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아이 삶
    2026-01-25
    검색기록 지우기
  • 까치
    2026-01-25
    검색기록 지우기
  • 최영준
    2026-01-25
    검색기록 지우기
  • 강간
    2026-01-25
    검색기록 지우기
  • 식재료
    2026-01-2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330
  • [우크라 피난민 인터뷰]“쉘터 보육원 의사로 24시간 근무…남편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야죠”

    [우크라 피난민 인터뷰]“쉘터 보육원 의사로 24시간 근무…남편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야죠”

    “연일 폭탄이 떨어져 땅의 진동이 멈추는 날이 거의 없었죠. 기회가 오면 내 고향 (우크라이나 오데사주) 이즈마일로 돌아갈 겁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 만인 지난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피난민 자보로트니크 나탈리아(62)는 서울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보육원에서 소아과 의사로 일했는데 지난해 7월 러시아군이 이즈마일로 진격하자 납치될 것을 우려해 300명의 아이들과 함께 루마니아로 탈출했다”고 말했다. 나탈리아와 아이들은 지난해 7월 4일 밤새 14시간을 달려 루마니아 수체아바의 ‘자유를 향한 투쟁’(Fight For Freedom)이라는 이름의 피난민수용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나탈리아는 독일에 거주 중인 딸에게 가려다 우크라이나 난민 아이들의 참상을 보면서 생각을 바꿨고, 현재 수용소 보육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 그가 난민을 돌보는 난민 의사가 된 이유다. 그는 “피난 오는 아이들이 늘면서 지금은 1개월부터 5살까지 300명의 아이를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가 부족해 성인 난민들까지 치료하고 있는 나탈리아는 사실상 24시간 ‘스탠바이’(대기) 상황이다. 나탈리아는 “수용소에 있는 난민들의 남편과 아들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잦아지고 있다”며 “국가 총동원령 때문에 남편은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고, 친러 성향인 남편의 형은 러시아군으로 참전 중이다. 전쟁은 나와 가족의 삶도 처절히 바꿔 놓았다”고 했다. 루마니아에서 피난민 구호 활동을 하는 안승진(53) 굿네이버스 현지 대표도 “한 70대 여성이 남편은 노모를 모시고, 딸은 군인이라서 초등학생 손녀만 데리고 피난처로 왔더라. 그의 마을은 폐허가 됐고 그 자리에 공동묘지가 들어섰다”며 참상을 전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유럽의 우크라이나 피난민은 807만 3182명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피난민이 140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세간의 관심은 줄어드는 추세다. 기부사이트인 고펀드미에는 500여개의 피난민 성금이 개설됐지만 수주가 지나도 목표 미달 상태다. 인도주의 전문 매체 ‘더 뉴 휴머니타리안’은 “전쟁 1년간 각국은 우크라이나에 170억 달러(약 22조 1000억원)의 인도적 지원을 약속했지만 신청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려 제 때 자금을 조달할 수 없다”며 “식품과 의약품도 유럽의 창고에 몇 달간 보관해 현지에 오기 전에 (유통기한이) 만료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 한숨·울음 뒤섞인 공항… “탈출 비행기표 구하려 20시간 노숙”[곽소영 기자의 튀르키예 참사 현장을 가다]

    한숨·울음 뒤섞인 공항… “탈출 비행기표 구하려 20시간 노숙”[곽소영 기자의 튀르키예 참사 현장을 가다]

    15일(현지시간) 오전 튀르키예 남부 지역에 위치한 아다나 공항에는 가족의 죽음을 직접 확인하러 가거나 이미 시신을 수습하고 온 이들, 무너진 삶의 터전을 어쩔 수 없이 떠나온 이들의 한숨과 울먹임이 뒤섞여 있었다. 지진 직후에도 유일하게 하늘길이 열려 있어 피해 지역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했던 이곳은 최근 가지안테프 공항과 하타이 공항이 운영을 재개하면서 이용객이 분산돼 상대적으로 한산해진 모습이었지만 피해 지역에 왔다가 돌아가는 현지인과 이재민이 몰리며 항공권은 이틀 뒤인 17일 것까지 모두 동이 나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구조대, 시민단체, 자원봉사자들도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진 나흘째였던 지난 9일 아다나 공항을 찾았을 땐 이들을 입국장에서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일주일 뒤인 이날은 출국장에 몰려 있었다. 미처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한 이재민들은 취소 표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공항 이곳저곳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 갔다. 공항에서 20시간 넘게 기다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취소 표나 여유 좌석이 생기면 항공사는 공항 안에 있는 현장 발권대에 적힌 이름과 연락처 순서대로 표를 배부했다. 에세(13)도 어머니, 동생과 함께 튀르키예의 다른 도시인 안탈리아로 가기 위한 비행기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세는 “아버지는 고향에서 다른 사람들의 구조를 돕고 나서 우리와 만나기로 했다”며 동생을 안고 있던 자세를 고쳐 잡았다. 공항 안 의자가 부족해 바닥에 드러눕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공항에는 휠체어를 타거나 깁스를 한 사람, 머리에 붕대를 감은 사람도 많았다. 기다림이 길어지자 항공사 발권 창구에서 “언제 가능한지라도 말해 달라”, “가족 시신을 찾으러 빨리 가야 한다”며 답답함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카라만마라슈를 떠나온 카딜(29)은 “지진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이 모두 붕괴됐다”며 “친척들이 있는 이즐란으로 가는 표를 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탄불에서 온 아첼리아(21)는 지진으로 사촌 4명을 모두 잃었다고 했다. 아첼리아는 “지진이 나던 날 일자리를 구하러 카라만마라슈에 갔다가 사촌 4명이 모두 죽었다. 시신을 찾은 뒤 장례를 치르고 돌아가는 길”이라며 “첫째 사촌오빠의 아내는 임신 중인데 혼자 어떻게 아이를 키울지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지친 이재민들에게 샌드위치를 나눠주기도 했다. 매일 샌드위치를 1000개씩 주문해 공항에서 나눔 봉사를 하는 하칸(40)은 “한 이재민에게 ‘음식, 물, 옷 중에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었는데 그가 ‘다른 건 다 괜찮다. 시신에 입힐 하얀 옷(수의)만 더 필요하다’고 말하는 걸 듣고 상황이 어느 정도 나아질 때까진 최대한 봉사하기로 마음먹었다”며 “지진 첫날부터 공항과 텐트촌 등에 봉사를 다녔는데 하타이 공항이 문을 열기 전까지는 아다나 공항이 사람들로 꽉 찼었다”고 말했다.
  •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비행기표 구하려 20시간 공항 노숙하는 이재민들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비행기표 구하려 20시간 공항 노숙하는 이재민들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 여파로 곳곳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아직 수 많은 이들이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데도 구조 작업은 더디고 시간만 빠르게 흐르면서 살아남은 이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한 순간에 가족, 친구, 보금자리를 모두 잃은 생존자들은 질병, 추위, 굶주림이라는 또 다른 재난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곳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지만 폐허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이들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재난의 현장에서 서울신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기록을 써내려 간다는 심정으로 현지 상황을 기록한다. “가족이 죽어서 빨리 가야 한다. 언제쯤 표가 나오는지 알려달라.” 15일(현지시간) 찾은 튀르키예 아다나 공항은 가족의 죽음을 직접 확인하러 가거나 이미 시신을 수습하고 온 이들, 무너진 삶의 터전을 어쩔 수 없이 떠나온 이들의 한숨과 울먹임이 뒤섞여 있었다. 미처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한 이재민들은 취소표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공항 이곳저곳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 갔다. 공항에는 휠체어를 타거나 깁스를 한 사람, 머리에 붕대를 감은 사람도 유독 많았다. 지진 피해가 집중된 튀르키예 남부 지역의 공항인 이곳은 지진 직후에도 유일하게 하늘길이 열려 있었다. 최근 지진 피해로 폐쇄됐던 가지안테프 공항과 하타이 공항이 다시 운영을 재개하면서 참사 초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한산해졌다. 하지만 이재민을 비롯해 피해지역으로 왔다 돌아가는 현지인이 몰리면서 아다나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의 표는 이틀 뒤인 17일까지 모두 동이 난 상태였다. 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은 공항에서 표를 사기 위해 노숙을 하기도 했다. 에세(13)도 어머니, 동생과 함께 안탈리아로 가기 위한 비행기 표를 구하고 있었다. 공항 구석 의자에서 기다리던 에세는 “아버지는 고향에서 다른 사람들의 구조를 돕고 나서 우리와 만나기로 했다”며 동생을 안고 있던 자세를 고쳐 잡았다.온라인으로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한 이재민들은 공항 안에 있는 현장 발권대에 이름과 연락처를 등록한다. 취소 표나 여유 좌석이 생기면 이름이 적힌 순서대로 비행기 표를 받을 수 있다. 집이 사라졌거나 지진 피해지역을 떠나야 하는 이들은 공항에서 20시간 넘게 기다리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이른 시간인 오전 8시쯤 공항에는 이미 300여명이 몰려들었다. 의자가 부족해 바닥에 드러눕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가족들과 함께 카라만마라슈를 떠나온 카딜(29)은 “지진으로 일자리를 잃었다”며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이 모두 붕괴됐다”고 울먹였다. 비행기 표를 구하느라 공항에서 오랜 시간 머물러야만 하는 이재민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샌드위치를 나눠주기도 했다. 하루 샌드위치 1000개를 주문해 매일 공항에서 나눔 봉사를 하는 하칸(40)은 “지금은 생업을 이어가기보다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돕는 게 우선”이라며 “거대한 재난이라 수습이 어렵지만, 상황이 어느 정도 나아질 때까진 봉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공항에는 가족이나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듣고 지진 피해지역을 찾아 시신을 수습하고 다시 돌아가는 현지인도 적지 않았다. 이스탄불에서 온 아첼리아(21)는 지진으로 사촌 4명을 모두 잃었다. 아첼리아는 “일자리를 구하러 카라만마라슈에 갔다가 모두 죽었다. 시신을 찾은 뒤 장례를 치르고 돌아가는 길”이라며 “사촌이 죽고 홀로 남겨질 아내가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걱정된다”고 했다.
  • [김동률의 아포리즘] 한국에서 대통령 부인으로 살아가기/서강대 교수(매체경영)

    [김동률의 아포리즘] 한국에서 대통령 부인으로 살아가기/서강대 교수(매체경영)

    한국에서 ‘대통령 부인으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김건희 여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있자니 좀이 쑤실 게고, 밖에 나가 뭘 좀 해보고 싶어도 따라붙는 국민들의 눈길이 부담스럽다. 그러나 요즘은 남녀 구별 없이 각각 제 할 일 하며 살아가는 세상이다. 각종 논란과는 별개로 대통령 부인이란 이유만으로 활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김 여사의 경우 돌볼 아이도 없다. 전문가들은 대통령 부인도 일이 있어야 하고 또 일의 품격과 종류가 있다고들 한다. 미국ㆍ일본 등 다른 나라는 어떨까. 미국의 경우 크게 두 가지. 내조형과 치맛바람형, 즉 외조형이다. 에디스 윌슨은 윌슨 대통령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사실상 대통령 역할을 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는 대내외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 만년의 쇠약해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신 전면에 나선 엘리너 루스벨트는 한술 더 떠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비판자들은 그녀가 “치마 속에 숨은 레닌”(Lenin in Skirts)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천애고아로 고독과 절망 속에서 어렵게 자란 그녀는 소아마비로 걸음이 불편한 루스벨트와의 결혼을 주저하지 않았다. 강력한 추진력과 함께한 휴머니즘, 겸손함으로 미국인들에게 ‘영원한 퍼스트레이디’로 불리며 지금도 절대적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 철의 여인의 뒤를 이은 베스 트루먼과 메이미 아이젠하워 여사, 케네디 암살로 엉겁결에 백악관에 입성한 존슨 대통령의 부인은 부엌에서 조용히 행주치마를 둘렀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부인 아베 아키에의 치맛바람도 만만찮다. 둘 사이에도 자녀가 없다. 일본 유명 제과회사인 ‘모리나가제과’의 창업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지한파이자 한류 광팬인 그녀는 주관이 뚜렷하다. 아키에를 말할 때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술’이다. 술을 전혀 못 하는 남편과 달리 ‘애주가’인 그는 각종 모임에서 남편 대신 앞장서 건배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선거 때마다 주민들이 권하는 술을 남편 대신 모두 받아 마실 만큼 주량도 세다. 아키에는 남편인 아베 전 총리의 정책도 거침없이 비판했다. 이런 그녀를 두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본 영부인은 정책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Japan’s First Lady Isn’t Shy About Criticizing Policy)고 비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대통령 부인의 일이란 대형 국가정책보다는 국민들의 거부감 없는 내조 정도였다. 이렇게 제한된 영부인의 역할을 송두리째 거부한 사람은 힐러리 클린턴이다. 예일대 로스쿨 학생회장 출신의 이 딱 부러진 영부인은 할머니 같던 바버라 부시에게 익숙해 있던 미국인들을 놀라게 한다. 당시 언론은 “백악관을 점령했다”는 표현으로 그녀의 정치력을 높게 평가했다. 긍정과 부정이 엇갈리고 있지만, 반대편의 사람들에게서도 인정받는 것은 미국 정치인들이 가장 꺼리는 의료개혁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기득권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결국 낙마한다. 워낙 후유증이 컸는지 힐러리 이후에는 지금까지 강력한 영부인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젊은 대통령 부인을 두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듯이 이전 영부인의 치맛바람에 실망한 한국인들은 김건희 여사에게 조용한 내조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여사는 커리어 우먼으로 윤석열 대통령보다도 훨씬 적극적이고 다양한 사회적인 삶을 살아왔다.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항간의 논란을 빌미로 관저에서 조신하게 칩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행여 지나치지 않을까. 한국에서 대통령 부인으로 살아가기란 참으로 어려워 보인다.
  • “같이의 가치 깨닫는 물꼬 트면… 좋은 사람 되어 좋은 세상 만들죠” [박록삼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

    “같이의 가치 깨닫는 물꼬 트면… 좋은 사람 되어 좋은 세상 만들죠” [박록삼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勿閑)계곡을 굽이굽이 거슬러 올라가면 대해(大海) 마을이 있다. 몹시 역설적인 지명들이다. 여유로운 산마을이지만 부지런한 이들이 모여 한가롭지 않게 열심히들 살고, 산속 깊은 골이지만 큰 바다처럼 많은 걸 넉넉히 감싸 안아 주는 곳이려니 싶다. 일찍이 폐교된 대해초등학교 분교는 1997년부터 ‘자유학교 물꼬’의 자리가 됐다. 옥영경(55)씨가 이 학교 교장이자 ‘옥샘’으로서 주말과 방학마다 찾아오는 여러 아이, 혹은 어른들과 함께 밥 지어 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놀고, 같이 명상하고 공부하며 지내고 있다. 지난 9일 오전 자유학교 물꼬에서 옥씨를 만났다.옥씨는 유아교육 교사이자 초등 특수교육 교사, 중등 국어교사, 예술통합교과 교사, 대학 재활승마 강사다. 이 밖에도 공동체 활동에 필요한 각종 자격증, 예컨대 숲길등산지도사, 유아다례지도사, 문해교육지도사를 비롯해 심지어 미용사,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까지 갖췄다. 그는 “교육은 특정한 시기에만 이뤄지는 것이 아닌, 전 생애주기에 걸쳐 이뤄지는 것이기에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갖춰 가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세상을 꿈꿨던, 한 시절 유행과도 같았던 공동체라는 깃발을 들고 지나온 몇몇 해 세월이 아니다. 무려 34년째다. 1989년 서울에서 ‘열린글 나눔삶터’라는 이름으로 글쓰기를 중심으로 하는 방과후학교 형식의 공동체를 모태 삼아 1994년 시작한 자유학교 물꼬는 도시공동체로 몇 년 지내다가 1997년부터 대해리에 계절 자유학교를 열었다. 그리고 2001년 서울 활동 공간은 접고 아예 이 터로 완전히 스며들었다. 자유학교 물꼬에는 위탁교육 프로그램을 비롯해 방학 중 계절자유학교, 장애아 통합교육 프로그램 등이 있다. 춤명상, 단식수행 등의 프로그램이 있어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의 학교이기도 하다. 이름 그대로 자유로운 공간이다. 입시, 승진, 출세처럼 세상이 요구하는 경쟁과 효율 등의 가치는 없다. 대신 자신을 발견하는 힘을 기르는 자유로운 교육의 가치로 가득하다. 수업 사이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책을 보거나 놀다가 늘어지면 그대로 둔다. 하지만 자유로운 분위기와 달리 옥씨가 강조하는 공동체 질서는 나름 엄격하다. 옥씨는 “이곳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은 중요한 생활 가치 중 하나”라면서 “처음에는 힘들어해도 5박6일 계절 자유학교 2~3일째면 아이들 대부분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밥을 먹은 뒤에도, 실내화 벗어 놓을 때도, 재래식 화장실 치우는 것도 원래 있던 그대로 스스로 정리하고 움직이게 된다”고 말했다. 크건 작건 공동체의 지속을 위해서는 질서가 중요한 법이다. 하지만 질서에 이르는 과정이 규율을 가르치는 훈육과는 다르다. 그는 “아이들은 가르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대로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애써 가르치지 않아도 어른들의 올바른 행동을 보고 따라 하는 과정 자체를 통해 배움을 얻는다는 얘기다. 공동체 운동을 시작한 계기를 물었더니 대답이 싱겁다. “같이 모여 살면 좋잖아요.”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일 수 없다. 같은 꿈을 꾸던 이들이 다시 각자의 삶의 공간으로 흩어지는 것은 필연에 가까웠다. 크고 작은 좌절과 상처가 왜 없었을까. “아침마다 바닥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오체투지 대배를 100배씩 하는데 거기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길러졌다고 우스갯소리처럼 얘기하곤 한다”는 그의 말만으로도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저부터 비롯해서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공동체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체 운동을 했으니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죠. 하지만 물꼬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컸고 매일 노동하고, 명상하고, 밥 짓고, 같이 먹고, 같이 공부하는 꾸준한 일상의 힘이 저를 단단하게 만든 것 같아요.” 옥씨는 “자유학교 물꼬를 지켜야 한다는 당위감에서 벗어나 이제는 꾸준한 일상이 이뤄지는 자연스러운 공간이 됐다”고 덧붙였다. 그가 우직하게 밀고 온 사이 세상은 참 많이 바뀌었다. 일상의 꾸준함만으로 버티기에는 변화의 방향도, 속도도 과거의 것과 달라졌다. 버거울 수밖에 없다. 모진 시간과 세월을 버틸 수 있는 진짜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지 궁금해졌다. “근원을 말하자면 사람들입니다. 아이들이야말로 제 공동체 활동의 가장 큰 동지들이지요. 계절 자유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한 초등학생들이 자라 중고등학생으로서 ‘새끼 일꾼’이 되고, 또 대학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품앗이 선생님 역할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있어서 자유학교 물꼬는 깊어지고 넓어졌습니다.” 그는 “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은 사람이 되게끔 해 주고, 내 삶을 뜨겁게 해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게 만든다”고 말하며 함께하는 사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어린아이들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했다. 옥씨는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집단지성을 갖고 있다”면서 “물꼬 과정을 운영하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들과 상의하고 함께 힘을 모아 가다 보면 충분히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수동적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삶과 교육의 주인이자 주체로 세우는 과정임이 절로 느껴진다. 그는 2001년부터 3년 동안 미국, 핀란드, 스웨덴, 에스토니아, 러시아, 뉴질랜드, 호주 등 세계 여러 나라의 공동체와 대안교육 현장을 찾아 자원봉사 활동 등을 하기도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거의 매년 책을 펴낸다고 해서 지인들 사이에서 ‘연간 옥영경’으로 통한다. 시집과 동화, 교육에세이 등을 꾸준히 써 왔다. 얼마 전엔 아들 류옥하다(25)씨와 함께 쓴 책 ‘납작하지 않은 세상, 자유롭거나 불편하거나’(한울림 펴냄)를 냈다. 인문학 고전 서평록으로, 공통된 주제를 놓고 서로 다른 고전을 읽은 모자가 글로 대화하며 서로 같음과 다름을 확인하는 내용을 담았다. 평생에 걸쳐 교육 운동, 공동체 운동을 해 온 옥씨야 겪고 느낀 것들이 몇 날을 지새우며 말해도 부족할 만큼 웅숭깊을 테다. 하지만 그의 아들 역시 사유의 깊이와 글쓰기의 힘이 남다르다. 아들 류옥씨는 열다섯 살까지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홈스쿨링을 했다고 할 것도 아니다. 그저 산자락에서 뛰어놀고, 자유학교 물꼬의 새끼 일꾼으로서 일 거들고, 농사지으며 살았다. 대신 엄마처럼 매일 일기-날적이라 부른다-를 썼고 책을 열심히 봤다. 논과 밭 그리고 공동체 공간에서 깊어진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유가 학문과 이성의 집적물인 책을 통해 체계를 갖춘 셈이다. 그렇게 ‘시 쓰는 뇌과학자’를 꿈꾸던 산골 아이는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제도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3년 뒤 서울대와 대전지역 의대에 동시 합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많은 학부모가 그 결과물에 대해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그는 “아이 교육에 있어 잘한 게 있다면 아이 삶에 덜 개입한 것 아닐까 싶다”면서 “아이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것들을 통해 보고 들으며 배우고 그 배움대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야 부럽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은 쉬 흉내 낼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일이다. 옥씨는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고 해서, 또 새로운 학교, 대안교육을 한다고 해서 제도교육 자체를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라면서 “아들이 스스로 학교를 선택했듯 믿고 맡기는 것이며, 우리의 활동은 제도교육을 보충, 보완해 줄 수 있는 역할로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유학교 물꼬에는 마치 우리 사회의 축소판인 듯 보육원 출신 아이들부터 장애 아이, 재벌집 아이 등 다양한 계층의 아이들이 모인다. 제도교육이 학습으로 배우는 데 그치곤 하는 다양성의 가치를 애써 가르치지 않고 몸으로 느끼고 배우게끔 하고 있다. 옥씨는 “어떤 아이들도 이 세상에 온전한 자기편 한 사람만 있으면 충분히 올바르게 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어른으로서, 선생으로서 더 옳게, 더 바르게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구름 많던 이날 사진을 찍으려니 마침 해가 잠시 들었고,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간 직후 큰바다 마을에는 눈이 소복이 내렸다고 한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날이 쨍하면 쨍해서 또 다른 행운의 에너지를 얻은 듯 감사하는 마음이다”라고 말했던 옥샘의 기운이 전해진 듯했다.
  • 41세 옥타곤걸 카힐리 블런델, 20대 뺨치는 건강미

    41세 옥타곤걸 카힐리 블런델, 20대 뺨치는 건강미

    UFC 옥타곤걸 카힐리 블런델이 지난 14일 41세 생일을 맞았다. 블런델은 최근 조국인 호주의 퍼스에서 열린 UFC 284에 참가해 변함없는 매력을 발산했다. 1982년생인 블런델은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20대 못지않은 외모와 탄력을 자랑하고 있다.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브런델은 웨이트로 건강관리는 물론 몸매를 가꾸고 있다. 블런델은 지난 2011년 비키니 모델 선발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옥타곤걸로 선발돼 수많은 남성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비키니 여신으로서 운동과 식단의 관리를 강조하며 많은 팬의 귀감을 사고 있다. 블런델은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을 영위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스스로 정한 규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건강관리의 비결을 전했다. 이를 실천하듯 블런델은 정해진 규칙대로 한 주를 보낸다. 특히 매일 1리터의 이상의 물을 마시는 것이 피부 건강에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블런델은 웨이트를 비롯해 조깅과 복싱을 섞어가며 운동하고 있다. 특히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병행해야 최고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블런델은 모델로서 크지 않은 167cm의 키를 소유했지만 웨이트와 식단으로 34-26-33의 탄력 넘치는 라인을 자랑하고 있다.
  • [길섶에서] 재택근무 단상/임창용 논설위원

    [길섶에서] 재택근무 단상/임창용 논설위원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라 점심식사 후 집 주변 산책에 나섰다. 아파트 정문 건너 분식집 앞이 소란스럽다. 초등학교 1, 2년생으로 보이는 아이 네댓 명이 가게 앞 매대에서 떡볶이와 어묵을 먹으며 떠드는 소리다. 조용한 동네의 허공에 톡톡 쏘아 올리는 듯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상쾌하다. 산책로엔 두서너 명씩 무리 지어 걷는 젊은이들이 제법 많다. 나처럼 점심을 먹은 뒤 산책하는 직장인들인 듯싶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판교테크노밸리가 있어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근무한다. 재택근무 초기엔 이런 풍경들이 마치 새로 이사 왔을 때처럼 낯설었다. 출퇴근할 때 평일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 풍경에만 익숙해서인 듯했다. 단지 머무는 시간만 달라졌을 뿐인데. 10년 넘게 한 곳에 살면서도 보지 못했던 동네 모습들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앵글과 시간에 따라 렌즈에 비치는 세계가 너무 다른 데 놀라곤 한다. 우리 삶의 모습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 “카지노 연매출 13% 지역복지 환원… 미래 지향점은 복합리조트” [공기업 다시 뛴다]

    “카지노 연매출 13% 지역복지 환원… 미래 지향점은 복합리조트” [공기업 다시 뛴다]

    온라인 카지노 합법화 대비 필요리조트 비중 높일 장기계획 추진노후 시설 재건축 수준 리모델링정부 규제 심해 ‘과몰입’ 원인으로직원 절반 4개 폐광지역민 고용‘넥스트 유니콘’ 기업 유치 지원도美에도 없는 중독 예방·치료센터사원 스트레스 관리·정신 치료도 강원랜드에 카지노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강원랜드는 스키장, 골프장, 호텔, 콘도, 워터월드를 갖춘 ‘하이원 리조트’도 운영한다. 카지노 연매출의 13%는 태백, 정선, 영월, 삼척 등 폐광 지역 기금으로 활용된다. 리조트는 지역에 일자리를 만들어 지역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강원도 정선 강원랜드에서 만난 이삼걸(68) 강원랜드 사장은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냈다. 강원랜드 직원과 강원랜드 덕분에 생계를 유지하는 지역민들에게도 혹독한 시기였다. 하지만 이제 거의 다 회복했다. 우리 모두의 뼈를 깎는 노력 덕분이었다고 자부한다”고 밝혔다.강원랜드는 창사 이래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5022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2020년 처음으로 손실로 돌아섰다. 2020년 강원랜드는 4316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이 사장은 2021년 4월 취임했다. 그는 “코로나로 하루가 멀다고 카지노를 휴장해야 했다”면서 “업장 문을 여닫는 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고 했다. 이 사장은 일단 영업 손실을 줄이는 데에 집중했다. 3교대 근무를 맞교대로 바꾸는 등 근무 체계를 효율화해 지출을 줄이려고 발버둥 쳤다. 덕분에 2021년 영업손실 규모를 전년도의 8분의1 수준인 527억원으로 축소했다. 2019년 1조 5201억원에서 2020년 4775억원으로 3분의1 토막 났던 매출도 2021년 7874억원으로 반등했다. ●근무 효율화로 영업손실 극복했다 그의 노력은 2022년 5월 코로나 규제 완화와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 지난해 3분기 카지노 매출은 3976억원으로 팬데믹 전인 2019년의 98%까지 올라왔다. 이 사장은 “노력만 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 덕분에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카지노 산업에서 강원랜드의 독점적 지위가 갈수록 흔들릴 것으로 보았다. 이 사장은 “온라인 카지노가 현재로서는 불법이지만, 정부에서 계속 이렇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 온라인 카지노가 합법화되면 강원랜드에 대한 수요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때문에 그는 하이원 리조트 활성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 사장은 “전체 매출에서 리조트 비중을 높일 수 있게 장기 계획을 세워 추진 중”이라면서 “카지노에만 의존해서는 밝은 미래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원랜드는 카지노의 부정적 이미지를 벗으려고 2007년 새 기업이미지(CI) ‘하이원리조트’를 발표했다. 이 사장은 “아무래도 처음 시작을 카지노로 하다 보니 ‘도박’의 이미지가 강한 게 사실이다. 실질 매출의 90%가 카지노에 쏠려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그래서 ‘하이원’이라는 브랜드를 새로 만들고 홍보하고 있다. 카지노인 강원랜드는 법적으로 광고나 홍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먼저 노후한 시설을 재건축 수준으로 리모델링한다는 계획이다. 이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용역을 맡겼는데 연구 결과가 나오는 데에만 1년이 걸렸다. 리모델링 일부는 내 임기 중에, 나머지는 임기 후에야 완성될 것”이라면서 “5~6년 뒤에야 효과가 나겠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합 리조트로 자리잡기 위해 이 사장은 소비자의 다양한 바람에 맞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자녀를 동반한 부부에게 어린이 참여 프로그램을 제공해 잠시 육아의 피로를 잊게 하고, 어르신 고객이 좋아할 노래교실, 댄스교실, 명상 등의 프로그램도 추진한다. 반려동물 훈련·목욕·미용 등의 프로그램도 구상 중이다.●‘일자리 창출’ 리조트서 적자 줄인다 리조트 사업 분야에서의 적자를 줄이려는 노력도 동반하고 있다. 그는 “사실 리조트는 지역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애초에 상당한 적자를 감수할 각오를 하고 설계된 것”이라면서 “카지노에서 번 돈으로 적자를 메꾸고 있지만 계속 이럴 수는 없다. 적자 폭을 동결하고 나아가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규제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그는 “규제가 너무 심하다. 카지노는 오락하고 즐기는 곳”이라면서 “정부가 규제를 하니까 오히려 중독이 더 심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에서는 업장 면적도 정하고 테이블 수, 테이블당 베팅 금액 등 별의별 것을 다 규제한다. 오는 사람이 100명인데 자리가 50석밖에 안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라면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화장실도 안 간다. 규제가 오히려 과몰입을 유도하는 것이다. 중독의 큰 원인 중 하나가 과몰입이다. 규제를 완화해 본래의 서비스업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랜드는 카지노 매출의 13%를 떼어 폐광지역개발기금으로 낸다. 이 돈은 폐광지역 주민을 위한 복지사업 등에 사용된다. 이 사장은 “폐광기금이 전부가 아니다”라면서 “강원랜드 주주 중에 지자체가 많다. 거기에 배당금이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더 큰 목적은 일자리 창출”이라면서 “우리 직원이 3800여명인데 절반이 4개 폐광지역 사람들이다. 그리고 협력사 직원 2000여명 중 90%가 지역 사람”이라고 밝혔다. 사회공헌사업에도 적극적이다. 이 사장은 “최근에는 진폐환자들 200분을 모시고 제주도에 다녀왔다. 제주도는 평생 처음이라면서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강원랜드는 또 ‘넥스트 유니콘’ 사업을 통해 지역에 기업을 유치하고 있다. 이 사업에 선정된 기업에는 10억원을 지원한다. 이 사장은 “기업이 들어오면 젊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그러면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할 것이다. 지역에서는 아기 울음소리 듣기가 어렵다. 참으로 귀한 일”이라고 밝혔다. 강원랜드는 도박 중독 예방 및 치료 활동을 한다. 윤리적 책임을 지는 것은 물론 강원랜드의 중장기적 발전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이 사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비롯해 세계 어느 카지노에서도 도박 중독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사례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도박중독관리센터(KLACC)를 운영한다”면서 “도박 중독자가 늘어나는 것은 우리 카지노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래의 고객이 병들어 가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려면 고객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원이 행복해야 매출도 오른다 지역 특성상 전문 상담사를 유치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울에서 멀어 선호도가 떨어진다. 맞교대 근무의 강도도 만만치 않다. 이 사장은 “도박 중독에서 치유된 사람 중에서 ‘동료상담사’를 뽑거나, 임금피크에 들어간 경험이 풍부한 카지노 직원을 상담사로 활용하는 방법 등을 강구하고 있다. 비대면 상담도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직원의 ‘행복한 삶’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이 사장은 “직원이 행복해야 좋은 서비스가 나오고, 그래야 매출이 오른다”면서 “모든 서비스업이 그렇지만 특히 우리 카지노 직원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단계별로 스트레스를 관리해 주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낮은 수준의 스트레스는 내부 동호회 활동 및 취미활동 등으로 해소하게 한다. 그보다 더 심하면 부서를 바꿔 준다”면서 “아주 심한 경우에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다. 필요할 경우 직원들의 정신적 치료까지 지원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글로벌 반도체 도시로 도약하는 용인… 창의적 정책으로 혁신”

    “글로벌 반도체 도시로 도약하는 용인… 창의적 정책으로 혁신”

    반도체 인재 육성 고교 등 설립클러스터·인프라 구축 차질 없게150억원 ‘벤처창업 투자펀드’ 조성스타트업·중소벤처 발굴해 육성소상공인 생애주기별 지원 시작교통 인프라 개선에 시정 역점3호선 성남·용인·수원·화성 연장4개시 협약 맺어 공동용역 추진 “작은 변화가 쌓이면 더 큰 변화와 발전이 이뤄질 것입니다. 과감하고 창의적인 정책으로 용인을 혁신하고 재창조하겠습니다.” 이상일(61) 경기 용인시장은 1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민들과 지혜를 모아 용인특례시가 글로벌 반도체 도시로 도약하는 초석을 다지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언론인 출신으로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 시장은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착공과 함께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차근차근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구체적으로 ▲반도체 산업 육성 전담 조직 구축 ▲반도체 고속도로 건설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입주 지원 ▲인재 양성을 위한 반도체고등학교 신설 등을 들었다. 다음은 이 시장과의 일문일답-민선 8기 시정 운영 계획은. “시정 목표는 ‘성장지원’과 ‘균형발전’, ‘삶의 질 향상’, ‘시민 안전’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성장지원은 시의 반도체 생태계가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소상공인을 위해서 시장진입부터 성장, 폐업 충격 완화, 재도약 기반 마련까지 생애주기별 지원을 시작할 생각이다. 균형발전 전략을 통해 경기용인플랫폼시티 광역교통 개선 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다함께 돌봄센터와 국공립어린이집을 확충하는 등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 시민안전을 위해 빅데이터를 활용한 재난정보와 치안정보 수집으로 고위험 지역을 예측하고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정책을 개발하겠다.” -예산 3조원 시대가 열렸다. 시민들 삶에 어떤 변화가 있나. “취임 전 시장직 인수위에서 선정한 공약을 검토해서 212개 공약을 확정하고, 용인특례시만의 특별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실현 가능한 정책을 가다듬고 관련 예산을 편성했다. 우선 균형발전과 직결되는 교통 인프라 개선에 중점을 뒀다. 특히 용인 면적의 약 79%를 차지하는 처인구의 도로 개설과 확장, 유지 보수에 1189억원을 편성했다. 기흥구에는 467억원, 수지구에는 222억원을 투입한다. 용인특례시민만의 혜택도 20가지에 달한다. 청년에게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증료를 지원하고, 소상공인에게는 온라인 플랫폼 비용을 지원한다. 3자녀 이상 가구에는 수도요금을 감면하고, 용인특례시민이 아기를 낳으면 15만원 상당의 출산용품도 지원한다.” -‘용인 L자형 반도체벨트’ 조성이 탄력을 받고 있다.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와 기흥구 삼성전자를 거쳐 경기용인플랫폼시티를 잇는 L자형 반도체벨트를 포함해 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시정 역량을 집중하려고 한다. 반도체 기업들이 용인시에 들어올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고, 반도체 고속도로 노선 주변에 포진시키겠다. 현재 L자형 용인 반도체벨트의 면적은 642만㎡(약 194만평) 규모다. 이미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 50여개의 반도체 기업이 입주할 협력화 단지가 있다. 경기도가 인근에 또 다른 협력화단지 조성이 가능하도록 공업지역 물량에 반영했다. 이동읍 제2용인 테크노밸리 조성계획도 승인이 났다.” -반도체 도시 경쟁력 강화 방안은. “150억원 규모의 ‘용인 벤처창업 투자펀드’를 조성해 스타트업 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을 발굴하고 성장을 지원하겠다. 시 차원에서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을 추진한다. 민관협력을 통해 반도체 관련 교육과정을 단계별로 운영하려고 한다. 반도체·AI고등학교 설립, 관내 대학교의 반도체 계약학과 개설을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 용인을 동서로 잇는 반도체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국지도 57호선(마평~고당) 확장, 경강선 연장 등 기업 간 물류 이동을 위한 교통망을 확충하겠다.” -특례시 출범 1년이 지났다. 과제는. “용인·수원·고양·창원시 등 4개 특례시와 행정안전부는 그동안 ‘특례시지원협의회’를 구성해 특례시 이양 사무 86개 기능(383개 단위사무)을 발굴하고 소관 중앙부처와 광역지방자치단체에 보냈다. 하지만 특례시 출범 1년이 된 현재, 이양이 완료된 권한은 9개 기능(142개 단위사무)밖에 없다. 특례시가 이양을 요구한 권한의 10% 수준이다. 4개 특례시는 ‘특례시지원특별법’ 입법을 추진 중이다. 특례시의 법적 지위와 포괄적인 특례권한을 명시해 실질권한을 확보하고, 특례시지원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을 계획이다. 특히 특례시지원위원회의 경우 특례권한 확보의 동력을 얻기 위해 국무총리 직속 기구로 두고 중앙부처·도·특례시 간 종합적인 조정·협의를 원활하게 할 계획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연장 추진 방향은. “수서역에서 성남~용인~수원~화성으로 연장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신상진 성남시장, 이재준 수원시장, 정명근 화성시장과 만나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3호선 연장 추진에 화성시가 적극 동참하면서 사업 실현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걸림돌이었던 차량기지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하철 3호선 연장을 위해서는 경기도와도 긴밀하게 협조해야 한다. 이르면 이달 안에 경기도와 4개 시가 함께 협약을 맺고, 이후 4개 시가 자체적으로 3호선 연장 추진을 위한 공동 용역을 추진할 계획이다.”
  • “세시스!” 침묵 속의 구조… K구조대, 엄마·아들 등 3명 극적 구출

    “세시스!” 침묵 속의 구조… K구조대, 엄마·아들 등 3명 극적 구출

    ‘골든타임’ 지나고도 낭보 이어져韓구조대 첫날 5명 이어 8명 구조거리 곳곳 시신 찾는 가족들 통곡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 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 이후 구조 ‘골든타임’인 72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기적 같은 생환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12일(현지시간) 튀르키예 관영 아나돌루통신에 따르면 하타이주에서는 7개월 아기가 140시간 만에 구조됐고, 35세 남성이 149시간 만에 살아 돌아오기도 했다. 대한민국긴급구호대(KDRT)가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하타이주 안타키아에서도 연이은 생존자 구조 소식이 들려왔다. 긴급구호대는 11일 낮 65세 여성을 구조했고, 밤에는 아들(17)과 어머니(51)를 무너진 건물에서 구출했다. 지난 9일(현지시간)엔 5명을 구조했다. 총 8명의 소중한 생명을 구한 구호대는 ‘기적’을 찾는 마음으로 폐허가 된 현장을 누비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절규에 가까운 오열과 통곡이 맴도는 안타키아에서 누군가 “세시스!(조용)”를 외치면 삽시간에 주변은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콘크리트 잔해를 퍼내던 중장비도 멈춰 선다. 오열하던 생존자도 입을 다문다. 대한민국구호대도 이런 ‘침묵 속의 구조’를 연일 이어 가고 있다. 안타키아는 가지안테프주의 진앙지와 불과 130㎞ 떨어진 곳으로, 지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큰 피해를 입은 도시다. 지진 발생 전 21만 8000명이 거주했지만, 지금은 삶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폐허가 됐다. 도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건물은 가루처럼 무너져 있었다. 참사 나흘째로 접어든 10일 구호대가 가는 곳에는 가족을 잃은 주민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주민 요청에 따라 수색하는 구호대는 끝내 생존 반응이 없으면 “구조가 더 급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양해해 달라”고 말한 뒤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무너진 건물 근처 길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살마(57)는 “(가족이) 살아서 나오면 좋겠다.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견딜 수 있는 힘이 없겠지만,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생존 골든타임이 훌쩍 넘은 터라 구호대가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도 잦았다. 구호 활동 첫날인 지난 9일 5명의 생존자를 구조한 구호대는 시신 9구를 수습했다. 10일엔 4구, 11일엔 5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검은색, 노란색 가방에 담긴 시신들은 길거리 위에 나란히 놓인 채 가족들이 얼굴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두 아이의 시신을 붙들고 울음을 멈추지 못하던 율도드는 “이렇게 보낼 수 없다. 잠을 자다가 허무하게 아이들을 잃었다”고 했다. 구조팀은 시신을 수습할 때마다 고인의 마지막을 추모하는 차원에서 경례를 했다.수도, 가스 등이 모두 끊긴 터라 대원들은 전기 손난로로 추위를 버티면서 전투식량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물이 부족해 구조 작업 이후에는 물티슈로 얼굴을 닦는다. 구조견 토백이는 구조 활동을 하다 오른쪽 앞다리를 다쳤고, 토백이의 핸들러인 소방관도 손가락에 상처를 입었다. 튀르키예 재난관리국(AFAD)은 이날 기준 확인된 사망자가 2만 4617명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시리아 측 사망자를 합하면 2만 8000명을 넘어서는 규모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사망자(1만 8500명)보다 1만명이나 많다. 실종자 수색이 진행되면 사망자 수는 더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세씨스!(조용!)”와 함께 시작되는 ‘침묵의 구조’…기적을 찾는 대한민국 구호대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세씨스!(조용!)”와 함께 시작되는 ‘침묵의 구조’…기적을 찾는 대한민국 구호대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 여파로 곳곳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아직 수 많은 이들이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데도 구조 작업은 더디고 시간만 빠르게 흐르면서 살아남은 이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한 순간에 가족, 친구, 보금자리를 모두 잃은 생존자들은 질병, 추위, 굶주림이라는 또 다른 재난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곳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지만 폐허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이들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재난의 현장에서 서울신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기록을 써내려 간다는 심정으로 현지 상황을 기록한다.“세씨스!(조용!)”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절규에 가까운 오열과 통곡이 콘크리트 더미를 타고 맴도는 튀르키예 하타이주의 안타키아. ‘아비규환’ 그 자체인 이곳에서 삽시간에 주변을 모두 침묵하게 만드는 단어다. 구조 현장에 있는 누군가 “세씨스!”를 외치면 다른 사람들도 휘파람을 불고 “세씨스”라고 소리친다. 콘크리트 잔해를 퍼내던 중장비도, 삶의 터전은 물론 가족을 잃은 슬픔에 터져 나온 오열도, “가족들이 건물에서 나오지 못했다. 구해달라”며 소리치던 생존자들도. 모두 침묵한다.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를 비롯해 현장에 투입된 각국의 구조대는 이후 생존 반응을 확인한다. 매일 ‘침묵의 구조’가 이뤄지고 있는 이곳은 가지안테프주의 진앙지와 불과 130㎞ 떨어진 곳으로, 지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큰 피해를 입은 도시다. 지진이 나기 전 21만 8000명이 이 도시에 거주했지만, 지금은 삶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폐허가 됐다. 도로의 흔적은 사라졌고, 건물은 가루처럼 무너져 있었다. 아파트, 도서관, 이발소, 문구점 등이 있었던 일상적인 주택가였다는 사실은 살아남은 이들의 입을 통해서야 알 수 있었다. 외교부 1명, 국방부 49명, 소방청 62명, KOICA(한국국제협력단) 6명 등 총 118명으로 구성된 KDRT는 지난 9일 이곳에서 모두 5명의 생존자를 구조했다. 대한민국 구호대는 10~11일에도(현지시간) ‘기적’을 찾는 마음으로 폐허가 된 현장으로 나섰다. 베테랑 소방관인 양영안(53) 구조대 팀장은 전날 장모상 소식을 전해 듣고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구조 손길이 다급한 현지 사정을 외면할 수 없어 계속 현지에 남아 구호 활동을 이어 갔다. 참사 나흘째로 접어든 10일 오전 대한민국 구조팀은 전날 생존자를 구했던 장소를 찾아 다시 생존 반응을 확인했다. 하지만 생존자는 없었고, 시신 2구를 수습했다. 이후 우리 구조팀이 가는 곳에는 가족을 잃은 주민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수색을 하는 구조팀은 끝내 생존 반응이 없으면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 경우가 구조 최우선이고, 생존 반응이 없으면 구조가 더 급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튀르키예 현지 구조대에게 우리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고 간다. 양해해달라”고 말한 뒤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자녀 3명, 여동생, 남편, 조카 등 가족이 모두 건물에서 나오지 못했다는 살마(57)는 “지진이 난 이후로 경찰에게도 말하고 군인에게도 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한국 구조팀이 처음으로 이곳을 찾아왔다”며 딸의 사진을 꺼내 들어 구조팀에게 보여줬다.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무너진 건물 근처 길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살마는 “살아서 나오면 좋겠다.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견딜 수 있는 힘이 없겠지만,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한민국 구조팀은 중장비를 비롯해 곡괭이와 절단기 등으로 사투를 벌였지만 끝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아스, 베르나이, 에네스….” 살마는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동생이 건물 안에 매몰된 메르트(20)는 “나는 이곳에서 구조됐다. 정신을 차린 후 가족들과 이웃 등 10명을 꺼냈지만, 동생이 아직 못나왔다”며 다친 오른쪽 다리를 부여잡았다.‘골든 타임’인 72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터라 구조팀이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도 잦았다. 검은색, 노란색 가방에 담긴 시신들은 길거리 위에 나란히 놓인 채 가족들이 얼굴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갈 수 없다”, “여기에 함께 있었다”며 더 이상 소리조차 낼 수 없는 통곡과 함께 아이의 시신을 붙잡고 있는 부모의 모습은 이제 이곳에선 흔한 풍경이 됐다. 두 아이의 시신을 붙들고 울음을 멈추지 못하던 율도드는 “이렇게 보낼 수 없다. 잠을 자다가 허무하게 아이들을 잃었다”고 했다. 구조팀은 시신을 수습할 때마다 마지막을 추모하는 차원에서 경례했다.현지 상황이 열악한 만큼 구조팀을 포함한 KDRT 대원들은 8인용 텐트에 10명 넘게 들어가 생활하고 있다. 특전사들은 한국에서 챙겨온 1인용 텐트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부족한 잠자리를 대신했다. 대원들은 수도, 가스 등은 모두 끊긴 터라 전기 손난로로 추위를 버티면서 전투식량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무너진 건물에서 끊임없이 먼지가 나고 추위를 버티기 위해 모닥불을 피우기 때문에 매캐한 공기가 가득하지만, 구조 작업 이후에는 물티슈로 얼굴을 닦아내는 데 만족하고 있다. 전날 구조 활동을 하다 구조견 토백이는 오른쪽 앞다리를 다쳤고, 토백이의 핸들러인 소방관도 손가락에 상처를 입었다. 열악한 상황에도 구호 활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대원들은 11일 생존자 1명을 추가로 구조했다. 외교부는 “안타키아 지역에서 3일째 탐색·구조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긴급구호대는 튀르키예 구조팀과 함께 합동 작업 중 현지시간으로 오늘 오후 2시 4분 생존자 1명을 추가로 구조했다”고 밝혔다. 구조된 생존자는 65세 여성이며, 의식이 있는 상태로 인근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 ‘기적의 아이’ 아야 입양해 기르고 싶다 신청 수천 건 쏟아져

    ‘기적의 아이’ 아야 입양해 기르고 싶다 신청 수천 건 쏟아져

    시리아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엄마 탯줄에 연결된 채로 구조된 기적의 아이를 입양해 키우겠다는 청원이 수천 건에 이른다고 영국 BBC가 10일 보도했다. 시리아 북서부 진데이리스에서 태어난 신생아 ‘아야’(Aya, 아라비아어로 기적이란 뜻)는 지난 6일 출산 직후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져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마에 타박상 자국이 보일 뿐 대체로 건강한 모습이다. 엄마아빠는 물론, 네 형제자매, 이모 모두 세상을 떠나 이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지진 당일 옮겨진 아프린 병원에서 이 아이를 돌본 하니 마루프 소아과 의사는 “지난 6일 도착했을 때 아주 나쁜 상태였다. 오한이 들려 했고 숨쉬는 것조차 힘겨워했다”면서 지금은 매우 안정된 상태라고 전했다. 먼 친척인 칼릴 알수와디는 아이가 안전하게 구출되는 현장에 함께 있었다며 병원으로 아이를 데려온 사람이 자신이라고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입양하고 싶어하는 이들의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그애를 입양해 품위있는 삶을 주고 싶다”고 적은 이도 있었다. 쿠웨이트의 TV 앵커는 “난 이 아이를 돌보고 입양할 준비를 마쳤다. 합법적인 절차가 날 허용한다면”이라고 말했다. 칼리드 아티아흐 병원 책임자는 전 세계에서 아야를 입양하길 기다린다는 전화 수십 통을 받았다고 했다. 자신의 딸도 생후 4개월 밖에 안됐다고 한 아티아흐 박사는 “지금으로선 그애의 입양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애의 먼 친척이 돌아올 때까지 우리 식구처럼 돌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그의 부인이 친딸과 아야에게 번갈아 모유를 수유하고 있다고 했다. 수십년 내전 동안 반군의 소굴이 됐던 진데이리스에서는 건물의 90%가 지진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며 추위와 장비 부족의 악조건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힘겨운 구호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시리아의 인명 피해는 3000명 이상으로 알려져 있는데 진데이리스 같은 반군 점령 지역의 숫자는 빠진 것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 [문화마당] 나박자박 나박자박/이은선 소설가

    [문화마당] 나박자박 나박자박/이은선 소설가

    “생속의 반대말은 썩은속이었다. 속이 썩어야 세상에 관대해질 수 있었다. 산다는 건 결국 속이 썩는 것이고 얼마간 세상을 살고 난 후엔 절로 속이 썩어 내성이 생기면서 의젓해지는 법이라고 배추적을 먹는 사람들은 의심 없이 믿었던 것 같다.”(김서령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중에서) “늬가 배추전 맛을 알간디?” “그러엄! 이제 나도 마흔인데, 할머니?” “니가? …왜?” 할머니와 함께 텃밭에서 봄동 몇 포기를 삽으로 퍼오던 길이었다. 내 삶 전체를 지켜본 할머니 입장에서는 마흔이라는 나이와 내 입맛의 변화를 쉽게 체감하기 어려우셨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벌써’도 아니고 ‘왜’라니. 언 땅에서 봄동의 뿌리를 삽으로 자르며 나누던 대화치고는 다소 엉뚱했지만, 밭에서 막 뽑아 온 봄동 전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바로 여기에 곁들일 나박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러 간 터였다. 작년 가을에 강원도 원주에서 진행된 할매발전소의 ‘알아차림전’은 무학의 할머니들을 학교에 모셔 그들의 삶을 재조명한 폐교 테마 프로젝트였다. 마을 전체가 들썩인 것은 물론이고, 내 마음도 팔딱거렸다. 할매발전소를 꾸린 로컬리티 팀의 석양정 작가는 “밥상은 일상적이면서도 고유한 기억을 담은 매체”라는 말로 할머니들의 일생과 일상, 밥상을 널리 퍼뜨렸다. 전시를 보고 나오며 나는 내 속에서 출렁거리는 할머니의 나박김치 국물을 떠올렸다. 어째서 여태 그것을 기록할 생각을 못 했던 걸까. 이맘때가 되면 겨우내 바람 들지 않게 잘 갈무리해 두었던 무와 알배기 배추, 그리고 집 주변의 밭에서 그때까지도 속은 제대로 살아 있는 야채들을 뚝뚝 잘라 와 국물 자작하게 나박자박 담가 주던 할머니의 나박김치는 내게 가히 우주 최고의 국물김치였다. 떡국에 나박김치 한 사발, 배추전에 나박김치 한 사발. 그거면 2월을 풍족하게 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정월대보름 이쪽저쪽 곁들이는 귀밝이술을 마신 다음날의 해장은 또 어떻고. 그 와중에 딸아이는 증조할머니 등에 매달렸다가 내 팔을 붙들고 늘어지며 안으라 업으라 일어나라며 아주 총체적인 난국을 만드는 중이었다. 결국 나는 나박김치 담그는 법 배우기를 포기한 채 할머니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기록했다. 물론 매년 간이 세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물 조금 타면 옛날 그 맛이 돋아나니까 상관없다. 김서령 선생이 살아 계시다면 기꺼이 그에게 배추적을 청하고, 우리 할머니의 나박김치 한 사발을 들고 가 한 상 조붓하게 차려 내고 싶은 날이다. 나는 언제까지라도 모르고 싶은 썩은속과 알배추 속 같은 노란 속내를 기꺼이 내보이며 권커니 잣커니 이제는 입춘도 지났으니 정말로 새해가 시작된 거라는 말로 한 해를, 할머니와 내년의 나박김치 담그기 행사를 약속해 보고 싶은 것이다. 오래 못 보고 산 사람들, 먼저 간 사람들을 그 상 주변에서 만나고 싶다. 말없이 건네는 김칫국물이면 다 되는 그런 마음을 배추전에 곁들일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내게는 언제까지라도 그것은 2월의 맛이고 붉은 멋이며, 2월의 삶이 지져지는 소리다. 썩은 속은 풀어지고 생속이 도드라지는 시간, 그 누구라도 이 땅의 할머니 손맛에서 어떤 위로를 받는 김칫국물과 삶이 우러나는 소리. 생속이 여며지는 그 자리의 나박자박 나박자박.
  • 이하늬 “혼전임신, 장애 가능성에 낙태준비까지…” 눈물 고백

    이하늬 “혼전임신, 장애 가능성에 낙태준비까지…” 눈물 고백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 이하늬가 혼전임신과 출산 전말을 밝히며 눈물을 쏟았다. 8일 이하늬는 CBS ‘새롭게 하소서’ 채널에 출연해 “직접 출연 신청을 했다. 영화 ‘유령’ 홍보에 바쁠 때지만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 나왔다”며 작가에게 전화해 본인이 직접 섭외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미스코리아에서 배우로 가기 위한 남모른 노력과 끝없는 배움의 과정을 전하던 이하늬는 드라마 ‘원더우먼’ 촬영 직후 배우 스태프들과 뒤풀이도 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난 주연배우의 속사정을 털어놨다. 이하늬는 “‘원더우먼’ 촬영 당시 남편과 롱디 커플로 연애 중이었고 결혼과 2세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세웠다. 2021년 12월에 간소한 서약식으로 결혼식을 대신하려다 11월에 양가에 인사 드리면서 시험관을 하자고 예약까지 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3개월간 홍콩에 출장을 가있어야 했다. 9월에 잠깐 남편을 만나고 11월까지 ‘원더우먼’ 촬영을 해야했는데 나중에 보니 9월에 임신을 했더라”며 “처음엔 임신한 줄 모르고 촬영했다. 저는 차에서 잠을 자는 스타일이 아닌데 자꾸 잠이 쏟아지더라. 정신을 잃고 차에서 잠들면 얼굴이 이렇게 부어서 촬영을 재개했다. 감독님도 놀라실 정도였지만 그대로 부은 얼굴이 송출됐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혹시 모르니까 임신 테스트를 해보라고 하더라. 내가 무슨 마리아도 아니고 황당했지만 매니저에게 임신 테스트기를 사와달라고 시킬 수도 없어서 꽁꽁 싸매고 약국에 가서 테스트기를 직접 샀다. 두 줄이 나오는데 너무 어리둥절해서 한참을 쳐다봤다. 믿기지 않아서 3번이나 테스트 했다. ‘원더우먼’에는 유독 액션신도 많고 발차기 와이어 액션도 잔뜩 남아 있는데 다 나온 대본을 주연 배우가 못하겠다고 할수도 없고 ‘하느님 아이를 지켜주세요’라고 빌었다. 다행히 아이가 잘 견뎌줬다. 시험관 예약이 무색해졌다”며 웃음지었다. 하지만 이하늬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 뱃속에서 장애 가능성이 높아 각종 검사를 받고 낙태 시술까지 갈 수 있는 상황에 무너졌던 엄마의 마음을 털어놓다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그는 “임신 18주에 대학병원에서 유전자 추적검사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다. 노산이다 보니까 원래 해야하는 것보다 유전자 검사를 많이 했는데 장애 가능성이 높다고 나왔다”며 “선생님이 제가 양성일 가능성이 높다며 다른 선생님께 ‘양수 검사 해주시고 낙태수술도 준비해주세요’라고 말하는데 완전히 무너졌다”고 털어놨다. “아이 얼굴도 한번 보지 않았지만 모성애가 움텄다”는 이하늬는 “양수 검사후 ‘원더우먼’으로 상을 받기 위해 시상식에 갔는데 수상소감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고 온통 아이 걱정 뿐이었던 그때를 떠올렸다. 이하늬는 “1월 1일부터 특별 새벽기도를 했다. 계속 눈물이 났다.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며 “그러던 어느날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다. 마냥 기쁘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양성 판정을 받을지 모르는 엄마들과 아이들이 떠올랐고, 아픈 아이를 가진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나이와 상관없이 부모가 되면 왜 어른이 된다고 하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하늬는 “지금 제가 열심으로 아이에게 개입할 때마다 남편이 말리면서 ‘그해 12월을 기억해. 장애를 가질수 있었던 아이인데 그냥 우리가 주신 아이를 맡아서 기를 뿐’이라고 상기시킨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이하늬는 현재는 여배우들에게 출산 전도사가 됐다고 전했다. 이하늬는 “임신 기간 동안 내가 먹는 영양분이 탯줄을 통해 아이에게 갔는데 탯줄을 끊고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그 영양분이 위로 오면서 젖이 돌기 시작하는게 너무 신기하더라. 모유수유 하는 동안 98% 자연 피임이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몸으로 생명의 신비를 겪는 게 신계와 인간계의 중간에 있는 것 같다. 내가 동물인가 싶으면서도 신계에 있는 느낌이다”라고 감탄했다. 그래서 “‘어머! 이건 한번 해봐야돼’라고 여배우들이나 후배들에게 임신을 추천한다. 임신은 여자의 특권이다. 무서워하지 말고 한 몸에 심장 2개가 뛰는 신비를 느껴보라고 한다”며 “살면서 내가 이것보다 완성도 있는 일을 할수 있을까 싶다. 한 인간을 씨앗으로 태아로 완전한 아이로 뱃속에서 키워서 내보내는 과정은 하늘이 주신 사명이다. 전 임신과 출산 후 삶의 포인트 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하늬는 2021년 2세 연상 비연예인과 결혼했으며 지난해 6월 딸을 출산했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유령’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 “미혼모 정훈희, 애 낳았다” 대마초 파동→7년 방송정지

    “미혼모 정훈희, 애 낳았다” 대마초 파동→7년 방송정지

    56년차 가수 정훈희가 혼전 동거와 출산, 대마초 파동과 방송정지에 얽힌 과거를 털어놨다. 3일 채널A 예능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오은영은 “초등학교 4학년 때, TV로 ‘국제 가요제’를 방영, 광활한 무대로 관객을 압도했다”며 1975년 칠레 국제가요제에 선 정훈희를 떠올렸다. 당시 정훈희는 스페인어와 한국어로 ‘무인도’를 소화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빛을 발하며 3위에 입상, 인기가요상과 편곡상을 수상했다. 그런 정훈희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정훈희는 “처음에 김태화랑 사는 내게 이상하다고 해, 내가 이상한가? 싶더라”며 “44년째 함께인 김태화와 각방 살다가 각집을 살고 있다”며 현재 별거 중이라고 했다. 정훈희는 “여자 연예인 스캔들이면 치명적이던 시절 처음 혼전 동거로 3년 뒤 혼전 출산, 큰 아이를 낳았다, 혼인신고만하고 결혼식은 안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당시 연애한다는 소문에 같이 산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1년 이상 살면 장 지진다고 말 할 정도 너나 잘 살아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결혼식 없이 동거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선 “데이트 해야하는데 갈 곳이 없어, 시선을 피할 데이트 장소가 필요해 친구 집에 빈방을 얻게 됐다, 우리 아지트였고 같이 있다가 여기서 자자! 그랬다”고 말했다. 정훈희는 “’미혼모 정훈희, 아들 낳았다’는 신문이 1면에 나와 특히 여가수에게 치명적이던 시절”이라며 “무슨 자신감인지 가수가 노래 잘하면 되지 생각해 노래가 자신 있었다”고 했다. 딸의 동거 소식을 들었을 때의 아버지 반응을 묻자 정훈희는 “‘태화가 좋나, 없으면 안 되겠나 물어, 그래 살아라’ 하셨다. 그때 나이가 29세, 30세”라며 “그 당시 늦은 나이 결혼이었다”고 덧붙였다.하지만 별거에 이르게 된 이유에 대해선 “각방 쓰게 된 건 집에서 저녁 되면 각자 생활을 한다. 김태화는 컴퓨터하고 난 책만 읽는다. 그럴 바엔 각방 쓰자는 생각”이라며 “부산으로 가며 자연스럽게 별거하게 됐다. 모르는 사람은 왜 따로 사냐 묻는데 가까운 사람은 저 부부가 편하게 살기 위해 사는구나 싶어 , 짜인 틀에 맞춰살 필요 없다”고 답했다. 정훈희는 결혼의 의미에 대해 “사랑하니까 같이 있자는 생각으로 결혼, 출산 후엔 아이를 함께 키우는 친구였다”면서 “중년이 됐을 때는 동지, 노년의 부부는 전쟁터에서의 전우다”고 했다. 현재 73세인 정훈희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 아플지 모른다. 얼마 전 나도 뇌혈전으로 쓰러져 응급실 실려갔다”며 “남편 김태화도 위암으로 위절제했다. 삶이란 전쟁터에서 서로 내 전우를 지켜야하는 전우애가 생겼다”고 했다. 또 정훈희는 “7년이란 세월 노래를 못했다”며 1975년 연예계 대마초 단속을 언급했다. 대마초를 하지 않았음에도 당시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 역시 의혹을 받았다고 했다. 정훈희는 “당시 인기를 얻은 노래 ‘무인도’ 갑자기 노래가 뜨니 축하해준다고 파티를 열어줬고노는 친구들이 그렇게 노는지 몰라, 난 혐의없음올 훈방 조치 받았다”면서 억울함을 전했다. 또 정훈희는 “기자가 임의로 작성한 이별기사로 2년간 방송정지”였다며“사회정화운동 때문에 그랬다총 7년을 노래 못 했다”고 했다. 정훈희는 “그렇게 신곡이 없었다, 그리고 7년 뒤 ‘꽃밭에서’란 곡을 만났다“는 사연을 언급했다. 하지만 정훈희는 아버지의 교육 덕에 내면의 힘을 길렀다고 했다. 오은영은 정훈희 아버지에 대해 “선진형 딸바보 아버지”라고 언급, 정훈희는 “가수될 때 ‘정훈희’ 이름을 바꾸자고 개명을 제안해, 근데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과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끝까지 정훈희란 이름을 지켰다”고 해 뭉클함을 안겼다.
  • 이재명 “국가 소멸 걱정해야”… 민주, 저출생 대책위로 민생 의제 선점

    이재명 “국가 소멸 걱정해야”… 민주, 저출생 대책위로 민생 의제 선점

    더불어민주당이 2일 저출생에 따른 인구 위기에 대응하고자 당내 별도 대책 기구인 ‘초저출생·인구위기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가 백년지계인 저출생 문제를 선점함으로써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서도 국가 백년지계를 우선하며 수권 능력이 있는 대안 정당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포석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대책위 출범식에서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인 0.8을 기록했다고 한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충격적인 수치로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초저출생의 근본 원인은 미래에 대한 절망”이라며 “먹고 사는 문제가 걱정되고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에 출산과 출생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16년 동안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 쏟아부은 돈이 280조원이라는데 상황은 계속 악화하고 있다. 먹고사는 걱정을 없애는 것이 우선이고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또 “궁극적으로 소득, 주거, 교육, 일자리 같은 민생 전반에 걸쳐서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는 삶으로 나아가야 인구위기를 온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연금, 병역, 정년연장 등 모든 것이 인구 문제와 결합된 만큼 대책위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너무 많이 있다”며 “앞으로도 이 위원회의 여러 숙제를 잘 지원해 파격적 대책과 함께 대한민국이 초저출생 인구 위기를 극복하고 지구에서 사라지지 않고 더 융성한 나라가 될 수 있게 열심히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상희 대책위 위원장은 “육아·청년 일자리·주거·노동·성평등 정책 등의 종합적 제시가 필요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는 가운데 저출생 정책이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돼선 안 된다”며 “여성,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저출생극복 분과 ▲지역소멸극복 분과 ▲인구구조대응변화 분과 ▲새로운사회로의 전환 분과 등 4개 분과를 구성해 활동할 예정이다. 최종윤 대책위 간사는 “분과의 활동 과정을 통해 압축적으로 정책이 모이면 당 지도부와 원내 지도부와 상의해 입법화 과정과 내년 총선에 인구 위기에 대응하는 공약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중심으로 하겠다”며 “반드시 오는 8월까지 성과를 내 민주당이 인구 위기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함께해달라”고 말했다.
  • 탈레반 보고 있나…자식 팔아 먹을 것 구하는 아프간인들, 끔찍한 생활고

    탈레반 보고 있나…자식 팔아 먹을 것 구하는 아프간인들, 끔찍한 생활고

    탈레반이 재집권한 아프가니스탄의 경제난과 생활고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일부 아프간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자식을 내다팔기까지 해야 하는 정도라고 영국 익스프레스가 1일 보도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구호활동가 사라(가명)는 익스프레스에 “탈레반이 재집권한 지 18개월이 흐르는 동안, 아프간 사람들은 굶주림을 피하기 위해 자녀를 팔아야 했다”면서 “여성의 권리는 거의 사라졌다. 공원이나 체육관조차 혼자 갈 수 없으며, 대부분의 직종에서 일하는 것이 금지됐다”고 주장했다.  사라에 따르면, 아프간에서 여성의 인권과 기아는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사라는 “사람들은 매일 굶주리고, 일부는 생존을 위해 (먹을 것을 구하려) 자녀를 팔고 있다”면서 현재 아프간의 경제난이 매우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아프간 사람들을 왜 지독한 굶주림에 시달리나 아프간에서 심각한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어난 시기는 탈레반의 재집권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2021년 8월, 탈레반이 아프간을 재집권하자 국제사회는 금융과 수출 제재를 가했다. 그나마 원조에 의존하던 경제는 지원이 줄고 물가가 폭등하면서 아프간의 경제는 빠르게 붕괴했다.  특히 2021년 8월 말 아프간에서 미군을 철수시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행정부는 미국에 있는 아프간 정부의 자산 90억 달러(현재 환율로 약 11조원)를 동결한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 문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대신 탈레반을 경제 및 외교 수단으로 압박하고 있다.  유엔식량기구에 따르면 아프간 인구의 3분의 2인 2800만 명이 생존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태에 빠졌다. 특히 이들 중 2000만 명은 올해 심각한 식량 불안정 상태에 놓일 것으로 예상된다.  굶주린 부모 손에 팔린 아이, 어디로 갔을까 아프간의 끔찍한 경제난과 생활고가 자식을 내다 팔아야 할 정도라는 ‘경고음’은 이미 1년여 전부터 울리기 시작했다. 2021년 10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는 살레하라는 이름의 40대 여성 청소부의 사연이 소개됐다. 당시 이 여성은 직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550달러(약 65만원)의 빚을 갚지 못하고 생활고가 심해지는 상황이 이어지자, 결국 빚을 진 남성에게 3살 된 딸을 팔았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월스트리트저널과 한 인터뷰에서 “만약 삶이 이렇게 계속 끔찍하다면, 나는 내 아이들을 죽이고 나 역시 스스로 죽고 말 것”이라면서 “당장 오늘 저녁에도 뭘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2021년 11월에는 미국 CNN에 당시 9살 소녀였던 파르와나 말릭의 사연이 소개됐다. 이 소녀의 부모는 극심한 생활고로 굶주림에 시달리는 8명의 가족을 위해 9살 된 딸을 50대 낯선 남성에게 팔았다. 소녀의 아버지는 “8명의 가족을 먹여살리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죄책감과 수치심, 걱정 등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소녀는 결국 50대의 낯선 남성에게 신부로 팔려갔지만, CNN 등 전 세계 언론을 통해 사연이 알려지면서 인권단체가 적극 나선 덕분에 구출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던 이 소녀와 달리, 빚에 팔려간 대부분의 아프간 아이들은 집안일을 거들거나, 조금 더 자라면 조혼 및 강제 결혼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여성이 ‘사라진’ 아프간, 마네킹에 얼굴이 없다 아프간 사람들은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금지된 뒤, 더 심한 배고픔과 자녀를 내다 파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아내 또는 여성인 자녀의 경제활동은 불가능해지면서 가족의 수입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여성구호활동가 사라(가명)는 익스프레스에 “사실상 탈레반은 반드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성들에게 집에만 머물도록 명령했다”면서 “(여성에 대한) 모든 제한 때문에, 아프간에서는 여성들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토로했다.최근에는 탈레반의 엄격한 종교적 통치로 인해, 여성 옷가게의 마네킹마저도 마치 부르카(눈의 망사 부분을 제외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덮는 복식)를 착용한 것처럼 얼굴이 가려져 있는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AP통신은 “수도 카불 전역의 여성 옷가게에 있는 마네킹들은 모두 천이나 검은 비닐봉지로 머리가 둘러싸여 있다”면서 “탈레반 당국은 정기적으로 상점과 쇼핑몰을 순찰하며 마네킹의 얼굴들이 가려져있는지 확인한다”고 전했다.국제사회의 자금 동결 등 강력한 제재와 여성 인권의 억압, 탈레반의 공포 정치가 혼합된 아프간 사회는 그야말로 암흑 그 자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겨울은 일부 지역이 영하 30도 아래로 떨어질 만큼 15년 만의 강추위까지 오면서, 한 주 동안 150명 넘게 숨졌다. 국제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은 아프간 인구의 97%가 올해 빈곤선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내다봤다.
  • 한고은, 2세 없는 이유 고백

    한고은, 2세 없는 이유 고백

    배우 한고은이 현실 결혼 이야기를 전했다. 1일 방송된 채널A 예능 프로그램 ‘요즘 남자 라이프-신랑수업’에서는 장영란, 한고은이 이승철의 집을 방문한 모습이 공개됐다. 이승철은 새로운 멘토 한고은과 장영란을 자택에 초대, 캠핑을 즐기도록 했다. 먼저 도착한 장영란은 이승철에게 “공진단 140만 원짜리를 샀다. 아침에 느낌이 다르다더라. 벌떡 일어난다더라”며 공진단 선물을 건넸다. 그러자 이승철은 “공장문 닫았다”며 정관수술을 언급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승철은 장영란에게 “결혼한 지 16년이 됐다. 딸이 태어날 때 내가 뚱뚱했다. 그때 아내가 내게 ‘아빠가 나이도 많은 것도 창피한데 살찌면 애들이 싫어한다’고 해서 3개월 만에 10kg를 뺐다. 복근도 6개월 만에 만들었다. 근데 이게 15년 전 이야기다”라며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잠시 후 한고은도 합류해 본격적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승철이 한고은에게 “아이 없지?”라고 묻자 한고은은 “포기했다. 이 나이에 무슨 애인가. 올해 49세다”라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승철은 “42세인 줄 알았다. 이제 무슨 말을 해도 다 용서가 된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고, 한고은은 “나 경로우대 받는거야?”라고 반응해 웃음을 안겼다. 서로의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장영란과 한고은은 남편이 모두 연하라는 공통점을 찾아냈다. 한고은은 선배 연예인이 주선한 소개팅으로 남편을 만났다고 설명했고, 장영란은 “한 프로그램에서 저는 패널로, 남편은 출연자로 나와 만나게 됐다. 남편이 제 오랜 팬이었다고 했다. 남편이 적극적으로 대시해서 결혼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던 그는 “삶이 너무 힘들었다. 육아하고 일하느라 지쳤다. 남편이 병원도 차린지 얼마 안됐다”며 고충을 털어놓기도. 이에 한고은은 “빚이 그렇게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귀를 쫑긋 세웠다. 장영란은 “금수저가 아니라 대출을 엄청 받았다”고 털털하게 털어놨다. 한고은은 장영란의 얘기를 모두 듣더니 자신의 남편이 회사원이라면서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온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에 이승철은 “난 화려한 남자와 결혼할 줄 알았다”며 다시금 놀랐다. 한고은은 “배우자는 내집 같은 존재다. 화려함은 얼마나 가겠나”라며 진지한 눈빛으로 답했다. 하지만 곧이어 “순둥이 같지만 성질이 장난 아니다. 굉장히 철두철미하고 깔끔하다”며 남편의 반전 매력도 전했다. 한편 한고은은 지난 2018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결혼 첫 해에 유산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고은은 2015년 5세 연하 비연예인 남성과 결혼했다.
  • [문화마당] 가장 좋은 음식, 가장 멋진 모임/정승민 ‘일당백’ 유튜버

    [문화마당] 가장 좋은 음식, 가장 멋진 모임/정승민 ‘일당백’ 유튜버

    설날을 지내면서 이별을 생각했다. 오곡백과가 풍성한 한가위도 비애의 축제라고 소설 ‘토지’에서 배웠지만 새해맞이도 ‘서러운 추억의 현’을 건드리는 일이다. 차례상에 절을 하고 지금은 뵐 수 없는 얼굴들을 가만히 떠올리다 보면 가슴 한구석이 저려 온다. 본래 축제가 축하와 제사를 겸하기 때문에 명절날을 오작교로 해서 죽은 자가 산 자의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적막강산으로 빠져드는 기분을 떨치기 위해 코폴라 감독의 ‘대부’를 다시 봤다. 피를 나눈 가족과 돈으로 연결된 패밀리가 나오는 마피아 영화다. 콜레오네 패밀리를 이끄는 아버지는 마약과 같은 범죄는 손대지 않는, 나름 정의로운(!) 보스다. 막내아들 마이클은 가업에 회의적이지만 부친이 받은 총격을 계기로 복수혈전에 뛰어든다. 처남과 매제, 형과 동생의 골육상잔이 끝없다. 이 모든 참극은 패밀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됐다. 하지만 예전 아버지 생신날에 깜짝 파티를 벌였던 형제들은 다 사라지고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랑의 가족과 범죄 가족이 뒤섞였으니 비극은 불가피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아버지의 사업을 그렇게 싫어하던 청년 마이클의 변신이다. 직접 방아쇠를 당겨 사람을 죽이고 경쟁자와 배신자를 냉혹하게 처단한다. 부친과 같은 삶은 살지 않겠다던 아들이 어느새 판박이가 됐다. 희생자가 없는 비즈니스를 골백번 강조하지만 공갈과 협박이 배음으로 깔려 있다. 걸핏하면 상대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인정에 흔들리거나 의리에 끌리지 않기에 식구들을 헌신짝처럼 내쳤다. 뱀의 조심성, 여우의 교활함, 사자의 용맹함을 겸비한 군주형 아버지가 된 것이다.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에 따르면 보스와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교육 방식이 필요하다. 아이를 약자로 전제하는 어머니의 양육 스타일은 확장지향적이다. 병들거나 다쳐도 보호해 줄 식구를 많이 만들어 놓으면 생존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면 아버지의 육아 전략은 경쟁지향적이다. 약한 아이가 무리 속에서 살아남아 최후의 강자로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마이클은 철두철미한 경쟁형 인간이다. ‘돈 콜레오네’로 등극하는 과정은 그 많은 혈육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토너먼트와도 같다. 죽고 죽이고 미워하고 절망하는데 나중엔 부인도 집을 벗어난다. 그렇게 자기 안의 어머니를 죽이고 성장한 대부가 홀로 남아 쓸쓸히 추억하는 것은 가족의 단란한 한때다. 새 식구를 맞아들이는 결혼식으로 시작한 영화가 고독한 마이클로 끝을 맺는 것은 애정과 관용이 빠진 공동체가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하는 듯하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관직과 유배를 되풀이했던 추사 김정희는 만년에 가장 큰 즐거움을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이라고 했다.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채소이고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 손자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명절이야말로 비교와 평가를 잠시 꺼두고 또 한 해를 무탈하게 버텨 낼 기운을 얻는 시간이다. 괴로움과 즐거움 모두를 가족이니까 함께할 수 있다. 조상을 핑계 삼아 웃고 떠들고 시끌벅적해도 마냥 좋은 날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가시밭길 생의 하루하루를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 최정원 ‘불륜의혹’ 새 국면 “엄정심판 받게 할 것”

    최정원 ‘불륜의혹’ 새 국면 “엄정심판 받게 할 것”

    UN 출신 배우 최정원이 불륜설에 대해 다시 한 번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최정원은 1일 “지난 몇 주간 많은 분들이 아시는 이유로 저는 제 삶에서 가장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아닌 걸 아니라고’ 증명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고, 아닌 사실을 인정하고 요구하는 제보자의 일방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배경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어 더 혼란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시작하는 장문의 입장글을 게재했다. 이날 최정원과 불륜 의혹에 휩싸인 30대 여성 A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불륜설을 부인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A씨는 남편의 강요로 각서를 작성했으며, 최정원과 연인이었던 적도 없다고 직접 나섰다. 최정원은 “그 친구의 개인사가 담긴 인터뷰를 읽으며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었던 동생의 행동과 그 배경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나, 여전히 논란의 상대방이 자행해온 모욕, 협박, 거짓말들과 상상을 초월하는 명예훼손의 교사 행위들을 반성하게 하려면 반드시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정말 오랜만에 프로필 업데이트가 된, 한때 가족끼리도 친했던 가까운 동생 소식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다른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이루어진 대화 및 행동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오랜만에 연락하고 만난 동생이 예전처럼 너무나도 반가웠던 제 주관적 입장과는 별개로, 말과 행동을 좀 더 주의 깊게 하지 못한 부분, 정말 깊게 반성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그동안 저에게 보내주신 오랜 관심과 사랑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는 행동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가슴 깊이 반성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 정말 모든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앞서 지난달 9일 유튜브 채널 ‘연예 뒤통령 이진호’는 ‘40대 가장의 눈물. 아이돌 출신 유명 연예인 A씨의 사생활’라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최정원의 불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최정원은 다음날인 10일 불륜 의혹 여성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끼리도 친하게 알고 지낸 동네 동생이었다”며 “카톡에 오랜만에 이름이 떠서 반가운 마음에 안부차 연락해서 두세번 식사를 했지만 주로 가족, 일, 아이 이야기 등 일상의 안부 대화를 했다. 기사의 내용 같은 불미스러운 일은 절대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제보자 분의 일방적인 입장과 과장된 상상이 기사화된 부분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 일은 추후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고, 제가 입은 피해에 대해서도 법적 조치를 취할 생각”이라고 법적 대응을 예고한 바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