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할리우드 톱스타 브로드웨이서 다시 날까
왕년의 할리우드 스타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은 막다른 곳에 몰려 있다. 슈퍼 히어로인 ‘버드맨’ 시리즈 영화로 쌓았던 십수년 전 과거의 명성과 대중의 관심은 옛이야기다. 화려함을 되찾고자 하는 욕망은 그를 더욱 절박하게 만든다. 절치부심하며 그가 준비하는 것은 연극 무대다. 브로드웨이 연극을 발판 삼아 잊혀진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확인하고자 한다. 물론 멀어져간 인기, 명성, 부를 되찾고자 하는 세속적 욕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기자의 길을 선택했던 아련한 초심을 되찾고 싶은 마음도 그를 더욱 채찍질한다. 현실이 녹록할 리가 없다. 하이에나 같은 연극 비평가들이 있고, 이미 연극판에 자리 잡은 터줏대감이 있다. 늘 불안하기만 한 삶은 이런 이들과의 갈등만으로도 벅차다. 여기에 홀로 있는 시간이면 자신이 한때 대단한 배우였다는 자의식이 똬리 틀고 있다가 슬그머니 고개를 치민다. 하늘을 날 수도 있고, 주변 물건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슈퍼 히어로의 초능력을 부여해주면서 비루한 현실을 박차고 나오라고 유혹한다. 이제 그의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영화 ‘버드맨’은 20여년 전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다가 최근 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마이클 키튼의 실제 삶을 닮았다.
톰슨은 팬들의 환호성을 갈망하면서도 정작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시스템(SNS)은 외면한다. 젊은 애인이 임신 소식을 전하자 슬그머니 말꼬리를 흐려 겁쟁이라는 비난을 자초한다. 브로드웨이에서 인정받는 스타급 배우 마이크 샤이너(에드워드 노튼)는 가짜가 아니라 진짜를 추구해야 한다고 지청구를 늘어놓으며 쇠락한 왕년의 할리우드 스타와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기싸움을 벌인다. 무대 위에서 진짜 술을 마시고, 연극 무대의 침대 위에서 여배우에게 추근대는 등 괴팍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할리우드의 상업성에서 비껴 서있다는 자부심과 우월감이자 무비스타들이 누리는 인기와 명예에 대한 깊은 곳의 질투심이다. 영화는 영화, 연극 등 연기예술가의 삶을 담은 ‘메타 연기예술’이다. 또한 할리우드 상업 영화에 대한 연극 무대의 신랄한 비판이자 생살여탈권을 쥔 판관 쯤으로 행세하는 비평가들에 대한 창작자, 연기자들의 통쾌한 반란이다.
마지막 대목에서 그는 분장실로 찾아온 헤어진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고백한다. “누군가 자꾸 나에게 말을 걸어.”
뜨거운 키스를 나눈 뒤임에도, 혹은 그 뒤이기에 대답은 더욱 매몰차다. “지금 그 말, 못 들은 걸로 할게.”
선택은 명확해졌다. 모든 것을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마지막 무대로 향한다. 무대 위에서 “내가 왜 사랑을 구걸해야 하지?”라고 중얼거린다. 톰슨은 샤이너 앞에서 보란 듯이 탕, 한 방의 진짜 총을 스스로 쏘고 쓰러진다.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환호하고, 독설의 평론가는 퇴장하고, 샤이너는 당황한다. 그리고 영화는 다시 이어진다.
영화 형식은 특히나 놀랍다. 컷의 분리가 없는 롱테이크다.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은 거의 대부분 영화 분량을 한 컷으로 담아내기 위해 모든 촬영의 청사진을 미리 만들고, 카메라를 마치 하나의 배우처럼 적재적소에 배치해 리허설을 진행했다. 뉴욕 브로드웨이 42번가와 타임스퀘어를 마치 하나의 거대한 연극무대인 듯 넓게 써나간다. 배우의 움직임을 따라서 무대가 바뀌고, 바뀐 무대에 새로운 배우가 등장하고, 공간의 제약이 있을 때는 현란하면서도 신비로운 카메라 워킹으로 화면의 연속성을 끊어지지 않게 이어간다.
이냐리투 감독은 “시간과 공간의 분리가 영화의 본질이라 생각하고 늘 그렇게 작업해왔는데, 이번 작품에서 이것을 형식적으로 구현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오는 23일(한국시간) 열리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9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 감독의 실험적 시도와 웅숭깊은 내용의 완결성은 이미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3월 5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