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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 행정] 영등포구 찾아가는 복지사업

    [현장 행정] 영등포구 찾아가는 복지사업

    영등포구가 현장 밀착형, 주민 눈높이 복지정책을 펼치고 있다. 덕분에 지난 23일 행정자치부 주관 ‘주민생활지원서비스 혁신 평가’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7월 흩어져 있던 생활지원서비스를 통합, 주민생활국을 신설하면서 얻은 결실이다. 예전에는 주민이 동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하면 법적 지원 대상인가만 따졌다. 대상자이면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하고, 대상자가 아니면 돌려 보냈다. 취업이나 의료지원 등은 주민이 알아서 찾아다녀야 했다. 민간 복지단체나 기업체의 도움도 알음알음 받았다. 이제는 민간 복지기관, 의료기관, 고용·취업지원센터, 기업체까지 아우르는 통합 네트워크를 형성, 종합 복지서비스를 제공받는다.27일 현장행정의 모델 케이스를 밀착취재했다. ●사례1-71세 조선족 할머니께 도우미까지 조선족으로 2005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송모(71·영등포구 대림동) 할머니는 생계가 막막했다. 일용직으로 일하며 홀로 살았는데 얼마전 머리를 다쳤기 때문이다. 그는 동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했다. 동사무소는 구청 주민생활지원과로 연락, 현장조사에 나섰다. 경제적 어려움도 컸지만, 할머니는 주위와 고립돼 있었다. 한국어가 서툴러 은행에도 가지 못하고, 병원에도 못 가 다친 머리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 주민생활지원과 통합조사팀과 서비스조정·연계팀이 송 할머니를 위한 ‘사례회의’를 열었다. 보호·지원계획이 세워졌다.1단계로 송 할머니를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시켜 생계급여 33만 9978원과 주거급여 3만 3000원을 매달 지급했다. 그리고 보건소에 할머니의 건강검진을 의뢰했다. 할머니가 고립에서 벗어나도록 지원서비스도 마련했다. 노인복지관에 말벗서비스를 신청, 자원봉사자가 정기적으로 할머니를 방문하도록 했다. 또 사회복지관 노인팀이 가사도우미를 보내도록 조치했다. 도우미는 가사는 물론 은행업무 등 자질구레한 일까지 돕는다. ●사례2-문맹 실업자 아빠에게 한글교육도 대림동 김모(33)씨는 부인(29)의 둘째아이 출산을 앞두고 일자리를 잃었다. 첫째아이를 제왕절개로 낳은 터라 둘째아이 제왕절개가 필요했지만, 수술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김씨는 문맹자이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었다. 사연을 접수한 구가 종합 복지지원대책을 마련했다. 우선 이웃돕기 ‘사랑나눔의 종’에 수술비 지원을 요청하고, 보건소 저소득 산모도우미 사업에 연락했다. 이어 김씨가 글을 깨우치도록 복지관 프로그램에 등록하고, 부인이 수술받을 동안 첫째아이를 돌봐줄 보육시설도 소개했다. 지난달까지 송 할머니, 김씨 가족처럼 구청의 통합 복지지원을 받은 가정은 모두 84가구이다. 신속하고 공정한 일처리가 이뤄져 이의를 제기한 사례가 하나도 없었다. ●민관협력 네트워크 구축 구는 또 민간기업의 복지 참여도 적극 유도한다. 지난달 3월 신세계푸드·63시티 등 지역내 15개 기업과 기업봉사단 협약식을 맺은 데 이어 새달에 10개 기업과 추가 협약을 갖는다. 지난해 11월에는 저소득층 어린이 23명이 한국철도공사의 후원으로 강원도 동해로 겨울여행을 떠났다. 글라스 박스 안경은 저소득층 청소년·어르신 60명에게 안경을 무료로 제공했다. 김형수 영등포구청장은 “민관 협력 네트워크를 확고히 다져서 주민 복지와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책꽂이]

    ●현대 정신의학 잔혹사(앤드루 스컬 지음, 전대호 옮김, 모티브 펴냄)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정신과 의사는 ‘미친 의사’나 수용소를 지키는 ‘벌레소굴의 의사’ 정도로 인식됐다. 미국 뉴저지주의 트렌턴 주립병원 원장을 지낸 이 책의 주인공 헨리 코튼이야말로 그런 부류에 속하는 의사인지 모른다. 코튼은 정신질환의 원인이 신체 부위의 국소 감염이며 이것이 일으킨 패혈증을 제거해야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소신에 따라 코튼의 병원에서는 환자들로부터 수천개의 치아를 뽑았고 수백건의 편도절제술이 이뤄졌다. 의학계의 새로운 치료법은 과연 믿을 수 있는가. 이 책에는 인간의 정신을 의학의 실습도구로 삼은 의사들의 잔혹한 이야기가 실렸다.2만 1000원.●다시, 실학이란 무엇인가(한영우 등 지음, 푸른역사 펴냄) 그동안 학계에서는 실학을 주자학이나 성리학과 반대되는 학문으로 이해해온 게 사실이다. 실학을 근대지향, 민족지향, 실용지향으로 이해하는 입장을 견지해온 것이다. 이런 시각에는 조선시대 자체를 ‘암울한 시대’혹은 ‘봉건사회’로 보려는 부정적인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이같은 생각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실학이 봉건과 근대를 가르는 잣대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 다시 말해 근대 찾기에 매몰돼 실학을 오해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실학의 개념과 본질을 밝힌 연구서.1만 6500원.●빈이 사랑한 천재들(조성관 지음, 열대림 펴냄) 오스트리아 빈 태생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빈을 가리켜 “2000년에 걸쳐 국가를 초월한 수도”라고 했다.18세기에서 20세기 초, 빈은 유럽 최고의 예술가와 지성들이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경쟁하는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였다. 이 책은 몽환적 에로티시즘의 화가 클림트,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음악가 모차르트와 베토벤, 건축가 아돌프 로스와 오토 바그너 등 빈에서 활동했던 천재 6명의 삶을 다룬다.1만 6000원.●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정민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조선 후기 지식 패러다임의 변화와 문화변동을 다룬 책. 한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조선의 18세기를 문화사적인 의미에서 ‘벽치(癖痴)의 시대’로 규정한다. 무엇인가에 미친 사람들이 세상을 만들어간 시대라는 뜻이다. 관상용 집비둘기를 키우면서 비둘기에 관한 잡다한 기록들을 모아 ‘발합경’이란 경전을 지은 유득공, 밀랍으로 매화를 만드는 데 빠진 이덕무,‘옥해(玉海)’라는 200권짜리 백과사전을 제몸처럼 아낀 이의준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다. 박제가는 “벽이 없는 인간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말한다.2만 3000원.●행복은 창문으로 들어온다(김현숙 지음, 꽃삽 펴냄) 척수성 근위축증(SMA)에 걸려 사망선고를 받은 아들 임해성군을 헌신적인 사랑으로 건강하게 키우는 어머니의 자전적 기록. 모든 것을 이기는 모성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저자는 “처음에는 아이가 죽을까봐 두려웠고 그 다음에는 장애아가 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괴로웠다. 그 다음에는 장애인을 낳았다는 사실이 나를 죄인으로 살게 했다.”고 말한다. 해성군은 조창인의 소설 ‘가시고기’의 실제 주인공.1만원.
  • [그의 삶 그의 꿈] 한국 유아교육의 새로운 모델 ‘감성놀이학교’

    [그의 삶 그의 꿈] 한국 유아교육의 새로운 모델 ‘감성놀이학교’

    젊은 감성의 소유자 맑은 눈이다. 투명한 하늘이 오롯이 담겨 있는 아이의 눈이다. 그 눈이 늘 웃고 있다. 눈을 마음의 창이라 했던가. 맑은 눈으로 늘 웃고 사는 사람은 마음도 그와 같을까. 그럴 것이다. 그런 사람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마음은 편해지고 즐거워진다. 성인이 되어서도 모두가 그런 눈을 지니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 속에서 그런 눈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사실이다. 슬프고 안타깝지만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 고개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반성도 없이 저마다의 편리만을 추구하다가 흔히 비유하는 사막이 되어버린 세상. 우리는 사막에서 사막의 가슴을 지니고 살고 있다. 서로에게서 사막을 확인하고 절망한다. 세상은 그러하지만 자신만은 그렇지 않다고 자신하며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데, 참 드물게, 아이의 눈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났다. 이재환. 그는 멋쟁이다. 아이의 눈을 가진 40대. 그 내력을 되짚어가다 보면 더 놀라게 된다. 신에게서 특혜라도 받았는지 남들 두 배의 시간을 살아온 듯한 사람. 자신이 갖고 있는 감성을 그대로 유아 교육 아이템에 반영해 감성교육으로 혁신을 일으키고 있는 젊은 CEO. 말 잘하고, 현장에서의 성과를 통해 갖게 된 교육에 대한 철학과 소신도 뚜렷하다. 놀이로 하는 감성교육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녀 교육열은 세계가 다 알아준다. 땅 좁고 자원 없는 나라에서 내세울 거라고는 사람의 능력밖에 더 있겠는가. 우리가 가진 자산은 오직 사람의 능력밖에 없다. 지식인을 양산해서 열악한 다른 조건들을 극복하는 일이다. 이 지난한 현실이 자녀 교육열로 드러나는 것이다. 무엇보다 안타깝고 불쌍한 건 우리 아이들이다. 자녀 교육에 부모의 허리도 휘청거리지만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부모가 이끄는 대로 가방 메고 도복 입고 악보 들고 스케치북을 흔들며 뛰어다닌다. 나중에 어차피 경험하게 될 치열한 경쟁 인생을 아이들은 너무 이르게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한다. 그는 아이들이 놀면서 자라지 못하는 것을 슬퍼한다. 놀 줄 모르는 아이가 자라 오직 일만 하며 사는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고쳐보아야 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는 우리의 아이들의 교육 현실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아이들 교육을 놀이문화 속에다 집어넣어 아이들이 즐겁게 놀면서 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이 꿈을 오래 전부터 가슴에 품어 왔다. 해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30대의 경험들도 감성 놀이교육 발상의 한 계기가 되었다. 감성은 스스로 가치 창조를 할 수 있는 바탕이자 힘이다. 어린 시절부터 수동적인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져 있으면 시키는 일을 해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새로운 마인드를 창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의 교육 현실을 직시하면서 그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4세에서 7세에 이르는 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감성놀이학교’가 그것. 현대는 교육도 사업 그는 2003년 11월에 ‘감성놀이학교’를 개설한다. 위험한 시도라며 걱정하는 주위의 만류가 있었지만 빈틈없는 그는 이미 2001년에 4개의 학원을 설립해 경영해 보았다. 실험경영인 셈이었다. 여기에서 한국 학원교육의 실상을 체험한 그는 자신의 계획이 현실성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새로운 교육문화벤처기업 CEO의 탄생이었다. ’감성놀이학교’를 설립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본사 직영원을 포함해 전국에 40여개의 분원을 두었다. 미국 LA에 해회 1호원도 운영 중이다. 그는 2004년도에 IPS 산업자원부가 주간한 교육경영인 대상을 수상했다. 제2회 한국창업 CEO 대상부문 산업자원부 장관상도 받았다. 상이 중요한 게 아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자신의 소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는 교육벤처기업 대표로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고 논에 모를 심듯 자신의 계획을 현실 속에서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는 참일꾼이다. 교육의 참 목적 ’감성놀이학교’ 직영원 외벽에 놀이학교가 추구하는 5대 목표가 새겨져 있다. 유난히 눈길을 끄는 마지막 목표가 ‘풍요로운 삶’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풍요로운 삶’은 물질과 정신이 함께 어우러지는 여유로운 삶을 의미하는 것이란다. 스스로가 세상의 능동적인 주체가 되는 것이라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줄 아는 능력을 지녀야만 비로소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풍요로운 삶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외 없는 궁극의 목적이랄 수 있지만 그런 삶을 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는 이 어려운 일의 해법을 새로운 교육방법으로부터 찾아내어 실현하려 한다. 그와 함께 들어가 본 놀이학교 교실의 아이들에게서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다. 즐거움이다. 이 즐거움 속에서 아이들은 자라 어른이 될 것이다. 어린 시절 몸에 배인 놀이의 즐거움을 지속하면서 이들은 행복하고 보람된 삶을 누릴 것이다. 그가 불러일으키고 있는 교육 혁신은 궁극적으로 현실을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초등학교를 설립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학교 부지는 이미 마련했다. 구체적인 방안들에 관해서는 관련기관과 협의 중이다. 차별화된 방식으로 한국의 새로운 교육 지평을 열어가는 그에게서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희망을 발견한다. 백년대계라는 교육사업에서 전제되는 건 시간이고 미래다. 젊은 그는 오늘도 미래를 살아간다. 아주 부지런하게, 똑 부러지게. 글 최준시인, 사진 한찬호사진작가
  • 트랜스젠더 “성기 성형해야만 성별 바꿔주나요”

    트랜스젠더 “성기 성형해야만 성별 바꿔주나요”

    “여러분, 제 모습이 분명히 보이죠. 실체가 있죠. 그러나 저는 법률적으로는 투명 인간입니다.” 21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성전환자 성별 변경에 관한 토론회’에서는 생물학적 성과 법률적 성이 달라 고통받고 있는 성전환자들의 호소가 이어졌다. 증언에 나선 이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대법원의 성별정정 예규를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년 전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A(38)씨는 자살을 시도했던 고통을 털어놨다.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을 했지만 여성으로서의 삶은 그를 극심한 혼란에 빠뜨렸다. 그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자동차로 다리 난간을 들이받았는데 원하지 않게 목숨을 건졌다.”고 고개를 떨구었다. 수술을 결심한 뒤 6개월 동안 호르몬 치료를 받았고 2년 전 여성생식기 제거와 남성형 가슴 성형수술을 받았다. 그는 “수술비용이 수천만∼1억원에 이르는 데다 부작용은 상상을 초월한다.”면서 “성별정정의 요건으로 성기 성형을 강요하는 것은 야만적”이라고 말했다. 여성으로 성별정정을 원하는 B(45)씨는 1991년 결혼해 아이까지 얻었지만 결국 이혼을 해야 했다. 그는 “아이를 생각했다면 수술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비난받을 때도 있지만 정체성을 알고도 전과 같이 살라는 것은 죽음과 같은 고통”이라고 호소했다. 20대 중반의 성전환자인 C씨는 “초등학교 때 첫 생리를 하던 날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가슴 나온 것이 부끄러워 붕대를 감고 다녔다.”면서 “내 몸을 보는 것이 너무 흉측하고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그는 “대법원에서 20세 미만 성별 정정을 무슨 근거로 막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열여섯에 성 정체성을 깨달았고 10년째 남자로 살고 있다.”면서 “미성년자에게 진정한 성을 찾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그들의 인생을 망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6월 처음으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신청을 받아들인 뒤 같은 해 9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 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을 제정했다. 지침은 ▲만 20세 이상, 혼인 사실이나 자녀가 없을 것 ▲정신과 또는 호르몬 요법에 의한 치료를 받은 뒤 수술을 통해 신체 외관이 반대 성으로 바뀌었을 것 ▲병역을 이행했거나 면제받을 것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성기 성형수술까지 마쳤을 때에야 성별 변경을 허가하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일부 조항은 성전환자들의 반발을 불렀다. 이에 대해 임종헌 대법원 등기호적국장은 “지침은 업무처리 통일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한 것에 불과하고 일선 법관이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 구속력이 없다.”고 밝혔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어린이책꽂이]

    ●최초의 인간은 누구였을까(박용기 지음, 길벗어린이 펴냄) 인류의 조상과 고인류학자(일명 화석사냥꾼)들의 이야기. 인류는 최소한 500만년 전부터 두 발로 걷기 시작했다. 그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등 진화를 거듭하며 오늘날 우리가 된 것.500만년을 살아온 인류는 앞으로도 지구를 지배하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인류가 살아온 과거에서 답의 실마리를 찾는다.8500원. ●붉은 땅의 기억(장안거 지음, 홍연미 옮김, 문학동네 펴냄) 1966년 시작돼 1976년 막을 내리기까지 10년 동안 중국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문화대혁명을 다룬 그림책. 마오쩌둥은 ‘흑오류(문화대혁명 시기 청산 대상이었던 지주계급·부농·반혁명분자·범죄자·우파분자)’를 비판하며 새로운 사상은 ‘홍오류(빈농, 노동자, 혁명간부, 군인, 혁명유가족)’에 있다고 강조했다.1만 1000원. ●십이야(브루스 코빌 지음, 임후성 옮김, 미래M&B 펴냄) 셰익스피어의 희극 중에서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읽고 공연하는 ‘십이야’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다시 썼다. 오시노 공작, 올리비아, 바이올라를 중심으로 한 사랑이야기와 술주정뱅이 토비경, 소심한 겁쟁이 앤드루경, 영악한 시녀 마리아, 똑똑한 척하지만 실제론 어리석은 말볼리오 집사를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한 희극적인 이야기로 구성됐다. 십이야는 크리스마스 날로부터 세어 12일째가 되는 1월6일 밤이다.1만 2000원. ●늘 푸른 역사가 신채호(김남일 지음, 창비 펴냄)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 단재 신채호는 다층적인 인간이다. 단재는 중국사와 왕조사에 매몰된 사관을 폐기하고 한국사·민중사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했다. 또한 웅혼한 필치의 명문을 쏟아낸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였다. 이 책은 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춰 때론 단재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나약하고 흔들리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망명지의 단칸방에서 쓰린 속을 부여잡고 막막해하는 모습 등을 소개한다.1만 2000원. ●인현왕후전(한상남 지음, 어린이작가정신 펴냄) ‘한중록’‘계축일기’와 함께 조선 3대 궁중문학으로 꼽히는 ‘인현왕후전’을 알기 쉬운 현대어로 고쳐 썼다. 사대부 집안의 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왕후로서의 덕을 갖춘 인현왕후 민씨는 15세에 숙종의 두 번째 왕비로 궁에 들어온다. 그러나 여러해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한데다 희빈 장씨의 갖은 모략으로 중전의 자리를 위협받고 결국 폐위되고 만다.8500원.
  • 강수연 “복수 꿈꾸다 모성애 눈떠요”

    강수연 “복수 꿈꾸다 모성애 눈떠요”

    “파파 할머니로 늙을 때까지 연기자로 남고 싶어요. 앞으로 한 40년은 더 해야죠.” 영화배우 강수연(41). 단발머리에 붉은 블라우스를 입은 소녀 같은 그녀, 불혹을 지났다면 믿을 사람이 없을 듯싶다. MBC 새 주말드라마 ‘문희’에 출연하는 강수연은 대학생 조카가 있는 40대 초반이라는 나이를 잊을 만큼 더 밝고 활기차 보였다. SBS ‘여인천하’ 이후 6년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강수연이 이번 작품에서 맡은 역할은 백화점 재벌 문회장(이정길 분)의 서녀로 태어나 열여덟 나이에 사내아이를 낳아 입양시킨 후 오직 복수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비련의 여인, 문희로 시청자들을 찾아온다. 그녀는 오기와 독기를 품고 결국 성공의 정점에 이르지만 자신이 떠나 보낸 아이를 만나면서 모성애에 눈을 떠가는 여인의 삶을 그려낼 예정이다. 도도하고 당당한 여성의 이미지가 짙은 강수연이란 배우의 또 다른 변신이 기대된다. 그녀는 오랜만에 TV 복귀작을 ‘문희’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대본을 읽고 ‘문희’의 매력에 빠져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며 “요즘 유행하는 미니시리즈나 사극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드라마다. 불혹을 지나며 조금 성숙한 내면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선택했다.”고 한다. 또한 “정성희 작가에 대한 신뢰도 있었고 오랜 연기생활로 익힌 ‘느낌이 좋은 드라마’”라고 강조했다. 아직 앳된 소녀 같다고 하자 “좀 게으른 편이라 별로 특별히 관리를 잘하고 사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운동은 빼놓지 않고 한다. 그게 비결인 것 같다.”라며 웃는다. 카리스마 넘치고 당당한 이미지의 강수연은 “평소 카리스마는 전혀 없다. 기존에 영화 등에서 강한 캐릭터, 밖으로 뿜어내는 여자 연기를 많이 해서 그런지 저를 그런 캐릭터로 단정짓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30년이 넘게 우리나라 최고의 여배우란 타이틀을 안고 다닌 그녀는 아직도 40년은 넘게 더 연기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녀의 커다란 욕심만큼 멋지고 좋은 연기로 시청자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길 기대한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2007 丁亥年 띠별운세

    2007 丁亥年 띠별운세

    정해년(丁亥年) 돼지띠해는 사주명리학상 입춘이 들어오는 양력 2월4일 오후 2시17분부터 2008년 2월4일 오후 8시 사이에 태어나야 돼지띠에 해당된다. 황금돼지해 등 이런저런 속설로 올해는 유례없는 돼지띠 출산러시가 이어질 전망이다. 아울러 정해년 돼지띠는 재물복과 먹을 복이 더욱 많다고들 믿는다. 어쨌든 우리 아이가 복이 많은 해에 태어나 좋은 삶을 산다고 믿고 아이를 키워 나간다면 기분 좋은 일이다. 반가운 귀향길에 우리 가족의 올 한해 운세를 얘기하며 즐겁게 떠나 보자. ■ 도움말 : 김동완 아이사주닷컴 대표
  • [이색거리 탐방] (4) 서초동 서래마을 길

    [이색거리 탐방] (4) 서초동 서래마을 길

    뭔가 화려하고 요란한 인테리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서래마을의 상점들은 오히려 소박해보일지 모른다. 좌석이 많지 않아 예약은 필수고 음식 나오는 속도도 느리다. 하지만 이 관문만 통과한다면 유럽의 작은 식당을 옮겨 놓은듯한 비스트로(가정식 음식점)의 참 맛을 음미할 수 있다. 단 대부분의 음식점이 점심과 저녁 사이에 쉬는 시간(break time)을 갖는다는 점에 유의하자. 오후 3∼4시 정도 어중간한 시간에는 아예 빈 가게도 많다. (1) 같은 이름 다른 빵맛 ●파리크라상 서래마을의 랜드마크다. 프랑스인들이 줄을 선다. 프랑스에서 빵 재료를 들여와 프랑스인 제빵사가 직접 빵을 만든다. 이런 탓에 같은 이름의 다른 매장과는 전혀(?)다른 맛이 난다고. 다른 동네에 사는 프랑스인까지 고향의 맛을 찾아 찾을 정도다. 10여종이 넘는 바게트와 캄파뉴, 바통 시크레 등 프랑스 전통빵 맛을 볼 수 있다.3278-9159. (2) 파리지엔의 브런치 ●라 트루바이 ‘발견’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서래마을엔 생각만큼 프랑스 식당이 많지 않다.2만원 대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서 생선이나 고기 등 다양한 프랑스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것도 큰 매력. 특히 화이트 와인으로 삶은 홍합찜이 인기다. 예쁜 테라스에서 브런치 메뉴로 즐기려는 손님도 많다.534-0255. (3) 전원풍 와인바 ●맘마키키 유럽의 한 뒷골목이 있을 법한 집시풍의 예쁜 와인가게.“와인바에 가려면 정장이라도 입어야 하나.”라고 고민하는 와인초보자도 어색하게 만들지 않는 편하고 서민적인 분위기다. 와사비 곁들인 삼겹살과 중국산 물만두, 배고플 때 먹을 수 있게 계란을 삶아놓은 주인의 배려가 고맙다. 영업시간 오후 5시∼새벽 1시.537-7912. (4) 오~ 서래피자 ●톰볼라 이탈리아 화덕에 구운 정통 피자를 한국에서 저렴하게 맛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이탈리아식당.24시간 이상을 저온 숙성시킨 도우. 너무 과하지 않은 토핑, 현지 치즈가 어울려 기름기 없고 담백한 피자의 맛을 보여준다. 티본스테이크도 일품. 현지에서 10년간 성악공부를 한 주인이 음식 맛에 매료돼 식당을 차렸다. 유명 연예인과 기업인, 정치인을 만나더라도 어색해 하지 말자. 예약은 필수.593-4667. (5) 뉴요커의 스테이크 ●에릭스 스테이크 하우스 2000년부터 서래마을 골목에 자리잡은 뉴욕식 스테이크 전문점. 식도락가들의 입소문에 어느새 서울부터 부산까지 16군데의 지점을 낼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본점의 테이블 수는 여전히 6개 정도로 작고 아담하다. 프라이판 대신 맥반석 위에 그릴을 얹어 담백한 스테이크 맛을 낸다.535-9845. (6) 스푼에 모인 동양의 맛 ●오리엔털 스푼 서래마을 끝자락에선 태국과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 베트남 등 5개국의 퓨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인테리어는 깔끔한 양식점에 가깝다. 베트남 군만두격인 차조와 닭고기를 튀겨 매실소스로 맛을 낸 까이 슈 팽톳, 닭고기와 견과류를 볶은 까이 팟 멧 마무엉 등이 주방장 강추메뉴다. 가격은 8000∼2만3000원정도.591-0916. ■ 서래마을 어떤 곳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4동 서울프랑스학교 앞. 불어로 ‘Attention ecole(학교앞 주의)’이라고 쓰인 도로표지판 아래 10여명의 프랑스 부모들이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의 ‘작은 프랑스’ 서초동 서래마을의 한가로운 오후 풍경이다. 얼마 전 영아유기 사건탓에 달갑지 않은 유명세를 타기는 했어도 여전히 아침이면 갓 구운 바게트를 사기 위해 자건거탄 사람들이 빵집 앞에 긴 줄을 서는 왠지 낭만있어 보이는 동네다. 이곳에 프랑스 사람들이 터를 잡은 것은 1985년쯤. 용산구 한남동에 있던 프랑스대사관학교가 반포4동으로 옮겨오면서 자연스럽게 프랑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프랑스인 1550여명 중 130여가구 600여명이 서래마을에 살고 있다. 한국에 있는 프랑스인 10명 중 4명이 모여 사는 셈이다. 대부분 프랑스 대사관이나 르노, 까르푸 등 프랑스계 회사에 근무하는 이들이 많다. 유럽풍 가정식 레스토랑과 선술집, 와인가게, 베이커리와 식재상까지 들어오면서 한국거리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묘한 이국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현지 부동산에 따르면 조용한 분위기를 찾아 이곳에 정착하려는 미국인이나 일본인, 독일인들도 많다고 한다. 매스컴을 통해 거리와 숨은 맛집 들이 자주 소개되면서 거리를 찾는 외지인들의 방문객도 잦아졌고 이를 겨냥해 골목골목마다 레스토랑과 와인 바들도 증가하는 분위기다. 손님의 90%는 다른 동네 사람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서초구도 ‘작은 프랑스’가꾸기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6000여평의 부지를 제공해 ‘몽마르트 공원’을 조성하는가하면, 길에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빨강, 하양, 파랑 3색 보도블록을 깔았다. 또 유럽스타일 가로등과 한글과 불어가 함께 적힌 도로표지판도 세웠다. 불어로 된 구청 홈페이지도 운영 중이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정희성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정희성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문단의 어른으로서 뜻하지 않게 후배들의 반발에 밀려 중요한 결정을 미루는 상황을 맞게 된다. 오직 한길로 35년을 봉직하던 교직에서 정년퇴임을 한다.’이런 상황이라면 시인이 아니라도 섭섭하거나 아쉽거나, 혹은 착잡해지거나 감회에 젖어 많은 말을 쏟아낼 것이다. 그러나 정희성(62) 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 이사장은 그러지 않았다. 작가회의 명칭 변경이 무산된 데나, 평생을 지켜온 일터를 떠나게 된 데 대해서 시인은 의외로 평화롭고 담담했다. 맑은 얼굴에 자분자분한 말투. 서울 아현동, 난방도 잘 되지 않는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만난 정 이사장은 과작(寡作) 시인답게 말수도 적었다. ▶정관 개정이 무산됐는데 어떤 느낌이 드셨습니까. -무산이 아니라 찬반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너무 걸려 결정을 못한 것이지요.24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명칭개정 소위원회를 구성한 다음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거쳐 결론을 내겠습니다. ▶작년 1월 이사장에 취임했을 때는 ‘민족문학’이란 용어를 떼는 데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셨는데 그 사이 생각이 변한 겁니까.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분단 상황에 있기 때문에 민족문제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학 측면에서 보자면 오랫동안 남북작가회담을 추진해 온 결과, 작년 10월 금강산에서 남북한과 해외문학인들을 포괄하는 ‘6·15 민족문학인협회’가 결성됐습니다. 민족문학에 분명한 전기가 마련된 셈이지요. 그래서 민족문학은 이 틀에서 다루게 두고, 우리는 명실공히 한국문단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단체인 만큼 포용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마침 젊은 작가들도 그런 생각을 해왔던 모양입니다. ▶‘민족문학’이란 이름으로는 전체를 포용할 수 없을까요. -작가회의는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로 출발했고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확대 개편된 지 20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해 온 이미지 때문에 국내에서는 ‘강성’‘좌파’로 몰리는 반면,‘세계작가와의 대화’ 등 국제교류를 할 때는 ‘내셔널’이란 명칭 때문에 극우 민족주의단체로 오해받아요. 또한 요즘 젊은 작가들은 ‘민족문학’개념으론 포섭될 수 없는, 너무도 다양한 상상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을 수용해야 합니다. 총회 석상에서는 ‘문학은 포기해도 민족은 포기 못한다.’는 발언이 나왔지만, 문학이 민족문제만 다뤄야 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또 문학을 버리고 어떻게 민족문제를 얘기할 수 있을까요. ‘민족문학론’을 주창했던 백낙청 상임고문이 명칭개정에 찬동하고 있는 이때, 일부 후세대 작가들이 이에 집착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백 교수는 군사독재 시절 민족적 위기의식의 소산으로서 ‘민족문학론’을 전개했다. 민주주의 쟁취와 민족통일을 양대과제로 내세운 한시적 개념이었다. 백 교수는 이제 진영개념으로서 민족문학론은 내실을 잃었다고 보고 새롭게 ‘한국문학론’을 제시한다. 민주화는 완수됐고,6·15민족문학인협회 결성으로 분단체제도 극복단계에 접어들었으므로 진정한 국민문학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됐다는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잠시 귀국했던 작가 황석영은 작가회의에 대해 “조직이든 집이든 사람이 만든 것은 시간을 이기지 못한다. 친목회 정도의 기능만 남았다면 ‘해소’하는 것도 하나의 역사적 과업”이라고 일갈하고,“분단체제는 남북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문제”라는 확장된 시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 이사장은 작가는 다양한 생각이 있을 수 있고 절차상의 문제도 있었던 만큼 심도있는 논의와 우편투표 등의 방법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 가겠다고 했다. ▶정든 교직을 떠나시는데 감회가 어떠신지요. -교직 35년, 문단 37년이니 두 경력이 비슷합니다. 그동안 제자 1만명, 시집 4권에 결혼하여 아이 둘을 길렀으니 행복했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엄혹한 시기에 용의주도하게 살았다고도 생각됩니다.70∼80년대 주목받던 저항시인으로 1979년 세계시인대회 시위,1980년 지식인선언 등에 참여하거나 잡혀갔는데도 자신은 훈방되거나 해직되지 않았다. 아마 대학교수가 아니라 고교교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자신이 쓴 시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고무돼 시위에 나서고, 한 여고교사는 시 ‘아버님 말씀’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가 선동죄로 학교를 그만두게 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괴로움이었다. 용의주도하게 살았다는 말은 이런 책임의식 때문인 듯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도 고교교사로 남겠다며 학위논문을 내지 않았다면서요. -대학교수가 희망이기는 했어요. 그러나 1972년 논문만을 남기고 상아탑에서 나왔을 때는 가파른 유신시절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직장에서 쫓겨났고,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고통 속에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문학적 관심이 걷잡을 수 없이 달라졌고, 이런 관심에 대한 해답이 아닌 다른 논문은 쓰고 싶지 않아 포기한 거지, 그렇게 깊은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습니다. 이후 문예창작과가 많이 생기면서 기회가 또 있었지만 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후회되지 않느냐니까 “대학교수가 되면 시가 안 좋아지더라.”는 말로 대신했다. ▶이사장의 시에는 그 시대의 현실과 급소가 생생하게 표출됩니다. 그런데 요즘의 시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무뎌지신 건가요, 생각이 달라지신 건가요. -가파른 시대에는 쓰지 못했던 사랑에 관한 시들이 많아졌습니다.2000년대 9·11테러 이후에는 평화에 대한 염원을 많이 담고 있지요. 무뎌진 점도 있겠지만 관심의 확장으로 봐 주기 바랍니다. 독자들도 옛날 독재정치에 항거할 때처럼 주먹 쥐고 하는 얘기들은 못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또한 현실 문제는 그 시대의 가장 젊은 문인들에 의해 잘 포착될 것입니다. 퇴임식 때 다섯번째 시집을 내 동료교사들에게 선물하고 싶었지만 결국 편수를 못메워 싱거운 기념식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백령도를 다녀와 40행이나 되는 시 ‘몽유백령도’를 썼다. 짧아지던 시가 예전의 호흡을 다시 회복해가는 듯한 느낌이라 기쁘다. 문학은 인간다운 삶을 살자는 데에 그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 이사장이 저항의 시를 썼던 것도, 이제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는 것도, 작가회의가 명칭 변경을 논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히 진행되는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정희성 그는… 1945년 경남 창원 출생(만 62세). 공무원인 부친을 따라 충남, 대전, 이리, 여수를 다니며 살았다. 용산중고등학교와 서울대 국문과를 나왔다.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탁목조’가 당선돼 등단했다.1972년 서울 숭문고 국어교사로 부임해 35년간 재직하고 그제 정년퇴임했다. 글을 쓸 생각이면서 국문과에 입학한 것은 고전문학을 공부해 전통의 바탕에서 창작을 하리라는 계획에서였다. 첫 시집 ‘답청’(1974)’은 그의 생각대로 ‘고전적인 전아함’을 갖춘 시들로 꾸몄다. 그러나 1972년 유신체제에 접어들고 친구들의 해직과 투옥을 접하면서 완전히 다른 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나온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에는 칼칼한 저항의 목소리가 담겼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우리가 저와 같아서/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로 시작되는 시 ‘저문강에 삽을 씻고’는 어두운 현실을 처절한 서정에 담아 형상화한 대표작이다.“증오에 대해서/나도 알 만큼은 안다/이곳에 살기 위해/온갖 굴욕과 어둠과 압제 속에서/싸우다 죽은 내 친구는 왜 눈을 감지 못하는가….”란 시구처럼 ‘공격적이고 거친’ 글을 쓰기도 했지만, 자신은 시대가 현실주의자를 만들었지 본질적으로는 천진한 낭만주의자라는 생각이다. 네번째 시집 ‘시를 찾아서’(2001년)는 이런 면모를 엿보게 한다. 김수영문학상, 시와시학상 수상.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시절부터 반독재 문학단체에 몸담아 2006년 1월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 되었다. yshin@seoul.co.kr
  • 끝나지 않은 레바논 비극

    레바논 남부에 사는 제이용 모하메드와 아내 알리아 살만은 딸 라샤(16)를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비극은 지난달 5일에 일어났다. 모하메드 집 근처 밭에서 가져온 작은 공 모양의 금속 물체가 원인이었다. 네살배기 막내딸 아야가 거실에서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다 언니 라샤에게 공을 건넸다. 그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라샤는 한쪽 다리를 잃었다. 16살 소녀의 삶은 한순간 고통으로 변했다. 라샤의 목발을 살 돈조차 없는 모하메드 가족은 누운 채 지내는 딸이 안쓰럽기만 하다. 금속 공은 이스라엘이 종전 3일전 레바논 남부에 대량으로 퍼부은 ‘집속탄(Cluster Bomb)’의 불발탄이다.대형 폭탄 안에 수많은 작은 폭탄이 들어간 살상무기다.‘비인도적 무기’로 민간인에 대한 사용이 금지된 것이다. 미국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CSM) 인터넷판은 7일 종전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레바논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8월14일 헤즈볼라와의 종전 직전 사흘 동안 집속탄 로켓을 무차별 발사했다. 레바논 남부에 퍼부은 집속탄 내부 소형폭탄은 100만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유엔은 레바논 남부 경작지의 26%,3400만㎡ 정도가 집속탄에 의해 오염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불발된 소형 폭탄은 민간인 거주 지역과 경작지, 숲 곳곳에 숨겨져 있다. 불발탄으로 현재까지 30명이 숨지고 184명이 부상했다. 현재 집속탄 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는 유엔 관계자는 “1999년 코소보전쟁,2001년 아프가니스탄,2003년 이라크 전쟁 등 현대 여느 전쟁과 비교해도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스라엘군이 광범위하게 클러스터 폭탄을 투하했다.”고 비판했다. 휴먼라이츠워치도 이스라엘이 400만개 이상의 자탄(子彈)이 든 집속탄을, 헤즈볼라는 중국제 집속탄 로켓 100기 이상을 북부 이스라엘에 발사했다고 밝혔다. CSM은 클러스터 폭탄의 진짜 비극은 희생자 대부분이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집속탄 살포 지역이 문맹자가 많은 시골이어서 교육을 받지 못한 빈곤층이 표적이 되고 있다. 라샤는 가족을 원망하지 않는다.“더 이상 미래는 생각하지 않아요. 슬퍼하지도 않아요. 난 굳센 아이거든요.”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바람피기 좋은날’ 윤진서-김혜수 연기대결

    ‘바람피기 좋은날’ 윤진서-김혜수 연기대결

    도발적인 제목에다 등장인물 모두 유쾌하게 웃고 있는 포스터만 봐도 이 영화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8일 개봉하는 ‘바람피기 좋은날’은 유부녀들의 일탈을 유쾌하게 다루고 있을 뿐이어서 여기에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혀를 끌끌 차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 그랬다간 감상에 방해만 되기 십상이다. 영화는 그저 편안한 자세로 이들의 바람을 파도 타듯 즐기라고 얘기하는 듯 하다. 특히 남성 관객들은 어떨지 몰라도 여성 관객이라면 극명하게 다른 두 여자 주인공의 모습에 자신들을 대입시켜 보는 재미도 있지 않을까. 3년 전 외도한 남편에 대한 복수로 남자 헌팅을 시작한 이슬(김혜수). 이 여자 참으로 대담하고 뻔뻔하다. 연하의 대학생(이민기)과 모텔을 전전하며 벌이는 애정 행각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급기야 남편(박상면)은 경찰을 대동하고 불륜현장을 급습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이라면 죽을 죄를 졌다며 싹싹 빌겠지만 그녀의 기세는 여전히 하늘을 찌른다. 경찰차 안에서 “니 둘다 감옥에 쳐 넣을거야.”라며 씩씩거리는 남편을 향해 “나는 널 지옥에 쳐 넣을거야!”라며 한술 더 뜨는데 그녀를 보면서 속이 확 풀리는 관객이 없진 않을 듯. 친구들 대학갈 때 결혼해 가정을 꾸린 작은새(윤진서). 과묵하지만 성실한 경찰이자 남편과 외동딸을 두고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리고 살지만 언제부턴가 가슴은 뻥 뚫린 것만 같다. 유일한 낙인 채팅에서 만난 남자 여우두마리(이종혁)와 6개월째 온라인 데이트 중이다. 가녀린 외모에 여전히 소녀 같은 감성을 지닌 이 여자, 그런데 보통이 아니다.‘세상에서 제일 나쁜 여자가 줄듯 말듯 안주는 여자’라는 남자들의 농담처럼 처음 만난 여우두마리의 애간장을 살살 녹인다. 몸이 아니라 말이 먼저 통해야 한다면서. 그러던 그녀가 점차 본색을 드러낸다. 여우두마리를 상대로 남편과는 꿈도 꿀 수 없는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실현시키려 하고 여우두마리의 근무처를 찾아가 대낮 뜨거운 정사신도 불사하려 한다. 남자는 여자가 서서히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바람은 여자들의 일상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 일상을 완전히 깨뜨리는 장치는 아니다. 때문에 온통 밝은 색감으로 넘쳐나는 스크린에 불행한 남편과 아이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세월가면 잊혀질까. 그렇지만 다시 생각날걸. 바람아 멈추어다오.” 영화 전·후반에 흘러나오는 가수 이지연의 히트곡 ‘바람아, 멈추어다오’처럼 여자 주인공들은 가정을 깨뜨리는 바보짓을 하지 않는다. 한때의 아찔한 줄타기로 잃어버린 삶의 활력을 되찾고자 할 뿐. 불륜을 이토록 가볍게 다뤄도 되나 하는 것보다 이 영화의 타깃층이 분명하다면 그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킬 만하냐는 것에 딴죽을 걸고 싶다. ‘행복한 장의사’로 국내외 평단의 찬사를 받았던 장문일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작품.18세 이상 관람가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08일 TV 하이라이트]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미국 이민서비스국은 올 6월부터 이민 관련 서류 수수료를 대폭 인상할 예정이다. 이에 따른 한인들의 부담도 커지게 됐다. 시민권 신청비와 영주권 갱신 등 거의 모든 수수료가 두배 가까이 올라 영주권을 접수하는 데만 1000달러 이상이 든다. 변호사 비용까지 합치면 거의 1만달러가 필요하다고 한다.   ●생방송 60분-부모(EBS 오전 10시) 수현이와 동현이 남매. 매일 일과를 챙기고, 과제를 챙기고, 공부 스케줄도 챙겨왔던 엄마 이지은씨. 어느새 아이들은 시켜야만 공부하는 아이들이 된 것만 같아 엄마는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남매에게 맞는 공부법과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로 만들기 위해서 엄마가 알아야 할 점들에 대해 알아본다.   ●외과의사 봉달희(SBS 오후 9시55분) 학회장에서 중근은 신약에 부작용이 있다며 시판을 연기해야 한다고 발표한다. 서교수는 중근을 질책하고 없어지라고 소리를 지른다. 반면 건욱은 성공적으로 발표를 마쳐 이교수로부터 칭찬을 듣는다. 정작 기뻐해야 할 건욱이 어두운 표정을 짓자 달희는 건욱을 위로하다 연애를 하자고 제안한다.   ●나쁜여자 착한여자(MBC 오후 7시45분) 건우는 세영이 내미는 여자 단추를 보고,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단추라고 둘러댄다. 세영은 다시 한번 확인하며 안심한다. 서경은 예쁜 동생을 낳아달라는 우람을 바라보며 착잡해진다. 경선은 세영, 송씨와 양평으로 가던 길에 양평 땅을 원수인 윤춘식이 줬다는 송씨의 말을 듣고 놀란다.   ●인간극장(KBS2 오후 7시30분) 전통 한복뿐 아니라 전통적인 느낌이 나는 무대의상을 만드는 데도 솜씨가 좋은 이효재는 나훈아의 무대의상도 맡아 하고 있다. 이런 이효재의 소문을 듣고 가야금단이 무대의상을 맞추러 찾아왔는데 손님맞이가 예사롭지 않다. 솔잎을 깔아 떡을 장식하는 등 온갖 솜씨를 아끼지 않는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옛날부터 혈압이 높다거나 심장병 등의 순환기 질환에 걸리면 오징어나 문어를 푹 고아 먹었다고 구전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1940년에 낙지 삶은 국물에서 타우린을 추출하여 의약품을 제조, 심장병 및 결핵치료약으로 사용했을 정도다. 오징어의 효능과 다양한 활용법에 대해 알아본다.
  • 참여정부 복지실태 다큐로 소개

    모금 목표액의 1%가 달성되면 온도가 1도씩 오르는 ‘사랑의 온도계’가 매년 연말 따뜻한 감동을 전해준다. 사랑의 온도계와 같이 모든 세대가 체감하는 ‘정책의 온도계’가 있다면 몇 도가 될까? 정책방송 KTV는 참여정부 4년의 정책적 성과가 우리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특별기획 2부작-세대, 정책을 말하다’를 2일과 9일 오후 10시에 방영한다. 사회 양극화에 대한 우려와 불신을 해소하고, 사회복지에 심혈을 기울여온 참여정부 4년의 정책과 그 성과를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돌아본다. 2일 방영되는 1부에선 출산, 육아, 보육, 교육, 청년 관련 정책을 국민들의 생활모습을 통해 소개하고 그 성과를 짚어본다. 보건소 산전관리, 지자체별 출산지원금 지급, 산모도우미 파견 등 정부의 다양한 출산지원책과 그 성과를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지난 1월1일 셋째 아이를 출산한 김귀화씨의 생활 모습을 통해 알아본다. 서울 천호동 곡교어린이집과 광진구에 위치한 양진초등학교의 방과후 학교의 성과와 역할, 만성질환으로 인한 장기입원 때문에 수업일수가 부족해 진학이 어려운 어린이들을 위한 병원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한양대학병원을 돌아본다. 청년 정책으로 입영예고제, 동반입대 등 달라진 병무행정 등도 소개한다. 2부에선 중장년, 노인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과 관련된 정책을 국민의 생활모습과 함께 소개하고 그 성과를 살펴본다. ‘129콜센터’의 역할과 이용방법 등을 살펴보고 ‘암환자 의료비 지원’의 명암도 조명한다. 국가보훈처에서 실시하고 있는 ‘보훈도우미’ ‘노인수발보험제도’ 등 노인 관련정책도 짚어본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손자보고 약혼하고…언제나 열일곱살

    손자보고 약혼하고…언제나 열일곱살

    13년만의 금의환향-한때 유행가 「나는 열일곱살예요」로「팬」의 심금을 뒤흔들었던 가수 박단마씨(46)가 한국을 떠난지 13년만에 5월 26일 귀국했다. 『고국이 그리워도 무서워서 못왔어요. 지금도 거리에 나가면 돌팔매가 날아올줄 알았어요. 놀랄만큼 너무 많이 달라졌군요』-유창한 한국말을 빼놓고는 박단마씨의 모습도 너무 많이 변해 있다. 거리에 나가니까 미국여잔줄 알더라는 박단마씨는 자신의 말처럼 그녀의 모습은 거의 「아메리카나이즈」했다. 큼직한 눈모습, 오똑한 코, 커다란 입, 자세히 뜯어보면 옛날의 그얼굴 그대로지만 옷차림, 화장, 「매너」가 풍기는 인상이 한국 여인의 그것과는 딴판이다. 미국인 남편과 미국적의 아들, 미국인 며느리 그리고 2살반 된 미국태생 손자가 있는 미국속의 생활이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 같다. 놀랄만한 일은 46세(본인은 그렇게 말하지만 친지는 3세쯤 더 되는 것으로 귀띔)라는 연령에 비해 너무 앳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굴엔 실오라기만큼도 주름살이 없다. 10년은 젊어 보인다는 측근의 찬사에 그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미국에서는 20대 처녀로 알고 있어요. 27세쯤으로 보고 있다나요.-』 한국에서 그가 「히트」시킨 노래가 『나는 열일곱살이에요.』그의 노래제목처럼 항상 열일곱 처녀로 있는 것일까? 아닌게 아니라 박단마씨는 『얼마전에 그 곳 미국인과 약혼(約婚)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24세의 아들, 21세의 며느리 그리고 2살반 된 손자가 있는 「할머니」라고 그녀는 결코 생각키지 않을 듯하다. 신랑 될 사람은? 이 질문에 그녀는 숨김없이 『아주 마음씨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녀보다 10년 연상인 「보브」란 사람. 박단마씨의 아들 「리키」박 씨와 함께 자동차상을 하는 사람이란다. 약혼기간은 상당히 지났지만 결혼은 심사숙고중. 『이번에 결혼하면 이제는 죽을때까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혼하겠다』는 것. 그녀는 『마지막 결혼』이라고 표현했다. 이 「마지막 결혼」이란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묘한 여운을 풍긴다. 박단마씨의 파란많은 애정생활을 집약하는 것 같은 느낌. 13년전, 당시 가요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박단마씨는 10세난 혼혈아 아들을 앞세우고 도망치듯 모국을 떠났다. 아들의 아버지가 미군(당시 헌병중위)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아들을 임신 시킨 뒤 한국을 떠난 「리키」중위는 아들이 10세가 되도록 오지 않았다. 『거리에 나가면 돌이 날아 왔어요. 무서워서 살 수가 없었죠』 『아들이 밖에 나가면 아이들이 트기라고 따돌려 놓기 때문에-결국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결심이 선거죠』 울면서 떠났던 그 때를 회상하면서 그녀는 말을 잊었다. 13년 동안 한번도 오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거란다. 미국에 오는 고국사람들 편에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는 소식을 들어도 믿어지지 않았단다. 『지금도 사실은 혼자 외출하기가 겁나요』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그녀가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던가는 짐작할 수 있는 일. 10세 아들과의 「정처없는 도미생활」도 이제는 확실한 기반이 잡힌 것 같다. 자동차상을 하고 있는 아들은 「캘리포니아」에서 4만「달러」짜리 집을 갖고 있고 월수입 3천「달러」 이상. 미국 사회에서도 중류급 이상이다. 아들 며느리와 별거, 「할리우드」근교 「아파트」에서 살고있는 그녀는 지금도 내키면 무대에 서서 노랠 부르지만 그 수입 아니라도 삶을 즐길 여유는 갖고 있다는 이야기. 그녀가 사진으로 보이는 「아파트」의 실내장식은 연예인의 그것답게 화려하고 아늑했다. 작년말엔 「유럽」일주 공연의 연예단에서 초청을 받았으나 귀국준비 때문에 거절했다는 것. 『앞으로도 얼마든지 떠날 기회가 있다』고 자신에 차있는 말씨다. 가느다란 청음(淸音), 소녀의 목소리가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이 질문에 박단마는 『성대는 전보다 더 좋아졌다』고 힘주어 말했다. 가는 목소리가 굵어진 대신 훨씬 박력있게 되었다는 것. 이것은 그녀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귀국공연과 「레코드」취입을 통해서 곧 알 수 있게될 것 같다. 1개월 가량 머무를 예정이던 그녀는 서울 시민회관 공연과 박춘석(朴椿石)씨와 약속한 「레코드」취입을 위해 7월말까지 체류할 예정. 그와 같은 또래의 가수는 사실상 거의 퇴역한 지금이지만 박단마씨는 전혀 그럴 기색이 없다. 그 보다는 오히려 「노래는 이제부터」라는 말투다. 『처음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는 막연했어요 거기서 6개월동안 공연하고 「로스앤젤리스」로 갔는데 그 땐 더욱 막막하더군요』 박단마씨가 두 번째 결혼한 상대가 이 「로스앤젤리스」에서 「호텔」을 경영하던 미국인이었다. 『거리에 나가야 아는 사람도 없고 길도 모르고 일할데도 없고-그런 때 친절을 베풀어주니 천주처럼 믿게 되더군요』 한국에서 맺어진 「리키」중위와는 그뒤 「샌프란시스코」서 만났단다. 무척 서로 그리워 했지만 그땐 이미 늦은 몸들. 「리키」씨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돼있고 박단마씨 또한 새 살림을 차린 뒤였다. 현재의 약혼자 「보브」씨는 『나같은 미인은 이 세상에 또 없는줄 알고 있다』고 자랑할만큼 그녀는 소녀적이다. -미국인 며느리는? 『아들이 나를 좋아하니까 며느리도 퍽 따르고 있어요. 한국에 오겠다고 열심히 한국말을 배우고 있어요. 손자 녀석도 한국말을 곧잘 한답니다』 그의 아들 「리키·주니어」역시 10세때 떠난 한국을 잊지 못한다고 자랑했다. 이번에도 동반하고 싶었지만 『내가 먼저 가보고-』다음으로 약속했다는 것. [선데이서울 70년 6월 7일호 제3권 23호 통권 제 88호]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쓰레기통 조물주로 변신한 ‘반쪽이’ 최정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쓰레기통 조물주로 변신한 ‘반쪽이’ 최정현씨

    모든 것은 버려진다. 세상에 나와 쓰임새가 끝나면 폐기처분되는 게 자연의 섭리일 터.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그럴진대 사물의 목숨이야 더욱 가혹하게 끊어지고 내동댕이쳐 쓰레기 하치장으로 버려진다. 하지만 아닌 게 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 그대로 볼품없는 고·폐물들에게 생명을 ‘훅’ 하고 불어넣었더니 실로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워진다. 또한 해학과 웃음까지 깊숙이 내장돼 있어 보는 이들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신비의 세계에 ‘쏙’ 빠지게 한다. 아마 ‘천지창조’의 미켈란젤로조차 새로운 탄생의 경이(驚異)에 한참 입을 다물지 못할 것 같다. 지난 23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내 중심가에서 2㎞ 정도 떨어진 한 아파트 공사현장 인근의 허름한 작업실.30여평 규모의 실내에는 마치 철공소처럼 산소 용접기 몇대가 보이고 주변에는 폐기처분 직전의 고·폐물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6·25 당시의 전황소식을 전했음직한 고물 라디오가 눈에 들어오더니 바로 옆에 괴상망측한 스피커가 앙증맞게 놓여 있었다. 다 쓰고 버려진 음식점용 큰 세제통 중간에 구 멍을 뚫어 헌 스피커를 끼워 맞춘 모습이었다. 음질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탁자 위의 포스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코브라 뱀이 살아 있는 것처럼 빨간 혀를 날름거렸기 때문이다. 배밑에는 수십마리의 쥐가 달려드는 모습이었다. 자세히 봤더니 다 쓴 컴퓨터 자판기와 마우스를 촘촘이 엮어 만들어낸 ‘네티즌’이라는 작품이었다. 실물은 부산 해운대의 컨벤션센터(BEXCO)에 전시(2월4일까지) 중이라고 작업실 주인은 설명했다. 아울러 2005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6일까지 뉴질랜드에서 열린 ‘일상의 연금술’ 전시에서 세계적 정크아티스트 26명이 참가했는데, 여기에서 가장 주목을 끈 작품이라고 귀띔했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수백개의 단추구멍으로 만든 올빼미, 버려진 의자를 이용한 코끼리 모습, 삽과 젓가락으로 엮어진 모기, 철도핀과 스프링으로 탄생시킨 ‘어린왕자의 보아뱀’, 그리고 도끼자루와 자동차 부품을 이용한 ‘맞벌이 부부’ 등 한두가지가 아니다. 또한 늘렸다 폈다,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 침대와 의자, 책상과 가구 등으로 변모하는 ‘요술쟁이 쭉쭉이상’도 눈길을 잡았다.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더해 작업실 주인과 마주 앉았다. 최정현(47)씨. 정크아티스트, 즉 ‘고·폐물 예술가’이다. 전에는 만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대표작은 ‘반쪽이의 육아일기’.15년전에 책으로 발간했는데 지금도 전국 서점에서 팔리고 있다. 이중 일부는 중3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을 정도다. 그는 서울대 학보사를 거쳐 1980년대의 운동권 유인물에 그림을 그렸으며 ‘말’지와 한겨레신문 초창기 만평을 그리기도 했다.‘여성신문’에서 자신의 딸을 소재로 ‘육아일기’를 연재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다시 이력을 정리하면 1981년부터 2001년까지 20년 동안 만화가로, 이후 3년 동안은 목공예 예술가로,3년전부터는 고·폐물 예술가로 활동 중이다.‘종이-나무-철기’로 이어지는 흔치 않은 예술가의 삶이다. 특히 ‘철기시대’에 선 요즘, 고철이나 산업 폐기물들에게 새로운 생명과 이미지를 불어넣어 ‘조물주’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난해 9월 서울 북촌미술관에서 3000여점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생존작가로는 보기 드믈게 입장료 수입만으로 이익을 남길 정도로 많은 관람객(1만 5000여명)이 몰려 ‘조물주’임을 실감케 했다. “여기 있는 것들 중 90%는 버려진 물건들을 주워온 것입니다. 나머지는 고물상에서 돈을 주고 구입했지요. 용접으로 다리와 날개, 눈과 귀, 코를 만들어주면 다시 살아 움직이지요. 이 얼마나 뿌듯한 일입니까. 만화는 백지상태에서 창조하기 때문에 힘들지만 다 쓴 철은 어떻게든 한때 사용됐던 물건이기에 작품 힌트를 얻기에 좋습니다.” 그가 고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5년전 초등학교 5학년인 딸과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영국의 ‘런던 자연사박물관’에서 새의 부리 등 자연물을 모아 일상생활 도구와 비교해 놓은 모습을 보고 ‘저걸 고물로 바꾸면 여기보다 관람객이 더 많이 오겠구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단순 재활용이 아닌 메시지와 생명을 넣은 ‘고물 자연사 박물관’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것이다. 귀국한 뒤 딸은 여행기를 책으로 펴냈고 아버지 최씨는 고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울러 기계제작소에서 용접기술 등을 익혔다. 그의 작업실 주변과 수원 변두리 일대의 단골 고물상만 12군데나 된다. 갈 때마다 되도록 완전 폐기물 위주로 골라 무게당 몇십원씩 값을 더 얹어주기 때문에 고물상 일꾼들에겐 VIP고객이다. 그렇게 고·폐물들을 모아 새 생명을 불어넣기 작업을 하다 보니 3년 만에 3000여점에 이를 정도로 열성을 쏟았다. “버려진 철물에는 그 자체의 이야기가 있어요. 여기에 만화를 집어넣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안 웃고는 못배기는 것 같아요. 또 쓰던 물건을 이용해 이리저리 내용을 맞춰주면 역사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고들 해요.” 뿐만 아니라 종이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고철로 바뀌면서 재기 넘치는 해학으로 부조리를 신랄하게 꼬집어 묘한 카타르시스마저 안겨준다. 최씨는 대구 출신. 어릴 적부터 혼자 그림을 그리고 뭔가 만드는 일에 무척 흥미를 느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각종 ‘제작대회’때마다 상을 휩쓸었다. 고1때에는 동네에서 우연히 초상화 그리는 사람을 알게 돼 잠깐 배우더니 곧바로 돈벌이에 나설 만큼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러던 어느날 가정방문 온 담임선생한테 적발(?)당한 것이 계기가 돼 학교 미술선생에게 순수미술을 배우게 된다. 이후 서울대 서양화과에 진학한 그는 학보사에서 만평을 그렸다. 이때 운동권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교분을 쌓았다. 또한 대학때 교내에서 투신자살하는 스토리의 만화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군 제대후에는 대학 친구들의 권유로 이른바 ‘지하 유인물’ 작업에 참여했다.5공화국 시절인 당시만 해도 검열이 엄격했던 터라 몰래 숨어서 그렸다. 이름도 밝힐 수 없어 대신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계란 반쪽이’의 그림으로 저작을 표시했다. 이어 ‘말’지에서 2년6개월 동안 삽화를 그렸는데 주로 미국 관련 내용이어서 ‘반미 만화작가’로 소문났다. 그러던 1988년 12월 지인의 권유로 ‘여성신문’에서 ‘육아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딸 아이를 낳은 터여서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연결됐다. 경상도 출신 남자가 육아일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창피했으나 반응이 좋아 계속 그려나가게 됐다. “만화를 그만 두고 철공으로 넘어갈 때 무척 힘들었지요. 남들이 왜 거꾸로 가느냐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잘 결정한 것 같아요. 한국인의 손놀림은 정말 훌륭하잖아요.” 필생의 역작 이야기가 나왔다. “2년후 산업 폐기물로 만들어질 집을 기대해 달라.”며 활짝 웃었다. 고물상이나 쓰레기통을 뒤지며 다시 생명을 불어넣기에 분명 그는 ‘아름다운 조물주’였다. ■ 그가 걸어온 길 ▲1960년 대구 출생 ▲80년 영남고 졸업 ▲84년 서울대 서양화과 졸업 ▲85년 20대 ‘힘’ 전(아랍미술관) ▲89년 개인전 ‘그림마당 민’(서울) ▲94년 개인전 반쪽이 만화전(오사카) ▲95년 제1회 평등부부상 수상 (제2정무장관실) km@seoul.co.kr
  • [인혁당 재건위 무죄판결] “자식까지 빨갱이 매도… 30년 恨 풀어”

    [인혁당 재건위 무죄판결] “자식까지 빨갱이 매도… 30년 恨 풀어”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 없고, 그동안 당했던 원통한 삶을 되돌릴 수도 없고,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도 없고….” 30여년간 갖은 고생의 무게가 한 순간에 밀려온 듯 한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형장의 이슬이 된 고(故) 우홍선씨 부인 강순희(74)씨다. 험한 세파를 이겨내며 아이 넷을 키워낸 강인한 어머니지만 23일 법정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나오는 순간은 북받친 눈물을 참기 힘들었는지 함께 고생한 어머니들과 한동안 얼싸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기쁨의 울음은 이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오열로 변했다. 그는 22살 꽃다운 나이에 당시 장교로 있던 우씨를 만나 2년간 연애끝에 결혼했다. 아이 넷을 낳고 단란하게 살아온 그에게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건 1974년 4월25일. 남편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어디론가 끌려간 뒤 이듬해 4월9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강씨는 같이 무죄판결을 기뻐해야 할 남편을 죽인 국가와 정권에 대한 분노는 여전했다. “공판정에 들어가 봤는데 이 아녀자가 들어봐도 조작됐다는 걸 한눈에 알 수가 있었어. 그런데 30여년이 지나서야 무죄판결 받다니…. 이게 다 국민들 앞에 사죄하지 않는 정치세력 때문이야.” 남편을 보내고 난 이후 강씨는 100일간 꼼짝도 못하고 누운 ‘반시체’ 상태가 될 정도로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마음속에 응어리진 분노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자다가도 벽을 주먹으로 치고, 음식을 만들다가도 화가 나서 도마에 칼을 내리치고, 앉아 있다 보면 또 너무 억울해서 경찰서에 무작정 전화해 “인혁당 사건은 조작됐다.”고 외쳐댔지만 마음 속 응어리를 삭일 수는 없었다. 스트레스가 쌓여 어느날 갑자기 시야가 반으로 줄어드는 신경성 각막염까지 걸렸다. “몇달간 그렇게 있다가 로열젤리와 꿀을 먹으니 차츰 낫게 되어 이것 파는 직업도 해보고 그랬죠.”라면서 지난 세월의 기억을 더듬었다. 강씨는 자식들이 ‘빨갱이’로 매도당하는 일이 가장 가슴 아팠다고 했다.“당시 아버지가 수감돼 집에 들어오지 못하자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 해 면회를 신청했는데도 받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과 서대문형무소 뒷산에 올라가 플래카드를 들고 아버지를 먼 발치서라도 응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들 어머니의 고초를 알아주는 듯 건실하게 컸고, 이제는 엄마의 자랑거리가 됐다.”는 강씨는 언젠가 윤보선 대통령을 만났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인혁당 사건에 대해 언급한 말을 전해 주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박 대통령은 윤 대통령에게 ‘내가 집권 때 한 가장 큰 실책은 인혁당 8명을 죽인 것이다.’라고 말하더래요.” 임광욱기자 limi@seoul.co.kr
  • [기고] 공공투자 확충이 국민의 삶 바꾼다/변재진 보건복지부 차관

    국민의 삶이 편안하지 않으면 나라가 편안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가족기능의 약화, 소득 양극화 심화 등의 문제가 이제는 국민 개개인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늘어나는 노인인구에 대한 가족의 부양부담이 증가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 기쁨과 즐거움이기보다는 부담과 고민이 되었다. 가정환경이 자녀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지고, 실질적 교육소외계층이 늘면서 빈곤과 불평등의 세습이 심각한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더 이상 가족보호와 부양의 책임을 대문 안쪽으로 가둬 둘 수만은 없다. 그동안 일부 취약계층 보호에 초점이 맞추어졌던 국가의 역할과 기능은 보다 적극적으로 전체 국민의 삶을 보살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에 정부는 올해 예산에 사회서비스 확충을 위한 재원을 크게 늘려 편성해, 총 40여개 사업에 1조 3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사회서비스 관련 예산의 확충에 대해 일각에서는 시기상조이며 선심성 예산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에 머뭇거려 국가 대사를 그르치는 사례를 역사 속에서 수없이 보아왔다. 격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위험에 대응해 모든 국민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국가 역할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다음 세가지 원칙을 갖고 이루어진 사회서비스분야에 대한 공공투자의 확충은 국민의 복지서비스 욕구를 충족시켜 생활 속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우리 사회의 생산성을 높여 새로운 국가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첫째, 사회서비스의 확충을 통해 여성 및 중고령층의 자녀양육과 가족부양, 노인 수발 등의 가사부담을 경감시킨다. 동시에 이들에게 적합한 양질의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고용창출과 경제활력을 촉진한다. 둘째,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로 인해 인적자본의 개발·형성과정에서 발생하는 격차를 해소하여 미래 성장잠재력을 제고한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인적자본은 지속성장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따라서 정부는 인적자본의 초기 형성단계인 아동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려 모든 아동의 생애 균등한 출발을 보장하려고 한다. 셋째, 저소득 취약계층에 사후적 현금 이전지출을 통한 소득보장 중심의 국가보호 역할을 사회서비스 확충을 통해 보강함으로써 복지재정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제고한다. 선진국의 경험에서도 현금 지원과 사회서비스 공급정책을 병행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국제비교 연구에서 사회서비스 지출과 치안 지출이 반비례하는 것으로 입증되었듯이 사회서비스가 부족할 경우 사회문제의 증가는 물론 향후 사회적 비용이 오히려 더 커질 것이다. 이러한 의지를 갖고 이루어진 사회서비스 부문에 대한 공공투자의 확충으로 올 상반기부터 장애인·노인·산모 지원 서비스가 전국적으로 확대 제공될 예정이다. 또한 지역사회가 스스로 지역실정에 맞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중앙정부가 이를 평가해 지원하는 지역주도형 사회서비스 개발·제공 체계가 마련된다. 특히 기존의 서비스 공급자 중심 정책에서 탈피하여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공급자들간의 경쟁을 통해 질좋은 서비스가 공급될 수 있도록 수요자에게 서비스 이용권(voucher)을 지급하는 방식의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철저히 평가하고 모니터링해 양질의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한치의 흔들림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다. 변재진 보건복지부 차관
  • “희망과 나눔 그리는 화가 될래요”

    “희망과 나눔 그리는 화가 될래요”

    ‘할머니 감사합니다. 어릴 적부터 업어주고, 먹여주고, 기저귀 채워주고, 옷 빨아 주셔서 절 이만큼 키워주셨으니 너무나도 감사합니다.10년을 하루같이 키우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는지요.’<‘나의 일상생활’ 중에서> ‘엄마’와 같은 할머니와 단둘이 지하방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생인 박진주(10·서울 광진구 중곡동)양의 얼굴엔 늘 해맑은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한정숙(77) 할머니와 매 끼니를 걱정하며 어렵게 살고 있지만 진주에게는 어려서부터 헌신적으로 돌봐주시는 할머니가 있고, 화가가 되겠다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진주는 지난달 28일 한국복지재단 주최로 641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전국 소년소녀가장 생활수기 공모전’에서 할머니의 고마움과 자신의 꿈을 담은 ‘나의 일상생활’이라는 글로 당당히 금상을 거머쥐었다. ●‘엄마’ 같은 할머니가 있어 행복해요 9일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 지하에 있는 보금자리 문을 열자 진주가 “안녕하세요.”라는 우렁찬 인사와 함께 통통한 볼을 활짝 펴며 밝게 웃는다.“아프리카에는 굶어 죽는 아이도 있다던데 저는 할머니가 돌봐주시니 행복한 아이가 아닌가요?” 진주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외환위기를 맞으며 아빠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부모가 집을 나갔고, 어느날 연락이 끊겼다. 그 뒤부터 할머니가 진주를 돌보고 있다. 진주와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 보조금 43만원과 복지재단에서 주는 후원금 10만원, 구청 양육 보조금 7만원을 생활비로 쓰며 어렵게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6년 전만 해도 할머니가 공공근로로 일당 2만원씩 벌었지만 식도 수술을 받은 뒤 건강이 악화되면서 더 어려워졌다. 도시가스비만 매월 7만원씩 나오는 겨울이 버거울 뿐이다. 하지만 진주는 수술로 몸무게가 11㎏이나 빠진 할머니의 속을 썩이지 않고 가난과 사라진 부모도 탓하지 않은 채 명랑하게 자라고 있다. 할머니는 “진주는 지금도 일본에 있는 고모를 제 엄마로 알고 있는데 조만간 이야기를 해 줄 생각”이라면서 “진주가 대학교 갈 때까지만 건강하게 살아있어야 할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화가가 돼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진주는 화가가 꿈이다. 어릴 때부터 종이접기, 그림그리기, 조립하기, 글쓰기 등 손으로 하는 건 뭐든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2학년 때 처음 미술을 배우기 시작해 지금은 어떤 물체도 스윽 한번 쳐다보곤 똑같이 그려낸다. “할머니가 늘 ‘북한과 아프리카엔 아이들 병원이 많이 없어 굶고 병들어 죽는 아이들이 많으니 일상에 늘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고 하세요. 앞으로 화가가 돼서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진주는 공모전에서 받은 금상 부상으로 다음달 4박5일 동안 중국여행을 떠난다.“처음으로 비행기 타는 게 너무 기대돼요.”진주에게 북한이 고향인 할머니가 “멀리서나마 할머니 고향 사진 많이 찍어와야 한다.”며 얼굴을 쓰다듬는다.“할머니, 얼른 음식도 잘 넘기고 건강해져야지. 나 할머니가 ‘무억만년’ 사시라고 매일 기도할 거야.”진주가 할머니를 꼬옥 안았다. 후원 문의는 한국복지재단 서울지부(02-325-2205) 송진호 사회복지사. 글 사진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10일 TV 하이라이트]

    ●클로즈 업(YTN 오후 1시30분) 누구나 새해를 맞으면 새로운 각오로 희망을 말한다. 세상이 어렵고 삶이 힘들수록 용기를 주는 희망의 메시지는 더 절실한데, 요즘이 바로 그런 때일 것이다.‘우리시대의 대표적 지성’으로 통하는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과 함께 새해의 의미와 우리 사회의 과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살림의 여왕(EBS 오전 11시) PDP,LCD,CRT, 프로젝션. 다양한 TV 어떻게 골라야 할까? TV는 무조건 클수록 좋다? TV가 근시의 원인이다? TV를 오래 보면 머리가 나빠진다? TV에 얽힌 여러 궁금증을 풀어본다.‘돈이 보이는 특강’에서는 우리 아이를 위한 노후를 어떻게 계획해야 할지 재테크계 미다스의 손, 백정선씨에게 들어본다.   ●생방송 TV연예(SBS 오후 8시55분) 2001년 마약 복용 혐의로 구속돼 연예활동을 중단했던 황수정이 5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낸다. 복귀 논란을 놓고 그녀가 드라마 제작보고회에서 밝힌 솔직한 심정을 소개한다. 연기자로 평가받고 싶다는 그녀의 촬영장 모습도 공개한다. 또 김정은, 이서진을 ‘연인’마지막 촬영 현장에서 만나본다.   ●생방송 오늘아침(MBC 오전 8시30분) 혼수가 웬수? `혼수’갈등으로 인한 이혼이 늘고 있다. 많거나 적거나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와 양가부모들 사이에 어떤 식으로든 마음의 상처를 남기게 된다는 대한민국 혼수문화. 대한민국 중산층의 평균 혼수 액수는 어느 정도이며 혼수로 인한 파경을 막을 수는 없는지 그 실태와 대안을 짚어본다.   ●신년특집 추적 60분(KBS2 오후 11시5분)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부터 충청도 농촌 마을, 전라도 항구도시, 부산 자갈치시장.40여일 동안 약 200여명의 민심을 직접 들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1년 남은 참여정부에게 바라는 점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추적 60분’신년특집 2부작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한다.   ●환경스페셜(KBS1 오후 10시) 흔히 ‘히말라야의 보석’이라 불리는 불교 왕국 부탄. 중국과 인도의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나라 부탄은 지구상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천연의 요새 같은 지형을 갖고 있다. 때문에 고유문화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완벽하게 유지, 보존되는 곳이기도 하다. 물, 바람 그리고 하늘의 나라 부탄을 찾아가본다.
  • [희망 2007 새벽을 여는 사람들] (6) 도시철도 막내 기관사 임경섭씨

    [희망 2007 새벽을 여는 사람들] (6) 도시철도 막내 기관사 임경섭씨

    “이번 역은 행복∼, 행복역입니다.” 도시철도공사 소속 막내기관사 임경섭(35·답십리 승무관리소 소속)씨는 이런 안내방송이 울려 퍼지는 세상을 꿈꿔 본다. 새벽녘부터 보랏빛 5호선 열차에 노곤한 생을 지고 탄 승객들을 ‘행복’이란 종착역에 살포시 내려주는 상상이다. 7일 오전 5시 정각. 그는 매서운 겨울 추위를 뒤로하고 인적 없는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고덕 차량 기지로 들어섰다. 육중한 몸매의 5호선 열차들이 하나 둘 기지개를 켜는 순간이다. 출발역인 상일동역에서 종착역인 방화역까지 41.5㎞를 주파할 운명의 동체들. 상쾌한 새벽 공기 속에선 열차의 설렘이 느껴지는 듯하다.44곳의 플랫폼에서 오늘은 어떤 손님들을 맞이할까…. ●사람의 체온을 느끼고 싶어 기관사 지원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그는 전동차 5014호에 올라 기기판을 점검하고 출입문 개폐 여부, 안내방송 이상 여부 등을 확인한다. 점검팀을 이미 거친 작업이지만, 언제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에 직접 확인하는 절차를 빼놓지 않는다. 오전 5시35분. 출발을 알리는 관제소 지시가 떨어지자, 운전석에서 대기하던 그는 ‘마스콘’(속도를 조절하는 핸들)을 조종해 거대한 열차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전 5시42분 상일동역. 하루의 첫 운행을 시작했다. 역에 도착하자 평소와 다름없이 첫 열차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열차를 기다리고 서 있다. 그는 난방계의 온도를 높였다. 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만이라도 따뜻하게 쉬어 가게 하려는 그의 배려다. “대학 졸업 후 1998년 철도청 검수일을 시작했습니다. 기계 만지는 걸 좋아해서 보람이 컸지만 사람의 체온을 가까이서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2004년 4월 마침 도시철도공사의 기관사 모집공고가 났고 이거다 싶어 바로 지원을 했습니다.” 당시 경쟁률은 10대1을 웃돌았지만 그는 바늘 구멍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 이렇게 시작한 기관사의 길엔 보람도 컸지만, 위기도 적지 않았다. “하루는 길동역에 들어서는데 한 아저씨가 갑자기 뛰어들어 선로 사이에 드러누웠어요. 재빨리 급정거를 해서 사고는 면했지만 곧 일어난 아저씨가 아무말 없이 가버려 허탈했던 당시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소주로 손 닦아 주며 사고 동료 위로 주변에서 예기치 않은 사상 사고를 겪은 동료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한번 사고를 겪으면 그 역을 지날 때마다 사고 상황이 떠올라 무척이나 괴롭단다.“사고를 겪으면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소주로 직접 손을 닦아 주는 의식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위로를 해주고 싶은 거지요.” 보람도 많다. 한번은 올림픽공원역에 정차해 있는데 8세가량의 어린이가 까치발로 서서 운전실 내부를 빤히 들여다 보더란다. 자세히 보니 발달 장애아동이었다.“배차 시간에 여유도 있고 해서 아이를 운전실로 데려와 이것저것 구경시켜 주었어요. 신기해하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푸근해졌습니다.” ●철도분야 최고의 ‘장인’ 되는 게 꿈 그의 꿈은 ‘철도 장인’이 되는 것이다. 기관사뿐만 아니라 관제소, 안전방제소, 본사 운전처 등 철도 전 분야를 섭렵하는 것이 장차 목표다. 새해 소망을 물으니 역시 믿음직한 기관사답게 ‘무사고 운전’을 제일로 꼽는다. 그것 말고 한 가지만 더 얘기해 달라고 하니 쑥스럽다는 듯 덧붙인다. “아들이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갑니다. 과외나 학교 공부 등 답답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지혜로운 학부모가 되는 준비를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다음 정차역을 향해 달려가는 그의 모습에선 새벽을 여는 첫 전철만큼이나 희망찬 박동 소리가 느껴졌다. 글 사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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