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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가4명 생매장 살해사건」의 충격

    ◎“돈이면 무슨짓이든…” 인명경시에 경악/인간성 상실한 잔혹한 만행/범죄은폐 노려 제2범행도/“완전범죄는 없다” 다시한번 입증 경기도 앙평의 일가족 4명 생매장 살해사건은 자신들의 범행을 은폐하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아무런 원한관게도 없고 저항도 할 수 없는 어린이와 노약자를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한 인면수심의 만행이었다. 이들은 『강릉에서 신혼부부를 살려줘 쫓기는 신세가 됐기 때문에 완전범죄를 노려 일가족을 생매장했다』고 태연히 진술할 정도로 인간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범행과정◁ 범인들은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선포」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 9일 하오1시20분쯤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갈운리 6번 국도에서 서울을 떠나 친척의 칠순잔치에 참석하려고 강릉으로 가던 유증렬씨(55ㆍ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286의352)의 서울1 초9298호 쏘나타승용차를 자신들의 승용차로 가로막아 세우고 유씨와 유씨의 어머니 김매옥씨(81)이모 김주옥씨(74)외 조카 최서연양(5) 등 4명에게 흉기를 들이대고 현금 20만원과 차량을 빼앗고는 엄청난 범행을 저질렀다. 범인들은 이에앞서 횡성쪽으로 차를 천천히 몰면서 뒤에서 추월하는 차량을 면밀하게 살피다 노약자들만 타고 있던 유씨의 차를 보고는 『저 차를 털자』고 모의,범행대상으로 삼았다. 범인들은 돈을 턴뒤 자신들이 타고온 차와 유씨의 차에 유씨 가족을 나누어 태워 이웃 비포장도로로 들어가 텐트끈 등으로 손과 발을 묶고 테이프로 입을 봉한뒤 승용차 트렁크에 넣어 용문산 줄기 단월면 싸리봉 샛길입구까지 갔다. 하오2시20분쯤 범인들은 우선 노인 자매를 승용차에 태워 싸리봉 7부능선에 있는 20m 절벽아래로 떨어뜨렸으나 숨지지 않자 돌로 머리를 쳐 실신시킨뒤 웅덩이에 돌멩이와 흙으로 매장하고 낙엽을 덮어 흔적을 감췄다. 범인들은 2시간만에 다시 내려와 노인들이 묻힌데서 50m쯤 떨어진 곳에 같은 방법으로 유씨를 매장했다. 30분만에 다시 내려온 범인들은 주범 이성준(31)의 애인인 심혜숙양(21)으로부터 그때까지 아무런 결박도 하지 않은 최양을 넘겨받아 손발을 묶고 유씨를 묻은 곳에서 1m쯤 떨어진 웅덩이에 밀어넣은뒤 공포에 질려 『아저씨 살려주세요』라고 울면서 애원하는데도 불구,준비해간 삽 등으로 생매장 했다. 이에앞서 범인들은 지난달 29일 하오7시30분쯤 강원도 강릉시 대전동 속칭 우럭바위 앞에서 신혼여행도중 기념촬영을 하고있던 손달원씨(27ㆍ부산시 남구 망미2동)부부를 위협해 현금 등 금품 8백만원어치와 차량을 빼앗았다. 범인들은 손씨부부로부터 뺏은 차량을 타고 돌아다니다 지난 7일 인천에서 교통사고를 낸뒤 차를 버리고 달아난 신혼부부 납치사건의 범인으로 추적당했다. 이차에게 경찰은 이씨의 애인인 심양의 예금통장을 발견,심양 주변을 추적한 끝에 범인들의 신원을 확인했다. 경찰은 또 손씨부부의 차에서 대마초 통을 발견,이번사건을 비롯해 범인들이 오대산 부산 등 전국의 유원지를 돌아다니며 저지른 20여건의 범행이 모두 「환각성범죄」인 것으로 추정하게 됐다. ▷원인 및 대책◁ 최근 이처럼 흉악범죄가 날뛰는 것은 단순히 치안력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오히려 도덕성의 상실,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한탕주의,황금만능주의 등 외부환경에 더 큰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성균관대 양흥모교수(사회학)는 『부동산투기 등 한탕주의의 만연으로 땀흘려 살아가기 보다는 쉽게 살려는 풍토가 널리 확산돼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심리적ㆍ시간적 성찰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전우홍연구원(36)은 『범죄의 흉포화를 막기 위해서는 전과자들에 대한 교정ㆍ교화는 물론 모든 범죄행위는 반드시 붙잡혀 처벌을 받게 된다는 「법의 확실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서울시경 이무영 강력과장은 이에대해 『대부분의 흉악범죄꾼들이 전과자인데다 여러차례의 범행과정에서 반드시 사건현장에 물증을 남기게 돼있고 그 수법이 비슷해 반드시 잡히게 돼있다』며 완전범죄의 가능성이 없음을 강조했다.
  • 보기 민망한 한국인 관광객의 추태(특파원수첩)

    ◎중국동포 골탕먹인 「서울손님들」/선물주며 조선족 처녀들 꾀기 예사로 중국 흑룡강성에서 태어나 자란 조선족동포(중국에선 우리 한족과 발음이 같은 한족을 구별하기 위해 이렇게 부른다) 김모양 등 2명은 올 봄 같은 동포가 운영하는 북경의 한 음식점에 취직했다. 이 한식점은 언제나 서울서 온 손님들로 가득찼고 김양 등은 처음 보는 남조선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호감을 갖고 대했으며 한 핏줄이란 점에서 모든 친절을 베풀었다. 이들 가운데 조그만 회사의 사장이라는 두명의 50대 중반 아저씨들은 김양 등에게 『딸같다. 집을 떠나 객지에서 돈을 버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며 항상 따뜻한 말을 건네 주었다. 얼마뒤 이 아버지뻘되는 사장 아저씨들은 『너희들에게 줄 선물을 깜빡 잊고 호텔에 두고 나왔다』며 저녁식사를 마치곤 호텔에 함께 가자고 했다. 김양 등은 선물을 받는다는 반가움에 아무런 다른 생각없이 호텔방까지 따라 갔다가 다음날 이른 아침 나오는 신세가 됐다. 밤새 울어 퉁퉁부은 눈두덩에 어깨가 축 처져 나오는 이들 10대소녀는 호텔문지기로 위장근무중이던 중국 공안원에게 불려 가 조사를 받았고 외국인과 윤락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 소녀에게 내려진 형벌은 「3년형의 노동개조」였다. 벽지의 사역장에 보내져 3년동안 노동에 종사하게 된 것이다. 사장 아저씨들은 각각 중국돈 5천원(약 1천달러)의 벌금을 무는데 그쳤다. 북경의 한 조선어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를 하던 동포 박모씨는 역시 서울에서 온 사람들 때문에 「직위해제」를 당하고 1년동안 청소 등 허드렛 일을 해야하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 중국에서 패션쇼를 한다고 온 서울사람들의 부탁을 받고 동포 처녀 2명을 안내인으로 소개해 준게 화근이었다. 이 동포 처녀들도 앞의 김양 등과 비슷하게 당했고 예외없이 3년노동개조의 처벌을 받아 벽지로 보내졌다. 박씨는 윤락행위를 알선한 혐의로 아나운서 일 대신 방송국 청소하기 등의 잡일을 하게 된 것이다. 박씨가 환멸과 분노를 더욱 느끼게 된 것은 당사자인 서울사람들이 『안됐다』며 미화 50달러짜리 지폐 한장을 제3자를 통해 전해왔을 때였다. 길림성 혼춘에서 자라나 기차구경 제대로 못했던 동포 이모양(18)도 북경의 한식점에서 일하다 유달리 친절하게 대하는 서울의 사장 아저씨 때문에 순박한 소녀의 꿈을 짓밟혔다. 이 아저씨는 『내가 돈을 대줄테니 식당일 그만두고 미장원일을 배워라』며 유혹했다. 그리곤 아예 사글세방까지 얻어주고 『다시 오겠다』며 한국으로 되돌아 갔다. 북경당국이 아시안 게임기간동안 시내에서 직업없이 지내는 오지인을 강제로 귀향시키기 위해 호구조사를 나오자 이양은 겁이 나서 전에 일하던 음식점주인 집을 찾았다. 한밤중 문앞에서 웅크리고 앉아 우는 이양을 본 주인 부부는 하룻밤을 재운뒤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주선해줬다. 이상과 같은 이야기는 기자가 북경에서 직접 듣고 관계자들로부터 확인한 내용들이다. 한 동포 음식점주인은 밤중에 느닷없이 전화가 걸려와 『낮에 그곳으로 식사를 하러갔던 서울서 온 아무개인데 아가씨 한명만 보내달라』고 말하는 데는 기가 차다고 했다. 어떤 때는 마구 화를 내면서 밤중에 음식점까지 와서는 『돈은 얼마든지 달라는대로 준다는데 왜 안된다는 거냐』며 따지고 드는데는 할말을 잊는다고 했다.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사는 연길에선 한국 관광객들이 마을처녀를 희롱하는데 화가 치민 동포청년들이 몽둥이를 휘둘렀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국인들이 처음 중국에 가기 시작했을 때 우리 동포들은 반가움과 기대감 등으로 순수한 마음에서 한 핏줄을 맞이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분위기가 너무나 다르게 바뀌었다. 자기 잘난 자랑에다 『그까짓거 몇푼 안되는데 내가 대줄테니 사업한번 해봅시다』는 식으로 큰 소리만 치고는 뒷소식이 없는게 예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이어린 동포 소녀들의 앞날까지 망치게 하고 있으니 이들의 분노는 대단할 수 밖에 없다. 88올림픽을 TV로 보고 이들이 느꼈던 조국에의 향수와 같은 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은 점차 사라지는 성 싶다. 한국의 경제에 대해서도 중국 동포들은 회의적이다. 『이젠 무역수지도 적자고 경제도 나쁘다고들 하는데 무슨 돈자랑을 그렇게 하고 으스대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다음달에 한중 무역사무소가 상호교환설치되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오가게 될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들은 일제때 항일운동을 했거나 조국에서 일본인들에게 농토를 빼앗겨 먹고 살길이 없어 중국에 건너왔던게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가 태어났고 또 중국의 경제발전이 뒤져서 못사는 편이긴 하지만 서로 인간성을 짓밟히면서 아귀다툼하며 살지는 않습니다』 중국정부기관에서 일하는 한 동포 엘리트는 한국의 같은 겨레와 느끼는 이질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 한밤 택시로 끌려가던 여재수생/“내려달라” 애원 기사가 묵살

    ◎학원남자동료에 성폭행 당해 【군산】 전북 군산경찰서는 18일 재수 여학생이 재수 남학생들에게 유인돼 택시에 태워져 끌려가며 택시운전기사에게 내려줄 것을 애원했으나 이를 거절한채 운행한 군산 S교통소속 운전사 서승길씨(39ㆍ군산시 구암동 609)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감금)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서씨는 지난 10월6일 하오10시30분쯤 시내 중앙로2가 한일은행 군산지점 앞길에서 박모군(18ㆍ김제시 신풍동ㆍ구속중) 등 대입재수생 2명으로부터 김제까지 8천원을 받기로 하고 이들이 집까지 데려다준다며 유인한 같은 학원 재수생 이모양(18ㆍ군산시 삼학동) 등 3명을 택시에 태웠다는 것이다. 이모양은 택시가 자기집 부근이 아닌 이리방면으로 가자 운전사인 서씨에게 울면서 『아저씨는 나같은 딸도 없느냐』며 내려줄 것을 애원했으나 운전사 서씨는 『너같은 딸도 없고 운전에 방해된다』며 이양의 신변에 위험이 있는줄 알면서도 시속 80㎞의 속도로 택시를 몰아 김제군 성덕면 묘라리 부근 도로에 이들을 내려놓았다. 이양은 이날 박군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집에 돌아온 후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 「범죄와의 전쟁」 이기는 길을 찾는다(질서있는 사회로:4)

    ◎“반인륜의 극치” 인신매매 뿌리뽑아야/주부ㆍ국교생 등 무차별 납치,“성상품화”/법적대응 강화ㆍ향락문화 재정립 시급 18일 상오 서울시경 특수대 조사실. 김모양(16ㆍ용산구 한강로 2가)은 악의 손길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듯 미성년자 약취유인 및 상습공갈 등 혐의로 구속된 술집주인 박용혁씨(53)와 박씨가 고용한 폭력배 3명으 눈치를 살피며 떨고 있었다. 『노예나 다름없었어요. 하루밤에 두세명의 술손님과 외박을 나가야 했지만 정작 받은 돈은 거의 모두 뺏어갔어요. 도망가려 해도 아저씨들의 주먹과 발길질이 두려워 감히 엄두를 낼 수 없었어요』 김양이 박씨를 알게된 것은 지난 6월. 87년 국민학교를 졸업한뒤 집안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김양은 월급 15만원의 봉제공장에 함께 다니다 박씨가 경영하는 술집의 종업원으로 취직한 양모군(16)의 소개를 받았다. 김양은 출근 첫날 손님방에 들어갔으나 손님들의 이상한 행동에 깜짝 놀라 그만 뛰쳐나왔다. 박씨는 그러나 『이런데 오면 누구나 다하는 일인데 왜 그러느냐』며 울먹이는 김양을 골방으로 끌고가 강제로 폭행했다. 비로소 검은손에 걸려들었다고 깨달은 김양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한달뒤 부천에 있는 오빠집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이틀뒤 박씨가 고용한 폭력배 3명이 오빠집에 들이닥쳐 김양은 그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끌려와 다시 서울 한복판에서 현대판 노예생활을 계속 해야만 했다. 인신매매는 역과 터미널 등지에서 무작정 상경한 시골소녀들만을 대상으로 하던 종전과는 달리 최근에는 취직을 미끼로 하거나 유흥가를 무대로 한 유인납치뿐 아니라 학교ㆍ시장ㆍ주택가까지 범행무대가 넓어지면서 대상도 주부ㆍ대학강사ㆍ여중고생,심지어는 국민학생까지 무차별로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다. 또 김양의 경우처럼 구인광고등을 보고 돈벌이를 위해 혹은 힘든일을 하기 싫어서 제발로 술집등에 찾아갔다가 인신매매조직에 걸려드는 사례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2∼3년전부터 해외여행자유화를 틈타 해외인신매매조직과 연결돼 일본ㆍ동남아 등지의 술집이나 윤락가로 여자들을 팔아 넘기는 사례도 생겨 인신매매가 국제화되고 있다는 게 경찰분석이다. 우리사회의 새로운 치부가 된 인신매매범죄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80년대 들어서면서 급속도로 퍼진 향략ㆍ퇴폐풍조와 비뚤어진 성문화,물질만능주의 등 중심을 잃어가는 사회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룸살롱ㆍ스텐드바ㆍ사우나ㆍ안마시술소ㆍ여관ㆍ퇴폐이발소 등 40여만 곳이 넘는 각종 향락업소가 전국적으로 난립해 있는데다 날로 번창하고 있어 접대부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지만 「공급」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된 것이다. 치안본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89년 한해동안 전국에서 모두 4백53건의 각종 인신매매행위가 발생,3백35건이 발생한 지난 88년보다 35.2%가 늘어났다. 전국적으로 인신매매조직 22개파 2백여명과 비조직매매꾼 5백여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검찰과 경찰은 올해들어 이들의 적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역부족인 실정이다. 이들 인신매매조직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은 철저한 점조직으로 이루어진데다 지능적이고 악랄한 범행수법을 쓰고 있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인신매매는 성과 관련된 범죄이기 때문에 일반사건과는 달리 피해자들도 신고를 기피하거나 자포자기에 빠져버리기 쉬운 경향이 짙다. 그렇지만 인신매매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루빨리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는게 국민들의 절박한 여망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들 범죄꾼들은 피해자들을 납치한뒤 성적 폭행을 가하는 것이 대부분이며 반감금상태에서 도망치는지를 감시하고 도망가다 붙잡히면 잔혹한 폭행을 가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다는 체념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 예다. 서강대 사회학과 윤여덕교수는 『부녀자를 유인ㆍ납치해 술집과 윤락가에 팔아넘겨 매춘행위를 강요하는 인신매매는 가정파괴범보다 더 간악하고 악질적인 범죄』라면서 『사회전반에 도덕성이 무너지고 향락주의와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팽배할 때 나타나는 사회병리현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철저한 단속과 추적,강력한 법집행 등 당국의 대응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인신매매범죄의 토양이 되는매춘여성에 대한 「수요」를 줄여나가는 방법의 하나로 향락산업에 대한 규제등 근본적인 문제해결도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매춘을 죄악시하지 않는 사회적분위기에 대한 반성과 도덕성 회복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두메아동 10명 서울에 나들이/가락본동 주민 초청

    강원도 인제군 남면에서 산길로 10㎞쯤 떨어진 곳에 있는 부평국민학교 수산분교 전교생 10명이 서울 아저씨들의 초청으로 꿈에도 그리던 서울구경을 왔다. 수산분교 어린이들의 서울나들이는 송파구 가락본동 주민 이영근씨(54) 등 동네사람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11일 하오6시쯤 서울에 온 어린이들은 하룻밤을 이씨 등 동네주민들의 집에서 묵고 12일 아침일찍 여의도로 가 문화방송과 63빌딩을 구경한뒤 한강유람선을 타기도 했으며 하오에는 서울대공원을 둘러보았다.
  • 심신장애자에 사랑심는다/서울 마장동 사랑터 회원들 나눔 실천

    ◎정육점주인등 이웃사촌들 뜻모아/매달 우성원찾아… 의형제맺고 격려/처음엔 서먹… 이젠 친구ㆍ아버지처럼 정들어 정육점주인 택시운전사 학교선생님 경찰관 공무원 대학생 등 평범한 이웃사촌들이 모여 불우한 사람들을 돕고 있다. 『우리도 잘살지는 못하지만 정신과 육체가 멀쩡한 것만 해도 행복에 넘칩니다. 그러나 심신장애자들은 그야말로 정에 굶주린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냉수한 그릇이라도 나눠 마시며 살려는 것이지요』 남들이야 알아주건 말건 틈틈이 서울 강동구 고덕동 숲속의 우성원(원장 최병문ㆍ68)을 찾고 있는 「사랑터」 회원들에게는 보람이 넘친다. 「사랑터」 회원들이 우성원과 인연을 맞게 된 것은 회원인 이근배씨(40ㆍ정육업ㆍ성동구 마장동 761의26)로부터 비롯됐다. 이씨는 지난85년 여름 장사를 하다 못팔고 버리게되는 고기가 쌓이자 고기를 버릴바에야 불우한 사람에게 나눠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우성원을 찾게됐다. 몸과 마음이 모두 불편한 심신장애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때만해도 먹는 것이 형편없어대부분이 영양실조에 걸려있던 심신장애자들에겐 이씨가 더없이 고마웠다. 이씨가 갖다주는 고기는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됐다. 이씨는 뜻이맞는 친구ㆍ후배 몇명과 이따금씩 찾아가 원생들을 찾아 어울려 지냈다. 이들 심신장애자들은 대부분 연고가 없거나 부모가 있어도 찾아오는 일이 드물어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씨는 이들을 지속적으로 돕기위해 함께 위문을 다니던 이명우씨(36ㆍ경장ㆍ공항경비대근무) 이순식씨(40ㆍ서울 신경여상교사) 김용주씨(36ㆍ경제기획원근무) 등과 「사랑터」를 만들었다. 지난88년 1월 이 모임을 처음 만들었을 때는 회원이 14명이었으나 지금은 마장동에서 식육점을 하는 아주머니들과 경찰관 간호원 택시운전사 대학생 회사원 등이 줄줄이 회원으로 가입해 60여명으로 늘어났다. 회원들은 한달에 1천∼1만원씩 회비를 거둬모은 돈으로 위문품을 사 매월 세번째 토요일에 우성원에 전해주고 있다. 원생들은 나이는 많지만 지능이 고작 7∼8살짜리 어린이 같아 남자회원을 보면 무조건 「아빠」,여자회원에게는 「엄마」라고 부른다. 애정표시도 어루만져 주거나 얼굴을 맞대고 비벼야 정을 느낀다. 그래서 처음 위문을 간 회원들은 이들이 다가오면 질겁을하고 도망치기도 했다. 어떤 회원들은 위문을 다녀온뒤 소독약으로 손을 씻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30여차례나 드나들면서 정이 푹 들었다. 이제는 안아주는 것은 보통이고 입맞춤도 서슴없이 해준다. 「사랑터」 회원들은 원생들에게 더 큰 사랑을 주기위해 지난14일 아예 자매결연을 맺었다. 회원 10명은 개별적으로 의형제를 맺기도 했다. 원생 김윤호씨는 『「사랑터」 아저씨들을 만나면서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우리 엄마 아빠의 얼굴은 모르지만 오히려 부모보다 더 진한 정을 느낀다』고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자폐증으로 말을 못하던 원생 임희자양은 「사랑터」 사람들을 만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면서 말문이 트이는 기적을 낳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원생들은 한달에 한번씩이지만 「사랑터」 사람들이 찾아오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버릇까지 생겼다. 원장 최씨는 『50년 가까이 사회봉사활동을 해왔으나 「사랑터」 회원들처럼 순수한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들은 처음 봤다』며 『이들이 오면 원생들이 매달리며 괴롭히기도 하지만 정서교육에는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여간 고마워하지 않았다.
  • 「사천왕사 왔소」 새달 일 공연… 연출가 허규씨(안녕하십니까)

    ◎“전통축제 「해외마당」에 큰 보람”/“전래문화의 뿌리,일 재현에 가슴 뿌듯/춘향제등 향토축전의 활성화 힘써야”/재일동포들에 민족문화의 우월성 심어줄 터 【대담:장석영문화부장】 오직 무대를 통해 말한다는 연극연출가 허규씨(57). 그가 최근 연출가에서 문화이벤트기획가로 변신,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특히 지난 4월 진해 군항제를 시작으로 남원 춘향제,강릉 단오제에서 지역문화와 관련된 인물의 행차행렬을 꾸며 지역축제를 활성화시킨 데 이어 오는 8월 일본 오사카에서 펼쳐질 「사천왕사 왔소」라는 행사를 맡아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일에 몰두해 있다. 허씨는 이번 「사천왕사 왔소」라는 행사를 통해 한국의 전통축제 문화를 일본인들에게 선보여 한일문화의 고리를 복원시켜 보겠다고 벼른다. 그는 또 이번 행사가 자신의 연출무대를 제한된 실내 공간에서 실외마당으로 옮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국내마당에서 해외마당으로 넓혀나가는 길이라면서 이번 기회에 재일동포들에게 민족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데온 정열을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예술가에서 민족예술가로 도약해 보겠다는 그의 오늘과 내일의 목표는 무엇일까. -먼저 「사천왕사 왔소」라는 행사를 맡게 된 동기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이 행사가 태동된 것은 지난 88년 서울올림픽이 치러진 이후였습니다. 올림픽 문화예술축전에서 거리축제인 「상감마마 행차요」를 기획·연출했는데 아마 그것이 인연이 되어 저에게 이번 행사를 맡긴 것 같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기획에 들어가 이미 지난달 12일 서울 임진각에서부터 본행사가 시작됐습니다. -행사의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원래 이 행사는 신한은행의 모체인 대판흥은의 이승재전무가 「빛나거라 21세기의 어린이여」를 기업이미지의 주제로 내세우다가 교포 3세이하의 세대를 위한 전통문화축제를 착안,재일실업가들로 후원회를 결성해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이 후원회는 후쿠다 전일본수상등 한일 주요인사 18명으로 「사천왕사 왔소」 실행위원회를 구성하고 두 나라를 연결하는 첫 행사를 이번에 갖는 것입니다. 지난달 12일 임진각에서 5백여명의 교포가 성토제등을 올려 조국순례행사의 막이 올려졌고 이달 31일 부산을 출발,다음달 19일 오사카에서 약 3천여명의 교포가 참석하는 고대의상 퍼레이드와 일본 사천왕사에서의 전통예술공연등으로 행사는 이어집니다. ○올림픽뒤 축제에 전념 -왜 행사의 이름을 「사천왕사 왔소」라고 했습니까. ▲교포들의 사상최대 뿌리찾기 운동인 이 축제의 명칭이 어째서 「사천왕사 왔소」인가 하면 일본의 사천왕사가 부여의 정림사지를 모방한 사찰로 고대 한일문화 교류의 창구역할을 맡았고,일본의 전통축제에서 「왔쇼이」(□□□)라고 외치는 말의 어원이 한국어 「왔소」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이번 축제의 의의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고대로부터 많은 문물이 한반도로부터 일본에 넘어갔다는 인식은 일본 사회에 깔려 있으나 그것을 기리는 축제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축제는 그 명칭에서 나타나 있듯이 한반도에서 받은 영향을 기리자는 최초의 축제로 오사카교포들이 중심이 되어 벌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고대 사기에도 나타나듯이 일본인 모두가 좋아하는 성덕태자의 스승이 고구려인이며 그런 분들이 이 시대에 오사카에 다시 나타났음을 표현해 보일 계획입니다. 또 우리 조상들이 일본에 전해준 문물들을 재현하려 합니다. 이 행사를 8월에 갖는 이유는 우리의 광복일이 8월에 들어있기 때문등입니다. -연출가에서 기획가로 변신한 셈인 데 보람을 느끼십니까. ▲물론입니다. 저의 활동을 변신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10년 주기로 변한 것 같습니다. 60년대에는 주로 서구식 연극에 주력해 왔고 70년대에 넘어오면서 우리 연극 찾기에 눈을 돌렸죠. 그러다 80년대에 와서는 창극쪽으로 관심을 모았고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치른 뒤부터 축제에 전념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축제다운 축제가 없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축제를 기획·제작·연출하는 단체를 만들어 보자는 데 착안했던 것입니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단체가 축제문화진흥회죠. ▲81년부터 89년초까지는 국립극장장으로 공직에 몸을 담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종합기획 「마루」라는 이름으로축제행사를 맡아 추진해왔는데 지난해 3월 주식회사로 등록하면서 「축제문화진흥회」란 간판을 달게 되었습니다. 거리축제는 가만히 서 있는 무대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오고 가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전에 구간별로 업무를 분담해 조립형태로 이뤄집니다. 따라서 상당히 많은 인력과 장비 그리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각 지방에 따라 고유의 축제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경시되어 온 경향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활성화가 되리라고 보십니까. ▲각 지역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유의 축제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이들 축제들이 주로 관청에서 주관해 왔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인 행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남원의 춘향제만 해도 제가 거의 30여년간 굿판등을 쫓아다니며 보아왔지만 전혀 발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어디든 백일장,노래자랑 등이 있고 난장에 서서 먹고 마시고 떠들썩한 것만 있었지 정작 삶의 질을 높여주는 축제다운 축제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신문에서 올해부터 전국 10개 지역에서 펼치는 향토문화축제는 그런 면에서 매우 바람직스럽고 반드시 지역문화 발전에 큰 몫을 하리라고 기대됩니다. ○마당극 현대에 잘 맞아 -현재 우리의 공연계에 대해 하실 말씀은. ▲제 자신이 공연계에 몸을 담고 있기 때문에 뭐라고 꼬집어 얘기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공연예술은 지금까지 보다는 앞으로 훨씬 독창력을 발휘해 나가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더욱 활성화도 이루어지리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우리는 전파와 전자의 뉴미디어시대에 살게 되는데 그때가 되면 인간적인 모습의 예술공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고 또 그리워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그리워지고 자연이 그리워지고 하면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공연장을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지금은 어찌보면 우리 공연계도 혼돈적 상황이라고 해야겠지요. 각종 개방화에 편승,외국의 공연단체들이 밀려 들어오고 있습니다. 정말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외국과 문화의 뿌리를 달리하는 우리나라에서 현재의 예술적 환경과 시대상황을 가장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극형식은 어떤 것일까요. ▲저보고 마당극의 기수라는 말을 하는 분들이 많은 줄 알고 있습니다만 마당극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맞는 전통의 현대적 수용의 지름길이 된다고 봅니다. 지난 75년 미국과 유럽을 40여일간 여행을 하면서 그곳의 공연만 38편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때 각 나라의 연극이 자기네 민족문화를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통일성은 언어입니다. 음식문화도 중요하지요. 역사와 국가를 떠나 인간중심의 시각에서 언어나 음식이 같으면 그 기질도 같아지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우리의 기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민족의 신명,신바람도 그런 것중의 하나죠. 일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또 놀기 좋아하는 특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단순히 놀기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예능적 재질이 뛰어난 민족이기 때문에 좋은 작품들을 무수히 만들어 낼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같은 언어,같은 음식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양한 성격을 가진 민족입니다. 우리 민족은 음악적으로나 기타 다른 형식에서도 나름대로 획일적이 아닙니다. 신바람 잘 내는 민족이기 때문에 싸움도 잘하고 분파도 잘 일으킵니다만 이를 긍정적으로 보면 자존심과 자신감이 강한 민족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연극부 활동 -맨 처음 연극을 하시게 된 동기는. ▲원래 대학의 전공은 임학이었습니다. 서울에서 공부를 할 때인데 연극에 열을 올리던 아저씨 집에서 기거를 했어요. 그때 연극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서울농대 3학년때 연극부에 들어가면서 연극인의 길을 걸었죠. 그동안 연극연출 횟수는 1백10여편정도였고 방송드라마는 약 5백여회를 제작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역시 77년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물도리동」과 68년에 제작했던 드라마 「탑」입니다. -가족이 분야는 달라도 모두 한길을 걷고 있다고 들었는데. ▲시인인 아내(박현영)와 시립국악단에 있는 딸,그리고 대학원에서 예술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 아들이 가족인데 모두 한 길을 걷고 있는 셈이지요. -앞으로의 계획은. ▲전통예술의 뿌리에서 우리 예술을 꽃피우는 작업을 꾸준히 해 나갈 작정입니다.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우리 문화예술의 우월성과 자긍심을 심어주는 데 노력해 나갈 계획입니다.
  • 따뜻한 봄날에 동무들과…/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지금 50대 이상 사람들에겐 옛날 동무들이 있다. 그러나 그 이하 세대사람들에겐 동무가 아닌 친구가 있을 뿐이다. 6ㆍ25동족 전쟁 이후 남쪽에서는 「동무들」이 사라졌고 북쪽에선 동무들이 늘어난 대신 동무가 아니면 모두가 적이고 반동이었다. 북한에선 지금도 아무나 보고 동무라고 부르는 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시아버지동무,아저씨동무,위원장ㆍ부장동무 식으로…. 그러나 북한에서 그런 일은 없다. 해방 후 혼란기엔 아닌 게 아니라 그들 식으로 악덕지주니 반동 부르주아니 해서 무자비하게 매도하는 와중에서 여맹완장을 걸친 며느리가 시아버지 동무라고 부른 일도 있다. 그것은 그러나 기존사회의 가치관과 도덕규범을 무조건 거부하고 모조리 때려부수는 것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고 착각한 「동무들」의 난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북한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은 이 정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들 평균적인 한국인은 북한이라는 존재의 본질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가. 북한에 관한한 적어도 서울은 가장 정확한 정보와 해석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실상 우리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쪽의 부분적인 실태를 갖고 본질로 이해하려 한다거나 크게는 그들 변화의 전술적 측면을 전략적 전모로 보려 한다거나 그들 모두가 홍 아니면 전인 것으로 파악하는 잘못을 더러 저지르기도 한다. 남북문제에 관한 오류의 함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남북한 관계를 얘기할 즈음 거의 모두들 첫밗에 상호 신뢰의 결여라거나 지나친 경쟁관계를 들고 나온다. 그건 사실이다. 우선 판문점을 봐도 그렇다. 그곳은 남북한 대치의 상징이자 상호 불신의 현장이며 가장 현재적인 경쟁터이기도 하다. 양쪽의 입씨름이 그러하고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 탁자 위에 꽂인 유엔기와 저쪽의 인공기의 높이가 또한 그러하다. 지난 53년 정전회담이 열릴 때마다 양쪽의 기가 서로 경쟁적으로 높아지던 끝에 드디어 천장에까지 닿을 듯하자 이 문제만으로 양쪽이 타협을 벌여 지금의 똑같은 높이가 됐다. 휴전선 북방한계선 안쪽엔 기정동이 있고 남방한계선 안쪽엔 대성동이 있다. 두 마을 어귀에 각기높이 솟은 국기게양대도 비슷한 사연을 갖고 있다. 1천8백여m 상거하는 두마을의 국기 게양대가 서로 도토리 키재기식으로 높아지다가 끝내 남쪽마을 대성동쪽에서 포기하자 기정동쪽 것이 조금 높아진 채로 이제는 동양 최고의 높이를 자랑한다는 것이다. 대치상태인 남과 북의 오기와 치기가 대충 이러하다. 5년 전인가 어떤 통계는 우리가 스포츠에서 반드시 이겨야 할 팀으로 북한이 44%이고 일본(31%) 소련(14%) 미국(8%) 중국(3%)의 순으로 반응했다. 모르면 몰라도 저쪽의 통계도 거꾸로 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작년 10월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월드컵예선에서 남북한 팀은 아주 협조적이고 우호적이었다. 세월이 그만큼 흐른 것이다. 불신과 경쟁은 다시 말해 마음의 거리를 뜻한다. 오고 가는 마음가짐의 부족과 이해의 결여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팀스피리트 훈련을 방어훈련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북한쪽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콘크리트장벽론,남침용 제4땅굴도 그래서 나오게 된다. 개인과 개인은 물론 국가와 국가간에도 상대방에 대한 행동은 상대방의 자신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누적으로 형성된다. 그런데 남북한간의 상호인식은 냉전의 소산인 영상론(MIRROR IMAGE)의 형태로 시작됐기 때문에 거울에 비친 영상처럼 상반된다. 남북한 쌍방은 서로가 서로를 잘못 이해한다고 하면서 스스로는 냉전적 사고의 틀 속에서 거꾸로 된 영상으로 상대방을 인식하게 된다. 결국 동질성의 추구보다 이질성 확인의 시각이 두드러졌고 감정의 골은 깊어만진 것이다. 우리의 대북인식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이제 우리에게 있어 화합과 공존의 대상이지 증오와 파괴의 대상만일 수는 없다. 대결상대로서의 북한과 화합상대로서의 북한을 정확히 인식하면서 그들과의 관계에서 그들을 완전히 압도하겠다는 제로섬(영합)게임식 접근을 지양해야 한다. 상용성을 될수록 넓혀 인식의 거리,마음의 거리를 좁혀 가자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 당국자들,특히 그 주석 김일성은 이것을 알아야 한다. 즉 그가 교조적으로 신봉하고 「주체적」으로 수정했다는 마르크스주의는 이제 서서히 모습을 감춰간다는 사실 말이다. 생각해보면 유럽에서 태어난 마르크스주의 혁명의 불꽃은 유럽의 변경이라고 일컬어지던 러시아에서 꽃을 피우고 4반세기 후에는 그 자신도 전혀 생각지 않았던 동양의 전제적 은둔국인 중국으로 비화했다. 또 그 4반세기 후에는 아시아의 또다른 변경인 인도차이나 반도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로 번졌다. 그러나 적잖은 세월,숱한 실험을 거친 사회주의 혁명의 붉은 실은 여기서 끊어지고 말았다. 이제 역사는 한바퀴 돌아 그 시계바늘은 이번에는 좌에서 우로 역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는 19세기의 하나의 순수한 사회사상이었던 것으로 역사교과서에 남으려 하고 있다. 북쪽 당국자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결국 이것 밖에 없다. 남과 북,서울과 평양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마주앉아야 한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이 따뜻한 봄날에 동무들과 판문점에 가 보고자 할 것이다. 그곳에서 대성동과 기정동을 굽어본 후 다시 마주앉아 이젠 남의 얘기일랑 제쳐놓고 우리들의 얘기 좀 해보자. 따뜻한 봄날에 판문점에서 마주앉아 동무처럼 친구처럼 우리들의 얘기보따리를 풀어야 하는 것이다.
  • 등교길 국교생 유괴/은행에 입금된 60만원 찾고 풀어줘

    ◎경찰,20대 추적 【인천=이영희기자】 학교에가던 국민학생이 20대 청년에게 유괴된지 8시간만에 풀려나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인천 부평경찰서에 따르면 인천시 서구 석남동 505 김승곤씨(32)의 장남 종선군(9.석남국교2년)이 12일 낮12시쯤 오후반 수업을 받기위해 학교에 가던중 집앞에서 20대 청년에게 유괴당했다는 것. 범인은 1시간뒤인 하오1시쯤 종선군집에 전화를 걸어 『아이를 무사히 찾으려면 현금 2백만원을 준비하라』고 요구,돈이 없다고 하자 성의표시로 1백만원을 준비해놓으라고 말한 뒤 다시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어 범인은 하오4시15분쯤 또 다시 전화를 걸어 중소기업은행 통장번호와 박희철이라는 이름을 불러준 뒤 아이는 잘 있으니 1백만원을 입금시킬것을 요구,부모들이 60만원밖에 준비 못했다고 하자 은행문을 닫기전에 60만원을 입금시키라고 재촉해 인근 석남지점에 돈을 입금시켰다는 것. 종선군은 범인이 중소기업은행 수원지점에서 돈을 인출한 뒤 하오8시10분쯤 집앞에서 풀어줘 무사히 돌아왔다. 경찰은 『검은색바지를 입고 안경을 낀 20대 아저씨가 자기를 데리고 수원에 갔다 버스를 타고 다시 인천에와 집 부근에서 풀어줬다』는 종석군의 말에 따라 용돈을 마련하기 위한 인근 불량배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를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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