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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모된 X세대는 달랐다

    부모된 X세대는 달랐다

    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 초 서태지에 열광했던 X세대, 배낭여행 1세대이자 인터넷 1세대인 이들은 ‘영원한 젊은이’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이들은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26∼35세로서 우리나라의 ‘미드필더’로서 자식을 둔 어엿한 부모가 됐다. 이기적이며 소비적인 이들 X세대는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줌마렐라’이며 아이에게는 친구 같은 아빠이다. 이는 제일기획이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2635세대 6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및 심층면접을 통해 X세대 부모 특징을 조사한 결과이다. 심층분석 결과 X세대 엄마들은 모성에 묻히지 않고 주체적인 여성인 ‘줌마렐라(아줌마의 줌마와 신데렐라의 렐라 합성어)’ 신드롬과 ‘스파르타식 엄마(Spartan Mommy)’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헌신과 희생에 삶의 중심을 두지 않고 합리적이고 적극적인 소비 주체로 바꿨다. 또 자녀들에게 할 만큼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걸지는 않는다. 딸을 공주처럼 키우지 않고 강하고 주체적으로 키우고 싶어한다. X세대 아빠들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 친구처럼 지내는 ‘버디대디(Buddy Daddy)’이며, 맞벌이가 대세인 이들은 육아 문제 해결을 위해 처가살이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를 자세히 보면 X세대들은 엄마이기에 앞서 여성이기를 원하고 있다.10명 중 7명은 “아이나 남편보다 내가 제일 소중”하며 9명은 “아이를 낳은 후에도 외모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또 8명은 “아이에 대한 투자만큼 자기 계발에도 열심”이며,“마음껏 문화를 누리는 여자이고 싶다.”는 응답자도 9명이다. 가족관도 훨씬 유연하게 바뀌고 있다.7명은 “장남이라고 해서 부모를 모셔야 하는 것은 아니며”,5명은 “친가보다 처가 식구들과 외식이나 모임을 더 많이” 한다.6명은 “아이 양육을 위해 처가 근처로 옮겼거나 옮길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자녀관은 유연하고 수평적으로 변하고 있다.9명은 “아이가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하지 않으며”,“하나만 낳을 거면 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5명이나 됐다.“딸이 아들보다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9명이나 됐다. 인생관에서는 9명은 “아이가 재미있어 한다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 아니어도 좋다.”고 응답했다.8명은 “부부끼리 낭만과 여가를 즐기는 편”이며,9명은 “아이들은 친구에 가깝고”,6명은 “의견이 다를 때 아이들의 의견을 더 존중”한다고 답했다. 직업관에서는 8명은 “맞벌이에서 남녀 차별이 없어야” 하지만 8명은 “아이 때문에 일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으며”,9명은 “출산이나 양육만큼 사회적 성취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재항 제일기획 국장은 “X세대 부모들은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합리적인 균형(Fair)을 지녀 기존의 부모상과는 다른 ‘Fair-ents’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2006년 함께 웃어요

    2006년 함께 웃어요

    올해는 환하게 웃어봅시다. 삶은 희망입니다.‘웃음’은 밝고 화사한 희망입니다. 병술년 새해를 맞아 서울시장과 25개 구청장들이 시민들과 구민들에게 환한 웃음과 함께 새해의‘희망 편지’를 전합니다. 시장과 구청장이라는 공인의 멍에를 지고 행정의 최일선을 진두지휘하는 사람들, 업무적인 일때문에 딱딱하고 근엄하게만 보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래서 ‘가장 웃음이 없어 보이는,그렇지만 가장 많이 웃어야 하는 사람들’의 미소에서 희망을 찾아 보았습니다. 시장과 구청장들이 가족들에게 쓴 편지와 새해 소망은 우리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즐거워야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야 즐거워진다고 하지요.병술년에는 시민들 모두가 활짝 웃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글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이명박 서울시장 나의 귀여운 손녀 지은이,지예,유빈이에게! 너희들이 태어났을 때 걸을 때가 되면 서울대공원에 데리고 가려고 마음 먹었고 또 매번 다짐해 왔는데,지은이가 올해 벌써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지예,유빈이는 세살이 되도록 아직도 함께 가지를 못했구나.올봄에는 휴일날 꼭 시간을 내서 모두 함께 대공원에 가자.가서 사자,호랑이도 함께 보고 놀이기구도 한번 타 보자. ●이기재 노원구청장 가족들에게 그동안 각종 행사로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바쁘게 나가다 보니 가족들에게 신경을 쓸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또 가족과의 대화도 많이 부족했습니다.올해에는 딸과 함께 영화관에도 가고 주말에는 함께 모여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선길 도봉구청장 그동안 가정보다 일에 우선을 두면서 남편으로서 때로는 아버지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항상 미안하게 생각합니다.사랑하는 아내,아이들이 행복하면 나 역시 행복한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올해는 가족들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막내야, 올해는 꼭 좋은 배필을 만나 결혼했으면 좋겠다. ●홍사립 동대문구청장 사랑하는 당신.결혼할 때 내 마음속으로 약속한 일이 있었습니다.결혼기념일과 당신의 생일,신년 등에 당신을 위한 시(詩)를 쓰는 것이었습니다.결혼 25년되는 날 당신에게 100편의 시를 써 책으로 내 주고 싶었습니다.그런데 바쁘다는 핑계로 요즘 시를 쓰지 못하고 있어 마음에 걸립니다.올해에는 다시 당신을 위한 시를 쓰렵니다. ●문병권 중랑구청장 사랑하는 아들들에게.밤낮없이 일하다보니 너희들에게 너무 소홀했구나.미안하다.올해부터는 아버지가 너희들에게 약속하마.한달에 한번 정도는 너희들과 산행을 하자꾸나! 야외로 가서 맑은 공기도 쐬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너희들과 정을 듬뿍 나눌 수 있도록 하자꾸나. ●성낙합 중구청장 사랑하는 당신과 아이들에게.‘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가훈을 늘 가슴에 품고 있으면서도 쏟아지는 일 때문에 우리끼리 저녁 한끼 제대로 먹은 적이 없는 것 같소.당신에게도 미안하고,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욱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올해에는 좀더 가정의 화목을 위해 시간을 내도록 노력하겠소. ●조남호 서초구청장 사랑하는 당신!결혼할 땐 처음 만났던 때의 기쁨을 기억하며 자주 밤새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자고 약속했지.허나 젊었을 때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아이들이 자랄 때는 정신이 없다는 핑계로,그리고 구청장이 되어서는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핑계로 지킬 수 없었구려.올해부터는 그 약속을 지키도록 노력할게. ●김희철 관악구청장 하루하루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가족들에게 너무 소홀한 것 같아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올해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사랑의 편지를 보내려고 합니다. ●추재엽 양천구청장 사랑하는 아내 정순씨! 늘 쫓기다 보니 매번 당신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구려.올해에는 발마사지 기술을 틈틈이 배워 당신의 지친 발을 마사지해 주겠다고 결심했소.기념일이 아니더라도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여행도 함께 떠나봅시다.당신의 반쪽이. ●김우중 동작구청장 8남매를 키우시느라 고생하신 어머니! 바쁜 구정 탓에 그동안 자식된 도리를 소홀히 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사랑하는 당신! 100세가 넘으신 어머님을 모시느라 고생이 많소.당신이 내게 준 사랑,꼭 사랑으로 보답하리다. ●박홍섭 마포구청장 사랑하는 어머니!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저를 비롯한 4남매를 정성을 다해 키워주신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핑돌고 가슴이 미어집니다.어머니 감사합니다.아울러 노동운동으로 해직과 실직,낭인과 다름없는 생활로 맘고생하면서 어머니 봉양과 남편 내조를 해준 당신.여생을 당신을 위해 살겠노라고 굳게 맹세합니다.사랑합니다. ●유영 강서구청장 아빠의 건강을 걱정하는 고마운 딸 시우야.“자꾸 술드시면 건강을 해치는데,미워할거야∼.”라며 늦은 귀가를 나무라는 엄한 딸이 되었구나.고시 준비에 온 힘을 쏟으며 때로 방황하고 갈등하는 너의 모습은 아빠의 젊은 모습을 기억하게 하는구나.네가 늘 아빠의 편이듯 나도 너에게 영원한 한표를 던진다. ●김충용 종로구청장 사랑하는 가족들에게.새벽에 나가 밤늦게 귀가하는 남편과 아버지를 챙겨 주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돌아보면 바쁜 업무 탓에 너무 소홀했던 것 같아 미안합니다.올해 만큼은 바쁜 일이 있어도 우리 가족을 챙기고 사랑해 줄 것을 약속합니다. ●김형수 영등포구청장 휴일도 함께 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한 아내.“여보∼ 조금만 참아요.나중에 멋진 마당쇠가 되어 못다한 사랑을 다 드릴게요∼.” ●현동훈 서대문구청장 신혁(11세)이와 혜리(5세)에게.바쁜 생활을 하다보니 아버지가 늘 함께 해주지 못해 미안하구나.신혁아 올해에는 매일 30분 이상 책을 읽어주고,1시간 이상 같이 운동해 줄께.함께 독후감도 같이 쓰고, 살도 같이 빼자꾸나.혜리(5세)야 1주일에 한번은 네가 좋아하는 외출도 함께 하자. ●노재동 은평구청장 사랑하는 며느리에게.둘째 손녀 지원이를 건강하게 낳아줘서 참 고맙구나.그동안 첫아이 지영이를 총명하게 기르는 네 모습이 항상 흐뭇했는데 지원이도 잘 길러주기를 바란다.한가지 더 바란다면 이제 두 아이의 엄마로서 편식하는 습관을 버리고 골고루 음식을 섭취해 건강을 지켜 주었으면 더 좋겠다. ●서찬교 성북구청장 올해에는 집에 혼자 있는 당신에게 출근할 때와 퇴근해서 집에 들어설 때 먼저 말을 건네겠소.그리고 한돌이 지난 손자 희준이, 많이 안아보고 싶고,보고 싶구나.희준이를 볼 수 있는 기쁨을 안겨준 큰 며느리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김현풍 강북구청장 내 생의 동반자이며 길동무인 당신에게.그동안 바쁜 생활로 마음 가득한 당신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잘 표현하지 못했습니다.올해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합니다.당신과 함께 손잡고 가는 내인생이 더욱 아름답도록, 우리 삶이 더 행복하도록, 당신을 더 많이 사랑하고 아끼겠습니다. ●양대웅 구로구청장 빈틈없는 일상에 매달려 하숙생이 되다시피 한 나만을 바라보는 당신.정말 미안하오.자식들이야 직장과 학업때문에 아버지 역할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당신에겐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소.올해에는 시간이 허락되면 당신만을 위한 여행을 떠나고 싶소. ●정영섭 광진구청장 5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공직생활을 하느라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립니다.올해에는 가족들과 함께 꽃구경, 단풍구경도 가고 싶습니다.그동안 너무 미안했고,한편으로는 나를 잘 이해해 준 가족들 너무 고맙습니다. ●고재득 성동구청장 미안합니다.개인 생활의 제약을 감내하면서 열심히 살아온 당신과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생각을 늘 마음에 품고 있으면서도 표현을 하기 힘들었습니다.올해에는 작은 목표지만 우리끼리 외식 횟수를 10번 이상 하도록 해볼게요. ●박장규 용산구청장 당신에게.곁에 있어줘서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소.내 자신이 쑥스러워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거의 못했소.당신의 존재가 나에게 크게 자리하고 있고,많이 의지하고 있습니다.부족한 남편인 절 올해에도 많이 사랑해주고 칭찬해 주었으면 하오. ●권문용 강남구청장 여보, 언제나 나의 꿈은 친구같은 아빠,애인같은 남편이 되는 것이었소.그동안 구청 살림살이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마음처럼 쉽지 않았소.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당신과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가장이 되겠소.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손주들의 재롱을 보게 해 준 큰딸과 둘째딸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신동우 강동구청장 구청장이 된 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당신에겐 정말 미안하단 말을 하고 싶습니다.올해는 좀 더 가정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지켜질지 모르지 만 일주일에 한 번은 가족들과 같이 저녁을 하겠습니다.또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영화와 뮤지컬을 함께 관람하고 싶습니다. ●한인수 금천구청장 나의 가장 큰 후원자인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에게.먼저 고맙다는 말과 함께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우리 가족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져 본 게 언제인지 아련하지만 가끔 내가 끓인 라면을 함께 먹었던 추억을 회상하며 미소를 짓는다오.고맙고 사랑한다. ●이유택 송파구청장 1973년 10월 당신을 처음 만났던 영주에 다시한번 가보고 싶군∼.수줍어하고 순진해 보였던 웃음이 가끔 생각나지만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이 벌써 33년 이라니….돌아보면 너무 숨가쁘게 달려온 시간들.당신에겐 얼마나 외롭고 힘든 시간인지 알면서도 애써 모른척 했고….여보 고맙고 미안하네!
  • [서울이야기] (34) 도시마케팅

    [서울이야기] (34) 도시마케팅

    아이 러브 뉴욕(I ♥ NY), 예스 도쿄(Yes Tokyo), 하이 서울(Hi Seoul), 다이나믹 부산(Dynamic Busan), 컬러풀 대구(Colorful Daegu), 홍콩의 드래곤(Dragon), 싱가포르의 멀라이언(Merlion), 진주의 논개, 대구의 패션이, 제주의 돌이와 맹이, 임금님표 이천쌀, 금산의 인삼, 부여의 굿뜨레 공동브랜드, 하이서울페스티벌, 부산국제영화제, 광주비엔날레, 춘천인형극제, 강릉단오제, 인사동 대학로 문화지구,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원주와 나주의 혁신도시….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도시 이미지 슬로건과 상징 캐릭터에서, 지역특산품과 브랜드, 축제와 이벤트, 문화특구와 문화도시, 지역특화 사업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와 방법은 달라도 거의 모든 도시들이 독특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더 많은 관광객과 주민과 기업을 유치함으로써 도시발전을 도모하려는 이른바 도시마케팅(City or Urban Marketing) 전략들이다. ●도시마케팅과 서울 문화도시 도시발전 전략의 핵심수단으로서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장소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이 점차 커지면서 도시 혹은 장소마케팅에 대한 관심 또한 급격히 증대하고 있다. 도시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구체적이며 살아있는 삶터, 즉 장소들의 집합이다. 도시마케팅은 이러한 장소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해석해 새롭게 기획하고 생성하는 장소정체성 만들기에서 시작한다. 그것을 토대로 문화콘텐츠를 만들고, 상품화·브랜드화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바로 도시마케팅이자 도시브랜드 경영이라 할 수 있다. 서울도 이러한 도시마케팅 전략 수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의 이미지와 정체성을 향상시키고, 문화관광과 문화산업을 통해 경제적 파급효과를 창출하며, 삶의 질과 결, 정체성이 묻어나는 도시커뮤니티를 창출하는 것, 그것이 서울마케팅이 추구하는 도시발전의 문화적 내용이다. ●서울마케팅의 출발, 문화월드컵의 도시에서 세계 일류도시 Hi Seoul로 서울 도시마케팅의 출발은 2002년 월드컵이다. 서울시는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지렛대로 삼아,21세기 세계의 중심도시로서 서울의 위상을 정립하고, 방문객들에게 가고 싶고, 기억하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서울로 이미지를 개선하여 도시관광역량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시민들에게도 자랑과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여 새천년 새서울을 건설하는 것을 장기 비전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비전을 달성하는 이미지 전략으로서 문화월드컵을 표방하였고,2000년 발표된 문화월드컵 준비 종합계획안에서 처음으로 장소마케팅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아울러 2001년 6월 여러 부서에 분산되어 있던 도시마케팅 관련 업무를 총괄기획, 점검, 조정, 추진하기 위해 ‘도시마케팅 추진반’을 부시장 직할 기구로 마련함으로써 서울마케팅의 조직 기반을 정립하였다. 월드컵을 마치고 민선 3기에 들어서면서 서울마케팅은 기존의 CI(City Identity) 중심의 이미지 전략에서 본격적인 브랜드 전략으로 전환한다. 바로 2002년 10월 선포된 ‘Hi Seoul’ 이미지 슬로건 브랜드다.1971년 서울의 상징물(개나리, 은행나무, 까치)에서 시작된 CI 전략은 1996년 역사와 활력의 인간도시를 상징하는 서울 휘장 선정을 거쳐,1998년 자랑스러운 서울시민을 상징하는 왕범이 캐릭터 개발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통합적인 도시이미지 브랜드로의 자리매김은 Hi Seoul 슬로건에서 사실상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Hi Seoul은 지역간 계층간 격차가 커서 공동체 의식이 부족한 서울의 균형발전과 시민화합을 도모하는 사랑스러운 서울(Lovely Seoul), 배타적이고 불친절한 서울을 개방적이고 친근하게 만드는 친근한 서울(Friendly Seoul), 국제수준에 미달하는 교통·경제·환경·행정을 세계 일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고품격 서울(High Seoul)을 만들어 서울을 세계 일류도시로 끌어올리겠다는 서울시의 비전을 담고 있다. ●서울마케팅 조직 믹스 전략-마케팅 전담조직 시스템의 정비 이러한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서울마케팅을 전담해 추진할 조직이 필요하다. 서울시는 서울시와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민관협의체가 서로 연계된 민·관·연 조직 믹스 전략을 추진해왔다. 우선 서울시 내에 서울마케팅을 전담하는 ‘마케팅 담당관’을 2002년 7월에 만들었다.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임시기구로 만들었던 도시마케팅 추진반을 상설조직화한 것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는 서울마케팅 연구를 전담하는 ‘서울마케팅연구센터’를 2002년 10월에 만들었다. 이 역시 월드컵 당시 정책 지원을 맡았던 월드컵지원연구단을 확대 개편한 것이다. 민관협의체로는 ‘서울컨벤션뷰로’를 2004년 12월에 설립하였다. 아직 3자가 밀접한 연계 활동을 추진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지만, 정부와 연구소와 민간기관이 파트너십을 이루는 도시마케팅 조직 시스템의 전례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한 언론기관에서 실시한 대한민국 마케팅 베스트 사례 선정에서 서울시는 정치행정마케팅 분야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울마케팅 브랜드 전략-노래브랜드에서 공간브랜드까지 서울마케팅의 상품브랜드들은 다양하게 기획되고 있다. 무엇보다 Hi Seoul 대표 슬로건을 활용한 이미지통합 브랜드들을 들 수 있다. 가수 보아와 김도향을 통해 만들어 전화대기음과 방송에서 사용하고 있는 ‘서울의 빛’‘서울 징글송’과 같은 하이서울송 노래브랜드를 비롯해,2003년 서울의 대표축제로 기획돼 올해부터 서울문화재단이 주관하여 개최하는 하이서울 페스티벌 축제브랜드, 패션과 정보통신, 문화콘텐츠 등 서울형 산업에 종사하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공동 홍보와 마케팅을 지원하는 하이서울 공동브랜드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고구려 시대 한강의 이름을 활용한 수돗물브랜드 ‘아리수’, 조선시대 통금해제 타종의 명칭을 따온 시청의 시계브랜드 ‘바라’도 작지만 서울을 마케팅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울마케팅 브랜드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서울이라는 공간 그 자체, 즉 서울 시민들의 삶의 체취가 녹아 있는 장소들로 이루어진 공간브랜드(혹은 하드브랜드)들이다.‘열린 청계 푸른 미래’를 대표 슬로건으로 별도의 장소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청계천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서울그린트러스트를 만들어 시민 주도로 조성한 서울숲과 다양한 문화행위들이 일어나는 서울광장도 서울의 대표적인 공간브랜드들이라 할 수 있다. ●서울마케팅 타깃 전략-시민, 관광객, 기업을 잡아라 서울마케팅의 타깃은 시민과 관광객, 기업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특히 서울을 동북아 비즈니스의 중심도시로서 기업하기 좋은 도시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한 기업 타깃의 투자유치 마케팅이 집중적으로 추진돼 왔다. 서울시내에 투자유치담당관과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BIZ 119 및 외국인지원센터를 만들고, 다양한 외국인투자협의체(SIBAC,FIAC,STM 등)를 만들어 외국 기업가들과 상시적인 소통 채널로 이용하고 있다. 또한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 디지털 관련 산업을 유치하고, 외국인전용아파트 건립을 추진 중이며, 여의도에는 서울국제금융센터를 건립하기 위한 협약을 체결한 상태다. 최근에는 서울컨벤션뷰로를 출범시켜 컨벤션 마케팅과 관광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서울마케팅 채널 전략-스포츠마케팅에서 하이서울홍보대사까지 서울마케팅 수단 혹은 방법으로는 우선 스포츠를 활용한 스포츠마케팅 채널을 들 수 있다.FC 서울 축구구단을 만들고,LG 트윈스, 두산 베어스, 삼성 썬더스,SK나이츠 등 서울연고 프로스포츠 팀들과 협약을 맺어 Hi Seoul 브랜드를 활용한 예를 들 수 있다. 그 외에 하이서울 외국인 마라톤대회나 월드 사이버게임과 같은 스포츠이벤트를 통해 다양한 계층에 서울의 이미지를 알려나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마케팅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시 통합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하이서울뉴스와 하이서울 알림이를 통해 실시간 서울소식을 전달하고 있으며, 서울을 사랑하는 시민모임인 서울사랑 커뮤니티가 사이버공간에서 활동 중이다. 미디어를 통한 서울마케팅, 즉 미디어 PPL(product placement) 채널 전략도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시 홍보팀장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TV 드라마를 통해 서울을 홍보하기도 하고(일요시트콤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 서울의 야경을 촬영하게 하여 하이서울 브랜드를 영화에 노출시키거나(영화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서울의 주요 공간들을 영화의 배경으로 활용하게 하는 등(영화 ‘서울공략’)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최불암, 조수미, 보아 등을 비롯한 18명의 하이서울홍보대사를 위촉해 서울이미지 홍보의 채널로 활용하는 전략도 주요한 서울마케팅 채널이라 할 수 있겠다. ●서울마케팅의 과제 다시 월드컵의 해가 밝았다.2002년 월드컵이 서울마케팅의 초석을 놓게 한 계기가 되었다면, 이제 서울마케팅의 기본목적과 정신을 시민과 함께 되새기며,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이며 조직적인 서울마케팅 전략의 토양과 기틀을 확립해야 하지 않을까. 서울의 이미지보다는 정체성과 진정성을 더 생각하는 마케팅, 서울시민의 삶에 신명나고 즐거운 혼을 불어넣는 마케팅(즉,Soul in Seoul)을 기대해본다. 월드컵때 그랬던 것처럼…. 이무용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 부연구위원
  • 개팔자가 상팔자

    개팔자가 상팔자

    올 초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개띠해인데, 올해는 초복 중복 말복을 하루로 통일하면 안되겠니?” “욕할 때 왜 내 새끼들 거들먹거리니∼.” 한국인의 개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애완견 문화로 ‘대접’하거나, 보신탕 문화로 존재한다. 정말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키우기 좋은 애완견(pet dog)이 아닌 인생의 동반자 같은 반려견(company dog)이라 부른다. 유별나게 개를 키우든, 조금 다른 뜻으로 개를 좋아하든 상관없다.12년 중 올 한 해만은 개처럼 살맛나는 세상으로 만들어보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개팔자가 살팔자…금방석 앉았네 애완동물 시장 규모는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에서 80% 이상이 애완견 시장이다. 애견병원, 애견미용실, 애견옷가게, 애견카페 등 곳곳에 개를 위한 장소가 들어섰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은 애견테마파크 ‘페티앙 캐슬’이다.1500여평 규모에 공원형 애견 시설과 쇼핑몰형 테마 시설을 접목시킨 곳. 지난해 4월 경기도 용인에 문을 열자마자 애견인들의 관심의 대상이자,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 됐다. 강아지에 대한 모든 것을 접할 수 있다. 강아지를 키우는 초보라면 꼭 들러 다양한 교육을 받아도 좋다. ●우리 강아지 ‘용’ 된다! 페티앙의 장점은 원스톱 관리다. 강아지 미용, 건강, 음식은 물론 애견 신분증 발급도 가능하다. 애완견의 모습을 더욱 멋지고 예쁘게 찍어주는 전문 스튜디오도 마련돼 있다. 애견가로 잘 알려진 재벌가의 자택수의사인 박현종씨가 운영하는 시설인 만큼 병원시설도 잘 돼 있다. 120평의 넓은 애견쇼핑몰에는 없는 게 없다. 애견 옷부터 쿠션, 욕조, 사료, 장난감 등이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격대부터 고가의 물건까지 갖춰져 구경할 수 있다. 요즘은 흔해진 애견 옷은 1만원 이하부터 10만원대를 훌쩍 넘는 것까지 다양하다. 고가의 ‘명품’코너에는 40만원짜리 수입 가죽조끼도 전시해놓았다. 고급스러운 금사 방석, 초극세사 원단으로 멸균·항균기능을 갖춘 방석, 애견 전용 욕조 등은 단지 ‘사치품’으로 넘겨버리기엔 기능이 뛰어나고 욕심이 날 정도로 예쁘다. ●애견과 함께 놀아요 눈이 소복이 쌓인 운동장에서 뛰어오는 개들은 마냥 신나보인다. 좁은 아파트에서 살던 개들이 한껏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곳이다. 회원가입을 하면 훈련사에게 무료 교육도 받을 수 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인기도 높아지는 장소는 단연 애견 수영장. 청정 1급수를 사용하고, 애견샤워시설을 갖추고 있어 개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고 싶은 애견인에게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소형견은 2만 5000원, 중·대형견은 4만원. 애견 레스토랑에는 애견 전용 메뉴도 있어 애견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 페티앙 캐슬 입장료는 없다. 회원가입을 하면 회원종류에 따라 쇼핑몰 30∼50%, 수영장 10∼50%, 미용실 30% 등 할인을 비롯해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031)335-5830.www.petian.com ■ 우리 해피 건강관리는 웰빙숍에서 애완견과 특별한 무엇인가를 나누고 싶다면 이곳을 참고하자. ●분위기있는 카페에서 친구 사귀고 5∼6년 전부터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빠른 속도로 번진 애견카페는 이제 정돈 상태다. 애견마니아에게 사랑받는 곳만 남아있다. 경기도 미사리 카페촌에 있는 ‘멍스’(031-792-5573·www.mungs.co.kr)는 여유있는 드라이브를 즐기고 다양한 애견을 볼 수도 있다. 넓직한 카페에 들어서면 이곳 아이들 중 가장 덩치가 큰 ‘첼로’(그레이트 피레니즈)가 맞는다. 손님이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할 때까지 곁을 지키고 있어 ‘첼마담’이라는 애칭도 있다. 배용준과 CF 촬영도 한 유명한 아이. 개를 키우지 않아도 커머, 아지 등 애교가 넘치는 아이들을 보러 오는 손님도 많다. 최근 압구정동으로 이전한 ‘이글루’(02-511-0980), 논현동 ‘독스’(02-517-2202), 홍익대 근처의 ‘바우하우스’(02-334-5152)도 대표적이다. 호텔, 미용, 목욕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크기에 따라 미용은 1만∼7만원선, 호텔은 1박에 1만∼2만원선. ●우린 특별하니까 서울 청담동 갤러리아 백화점 맞은 편에 있는 애견 제과점 T베이커리(02-511-6750)는 ‘개 전용 웰빙숍’. 웰빙 사료를 비롯해 설탕, 소금, 인공조미료, 색소 등이 들어가지 않은 건강식와 쿠키, 케이크 등을 판매한다. 먹을 것을 가리거나 소화기능이 좋지 않은 애견을 위해 이곳을 찾는 단골과 멀리서 수소문해서 찾아오는 고객도 많다. 최근 경기도 분당점도 열어 영역을 확대했다. 주인과 애견용 커플 패션을 주문제작해 주는 온라인 사이트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애견패션 사이트인 ‘퍼피아(thepuppia.com)와 ‘루쏘볼페(www.lussovolpe.com)’ 등에서 애견과 함께 입을 수 있는 커플 옷을 판매하고 있다. 가격대가 보통 2만∼6만원선으로 저렴해 품절이기 일쑤다. 이밖에 개의 이름을 지어주는 작명 사이트나 장례서비스를 돕는 업체도 있어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랑을 쏟기도 한다. 강아지옷 직접 만드는 이인숙씨 열살짜리 말티즈 ‘아미’와 네살배기 ‘미르’를 키우는 이인숙(36)씨는 이미 ‘강아지옷 만드는 예쁜엄마’로 애견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그가 강아지 키우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사이트(www.lynn.pe.kr)의 회원수는 무려 3만 3000여명. 하루에도 수백명의 방문객이 북적거린다. 인숙씨는 아미와 미르에게 특별한 ‘개인기’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저 아이들(아미와 미르)의 귀여운 모습만 봐도 행복을 느끼는 소박한 엄마다. “아이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었다고 느낄 때나, 기분 좋은 표정을 읽었을 때, 근사한 간식을 앞에 두고 발레리나처럼 우아하게 빙글빙글 돌며 좋아할 때 너무 예뻐요. 옷을 만들어 입혀주면 사진을 찍겠다고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모습에 행복감마저 느끼죠.” 아이들에게 옷을 만들어 준 것은 4년전. 아미의 털을 밀게 돼 옷을 사 입혔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입지 않는 자신의 옷들을 재활용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만들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정보를 공유하게 됐다. 장 기능이 좋지 않던 미르를 위해서는 사료 대신 전공(영양학)을 살려 영양 균형과 칼로리를 맞춘 음식을 해주기 시작했다. 아미에게 맞는 옷을 만들면서 다른 강아지들에게도 편한 옷을 만들어주고, 미르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면서 다른 애견인에게도 방법을 전수하는 ‘범국민적인 일’로 확대된 것이다. 좀 유별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으면 이해가 된다.“컵 속에 들어가는 크기의 애완동물인 ‘티컵 사이즈 펫’이라는 말을 들으면 소름이 쫙 끼쳐요. 생명체를 장난감처럼 대하는 풍토가 얼마나 잔인한지…. 함께 살기 시작한 애견은 같이 즐거움을 나누는 대상이예요. 같이 삶을 영위하는 존재이지 인간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애견인이든 아니든 인숙씨의 말을 우선 가슴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귀여운 강아지를 위해 그의 노하우를 살짝 들춰보자. 내팬티에도 이불에도 푸들이 뛰어놀아요 병술년, 개띠해를 맞아 강아지 캐릭터를 활용한 상품이 속속 나오고 있다. 친근하고 귀여운 개의 이미지를 살려 커플 제품이나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높다. ●귀여운 강아지 제품을 입고 덮고 ‘비비안’은 귀여운 강아지가 럭비공을 갖고 뛰노는 모습을 프린트한 커플 트렁크 팬티를 선보였다. 강아지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프린트하고, 부분적으로 야광 효과를 넣어 귀여운 스타일을 연출한다.‘임프레션’의 커플 파자마에는 강아지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캐주얼하고 발랄한 느낌을 좋아하는 커플에게 좋다. 좋은사람들의 1925세대 감성내의 ‘예스’의 ‘바우와우’ 시리즈는 불테리어종을 캐릭터화한 제품. 쫑긋 선 귀와 한쪽 눈에 크게 찍힌 점 등 특이한 외모에 빨강과 파랑 등을 포인트로 매치해 익살스럽다. 아가방은 귀여운 강아지가 제품 곳곳에 디자인된 ‘에블린 시리즈’를 준비했다. 젖병, 기저귀, 이불, 분유케이스, 욕조, 보행기 등 모든 제품에 강아지 캐릭터가 모티브로 활용돼 아기들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속싸보, 속싸개, 방수요, 담요 등 섬유를 이용한 제품들은 은행나무 추출물로 만든 천연섬유 징코 소재를 사용하고, 천연 순황토볼이 들어 있는 건강 베개도 내놓아 디자인과 기능을 모두 잡았다.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 개띠해를 맞아 옥션(www.auction.co.kr),G마켓(www.gmarket.co.kr), 인터파크(www.interpark.com)에는 강아지 모양의 각종 캐릭터 상품들이 즐비하다. 하얀 말티즈의 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표지의 ‘도기다이어리’(1만 5000원)는 강아지 사진들이 가득해 인기있는 상품. 두 마리 강아지가 앙증맞은 ‘강아지 분수대’(9900원)는 장식성과 가습기 효과를 볼 수 있는 실용적인 인테리어 제품이다. 강아지 캐릭터를 이용한 저금통으로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어떨까. 동전을 올려 놓으면 강아지가 나와 가지고 가는 제품이나 강아지 모양으로 만든 저금통을 이용해 동전을 차곡차곡 모아보자. 올 한 해의 마지막쯤에는 마음도, 지갑도 든든해질 것이다. 강아지 캐릭터 클립(4700원)은 강아지를 본떠 만든 고무 제품. 입속에 물건을 꽂을 수 있게 디자인했다. 유리벽에 붙이기만 해도 훌륭한 인테리어 소품이 되고, 필요에 따라 컴퓨터 책상 거울 등에 붙여놓고 명함 볼펜 메모지 열쇠고리 CD걸이로 이용할 수 있다. 강아지만큼 귀여운 아이들에게 강아지 캐릭터 선물을 주는 것도 좋겠다. 시추 푸들 슈나우저 모양으로 만든 캐릭터 가방(2만원)은 손으로 들거나 어깨에 멜 수 있는 제품으로 깜찍하고 실용적이다. 강아지 실내화(6900원)는 그로밋과 바둑이 캐릭터를 이용했다.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 돌기처리가 되어 있어 활동이 많은 아이들이 실내에서 따뜻하고 안전하게 신을 수 있다.
  • “山寺 체험뒤 아이가 차분해 졌어요”

    “山寺 체험뒤 아이가 차분해 졌어요”

    3일 오전 4시30분 경기 여주군 신륵사. 세상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지만 천년 고찰은 고사리 같은 어린이들의 기지개로 기운이 넘치기 시작했다. 사찰 생활 체험 이틀째를 맞아 30명의 초등학생들은 현담(40) 스님의 채근에 하나 둘 찬물로 세수를 하며 잠을 쫓는다. 오전 5시. 이들은 새벽 예불을 드리기 위해 법당으로 향했다. 목탁 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깨우는 가운데 덕중(42) 스님이 불경을 읽기 시작했다. 2002년 이후 삶에 지친 중생들이 수행자의 정갈한 삶을 배우며 삶의 여유를 느끼고자 산사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이에 맞춰 전국의 유명 사찰들은 겨울방학을 맞아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템플 스테이(Temple stay)’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성인들이 참가하는 정통 사찰 체험은 아니지만 어린이·청소년 프로그램은 자연의 소중함과 전통문화를 배우는 좋은 기회이다. 신륵사는 2박3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어린이 불교학교’를 여름·겨울방학 동안 한 차례씩 운영하고 있다. 실무간사 오희영(36)씨는 “불교색이 짙은 수련회와 달리 템플 스테이는 예불과 발우공양을 빼면 불교색이 거의 없어 기독교인 등 다른 종교인들도 많이 참가한다.”면서 “참가자 가운데 절반 정도가 특별한 종교가 없으며 불교신자는 25%, 나머지는 기독교, 천주교 등이다.”고 전했다. 아침예불을 마친 아이들이 아침 공양(식사)을 하기 위해 공양간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가부좌를 틀고 발우(식기)를 자리 앞에 놓은 뒤 허리를 곧추세웠다. 사찰 음식을 발우에 담은 뒤 보해(46) 스님이 “조용하게 소리를 내지 않고 먹습니다.”고 말하자 젓가락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아이들은 발우에 담긴 음식을 깨끗하게 비우고 물로 발우를 헹군 뒤 수건으로 닦아 수납함에 올려 놓았다. 아침 식사가 비로소 끝났다. 5번째 템플 스테이에 참가한 김예인(14)양은 “발우공양을 다소 더럽게 느낄 수도 있지만 음식을 남겨서는 안 된다는 좋은 의미가 담겨 있다.”면서 “평소 부산스럽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이곳에서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말했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싸리비를 들고 사찰 곳곳을 쓸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는 불가의 원칙을 따르기 위해서다.1시간 동안 경내 곳곳을 청소하던 아이들은 요가 프로그램이 준비되자 하나 둘씩 방으로 들어갔다. 지루한 절 문화를 감안하면 이벤트 물이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데는 제격이었다. 주임교사 권태선(27·여)씨는 “어린이들은 만들기와 율동 등 직접 해보는 것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에 되도록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넣었다.”고 밝혔다. 점심공양을 마친 아이들이 종이컵을 이용해 자그마한 연등을 만들었다. 이들에게 연꽃제작은 꽃에 담긴 불가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것보다 또래들과 모여 무언가를 함께 만든다는 것에 무게를 더하는 분위기다. 김동현(12)군은 “절에서는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없지만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조유진(10)양은 “일찍 일어나는 것을 빼면 나머지는 다 좋다.”고 털어놨다. 연꽃을 만든 어린이들은 사찰 옆에 위치한 얼음판에서 얼음을 지치며 재래식 썰매를 탔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점점 활기를 띠었다. 몇몇은 연을 만들거나 제기차기에 열중하기도 했다. 도시에서는 점차 흔적을 감추었거나 이제는 설날에만 즐길 수 있는 옛 어린이 놀이다. 손자 심재윤(12)군이 못 미더워 찾아온 외할머니 임규봉(63)씨는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발우공양으로 손자가 음식을 남기지 않는 습관을 들이게 됐다.”면서 “투박하지만 감자와 옥수수, 고구마 등 자연산을 먹는 것도 좋은 체험인 것 같다.”고 했다. 겨울철 놀이를 끝낸 아이들은 이어 저녁 공양과 예불, 촛불의식 등 템플 스테이 일정에 따라 산사의 하루를 채워갔다. 주지 세영(52) 스님은 “사찰 체험을 통해 전통문화를 익히며 어린이에게 집중력과 안정감, 공동체 의식 등을 배울 수 있다.”면서 “절 특유의 고요함에서 차분하게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밤 10시. 어린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점차 사그라들며 어느덧 사찰의 하루도 저물었다. 여주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금둥이’ ‘굶둥이’ 양육 양극화] ‘금둥이’가 살게될 세상은

    “10년 전에는 한반 정원 30명 가운데 외동아이가 2명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7∼8명으로 점차 늘고 있다. 일단 외동아이들은 욕심이 많은 편이며 놀이하는 법이나 친구를 사귀는 법을 잘 모르는 경향이 강하다. 아무래도 자기 중심적으로 사고하며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경기도 의왕시 갈뫼유치원의 한 교사) 그러나 외동아이에게서 발견되는 부정적 성향은 부모의 양육방식 때문이지 혼자 자랐다는 외부 환경 탓만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국민대 교육대학원 허영림 교수는 “형제 자매가 많은 가족이 주류인 과거에는 혼자 자란 사람이 ‘금둥이’의 특성을 보였을 수도 있지만 요즘은 자녀가 하나인 가정이 많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오히려 주어진 환경이 중요하며 혼자 자란 어린이는 어른들과 어울려 조숙하며 독립심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등 개인차가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외자녀들이 맞닥뜨릴 미래를 걱정한다. 지금이야 금지옥엽으로 자라고 있지만 미래에는 자기 부모들 세대보다 고달픈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00년 339만 5000명이었지만 2020년에는 766만 7000명,2040년에는 1453만 3000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재정적인 압박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료는 2000년 현재 1인당 부담액이 40만 8154원인데 비해 2030년에는 60만 9245원으로 50% 가량 뛸 것으로 보인다.2080년에는 87만 1003원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도 비슷하다. 요율이 장기적으로 9%를 유지할 경우 2010년에는 지금보다 연금으로 적립되는 돈은 2배 증가하지만 지급되는 돈은 6배 가량이 된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2033년이면 연금은 고갈되고 만다. 노년층 부양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부족함 없이 자란 외동아이들이 짊어져야 할 미래의 짐인 셈이다. 이유종 나길회기자 bell@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 -‘부넝숴(不能說)’ 중에서 ●편집자주:원고의 각주는 편의상 모두 본문 안에 삽입했습니다. 1. 형식에서 정서로, 혹은 인식에서 믿음으로 김연수는 똑똑하고 성실한 작가다. 이것은 물론 그의 작품이 증명해 주는 바다. 이미 첫 장편 ‘7번 국도’의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에서 그것이 예고되었고,‘굳빠이, 이상’에서는 그의 ‘좌뇌’가 승한 글쓰기가 과도하다 싶을 만치 절정을 이뤘으며, 최근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는 논픽션적 자료의 편집으로 픽션을 제작하는 방식의 글쓰기(이에 대해서는 김연수 심진경 류보선의 좌담 ‘작가-되기, 혹은 사라진 매개자 찾기’, 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 참고)가 일가를 이뤘다고 할 만하다. 새로운 소재와 생생한 묘사라는 ‘발로 쓰는’ 글쓰기가 유행하는 가운데, 김연수는 그 나름 ‘읽고 쓰는’ 글쓰기의 장을 적극적으로 열고 있다고나 할까? 예컨대,‘공야장 도서관 음모 사건’의 보르헤스식 모티프에서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에 나오는 경성제대 이어철 박사의 ‘냉수를 마셔라’라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또 휘트먼의 시에서 한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레퍼런스는 실로 화려하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비록 대중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읽을 만하다. 읽을 만하다는 것은 그 자료적 풍부함과 형식적 공들임이 해석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김영하나 백민석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라는 소재적 새로움을 문단에 던져줄 때, 김연수는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라는 형식적 새로움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는 자칭 “현학적인 문학근본주의자”인 것이다. 더불어 김연수는 시대적 상처와 유관한 작가다. 첫 단편집 ‘스무 살’의 ‘구국의 꽃, 성승경’에서 투신하는 학생 운동가라든지,‘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첫사랑’에서 수배자의 고백이라든지,‘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의 배경이 되는 광주항쟁과 지역감정의 문제라든지, 이처럼 80년대적 상황과 사회적 투쟁의 상처는 89학번 김연수에 의해 소설 안으로 계속해서 호출된다.“세대의식과 소설가적 자의식을 맞세우며 자신의 소설적 지평을 지속적으로 갱신했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물론 김연수가 등단했던 1990년도는 집단의식보다는 ‘나’가 문단의 화두였다. 한편에서는 윤대녕, 신경숙이 ‘나’를 돌아보며 내면으로 침잠할 때, 다른 한편에서는 김영하가 그 ‘나’를 파괴하겠다며 나르시스트의 ‘거울’을 부수고 있었고, 백민석의 주인공들이 엽기적인 행각을 서슴지 않았으며, 여러 문화적 코드들이 혼종된 작품들도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억눌렸(렀)던 개인의 욕망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고, 왜곡된 방식으로 사회의 모순된 구조가 드러났으며, 그 와중에 대사회적인 투쟁이나 고민은 이미 유행지난 옷가지처럼 옷장 깊숙이 처박힌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김연수의 주인공들은, 학생운동의 과잉진압으로 죽은 ‘성승경’의 동생 ‘승진’이 죽은 누나의 원피스를 입고 유령처럼 밤거리를 헤매듯, 그 유행지난 옷가지들을 자꾸 꺼내서 입어본다. 그는 자칭 “80년대에 가까운 작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옷은 역시 유행에 걸맞지 않는 터라, 더불어 이 부채의식이라 할 만한 것에 짓눌려 있기에 작가의 상상력의 궤적이 너무나 크고 그의 지적 발랄함이 너무나 경쾌한지라 “김연수에게 문학적 글쓰기는, 자신의 진실을 고통스럽게 토로하는 것보다는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쪽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서영채,‘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문학동네 2002년봄,p328)라는 지적이 폭넓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김연수 식 예의 그 경쾌한 글쓰기는 ‘사랑이라니, 선영아’라는 재치있는 연애소설에서 그 빛을 발하고, 결국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편집자, 주석가, 번역가로서의 그의 재구성 능력이 우연과 필연, 진실과 거짓에 관한 통찰까지 얻음으로써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이렇게 본다면 김연수에게 80년대적 상황 혹은 세대 감각,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다소 우울한 정서의 문제는 작가가 초지일관하고 있는 형식적 구성력에의 관심, 또 그에 값하는 작가의 능력에 의해 묻혀 버리게 된다. 따라서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징후적으로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들과 그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고독과 비애의 정서는 “이 소설만큼은 연필로 쓰기로 결심했다.”라는 작가의 고백과 함께, 김연수의 작품 목록에서 특이한 것으로서만 간주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집의 독특함 혹은 이질성에 대한 평가는 뒤이어 나온 ‘유령작가’의 형식적 강렬함에서 더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장편 연재를 시작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문학동네,2005년 겨울호)에서 김연수는 다시 80년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끌고 오면서 전후 한국 현대사를 거론하고, 그러면서 인간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그렇다면 김연수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이쯤 되면, 김연수의 ‘변전’(김형중),‘기획력’(심진경), 혹은 ‘문턱 넘기’(김연수)는 여전히 한쪽에는 세대의식, 한쪽에는 작가의식을 놓고 그 양극 사이를 진동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수 소설에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김연수는 애초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작가라는 것이다. 그가 유지해 왔고 벌써 정점에 도달한 듯 보이는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나 불가지론적인 사고에는 세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그의 세계인식이 “그러므로 진실은 없다.”는 냉소나 허무주의가 되지 않고,“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인간에 대한 끝없는 관심 때문일 텐데, 그것은 어떤 ‘정서’의 집약을 통해 스며 나오기도 하고,‘의지’ 혹은 ‘믿음’으로 실천되기도 한다.“아프지 말아라, 너무 아파하지 말아라”(‘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194.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1:페이지수)라는 식의 위로와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창작과 비평사,2005,p.28.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2:페이지수)라는 의지 같은 것들이 김연수를 해체적 허무주의자라는 평가로부터 지켜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한복판에 항상 ‘언어’에 대한 고민이 놓인다는 점이다. 소설집의 제목에 ‘작가’라는 말을 대놓고 쓸 만큼, 또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 목록이 다수에 해당할 만큼 그에게 언어의 운용은 중요하다. 김연수 소설의 인물들이 흔히 무엇을 쓰거나 말하거나 읽고 있다는 사실도 그 증거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언어 수행 행위를 바탕으로 해서, 김연수만의 진정성과 고민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으로 이 글은 쓰여진다. 그의 형식적 기발함과 재치와 성실성에 묻혀 버린 김연수의 진정성은 무엇이고, 그가 멈추지 않는 질문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 그 질문을 지금껏 어떻게, 어디까지 해결했나? 2. 기억으로 말할 수 없는 것, 말로 기억할 수 없는 것-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작가가 그렇듯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하거나 쓴다. 김병익이 지적했듯,‘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작품들은 이제 무엇에 대해 쓰기 시작하겠다는 말을 먼저 밝히는 것으로 서두를 뗀다.(김병익,‘(해설)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위의 책)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는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한 채 혼잣말을 계속하고, 그의 이혼한 아내는 꿈꾼 것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다.‘부넝숴’와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의 화자는 아예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일방적인 편지 형식이며,‘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여자 친구의 자살 원인을 알기 위해 ‘소설’을 쓴다. 유서에 자신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도 남겨 놓지 않은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었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라는 처절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너’의 흔적을 그리고 ‘우리’의 흔적을 더듬는다. 문제는,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혼잣말이며,“사랑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꿈 속까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며, 편지에는 답장이 없다는 것이며, 소설 속의 인과관계 안에서는 어떤 진실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언어는 장애를 지니고 있다. 말은 할수록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처럼 단어 몇 개로밖에 소통할 수 없는 말하기가 더 단호하고 정확하게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계속해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허무한 일인가. 그래도, 여하튼, 침묵은 비겁하다. 그래서 인물들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또 말하고 쓴다. 전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도 그랬다. 그렇지만 그들은 타인과 소통할 수 없음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 아니 그 점에 대해서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왜일까? ‘첫사랑’의 ‘나’는 수배중이다. 자수할 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첫사랑 ‘정인’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그 편지 내용이란 건 거창할 게 없다. 삶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역설적으로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떠올려지듯 ‘나’는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사건을 떠올리고 그에 대해 고해성사를 해나간다. 자신의 관심이 무시당하자 정인의 뺨을 때린 일, 혜지누나에게 화풀이하듯 “남의 잔에 술이나 따르는 더러운 년이 일식은 무슨 일식”(1:114)이냐며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일 등을 얘기한다. 그런 고백의 사이사이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데프콘 발동”,“직선제 개헌”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무심히 끼워 넣는다. 그런데 그 편지는 단지 자신의 지난날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망쳐버리는 동물은 사람뿐이야.”(1:114)라는 뒤늦은 뉘우침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남겨야만 한다는 초조한 마음”(1:98)에 사로잡혀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특별히 그 대상이 ‘정인’이어야 할 것도 없다는 점이다.‘정인’의 주소는 짐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되었고, 정인에 대한 기억도 따라서 우연히 떠올려 졌을뿐이다. 결국 고백을 들어줘야 할 그 ‘누군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지난날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스스로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다.“너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을”(1:105) 연구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나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이 바로 자기 안에 머물기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까닭 없는 슬픔과 한없는 기쁨과 막연한 불안감이 하늘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처럼 내 안에서 서로 섞여서 하나의 거대한 원으로 바뀌는 동안, 조금씩 둥근 원이 태양 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했지. 눈물 방울처럼 검은 유리판에 새겨진 그 아름다운 노란빛. 언젠가 보았던 너의, 또 혜지누나의 눈물 맺힌 눈동자처럼 한쪽 부분부터 흔들리는 그 둥근 빛. 그러나 결코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을 그 소중한 동그라미. 무한히 수축됐다가 다시 온 우주로 퍼져나가는 그 노란 물결.(1:118)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둥근 노란빛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이미지는 이 작품에서 특히 일식을 보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아버지를 따라 나간 시위에서 처음 본 ‘펄럭거리는 노란빛’,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그 노란빛,‘나’는 그게 꿈이었고,‘사랑’이었다고 정의 내리고 이제 일식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 그렇지만 검은 유리판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태양에 의해 완벽하게 가려진 그 노란빛은 꿈도 사랑도 아니다. 어쩌면 꿈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실재(real)를 가리고 있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예쁘던 반딧불이 실은 끔찍한 벌레에 다름 아니었듯 말이다. 이렇게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서 사랑하고 내 안에서 꿈꾸고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에서 ‘게이코’는 어떤가. 이 작품에서도 편지는 중요한 모티프다.‘태식’과 ‘김씨’가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 판 돈을 갖고 사라진 게이코를 찾으러 가는 데는, 게이코가 받았던 펜팔 편지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게이코의 아버지는 월남 가서 실종됐고, 엄마는 자살을 했고, 따라서 그녀는 ‘천애고아’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엄마’라는 단어 대신 ‘모친’이라는 단어를 쓰는,“하루에 열 마디 이상을 하지 않고”,“말한다고 해도 더듬기 일쑤”(1:29)인 ‘게이코/경자’는 ‘서유진’이라는 이름으로 ‘수잔’에게 펜팔 편지를 쓴다. 답장도 받았고 게이코는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와 서로 소통하는 듯 보이지만, 그 답장은 ‘게이코/경자’에게 온 것이 아니며,‘게이코’가 만들어낸 또 다른 나인 ‘유진’에게 온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녀가 편지에 털어놓는 이야기란,“펜팔 가이드”의 예문대로, 자신은 다니지 않는 학교 얘기, 자신은 가본 적 없는 캠핑 얘기일 뿐이다. 학교와 캠핑, 날씨에 대한 안부를 묻는 것 등이 ‘게이코’ 또래가 누려야 할 삶의 전형이어야 하는 것이다. 말더듬이 게이코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수잔’에게 일지라도 자신이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빵집에서 일하는 말더듬이 고아라는 것을 이야기할 리 없다. 아니 어쩌면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자기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잔’을 대화 상대로 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말을 더듬는다는 것도 말하기 싫다는 무의식적인 의지의 표명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게이코’는 왜 편지를 쓸까. 그 편지 역시 ‘첫사랑’의 편지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이해받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녀는 빵집에서 여전히 빵처럼 둥근 그 노란 빛 아래서 편지를 쓰면서, 그렇게 자기를 원하는 방식대로 꾸며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면 그녀가 빵집 창문에 다 못 쓰고 간 ‘New Year‘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편지를 쓰지만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물러 있듯, 게이코의 행방의 단서가 되었던 편지는 당연하게도, 그녀가 간 곳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에게 쓰는 행위는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려는 행위이며, 결국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다. 그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가 될 만한 것들을 차단한다. 단지 각자의 기억을 더듬고 각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이처럼 그들의 쓰기/말하기/읽기는 자기 충족적이다. ‘리기다소나무숲에 갔다가’의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끊임없이 ‘만담’을 하는 것도 ‘나’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치유의 과정에 가깝다. 카페 여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가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자살 소동으로 시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촌은 내 “인간 연구”의 대상이다. 나는 왜 “인간 연구”에 골몰할까? 대학 1학년 때 분신 장면을 목격한 나는 “죽을 게 뻔한 길인 줄 알면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심정”(1:151)이 무엇일까 라는 숭고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질문은 삼촌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삼촌에게 “물망초 여자 진짜로 사랑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초에 삼촌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삼촌 역시 ‘나’에게 답하고 있다는 자의식 없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그들 사이에는 질문과 답의 형식이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없다. 삼촌은 넋두리를 늘어놓듯 자신의 로맨스를 말하기 시작하고, 도라꾸 아저씨는 옆에서 “하이고, 조카 듣는데 창피하지도 않나? 뭔 사설이 그래 기나?” 라는 식의 추임새를 넣어 준다. 가히 ‘만담’ 수준이지만, 혼잣말에 가깝다. 이 ‘만담’ 속에서 나는 삼촌을 이해했고, 삼촌은 공감을 얻었을까? 이해는 앎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앎이 이해와 치유의 첫 걸음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해받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삼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 길은 가지 않은 길이고, 여전히 삼촌은 ‘리기다소나무 숲’ 안에서만, 혹은 자신 안에서만, 지난 날 부르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더 로드 낫 테이큰’을 읊조리는 수밖에 없는 것을.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만담’을 하는 동안,‘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의 ‘봉우’는 그야말로 시답지 않은 ‘농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국낙서문학회 지역지부에서 ‘나대로’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봉우에게 삶이란 ‘만반의 준비는? 5천. 평생동지는? 12월 22일’ 따위의 말장난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방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주간지의 독자페이지에 이런저런 낙서를 지어서 투고하는 일에 열을 올리면서 봉우에게 삶은 더더욱 우스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봉우가 만든 최고의 낙서는 바로 ‘인생이란? 픽션에 불과하다’였다. 어두운 산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망상이 빚어낸 허상과 직면하니 그야말로 인생은 픽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192) 뱃 속에서 죽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절에 들어가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예정’은 “시답지 않은 주간지에 아무 짝에나 소용없는 낙서 따위나 투고하는”(1:197) 봉우에게 세상을 모르는 ‘멍청이’,‘어릿광대’라고 소리친다. 봉우는 그야말로 상처와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나대로’ 그 상처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이며, 그 외면의 방식이 바로 ‘낙서질’이었던 것이다.“아기가 죽으면서 봉우의 마음속에서도 뭔가가 죽어나갔고” “그 자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지만”(1:198) 봉우는 낙서질을 통해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하는 일이 상책일 수는 없다. 예기치 못하는 순간 자기를 보호하던 그 ‘노란 빛’은 꺼져버릴 수도 있고,‘리기다소나무 숲’에서 넋두리만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봉우 역시 “자기만은 어두운 산길에 혼자 버려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산에서 길을 잃고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한다면 봉우의 그 두려움은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괘 감정으로서의 불안(불안과 증상에 대한 논의는,S. 프로이트,‘억압, 증상, 그리고 불안’,‘정신병리학의 문제들´, 열린책들,2003)에 다름 아닐 텐데, 그 불안은 ‘나대로’의 낙서라는 증상을 극복하고 상처와 맞설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예정이 자기 안의 ‘노란빛’을 밖으로 드높이 내걸 듯, 혹은 게이코가 빵집을 나와 어디론가 첫걸음을 내딛듯 말이다. 그렇게 했을 때 “노란 꽃잎 가장자리가 흐려지면서 노란색과 초록색과 진회색이 서로 경계도 없이 뒤엉켜”(1:181) 버리듯,“꼭꼭 막아둔 마음의 가장자리도 그렇게 풀리게” 된다. 이제 자기 밖으로 나와 그렇게 풀린 ‘노란빛’은 ‘첫사랑’에서와 달리,‘사랑’도 될 수 있고,‘꿈’도 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 최소한 그럴 가능성은 있다. 이처럼 증상과의 타협에서, 증상에의 만족에서 나오는 첫걸음이 도달해야 하는 것은 결국에 “병에 걸리는 원인을 제거하는 일”(1:229)이며,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비책”이다. 그 원인을 밝히는 일이 어떤 위험을 동반하든 그 알 수 없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 필요하고, 그것이 비로소 윤리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의 상처, 그 병의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도출된다. 상처는 분명 어떤 ‘좌절’에서 기인할 텐데, 일단 우리는 각각의 서사 속에 끼워져 있는 시대적 배경들을 통해 그 상처가 밖으로부터 투사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은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이며, 이 작품은 일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물론 여기에서도 쓰기와 말하기에 값하는 ‘읽기’를 통한 상처치유의 행위가 지속된다. 전라도 출신 아버지가 시대에 무기력했던 자신을 용서하고 그 시대 자체를 용서하는 방식은 바로 ‘신문 스크랩’이다. 그리고 ‘내’가 그 초라한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아버지의 그 신문 스크랩 ‘읽기’이다. 오렌지빛 가로등 불빛에 기대 나는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천천히, 붙여 놓은 기사를 읽었다.(중략)다 읽은 뒤에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글자와 글자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를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여름 내내 도서관 한쪽에 앉아서 도대체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누구를 용서했던 것일까? 파도와 파도 사이, 바람과 바람 사이, 달빛과 달빛 사이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다.(1:65∼66) 주목할 점은 이 작품에서만큼은 읽기의 방식이 자족적이고 자위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소통을 위한 매개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문 채로 그 상처를 짓누르고 있지만, 그 ‘신문 스크랩’은 ‘나’로 하여금 초라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가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신문 스크랩을 아무리 읽어도 그 아버지의 마음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여하튼 나는 “고작 딸이 집을 나갔다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고,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생기고,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전적으로 회상에 의존한 작품은 ‘뉴욕제과점’이라는 자전소설 밖에 없다고 작가가 밝혔듯, 우리는 이 소설집을 단순히 회상 형식을 통해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추억의 보고서’ 또는 ‘반성의 기록’(정선태,‘(해설)빵집 불빛에 기대 연필로 그린 기억의 풍경화’,‘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295)으로 읽을 수 없다. 그 속에는 분명,‘언어’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통찰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언어’의 불가능성, 즉 언어 자체로는 어떤 진실에도 가 닿을 수 없고,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해묵은 해체적 사고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언어와 비극은 반복될 수 없는 일회성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즉 구조로 회수될 수 없는 다수성과 사건성이라는 점에서 서로 관련된다. 비극적 인식이란 바로 그러한 언어 안에 놓인 인간 조건을 발견하는 일이며, 이처럼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는 언어에 의한 고통은 인간이 결코 ‘아이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비유로 확인된다.(가라타니 고진,‘언어와 비극’, 조영일 역, 도서출판b,2004,pp65∼86)그런데 고진은 ‘아이’가 단지 비유가 아니며, 아이는 이미 어른 이상으로 인생을 알고 있는 존재, 어떤 순수한 비애와 부조리감을 깨닫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에 기댄다면,‘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전편을 감도는 슬픔과 비애의 정서는 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혹은 잃어버린 기억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반복될 수 없는 ‘기억’, 반복될 수 없는 ‘언어’적 조건과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는 “기억이나 회상을 기본적으로 불신”하며 “글쓰는 순간만의 진실”(김연수 외 좌담, 앞의 글,p.81)을 믿는다고 말했다. 애초에 우리가 ‘기억’해 낼 것은 없고 ‘언어’로 표현해야 할 것도 없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순간 순간의 진실일 뿐이라는 말인 듯싶다. 그 일회적인 언어에 의존하여 쓰고 말하고 읽음으로써 자신의 상처 안에 거주하는 방식으로는 상처가 완벽히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다. 이는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2:61)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세계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3.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넘어서는 몇 가지 방식-‘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최근작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는 죽기 전 두 개의 글을 쓰고, 하나의 글만 남겨둔다. 남겨둔 글은 “世上萬事 一場春夢 돌아보매 無常ㅎ구나”로 시작되는 203행의 대서사시로서,“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평양전쟁, 한국전쟁,4·19,5·16 등 한국 현대사의 최중심지를 관통해온” 한 남자의 생애를 담은 것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그 한 남자의 생애는 또래의 다른 남자의 생애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서사시는 한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의 역사를 다룬 시라고 봄이 정확하다. 할아버지는 그 역사를 증명하는 ‘한 남자’일 뿐인 것이다.“할아버지의 또 다른 글은 누구도 읽어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그 다른 글 역시 태워버렸다. 그 글에는 서사시에서 볼 수 없는 다른 것이 들어 있을 테고, 그것은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일 테니 다른 사람은 엿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4·4조의 정형적인 형식처럼 그 서사시가 어떤 일관되고 형식적인 구조에 속하는 추상화된 개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면, 불태워진 할아버지의 그 비망록은 여전히 ‘언어’로서도 ‘기억’으로서도 도달할 수 없는 개개인의 진실을 의미한다.“한 개인의 진실이란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 아무도 몰래 끼적이는 비망록에나 겨우 씌어질 뿐이고”,“서로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옆에 누운 사람의 비망록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이니” 할아버지의 그 두 글 사이의 거리는 엄연한 것이고,‘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인과관계의 구조로 엮어진 ‘그’의 소설이 현실(reality)과도, 실재(the real)와도 멀어진 거리와 같다. 실재와 구성화된 그것 사이의 거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지도에서 비워진 행로로 상징된다. 일년 전 이혼한 아내와 우연히 재회한 ‘나’는 아내를 따라 인사동 거리를 걷는다. 아니 함께 걸었다기보다는 아내를 따라 걸었던 것인데, 그 ‘길’은 한 개인의 진실로 들어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을 뜻한다. 꿈 얘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애초에 그런 소통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꿈따위는 잠에서 깬 다음 바로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런 아내의 의지조차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 그는 이제 그 아내의 진실, 아니 그녀와 자신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지적도를 사고 그날을 행로를 그려 본다. 하지만 기억의 행로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고, 지형도가 아닌 ‘지적도’일지라도 그것은 실재의 ‘유사물(le semblant)’일 뿐이므로, 그 유사물 속에서는 모방된 진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바디우(Alain Badiou)에 따르면 진리는 언제나 특수한 상황의 진리(S. 지젝,‘진리의 정치, 혹은 성 바울의 독자로서의 알랭 바디우’,「까다로운 주체」,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5,pp.208∼218)이다. 하나로 이어진 선 안에서는 그 다양한 상황의 진리들은 모두 지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 연결될 수 없음에도 그어지는 그 많은 선들은 다 무슨 의미일까? 역사의 인과관계가, 혹은 지나간 일들의 진실이 도중에 사소하고 우연적이고 꾸불꾸불한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숨에 긋는, 그런 선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날 걸어간 복잡하고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는 무엇일까?(2:19) 따라서 ‘나’의 생각이 미치는 지점은 모든 삶의 행로는 우연이고, 그 안에서 진리는 발견될 수 없고, 나의 불행도 그저 불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삶의 우연성을 인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를 따져 묻는다. 그리고는, 결국엔,“오랜 시간이 흐르고 하면 지금의 우연한 일들도 모두 필연이 된다”(2:28)는 정답을 얻어낸다.“우리가 만난 것도, 헤어진 것도, 그날 길 잃은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한 없이 걸어다녔던 일들도 필연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거대한 ‘농담’일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나’는 윤리적 행위의 첫 발을 내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사건에의 충실성’이라는 말로 윤리를 설명한다.(A 바디우,‘윤리학-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이종영 역, 동문선,2001)그가 정의하는 ‘사건’이란 인식 범위 밖에서 발생하며,‘공식적’ 상황이 ‘억압’했던 것을 가시적이게 만드는, 언제나 어떤 특수한 상황의 진리이다. 따라서 사건에의 충실성이란 사건의 견지에서 ‘인식’의 영역을 횡단하고, 그 속으로 개입하고, 사건의 기호를 찾는 지속적 노력을 가리킨다.(이하 한 단락의 내용은 S. 지젝의 앞의 글을 참조하여 정리한 것임) 지젝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바디우의 논의는 “범역적 우연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보편적) 진리의 소생”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실재 사물과의 모든 열정적 조우가 환영일 뿐이라는 해체주의적 사고와 대립된다. 요컨대, 후근대적 해체주의자들이 비관주의의 한계 내에 머물러 있을 때, 바디우는 “기적은 실로 일어난다.”는 전적으로 정당한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성과 불멸성에 대한 이와 같은 바디우의 추구는 물론 개별적인 상황, 다양성의 상황의 전제로 하는 열린 개념이다. 다소 길게 인용된 바디우의 논의를 따라,‘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결국 내가 삶의 모든 길은 우연이고 진실은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한번 버텨보기로 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진리’를 위한 행위이고,‘사건에의 충실성’을 담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자기 안에 머무는 회피나, 삶은 우연에 불과하다는 회의에 빠지지 않고 한 개인의 진실, 혹은 삶의 진실에 가 닿으려는 ‘행위(act)’를 시작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태도는 분명, 자기 안의 둥근 노란빛에 의지하여 자폐적으로 말하고, 쓰고, 읽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속 인물들의 태도와는 차별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그’가 쓴 소설의 첫 문장이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여기에 패배는 없다.”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패배주의자가 아니라, 고투하고 있는 인물들임에 분명하다. 그 고투의 방식을 몇 가지 단계로 분류해 보자. 첫 번째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와 같이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고 소통에의 의지를 표명하는 방식이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 세영과 네즈미가 지도를 보고 찾아간 길이 잘못 된 길이었지만, 세영이 “돌아갈 수 없어, 네즈미. 우린 계속 가야 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첫 번째 방식 안에서 설명된다. 잘못 들어선 길이 “공로가 아니라 사유지”라는 것도 상징적이다. 구조화되지 않은 상황의 진리, 혹은 개개인의 사적인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두 번째는 ‘말’이 아닌 ‘몸’으로 다가가는 방식이다.‘부넝숴’를 한번 보자. 지평리 전투에 투입되었던 중공군 ‘나’는 들판을 가득 메운 매화꽃잎들처럼 지평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전사자들 틈에서 한 조선인 여성 구호원에게 구조된다. 그들을 실어 나르던 트럭이 전복되고 그 둘은 외딴 농가에 고립된다. 날짜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먹을 것도 없고, 죽음을 지척에 둔 상황에서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한 일은 두 가지이다. 몸을 섞거나 시를 읊거나.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때의 일은. 살아 있다는 건 그토록 부끄럽고도 황홀하고도, 무엇보다도 아픈 일이더군. 아프다는게.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그 순간만큼 기뻤던 적이 없었어. 그래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도 계속하라고 채근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우리는 쉬지 않고 몸을 섞었어. 죽음이 지척이었으니까.(2:71) 그들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 몸을 섞는다. 이 장면은 그야말로 ‘고통 속의 향유(jouissance)’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만하고 그 향유의 끝장을 보는 ‘죽음충동’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그들은 그렇게 “몇 번이나 해가 뜨고 저물었는지, 몇 번이나 달이 둥글어졌다가 다시 여위어졌는지”(2:75)도 모른 채, 수색대가 왔다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가는 것을 “죽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만 살아서 지켜보고 있는지”(2:75)도 모른 채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결국 ‘그녀’는 죽고 ‘‘나’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나’는 이제 점쟁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라캉이 ‘죽음 충동’과 관련하여 ‘두 죽음 사이의 영역’(위의 책,pp.251~265)이라고 말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캉에 따르면 그곳은 상징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의 영역으로서 존재의 질서 너머에 있는 유령적 환영의 영역이다. 그곳은 ‘죽음 너머의 삶’이 갑작스레 출현한 장소이고, 상징화되지 않는 ‘불가분의 잔여’이기 때문에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예컨대, 그 형상은 운명을 이행한 이후의 오이디푸스, 즉 ‘과도하게 인간적’이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자, 어떤 인간적 법칙들이나 고려 사항에도 묶여지지 않는 존재에서 찾을 수 있다.‘그녀’의 피를 1000그램이나 수혈받고 죽음의 경계를 넘은 ‘나’는 이 ‘산죽은-파괴불가능한’ 유령적 대상과도 같다. 운명을 보아버린 ‘나’는 이제,“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세상에서 믿기 어려운 얘기”(2:77) 속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산죽은’ 존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번째 방식, 온몸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이 성공적이라면 그 순간 상징적 질서로 편입되는 어떠한 ‘언어’도 소용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 방식이 성공했는가. 그 둘이 함께 ‘몸’을 통해 ‘유사-죽음’을 경험했더라도, 여하튼 현재 ‘그녀’와 ‘나’ 사이에는 역설적으로 ‘죽음’이라는 경계가 놓여 있지 않는가? 여기서 굳이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는 공식을 끌어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로 취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의 행위를 아예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설령 그게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소통에의 ‘의지’를 드디어 ‘실천’으로 관철하는 일이며, 반복될 수 없는 ‘언어’의 한계,‘기억’의 한계,‘몸’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의 세영이 5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했던 남편에게 자신이 절대로 이해 못하는 다른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아니 극복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식이냐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언니의 동거남,‘네즈미’와 섹스를 하는 방식이다. 네즈미에게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드는” 세영의 방식이 “무모한 열정”으로 보이지만, 세영의 그 무모한 열정은 끝장까지 간다. 자동차 사고로 남편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2시간 동안 울기만 했던 세영, 그렇게 다른 삶이 있었던 남편의 죽음을 방조했던, 아니 어떤 행동(action)도 하지 않음으로써 적극적으로 행위(act)했던 세영은 결국 ‘자살’한다.(정신분석은 행동과 행위를 분리한다. 행위는 그것의 담지자(행위자)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다는 점에서 행동과 다르다. 행위 이후에 나는 ‘전과 동일하지 않다’. 행위 속에서 주체는 무화되고 뒤어이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라캉은 ‘자살’을 모든 (‘성공적’) 행위의 전형으로 파악한다. 알렌카 주판치치,‘실재의 윤리’,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4,p.133∼134) 세영의 방식이 극단적이고 무모하다면,‘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어떠한가. 이 작품에는 소통 불가능성과 그 불가능을 넘어서는 시도와 그 결론이 모두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랑의 모든 국면을 다 경험”함으로써,“심지어 죽음까지”도 경험함으로써만 가능한 결론이다. 여자 친구가 마지막으로 읽은 ‘왕오천축국전’을 읽고 나서도,‘소설’ 쓰기를 통해서도 애인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째, 그녀와 자신의 삶에,“어떤 진실도, 상상도, 이해도 없는”(2:151) 가장 합당한 주석을 달며, 그저 “짐작을 하며”,“그 사이를 원래 그대로 틈으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일”(2:143)이거나, 둘째,“지도에서 비워진” 그 곳으로 직접 가보는 일이다.‘그’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서로를 속이는 것도, 속는 것도 없는”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어두운 구멍”(2:43)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이 ‘아직 가지 않은 길’이고,‘의지’의 방식을 택한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가 ‘결국 가야하는 길’이고,‘부넝숴’의 ‘나’가 ‘덜/더 가버린 길’이다. 당연히,‘그’가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향해 가는 것은, 이처럼 ‘몸’으로도 ‘언어’로도 이해 불가능한 그녀를 이해하는, 아니 자신의 진실을 이해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검은 그림자의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껄껄거린다.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2:154) 그곳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많다. 현실과 꿈이 뒤섞인 공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공간, 어떤 논리도 거부하는 공간, 죽음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공간 등등. 그러나 어떤 말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그곳은 가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실재’와 대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현실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이다. 그 길을 가는 ‘그’에게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트를 사면 항상 옮겨 적던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2:111)라는 릴케의 문장이 떠올랐을 것이다. 용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에게 그 용기를 갖는 일은 의무이다. 낭가파르바트 등반은 원정대장이 역설한 바대로 “분명히 의의가 아니라 임무”(2:117)인 것이다.“그 꿈이 제아무리 압도적이라고 해도 원정대는 그곳을 ‘정복’해야만 한다.” 불가능한 것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오로지 ‘의무’ 때문에 ‘행위’한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윤리적 주체(‘의무’와 윤리적 행위의 관계에 대해서는, 위의 책,5장 참고)이다. 4. 진실은 어디에,“대뇌와 성기 사이”(김연수,‘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문학동네 2005년 겨울,p.158)그 어디쯤 ‘유령작가’라는 말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김연수는 그 의미가 ‘대필작가’ 쯤이 된다고 말했고, 대부분의 논자들은 그 안에서 작가적 자의식을 찾아냈다.‘유령’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보면 어떨까?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김연수의 최근 두 소설집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죽음을 넘어선 그 어떤 영역을 살펴보고 ‘유령’이 되어버린 작가가,‘아직’ 언어와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아이’에 머물고 있는 상처받은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고 말이다.“아프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라고.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죽기 싫어서다. 그래서 눈물은 조롱거리가 되고 아픔은 비난받고 두려움은 무시되며 믿음은 당연하다고 여긴다.”(2:117). 우울은 도덕적 쇠약함이며, 죄라고 라캉이 말했던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가 위와 같은 말에 의지하여 낭가파르바트로 갔듯이 우리도 각자가 넘어야 할 산 하나쯤은 마음 속에 있을 것이고, 그 산을 넘기 위한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것의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지만 ‘죽음’이 윤리적 행위의 전형이라며, 그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타자의 진실, 나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현실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연수는 이런 질문을 던져준다. 현실에서 이해는 필연적으로 오해가 되고, 살 부비는 부부 사이에서조차 서로의 마음 속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해결은 한 가지다. 그 “대뇌와 성기 사이” 그 어디쯤에 있을 ‘마음’으로 진실을 그저 믿는 것이다. 김연수의 세계인식과 작가의식은 이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지고 있는 듯 보인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위의 책,p.121)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 어떻게 들려줄지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의 장편 연재가 기대된다. <끝> ■ 당선소감 “조금은 자신 갖고 내목소리 낼수 있을것” 글쓰기는 나에게 공포다. 학교에서 몇 개월째 학부생들의 리포트 상담을 하고 있지만 난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글쓰기에 관하여 조언을 해 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항상 회의적이다. 여전히 나는 무엇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절부절 못하고, 하얀 모니터 앞에서 머릿속까지 하얗게 비워지곤 하는 걸…. 그렇지만 여하튼 읽는 일은 행복하고, 쓰는 일은 나에게 작은 희열을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그 일들을 멈출 수가 없다. 혼자 품고 있던 그 공포와 행복 사이에 용기를 채워 준 이번 당선이 정말 기적 같다. 여전히 막막하고 두렵지만, 이제 조금은 자신을 갖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온전히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턱없이 부족한 글이라 몹시 부끄럽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만으로도 더없이 많은 것을 일깨워 주시는 신범순 지도교수님과 국문과의 모든 은사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꽃비 내리는 자하연을 몇 번이고 함께 맞이했던 1동의 동료, 선·후배들의 자극에도 빚진 바 크다. 함께 공부하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그리고 나이 서른을 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철없고 무심한 자식을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어렸을 적부터, 성실히 읽고 쓰는 일을 너무도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게끔 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약력 ▲1977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글쓰는 순간이 진실’ 작가의 본질 파헤쳐” 응모작 총 20편은 작가론이 대부분이었고, 김현론을 비롯한 문학사적인 쟁점을 다룬 게 3편 있었다. 작가론 중에는 시인·소설론이 거의 반반씩이었다. 아마 최근 신춘문예 평론의 주류가 작가론으로 정착된 느낌이다. 특히 전후문학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4·19세대 작가론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늘의 작가론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시선을 끈 글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행복한 공간-김현론’(김윤정),‘몸의 형이상학, 모성적 관능과 타자없는 육체 사이-김선우론’(함돈균),‘속도에 저항하는 시의 모험-김기택론’(강영준)‘‘틈’을 바라보는 시선-배수아 소설을 중심으로’(김나영),‘고독의 의무, 소설의 의무-윤성희 소설집 ‘거기, 당신?’론’(이은주),‘‘유령’작가의 진실-김연수의 최근작을 중심으로’(조연정) 등이었다. 김현론은 정직한 글쓰기의 자세를 보여준 진솔한 비평적 자세가 돋보였으나 개인적인 체험에 너무 함몰된 점이 아쉬웠다. 김선우론은 인문학적인 거시적 시각으로 시인에 접근하면서 미세한 현대적 환상과 성담론을 분석한 점이 돋보였으나 일반론적인 해설위주에 그쳐서 아쉬웠다. 김기택론은 성실한 독법이긴 하나 해설론에 그친 한계가 있었다. 배수아론은 라캉의 틈 이론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하려 했으나 결론이 너무 조급해 보였다. 최종적으로 윤성희론과 김연수론은 우위를 다툴 정도였다. 윤성희론은 반 루카치적인 소설론을 전개한 점이 시선을 끌었지만 문장력이 치밀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김연수론은 탈구조주의적인 이론의 틀에 너무 얽매인 느낌이 있으나 기억이나 회상을 불신하고 글쓰기의 순간만이 진실이라는 이 작가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헤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김윤식 임헌영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당선작] 블랙홀/김미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당선작] 블랙홀/김미정

    ●블랙홀/김미정 등장인물 광식 정애 남자 가인 등을 들고 있는 아이 인철 그 밖의 배우들 각 에피소드들의 시간적 배경은 같다. 에피소드 1 전체 무대는 1,2층의 구조로 되어 있다.2층은 오랜 병원생활을 했음을 짐작하게 해 주는 병실의 내부가 있다. 병실에는 환자용 침대와 보호자용 침대가 있고 침대를 바라보며 유리창이 있다. 유리창 밖으로는 도시의 풍경이 보인다. 양끝으로는 줄을 연결해서 빨래를 걸어 놓았다. 한쪽에는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이 있고 그것은 병원 비상계단의 모습이다. 침대 옆에는 인공호흡기와 심장모니터기가 놓여져 있다.1층은 어느 산동네를 연상케 하는 배경들이 있고 계단의 정반대쪽에는 지하철 입구의 표시가 그려져 있다. 계단의 앞쪽으로는 벤치가 있고 그 벤치 옆에는 어느 노숙자가 놓고 간 듯한 신문지들과 소주병들이 나뒹군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 얼핏 들으면 기차소리와도 같은 규칙적인 소리.2층의 무대가 조금 밝아지면서 기차소리는 심장 모니터기의 소리로 바뀐다.2층의 무대가 완전히 밝아지면 모니터의 소리는 잦아들고 보호자용 침대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광식의 모습이 보인다. 유리창 밖에는 어깨에 끈을 매단 남자가 유리창을 닦는다. 유리창을 닦다가 소주를 꺼내어 마신다. 광식의 앞에는 먹던 중이었던 김치그릇과 밑반찬 그릇들 그리고 밥그릇이 있다. 나머지 두 침대는 비어있다. 광식:(입맛을 다시며)거 참 맛있겠네. 저 양반 저거 세상을 아는 양반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소주 한 병 사오는 건데.(혼잣말로)거 혼자만 잡숫지 말고 나눠 먹읍시다.(먹던 밥을 계속 먹는다.) 남자가 유리창을 두드리더니 소주병을 내민다. 광식:한 잔 주시게요?아이고 그럼 나야 고맙지요. 유리창 남자가 소주를 따르는 시늉을 한다. 광식이 술잔을 받는 시늉을 한다. 광식:(마시는 시늉)원샷! 캬! 안주는? 안주도 줘야지. 남자가 씩 웃는다. 광식:사람 참 싱겁소. 남자도 하!웃는 모양. 그러고는 유리창을 닦는다. 광식:하, 취한다.(침대의 이불을 젖히니 아이가 반듯이 누워 있다. 광식이 아이의 몸을 옆으로 돌려서 등을 문지른다)우리 딸입니다. 예쁘죠?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이 예수님 귀 빠진 날이래요. 뭐 대단한 양반인지는 몰라도 병원 전체가 들썩들썩 합니다. 우리 병실 환자들은 모두 외출을 나갑디다. 세상을 구원하신 독생자 그리스님인지 놈인지 덕분에 오랜만에 조용하고 좋수.(등을 문지르다가 손을 동그랗게 하고 두드린다.)하나요, 할머니가 지팡이 들고서 달달달, 둘이요, 두부장수 두부를 판다고 달달달, 셋이요, 새 각시가 빨래를 한다고 달달달. 광식이 부르는 노래의 반주와 함께 빨간 등을 든 여자아이가 등장해서 1층의 무대를 돌아다닌다. 아이가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남자가 내려다보고 있다. 아이:(가만히 서서)아빠!일곱은 뭐라고 그랬죠? 남자가 뭔가를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유리창을 두드린다. 광식이 쳐다본다. 남자가 손가락 일곱 개를 유리창에다 댄다. 광식:일곱이요. 일본 놈이 순찰을 돈다고 달달달! 아이:아!(아이가 다시 노래를 부르면서 무대를 돌아다니다가 퇴장한다.) 광식:(아이의 등에 베개를 대주고 이불을 덮어주면서 남자를 빤히 쳐다본다.)우리가 언제 한 번 본 적이 있죠?(유리창에 입김을 불어서 글씨를 쓴다.‘나 몰라요?’큰 소리로 입 모양이 보이게)초등학교 어디? 난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공주에서 살다가 중학교 올라가면서 서울로 이사 왔는데…. 고향이 공주?아닌가?아무튼 형씨 인상 한 번 좋수다. 어쩌다 이런 일…. 뭐 오해는 마슈. 위험하니까. 이런 일 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잘 될 거요. 인상 보면 알지.(아이를 쳐다보며)우리 애는 십 년째 이러고 누워 있어요.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거든.(사이)원무과에서는 석 달에 한 번씩 청구서가 나옵니다. 일년 만에 집 날리고 벌써 팔 년 짼데 뭐가 남았겠습니까?지금은 월세 낼 돈도 없어서 병원에서 살아요. 뭐 그런 얘기를 밥 먹으면서 하냐고 그러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이게 현실인걸. 만날 울고 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그냥 하루하루 간신히 넘기는 거죠. 하루의 끝은 웃으면서 보내려고 해요.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죠.(한숨을 쉬며)그래도 하루에도 몇 번씩 울화가 치밀어요.(조금 작은 소리로)이건 형씨한테만 하는 말인데요. 처음에는 살아준 것만으로도 고맙더니 딱 일년이 지나니까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길어야 삼년이겠지. 웃기죠?딱 일년 만에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우리 마누라가 알면 난리 날 겁니다. 긴병에 효자 없죠?맞습니다. 부모라면 벌써 포기했을 겁니다. 자식이니까 붙들고 있는 겁니다.(큰소리로)진짜 나 몰라요?(한참의 사이 후 고개를 숙인다. 어깨를 들썩인다. 다시 한참의 사이를 두고 고개를 든다.)제길, 소주 한잔에 취했네. 다 잘 될 거요.(사이)그거 하면 하루 얼마나 줍 니까? 남자가 유리창에다 손가락을 대고는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를 세더니 칼을 꺼내어서 줄을 끊는다. 순식간에 남자가 사라진다. 광식:어?(광식은 잠시 아무 움직임이 없다가 주머니에서 전화를 찾는다.)씨!지가 왜 죽어. 죽을 놈이 누군데.(한참 만에 전화를 찾는다. 떨리는 목소리로)저 여기 13층인데요.(사이)네?병원(사이)한영병원요. 사람이 떨어졌어요.(사이)아니 안이 아니고 밖인데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누구냐면…유리창을 닦는 사람인데…. 인상이 좋고…. 어디서 많이 본 것도 같고…. 저 위 동네에 사는…. 헉!(갑자기 입을 막는다. 전화를 놓친다.) 광식이 정신없이 병실을 빠져나가 비상계단으로 내려간다. 머리를 벽에다 반복해서 박는다. 무언가 모를 괴로움에 몸부림을 친다. 그러다가 미친 듯이 웃는다. 한참 만에 다시 병실로 돌아온다. 아이를 바라보고 유리창 밖을 바라본다. 두 손바닥을 유리창에다 댄다. 이제부터는 모든 행동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아이의 호흡기 전원을 끈다. 호흡기 소리가 점점 잦아들다가 멈춘다. 침대 위 아이의 몸이 위로 한 번 뛰었다가 털썩 내려앉는다. 심장모니터의 박동소리가 완전히 멈춘다. 광식의 몸이 털썩 밑으로 내려간다. 무대가 서서히 어두워진다. 광식의 손바닥 자국이 드러난다. 소리:2005년 12월25일 서울의 모 병원에서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생명을 유지하던 15세 김모 양의 아버지가 아이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김모 씨는 병원 소각장에서 아이의 신발을 태우다가 붙들렸습니다. 김모 양은 지난 1998년 교통사고를 당해 그 이후로 계속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살아왔던 걸로 밝혀졌습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아이의 목숨마저 끊어버리게 된 김모 씨는 현재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씨의 다른 가족으로는 아이의 어머니 최모 씨와 8세의 아들이 있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김씨는 아내 최모 씨에 의해 경찰에 신고 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날 김모 양의 병실 밖에서는 병원의 유리창을 닦는 강모 씨의 추락사가 있었습니다. 강모 씨의 주머니에는 마시다 만 소주병이 있었고 리프트의 한 쪽에는 분골함으로 보이는 상 자에 하얀 재가 반쯤 들어 있었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아 한층 들뜬 분 위기의 한 쪽에는 이런 어두운…. 암전 에피소드 2 빗소리와 함께 무대가 밝아진다.2층 무대의 소품들은 여전하다. 정애가 지하철 입구를 통해 밀고 다니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들고 등장하고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그냥 그 자리에 선다.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어서 닦는다. 남자가 벤치에 앉아 있다가 정애가 있는 곳으로 온다. 정애:(남자를 힐끗 보더니)크리스마스에 눈이 안 오고 비가 오네요. 남자가 쭈그리고 앉는다. 정애도 쭈그리고 앉는다. 정애:(남자를 바라보며)묘한 기분이 들어요. 남자:…. 정애:(천천히 고개를 돌리며)나 좀 봐 주책이야. 남자가 담배를 피운다. 정애:(가방에서 칫솔을 꺼낸다. 혼잣말로 연습한다.)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공부하시느라 살림하시느라 일하시느라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으십니까. 오늘 제가 가지고 나온 물건은 여러분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해소시킬 수 있는 건강 칫솔입니다. 이 건강 칫솔은 아이에스오 9002 인준을 받은 칫솔모를 사용한 칫솔로서 여러분의 이와 잇몸의 구석구석까지 들어가서 찌꺼기와 치석을 제거해 줄 것입니다. 몇 달이 지나도 칫솔모가 상하지 않아 칫솔을 자주 바꾸실 필요가 없습니다.(남자를 쳐다보며)한영병원 1002호에 입원해 있는 가인이를 아시죠? 제 딸이에요. 남자:(그제서야 고개를 돌려서 정애를 본다) 정애:그동안 잘 지냈어요? 남자:…. 정애:당신, 많이 늙었네요. 남자:…. 정애:먹고 살만 하시면 칫솔 두 개만 사주세요.5천원이에요. 이 칫솔은 아이에스오 9002를 인정받았어요. 그게 뭔지 아시죠? 남자가 주머니에서 5천원을 꺼내서 정애에게 준다. 정애가 남자에게 칫솔을 준다. 정애:우리 가인이는 저 혼자 이빨도 못 닦아요. 그래서 칫솔도 필요 없죠.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무대 가운데로 간다. 뒤돌아서 정애를 바라본다. 남자:봉천동 산27번지에 사는 소영이는 어제 바다에 뿌려졌습니다. 며칠 전에 돌에 깔려서 죽었거든요. 그 아이도 이제 칫솔은 필요없을 겁니다. 정애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남자:가인이는 오래오래 살길 바랍니다. 정애가 남자에게 달려들어 옷을 잡고 흔든다. 남자와 정애의 몸싸움. 슬프고도 정열적인 음악이 흐른다. 얼핏 보면 두 사람이 춤을 추는 것 같다.2층 병실로 검은 옷을 입은 조폭이 등장한다. 쇠방망이를 들었다. 조폭:으메 씨벌, 병실 한 번 좋구마잉, 으메 씨벌, 돈 빌려준 놈은 지 엄니 병원비도 없어서 집구석에서 다 돌아가시게 생겼는디 돈 빌려간 놈은 지 자식을 번듯하니 이런 큰 병원에다 모셔두고 있어 잉?니들이 사람이여?개, 돼지만도 못한 것들 아녀 이것!씨발!(방망이를 한 번 내리친다) 정애:병원비가 없어서 사채를 썼어. 갚은 이자만으로도 원금을 까고도 남는데 이 새끼들이 이자가 한달만 밀려도 병실로 찾아오네. 아이의 아빠가 작업복을 입고 1층으로 등장한다. 같은 복장의 배우들이 방망이를 들었다. 광식:이 집은 재개발 지역 내에 있습니다. 나 난 이, 이렇게까지 하긴 싫어요. 어서 어서들 나가세요. 안, 안 그러면 가만 두지 않겠어. 어, 어서 나가!셋을 셀 거야. 하나!둘!씨발 나가요!셋!(방망이를 치켜든다.) 배우들이 같이 치켜든다. 남자:봉천동 산 27번지 재개발 지역.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 조폭:울 엄니도 몇 년째 똥오줌 받아내고 있다니까. 니 자식만 자식이고 울 엄니는 늙었응께 고만 돌아가시라 이거여 뭐여!잔말 말고 돈 내놔!안 그러면 자식이고 뭐고 없응께. 인철이가 피에로 분장을 하고 등장한다. 남자와 정애는 본격적으로 춤을 춘다. 광식:인철아!이 자식 여기 있었구나. 나 좀 살려주라!이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난 못 하겠다. 내가 그 돈은 꼭 갚을게. 인철아. 나 좀 놔 주라. 내 이 손으로 우리 엄니같은 노인네 허리를 치고 머리를 잡고 집에다 불을 지르고 그랬다. 야!인철아!나 좀 ! 인철:아직 먹고 살 만한가 보구나, 니가. 알아서 해. 광식:야, 우리가 불알친구 아니냐. 이 자식아. 인철: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생각해. 자식을 생각하라고. 광식:인철아. 나 이제 이 짓 못하겠다. 나 좀 봐주라. 인철:야 이 자식아. 일할 사람은 많아. 너 당장 돈 갚을 수 있어? 광식:내가 벌어서 갚을게. 인철:오다가 떨어져서 말이야. 니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나도 곤란해져. 이쪽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지는 알지? 광식:그래도 난, 난 못해. 인철:이 자식아. 그럼 돈을 가져와. 광식:으으으으으! 인철:쉽게 생각해. 아이의 호흡기 소리가 거칠어진다. 음악이 고조되면서 2층 병실의 조폭과 1층의 광식과 다른 배우들이 방망이를 휘두르고 정애와 남자가 무대를 빙글빙글 돈다. 배우들의 모습은 마치 무협영화의 한 장면 같다. 정애:있는데 안 주는 것 아닌데. 조폭:그려? 갚을 능력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워야지. 아줌니 아직 탱탱하구마잉. 남자:일곱 살 난 딸이 집 마당으로 뛰어들다가 돌에 깔려 죽었네. 정애:그럴게요, 그럴게요, 제가 가서 일해 드릴게요. 빚만큼 일해 드릴게요. 제발 가주세요. 조폭:오메, 이렇게 쉬운 길이 있었는데 괜히 힘써 부렀네. 현란한 조명이 무대 전체를 채우고 이어서 공사장의 먼지 같은 희뿌연 연기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무대에 탬버린 소리가 울린다. 연기가 걷힌다. 화려한 옷을 입은 정애가 탬버린을 치고 있다. 정애는 노래를 부른다.2층의 유리창 밖으로 어깨에 끈을 매단 남자가 유골함에서 하얀 재를 허공에 뿌린다. 조명이 서서히 암전된다. 에피소드 3 웨딩마치 흐르면서 무대가 밝아지면 2층의 무대에는 하얀 천이 내려와져 있다. 무대의 곳곳에는 두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단들이 있고 단위에 사람들이 둘씩 앉아 있다. 그들은 모두 광식과 정애다. 첫번째 단 광식:오늘은 입질이 영 시원찮네. 정애:아이 재미없어. 광식:그러게 왜 따라왔어. 정애:집에 있어도 재미없어. 광식:그러셔?가인이는? 정애:아까부터 곯아 떨어졌어. 텐트 치고 잔다고 좋아하더니. 당신은 낚시가 그렇게 좋아? 광식:그러엄. 정애:우리보다도? 광식:그러엄. 정애:치, 그럼 왜 결혼했냐? 평생 혼자 낚시나 하고 살지. 광식:니가 결혼해 달라고 하도 쫓아 다녀서 할 수 없이 했다. 정애:뭐야?내가 언제? 광식:물고기 머리냐? 정애:하이구 그러셔?그래서, 그래서 후회해? 광식:글쎄에. 정애:이이가 정말.(광식을 꼬집는다.) 광식:아야!조용히해. 물고기들 다 도망간다. 정애:똑바로 말하란 말야.(또 꼬집는다.) 광식:아야. 왜 이래 마누라. 똑바로 말하면 잡아먹으려고? 정애:뭐야? 광식:하하하. 두번째 단 정애:방송국에서 우리 가인이를 찍어간대. 광식:그래?방송국에서 어떻게 알고? 정애:간호사들이 편지를 써 줬대. 광식:정말? 세번째 단의 배우들이 플래시를 터트린다. 정애: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광식:가끔씩 눈을 맞추고 울기도 합니다. 정애:가인아. 어서 일어나서 엄마랑 밖에 나가 놀아야지. 광식:(얼굴을 찌그러트리고 입을 크게 벌려서 운다.) 정애:그럴 땐 우리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요. 그럼 가인이가 곧 일어날 것 같아요. 광식:(정애의 등을 두드린다.)두 시간에 한 번씩 체위를 바꿔주고 등을 이렇게 두드려 줘야 합니다. 정애:가래도 뽑아줘야 하고요. 낮에는 어머니가 와 계시고 밤에는 우리가 교대로 하죠. 낮에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정애와 광식의 역할을 바꾸어 정애가 광식의 등을 두드린다. 광식:가장 필요한 거는 역시…. 정애:(얼른)아이의 병원비를 석 달에 한 번씩 계산해야 해요. 셋째 단의 배우들이 플래시를 터트린다. 세번째 단 정애:밑 빠진 독에 물붓기지. 벌써 통장이 바닥났어. 광식:인수가 걱정이야. 정애:왜? 광식:장모님이 병원으로 데리고 왔어. 정애:그래서? 광식:데리고 가서 자장면을 사줬는데, 아이가 이상했어. 정애:이상해? 광식:자장면을 먹다가도 눈을 깜빡하고 얘기도 잘 하지 않고 그저 눈만 깜빡거렸어. 정애:하도 오랜만에 보니까 낯설어서 그랬겠지. 광식:그게 아니야. 정애:그럼, 아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광식:장모님이 그러는데 신경증 증세가 있대. 정애:뭐? 광식:우리가 잘 돌봐주지 못해서 그래. 태어나고 얼마 있지 않아 가인이가 그렇게 되고…. 아무리 장모님이 신경 써 줘도. 정애:그래서 엄마가 잘 못 돌봐서 그런단 거야? 광식:이 사람이!누가 그렇대? 정애:그럼 뭐야, 그럼 뭐냐고. 광식:으이구, 왜 억질 부려. 내가 뭐라고 했다고. 정애:몰라. 정말 미치겠다. 다른 배우들이 세번째 단을 쳐다본다. 네번째 단 광식:당신 저녁마다 어디를 나가는 거야. 정애:내가 말했잖아. 친구 식당일 도와준다고. 광식:당신 정말! 정애:어서 밥이나 먹어. 광식:…. 정애:유리창 닦는 아저씨가 죽었어. 광식:뭐? 정애:집이 재개발돼서 다 부숴지고 식구들이 다 뿔뿔이 흩어지고 그랬대. 광식:그래서, 죽었어? 정애:줄을 끊었어. 광식:다, 당신이 봤어? 정애:아니, 들었어. 깡패들이 와서 집을 다 부쉈대. 참 기분이 묘해. 그 아저씬 우리 가인이가 바깥세상을 잘 볼 수 있게 유리창을 깨끗하게 잘 닦아줬는데. 광식:…. 정애:불쌍하다. 그치?그런 거 보면 우리만 힘든 것도 아냐. 가인이는 이렇게 살아 있잖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도……. 광식: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그게 어울리는 말이니? 정애:왜 이래?오늘?짜증이 컨셉트야? 광식:힘들겠다. 자기는. 정애:새삼스럽게 왜 이래. 광식:밤마다 춤추고 노래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 정애:뭐? 광식:…. 정애:어, 어떻게 알았어? 광식:더럽다. 정애:누가? 광식:내가. 정애: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당신이 사채만 안 썼어도. 광식:당신이 다른 남자들 앞에서 웃고 있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쏠려. 정애:그럼 가서 일억만 벌어와. 광식:제길! 정애:당신이 신체 포기각서도 썼다며. 콩팥하나 떼어줬는데 이번에는 뭘 주려고?눈?간?심장?그럼 우리 가인이는?당신이 죽으면 가인이도 죽어. 광식:개새끼들한테 돈을 빌리는 게 아니었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정애:허풍 떨지 마. 광식:뭐? 정애:어렵지 않아. 그냥 노래만 불러. 광식:거기가 그런 데냐?노래만 부르는 데냐고. 정애:정 못 믿겠으면 따라와서 보면 되잖아. 광식:꿈에도 생각 못했어. 당신이…. 정애:아까 어머니가 호박죽 끓여 오셨던데 먹을래? 광식:…. 정애:총각김치도 있어. 광식:개새끼. 정애:애 듣는 데서 왜 자꾸 욕을 하고 그래. 광식:듣긴 누가 듣는다고 그래. 병신이! 정애:(광식의 뺨을 친다.) 광식:인생이 억울하다. 정애:…. 광식:…. 정애:가인이가 다 들어. 세 단의 배우들이 일어나서 계단으로 올라가서 하얀 천을 내린다. 침대위의 아이가 호흡기를 단 채 침대에 앉아있다. 빨래가 매달려 있는 줄 사이에는 등이 여러 개 걸려 있다. 등이 하나둘씩 켜지면서 정애의 얼굴 몽환적이 된다. 무대에는 등의 불빛만이 있다. 정애:이상하지. 유리창 아저씨가 우리 병실 앞에서 하얀 재를 뿌리는 꿈을 꿨어. 그게 우리 가인이가 죽어서 태운 재 같아서 가슴이 저려 죽는 줄 알았어.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당신 얼굴이랑 똑같이 생긴 거야. 광식:그 사람. 자기 아이가, 무너지는 집에 깔려서 죽었어. 정애:어떻게 알아? 광식:나도 꿈을 꿨어. 둘이서 장난삼아 주거니 받거니 소주 한 잔 하는데 그 사람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 거야. 초등학교 동창인가 중학교 동창인가 물어보려는 참에 줄을 끊더라. 그러고 나니까 생각이 나는 거야. 죽은 그 아이를 많이 닮았더라. 내가 그 사람을 닮고 죽은 아이가 가인이를 닮고 ……. 정애:꿈을 꾸는 것 같다가 일어나보면 꿈이랑 별 차이가 없는 현실이 돌아와. 광식:내가 거기 있었어. 아이가 죽을 때 내가 거기 있었어. 죄책감 때문에 미칠 것 같다. 배우들이 등 앞에 서있다. 하나의 등에 하나의 광식과 정애. 두 사람이 조금 더 몽환적인 상태가 된다. 정애:지금도 꿈을 꾸는 것 같아. 광식:꿈에서 보면 우리의 머리맡에 등이 하나씩 걸려 있어. 정애:예쁘다. 광식:등이 하나씩 꺼져. 정애:슬프다. 배우들이 등을 차례로 끈다. 광식:가인이 머리위의 등은 아직 켜져 있어. 정애:다행이다. 광식:(두 팔을 천천히 들어올린다)나는 꺼진 내 등을 부여잡고 울어. 당신 등을 부여잡고 울어.(울음을 터트린다.) 정애:부모란 게 그런 거야. 자식이란 게 그런 거야. 광식:저기 아직 꺼지지 않았지만 많이 희미해진 등들이 있네. 정애:그건 누구의 등일까? 광식:인수. 정애:저게 우리 인수 등이야?어머, 정말 빨갛고 작은 등이네. 광식:그 아이, 그 아이 아빠. 정애:어쩜, 저렇게 예쁜 등을 가진 아이였어. 광식:(손을 원을 그리며 돌린다.)나는 가인이의 등을 꺼. 정애:어?그럼 안돼. 광식:천천히, 조금씩 심지를 줄여.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배우가 가인이의 등을 끈다. 앉아있던 아이의 눈이 무섭게 커진다. 호흡을 거칠게 쉰다. 그러다 점점 잦아든다. 앉은 채로 숨을 멈춘다. 정애가 광식의 목을 조른다. 남아 있는 등들이 무대를 비춘다. 숨을 멈춘 가인의 눈이 등불처럼 떠져 있다. 암전. 에피소드 4 1층 무대의 한곳에 햇빛처럼 조명이 드리우고 광식이 벤치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광식의 그림자가 무대 전체에 비추어지면서 광식의 외로움이 극대화된다. 정애가 계단을 통해 내려와서 무대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간다. 소복을 입고 있다. 광식의 그림자에 정애의 모습이 겹친다. 정애:(허공에 손을 대본다.)크리스마스에 눈이 오면 뭐라고 그러지? 광식:메리 크리스마스. 정애:치,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냐? 광식:알면서 왜 물어봐? 정애:어서 일어나서 이리로 와. 집에 가야지. 광식:왜 이래? 당신이 이쪽으로 와야 해. 병원으로 가는 길은 이쪽이야. 정애가 광식의 쪽으로 걸어오다가 멈춘다. 정애가 당황해하며 멈춰 서서 양쪽을 바라본다. 정애:어디로 가지?가인이가 죽었는데. 광식:(놀라며)무슨 소리야?가인이가 죽어? 정애:균에 감염이 돼서 열이 40도까지 올라갔어. 누가 때리지 않았어도 온몸에 멍이 들고 입과 항문으로 피가 줄줄 나왔어. 당신이 없는 동안에 가인이가 죽었어. 지금 가면 볼 수 있어. 광식:(가슴을 쥐어짜며)아! 정애:죽는 건 너무 순간이라 처음엔 나도 믿을 수가 없었어. 집으로 데려와서 씻기고 옷을 입히고 당신을 기다렸어. 오늘쯤 당신이 병원으로 올까봐 이리로 왔어. 광식:우리한테 집이 있었나? 정애:가인이를 보내려고 집을 구했어. 며칠동안만이라도 있을 수 있었어. 오늘 나가야 해. 주인이 죽은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는 걸 보고는 당장 나가라고 그러는데 며칠만 봐달라고 빌었어. 광식:난 꿈을 꾸는 것 같아. 정애:다른 병실 아이도 죽었어. 아이 아빠가 호흡기를 껐어. 뉴스에도 나왔어. 그 아이 아버지는 잡혀 갔어. 나도 꿈을 꾸는 것 같아. 아니 잘 모르겠어. 지난 8년이 꿈인지, 아니면 지금이 꿈인지. 광식이 운다. 그림자가 흐느낀다. 정애의 몸에 겹쳐져서 두 사람의 흐느낌이 된다. 광식:장례비는? 정애:아이 옷하고, 염할 것 하고, 화장터 가서 화장할 것 하고 집세 내고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무대 위를 비추는 조명이 시간이 흘러감을 알게 해준다. 그림자가 점점 작아진다. 광식:하나요, 할머니가 지팡이 들고서 달달달…. 정애:차내에 계시는 승객 여러분, 여기를 잠시 봐 주십시오. 우리가 흔히 쓰는 칫솔은 한달만 써도 칫솔모가 쉽게 닳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칫솔로는 치석까지 제거되지 않습니다. 광식:둘이요, 두부장수. 정애:여기 새로운 칫솔이 나왔습니다. 몇 달을 써도 칫솔모가 손상되지 않는 칫솔입니다. 이를 닦으면 부드러운 칫솔모가 이의 구석구석까지 파고 들어가 찌꺼기와 치석을 제거해 줍니다. 광식:낙원으로 갔니? 정애:이를 닦는 동안 여러분을 낙원으로 데리고 가줄 칫솔이 두개에 오천원입니다. 광식:정말 하루저녁이 꿈같다. 아이들이 죽고 어른들은 자살하고 마치 블랙홀에 빠진 것 같아. 정애:하얀 옷을 입어서 니 모습이 성모 마리아처럼 성스럽고 숨소리는 너무나 고요해서 세상의 모든 소음을 덮어주었어. 엄마는 꿈을 꾼다. 니가 등불을 들고 나타나 아빠를 위로해주고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선하게 해주는 꿈을……. 죽은 이들이 등불을 들고 등장한다. 자신의 영정사진을 들었다. 환하게 웃고 있다. 조명이 서서히 암전된다. ■ 당선소감 “수술후 벅찬 소식… ‘이런게 인생이구나’ 느껴” 갑자기 배에 기형종이 생겨 수술을 받게 되었고 수술 직후 당선 소식을 들었다. 통증과 전신마취 후의 몽롱함 속에서 들은 가슴 벅찬 소식이었다.‘이런 게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대전여민회’라는 여성운동단체의 연극 소모임 ‘돼지꿈’에서 활동을 해 왔다.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여성 문제를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을 하면서 ‘연극’이라는 것이 사람의 다친 마음을 치료해주고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최고의 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호사로서 막연히 연극에 대한 동경만 가지고 있던 나를 연극판으로 이끌어주고 몇 년을 한결같이 믿어준 대전여민회의 언니와 동생들 그리고 진연 언니에게 가장 먼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나와 같이 몇 년을 울고 웃으며 연극을 했던 모든 돼지꿈 단원들과도 술 한 잔 하면서 기쁨을 나누고 싶다.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다. 단 몇 평의 무대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김상열 교수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부모님, 대전대의 모든 교수님들과, 같이 스터디했던 동료들, 그밖에 작품을 열심히 읽어주고 평을 해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아 주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과 함께 개인이나 가족의 병이 아닌 사회의 병으로 인식해 같이 치료할 날을 바라며 당선 소감을 마친다. 김미정 ●약력 1971년 대전 출생 충남대학교 간호학과 졸업, 대전대 문예창작대학원 수료 대전여민회 문회위원장(연극모임 ‘돼지꿈’ 연출 및 극작 활동) ■ 심사평 “꿈·현실 넘나들며 존재의 불가사의 부각 돋보여” 신춘문예에도 유행은 있는가 보다. 올해 응모작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심사를 하면서 그 작품이 그 작품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다른 말로 하면 개성 있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의식과 관념이 과잉되어 작가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작품들, 고통의 아우성만 보여주고 고통의 근원을 성찰하지 않으려는 엄살과 감상(感傷)덩어리의 작품들, 무뇌아적 형식실험에 진부한 소재를 안이하게 결합한 작품들, 존재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보이려는 도살의 욕망은 보이나 존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나 깨달음은 보이지 않는 작품들 등. 개성이나 독창성의 기준을 떠나 극작의 기본기를 중심으로 작품을 선별하려고도 해보았으나 단편희곡이 지녀야 할 덕목을 지닌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소한 소재를 의미심장하게 구성해내는 능력, 압축적이면서 오랜 울림을 줄 수 있는 내공, 존재의 심연을 깊고 섬세하게 응시하는 통찰력을 지닌 신인을 만날 수 없었다. 정말 심사를 하는 입장에서 독창성보다 기본기에 충실한 신인을 기대했다. 그 이유는 대개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이 등단과 함께 사라져가는 경우가 너무나 허다하기 때문이다. 등단은 시작일 뿐이다. 그런데 시작과 동시에 끝을 내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미정의 작품과 박재원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거론되었다. 박재원의 희곡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서라운드(surround), 다시 말해 삶의 조건에 대한 성찰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그러나 형식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삶의 조건에 대한 중심인물의 대응이 자폐적이라는 지적 또한 면할 수 없었다. 김미정의 ‘블랙홀’은 공간, 인물, 사건의 혼재와 병치, 꿈과 현실의 넘나듦을 통해 존재의 불가사의한 면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연극 공간의 활용과 극적 이미지의 연결이 돋보였고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와중에도 코믹함을 잃지 않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철리 김태웅
  • [사설] 우리 세대 이뤄야 할 ‘안전한 나라’

    서울신문이 ‘국민의 안전의식’에 관해 언론사 최초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 가운데 95.5%가 우리사회의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동안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불감증을 질타하고 반성하는 소리가 드높았지만, 막상 95.5%라는 수치를 확인하니 충격을 넘어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사회는 1960년대부터 경제발전에 일로매진하면서 많은 것을 이룩한 반면 잃은 것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만을 중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남보다 빨리, 더 크게만 외형을 갖추면 큰 소리 치는 사회가 됐다. 남이야 어찌 되건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도 팽배했다. 그 후유증으로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붕괴하는 등 있을 수 없는 일이 숱하게 일어났다. 또 가정·술집·유치원 등 일상적인 삶의 공간에서도 최악의 결과를 불러와 작은 불에도 터무니 없이 많은 인명이 희생 당해 온 게 부인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이제 우리는 지난 40여년 우리 자신을 옥죄온 인재(人災)의 위협에서 벗어나 ‘안전한 나라’‘재난 없는 사회’를 이루어야만 한다. 아울러 갈수록 대형화·다양화하는 자연재해에 대해서도 예방 위주의 강력한 방재 체제를 완비해야 한다. 지난 99년 씨랜드청소년수련원 화재로 맏아들을 잃은 뒤 훈장을 모두 반납하고 이민 간 전 국가대표 필드하키 선수 김순덕 씨의 눈물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 씨는 “사고 후에도 여전히 안전불감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에서 둘째 아이를 키울 수는 없다.”라면서 끝내 이땅을 떠났다. 서울신문은 ‘세이프 코리아-안전한 나라를 만듭시다’라는 주제로 올 한 해 소방방재청과 함께 캠페인을 펼친다. 국민 모두가 적극 참여해 안전불감증을 뿌리뽑고 안전의식과 안전수칙 지키기를 생활화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지금처럼 불안한 삶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안전한 나라’는 우리 세대가 꼭 이뤄야 할 지상과제임을 국민 모두가 공감하리라고 믿는다.
  • 되돌아 본 ‘서울in’ 1년

    되돌아 본 ‘서울in’ 1년

    서울인이 또 한해를 접습니다. 비바람이 있어야 순풍의 소중함을 아는 법입니다. 우리네 세상살이처럼 기쁜 소식과 우울한 소식들이 서울인에도 함께 했습니다. 아쉬운 점들도 있지요. 잊지 못할 황당한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면 사정 탓에 기사로 작성하는 것은 무리였지요. 시민들과 부대끼며 서울인을 만든 기자들이 ‘못다한 이야기’들을 한 자리에서 풀어냈습니다. 김기용 한해 동안 서울인을 만들면서 느낀 점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 격이다.’라는 것입니다. 신문지상에 얼굴을 낼 수 없을 것 같았던 평범한 시민들이 지면에 등장한 뒤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인간시대’에 실린 금천구립합창단 어머니들은 그전에는 큰 규모의 합창단을 부러워했지만 더 이상은 그렇지 않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예술사진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사진과 자신들의 이야기가 넓은 지면에 실렸기 때문입니다. 금천구립합창단은 구 안에서는 유명하지만 소규모의 구립이라는 이유로 기성 언론의 외면을 받아왔습니다. 50대 이상의 아주머니들이 주축이 된 마포구 자전거연합회 기사도 많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할머니’축에 든 분들이 거침없이 페달을 밟는 모습은 무기력에 빠져 있던 비슷한 연배의 어머니들에게 많은 자극을 준 듯합니다. 기사가 나간 뒤 회원가입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뿌듯하기만 했습니다. 송한수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와 수도권에 사는 국민들의 삶에 얽힌 이야기들은 사실 대한민국 절반의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작은 이야기’라는 이유로 알려지지 않던 우리 이웃들의 사연은 훌륭한 기삿거리가 됩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서울인은 서울이야기를 많이 싣는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발상의 전환”이라고 격찬하기도 했습니다. 김성곤 의정뉴스가 서울인을 통해 꾸준히 소개되는 것도 하나의 성과입니다.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인지 하반기 들어서는 지역정가도 후끈 달아 올랐습니다. 이에 따라 당연히 의정 뉴스에 대한 수요도 어느 때보다 높았습니다. 특히 자치구의회나 자치단체별로 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도 돋보였고, 이들 내용은 서울인을 통해 비교적 상세히 전달됐다고 생각합니다. 의회 홈페이지 개편을 통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강화된 것도 서울인을 통해 지역 의회와 주민들의 간극이 좁아진 대표적인 예입니다. 고금석 올해 서울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청계천 복원일 것입니다. 서울인을 만드는 서울시청 출입 기자들 역시 올 초부터 청계천을 제집 드나들 듯이 뒤집고 다녔지요. 6월 시험통수를 앞두고 청계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던 지난 4월이었습니다. 김유영 기자와 청계천 전 구간을 직접 걸으며 취재했습니다.5.8㎞ 구간이 그렇게 길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것도 공사장 먼지를 다 마셔가면서 걷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반나절 남짓 취재를 한 뒤 기자실로 돌아왔을 땐 이미 녹초가 된 상태였습니다. 특히 목구멍에 낀 먼지를 벗겨내느라고 3∼4일은 저녁 때마다 소주에 삼겹살을 먹어야 했죠. 서재희 서울인에 기사가 아닌 ‘얼굴’로 등장한 게 딱 한 번 있었습니다. 청계천 특집 때였습니다.‘청계천의 연인들’이 주제였지요. 그러나 하필 마감일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겁니다. 당연히 지나가는 연인은 없고, 편집기자는 독촉하고. 독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함께 기사를 쓴 기자와 연인의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얼굴이 찍히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편집기자에게 최대한 작게 내달라는 특별한 ‘부탁’도 잊지 않았죠. 그러나 신문이 나오자 어안이 벙벙해지더군요. 사진이 한 페이지를 꽉 채워서 나간 겁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한 책자 ‘청계천 풍경’에도 빠지지 않았습니다.‘새로 사귄 애인이냐.’‘이제 시집은 다 갔다.’는 등 기사보다 더 뜨거운 반응이 있었습니다. 당시엔 당황스러웠지만 모두 지면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을 하니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청계천을 취재하기 위해 열번 넘게 전 구간을 오가며 빠진 살도 하나의 소득입니다. 김유영 ‘거리 탐방 서울연가’는 말 그대로 온갖 사람들을 만나며 서울의 골목길을 다닙니다. 그러다 보니 황당한 일도 많았습니다. 지난 10월에 서울 도심의 한 유명한 거리를 소개하는 기사가 나갔습니다.3주 뒤 카페 여주인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기사가 완전히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겁니다. 그러나 카페 여주인의 말처럼 ‘팩트’가 틀렸다면 카페의 이름도 바꿔야 했습니다. 그래서 반문했더니 말을 흐리는 겁니다. 너무 이상해서 ‘팩트’를 만든 작가에게 확인 전화를 했습니다. 머뭇거리다 “여주인이 옛 여자친구인데 헤어진 뒤 내가 잘 되는 꼴을 못 봐서 언론사마다 전화를 하고 있다.”고 털어놓는 겁니다. 어이 없는 일이었죠. 이두걸 신촌을 취재할 때 일입니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이대로 넘어가는 길 사이의 음식점과 카페를 다니는데 30대 후반의 건장한 남자가 뒤를 쫓아오는 겁니다. 차림새도 멀쩡했지요. 그래서 공손히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신경쓰지마!”라는 위협적인 말투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당연히 “당신 뭐야.”라고 받아쳤지요. 잠깐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유 없이 나선 그쪽이 ‘말발’이 딸릴 수밖에요. 결국에는 “이런 가게들이 버젓이 영업하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라고 말꼬리를 내리면서 슬그머니 가는 겁니다. ‘신촌의 별볼일 없는 어깨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빙그레 웃었지요. 고금석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도 당연히 서울인의 취재 대상입니다. 최근에 서울의 달동네를 취재할 때입니다.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상계동 노원마을을 찾았습니다.‘사랑의 김치 나누기’ 행사에서 만든 김치를 함께 배달했지요. 보일러 땔 기름이 없어 전기장판에 의지하고 담요를 둘둘 감은 채 누워있는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특히 할머니가 사회복지사들에게 “너희들이 추우면 안되는데….”라면서 연신 손을 잡고, 저를 보면서 “도련님, 김치 갖다줘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을 잊지 못하시더군요. 눈물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그 동네는 철거예정 지역이라 도시가스를 시공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 분들이 오히려 난방비로 10만원 이상 쓰는 모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울인이 외면해서는 안 되는 우리 사회의 그림자입니다. 정은주 서울인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래서 길거리에서도 취재거리를 만납니다. 어느날 지친 몸으로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버스 운전사가 “안녕하세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더군요.‘절 아세요.’라는 눈빛을 보냈죠.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까지 두른 아저씨는 그저 미소만 보이셨어요. 뒤에 앉아 지켜봤더니 아저씨가 올라오는 모든 승객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하시는 거예요. 일부 승객들은 낯익은 지 “네, 별일 없으시죠?”라고 되묻곤 했습니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싶어서 버스 번호와 회사 연락처를 적어서 내렸지요.10월7일자 ‘대중교통 환골탈태’는 그렇게 작성됐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취재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왜 나를 취재하느냐.”라고 묻는 거예요.“나는 신문에 나올 만큼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기를 거부하는 거죠. 취재하는 것보다, 왜 기삿거리가 되는지 설명하는 게 더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김기용 서울인의 커버 기사는 특히 각 자치구들의 경쟁을 유도하면서 결과적으로 주민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다룬 자치구의 인터넷 방송 실태는 아직 인터넷 방송을 개국하지 못한 자치구들에 좋은 자극을 줬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인터넷 방송을 운영해야 하는지와 필요한 예산 규모 등에 대한 기초 자료 제공, 인터넷 방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환기 등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이동구 유통면과 의회면을 주로 담당해왔지만 올해는 지난해보다 한결 여유로왔던 느낌입니다. 예정된 기사나 지면은 어떤 일이 있어도 책임지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두 저마다의 맡은 바를 100% 이상 해준 덕분입니다.‘안되면 되게 하라’는 군대용어가 새삼 서울인 제작에 맞아떨어진 한해였습니다. 서재희 내년에 개선해야 할 점도 많은 듯합니다. 자신만의 비법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는 ‘성공시대’ 코너가 사라져 아쉽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물론 ‘인간시대’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신선함은 떨어진다는 지적입니다.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력을 게을리한 것이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네 이웃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자는 서울인의 본래 취지를 되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송한수 만만찮은 작업이지만 어렵게 취재한 결과물들인데 꼼꼼하게 다시 살펴볼 시간이 없어 미흡한 점이 많았습니다. 부족한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금석 시민기자제가 취지를 잘 살리지 못하고 1년여만에 사실상 문을 닫은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일반 시민들과 기존 언론과의 괴리와 격차를 결국 좁히지 못한 듯합니다. 주민과 쌍방향 의사소통을 더욱 활발히 할 수 있는 서울인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시도해야 할 제도라고 봅니다. ●‘되돌아본 서울in´ 방담 참여자 김성곤차장·이동구·송한수·이두걸·김유영·정은주·김기용·고금석·서재희(이상 지방자치뉴스부 기자) ■ “아침을 먹읍시다” 현대인의 건강 챙기기 “정말 당첨됐나요?” 서울신문과 CJ㈜가 펼치는 ‘아침을 먹자’ 건강캠페인을 진행하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입니다. 당첨자에게 전화를 걸어 주소를 확인할 때면 대부분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집니다. 누군가에게 깜짝 선물을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매주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침도시락을 배달하는 이벤트는 CJ 홍보팀 직원과 점심을 먹다가 갑작스레 기획됐습니다.CJ가 두부시장에 막 진입해서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칠 때였지요. 오피스타운 주변에 아침먹을 곳을 소개하는 연재기사를 준비한다고 했더니, 아침도시락을 보내주는 이벤트를 함께 진행하자고 제안하더군요. 이후 햄스빌, 신선CM, 햇반 등이 추가로 참여했습니다. 아침을 먹자 게시판을 오픈하자마자 도시락을 보내달라는 사연이 쏟아졌습니다. 자신보단 남편과 가족을, 이웃을 걱정하며 아침도시락을 신청했습니다.‘임신으로 몸이 무거워져 아침을 차리지 못합니다.’‘아토피 피부염으로 밤새 뒤척이는 아이를 돌보다 남편을 그냥 보냅니다.’‘출퇴근 시간도 길고, 혼자 자취해 아침밥을 건너뛰기 일쑤예요.’ 객지에서 생활하는 딸, 아이들을 대신 돌보는 시어머니, 홀로 사는 친정어머니, 늦깎이 대학생인 올케 등 바쁘게 살아가는 가족이 아침밥을 챙겨먹기를 기원했습니다. 고맙고 안타까운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도 전해졌습니다. 아이를 자식처럼 돌보는 어린이집 선생님을 위해, 고교입시를 준비하는 딸 친구를 위해, 나라를 지키는 총각 군인을 위해, 정신지체아동과 노숙자를 위해 캠페인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사연이 밀려드니 당첨자를 선정하는 일이 더욱 어려웠졌습니다. 사연을 하나하나 읽고, 여러 명이 의논하며 매주 당첨자를 뽑았지만, 늘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은 계속됐습니다. 아침도시락이 배달되는 날, 현장을 찾아가 취재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쑥스러워하면서도 사진기자가 요청하면 프로처럼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했어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경기도 구리시 한 고등학교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선생님이 준비한 깜짝 선물로 고3학생들은 어린아이 마냥 기뻐했습니다. 햄스빌 베이컨 도시락이라 더욱 인기가 많았죠. 그러나 도시락 수가 정해있다 보니 저와 사진기자는 남들 먹는 모습만 지켜보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배가 얼마나 고프던지….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가족수만큼 행복하죠”

    제 자식도 제대로 건사하기 힘들다는 장애아를 무려 36명이나 입양한 부부가 있다.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 사는 짐 실콕(43)과 앤 벨리스(42) 부부의 삶은 하루하루가 고단하지만 행복하다. 실콕은 중증 장애인이다. 믿기지 않는 이들 부부의 훈훈한 사연을 성탄절인 25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전했다. 먹고 입고 자는 일이 늘 도전의 연속. 근처 주택으로 분가시킨 8명과 지난해 합병증으로 숨진 아이를 빼도 27명이 매일 벗어내는 빨랫감이 마흔 통이다. 먹는 데만 1주일에 1000달러(약 100만원)가 든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2층집은 방이 9개, 화장실이 5개다. 애완 동물도 개, 햄스터 등 수십마리다. 냉장고에는 아이들 학교 스케줄과 담임교사 이름, 교실번호가 빼곡히 붙어 있고 외출할 때는 6대의 차로 나눠 탄다. 가족사진을 찍을 때 줄곧 4열로 9명씩 서서 실콕은 아직도 ‘36명’으로 착각한다. 벨리스는 빈자리에 새 아이를 곧 입양할 것이라고 늘 상기시켜 줘야만 한다. 장애도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것들. 뇌성마비와 이분척추·근위축증·자폐·발달장애·외상성 정신질환 등이며 몇몇은 휠체어에 의존한다.4살에서 27살까지다. 러시아·에스토니아·루마니아·카자흐스탄 등에서 왔다. 이들 부부의 행복한 고행은 벨리스의 남다른 ‘고아 소년 사랑’에서 출발했다.8살 때 찰스 디킨스 원작의 영화 ‘올리버’를 보고 “고아 소년들을 돌보며 살겠다.”고 결심했다. 마침내 1998년 인터넷 채팅방에서 실콕을 만나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실콕은 1987년 다이빙을 하다 목을 다쳐 사지를 거의 쓰지 못하지만 벨리스를 돕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부부가 다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부부의 월급에 연방정부 보조금 1만 9500달러와 이웃들의 기부금이 보태져 14명의 보조원을 고용했다. 실콕은 장애인들을 위한 부동산 찾아주기 사업을 하고 있으며 벨리스는 1주일에 30시간을 국제기독교입양센터에서 일한다. 배우로 활동하는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는 것도 부부의 몫이다.5명은 영화배우 조합에 가입했으며 TV에 출연한 경우도 있다. 때로는 ‘장애인들이 모여 산다.’며 싫어하거나, 지나친 언론의 관심에 항의하는 이웃도 있지만 부부는 입양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벨리스는 “시행착오를 겪지만 나는 야구단을 운영하는 게 아니다.”면서 “아이들은 모두 개성이 있는 존재”라고 말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단 1초라도 빨리…” 심장 살리는 산타

    “단 1초라도 빨리…” 심장 살리는 산타

    “급하게 달려갔지만 이미 심장은 멎어 있었지요. 남은 방법은 단 하나, 가슴에 전기충격을 주는 것뿐이었습니다.‘퍽’ 소리와 함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을 때, 그 감동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서울 송파소방서 가락파출소 안동준(40)·김인수(36) 소방교와 김영덕(29) 소방사. 세 사람의 가슴에는 어른 엄지손톱만 한 ‘하트세이버(Heart Saver)’ 배지가 달려 있다. 서울시 소방방재본부가 심장이 멎은 사람을 살려낸 119구급대원들에게 달아주는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삶·죽음의 갈림길 11명 목숨 살려 올 9월 하트세이버 제도가 도입된 뒤 대원 22명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섰던 11명의 목숨을 살려내 배지를 달았다. 단 한명의 생명을 되살려내는 것도 119 구급대원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영예로 여겨지는데 안 소방교 등은 올해에만 두명의 목숨을 구했다. 단 1분만 늦었어도 이승에서 삶을 다했을 50대 주부 최모씨는 건강하게 살아나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최씨가 쓰러진 것은 지난 9월18일. 저녁 8시40분쯤 설거지를 하다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쾅’ 소리를 듣고 달려나온 최씨의 사위가 다급하게 119에 신고했다. 안 소방교는 출동하는 차 안에서 사위에게 심폐소생술을 알려주면서 과거 병력을 물었다. 평소 심장이 안 좋았다고 했다. ●전기충격으로 심장 다시 뛸 때 감동 출동에서 도착까지는 3분. 현장에 다다랐을 때 최씨의 사위는 안 소방교에게 전해들은 대로 어설프게나마 최씨의 가슴을 압박하고 있었다. 대원들은 도착하자마자 심실제세동기(전기충격기)를 사용해 멎은 최씨의 심장을 다시 살려냈다. 이보다 일주일 앞선 9월12일에도 집앞 현관에서 쓰러진 60대 남성 이모씨를 살려냈다. 출동 중에 안 소방교는 이씨의 아내와 통화하며 그가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것과 가슴을 움켜잡고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 그에 적합한 장비를 챙겼다. 출동에서 도착까지 걸린 시간은 이번에도 3분. 대원들은 심실제세동기를 사용해 이씨의 심장박동을 되살려냈다. 이씨가 쓰러질 당시 가슴을 움켜잡았다는 단서를 포착하지 못하고 당뇨 환자에게 응급처치하듯 포도당만 주입했다면 결코 살려낼 수 없었다. 안 소방교에게는 아픈 기억이 있다.2003년 4월 119신고를 받고 오금초등학교로 출동했다. 운동장에 4학년 여자 어린이가 쓰러져 있었다. 심실제세동기를 사용해 어린이의 심장박동은 살려냈지만 끝내 여학생은 뇌의 기능을 완전히 되찾지 못했다. 응급조치가 너무 늦었던 것. 어린이는 현재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 서너살 된 아이처럼 늘 울고 보채고 엄마 품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래도 아이의 부모는 해마다 설이나 추석이면 과일과 떡을 싸들고 안 소방교를 찾아온다. 딸아이 목숨 살려준 것을 평생 어떻게 잊겠느냐고 하지만 그때마다 찢어지는 마음의 고통이 안 소방교를 짓누른다. ●환자 과거 병력등 1~2분 사이에 파악 긴급출동 때에는 필수장비만 29가지를 챙겨야 한다. 기타 의약품과 소모품은 80가지에 이른다. 쓰러진 사람의 상황과 과거 병력 등을 1∼2분 사이에 정확하게 파악해 수많은 장비 중에서 가장 적절한 소생 장비를 챙겨 응급환자를 처치해야만 생명을 살릴 수 있다. 고교 시절부터 구급대원이 꿈이었기에 서울보건대학에서 응급구조를 전공한 김영덕 소방사는 “배지를 가슴에 단 뒤부터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는 순간 내가 사는 이유를 알게 된다.”며 밝게 웃었다. 글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책꽂이]

    |실용경제|●경영의 교양을 읽는다(이동현 지음, 더난펴냄)브랜드에도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는 등 경영전략과 비전을 담은 경영서.3만원●살면서 꼭 알아야할 99가지(한빙 편저, 김효숙 옮김, 해토 펴냄)성공과 행복을 좇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 무엇인지 강조.9500원●시간의 마스터(한홍 지음, 비전과 리더십 펴냄)시간의 흐름을 장악하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시간관리법 제시.1만 2000원●가난한 아빠 미국에서 아이 공부시키기(이강렬·민은자 지음, 황소자리 펴냄)적은 돈으로 자녀들의 성공적인 유학을 위한 가이드북.1만 2000원●새로운 대한민국 이야기(대한민국 사람들 지음, 샘터 펴냄)광고가 주는 감동을 담은 책.9500원●세금 줄이는 112가지 방법(노병윤 지음, 비즈니스북스 펴냄)합법적으로 세금 안내는 세테크 전략서.1만 3000원●따뜻한 디지털세상 1,2(한국정보문화진흥원, 진한엠앤비)유비쿼터스 시대를 재미나고 쉽게 설명한 만화. 각권 5000원|유아·아동|●소라게의 집(에릭 칼 글·그림, 권윤경 옮김, 더큰 펴냄) 소라게의 생태를 보여주는 그림책. 소라껍질 집을 떠나 홀로 바다에 나왔을 때 무섭기만 한 소라게. 전학, 이사, 새 학년 등 새로운 환경에 맞닥뜨리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 듯.6세 이상.1만 1000원.●네버랜드 아기 몸 그림책(전5권)(이형진 글·그림, 시공주니어 펴냄) 짝짜꿍, 킁킁이, 치카푸카, 꽁꽁이, 뿡뿡이. 손, 코, 입, 배꼽, 엉덩이에 이렇게 재미난 이름을 붙여 신체의 기능에 대해 자연스럽게 눈뜨게 하는 유아그림책. 수수께끼처럼 궁금증을 자아내며 관심을 유도하는 전개방식이 흥미롭다.3세까지. 각권 8000원.|초등·청소년|●어둠의 숲에 떨어진 일곱번째 눈물(정지아 글, 아이완 그림, 웅진주니어 펴냄) 안데르센의 대표동화 ‘공주와 완두콩’의 후일담으로 상상의 꽃을 피운 창작동화. 왕자와 결혼한 공주가 그냥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새삼 아름다움의 진실을 노동과 우정에서 찾는 과정이 펼쳐지는 판타지 철학소설. 초등 고학년∼중학생.8500원.●이중섭과 세발자전거 타는 아이(엄광용 글, 윤종태 그림, 산하 펴냄) 동화로 되살려낸 화가 이중섭 이야기. 끼니를 잇지 못할 만큼 가난했던 이중섭이 일본에 사는 두 아들에게 자전거를 사주지 못해 안타까운 부정(父情), 끝내 자전거를 갖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들의 관에 그림을 넣어준 일화 등에서 화가의 깊은 가족사랑이 느껴진다. 초등3년 이상.9500원.
  • 입체적 매력의 그녀 ‘청연’ 장진영

    입체적 매력의 그녀 ‘청연’ 장진영

    “찍은 사진 한번 봐도 되죠?”“여기 이 사진은 안 쓰시면 안돼요?”그러고는 (양 손으로 머리를 치며)“아잉∼잘 안나왔네.”당찬 걸음으로 사진기자에게 다가갔다가 이내 아이같은 표정으로 돌아서는 이 배우. 한국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의 인생을 담은 영화 ‘청연’(靑燕·감독 윤종찬·제작 코리아픽쳐스)으로 2년반만에 팬들 곁으로 돌아온 장진영(31). 지극히 도시적인 이미지를 품고도 깍쟁이 공주가 아닌,‘반박자 느린’ 소시민적 친근함으로 특유의 모순적 매력을 풍겨낸다. 국내 최초 100억원짜리 블록버스터 헤로인이라는 주위 우려와 중압감을 기대감과 만족감으로 차근차근 승화시겨 나가고 있는 그녀의 얼굴엔 인터뷰 내내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잠시 접었던 비상(飛上)의 날개를 다시 활짝 편 장진영을 지난 1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개봉일(29일)이 다가오니 지금은 되레 편해요. 많은 여배우들이 지켜보고 있잖아요?제가 첫 단추를 잘 끼워야죠. 그래야 다른 여배우들이 이런 기회를 만날 수 있을 거 아니에요?”처음엔 책임감이 온몸을 짓눌렀지만, 촬영이 진행될수록 좋은 작품이란 확신이 들면서 자신있게 연기에 몰입했단다. 무엇보다 그녀의 어깨를 짓누른 무게감은 대작의 흥행을 바라보는 주위의 기대감에서 나왔을 법하다. 그녀가 잠시 숨을 고른다.“왜 흥행 부담이 없겠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감독님이 눈에 밟혀요. 영화를 위해 꼬박 3년 동안 열정을 바친 감독님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꼭 이뤄졌으면 해요.” 그녀의 작품속 역할은 실존 인물 박경원. 일제시대 조선 여인의 신분으로 혼자 일본으로 건너간 뒤 하늘에 대한 열정 하나로 비행학교를 졸업하고 민간 여류비행사가 된 ‘신여성’이다. 그녀의 당당한 이미지와 꽤나 닮았다.“여자 배우라면 누구가 욕심낼 만한 역이죠. 실제로는 비행 기록만 남아있어, 캐릭터를 구상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특히 1년 넘도록 미국, 중국, 일본 등을 넘나드는 해외 촬영도 힘들었지만, 비행기 작동법은 물론 일본어와 춤 연습 등 연기 외적인 노력도 그리 녹록지 않았다며 미소 짓는다. 데뷔 8년 동안 7작품에 출연하면서 ‘어떤 옷을 걸쳐도 잘 소화해 내는’ 이미지를 뽐낸 그녀. 하지만 터프한 여성(반칙왕), 두들겨 맞는 아내(소름), 부분 기억상실증(오버 더 레인 보우), 시한부 환자(국화꽃 향기), 당당한 싱글(싱글즈)에서 보듯 그녀는 유독 평면적이지 않은 이미지로 인상지워진다.“TV 드라마나, 사극을 통해 ‘예쁜 여성성’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냐?”라고 묻자, 그녀가 손사래부터 친다. “답습하기 싫어요. 밋밋하면 재미를 못 느끼죠. 제가 연기한 캐릭터들에서는 모두 ‘향기’가 느껴져요. 앞으로도 삶이든, 사랑이든, 방향성이 확실하고,‘진정성’을 지닌 배역을 선택할 겁니다.” 그녀에게 “자랑하고 싶은 영화속 연기 장면을 소개해 달라.”고 하자, 여태껏 느릿느릿하고 조금은 어눌한 그녀의 어투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정말 정말 다 좋아요. 안 예쁜 장면이 없어요. 바닷가와 눈 쌓인 대나무숲에서 (김)주혁씨와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특히 아름답죠. 참, 비와 거친 바람을 맞으며 복엽기를 조종하는 장면도 인상 깊은 장면이에요.” 비행기를 통해 여성의 한계와 불가능을 뛰어넘은 작품속 박경원처럼, 배우로서 그녀가 달성하고 싶은 욕심과 꿈은 뭘까. 한참을 생각하다 결국 도리질을 친다. “호호. 생각 안 나요. 그냥 그때그때 찍는 작품이 잘되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그래도 욕심이라면…‘청연’이 일본으로도 진출할 것 같은데, 기회되면 일본 활동을 해보고 싶네요.”‘소름’이 그녀의 필모그래피에 한 획을 그었던 것 이상으로 이번 ‘청연’이 그녀의 연기 인생에 굵은 방점을 찍어주길 기대해 본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눈꽃핀 차밭 보성에 빠지다

    눈꽃핀 차밭 보성에 빠지다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녹차의 고장 전남 보성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는 눈덮인 겨울 녹차밭의 아름다운 설경이 있고, 한적한 득량만 포구의 갈매기 날갯짓이 정겹게 다가온다. 태백 산맥의 무대인 벌교에 가면 소설 속으로의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녹차·해수탕에서 겨울 포구의 정취를 느끼며 따뜻한 온천욕을 즐길 수 있으며, 제철 만난 벌교의 특산물 ‘벌교 꼬막’이 겨울 입맛을 돋운다.‘보성 차밭 빛의 축제’가 내년 3월까지 계속돼 해가 진 뒤 녹차밭에는 화려한 불꽃이 반긴다. # 눈덮인 녹차밭의 낭만 속으로 하얀 눈꽃이 소복이 내려앉은 차밭의 풍경은 장시간의 여행 피로를 한순간에 풀어준다. 녹차밭의 아름다운 설경에 6시간 남짓한 여행길의 지루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먼저 들른 곳은 각종 영화, 드라마,CF의 단골 촬영지인 대한다업(061-852-2593).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이어지는 700여m 길이의 터널같은 삼나무 숲길이 반긴다. 하늘을 향해 촘촘하게 이어진 뾰족한 삼나무 길은 마치 설국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는 삼나무 꽃말은 연인들에게 길의 의미를 더해 준다. 미끄러운 나무 계단을 오르자 흰색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차밭이 등고선을 그리며 파도처럼 물결친다. 산비탈을 가득 메운 녹색 차밭 위에 사뿐히 내려 앉은 눈꽃은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보성 차밭은 1940년 경작되기 시작, 연간 5000여t의 차를 생산해 전국 생산량의 5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맑고 고온다습한 날씨와 토양덕에 품질 또한 으뜸으로 친다. 하얀 눈발이 날리는 차밭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겨울 낭만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곳으로 졸업여행을 온 안양여중 학생들이 “눈쌓인 차밭이 환상적”이라며 연신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노해나(16·안양여중 3년)양은 “멋진 차밭이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헤어질 친구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줬다.”며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차밭 입구에 있는 녹차 시음장에 들르면 따뜻한 녹차 한잔으로 추위를 녹일 수 있다. 시음료 1000원만 내면 향기로운 녹차를 마음껏 시음할 수 있다. 녹차는 등급에 따라 우전, 곡우, 세작, 중작, 대작, 엽차 등으로 나뉘는 데 곡우를 전후해 따 수제로 만든 최고급 녹차인 우전 100g에 5만 5000원이며, 대작은 1만원이다. 여기에서 18번 국도를 따라 10여분쯤 내려가면 나오는 봇재다원(061-853-1117)에서는 영천저수지와 득량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계단식 차밭의 풍광을 만난다. 도로변에 있는 다향각에 오르면 힘들이지 않고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이 곳은 지난 15일부터 ‘보성 차밭 빛의 축제’가 시작된 곳으로 내년 3월까지 녹차밭을 따라 만들어진 멋진 조명을 볼 수 있다. 멀리 활성산 자락의 녹차밭에 높이 120m, 폭 130m 크기의 대형 트리 조명을 설치해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축제는 내년 3월까지 계속되며, 조명은 해가 진 뒤 새벽 3시까지 불을 밝힌다. # 녹차 해수탕에서 피로를 씻고 아침 일찍 율포해수욕장으로 가면 남해 바다로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겨울 바다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한적한 바닷가에는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고 그 위로는 한 쌍의 갈매기가 하늘을 향해 힘껏 날아 오른다. 한적한 겨울 바다는 보는 것만으로도 낭만이 묻어난다. 바닷가와 인접한 보성군 직영 ‘율포 해수·녹차탕’(061-853-4566)에서는 바닷가 통유리를 통해 목욕을 즐기며 겨울 바다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지하 120m 암반에서 끌어올린 해수탕과 보성 녹차를 원료로 한 녹차 해수탕은 피부를 통해 녹차 성분이 흡수돼 피부탄력을 유지하고 관절염, 신경통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인기가 높다. 입욕료는 5000원. 아울러 보성은 남도 정서를 애절한 소리로 승화시킨 서편제의 고장. 대원군에게 총애를 받은 서편제의 비조 박유전의 창법이 정응민에게 이어지고 정응민은 독특한 보성의 소리를 만들어 냈다. 이 때문에 보성은 삼보향(三寶鄕)으로 불리는데 차의 본고향인 다향(茶鄕), 소리의 고향 예향(藝鄕), 충의열사가 많은 의향(義鄕)이 합쳐진 별칭이다. # 태백산맥의 무대 벌교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감동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벌교에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 벌교는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일종의 신도시로 벌교라는 이름은 지금 홍교(보물 제304호)가 있던 자리에 ‘뗏목 다리’가 있어 그 이름을 딴 것이다. 벌교 읍내 전체는 태백산맥 유적지로 가득하다. 첫번째 답사 코스는 ‘철다리’. 빨치산 대장인 염상진의 동생 염상구가 벌교 제일의 주먹이던 땅벌을 제압하고자 스스로의 담력을 보여주기 위해 기차가 올 때까지 오래 버티는 담력 결투를 벌였던 곳이다. 지금도 목포∼부산을 운행하는 서부 경전선이 운행한다. 인근에 있는 중도방죽은 일본인 나카시마(中島)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통해 간척사업을 해 만든 곳으로 지금은 방죽위에 황톳길을 깔아 산책로로 이용된다. 홍교는 세 칸짜리 무지개 다리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홍교중에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벌교천 하류를 따라 내려가면 소화다리에 이르는데 원래는 부용교였으며, 소설 속에서 좌·우익 서로간에 사형을 집행했던 장소로 밀물때면 여기까지 올라온 바닷물이 온통 피바다였다는 아픈 사연을 안고 있다. 벌교초등학교 옆에 있는 남도여관은 소설 속에 등장한 여관으로 전형적인 일본식으로 지어진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밖에 소설속 무대로 김범우의 집, 벌교역, 회정리교회, 현부자집, 진트재 등이 있으며, 태백산맥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로는 조정래 작가(www.jojungrae.com), 벌교 사랑회(www.beolgyosarang.com) 등이 있다. # 제철 만난 벌교 꼬막의 맛 보성에는 녹차 성분이 함유된 녹차 수제비와 녹차떡국, 녹돈, 녹우 등 녹차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대표적인 겨울 먹거리는 역시 벌교 꼬막. 예로부터 수라상에 오르는 8진미 가운데 으뜸으로 꼽혔으며 제사상에도 빠지지 않을 만큼 풍미가 일품이다. 꼬막은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식품으로 소화 흡수가 잘돼 어린 아이에게도 좋다. 찬바람이 부는 11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가 제철이다. 장암리와 대포리가 대표적인 생산지 인데 이 곳의 개펄은 모래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참펄로 다른 곳의 꼬막과는 달리 짭짤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물이 빠지면 어부들이 널빤지에 갈고리가 달린 펄배를 타고 나가서 꼬막을 캐온다. 연간 2000t 정도가 생산되는데 재래시장 등에서 20㎏짜리 1깡(그물망)에 6만∼6만 5000원에 판매한다. 벌교 꼬막은 삶아서 까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삶는 방법도 다른 곳과 다르다. 우선 80∼90도(중불)에 꼬막을 넣은 뒤 한쪽 방향으로 돌려 삶는다. 이때 꼬막의 껍질이 벌어지지 않도록 살짝 데친다. 꼬막이 물에서 검붉은 물을 쏟아낼때 꺼내 껍질을 손으로 벗겨낼 수 있으면 다 삶아진 것이다. 꼬막 전문식당으로는 홍도회관(061-857-8088)이 있다. 꼬막정식 1인분에 1만 2000원인데 삶은 꼬막과 꼬막전, 꼬막회무침, 양념꼬막, 꼬막된장국 등 각종 꼬막요리를 맛볼 수 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여행길에 동행했던 문화유산해설사 김영희씨가 선물이라며 ‘부용산’이라는 노래를 들려줬다. 부용산은 벌교 인근에 있는 산으로 박기동 시인이 꽃다운 16살의 나이로 폐병으로 죽은 여동생을 산에 묻고 돌아오며 지은 시에 이 지역 음악교사였던 안성현 선생이 곡을 붙인 애절한 노래다.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타고/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었구나/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 여행정보 승용차로는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IC로 나와 29번 국도를 따라 화순·능주를 거쳐 40분쯤 달리면 보성군이다. 서울에서 5시간30분쯤 걸린다. 기차는 서울역에서 보성역까지 무궁화호가 하루 한차례 운행하며, 버스는 서울 강남터미널 호남선에서 고속버스가 오전 8시20분과 오후 3시20분 2회 운행한다. 주변 볼거리로는 백제의 고찰 대원사와 티베트의 정신세계를 엿보는 티베트박물관, 세계 최대규모의 공룡알 집단산란지인 비봉공룡알 화석지, 보성소리 전수관, 정응민 예적지 등이 있다. 보성군 문화관광과 (061) 850-5223, www.boseong.go.kr 글·사진 보성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여담여담] 그리워라,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황수정 문화부 기자

    여기저기 이어지는 송년모임. 학부모 신분이 둘만 끼어도 십중팔구 그 자리는 교육문제로 클라이맥스를 맞기 일쑤다. 며칠전 모임에선 예비 중학생 아들을 둔 직장인 엄마의 만시지탄이 있었다. 자녀교육에서만큼은 절대적 ‘열등 모(母)’일 수밖에 없는 그녀. 아이 공부를 이젠 맘먹고 한번 시켜볼까 싶어 강남의 학원가를 둘러본 게 화근(?)이었다. 초등생 상대로 민사고·특목고반을 짜서 수준별 맞춤강의를 한다는 얘기에 기가 질렸는데, 유치원에도 SKY(서울·고려·연세대)반이 있다는 소리엔 말문이 닫혀버렸다고 했다.“안 됐지만 현재 댁의 아이 수준으론 또래 학습진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진단에 맥없이 돌아왔다는 거였다.“저학년반으로 (아이를)주저앉히든지 일찌감치 냉수 먹고 속 차리든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그녀의 흥분은 남의 얘기로 들리지 않았다. 몇달 전쯤 대학수능 성적과 부모의 경제력이 비례한다는 연구결과가 신문에 실린 적 있었다. 믿기 께름칙했던 현실이 비로소 피부에 와닿는 순간이었다. 강남 거주자의 명문대 진학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통계치도 애써 외면했던 게 얼마나 현실감각 없었던 일인지도 새삼 깨달았다. 죽었다 깨어나도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못하는 현실이다. 처음과 끝이 예측가능한, 투자(그것도 현물투자)한 만큼 수익을 보장받는 규격화된 인생들. 그러고 보면 개천에서 용이 나지 못한 풍경은 한참 전부터였던 것 같다. 배가 고파 뛰었고, 그 ‘헝그리 정신’의 성공담으로 세상을 감동시킨 스포츠 스타가 우리 곁에서 사라진 게 언제였나. 온식구가 모여 자는 단칸방에서 명문대 수석이 나왔던 일화도 많았었다. 가진 것 없고 소외된 이들에게 그들의 성공기는 오래오래 마음의 등불이었다. 희망을 거세당한 시속(時俗). 그래서 이 세밑은 더 추운지 모르겠다. 사람살이엔 산도 강도 있고 오르막 끝엔 내리막도 있다는, 삶의 메타포를 되돌려놓을 묘수는 정말이지 없는 걸까. 그리워라,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이여. sjh@seoul.co.kr
  • [16일 TV 하이라이트]

    ●리얼다큐 여자(EBS 오후 9시30분) ‘세기말 블루스’,‘희망의 누드’ 등의 저자 신현림씨가 ‘싱글맘 스토리’라는 책으로 세상을 다시 한번 떠들썩하게 했다. 이혼의 아픔, 홀로 아이를 키우는 삶의 고단함과 서글픔, 딸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 등등. 그녀는 스스로 느끼는 이런 삶의 주제를 주저없이 당당히 말한다.   ●신동엽의 있다!없다?(SBS 오후 7시5분) 용한 점쟁이의 부적인지, 부적처럼 보이는 미술작품인지 지니고만 있어도 애인이 생긴다는 부적이 있을까. 불어인지, 구수한 사투리인지 모를 ‘우리나라 보슈극장’. 장사를 위한 고도의 마케팅 전략인지, 네티즌이 만든 합성인지 ‘양장피는 자신없다!’고 적어놓은 전단지 등이 있는지 없는지 본다.   ●글로벌 비전(YTN 오후 1시20분) 아시아와 유럽의 교차점에 위치한 터키는 젊은 인구가 많아도 교육 수준은 주변의 그리스나 불가리아에 뒤져 있다.8년 간의 의무교육을 위해 매년 3000만 달러를 지출하는 야심에 찬 개혁을 실시했으나, 아직은 걸림돌이 많다. 종교적,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사회라 여자가 교육을 받는 것도 수월하지 않다는 터키.   ●맨발의 청춘(MBC 오후 8시20분) 기석이 다쳤다는 연락을 받은 경주는 기석을 보러 간다. 하지만 기석이 희정의 집에 편한 차림으로 있는 것을 본 경주는 화가 나서 나가버린다. 심기가 불편한 경주는 준혁의 연락에 반색하여 그를 따라 나선다. 한편, 화숙과 싸우고 무작정 살던 동네로 오토바이를 몰고 온 보배는 정환과 마주치고….   ●청춘 신고합니다(KBS1 오후 7시30분) 김명철. 연예계의 소식을 전해 주던 그가 지난 6월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했다. 많은 여인들의 가슴을 울리던 그가 자신이 속해 있는 ‘육군 제5 군수지원사령부’를 소개한다. 김명철 이병을 따라 장병들의 힘찬 패기를 느낄 수 있는 ‘육군 제5군수지원사령부’ 탐방을 떠나보자.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아내가 한 남자도 아닌 여러 남자와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알게 된 형석. 죽자살자 따라다닌 끝에 결혼 했지만 아내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형석은 큰 충격을 받는다. 다 정리하라는 형석에게 아내 미영은 오히려 이혼을 요구한다. 형석은 ‘껍데기뿐이어도 좋으니 너의 옆에만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한다.
  • “인권세상 아직 갈 길 멀어”

    “인권세상 아직 갈 길 멀어”

    역사에 소리없이 아름답고 커다란 발자국을 남겨온 어머니들이 있다. 자식의 취직, 결혼 걱정을 했던 평범한 어머니였지만 아들이 구속되는 비극을 극복하고 양심수, 비전향장기수 송환 등 인권지킴이로 거듭나고 있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의 어머니들.1985년 12월 출범해 오는 12일 20주년을 맞는 민가협의 가족들은 남다른 세밑을 보내고 있다.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20년 세월동안 어머니들의 주름은 늘고 깊어졌지만 인권세상이 오길 바라는 어머니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막내아들이 구속되면서 민가협 활동을 89년부터 해온 서경순(69)씨는 “민가협이 20년 됐지만, 아직도 우리가 바라는 인권세상이 온 것 같지 않다.”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1000명이 넘게 구속돼 있고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 등 민중의 삶이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20년 동안 그러했듯이, 앞으로 인권이 신장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힘을 보태려고 한다.”고 말했다. 당시 56세 나이로 아들 박신철(41)씨가 민정당연수원 점거로 구속된 것이 계기로 민가협 활동을 20여년 동안 해온 임기란(77)씨는 요즘 저혈당과 당뇨로 병상에서 투병 중이지만 민가협 활동은 변하지 않고 있다. 임씨는 “죽기 전에 통일이 되는 것이 마지막 바람일 뿐이다.”면서 “좌파니 우파니 하는 이분법에 의한 사상과 이념의 대립을 벗어나 한반도가 하나되길 빌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영(65)씨는 “1988년 4월30일, 아이가 구속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나에게 아들의 후배가 찾아와 ‘어머니 민가협 가셔야 됩니다.’라고 해서 민가협으로 함께 갔다.”면서 “동대문 경찰서에서 처음 면회를 하면서 쏟아지는 눈물을 참고 ‘용기 잃지 말아라.’하고 외칠 수 있었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민가협의 힘이었던 것 같다.”라고 회상했다. 어머니들과 어린시절부터 함께해온 아이들도 이제 어엿한 중, 고등학생들이 됐다. 민가협둥이들로 불리는 이들의 소원은 어머니들의 소망이 이뤄지는 그날이 오는 것이다. 양심수 출신인 이철우 전 국회의원의 딸인 이일완(13)양은 “어릴 적부터 함께 해온 민가협 할머니들께 약한 자의 편에 선 강한 자가 되고 뜨거운 마음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배웠다.”면서 “저뿐만 아니라 민가협 할머니들의 사랑을 받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민가협 그 이름만으로도 든든한 힘이 되며 정의의 편에 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초등학교 3학년때인 지난 97년부터 민가협 어머니들과 함께해온 이화나(17)양은 고3 수험생이다. 이양은 “민가협 어머니들께서 마련해준 무대에서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읽다가 감정이 복받쳐서 제대로 읽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민가협은 10일 한양대 올림픽체육관에서 17번째 인권콘서트를 연다. 이번 인권콘서트에서는 민가협 20주년을 기념해 영화 ‘송환’의 김동원 감독이 당시 영상과 증언 등을 엮어 만든 ‘보랏빛 수건’을 상영한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BALCONY…安이 넓어졌다

    BALCONY…安이 넓어졌다

    집안 곳곳에 새로운 공간이 생긴다. 작게는 7∼8평, 크게는 10평 이상까지 발코니 공간이 내게로 왔다. 아파트 발코니 구조변경 허용으로 집을 보다 넓게 사용할 수 있는 꿈의 기회다. 집이 좁아 고민이었다면 좀 더 넓게 사용할 수 있고, 평범한 분위기가 불만이었다면 보다 개성 넘치는 공간으로 꾸밀 수 있다. 하지만 그냥 트기만 하면 만사 해결인가. 옆집에서 한다고 무작정 따라하면 반드시 후회한다. 넓게 쓰고 싶은 발코니, 어떻게 꾸며야 할까.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발코니 위치따라 개성 연출 보통 발코니라 하면 거실만을 생각하기 쉽다. 거실을 벗어나 주방, 침실, 작은방 등 다양한 공간의 발코니 확장으로 새로운 연출을 할 수 있다. 부부 침실에는 기능성을 높인 미니 서재를 두거나 자녀의 방엔 아이를 위한 작은 아지트를 만들어 주는 것도 좋다. 집안의 개성을 과시할 수 있는 공간인 거실에는 자연을 담아낸 실내조경이나 자녀들이 재롱잔치를 할 수 있는 미니 무대, 바둑을 두고 차를 마실 툇마루 등을 배치할 수도 있다. 이외에도 넓어진 공간을 새로운 가치를 가진 곳으로 부활시킬 수 있다. # 발랄한 포인트, 주방 주방은 대형 평형이라 하더라도 보통 다이닝 공간과 작업(싱크대) 공간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특히 주방의 발코니는 다용도실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발코니를 확장한 후 인테리어 대리석으로 상판을 만들고 키 높은 세련된 의자를 놓아 홈바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여기에 천장에서 떨어지는 분위기 좋은 펜던트 조명을 강렬한 빨강이나 파랑, 은색 등 발랄한 색상으로 포인트를 주면 어느 바 부럽지 않은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 편안함이 물씬, 부부 침실 집안 어느 곳보다 은밀한 공간인 부부침실에는 로맨틱한 분위기가 어울린다. 하지만 부부 침실 발코니를 확장하고 나면 대개 침대나 옷장을 그곳에 두어 공간을 넓게 활용하는데 포인트를 맞추기 마련이다. 확장으로 생긴 휴식 공간에 사랑스러운 소품들로 보다 애정이 넘치는 곳을 만든다. 평소에는 공간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커다랗고 푹신한 소파를 둔다. 소파에는 질감이 좋은 쿠션을 가득 올리고, 주변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액자나 꽃 등 작은 소품을 활용해 꾸며 보자. 몸을 편안하게 해주어 휴식을 돕는 아로마 향초를 놓으면 더욱 근사하다. 작은 공간에서 차 한잔 마시는 여유가 생활에 지친 부부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 실속이 넘치는 작은방 작은방은 보통 아이방이나 서재 등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있는 경우라면 대안이 없으므로 아이방으로 활용해야겠지만, 방의 여유가 있거나 아이가 없는 집이라면 부부의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실속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최근에는 집에서 보다 전문적인 장비를 활용하여 영화를 보거나 음악 듣기를 원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제품이 많이 슬림해졌다고는 하나 스피커를 비롯한 장비를 거실에 두면 부피감이 느껴져 산만해지기 마련이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작은방. 충분한 시야를 확보할 수 없었던 작은 방의 발코니를 터 오디오·비디오 시스템을 두면 길게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이때 방음 공사를 제대로 하는 것은 기본이다. ■ 도움말 LG화학 데코빌 신보현 선임디자이너 ■ 나만의 컨셉트를 입혀라 인천에 사는 주부 배경순(40)씨의 집은 아늑한 전원주택이다. 넓힌 발코니를 오래된 흠집이 생긴 듯 낡은 느낌의 가구와 프로방스 스타일의 안락한 나무 의자, 미니 정원 등을 배치해 근사한 야외정원으로 꾸몄다.“거실과 연결돼 넓고 환해 보이면서도 단을 10㎝ 정도 올려 별도의 공간 같은 느낌을 주도록 했어요. 나무와 파벽돌 등 자연소재를 활용해 편안한 느낌을 더욱 부각시켰죠.” 발코니만 텄는데도 생활 공간은 아주 넓어졌다. 자연스러운 느낌의 소품들로 포근한 느낌을 동시에 잡았다. 아파트 발코니를 넓히면 30평대 아파트의 경우 8∼10평은 더 커진다. 그러나 무조건 넓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어떻게 꾸밀지, 어떤 용도로 활용할지 면밀히 따져보아 괜한 돈을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 넓게, 새롭게, 다양하게 우선 평형을 보자. 공간 사용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20평형은 공간을 넓히는 데,30평형은 별도의 공간을 만드는 데,40평 이상은 색다른 테마공간으로 꾸미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공간이 부족한 20평형대는 방을 넓혀 여유롭게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부부 침실을 늘려 침대, 장롱, 화장대 등을 여유롭게 배치할 수 있다. 거실 확장으로 넓어진 공간을 아이를 위한 놀이터로 사용해도 좋다.30평형대는 거실 발코니 확장을 가장 많이 하는 평형대다. 가족실, 휴식공간 등으로 꾸며 가족간의 대화 공간으로 사용한다. 발코니 바닥에 마루나 자갈, 인조잔디 등을 깔고 각종 화분과 티 테이블 등을 놓는 것만으로도 작은 정원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커튼 대신 심플한 버티컬 블라인드를 달면 공간을 더욱 넓어 보이게 한다.40∼50평의 대형 평형이라면 넓어진 공간을 색다른 곳으로 활용한다. 부부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거나, 운동 기구를 둔 헬스 공간, 카페 이상의 무드를 주는 와인바 등 가족의 생활 스타일에 따라 꾸민다. # 고전적이거나 현대적이거나 공간이 확보됐다면 컨셉트를 정해 스타일을 입힌다. 유행하는 인테리어 컨셉트를 따르기보다는 편안하고 동양적인 오리엔탈 스타일, 유럽풍의 로맨틱한 스타일, 절제미가 부각된 모던 스타일 등 원하는 스타일을 선택한다. 동양적인 스타일은 일종의 사색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거실과 단차를 두거나, 마루를 나무목, 짚, 왕골 등 자연적인 소재로 깔아 동양미를 뽐내도 좋다. 이와 비슷한 느낌의 낮은 나무 탁자, 푹신한 방석, 실내 수목조경 등으로 더욱 포근한 느낌을 살린다. 다소 여성스러운 꽃무늬, 사랑스러운 캔디 컬러 소재의 직물을 적절히 사용하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부드럽게 변신한다. 창가로 한껏 다가가 햇살을 받아들인 곳이라면 형형색색의 구슬을 단 발, 다채로운 쿠션을 둔 폭신한 소파를 두면 분위기는 더욱 로맨틱해진다. 간결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모던 스타일로 꾸며도 좋다.‘발코니 확장’에 부담을 갖고 이것저것 두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눈에 보이는 곳에는 최소한의 가구를 배치해 절제미를 드러낸다. 현관 붙박이장을 발코니 안쪽으로 옮겨 지저분한 느낌을 없애고 확보된 공간에 깔끔한 철제 티 테이블이나 전체 분위기 색상에 보색이 되는 조명기구로 전체 공간에 포인트를 줄 수 있다. ■ 도움말 한샘인테리어·데코빌·웅진 뷔셀 <사진제공:LG화학 공간사랑>
  • 핑크빛 편지에 담긴 덧없는 세월의 흔적

    핑크빛 편지에 담긴 덧없는 세월의 흔적

    한때 여성 편력이 대단했던 중년 남자 돈 존스턴(빌 머레이). 소파에 누운 채 자신과 이름이 같은 전설적인 바람둥이 돈 후안을 다룬 흑백 영화를 보고 있다. 마치 젊은시절 자신을 떠올리 듯. 옆에서 동거녀 셰리가 이별을 통고하고 집을 나서지만, 크게 동요하지 않고 배웅하는 돈. 때마침 문 앞에 떨어져 있는 핑크빛 편지를 집어든다. 누가 보냈을까? 봉투에는 발신인이 전혀 없다. 다만 편지지에 ‘헤어진 뒤 임신을 해 낳은 아들이 올해 19살이 됐고, 집으로 찾아갈지 모른다.’는 내용만 적혀 있을 뿐. 돈은 기억을 더듬지만,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헤어진 여인들은 수없이 많지만, 아이를 낳았다는 얘기는 당최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무덤덤한 돈에게 이웃에 사는 탐정소설 작가지망생인 윈스턴이 20년 전 만났던 여자들을 찾아보라고 권유한다. 돈은 마지못해 과거의 여자친구와 아들의 존재를 찾아나선다. 분홍색과 타자기라는 유일한 단서를 들고. 올해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짐 자무쉬 감독의 신작 ‘브로큰 플라워’(Broken Flowers)는 모호한 대상을 찾아 떠나는 돈의 여정을 통해 인생의 난해함과 삶의 참 가치를 돌이킨다. 다시 만난 네 명의 여인들은 과거 매혹적인 모습과 달리 하나같이 시든 꽃처럼 늙어버렸다. 그들을 바라보는 돈은 과거 청춘의 풋풋한 기억에 미소지으면서도, 자동차 옆 거울에 지나온 길이 비쳐지듯 희망과 가능성을 잃어버린 자신의 과거를 되짚는다. 무엇보다 인생을 통찰하듯 특유의 무표정한 표정으로 기쁨과 슬픔, 쓸쓸함과 외로움 등 감정을 담아낸 빌 머레이의 연기가 일품이다. 돈의 옛 애인으로 등장하는 샤론 스톤, 제시카 랭, 줄리 델피, 프랜시스 콘로이, 틸다 스윈튼 등의 강렬한 매력도 볼거리.‘브로큰 플라워’라는 제목에서 보듯 영화는 세월의 풍파에 시드는 꽃처럼 젊음을 잃어버린 세월의 덧없음을 이야기한다.18세 이상 관람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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