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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상한 아버지/정희경 전 이화여고 교장(굄돌)

    평생 몸에 익은 교육현장을 다시 또 떠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먼 산을 바라보는 목 긴 사슴처럼』 교육의 원형이어야 할 본래 모습에서 너무도 멀어져간 오늘의 교육현장에서 느껴지는 짙은 고독감을 견디기 힘들어 훌쩍 떠나보니 역시 배운 재주란 그저 자라는 세대와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과 관계있는 사물을 살펴보는 일뿐이다.우리나라의 부모들의 교육열은 세계 제일이라 자랑도 하고 또 칭찬도 많이 듣는다.그 교육열이 미국 이민이라는 모험을 강행하게 했고 좌절과 실패만을 안겨주는 조국의 교육을 견디기 힘들어 조기 유학이라는 남들이 삐닥한 눈으로 쳐다보는 탐험을 감수하게도 했다.그래서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각국에 우리나라의 교육인구가 퍽이나 넓게 두껍게 번져 있다.그러나 우리에게 들려오는 소식은 승전보만은 아니고 오히려 가슴아픈 사연들이 의외로 많다.어느 명문에서 일등을 한 한국인 2세,백악관에서 수상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2세,세계를 제패하는 한국 음악천재들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많이 나가 있는 보통 한국사람들,그리고 그들의 2세 이야기가 이 곳을 찾아든 한국교육자의 관심을 더 끈다.원래 공부에는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을 뼈져리게 경험해 본 부모는 이곳에서도 돈벌이에 몰두한다.그들의 삶의 의미의 전부인 아이들은 으레 잘 자라나고 있을 것으로 믿고 말이다.밤을 도와 일을 해서 생활비며 학비며가 충분히 저축되었을 때 아이는 벌써 건지기 힘든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미국 대도시 어디서나 흔히 듣는 한국 가정의 얘기다.결코 부모가 나쁘거나 게으른 게 아니다.한국의 교육환경과 비슷하다고 미국 교육환경을 잘못 판단했고 문화적 차이는 눈 밖에 있었고 부모의 역할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까닭이다.다행히 늦기는 했으나 요즈음 이런 문제들과 싸우는 자원봉사 단체가 제법 생겨났다고 한다.회의가 쉬고 있는 주말,딸네 집에 머무는데,출퇴근이 없어 차왕래가 없는 동네 차도위에서 아이들과 열심히 축구며 하키며 롤러스케이트를 즐기고 있는 멀쩡한 아버지들이 많은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껴본다.정말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왜 이 나라가 그런 대로 건강한가를 말이다.
  • 감기에 주사맞아야 하나/유태우박사 서울대·가정의학(건강한 삶)

    감기에 꼭 주사가 필요한가? 결론부터 얘기하면 「필요하지 않다」이다.그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필자가 지난번 외국에 거주하는 상사원들의 부인들을 대상으로 건강교육시 받은 질문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싱가포르에 주재하는 부인의 얘기였는데 아이가 감기가 들어 현지 의사한테 데려갔더니 약만 주고 주사를 놓아주지 않더라는 것이다.부인이 의아해서 왜 주사를 놓아주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의사는 감기에 주사가 필요하지 않은 여러 이유를 설명하면서 끝으로 한국은 의료후진국이라서 그럴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다.질문의 내용은 정말 그러한가였는데,세계각국에서 파견근무중 일시귀국한 부인중에 너도나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였다고 하였다. 감기에 왜 주사가 필요하지 않은가? 그 첫째 이유는 「감기에는 약이 없다」라는 말 그대로 감기를 일으키는 원인,즉 감기바이러스를 퇴치할 어떤 약도(먹는 약이든,주사약이든)현재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러나 다행히 인체에는 저항력이라는 것이 있어 바이러스가 몸안에 들어왔을 때 이를 퇴치하는 능력을 생성하게 된다.아무리 심한 감기라도 며칠 앓고나면 괜찮아지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현재의 감기약은 콧물·기침·열 또는 몸살 등의 증세만을 경감시켜 줄 따름이지 병 자체를 빨리 낳게 해주는 못한다. 둘째,감기에 놓는 주사의 주요성분을 보면 해열제·항생제·부신피질호르몬제·비타민 또는 포도당 등인데 그 어느 것도 감기에 직접적인 도움은 되지않고 오히려 부작용의 소지가 많다. 주사로 흔히 쓰이는 해열제는 그 대부분이 설피린인데 이 약은 무과립세포증이라는 치명적인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어 이미 선진국에서 판매금지가 되어있다.항생제는 박테리아에만 효과가 있지 바이러스는 전혀 죽이지를 못한다.소위 「살찌는 약」이나 「뼈주사」의 주성분이기도 한 부신피질 호르몬제는 마치 마약과 같아서 맞을 때는 입맛도 돌고 기분도 좋아져서 다나은 것 같아도 오히려 질병 자체를 악화시키거나 그 자체가 부작용이 많아 감기에 써서는 안될 약이다.비타민이나 포도당도 감기자체에는 별효과가 없고 더구나 주사로 몸안에 넣어야할 이유는 더더구나 없는 것이다.또하나 주의하여야 할 것은 어느 약이나 주사로 맞는 경우에는 많고적고의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반드시 쇼크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이유로는 주사를 맞는 자체가 어린이에게는 신체적인 고통은 물론 정신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감기에는 주사를 맞지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주사가 흔히 쓰이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첫째는 일반국민의 주사선호도로서 『주사를 맞아야 빨리 낳는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퍼져있고,둘째는 약국이 어느 정도의 1차진료를 담당하는 우리의 실정에서 약국을 다니다가 의사를 찾기 때문에 약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을 기대하는 심리가 팽배해 있으며,셋째 주사를 놓아 주지 않으면 그 의사를 실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독일서 빚은 한국인형전/재독 닥종이작가 김여희씨 국내전

    ◎작품마다 토속적인 익살·해학 가득 독일에서 한국고유의 종이로 한국인형을 만들면서 독일화단의 인정받는 작가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김영희씨(49)가 현대화랑(734­8215)의 올해 첫 초대작가로 19∼29일 전시회를 갖는다. 지난 2∼3년간 만든 닥종이인형을 전시하는 한편,그의 지난 인생 10여년의 사연들을 긴 호흡으로 토해 낸 이야기책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도 출간했다. 닥종이를 찢어내고 뭉치고 색깔을 입혀 토속적인 인간형상으로 빚어낸 김씨의 작품들은 작가의 심장소리와 호흡이 느껴질만큼 강렬한 인상을 준다. 과거 그의 닥종이 인형들이 슬픔과 고통의 표정들로 관객의 마음을 어둡게 한 측면이 있었던데 비해 이번 전시작품들은 고운 눈매와 뽀얀 자태로 또다른 익살스러움을 과시하고 있어 작가의 삶에 행복이 드리워져 있음을 짐작케 한다. 김씨는 지난 69년 홍익대 조소과를 나와 70년초에 결혼,3남매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으나 70년대후반 남편과 사별했다.청상의 슬픔과 한을 닥종이 인형만들기로 달랜 그는 우연한 기회에 독일화단에 알려졌고 이를 계기로 14살 연하의 독일청년을 만나 그의 끈질긴 구애를 받고 다시 결혼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김씨는 남편 토머스 사이의 자녀둘을 더해 5명의 자녀들과 행복한 독일의 가정을 이끌어 나가며 해마다 세번 이상의 개인전을 갖는 국제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색색가지 인형들이 서민적인 애환의 표정과 자태들로 어우러지는 그녀의 작업을 두고 한 평론가는 『거기에 담긴 해학들은 쓰라린 고통을 통해 나비처럼 날아오르는 지혜』라고 했다. 『50을 앞두고 이제는 정말 세계적으로 이름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무럭무럭 피어난다』는 그녀는 성격도 대화법도,그리고 필치도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고 시원하다.
  • 이청준장편 「인간인」(이달의 소설)

    ◎역사·권력의 억압 탈피,자유 희구/해방전후∼80년5월까지의 인간사 두권으로 완결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살면서 가끔은 부닥치게 되는 질문이다.질문은 늘 질문으로 끝나기 십상일 뿐 그 답 찾기란 흡사 맹구우목 아니겠는가.천 길 바다속의 눈먼 거북이가 천년에 한 번씩 수면위로 떠오르다가,그 중에 우연히 몸을 얹어 쉴 만한 나무토막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것.그게 바로 깨달음이렸다. 중견작가 이청준씨의 장편 「인간인」은 그 깨달음이란 화두와 그것의 비극성을 다룬 역작이다.88년 출간된 장편 「아리아리강강」을 고쳐 1부 「아리아리랑」으로 하고,2부 「강강술래」를 완결편으로 하여 펴낸 이 소설은 『인간사의 무명과 참담스런 배이』를,역설적이게도 『현묘한 섭리』로 풀어보고자 한 지혜의 소설이라 하겠다.1부에서 작가는 해방 전후를 시대 배경으로 하여 풍운아 남도섭의 운명을 권력의 역학관계 속에서 풀어보이고 있다.「쫓는 자」와 「쫓기는 자」 사이의 드라마틱한 역전과 재역전이 탐정소설 구조 안에서 시종 긴장감을 자아낸다. 힘을 가진 자로 부상하기 위해 밀첩으로 쫓는 자가 되었던 도섭,하지만 해방이 되자 다시 쫓기는 몸이 되고,한순간 회복하지만 거듭 쫓기는 신세로 전락하는 그의 삶의 족적은 타락한 역사의 순환논리를 암시한다.한번도 정당한 선택을 할 수 없었던 사람에게,혹은 한번도 자신의 본 마음을 명찰하지 않았던 운명에게 채워진 윤회의 덫이었던 것이다.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욱 옥죄어지는 게 그 덫의 속성이니,출구없는 방에 갇힌 악연의 운명을 상징한다 하겠다. 2부에 이르면,그 윤회의 덫 혹은 덫의 바큇살을 끊어내려는 작가의식을 엿볼 수 있다.70년대 말에서 80년 5월까지를 배경으로 하여 역시 숨어사는 사람들과 그들을 쫓는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가 그것이다.대개 반민주적 상황에 저항하던 사람들이거나 사회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해 개인적 한의 마디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숨어산다.그들이 갇혀 있는 한 윤회의 덫은 강고하다.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5월 광주로 함께 출정하게 함으로써,작가는 그 덫을 벗기려 한다.여기서 작가는 단순히 출정하는 모습을 박진감있게 보여주기보다는,한의 사람들 사이에서 잉태한 아기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대심리를 통해서 그 덫으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하고 있다.이렇게 볼 때 『순정한 어둠의 장막을 헤치며 일출처럼 눈부신 한 아이의 모습이 그를 향해 환하게 걸어오고 있었다』는 마지막 문장은 여러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결국 이청준씨의 『인간인』은 역사와 권력과 인간의 함수관계 속에서 인간의 운명을 묘파하면서 그 운명으로부터의 자유를 희구한 소설이라 하겠다.역사와 권력의 소용돌이는 인간에게 늘 억압의 굴레를 덮씌웠고,하여 굴레 속의 인간의 한의 존재였다.이럴 때 인간의 삶은 무엇이며,지금 나는 누구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작가는 「의미심장하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 입시제도 문제점과 개선방향/긴급좌담

    ◎대입/출제­관리 2원적구조에 허점/교육부 「지침」 개선·감독도 강화해야/「94년 대학별 자율고사」도 보완 필요/“대학 못가면 낙오자” 그릇된 사회통념 시정 제도적으로 뒷받침을 사상 처음 발생한 입시문제지 도난사건은 후기대에 원서를 낸 27만 수험생은 물론 학부모·교사·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이번 사건으로 수험생들은 심적중압감을 더안게됐고 대학들은 학사일정에 큰 차질을 빚게됐다.대학관계자·일선교사·수험생을 둔 학부모의 좌담을 통해 사고원인과 개선책이 무엇인지 진단해 본다. □참석자 박상섭(43·서울대교수) 김경남(43·청담고교사) 최순옥(43.학부모) ▲박상섭교수=열 사람이 도둑하나를 잡기 힘들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이번 사건은 너무 충격적이고 예외적인 일이라 뭐라 형언하기 힘듭니다.이번 사건은 사전에 예방이 가능한 「범죄」측면보다는 공통적으로 지켜야할 「최소한」인 사회규범을 깬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다시말해 이번 사건은 사회규범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경찰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경쟁체계·현행 입시제도의 문제점 등 다양한 사회구조병폐에서 나온 구체적인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김경남교사=상상을 초월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일로 국가의 공신력 훼손이나 재정의 손실,대학의 학사일정조정등 큰 문제는 차치하고 당사자인 수험생과 학부모·교사,나아가 온 국민이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당장 시험을 봐야 하는 당사자들은 시험일자가 갑자기 연기되자 심한 허탈감은 물론 어떻게 학습을 조절해갈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최순옥씨=그렇지 않아도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너나없이 입시때문에 병들고 찌들어 있는데 시험문제까지 도난당하는 일이 생기다니 우리의 교육현실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고3인 딸 아이는 『대학별로 시험을 치르면 이같은 엄청난 파문은 없을 것 아니냐』면서 현행 입시제도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사회병리현상 노출 ▲박교수=이번 문제지 도난사건은 현 입시제도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가운데 단지 하나가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국가가 문제를 출제하고 대학은 관리만 하는 과정에서 입시제도의 허점이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무조건 대학에 가야 한다는 사회적으로 널리 퍼진 고정관념이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을 야기시킨 것입니다.이러한 기성세대의 편향된 관념은 하루빨리 고쳐져야 하며 대학입학이 바로 신분상승을 가져온다는 우리사회에 널리 퍼진 통념 또한 타파되어야 합니다.지금 사회는 대학입시에 떨어지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여겨지는게 현실입니다.직업의 서열이 매겨져 있고 직업의 선택 또한 판·검사,의사 등을 지나치게 선호하는 등 하나의 잘못된 「가치」에만 몰려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사회는 이 「가치」를 분산시키는 쪽으로 다양하게 발전해야 합니다. ▲김교사=이번 사건은 사회윤리가 무너진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사회전체의 병리현상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지요. ▲최씨=학부모로서 가장 불만인 것은 전인교육을 한다고 하면서 일선학교에서는 뭐든지 점수화하고 있다는얘기죠.20여개가 넘는 교과목가운데 절반은 입시과목이 아닌데도 「내신성적」이라는 울타리에서 학생들이 시달리고 있다는 모순이 빚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김교사=일선에서 수험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학생들간에 성적격차가 워낙 커 진학지도를 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도 현실적인 격차 또는 사회적분위기 때문에 일부 학생들에 대해서는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사회에 나가 충분히 대우를 받는 풍토가 아쉽습니다.현재 우리 사회에는 비진학 청소년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줄 만한 아무런 「가이드라인」이 없습니다. 따라서 재발방지를 위해선 입시제도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이 「정도」라는 인식을 하루빨리 고쳐야 할것 같습니다. ○전인교육은 말로만 ▲박교수=이번 사건의 파장이 심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한 대학에서 빚어진 시험지 도난 사건이 왜 그토록 다른 대학에까지 영향을 미쳐야만 되는 것인가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보면그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다시말해 현행 입시제도에 문제는 없었느냐 이거죠.전인교육을 한다면서 학생들을 점수화해 층을 구분짓는다든가,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모두 다른데도 그 재능을 살려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육제도를 개선한다면서 본고사냐 아니냐는 등 너무 미봉적이고 좁게만 보고 있습니다.그 보다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인간으로서 존엄한 가치를 갖고 삶을 영위하도록 주력해야 하지 않을까요.「대학진학자=인정받은 자」라는 사회적 편견을 얼마나 빨리 벗어날 수 있는 지가 중요합니다. ▲김교사=이번 사건은 입시관리의 허점과 그릇된 사회경쟁체계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박교수=그렇습니다.입시정책을 짜내는 사람들도 국민들에게 문제의 본질을 보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해를 구해야 합니다.입시문제를 놓고 보았을때 해묵고 잘못된 관행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보신」에만 급급한다든가 반성은 없이 행정적인 절차만 개선하는 일은 없어야겠지요.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해 과감한 개선이 필요하다고봅니다. 또 이미 제도적으로 어떤 장치가 마련됐으면 이에대한 행정당국의 철저한 감독이 뒤따라야 합니다.이번 사건의 경우 정해진 입시문제관리수칙만 제대로 지켰으면 이처럼 파장이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최씨=오늘의 주제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94학년도부터 본고사의 도입등 새 입시제도가 시행된다고 합니다.대학의 자율권이 커지니만큼 부정의 소지도 커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따라서 학생들의 능력과 재능이 다양한만큼 사회 각 분야에서 이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사회풍토가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들리는 얘기로는 현재 고등학교에서는 대학진학을 포기했다는 뜻의 「대포그룹」까지 만들어져 있다는데 이런 학생들이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커갈지 이문제도 신중히 짚고넘어가야 되겠지요.사제지간과 친구관계는 물론 수험생과 학부모사이까지 입시때문에 멀어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부정소지는 더 커져 ▲박교수=지금까지는 대부분 입시제도의 문제점이나 사회적 병폐만을 짚어나간것 같습니다.보다구체적으로 이번 도난사건은 입시관리를 철저히 해야할 교육부와 대학당국이 관리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음으로써 벌어진 일이라는게 교육계의 일반적인 지적인 것 같습니다. 더욱이 출제 및 인쇄·수송·보관책임이 교육부와 대학당국으로 2원화되어있다는 것도 이번 사건을 자초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김교사=확실히는 모르지만 교육부는 문제지의 수송에서 시험이 끝날 때까지 공무원을 각 대학에 파견,문제지 관리를 맡도록 되어 있어 결국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됩니다.그러나 이 문제는 오는 94학년도에 대학별로 본고사제도가 도입되면 해결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중요한 것은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더라도 당국의 지속적인 감독이 없으면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어렵다고 봅니다. ▲박교수=입시문제의 관리가 이원화돼 있다면 책임소재를 분명히 규정하는 등 개선지침이 나와야 되겠습니다. 또 경비문제는 은행의 현금수송 때와 같이 대학 이웃 경찰관을 공식으로 지정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후기대 입시를 앞둔 수험생들이 「입시연기」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노력하는 일입니다.남은 기간동안 학습리듬을 잘 조절해 입시를 마무리짓도록 당부하고 싶습니다. ▲최씨=교육당국이 문제지관리에 대한 지침을 대학당국에 형식적으로 내렸거나 대학들도 이를 소홀히 여겨 관행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이번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요. 직접적인 요인은 대학당국이 경비를 소홀히 해 일어났겠지만 입시관리가 국가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부는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합니다. 특히 전기대 입시 이후 한달여동안 수험준비를 했던 수험생들이 합격전략마저 재조정해야 하니 정말이지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학생혼란 안타까워 ▲박교수=모든 사회가 「경쟁」이거나 「경쟁적」이라는 길로 들어서는 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사실 교육의 문제는 학교 교육보다 일반사회에 더 많아 교육외적인 데서 풀어나가야 하지 않을까요.대학이라는 좁은 문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들이 입시문제지를 훔치게 놓아두기보다는 이들을 위해 사회가 무엇을 하게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회지도층이나 언론에서는 이들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이들이 대학을 들어가지 않고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많다는 조명도 뒤따라야 하겠지요. 구체적으로는 학습현장에서 이들의 특성과 자질을 파악,이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사회에서 이들을 무관심으로 일관할 때 이같은 유형의 「사건」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 김향숙 「떠나가는 노래」(이작가 이작품)

    ◎운명론 탈피 「각성된 여성상」 탐구/희생·순종의 고정관념 타파할 「자매애」 강조/남성중심의 체제·사회구조 천착못해 아쉬움 소설가 김향숙씨(41)가 장편소설 「떠나가는 노래」를 현대문학사에서 펴냈다.「한 여자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이 작품은 빈민가정 출신의 한 여인이 희생과 여성다움이라는 허위의식의 굴레를 벗고 진정한 여성으로 눈떠가는 과정을 그린 여권주의 계열의 소설이다. 『인류의 마지막 식민지라는 빈곤층 여성의 노동과 가사의 이중부담적인 삶을 통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여성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이 얼마나 굳건한가를 드러내보이고 싶었습니다』 「떠나가는 노래」는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본성이 왜곡되고 내면의 노래 즉 소망으로부터 멀어져야 하는 여자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주로 혜옥이란 여주인공의 14세에서 40세에 이르는 반생이 다뤄지고 있는데 작가는 혜옥의 국민학생시절부터 공장의 시다와 미싱사 생활,그리고 연애와 결혼생활에 이르기까지 남성 중심주의에 의해 겪는 극심한 고통과 정신적갈등,방황 등을 묘사하고 있다. 혜옥은 도시빈민가정의 맏딸로서 내성적인 성격이다.아버지는 허리를 다쳐서 일을 못하고 대신 어머니가 생계를 꾸려나가는데 부모사이의 불화가 잦다.혜옥은 유일한 남동생 혜구의 대학진학을 위해 중학 진학도 못하고 일찌감치 공장으로 내몰리지만 좋은 누이로 남기 위해 묵묵히 자신을 희생한다.공장 시다 시절 승태라는 남자노동자를 만나 자기본위적이고 이기적인 남성의 사랑을 체험하지만 세 번의 유산 경험 끝에 그와 결혼하고 만다. 결혼하고서도 그녀는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남편이 가져다 주는 돈으로 생계유지가 어렵기도 하지만 여성도 일을 해야 한다는 자각때문이다.그러나 직장여성으로서의 그녀의 부담은 줄어들지 않는다.그녀는 직장노동과 가사노동에다 며느리의 역할까지 고스란히 떠맡을 수 밖에 없다. 한편 누이 덕으로 대학에 진학한 남동생 혜구는 운좋게 부잣집 딸과 결혼함으로써 중산층으로의 신분상승을 이룬다.하지만 누이의 은덕을 갚는 데는 인색하다.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궁색했던 과거의 기억으로부터의 탈출이다.셋방을 전전하는 누이 혜옥의 어려움은 아랑곳없이.혜옥의 어려움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혜옥부부의 불화에 불만을 갖는 맏딸이 가출하고,내리 세 딸만을 낳은 혜옥을 참지 못한 남편이 시앗을 보아 아들을 들였기 때문이다. 여인 3대의 비극으로까지 비쳐지는 이 작품은 그 비극이 수대에까지 계속 이어지리라 암시한다.그 비극의 원흉은 현실에 탄탄히 뿌리박아 변할 줄 모르는 잘못된 고정관념들이다.남녀 성별 분업,여성다움과 모성의 신화,그로부터 파생된 여성에 대한 온갖 편견과 허위의식은 그 안에 포착된 대부분의 사람들을 흡사 자동인형처럼 조종한다.그들은 비단 남자로만 국한되지 않는다.고정관념은 성별과 계급을 초월한다.작품에 등장하는 어머니 시어머니 명애언니 역시 잘못된 고정관념의 희생자들로 비극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 소설은 또한 혜옥이 만나는 다양한 층위의 인물들을 통해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다.여동생 종옥,국민학교 시절 친구 송영자 등은 문제의식의 소유자이긴 하지만 잘못된 대응으로 몰락하는 인물군이다.작가가 모범으로 제시하는 인물들은 이혼하고 새 삶을 출발하는 영분언니,여성돕기에 헌신하는 은경,드넓은 시각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하는 미순 등이다. 이들에 의해 남겨지는 전언은 불평등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무기력한 운명론에서 벗어나 여성 자신의 성찰과 노력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녀 불평등문제가 제도개선만으로 해결되긴 어렵지요.개개인 각자의 자기 삶에 대한 성찰이 병행되어야지요』 그러나 삶의 순간순간 여성들의 세세한 정서까지 드러내며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자매애(Sisterhood)라고 작가는 말한다.함께 핍박받는 여성들끼리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야말로 폭력적인 남성적 세계를 정화하는 시발점이 된다는 것.그러나 이 작품은 남녀 불평등의 모든 원인을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돌리면서도 고정관념을 생성 유포시키는 체제나 사회구조에 대한 천착에 이르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가족에 대한 문제제기를 거듭 하면서도 감정적 차원에 머무르는 점도 그런 측면이다. 7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으로 등단,90년 중편 「안개의 덫」으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김씨는 현재 두 아이의 어머니이며 평범하지만 깨어있는 주부이기도 하다.
  • 내전·기아로 난민 1천8백만 표류(대변환 지구촌 ’91:4)

    「91지구촌」이 겪은 가장 절박한 문제중 하나가 바로 난민 문제이다.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굶주림과 헐벗음에 허덕이고 있는 1천8백만여명의 난민이 거리를 헤매고 있다. 난민문제는 매년 계속되어온 것이지만 91년에는 전쟁과 민족간 갈등으로 어느해 보다 심각한 양상을 빚어냈다.연초에 터진 걸프전으로 수백만 쿠르드족이 눈덮인 산속을 맨발로 헤매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으며 3월에는 지난해말부터 조짐을 보이던 알바니아에서 대탈출사태가 발생,이탈리아등 이웃국가들의 골치를 썩혔다.이와함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조국을 등지고 서구를 찾은 수백만의 동구난민들로 인해 서구각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많은 아프리카국들에서도 내전과 기아로부터 탈출하려는 대이동이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난민들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도움은 제자리에서 한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오히려 뒷걸음질치는 경우도 있다.지난달 홍콩이 난민촌에 수용된 베트남난민들을 강제송환하기 시작한 것이나 미국이 쿠데타를 피해 탈출해온 아이티난민들을 강제송환키로 결정한 것이 바로 그같은 예다. 한편 캄보디아의 평화협정 체결로 수백만 캄보디아난민들이 다시 조국을 찾을 가능성이 비치기 시작했다.난민은 크게 내전이나 쿠데타등 정치불안을 피하려는 경우와 기아에서 벗어나려는 경제난민의 두 경우로 나눌수 있는데 난민발생의 근본원인이 해소되지 않는한 재정적 지원만으론 난민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캄보디아난민의 재정착 성패여부는 앞으로 난민문제 해결에 시금석이 될 수 있을것 같다.
  • “소외여성의 어머니” 환갑 잊은 봉사 23년/이런 공무원

    ◎남 돕기를 천직으로 박성지씨(서울도봉구청 가정복지과)/67년 남편과 사별후 “개안”… 아동구호사업에 첫발/40세때 대학에… 전문지식 갖추고 윤락녀등 돌봐/새달에 정년퇴임… “불우시설 찾아 여생도 이웃과 함께” 진심으로 몸과 마음을 다바쳐 남을 돕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렇듯 그녀는 『천직으로 생각하고 하는일이 떠들썩하게 알려지는게 싫다』고 기자와 만나기를 극구 사양했다.『봉급의 절반만큼도 일을 하지 못하는 데다 단지 주어진 일을 할뿐』이라며 『말할것이 없다』는 것이었다.그러나 『남을 돕는 선행이 알려져 더 많은 사람들이 남을 도울수 있게 된다면 그 또한 좋은일이 아니냐』고 그녀의 동료를 내세워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썩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그것도 『신문을 읽는 사람들 눈에 잘띄지 않게 손바닥보다 작게 기사를 낸다』는 조건을 걸고. 스스로가 버리고,가정이 버리고,사회가 버린 여성을 거두어 어머니나 언니,또는 친구로서 반평생을 살아온 서울 도봉구청 가정복지과장 박성지씨. 이제는 어엿한 할머니인 예순한살 나이에도 온 얼굴에 웬만한 젊은이 못지않은 밝고 따뜻한 웃음이 가득 넘쳤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지난 30년 한성사범출신인 아버지와 숙명여고를 나온 어머니사이의 6남매 가운데 넷째딸로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비교적 어렵지 않게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 독실한 기독교집안에서 자란 탓인지 남을 돕는 일에는 어릴적부터 적극적 이었다. 그러나 48년 군산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3년동안 국민학교 교사를 지낸뒤 바로 결혼,딸 넷을 둔 평범한 주부로만 17년 남짓을 보냈다. 그러던 끝에 67년 가을 어느날 남편이 마흔살도 채 채우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숨지고 부터 어쩔수 없이 밥벌이를 위해 사회에 뛰어 들어야 한 것이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 됐다. 『딸 넷을 먹여 살리고 교육하기 위해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이왕이면 남을 도울수 있는 일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친지의 소개로 들어간 곳이 부산에 있는 캐나다 아동구호재단이었다. 이 재단은 우리나라 극빈가정의 아이들과 캐나다 가정을 연결해 돕도록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68년부터 3년동안 헌신적으로 일하면서 사회사업을 몸으로 싸워 나갔다. 『돈이 있어야 가능한 자선사업과는 달리 돈없는 사람도 할수 있는게 사회사업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남을 돕겠다는 봉사정신과 사회자원을 연결시키고 여기에 전문적인 지식까지 보태면 얼마든지 버림받은 이웃을 도울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문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 그녀는 강남사회복지대학을 수료하고 원주대학 사회사업학과를 다녔다. 살림은 꾸려나가기가 벅찼지만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생각에 힘든줄도 몰랐다. 마흔이 다 된 나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를 다녀 대학을 졸업했다. ○“제2 인생 힘든줄 몰라 서울시청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지난 71년. 비록 임시직이지만 부녀청소년과의 상담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주로 윤락여성과 미혼모 걸인여성을 상대하며 이들에게 제 갈길을 찾아주었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은 일이었다. 73년 10월 어느날이었다.서울역에서 연락이 오기를 『무작정 상경한 소녀가 있으니 데리고 가라』는 것이었다. 『아이를 데려와 사연을 들어보니 공부하고 싶어서 가출해 서울에 올라왔다는 것이었어요. 눈망울이 초롱초롱하고 성실하게 보여 아예 내가 맡아 가르치기로 하고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가출한 아이를 데리고 있는것이 꺼림직해 집에 가서 모든것을 털어놓고 말씀드린뒤 다시 서울로 오라고 했다. 시골집에 내려간 소녀는 이틀뒤 밝은 모습으로 나타나 빈농인 부모들이 고맙다고 선물로 보낸 마늘·보리·팥 한움큼씩을 내놓았다. 당시 15살이던 소녀는 그뒤 4년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고등공민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학교를 마치자 충남 청원의 단위농협에 취직,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해 두아이의 어머니로서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소녀를 보내고 4년쯤뒤 30대중반의 여자가 12살된 소녀와 갓난아기를 데리고 상담소 문을 두드렸다. 『가출한 남편을 찾아 방방곡곡을 헤맸으나 남편을 찾기는 커녕 결핵에 걸려 더이상 아이들을 키울수가 없게 됐다』고 눈물로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 12세 소녀가 이젠 주부 여인은 부녀보호지도소로 갓난아기를 아동상담소로 보내고 12살된 소녀보영이는 여인의 부탁대로 집으로 데리고 왔다. 『보영이는 밝고 구김없이 딸들과 어울리며 잘 자랐지만 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았어요.12살이었지만 한글조차 모를 정도였습니다』 사춘기가 되면서 보영이는 이유없이 반항하며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친딸 이상으로 보살펴주는 정성에 마침내 마음을 잡고 미용기술을 배워나갔다. 그리고 기술학원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지난해 출가한 보영이에게 박봉을 털어 가재도구등 살림살이를 마련해주었다. 이처럼 그녀가 정성을 갖고 보살펴 어엿하고 건강한 여성으로 다시 나게 한 사람은 1백명이 넘는다. 그러나 『20년동안 만난 사람의 1%에도 못미쳐 항상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하는 부녀자들이 많이 있지만 무관심 또는 도와줄 손길의 부족으로 지푸라기조차 잡지못하고 수렁에 빠지곤 한다』고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불우노인 결연 사업도 지난 88년 서울시내 각구청에가정복지과가 새로 생기면서 그녀는 시청에서 도봉구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녀자와 상담만하다 직접 가정복지에 대한 행정을 펴게 된 것이다. 『도봉구에 저소득층이 밀집해 있어 그만큼 할일이 많았다』는 그녀는 지난 4년동안 「죽기 아니면 살기」로 일을 했다. 노인복지에 중점을 두고 노인정을 짓거나 지원하는데 앞장섰고 2백명 남짓의 불우노인을 일반가정과 결연시켜 주었다. 딸들도 모두 출가해 20평남짓 되는 집이 텅빈것같아 지난봄에는 의지할데 없는 노인 2명을 데려와 함께 살고 있다. 다음달 31일 정년퇴직을 앞두고 요즘은 자원봉사할 불우시설을 물색하느라 바쁘다. 『정말 나를 필요로 하고 남은 인생을 모두 바칠수 있는 곳에서 봉사하려고 합니다.벌써부터 여기저기서 도와달라고 하고 있어 「혜택받은 노인」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녀는 참으로 남을 돕는 일의 기쁨을 아는 헌신적인 공무원이었다.
  • 치료 한계 메우는 「제3의학의 길」 넓히다(이사람)

    ◎장애인 재활부축 40년/오정희박사/의료인·가족·사회동참,「3박자 치료」 필요/“응달의학” 간주,전문과 설치 인색엔 “씁쓸”/“마비된 손으로 능숙한 타이핑”… 「재활의 힘」 실감/장애인 4백만에 전문가는 150명뿐… 지원책 절실 귀로 들을 수도,눈으로 볼 수도,말을 할 수도 없는 3중고를 겪은 헬런 켈러.그에게는 장애의 고통을 극복케 한 위대한 스승 설리번선생이 있었다.설리번선생은 고집쟁이요,야생마같은 헬런 켈러를 가르쳐 장애를 극복한 세기적 인물로 키웠다. ◎“한국의 설리번” 칭호 누구의 잘못인지도 모른채 1천5백명당 7명꼴로 뇌성마비아가 태어난다.어제까지 건강하던 사람들이 뜻밖의 사고로 하루아침에 장애자가 된다.최근 한 통계를 보면 90년 교통사고가 25만여건 발생해 사망1만2천여명에 32만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그중10만여명이 영구장애인이 된 것으로 나타난다. 「장애자에게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이 말은 어설픈 온정주의 보다는 장애를 인정하고 살아갈 길을 열어 주라는 의미이다.설리번선생처럼 장애자들을 위해 헌신해온 여의사가 있다. 이땅에서 재활의학을 시작,40여년간 지체장애 등 기능 잃은 이들에게 재활의 길을 열어준 오정희박사(66). 지난 9월 고대의대를 정년 퇴임한 그는 『정년은 오래 달려온 자동차의 타이어를 새로 바꾸어 끼우는 시간』이라며 훨씬 자유로워진 시간을 이용,뇌성마비 전국순회진료,평택 동방장애자재활원·서울시뇌성마비복지회관등을 방문,쉴 짬 없이 장애자 진료를 하고 있다. ◎물리치료사 육성도 『치료의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의료인·가족·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제3의 의학으로 재활의학은 중요합니다』「재활의학」이라는 용어를 제정,대학에 재활의학과를 처음 설립했을 뿐 아니라 물리치료사를 교육·양성했으며 대학원에서 전문인력을 기르기 시작한 그는 의사로서 뿐 아니라 모성으로써 이땅의 많은 장애인들을 감싸왔다. 『경성사범을 졸업하고 1년간 국민학교 교사생활을 하다 해방을 맞았습니다.일제의 선생노릇이 부끄러워 다시는 강단에 서지 않겠다고 다짐했을때 아버지가 의대 시험을 권했습니다』 전북 익산에서 가난한 농가의 딸로 태어난 그는 일찍이 개화한 부모의 의지로 의사가 됐고 6·25동란중 인턴생활을 한 미8군 제3야전병원에서 세계재활의학의 시조 러스크박사를 만났다. ◎러스크박사에 감명 러스크박사는 「손상된 부분의 치료 뿐 아니라 마음·신체·직업적 치료를 동시에 하는 전인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독특한 재활철학을 가진 휴머니티 넘치는 인물.그는 러스크박사의 인품과 학문하는 태도에 큰 감동을 받았고 그의 추천으로 뉴욕대학에서 재활의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그리고 전쟁의 상처로 얼룩진 52년부터 상이군인들의 재활을 돕는 부산정양원(후에 국립재활원으로 개편됨)에서 의사로 일했다. 『정양원 원장 목사님은 남자의사들이 몇명씩이나 도망치듯 그만 두는 것을 보고 여의사가 적격이라며 부탁했습니다』 정양원은 파편이 머리속에 박혀 있어 간질을 일으키는 사람,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복어알을 먹는 사람등 세상을 비관하는 사람들로 차 있었다.머리가 아프다며 그럴듯한 이유를 꾸며대 마이신을 달라고 해서 얻어갖고 나가 술을 사 마시고 돌아오는등 감당하기 벅찬 일들이 수 없이 많았다.그러나 17년간 의무과장으로 많은 이들을 돌보아 사회로 복귀케 했다.69년 그의 모교인 우석의대 정형외과에서 교수로 초청했다.이때 대학으로 가 재활의학과를 만들어 연구하고 진료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에 23년간이나 매달렸다. 『스무살 청년이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흙더미에 깔려 목뼈가 부러지고 사지가 마비됐습니다.청년의 어머니는 그때만해도 아주 귀한 감귤을 가지째 잘라갖고 와 아들을 살려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한번 다친 척수는 회복되기 어렵다.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상태로 불편 없이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6개월동안 치료를 받고 간신히 퇴원해 연락이 두절됐던 그 청년을 제주도 서귀포 뇌성마비순회 진료때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았을 때 고마워 눈물을 흘렸다. 교통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서 지내던 여섯살짜리 소년을 데려다가 호흡훈련과 발성법을 가르치고 휴지도 불고 풍선도 불게해 처음으로 「엄마」란 말을 하게 했을 때 함께 치료한 모든이가 탄성을 올렸다.또한 경련성 우측 반신마비로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아이가 단족 보조기를 혼자 신고 걸을 수 있게 됐을때 재활의학을 한 감격을 안게됐다. 『8년전 전철안을 기어다니며 구걸하던 청년을 다리에 의족을 끼워 미군부대의 사환으로 취직시켰습니다.그러나 미군의 귀국으로 일을 잃고 자살한 경우도 있어 가슴을 치게 했습니다』 장애자에게 그가 하는 일은 삶의 의욕을 주고 불편 없이 생활하도록 돕는 것.사지 마비된 이들이 손을 써서 혼자 밥을 먹게하고 손가락에 깍지를 만들어 조각도 하고 타이프를 치게 만들어준다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이들이 팔굽에 힘을 줘 궁둥이를 들어 살이 썩지 않게 운동하고 감각이 없어도 소변과 대변을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등이다.그의 재활의학치료를 받고 나간 이들이 수천명을 넘는다. ◎전체의 9%가 장애 『전 인구의 약9%인 4백만명정도가 장애인입니다.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재활의학 전문가는 1백50명정도입니다.「예방의학」「치료의학」과 함께 중요한 「재활의학」을 경시해 재활의학과를 설치하지 않은 학교도 있습니다』 열악한 사회환경속에서 장애인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보는 그는 장애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는 사회를 위해 더 많은 전문인들이 이 분야로 진출하기를 희망한다.
  • “외출가족 걱정” 온국민 불안

    ◎수법도 대담… 한낮 대로서 버젓이 범행/경찰력엔 한계… 「이웃 함께 지키기」 절실/급증하는 유괴·납치실태와 문제점 수원 파장국민학생 유괴사건을 비롯,부녀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유괴·납치등 반사회적·반윤리적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국민들을 큰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국민들은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한탄하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사회가 범죄소굴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위기의식마저 느끼고 있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이같은 사건들은 전국에서 시도때도 없이 발생하고 있는데 비해 경찰수사력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다 시민들의 신고정신 또한 여전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범행대상의 경우도 부녀자 어린이는 물론 청소년 성인남자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있으며 범행시간·장소도 한낮의 백화점이나 대로변등에서 자주 발생,온국민이 언제 어디서라도 범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이 범인들은 살인을 예사로 저지르는 것은 물론 사창가·외딴섬에 팔아넘기거나,멀쩡한 몸을 불구로 만들어 「앵벌이」를 시키는 등 한사람의 삶을 완전히 파멸시킬 정도로 수법이 잔인해졌다. 지난 1월29일 유괴돼 44일만에 숨진채 발견된 「이형호군 사건」이나 지난해 발생한 가짜여대생의 「곽재은양 유괴사건」등에서 보듯 유괴사건 범인들은 6∼7세의 어린 목숨을 잔혹하게 유린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3월29일에는 여중생을 납치,약물을 먹여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한 뒤 외딴 섬에 팔아넘긴 일당 3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밖에 지난달말엔 서울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쇼핑나온 40대 주부를 납치,21시간동안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면서 가족에게 1억5천만원을 요구한 사건도 발생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올들어 9월까지 발생한 약취·유인사건은 모두 2백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건,5.2%가 늘어났다. 이처럼 범죄는 갈수록 흉포화하고 발생횟수도 늘어나고 있는데 비해 경찰의 수사력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어 이제 범죄 예방및 해결을 경찰에게만 맡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국민 모두가 자신을 포함,가족 친지 누구나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범죄 발생여부를 항상 감시하는 것은 물론 범죄발생시에는 힘을 합쳐 범인검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범죄와의 전쟁」을 더이상 경찰에게만 맡기지 말고 국민 누구나가 전장의 최일선에 서 있다는 각오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시점인 것이다. ◎“범행충동 사전차단에 힘써야”/납치방지책 전문가 조언/화려한 옷차림 삼가고 등하교 동행/순찰등 강화·수사장비 보강도 시급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나오다 납치된 40대주부가 21시간만에 극적으로 구출된데 이어 또다시 수원에서 어린이 유괴사건이 발생하는등 유괴·납치사건이 꼬리를 물고있다. 이같은 범죄는 경제성장과 민주화가 진전됨에 따른 사회에 대한 저항성(저항성)범행이라고 할수 있다. 사회지도층의 비리가 끊이지 않고 투기심리가 만연해 있는데 따른 한탕주의 범죄인 셈이다. 범인들은 어린이나 부녀자를 유괴·납치한 뒤에는 어김없이가족들에게 금품을 요구하다 실패하면 미련없이 살해하고도 죄의식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나아가 범인들은 차곡차곡 저축하기 보다는 못사는 자신의 처지를 불특정다수의 「잘 사는 사람」탓으로 돌리고 있는등 잘못된 「내몫찾기」로 정당시하기까지 하는 뻔뻔스러움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유괴·납치범이 결손·빈곤가정출신임을 감안할 때 가정에서 따뜻한 애정을 갖고 자녀교육에 모든 정성을 쏟아야 할 것이며 지나치게 사치스런 옷차림은 하지않도록 해 가정에서부터 유괴사건을 방지하려는 노력을 보여야할 것이다. 특히 어린 자녀들에게는 잘 모르는 사람이 과자등을 사주려하면 쉽게 응하지 않도록 가르치고 국민학생들의 등하교길엔 여러명이 같이 다니도록 해야할 것이다.경찰 역시 미제사건의 범인을 반드시 붙잡아 완전범죄가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며 순찰·검문검색을 더욱 강화해 허황된 범죄충동을 없애도록 해야할 것이다. 이와함께 유전자감식기계등 최신장비의 보강과 미국등과 같이 유괴전담수사팀의 인력보강등으로 과학수사및 범죄수사의 공조체제를 더욱 다져나가야 할 것이다.최중락씨 ◎시민의 시각/“「인간 상품화」 절대 없어야” 유괴도 인신매매도 모두가 인간을 상품화하려는 잘못된 사회적 구조속에서 일어나는 일로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지난해10월 이래 17살된 딸의 생사조차 모르면서 생활하는 이 쓰라린 심정이나 유괴된 득화군(7)의 부모심정이나 한가지이다. 경찰은 민생치안에 힘써 이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고 국민들도 「내가 당한일」처럼 가슴아파하며 경찰과 함께 범인을 잡는데 협조했으면 한다.홍재정씨 ◎시민의 시각/“부모품에 속히 돌려주길”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어린이를 미끼로 금품을 요구하는 짓은 도저히 용서할수 없는 일이다. 애를 태우며 하루하루를 기다리는 부모들을 생각하며 부모의 품으로 아이를 돌려보내기 바란다. 메마른 사회에서 이같은 범죄가 일어나는만큼 이제 정을 주고받을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모두 이웃부터 사랑하고 아끼는 운동을 벌였으면 한다.서현숙씨
  • “7순 등단” 시심 활짝(이사람)

    ◎“황혼에 반추하는 인생·문학” 구창본할머니/“나 알지못한 어느 길… 말 한마디 없이 떠나고…”/“6·25상처” 3남매 홀로 키운 역정/한의 삶 진솔한 시구로 엮어 승화 칠순의 할머니가 문예지의 신인상을 받고 시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월간 「문학공간」 7월호에 추천신인상을 받고 뒤늦게 시심을 불태우고 있는 구창본할머니(70·서울 영등포구 신길5동 405의 11). 『늘그막에 큰 기쁨입니다. 시인이 되고자 했던건 아니었어요. 그저 열심히 살려고 했을 뿐이지요』 지난 4월 문학공간사에 시 10편을 투고했던 것이 이같은 행운을 불러올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는 구씨는 아직도 문단등단 사실에 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다. 몇십년 전부터 대학노트 가득 시작메모를 써온 그가 본격적인 시 창작에 뜻을 두기는 올해초부터. 실제 나이보다 호적 나이가 적은 탓에 지난해 8월 37년간의 국민학교 교사직을 정년퇴임하고 올해 1월 동아문화센터 「시 창작교실」에 수강생으로 등록하면서였다. 그러나 구씨를 정작 시인이 되게 만든것은 알량한 시 창작기법의 교습보단 어렵고 힘들었던 그의 삶 자체였다. 6·25때 남편을 잃은 그는 홀로 3남매를 키우며 한 많은 한국 여인의 삶을 살아왔다. 국민학교 교사의 박봉으로 간신히 삶을 꾸려왔던 그는 정말 삶이 어려울땐 시를 외웠다고 회고한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말라/서러운 날을 참고 견디면/멀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모든것은 삽시간에 지나간다/그리고 지나간것은 모두 그리워진다』 그는 실제로 푸슈킨의 시 「삶」을 기도문처럼 막힘없이 암송해 보였다. 구씨의 삶은 푸슈킨의 시를 외우며 스스로 달래야 할만큼 어려운 것이었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스물두살때 농사를 짓는 건실한 부여 청년과 결혼,아들 딸 낳고 행복한 생활을 하던 그는 셋째 아이를 낳으러 친정에 가 있던 사이 6·25를 맞았다. 처가에 머물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집을 떠났다는 남편을 전쟁의 아비규환속에서 끝내 다시 만나지 못하면서부터 그의 어려운 삶은 시작됐다. 가난속에서도두 아들은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켰지만 6·25때 영양실조에 걸린 이후 정신분열증을 앓아 25차례의 정신병원 입원 경력을 갖게 된 딸은 그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그의 맺힌 한은 어느해 음력 섣달 그믐에 썼다는 「설눈­당신에게」란 제목의 시에 남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원망으로 나타나 있다. 『나 알지 못한 어느 길/말 한마디 없이 떠나고/돌아온다 기약없는/당신 미워 미워 미워』 구씨가 지난해 정년퇴직한 곳은 서울 강서구 양화국민학교이지만 40년 가까운 국민학교 교사생활중 서울학교에 있었던 기간은 불과 2년 뿐이었다. 『교장이나 교감선생님이 되면 일찍 그만 둘 수도 있기 때문에』 평교사를 고집하며 강원도와 경기도 지역의 학교들을 전전했으며 때론 출퇴근 시간이 7시간씩 되는 학교에 부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사직이 단순한 생계수단만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교실문을 들어서면/마음 누르는/근심 걱정 사라지고//초롱한 눈망울/나를 지켜 보고/어찌하다가 눈과 눈이/마주치지 못하면 아뿔싸/섭섭함 금치 못해/금방 시무룩한꼬마천사//…』(「교사의 노래­교실은 나의 천국」에서) 「문학공간」의 신인상 심사를 맡았던 김규동·신동집시인은 그의 시가 기교보다는 삶의 진실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했다. 그 자신은 『내 생활,나의 역사를 담아 본것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거짓없이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시가 되고 타인의 공감을 얻을수 있다는 점은 하나의 경이다. 그것은 고통스런 삶을 자살로 끝내고 싶었던 유혹을 물리치고 오늘에 이른 그 정신의 치열함과 진솔함에서 우러 나오는듯 싶다. 철도공무원인 큰 아들 김대경씨(45),개인사업을 하는 둘째 아들 의경씨(41)와 3명의 손자들,그리고 정신이 맑을때는 레이스를 뜨는 딸 효경씨(43)와 함께 이제는 단란한 가정의 할머니로 편안한 노후를 보낼수도 있지만 구씨의 삶은 여전히 치열하다. 『윤동주의 「서시」나 푸슈킨의 「삶」처럼 영원토록 남을 시를 쓰고 싶다』는 구할머니는 최근 「화염병」「마약」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쓰고 있다.
  • 자신감을 잃어가는 사회/김대환 이대교수·사회학(서울시론)

    ◎기백·실천력 있는 젊은이 기르자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사회도 분명 하나의 생명체이다. 그러기에 사회도 나름으로 숨쉬고 맥박치며 또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러기에 사회는 때에 따라 의기충천하면서 고동치기도 하고 생기소침하여 침체쇄약하기도 한다. 사람이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건전해야 하는 것처럼 사회 또한 건강하고 건전해야 한다. 사회의 생기와 맥박은 곧 역사의 흥망성쇠와 직결된다. ‘요즈음 우리사회는 어떻다고 진단해야 할까. 갖가지 염려스러운 징후들이 많지만,그중에서도 크게 우려됨은 정치·경제·사회,그리고 문화 등에서 그 기백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다. 사실 2년전 우리사회는 「하면된다」는 식의 거의 만용에 가까운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던 우리사회가 지금은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 6·29 민주화의 선언과 올림픽 이후 우리의 놀랍던 기개도 간데온데 없고 뭣인가 이룩해 보려는 의지도 박약해지고 있다. 왜 그렇게 되고 말았을까를 우리 모두 곰곰 생각해 봄직하다. 사회의 핵심은 인간이다. 사회란 결코 넓게 닦은 포장도로나 하늘에 치솟는 고층빌딩의 숲으로 대변되는 것은 아니며 넓디넓은 대로를 메우는 차량의 물결도 아니다. 물론 수출고나 국민평균소득,전자기기의 보유,그리고 문맹률 등이 그것들을 가름하는 지표가 될 순 있지만 그러나 그것들이 절대적인 잣대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더욱이 그것들이 인간의 인간다움을 축적하는 삶의 질을 저울질 하는데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오래전의 이야기지만 언론계의 「선비」격이었던 고 선우휘선생이 어느 세미나석상에서 한 말이있다. 「청년문화와 자녀교육」에 관한 발표자와 질의자의 열띤 토론이 오가고 있었다. 흔히 있는 것처럼 외국의 생경한 이론들도 우리의 실정과는 아랑곳 없이 아무런 취사선택없이 마구 늘어놓고 주고받는 이야기의 판이었다. 세미나 석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날도 으레 따라붙는 이야기는 자유니 평등이니 인권이니 하는 말이 현란할 정도로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러던차 선우선생의 말문을 열게하기 위한 사회자의 짖궂은 촉구에 마지못해 하는 이야기의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여러분 모두들 해박한 지식과 좋은 말씀은 다 했습니다. 그런데 자녀의 인격도 좋고 민주화도 좋고 개성의 존중도 다 훌륭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유방임과 과잉보호로만 자녀를 길러야만 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현실은 어렵고도 각박합니다. 우리는 지금 다른 나라들이 경험치 못한 남북분단의 현실속에 있고 경제적으로는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살아 남기 위하여 기술도 축적하고 해외시장도 개발하고 더 열심히 노동해야 합니다. 냉엄한 생활여건과 국제경쟁의 틀속에서 우리도 살아남기 위해선 강한 인간을 길러내야 합니다. 뭣이든 오냐 오냐 하면서 애들 하자는 대로 시키고 내버려두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때로는 야단도 치고 잘못하면 매질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저는 내자식이 밖에서 까닭없이 얻어맞고 비굴하게 울고 들어 올라치면 야단도 치고 때론 쥐어박기도 합니다. 그래야만 이 험한 세상을 참고 견디면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강한 애로 자랄 것 아닙니까? 아이들은 강하게 길러야 합니다』 대충 위와 같은 내용의이야기였다. 다소는 윤색이 됐지만 큰 줄거리에 있어서는 대동소이하다. 요즈음 젊은이들을 보면 용맹도 없고 기백도 부족한 듯하다. 끈기도 없고 부지런함도 없다. 왜 그럴까? 우리의 학교교육뿐 아니라 가정교육·사회교육이 한결 잘 못 되어 있는 듯하다. 물론 이 이야기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말이 앞서 말한 사람들의 말에 찬물을 끼얹는 말투고 함축된 의미였기 때문이다. 특히 자기자신은 하나도 「민주화」가 돼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언필칭 민주화를 구두선처럼 하는 사람에게는 가시돋친 말이 된듯도 했다. 과연 귀여운 자녀들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는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만 지나치게 익애만은 능사로 하는 부모들이 우리주변에는 적지 않은 것 같다. 잘먹이고 잘입히고 과잉보호나 방임만을 일삼는 부모들이 허다하다.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바르게 보고,선악을 판단하고,아름답게 그리고 성스럽게 살아 갈 수 있는 삶의 지혜와 능력을 길러주는 일이다. 몸과 마음이 튼튼한 것으로 자라날 수있는 생활환경과 부모의 인격적인 사랑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인격적인 사랑이 필요한 아이에게 물질적인 것으로만 충당하고 보상시키려드니 아이들의 마음은 공허해 질 수 밖에 없다. 때는 바야흐로 입시 시즌이다. 미국의 직장에서는 개인적인 이력서에 한번도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천신만고라 할까,와신상담이라 할까,한번쯤은 어려운 지경에서 자기 힘으로 벗어나고 이겨난 좀더 적극적이고 자신있고 실천력있는 젊은이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그같은 젊은이들이 갖는 정신적인 건전과 육체적인 건강,그것이 밑받침 될 때 우리사회는 생명을 약동시키게 될 것이다. 행동은 뒤따르지 않으면서 말만 번지르르 늘어놓는 젊은이도 많다. 그런가 하면 다수의 힘만 믿고 헛가락만 부리는 젊은이도 없지 않다. 얼핏 보기에는 그들이 매우 강한듯도 싶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를데없는 나약한 사람이기 일쑤이다. 얼핏 보기에는 범죄와 비행으로 얼룩진 사회를 보고 이대로 세상 끝장나는 것이 아니냐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그러나그보다는,올림픽 이후 젊은이들의 기백이 위축되고 사회전체의 분위기가 퇴영과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어가는 이 현실이 어찌보면 더 안타깝고 불안한 징조인듯 싶어진다.
  • 재미작가 김은국씨의 「민족사적 6ㆍ25론」

    ◎한민족,자의건 타의건 「자유로운 삶의 길」로/“살상ㆍ폐허ㆍ굶주림” 고정관념 벗어날때/개개인의 체험 역사적 맥락서 조망해야/반억압 선택은 바로 「인간해방의 길」/이제야 변혁하는 동구를 보니 큰 대가 치렀지만 값진 경험/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 6ㆍ25니 8ㆍ15니 그러한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어마어마한 뜻을 갖고 있는 역사적인 날이 찾아올 때마다 느끼는 것들 중의 하나이지만 우리는 참으로 쓸데없이 거창하고 모호한 말을 즐겨쓰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지 궁금하기도 하다. 한문을 토대로 한 우리의 언어의 덕분인지 아니면 우리 민족에 개인적이든 공동체적이든 세상의 경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심리적인 특이한 태도가 있어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흔히 겉잡을 수 없는 허황한 상투용어로 한마디하고 넘어가 버리는 버릇이 있다. 8ㆍ15가 오면 언제나 「과거 36년간 혹독한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로 시작하고 끝나고 6ㆍ25가 오면 으레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시작하여 「조국분단의 쓰라림」 등으로 끝난다. 상투용어란 것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써먹어 오다보니 누구나가 다 이해할 수 있는 말처럼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이지만 따져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그러니까 한번쯤은 다른 사람들이 쓰는 상투용어를 빌려 쓰지 말고 자기의 말로써 인생의 경험을 이해하려고 애써 볼 만하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요사이 한국에서 흔히 듣는 말이지만 「6ㆍ25를 모르는 세대」라는 표현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개는 「6ㆍ25를 모르는 세대」가 이렇고 저렇고 할때 풍기는 뜻은­그런 표현을 쓰고 사람들에게서 오는­그 세대가 좀 한심하다는 것이다. 그 세대가 한심한건 말건 그것은 둘째로 치고 우선 그러면 그 표현이 내포하는 즉 「6ㆍ25를 아는 세대」는 과연 6ㆍ25를 얼마나 어떻게 알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인생과 역사의 결합 누가 시작한 진담­농담인지는 몰라도 어린애들(물론 6ㆍ25를 모르는)에게 6ㆍ25때 얼마다 먹을 것도 없고 고생했었던가 하는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그 애들이 「그럼 왜 라면이라도끓여먹지 않았냐」하더라고… 원 그런 어처구니 없는 한심한 것들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6ㆍ25를 아는 세대」가 6ㆍ25때는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피란만 다녔다는 식으로 「고생」했다고 말을 시작하면 어린애들은 역시 그런 식으로 반문을 할 것이 뻔하다. 고생했다,굶었다,헐벗었었다,많이 죽었다,도시는 폐허가 됐었다,가족이 흐트러졌다­물론 6ㆍ25의 경험속에는 그런 것들이 다 들어간다. 6ㆍ25라는 것이 빚어낸 현상이며 결과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6ㆍ25를 참으로 설명해 주지도 않고 해줄 수도 없다. 경험이란 것은 왜 그 경험이 있게 되고 그 경험이 나에게 무엇을 주었는가를 알지 못하면 그 경험의 참 뜻을 이해할 수 없지 않을까. 그러니 한편으로는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공동체가 쓰는 상투용어로,또 한편으로는 「고생했다」는 개인이 쓰는 역시 상투용어로만은 6ㆍ25와 같은 어마어마한 민족공동체적 개인적인 경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6ㆍ25를 체험한 세대에게나 6ㆍ25를 모르는 세대에게나 마찬가지의 문제라고 본다. 이러한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역사관,그 역사관과 개인을 연결시켜주는 개인의 인생관­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하는­가치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때 나에게는 6ㆍ25는 「선택」의 경험이라고 여겨진다. 그 「선택」에는 두가지의 선택이 있었다고 본다. 하나는 개인적인 한가지 한가지의 「작은 선택」들이고 또하나는 커다란 역사적인,나아가서는 철학적인 「커다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커다란 역사적인 철학적인 「선택」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중에 온 것이다. 우선 「작은」 선택들이 모이고 쌓이고 하다 좀더 철이 들고 배우고 사색하게 되면서 그 개인과 역사를 연결시켜 주는­인생관과 역사관의 결합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고향이 이북이어서 8ㆍ15를 이북땅에서 맞았다. 그 덕분에 남한으로 넘어오기 전 3년여를 북한식 공산주의체제 밑의 생활을 경험하였다. 그러한 경험에 바탕을 둔 「작은 선택」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이 글에서는 내게 중요한몇개만을 들어보겠다. 첫째로 생각되는 것은 하나하나의 개인의 특이한 「작은 역사」를 무시하고 말살시키려는 주의와 사상을 거부하고 그것에 반항하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공산당 권력체제가 주장하고 실행한 소위 계급투쟁으로 「소지주 계급」의 낙인이 찍힌 우리는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고향에서 추방을 당했다. 그때의 우리의 재산이란 한때 가난했던 조부모님이 일하고 저축하여 쌓았던 것이다.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바라고­본인들과 후손의­노력해온 그들의 구체적인 「작은 역사」는 「계급투쟁」이라는 추상적인 커다란 주의ㆍ사상으로부터 아무런 이해와 「용서」를 받지 못하였다. 그 경험은 개개인의 작은 역사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나에게 심어주었고 그것을 말살시키려는 주의ㆍ사상ㆍ정치체제에는 반항해야 한다는 정치관을 갖게 했다. 또한 그러한 소위 「계급투쟁」의 발단,심리적 원시점은 인간의 가장 천한 본능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의 것을 탐내고 남을 시기하는 원시적인 본능을 부추겨서 『잘산다』 『못산다』의 개념과 정의를 오로지 물질적인 차원에만 두는 가엾은 인생의 가치관을 보았고 나는 그러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다. 나아가서는 그러한 추한 인간의 본능을 『그럴듯한』 정치이념과 주의로 장식하여 인간의 증오심을 정의감으로 가장시켜 그것을 이용하여 권력을 잡으려는 어떠한 사상에는 반항해야 한다는 「선택」을 했다. 목사이셨던 외조부께서 일본통치하에서도 억압을 당하시고 북한공산체제 밑에서도 억압을 당하시는 것을 경험하고 「나의 외조부님을 억압하는 자들」에게의 반항의 「선택」에서 시작하여 특정한 종교를 믿지 않는 입장이면서도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정치이념ㆍ주의사상은 반대해야 한다는 「선택」을 하였다. ○한국은 운좋은 나라 그렇게 하여 내가 6ㆍ25가 일어나기 얼마전 남한으로 넘어 왔을 때는 이미 수많은 작은 「선택」들이 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6ㆍ25가 왔을 때 그 전쟁은 나에게는 혹독하게 말한다면 죽느냐 사느냐의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나」를 없애버리려는 권력에는 방항ㆍ대항해야 하는 선택밖에는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대한민국이 더 좋아서 더 귀중해서 대한민국을 사수하기 위해서 참전한 것 같지는 않다. 또 「동족상잔의 비극」이니 어쩌니 하는 감상을 품고 전쟁을 겪은 것 같지도 않다. 우선 「나」라는 하나의 인간의 「자신」이 살아 남아야겠다는 것 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의 개성,특이한 작은 역사,개인의 존엄성­이러한 것들이 보존되고 살아 남아야겠다는 신념과 행동의 선택에서 이윽고 자유에의 「선택」이 있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인생관 가치관이 그 당시에는 지극히 구체적인 것이었으면서도 이념적으로는 뚜렷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겠지만 그것이 훗날에 「나」라는 하나의 개인과 그 개인의 경험을 역사와 연결시켜주는 역사관을 찾았을 때 6ㆍ25를 비롯한 지난날의 경험을 좀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나는 인간의 역사를 이렇게 생각한다. 즉 인간의 역사는 「해방」으로의 과정이라고 본다. 자연의 공포와 횡포로부터의해방,질병으로부터의 해방,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무식으로부터의 해방,인간이 타인에게 행하는 무자비한 잔인으로부터의 해방­끝없이 많은 인간해방이 필요하고 하나하나씩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자유」로의 행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참혹한 인간역사의 사실이 증명하듯 그것은 하루이틀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한 해방의 과정은 조금씩이나마 인간의 자유의 범주를 넓히고 차원을 높여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는다면 그러한 역사관을 「선택」해야 한다. 개개의 구체적인 경험과 그 경험을 바탕으로하여 여러 작은 「선택」을 해온 나로서는 그러한 역사관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을 지극히 행복하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6ㆍ25란 나에게는 하나하나의 개인이 나름대로의 해방을 찾고 자유를 찾아야 한다는 인생관과 역사관을 얻게 해준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흔히 진담­농담으로 말하듯이 대한민국은 참으로 운이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그렇게 말할수 있는 나도 운이 좋은 사람이 되겠지만). 6ㆍ25는 대한민국에도 역시 하나의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싫건 좋건 이끌린 삶 강대국간의 냉전이니,국제정세의 배경이니,국토의 분단이니­「동족상잔의 비극」이니­그런 것들을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만 6ㆍ25라는 역사적 사건과 경험은 한국으로 하여금 되돌릴 수 없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선택을 하도록 했다. 그 「선택」으로 한국은 공산주의 체제가 아닌 자유주주의체제 쪽으로,공산주의의 국가통제경제가 아닌 자유시장경제체제 쪽으로,그 당시에 싫건 좋건 알건 모르건 이끌려 간 것이다. 그리하여 온갖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싫건 좋건 알건 모르건 간에 개개인의 역사가 존중되고 개개인의 나름대로의 자유가 존중될 수 있는,앞서 말한 인간해방의 역사관의 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우습게 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한국이라는 사회공동체가 의식적으로 또한 고의적으로 그러한 역사의 길을 기꺼이 선택했다는 말은 아니다.한국이 운이 좋은 나라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게 된다. 6ㆍ25를 전후한 국제정세와 6ㆍ25라는 처참한 경험을 겪고 살아남은 한국은 어쩌다 싫건 좋건 그러한 길을 선택하게 됐고 그리하여 오늘의 한국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한 선택을 한 이상 한국은 어쩔 수 없이라도 한걸음 한걸음 인간해방의 역사의 대열에 끼여 따라가게 돼있다. 지난 몇년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변화와 발전을 생각해 보면 짐작이 가리라 생각한다. 커다란 인간역사라는 것은 하나하나의 개인은 물론 국가사회라는 공동체도 예측할 수 없는 현상과 결과를 빚어내는 버릇이 있다. 6ㆍ25라는 역사는 어쩌면 한국사회가 자진해서 이룬 것이 아닌 하나의 선택을 한국사회에 강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선택이 나 자신의 선택과 어울리는 것이기에 지극히 흡족하게 느낀다. 그러기에 나는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이라는 사회공동체는 6ㆍ25를 겪었기 때문에,또 6ㆍ25를 계기로 하여 전세기적인 인간가치관과 인간통치관에서 탈피하여 전진적인 인간해방의 역사적 흐름에 함께 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기다랗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동독을 비롯하여 폴란드ㆍ헝가리ㆍ체코ㆍ루마니아 심지어는 불가리아 등­동구 여러나라에서 일어난 역사적 변화를 생각만 해보면 된다. 그들의 역사야말로 인간해방의 역사이다. 40여년간의 공산주의 독재체제 밑에서 억압당해 왔던 하나하나의 인간들을 해방하고 자유를 이루어준 역사의 흐름이 파도를 친 것이다. 불평ㆍ불만이 많고 걸핏하면 「한」이 어쩌고 하는 우리는 동구의 그들에 비하면­나아가서 소련의 일반 시민들과도 비하면­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6ㆍ25라는 참혹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 경험이 헛되지 않게 해준 그 「선택」 덕분에 우리는 인간해방의 역사의 대열에서 그들보다 훨씬 앞서 있게 된 것이다. 동구의 그들 뿐인가. 소련의 사정을 살펴보며 리투아니아ㆍ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 국민들의 자유독립에의 「선택」을 생각해 본다. 우크라이나의,그루지야의,아르메니아의,아제르바이잔의 모든 개인들의 자유독립으로의 「선택」을 생각해 본다.2차대전이후의 세계역사를 소위 냉전의 역사라고 한다. 하지만 따져보면 그 냉전의 역사는 실은 자유와 억압의 대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선택하고 자유시장경제 제도를 선택한 진영은 꾸준히 인간의 자유의 범주를 넓히고 차원을 높이면서 인간을 억압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인간을 조롱하는 것들에서부터의 인간해방을 이루어왔다고 본다. 그것을 인정 안하다면 동구공산권의 붕괴와 동구 사람들의 자유의 「선택」을 인정하지 않고 이해하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인간가치관의 대결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즉 2차대전후부터의 이른바 냉전은 결국은 정치이념의 대결이었고 인간의 가치관의 대결이었다고 본다. 인간의 「자유와 개방」을 위주로 하는 이념과 절대적인 정치권력 체제속에서의 「인간통치」에 전념하는 이념과의 대결이 아니었던가. 6ㆍ25에 참전하면서 「동족상잔의 비극」이니 하는 감상을 품고 있지 않았었다고 나는 앞서 말한 바 있다. 어떻게 보면 냉혹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6ㆍ25전쟁이 내게는 단순히 부족간의 영토싸움이라든가 조국통일이라는 미명아래에서의 권력다툼이라든가 그러한 전세기적인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었기에 그랬었는지도 모른다. 그 전쟁은 2차대전때 이미 시작되고 그 후에 냉전으로 계속된 이념의 대결이 터져나온 전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싫건 좋건 틀렸건 옳건간에 사람은 각자각자 나름대로의 작은 역사를 창조하고 자유와 개방을 이루고 인간해방을 이룰 수 있도록 풀어주고 돌봐주어야 한다는 가치관과 이념과 역사관을 「선택」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6ㆍ25의 그날이 돌아올 때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상투용어로 그 경험을 「설명」해 버리려는 것을 싫어한다. 그 전쟁이 그것뿐이었다면 그야말로 전세기적인 관념으로 그 전쟁의 경험을 소화하려는 것이 된다. 그 보다는 「나는」 「우리는」 그러한 참혹한 역사적 경험으로 인하여 「이러한 선택」을 하였노라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김은국 □32년 함남 함흥출생.□황해도 황주,중국 만주에서 성장. □48년 평양 제2중(평양고보)재학중 월남. □50년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 중퇴(6ㆍ25발발로). □51∼54년 육군장교복무. □55년 도미,미들버리대(정치학 및 역사철학전공),존스 홉킨스대(영문학 전공),아이오와대 대학원,하버드대 대학원 졸업. □64년 6ㆍ25를 배경으로 한 소설 「순교자」를 하버드대 대학원 졸업논문 대신 발표,세계적 명성얻음. □이후 「심판자」 「잃어버린 이름」 「잃어버린 영혼」 등 발표.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시라쿠스대,캘리포니아 주립대교수 서울대 교환교수 역임. □현 매사추세츠 소재 「트랜스 리트 에이전시」 (국제저작권대행회사)대표.
  • 뭔가 잘못돼가는 세태/황산성 변호사(서울시론)

    ◎사회악 추방은 온국민의 합심으로… 도심 한복판에서 자동차의 소음ㆍ공해에 시달리며 사람들의 왁짜지껄이는 잡음을 들으면 황량하고 삭막한 삶을 실감한다. 그러나 시멘트블록 사이로 뚝심좋게 뻗어난 사철나무위에서 재잘거리는 참새소리에 깨어나는 아침의 감격이 뿌듯해진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고 시인 김영랑은 5월은 창엄한 햇살이 퍼지는 달이라고 읊었다. 그 아름다운 5월을 보내면서 어디선가 『더럽다,더럽다. 미쳤다,미쳤다. 망한다,망한다,망한다』하는 탄식소리가 내 귓가를 때리고 있다. 지금 이 때에 만약에 하늘로부터 특명을 받은 예언자가 나타난다면 분명히 이 세마디를 외며 통곡하고 헤매리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탄식소리 들리는 듯 모두가 먹고 마시며 기분내는 놀자판에서 돌팔매질을 당하면서도 그 예언자는 계속 그 말들을 외칠 것이다. 어느 청렴한 젊은 경찰관이 권총자살을 했다. 나는 그의 자살을 무척 안쓰러워 한다. 썩어 문드러져가는 삶의 현장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기가 힘겹고 뿌리칠 유혹은 많다.집안에서 철없는 아내와 어머니의 갈등과 바가지 긁는 소리에 미칠 것 같다. 그 결과 그 집안은 망해버린 것이다. 어느 여고 3학년 학생이 아침 일찍 보충수업 등교길에 집 근처 50m 떨어진 곳에 보온도시락을 버려둔 채 행방불명이 되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그 여학생이 그렇게 깜찍하게 납치극을 위장한 가출극을 벌였다기 보다는 납치로 인정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경찰은 그 여학생을 찾기도 전에 가출이라고 단정하였다. 수사촉각과 현장감각이 뛰어나서 그런 결론을 얻고 있다면 우리국민 모두가 경찰에 대한 신뢰와 존경으로 안심해도 되는 치안만세의 세상이 될 것이다. 이 사건의 실상은 그렇게 평가내릴 수가 없다. 흔히들 중매로 사귀다가 결혼한 경우에 중매반 연애반이라는 말에 비유된다. 그 여학생은 공부가 하기 싫어서 신문에 난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나섰다가 그날로 인신매매단에 넘겨진다. 가출이든 납치든 미성년의 어린 여학생이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가출신고를 받으면 경찰은 열심히 찾는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가출한 지 40일후 내가 출연하는 MBC­TV 프로그램 「여론광장」에서 이 여학생의 실종을 다루게 되었다. 방송 전날밤 하나님께 「잃은 양 한마리를 찾아 헤매신다는 주님이시여. 주님은 이 어린양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겠지요. 방송을 통하여 이 아이를 꼭 찾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간절히 기도드렸다. 그 여학생은 이미 눈쌍꺼풀 수술과 파마머리를 했기 때문에 그 가족들도 알아보기 어려운 얼굴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과거 방식으론 안 통해 기도의 힘은 큰 것이다. 신문보도와는 달리 어느 시민의 제보가 아니었고 여러 손을 거쳐 마지막으로 데리고 있는 포주가 이 방송을 본 것이다. 아이를 찾으려는 열정적 나의 태도에 놀라 이 아이를 데리고 있다가는 골치아프겠다며 경찰에 인계하였다 한다. 경찰은 그 여학생을 인도받은 지 무려 7시간후에 애타는 부모에게 연락하였다. 먼저 신문기자에게 배부할 진술서와 녹음내용을 다 만든 후에 말이다. 그무렵 며칠동안 자칭 인신매매단이다,경찰관이다 하는 남녀들로부터 집으로 사무실로 교회로 협박전화때문에 전화통이 불이 났다. 내가 더러운 곳만 건드리면 미치광이처럼 발작하는 자들이 왕왕거리는 세태에 우리식구들은 이미 익숙하여 그자들로부터 시달리지 않는다. 작년 여름에 가출한 딸을 찾는 부모가 시경에 가출신고를 했더니 YMCA 신고센터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인신매매단에서 활약한 전력있는 사람의 경험에 의하면 경찰이 3일만 집중단속을 하면 인신매매단의 소굴은 뿌리를 뽑을 수 있다고 한다. 올 상반기 가출ㆍ납치사건을 시경에서 3건,대검에서 5건,민주시민운동연합에서 25건을 해결했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공권력에 대한 신뢰성의 도는 가늠할 수 있다. 공직자 비리조사운운으로 다소 퇴폐산업이 기울어지고 있다 한다. 요즘처럼 부조리와 퇴폐문화가 만연되고 있는 때가 또 있었을까. 정부관리나 기업체 임직원들,세도부리는 사람들 치고 뇌물 주고받는 향응과 바이어들이 베푸는 기생파티나 술집에는 으레 여자의 시중이 있어야 한다는 빗나간 접대문화가 우리사회를 이모양 이꼴로 만들지 않았겠는가. 만 16로세부터 29세까지 6백50여만명 여성중 5분의 1이 접객업소에 근무하고 있다 한다. 딸과 아내와 어머니,즉 여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을 가진다면 이렇게 내버려 둘 수 있는 실태인가. 정말로 바른 삶과 행복한 삶은 도덕관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한편에서는 또 돈이 너무 많아서 미치고 있다. 작년 한해 재벌기업이 사들인 땅이 약 2조4천억원어치라고 한다. 서울에 땅 한평 안가진 사람이 71%인데 애써 모든 국민의 저금으로 기업들이 기술개발이나 기업설비 증설은 하지 않고 부동산투기에만 열을 올렸다. 그래서 미친 여자 널뛰듯이 부동산값은 폭등했다. 덩달아 최근 9년만에 가장 심한 물가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다가 계층간의 갈등을 폭발시켜 끝내 자유민주주의체제,자유경제체제 자체의 붕괴를 초래할 절박한 상황에서 5ㆍ8조치가 나왔다. 지난 80년 9월27일 국보위에서도 비슷한 조치가 있었지만 유야무야 넘어갔다. 정부는 1990년대에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음성ㆍ진천군의 보궐선거의 결과에서 교훈삼아 강력하고 지속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도덕관의 재정립을 국민소득 4천달러의 우리가 국민소득 1천만달러 수준의 국민 이상으로 과소비를 하고 있는 망국의 징조가 보인다. 외신들은 한국에서 다시는 기적을 볼 수 없다고 한다. 이제 우리 모두 씀씀이를 절제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듯 근검절약하는 마음가짐으로 합심하여 노력해야겠다. 하나님께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기도를 하던 중 내 생각,내 염려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알아서 할테니 좀 기다려보라고 하신다. 분명히 곳곳에 숨은 의인들이 있다는 말씀이다.
  • 한 어머니의 잘못된 생각(사설)

    그 죽음은 유난히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이었다. 거의 어른들로만 구성된 3대 일가가 여관에 투숙하여 집단자살을 꾀했던 사건이다. 30대의 아들내외는 죽고 노부부와 작은아들,손녀가 중태에 빠진,이 이해하기 어려운 집단자살이 실은 부동산투기에 실패한 한 나이많은 주부의 정신병 발작같은 독살극이었다고 한다. 우리를 새삼스럽게 불행하게 만드는 사건이다. 어머니가 돼서,특히나 나이가 들어 아량과 참을성이 깊어졌을 어머니가 되었어야 할 나이에 장성한 아들내외를 기어코 죽이고 만 일은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일이다. 죽은 아들내외는 어엿한 직장이 있는 공무원이요 그 슬하에 아이까지 둔 30대의 부부다. 불행해진 노부모의 운명을 그들에게 옮겨주지 않아도 너끈히 살아갈 수 있고,조금만 인내하면 부모를 곤경으로부터 구출해 줄 아들이고 며느리였다. 도대체 어머니들이 자식을 왜 이렇게 쉽게 죽이는 세상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어제도 20대의 한 주부가,밥투정한다고 어린아들을 산으로 끌고가 죽였다는 기사가 있었다. 남편 바람피우는일을 항의하려고 자식을 죽이고 자신도 죽고,시부모 모시기 싫다고 아이들까지 죽음길에 동반해 버린다. 일련의 이런 죽음들을 보면 어딘지 「분풀이」나 보복을 느끼게 한다. 가정을 돌보지 않고 바람이 난 남편의 가슴에 쾅쾅 못을 박아버리고 싶어했거나,구질구질한 시부모들이 단란한 젊은 가정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되는 것에 대한 반발과 오기가 엿보인다. 그런데 이번 나이많은 부인네가 한 짓은 그중의 몇 경우와도 다르다. 그냥 놔두면 충분히 잘 살아갈 젊은이들을 목도 조르고 입도 틀어막아 가며 음독에,기어코 죽게 한 것은 아들내외에게 어떤 종류의 원한이 쌓였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한 가정이 경제적으로 파탄에 이르면 가족간의 정은 극도로 황폐해진다. 더구나 남편의 구박이 그리도 심했다니,그 남편에 가세하여 자식내외도 어머니를 핍박하고 원망하고 능멸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자식들만 잘살도록 남겨두고 혼자 죽기는 원통했던 것일까.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한 그런 「어머니」란 있을 수가 없다. 출산의 고통과 육아의 신고를생각하면 자기 속으로 낳은 아기는 자기의 분신이고 자기자신이다. 그 목숨을 주었으니 뺏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큰 잘못이다. 아기는 비록 어머니의 몸을 빌려서 태어나지만 신의 뜻으로 태어난다. 신이 아니면 조물주라도 좋고 우주의 섭리라도 좋다. 사람마다 각각의 운명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단지 부모에게 한때 맡겨졌을 뿐,각각 타고난 인생을 살아갈 개체의 존재들이다. 감히 그 존재를 어떻게 가로맡아 죽이고 살리고를 할 수 있겠는가. 신에게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성스런 기능을 위탁받았으므로 어머니들은 극악한 투기욕같은 것을 부리면 안된다. 가정을 유지하는 제일 큰 힘은 화목이다. 화목이 깨질 일을 하면 반드시 화가 다가온다. 물욕은 화목을 깨뜨리는 대표적인 마물이다. 그 마물을 일부러 찾아나서는 것이 투기같은 짓이다. 그 화로 자식을 죽이는 일까지 하고서야,삶은 커녕 죽음인들 편하겠는가. 어버이날에 즈음해서 듣게 된 한 어머니의 자식 살해극이 너무도 정떨어진다.
  • 어린이도 절제를 배워야 한다(사설)

    어린이날이다. 소파 방정환선생이 「아해들을 반사람으로 보지 말기를」 호소하며 어린 사람이라는 뜻의 「어린이」날을 만든 날로부터 치면 칠순에 가까운 날이다. 근대이후 「제정」된 날로 「어린이날」만큼 변함없이,그 나름으로 풍성하게 치러지는 기념일도 없다. 그것은,이날이 금지옥엽같은 자녀들을 위한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날이 이처럼 화려하게 날이 갈수록 번성해 가는 것은 이날이 지닌 상품적 가치때문이기도 하다. 값비싼 호텔 뷔페상품으로 개발되고,사치스런 수입장난감 파는 날로 둔갑되어 가느라고 이날의 명맥은 더욱더욱 굳세어 가고 있다. 어린이날이 이런 날로 타락해 가는 것에 어른들은 반성을 해야 한다. 장사꾼이 그걸 충동이고 부추기는 것이 악덕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어차피 장사꾼은 장사속으로만 살아가게 마련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에서 우리 아이들과 우리 가정을 방어하고 보호하는 것은 부모이고 스승이고 어른들이다. 대체로 오늘의 우리 어린이들은 물질적으로 호강스럽고 정신적으로 이완되어 있다. 소비적이고 응석꾼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 만들기」 한가지에만 집착해 있는 부모들은 그것 이외에는 어떤 절제도 훈련하지 않는다. 어려운 일 참는 법도 안 가르치고,일하기도 길들이지 않는다. 혼자서 자기앞을 닦아가는 미덕같은 것은 어른의 「과보호기능」이 녹슬까봐 폐기처분해 버린 듯한 현상을 빚고 있다. 어른공경하기,질서지키기,이웃돕기,양보하기,화합하기 따위의 민주시민의 덕목은 일부러 처럼 안가르친다. 그런 덕목들은 자녀들의 「이기적인 삶」에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인 듯 싶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계산이다. 내 아이가 참을성이 있고 절제할 줄 알아야 남의 아이도 그럴 줄 알게 된다. 그런 사람끼리가 모여야 품질이 높은 미래사회는 만들어질 수 있다. 그렇게 고급한 사회라야 「공부잘해서 출세한 사람」도,어려운 사람도 기를 펴며 살기좋다. 위 아래도 모르고 허영되고 핑계장이고 게으르고 이기적이기만한 시민으로 이뤄진 사회는 끝장이 날 수밖에 없다. 어른이 아이들을 가르치자면 우선 좋은 본을 보여야한다. 그리고 당면한 어려움이 있으면 알려주어서 해결해 가는 과정에 동참시키는 일도 중요한 구실을 한다. 어려운 가정에서 열심히 일하며 산 부모가 효를 받는 것도 그런 이치다. 아이들이란 순진무구한 천사이기도 하지만 교지를 가진 악동의 일면도 지니고 있다. 키우는 어른이 공을 들이면 리트머스시험지처럼 그 공을 표출해 낸다. 잘못했을 때는 따끔하게 벌주고 잘했을 때에는 기쁨 가득한 칭찬을 해야 한다. 잘못한 행동조차도 분별해 주지 못하는 어른을 어린이는 우습게 안다. 오늘을 우리는 위기라고 보고 있다. 항례적인 것이 아닌 「총체적 위기」라고 보고 있다. 이 시기가 시련기이긴 하지만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공동체가 결속하여 절도를 실천하고 난관을 탈출해 가는 과정을 배우며 동참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기회이다. 먹고 즐기기만으로 지쳐 버리는 소모적인 어린이날 계획을 접어 들이고 건설적이며 덕성있는 어린이날이 되도록 해보는 일이 모두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사려깊은 어른을 보고 아이들은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 봄날,회심곡을 들으며/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어머님전 살을 빌고,아버님전 뼈를 받고 일곱 칠성님전 명을 받고 제석님전에 복을 빌어 석달만에 피를 모으고 여섯달만에 육신이 생겨 열달 십삭을 고이 지내 이내 육신탄생을 하니…」 봄기운이 습기처럼 배어오는 3월 초순의 어느 하오에 KBS FM이 내보내는 회심곡을 들었다. 회심곡은 들을 때마다 좋다. 특히 김영임의 창으로 듣는 회심곡은 유난히 좋다. 심장이 저려오는 듯한 통증이 불효의 회한을 아릿아릿하게 자극한다. 그 독특한 감성에 휩싸여 한곡을 다 듣고나면 통곡을 하고 난뒤처럼 개운해진다. 노래의 골자는 부모은중경이지만 그안에 인생의 허무함이 절절이 담겨있고 허망한 삶 가운데서도 무엇을 지키고 어떻게 살아감이 마땅한지를 굽이굽이 사설로 읊어낸다. 「…인간이 장차 백살을 다 산다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이며 걱정근심다 제하면 단 사십을 못사는 인생,한번 아차 죽어지면 싹이 나느냐 움이 나느냐…명사십리 해당화는…동삼석달 죽었다가 명년삼월 봄이 오면 다시 피련마는 우리인생 한번가면 어느 시절 다시오나,세상만사 생각하면 묘창해지일요이라…」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주아주 가끔 대문간에 서서 시주를 동냥하기 위해 회심곡을 부르는 스님이 있었다. 그런 스님이 올라치면 내어머니께서는 종그라기에 시주드릴 쌀을 퍼 드신채 대문안쪽에 서서 그냥 듣고만 계셨다. 얼른 대문을 열고 쌀을 주어 보내지 않고 하염없이 서서 꽹과리소리 섞인 중의 사설을 듣고만 계시는 어머니가 이상해서 뭐라고 말을 걸면 손가락을 세워 입을 가리며 「쉬잇」하는 눈짓으로 나무라시던 어머니. 그분이 그때 그토록 하염없이 들으시던 노래가 회심곡이라는 것과 그 노래의 구구절절에 담긴 말을,그 무렵의 그분 나이만큼 되어서야 비로서 이해하게 되었다. 덕담으로 시작하여 서리서리 넘친 회한을 풀어가다가 적덕을 당부하며 끝내는,창으로 부르는 회심곡을 FM라디오로 우연히 만나면 횡재라도 한것처럼 반갑다. 최종민교수의 잔잔하고 실속있는 해설이 곁들인 KBS FM의 국악시간에 만나면 특별히 더 기쁜마음이 든다. 그럴때면 대문기둥에 기대어 서셔서 떠돌이 탁발승이 들려주던 회심곡에 넋을 뺏기곤 하시던 어머니의 자태와 내음이 어김없이 코끝에 되살아난다. 그 영원처럼 깊은 정서가,그다지 오래 잊혀졌다가 되살아나 생생하게 전해 온다는 일이 신기하다. 그러고보면,스스로 회임을 하고 출산을 하고,가슴에 아이를 품은채 외경과 희열을 교감하는 수유기를 경험한 뒤에사 비로소 회심곡에 귀가 틔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노래를 들을때마다 심장이 저릿해오는 한편으로 유선에 아릿아릿한 통증이 전해오는 것도 번번이 경험하는 일이다. 이 통증은 산모시절 젖으로 아기를 키울때 체험한 기억의 잔재다. 집에 두고나온 아이가 불현듯 생각나면 조건반사로 유선은 부풀고 바늘로 찌르는듯한 통증이 온몸을 진저리치게 한다. 그러는 순간에 돌아나온 젖은 흥건하게 앞섶을 적신다. 모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에도,아기가 배고플 시간이 되면 유선은 제가 먼저 돌아서 통증으로 신호를 보낸다. 『젖먹일 시간인데 어미가 무얼 하느냐!』고 호령하는 듯한 신호. 모유를 말할때 사람들은,인공의 조제유는 따를수 없는 「성분」을 운위하지만,수유하는 모자가 함께 지니는 정서는,그까짓 무기질의 「성분」만으로 평가할수 없는 무궁한 것을 내포하고 있다. 아기의 배고픔을,바늘로 찌르는 고통으로 함께하는 모체는,젖을 먹으며 눈맞추어주는 아기의 눈망울에서 신의 축복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랑과 행복을 보상받는다. 그 죄없고 덞지않은 눈망울에서 생애에 오직 한번밖에 없을 듯한 구원의 실체를 경험한다. 아직은 인간의 말보다 신의 어휘를 더많이 기억하고 있을 듯한 아기와,어머니의 잠재능력은 그들만의 의사소통을 하고 그들만의 내음을 새겨둘지도 모른다. 엄마의 젖가슴에 코를 대고 익혀 두었던 내음이 자란뒤의 아이에게서 예술도 되고 철학도 잉태할 것이다. 먹물빛 장삼에 바라를 메고 고깔쓴 스님이 들려주는 회심곡을 대문기둥에 가려서서 다소곳이 듣고 계시던 어머니의 기억은 행주치마의 푸새냄새를 동반한다. 쉬기 직전의 숭늉냄새같은 푸새냄새를,새하얀 어머니의 행주치마는 늘 풍기고 있었다.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한국인 백남준은 그의 예술의 원천을,『음력섣달 그믐밤의 애꾸무당』에서 비롯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의 예술혼이 괴기서린 애꾸무당을 찾아갈때,그를 인도하는 것은 그의 어머니가 풍기던 소복의 푸새내음이었다고도 말했다. 시가와 친가로 이어진 수삼년의 상복의무가 오랜 세월의 소복으로 강요되었던 어머니의 치마폭에 기대어 푸닥거리 굿구경에 취해 잠들곤 하던 어린시절,푸새냄새는 그에게 배어졌고,천재가 자극받을 때마다 되살아났을 것이다. 고통과 희열로 거듭나는 모체의 길을 통과하고서야 어머니의 회심곡을 깨닫게 된 우매함이 부끄럽지만 그래도 그 깨달음이 다행하고 고맙다. 젊은이들이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나 한것처럼 어른을 우습게 여기고,그 지나온 세월을 능멸할때,회심곡 한곡은 위안이 된다. 멀쩡하고 깨끗하게 생긴 젊은이가 폭력이니 마약이니 하는 죄의 길에서 방황하다가 오랏줄에 묶여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것을 보노라면 서럽고 애닯은 마음에 회심곡이라도 한곡들으며 마음을 달래고 싶어진다. 단조롭고 지루하고 쟁쟁쟁 울리는 꽹과리의 금속성이 노래라기에는너무 무미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가을에 들으면 무상함을 달래주고 봄에 들으면 따스함을 전해준다. 꽃샘의 한기가 섶을 파고드는 봄날 해질녘에 반가운 내객처럼 찾아왔던 회심곡 한가락에서 우리가 지녀온 슬기를 확인한다.
  • “남의 아픔은 나의 아픔” 황산성 변호사(서울시론)

    ◎모순투성이 현실 모두가 책임져야 남북이 갈린지 42년이 흘렀다. 재작년 북한의 김일성이 자기는 동방의 초소로서 사회주의를 잘 지킬 터이니 동독에게 서방의 초소로서 같이 잘 지켜 나가자고 격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서방의 초소가 무너지자 김일성은 신년메시지를 통하여 남한에 대하여 『최고위급 당국자와 각 정당의 수뇌들이 참석하는 협상회의』를 소집하자고 제의하면서 미군철수와 팀스피리트훈련 중지를 주장하지 않아 우리는 갖가지 추측과 예상을 희망해 보았다. 북경아시안게임 출전에 단일팀 구성은 가능하리라는 전망도 꿈꾸어 보았다. ○농촌은 빚더미서 허덕 60년대부터 해외거주 가족간 서신왕래,민자물자교류,원자재 간접교역은 있었고 7ㆍ7선언 이후 해외동포들의 북한방문의 숫자도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42년간의 분단고착화 현상은 변화의 징조가 희미하다. 그래서 「고향ㆍ가족ㆍ이별ㆍ통일」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면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이산가족이 우리 주변에 무려 1천만여명이 있다. 인구의 25%,이산가족은민족적 비극의 주인공인 셈이다. 우리 민족은 오천년 역사를 지닌 농경민족이요,「농자천하지대본」이 우리 삶의 표현이다. 농가의 주요소득원이 쌀농사이며 연간 2조원에 상당하는 쌀시장 거래가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지난 9년동안 풍작으로 인하여 쌀이 1천만섬이 남아돌고 있으나 국민식생활이 변하여 쌀 소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해마다 추수에 대한 감사의 잔치로 기쁨이 충만해야 할 농촌에서 「답답하다」는 탄식소리만 들려온다. 가가호호 3백만여원씩 채무를 부담하고 있고 해마다 농사짓는 경비는 올라가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농촌을 떠나고 있다. 농사의 평균 순이익의 정부보조 비율은 미국 28%,일본 36%,EC 32%,우리나라 12%이다. 인구의 28%에 해당하는 농민이 결실의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빚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인구의 7.2%에 해당하는 약 3백만여명의 노인층이 있고 이들중 56%가 자녀와 함께 살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돌보아주는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있어도 함께 살 형편이 못되는 무의탁 노인이 약 9만명에 달한다. 신체적 정신적 능력저하와 배우자ㆍ친구들의 죽음으로 불안을 느끼며 고독과 질병과 빈곤에 시달리는 노인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 2000년대에는 인구의 약 10%에 이르러 고령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고한다. 우리의 경제가 가장 활발하였다는 80년도에 들어서서는 우리는 무려 12만명의 어린아이를 해외입양시켰고 해마다 1만여명이 계속 팔려 나간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과 사회제도,특히 가족법의 모순(1991년부터는 다소 개정되었음)으로 인하여 태어나면서부터 권리의무의 주체인 인간이 물건처럼 팔려간 것이다. 버리지 않아야 할 자녀들을 마구 버렸고 버림받은 아이들을 잘 보살펴야 될 우리 사회가 전근대적 혈통계승이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지 못하여 국내입양이 잘 성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적 무능력자인 어머니가 아이를 맡아 키우면 적정한 양육비를 인정해 주어야 할뿐 아니라 그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에는 벌금 또는 구류,징역형이든 강제적 제재수단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런 제도가 없기 때문에무책임한 부모를 장려한 꼴이 된다. 그 뿐인가,건강한 산모를 통한 출산이 국가재생산을 가능케 하고 가장 도덕적이어야 하는 여자들이 퇴폐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며 누구의 탓으로 돌릴 것인가. 전국에 향락업체가 무려 40만 곳이 된다. 인구 1백명에 한 곳이 있는 셈이다. 더욱이 15세부터 29세까지 근로여성 6백20만명중 5분의1인 1백30만명이 유흥업소에서 일한다고 한다. 무한한 가능성과 미래지향적이어야 하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공부와 성적위주의 입시현실 때문에 병들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민주화를 지향하면서 백년대계이어야 하는 학교 교육제도가 가장 비민주적으로 낙후된 곳이다. 80만여명 고졸학생중 20만여명만 전문대 이상의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고 나머지 60만여명의 진로는 막연하다. ○해외입양 한해 1만명 4분의1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위한 학교 입시교육에 4분의3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며 수업시간마다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그래서 지난 5년간 7백여명의 중고등학생들이 자살하였고 88년 3월부터 89년 2월까지는 1백26명으로 공식집계되었다.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자도 2백여만명 이상이라고 한다. 나의 짧은 식견으로 계산해 보아도 슬픔과 고통 속에서 나날을 사는 우리 이웃의 숫자는 엄청나다. 1천만(이산가족)+1천만(농민)+3백만(노인)+12만(80년도 해외입양)+1백30만(유흥업소 종사자)+60만(대학미진학자)+2백만(알코올 및 마약중독자)=2천7백2만여명,즉 인구의 절반이 훨씬 넘는 숫자가 성장과 발전을 향한 자의에 따른 각고의 노력보다는 타의에 의하여 씌워진 멍에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소년 자살도 잇따라 과거 우리는 밤에도 안심하고 걸어다닐 수 있는 조용하고 예절바른 민족이었다. 그런데 요즘 혼자 걷기가 무섭고 밤에 집에 있어도 마음놓지 못하는 실정이 되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동성과 치밀한 계획하에 범죄를 저지르는 깡패집단과 떼강도들에 의하여 공포분위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넘긴다. 게다가 국가가 나아가는 방향과 역사적 책임의식까지 덧붙여 사회적 제 모순을 다 들추어 내다보면 우리 국민 모두가 마음아픈 사람들이다. 상처가 깊고 넓게 퍼지면 결국은 치명적이다. 이제는 의인 몇 사람의 손에 의하여 지도되거나 변화되는 시대와 상황은 지났다. 국민적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그 결단은 위대하거나 무섭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조금 더 정성을 기울이고 지혜를 모으면 된다. 우리의 입장과 위치를 잘 파악하고 분수에 맞게 살고 행동하면 된다. 가족간에 기본적 예절을 갖추고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이면 더 완벽한 치유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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