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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모­세자빈­이혼녀… 파란의 36년/영욕의 삶 마감한 다이애나

    ◎81년 20세에 동화같은 결혼식/찰스 외도에 5차례 자살기도/잇단 스캔들에 결국 96년 이혼 95년 다이애나가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간통사실을 인정하면서 영국왕실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고 찰스 왕세자에 대해 좋은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몰아 붙였을때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여론은 비난보다는 동정 쪽이 우세했었다.그러나 합의이혼한 후에도 파키스탄의 재벌 구루 랄바리,심장전문의 하스네트 칸 등과의 염문설이 끊임없이 터져나오자 비난도 그만큼 커져갔다. 이처럼 다이애나에 대한 비난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그녀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사진을 많이 찍히는 여인이었다.그녀는 이혼후 전직 왕세자비 및 영국의 친선대사라는 자신의 직위를 충분히 활용,불우아동 돕기라든가 마약 및 에이즈 퇴치를 위한 사회활동 등에 매우 열성적으로 매달림으로써 자신의 좋은 이미지를 지켜나갔고 이를 위해 언론에 사진찍히는 것을 한편으로는 즐기는듯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전세계 여성들의 선망과 언론의 각광을 한몸에 받았던 다이애나(향년 36세)의 인생역정은 갖가지 구설과 그로 인한 영국왕실과의 불화의 연속이었다. 백작의 딸로서 다이애나 스펜서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가 영국 왕실과 기구한 인연을 맺은 것은 81년7월29일 찰스 왕세자와 ‘동화같은 결혼식’을 올리면서부터.당시 그녀의 나이 20였으며 찰스는 32세였다. 첫아들 윌리엄에 이어 둘째 해리 왕자를 낳을 때까지만 해도 순탄해 보이던 이들 부부의 결혼생활은 그러나 찰스가 결혼후에도 옛 애인 카밀라 파커 볼스와 재회를 계속해온 것이 알려지면서 파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스트레스와 정서불안으로 다식증에 걸려 고통받으며 5차례에 걸쳐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던 다이애나는 결국 자신도 간통이라는 사련의 길에 빠져들었다.이들 부부를 둘러싼 스캔들이 연일 영국신문을 크게 장식하자 결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혼을 권고했고 96년 합의이혼에 이르렀다. 다이애나는 죽기 며칠전인 지난주 프랑스 르몽드와의 회견에서 자신은 영국을 떠나고 싶지만 아이들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등 어머니로서의 고뇌를 드러내 동정을 사기도 했다.이혼하면서까지 막대한 위자료 등으로 여인들의 선망을 받았던 다이애나에 대해 AP통신은 ‘모든 것을 다 소유했지만 단 한가지 행복만은 갖지 못했던 여인’이라고 쓰고 있다.
  •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2’ 동숭씨네마텍서 방영

    ◎‘정신대할머니 삶’ 담은 방화 23일 개봉/신분 스스로 밝히고 당당히 살아가는 모습 그려/삶의 터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중심으로 전개 일제 강점기때 일본군에 끌려가 위안부 노릇을 해야만 했던 일본군 위안부(정신대) 출신 할머니들의 요즈음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낮은 목소리­2’(감독 변영주,제작 기록영화제작소 보임)가 23일 서울 동숭씨네마텍에 오른다. 이 영화는 지난 95년 4월 장편 다큐멘터리로서는 처음으로 일반 상영관에서 개봉됐으며 야마다카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를 비롯한 국내외 영화제에서 상을 휩쓴 ‘낮은 목소리’의 후속편. 전편이,위안부로 강제 연행된 과정과 위안소에서의 생활 등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고,그들의 마수에서 벗어난 뒤 최근에 이르기까지 겪은 삶의 고통과 회한을 다루었다면 2편의 주제는 전혀 다르다.곧 위안부 출신임을 스스로 밝힘으로써 새로 형성된 주위의 편견을 극복하고 당당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는 할머니들 삶의 터전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중심으로 전개된다.69∼79살에 이르는 할머니 일고여덟명은 텃밭에 농사를 짓고 닭을 키우며 활기차게 살아간다. 아이 머리통보다 큰 호박을 이고 뒤뚱걸음을 하다 쏟는가 하면 양계장을 치우면서는 “닭똥 냄새때문에 영감도 안 붙겠다”고 투덜거리기도 한다.때로는 술에 취해 흥겹게 춤추고 노래하기도 한다. 할머니들은 이제 남을 원망하거나 위안부였던 과거를 끝없이 부끄러워 하지는 않는다.호박이 크면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줄 생각부터 하고,자신이 겪은 일을 젊은이들이 제대로 알아 역사의 교훈을 배우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나 할머니들에도 바램은 있다.다시 태어난다면 여느 여자들처럼 결혼해 남편사랑도 받아보고 배불러 아이도 낳아보고 싶은 것이다.다만 김순덕 할머니(76)만은 “남자로 태어나 군인이 되겠다”고 했다.일본군들에게 당한 분풀이를 하고 싶은 걸까.할머니는 “군인 가서 이 나라를 지키고 싶어.빼앗기고 짓밟힌게 너무 억울하고 원통해서”라고 말했다. 영화는 한편으로 강석경 할머니(1929년 생)의 투병과 죽음도 함께 보여준다.강 할머니는 지난 92년 위안부 출신임을 처음 공개한 다음 일본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운동에 앞장선 주인공.강 할머니는 95년 12월 폐암 말기임을 통고받아 투병하다 지난 2월 결국 눈을 감았다. 변영주 감독은 “다시는 체념하며 살지 않겠노라는 선배여성들의 당당함이 있기 때문에 이 영화는 할머니들과 함께 만든 출사표”라고 선언했다.그러나 꽃다운 나이에 끌려가 몸과 영혼을 짓밟힌 그들의 과거가 여성만의 문제일까.영화는 부끄러워 할 사람은 나라를 잃고 누이들을 빼앗긴 우리 모두임을 통렬하게 일깨워준다.
  • 발원지 낙고하촌(흑룡강 7천리:1)

    ◎중·러 국경따라 2,900㎞ 장강 굽이굽이…/“사랑에 눈먼 흑룡이 천지용왕의 애첩 용녀 탐내어 싸움하다 지쳐 누워버린 형상이…” 중국 동북대륙 북쪽 끝자락의 흑룡강,우리 한민족 상고정신이 아직 아련한 장강입니다.그 강유역에서 한족과 더불어,또 다른 소수민족과 함께 근·현대사를 살아온 조선족 삶의 이야기 ‘흑룡강 7천리’를 연재합니다.중국 연변의 조선족 작가 유연산씨가 집필하는 이 시리즈의 사진물은 서울신문 사진부 김윤찬 기자가 동행취재했습니다.하얼빈에서 대흥안령을 돌아 흑룡강 발원지에 도착한 작가와 기자는 장장 2천900㎞의 강유역을 돌고 있습니다.이 시리즈는 조선족의 어제와 오늘은 물론 중국변방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소개할 것입니다.아울러 강 건너 러시아의 속사정도 간간이 들여다 볼 예정입니다. 흑룡강은 사랑에 눈이 먼 흑룡이 변해 강이 되었다는 전설을 안고있다.백두산 천지에 사는 용왕의 애첩 용녀를 탐내어 칼을 휘두르며 싸움을 걸었던 흑룡이 먼저 지쳐 누워버린 형상이 흑룡강이라는 것이다.그런 전설속의 거룡처럼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길게 누운 흑룡강은 동북변방의 계하를 이루었다.그러니까 중·러 국경의 장강인 것이다. ○흑룡강이름 36가지나 그 발원지인 흑룡강성 막하현 흥안진 낙고하촌에서 하류 무원까지 길이는 2천900㎞.러시아 경내로 이어진 우수리강까지 합하면 4천478㎞나 되었다.중국경내로 흐르는 길이만 따져도 한국의 이수로 7천리에 꼬리가 좀 붙는다.중국 제1의 강 황하다음인 흑룡강은 만족어로 사하렌우라다.내내 검은 강이라는 뜻이다.옛 문헌을 들여다 보면 흑룡강은 자그마치 36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강의 발원지 막하현 흥안진 낙고하촌으로 가는 길은 아주 멀었다.하얼빈에서 대륙 동북의 마지막 정거장 막하역까지 기차만 꼬박 28시간을 탔다.그러나 여러군데 역을 징검다리 삼아 열차를 바꾸어 타는 바람에 실제는 하얼빈을 떠난지 닷새만에 막하역에 도착했다.하오 9시였는데,바깥은 아직 낮처럼 밝았다.극지에서 가까운 북반구의 여름은 그렇게 느지감치 저물었다.변방의 북지를 실감하면서 역구내를 빠져나왔다. ○밤10시후엔등잔불 신세 이번 흑룡강답사에는 첫날부터 행운이 따라주었는지도 모른다.막하행 열차안에서 만난 조선족출신의 국경경비대 장교가 발원지 답사의 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발원지 일대는 모든 민간인이 얼씬도 못하는 국경지대 군사보호구역으로 되어있다.그래서 조선족출신 장교는 군초소를 통과하는데 필요한 소개장을 써주었다.그의 도움으로 발원지는 물론 또다른 민간인 통제구역인 북극촌까지 답사하는 특전을 누렸다. 종착역 막하에서 낙고하촌까지 거리는 100㎞가 실했다.그리고 낙고하촌에서 흑룡강 발원지까지는 20㎞거리였는데,2개부대의 국경경비대를 거쳤다.흑룡강 발원지는 사실상 흑룡강성이 아니라,내몽골 자치구 어얼구나하시 언얼하다진이었다.어얼구나 하라는 이 물줄기는 러시아에서 흘러내려온 스러카하(석늑객하)와 곧바로 합류했다. 그러나 ‘흑룡강 원두제일비’라고 새긴 돌비석은 발원지를 비켜 나 흑룡강성 경내에 자리잡았다.그래서 발원지를 막하현 흥안진 낙고하로 잡는 계기가 되었다.흑룡강성 경내의 첫 국경비이기도 한 이 비석을 지키기 위해 1개중대의 국경경비대 병력이 주둔해있다. 그렇듯 국경경비대 병력들뿐인 발원지를 벗어나 흑룡강성 맨 윗동네인 낙고하촌으로 내려왔다.180여명의 주민들이 사는 이 마을은 문명과는 약간 거리가 멀다.80년대만 해도 광솔이나 석유로 불을 밝힐 정도였다.지금은 디젤발전기로 초저녁까지는 전깃불을 밝히고 있으나 밤10시 이후는 등잔불 신세를 지고 있다.이 마을 역사는 아주 짧다.60년대 초까지만해도 인가가 없는 무안지경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산동성 유방사람인 류학심이 식솔을 거느리고 들어와 처음 터를 잡았다.채금꾼들이 임시로 들었던 토굴에 짐을 풀었던 그는 이제 예순세살의 노인이 되었다.산동인 특유의 끈질긴 삶을 산 덕분에 마을에서 첫손을 꼽는 부자로 살고있다.15㏊의 땅에 농사를 지으면서 상점과 여관을 경영하는 그는 자동차와 트랙터까지 소유했다. 처음 세 식구가 들어왔지만 지금은 아들 셋,딸 셋에 손자들이 태어나 식솔도 스물세명으로 불어났다. 낙고하촌 사람들 가운데 70%가 산동인이다.그것도 유방 사람들인데,모두 류학심이 불러들였다.땅이 비좁은 산동에서 복작대고 사느니 보다는 북지라 할지라도 넓은 땅을 찾아온 사람들인 것이다.이들은 본래 낙별하였던 마을 이름도 뜻이 좋지 않다고 해서 낙고하로 고쳤다.이 마을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 마을 이름도 바꾸었는지 모른다.더러는 고향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했으나,지금은 마음을 고쳐 먹고 눌러 앉기로 했다는 것이다.요즘 고향을 들렀던 마을 사람들은 일전 한푼을 따지고 사는 오늘의 산동이 싫다고 했다. ○조선족 40대 1명 거주 낙고하촌에서는 조선족이 딱 한 사람 살고있다.그것도 눌러 사는 것이 아니라 철새처럼 낙고하촌을 들락거렸다.길림성 유하현에서 왔다는 김경호씨(46)는 홀몸으로 와서 봄과 여름 두철을 낙고하촌에서 살았다.고기잡이가 생업인 그는 겨울이면 처자가 있는 유하현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내 여기를 오기 시작한지는 몇 해가 안되지비.집에는 처와 아들 딸,세 식구가 있는 가장 아이겠수.여기 돈벌이가 짭짤해서 혼자 와서 살지비.붕어 한 근이 30원,잉어는 한 근에 60원이우.하짓날은 값이 배로 뛰어 여름 고기잡이 아주 괜찮수다” 그에게서 연민의 정같은 것을 느꼈다.낙고하촌의 한족들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조선족 고기잡이는 부평초 신세 바로 그것이었다.
  • 서울의 삶의 질(외언내언)

    서울 종로 탑골공원은 노인천국이다. 사직공원 효창공원 남산도 마찬가지다.탑골공원의 경우엔 상오 11시부터 점심식권을 타려는 줄서기가 100m이상 길게 이어진다.현재 서울의 무료급식소는 70여곳,하루 6천500여명이 점심혜택을 받고 있다.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는 쉽게 목격된다.그러나 점심 한끼를 먹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이 아니라 공원에 나와 휴식을 취하다가 싸가지고온 점심을 즐기거나 식권카드로 식당에 가는 것이 다르다.바로 삶의 질의 차이다. 서울시가 발표한 ‘시민복지 5개년계획’은 한마디로 시민의 삶의 질향상을 실감시키는 계획이다.경제수준과 사회환경변화에 따라 시민전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으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서울이 멋진 신세계로 올라서려는 것이다.자녀는 치매증에 걸린 부모를 부담스러워하고 취업여성들은 아이를 맡길만한 보육시설이 마땅치 않아 불편을 겪는 일이 많다.청소년들은 갈 곳이 없어 만화방 비디오방을 기웃거리다가 약물중독에 빠지거나 여성은 성폭력을 당해도 어디 한군데 하소연할 길이 없다.이런 고민을 고루 수용하고 해결하려는 것이 이번 계획이다. 노인치매 등 의료시설확충과 노인들에게 일자리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청소년회관을 구마다 설치하는가 하면 구립탁아소를 동마다 1곳씩 두게되고 시민의 문화 여가 사회활동과 시민복지서비스등에도 고루 배려하고 있다.95년 3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사회개발 정상회담(WSSD)에서 ‘삶의 질의 세계화’선언이후 실제로 서울이 ‘선진복지사회’를 실현하려는 청사진을 펴보인 것이다. ‘삶의 질’에대한 명확한 개념은 무엇인가? 물질적 풍요속에서 전통적인 상부상조의 인정미는 점차 사라지고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경향만이 증대하고 있다.이른바 물질적이고 양적인 측면에서의 삶의 질은 상당정도 향상되었음에도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사회적인 측면에서 좀더 심도있는 내실을 기해야 한다.예를 들어 노인문제 하나만이라도 선진국수준을 앞지르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 마르그리트 뒤라스/이용숙 지음(화제의 책)

    ◎뒤라스 자유분방한 삶과 문학세계 프랑스의 여성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의 자유분방한 삶과 문학세계를 조명한 전기.레지스탕스 활동가,소설가,시나리오 작가,극작가,영화감독 등 다양한 충위의 삶을 산 뒤라스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다.인도차이나의 밀림에서 보낸 어린 시절,앙텔므와의 결혼과 이혼,아이의 유산과 작은 오빠의 죽음,마스콜로와의 동거와 헤어짐,알콜중독과 혼수상태로 죽는 순간까지 서른다섯살 연하의 애인 얀 앙드레아와 함께 한 노년의 삶….그의 복잡다단한 사생활은 글쓰기속에 녹아들어 끝없이 새로운 작품을 탄생케 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 대해 품었던 증오와 반항,그리고 사랑은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를 비롯한 많은 작품속에서 되살아났다.또 인도차이나에서 겪은 중국남자와의 첫사랑은 ‘연인’이란 작품을 낳았으며 짤막한 단상과 독백이 어우러진 ‘이게 다예요’는 그의 문학적 유서같은 작품이다.뒤라스의 소설은 전통적인 소설요소를 배제,등장인물이 거의 없고 구성이 간단하며 대사가 절제되 있는 것이 특징.때문에 그는 스스로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누보 로망 계열의 작가로 꼽힌다.특히 그의 대표작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누보 로망의 경향을 보이는 작품으로 지적된다.정우사 5천500원.
  • 대학 특성화 시급하다/조정원 경희대 총장(시론)

    ‘평등 즉 불평등’’이란 말이 있다.평등에는 절대적인 평등과 상대적인 평등이 있다.절대적인 평등이란 전제조건 없이 균등한 획일을 의미하며,상대적인 평등이란 전제조건이 있는 차등을 말한다.개인이 소유하는 부의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는 분명히 불평등하다.그러나 개인의 노력과 조건이 전제된다는 측면에서는 상대적인 평등을 이루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이것을 똑같이 부를 소유하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평등하다고 주장한다면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평등의 기초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상대적 평등의 합리성 이것이 필자가 설명한 평등 즉 불평등의 요지였다.반면에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살펴본다면 ‘불평등 즉 평등’이라는 재미있는 가설도 가능해진다.우리는 공존을 위해 사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모든 면에서 평등을 추구하고 있다.학력에서,경제력에서,사회생활에서,정치에서,먹고 마시는 일까지 남과 나를 비교하고 같은 대우를 받기 바란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요즈음 교육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바로 평등과불평등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갈등에 다름아니다.사교육비가 10조원을 넘어섰다고 과외망국론이 대두되고 있기도 하다.아이들의 머리와 부모의 경제능력은 고려하지 아니한 채 너도 나도 과외열풍에 휩싸여 공교육을 무력화하며 교육의 본질을 망치고 있다.이는 아이의 잠재력과 능력면에서의 태생적인 불평등을 고려하지 아니한채,남의 아이보다 내 아이의 성적이 우월하기를 바라는 불평등을 조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태생적 불평등 고려를 또 대학입학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과열경쟁은 지나친 학력위주의 사회구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내면은 불평등해야 편해지는 편협된 인간심리가 자리하고 있다. 대학에는 지금 교육개혁을 통해 거듭나야 한다는 의욕들이 넘쳐나고 있다.그러나 내면적인 개혁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개혁으로 다시금 대학별 특성을 찾지 못하고 획일화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정부에서 제시한 교육계획의 사례들이 모든 대학에 똑같이 적용된다면 대학의 특징화와 경쟁력이란 무의미해진다.이것 역시 불필요한 평등을 추구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보유대수가 천만대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길 위에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간다는 측면에서 차의 종류나 크기,탄 사람의 지위는 평등하다.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차의 종류,크기,색깔,운전자의 외모,성격,직업 등에서 불평등하다.어쩌면 이 비유는 평등과 불평등의 근본적인 문제 접근에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그러나 이렇게 명확한 비유가 어려울 정도로 평등과 불평등은 백지 한장 차이와 같다. ○능력따른 대가는 평등 평등이 곧 불평등이듯이 불평등 역시 평등이다.경제력에 차이를 갖는 것이나 공부하는데서 차이가 나는 것,운동경기에서의 승패는 물론 갈비를 먹을때 삼겹살을 먹는 것은 불평등이 아니다.외향적인 차이가 불평등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에 맞는 위치에서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 것은 평등한 일이며 다른 여건속에서 동일한 보수를 바라는 것은 평등이 아니다.인생을 살면서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이것은 태생적으로 인간이 불평등함을 의미하며,다만 주어지는 환경을 평등하게 가꾸어 공존하려는 노력 자체가 평등일 뿐이다. 평등 즉 불평등이며,불평등 즉 평등이다.
  • 대학생 학기말시험 ‘커닝’/PC통신에 반성의 소리

    ◎“실력만큼 정당한 방법으로 학점 따자/훗날 사회진출 진솔한 삶 살수 있을까/커닝학생 사회비리 개탄에 아이러니” 책상과 벽을 온통 ‘도배질’한 깨알같은 ‘족보’와 ‘요점정리’,감시소홀을 틈탄 답안지 바꿔치기,꼬깃꼬깃 돌아다니는 컨닝페이퍼. 최근 끝난 대학가 학기말 시험의 부정행위(컨닝)에 대해 PC통신 천리안에 반성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갈수록 높아만가는 ‘취업문턱’을 넘는데 주요 변수인 학점을 정당한 방법으로 따자는게 대부분 학생들의 주장이다. 95학번 ‘MLB11’씨는 “1학년 첫 시험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었지만 막상 책상에 메모를 해두고 옆자리 학생들과 쪽지를 돌려가며 난리를 친 학생들의 성적이 훨씬 더 좋게 나오는 것을 보고 이후에는 나마저도 컨닝을 자연스레 하게 됐다”고 고백하고 “지성인들이라는 대학생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컨닝을 시험의 일부로 여기는게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KK2886’씨는 “문제는 교수나 조교들이 컨닝을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라면서 “말로는 ‘컨닝하다 걸리면 시험지 뺏기고 F학점 맞는다’면서도 실제로는 컨닝장면을 보고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쩌다 걸려도 컨닝페이퍼 뺏는 정도가 고작”이라고 말했다. 대학 4학년 ‘KALANGBI’는 “매번 시험 때마다 컨닝하는 학생들이 한보사건 등 우리 사회의 비리에 개탄하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지적하고 “대학에서 부정행위를 하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큰 사회에 나가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번 기말고사에서 시험감독 보조를 했다는 대학원생 ‘HAGIRI’는 “후배들이 그동안 공부한 내용이 머리에 있는게 아니라 책상과 벽에 백빽히 지저분하게 써둔 메모속에 들어있다”면서 “사랑하는 후배를 위해서 요점정리를 해두는 것이 아니라면 빨리 지우고 정상적인 자세로 돌아오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 중 천재시인 고성 시집 ‘나는 제멋대로야’

    ◎문혁시대 어둠을 딛고… 시구마다 서린 순수한 영혼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 시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인으로 꼽히는 고성.그의 대표시 모음집 ‘나는 제멋대로야’(김태성 옮김)가 실천문학사에서 나왔다.아내를 도끼로 살해하고 자신은 목매 자살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던 천재시인.그는 한국 독자들에게 자전적 소설 ‘잉얼’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세간에 알려진 끔찍한 사건의 주인공이라는 피상적인 생각만으로 고성의 시를 대하는 독자라면 그의 시에서 당혹감을 느낄지도 모른다.시인의 더없이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 시구 마디마디에 서려 있기 때문이다.표제작인 ‘나는 제멋대로야’를 읽다보면 그가 얼마나 영롱한 영혼의 소유자였던가를 알 수 있다. 〈어쩌면/나는 엄마가 응석받이로 키운 아이인지 몰라/나는 제멋대로야/나는 매 순간이/색색깔의 크레용처럼 그렇게 아름답기를/바래…〉.37세로 지상의 삶을 마감한 고성은 세상과 섞여 들어가지 못한 채 세상 밖에서 겉돌며 신음하던 동화같은 인물이다.그의 시 역시 그런 동화적인 순수성과 몽상적인 이미지들로 가득차 있다. 중국 현대 ‘몽롱시’군단의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그는 문화대혁명을 겪은 세대의 어둠과 상처를 생생하게 그려낸다.‘몽롱시’군단은 문혁이 끝나고 자유의 물결이 밀려든 80년대,난해한 은유와 회삽한 시어로 현실을 풍자하고 새 시대의 도래를 노래한 일군의 젊은 시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고성의 대표적인 시로는 ‘한 세대 사람’을 들수 있다.단 두줄로 된 이 시는 중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이미 하나의 잠언으로 통한다.〈어둔 밤은 내게 검은 눈동자를 주었으나/나는 오히려 그것으로 세상의 빛을 찾는다〉.그의 시 이면에는 중국 현대사의 양지와 음지가 상징적으로 각인돼 있다.
  • 다른 나라에 태어나고들 싶다는데…(박갑천 칼럼)

    최면상태에서 전생을 되돌이켜보게 하는 방법이 있다.할리우드의 명배우 글렌 포드도 그런 경험을 했다.그는 최면이 풀린 다음 자신의 녹음테이프를 듣고 도리머리 흔든다.『이럴 수가….이건 내 신앙에 어긋나는 현상인데』 1978년의 어느날 그는 처음으로 최면을 받는다.그의 전생은 찰리 빌이라는 콜로라도평원 카우보이.찰리 굿나이트라는 목장주아래서 들무새하다가 총맞아 죽는다.캘리포니아대학 조사반이 나가 알아본 결과 그 두사람은 실재했었다.두번째 최면.그는 스코틀랜드 엘긴에 사는 찰스 스튜어트로 말괄량이 아가씨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교사였다.본디 피아노를 칠줄 모르는 그였으나 최면상태에서는 멋지게 쳤다.찰스 스튜어트의 묘를 찾아간 그는 이렇게 말했다.『놀랍군.이건 분명 내가 묻혔던 곳이야』 이런 유형의 얘기는 동서양 가릴 것없이 숱하다.또 이같은 윤회는 사람과 짐승사이를 왔다갔다 하기도.「천예록」에 적혀있는바 서울 동쪽 수구문안 무인 아들의 경우도 그런 사례이다.그 무인이 어느날 수구문으로 들어오는 구렁이를 때려죽인다.그 뒤에 그 아내가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어려서부터 제아비를 빗떠보며 아드등거리기까지.하루는 아이가 제아비를 죽이려다 들켜 아비한테 되죽었는데 구렁이였다.무인은 문을 열어 내몰면서 이른다.『이젠 네가 가고싶은 좋은 곳으로 가거라』 이건 미물한테 한 말이지만 이승의 삶이 유별나게 불행한 사람을 떠나보내면서도 그런 뜻으로 빌어준다.『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라』고.이럴때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전생­차생­내생을 믿는 마음으로 된다.무엇인가로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신라 문무왕이 동해의 용이 되겠다면서 눈을 감고 송강정철이 먼저간 동갑내 이율곡을 제사하는 글에서 『기린이나 봉황이 되어 만가지 복을 몰아다 주라』고 기원하는 것도 그런데 바탕한다고 하겠다. 사람의 생각이 이러하기에 『다시 태어난다면 어느 나라가 좋은가』하는 설문조사도 나올수 있다.한 생명보험회사도 그래서 얼마전 우리 청소년들에게 그걸 물어본다.그랬더니 미국(29%)·프랑스(16.3%)·영국(6.9%)·일본(3.9%)… 등 외국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대답이 64.9%에 이르렀다 한다. 역시 잘사는 나라를 생각하고들 있다.나라현실 보면서 소들해져서이겠지.하지만 뭔가 허전해진다.〈칼럼니스트〉
  • 훈 할머니(외언내언)

    『한국위안부가 3∼4명 있었던 당당하고 멋진 시설이었다』―.그 기구한 삶이 알려지면서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훈 할머니」와 「영외살림」을 차렸던 당시 일본인장교 다다쿠마라는 사람의 인터뷰 내용중에 나오는 말이다.이것이 대체 무슨 말일까.비록 조선여인을 강제로 위안부로 끌어가긴 했어도 그렇게 「괜찮은 시설」에 수용했었다는 변명의 뜻일까.아니면 장교시절을 즐기던 추억을 미화하는 표현이었을까.어쨌거나 그의 말에서는 「훈 할머니」가 『헌병대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는 위안부』로 있었음도 증명되고 있다. 자기한테는 『참 친절하고 속깊게 잘해준 여인』이라면서 그 사이에 자식까지 두었던 아이 어머니를 사고무친한 절해의 고도같은 그곳에 떨어뜨린채 돌아보지 않았던 야비하고 잔인한 심성에 소름이 돋는다.불법으로 「영외 동거」를 한 일은 지금이라도 드러나면 불리하다는 생각인지 그것만 부옇게 변명하는 용렬하고 한심한 「남자」가 그들인 것같다. 그러나 모든 불행은 망국의 딸로 태어난데 있다.「훈 할머니」가 그런 곳에 흘러가 온갖 수모와 간난을 감내하며 고향을 등지고 부모 형제와도 인연을 놓친채 그토록 한스런 70평생을 보낸 것은 우리가 나라를 지키지 못한 탓이었다. 민족의 생명을 이어가는 것은 여성이 하는 일이다.나라를 잃어서 여성이 짓밟히면 민족이 멸절된다.침략자 일본에 의한 한국여인 위안부 동원은 한민족 계승을 흠집내려는 일본정부의 계획적인 음모의 하나였음을 「훈 할머니」의 삶이 다시 한번 명백하게 증언한다.하필 제일 고약한 「킬링필드」의 땅에까지 가서 「외국인 어머니」때문에 자식마저 처형당하는 비극을 맛본 일은 너무 기구하다. 그래도 그렇게 살아남아 악독한 침략자의 만행을 증언하고 죽기전에 고국땅을 밟을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다행한 일이다.「훈 할머니」가 정신대로 끌려간 것이 입증된다면 그것을 「보상하고 위로할」준비를 진작부터 우리는 갖추고 있다.한 조그만 규모 사업가의 밝은 눈이 이런 결실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에 칭송을 보낸다.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용렬한 「핑계쟁이」 일본인쯤은 묵살하고 진하고 따뜻한 동포애로 「훈 할머니」의 잃어버린 세월을 감싸주는 노력일 것이다.
  • 흥행 예상 깬 이색영화 비디오 출시/가정의달 「가족영화」로 제격

    □마이크로 코스모스 ·경외로운 곤충의 세계 보여준 다큐물 ·극장개봉 관객 30만 동원… 폭발적 인기 □웰레스 앤 그로밋 ·살아 움직이는듯한 진흑인형들 등장 ·인간적인 표현… 새 장르의 대표적 작품 지난 연말과 올초 극장가에는 영화인들을 놀라게 한 이변이 잇따라 일어났다.「작품성은 뛰어나나 흥행은 전혀 되지 않으리라」고 여긴 작품 두편이 의외로 큰 호응을 얻은 것.그 영화 「마이크로 코스모스」와 「월레스 앤 그로밋」이 최근 비디오로 나란히 출시됐다. 「마이크로 코스모스」는 곤충의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준 다큐멘터리.펼쳐지는 화면은 상상력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는다.물 한방울을 맞들고 나눠마시는 개미 한쌍,사람 못잖게 진득한 사랑을 나누는 달팽이 연인들,신화의 한 장면처럼 수면위로 떠올라 허물을 벗으며 탄생하는 모기…. 그러나 이 영화는 곤충의 모습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평소 하찮아 보이던 벌레들의 삶에서 생명의 소중함,자연에의 경외 등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극장 개봉때 전국에서 30만 넘는 관객을 불러들였고,일부 초등학교에서는 교사·학생들에게 꼭 보도록 권한 작품이다. 비디오로는 원본 그대로의 판과,이해를 돕고자 해설을 덧붙인 판 등 두가지로 출시됐다. 「월레스 앤 그로밋」은 진흙인형이 등장인물인 애니메이션영화.「클레이 애니메이션」이라 불리는 이 기법은 화면 1초 분량에 진흙 인물·소품을 24가지로 변화를 줘 찍어야 하는 고도의 기술과,장기간의 제작기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제작편수가 많지 않다.「월레스…」는 이 장르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번 작품은 「월레스…」시리즈 가운데 각각 상영시간 30분안팎인 「화려한 외출」「전자 바지」「양털도둑」 3편을 묶은 것.살아 움직이는 진흙인형들의 질감이 아주 인간적이고 따뜻해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클레이 애니메이션으로서는 국내 처음으로 지난 2월 영화관에 올랐는데 일부 고급팬이나 좋아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20만 가까운 관객을 끌어모았다. 「마이크로 코스모스」「월레스 앤 그로밋」 두편은최근 서울YMCA가 뽑은 우수 어린이·청소년 비디오에 든데다 아이·어른 할 것 없이 즐겁게 볼만한 최상급 가족영화라 할 수 있다.
  • 상상의 세계/프리먼 다이슨(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차세대 과학은 「기구의 혁명」 유력/뇌·유전자관련 엄청난 진보… 「인간」개념 급변 한 세기,더 나아가 천년(밀레니엄)이 새로 시작되는 2000년을 눈 앞에 두고 당연히 세계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 유행하고 있다.대개 미래를 이야기하는 책은 현재의 무거운 문제와 씨름할 때처럼 끙끙대지 않고 한달음에 앞 창을 열어제쳐 저멀리까지 우리의 시야를 넓혀준다.그러나 간혹 너무 가벼워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다. 아이슈타인 박사와의 인연으로 유명한 미 프린스턴대 물리학과에 오래 재직하다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는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 박사의 「상상의 세계」는 길지 않은 분량(216쪽)에 포커스가 뚜렷하다.미래,상상이란 말이 들어가는 많은 책들처럼 이것저것을 마구 집어넣는 잡탕식이 아니라 과학,인간,미래를 보는 자신의 독특한 눈을 끝까지 유지하고 있다.다이슨 박사가 볼때 앞으로 과학은 과거와는 달리 개념의 혁명 보다는 어떤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는 기구의 혁명을 통해 전진할 공산이 크다. 물리학자인 그는 『21세기의 주축 과학은 생물학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특히 생물학 지식 가운데 유전자와 뇌 부문에 엄청난 진보가 이뤄여져 인류의 일상적인 삶 뿐아니라 「인간」의 의미가 크게 확장,변화하게 된다. 유전자 공학 부문에서 세포핵에 든 유전자 코드를 그대로 해독해 읽어내는 슈퍼 현미경적 기구가 고안된다.현재는 화학적 방법으로 시간당 수백개 유전인자 해독에 그치고 있지만 이것이 중간과정 없이 직접 디지탈정보로 기록되는 물리학적 방법으로 바꿔지면 초당 백개 속도로 해독된다는 것이다.그래서 다이슨 박사는 주저없이 『과학 혁명을 꿈꾸는 젊은이라면 이 기구 발명에 운을 걸어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을 비롯해 수많은 생명체의 유전자 코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독해낸다 해도 유전자 인위조작의 유전자 공학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간단한 알이나 씨앗에서 생명체가 각각의 고유한 형상으로 성장해나가는 데는 DNA코드화란 「첫 점프」에 이어 「여기에 눈이 자라라」라는 식의 「두번째 점프」의 유전자 초언어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그리고 첫번째 DNA해독 정보에서 이 두번째 초언어를 끄집어낼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면 『한적한 항구 앞의 상점에서 컴퓨터프로그램으로 배를 디자인할 수 있듯 집에서 맘에 맞는 개나 고양이를 디자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한 걸음 나가면 살아있는 애완용 공룡을 만들어낼수 있다.여기서 더 나가면? 천재 갓난애기,즉 슈퍼차일드를 디자인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커다란 논란이 일테지만 언제나 그랬듯 장기적으로 기술이 이기게 된다. 뇌생리학과 관련해 저자는 「무선 텔레파시」란 용어를 선보이는데 한마디로 우리의 뇌속에 무선전화를 심어 이심전심으로 정신감응,교감한다는 것.『신경중추 시스템이 어떻게 일을 하는가를 알아내개 되면 뇌의 전자적 신호체계를 공학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외과수술로 뇌에다 미세한 수신 마이크로칩을 심거나 여러 동물에 존재하는 전자적 기관을 이용할 수 있다.이렇게 되면 같은 수신기를 뇌에 이식한 집단의 상호이해가 본능적으로 이뤄져 현재의 갈등,오해 그리고 분쟁이 대폭 축소된다는 것이다. 수십억년 전에 생명체가 태어났고 백만년 전에 인간이 출현한 과거와 관련지어 다이슨 박사는 백년,천년,백만년,영원에 이르는 인류의 미래를 과학적이자 철학적인 시선으로 조망한다.아까 말한 DNA배열의 물리학적 해독은 10년에서 20년사이에 성취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21세기 첫 50년간에는 현재의 석유,컴퓨터,생화학 등 중추 공학과 유전자공학,인공지능 등 새 멤버가 큰 힘을 발휘할 것이며 100년뒤 무렵에는 유전자공학,인공지능이 성숙단계에 이르면서 무선 텔레파시가 이들을 대체할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간안에 달이나 소혹성에 인류정착촌이 건설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1천년뒤인 3000년 경에는 우리 인류의 후예는 태양계 전역으로 확산,분산된다.인구나 거주지나 자원 모두 지금보다 5억배 정도로 커지게 되는데 언어,문화,종교 현상에선 아직 인간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고 있겠지만 생물종으로선 전문화가 이뤄져 우리 인간은 많은 변종으로 다기해진다.1만년이 지나면 과학은 존재의 의의가 별로고 대신 죽음과 영생,현실성과 정신적온전함 등이 지금과는 아주 다르게 인식되는 철학의 시기가 된다는 것이다. 거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닌 개인의 취미와 재미에서 비행기 같은 기계,공학이 성취되었다는 말로 시작한 이 책은 끝무렵 10만년,1백만년뒤의 인류,우주의 모습과 그 의미를 시적으로 예측한다.무엇보다 지금 현재의 인간과 그 사회가 고정,불변의 완성품이 아니라 무한한 변화와 진보의 한 대상이라는 것을 강하게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원제 「Imagined Worlds」 하버드대 출판부 발행.216쪽.22달러.
  • 선우중호 서울대 총장 졸업식사

    ◎“「큰 사람」 도량으로 시민사회 초석되라”/나를 지키고 우리것 키워 인류발전 기여를 오늘은 졸업생들이 각고면려 끝에 그 결실을 거두는 날일 뿐 아니라 대학이 기울인 노력의 열매를 수확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 대학으로서는 가장 뜻깊고 보람찬 날이며 기백이 넘치는 젊은 재사들을 사회에 내보내는 저 자신도 마음 뿌듯합니다.이제 현실사회의 주역이 될 여러분에게 간곡하게 몇마디 당부의 말을 하고자 합니다. 현대의 개인중심 민주사회에서는 개개인의 권리가 강조된 나머지 함께 정을 나누며 어울려 사는 「공화의 정신」이 소홀해지기 쉽습니다.이럴때 일수록 우리사회는 「대학공부를 한 사람」 즉,「큰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큰 사람」이란 자기를 다스릴 줄 알고 공동선의 원리에 따라 사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회적 공동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만에 하나 허물이 있을때 그것을 남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자신에게서 찾는 사람을 말합니다. ○자신의 허물 먼저 찾아야 또한 현대 물질주의 사회에서 사람은 자칫 물질에 매몰돼인격조차도 물건값으로 환산하고 당장의 이익에 급급하기 쉽습니다.이럴때 「큰 사람」은 사물에 부림을 당하지 않고 사물을 제어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리와 실리의 끊임없는 유혹이 있더라도 여러분은 부디 「큰 사람」의 도량을 보여 참다운 시민사회의 초석이 되기를 당부합니다. 굳건한 덕성을 바탕으로 여러분은 지성의 연마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21세기 선진사회는 복잡다기한 산업사회로서 사람들의 욕구가 다양해진 만큼 지식과 기술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또 그만큼 조화와 균형,합리의 정신을 절실히 필요로 할 것 입니다. ○나를 잃으면 종속만 남아 이제 미래사회를 주도하는 것은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여러분들의 몫입니다.여러분 어깨에 맡겨진 책무는 큽니다. 국제화·세계화의 대세 속에서 오늘날 우리는 세계 인류의 지구촌 시대를 실감하고 있습니다.한 개인이 남들과의 교제를 통해 원숙해지고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할 수 있듯이 한 사회,한 민족도 다른 사회,다른 민족과의 교류을 통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제와교류에서 자기를 키우지 못하고 잃어버릴때 거기에서 더이상의 교류는 없으며 오직 종속이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자기 계발과 민족문화를 계승,고양시킬 것을 강조하는 것은 『어떻게든 나를 지켜야 한다』,『우리의 것을 키워야 한다』는 독선이나 아집에서가 아닙니다.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의 다양화에 기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 문화의 폭을 증대시켜 인류의 삶 전체를 풍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학인은 그동안 선진문화를 취해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외국의 학설과 문물의 수용에 앞장서 왔습니다.그리고 그렇게 해서 우리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까지 수입과 모방만을 반복할 수 있겠습니까.이제 우리는 선진 외국 사람들에게 졌던 빚을 갚아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자연의 탐구,기술의 개발,사회운영 등에서 고유문화를 창달하여 인류문화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합니다.그 때문에 나는 우리 사회발전의 견인차인 여러분의 분발을 촉구하고 여러분에게 큰 기대를 걸뿐 아니라 그 성취를 확신합니다. ○패기·이상이 발전 밑거름 가끔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의 열등생」이라는 말을 듣습니다.교과서만을 박제화하여 습득한 사람들이 현실사회의 생동성을 올바로 파악하지 못함을 지적하는 말입니다.학교에서 습득한 지식을 낡고 빈 껍데기로 만들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알맹이를 받아들일수 있는 훌륭한 틀로 가꿀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현실 사회가 교과서적 원리가 적용되지 못할 만큼 왜곡돼 있다면 과감하게 그것을 바로 잡는데 정진하십시오.우리 사회는 여러분의 젊은 패기와 참신한 착상,타오르는 이상에의 열정을 공급받을 때만 진정한 발전을 이룰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안팎으로 불안,불신 그리고 혼란이 소용돌이 치고있는 학원 밖으로 진출하려 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거리를 단축시키고 있는 변화의 파도는 사회주의와 군부 권위주의를 붕괴시켰을 뿐 아니라 그동안 잠복해 있던 한국 정치사회의 병폐들을 노출시키고 있습니다.이러한 세기말적 도전에 직면해 여러분은 생활 보수주의에 안주해서도 안될것이며 불만을 토로하고만 있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또 무력감에 빠져만 있어서도 안됩니다. 여러분들은 21세기 입구에 선 지식인으로서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이상의 불꽃을 실현해야 할 시대적 사명감을 지니고 있습니다.여러분들은 한국적 병폐들을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제공자이어야 함은 물론 21세기한국 건설의 개혁 추진세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쪼록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우리 대학의 정신을 깊이 간직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닦아 온 누리를 밝히는 등불이 되십시오.여러분의 무궁한 발전과 영예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 김윤덕 정무2장관에 듣는다(올해 국정 어떻게)

    ◎올 영·유아 보육시설 2,648개 확충/여성인력 고급화위해 사회교육강화 역점/세계31위 여성지위 OECD수준으로 개선/음식쓰레기줄이기 주부 몫 절대적… 서울신문 캠페인에 적극 협조 김윤덕 정무제2장관은 OECD가입국에 걸맞는 여성지위 확보를 위해 여성발전기본계획 수립·사회교육 강화·여성정보화 확산 등 다채로운 업무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서울신문의 음식쓰레기 50% 줄이기 캠페인에도 적극 동참하겠다고 말했다.다음은 대담내용이다. ­취임하신지 꽤 됐지요. ▲지난해 8월8일이 취임일이니까 반년남짓 됐어요.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라고 할 수 있지요.이젠 정무제2장관실업무도 윤곽이 잡혀갑니다. ­그간 국회의원으로,여성개발원장으로 늘 일선에서 일해오시긴 했지만 여성업무 주무부 장관으로서의 감회는 또 다를 것 같은데요.이곳서 겪어보신 우리나라 여성계의 현실은 어떻던가요. ○생활현장 적용에 초점 ▲모든 문제가 다 그렇지만 여성문제 역시 피부로 체감하고 보면 한결 복잡하고 많은 이해관계 사이의 조정을 요한다는것을 알게 되지요.제 개인적으로는 여성단체와의 벽을 낮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고 생각해요.항상 먼저 마음과 귀를 열어온 덕분에 일선여성단체와 정무제2실이 어느 때보다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고 자부합니다.정무제2장관실이 설립된 지도 어느덧 9년째 접어들었는데 사실 그간은 남녀평등을 위한 의식이나 거시적 제도의 개혁이 급했어요.정부와 여성계가 손잡고 열심히 뛴 결과 이제 법적·제도적으로는 우리나라 여성지위도 선진국수준이에요.앞으로는 이같은 여성정책을 삶의 현장에서 보다 폭넓게 구체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올해 여성계는 어느 때보다 분주해질 것 같더군요.차기대권주자들에게 여성정책의 필요성을 각인시키고 더 많은 공약을 따내려는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던데요.올해 정무2실에서는 어떤 사업계획과 여성정책으로 이를 이끌어가실 건가요. ▲97년은 정치적 의미가 큰 해일 뿐만 아니라 경제·사회적으로도 OECD회원국으로 면모를 갖춰 나가는 중요한 시점이 될 것 같아요.이 과정에서 여성문제도변모의 진통과 발전을 겪게 되겠지요.우리 실의 여성정책은 대선바람에 좌우되기보다 누가 집권하더라도 해결해야 할 인권문제라는 전제하에 추진해나 가겠습니다.▲제1차 여성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여성발전기금을 확충하며 ▲성폭력예방 및 성윤리교육을 강화하고 ▲공공부문 여성고용에 할당제를 꾸준히 확대·도입하는 한편▲아·태지역 교류협력정보센터를 설립해 아·태 여성문제의 중심기지로 육성해나가는 등의 계획이 있습니다.무엇보다 여성인력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사회교육강화에 역점을 둘 것입니다.현대사회의 비인간화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모성존중」개념을 새롭게 도입,이를 확산시킬 다채로운 사회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입니다. ○「모성존중」 개념 도입 ­제1차 여성발전기본계획은 향후 여성정책의 방향타가 될 것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여성계에서는 북경여성대회에서 채택된 행동강령의 정신이 기본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이같은 여성계의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시며 이를 수렴할 창구는 마련돼 있는지요. ▲우선 여성발전기본계획부터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기본계획은 여성발전기틀마련 및 여성정책의 체계적 추진을 위한 5개년계획입니다.1차연도는 오는 98년부터 2002년까지지요.지난해 마련된 여성발전기본법에 그 설립근거를 두고 있습니다.여성정책의 큰 흐름을 좌우할 거시계획인 만큼 다양한 요구가 따를줄 압니다.우리 실에서는 올 한햇동안 민·관합동 「제1차 여성정책기본계획수립위원회」를 구성하고 여론수렴을 위해 공청회·정책간담회 등을 지속적으로 열 계획입니다.이 과정에서 여성계의 요구가 자연히 흡수되리라 봅니다.여성발전기본계획은 이런 과정을 거쳐 올 하반기 여성정책심의위원회에서 최종확정됩니다. ­OECD가입과 함께 우리나라 여성정책도 선진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큽니다.OECD가입이 우리의 여성정책에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유엔이 개발한 남녀평등지수(GDI)에 의하면 1위부터 21위까지가 모두 OECD회원국입니다.그만큼 OECD국가는 여성지위도 높습니다.우리나라는 현재 31위에 머무르고있어요.OECD에 가입했으니 남녀평등의식수준과 여성사회참여율을 높여 여성지위도 OECD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할 것입니다.OECD는 「여성고용정책에 관한 선언」 등을 채택하고 회원국에게 이를 준수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이에 따라 우리 실에서도 분야별 성차별개선지침을 마련,여성관련 각종 제도와 관행을 OECD회원국수준으로 개선해나갈 방침입니다.OECD가입으로 우리나라도 전세계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기여해야 하는 의무를 안게 된 것입니다. ­최근 여성계에서는 교육기관에서의 남녀불균형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고 있습니다.국공립대의 여학생비율이 30%에 육박하고 있는데 여교수비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하는가 하면 교육현장에 여교사가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정작 여성교장·교감 등은 찾아보기 힘듭니다.이같은 상급교직의 여성교육자기근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현장에도 할당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정무제2실의 입장은 어떤지요. ○여성승진기회 확대 ▲우리나라 여교사비율에 비해 여교장비율이 절대적으로 낮은데는 ▲75년을 전후해 교직생활을 시작한 여교사가 많아 일단 연한과 경력이 짧고 ▲출산·육아부담 때문에 연고지전보를 선호해 승진관리가 부족하며 ▲중요보직에 남자교원 위주의 배치관행이 아직도 뿌리깊은 등 여러가지 원인이 있습니다.이번에 교육부에서는 ▲경력평정기간 30년에서 25년으로 단축▲ 남녀통합근무평정제도입 등을 골자로 교육공무원승진규정을 개정,앞으로는 유능한 여성인력의 승진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정보화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여성도 적응능력을 갖춰야 합니다.여성에 대한 컴퓨터재교육,정보화마인드제고 등을 정부에서 앞장서 추진해야 한다는 요구의 소리가 높은데요.이와 관련,정무제2실이 펼쳐 나갈 사업계획이 있는지요. ○여성정보DB망 구축 ▲정보화사회에서 여성능력개발은 국가경쟁력강화를 위해서도 당면과제입니다.우리 실에서는 여성개발원과 손잡고 여성을 위한 법률·교육·취업·건강·실생활정보를 담는 여성데이터베이스(DB)와 여성관련 기관·단체를 연결하는 서비스망구축에 박차를 가하겠습니다.올해 우리 실 역점사업인 여성사회교육의 내용에도 인터넷 등 컴퓨터교육을 대거 포함시킬 것입니다. ­정무2실은 부처간 조정기능뿐 입법권을 비롯한 실질적인 업무수행능력을 갖지 못해 여성정책집행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돼왔습니다.장관께서는 취임인터뷰에서 지금의 정무2실로도 충분하다는 의견을 피력하셨는데 직접 업무를 맡아보신 지금도 그런 생각에 변함이 없으신지요. ▲여성문제라 해도 교육·고용·복지 등 기능별로 각 부처에 집행기능이 분산돼 있는 상황에서 각 부처로부터 여성부분만을 가져와서 독립된 부처를 만들기는 매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여성발전기본법의 제정으로 정무2실의 조정기능도 강화된 만큼 지금처럼 종합조정하는 여성부처가 효율적이라는게 정부입장입니다.하지만 보다 효과적인 여성정책추진기구에 관한 의견에 항상 문을 열어 충분한 대화와 검토를 해나갈 것입니다. ­일하는 엄마에게는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곳이 없다는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여성의 사회참여활성화를 위한 보육시설확충계획을 말씀해주십시오. ○61만9천명 보육 가능 ▲육아의 사회분담은 지난 95년 정부의 여성사회참여확대를 위한 10대과제중 하나로 포함돼 있기도 합니다.금년엔 총 4천9백16억원을 투입,보육시설 2천648개를 확충하고 영유아 15만5천명을 추가로 보육하는 계획이 잡혀 있습니다.정부의 보육시설확충 3개년계획이 끝나는 올 연말에는 총 13만678개소에서 61만9천명의 아동을 보육할 수 있게 됩니다. ­끝으로 서울신문의 올해 캠페인과 관련해 질문드리겠습니다.서울신문은 올해 캠페인의 주제를 음식쓰레기 50% 줄이기로 정하고 각 부처 및 단체와 함께 다양한 운동을 전개해나갈 계획입니다.음식쓰레기 줄이기는 주부가 피부로 느끼고 실천해야 할 문제라는 점에서 어찌보면 여성에게 가장 밀접한 실천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이와 관련,여성정책을 총괄하는 정무2실에서 어떤 사업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우선 이처럼 좋은 주제의 캠페인을 펼치는 서울신문사에 찬사를 보냅니다.정치적 여성지위상승운동만이 아니라 이같은 생활문화운동을 통해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것도 여성운동의 큰 몫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이 운동의 성격상 국민 개개인의 생활속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언론기관 캠페인은 큰 효과를 거둘 것입니다.음식쓰레기 줄이는 문제는 가정의 합리적 소비주체인 주부의 협조가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많은 여성단체가 시민운동을 전개해왔고 앞으로도 활발히 이어질 것입니다.우리 실에서도 민간단체와 손잡고 관련행사를 개발,서울신문 캠페인에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 한국판 뮤지컬 추구 모임 「변주」/「X라는 아이에 대한…」

    ◎신인간형 「X」가 꼬집는 성차별 사회/양성인 한아이 둘러싼 학교소동 그려/23개 장면 노래로 진행… 새달 26일부터 뮤지컬에 미친 젊은이들. 뮤지컬 공연은 넘쳐나지만 뮤지컬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우리 어법에 맞는 창작뮤지컬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드물다. 뮤지컬 프로젝트팀 「변주」는 이같은 어려운 일을 하는 집단이다.지난 95년 12월,대학 노래·연극 동아리에서 뮤지컬을 우리땅에 심어보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모여 결성한 「변주」는 이제 3월이면 창작뮤지컬 「X라는 아이에 대한 임상학적 보고서」를 공연한다.3월26일부터 30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4천만원이라는 저예산으로 만들어지는 이 뮤지컬은 대형뮤지컬처럼 스펙터클은 없지만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 있고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아서 아름다운」 극이 될 듯하다. 「X라는…」는 로이스 굴드 원작으로 인터넷 성문화관련 사이트에서 인기있는 작품.남성성과 여성성을 함께 지닌 새로운 인간형 「X」의 삶을 통해 우리사회의 성차별을 우화적으로 드러낸다.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양성의 인간 X는 과학자들이 지정한 부모 아래서 행복하게 살다가 학교에 들어가자 어려움에 직면한다.남자도 여자도 아닌 이 아이때문에 학교에서는 소동이 일어나고 X는 다른 학부모들의 항의로 성별을 가리는 검사를 강제적으로 받는다.하지만 X의 성별은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극 마지막에서 동생이 생긴 X는 동생의 성별을 묻는 친구들에게 『그렇게 묻지 않을 수 없냐』고 답하며 『동생은 Y』라는 엉뚱한 말을 한다. 연출가 안경모씨는 『선입견이나 편견에 구애받지 않고 자율의지로 삶을 선택하는 사회를 꿈꾸며 이 작품을 선택했다』면서 『남자냐,여자냐 라는 질문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뮤지컬이 말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변주」가 첫작품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한 부분은 음악과 우리말의 운율을 살리는 것.대사 중에 노래 하나 부르는 식으로 진행된 기존의 뮤지컬에서 탈피,23장면 모두를 대사없이 노래로 대신한다.음악풍은 「오케스트라화한 록」.또 배우들의 노래뿐 아니라 걷는 소리,문 여닫는 소리 등 무대위의 모든 소리들을 리듬감있게 처리할 계획이다. 작곡은 박천휘·최경숙이 맡고 최선희,박혁,정희정 등이 무료로 출연한다.
  • 김영진씨 둘째아들 해광군의 탈북기/우리가족 로정의 일기 전문:Ⅰ

    ◎“탈북=지도자 배신” 생각들어 갈등/농촌일손 가들랴 폐품 모으랴… 공부시간 몇이나/기차안서 굶주려 사람 보고 “누구때문” 울분 22일 귀순한 김영진씨 일가의 탈북기록인 김씨의 둘째아들 해광군의 「우리가족 로정의 일기」는 우리 맞춤법에 틀리거나 낯선 북한용어도 있지만 생생한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살려 게재했습니다. 나는 애어린 14살 아이이지만 살길을 찾아떠나가는 노정을 기록하여 어느때에 이사실이 세상에 공개되며 북조선 나의 동무들이 이 글을 볼 수 있을까 손꼽아 기다리며 한자 두자 일기로 적고저 한다.내가 살던 고향 집 앞에는 들판,뒷산 옆에는 4월,5월이 되면 과수나무들이 흰색옷을 입는듯 만발한 꽃으로 봄을 알리는 배나무들이 지켜섰습니다. 아름다운 내고향과 정다운 동무들을 버리고 나는 왜 떠나야 했는지,…. 그것는 배고픔에 못이겨서인지 아니면 북조선의 무상교육 무상배려가 좋은데 내가 일년에 공부하는 시간이 도대체 몇날,몇시간이 되었던가. 북조선에서는 한창 배울 나이에 공부를 배우는 시간보다 농촌자원에 동원했고 폐철모우기 폐유리모우기 폐고무 폐동 등등,모우기를 하루도 그칠날이 없으니 그런것이 어디에 있으량 하는수없이 나의 동무들은 선생님의 성화에 못이겨 공장,농장 주민의 것을 훔치지 않으면 안되었다. 결국 그것이 도리어 나라에 좋은일 한다는 것이 학생들에게 도적질을 배워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우리 학급 인원은 42명이다. 거기서 학교에 오는 동무들은 하루에 절반밖게 못온다.절반숫자의 동무들은 왜 학교에 오지 못하였던가? 그것은 참기어려운 배고픔때문이다. 나는 정말 배우고 싶은 심정이다.어디로 가야 배움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1996년3월18일 월요일 날씨 맑음 이날은 정든고향,정다운 동무들과 이별하고 3월19일 기차를 타고 함경북도 무산군으로 향하였다. 기차에 오른 사람들은 왜 이다지도 많은지? 이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목적으로 집을 떠나 다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침침컴컴한 기차에 올라서니 사람들이 밀고당기고 힘내기를 하는 바람에 나는 넘어질듯 하였다. ◇1996년3월20일 수요일 이날도 기차안에서 무대기였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사람들이 서로 붐비면서 자기보따리를 찾는 사람,아이들이 배고파 우는소리,여성들이 신경질적으로 아우성치는 소리에 기차간은 그야말로 난장판 수라장이었다. 더욱이 내가 목격한 것은 굶주림에 시달려 숨을 방금 지울듯한 한 청년이 기차한막판에 누워 있었다. 그누구도 그사람을 동정과 위안해주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끝내 그사람은 굶주림에 못이겨 숨을 거두고 말았다.그때 나는 어린 마음에도 처참한 참상을 보고 울분을 금할수 없었다.나는 처음으로 어린 나이에 내눈으로 직접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다. 나는 학교에서 공산주의 도덕교양을 받을때 웃사람을 존경하고 아래 사람을 사랑하며 곤란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교양을 받은 나로서 아직도 그참상은 나의 눈앞에 생생이 나마있다. 어째서 이 비참한 참상,한 인간의 운명을 보고도 모르는 척 하는가? 아직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과연 누구탓이며 누구 때문인가? ◇1996년 3월21일 목요일 지루함을 느끼면서 타고온 기차는어느덧 끝내 목적지 무산읍에 도착하였다. 이날은 마을이 서글퍼서 인지 하늘 그름을 뭉게뭉게 나의 마음을 쓸쓸하게 한다. 목적지인 외할머니네 집에 들어서니 할머니는 없었고 누나가 우리를 맞이하였다. 무산에서는 외할머니네 생활처지는 내고향의 생활처지와 다름이 없었다. 피곤한 나머지 나는 할머니가 들어서 오시는줄도 모르고 잠에 골아 떨어졌다. ◇1996년 3월22일 금요일 날씨(맑음) 아침 새벽에 나는 잠결에 할머니와 어머니 간에 말씀하는것을 들으니 먹을것이 없어 풀뿌리로 끼니를 채우며 겨우 장사를 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너희들이 또왔으니 반가움대신 근심이 된다고 걱정하는것이 였다.나는 비롯 나어린 마음이지만 또다시 마음속 충격을 받았다. ◇1996년 3월23일 토요일 맑음 아침에 깨여나 보니 벌써 할머니는 장사를 나가고 없었다.나의 아버지니와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무슨 토론을 하고있었다.그때나는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어머니는 앞으로 우리들의 살길을 찾는 심정에서 모데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아버지어머니한테 묻고 싶었지만 어른들의 말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아침을 강냉이 뿌리로 만든 국수로 대충끼니를 하고 우리 온가족은 두만강 구멍을 나갔다. 두만강 기슭을 따라 얼마쯤 내려가니 유달리 화려한 집이 두만강 건너에 있었다. 후에 알아보니 그집은 남조선 사람들이 와서 지은집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때에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되여 남조선 사람이 자기 나라도 아닌 중국땅에 와서 훌륭한 집을 지을수 있는가고 생각하여 나는 이사실을 알고 싶었지만 부모님한테 선듯 묻지 않았다. 이때 아버지께서 하는 말씀이 이제는 더는 북조선에서 살길이 막막하여 더는 살수없으니 너희들이 보다시피 할머니에 집도 생활이 구차하며 하루하루끼니를 이어가는 형편인데 너희들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고 묻는 것이었다. 이때 나는 아버지에게 정확한 대답을 올리지 못했다.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살길은 다만 남조선에 가야만이 너희들은 공부도 마음대로 할수있고 마음놓고 배불리 먹을수도 있고 희망의 날개를 펼칠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였다. 이때 나는 아버지가 나라를 배반하고 친애하는 지도자품을 떠나자고 여기로 데리고 왔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이때 나는 나의 아버지이지만은 나쁜 사람이 아닌가고 생각되어 내 생각대로 절대로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품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고 아버지께 말씀올리었다. 이때 나의 형님 누나는 이구동성으로 나의 말을 찬성하였다.우리 행동을 보신 아버지께서는 먼 남쪽하늘만 쳐다보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였다. 침묵을 지키며 서로 얼굴만 쳐다보던중 어머니께서는 그러면 너희들은 어디로 갔으면 좋겠는가? 우리는 집도없고 재산도 다 팔고 할머니를 크게 믿고 왔댔는데 보다시피 할머니네 집 신세역시 구차하여 먹을것이 없어 하루살이로 생명을 유지하는데 우리까지 어떻게 같이 있겠는가고 하였다. 어머니 말을 듣고 우리 형님은 우리를 데리고 한쪽에 가서 말을 좀 하자고 하였다. 나의 형님은 우리보고 너희 생각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고 물어보는 것이였다. 이때 나와 누나는 한결같이 우리는 절대로 지도자동지품을 떠날수 없다고 말하였다. 우리 형제 사이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때 아버지께서는 우리들의 침묵을 깨뜨리면서 하는 말씀이 너희들은 지도자 동지품이 좋다고 하지만 우리 온집안을 거처하여 먹여 살릴수가 없을 뿐만아니라 아버지는 이제는 고향으로 갈래야 갈수가 없는 몸이라고 말하였다.내가 왜서인가고 물으니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몇년전부터 남조선 방송을 들으면서 남조선은 자유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시었다. 또한 15명을 조직하여 북조선정치는 불모순 정치며 남조선정치는 자유정치라는 것을 선전하던중에 아버지는 노출되어 갈 수 없는 문제라고 알기싶게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이때 형님은 잘돼도 우리아버지 못돼도 우리아버지인데 아버지 뜻을 따르자고 말하였다. 나는 이때 생각이 많았다. 하나는 나의 아버지이고 하나는 조국의 품이었다. 이 갈림길에서 나의 심정은 아버지와 이별하고 싶지 않고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의 품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현실은 하나의 길만 선택하여야 했다.하지만 현실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기본 선차적 문제로 생각할때 아버지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마음 상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 아버지께서는 명령하다싶이 요구성을 높여 무조건 남조선으로 가야만이 삶의 길이라는 것을 결심하면서 너희들은 꼭 부모들의 의향대로 움직이라고 강박하는 것이었다.아버지께서 결심하신 그날 저녁 밤10시부터 중국도강준비에 들어갔다. 음력 2월6일이라 조각달은 지고 두만강 기슭옆에 캄캄한 밤 아버지를 따라 두만강 기슭에 가깝게 접근하였다.은밀히 접근하여 새벽2시까지 정찰하면서 보호병 움직임,조명등,불바침의 시간적으로 하산하여 아버지께서 명령을 내리시었다. 우리 자식들을 생각하는 부모님들은 우리를 꼭 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백포로 우리를 위장시켜 한치 한치 두만강을 도강하기 시작했다. 끝내 새벽 3시30분에 성공하여 중국땅을 밟게 되었다. ◇1996년 3월 24일 일요일(맑음) 이날은 유달리 날씨도 쨍쨍하게 맑은 날씨였고 하늘도 우리를 도와주는듯 기분이 상쾌하게 날씨가 맑았다. 새벽4시에 중국 조과향에도착하여 산에 오르기 위하여 사람들의 눈을 피해 50도가량인 벼랑급한 산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산에 오르자니 급한 벼랑에서 아차 한발 실수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아슬아슬한 벼락산이었다.이때에 어린 여자의 몸으로 산을 오르는 나의 누나는 기진맥진하여 겨우 형님의 도움을 받으며 산등성이에 올라 섰을때 새벽 6시30분이 되었다.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아침식사 준비에 굴뚝에서 연기들이 뭉게뭉게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그때 나의 정든 고향 생각을 하며 다시한번 강건너 북조선을 바라보았다. 이때 어머니께서는 사람들이 볼수없는 산에 좀더 들어가 불을 피우고 아침식사를 하자고 하는 말에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또다시 우리 일행은 지친 발길을 돌리며 눈이 무릎까지 오는 북쪽 산으로 향했다. 1시간쯤 눈길을 걸어 나무가 우거진 깊은산에 불을 피울장소를 찾았다. 우리들은 불을 피우고 젖은옷을 말리며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다. 물이 없어 눈을 녹이며 물을 만들어 먹었다.식사를 끝낸후 피곤에 몰려 나도 모르게 잠에 떨어져 꿈나라로 갔다. 꿈속에서 나의 동무들이 나를 보고 나라를 배반한 변절자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을때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이런 꿈을 꾸고 있을때 어머니께서 나를 깨우는 바람에 깨어보니 꿈이었다. 이때 나무하러온 조선족 중국부부가 올라오고 있었다.그들이 하는 말이 북조선에서 온 사람이 아닌가? 물어볼때 우리 온가족은 어쩔바를 몰라 몹시 당황하였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자기는 나쁜사람이 아니라고 하며 북조선 생활정황을 잘알고 있으니 우리를 동정하여 말하면서 자기 집으로 내려가자고 하였다.우리는 중국집에 들어섰을때 나는 아주 놀라며 이집은 중국에서 제일 부유한 부자 집이 아닌가고 생각하였다. 집에 들어서니 한눈에 안겨오는 것이 냉동기 텔레비전 재봉기 등 가정품들이 일제히 꾸려져 있었다. 나는 이집 주인님이 여기에서는 이밖에 고깃국을 정상적으로 먹는다고 할때 크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이때 어머니께서는 이것이 사실인가 믿어지지 않는다고 다시 물어보시었다. 주인은 웃으며 중국은 개방이후 발전되어 백성들의 생활이 보다시피 좋다고,집집마다 생활형편이 모두가 이정도는 된다고 하면서 우리집은 보통 생활이라고 말하였다. 나는 중국땅을 처음 밟았을때 중국에서 사는 조선족 부부가 나에게 준 첫인상은 정말로 내가 상상도 하지못한 인상이었으며 자연적으로 중국과 조선을 대비해 보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중국땅에 처음와서 만난 사람은 담배농사를 지으며 산에서 나무를 해다 불을 때어 온실관리를 하고 있는 집이다. 밤11시가 되도록 주인님의 말을 들으니 정국정황을 다소나마 알게 되었다. 집주인은 우리에게 중국 낡은 옷이지만 조선옷과 바꾸어 입혀주면서 화룡현까지 갈 차비를 주어 우리일행은 버스를 타고 화룡까지 수월히 오게 되었다. ◇1996년 3월 25일 월요일 (맑음) 화룡시에 들어서니 북조선에서 볼수없는 휘황하고 유명한 시장거리,사람마다 웃음이 가득찬 거리,생기발랄하고 환희가 넘치는 얼굴들.그모든 모습들.없는것없이 차려놓은 시장과 과일류,복장류,당가루류 등등 없는 것없이 그득히 차려놓는 시장거리 그야말로 영화의 한장면을 펼쳐 놓은듯 하였다. ◇1996년 3월26일 화요일 (흐림) 우리일행은 노비가 떨어지며 화룡시에서부터는 도보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상오 9시30분부터 걷기 시작한것이 어찌 피곤하고 힘들던지 저녁 10시에 서성명함에 도착하였다.한밤중에 낯설고 물설은 이국땅에 오니 잠자리가 근심이 되어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한집에 들어가 길가는 손님이니 하룻밤 쉬고 가자고 애원하고 사정하였다.첫집에서는 안되고 열집만에 애원하던중 11번째 집에서는 우리를 받아들여 밥도 주고 잠도 잘수 있게 되었다. ◇1996년 3월27일 수요일 우리일행은 도보로 걸어서 연길시내에 도착하였다. 연길시내에 들어서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한국사람만 만나면 도움을 받는다고 하여 한국사람을 찾았다.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하려고 공동전화 하는 곳에 가니 한아주머니가 우리를 보고 북조선에서 오지 않았는가 하며 자초지종을 물으며 반갑게 대하는 것이었다.그는 북한에 오빠가 있다고 하며 북한실정을 물어 우리는 북한생활 형편을 말하며 우리는 망명자가 아니라,중국에 친척방문왔다고하였다. 박아주머니는 우리는 북조선돈 3천원을 가지고 중국돈도 바꾸어주어 90원을 생활에 보탰다. ◇1996년 3월 28일 목요일 연길시 장백공사 리화의 김래삼아저씨네 집에서 하루 묵게 되었다. 이집은 채소농사를 하며 살아가는 집이었다. 우리를 반갑게 대해주면서 하는말이 어째서 온 가정이 한창 공부시킬 나이에 아이들까지 데리고 먼길을 떠나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흑룡강 오상현에서 빚에 시달려 빚재촉에 못견디어 살수없어 연변에 친척을 찾아온다고 말하였다. 살수없이 연변에 친척 찾아 온다고 말하였다. (이말은 로라를 처음 만났던 부부가 이렇게 알려 주었다)
  • 김덕수 40년(외언내언)

    아버지는 그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 아이가 다섯살만 되면 난장에 데리고 다니겠다』고 말했다.아버지 무릎위에서 풍물놀이를 재롱처럼 익힌 그는 어김없이 5살때 조치원 난장에 섰다.작고한 남사당 인간문화재 남운용씨 어깨위에 올라 탄 무동으로서 였다.물론 무동중에서도 가장 나이어린 새미였다. 일곱살 때는 전국농악경연대회에 자기 키만한 장고를 메고 나가 대통령상을 받았고 아홉살 때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민속예술제에 참가했다.법고잽이였던 아버지(김문학)와 당시 남사당패 뜬쇠(최고의 기예자)들로부터 상모돌리기 법고 장고 쇠 춤 버나(접시돌리기) 덜미(꼭두각시) 어름(줄타기) 등을 배운 그가 남사당의 기본악기인 사물(북 장고 징 꽹과리)을 앉아서 연주하는 「사물놀이」를 만들어 낸 것은 운명이었던 셈.그에 의해 지난 78년 서울 공간사랑에서 고유명사로 시작한 「사물놀이」는 이제 보통명사로 바뀌어 이 시대 문화유산의 창조적 전승의 한 전범으로서 세계적 언어가 됐다. 사물놀이의 김덕수씨가 데뷔 40년을 기념하는공연 「코리아 판타지」를 2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연다.나이 마흔다섯에 자신의 무대생활 40년을 당당하게 기념하고 아낌없는 축하를 받을수 있는 사람은 그 하나뿐일듯 싶다.놓쳐서는 안될 귀한 무대다. 유랑예인집단 남사당의 마지막 세대라는 것에 짱짱한 자부심을 갖고 자신이 지닌 최고의 기량을 오늘의 무대에 맞게 다듬어 온 것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일 것이다.자그마한 키에 다부진 몸매,서글서글한 얼굴에 구김살 없는 웃음을 지닌 그는 우리 땅의 기운을 모두 받은 건강한 농사꾼 처럼 보이나 그의 삶은 도깨비 같다.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동서양을 누비며 사물놀이의 전도사 역할을 한다.연주자로서,공연기획자로서,교육자로서 사물놀이를 한국의 전통예술만이 아닌 세계의 예술로서 전파하고 있는 그의 건강과 앞선 시각·열린 마음이 계속되기를 기원한다.
  • 김한수·박청호씨 신작장편 동시 출간

    ◎「소외」의 공간서 만난 사실주의·실험정신 두작가/하늘에 뜬 집­노동자 청년이 방황끝에 깨닫는 삶의 의미/푸르고 흰 사각형의 둥근­정신적 떠돌이 「나」를 통해 본 꿈과 현실사이 젊은 작가 김한수씨(33)와 박청호씨(31)가 「하늘에 뜬 집」(실천문학사)과 「푸르고 흰 사각형의 둥근」(한뜻)이라는 신작 장편을 나란히 펴냈다. 삼십대 초입이라는 연배를 빼면 둘 사이엔 공통점이 거의 없어 뵌다.노동자였다가 작가로 나선 김씨가 80년대 민중문학의 아들이라면,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하고 희곡과 시 등단경력도 있는 박씨는 「전통파괴」를 마다않는 문화주의자에 가깝다. 사실주의를 고집하는 한사람과 실험적 첨단을 지향하는 듯한 또 한사람이 다른 방향에서 파고든 소설공간은 소외의 문제에서 만난다.나란히 놓인 두권은 젊은 남성작가들의 작품세계가 뜻밖에 다채롭다는 점,문제의식도 꽤 진지하다는 점 등 흘려버리기 쉬운 적잖은 덕목들을 붙들어 보여주고 있다. 김한수씨의 「하늘에 뜬 집」은 가난속에 자라 노동자가 된 현민이라는 청년이 위악에 가까운 방황을 거쳐 삶의 긍정적 의미를 깨우치기까지를 담고 있다.방에 쥐똥이 수북이 쌓이고 빈대 물어뜯는 기세에 잠을 이룰수 없는 가난도 가난이지만 현민이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자고새면 어머니를 두들겨 패는 폭력아버지와 죽도록 맞으면서도 흐느낌을 악물고 사는 어머니의 무기력이다.물론 여기엔 가족사의 비극이자 현민의 출생비밀이 깔려있다.어린 시절 옆집아저씨에게 강간당한 충격에 가출,건달아버지와 될대로 결혼해버린 엄마가 아이를 바라는 시댁 독촉에 미혼모한테 얻은 아기를 자기가 해산한양 속여 들여온 것이 바로 현민이었던 것이다. 현민 가족외에도 소설은 궁핍과 소외가 낳은 인간살이의 여러 참상들을 조명한다.휠체어에 앉아서도 착하기만 한 장애인 곽씨는 툭하면 집나가는 사나운 아내때문에 괴롭고 공장친구 성수는 핏덩이인 자기를 고아원에 버리고 달아난 생모를 폭행한다.현민은 강간범으로 감옥행까지 이른 태호에게서 가난이 망쳐버린 여린 심성을 엿보고 그토록 존경스럽던 공장장님마저 공돌이로 돌변시키는 사회에 좌절한다. 박청호씨의 「푸르고 흰 사각형의 둥근」은 제목만큼 구조도 다층적인 작품.「나 혹은 그」라는 핵심화자 외에도 그의 연인인 24세의 여자대학원생,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된 그의 동창인 「그녀」 등이 화자로 등장해 다각도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는 희곡작가겸 문필가이자 청소년문화센터 직원이기도 하지만 실은 어디에도 소속이 없는 정신적 떠돌이에 가깝다.운동권 학생들사이에서 고민만 많은 소부르주아로 배척당한 그는 어느날 풀려난 「그녀」를 감시하는 국가정보요원을 충동적으로 살해하지만 감시체계와 사법권을 쥔 국가기관에서도 그를 어떻게 분류해 처리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는다. 살인,갑작스런 교도소 탈출,17세 소녀와의 성교따위 이야기들을 실어나르는 감각적 단문과 변화무쌍한 의식의 전개는 소설에서 자주 현실과 허구사이의 경계를 허문다.현실세계인지 주인공의 꿈인지를 끝까지 회의하며 읽어가면서 독자들은 인간의식의 밑바닥까지 쫓아들어가 은밀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현대적 권력의 보이지 않는 위력을 돌아보게된다.
  • 「색깔 다툼」 외화3편 나란히 개봉

    ◎안토니아스 라인­여성 4대에 걸친 삶 그린 여성영화/너티 프로세서­180㎏ 뚱보 살빼기 작전… 코미디물/멕시멈 리스크­홍콩 액션감도 할리우드 진출 첫 작품 주말인 11일 개성이 각각 뚜렷한 영화 3편이 나란히 개봉한다.네덜란드작품 「안토니아스 라인」과 미국영화 「너티 프로페서」「맥시멈 리스크」 등이 그것.「안토니아스…」는 여성영화,「너티…」는 전형적인 코미디물,「맥시멈…」은 액션물이어서 팬들은 취향에 따라 마음껏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안토니아스 라인◁ 유쾌함과 따뜻함이 넘치는 재미있는 작품이다.네덜란드 시골 작은 마을을 무대로 여성 4대의 삶을 그렸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고자 귀향했다 눌러앉은 안토니아와 그의 딸 다니엘,그리고 손녀 테레사,증손녀 사라로 이어지는 그들의 삶은 「여성의 완벽한 자유와 주체성」을 상징한다.이들에게 남자는 생활을 풍요하게 해주는 도구일 뿐이다.고향사람들에게서 「탕녀」로 불리는 안토니아는 딸이 있지만 남편의 존재는 언급되지 않는다.또 다니엘은 단지 「아이가 갖고 싶어」 거리에서 남자를 유혹해 씨를 받을뿐 마을 여교사를 사랑해 동거한다.테레사도 소꼽친구와의 사이에 딸을 낳은 뒤 한집에서 살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다.안토니아와 그의 혈족,그밖에 여러 여성과 일부 남자들이 모여사는 그 집 「안토니아의 성」은 여성관객에게는 유토피아처럼 보일만도 하다. 흔히 페미니즘영화로 분류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페미니즘을 실현한 것인지는 관객이 신중히 판단해야 할 몫. ▷너티 프로페서◁ 미국인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준다는 「비만」을 소재로 한 코미디.180㎏이나 나가는 화학교수가 생애 첫 데이트에서 몸매 때문에 심한 망신을 당하자 자신이 개발하던 화학물질을 복용,45㎏의 날씬한 체격으로 변한다는 내용이 뼈대이다.「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뚱뚱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클럼프 교수가 약을 마실 때마다 경망스러운 버디 러브로 바뀌어 벌이는 해프닝이 웃음을 자아낸다. 놀라운 점은 주연인 에디 머피가 무려 1인7역을 해냈다는 것.클럼프 교수와 버디 러브는 물론 클럼프 가족 가운데 할머니·부모·형 등어른 뚱보 역을 도맡은데다,TV화면상에 등장하는 백인 에어로빅 강사 역까지 처리했다.머피를 180㎏의 거구로 자연스럽게 바꿔친 할리우드 분장술도 대단하다. ▷맥시멈 리스크◁ 무술에 능한 장 클로드 반담이 주연하고,홍콩액션영화의 신세대 감독 가운데 한사람인 임영동이 할리우드에 진출해 처음 만든 작품.외인부대 출신인 프랑스인 알랭(반담)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소련인 미카일의 사체를 보고 쌍동이동생이 어려서 소련으로 입양됐음을 알게 된다.동생의 행적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알랭은 그곳에서 러시아마피아의 내분에 휩쓸려 온갖 위기를 겪는다는 줄거리. 스피디한 전개와 반담의 무술솜씨가 돋보이는 일급 액션물이다.「스피시즈」로 국내에 소개된 나타샤 헨스트리지의 매력도 상당하다.
  • 몸·마음 살찌우는 방학으로(사설)

    겨울방학이 시작됐다.서울시내 초등학교가 21일 일제히 방학식을 가졌고 오는 26일까지는 전국의 초·중·고교가 모두 방학에 들어간다. 방학은 문자 그대로 공부(학)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방학이 말만 방학일 뿐 또 하나의 학기로 바뀌고 말았다.학생이나 학부모 어느 누구도 이제 방학이 공부에서 해방되는 때라고 생각지 않게 된 것이다.바로 여기에 우리 교육의 문제가 있다. 학부모의 과잉교육열과 비뚤어진 교육상혼이 한데 어울려 학생은 방학중에도 보충수업과 학원 및 과외로 내몰리고 있다.대학입시라는 최종목표를 향한 행진에 차질이 없도록 전력을 비축하기 위해 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꽉 짜인 일정에 따라 숨돌릴 틈 없이 움직여야 한다.그 결과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이 머리만 크고 가슴은 빈약한 메마른 정서의 인간으로 자라고 있다. 우리 아이에게 방학다운 방학을 되돌려주어야 한다.그들이 부모세대가 경험한 것처럼 즐거운 방학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평소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취미활동을 하고 친척집을 방문하거나 정처없는 여행을 떠나보기도 하고 신문배달등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간직하게 된 것이 부모세대의 방학이었다.학교의 틀을 벗어나 세상과 삶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단련기간이었던 것이다.그런 방학은 사실 과잉보호속에서 자라 나약하고 이기적인 오늘의 청소년에게 더욱 필요하다. 수능시험과 논술고사의 도입,대학마다 다양한 전형방법을 채택하면서 이제는 기왕의 주입식 공부만으로는 입시전략에서도 성공할 수 없는 교육환경이 조성되고 있기도 하다.무익한 조바심에서 벗어나 아이가 방학다운 방학을 누리며 건강하게 자라도록 해주는 것은 우리 부모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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