 현아프간 정부의 전복을 노리는 회교 반군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변인은 이어 문제의 폭발물이 관영 BIA통신사 정면에 주차해있던 한 택시안에 장치돼있었다고 설명했다.
  • 인­파키스탄 정면충돌 가능성/확산일로의 카슈미르 종교 분쟁

    ◎“성전도 불사” 회교도,연대투쟁 다짐/인도서 분리 요구… 48ㆍ65년에도 “전쟁” 힌두교 국가인 인도에서 유일하게 회교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자무­카슈미르주에서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종교분쟁이 재연돼 유혈사태로 치닫고 있다. 게다가 인접 회교국인 파키스탄 정부가 2월2일부터 1주일간을 카슈미르 순교자를 위해 기도하는 「연대주간」으로 설정하고 오는 2월10일 상하양원 합동회의를 소집,카슈미르 분리요구 결의안을 채택 할 예정이며 과격 회교도들은 대인도 성전선포를 요구하고 나서는 등 인도ㆍ파키스탄간의 외교 분쟁및 교전으로까지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발단은 지난해 7월 해임된 반회교 강경주의자 작모한이 지난 19일 인도 중앙정부에 의해 주지사로 재임명된데서 비롯됐다. 이에 반발한 주정부 각료들이 즉각 총사퇴하고 20일 1만여명의 회교도들이 카슈미르주의 주도인 스리나가르시 중심가에 모여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에 맞서 정부 보안군은 시위군중에 발포,상당수의 사상자를 냈다. 관리들의 부정 부패 및 회교도들에 대한 차별 정책에 환멸을 느낀 회교도들의 분리독립 또는 파키스탄에의 편입요구 시위는 통행 금지령에도 아랑곳 없이 끊이지 않아 11일째인 30일 현재 사망자수만 1백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카슈미르 종교분쟁의 기원은 지난 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교도가 90% 이상인 파키스탄이 힌두교도가 82%인 인도와 분리,독립된 회교 공화국을 수립했으나 카슈미르주는 인도 지배하에 놓이게 돼 분쟁의 불씨를 남겼다. 그후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은 카슈미르주의 귀속문제를 둘러싸고 48년과 65년 두차례의 전쟁을 치렀고 갖가지 국경분쟁에 휘말려 왔다. 유엔측이 이 지역의 장래문제를 주민투표에 부쳐 그 결과에 따르도록 하자는 해결책을 제시했으나 인도측의 거부로 이뤄지지 못했다. 6백만명의 카슈미르 주민중 64%가 회교도여서 투표 결과는 뻔하고 중국및 파키스탄과 접경한 카슈미르가 전략적으로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투표를 통해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인도측의 입장이다. 지난 87년 선거에서 대규모 선거 부정으로 인해 패배를 맛본 야당회교연합전선(MUF) 소속 선거운동원들은 선거를 통한 혁명이 무의미하다고 판단,대부분 국경넘어 파키스탄으로 건너갔다가 20여개의 민병대 단체요원들로 복귀,분리운동의 선봉에 나서 과격한 무력투쟁에 정열을 쏟고 있다. 인도 정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파키스탄이 사주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파키스탄 정부는 일단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카슈미르해방전선 등 지하민병대 조직들이 파키스탄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회교 반군들로부터 손쉽게 무기를 공급받고 있고 파키스탄 정부도 이번 사태를 최대한 이용할 움직임이어서 앞으로 사태 진전이 장기화되고 심각해 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파키스탄은 지난 71년 동파키스탄 주민들이 자치를 요구한 내전발발 당시 인도가 군을 투입시켜 동파키스탄을 방글라데시로 독립시킨데 대한 구원을 갖고 있다. 인도 정부는 회교 분리주의자들을 진압,소요를 종식시키기 위한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하는 한편 더 많은 학교와 영구직장을 마련하고 관광산업을 진흥시키겠다고 약속하는 등 강온정책을 병행하면서 이번 사태 해결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으나 42년전 인도 독립이래 최대의 시련이 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아름다운 선상호텔이 많아 관광객들이 지상낙원으로 부르기까지 하는 카슈미르는 관광객들이 뿌리는 외화가 주수입원이지만 택시운전사들도 『시급한 문제는 관광산업진흥이 아니라 독립』이라고 말할 정도로 회교도들의 분리욕구가 팽배해 있는 실정이다.〈김주혁기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