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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王사촌 월드컵개막식 참석

    [도쿄 황성기특파원]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사촌이자 일본축구협회(JFA) 명예회장인 다카마도가 한국에서 열리는 2002한일월드컵축구대회 개막식에 참석하게 될 것이라고 교도통신이 20일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 궁내청은 다카마도의 방한을 전제로 공식·비공식 방문형식의 일정을 조정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국 정부는 월드컵 개막식에 아키히토 일왕의 참석을 희망해 왔으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참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marry01@
  • 日語속 한국어 어원 연구서 펴낸 이시바시 교사

    최근 아키히토 일왕이 자신의 생일 기자회견에서 조상인간무(桓武)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밝혀주목을 끌고 있는 가운데 한 일본인 교사가 한국말에서 유래한 일본말의 어원을 추적한 책을 펴내 화제다. 일본 규슈(九州) 사가현(佐賀縣) 간자키군(神埼郡)내 한중학교 국어교사로 재직중인 이시바시 미치히데(石橋道秀·43)씨는 최근 ‘신(新)사가(佐賀)·치쿠고(筑後)의 읽기 어려운 지명(地名)산보’를 출간했다.이 책은 이지역일대의 지명 가운에 보통의 일본어와는 읽는 방식이 달라 타지방 일본인들이 정확히 읽기 어려운 지명의 어원을 추적해 밝힌 연구서.한 예로 이 지역의 해안가에는 한국말 ‘바다’에서 유래한 하다(波多),하다(半田),하토(鳩) 등의지명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또 후쿠오카현 치쿠고 지방에 있는 돈도라(鈍土羅)라는 곳은 돌이 많기로 유명한데이 지명은 한국말 ‘돌’에서 유래한 것이며,간자키군 요시노가리 유적지 인근으로 하천이 많은 메타(米多)라는 지명은 하천의 한국어 고어인 ‘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경우 ‘메타’라는 지명을 먼저 사용하다가 한자음은나중에 새로 붙인 경우라는 것이다. 그는 “간자키군의 요시노가리 유적지에서 발견된 청동검은 옛 아라 가야(伽耶)가 있었던 경남 김해지방에서 발굴된 것과 동일한 유물로 확인됐다”며 이는 “당시 아라가야 왕족들이 일본으로 건너와 문명을 전파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규슈(九州)지방 말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 경상도 남부지역의 사투리에서 유래한 것”이라며 “현지조사와 학자들로부터 연구결과로 확인된 내용”이라고 말했다. 일본내 한일 민간교류 모임인 현해인(玄海人)클럽 회원인그는 “이 책이 한일간 가교역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는데 그동안 현지조사차 20여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韓·日 가까운 관계 상징 의미”

    한승수(韓昇洙)외교부장관은 24일 아키히토(明仁)일본 왕의 “일왕가에 백제 왕실의 피가 섞였다”는 언급과 관련,“굉장히 좋은 일”이라면서 “한·일 관계에서 누구나 다 알고있던 사실을 일왕을 통해 재확인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한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일왕은 한·일 양국이굉장히 가까운 나라라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얘기를 한 것일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씨줄날줄] 日王 혈연발언 겉과 속

    아키히토(明仁)일왕이 이례적으로 일본 왕실의 뿌리를 언급하면서 한일우호를 강조했다.자신의 68세 생일을 앞두고 가진 일본 기자단과의 회견에서 ‘간무(桓武)천황’의 생모가백제 무령왕(武寧王)의 자손이라는 사실 등을 직접 언급한것이다.간무 제50대 일왕은 서기 781년에서 806년까지 26년재위 기간 중 혼란한 정계의 기풍을 혁신하고 율령제를 재편했다. 794년 현재의 교토(京都)로 도읍을 옮겨 헤이안교(平安京)를 조성해 약 400여년간의 헤이안시대를 열었다.그의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인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간무왕의 지시로 편찬된 일본의 ‘속일본기’(續日本紀)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이같은 기술은 오래 전부터 역사학계에서 회자돼 왔으나,일왕 자신이 왕가의뿌리가 한국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공개석상에서 언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일본 사회에서 그같은 ‘연관설’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사실상 금기시돼 왔기 때문이다. 그밖에 한국과 일본의 혈연설은 무수히 많다.대표적인 것이 백제유민이 일본으로건너가 정착하면서 대륙문화를 전파했다는 학설이다.언어,풍습,문헌 등에 근거를 두고 있는 이 학설들은 일본 역사학자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사람이 많으나 공식적으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일왕이 느닷없이 금기를 깬 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일본의 식자들은 일왕의 이같은 언급을 한일 우호관계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그의 발언이 양국의 교류관계 등을 설명한 후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양국 국민간의 이해와 신뢰 확대에 기대를 건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는 점이그같은 해석의 근거다.그런가 하면 “뭔가 검은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눈길도 있다.과거 침략시절에 내세웠던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연상하는 것이다. 결론은 아직 이르다.그 발언이 선의(善意)에서 나왔다면 일본이 과거사 반성 및 민간인 피해자 배상문제 등에서 성의를 보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사과’와 ‘신사참배 강행’을 반복하는 식의 행태를 계속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만약후자라면 일왕의 발언은 음험한 속셈의 일단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것이다.이웃나라 왕실의 경사를 앞두고 나온 발언에 대해 덕담으로 화답해야 마땅하지만 워낙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인지라 어쩔 수 없다.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日王, 백제문화 전수등 인정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왕이 역사상의 한·일 교류와 한국과의 연(緣)을 이례적으로 강조하면서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양국민의 이해와 신뢰감이 깊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혀 주목되고 있다. 23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68세 생일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월드컵 개최와 관련한한·일 양국의 인적·문화적 교류에 대해 언급,“한국과의연(緣)을 느끼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내 개인으로서는 간무(桓武)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쓰여 있는데 대해 한국과의 연을 느끼고 있다”면서 “무령왕은 일본과의관계가 깊고 당시 오경박사가 대대로 일본에 초빙됐다”고덧붙였다. 그는 “무령왕의 아들 성명왕(聖明王)은 일본에 불교를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그러나 유감스럽게 한국과의 교류는 그러한 교류만이 전부는 아니었으며 우리는이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일본과 한국민간에 예부터 깊은 교류가 있었다는 것은 일본서기 등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한국에서 오신 사람들과 초빙돼온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문화와 기술이 전해졌다”고 한·일 관계에 대한 서두를 꺼냈다. 그는 특히 “궁내청 악사(樂師) 중에는 당시 한국에서 이주해온 자손이 대대로 악사를 하고 지금도 가끔 아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다”며 “이러한 문화와 기술이 일본인의열의와 한국인의 우호적 태도에 의해 일본에 전해진 것은다행한 일이며 그후 일본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日 왕세자비 딸 이름 아이코

    [도쿄 황성기특파원] 지난 1일 태어난 일본의 마사코(雅子·37) 왕세자비의 딸 이름이 아이코(愛子)로 결정됐다. 일본 궁내청은 7일 아키히토(明仁·41) 일왕이 장남 나루히토(德仁) 왕세자와 마사코 비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 아이의 이름을 아이코로 지어주었다고 발표했다.어린 시절왕손을 부르는 이름은 도시노 미야(敬宮)로 정해졌다. 일본 왕족의 이름은 두 글자로 짓는 것이 전통으로 남자아이는 이름 뒷자에 인(仁)을 넣고 여자 아이의 경우 자(子)를 쓴다. 이름을 지을 때는 보통 중국 고전 등에서 한자를 찾아 짓는데 이번에는 맹자(孟子)가 출전이 됐다는 게 궁내청의설명이다. marry01@
  • ‘왕세자비 여아 출산’ 日열도 들썩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본 나루히토(德仁·41) 왕세자의부인 마사코(雅子·37)비가 1일 오후 여아를 출산했다.마사코 왕세자비의 출산은 결혼 8년 만의 일이다. 일본의 각 방송사는 이날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출산 소식을 특집으로 내보냈으며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의 대형 빌딩과 주요 백화점은 왕손 탄생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등 일본 열도가 온통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여아 출산에도 불구하고 일본 왕실은 여자가 왕위를 잇지 못하도록 하고 있어 왕세자비의 출산을 계기로 여자도 왕위를 계승하도록 왕실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여왕 논의=일본의 왕위 계승 순위는 나루히토 왕세자가1위이며 2위인 동생 아카시노(36)를 제외하면 아랫대에 남자는 단 1명도 없다.3위가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동생(66)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나마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남자 왕족은 7명에 불과하다. 일본 역사상 지금의 125대 일왕에 이르기까지 10대에 8명의 여왕이 즉위했으나 일왕이 군사 통수권을 손에 넣은 메이지(明治)시대부터 남자 만이 왕통을 이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왕실 규정개정에 대해 “역사,전통을 생각하면서 검토하는 편이 좋다”면서 국민 여론을 봐가며 신중히 검토할 뜻을 비쳤다. 한편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3명의 손녀만 두게 됐다. ◆축제 분위기=토요일 오후의 출산 소식은 일본에 모처럼의 청량제였다.방송들은 “대량실업,광우병 파동,미 테러참사 등 어두운 일만 잔뜩 있는 일본에 모처럼 밝은 소식”이라며 장시간에 걸친 특집 방송을 내보냈고 신문들도일제히 호외를 발행했다. 일왕의 거처인 도쿄 시내 왕거와 왕세자비의 친정집 등에는 많은 시민들이 몰려 아이의 탄생을 축하했다.경제계에서는 마사코 비의 ‘로열 베이비’ 출산이 경기를 이끌 것을 기대하고 있다.한 민간경제연구소는 파급 경제효과가 14조엔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미치코(美智子)왕비가 왕세자를 낳은 60년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13.1%를기록했다. ◆마사코 왕세자비=외무성 사무차관,유엔 대사를 지낸 ‘평민 집안’의 장녀로 한파티에서 우연히 나루히토 왕세자비를 만나 1986년부터 교제를 시작,6년 뒤 결혼했다.미하버드대 경제학부를 거쳐 도쿄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외무고시에 합격,외무성 북미과 등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미모 겸비의 재원이다. marry01@
  • 日 왕세자비 출산 축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일 오후 아키히토(明人) 일왕에게 축전을 보내 마사코 왕세자비의 첫 출산을 축하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이슈현장 누비는 돈키호테 운동가

    ‘이슈가 있는 곳엔 그가 있다’ 시민단체인 ‘활빈단’ 대표 홍정식(洪貞植·50)씨에겐‘돈키호테 시민운동가’ ‘사회풍자 시민운동가’ 등 많은 별칭이 따라다닌다. 사회적으로 관심을 끌 만한 사건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나타나 폐부를 찌르는 기발한 행동으로 시민들의 눈길을모으기 때문이다. 지난달 10일 역사 교과서를 왜곡한 아키히토(明仁) 일왕에게 ‘한·일 관계에 고춧가루를 뿌렸다’며 고춧가루와때수건·메주 등을 보냈으며,99년 고위층 부인들의 옷로비사건때는 이들에게 서민들의 수수한 옷을 입으라는 뜻으로 ‘몸뻬’(여성용 고무줄 통바지)를 보냈다. 돌출행동도 서슴지 않는다.지난달 5일 서울 광화문 미국대사관 앞 가로수에 설치된 시위 저지용 쇠창살을 제거하겠다며 가로수에 올라가 ‘실력행사’한 끝에 대사관측이스스로 철거토록 했다.매년 설날에는 고아원생들과 함께전직 대통령을 돌아다니며 세뱃돈을 받아내기도 했다.해외에 도피중인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그룹 회장에 대한 체포조 결성과 함께 사재로 1,000만원의 현상금을 내걸기도했다.지난 99년 8월에는 일본 무기수 권희로(權禧老)씨의국내 경호를 맡겠다고 자처했다.5·1 노동절 집회에서는화염병 투척을 몸으로 막겠다며 시위 현장에 뛰어들기도했다. 그는 수많은 사회단체를 만들었다.그가 만든 단체의 이름은 한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풍자와 재치가넘친다. 지난 98년 4월5일 회원 21명과 함께 만든 활빈단은 홍길동전에서 부패한 관료를 응징하는 활빈당에서 따온 것이다. 그가 만든 ‘식봉회’는 식(植)자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시민들의 봉사모임.‘수공회’는 지명에 수(水)자가 들어간 지역 공무원들의 봉사모임….모두 50여개에 이른다. 엉뚱한 행동은 곧잘 구설에 오르기도 하지만 부패와 굴곡을 향해 돌진하는 속시원한 행동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적지 있다.활빈단 회원은 현재 140여명에 이른다. 그의 재치있는 활동 뒤에는 남모를 노력이 숨어 있다.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과 방송부터 꼼꼼히 챙긴다.누구도 나서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면 사람들을 모아 단체를 결성한다.그리고 행동에 들어간다. 홍씨는 “헛돈을 써가면서 엉뚱한 일을 한다고 생각할지모르겠지만 사회 곳곳의 잘못된 일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한다”면서 “계속 활동을 지켜보고 격려해 달라”고 당부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오페라‘황진이’관람…日王 심정은 어땠나

    아키히토(明仁) 일왕과 미치코 왕후가 16일 저녁 일본 도쿄(東京)에서 열린 한국의 창작오페라 ‘황진이’를 관람했다. 아키히토 일왕의 공연관람에는 최상룡(崔相龍)주일대사가안내를 맡기로 돼있었으나 최대사가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한 항의표시로 소환돼 현재 본국에 머물고 있어 유광석(柳光錫)공사가 일왕을 영접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이날 최대사의 부재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공연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날 공연에는 일본왕족의 다카마도노미야 부부를 비롯해와타누키 다미스케(綿貫民輔) 중의원의장,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외상,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문부과학상,사사키마사미네(佐佐木正峰) 문화청장관 등 일본 정계와 문화·예술계인사들이 다수 참석했다. 한국에서는 이번 공연을 준비한 한국오페라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이상수(李相洙)의원과 권노갑(權魯甲) 전최고위원이 관람했다. 이번 ‘황진이’ 공연은 2002년 한일 월드컵공동개최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분위기 조성차원에서 마련됐으며,‘황진이’의 도쿄 공연이 열린 신(新)국립국장에는 15일과 16일이틀간 3,600여명의 관객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한국오페라단의 박기현(朴起賢·42·여) 단장은 “정치적으로 어렵고 미묘한 때 공연이 열리지만,양국간 정치와 경제문제를 뛰어넘어 이번 공연이 한일간 우호증진에 도움을줬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도쿄 연합
  • 최상룡 주일대사 귀임 연기

    정부는 일본 교과서 왜곡문제와 관련,16일 일본 도쿄에서 아키히토(明仁) 천황이 참석한 가운데 초연되는 월드컵공동개최 기념 창작오페라 ‘황진이’ 공연에 최상룡(崔相龍) 주일대사를 참석시키지 않기로 했다. 정부 당국자는 15일 “일시 소환한 최 대사를 귀임시켜천황을 영접토록 할 경우 국민적 분노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당분간 국내에 체류토록 결정했다”고 밝혔다. 최 대사는 오는 17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전체회의에 출석하는 등 당분간 국내에 체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 ‘황진이’ 日신국립극장 무대에

    [도쿄 연합] 한국의 창작 오페라 ‘황진이’가 15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오페라하우스 ‘신(新)국립국장’에서 공연된다. 신국립극장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곳으로 한국 오페라가 공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 속에서 아키히토(明仁) 천황과 미치코 황후가 공연 이틀째인 16일 저녁 ‘황진이’를 관람할 예정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반면 이번 공연에 참관하기로 했던 한국의 정치인과 행정부 고위관리들은 교과서 파문으로 일본에 오지 않았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한국오페라단 박기현(朴起賢·42) 단장은 13일 주일 특파원들과 기자회견을 갖고 “정치적으로 어렵고 미묘한 때 공연이 열리지만,양국간 정치·경제문제를 뛰어넘어 이번 공연이 한일간 우호증진에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진이’는 99년 한국에서 초연됐으며 지난해에는 한·중수교 8주년을 기념,베이징(北京)에서 이틀간 공연해 현지인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 통일·외교 대정부 질문

    10일 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여야 의원들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를 강력 성토하고 다양한대응 방안을 내놓았다. ◇사건 규정과 자성론= 의원들은 한결같이 일본의 교과서왜곡에 거세게 항의했다.우리 정부의 미온한 초동 대처를꼬집는 목소리도 높았다. 민주당 김기재(金杞載)의원은 “한·일간 미래 지향적 우호·협력 기조를 깨뜨리는 불행한 사건”이라면서 “정부가 즉각적이고 강력한 초기 대응을 못한 것은 유감”이라고 지적했다.같은 당 김경재(金景梓)의원은 “총리와 장관은 ‘자리’를 걸고 일본의 반문화적 책동을 막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나라당 박원홍(朴源弘)의원은 “정부가 미지근한 외교적 수사만 늘어놓다가 검정이 끝난 뒤 거센 비판에 몰리자 뒤늦게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정부의 늑장 대응을 비판했다. 자민련 배기선(裵基善)의원도 “교과서 검정 통과라는 결과가 구체화되기까지 그 진행을 차단하고 정확히 대처하지 못한 정치권과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자성론을 제기했다. ◇대책=백태 왜곡된 교과서의 폐기,재수정,불채택 등을 위해 일본을 다각도로 압박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민주당 김경재 의원은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한일의원연맹 서울총회 무기 연기,일본보수파 인사의 방한 거절,일본 극우파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산케이(産經)신문 서울지사 폐쇄,일왕(日王) 아키히토(明仁) 방한 취소,중국·북한과 공동 대응책 강구,일본 대중문화 유입의 단계적 차단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한나라당 박원홍 의원은 “일본의 양식 있는 시민들과 연대해서 왜곡된 교과서가 공식 교재로 채택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이한동(李漢東)총리는 “역사 왜곡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겠다”며 “냉철한 이성으로 국제적지원을 받아가며 범 정부 차원의 역량을 결집하겠다”고대답했다. 박찬구기자 ckpark@
  • 美·日 한반도정책 숨은 뜻 찾기 ‘이제 미국이…‘

    지난 90년 노태우 대통령의 일본 방문 때 아키히토 일황은궁중만찬회에서 “과거 한 시기의 불행했던 양국 관계를 생각하면 실로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한국은 일황의 사죄로 받아들였다. 이 말이 과연 사죄일까.일본에서 30년째 망명중인 통일운동가 정경모는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 역사를 살펴봤다.삼국사기 백제본기(제3)에는 ‘관미성은 우리 북변의 요충지였는데,그것이 고구려의 손에 떨어진 것은 참으로 통석하기 이를 데 없다’는 아신왕의 발언 기록이 나온다.백제 영토를고구려에 빼앗겨 원통하다는 뜻이지,잘못을 사죄한다는 뜻은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 ‘문선’에는 ‘미지불수(美志不遂) 양가통석(良可通惜)’이란 말이 나온다.덕연이란 사람의 문재가 뛰어난데아름다운 저작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찍 병들어 죽은 것을 애석히 여긴다는 말이다.과오를 사과한다는 뜻은 담겨있지 않다.“일본이 20년만 더 조선을 지배했더라면 좋을뻔 했다.잘 하려고 노력했는데 전쟁에 졌기 때문에 노력이수포로 돌아가게 됐다”는 제7차 한일회담 일본측 대표 다카스기 신이치의 말이 황국사관에 비춰보면 바로 미지불수양가통석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일황의 발언에 앞서 일본 정부는 서울로 특사를 파견,우리정부와 용어 선택에 대한 의견을 타진했다.특사는 관동군참모를 지낸 세지마 류조였다. 정경모는 ‘이제 미국이 대답할 차례다’(한겨레신문사)에서 최근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정세와 북한에 대한 미국과일본의 정책을 해부하고 역사적 뿌리도 파헤친다.일본이 북한에 대해 왜 저리 호들갑을 떠는지,북한이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에 왜 겁없이 맞서는지,미국이 왜 북한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게 해준다. 북한은 지난 92년 국제원자력기구 사찰협정에 가입했으나그해에 미국이 팀스피리트훈련을 재개하고 국제원자력기구가 특별사찰을 요구하자 위협을 느껴 핵확산 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하고 노동1호를 쏴올렸다고 저자는 분석한다.북한이1994년 제네바 북미합의에 건 진정한 기대는 경수로도, 50만t의 중유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하는데 있었으나 합의서에 명시된 경제제재 완화나 국교 정상화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한국전쟁 재발에 대비해 60년대에 작성한 ‘작전계획 5027’을 94년재검토했으나 미군 사망자 5만2,000명, 한국군 사상자 49만명,민간인 사망자 100만명으로 피해가 추정되자 무력공격을포기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시작되기 1년 전 당시 러스크 미 국무장관에게케넌이 제출한 한국 관련 정책건의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일본인의 영향력과 그들의 활동이 또다시한반도와 만주 일대로 뻗어나가는 사태를 미국이 현실적으로 반대할 수 없게 될 날이 우리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다. 그것은 이 지역에 대한 소련의 침투를 막을 수단이 이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에 대한 일본의 재지배를획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문익환 목사의 북한 방문 때 동행했던 저자는 “일본이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40년간 비약한 뒤 40년간 전락했으나이제 제2의 비약이 똑같은 패턴으로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두려움에서이 글을 쓴다”고 말했다. 김주혁기자 jhkm@
  • 日皇 생일축하 리셉션

    일본 아키히토(明仁)천황의 67회 생일을 축하하는 리셉션이 4일 낮서울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명예총재,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민관식(閔寬植)전 국회의장 등 여야 정치인들을 비롯,각계 인사와 주한 외교사절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데라다 데루스케(寺田輝介) 일본대사 부부가 행사장 입구에서 참석자들을 악수로 맞이했을 뿐 일황에 대한 한국민들의 부정적 여론과 국내 반일단체들의 항의시위를 우려,행사장 입구에는 리셉션을 알리는 플래카드 등 일체의 안내문도 부착하지 않았다. 이날 행사도중 독도수호대 김정구(35) 사무국장과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서울지부 김은식 사무국장 등 2명이 행사장에 들어가려다 초청장이 없다는 이유로 제지당하기도 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기고] 국치일 90년, 다시서는 민족정기

    올해는 새천년답게 국민의 가슴에 깊이 자리잡는 일들이 많았다.특히,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뒤 이어지기 시작한 그 감동의 시간들,남북이산가족들이 뜨겁게 상봉하며 울던 장면이나 애써 흐르는눈물을 참는 일반 국민들도 많았다.이념과 체제는 달리하지만 아직도우리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확인의 시간들이 아니었나하는 생각과함께 통일을 향한 우리국민의 염원이 무르익어 이제 50년 분단사를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도 가지게 된다. 하지만 20세기 비운의 역사를 잉태한 한·일합방 국치일과 망국의한을 안고 조국의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희생을 생각함에아직도 지지부진한 한·일관계를 반세기 넘게 끌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는 생각 또한 드는 것이 사실이다. 1990년 5월 아키히토(明仁) 일본천황의 사과문 발표가 있다 하여 한때 국민 모두 큰 기대를 가졌으나 “한국국민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함에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치 못한다”는 애매한 말로 문구(文句)에 대한 시비만을 낳았을 뿐 국민들가슴에 맺힌 한의 골은 채울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일본은 독도의 영유권 문제를 야기시켰고 1998년 1월23일 구 한·일어업협정의 일방적인 통보와 일본학생들의 왜곡된역사교육 등으로 우리민족을 자극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자행해 왔다. 우리는 IMF경제환란 이후 ‘기본이 바로 선 나라’,‘제2의 건국’등 새로운 한국 만들기를 위한 국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운동의 근본목표는 단순한 경제회복이 아니며 아직도 개운한 해결을 보지 못한 한일 관계처럼 왜곡되고 비뚫어진 역사를 재정립하고5,000년 역사를 면면이 이어 온 민족정기를 다시금 되살려 국가와 민족이 항구적인 번영과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정신적 기반을 다지는데있다.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나라로 대변되는 일본도 한 ·일축구에서패배의 요인이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신력에서 졌다”고 할 만큼 정신적이 기초를 중시하는 나라임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수천년 동안 그들에게 문화를 전수하고 가르쳐온 자긍심이 있다.90년 전 잠시 그 가치를 잃고 뼈아픈 35년의 고초를 겪어야 했으나 유구한 역사를 통해 볼 때 일본이 그 벽을 허물기엔 역부족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찬란한 문화를 일궈낸 선조의 우수한 정신을 본받고 선열들이 보여준 민족정기를 국민 하나하나의 가슴에 담아 어두웠던 지난 20세기의 양국관계를 정리하고 21세기 새로운 한·일관계를구축하여 동북아의 평화는 물론 세계무대에 길이 빛날 한민족의 역사를 창달하여 후손 대대로 튼튼한 국가를 이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신성한 의무이며 일제시대를 포함한 숱한 국난사를 극복하며 우리민족을 단일민족국가로지켜준 선조들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21세기는 무한경쟁의 시대이며 치열한 힘의 논리가 전개되는 시대일것이다. 먹느냐 먹히느냐는 약육강식의 무대에서 우리를 지켜줄 절대적인 힘은 바로 우리민족을 자랑스런 한민족으로 뭉쳐주고 개혁과 발전의 원동력이 된 찬란한 민족정기임을 깨달아 국치일 90년,10년이지나면 100년의 한 세기를 채우게 되는 불운의 역사를 극복하고 새천년 세계무대의 주역으로 다시 서는 민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영웅 청주보훈지청장
  • [외언내언] 일본의 二重플레이

    여의도 63빌딩 특별전시관에서는 한국전쟁 50주년 기념 ‘피카소와게르니카’전이 열리고 있다.게르니카는 스페인의 도시 이름이다.1937년 파리 국제박람회 스페인관에 전시될 작품소재를 궁리하고 있던피카소에게 나치 독일이 고국의 소도시 게르니카를 무차별 폭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이 소식을 들은 피카소는 전율했다.그는 분노를화폭에 옮기기 시작해 3주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전세계에 반향을 일으킨 걸작 ‘게르니카’다.그런데 피카소가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이 작품을 만들고 있을 때 일단의 게슈타포가 들이닥쳤다.그들은 ‘게르니카’ 밑그림들을 보더니 ‘이것은 당신이 그린 것이오?’라고 물었다.이에 피카소는 ‘아니오 당신들이그린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15일 서울과 평양에서 이산가족들이 보여준 눈물의 드라마는 세계를 울렸다.전세계 매스컴은 이를 경쟁적으로 전했고 장삿속에 강한 일본 언론들도 이 ‘좋은 볼거리’를 열심히 취재했다.그러나 어느 매스컴에도 비극의 단초,이 백성의 가슴에 한(恨)의 씨앗을 뿌린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보도는 없었다.프랑스 어느 TV가 심층보도를 하긴 했지만 그것도 겨우 6.25와 분단에 그치고 말았다. 한국의 20세기 100년은 피와 눈물로 점철된 비극의 역사였다.그렇다면 우리민족을 20세기 내내 불행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 최초의 원인제공자는 누구일까.일본 하타 스토무(羽田孜) 전총리가 그 원죄는 일본에 있다고 자백했다.14일 스위스에서 열린 도덕재무장 국제회의에서 “불행한 상황이 한반도에 존재하는 것은 2차대전 이전과그 기간 중 일본의 행위라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실토한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전직 총리가 해외에서 사과발언을 한 바로 그날 일본의 현직 각료들은 2차대전 전범들의 위패가 안치된 야스쿠니(靖國)신사에 공식으로 참배를 했다.그런가 하면 아키히토(明仁)일왕과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가 참석한 전몰 추도식에서 ‘천황의 성전’을 찬양하는 기미가요가 제창되고 아키타현에는 일제침략을 찬미하는 ‘대동아성전비’가 세워졌다.이 얼마나 얄미운 이중 플레이인가. 우리들에게는 망언 시리즈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도쿄 도지사가 “공인도 신앙의 자유는 있다”고 주장했다지만 연이은 망언과 최근 교과서 역사왜곡 등을 보면 그들은 지금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음이 분명하다.다행히 ‘평화 유족회’ 등시민단체에서 항의시위가 있었다고 하나 일본에서 이들의 외침은 아직은 모기소리에 불과한 모양이다. 김재성 논설위원.
  • JP 28일 일본 방문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가 다케시다 노보루(竹下登) 전 일본총리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28일부터 3박4일간 일본을 방문한다. 김 명예총재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 등 일본 정계 지도자들과 만나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아키히토(明仁) 일황의 조속한방한을 희망하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뜻도 전달한다.
  • 金대통령, 오부치 장례 참석 韓·日 관계개선 의지 표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다음달 8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일본총리의 장례식에 직접 참석키로 한 것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김대통령의 의지와 희망을 읽을 수 있는 단초다.총리급 조문사절단이 김대통령의 직접 참석으로 바뀐 이유 자체가 이를 반증한다. 특히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 외국 정상의 장례식에 참석한 예가 이번이 처음인 데서도 그 강도를 감지할 수 있다.지난 63년 케네디 미대통령 서거때박정희(朴正熙)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미국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현직 대통령은 아니었다.일본측에서도 지난 79년 박 전대통령의 장례식에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씨가 전총리 자격으로 장례식에 참석했을 뿐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김대통령과 오부치 전총리간 특별한 교분과 신뢰,상호 존경이 한·일관계 관계를 발전시키는 동인이 되었다”면서 “김대통령은 오부치 전총리와의 우정이 오래 지속하지 못한 데 대해 무척 아쉬워하고있다”고 전했다. 실제 김대통령은 오부치 전총리의 헌신적인 한·일관계 개선 노력이 양국관계의 정상화를가져왔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오부치 전총리의 솔직한 과거사반성 등 관계개선 노력은 아키히토(明仁)일황의 한국방문이 추진될 만큼 효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여기에 빌 클린턴 미 대통령 등 각국 정상들이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도 ‘조문외교’를 겨냥한 김대통령의 발걸음을 재촉한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장례식 등에서 자연스런 회동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日 황태자비 6년만에 임신

    결혼 6년이 지나도록 아기를 갖지 못해 황실의 애를 태우던 일본 황태자비가 마침내 아이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열도 전체가 떠들썩하다. NHK를 비롯한 주요 TV방송은 10일 마사코(雅子·36) 황태자비의 첫 임신소식을 시시각각 전했으며 아사히(朝日) 등 주요신문도 일제히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하는 등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도쿄 메구로(目黑)구의 친정집에는 100명 가까운 보도진이 몰려 취재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마사코비의 임신에 일본 국민들이 흥분하는 것은 결혼후 6년반만의 첫 임신인데다 아들일 경우 천황후계 1순위인 나루히토(德仁·39) 황태자에 이어 2순위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달말부터 임신기미를 느껴온 황태자비는 지난 7일 벨기에 황태자의 결혼식에 참석한 뒤 귀국,아키히토(明仁) 천황부부에게 이를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이같은 사실이 황족의 업무를 관장하는 궁내청(宮內廳) 관계자의 입을 통해 새어나오면서 임신확인전에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마사코비는 13일 황족의 업무를 관장하는 병원에서 초음파검사 등 정밀검진을 받을 예정.확인이 되면 궁내청은 임신사실을 정식발표하고 전담의료진을결성,출산까지 엄격한 관리를 하게 된다.NHK는 “정상대로라면 내년 8월6일쯤 출산하게 된다”고 보도했다. 황태자의 정자부족이 원인으로 알려진 불임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온황태자 부부는 한국의 고려인삼 엑기스 등도 구입해 장기복용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일본 황실은 황태자 부부가 자녀가 없는데다 동생인 후미히토(文仁·34) 왕자도 딸만 2명을 두고 있어 왕위를 이을 수 있는 황족 가운데남자가 없다.이 때문에 황실에서는 여자 천황을 두는 문제도 검토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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