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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울 하틀링 前덴마크총리 서거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으로 있던 81년 이 기구를 대표해 노벨평화상을수상한 포울 하틀링 전 덴마크 총리가 30일 서거했다고 덴마크라디오방송이보도했다. 85세. 하틀링 전 총리는 78년 유엔난민고등판무관에 임명돼 85년까지 연임하는동안 제네바에 UNHCR 사무소를 개설해 주로 베트남,에티오피아 및 아프가니스탄 난민문제를 처리했다. 목사인 그는 UNHCR을 대표한 노벨평화상 수상 외에 파키스탄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위해 인도적 원조를 모으는데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파키스탄의 니산상(賞)을 받기도 했다. 그는 68년부터 71년까지 덴마크 자유당 소속으로 외무장관을 역임했으며 73년 총선거 후 소수 내각의 총리가 됐다.그러나 이 선거 이후 다수당의 분열로 의석을 가진 정당 수가 10개로 무려 배나 늘어남으로써 정치적 혼란과 소수 정부의 약화가 초래돼 잦은 선거가 실시됐다. 이와 거의 동시에 세계 석유값이 3배나 뛰어 74년에는 내내 덴마크의 경제사정이 악화일로를 걸었고,75년 선거에서 그의 자유당이 승리를 거두기는 했으나 의회의분열로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사회민주당 정부로교체되고 말았다. 코펜하겐 AP 연합
  • 美, 北 테러지원국 다시 지목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국무부는 1일 발표한 테러지원 국가보고서에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를 국제테러의 중심지로 지목하는 한편북한에 대해서는 쿠바,이란,이라크,시리아,수단,리비아 등과 함께 테러지원국가 명단에 포함시켰으나 최근 북한이 테러 비난에 있어 긍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들어 앞으로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될 수 있을 것이라고 시사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이 최근 남북 정상회담을 받아들이는 등 한반도 정세에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북한이 최근 모든 형태의 테러를 비난하는긍정적 측면의 성명을 내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내비쳤다.이날 발표된 보고서의 가장 큰 특징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우방으로 간주됐던 파키스탄과 국제테러를 지원하고 테러리스트의 피난처 역할을 해온 아프가니스탄을 강력히 비난하는 등 남아시아를 국제테러의새 중심지로 지목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아프가니스탄은 미국대사관에 폭탄테러 공격을 가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주는 등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이유로,파키스탄은 테러에 대해 분명치 못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테러를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 [외언내언] 미국 인권의 잣대

    미국과 중국의 ‘인권 대결’이 한창인 것으로 외신이 전한다.미국은 지난달 25일 발표한 세계 인권보고서를 통해 중국 내의 인권 침해를 신랄히 비난했고,중국 또한 이에 질세라 바로 이틀 뒤 ‘1999년 미국의 인권기록’이란보고서로 정면으로 맞섰다. 이 보고서는 미국에서 연평균 100만건에 이르는 총기 사고,인종 차별,빈부격차 등으로 수없이 많은 인권 침해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이러고서야 어디인권 천국(天國)인 양 남의 나라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겠느냐는 식이다. 미·중 두 나라의 인권 분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특히 중국의 개방·개혁 이후 격화됐다고 봐야 할 것 같다.톈안먼(天安門)사태 발생 4개월 전인지난 89년 2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도 당시 자오쯔양(趙紫陽)당총서기는 중국에 대한 미측의 잦은 인권문제 간섭을 경고했다. 부시 대통령이 만찬에 초대한 중국의 반 체제 인사이며 국제적 물리학자인팡리즈(方勵之)는 중국 경찰의 제지로 만찬 참석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결국 그는 톈안먼사태 이후 베이징 시내 미 대사관으로 피신했고 1년 뒤 영국으로 출국했다. 톈안먼사건으로 미·중의 인권 대결은 더욱 격렬해졌다.물론 중국은 13억 인구의 평안한 삶과 안정된 국가 발전을위해 내정 불안을 야기하는 사건에 대한 진압이 불가피함을 밝혔다. 그러나 미국 외에도 적잖은 서구 국가들이 시위 군중을 무력으로 해산시킨중국 조치에 항의했는데 그 가운데 영국이 두드러졌다.시위 주도자들이 영국식민지인 홍콩으로 탈출토록 도와 주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당시 미·영 두나라와 중국 당국의 인권 분쟁은 볼 만했다. 또 미·영의 공격에 중국은 한치도 물러섬이 없었다.미국에 대해선 죄 없는인디언 학살의 사실(史實)을 예로 들었고,영국에는 많은 중국 백성을 아편으로 병들고 죽어 가게 한 ‘아편전쟁’을 떠올리며 인권 운운(云云)할 자격이없다는 식으로 들은 채도 안했다. 지난 98년 6월 정상회담때도 클린턴 대통령이 “톈안먼 무력 진압은 잘못”이라고 한데 대해 장쩌민 주석은 “우리는남의 나라 내정 간섭은 않는다” 며 참견할 일과 안할 일을 잘 구별하라는식으로 되받아쳤다. 미국의 세계 인권보고서가 중국만 자극한 건 아닌 것 같다.베트남,인도,아프가니스탄 등도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하는 것으로 외신은 전한다. 우리는 어떤가.가끔씩 벌어지는 미 병사의 위안부 살해사건을 비롯, 국내의 미국인 범죄수사 과정에서 가해자에 비해 한국측 피해자 인권이 무시된 예는 꽤 많은 편이다.인권에도 민족적 차별이 있을 수 있나. 결코 아닐 것이다. 한국측에 불리하게 돼있는 한미행정협정(SOFA)의 시급한 개정은 인권을 중시하는 미국의몫이다. 우홍제 논설주간
  • [이란 총선 개혁파 압승] ‘제2의 無血혁명’ 거셀듯

    이란에 ‘제2의 혁명’이 시작됐다.이란 국민은 개방과 자유화를 내건 개혁파에 압도적 지지를 보냄으로써 ‘현실노선’의 혁명을 선택했다.피를 흘리지 않는,민주적 선거 혁명을 통해 이란 국민들은 자유롭고 열린 사회로 변화하려는 열망을 전세계에 보여줬다.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이끄는 개혁파의 의석 86% 확보는 개혁파가 국회 다수파가 됐다는 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979년 이란혁명에 대한 반성,회교원리주의에 입각한 21년간 철권통치를 더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 민의(民意)의 표현이다.이란 성직사회의 보수성으로 정치와 사회가 극도로 경직되고 국민생활을 향상시키는데도 도움이 되지못한 현실에 유권자들은 매서운 심판을 내렸다. 이같은 심판에는 혁명후 태어났거나 학생시절을 지낸 젊은층이 큰 역할을했다.유권자의 3분의 1이 25세이하이고 83%에 이르는 높은 투표율도 젊은층의 참정(參政)욕구와 높아진 정치의식의 산물이다. 97년 5월 취임한 하타미 대통령은 새 세대의 변화욕구를 누구보다 잘 정치에 반영하고 있다.복장,언론의 규제완화로 상징되는 그의 개방정책은 국민들의 뜻과는 달리 강경보수파로부터는 이슬람 지배체제 파괴라는 이유로 거센저항을 받아왔다. 사법,입법부를 손에 쥐고 번번이 하타미 정권의 개혁정책을 견제해온 보수파는 이번 선거를 통해 국회 소수파로 전락,권력기반 하나를 잃게 됐다.하타미는 국회를 손에 넣음으로써 개혁정책에 보다 탄력을 얻게 됐으며 민의를등에 업은 개방바람,풍요한 삶과 자유를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군부와 사법부,기득권층에는 보수파의 영향력이 남아있어 개혁·보수 대결은 불가피할 전망이다.하타미 정권의 개혁과 개혁파의 앞길은이같은 보수파의 도전과 견제를 어떻게 수용하고 무력화하는데 달려있다. 혁명지도자 아야툴라 호메이니 사후 11년을 맞은 지금 이란에서 시작된 ‘새로운 혁명’은 이슬람 체제를 유지하는 개혁이라는 점에서 서방의 시각에서 한계를 지닐 수 있으나 변화를 바라는 이란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였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는 듯 하다. 황성기기자 marry01@. *세계 각국 반응. [워싱턴·런던·베를린·파리·앙카라·유엔본부 AFP 연합] ■미국 개혁파의 압승에 환영을 표시하면서도 이란의 실제적 정책 변화는 두고보아야 한다는 유보적 입장.제임스 폴리 미 국무부대변인은 “이란 국민의 분명한 열망이 차기 의회 의원들을 통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영국 이란 총선 결과를 환영하면서 영국과 이란간 대화정책이 계속 추진되기를 희망.로빈 쿡 외무장관은 개혁파의 압승은 “현대화에 대한 이란 국민의 관심도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라면서 “영국 정부의 대(對)이란 대화정책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환영.외무부는 또 쿡 장관이 지난 1월카말 하라지 이란 외무장관의 영국 방문에 대한 답례로 5월경 이란을 방문할것이라고 공식 발표. ■독일 개혁파의 압승은 “고무적 사건”이라고 환영.안드레아스 미켈리스외무부 대변인은 “이란의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매우 중요한 신호이자 고무적 사건”이라고 환영하고 요슈카 피셔 외무장관의 테헤란 방문을 위한 “구체적 준비”가 진행중이라고 밝혔다.언론은 그의 방문이 3월 5∼6일경이 될것이라고 보도.정부는 또 슈뢰더 총리가 곧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을 독일에 초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개혁파의 승리는 이란 국민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확인시켜 주었다면서 환영.외무부 대변인은 “유권자 대다수가 하타미 대통령의 지도력을 지지했으며,특히 투표율이 높기 때문에 더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터키 환영과 함께 이란이 더이상 다른 나라의 강경 이슬람세력을 도와주지 말 것을 당부.뷜렌트 에제비트 총리는 “이란이 이슬람혁명을 수출하는 노력을 포기하길 바란다”며 이번 승리가 이란뿐 아니라 전세계 이슬람 사회와터키에도 도움이 되기를 희망. ■걸프지역 인접국들 대체로 총선 결과에 침묵,환영 일색인 서방진영과는 대조적인 모습.다만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선거 결과가 중동의 역내 및 국제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걸프 국가들은 이란의 정치체제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 *총선 특징. 이란 총선후의 가장 큰특징은 여성 후보들의 약진과 개혁파 지도자들의 잇따른 석방이다.18일 치러진 총선에서 여성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고, 반혁명등의 혐의로 복역중이던 개혁파 지도자들이 잇따라 가석방되면서 개혁의 물결을 실감케 하고 있다. 총 입후보자 6,000여명 가운데 513명의 여성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진 이번 총선에서 30여명의 여성이 의회에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성의 정치적 참여도가 높은 유럽 선진국들에 비하면 낮지만,이전의 15명에 비하면 무려 2배 이상 늘어나는 등 이슬람권에서는 괄목할만한 수준이다. 이같은 여성 후보들의 약진은 강제 결혼 및 남녀 임금차별의 철폐,남녀 법적 평등권 보장 등을 공약을 내놓은 여성 후보들에게 몰표를 몰아준 여성들과 변화와 개혁을 지지하는 젊은층이 정치에 큰 관심을 보인 덕분이다. 반혁명 혐의 등으로 복역중이던 개혁파 지도자들이 잇따라 석방되는 점도개혁의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개혁파 지도자로 부통령과 내무장관을 지낸 압둘라 누리가 이미석방된데 이어,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의 측근인 모흐센 카디바르도 풀려났다.누리씨는 “총선 결과는 미래를 확실히 보장해줄 뿐 아니라,앞으로 정부정책도 국민들의 확고한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규환기자 khkim@. *개혁파 승리 원동력은.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던 20세기 지구촌에 이란은 외세를 배격한 정치혁명을일궈냈던 국가로 꼽힌다.그 정신은 테러 등으로 퇴색해왔으나 이를 가능케했던 비타협적 국민성은 오랜 잠복기를 뚫고 21년만에 선거혁명으로 회생한셈이다. 개혁파의 압승을 몰고온 18일 이란 선거혁명은 학생,여성,신문매체 등 3주체의 합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가운데 점화력에서 단연 폭발적인 것은 역시 학생들을 포함한 젊은층. 전인구의 3분의2가 30세이하인 이란에서 젊은층은 개혁의 지렛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97년 대선을 통해 하타미 정권을 창출,‘킹메이커’로 부상한이들은 개방·개혁정책이 수구파 제동으로 비틀거릴 때마다 시위를 통해 보수세력을 견제하며 개혁 정권을 지켰다.테헤란 대학은 특히 급진적 개혁파의사상적 아지트로 꼽히고있다. 여성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대거 유권자에서 출마자로 탈바꿈했다.전체 후보자 가운데 7%인 513명이 여성이었다.이는 총선 사상 유례없는 비율로 꼽힌다.수도권에서 그 비율은 15%에 달했다.79년 이슬람혁명으로 사법부에서 여성이 축출되는 등 지위가 급추락했던 여성들은 임금,상속권,결혼 등 모든 면에서 양성평등을 주장하며 개혁파 지지,또는 직접출마를 통해 바람을 일으켰다. 신문매체의 활성화는 하타미정부의 대표적 승부수로 꼽힌다.신문발행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보수파가 쥐고있는 폐간,검열권을 무력화했다. 보수파가 신문을 하나 없애면 다음날 진보지 두개가 새로 솟아나는 양상이이어졌다.방송이 수구파의 엄격한 통제속에 맥을 못출수록 가판대 앞에는 개혁파의 주장을 담은 신문 한장을 구하려 인파가 꼬리를 무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슬람혁명이 회교국가들에 회교혁명을 수출했듯 선거혁명 또한 아랍권에막대한 파급효과를 미칠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서방우호적인 하타미 정부가의회를 장악,과거 알제리,이집트 등지에서의 피바람나는 보복테러에 대한 지원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아프가니스탄,수단,알제리 등 각국 회교근본주의자들의 반미성향도 크게 누그러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손정숙기자 jssohn@.
  • [피랍사건 계기로 본 아프간 政情] 실태와 사회상

    아프가니스탄 아리아나 비행기 납치사건이 영국 망명을 위한 납치범과 승객들의 공모극일 가능성이 뚜렷해지면서 아프가니스탄 사회의 피폐상이 새삼세계의 시선을 끌고 있다. 지난 10일 영국 스탠스테드 공항에서 풀려난 인질 164명 가운데 망명 희망자는 127명에 이른다.이들은 고질적인 빈곤문제,내전의 위협,인권유린 및 본국 송환될 경우 보복의 두려움 등을 호소하며 국제사회의 동정여론에 매달리고 있다. 아프간인들의 본국 탈출 러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현재 120만명이파키스탄에서,100만 가량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전체 인구 2,400만의 10분의1 가량이 난민인 셈이다.무엇이 아프간인들로 하여금 난민의 고달픔도 감수하며 고국을 등지게 만드는가. 아프간 현대사는 쿠데타,외세개입,내전 등으로 총성 멎을 날이 없었다.79년부터 10년간 소련 강점기는 100만여 인명을 앗아갔고 종파간 이질성을 극도로 심화시켰다.이로 인해 국권을 되찾은 90년대에도 회교 제파벌들은 끊임없는 집안싸움을 일삼게 됐다. 현 집권 탈레반 세력은 이같은 내전의폐단과 권력의 부정부패를 비판하며97년 권좌에 올랐지만 축출된 시아파가 북쪽을 근거지로 반군을 결성해오자역시 피비린내나는 파벌청소로 맞서고 있다. 20여년간 크고작은 분쟁에 시달린 아프간 국민들의 바람은 잠시라도 전쟁없는 평온한 일상을 영위해보는 것.이는 99년 탈레반과 반군세력간 종전협상으로 실현되는 듯했으나 금새 총성이 재개되면서 협상문은 휴지가 됐다. 이같은 국력소모가 이어지면서 민생은 극심한 피폐상을 보이고 있다.국제기구들은 현재 수도 카불 인구 150만중 절반가량이 구호품으로 연명하고 있는것으로 추산하고 있다.지난해 미국대사관 폭탄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준 것은 유엔 경제제재를 불러들여 탈레반 정권에 치명타를 안겼다.중계무역이 가장 큰 수입원인 이나라에서 중계통로가 봉쇄되자 인접국인 파키스탄은 식량난에 직면한 아프가니스탄 난민 행렬로 골머리를 앓았다. 기초적 경제활동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탈레반 세력은 이슬람 경전을 자구대로 해석,이에 근거한 철권통치를 펼쳐 원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이들은 범죄를 근절한다는 미명하에 사지절단 등의 전근대적 형벌을 부활시키는가 하면 여성의 취업,학업 등을 금하고 최소한의 복지혜택조차 제한하는 차별정책을 펼치고 있다.TV,신문 등의 통제는 물론이고 라디오 보급률조차 극히 낮아 국민들의 정보접근은 철저히 차단되고 있다.이같은 실상은 진작부터 인권기구들의 비난의 표적이 돼왔고 국제사회에서 탈레반 세력의 고립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번 집단망명극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의 경악과는 달리 아프간 내부의 반응은 그럴만도 하다는 쪽이 지배적이라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납치사건 발생 직후부터 카불 시민들 사이에는 “납치당한 이들이 차라리 부럽다”,“승객들의 꿈은 영국에 그대로 머무는 것일것”이라는 유행어마저 떠도는 등 집단망명소동이 예고돼 있었다. 손정숙기자 jssohn@. *집권 탈레반. 아프가니스탄 집권 탈레반은 94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활동을 공식화한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들은 당시 집권세력을 정통 이슬람주의에대한훼손으로 규정,이에 대한 선언을 하며 세력확대에 나섰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에 지친 아프간인들은 부정부패 타파,이슬람 공화국의 희망 등을 전파하는 탈레반에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96년 수도인 카불을점령한 뒤 파죽지세로 1년만에 국토의 90%를 접수,사실상의 집권세력으로 도약했다. 지도자는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그의 정체는 아직도 베일에 가려있다.지지자들은 그가 올해 38세로 80년대 반소련 운동에 참여,한쪽눈을 잃었고 이슬람의 예언자라고 선전하고 있으나 아프가니스탄 통제력 확대를 도모,파키스탄 정보부가 양성한 스파이라는 설도 있다. 막강한 국내 영향력에도 불구,탈레반은 집권과정의 정통성 결여와 가혹한통치스타일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외면당해 왔다.현재 파키스탄,사우디아라비아,아랍 에미레이트 연합 등 3국만이 탈레반 정부와 수교하고 있을뿐 유엔을비롯한 거의 모든 나라들이 축출된 랍바니 전(前)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지난해 피랍된 인도 여객기가 아프간 칸다하르에 기착한 사건은 탈레반에게 테러리스트 이미지를벗을 좋은 기회를 줬다.탈레반은 테러범들의 각종 요구를 거절하고 승객들의 안전을 우려하는 제스처를 보이며 자국민 보호를 위해 이곳에 드나든 각국 외교관들을 상대로 관계수립을 위한 치열한 로비를폈다.그러나 이번 집단망명 소동으로 인해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구기며 모든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손정숙기자
  • 아프간機 피랍승객 대부분 망명 희망

    [런던 AFP 연합] 피납 아프가니스탄 아리아나 항공 여객기의 승객 대부분이 귀국을 거부하고 있다고 영국 내무부의 한 대변인이 12일 밝혔다.이 대변인은 피납 승객 164명 중 37명만이 영국공군이 제공한 특별기로 귀국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대변인은 귀국을 희망하는 37명이 포한된 142명이 망명절차를 결정키 위해영국 서부의 한 이민센터로 이송된다고 밝히면서 22명은 이번 납치사건의 동기 및 배후와 관련,아직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납치범들은 지난 7일부터 사흘간 런던 인근 스탠스테드 공항에 머무는 동안 경찰과 인질석방 협상을 벌이면서 물,식량 등 생필품 보충 외에 특별한 요구를 하지 않아 납치범과 승객들 일부가 대규모 망명허가를 얻어내기위해 벌인 소동이 아니냐는 추정이 제기됐다.
  • 印여객기 납치범 행방 묘연

    인도항공 소속 A-300 여객기의 납치범들은 어디에 있을까.이들 납치범은 구랍 31일 8일동안 억류중이던 인질 155명을 석방한뒤 인도에서 풀려난 회교반군 지도자 3명과 함께 차량편으로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공항을 떠난 뒤 행적이 묘연해졌다. 아프가니스탄 집권 탈레반 정부의 관리들은 “납치범들이 아프간을 떠났다”고만 말했을 뿐,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아 이들의 행적에 대해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인도 정부는 2일 이들 납치범들이 파키스탄 국적으로 파키스탄으로 잠입했다고 맹비난하자,파키스탄 군사정권은 이들이 파키스탄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즉시 체포할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는 등 인·파간 외교적 설전(舌戰)이 가열되고 있다. 김규환기자 kh
  • 印 “카슈미르 회교게릴라 석방”

    [뉴델리 칸다하르(아프가니스탄)AFP AP 연합] 인도항공 A300 여객기 납치범들과 협상중인 인도 협상단은 사태해결을 위해 수감중인 카슈미르 회교 게릴라들을 석방한다는데 동의하고 석방인원 수에 대해 계속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현지 서방 외교관들이 30일 밝혔다. 아프가니스탄 집권세력인 탈레반도 민병대원들을 태운 10대의 트럭과 장갑차를동원,여객기 주변을 포위하는 등 납치범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 납치 7일째를 맞고 있는 자국 인질들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칸다하르 공항을 방문중인 서방 외교관들은 인도 협상단이 이날 협상을 재개,납치범들에게 회교 게릴라들을 석방하겠다고 밝혔으며 납치범들이 현재까지 석방 인원수를 36명으로 고집하고 있어 계속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승객 등 160명을 인질로 잡고 납치극을 벌이고 있는 납치범들은 인질몸값과 아프가니의 시신 인도 등 두가지 요구사항을 철회했으며 탈레반측도인도 정부가 사태를 조속히 해결하지 못할 경우 피랍 여객기를 강제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떠나게 하겠다고경고,납치범들을 압박했다.
  • 여객기 납치범에 답변 제시, 인도 정부 협상단

    [뉴델리 AFP 연합] 인도항공 A300 여객기 납치범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인도정부 협상단이 29일 납치범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첫번째 답변을 제시했다고 라빈드라 굽타 인도 항공장관이 밝혔다. 굽타 장관은 이날 아침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공항에서 납치범들과 4차 협상을 재개한 협상단이 납치범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답변을 제시했다고 말했으나 답변이 무엇인지는 아직 전해지지 않고 있다. 굽타장관은 협상전략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일부 긍정적인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승객 등 160명을 인질로 잡고 있는 납치범들은 처음에는 인도에 수감중인 회교지도자 마울라나 마수르 아자르의 석방을 요구조건을 제시했다가 28일 회교 게릴라 36명과 인질들의 몸값으로 2억달러를 요구조건으로제시했다.
  • 인도정부·여객기납치범 협상 진전없어

    [칸다하르(아프가니스탄) AFP AP 연합] 인도항공 A300 여객기 납치사건을해결하기 위한 인도정부와 납치범간 직접 협상이 이틀째 계속되고 있지만 사태해결의 조짐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7명으로 구성된 인도정부 협상단은 27일 칸다하르에서 납치범들과 두차례협상한데 이어 28일에도 오전 10시(한국시각 오후 2시30분)부터 무선 통신기를 통해 납치범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협상내용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신뢰회복에 주력하고 있다는 협상단의 발표로 볼때 사태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협상은 아직 진행되지 않고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라빈드라 굽타 인도 항공장관은 이제까지 벌인 협상에서 별다른진전이 없었다면서 지켜보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해 협상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피랍 여객기가 머물고 있는 칸다하르에는 인도 협상단 외에도 벨기에와 이탈리아,프랑스,스위스 외교관들이 인질로 잡혀있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대기하고있으며 에리크 데 물 유엔 아프간 조종관도 협상중재에 나서고 있다.피랍 여객기에는 5명으로 알려진 납치범과 인질로 잡혀있는 160명의 승객이 탑승하고 있는 가운데 대치상태가 장기화하면서 환자가 발생하는 등 기내상황이 크게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납치범들은 당초 위협처럼 승객을 살해하는 등의 극단적인 행동은 보이지않고있다.그러나 의료진의 탑승을 계속 거부하는 등 구호요원의 기체접근을계속 거부하고 있다.이와 함께 재급유작업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印機납치범 승객 살해 최후통첩

    [칸다하르 - 뉴델리 - 이슬라마바드 외신종합]인도항공 A300 여객기 승객 160명을 인질로 잡고있는 납치범들은 27일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인질들을 차례로 살해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발표했다고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라믹 프레스가 보도했다. 이와함께 아프가니스칸의 집권세력 탈레반은 27일 재급유를 마친 피랍 여객기의 납치범들에게 “인질을 석방하거나 아니면 아프간을 떠나라”는 최후통첩을 전달했다. 자신을 압둘라라고 밝힌 칸다하르 지역의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수도 카불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혔으며 “아프가니스탄 당국은 인도정부가 협상팀을 보내지 않은데 대해 격분해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아프가니스탄 주재 에리크 데 물 유엔조정관은 26일 납치범들과1시간 동안 협상을 갖고 당뇨병 환자인 아닐 쿠라나의 석방을 이끌어 냈다. 현재 인질로 잡혀 있는 승객은 모두 160명이다. 러시아는 이날 오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특별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야된다며 안보리 소집을 요구했다. 한편 이번 비행기납치사건이 인도 정보기관이 꾸민 자작극이라는 주장이제기돼 인도와 파키스탄간 외교적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다. 납치사건을 조사중인 네팔당국은 26일 납치범 5명중 4명이 카트만두 국제공항에서 몸수색과 화물검색을 받지 않고 여객기에 탑승한 사실이 밝혀졌다고밝혔다.네팔당국은 납치범들의 탑승의혹등 전체적인 조사를 마치기 위해서는약 2주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파키스탄 정부 전날 인도 언론이 이번 납치사건을 반이슬람교 운동의 기회로 이용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양국관계가 다시 악화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 “한국 정치·민주화 자유국가 북한은 인권상황 최악국가”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국의 대표적 인권단체인 프리덤 하우스는 21일자유와 민주화 정도에서 한국을 자유국가,북한을 최악의 국가로 지목했다. 해마다 세계의 인권상황을 평가하고 있는 프리덤 하우스는 올해 세계 192개국을 자유국가(85개국),부분적 자유국가(59개국),자유가 없는 국가(48개국)로 분류했다.종합평점 1.0∼3.0을 자유국가,3.0∼5.5는 부분적 자유국가,5.5∼7.0은 자유가 없는 국가로 지목했는데 한국은 2.0인 반면 북한은 최하위인7.0으로 평가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일본(1.5)에 이어 대만과 함께 두번째로 자유로운 나라로 평가됐고 북한은 아프가니스탄·쿠바·미얀마·리비아·사우디아라비아·수단·시리아·베트남 등과 함께 최하위권이었다. 가장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 나라(1.0)들은 미국·스위스·스웨덴·핀란드·덴마크·네덜란드·호주·뉴질랜드 등이고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는 일본과 같은 2위그룹이었다. hay@
  • 지구촌 연말연시 테러 비상

    ▲워싱턴 이슬라마바드 AFP AP 연합▲연말 연시를 맞아 미국을 비롯한 특정국가를 겨냥한 테러 기도가 잇따라 적발되고 있는 가운데 스리랑카 대통령이 테러로 중상을 입자 세계 각국은 테러방지 긴급대책마련에 들어갔다. 미국 수사당국은 19일 폭발물을 캐나다로 밀반입하려다 체포된 알제리인 아메드 레삼(32)을 조사한 결과 그가 시애틀의 신년 축하식에서 폭발물을 터뜨리려 한 사실이 밝혀내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당국은 그의 배후에 지난해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 대사관 폭파사건의 배후조종자로 알려진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회교과격파 오사마 빈 라덴이숨어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파키스탄 당국도 국내 미국인들을 공격할 우려가 있는 아프카니스탄 국적의 테러용의자 200여명을 체포하는 한편 빈 라덴의 과격 추종자들을 적발하기위해 파키스탄 국제공항의 경비태세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고 이날 발표했다. 파키스탄 관계자들은 당국의 경계활동에 적발된 용의자들이 파키스탄내 미국소유 목표물을 공격하거나 다른 공격지로 가기 위한경유지로 파키스탄을이용한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터키 관영 아나톨리아 통신은 이날 쇼핑 몰과 선술집 등 터키내에서 3건의폭발사건이 잇따라 발생,관계당국이 범인 색출 및 비상경계 태세에 돌입했다고 보도했다. 독일 당국도 3명의 좌익 테러용의자를 체포하고 테러행위에 사용될 무기 및폭발물 은닉처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다. 앞서 요르단 정부는 지난주 아프가니스탄에서 훈련받은 테러분자 13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유고연방 코소보주의 오라하바치시에서도 카페 한곳이 수류탄 공격을 받아 1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 아동 최대의 敵 ‘에이즈·분쟁’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의 확산과 지역 분쟁이 21세기에도 전세계 어린이들을 위협하는 ‘괴물’로 지목됐다. 카롤 벨라미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사무총장은 12일 ‘세계 어린이 현황2000’보고서를 발표,에이즈와 지역 갈등으로 인한 어린이 희생자들이 늘면서소아마비 백신과 같은 20세기에 이룩된 놀라운 진보들을 퇴색시키고 있다고경고했다. 에이즈의 경우 15∼24세 연령층에서 1분에 5명이 감염되고 있으며 1,100만명이 현재 에이즈로 고통받고 있다고 밝혔다.또 유니세프가 활동중인 세계 56개국에 분쟁이 확산되면서 백신과 면역 치료제의 공급 통로가 차단돼 20세기 과학문명의 결실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 현장등 위험한 상황에서 생활하고 있는 어린이의 수는 4명 당 1명꼴인 5억4,000만명.또 전세계에서 1억3,000만명 이상의 어린이들이어떤 종류의 학교에도 나가지 않고 있다. 벨라미 총장은 “90년대는 가난과 분쟁,만성적 사회 불안 및 에이즈 바이러스와 같은 예방 가능한 질병들로 여성과 청소년,어린이들이최대의 피해자가된 기간이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편 5세 미만 아동 사망률의 경우한국은 98년 현재 인구 1,000명당 5명꼴로 4명꼴인 일본과 노르웨이,스웨덴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미국은 1,000명당 8명,영국과 캐나다,뉴질랜드 등은 6명꼴로 나타났다.북한은 30명꼴로 총189개국 가운데 104번째였다. 아동 사망률이 가장 높은 곳은 1,000명당 316명인 시에라리온이었으며 앙골라는 292명,니제르는 280명,아프가니스탄은 257명 등이었다. 한국은 60년까지만 해도 1,000명당 127명의 아동이 5세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美, 해외여행객 테러경계령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해외에 거주하거나 여행중인 미국인들에게 테러경계령이 내려졌다. 미 국무부는 11일 “미 정부는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인들을 상대로 연말연시 휴가기간 중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며 특별히 조심할 것을 긴급 당부했다. 제임스 폴리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가 확보한 증거로 볼때 대상지역은 전세계이며 군중이 모이는 곳이나 행사가 열리는 곳일 것”이라 면서“사람이모인 곳이나 연회·집회장을 피하라”고 경고했다. 폴리 대변인은 또 미국시민들은 다른 사람 눈에 드러나지 않게 행동하고 그들의 평상시 행동패턴에서 벗어나 활동하면서 특별히 주변의 변화에 주목하라고까지 당부,테러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음을 시사했다. 국무부는 이번 경고발표에서 확보된 구체적인 증거가 무엇인지,테러를 저지를 단체가 누군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 미국은 사우디 부호 출신인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리카 두나라 테러와 관련,추적해왔으며 은신처가 아프가니스탄으로 드러남에 따라 미국 정부는최근 탈레반 정권에 대해 압력을 행사,신병인도를 노렸으나 거부당했다.유엔도 국제테러 방지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 11월 탈레반에 대해 경제제재를 가했다. 미 정부의 이같은 테러 경계령은 올들어 지난 10월과 11월 2차례 등에 이어 4번째이다. 이달초 미 정보당국은 뉴밀레니엄을 맞아 연말연시에 테러가능성이 있다는조심스런 언급을 한 바 있으나 열흘여가 지난 현재 구체적인 테러움직임을포착,전세계 공관에 긴급 경고를 내리는 등 보안대책 마련에 긴장하고 있다. 폴리 대변인은 이번 테러음모가 연말연시에 맞춰진 것은 이슬람의 단식기간인 라마단과 겹쳐 ‘성전’의 기치를 내세워 테러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인 것이라고 진단했다.그러나 미국 국내에서의 테러 가능성은 아직 포착되지 않고 있다. hay@
  • 2002월드컵축구 예선전 역대 최다 197개국 신청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예선에 역대 최다국이 참가 신청을 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26일 인터넷 홈페이지(www.fifa.com)를 통해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하는 2002년 월드컵 대륙별 예선에 203개 회원국 중 97%인 197개국이출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역대 최다이며 참가율에서도 역대 최고다.지금까지는 97년 당시 98프랑스월드컵 예선에 193개 회원국 가운데 172개국이 참가한 것이 최고 기록이다. 참가신청을 하지 않은 6개국은 북한을 비롯,아프가니스탄 파푸아뉴기니베냉 기니비사우 니제르 등이다.
  • 北, 2002년 월드컵 예선 불참

    [쿠웨이트 연합] 북한이 2002년 월드컵축구 아시아지역 예선에 참가하지 않을 전망이다. 유성일 북한 내각 체육지도위원회 대외사업국장이 22일 쿠웨이트에서 열린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에 참석,“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할 월드컵축구 지역예선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북한은 이에 따라 12월7일 도쿄에서 열릴 월드컵 예선 조추첨에 대회참가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을 계획이다.유성일은 월드컵 지역예선 불참사유에 대해 주요 국제대회에 오랜 기간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는 등 공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OCA총회 첫날 회의에는 아시아지역 44개국 대표가 참석했으며 북한외에도아프가니스탄,예멘,괌이 월드컵 예선 불참의 뜻을 밝혔다. 유성일 국장은 또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지난 주 북한을 방문,관계자들과 회담을 가졌으나 “평양은 2002년 월드컵축구의 북한 분산개최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 2002년 월드컵축구 196개국 예선 참가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예선 참가국이 196개국으로 늘어났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17일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fifa.com)를 통해모두 196개국이 대륙별 예선에 참가 신청을 냈다고 밝혔다.이는 신청 마감일이었던 지난달 19일 158개국보다 38개국이 늘어난 것으로 전체 회원국(203개국)의 96.6%.FIFA는 출전신청이 저조하자 기간을 연장해 회원국들의 참가를설득해왔다. 대륙별로는 유럽(51개 회원국) 북중미·카리브해(35개 회원국) 남미(10개회원국)가 100% 참가를 희망했고 아시아는 44개국중 북한과 아프가니스탄을제외한 42개국,아프리카는 52개국 중 48개국,오세아니아는 11개국중 10개국이 신청했다.예선 조추첨은 다음달 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다.
  • 유엔, 對탈레반 제재 돌입

    [유엔본부·카불(아프가니스탄) AFP AP 연합] 유엔은 14일 테러 혐의자 오사마 빈 라덴의 인도를 거부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제재를 시작했다. 유엔의 제재조치는 아프가니스탄 집권세력 탈레반의 마지막 철회요청에도불구하고 이날 오후 2시(한국시간) 발효됐다.이에 따라 탈레반이 운영하는아리아나 아프간 항공의 외국 취항이나 외국 공항 이착륙이 금지되고 해외에 있는 탈레반의 금융기관 계좌들이 동결되며 외국인의 아프가니스탄 투자도금지된다. 탈레반의 와킬 아흐마드 무타와켈 외무장관은 신병 인도 최종시한인 전날미국대사관 테러사건을 배후조종한 혐의를 받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백만장자 빈 라덴을 미국에 인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무타와켈 장관은 “미국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고 있지 않다”면서 “유엔이 제재조치를 수정하거나 시한을 연장하거나 제재조치 자체를 모두 취소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 [베를린 장벽 붕괴10돌] (중) 베를린市 축하행사 이모저모

    [베를린 남정호 김규환특파원] 베를린 장벽 28년.전세계를 가로지르고 있던 이데올로기적·정신적 분단의 벽을 육체의 벽으로까지 전이(轉移)시켰던 그 세기의 장벽은 마침내 허물어졌다.그리고 또 10년이 흘렀다.베를린시는 8일 그 제일의 주역중 한 사람인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 명예시민증을수여했다. 에버하르트 디프켄 베를린시장은 이날 명예시민증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베를린시가 어렵던 시절 영국과 프랑스 등과 함께 연합국의 일원으로 서베를린시의 자유를 지켜줬으며,전후(戰後) 베를린 세대에게 민주화와 문화를 꽃피우게 했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줬다”며 “부시 전 미 대통령에 대한 베를린 명예시민증 수여는 전체 미국시민들의 영예”라고 밝혔다.그는 “독일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장벽 붕괴에 따른 동서베를린 통합에 공로가 큰 부시 전 미 대통령은 오늘부터 베를린 시민”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베를린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은 모두 108명.지난 1826년 콘라드 리벡이 첫번째 명예시민이 된 이후,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콘라드아데나워·빌리 브란트·헬무트 콜 전 총리,리처드 폰 바이츠제커·로만 헤어초크 전 대통령 등도 포함됐다.부시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등 미국인으로서는 다섯번째이다. ●지난 89년 11월4일 100만명의 동베를린 시민이 모여 민주화와 서독으로의여행자유화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던 알렉산더 광장에는 장벽 붕괴 10주년을맞아 시민들이 자신의 감회를 적어 붙이는 게시판이 등장,시민 및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게시판에는 ‘동독 인민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사회·정치적 변화를 일궈냈다.행운이 있기를’‘베를린 장벽 붕괴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다’‘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과 콜 전 총리에게 감사한다’는 등 각양각색의 문구가나붙어 이채를 띠기도.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독일통일이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옛 동독인들(90%)이 서독인들(83%)보다 통일에 대해 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독일 은행협회가 최근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을 맞아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인의 85%가 ‘옳은 결정’이라고 응답.한편 옛동독인들은통일 자체에 대해서 긍정적인 견해와는 달리,그들중 70%가 아직까지 ‘2등국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옛 서독인들에 대한 심리적 열등감을 표출하기도. ●베를린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아 옛동독 정권에 관련돼 유죄판결을 받은 동독 마지막 서기장 출신 에곤 크렌츠,동독의 비밀경찰 조직 슈타지 첩보실장출신의 마르쿠스 볼프 등의 사면을 놓고 베를린 정가에서 설왕설래. 로타르 드 메지에르 기민당 부당수는 이날 “새천년을 맞는 만큼 20세기의잘못은 묻어줘야 한다”며 이들의 사면을 건의.이에 대해 헬무트 콜 전 총리는 과거 잘못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사면은 시기상조”라고 일축. ●독일 언론은 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 붕괴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3인 주역들의 회고담을 게재해 눈길.콜 전 총리는 베를린 장벽 붕괴사건을 확인하는 순간 마치 다른 행성에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회고했다. 부시 전 미 대통령은 미국이 잘못 움직이면 소련의 군사개입을 유도할 수있어 자제했다고 회상.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동독 친구들이 국민들에게적대 조치를 취하지 않고 국민들의 의지를 수용한 것은 매우 올바른 결정이라고 격려했다고 반추. khkim@ *당시 駐서독美대사 회고기 1989년 서독주재 마지막 미국대사로 부임해 베를린 장벽 와해와 독일통일을 지켜본 버넌 월터스대사가 8일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에 당시를 회고하는기고를 실었다.그의 기고문 ‘내가 목격한 혁명’을 요약한다. 89년 1월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주독일 대사로 임명받았을 때 나는 이미 72세였다.고령을 이유로 사양했으나 부시대통령은 “독일에서 지금 중대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당신같은 노련한 외교관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 예감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소련과 동유럽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었다.폴란드에서는 레흐 바웬사가 대통령에 당선됐고,소련은아프가니스탄에서 무조건 철수를 결정했다.그해 4월 22일 독일에 부임했을때 독일통일이 임박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나는 부임 첫 회의때대사관 직원들에게 내가 대사로 있는 동안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공언했다.독일 정부관리들을 만나서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아무도 내 말을 믿으려들지 않았다.헬무트 콜총리만 예외였다.콜총리는 “내가 바라는 것도 바로그것이며 우리도 그걸 위해 노력중”이라고 화답했다. 헤럴드 트리뷴지는 나의 발언을 반박하며 머릿기사로 “지금은 무분별한 독일통일 논란을 벌일 때가 아니다”고 썼다.그러나 동유럽의 변화는 폭풍처럼 밀어닥치기 시작했다.수천명의 동독 난민들이 폴란드,체코,헝가리,오스트리아로 밀려들어갔다.라이프치히 등 동독 도시들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 숫자가 점점 더 불어났다. 그 무렵 어느날 나는 운터덴린덴가에 있는 동독주재 소련대사 관저에서 그대사와 오찬을 했다.그는 “베를린장벽은 앞으로 100년은 끄떡없이 그대로있을 것”이라고 호언했다.나는 그것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반박했다.소련은 당시 3,900억달러에 달하는 국방비 부담에 짓눌려 더이상 미국과 경쟁할 여력이 없었다.동독의 시위대는 점점 더 과격해졌다.서독 국기가 시위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마침내꼭 10년 전인 89년 11월9일 밤.본에 있던 나는 베를린 미국대표부로부터 전화보고를 받았다. 장벽 검문소 한곳이 열려 동독 주민들이 물밀듯이 밀려나온다는 보고였다.다른 검문소들에도 주민들이몰려들고 있다고 했다.나는 곧장 베를린으로 달려가고 싶었다.하지만 소련의 반응이 어떨지 알수 없었다.소련이 무력진압에 나설 경우에 대비해 나는 독일정부가 있는 본에 남아있기로 했다. 24시간 뒤 나는 베를린으로 가 헬기로 도시를 한바퀴 돌아보았다.서베를린으로 통하는 도로마다 자동차와 인파로 가득찼다.동독국가의 한 구절인 “하나인 우리의 조국 독일”이라는 외침이 거리마다 울려퍼졌다.그날밤 베를린상점들은 문을 닫지 않았다.동베를린 주민들은 상점진열장에 쌓인 오렌지,바나나 같은 과일들을 신기한듯 바라보았다.소련으로부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수천명의 주민들이 망치를 들고 장벽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독일통일을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공산체제가 무너지리라고는 예상못했다.압제와 자유의 오랜 싸움은 이렇게 끝났다.자유가 승리한 것이다. 정리 이기동기자 yeekd@ * 당시 東獨지도자들 근황[베를린 김규환특파원]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을 맞아 장벽이 무너질 당시 동독 지도자들의 근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베를린 장벽 붕괴 직전인 지난 89년 10월 에리히 호네커 공산당 서기장 체제가 와해되면서 권좌에서 함께 물러난 20명의 옛 동독 공산당인 사회주의 통일당(SED) 정치국원중 11명은 아직 생존해 있다. 이들 생존자 대부분은 은퇴한 뒤 베를린에서 칩거하고 있으나,89년 호네커후임에 선출된 에곤 크렌츠 공산당서기장(62)과 귄터 샤보프스키 전 동베를린 SED 지구당위원장(70)만이 가끔 인구에 회자(膾炙)되고 있다.이 두 사람은 동서독 국경 탈출자들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렸다는 혐의로 지난달 27일부터 연방대법원에서의 상고심이 열린데 이어,8일 결심 공판이 열리기 때문이다. 89년 10월10일 실각한 호네커는 90년 1월 구속됐다가 풀려난 뒤 모스크바 도망중 베를린으로 송환돼 동서독 국경 탈출자에 대해 사살명령을 내린혐의로 구속됐다.이후 암투병을 이유로 93년 1월 석방돼 칠레로 망명했으나이듬해 5월 그곳에서 사망했다.옛 동독 총리를 역임한 한스 모드로프(71)는장벽 붕괴 뒤인 90년 실시된 총선에서 메클린부르크-포어포메른주에서 당선돼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그러나 거짓 증언 등을 이유로 연방하원 의원직을 박탈당한 뒤 칩거하고 있다. 동독의 비밀경찰조직인 슈타지(국가보위부) 첩보실장 출신인 마르쿠스 볼프(76)는 첩보활동을 한 죄로 재판에 회부됐으나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비공산당원 출신으로 90년 3월부터 동서독 통일이 이뤄진그해 10월3일까지 동독의 마지막 총리를 지낸 로타르 드 메지에르는 기민당부당수로 아직까지 정계와 연을 맺고 있다.호네커의 후계자로 선출된 크렌츠는 장벽 붕괴 이후 TV 토크쇼에 출연,생계를 이어왔다.특히 91년 ‘장벽이무너진다면’이라는 책을 펴내 2만마르크의 인세를 받은데 이어 신문에 장벽붕괴 당시의 상황을 시리즈로 게재,10만마르크를 벌기도 했다.91년부터 금융중개업에 뛰어들어 매달 5,000마르크를 벌고 있다. 97년 베를린지방법원에서 동서독 국경탈출자에 대한 사살명령 혐의로 6년6개월형을 받아 한때 구속되기도 했다.그는 상고심에서 ‘냉전체제의 희생물’이라고 강변하고 있다.샤보프스키는 97년 크렌츠와 같은 혐의로 기소돼 베를린 지방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상고심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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