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죽이진 않는다” 협박·회유 반복
정부합동조사반은 서울 중앙병원에서 민영미(閔泳美)씨를 상대로 억류사건의 경위와 과정,북측의 조사행태 등을 조사해 29일 발표했다.다음은 조사결과 요지.
억류 경위 6월20일 오후 2시쯤 금강산 구룡폭포를 관광하던 중 북측 환경감시원에게 “빨리 통일이 되어서 우리가 금강산에 오듯이 선생님도 남한에 와서 살았으면 좋겠어요”,“귀순자 전철우·김용이 TV프로에도 나오고 잘 살아요” 등의발언을 하다가 북측에 억류.
조사 상황 컨테이너 조사(20일 저녁 8시쯤부터 22일 오후 1시까지) 조사관 3명이 들어와 귀순 유도발언을 시인하는 내용의 사죄문 작성을 강요했으나 민씨는 ‘단순히 말을 걸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3회 제출.
당시 조사관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왔느냐.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3년이고10년이고 맛을 봐야 한다”고 위협하면서 서류뭉치로 책상을 치는 등 공포분위기를 조성했으나 폭행은 없었음.
민씨는 21일 이후 하루종일 조사를 받은 후 밤 10시쯤 극도의 불안감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응급조치와 함께 링거주사를 맞고 22일 새벽 1시20분까지수면.
22일 아침 6시30분쯤 다시 쓰러져 응급처치를 받은 뒤 오전 중 본인 및 남편의 학·경력,직장,가족사항 등에 대해 집중 조사를 받았고 북측은 이 장면을 비디오로 쵤영.
금강산여관 조사(22일 오후 1시∼25일 귀환까지) 객실은 7∼8평 크기로 침대 2개,의자 4개,냉장고와 TV 등이 비치.식사는 매끼 쌀밥에 반찬 5가지를제공했으나 거의 먹지 못했다.호칭은 ‘민영미씨,영미씨,동무,아줌마’ 등을 번갈아 사용.22일 저녁 여관 인근의 온천을 다녀왔고 23∼24일까지 평양에서 왔다는 조사관 2명이 번갈아 조사.
사죄문 작성 경위 23일 오전 8시쯤 조사관 2명이 “속마음을 털어놓고 진실을 이야기하자.핏줄을 나눈 조선사람인데 죽이기는 하겠느냐”,“더 이상말하지 않으면 법대로 처리하겠다.애기 아빠와 아들이 보고싶지 않느냐”며하루종일 회유와 협박을 반복.24일에도 사죄문을 자발적으로 작성할 것을 요구했으나 민씨가 거절.
점심 후 심신이 극도로 지친 상태에서 조사관이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히면 집에 갈 수있다”고 회유.오후 5시쯤 조사관이 미리 준비하고 있던 사죄문(A4 2장반 분량)을 주면서 일방적으로 “사죄문 초안이니 읽어보고 베껴쓰라”고 강요.민씨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작성,제출.
25일 오전 7시쯤 조사관 2명이 ‘사죄문’이 잘 되었다면서 사죄문 말미에작성일자와 작성자를 쓰게 한 뒤 무인,서명토록 요구.
석방 과정 25일 오후 5시30분쯤 북측은 책상 위에 야자수 화분과 물컵을 비치,사죄문낭독장면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오후 5시35분부터 6시까지 민씨에게 사죄문낭독연습을 시킨 후 낭독장면,무인 및 서명하는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6시15분 온정리 소재 현대 보건소로 이동,인계됐고 현대측 의사의 검진을 받은 후 저녁 8시 현대측 선박에 승선.
정리 오일만기자 oil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