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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삭 임신부 성폭행 후 나무에 매단 범인, 법정에서 한 행동

    만삭 임신부 성폭행 후 나무에 매단 범인, 법정에서 한 행동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여성이 임신중 성폭행을 당한 것도 모자라 숨진 채 나무에 매달린 상태로 발견돼 충격을 안긴 가운데, 해당 사건의 용의자가 붙잡혀 재판에 출석했다. 영국 BBC 등 해외 언론의 17일 보도에 따르면 임신 8개월이던 체고파초 풀레(28)는 지난 8일(현지시간) 요하네스버그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됐다. 이후 그는 나무에 매달린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그녀는 사건이 발생하기 4일 전, 남자친구를 만나 심하게 다툰 뒤 귀가했고 다음 날 아침부터 행적이 묘연했다. 풀레가 숨진 채 발견된 뒤, 지난 15일 31세의 말레폰이라는 남성이 구속됐다. 17일 살인혐의로 기소된 뒤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이 남성과 사망한 풀레와의 정확한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는 보석으로 석방될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에 들어선 그는 연신 얼굴을 가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마치 울음을 터뜨린 듯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모습을 보였다. 법정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에도 자신의 얼굴을 가리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에서 보도되면서 남아프리카공화국 내 여성 인권문제의 현실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예시가 됐다. 지난해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이 나라는 여성에게 있어 가장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고 개탄하며 잇따른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단속을 요구했지만, 임신한 여성을 상대로 끔찍한 범죄가 자행되자 국가 안팎에서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실제로 지난해 범죄 통계에 따르면 2017년부터 이듬해까지 12개월 동안 2930명의 성인 여성이 살해됐다. 3시간에 한 명 꼴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풀레가 임신한 상태로 성폭행 당한 뒤 나무에 매달린 채 발견된 사건이 확인되기 불과 이틀 전에도 한 25세 여성이 동거남의 칼에 찔려 사망했다. 12일에는 샤넬레 음파바라는 젊은 여성 역시 소웨토의 한 마을에 있는 나무 아래에 버려져 숨진 채 발견됐다. 현지에서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두 달 간 금지했던 술 판매를 재개한 뒤 여성들에 대한 성폭행이 급증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국가적 수치”라며 “성별에 기반한 폭력을 둘러싼 침묵의 문화는 종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은 또 남아공 여성 중 51%가 지인 관계인 누군가에 의해 폭력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네티즌들은 트위터에 해시태그 ‘#체고를위한정의(JusticeForTshego)'를 이용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고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흑인이란 이런 얼굴이어야지’ 美 식품 로고 퇴출

    ‘흑인이란 이런 얼굴이어야지’ 美 식품 로고 퇴출

    ‘흑인이라면 이렇게 말 잘 듣고 순종해야지’라고 말하는 것 같은 오래 된 식품 브랜드 로고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얼굴과 이름을 빼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인종차별 철폐의 목소리가 드높은 데 따른 것이다. NBC 방송은 17일(현지시간) 식품 대기업 퀘이커 오츠 컴퍼니(이하 퀘이커)가 131년 동안 로고로 써 온 팬케이크·시럽 브랜드 ‘앤트 제미마’를 퇴출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퀘이커는 펩시콜라를 생산하는 펩시코의 자회사다. 퀘이커는 이 브랜드의 로고에 담긴 이미지가 인종주의 고정관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이 이미지를 퇴출하고 브랜드 명칭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퀘이커는 “인종적 평등을 향해 진전을 이루기 위해 일하면서 우리의 다양한 브랜드가 우리의 가치를 반영하고 소비자의 기대에 부합하는지 심각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이번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앤트 제미마는 팬케이크 가루와 시럽, 아침식사 제품 브랜드다. 1889년 설립돼 올해로 131년째를 맞는데 이 브랜드의 로고는 인심 좋아 보이는 중년의 흑인 여성이다. 이 브랜드는 ‘늙은 제미마 이모’(Old Aunt Jemima)란 노래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1800년대 후반 백인들이 흑인으로 분장해 흑인 노래를 부르는 ‘민스트럴 쇼’에 등장하는 흑인 유모(mammy·매미) 캐릭터 ‘제미마 아줌마’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매미’는 당시 남부의 백인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살림을 하는 흑인 여자를 낮잡아 부르는 표현이었다. 퀘이커 오츠 컴퍼니의 홈페이지에는 이 회사 로고가 1890년 시작했고 실존 인물인 낸시 그린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설명돼 있다. 그린은 작가이자 요리사, 활동가 등으로 일했고 앤트 제미마의 모델로도 활동했다. 홈페이지에는 그린이 1834년 켄터키주의 노예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소개돼 있다. 퀘이커는 시대상의 변화를 반영해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로고의 그림을 변경해왔지만 이번에 아예 없애기로 해 새 로고와 브랜드 명칭은 가을쯤 나올 예정이다. 회사는 아울러 아프리카계 미국인 커뮤니티를 지원하기 위해 앞으로 5년 이상 5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제의 로고를 바꾸라는 목소리는 계속 있었다. 흑인인 코넬대 교수 리체 리처드슨은 2015년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이 브랜드의 로고가 “자신의 자녀는 소홀히 한 채 백인 주인들의 자녀를 열심히 양육하는 헌신적이고 순종적인 하인 매미”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가공된 쌀 등 식품을 제조하는 브랜드 ’엉클 벤스‘(Uncle Ben’s)를 소유한 마스도 이날 “지금이 바로 시각적 브랜드 정체성을 포함한 엉클 벤스의 브랜드를 진화시킬 때”라며 변화를 약속했다. 엉클 벤스는 1946년부터 나비넥타이를 맨 흑인 남성 노인의 이미지를 로고로 써왔다. 마스는 “변화가 정확히 어떤 것이고, 시점이 언제가 될지 우리도 아직 모르지만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英축구스타 간절한 편지 결식아동 정책을 바꾸다

    英축구스타 간절한 편지 결식아동 정책을 바꾸다

    무료급식에 의지했던 어린 시절 떠올라 영국 하원 의원들에게 직접 편지 보내 “방학 중 빈곤아동 식사 지원 계속돼야” 정부, 의견 받아들여 급식 이어가기로코로나19 이후 중단이 예정됐던 영국 빈곤 어린이들에 대한 무상급식 혜택이 유명 축구 스타의 호소로 계속되게 됐다. 16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코로나19 봉쇄령 해제와 함께 여름방학 동안 취약계층에 대해 중단하기로 했던 무료급식을 계속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공격수 마커스 래시포드(22)가 있었다. 그는 앞서 영국 정부가 무료급식 바우처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밝히자 이에 대한 반대 서명을 하원 의원들에게 전달했다. 코로나19로 경제적 위기에 직면한 빈곤층에게는 정부의 무료급식 중단이 큰 타격일 수밖에 없었다. 주당 15파운드(약 2만 2800원)의 바우처가 지급되는 무료급식 대상은 130만명으로, 전체 학생의 15%가 넘는 규모다. 런던 북부 등 일부 지역에서는 3명 중 1명이 무료급식 대상이기도 했다. 무료급식이 중단된다는 소식은 래시포드에게 축구클럽에서 주는 아침식사와 학교의 무료급식에 의지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고, 여론 환기를 위해 직접 의원들에게 편지를 쓰게 만들었다. 정부가 래시포드의 호소를 받아들이자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을 20대의 젊은 축구선수가 해냈다는 찬사가 나왔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정부가 입장을 바꾼 것을 환영한다. 래시포드를 비롯해 이 문제에 목소리를 낸 이들 덕분”이라고 밝혔고, 사디크 칸 런던시장은 “래시포드가 수많은 아이들의 삶을 바꿨다”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도 “래시포드가 빈곤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는 공식 트위터 계정에 래시포드가 주먹을 불끈 쥔 사진과 함께 “우리의 영웅, 당신이 자랑스럽다”는 글을 올렸다. 프리미어리그 재개를 앞두고 들린 희소식에 래시포드는 감격의 메시지를 내놨다. 그는 트위터에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단지 우리가 함께할 때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를 볼 수 있었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한발 떨어져 찾는 ‘은밀한 일상’ 한발 앞서 찾아온 ‘따뜻한 위로’

    한발 떨어져 찾는 ‘은밀한 일상’ 한발 앞서 찾아온 ‘따뜻한 위로’

    빼앗긴 봄에도 꽃은 피듯이 코로나19 시대에도 여름은 왔다. 6월 초, 기온이 27도까지 올라가자 베를리너들은 성급히 옷을 벗고 공원에 드러누웠다. 꽁꽁 싸맸던 마음을 꺼내 햇빛에 널고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에 멍든 몸을 뜨거운 햇살에 지졌다. 남자들은 웃통을 벗고, 여자들은 비키니 차림이었다.7월의 수영장이나 해변이 아닌, 5월부터(!) 공원에서 저러고들 있으니 계절의 경계가 무색했다. 절로 눈길이 갔지만 동네이웃처럼 자주 보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풍경이 됐다. 하루는 나도 비키니를 챙겨 입고 태닝족에 합류했다. 반듯이 누워 배와 등을 태웠다. 두 시간 남짓 누워 있었는데 벌겋게 살이 익었다. 베를린에선 이미 여름이 시작된 느낌이다.베를린에서 가장 좋은 계절을 꼽으라면 역시 여름이다. 베를린뿐만 아니라 유럽 도시 전체가 여름에 활기를 띤다. 오전 5시가 되기도 전에 날이 밝고(서머타임 때문에), 해는 밤 9시가 넘어야 진다.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 하늘은 그제서야 짙은 푸른 색으로 어두워지고 석양의 끝을 지운다. 유럽으로 출장을 올 때마다 놀라던 초여름의 늦은 일몰, 잊고 있던 유럽의 긴 해가 매일 떠오르는 요즘이다. 여름에만 할 수 있는 일도 하나둘 늘어난다. 늦은 밤에 보는 오픈에어 시네마도 며칠 전부터 시작했다. 베를린에 있는 35곳의 야외 영화관이 문을 연 것이다. 야외 영화관은 여름 한철 반짝 문을 열고 9월 초면 문을 닫는다. 오픈에어 시네마가 문을 닫는 건 베를린의 여름이 끝났다는 신호다.●‘한여름 밤의 꿈’ 같은 오픈에어 시네마 지난해 여름엔 거의 매주 야외 영화관에 갔다. 이 좋은 걸 베를린 다닌 지 12년 만에, 남자친구가 생겨서 처음 해봤다. 야외 영화관은 동네마다 몇 군데씩 있다. 큰 공원 안에 있기도 하고 슈프레 강변의 바 안에 있기도 하고 클럽 옆에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곳은 크로이츠베르크의 마리아난 플라츠에 있는 프라이루프트 키노다. 영화관 뒤로는 1800년대에 지어진 멋진 문화공간이 있고, 사방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시골 숲속이나 인적 드문 공원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자연적이고 평온한 바람이 분다. 오픈에어 시네마의 자리는 일찍 온 순서대로 앉는다. 맨 앞자리 몇 줄은 천으로 된 비치의자를 놓을 수 있다. 자리를 사수하려면 한 시간 정도 일찍 가는 것이 좋다. 줄을 서 있다가 30분 전에 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비치의자를 들고 좋은 자리를 찾는다. 영화관 안에는 생맥주와 팝콘, 커리 부어스트(소시지) 등을 먹을 수 있는 야외 매점도 (당연히) 있다. 매점의 불빛이 서커스장 조명처럼 발랄하다. 야외 영화는 보통 밤 9시가 넘어야 시작한다. 싱그러운 나무의 냄새를 맡고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는 건 여름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계절엔 아예 즐길 수 없으니까. 커다란 스크린이 야외에 있으니 코로나19의 일상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심이 된다. 앉는 사람들 간의 거리는 조정을 하겠지만, 춤도 출 수 없고 디제이도 없이 문을 여는 베를린의 클럽보다는 상황이 훨씬 낫다. 베를린에서 야외 영화관을 고를 때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독일어로 더빙된 영화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일이다. 독일에선 극장뿐 아니라 TV에서 보여 주는 모든 해외 영화에 더빙이 돼 있다. 자막이 익숙한 우리에겐 구식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오디오 북을 듣고 자는 독일인들에게 더빙은 친숙하고 일상적인 문화다. 더빙 문화의 역사도 길어서,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의 목소리는 보통 정해져 있는 성우가 있다. 예를 들어 브루스 윌리스는 30년 넘게 한 목소리다. 야외 영화관을 고를 때는 원어에 영어 자막이 있는 영화를 선택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이해도 못 하는 독일어를 두 시간 내내 듣게 될 수도 있다. ●베를린의 편의점 ‘슈페티’ 앞에서 맥주 한 잔 베를린의 여름이 뜨거워지는 건 슈페티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수로 알 수 있다. 슈페티는 베를린의 편의점 같은 곳. 동네마다 있고 대부분 24시간 문을 연다. 없는 것 없이 다 파는 우리나라의 편의점과는 달리 간단한 식료품과 과자, 음료, 담배류, 술을 주로 판다. 종류마다 다 있는 건 역시 맥주. 밤 10시면 슈퍼마켓까지 다 닫는 베를린에서 유일하게 술을 살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밤마다 슈페티 앞으로 모이는 건 당연하다. 술을 사서 가게 앞 인도나 벤치, 길가에 아무렇게나 앉아 마신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슈페티 앞에는 늘 사람들이 맥주병을 들고 서 있다. 하지만 여름엔 그 열기의 농도 자체가 달라진다. 가게 앞의 긴 테이블과 의자를 가득 메우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바이브가 짜릿하게 전해진달까. “여긴 뭔데 이렇게 사람이 많아?” 하고 쳐다보면 힙한 바가 아니라 슈페티 앞일 때도 많다. 베를린의 슈페티는 술 취한 아저씨나 돈 없는 어린애들만 가는 곳이 아니다. 온 몸에 문신을 한 힙스터들, 소문 듣고 찾아온 관광객, 클럽 가기 전에 취하러 온 젊은 애들, 집 앞에 한 잔 하려고 나온 동네 주민까지 한데 어울려 같이 마시고 같이 취한다. 동네 사랑방이자 여름엔 펍보다 붐비는 ‘가맥집’이다.그 도시에서 꼭 가 봐야 하는 바 순위가 있는 것처럼 베를린에는 유명한 슈페티 명소가 있을 정도다. 미테의 로젠탈러플라츠 역 바로 앞 슈페티가 그렇다. 밤새도록 사람들이 앉아 술을 마시는 다국적 만남의 장소다. 이곳은 워낙 유명해서 슈페티답지 않게 안에 어엿한 화장실도 갖추고 있다. 서울의 ‘편맥’처럼 베를린에는 ‘슈맥’이 있다. 슈페티 앞에 사람이 꽉 차 있는 밤을 만나면 베를린의 여름밤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것이다.●히피들의 은신처, 크룽커크라니히 옥상 바 날이 좋으면 더 각광받는 곳, 바로 루프톱 바다. 베를린에도 내로라하는 야외 옥상 바가 많다. 대부분은 호텔 꼭대기에 있다. 25아워스 호텔 꼭대기에 있는 몽키바는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하다. 베를린 동물원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때문에 유독 사랑받는다. 베를린을 놀러 오는 여행자들의 인기 리스트에 항상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미테의 아마노 호텔 꼭대기에도, 베를린에서 가장 핫한 부티크 호텔, 소호에도 루프톱 바가 있다. 모두 세련되고 힙한 분위기가 넘친다. 하지만 우리가 매번 호텔 바를 가지는 않듯이, 여기서도 그렇다. 호텔 바보다는 오래돼 보여도 자연적이고 자유가 넘치는 곳을 좋아한다. 그런 옥상 바가 한 군데 있다. 히피들의 아지트처럼 대접받는 크룽커크라니히 바다. 노이쾰른의 쇼핑몰 꼭대기에 숨어 있는 이곳에는 삐걱대는 나무 의자와 테이블이 제멋대로 놓여 있다. 사람들은 바에서 맥주 한 잔을 사서 아무 데나 털썩 앉는다. 유일하게 이들이 신경을 쓰는 건 아름다운 노을. 그것만큼은 놓치지 않으려고 집요하게 쳐다본다. 이곳에서 내다보이는 베를린의 도시 풍경 또한 최고다. 시야를 막는 고층빌딩 하나 없이 고만고만하게 낮고 많은 지붕 너머로 베를린의 상징인 TV타워가 내다보인다. 이 낮은 지평선 도시와 석양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 노이쾰른의 아카덴 쇼핑몰 꼭대기로, 한 번에 찾기는 힘든 길을 헤매면서 올라간다. 가는 길이 쉽지 않아 관광객의 레이더에서는 여전히 조금 벗어나 있다. ●야외 사우나서 꿈꾸는 ‘이열치열’ 베를린의 여름이 매일 뜨겁고 쨍쨍한 것만은 아니다. 30도까지 치솟다가도 갑자기 13도로 뚝 떨어질 때가 있다. 그러면 7월 말이어도 조용히 가죽재킷을 꺼내 입어야 한다. 전기장판만큼은 켜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이렇게 으스스한 날엔 목욕가운을 챙겨 바발리로 향한다. 인도네시아 발리에 있는 스파 단지처럼 넓은 정원과 실내외 수영장, 마사지실, 레스토랑 그리고 사우나가 13개나 있는 곳이다. 카운터에서 밴드를 차고 들어가고, 나올 때 쓴 비용을 결제한다. 바발리 안에서는 모두 가운을 입고 돌아다닌다. 그러다 사우나에 들어갈 때는 고이 가운을 걸어두고 알몸으로 들어간다. 사우나 안에 남자 여자가 ‘깨벗고 같이’ 들어가는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독일의 사우나는 혼욕 문화다. 안에 들어가면 계단식 나무의자에 줄줄이 발가벗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매 시간마다 열리는 사우나 프로그램에 맞춰 온 사람들이다. 처음엔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몰라 허공을 쳐다보고 일부러 자연스러운 척도 한다. 하지만 알몸이라는 부끄러움도 잠시, 모두가 똑같이 알몸인 그곳에서 뭔가 원초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누구 하나 똑같은 체형 없이, 늘어진 배와 제각각으로 생긴 허벅지, 어깨, 가슴, 성기까지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그냥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바발리의 사우나에는 특별한 점이 또 있다. 필링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 팬티만 걸친 전문 마스터가 들어와 프로그램 소개를 하고 커다란 부채질을 한다. 사람들이 앉아 있는 뒤쪽 끝까지 골고루 뜨거운 바람을 보내 주는 것이다. 종교 의식을 치르듯 강하고 경건하게 부채질을 하는 마스터의 몸놀림 또한 이곳 사우나의 관전 포인트다. 야외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고 2층 벽난로 앞에서 와인을 마실 수도 있다. 바발리는 베를린에서 단연 최고의 경험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다만 코로나19 상황으로 현재 사우나는 이용이 중단된 상태다. 그래도 야외 수영장에서 나체로 수영하고 정원에 누워 마사지를 받거나 휴식을 취하는 건 여전히 가능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바발리는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이다. 뜨거운 사우나에서 땀을 쫙 뺀 후 뻥 뚫린 샤워실에서 샤워하며 이열치열 여름을 나고 싶다. ●공원처럼 산책하는 베를린만의 ‘묘지피서 ’ 베를린에서 공원만큼 산책하기 좋은 곳이 묘지다. 동네마다 크고 작은 묘지가 있다. 제각각 다른 크기의 비석과 그 앞에 놓인 꽃들, 울창한 나무들이 많아 평화롭다. 대부분 숲처럼 나무가 많아서 공원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나중에 묘지인 걸 안 적도 많다. 아주 춥고 우중충한 날씨가 아니라면 음산한 기분도 들지 않는다. 햇볕 좋은 여름이라면? 18세기의 멋진 비석도 구경하고 책 읽고 빈둥거리기 좋다. 베를린 사람들은 묘지에서도 공원처럼 산책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풀어놓고 놀게 한다. 누군가의 묘지가 이토록 가깝고 친근하게 있다면 추모하는 일도 서글프지만은 않을 것 같다. 보다 가벼운 걸음으로 찾아와 마음을 나누다 갈 듯하다.베를린에 사는 친구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묘지가 있었다. 그 묘지 안에는 장례식을 치르던 작은 교회가 있었는데, 나중에 카페로 오픈을 했다. 카페 스트라우스. 내부는 아치형의 천장이 그대로 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장례식 홀로 쓰이던 공간이 나온다. 반투명 유리로 돼 있는 지붕과 빈티지한 카키색의 창문, 스테인드글라스 유리, 그 안으로 따사롭게 들어오던 햇살에 낮은 탄성이 나올 정도다. 누군가의 죽음이 거쳐 갔고 누군가의 눈물이 흘렀던 공간이라고 하기엔 더없이 평온하고 조용하다. 어느 해 8월, 이 묘지 교회의 작은 정원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시며 오전 내내 책을 읽던 아침이 생각난다. 베를린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작년 여름엔 남자친구와 함께 노트북을 싸 들고 자주 묘지로 갔다. 프란즐러베르크의 오래된 묘지 안에 있는 라이제파크에 가기 위해서다. 검은 비석과 잡풀, 큰 나무들이 울창한 묘지 안쪽으로 죽 걸어 들어가면 공원이 나온다. ‘볼륨을 줄인’,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나즈막한 목소리’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라이제파크는 이름처럼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다. 공원에는 짧은 풀들이 잔디처럼 자라 있고 그 뒤로 무릎까지 오는 잡풀이, 그 뒤로 중간 키의 나무들이, 그 뒤로 가장 큰 나무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풀숲이 무성해 바로 앞까지 와서야 인기척이 느껴진다. 풀밭에 누워 있으면 도심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푹푹 찌는 한여름, 살갗이 타 들어갈 것처럼 덥다가도 이 공원 나무 아래에만 누우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에어컨 있는 집이 거의 없고 지하철에도 에어컨이 없는 베를린에서 호수로 피신을 못 갈 땐 이 공원이 제일 만만하면서도 은밀한 피서지다. 여행작가 dongmi01@gmail.com
  • 4800자 ‘독설 담화’ 김여정

    4800자 ‘독설 담화’ 김여정

    “김정은 2010년 후계자로 등장 때와 유사”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입이 거칠어질수록 권력은 세지고 위상은 높아지는 모습이다. 김 부부장이 17일 담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이틀 전 발언에 직접 대응, 원색 비난함에 따라 정상급 반열에 오르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후계자 대우를 받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 부부장은 약 4800자 장문의 담화로 문 대통령의 지난 15일 수석·보좌관회의 발언과 6·15 20주년 기념식 영상메시지, 나아가 대북정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표현과 형식까지 빈정대며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김 부부장은 ‘평화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등 문 대통령의 수식에 대해선 “특유의 어법과 화법으로 ‘멋쟁이’ 시늉을 해보느라 따라 읽는 글줄 표현들을 다듬는 데 품 넣은 것 같다”며 비아냥댔다. 문 대통령의 발언과 연설을 ‘요사스러운 말장난’, ‘마디마디에 철면피함과 뻔뻔함이 매캐하게 묻어나오는 궤변’, ‘여우도 낯을 붉힐 비열하고 간특한 발상’이라고 모욕적으로 비난했다. 특히 문 대통령에 대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정신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며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은 것은 아무리 적국으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상대국 국가원수를 비난하는 데 있어서 도를 넘어섰다는 평가다. 김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문 대통령의 지난 15일 남북 대화 제의를 원색 비난하며 거부한 것은 물론, 문 대통령의 대북 특사 파견도 김 위원장이 아닌 자신이 거부했다고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밝힘으로써 한국 정부 최고지도자의 카운터파트는 자신임을 드러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2010년 후계자로 등장할 때 군을 통수하며 대남 도발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이며 입지를 다졌다”며 “김여정이 김정은을 대신해 악역을 담당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권력과 위상이 너무 크다”고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취업하고 싶어요”...용인시 일자리박람회 1200여명 몰려 성황

    “취업하고 싶어요”...용인시 일자리박람회 1200여명 몰려 성황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운데 관련 업체들이 구인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 박람회를 찾았어요” 17일 용인시 삼가동 용인시민체육공원에서는 올해 첫 일자리박람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장엔 코로나19 여파로 취업문이 좁아진 가운데 일자리를 잡으려는 시민들이 아침 일찍부터 몰렸다. 거리두기를 위해 미처 입장하지 못한 100여명의 시민들은 행사장 주위로 길게 줄을 이었다. 박람회에선 관내 우수 기업 56사가 참여해 212명의 인재 채용에 나섰다. 단순 노무와 서비스직은 물론 전문 기술이 필요한 IT분야와 반도체 장비를 비롯한 제조분야 업체도 다수 참여해 구직자의 관심이 더욱 뜨거웠다. 구직자들은 ㈜영국전자를 비롯해 다우기술, 블루원, 빛샘전자(주), ㈜면누리 등 다양한 업체에 면접을 보기 위해 긴 줄을 섰다. 다만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지그재그로 자리를 띄어 앉은 모습이 전년과 달랐다. 구직자들의 편의를 위해 시가 마련한 채용 게시대와 이력서 작성대, 문서출력 지원코너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장애인의 채용도 활발했다. 수지구 풍덕천동에서 온 안병찬씨는 “장애가 있어 육체적 노동보단 서비스직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회사를 일일이 찾아가 면접보기 힘든데 박람회에서 한 번에 여러 곳의 면접을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기흥구 청덕동 소재 문서 전산화 업체인 악어디지털 최혜숙 팀장은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요가 높아진 만큼 업무를 확장하기 위해 프로그래머와 웹디자이너 등 5명을 채용하려고 나왔다”며 “단순 노무가 아닌 전문 직종인 만큼 우수 인재를 많이 만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시는 코로나19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 행사가 열린 만큼 시간마다 200명씩 입장 인원을 제한하는 등 차단 방역에 주력했다.모든 입장객을 대상으로 발열을 체크하고 QR코드나 수기로 출입명부를 작성하도록 했다. 마스크와 장갑 착용도 필수였다. 이날 시는 8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입구부터 철저히 차단방역을 하고 행사장 곳곳에 안내요원을 비치해 방역수칙 준수 여부를 꼼꼼히 체크했다. 수원에서 온 김현중씨는 “한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는데 코로나19 위기로 일자리를 잃었다”며 “이 자리에서 물류센터 일자리에 다시 도전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4시 일자리 박람회를 마감한 결과 총 1200여명이 행사장을 방문해 724명이 면접에 참여했고, 이 가운데 179명이 1차 면접에 통과해 최종 면접을 앞둔 것으로 파악됐다. 백군기 용인시장은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것만큼 시민들이 경제활동을 이어가도록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라며 “구직자들은 원하는 일자리를 얻고 기업은 우수 인재를 채용하는 등 상생의 장을 만들어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통합당, 김연철 사의에 “‘손절’ 쉬운 약한 고리 아닌가”

    통합당, 김연철 사의에 “‘손절’ 쉬운 약한 고리 아닌가”

    “아침엔 北에 화내고 저녁엔 돕는 갈지자 정부” 맹비난미래통합당은 17일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사퇴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험악해지는 여론을 의식한 꼬리 자르기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은혜 대변인은 논평에서 “‘우리 민족끼리’의 환상으로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내몬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에 비하면 오히려 통일부 장관은 ‘손절’하기 쉬운 약한 고리 아닌가”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대변인은 또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주장에 대해 “우리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삼고 있는 북한에 제재를 피할 길을 터주지 않았다는 취지로 통일부를 힐난한다”며 “정부여당은 대한민국이 적으로 규정한 북한을 더 돕지 못했다는 이유로 통일부 장관을 그만두게 한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침에는 북한에 화를 내고, 저녁에는 북한을 돕는 갈지자 정부가 국민을 더 불안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청와대의 김여정 유감 표명이 여론에 등 떠밀려 하는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이 아니라면 청와대는 대북정책 전환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분명한 입장표명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같은 당 박진 의원은 이날 당 외교안보특위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김 장관의 사의 표명에 대해 “대북정책을 관장하는 장관이 남북관계 파탄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평가했다. 한편 통합당 출신의 무소속 윤상현 의원은 “(김 장관의 사퇴를)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 대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여야, 보수진보를 아우르는 대북안보정책팀을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김여정 ‘입’ 거칠어질수록 ‘힘’ 세진다… 文에 ‘말폭탄’

    김여정 ‘입’ 거칠어질수록 ‘힘’ 세진다… 文에 ‘말폭탄’

    4800자 장문 담화로 원색 비난… 특사 거부김정은 대리인 넘어 후계자 입지 구축 관측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입이 거칠어질수록 권력은 세지고 위상은 높아지는 모습이다. 김 부부장이 17일 담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이틀 전 발언에 직접 대응, 원색 비난함에 따라 정상급 반열에 오르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후계자 대우를 받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 부부장은 약 4800자 장문의 담화로 문 대통령의 지난 15일 수석·보좌관회의 발언과 6·15 20주년 기념식 영상메시지, 나아가 대북정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표현과 형식까지 빈정대며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김 부부장은 ‘평화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등 문 대통령의 수식에 대해선 “특유의 어법과 화법으로 ‘멋쟁이’ 시늉을 해보느라 따라 읽는 글줄 표현들을 다듬는 데 품 넣은 것 같다”며 비아냥댔다. 문 대통령의 발언과 연설을 ‘요사스러운 말장난’, ‘마디마디에 철면피함과 뻔뻔함이 매캐하게 묻어나오는 궤변’, ‘여우도 낯을 붉힐 비열하고 간특한 발상’이라고 모욕적으로 비난했다. 특히 문 대통령에 대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정신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며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은 것은 아무리 적국으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상대국 국가원수를 비난하는 데 있어서 도를 넘어섰다는 평가다. 김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문 대통령의 지난 15일 남북 대화 제의를 원색 비난하며 거부한 것은 물론, 문 대통령의 대북 특사 파견도 김 위원장이 아닌 자신이 거부했다고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밝힘으로써 한국 정부 최고지도자의 카운터파트는 자신임을 드러냈다. 아울러 김 부부장이 지난 13일 담화에서 ‘대남 행동 행사권을 군 총참모부에 넘긴다’며 군에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 것은 김 위원장의 대리인을 넘어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구축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2010년 후계자로 등장할 때 군을 통수하며 대남 도발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이며 입지를 다졌다”며 “김여정이 김정은을 대신해 악역을 담당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권력과 위상이 너무 크다”고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야구 슬라이딩에 균열…美 최장 도보용 구름다리 한때 폐쇄

    야구 슬라이딩에 균열…美 최장 도보용 구름다리 한때 폐쇄

    미국에서 가장 긴 도보용 구름다리가 한때 폐쇄됐다고 CNN방송이 17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테네시주 개틀린버그 그레이트스모키산맥국립공원 계곡을 가로지르는 길이 207m의 스카이브리지(SkyBridge)는 지난 15일 밤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일시적으로 통행이 금지됐다.이는 스카이브리지 한가운데 있는 유리 발판 세 장 중 한 곳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유리 발판은 방문객들이 43m 아래의 지면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설치해 둔 것이다. 이에 따라 다리에서는 뛰어다니거나 제자리에서 도약하고 또는 깡충깡충 뛰어가는 행위가 금지돼 있다. 그런데 그날 오후 8시30분쯤 한 방문객이 유리 발판에서 야구 슬라이딩을 시도했다가 옷에 달려 있는 금속 장식을 유리 표면에 부딪히면서 그 부위에 균열이 생긴 것으로 전해졌다.이 때문에 이 다리는 유리 발판의 교체 작업을 위해 일시적으로 폐쇄됐었다. 이에 대해 공원 측 관계자는 “균열이 생긴 유리 표면은 그 밑에 있는 두 층의 유리를 보호하기 위한 층으로, 다리 전체 구조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서 “이 건으로 다친 사람은 없으며 어느 누구도 위험에 처한 사례는 없다”고 밝혔다. 스카이브리지는 스카이리프트 파크의 일부로서, 개틀린버그에서 높이 152m의 크로켓산 정상까지 리프트 의자를 타고 이동한 뒤 건널 수 있는 곳이다. 입장료는 성인 15달러, 어린이 12달러이며, 다리를 건너는 데 시간제한은 없다. 스카이브리지는 기초 부분의 콘크리트 약 450t, 케이블 약 4800m, 삼나무판 1400장을 사용해 만들어졌으며 지난해 5월 개장했다. 설계자는 이 다리가 미국은 물론 북미 대륙에서 가장 긴 보행자 현수교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매달려 있는 다리 부분만을 측정하는지 아니면 닻 사이 전체 거리를 측정하는지에 따라 논쟁의 여지가 있다. 캐나다 켈로나산에 있는 한 보행자 현수교는 길이가 244m로 알려졌다. 세계에서 가장 긴 보행자 현수교는 스위스 찰스 쿠오넨 현수교로, 길이 494m, 높이 85m를 자랑한다. 이 다리는 지난 2017년 개장했다. 사진=handout 발행 사진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메가스터디교육, ‘6월 모평’ 오늘 밤부터 모의고사 전 과목 해설지 무료 배포

    메가스터디교육, ‘6월 모평’ 오늘 밤부터 모의고사 전 과목 해설지 무료 배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연기된 6월 평가원 모의고사(이하 ‘6월 모평’)가 18일 고3 및 졸업생을 대상으로 치러진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의 평가원 모의고사는 올해 수능의 난이도와 출제 경향을 확인할 수 있어 수험생에게 중요한 시험이다. 그러나 평가원 모의고사는 별도의 해설지를 제공하지 않아 수험생들이 문항 분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입시전문업체인 메가스터디교육은 6월 모평 종료 후 당일 밤부터 6월 모평 해설지를 메가스터디학원 홈페이지에 순차적으로 공개한다고 밝혔다. 또한 19일 아침 수험생들이 해설지를 직접 받아볼 수 있도록 전국 고등학교에 배포할 예정이다. 메가스터디교육 관계자는 “사상 첫 12월 수능을 앞두고 출제기관에서 주관하는 첫 모의평가인 만큼 수험생들이 실력을 가늠하고, 약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시험 분석을 철저히 해야 한다”며 “6월 모평 종료 직후 메가스터디학원의 영역별 우수 강사진이 모여 고퀄리티의 해설지를 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평가원 모의고사 전 과목에 해당하는 해설지를 온·오프라인으로 모두 제공하는 곳은 메가스터디교육이 유일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8학년도부터 평가원 모의고사 해설지 무료 배포를 시작한 메가스터디교육은 지금까지 배포한 해설지 수가 약 191만 부에 달하며 온·오프라인 모두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무료 배포 서비스를 지속하고 있다. 한편, 강북, 강남, 분당, 서초, 성북, 부천, 신촌 메가스터디학원에서 오는 19일~27일까지 ‘6월 모평 분석 및 대입 지원전략 설명회’가 진행된다. 설명회 참석자 전원에게는 6월 모평 해설지를 무료로 제공할 예정이며, 설명회 일정 및 장소는 메가스터디학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축구스타가 무료급식 살렸다 英 정부 “빈곤아동 혜택 계속하겠다”

    축구스타가 무료급식 살렸다 英 정부 “빈곤아동 혜택 계속하겠다”

    코로나19 이후 중단이 예정됐던 영국 빈곤 어린이들에 대한 무상급식 혜택이 유명 축구스타의 호소로 계속되게 됐다. 16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코로나19 봉쇄령 해제와 함께 여름 방학 동안 취약계층에 대해 중단하기로 했던 무료급식을 계속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공격수 마커스 래시포드(22)가 있었다. 그는 앞서 영국 정부가 무료급식 바우처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밝히자 이에 대한 반대 서명을 하원 의원들에게 전달했다. 코로나19로 경제적 위기에 직면한 빈곤층에게는 정부의 무료급식 중단은 큰 타격일 수밖에 없었다. 주당 15파운드(약 2만 2800원)의 바우처가 지급되는 무료급식 대상은 130만명으로, 전체 학생의 15%가 넘는 규모다. 런던 북부 등 일부 지역에서는 3명 중 1명이 무료급식 대상이기도 했다. 무료급식이 중단된다는 소식은 래시포드에게 축구클럽에서 주는 아침식사와 학교의 무료급식에 의지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고, 여론 환기를 위해 직접 의원들에게 편지를 쓰게 만들었다.정부가 래시포드의 호소를 받아들이자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을 20대의 젊은 축구선수가 해냈다는 찬사가 나왔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정부가 입장을 바꾼 것을 환영한다. 래시포드를 비롯해 이 문제에 목소리를 낸 이들의 덕분”이라고 밝혔고,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래시포드가 수많은 아이들의 삶을 바꿨다”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도 “래시포드가 빈곤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는 공식 트위터 계정에 래시포드가 주먹을 불끈 쥔 사진과 함께 “우리의 영웅, 당신이 자랑스럽다”는 글을 올렸다. 프리미어리그 재개를 앞두고 들린 희소식에 래시포드는 감격의 메시지를 내놨다. 그는 트위터에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단지 우리가 함께할 때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를 볼 수 있었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여기는 호주] 반려견에 쫓겨 바다로 피하는 캥거루의 안타까운 사연 (영상)

    [여기는 호주] 반려견에 쫓겨 바다로 피하는 캥거루의 안타까운 사연 (영상)

    해변을 찾은 캥거루가 해변에서 산책하던 반려견들에 쫓겨 그만 바다로 피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호주 언론은 지속적인 인간의 개발로 삶은 터전을 잃어가는 야생동물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보도하고 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이른 아침 호주 빅토리아 주 멜버른에서 31km 남서쪽 토키에 위치한 피셔먼 해변에 캥거루 한 마리가 등장했다. 그때 켈피종인 반려견 한 마리가 이 캥거루를 쫓기 시작했다. 개에 쫓기던 캥거루는 결국 바다 쪽으로 도망쳤으나 이곳도 안전하지 못했다. 반려견이 바다에까지 쫓아 온 것. 결국 물러설 곳이 없어 배수의 진을 친 캥거루는 바다에까지 쫓아온 개를 향해 반격을 시작했고 이에 놀란 개는 꽁무니를 뺐다. 이렇게 캥거루는 개가 사라지자 다시 해변가로 나왔지만 이번에는 보더콜리 종인 또다른 반려견의 추격을 받아야 했다. 결국 캥거루는 해변에서의 소풍을 포기하고 다시 숲속으로 돌아가야만 했다.해당 동영상을 촬영한 지역주민인 지닌 프리스트는 “이 해변은 목줄을 풀어 놓을 수 있도록 허가가 된 곳이라 견주나 반려견을 비난할 수는 없다”며 “그러나 이 주변에 개발이 되고 인구가 늘면서 캥거루등 야생동물이 갈 곳이 사라지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메건 데이비슨 ‘와일드 라이프 빅토리아’의 CEO는 “많은 야생동물이 반려동물의 공격으로 사라지며, 추적을 피해 도주했어도 서서히 죽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개한테 쫓긴 캥거루나 왈라비 종류는 추격으로 받은 스트레스로 ‘근위축증’을 가져와 수주에 걸쳐 근육이 마비되는 증상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것. 데이비슨은 “사냥 본능을 가지고 있는 개를 비난할 수 없지만, 견주는 우리의 공간이 야생동물과 공유하는 공간 임을 인지하고 반려동물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경태 시드니(호주)통신원 tvbodaga@gmail.com
  • 미국 “북한, 역효과 낳는 추가행위 삼가길”…트럼프는 언급 없어

    미국 “북한, 역효과 낳는 추가행위 삼가길”…트럼프는 언급 없어

    미 국무부 “한국과 긴밀히 조율…한국 노력 지지”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에 대해 미국이 “역효과를 낳는 추가 행동을 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또 한국과 긴밀한 조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16일(현지시간)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한 서면 질의에 “미국은 남북 관계에 대한 한국의 노력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북한에 역효과를 낳는 추가 행위를 삼갈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이는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남북 관계에서는 동맹인 한국 정부의 노력에 힘을 실어주는 입장을 강조한 것이다. 다만 폭파 자체를 문제 삼았다기보다 향후 추가적인 행동에 대한 우려에 무게가 실렸다는 인상도 있다. 앞서 미 국무부는 북한의 대남 군사행동 위협 등 최근 행보에 대해 “실망했다”, “도발을 피하고 외교와 협력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 등의 표현으로 우려와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미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도 이날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한 연합뉴스의 질의에 “우리는 북한이 개성 연락사무소를 파괴한 것을 알고 있으며 우리의 동맹인 한국과 긴밀한 조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 국방부 측은 이 사안과 관련된 질의에 “우리는 그 보도들을 알고 있다”면서도 언급할 것이 없다며 국무부에 문의하라는 입장을 밝혀 신중한 태도를 나타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최근 남측을 대대적으로 비난하며 적대적 관계로 돌아가는 행보를 보이는 북한이 사실은 북미 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져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을 향한 시위를 에둘러 한국을 통해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이런 점에서 미국의 이번 언급은 북한에 대해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남북 관계와 관련해선 한국과의 조율을 강조,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고 상황을 관리하려는 메시지의 성격도 있어 보인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미 동부시간 기준, 한국시간 17일 오전 6시) 현재까지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와 관련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올린 트윗은 미국의 5월 소매판매에 대한 자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 건이 미국 내 여론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 하에 공개적 메시지를 내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낮에 열린 경찰개혁 행정명령 서명 관련 행사에서는 기자들과 질의 응답을 갖지 않았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 발도르차 평원. 푸르른 대지는 부드러운 능선을 이루며 파도처럼 넘실댄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사이프러스 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언덕 꼭대기엔 중세풍의 집 한 채. 이런 전원 풍경을 보고 ‘이탈리아를 제대로 여행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친퀘첸토라고 부르는 작은 클래식카를 타고 달렸다. 세상에 나온 지 50년 된 이탈리아 차는 고약한 기름 냄새를 풍기고 오르막길마다 덜덜거렸지만 달리는 덴 문제가 없었다. 신형 마세라티나 페라리보다 이런 낡은 차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피렌체에서 출발하는 당일치기 투어를 활용해도 되지만, 100㎞나 이어지는 거대한 발도르차 평원을 자유롭게 누리기 위해선 렌터카가 필수다. 포도밭과 올리브밭은 긴 드라이브를 하나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아무리 봐도 피곤하지 않은 색깔이 있다면 자연 그대로의 초록색일 것이다. 해발 300~700m 정도 되는 구릉 지역 꼭대기엔 성곽 형태로 세워진 작은 도시들이 있다. 그중에서 인구가 천명도 안 되는 피엔차라는 도시에 멈추었다. 골목 담장 위에 걸터앉았다. 푸르른 평원이 한 폭의 대형 그림처럼 펼쳐졌다. 새빨간 해가 자취를 감추며 대지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순간은 황홀 그 자체였다. 안개가 내려앉은 아침은 몽환적인 분위기가 나서 포토그래퍼들이 가장 선호하는 시간대라고 한다. 6월이면 더욱 환상적이다.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온순한 바람에 청보리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제 아무리 단단하게 닫힌 마음이라도 스르르 열려버리고 만다. 매일 이런 그림 같은 풍경 속에 잠들고 깨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연이 스스로 빚은 아름다운 풍경을 태어날 때부터 누리는 것이야말로 진짜 금수저라고 믿었다. 이곳 사람들은 삭막한 인공구조물에 지쳐 수백 만원을 들여 달려온 나 같은 사람의 마음을 알까? 발도르차 평원은 유네스코가 선정한 문화유산이다. 자연유산이 아닌 건, 아름다운 풍경을 조성하기 위해 자연을 의도적으로 설계하고 개발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인들은 황폐한 언덕을 그냥 두지 않았다. 포도와 올리브를 기르고 마을을 이뤄 광장을 내고 성당과 집을 지었다. 자연은 가꾸고 매만져야 하는 캔버스였다. ‘사이프러스 나무를 심고 그 사이에 흙길을 내볼까? 그 길의 끝엔 예쁜 집 한 채를 지어야지!’ 아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름답기 위해선 여백이 있어야 하고, 지루하지 않으려면 오브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아름다움을 향한 열정은 온 대지에 남아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발도르차 평원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중심이 되는 르네상스 시대의 정신을 반영했다’고 거창한 해석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한 풍경 앞에서 감탄 그 이상의 평가가 있을까 싶다. 수백년이 지난 지금, 발도르차 평원을 보며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김진 칼럼니스트·여행작가
  • 기적 일군 ‘코디 리’처럼… 공기업, 변해야 산다

    기적 일군 ‘코디 리’처럼… 공기업, 변해야 산다

    “광란의 아리아,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가에타노 도니체티(1797~1848)는 사랑의 묘약처럼 희극적인 오페라를 많이, 그것도 매우 빨리 작곡하는 것으로 유명세를 탔던 음악가입니다. 그런데 이제까지와는 달리 어린 신부가 초야에 남편을 살해하고 정신이 나간 상태로 피투성이가 된 옷을 입은 채 하객들 앞에 나타나 광란의 아리아를 부른다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만든 것이지요.”지난 6일 한 ‘페부커’(페이스북 사용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도니체티의 오페라 중 가장 유명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소개한 글이다. “사실 도니체티는 스코틀랜드의 사연을 담은 이 스토리에 매료돼 자신이 좋아하는 테너 가수를 염두에 두고 오페라를 만들었는데, 페르시아니라는 소프라노가 초절기교를 요구하는 광란의 아리아 콜로라투라(오페라에서 기교적으로 장식된 선율) 부분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 이 아리아가 프리마돈나를 위한 오페라로 바뀌게 됩니다.” 웬만한 애호가도 알기 어려운 뒷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솜씨에서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페부커는 정재훈(60)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이다. 국내 원전과 수력발전을 총괄하는 공기업 사장과 오페라 해설가. 잘 와닿지 않는 조합이지만 정 사장은 1인 2역이 어색하지 않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그의 페이스북은 일기장과 마찬가지인데, 토요일엔 항상 음악 이야기를 한다. 클래식과 오페라, 현대 음악까지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해박한 지식을 과시한다. 정 사장이 들려주는 음악 이야기가 눈길을 끄는 건 이 시대 사회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소개한 음악은 시각장애인이면서 자폐증을 앓고 있는 한국계 청년 코디 리가 지난해 미국의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카 갓 탤런트’ 예선에서 부른 레온 러셀의 ‘어 송 포 유’(A Song for You). 어머니의 안내를 받아 피아노 앞에 앉은 리는 심사위원은 물론 세계 곳곳에 감동을 안겼고, 결승까지 올라 최종 우승을 차지해 화제를 모았다. “흑인이든 한국인이든 백인이든, 누구든지 이 세상에 태어난 데는 이유가 있고 부모님의 사랑으로 존재하는 겁니다. 어머니의 사랑처럼 인류의 보편적 감정과 가치, 그리고 따뜻한 공동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배려와 나눔으로 우리 모두가 어디에 있든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미국 전역으로 확산된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대한 안타까움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정 사장이 특히 조예가 깊은 분야는 클래식이다. 서희태 지휘자가 2013년 창단한 ‘놀라온 오케스트라’의 명예단장이기도 하다. 서 지휘자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2008년)의 주인공 ‘강마에’의 실제 모델. 정 사장의 클래식 소양에 감탄한 서 지휘자가 직접 명예단장을 제안해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 가고 있다. ‘놀자’의 앞글자 ‘놀’과 ‘즐거운’을 뜻하는 순우리말 ‘라온’의 합성어인 놀라온 오케스트라는 클래식이 어려운 음악이라는 편견을 깨고 관객과 함께 연주하는 걸 추구한다. 페이스북에서 클래식 전도사 역할을 하는 정 사장과 잘 어울린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30년간의 관료 생활을 거쳐 공기업 사장이 된 그는 어떻게 클래식에 입문했을까. “대학생 때 미팅 나가면 잘 보이려고 클래식 몇 곡을 억지로 외웠죠. (예술가) 아내와 결혼하니 얕은 지식이 금방 들통나더라고요. 아내에게 핀잔을 들으면서 조금씩 관심을 가졌는데, 젊은 시절엔 밥 먹듯이 하는 야근 탓에 시간이 없었어요. 그러다 고위 공무원으로 승진해 사무실에 제 방이 생기고 나서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죠. 매일 아침 가장 먼저 출근해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잔잔하게 클래식을 틀던 게 어느덧 취미가 됐어요. 지금은 카페나 라디오에서 클래식이 나오면 아내와 먼저 제목 맞히기 내기를 합니다.”서 지휘자와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됐다. 하루는 지인으로부터 “아는 지휘자가 공연을 하는데 표가 안 팔려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비를 털어 10장의 티켓을 샀다. 평소 고생한 후배 공무원에게 나눠주고도 2장이 남아 아내와 직접 공연을 보러 갔는데, 지휘자가 바로 서희태였다. 정 사장은 “음악은 배경 지식을 쌓고 들으면 훨씬 즐겁고 숨겨진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며 “한 사람에게라도 더 클래식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기로 서 지휘자와 약속했다”고 했다. 정 사장은 매주 토요일 페이스북에 음악 해설을 올리는 걸 2010년부터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 음악 해설에도 시사와 교훈을 녹이는 정 사장은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공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한다. 한수원 본사가 위치한 경북 경주는 신라의 천년 문화가 잠들어 있는 곳이지만, 코로나19로 관광객이 급감하며 지역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이에 정 사장은 노조와 협의해 지역사회 소비 활성화를 위한 ‘한수원 노사합동 1339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콜센터 번호(1339)에서 이름을 딴 이 캠페인은 일종의 릴레이 챌린지다. ‘1’명이 ‘3’군데 이상의 전통시장이나 소상공인 가게에서 소비를 하고 다음 챌린저 ‘3’명을 지명한다. 지명받은 챌린저는 2주 이내에 다시 세 군데 이상의 전통시장이나 소상공인 가게를 찾는다. 이렇게 한 명이 ‘9’배의 소비를 이끌어 내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지난달부터 진행 중인 이 캠페인은 오는 19일까지 7주간 진행된다. 한수원은 또 정 사장을 비롯한 본부장급 임원이 4개월간 월급여의 30%, 다른 직원은 자율적으로 일정액을 반납하는 캠페인도 펼치고 있다. 이렇게 마련한 재원을 지역경제 살리기와 취약계층 지원에 활용할 계획이다. “코로나19가 한창 심각했을 땐 소상공인 매출이 최대 90%까지 줄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월급을 받고 있어요. 공기업으로서 혜택을 누린 만큼 당연히 고통 분담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직원 개개인이 얼마를 반납하는지는 제게 일절 보고하지 말라고 했어요. 각자 개인 사정이 있는데 사장 눈치를 보며 월급을 내놓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진심을 담아 동참하길 원했어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못지않은 고용 한파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일자리 창출 방안도 연구 중이다. 디지털 경제 기반 마련을 위한 데이터와 콘텐츠 구축, 비대면 행정서비스 분야에서 한수원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1일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 중이다. 코로나19로 지연됐던 신입사원 채용도 재개했다. 실물경기 침체로 원전업계 기업들은 발주처 물량 축소와 원자재 조달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한수원은 자사 협력기업뿐 아니라 두산중공업 원전부문 협력기업에도 긴급자금을 지원하고, 선금 지급 상한을 70%에서 80%로 높였다. 지급 시기도 14일에서 5일로 단축했다. 국제 입찰 대상이었던 품목을 국내 입찰로 전환해 총 6171억원(94건) 상당을 국내에서 조달하는 등 상생 체계를 구축했다. “공기업 수장을 맡아 조직을 이끌어 보니 변화를 싫어하는 문화가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하지만 세상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급격히 바뀔 것이고, 공기업도 이제 변해야 합니다. 우리부터 먼저 정부의 실물경제 활성화에 적극 동참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보상받는 업무 시스템과 조직 문화를 정립하겠습니다. 코디 리가 장애를 딛고 ‘아메리카 갓 탤런트’ 우승이란 기적을 연출했듯이 우리도 역경을 이겨 내고 한 단계 높이 도약할 것이라 믿습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한국에선 어떤 벌도…” 손정우 美 송환 결정 연기

    “한국에선 어떤 벌도…” 손정우 美 송환 결정 연기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W2V) 운영자인 손정우(24)의 미국 송환 결정이 다음달 6일로 미뤄졌다. 손씨 측은 “국내에서 처벌받는다면 어떤 중형이라도 달게 받겠다. 가족이 있는 곳에 있고 싶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서울고법 형사20부(부장 강영수) 심리로 16일 오전 진행된 손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심사 청구의 2회 심문기일에는 지난 기일에 불출석했던 손씨가 황색 수의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른 아침부터 방청객이 몰리면서 법원은 두 개의 중계법정을 추가로 마련했다. 이날 손씨 측은 “범죄수익은닉죄 외에 다른 범죄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보증이 없다”는 주장을 견지했다. 검찰이 지난달 27일 미 법무부로부터 받은 문서를 제시하며 “미국은 한미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이를 준수할 것임을 재차 기재하고 있다”고 설명했으나 손씨 측은 “미국에서 관련 범죄로 처벌받은 이들과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항변했다. 손씨 측은 수사 단계에서 범죄수익을 은닉한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검찰이 기소하지 않아 미국의 송환 요구를 받게 됐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송치 단계 때도 없던 혐의를 갖고서 사후 판단을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손씨의 부친이 손씨를 범죄수익은닉죄로 고발한 건과 관련해서는 “기소되면 절대적 인도 거절 사유가 되고 그러면 포럼쇼핑(자신에게 유리한 재판부를 선택하는 것)이 될 수 있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손씨가 송환될 경우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있는지, 외교부 등이 사후 모니터링을 진행하는지 등에 대해 검찰 측 답변을 구하며 심문을 마무리했다. 다음달 6일 3차 심문기일 때 송환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여기는 남미] 병원 문앞에서 죽은 사람만 수십 명...코로나19로 의료 붕괴

    [여기는 남미] 병원 문앞에서 죽은 사람만 수십 명...코로나19로 의료 붕괴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왔지만 교대시간이라면서 받아주질 않았어요. 아침 7시부터 정문 앞에서 대기하다가 할머니는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코로나19가 의심되는 할머니를 코차밤바 병원에 데려간 손자는 손도 써보지 못하고 할머니를 잃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주민들은 "할머니가 숨을 쉬지 못해 괴로워했다"면서 "산소호흡기라도 가져오라고 주민들이 소리를 질렀지만 병원에선 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볼리비아의 병원시스템이 포화 상태에 도달해 더 이상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현지 언론이 15일(이하 현지시간)보도했다. 죽어가는 할머니를 외면한 코차밤바 병원은 음압병동이 없어 코로나19 확진자를 중환자실에 입원시킨다. 이 병원엔 18개 중환자 병상이 있지만 지금은 빈 병상이 없어 더 이상 코로나19 확진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코차밤바 병원노조 관계자는 "최근 병원 정문 앞에서 사망한 사람이 최소한 십수 명에 이른다"면서 "코로나19에 걸려 병원을 찾았지만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밖에서 대기하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비극적인 상황은 볼리비아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산타크루스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남편을 병원에 데려간 한 여성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여성은 코로나19에 걸린 남편을 산타크루스의 팜파병원으로 데려갔지만 "코로나19 병동이 꽉 차 더 이상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사들이 나와 입원 중인 코로나19 환자 중 누군가가 사망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명색이 수도지만 라파스의 공립병원 중환자실 병동은 고작 14명을 수용할 수 있을 뿐이다. 현지 언론은 "지난 12일엔 라파스에서 입원이 거부된 한 코로나19 확진자가 이곳저곳 병원을 전전하다 끝내 숨졌다"고 보도했다. 안타까운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자 볼리비아 의료인협회는 뒤늦게 정부에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했다. 의료인협회는 "전국적으로 100명 수준인 공립병원의 중환자실 정원을 최소한 7배로 늘리고, 중환자실 근무인력도 지금의 210명에서 배로 증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15일까지 볼리비아에서 발생한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1만8459명, 사망자는 611명이다. 브라질이나 페루, 칠레 등 다른 남미국가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확진자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워낙 열악한 의료환경 탓에 안타까운 죽음이 꼬리를 물고 있다. 사진=자료사진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김금숙의 만화경] “니네 집에 가”

    [김금숙의 만화경] “니네 집에 가”

    “니네 집에 가.” 2000년대 초, 파리에 있는 퐁피두센터 앞을 지나며 들은 말이었다. 습하고 추운 겨울이었다. 스트라스부르그 미술학교를 막 졸업하고 파리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창작은 해야 했고 먹고는 살아야 했다. 아르바이트라고 구한 것이 퐁피두센터 앞에 있는 의류 체인점이었다. 일주일에 20시간. 내 체류증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이었다. 다른 아르바이트도 알아보았다. 하지만 예술을 공부한 이에게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20대 초반의 여자들로 알제리나 모로코2세였다. 그녀들은 하기 싫은 일, 특히 청소기를 돌리는 일이나 창고 옷 정리 등은 나에게 시켰다. 나는 그냥 묵묵히 일만 했다. 싸우면 내가 질 것이 뻔했다. 그들은 한 팀이었지만 나는 홀로였다. 그들에겐 직업이었지만 나는 그 일을 평생 할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당시 나는 30대 초반이었다. 그들이 아직 어려서 그러리라고도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 일이라도 해야만 내가 당장 먹고살 수 가 있었다. 어느 날 부장이 느닷없이 가게에 찾아왔다. 가게에서 물건뿐 아니라 돈이 사라진다고 했다. 나는 판매직원들이 여러 번 옷을 가방에 넣는 것을 본 적이 있었지만 발설하지는 않았다. 부장은 누구 짓인지 안다고 했다. 한번만 더 그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해고하겠다고 했다. 회의가 끝나기 전 나는 가게 안에서의 차별과 불공평함에 대해 차분히 말했다. 나를 유난히 괴롭혔던 여성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울고 나갔다. 그녀가 나간 후 부장은 나를 괴롭혔던 그녀가 바로 매장의 돈과 옷을 가져 간 범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해고되지 않았다. 오히려 일자리를 떠나야 했던 것은 나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녀는 그 가게 사장 형의 딸이라고 했다. 나는 픽 웃음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가게 문을 닫고 나오는 그 저녁, 나는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전철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니네 집에 가” 하며 누군가 나를 세게 밀쳤다. 하마터면 자빠질 뻔했다. 두 남자였다. 이민자 2세였다. 그들의 생김새를 통해 알 수 있었다.한번은 한국에서 친구가 여행을 왔다. 그녀는 입이 쓰다고 물로 입을 헹구어 화단에 뱉었다. 그 모습을 본 현지인은 우리에게 “노란 돼지”라며 심하게 욕을 해댔다. 나도 그에게 “너는 하얀 돼지”라고 욕을 해 주었다. 나는 친구에게 외국에서는 조심해 달라고 부탁했다. 만일 욕을 한 그가 한국에 와서 여기저기 침 뱉고 컥컥거리는 사람들을 봤다면 어땠을까. 나는 어느 날 아침 전철을 타러 가다가 100미터 간격으로 여성이건 남성이건 젊건 나이가 많건 침을 뱉는 모습을 보았다. 파리에서 길을 가다 들었던 “니하오”나 “곤니치와”는 일상이었다. 비자갱신할 때마다 겪은 모멸감과 혐오의 시선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대부분 내가 받은 차별은 이민자들이나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로부터였다. 왜일까. 그들도 분명 차별을 당하면서 왜 아시아인을 차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지 10년. 주위에 외국인 친구들이 꽤 있다. 그들은 내가 프랑스에서 살았을 때처럼 성실하게 일하며 세금도 꼬박꼬박 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자문제로 곤욕을 치른다. 박근혜 정권 때 법이 바뀌어 여러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돼 버렸다. 한 직장에서 일정 금액을 받아야만 비자가 나온다. 몇 해 전 친구를 도우러 출입국관리소에 갔다가 한 직원이 어떤 외국인에게 반말을 하며 마구 대하는 모습을 보았다. 지금은 그때보다 외국인에 대한 혐오가 더 심해진 듯싶다. 코로나19로 외국인 비자에 대한 법무부의 체류증법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최근 지인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접했다. “돈 있으면 있고 돈 없으면 니네 집에 가”인 것이다. ‘니네 집’은 현재 삶이 있는 곳이지 태어난 곳이 아니다. 장애인, 외국인, 성소수자. 다양한 인간들이 섞여 공동체를 이루어야 사람들의 차별도 점차 줄어들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인종, 민족, 계급의 차별이 더 심화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며 자연 생태계를 파괴해 왔는가.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현재의 코로나가 극복된다 해도 더 큰 재앙이 올 것이다.
  • 신인 감독 정진영 “발가벗겨진 기분… 조진웅 믿고 찍었죠”

    신인 감독 정진영 “발가벗겨진 기분… 조진웅 믿고 찍었죠”

    “이준익 감독님이 ‘개봉하면 떨릴 거야’라고 하시더라고요. 안 떨릴 줄 알았는데 이건 뭐 미치겠어요. 패닉 상태예요. 잠도 안 오고, 멍해요. 허옇고.” 천만 영화 ‘왕의 남자’(2005)의 연산군부터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지적인 MC까지. 1988년 데뷔 이래 연극과 브라운관, 스크린을 종횡무진 누볐던 베테랑 배우에게 이런 면모가 있었나 싶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난 ‘감독 정진영’(56)은 연신 머리를 긁었다. “(배우와는) 전혀 다르더라고요. 배우는 캐릭터와 연기를 평가 받지만, 감독은 직접 이야기를 쓰기도 해서요. 내가 다 발가벗겨지는 듯한 느낌이에요.”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사라진 시간’은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이다. 20여년 전, 이창동 감독 ‘초록물고기’(1997)의 연출부 막내로 일하며 가졌던 영화 연출의 꿈을 그는 이제야 이뤘다. 영화는 한적한 시골마을, 초등학교 교사인 수혁(배수빈 분)네 부부가 의문의 화재 사고로 죽으면서부터 시작한다. 사건을 수사하던 담당 형사 형구(조진웅 분)는 어느 날 아침, 화재 사고가 일어난 수혁네 집에서 깨어난다. 갑자기 사람들은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은 온데간데없다. 극 초반 벌어지는 수혁네 부부의 연극적인 어투와 느닷없는 죽음, 형구를 둘러싼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보여주듯 영화는 관객들에게 영 불친절하다.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이랬다 저랬다 하는 구조에 재담 넘치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처럼 전개하고 싶었다”는 게 정 감독의 설명이다. 다만, 영화는 구석구석 숨겨 놓은 복선들 속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지, 우리는 타인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존재인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주인공 형구 역에는 일찌감치 조진웅을 염두에 뒀다. 영화 속 조진웅의 안정적인 연기가 자칫 비현실적으로 여겨지기 쉬운 일들을 현실에 발 붙이는데 큰 공헌을 했다. “진웅이는 ‘대장 김창수’(2017)를 찍으며 처음 만났어요. 워낙 바쁘고 톱 배우라 (영화를) 함께할 가능성은 작다고 봤는데, 초고를 쓰자마자 보냈더니 다음날 하겠다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오랜 배우 경력 덕에 ‘감독 정진영’은 배우들의 감정선을 전적으로 믿는 편이다. “배우들은 감정을 가져오는 사람이잖아요. 감독과 약간 다른 감정을 가져올 수는 있어도, 아예 틀린 감정을 가져오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감독이 말하는 주황색 대신 연핑크색 감정을 가져올 수 있는데, 이 경우 주황으로 밀고 가면 그 감정 자체가 다 없어지는 거예요.” 극 중 형구가 ‘혼술’을 하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장면도 롱테이크로 한 번에 갔다. ‘담담하게 바라보되 반 발짝 떨어져서 따라오게 만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이동샷도 자제하고, 자극적인 장면은 최대한 피했다. 정 감독에게 본인 영화의 장점을 어필해 달라고 했다. 거듭 난감해하던 그는 “같이 조그마한 배에 올라서, 파도를 넘는 항해를 해보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사라진 시간’은 ‘뉴 웨이브’ 영화가 아니고, 그저 ‘뉴’ 영화다. 신인 감독의 수줍은 초대였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문 대통령 “남북, 자주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 분명히 있다”

    문 대통령 “남북, 자주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 분명히 있다”

    6·15선언 20주년 기념식 영상축사북한에 “대화창 닫지 말 것을 요청”“끊임없는 대화로 남북 신뢰 키워야”문재인 대통령은 15일 북한을 향해 “반목과 오해가 평화와 공존을 위한 노력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며 “대화의 창을 닫지 말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통일전망대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식 영상축사에서 “소통과 협력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장벽이 있어도 대화로 지혜를 모아 뛰어넘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특히 한반도 긴장이 고조된 데 대해 “안타깝고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일부 탈북자 단체 등의 대북전단과 우리 정부를 비난하고 소통창구를 닫자, 국민들은 남북 간 대결 국면으로 되돌아갈까 걱정하고 있다”며 “얼음판 걷듯 조심스레 임했지만 충분하지 못했다는 심정”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선언에서 남북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살포 등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하기로 했다”며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준수해야 하는 합의다. 국민도 마음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문 대통령은 “남북의 의지만으로 마음껏 달려갈 상황이 아니다. 더디더라도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남북이 자주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남북의 신뢰”라며 “끊임없는 대화로 신뢰를 키워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또 “가혹한 이념 공세를 이기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김대중 대통령의 용기와 지혜를 생각한다”며 “2017년 전쟁의 먹구름이 짙어가는 상황에서 남북 지도자가 마주 앉은 것도 6·15 정신을 이으려는 의지 때문”이라고 돌아봤다. 문 대통령은 “평화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고 누가 대신 가져다주지도 않는다. 남북이 연대하고 협력하는 시대를 반드시 열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군사행동 예고 등 엄중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영상축사 및 수석·보좌관 회의 모두발언 내용을 두고 이날 오전까지 고민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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