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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깔깔깔]

    ●당장 빼세요! 한 아파트에서 심야에 못박는 사람이 있어서 옆집 아저씨가 경비실에 전화를 했다. “경비 아저씨! 옆집에서 못 박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겠어요. 방송을 해서 그만두게 하세요.” 전화를 받은 경비 아저씨가 한밤중에 방송을 했다. “아, 지금 박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요, 박지 말고 당장 빼세요.” ●특급열차 호화롭게 살아온 한 남자가 사업이 부도나자 자살을 결심했다. 그는 철길 옆에 앉아 양주를 한 병 비운 뒤 회한에 잠겼다. 그렇게 회한에 잠겨 있는 동안 몇대의 화물열차가 지나갔다. 아까부터 남자의 수상한 행동을 지켜보던 농부가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보시오, 이왕 죽을 바엔 빨리 죽지 왜 그렇게 뜸을 들이는 거요?” 그러자 자존심이 상한 남자가 농부에게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난 특급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거라고요!”
  • 중견 만화가들 한국 만화의 역사와 미래를 말하다

    중견 만화가들 한국 만화의 역사와 미래를 말하다

    한국 만화 100주년이다. 일반적으로 1909년 6월2일 대한민보 창간호 1면에 실린 이도영 화백의 시사만화를 한국 근대 만화의 출발점으로 본다. 한국 만화는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100년을 향한 도약을 꿈꾸고 있다. 관련행사도 다채롭게 열린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호흡하며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왔던 김동화(59) 화백, 이희재(57) 화백, 박재동(56) 화백이 지난 20일 남산 자락의 서울애니메이션 센터 인근 찻집에서 한국 만화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만화는 무엇인가. 김동화 만화는 간식이다. 안 먹어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만화는 새로운 면을 보여주며 생활을 즐겁고 윤택하게 만든다. 이희재 영양가 있는 간식이면 더욱 좋겠지. 작가 입장에서 보면 그리는 대상이 무엇이든 친철하고 쉽게 표현하는 게 쉽지 않다. 만만하고 쉬운 것 같지만 노하우와 내공이 있어야 한다. 박재동 그림과 시와 연출 등이 집약된 게 만화다. 예술 양식의 정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폭발력 있게 무엇을 전달할 수 있는 매력적인 방법이다. 작가는 그것을 위해 고통스러운 즐거움을 누린다. 만화는 정말 사랑스러운 매체다. →한국 만화가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닌데. 김동화 내가 가진 한국 만화 이미지는 대체로 회색 풍경이었다. 비바람, 눈보라 등 알록달록한 화려함보다 무채색이다. 사회적 여건이 어려웠다. 사전 검열이 가장 그랬다. 창작하는 사람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을 찾아내야 하는데 검열에 걸리고 수정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이어졌다. 칼을 제대로 그릴 수도 없었고, 찢어지거나 때묻은 군복을 입은 군인을 그려서도 안 됐다. 박재동 어릴 때 부모님이 만화방을 했다. 남들은 만화를 골라서 봤지만 나는 무차별적으로 봤다. 너무 행복했다. 그런데 학교 선생님들은 만화방에 가지 말라고 했고, 학부모들은 만화를 찢어버렸다. 단속 때문에 부모님이 잡혀가기도 했다. 만화는 천시받고 금기시됐다. 또 울며겨자먹기로 재미 없는 책도 사야 할 정도로 독점 자본식 출판사가 횡포를 부렸다. 그런 사회적 편견과 출판사의 횡포가 검열과 함께 우리 만화 발전을 막았다. →지금은 만화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됐나. 김동화 굉장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오해가 많았다. 만화를 보지 않는 세대가 사회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직접 보지 않고 나쁘거나 반사회적이라고 재단했다. 우리는 굉장히 억울했다. 지금도 동시대 작가를 보면 동료라기보다는 전우라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현재는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사회를 이끌어간다. 만화를 봤고, 좋아했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희재 조선 시대 500년 동안 글 중심의 유교적 사고 속에서 살아 왔다. 글을 알아야 현자가 되고 출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림은 가벼운 것이라는 의식이 생겼다. 그림 그리는 사람을 환쟁이로 낮춰 불렀다. 많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500년 관습이 유전자처럼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다. 박재동 과거에는 한글도 천하게 생각해 한글 소설은 불량한 것으로 여긴 적이 있었다. 요즘은 소설을 권장한다. 입시에 나오기 때문이다. 영상 시대인데 글을 우위에 두는 것은 여전한 것 같다. 그렇지만 교과서에 만화가 실리고, 만화학과도 생기다 보니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아마 시험 문제로 만화가 출제되면 더욱 달라질 것 같다. 내가 대학에 갔을 때 어머니는 만화방 아들이 대학에 갔다고 동네방네 소리치셨다(웃음). →한국 만화의 기념비 같은 작품을 꼽는다면. 이희재 각 시대마다 대중들과 호흡한 작품들을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김종래의 ‘엄마 찾아 삼만리’는 1950~1960년대 히트했다. 전쟁 뒤 이산가족이 많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1960년대 김산호의 ‘라이파이’는 우울한 현실을 잊게 하는 환상적인 영웅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1970년대는 이상무의 독고탁이 절대적이었다. 서울 변두리를 무대로 우리들의 동생 같은 주인공을 내세워 당시 정서를 듬뿍 담았다. 1980년대에는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있다. 과거와는 달리 비호 같은 날렵한 템포로 질주하는 까치를 통해 사람들은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1987년 민주화의 물결과 함께 허영만이 한국 최초 이데올로기 만화인 ‘오! 한강’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만화 장르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리고 있다. 김동화 당연한 현상이다. 이제는 콘텐츠 시대다. 즐기는 시대인데 그 중심에 만화가 있다. 글과 그림을 함께 가지고 있는 만화로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영화, 게임도 만들 수 있다. 만화가 뜨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중국이 발표한 5대 국가 사업에 만화와 애니메이션 육성이 들어가 있다. 이희재 문화 시대에는 원천 소스가 중요하다. 1990년대 이후 문화·예술 관련 창작품 한 개가 자동차 10만 대를 파는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 문화의 힘을 알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만화는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투자 대비 파급 효과가 가장 큰 고부가가치의 장르다. 수많은 창작 만화가 나왔을 때 어떤 작품이라도 문화 폭탄이, 문화적 영약이 될 수 있다. →이제 한국 만화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김동화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었던 일본 만화는 1960년대에 문학과 겨뤄보자며 양장에 평론까지 붙인 고급 만화를 내놓기도 했다. 우리는 검열 등 외부 여건과 싸우는 데 시간을 소모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하우와 실력을 쌓았다. 실력으로 따지면 우리 작가들은 세계적이다. 이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좋은 작품을 내놔야 할 때다. 내부 혁명이 있어야 한다.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아동·청소년에게 집중했는데, 이제는 아저씨·아줌마·할아버지·할머니를 위한 작품도 늘려야 한다. 100명의 작가가 있다면 100개의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박재동 100명의 작가, 100개의 이야기는 정말 중요한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주로 만화가가 되는데 나중에 보면 늘 스토리에서 부딪히게 된다. 만화의 본질은 스토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한계를 일찍 드러내게 된다. 이희재 작가들에게 그림은 기본이다. 그런데 그림은 내용을 담는 그릇일 뿐이다. 우리가 먹는 것은 그릇에 담긴 밥이다. 맛있는 만화를 짓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하고 또 창작을 할 때 몰입해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선사할 수 있다. 스토리가 부족하면 좋은 스토리 작가와 협력하면 된다. 예술가는 혼자 하려는 성격이 강하지만 좋은 결과를 위해 만남과 협력의 폭을 넓혀가는 게 필요하다. →창작 만화를 발표할 통로가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동화 예전에는 출판물만 중요하게 여겼지만, 요즘은 인터넷이라는 바다와 같은 잡지가 있다. 만화 독자는 늘었지만 만화 잡지를 사는 독자는 줄었다. 그들은 인터넷으로 만화를 본다. 환경이 변한 것이다. 적극적으로 인터넷을 활용해야 한다. 지금은 적응하는 시기라 힘들지만 곧 극복할 것으로 본다. 이희재 인터넷은 만화시장의 문제이자 해법이다.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진다. 하지만 창작자가 스스로 설 때까지 안전 장치가 필요하다. 독자를 구축하고 성과가 이익으로 돌아와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작가가 전체 5% 정도다. 그 폭을 적어도 20~30%로 늘려야 한다. 창작 인력을 발굴하고, 일선에 오래 머물게 하며 내공을 키워 거인이 될 수 있게 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게 만화계와 정부의 숙제다. →한국 만화의 미래는 어떠한가. 김동화 60억이라는 120배 시장이 있는 세계로 나가야 한다. 일본을 비롯한 세계의 만화 작가들이 한국 만화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역사가 있고, 아픔이 많은 민족이라 필연적으로 만화 왕국이 될 수밖에 없다. 전국에 만화 관련 학과가 140~150개가 있다. 해마다 1000명 정도의 만화 인력이 배출된다. 지금 당장은 일본과 차이가 있겠지만 빠른 시일 내에 만회할 것이다. 박재동 노인들 사랑 이야기를 담은 만화가 등장할 정도로 폭이 넓어졌지만 일본 만화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분도 있다. 나는 미래를 준비하자는 말을 하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찍은 스필버그가 성공한 것처럼, 우리 어린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만화를 그리는 풍토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 그렇게 10년을 키우면 더욱 탄탄해지지 않겠나. 이희재 우리 만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국 만화 100년이지만 우리가 가진 생각을 신명나게 풀어낸 것은 10년 정도밖에 안 됐다. 일제 시대, 권위주의 정부 시절 탄압,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사건에 이르기까지 힘든 과정을 겪었다. 지금은 세계에서 만화를 가장 활발하게 지원하는 나라가 될 정도로 상황이 달라졌다. 가을에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도 출범한다. 이제 만화가들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정리 홍지민 강병철기자 icarus@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김동화 화백 한국형 순정만화의 아버지.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만화 100주년 위원회 공동위원장이다. 대표작으로는 ‘요정 핑크’, ‘기생 이야기’, ‘황톳빛 이야기’, ‘빨간 자전거’ 등이 있다. 부인이 한승원 작가로 만화가 부부다. ●이희재 화백 우리시대 최고의 리얼리스트. 우리만화연대 대표를 지냈으며 한국만화 100주년 위원회 집행위원장이다. 대표작으로 ‘악동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간판스타’, ‘저 하늘에도 슬픔이’ 등이 있다. 소설가 이문열과 ‘만화 삼국지’를 펴내기도 했다. ●박재동 화백 국내 대표 시사만화 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이자 한국만화 100주년 위원회 공동위원장이다. 대표작으로는 ‘목 긴 사나이’, ‘만화 내사랑’, ‘정치야 맛좀 볼텨’ 등이 있다. 애니메이션 ‘오돌또기’를 만들었다.
  • [SPECIAL | 장날] 성남 모란민속장

    [SPECIAL | 장날] 성남 모란민속장

    형형색색의 바구니와 좁은 시장길을 가득 메운 곱슬머리는 성남 모란민속장의 최첨단 유행코드이다. 장날을 맞아 장도 볼 겸 파마를 말아 올린 아주머니들의 머리 위론 울긋불긋 보자기가 씌워져 있다. 좁은 시장길 사이 온통 이른 봄을 마중하는 꽃소식이다. 모란장은 경기도 성남시 대원천 하류에 있는 길이 350여 미터·폭 30미터, 면적 약 3,300여 평 규모의 복개지 위에서 매 4일과 9일, 5일에 한 번 개설되고 있는 5일장이다. 서울 지하철 8호선 모란역에 인접해 있으며 모란지역의 핵심 지역이다. 모란장은 1960년 대 초 현 성남시 수정구 수진2동에 있는 모란예식장 주변을 중심으로 형성,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성남시외버스터미널과 상설 모란시장에 그리고 성남대로변에서 넓게 형성되었다. 지금의 장터는 1990년 9월에 이전하여 상인들과 성남지역 노점상들이 장을 열고 있다. 현재 장터는 매월 4일과 9일을 제외하고는 공영주차장으로 활용된다. 허가된 장터에는 고정된 장자리를 가진 상인회원들이 주로 상행위를 하고, 통행로 주변에는 자리가 없는 노점들이 상행위를 한다. 상설 모란시장 주변 골목에는 소량의 농산물과 모란 시장을 대표하는 개와 가금류 등을 팔러 나온 농민들이나 장돌뱅이들이 자리 잡는다. 장(場)은 동선의 효율성이나 공간의 활용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만들어진 장자리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골골샅샅 이어진 길은 모란장 이곳저곳을 혈관처럼 흐른다. 미로처럼 얽혀 있는 길 사이 자투리 공간에는 어김없이 형형색색의 바구니들이 즐비하다. 바구니 가득 담긴 먹을거리에는 그 물건을 키우고 밤새 다듬어 내놓은 장사꾼들의 정성이 그득하다. 모란민속장의 특징은 시장길 가득 즐비한 형형색색의 바구니들의 거리만큼이나 가까운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 사이의 거리에서 드러난다. 조금이라도 싼 값에 물건을 구입하고 싶은 최신 유행머리의 아주머니들에게 모든 장사꾼들은 이모요, 어머니다. 그 호기 좋은 넉살을 보며 생긋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까닭은 이곳에서만 서로에게 허락된 친밀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호형호제하며 이들 사이에서 곧이어 들리는 다툼. 장사꾼의 말로는 1000원이 부족하고, 아주머니의 말로는 땡전 한 푼 모자람 없으니 그 팽팽한 긴장감이 재미있다. 결국 에누리를 바라는 아주머니의 귀여운 꼼수가 들통 난다. 장보기의 재미를 더 하는 것 중 하나가 먹을거리에 대한 유혹이다. 천막으로 겨우 하늘만 가린 노상에 가마솥을 걸쳐놓고 하루 종일 끓이는 뜨끈한 순댓국은 하루 종일 한데 자리에 앉아 장사를 해야 하는 이들의 허한 속을 달래기에는 그 어떤 음식보다 훌륭한 보양식이다. 장터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장터국수도 빼놓을 순 없다. 시원한 멸치육수에 후루룩 말아 먹는 장터국수는 어릴 적 어머니의 손을 잡고 따라갔던 옛 장날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장터에 나온 뻥튀기 아저씨는 예나 지금이나 인기 만점이다. 뜨겁게 달궈진 뻥튀기 기계 앞에서 올망졸망 앉아있는 아이들은 ‘뻥이요’소리와 함께 알알이 터지는 뻥튀기가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인심 좋은 아저씨가 한 움큼씩 쥐어주는 하얀 뻥튀기는 덤이다. 하루 장사가 모두 끝나면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시간이 멈춰버린 공간, 빈 공간에 남은 건 쉼 없이 드나들던 사람들이 남긴 하루의 흔적뿐이다. 그리고 쓰레기봉투를 호시탐탐 노리는 길고양들이 주인을 자처한다. 하지만 실망하지 말자. 5일장의 묘미는 기다림에 있다. 글 임종관
  • [현장 행정] 구로구 ‘월드카페 톡톡’ 성황

    [현장 행정] 구로구 ‘월드카페 톡톡’ 성황

    “아임 헝그리, 캔유 텔미 웨워 더 베이커리 이즈?(내가 배가 고픈데, 빵집이 어딘지 말해 줄래요?)” 21일 낮 구로구 구로중학교 안의 국제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유창한 영어로 대화를 이어간다. 머리를 긁적이던 40대 아저씨도 연방 즐거운 표정이다. 학창 시절, 영어에 짓눌렸던 압박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자원봉사자의 안내에 따라 함께 어울려 공부하는 재미에 쏙 빠졌기 때문이다. 평생학습도시를 내세운 구로구가 주민들의 외국어 실력 향상에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12일 개관한 ‘월드카페 톡톡’이 화제의 중심이다. 월드카페는 한달 1만원의 실비만 내면 하루 2시간씩 영어 삼매경에 빠질 수 있는 ‘영어 해방구’이다. ●주민 참여형 영어사랑방 165㎡ 공간에 홀 1개와 방 2개로 구성된 카페는 주중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 주말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운영주체는 구청이지만 자원봉사자와 주민들이 만들어 가는 일종의 영어 사랑방이다. 조현옥 교육진흥과장은 “지난해 12월 국제관을 개관한 뒤 외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고민하다 외국어로 대화하는 주민 전용 카페에 생각이 미쳤다.”고 말했다. 월드카페는 프리토킹반과 그룹회원반으로 나뉜다. 프리토킹반은 외국어 회화에 관심이 있고 외국어 기초능력이 있는 구민 및 직장인이 대상이다. 그룹회원반은 5인 이상 10인 이하의 외국어 회화 동호회 및 단체가 참여할 수 있다. 개관 초기라 영어로 과목을 한정했지만, 앞으로 일어와 중국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다문화가정 자녀를 위한 특별반도 구상하고 있다. 구청 평생교육사이트(htttp;//lll.gu ro.go.kr)를 통해 가입한 회원들은 오는 7월까지 1기 학습과정을 이어간다. 수업료는 개인회원은 한 달 1만원, 그룹회원은 3만원이다. 최대 10명이 그룹으로 참여하면, 개인별 수업료는 3000원에 불과하다. ●한 달 수업료 단돈 3000원~1만원 수업방식도 독특하다. 주입식 혹은 토론 일변도의 수업을 벗어나 2시간의 강의가 지루하지 않도록 과정을 배분했다. 원어민 강사와 그룹 리더가 번갈아가며 수업을 진행하는 식이다. 원어민에 버금가는 회화실력을 갖췄거나 현지에서 살다온 주민이 리더로 나서 수업을 보조한다. 당일 수업의 토론 주제는 전날 수업시간에 수강생들이 직접 정한다. 특히 구는 지속적인 영어 사용과 흥미 유지를 위해 ‘피드백 콜서비스’를 실시한다. 희망자에 한해 강의가 있는 날 오후에 원어민 강사가 전화를 통해 강의 내용을 체크해 주는 서비스이다. 수강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주부 신성옥(58·구로3동)씨는 “수십년 전 학교에서 배우던 영어를 다시 회화위주로 배우니 가슴이 뛴다.”며 “계속 실력을 키워 자녀들에게 자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영업자인 김민철(43·구로1동)씨도 “카페를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즐겁다.”고 했다. 현재 참여주민은 120여명이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뽀미언니’ 나경은 아나 “남편 유재석 격려해줘”

    ‘뽀미언니’ 나경은 아나 “남편 유재석 격려해줘”

    ‘새 뽀미언니’가 된 나경은 아나운서가 들뜬 소감을 전했다. 나경은 MBC 아나운서는 오는 25일부터 방송되는 MBC ‘뽀뽀뽀 아이조아’의 진행을 맡아 새로운 ‘뽀미언니’로 나선다. 신현숙 김은주 황선숙 김경화 이하정 아나운서에 이어 제 22대 뽀미언니로 발탁된 나경은 아나운서는 기혼자로서는 처음 뽀미언니로 활약하는 이색 이력을 남기게 됐다. 남편 유재석에게서 “앞으로 바른말 고운 말 많이 쓰라.”는 격려와 응원을 받았다는 나경은 아나운서는 “시청자입장에서 보기만 했던 것들을 직접 접하게 되니,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즐거운 마음을 전했다. 1981년 5월 25일에 첫 방송을 시작한 ‘뽀뽀뽀’와 동갑내기라는 나경은 아나운서는 “첫 방송날짜까지 일치하는 ‘진기한 인연’이 그저 신기하고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경은 아나운서는 “유치원 때 ‘뽀식이 아저씨’가 방문해서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 초등학교 들어가서도 ‘뽀뽀뽀’ 체조를 따라하고 나서 학교에 갈 정도였다.”며 “너무 좋아했던 프로그램을 제가 하게 되다니 감개무량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사진제공=MBC)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결혼’ 김효진 “2세? ‘다산’ 김지선 따라잡겠다”(일문일답)

    ‘결혼’ 김효진 “2세? ‘다산’ 김지선 따라잡겠다”(일문일답)

    개그우먼 김효진이 ‘5월의 신부’가 되는 설레는 감정을 드러냈다. 김효진은 22일 오후 6시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에서 한 살 연하의 신랑 조재만 씨와 화촉을 밝혔다. 이날 김효진은 결혼식 직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신랑과의 첫 만남, 결혼 하루 전날 프러포즈 받게 된 사연 등을 소개하며 시종일관 수줍은 미소를 띠었다. 6년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김효진은 2003년 MBC 시트콤 ‘논스톱3’ 종영 후 출연진과 함께 다녀온 MT에서 예비신랑을 처음 만나 지금까지 사랑을 키워왔다. 김효진 조재만 커플의 결혼식은 교회 예배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24일 인도네시아 휴양섬 롬복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서울 상도동에 신접살림을 차릴 예정이다. 다음은 기자회견 일문일답 -결혼식 실감이 나는지 솔직히 미용실에 도착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웨딩드레스 입고 베일을 쓰니까 실감이 난다. 이 순간 긴장이 되면서 실감난다. -지금 모습을 보고 신랑이 뭐라고 했는가 신랑이 내 모습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너무 예뻐졌다고 했다. 하지만 본인도 꾸미느라 나한테 신경을 덜 쓰는 것 같았다.(웃음) -예비신랑을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됐는지 제가 예전에 MBC ‘논스톱’에 출연했었다. 시트콤이 끝나면서 배우들과 정말 정들어서 헤어지기 아쉬웠다. 제가 주도해서 동생들과 1박2일 MT를 다녀왔다. 그때 당시 우리가 머물렀던 펜션 주인 아주머니 아저씨가 오늘날 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됐다. 당시 남자친구가 부모님 일을 도와주러 펜션에 왔다가 저랑 눈이 맞았다.(웃음) -예비신랑의 매력은 일단 제 눈에는 정말 잘 생겨 보이고 소중하다. 진짜 훈남이라고 생각한다. 신랑의 얼굴을 보신 분들이 다들 잘 생겼다고, 저한테 시집 잘 간다고 하셨다.(웃음) -프러포즈는 받았는지 결혼식 바로 전날인 어제 급하게 받았다. 제가 평소에 지중해가 좋다고 했더니 그걸 기억하고 신랑이 지중해풍 레스토랑에서 이벤트를 열어줬다. 결혼반지는 예물로 이미 받았기 때문에 어제는 팔찌랑 발찌를 선물 받았다. 신랑이 팔찌는 수갑, 발찌는 족쇄의 의미로 평생 신랑에게 구속된 걸로 생각하라면서 예쁘게 잘 살자고 얘기했다. 프러포즈에 감동 받아서 눈물을 흘렸는데 신랑도 같이 울었다. -남편이 한 살 연하인데 사로잡은 비결은 요즘 한 살 연하는 연하 축에도 안 들어간다. 비결이라기 보다는 저의 귀여움 사랑스러움 생활력이 아닐까 한다. -궁합은 봤는지 6년 동안 잘 지냈다는 게 궁합이 잘 맞는 거라고 생각한다. 제 결혼이 노처녀 분들에게 희망을 드렸으면 좋겠다. -결혼에 골인하게 된 뚜렷한 계기는 남자친구를 계속 만나면서 평생 믿고 의지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서 결혼을 하게 됐다. 6년 동안 저를 한결 같이 사랑해주고 아껴주었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 누가 저를 이렇게 한결 같이 사랑해 주겠는가.(웃음) -며칠 전 웨딩화보가 공개됐는데 그날 서장훈 오정연 커플의 웨딩화보가 같이 공개돼서 관심을 반반 받은 것 같다.(웃음) 사실 그 사진은 조작이 많이 돼서 예쁘게 나왔다.(웃음) -혼전임신은 아닌지 많이들 묻어오신다. 아무래도 제가 나이가 있어서 그러길 바라시면서 물으시는데 아쉽게도 저는 홀몸이다. 결혼하고 6개월 정도는 신혼생활을 느낀 후 2세 계획을 할 예정이다. 기본 옵션으로 저는 2명을 낳아 국가적으로 도움을 드리고 싶다. 물론 그 이상을 낳고도 싶다. 김지선 선배를 따라잡기 위해서 노력하겠다. 나에게 기를 달라 -부케는 누가 받게 되는가 개그우먼 전영미 선배가 받기로 10년 전부터 약속했다. 저보다 나이가 위신데 아직 남자친구가 없다. -축의금은 누가 가장 많이 낼 것 같은지 제가 그동안 축의금을 많이 뿌려서 오늘은 거둬들이는 날이다. 기대치가 아주 높다. 특히 서경석이 오늘 방송 녹화 때문에 못 온다고 두둑하게 축의금을 낸다고 했다. 기대하고 있다. 김진수 조혜련 이윤석 개그맨 동료들의 축의금이 기대된다. 특히 박명수 선배는 제가 본인 결혼식에 냈던 축의금에 10만원을 더 넣어주겠다고 했다. 기대된다. -남편에게 하고 싶은말 자기야 나랑 결혼해 줘서 고맙고 6년 동안 잘 지내 온 것처럼 알콩달콩하고 재밌게 매 순간 즐기면서 살자. 항상 감사하면서 부모님들께 효도하면서 잘 지내자.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 / 사진=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TV돋보기] 돌아온 아저씨 아줌마 예능인을 위한 충고

    [TV돋보기] 돌아온 아저씨 아줌마 예능인을 위한 충고

    돌아온 아저씨 아줌마들이여, 보따리를 좀 천천히 풀어 놓으시라! - 사담(私談) 방송의 막장에 등장한 중견 연예인들을 위한 충고 - 언제부터인가 예능 프로그램은 연예인 사담(私談) 방송이라고 불린다. 연예인들이 자신의 경험담이나 신변잡기를 잔뜩 늘어놓는 것이 내용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돌아온 고수 최양락이 예능을 두고, ‘술만 없는 술자리’라고 한 것은 괜한 얘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사담 방송이 누워서 떡 먹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얼마나 재미있는 사담이냐를 두고 서로 경쟁을 해서 그렇다. 출연한 연예인은 연예인끼리, 예능 프로그램은 프로그램끼리 서로 다툰다. 연예인들이 느끼는 부담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랜만에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민 중견 탤런트 김예분이 자신이 들은 얘기를 경험담으로 둔갑시키는 자충수를 뒀던 것이 좋은 예다. 지난달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현영도 비슷한 예를 남긴 바 있다. 연예인간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몇몇은 은근히 언론의 특종 경쟁을 부추기기도 했다. 사담을 하기 전에, ‘이 방송에서 처음 얘기하는 겁니다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이다. 그러면 어김없이 이튿날 인터넷 언론과 스포츠지가 그 말을 대서특필하곤 한다. 관련 검색어가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한다. 연예인과 예능 프로그램은 관심을 끌어 좋다. 언론이나 포털 사이트 역시 장사가 잘 돼 나쁠 것이 없다. 사담 방송은 이렇게 관련 당사자들의 이해에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의 대세가 돼 버렸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점차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시청자들이다. 이들은 각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이 비슷비슷한 경험담과 신변잡기만을 반복해서 내보낸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영화배우들이 영화 홍보 차 지상파 3사의 예능 프로그램을 순회할 무렵 그 폐해는 극에 달한다. ◆ 오빠와 언니가 돌아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예능 프로그램 주역의 세대교체는 이런 흐름과 맞물려 있었다. 현재 인기 있는 개그맨들은 입담이 약하고, 아나운서들은 지나치게 엄숙하다. 간간히 얼굴을 내미는 영화배우들은 영화 홍보에만 열을 올린다. 이 때 등장한 부류들이 텔레비전 황금 시간대에서 좀처럼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중견 연예인들이었다. 전성기를 지난 개그맨도 있었고, 연기자들도 있었다. 이들의 미덕은 솔직하고 엉뚱하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새로운 이야기와 신선한 태도 덕에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사실상 신인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실제 신인보다는 훨씬 더 노련했고, 얼굴도 어느 정도는 익숙했다. 캐릭터가 분명한 이승신과 임예진, 독특한 입담의 이한위와 이계인 등이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감초로 떠올랐다. 올드 보이의 뉴 페이스(new face) 효과는 최양락과 이봉원에서 극적인 순간을 맞았다. 이봉원의 예능 프로그램 복귀는 어느 정도 예상돼 왔다. 각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의 안방 마님으로 등극한 박미선이 어느 정도 길을 닦아 놨기 때문이다. 그는 사업만 했다 하면 들어 먹는 남편을 시시때때로 유머의 소재로 구사해왔다. 이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당사자로부터 직접 얘기를 듣고 싶어 했다. 이봉원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여느 개그맨에게서도 찾을 수 없는 대담한 자기 비하와 예상외의 에피소드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반면 최양락의 예능 접수는 예기치 않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봉원의 단짝 친구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갑작스럽게 올해 최고의 예능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아마도 그 핵심에는 최양락의 허를 찌르는 유머 코드와 밀고 당기기식 화법이 있을 것이다. 이봉원과 함께 최양락의 사담은 대부분 실제 일어난 일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남한테 맞은 얘기거나 술에 취해 한 실수 얘기를 하면서 둘 다 거침이 없다. 보통 사람의 일상 그대로다. 최양락은 바로 그런 익숙한 소재를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구사한다. 게다가 오랜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으로 시청자의 호흡을 쥐락펴락 하는 법까지 안다. 이 부분에서 그는 이봉원보다 낫다. 그가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자 자리까지 꿰어 차게 된 것은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 올드 보이의 뉴페이스 효과는 과연 얼마나 지속될까 최양락으로 대표되는 중견 코미디언과 연기자들의 복귀에 대해 언론은 긍정적 분석 일색이다. 당연하다. 천편일률적인 예능 프로그램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연예계 소수 독점 현상을 완화시킬 계기가 돼 줄 수도 있다.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걱정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언론의 환호와 과장과 달리, 이들의 뉴 페이스 효과가 삼일천하로 끝나버릴 수도 있어서다. 물론 이들은 풍부한 경험과 자신만의 캐릭터를 갖고 있다. 신인 연예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내공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흥미진진한 사담이 바닥나, 시청자들이 몇 번이고 같은 얘기를 들어야 한다면? 그들이 워낙 빈번하게 얼굴을 내민 탓에 시청자들이 염증을 내기 시작한다면? 몇몇 중견 연예인들의 경우는 이미 그런 비운을 맞았다. 전원주·최란이 그랬고, 이영하·노주현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생활의 환상을 깨면서 인기를 얻었던 노사연·이무송 부부의 인기도 최근 들어서는 좀 시들해졌다. 물론 이것은 늘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연예계의 생리다. 누구도 이 법칙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오랜 인고의 세월 끝에 예능 프로그램의 주역으로 다시 떠오른 중견 연예인들만은 좀 달랐으면 한다. 한 순간 활짝 피었다 지는 장미보다, 덜 화려하더라도 오래 가는 들꽃이 돼 주었으면 한다. 조형기가 좋은 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디 이야기 보따리를 좀 천천히 풀어놓으시라. 벌써부터 걱정이 돼서 드리는 충고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 말씀 하자면 나는 최양락이 이번 제 3의 전성기를 맞기 전부터 그의 유머 코드와 화법을 사랑해왔다. 그가 진행하는 MBC 라디오 ‘재미있는 라디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2가지 가운데 하나다. (사진출처=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이여영 기자 yiyoyo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길섶에서] 호칭단상/김종면 논설위원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문학세계사 대표 김종해 시인은 지금도 여전히 사장이란 호칭을 듣기 거북해한다. 시인으로 불리는 것이 제일 편하고 좋단다. 번듯한 문학출판사의 사장임에도 왠지 없어 보이는 시인이란 이름을 즐긴다. 호칭의 연성화라고 할까. 최근 어떤 기업은 전 임직원의 직급 대신 성명 뒤에 님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직급호칭 폐지운동을 벌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딱딱한 공식 호칭을 고집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왜 차장이라고 부르지 않고 선배라고 부르냐.”며 후배에게 볼멘소리를 하던 까칠한 신문사 인사도 있었다. 기자사회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호칭인 선배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다니 이쯤 되면 ‘과민성 호칭증후군’이라고 해야 할까. 아줌마, 아저씨라는 호칭도 복권되어야 한다. 언니, 오빠로 불리는 게 더 좋은가. 아줌마, 아저씨가 더 대접해 주는 말임을 왜 모를까. “장가도 안 간 내가 왜 아저씨냐.”라는 후배의 항변에 한마디 해줬다. “이 놈아, 네가 아저씨를 아느냐.” 아저씨는 세상의 눈물이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허수아비와 들쥐/김소연

    [엄마와 읽는 동화] 허수아비와 들쥐/김소연

    너른 들판에 가득 찬 벼 이삭들이 가을바람에 춤을 춥니다. 논 한가운데 서 있는 허수아비의 낡은 저고리도 덩달아 나부낍니다. “허! 그 놈 참 험악하게도 생겼다.” 논두렁을 지나던 이웃 농군들이 허수아비를 보며 흉인지 칭찬인지 한마디씩 던집니다. 농부는 망태 할아범처럼 생긴 허수아비가 여간 마음에 드는 게 아니었어요. 허수아비를 세워 둔 후론 얄미운 참새들이 얼씬도 못했으니까요. “금쪽같은 내 곡식들, 잘 지켜야 한다.” 농부 말에 어깨가 으쓱해진 허수아비가 무서운 얼굴로 고함을 쳤어요. “어떤 놈이든 논가에 얼씬만 해라. 이 허수아비님이 가만 안 둔다!” 가을들판엔 허수아비 빼곤 개미새끼 한 마리 눈에 띄질 않았어요. “내 덕분에 올 해도 풍년이구나.” 허수아비는 한껏 으스댔지만 그 모습을 보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어요. 아침에 한번 농부가 나와 둘러볼 뿐, 하루 종일 허수아비 혼자였지요. 따가운 햇살에 머리가 지끈거려도, 차가운 밤비에 옷이 젖어도 누구하나 얘기 나눌 친구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뒷산에서 들쥐 한 마리가 들판으로 내려왔어요. 벼가 다 익어가니, 겨우내 먹을 쌀을 장만하러 오는 게지요. 들쥐는 허수아비가 서 있는 논 한가운데로 들어왔어요. 잘 익은 벼 이삭 하나를 똑 잘라 물고 나가다 그만 허수아비에게 들키고 말았지요. “웬 놈이 남의 벼를 훔쳐 가느냐!” “아이고 깜짝이야. 간 떨어지겠네.” 천둥 같은 고함소리에 놀란 들쥐가 자리에 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렸어요. “에이, 난 또 뭐라고…. 허수아비잖아.” 들쥐는 허수아비를 보고는 어깨를 한번 으쓱거렸어요. 그리고 놓쳤던 이삭을 입에 물고 제 갈길을 갔어요. “아니, 네 이 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 논에 함부로 들어 온 게냐? 혼구멍이 나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허수아비는 큰소리로 으름장을 놓았어요. 자기를 보고도 놀라기는커녕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들쥐가 괘씸했거든요. 하지만 들쥐는 허수아비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콧방귀를 뀌었어요. “어쩌려고요? 막대 팔로 날 잡으려고요?” “뭐, 뭐라고? 너는 내가 무섭지도 않느냐?” “무서워요? 그 우스꽝스러운 바가지 얼굴이 무서워요? ” 들쥐의 대답에 허수아비가 할 말을 잃었어요. “아저씨, 나는 겁쟁이 참새하고는 달라요. 허수아비가 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요.” 들쥐는 거침없이 말을 이었어요. “아저씨는 그저 속 빈 강정이에요. 저고리 속은 텅 비어가지고 논바닥에 쿡 박혀 꼼짝도 못하는 그야말로 허깨비, 그게 바로 허수아비죠.” ‘속 빈 강정? 허깨비?’ 허수아비는 생전 처음 듣는 말에 화 낼 생각조차 잊어버렸어요. “그럼, 이만. 내일 또 봐요.” 들쥐는 멍하니 서 있는 허수아비를 두고 벼 포기 사이로 유유히 사라져버렸어요. 다음날부터 생쥐는 제 멋대로 들판을 오가며 벼이삭을 물어갔어요. “도둑놈 같으니. 당장 나가지 못 해!” 허수아비는 들쥐를 볼 때마다 고함을 지르며 내쫓으려 했지만 들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요. 보다 못한 허수아비가 들쥐를 나무랐어요. “너는 남이 일 년 내내 공들여 키운 곡식을 허락도 없이 축 내는 게 부끄럽지도 않느냐?” 이 말에 들쥐가 발길을 멈추었어요. “우리 짐승들에겐 이 벼들도 산에서 나는 열매와 다를 게 없는 걸요.” “무슨 소리야? 이 논엔 엄연히 주인이 있는데.” “그거야 사람들끼리 하는 소리지, 어디 이 땅이 생길 때부터 농부 것이었나요?” “그래도 모를 내고 벼를 키운 건 바로 주인 농부라고.” 허수아비는 제가 마치 농부인 양 점잖게 말했어요. “산에 나는 열매는 저절로 큰 줄 아세요? 하늘이랑 바람이랑 산이 서로 도와가며 키운 것이지.” 들쥐는 반들거리는 코를 벌름거리며 대꾸했어요. “따져보면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산에 올라와 마음대로 열매를 따가잖아요. 사람들이 언제 산이나 하늘에 허락받고 가져 간 적 있나요? 지난 봄에는 나무꾼이 다람쥐네 참나무를 통째로 베어갔어요. 하루아침에 집을 빼앗긴 다람쥐 가족이 얼마나 울었는데요.” 들쥐의 말에 허수아비가 입맛을 다셨어요. “다람쥐네 식구들한텐 안 된 일이군.”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허수아비가 조그만 소리로 말했어요. “그래도 너무 많이 물어가진 말아다오. 내 체면도 있으니까.” “그럼요. 저도 염치가 있는데.” 들쥐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어요. 다음날, 벼이삭을 물고 이랑 사이를 지나던 들쥐가 갑자기 허수아비 어깨위로 쪼르르 올라왔어요. “아저씨. 혼자 심심하지 않으세요?” “심심하다니. 난 지금 일하는 중인데.” 허수아비는 두 눈을 부릅뜨고 들판을 살피며 말했어요. ““근데, 며칠 다녀보니까 이 논에는 아저씨 말고는 메뚜기 한 마리도 안보여요.” “그야 당연하지. 너처럼 맹랑한 녀석이면 모를까, 다들 날 무서워하거든.” 들쥐는 잘난 체하는 허수아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어요. “다들 아저씨를 무서워만 하는데, 슬프지 않아요? 친구 하나 없이?” “친구? 그런 것 보단 내 몫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한 법이야.” 허수아비 말에 들쥐가 입을 쌜쭉거렸어요. “피~. 그런 게 어딨어. 아저씨, 그러지 말고 제가 아저씨 친구 할까요?” “친구랍시고 논에 있는 벼 맘 놓고 훔쳐가려고?” 허수아비가 어림도 없다는 듯 눈썹을 추켜세웠어요. “치! 아저씬 벼밖에 몰라.” 들쥐는 혀를 쏙 내밀더니 어깨에서 내려가 버렸어요. 들쥐는 그 후 며칠 더 왔다 갔다 하더니, 이후론 나타나질 않았어요. 허수아비는 벼를 훔쳐가는 들쥐가 사라지자 마음이 놓였어요. 그래도 혼자 심심할 때면 들쥐의 또랑또랑한 눈이 생각났어요. 얼마 후, 추수가 시작되었어요. 농부는 콧노래를 부르며 벼를 거두었어요. 그리고 허수아비를 벼 그루터기 사이에 던져놓고 가버렸어요. 이제 허허벌판엔 허수아비만 덩그러니 남았어요. “가을 내내 고생한 나를 쓸모없어졌다고 내버리다니….” 허수아비는 농부의 야속한 얼굴을 떠올리며 중얼거렸어요. 날은 갈수록 추워졌어요. 허수아비가 쓰던 벙거지는 늦가을 찬바람에 떠밀려 어디론지 날아가 버리고, 저고리도 비바람에 헤져 여기저기 찢겼지요. “이제 겨울이 닥쳐오면 얼어 죽겠지….” 허수아비는 힘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그때, 갑자기 머리 위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아저씨. 여기 누워서 뭐하세요?” 어느 틈에 왔는지, 들쥐가 머리맡에 서서 허수아비를 빠끔히 내려다보고 있질 않겠어요? “아니. 너 여기 웬일이냐?” 허수아비는 반가운 마음에 큰소리로 물었어요. 들쥐는 대답 대신 허수아비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중얼거렸어요. “지나가는 길에 와봤더니…. 농부가 그예 버리고 갔구나!” 그 말에 허수아비는 두 볼이 벌게졌어요. “정말 이렇게 있다간 한 겨울에 얼어 죽겠어요.” “그게 허수아비 운명이라면 할 수 없지.” 허수아비가 체념한 듯 우물거렸어요. “가만있자…, 아! 좋은 생각이 났다.” 들쥐가 논두렁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갔어요. 잠시 후, 볏짚을 잔뜩 물고 온 들쥐는 허수아비 저고리 속으로 쏙 들어갔어요. 들쥐가 저고리 안을 헤집고 다니는 바람에 허수아비는 간지러워 웃음이 터졌어요. “뭐하는 거야? 히히히….” “저고리 속을 짚이랑 마른 풀로 가득 채우면 바람도 막고, 추위에 끄떡없을 거예요.” 이 말에 허수아비는 웃음을 멈추고 멍한 눈으로 들쥐를 쳐다봤어요. 그러자 들쥐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어요. “우린 친구잖아요.” 들쥐는 하루 종일 쏘다니며 마른 풀들을 모아 저고리 속을 채웠어요. 덕분에 저녁노을이 질 무렵, 허수아비는 두툼한 외투를 걸친 것처럼 뚱뚱해졌지요. 들쥐는 손을 흔들며 산으로 돌아갔어요. 밤이 되자 첫 눈이 내렸어요. 밤새 내린 눈은 솜이불처럼 허수아비를 덮어 주었어요. 그래도 저고리 속은 휑하니 찬바람이 가득했어요. 그때였어요. “허수아비 아저씨! 어디 계세요?” 들쥐의 목소리가 눈 쌓인 들판에 울려 퍼졌어요. 허수아비가 서둘러 대답했지요. 들쥐는 허수아비에게 다가와 바가지 얼굴에 덮인 눈을 쓸어냈어요. 허수아비는 들쥐를 보자마자 두 눈이 커다래졌어요. 들쥐는 마치 큰 싸움이라도 한 것 같았어요. 콧등엔 할퀸 자국이 선명하고, 털은 땀과 흙이 범벅인데다 이마에는 멍까지 들었어요. “어떻게 된 거야? 겨우내 집에서 따뜻하게 지낸다더니.” 그 말에 들쥐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어요. “어젯밤, 난데없이 오소리가 쳐들어왔어요. 창고에 가득 채워둔 식량을 빼앗더니, 집까지 부셔버렸어요. 간신히 목숨만 구해 도망쳐 나왔어요.” 들쥐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허수아비를 바라보았어요. “아저씨한테 작별인사 하러 왔어요. 먹을 것도, 집도 잃었으니 이번 겨울은 나기 어려울 거예요. 아저씨 부디 안녕히 계세요.” 들쥐가 힘없이 뒤돌아섰어요. “무슨 소리야? 여기가 네 집인데.” 들쥐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어요. “네? 어디가요?” “어디긴. 바로 내 저고리 안이지. 얼마나 따뜻하고 아늑한데.” 허수아비는 뽐내듯 가슴을 쭉 내밀었어요. “겨울동안 나랑 같이 지내자. 들판엔 농부가 떨어트리고 간 이삭도 제법 있으니 양식 걱정은 말고.” 허수아비가 왼쪽 눈을 찡긋하더니 한마디 덧붙였어요. “어때, 친구?” “아저씨!” 들쥐는 연못에 뛰어드는 개구리처럼 허수아비의 품으로 뛰어들었어요. 그제야 허수아비는 온 몸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답니다. ●작가의 말 힘겹게 농사지은 쌀을 훔쳐가는 들쥐는 얄미운 도둑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사람이야말로 자연의 가장 큰 도둑일지도 몰라요. 사람들은 자연에게 한없이 베풀어 달라고 조르면서 막상 제가 가진 것은 쌀 한 톨도 그냥 내어주지 않으니까요. 곡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눈을 부라리는 허수아비야말로 그걸 세워 둔 사람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요? 혼자서 모든 걸 독차지 하려고 아무에게도 곁을 주지 않는, 그래서 밤낮 홀로 서 있는 허수아비. 그런 허수아비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약력 ▲2004년 단편 ‘행복한 비누’가 샘터문학상 동화부분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등단 ▲2007년 창비가 주관한 좋은 어린이책 공모에서 장편 ‘명혜’가 당선 ▲2008년 창작동화집 ‘꽃신’ 발표 ▲지은 책으로는 ‘명혜’ ‘꽃신’ ‘나불나불 말주머니’ ‘선영이, 그리고 인철이의 경우’등
  • [하프마라톤] “함께라서 외롭지 않아요”…달리기 나눔 바이러스 퍼지다

    [하프마라톤] “함께라서 외롭지 않아요”…달리기 나눔 바이러스 퍼지다

    출발 10분 전. 서울 상암동 월드컵 공원을 가득 메운 인파가 모두 하늘을 올려 보며 “와”하고 함성을 내질렀다. 한 무리의 철새 떼들이 V자 대형을 갖추며 날아가고 있었다. 10㎞코스에 참가 한 최선희(29·여)씨는 “새들도 승리를 기원해 주는 것 같다.”며 설레는 표정으로 상큼하게 발을 내디뎠다. 17일, 올해로 8번째를 맞는 ‘공직자와 함께하는 서울신문 하프마라톤 대회’에는 1만여명의 시민들이 참가해 5월의 신선한 아침 공기를 갈랐다. ●건강 챙기며 업무 능률도 쑥쑥 10㎞에 출전한 대한지적공사 이우성(50) 차장은 출발을 앞두고 준비 운동에 여념이 없었다. 건강을 위해 7년째 마라톤을 하고 있는 이씨는 마라톤으로 건강과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고 자랑했다. 이씨는 “달리는 내내 ‘내가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끝난 뒤의 쾌감은 달려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라고 자랑했다. 이씨와 함께 뛰는 회사 동료들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마라톤 대회에 봉사활동으로 참여해 받는 봉사료를 모아 불우이웃돕기를 하고 장애 어린이를 위한 봉사도 함께 하고 있다. 이씨는 “건강과 사랑을 마라톤으로 실천하고 있다.”며 마라톤 예찬론을 펼쳤다. 이번 대회에 100여명의 직원이 참가한 (주)싸이버로지텍 연대흠(36) 수석은 “회사 창립 기념일이 다음주에 있어 전 직원과 가족들이 함께 나왔다.”면서 “다른 부서 직원들과 교류가 거의 없는데 함께 달리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업무 능력도 향상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신문 마라톤은 짧은 5㎞부터 하프코스까지 있어 어린아이부터 마라톤 마니아까지 참가할 수 있어서 좋다.”고 평가했다. ●장애인·외국인도 함께 축제 한마당 일반인들도 완주가 쉽지 않은 하프코스 출발선에 눈에 띄는 한 남자가 있었다. 4년째 서울신문 마라톤에 참가하고 있는 김황태(33)씨다. 김씨는 2000년 전선가설 작업 도중 고압선에 감전돼 두팔을 잃었지만 마라톤으로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 김씨는 전날에도 다른 하프 마라톤대회를 완주하고 이날 또 하프코스를 완주하는 강철 체력을 뽐냈다. 옆 사람과 노란 끈으로 손목을 묶은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된 ‘VMK한국시각장애인 마라톤 클럽’이었다. 클럽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장호선(55) 부회장은 “비장애인들은 건강을 위해 달리지만 우리들은 편견을 깨기 위해 달린다.”고 말했다. 한·일 시각장애인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그는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 시각장애인들이 달리기에 매우 열악한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그래도 이들을 돕기 위해 모인 봉사단체 ‘해피레그’ 회원들이 있기에 장씨와 시각장애인 회원들은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많은 외국인들도 상암 월드컵공원을 찾았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 영어강사들의 마라톤 동호회인 ‘해방촌 러닝 누즈’(Haebangcheon Running Gnus)의 잉그리드 켈러(25·여)는 “가파른 언덕이 많아 평소 훈련 때보다 많이 힘들었지만 아침 공기가 상쾌해 기분은 어느 때보다 좋았다.”고 전했다. 박성국 오달란기자 psk@seoul.co.kr ■ 영광의 1위 하프 김홍주씨 “20㎞ 매일 뛰어서 출·퇴근” 10㎞ 필동만씨 “작년 2위 아쉬움 털어냈죠” 하프코스 1위를 차지한 김홍주(38)씨의 마라톤 사랑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올해로 6년째 마라톤을 하고 있는 김씨는 매일 경기도 수원 당수동 집에서 탑동까지 10㎞쯤 되는 출·퇴근 거리를 뛰어서 다닌다. 원래 7km쯤 되는 거리지만 일부러 돌아서 가는 것이다. 한겨울만 빼면 비가 와도 매일 20㎞ 이상을 뛰어다니고 있다. 그가 이렇게 유별나게 달리기를 고집하는 것은 자신의 건강보다는 제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 수원의 장애인 특수학교인 자혜학교에서 체육과 직업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김씨는 수업 시간이 아니어도 학생들과 마라톤을 즐겨 한다. 달릴 때는 힘들지만 목표지점까지 도달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을 함께 맛본다. 실제로 같이 달리면서 아이들이 많이 밝아지고 서로 도와 주며 협동심을 키우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마라톤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달리는 내내 아이들을 생각하면 행복하다.”면서 “아이들도 힘든 상황을 참고 이기는 것을 배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김씨는 “내년 대회에는 아이들과 함께 참가해 개인 기록보다는 아이들을 독려하며 함께 결승선을 통과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며 우승 소식을 전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10㎞에서 1등을 차지한 필동만(41)씨는 지난해 체력조절에 실패하면서 2등에 머물러야 했던 아쉬움을 깨끗이 털어 냈다. 필씨는 초반부터 치고 나가 4㎞까지 4~5명의 선수들과 선두 그룹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후 경쟁자들이 처지고 필씨 혼자만 남아 선두를 빼앗기지 않고 우승을 차지했다. 필씨는 “다들 비온 뒤 날씨가 좋았다지만 나는 습도가 높아서 숨쉬기가 벅차 어려웠다.”면서 “하지만 지난해 아깝게 1등을 놓친 아픔이 있기에 필사적으로 달렸다.”며 맨 먼저 테이프를 끊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산업은행 마라톤 동호회·해피레그 청각·시각 장애인들과 손 맞잡고 뛰다 마라톤은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라고들 한다. 그만큼 완주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날 대회에선 혼자가 아닌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산업은행 마라톤 동호회는 자매결연한 삼성농아원의 청각장애 어린이 44명을 초대해 함께 손을 잡고 5㎞코스를 달렸다. 장애 때문에 소극적인 성격의 아이들에게 이번 대회를 통해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연대감을 안겨 준다는 차원에서 의미있는 일이었다. 산업은행 김영범(45) 부부장은 “평소 아이들과 산행은 몇번 했지만 마라톤은 처음이라 힘들어 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면서 “하지만 단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즐거워해 마음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노유진(8·여)양은 상기된 얼굴로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아저씨가 손을 잡아 줘서 끝까지 뛸 수 있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5년째 시각장애인들의 눈이 되어 달리는 ‘해피레그’의 김용열(47) 총무는 100㎞를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한 베테랑이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순위권 근처에도 오르지 못했다. 개인 참가자가 아닌 시각 장애인 참가자의 도우미로 달렸기 때문이다. 그는 “시각 장애인은 보이지 않을 뿐 일상 생활을 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면서 “우리는 달리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만 이들은 볼 수 없기에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해피레그의 회원인 김기욱(45·여)씨는 절대로 봉사활동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우리가 베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볼 수 있기에 모르고 지내는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된다.”고 설명했다. 경기가 끝난 뒤 해피레그 회원들과 시각장애인 클럽의 회원들은 근처 식당에서 조촐한 막걸리 파티를 열어 놓고 밤늦도록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소감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우리 동네 이야기] 다 같이 돌자 차 동네 한 바퀴!

    [우리 동네 이야기] 다 같이 돌자 차 동네 한 바퀴!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김용택, <섬진강> 중에서 지리산 뭉툭한 산허리를 휘감고 도는 섬진강, 씽씽 달리는 승용차보다 털털거리는 경운기 소리가 더 어울리는 고샅길, 숨 한 번 고르고 잠시 쉬었다 가는 깔끄막, 그 언저리에 차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이 있다. 문득 흘러들어온 이방인에게도 따뜻한 차 한 잔 우려 건네는 마음 좋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집집마다 건네는 흔한 차 대접의 호사를 모두 누리려면 미리 배를 든든히 채워 두고 갈 일이다. 하동군 화개면 용강리, 화개장터에서 마을버스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이곳은 신작로를 기준으로 차 시배지와 쌍계사, 용강마을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신라 흥덕왕 3년, 당시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쌍계사 주변에 처음 차를 심은 차 시배지로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시작된 자생차밭은 화개 지역에만 350ha에 이르니 면적만으로 따지면 전남 보성보다 넓다. 지천이 차밭이고, 차밭이 지천인 이곳은 명실상부 차 동네이다. 용강리를 가득 메운 다향삼매에 빠져 길을 걷다보니 어느덧 하루해가 뉘엿뉘엿 저문다. 지리산이 품은 사람들 용강에서의 아침은 등산으로 시작됐다. 아침 산행에 동행한 이는 남난희(52) 씨다. 한때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 산악인으로 명성을 날리며 산을 오르던 그녀는, 지금은 아들과 함께 지리산 화개골에서 차와 된장을 만들며 소박하고 여유롭게 살고 있다. 알피니스트로서의 산이 도전의 대상이었다면, 지금의 산은 자신의 품 안에 생활의 터전을 내준 삶의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산을 버리니 산을 얻었다”는 그녀의 말은 오랜 여운을 남긴다. 산행은 불일평전을 거쳐 불일암과 불일폭포로 이어졌다. 자생차의 고장답게 등산로 주위로 키 작은 차들이 자라고 있다.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지 않은 말 그대로 자생차는 가지를 치지 않아 새순은 얼마 되지 않고 묵은 잎만 커다랗게 잘 자란다고 한다. 불일암에서 108배를 마친 우리는 내려오는 길에 불일산장에 들러 잠시 몸을 쉬었다. 가파른 산비탈에 자리 잡은 불일평전(平田; 높은 곳에 있는 평평한 땅)에는 작은 산장과 함께 돌탑 무더기와 차밭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의 차밭은 30여 년 전 산장을 지은 故 변규하 선생이 조성한 것이다. 지리산의 정기를 머금은 차나무는 군침이 돌기에 충분했다. 남난희 씨는 이곳 차밭에 새순이 올라오면 산을 오르내리는 것도 잊고 하루 종일 찻잎을 따기도 한다. “산의 정기를 받아 자라서인지, 이곳의 차는 서툰 제 솜씨에도 특별한 향과 맛이 다관 안에서 피어납니다.” 남난희 씨의 말이다. 좋은 차밭이 있는 곳에 향기로운 차 한 잔이 빠질 수 있을까. 산장 안에 마련된 작은 다실 겸 서재는 이곳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쉼의 공간이다. 맑은 공기와 함께 향긋한 차 한 잔이라니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차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 좁은 계단식 차밭과 차밭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앉아 있는 집이 사람 사는 동네임을 짐작케 할 뿐, 움직임도 소리도 없다. 산행으로 노곤해진 몸을 잠시 쉴 겸 남난희 씨의 집에서 자연 밥상으로 요기를 하고 그녀가 덖은 차를 맛볼 수 있었다. “처음 차를 덖을 때는 만드는 방법을 몰라 맨땅에 가마솥을 걸고 차를 덖기 시작했어요. 땅에 걸어두었으니 엉거주춤한 자세로 차를 덖었죠. 이마며 등이며 온통 땀이 범벅이고, 뿌연 먼지는 올라오고, 솥은 얇아서 차는 타고 딱 죽을 맛이더라고요. 이놈의 차는 누가 이렇게 만들기 시작했는지 부아가 나기도 했어요. 그래서 솥 밑에 진흙을 덧대기도 하고…, 정말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갖은 고생 끝에 만들어진 차는 제대로 덖이지 않아도 뿌듯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처음 성취했을 때의 뿌듯함, 그것은 차의 질과는 상관없었다. ‘부르릉’ 정적을 깨고 빨간 헬멧을 쓴 우체부 아저씨가 들어온다. 자연스레 찻자리는 세 명이 함께한다. 화개면 토박이인 장영철(44) 씨는 생업인 우편집배원 일 말고 차도 만들고 있다. 자신이 마실거리를 자급자족하는 정도라지만 어릴 적부터 차와 함께 살아온 그에게는 차사랑이 자연스레 묻어난다. 장영철 씨로부터 어릴 적부터 보아온, 지금 그가 만들고 있는 발효차 제다법을 듣는다. “발효차는 세작이 아닌 중작을 이용, 솥에 덖지 않고 찻잎을 햇볕에 말리는 시들리기를 먼저 합니다. 햇볕이 많이 드는 오전 11시경부터 오후 1시경에 말리는데 이때 제대로 시들리지 않으면 찻잎이 청동구리빛(붉은색)이 아닌 뿌옇게 변합니다. 시들리기가 끝나면 바로 멍석에 놓고 비비는데 이때 덖음차보다 더 많이 비비고 털고 말리기를 반복해야 합니다. 이때도 시간에 따라 찻잎의 색이 변하는데 차를 우릴 때 맑은 탕색을 얻기 위해서는 손을 바지런히 움직이고, 차를 털어 말릴 때 찻잎이 포개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모든 과정이 끝나면 자루에 넣어 흙방에 2~3년 동안 숙성시킵니다.” 계곡 바닥 돌 위에 쌓인 가랑잎을 건져 물에 달여 마시기도 했다는 그의 차사랑은 참말 유별나다. 하지만 장영철 씨와 남난희 씨는 자신이 만드는 차의 제다법을 이야기하면서도 조심스럽다. 자칫 자신이 만드는 차가 최고의 차라고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차 동네 사람답게 서로가 서로의 차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투기식으로 이루어지는 차 농사에는 걱정의 말을 더한다. “사람들의 차 관심이 높아지고, 곳곳의 논밭이 차밭으로 바뀌고 있어요. 이곳뿐 아니라 지역 특산물이 성행하고 있는 곳은 모두 마찬가지일 겁니다. 돈이 되는 농사만 선택하게 되니 걱정이에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남난희 씨의 말이다. 장영철 씨는 제대로 된 발효차가 아닌 편법을 이용, 발효차를 만드는 일부 사람들에게 쓴 소리도 한다. “발효차를 만드는 사람들 중 일부는 비닐에 넣어 차를 발효시킨다고 합니다. 그건 발효가 아닌 띄우는 겁니다. 이런 차는 먹었을 때 매스꺼움을 느낍니다. 일부 비양심적인 사람들의 행동이 대다수의 차농들과 우리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남난희 씨의 집을 나와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조용한 마을 분위기와는 달리 회관 안에는 삼삼오오 모인 노인들로 북적인다. 점에 10원 하는 화투놀이가 한창이다. 마을회관은 심심풀이 화투놀이와 함께 주전부리와 담소가 있는 곳이다. 문득 들이닥친 기자는 어느새 점 10원 화투판을 벌이는 마을 어른들을 잡으러 온 경찰이 되었다. 모두 징역 갈지 모른다는 농으로 화답하자 이내 데면데면함은 어데 가고 찐 밤과 떡이 상에 오른다. 노인들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이곳에 지금처럼 차 농사가 시작된 것은 20~30여 년 전이라고 한다. 그 전에는 모두 야생의 차나무에서 아무렇게나 훑은 찻잎을 고뿔에 걸렸을 때 마시거나 피부병이 났을 때 몸에 바르는 약으로 여겼다. “그 전에는 이만큼 잭살나무(차나무)가 번성할 줄 몰랐제. 산에 드문드문 있는 게 전부였당게. 어릴 적부터 잭살나무 가지를 손가락 사이에 넣고 쭉쭉 훑어다 똘배(돌배)랑 같이 가마솥에 푹푹 끓여서 마시곤 했제. 시한(겨울)에 고뿔에 걸려도 그것만 마시면 뚝 떨어졌당게.” 이동문 할아버지의 말이다. 박상감 할머니는 “잭살나무 열매를 따 돌절구에 찧고, 그것을 가마솥에 쪄서 기름을 짜 머릿기름이나 지짐이를 부치는 데도 사용했지. 그뿐인감. 옛날에 약이 어딨당가, 헌데나 몸이 간지러울 때도 잭살나무 잎을 삶아서 그 물을 바르면 간지럼증도 낳고 피부병도 낳았지”라고 떠올린다. 주전부리를 먹으며 마을 어른들과 즐거운 대화가 오가던 중 따뜻한 차가 나온다. 발효차다. 생각해 보니 이곳에 와서 마신 차가 모두 발효차이다. 겨울에는 발효차가 제일이라고들 말하지만 그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 난 잎하고 세작, 중작 대부분 죄다 내다 팔아. 그러다 보니 내가 먹을 건 태반 뻣센 잎이라 발효차를 많이 만들어. 뻣센 잎은 발효차가 더 맛나당게. 뭐 나 먹을 거로 녹차도 조금 만드는디, 그래도 아무 때나 먹을라면 발효차가 제일이지. 세작·중작은 비싼게 팔아야 하고. 근디 요새는 하도 차농사를 많이 하다 보니께 값이 많이 떨어졌당게. 우전의 경우 온종일 두 명이 따야 1kg을 따는디, 그전에는 그것이 6~7만 원이었는디, 지금은 5만 원 조금 더 돼. 그러니 어디 품삯 무서워서 놉(인부)을 부리것능가. 그나마 돈을 조금 만지는 것이 세작·중작인디, 그것도 힘들어. 놉이 있어야 말이제. 다 같은 시기에 차를 따니 서울에서도 불러오고 진주에서도 불러오고. 그래서 차 딸 때는 송장도 일어나서 차를 따야 한다는 말도 있당게.” 이귀례 할머니의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공간, 자신의 품을 기꺼이 내준 자연. 자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의 것을 얻어 살고, 또 그곳에서 아픔을 다독이고, 잠시 빌린 것이기에 다시 돌려주는 것이 당연한 삶이라고 받아들인다. 그 동네에 차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 글 임종관 ·사진 월간 《다도》 찾아가는 방법 승용차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 ⇒ 88고속도로 ⇒ 지리산 나들목 ⇒ 구례 ⇒ 화개 ⇒ 용강리(쌍계사)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 나들목 ⇒ 88고속도로 ⇒ 지리산 나들목 ⇒ 구례 ⇒ 화개 ⇒ 용강리(쌍계사) 대중교통 서울 남부터미널, 부산 사상시외버스터미널, 광주 유스퀘어(구 광천터미널), 서울 용산역 관광안내 전화 055-880-2114
  • 한멋 하는 남자들 조끼를 입는다

    한멋 하는 남자들 조끼를 입는다

    옷차림을 완성하는 아이템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요즘 멋 좀 안다는 남성들이 눈독 들이는 것은 조끼다. 조끼는 늘 입던 것이고 언제나 존재해온 아이템이지만 올해 들어 조끼를 겉옷과 매치하는 방법과 감각이 남달라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해외 컬렉션은 패션의 교과서. 이미 런웨이 모델들의 옷차림으로 유행을 예고한 조끼는 텔레비전과 스크린의 스타들 덕에 새삼 인기를 끌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날씨도 조끼 유행에 한몫한다. 재킷 안에 포인트로 입던 카디건에 비해 훨씬 손쉽게 젊은 감각을 뽐낼 수 있다는 것이 사랑받는 요인이다. 재킷과 바지로 이루어진 투피스가 대세였던 예전과 달리 조끼까지 한 벌에 포함된 스리피스 예복이 당연시되는 것이 최근 경향. 남성 패션의 여성화 바람에 따라 조끼도 V존이 좁고 몸에 다소 달라 붙는 스타일이 대세다. 유행에 좀더 민감한 남성들을 위해 장식과 무늬가 화려한 조끼들도 대거 선보였다. 인기 드라마 ‘내조의 여왕’에서 식품 회사 사장 ‘태봉’ 역의 윤상현은 조끼 패션을 선도하는 인물. 겉옷과 조끼의 조화로운 연출법을 뽐내 패션 화보 못지않은 시각적 즐거움과 정보를 줬다. 셔츠에 니트 소재 조끼를 입는다고 다 나이 든 아저씨처럼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걸 태봉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캐주얼 차림일 때 조끼 입는 법을 태봉에게 배웠다면 수트와 조끼의 어울림에 대해서는 드라마 ‘시티홀’에서 ‘조국 부시장’ 역을 맡은 차승원이 한 수 가르쳐 준다. 양복에 조끼까지 갖춰 입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보통 양복에는 세트로 된 조끼가 달려 나오는 것이 예사. 하지만 아주 격식 있는 자리가 아니면 양복과 세트로 조끼를 맞춰 입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무게감을 줄 수는 있으나 자칫하면 나이 든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날렵하고 탄탄한 그의 몸에 꽉 조이는 조끼는 정치인 조국의 치밀함을 나타내는 패션코드로 사용되고 있다. 그의 패션이 재미있는 것은 겉옷과 조끼의 색상, 소재를 이질적으로 매치하면서도 옷차림의 통일성을 유지한다는 것. 정통 스타일에서 약간 빗겨 나간 단추가 많이 달린 조끼를 입어 빈틈없는 정장 차림에 숨통을 불어넣는 식이다. 상·하의는 한 벌로 맞추고 이보다 한 톤 아래 색상의 조끼를 입어 고루함은 덜고 멋스러움을 더욱 살린다. 얼마 전 결혼식에 참석한 김승우도 재킷보다 옅은 색상의 조끼를 입어 이같은 유행에 동참했다. 딱 떨어지게 맞춰 입는 것도 보기 좋지만 다른 느낌을 주는 옷들을 섞는 재주에 더 탄복하게 되는데 조끼가 이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도움말 및 사진: 패션플러스, 서울신문 NTN
  • “즐거운 마음으로 오늘도 방송할 뿐”

    “즐거운 마음으로 오늘도 방송할 뿐”

    “라디오의 매력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소통이에요. 뻔한 이야기 같지만 인간의 감성에 잘 맞는 매체죠. 현대인들이 외로움을 타는 시대라 21세기는 라디오 시대가 될 겁니다.” 7~8년 정도 됐을 때 반복되는 일상처럼 느껴져 권태기가 왔다. 그 고비를 넘기자 10년은 채워야 겠다고 생각했고, 10년만 하면 야박한 것 같아서 조금 더 한다는 게 19년이 됐다. 처음엔 주로 LP를 틀었으나 어느 새 CD를, 요즘은 음악 파일을 이용하는 시대가 됐다. 처음엔 팝 전문 프로그램이 대세였으나, 지금은 가요 프로그램이 대세다. 변하지 않은 점이 있다면 시그널이 나오는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하게 방송을 한다는 것. ●19년 장수 비결은 젊은 감각 17일 방송 7000회를 맞는 MBC 라디오 팝 전문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터줏대감 배철수(55)는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집에 우환이 있거나 몸이 아팠을 때 50번 정도 마이크 앞에서 행복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라면서 “하지만 6950회는 행복했다고 자신합니다.”고 돌이켰다. 1990년 3월 시작한 이 프로그램의 장수 비결로 20년 전에도 주 청취층이 20, 30대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꼽았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했다는 뜻이다. 배철수는 “밥을 먹어도, 대화를 해도, 농담을 해도 젊은 친구들과 하려고 노력해요. 예능 프로그램도 열심히 보곤 하죠. 그래서 젊은 감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게 힘이 된 것 같아요.”라고 설명한다. 수많은 해외 뮤지션들이 음악캠프에 초대 손님으로 거쳐갔지만 아무래도 자신의 음악 인생에 영향을 끼쳤던 뮤지션과의 만남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딥퍼플의 이언 길런이나 존 로드, 블랙 사바스의 토니 아이오미 등이다. 그는 “보통 게스트가 오면 스튜디오에 앉아서 맞이하는데 그 아저씨들이 왔을 때는 음악 중간에 밖으로 나가 한국식으로 깍듯이 인사를 했죠.”라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PD는 첫 연출자였던 박혜영 PD. 박 PD는 이후 인생의 반려자가 됐다. ●“좋은 음악과 긍정적인 생각 전달” 그에게 좋은 방송이란 가장 단순한 것이다. 좋은 음악을 틀고, 이야기하고 좋은 사연이 오면 소개하는 것. 배철수는 “제 방송을 듣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기분 좋아졌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좋은 음악과 긍정적인 생각, 세 번의 피식하는 웃음을 전달하는 게 목표예요. 그렇게 하다보면 나도 즐거워요.”라고 말한다. 그는 “어렸을 땐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며 저에게 주어진 방송 2시간이 정말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오늘도 방송할 뿐”이라고 씨익 웃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터미네이터-당신은 전작을 뛰어넘었는가

    터미네이터-당신은 전작을 뛰어넘었는가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과거와 미래’에 관한 영화다.미래의 존 코너가 인류의 구원자가 될 자신과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과거로 ‘보디가드’를 보낸다는 내용,즉 미래가 과거에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 구조를 지닌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 내용과 반대로 과거가 미래를 압박한다.전설이 된 전작들이 지닌 위용은 늘 앞으로 나올 속편에 부담을 지운다. 21일 개봉하는 ‘터미네이터-미래전쟁의 시작’(맥지 연출)도 전작의 작품성과 흥행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가 최대 관심사.특히 2003년 개봉한 3편(라이즈 오브 더 머신)이 ‘아류’란 소리까지 들으며 팬들의 외면을 받은 상황이라 이번에 개봉하는 속편에 대한 관심은 더욱 지대할 수밖에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극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이 시리즈의 트레이드 마크인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도 좋을 것 같다.  이번 작품은 제임스 캐머런이 갈고 닦은 터미네이터의 세계관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그 틀 안에서 자유로운 변주를 통해 또다른 무엇을 보여준다.다양한 로봇들이 등장하는 스케일 큰 액션 또한 매력적이다. ●파괴자와 보호자,그리고 구원자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구원하는 자와 파괴하는 자 그리고 보호하는 자’에 대한 영화다.터미네이터의 대명사인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로봇 T-800으로 분장해 1편(1983년)에서 ‘파괴자’가 된다.그 뒤 2편(심판의 날 1991년 개봉)과 3편에서는 보호자로서 구원자를 지킨다.  하지만 이번에는 파괴자와 보호자,구원자의 구분이 따로 없다.인류의 구원자인 존 코너(크리스천 베일)는 ‘의문의 사나이’ 마커스 라이트(샘 워딩턴)에게는 공격적인 파괴자가 된다.  카일 리스(안톤 옐친)는 자신이 보호해야 할 코너에게 오히려 보살핌을 받게 된다.  마커스 라이트는 카일 리스를 보호하는 건지,존 코너를 구원하는 인물인지,인류를 파괴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캐릭터다.  이처럼 감독은 캐릭터들의 역할을 상황에 따라 바꿈으로써 새 시리즈의 탄생을 알린다. ●가장 눈에 띄는 샘 워딩턴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캐스팅을 할 줄 아는 영화다.1편에서는 마이클 빈(카일 리스 역)이 연민을 자아냈고,2편의 에드워드 펄롱(존 코너 역)은 우수에 찬 눈빛으로 당시 최고의 아이돌로 떠올랐다.T-1000으로 나온 로버트 패트릭 또한 날카로운 기계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캐스팅이었다.3편에서 T-X로 나온 크리스타나 로켄은 기계도 섹시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데 성공했다.슈워제네거는 두말할 것도 없이 터미네이터 그 자체다.  이처럼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편마다 눈에 띄는 캐릭터들에 적절한 배우들을 기용했다.이번 4편에는 마커스 라이트 역의 샘 워딩턴이 가장 눈에 띈다.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빌딩 두어채는 부수고 시작하는 다른 블록버스터와 달리 터미네이터 4편은 사형수 마커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잔잔하게 이야기의 문을 연다.거대한 영화의 시작을 장식할 만큼 이 캐릭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또 마커스가 사형당할 때의 모습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형상을 연상시키는 것도 그의 임무가 막중하다는 것을 암시한다.또 이 캐릭터에는 시리즈 내내 역설하는 메시지 ‘인간은 기계보다 강하다(?)’가 응축돼 있다.맥지 감독이 제2의 러셀 크로라는 평을 내린 샘 워딩턴을 눈여겨 보는 것도 이번 시리즈가 가진 매력이다.  팀 버튼의 배우자인 헬레나 본햄 카터에게 사이버적인 이미지를 입힌 것과 1980년대 파충류 외계인이 나왔던 시리즈물 ‘브이(V)’로 유명한 마이클 아이언사이드에게 저항군 대장의 자리를 준 것 또한 적절한 기용이다.  이외에도 맥지 감독은 오토바이와 트럭 추격 시퀀스나 ‘I’ll be back’ 등 대사를 넣으며 시리즈의 향수를 이어가려고 노력했다.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너무 바빠 영화에 나올 수 없는 ‘아널드 아저씨’ 또한 컴퓨터 그래픽에 힘입어 ‘몸짱’으로 나타나 반갑다. ●트랜스포머보다 진중하고 매트릭스보다 간결하다  이번 터미네이터는 전체적인 구성도 탄탄하고 이야기의 전개도 빠르다는 느낌을 준다.다양한 로봇들 또한 실사를 방불케 할 정도로 세련되게 표현됐고 액션도 더 화려해졌다.  하지만 2편의 ‘액체 금속’ 로봇 T-1000이 등장했을 때 가져다 준 것만큼의 충격은 없다.T-600,T-800,헌터킬러,하베스터,모터 터미네이터 등 로봇을 등장시키며 이를 만회하려 하지만 투박한 싸움이 인상적인 터미네이터 특유의 전투 장면이 줄어 아쉽다.  다양한 기계들이 등장한다는 것에서 트랜스포머(마이클 베이 연출) 시리즈를 연상시킨다.그러나 로봇끼리 맞붙는 트랜스포머보다는 터미네이터의 스케일이 작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렸다는 것에서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워쇼스키 형제 연출) 시리즈를 비교하는 사람들도 많다.하지만 ‘사회 전반에 대한 의심’을 하는 매트릭스보다 ‘인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는 터미네이터의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웅숭깊다.15세 이상 관람가.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우리 함께 별을 만들자/임나라

    [엄마와 읽는 동화] 우리 함께 별을 만들자/임나라

    새벽 6시30분. 깜깜한 성당 마당에 버스 한 대가 공룡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미래야, 얼른 올라타자. 날씨가 매섭네.” 엄마가 손을 잡았다. 미래는 살짝 손을 빼낸 채, 성큼 버스에 올랐다. 그러곤 운전기사 바로 뒷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모자를 푹 눌러써 버렸다. 엄마가 옆자리에 앉는 듯했으나 곁눈도 주지 않았다. 두툼한 겨울옷을 잔뜩 껴입고서도 추위에 발을 구르고 서 있던 사람들이 단숨에 모두 타자 버스는 이내 출발하였다. 맨 나중에 탄 아저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섣달그믐에 태안 바다를 덮쳐버린 기름을 닦으러 새벽 추위를 무릅쓰고 달려오신 교우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일이 마치 바닷물을 숟가락으로 퍼 담는 것과도 같겠습니다만….” 아저씨의 인사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한 아줌마가 앞으로 나오더니 랩에 싼 주먹밥과 우유 한 봉지씩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엄마가 두 몫을 받아 한 몫을 미래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아직 따뜻하네. 우유 한 모금 먼저 마시고 나서 천천히 먹어.” 엄마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엄마 몫은 앞좌석 뒤에 매달린 그물망에 모두 넣어 두었다. ‘엄만 먹지도 않을 거면서 왜 나만 먹으래?’ 그냥 짜증이 났다. 풍선처럼 팽팽해진 가슴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이는 너뿐인 거 같구나? 몇 학년이야?” 버스 통로를 오가던 아줌마가 이제 서서히 동이 터 오는 동쪽 하늘만 뚫어져라 창밖으로 내다보고 있는 미래에게 물었다. 5학년요, 하려 하는데 말이 되어 나오질 않았다. 어젯밤부터 한마디도 말을 해 보질 않았기 때문에 입이 굳어 버린 걸까. “5학년인데, 몹시 추워하네요.” 엄마가 변명하듯 대신 말했다. “이렇게 모녀가 남을 위해 봉사를 떠나니 얼마나 보기 좋아요? 추워도 보람된 일이죠. 이 주먹밥 아줌마가 밤새 만든 거야, 먹어 봐.” 아줌마는 미래의 무릎에 놓인 주먹밥을 들더니 랩을 벗기곤 한 조각 떼어내어 미래 입에 넣어 주었다. 얼결에 입을 우물거렸다. “빈속이라 더 추울 거야. 우유도 마시고.” 우울한 기분과는 달리 새콤달콤한 주먹밥은 아주 맛이 있었다. “딸에게 나눔에 대한 추억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엄마도 그물망에서 우유를 꺼내 한 모금 마시며 이미 뒷자리로 가고 있는 아줌마에게랄 것도 없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캑, 캑. 갑자기 사래가 들려 주먹밥이 목에서 넘어가질 않았다. 엄마가 황급히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하지만 미래는 아직도 숨을 고르지 못해 핵핵대면서도 엄마 손을 차갑게 밀어냈다. 엄마 손은 힘없이 무릎 위에 얹혀졌다. ‘뭐, 추억? 꽁꽁 얼어붙은 겨울 바다로 기름 닦으러 가는 게 추억이 될 거라고? 나를 먼먼 땅으로 내쫓고서 엄마 혼자 추억을 곱씹어 보시겠다는 거지?’ 미래의 속마음을 다 알고 있는지 엄마가 손바닥으로 가슴을 살살 두드리며 큰 숨을 몰아쉬었다. 미래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씩씩거렸다. 아저씨가 백미러로 미래를 넘겨다보며 말했다. 아마 미래를 달래보려는 것 같았다. “엄마가 싫다는 너를 억지로 데리고 온 모양이구나? 기왕 온 거 참고 가 봐. 푸른 바다에 온통 기름덩이가 산처럼 둥둥 떠다니고, 해안의 바위와 수없이 깔린 돌들이 검은 기름으로 뒤덮여 있는 걸 보면 너도 그게 바로 인류의 재앙이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게다.” ‘인류의 엄청난 재앙이라는 것쯤 나도 안다고요. 그런데 지금 나는 그곳에 가기 싫어 화가 난 게 아니라고요.’ 미래는 답답한 마음에 의자 깊이 몸을 묻고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바닷가 모래사장엔 외계인 같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자루같이 큰 노란 방수복, 파란 마스크, 빨간 고무장갑, 색색의 털모자와 챙 달린 모자를 제멋대로 삐뚤빼뚤 쓴 사람들이 옷을 있는 대로 껴입어 부풀어진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콜타르 같은 기름덩이를 걸레로 닦아내고 있었다. 걸레의 종류도 가지가지였다. 수건, 내의, 마대포, 이불홑청, 두루마리째 돌 위에 산더미처럼 부려 놓은 하얀 무명천, 기름이 닦일 것 같지도 않은 나일론 의류 등 집집마다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천들은 모두 모아진 듯했다. 커다란 바위에 매달려 기름을 닦아내는 사람들, 크고 작은 조약돌을 들고 하나하나 반짝반짝 닦아내는 사람들, 웅덩이를 파서 고여 든 기름을 플라스틱 바가지로 끝도 없이 퍼내는 사람들, 말할 시간도 아끼며 모두 묵묵히 자기들이 맡은 일들을 정신없이 해 나가느라 바빠 보였다. 행렬은 멀리 가물가물한 수평선 끝 해안에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미래도 얼굴에 땀방울이 송송 맺히도록 온 힘을 기울여 기름때를 닦았다. 미래보다 더 어린아이들도 많이 와 있었다. 한참 열중하다 문득 눈이 마주치면 고무장갑 낀 손을 높이 흔들며 서로 파이팅을 하기도 했다. “땀 좀 닦자. 여기 깨끗한 수건도 있네.” 엄마가 미래에게 다가와 수건을 몇 겹으로 접어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꼭꼭 찍어내 주었다. 미래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을 치면서 짧고 매몰차게 말했다. “싫어. 손대지 마.” 팽 돌아서며 미래는 엄마의 슬픈 눈을 보았다. 얇은 칼날에 살을 베일 때처럼 가슴이 섬뜩해졌으나 미래는 짐짓 모른 체 저만치 달음질쳐 엄마와 멀어졌다. 파도가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바위를 덮치고 나선 까르르 멀어져 갔다. 사람들은 손놀림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잠깐씩 파도가 펼쳐내는 장관들을 구경하며 미소를 짓기도 하였다. “멀쩡한 바다에 기름을 쏟아 순식간에 물고기들을 떼죽음시키고…, 바다가 죽어 가네…, 온갖 해초들이 다 죽어가네에. 이런 참변이 어디 있을꼬? 두 번 다시 일어나선 안 될 악몽이여, 악몽. 조금만 조심했더라면….” 한 할아버지의 탄식 소리는 바위와 바위가 맞붙어 동굴처럼 파인 곳에 온 몸을 굽혀 검은 기름덩이를 한 움큼씩 파서 양동이에 옮겨 담을 때마다 끊겼다 이어졌다 반복되곤 하였다. “미래야, 어젯밤엔 네게 자세한 얘길 할 수가 없었단다. 사실은 엄마가….” 어느 결에 엄마가 다가와 옆에 서 있었다. “많이 아파. 너도 조금 짐작은 하고 있겠지만.” “아주 많이?” “응. 그래서 아빠에게 널 뉴질랜드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 거야. 다행히 아빠도 이제 정신을 차려서 목수 일도 열심히 하고 계신대. 그곳엔 목조건축 일이 많아서 열심히만 하면 빌더로 인정받을 수도 있어 살기는 괜찮다는구나. 새엄마가 될 그 아줌마에게도 널 반갑게 맞아달라고 했어.” “누가 간댔어? 누가 부탁하랬어? 그럼 엄만 누구랑 살고 치료는 어떻게 할 건데?” 숨 가쁘게 쏘아대던 미래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듯해서 둑방으로 올라왔다. 엄마도 숨을 할딱이며 따라 올라왔다. “수술을 해 봐야 안대. 엄마가 만약 살아서, 살아서 건강해지면 다시 널 꼭 데려올게. 지금은 너라도 가서 편하게 살아야지.” 미래는 야속한 엄마가 불쌍해 목이 메었다. 더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오후가 되자, 바다는 점점 더 짙은 회색빛으로 변해 갔다. 확성기의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이만 작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만조 때까지 하려 했으나 곧 눈이 쏟아질 것 같으니 서둘러 마무리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 길, 안녕히 가십시오.” 그러더니 5분도 채 안 되어 눈발이 마구 흩날리기 시작했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자면서도 울었던지 가끔 흐느끼다가 놀라 깨기도 한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따뜻한 엄마의 손길이 느껴졌다. 태안에 기름 유출 사건이 생긴 것만큼이나 미래에겐 아픈 엄마와 헤어져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가 없었다. 어렴풋이 잠에서 깨어나면서부터 미래의 가슴은 또다시 방망이질을 해댔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기지개를 켜는지 끄응, 끄으응, 소리를 내며 버스 안이 부산스러워졌다. 추위에 일하느라 고단했던지 모두 미래처럼 버스에 오르자마자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운전기사 아저씨가 텔레비전을 켰다. 미래는 창가에 앉은 엄마 쪽을 슬며시 돌아다보았다. 엄마는 잠도 자지 않은 듯 두 손을 맞잡은 채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엄마는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 걸까. 텔레비전에선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기후온난화로 인해 뉴질랜드와 가까운 조그만 섬나라가 해수면이 점점 높아져서 몇십 년 후엔 물속으로 가라앉게 되리란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수면이 높아진 파도가 갑자기 덮쳐들 것을 걱정하며 집 앞을 돌로 쌓기도 하고, 아예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가기도 하였다. 모두 근심에 싸인 표정들이었다. 스텔라라는 여자아이가 화면에 나타나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막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우리를 도와주세요. 세계의 선진국 모든 사람들이 연료를 덜 사용해 주시고, 자동차를 줄여 주세요. 매연을 줄여 주세요.’ 그리고 이어 순박해 보이는 스텔라 엄마의 모습이 비쳐지며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스텔라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슬프지만 뉴질랜드로 이민 보내려고 해요.’ 스텔라의 눈이 푸른 별처럼 크고 참 맑아 보였다. ‘스텔라야. 나도 뉴질랜드로 가게 될 거 같아. 그곳에서 널 만날 수도 있겠지? 우리 함께 별을 만들자. 그 별을 하늘 높이 띄워 보자. 그리움의 별을 말이야.’ 미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울고 있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작가의 말 태안 앞바다에 기름 유출사건이 났을 때 두 번에 걸쳐 기름을 닦으러 간 적이 있었다. 차마 맑은 눈으로는 바라볼 수 없는 처참한 환경파괴의 장이었다. 또 한편 지구 저쪽, 지구온난화로 인해 점점 바닷물에 잠겨가고 있는 조그만 섬나라를 기억하고 싶었고, 이런 소용돌이 시대 속에서도 묵묵히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의 아픔을 그려보고자 하였다. ●약력 ▲대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하늘마을의 사랑)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파랑이의 구름마차) ▲동화집 : 하늘마을의 사랑, 무화과나무집 ▲현재, 한국조형예술원 근무
  • 佛 코미디 거장 자크 타티 회고전

    오는 19일부터 13일 동안 현대 프랑스 코미디의 거장 자크 타티 회고전이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타티는 로베르 브레송과 함께 프랑스 현대 영화의 시작을 알린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장뤼크 고다르는 “타티의 영화와 더불어 프랑스식 네오리얼리즘이 탄생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현대 문명사회의 풍경을 풍자하며 코미디를 시대의 증인으로 만드는 등 코미디 장르에 현대성을 부여했다. 배우로 영화계에 입문했던 그는 1982년 숨질 때까지 단 6편의 장편을 남겼다. 이번 회고전에서 전작이 상영된다. 데뷔작인 ‘축제일’(1949)과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윌로씨의 휴가’(1953), ‘나의 아저씨’(1958), ‘플레이타임’(1967), ‘트래픽’(1971), ‘퍼레이드’(1973) 등이다. 그가 주연·각본·감독을 맡아 북 치고 장구 친 단편 3편까지 포함하면 모두 9편이 소개된다. 23일과 24일에는 영화감독 이명세,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김성욱의 시네토크 시간이 마련됐다.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www.cinematheque.seoul.kr)를 참고할 것. 4000~6000원. (02)741-9782.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아파트가 소원인 엄마 타워 크레인 기사 되다”

    “아파트가 소원인 엄마 타워 크레인 기사 되다”

    아이들에게 세상의 본질을 전할 때 세상이 더럽고 추하고 짐승스럽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그럼에도 세상이 깨끗하고 맑고 고귀하다고 알려야 할까. 김영미 시인의 첫 동시집 ‘재개발 아파트’는 후자 쪽이다. 표제작 ‘재개발 아파트’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짐승 같은 일’들로 상처 받은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관리실 아저씨는/떠나간 집마다/커다랗게 검은색으로/X표를 그린다…이젠 통로엔/우리 집/하나 남았는데…처음으로/나는/커다란 X표를 받고 싶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X표를 받고 싶어하는 아이가 어디 있을까. 무덤덤한 아이의 마음을 읽고 나면 ‘짐승 같은 세상’에 X표를 치고 싶어진다. 작품 속의 아이들은 세상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래서 떼를 쓰고 울기보다 적응하고 오히려 밝은 햇살을 찾아 내려고 노력한다. “건축 일로 시멘트 잔뜩 묻어/하루는 푹 담가야 때가 빠지”는 아빠의 청바지가 욕조를 차지하고 있어 동생과 물장난도 못하지만 불평도 안 하고(아빠의 청바지), “엄마가 일 나가고/혼자 지키는 지하방/햇살이/파란 방충망 사이로/놀러 왔어…햇살들이/작은 물고기가 되어” 바다 이야기를 자신에게 들려준다(바다이야기)고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아파트가 소원인 엄마는/타워 크레인 기사가 되었다/날마다 아침이면/지하 셋방을 나와/높디높은 크레인에 오른다(타워 크레인)”는 천진한 말투가 세상의 모진 바람과 대면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 밑바닥에서 서글픈 연민이 차오른다. 작가는 어린 시절 겪었던 가난을 생각하며 시를 썼다고 했다. 차원은 다르지만 요즘 아이들이 겪는 아픔에서 가난 때문에 상처 받은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가난했던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만나던 동시에서 위로를 느끼고 ‘풍족’을 찾았다.”고 했다. 추악한 현실을 날카롭게 반영하면서도 따뜻한 희망을 품은 이 시집을 통해 아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다. 또한 경쟁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된 아이들에게 주변을 돌아보라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더럽고 짐승 같은 세상을 정면으로 직시해야만 깨끗하고 고귀한 세상을 만들 싹을 함께 틔울 수 있지 않을까.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처럼 말이다. 8000원.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연변 아줌마들 “몇달째 송금못해요”

    연변 아줌마들 “몇달째 송금못해요”

    연변 아줌마들이 고(高)환율 속에 갇혀버렸다. 최근 환율이 하락 안정세를 타고 있다고는 하지만 최근 2~3년간 평균 환율과 비교하면 이주 노동자들이 느끼는 온도 차가 크다. 반년 이상 고공비행 중인 환율 탓에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무작정 송금을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음달인 중국의 어린이날(6월1일) 전에는 환율이 떨어져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한국에 들어와 식당일을 한 지 2년 6개월이 됐다는 이홍(34·여)씨는 원·위안 환율을 찾아보는 게 버릇이 됐다. 직장에서 사고로 다리가 절단된 남편의 병원비를 보내야 하는데 자꾸 손해 보는 듯한 느낌에 막상 은행 앞에만 가면 발길을 돌린다고 했다. 이씨는 “환율 변화로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하면 월급이 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실제 이씨가 한국에서 일을 시작한 2006년 초만 해도 환율은 1위안에 120원 정도를 유지했다. 1000만원을 보내면 8만위안 정도였으나, 지금은 1000만원을 환전해도 5만 3000위안 정도밖에 못 받는다는 계산이다. ●하루 100명 송금하다가 지금은 고작 3~4명 이씨처럼 본국에 남은 가족들을 위해 송금을 못하는 조선족 노동자는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이정화(44)씨도 본국에 남은 아이들을 위해 석 달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송금을 했지만 올 들어서는 전혀 송금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아무 생각 없이 보냈다가 몇 달치 월급을 날린 것 같아 며칠간 후회했다.”면서 “하지만 아이들 생활비를 못 부친 지가 넉 달이 넘으면서 더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라 다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송금 수요도 눈에 띄게 줄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서울 구로구 외환은행 대림역지점의 경우 지난 3월 한 달간 중국 송금액이 61만 6000달러로 집계했다. 1년 전 같은 기간 송금액 310만 3000달러와 비교하면 5분의 1수준이다. 금융위기가 시작된 지난해 9월과 비교해도 송금액의 40% 수준이다. 결국 해당 은행은 지난달부터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특별 영업시간을 단축했다. 열어봐야 손님이 없다는 것이 이유다. 최병열 외환은행 차장은 “한때 하루 100명 이상이 송금할 정도로 북적였던 창구가 온종일 3~4명밖에 없을 정도로 한산할 때도 있다.”면서 “연장근무를 오후 5시30분까지만 한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건설업 외국인 노동자 일자리 급감 더 큰 고민은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는 점이다. 경기 침체의 직격탄은 건설 업종에서 일하는 연변 아저씨들에게 가장 먼저 날아왔다. 조선족 이성학(39)씨는 “아파트 건설 현장 일자리도 줄어서 요즘은 1주일에 3일 일하기도 어렵다.”면서 “조선족은 평균 1만 5000원가량 낮은 일당을 줘도 돼 인기가 좋았지만 이마저 부르는 사람이 없으니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달부터는 건설 현장에 외국인 노동자 수를 제한한다고 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의 일자리를 내국인에게 돌리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이달부터 건설 현장에 취업하는 조선족 등 재외동포 수는 제한을 받는다. 유영규 최재헌기자 whoami@seoul.co.kr
  • [길섶에서] 좋은 하루/김성호 논설위원

    “좋은 하루 되세요.” 출근길 동네 버스정류장 앞 편의점에서 받는 인사말이다. 50대 후반 주인장 아침인사가 너무 좋다. 매일 듣는 인사가 이제 은근히 기다려진다. 단골 담배 손님에게 베푸는 립서비스겠지. 그래도 편의점을 나와 버스를 기다리자면 윗연배의 공손한 배려가 흐뭇하기만 하다. 편의점에서 아침 인사를 나누기 시작한 건 한 달이 채 안 된다. 그전엔 편의점 바로 옆 철물점에서 담배를 샀다. 철물점 여주인에게도 인사를 건넸었지만 대답은 항상 외마디 “네”. 아양 섞인 인사도 해봤지만 변함이 없었다. 편의점이 새로 생기면서 담뱃집을 바꿨다. 언젠가 편의점 아저씨에게 무뚝뚝한 철물점 아줌마 흉도 봤던 것 같다. 아저씨는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던가. “오늘 내가 먼저 인사해야지.” 담뱃값을 치르며 말을 꺼내려는 순간 또 선수를 뺏겼다. 머쓱한 답례를 하려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와 함께 편의점 문이 확 열린다. “여보, 철물점에 담배 떨어졌어요.” 황당한 날이다. 이제 아침 담배는 어디서 살꼬. 아니 이참에 끊어 볼까.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10년전 영화는 잊자!…뮤지컬 ‘주유소 습격사건’

    10년전 영화는 잊자!…뮤지컬 ‘주유소 습격사건’

    10년 전 스크린에 걸렸던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은 잊어라. 1999년에서 멈춰버린 아저씨들은 더 이상 없다. 정확히 10년이 흐른 2009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을 테니. 만약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관객이라면 무대에 오른 ‘주유소 습격사건’의 귀환이 반갑지 않았을 수도 있을 터. 이미 다 알고 있는 뻔한 스토리와 설정이라고 단정 짓고 무심결에 흘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뮤지컬 ‘주유소 습격사건’을 기존의 뮤비컬(뮤비와 뮤지컬의 합성어로 영화로 먼저 개봉됐던 작품이 다시 뮤지컬로 재창조되는 것을 일컫는 신조어)로 치부한다면 큰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 스크린에서 무대로 옮긴 ‘주유소 습격사건’은 딱 10년 만에 대중들 앞에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섰다. 물론 어느 늦은 밤 4명의 젊은 놈들(?)이 주유소를 털겠다는 야욕을 갖고 등장하는 플롯은 비슷하게 진행된다. 돈을 뺏으려는 4명의 청년과, 그 돈을 사수하려는 주유소 사장이 옥신각신하며 벌이는 충돌 역시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영화는 4명의 남자주인공에 초점이 맞춰져 흘러갔다면 뮤지컬에서는 오히려 4명의 주변 인물들에게 더 많은 눈길이 쏠리는 게 사실이다. 영화에서 봤던 인물들은 삭제되고 그 전에 없던 새 등장인물이 추가되면서 극은 또 다른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뿐 만 아니다. 배우 전원은 자신의 영역을 결코 무대 위로 한정하지 않았다. 관객석을 또 하나의 무대로 확장해 자유롭게 넘나들며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여기서 아수라장이란 여타 공연에서 일시적으로 관객들을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이벤트가 아님을 뜻한다. 무대 위 배우들은 잡다한 소품들을 관객석으로 내던지는 걸 시작으로 카메라를 들고 관객들을 일일이 찾아가 사진을 찍었다. 그들의 도발(?)은 극이 절정에 치달을수록 강도가 세졌다. 다른 캐릭터가 핀조명을 받고 열연하는 동안 스포트라이트에서 살짝 벗어난 이들은 무대 아래로 내려와 관객들과 함께 공연을 관람했다. 특히 훈남 배우들이 여성 관객들 옆자리에 파고들어 다정한 포즈를 취할 때면 메인무대는 어느 덧 관객석으로 옮겨지고 만다. 배우들의 호연을 더욱 빛나게 해줬던 무대세트 역시 수훈을 세웠다. 무대 정면에 설치된 멀티화면은 사실 복층의 무대를 감춰두고 있었다. 화면의 블라인드 뒤에 숨어있던 또 다른 공간은 관객들에게 상상하지 못했던 재미와 극적장치를 꺼내보였다. 극이 전개되는 과정마다 배치된 비보이 공연과 화려한 퍼포먼스도 관객들의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오는데 단단히 한 몫 했다. (사진제공=트라이앵글)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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