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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안84 웹툰이 약자 편이라는 착각

    기안84 웹툰이 약자 편이라는 착각

    만화가 기안84(본명 김희민·36)의 웹툰 ‘복학왕’은 2014년부터 네이버에 연재됐다. 현실적이고 지질한 인간묘사는 만화의 힘이었지만 동시에 여러 논란을 낳았다. 청각장애인·외국인 노동자 비하 논란 ‘복학왕’은 작중 청각장애를 가진 인물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 속으로 하는 생각임에도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눌한 어투로 표현하고, 민폐를 끼치거나 나사빠진 행동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기안84는 지속적으로 특정 장애에 대해 차별을 계속해 왔다. 편견을 고취시킨 것도 모자라 지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것처럼 희화화했다. 지금까지 작품을 통해 청각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행위를 지속적으로 해 온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시기 바란다”고 입장을 내기도 했다.기안84는 논란이 되는 부분을 수정한 뒤 해당 회 말미에 입장을 내고 “많은 분이 불쾌할 수 있는 표현이 있었던 점에 사과 말씀을 드린다. 성별, 장애, 특정 직업군 등 캐릭터 묘사에 있어 많은 지적을 받았다. 작품을 재밌게 만들려고 캐릭터를 잘못된 방향으로 과장하고 묘사했다”며 사과했다. 그러나 그 다음화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와 생산직 노동자를 비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회사 세미나 장소로 제공된 더러운 숙소를 보고 표정을 찌푸리는 한국인들과 달리 외국인 노동자들은 “리조트 너무 좋다. 근사하다 캅”이라며 좋아하는 모습을 그렸다. 신체적 불편함과 경제적 빈곤을 유머코드로 활용하는 그의 웹툰. 기안84는 논란이 불거지면 사과를 하고 다른 논란이 불거지면 또 사과를 했다. 기안84는 ‘애플84’(사과를 자주 한다는 의미)라는 별명까지 생겼다.“룸빵녀” “맛없어” 그의 웹툰 속 여성 #장면1/ 회식 자리. 봉지은이 의자에 누워 배 위에 조개를 올려놓고 돌덩이로 깨부순다.#장면2/ 이 모습에 그를 내보내려 했던 팀장이 반한다. 이후 봉지은은 정규직이 된다.#장면3/ 정규직이 된 뒤 떠난 워크숍. 봉지은과 잤냐는 사원의 질문에 20살이나 많은 팀장이 “ㅋ”이라고 답한다. 기안84의 웹툰 속 여자 주인공 봉지은은 능력이 부족한데도 나이 많은 상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 일자리를 얻어내는 것으로 그려진다. 봉지은이 소주에 얼음을 넣는 걸 보며 남자 주인공은 “룸빵녀 다 됐구만”이라고 말하고, 대학 축제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봉지은을 보고 “룸나무”라고 말한다. 성인 남성에게 업힌 미성년자의 대사는 “쌤 우린 친구잖아요. 비.밀.친.구.”다. 온라인 랜덤채팅 등에서 성인 남성이 미성년자 여자아이를 성착취하기 위해 접근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 버젓이 등장한다. 기안84의 과거 웹툰도 다르지 않다. “누나는 늙어서 맛없다”, “서른 살의 여자가 명품으로 치장해봤자 스무 살의 어린 여성에게 비할 수 없다”, “아무리 화장을 해도, 아무리 좋은 걸 발라도 나이를 숨길 수가 없다” 등 여성은 그의 웹툰 속에서 철저하게 성적 대상일 뿐이다. 출연 중인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하차 요구로 이어지며 논란이 일자 기안84는 일부 장면을 수정하며 “부적절한 묘사로 다시금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깊게 고민하지 못했다. 원고 내 크고 작은 표현에 더욱 주의하겠다”며 또 사과했다.“임대주택 너나 살아” 비판 아닌 비하 기안84는 최근 부동산 문제를 비판하겠다며 주거취약계층을 비하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는 공공임대주택(행복주택)에 대해 “선의로만 포장돼 있을 뿐 난 싫어. 그런 집은 늬들이나 실컷 살라구”라고 표현했다. 공공임대주택의 기본 목적은 저소득층 및 사회초년생, 신혼부부들의 주거안정을 목적으로 공급하는 주택으로 주거 복지 정책 중 한 수단이다. 공공임대주택 실거주자들에 대한 차별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때에 기안84는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곳을 “그런 집”으로 표현하며 차별 인식을 키우고 상처를 줬다. 기안84는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건물을 46억원에 매입했고, 1년 만에 14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그는 자신이 겪지 않은 삶에 대해 너무 쉽고, 얄팍하게 접근한다.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정책이 폄하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상처입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기안84는 유튜브에 출연해 “내가 잘먹고 잘사는 축에 들어가니까 약자 편에 서서 그림을 그린다는게 기만이 되더라”며 “이제 나는 만화가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약자 편에 서서 그리지 않았다. 한국 사회 주류가 지닌 혐오와 차별, 편견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약자의 편도, 풍자도 아니다. 기안84가 잘먹고 잘사는 축에 들어가서가 아니라, 약자 편에 서서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만화로 소수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상처받고 힘들었기 때문에 논란의 중심에 섰던 것이다. 그 많던 ‘사과’는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마을 전체가 학교 역할… 강서의 청소년 교육 혁신

    마을 전체가 학교 역할… 강서의 청소년 교육 혁신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만들고 그 곡이 음원으로도 발표되니 신기하고 뿌듯했어요.” 서울 강서구 공항고등학교 학생 A군은 지난해 ‘찾아가는 창의체험학교’ 수업을 들은 게 진로를 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A군은 “막연한 꿈을 구체화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됐다”면서 “앞으로도 이런 수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청소년들의 꿈을 지원하는 다양한 교육사업을 진행하는 강서구가 ‘2021년 강서혁신교육지구’을 추진한다. 구와 강서양천교육지원청은 올해 1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민관학 거버넌스의 확장과 성숙 ▲마을과 함께하는 학교 교육과정 운영 ▲마을교육활동 지원체제 강화 ▲청소년 자치활동 지원 등 총 4개 분야 30개 사업을 추진한다고 1일 밝혔다. ‘혁신교육지구’는 아동과 청소년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학교와 지역사회가 서로 협력해 마을교육공동체를 실현해나가는 사업이다. 구는 먼저 민관학 거버넌스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분과와 사업 추진단을 꾸린다. 분과는 마을교육공동체분과, 학부모분과, 청소년지원분과, 교사분과 등 총 4개로 구성되고, 월 1회 이상 정기회의를 통해 교육발전방향을 찾는다. 또 마을전체가 학생들에게 선생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찾아가는 창의 체험학교’, ‘찾아가는 진로특강 내 삶을 JOB-GO’ 등 마을이 직접 개발한 체험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대학진학 등 현실적인 학업 문제를 돕기 위한 ‘한 아이 맞춤 성장 지원 사업’, ‘마을 방과후 활성화 지원을 위한 플랫폼 구축 사업’ 등도 추진한다. 노현송 강서구청장은 “방과후 자원을 적극 발굴하고 교육과 마을의 연계를 확대해 아이들이 마을 안에서 배움의 꿈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어린이 책] 외롭고 겁 많던 산골 소녀, 유니콘 품고 쑥쑥 자라요

    [어린이 책] 외롭고 겁 많던 산골 소녀, 유니콘 품고 쑥쑥 자라요

    외딴 산골 오두막으로 이사 온 소녀 마거릿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달라지자 외로움에 휩싸인다. 불안한 마음으로 들판을 거닐던 마거릿은 가시덤불에 갇힌 아기 유니콘을 구조한다. 아기 유니콘을 집으로 데려와 정성껏 돌보면서 둘은 춥고 거친 겨울을 함께 보낸다. 이젠 이사 온 집과 마을, 대자연의 삶도 적응할 만하고 외롭지도 않다. 하지만 그 마법 같은 시간을 보낸 마거릿은 이별이 다가왔음을 직감하고 봄이 늦게 오기만을 바라게 된다.영국 일러스트레이터 브라이오니 메이 스미스가 쓴 그림책 ‘안녕, 내 마음속 유니콘’은 성장의 고비를 겪는 한 아이가 ‘길을 잃은 유니콘’으로 투영된 어린 자신을 스스로 어루만지며 성장해 가는 이야기다. 책은 아이의 가족과 집, 상상을 확장해 외딴 산골과 바람 부는 들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큰 바위 언덕 등 광활한 자연을 그리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텍스트가 적지만 단편소설을 읽은 것과 같은 감동과 여운을 충분히 선사한다. 이는 애니메이션과 광고 분야에서 뛰어난 캐릭터 디자인을 선보였던 저자의 그림 덕분이다. 텅 빈 집에서 나와 들판을 걷는 마거릿의 모습엔 스산한 외로움과 두려움이 어려 있다. 유니콘과 산책하며 밤을 까거나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는 장면 등으로 소녀와 유니콘의 애정에 몰입할 수 있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잊어버렸던 동심을 소환하게 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김금숙의 만화경] 다시 초심으로 붓을 들다

    [김금숙의 만화경] 다시 초심으로 붓을 들다

    한밤중에 잠이 깼다. 목이 말랐다. 머리맡에 둔 물잔을 집어들다가 놓쳤다. 물이 쏟아졌다. 하필 한가득이었다. 침대 옆에는 책들이 쌓여 있었다. 자기 전에 읽으려고 두었던 책들이다. 얼른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수건을 꺼내 바닥을 닦았다. 여전히 물이 흥건했다. 수건을 또 하나 꺼내 닦았다. 다행히 책은 젖지 않았다. 급한 불을 끄고 나니 목이 말랐던 것이 생각났다. 물을 가지러 아래층까지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려고 다시 누웠다.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보름달이 떴나? 잠이 오지 않은 날을 생각해 보면 희안하게도 늘 보름달이 떴던 날이었다. 달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죽음 때문이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두 예술가의 죽음이 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작년 어느 작가의 죽음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접했다. 나는 그녀의 계정을 팔로하지 않았다. 가끔 그마저도 아주 가끔 눈팅만 했다. ‘좋아요’ 누르며 힘내라는 메시지도 보내고 그녀의 책도 사서 읽고 선물도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강했다. 그런 마음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어떤 사람’을 생각나게 했다. 어떤 사람은 서른 살에 네 살 아이를 두고 떠났다. 아주 오랜 시간을 아팠다. 그녀의 육체적 기능이 소멸되는 과정을 보았다. 이십 년 전이라 잊은 줄 알았다. 내 마음은 여전히 아파서 신음하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무시하며 살아왔을 뿐이었다. 또 하나의 죽음. 김기덕 감독이다. 그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파리에서였다. ‘수취인불명’을 보고 며칠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쁜 남자’를 보고 인간의 폭력성과 잔인한 심리에 소름이 돋고 바르르 떨렸다. 그의 영화는 내가 다니던 대학교 근처 화양리에 있던 술집에서 붉은 조명 아래 젊은 여자들이 거의 속옷 바람으로 서 있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스트라스부르에서 미술학교에 다닐 때였다. 어딘가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차가 독일과의 국경선에 있는 도로에 잘못 들어섰다. 도로 양옆은 숲이었다. 그 어두움 속에 여자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띄엄띄엄 서 있었다. 젊었다. 키가 컸다. 함께 있던 친구가 말했다. 동유럽 여성들이라고. 아마도 마피아가 저 여자들 뒤에 있을 거라고. 김기덕의 ‘미투’에 대한 기사가 났을 때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왜 놀라지 않았을까? 그는 자신이 해외에서 코로나 합병증으로 생을 마칠 줄은 상상도 못 했으리라. 한 예술가에게는 지긋지긋하게 아팠겠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 있었고, 다른 예술가에게는 느닷없이 죽음이 왔다. 한 예술가의 죽음 앞에서 많은 사람이 애도했고, 또 다른 예술가의 죽음 앞에서는 ‘거장의 민낯’이라며 애도보다 그의 삶을 비판했다. 시대마다 보는 시각과 각도의 차이가 있지만 지금 이 시대보다 예술가의 삶이 중요했던 시대는 없었던 것 같다. 전 시대에는 남성 위주의 시각으로 예술 작품과 예술가의 삶이 평가됐다면 오늘은 다르다. ‘미투’ 전에는 고갱이 타히티에서 그린 아름다운 그림을 무조건 사랑했다면 이후에는 고갱의 그림 속 여성들이 폭력의 피해자였다는 데에 화가의 삶과 그림의 가치가 다시 평가되는 이유다. 나는 올해 50이다. 40대를 떠올려 본다. 지난 10년을 마치 하루를 산 것처럼 살았다.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검은 머리가 흰머리가 되는 줄도 모르게 작업했다. 앞으로 나는 몇 권의 만화책을 쓰고 그릴 수 있을까? 잠시 눈을 감는다. 숨을 길게 내리 쉬어 본다. 문득 발이 시리다. 기가 막힌 깨달음이 있을 줄 알았건만 발이 시려 눈을 뜨다니. 픽 웃음이 난다. 빈 잔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자던 당근이와 감자가 깰까 봐 최대한 살금살금 걷는다. 따뜻한 물을 정수기에서 받는다. 컵을 두 손으로 쥐고 가슴에 댄다. 부엌 창밖을 내다본다. 마른 나무에 잎사귀가 몇 개 달려 있다. 닭이 운다. 새벽이다. 밤은 아직 춥지만 낮은 벌써 봄 햇살이다. 삶과 예술이 하나 되게 작업하며 살자 싶다. 처음 만화를 시작했을 때의 초심으로 다시 붓을 든다. ※그동안 ‘김금숙의 만화경’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작품으로 여러분을 곧 찾아뵙겠습니다.
  • [이은혜의 책 사이로 달리다] 사과와 되갚음의 시간

    [이은혜의 책 사이로 달리다] 사과와 되갚음의 시간

    지난 1년간 K작가는 과거 10년의 삶을 되짚는 글을 썼다. 과거를 정리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갈 것 같은 위기감 때문이었다. 친구들은 취직을 해 성큼성큼 나아가는데, 자기는 아르바이트 틈틈이 과거를 떠올리고 있자니 ‘이게 맞는 일인가’ 싶어 초조했다. 나는 올해 들어 한 번의 사과 메일과 한 번의 사과 문자를 보냈다. 지난 한 달은 내 삶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되돌아보고 웅크리는 시간이었다. 인간은 의도하지 않아도 자신의 성격으로, 말로, 눈빛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그 결과를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다. 많은 사람이 가까운 이와 다투고 결별한 뒤 그 시간을 곱씹고 반성하며 보내는 것처럼. 그런데 사과를 받아들이거나 용서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내가 상처를 입힌 상대의 몫이다. 상대가 흔쾌히 용서를 결심하면 관계는 원상회복이 되거나 더 돈독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상대가 상처 속으로 들어가면 관계는 되돌이킬 수 없게 된다. 물론 시간은 상처를 아물게 한다. 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고 상처를 준 쪽의 일상도 다시 활력을 얻겠지만 자성의 깊이는 충분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와 관련해 최현숙 작가의 책에서 본 30여년 전 일화가 생각났다. 당시 그녀는 첫 출산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어느 날 가까이 계신 시아버지는 아이가 보고 싶어 문득 방문하셨다. 이제 겨우 재웠는데 깨면 또 언제 잠들지 모른다는 생각에 작가는 시아버지에게 “깨우지 마시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출산 이후 한동안 눌러 놓았던 ‘자아’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였다. 내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강박과 더불어 아이가 깰까 봐 초조했다. 온화한 성품의 시아버지였던 까닭에 이 기억이 더욱 남았다. 그녀는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내 속의 ‘이기’(利己)를 문득 눈치채곤 한다.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자성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한다. 맞는 말이지만 안이한 말이다. 자신의 도덕성을 돌아보려면 상당 시간 그 안에 침잠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자책에 빠지다 보면 힘들어지고 곧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만다. 이는 물에 담갔지만 몸은 젖지 않은 것과 같다. 그렇다면 진정한 자성에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K작가는 거의 10년이 걸렸다. 주변 사람들은 네 잘못이 아니니 일상으로 돌아오라고 말하지만, 그는 남들이 모르는 자기 과오의 알맹이를 붙잡고 그렇게 서서히 더디게 빠져나오고 있다. 역사를 보면 이런 잘못이 대형 사건과 연결돼 참사를 낳아 온 것을 볼 수 있다. 소름 끼치는 건 나 자신이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티머시 스나이더의 ‘피에 젖은 땅’은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에서 발생한 희생자들의 실체를 추적한 역사서다. 그는 결론에서 “스스로를 희생자와 동일시하는 건 윤리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총의 방아쇠를 당긴 사람과 스스로를 다르다고 생각하며, 아이러니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오히려 수백만 명의 유럽 시민이 자신이 유대인의 음모에 놀아나거나 희생됐다고 여겼다. 우크라이나 공산당원은 즐비한 시체들 앞에서조차 스스로를 희생자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스탈린과 히틀러마저 정치 경력 내내 자신이 희생자라고 우겼다. 역사는 우리가 어쩌면 크고 작은 가해자일 수 있는데, 스스로를 희생자라고 생각하는 데 더 익숙한 존재라는 점을 말해 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런 차원에서 삶을 돌아볼 일이 많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내 사고를 재점검할 일이 늘어나고, 어쩌면 사과할 일이 늘어난다는 것, 그래서 자주 침잠하고 수십 년 전 일을 떠올리기도 하며, 되갚음의 시간이 조금 많아진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너무 빨리 양지로 빠져나오려 하지 말고 자신을 잠시 그곳에 묶어 두어야 할 일이다.
  • “실패라는 건 없어요” 前 프로농구선수 김명진의 이유 있는 도전

    “실패라는 건 없어요” 前 프로농구선수 김명진의 이유 있는 도전

    2012년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6순위로 부산KT의 유니폼을 입은 김명진(33‧제물포고-단국대 출신). 프로 입단 첫 시즌에는 서장훈(은퇴), 조동현(은퇴), 조성민(현 창원LG) 등 쟁쟁한 선배들과 호흡을 맞추며 단신 가드로서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2015년 상무 농구단 전역 후 그에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군 복무 기간 동안 변화를 거친 소속팀의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또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후배들에게 밀려 벤치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경기 출전 시간도 적어지면서, 결국 2018-2019 시즌 직후 만 29세의 나이로 비교적 이른 은퇴를 결정했다. “이른 은퇴의 후회보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죠. 프로선수로서 자신감 있는 제 모습을 더 보여드릴 수 있었는데 부담감과 압박감으로 제 모습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은퇴를 한 것 같아서 그게 제일 아쉽습니다.”선수 시절에 항상 “은퇴 후에는 농구와 관련 없는 일을 하겠다”고 말했던 그는, 실제로 은퇴 후 농구와 전혀 관련 없는 일을 시작했다. 가수 강다니엘의 매니저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고 이후 가수 하하, 스컬, 별 등이 소속된 콴 엔터테인먼트의 음반제작팀에서 일하기도 했다. 평생을 운동선수로 살아온 그에게 회사원으로의 변신이 쉽지 않았지만, 하루하루 배워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는 소속 아티스트의 광고 촬영, 화보 촬영, 음반 발매 등의 성과가 나타날 때 가장 뿌듯했다고 말했다. “온전한 스포트라이트는 아티스트가 받는 거고요. 제가 큰 기여는 안 했지만 이 성과를 위해 조력자 역할을 했다는 것이 가장 뿌듯했어요. 농구로 치자면 ‘득점을 위한 어시스트’를 한 것과 마찬가지죠. 선수 때도 어시스트를 하는 것이 득점하는 것보다 더 만족감이 컸던 것 같아요.” 하지만 새로운 직업에 적응해가며 즐겁게 일하던 그에게 생각보다 일찍 한계가 찾아왔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고민 끝에 연예 기획사 일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오랫동안 아팠어요. 아픈 기간도 길어지고 언제 나을지도 몰라 회사에 말씀을 드렸더니, 잠시 쉬고 돌아와도 좋으니 언제든지 기다리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특출나게 일을 잘했던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더 죄송했어요. 아파서 빈자리를 내는 게 맞지 않는 것 같아, 결국 사직을 하고 치료에만 집중했어요.” 시간이 지나 건강을 회복하면서 그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3대 3 농구선수로 코트에 복귀했고, 지금은 농구를 가르치는 코치로 새 출발을 시작했다. “건강이 괜찮아지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생각해 보니까 할 줄 아는 게 농구밖에 없는 거예요. 또 이승준‧동준(전 농구선수) 형들이 저와 계속 함께 농구를 하고 싶다고 해주셔서 3대 3 농구도 시작하게 되었어요. 3대 3 농구 하면서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제가 잘하는 것이 ‘가르치는 것’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시작한 농구코치의 삶. 그는 아직 모든 게 처음이라 신경 쓸 것이 많다고 했다.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프로를 꿈꾸는 선수들과 공감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다”며 지도자로서의 각오를 밝혔다.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Q. 프로농구선수를 꿈꾸게 된 계기 사실 어렸을 때 꿈은 축구선수였어요. 98년 프랑스 월드컵을 보고 축구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죠. 하지만 학교에 축구부 대신 농구부가 있어서 그렇게 농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Q. 은퇴 후 연예 기획사에서의 새 출발, 어떤 업무였나? 제가 막내여서 허드렛일부터 매니저 업무, 언론 담당 업무, 서류 작성 업무 등 다양한 일을 했어요. 특히 서류 작성 같은 업무는 처음 하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어요. 하지만 배워가는 게 정말 즐거웠어요. 기획사에서 경험한 모든 일이 제겐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삶에 있어서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고요. Q. ‘농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는지? 없었어요. 초반에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어요. 그럴 시간도 없었고요. 또 일부러 농구를 안 찾아보기도 했어요. 선후배들이 뛰는 모습 보면 저도 계속 생각날 것 같아서 오히려 은퇴 후 첫해에는 농구를 거의 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Q.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 회사를 그만두고 건강이 괜찮아지면서 먹고 살 길을 고민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어요. 학생 때도 항상 제가 주장이었는데 감독‧코치님들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 저한테 맡기고 가셨거든요. 그때마다 어른들이 “명진이는 커서 지도자 하면 잘하겠다”고 하셨던 게 최근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생각이 났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KBL(한국농구연맹)에서 유스 엘리트 캠프 하는데 코치로 합류할 생각 없냐고 연락이 왔죠. 무조건 가야죠. 그때 일정이 있었는데 다 취소하고 갔어요. 함께하는 감독‧코치님들이 어마어마하신 분들이었기 때문이죠. 저도 코치로 합류하는 것이었지만 선배님들께 하나라도 얻어오고 싶어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Q. 지도자로서 뿌듯했던 순간 아직 지도자로서 큰 활동은 없었지만, 학생들이 그래도 제가 가르쳐 준 것을 잘 활용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요. 농구 기술뿐만 아니라 멘탈적인 부분도 강조하는데 빨리 받아들여 주고 습득해가는 모습을 보면 가장 뿌듯하죠. 특히 계속 제게 질문을 해줄 때, 이런 상황, 저런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을 해줄 때 정말 뿌듯해요. 궁금한 게 있으면 저를 믿고 물어 봐주더라고요. 제가 뭔가 학생들과 대화를 할 때 건드리는 게 있었나 봐요. Q. 프로선수를 꿈꾸는 학생 선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저는 무엇이든 프로페셔널한 마인드를 갖고 훈련에 임했으면 좋겠다고 전해주고 싶어요. 농구 실력뿐만 아니라 마인드, 생각, 훈련 태도, 훈련 방식, 자기 관리, 시간 관리 등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지금 내가 잘한다고 만족하지 말고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특히 요즘에는 SNS 활동도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거든요. 절제도 할 줄 알고 또 프로페셔널하게 자기PR을 위해서 잘 활용하는 방법도 알면서 생활했으면 좋겠어요. Q. 현재 삶의 만족도 삶의 만족도요? 지금 굉장히 힘들어요(웃음). 농구선수였을 때가 가장 편했고요. 회사 다닐 때가 다음으로 편했던 것 같아요. 제 이름을 걸고 또 다른 도전을 하게 된 거잖아요. 신경 쓸 게 한두 개가 아닌 것 같아요. Q.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할 것인지? 예전에는 다시 태어나면 농구를 안 할 것이라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조금 더 잘하고 싶어요. 기회가 있을 때 보여주고 싶은 플레이를 다 보여주고 싶어요. 또 언제 그렇게 많은 관중의 환호와 응원을 받으면서 뛰어보겠어요. 그게 굉장히 소중하고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Q. 김명진에게 ‘도전’이란? 도전은 후회하더라도 꼭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할까 말까 고민하면 안 해봐도 후회해요.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일단 해봐야 해요. 해보면 ‘실패’라는 없는 것 같아요. 실패가 아니라 ‘좋은 경험’으로 항상 돌아오더라고요. 여러분도 일단 도전해보시고 값진 경험을 얻어보는 것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 더 자세한 이야기는 영상을 통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 장민주 인턴기자 goodgood@seoul.co.kr영상 문성호‧임승범‧장민주 기자 sungho@seoul.co.kr
  • “가부장 사회의 여성 승리” 아프리카 소녀, WTO 첫 여성 수장으로 [김정화의 WWW]

    “가부장 사회의 여성 승리” 아프리카 소녀, WTO 첫 여성 수장으로 [김정화의 WWW]

    “세계무역기구(WTO)엔 리더가 필요합니다. 새롭고 신선한 얼굴, 외부인, 개혁을 실행하고 회원국과 협력해서 현재의 기능 마비를 해결해줄 사람이요.” 지난 15일(현지시간) 신임 사무총장으로 추대된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가 CNN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1995년 WTO 창립 이래 수장 자리에 오른 첫 여성이자 첫 아프리카 출신이다. 그 자신의 말처럼 오콘조이웨알라 신임 사무총장은 WTO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국가 간 자유무역을 표방하며 세계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게 설립 목적이지만, WTO는 수년간 미중 간 갈등의 장으로 전락했다.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 멕시코, 중국 등에 관세를 매기며 WTO의 의미가 퇴색했고, 코로나19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백신 전쟁’까지 벌어져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오콘조이웨알라가 사무총장에 임명된 건 이 같은 상황을 타파할 거란 기대감 때문이다. 수십년간 국제기구에서 활동하며 쌓은 그의 정치력과 협상력이 구성원간 분쟁과 불일치로 무너져가는 조직을 다시 세울지 주목된다.가난한 어린 시절과 내전 상처…“빈곤 경험에서 힘 키워” 1954년 나이지리아 남부 델타주 오그워시 유쿠에서 태어난 오콘조이웨알라는 지독히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이바단대 교수였는데, 독일 장학생으로 유학하느라 오콘조이웨알라는 9살 때까지 할머니 밑에서 컸다. 그는 “5살 때 요리를 시작했다”며 “마을에서 여자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다 했다”고 돌아봤다. 물 긷기, 땔감 가져오기, 농장의 잡일 모두 그의 몫이었다. 10대 때 벌어진 비아프라 내전(1967~1970)은 삶을 완전히 바꿨다. 나이지리아 동남부의 반란군이 ‘비아프라 공화국’을 세우고 분리 독립을 시도한 것인데, 비아프라군의 준장이었던 오콘조이웨알라의 아버지를 지원하는 데 집안의 모든 돈이 들어갔다.사촌의 집에 놀러 갔을 때 갑작스런 공습이 벌어져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는 “집 안에 지하 대피소가 없어서 밖으로 달려나갔는데, 한 청년이 내 옆에서 총알을 맞았다”며 “청년이 죽지는 않았지만 그가 없었다면 내가 대신 총에 맞았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실패로 끝난 이 전쟁 이후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오콘조이웨알라는 “우리는 하루에 한끼만 먹었다. 차가운 바닥과 벙커,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잠을 청해야 했고 아이들이 내 주변에서 죽어가는 걸 봤다”며 “나는 고통을 겪는다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안다”고 말했다. BBC는 “그의 업무 추진력은 실제 빈곤의 경험에서 비롯됐다”며 “결단력과 독립성은 그가 나이지리아에서 개혁을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평했다.나이지리아 전면 개혁 앞장…‘트러블 메이커’ 별명에도 “신경 안 써” 오콘조이웨알라는 경험과 이론에 두루 능한 재무·경제 전문가다. 나이지리아에서 학업을 마친 뒤 1970년대 미국으로 가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MIT에서 지역경제개발학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는 고국으로 돌아가 재무장관을 두 차례 지냈고, 2006년에는 외무장관을 잠시 맡기도 했다. 나이지리아에서 여성이 두 부처 장관을 지낸 건 처음이다. 또 25년을 세계은행(WB)에서 개발경제학자로 근무하며 국제무대에서 인지도를 높였다. 그가 장관직을 역임하며 일군 것은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다. 유가와 연동해 재정수입을 정비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전자 재무관리 플랫폼을 만들어 ‘유령 공무원’에게 새나가는 세금을 막았다.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2005년 나이지리아가 파리클럽으로부터 300억 미국달러의 부채를 탕감 받는 데 기여한 것이다. 이런 노력 덕에 나이지리아는 2006년 피치와 S&P 신용등급이 BB-로 올라갔다.강단 있는 그의 성격과 업무 추진 방식은 당연히 반대 세력의 큰 반발에 부딪혔다. 석유 관련 산업의 개혁을 추진하던 당시, 반대 측에서 어머니를 납치했지만 물러서기를 거부했던 일화가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트러블 메이커’라는 뜻의 ‘오콘조 와할라’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별명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파이터’”라면서 “누구든 내 방식을 방해하면 내쫓길 것”이라고 했다. 자연히 화려한 수식어도 따라붙었다. 그는 각종 잡지와 기관 등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100명, 아프리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명 중 하나다. 로버트 졸릭 전 세계은행(WB) 총재는 2011년 직원들에게 보낸 내부 메모에서 “오콘조이웨알라는 변동 폭이 큰 식량 가격으로 타격을 입은 국가를 돕는 데 중추 역할을 했다”며 “그의 리더십으로 식량위기대응프로그램(GFRP)을 마련했고, 44개국에서 4000만명 이상을 도왔다”고 했다. 앞으로 2025년까지 2억 2000만달러의 예산과 직원 650명을 아우르며 그가 해야 할 일은 녹록지 않다.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축소된 글로벌 무역의 회복, WTO 분쟁 해결 절차에서 대법원 역할을 하는 상소 기구의 재정비, 주요 회원국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 등 과제가 많다. “가부장 국가 희망” 국제기구 여성 참여에도 영향 미칠까오콘조이웨알라는 여성의 역량 강화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시민단체 글로벌시티즌은 “정치와 공적 생활에서 여성의 평등한 참여와 리더십 발휘는 필수적이지만, 유엔(UN)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119개국은 한번도 여성 지도자를 가져본 적이 없다”며 “오콘조이웨알라의 사무총장 임명은 특히 아프리카 여성에게 권력을 분배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했다. 앞서 오콘조이웨알라는 장관 시절부터 소년과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도 활발히 펼쳤다. 국내 소녀와 여성 프로그램(GWIN)을 통해 여성의 권한을 강화했고, 청년 창업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나이지리아 여성 운동가 조세핀 에파추쿠마는 “나이지리아 같은 가부장적이고 여성혐오적인 국가에서 오콘조이웨알라는 여성이 자신의 능력을 훌륭하게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했다”며 “그의 정직함과 투명함, 책임감은 나이지리아 고위공직자 대다수에게선 볼 수 없는 미덕”이라고 말했다.1000만명이 넘는 아동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도 희망이다. 소말리아 최초로 여성 대통령 후보로 나선 파두모 다이브는 “오콘조이웨알라의 임명은 아프리카 여성에 대한 구조적인 장애물에도 여성의 역량과 리더십, 탁월함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의 발언권 확대는 WTO에서도 중요한 업무의 한 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국제 무역에 더 많은 여성이 참여하는 도전에 화답해야 한다”며 “특히 공식 부문에 여성 소유 기업이 포함되는 게 어려운 개발도상국에서 더 그렇다”고 밝혔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는 누구 · Ngozi Okonjo-Iweala1954 나이지리아 델타주 출생1977 하버드 경제학 학사 졸업1981 메사추세츠 공대(MIT) 지역경제개발 박사2003~2006 나이지리아 재무장관 (2006년 외무장관도 역임)      국제통화기금(IMF) 국제통화 및 재무위원회위원 2004 세계은행(WB) 개발위원회 의장2007 WB 전무이사2011~2015 나이지리아 재무장관2020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이사회 의장2021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임명
  • ‘여신강림’의 야옹이 작가, 싱글맘 고백 이후 감사 인사

    ‘여신강림’의 야옹이 작가, 싱글맘 고백 이후 감사 인사

    웹툰 ‘여신강림’으로 잘 알려진 야옹이 작가가 싱글맘 고백 후 이어진 응원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야옹이 작가는 18일 자신의 SNS에 “따뜻한 마음 다들 감사합니다♥ 친구들도 모두 고마워”라는 글을 올렸다. 야옹이 작가는 앞서 자신의 SNS를 통해 싱글맘임을 고백해 큰 화제를 모았다. 그는 “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목숨보다 소중한 꼬맹이가 있어요”라며 “제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며 지켰고 여전히 지키고 있는 존재죠”라고 말했다. 야옹이 작가의 아들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저는 아이를 키우면서 새로운 사랑을 배웠고 철이 들었습니다. 제 인생의 이유가 된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웃는 날보다 눈물로 지낸 시간이 훨씬 많았지만,이제는 아이가 지친 저를 달래줍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제 삶의 원동력이며 가장 소중한 존재이자 평생 지켜야 할 존재이기에 저는 매일매일 지치고 힘들어도 힘을 냅니다”라면서 “그렇게 소중한 만큼 많는 분들께 저의 개인사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조심스러웠던 부분이 있었습니다”라고 했다.야옹이 작가는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힘든 시기에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연인인 웹툰작가 전선욱이 있어서 힘을 낼 수 있었다고 했다. 또 그는 “저랑 똑 닮은 외모와 성격이라 보고 있으면 걱정도 되지만 세상 가장 든든한 존재인 예쁜 내 아이”라며 “이렇게 모자란 나를 세상에서 가장 믿고 사랑해 주는 우리 꼬맹이한테 항상 고마워요”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끝으로 그는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 때도 있지만 아이의 웃음을 보면 힘든 것도 다 사라집니다”라며 “요녀석을 지키기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아갑니다”라고 다짐했다. 이에 네티즌들은 “그동안 너무 수고했고 고생했어요. 야옹작가님이 좋은 사람이라 주변에 좋은사람들이 많은것 같아요”, “힘든 상황에서 아이를 책임지며 키우고, 주변 도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감사해하는 마음도 얼굴만큼 아름다워요”라면서 그녀를 응원했다. 한편 야옹이 작가는 지난 2018년 웹툰 ‘여신강림’으로 데뷔했다. 연예인 못지않은 외모로 큰 화제를 모으며 실제 자신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려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과거 쇼핑몰 피팅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남자친구인 전선욱 작가와의 러브스토리를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1991년생으로 30살인 야옹이 작가와 1987년생인 34살 전 작가는 4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전문] 탱크, 리쌍 길 폭로 “오인혜에 욕설”…길 측 “사실무근”(종합)

    [전문] 탱크, 리쌍 길 폭로 “오인혜에 욕설”…길 측 “사실무근”(종합)

    “무한도전 때도 폭언·폭행 일삼아유재석·하하로부터 혼났다 들었다” “쇼미더머니5 ‘호랑나비’ 표절 문제되자‘네가 뒤집어써라’며 매니저 통해 종용” 가수 겸 프로듀서 ‘탱크’(안진웅)가 그룹 리쌍의 길(길성준)에게 노동착취와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길 측은 탱크의 폭로 내용이 사실무근이라며 법적 조치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탱크 “반성하는 모습과 전혀 다른 삶 살고 있다”탱크는 지난 17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음주운전 3번/여성혐오/매니저 폭행/원나잇/협박/노동착취/언어폭력/범죄자. 여러분은 지금도 속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그는 이 영상에서 “이 영상은 한때는 최고의 힙합 프로듀서이자 대한민국 최대의 예능인으로 살다가 음주운전을 3번 저지른 뒤 현재는 대중에게 미운털이 박힌 어떤 남성을 고발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밝혔다. 탱크는 폭로 대상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네티즌들은 그가 제시한 설명을 토대로 길을 지목했다. 탱크는 “지금부터 내가 그에 대해 드릴 말씀은 전부 진실이며 일부는 통화녹음 등의 파일 증거를 소유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가 여러분을 속이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는 최근에도 자신의 장모를 동원하고 부인과 아들을 팔아 동정심을 유발하여 자신의 컴백 기반으로 삼으려고 했다. 또 기부를 한다고 기사를 내는 등의 행동을 하고 있지만, 실체는 놀고먹어도 될 만큼의 저작권료와 실연권료, 연예인 협회에서 들어오는 돈으로 서래마을의 100평에 가까운 크기의 고급 빌라에서 호의호식하고 있으며 다른 PD, 무면허 음주운전을 한 기록이 있는 한 연예인과 골프를 치러 필드를 다니는 등, 끊임없이 복귀를 노리고 있다. 본인이 말하는 ‘반성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성 혐오 행위, 매니저 폭행, 4명의 여자친구를 동시에 사귀면서도 클럽에서 원나잇을 즐겼으며, 1년간 저를 비롯한 사람들을 계약서없이 노예처럼 부렸고 이에 대해 어떠한 돈도 당연하다는 듯이 지불하지 않았다”라며 “심지어 제가 자신을 떠난 이후 저를 모함하고 다녔으며, 자신에게 다른 작곡가가 표절 소송을 걸겠다고 협박을 하자 저에게 그것을 뒤집어쓰라며 ‘그게 너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협박을 한 적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폭로 상대가 ‘무한도전’에서 하차한 뒤 자숙 없이 바로 새 음반을 준비했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과 인연을 맺게 됐다고 설명한 뒤 한 연습실에 자신을 비롯해 3명의 프로듀서를 가둬두고 제대로 된 임금 지불조차 없이 음악 작업을 시켰다고 폭로했다. 또 “곡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의 언어폭력과 폭행 행위는 멈추지 않았다. 이는 고용노동부 지침에 어긋나는 엄연한 불법 행위이며 범죄”라고 강조했다. 폭로 대상의 사생활도 거론했다. 탱크는 “그에게는 당시 4명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분이 고 오인혜씨였다”라며 과거 폭로 대상이 자신의 집에서 청소 중인 고 오인혜씨에게 ‘XX 시끄럽네, XX’라는 폭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아이유가 노래방에서 그의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보냈을 당시에도 ‘XX하네, XXX’라는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고 전했다. 탱크는 “그는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했다”라며 “코디, 매니저 등에게 수시로 언어 폭력을 행사했고 때로는 직접적으로 폭행했다. 그로 인해 ‘무한도전’ 녹화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 때로는 유재석 형님이, 때로는 하동훈 형님이 따로 불러서 혼을 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는 제가 유일하게 목격하지 못한 이야기로, 노홍철씨의 전 매니저였으며 그의 회사의 실장으로 아주 잠깐 일하셨던 분께 직접 들은 이야기”라고 밝혔다. 이 사건들로 인해 결국 그의 곁을 1년 만에 떠나게 됐다는 탱크는 이후 그로부터 “‘쇼미더머니5’의 ‘호랑나비’가 원곡 작곡가로부터 ‘콘셉트 표절’ 혐의로 고소당할 위기에 처했으니 네가 뒤집어써라”는 협박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탱크는 “(쇼미더머니5의) ‘호랑나비’는 제가 처음 주도해서 쓴 곡이 맞고, 브라스 라인과 송 폼을 짠 것이 사실이나 편곡은 그(폭로 대상)이 독단적으로 혼자 정한 일”이라며 “그는 곡을 만든 저작자에게 아무런 허락도 받지 않고 가수만 무대에 초대해서 노래를 도용했다. 당연히 저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었지만 그의 매니저는 ‘네가 다 뒤집어쓰고, 서류에 도장을 찍어 보내라’고 협박했다. 그 역시 이게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고 혹시나 녹취 당할까봐 자신의 매니저를 앞세워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다. 지금도 이 통화 내용을 전부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영상이 그에게 전달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양심이 있으면 그런 식으로 불쌍한 척하며 국민들을 속이려 하지 말라. 그리고 본인이 한 행동에 대해 사과하라. 당신과 연관돼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이 벌써 3명이다. 적어도 아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돼라”고 덧붙였다. 이 영상은 지난 18일 삭제됐다가 탱크의 유튜브 채널에 다시 올라왔다. 그는 영상 설명에 “이 영상의 인물들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많은데 제가 밝힌 것 이외에 더 나아가는 추측은 삼가해주시면 감사드리겠다”고 밝혔다. 길 측 “입장 발표와 함께 법적 조치 준비 중”이같은 폭로에 대해 길과 탱크와 작업했던 ‘매직 맨션’(길의 작곡팀) 조용민 프로듀서는 1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길을 옹호했다. 조용민은 “이 시간에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휘말리게 되고 씻을 없는 상처를 입을까 걱정되어 글을 쓴다”면서 “곡비를 안 받은 적도 없으며 저작권을 부당한 비율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모두 똑같이 나눠 받았다. 안진웅이 길이라는 사람을 어떠한 이유로든 혹은 이유가 굳이 없더라도 싫어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단지, 제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고, 그로인해 파생된 억울함을 벗기기에는 몇 배가 되는 에너지를 소모해야하고 서로에게 상처는 지워지지 않음을 너무 잘 알기에 글을 쓴다”고 밝혔다. 폭로 속 인물로 거론되는 길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법적 조치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길 측은 “탱크가 업로드한 유튜브 영상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이에 대해 입장 발표와 법적 조치를 준비 중”이라며 “길의 전 매니저와 현재 오하이오주에 살고 있는 매직 맨션의 메인 작곡가에게 사실을 확인했다”고 여러 매체에 밝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다음은 탱크 영상 전문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탱크, 본명은 안진웅입니다. 쇼미더머니 5에서 호랑나비라는 곡을 작곡하였고 이 업계에서 대략 7년간 일하여 이하이, 버벌진트, 백지영, 옹성우 등의 가수들의 곡을 만든 프로듀서이자 가수입니다. 이 영상은 한때는 최고의 힙합 프로듀서이자 대한민국 최대의 예능인으로서 살다가 음주운전을 3번 저지른 뒤에 현재는 대중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어떤 남성을 고발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가 여러분을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최근에도 자신의 장모를 동원하고 부인과 아들을 팔아 동정심을 유발하여 자신의 컴백기반으로 삼으려고 했으며 기부를 한다고 기사를 내는 등의 행동을 하고 있지만, 실체는 놀고 먹어도 될 만큼의 저작권료와 실연권료, 연예인 협회에서 들어오는 돈으로 서래마을의 100평에 가까운 크기의 고급 빌라에서 호위호식하고 있으며 다른 PD, 무면허 음주운전을 한 기록이 있는 한 연예인과 골프를 치러 필드를 다니는 등, 끊임없이 복귀를 노리고 있고, 본인이 강조하는 반성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그에 대하여 여러분께 드릴 말씀은 전부 진실이며 일부는 통화녹음 등의 파일 증거를 제가 현재 소유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그는 여성혐오행위, 매니저 폭행, 4명의 여자친구를 동시에 사귀면서도 클럽에서 원나잇을 즐겼으며, 1년간 저를 비롯한 사람들을 계약서없이 노예처럼 부렸고 이에 대해 어떠한 돈도 당연하다는 듯이 지불하지 않았고, 심지어 제가 자신을 떠난 이후 저를 모함하고 다녔으며, 자신에게 다른 작곡가가 표절 소송을 걸겠다고 협박을 하자 저에게 그것을 뒤집어 쓰라고, 그게 너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협박을 한 행적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를 처음 만났던 것은 홍대의 ‘곽스튜디오’ 였습니다. 여름이었으며 그 자리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우혜미 누나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가 무한도전에서 하차한 지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은 여름 때였으며, 즉 그는 무한도전 하차 뒤에 자숙한 적 없이 바로 음반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저에게 몇 가지 오디션을 시켜보더니 함께 음악을 하자며, 다음과 같이 제안했습니다. “이제 방송 복귀전까지 나는 팀을 꾸릴 것이다. 나는 쇼미더머니 5로 복귀할 것이며 너와 함께 일하기를 원한다. 곡을 써봐라.” 그렇게 쓴 곡이 ‘냉장고’ 라는 곡이었습니다. 그 후에 그는 당시 압구정로데오에 있는 무한도전 연습실에 저와 다른 세 명의 프로듀서를 사실상 가둬놓고, 정확히 120만 원이 들어있는 체크카드를 주며 이로 4개월간 밥을 사 먹도록 했습니다. 당연히 그를 위해 일하는 거였으며 월급도 없었고 곡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의 언어폭력과 폭행 행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비싼 거 먹지 말고 삼각김밥 사서 먹으라고 하던 그였습니다. 이는 제 얕은 지식으로는 고용노동부 지침에 어긋나는 엄연한 불법행위이며 범죄입니다. 그러나 당시 겨우 20대 초반이었던 저는 그게 당연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썩은 동아줄을 계속 붙잡고 있었고 그러면서 수없이 많은, 차마 여러분이 들어도 믿지 못할 행위들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당시 4명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중에 한 분이 故 오인혜 누나였습니다. 그녀는 정말 따뜻했고 친절한,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저와 다른 2명의 프로듀서를 자신의 집으로 불렀고 우리가 모인 약 5분 뒤에 오인혜 누나가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집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고 당연하다는 듯이 집안 정리와 청소를 하였습니다. 여기서 저뿐이 아니라 저희 모두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오인혜 누나가 청소를 시작한 지 약 2분이 지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향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그가 그녀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말할 거로 생각했습니다만 문을 쾅 닫으며 그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XX 시끄럽네, XX” 그뿐이 아닙니다. 당시는 아이유 양이 장기하 님과 교제하던 시기였는데, 아이유 양이 자신과 장기하 님이 노래방에서 데이트하며 그의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보냈고, 그는 그것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XX하네, XXX” 그는 또한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했습니다. 그는 코디 매니저 등에게 수시로 언어폭력을 행사하였고 때로는 직접적으로 폭행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무한도전 녹화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 때로는 유재석 형님이, 때로는 하동훈 형님이 따로 불러서 분위기 망치지 말라고 혼을 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 이야기는 유일하게 제가 목격하지 못한 이야기로서 노홍철 씨의 전 매니저이셨으며 그의 회사의 실장으로 아주 잠깐 일하셨던 그분께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무한도전에 직접 출연하신 적도 있으신 분이니 직접 찾아보시면 될 겁니다. 저는 그렇게 1년의 세월 동안, 어렸을 때는 나의 영웅이었던 자의 실체를 목격하였고 결국, 그의 곁을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당시 그의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 아니었고, 계약을 한 것도 아니었으며 당연히 돈을 받은 적도 없었기에 그에게 어떠한 것도 고지할 의무가 없었습니다. 되려 그를 신고하고 고소하지않은 것을 그는 평생 고맙고 은혜롭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돌아온 것은 배신과 모함, 그리고 협박이었습니다. 저는 사회복무요원이었습니다. 따라서 훈련소에서 28일간 훈련을 받았었습니다. 훈련을 받고 나온 뒤 저의 전화기에는 그의 전 매니저였다가 다시 돌아온, 역시 무한도전에서 노홍철 씨의 전 매니저와 제기차기를 하던 그에게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이 와있었습니다. 내용인즉슨, 쇼미더머니 5의 호랑나비가 김흥국 선생님의 호랑나비를 쓴 작곡가님께 가사와 컨셉을 표절했다는 이유로 고소에 처할 위기에 놓여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께 이 자리에서 한가지 밝힐 것이 있습니다. 호랑나비는 제가 처음 주도해서 쓴 곡이 맞습니다. 브라스의 라인과 송폼을 제가 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후렴구와 가사의 멜로디, 그리고 편곡에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 사람이 독단적으로 혼자 김흥국의 호랑나비를 흥얼거리며 부르더니 이걸로 하자고 독단적으로 정한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그의 일 처리 능력을 볼 수 있는데, 여러분은 아마 쇼미더머니 5의 보이비의 호랑나비 무대에서 김흥국 선생님이 직접 등장하신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근데 그는 고소를 당할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즉, 그는 곡을 만든 저작자에게는 아무런 허락도 받지 않고 냅다 가수만 초대해서 노래를 도용한 것입니다. 이는 당연히 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매니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너 솔직히 우리 회사에 있을 때 아무것도 한 거 없잖아. 그러니까 이거 다 네가 뒤집어쓰자. 지금 당장 메일로 서류 보낼 테니까 도장을 찍어서 보내 새끼야.” 여러분. 저는 이 매니저와 말을 놓은 적도 없었고, 어떤 친분도 없는 사이였습니다. 저는 솔직히 용역 깡패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비겁하게 이걸 스스로 직접 얘기할 용기도 없었던 그 프로듀서도 아주 사람이 작아 보이더군요. 자신도 이게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았던 거죠. 그러니까 혹시나 녹취 당할까 자신의 매니저를 앞세워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이 통화내용을 전부 저장해서 하드에 갖고 있습니다. 이 영상이 그에게 전달될지 안 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본다면, 양심이 있으면 그런 식으로 불쌍한 척하면서 국민들을 속이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본인이 한 행동에 대하여 사과하십시오. 당신과 연관되어 극단적 선택한 사람이 벌써 3명입니다. 당신이 생각해도 뭔가 이상한 것 같지 않습니까? 스스로 한번 고민해보십시오. 적어도 아들보기에 부끄럽지는 않은 아버지가 되셔야죠. 이건 지난 1년의 정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 [그들의 시선] 실패를 가장 많이 경험하는 변남석 작가 “제 작업에 밑그림은 없어요”

    [그들의 시선] 실패를 가장 많이 경험하는 변남석 작가 “제 작업에 밑그림은 없어요”

    “초반에는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거나, 그거 하면 밥이 나오느냐는 분들이 있어요. 할머니들 표현은 단순해요. 뭐 먹고사세요? 라고 물어보시죠. 안쓰럽게 생각하는 시선이 많았습니다.” 16여년 전. 분당 탄천에서 돌을 세우던 변남석(59) 설치 작가를 향한 주변의 시선은 그랬다. 이에 대해 변 작가는 “제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 말할 뿐,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편견 뒤에서 하루하루 꾸준히 쌓아올린 그의 취미는 어느 순간 예술 작품이 됐고, 직업이 됐다.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도 180도 달라졌다. 최근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공방에서 그를 만났다. 변남석 작가는 무엇이든 균형을 잡아 세우는 재능이 있다. 외국에서는 그를 균형 잡기 예술가, 즉 밸런싱 아티스트(Balancing Artist)라고 부른다. 변 작가는 작은 돌에서부터 유리병, 자전거, 세탁기, 공중전화부스 등 크기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서리나 귀퉁이에 중심을 잡아 세운다. 그는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많은 실패를 하는 사람.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절대 중심을 잡는 ‘중심 잡기 예술가’로 보시면 될 것 같다”라고 소개했다.# 내 삶의 중심을 잃었을 때, 운명처럼 예술 재료를 만났다.  운동 신경이 남달랐던 변 작가는 경희대학교 체육과를 졸업한 뒤 서울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10년간 근무했다. 이후 분당에 실내 스키장을 열어 직접 운영했다. “세계에서 스키를 가장 잘 가르칠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그의 자신감만큼이나 사업도 잘됐다. 하지만 이혼의 아픔으로 길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변 작가는 그 시기를 “삶의 중심을 잃었을 때”라고 말했다. 곁에 남은 5살과 8살 난 두 아들과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부침을 느꼈다. “모든 일을 제가 다 해야 하잖아요. 아이들 돌봐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부모님도 챙겨야 하고. 집안일이 끝나야 비로소 저의 하루 일과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런 생활이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인생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들었습니다.” 2003년, 어느 여름날. 심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지쳐 있던 변 작가는 춘천에 있는 등선폭포에 갔다. 계곡에 몸을 담그고 있던 그의 눈에 돌 하나가 들어왔다. 장난삼아 그 돌을 세우고, 그 위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세웠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숙소에 돌아와 그 사진을 본 변 작가는 묘한 매력에 빠졌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 같았어요. 깜짝 놀랐죠. 누군가가 그 돌을 가져갈까 봐, 없어질까 봐, 밤새 잠을 못 잤습니다. 날이 새자마자 다시 그곳에 가서 그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날 이후, 돌 위에 돌을 쌓는 것이 좋은 취미가 될 것 같아 (중심 잡기를) 시작했어요. 그게, 이제는 직업이 됐죠.”# “‘돌’ 중심 잡지 말고 ‘돈’ 중심이나 잡아” 변 작가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면서 중심을 잃었던 자신의 삶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음을 느꼈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늘 중심 잡기에 몰두했다. 아니 푹 빠졌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변 작가 어머니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당시 어머니는 그에게 “그거 하면 돈이 생기니, 쌀이 생기니…”하며 안타까워하셨고, “돌 중심 잡지 말고, 돈 중심 잡으라”고 조언하셨다. 당시 그렇게 변씨를 걱정하시던 어머니는 지금, 고인이 되셨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고 균형 잡기에 몰두했다. 돌 세우던 것으로 시작한 소박한 그의 예술은, 자전거, 오토바이, 사다리 중심 잡기 등 다양해졌다. 완성된 작품은 하나씩 직접 촬영해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했다. 이 블로그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KBS ‘오천만의 일급비밀’, SBS ‘스타킹’, ‘생활의 달인’ 등 방송출연으로 이어졌다. 그런 인연으로 서울시 홍보영상에 출연하게 됐고, 그 영상을 본 두바이 왕세자가 자국으로 변씨를 초청하면서 두바이 몰에서 공연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공식적인 그의 첫 공연이었다. “제가 공연을 하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논다고 생각하고 즐기며 보여줬어요. 금액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난 뒤, 봉투를 주는데, 1만 달러가 들어 있는 거예요. 그 당시 1000만원이 넘는 돈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외국에서 섭외 연락이 오면 ‘나는 1만 달러’, 라고 답했는데, 성사가 잘 안 되더라고요.(웃음) 잘 몰라서 그렇게 말했는데, 나중에는 (부르는 금액이) 점점 줄게 되더라고요.” 이후 변 작가는 국내 방송은 물론 CNN·BBC·NBC 등 다수 해외 방송에 출연했고, 미국·홍콩·싱가포르 등에서 다채로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공연, 행사, 광고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다양한 방식으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수입도 늘었다. 이쯤 되면 “뭐 먹고사세요?”라고 질문했던 어느 할머니의 물음에 답이 된 것 같다.# “제 작업에 밑그림은 없어요” 변 작가에게 작업방식을 묻자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진행한다”고 답했다. 그는 먼저 그날 날씨를 확인한 후 장소를 정한다. 그곳에서 어울리는 작품 소재를 찾고, 즉석으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는 “장소에 맞는 돌을 찾는 작업이 제일 어렵다”면서 “돌을 찾으면 작은 것은 그냥 들고 옮기면 되는데, 큰 것은 굴려서 옮긴다. 사람들이 보면 저 사람 뭐 하나, 할 정도로 미친 듯이 갯바위 위를 뛰어다닌다. 그 과정을 거쳐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해진 틀에서 작업하지 않지만, 어느 곳에서든 주어진 환경을 기반으로 최선을 다해 창작에 임하는 것이다. “밑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특별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지금도 누군가 ‘무슨 작업 하세요?’ 물으면, 놀아요, 이렇게 답해요. 놀다 보면 실패를 만나고, 또 그 과정에서 ‘이렇게 하면 더 잘되겠다’와 같은 생각이 따라와요.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면서 생각이 따라오는 작업을 하다 보니 남들과 조금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근데 균형 잡기는, 마음의 중심을 잡고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자기 확신만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어요.”여러 일정 속에서도 변 작가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그는 “‘너희는 모두 특별해’, ‘너희는 능력자야’, 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고 기부 이유를 밝혔다. 그런 변 작가의 목적만큼이나 그의 재능기부 시간에는 아이들과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 낸다. “먼저 그곳에서 소외되는 아이를 추천받아요. 그 아이를 제 도우미로 초대해 옆에 앉혀요. 그러면 아이들이 부러워하죠. 그리고 각 반에서 한 명씩 불러서 시합을 시키는데, 그 아이를 결승에 포함시켜요. 항상 소외받고, 약한 아이이다 보니 다른 아이들도 뭐라고 안 해요. 그런데 소외되던 아이가 결승전에서 절대로 지지 않아요. 그때 아이들은 누구나 갖고 있는 특별함을 발견하는 경험을 합니다.” 여전히 그의 성공 뒤에는 수없이 많은 실패가 기다리고 있다. 더구나 변씨는 수전증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다는 ‘긍정 에너지’와 ‘오랜 노력’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의 약점을 이겨내고 있다. “사실 저는 중심 잡기를 하기에 조건이 나쁜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성격이 급하고 산만합니다. 더 나쁜 점은 손을 떤다는 거예요. 병을 세워야 하는데, 손을 떠니 ‘어떻게 하지? 망했다’ 이런 생각이 잠깐씩 들곤 해요. 그럴 때도 제가 결과를 만듭니다. 사람들은 좋은 조건에서만 결과를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더 나쁜 조건에서 뭔가를 이루면, 훨씬 더 강한 사람이잖아요. 그럼에도 결과를 내고 싶다, 는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중심 잡기는 실패에 도전하는 작업이니까요.”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문성호, 김형우, 임승범 기자 hwkim@seoul.co.kr
  • 하루 10시간, 스마트폰 세상에 갇혀 어느새 ‘학포자’… 게임 캐릭터 친구뿐

    하루 10시간, 스마트폰 세상에 갇혀 어느새 ‘학포자’… 게임 캐릭터 친구뿐

    모범생이던 다영이, 엄마 실직 뒤 폰 집착뺏으면 물건 던지고 자지러져 상담만 15번‘영상 만들기’에 빠져 낮밤 뒤바뀐 동준이 보충수업도 무기력, 유일한 외출은 편의점 취약층 아동 66%, 폰 사용시간 크게 늘어“돌봄 공백에 정서적 우울·학습 격차 심화”지난해 직장을 잃은 엄마와 매일 다투는 윤다영(10·가명)양과 침대에서 이불만 덮어쓴 채 겨울을 나는 오동준(13·가명)군의 일상은 코로나가 키워 온 관계 단절·소외의 모습과 닮아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윤양은 매일 10시간 가까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엄마가 썼던 구형 스마트폰, 사촌 오빠가 준 공기계, 자신의 키즈폰까지 3개의 단말기로 유튜브, 틱톡, TV 프로그램, 게임까지 반짝이는 눈으로 작은 스크린만 종일 응시한다. 윤양이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드라마 펜트하우스와 예능 프로그램인 미스트롯. 둘 다 시청 가능 관람 등급이 19세, 15세로 윤양에게 부적합하다.●엄마와 소원했던 아이, 함께 생활에 갈등 커져 엄마 양모(41)씨는 “매일 싸웠다. 코로나 이전에는 학교에서 모범생이라고 칭찬받던 아이가 지금은 두 얼굴의 악마가 됐다”고 걱정을 쏟아냈다. 윤양의 디지털 중독 증세는 심각하다. 엄마가 스마트폰을 뺏거나 감추면 물건들을 던지거나 자지러지게 울기도 한다. 모녀는 지난해부터 15차례에 걸쳐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 모녀의 갈등과 아이의 스마트폰 집착이 심해진 건 엄마가 지난해 8월 실직하면서다. 양씨는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이의 스마트폰 집착도 커진 것 같다”고 했다. 양씨는 이혼 후 면세점에서 일해 왔다. 홀로 생계를 책임지는 상황에서 윤양의 교육이나 돌봄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양씨는 “코로나 충격으로 면세점 매출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직원들이 구조조정됐다”며 “나도 실업급여를 받으며 집에 있다 보니 그간 소원했던 아이와의 관계가 더 나빠진 것 같다”고 자책했다. 코로나가 앗아 간 학교의 부재는 후유증이 적지 않다. 성장기에 전인적 배움의 결핍은 윤양뿐 아니라 오군에게도 삶에 대한 태도나 가치관을 바꾸는 상처가 되고 있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는 오군의 세계는 한 평 남짓한 방으로 좁혀졌다. 오군의 외출은 편의점을 갈 때나 인근에 있는 할머니 집을 갈 때뿐이다. 오군의 집에는 어른이 없다. 오군과 중학생 누나, 고등학생 형 등 홀로 삼남매를 돌봐 온 아버지는 2019년 암으로 숨졌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인 삼남매는 부친을 잃은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코로나로 덮인 세상으로부터 소외됐다. 오군이 다니던 지역아동센터는 코로나가 유행할 때마다 문을 닫았고, 심리·정서 지원을 돕던 대학생 멘토링도 잠정 중단됐다. 삼남매는 각자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한 공간 안에서 남처럼 산다. 유일한 어른인 80대 친할머니가 아이들의 끼니를 살피는 정도다. 매달 지원되는 120만원 수급비로 삼남매는 월세를 내고 생활한다.●흥미 잃은 줌 수업, 문 닫은 시설… 폰과 소통뿐 어린 오군이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은 형·누나, 친구가 아닌 스마트폰이다. 오군은 코로나 초기 학교 줌 수업도 스마트폰으로 챙겨 보고 녹화 수업 영상도 봤지만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되면서 흥미를 잃었다. 그동안 오군을 지켜봐 온 변선경 서울 동대문교육복지센터 사회복지사는 “지난 1년간 제대로 수업을 받지 못해 동준이의 학습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며 “담임 선생님이 휴교 중에도 아이를 학교로 불러 보충 수업도 했지만 무기력하다”고 걱정했다. 오군의 스마트폰 몰입은 매일 밤샘으로 이어진다. 오군은 ‘졸라맨’이라고 이름 지은 캐릭터들을 스마트폰으로 그려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만든다. 70초 분량의 영상을 만드는 데 두 시간 이상 걸린다.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거나 축구하며 뛰노는 걸 좋아했던 오군은 지금은 동네 친구들과도 접촉이 없다. 방안에서 홀로 밤낮을 바꿔 생활한 탓이다. 오군은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친구들이 많다”며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익명의 캐릭터들을 ‘친구’라고 불렀다. 오군은 “꿈에서도 마스크를 쓰는 게 싫다”고 했다. 그래서 “마스크를 써야 하니까 안 나간다”고 침대에서만 생활하는 이유를 말했다. 국제구호개발 NGO 희망친구 기아대책과 서울대 아동가족 연구팀이 지난해 8월 조사한 ‘코로나19 취약가정 아동·청소년 실태’에 따르면 전체 조사 대상 988명의 66%가 스마트폰 영상 시청 시간이 코로나 이전보다 크게 늘었다고 응답했다. 하영주 희망친구 기아대책 아동복지팀장은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취약계층 아동들은 돌봄 공백의 일상화와 정서적 우울감 증가, 학습격차 심화 등 다양한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그 뒤에는 코로나로 인한 유대의 상실,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방치가 있다. 촘촘한 사회적 그물망 구축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안주혁(10·가명)군은 등교 수업이 중단되면서 ‘학포’(학습 포기) 대열에 섰다. 안군은 줌 수업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을 표현하고 있다. 분식점을 운영하는 어머니 이모(50)씨는 “아이가 몇 번 잘 이해가 되지 않은 문제나 원리를 질문했지만 ‘나중에 설명해 줄게’라며 진도 나가기에 바쁜 선생님과 온라인 수업 방식에 실망한 것 같다”고 했다. 이씨는 “온라인으로는 소통이나 설명이 충분히 되지 않는다”며 “옆에서 줌 수업을 지켜보니 학원도 다니지 않은 주혁이와 이미 선행학습을 한 다른 아이들과의 차이가 확연히 보인다”고 답답해했다. ●사라진 소풍·체험학습… 놀이·문화경험도 결핍 성장기 발달에 필요한 사회적 상호작용과 정서·문화적 결핍은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큰 의미가 된다. 신도윤(8·가명)군은 “어린이 대공원에 3년 전에 간 것이 마지막”이라면서 “학교에 입학하면 소풍이나 체험 학습을 가니까 기대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갔다”고 울상을 지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엄마는 도윤이의 놀이나 문화 체험을 챙겨 줄 여력이 없다. 도윤이가 유일하게 뛰놀던 동네 놀이터도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폐쇄됐다. 박경현 샘교육복지연구소장은 “아이들 간의 격차는 교육 환경, 심리·정서, 신체 발달, 사회적 관계 등과 결합되면서 학력이라는 결과로 나타난다”면서 “코로나 장기화는 취약계층 자녀들에게 큰 위기”라고 말했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QR코드를 스캔하면 ‘2021 격차가 재난이다-코로나 세대 보고서’ 디지털스토리텔링 사이트(http://www.seoul.co.kr/SpecialEdition/gapDisaster/)로 연결됩니다.
  •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아이들의 사랑과 인내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아이들의 사랑과 인내

    갑자기 어묵 국물이 먹고 싶었다. 신월동 복개천에 어묵과 붕어빵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어서 무작정 발길을 옮겼다. 만취해서 들어온 나를 보고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며 어묵 국물을 내놓으셨다. 초등학생 여자아이 셋이 어묵을 먹고 있었는데 가운데 아이는 먹지 않고 양쪽 아이들만 자신 있게 어묵을 건져서 먹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화가 났다. 셋이 나란히 서서 한 아이가 먹지 않는데 양쪽 아이들은 맛있게 먹고 있는 무참한 장면이라니. 양쪽 아이들이 얄미웠다. 국물이라도 좀 떠서 주지 나쁜 녀석들. 아주머니도 나의 모난 눈빛과 어두워진 얼굴을 보고는 어색한 표정으로 눈치를 보았다. 포장마차 안의 침울한 분위기를 깨며 가운데 아이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얘야, 너도 먹어. 아저씨가 사줄게. 아저씨 돈 많은 거지야. 자자, 얼른 먹어. 먹고 싶은 만큼 다 먹어.” “저어…. 괜찮은데요, 안 먹어도 돼요.” “이 녀석아, 괜찮아. 먹어. 자아.” 가운데 아이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서도 어묵을 먹지 않고 서 있기만 했다. 양쪽 아이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저희 먹던 대로 열심히 잘 먹었다. 그중 한 아이가 내 눈치를 조금 보는 것 같기는 했다. 어색한 분위기에 억눌린 가운데 아이가 어묵을 힘들게 하나만 먹고는 더 안 먹겠다며 말했다. “저어, 아저씨, 저 사실 돈 있는데 안 먹고 있었던 거예요.” “응? 무슨 말이야?” “내일 남자친구한테 초콜릿 사주려고 어묵 안 먹은 거예요.” “내일이 뭔데? 남자친구 생일이니?” “밸런타인데인데요.” “그게 무슨 데이야?” “킥킥킥킥, 여자가 남자한테 초콜릿 사주는 날이에요. 죄송해요.” “아, 아, 야야야, 알겠다, 알겠어. 근데 그게 뭐가 죄송하니? 사랑을 위해 현재의 욕망을 참는 거 훌륭한 일이야. 하하하하, 멋진 아이로구나.” “네?” “좋은 일이라고. 난 괜히 너희들 오해했잖아.” 양쪽 아이들은 가운데 아이가 돈이 없어서 못 사서 먹는 게 아니라 사랑을 위해 안 사 먹는 거니까 미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양쪽 아이들은 가운데 아이 보란듯이 현재의 욕망에 충실했던 것이다. 나는 낡은 이분법으로 먹는 아이 못 먹는 아이 나누어 못 먹는 아이는 무조건 불쌍한 아이, 저희끼리만 먹는 양쪽 아이는 나쁜 아이들로 보았다. 어묵을 다 먹은 아이들이 나가려다가 돌아서서 나란히 인사를 했다. 괜히 설레발을 친 게 무안했던 나는 또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하나씩 더 먹어 아저씨가 사줄게.” 그때 가운데 아이가 어묵 두 개 값 1000원짜리를 내게 내밀며 한마디했다. “아저씨, 저 내일 초콜릿 이 돈 빼고도 사줄 수 있어요.” 나는 망설였다. 돈을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것도 한 개 값이 아닌 두 개 값을. 아까처럼 거만하게 소리쳤다. “근데 왜 두 개 값이냐?” “아저씨가 불쌍해 보여서요.” “그래? 음…. 알겠다. 그럼 이 돈으로 아저씨는 어묵 두 개 더 먹겠다. 거스름돈은 없다. 잘 가라. 너희들의 욕망, 너희들의 사랑 다 최고다. 얘들아, 그러고 너희들 다음에 여기서 또 만나면 내가 다 쏠게.” “네, 네, 호호호호, 깔깔깔깔.” 가운데 아이는 겸손하고 그윽하게 한번 나를 돌아보더니 가벼운 목례를 하고는 친구들 틈에 끼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500원 벌었다.
  • [기고] 실용인재, 대학과 기업이 함께 키워야/최지웅 한양대 에리카 산학협력선도대학육성사업단장

    [기고] 실용인재, 대학과 기업이 함께 키워야/최지웅 한양대 에리카 산학협력선도대학육성사업단장

    전 세계 기업들의 선망의 장소인 실리콘밸리는 스타트업 기업들의 메카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산업체 클러스터의 탄생은 스탠퍼드대학이라는 산학협력 선도대학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변혁의 시대가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있음을 몸소 느끼고 있다. 무인화,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각종 신기술은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우리를 몰아넣고 있다. 다시 대학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우리나라 대학의 최대 위기는 급변하는 시대에 필요한 역량을 가진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이 미흡하다는 점에 있다. ‘초연결’, ‘초융합’, ‘초지능’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미래혁신인재는 문제해결 능력, 비판적 사고력, 창의력, 협업 능력을 고루 갖춘 인재다. 이러한 인재를 육성하는 일은 현실을 외면하는 상아탑 대학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실리콘밸리 사례에서 봤듯 교육계와 산업계가 함께 창의력 있는 실용인재를 키우고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신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산업체들은 대학을 중심으로 유·무형의 산학협력 클러스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계가 참여할 수 있는 대표적 산학연계 교육으로는 산업 현장에서 이뤄지는 현장실습(Co-op) 교과와 학교 내에서 산업 현장이 겪는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는 문제해결형 학습(PBL) 및 문제해결을 위한 시제품 제작 교과(캡스톤 디자인) 등이 있다. 현장실습은 산학 간 인력 미스매치를 해소하고 학생들에게 필요한 직무능력을 배양시킬 수 있다. 대학은 기업과의 연결성을 강화하고, 기업은 열정페이로 대변되는 여러 부작용을 없애는 데 함께 노력해야 한다. 또 실제 기업의 문제에 대해 교수와 함께 학생이 해결책을 찾아가는 IC-PBL(Industry-coupled Problem Based Learning)은 학생의 직무역량과 문제해결력을 함양하는 동시에 기업이 필요로 하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특허 및 기술이전까지 연계할 수 있는 우수한 인력양성 프로그램의 좋은 예다. 대학과 산업계는 연구 분야뿐 아니라 교육에서도 동반자가 돼야 할 때다. 대학과 산업계가 함께 선순환적인 협력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산학협력일 것이다.
  • 야옹이 작가 “한 손으로 원고, 다른 손으로 아이 밥”…싱글맘 고백(종합)

    야옹이 작가 “한 손으로 원고, 다른 손으로 아이 밥”…싱글맘 고백(종합)

    야옹이 작가 “초등생 아들 있다”싱글맘 고백에 연인 전선욱“끝까지 나영이 편” 웹툰 ‘여신강림’의 야옹이 작가(김나영)가 싱글맘 임을 고백하자 연인 사이인 웹툰 작가 전선욱이 “끝까지 나영이 편”이라며 응원을 보냈다. 전선욱은 16일 야옹이 작가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아들이 있다고 밝히자 이같이 댓글을 남겼다. 그는 “책임감 있고 당당한 모습 진짜 너무너무 멋있다”며 야옹이 작가를 향한 애정을 나타냈다. 이날 야옹이 작가는 자신이 싱글맘이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는 “많은 분이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변을 드리려고 한다”며 “제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며 지켰고 여전히 지키고 있는 존재”에 대해 언급했다. 야옹이 작가는 “저는 아이를 키우면서 새로운 사랑을 배웠고 철이 들었다”며 “제 인생의 이유가 된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웃는 날보다 눈물로 지낸 시간이 훨씬 많았지만, 이제는 아이가 지친 저를 달래준다”고 했다. 그는 “한 손으로 원고하고, 다른 한 손으로 아이 밥을 먹이며 그렇게 지나온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며 “여전히 애기(아들) 언어가 또래보다 느려서 치료실 다니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야옹이 작가는 “이렇게 모자란 나를 세상에서 가장 믿고 사랑해 주는 우리 꼬맹이한테 항상 고맙다”며 “자기밖에 모르던 제가 아이가 아프면 대신 아프고 싶고 혹여 내놓으면 다칠까 노심초사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 때도 있지만 아이의 웃음을 보면 힘든 것도 다 사라진다. 요녀석을 지키기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아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 삶의 원동력이며 가장 소중한 존재이자 평생 지켜야 할 존재기에 저는 매일매일 지치고 힘들어도 힘을 낸다. 그렇게 소중한 만큼 많은 분들께 저의 개인사를 이야기하는데 있어 조심스러웠던 부분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야옹이 작가는 “저는 그저 웹툰 작가일 뿐이지만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고 있기도 해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개인사를 오픈한다”고 밝혔다. 특히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트라우마로 인해 상담 치료를 다니고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 먹으며 버틸 때 곁에서 먼저 손 내밀어 준 친구들, 가족들, 나의 사정으로 피해가 갈까 봐 미안해서 끝까지 밀어냈는데도 다가와서 손잡아준 (전)선욱 오빠가 있어서 더 이상 비관적이지 않고 감사하며 살 수 있게 됐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야옹이 작가는 2018년부터 네이버 웹툰 ‘여신강림’을 연재하고 있다. 여신강림은 화요 웹툰작 중 조회 수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최근 tvN 드라마로 제작돼 방송되며 인기를 끌기도 했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해외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으며 누적 조회 수 40억 뷰를 기록했다. 야옹이 작가는 1991년생이라는 정보 외에 알려진 바가 없었으나 연재 1년만인 2019년 얼굴 사진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네티즌들은 야옹이 작가의 예상을 뛰어넘는 미모에 “여신은 자신이었다”, “만찢녀(만화책을 찢고 나온 여자)”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2019년 이혼 사실을 직접 밝혔고, 웹툰작가 전선욱 작가와는 지난해부터 공개 열애 중이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야옹이 작가, 싱글맘 고백 “목숨보다 소중한 꼬맹이 있다” [EN스타]

    야옹이 작가, 싱글맘 고백 “목숨보다 소중한 꼬맹이 있다” [EN스타]

    ‘여신강림’ 야옹이 작가가 싱글맘이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16일 야옹이 작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는 “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목숨보다 소중한 꼬맹이가 있다”며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야옹이 작가는 “제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며 지켰고 여전히 지키고 있는 존재다. 저는 아이를 키우면서 새로운 사랑을 배웠고 철이 들었다. 제 인생의 이유가 된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웃는 날보다 눈물로 지낸 시간이 훨씬 많았지만, 이제는 아이가 지친 저를 달래준다”고 말했다. 그는 “제 몸에서 한순간도 떼어 놓은 적 없이 한 몸처럼 살았던 아이인데 어느덧 초딩(초등학생)이 된다”며 “제 삶의 원동력이며 가장 소중한 존재이자 평생 지켜야 할 존재기에 저는 매일매일 지치고 힘들어도 힘을 낸다. 그렇게 소중한 만큼 많는 분들께 저의 개인사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조심스러웠던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야옹이 작가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트라우마로 인해 상담 치료를 다니고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 먹으며 버틸 때 곁에서 먼저 손 내밀어 준 친구들, 가족들, 나의 사정으로 피해가 갈까 봐 미안해서 끝까지 밀어냈는데도 다가와서 손잡아준 선욱 오빠가 있어서 더 이상 비관적이지 않고 감사하며 살 수 있게 됐다”며 “한 손으로 원고하고, 다른 한 손으로 아이밥을 먹이며 그렇게 지나온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 여전히 애기 언어가 또래보다 느려서 치료실 다니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 때도 있지만 아이의 웃음을 보면 힘든 것도 다 사라진다. 요녀석을 지키기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아간다”라고 덧붙이며 가족과 지인들을 향해 고마움을 전했다. 다음은 야옹이 작가 인스타그램 글 전문. 안녕하세요. 야옹이 작가입니다.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질문에 답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목숨보다 소중한 꼬맹이가 있어요.제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며 지켰고 여전히 지키고 있는 존재죠.저는 아이를 키우면서 새로운 사랑을 배웠고 철이 들었습니다.제 인생의 이유가 된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웃는 날보다 눈물로 지낸 시간이 훨씬 많았지만, 이제는 아이가 지친 저를 달래줍니다. 제 몸에서 한순간도 떼어 놓은 적 없이 한 몸처럼 살았던 아이인데 어느덧 초딩이 됩니다 ㅎㅎ제 삶의 원동력이며 가장 소중한 존재이자 평생 지켜야 할 존재기에 저는 매일매일 지치고 힘들어도 힘을 냅니다. 그렇게 소중한 만큼 많는 분들께 저의 개인사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조심스러웠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트라우마로 인해 상담치료를 다니고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 먹으며 버틸 때 곁에서 먼저 손 내밀어 준 친구들, 가족들, 나의 사정으로 피해가 갈까 봐 미안해서 끝까지 밀어냈는데도 다가와서 손잡아준 선욱오빠가 있어서 더이상 비관적이지 않고 감사하며 살 수 있게 되었어요. 한 손으로 원고하고, 다른 한 손으로 아이밥을 먹이며 그렇게 지나온 힘든 시간들이 있었습니다.여전히 애기 언어가 또래보다 느려서 치료실 다니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고군분투하고 있구요.하지만 이렇게 모자란 나를 세상에서 가장 믿고 사랑해 주는 우리 꼬맹이한테 항상 고마워요.자기밖에 모르던 제가 아이가 아프면 대신 아프고 싶고 혹여 내놓으면 다칠까 노심초사하는 사람으로 변했답니다. 저랑 똑 닮은 외모와 성격이라 보고 있으면 걱정도 되지만세상 가장 든든한 존재인 예쁜 내 아이. 제 곁에서 삶의 무게를 나눠 들어주려 항상 노력해주는 이수언니 예지 선욱오빠 너무 고맙고, 언제나 고민 들어주고 격려해주는 우리 언니 모란님 정말 감사합니다. 내 삶의 절반 가까이 함께 보내며 힘든 시절 매일같이 달려와 힘이 되어준 혜상이 고마워. 네 덕에 버텼고 지금까지 살아있어. 타지에서 올 때마다 달려와 준 은주 힘들 때마다 하소연 다 들어준 예수리 모두모두 고마워요. 바쁘고 힘든 딸 전적으로 케어하며 아이까지 함께 봐주는 우리 부모님 정말 사랑해요. 평소엔 진지하게 고맙다고 말을 잘 못해서 이렇게 전해봅니다. 저는 그저 웹툰 작가일 뿐이지만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고 있기도 해서이렇게 공개적으로(?) 개인사를 오픈합니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 때도 있지만아이의 웃음을 보면 힘든 것도 다 사라집니다.요녀석을 지키기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아갑니다. 이 글을 올리면서 괜히 긴장이 많이 되지만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美 “#프리 브리트니” 운동 확산…옛 연인 팀버레이크도 사과

    美 “#프리 브리트니” 운동 확산…옛 연인 팀버레이크도 사과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39)의 삶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가 최근 공개된 후 ‘프리(free) 브리트니’ 운동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5일 훌루 등을 통해 다큐멘터리 ‘프레이밍 브리트니 스피어스’(브리트니를 프레임에 가두다)를 공개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쟁점이 된 부분 중 하나는 약 12년 동안 그의 자산을 대신 관리하는 아버지 제이미 스피어스에 대한 내용이다. 캘리포니아주 법원은 앞서 2008년 브리트니의 정신적 불안정을 이유로 제이미를 그의 법정 후견인으로 지정했다. 이때부터 브리트니는 아버지의 허락 없이 약 5900만 달러(약 650억원)에 달하는 자신의 돈을 쓸 수 없게 된 것은 물론 직업이나 복지 등에 관해서도 스스로 결정을 할 수 없게 됐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미국에서는 SNS를 중심으로 ‘#프리 브리트니’(브리트니를 자유롭게 하라)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쏟아지고 있다. 브리트니 역시 지난해 로스앤젤레스(LA) 고등법원에 금융기관 베세머 트러스트가 자기 자산을 관리하기를 바란다는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LA 고등법원은 베세머 트러스트와 제이미를 ‘공동 후견인’으로 지정했다.이번 다큐멘터리는 브리트니에게 가해졌던 언론의 폭력적인 보도에 대한 이야기도 담았다. 2000년대 최고 전성기를 달리던 브리트니의 일상은 시시각각 수십 명의 파파라치에 의해 전해졌고, 기성 언론들 역시 그에게 성차별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를 내보내는 등 무분별한 보도 행태를 보였다. 이혼과 재활원 입원 등을 겪고 극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브리트니의 모습도 여과 없이 보도됐다. 이로 인해 브리트니는 대중에게 과도한 질책을 들어야 했고 사생활 역시 보호받지 못했다. 다큐멘터리 공개 이후 대중의 비판에 직면한 일부 매체는 브리트니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여성지 글래머는 최근 SNS에 “브리트니에게 일어난 일은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그에게 미안하다”는 글을 올렸다. 미국 블로거 겸 방송인 페레스 힐튼 역시 팟캐스트 방송 도중 “브리트니에게 미안하다. 내 말과 행동은 잘못됐다”며 “브리트니에게 공개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사과했다”고 말했다.과거 브리트니와 연인이었던 팝스타 저스틴 팀버레이크도 그녀에게 사과했다. 팀버레이크는 12일 SNS에 “내가 여성혐오와 인종차별을 용인하는 제도에서 수혜를 입었다는 점을 이해한다”며 “브리트니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특권층에 있는 남성으로서 백인 남성이 성공하도록 설계된 음악 산업계에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무지 탓에 내 인생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다른 사람을 끌어내려서 얻는 혜택을 받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팀버레이크는 1999년부터 약 3년간 교제한 브리트니와 헤어진 뒤 그와 관련된 민감한 사생활을 방송에서 언급했다. 자신의 뮤직비디오에서는 브리트니가 마치 바람을 피운 것처럼 암시하기도 하는 등 새 앨범을 낼 때마다 브리트니를 홍보 수단으로 이용했다. 이 때문에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던 브리트니는 대중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었다. 반면 막 솔로 가수로 데뷔했던 팀버레이크는 최고의 톱스타로 성장해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한편 15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도 브리트니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계획 중이다. 다큐멘터리 영상을 전문적으로 제작해온 에린 리 카가 이 작품의 연출을 맡았다. 블룸버그는 넷플릭스의 이번 다큐멘터리가 ‘프레이밍 브리트니 스피어스’ 방영 전부터 이미 작업이 진행됐다면서 아직 방영 날짜는 잡히지 않았다고 전했다.브리트니 스피어스는 2000년 대 글로벌 팝 음악 시장을 호령했던 1세대 아이돌 스타다. 1999년 발매한 데뷔 앨범 ‘…Baby One More Time’은 2600만장 이상 판매고를 기록한 바 있으며, 2016년 빌보드 뮤직 어워즈 빌보드 밀레니엄 어워드와 2015년 틴 초이스 어워드 캔디스 초이스 스타일 아이콘상 등을 수상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가스불 왜 오래 켜놔” 내연녀 초등생 딸 뺨 때린 남성 검찰 송치

    “가스불 왜 오래 켜놔” 내연녀 초등생 딸 뺨 때린 남성 검찰 송치

    가스불을 오래 켜놨다며 내연녀의 초등학생 딸의 뺨을 때리는 등 폭행을 일삼은 남성이 검찰로 넘겨졌다. 청주 흥덕경찰서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A씨를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고 15일 밝혔다. A씨는 지난달 23일 계란을 삶기 위해 가스레인지의 불을 오래 켜놓았다며 이를 훈육한다는 이유로 동거하는 내연녀의 딸인 B(11)양의 뺨을 때린 혐의를 받고 있다. 또 휴대전화 게임을 그만하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며 플라스틱 빗자루로 B양의 엉덩이를 여러 차례 때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같은 날 오후 11시쯤 청주시 서원구 성화동에서 내복 차림의 아이가 서성인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B양의 신병을 확보한 바 있다. 당시 경찰은 B양의 눈 밑에서 상처를 발견하고 A씨의 아동학대 여부를 조사해왔다. 현재 B양은 친모와 분리돼 생활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안산시, 전국 최초 임산부·신생아 대상 ‘안심보험’ 추진

    안산시, 전국 최초 임산부·신생아 대상 ‘안심보험’ 추진

    경기 안산시가 전국 최초로 시에 거주하는 모든 임산부와 신생아에게 생활안전보험을 지원하는 ‘품안愛 안심보험’을 실시한다. 15일 시에 따르면 올해 처음 추진되는 품안愛 안심보험은 지난 2월8일부터 내년 2월7일까지 기간 내에 임신확인일이 포함된 임산부와 기간 내에 출생한 신생아를 대상으로 하는 생활안전보험이다. 보험 대상자는 안산시 거주 및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임신·출산 진료비 신청내역이 등록돼 있어야 한다. 안산시에 주민등록을 두고 거주하면 자동으로 가입된다. 대상자는 사고 발생 시 ▲보험금 청구서 ▲신분증 및 통장사본(보호자) ▲주민등록등본 및 임신확인서 ▲임신·출산 진료비 온라인 신청내역 등을 구비해 보험사로 보험금을 청구하면 된다. 전년도(2019.12~2020.11) 관내 임산부·신생아 수를 근거로 추산하면 올해 각각 3000여 명이 보험에 가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장기간은 1년이며 임산부 안전사고에 대해 ▲사망 최대 1000만원 ▲후유장애 최대 1000만원 ▲장애발생소득보상위로금 최대 50만원 ▲골절사고·화상발생 위로금 30만원 ▲상해입원일당(180일한도) 1일당 3만원 ▲의료사고 법률비용 최대 1000만원을 보장한다. 신생아 안전사고는 ▲골절·화상발생 위로금 30만원 ▲ 탈구·신경손상·압착손상 발생 진단금 30만원 ▲상해입원일당(180일한도) 1일당 3만원이 보장된다. 이번 사업은 저출생 극복 및 ‘아이 낳고 살기 좋은 안산’ 조성을 위해 마련됐다. 앞서 시는 출생축하금을 둘째 이상 300만원으로 상향했으며 ▲임신부 100원 행복택시 ▲임산부 행복플러스카드 ▲외국인 아동 보육료 지원 등을 도입하는 등 ‘안산형 선도 복지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윤화섭 안산시장은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고 안산시 거주하는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을 위해 전국 최초로 품안愛 안심보험 무상 가입을 추진하게 됐다”며 “모두의 삶이 빛날 수 있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한글 못 뗀 서정이, 앞니 까매진 예진이, 친구 거부하는 민우

    한글 못 뗀 서정이, 앞니 까매진 예진이, 친구 거부하는 민우

    [코로나 세대 보고서-2021 격차가 재난이다] <1> 성장이 멈춘 아이들 코로나가 뒤바꾼 8명 아이들의 삶… 지역아동센터 ‘혜지쌤’ 2주 취재기첫 출근 날, 한파로 지역아동센터 수도가 동파된 걸 보면서 ‘코시국(코로나 시국)에 손도 씻기 힘든 아동센터로 매일 아이들이 열댓 명씩 모여도 될까. 센터를 열면 안 될 것 같은데’라고 걱정했다. 2주간의 선생님 활동이 끝난 지금, 나는 “최소한의 돌봄과 교육마저도 없는 현실은 끔찍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센터장 선생님이 첫 출근 날 내게 “이 아이들은 센터가 아니면 돌봄을 받을 곳이 전혀 없어요”라고 강조해 말한 이유를 이제는 공감한다.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기자인 나는 지난 1월 13일부터 2주일간 서울의 OO 무지개 지역아동센터에서 24명의 아이들에게 ‘혜지쌤’으로 불리며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선생님으로 근무했다. 대부분이 맞벌이, 한부모, 다문화, 저소득층 등 가정 돌봄이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다. 무지개 아동센터의 명칭과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 복지사 선생님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아이들의 신원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서다. 쉴 새 없이 까불면서 각각의 개성과 색을 뽐내는 센터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난 ‘무지개’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유독 눈에 밟히던 8명 아이들의 얘기를 전한다. 코로나19가 결과적으로 발달 과정에 생채기를 남긴 아이들이었다. 나무로 비유하자면 이 아이들에게 학교라는 공간이 멈춘 지난 1년은 결핍으로 선명하게 나이테가 새겨진 듯하다. 한글을 떼지 못해 책 읽기를 포기하는 아이, 디지털 중독이 심각해진 아이, 식탐으로 무기력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아이의 아픈 마음도 느껴졌다. 아이들은 종종 “못해요”라고 하며 자포자기한다. 코로나가 사라진 뒤에도 학습, 신체, 정서의 격차가 아이들의 미래로까지 격차로 이어지지 않을까. ①정민우(8) 민우의 어머니는 갑상선 암으로 투병 중이다. 코로나가 유행할 때마다 민우는 센터에 나오지 못했다. ‘아픈 엄마에게 병을 옮길까봐’서다. 지난 1월 19일, 오랜만에 센터를 찾은 민우는 한쪽 구석에 멀뚱히 서서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만 봤다. 코로나가 있기 전 모든 것을 낯설고 어려워하던 민우로 돌아간 듯했다. 민우는 기분이 나쁘면 친구나 선생님을 때리거나 발로 차는 등 감정 표현에 매우 서툰 아이였다. 감정 코칭을 받으며 센터 생활에 적응해 나가던 차에 코로나가 터졌다. “선생님이랑 보석 십자수하자.” 혼자 꿈쩍않고 서 있는 민우를 달래 함께 놀이를 시작했다. 이내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을 하고 나와 민우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민우는 “선생님이랑만 하고 싶은데…”라며 완강하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민우를 바라보던 김미진(51) 복지사는 “코로나가 심해져 가정 돌봄을 하는 동안 공든 탑이 무너져버렸다”고 한숨 쉬었다. ②송현서(12) 내가 센터에서 근무하는 동안 오전 시간대에 현서의 얼굴을 보기는 하늘에 별따기였다. 학습 시간인 오전에는 현서는 집에서 컴퓨터로 인터넷을 떠돈다. 오후 3~4시에나 슬그머니 센터에 나타났다. “학습을 해야지 놀러만 와서는 안 된다”고 매일 혼났지만 현서는 자주 늦는다. 치료를 받고 애써 완화시켜 가던 인터넷 중독 증세가 다시 심해진 탓이다. 외동에 내성적 성격인 현서는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친구 없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혼자 놀며 중독에 빠졌다. 1년간 소아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의존증이 나아졌지만 코로나가 장기화되는 동안 원래대로 돌아갔다. 현서 어머니는 새벽에 일을 나간다. 알코올과 도박 중독에 빠진 아버지는 집에 잘 오지 않는다. 현서의 곁에서 충동 조절을 해 줄 어른이 없다. 조경란(54) 센터장은 직원이 매일 현서네로 가서 직접 데려오는 것을 고려하면서도 현서가 아예 센터를 퇴소해버릴까봐 함부로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지난 2월 1일에도 현서는 학교 온라인 수업을 결석하고 집에서 잠을 잤다. ③안지은(11) “학교에서 친한 친구들이요? 기억이 잘 안 나는데요.” 다문화 가정의 지은이는 언어와 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은이는 단 한 명의 친구 이름을 떠올려 내게 알려줬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가끔 연락하는 친구라고 했다. 코로나로 학교에 자주 가지 못하면서 지은이는 더 친구 사귀기를 어려워한다. 친구라는 존재에 대해 혼란스러운 듯 보였다. 코로나 이전의 학교는 학습이 더딘 지은이를 낙오하지 않게 기초학력 보강 수업을 제공하면서 도왔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학교는 지은이에게 이제 낯선 존재가 됐다. 조 센터장은 “사회성 발달과 경계성 지능 문제 모두 나빠지고 있다”며 “코로나 이후 학교로 돌아갔을 때 또래의 발달 수준이 지은이보다 높으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④이서정(8) 매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의 독서 시간 동안 서정이는 늘 긴장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지만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해 책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정이는 글자 없는 그림책으로 독서 시간을 때운다. 그도 아니면 턱을 괴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매일 오후 5시 30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일기를 쓰는 시간도 서정이에게는 힘들다. 쓸 수 있는 단어가 몇 개 없어 애먼 공책만 펄럭이거나 친구들의 일기를 베껴 쓴다. 내가 도와주기 위해 다가서면 “글자 몰라요”라며 언짢은 듯 연필을 꽝 내려놨다. 이어 “학교 갔으면 배웠겠죠?”라고 새침하게 쏘아붙였다. 센터에 함께 다니는 서정이의 언니는 학습 문제가 없다. 또래보다 발달도 빠른 편이다. 김 복지사는 “같은 가정 환경에서 자랐어도 중요한 시기에 학교에 가지 못한 서정이와 언니 사이에는 차이가 확연하게 생겼다”며 “정상적으로 학교에 갔다면 받아쓰기 시험도 보고 한글에 자주 노출돼 자연스레 글을 터득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⑤최준민(11) 준민이는 센터의 요주의 대상 1호다. 학습은 거부하고 좋아하는 놀이만 찾는다.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데도 능숙하다. 준민이의 불량한 태도가 더 심해졌다. 조 센터장은 준민이에게 “너는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우리가 돌볼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어야 우리도 너와 함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준민이는 코로나 유행으로 학교에 가지 않는 지금이 좋다고 했다. 매일 센터에서 점토 놀이를 하면 좋겠다고 했다. 준민이는 학교라는 체계 안에서 규범을 배우며 스스로 제어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온라인 수업으로는 결코 길러 줄 수 없는 덕목이다. 컴퓨터 화면 속 선생님의 설명도 버튼을 눌러 ‘패싱’하는 준민이에게는 현실의 선생님이 간절해 보였다. ⑥박예진(8) 예진이가 간식을 먹기 위해 마스크를 잠시 턱 밑으로 내린 순간, 나는 예진이의 입 속을 보고 얼어붙었다. 마스크로 인해 보이지 않던 앞니에 새까만 충치가 자리하고 있었다. 예진이는 어머니가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이 심해 외조부모 댁에서 지낸다. 지병을 앓는 외할아버지는 내내 누워 지낸다. 예진이의 집은 낮에도 어두컴컴하다. 예진이의 충치는 어두운 가정 환경 속에 묻혔고 집 밖에선 마스크에 가려졌던 것이다. 센터 선생님들이 지난 연말 단체 구강 검진과 예진이의 치료를 시작했다. 학교에서 신체검사나 정기 검진을 했다면 더 빨리 치료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상희(50) 복지사는 “아이들이 하루종일 센터에서 지내면서 신경써야 할 영역이 위생이나 건강 등 생활 영역까지 넓어졌다”며 부담을 토로했다. ⑦한유빈(10) 센터 선생님들은 오후 3시 30분 간식 시간이면 “안 돼, 한 번만”이라며 유빈이를 제지하는 게 일과다. 최근 부쩍 살이 오른 유빈이가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식탐이라고 할까 유빈이는 먹는 걸 멈추지 못한다. 선생님들은 “한 달에 3㎏ 이상 찐 데다가 또래 평균이 35㎏ 정도인데 유빈이는 40㎏가 넘어서는 아예 체중을 재지 않으려고 한다”며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유빈이가 본격적으로 살이 찌기 시작한 건 코로나와 겹친다. “코로나가 없을 때에는 경찰과 도둑 놀이를하면서 동네를 맨날 막 뛰어다녔는데 요즘엔 아예 못해요”라는 유빈이의 말처럼 활동량이 급격히 줄었다. 동네 놀이터도 폐쇄됐다. 최근 유빈이가 빠진 놀이는 뜨개질이다. 한번 붙들고 앉으면 한두 시간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특단의 조치로 센터에서는 외부 교사를 섭외해 매주 목요일 치어리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⑧김윤진(8) 윤진이는 센터에서 ‘고양이’로 통한다. 고양이 흉내를 내며 온 센터를 네 발로 기어 다니거나 바닥에 누워 뒹군다. 놀이나 학습 시간의 분간도 없다. 내가 다가가 “그만하고 공부하자” 했더니 윤진이는 “아악” 절규했다. 놀란 나에게 복지사 선생님이 “어머니께서 욕심이 많아 정해 준 학습량을 채우지 못하면 아이를 때렸다”며 “심하게 체벌해 트라우마가 남은 것으로 보인다”고 귓속말을 했다. 윤진이는 역설적으로 코로나 덕분에 공부 압박에서 해방됐다. 코로나 이전에는 일주일 내내 방과 후 활동과 학원을 셔틀했던 아이가 학교와 학원이 문을 닫으면서 자유의 몸이 됐다. 윤진이 어머니가 실직하게 되면서 경제적 부담이 커지면서 사교육을 다 접은 게 큰 이유다.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가 사라진 윤진이는 정반대가 됐다. 뭐든 제멋대로만 하려고 든다. 점심시간 친구들과의 거리두기를 거부하다 식사도 거부했다. 센터 선생님들은 윤진이가 다시 등교하게 되면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지 걱정한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탐사기획부 안동환 부장, 박재홍·송수연·고혜지·이태권 기자 QR코드를 스캔하면 ‘2021 격차가 재난이다-코로나 세대 보고서’ 디지털스토리텔링 사이트(http://www.seoul.co.kr/SpecialEdition/gapDisaster/)로 연결됩니다.
  • “이렇게 자라면 어때서” “이렇게 키우면 어때서”… 어른 편견 꼬집는 ‘아이’

    “이렇게 자라면 어때서” “이렇게 키우면 어때서”… 어른 편견 꼬집는 ‘아이’

    너무 일찍 어른이 된 보호종료아동베이비시터로 싱글맘 도우며 연대고달픈 삶에 맞서 ‘진짜 어른’으로많은 서사에서 출산과 육아, 그 과정을 통해 인간으로서 성장을 이야기한다. 당사자는 부모이거나 아이다. 영화 ‘아이’는 그 중간에 선 사람의 삶까지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는다. 10일 개봉하는 영화 ‘아이’는 육아가 두려운 ‘철부지 엄마’와 부모 없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애어른’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 분투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담았다. 보호종료 아동 출신인 유아학 전공 대학생 아영(김향기 분)은 ‘싱글맘’ 영채(류현경 분)의 베이비시터가 된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영채에겐 생후 6개월 된 남자 아기 혁이가 살아가는 이유다. 영채는 혁이를 자신의 아이같이 돌보는 아영에게 점차 마음의 문을 열지만, 어느 날 혁이에게 사고가 일어나자 자신의 책임을 아영에게 돌려 죄책감을 지우려 애쓴다.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하는 영채는 자신이 좋은 부모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 못해 혁이를 입양 보낸다. 부모 없이 자라며 힘들었던 아영에게 이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가치관을 지닌 두 인물은 서로 연민하고, 갈등하고, 각자 화해의 손길을 내밀면서 성장한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의 시선을 통해 사회가 외면해 온 돌봄의 사각지대를 들춰낸다. 아영이 대학에서 아동학을 배우지만, 실제 어린이집 보육 실습에 들어가자 집에 가기 싫은 아이를 달래기 어려울 정도로 현실과 괴리가 있다. 보호종료 아동이 사망하면 무연고자 신분으로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화장해야 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이들에겐 충격이다. 그렇다고 영화는 불우하고 암울한 현실에 집중하거나 신파로 끝나진 않는다. 김현탁 감독은 “저런 사람이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저런 아이가 제대로 클 수 있을까 하는 선입견에 대해 반문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영화가 주는 묵직한 울림은 고달픈 삶을 헤쳐 나가는 등장인물들의 강한 생활력과 연대에서 나온다. 유흥업소가 유일한 생계수단인 영채나 보육원을 나와 악착같이 살아가는 아영은 방식이 다를 뿐 홀로 자립해 보겠다는 인물이다. 처음엔 악덕 업주인 줄로만 알았던 유흥업소 사장 미자(염혜란 분)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면서 연대감을 완성한다. 영화 속 아영이 영채에게 건네는 “내가 도와줄게요”라는 대사는 모두에게 건네는 위로가 돼 다가온다. 영화는 큰 웃음 없이 잔잔하게 이어지다 시끌벅적하게 끝난다. 화려하진 않지만 ‘희망’이 담겨 있어 훈훈하다. 다만 여성과 육아 문제에 큰 관심이 없는 관객에겐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진짜 어른이 되기까지의 시행착오에 공감하는 이 세상 모든 어른들에게 짙은 여운을 남긴다. 상영시간 112분. 15세 관람가.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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