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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바보각시­사랑의 형식」을 보고(객석에서)

    ◎혼돈·절망의 삶 진단한 서사극 부산 연희단거리패가 산울림소극장(334­5915)에서 11월14일까지 공연하는 「바보각시­사랑의 형식」(이윤택작·연출)은 혼돈과 절망의 세계에 대한 작가의 진단과 처방으로 압축할 수 있다.작품은 우리의 민간전승설화인 「살보시 설화」와 서울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여인이 암매장됐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신도림전철역 앞에는 어디서 왔는지 알수없는 바보각시가 운영하는 포장마차가 있다.포장마차에는 지식인 취객,창녀,우국청년,실직청년,파출소장,앵벌이등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 군상들이 모여 세상사를 논한다.절망과 혼돈의 시대에 제세상을 만난듯 종말론 교주까지 등장해 추종자들을 모은다.사람들은 말초적 쾌락만을 추구하고 급기야 바보각시를 집단으로 겁탈한다.현실과 이상(신화)사이에서 갈등하다 현실을 선택한 바보각시.애비를 알수 없는 아이를 임신하나 모두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부인하자 결국 절망해 자살한다.그리고 그녀의 죽은 몸에서 화해와 희망의 상징인 「미륵」이태어나고 사람들을 혼돈의 세상에서 구원한다. 옛날 이야기에나 나옴직한 줄거리다.연출가는 신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매개로 가면(탈)을 사용하고 또한 언어를 통해 양자를 구분짓는다.형식은 다분히 서사극적이다.그러나 무엇보다 연극의 다양한 소리가 관심을 끈다.뮤지컬을 방불케하는 연기자의 노래와 타령소리,주변에서 흔히 듣는 각종소리가 총동원돼 극의 주요 요소로 작용한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돛단배로 변하는 포장마차,로봇이 등장하는 최신의 음악박스등 볼거리도 많다.설익은 듯한 젊은 배우들의 열의가 기분좋고 바보각시역을 맡았던 거의 무표정에 가까운 이지하의 연기가 인상적이다.대극장에서 공연됐었으면 하는 여운이 남는다.
  • 대입중압·부모간섭에 무소신 체질화(교육 개혁해야 한다:5)

    ◎눈치보는 학생들/“의대 가라고해서” 과선택도 의존/성적제일 풍토가 요령에 흐르게 한글날이었던 지난9일 서울 강북지역 Y고 3학년 9반 「주례학급회의」시간. 이날 안건은 「한글을 애용하자」는 주제로 53명의 학생들이 세부실천사항과 건의사항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2∼3명의 학생이 『욕을 삼가자』『외래어의 사용을 줄이자』라는 실천사항을 발표했을뿐 대부분의 학생들은 입을 꾹다물고 잠자코 앉아 있기만하여 학급회의는 10여분만에 끝났다. ○반장 되기도 꺼려 담임 김인식교사(45)는 『학급회의 시간에 자기의견을 자신있게 개진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다』면서 『자신의 발언으로 혹시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하는 심리로 담임선생이나 학우들의 눈치를 보는 학생들이 많다』고 신세대의 일면을 지적했다. 강남 8학군의 대표적 명문고인 D고3학년 담임교사들은 이번 학기초 반장 선출과정에서 상당히 애를 먹었다. 지원자가 없는 것은 물론 다른 학생들의 추천을 받은 학생들도 한사코 반장자리를 고사했기 때문이다. 입시제도의 변화로내신정적산출의 객관성문제가 대두된 탓에 『반장이니까 실기점수를 잘 준다』는 예전의 관례가 없어지자 학생들이 아무도 반장을 하려고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 교사들의 지적이다. 장명진교사(41)는 『학급이나 학생회 임원으로 활동하면 내신성적관리에 도리어 손해라는 인식이 학생들사이에 팽배해 있다』면서 『봉사와 다양한 경험을 통한 내적 인격수련 보다는 주변상황의 변화에 따라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적인 속성이 요즘 아이들의 한 특징이다』라고 말했다. 중·고교생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주관이나 신념을 갖지 못하고 주위환경과 상황을 의식하며 눈치보기에 급급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학교교육이 크게 잘못돼 있다는 것을 말한다.『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력과 그 판단에 따른 실천력을 길러주는 일이 학교교육의 요체』라는 것이 장교사의 설명이다. ○인내·사고력 부족 많은 일선 교사들은 『대학진학등 졸업후 진로에 대한 강박관념과 학부모들의 지나친 간섭과 기대감 때문에 학생들은 갈수록 사고와 행동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 학교를 졸업한 김모군(20·재수생)은 당초 자연대에 진학해 순수학문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부모의 강권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서울 명문대 의예과를 지원할 예정이다. 김군의 고교동기생 가운데 6명의 학생이 김군과 같은 사정으로 한해 재수를 해야 했다. 반면 부모의 권유에 따라 법학과를 1지망,점수가 부족해 자신이 원하던 2지망 신방과에 합격하고 몹시 기뻐했다는 박모군(20·Y대1년)의 경우처럼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교사들은 『학부모나 주변의 「경험으로 축적된 눈치」의 영향으로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결정에 소신을 앞세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서울S고 진학지도주임 이산호교사(48)는 『가정에서 성장과정에서부터 인내력과 사고력을 심어주는 교육은 뒷전인채 성적우선·암기위주의 교육을 강요받다보니 학생들이 주변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적당히 대응하는 무소신의 습성이 몸에 배는 것 같다』면서 『요즘 학생들이 한편으로는 개성이 뚜렷해 자기주장이 강하기도 하지만 모든 사안을 쉽게 해결하려는 편의주의와 나약한 이기주의에 젖어있다』고 말했다. 지난4일 하오1시50분.서울 동대문구 C학원 「45일완성」과학탐구반 첫 강의시간에 1백여명의 수강생이 빽빽이 들어차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수강생 박윤희양(20·재수생)은 『이 학원의 과학탐구영역 강의실력이 뛰어나고 1차수능시험에서의 적중률도 높았다는 소문을 친구에게서 듣고 수강접수를 했다』면서 『교과서 진도대로 수업하는 지루한 학교식 강의보다는 짧은 기간에 예상문제풀이식으로 요점정리를 해주는 강의방식이 솔직히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30여년동안 학원강사생활을 한 정모씨(60·Y학원 수학강사)는 『해마다 중하위권 학생들이 입시제도의 변화와 출제경향에 따라 「입시지도를 잘 한다」는 막연한 소문만 듣고 몇몇 학원으로 철새처럼 몰려 다닌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학원에서는 이같이 「눈치」에 익숙한 학생들의 심리를 이용해 입시직전에 「40일·90일 작전」,「파이널 코스」등 각종 단기·속성 프로그램을 마련한다』고 말했다. 영동세브란스병원정신과 과장 이홍식교수(45)는 이에대해 『한마디로 자아정체감의 위기다』고 전제한뒤 『어린 학생들이 교양과 체육,삶의 태도등을 다양하게 접해야 할 나이에 오로지 입시의 틀에만 매달리다보니 자신의 뚜렷한 주관을 형성시킬 기회가 없이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성격이 형성되고 때로는 불안감·우울증·특이한 행동양태 등을 보여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의 전인교육/창의·사고력 육성에 역점/미/도덕·윤리의식 함양 성격교육 필수/영/잠재력발휘 도와… 봉사활동 의무화 미국·영국등 선진국은 획일적인 입시위주의 교육보다 합리성과 다양성에 바탕을 둔 성격교육·가치관교육 등을 통해 전인적인 인격함양을 꾀하고 있다. 특히 유아교육과 초등교육과정에서 올바른 시민으로의 성장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창의력과 사고력함양에 중점을 두고 있다. 미국의 학교제도는 주(주)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한주(주)안에서도 학교시설·교육의 필요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학제가 운영되고 있다.오리건주의 경우 공립학교를 위한 목표를 학생들이 시민·소비자·생산자·가족구성원 등으로 기능을 발휘하는데 필요한 지식·기술·태도를 개발할 기회를 가지도록 하는데 두고 있다. 성격교육은 지식과 기술의 습득만으로는 복잡한 환경속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요구하는 미래에 대비시킬 수 없다는데 주안점을 두고 학생의 도덕적·윤리적 발달을 꾀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예를 들면 애국심·성실·자제·인내·용기·협동·예의 등의 특성을 모든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처럼 오리건주에서는 기초교육·기술교육 등과 함께 가치관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도 잉글랜드,웨일즈등 각 지역별로 학제 등이 자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국가교육과정」을 통해 기본적인 교육방향만을 제시하고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와 같은 실제적인 교육과정은 각 단위학교가 최종 결정한다. 우리나라처럼 정부에서 제시한 교육과정을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모든 학교는 「교육은 모든 학생 개개인의 욕구에 봉사해야 한다」는 기본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는 모든 학생의 연령·능력·태도에 맞게 학생의 가능한 잠재력을 최대한 구현하도록 모든 학생을 도와야 함을 의미한다. 특히 초등교육에서의 교육과정은 「여왕의 축제」「동물」「계절」등 아동들이 흥미를 가지는 주제에 대해 교과목중심이 아닌 「놀이」를 중심으로 한 「통합교육과정」의 형태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중등교육에서도 20여개의 「실제교육과정」가운데 영어·수학·과학 등과 함께 게임및 야외활동,생애교육과 지역사회봉사,근로경험 등이 강조돼 입시위주의 우리나라 교육현장의 모습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스스로 판단하도록 믿고 맡겨야/더 많은 자유줘야 자신감·소신 길러/학부모·교사들 여유 없어 안타까워/정문희 연세대교육학과 교수(전문가 의견) 어린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달콤한 음식은 좋아하고 쓰거나 시큼한 것은 싫어한다.부드러운 손으로 만져주고 얼러주고 안아주면 좋아한다.그러나 거친 손으로 툭치거나 때리면놀라거나 소리내어 운다.그 아이는 자기에게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을 스스로 구분할 줄 안다는 말이다.다시말하면 가치판단의 기준이 그 어린아이 안에 존재한다.만약에 어머니가 그 아이의 건강을 위해 쓴약을 주면서 먹으라고 권할 경우 그 아이는 쓴약을 생글생글 웃으면서 먹지는 않을 것이다.자기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켁켁거리면서 거부할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어린 아이는 자기몸이 거부하는 것을 정직하게 행동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유기체 자체에 가치판단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아직 사회화가 덜 되어 있는 어린 아이들은 부모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기보다 자기 유기체의 경험대로 진솔하게 행동한다. 그러나 사회화 과정을 거쳐가면서 아이들은 유기체의 지시와 어른들의 가르침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자주 사달라고 주장하면 어른들의 꾸중을 듣게 되거나 매를 맞게되기도 한다.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들은 부모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먹고 싶거나 가지고 싶은 마음을 억압하기 시작한다.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으면 그것은 나쁜 행동이야』『새롭고 재미있어 보이는 장난감을 자주 사달라고 조르는 것은 나쁜 아이야』라는 믿음을 내면화하기 시작한다. 즉 유기체 자신은 『맛있어 먹고 싶다,좋다,재미있다,놀고싶다,가지고싶다』라고 판단하는데 그 때마다 많은 어른들은 그런 행동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주입시킨다.이런 분위기에서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는 학생들은 스스로 판단하는 유기체의 지시와 사회의 기대사이에서 갈등을 느낄 때가 자주 생긴다.그때마다 어른들의 과잉보호와 간섭을 이겨낼 수 없는 청소년들은 점점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고 유기체의 지혜를 무시하거나 억압해야 한다.자기 소신대로 살지 못하고 부모님·선생님이 대표하는 사회규범을 따라가야만 한다는 당위성에 사로 잡히게 된다.그런 청소년들은 결국 『자신이 없는 사람』이 된다.자발성이 부족하고 자주독립정신이 결여되어 책임있게 행동하지 못한다.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불안한 나머지 중요한 결심을 해야 할 때마다 남들의 눈치를살필 수 밖에 없다.왜냐하면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그들 자신의 판단을 믿지말고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들으라고 가르쳐온 셈이기 때문이다.그래서 권위있는 사람이 결정하여 지시해주면 그 길을 따라가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택한 넓은 길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아진다.안타까운 것은 상황마다 달라지는 남들의 의견을 따르려니까 불안하여 자연히 눈치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소신을 가지고 스스로 취사선택하여 책임있게 행동하는 청소년들을 육성하려면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좀더 자유를 허용하여야 한다.가능한 한 그들을 신뢰하고 존중하여 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그러나 우리 부모와 교사들은 청소년들이 스스로 경험하고 배우도록 「내버려둘」여유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 가을,상실의 순간/김정란 시인·상지대교수(굄돌)

    다시 가을이 온다.내 마음속에서는 조그마한 짐승이 우우 하고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한다.그것은 아주 움직이기 싫어하는 게으른 짐승인데,가을이 되면 비로소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그것은 이제 제 철을 만났다는듯이 눈을 반짝인다.언제였던가,나는 그렇게 썼었다.『가을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가을이 겨울과 봄과 여름을 거쳐 우리에게 돌아온것이 아니라,우리가 겨울과 봄과 여름동안 헤매다니다가 가을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가을은 그렇게 나에게 어떤 원초적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이 계절은 누구에게나 조금씩 어떤 귀환,본질로의 회귀,그리고 삶의 근원적인 상실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모든것은 일년의 성장을 끝마감하고 열매를,한해살이의 싸움과 환희와 인내의 결과물을 세계앞에 고요히 내민다.그러나 그 열매맺음은,이제 얼마나 임박한 조락의 징후 앞에 내맡겨져 있는가.그래,그렇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힘껏,나의 삶의 장소에서 삶이 삶이 되게하는 모든 요건들에 성실하게 대답한 뒤,그리고 조용히 스러지는 것. 가을이 영감을 불어넣는 상실에 대한 자각은 어쩌면 거의 선험적인 것인지도 모른다.너무나 명랑하고 끝내주는 유희인간인 우리 둘째놈은 가끔 엉뚱한 시를 써서 어른들을 놀래키는데,이 놈이 다섯살때 글씨도 쓸 줄 몰라서(요즘 아이들은 서너살이면 한글을 다 깨우치는 모양이니까) 아줌마에게 「구술」시킨 시가 이랬다. 「가을입니다/나뭇잎이 하나둘씩 떨어져요/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고 멍멍이가 컹컹 짖어요/멍멍이는 가을이 무섭지도 않은가봐요」 분석을 하려고 덤벼든다면 이「시」에 등장하는 가을­낙엽­멍멍이­공포는 완벽하게 설명된다.어린아이들이 쓴 시는 때로 어른들이 쓴 시보다도 더욱더 완벽한 상징적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그애들은 전략적으로 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래서 가짜 이미지들이 끼어들지 않는다.내가 놀랐던 것은,어째서 저 어린 놈이 가을을 「무섭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었다.저 명랑한 영혼의 무엇이 벌써 가을에 드러나는 삶의 결핍의 징후를 알아차리게 만든 것일까.그리고 아이는 왜 그것을 「무섭다고」 느낀 것일까. 지혜로운영혼은 환희보다도 우울의 징후에 민감하다.상실의 순간에 비로소 삶은 숨겼던 신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사는게 즐거워 죽겠어서,오 껍데기만을,화려한 껍데기만을 쫓아 달려가는 어떤 경박한 정신들에게 그런 막연하고 모호한 깊이에 관한 이야기는 씨도 먹히지 않을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 이 가을에/김재용 칼럼니스트·제일증권 전무(굄돌)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겨우 반년 남짓한데 대부분 국민들의 감회는 적어도 3년은 경과한듯 하다고 한다.이것은 바꾸어 말해서 3년 정도는 걸려야 할 개혁을 6개월안에 해치웠다는 뜻도 되고 매일처럼 쏟아지는 개혁조치들로 우리들의 삶 자체가 그만큼 고단했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따지고보면 지난 반년동안 하루도 조용히 넘어간 날이 있었는가 싶다. 덕택에 그렇잖아도 센세이셔널한 우리나라 신문들이 하도 잘 팔려서 책방에 책이 나가질 않고 사정한파까지 겹쳐 술집도 안된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러한 개혁이나 정치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인간생활에 있어 삶의 질을 높이는 필요조건중의 하나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만능의 묘약으로 통용되고 있지나 않은지 한번쯤 자문해 볼 일이다.아무리 보아도 금융실명제 하고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도리어 더 흥분하고 잘못된 것은 모두가 네탓이다. 백성들이 생업에 자족하면서 임금이 누구인지도 알바 없는 요순시대의 정치이상으로 본다면 오늘날과 같은 정치과잉은 도리어 정치부재의 반면경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세상일은 잠시 잊고 쪽빛으로 투명한 이나라의 가을 하늘을 한번 쳐다보자.개혁의 소용돌이에는 아랑곳 하지않고 가을은 어느결에 성큼 다가와 있질 않은가.출근길 강변로에는 코스모스가 만개해 있고 무궁화는 벌써 꽃잎이 지고있다.칸나의 그 붉은 꽃잎이 비취색 하늘아래 더없이 선명하고 고궁에 그윽한 국화향기는 미당의 시귀를 떠올린다. 인간의 행복이란 그렇게 거창하고 많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일상속에서 발견하고 느끼는 적은 만족감이지 결코 남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닌 것이다.박경리여사가 수술후 병상에서 이층 창문을 통해 보는 동네 아낙의 시장가는 모습,출근길을 나서는 이웃 젊은이의 바쁜 걸음,재잘거리는 동네 아이들의 노는 모습등 그 평범한 일상이 그토록 부럽더라는 토로를 한적이 있다.우리는 어쩌면 그 소중한 작은 행복들을 놓치면서 허황된 미망을 쫓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파트 옥상에라도 올라가 가을밤 하늘을 수놓은 찬란한 성좌를 바라보라.비록 세속에있으되 생각은 가을산 비단속에 두는(사재추산 금수간)여유를 이 가을에는 찾아봄직 하지 않는가.
  • 어느 아버지의 가을앓이/김성옥 시인·서림화랑 대표(굄돌)

    딸 셋을 다 시집보낸 이 가을,L소장님은 웬지 쓸쓸하고 허전하다.어쩐지 잘 못 살아온 것 같고,이 세상에 혼자 있는 것처럼 외롭기만 하다.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인생의 가을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필자에게 사실은 출가한 딸의 전화 한통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시댁의 문제로 친정아버지께 의논하던 딸이 아버지의 말씀이 자신의 뜻에 맞지않는다고 짜증을 내면서 그만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는 것이다.L소장님은 갑자기 세상이 막막해졌다.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아니던가! 해달라던대로 힘이 닿는 한 다 해주었고,그 딸 또한 아빠를 여간 따랐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어떻게 아버지한테 전화를 끊어버릴 수 있는가? 내가 도대체 어떻게 교육시켰길래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가.L소장님은 살았던 인생을 이제 수확하고 마무리하는 단계에 들어선 지금 자식농사를 잘 못 했구나 하는 자책밖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학교에서는 수석만 하던 똑똑한 딸이었고,딸의 공부를 위해서는 온 집안식구가 정성을 다 기울였다는 것이다.TV는 물론 켤 수도 없었고 집에서는 큰 소리조차 낼 수도 없었다.딸아이의 신경을 건드릴까봐 늘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지냈다.그래! L소장님은 생각했다.이건 교육을 시킨 것이 아니라 아이를 버려놓은 게야! 사실은 마음의 양식이 되는 책을 많이 읽히고 싶었고,함께 미술관도 가고 싶었고,좋은 명곡를 들려주고 싶었고,사람이 왜 사는가도 함께 토론하고도 싶었고,이 세상에서 보람있는 일은 무엇인가도 같이 생각하고 싶었지만 대학입시제도가 딸의 「바른 삶」을 희생시켜 버린 게야.딸은 『아빠 미안해』하고 다시 전화를 걸어왔지만 L소장님은 생각이 많으시다.획일적이고 삭막한 주입식의 「비교육적인 교육」이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 꿈을 키울수 있는 교육,자연과 접하고 사고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풍요롭고 보람있는 삶을 위한 「살아있는 교육」으로 바꿔야 한다고. 분명 감성적인 L소장님의 가을앓이 때문으로 여겨지지만 우리의 교육제도는 보통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 새로운 시민윤리 세울때다/홍기삼 동국대교수(정경문화포럼)

    ◎물질 추구속 전통규범 급속히 붕괴/「총체적 무규범」 막을 문화정책 시급 조선조 평양에 황고집이라는 사람이 살았다.그는 한양에 일이 있어 왔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참에 친구의 친상소식을 들었다.그는 매우 두터운 우정을 나누고 지낸 친구의 집을 지나쳐 황급히 평양으로 되돌아갔다.그리고 다시 한양으로 와서 친구의 집을 찾아 문상을 했다고 한다. 황고집은 다른 목적으로 한양에 왔다가 문상을 한다는 것이 예의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그래서 평양으로 되돌아 갔다가 서울로 찾아온 것이다.그 당시로 보더라도 그의 고집은 예사로운 편은 아니였던 모양이다.이런 얘기가 전해지는 것 자체가 그것을 증명한다.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황고집 얘기는 한낱 우스갯소리 이상은 못될 것이다.세상도 풍습도 바뀌다보니 문상하는 방식도 물론 바뀌었다.불그죽죽하거나 얼룩덜룩한 옷을 걸치고 초상집을 찾아간 문상객은 상제에게 한두마디 인사를 건네고는 이내 친구들이 모여있는 방으로 가서 화투를 시작한다.핏발이 선 눈으로 밤을 새워가며 싹쓸이니,고도리니,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문상을 핑계대고 우정에 더없이 충실한 척하면서 기실 노름으로 밤을 새우는 것이다.망자에 대한 신성모독이며 야만적인 풍속의 천민화 경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다만 문상의례에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라 전면적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가령 관혼상제(이때 관이란 성년식을 의미한다)와 같은 통과의례의 경우 혼란을 겪지않는 것은 없다.신성하고 엄숙하기는 커녕 시장판처럼 어수선한 결혼식장의 풍속이며 고지서로 전락한 청첩장도 그렇거니와 돈뜯는 데만 혈안이 된 함팔기,인신매매 같은 호화혼수등은 그 극치를 이룬다.제사를 지내는 문제 역시 뒤죽박죽이다.제사를 지내야 되는 이유,축문의 뜻은 알지못하고 몇대까지 봉사해야 되는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다.초종장례를 치르는 절차도 가지각색이고 돈만 있으면 호화분묘를 만든다. 뿐만 아니다.가족이나 친족에 대한 호칭이 파괴된지도 오래다.구습타파의 차원이 아니라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상대의 아들을 정중히부른답시고 『댁의 돈아가…』라는 사람도 있고 점잖게 말하려고 자신의 아버지를 『내 춘부장께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대통령부부를 「대통령내외」라고 하니 이 역시 어이가 없다.아무개내외란 아랫사람의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부모나 윗사람에게 그 아랫사람 얘기를 하면서 꼬박꼬박 『하셨습니다』라고 하는 어법은 이제 일상화되었다.편지의 내용은 고사하고 겉봉조차 제대로 쓰는 경우는 이제 찾아보기가 어렵다.삶의 기본을 이루는 의식주 세가지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규범을 상실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어느 것 하나 온전하게 전통적 규범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총체적 무규범 현상의 책임이 정부나 특정계층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사회변동의 속도가 이처럼 빠른 시대에 전통적 풍습과 예절이 단절되거나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불가피한 것이다.그러나 전통적 규범이 파괴되면서 바람직한 새로운 규범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극도의 혼란만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더구나 개개인의 실천적 윤리규범의 파탄은 사회 곳곳에 실로 어이없는 부작용을 만들어냈다.일구난설인 교통질서,조급하고 난폭한 운전자들,택시·버스기사와 음식점 종업원들의 방자한 태도,공직자들의 저 엄청난 재산과 그에대한 궤변,외제와 외국인에 대한 끊임없고 철저한 사대주의 근성,장소와 때에 상관없이 아이에게 동물적으로 퍼붓는 요즈음 부모들의 보호와 사랑,이 모두는 긍지도 자존심도 이성적 규범에 의해 절제되지도 못한 시대의 산물이며 슬픈 한국인의 자화상이다. 피폐해지고 황폐해진 우리들의 심성을 반성적으로 표현한다면 학력은 높아지고 민도는 후퇴했다고 할만하다.전통적 규범을 상실한 대신 새로운 시민윤리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가 앞장서고 시민단체들이 주관해서 각분야의 시민윤리규범을 만들어야 할 때다.이것은 단지 윤리의 차원에 머무는 일이 아니라 한 민족의 문화적 수준을 증진시키는 일이다.물질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정신의 가치를 바로잡아 문화시민 문화민족을 만드는 일,그것이 문화정책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그리고 묘목을 심듯 우리의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시민윤리규범을 심어줘야 할 것이다.
  • 생존의 아수라장/임대희 경북대교수·역사학(굄돌)

    중국 서주역에서의 일이다.음력설이라고 시골에 갔던 사람들이 상해나 광주로 돌아가려고 운집해 있었다.과자뿌려둔 곳에 개미떼 몰려 들듯이 바글대고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한 묘사일 것이다.그나마도 표를 제때 못 사서,역앞에 가득히 몰려 선잠을 자고 있었다.간신히 차를 탄다고 하더라도,통로에 짐을 놓고 그위에 걸터 앉아 있거나,열차연결부분에 몰려있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옆사람과 비교하게 됨으로써 욕심이 생기는 것이고,그 욕심에 따라 분발을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그런데 욕심에 따르는 자신의 여건이 따라가지 못하는데서,한없는 비애가 시작된다.중국사람들은 본래 돈 버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또한 중국에서는 대학교수마저도 커미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것을 보면,과연 설날인사로 『돈 잘 벌라(공희발재)』고 말하는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겠다. 아수라장을 헤치고 기차를 탄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저 사람들은 인간답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본래 살던 농촌에서야 못 살기는 했어도 이렇게까지 인간대접을 못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들의 눈에서는 타오르는 갈구와 함께 짜증스러움과 피곤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이러한 아수라장이야 말로 변혁되는 중국의 에너지인지도 모르겠지만,과연 미래 중국의 거부들이 이러한 인물가운데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아수라장의 무리들은 그러한 꿈마저도 꾸기 힘든 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되었다. 남경역에 도착하여 내리려 하자,하도 사람이 많아서 미처 계단의 발판문을 열지도 못한채,타려는 사람 내리려는 사람이 뒤범벅이 되어버린다.밤은 어두운데 앞에서 아이를 데리고 내리던 사람이 그대로 떨어져 아이와 함께 계단밑에 넘어져 있었다.뒤에서는 내리라고 밀고있고,내리면 그대로 어린아이를 밟게 되므로 조금 기다려서 내리려고 버둥거리느라고 애를 먹었다.또 밑에서는 차를 타려는 사람들로부터 왜 안내리느냐는 고함소리가 들려온다.이러한 중국에서 인간다운 삶이라든가,인간의 존엄성등을 따지는 것은 너무 호사스러운 개념이 아니었을까.
  • 바캉스 가족패션/비슷한 무늬·색상으로 일체감 연출

    ◎티셔츠·모자 부부·부자간 차림새 통일/염색물감 이용 직접 그려 입어도 좋아/개성있는 멋내기로 피서지 멋진 추억 “일석이조” 산과 바다로 온가족이 함께 떠나는 바캉스가 한창인 요즘,각 피서지에는 그 가족만의 개성있는 멋내기로 좀더 즐겁고 멋진 추억을 만드는 모습들이 눈에 많이 띈다.여름철 휴가복장은 남녀노소 가릴 것없이 시원하면서도 간편한 티셔츠·남방에 반바지차림이 대부분.똑같거나 비슷한 계통의 무늬와 색상의 옷에 모자등 소품을 함께 착용함으로써 가족의 일체감과 사랑을 확인하고 휴식도 취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있다. 중저가 의류업체가 판매하고 있는 티셔츠·바지·모자등을 일괄 구입해 착용하기도 하나 최근에는 스텐실기법을 이용,각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입는 것이 인기를 얻고 있다. 스텐실기법은 무늬없는 옷이나 모자 운동화등에다 염색물감을 이용,그림이나 도형 문자를 그려넣는 것이다.티셔츠는 동대문이나 평화시장등 의류도매상가에서 1천∼3천원하는 것을 구입하면 된다.붓을 이용,일반화랑에서 1통에 1천5백∼2천5백원정도면 구입할 수있는 각 색상의 염색물감을 티셔츠에 그려 말린후 다리미로 다려 열처리를 하는데 이렇게 하면 삶아도 물감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염색이 잘된다. 이때 잘못 그려지거나 색번짐을 막기 위해 도화지에 그리고자 하는 무늬를 미리 그려 오려낸후 옷에 대고 염색물감을 칠하는 것이 좋다. 동대문시장등 모자도매시장에서 2천∼7천원정도면 구입할 수 있는 챙모자및 운동화도 멋있는 가족패션아이템이다.가족이 모두 같은 색상 무늬의 모자및 운동화를 착용하거나 모양은 다르게 하고 색깔만 통일시키는 경우가 많으나 흰색 모자와 운동화인 경우 스텐실기법을 이용해 가족만의 독창적인 무늬를 자랑할 수도 있다. 이밖에 부부와 아이등 가족구성원별로 나누는 것도 한 방법이다.헐렁한 와이셔츠나 티셔츠로 부부패션을 통일하고 꽃무늬나 색상이 같은 아이들패션으로 나누어도 좋다.부녀·부자패션으로 구분,연출해도 재미있는 멋내기가 되는데 이때는 되도록 화려한 색상과 무늬로 밝은 느낌을 주는 것이 좋다.
  • 여름방학을 「방학」답게(사설)

    서울의 고등학교들이 14일 방학에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하여 전국의 초·중·고교가 오는 25일까지는 모두 여름방학에 들어간다.심술궂은 장마가 아직 기승을 부리고 있긴 하지만 학생들의 여름방학과 직장인들의 여름휴가가 겹쳐지는 태양의 계절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름방학」이란 단어는 어른들에게 꿈과 낭만과 여유를 상징한다.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농촌 친구를 찾아,농촌학생은 시골고향에서 논두렁 밭두렁을 헤매며 여치와 매미를 잡고 햇감자와 옥수수를 삶아 먹고 송사리떼가 노니는 맑은 개울물에 멱감고 물장구 치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임해훈련」이란 이름의 단체 해변가 피서도 가고 무전여행의 호기도 부려보고 동·서양 고전을 섭렵하기 위한 독서삼매에 빠지기도 하고 땀과 눈물의 봉사활동으로 뜨거운 여름을 더욱 치열하게 보낸 추억도 지니고 있다.규칙적이고 딱딱한 학교생활에서 벗어나 이처럼 몸과 마음을 살 찌우는 것이 방학의 근본취지다. 그러나 지금 방학을 맞는 우리의 자녀들은 어떤가? 그들의 여름방학은 말이 방학일뿐 보충수업의 시작이고 입시가 한발 다가섰다는 신호일뿐이다.고등학생은 물론 중학생,심지어 국민학생 고학년까지 빡빡한 학원 과외 일정에 숨돌릴 틈도 없을 지경이다.도시지역의 국민학교 5∼6학년들은 예비중학생으로서 영어와 산수와 한문을 방학동안 새로 배우거나 보충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아이들에게 여름방학은 방학이 아니라 또 하나의 학기다.당연히 부모들의 여름휴가도 따라가지 않고 공부를 해야한다.대학입학이라는 절대명제를 신봉하는 학부모들의 과잉 교육열과 비뚤어진 교육상혼이 한데 어우러져 그들의 방학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달콤한 여름방학의 추억을 지닌 부모들은 방학을 방학답게 보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그러면서도 자신이 누렸던 여름방학을 자녀들에게 물려 주지 못하는것은 끝없는 경쟁의 수렁에서 발을 뺄수 없기 때문이다.실제로 방학을 방학답게 보내려는 학부모나 학생이 있다면 비정상적인 학부모나 문제학생으로 취급 받는다.고교 1학년 여름방학때 라보의 국제 학생교류의 일환으로 외국가정을 방문하고 국제화시대의 산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쌓은 학생이 이른바 일류대학에 진학하지 못한것에 대해 담임선생님은 허송한 여름방학을 탓하고 그 부모는 뼈 아프게 후회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이런 왜곡된 현실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머리만 크고 가슴은 빈약한,메마른 정서의 인간으로 자라도록 방치해 둘 수는 없다.그들에게 방학다운 방학을 되돌려 주는 것은 어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잘 노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는 것이 아직도 유효한 교육이론으로 교육정책에 반영된다면 부모들의 조바심도 사라질 것이다.
  • 참견은 노­사랑은 오예­/어른보다 어른스런 어린이 삶 그려

    ◎부모·선생님에 저항않고 자신들 꿈이뤄/절제된 대사·화면 처리… 구성도 뛰어나 태흥영화사(대표 이태원)가 여름방학을 겨냥해 만든 「참견은 노­사랑은 오예­』는 어린이 영화지만 어른들이 보아야 할 영화다.어린이 영화는 으레 유치하고 과장되거나 훈시적일 것이라는 인식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하루에 학원 서너곳을 다녀야 하는 어린이들이 부모와 선생님들의 몰이해와 간섭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꿈의 상징인 야구부를 결성하기까지의 건강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요구와 논리에 저항하지 않는다.오히려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다.갑갑해 하고 상처받고 아파하면서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어른들을 이해시키고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인다. 여기에 그시절 누구나 한번쯤 가져봄직한 첫사랑의 감정과 우정,담임 최선생(김혜선분)에 대한 체육교사 김선생(신현준분)의 짝사랑이 어우러져 재미를 더한다. 이 영화는 억지 웃음을 만들지 않는다.구구한 설명을 붙이지 않고 절제된 대사와 화면,탄탄하고 짜임새있는 시나리오로관객 스스로가 재미와 감동을 느끼도록 한다.깔깔대고 웃다가 콧등이 시큰한 장면을 여러군데서 만나게 된다. 특히 투수로서 자질이 있으면서도 부모님들의 반대로 야구를 하지 못하는 병수(김철형분)와 야구를 하도록 권유하는 기호(서재경분)가-이들은 상희(김은미분)를 사이에 둔 연적(?)관계이기도 하다-싸우다 함께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장면,아이들이 어렵게 야구부를 결성해 후배들에게 넘겨주는 졸업식 장면에서는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어린이들의 연기도 평소 생활에서 우러나오는만큼 자연스럽고 깜찍하다.모신문사의 현역기자가 야구심판으로 나와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충무로에서는 어린이 영화를 백안시하는 경향이 있다.가벼운 소재인만큼 신인감독들이나 맡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그래서 「영웅연가」 「시로의 섬」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등을 연출해 역량을 인정받은 김유진감독이 이 영화를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영화인들은 『왜 어린이 영화를 만들려고 하느냐』고 만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감독은마구잡이로 옷을 벗기고 눈물이나 짜내게하는 몰가치한 성인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우리의 피부에 와닿는 「가족영화」를 만들었다. 촬영은 정일성씨가,음악은 인기가수 김수철씨가 맡았다.주제곡 「월화수목금토일」은 음반으로도 출시된다. 2년여의 각고끝에 이 영화를 만든 김유진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17일 국도,미도파 시네마,힐탑 시네마 개봉예정.
  • 권영자 정무2장관에 듣는 여성정책

    ◎“탁아시설 확충… 여성사회참여 늘리겠다”/직장별 설치의무화·육아휴직제 검토/성폭력특별법 늦어도 연내 매듭 질것/21세기는 개방사회… 여성도 적극적 삶 개척해 나가야 문민정부 출범과 더불어 보사·환경·정무2에 4명의 여성 장·차관이 대거 기용됨으로써 새로운 여성정치문화의 장이 열리게 되리라는 기대를 모으게 한다. ○재야여성계 포용 그중에서도 여성정책전담부서인 정무2의 권영자장관(56)에 대한 여성계의 기대와 바람은 크다.그것은 권장관의 그동안 행적을 살펴볼 때 누구보다 현장경험이 풍부하고 여성문제를 통찰하고 있는데다 제도·비제도권 여성계를 조화있게 이끌어 여성지위향상을 추진할 수 있는 최적임자란 평가 때문이다. 취임 4개월동안 산적한 여성문제로 한시도 쉴틈이 없다는 권영자장관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18층,난향기 은은한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수수하면서도 깔끔한 느낌이 드는 청회색 수트차림의 권장관은 경상도억양의 조금은 어눌한 말솜씨가 마치 편안한 맏누이 같은 느낌을 준다.그러나 대담을 시작하면서정연한 논리와 강한 의지,안경테너머 예리한 눈빛이 소문대로 외유내강형임을 알게 했다. ­정무2는 여성문제해결을 위한 사령탑으로 알고 있습니다.그런 자리에 여성문제전문가이신 권장관이 취임,그만큼 기대가 큰것으로 알고 있는데 요사이 여성문제는 잘 풀려가고 있는지요.특히 89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됐다 해도 사회관행상 여러곳에 성차별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법과 현실의 차이를 좁히기 위한 어떤 특별한 대책이라도 추진하고 있는지요. ▲지금 여성계는 바로 그런 점들이 문제입니다.즉 법적으로는 남녀차별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돼 있으나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시행까지는 항상 상당한 시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남녀고용평등법에 채용부터 승진까지 전분야의 동등한 대우를 명시하고 있으나 이를 지켜야 하는 고용주들이 눈에 안뵈는 그물을 드리워 실제시행이 어려운 실정입니다.그러나 이미 공무원채용시 이 제도가 지켜지기 시작했고 최근 전국 29개 은행의 여행원제도 폐지로 금융계에서도 여성이 능력만 갖추면 관리직 승진이 가능케 되는등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산업사회 진전에 따른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그러나 결혼전에는 문제가 없던 여성들이 결혼후 육아문제로 어려움을 겪다 도중하차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지난 14대 대통령선거때도 정당마다 탁아문제해결을 대여성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는데 구체적인 탁아시설 확충방안은 있는지요. ▲여성들의 사회진출은 60년대부터라고 봐야 합니다.그러나 그때는 집안에 유휴인력이 많아 별문제가 없었지만 핵가족화로 보조인력이 줄어든 80년대 후반부터 탁아소 확충이 시급한 현안으로 등장했습니다.정부도 91년 영유아보육법을 제정,시행중이나 시설이 크게 부족하고 시설자체가 대부분 저소득층 중심이어서 직장여성들의 어려움이 너무 큽니다.또 일반 근로여성을 위한 주변의 탁아시설이 있다 해도 0∼3세는 거의 불가능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운영시간이 「종일탁아」가 아니라 어려움이 많아 해결책으로 육아휴직제 도입과 직장별 탁아소설치의무화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경북 예천 출신인 권장관은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56년부터 신문기자로 활동했다.신문사에 다니면서 현재 숙명여대 불문과 하동훈교수와 결혼,1남1녀를 낳아 길렀다.지금은 그 자녀들이 자라 손자까지 본 상태지만 아이들이 홀로서기까지 자녀문제로 가슴죄었고 어려운 순간들을 장관 스스로 너무 많이 체험했기 때문에 육아휴직이나 탁아시설 확충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소신이다.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것은 한 가정만의 일이 아니라 건전한 2세국민을 육성하는 일이라는 거시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이런 점에서 앞으로 탁아시설은 취학전 아동은 물론 국민학교 저학년까지 확대될 수 있게끔 학교의 방과후 프로그램개발을 마련중입니다. ­여성의 대거 입각에 이어 최근 여성동장·여성파출소장등 여성의 공직진출이 괄목할만한데 이에 대한 현황과 이를 뒷받침하고 지속시키기 위한 방안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중간관리자 육성 ▲현재 우리 여성계는 중간허리가 너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그 때문에 어떤 정책결정과정에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와도 준비된 인력을 찾기가 힘들지요.행정부내에서도 국장급이 고작 7∼8명에 불과합니다.따라서 중간관리자를 양성,여러곳에서 여성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능력있는 젊은 여성들에게 사법·외무·행정등 각종 고시에 도전할 것을 적극 권장하는 전략을 추진중입니다. ­우리사회에는 집안에 그냥 들어앉아 있는 고학력 주부들이 많습니다.이들은 자녀들이 어릴 때는 별문제가 없으나 자녀들이 성장,자신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 단조로운 가정생활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심하면 정신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기도 하는데 이 전업주부들에 대한 대책은. ▲과거에는 이런 주부들에게 기술을 배워 취업을 하든지 취미생활을 하도록 권했습니다.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도 좋지만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주부들이 물과 쓰레기·영상매체등에 관심을 갖고 감시자가 돼 사회를 새롭게 만드는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지난번 국회에서 성폭력특별법이 일부 법전문가들의 문제점 제시로 무산되고 말았는데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되리라고 보는지요. ▲현재 법사위에 계류중인 성폭력특별법은 법체제면에서 실체법과 절차법이 혼동돼 있고 내용면에서도 성폭력피해자 보호시설설치와 가해자 처벌문제등을 동시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문제 때문에 의견이 맞서고 있습니다.그러나 법제정활동을 위한 소위가 계속 열리고 있어 아무리 늦어도 금년중엔 매듭지어질 것으로 낙관합니다. ­4월말 우리나라가 유엔여성지위위원국에 피선,우리 여성들의 국제무대 진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준비는 어떻습니까. ○휴일엔 시장 들러 ▲우리나라가 유엔 가입국으로 분담금을 내고 또 유엔이 전직원의 35%를 여성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혀 우리 여성들에게도 진출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그러나 앞서 밝힌 것처럼 국제무대에서 우리 여성을 대표해 일할만큼 준비된 인력이 아직 부족,유엔 인턴십훈련을 받게 하거나 아니면 국내에 국제인력훈련시설을 개설,인재를 양성하려고 합니다.또 앞으론 유엔관련회의가 열리면 대표팀에 여성대표를 넣어 현장경험을 넓혀줄 계획입니다. ­우리 민족사에 있어 가슴아프고 부끄러운 유산인 정신대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관련법을 제정,보상을 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신지요. ▲정신대문제는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닌 민족적 수난이자 비극이요 인격파괴입니다.따라서 그 희생자들이 여생이나마 편히 지내도록 해주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로 최근 이들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이 제정됐고 요사이 생활보호·의료보호·생활안정지원금등 동법의 시행령 제정을 추진중에 있습니다. 앞으로 21세기는 정보화사회·고도의 전문직사회·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개방사회로 여성들의 삶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권장관은 따라서 여성들도 앞으로는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책임있는 시민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삶을 개척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일요일이면 5살난 손자를 돌보거나 집(서울 은평구 신사동)근처 슈퍼마켓에서 직접 찬거리를 구입한다는 권장관은 여성운동가라기보다는 우리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상한 어머니나 할머니같다는 생각을 하며 장관실을 나섰다.
  • 수릿날(외언내언)

    TV를 보던 딸 아이가 물었다.『창포가 무엇이에요?』마침 창포의 성분과 향을 첨가했다는 샴푸선전이 나오고 있었다. 순간 당황했으나 「이때다」싶어 40대의 엄마는 어린 시절의 아스라한 기억의 꼬리를 붙잡고 사전까지 들추어 가며 열심히 설명을 했다.「창포과에 속하는 다년초.특이한 향기가 있고 근경은 비후하며 마디가 많은데…」음 이런 설명은 안되겠고 『응,난초나 아이리스하고 닮은 풀인데 말이야 옛날 우리 선조들은 단오날 그 잎과 뿌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았어요.그때는 샴푸도 린스도 없었거든.창포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에 윤기가 나고 잘 빠지지 않는다고 했지.창포물로 머리감고 세수하고 창포뿌리에 수·복의 글자를 새겨 붉은 연지를 칠한 비녀를 머리에 꽂고 붉고 푸른옷을 입기도 했는데 이걸 「단오비음」이라고 해요』 『단오날엔 또 여자들은 그네를 타고 남자들은 씨름을 했지.성춘향이 이도령을 만난 것도 단오날이래요.익모초·쑥등 약초를 뜯어 말리고 햇쑥으로 쑥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이 떡을 수리떡이라고 부른단다.아 참,단오란 말은 원래 중국말이고 우리말로는 수릿날이라고 하지.수리란 위(상)나 높은것(고)을 가리키는 말이야.그리고 또…』단오는 몰라도 서양명절인 밸런타인데이는 기억하는 아이는 모처럼 전통문화교육을 시키려는 엄마의 장황한 설명을 더이상 듣지 않는다. 오늘(24일)은 단오.조선조엔 설·정월보름·추석과 더불어 4대 명절로 지켜졌건만 이제 박제화된 행사나 상품으로서만 존재한다. 정겨운 우리의 세시풍속을 생활속에 되살리는 방법은 없을까? 창포물에 머리감기는 어렵겠지만 「단오선」으로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호에 앞장 설 수 는 있을듯 싶다.본격적인 여름을 대비해 부채를 선물하던 아름다운 풍습을 되살려 평소 못 찾아 뵙던 집안 어른들을 부채나 여름과일을 들고 찾아 뵙는다면 아이들도 단오를 쉽게 기억할수 있을 것이다.
  • 확성기가 있었고…(화제의 소설)

    ◎후기산업사회 증후 비판적 시각서 묘파 실험적 작가정신과 탄탄한 문체로 신세대소설의 지평을 열어가는 젊은 작가 구효서가 「노을은 다시 뜨는가」에 이어 2번째 내놓은 창작집. 3부로 나눠 1부에 표제작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아이 엠 어 소피스트」등 6편의 단편을 실었다.기호학적 인칭도입,파격적 구성,후기 산업사회증후를 비판적 시각에서 그렸다. 2부의 「노래」「개소문」「자공,소설에 먹히다」등에서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상품화될 수 밖에 없는 예술과 문학을,3부 「자동차는 날지 못한다」「누각을 찾아서」「들판위의 여자」를 통해 소시민적 삶에 대한 염증과 애정을 뛰어난 감수성으로 차분하게 서술하고 있다. 구효서지음 세계사 6천원.
  • “고정고객 확보하자” 의류업계 사외보 붐(업계 새 경향)

    유명 의류업체들이 사외보를 적극 활용,고정고객을 확보하고 고객의 흥미를 끌어내기 위한 전략을 동원하고 있다. 제일모직은 「멋을 아는 생활」이란 잡지를 분기별로 3만여부씩 발행,고객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데 의류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참고서로서 활용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유림 매거진」을 격월로 3만부 정도씩 발행하고 있는 (주)유림도 지방 고객들이 우편으로 받아 보고 싶다는 전화가 쇄도,자사의 이미지를 높인다는 차원에서 사외보 발행부수를 늘릴 작정이다. 반도패션은 주로 문화행사 등과 관련한 정보에 비중을 둬 편집하는 「유 앤드 아이」를 계간으로 8만여부씩 내고 있고 에스에스패션은 생활 및 패션 정보를 위주로 엮은 「삶 그리고 멋」을 분기별로 7만부 정도씩 발행하고 있다. 코오롱상사는 20대 직장여성들을 주요 대상으로 한 「멋사랑」이란 제목의 사외보를 격월로 2만여부씩 발행하고 있는데 고객들의 요구에 부응,곧 발행부수도 늘리고 내용도 레저·스포츠 등을 포함해 다양하게 엮을 계획이다. 91년 사외보 발간을 중단한 논노는 자사의 이미지 재건을 위해 올해안에 재발행한다는 목표를 세웠고,이­랜드도 올해안에 월간 혹은 격월간으로 사외보를 창간할 예정이어서 앞으로 사외보를 통한 의류업체들의 이미지메이킹 경쟁이 치열해 질 전망이다.
  • 연극인 강계식씨(이세기의 인물탐구:26)

    ◎“무대를 신앙으로” 외길인생 50년/열과 성으로 완벽하게 배역 소화 “관객 매료”/“40∼50년대 최고 명우” 「춘향전」 등서 불꽃연기/진실일념으로 삶 일관… 고 이해랑씨 “진정한 연기자” 칭송 햄릿이나 위대한 줄리어스 시저는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관객의 감동과 갈채를 한몸에 받는다.하나의 연극에서 주역으로 발탁된 이들은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며 자신의 기량을 활기차게 펼친다.관객은 그때마다 환호하며 주인공의 희비에 침몰하듯 매료된다.그때도 이를 희생적으로 뒷받침하는 단역배우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그들은 있는듯 없는듯 미미하게 존재할 뿐,모든 영광과 기쁨은 주인공의 차지다. 원로 연극배우 강계식씨의 연극인생은 언제부턴가 단역에 머물러있다.흥분한 어조로 「정의」와 「불의」에 대하여 「사랑」과 「미움」에 대하여 열렬히 외치는 극중 주인공은 이미 아니다. 역할이 크든 작든 대사가 짧든 길든 한마디의 대사가 없을 때라도 그의 역할은 작품전체를 구성한다는 사명감에 투철하다.따라서 어떤 배역이 돌아와도 그 역할에 완벽하게 용해되어 한낱 연기가 아닌 무대의 한 모습처럼 형형하게 서있다.그리고 확실한 목소리와 움직임과 형상을 보여준다.그의 나이에서는 연극속의 각 배역과 그 배역들이 하나같이 살아 숨쉴 수 있도록 섬세하게 보조하는 위치다. 어차피 하나의 역할은 무대에서 창조될 뿐 현란한 조명과 불꽃같은 연기는 폐막과 함께 속절없이 소멸된다.주역의 영광도 단역의 비감도 일순간에 지나지 않아 또다른 다음 역할을 위해 새로운 삶속에 곤두박질치듯 파고들어야 한다. ○자신의 역할 예감 연극에 몸담은지 50년이 넘었건만 강계식씨는 지금도 첫무대에 서는 듯한 긴장과 설레임을 떨치지 못한다.무대는 그에게 있어 고통이자 환희다.삶이자 희망이며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대본을 받아든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역할을 귀신처럼 예감한다.그것이 누구의 작품이며 연출자가 누구냐에 따라 인물이 갖는 사회적 시대적 환경과 성격,인품과 직업,체질과 용모를 몸속에 형성한다. 동네노인으로 나와 서성거리는 역에 불과할 때도 자신의 움직임이 어떤 모양새로 연극을 바쳐주느냐.연극의 흐름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를 자연스럽게 몸짓해준다.번뜩이는 열기와 광기,돋보이는 개성을 어필시킬 기회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다만 다른 연기자의 대사와 동작을 효과적으로 살려내고 대사와 대사사이,동작과 동작사이의 침묵을 묵시적인 연기로 다음 장면에 연결시킨다.그에게 있어서의 연극은 「신앙이자 종교」다.역할을 맡을 때마다 「내 생애 최고의 역할」로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다. 연습시간에도 언제나 남보다 일찍 나온다.두시간 공연에서 맨 마지막 장면의 한 동작을 위해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극의 흐름에 호흡을 맞추고 있다.무대를 떠나지 않는 그를 가리켜 연출가 오사양씨는 「선생이 창출하는 역은 항상 진실과 신뢰가 뒤따르고 높은 격조와 깊은 함축을 시사하고 있다」고 존경해 마지않았다.그의 연극초기시절부터 연극활동을 함께 해왔던 고 이해랑씨는 「작은 역이라도 열과 성을 다해 몰두하는 진정한 연기자」가 있음을 언제나 자랑삼았다.그리고 「그의 나이와 그의 성격에 맞는 역할로 그의 노년을 빛내주고 싶다」고 별러왔으나 숙제를 마치지 못하고 먼저 길을 떠났다. 물론 그는 처음부터 조역·단역배우는 아니었다.40년대와 50년대 우리 연극사에서 그는 단연 뛰어난 주역배우의 한사람이었다. ○토월회극 보고 꿈꿔 특히 유치진작 서항석연출의 「춘향전」에서의 이도령은 유치진씨가 살아생전에 「40년대 강계식의 춘향전은 지금까지 최고」였다고 손꼽던 무대다.그는 당대 명우였던 유계선 김양춘을 상대로 수차례의 「춘향전」앙코르 무대를 탄생시켰고 당시의 극단 현대극장 극단 민예와 청포도·신지극사·신청년·창조·상록극회에 이르기까지 각 극단의 간판배우로서 관객을 매료했다. 강계식씨가 연극을 하게된건 보통학교시절 고향인 충남 온양에 지방공연왔던 토월회의 연극 「디아블로」를 보고나서다.삭막하고 쓸쓸한 어둠을 가슴속에 뿌렸던 이 연극을 보고 그는 막연히 연극의 주인공이었던 이백수같은 배우를 꿈꾸게 되었다. 후에 서울로 올라와 경성실천상업학교에 다닐때도 연극구경에 미쳐있었고 북경에 있는 일인회사에 다니다가 연극을 포기할수없어 39년에 귀국,같은해 유치진 함대훈 이해랑씨가 주축이 된 극단 현대극장의 부설 연기자 양성소인 국민연극연구소에 들어갔다.3백명의 응시자중 10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하여 본격적인 연기수업 받는동안에는 꿈에 그리던 토월회의 이백수씨와 「흑룡강」을 공연,연구소 수료후 41년 유치진작 서항석 연출의 「대추나무」에서 주인공인 「동욱」역을 맡아 부민관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그때 광화문 네거리까지 길게 늘어섰던 구경꾼의 행렬은 지금 생각해도 잊을수없는 감격이다.충청도 양반다운 예절과 겸손이 몸에 밴 그는 말과 행동이 한결같이 의연하여 연출자·선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모든 공연에서는 주인공을 도맡았다.남부럽지않은 주인공시대를 마음껏 누린 황금기였다. 그러나 50년 극단 창조를 창립하고 「황진이」지방공연중 6·25를 만나 가족을 고향에 남겨둔채 부산으로 피란,피란지에서 영화배우 조미령의 남편인 이철혁을 비롯,변기종 김승호 최남현과 함께 박동근 연출의 중국고전인 「추해당」공연을 갖기도 했다.주인공엔 그와 유계선이 캐스팅됐다. ○전례없는 흥행 기록 다른 사람들은 단칸방이나 판잣집이라도 제집이 있었지만 그는 국제시장이나 남성여고 교실에서 합숙으로 새우잠을 자던 때여서 도무지 연극연습을 할수가 없었다.그는 몸이 달아 뜬눈으로 밤을 밝혀야했다.공연이 임박하자 이를 보다못한 유계선씨가 연출자에게 『연극을 살리기위해선 배역을 바꿀수밖에 없다』고 제의했다.그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말에 눈앞이 아찔했다.배우가 배역을 뺏긴다는 건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단한번도 선배들을 거역해본적이 없던 그는 「죽을 결심」으로 연출자인 이철혁씨를 찾아갔다. 『개런티는 안줘도 좋다.연습할수있는 방만 해결해달라.나는 죽어도 이 연극을 해내고야 말겠다』고 사정했다.이렇게해서 남포동 해변가에 하숙방을 얻어 1주일을 앞두고 동작연습 대사연습에 들어갔다.이 연극은 부산극장에서 상연되어 전례없는 흥행을 기록했고 사람들은 『그의 진실한 몸짓은 바위라도 뚫을수 있다』고 호평해주었다.자존심을 굽힌것이 결국자존심을 지킨 결과임을 경험한 순간이다. 그는 충분한 연습으로인해 무대에서 실수한 적은 없다.동랑청소년극단의 「방황하는 별들」에서 손주뻘의 어린 연기자들과 공연할때도 충실하게 자신의 할바를 지키면서 미숙한 연기자들을 말없이 감싸주었다.「일체의 영합을 배격하며 연극의 공리적 속념을 거부하고 진실일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잃지 않은 것이다. 인생을 관조하는 노년의 노련미와 진실의 모순속에 방황하는 지성인,삶의 무게가 힘겹게 느껴지는 스산한 서민층,숱한 인생을 재현하고 체험하면서,그가 연극에서 확인한것은 인생은 「무상」이며 「고통이 할퀴고 간 사랑이라야만 진실하다」는 진리다.그리고 『언제 어느장소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있건 그것은 그에게 있어선 연극을 위한 터득이었으며 연극은 그의 인생을 터득케해준 바로미터였음을 술회한 바 있다. 그는 극단 현대극장시절의 동료였던 이용남여사(68)와의 사이에 4남3녀. 『7남매의 등록금을 대느라고 돈도 많이 꾸러다녔고 울기도 많이 했다』『세 아이가 한꺼번에 대학에 다닐 때는 다른아이는 시험에서 떨어져으면 한적도 있으나』7남매가 모두 대학에 합격하여 장남(희열씨·47)은 서울대공대 졸업후 현재 미국 컴퓨터회사에 근무,6남매가 모두 출가하고 지금은 노부부가 이대미대를 졸업한 막내딸과 도봉동아파트에 살고있다. ○“연극인생 후회없어” 주역의 뒷자리,그의 생애가 헤아릴수 없는 시련과 고통 가난의 슬픔으로 얼룩졌다해도 그는 결코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다.황금이 정신을 지배하는 시대에서 그의 연극은 황폐한 인간사이에 구원의 빛을 뿌리고 있음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이제 더이상 자기자신이 적나라한 정오의 햇살이 아님을 그는 알고있다. 『이로스야!이 갑옷을 좀 벗겨다오.하루일이 끝났다』연극 시저에서의 마지막 대사처럼 어느날 그도 무대위에서 연극의상을 벗게 될지 모른다. 오로지 정직하게 천직을 지켜온 이 노 예술가의 가슴은 값지고 아름다운 금빛훈장으로 현란하게 장식되어도 다하지 못할것 같다. □연보 ▲1917년 4월21일 충남 온양출생(호 화방) ▲1937년 경성 실천상업학교 졸업 ▲1938년 지방 관리 양성소 수료 ▲1940년 극단 현대극장부설 국민 연극연구소수료(연수기간중 유치진작 서항석연출 「순정해협」「흑룡강」 함세덕작 허집연출 「전설」출연) ▲1941년 극단 현대 극장입단 유치진작 서항석연출 「대추나무」 정식대뷔,지방공연외 「청춘」「봉선화」「맴도는 남편」「춘향전」「에밀레종」「산적」「낙화암」「무장선샤먼호」외 ▲1945년 극작가 이광래와 극단 민예 극장 창단 「카츄샤」「젊은그들」「민족의 전야」「백일홍 피는집」「동학군」「피는 물보다진하다」「피어린 역사」「지옥과인생」외 ▲1946년 연출·극작가 이상백등과 극단 청포도 창단,「초원의 발전」 ▲1947년 극단 신지극사 창단 「태양의 그리워」「언덕에 꽃은피고」 ▲1947년 중앙극장 전속극단,극단 신청년 창단 「오남매」「혈맥」「사랑의 가족」「상해야화」「골든보이」「어머니와아들」「여죄수의 고백」「공작부인」「송화강의 애수」「반역자」「사육신」외 ▲1950년 극단 창조극단 창단「황진이」지방공연중 6·25 ▲1951년 상록 극회창단 ▲1953년 극단 신협 창단멤버입단 「빌헬름텔」「햄릿」「오델로」「맥베드」「줄리어스 시저」「붉은장갑」「마의태자」「원술랑」「맹진사댁경사」「나도 인간이 되련다」「한강은 흐른다」외 ▲1957년 국립극단입단 「인생차압」「딸들자유연애를 구가하다」「가족」「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대수양」「카라마조프의 형제들」「성웅 이순신」「죄와벌」「손탁호텔」「마을의 봉팔이」「순교자」 80년대까지 70여편 ▲1980년∼현재 극단 배우극장 소속 「천일의 앤」「정복되지 않는여자」「분노의 계절」「신장한몽」「어머니」외 「그래도 우리는 볍씨를 뿌린다」「이대감 망할대감」「붉은 카네이션」「밤주막」「출세기」등 타극단 공연 참가 ▲1986년 고희기념공연 윤정선작 주요철 연출「나는 어이 돌이되지 못하고」 등 2백여편 1946년부터 영화 「청춘의 행로」「쌍룡검」외 TV드라마등 1백여편. ▲국립극단 부단장·총무역임. 86,동아연극상 특별공로상 87,백상연극상 특별상 92,문화훈장 옥관장 서훈·고희기념문집 발간
  • 「민속적인 삶의 의미」(화제의 책)

    ◎민속속에 담긴뜻 수필형식으로 정리 우리 조상들의 생활을 통해서 전승해온 민속속에 담긴 의미와 기능에 대해 수필형식으로 정리한 민속수필집. 지은이는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로 20여년동안 구비문학과 민속학을 강의해온 경험을 쌓아왔다.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통과의례·세시풍속·속담·옛날이야기 등에 담긴 의미를 되새김질해준다. 예를 들면 「오리고기를 먹으면 손가락·발가락이 붙은 아이를 낳는다」같은 임신부의 금기사항이 들어있다.아이의 첫돌때 하는 돌잡이의 속뜻,「쥐뿔도 모른다」는 속담의 유래,동지때 팥죽과 새알심을 먹는 이유등 우리가 생활속에서 행하는 민속에 대한 글 69편이 포함됐다. 최운식지음 한울 5천5백원.
  • 어린이의 보약/권용주 권씨한의원(건강한 삶)

    계절만 바뀌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감기로 밤새 호흡이 곤란한 아이 옆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나면 어느 부모를 막론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만한 뾰족한 수가 없는지 고민하게 된다.아이를 데리고 한의원을 찾게 되는데 막상 어떤 약을 어떻게 먹여야 효과적인지 몰라 망설이기 일쑤다.어린이 보약은 식욕부진과 편식 또는 감기가 오랫동안 낫지않고 계속 재발하듯 반복감염되는 경우나 발육상태가 정상치에 미달되는 경우에도 치료와 개선 효과가 있겠지만 오히려 면역기능을 강화시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주는데 복용 목적이 있다.이미 누차의 임상실험을 통해 이 사실은 확인된 바 있다.일반적으로 소아의 보약에는 녹용이 많이 쓰이는데 녹용이라는 약재는 어디까지나 보조제로서 여러가지 다른 약재와 복합적으로 처방되어 약효를 상승시키기 위해 첨가되는 것이므로 녹용자체보다는 오히려 주가 되는 기본 약처방이 그 체질과 증상에 잘 맞아야 한다. 어린이가 특별한 질환이 있는 경우엔 그 병이 나을 때까지 약을 복용시켜야 하겠지만,일반적으로 체중과 신장을 체크하고 진맥을 해봐서 특별한 질환이 없는 아이에게 질병의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라면 대개 자신의 나이를 기준으로,예컨대 세살이면 세첩분량 또는 그 이하의 보약을 복용시킨다.그러나 평소 잔병치레를 많이 하고 발육상태가 정상치에 미달이면 나이의 두배정도의 첩수를 사용하는게 좋다.영양과잉으로 비만증이 심한 어린이를 제외하고는 보약을 먹여서 해가되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정식으로 한의원을 이용한다면 일단은 부작용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한편 어린아이에게 보약을 많이 먹이면 머리가 둔해진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는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혹시 식욕을 왕성하게 만들어 줌으로써 운동부족이 겹치면 살이쪄서 몸이 둔해지는 일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보약으로 체력을 돋구어 줌으로써 뇌의 발육만 나빠지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여성문학/신세대사고 뚜렷/공지영「무소…」·조문경「시를 짓듯…」등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의 시각 담아/이전 경향과는 구분… 「노라 콤플렉스」 벗어 우리의 여성문학은 「노라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있는가.박제된 인형처럼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남편과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뛰쳐나간 노라.1970년대 중반이후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성에 관한 문제를 여성문제의 본질로 다루며 결혼·가족제도의 거부로 이혼과 가출등을 선택해왔던 오늘의 여성문학 현주소가 자못 궁금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지난 연말부터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는 여성문제를 다룬 여성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서 찾아진다.왜냐하면 이전의 경향과는 구분되는 소설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소설가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 주문경의 「시를짓듯 죄를짓다」,박완서의 중편 「꿈꾸는 인큐베이터」등이 그것이다. 앞의 두 작품은 30대의 비교적 젊은 여성작가들의 작품으로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을 학교에서나마 교육받고 자란 세대의 시각을 담고 있다.여성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방법도 새로운 세대의 경험을 반영한다.이혼이 결과적으로 또 다른 남성과의 결합으로 이어지는식의 불완전한 해답을 제시했던 일부 기성작가들의 작품과는 분명히 새롭게 구분되는 것이다.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대학동창인 혜완,영선,경혜등 세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다.사고로 아이를 잃으면서도 홀로 서야했던 작가인 혜완,남편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의 꿈과 재능에 대한 욕심을 유보시켰다 결국 자살한 영선,의사인 남편의 외도를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행복하기를 포기하고 사는 경혜.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모두 「여성」이기에 받아야했던 상처를 안고있다. 「누군가와 더불어 행복해지고 싶었다면 그 누군가가 다가오기 전에 스스로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혜완의 독백.무소의 하나뿐인 뿔처럼 고독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결연히 서있는 그녀를 발견하게 된다.이 작품은 또 「모성」까지도 여성에 대한 족쇄로 삼는 억압구조를 폭로하고 있다. 조문경의 「시를짓듯 죄를 짓다」는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치원선생을 하는 한 가정주부의 이야기를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의 허구를 파헤친다.아버지의 권위와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유의 길」로 결혼했던 김인혜.그러나 결혼은 자신을 오히려 물화시키고 희생과 침묵,악쓰기만 강요한다.소통이 안되는 「불임의 언어」만 남긴 식민지생활과 다를게 없는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것을 결심한다. 「공의와 자비의 저울대가 반듯한 진짜 인간하고만의 간음을 통해서라도 자아를 탐색하려는 나의 혁명」이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그러면서 훨씬 바람직하고 당당한 자아탐색법은 딸에게 넘기고 있다. 문명비평적인 시선에서 낙태를 다루고 있는 박완서의 중편 「꿈꾸는 인큐베이터」는 「살아있는 날의 시작」「서 있는 여자」「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등에 이어 여성문학의 지평을 넓힌 작품으로 보인다.남편의 외도나 남녀관계의 종말,가정에서 경험하는 중년여성의 소외등과 같은 위기를 통해서만 자신의 억압적 상태를 정확히 인식한 우리 여성문학의 주인공들.「집」을 박차고 나옴으로써 문제를 해결코자했던 이들은 20년이 지난 지금 「노라 컴플렉스」에서 서서히 벗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 보호관찰소 보호위원 이경재씨(봉사하는 삶:7)

    ◎비행청소년 거두어 돌보기 6년째/소년원 나온 사람 자식처럼 감싸/사랑으로 지도·교화… 15명을 선도/“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산다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것” 외국어학원과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있는 이경재씨(47·서울 강동구 성내동)는 대학 다니는 아들을 두고 있지만 수시로 남의 자식들을 거두어 돌본다. 이들은 한때의 잘못으로 소년원을 다녀온 이른바 비행청소년들.이씨는 법무부 서울보호관찰소 보호위원 자격으로 이들 비행청소년들을 돌보고 있다.보호위원이란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일반인과 같이 생활하게 하면서 지도·교화하여 재범을 방지하는 일종의 후견인으로 무보수 자원봉사자인 이씨는 90년 국가로부터 보호위원에 지정됐다. 대개 소년원을 거쳐온 비행청소년들을 돌보는 일은 친자식 돌보는 것보다도 훨씬 정성과 인내를 요하는 버거운 일이지만 이씨는 이 일을 6년째 계속해오고 있다.자주 연락을 취하고 적어도 보름에 한번쯤은 만나서 이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상처난 마음을 다독여주는 친근한 말벗이 되어준다. 『미숙한 자기통제력 때문에 호된 경험을 겪었던 청소년들이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인간미가 넘쳐흐르고 자식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씨가 현재 만나는 보호청소년은 고등학교 2학년때 폭행죄로 소년원에 구치됐다가 지금은 이씨가 알선해준 봉제공장에서 열심히 일다니는 부군(20)이다.부군을 만나면 이씨는 스포츠 음악 영화얘기 등으로 공감대를 형성하지만 특히 「책의 해」인 올해에는 책을 선물하고 함께 읽은 책에 대해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기회를 마련한다.일방적인 설득이나 훈계보다 책을 통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도덕규범을 배우고 인격을 넓힐수 있게 할수있을 뿐만아니라 생활에 대한 정보도 제공할수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무엇보다 그들이 갖는 갈등과 번민을 사랑과 이해로 감싸주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이씨는 실제로 이같은 사랑의 대화로써 지금까지 15명의 비행청소년들을 갱생의 길로 인도했다. 『이들이 학교에 잘 다니거나 직장생활을 잘하는 것을 보는것은 큰 기쁨이고 보람입니다.또 부모님께 잘 하면서 한때의 잘못을 뉘우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인생은 참 고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씨가 비행청소년 선도 자원봉사일에 뛰어든 것은 지난 87년.국민학교시절부터 고학생들의 어려움을 익히 보며 자랐던 그가 힘닿으면 그들을 돕고자 마음먹고 있던중 우연히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을 알고 찾아가 소년보호에 관한 강습을 받고부터였다. 이씨가 처음 맡았던 비행청소년은 폭행죄로 소년원에 갔었고 친척들로부터도 외면을 당하던 아이였는데 그가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자 부모들도 자식에게 사랑을 더 쏟고 아이도 올바른 길로 나아갔다면서 비행청소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처음에는 불량한 청소년들이라 조금 겁을 먹었었는데 이제는 그들로부터 인간은 선하게 태어난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케됩니다』 그러나 대부분 집안이 어려워서 한번 이사를 가면 연락이 닿지 않아 안타깝다는 그는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겠지요』라는 말로 그가 선도했던 청소년들에 대한 궁금증의 자락을 접을수 밖에 없다. 자원봉사로 시작한비행청소년 선도가 이제 신념처럼 되어 대학에서 교육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씨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남을 위해 사용하고 더불어 사는 마음을 갖는다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라며 청소년선도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길 바랐다.
  • 여우 마를레네 디트리히/외동딸이 전기 펴내 화제

    ◎“어머니는 탕녀에 동성애자” 솔직히 고백 독일 출신으로서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한시절을 주름잡았던 미모의 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91세로 1992년5월6일 파리의 몽테뉴가의 아파트에서 세상을 떠난지 8개월이 지난뒤 그의 외동딸 마리아 리바가 쓴 전기가 출간돼 화제가 되고 있다. 플라마리옹 출판사에서 나온 8백여쪽짜리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관심을 끄는 것은 혈육인 딸이 직접썼다다는 점과 어머니의 삶을 미화하지않고 대스타의 어두운 면을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풍기는 분위기는 때로는 천사와 같이 아름답고 때로는 매혹적이면서도 귀족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고고함이었다.딸이 본 어머니는 이기적이며 솔직하지 않고 냉혹하며 탕녀적 기질에다 동성애 성향까지 지닌 복잡한 면면을 지니고 있다. 이책에서 마리아 리바는 자신이 사춘기때 레스비언인 가정부에게 처녀성을 잃었는데 이렇게 되기를 어머니가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마를레네가 자신처럼 아이 때문에 어려운 처지가 안되도록 자기딸을 레스비언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마를레네는 가정부의 손에 딸을 맡겨 두고 별로 돌보지 않았다.마리아는 방문이 잠겨 있을 때는 엄마를 피곤하게 하지 말라는 엄명을 지켜야 했다.애정 행각을 위해 딸을 스위스의 기숙학교에 보낸적도 있다. 마를레네는 슬픈 어조로 동생 엘리자베스가 벨젠에 있다고 말하곤 했는데 벨젠은 나치 강제수용소가 있는 곳이어서 듣는 사람들은 수용소에 감금된 것으로 알았다.마를레네는 동생이 수용소에 감금돼 있지 않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반나치운동가로서의 자신을 치장하는데 이를 이용한 것이었다.후일 동생 부부가 나치에 혐력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다음부터는 동생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마를레네의 화려한 남성편력과 에디트 피아프 등과의 동성연애는 딴 전기작가들이 쓴 것과 대체로 일치한다.1930년의 출세작 「푸른천사」시절의 폰 슈테른베르크를 비롯하여 모리스 슈발리에,존 길버트,더글러스 페어뱅크스,메르세데스 데 아코스타(시나리오 작가),에리크 마리아 르마르크,장 가뱅커크더글러스,율 브리너,프랭크 시내트라 등등과 관계를 사졌다.특히 율 보리너를 열애해서 50세의 아이임에도 그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브리너는 이때 30세). 나이 50에 몸은 30세,마음은 16세였다는 그녀로서도 반투명 장식의상으로 늙음을 감추려 노력해야 했고 이 시도는 성공을 거두어 「살아있는 미인상」 「세기적 각선미」의 명성은 좀 더 연장될 수 있었다. 어머니를 독일의 묘지에 안장한 뒤 그 전기를 쓴 마리아는 68세의 노인이며 42세의 아들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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