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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그리운 금강산/우득정 논설위원

    ‘누구에 주제런∼가 맑고 고운∼산’ 잠결에 목이 말라 눈을 뜬 순간 창 너머로 ‘그리운 금강산’ 노래가 들린다. 머리맡 시계바늘은 새벽 2시30분을 가리킨다. 한잔 걸친 듯 노래가락은 중간중간 이어졌다 끊어진다. 다음날 출근길에 아파트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건너편 동에 홀로 사는 50대 중반 아저씨란다. 낮에는 누구와 마주치기만 해도 먼저 눈길을 피할 정도로 수줍음을 타는데 술만 한잔 들어갔다 하면 아파트 단지 입구부터 집에 다다를 때까지 그리운 금강산을 불러제친다고 했다. 그것도 가을부터 겨울까지. 어느 공휴일 그 아저씨가 산다는 동 앞에 자리를 잡고 감시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무렵, 간밤의 숙취가 채 가시지 않은 꾀죄죄한 모습의 50대 남자가 현관 입구에서 나온다. 직감적으로 그 주인공임이 느껴졌다. 거리를 두고 어슬렁거리며 따라가니 놀이터의 그네에 엉덩이를 걸친다. 그러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곤 하늘을 향해 긴 한숨과 함께 연기를 내뿜는다. 슬그머니 다가가자 이유를 안다는 듯 먼저 내뱉는다.“내 집사람이 생전에 무척 좋아했던 노래라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20일 TV 하이라이트]

    ●클로즈 업(YTN 오후 1시20분) 김성호 법무장관에게 법무부의 주요 현안에 대해 들어본다. 사법개혁과 법조비리의 척결 대책인 로비스트법과 검사 해임제 도입 추진일정, 검찰의 견제 장치라고 볼 수 있는 공직부패수사처 건립에 대한 의견을 들어본다. 이와 함께 인권보호와 사법정의를 동시에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복안도 들어본다.   ●코리아, 코리아(EBS 오후 8시) 곧 출산을 앞둔 아내 곁을 떠나 화물차 운전 일을 하고 있는 명성씨. 같이 손발을 맞춰 일하게 될 아저씨들은 붙임성 좋은 명성씨가 마냥 귀엽기만 하다. 하지만 다니던 학교마저 휴학하고 일터로 나선 명성씨는 한 가족을 짊어져야 할 가장이라는 이름 아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져 온다.   ●뉴스추적(SBS 오후 11시5분) 등교길 학생 삥 뜯기, 취객 지갑털이, 앵벌이, 무전취식, 노숙. 이것이 취재진이 만난 10인조 가출 청소년들이 거리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가출 청소년들의 실생활을 24시간 동행해 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추적 보도하고 가출 이유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가정·학교·정부의 지원 시스템을 점검한다.   ●여우야 뭐하니(MBC 오후 9시55분) 병희는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주몽 세트장을 배경으로 한 음란한 기사를 쓰고 있다. 여행에서 돌아온 철수는 누나의 집을 찾지만 다른 사람의 집으로 바뀌어 있고, 철수는 병희의 집 담장을 뛰어넘어 제 집처럼 들어간다. 저녁 찬거리를 사들고 귀가한 병희는 누군가가 샤워하는 소리에 깜짝 놀란다.   ●추적60분(KBS2 오후 11시5분) 수입 명품에 대한 맹목적인 열광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름마저 생소한 해외 브랜드 제품들이 명품으로 둔갑한 채 고가에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수십 년간 갈고 닦은 국내 기업들의 기술이 외면당하는 현실이다. 수입 명품만을 좇는 흐름의 실태와 그 부작용을 알아본다.   ●열아홉 순정(KBS1 오후 8시25분) 동국은 윤후에게 싱가포르로 가지 않으면 자식 취급을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신형은 윤후가 공항에서 곧바로 국화를 찾아갔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한편, 홍 영감은 혜숙이 만든 나비넥타이를 남기고 떠났다는 말에 정신없이 뛰쳐 나간다. 같은 시간 혜숙은 기차를 기다리며 마음을 정리하는데….
  •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 100살 먹은 숫총각 코끼리 거북이

    안녕, 우리는 갈라파고스 코끼리거북이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초면에 웬 반말이냐고? 억울하면 주민등록증 까봐. 우리는 동물원에서 최고참이거든. 올해로 100살이야. 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까 너무 어려워 말고 그냥 형이라고 불러. 그러고 보니 우리가 한국으로 이민온 지도 벌써 8년이나 지났네. 우리의 고향은 남미에 있는 에콰도르야. 우리 이름 ‘갈라파고스’는 스페인어로 거북이라는 뜻이야.8년 전 에콰도르 군 참모총장이 한국의 서울대공원을 방문했을 때 우정의 의미로 선물하게 된 게 바로 우리 두 마리야. 우리가 있던 동물원에서는 대신 치료약이랑 의료기술을 전수받았지. 함께 있던 친구들과 떨어져 외롭긴 하지만 의미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해. 우리는 에콰도르에서 국가보호종이야. 하지만 에콰도르에 있을 때는 그게 더없이 자랑스러웠는데, 지금은 그 사실이 조금 원망스러워. 국가보호종이어서 외국에서 새끼를 낳고 번식하는 것을 막고 있거든. 그래서 여자친구들의 반출이 금지돼 있어. 한국 땅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우리의 독수공방은 시작된 거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면서 뭘 그리 밝히냐고. 말 조심해. 우리가 십장생 중 하나라는 사실을 잊었어? 우리의 평균 수명은 보통 180∼200살이라고. 우린 사람으로 치면 이제 겨우 30대 후반밖에 안 된 거야. 그런데 평생을 이렇게 외롭게 살아야 하다니, 너희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끔 우리끼리 짝짓기 시늉을 하기도 해. 하지만 사육사 아저씨가 해가 될 건 없다고 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도 머나먼 타국 땅에서의 외로운 생활을 견딜 수 있는 건 동물원을 찾는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 덕분이야. 우리와 아예 자매결연을 맺고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친구들도 있다고. 우리가 거북이 중에서는 유일하게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니? 너희가 동물원에 와서 우리를 사랑스럽게 대해 주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기대해도 좋아∼!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폐교같던게 한달만에 새학교로…”

    “학교가 달라졌어요. 구청장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지난 7일 오후 맹정주 서울 강남구청장 앞으로 큰 상자가 하나가 전달됐다. 이 상자에는 강남구 봉은초등학교 학생 960여 명이 맹 구청장에게 쓴 감사의 편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방학이 끝나 한달여 만에 등교한 학생들이 달라진 학교 모습에 감동을 받아 쓴 편지였다. 전교생 1008명인 이 학교 어린이들 거의 전부가 감사의 편지를 쓰다시피 했지만 알고보면 사연은 아주 간단(?)했다. 계단의 틈이 벌어지고, 외벽의 칠이 벗겨져 폐교처럼 보였지만 예산 부족으로 학교가 손을 못대고 있던 것을 강남구가 예산을 지원, 계단은 보수해주고, 외벽을 새로 칠해 줬기 때문이다. 강남구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인도와 차도가 구분돼 있지 않아 사고의 위험이 높던 학교앞 도로에 보행도로를 내주었다. 이들 사업에 들어간 돈은 고작 6000여 만원. 강남구는 연간 50여억원을 들여 75개 초·중·고교를 선별 지원하고 있지만 이번과 같은 감사편지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년에 중학교에 진학하는 한 남학생은 “개학을 하고 보니 한 달도 안된 듯한 새 학교가 됐다.”며 “나는 한 학기만 다니면 졸업하지만 동생들을 생각하니 정말 좋다.”고 썼다. 1학년 한 어린이는 “계단을 고쳐줘서 너무 고맙다.”면서 “감기 조심하라.”는 안부도 덧붙였다. 학생들의 편지에는 ‘키 크는 데 도움이 되는 농구대를 설치해 달라.’‘냄새나는 화장실을 고쳐달라.’는 등의 애교섞인 부탁도 적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편지에 감동을 받은 맹 구청장은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서로가 감동하게 되고 사회가 훈훈해진다.”면서 이 편지들을 구청 1층에 전시토록 했다. 구 관계자는 “강남구에 있는 각급 학교의 경우 강남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역차별’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교육청의 예산지원이 적어 시설물 보수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예산 여건이 좋지 않지만 앞으로도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강남구는 올해 30여개 학교 지원을 위해 교육경비로 55억 6000여 만원을 편성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우리학교 고쳐줘 고맙습니다”

    “학교가 달라졌어요. 구청장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지난 7일 오후 맹정주 서울 강남구청장 앞으로 큰 상자가 하나가 전달됐다. 이 상자에는 강남구 관내 봉은초등학교 학생들 960여명이 맹 구청장에게 쓴 감사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방학이 끝나고 한달여 만에 등교한 학생들의 눈에 띈 학교는 예전의 학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강남구는 인도와 차도 구분이 없어 교통사고가 위험이 컸던 학교 앞 도로에 보행자 도로를 만들고 틈새가 벌어졌던 계단을 수리하도록 예산을 지원했다. 또 칠이 낡아 벗겨졌던 건물벽도 새로 페인트칠을 했다. 내년에 중학생이 되는 한 남학생은 “새 학교가 됐다.”며 “나는 한 학기만 다니면 졸업하지만 동생들을 생각하니 정말 고맙다.”고 썼다. 학생들의 편지에는 ‘키 크는 데 도움이 되는 농구대를 설치해 달라.’‘냄새나는 화장실을 고쳐 달라.’는 등의 애교 섞인 부탁도 있었다. 구 관계자는 “강남구에 있는 각급 학교의 경우 교육청의 예산지원이 적어 시설물 보수는 엄두도 못낼 정도로 ‘역차별’이란 말이 나올 정도”라면서 “예산은 빠듯하지만 앞으로도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강남구는 올해 교육경비로 53억 5000여만원을 편성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아이스크림 먹고 힘내 삼~”

    “국군장병 아저씨들,아이스크림 먹고 힘내 삼~” 오픈마켓 G마켓은 지난달 30일 강원도 춘천·인제,경기도 가평에 있는3곳의 군부대를 방문,아이스크림 등을 전달했다고 1일 밝혔다. ‘G마켓이 간다’ 군부대편의 행사로 열렸으며,각 부대별로 사연을 접수해 3곳을 뽑았다. G마켓은 이들 군부대에 드럼세탁기 3대,롯데삼강 아이스크림 3000개,농심컵라면 3000개와 함께 G마켓 경품인 편지지와 볼펜을 전달했다. 한편 G마켓은 이달 중순쯤에는 ‘G마켓이 간다’ 군부대편에 이어 단절돼가는 이웃간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3탄 행사로 ‘아파트’ 편을 펼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솟대-장승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솟대-장승

    우리나라 대부분의 마을 뒷산에는 수호신을 모신 산신당이 있고, 마을 입구에는 장승과 솟대가 있다. 장승과 솟대는 마을 공동체 신앙을 구성하는 요소이며 촌락의 역사와 민중의 생활상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오랜 비바람의 풍파에도 아랑곳없이 오직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고, 나그네에게는 이정표를, 사찰에서는 경계표를 자임한 장승. 민초들의 소박한 정서가 담긴 장승은 무섭기도 하지만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감을 주며 해학적이다. 마치 선량한 서민의 자화상을 보는 듯해 더욱 정겹다. 툭 튀어 나온 퉁방울 눈, 무뚝뚝한 코, 약간 삐뚤어진 듯한 얼굴, 거기에 살짝 벙거지를 올려 쓴 제주도의 돌하르방. 영락없이 불끈 솟은 남근이다. 살짝 비껴 보노라면 탄성이 절로 난다. 어느 조각가가 이만큼 깎을 수 있을까. 그것은 비록 이름 없는 석수장이의 솜씨지만 하나의 예술품이다. 거기에 빌면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속신이 보태지면 그것은 단순한 석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체로 다가온다. 솟대는 장승과 함께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신앙의 대상물이었다. 짐대, 기러기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솟대는 그 자체가 우주목(Worl Tree)으로 성역의 표시였다. 또 과거급제자의 표시와 가문의 행운을 비는 기념물로, 솟대 위에 앉혀진 물새로 화마를 막는 상징물이었다. 그야말로 다양한 형태와 의미를 지닌 솟대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 종교, 민속 등이 종합적으로 녹아있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나 대개 정월 대보름이 되면 전국곳곳에서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산신제나 장승제를 지내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우리네 풍속이다. 중요무형문화재인 영산줄다리기는 원래 정월 대보름에 행했으나 현재는 3·1 문화제 행사의 하나로 하고 있다. 길이가 100m가 넘고 지름이 1m가 넘어 줄을 타고 앉아도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거대한 줄은 10여일에 걸쳐 만든다. 평소 농사일에 묻혀 흩어져 살던 농민들이 요란한 풍물소리와 함께 풍물패를 앞세우고 결집하는 모습,1만명이 넘는 남녀노소가 일제히 우렁찬 목소리로 ‘으∼샤, 으∼샤’하며 흙먼지를 부옇게 일으키며 당기는 모습. 놀이와 제의, 화합과 축제가 어우러진 줄다리기. 상상만 해도 신이 난다. 줄다리기는 놀이 자체로서도 재미있지만 미리 풍흉을 점치거나 풍년을 기원하는, 즉 다산을 위한 성교를 상징하듯 암줄과 숫줄을 결합하여 풍년에 대한 염원과 화합을 기원한다. 여자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 하여 편을 가를 때도 남자, 여자로 가른다. 때문에 남자편이 일부러 져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깊고 가장 규모가 큰 민속축제는 단연 강릉단오제이다. 단오는 음력 5월5일로 일명 수릿날, 중오절이라고도 불리는데 일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다. 단오의 ‘단(端)’자는 처음 곧 첫 번째를 뜻하고,‘오(午’)자는 오(五), 곧 다섯의 뜻인 초닷새를 이른다. 음력 4월15일 대관령 산신제로 시작된 강릉단오제는 대관령 성황신을 모셔와 강릉시내의 여성황사에 봉안하고 5월5일까지 계속된다. 본격적인 행사는 5월1일부터 대관령에서 흘러내린 물이 지나가는 남대천변 단오장에서 닷새간 열린다. 아침, 저녁으로 제를 올리고 굿을 하며 한마음으로 풍년과 풍어, 마을의 평안을 기원한다. 행사기간동안에는 그네타기, 씨름, 농악, 무언극인 관노가면극 등 각종행사가 벌어져 수많은 예능인과 군중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긴 행렬의 난장이 이어진다. 강릉단오제는 무속과 신화, 유불선이 습합된 우리 고유의 향토축제다. 주민의 화합과 단결은 물론이고 나아가 이제 관광 상품으로도 손색이 없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이바지한다. 한마디로 현대축제가 갖추어야 할 전형을 보여준다. 강릉단오제는 이제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축제로 새로 태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농촌에서는 항시 서로 돕고 돕는 다양한 형태의 조직을 만들어 생활하였다. 두레는 상부상조하는 미풍양속 중에서도 으뜸이다. 동제가 동심결취적 성격을 지닌 신앙적 결합이라면, 두레는 노동을 제공하거나 상호협력을 바탕으로 촌락사회의 결속을 다져온 협동체이다. 두레는 농작물의 생장기인 농번기에 구체화되어 모내기에서 김매기를 마칠 때까지 시행된다. 두레는 고통스럽고 힘든 일을 협동과 신명으로 풀어내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체계였다. 일명 ‘농악’이라 하는 것도 바로 두레에서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두레는 일과 놀이를 겸비한 상부상조 문화의 상징이요, 풀뿌리 민주주의가 관철되는 현장이다. 우리 고향 모습은 어떤 것일까. 야트막한 동산아래 앞으로는 내가 흐르고 마을 동구를 가로질러 서 있는 정자나무, 그것이 고향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자나무는 마을의 역사를 대변해준다. 여름철에는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로써,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장으로 함께 해왔다. 정자나무 밑에는 들돌이 놓여져 있어,7월 백중엔 마을 청년들이 시원한 나무 밑에 모여 들돌을 들어 힘을 겨루고 장사를 뽑았다. 이를 ‘들돌들기’라 하였다. 양반 자제들의 성년식이 관례라면,‘들돌들기’는 서민들의 성년식으로 들돌을 들어 체력을 인정받아 당당히 어른의 품삯을 받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이렇듯 마을의 정자나무는 휴식과 신앙과 회합이 이루어지는 공동의 문화공간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산이 높으면 건물은 낮게, 반면 산이 낮으면 건물은 높게 지어 음양의 조화를 꾀하였다. 자연에 순응하며 조화를 이룬 것이 우리네 건축 정서이다. 양지바른 산자락에 마치 암탉 둥지처럼 옹기종기 모여 하나의 선을 자아내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초가와 기와집들은 현대적 건물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한옥은 구조에서부터 만드는 재료에 이르기까지 자연적이다. 마루를 중심으로 그 둘레에 방이 있고, 부엌과 화장실은 마루를 통과하여 갈 수 있거나 별채를 따로 두었다. 방이 개인을 위한 닫힌 공간이라면, 서양엔 없는 대청은 모두를 위한 열린 공간이고, 마당은 큰일을 치르는 공간이다. 서양 가옥이 바람을 막는 닫힌 집이라면 한옥은 지나는 바람을 막지 않는 열린 공간이다. 때문에 우리네 집은 자연과 하나 되어 바람소리, 물소리, 흙냄새, 나무냄새를 느낄 수 있다. 흔히 한국의 미는 선(線)에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용마루나 처마 끝선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 동양 삼국의 기와집을 보면 금세 구별이 된다. 중국은 처마와 추녀 끝이 너무 올라가 왠지 방정맞고, 일본은 처마가 직선으로 마치 무를 잘라낸 듯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 이와 달리 한국의 처마는 부드러운 곡선을 이룬다. 마치 여인네의 살짝 올라간 버선코처럼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다. 부챗살 모양으로 배치한 서까래의 처마 곡선은 장중한 모양의 지붕을 사뿐히 나는 듯 보이게 하며 우아한 자태를 느끼게 한다. 우리네 대문은 밖에서 안으로 밀도록 되어 있는데 반해 서양의 문은 안에서 밖으로 열도록 되어 있다. 밖에서 안으로 밀어 열도록 한 것은 바깥으로부터 복이 들어오도록 한 것이다. 반면 방문을 대문과는 달리 안에서 밖으로 열도록 한 것은 들어온 복을 나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어찌 서양의 기능적 면만 강조한 문과 비교되겠는가. 집의 얼굴이 문이라면, 창문은 집의 눈이요 표정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의 창은 유리로 막아 안과 밖의 공기 유통을 막을 뿐만 아니라 소리도 차단시킨다. 어디 그뿐인가 속내를 훤히 드러내어 은근한 멋이 없다. 하지만 우리네의 창은 창살에 한지를 발라 숨을 쉬도록 하였다. 우리의 창은 마음을 담아낸다. 밤늦도록 다듬이질을 하는 아낙의 정겨운 방망이 소리와 창가에 비친 모습, 이제나 저제나 오실까 숨죽여 애타게 님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는 여인의 설렘도 창가에 서린다. 한옥 마을이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것은 소박한 곡선과 우아한 돌담이 사이사이 이어주기 때문이다. 담은 한옥의 완결체이다. 제주도는 한마디로 돌담의 세계이다. 산과 들에는 산담, 집에는 집담, 바다에는 바당빌레, 고기를 잡는 원담, 심지어 무덤에도 담을 쌓았다. 제주사람들의 문화와 정서, 애환이 녹아있는 돌담은 무한한 관광자원 가치와 함께 미학적 아름다움으로 ‘재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100대 상징 작업은 우리 것에 대한 재발견이요 혼을 불어 넣는 작업이다. 정종수 국립춘천박물관장
  • 폭주족에 멍석까는 경찰

    경찰이 3·1절이나 광복절 등 폭주족이 기승을 부리는 국경일에 한해 오토바이 집단운행을 제한적으로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반 운전자들은 물론 폭주족들로부터조차 “안이한 발상”이라는 비판적인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다. 경찰청은 29일 “폭주족들이 폭주 전 경찰에 사전신고를 하고 헬멧을 쓰는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경찰 보호 하에 집단 질주를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찰은 국경일 특정시간대에 자유로나 올림픽대로, 강변북로 등에 집단질주용 차로를 따로 정할 계획이다. 단속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폭주족의 선두와 후미에서 경찰이 교통관리를 해주면서 시속 100㎞ 이상 질주도 보장해 주겠다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면서 “지방자치단체와 협조해 오토바이 전용 상설 주행공간을 확보하고 폭주족과 건전한 오토바이 동호회와의 만남도 주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대신, 미신고 무단폭주에 대해서는 전담팀을 구성해 강력하게 단속하기로 했다. 일본 경찰에서 사용 중인 유색근접분사기(특수잉크총)와 그물망도 도입할 계획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반응은 비판적이다. 승용차로 출퇴근한다는 김모(43)씨는 “폭주족들이 얼마나 되는지 현황파악도 안 된 상태에서 단속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일반시민들이 이용할 도로에서의 폭주를 허용하는 게 발상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폭주를 즐긴다는 청소년들의 반응도 시큰둥하다. 인터넷에서 폭주 커뮤니티를 운영 중인 정모(17)군은 “보통 번개모임을 해도 50∼60명은 금방 모을 수 있지만 헬멧 쓰고 정해진 길을 그것도 경찰이랑 달리자고 하면 재미 없어서 누가 하겠느냐.”고 반문했다.같은 커뮤니티의 조모(18)군도 “폭주는 경찰을 따돌리고 중앙선을 넘나들며 일종의 일탈에서 오는 쾌감과 해방감, 스피드감을 즐기자는 것인데 경찰은 무슨 마라톤 대회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평소 진입이 금지돼 있는 간선도로를 달리고 싶은 동네 아저씨들은 경찰 모임에 모일 것같다.”고 말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어린이책꽂이]

    ●꼬물꼬물 열마리 올챙이들의 물속 여행(데비 타벳 글·그림, 은하수미디어 펴냄) 올록볼록 종이 위로 튀어오른 입체 올챙이 모형들이 눈길을 사로잡는 예쁜 그림책. 올챙이들의 물속 여행을 따라가며 숫자감각을 키울 수 있다.5세까지.1만 2000원. ●나비잠(신혜은 글, 장호 그림, 사계절 펴냄) 엄마품에 안겨 잠드는 유아들에게 말문트기를 유도해주는 그림책. 아기와 엄마가 있는 방안, 엄마고양이와 아기고양이의 풍경이 스르륵 잠이 몰려올 듯 포근하다.4세까지.9000원. ●풀과 나무의 집(강민숙 글, 표영도 그림, 진선아이 펴냄) 경남 거창의 시골에 둥지를 튼 동화작가 강민숙이 글을 쓰고 그의 아들이 그림을 그린 생태동화책. 풀빛자연을 닮은 아이들이 개 고양이 닭 오리 새 등과 엮어내는 에피소드들에서 젖은 흙냄새가 훅 끼쳐오는 것같다. 초등생.8000원. ●못나도 울 엄마(이주홍 글, 이은천 그림, 창비 펴냄)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는 동화작가 이주홍의 대표동화 9편이 실렸다. 가난한 떡장수 할머니를 향한 어린 주인공의 온정이 넘치는 표제작 등 유머와 감동이 균형있게 버무려진 동화집.‘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권정생 등)‘사슴과 사냥개’(마해송)‘날개 달린 아저씨’(이현주) 등이 함께 나왔다. 초등 고학년 이상. 각권 8500원.
  • [깔깔깔]

    ●슬픔 분노 쇼킹-3 *노래방에서 슬픔:5천원 갖고 노래방갈 때. 분노:같이 간 친구가 시간도 없는데 마이크 안 놓을 때. 쇼킹:마이크 간신히 뺏었더니 1분 남았던 시간이 0을 가르킬 때. *게임방에서 슬픔:1천원 갖고 게임방 갈 때. 분노:1시간 맞춰서 했는데 1시간이 넘었다며 초과시간 이용료 합쳐 1200원 내라고 할 때. 쇼킹:간신히 1200원 만들었는데 무심코 집어먹었던 쥐포 하나가 200원이라며 1400원을 요구할 때. *택시에서 슬픔:주머니에 1900원 있는 걸 확인하고 택시 탔는데 ‘할증’ 시간이라 2280원이라고 찍힐 때. 분노:기사 아저씨에게 사정을 얘기해도 악착같이 요금내라고 할 때. 쇼킹:집에 도착해서 드린다고 했는데, 집에 오니 식구들이 온데간데 없을 때.
  • [깔깔깔]

    ●슬픔 분노 쇼킹-2 *수영장에서 슬픔:오리 엉덩이라 사각 수영복 입는 나를 볼 때. 분노:옆 사람이 “그거, 수영 팬티 맞아요?”라고 물어볼 때. 쇼킹:주위를 둘어보니 내 팬티만 사각일 때. *담배 피우다가 슬픔:‘돛대’ 남은 담배에 불을 붙였는데 필터 부분에 붙었을 때. 분노:그래도 피워 보겠다고 다시 불을 붙였더니 뒤가 다 녹아 담배가 안 빨릴 때. 쇼킹:열 받아 땅에 답배 내팽개치자 경찰 아저씨가 호루라기 불며 뛰어올 때. *화장실에서 슬픔:무작정 들어간 화장실에 화장지가 없을 때. 분노:자판기에서 화장지를 뽑으려고 주머니를 뒤져보니 동전이 없을 때. 쇼킹:급함에도 불구하고 간신히 동전 바꿔오니 콘돔 자판기일 때.
  • 돈벼락에 놀란 부부교사

    돈벼락에 놀란 부부교사

    영국에선「에딘버러」의 한 기술교사의 거실에 15년이나 걸려있던 그림 한점이 갑자기 엄청난 가격에 팔리게 되어 그림 수집가들은 물론 판 사람의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었다고. 「카트렐」교사 부부는 지난 15년동안 자기네 거실에 걸려있던 이 그림을 7살짜리 딸이 그린 그림보다 신통치 않게 생각했으며 50「달러」도 못받을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자동차를 사기 위한 돈에 보태려고 이 그림을 팔려하자 놀란 것은 그림 수집상.『이브의 유혹』이란 이름이 붙은 이 그림은 지금은 남아있는 것이 아주 드문 16세기 독일화가「발둥」의 것이란 것이 감정되었기 때문. 35X13「인치」크기에 뱀이 감긴 나무옆에 사과를 쥔 나부(裸婦), 「사탄」의 모습인 이 그림은 곧 경매에 붙여졌는데 자그마치 53만7천6백「달러」(1억6천1백28원)에 낙착 되었으니 팔려든 사람은 이 돈벼락에 정신을 잃고 차를 사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를 사야할 처지가 되었다고. 이를 산 사람은 영국의 미술품 수집상「애그뉴」씨-『이 그림은 아주 귀하기 때문에 그리고 아름답기 때문에 구입했다』고 말했다. 돈벼락을 맞은「카트렐」부부는 이 그림이 15년전에 죽은 아저씨가 물려준 것이라면서 그러나 돈은 대부분 학교에 기부하겠다고. 한편 이 그림소동은 거래자체 뿐아니라 보도진사이에도 말썽을 빚었는데 제일 먼저 정보를 입수한 BBC-TV가 잽싸게「카트렐」부부를 납치하는 통에 다른 기자들이 골탕을 먹었다고. [선데이서울 69년 12/21 제2권 51호 통권 제 65호]
  • [깔깔깔]

    ●질투 유명한 배우가 기차여행을 하는데 중년 여자 둘이 그를 알아보고는 수다를 떨면서 귀찮게 구는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지겨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었다. 때마침 기차가 터널 속으로 들어갔는데 전등이 켜지지 않아 캄캄했다. 그 참을 이용해 그는 손등을 입에 대고 요란스럽게 키스하는 소리를 냈다. 열차가 터널에서 나왔을 때 두 여자는 말도 없이 쌀쌀한 표정으로 서로 노려보고 있었다. ●칼국수 집 동네 분식집에서 칼국수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주방장을 겸하는 텁수룩한 주인 아저씨가 칼국수를 들고 왔다. 아저씨는 엄지손가락을 칼국수 국물 안쪽에 잠수시키고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 그릇을 받치는 자세로 칼국수를 들고 왔다. “아저씨… 그 손가락!” 나의 지적에 아저씨가 씩 웃으며, “응, 괘안타. 안 뜨겁다.”
  • [길섶에서] 땡볕과 그늘/이목희 논설위원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이었던 듯싶다. 아침에 등교하는데 교문 앞에 ‘오늘 휴교함’이라는 푯말이 있었다.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것을 기념해 하루 쉰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돌연한 휴일이 무척 기뻤다. 햇볕이 쨍쨍하고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한 친구가 천호동 강가로 놀러가자는 제안을 했다. 같은 서울이었지만 버스를 타고 1시간 이상 가야 하는 곳이었다. 네댓명이 작당해서 집에도 알리지 않은 채 강으로 향했다. 삼각팬티 차림으로 얕은 물에서 장난칠 때는 좋았다. 헤엄을 잘 치는 친구를 따라 조금 깊은 곳으로 들어선 순간 바닥의 뻘이 다리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코와 입으로 강물이 마구 들어오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른들이 달려 왔고, 구조된 나는 강둑에 눕혀졌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얼마나 야속했는지…. 노래진 하늘색이 좀처럼 제 색깔로 돌아오지 않았다. 한 아저씨가 가까운 자기 집으로 나를 데려 갔다. 땡볕과 그늘의 차이를 그때 확실히 알았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그늘과 아저씨의 고마움이 다시 생각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100년만의 귀향 항일 허위가문 후손들] (중) 이국 망명생활

    [100년만의 귀향 항일 허위가문 후손들] (중) 이국 망명생활

    의병장 왕산 허위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한 뒤 더 이상 집성촌인 구미에 모여살 수 없었던 왕산의 일가와 후손들은 짐을 싸서 만주로 야반도주를 했다. 만주도 안전하지는 않았다. 왕산의 후손의 목에는 신고보상금이 걸려 있었다. 일본 순사가 눈치챘다는 말이 들리면 자다가도 일어나 국경을 넘어야 했다. 고향을 떠난 뒤부터 그들의 삶은 격동의 시대만큼 흔들렸다. ●술마시면 독립운동 얘기하던 허금숙씨 아버지 왕산의 바로 위 형인 성산 허겸은 만주에 정착했다. 쫓기는 와중에도 허겸은 만주에 조선어 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에서 성산의 아들이며 이번에 귀화한 허금숙씨의 아버지인 허선(1987년 사망)씨도 배웠지만, 상급학교에 다닐 수는 없었다. 허선씨는 배운 게 없으니 헤이룽장성에서 평생 소작농으로 일했다.14살 때 허선씨에게 시집온 어머니는 어렸을 때 친어머니를 여의고 만주 등지에서 생활해서인지 솜씨가 야물었다. 허금숙씨는 어머니가 장아찌와 김치를 담가 일년내 가족들의 반찬을 댔다고 회상했다. 지금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더 짜고 덜 매운 음식이었다. 아버지 허선씨는 말이 없으셨지만, 힘이 장사였다. 친구들과 술이라도 마시면 아버지인 성산보다는 삼촌인 왕산 얘기를 꺼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왜군들에게 호통치며 취조에 응했던 이야기, 의병활동을 하면서 썼던 격문…. 술자리에서 나오던 집안 얘기가 뚝 끊긴 것은 1966년 중국에 문화대혁명 바람이 분 뒤부터다. 아버지가 어딘가 끌려갔다 온 뒤부터 큰 소리로 집안 얘기를 하지 못했다. 그 때만 해도 남조선이라고 부르던 고국은 중국의 최대 적국이고, 독립운동 얘기는 금기가 됐다. 할아버지 허겸은 일본 국적의 호적을 만들 수 없다며 아버지 허선씨를 낳은 뒤 이름을 관청에 등록하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피해를 감수해야 했던 것처럼 장녀인 허금숙씨도 동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했다. 그는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인 소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다.3남3녀 중 다른 동생들은 덕분에 상급학교에 진학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 대해 다시 말할 수 있게 됐지만, 아버지는 서울올림픽이 열린 바로 전 해에 사망했다. 허금숙씨의 어머니도 한국땅을 밟지 못하고 1997년에 숨을 거뒀다. 경상도 출신인 어머니는 “집앞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지금도 그대로일지….”라며 궁금해했었다. 허금숙씨의 한국말은 철저하게 부모의 말투 그대로다.“‘나라말’을 잊어버리면 정신을 잃게 된다.”는 아버지의 경상도 말씨를 집안에서는 꼭 써야 했기 때문이다. ●광복되자 고국으로 보내달라고 스탈린에게 편지썼던 아버지 허국 허위의 직계 후손들은 주로 구 소련 땅으로 도주했다. 허위의 4남 허국의 아들로 이번에 귀화한 허게오르기씨와 블라디슬라브씨는 한국말을 쓸 수 없었다. 쫓는 일제의 눈길이 무서워 부러 집안에서도 러시아말을 쓰게 했다. 허국(1971년 사망)씨는 만주 군경을 피해 연해주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가족들과 함께 떠나야 했다. 기개가 대단했던 허국씨는 고국에 돌려 보내달라고 직접 스탈린에게 편지를 썼다. 나갈 수 있다는 예상 밖의 답장이 왔다. 하지만 나가고 싶다고 한 의도가 뭔지, 당국이 캐고 있다는 말을 지인에게 전해듣고 그날로 허국씨는 가족들과 함께 고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방으로 야반도주를 했다. 정착한 곳이 키르기스스탄이다. 험한 일을 해보지 않았던 허국씨는 여기에서 소작농으로 일하며 육체노동을 했다. 하지만 곧 십장으로·반장으로 직위가 올랐고, 감독일을 맡게 됐다. 교육열이 유달리 강했던 허국씨는 자녀들에게 엄했다. 게오르기씨를 비롯한 자녀들을 모두 대학교육까지 시켰다. 허게오르기씨가 20대 중반이 되던 1971년까지 허국씨가 살았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지는 않다. 머리가 큰 뒤부터 기숙학교에 다녔고, 여름에만 잠시 집에 돌아와 생활했던 탓이다. 허게오르기씨는 고려인과, 허블라디슬라브씨는 연구소 동료이던 러시아 여성과 결혼을 했다. 이들도 동·서 화해무드가 조성되던 1980년대 후반까지 한국에 대해 자유롭게 알아보지 못했다. 김일성대학을 나와 모스크바대 교수를 하는 아저씨뻘 되는 친척과는 연락을 했지만, 남한과는 소통하지 못했다.1988년 텔레비전을 통해 서울을 처음 봤을 때는 충격을 받았다. 소수민족의 비애는 구소련이 해체된 뒤 찾아왔다. 자국민 우선정책을 쓴다며 둘다 직장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일제를 피해다니던 아버지가 이주정책 때문에 다시 쫓겨가 소작농부터 시작한 것처럼 형제도 소작농과 트럭운전사로 일해야 했다. ●만주서 귀국한 허벽씨가 귀화에 도움 줘 왕산의 친척 허벽씨는 이들과는 다르게 광복 직전 만주에서 귀국했다. 허벽씨가 갖고 있던 허씨 일가 사진이 이번에 허게오르기씨 등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40년 전에 찍은 사진을 필름까지 갖고 있었던 이유에 대해 그는 “아버지가 만주에서 도망을 다니느라 사진을 한장도 찍지 않았다. 영정사진으로 쓸 사진 한장 없는 게 한이 맺혀서 중학교 때부터 사진을 배웠다.”고 말했다. 허벽씨는 “한국에 살면서 내가 가장 힘든 시대를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이국에서 온 친척들 모두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시대에 희생당하며 살았다.”면서 “낯선 고국에 돌아온 이들이 어떻게 다시 정착하고 살아갈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19세의 의붓딸 때문에 - Q여사에게 물어보셔요(54)

    39세의 남성입니다. 초혼에 실패하고 방랑생활을 하던 중 36세가 되던 해 3월에 지금의 아내와 알게 되어 여태까지 동거하고 있읍니다. 아내에게는 전 남편 소생이 2女 뿐인 줄 알고 있었는데 동거 2개월만에 다른 곳에 나가 있던 19세짜리 장녀가 들어와 아내와 나 사이를 떼어 놓으려고 야단입니다.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않고「아저씨」가 아니면「그사람」이라고 밉상을 부립니다. 소생으로서는 의지할 곳 조차 없으며 동기간도 없읍니다. 지금의 아내와 알게된 뒤부터 고독하고 외로운 마음을 다바쳐 서로 의지하며 사랑하고 있읍니다. 아내와 나는 결혼신고도 정리되어 있는 부부사이며 아내는 남의 가정부 노릇까지 해가며 나의 성공을 밀어주며 행복한 장래를 꿈꾸고 있읍니다. 그러나 딸들 성화에 우리 내외는 헤어져야 할지 어쩔줄 모르고 있읍니다. (서울 임(林)) [의견] 남자친구 생기면 달라져 40이나 된 남자분이 무척 의지도 약하시군요. 19세밖에 안되는 처녀애의 등쌀에 정당한 부부가 헤어지다니 말이 되겠읍니까. 19세쯤이면 어머니의 이성관계에 대해서 예민한 나이입니다. 그러나 곧 자기에게도 사랑하는 남성이 생길 것이고 그러고 나면 어머니와 의붓아버지의 관계를 어느정도 이해하게 될겁입니다. 그러다가 시집도 가게 되고 하면 모든 일이 무사히 해결될 것이 아닙니까. <Q> [선데이서울 69년 12/14 제2권 50호 통권 제 64호]
  • [28일 TV 하이라이트]

    ●나도야 간다(SBS 오후 8시55분) 다슬이가 조리사 시험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며 행숙은 현수에게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하며 다슬이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던 것을 사과한다. 재필은 보람이를 데리고 가겠다며 경숙의 집 앞에서 행패를 부린다. 행숙은 보증금의 일부를 재필에게 주어서라도 해결하려 하지만 재필은 막무가내다.   ●사이언스(YTN 오후 1시20분) 매년 휴가철에는 바다, 강 어디에 있든지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이럴 때일수록 틈틈이 기상 상태를 체크해서 휴가지 주의사항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매년 발생하고 있는 안전사고에 대비하여 여러 가지 재난경보시스템으로 탐방객이 안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설악산 국립공원을 찾아가 본다.   ●살림의 여왕(EBS 오전 11시5분) 전통이 숨쉬는 소품들로 가득한 오미숙 주부 집으로 찾아가 본다. 단아한 느낌의 전등부터 천연염색으로 자연미를 한껏 살린 커튼까지, 오미숙 주부만의 개성 있는 소품 만들기를 배워본다. 또 `주부생활백서´에서 주부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고풍스러운 느낌의 앤티크인테리어 리폼도 배워본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소화율이 좋은 옥수수는 필수지방산, 비타민E가 다량 함유돼 있어 노화를 막고, 섬유질이 풍부하고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 제격이다. 또한 이뇨작용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지는 옥수수 수염은 지금도 널리 애용되고 있는 민간요법인데, 웰빙 식품인 옥수수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풀어본다.   ●꼭 한번 만나고 싶다(MBC 오후 7시20분) 미진씨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야 했다. 어느날, 아버지 손에 이끌려 새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지만 이복동생들과의 차별 속에서 새어머니의 냉대와 구박을 견뎌야 했고, 더 힘든 건 아버지의 무관심이었다. 어머니의 이름 석자가 유일한 기억인 미진씨는 과연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현숙은 아이 잘 키우고 요리 잘하고 살림도 완벽하게 해내지만, 입이 너무 가볍다는 단점이 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일어난 중년 남녀의 애정행각 사건 목격자인 경비아저씨를 구슬러 어설픈 정보를 얻게 된 현숙은 그들이 누군 지에 대한 궁금증을 감추지 못하다 이혼할 위기에 놓이는데….
  • 방송노출사건 그후 1년… 인디밴드 ‘럭스’ 기지개

    방송노출사건 그후 1년… 인디밴드 ‘럭스’ 기지개

    어차피 변한 건 없어 그 누구도 상관 않겠지 그래도 나 여기서 멈출 순 없어 나의 길을 열어가겠어 나 이렇게 이 땅에 선 채 또 다른 오늘과 싸워 이기겠어 지치지 않아 지금도 이렇게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데 이렇게 우리 함께 하는데 이렇게 같이 걸어왔는데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난 절대 변치 않겠어 -지금부터 끝까지(럭스) 펑크 뮤지션은 가볍고, 장난스럽기만 한 것일까. 함께 음악 하는 사람들은 그를 진지하고, 차분하면서 이성적이라고 평가한다. 예술적 감수성이 짙다는 말도 덧붙인다. 지난 20일 만나보니 수줍고, 여리다는 말을 보태고 싶어졌다. 펑크 밴드 럭스(Rux)의 리더 원종희(26)의 이야기다. 럭스라는 말에 지난해 7월 말을 떠올리는 이가 많을 게다. 사상 초유의 생방송 노출 사고가 세상을 흔들었다. 럭스가 직접 ‘벗은’ 건 아니지만, 이들을 포함해 인디 문화 전체가 싸잡아 손가락질 당했다. 우발적인 일이었다고 강조하면서도 원종희는, 럭스를 피해자로 여기지 않았다.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 가운데 하나로 책임을 절감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존경하는 선후배, 동료와 럭스를 응원하던 사람들에게 누를 끼쳤다고 돌이켰다. 듀스를 좋아하던 중학교 2학년 때 친구 권유로 밴드를 시작했다. 처음 함께 했던 동료들은 떠났지만 그는 만 10년이 넘는 한국 펑크 역사와 함께 자라났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순식간에 앨범 작업을 하고 갈 정도로 음악에 빠져들었다. 크라잉 넛이나 노브레인처럼 처음부터 도드라진 것은 아니다. 크고 작은 작업을 거쳐 2004년 여름에야 ‘우린 어디로 가는가’라는 제대로 된 음반을 냈다. 사회 비판과 철학적인 메시지에, 꾸밈 없는 펑크 사운드를 담으며 인디신에서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다. 한 평론가는 작사·작곡을 도맡은 원종희를 2000년대 송라이터로 추켜세웠다. 정작 자신은 거창한 평가라며 손을 내젓는다. 그런 이야기가 힘이 되지만 막막한 점도 있다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곡을 만들고, 가사를 써야 할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음악은 자신에게 ‘훈장’이 아닌 게임 같은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라고 했다. 펑크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약자, 가난하고 없는 자 편에서 노래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열악한 처지에 있는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동료 밴드를 위해 힘내라는 노래를 불렀다. 한 두 사람 앞이라도 사명감 있게 음악을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낮엔 일하고, 밤에 연주하는 생활을 하다보니 낮은 곳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떡볶이집 아주머니나 청소부 아저씨나 별 볼 일 없어 보이지만 이들이 있기에 사회가 돌아가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바로 이들에게서 자부심을 끌어내고자 하는 게 원종희의 소박한 바람이다. 초등학교 때 미국에서 3년여 머물렀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얼굴 색깔이 다르다고, 영어가 서투르다고 무시당했다. 한국인이지만 미국인이 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났다. 우리를 둘러싼 모순을, 억압을 싸워서 깨고 싶었다. 그는 펑크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30대 초반 부부가 끝까지 라이브를 지켜보고 사인을 요청했던 지난해 단독 공연을 기억한다. 중년 아저씨가 우연히 펑크 클럽 스컹크 헬에 들러 공연을 즐기고 갔던 때를 기억한다.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사고 이후 덮어놓고 말하지 않는 심정을 주변에서 이해해 주기만 바랐으나, 이젠 달라져야 겠다는 생각이다. 굳이 애써 감추지 않고 ‘내 길’을 가겠다고 눈을 빛냈다. 럭스가 다시 기지개를 켠다. 새달 5일 홍대 인근 롤링홀에서 결성 이후 두 번째 단독 공연을 갖는다. 일주일 뒤 일본으로 건너가 빅럼블 무대에서 일본 노장 로커빌리 밴드들과 어우러져 조선 펑크를 선사한다.9월에는 광명음악밸리축제 등 큼직한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음악이) 죽을 때까지 보람 있고 재미있다면 꽤 괜찮은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서울의 문화재(16)] 옛 신촌역사

    [서울의 문화재(16)] 옛 신촌역사

    서울에 남아 있는 기차역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은 어디일까.1920년 12월 지어진 신촌역이다. 이 역은 서울역보다도 5년 먼저 지어졌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하지만 이 가운데 그동안 이곳이 서울시에서 가장 오래된 기차역이란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실제로 몇 년전까지 신촌역에서 기차를 타고 MT를 떠나던 대학생 새내기들도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서울역보다 5년 먼저 지어져 신촌역사는 2004년 철거 논란에 휩싸였다. 그 자리에 새 민자역사를 짓기 위해 허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용선 신촌역장은 “당시 임대료에서 오는 수익 등을 위해 민자역사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근대문화유산보존회 등 시민단체들이 철거를 적극 반대했고 이 여론을 근대 문화재위원들이 받아들여 2004년 12월 31일 등록문화재 136호로 지정되면서 간신히 철거 위기를 모면했다. 특히 이 기차역은 얼마전까지 대학생들의 MT 출발 장소로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의 장소로 남아 있어 철거 논란이 불거졌을 때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16일 신촌역을 방문했다. 이미 구 역사 뒤에 3층 높이의 최신식 건물이 들어섰고 옛날 역 건물 왼편에 9층 높이의 쇼핑몰이 완공돼 있었다. 쇼핑몰은 오는 9월에 개장할 예정이다. 또 옛날 건물 가운데 왼쪽 부분인 역무실은 허물어진 뒤 새 민자역 건물로 들어가는 출입구를 만드는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구 역 건물 오른쪽 인근 상가들도 허물어져 빈터가 돼 시민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이 역장은 “손님들이 기다리던 옛날 역 건물의 대합실만 상징적으로 남겨놓고 왼쪽에 있던 역무실은 건물 오른쪽으로 옮길 예정”이라면서 “원래 역무실이 있던 자리엔 신 역사 건물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공사판이어서 어지러운 분위기였다. ●지금은 최신식 기차역으로 탈바꿈 간이 출입구를 통해 새 민자역 건물로 들어갔다. 냉방 시설이 잘 갖춰져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원했다. 실내는 새 건물답게 무척 쾌적해 손님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옛 기차역의 소박한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박남숙 신촌역 운영과장은 “2004년 4월 교외선이 끊기기 전까지만 해도 여름철 이맘때면 송추와 장흥에 있는 유원지로 가는 초등학교와 유치원 팀들이 매일 1∼2팀씩 있었다.”면서 “구 역 건물 앞 귀여운 아이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3칸짜리 열차가 달리던 교외선은 적자가 쌓여 결국 멈추게 됐고 그때부터 신촌 기차역은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 신촌 기차역은 의류 가게와 커피집이 즐비한 이화여대 정문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물론 주변의 화려함과 잘 어울리지 않지만 옛날 신촌역 건물은 무척 다정다감한 느낌을 주었다고 한다. 5년 동안 기차역 건물 앞에서 주차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조정화(54)씨는 “새 학기 초 설렘에 가득찬 대학생 새내기들이 MT를 떠나는 모습과 휴가를 마치고 자대에 복귀하는 군인 아저씨가 졸고 있는 모습은 새 민자역 건물보다 옛날 역 건물과 훨씬 더 잘 어울렸다.”고 말했다.30년 넘게 기차역 주변에 사는 김호곤(64)씨는 “80년대엔 이곳에서 새벽마다 보따리 장사들이 손님들이 더 많이 오가는 자리를 잡기 위해 서로 밀치고 당기는 진풍경이 벌어졌었다.”면서 “새 쇼핑몰 건물보다 보따리 장사들이 더 정겹게 보이는 걸 당시엔 몰랐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또 이화여대 졸업생인 조재인(35)씨는 “첫 MT때 ‘Y대 경영학과’라는 깃발을 흔들며 반을 통솔하던 사람과 인파속에서 어렵게 만나 사랑을 하고, 그 사람이 군대가는 것을 이곳에서 배웅했던 생각이 난다.”면서 “이대 정문 앞 굴다리도 없어져 ‘기차꼬리를 밟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는 정말 전설로 남아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서울시내 몇곳 안남은 1920년대 건물 한국예술종합학교 우동선 교수는 “구 신촌역 건물은 1906년 개통된 경의선에 부속된 철도역 건물로 서울시에 얼마 남지 않은 1920년대 건물이고 도시사적인 의미도 있다.”면서 “1970∼80년대 대학생들이 서울 서쪽 교외로 가는 중요한 역으로 기억하고 있는 만큼 문화재로 보존되게 되어 다행이다.”고 말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시네드라이브] ‘한반도’ 속엔 허탈함만이…

    [시네드라이브] ‘한반도’ 속엔 허탈함만이…

    우선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해야겠다. 복잡한 세상만사 자판 위에서 요리하는 대단한 글이라서가 아니다.‘주관적’이어서다. 얘깃거리는 너무도 공허한 강우석의 영화 ‘한반도’이다. 허구의 평범한 인물 내세우기는 사회적 역사적 이슈를 다루는 영화가 흔히 쓰는 방법이다. 이유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시대를 압축해 전달하려면 자유롭게 창작한 캐릭터가 필요하고, 이왕이면 이웃집 아저씨·아줌마 같아야 보는 사람도 쉽게 몰입할 수 있다. 그렇다고 숫제 ‘가짜 놀음’이란 뜻은 아닐게다.‘김영호’(설경구)라는 인물로 한국 현대사 20년을 정리한 ‘박하사탕’을, 우리는 ‘리얼리즘 영화’라 부른다. 긴박감이 넘칠 것 같던 ‘한반도’는 그러기에 공허하고 허탈하다. 캐릭터와 스토리를 창조하는 수고로움을 싹 치워버리고 대통령·총리 등 권력자들을 전면에 노출시켜 직접 발언케 하는 편안함을 택했다. 그 순간 ‘한반도’는 이미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에어포스 원’의 길로 접어들었다. ‘직설화법’이란 세간의 평도 점잖키 그지없다. 솔직히 처음부터 끝까지 들이대는 김흥국의 개그같다.‘한놈만 팬다.’는 각오로 일본을 악의 화신으로 묘사하는 것이나,‘동네북’ 수준인 노무현 대통령마저 꿋꿋이 지키고 있는 ‘코드인사’ 하나 못해 총리한테 배신당하는 대통령이나, 반전을 위해 정부 청사를 폭파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국방장관’과 ‘국가정보원장’이라던가…. 한마디로 참담하다. 압권은 고종과 대통령을 교차편집하면서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차이를 ‘제로’로 만드는 대목이다. 갑자기 밀려드는 이 ‘관습헌법’의 압박도 개운치 않다. 그래서 ‘한반도’ 도입부에 나오는 최민재 박사의 분노는 고스란히 ‘한반도’의 몫이다. 최 박사는 ‘명성황후’를 ‘이미연’으로 기억하면서 키득대는 ‘교양없는’ 아줌마들에게 분노한다. 마찬가지로 영화 ‘한반도’가 한·일관계에 대한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면, 똑같은 분노를 받아야 한다. 아니 더 심한 분노가 필요하다. 단적으로 한·일관계를 ‘한반도’식으로 기억하게 하는 ‘교양없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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