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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돌이표 코스… 선수엔 ‘독’ 관중엔 ‘꿀’

    도돌이표 코스… 선수엔 ‘독’ 관중엔 ‘꿀’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은 마라톤으로 시작해 마라톤으로 끝난다. 오는 27일 오전 9시 여자가 스타트를 끊고, 새달 4일 오전 9시 남자가 대미를 장식한다. 기원전 490년 그리스의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휘디피데스라는 병사가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달린 것이 시초라지만 42.195㎞는 선수라도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완주하기 힘든 ‘위대한’ 종목이다. 두 시간 넘는 레이스라 자칫 지루하게 느끼기 쉽지만 알고 보면 재밌다. 이번 대회 마라톤의 관전 포인트는 뭘까. ●코스 코스는 변형 루프코스(도돌이표 코스)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출발해 청구네거리~수성네거리~두산오거리~수성못~반월당네거리를 돌아 다시 출발점으로 오는 15㎞ 구간을 두 바퀴 돌고, 같은 구간을 단축해 12.195㎞를 더 달려 순위를 가린다. 관중은 선수들을 무려 세번이나 응원할 수 있다. 팬 입장에서는 흥미로울 수 있지만 사실 선수들에게는 ‘독’이다. 같은 코스를 반복해 뛰는 선수들은 생소한 코스를 새롭게 뛰는 것보다 더 심한 스트레스를 느낀다. 출발점을 지날 때마다 순간순간 포기하고 싶은 욕구를 견뎌내야 한다. 레이스가 치러질 코스는 경사가 심하지 않고 평탄하다. 그러나 이것도 주의해야 한다. 황영조 대한육상경기연맹 마라톤·경보 기술위원장은 “쉬운 코스에서는 선수들이 오버페이스를 범하기 쉽다. 극한의 체력을 요구하는 특성상 페이스 조절은 레이스 성패와 직결된다.”고 경고했다. ●폭염 대구의 더운 날씨는 유명하다. 높은 기온과 낮은 습도, 게다가 후끈 달궈진 아스팔트를 뛰기 때문에 체감하는 더위는 상상 이상이다. 지난 12일 실전코스에서 훈련을 마친 마라톤 대표팀은 ‘폭염’에 주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황 위원장도 “무더위가 변수가 될 것 같다. 오사카 대회처럼 기권자도 꽤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2007년 오사카 대회 때 마라톤은 ‘혹서(酷暑)의 서바이벌 레이스’로 불렸다. 조직위에서는 더위를 식혀줄 안개 샤워구간을 10m 정도 마련했지만 소용없었다. 피니시 지점의 기온은 33도로 역대 최고였다. 참가자 85명 중 무려 28명이 중도 기권했다. 루크 키베트(케냐)는 2시간 15분 59초로 우승했지만 이는 1983년부터 개최된 세계육상대회 사상 최악의 1위 기록이었다. 당시 박주영-김영춘-이명승으로 구성된 무명(?)의 한국팀은 완주를 한 덕분에 단체전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한국팀 응원하는 ‘내 팀’이 있으면 보는 재미는 곱절이 된다. 한국선수 중 가장 좋은 기록(2시간 8분 30초)을 보유한 지영준이 불참하지만, 정진혁(최고기록 2시간 9분 28초)·김민(2시간 13분 11초·이상 건국대), 황준현(2시간 10분 43초·코오롱) 등 5명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세계 정상권과는 기록 격차가 있지만 메달 획득 가능성이 없진 않다. 개인전도 가능하고 특히 단체전은 기대할 만하다. 나라별 출전선수 5명 가운데 기록이 좋은 상위 3명의 성적을 합산, 순위를 매기는 번외종목이다. 2007년 오사카 은메달을 딴 경험도 있다. 정윤희(2시간 32분 09초)·최보라(2시간 34분 13초)·박정숙(2시간 36분 11초·대구은행) 등으로 구성된 여자팀도 단체전 시상대에 서는 게 목표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조이너의 후예’ 美 단거리 자존심 살린다

    미국은 원래 육상 단거리 왕국이었다. 1912년 남자 100m 첫 세계신기록이 나왔을 때부터 최근까지 대부분 기록을 독식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아사파 파월, 우사인 볼트(이상 자메이카) 등이 등장하면서 단거리에서 미국의 자존심은 무너졌다. 게다가 자메이카에 도전할 남자 단거리 1인자 타이슨 게이마저도 부상으로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불참을 선언하면서 왕좌를 완전히 넘겨주는 형국이다. 이런 미국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바로 여자 단거리다. 현재는 고인이 된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의 100m(10초 49)와 200m(21초 34) 세계기록은 23년째 성역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현재 이 ‘불멸의 기록’에 가장 근접한 선수들도 미국 선수들이다. 주인공은 100m의 카멜리타 지터(32)와 200m의 앨리슨 펠릭스(26). 지터는 2009년 상하이에서 열린 그랑프리 대회에서 초속 1.2m의 뒤 바람을 타고 100m를 10초 64에 끊으며 세계기록에 가장 근접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미국프로농구(NBA) 가드인 오빠 유진 지터를 따라 농구를 먼저 배웠던 지터는 뒤늦게 고등학교 때 육상에 입문했다. 그런데 첫 100m 기록이 11초 70. 2007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당시 지터는 처음 출전한 세계선수권에서 11초 02의 기록으로 3위를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09년 베를린 대회에서도 동메달에 머물렀지만, 같은 해 가을 연달아 10초 67과 10초 64로 기록을 끌어올려 자존심을 세웠다. 그리고 지난해 출전한 7번의 대회에서 6번 우승을 차지하면서 대구 대회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펠릭스는 세계선수권대회의 강자다. 2005년 헬싱키, 2007년 오사카, 2009년 베를린 대회 200m를 3연패했다. 각종 세계대회에서 다른 단거리 종목이 모두 자메이카에 넘어갈 때 홀로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연달아 자메이카의 캠벨 브라운에게 패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개인 최고기록도 21초 81로 21초 74를 찍은 브라운에 이어 현역 선수 가운데 2위다. 하지만 펠릭스가 전성기를 맞은 반면, 브라운은 내리막을 타고 있어 대구에서의 맞대결에서는 4연패와 동시에 올림픽 설욕이 성공할지 관심이 모인다. 두 여전사가 대구에서 미국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까.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D-14] 농장 운영 ‘자연의 사나이’… 묘한 패션감각 자랑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D-14] 농장 운영 ‘자연의 사나이’… 묘한 패션감각 자랑

    400m 트랙 7바퀴 반을 돌면서 모두 28번 허들을 넘고, 7번 물웅덩이를 통과하는 육상 3000m 장애물 경기는 상징성이 크다. 돌과 나무 등을 헤치며 사냥감을 쫓고, 맹수를 피하는 자연 속 인간의 달리기를 트랙 위에 구현한 종목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장애물 달리기는 1회 하계올림픽부터 정식종목이었다. 당시에는 110m 허들만 있었지만, 2회 올림픽에서 단거리 허들 3종목(110m, 200m, 400m)과 함께 2500m, 4000m 장애물 경기가 정식종목으로 포함됐다. 4회 런던올림픽에서 장거리 장애물 달리기는 3000m로 규격화됐고,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여자 3000m 장애물 경기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와서야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옆머리 빡빡 깎고 손가락 금색으로 자연 속 달리기와 근접한 종목이다 보니 원시 자연환경이 유지된 아프리카, 특히 케냐 선수들이 강세를 보이는 종목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선수는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인 에제키엘 켐보이(29)다. 학업을 모두 마친 뒤 늦게 육상에 입문한 켐보이는 육상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20만㎡의 농장을 운영하는 두 아이의 아빠다. 또 베를린 대회 우승 뒤 “소원을 이루고자 패션 스타일을 바꾼 게 주효했다.”는 엉뚱한 소감을 밝힌 괴짜이기도 하다. 당시 켐보이는 옆 머리를 빡빡 깎은 ‘해병대’ 헤어 스타일과 손가락을 금색으로 칠한 채 경기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켐보이는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불굴의 의지로 정상에 오른 ‘7전 8기’의 육상 스타임에 틀림없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유독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2003년 파리, 2005년 헬싱키, 2007년 오사카 대회까지 3회 연속 2위에 그쳤다. 2003년과 2005년 대회에서는 사이프 샤힌(카타르)에게 밀렸다. 2001년까지 스테판 케로노라는 이름의 케냐 선수였던 샤힌은 2003년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오일 머니’에 팔려 카타르 국적으로 갈아탔다. 켐보이가 아테네올림픽에서 정상에 선 것도 샤힌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국적을 바꾼 선수는 변경일로부터 3년 동안 올림픽 출전을 못하도록 했다. 2007년에는 팀 동료인 브리민 키프루토에게 밀렸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7위의 초라한 성적을 받아들었다. 적당히 돈을 벌어 먹고살 길이 있으니 포기할 만도 했지만, 우승을 향한 그의 집념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2009년 베를린 대회에서 케냐 동료인 리처드 마텔룽을 100분의46초 차로 따돌리고 세계선수권 우승의 한을 풀었다. ●‘집안싸움’ 이겨내야 2연패 가능 켐보이의 최고 기록은 2009년 5월 카타르 도하에서 세운 7분 58초 85. 현역 가운데 가장 좋은 기록이다. 하지만 이번 대구 대회에서 2연패를 달성하려면 역시 ‘집안 싸움’의 승자가 돼야 한다. 동료인 마텔룽과 키프루토, 파울 코에크 등이 강력한 경쟁자들이다. 켐보이가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패션의 도시’인 대구에서 어떤 패션으로 등장해 ‘승리의 마법’을 걸지 기다려지는 대목이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D -15] 이 남자, 발만 떼면 세계新이 들썩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D -15] 이 남자, 발만 떼면 세계新이 들썩

    13억명 중국인이 사랑하는 스포츠 영웅, 허들 3관왕을 이룬 유일한 남자선수, 아시아인으로 단거리에서 정상에 선 첫 스프린터. 현재진행형인 레전드, 류샹(28)이다. 류샹은 ‘아시아인은 단거리에 약하다.’는 편견을 깨뜨렸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 허들 110m에서 세계 타이기록인 12초 91을 찍고 금메달을 목에 걸며 파란을 일으키더니 2006년 육상대회에서는 세계신기록인 12초 88을 찍었다. 이듬해 오사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1위에 올랐다. 세계기록을 세우고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모두 석권하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것. ●아시아인 단거리 첫 그랜드 슬램 달성 물론 류샹 전에도 굵직한 선수는 있었다. 그러나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한 그레그 포스터(미국)는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고, 세계기록도 세우지 못했다. 세계선수권을 4차례 정복한 앨런 존슨(미국) 역시 올림픽 금메달은 땄지만 세계기록은 작성하지 못했다. 현재 세계기록(12초 87) 보유자인 다이론 로블레스(쿠바)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 왼쪽 허벅지 근육통으로 주춤했다. 류샹의 ‘3관왕’이 여전히 의미 있는 까닭이다. 류샹은 어떻게 정상에 설 수 있었을까. 189㎝·82㎏으로 서양선수를 능가하는 우월한 체격을 갖춘 것도 이유지만 원래 높이뛰기에서 다져진 유연함과 순발력이 도움이 됐다. 류샹은 1999년 상하이 제2체육학교에 진학해 순하이핑 코치를 만나 운명적으로 허들에 입문했다. 어쩌면 도박이었던 선택은 잭팟을 터뜨렸다. 가속도와 힘을 이용해 허들을 넘는 일반 선수들과 달리 류샹은 하체를 활용한 유연한 허들링과 막판 폭발적인 스퍼트로 기록을 줄여나갔다. 1981년 허들 110m에서 처음으로 12초 9대에 진입한 미국의 레널도 네헤미아는 “여타 선수들이 2발짝 반에 허들을 넘는 것과 다르게 류샹은 정확하게 세 걸음 만에 스피드를 극대화해 허들을 뛴다.”고 극찬했다. ●첫 허들까지 7보로 줄이는 기술 연마 탄탄대로였던 류샹의 허들인생도 바닥을 쳤다. 안방에서 열린 2008베이징올림픽 때였다. 9만명의 홈팬들 앞에서 예선 레이스를 준비하던 류샹은 다른 선수의 부정출발로 경기가 중단되자 갑자기 절뚝거리더니 레인 밖으로 나갔다. 오른쪽 아킬레스건 통증으로 기권한 것. 고질적인 부상이 가장 중요한 순간 재발했고 류샹은 기약 없이 수술대에 올랐다. 비관적인 전망 속에 길고 긴 재활이 이어졌다. 2009년 12월 동아시아대회에서 우승했지만 기록(13초 66)이 최고기록(12초 88)에 한참 못 미쳤다. 또 고독한 싸움이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해 5월 상하이그랑프리에서 13초 40으로 기록을 줄였고, 11월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13초 09를 찍으며 대회 3연패를 이뤘다. 다시 ‘장밋빛 미래’를 그리게 됐다. 기세가 오른 류샹은 “대구세계선수권대회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우승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다이아몬드리그에서 데이비드 올리버(미국)보다 0.11초 빠른 13초 07을 찍고 우승했고, 6월 대회 때는 13초 00으로 부상 후 가장 좋은 기록을 냈다. 출발선부터 첫 허들까지 8보로 달리던 류샹은 보폭을 늘려 7보로 달리는 새 기술을 연마하며 두 번째 세계선수권 금메달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 ‘대륙의 자존심’ 류샹에게 달구벌은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대구세계육상 D-26…男100m 약물복용 딛고 부활 질주

    대구세계육상 D-26…男100m 약물복용 딛고 부활 질주

    오는 27일 개막하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경기인 남자 100m는 영광의 레이스인 동시에 부활과 재기, 속죄와 명예회복을 위한 무대다. 특히 과거 약물복용으로 징계를 받았다가 풀려난 선수들에게는 그 의미가 각별하다. AFP통신은 31일 영국의 드웨인 챔버스(33)가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대표선발전 100m에서 10초 09를 찍고 우승, 대구 대회 출전권을 따냈다고 전했다. 챔버스는 지난 1999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100m에서 동메달을 땄던 영국의 간판 스프린터다. 하지만 2003년 스테로이드 계열의 금지약물인 THG를 복용한 게 들통나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으로부터 2년간 출전정지 처분을 받았다. 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는 올림픽 출전 영구 금지라는 중징계까지 받았다. 그 뒤 미국프로풋볼(NFL) 선수로 변신을 하려고도 했던 챔버스는 2년 정지 처분이 풀린 뒤 IAAF 주관 대회에만 출전해 왔다.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 100m에서는 6위를 했다. 챔버스는 약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잘 달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훈련에 정진했고 마침내 이날 대표선발전에서 당당히 1위로 결승선을 끊었다. 챔버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내년 안방에서 열리는 런던올림픽 무대에 서는 것. 물론 올림픽 영구 출전금지 처분이 번복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실력을 유지해 실낱 같은 희망을 엿보겠다는 자세로 대구 대회를 준비 중이다. 챔버스는 “나이가 들어 점점 쉽지 않지만 레이스를 뛰는 건 즐겁다.”면서 “이번 대구 대회에서도 베를린 세계대회 때의 성적 정도는 올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이와 함께 금지약물 테스토스테론에 양성반응을 보여 4년 동안 징계를 받았다가 지난해 트랙에 복귀한 미국의 저스틴 게이틀린(28)은 지난달 대표선발전 100m에서 9초 95를 기록하고 2위를 차지해 대구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게이틀린은 오는 9일 발표될 미국대표팀의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면 2005년 헬싱키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6년 만에 세계 대회에 출전한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100m에서 금메달, 2005년 헬싱키 대회 100m, 200m를 휩쓴 게이틀린은 고관절 수술로 시즌을 마감한 타이슨 게이를 대신해 순식간에 단거리 왕국으로 떠오른 자메이카의 ‘쌍두마차’ 우사인 볼트와 아사파 파월에 맞서 미국의 자존심을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열린세상] 통상법치국가에 걸맞은 법률 기능 갖추자/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통상법치국가에 걸맞은 법률 기능 갖추자/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한민국은 ‘통상법치(通商法治) 국가’라 할 만하다. 그동안 자유무역협정(FTA), 한·미 쇠고기 협상 등을 계기로 수많은 통상법적 이슈가 대중매체를 통해 여과 없이 전달돼 왔다. 투자자·정부 소송, 간접수용, 네거티브시스템, 독소조항, 신금융서비스 규제, 비위반 제소, 허가·특허 연계 등 전문개념이 인터넷 토론을 지배하고, 좌우진영으로 짜여진 TV토론을 통해 비전문가들의 입속에서 해석됐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관련 산업 종사자나 시민단체들의 반응에 큰 파급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마치 고대 아테네의 소피스트들처럼 진리나 도덕적 기준 없이 정치적 입장만을 그때그때 강화하기 위해 토론하고 댓글을 다는 행태가 오히려 영웅시됐다. 그 결과 한·미 FTA는 4년 가까이 표류하고, 쇠고기 교역은 정상화되지 않았으며, 국가 이익과 농업 자체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쌀시장 조기관세화는 뒷전이다. 이런 시행착오의 주요 원인은 통상법적 이슈에 대한 권위 있는 해석이 내려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단체나 언론이 각자의 구미에 맞는 전문적 비전문가를 내세워 의혹과 논쟁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국가이익에 입각해 모든 이해관계를 조정할 책임이 있는 정부가 전문적 이슈에 대한 권위를 잃은 것은 문제다. 통상법적 이슈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미리 국민에게 제공해 사실에 입각한 토론이 이뤄져야 하는데, 협상 보안만을 강조하다 뒤늦게 ‘언론 플레이’를 해 국민의 신뢰를 잃은 측면도 있다. 정부가 간과하거나 숨긴 쟁점들이 하나 둘 FTA 반대 진영에 의해 제기될 때마다, ‘사후약방문’ 식으로 설명하다 보니 신뢰는 더욱 무너졌고 설득력도 잃었다. 그래서 반대 진영은 허위·과장 주장의 진실이 드러날 때는 논점을 바꾸었으며, 과거 주장의 사실 여부보다는 새 문제점에 대한 비판과 의혹만 키웠다. 그동안 정부 전반의 국제협력 기능이 강화되긴 했지만 통상협상과 조정을 담당하고 있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자체의 통상법률 기능은 유명무실해졌다. 현재 과장 1명, 국제변호사 3명 및 행정직원 1명으로 운영되고 있는 통상법무과가 본부의 법률 컨트롤 타워 기능을 수행하고 있고, 그나마 통상교섭본부에 합류한 소수의 법률전문가들도 각 지역·기능과로 흩어져 해외공관으로 나가 있다. 관계 부처의 통상팀들은 통상교섭본부의 자문보다는 별도의 외부자문을 신뢰한 지 오래다. 교섭대표만 30여명이며 수백명의 전문변호사로 구성된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충분한 권한과 능력을 바탕으로 관계부처로부터 절대적 신뢰를 받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향후 여러 FTA를 이행해 가면서 수많은 국제통상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투자자·정부 분쟁도 체계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중국, 일본 등과의 FTA 협상도 해야 한다. 브릭스(BRICs) 등 각국의 수입규제 조치가 점차 고도의 위장전술을 띠고 있어, 보다 정교한 법률 대응이 필요하다. 특채 파동과 번역 오류 문제로 개혁 모드에 돌입한 외교통상부는 채용 경로 다변화에 따른 외교역량 강화와 순혈주의 타파의 기치를 내걸고 있다. 보다 전문성을 갖춘 국내외 변호사를 외교역량 업무에 대거 투입하여 진정한 법률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는 것은 이런 개혁 방향과 맞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최고의 대외무역의존도를 자랑하는 우리는 정부차원에서 공익적 성향이 강한 통상전문변호사를 적극 양성해야 한다. USTR의 수석변호사(General Counsel)는 30명의 교섭대표급 직원 중에서도 서열 7위의 고위직이다. 우리도 통상교섭본부에 실장급 수석변호사를 임명하고, 통상 분쟁과 수입규제 대응 및 협상법률자문(번역 포함)을 각각 담당하는 하부조직을 정비해야 한다. 전반적으로 작은 정부를 구현하는 마당에 조직 확대와 예산 증액이 수반되는 방향의 조직개편이기는 하나, 언제까지나 전문적 통상법 이슈에 관해 정부의 권위가 소피스트 괴변에 무력화될 수는 없다. 물론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법률 자문의 성과를 바탕으로 관계부처들의 신뢰를 획득하고 국민에게 효용을 입증해 내는 것은 외교통상부의 책임이다.
  • [이 선수를 주목하라] 이신바예바 - 장대 높이뛰기

    [이 선수를 주목하라] 이신바예바 - 장대 높이뛰기

    이카로스의 노래 -장대높이뛰기3-서상택(대한육상경기연맹이사) 너무 높이 날면/태양에 밀랍이 녹을 거다// 너무 낮으면/바다 물보라에 깃털이 젖을 거다// 신화 속의 하늘을 어루만지다가/구름을 발끝으로 건드려 본다//세상은 지금/내 발 아래 있다 8년째 세상은 그의 발아래에 있다. 약 5m 길이의 폴(장대)을 쥐는 순간 옐레나 이신바예바(29·러시아)는 인간이 아닌 새가 된다. ‘미녀새’의 비상을 대구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이신바예바는 손목 부상에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참가한다. 러시아육상연맹 발렌틴 발라크니초프 회장은 2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신바예바가 손목에 경미한 상처를 입은 상태지만 대구 대회에는 참가한다.”고 밝혔다. 11개월 동안 휴식기를 보낸 이신바예바는 지난 21일 스위스 루체른 대회에서 연습 중 손목을 다쳐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역사는 길지 않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간신히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이신바예바는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와 함께 가장 유명한 육상 스타 가운데 하나다. 왜일까. 단순히 ‘얼짱’이라서가 아니다. 장대높이뛰기는 종합선물세트다. ‘스타트-가속-추진-차오르기-도약-클리어’의 6단계를 완벽히 소화하려면 단거리의 스피드와 장거리의 페이스 조절, 투척의 악력과 상체운동능력, 도약 종목의 균형과 점프력 등 육상 전 종목에 요구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완전함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종목이다. 그리고 이신바예바는 그 모든 능력을 갖췄고, 보여줬다. 새로 쓴 세계 기록만 27개(실외 15개·실내 12개). 또 여자 선수로는 유일하게 ‘5m 벽’을 넘었다. 그는 실외 5m 06, 실내 5m를 기록, 두 부문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신바예바는 비밀무기까지 갖췄다. 바로 유연성이다. 5세 때부터 10년 동안 ‘체조 꿈나무’였던 그는 15세 때 키가 174㎝까지 갑자기 자라는 바람에 장대를 잡게 됐다. 이때 기른 유연성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큰 무기가 됐다. 1년 만인 1998년 16세에 처음 국제대회에 출전해 4m를 넘고 우승, 세계 육상계를 놀라게 했다. 전문가들은 체조와 육상을 공중에서 결합시킨 완벽한 선수라는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2003년 영국 대회에서 4m 82를 훌쩍 넘으며 첫 세계신기록을 세웠던 이신바예바는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대표팀 선배인 스베틀라나 페오파노바를 1㎝ 차이로 꺾고 또 한 번의 세계신기록(4m 91)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독주의 시작이었다. 2005·2007 세계선수권은 물론 2008 베이징올림픽마저 제패한 이신바예바는 메이저 대회에서 총 9번이나 시상대 맨 꼭대기에 섰고,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올해의 여자 선수상’을 3번(2004·2005·2008년)이나 차지했다. 시련도 있었다. 2009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예행연습 삼아 출전한 영국 대회에서 폴란드의 아나 로고프스카에게 패했다. 대회 3연패도 놓쳤다. 하지만 슬럼프도 순식간에 넘어섰다. 이신바예바는 ‘베를린 참패’ 뒤 일주일도 안 돼 취리히 대회에서 5m 06을 넘어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세운 5m 05를 1년 만에 경신했다. 그가 대구에서 ‘28번째 신기록’을 작성할 수 있을까. 긴 휴식을 깨고 다시 날아오르기 시작한 ‘이카로스의 후예’의 날갯짓에 전 세계의 눈길이 모이고 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기적을 달리는 ‘의족 스프린터’ 달구벌 달군다

    기적을 달리는 ‘의족 스프린터’ 달구벌 달군다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4·남아프리카공화국)가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400m에서 희망의 레이스를 펼친다. AP통신은 피스토리우스가 20일 이탈리아 리그나노에서 열린 육상대회 남자 400m에서 45초 07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종전 개인 최고기록(45초 61)을 0.54초나 앞당긴 피스토리우스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A 기준기록(45초 25)을 통과해 대구행 티켓을 자력으로 손에 넣었다. 종아리뼈 없이 태어나 생후 11개월부터 양쪽 다리를 쓰지 못한 피스토리우스는 탄소섬유 재질의 보철 다리를 붙이고 레이스에 나서 ‘블레이드 러너’라는 애칭을 얻었다. 2004년 아테네 패럴림픽 200m에서 우승한 뒤 일반 선수와의 경쟁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IAAF가 그의 보철 다리가 일반 선수보다 25% 정도의 에너지 경감 효과를 준다며 올림픽 출전을 금지시켰지만, 피스토리우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해 ‘보철 다리로 부당한 이득을 얻지 않았다.’는 결정을 얻어냄으로써 올림픽 및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의 길을 열었다. 하지만 3년 전 베이징 올림픽 때는 당시 A 기준기록(45초 55)에 0.7초가 모자라 출전권을 얻지 못했고, 패럴림픽에서 100m, 200m, 400m까지 남자 단거리를 모두 석권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포기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기록을 끌어올려 마침내 꿈을 이뤘다. 그의 다음 목표는 참가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시상대에 오르는 것. 최근 400m 기록 추이와 그의 기록 상승세를 보면 결코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평창올림픽 분산개최 불가”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최근 한국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남북한 공동 개최에 대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로게 위원장은 14일 도쿄 외국인특파원협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IOC는 한 국가의 한 도시에서 올림픽을 치르게 하고 있다.”면서 “두 국가에 올림픽을 분산 개최하는 것은 현행 올림픽 헌장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자칫 조직을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올림픽 헌장을 바꾸지도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로게 위원장은 다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와 마찬가지로 남북한이 공동으로 개회식에 입장하거나 단일팀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 “이는 매우 상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평창이 유치전에서 IOC위원 63명에게 지지를 받은 것에 대해 “나도 솔직히 무척 놀랐다.”면서 “첫 번째 투표에서 결론이 날 것으로 생각지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로게 위원장은 “평창이 세번이나 도전한 것은 끈기와 인내를 보여준 것”이라며 ‘불굴의 의지’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이어 “평창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것은 매우 잘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한국은 이제 스포츠 리더 국가가 됐다.”고 극찬했다. 로게 위원장은 또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한다고 해서 일본 도쿄가 2020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며 도쿄가 유치전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그는 프랑스 알베르빌과 노르웨이 릴레함메르가 1992년과 1994년에 잇따라 동계올림픽을 개최했고, 그리스 아테네가 2004년 하계올림픽을 연 데 이어 이탈리아 토리노가 2006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사례를 거론한 뒤 “대륙별 순환이라는 개념이 있지만, 이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로게 위원장은 일본 올림픽위원회(JOC) 창설 10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해 이날 기자회견을 했다. 한국 언론으로는 서울신문이 유일하게 참석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씨줄날줄] 스포츠 G7/곽태헌 논설위원

    잘 알려진 바대로 G7은 서방 선진 7개국의 모임이다. 회원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 G7은 매년 정상회의와 재무장관 회의를 갖고 세계의 주요 경제현안을 논의한다. 요즘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미국과 중국이 G2로 불리지만, 중요한 경제현안은 G7에서 대부분 결정된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1차 오일쇼크 이후인 1974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당시 서독), 일본 등 5개국 고위 경제관료들이 세계경제를 자연스럽게 논의하면서 G5로 불렸다. 이듬해 이탈리아가 포함되면서 G6로, 그 다음 해에는 캐나다가 추가되면서 G7이 됐다. 1997년 서방이 아닌 러시아가 포함되면서 G8이 출범했지만, 러시아는 재무장관 회의 멤버는 아니다. 1997년의 아시아 외환위기를 계기로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긴밀한 공조를 위해 G20(G7+한국 등 13개국) 재무장관 회의가 시작됐고, 2008년 선진국에서 터진 금융위기 공조를 위해 G20 정상회의로 격상됐다.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은 아니지만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5위, 수출과 수입을 합한 무역규모는 8915억 달러로 세계 9위다. 올해 무역규모는 1조 달러를 돌파할 게 확실시된다. 남북분단 직후인 1946년 무역규모는 5000만 달러를 겨우 넘었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부작용도 있었지만, 분단과 6·25전쟁을 딛고 이렇게 압축성장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경제발전 속도를 훨씬 더 뛰어넘는 게 스포츠분야다. 하계올림픽의 경우 주최국의 프리미엄이 있었던 1988년 서울올림픽(4위)은 논외로 하더라도,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7위,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9위,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7위에 올랐다. 동계올림픽 성적도 좋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7위,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5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올림픽에서는 이미 톱10, 톱5에 진입했다. 2018년 동계올림픽을 평창에서 개최하는 데 성공하면서 하계·동계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 등 4개 대회를 모두 유치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여섯 번째 나라가 됐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일본, 러시아도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러시아를 제외한 서방 선진국만으로는 ‘스포츠 G5’가 된 셈이다. 더구나 프랑스는 103년, 일본은 38년에 걸쳐 개최한 4개 대회를 30년 만에 ‘압축’한 것은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기록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데 이어 스포츠분야에서도 전설을 이어가고 있는 자랑스러운 코리아. 참 대단한 나라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그리스 경제 ‘파판드레우, 카라만리스, 미초타키스’ 3대 가문이 망쳤다”

    “여간해선 바뀌지 않는 비대한 족벌주의 시스템을 창조한 3대 유력 정치 ‘왕조’가 그리스를 망쳐 놨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5일(현지시간) 분석기사를 통해 그리스 정치를 대표하는 3대 유력가문이 끼리끼리 나눠먹기를 통해 국가를 사유화하고 국가기강을 흐트렸다면서 이들이 그리스 경제 위기에 중요한 책임이 있다고 지목했다. 정부 곳간을 자신들의 친구와 친척들에게 던져 줬고 행정조직을 지나치게 비대하게 만들어 관료주의 괴물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슈피겔이 꼽은 3대 유력 가문은 파판드레우, 카라만리스, 미초타키스 등이다. 집권 사회당을 대표하는 파판드레우 가문은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총리가 2009년 취임하면서 3대가 모두 총리를 지낸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사회당에 맞서는 보수 야당인 신민주주의당을 양분하는 카라만리스 가문과 미초타키스 가문도 빼놓을 수 없는 유력 가문이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총리를 역임했던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의 삼촌도 대통령과 총리를 지냈다. 콘스탄티노스 미초타키스는 1980년대 중반부터 10여년간 신민주주의당 대표로 활동했고 1990년부터 1993년까지 총리로 재직했다. 슈피겔에 따르면 3대 가문이 장악한 그리스 정당정치는 언제나 정책보다는 친분에 따라 움직였다. 공공자금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 돈을 친구와 유권자를 사는 데 썼다. 봉건적 민주주의가 유지되면서 파판드레우, 카라만리스, 미초타키스란 이름은 총리, 장관, 당 대표 등 주요 정치 지도자로 수십 년째 변함 없이 정치 뉴스에 등장한다. 슈피겔은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도 붙잡을 수 있는 건 뭐든 붙잡으려 했다면서 “부유층은 세금을 탈세하고 공무원들은 뇌물을 받고 곳간을 열어 줬다.”고 꼬집었다. 2004년 총선 당시 신민주주의당 대표 카라만리스는 국가 개혁을 약속했지만 총리가 된 뒤 이를 저버렸다. 카라만리스 정부는 수치를 조작해 정부부채 규모를 축소한 보고서를 유럽연합(EU)에 제출했고 2009년 총선 직전에는 무려 1만개가 넘는 공직을 만들어내 친척들과 측근들에게 분배했다. 결국 그가 집권하는 동안 그리스 정부부채는 두 배로 늘었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악습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그가 척결하고자 하는 시스템을 창조하는 데 그의 아버지도 적잖은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슈피겔은 “그리스에선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기존 인력을 줄이지 않은 채 주요 정치 지도자 측근과 이들의 가족과 친척들 수천 명을 정부 관료로 새로 채용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리스 경제가 쉽사리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아테네 오모노이아 광장은 점심 시간마다 교회에서 지급하는 무료급식을 얻으려는 노숙자와 실업자, 이민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올해 38세로 아테네공항에서 보안요원으로 7년간 일하다 2009년 해고된 뒤 지금껏 취업을 못한 게오르기오스 레베도기아니스는 9개월 전부터 주기적으로 광장을 찾는다. 돈도 다 떨어져 적십자에서 잠을 잔다는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입에 거미줄 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만약 당신이 ‘연줄’이 없다면 아무도 당신을 챙겨주지 않는다. 그리고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 뿐이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평창, 꿈을 이루다] 국민 91.4% 유치 기원… 대한민국 모두의 승리였다

    [평창, 꿈을 이루다] 국민 91.4% 유치 기원… 대한민국 모두의 승리였다

    강원 평창의 2018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은 대한민국 모두의 승리로 요약된다. 우선 300만 강원도민을 포함한 우리 국민들의 올림픽 유치 열망이 가장 큰 승인으로 꼽힌다. 또 정부의 일관되고 확고한 지원 방침, ‘유치 전쟁’ 최일선에서 불철주야로 뛴 유치 관계자들의 활약 등이 어우러져 일군 쾌거로 평가된다. 국민, 정부, 유치위원회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갔다는 얘기다. 사실 평창은 후보 도시 국가인 독일(뮌헨), 프랑스(안시)와의 유치 경쟁에서 부담을 느꼈다. 두 국가는 국제무대에서의 위상이 한국보다 높다. 게다가 천혜의 알프스를 배경으로 올림픽 등을 선점해온 전통의 동계 스포츠 강국이다. 이에 견줘 한국은 밴쿠버올림픽에서 두각을 보였지만 막 발돋움한 수준에 불과하다. 출발부터 버거워 보였다. 이 탓에 힘겨운 승부가 점쳐졌고 심지어 ‘유치 불가’를 단언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평창의 도전은 녹록지 않았다. 무엇보다 ‘3수’의 배수진을 친 국민들의 유치 의지가 워낙 강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1개 항목에 걸쳐 후보 도시를 평가하면서 해당 국민들의 개최 의지를 늘 최우선으로 꼽았다. 후보 도시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개최권을 줄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지난 2월 IOC 평가단의 후보 도시 조사 결과 평창은 이 대목에서 상대를 압도했다. 우리 국민의 대다수인 91.4%가 평창 유치를 지지했다. 강원 주민은 그보다 높은 93.4%의 지지율을 보였다. 반면 독일 국민들의 뮌헨 유치 지지율은 76%, 뮌헨 주민들은 이보다 적은 70.9%만 찬성했다. 프랑스도 국민 80%, 안시 주민 74%가 찬성하는 데 그쳤다. 정부의 확고한 지원 의지도 한몫했다. 정부는 현지 실사 당시 해당 장관까지 프레젠테이션에 참석해 정부의 지원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4월 런던에서 열린 ‘스포트어코드’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면서 2018년까지 모두 5억 달러(약 5104억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 주목을 받았다. 다른 후보 도시와 달리 명확한 액수까지 제시하며 정부 보증을 확실히 했다. 아울러 조양호 유치위원장과 박용성 대한체육회(KOC) 회장, 이건희 IOC 위원 등 유치전 ‘빅3’가 ‘총성 없는 전쟁’의 최일선에서 뛰었다. 조 위원장과 박 회장은 국내외에서 평창의 유치 활동을 진두지휘했다. 이 위원은 동료 IOC 위원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역할’을 무기로, 위원들 마음을 파고들었다.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인 문대성 IOC 선수위원도 마찬가지. 선수위원들을 ‘맨투맨’ 방식으로 집중 공략했다. IOC가 1999년 올림픽 유치전으로 불거진 ‘솔트레이크시티 뇌물 스캔들’ 이후 후보 도시와 IOC 위원 간의 개별 접촉을 엄격히 금지해온 터라 두 위원의 존재는 평창에 엄청난 힘이 됐다. 평창의 오랜 염원을 실현하고자 10년 넘게 스포츠 외교 무대를 누빈 김진선 특임대사도 평창이 두 번이나 역전패한 아픔을 곱씹으면서 끝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이 밖에 평창 홍보대사인 ‘피겨퀸’ 김연아와 강광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부회장 등 선수 위원들의 활약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더반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필리핀 대통령 한국계 女에 호감

    필리핀 대통령 한국계 女에 호감

    미혼인 베니그노 아키노(왼쪽·51) 필리핀 대통령이 한국계 여성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29일 보도했다. 마닐라 불리틴 인터넷판에 따르면 아키노 대통령은 지난 27일 세부에서 열린 한국전력 발전소 준공식에서 한국계 여성인 그레이스 리(오른쪽·29·한국명 이경희)에게 호감을 보였다. 그레이스 리는 TV 진행자로 이날 행사에서 공동 사회를 맡았다. 아키노 대통령은 평소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면 찬사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키노 대통령은 이날도 그레이스 리가 매우 아름답다며 그가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한 것으로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특히 아키노 대통령은 영어와 타갈로그어를 번갈아 사용하는 그레이스 리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고 마닐라 불리틴은 보도했다. 그레이스 리는 아키노 대통령의 칭찬에 감사한다면서도 “그러나 그게 전부”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레이스 리는 사업을 하는 부친을 따라 필리핀으로 갔으며, 올해로 17년째 필리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테네오 데 마닐라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뒤 현재 세부의 라디오 및 TV 방송에서 활약하고 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데스크 시각] 여울목의 물소리/이지운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여울목의 물소리/이지운 정치부 차장

    2300여년 전 알렉산더 대왕은 실로 바람과 같은 속도로 제국을 만들어 나갔다. 기원전 331년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다리오3세와 최후의 일전에서 승리하고 서쪽으로는 고향 마케도니아에서부터 동쪽으로 인더스강 동편에 걸쳐 ‘헬라’라는 이름의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이후 8년이 못되어 그는 죽고 제국은 나뉘고 사라진다. 헬라제국을 전후해 200~300년, 중동은 대격변기였다.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헬라에 로마까지 수천년 인류사에 족적이 뚜렷한 대제국이 세워지고 쓰러졌다. 이 과정에서 주변의 많은 약소국가들이 제국들의 수레바퀴에 깔려 뭉개졌다. 시리아 지방에 ‘유다’라는 나라도 마찬가지다. 기원전 1050년 왕정국가 체제를 갖추었으나 120년이 지난 기원전 930년부터 남북으로 나뉘어 분단국가로 지냈다. 북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멸망당했다.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2세의 침공 때 망했다. ‘느부갓네살’은 이라크전 때 사용됐던 이라크 미사일의 이름이기도 하다. 나라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끈 남유다 요시야왕은 아시리아의 쇠퇴기를 잘 활용해 국력을 다졌고 잃었던 영토를 회복했다. 이 무렵 신바빌로니아가 신흥 강국으로 등장했는데, 이집트가 이 바빌로니아를 견제해 아시리아를 도우려 했다. 요시야는 아시리아의 회복을 원치 않았다. 동족의 나라를 멸망시키고, 자국을 괴롭혀온 나라의 재기를 원치 않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집트를 막아선다. 이집트의 파라오 느고는 “내 목표는 바빌로니아”라며 비켜설 것을 종용했지만 요시야왕은 ‘므깃도’라는 곳에서 일전을 감행했다가 전사하고 만다. 바빌로니아의 발흥은 역사의 숙명이었다. 그러나 남유다는 아시리아, 이집트, 바빌로니아 등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고민했다. 바빌로니아가 기원전 608년 아시리아를 무너뜨리고 기원전 605년 ‘갈그미스 전투’를 통해 이집트까지 제압, 중근동의 패권을 장악한 뒤에도 남유다는 쓰러져 가는 옛 강호 이집트에 의지하려 했다. 상황을 오판한 대가는 3차에 걸친 침공과 식민이주, 포로생활이었다. ‘역사의 여울목’에서 약소국은 판단도, 결정도, 처세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천하를 호령하던 쟁쟁한 대제국들이 맞서는 상황, 여울목이 만들어 내는 빠른 물살에 휩쓸려 유다는 저만치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스 아테네에 서서 뜬금없이 2500년 전의 유다를 떠올린 것은,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여울목 때문이다. 다 쓰러져 가던 옆집 중국이 다시 거대 제국의 모습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했고, 수십년 경제 대국으로 주름잡던 이웃 일본은 휘청거리고 있다. 세계를 경영하던 미국은 정치, 외교, 군사 등 각 분야에서 하락세가 분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러시아의 꿈틀거림도 신경을 자극한다. 한 지붕 다른 집 북한은 그 가는 곳을 알기가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12년 우리를 둘러싼 주요 국가가 대부분 리더십의 변화를 겪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각국은 내부의 긴장감이 한껏 높아질 것이고, 자국의 형편이나 다른 이웃나라와의 관계 등으로 주변에 대한 배려는 소홀해지기 쉽다. 천안함 사건·연평도 포격 등에서 중국이 우리에게 보여준 태도는 그 대표적인 예표다. 이해가 겹쳐 맞물리고, 긴장이 쌓여 가면 ‘관리’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도 새 대통령을 뽑는다는 사실이다. ‘국력’이 선거에 몰리다 보면 이 관리는 부실해질 수 있다. 다른 나라들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2012년 저쪽 너머로 물살 빨라지는 소리를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수가 없는 요즘이다. 대권주자들도 이 소리를 충분히 듣고 있으리라 본다. 대통령 특사로 지난 5월 유럽을 다녀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얼마 전 사석에서 “그리스에 다녀오니 (그리스 경제위기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더라.”고 했다. 박 전 대표도, 다른 후보들도 가급적 더 자주 나가서 그 물살의 소리를 더욱 실감하기 바란다. 아테네를 다녀와서 jj@seoul.co.kr
  •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

    누군가에게 그들은 알록달록 그림이 가득한 옛날 책에 불과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그냥 도서관 한편에 놓인 채 잊혀져 있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그들은 민족문화의 정수였다. 수백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조상들의 삶과 생활을 알 수 있는 역사의 기록이었다. 그들이 145년의 세월을 건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들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들은 이제 옛 사람의 후손들에 의해 다시금 숨결을 되찾고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30여년에 걸친 우리의 노력이 비로소 결실을 맺었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세지도 못할 만큼 많은 우리의 유산들이 외국에서 이 땅을 그리워하고 있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을 축하하는 연회장으로 달려갔다. 그 자리에는 전 세계의 유명한 ‘약탈(掠奪) 문화재’도 모습을 나타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과 같은 신세였던 외규장각 도서를 부러워하면서…. 그들이 저마다 고향을 향한 ‘수구초심’(首丘初心)을 얘기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덕분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대여’(貸與)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는 게 아쉽지만, 저와 제 가족은 다시는 이 땅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휘경원(徽慶園) 원소도감의궤(園所都鑑儀軌)가 건배사를 시작하자, 참석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1993년 휘경원 의궤가 홀로 파리 국립도서관을 떠나 한국으로 갈 때 다들 그 뒷모습을 보며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후로 18년. 휘경원 의궤의 뒤를 이어 자신들도 금의환향한 것이 스스로 믿기지 않는 그들이었다. 1866년 강화도를 떠난 지 무려 145년 만이다. 휘경원 의궤가 파티장을 둘러본 후 다시 말을 이으려는 찰나, 문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문이 열리자 일단의 무리들이 들어왔다. 어디선가 떨어져 나온 듯한 조각 뭉치부터 미라 머리까지 괴기스럽기 그지없었다. 표정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조각상이 대표로 말을 꺼냈다. ●엘긴 마블 축하드립니다. 한국 국민들의 승리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는 조선왕실의궤처럼 다른 나라에 무참히 끌려간 인류의 유산들입니다. 세계 최고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매일 얼굴을 팔면서 살고 있지만, 한순간도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는 설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의궤가 너무 부럽고 해서 함께 찾아왔습니다. ●휘경원 의궤 감사합니다. 우선 이쪽으로 앉으시죠. 여기 계신 손님들이 잘 모르실 수도 있어 간략하게들 자리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엘긴 마블 안녕하세요. 전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장식입니다. 기원전 440년 무렵에 만들어졌고, 인물 360여명과 말 219마리로 구성돼 있어요. 제 치욕스러운 이름은 영국 외교관인 엘긴 브루스에서 비롯됐습니다. 19세기 초 터키의 그리스 지배 당시에 저희를 몽땅 긁어모아서 영국으로 옮겨왔죠. 대수집가로 추앙받는 경우도 있던데, 정말 어이없는 일이죠. 저희 가족은 ‘파르테논 마블스’로 불려야 마땅합니다. 성스러운 신전의 장식물을 떼어 와 감상하려 한 약탈자의 이름을 붙이다니요. 아마 가능하기만 했다면 파르테논 신전을 통째로 가져오고도 남았을 테죠. 현재 저희 가족은 대부분 대영박물관에 있고, 일부는 루브르박물관에도 있습니다. ●휘경원 의궤 파르테논 마블님은 문화재 반환운동의 대부로 유명하시죠. ●파르테논 마블 가만있자…, 그게 1960년대였을 거예요. 런던을 무대로 영화를 촬영하던 여배우 멜리나 메르쿠리가 저희가 대영박물관에 있는 걸 보고 통곡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메르쿠리는 1981년 문화부 장관이 되면서 정부와 전 국민을 상대로 반환운동을 벌였고, 1994년 세상을 뜰 때까지 한시도 운동을 쉬지 않았어요. 지금도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은 메르쿠리 이름으로 된 호소문을 받게 됩니다. ●휘경원 의궤 그리스에도 우리나라 박병선 박사 같은 분이 계셨군요. 그 얘기는 조금 있다가 더 듣기로 하고, 그 옆에 계신 분도 역시 영국에서 오셨죠? ●로제타스톤 안녕하세요. 전 기원전 196년에 만들어진 프톨레마이오스왕의 공덕비입니다. 1799년 나폴레옹 원정군이 로제타(현재의 라시드) 마을에서 요새를 쌓다가 발견했죠. 뭐 신기한 돌이다 싶어 슬쩍 프랑스로 가져오려고 했는데, 2년 뒤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프랑스가 패하면서 영국 소유가 됐죠. 이 전투에서 프랑스가 이겼으면 아마 지금 제 거처는 대영박물관이 아니라 루브르박물관이 됐을 겁니다. 전 세계 교과서에 제 이름이 나오지 않는 곳이 없을 테지만, 전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어요. 수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존재라고 할까요. 이집트 상형문자, 민용(民用)문자, 그리스어 등 세 가지로 쓰여 있어 상형문자 읽는 방법을 현대에 전달했죠. 물론 제 고향인 이집트에서는 절 돌려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벨리스크 여기서 오랜 친구 로제타스톤을 만나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전 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신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입니다. 보통 신전 앞에 쌍으로 있고 수십개가 만들어졌는데, 지금 고향에 있는 애들은 6개에 불과하고 외국에 더 많아요. 뉴욕, 파리, 런던에 하나씩 있고 이탈리아에는 무려 16개나 있습니다. 오벨리스크를 무슨 열강의 상징쯤으로 여긴 때문이겠죠. 심지어 뉴욕과 런던의 오벨리스크는 원래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는 이름으로 투트모세 3세가 만든 한 쌍입니다. 파리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 람세스 2세 오벨리스크의 나머지 한쪽이고요. 게다가 더 놀라운 건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우리가 운반을 위해 다 쪼개졌다는 거죠. 상처 입고 신음하는데 보기만 좋으면 다인가요. ●휘경원 의궤 뒤쪽에 계신 아리따운 여자분과 용맹한 전사님은 누구시죠? ●네페르티티 흉상 저 역시 고대 이집트 출신이에요. 이집트 최고의 미녀로 클레오파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으로 알려진 네페르티티 왕비의 모습을 하고 있죠. 1912년 독일오리엔트협회 조사단이 공방터에서 발견해 지금은 베를린 국립미술관에 있습니다. 말이 조사단이지 마구잡이로 파헤쳐서 가지고 오면 그만인 시절이었죠. 이집트 최고 미녀의 조각이자 최고의 조각상으로 평가받는 저를 정작 이집트의 후손들은 볼 수 없는 셈이죠. ●토이 모코 전 집으로 돌아갈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고 있는 뉴질랜드의 토이 모코입니다. 마오리족 전사가 전투에서 사망하면 정신을 기리기 위해 문신을 새겨 머리를 보관하던 전통에서 비롯된 일종의 미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중반에 유럽에서 소장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아예 마오리 전사에게 문신을 새긴 후 목을 자르는 일까지 벌어졌죠. 그 당시 500여개가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1992년부터 뉴질랜드 정부가 저희를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 지금까지 300여개가 돌아갔습니다. 그나마 고향에 돌아가기 쉬운 건 아마 저희는 문화재라기보다는 개인의 수집에서 비롯된 기념물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겠죠. ●휘경원 의궤 저희가 돌아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죠. 누구보다 재불 사학자인 박병선 박사의 역할이 컸습니다. 1979년 파리국립도서관에서 저희들을 찾아냈고, 이를 고국에 알렸죠. 프랑스 내 지식인층에 약탈문화재의 고국 반환을 주장하면서 30년 넘게 외롭게 싸워오고 계십니다. 여러분들 역시 고국에서 수많은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데,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뭐죠? ●오벨리스크 자랑스러운 그들의 박물관이 약탈문화재로 가득차 있다는 점 때문이겠죠. 그들은 조상들의 유산을 돌려 달라는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있습니다. 루브르의 이집트 천궁도를 비롯한 이집트 유물들도 대부분 도굴된 물건이지요. 마치 장물(贓物)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꼴입니다. 우리 오벨리스크를 가장 많이 소유한 이탈리아는 정작 우리 요구는 무시하면서 자기네 로마 유적은 돌려달라고 떠들고 있어요. 역지사지라는 말도 모르나봐요. 심지어 약탈국 정치인들은 대놓고 “하나둘씩 돌려주다 보면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은 텅 비게 될 것”이라고 떠들기까지 합니다. 남의 나라 문화재를 강제로 뺏거나 훔쳐다 놓고 그게 할 소리입니까. ●로제타스톤 맞습니다. 관람객들은 마땅히 우리의 단순한 역사적 가치 이외에 언제 어떻게 훔쳐서 이 나라에 왔고, 그 나라에서 돌려 달라는 운동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는 사실, 또 전 국민들의 소망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알 권리가 있습니다. 제가 이집트에서 만들어졌고 이집트 상형문자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지, 대영박물관에 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중요하지는 않잖아요. ●휘경원 의궤 뭐 사실 그렇습니다. 유명하면 포기하기 더 힘들겠죠. 만약 저희 의궤들이 프랑스인들이 보기에 로제타스톤이나 오벨리스크처럼 중요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다면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겠네요. ●네페르티티 흉상 프랑스나 영국 정부가 항상 말하죠. 우리가 문화재 보존에 대해 최고의 노하우를 갖고 있고, 돌려받을 국가를 믿기 힘들다고 말입니다. ●파르테논 마블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자 핑계일 뿐입니다. 반환운동이 시작된 후 그리스 정부는 아테네에 영국 박물관 분관을 지어 저희를 전시하자고 영국에 제안했고, 그 전시실은 실제로 대영박물관에 견줘 손색 없이 지어졌죠. 하지만 영국 정부는 아직까지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둘씩 돌려주는 선례를 만들다 보면, 아직 먹고사느라 조상의 문화에 관심이 적은 동남아시아 국가, 중남미 국가들이 나중에 떼로 달려들 것이 겁나기 때문이겠죠. ●휘경원 의궤 박 박사가 저희를 찾아냈을 때 저희는 폐지 더미 속에 묻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보관과 연구능력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한문을 읽고 조선의 문화를 이해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저희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실제로 145년 동안 프랑스 사람들은 저희의 0.1%조차도 파악하지 못했고, 분류조차 못했으니까요. 오늘 이 자리에 걸음해 주신 각국의 약탈 문화재 여러분. 우리 의궤의 반환 축하 역시 이른 감이 있습니다. 한국 역시 아직까지 18개국에 7만여점에 가까운 조상의 문화재가 외국을 떠돌고 있습니다. 문화재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소망이 실현되는 날. 다시 한번 진정한 축하의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약탈 그 역사와 진실(샤론 왁스먼·오성환/ 까치) 위대한 유산 74434(위대한유산 제작팀/ 지식의숲) 조선을 죽이다(혜문/ 동국대출판부) 오벨리스크(권염흠/ 스틸로그라프) 미학 오디세이 (진중권/ 휴머니스트) 클레오파트라의 바늘 (김경임/ 홍익출판사)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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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O&WHAT] 미켈란젤로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미켈란젤로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고교생 야가미 라이토는 어느 날 한 권의 노트를 집어든다. 라이토는 이 노트에 이름과 방법을 적으면 그 사람이 그대로의 운명을 맞게 되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사신 류크가 인간계로 떨어뜨린 ‘데스노트’였던 것이다. 다양한 규칙을 숙지한 라이토는 노트를 활용해 범죄자가 없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다. 라이토가 활동하기 시작한 뒤 전 세계의 범죄율은 70% 이상 줄고, 인터넷과 사회 구성원들은 그를 ‘키라’라 부르며 신(神)으로 추앙하기 시작한다. 2003년 일본의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되기 시작한 오바타 다케시와 오바 쓰구미의 만화 ‘데스노트’는 인간의 본성에 도전한 공전의 히트작이다.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된 이 작품의 독자들은 막강한 힘을 가진 데스노트를 한 번쯤 소지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마련이다. 악행을 한 사람이 응징을 당하도록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 토머스 앨바 에디슨(1847~1931), 로버트 스콧(1868~1912).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의 이번 주 주인공들은 능력과 업적 면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천재들이다. 타고난 재능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이들은 ‘라이벌’로 인해 마음껏 행복을 누리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본인의 노력이 또 다른 사람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지는 고통, 패배자라는 주변의 시선,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갈등과 콤플렉스. 이들에게 가상의 데스노트를 쥐어주면 어떤 내용을 적을까. 위대한 천재들을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한 라이벌들을 살펴봤다. “흉내쟁이에 촌뜨기 라파엘로” - 미켈란젤로 “라파엘로(1483~1520)가 미술에서 이룬 모든 것은 바로 나한테서 얻은 것이다.”(미켈란젤로의 회고문 중에서) ●주요 내용 정말 괘씸하기 짝이 없다. 라파엘로가 바티칸 교황 집무실 벽에 그린 ‘아테네 학당’에 날 그려 넣었단다. 그것도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같이 더럽게 못생긴 인물로 말이다. 겉만 번드르르하게 아테네 학당이라는 이름을 붙였지, 가죽장화나 옷이나 전부 지금 시대 복장인데 눈 가리고 아웅도 유분수지. 얼굴까지 똑같이 그려 놨으니 아예 대놓고 욕 먹이는 짓이 아닌가. 내가 얼마나 자기를 싫어하는 줄 뻔히 알고 있을 텐데 옆에서 내가 시스티나 천장화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이런 일을 벌이다니. 무엇보다 기분 나쁜 건 벽화의 주인공인 플라톤으로 내 필생의 라이벌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그려 놓았다는 거다. 우르비노(이탈리아의 시골) 출신의 촌뜨기가 처음 볼 때부터 기본이 안 됐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예술가라면 무릇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파엘로 저놈은 어릴 때부터 나랑 다빈치 작품 중에서 좋은 것들을 골라 베끼는 데만 혈안이 돼 있더니 이젠 그걸 조금씩 바꿔서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건 그냥 모방이자 습작 화가지. 후세 사람들이 저놈 그림이랑 내 그림을 같은 높이에 걸어 놓으면 어떡하나 심히 걱정된다. 라파엘로는 분명히 자기 고향 선배이자 후견인인 브라만테(1444~1514·성베드로 성당 설계자)와 짜고 날 파멸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시스티나 예배당 프로젝트만 해도 그렇다. 나보고는 20m나 되는 높이의 천장에 그림을 그려 넣으라고 하고, 라파엘로한테는 편하게 집무실 벽화를 맡기다니. 난 조각가이지 화가가 아닌데도 말이다. ●해설 괴팍하고 추남이었던 미켈란젤로는 잘생기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가진 라파엘로를 평생의 원수로 생각했다. 특히 라파엘로와 브라만테가 서로 짜고 자신을 고난에 빠뜨린다고 믿었다. 자기보다 8세 어렸던 라파엘로가 37세에 요절한 후에도 각종 기록에서 증오심을 나타냈다. “가증스런 교류전기 찾은 테슬라” - 에디슨 “니콜라 테슬라(1856~1943)가 만든 가증스러운 교류(交流)의 위험을 알려 주려면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1885년 에디슨이 직원들에게) ●주요 내용 큰일났다. 결국엔 교류가 이기고 마는 것인가. 세르비아 출신 과학자 한 명을 단지 똑똑하다는 소문만 듣고 고용했다가 내 평생의 성과가 날아가게 생겼구나. 난 전기를 싼값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해 주겠다는 테슬라의 말에 잠깐 마음이 흔들렸을 뿐이다. 테슬라가 내 발명인 직류(直流)와는 전혀 다른 교류를 발견한 걸 인정할 수 없어서 돈을 주지 않은 것인데, 그놈이 웨스팅하우스와 손을 잡았다. 난 한 방향으로 흐르는 직류가 무엇보다 안전하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은가. 예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니. JP 모건이 자신의 대저택에 내 설비를 깔았을 때만 해도 영광은 내 것이라 믿었는데 일개 직원 나부랭이가 이 모든 걸 망쳐 버렸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지난 수십 년간 벌어진 세 차례의 싸움에서 난 모두 졌다. 솔직히 잔머리를 좀 굴렸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지. 교류를 이용해 개와 고양이를 죽이는 공개실험도 해 봤고, 사형을 집행하는 전기의자도 만들었다. 제길. 도끼 살인마 케믈러가 즉사하지 않고 구워지는 바람에 언론의 뭇매를 맞았고, 내 업적의 집대성인 제너럴일렉트릭(GE)이 만국박람회장의 조명설비 입찰에서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에 패하기도 했지. 마지막 승부처로 삼았던 나이아가라폭포 조명 설비에서도 웨스팅하우스가 GE를 눌렀고, 모든 이들은 교류를 전기로 인식하게 되겠지. 남은 건 하나뿐이다. 머리는 좋지만 사회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테슬라가 더 이상 인구에 회자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뭐 큰 노력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날씨를 변화시키는 장비, 순간이동 장치 등이나 만들겠다고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으니. 1700만 달러나 되는 교류 로열티를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이미 테슬라를 사업적인 부분에서는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곧 잊혀지고 난 영원한 발명왕으로 남을테니까. ●해설 1915년 테슬라와 에디슨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됐지만, 테슬라는 이를 거부했고 시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테슬라는 무선통신, 유도전동기, 교류발전기, 변압기, 전동기 등을 개발했고 미국 전기전자학회는 테슬라에 대해 “그의 작업 결과를 없앤다면 자동차들이 멈출 것이며, 도시들이 깜깜해지고 공장들이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라고 칭송했다. “소문만 무성한 탕아 모차르트” - 살리에리 “당신도 알고 있죠. 모차르트(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를 내가 독살했다는 얘기.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임종 직전의 살리에리가 피아니스트인 이그나츠 모셰레스에게) ●주요 내용 내가 풋내기 모차르트를 죽였다고? 모차르트를 죽여서 내가 그 영광을 가로채기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미 나는 황제의 음악가이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는데, 자기 능력을 주체조차 못하는 애송이를 죽여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건가. 이게 다 모차르트가 천재라고 떠드는 소문이 과장돼 벌어진 일이란 말이다. 솔직히 모차르트가 훌륭한 음악가인 건 맞다. 나처럼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하나 밟아 가는 성장 과정을 순식간에 뛰어넘었으니까. 5세에 작곡을 하고 10세도 안 돼 연주회를 다녔다는 얘기 때문에 내가 직접 연주회장에 찾아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능력에 걸맞은 인품을 주지는 않았다. 작곡을 아무리 잘하면 뭘 하나. 궁정생활을 영위할 최소한의 자제심도 없는데. 그 낭비벽과 문란한 사생활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의 아름다운 음악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음악가로서 나 역시 그의 재능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 역시 하이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라토리오를 지휘했고, ‘악성’으로 불리는 베토벤이 나를 위해 세 곡의 소나타를 바칠 정도로 인정받은 사람이란 말이다. 천재와 노력파 같은 과장된 소문으로, 내 영광스러운 일생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 ●해설 영화 ‘아마데우스’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희극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당시 유럽 전역에 이 같은 소문이 퍼졌지만, 역사적으로 독살설은 근거 없는 소문이었고 모차르트는 그 스스로 신장병과 요독증을 앓고 있었다. 소문에 상처받은 살리에리는 죽는 날까지 이를 괴로워했다. “날 속이고 남극점 먼저 간 아문센” - 스콧 “영국인으로 최선을 다했으나 불운은 이기지 못했다.” (스콧이 자국민에게 보낸 편지) ●주요 내용 로알 아문센(1872~1928·노르웨이), 나쁜 거짓말쟁이 같으니라고. 북극을 탐험한다고 나를 속이더니 결국 상대를 안심시켜 놓고 남극점에 먼저 도착하기 위해 헛소문을 낸 것이었나. 북극 탐험과 관련된 자료를 넘겨주겠다는 내 호의를 거절하고, 전화도 안 받을 때 이미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어쩐지 로버트 피어리가 이미 북극점을 정복한 상태인데 왜 또 거길 가겠다고 한 건지 이상하긴 했다. 남극점을 정복하겠다는 내 기자회견과 신문기사를 보며 아문센은 얼마나 코웃음을 쳤을까. 이런 곳에서라도 대영제국을 이겨보겠다는 그 얄팍한 수를 읽지 못하고 신사답게 정정당당히 승부하려던 내가 멍청했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불과 35일이다. 난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그곳에 영국 국기를 꽂는 것을 평생 꿈꿔 왔는데, 그곳에는 노르웨이 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인류가 남극점을 정복하는 데 수천 년이 걸렸는데 그 최초의 영광은 고작 한 달 남짓에 영원히 북유럽의 바이킹에게 넘어가는구나.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내 실수였다. 말을 끌고 남극에 오다니. 사람의 동반자인 개한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내 발상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동료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와중에 나 역시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인류 최초’라는 이름이 결코 신사다운 행동으로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죽기 전에야 깨달았다는 것이 아쉽다. ●해설 군인이었던 스콧은 1904년 남극에서 660㎞ 지점까지 접근한 기록을 세우며 국가적 영웅이 됐다. 그러나 7년 뒤 첫 남극 도달의 영예를 아문센에게 빼앗기고 죽음을 맞았다. 현재 남극점에는 연인원 1000명 이상이 상주하는 ‘아문센·스콧 기지’가 자리잡고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서적] ▲서양미술의 걸작(양정무/네이버 오늘의 미술) ▲미술시간에 가르쳐주지 않는 예술가들의 사생활(엘리자베스 런데이·최재경/에버리치홀딩스) ▲빛의 제국(질 존스·이충환/양문) ▲모차르트 컨스피러시(스코트 마리아니·이정임/노블마인) ▲발트슈타인 소나타(이재규/21세기북스)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정재승/달) ▲아문센과 스콧(피에르 마르크·배정희/비룡소) ▲남극의 대결 아문센과 스콧(라이너 K 랑너·배진아/생각의 나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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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내년 큰 선거 아무래도 역할을…”

    박근혜 “내년 큰 선거 아무래도 역할을…”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내년에 중요한 선거가 있어 아무래도 활동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면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대통령 특사로 유럽을 방문 중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5일(현지시간) 마지막 방문지인 그리스 아테네의 디바니 팰리스 호텔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정치 일정상 본격적인 활동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하고 “날짜를 정해놓고 할 수는 없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될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원내대표 선거 등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당에서 한창 토론하고 고민도 많고 논란도 있는 것으로 안다. 돌아가서 할 얘기가 있으면 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박 전 대표는 자신의 지난 ‘행보’에 대한 세간의 비평에도 해명을 내놓았다. 박 전 대표는 먼저 모두발언을 통해 “이번 순방기간 양적 성장 못지않게 질적 성장을 해야 함을 재확인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예전에 산업화를 시작할 때 산업 기반이라는 인프라(SOC)를 깔았다. 이제 선진국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뢰·원칙 등 무형의 사회적 자본을 구축하는 것이며 그러지 못하면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느꼈다. 그것이 국가의 미래 패러다임이 돼야 한다.”면서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갈등들이 상식적으로 조정되지 않으면 나라가 제대로 발전할 수 없으며, 우선 정치권에서 원칙과 신뢰를 잘 쌓아야 조정과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는 “저를 가리켜 ‘아 답답하다. 왜 이렇게 고집이 센가’라고 하고 ‘원칙공주’라는 이야기도 듣고 하는데 저부터 원칙과 신뢰를 쌓아가야만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는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 “협정을 맺을 때는 호혜적으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이므로 FTA를 맺었다고 해서 우리에게 이득이다 손해다 할 일은 아닌 것 같다.”면서 “협정의 발효는 또 다른 시작이며, 우리에게 불리한 농업 같은 분야에서도 창의적으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위기가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척박한 모래 언덕의 나라였던 네덜란드도 조건만으로는 전혀 맞지 않았지만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힘을 쏟아서 농업 강국이 되었다.”면서 “우리도 정부가 뒷받침하고 창의적으로 노력해서 농업의 갈 길을 개쳑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아테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박근혜, 원내대표 경선 전날 어떤 얘기…

    대통령 특사로 유럽을 방문 중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5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 현지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질 예정이어서 현안에 대해 어떤 언급을 할지 주목된다. 마침 당내 역학구도의 향배를 가를 원내대표 경선 전날이어서 결과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 전 대표가 특정한 주제 없이 여러 현안을 놓고 기자간담회를 갖는 것은 2009년 7월 몽골 방문 이후 대략 2년 만이다. 특사 대표단으로 동행한 이정현 의원은 4일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표가 동행 취재 중인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기로 했다.”면서 “다만 정치적 현안에 대해 언급을 자제해 온 지금까지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을 걸로 본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5일이라는 시점이 공식적인 특사활동이 마무리되는 때여서 그렇게 정한 것일 뿐, 다른 고려는 없었다.”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간담회에서는 지난달 28일부터 진행 중인 특사 활동에 대한 언급이 주를 이루겠지만, 4·27 재·보선 이후 여권을 강타한 국정 쇄신책 등 현안에 대한 언급도 어떤 수준으로든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일 한나라당 연찬회에서는 4·27 재·보선 패배와 관련한 여권 주류의 ‘2선 퇴진론’, ‘박근혜 역할론’, 정부·청와대 쇄신 등을 두고 격론이 펼쳐졌었다. 나아가 박 전 대표는 대권 행보를 내다보게 할 큰 틀의 구상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박 전 대표는 이날 아테네에 있는 한국전 참전기념비 헌화를 시작으로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대통령과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 등을 차례로 예방하고 수교 50주년을 맞은 양국 간 우의 증진 방안을 논의했다. 아테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씨줄날줄] 인간방패/박대출 논설위원

    1945년 4월. 오키나와에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됐다. 일본은 소년병 1만명을 최전방에 세웠다. 그들은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 갔다. 미군은 인간방패(Human Shield)라고 불렀다. 인간방패란 말이 처음 등장한 순간이었다. 이후 전쟁사에서 공식 용어가 됐다. 하지만 전례는 꽤 있다. 2차 대전 때 독일군은 소련 민간인 포로들을 앞줄에 세웠다. 스탈린은 단호했다. “적을 돕는 자는 적이다. 그들을 공격하지 않는 부대도 적이다.” 포로들 역시 인간방패였다. 칭기즈칸은 포로들을 화살받이로 삼았다. 인간방패는 오래된 전술이다. 미군이 영어 표현으로 쓴 뒤부터 공식 용어가 됐을 뿐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강제성을 근간으로 한다. 비인도적이고 반인륜적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발적인 인간방패들이다. 우리 학도병처럼. 한국전쟁에 참전한 학도병은 27만 5200명에 이른다. 군사편찬연구소의 한국전쟁 통계집에 나온다. 학도병은 총알받이를 자처했다. 고대 스파르타와 아테네 전쟁 때도 전례가 있다. 아테네 부녀자들은 손을 묶고 성을 둘러쌌다. 화살받이였다.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다. 자기 희생이다. 상반된 사례는 진행형이다. 보스니아 내전 때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포로를 인간방패로 내세웠다. 탈레반 반군은 파키스탄 주민을 인간방패로 삼았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장갑차에 묶었다. 강제적 사례들이다. 반면 반전 운동가들도 애용한다. 인간방패프로그램(HSP), 이라크 평화팀(IPT) 등은 국제적인 단체다. 그들은 이라크전에서 인간방패로 활동했다. 자발적 사례들이다. “오사마 빈라덴이 부인을 인간방패로 삼았다.” 미국은 이 발표를 하루 만에 뒤집었다. 빈라덴은 비무장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백악관 측은 실수라고 주장한다. 그를 악으로만 몰려다가 곤혹스럽게 됐다. 이 때문에 의혹이 꼬리를 문다. 처음부터 사살을 의도했다는 의문을 낳았다. 국제법적 논란으로 이어졌다. 부인이 빈라덴 앞에 선 이유도 확실치 않게 됐다. 강제적인지, 자발적인지. 지난 1월 아덴만 여명작전 때가 연상된다. 특수전 요원들이 피랍 선원 21명을 구출했다. 합참은 모두 무사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석해균 선장은 위독했다. 생과 사를 넘나들다가 기적적으로 회생했지만. 무혈 작전을 부각시키려다가 힘이 너무 들어갔다. 과잉 홍보는 효과를 반감케 한다. 괜스레 의혹을 낳을 수도 있다. 솔직하면 탈이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고금의 진리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피플 인 스포츠] 7년 만에 여자핸드볼대표 복귀 장소희

    [피플 인 스포츠] 7년 만에 여자핸드볼대표 복귀 장소희

    잊고 있던 언니가 돌아왔다. 핸드볼로 한 가닥 했던 언니들은 많지만 이 언니도 어마어마했다. 1996년 핸드볼큰잔치 신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이후 태극마크를 달고 10여년간 부동의 레프트윙으로 군림했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2004 아테네올림픽 은메달 등 ‘우생순’의 굵직한 순간에 늘 함께했다. 큰잔치에서 대구시청을 우승시킨 2006년, 이 언니는 “공부를 하고 싶다.”며 홀연히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 3월,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7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장소희(33·일본 소니)다. ●최고참 부담에 더 열심히 할 것 “태릉 공기는 역시 사람을 쪼이네요.” 태릉선수촌엔 사람을 긴장케 하는 묘한 공기가 있단다. 어느덧 33세. 울고 웃었던 아테네올림픽 멤버도 이제는 우선희(삼척시청), 문경하(경남공사), 최임정(대구시청), 김차연(대한핸드볼협회)만 남았다. 새파랗게 어린 후배들은 “언니 이름은 들어봤어요.”라며 쭈뼛쭈뼛 말을 건다. 격세지감. 아테네올림픽 베스트 7(레프트윙)에 뽑혔던 장소희의 기량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다. 올 3월 장소희는 팀을 창단 26년 만의 첫 일본리그 챔피언에 올려놨다. 한국에서 러브콜이 온 것도 비슷한 시점. “강재원 감독님께 전화가 왔더라고요. 제 포지션 선수들이 어려서 경험이 별로 없으니까 도와 달라고요. 일본 지진 때문에 휴가를 받았는데 태릉으로 쏙 들어왔네요.” 과거에는 멋모르고 열심히 뛰면 되는 후배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최고참이다. 부담감과 미안함에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애들이 체격도 좋아지고 실력도 참 좋아요. 제가 가뜩이나 작은데(162㎝) 더 작아지더라고요. 미래가 밝은 후배들 틈에 괜히 껴서 방해하나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돌아온 이유는 ‘향수’ 때문이다. “옛날에 뛰었던 선수들하고 다시 ‘으쌰으쌰’ 하면서 뛰어보고 싶었어요. 한국이 그리웠고요.” 지금이야 웃으며 회상하지만 2006년 일본 도쿄여자체육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정말 힘들었단다. 28세 대학 새내기에게 대우란 건 전혀 없었다. “한국에 전지훈련을 와서 옛 동료들과 평가전을 했어요. 전 1학년이라 경기에 못 뛰고 대신 체력 훈련으로 뺑뺑이를 도는데 참 민망하고 서럽더라고요.” 하지만 그게 ‘인생 경험’이 됐단다.   ●올 일본인 남자친구와 결혼 예정  지난 광저우아시안게임 때 ‘월드클래스’ 한국이 일본에 진 건 장소희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정말 충격받았어요. 당연히 우리가 우승한다고, 게임도 안 된다고 했는데 일본에 졌잖아요.” 그래서 오는 24일 2011 SK 한·일핸드볼 슈퍼매치(광명체육관)에 나서는 각오가 더 남다르다. 친선 경기지만 10월 런던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앞둔 기선 제압의 의미가 있다. 게다가 일본은 매년 9월 시작하던 리그를 11월로 늦출 만큼 올림픽 티켓에 ‘올인’하고 있다. 장소희는 단호하게 “이것들이 우리를 만만하게 보는 거 같아요. 이번에 확실히 눌러줘야죠.”라고 했다.  대표팀 강재원 감독은 “옛날의 일본이 아니다. 탄탄한 조직력과 미들속공이 위협적이다. 양쪽 날개 장소희-우선희가 득점을 해주면 의외로 쉽게 풀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감독의 말을 전하자 “그럼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7년이에요, 7년! 옛날처럼은 못 하더라도 제 기량 내에서 열심히 할 거예요.”라며 웃었다. 그래도 태극마크 욕심은 숨기지 못했다. “올림픽 예선(10월)에도, 내년 올림픽 때도 불러주시면 뛰고 싶죠. 이번 한·일전을 잘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그럼 선생님들도 절 믿겠죠?”  아, 놀랍게도(?) 장소희는 아직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을 못 봤단다.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니다. “안 보고 싶어요. 너무 마음 아프잖아요. 다음에 금메달 따서 제가 주인공인 영화를 찍을래요. 그 영화는 열심히 볼게요.” 야무지다.  지난달 25일부터 태릉밥을 먹었던 장소희는 한·일전을 마친 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다. 2년간 교제한 일본인 남자 친구와 올해 결혼할 예정이다. 어느덧 한국말이 어눌해질 만큼 일본 여자가 된 장소희지만 ‘우생순 2’ 주인공을 향한 투지는 뜨거웠다. 글·사진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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