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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이 아이들이 죽어야 하는 이유 따윈 없었다

    그날, 이 아이들이 죽어야 하는 이유 따윈 없었다

    대검·총·군홧발에 짓밟힌 평범한 아이들 5·18민주화운동 10대 사망자 36명시민군 가담 않은 희생자도 다수계엄군 도청앞 발포 13명 사망검시기록도 조작·왜곡 가능성1980년 5월 광주에서 소년·소녀가 숨졌다. 다 자라지 못한 그 작은 몸엔 수없이 많은 총알과 대검이 관통했고 주검은 군홧발에 짓밟혔다. 아이들이 죽어야 하는 이유 따윈 없었다. 삼촌 가게에 일하러 가던 19세 소년 노동자는 대검에 찔렸고, 공부하다 귀가하던 고2 남학생은 매복한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아픈 사람 살리겠다고 헌혈에 나선 17세 여고생은 총에 맞았고, 11살짜리 소년은 묘지 근처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사망했다. 서울신문은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 희생된 10대 청소년들의 발자취를 정리했다. 광주민주화운동기록관이 공개한 검찰의 검시조서와 사망진단서를 확인했고, 국군 보안사령부가 작성한 ‘광주사태 관련 사망자 명단’과 ‘광주사태 사망자 검시 결과’를 국가기록원에 정보공개청구해 확인했다. 구술 기록을 확인하면서, 연락이 닿는 유족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떤 죽음이 억울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이들은 특히 그랬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눈시울은 그렇게 40년간 마를 날이 없었다. 5·18 사망자 5명 중 1명은 10대 청소년 5·18 광주민주항쟁(5월 17~27일) 당시 사망한 165명 중 10대 청소년은 36명(21.8%)이다. 평균 나이는 16.7세로 정규교육을 거쳤다면 중학교 3학년이었을 나이다. 남자가 30명이었고 여자가 6명이었다. 검시조서에 기재된 직업을 보면 고등학생이 13명으로 가장 많았다. 학업 대신 돈을 벌던 소년 노동자는 10명으로 두 번째로 많았고 중학생 6명, 학교 밖 청소년(무직) 5명, 재수생 1명, 초등학생 1명이었다.사망 원인은 총상이 32명(88.9%)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검시조서를 보면 당시 계엄군이 사용한 총기인 M16에 의해 사망한 이들은 21명이었다. 시민군이 경찰의 무기고를 탈취해 사용한 카빈총으로 사망한 이도 6명이었다. 이 기록만 보면 시민군 간 오인 사격이 발생했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 가장 객관적이어야 할 사망자 검시기록조차 조작·왜곡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두환 신군부는 계엄군의 학살 책임을 덜고자 카빈총에 의한 사망을 의도적으로 늘렸다는 의혹을 받는다. 실제로 5공화국 인사들은 카빈총 희생자가 전체 사망자 165명 중 28~88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광주민주항쟁은 군인의 양민학살보단 시민군의 오인사격이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이런 기록을 북한군이 개입한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아울러 총에 맞아 사망했지만, 죽음의 원인을 바꿔 분류하기도 했다. 김경환(19·점원)군은 자상 3곳, 총상 등이 발견됐지만, 검찰 보고서에는 ‘자상으로 분류할 것’이라 적혀 있었고, 보안사 검시참여보고에도 총상은 빠져 있었고 최종적으로 ‘타박상으로 인한 사망’으로 분류됐다. 검찰의 검시기록이 조작되는 삼엄한 시대였다. 한편 10대 사망자 중 차량 추락사가 3명이고 두들겨 맞아 사망한 이는 1명이다. 휴교조치 내려진 5월 20일, 10대 첫 사망자 발생 1980년 5월 17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어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를 의결한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1979년 12월 12일 군사정변을 일으킨 후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의 요구가 커지자 전두환 신군부는 이를 저지하고자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다음날인 18일 계엄군은 전남대를 봉쇄했다. 군과 학생 간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시위가 격해지자 군인은 학생을 군홧발로 짓밟았다. 학생들은 광주시내 중심가인 금남로로 이동했고, 계엄군은 쫓아와 진압작전을 펼쳤다. 19일 전두환 신군부는 11여단을 광주에 증파했다.광주시민은 분노했다. 대학생부터 시민까지 무차별적으로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광주시민들은 침묵하지 않고 돌을 들었다. 이날 오후 4시 30분 광주 동구 계림파출소 근처에서 조대부고에 다니는 김영찬군이 계엄군이 쏜 총에 의해 부상을 당했다. 광주시내 고등학교에 휴교조치가 내려진 20일 처음으로 사망자가 나왔다. 금남로에서 택시 200여대가 경적을 울리며 차량 시위를 벌이던 날이다. 10대 사망자도 2명이 나왔는데, 동신중 3학년 박기현(당시 14)군과 상점에서 일하던 김경환(19)군이 군인의 무자비한 폭행에 숨을 거뒀다. 특히 이날은 박군이 수학여행을 다녀온 날이었다. 부산에 누나의 산후 수발을 간 어머니를 기다리다 심심해진 박군은 밖으로 나가보고 싶었다. 박군은 책을 사와야 한다며 아버지의 만류에도 자전거를 끌고 나섰고, 그 이후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계엄군이 박군을 낚아채고 무자비하게 폭행한 것을 봤다는 목격자가 있었다. 이틀 뒤 박군은 전남대병원에서 숨진 채 가족에 의해 발견됐다. 계엄군의 도청 앞 발포, 청소년 13명 숨지다 21일 오후 1시 최소 10만여명의 시민이 모인 전남도청 내 스피커에선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애국가가 끝나기 무섭게 공수부대의 사격이 시작됐다. 10분여간 지속한 사격에 최소 54명이 숨지고 500여명이 총상을 입었다. 10대라고 총탄이 피해가진 않았다. 이날 목숨을 잃은 10대 청소년은 총 13명에 이른다. 부처님오신날이었던 그날 김완봉(14·무등중3)군도 금남로에 있었다. 김군의 어머니인 송영도씨는 아들과 함께 절에 가려고 집을 나섰지만 이내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고생하는 청년들에게 빵을 먹이자는 주변의 제안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송씨는 그 길로 집에서 10만원을 들고 와 빵과 우유, 담배, 계란 등을 슈퍼에서 사 모아 도청 시위대에 건네줬다. 그러는 사이 집에 있던 아들이 금남로로 나왔던 것이다. 전남대병원과 적십자병원 등을 백방으로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 다음날 새벽 송씨는 결국 적십자병원 시체실에서 아들을 찾았다. 전날 아침에 아들이 입었던 줄무늬 셔츠와 청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전교 13등을 했다며 학교에서 배지를 받아온 착한 아들이 싸늘한 주검이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들은 뒷목 쪽에 총을 맞아 사망한 상태였다.시신 담을 관 구하러 갔다…9발 맞은 소년군도 무장한 시민군의 저항에 따라 계엄군이 도청에서 철수한 22일 이후에도 10대 사망자는 계속 나왔다. 이날 6명이 사망했고, 23일 4명, 24일 3명, 25일 2명, 전남도청에서 최후의 항쟁이 있었던 27일에는 5명이 숨졌다. 계엄군의 잔혹함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23일 사망한 손옥례(19·무직)양은 전남 화순으로 시신 담을 관을 구하러 가는 버스에서 매복한 군인에게 피습을 당해 사망했다. 당시 손양은 머리와 가슴 등 M16 총탄 7발을 맞았다. 그래도 부족했던지 계엄군은 손양의 가슴부위를 대검으로 찔렀다. 그렇게 손양의 주검은 2번 죽었다. 같은 버스를 탄 것으로 추정되는 황호걸(19·방송통신고3)군도 복부를 비롯해 9곳의 총상을 입었다. 절단된 10대의 시신도 있다. 시위대 차량에 탑승해 총을 들고 군인을 추격하다가 24일 사망한 김부열(17·조대부중3)군은 계엄군의 총격에 사망했다. 시신 발견 당시 심한 부패로 사인 및 상해 수단을 규명하기 어려웠지만, 목이 잘려 나가고 없었다. 가슴과 한쪽 팔도 떨어져 나간 상태여서 유족은 사타구니 옆 점으로 신원을 확인했다. 김군의 시신은 광주 동구 지원동 뒷산에서 발견됐다. 광주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광주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서울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무게 280㎏, 말레이서 초대형 민물가오리 낚여…2시간 사투

    무게 280㎏, 말레이서 초대형 민물가오리 낚여…2시간 사투

    말레이시아에서 초대형 민물가오리가 잡혔다. 말레이시아 ‘아스트로 아와니’는 14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사라왁 지역 어부들이 거대 민물가오리를 낚았다고 전했다. 가오리는 다른 물고기를 잡기 위해 설치한 그물에 우연히 걸려 있는 것을 현지 어부가 발견했다. 280㎏에 달하는 거대한 몸집 때문에 성인 남성 4명이 달라붙어 2시간에 걸친 사투 끝에 겨우 끌어올렸다. 어부는 “아침 일찍 강에 뿌린 그물을 걷으러 갔다가 가오리를 봤다. 예전에도 가오리를 잡은 적이 있지만 이렇게 큰 건 처음”이라고 밝혔다.기네스북에 공식기록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큰 민물고기는 2005년 태국 메콩강에서 잡은 무게 300㎏ 메콩자이언트메기다. 그러나 학자들은 자이언트민물가오리가 이보다 더 큰 종일 것으로 여긴다. 특히 태국 프라야강과 메콩강에 서식하는 자이언트민물가오리는 무게 500~600㎏에 길이 4.6m, 폭 1.9m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네바다대학교 어류생물학자 젭 호건은 과거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아마도 자이언트민물가오리가 지구상에 서식하는 민물고기 중 가장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거대 민물가오리 목격담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 3월 태국 차오프라야강에서는 폭 1.5m, 길이 3m의 자이언트민물가오리가 목격됐다. 문제는 제대로 된 연구가 진행되기도 전에 자이언트민물가오리가 멸종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다. 자이언트민물가오리는 강바닥에 숨어 사는 탓에 연구가 쉽지 않다. 음식 재료로도 부적합해 일부러 잡으려는 어부도 없어 우연히 어망에 걸려야 한 번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개체 수는 지난 40년간 90% 가까이 급감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멸종위기 적색목록에 등재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수질 오염을 주원인으로 추측하고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쇄신 움직임 ‘꿈틀’…통합당, 변화 ‘골든타임’ 잡을까

    쇄신 움직임 ‘꿈틀’…통합당, 변화 ‘골든타임’ 잡을까

    4·15 총선을 포함해 최근 주요선거(총선·대통령선거·지방선거) 4연패를 기록한 미래통합당 내에서 쇄신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보수진영이 변하지 않을 경우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는 더 큰 패배를 맛볼 수 있다며 총선 직후인 지금이 당을 혁신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합당은 지난 16일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일제히 변화를 외쳤다. 지난 총선에서 수도권 지역에 출마했던 30·40대 출마자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참패의 원인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며 “낡은 정치와 단호한 결별을 선언하며 보수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은 세월호 유족이나 광주민주화운동 유족의 아픔에 선을 긋고, 피해자들에 대한 부당한 혐오감을 부추기다 우리 스스로 혐오의 대상이 돼 버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며 “길 잃은 보수정치를 되살리는 길은 정치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상식적인 정당으로 당 혁신 ▲주요 국정 의제들에 대한 합리적 대안 수립 ▲미래담론 형성 ▲당 내 의견그룹 ‘젊은미래당’(가칭) 구성 등을 실천 사항으로 내걸었다. 의견 그룹 젊은미래당에는 오신환·유의동 의원을 포함해 박진호(경기 김포갑)·이형섭(경기 의정부을)·김병민(서울 광진갑) 등 21대 총선에서 수도권에 출마했던 인사들이 참여한다. 같은날 오·유 의원이 주최한 ‘제21대 총선을 말하다. 길 잃은 보수정치, 해법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는 진보논객인으로 꼽히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통합당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진 전 교수는 “까놓고 말해 통합당은 뇌가 없다. 브레인이 없다”며 “총선 참패의 단기적 원인은 코로나 19이지만, 코로나가 없어도 참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하며 선거 패배와 연결됐다”며 “탄핵 정권의 패전투수인 황교안 전 대표가 당권을 잡았던 것 자체가 탄핵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정권심판의 주체가 못됐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4일 초선 당선자 27명이 입장문을 통해 당의 체질 개선을 요구한 데 이어 이날 수도권 중심 당 관계자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자 혁신을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합당 관계자는 “지금 주요선거 4연패를 당했다며 우리가 엄살을 부리고 있지만 실은 아직도 바닥까지 떨어졌다고 볼 순 없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사과, 세월호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우리 당이 내보이지 않는다면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언급했던 ‘20년 집권론’은 현실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중진 의원은 “총선에서 패배한 아픔이 가시지 않은 지금 개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야지 당권 싸움, 대권 주자 다툼 등으로 시간을 허비하면 우리 당이 혁신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다”며 “지역구 당선자 중 영남 지역 비율이 굉장히 높은데 우리가 다시 정권을 잡으려면 중도층 등 수도권 유권자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합당 지도부가 오는 18일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할 예정인 가운데 이번 광주 방문이 당 변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높다. 한 초선 당선자는 “새 원내지도부가 이번 광주 방문에서 반성할 줄 아는 보수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며 “이번에 어떤 메시지를 내놓느냐에 따라 혁신에 대한 우리들의 진정성까지 평가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이 집에 우리 말고 누군가 격리돼 있다”

    “이 집에 우리 말고 누군가 격리돼 있다”

    스스로를 매우 이성적인 정보기술(IT) 종사자라고 소개한 애드리안 고메즈(26)는 아내와 함께 자가격리 생활을 시작할 때쯤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자신들의 집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4월 중순 어느날 아무도 없는데 문 손잡이가 혼자 격렬하게 덜컹거렸다. 고메즈는 그 소리가 맞은 편 아파트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고 말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창틀 햇빛가리개도 심하게 흔들렸다. 기르는 고양이들의 소행도 아니었고 벌레가 새가 그런 것도 아니었다. 고메즈는 “난 공포영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진지하게 이불 속에 몸을 숨겼다. 너무 놀랐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아무도 살지 앉는 윗층에서 발소리를 분명히 들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고메즈는 “나는 이런 일을 일으킬 수 있는 합리적이고 실존하는 존재가 무엇인지 생각하려 노력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면서 “뭔가 다른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1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자가격리 중 귀신을 경험했다고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취재에 응한 사람들의 일상엔 알 수 없는 곳에서 들려오는 음성, 그림자 같은 형상, 전자기기의 오작동,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신을 만지는 느낌 등이 끼어들었다. 심지어 영화 ‘고스트버스터즈’에 나오는 상반신만 존재하는 유령의 형상도 이들의 증언에 나온다. 이들 중 몇몇은 겁에 질렸지만, 고립에 지친 어떤 사람들은 그저 누군가 함께 해 주는 게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패트릭 힌즈(42)는 뉴욕이 봉쇄되기 전 동성 남편, 딸과 함께 맨해튼을 떠나, 에어비앤비에서 임대한 매사추세츠 서부의 예쁜 집에서 6주를 보냈다. 어느날 새벽 3시쯤 목이 말라 잠에서 깬 힌즈는 부엌에서 50대 백인 남성이 다 해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복을 입은 채 식탁에 앉아있는 걸 봤다고 말했다. 남편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처음엔 그냥 돌아섰다”면서 “‘잠깐, 이게 무슨 일이지?’ 하며 다시 돌아봤더니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혀 위협적인 느낌이 들지 않아서 다음날 아침 남편에게 말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령 사냥꾼’이라는 TV쇼를 진행하며 자신을 초자연 현상 연구가라고 소개하는 존 E.L. 테네이는 2019년 매달 유령이나 심령현상 신고를 2~5건 받았지만 최근엔 일주일에 5~10건씩 신고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테네이는 이렇게 신고가 급등하는 현상을 1999년에도 경험했다. 당시엔 Y2K 직전이었다. 유령 뿐 아니라 미확인비행물체(UFO) 목격 신고도 이런 기간엔 같이 증가한다고 테네이는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고조된 불안과 경계심 때문에 일어난다”면서 “신고함에 들어온 편지들 대다수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해가 뜨고 집이 따뜻해지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보통 일터로 나가 집을 비운다. 벽돌이 갈라지고 목재가 팽창할 때 나는 소리에 그들은 익숙치 않다”면서 “집이 그런 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알아챌 시간이 없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자가격리중 유령 신고 늘어전문가 “대부분 자연 현상”설명 안되는 현상도 많지만“외로움의 심리 반작용” 분석 하지만 이런 주장에 반박하는 증언자도 있다. 제이니 코완(26)은 대학생일 때부터 한 유령이 따라다녔고, 자신은 유령이 좋은 행동만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성서에서 따 온 매튜라는 이름까지 붙여줬다고 말했다. 코완에 따르면 남편 윌을 만나 결혼한 뒤 사는 테네시주 내슈빌 집에서 매튜는 밤중에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를 내는 등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남편(31) 역시 “소음은 집 자재에서 나는 소리나 고양이 소리가 아니다”라면서 “관심을 끌기 위해 내는 매우 명확한 소리였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남편 코완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재택근무를 하기 시작하면서, 간호사인 아내가 야간근무 뒤 퇴근해 잠을 자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손님 방 화장실을 사용했다. 부부의 말에 따르면 매튜는 이런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코완은 손님 욕실에서 샤워하던 중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쓰는 일이 잦았다. 이는 단지 배관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찬물이 나올 때마다 손을 뻗어 확인해 보면 온수가 잠겨 있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남자친구와 자가격리 생활을 하는 매디슨 힐(24)은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느낌을 받아 왔고, 문이 쾅 닫히는 등의 경험을 했다. 최근엔 침대 탁상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잠에서 깼는데, 오래 전 미국에서 이사할 때 잃어버린 카메라 렌즈였다. 찾기를 포기한 지 오래된 물건이었는데 바로 침대 옆에 놓여 있었다. 교사이자 랩퍼, 콘서트 기획자인 케리 던랩(31)은 몇주 전 퀸즈의 리지우드에 있는 원룸 아파트에서 밤늦게 잠에서 깼는데 여자친구가 발 근처에 있는 이불을 끌어 올려 정돈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정돈이 끝난 뒤에도 여자친구가 침대에 오르지 않자, 던랩은 그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고, 한참 뒤 여자친구는 아무것도 모른채 화장실에서 나왔다.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인간이 동물, 기계, 죽은 사람 등 다른 존재를 어떻게 느끼고 마음을 치유하는지에 관해 연구하는 커트 그레이 부교수는 “큰 불안감이나 악감정이 있는 시기에 사람들은 유령을 본 것으로 인지하는 상태가 될 수 있다”면서 “희생자들 눈에 띄지 않은 상태에서 슬금슬금 기어오는 악의적인 영혼과 질병 자체가 심리적으로 유사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요즘 만연한 외로움의 반작용일 수도 있다고 그레이 박사는 말했다.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구속된 상태에서 당신의 세계는 좁아져 있다”면서 “집에 갇힌 채 인간적인 접촉이 필요한 당신의 심리는 초자연적인 뭔가가 있다고 생각될 때 위로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민주, 정의연 적극 엄호 “역사적 성과 훼손해선 안돼”

    민주, 정의연 적극 엄호 “역사적 성과 훼손해선 안돼”

    김두관 “친일세력 마지막 준동 막아내야”우상호 “윤미향 당선인 공격 도 넘었다”김해영 “기부금 내역 투명하게 공개해야”더불어민주당은 15일 회계 부실 등 논란을 빚은 윤미향 당선인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대해 그동안의 활동을 폄하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기부금 논란으로 30년간 역사와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헌신한 정의연 활동이 부정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박성준 원내대변인은 최고위 후 기자들에게 “정의연과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역사적 성과, 사회적 공론을 위한 노력이라는 본질적 가치가 분명히 있는데 회계투명성 부분이 이를 훼손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두관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보수언론과 야당의 공격은 결과적으로 일본 극우세력만 좋아할 상황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그는 “일본의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밝혀내고 이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활동에 대한 공격은 결국 친일 이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어 “윤 당선인과 더 많은 동료의원이 마음을 모아 ‘친일세력’의 마지막 준동을 막아내는데 앞장서는 21대 국회가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우상호 의원은 BBS 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언론의 정의연 털기, 윤 당선인에 대한 공격이 도를 넘었고 이제 무엇을 비판하는 것인지 목표조차 상실됐다”고 지적했다. 우 의원은 “이용수 할머니를 부추겨 윤 당선인을 공격하도록 만든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불순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일에 언론과 우리 국민들이 이용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경고도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다만 윤 당선인과 정의연이 기부금 사용 내역 공개와 회계투명성 확보 노력을 할 필요는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해영 최고위원은 “세계사적인 ‘위안부’ 인권운동의 진정성을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정의연 회계 처리 관련 문제는 정의연의 헌신, 성과와는 분리해서 살펴볼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피해 할머니에 의해 회계 처리 관련 의혹이 제기된 만큼 정의연과 윤 당선인은 기부금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 의혹을 불식하고 위안부 인권활동에 더 많은 추진력을 확보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왓츠업! 아메리카] 같은 번호로 2번이나 복권 당첨된 운 좋은 여인

    [왓츠업! 아메리카] 같은 번호로 2번이나 복권 당첨된 운 좋은 여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거주하는 한 여인이 3년 전 복권 상금 5만 달러(한화 약 6100만원)에 당첨될 때 사용했던 같은 번호를 이용해 최근에는 200만 달러(한화 약 24억 6천 만원) 복권에 당첨되는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쉐니카 밀러라는 여인은 최근 복권 당첨금을 수령하며 노스캐롤라이나 주 복권국에 "자녀들의 생일 숫자로 조합한 같은 번호로 항상 복권을 구입했다"며 당첨 비결을 털어놨다. 그녀는 이어 "나는 항상 같은 번호로 복권을 구입한다"며 "단 한 번도 다른 번호의 복권을 구입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녀의 이러한 일심단편 노력은 4월 2일 '파워볼'(Powerball) 복권 추첨에서 그녀에게 무려 200만 달러의 행운을 가져다 줬다. 밀러는 "복권당첨을 확인한 날 아침 6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복권당첨을 확인한 뒤 울었다. 또한 '이건 사실이 아닐거야'라는 말을 하며 당첨번호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녀가 이용하는 같은 번호의 복권은 3년 전인 2017년에도 5만 달러의 행운을 가져다 준 적이 있다. 밀러는 이번 당첨금으로 우선 아들에게 자동차를 사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집을 사줄 계획이며, 내 빛도 모두 다 청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남주 피닉스(미국) 통신원 willbeback2@naver.com
  • ‘놀면 뭐하니’ 비, 유재석 만나 “1일3깡”

    ‘놀면 뭐하니’ 비, 유재석 만나 “1일3깡”

    여름맞이 댄스 노래를 준비 중인 유재석과 ‘1일1깡’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비가 만났다. 비가 유재석과 만나 ‘깡’에 대한 솔직한 반응과 자신만의 스타일에 대한 소신 등을 전하는 모습이 예고편을 통해 공개됐다. MBC ‘놀면 뭐하니?’ 공식 유튜브 채널은 15일 ‘놀면 뭐하니를 찾아온 댄스 레전드 비!’란 영상을 소개했다. 비가 등장하자 유재석은 “하루 몇 깡하냐”고 질문했고, 비는 “아침 먹고 깡, 점심 먹고 깡, 저녁 먹고 깡”이라며 “하루 3깡은 해야지”라고 ‘깡 부심’을 드러내 웃음을 안겼다. ‘깡’은 가수 비가 2017년 12월 발표한 노래지만 최근 유튜브를 통해 다시 인기를 얻고 있으며 하루에 한번씩 ‘깡’ 영상을 감상하고 춤을 따라한다는 ‘1일1깡’이란 말도 생겨났다. 유재석은 ‘깡’ 영상에 대해 네티즌들이 지적한 ‘꾸러기 표정, 입술 깨물기, 박수 치고 리듬 타기 금지’ 등을 나열했고 이에 비는 비장한 표정으로 “절대 포기 못해요”라고 강조했다. 유재석은 지난 9일 방송에서 김태호 PD와 ‘여름X댄스X유재석’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비를 언급하며 “비의 ‘1일1깡’ 그거 난리더라. 비도 오랜만에 만날 수 없나”라고 기대감을 내비친 바 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지난달 경관 목숨 구한 英 남성 유로밀리언스 당첨 ‘좋은 업보’

    지난달 경관 목숨 구한 英 남성 유로밀리언스 당첨 ‘좋은 업보’

    지난달 경찰관의 생명을 구한 영국 남성이 유로 밀리언스 내셔널 로터리에 당첨돼 100만 파운드(약 15억원)의 당첨금을 쥐었다. 화제의 주인공은 에섹스주 맬던에 사는 앤서니 캔티(33)로 위섬의 버스에서 쓰러진 경관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목숨을 구했는데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간) 복권 추첨 결과 행운을 거머쥐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건진 경관은 그 뒤 완전히 회복했는데 캔티에게 “좋은 카르마(업보)가 좋은 분에게 일어났다”고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고 BBC가 14일 전했다. 경관이 실신해 그의 무릎에 쓰러졌을 때 캔티는 봉쇄령이 내려진 도시에 물 공급을 유지하는 일을 하고 퇴근하던 길이었다. 그는 긴급 전화 999 응대요원과 통화하며 일러주는 대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물론 직장에서 교육 받아 어느 정도 요령을 알고 있었다. 그 경관은 급히 헬리콥터 편으로 병원에 후송돼 닷새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캔티는 그 뒤로도 계속 경관과 연락을 취해오다가 이날 당첨 소식까지 전했다. 하나 더 재미있는 것은 아내 캐티 설리번과 함께 닥스훈트 반려견 럭키 롤라를 전날 밤 입양했는데 다음날 아침 횡재한 사실을 알게 됐다. 두 자녀의 아버지인 그는 맬던의 스피탈 로드에 있는 톨리숍이란 가게에서 산 복권을 샀는데 당첨된 사실을 출근하는 열차 안에서 알았다고 했다. 캔티는 “내가 일을 그만 둘 이유가 없지 않느냐. 난 일을 좋아하고 우리가 이 일을 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해서 난 절대 그만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석상암/이영진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석상암/이영진

    석상암/이영진 이곳에는 스님은 없고 서출동행西出東行하는 약수가 있지 작약밭 밑을 지나 화강암 돌확에 철철 넘쳐나던 생수 속엔 도롱이가 투명한 알을 낳았어 노란 유채밭 속으로 꼬리를 감추던 뱀들은 밤이면 문풍지에 그림자를 남기며 암자 처마 밑으로 기어들고 산은 속이 텅 빈 큰 통처럼 뻐꾸기 울음소리를 법당 안으로 실어 날랐다 아무 데나 두드려도 울기 좋은 밤, 약藥 같은 꽃들이 경전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선운사의 말사인 이 암자를 안다. 늦봄에 핀 작약 꽃들, 돌확에 터 잡은 도롱이 일가족도 안다. 밤새 울던 소쩍새 울음소리도 알고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탱화도 안다. 이무기처럼 도사리고 앉아 시를 쓰던 동무 하나도 안다. 아무 데나 두드려도 울기 좋은 날들. 선운사 입구에 자리한 흥덕 검문소에서 장발인 나를 버스에서 끌어 내린 경찰관은 내가 시를 쓰기 위해 선운사에 간다는 말을 듣고는 머리를 자르는 대신 다음 버스에 태워 주었다. 잠자리를 알아봐 주던 선원이란 먹물 옷 사내는 내게 절대 중 할 생각은 하지 말고 시 열심히 쓰라고 했다. 삶도 꿈도 사랑도 시로 귀결되던 그 시절, 사십 년 훌쩍 지난 그 시절이 그립다. 곽재구 시인
  • 쓰레기 뿌리고 해고 협박… ‘갑질 온상’ 된 아파트

    쓰레기 뿌리고 해고 협박… ‘갑질 온상’ 된 아파트

    입주민의 거듭된 폭행과 폭언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 고 최희석씨 사건을 계기로 경비 노동자의 부당한 처우에 대한 피해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14일 아파트 경비원, 미화원 등 아파트 노동자에게 입주민이 폭언을 일삼거나 폭행을 하는 사례를 공개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A씨는 아파트 입주자 대표 회장의 갑질에 시달리다가 결국 해고됐다. 그는 “아파트 입주자 대표 회장이 관리사무실에 책상까지 갖다 놓고 아침 직원회의 때마다 직원들에게 ‘내가 왕이다. 내가 나가라고 하면 언제든지 내쫓을 수 있다’고 말했다”며 “입사일과 4대 보험 취득 신고일이 달라 문제를 제기하니 ‘고소할 테면 하고 나가라’고 직원들 앞에서 소리쳤다”고 증언했다. 아파트 미화원의 자녀 B씨는 “아파트 주민이 어머니에게 ‘당장 그만두라’며 소리를 지르고 일부러 음식물 쓰레기를 아파트에 뿌리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었던 최씨는 지난 10일 억울하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최씨는 주차 문제로 아파트 주민과 다툰 뒤 지속적으로 폭행과 폭언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장갑질119는 입주자의 부당 행위를 막으려면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가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도록 하고, 공동주택관리법을 개정해 ‘직장 내 괴롭힌 금지법’과 같은 조항도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내란음모 조작사건’ 김대중 옥중수필 공개 “박정희 정권 용서”

    ‘내란음모 조작사건’ 김대중 옥중수필 공개 “박정희 정권 용서”

    김대중도서관, ‘내란음모 조작사건’ 사료 공개“나는 박(정희) 정권 아래서 가장 가혹한 박해를 받은 사람이지만 나에 대한 납치범, 자동차 사고 위장에 의한 암살 음모자들, 기타 모든 악을 행한 사람들을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에 따라 일체 용서할 것을 선언했다.”(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0년 12월 3일 쓴 옥중 수필 중)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은 1980년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투옥된 김 전 대통령이 사형을 선고받은 뒤 직접 쓴 옥중 수필 원고와 당시 최후진술 등의 사료를 14일 공개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은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이끄는 신군부가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김대중 일당의 내란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조작해 김 전 대통령과 측근·관계자를 기소한 사건이다. 김대중도서관은 “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이와 연결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 사료를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김 전 대통령은 사형수 시절인 1980년 12월 3일 쓴 옥중 수필에서 자신이 맞서온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대한 용서를 강조했다. 그는 “나는 나의 그리스챤(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과 우리 역사의 최대 오점인 정치보복의 악폐를 내가 당한 것으로 끝마쳐야겠다는 신념을 (19)76년의 3·1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투옥된 후 굳게 하며 그 이후에 일관했다”고 수필 서두에 썼다. 이어 박정희 정권 당시 자신을 탄압한 이들에 대한 용서의 뜻을 밝히며 “지금 나를 이러한 지경에 둔 모든 사람에 대해서도 어떠한 증오나 보복심을 갖지 않으며 이를 하느님 앞에 조석(아침·저녁)으로 다짐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나는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 하느님만은 진실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나의 행적대로 심판하실 것이고, 우리 국민도 어느 땐가 진실을 알 것이며 역사의 바른 기록은 누구도 이를 막지 못할 것이다”라며 깊은 신앙심과 민주화에 대한 강한 신념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대중도서관은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사형수 시절 김 전 대통령이 친필로 직접 용서와 화해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대중의 화해·용서·포용·관용의 정치는 DJP 연합을 통해 최초의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했고, 이 땅의 진보와 보수,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연대와 화합을 가능하게 한 토대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밖에 김대중도서관은 내란음모 사건 1심 재판 당시 김 전 대통령과 고(故) 문익환 목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수감 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대표)의 최후 진술도 공개했다. 이는 피고인들의 가족들이 진술 내용을 외운 뒤 재판이 끝난 뒤 기억을 되살려 글로 복원한 내용이다. 이 중 김 전 대통령의 최후진술문은 문 목사의 아들 문성근 씨가 작성한 것이라고 김대중도서관은 밝혔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인생 이모작’ 꿈 담은 송파 행복 도시락

    ‘인생 이모작’ 꿈 담은 송파 행복 도시락

    지난 6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 송파요리창작소에서는 아침부터 고소한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 이날은 어버이날을 이틀 남짓 앞두고 요리창작소 교육생 8명과 관계자들이 모여 지역 홀몸노인 50가구에 전달할 음식 장만이 한창이었다. 제육볶음, 취나물, 도라지생채, 나박김치 등 각종 반찬을 마련해 준비한 반찬통에 옮겨 담았다. 전날 구청 직원들이 하나하나 손으로 적어내려 간 카네이션 손편지도 동봉했다. 박성수 송파구청장도 현장을 찾아 요리 준비에 힘을 보탰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양손에 젓가락과 뒤집개를 잡은 박 구청장은 제법 능숙한 솜씨로 동태에 계란물을 입혀 전을 부쳐냈다. 서울시 일자리창출 공모사업의 하나로 구에서 추진하는 송파요리창작소 사업은 요리를 주제로 기성 취업시장에서 소외되기 쉬운 신중년 여성들의 경력단절 해소에 기여하고 건강한 마을 기업 육성을 도모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지난달 초 교육생 선발을 마치고 같은 달 14일에 첫 수업을 진행한 이후 매주 월요일마다 실습교육을 하고 있다. 오는 9월까지 모두 20회 실습교육을 마친 뒤 요식업 관련 취·창업이나 사회적경제기업, 협동조합 설립 등을 위한 컨설팅 및 창업 인큐베이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날 반찬 만들기에 참여한 교육생 이세희(45)씨는 “이전에도 요리 관련 업계에 종사해왔지만 막상 창업하려고 하니 막막하던 찰나에 지원하게 됐다”면서 “정부, 지자체, 민간 등 주체별로 청년창업 지원 사업은 많지만 중년층에 맞는 프로그램은 찾기 어려웠는데 또래 교육생들과 함께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고민을 나누다 보니 협동조합, 사회적경제 기업 등 내가 사회에 다시 재능을 되돌려줄 방법을 고민하게 되고 꿈도 커지는 기분”이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이 밖에도 구에서는 중·장년층의 맞춤형 취업 지원을 위해 경비원·요양보호사 육성 교육 및 참살이 실습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경비원으로 근무하기 위해서는 24시간 동안의 법정 교육을 이수해야 하기 때문에 사단법인 한국경비협회중앙회에 의뢰해 교육 및 취업을 알선한다. 지난해 모두 65명이 교육을 받아 이 중 36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2011년부터 참살이 실습터는 바리스타, 코딩메이커, 쌀디저트전문가 등 경력단절여성의 취·창업 인기 직종을 발굴해 양성하는 구의 대표 사업이다. 지난해 기준 모두 1256명이 교육을 받아 이 중 656명이 취·창업에 성공했다. 박 구청장은 “세대별로 저마다 처한 환경이나 수요가 달라서 각자의 상황에 적합한 맞춤형 지원사업으로 사각지대 없이 다양한 세대가 양질의 일자리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제2의 조국” 자처해 반격 나선 윤미향…프레임 대결 우려 

    “제2의 조국” 자처해 반격 나선 윤미향…프레임 대결 우려 

    이용수 할머니 문제제기… 정치적 대결로 격화 윤 “조국 장관 생각나” vs 한국당 “여권 대주주는 조국”박용진 “지금 이 문제는 단순한 회계 투명성의 문제”정의기억연대 대표를 지낸 더불어시민당 윤미향 당선자가 이용수(92)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정의연 후원금 의혹 등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소환하면서 ‘제2의 조국’ 프레임이 형성되고 있다. 정치적 공방이 아니라 정의연의 회계투명성을 밝히는 방식으로 이번 논란이 마무리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13일 한 라디오에서 “근본적으로는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친일 세력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지 않습니까”라며 ‘진보 대 보수’ ‘친일 대 반일’의 프레임으로 윤 당선자를 옹호했다. 윤 당선자는 전날 페이스북에 딸의 지인들을 취재하는 기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나는 아침”이라고 적었다.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진영 대결을 격화시킬 수 있는 발언으로 해석될 여지가 컸다. 당장 미래한국당은 “여당이 엄호에 나선 시점은 윤 당선자가 자신의 처지를 ‘조국’에 빗대 조국 장관이 생각나는 아침이라는 글을 쓴 직후”라면서 “역시, 여권의 대주주는 조국”이라고 비꼬았다.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은 “‘여자 조국 윤미향’에 등극했다”며 제2의 조국 프레임으로 이번 논란을 확대시켰다. 이 할머니가 지난 7일 대구의 한 찻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성금이 피해자 할머니를 위해 쓰인 적이 없다”며 수요 집회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이 정치적 공방으로 변질된 것이다.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이 진영 간 대결로 격화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치적 공방으로 가면 진실과는 무관하게 양 진영의 난타전으로 변한다”면서 “그런 점을 알면서 윤 당선자가 조국 전 장관 이야기를 한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이날 경향신문에 보낸 입장문에서 “폄훼와 소모적인 논쟁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정치적 대결로 비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지금 문제 제기가 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게 회계 투명성의 문제”라면서 “이것을 가지고 왜 우리의 운동, 우리 단체가 하려고 하는 일에 대한 시비를 거느냐고 갈 필요 전혀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회계투명성 관련해서는 조금 지켜보자는 분위기”라면서 “시민단체에서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면 사과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이날 수요집회에서 “정의연에서는 개인적 자금 횡령이나 불법유용은 절대 없다”며 “국세청 시스템 공시 입력과정에서 아주 약간의 실수가 있었지만, 국세청 재공시 명령에 따라 바로잡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의연은 2018년 ‘기부 금품 모집·지출 명세서’에서 22억 7300만원의 기부금 수익을 2019년으로 이월한다고 기록했지만, 2019년 서류에는 이월 수익금을 0원이라고 적었다. 피해자 지원 사업 수혜자를 99명·999명 등으로 기재하기도 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드라이브 스루 들어간 유아용 전동차, 피자 주문 성공

    드라이브 스루 들어간 유아용 전동차, 피자 주문 성공

    '자동차가 없으면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할 수 없는 걸까?' 이런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남자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기발한 발상으로 피자를 사는 데 성공한 멕시코 남자가 화제다. 남자가 카메라에 잡힌 곳은 멕시코 타마울리파스주의 레이노사라는 지방도시.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3분 분량의 영상을 보면 남자는 유아용 전동차를 타고 드라이브 스루로 들어간다. 앞에는 웅장한(?) 검은색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이 있지만 남자는 조금도 주눅이 들어 보이지 않는다. 차례가 되자 남자는 당당하게 피자를 주문하고 이동코스를 따라 좌회전을 하며 영상에서 사라진다. "남자가 진짜 피자를 사서 나올까?" 관심이 집중된 상황. 영상에는 피자를 주문하는 남자를 지켜보던 한 남자가 결과가 궁금하다는 듯 출구 쪽으로 이동, 기웃거리는 모습도 포착됐다. 잠시 후 남자는 정말 피자를 들고 나온다. 피자상자를 든 남자는 들어갈 때처럼 여전히 유아용 전동자동차를 타고 있다. 남자는 진짜 자동차를 운전하듯 차로를 타고 안전운행을 하며 피자를 들고 집으로 향한다. 영상엔 촬영한 여성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유아용 전동자동차를 탄 남자는 여성들의 앞을 지나가지만 타인의 시선엔 관심이 없다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남자는 왜 이런 용기(?)를 내야 했을까? 레이노사에선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외식업계의 영업을 제한하고 있다. 외식업체는 배달이나 테이크아웃으로만 영업이 가능하다. 매장에서 손님을 받을 수는 없다. 드라이브 스루로 파는 피자를 꼭 먹고 싶었지만 자동차가 없는 남자가 '진짜 자동차' 대체재로 유아용 전동자동차를 사용한 이유다. 네티즌들은 "아침부터 영상을 보고 실컷 웃었다" "멕시코의 독창력엔 끝이 없는 것 같다"는 등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진=영상캡쳐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어느 삶을 가도 괴로움은 있어”… 만수의 반백년 롱런 비법

    “어느 삶을 가도 괴로움은 있어”… 만수의 반백년 롱런 비법

    “성적도 바닥을 기어보고 다 해봤지만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어요. 농구를 정말 좋아하고, 농구가 너무 재미있으니까요.” 1990년대 인기 농구만화 ‘슬램덩크’에서 농구에 대한 사랑을 수줍게 고백하던 강백호의 모습이 떠오른다. 유재학(57) 감독에게서 받은 느낌이 그렇다. 만 가지 수를 발휘한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지략이 뛰어나 ‘만수’(萬手)라는 별명을 가진 그다.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와 3년 재계약을 하며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가장 길게 한 팀을 지휘하는 기록에 성큼 다가섰다. 3년 후면 모비스와 19년을 함께하며 김응용(79)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이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를 지휘하며 세웠던 기록(17년 11개월)을 넘어선다. 대우 제우스, 신세기 빅스(이상 현 인천 전자랜드) 감독 시절까지 합치면 프로 감독으로 보낸 기간도 24년을 넘겨 최장 기록을 세우게 된다. 최다 1149경기 출장에 최다 662승, 챔피언결정전 우승 6회에 정규리그 1위 6회…. 프로농구 감독으로서 최고 기록은 대부분 유 감독의 몫이다. 16년간 모비스 왕조를 함께 건설했던 양동근이 은퇴하며 새로운 시기를 앞두고 있다. 자유계약선수(FA)를 네 명이나 폭풍 영입하는 등 선수단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며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유 감독을 12일 만나봤다.-국내 프로스포츠의 거목 김응용 회장에 견줘지고 있는데. “더 오래하셨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가 비교된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젊은 선수들과 매일 같이 지내다 보니 세월 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며 지낸 게 아닌가 한다. 감독은 파리목숨이라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직업이라고 집사람에게 이야기하며 시작했는데 이렇게 오래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코트를 씹어 먹는 천재 포인트 가드로 이름을 날렸지만 스물여덟에 은퇴했을 정도로 ‘코트의 여우’로서의 생활이 짧았다. “부상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재활을 오래하고 했으면 조금 더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모교인 연세대에서 코치 제의가 들어와 ‘에라, 갈 때 가자’는 마음이었다.” -서른다섯에 감독 데뷔해 최연소 기록을 갖고 있다. 그때 품었던 목표는 모두 이루었는지. “사실 지금도 목표는 없다. 선수 때도 그렇고 목표를 정해 놓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 강한 편이다.”-프로 감독은 피를 말리는 직업이다. 한 경기에서도 수없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농구 감독은 특히 더 그럴 것 같다. 육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지치기 쉬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을 것 같은데. “힘들고 고민도 많았지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가져본 적이 없다. 농구를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마음의 무게가 더 컸던 것 같다.” -그래도 고비가 있었을 텐데. “성적이 안 나거나 뜻대로 안 될 때는 굉장히 힘들다. 젊었을 때는 부모님이나 집사람에게 괴롭다고 토로하고, 힘들다고 털어놓으면서 넘어가곤 했다.” -정말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지. “프로에 오기 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은 있다. 연세대 코치로 갔을 때다. 후배들을 가르치기만 하면 될 것 같았는데 생각과는 달리 스카우트 등 농구 외적인 일이 많았다. 아버님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어느 삶을 가도 힘들고 괴로운 일은 다 있다’고 하셨다. 그 말씀 듣고 고민하다가 다시 하게 됐다.” -승부의 세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지. “시간 나면 자전거나 러닝머신을 타며 운동으로 푼다. 아니면 코치들하고 사우나를 같이하고 그런 게 대부분이다. 비시즌이 해외를 돌아다니며 외국인 선수를 보고 마음의 여유를 갖는 시기인데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매일 체육관에 출근하고 있다.” -감독 생활을 돌이킬 때 가장 이불킥을 하게 되는 순간은. “초년병 때 현대랑 하는데 한 쿼터에 2점밖에 못 넣은 적이 있다. 그 경기가 흑역사다. 그런 날이 있는데 뭔가 씌운 듯 자유투도, 레이업도 안 들어갔다. 팀도 창단한 지 얼마 안 됐고 선수들도, 나도 모두 어렸을 때다.” -반대로 지금 생각해도 짜릿한 순간은. “06~07시즌 챔피언결정전 7차전이다. 동근이도 자기 인생의 최고 경기로 꼽고 있는데 나도 그렇다. 2004년 모비스에 처음 와서 7위를 하고, 2005년 바로 정규 1위를 했다. 그리고 나서 06~07시즌에 7차전까지 간 끝에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스스로 롱런의 비결을 무엇으로 보는지. “조직을 중시한다, 수비를 강조한다, 선수들의 장점을 키워 성장시킨다…. 기사를 보면 여러 말씀들을 해주시는데 난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선수들이 전술·전략을 성실하게 따라 주지 않으면 어렵다. 내 경우 고참 선수들, 외국인 선수들을 비롯해 함께한 선수들이 대체로 잘 따라와 줬다. 그게 비결이다. 예를 들면 매일 아침 식사를 전원이 함께하는 규율 같은 게 있는데 어찌 보면 상당히 귀찮은 일이지만 뒤에서 불평불만하는 선수들이 거의 없이 따라 줬다.” -선수 선발 때 인성을 보는 것이 아닌가. “국내 선수들은 풀이 너무 작아 그럴 여유가 없다. 잘하면 무조건 뽑아야 한다. 모비스는 꾸준히 성적을 내서 드래프트 때 뒤에서 뽑아야 했었으니까. 다만 외국인 선수의 경우 현지 관계자들에게 꼭 인성을 물어보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팀을 지휘하며 지켜온 철칙이 있다면. “단체 운동이기 때문에 동료에 대한 배려를 중시한다. 정해진 시간에 늦으면 안 된다거나 연습 분위기를 해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든가 그런 거다. 사실 훈련량이 많거나 강도가 세지 않은데 그런 것에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모비스는 타이트하다고들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중간에 바뀐 것이 있는지. “요즘 굉장히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주변에서 하도 말을 많이 들어서 어투라든지 인상을 되도록 유하게 하려고 애쓴다. 내 스타일은 아니라 안 맞는 옷을 걸친 것 같아 힘든 면이 있다. 내가 유해지는 게 선수들에게 과연 좋은 일인지, 욕을 좀 먹더라도 경기력을 위해 원래대로 타이트하게 하는 게 좋은 것인지 확신은 없다. 앞으로도 더 공부해야 할 부분이다.” -경기 내내 성난 표정이라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거기에는 좀 오해가 있다. 나는 긴장하거나 무엇인가에 집중하면 미간이 모이고 눈이 올라가 화가 나지 않았어도 화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웃는 사진이 없어 사진 고르는 게 무척 힘들다. 안경 생각도 했는데 난시는 한 번 쓰면 계속 써야 한다고 해서 미루고 있다. 은퇴 전에는 한 번 써볼까 한다. 허허허.” -운명처럼 16년을 함께했던 양동근이 없는 시즌을 맞아야 하는데. “올해는 동근이의 빈자리를 어떻게 메우느냐가 중요하다. 동근이가 핵심 역할을 했기 때문에 팀 전체 스타일도 달라져야 한다. 올해와 내년은 그런 준비를 하고 밑바탕을 깔아 토대를 단단하게 굳히는 시기라고 본다. 물론 그러면서 성적도 내면 좋겠지만.“ -리빌딩은 사실상 처음 아닌지. “2004년 이후 처음이다. 16년 전과는 체력적으로 많이 달라졌지만 기분은 딱 모비스에 처음 왔을 때 새로 시작하는 바로 그 기분이다. 몸이 따라 줄지는 모르겠지만 선수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같이하려 한다. 그런 것들을 마음에 품고 있다.” -감독 커리어 이후 농구계에서 더 큰 일을 해야 하지 않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난 생각이 다르다. 농구 감독을 오래하고 성적도 냈다고 해서 행정을 잘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길로 가는 건 맞지 않다고 본다. 단장이나 그런 쪽에는 더 잘하는 분들이 있다. 그저 재미있어서 열 살 때 농구를 시작했다. 3년 후면 농구만 해온 지 50년이 넘게 된다. 남은 시간은 가족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게 농구 감독 이후의 목표라면 목표다.” 글 사진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10억엔 합의 몰랐다…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의원직 사퇴 안 해”

    “10억엔 합의 몰랐다…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의원직 사퇴 안 해”

    언론에 엠바고로 풀린 정도만 통보받아 주점 3000만원? 50개 업소에 낸 총비용 딸 시카고 학교서 1년간 전액 장학금 UCLA는 남편 배상금… 말 바꾼 적 없다 일부 언론, 딸 車 캐고 다녀… 조국 떠올라 이용수 할머니와 오해 풀기 위해 만날 것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고 수요집회를 이끌었던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다. 윤 당선자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할머니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딸의 유학비와 관련해 한 번도 말을 바꾼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번 일에 책임지고 비례대표에서 물러나라는 일각의 요구에 대해선 “사퇴는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거부했다. ●부모님·시어머니 재산 다 합쳐서 8억 윤 당선자는 1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미리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방 70주년을 맞아 위안부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책임감으로 외교부와 수차례 접촉해 일본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며 “그때마다 외교부 담당 국장은 진전된 내용이 없다고 하다가 돌연 12월 27일 밤 기밀유지 조건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국고 거출 발표가 있을 거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은 언론 엠바고였고, 10억엔 위로금 조성 등 구체적인 양국 합의 내용은 28일 아침 알았다는 게 윤 당선자의 주장이다. 그는 또 “외교부가 15차례 위안부 피해자 측과 상의했다는 건 사실과 맞지 않다”며 “그건 우리들이 합의에 대해 요구하고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만난 거지 그들이 어떻게 하겠다고 설명한 자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은 30년간 정의기억연대(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일한 윤 당선자가 8억원이 넘는 재산을 신고하고, 딸을 미국 유학까지 보낸 사실을 근거로 거액의 월급을 챙기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현금 지원은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자는 “그 얘기까지 해야 하느냐”며 “정대협 간사를 할 때는 1992년 (월급) 30만원을 받았고, 해가 지나면서 2002년에 150만원을 받았다. 활동비가 인상되면서 270만원, 300만원을 받았는데 지난해 이사회가 350만원으로 올려 준다고 하기에 거부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면서 8억 3591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것에 대해 윤 당선자는 “부모님이 평생 사신 아파트, 제 아파트, 승용차, 시어머니가 사시는 방 한 칸짜리 빌라까지 다 포함해서 써낸 것”이라고 했다. 윤 당선자는 지난 3월 22일까지 상임대표를 맡았던 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에 대해서도 오해라고 반박했다. 특히 정의연이 2018년 후원의 날 행사가 열린 서울 종로구 주점 옥토버페스트에서 실제론 430만원을 써 놓고, 이 주점 한 곳에서 3339만원을 지출한 것처럼 부풀렸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윤 당선자는 “3339만원은 2018년 50개 업체에 지급된 총 비용이고 그 중 대표업체 한 곳만 표시한 것”이라면서 “인건비 부담 때문에 정의연 활동가는 8명에 불과하고 이 중 한 명이 모든 회계 처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부족함은 있을 수 있다. 보완하면 될 일이지 횡령이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의도적”이라고 말했다. ●딸이 ‘나 때문에 엄마가 지장 있나’ 걱정 미국 UCLA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딸의 유학 비용에 대해서도 윤 당선자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참여연대 출신 김경율 회계사 등은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인 윤 당선자의 남편이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2017년 5월 1억 9000만원)과 손해배상금(2018년 7월 8900만원)을 받기 전인 2016년 그의 딸이 유학을 떠났다며 자금 마련 시기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자는 “딸이 2016년 시카고 일리노이대학 비학위 1년 과정을 다닐 때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2018년 9월 UCLA 석사과정에 진학한 뒤 6학기 동안 학비(6만 620달러)와 기숙사비(2만 4412달러) 등 8만 5000달러(약 1억 400만원)를 배상금으로 충당했다”고 해명했다. 윤 당선자는 “TV조선 기자가 UCLA에 다니는 지인을 통해 딸의 사는 곳, 무슨 차를 모는지 등을 취재하고 다녔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채널A 기자 3명은 현재 딸이 머무는 서울 집을 찾아와 딸이 ‘나 때문에 엄마가 지장이 있느냐’며 걱정했다”고 말했다. 윤 당선자는 이날 페이스북에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난다”며 “겁나지 않는다. 여성, 평화, 인권의 가시밭길로 들어선 사람이 겪어야 할 숙명으로 알고 당당히 맞서겠다”고 밝혔다. ●지혜롭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분쟁 해결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왜 그러시는지 안다. 수많은 활동가가 곁을 떠날 동안 끝까지 할머니와 함께한 사람이 나”라면서 “그런 제가 국회로 간다고 했을 때 굉장히 신나셨는데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배신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오해를 풀기 위해 계속 만남을 시도하겠다”고 했다.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주선한 최용상 가자!평화인권당 대표가 수요집회 중단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윤 당선자는 “수요시위는 계속해야 한다. 최씨의 발언은 일본 정부가 원하는 것인데 왜 그렇게 ‘스피커’가 되려고 하는지 가슴 아프다”며 “피해자와 활동가를 분열하려는 언행을 중단하고 함께 일본 정부에 문제 해결을 요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의 사퇴 요구에 대해 “돌아가신 할머니들과 저를 지지해 주는 세계 각지 동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일본과 일본 정부, 일본 시민사회를 누구보다 잘 아는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한다. 지혜롭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10억엔 합의 몰랐다…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의원직 사퇴 안 해”

    “10억엔 합의 몰랐다…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의원직 사퇴 안 해”

    언론에 엠바고로 풀린 정도만 통보받아 주점 3000만원? 행사 모든 비용 합친 것 딸 시카고 학교서 1년간 전액 장학금 UCLA는 남편 배상금… 말 바꾼 적 없다 일부 언론, 딸 車 캐고 다녀… 조국 떠올라 이용수 할머니와 오해 풀기 위해 만날 것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고 수요집회를 이끌었던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다. 윤 당선자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할머니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딸의 유학비와 관련해 한 번도 말을 바꾼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번 일에 책임지고 비례대표에서 물러나라는 일각의 요구에 대해선 “사퇴는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거부했다. ●부모님·시어머니 재산 다 합쳐서 8억 윤 당선자는 1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미리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방 70주년을 맞아 위안부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책임감으로 외교부와 수차례 접촉해 일본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며 “그때마다 외교부 담당 국장은 진전된 내용이 없다고 하다가 돌연 12월 27일 밤 기밀유지 조건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국고 거출 발표가 있을 거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은 언론 엠바고였고, 10억엔 위로금 조성 등 구체적인 양국 합의 내용은 28일 아침 알았다는 게 윤 당선자의 주장이다. 그는 또 “외교부가 15차례 위안부 피해자 측과 상의했다는 건 사실과 맞지 않다”며 “그건 우리들이 합의에 대해 요구하고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만난 거지 그들이 어떻게 하겠다고 설명한 자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은 30년간 정의기억연대(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일한 윤 당선자가 8억원이 넘는 재산을 신고하고, 딸을 미국 유학까지 보낸 사실을 근거로 거액의 월급을 챙기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현금 지원은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자는 “그 얘기까지 해야 하느냐”며 “정대협 간사를 할 때는 1992년 (월급) 30만원을 받았고, 해가 지나면서 2002년에 150만원을 받았다. 활동비가 인상되면서 270만원, 300만원을 받았는데 지난해 이사회가 350만원으로 올려 준다고 하기에 거부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면서 8억 3591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것에 대해 윤 당선자는 “부모님이 평생 사신 아파트, 제 아파트, 승용차, 시어머니가 사시는 방 한 칸짜리 빌라까지 다 포함해서 써낸 것”이라고 했다. 윤 당선자는 지난 3월 22일까지 상임대표를 맡았던 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에 대해서도 오해라고 반박했다. 특히 정의연이 2018년 후원의 날 행사가 열린 서울 종로구 주점 옥토버페스트에서 실제론 430만원을 써 놓고, 이 주점 한 곳에서 3339만원을 지출한 것처럼 부풀렸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윤 당선자는 “3339만원은 감사패, 현수막 등 행사 준비 비용을 모두 합한 금액”이라며 “인건비 부담 때문에 정의연 활동가는 8명에 불과하고 이 중 한 명이 모든 회계 처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부족함은 있을 수 있다. 보완하면 될 일이지 횡령이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의도적”이라고 말했다. ●딸이 ‘나 때문에 엄마가 지장 있나’ 걱정 미국 UCLA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딸의 유학 비용에 대해서도 윤 당선자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참여연대 출신 김경율 회계사 등은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인 윤 당선자의 남편이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2017년 5월 1억 9000만원)과 손해배상금(2018년 7월 8900만원)을 받기 전인 2016년 그의 딸이 유학을 떠났다며 자금 마련 시기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자는 “딸이 2016년 시카고 일리노이대학 비학위 1년 과정을 다닐 때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2018년 9월 UCLA 석사과정에 진학한 뒤 6학기 동안 학비(6만 620달러)와 기숙사비(2만 4412달러) 등 8만 5000달러(약 1억 400만원)를 배상금으로 충당했다”고 해명했다. 윤 당선자는 “TV조선 기자가 UCLA에 다니는 지인을 통해 딸의 사는 곳, 무슨 차를 모는지 등을 취재하고 다녔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채널A 기자 3명은 현재 딸이 머무는 서울 집을 찾아와 딸이 ‘나 때문에 엄마가 지장이 있느냐’며 걱정했다”고 말했다. 윤 당선자는 이날 페이스북에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난다”며 “겁나지 않는다. 여성, 평화, 인권의 가시밭길로 들어선 사람이 겪어야 할 숙명으로 알고 당당히 맞서겠다”고 밝혔다. ●지혜롭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분쟁 해결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왜 그러시는지 안다. 수많은 활동가가 곁을 떠날 동안 끝까지 할머니와 함께한 사람이 나”라면서 “그런 제가 국회로 간다고 했을 때 굉장히 신나셨는데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배신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오해를 풀기 위해 계속 만남을 시도하겠다”고 했다.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주선한 최용상 가자!평화인권당 대표가 수요집회 중단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윤 당선자는 “수요시위는 계속해야 한다. 최씨의 발언은 일본 정부가 원하는 것인데 왜 그렇게 ‘스피커’가 되려고 하는지 가슴 아프다”며 “피해자와 활동가를 분열하려는 언행을 중단하고 함께 일본 정부에 문제 해결을 요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의 사퇴 요구에 대해 “돌아가신 할머니들과 저를 지지해 주는 세계 각지 동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일본과 일본 정부, 일본 시민사회를 누구보다 잘 아는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한다. 지혜롭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10억엔 합의 몰랐다…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의원직 사퇴 안 해”

    “10억엔 합의 몰랐다…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의원직 사퇴 안 해”

    언론에 엠바고로 풀린 정도만 통보받아 주점 3000만원? 행사 모든 비용 합친 것 딸 시카고 학교서 1년간 전액 장학금 UCLA는 남편 배상금… 말 바꾼 적 없다 일부 언론, 딸 車 캐고 다녀… 조국 떠올라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고 수요집회를 이끌었던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다. 윤 당선자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할머니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딸의 유학비와 관련해 한 번도 말을 바꾼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번 일에 책임지고 비례대표에서 물러나라는 일각의 요구에 대해 “사퇴는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거부했다. 윤 당선자는 1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미리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방 70주년을 맞은 해라 위안부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고 외교부와 수차례 접촉해 일본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며 “그때마다 외교부 담당 국장은 일본 정부의 진전된 태도가 없다고 했는데 갑자기 12월 27일 밤 기밀유지 조건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국고 거출 발표가 있을 거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은 언론에도 엠바고 상태로 공유된 내용이었고, 10억엔 위로금 조성 등 구체적인 양국 합의 내용은 28일 아침 알았다는 게 윤 당선자의 주장이다. 보수 진영은 30년간 시민단체 정의기억연대(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일한 윤 당선자가 8억원이 넘는 재산을 신고하고, 딸을 미국 유학까지 보낸 사실을 근거로 거액의 월급을 챙기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현금 지원은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자는 “그 얘기까지 해야 하나”라며 “정대협 간사할 때는 1992년 (월급) 30만원을 받았고, 해가 지나면서 2002년에 150만원을 받았다. 활동비가 인상되면서 270만원, 300만원을 받았는데 지난해 이사회가 350만원으로 올려 준다고 하기에 거부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면서 8억 3591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것에 대해 윤 당선자는 “부모님이 평생 사신 아파트, 제 아파트, 승용차, 시어머니가 사시는 방 한 칸짜리 빌라까지 다 포함해서 써낸 것”이라고 했다. 윤 당선자는 지난 3월 22일까지 상임대표를 맡았던 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에 대해서도 오해이며 횡령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일부 언론은 정의연이 2018년 후원의 날 행사가 열린 서울 종로구 주점 옥토버페스트에서 430만원을 썼는데, 마치 해당 주점 한 곳에서 3339만원을 지출한 것처럼 부풀렸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윤 당선자는 “감사패, 현수막 등 행사 준비 비용을 모두 합한 금액”이라면서 “인건비 부담 때문에 정의연 활동가는 8명에 불과하고 이 중 한 명이 모든 회계 처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부족함은 있을 수 있다. 보완하면 될 일이지 횡령이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의도적”이라고 말했다. 미국 UCLA에서 피아노 전공을 공부하는 딸의 유학 비용에 대해서도 윤 당선자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참여연대 출신 김경율 회계사 등은 간첩조작사건 피해자인 윤 당선자의 남편이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2017년 5월 1억 9000만원)과 손해배상금(2018년 7월 8900만원)을 받기 전인 2016년 그의 딸이 유학을 떠났다며 자금 마련 시기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자는 “딸이 2016년 시카고 일리노이대학 비학위 1년 과정을 다닐 때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2018년 9월 UCLA 석사과정에 진학한 뒤 6학기 동안 학비(6만 620달러)와 기숙사비(2만 4412달러) 등 8만 5000달러(약 1억 400만원)를 배상금으로 충당했다”고 해명했다. 윤 당선자는 “TV조선 기자가 UCLA에 다니는 지인을 통해 딸의 사는 곳, 무슨 차를 모는지 등을 취재하고 다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채널A 기자 3명은 현재 딸이 머무는 서울 집을 찾아와 딸이 ‘나 때문에 엄마가 지장이 있느냐’며 걱정했다”고 말했다. 윤 당선자는 이날 페이스북에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난다”며 “겁나지 않는다. 여성, 평화, 인권의 가시밭길로 들어선 사람이 겪어야 할 숙명으로 알고 당당히 맞서겠다”고 밝혔다.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왜 그러시는지 안다. 수많은 활동가가 곁을 떠날 동안 끝까지 할머니와 함께한 사람이 나”라면서 “그런 제가 국회로 간다고 했을 때 굉장히 신나셨는데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배신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오해를 풀기 위해 계속 만남을 시도하겠다”고 했다.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주선한 최용상 가자!평화인권당 대표가 수요집회 중단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윤 당선자는 “수요시위는 계속해야 한다. 최씨의 발언은 일본 정부가 원하는 것인데 왜 그렇게 ‘스피커’가 되려고 하는지 가슴 아프다”며 “피해자와 활동가를 분열하려는 언행을 중단하고 함께 일본 정부에 문제 해결을 요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의 사퇴 요구에 대해 “돌아가신 할머니들과 저를 지지해 주는 세계 각지 동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일본과 일본 정부, 일본 시민사회를 누구보다 잘 아는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한다. 지혜롭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인터뷰]의혹에 입연 윤미향 “딸 유학비 말 바꾼적 없다”

    [인터뷰]의혹에 입연 윤미향 “딸 유학비 말 바꾼적 없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고 수요집회를 이끌었던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전 이사장)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다. 윤 당선자는 1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서울신문과 만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할머니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딸의 유학비와 관련해 한 번도 말을 바꾼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번 일에 책임지고 비례대표에서 물러나라는 일각의 요구에 대해 “사퇴는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일축했다. 다음은 윤 당선인과의 일문일답.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상 내용에 대해 야당에선 윤 당선인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의혹 제기했다. ‘당일 아침 알았다’에서 ‘합의 전날 알았다’로 말이 바뀌었다는 의혹도 있다. 이와 관련해 무엇이 사실인지 말씀해달라. 2015 한·일 합의 전체 내용은 2015년 12월 28일 당일에 기자회견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총리로서 사죄, 국고 거출 세 가지가 미리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었다. 그 내용을 그대로 통보받았다. 2015년은 해방 70주년으로 우리에게 굉장히 의미있는 해다. 이 해에 위안부 문제 꼭 해결하자는 중요한 결의를 다졌고, 한국정부에게도 “올해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피해자들도 여러차례 촉구했다. 그래서 그 해에 한일 국장급 협의가 서울과 도쿄에서 여러번 열렸다. 처음에는 외교부에게 주도권이 있었고, 그때 마다 우리가 외교부에 면담을 요청 했다. 일본과 접촉했다고 하는데, 국장급 협의를 열었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이 논의됐는지, 피해자가 전달했던 요구가 해결됐는지 등을 물어보고 촉구했다. 피해자들이 전달한 이야기는 2014년에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채택한 ‘일본정부에게 요구하는 제언’이라는 요구서 내용이다. 요구서에는 일본 정부가 해야할 일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첫 번째, 역사적 사실 인정해야 한다. 그 사실 안에는 위안소 운영 등 이것이 범죄라는걸 인정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 인정 위에 공식 사죄하라, 사죄하되 고노가 사과하고 아베가 번복하는 이런 방식이 아니라 다시 번복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죄하라고 얘기했다. 사죄 증거로 배상도 하라고 했다. 배상은 한국사회에서 헷갈리는 측면이 있는데 일본정부가 준 10억엔은 배상금이 아니다. 그건 위로금이다. 화해치유재단의 기부금이다. 배상은 법적책임을 인정하고 주는 금전을 말한다. 그 안에는 금전적인 배상도 있지만 비화폐적 배상도 있는 굉장히 포괄적 용어다. 그래서 배상을 요구했다. 그리고 역사교과서에 기록해야 한다는 요구도 같이 했다. 한국정부에도 숱하게 전달했고, 일본정부, UN에도 전달하고 미국정부에도 전달했다. 이 문제에 미국정부도 관련 있다고 우리가 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회에서 활동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내용이 반영됐는가를 계속 확인하고, 또 확인했어야 했다. 우리를 배제하고 우리 요구 없이 그냥 체결되면 또 다시 역사는 거꾸로갈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 때마다 외교부 담당 국장은 “일본정부가 전혀 변화가 없다”, “피해자의 요구에 진전이 없다”고 계속 답변했다. 그래서 ‘아, 이번에도 힘들구나’라 생각하고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외교당국자 회의가 열리지 못 했고, 8월 아베담화가 나왔다. 위안부의 ‘위’자도 없고, 우리나라에 대한 식민지배 책임도 언급이 없었다. 오직 서구에 대한 반성과 사죄만 있었다. 그 때 당시 ‘아, 광복 70주년이지만 올해도 그냥 지나가나보다. 우리는 내년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할머니들과 함께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실시한 TF팀 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합의 주도권이 외교부에서 청와대로 넘어간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일본 총리 관저에서 합의를 긴밀하게 진행하기 시작한 시기다. 그 땐 외교부 당국자 회의가 안 열렸다. 우리는 몰랐다. TF 결과보고서에 나온 내용이다. 2015년 12월 24일 밤에 연내 타결을 목적으로 기시다 외무상이 방한한다는 일본발 뉴스가 떴다. 외교부에게 확인했는데 모른다고 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모를 수밖에 없었다. 외교부가 아니라 청와대가 주도했을테니까. 그 후 뉴스에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할 것이다, 국고 거출 등의 얘기들이 언론에 조금씩 보도가 됐다. 여기에 덧붙여 한일 국장급 협의가 12월 27일 열릴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27일 오후에 한일 국장회의가 열렸다. 그 때 계속해서 언제 끝나는지 물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다 끝난 밤에, 도저히 누군가와 물리적으로 의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밤에 언론에 나온 통보 그대로, 엠바고 상태로 통보받았다. 일본 정부 책임 인정, 사죄, 국고 거출. 기밀유지 조건이었다. 저는 기밀유지 조건에 ‘네’라곤 했지만 그 내용을 기밀유지 할 순 없었다. 그래서 법률가에게 연락하고, 일본에도 연락하고, 내일 이런 내용이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침 일찍부터 법률가들을 모아 놓고 통보받은 내용을 가지고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의논했는데 아무도 이것만으로는 결정할 수 없다는 말이 나왔다. 그 때 제가 이용수 할머니도 대구에서 올라와 달라 요청해서 이용수 할머니도 논의 자리에 같이 있었다. ‘아직 이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 기자회견을 보자’해서 다 같이 기자회견을 봤다. 그런데 윤병세 장관이 “이것으로 불가역적인 해결이다. 국제사회에 비난과 비판을 자제하겠다. 소녀상 철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발표했다. 그 때 ‘아, 국민도, 언론도, 우리도 다 속았구나’라고 생각해서 즉각적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협의하지 않았다. 11차례 만난 것? 15차례 피해자 접촉? 그건 우리들이 합의에 대해 요구하고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만난거지 그들이 어떻게 하겠다고 설명한 자리가 아니다. 그리고 피해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2015 한·일합의가 채택되고 일방적으로 발표됐다. 그 자리는 어떻게 진행되나 확인하는 자리였지, 공유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외교부의 대답은 늘 “진전이 없다”는 대답이 전부였다. 어떻게 일본정부가 하고 있다든가 구체적인 건 우리랑 논의하지 않았다. 김복동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한 말이 무엇이냐면 “명절 때 인사 온다고 해서 오라고 했더니, 명절 방문한 것도 15차례에 포함돼 있었어? 그럼 거부했어야 됐네?”였다. 그 정도로 2015 한·일 합의 이후 그들의 변명은 형편이 없었다. 2015 한·일합의는 일본 시민사회에서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굴욕적이었고, 피해자들에게도, 관련 단체에도, 인권을 위해 일해온 세계 시민사회에도 문제적인 합의였다. TF 결과에서 이면 합의까지 있었다는 것도 드러났다. 2015 한·일합의 때문에 화해치유재단 해산된 작년까지 제자리걸음이었다. 늘 일본정부는 “한·일합의로 다 끝났다. 왜 골대를 옮기냐”고 했고, 우리 정부는 합의 때문에 한 마디도 말 못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딜가든 그 합의 때문에 소녀상 철거 움직임들, 위안부는 강제연행 아니다, 독도는 일본땅이라 하는 일본의 맹공격에 대응하지 못 했다. 이런 일들이 그 합의 때문에 있었는데 그걸 사전에 협의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유용에 대해서도 야당이 몰아붙이고 있다. 호프집(옥토보훼스트) 맥주값 비용으로 3339만원 지출 처리됐는데, 그 호프집에선 430만원만 받았다고 한다. 차이가 많이 난다.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금액을 입력하는건 회계 담당자가 한다. 제가 추후 확인해보니까 입력하는 칸이 하나밖에 없더라. 그럼 ‘옥토보훼스트 외’라 쓰고 총체적으로 입력하는 거다. 1년에 한번 후원회를 연다. 이건 다른 시민단체도 마찬가지다. 옥토보훼스트는 그날만큼은 자신들의 이익을 만드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맡기지만 모든 시스템은 그대로 옥토보훼스트가 그대로 제공한다. 요리사, 자원봉사자 등을 다 옥토보훼스트 측이 제공한다. 한 해만 한 것이 아니다. 위안부 문제를 내걸었을 때 후원이 어렵다. 보통 이렇게 장소를 잘 안 빌려준다. 그런데 옥토보훼스트가 빌려줘서 그동안 해왔다. 430만원 금액 포함해서 후원회 개최에 사용된 돈이 3339만원이다. 그 날 문화행사 진행비, 감사패와 현수막 제작비, 추가적 물품 구입비, 티켓비 등 행사 하나를 하기 위해 여러 비용이 든다. 그 총비용이 3339만원이다. 그런데 마치 술집에서 하루 밤에 쓴 것처럼 보도가 나갔다. -정의기억연대는 인력부족에 따른 회계 오류를 인정했다. 공격 많이 받는 만큼 더욱 철저히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아쉬움 남는다. 어떤 한계가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정의기억연대에서는 회계를 한 사람이 하고 있다. 총 인원이 8명밖에 없다. 한 사람이 영수증 발급부터, 기부금 신청하고 정부 보고하고 모든 일을 다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입력을 세밀하게 하지 못했을까 싶다. 대부분 NGO가 그렇지만 사람을 인건비 문제로 사람을 많이 고용하지 못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활동 중점은 운동을 하고, 이슈를 만들고 피해자를 지원하고 그런 일들을 계속 해야했기 때문에 회계에 부족함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보완해 나가면 된다. 횡령은 아니라는 것은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몰아가는 것은 의도적이다. 혼자서 하기도 버거운 일을, 그렇게 철저하게 홈택스에 입력하고, 보고하고 홈페이지에도 전체 일년 회계 결산을 보고하고 과정을 거치는데 마치 횡령있는 것처럼 말하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란 생각 가질 수밖에 없다. 활동가들에게 어떤 잘하라는 격려는 좋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우려를 하지 않도록 보완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은 좋다. 그런데 활동가들의 활동까지도 폄훼하는 그런 일은 안 했으면 좋겠다. 할머니들에게도, 활동가들에게도 상처를 주지않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정의연 전 이사장 월급이 최저임금보다 높은 점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도 있다. 제가 정대협 간사를할 때는 1992년도에 30만원을 받았다. 그 다음 50만원. 몇 년 지나고 80만원을 받고, 2002년도에 150만원을 받았다. 그리고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해서 270만원을 받다가, 300만원을 받았다. 이사회에서 350만원으로 작년에 올려줘서 거부했다. 그래서 300만원을 받았다. 그게 정대협 30년 일했던 제 활동비다. 그 외 교통비를 쓰거나 이런 비용들은 활동비에서 썼다. 교육하거나 연대활동 하러갈 때 그냥 가능하면 내 활동비로, 사비로 썼다. SNS에서 저는 유급활동가라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공개했다. 여러분들 후원이기에 저는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공개했고, 그리고 25년 간 수요일 책쓰고 그 돈은 박물관에 기부하기도 하고 나비기금에 기부하기도 했다. 가능하면 제 활동을 활동가로서 살고싶어서, 유급활동가긴 하지만, 그렇게 해왔다. -5년간 소득세 643만원 납부하신 걸로 나온다. 계산하면 부부 각자 연봉이 최대 2500만원대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축소 신고 한 것 아니냐는 비판 있다. 이에 반해 재산은 재산 8억원 신고했다. 시부모, 친정부모의 재산 합쳐 8억이라는데 원래 재산은 2억 정도인 것이 맞나? 맞다면, 일반적으로 이렇게 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신고했나. 국회의원 후보를 신청할 때 재산 신고하는 칸에는 부모님들까지 다 쓰게 돼 있었다. 그래서 저희 부보님 아파트, 평생을 해서 산 아파트와 지금 쓰는 차,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승용차, 시어머니가 사는 방 한 칸짜리 빌라가 다 포함된거다. 다 안 써도 되는줄은 몰랐어. 쓰라고 하니까 충실하게 다 쓴 거다. 당에도 어떤 내역인지 설명했다. 신고서를 쓸 때 당에서도, 선거관리위원회도 이 내용들을 안 써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칸이 있어서 쓴 거다. 혹시 잘못될 수 있으니까 다 선관위에서 감수받았다. 소득세는 제가 정확하게 어떻게 산정되는지 모르겠는데, 세무서 가서 떼어온 그대로 제출한거다. 평소 소득세는 정의연에서 활동비 받는 것, 가끔 원고를 쓸 때 받은 것에 대한 세금 포함된 것이니까 어떻게 하는지는 모른다. 소득세를 직접 신고하는 건 아니지 않나. 소득세는 급여를 받을 때 사무실에서 처리한다. 급여를 받으면 세금이 이미 떼진 상태에서 오지 않나. 그렇게 받았지, 그게 어떻게 산정돼서 하는지는 모른다. -딸 UCLA 유학비용을 처음엔 전액 장학금이라 했다가, 나중엔 남편의 배상금으로 해명. 이를 번복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 있다. 제가 한 번도 그렇게 번복한 적이 없는데 왜 이렇게 말이 됐는지 모르겠다. 제 딸이 처음부터 UCLA에 간 건 아니다. UCLA에 가기 위해 언어도 해야 하고, 피아노 전공이라 그와 관련한 공부도 미리 해야 했다. 그 공부를 시카고에서 일년 간 전액 장학금을 받고 했다. 그래서 그걸 SNS에 올린적이 있다. 자랑하려고. 딸을 칭찬하려고. 딸이 시카고에서 일년 동안 공부하는데 전액 장학금 받게 됐다고 썼다. UCLA 논란 나왔을 때는 언급 필요성도 못 느꼈다. 왜 제 딸아이가 무슨 돈으로 공부하는지를 언급해야 하나. 이미 남편도, 저도 경제생활을 하고 있고, 저희 가족도 탄탄하다. 어제 소명한 것처럼 저희는 2018년에 큰 배상받은 것이 있다. 그 배상금은 제 아이가 남편이 감옥에 있을 때 태어났고, 그래서 이 배상금은 우리 것이 아니라 너의 것이라고 딸에게 말했다. 그 때 딸이 UCLA에서 공부하고 싶은데 장학금 제도가 어렵다고, 어떻게 할지 물었다. 그 때 이 돈이 있으니까 이 돈으로 공부했으면 좋겠다, 너의 꿈을 키워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대로 학비로 썼다. 딸이 이번 6월에 졸업인데 돈이 충분하다. 향간에 UCLA가 얼마다? 이런 얘기 도는데 그것도 다 소명했다. 기숙사비까지 다 합쳐도 8만 5000불이다. 딸이 2018년 9월부터 했는데 미국은 한국과 학기제가 달라서 올해 6학기를 다 마쳤다. 6학기가 총 석사학위 기간이다. 다 합쳐도 8만 5000불 정도다. UCLA와 시카고는 별도다. 일년 동안 준비하는 과정이 있고, 거기에서 장학금을 받아서 공부했다. 그 공부 중에 UCLA를 지원했는데 합격했다. 장학금으로 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장학금은 어렵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 돈으로 학비를 하자고 해서 쓰고 있다. -오늘 아침에 페이스북 글을 봤는데 조선일보 기자가 딸 취재 들어 갔다고 썼더라. 조선일보 반박은 그런 기자가 없다고도 하던데 어떤 일이 있었나. 카카오톡 메시지 그대로 친구가 보내왔다. 친구가 보낸 메시지에 조선일보 기자라고 하는 이름 공개 했다. 그 기자가 음대생을 찾고 있다, 그래서 너를 소개를 했다라고 하더라. 그 친구에게 와서 내 딸이 어떤 차를 몰고 다니냐, 어디서 사느냐, 놀면서 다니느냐를 물어봤다고 하더라. 이 친구가 집은 기숙사라 학교 근처고, 차는 없고 걸어다닌다고 얘기했다 하니까 “그냥 그렇게 공부만 하고 다니는 친구군요”하고 끊었다고 하더라. 소개한 친구는 조선 기자라고 소개 했고, 그 메시지에도 그렇게 써있다. -지인통해서 취재가 들어온건가? 조선일보 측에서 딸 친구를 취재하고 다니는 거다. 그리고 채널A 기자는 오늘 세 명이 저희 집을 방문했더라. 문은 안 열렸지만 세 명이 들이닥쳤다. -집에 남편분이 있었나? 딸이 있었다. 딸이 “엄마 집에 오지마”라고 하더라. 친구 취재 사건 터졌을 때 딸이 “나 때문에 엄마에게 무슨 지장있어?”라며 걱정하더라. 굉장히 성실하게 공부하는 아이다. 내가 많이 도와주지 못 했고. 그렇게 스스로 자기가 개척해서 하고 있다. -보수진영의 프레임 공격이라고 생각하나. 정의연에서는 왜곡보도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하는데, 당선자 본인도 법적 대응할 계획있나. 정의연에서 하고 있으니까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를 처벌하고 그런 것보다는 그렇게 활동가와 NGO를 공격하는, 악의적으로 왜곡해서 보도하는 것에 대해서 재발 방지 차원에서 법적인 활동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하고 저는 차분하게 어떻게 하면 국회활동을 잘 해나갈 것인가를 준비하고 공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퇴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던데 그러면 안 된다. 사퇴는 돌아가신 할머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저를 지지해주는 수많은 세계 각지 동포들, 연대해주신 분들, 그 분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외 동포들은 비례밖에 못 찍지 않나. 어떤 분은 윤미향을 당선되게 하려고 버스를 몇 시간씩 타고 가서 투표했고, 비행기를 타고 가서 투표했다. 그 분들의 뜻은 국회 가서 그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것을 해결해 달라는 취지로 느껴진다. -이용수 할머니와 무슨 오해있었나. 만나서 풀었나. 지금 할머니와 연락이 잘 안 되고 있다. 일요일에 만나려고 할머니가 계신다는 곳으로 갔는데 결국 못 만나고 올라왔다. 지금은 할머니가 왜 그런지 안다. (최용상 가자평화인권당 대표 때문인가?) 저는 누가 뒤에 있고 그런 것보다도, 이용수 할머니 신고 전화를 제가 받았다. 그 때 간사는 저 혼자였고, 수많은 활동가들이 함께 했다가 그만 두고 떠나는 그런 일을 겪었다. 그런데 끝까지 할머니 곁에서 함께한 사람은 나였다. 그런 내가 국회로 떠난다니까…. 처음에 “국회 가서 할머니랑 같이 할거에요”라고 할 땐 할머니가 굉장히 신나하셨다. 그런데 심경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이 문제 해결하고 가라”고 하시더라. 제가 할머니한테 웬만하면 “네, 할머니 알았습니다”라고 하는데 이 문제는 이미 비례도 당선됐고, 또 국회로 가는 것을 저는 떠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는 국회에 가서 이 문제를 계속 함께 한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계속 “이 문제 해결하고 가” 이렇게 이야기 하셨다. 그래서 “할머니 아니에요, 봐주세요”라고 했는데… 할머니 입장에선 배신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문제는 내가 풀어야 하고, 앞으로 활동에서도 지속적으로 할머니랑 만나려고 시도할 것이다. -최용상 가자평화인권당 대표와 관련해서, 수요집회를 중단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펴는데 어떻게 대응하실 것인가. 수요시위를 계속 해야 한다. 왜냐면 그동안 돌아가신 분의 약속도 그렇고, 수요시위 시작할 때 이번 정부에게 우리의 이야기는 “해결될 때까지 수요시위는 계속 된다”였다. 그 약속지키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해왔고, 오히려 이번 일로 수요시위 나오겠다는 분도 많다. 감사한 일이다. 최용상씨 발언은 일본정부가 원하는 발언이다. 왜 그렇게 스피커가 되려고 하는지 가슴이 아프다. -최용상 대표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은? 이미 그 분에 대해서 많은 말을 했다. 더 이상 피해자와 활동가를 분열하려는 어떤 활동, 언행을 중단하고 태평양 피해자 유족답게 일본정부에 강제동원의 피해를 해결하려는 노력에 함께 손잡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김복동 할머니 장학금이 정의연 이사 자녀에게 지급된 것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이건 칭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할머니는 평소에 늘 약자들에게 관심이 있었다. “해고된 노동자 힘내라. 쨍하고 해뜰날 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라란 이야기를 해고된 노동자에게도 하시고, 세월호 희생자들 앞에서도 힘내라 하시고, 평화운동, 통일운동, 여성운동 늘 지지하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재일조선학교 문제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할머니는 항상 나는 희망을 갖고 살았다고 말씀했기 때문에 희망을 받드는 일을 하자고 했다. 할머니가 남기신 기부금으로 한국의 시민사회 단체 자녀들, 사실 활동가들이 굉장히 어렵다. 그 활동가들 자녀에게 장학금을 주는 사업을 해서 희망을 주자고 생각했다. 김복동이 아이들의 학업 속에 살아 있다는 것,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는 것 보여주자는 취지로 장학금을 줬다. -국회에서 어떤 활동 할 생각인가. 앞으로 위안부 운동의 방향은 무엇인가. 저는 분쟁을 원하지 않는다. 지금 한일간에도 분쟁이 있고 갈등이 있지 않나. 이것을 어떻게 해결 할까 고민하고 있다. 30년 동안 활동을 해온 만큼 국회의원 중에서 가장 일본과 일본정부, 일본시민사회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가장이라기엔 어폐가 있지만 그래도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지혜로운 방법으로, 부드러운 방법으로 어떻게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저는 평화를 만들고 싶다. 국회는 입법기관이지 않나. 법을 활용해서 아직 완료되지 않은 진상규명, 교육 체계와 해외 각지에 이 문제 알리는 역사 인식의 확산, 그리고 일본정부가 계속 일본의 역사 인식을 홍보하는데 우리도 따로 한쪽에서 목소리를 내서 균형감 있게 인식하고 판단해서 알릴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노력 하고 싶다. 그 노력을 위해서 국회로 가겠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이번 일로 인해서 어느 누구도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이용수 할머니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을 하거나 그런 인식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는 노력을 함께 해줬으면 좋겠다. 국회에 가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해 달라.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농구, 내 사랑”…‘만수’ 유재학의 슬기로운 감독 생활

    “농구, 내 사랑”…‘만수’ 유재학의 슬기로운 감독 생활

    “어렵고 힘들어도 농구 감독 그만둘 생각못해”“농구를 좋아하고 농구가 재미 있었기 때문에”“롱런, 운이 좋아서··· 선수들이 잘 따라줬다”“유해지려고 노력하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야”“감독 초년병 때 한 쿼터에 2득점··· 흑역사”“06~07 챔프전 7차천 통합 우승 최고 순간”“양동근 없는 새시즌 팀 전체 스타일 바꿔야”“농구 감독 이후에는 가족과 시간 보내고 파”“성적도 바닥을 기어보고 다 해봤지만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어요. 농구를 정말 좋아하고, 농구가 너무 재미있으니까요.”1990년대 인기 농구만화 ‘슬램덩크’에서 농구에 대한 사랑을 수줍게 고백하던 강백호의 모습이 떠오른다. 유재학(57) 감독에게서 받은 느낌이 그렇다. 만 가지 수를 발휘한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지략이 뛰어나 ‘만수’(萬手)라는 별명을 가진 그다.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와 3년 재계약을 하며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가장 길게 한 팀을 지휘하는 기록에 성큼 다가섰다. 3년 후면 모비스와 19년을 함께하며 김응용(79)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이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를 지휘하며 세웠던 기록(17년 11개월)을 넘어선다. 대우 제우스, 신세기 빅스(이상 현 인천 전자랜드) 감독 시절까지 합치면 프로 감독으로 보낸 기간도 24년을 넘겨 최장 기록을 세우게 된다. 최다 1149경기 출장에 최다 662승, 챔피언결정전 우승 6회에 정규리그 1위 6회…. 프로농구 감독으로서 최고 기록은 대부분 유 감독의 몫이다. 16년간 모비스 왕조를 함께 건설했던 양동근이 은퇴하며 새로운 시기를 앞두고 있다. 자유계약선수(FA)를 네 명이나 폭풍 영입하는 등 선수단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며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유 감독을 12일 만나봤다. -국내 프로스포츠의 거목 김응용 회장에 견줘지고 있는데. “더 오래하셨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가 비교된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젊은 선수들과 매일 같이 지내다 보니 세월 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며 지낸 게 아닌가 한다. 감독은 파리목숨이라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직업이라고 집사람에게 이야기하며 시작했는데 이렇게 오래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코트를 씹어 먹는 천재 포인트 가드로 이름을 날렸지만 스물여덟에 은퇴했을 정도로 ‘코트의 여우’로서의 생활이 짧았다. “부상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재활을 오래하고 했으면 조금 더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모교인 연세대에서 코치 제의가 들어와 ‘에라, 갈 때 가자’는 마음이었다.”-서른다섯에 감독 데뷔해 최연소 기록을 갖고 있다. 그때 품었던 목표는 모두 이루었는지. “사실 지금도 목표는 없다. 선수 때도 그렇고 목표를 정해 놓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 강한 편이다.” -프로 감독은 피를 말리는 직업이다. 한 경기에서도 수없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농구 감독은 특히 더 그럴 것 같다. 육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지치기 쉬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을 것 같은데. “힘들고 고민도 많았지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가져본 적이 없다. 농구를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마음의 무게가 더 컸던 것 같다.” -그래도 고비가 있었을 텐데. “성적이 안 나거나 뜻대로 안 될 때는 굉장히 힘들다. 젊었을 때는 부모님이나 집사람에게 괴롭다고 토로하고, 힘들다고 털어놓으면서 넘어가곤 했다.” -정말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지. “프로에 오기 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은 있다. 연세대 코치로 갔을 때다. 후배들을 가르치기만 하면 될 것 같았는데 생각과는 달리 스카우트 등 농구 외적인 일이 많았다. 아버님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어느 삶을 가도 힘들고 괴로운 일은 다 있다’고 하셨다. 그 말씀 듣고 고민하다가 다시 하게 됐다.”-승부의 세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지. “시간 나면 자전거나 러닝머신을 타며 운동으로 푼다. 아니면 코치들하고 사우나를 같이하고 그런 게 대부분이다. 비시즌이 해외를 돌아다니며 외국인 선수를 보고 마음의 여유를 갖는 시기인데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매일 체육관에 출근하고 있다.” -감독 생활을 돌이킬 때 가장 이불킥을 하게 되는 순간은. “초년병 때 현대랑 하는데 한 쿼터에 2점밖에 못 넣은 적이 있다. 그 경기가 흑역사다. 그런 날이 있는데 뭔가 씌운 듯 자유투도, 레이업도 안 들어갔다. 팀도 창단한 지 얼마 안 됐고 선수들도, 나도 모두 어렸을 때다.” -반대로 지금 생각해도 짜릿한 순간은. “06~07시즌 챔피언결정전 7차전이다. 동근이도 자기 인생의 최고 경기로 꼽고 있는데 나도 그렇다. 2004년 모비스에 처음 와서 7위를 하고, 2005년 바로 정규 1위를 했다. 그리고 나서 06~07시즌에 7차전까지 간 끝에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스스로 롱런의 비결을 무엇으로 보는지. “조직을 중시한다, 수비를 강조한다, 선수들의 장점을 키워 성장시킨다…. 기사를 보면 여러 말씀들을 해주시는데 난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선수들이 전술·전략을 성실하게 따라 주지 않으면 어렵다. 내 경우 고참 선수들, 외국인 선수들을 비롯해 함께한 선수들이 대체로 잘 따라와 줬다. 그게 비결이다. 예를 들면 매일 아침 식사를 전원이 함께하는 규율 같은 게 있는데 어찌 보면 상당히 귀찮은 일이지만 뒤에서 불평불만하는 선수들이 거의 없이 따라 줬다.”-선수 선발 때 인성을 보는 것이 아닌가. “국내 선수들은 풀이 너무 작아 그럴 여유가 없다. 잘하면 무조건 뽑아야 한다. 모비스는 꾸준히 성적을 내서 드래프트 때 뒤에서 뽑아야 했었으니까. 다만 외국인 선수의 경우 현지 관계자들에게 꼭 인성을 물어보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팀을 지휘하며 지켜온 철칙이 있다면. “단체 운동이기 때문에 동료에 대한 배려를 중시한다. 정해진 시간에 늦으면 안 된다거나 연습 분위기를 해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든가 그런 거다. 사실 훈련량이 많거나 강도가 세지 않은데 그런 것에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모비스는 타이트하다고들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중간에 바뀐 것이 있는지. “요즘 굉장히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주변에서 하도 말을 많이 들어서 어투라든지 인상을 되도록 유하게 하려고 애쓴다. 내 스타일은 아니라 안 맞는 옷을 걸친 것 같아 힘든 면이 있다. 내가 유해지는 게 선수들에게 과연 좋은 일인지, 욕을 좀 먹더라도 경기력을 위해 원래대로 타이트하게 하는 게 좋은 것인지 확신은 없다. 앞으로도 더 공부해야 할 부분이다.” -경기 내내 성난 표정이라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거기에는 좀 오해가 있다. 나는 긴장하거나 무엇인가에 집중하면 미간이 모이고 눈이 올라가 화가 나지 않았어도 화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웃는 사진이 없어 사진 고르는 게 무척 힘들다. 안경 생각도 했는데 난시는 한 번 쓰면 계속 써야 한다고 해서 미루고 있다. 은퇴 전에는 한 번 써볼까 한다. 허허허.”-운명처럼 16년을 함께했던 양동근이 없는 시즌을 맞아야 하는데. “올해는 동근이의 빈자리를 어떻게 메우느냐가 중요하다. 동근이가 핵심 역할을 했기 때문에 팀 전체 스타일도 달라져야 한다. 올해와 내년은 그런 준비를 하고 밑바탕을 깔아 토대를 단단하게 굳히는 시기라고 본다. 물론 그러면서 성적도 내면 좋겠지만.“ -리빌딩은 사실상 처음 아닌지. “2004년 이후 처음이다. 16년 전과는 체력적으로 많이 달라졌지만 기분은 딱 모비스에 처음 왔을 때 새로 시작하는 바로 그 기분이다. 몸이 따라 줄지는 모르겠지만 선수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같이하려 한다. 그런 것들을 마음에 품고 있다.” -감독 커리어 이후 농구계에서 더 큰 일을 해야 하지 않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난 생각이 다르다. 농구 감독을 오래하고 성적도 냈다고 해서 행정을 잘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길로 가는 건 맞지 않다고 본다. 단장이나 그런 쪽에는 더 잘하는 분들이 있다. 그저 재미있어서 열 살 때 농구를 시작했다. 3년 후면 농구만 해온 지 50년이 넘게 된다. 남은 시간은 가족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게 농구 감독 이후의 목표라면 목표다.” 글·사진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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