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아저씨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임대차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팬카페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법조계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음악회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839
  • ‘낯선 이름’ 한철우 누구? ‘박쥐+아저씨 출연 감초 배우’

    ‘낯선 이름’ 한철우 누구? ‘박쥐+아저씨 출연 감초 배우’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배우 한철우가 화제다. 최근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한철우가 네티즌 사이 화제다. 한철우는 1994년 연극 무대에 데뷔한 후 처녀비행 (1996년), 로미오와 줄리엣 (2002년), 제주도 푸른밤 (2005년), 낙조위의 새 (2006년) 등의 작품을 통해 연기 활동을 이어갔다. 또 연극 뿐 아니라 영화 ‘모던보이’ ‘박쥐’ ‘아저씨’ ‘악마를 보았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국제시장’ ‘소수의견’ ‘서부전선’ ‘그날의 분위기’ ‘국제시장’ 등에도 출연해왔다. 그는 평소 이경규와 절친하게 지내는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어서 오라, 고향은 안녕하다

    어서 오라, 고향은 안녕하다

    추석이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들녘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간다. 둥근 달이 높이 떠서 산천을 비춘다. 나는 올해 전주 살다가 태어나 자란 곳으로 왔다. 고향에 와서 맞는 첫 추석이어서 설렌다. 고향에 돌아와 살면서 옛일들이 하나하나 되짚어진다. 시골 와서 제일 처음 듣는 새 소리가 소쩍새 소리였다. 소쩍새가 처음 울던 밤 어머니는 해마다 이렇게 말씀 하셨다. “내일 아침 화장실에 앉아 ‘어젯밤에 소쩍새가 처음 울었지’ 이렇게 생각을 해 내면 그 사람은 영리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어젯밤 일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 늘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며 “앗차! 어젯밤에 소쩍새가 처음 울었지” 한다. 소쩍새가 울고 진달래가 피면 이 나라 산천이 잠에서 깨어난다. 이른 봄부터 새들이 우는 소리를 들으면 어떤 새든지 한 일주일 울다가 사라진다. 그러면 또 다른 새가 울기 시작하고 그 새 울음소리가 사라지면 또 다른 새가 운다. 그런데 한번 울기 시작하면 가을이 다 갈 때 까지 우는 새가 바로 소쩍새다. 새들이 대게 아침에 울다 잠잠해지는데, 소쩍새는 낮 동안은 울지 않고, 밤에만 운다. 지금 새벽 3시 50분인데 소쩍새가 운다.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내가 동네에서 제일 일찍 일어난다. 내가 깰 때 가끔 이웃에 사는 동환이 아저씨네 집에 불이 켜져 있기도 하지만 내가 제일 일찍 일어난다. 나는 눈이 떠지면 그냥 일어난다. 일어나 내 책방으로 가서 불을 밝힌다. 지금도 소쩍새가 운다. 요즘은 풀벌레 울음소리들이 가득하다. 섬돌에서 우는 귀뚜라미 소리는 어찌나 그리 또렷한지, 지렁이도 운다. 나는 지렁이 울음소리나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녹음해 보관한다. 내가 글도 쓰고 책도 읽는 방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다 문득 하던 일을 멈추고 다른 울음소리를 유심히 듣는다. 그렇게 놀다가 보면 4시 반쯤 된다. 그러면 한 집 건너 이환이 아저씨네 집에서 다슬기 씻는 소리가 들린다. 다슬기를 그 새벽까지 잡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슬기 씻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5시 무렵, 새들이 울기 시작한다. 봄부터 지금까지 우리 집 바로 뒷산의 새소리는 정말 시끄럽다. 그래도 새소리는 사람들이 사는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 나는 새소리들도 녹음해 보관한다. 창문이 희미하게 밝아 오면 새들은 더 극성스럽게 운다. 그러면 나는 카메라를 메고 강물을 따라 산책을 나간다. 그때 강을 건너오는 오토바이 소리와 오토바이 불빛이 보인다. 종길이 아재가 벌써 강 건너 논에 물을 보고 오는 길이다. 아재는 전형적인 농부다. 농부들의 특징은 절대 농사일로 헛짓을 안 한다. 종길이 아재가 아무 일도 안 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본 적이 나는 아직 없다. 딱 한 번 아침 비가 내리는 날 노란 우산을 쓰고 강가에 서 있다가 고요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빈 몸으로 어딘가를 다니는 일은 극히 드물다. 아재가 오토바이를 타고 이리저리 논을 보러 다닐 때 내 동창 승권이가 밭가에 서 있을 때도 있다. 바로 옆집에 사는 판조 형님이 일어나 텃밭 곡식을 살피고, 형수님이 일어나 밥을 하고, 당숙모가 일어나 텃밭으로 가신다. 만조 형님이 자전거를 타고 논으로 간다. 집 앞에 마늘과 참깨와 고추와 가지와 상추와 오이와 방울토마토가 순서를 지키며 사라지고, 들깨와 배추가 순서에 따라 나타난다. 벼가 노랗게 익어 가고 밤이 익어 떨어진다. 강물은 하늘처럼 푸르고, 오리들은 강물에 둥둥 뜬다. 세상의 모든 풀들과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는다. 가을은 부산하고 농부들의 발길은 추석을 향해 빨라진다. 농사일에는 쓸데없는 내 맘도 바빠진다. 마을 뒷산과 앞산에 벌초 된 조상들의 묘가 보인다. 모든, 벌레와 바람과 비와 햇살과 그 모든 것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 살다 보니, 추석이다. 아들딸들이, 내 손자들이 둥근 달을 따라 저 동구에 나타날 것이다. 고향에 남아 농사를 짓는 부모님들의 손길이 바쁘다. 어서 오라, 아직도 고향은 안녕하다. 김용택 시인은 1948년 전북 임실 출생. 1982년 창작과비평사 21인 신작 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 1’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섬진강’ ‘맑은 날’ ‘누이야 날이 저문다’ ‘꽃산 가는 길’, 산문집으로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오래된 마을’ ‘김용택의 어머니’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 쎈 언니 vs 쎈 언니… 올 가을 극장가 여풍이 분다

    쎈 언니 vs 쎈 언니… 올 가을 극장가 여풍이 분다

    국내 극장가에 여성 원톱, 주연 영화가 줄을 잇고 있다. ‘굿바이 싱글’(210만명)과 ‘아가씨’(428만명)에 이어 ‘덕혜옹주’(555만명)까지 흥행작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여성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주인공인 ‘국가대표2’, 우연히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억척 아줌마가 나오는 ‘범죄의 여왕’ 등 이른바 ‘쎈 언니’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영화계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다. 이러한 걸크러시 바람이 꾸준할지 주목된다. ●“개성 강한 女캐릭터 통한다” 분위기 반전 다음달 6일 개봉하는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에서는 관록의 여배우 윤여정이 파격 연기를 펼친다. 종로 뒷골목에서 노인들에게 ‘성’을 파는 박카스 할머니 역할이다. 한때 자신의 단골이자, 뇌졸중으로 쓰러진 송 노인으로부터 자신을 죽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들어줬다가 비슷한 호소가 이어지자 혼란에 빠진다. 1970년대 김기영 감독의 ‘화녀’, ‘충녀’에서도 당시로선 파격적인 여성 캐릭터를 선보였던 윤여정이라 더욱 주목된다. ‘수상한 그녀’(865만명)를 통해 여성 주인공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갖고 있는 심은경이 원톱 주연인 ‘걷기왕’도 10월 개봉한다. 심은경의 첫 독립영화 출연이다. 선천적 멀미증후군으로 왕복 4시간 거리의 학교를 걸어 다니다가 우연히 접한 경보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는 전국대회에 도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고생을 연기한다. 액션물도 나온다. 최근 촬영을 시작한 ‘비정규직 특수요원’은 여성 투톱을 내세운 코믹 액션물이다. 강예원, 한채아가 국가안보국 내근직 요원과 경찰청 형사로 호흡을 맞춰 보이스피싱으로 털린 국가안보국 예산을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막바지 촬영 중인 ‘오뉴월’(가제)은 ‘아저씨’의 여성판으로 입소문이 난 감성 액션물이다. 비밀스러운 과거를 청산한 한 여성이 동생을 위해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다. 여자 복싱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매운 주먹을 자랑한 이시영이 주연이다. 국내에선 보기 드문 거친 여성 액션을 보여 줄 것으로 알려졌다. 김윤진은 11월 초 촬영을 시작하는 공포물 ‘시간 위의 집’에서 주연을 맡았다. 지난해 ‘검은 사제들’을 흥행시킨 장재현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그간 충무로에 여성 중심 시나리오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아무래도 흥행에 대한 부담이나 이미지 측면에서 센 캐릭터에 대한 부담이 있어 오히려 여배우들이 꺼려했다는 말들도 있었다”며 “개성 있는 여성 캐릭터는 먹힐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등 영화계 내부에서 인식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특히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 이후 다시 대두된 페미니즘 열기가 심상치 않아 여성 중심 영화가 꾸준히 기획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오션스’ 여성판… ‘엑스맨’ 여자 울버린도 검토 할리우드에서 걸크러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엔 인기 영화의 남성 캐릭터를 여성으로 바꾸어 다시 만드는 ‘젠더 스와프’(Gender Swap)가 잇따르고 있어 더 흥미롭다. ‘고스트버스터즈’가 대표적이다. 4명의 유령 사냥꾼들을 모두 여성으로 갈아치웠다. 인기 범죄물 ‘오션스’ 시리즈의 여성 스핀오프 프로젝트인 ‘오션스 8’도 추진 중인데 샌드라 불럭, 케이트 블란쳇, 앤 해서웨이, 헬레나 보넘 카터 등 최고 여배우들이 대거 합류했다. 팝스타 리애나도 출연한다. 현대판 인어공주 이야기로 인기를 끌었던 톰 행크스, 대릴 해너 주연의 ‘스플래시’도 리메이크가 기획되고 있다. 채닝 테이텀이 인어를 연기하고, 질리언 벨이 상대역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도 젠더 스와프가 감지된다. 내년 개봉하는 ‘울버린3’를 끝으로 울버린 역할을 내려놓을 예정인 휴 잭맨의 뒤를 이어 앞으로의 ‘엑스맨’ 시리즈에서는 여성 울버린을 투입하는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 ‘아이언맨’도 최근 발간된 만화 원작에서 천재 흑인 소녀 리리 윌리엄스가 토니 스타크에게 바통을 건네받아 차세대 아이언맨인 아이언하트로 등장했다. 장차 영화에서도 ‘바통 터치’가 이뤄질 전망이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대구 동구와 결혼한 구청장… “실리 행정으로 살림살이 돕겠다”

    [자치단체장 25시] 대구 동구와 결혼한 구청장… “실리 행정으로 살림살이 돕겠다”

    지난 2일 만난 강대식 대구 동구청장의 인상은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같았다. 정감 넘치는 목소리와 환한 웃음은 이 같은 느낌을 더 해 준다. 이에 대해 강 청장은 “부모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1959년 대구혁신도시가 들어선 동구 동내동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는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자식들에게 예절과 참된 사람됨을 강조했다. 그는 “아버지는 강직했고 어머니는 온화한 성품이었다”고 했다. 이로 인해 형제들끼리 작은 것도 나누면서 생활했다. 자연스럽게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심을 어릴 때부터 배웠다.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유난히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는 것을 좋아했으며 정의로운 일에는 누구보다 앞장서 왔다. 이 같은 행동이 쌓이면서 주위 사람들도 그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지역과 주민들을 위해 제대로 된 봉사 활동을 하라는 적극적인 권유가 있었다. 이때가 그의 나이 46세였다.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지방의원 선거에 나갔다. 첫 출마에서 동구의원 중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다. 강 구청장은 “어찌 보면 그때가 평범하게 살아온 제 인생에서 터닝포인트가 되는 시점이 아니었나 생각된다”고 했다. 구의원 활동은 그의 안목을 달라지게 했다. 마을의 작은 조력자에서 동구 전체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는 “구의원 때는 젊다는 것 하나로 누구보다 앞서 뛰었고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8년간의 노력 때문인지 민선 6기 동구청장에 당선됐다. 동구청장에 당선된 후 그는 새로운 별칭을 하나 얻었다. ‘대구 최초 미혼 남성 기초단체장’이라는 것이다. 강 구청장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가족을 부양할 충분한 능력이 있을 때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도 여기에 대한 높은 책임감을 요구해 오면서 살아왔다. 그러던 중 구의원이 됐고 구청장이 됐다. 자신보다는 지역 주민들을 먼저 생각한 게 결혼에 소홀히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구청장에 출마하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동구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주민과 동구를 위해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봉사 활동을 하겠다는 것이며 이 결정에 후회도 미련도 없다”고 했다. 그는 구정을 추진하면서 ‘기본’과 ‘원칙’을 강조한다. “공무원은 구민에게 친절하고 해당 업무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민원을 처리해야 한다. 이게 공무원들이 주민들을 대하는 기본이다. 이러한 기본 위에서 개인의 사리사욕 없이, 원칙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모든 일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기본과 원칙을 설명했다. 강 구청장이 취임하면서 내세운 슬로건인 ‘구민 중심, 기본이 바로 선 강한 동구’도 이 연장선에서 이해하면 된다고 했다. “단체장은 임기가 제한된 선출직이다. 당연히 짧은 시간 안에 지역을 위해 많은 일을 하기를 원하고, 업무를 추진하다 보면 무리한 욕심이 앞서기도 한다. 하지만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언제나 사상누각의 잘못을 범할 수 있다. 단체장은 임기가 끝나고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임기 중 과욕이 부른 손실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탈권위’와 ‘소통’도 강 구청장 구정 운영 철학 중 하나다. 그는 “구청장은 권위를 벗어던진 따뜻한 리더십으로 주민과 공무원 간 소통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직원들에게 구청장 부재 시간과 결재 가능 시간을 알려 줄을 서서 기다리던 관행을 없앴다. 하위 직원들과는 점심 때 대화 시간을 마련하기도 하고, 저녁 시간 번개모임도 추진하곤 한다. 또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생일을 맞은 직원들에게는 축하 메시지를 직접 보낸다. 이른 새벽 직접 음식물쓰레기 수거, 가로환경 청소, 재활용품 분류 등 현장체험을 한다. 보여 주기식이 아닌 진정으로 주민 속으로 다가서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다는 다짐의 실천이다. 강 구청장의 구정 추진 방향은 내실이다. 그는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보다는 기존의 사업들을 잘 마무리하고 주민들이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실리주의 행정을 펼칠 때다. 대표적으로는 주민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일자리 창출과 쾌적한 도시환경을 만드는 도시재생사업을 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동구고용복지센터’를 지난해 말 문을 열었으며 노·사·민·정 대표와 전문가 13명으로 구성된 ‘노사민정협의회’를 출범시켰다. 이외에도 ‘직업전문학교 실무자 간담회’, ‘동구사회적경제협의회’, ‘동구 사례관리협의회’등 다양한 커뮤니티를 운영한다. 이 같은 노력으로 지난해 현재 동구의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는 5만 3000여명으로 목표치인 4만 7000여명보다 11.7%나 초과했다. 지역 내 첨단의료복합단지가 위치한 특수성을 활용하기 위해 청년들을 위한 ‘정보기술(IT) 융·복합 의료기기 전문가’ 양성과정을 운영해 지금까지 63명의 수료생을 냈다. 이 중 47명이 취업을 했다. 이런 노력들이 평가를 받아 지난해 지역경제 활성화 부문에서 행정자치부장관상을, 올해에는 자치단체 일자리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고용노동부장관상을 받았다. 쾌적한 환경 조성을 위해 ‘안심창조밸리’ 사업과 ’천연기념물 ONE 도동 문화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한다. 안심창조밸리 사업은 안심 연근재배단지 일원에 레일카페와 터널쉼터, 인공섬, 에코갤러리 등 각종 문화공간을 조성하는 것이다. 2018년 준공되면 주민 커뮤니티 공간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천연기념물 ONE 도동 문화마을 사업은 도동 향산마을 일원에 생태이야기관, 향토문화자원 테마거리와 경관거리를 조성하는 대표적인 도시재생사업이다. 또 수변공원인 봉무공원에 자연체험장(나비누리관)을 건립하고 만보산책로와 전망대를 설치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급속한 현대화로 발생하는 부의 편중과 인간 소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자원봉사 활성화 사업을 추진한다. 강 구청장은 “자원봉사야말로 국가나 지방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관심과 사랑을 베풀 수 있다.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 사회 구성에 직접적인 순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원봉사 활성화 사업을 착안했다”고 밝혔다. 자원봉사자가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자원봉사자의 날을 운영하고 공영주차장 할인, 의료기관 우대서비스 제공, 우수 자원봉사자 포상 등 다양한 혜택도 준다. 작은 정성들을 모아 큰 사랑으로 만들어 나가는 ‘100원의 큰 사랑’ 나눔 운동이나 독거노인 등 에너지 취약계층을 위한 민관 협력사업인 ‘반딧불 1004 프로젝트’ 등 동구만의 특별한 자원봉사 활동도 추진한다. 강 구청장은 “양질의 일자리로 청년들에게 내일의 희망을 전해 주는 도시, 쾌적한 도시환경으로 삶의 여유가 넘쳐나는 도시, 배려와 봉사로 따뜻한 온정이 넘치는 행복한 도시가 제가 꿈꾸는 동구의 모습이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또 “구청장으로 취임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공무원들은 물론, 주민들을 대하는 저의 마음은 한결같다. ‘내가 남을 믿지 않으면 나를 믿어 주는 사람 또한 있을 수 없다’는 확신으로 진실성 있는 신뢰의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도 사람 간의 신뢰와 정의, 의리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할 것이며, 신뢰 있는 사람, 정의와 의리를 지키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행복한 동구 주민의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키다리 아저씨 대 이어 이웃 사랑…아들·딸 4600만원 상당 쌀 전달

    대구 키다리 아저씨가 대를 이어 이웃 사랑을 전하고 있다. 대구 키다리 아저씨는 2003년 추석을 앞두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20㎏들이 쌀 500포대를 어려운 이웃에 전해달라며 보내왔다. 이후 매년 추석을 앞두고 쌀을 기증했다. 쌀을 전달한 키다리 아저씨는 2014년 5월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키다리 아저씨의 아들(68)과 딸(70)이 지난 6일 쌀 10㎏짜리 2000포(4600만원 상당)를 트럭에 실어 수성구청에 전달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5t 트럭 두대에 쌀을 싣고 수성구 벙어동 수성구민운동장에서 구청 측에 전달했다. 아들은 아버지와 같이 아무런 말을 남기지 않았다. 성이 박씨로 알려진 작고한 키다리 아저씨는 평안남도 출신으로 6·25 때 월남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포목상을 하며 돈을 꽤 모았다고 한다. 자신의 가게가 몇 차례 불이 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지인들의 도움으로 재기했다. 키다리 아저씨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어려운 이웃에게 주겠다고 결심하고 쌀 기부를 해왔다고 한다. 박씨와 그의 아들이 2003년부터 올해까지 보낸 쌀은 모두 2만 6000포(시가 6억원 상당)에 이른다. 수성구는 키다리 아저씨 자녀가 보낸 쌀을 동 주민센터와 사회복지시설 등 77곳에 보내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수성구 관계자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자녀에게도 그렇게 살라고 가르친 고인 정신은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큰 울림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아빠본색 이창훈, 결혼 우울증 고백 “‘연예인으로 끝난거지’ 한마디에..”

    아빠본색 이창훈, 결혼 우울증 고백 “‘연예인으로 끝난거지’ 한마디에..”

    배우 이창훈이 ‘아빠본색’에서 우울증을 고백했다. 7일 방송된 채널A ‘아재 감성 느와르 아빠본색’에서 이창훈은 16세 연하 아내 김미정과 과거 우울증을 겪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아빠본색’에서 이창훈은 “임신 후 방배동으로 이사 갔잖아. 내가 처음에 뭐가 충격이었냐면 자기를 위해 음식을 사러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내려가는데 어떤 아줌마가 ‘소문 들었다. 이사 오셨다고. 옷 입고 다니시는 거 보니까 아저씨 다 됐네. 되게 팬이었고 좋았는데 이제 뭐 연예인으로서 끝난 거지’라고 하고 확 내리시는데 그게 너무 충격이었던 거야. 그게 내 결혼 우울증의 시초였던 것 같아”고 고백했다. 이창훈은 이어 “그 다음부터는 뭐냐면 ‘아, 나는 끝난 건가... 난 이제 연예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가’ 이런 거에 많이 사로잡혔어. 항상 어디가면 사람들이 사인해달라고 그랬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내가 아저씨가 되고 길거리 지나가도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아. 너무 외로워지고 보잘것없는 사람이 돼 버린 것 같은 거야 결혼하고 나서. 우울증 때문에 되게 힘들었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창훈은 ‘아빠본색’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우울증을 한 1년 반을 앓았다. 매일 술 먹었고 비만 오면 나가서 울었다. 그것도 드라마지. 난 완전 드라마 속에 산 사람이었나 보다. 결혼한 다음에 내가 이렇게 망가졌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와이프를 많이 원망했었다. 나는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와이프한테 사과는 하지만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우울증을 앓았던 그 1년 반이 나에게는 지워진 시간이다”라고 털어놨다. 아내 김미정은 “아기를 낳고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남편이 우울증이 왔다고 나한테 그래버리니까 너무 속상한 거야 진짜. 이 얘기는 정말 우리 엄마, 아빠도 모르고 시댁도 다 모르신다. 남편은 그때 술 마시면서 풀었지. 밖에 매일 나가서 술 마시고. 난 나갈 수도 없고... 아기를 봐야 되니까”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결혼을 해서 우울증이 왔다는 게 원인이 결혼이지만 그 안에 내가 있는 거잖냐. 그러니까 너무 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아기가 생겼으니까 돌이킬 수가 없는 상황이잖냐. 그러니까 그냥 시간이 빨리 지나길 바랐다”고 힘들었던 시기를 고백했다. 한편 이창훈은 아내 김미정과 지난 2008년 결혼해 슬하에 딸 1명을 두고 있다. 사진=채널A ‘아빠본색’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해변서 무료 마사지 봉사하는 중국 아저씨

    해변서 무료 마사지 봉사하는 중국 아저씨

    ‘이것이 중국 전통 마사지임돠~!’ 최근 영국 동영상 공유사이트 ‘라이브릭’(Liveleak.com)에는 미국의 한 해변에서 여성들을 상대로 중국 전통 마사지를 서비스하는 모습이 게재됐다. 이 남성의 이름은 중국에서 온 ‘뤄둥’(Luo Dong) 아저씨. 뤄둥 아저씨는 공중 장소인 해변이나 거리에서 여성에게 무료 마사지를 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사지를 받고 있는 여성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사진·영상= Weird Planet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빈대떡은 물에 불린 녹두를 맷돌에 갈아 김치, 돼지고기, 숙주나물, 고사리 등을 섞어 반죽한 다음 팬에 기름을 두르고 부쳐 먹는 음식이다. 옛날에는 가난한 이들의 음식이라고 해서 빈자(貧者)떡이라 했으나, 이제는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음식이 되어 빈대(貧待)떡이 되어 버렸다. 원래 평안도, 황해도 등 이북에서 손님을 대접하던 전통음식이었으나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즐겨 먹는 국민 음식이 됐다. 지역에 따라 녹두전 또는 녹두지짐이라 불리기도 한다.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 문 앞에서 매를 맞는데…돈~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엽전 열닷냥’ 등 여러 히트곡을 만들고 불렀던 가수 한복남의 데뷔곡 ‘빈대떡 신사’(1943년)의 가사다. 이렇듯 빈대떡은 어느 집에서나 쉽게 해먹는 음식으로 명절이나 잔치 때면 빠지지 않는 기본 메뉴였다. 그러나 이제는 집에서 직접 해먹는 경우가 흔치 않게 되면서 식당의 전문 메뉴로 자리잡았고, 자연히 맛집들이 등장하게 됐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종로 피맛골의 빈대떡집인 ‘열차집’을 즐겨 찾았다. 1950년대에 문을 열어 이제 환갑이 훌쩍 넘은 서민 맛집인 이 집을 1970년대 학창시절부터 다녔다. 공직에 발을 들여 놓은 후에도 퇴근길에 동료들과 자주 찾던 아지트였다. 피맛골 재개발로 2007년 문을 닫게 되었는데, 우리 부부는 신문 기사를 보고 마지막 영업날에 찾아가 오랜 친구와 헤어지는 기분으로 그 집에 이별을 고했다. 그런데 몇 년 전 종각역 옛 제일은행 뒤편 골목에서 ‘열차집’이란 낯익은 간판이 보여 달려가 봤더니 바로 그 집이었다. 옛날 주인아저씨를 만나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장소만 바뀌었지 돼지기름으로 부치는 빈대떡 맛은 지금도 일품이다. 거기에 굴과 조개젓, 양파를 곁들이면 찰떡궁합이요 금상첨화다. 게다가 전국의 유명한 막걸리를 두루 비치하고 있어 입맛대로 즐길 수 있다. 소주파라면 국물이 시원한 조개탕을 시키면 된다. 이제 아들이 맡아 하는 이 집은 작은 방 1개, 테이블 몇 개의 조그만 가게지만 필자에게는 옛 추억이 떠오르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지금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주인아저씨에게 선물로 받은 오래되고 찌그러진 조개탕 냄비 속에는 종로통에서 마음껏 발산했던 내 젊은 날의 호연지기가 아직도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하다. 빈대떡 맛집은 시장통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종로4가와 5가 사이에 있는 1905년에 개설한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시장인 광장시장에는 맛집이 즐비하다. 시장 골목 어귀에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는 곳이 ‘순희네 빈대떡’이다. 녹두를 맷돌로 직접 갈아 빈대떡을 부쳐내는데, 기름에 튀겨내듯이 부쳐 바삭하고 고소하다. ‘배트맨’, ‘가위손’, ‘비틀쥬스’ 등을 연출한 유명한 팀 버튼 감독이 직접 찾아 먹어 보고 극찬하기도 했다. 세종문화회관 옆 골목에도 40년 된 ‘종로빈대떡’이 있다. 가게 입구 창가에 맷돌과 큰 팬을 두고 빈대떡을 부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발길을 멈추게 한다. 고기, 해물, 굴 등 세 종류의 빈대떡이 있는데 기본이 2인분이다. 잔치국수가 싸면서도 식사로 먹을 만하다. 빈대떡은 누구나 즐기는 음식이어서 전문 가게는 물론 냉면집, 막국수집, 한식집 등에서도 메뉴로 내고 있어 주변에서 쉽게 찾아 옛 맛을 즐길 수 있다. 또 레시피를 참고하여 조금만 수고하면 집에서도 맛깔스러운 빈대떡을 맛볼 수 있다. 빈대떡과 막걸리의 소박한 상차림으로 이번 가을을 맞아볼까나.
  • [한 컷 세상] 눈처럼 쏟아지는 쌀튀밥… 손 안에 쏟아지는 행복

    [한 컷 세상] 눈처럼 쏟아지는 쌀튀밥… 손 안에 쏟아지는 행복

    “뻥이오~!” 뻥튀기 아저씨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칩니다.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으니 어느새 주변은 고소한 냄새로 가득 찹니다. 갓 튀겨 낸 쌀튀밥을 두 손에 가득 담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환한 웃음이 어린 시절 시장 골목의 향수를 떠올리게 합니다. 세상에 달다 하는 군것질들이 넘쳐나도 이 소박한 맛이 그리운 것은 추억 때문이 아닐까요.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임창정 ‘내가 저지른 사랑’ 완벽 소화 “노래방 가서 고생 좀 해”

    임창정 ‘내가 저지른 사랑’ 완벽 소화 “노래방 가서 고생 좀 해”

    임창정이 신곡 ‘내가 저지른 사랑’에 대해 재치 있게 설명한 것이 화제다. 지난 3일 임창정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좀 높게 만들어봤어. 노래방 가서 고생들 좀 해. 어제 연습하다가 낮에 별 봤어. 절대 키 내리지 말고 불러! 니들도 좌절 좀 해봐”라는 글과 함께 동영상 한 개를 올렸다. 영상 속 임창정은 정규 13집 ‘아이엠(I’M)‘ 타이틀곡 ‘내가 저지른 사랑’을 부르고 있는 모습이다. 흔들리는 차에서도 완벽하게 노래를 소화하는 모습은 베테랑 가수임을 증명해 보였다. 영상 말미에는 “왜 뭐”라며 운전을 하고 있는 옆 사람에게 시크하게 말해 보는 이들을 웃게 했다. 한편, 6일 공개된 임창정 ‘내가 저지른 사랑’은 공개되자마자 각종 음원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왜 뭐’ 제일 웃김ㅋㅋ 귀여워요”, “형님 이번 앨범도 너무 좋습니다. 노래 들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함” 등 댓글들을 달았다. 임효진 인턴기자 3a5a7a6a@seoul.co.kr
  •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화성 연쇄살인범 몽타주 공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화성 연쇄살인범 몽타주 공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가 화성 연쇄살인범 몽타주를 공개하고 추적에 나섰다. 4일 방송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추적! 화성연쇄살인범의 30년’편을 통해 30년이 흐른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못 다한 이야기를 조명했다. 지난 1986년 9월부터 약 5년간 화성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9명의 부녀자들. 엽기적인 시신훼손과 잔혹성을 드러낸 희대의 연쇄살인범은 2백만 명이라는 최대의 경찰병력 투입에도 검거되지 않으며 최악의 미스터리로 남았다. 2016년 9월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진지 30년째다. 범인은 1991년 4월 3일 마지막 범행을 저지른 뒤 자취를 감췄다. 15년이 흐른 2006년 4월 2일 마지막 사건의 공소시효도 끝났다. 많은 전문가들은 화성연쇄살인범이 검거되지 않은 채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서 살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 봉인된 화성연쇄살인사건, DNA를 찾아내다 지난 8월 중국판 화성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이 28년 만에 검거됐다. 11명을 무참히 살해한 살인범의 검거당시 모습은 평범한 학교 매점 아저씨였다. 무려 28년 만에 검거될 수 있었던 단서는 바로 범인의 DNA. 안타깝게도 국내에 DNA 분석기법이 본격 도입된 시기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끝난 92년 8월년부터. 하지만 제작진은 끈질긴 취재를 통해, 8차 사건의 유력한 범인의 DNA 감정서가 아직 존재하는 것을 확인했다. 어떻게 DNA가 남아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DNA는 유효한 것일까? - 그곳엔 22명의 목격자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여학생부터 노인까지 무차별적인 살해를 저지른 살인범은 피해자들의 소지품을 활용해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치밀함을 보였지만 가장 중요한 단서인 ‘목격자’를 남겼다. 제작진은 언론에 유일한 목격자로 알려진 당시 버스운전기사를 수소문,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30년이라는 시간에 마지막 목격자마저 사라진 것일까. 하지만 추적 도중 은퇴한 형사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사건에는 그 동안 알려지지 않는 목격자들이 더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목격자를 통해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22명의 목격자는 과연 누구일까? 1986년 당시 범인의 추정나이는 최소 17세에서 24세. 지금 어딘가에 살아있다면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는 중년의 남성일 것이다. 과연 그는 어떻게 변했을까? 제작진은 30년이 지난 범인의 모습을 구체화하기위해 최정예 추적단을 꾸렸다. 범인의 심리와 특성을 추적할 국내 프로파일링 전문가들. 현장을 직접 누비고 사건 하나하나를 분석 범인의 특성을 완성해냈다. 이와 함께 당시 유력한 용의자의 몽타주를 현존하는 가장 과학적인 AI 몽타주 기법을 보유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을 찾아 현재 모습도 구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치 뒷담화] 우리 결심했어요… 정치인 수염은 정치다

    [정치 뒷담화] 우리 결심했어요… 정치인 수염은 정치다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19대 대통령선거일(2017년 12월 20일)까지 475일이나 남았지만 벌써 잠룡들의 비공식 대권 출사표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본격 대선레이스가 시작되면 여의도에는 ‘시대정신’으로 통칭되는 담론들이 넘쳐 날 겁니다. 여권과 야권 혹은 여야를 넘나드는 ‘합종연횡’도 시작될 겁니다. 어느 때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19대 대선을 앞두고 서울신문은 기존 정치 콘텐츠와는 조금 다른 접근을 해 보려 합니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의 ‘속살’에 주목하겠습니다. 요동치는 대선 정국의 뒷얘기를 친절하게 전하겠습니다. 팩트는 놓치지 않되 재미를 불어넣겠습니다. ‘진짜 정치’를 얘기해 보겠습니다. “죄지은 게 많은 것 같아서 수행 차원에서 수염을 안 깎고 있다.” 지난달 26일 국회에 나타난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의 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 있었다. 그가 면도를 하지 않은 건 8월 초 전남 진도 팽목항부터 민생탐방을 다니면서다. 평소의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무성 대장)보다는 ‘털보 아저씨’에 가까웠다. 염색을 하지 않아 희끗희끗한 머리와 허름한 체크 남방 차림으로 방방곡곡을 누비는가 하면 러닝셔츠 차림으로 쪼그리고 앉아 직접 속옷 빨래를 하는 사진도 공개했다. 같은 기간 수염을 깎지 않은 또 한 사람이 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해 네팔에 머물렀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다. 출국길의 문 전 대표는 푸른색 셔츠에 주황색 운동화를 신은 편안한 차림으로 인천공항에 나타났다. 연예인 못지않은 멀끔한 ‘공항 패션’은 화제가 됐다. 하지만 네팔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내내 면도를 하지 않아 턱 밑엔 흰 수염이 제법 자랐다. 부탄 총리를 만났을 때도 속세를 떠난 도인과 같은 모습이었다. ●서민적 모습·소탈함 부각하는 ‘이미지 정치’ 언제부터인가 대선 주자들에게 수염을 기르는 행위는 한번쯤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자리잡았다. 수염은 서민적이고 소탈한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는 ‘이미지 정치’의 대표 사례다. 대선 주자라는 타이틀이 주는 묵직함을 잠시 내려놓고,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옆집 아저씨와 같이 친근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비단 우리 정치인들만의 행태는 아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억울하게’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패한 앨 고어 전 부통령은 이듬해 정치활동을 재개하면서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나타나 화제를 모았다. 패인으로 꼽혔던 하버드 출신의 ‘귀족정치인’ 이미지를 털어버리려 했던 것이다. 정연아 이미지테크연구소 대표는 “수염을 기르는 행위는 정치인들의 속성”이라며 “서민 이미지를 보여 주고 싶을 때 나타나는 상투적인 행위”라고 말했다. 허은아 한국이미지전략연구소장은 “무엇인가에 너무 몰두해 속세에 신경쓸 시간이 없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할 때 정치인들은 수염을 기른다”고 했다. 앞서 더민주 손학규 전 상임고문은 2006년 ‘100일 민심대장정’과 이듬해 ‘2차 민심대장정’ 기간 수염을 길렀다. 당시 탄광에서 석탄가루를 뒤집어쓰고 땀과 수염이 뒤범벅된 채 찍힌 사진을 놓고 혹자는 ‘흑역사’라고, 다른 한편에선 ‘의도된 연출’이라고 평가했다. 수염은 고뇌에 빠진 정치인의 상징이기도 하다.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인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130여일간 진도에 머물며 수염을 깎지 않았다. 그의 수염은 참회의 의미로 해석됐다. ‘수염의 정치학’에는 득실이 공존한다. 허 소장은 “일단 언론에 자주 노출돼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 정치인들은 시각적 효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인이 수염을 기른 채 공식 석상에 등장하면 플래시 세례가 쏟아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허 소장은 또한 “대선 출마 선언과 같은 중대 발표를 할 때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키기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 정치인들이 덥수룩한 수염을 깎고 공식 석상에 나타났을 때에는 ‘이 사람이 고심 끝에 결심을 했구나’라는 느낌을 준다. 민생 탐방을 마친 김무성 전 대표는 국회에서 ‘격차해소 경제교실’을 여는 등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기 전 수염을 깎았다. 문 전 대표도 네팔에서 기른 수염을 모두 정리한 채 귀국길에 올랐다. 두 사람 모두 대선 행보를 본격화하기에 앞서 마음가짐을 단단히 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진정성 전달 안 되면 ‘ 정치쇼’ 오해 부를 수도 물론 정치인이 수염을 기르거나 깎는 행위만으로 의도한 메시지가 오롯이 대중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성 있는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자칫 ‘쇼’나 ‘코스프레’라는 오해를 사 비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장은 “정치인들은 연례행사처럼 한 번씩은 수염을 기르는 것 같다”면서 “그렇지만 수염을 기른 정치인 치고 지지율이 오른 경우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강 소장은 “이미지 정치를 통해 지지율이 올랐다면 국민도 진정성을 느낀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국 일종의 ‘코스프레’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 소장도 “정치인들이 ‘쇼한다’는 느낌을 지우려면 수염을 깎은 이후에도 진정성 있는 행보를 보여 줘야 한다”면서 “단순히 외모적으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해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했다. 수염을 이용한 이미지 정치에 성공한 사례로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꼽을 수 있다. 박 시장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과의 후보 단일화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채 나타났다. 지리산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떠났다가 당초 일정보다 앞당겨 귀경한 터였다. 당시 5%에 불과했던 박 시장의 지지율은 당시 안 의원의 양보로 50%대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안 의원과의 단일화 덕을 톡톡히 봤지만 박 시장의 서민적인 이미지와 ‘털북숭이’ 같은 모습이 맞아떨어져 순식간에 시너지를 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정 소장은 “자신이 본래 지닌 이미지 중 장점만을 뽑아내 재포장하는 게 이미지 메이킹의 핵심”이라면서 “본질은 80%의 비중으로 두고 나머지 20%는 개성이나 매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박 시장은 본래 친숙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수염이 잘 어울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도 최근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경쟁 과정에서 ‘밀짚모자’와 ‘잠바떼기’로 이미지 정치의 효과를 톡톡히 누린 경우다. 정 대표는 “이 대표 역시 농부처럼 밀짚모자를 쓰고 땡볕을 누비며 서민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켰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고 했다. ●추미애의 ‘노란옷’ 등 女정치인은 패션으로 어필 남성 정치인이 수염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표현한다면 여성 정치인은 헤어 스타일이나 패션, 액세서리로 이미지 정치를 구현한다.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전대 과정에서 유독 노란색 재킷을 많이 입었다. 다른 경쟁 후보에 비해 화사한 옷을 입어 눈길을 끌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었다. 동시에 노란색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징색이기도 하다. 노 전 대통령의 탄핵에 동참했다는 아킬레스건을 가진 추 대표로선 노란색 재킷을 입어 당내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성향 대의원과 권리당원들을 향해 구애의 손짓을 내민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19대 국회 당시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 역시 ‘패션’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그는 19대 국회에 입성하면서 당의 상징색인 보라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등장했다. 당시 비례대표 경선 부정 논란으로 거세졌던 사퇴 압박을 딛고 당당하게 ‘마이 웨이’를 걷겠다는 의지를 패션을 통해 나타낸 것이다. 미국 클린턴 정부 당시 국무장관을 지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항상 왼쪽 가슴에 브로치를 착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브로치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곤 했는데, 2000년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때는 의도적으로 성조기 브로치를 꽂았다. 허 소장은 “강하고 굳센 이미지를 가진 여성 정치인은 눈물을 흘리는 등의 몸짓 하나로도 시선을 끌 수 있다”고 했다. viviana49@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왕서방 ♥ ‘페이’…中 스마트폰 결제族 무려 4억 2400만명

    [글로벌 인사이트] 왕서방 ♥ ‘페이’…中 스마트폰 결제族 무려 4억 2400만명

    토요일이었던 지난 27일 우리 가족 3명은 현금과 신용카드 없이 모바일 결제로만 생활했다. 지난해 1월 중국 베이징에 온 우리 가족의 생활은 즈푸바오(支付寶·알리페이)와 웨이신즈푸(微信支付·위챗페이)를 사용하기 전과 후로 나뉠 정도로 모바일 페이가 가져온 중국의 ‘생활 혁명’을 실감하고 있다. ●공유차량 합승할수록 가격 더 내려가 이날 아침 기자는 한국에서 온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베이징 중심부인 둥시(東西)에 가야 했다. 스마트폰에서 차량 공유 앱 디디추싱(滴滴出行)을 클릭했다. 베이징 거리에서 택시 잡는 일은 이제 옛날이야기가 됐다. 디디추싱을 활용하면 택시, 콰이처(快車·경차 위주로 택시보다 저렴), 좐처(專車·외제 중형차로 택시보다 비쌈) 등을 골라서 탈 수 있다. 콰이처와 좐처는 이전에 헤이처(黑車)로 불리던 불법 영업 자가용이었으나 요즘 이를 불법으로 여기는 승객은 없다. 중국 정부도 올가을부터 합법화하기로 했다.콰이처를 선택하니 집 주변에서 6~7대가 개미처럼 움직이는 모습이 스마트폰 화면에 보였다. 약속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합승 서비스’를 클릭했다. 이 서비스는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에 다른 손님을 태우는 것을 허락하는 기능이다. 합승 횟수가 많을수록 가격은 더 내려간다. 도중에 2명이 합승해 평소보다 20분 더 걸렸지만 가격은 고작 15위안(약 2500원)이었다. 택시를 탔다면 50위안(약 8400원)이 나올 거리다. 합승한 중국인과 수다를 떠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차비 결제는 어떻게? 그냥 내리면 된다. 운전기사가 본인 스마트폰에 뜬 청구 요금을 누르면 승객의 모바일 결제 계좌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간다. 인출 문자메시지의 금액이 맞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아이들 용돈도 모바일 전자화폐로 콰이처에서 내려 구멍가게에 들렀다. 계산대 옆에는 즈푸바오와 웨이신즈푸 전용 QR코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왔다. 점원은 “싸오이샤”(掃一下·스캔하세요)라고 말했다. 계산대 옆 QR코드를 내 휴대전화로 스캔하니 4위안이 빠져나갔다. 요즘 중국 상점에서는 “얼마예요?”보다 “스캔 돼요?”라는 말이 더 자주 들린다.노점상에서도 가능할까. 전병과 과일을 파는 아저씨에게 물으니 “당연히 가능하다”고 답했다. 거스름돈 걱정할 필요가 없어 오히려 현금 주는 고객보다 스캔하는 고객이 더 고맙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날 중학생 딸은 친구 생일 파티에 갔다. 중국식 샤부샤부인 훠궈값이 480위안 나왔는데, 친구 5명이 웨이신즈푸를 활용해 96위안씩 나눠서 냈다고 했다. 웨이신(위챗)에는 더치페이(AA制)를 할 수 있는 기능이 별도로 있다. 대표로 결제할 사람이 총금액과 사람 수를 입력한 뒤 전체 웨이신 친구 리스트에서 돈을 낼 이들을 클릭하면 분담액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자동으로 발송된다. 메시지를 받은 이들이 인출 승인을 클릭하면 대표 결제자의 웨이신 계좌에 돈이 들어간다. 반장이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사기 위해 돈을 걷을 때도 더치페이 기능이 유용하다고 딸은 말했다.웨이신즈푸와 연동되는 은행 계좌가 없는 학생들이 어떻게 모바일 결제를 할 수 있을까. 비결은 ‘훙바오’(紅包)에 있다. 훙바오는 원래 설날 세뱃돈을 넣어 주는 빨간 봉투란 뜻인데, 요즘에는 모바일 결제용 전자화폐란 뜻으로 통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훙바오를 이체해 주면 자녀는 그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시도 때도 없이 “훙바오 좀 날려 주세요”라는 딸의 문자메시지가 우리 집의 큰 골칫거리로 자리잡고 있다. ●지하철 요금 빼고는 다 모바일로 가능 집에 돌아온 딸은 개학(9월 1일) 준비물을 사기 위해 알리바바의 인터넷 쇼핑몰인 타오바오를 검색했다. 딸이 찾는 것은 식충식물. 과연 있을까 싶었는데, 수백 종류의 식충식물이 스마트폰 화면에 가득 찼다. 더 놀라운 것은 화분에 넣을 백두산 유기물 흑토까지 팔고 있었다. 딸이 16위안을 주고 구입한 식충식물과 백두산 흙은 다음날 아침 배달됐다.아내는 우리 가족을 모바일 결제의 편리함으로 인도한 주인공이다. 중국은 전기와 수도 등 모든 공과금을 선불로 내는데, 모바일 결제를 만나면서 가정주부가 은행에 갈 일이 사라졌다. 전기, 수도, 가스, 휴대전화, 유선방송 요금 충전은 물론 각종 범칙금과 관리비, 주차 비용도 즈푸바오나 웨이신즈푸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이날 아내는 전기 요금 200위안과 식료품점에서 배달돼 온 밑반찬과 돼지고기, 과일 가격 230위안을 웨이신즈푸로 결제했다. ●中 젊은이들10~20위안만 갖고 다녀 주말 저녁을 맞아 외식하기로 했다. 아내는 메이퇀(美團)이라는 외식 및 음식 배달 전문 앱을 클릭해 모바일로 결제할 때 할인되는 음식점을 찾았다. 메뉴는 베트남 쌀국수로 정했다. 모바일 결제가 보편화되다 보니 베이징 시내 음식점 대부분은 메이퇀과 같은 전문 앱과 연동돼 있다. 식당 간, 전문 앱 간 경쟁이 치열해 모바일 결제 시 대부분 할인받을 수 있다. 콰이처를 불러 타고 음식점으로 가는 도중에 아내가 웨이신을 이용해 미리 대기 번호표를 뽑았다.저녁을 먹으며 지갑 없이 보낸 하루를 되돌아봤다. 3명 모두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모바일 페이로 ‘무엇을 결제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보다 ‘무엇을 결제할 수 없을까’를 생각하는 게 더 빨랐다. 우리 가족이 일상생활 중 아직 모바일 페이로 결제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해 낸 건 지하철 요금과 학비뿐이었다.  우리 가족은 시험 삼아 하루 동안 현금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많은 중국 젊은이들은 실제로 지갑 없이 다니거나 10~20위안 정도만 지니고 다닌다. 궈신(國信)증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현재 모바일 결제 수단을 이용하는 중국 소비자는 4억 2400만명이다. 지난해 3억 5800만명보다 6600만명이나 늘었다. 2012년 이후 매년 40~500%씩 폭풍 성장을 하고 있다. 가장 빈번하게 이용하는 결제 방법으로 모바일 인터넷 결제가 78%를 차지하고 있다. 인터넷 뱅킹이 13%, 현금 결제는 9%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현재 모바일 결제 규모는 8조 4000억 위안(약 807조원)이고, 올해는 11조 4000억 위안(약 1916조원)으로 예상된다. 모바일 결제가 현금을 대체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역설적이게도 중국인의 ‘현금 사랑’ 때문이다. 중국은 소비자들이 현금 거래를 고집하는 바람에 신용카드 등 금융 인프라가 낙후됐다. 이런 상황에서 계좌 잔고 내에서만 돈이 빠져나가고 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바일 결제의 등장은 중국인에게는 현금과 비슷하지만 훨씬 편한 화폐로 다가왔다. ●‘VR페이’ 출시 등 업체들 혁신 경쟁 특히 알리바바의 즈푸바오와 텅쉰의 웨이신즈푸가 벌이는 혁신 경쟁은 스마트폰 확산과 더불어 중국을 모바일 결제 천국으로 만들었다. 즈푸바오는 톈마오와 타오바오라는 알리바바의 거대한 인터넷 쇼핑몰을 기반으로 전자 결제를 선도해 왔다. 웨이신즈푸는 8억명에 이르는 웨이신 사용자를 기반으로 즈푸바오를 맹추격하고 있다.두 모바일 페이는 저마다 특징이 있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성장한 즈푸바오는 인터넷 쇼핑 결제 때 주로 사용된다. 잔고에 이자도 붙어 재테크족들이 선호한다. 알리바바는 9월부터 ‘VR(가상현실)페이’를 출시해 인터넷 쇼핑몰에서 현실 세계와 똑같은 느낌으로 상품을 고르고 결제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베이징에서 강세를 보이는 웨이신즈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가입자 간 이체가 편하다. 소액부터 거액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글 사진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진사 이시영, 민낯에도 초근접 셀카 “체력이 국력” 활력 미소

    진사 이시영, 민낯에도 초근접 셀카 “체력이 국력” 활력 미소

    ‘진짜사나이’(진사)로 주목받고 있는 배우 이시영이 민낯 셀카를 공개했다. 29일 이시영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월요일이에요! 저는 촬영 전에 운동하러 가고 있습니다. 한주의 시작을 활기차게. 파이팅!”이라는 글과 함께 활기 넘치는 미소를 짓고 있는 셀카를 공개했다. 이시영은 화장기 없는 민낯임에도 굴욕 없는 미모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어 이시영은 “#액션영화는 체력이다 #많이 먹고 #운동하자 #체력이 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덧붙였다. 이시영은 현재 영화 ‘오뉴월’을 촬영 중이다. ‘오뉴월’은 제작 단계부터 ‘여자판 아저씨’로 불렸던 작품으로, 이시영은 여동생을 위해 복수를 펼치는 여주인공 역을 맡았다. 한편 이시영은 MBC ‘일밤-진짜 사나이’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체력검정에서 어깨 재활치료 탓에 팔굽혀펴기에서 불합격을 받았으나 나머지 테스트에서는 모두 월등한 성적을 받는 등 완벽에 가까운 모습으로 ‘갓시영’ 애칭을 받기도 했다. 사진=이시영 인스타그램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이시영, 빨간 미니 드레스 활기찬 일상 ‘건강미인 대명사’

    이시영, 빨간 미니 드레스 활기찬 일상 ‘건강미인 대명사’

    예능 프로그램 ‘일밤-진짜 사나이2’에서 활약 중인 이시영의 일상이 화제다. 이시영은 지난 2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산책입니다. 오뉴월 촬영중. 쉬는시간. 쉬는중”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공개된 사진 속에서 이시영은 레드 컬러의 미니 원피스를 입고 산책로를 뛰고 있는 모습이다. 이시영은 MBC ‘일밤-진짜 사나이2’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체력검정에서 어깨 재활치료 탓에 팔굽혀펴기에서 불합격을 받았으나 나머지 테스트에서는 모두 월등한 성적을 받는 등 완벽에 가까운 모습으로 ‘갓시영’ 애칭을 받기도 했다. 한편 이시영은 영화 ‘오뉴월’을 촬영 중이다. ‘오뉴월’은 제작 단계부터 ‘여자판 아저씨’로 불렸던 작품으로, 이시영은 여동생을 위해 복수를 펼치는 주인공 역으로 출연한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2016 공직열전] 창조경제 견인… 범부처 과기 컨트롤타워 역 ‘톡톡’

    [2016 공직열전] 창조경제 견인… 범부처 과기 컨트롤타워 역 ‘톡톡’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 산하에는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를 이끌어 나가는 부서와 미래부의 안팎 살림과 기획을 총괄하는 부서, 과학기술 정책을 담당하는 옛 과학기술부 소속 부서 등 그야말로 미래부의 ‘핵심부서’들이 포진해 있다. 특히 과학기술 관련 부서는 최근 10년 동안 부총리급 부처인 과학기술부, 교육인적자원부와 합쳐진 교육과학기술부를 거쳐 다시 미래창조과학부로 바뀌는 등 부침이 심했지만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을 이끈다는 자부심 하나만은 달라진 게 없다. ●기획조정실 미래부 안팎 살림을 총괄하고 있는 정병선(51·행정고시 34회) 정책기획관은 아무리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언제나 웃는 얼굴로 대화를 이끌어 미래부의 대표적인 ‘덕장’으로 꼽힌다. 정책현안과 대내외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핵심을 찾아 풀어내는 탁월한 분석가와 해결사로 장·차관이 믿고 찾는 국장으로 정평이 나 있다. 최원호(49·기술고시 28회) 국제협력관은 과학기술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국제협력, 원자력, 연구개발, 과학기술정책 등 과학기술 전 분야의 업무에 두루 능통하다. 이명박 정부 때 이뤄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설립과 기능 강화를 주도해 과학기술 혁신시스템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점잖은 외모 덕분에 ‘영국 신사’로도 통하는 최 국장은 자전거, 탁구, 봉사동아리 등을 통해 후배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합리적인 업무처리로 신망을 얻고 있다. ●연구개발정책실 이진규(53·기시 26회) 기초원천연구정책관은 공직에 입문하기 전 현대모비스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다. 길진 않지만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에게 항상 ‘정책을 세울 때는 멀리, 크게 보라’고 주문한다.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와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오픈 마인드로 후배들과 끊임없이 소통을 한다. 교육과학기술부 창의인재정책관 시절에는 교육기부, 과학중점학교 정책을 안착시켰고 최근에는 바이오 미래전략, 기후변화대응기술 확보 로드맵 등 미래성장동력 분야의 중장기 연구개발 전략 수립을 주도하고 있다. 배태민(51·원자력 특채) 거대공공연구정책관은 일처리가 꼼꼼해 윗사람들이 믿고 맡길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성과평가국장으로 일할 때 출연연구기관과 연구개발사업 평가제도를 개편하는 데 앞장섰다. 청와대 선임행정관 때는 사회이슈 해결형 연구개발프로젝트, 신산업창조 프로젝트, 달탐사 계획 등 과학기술계 주요 현안을 탁월하게 처리해 호평을 받았다. 배재웅(53·기시 24회) 연구성과혁신정책관은 성과확산, 연구개발특구,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혁신과 변화를 앞장서서 이끌고 있다. 동기들에 비해 국장 승진이 다소 늦었지만 ‘오랜 과장 경험이 업무의 큰 자산’이라고 말할 만큼 긍정적 사고를 지니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늘 긍정적 마인드를 강조한다. 논리를 중시하고 업무를 꼼꼼하게 챙기다 보니 호랑이 선생님 같은 면도 있어서 후배들에게는 ‘어려운 고참’으로 인식되고 있다. ●과학기술전략본부 지난해 5월 출범한 과학기술전략본부는 범부처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국가과학기술심의회(국과심)를 전담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윤헌주(57·기시 20회) 과학기술정책관은 여기서 과학기술 예측과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중장기 정책목표, 과학기술기본계획 등을 총괄 조정하고 수립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과학기술부에서 공직을 시작한 윤 국장은 과학기술정책기획관, 기초연구정책관, 청와대 선임행정관 등 다양한 보직을 거치고 스웨덴대사관에 과학관(공사)으로도 나간 바 있어 과학기술 분야에 있어서 국내외 현황에 대해 해박하다. 특히 국가연구개발 사업관리와 과학기술정책 업무를 지휘하면서 탁월한 현안 처리능력을 보여 선후배로부터 신망을 받고 있다. 경상도 사나이다운 카리스마도 있지만 사석에서는 의외로 ‘다정하고 사근사근’한 모습을 보인다는 후배들의 평가를 받는다. 지난 4월 미래부에 합류한 성일홍(51·행시 37회) 연구개발투자심의관은 1994년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해 재정경제원 예산실, 과학환경예산과, 기획재정부 기금운용계획과장, 예산기준과장, 산업경제과장, 농림해양예산과장, 국고과장 등 예산실 주요요직을 두루 거친 예산전문가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옆집 아저씨 같지만 강한 업무 추진력과 합리성을 겸비하고 있어서 후배들에게 불필요한 보고서 작성이나 의전보다는 내용에 충실하라고 강조하는 실사구시형 융합인재로 평가받고 있다. 이성봉(48·행시 35회) 과학기술전략회의 지원단장은 부드러운 외모와 달리 업무에 있어서는 명확하고 똑 부러지는 것을 선호한다. 특히 위에서 내려온 지시라도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 협조를 받아야 할 일 등 업무에 대한 범위 설정과 판단이 빠르며 합리적으로 일을 기획하고 추진하기 때문에 후배들 사이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선배’로 꼽히고 있다. 오태석(48·행시 32회) 창조경제기획국장은 기초과학정책과장, 국립과천과학관 전시연구단장, 청와대 선임행정관, 연구성과혁신정책관 등을 거치면서 과학기술 정책은 물론 창조경제 정책에 있어서 가장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황 분석과 판단, 폭넓은 시야로 다양한 창조경제 현안을 해결하는 그야말로 창조경제 전문가다. 업무에 어려움을 겪거나 개인적으로 고민이 있는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가 ‘소주 한잔’을 제안할 정도로 다정다감한 형님 스타일이라는 것이 후배들의 평가다. 용홍택(53·기시 26회) 미래인재정책국장은 기술고시 전체 수석으로 공직에 입문한 뒤 과학기술부 시절 4급 서기관 2년차 때 과장급인 혁신기획관으로 발탁승진돼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과학기술정책과 기획통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난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기획단장을 맡아 부지 선정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갈등을 해결해 협상력도 인정받았다. 미래부 내에서도 잘 알려진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미래부 설립 초기 직장선교회인 ‘미래부 기독선교회’ 창립을 이끌기도 했다. 대변인실은 조직도상 1, 2차관 소속이 아닌 장관 직속 부서로 포함돼 있어 그야말로 미래부의 모든 정책이 대변인을 통해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바로 ‘미래부의 입’이다. 전성배(51·행시 34회) 대변인의 첫 인상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어눌한 듯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달변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변인으로서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방송통신위원회 출신으로 통신이용제도과장, 전파기획과장, 정책총괄과장 등을 거쳐 미래부 전파정책국장 자리에 있을 때는 방송통신 분야에서 가장 큰 현안이었던 700㎒ 대역 분배를 꼼꼼하고 합리적으로 처리했다. 주말과 휴일마다 사이클링을 즐기는 스포츠 마니아이기도 하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청춘시대’ 류화영, 긴 웨이브 스타일 버리고 ‘파격 단발’ 포착 “상큼 미모”

    ‘청춘시대’ 류화영, 긴 웨이브 스타일 버리고 ‘파격 단발’ 포착 “상큼 미모”

    ‘청춘시대’ 류화영이 단발머리로 깜짝 변신을 감행한다. 최근 많은 화제 속에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극본 박연선, 연출 이태곤 김상호)가 숨겨왔던 상처와 비밀이 드러난 강이나의 새로운 삶의 시작을 예감케 한 가운데 류화영의 또 다른 모습이 공개됐다. ‘청춘시대’에서 류화영은 언제 어디서나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환상적인 미모와 완벽한 몸매를 갖춘 벨르 에포크의 외모센터 강이나 역을 맡아 극적이면서도 섬세한 감정연기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어깨 위로 올라오는 짧은 단발 머리에 앞머리까지 내리고 스타일 변화를 선보인 류화영의 모습이 담겨있다. 특히 늘 긴 웨이브 헤어에 하이힐을 신고 화려하고 섹시한 스타일링을 선보였던 ‘청춘시대’ 최고의 ‘패션피플’ 류화영이 비밀의 단서였던 팔찌부터 스트라이프 티셔츠, 톡톡 튀는 색감의 네일, 여기에 단발머리까지, 파격변신에도 모든 아이템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지난주 방송에서 오종규(최덕문 분)와 그의 딸이 관련된 피치 못할 사건으로 스스로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던 강이나가 새로운 한걸음 내딛기까지의 감정선을 완벽하게 표현해낸 류화영의 단발 변신이 극중 역할에 있어 또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앞서 SBS ‘엄마의 선택’, KBS2 ‘옥이네’, tvN ‘구여친클럽’, SBS ‘돌아와요 아저씨’, 영화 ‘오늘의 연애’ 등에서 활약한 류화영은 ‘청춘시대’를 통해 연기자로서 또 한 번의 도약에 성공하며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바 있다. 종영까지 단 2회를 남겨둔 ‘청춘시대’와 자기 색깔을 담은 ‘강이나’ 캐릭터로 사랑 받고 있는 류화영에 많은 기대와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외모부터 남자 취향, 연애스타일까지 모두 다른 5명의 매력적인 여대생이 셰어하우스에 모여 살며 벌어지는 유쾌하고 발랄한 여대생 밀착 동거드라마 JTBC ‘청춘시대’는 매주 금, 토 오후 8시 30분 방송된다. 사진=이매진아시아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김원길 바이네르 사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김원길 바이네르 사장

    그의 웃음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언제부턴가 그 자리에 있었던 듯했다. 좌절과 시련을 이겨내면서 더 커지고 짙어진 것일까. 소박하게 꾸며진 사장실 문을 열면 ‘힘들어도 괜찮아’라고 적힌 액자가 첫눈에 들어온다. 사무실과 공장을 겸하고 있는 경기 일산 본사에서 지난 17일 만난 김원길(55) 바이네르 사장에게서 “힘들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되뇌며 넘어지고 일어나 달려온 40년을 들어봤다. -옷가지 몇 벌이 든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나는 영등포역에 내렸다. 처음 밟은 서울 땅. 또래들처럼 학교에 다녔더라면 고2 새 학기의 시작에 들떠 있었을 1978년의 봄이었다. 당시 영등포는 사람과 상점, 공장, 유흥가로 지금보다 훨씬 더 번잡했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겁이 났다.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목이 탔다. 화장실에서 벌컥벌컥 수돗물을 마시고 세수를 했다. 시간은 오후 4시. 자, 이제부터 한 집 한 집 내가 있을 곳을 찾아나서 보자. “제가 구두 만드는 기술이 있는데요, 저 좀 써 주시면 안 될까요.” 하지만 땅거미가 내리고 전등에 하나둘 불이 들어와도 나를 받아주는 곳은 나오지 않았다. 퇴짜를 맞은 집이 스무 곳 가까이 되어갈 즈음, 문래동 쪽 허름한 구둣방에서 나를 받아주었다. 월급은 없이 하숙집에서 먹여 주고 재워 주기만 하는 조건이었지만 마다할 수가 없었다. -내 솜씨를 본 구둣방 주인은 좀 놀라는 눈치였다. 열일곱 살 먹은 ‘충청도 촌놈’치고는 실력이 꽤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곳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름이 되자 주인이 불렀다. “장마철이라 물건이 너무 안 팔린다. 더이상 널 먹이고 재워 줄 능력이 안 된다.” 말하자면 정리해고였다. -“구둣방에서 잘렸어요.” 몇 달 동안 하숙하며 친해진 룸메이트 형에게 사정 얘기를 했다. “내가 강원도 양양 출신이어서 잘 아는데, 설악산에 가면 일자리가 있을 거야.” 귀가 번쩍 뜨인 나는 다음날 새벽같이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로 달려갔다. 그날 늦은 오후가 돼서야 도착한 설악산. 몇 달 전 영등포 역전에서처럼 상점과 산장의 문을 한 집 한 집 두드렸다. 하지만 하숙집 형의 말과 현실은 달랐다. 서울로 돌아갈 차비는커녕 김밥 하나 사먹을 돈도 없는데 서늘한 밤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냥 죽으란 법은 없었다.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말할 요량으로 찾아간 산장에서 “방 청소하고 손님들 가방 들어 주면 한 달에 5만원을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당시 설악산은 신혼여행이 피크였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짐을 들어 주자 팁이란 걸 주는데, 한 번에 2000~3000원은 기본이었다. 새로운 삶의 희망에 들뜬 신혼부부들은 일반 등산객들보다 손이 컸다. 지배인이 보는 데서 받은 팁은 도로 토해내야 했지만, 그렇지 않은 팁은 고스란히 내 주머니에 들어왔다. 팁에 맛을 들인 나는 강아지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가 밖에서 발소리가 나면 누구보다 먼저 뛰어나갔다.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말을 해야 더 많은 팁을, 그리고 지배인이 안 보는 데서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쌓여갔다. 한 달이 지나자 다락방에 몰래 감추고 벽돌로 눌러놓았던 팁이 50만원으로 불어났다. 월급의 10배였다. 그 돈을 들고 나는 미련 없이 설악산을 떠났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정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1961년 충남 당진에서 5남 2녀의 셋째로 태어났는데, 가족이 의지할 거라곤 손바닥만 한 논 몇 마지기가 전부였다. 나는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허약한 형을 대신해 풀 베고, 땔감 구하고, 논에서 피 뽑는 노동의 무게를 다 짊어져야 했다. 그 보상일까. 초등학교까지만 보낸 형, 누나와 달리 아버지는 나를 중학교에 넣어주셨다. 하지만 중학교 3년 동안 수시로 학업 중단의 위기가 찾아왔다. “엄마, 저…학교에서…100원만 가져오래요.” 집안 사정 뻔한데 차마 말 못하고 있다가 어렵게 입을 열면 어머니는 새벽부터 이집 저집 문을 두드리며 돈을 꾸러 다녀야 했다. “진작에 얘기했으면 좀 더 일찍 알아봤을 것 아니니.”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 봐야 어머니의 긴긴밤 잠 못 드는 괴로움만 더 깊어졌을 거란 사실을. 풀이 죽은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물을 애써 외면하며 집을 나서곤 했는데, 나는 울지 않았다. -학교생활은 1977년 2월 중학교 졸업과 함께 마침표를 찍었다. 중학교 3년이 나에게 보장된 최후의 학업이란 걸 이미 다 알고 있었던 터라 고등학교 진학 얘기는 아버지도 나도 꺼내지 않았다. “원길이는 내 밑에서 구두 기술 배워라.” 서산 읍내에서 작은 구둣방을 하시던 작은아버지가 같이 일을 하자고 하셨다. 초등학교 때 지게를 직접 만들기도 했던 조카의 손재주를 익히 알고 있던 작은아버지였다. 하지만 ‘좁은 곳’에서 평생을 ‘족(足)쟁이’로 썩고 싶지는 않았던 나는 그 손을 뿌리치고 ‘넓은 곳’을 찾아 경기 고양군 지축면(현재의 지축동)의 분재농장에 취직을 했다. 하지만, 한 달 1만원을 받아서는 내 한 몸 먹고 자기에도 빠듯했다. 슬슬 염증이 났다. -“돈 번다고 올라가더니 사는 게 그리 만만하더냐.” 그해 9월 추석에 집에 와서 작은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욕심 부리지 말고 우리 가게로 와라. 이 기술 하나면 먹고사는 데 문제없다.” -서산 구둣방에서 처음 배운 것은 가죽과 밑창이 단단히 붙도록 망치질을 하고, 접착면에 ‘뻬빠질’(사포질)을 하는 일이었다. “역시, 원길이 손재주는 대단하구나.” 남들이 1년을 해도 떼지 못한다는 남성용 구두 제작 전 공정을 나는 5개월 만에 마쳤다. “그 재주로 시골에 있긴 아깝다. 서울 가서 서울 기술 배우거라.” 동료 아저씨들의 말이 몇 번 반복되자 마음이 흔들렸다. 작은아버지는 나의 고민을 이해해 주셨다. 그래서 작은아버지가 쥐여주신 차비를 들고 나는 1978년 그 봄에 영등포역 가는 기차를 탔던 것이다. -설악산에서 번 55만원으로 경기 성남 상대원동에 월셋집을 얻고 서울 중곡동 어린이대공원 근처 구두 공장에 취직했다. 당시 제화업계의 판도는 금강제화, 에스콰이아, 엘칸토, 케리부룩의 순이었다. 내가 들어간 곳은 케리부룩에 납품하던 참스제화였다. 본격적으로 여성용 구두 만들기를 익혔는데, 얼마 후 나는 참스제화 안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기술을 갖게 됐다. 그렇게 5년이 지났을 즈음 케리부룩에서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1983년 9월 스물두 살 때였다. -‘생산라인에 있으면 신발을 20켤레 만들 수 있지만 관리자가 되면 2000켤레, 2만 켤레의 생산을 직접 관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늘 ‘더 큰 것’, ‘더 높은 곳’에 목말라 했다. 그래서 나를 믿고 부른 케리부룩 김정현 사장님에게 ‘생산직’이 아닌 ‘관리직’에 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사장님은 원했지만 주변에서 말들이 나왔다. ‘생산관리를 고작 중졸 출신에게 맡기다니’와 같은 것들이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관리직의 문들 두드렸고, 얼마 후 포장반에 배치됐다. 구두에 상표를 붙여 사각 박스에 담는 단순노동을 하는 곳이었지만, 그나마 관리직이라는 이름표를 갖고 있는 부서였다. 생산라인에 있을 때 100만원이던 월급이 포장반으로 오니 20만원으로 깎였다. 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는데, 그 계산은 적중했다. 몇 달 후 완제품을 최종 검사하는 검수반으로 옮겼다. ‘완벽한 제품’을 강조하며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깐깐하게 검사를 했다. 어느 날 공장 기술자 100여명이 “우리를 괴롭히는 김원길을 자르라”고 대놓고 사장님에게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사장님은 나를 지지했다. 제품의 완성도가 높아지는데 그걸 마다할 사장이 어디 있겠나. 나는 ‘시키지 않은 짓’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했다. 시장 조사였는데 금강제화, 에스콰이아, 엘칸토 등 경쟁제품 중에 잘 팔리는 건 어떤 게 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분석해 리포트를 작성했다. -1989년 인천백화점에서 우리 케리부룩 매장을 퇴출시키겠다고 통보해 왔다. 내가 영업관리를 하며 어렵게 입점을 성사시킨 지 한 달여 만이었다. 월 매출이 600만원으로 다른 업체의 5분의1밖에 안 된다는 이유였다. 백화점에 시간을 한 달만 더 달라고 했다. ‘저 많은 걸 나 혼자선 절대로 못 판다. 고객의 입소문을 통해 팔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반값 특가 세일과 동시에 내가 백화점 매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자, 여러분, 케리부룩 CM송 부르시면 구두를 그냥 드립니다.” 당시 ‘허리를 미끈하게 펴고~ 무릎을 쭉 뻗으면~ 케리부룩 케리부룩 예쁘게 걸어요~’라는 우리 TV CM송은 꽤나 인기가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 달 매출이 1억 1000만원으로 거의 20배가 됐다. 그걸 계기로 뉴코아, 롯데, 신세계 등 서울 시내 백화점에 속속 입점을 했고 나는 ‘영업의 달인’으로 통하게 됐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에 대한 시기와 모함도 커져 갔다. ‘사장이 되려고 한다’, ‘회삿돈을 제 맘대로 쓴다’ 악성 루머가 사내에 돌았다. 사람들에게 실망을 하고 분노를 하니 더이상은 회사에 다닐 수가 없었다. -1990년 사표를 던졌다. 언젠가는 예정됐던 일, 그게 조금 앞당겨졌다고 생각했다. 이듬해 케리부룩 퇴직금 280만원과 사장님이 별도로 챙겨주신 200만원을 밑천으로 서울 용산에 선심(구두의 앞코에 들어가는 부속) 제조회사를 차렸다. 간판은 ‘원길’로 내걸었다. 장사는 그럭저럭 됐는데 돈이 안 들어왔다. 못 받은 외상값이 2000만원이 넘어갔고, 빚이 쌓여 갔다. 답답한 마음에 전에 거래했던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의 바이어를 만났다. “아이고, 김 대리 회사 관두고 나서 케리부룩 엉망 됐어요.” 케리부룩 김 사장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롯데백화점에 물건 한 트럭 보내주세요. 제가 팔아볼게요.” 매출의 10%가 내 몫이었다. -“사장님, 제가 직접 구두 만들어서 케리부룩 상표 붙여 팔겠습니다.” 다시 기세가 오른 나는 케리부룩에 로열티를 주고 하청공장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호사다마는 이번에도 비껴가지 않았다. 1993년 케리부룩 대표가 된 전문경영인이 케리부룩 상품권을 헐값에 불법 발행해 구속이 됐고 회사는 부도가 나고 말았다. 상품권들은 휴지조각이 됐고 나는 산더미처럼 쌓인 구두와 빚더미에 거리로 나앉을 판이 됐다. 불면의 날이 이어졌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충동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밀려왔다. 하지만, 20대 때 연탄가스를 마시고도 씩씩하게 출근을 했던 나였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때마침 어떤 고마운 분이 급전을 융통해 줘서 최종 도산에는 이르지 않을 수 있었다. -회사 이름을 ‘안토니’로 바꾸고 그럭저럭 구두회사를 꾸려가고 있던 1994년 뜻하지 않은 전기가 찾아왔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세계 최대 구두 박람회 ‘미캄’에 갔는데 바이네르의 컴포트화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나와 한국 독점판매 계약을 맺자”고 했다. 당시 바이네르는 하루 1만 2000켤레를 생산하는 대형 업체였다. 한국 수출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들을 나는 어렵사리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예상대로 국내에서 바이네르는 중년 이상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하지만, 이탈리아 현지에 주문을 넣고 제품을 받기까지 무려 석 달이나 소요되는 문제가 나타났다. 직접 생산이 절실해졌다. -“내가 한국에서 알아주는 구두 기술자다. 바이네르 상표를 붙여서 우리가 직접 만들어 팔면 안 되겠나. 바이네르의 명성에 먹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그들을 꼬박 6개월을 설득했다. 나의 한결같은 노력은 바이네르 회장을 감동시켰고, 결국 나는 일산의 아파트형 공장에서 하루 50켤레씩 컴포트화 생산을 시작했다. -바이네르로 가파른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데 뜻하지 않은 악재가 터졌다. 나를 아껴주었던 이탈리아 본사 회장이 돌아가시고 그 분의 아들이 가업을 물려받았는데, 회계사 출신인 그는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한국에서 그렇게 잘 팔리는데, 로얄티를 이 정도 밖에 안 내나.’, ‘이탈리아 본사에서 수입해 가는 물량을 더 늘려라.’ 아들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나는 서서히 바이네르와의 결별을 준비했다. 광고도 바이네르의 비중을 줄이고 우리 자체 브랜드인 안토니에 집중했다. 그런데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대표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부 유럽은 특히 충격이 컸다. 거기에서 바이네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게다가 바이네르는 당시 유럽과 홍콩 증시에 상장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극심한 자금난을 겪게 됐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1년, 나는 이탈리아로 가서 아들을 만났다. “너희들 자금난이 심각하다는데, 내가 지원을 해줄 테니 바이네르 브랜드를 나에게 팔아라.” 그들은 나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현재 이탈리아에 바이네르 공장이 10군데 정도 있는데 그들이 쓰는 브랜드 상표권은 내가 갖고 있다. -바이네르 신발이 편안한 비결이 뭐냐고 많은 사람이 묻는다. 그러면 나는 “고객의 마음은 당신이 그 질문을 하는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다는 걸 명심하라”고 일러준다. 고객은 항상 더 예쁘고, 더 편안한 구두를 찾는다. 그걸 떠올리면 절대로 연구개발(R&D)을 게을리하거나, 맘 놓고 쉴 수가 없다. 고객은 혹시 한 번은 몰라도 절대로 두 번은 봐주지 않는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 김원길 바이네르 사장 발이 편안한 신발을 뜻하는 ‘컴포트화’를 통해 연간 5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업계 3위 바이네르의 최고경영자(CEO)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구두 분야의 장인(匠人)으로, 특히 ‘중졸 신화’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바이네르는 백화점을 중심으로 전국 60여곳에 매장을 두고 있다. 가난으로 배움을 다하지 못했던 그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안토니 장학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골프 꿈나무에게 연간 2억원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 해마다 5월이면 수도권의 독거노인을 초청해 효도잔치를 열고 있다. 박애원, 벧엘의집 등 수많은 복지시설에 물품을 보내고 있다.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클럽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하다. 직원들에게 업계 최고의 급여를 보장하고 이탈리아 밀라노, 미국 라스베이거스 등 다양한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1961년 충남 당진 출생 ▲당진 도성초등학교, 미호중학교 ▲1984년 전국기능경기대회 제화부문 동상 수상 ▲1994년 안토니 설립 ▲2008년 국무총리 표창, 2012년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상, 2012년 철탑산업훈장, 2013년 아름다운 납세자상 수상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근현대 유통 핵심지 종로5가…111년 패션 1번지 광장시장…상인정신 숨쉬는 방산·중부시장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근현대 유통 핵심지 종로5가…111년 패션 1번지 광장시장…상인정신 숨쉬는 방산·중부시장

    서울미래유산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미래유산의 유형은 문화적 인공물, 문화적 행위·이야기, 배경으로 구분된다. 문화적 인공물에는 토목구조물, 건축물과 같은 건조물, 그림, 조각, 공예품, 공산품 등이 포함된다. 문화적 행위·이야기는 의식이나 기술, 전통과 명성, 이야깃거리 같은 무형 유산을 의미한다. 배경은 문화적 인공물이나 문화적 행위, 이야기 등이 만들어지는 배경을 의미한다. 서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특색 있는 장소나 경관이 포함된다. 미래유산 선정에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은 ‘보존이 필요한 공통의 기억과 감성’이다. 서울시는 서울신문, 문화지평과 함께 미래유산에 대한 보존과 홍보를 위해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앞으로 남은 답사 코스를 확인할 수 있고 참가 신청도 가능하다. “전국에 전통시장이 몇 곳인지 아시는 분?” 이희준(29) 전통시장해설사이자 서울미래유산해설사가 질문을 던졌다. 답사에 나온 시민들은 어림짐작으로 답해 보지만 정답 근처도 못 갔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1398개의 전통시장이 있고 그중 330여개의 시장이 서울에 집중돼 있습니다. 시장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선사시대 제전시가 열렸다는 기록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시장은 인류 역사와 함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7월 23일 서울미래유산 탐방답사 네 번째 시간은 서울의 전통시장인 광장, 방산, 중부시장이 주인공이었다. 20대인 이 해설사는 전국 전통시장 798곳의 방문기록을 가진 ‘시장덕후’이다. 이 해설사는 MBC 생활정보프로그램 ‘생방송 오늘 저녁’에서 전국 전통시장을 소개하는 시장 전문가다. 얼마 전에는 구로시장 영프라자에서 참기름, 들기름을 파는 방앗간 ‘청춘주유소’를 개업한 청년창업가이기도 하다. 설명은 50대 아저씨처럼 구수하게 술술 풀어간다. 광장시장은 서울 전통시장 1호…동문 옆 신발점은 미래유산 지정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은 어디일까요?” 이 해설사는 질문하기를 좋아한다. 이날도 답사 내내 다양한 질문으로 시민들을 긴장(?)시키면서 전통시장 매력에 푹 빠져들게 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소지왕 12년(490년) 오늘날 경주 지역에 국가에서 직접 설치한 시장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백제 가요 ‘정읍사’에도 시장의 존재를 짐작게 하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 7번 출구에 모인 서울미래유산 탐방답사단은 이곳에서 시장의 역사에 대해 선행학습을 하고 시장답사에 나섰다. 시장답사라서 그런지 앞선 답사 때보다 중년 여성분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 해설사의 설명이 거침없이 이어진다. “조선 초 1414년 경복궁 앞 시전에 무려 2827개 가게가 있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지리지 한성부조’에 남아 있는데 이를 운종가라 불렀습니다. 조선 후기 무렵에 지금 남대문시장 자리에는 ‘칠패시장’이, 동대문시장 자리에는 ‘이현시장’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운종가는 지금의 광화문과 종로1가 인근을 말하는데 조선 왕조가 허용한 유일한 공식 시장 ‘육의전’이 있던 곳이고 칠패시장이나 이현시장은 이른바 ‘난장’이다. 답사팀은 광장시장 동문을 통해 시장으로 들어갔다. 동문 입구 옆에는 상호명이 서울고무상사(프로월드컵)인 신발가게가 있다. 1955년 개업해 주인은 몇 번 바뀌었지만, 60년 동안 신발가게로 한자리를 지켜온 이유로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됐다. 광장시장은 이현시장 후신으로 1905년 한성부에 등록된 서울 공식 전통시장 제1호이면서 최초의 사설시장이다. 청계천 광교와 장교 사이에 있어서 광장(廣長)시장으로 불렸다. 1905년 7월에는 동대문시장으로 이름을 확정했다가 나중에는 ‘넓게 저장한다’는 의미의 광장(廣藏)으로 정해졌다. 서울미래유산은 아니지만 문화재적 가치는 그 이상이다. 답사팀은 광장시장의 광장(廣場)에 모였다. 이곳은 먹거리 구간을 지나 견과물 구간에서 좌회전해서 포목부로 들어서면 만날 수 있는 시장의 중심이다. 포목을 사러오지 않는 이상 이 공간을 접해 보기 힘들다. 답사단은 광장에 다다르자 놀랍다는 반응이다. 이경윤(55·나눔마켓 대표)씨는 “지금껏 광장시장 하면 빈대떡이나 육회 같은 먹거리만 떠올렸지 이런 곳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포목부를 지나면서 이 해설사가 “뭔가 이상한 간판이 있을 것”이라며 궁금증을 유발했다. 주변을 살피자 포목점 간판들 사이에 ‘장안백화점’이란 간판이 낯설다. 이 해설사는 “과거 백화점들이 별도 건물을 짓는 대신 상권이 발달돼 있는 시장에 ‘숍인숍’(가게 안에 또 다른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것) 형태로 들어온 흔적”이라며 “지금도 수원 남문시장(글로벌명품시장, 팔달문시장 주변 9개시장 연합) 중 하나인 영동시장에는 영동백화점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섭(47·중소기업진흥공단 홍보실장)씨는 “전통시장 안에 백화점이 있었다는 것도, 그 백화점이 지금은 초라하게 변한 것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예전의 화려함이나 생기는 잦아들었지만, 그럼에도 전통시장은 그 나름대로 멋이 있다”고 말했다. 성은도서 서울미래유산 후보감…예지동 시계골목 보존가치 높아 광장에서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도 포목상점과 한복점들이 즐비하다. 구석진 상가 몇 곳은 셔터가 내려져 있다. 이에 대해 이 해설사는 “주인들이 고령화되면서 가업 승계가 이뤄지지 않은 점포”라며 “저곳에 청년들이 들어와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책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중앙직물부 2층에 가면 ‘성은도서’라는 세 평 남짓한 허름한 책방이 있다. 이곳은 40년 넘게 패션 디자이너와 관련 학과 학생들에게 수입 패션도서를 공급하고 있는 곳이다. 사장님은 “작고한 앙드레 김도 단골이었다”며 “유명 패션디자이너 중 이곳을 거쳐 가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층 한쪽에는 저렴함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수입 구제상가도 있다. 이현주 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관은 “시장 답사를 통해 아주 오래간만에 전통시장의 정을 느끼고 왔다”며 “광장시장의 떡볶이 먹으러 꼭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다음 답사지인 방산시장을 가기 위해 예지동 시계골목을 지났다. 이곳은 시간이 멈춘 듯 옛 풍경을 간직한 골목이다. 고급 손목시계를 고치기 위해 일부러 외국서 찾아오는 곳이다. 시계태엽을 직접 깎아 만드는 장인들이 아직도 활동 중이다. 이 해설사는 “대부분 시계공들과 장인들이 예지동을 벗어나 인근 세운상가와 전국 각 지역으로 흩어지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며 “세계 어느 장인보다도 월등히 우수한 이들의 숙련된 기술과 시계 골목의 역사는 보존해야 할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방산시장은 1976년 9월 폐교된 방산국민학교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방산이라는 이름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청계천에서 떠내려온 부산물과 흙이 쌓여 있던 걸 퍼 올려 산처럼 쌓아 놓았다고 해서 가산 또는 방산이라 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분뇨가 많이 쌓이자 향기로 덮기 위해 꽃을 심은 데서 유래한다. 방산시장의 주력 상품은 얼마 전까지 초콜릿과 제과제빵 재료였다가 지금은 공교롭게도 향수와 디퓨저다. 방산시장 이름과 어울리는 품목이 자리잡은 셈이다. 방산시장을 둘러보다가 비교적 보존이 잘 된 적산가옥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또 하나의 재미다. 시장 인접에는 김치찌개가 유명한 은주정이란 밥집이 있다. 답사단은 이날 은주정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은주정은 문턱이 없어 이동장애를 가진 이경윤씨의 휠체어가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광장시장·방산시장·중부시장…모두 후대를 위해 보존할 곳 답사단은 서울미래유산인 중부시장을 가기 위해 길을 건넜다. 이 시장은 1950년대 후반 남대문과 동대문 인근에서 건어물을 팔던 상인들이 모여 만든 시장이다. 개설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이 개소식에 참석할 정도로 시장 규모와 거래액이 상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해설사가 답사단을 이끈 곳은 50년간 황태 등 건어물을 판매하는 서울상회다. 정문교 사장은 개성 있는 필체로 갖가지 교훈이 되는 글을 써서 점포 밖에 걸어 뒀다. ‘정직·정확·정성’이란 상훈(商訓)도 써붙여 놨다. 정 사장은 이날도 성경을 붓글씨로 필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정 사장은 “장사는 모름지기 신용이고 사람은 됨됨이가 중요하다”며 답사단에 교훈이 되는 이야기를 몇 마디 건넸다. 답사단이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중부시장의 초기 모습을 볼 수 있는 서쪽 끝이다. ‘오신 손님 친절하게 소비자를 보호합시다’라는 오래된 간판이 보이고 회랑이 있는 오래된 건물이 서 있다. 이 해설사는 “시장은 아침, 점심, 저녁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 내일이 다른 것처럼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전통시장의 역사와 상인들의 이야기, 특화된 상품에 대해 듣는 것만으로도 시장이 달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마무리했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비정상회담’ 사이먼 페그 “봉준호 감독과 일하고 싶다” 이유는?

    ‘비정상회담’ 사이먼 페그 “봉준호 감독과 일하고 싶다” 이유는?

    ‘비정상회담’ 사이먼 페그가 봉준호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지난 22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는 영화 ‘스타트렉’에 출연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 배우 사이먼 페그가 출연했다. 이날 MC 전현무는 “같이 일하고 싶은 한국 감독이나 배우가 있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사이먼 페그는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영화가 ‘괴물’”이라고 칭찬하며 봉준호 감독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정말 영리하고 웃기고 흥미진진한 영화”라며 “한국 와서 (봉준호 감독과) 영화를 찍으면 정말 좋을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넘치는 영국 아저씨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해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JTBC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은 매주 월요일 오후 10시 50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인턴기자 3a5a7a6a@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