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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中·日 크루즈관광 추진

    한·일 양국은 23∼24일 이틀간 제주도에서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일본 총리간 회담 및 2차 한·일 각료간담회를 열어 월드컵이 열리는 2002년을 ‘한·일 국민교류의 해’로 지정키로 합의했다. 23일 회담 후 김 총리와 오부치 총리는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한·일 국민교류의 해’지정에 따른 청소년,학술,문화 분야 등의 교류 확대를 위해 2002년 비자 발급을 대폭 간소화하고 김포∼하네다(羽田),김포∼나리타(成田)공항간 셔틀기 운항,한·중·일 3국간 크루즈관광사업 등을 추진키로 했다고발표했다. 양국은 또 오는 11월29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세안 및 한·중·일 3국 정상 초청 회담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 각료간담회에서 한국은 재일동포의 일본 지방선거 참정권이 조속히 실현되도록 일본측에 촉구했으며 일본측은 참정권 부여 방안이 연립정권의 정책 합의사항으로 채택돼 있고 조만간 의원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한국은 일본 기업의 대한 투자유치를 위해 일본 기업 전용공단을 조성하겠다는의사를일본측에 전달했다. 동북아 안정과 관련,양국은 대북 포괄적 접근방식을 기조로 한·미·일 3국간 공조체제를 강화하고 동북아지역 국가간 안보협력 대화 실현을 위해 협력키로 의견을 모았다. 이외에 ▲아키히토(明仁)일황의 조속한 방한 실현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3차 개방 ▲일본의 대북 수교와 경제제재 해제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양국 외무장관은 간담회를 마치고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 유학생,산업연수생,연예인,체육인들의 소득세 면세한도를 대폭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신(新)한·일 이중과세방지협약’ 발효각서를 교환했다.새 이중과세방지협약은 30일 후 공식 발효된다.한편 김 총리와 오부치 총리는 24일 조찬 회동을 가진뒤 제주도 성읍 민속촌과 말 방목장을 함께 방문했다. 오일만기자 oilman@
  • [대한시론] 日국왕 訪韓前 풀어야 할 일

    지난 9월 2일 김종필 총리는 한·일 총리회담에서 아키히토 일본국왕의 방한을 요청하면서,“2002년 월드컵 이전에 방한이 이뤄지면 한·일관계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내년이나 2001년의 방한을 거듭 요청했다.일본국왕의 방한을 요청한 한국정부의 자세가 국민의 미묘한 대일 정서까지 고려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먼 시각에서 볼 때 일말의 전진적인 점을 엿볼 수있다. 그러나 김 총리가 지난번 방일에 이어 이번에도 공식석상에서 일본어 실력을 과시한 것이라든가 국민의 대일 정서에 앞질러 ‘일본국왕’의 방한을 요청하는 정부의 자세는 아무래도 유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개인적으로는일본이 과거 저지른 문제의 해결 없이 방한하는 것은 반대한다. 한국정부의 거듭된 일본국왕 방한요청에 대한 오부치 총리의 답변은 ‘환경 조성에 양쪽이 노력해 나가자’는 것이었다.‘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뜻’을밝힌 것이지만,뒤집어보면 한국이 분위기를 잘 조성해 더 간절히 요청하면방한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도 볼 수 있다.대답의 이면에는 일본국왕의방한이 그동안 잠재우고 있던 한국인의 대일 정서를 자극해 예측할 수 없는결과를 돌출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점도 숨겨져 있다고 본다. 오부치 총리의 대답은 한국민의 내면에 흐르는 형언하기 어려운 대일 정서를 한국정부보다 더욱 면밀하게 간파한 것이지만,환경 조성은 오히려 일본측이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다.무엇이 일본정부로 하여금 ‘일왕방한’ 요청에 ‘환경 조성’을 이유로 머뭇거리는 태도를 취하게 하는가.또 그 소리냐고 역정을 낼지 모르지만,한마디로 그것은 일본이 청산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과거사의 문제이다.한·일관계에서 아킬레스건처럼 중요한 대목마다 소리없이 나타나 양국 관계의 진전을 괴롭히고 있는 망령같은 존재가과거사이다.일본은 잊어버리기를 원하지만,한국인은 해방된 지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 아직 그 과거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일본국왕’의 방한이 바로 그런 과거사의 고리를 끊는 ‘환경 조성’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면 한국민은 한국정부만큼 그의 방한을 환영할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언제 이뤄질는지 알 수 없는 방한에 앞서,한·일간의 ‘불행했던’ 과거사의 앙금을 걷어내려는 일본국왕의 노력과 결단이 기대된다. 불행했던 과거사 청산문제를 다시 건드리는 것은,그같은 잘못을 더이상 반복하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지를 촉구하는 것에 다름아니다.한·일간 과거사청산문제는 과거의 문제만이 아니고 현재의 문제이며,한·일간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북한과 일본,중국과 일본의 문제이기도 한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다. 세계는 지금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지역간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동북아시아지역만 분단과 냉전체제,일본 군국주의의 미청산으로 지난 역사의 질곡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따라서 한·일간 과거 청산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동아시아의 바람직한 관계,나아가 세계사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일본국왕은 그의 증조부 이래로 왜곡된 한·일관계의 한가운데 자리했던 만큼 방한에 앞서 과거 군국주의 침략행위에 대한 명백하고 솔직한 사죄가 있어야 한다.이것은 한국에 대한 표명일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를 향한 것이며,일본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더 높이는 계기도 된다. 일본이 청산해야 할 과거사는 이제 일본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동학혁명 이래 부당한 군대 파견으로 동학군과 의병·독립운동자 수십만을 사살하였고,불법적으로 행한 한국 강점에 수많은 문화재의 강탈과 수탈통치,일제말기 100만이 넘는 노동자들의 강제연행과 사할린 동포,강제연행자들이 저축해놓은 저축금의 미반환 문제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지금도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377차까지 행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서 보여주듯이,일본정부가 관여를 부정하고 있는 약 10만∼20만의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과와 배상문제는 유엔 소위에서까지 결의된 것이지만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한국인들은 제사 때마다 일제에 의해 무참히돌아간 조상의 죽음에 동참하며 일본에 대한 다짐을 새롭게 한다. 한국인의 이런 고통의 한가운데 아직도 ‘일본국왕’이 자리하고 있다.과거사에 대한 앙금을 걷어내려는 가시적인 조치가 취해진다면,일본국왕은 한국의 국립묘지에서 일본 국민들을 대표하여 항일 독립운동가들에게 향불을 피우는 것도 거리끼지 않을 것이다.일본국왕의 방한이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그때 한국민도 마음으로부터 일본국왕을 환영할 것이다. [李萬烈 숙명여대교수·한국사]
  • 金총리 訪日 이모저모

    [도쿄 이도운특파원]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는 3일 오전 한국 총리로서는처음으로 도쿄시내 황궁인 고쿄(皇居)에서 아키히토(明仁)일황을 예방했다. 김총리는 부인 박영옥(朴榮玉)여사와 오전 11시30분부터 30분간 황궁 다케노마(竹間)에서 아키히토 일황 내외와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인 공동개최등 양국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어 김총리 내외와 아키히토 일황내외는 호메이덴(豊明殿)으로 자리를 옮겨 양측 관계자 23명씩이 참석한 가운데 오찬을 함께했다.일본측에서는 마사코 왕세자비도 참석했다.일본측 관계자는 “호메이덴은 공식만찬에만 사용하고 있지만 김총리 내외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특별히 오찬장으로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김총리는 저녁에는 숙소인 영빈관에서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하타 쓰토무(羽田務)·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전총리 내외와 미키 다케오(三木武夫)전총리의 부인을 초청, 만찬을 함께했다.김총리는 “앞으로도 재일한국인 지방참정권 인정과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인공동개최 등에 정계의 원로로서 적극적인 협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 訪日 金총리 공식 초청“日皇 2001년께 방한 가능”

    [도쿄 이도운특파원] 일본을 공식 방문중인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는 3일도쿄 시내 황궁으로 아키히토(明仁)일황을 예방,“가까운 시일안에 한국을방문해달라”고 정부의 공식 초청의사를 전했다. 이에 대해 아키히토 일황은 “가까운 시일에 한국을 방문하기를 희망한다”고 방한 의사를 밝혔다고 외교당국자가 전했다.김총리는 이에 앞서 도쿄주재한국 특파원들과 가진 조찬간담회에서 일황방한 시기에 대해 “2001년쯤이면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金총리 오늘 訪日 출국…내일 오부치총리와 회담

    김종필(金鍾泌) 국무총리 내외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의 초청으로 4박5일간 일본을 공식 방문하기 위해 1일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한다. 김총리는 2일 오부치 총리와 회담을 갖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한·일간 경제협력 증진방안 등 양국 공동관심사를 논의한다.김총리는 3일에는 아키히토(明仁) 일황을 예방,양국간 우호협력 증진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방한을 요청할 예정이다. 이도운기자 dawn@
  • [義烈 독립투쟁] 金祉燮 의사(3)

    ‘동지 여러분 앞.삼가 새해를 축하합니다.제(弟)는 288시간만에 세상 구경을 하게 되었습니다.참말 지저(地底)의 생활이었습니다.그 속에서 생각할 때에는 이 세상 비애,적막,번민 모든 고통이 한꺼번에 이 사람의 흉중으로 총집되어 경도광랑(驚濤狂浪)의 소리만 들릴 적에 할 일없이 어서 나와 어복(魚腹)으로 들어가라고 유인하고 최촉하는 공포를 주던 것이 마치 왕생(往生)의 일인 것 같습니다.…’ 이 내용은 1924년 1월 5일 도쿄 소재 일왕(日王)의 궁성 앞 니주바시(二重橋)에 폭탄을 투척,조선민족의 독립의지를 만방에 떨친 김지섭(金祉燮)의사가 일본에 도착한 후 상하이(上海)의 동지들에게 보낸 편지의 모두 부분이다.무려 12일간을 석탄 운반 화물선의 창고에 몸을 숨긴채 일본에 도착한 김의사는 당시의 고통스런 상황을 마치 죽었다 살아 나온 것 같았다고 적고 있다. 김 의사는 1884년 7월 21일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였다.20대 청년시절 한때상주보통학교 교원과 금산지방법원 서기 겸 통역으로 재직하기도 하였으나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귀향하여 뜻을 같이하는 동지를 모아 국권회복의길을 강구하였다.이후 김 의사는 만주·연해주·상하이 등을 다니며 독립운동에 전념하였으며 1922년 4월에는 고려공산당에,그 해 여름에는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 ‘이중교 의거’에 앞서 김 의사는 1923년 3월 같은 단원인 김시현(金始顯)·유석현(劉錫鉉) 등과 함께 국내에 있는 일제의 침략기관을 파괴하기로 하고 대량의 폭탄을 중국으로부터 국내로 반입하려 했다.그러나 이 계획은 동지로 위장침투한 경기도 경찰부 소속 조선인 경찰 황옥(黃鈺)의 밀고로 실패하고 말았다.김 의사는 다행히 사전에 피하였으나 김시현·유석현 등은 일경(日警)에 체포돼 옥고를 겪었다. 그 해 12월 김 의사는 거사 자금을 마련키 위해 조선인 총독부 판사 백윤화(白允和)에게 5만원을 요구하였다.그러나 백은 요구를 들어줄 듯하다가 결국에는 배신,동지 윤병구(尹炳球)만 체포되고 말았다.백방으로 거사자금 마련을 하던 중 1924년 초 도쿄에서 일본 총리를 비롯하여 조선총독 등이 대거참석하는 ‘제국의회(帝國議會)’가개최된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김 의사는 일제 침략주의자들을 처단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판단,동지 최윤동(崔允東)에게서 입수한 폭탄 3개와 여비 100원을 준비하여 상하이 포동(浦東)부두에서 도쿄로 향했다.당시 김 의사는 일본인 소유 석탄운반선 천성산환(天城山丸)의 창고에 몸을 의탁하였는데 이 과정에는 일본인 공산주의자 히데시마 히데지(秀島廣次)와 선원 고바야시 간이치(小林幹一)·구로시마 리게이(黑島里經)의 도움이 있었다. 1923년 12월 31일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縣)에 도착하여 나카무라 겐타로(中村彦太郞)라는 일본 이름으로 여관에 투숙한 김 의사는 여기서 3일을 보낸후 모포·외투·시계 등을 전당포에 맡겨 여비를 마련한 다음 도쿄로 향했다.기차 안에서 제국의회가 휴회됐다는 소식을 접한 김 의사는 거사계획을 변경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일왕(日王)의 궁성을 폭파키로 결정하였다. 1월 5일 도쿄에 도착한 김 의사는 우선 궁성의 규모·구조를 사전답사한 후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오후 7시경 일본인 관광객과 뒤섞여 이중교 앞으로 접근하자 감시 경찰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더 이상 궁성 쪽으로 접근하지 말 것을 종용하자 김 의사는 일경을 향해 폭탄 한 발을 던지고 재빨리 이중교를 건너 궁성 정문쪽으로 향하였다.이에 궁성 보초병 2명이 달려들며 김 의사에게 총을 겨누자 김 의사는 나머지 폭탄 2발을 일경들이 달려드는 궁성쪽을 향해 연속적으로 던졌다.그러나 김 의사가 던진 폭탄 3발은 모두가 불발이었다.김 의사가 타고온 배는 습기가 많은 화물선이어서 도쿄로 오는 동안폭탄의 화약이 모두 젖어버린 탓이었다.김 의사의 의거로 일본전역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자신들이 ‘신(神)’으로 받드는 일왕의 궁성에 조선인이 폭탄을 들고 뛰어들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내무차관의 견책에이어 경시총감·경무부장·궁성 경비책임 경찰서장 등 치안책임자가 줄줄이파면되었다. 현장에서 체포돼 히비야(日比谷)경찰서에 구금돼 있던 김 의사는 1924년 9월 9일 열린 공판에서 직업을 묻는 판사에게 “조선 독립당원과 혁명사원이다”라고 당당히 말하였다.또 10월 11일 공판에서는 장문의 ‘진술서’를 통해 일제의 침략정책을 통박한 다음 “이번에 내가 취한 행동은 침략정치에도취된 왜국(倭國)관민을 각성시키고 반성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라고 밝혔다. 재판정에서 김 의사는 자신에게 사형이 아니면 무죄를 줄 것을 주장하였으나 일제는 무기징역을 언도하였다.1927년 20년으로 감형된 김 의사는 옥중에서도 의거 당시의 의기를 굽히지 않았으나 고문 후유증이 악화돼 이듬해 2월 20일 뇌일혈로 지바(千葉)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그 때 김 의사의 나이는 44세였다.채영국 독립기념관 연구원*金祉燮 의사 후손 근황 김지섭 의사의 직계 유족으로는 며느리 최수희(崔秀禧·75·대구 거주) 여사와 손자 3형제가 있다.김 의사의 외아들 재휴(在烋)씨는 생전에 회사원으로 근무하다가 지난 94년 78세로 노환으로 작고했다. 김 의사의 손자 3형제는 모두 각자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장손 두현(斗鉉·47)씨는 경북고와 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한 수재로 현재 전남 여수에거주하고 있는데 독일계 외국인회사인 한국바스프(주)생산부장으로 재직중이다.슬하에 1남1녀. 둘째 손자 광현(洸賢·44)씨는 대학졸업 후 롯데건설에 근무중이며 경기도부천에 거주하고 있다.셋째 손자 기현(己鉉·39)씨는 모친 최 여사를 모시고 대구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장손 두현씨는 “어릴 때부터 아버님으로부터 할아버지께서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자랐다”며 “할아버님의 애국정신을 본받아 열심히 살고 있다”면서 “현재 선산에 안장돼 있는 할아버지를 국립묘지로 이장하고싶다”고 말했다. 김 의사의 묘소는 경북 예천군 호명면 직산리 대지동에 자리잡고 있다.김의사를 기리는 기념물로는 경북 안동 영호루에 있는 기념비와 독립기념관 경내 시비(詩碑)가 있다.매년 2월 20일 김 의사 순국일에 추모행사가 거행되고 있으나 별다른 기념사업회는 없는 상태.1962년 김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이 추서됐다.정운현기자 jwh59@*日 궁성 어떤 곳인가 일본인들은 그들의 왕이 거주하는 궁성을 ‘황거(皇居)’라고 부른다.수도도쿄(東京)시내 치요다구(千代田區)에 위치한 일본의 왕궁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정권을 잡고 막번체제(幕藩體制·1603∼1867)를 이끌 시기에는 에도성(江戶城)으로,제122대 왕인 메이지(明治·1868∼1912)가 ‘황거’를 교토(京都)에서 옮겨온 이후에는 도쿄성(東京城)으로 불렸다.막번시기에는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인 쇼군(將軍)이 궁성의 주인이었으며 메이지 이후부터는 왕의 거주지가 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물리치고 권력을 잡은 이에야스는 자신의위엄을 살리기 위해 히데요시가 세운 오사카성(大阪城)보다 훨씬 더 큰 궁성을 만들 것을 명령하였다.따라서 이 궁성은 그의 손자인 3대 쇼군 이에미쓰(家光)시대에 와서야 완성되었다. 이같이 오랜 기간 대규모로 축조된 궁성의외부에는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해자(垓字·궁성 밖으로 둘러서 판 연못)가 이중으로 설치돼 있다.해자는 간다천(神田川)에서 북서방향으로 우시고미·이치가야·요쓰야·아카사카 등을 띠를 두르듯 감싸고 있다.그리고 궁성에는 아카마쓰 성문(파수꾼이 망을 보는 바깥쪽 성문) 등 36개의 성문이설치돼 있다.현재는 안쪽 해자로 둘러 싸인 약 30만평의 땅에 궁성이 조성돼 있고,현 일왕 아키히토(明仁)가 이 곳에 살고 있다. 일본의 이같은 왕궁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한국을 침략하면서 부터는 한국 의·열사들이 폭파대상으로 삼은 주요 목표물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그곳에 거주하는 일왕 역시 처단대상이었다. 김지섭(金祉燮) 의사의 ‘이중교의거’ 이외에도 1932년 1월 8일에는 이봉창(李奉昌) 의사가 왕궁의 사쿠라다문(櫻田門) 앞에서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김 의사가 폭탄을 던진 이중교는 궁성 정문 앞에 있는 다리.이중으로구성돼 있다고 해서 이중교(二重橋)라고 부른다.길이는 약 29m,폭은 약 7m다. 채영국 연구원
  • “2002년 월드컵대회 앞서 아키히토 日皇 방한 기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8일 오전 청와대에서 일본의 신(新) 미·일방위협력지침 특별위원장인 야마사키 다쿠(山崎 拓) 자민당의원의 예방을 받고아키히토(明仁)일왕의 방한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협력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김 대통령은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에 앞서 아키히토 일왕이 방한하는것을 기대한다”면서 “그로 인해 양국 관계가 결정적으로 좋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또 KEDO에 대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 것도,KEDO도 국제적인 약속이다.이를 어긴다면 북한에 대해 핵개발 구실을 주게 될 것”이라면서 “KEDO의 합의 유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양승현기자 yangbak@
  • 金총리 새달1일 日 방문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 내외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의 초청으로 다음달 1일부터 닷새간 일본을 공식방문한다고 총리실이 5일 발표했다. 김총리는 일본방문중 아키히토(明仁) 일황을 예방,한국 방문을 요청하고 양국우호협력 증진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김총리는 또 오부치 총리와 회담을 갖고 북한 미사일 발사 움직임에 대한대응 등 대북 정책 공조 강화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양국 총리는 아울러 투자협정 체결을 비롯,지난해 10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일본방문 때 채택한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후속조치를 협의하고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인 진행 방안,청소년 교류를 포함한 인적 교류와 문화협력 증진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이도운기자
  • 오자와 日 자유당 당수 어제 金九선생 묘 참배

    방한중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자유당 당수가 일황의 ‘조기 방한’을촉구해 눈길을 끌었다. 오자와 당수는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 천황의 방한은 조기에 실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제,“이를 위해 일본측은 한국 사람의 마음을 열수 있는 성의를 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오자와의 18일 백범(白凡) 김구(金九)선생의 묘소 방문과 남산 백범 동상 헌화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된다.일본 내 보수·우익을 대표하는 그로서 상당한 용기를 갖고 사전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는 시각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지난해 일본을 방문,2001년 아키히토(明仁) 일황의 방한을 제의해놓은 상태다.과거사를 둘러싼 앙금을 깨끗히 청산,‘21세기동반자’관계를 구축하자는 상징적 의미다. 하지만 한국민이 일황 방한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볼 수는 없다.국민들의 감정을 ‘풀어줄’ 계기가 절실하다는 판단이다.이 때문에 오자와 당수는 최근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일본인 자신이 의식을 전환시켜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며 ‘솔선수범론’을 촉구했다. 김대통령의 방일로 마련된 우호적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일황 방한으로 매듭지으려는 ‘정치인’ 오자와의 계산된 행보가 어떤 파급을 몰고올지 주목되는 이유다. 오일만기자
  • 오부치총리 訪韓 이모저모

    오부치총리는 20일과 21일 고려대 강연과 해인사 방문을 통해 역대 일본총리 방한과의 차별화를 시도,주목을 끌었다.일본으로서는 다소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민족사학’과 ‘호국사찰’에 대한 그의 과감한 접근은 아키히토(明仁)일황의 방한에 앞서 ‘정지작업’ 차원이 아닌가 풀이된다. 오부치총리는 21일 오후 2박3일의 방한일정을 마치고 서울공항에서 간단한환송행사후 도쿄로 떠났다. ▒해인사 방문 오부치총리는 21일 오전 10시30분 경남 합천 해인사에 도착,일주문을 거쳐 경내 대적광전을 참배한 뒤 팔만대장경판고를 돌아봤다.오부치총리는 청화당(淸和堂)에서 ‘구명불견암(求明不見暗)’이란 기념휘호를써 해인사에 전달했다.송월스님은 답례로 ‘일주무영수(一株無影樹)’로 시작되는 서산대사의 ‘오도송(悟道頌)’을 적어 건넸다.오부치총리는 오후 1시 해인사를 떠났다. ▒고려대 강연 이에 앞서 20일 오후 열린 오부치총리의 고려대 강연은 학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큰 불상사 없이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오부치총리는 강연 20분 전인 오후 2시10분 경호당국의 삼엄한 보호 아래 검은색 리무진을 타고 고려대 정문을 통과했다.고대생 150여명이 ‘과거사 청산’과 ‘어업협정 즉각 파기’를 주장하며 교문 진입 저지와 대강당 시위를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정문 앞에서 1시간 가량 연좌시위를 벌였다.오부치총리는 “안녕하십니까.소개받은 오부치입니다”라고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를 해 600여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았다.오부치총리는 고려대와 연대,와세다와 게이오대 등 네 학교간의 교류시합을 제안하기도 했다.오부치총리는 강연후 金炳琯이사장과 金貞培총장으로부터 고려청자 1점과 여초 김응현선생의 ‘천하위공(天下爲公)’이란 대형서품을 선물받았다.
  • 오부치의 이색 訪韓일정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한국에 보다 가까이 다가선다.오는 19∼21일 사흘 동안 방한하는 오부치 총리는 역대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대학 강연과 고찰(古刹)방문 등 의미 있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이는 지난해10월 金大中대통령의 일본 방문때‘21세기 동반자관계’를 맺은 데 대한 호응 차원으로 볼 수 있다.또 아키히토(明仁)일황의 방한을 염두에 두고 양국간 우호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로도 해석되고 있다. 오부치 총리는 오는 20일 오전 청와대 정상회담을 마친 뒤 오후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21세기를 지향하는 새로운 한·일관계’란 주제로 교수·학생 700여명을 상대로 강연할 예정이다.‘민족사학(私學)’으로 자부하고 있는고려대에서의 일본 총리 강연은 양국관계 전환의‘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있다.오부치 총리가 와세다(早稻田)대학 출신이고 고려대가 와세다대와 자매결연교란 점도 그의 고대 강연 성사의 배경이 됐다.오부치 총리는 또 방한마지막날인 21일 해인사를 방문한다.“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는 해인사에서 특히 팔만대장경을 보고 싶다”는 것이 방문 이유.오부치 총리의 친밀한 몸짓이 과연 우리 국민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관심거리다.
  • 北美수교-核 일괄타결 추진

    ┑도쿄 黃性淇 특파원┑金大中대통령은 대북(對北) 일괄타결구상과 관련,“북한에 미국과의 국교정상화,경제협력,안전보장을 주고 핵·미사일 개발중지와 무력도발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얻겠다”고 밝혔다. 金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앞두고 10일 오시마 히로히코(大島宏彦) 도쿄(東京)신문 회장과 가진 회견에서 “북한에 많은 문제가 있어 하나씩 다루는 데 시간이 걸리고 효율이 떨어지며 불이익도 있다”면서 “줄 것은 주고 얻을것은 얻는 일괄타결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金대통령은 “그렇게 되면 세계 유일의 한반도 냉전구조가 종결돼 한국뿐아니라 일본 미국 등 주변국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면서 “일괄타결구상은 미국도 납득하고 있고 중국의 협력을 위해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회복에 대해선 “올해 최저 2%에서 4%정도의 경제성장이 예상되고 있다”면서 “국민과 노력하면 올해부터 회복의 방향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밝혔다. 金대통령은 내각책임제 개헌과 관련,“金鍾泌총리,朴泰俊 자민련 총재와 내가 협의해 결정하도록돼있다”면서 “현재 협의가 진행중으로 머지않아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키히토(明仁)일왕 방한문제와 관련,“큰 장애는 없지만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이후가 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밝혀 조기방한을 거듭 역설했다. 金대통령은 이밖에 한·일자유무역지대 설립과 일본 정부의 아시아통화기금(AMF)구상에 대해서는 “단계적으로 처리할 문제도 있어 정부간 협의를 하고 있다”면서 “일본과의 파트너십을 경제분야에서도 성공시키고 싶다”고 덧붙였다.marry01@
  • 오부치 日총리 4월 來韓

    │도쿄 黃性淇특파원│한국과 일본 정부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4월 말 한국을 방한하는 데 합의했다고 도쿄(東京)신문이 서울의 외교소식통을 인용,1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오부치 총리의 방한에서는 지난해 金大中대통령의 방일 때 합의한 한·일 공동선언과 행동계획의 후속조치나 대(對) 북한정책 조정이 초점이 될 것”이라면서 “정상회담에서는 경제협력에 대한 검증과 평가,아키히토(明仁) 일왕의 방한문제가 재론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marry01@
  • 장쩌민,日皇에 과거 사죄 재촉구/訪日 마치고 귀국

    【도쿄 黃性淇 특파원】 중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일본을 공식 방문한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30일 오전 5박6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방일기간중 과거사 문제로 일본측과 신경전을 벌인 장주석은 이날 귀국하면서 다시 아키히토(明仁) 천황에게 전문을 보내 또 한번 일본에 과거 침략행위에 대한 반성을 촉구했다. 장 주석은 전문에서 과거사 문제를 다시 거론하고 중국과 일본은 “평화와 21세기를 위한 동반자관계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것은 물론 부정적인 경험에 대해서도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공동 인식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장 주석은 지난 25일 일본에 도착한 이후 가는 곳마다 과거사 문제의 중요성을 역설해 일본의 미온적인 사죄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 향후 양국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그러나 양국은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20주년을 맞아 이뤄진 정상 회담에서 ‘중일 공동선언’을 발표,72년 국교정상화의 공동성명과 78년 평화우호조약에 이은 ‘제3의 문서’를 남기는 결실을 얻어냈다.특히 양국은 대외적으로도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국제사회에서 핵무기 비확산과 유엔안보리 개혁 등에도 공동 대응키로 약속했다.
  • 장쩌민의 인민복/李慶衡 논설위원(外言內言)

    일본을 방문중인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6일 아키히토(明仁) 일황(日皇) 주최 궁중 만찬에서 ‘인민복’차림으로 참석해 일본측을 긴장케 했다.일본측은 중국측 관계자들에게 ‘예기치 않은 차림’에 대해 조심스럽게 타진했으나 “별 의미가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러나 장주석은 28일 와세다대에서 “일본은 정확한 역사관으로 국민과 청년을 계도해야 하며 군국주의의 사조와 세력이 거듭 대두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우렁찬 목소리로 연설했다. 사실 인민복은 1911년 청(淸)왕조를 거부하고 공화제의 중화민국을 건국한 중국혁명의 선도자 쑨원(孫文)이 처음 착용한 복장으로 그의 아호를 따 일명 중산복(中山服)이라고도 한다.그후 마오쩌둥(毛澤東)을 비롯,등샤오핑(鄧小平)등 중국지도자들은 물론 인민들도 즐겨 입었었다.반제국주의,사회주의혁명과 평등의 상징이었던 인민복은 최근 중국의 개방화와 함께 청바지를 선호하는 젊은이들로부터 서서히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일전쟁을 체험한 역사의 증인’이라고 자처한 장주석이 해외여행에서는 잘 입지 않던 인민복을 입은 것은 따지고 보면 와세다대 연설의 예고편이었다.국가지도자의 만찬복식은 이처럼 외교무대에서 무언의 웅변으로 작용한다. 진한 감청색의 인민복 차림으로 일황과 건배를 하는 장주석의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우리 생활한복의 국제무대 진출을 생각해본다.세계적 보편주의를 지향하는 오늘날 무슨 한복타령이냐 할지 몰라도 남북화해의 회담이나 모임에서 다함께 한복차림으로 만난다면 그 분위기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남쪽은 한복 고유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강조한 생활한복으로,북쪽은 고구려 냄새가 물씬 나는 복식을 입고 나온다면 그 만남의 절반은 성공할 것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한반도주변 4강이나 제3국인에게도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외교무대의 만찬이나 파티때도 정통한복이나 품위있는 생활한복 차림으로 나선다면 ‘한국의 메시지’를 말(言)이전에 먼저 전할 수 있을 것이다.
  • 장쩌민 “日 올바른 역사인식 필요”

    ◎訪日 사흘째… 과거사문제 앞으로 계속 거론 시사 【도쿄 黃性淇 특파원】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26일 중·일양국의 우호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의 올바른 역사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앞으로 과거사 문제를 계속 거론할 것임을 시사했다. 장주석은 간 나오토(菅直人)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에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대응에 만족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외상은 “(지난 10월)한국은 역사청산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시했지만 중국은 반드시 그렇지 않았다”며 과거사 사죄를 둘러싼 양국간 이견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이에 앞서 장주석은 26일 저녁 아키히토(明人)일황 주최로 열린 만찬에 인민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한편 이날 두 나라 정상은 핵무기 폐지와 확산 반대,정치 경제 및 지구적 차원의 협력 강화,하나의 중국 인정 등을 골자로 한 ‘중일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 金 총리 “日皇 2000년 방한 추진”

    【도쿄 黃性淇 특파원】 金鍾泌 국무총리는 18일 2000년에 아키히토(明仁) 일황의 방한을 추진할 계획임을 밝혔다고 NHK 등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金총리는 이날 상오 방한중인 일본 자민당의 나카소네 히로후미(中曾根弘文) 참의원 정조심의회장과의 회담에서 “21세기를 시작하기 앞서 2000년에 방문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밝혔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金총리는 나카소네 회장이 “환경정비가 중요하다”고 지적하자 “1년 이상 남아 있기 때문에 시간은 충분하며 2000년 방문으로 21세기의 새로운 우호관계의 출발점을 끊고 2002년 월드컵을 공동으로 개최하면 좋은 스케줄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고 밝혔다. 한국정부 수뇌가 일황의 ‘2000년 방한 추진’의사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 金 대통령 기자간담 내용

    ◎일 철저한 반성속 사죄 한국민 감정개선 계기/인류관심사 공동대처 등 협력범위 확대 큰 성과 【도쿄=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은 일본 국빈방문 사흘째인 9일 도쿄를 출발하기 앞서 방일 성과를 결산하는 기자간담회를 가졌다.金대통령은 이번 방일이 성공적이라고 자평하면서 한·일간의 새로운 동반자 관계 형성을 위한 양국 지도자와 국민의 적극적인 협조 필요성을 강조했다. 金대통령의 간담회 모두발언과 일문일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두 발언◁ 이번 방일은 과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이나 미국방문에 못지않게 성공적이라고 판단합니다.양국 정상의 공동선언과 행동계획에서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전례없이 분명히 한국에 대한 가해자로서의 책임을 명시하고 사죄를 표명했습니다.구체적인 협력면에서도 경제협력,한반도 평화와 안보,문화·인적 교류 등 많은 분야에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이번 방일은 단순히 과거사 문제를 넘어 미래지향적인 면에서 대단히 큰 성과를 거뒀고 이것이 핵심이라면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일 양국간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세계 인류의 공동 관심사인 인권,환경,범죄,마약,빈곤 등에 공동대처하자고 큰 테두리에 합의한 것도 요합니다.오부치 총리뿐 아니라 일본의 모든 지도자들이 한·일간에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생각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음을 확인한 것도 이번 방일의 소득이자 특색입니다.50년 만에 민주정부를 세운 우리 국민의 위대한 업적에 대한 일본의 높은 평가와 존경,협력이 이번 방일 성과를 가져온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문일답◁ ­과거사문제 해결과 경제협력중 어디에 더 비중을 뒀습니까. ▲두 문제는 성격이 다릅니다.양쪽 다 같은 비중을 뒀습니다.둘 다 상당히 잘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다시 망언이 나오면 어떻게 대처하겠습니까. ▲일본에서 한국이 자꾸 사과문제를 제기하는 데 대해 말이 있는데,이는 첫째 일본의 과거 사죄태도가 분명치 않고,가해자와 피해자 인식이 애매했기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또 총리가 사죄했는데도 곧바로 정부여당 중진이 이를 뒤엎는 말을해 결국 사과·반성이 형식에 그치고 알맹이는 바뀌지 않았다는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지적하고 앞으로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오부치 총리는 그 점에 특별히 유의하겠다고 말했습니다.민주 국가에서 양국 국민의 비판을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 일본 총리가 정부와 국민을 대표,문서로 분명히 한 만큼 일본의 다른 지도자들은 거기에 당연히 구속받을 것입니다. ­아키히토(明仁) 일황을 만나본 인상은 어떻습니까. ▲대단히 겸손하고 성실한 분이고 여러가지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한국의 삼국시대,특히 가야문화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 그 문제에 관해서도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황후는 집사람(李姬鎬 여사)이 쓴 ‘나의 사랑 나의 조국’이라는 책도 읽었다고 합니다.천황 내외분이 한국 대통령을 맞기 위해 상당한 정성으로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았습니다. ­아키히토 일황이 방한할 적절한 시점을 어떻게 생각십니까. ▲일본 천황은 과거 전쟁 상대국인 중국과 영국을 모두 방문했는데 이웃나라인 한국을 국교 재개 33년이 되도록 방문하지 않은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입니다.이런 상황은 양국 국민의 화목과 융화에도 문제가 있습니다.천황의 방한은 양국의 21세기 동반자 관계와 월드컵대회의 성공적인 공동개최 등 전체적인 목적과 흐름에 플러스가 될 것입니다.양국 국민간 준비가 되는 것을 봐가며 실현시킬 문제입니다. ­국민의 대일 감정은 문서로 해소되기 어려운데 국민을 어떻게 설득,감정의 응어리를 풀도록 하겠습니까. ▲일본이 문서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명히 하고 철저한 반성 위에서 사죄한 것은 국민의 대일 비판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상대가 나름대로 성의를 표시할 경우 금도를 갖고 대하는 게 국민의 바람직한 태도입니다.국민의 협력을 바랍니다.
  • “韓·日 과거사 정리 큰 진전”/金 대통령 기자간담

    ◎양국 국민들도 적극 협혁해줘야/오사카 들러 오늘 귀국 【오사카=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은 9일 “이번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전례없이 문서로 분명히 한국에 대한 가해자로서 책임을 명시하고 사죄를 표명한 것은 대단히 진일보하고 적극적인 표시”라고 밝혔다. 金대통령은 이날 사흘간 도쿄 방문을 마치고 다음 방문지인 오사카로 떠나기 앞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평가하고 “이 문서의 충실한 이행을 위해 양국 정부의 노력에 두나라 국민들도 협력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金대통령은 특히 “이번 방일은 과거사 문제와 양국간 협력 문제 둘다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방일 성과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아키히토(明仁) 일황의 방한 문제에 대해 金대통령은 “양국 국민간 준비가 되는 것을 봐가며 실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영빈관에서 일본내 친분인사 70여명을 초청해 베푼 다과회에서 “본인에 대한 도쿄 납치사건 진상은 반드시 밝혀져야 하며 정신대문제도 세계의 양심이 승복하도록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金대통령은 “납치사건과 정신대 문제이외에 金九 선생,張俊河 선생 등 국내에서 많은 의문사로 억울하게 희생된 사건의 진상도 가려져야 하며,그렇지 않으면 민주정부의 의미가 없다”면서 “이 문제를 시간을 두고 해결해 나갈것”이라고 부연했다. 金대통령은 또 오사카에서 일본 관서지역의 주요단체 공동주최 만찬에 참석,“대한(對韓) 투자를 주저하는 일이 없도록 협력적 노사관계 정착과 노동의 유연성 실현에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며 일본 기업인들의 대한(對韓) 투자를 적극 권고했다. 金대통령은 또 “특수한 역사적 배경하에 이 땅에 정착하게 된 한국인들이 일본 사회에 보다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일본 정부에 당부한 바 있다”며 지방참정권 획득 등 재일동포의 지위향상을 위한 일본측의 성의를 촉구했다.
  • 양국정상 공동회견 요지

    ◎金 대통령 “天皇 방한 가능토록 분위기 조성”/오부치 총리 “공동선언 존중 왜곡발언 않을것” 【도쿄=梁承賢 기자】 金大中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는 8일 한·일 양국의 과거사 정리 등을 담은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위한 공동선언’을 채택한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 모두 발언을 통해 “공동선언 채택은 새 시대의 한·일 우호협력의 장전을 마련한 것으로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만족해했다. 金대통령는 “오부치 총리대신과 양국의 경제구조조정 노력의 성공과 아시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협력해가기로 했다”면서 오부치 총리의 방한을 공식 초청했다고 덧붙였다. 오부치 총리는 “일본정부를 대표해서 우리나라가 과거의 일정기간 한국 국민에게 식민지 지배에 의한 커다란 피해와 고통을 안겨준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그것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의 사죄를 했다”고 소개하고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일 관계의 개선을 향한 정치적 의지를 표명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만족하며,새로운 파트너십의 실행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공동회견 요지. ­일본은 과거에도 사과성 발언을 했으나 번번이 이를 왜곡하는 발언이 나와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오부치 총리=일본정부는 공동선언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인정했으며 金대통령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이번에는 양국 정상이 문서를 통해 서명했다는 데 의미가 큽니다.앞으로 이를 왜곡하는 발언은 하지 않을 것이며,정부의 입장이 명확히 천명됐기 때문에 일본 국민들도 존중할 것으로 봅니다. ▲金대통령=모든 여건이 과거와 다르고,또 앞으로 달라져야 합니다.일본정부의 과거사 표명이 문서화됐다는 게 지금까지와는 대단히 다른 것입니다.한국을 직접 지칭하고,우리에게 가한 피해에 반성·사죄하는 뜻을 표했기 때문에 그 무게가 과거와는 다릅니다. ­아키히토 일황의 방한 초청은. ▲金대통령=천황의 방한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부자연스런 일입니다.2002년 월드컵 공동주최라는 공동목표도 있습니다.일본 대중문화가 단계적으로 한국에 개방되고,그런가운데 천황의 영접이 따뜻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노력할 것입니다. ­金대통령은 25년 전 도쿄 납치사건의 당사자였습니다.방일중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데 어떤 입장입니까. ▲金대통령=지난 80년 5·17 군사쿠데타 전에 납치문제에 대한 생각을 밝힌 바 있습니다.양국정부에 어떤 문제도 제기하지 않고 관련자의 처벌도 요구치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다만 인권문제이기 때문에 사건의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지금도 그런 입장에 변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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