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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는 남미] 안젤리나 졸리, 베네수엘라 난민 깜짝 위로하다

    [여기는 남미] 안젤리나 졸리, 베네수엘라 난민 깜짝 위로하다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페루를 방문했다. 하루아침에 난민으로 전락한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을 위로하고 이민자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졸리는 유엔난민기구 홍보대사 자격으로 페루 리마에 21일(현지시간) 도착했다. 졸리는 베네수엘라 이민자들과 만나 고충을 청취하고 위로하는 등 리마에 도착한 직후 곧바로 활동을 시작했다. 베네수엘라 이민자들과의 만남은 각본 없이 이뤄지고 있다.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이 집단 거주하는 곳을 사전 예고 없이 방문해 만나는 식이다. 경제난을 견디다 못해 쫓기듯 모국을 등진 베네수엘라 난민들은 졸리와의 만남에 얼떨떨하면서도 고맙다는 반응이다. 고향 카라카스를 떠나 페루에 둥지를 튼 베네수엘라 이민여성 로스메리 야하는 "동네 시장에 갔다 오는 길에 졸리를 만났다"며 "특별히 우리를 위해 페루를 방문했다니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졸리는 페루에서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의 고충과 페루 당국의 사정을 두루 확인할 예정이다. 유엔난민기구 관계자는 "졸리가 3일간 페루에 머물며 인도적으로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이민자들을 받아주고 있는 페루의 어려움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페루에 거주하는 베네수엘라 이민자는 45만6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2015년 6000명과 비교하면 무려 76배 늘어난 수치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현재 해외에 거주하는 베네수엘라 국민은 최소한 230만 명에 이른다. 베네수엘라 전체 국민(약 3060만 명)의 7.5%가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160만 명은 경제위기가 본격화한 2015년 이후 모국을 등진 이민자들이다. 한편 올해 베네수엘라의 경제위기는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베네수엘라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을 135만%로 예상했다. 사진=엘코메르시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추상미 “유산 충격으로 영화 공부 시작해” 배우→감독 귀환

    추상미 “유산 충격으로 영화 공부 시작해” 배우→감독 귀환

    ‘아침마당’에 추상미가 출연해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23일 방송된 KBS1 시사 교양 프로그램 ‘아침마당’은 ‘화요초대석’ 코너로 꾸며진 가운데 추상미가 출연했다. 이날 추상미는 “2008년 미니시리즈를 끝으로 활동을 접었다 10년 만이다. 잠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가장 큰 이유는 결혼 후 4년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몸도 약했다. 몸을 만들면서 쉰 이유가 가장 컸다”며 “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이다”라고 밝혔다. 또 추상미는 “영화감독 공부는 제가 아이를 가지려고 쉬다가 2009년에 임신이 됐는데 유산이 됐다. 그 충격이 컸다. 충격을 잊는 가장 큰 방법이 공부였다. 영화감독은 오래된 꿈이었다. 마흔이 되기 전에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두 편 단편영화를 만들어 경쟁부문에도 출품했다. 그러다 덜컥 임신이 돼서 휴학했다”고 전했다. 추상미는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연출자로 관객을 만난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1951년 폴란드로 보내진 1500명의 한국전쟁 고아와 폴란드 선생님들의 비밀 실화, 그 위대한 사랑을 찾아 남과 북 두 여자가 떠나는 치유와 회복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추상미가 극영화를 준비하던 중에 캐스팅한 탈북 소녀 이송과 함께 폴란드 프와코비체로 향해 전쟁고아들을 돌봤던 교사들과 만나 직접 당시의 이야기를 듣는다. 오는 31일 개봉.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인터뷰 플러스] 원목 시장 사로잡은 ‘국가대표’ CEO… “좋은 나무가 곧 경쟁력”

    [인터뷰 플러스] 원목 시장 사로잡은 ‘국가대표’ CEO… “좋은 나무가 곧 경쟁력”

    강원도 태백에서 나무를 보며 자라던 소년은 국내 원목 탁자 시장의 ‘거목’이 됐다. 멀리 바닷가에서 레저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소년은 50이 넘은 나이에도 국가대표로 활동하는 제트스키 선수가 됐다. 두 이야기 모두 대양목재 김진원 대표의 모습이다. 대양목재는 국내 원목 상판 분야에서 점유율 70% 넘는 목재 전문 기업이다. 고급스러운 나이테 무늬와 견고한 내구성으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창업부터 지금까지 대양목재를 이끌어 온 김진원 대표의 성실함과 기술력이 있다. 그의 특별한 이야기를 듣고자 회사를 찾았을 때, 김진원 대표는 나무 향을 풍기며 단단하게 걸어 나왔다. 나무 전문가로도, 운동선수로도 잘 어울리는 첫인상이었다.→대표님이 직접 목재를 만지시네요. -그럼요. 현장에서 같이 일하죠. 제가 17살 때 목재 일을 시작해서 30년 넘게 했습니다. 이 회사도 2004년에 제가 창업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으니까 제가 제일 잘 알지 않겠습니까. →창업해서 지금까지 회사를 성장시키셨는데, 현재 어느 정도에 이르렀습니까. -쉽게 말씀드리자면, 전국 원목 테이블 중에 70%는 저희 자재를 쓰고 있습니다. 그 테이블을 만드는 원목을 저희가 수입해서 가공해 공급하고 있죠. →상당히 압도적인데, 어떤 점이 대양목재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일단은 좋은 나무를 수입해서 들여온다는 점이 있을 겁니다. 뉴질랜드, 아프리카, 미국 등 세계를 다니며 나무를 찾아서 현지 회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들여오고 있어요. 아무래도 품질과 가격에서 차이가 생깁니다. 좋은 나무를 단가에 맞게 공급하는 게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는 방법 아니겠습니까. 100% 만족도라고까지 장담은 못 해도, 90%는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무 수입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건조입니다. 건조를 잘해야 나이테가 예쁘게 나와요. 건조가 제대로 안되면 나중에 다 틀어지고 무늬도 예쁘게 남지 않습니다. 저희는 2년 동안 자연건조를 시키고 다시 1년 동안 저희의 방법으로 건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입해서 들여온 나무가 상품으로 나가기까진 시간이 상당히 걸리겠군요. -그렇죠. 3년은 걸리니까요. 지금도 재고로 있는 금액이 상당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기다려야 좋은 자재를 만들 수 있어요.→세계를 다니면서 수입을 하신다고 했는데, 어디 나무가 가장 좋습니까. -다 특색들이 다르지만 저는 아프리카 나무를 좋아합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강한 것처럼 나무도 굉장히 강해요. 사람이 숨을 쉬고 살면서 지역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나무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프리카 나무가 강해요. →고품격 가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원목 식탁 인기가 높습니다. -사실 외국에선 우리나라처럼 나무를 막 가공하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오히려 나무 가공을 신기할 정도로 잘하는 기술을 갖게 됐죠. 그런데 요즘에는 자연스러운 느낌을 좋아하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나무 자체의 멋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지신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이 주문하면 설치까지 다 해주나요. -판매하고 배송, 설치까지 다 해드립니다. 또 저희가 전시장도 있고 전시에 많이 나가기도 해요. 직접 보시고 상담도 받을 수 있습니다.→외국에서도 찾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수출도 하시나요. -다른 나라에서도 문의가 오긴 합니다. 그런데 제가 피하고 있어요. 일을 더 늘리는 것보다 지금 수준에서 안정화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다들 어렵다는 요즘에 오히려 매출이 늘고 있습니다. →목재 회사 대표이자 제트스키 선수로도 활동하시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제트스키 선수로는 1세대 리더 같은 입장이죠. 지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는 국가대표로 나가 아쉽게 메달을 놓쳤습니다. →많이 아쉬우셨겠습니다. -종합 4위를 했는데 1차, 2차까지는 제가 1위였어요. 마지막 3차 경기에서 스태프가 작은 실수를 해서 타는 중에 엔진에 물이 들어갔고, 그 때문에 꼴찌를 했습니다. 결국 종합 성적으로는 4위에 그쳤죠. 사업이나 시합이나 작은 실수가 결과에는 크게 작용합니다. →어떻게 제트스키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어렸을 때 참 어렵게 살았어요. 거의 거지꼴이었습니다. 그러니 레저 쪽은 다가갈 수도 없었죠. 제가 강원도 태백에서 자랐는데, 바닷가 멀리에서 보면 사람들이 레저 스포츠를 즐기는 게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그때 바람을 나중에 이룬 거죠. →사업과 선수 생활을 병행하시기에 힘들지 않으신가요. -그만큼 관리를 합니다. 아침에 6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까지 일해요. 퇴근하면 헬스장에서 하루 2시간씩 운동을 하고 10시에 집에 들어갑니다. 그 일정한 생활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해요. 제가 한강에서 레저사업도 하고 있는데, 주말엔 거기에 가서 훈련합니다. 일 년 내내 이 생활을 반복해요. 해외 시합 나는 게 제게는 휴가입니다. →지금도 준비하시는 시합이 있습니까. -10월 말에 중국에서 시합이 있고, 12월에 있는 태국 킹스컵 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태국 킹스컵 대회는 세계적인 대회예요. 빨리 시합에 나가서 지난 아시안게임의 아쉬움을 잊고 싶습니다. →선수 활동을 하면서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시나요. -외국 나가서 시합하고 메달 따면 좋죠. 보람도 있고. 사실 우리나라 제트스키가 스포츠로 활성화는 아직 많이 안 됐고, 메달을 따도 크게 인정 못 받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제가 이끌고 왔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지금 제 이름을 걸고 선수들도 키우고 있는데, 앞으로 이런 일을 더 많이 하고 싶습니다. →선수 생활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실 건가요. -그럼요. 제 나이가 51살인데 아직도 20대들이 못 따라옵니다. 또 이렇게 선수로 뛰고 있으니까 몸 관리도 되고요. →사업의 성패는 소통에 있다고도 합니다. 직원들과의 관계는 어떠신가요. -제가 사장이기는 한데 다들 친구 같고 형님 같습니다. 그렇게 편하게 지내요. 사실 저희 현장 직원들이 나이가 많은 편입니다. 다 60대 이상이에요. 그렇다 보니 외국에 안 나가본 사람들도 있었는데, 저희는 12월이면 전 직원이 해외 워크숍을 갑니다. 올해는 베트남으로 가요.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그것만큼은 꼭 지키려고 합니다. →얼마 전에 TV 프로그램에 태국인 직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EBS 1TV 10월 4일 방송 ‘글로벌 아빠 찾아 삼만리- 태국에서 온 형제’) -태국 직원들이 있는데 정말 자기 일처럼 열심히 하는 직원들입니다. 현장이고 사무실이고 다 그렇게 해요. 그중에 가족이 있는 게 결혼식을 못 올린 직원이 있어서 방송의 도움을 받아 결혼식을 올릴 수 있게 했습니다. 일 년에 한 번씩은 자기 나라 다녀오라고 비행기 티켓도 끊어주고 있어요. 사실 제가 영어는 못하는데, 손발로도 다 통하더라고요. →비전과 꿈이 있다면. -회사 대표로서는, 앞으로 회사를 안전하게 잘 이끌어가는 거죠. 어려운 세상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잘해서 알차고 든든한 회사 만들고 싶습니다. 정태기 객원기자 jtk3355@seoul.co.kr
  • [이사람 e향기] 중증 장애인을 정규직으로… ‘동일 노동·동일 임금’ 실천

    [이사람 e향기] 중증 장애인을 정규직으로… ‘동일 노동·동일 임금’ 실천

    2012년 고용노동부의 ‘고용창출 100대 우수기업’으로 선정되어 연간 100명의 고용 창출을 통해 현재 700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업계의 사관학교 역할을 자임한다. 중증 장애인도 할 수 있는 업무를 찾아 대전시립 손소리복지관과 연계해 7명의 중증장애인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여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지키고 있다. 또한 서비스의 질은 자신이 아닌 직원들이 만드는 것이라는 신념 하에 직원들의 진학과 자격증 취득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건양사이버대와 산업체 위탁교육을 통해 내부마케팅을 실천하고 있다. 현재 10여개 대학과 산학협력을 하며 업계의 리딩컴퍼니로서 지위를 확고히 하는 박동언 에이원손해사정 대표를 찾았다. 사회공헌의 꿈을 가진 50대 초반의 청년 기업가인 그는 최저임금 실현을 위해 시장의 안전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서비스업의 남북경협 진출로 새로운 모델을 만들겠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다. 편집자 주→손해사정사는 보험사고로 생긴 손해에 대해 그 손해액 결정과 보험금 지급을 담당하는 전문가를 말하는데 자격증을 취득하신 계기는. -“밥 먹고 살려거든 경영학과 가라”는 부친의 말씀대로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대학 4학년 재학 중에 합격했어요. 당시 저는 자신감을 갖기 위해 유도동아리에서 활동했는데 직장생활하는 선배님들이 후배들을 찾아와서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때부터 직장생활보다는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하고 계속 찾았어요. 보험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어느 날 스포츠신문에 나온 광고를 보고 손해사정사를 알게 되었고, 응시하기로 결심했어요. 당시 보험 관련 자격증은 보험계리사와 보험손해사정사 2가지가 있었는데 수학에 약했던 저는 후자를 선택했어요.(웃음) →손해사정회사는 보험사와 위탁계약을 맺고 보험사로부터 손해사정 업무를 위탁받는 업체를 말하는데요. 창업하게 된 배경은. -제가 졸업했던 90년대 초반은 손해사정사 자격제도가 본격 시행되어 80년대 후반에 자격을 취득한 분들이 보험회사에서 2년간 수습기간을 거치고 사회에 나올 때였어요. 또한 당시에는 변호사들이 교통사고 등의 피해자에 대한 합의·절충·화해 업무를 내켜 하지 않았고 손해사정사라면 누구나 이런 업무를 해도 저촉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어요. 그러나 이를 금지하는 변호사법이 1993년에 개정되면서 시장의 변화가 조성되었어요. 즉, 지금의 독립손해사정사들이 행하는 보험계약자와 피해자 간의 화해와 절충이 변호사법 저촉의 위험에 노출된 것입니다.그래서 1998년에 다시 공부해서 1종 손해사정사 자격증을 재취득합니다. 근데 실무 경험을 위해 다스카 손해사정이란 회사에서 1년간 실무수습을 합니다. 이때 7년간 쌓아 온 실무경험이 빛을 보기 시작했어요. 당시 보험사의 손해사정사들은 인(人)보험 전문가들이었는데 업무의 내용이 페이퍼 워킹(paper-working) 중심이었어요. 보험금 지급이라는 업무는 동일하지만 제가 경험한 자동차보험 실무를 통해 보고서 속의 이면을 찾아냈던 것이죠. 이것이 업계에서 히트를 쳤어요. “다스카의 박동언 과장이 이런 실력이 있어”라는 소문이 순식간에 나고 이곳저곳에서 저를 찾게 되었죠. 그러던 중 인연이 닿았던 한 분이 “네가 회사 한번 만들어라. 그럼 내가 밀어 줄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2001년에 몇몇 분들과 함께 ‘캄코’를 창업합니다. 저의 개인 브랜드화가 창업의 계기가 되었죠. 이때가 34살이었으니 아직 젊었고 당연히 수업료가 따랐어요. 손해사정사로서 내가 하는 업무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으나 소통의 문제가 있었어요. 그동안 손해사정 회사에서 업무라는 것이 1~2명의 사람과 일을 하는 것이기에 여럿이 협업과 협력을 통해 조직을 운영해 본 경험이 없었던 것이었죠. 약 1년 반 만에 그곳을 떠났고 이후 에이원이 성공하고 다시 그 회사를 인수했어요. 최소한 자존심은 세웠습니다.(웃음) →창업 후 20여년 사업을 통해 느낀 점은. -‘나는 참 운 좋은 사람이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소상공인이 많이 힘들잖아요. 그들이 일을 안 하고 게을러서가 아니라 때와 운이 잘 안 맞거나 부족해서라고 생각해요. 제가 성공 중인 것은 저의 노력과 능력도 있겠지만 운이 90%인 것 같아요. 2004년 홈쇼핑에서 보험상품을 팔기 시작하면서 보험시장이 10배 성장했어요. 손해사정 시장 또한 그 이상의 성장이 있었어요. 15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 크레임 수가 100배 증가한 시장에서 제가 살아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개인 준비가 되어 있으니 때가 되어 운이 열린 것이죠. →경영자로서 경영철학은 무엇인지. -저는 캄코라는 회사 경영을 통해 소통을 배웠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말을 내 입으로 하지 말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상대의 입을 통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렇게 해’라고 하는 것보다 스스로 결정해서 자발적으로 하면 10배 이상의 업무효율이 있다고 봅니다. 이것이 자발성을 극대화하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 즉 역량증진이고 권한위임인 것이죠. CEO는 직원들이 일을 잘하게 하는 어시스턴트(assistant) 즉 조력자입니다. 고객은 서비스를 받는 사람입니다. 저에게 직원은 내부고객이고 CEO인 저는 마땅히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하는 것이죠. →A1이란 회사명은 최고라고 해석이 되는데 사업을 회사명에 맞게 이루었는지. -A1은 ‘A클래스 넘버원’입니다. 우리 사명에 있듯이 우리는 어디 가든 1등을 해야 해요. 1등을 못 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웃음) 우리 회사는 직원이 700명이 넘고 매출액은 올해 370억원 수준으로 예상됩니다. 일반 손해사정 회사 업계에서 인보험부분 1위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회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고 이를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A1만의 경영노하우와 차별적 경쟁력을 공개할 수 있는지. -임파워먼트와 내부마케팅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대 경영은 사람의 생산성과 질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이고 여기서 기업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서비스의 질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죠. 서비스의 질은 내가 아닌 내부고객인 직원이 만드는 것입니다. A1은 관리를 잘하는 회사로 정평이 나 있어요. 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관리라는 서비스를 통해 더 좋은 품질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으로 A1만의 손해사정 업무 스타일이 근육이 되고 굳은살이 된 결과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직원 개인이나 팀이 아닌 회사 전체를 끌어 올려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경쟁력이 되는 것이죠. 손해사정 업무의 특성상 정확성과 신속성이 서비스의 질을 규정하는 전부입니다. 정확성은 업무의 기본이기에 결국 신속성에서 판가름 나죠. 업무처리를 신속하게 하면 민원이 없어져요. 민원이 없어지면 업무처리량이 많아지고 더 빨라지죠. →손해사정 업계를 소개해 주신다면. -손해사정업계는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의 자회사들과 저희 같은 일반 손해사정 회사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대기업 보험사 중 시장점유율이 작은 회사들은 자회사를 별도로 두는 것보다 일반 손해사정 회사들과 계약을 통해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효율성이 높기에 저희 같은 회사가 필요한 것이죠. 일반 손해사정 회사 업계는 전체 시장점유율이 20% 수준으로 50여개 회사와 종사자는 5000명 수준으로 추산됩니다. 공공재적 성격의 보험은 형평성과 공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보험계약자가 돈을 지불하고 사고가 발생하면 보험금을 지급받기로 약속하고 계약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고가 발생하면 돈을 주는 회사(보험사)가 피해자에게 보험지급액을 결정하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손해사정사 혹은 조직을 통해 공정하게 지급액을 결정하여 보험금을 지급하자는 것이 손해사정사를 둔 근본 취지입니다. 이는 대기업 보험사 중심에서 점증적으로 공정성이 보장되는 그리고 손해사정사 제도 도입의 취지에 맞게 개선해야 할 시장의 숙제가 있어요. →손해사정 회사를 운영하면서 법 제도적 어려움이나 개선점이 있으신지. -모든 법 제도가 마찬가지이지만 사회적 변화에 법과 제도가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우리 사회는 디지털 그리고 모바일 세계에서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법과 제도로서 현재를 규제하려 하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예를 들면, 손해사정사의 지점 상근 관련 문제는 법 해석의 모호함을 떠나 공간적 위치와 상관없이 언제든지 해당 사건에 개입 가능한 현재의 모바일 환경에서 굳이 상근 여부를 물어 규제하여야 하는지 의문이 들어요. 또한 손해사정 자격자의 수도 그렇습니다. 보험사와 손해사정 회사는 채용인력에 상응하는 손해사정사의 채용이 의무화되어있는데, 지난 10년간 우리 손해사정 수요는 20배 이상 성장하였지만 손해사정사의 배출은 10년 전과 별반 차이가 없고 어렵게 손해사정시험에 합격시켜도 대우가 좋은 대기업 보험회사 등에 빼앗기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어요. 이는 우리 손해사정업에 대한 관계 당국의 무관심에서 나온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었다면 이렇게 비현실적인 규제나 정책 등은 나오지 않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최근 한국 사회의 최저임금 이슈에 대해.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방법도 없고, 방어기제 없이 당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시장의 ‘안전판’이 필요합니다. 손해사정협회와 보험사, 감독기관 등이 함께 인건비 상승과 업무 내용 등을 고려한 요율 조정을 협의하는 제도적 장치가 안전판입니다. 이를 통해 돈의 흐름을 뚫어주고 갑을(甲乙) 간에 공정거래가 이루어져 피고용인들의 소득이 향상되고 소비가 진작되어 국가 경제를 선순환화 해야 합니다. 저는 정부의 최저임금 상승에 적극 동의하는 CEO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중소기업에 대한 섬세한 배려와 시장의 안전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정부의 중소기업육성정책에 대해 신뢰를 갖기 어려울 것이며, 장기적으로 중소기업의 생존은 확신할 수 없어요.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사업 구상과 포부에 대해서. -남북경협이 반드시 제조업만 가능한 것은 아니지요. 해결할 문제는 많으나 아이템 개발을 통한 서비스업의 진출이 새로운 남북경협의 모델이 될 것이고 손해사정업도 남북화해에 기여할 것입니다. A1은 인보험 전문회사로서 의료와 복지 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고령사회를 대비해 요양원을 연구 중입니다. 고령사회인 일본을 벤치마킹하고 있어요. 그리고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 명이 넘어서고 향후 보다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팻보험’을 시대에 맞게 준비하기 위해 동물병원 설립을 추진 중입니다. 개인적인 저의 꿈은 이미 이루었어요. 90년대 후반 두 번째 손해사정사 자격증 공부를 할 때, 저는 30명 정도 되는 회사의 사장이 꿈이었어요. 지금부터는 A1과 사회 공헌을 하며 살고자 합니다. 김병식 객원기자 kbs@seoul.co.kr ■ 주요 프로필 1968년 전북 익산 출생 1993년 2월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졸업 2018년 베트남 하노이대 AMP 1992년 12월 3종대인 손해사정사 2000년 12월 1종 손해사정사 2004년~ 현재 에이원손해사정㈜ 대표이사 2001~2003년 ㈜캄코손해사정 대표이사
  • [데스크 시각] 대북 제재의 추억/김미경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대북 제재의 추억/김미경 국제부장

    “개성공단을 닫으라는 미국 등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의 요구를 계속 막았었는데 결국….”2016년 2월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폐쇄를 발표한 직후 만났던 한 전직 외교관은 이렇게 털어놓았다. 유엔 외교 현장에서 활동했던 그는 유엔의 대북 제재는 어쩔 수 없지만 남북경협 상징인 개성공단까지는 닫을 수 없다는 신념에 안보리 이사국들의 폐쇄 요구를 오랫동안 저지하는 데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이 이어지면서 박근혜 정부는 결국 유엔 제재 동참을 이유로 들며 하루아침에 개성공단의 문을 닫아버렸다. 박근혜 정부와 마찬가지로 대북 강경 정권이었던 이명박 정부도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5·24조치로 대표되는 대북 제재에 앞장섰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을 중단했으며, 이어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의 책임을 묻기 위해 5·24조치를 발표, 개성공단 등을 제외한 모든 남북 교류를 중단했다. 한국 정부가 취한 가장 강한 대북 제재로 꼽히는 5·24조치에서도 개성공단은 빠졌었다. 그러나 몇 년 후 국제사회의 개성공단 폐쇄 요구를 한국 정부가 결국 수용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각종 대북 제재는 남북관계 악화는 물론, 한국 기업 등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더욱 강화됐고, 한국 정부도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했다. 한국 정부는 특히 2013~2014년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하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찬성표를 던지며 압박의 목소리를 높였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역사도 10년이 넘었다. 2006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채택된 대북 제재 결의 1695호를 시작으로, 지난해 12월 제재 결의 2397호까지 굵직한 제재가 11개나 채택됐다. 안보리 결의상 대북 제재 대상은 개인·단체 120개가 넘는다. 또 미국 정부의 대북 독자 제재는 경제·인권 제재뿐 아니라 ‘세컨더리 보이콧’(제3국 제재)까지 포함돼 안보리 제재보다 더 강력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렇다면 5·24조치로 상징되는 한국 정부의 대북 제재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미 정부의 대북 제재는 얼마나 효과를 거뒀을까.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 전직 외교관은 “제재 효과 여부는 진짜 효과가 날 때까지 알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각종 대북 제재가 나올 때마다 효과에 대한 논란이 항상 있었지만, 효과를 산술적으로 계산하기는 어려워도 결국 어떤 방법으로든 효과는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란이 핵협상에 나섰듯 북한이 올 들어 협상에 나선 배경에도 제재의 영향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제사회 또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가하는 제재는 외교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용한 수단이다. 제재를 통한 경제적 불이익뿐 아니라 심리적 타격도 상당하기 때문에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남북, 북·미 협상 국면에서 강경화 외교장관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과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제재 완화 제안은 제재 부과와 ‘동전의 양면’인 제재 해제라는 또 다른 외교적 방법을 쓰자는 것이다. 올 들어 열린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골자는 ‘북한의 비핵화와 이에 상응하는 체제 안전 보장’이다. 대북 제재 해제는 체제 보장의 핵심인 경제 발전과 관계 정상화, 평화 협정으로 가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동참했다면 ‘비핵화 운전대’를 잡은 만큼 이제는 국제사회의 제재 해제 동참도 이끌어야 할 것이다. chaplin7@seoul.co.kr
  • ‘아픈 청춘’ 밥상에서 듣다

    ‘아픈 청춘’ 밥상에서 듣다

    임대주택·취업 지원 등 제도 재점검 “청년미래기금 조성하겠다” 약속“청년들이 ‘이런 정책을 해보자’라고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어요. 행정에 여러분 의견을 반영하고, 하루아침에 정책이 바뀌지 않도록 청년 기금를 제도화할 예정입니다.” 유성훈 서울 금천구청장은 지난 18일 독산동 시흥대로 ‘청춘삘딩’ 3층 공유주방에서 청년 12명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청년 정책의 일관성 있는 추진을 위해 청년미래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청년미래기금’ 조성은 대표적인 유 구청장 선거공약이다. 금천구는 청년 관련 정책 사업이 많은 자치구 가운데 하나다. 이날 간담회 장소인 공유주방 ‘대대식당’도 청년 1인 가구와 혼밥족을 위해 소셜 다이닝을 진행하는 곳이다. 식재료 구매부터 준비, 조리, 뒷정리까지 함께 하면서 고립된 청년들을 사회로 이끌어 내는 공간이다. 대대식당 운영자 정대윤씨는 “청년들이 모여서 밥을 만들어 먹고 관계를 맺어 가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참석한 청년들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오진선씨는 “일을 하다 보면 누군가와 관계를 맺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금천구에 이런 공간들이 조금 더 생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한나씨는 “청년 임대주택을 짓는다는 소식에 빈민 거주지가 된다는 반응이 나온다”며 “청년들이 모여 살면서 부정적인 영향만 미치는 것으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곽승희씨는 “나이만 비슷하다고 해서 청년 정치인이 아니다”라며 “구청장님은 다음 세대인 청년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 청년 구청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금천구는 최근 청년 정책의 전반적인 점검과 새로운 정책 수립을 위해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구가 시행하고 있는 정책 가운데 청년 임대주택, 일자리카페 취업지원 프로그램, 청년 학습공동체 지원 사업, 1인 가구 청년의 식생활개선사업, 청년 커뮤니티 교류 등은 정책적으로 필요하다고 보는 청년이 많았다. 유 구청장은 청년들과의 만남을 마친 뒤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니 우리 구에 맞는 청년 정책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며 “1인 가구나 청년을 위한 공간 등 ‘금천형 청년정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강서구 주차장 40대 여성 살해범은 ‘전 남편’… 경찰 ‘긴급체포’

    강서구 주차장 40대 여성 살해범은 ‘전 남편’… 경찰 ‘긴급체포’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40대 여성 피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전 남편이 경찰에 붙잡혔다.서울 강서경찰서는 22일 오후 9시 40분쯤 서울의 한 병원에서 피해자 이모(47·여)씨의 전 남편 김모(49)씨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범행 동기 등 경위에 대해 계속 수사할 예정이며 조사 후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16분쯤 등촌동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이씨가 흉기에 찔려 피를 흘리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대원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씨는 이미 숨진 뒤였다. 경찰이 근처 폐쇄회로(CC)TV 자료 분석한 결과 사건은 이날 오전 4시 45분쯤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흉기를 현장에 남긴 채 도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이 아파트 주민으로 아침 운동을 나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공지영 “한 개인 말살해도 되나···조직적 움직임”···‘사마귀 여인’ 사진 캡처

    공지영 “한 개인 말살해도 되나···조직적 움직임”···‘사마귀 여인’ 사진 캡처

    소설가 공지영(56)씨가 배우 김부선씨와의 통화 녹취록을 처음 SNS에 게재한 사람을 고소하겠다고 밝힌 후 ‘조직적인’ 악성댓글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공지영씨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한 개인으로 한계가 있다. 아침부터 ‘자살하라’, ‘절필하라’는 메시지가 쏟아진다”며 “한 개인을 이렇게 말살해도 되는 건가? 이건 거의 조직적 움직임···”이라고 썼다. 이와 함께 공지영씨는 ‘이재명-김부선 스캔들 의혹’과 관련, 자신을 “교미하고 수컷을 잡아먹는다는 사마귀 여인”이라고 비난한 네티즌의 글과 유튜브 영상 캡처 사진 등을 공유했다.앞서 공지영씨는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김부선과의 통화 녹취파일을 트위터에 유출한 최초 인터넷 게시자를 고소하겠다고 했다. ▶[관련기사] 공지영 “김부선과 통화 녹취록 첫 게시자 ‘낙지사전과4범찢자’ 고소”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강서구 아파트 주차장서 40대 여성 피살...유력 용의자는 전 남편

    강서구 아파트 주차장서 40대 여성 피살...유력 용의자는 전 남편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4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숨진 이씨의 전 남편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추적 중이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22일 오전 4시 45분쯤 등촌동의 한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서 이모(47·여)씨가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16분쯤 이씨가 흉기에 찔려 피를 흘리고 있다는 119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대원이 출동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씨는 이미 숨진 뒤였다. 당시 현장에는 이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혈흔이 남아 있었고, 이씨 주변에 흉기가 떨어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이 아파트 주민으로 아침 운동을 나가는 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피해자의 목과 배 등에 수차례 흉기에 찔린 상처가 있는 점 등으로 미뤄 이씨가 살해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주변 폐쇄회로(CC)TV 자료를 분석한 경찰은 이씨의 전 남편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냉장고를 부탁해’ 먹방 대모 노사연 냉장고 공개, 고기+고기...

    ‘냉장고를 부탁해’ 먹방 대모 노사연 냉장고 공개, 고기+고기...

    ‘냉장고를 부탁해’ 가수 노사연이 아이유에게 받은 식재료를 공개했다. 22일 방송되는 JTBC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는 200회 특집으로 진행된다. 이날 방송에는 ‘원조 꽃사슴’ 가수 노사연과 ‘예능 치트키’ 웹툰작가 기안84가 게스트로 출연한다. 이날은 ‘먹방 대모’ 노사연의 냉장고가 먼저 공개된다. 최근 진행된 ‘냉장고를 부탁해’ 녹화에서 다양한 종류의 산해진미, 겹겹이 쌓아놓은 고기, 가정집에서는 보기 힘든 생선 메로까지. 식재료가 가득한 노사연의 냉장고가 눈길을 끌었다. 노사연은 “아침에 모닝 고기는 꼭 먹어야 한다. 내 아침 밥상에는 ‘육해공’이 다 나온다”며 남다른 고기 사랑을 보였다. 이에 기안84는 “음식이 많으면 남아서 못 먹는 것도 생기지 않느냐”라고 물었고, 노사연은 “우리 집은 남는 거 없다”라며 답해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노사연이 특히 사랑하는 식재료도 공개됐다. 나이를 초월한 노사연의 절친 아이유가 보내준 식재료를 MC들이 만지려 하자, 노사연은 “그건 안 된다“며 만류했다. 이어 ”기운이 없을 때 링거보다 ‘이것’이 좋다”라고 밝히며 힘들 때마다 먹는 ‘이것’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것’의 정체는 본 방송에서 공개된다. 한편 이날 노사연은 “예전에는 남편 이무송만 보면 떨렸는데, 지금은 음식만 보면 떨린다”며 흥분된 모습을 감추지 못해 웃음을 자아냈다. 200회 특집다운 게스트 노사연의 ‘역대급’ 냉장고는 이날(22일) 밤 11시 방송되는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딸 혼냈다는 이유로 교사 구금한 中 경찰간부 논란

    딸 혼냈다는 이유로 교사 구금한 中 경찰간부 논란

    중국의 경찰 부서장이 자신의 딸에게 벌을 준 교사를 구금했다가 결국 정직 처분을 받았다. 20일 중국 매체 더페이퍼 보도에 따르면, 지난 16일 화요일 아침 8시 쯤, 후난성에 있는 위훙 초등학교에 경찰 한 무리가 나타났다. 경찰들은 교사 허씨(27)를 끌어내 경찰서로 데려갔고, 몇 시간 동안 가둬두었다가 결국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그녀를 풀어주었다. 그 전날 교사 허씨는 주저우현 경찰 부서장 자오씨의 딸이 지각을 하자 같은 반 친구들 앞에서 벌을 주었고, 그 일이 화근이 됐다. 경찰서에서 풀려난 허씨는 현지 SNS인 위챗에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경찰서로 연행된 후 곧장 취조실로 끌려갔다”며 이번 일을 ‘끔직한 경험’이었다고 묘사했다. 이어 “풀려났지만 이후로도 악몽에 시달렸고, 취조실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허씨는 “취조 과정 내내 감시를 당했다. 어느 누구도 마실 물이나 먹을 음식을 주지 않았다”면서 “그냥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쳤을 뿐인데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거죠? 제가 무슨 잘못을 했죠? 누가 경찰 부서장에게 그러한 힘을 주었나요?”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교사 허씨의 발언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로도 알려지면서 대중의 분노를 촉발했다. 사람들은 “나중에 딸에게 성적을 짜게 줬다고 또 체포해가는 것 아니냐”, “부서장을 파면해야한다”는 반응을 보였고, 경찰의 강압적인 행동과 권력 남용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경찰 관계자는 “비난이 일자 해당 사건과 연루된 경찰 부서장에게는 정직 처분이 내려진 상태며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강서 PC방 살인’ 피의자 김성수 신상정보 공개 뒤 첫 얼굴 공개…“동생 공범 아니다”

    ‘강서 PC방 살인’ 피의자 김성수 신상정보 공개 뒤 첫 얼굴 공개…“동생 공범 아니다”

    서울 강서구 PC방 아르바이트생 살인 사건 피의자 김성수(29)의 신상정보가 공개된 가운데, 김성수가 22일 정신감정을 위해 공주 치료감호소로 이송됐다. 서울 양천경찰서 유치장에 입감돼 있던 김성수는 치료감호소로 이송되면서 처음으로 언론에 얼굴이 공개됐다. 이날 오전 11시쯤 양천경찰서를 나선 김성수는 ‘왜 범행을 저질렀나’, ‘왜 그렇게 잔혹하게 범행했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생도 공범이라는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는 “공범이 아니다”라면서 입을 열었다. 이어 경찰에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한 것에 대해서는 “가족이 냈다”라고 말했다. 실제 우울증이 범행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죄송하다”라고 답하며 “제가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뒤 호송차에 올라탔다. 김성수는 공주 치료감호소로 보내진 뒤 약 한달간 정신감정을 받게 된다. 피의자의 정신 상태가 어떤지 판단하기 위해 일정 기간 의사나 전문가의 감정을 받도록 하는 감정유치 제도에 따른 것이다. 경찰은 이날 아침 김성수의 성명과 나이, 얼굴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 강력범죄의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얼굴을 공개할 수 있다. 경찰은 “특정강력법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상 범죄의 잔인성과 중대성,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의 확보, 재범 방지와 범죄 예방 등 공공의 이익, 국민의 알권리 등 대부분의 사항을 충족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경찰이 김성수의 사진을 언론에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김성수가 언론에 노출될 때 얼굴을 가리지 않은 방식으로 공개한다. 김성수는 지난 14일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신모(21)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성수는 이날 PC방을 찾았다가 다른 손님이 남긴 음식물을 자리에서 치워달라는 요구를 하다 신씨와 말다툼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말다툼 뒤 PC방을 나갔던 김성수는 흉기를 챙겨 다시 PC방으로 돌아와 입구에서 수십차례 흉기를 휘둘러 신씨를 살해했다. 신씨는 병원에 이송됐지만 결국 숨졌다. 일각에서는 현장 CCTV에 김성수의 동생이 피해자의 팔을 붙잡는 등 범행을 도왔다는 의혹을 제기해 동생을 공범으로 입건하지 않은 경찰의 대응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경찰은 전체 CCTV 영상과 목격자 진술 등을 종합해볼 때 동생이 범행을 공모했거나 방조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사 과정에서 김성수 측이 경찰에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심신미약을 이유로 처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이날 낮 12시 현재 86만명이 넘는 인원이 청원에 참여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아침산책 여성, 강서구 아파트 주차장서 피살…경찰 CCTV 확보 분석

    아침산책 여성, 강서구 아파트 주차장서 피살…경찰 CCTV 확보 분석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서 4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2일 서울 강서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16분쯤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여성 A(47)씨가 흉기에 찔려 피를 흘리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 B씨는 이날 출근을 하러 나섰다가 주차된 차들 사이에서 A씨를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당시 현장에는 피가 흘러 있었고 A씨 주변에 흉기가 떨어져 있었다고 B씨는 전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피해자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숨진 A씨는 이 아파트 주민으로 아침 운동을 하러 나가는 길에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피해자의 목과 배 등에 수차례 흉기에 찔린 상처가 있는 점 등으로 미뤄 A씨가 살해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펴고 있다. 경찰은 범행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흉기와 인근 폐쇄회로(CC)TV 자료 등을 확보해 분석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집사부일체’ 이문세 암투병, 봉평 집 최초 공개 “럭셔리 마구간”

    ‘집사부일체’ 이문세 암투병, 봉평 집 최초 공개 “럭셔리 마구간”

    ‘집사부일체’ 이문세가 암투병 과거를 고백했다. 21일 방송된 SBS ‘집사부일체’에서는 가수 이문세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이문세는 최근 강원도 봉평에서 자연인으로 생활하며 새 앨범을 작업 중이다. 그가 지향하는 건 ‘사람’과 ‘정’이 있는 아날로그의 삶이다. 산 속에 위치한 이문세의 봉평 집은 창문 밖에 곧바로 울창한 나무숲이 보이는 저택이었다. 나무 향이 나올 것 같은 아늑한 분위기에 햇살과 하늘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집이었다. 멤버들은 연신 감탄하면서 집을 구경했다. 이문세는 홈레코딩을 하는 공간까지 공개했다. 아래층에 위치한 녹음실은 아날로그 공간에 디지털 레코딩 장비들이 가득해 멤버들을 놀라게 했다. 이승기는 “이 정도면 아날로그가 아니라 럭셔리 같다”고 말하자 이문세는 “이게 내 집은 아니니까. 친구네 집이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 집의 초대 손님은 ‘집사부일체’ 제자들이 처음이다. 이문세는 “그동안 누구도 부르지 않았다. 나 혼자의 시간이 정말 필요하고 소중했다. 친구들을 부르면 도심에서의 삶과 다를 바 없어진다”라고 이유를 전했다. 봉평에서 이문세의 유일한 친구는 7살 된 시베리아 허스키 룰루다. 과거 두 번 갑상선암으로 투병했던 이문세는 “자연에서 몸을 치유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이 룰루가 나를 지켜줬다. 매일 아침 내게 용기를 주고 내가 책을 읽거나 밥을 먹을 때도 항상 내 옆에 있어줬다”고 밝혔다. 이문세는 “룰루의 최고의 라이벌은 내 아내다. 룰루는 느끼지 못하지만 아내는 질투를 느낀다”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 봉평 저택에서 탄생한 이문세의 신곡은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 기술을 한데 담은 것. 이날 방송에선 이 신곡의 코러스를 뽑고자 제자들이 가창대결을 벌이며 흥미진진함을 더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의정 포커스] 투잡하던 성실맨…“소통 체어맨 될 것”

    [의정 포커스] 투잡하던 성실맨…“소통 체어맨 될 것”

    “여야는 물론 집행부인 구청과의 협력, 그리고 구민과의 소통에 힘쓰면서 동대문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도록 의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2011년 보궐선거를 통해 입문한 김창규 동대문구의장은 3선을 달려오는 동안 지역 민원 해결에 앞장서 왔다. 당선 이듬해인 2012년 5월부터 동향 선배이자 이 지역 국회의원인 안규백 의원의 사무국장 일을 5년 7개월간 겸임하면서 각종 민원을 다뤄 왔다. 이제 사무국장을 그만뒀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김 구의장을 찾아온다. 그는 “민원을 많이 경청할수록 의정 실무 처리 능력도 좋아진다”며 “민원인 접견은 구의회 업무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인천전문대 전기공학과 84학번 출신인 김 구의장은 25세 때 소규모 전기부품 제조공장을 창업해 청계천 세운상가에 납품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경기가 악화되자 2년 동안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조리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다녔다. 지역에 일식집을 개업해 2002년 청계천 고가 철거 공사 당시 공장 문을 닫을 때까지 ‘투잡’을 뛰었을 만큼 성실과 근면을 인생의 신념으로 삼았다. 2003년부터 당시 이 지역 민주당 국회의원 김희선씨를 도와 산악회 부사무국장으로 일했을 때는 매주 일요일마다 산행에 나선 것만 440회에 달할 정도다. 새벽 5시부터 당시 산에 오르는 회원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도맡았다.구의원이 된 뒤 식당은 접었지만 온라인 꽃 쇼핑몰을 운영하며 가족 생계도 책임지고 있다. 현재 한국외대 정치언론행정대학원 공공감사정책학과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데다 두 자녀도 학자금이 필요한 대학생이어서 생업을 버릴 수가 없다. 삼성생명에서 프로농구 선수로 뛰었던 부인 탁경희씨는 여자 프로농구 진행요원으로 일하면서 김 구의장의 지역활동도 돕고 있다. 김 구의장은 8대 의회 전반기 의장으로서도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승부한다는 각오다. 구의회 내 여야 비율이 지난 7대 동수(더불어민주당 9명, 자유한국당 9명)에서 이번 8대 들어 10대8로 기울어졌지만 상임위의장 분배 등 모든 면에서 야당을 소외시키지 않고 함께 간다는 방침이다. 집행부에 대해서도 감시는 하되 최대한 협조하며 구민 삶을 편안히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각오이다. 김 구의장은 “공약은 반드시 실천하고 지역발전을 위해 발로 뛰는 구의회를 만들어 살기 좋은 동대문구를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난민친구 악플 이유들 있겠죠”… 어른보다 너른 열다섯들의 품

    “난민친구 악플 이유들 있겠죠”… 어른보다 너른 열다섯들의 품

    “‘너희 다 선동당하는 거다. 어린애들이 난민 문제에 대해 아느냐’는 식의 악플이 정말 많았어요. 하지만 악플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죠. 어른들이 모든 상황을 다 아는 게 아니니까요.”이란 출신 중학교 3학년 A군(15)이 재심 끝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지난 19일 A군의 친구 중 한 명이자 같은 학교 학생회장으로 A군을 도운 김모양은 그동안 어려운 점은 없었냐는 질문에 웃으며 이같이 답했다. “전교생이 걔랑 친구일걸요” 좋은 친구 잃기 싫어 스스로 팔 걷고 나서다 A군이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학교 친구들이 악플에 굴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알리고 설득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 친구가 공정한 심사를 받아 난민으로 인정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글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모두가 한마음으로 움직였다. “전교생이 A군의 친구일걸요”라고 말한 한 학생의 말처럼 A군의 사교성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A군은 1·2학년 학급 반장을 지내기도 했다. 한 학생은 “A군이 먼저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한 건 아니다”라면서 “지난해 말 A군이 난민 신청 재심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업에 자주 빠지자 친했던 친구들이 이유를 물어봐 자연스럽게 A군이 이란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그래서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라고 귀띔했다. 7살이던 2010년 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온 A군은 천주교로 개종한 뒤 종교적 박해에 따른 위협 때문에 난민 신청을 했다. 이슬람교가 국교인 이란은 개종자를 반역자로 여겨 최고 사형까지 처한다. 2016년 첫 신청 당시 “나이가 어려 종교적 가치관이 확립됐다고 보기 힘들다. 위협 가능성이 낮다”며 기각됐지만 A군은 개종 사실을 알린 뒤로 이란의 친척들과 연락도 끊겼다. “정당한 이유 있으니 우린 당당” “친구 개종 확실, 돌아가면 탄압”… 공개 시위 청와대 국민청원 뒤 A군이 난민 재신청을 한 7월 19일엔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앞에서 학교 친구 47명이 직접 준비한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 이날 함께한 한 학생은 “얼굴이 공개되면 혹시 길을 가다 해코지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게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친구가 이란으로 돌아갔을 때 위험에 처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당당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학교를 찾아 A군을 격려하자 언론의 관심은 더 커졌다. 친구 16명은 재심 이틀 전인 지난 3일 청와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 출입국·외국인청은 “신앙심이 확고해졌다고 판단했다”며 A군의 난민 지위를 인정했다.“이름은 잊혀지고 사건은 기억돼야” 입장문·피켓 등 모두 아이들 손으로 선생님의 지원도 큰 보탬이 됐지만 교사 오모(52)씨는 “응원집회나 국민청원 등은 모두 아이들의 아이디어였고, 나는 집회 신고 등 실무적 도움만 줬다”고 손사래를 쳤다. 국민청원 글과 난민 인정 당일 발표된 ‘이름은 잊혀지고, 사건은 기억되어야 합니다’라는 입장문 모두 학생들이 직접 썼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학부모들은 ‘A군이 내 아이 친구’라며 오히려 자신의 일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줬다”고 공을 돌렸다. 지난 8월 A군과 염수정 추기경을 만나 함께 도움을 청하기도 했던 오씨는 아이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난민 문제를 더 깊이 고민할 기회를 갖길 바랐다. 그는 “이번 과정에서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가짜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토론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서울신문이 만난 A군의 친구들은 난민에 비판적인 일부 어른들에 대해 원망보다는 “충분히 이해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모군은 “난민을 덮어놓고 반대할 게 아니라 올바른 심사를 할 수 있도록 인력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조 교육감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학생들이 어른들도 실천하기 어려운 인류애를 보여 줬다”면서 “우리는 동료 시민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학생들에게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고교 진학의 꿈 이뤘지만…” 작은 거인들의 인류애 ,부친까지 닿을까 아직 남은 문제도 있다. A군의 아버지는 난민 불허 결정을 받고 행정 소송 중이다. 최악의 경우 이란으로 추방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꿈이라는 A군에게 심사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다. A군은 “아침 8시 반이 등교 시간인데, 제가 8시에 가장 먼저 학교에 와요. 그런데 어느 날 등교했더니 친구들이 새벽에 먼저 와서 저를 위한 피켓을 만들고 있더라고요”라고 돌이켰다. “친구들이 고마웠다”는 답을 기대하던 기자에게 A군은 ‘쿨’하게 말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친구를 위해 스스로 하는 친구들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글 사진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미우새’ 배정남 출연, 母벤저스도 놀란 집 “이런 집은 처음”

    ‘미우새’ 배정남 출연, 母벤저스도 놀란 집 “이런 집은 처음”

    ‘미우새’ 배정남이 출연을 예고했다. 최근 드라마, 영화, 예능 등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하며 미친 존재감을 입증한 모델 겸 배우 배정남이 21일 ‘미운우리새끼’(이하 ‘미우새’)에 출연해 매력만점 일상을 공개한다. 이날 공개된 배정남의 집은 박물관을 연상케 할 정도로 온갖 특이한 아이템들이 가득해 시선을 모았다. 뿐만 아니라 평소 상남자로 알려진 그가 아침에 눈 뜨자마자 달콤한 목소리로 찾는 기묘한 동거 파트너(?)까지 등장했다. 이에 MC들과 어머니들은 “역대 ‘미우새’ 아들의 집들 중에서도 가장 독특하다”며 혀를 내둘렀다는 후문이다. 배정남은 아침 한 끼를 차려서 먹는데도 짠한 ‘미우새’ 와 카리스마 넘치는 ‘상남자’ 를 넘나드는 묘한 매력을 발산했다. 특히, 짠함의 아이콘 임원희와 닮은 듯 다른 듯 한 모습으로 녹화장에 폭소를 자아냈다. 이 외에도 패셔니스타 배정남이 옷 쇼핑에 나서 관심을 모았는데, 그는 평범한 옷가게가 아닌 기상천외한 장소로 향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어서 여성용 원피스를 고르는가 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초저가 옷들을 잔뜩 구매해 지켜보던 母벤져스로부터 “상민이보다 더 하다!”는 탄식을 불러오기도 했다. 한편, SBS 예능프로그램 ‘미우새’는 21일 오후 9시 5분에 방송된다. 사진제공=SBS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레오나르도 다빈치, 사시 덕에 천재적 작품 남겼다” (연구)

    “레오나르도 다빈치, 사시 덕에 천재적 작품 남겼다” (연구)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역사적인 걸작들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가 ‘간헐성 외사시’로 불리는 눈 질환 때문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집중할 때는 사물이 하나로 보이지만 긴장을 풀면 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이 증상이 아이러니하게도 다빈치가 사물의 거리나 깊이를 평면상에 정확하게 그려내는 데 도움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영국 런던 시티대학의 크리스토퍼 타일러 교수는 다빈치가 사시였다는 증거를 ‘미국의학협회 안과학’(JAMA Ophthalmology) 최신호(18일자)에 발표했다. 타일러 교수에 따르면, 다빈치는 간헐성 외사시를 지녔을 가능성이 크다. 간헐성 외사시는 피로할 때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또는 공상을 할 때 등에 한쪽 눈이 바깥쪽을 향하는 상태를 뜻한다. 타일러 교수는 다빈치의 후기 자화상 1점을 비롯해 그를 모델로 한 다빈치 스승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조각상 2점, 그리고 다빈치가 자기 모습을 투영했다고 알려진 그림 3점까지 총 6점의 작품을 대상으로 시선의 방향을 비교 분석했다. 각 작품의 동공과 홍채 그리고 눈꺼풀의 위치를 측정해 각도로 변환했다. 그 결과, 다빈치에게는 외사시 경향이 있으며 눈의 긴장이 풀렸을 때 왼쪽 눈이 바깥쪽으로 -10.3도 향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좀 더 살펴보면, 다빈치가 후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자화상은 -8.3°였으며, 최근 경매에 나와 유명해진 ‘살바도르 문디’ 역시 −8.6°로 나타났다. ‘세례 요한’(Young John the Baptist)은 −9.1°, 인체 비례도로 유명한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5.9°로 나타났다. 다빈치를 모델로 삼은 베로키오의 ‘다비드’와 ‘어린 전사’도 각각 -13.5°와 −12.5°로 외사시 증상을 드러냈다. 타일러 교수는 다빈치가 외사시 덕분에 평소와 다른 각도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빈치가 봤던 세상은 우리처럼 3차원 스크린이 아닌 평평한 캔버스에 가까웠을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대상을 캔버스에 표현하기가 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다빈치의 오른쪽 눈은 정상 각도를 지녀 3차원 물체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타일러 교수는 추정한다. 이에 따라 다빈치는 자기 작품에 정확한 명암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타일러 교수는 덧붙였다. 기존 연구에서도 렘브란트와 에드가 드가,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다른 거장들도 다양한 형태의 눈 정렬을 잘못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비슷한 기법을 사용했다. 당시 연구는 다빈치의 일부 작품에서 동공들의 방향과 크기가 다르다는 점을 한쪽 동공이 다른 동공보다 더 큰 상태인 동공부등(anisocoria)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타일러 교수는 “다빈치가 동공부등이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타일러 교수는 다빈치가 자신의 한쪽 눈이 다른쪽 눈보다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경험을 드러내기 위해 작품에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다빈치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매력적인 인물이므로, 그 천재성의 기원을 탐구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고 타일러 교수는 말했다. 사진=JAMA Ophthalmology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아찔한 사돈연습’ 남태현, 장도연에 “자기야♥” 설렘 가득 호칭

    ‘아찔한 사돈연습’ 남태현, 장도연에 “자기야♥” 설렘 가득 호칭

    ‘아찔한 사돈연습’ 커플들의 신혼 생활이 눈길을 모았다. 지난 19일 방송된 tvN ‘아찔한 사돈연습’에서는 아침밥을 차려주기 위해 요리에 도전하는 장도연의 모습이 눈길을 모았다. 처음 시도하는 닭볶음탕에 장도연은 처음부터 멘붕에 빠졌고 이를 지켜보는 장도연의 어머니는 “누가 데려가냐”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남태현은 맛이 없었음에도 “맛있다”를 연발했고, “자기야”라는 호칭으로 장도연을 설레게 했다. 이어 남태현은 장도연의 코빅회의에 따라가 장도연의 현실 절친인 양세찬을 만났다. 장도연은 실제로 남편을 소개하는 것처럼 노심초사하고 부끄러워했다. 남태현은 양세찬의 앞에서도 팔불출 면모로 웃음을 안겼고, 양세찬은 “이거 코빅 새 코너 아니냐”고 놀렸다. 권혁수, 미주 커플은 권혁수가 준비한 신혼집에 입성했다. 들어서자마자 흥부자 미주는 집을 마음에 들어 하며 적극적인 모습으로 권혁수를 당황케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 부부는 끊임없는 콩트를 선보였고, 권혁수는 미주 몰래 준비한 이벤트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어 지난주 장을 본 오스틴강과 경리는 레스토랑으로 돌아왔고, 경리는 서빙은 물론 재료 손질에도 도전했다. 떨리던 것도 잠시, 경리는 완벽하게 서빙에 성공했고, 오스틴강은 연신 옆을 지키며 설렘을 더했다. 이어 오스틴강의 절친 딘딘, 경리의 절친 나인뮤지스 혜미가 등장했다. 이들은 각자의 절친 오스틴강과 경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며 원만한 결혼생활을 위한 팁을 전수했다. 한편, tvN ‘아찔한 사돈연습’은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30분에 방송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담당 의사가 쓴 분노의 글···“다시 불씨가 되기를···”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담당 의사가 쓴 분노의 글···“다시 불씨가 되기를···”

    서울 강서구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 피살 사건에 대해 국민적 공분이 폭발하는 가운데 당시 담당 의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분노의 글을 올리며 상황을 전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재된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는 19일 오후 6시 30분 현재 51만 7000여명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청와대 답변 기준(30일 기간에 20만명 이상 동의)을 가뿐히 넘겼다. 이와 관련해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이날 오후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강서경찰서를 방문해 수사 진행 상황과 관련한 브리핑을 받고 유족을 만나기도 했다. 이 청장은 “PC방 살인사건과 관련한 수사 상황을 보고받고 엄정한 수사를 지시하기 위해 왔다”며 “마침 유족들이 조사받기 위해 와 계셔서, 고인의 명복 빌고 유족들께 심심한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터넷이나 언론에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해서도 유족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서 철저하고 엄정하게, 한 치의 의혹도 없이 수사할 것을 당부했다”며 “유관단체와 협조해서 유족들에 대한 경제적·심리적 지원도 철저히 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를 받고 있는 권익현 서울남부지검장도 이날 ‘가해자 동생 책임론’과 관련된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를 받고 “철저히 지휘해 진상파악에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금 의원이 “경찰이 규정과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도 살펴봐달라”고 재차 당부하자, 권 지검장은 “네”라고 답했다. 다음은 그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전문이다. 1. 나는 강서구 PC방 피해자의 담당의였다. 처음엔 사건에 대해 함구할 생각이었다. 당연히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위해서였고, 알리기에는 공공의 이익이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사망 이후의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아침 이후로 혼자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지냈다. 하지만 사건이 보도되기 시작하고 많은 사실이 공개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고인이 어디에서 몇 시에 인체 어느 부위를 누구에게 얼마나 찔렸으며, 어느 병원으로 이송되어 몇 시에 죽었는지 알고 있다. 심지어 나조차도 당시 확인하지 못했던 CCTV나 사건 현장 사진까지 보도됐다. 그러기에 이제 나는 입을 연다. 지금부터 내가 덧붙이는 사실은, 그가 이송된 것으로 알려진 병원의 그 시각 담당의가 나였다는 사실과, 그 뒤에 남겨진 나의 주관적인 생각뿐이다.2. 그는 일요일 아침에 들어왔다. 팔과 머리를 다친 20대 남자가 온다는 연락을 먼저 받았다. 아직 죽지는 않았다는데, 구급대원의 목소리가 너무 당황스러워서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곧 그가 들어왔다. 그는 침대가 모자랄 정도로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다.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에 더 이상 묻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피투성이였다. 그를 본 모든 의료진은 전부 뛰어나갔다. 상처를 파악하기 위해 옷을 탈의하고 붕대를 풀었다.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잘생기고 훤칠한 얼굴이었지만 찰나의 인상이었다. 파악해야 할 것은 그게 아니었다. 상처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복부와 흉부에는 한 개도 없었고, 모든 상처는 목과 얼굴, 칼을 막기 위했던 손에 있었다. 하나하나가 형태를 파괴할 정도로 깊었다. 피범벅을 닦아내자 얼굴에만 칼자국이 삼 십 개 정도 보였다. 대부분 정면이 아닌 측면이나 후방에 있었다. 개수를 전부 세는 것은 의미가 없었고, 나중에 모두 서른 두 개였다고 들었다. 따라온 경찰이 범죄에 사용된 칼의 길이를 손으로 가늠해서 알려줬다. 그 길이를 보고 나는 생각했다. 보통 사람이 사람을 찔러도 칼을 사람의 몸으로 전부 넣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에게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가해자는 이 칼을 정말 끝까지 넣을 각오로 찔렀다. 모든 상처는 칼이 뼈에 닿고서야 멈췄다. 두피에 있는 상처는 두개골에 닿고 금방 멈췄으나 얼굴과 목 쪽의 상처는 푹 들어갔다. 귀는 얇으니 구멍이 뚫렸다. 양쪽 귀가 다 길게 뚫려 허공이 보였다. 목덜미에 있던 상처가 살이 많아 가장 깊었다. 너무 깊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복기했을 때 이것이 치명상이 아니었을까 추정했다. 얼굴 뼈에 닿고 멈춘 상처 중에는 평행으로 이어진 것들이 있었는데, 가해자가 빠른 시간에 칼을 뽑아 다시 찌른 흔적이었다. 손에 있던 상처 중 하나는 손가락을 끊었고, 또 하나는 두 번째 손가락과 세 번째 손가락 사이로 들어갔다. 피해자의 친구가 손이 벌어져 모아지지 않았다고 후술한 기록을 보았다. 그것이 맞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하나가 형태를 파괴할 정도로 깊었다.미친 새끼라고 생각했다. 어떤 일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건 미친 새끼라고 생각했다. 피를 막으면서 솔직히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극렬한 원한으로 인한 것이다. 가해자가 미친 새끼인 것은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평생을 둔 뿌리 깊은 원한 없이 이런 짓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무 살 청년이 도대체 누구에게 이런 원한을 진단 말인가. 그런 생각은 여기까지였다. 같이 온 경찰이 말다툼이 있어서 손님이 아르바이트생을 찌른 것이라고 알려 줬다. 둘은 이전에는 서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진짜 미친, 경악스럽고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순간 세상이 두려웠다. 모든 의료진이 그 사실을 듣자마자 욕설을 뱉었다. 환자는 처음부터 의식이 없었다. 손과 발을 무의식적으로 움직일 수만 있었다. 칼은 두개골을 뚫지 못했고, 흉부와 복부의 주요 장기 손상은 없었다. 얼굴과 목과 손은 주요 장기는 아니다. 막아야 하는 것은 출혈뿐이라고, 그래서 살 수도 있겠다고, 처음에 생각했다. 하지만 온 병원의 수액과 혈장 용액을 쏟아붓고, 혈액을 준비하던 내원 이십여 분 만에 심박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심정지였다. 잠깐의 심폐소생술 후 환자는 돌아왔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의료진이 상처를 거칠고 급하게 막았다. 심장이 느려지면 피가 멎었다가 다시 심장이 뛰면 모든 상처에서 다시 피가 솟구치고 부었다. 상처가 너무 많아 어떤 주요 혈관이 어떻게 상했는지 파악할 수도 없었다. 주요 동맥을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그 때문에 혈관을 색전할 수도 없었고, 그전에 집중치료실을 떠날 수도 없었다. 상태가 급박해 시행할 수 있는 영상검사도 없었다. 어딘가 보이지 않는 두경부의 깊은 곳에서도 피가 쏟아지는 듯 했다. 그의 혈액은 처음부터 수액과 섞여 물처럼 묽었다. 이후 그의 심장은 한 번도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고, 피를 부으면 상처에서 피가 솟았다가 심장이 멈추면 멎기를 반복했다. 심폐소생술이 이어졌다. 짧은 시간에 심각한 범발성 혈관 내 응고증이 찾아왔다. 그는 그 짧은 시간에 피를 사십 개나 맞았다. 사방이 피바다였다. 그는 결국 그 자리를 한 번도 떠나지 못했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죽었다. 참담한 죽음이었다. 얼굴과 손의 출혈만으로 젊은 사람이 죽었다. 그러려면 정말 많은, 의도적이고 악독한 자상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많은 자상을 어떻게 낸단 말인가. 그럼에도 의사로서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복잡한 심경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보도된 현장 사진을 보았다. 나는 그것을 보고 알았다. 그가 내 앞에 왔을 때 그는 이미 그 자리에서 온몸의 피를 다 쏟아내고 왔던 것이다. 그것을 머릿속으로 예측하는 것과 현장에 흩뿌려진 피를 눈으로 보는 것은 달랐다. 한 사람이 쏟았다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피였다. 그는 여기서 죽었지만 실제로는 현장에서 거의 죽은 사람이었다. 악독하게 찌르는 칼을 받아내고 저 정도의 피를 순식간에 흘린 사람을 살리는 것은,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구나. 나는 의학적인 면에 있어서 죽음을 다소간 납득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무기력했다. 그 젊은이에게, 가해하는 사회에게, 무작위로 사람을 찌르는 번뜩이는 칼에, 그리고 있을 수 있었던 만약에, 모든 것에 나는 무력했다.3.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죄책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중에 우리끼리 언론에 보도된 CCTV를 보았다. 가끔 정말로 잔인한 장면보다, 아무것도 아닌 화면이 더 잔인해 보일 때가 있다. CCTV에서는 어떤 상처도 입지 않은 그가 당일 내가 보았던 옷을 입고 멀쩡히 걷고,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손가락질하던 누군가가 그를 덮치는 장면에서 영상이 끝나는데... 나는 그 이후를 직접 목격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보지 못했던 그전의 장면이 왜 그렇게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잔인해 보였는지. 그래서 그 걸음걸이가 왜 우리 모두를 놀라고 두렵게 했던지. 그는 상처 하나 없었는데. 그는 그전까지 멀쩡한 사람이었는데. 다만 내가 본 그 옷을 입은 사람이 그 화면에서 멀쩡하게 걸어 다니고 있는 영상일 뿐이었는데. 그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 같아 보였기 때문일까. 그것마저 사람을 공포심에 들게 하는 것일까. 나는 이후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하다가도 그 생각이 나면 한동안 말을 멈췄고, 학회장에서도 문득 이를 악물었으며, 사람들과의 식사에서도 잠깐씩 뇌압이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그가 나를 떠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피가 내 몸에서 씻겨 나가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 공분하고 있었다. 사건을 직접 목격한 나는 그 분노가, 이해할 수 있었으면서도 참담했다. 상처의 이미지와 실재했던 상처의 간극. 그에 지쳐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다. 죄스러운 느낌, 참담한 느낌, 악한 본성에 대항할 수 없는 무기력, 그의 목덜미에 들어갔던 비현실적인 자상과 벌어져 닫히지 않는 손가락. 모든 죽음이 그렇지만, 어떤 죽음은 유독 더 깊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는 것이었다.4. 그가 우울증에 걸렸던 것은 그의 책임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울증은 그에게 칼을 쥐여주지 않았다. 되려 심신 미약에 대한 논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울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을 잠재적 살인마로 만드는 꼴이다. 오히려 나는, 일요일 아침 안면 없던 PC방 아르바이트 생의 얼굴을 서른 두 번 찌를 수 있던 사람의 정신과적 병력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더 놀랄 것이다. 그것은 분노스러울 정도로 별개의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울증은 그에게 칼을 쥐어주지 않았다. 그것은 그 개인의 손이 집어 든 것이다. 오히려 이 사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심신미약자의 처벌 강화를 촉구하는 것이라는 게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사건과 사실 관계, 처벌과 공권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른다. 그리고 이 청원과 여론과 이어지는 논란에 대해서, 직접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서, 솔직한 마음으로 회의감이 든다. 그 끔찍한 몰골에 도저히 나를 대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살인죄의 처벌이 더욱 엄격해지고 공권력이 극도로 강해진다고 해도, 이런 상식 밖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세상이 올까? 그것들이 일요일 아침에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는 사람을 삽시간에 서른 두 번 찌르는 사람을 막을 수 있을까? 그 사람이 처벌을 두려워하고 인간의 도리를 생각해서 이런 범죄를 벌인 것일까? 모두 그렇지 않다. 이렇게 인간을 거리낌 없이 난도질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고인은 평범한 나와 같아 보였다. 환자를 진료하고 돌아가는 퇴근길에 불쑥 나타나는 칼을 든 사람을, 그리고 불가항력적으로 목덜미와 안면을 내어주는... 그것은 밥을 내던 식당 주인일 수도 있고... 고객을 응대하던 은행 직원일 수도 있고... 그렇게 직업상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집에 돌아가던 여러분일 수도 있었다. 어떤 이가 지닌 인간의 본성은 최악이다. 그것들이 전부 우리가 조종할 수 없는 타인의 인격이라는 한도 내에서 우리는 영원히 안전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것은 다시 어딘가에 있는 누구일 수 있다.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할지라도 이 사실을 바꾸는 것은 절망적으로 불가능하다.5. 나는 고인의 생전 모습을 언급해서 고인과 유족에게 누가 되려는 마음은 전혀 없다. 나는 나름대로 참담했지만, 잠깐 만난 환자와 생전에 그를 알던 사람들의 슬픔을 비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슬픔을 생각하면 나는 당장이라도 주저앉아 통곡하고 싶다. 다만 나는 억측으로 돌아다니는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언급함으로써 이 사건의 엄중한 처벌과 진상 조사가 이루어지고, 사회적으로 재발을 방지되기를 누구보다도 강력히 바란다. 그래서 이 언급이 다시금 그 불씨나 도화선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보고도 믿기 힘들었던 비인간적인 범죄 그 자체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이런 짓을 진짜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 무기력함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이 사건에 대한 무기력함의 지분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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