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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나가는 종교 다큐… 비결은 ‘휴먼스토리’

    잘나가는 종교 다큐… 비결은 ‘휴먼스토리’

    종교 영화는 극장가에서 그리 대접받지 못한다. ‘미션’(1986),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 등 예외가 있긴 하지만, 흥행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물며 종교 다큐멘터리는 스크린에 걸기조차 어려운, 말 그대로 찬밥 신세였다. 그러다 보니 교회나 성당에서 교인끼리 공동 관람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랬던 종교 다큐가 최근 들어 상업적인 경쟁력을 지닌 장르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2년 새 10만명 안팎을 동원한 작품만 해도 독일 다큐멘터리 ‘위대한 침묵’ 등 4편이나 된다. 이쯤 되면 다큐멘터리로는 ‘초대박’ 수준이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는 ‘바보야’와 고 법정 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법정스님의 의자’가 5월 극장가에 나란히 걸린 것도 이 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김수환 추기경·법정스님 5월 극장가 나란히 휴먼 다큐멘터리의 성격이 강한 ‘법정스님의 의자’는 지난 12일 CGV의 다양성영화전용관인 무비꼴라쥬 9개관에서 개봉했다. 19일부터는 전국의 예술영화 전용관 등 8개관이 더 늘어난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바보야’는 17일 현재 1만 5758명을 불러모으는 등 순항 중이다. 영화계는 이렇듯 소리 없이 약진하는 종교 다큐의 힘을 우선 ‘휴먼 스토리’에서 찾는다. ‘법정스님의 의자’ 마케팅을 맡은 키노아이DMC 박주원 대리는 “(작품이) 특정 종교색을 띠기보다는 보편적인 수행자의 삶을 그린 휴먼 다큐멘터리에 가까워서 폭넓은 공감을 얻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종교 다큐는 물론, 독립영화를 통틀어 ‘워낭소리’(2009) 이후 최고 히트작이라는 ‘울지마, 톤즈’도 고 이태석 신부의 헌신적인 아프리카 봉사 인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해 9월 초 개봉해 8개월 넘게 상영되면서 누적관객수 44만명을 돌파했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관객과 극장의 인식이 달라진 것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는 295만명을 동원한 ‘워낭소리’가 한몫했다. 마니아의 전유물 정도로 여겨지던 다큐멘터리에 대해 이제 돈 내고 봐도 아깝지 않은 장르라는 인식 전환이 이뤄진 것. 극장이나 배급사들 또한 장기 상영을 통해 다큐멘터리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학습효과를 얻었다. 마침 ‘워낭소리’ 이후 잇따른 종교 다큐멘터리의 작품성도 뒷받침됐다. 2009년 4월 개봉한 신현원 감독의 ‘소명’은 단 한 곳에서 상영됐는데도 9만 7314명을 모으면서 종교 다큐 흥행의 첫 단추를 끼웠다. 그해 12월에 나온 2시간 48분짜리 ‘위대한 침묵’도 10만명 가까이(9만 5334명) 동원했다. 지난해 1월에는 김종철 감독의 ‘회복’이 16만 663명을 모았다. ●‘워낭소리’가 준 다큐영화 호감도 한 몫 물론 종교 커뮤니티의 티켓 파워도 빼놓을 수 없다. 특정 종교 모임에서 상영관 한 회차를 아예 통째로 대관하기도 한다.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SNS)의 평판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20대와 달리, ‘구전’에 의존하는 중장년층이 주소비층인 탓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상규 CGV 홍보팀장은 “‘소명’ 이후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잇따르면서 종교 다큐가 하나의 장르처럼 자리잡는 추세”라면서 “(아무래도 마니아층을 기반으로 하는) 다른 독립영화에 비해 일반 관객을 흡수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커 장기 상영이 가능한 것도 흥행에 플러스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수많은 소리로 이뤄진 세상 가장 낮은소리를 들으세요

    수많은 소리로 이뤄진 세상 가장 낮은소리를 들으세요

    그러고 보니 세상은 수없이 많은 소리로 이뤄져 있는 듯하다. 끼익끼익, 트닥트닥, 꾸아읍꾸아읍, 빼고닥빼고닥…. 굳이 국적을 따지고, 경계를 가르지 않더라도 모든 인류가 공통으로 즐거워하거나 괴로워하고, 말 없이도 공감할 수 있는 수많은 소리들로 세상은 만들어져 있다. ‘끼익끼익의 아주 중대한 임무’(킨더주니어 펴냄)는 연작소설 ‘타워’, 소설집 ‘안녕, 인공존재’ 등을 통해 공상과학(SF)적인 상상력을 현실에 핍진하게 접목시키는 작업에 매진해 온 소설가 배명훈(33)이 내놓은 첫 장편동화다. 또한 아이가 어른이 된, 그러나 아이로서의 순수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 동화이기도 하다. 장편동화라고 딱히 다를 바 없다. 그간 배명훈이 소설에서 선보인 우주적 상상력을 조금 더 동화적으로 ‘확장’-축소 또는 간략화가 아니다-시켰다고 볼 수 있다. ‘끼익끼익’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통칭하는 소리 요정이다. 스스로 소리를 낼 수 없는, 그래서 아프고 힘들어도 그저 속으로 소리를 삼키며 참고 견뎌야만 하는 모든 것들의 대변자다. 뻑뻑해진 창문이 내는 소리, 너무 무거운 짐을 지탱해야 하는 나무 탁자가 내는 소리, 낡은 자동차가 내는 조용한 구조 신호 소리 등 온통 ‘끼익끼익’으로 가득 찼다. 보살핌과 배려를 원하는 간절한 소리는 모두 소리 요정 끼익끼익의 몫이다. ‘은수 아빠’에게만 보이고 들리는 것이다. 심지어 우주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은수 아빠는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혜성의 소리까지 듣고, 홀로 괴로워하다 비껴갔음을 확인한 뒤 안도한다. 특별하거나 빛나지 않은 채 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이 내뱉는 낮은 목소리-끼익끼익-는 아무에게나 들리지 않는다. 은수 아빠같이 귀 밝은 이들의 몫이다. 아주 어린 시절 터키 이스탄불 트램의 삐걱거리는 소리로 ‘끼익끼익’의 존재를 알아차린 아이는 어른이 된다. 그리고 ‘은수 아빠’ 이전에 은수의 언니인 장애우 ‘미성 언니’를 낳고 키우면서 겪어야 했던 고단한 삶까지도 밝고 쾌활하게 담아낸다. 상상력의 바탕에 나와 다른 존재,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존재와도 공존할 수 있는 힘이 근거함을 확인시켜 준다. 소설과 동화의 장르를 넘나들며 배명훈이 보여주는 우주적 상상력의 핵심이 마지막 쪽에 친절하게 소개된다. ‘끼익끼익의 가장 중대한 임무는 곁에 머물러 주는 거’다. 우주 공간을 유영하듯 헤매지만 결국 지금, 여기, 우리의 곁에 머무는 상상력. 역설적이지만 의미심장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미혼모, 이젠 색안경을 벗자] 홀로서기 성공한 미혼모 이야기

    ‘미혼모’를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하지만 모든 미혼모들이 음지에 숨어 사는 것은 아니다. 미혼모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드러내며 우뚝 선 여성들도 없지 않다. 주변의 냉대와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도 그들은 아이를 당당하게 키워내겠다는 굳은 의지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화장품 방문판매 사원인 미혼모 감은남(35)씨. 그녀는 하루 종일 딸아이를 품에 안고 다닌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집집마다 고객을 찾아다녀야 하는 고된 일이지만, 품에 안긴 딸아이를 보면 힘이 샘솟는다. 하루 종일 감씨의 품에 안겨 있느라 아이의 몸엔 빨갛게 쓸린 자국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를 보는 감씨의 마음도 한없이 아파온다. 그러나 손님들을 만나도 낯을 가리지 않고 방긋방긋 웃어대는 아이를 보면 그녀의 얼굴엔 절로 환한 미소가 피어난다. 감씨는 “아이를 데리고 사무실에 나가면 동료들이 반겨주고, 제 상황을 이해해 주는 게 큰 힘이 돼요. 아이와 함께 가면 손님들이 더 좋아하시기도 하고요.” 아이를 품에 안은 그녀가 밝게 웃었다. 감씨는 홀로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가족과 동료들의 격려’라고 말한다. 지난해 1월 감씨의 임신 사실을 안 가족과 직장 동료들은 따뜻하게 그녀를 보듬어줬다. 어머니는 “네가 선택한 일이니 힘들다고 하지 마라. 남들보다 두 배로 열심히 살아야 한다.”며 어깨를 토닥였다. 감씨가 다니던 사무실의 동료들은 집까지 찾아와 끼니를 챙겨줬다. 그렇게 감씨는 고된 임신 과정과 출산을 견뎌냈고 예쁜 딸을 품에 안았다. 김윤영(35·가명)씨 역시 홀로서기에 성공한 당당한 미혼모다. 김씨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함께 살던 남편이 떠나 버린 뒤 5살짜리 아들 선호(가명)를 홀로 키우고 있다. 사업을 하겠다며 김씨 명의로 대출까지 받은 남편이 남긴 빚 때문에 그녀는 한동안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김씨는 좌절 대신 독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집에만 있으면 우울해질까 봐 일부러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났다. 자기계발과 이미지 변신을 위해 영어학원, 쇼호스트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김씨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일부러 쇼호스트학원을 다녔는데, 매일 카메라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표정도 밝아지고 자신감도 생기더라.”고 말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김씨는 평소에는 하지 않던 화장을 하는 등 외모도 정성스레 꾸몄다. 그러자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높아졌다. 그녀는 이전에 하던 여행상품 판매업을 다시 시작해 지난해 12월에는 빚도 다 갚았다. 김씨가 홀로서기를 할 수 있었던 데는 일찍 철이 든 아들 선호의 도움이 컸다. 한창 말썽을 부릴 나이인데도 선호는 김씨가 바쁠 때면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곤 했다. 김씨는 “아이는 부모가 하는 대로 닮아가며 크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아들을 키우고 있는 김혜선(29·가명)씨는 요즘 어느 때보다도 바쁜 나날을 보낸다. 서울시 한부모가정센터에서 피부미용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수업을 듣고, 이샘 컵케이크에서 전문 베이커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배우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이렇듯 김씨가 공부에 열심인 것은 그녀의 최우선 목표인 ‘자립’을 위해서다. 그녀는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 생활을 꾸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남편도, 직업도 없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듯 앞으로도 아들과 함께 꿋꿋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이 한참 걸음마에 재미를 붙여 종종 말썽도 부리지만 김씨는 아이를 위해 오늘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내 삶이 어떻게 됐을까.”라면서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윤샘이나·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열린세상] 아빠가 된다는 것과 뇌발달/곽금주 서울대 심리학 교수

    [열린세상] 아빠가 된다는 것과 뇌발달/곽금주 서울대 심리학 교수

    가정의 달이다.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게 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이다. 사실 결혼은 좋고 행복한 사건이지만 한편으론 일상생활 중 스트레스 점수가 높은, 부담이 큰 일이기도 하다. 출산 또한 그렇다. 새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은 매우 경이롭고 기쁜 일이지만 출산에 대해 남자로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는 여자 못지않게 상당히 크다. 출산 시 예비 아빠들은 불안함, 무력함, 준비되지 않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 아내의 출산에 같이 참여하고 싶은 동시에 달아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 동창회나 친구들 모임에 자주 참석하지 못할 것이고 지금까지 즐겨왔던 자유시간이 제한될 것이라는 답답함, 그리고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생긴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아버지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시간 안배이다. 밤새 울어대는 아기 때문에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나고,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기와 놀아주는 새로운 의무에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결국 아기가 생김으로써 아버지들은 가족과 일 간에 서로 대립되는 요구들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여러 활동 가운데 우선순위를 매기고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일과 가정 간에 균형을 맞추는 것은 삶의 행복감과 연결된다. 일과 가정 간에 밸런스를 못 맞추게 되면 삶의 질과 웰빙 수준이 낮아지고, 스트레스가 증가하며, 정신적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일과 가정을 동시에 병행하면서 겪게 되는 갈등, 심리적인 불안감과 걱정을 생각한다면 한 가정을 꾸린다는 것 자체는 매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런 힘든 일 속에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큰 보상이 따른다. 뇌연구자인 캘리 램버트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 한 남자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켜 줄 뿐 아니라 뇌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음을 쥐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총각 쥐보다 아빠 쥐가 미로 안에서 음식이 어디에 있는지 더 잘 찾았고, 익숙지 않은 물체가 놓인 새로운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덜 보였다는 것을 관찰했다. 게다가 아빠 쥐는 총각 쥐보다 새로운 자극을 더 탐색하는 행동을 보였다. 이와 같은 행동들에 의해 뇌 활동이 더욱 활성화되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다른 새끼 쥐를 플라스틱 컵 안에 가두고서 총각 쥐와 아빠 쥐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했다. 자기 새끼가 아님에도 아빠 쥐는 총각 쥐보다 훨씬 더 끈질기게 새끼 쥐를 구하려고 노력하는 행동을 보였다. 새끼 쥐를 구해내려는 문제 해결행동이 적극적인 만큼, 아빠 쥐의 뇌에서는 문제 해결 부위가 더 활성화되었다. 글로리아 마크의 최근 연구에서 새끼가 태어난 직후 수컷 쥐의 뇌에서 신경생성(neurogenesis)이 관찰되었다. 새끼 쥐가 태어난 직후 아빠 쥐와 분리가 되었을 때는 아빠 쥐의 뇌에서는 아무것도 발생되지 않았는데, 새끼와 함께 지내게 되면 아빠 쥐의 뇌세포가 훨씬 증가되었다. 아빠 쥐가 새끼 쥐와 신체접촉을 함으로써 환경과 경험의 영향에 따라 신경세포 간 연결이 재조직되어 뇌가 변화되는 속성인 신경가소성이 촉발된 것이다. 이때 일부 신경세포는 학습과 기억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뇌의 해마 부위에서 형성되었는데, 이렇게 형성된 신경세포는 새끼의 냄새를 기억하게 한다. 아빠 쥐와 새끼 쥐가 신체 접촉을 한 후 오랫동안 서로 분리시켜 놓아도 아빠 쥐는 새끼 쥐를 냄새로 쉽게 인식하였다. 즉, 기억을 오래 지속시켜 주는 뇌 부위가 활성화된 것이다. 뇌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해 간다. 신경세포는 일생에 걸쳐 뇌의 신경망을 재구성한다. 물론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긴 하지만 이렇게 아빠가 된다는 것은 우리의 뇌를 계속 발달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어떤 것이든 얻은 게 있으면 잃은 게 있기 마련이다. 아빠가 된다는 것, 아이가 주는 그 기쁨과 나의 뇌가 발달되는 이득을 생각하면 절대 나쁜 거래는 아닌 것 같다.
  • [SOS 10대들의 性] (하) 전문가 좌담

    [SOS 10대들의 性] (하) 전문가 좌담

    요즘 청소년들의 성문화에 대해 전문가들은 “성행동 수위는 높아졌지만 성문화는 왜곡돼 있는데, 원인은 사회와 어른들에게 있다.”고 한결같이 지적했다. 지나친 경쟁과 입시 중심의 교육, 어른들의 성 상업화가 청소년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청소년들의 성문화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면 더디지만, 학교와 가정,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별개의 인간일 뿐 아니라 성적 욕구를 지닌 존재라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동 아하!서울시립성문화센터(아하센터)에서 여섯 명의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청소년 성(性)문화’를 주제로 좌담을 가졌다. 모임에는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 이명화 아하센터장, 이윤상 한국성폭력상담소장, 정유성 서강대 학생처장(교육학 교수), 우옥영 보건교육포럼 대표, 이명선 인디여성연구소 소장이 참석했다. ●“청소년 성행동 수위 높아졌지만….” 김찬호(이하 김) 최근 10년, 한국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변화가 지체된 영역이 존재하며,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성(性) 영역이 아닐까 싶다. 이명화(이하 화) 과거에는 성이라는 주제가 감춰야 할 것이었지만 요즘은 중학교 2학년이 성관계를 할 정도로 성 행동 수위가 높아졌다. 우리나라 성교육이 그동안 성폭행 예방, 10대 임신문제 등 이슈 중심의 캠페인에다 순결교육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성적 의사결정능력을 키우는 쪽이어야 한다. 이윤상(이하 상) 지난 10년, 성을 둘러싼 변화 중 가장 큰 것이 법제화다. 성폭력, 성매매 등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공감대가 생겼고, 그 결과 성폭력특별법, 성매매특별법 등 많은 법과 정책이 마련됐다. 하지만 인식이 제도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헤픈 여자가 강간당한다.’는 인식 등의 이중적인 성적 잣대는 여전하다. 청소년 문제도 마찬가지다. 청소년은 보호의 대상이기도 하고, 성적 자율성과 주체성을 가진 주체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사회가 방향을 못 잡고 있다. 정유성(이하 정) 현재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받는 교육은 실제 아이들의 삶과 관련이 없다. 학교는 청소년들의 삶과 욕구를 인정하지 않는데, 성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지 않겠나. 화 청소년 성문화, 나아가 한국 성문화는 여전히 폭력적이고 상업적이다. 청소년들끼리 몸을 찍어서 휴대전화로 보내거나, 음란물을 모방하는 성폭력이 늘어나는 현상 등을 보면 과거와는 또 다른 폭력적이고 노골적인 면을 볼 수 있다. 우옥영(이하 우) 10년 전 당시 교과부에서 일선 학교에 성교육 지침을 내렸지만, 성교육 교과서도 제작되지 않은 데다 관련 교사 교육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그냥 각자 알아서 하고 결과를 보고하라고 했다. 그때보다야 낫지만 지금도 부족하긴 하다. 지난해 조사결과를 보면 중·고등학교에서 보건과목을 선택한 학교가 10%밖에 안 된다. 선택하지 않은 90% 학교에서 성교육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명선(이하 선) 사회 전체적으로 섹슈얼리티는 개방됐지만 청소년들은 성적 욕망을 인정받지 못한다. 성적 욕망이 없는 존재, 혹은 있어도 통제 돼야 하는 존재로 파악되고 있다. 청소년이 성을 주장하거나 실천하면, 위기청소년으로 묶여버린다. 과거라면 이들이 성 행동을 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을 나이인데…. ●“부모·자녀 사이 성 인식 간극 줄여야 화 현장에서 보면, 학부모와 자녀들 사이의 성 인식에 대한 간극이 너무 크다. 외출한 부모들이 집에 갔더니 아이들이 성관계를 하고 있더라는 상담 사례가 없지 않다. 아이는 학교도 계속 잘 다니고, 이런 상황이 특별히 문제 될 게 없는데 부모한테는 이게 심각한 문제다. 그 간극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 우리 성교육은 청소년들에게 “너희들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주체야. 그러니까 너희는 ‘No.’ 할수 있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정작 ‘Yes.’라고 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는 못한다. 성행동을 두고 “책임질 수 있는 데까지”라고 유예를 시키지만, 그럼 책임은 언제부터 질 수 있나, 애매하다. 그래서 저는 딸에게 “법적으로 19세”라고 말해주고 만다. 정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을 사유화한다. 자식을 독립된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내 새끼만 괜찮으면 좋다는 완강한 가족주의를 보인다. 부모만이 아니라 사회도 학교도 청소년들의 존재를 대상화하고 수단화하고 있다. 그러니 청소년들의 욕구, 특히 성적인 욕구는 당연히 무시된다. 우 또 다른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경제활동이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애들이 “나 성적으로 자유롭고 싶어.”라고 했을 때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가 없다. 타이완에서는 학생이 임신해도 학습권이 보장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지원책이 없다. 김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삶의 주인임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성교육의 기본 방향이 되어야 한다. ‘Yes’라고 말할 수 없는 건 어른들이 청소년기를 그렇게 보내지 못한 데 대한 질투가 아닐까(다같이 웃음). ●“청소년 성문화, 어른들이 먼저 변해야 선 성에도 남녀 청소년의 권력관계가 있다. 남학생들의 경우는 성경험을 해도 별 문제시하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여학생들은 성관계에서 ‘No.’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을 겪는다. 왜냐하면 남자친구가 심리적으로 불편해 하고, 상처를 받을까 봐, 또 가출한 여학생은 의지할 곳이 없어질까 봐…. 정 남자 아이들도 몸이나 욕망, 관계에 대해서는 굉장히 무지하다. 매체에서 말하는 겉으로 드러나는 욕망이라던가 하는 것밖에 모른다. 걱정이다. 우 스웨덴은 청소년들이 실제 필요로 하는 부분을 지원해 주는 나라다. 청소년들이 언제든 성 상담은 물론 진료까지 무료로 할 수 있는 병원이 있다. 의료인, 보건교사, 상담사, 심리사 등이 팀을 이뤄 아이들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놀라웠다. 화 청소년의 성행동 수위는 높아지고, 우리 사회의 성폭력 등 성에 관한 문제는 심각하지만 지원 시스템은 부족하다. 아하센터와 같이 청소년성교육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곳은 전국 38곳, 서울 6곳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정부가 현장의 성교육 전문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정 앞으로는 새로운 성문화를 위한 물적 토대뿐 아니라 인간관계의 평등성이나 젠더 감수성까지 포함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여기에 어른들의 반성과 각성이 더해져야 한다. 상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하지만 성교육 의무화 등 여러 가지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결국 공교육 현장은 진지하지 않았다. 매번 초등학생 성폭력사건이 일어나면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히고 서로를 탓하지만 10년, 20년 전에 정말 진지했다면 오늘의 모습은 확실히 달랐을 것이다. 김양진·김진아기자 ky0295@seoul.co.kr
  • [책꽂이]

    ●내 인생의 멘토 여행지 30곳(이두영 글, 마로니에북스 펴냄) 배움은 도처에 있다. 사람들에게 배우고, 미물처럼 보이는 또 다른 생명체로부터도 배운다. 여행작가인 저자는 자연으로부터 인생의 배움을 얻는다고 고백한다. 충남 태안 학암포의 잔잔한 파도 앞에서, 전남 화순의 못난이 불상 옆에서,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 만대루 위에서 역사와 호흡하고, 바람과 숲과 호흡하며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하며 배웠던 기록을 적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할 여행지’ 등 베스트셀러의 저자이기도 하다. 1만 5000원. ●강경대 평전(이동권 지음, 민중의소리 펴냄) 1991년 4월 26일 경찰 ‘백골단’(사복 체포조)이 무자비하게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1학년 강경대의 이야기다. 또한 전국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달궈졌던 1991년 5월 투쟁에 대한 이야기다. 강경대는 당시 한달 동안 12명의 젊은이들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타살되는 등 죽음으로 맞섰던 정국의 도화선이 됐다. 강경대의 짧지만 따뜻했던 삶, 소박하지만 단호했던 원칙 등을 하나씩 얘기하며 ‘철없는 대학 새내기의 죽음’ 정도로 비하하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 반박한다. 1만 5000원. ●육아동맹(카일 프루에트·마사 클라인 지음, 정미나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 남자와 여자는 다르기에 아빠와 엄마의 육아 철학도 다를 수밖에 없다. 늘 으르렁대다가 결국 한쪽이 포기한 뒤에 일방통행식 육아교육이 이뤄지기 일쑤다. 하지만 모험과 자립의 가치를 중시 여기는 아빠의 양육법과 보호하고 껴안아주는 엄마의 보육법은 건강한 갈등 속에 손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에게 부모의 역할만이 아닌 파트너의 역할이 필요하다고도 역설한다. 1만 5000원.
  • ‘미혼모’ 명칭 퇴출된다…”주홍글씨 미혼모에 새이름을”

    ‘미혼모’ 명칭 퇴출된다…”주홍글씨 미혼모에 새이름을”

    미혼모.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그 이름은 ‘낙인’이다. 지우기 힘든 주홍글씨다.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제과점 주인을 꿈꾸던 ‘17세 미혼모 성은이의 희망 노래’<2010년 9월 29일 자 11면> 보도 이후에도 그랬다.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도 많았지만 악플도 적지 않았다. 누가 이들에게 ‘죄인’의 굴레를 씌웠을까. 서울신문과 서울시한부모가족지원센터가 가정의 달을 맞아 미혼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꿔 보려고 한다. 그들을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민단체도 함께 나섰다. 서울신문은 미혼모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전환하기위해 명칭 공모와 함께 홀로서기에 성공한 그녀들의 이야기, 부족한 지원책, 대안 등을 5회에 걸쳐 시리즈로 싣는다. 미혼모에 대한 새 이름 짓기 공모전은 6일부터 오는 27일까지 진행된다. 서울시한부모가족지원센터(http://seoulhanbumo.or.kr)에서 참가 신청서를 내려받아 온라인(hanbumo@seoul.go.kr)이나 우편으로 접수하면 된다. 대상 1명에게는 50만원, 우수상 1명에게는 30만원, 가작 2명에게는 각각 10만원 상당의 상품권이 제공된다. 대상작은 서울시한부모가족지원센터와 미혼모 관련 단체 등에서 ‘미혼모’를 대체하는 단어로 사용될 예정이다. 백민경·윤샘이나기자 white@seoul.co.kr ■ “가족·친구도 등 돌려요”… 편견에 두번 운다 ‘대부분 10대 임신으로 교육적·경제적 정도가 낮아 충분한 건강관리를 받을 수 없으며 부모로서의 발달과업을 달성할 수 없다.’, ‘신체적인 미숙과 영양 부족으로 유산, 조산, 저체중아 출산 등 고위험 임산부와 고위험 태아 및 신생아가 된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건강길라잡이’ 사이트에 소개된 미혼모의 정의다. 이렇듯 아직도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정부나 공공기관에조차 뿌리 깊게 박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미혼모는 ‘결혼하지 않은 몸으로 아이를 가진 여자’로 기재돼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강조하는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결혼제도를 통한 출산만이 합법적인 것으로 규정돼 편견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나친 고정관념 탓에 제도화된 결혼관계가 아닌 미혼 남녀의 출산이 모두 죄악시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생활에서 그 ‘주홍글씨’는 더 짙다. 김혜림(31·가명)씨도 혹독한 과정을 겪었다. 2008년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친구에게 아이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남자친구 역시 “책임지겠다.”며 그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남자친구는 자신의 부모에게도 김씨의 임신과 출산을 알리지 않았다. 김씨는 철저히 혼자가 됐다. 갓난아이만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동료들에게 미혼모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동네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직장 동료가 보고 말았다. 당황했지만 그는 친한 동료라 믿고 사실대로 모든 것을 털어놨다. 그러나 말로는 이해한다던 동료는 점차 변했다. 시선이 달라졌고, 연락도 하지 않았다. 마치 김씨가 ‘죄인’이라도 된 듯이. 결혼해서 자녀가 있는 친구들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어머니도 없는 그에게는 위안의 손길이 절실했다. 출산하기 바로 몇 달 전 그는 친구에게 임신 사실을 토로했다. 돌아온 대답은 “낙태해.”였다. 결국 그 친구와도 연락이 끊겼다. 믿었던 동료나 친한 친구조차도 외면하는 모습을 보고 김씨는 세상에 미혼모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그는 “사람들은 미혼모라고 하면 그냥 나쁘게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 대신 딸처럼 대해 주던 외숙모와 외삼촌도 등을 돌렸다. 외삼촌은 “도와 주지 말라.”며 외숙모와 그를 가까이 하지 못하게 했다.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미혼모들의 현주소다. 무슨 사연이 있든, 어떤 과정을 겪었든 사람들은 미혼모를 일단 색안경부터 끼고 본다. 사회적 낙인, 생활고, 가족·친구와의 단절까지 삼중고를 떠안고 제 자식을 택한 엄마를 ‘단죄’하려 든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다수의 미혼모들은 가장 어려운 것이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조사한 ‘미혼모·부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와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미혼모는 3.18점을 기록, 동성애자(3.48점) 다음으로 차별을 받는 집단으로 조사됐다. 이어 외국인 노동자(3.17점), 장애인(3.09점), 미혼부(3.07점), 영세민(2.88점), 결혼이주자(2.78점), 이혼자(2.71점), 여성(2.50점) 등의 순이었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러한 사회적 편견은 여성 개인의 시민적, 모성적 권리를 부인하고 낙태와 입양으로 연결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미혼모·부를 개인적 삶의 선택으로 존중하고, 가족의 형태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개선되면 입양, 낙태 문제가 적지 않게 해소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박근혜 서울시한부모가족지원센터 팀장은 “당당하게 아이를 키우는 환경이 조성되면 자연스레 입양과 낙태 대신 출산을 결정하는 여성이 늘고, 결국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언론과 공공기관, 시민단체가 미혼모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함께 나섰다. 서울시한부모가족지원센터와 20여곳의 미혼모관련 단체들은 지난달 28일 ‘미혼모지원단체협의체’를 발족했다. 구세군 두리홈, 구세군 한아름, 마음자리, 마포클로버, 보아스아동, 청소년 상담 센터, 샤인힐, 서울특별시아동복지센터, 성동구건강가정지원센터, 생명누리의 집, 아름뜰, 안산시건강가정지원센터, 열린집, 영락모자원, 착한벗선우랑 심리상담센터,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해오름빌, 창신모자원, ㈔지혜로운 여성, 동국대학교 사이프 동아리 등이 뜻을 모았다. 이날 발족식에는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등 총 18개 기관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이들은 ‘미혼모의 새 이름을 지어주세요’ 캠페인 준비와 선포식, 향후 계획 등을 논의했다. 서울신문과 이 단체들은 미혼모에 대한 인식개선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다. 핵심은 미혼모의 새명칭 공모다. 또 캠페인 공모전과 더불어 다음(daum) 아고라에서 토론과 응원서명도 동시에 진행할 예정이다. 백민경·윤샘이나기자 white@seoul.co.kr ■미혼모들이 말하는 ‘미혼모’ “제가 미혼모라는 걸 아는 순간부터 사람들 눈빛이 변해요. 아이를 대하는 것도 달라지고요. 저희는 변한 게 없는데….” ‘편견 가득한 눈빛과 싸늘한 반응’. 미혼모들이 느끼는 우리사회의 따가운 시선이다. 특히 미혼모를 ‘우리와 다른 사람’으로 보는 편견이 이들을 더 위축되게 만든다. 지난해 홀로 자녀를 출산한 최서원(30·가명)씨. 그녀는 미혼모를 무책임한 여성으로 여기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여러번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최씨는 “주변에서 미혼모라고 하면 언제든 아이를 두고 도망갈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충격을 받았다.”면서 “ ‘살다 보면 한번쯤 큰일이 닥칠 텐데 그때 도망가는 거 아니냐’고 물어올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미혼모를 “가장 후회 없는 삶을 선택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자신의 소중한 아이를 지키고 책임지기 위해 세상의 편견에 맞서 아이를 택한 사람이라는 뜻에서다. 미혼모들은 무엇보다 일상 속에서 부딪히는 주변인들의 눈초리가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미혼모의 자식이라고 홀대하거나 차별할까 봐 두렵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혼모는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열린 부모교육에 참석했다가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느꼈다며 울먹였다. 그녀는 “자기소개를 하는데 특이한 내 성씨를 딴 아이의 이름을 함께 말하자 나를 보는 시선이 차가워졌다.”면서 “혹시 내 아이에게 신경을 덜 쓰거나 차별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마음을 졸인다.”고 말했다. 서울 청림동에 사는 미혼모 박소은(19·가명)씨 역시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부딪히는 장벽이 예상 외로 높다고 말했다. 미혼모라는 이유로 취직이 잘 되지 않아 경제적인 어려움도 크다. 8개월 된 자녀를 키우는 박씨는 “대부분 미혼모들은 출산하고 빨리 아이를 맡기고 돈을 벌러 나가는데 보육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도 많은데 우리 같은 미혼모들은 더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아이를 낳고 기르니 슈퍼우먼이지요.” 박씨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0) 남해 난곡사 느티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0) 남해 난곡사 느티나무

    봄바람에 실려 온 편지 한 장 달랑 들고 먼 길을 떠났다. ‘마을 사람들이 마치 조상 모시듯 정성으로 보호하는 나무’라며 할아버지 댁이 있는 시골의 정자나무를 소개한 제자의 편지다. ‘송글송글’이라는 유쾌한 이름의 여(女)제자는 편지에서 “마을 사람들은 농사가 잘될지 아닐지까지도 나무를 보고 짐작한다.”며 나무가 농사를 비롯한 모든 살림을 관장하는 큰 어른 같은 대상이라고 했다. 송양은 여러 각도에서 손수 촬영한 사진까지 첨부했다. 나무가 있는 곳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인 은진 송씨 집성촌인 경남 남해군 난음리 난음마을이다. ●女제자가 보낸 편지 속의 느티나무 송양이 편지에서 그려낸 것처럼 느티나무는 마을 앞의 너른 논을 거느리는 듯한 마을 수호목의 융융한 위용을 가졌다. 나무의 풍광을 더 근사하게 하는 건 나무 곁에 서 있는 ‘난곡사’라는 한 채의 아담한 사당 건물이다. 난곡사는 고려 후기에 성리학의 체계를 완성한 유학자 백이정(1247∼1323)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지역 유림들이 세운 사당이다. 난곡사와 느티나무, 그리고 그 앞으로 넓게 펼쳐진 들녘은 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난음마을이 정신과 물질 모두의 풍요를 누리는 아름다운 마을임을 짐작게 한다. 송양은 편지에 마을 사람들이 “느티나무의 잎이 예쁘게 잘 돋아나면 풍년이 들고, 잎이 잘 나지 않으면 흉년이 들 것”을 예측한다고 썼다. 오랜 경험을 통해 이뤄진 믿음이겠지만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느티나무에 잎이 나는 계절은 농사를 시작하는 때다. 곡물의 씨앗이 뿌리를 내려야 하는 이 즈음의 날씨는 한 해 농사를 쥐락펴락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느티나무의 잎이 무성하게 돋아난다는 건 곡식의 씨앗이 뿌리를 튼튼하게 내릴 수 있을 만큼 날씨가 좋다는 이야기다. 풍년을 예감할 수 있는 기미다. 그래서 이 같은 이야기는 난음마을뿐 아니라 큰 나무가 서 있는 농촌 마을에서라면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내내 나무를 바라보며 그 그늘 아래서 산다고 해도 되지요. 농사일이 바빠지면 모두 저 나무 앞에 모여들지요. 한여름에는 나무 그늘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선답니다.” 마침 느티나무 앞으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노인이 나무 전체에 푸른 잎이 골고루 돋아나는 느티나무를, 풍년을 예감하듯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젊은 시절 대처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사는 송동우(77) 노인이다. ●마을 생활의 중심인 정자나무 농사일과는 무관했을 송양도 마을을 생각할 때마다 맨 먼저 나무가 떠오른다고 했다. “어릴 때 할아버지 댁에만 가면 사촌 형제들과 나무 곁에 나와서 놀았어요. 나무에 기대어 숨바꼭질도 하고 기어오르기도 했지요.” 마을 어귀는 사람들의 모든 들고 남이 스쳐 지나는 곳이다. 나무는 아침저녁으로 들녘을 오가는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마을을 찾아온 어린 아이까지 긴 세월 내내 모두를 품어 안았다. 느티나무보다 ‘정자나무’로 더 많이 불리는 나무는 얼핏 보아도 난음마을의 중심이자 가장 상쾌한 쉼터임을 알 수 있다. 크고 듬직해서만이 아니다. 나무 그늘 아래에 놓은 평상은 여느 마을의 평상과 달리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담겼다. 무성하게 펼친 느티나무 가지를 지붕 삼아 공 들여 지은 정자다. 평상 앞에는 은진 송씨의 조상인 우암 송시열의 흉상이 자존심처럼 꼿꼿하게 세웠다. 얼핏 보아도 이 자리가 마을의 중심임을 알 수 있다. “대전 인근에 살던 조상들이 살기 좋은 곳을 찾아 곳곳을 다니다가 여기까지 내려온 거죠. 이곳에 터를 잡은 게 700년은 됩니다.” 송 노인은 느티나무가 마을이 처음 이뤄졌을 때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나무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군청에서 세운 보호수 표석에는 나무를 650살로 표시했지만 실제 나이는 그보다 더 오래됐다는 이야기다. 700년이라는 긴 세월은 나무 밑동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정성껏 충전재로 메운 커다란 구멍이 나무가 지내 온 긴 세월의 풍상을 짐작하게 한다. 더 안타까운 건 나무 줄기의 윗부분이 부러졌다는 것이다. 하릴없이 나무는 더 이상 키를 키우지 못하고 옆으로만 널찍하게 가지를 펼쳤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담겨 편지에서 송양은 “할아버지는 옛날에 이 나무의 뿌리를 타고 개울을 건너서 이웃 마을로 마실 다녔다고 하셨다.”고 썼다. 물론 송양의 할아버지가 타고 넘었다는 나무 뿌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여느 느티나무 못지않게 큰 나무를 놓고 누구라도 보탤 수 있는 말이지 싶다. 옛이야기가 아니라 해도 나무는 무척 크다. 가지는 사방으로 20m쯤 펼쳐져 있고 키는 19m, 가슴 높이에서 잰 줄기 둘레는 6m나 된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나무는 실제 크기보다 더 커 보인다. 700살 된 느티나무 곁에 200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는 까닭이다. 마치 한 뿌리에서 솟아나온 것처럼 붙어서 자라는 두 그루는 한 그루의 풍성한 나무처럼 보인다. 두 그루의 나무가 가까이에서 자라는 게 생육에 좋을 리 없다. 그러나 700년의 삶이 지어 낸 넉넉한 품은 젊은 나무를 너그러이 품어 안았다. 두 그루가 전혀 다툼 없이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조화를 이뤘다. 나무를 한참 바라보자니 송양의 편지에 담긴 속뜻이 살아 오르는 듯하다.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마다 맨 앞자리에 떠오르는 나무의 존재감을 되새기면서 송양은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미를 짚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가슴에 품은 젊은 여제자의 편지에서 느티나무 잎새의 연초록 향기가 알싸하게 차올랐다. 글 사진 남해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주홍글씨’ 된 명칭 ‘미혼모’ 이제는 바꿀 때다

     ‘대부분 10대 임신으로 교육적 경제적 정도가 낮아 충분한 건강관리를 받을 수 없으며 부모로서의 발달과업을 달성할 수 없다.’, ‘신체적인 미숙과 영양 부족으로 유산, 조산, 저체중아 출산 등 고위험 임산부와 고위험 태아 및 신생아가 된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건강길라잡이’ 사이트에 소개된 미혼모의 정의다. 이렇듯 아직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조차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미혼모는 ‘결혼하지 않은 몸으로 아이를 가진 여자’로 기재돼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강조하는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결혼제도를 통한 출산만이 합법적인 것으로 규정돼 편견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나친 고정관념 탓에 제도화된 결혼관계가 아닌 미혼 남녀의 출산이 모두 죄악시 되고 있다는 것이다. 친구·동료·가족까지 외면하는 그들의 현실  실제 생활에서 그 ‘주홍글씨’는 더 짙다. 김혜림(31·가명)씨도 혹독한 과정을 겪었다. 2008년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친구에게 아이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남자친구 역시 “책임지겠다.”며 그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남자친구는 자신의 부모에게도 김씨의 임신과 출산을 알리지 않았다. 김씨는 철저히 혼자가 됐다. 갓난 아이만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동료들에게 미혼모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동네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직장 동료가 보고 말았다. 당황했지만 그는 친한 동료라 믿고 사실대로 모든 것을 털어놨다. 그러나 말로는 이해한다던 동료는 점차 변했다. 시선이 달라졌고, 연락도 받지 않았다. 마치 김씨가 ‘죄인’이라도 된 듯이. 결혼해서 자녀가 있는 친구들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어머니도 없는 그에게는 위안의 손길이 절실했다. 출산하기 바로 몇 달 전 그는 친구에게 임신 사실을 토로했다. 돌아온 대답은 “낙태해.”였다. 결국 그 친구와도 연락이 끊겼다.  믿었던 동료나 친한 친구 조차도 외면하는 모습을 보고 김씨는 세상에 미혼모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그는 “사람들은 미혼모라고 하면 그냥 나쁘게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 대신 딸처럼 대해주던 외숙모와 외삼촌도 등을 돌렸다. 외삼촌은 “도와주지 말라.”며 외숙모와 그를 가까이 하지 못하게 했다.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미혼모들의 현주소다. 무슨 사연이 있든, 어떤 과정을 겪었든 사람들은 미혼모를 일단 색안경부터 끼고 본다. 사회적 낙인, 생활고, 가족·친구와의 단절까지 삼중고를 떠안고 제 자식을 택한 엄마를 ‘단죄’하려 든다. 취재 과정에 만난 대다수의 미혼모들은 가장 어려운 것이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가족의 형태로 인정해야낙태, 입양 문제도 해결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조사한 ‘미혼모·부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와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미혼모는 3.18점을 기록, 동성애자(3.48점) 다음으로 차별을 받는 집단으로 조사됐다. 이어 외국인 노동자(3.17점), 장애인(3.09점), 미혼부(3.07점), 영세민 (2.88점), 결혼이주자(2.78점), 이혼자(2.71점), 여성(2.50점) 등의 순이었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러한 사회적 편견은 여성 개인의 시민적, 모성적 권리를 부인하고 낙태와 입양으로 연결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미혼모·부를 개인적 삶의 선택으로 존중하고, 가족의 형태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개선되면 입양, 낙태 문제가 적지 않게 해소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박근혜 서울시한부모가족지원센터 팀장은 “당당하게 아이를 키우는 환경이 조성되면 자연스레 입양과 낙태 대신 출산을 결정하는 여성이 늘고, 결국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언론과 공공기관, 시민단체가 미혼모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함께 나섰다. 서울시한부모가족지원센터와 20여곳의 미혼모관련 단체들은 지난달 28일 ‘미혼모지원단체협의체’를 발족했다. 구세군 두리홈, 구세군 한아름, 마음자리, 마포클로버, 보아스아동, 청소년 상담 센터, 샤인힐, 서울특별시아동복지센터, 성동구건강가정지원센터, 생명누리의 집, 아름뜰, 안산시건강가정지원센터, 열린집, 영락모자원, 착한벗선우랑 심리상담센터,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해오름빌, 창신모자원, ㈔지혜로운 여성, 동국대학교 사이프 동아리 등이 자리했다. 이들은 ‘미혼모의 새 이름을 지어주세요’ 캠페인 사업 준비와 선포식, 향후 계획 등을 논의했다. 이 날 발족식에는 서울시청, 여성가족재단, 한국미혼모가족협회등 총 18개 기관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본지와 이 단체들은 미혼모에 대한 인식개선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다. 핵심은 미혼모의 새명칭 공모다. 또 캠페인 공모전과 더불어 다음(daum) 아고라에서 토론과 응원서명도 동시에 진행할 예정이다.  백민경·윤샘이나기자 white@seoul.co.kr
  • 서울에서 ‘미혼모’ 명칭 사라진다…6일부터 27일까지 새 이름 공모

    서울에서 ‘미혼모’ 명칭 사라진다…6일부터 27일까지 새 이름 공모

    미혼모.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그 이름은 ‘낙인’이다. 지우기 힘든 주홍글씨다.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제과점 주인을 꿈꾸던 ‘17세 미혼모 성은이의 희망 노래’<2010년 9월 29일 자 11면> 보도 이후에도 그랬다.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도 많았지만 악플도 적지 않았다. 누가 이들에게 ‘죄인’의 굴레를 씌웠을까. 서울신문과 서울시한부모가족지원센터가 가정의 달을 맞아 미혼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꿔 보려고 한다. 그들을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민단체도 함께 나섰다. 본지는 미혼모에 대한 사회의 인식 전환을 위해 명칭 공모와 함께 홀로서기에 성공한 그녀들의 이야기, 부족한 지원책, 대안 등을 모두 5회에 걸쳐 시리즈로 싣는다. 미혼모에 대한 새 이름 짓기 공모전은 6일부터 오는 27일까지 진행된다. 서울시한부모가족지원센터(http://seoulhanbumo.or.kr)에서 참가 신청서를 내려받아 온라인(hanbumo@seoul.go.kr)이나 우편으로 접수하면 된다. 대상 1명에게는 50만원, 우수상 1명에게는 30만원, 가작 2명에게는 각각 10만원 상당의 상품권이 제공된다. 대상작은 서울시한부모가족지원센터와 미혼모 관련 단체 등에서 ‘미혼모’를 대체하는 단어로 사용될 예정이다. 백민경·윤샘이나기자 white@seoul.co.kr ■ ‘주홍글씨’ 된 명칭 ‘미혼모’ 이제는 바꿀 때다  ‘대부분 10대 임신으로 교육적 경제적 정도가 낮아 충분한 건강관리를 받을 수 없으며 부모로서의 발달과업을 달성할 수 없다.’, ‘신체적인 미숙과 영양 부족으로 유산, 조산, 저체중아 출산 등 고위험 임산부와 고위험 태아 및 신생아가 된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건강길라잡이’ 사이트에 소개된 미혼모의 정의다. 이렇듯 아직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조차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미혼모는 ‘결혼하지 않은 몸으로 아이를 가진 여자’로 기재돼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강조하는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결혼제도를 통한 출산만이 합법적인 것으로 규정돼 편견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나친 고정관념 탓에 제도화된 결혼관계가 아닌 미혼 남녀의 출산이 모두 죄악시 되고 있다는 것이다. 친구·동료·가족까지 외면하는 그들의 현실  실제 생활에서 그 ‘주홍글씨’는 더 짙다. 김혜림(31·가명)씨도 혹독한 과정을 겪었다. 2008년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친구에게 아이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남자친구 역시 “책임지겠다.”며 그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남자친구는 자신의 부모에게도 김씨의 임신과 출산을 알리지 않았다. 김씨는 철저히 혼자가 됐다. 갓난 아이만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동료들에게 미혼모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동네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직장 동료가 보고 말았다. 당황했지만 그는 친한 동료라 믿고 사실대로 모든 것을 털어놨다. 그러나 말로는 이해한다던 동료는 점차 변했다. 시선이 달라졌고, 연락도 받지 않았다. 마치 김씨가 ‘죄인’이라도 된 듯이. 결혼해서 자녀가 있는 친구들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어머니도 없는 그에게는 위안의 손길이 절실했다. 출산하기 바로 몇 달 전 그는 친구에게 임신 사실을 토로했다. 돌아온 대답은 “낙태해.”였다. 결국 그 친구와도 연락이 끊겼다.  믿었던 동료나 친한 친구 조차도 외면하는 모습을 보고 김씨는 세상에 미혼모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그는 “사람들은 미혼모라고 하면 그냥 나쁘게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 대신 딸처럼 대해주던 외숙모와 외삼촌도 등을 돌렸다. 외삼촌은 “도와주지 말라.”며 외숙모와 그를 가까이 하지 못하게 했다.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미혼모들의 현주소다. 무슨 사연이 있든, 어떤 과정을 겪었든 사람들은 미혼모를 일단 색안경부터 끼고 본다. 사회적 낙인, 생활고, 가족·친구와의 단절까지 삼중고를 떠안고 제 자식을 택한 엄마를 ‘단죄’하려 든다. 취재 과정에 만난 대다수의 미혼모들은 가장 어려운 것이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가족의 형태로 인정해야낙태, 입양 문제도 해결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조사한 ‘미혼모·부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와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미혼모는 3.18점을 기록, 동성애자(3.48점) 다음으로 차별을 받는 집단으로 조사됐다. 이어 외국인 노동자(3.17점), 장애인(3.09점), 미혼부(3.07점), 영세민 (2.88점), 결혼이주자(2.78점), 이혼자(2.71점), 여성(2.50점) 등의 순이었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러한 사회적 편견은 여성 개인의 시민적, 모성적 권리를 부인하고 낙태와 입양으로 연결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미혼모·부를 개인적 삶의 선택으로 존중하고, 가족의 형태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개선되면 입양, 낙태 문제가 적지 않게 해소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박근혜 서울시한부모가족지원센터 팀장은 “당당하게 아이를 키우는 환경이 조성되면 자연스레 입양과 낙태 대신 출산을 결정하는 여성이 늘고, 결국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언론과 공공기관, 시민단체가 미혼모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함께 나섰다. 서울시한부모가족지원센터와 20여곳의 미혼모관련 단체들은 지난달 28일 ‘미혼모지원단체협의체’를 발족했다. 구세군 두리홈, 구세군 한아름, 마음자리, 마포클로버, 보아스아동, 청소년 상담 센터, 샤인힐, 서울특별시아동복지센터, 성동구건강가정지원센터, 생명누리의 집, 아름뜰, 안산시건강가정지원센터, 열린집, 영락모자원, 착한벗선우랑 심리상담센터,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해오름빌, 창신모자원, ㈔지혜로운 여성, 동국대학교 사이프 동아리 등이 자리했다. 이들은 ‘미혼모의 새 이름을 지어주세요’ 캠페인 사업 준비와 선포식, 향후 계획 등을 논의했다. 이 날 발족식에는 서울시청, 여성가족재단, 한국미혼모가족협회등 총 18개 기관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본지와 이 단체들은 미혼모에 대한 인식개선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다. 핵심은 미혼모의 새명칭 공모다. 또 캠페인 공모전과 더불어 다음(daum) 아고라에서 토론과 응원서명도 동시에 진행할 예정이다.  백민경·윤샘이나기자 white@seoul.co.kr ■ 미혼모가 말하는 미혼모… “미혼모는 OO이다” “제가 미혼모라는 걸 아는 순간부터 사람들 눈빛이 변해요. 아이를 대하는 것도 달라지고요. 저희는 변한게 없는데.”  ‘편견 가득한 눈빛과 싸늘한 반응’. 미혼모들이 느끼는 우리사회의 따가운 시선이다. 특히 미혼모를 ‘우리와 다른 사람’으로 보는 편견이 이들을 더 위축되게 만든다.  지난해 홀로 자녀를 출산한 최서원(30·가명)씨. 그녀는 미혼모를 무책임한 여성으로 여기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여러번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최씨는 “주변에서 미혼모라고 하면 언제든 아이를 두고 도망갈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충격을 받았다.”면서 “ ‘살다보면 한번쯤 큰일이 닥칠텐데 그 때 도망가는거 아니냐.’고 되물어올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미혼모를 “가장 후회 없는 삶을 선택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자신의 소중한 아이를 지키고 책임지기 위해 세상의 편견에 맞서 아이를 택한 사람이라는 뜻에서다.  미혼모들은 무엇보다 일상 속에서 부딪히는 주변인들의 눈초리가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미혼모의 자식이라고 홀대하거나 차별할까봐 가장 두렵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혼모는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열린 부모교육에 참석했다가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느꼈다며 울먹였다. 그녀는 “자기소개를 하는데 특이한 내 성씨를 딴 아이의 이름을 함께 말하자 나를 보는 시선이 차가워졌다.”면서 “혹시 내 아이에게 신경을 덜 쓰거나 차별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마음을 졸인다.”고 말했다.  서울 청림동에서 사는 미혼모 박소은(19·가명)씨 역시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부딪히는 장벽이 예상 외로 높다고 말했다. 미혼모라는 이유로 취직이 잘 되지 않아 경제적인 어려움도 크다. 8개월 된 자녀를 키우는 박씨는 “대부분 미혼모들은 출산하고 빨리 아이를 맡기고 돈을 벌러 나가는데 보육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도 많은데 우리같은 미혼모들은 더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아이를 낳고 기르니 슈퍼우먼이지요.” 박씨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얼굴 분열’ 에티오피아 6세 소녀, 수술로 새 삶

    안면 근육과 골격의 비정상적인 형태 때문에 남들과 다른 외모로 살아야 했던 에티오피아의 6세 소녀가 성형수술을 통해 새 삶을 꿈꾸게 됐다고 캐나다 토론토 지역신문인 토론토스타가 지난 3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예브스라 하일마림(6)이라는 이름의 소녀는 얼굴 중앙의 코 뼈가 오똑하지 않고 편편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두 눈 사이가 멀고 넓적해 얼굴이 마치 두 개로 갈라져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래 친구들과 한창 뛰어 놀 나이지만, 남다른 외모 때문에 주위와 소통하지 못한 채 살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소식을 접한 캐나다의 한 자선단체가 아이에게 수술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며 손을 내밀었고, 지난 달 19일 하일마림은 토론토아동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다. 의료진은 아이의 두 눈 사이의 폭을 좁히려고 두개골과 연결된 이 부분을 잘라 다시 조합했다. 콧대를 만들기 위한 뼈 이식도 실시했다. 수술은 무려 12시간이나 지속됐지만 아이는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고통을 참아냈다. 수술을 집도한 담당 의사는 “수술 경과는 양호하지만 감염의 우려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면서 “감염여부를 확인하고 얼굴 형태를 보완할 수술을 한 차례 더 실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수술이 끝난 뒤 하일마림의 모습은 이전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 두 눈의 간격이 다소 좁아졌고, 자신감이 생긴 듯 이전보다 훨씬 많은 미소를 지어보여 주위를 흐뭇하게 했다. 하일마림은 당분간 토론토에서 치료를 받은 뒤, 고향인 에티오피아로 돌아갔다가 회복세에 따라 재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전주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박찬경 감독·영화평론가 이용철 만나다

    전주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박찬경 감독·영화평론가 이용철 만나다

    대학(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좋은 화가의 꿈’은 일찌감치 접었다. 미국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돌아온 뒤 한국 근현대사, 특히 분단과 냉전을 소재로 한 설치미술과 사진은 물론 미술계를 겨냥한 날선 평론까지 보폭을 넓혔다. 일반인에게 이름이 알려진 건 형 박찬욱(48) 감독과 아이폰으로 찍은 영화 ‘파란만장’이 올해 독일 베를린영화제 단편부문 금곰상을 수상하면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작가’ 박찬경(46)이 주인공이다. 전주국제영화제(4월 28일~5월 6일) 한국장편 경쟁 부문에 진출한 박 감독의 신작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는 다큐와 극영화를 뒤섞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비행’(2005)이나 ‘신도안’(2008) 등 영화와 설치미술의 경계가 모호한 중단편을 만들던 그가 처음으로 손댄 장편 영화다. 영화는 1988년 경기 안양 그린힐봉제공장 화재-기숙사에 감금된 채 생활하던 여공 22명이 화재로 숨진 사건-를 중심에 놓고 풀어 간다. 더불어 안양천 수재(水災)와 지방선거, 안양사(寺) 발굴과정 등 ‘안양’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한다. 지난달 30일 전주 고사동 영화의거리 카페에서 영화평론가 이용철(왼쪽)과 함께 박 감독의 복잡한 뇌 구조를 들여다봤다. 이용철 안양은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위성도시 정도의 이미지였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흥미롭고, 이야기가 많은 도시라는 걸 깨닫게 됐다. 박찬경 어느 도시나 그런 면들은 있다. 이번에 안양예술재단 측의 요청으로 영화를 만들게 됐다. 예산은 8000만원 정도로 장편을 하기에 부족했는데 제작 기간이 3개월로 짧아 외려 가능했다. 시나리오, 콘티, 조사, 촬영, 섭외를 동시에 했다. 더 분열적인 걸 구상했는데 보는 사람도 생각해야 될 것 같아서(참았다)…. 이 영화가 현실과 허구를 오가는 것도 흥미롭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영화 속에 담긴 것도 참신하다. 굿하는 장면은 영화 제작 과정인 동시에 영화 속의 영화이기도 하다. 박 픽션(허구)을 왜 섞었냐 하면 내가 안양을 아는 사람도 아니고 일종의 투어리스트처럼 와서 찍는 작가이기 때문에 배우들도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길 바랐다. 내가 (극 중 다큐 감독으로) 출연한 것도 안내하는 사람이란 걸 보여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뒷모습만 나가려고 했는데, 클로즈업까지 나갔다(웃음). 이 편집이 굉장히 신선하다. 할아버지가 수해로 딸과 손녀가 죽었다고 말하는데 갑자기 기차 소리가 난다거나 여자와 아이가 걷는 장면이 연결된다. 기성 영화인들이라면 못 했을 것 같은데. 박 글쎄…. 전에는 좋은 실험영화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실험적이거나 새로운 편집·기술, 상상력 등 아방가르드한 것들을 광고에 빼앗긴 것 같다. 예술적인 성취도를 얻었지만 많은 관객을 불러모을 만한 영화의 폭이 너무 좁다. 홍상수 감독 영화가 동원 관객 수 2만이라면 정말 문제 있는 것 아닌가. 영화의 폭이 넓어지면, 내 영화도 색다를 수 있지만 더이상 새로운 언어는 아니다. 이 전작 ‘신도안’(계룡산 토착 종교집단의 흥망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표현)과 ‘파란만장’에 이어 또 무속을 담았는데. 박 한국의 종교문화처럼 이상한 게 없다. 한국의 개신교는 샤머니즘을 ‘응용’하면서 성장했다. 새벽기도나 울부짖는 기도들을 생각해 보라. 개신교가 무속을 흡수했다기보다 무속이 개신교에 스며든 셈이다. 무속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적 형태인데 점쟁이로 천시하거나 ‘무릎팍도사’처럼 희화화하거나 여전히 두려워하는 대상이다. 무속의 명예회복 같은 걸 말하고 싶었다. 무속은 굉장히 정교화된 제의(祭儀) 형식을 갖춘 한편 날것의 측면도 갖춘 흥미로운 종교 문화다. 한국 근대를 바라보는 키워드인데 너무 간과됐다. 이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는데 언제부터 다른 길에 관심을 가졌나. 박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다(웃음). 좋은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입학하자마자 학교에 너무 실망했다. 수업은 안 듣고 학내 영화서클 ‘얄라셩’(1979년 만들어진 영화연구모임. 김홍준·박광수 감독이 이곳 출신)에 들어갔다. 그런데 데모하느라고 4년 내내 영화를 한 편도 안 만들더라. 이 최근 활동을 영화감독으로 봐야 하나, 아니면 미술의 한 영역을 확장하는 것으로 봐야 하나. 박 내 미술작품의 80~90%는 영화나 미디어에 관한 것이었다. 미술을 하더라도 영화 언어를 염두에 뒀고, 영화를 할 때에도 여러 가지 예술의 레퍼런스들을 생각했다. 미술과 영화의 장르 구분이란 건 무의미하다. 이 올해에만 두 번 국제영화제(베를린·전주) 경쟁 부문에 올랐다. 영화계에서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미술 자체는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미술계는 너무 답답하다-1990년대 평론가 박찬경은 미술계를 ‘미술관료체제’(아트크라시)라고 꼬집었다-관객이 너무 없고 비평 시스템이 취약하다. 반면 영화는 관객이 새롭고 흥미롭고 궁금하다. 특히 영화제에서 관객을 직접 만나는 일들은 생기를 준다. 주위에선 영화계에 더 있으면 좌절할 거라지만(웃음) 성격이 다른 것 같다. 어쨌든 폐쇄적이지는 않으니까. 이 박찬경에게 박찬욱은 어떤 존재인가. 박 형이 워낙 아는 게 많다.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미술, 사진도 좋아한다. 형은 영화 쪽 정보를, 나는 미술 쪽 얘기를 전해 주곤 한다. 형의 존재가 부담스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물론 가끔 곤란할 때는 있다. 못 보던 사람이 전화해서 형과 연결시켜 달라고 한다(웃음). 이 호러영화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박 한국의 공포영화라는 게 대개 일본 호러물에서 온 것들이 많다. 나라마다 특수한 공포영화 화법이 있을 텐데 ‘전설의 고향’의 처녀귀신 이미지조차 일본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만의 무서운 귀신이나 무덤 얘기를 해보고 싶다. 현재 장편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인터뷰 끝자락에 박 감독은 “꼭 써 줬으면 하는 부분은 한국 영화가 너무 마초적인 데 대해 반성이 없다는 점”이라면서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페미니즘 논의가 고조되면서 남자들이 만드는 영화도 신경을 썼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조금 과장하면 최근 10여년 동안 깡패, 반성이 없는 폭력이 한국 영화를 먹여 살렸고 폭력의 미학으로 포장됐다.”면서 “여성적인 모티프나 그들의 삶에 관심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정리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쥐에게 물려 ‘코 없이 18년’…20대 여성 사연

    18년간 코가 없는 흉측한 얼굴로 살던 20대 여성이 코 복원수술을 받고 새 삶을 시작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중국 인민일보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27일자 보도에 따르면 산둥성에 사는 샤오잉(小英·21)은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의고 홀로 보내는 시간이 잦은 아이였다. 보살펴 주는 이가 없어 얼굴에 밥알 등 음식을 묻히고 있을 때가 많았는데, 3살 무렵 얼굴에 밥알을 붙인 채 바닥에 앉아 놀고 있을 때 쥐가 나타나 어린 샤오잉의 코와 입을 물었다. 샤오잉은 이날 사고로 코를 잃었고, 학교에 진학해서도 친구들의 놀림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외지에 떨어져 사는 아버지 대신 70세가 훌쩍 넘은 조부모를 모셔야 하는 샤오잉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번번이 취직에 실패했다. 그녀는 길거리에 나와 자신의 사연을 알리고 구걸을 시작했는데, 2010년 구걸을 하는 샤오잉의 모습과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도움의 손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한 병원과 직업학교가 손을 잡고 무료로 성형수술 및 재활치료를 돕겠다는 뜻을 전하면서 샤오잉의 새 삶에 청신호가 켜졌다. 푸젠성위생직업기술학교 측은 “샤오잉에게 3년 동안 무료로 간호사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기숙사 비 등을 전액 면제해주겠다.”면서 “사회적응과 가족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매월 500위안의 생활비도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근 3차 성형수술을 마친 샤오잉의 코는 정상인 크게 다를 바 없는 기능과 외형을 갖췄으며,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강지원 좋은세상] 대통령 되는 게 꿈이라고?

    [강지원 좋은세상] 대통령 되는 게 꿈이라고?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곧잘 “네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아예 각자의 꿈을 적어 내 보라고 지시하는 선생님도 있다. 요즘 아이들 대답 중 가장 많은 것은 연예인이다. 왜 연예인이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멋있잖아요.”, 아니면 “인기가 있잖아요.” 한다. “돈도 잘 벌어요.” 하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은 세상사에 대한 정보가 적다. 그러니 무슨 직업인이 되고 싶으냐고 묻거나 답하는 것은 모두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꿈 이야기는 으레 직업 이야기인 줄 알고 묻고 답한다. 아이들은 가장 많이 접하는 직업 중 멋있어 보이는 것을 골라서 답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연예인이다. 그 다음으로 선생님이다. 개중에는 “부자요.”, “대통령이요.”라고 소리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도대체 그런 직업들이 아이들에게 꿈이 될 수 있는가. 아니다. 그런 직업들은 꿈이 아니다. 꿈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할 뿐 꿈은 더 깊은 곳에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꿈, 아니 우리네 사람들의 종국적인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우선 자기실현이다. 자신의 타고난 소질과 적성을 찾아 그것을 갈고닦아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다. 자기실현에 성공한 사람은 행복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마음껏 하기 때문이다. 다만 자기실현은 그 가치가 자기에게 국한된다. 그래서 자기실현의 성취를 자기에서 벗어나 타자에게까지 확대하면 그 가치는 더욱 커진다. 나의 확장이요 세상에 대한 기여다. 이런 성취를 이뤄낸 사람은 행복의 크기가 더 커진다.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은 만큼, 그만큼 타자와 함께할 수 있어서 더 행복해지는 것이다. 연예인, 선생님, 기업인, 대통령을 직업이라고 할 때 이것들도 삶의 목표가 아니라 방편일 뿐이다. 자기를 실현하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수단과 방법인 것이다. 꼭 꿈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면 과정상의 꿈, 혹은 중간적인 꿈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직업은 수시로 바뀔 수도 있다. 소질과 적성의 범위 안에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곧잘 착각을 한다. 그것들을 목표로 삼는 탓으로 온갖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무조건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이 되고 명예를 누리는 선생님이 되려 한다. 돈을 벌어 마구 쓸 수 있는 부자가 되고 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대통령이 되려 한다. 이제 또다시 이 나라에 대통령선거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이곳저곳에서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대통령 되는 게 꿈이라고 생각하는 어린아이들 같다. 폼 재고 잘난 체하던 과거 대통령들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던 탓일까. 허영과 허세, 겉멋과 과시에 빠진 듯한 몰골들이다. 진짜 꿈, 대통령이 되는 것 이상의 더 깊이 있는 꿈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대선주자들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 무엇을 어떻게 해서 어떤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지 자신들의 꿈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그 꿈은 좋은 꿈이어야 한다. 편파적이거나 독선적이어서는 안 된다. 실로 그런 꿈을 가진 이들은 미련이 적다. 일단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은 하지만 설사 대통령이 되지 않아도 다른 방편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출세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런 이들이 오히려 확실한 대통령감이다. 연예인이나 선생님이나 부자도, 연예인이나 선생님이나 부자가 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이 되어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꿈을 세워야 한다. 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소질과 적성 속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발휘해 자기를 실현하고 세상에 기여하는 데 있다. 돈, 권력, 명예, 인기 따위는 그것을 위해 필요한 수단과 방법일 뿐이다. 거기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탐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 5월은 청소년의 달이다. 청소년들에게 진정한 꿈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 보릿고개 시절의 동화같은 사건들

    보릿고개 시절의 동화같은 사건들

    사라진 것의 소중함은 되돌려질 수 없는 상실로 인해서 더 간절하다. 다시 만날 수 없고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사람과 그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라면 간절함의 깊이는 더하게 마련이다. 산업화 이전 대다수 민초들이 겪고 넘어야 했던 이른바 보릿고개의 추억은 어찌 보면 잊어야 더 좋을 아픈 경험일 터. 그런데 많은 이들이 어려운 그 시절의 보릿고개를 자주 입에 올리는 이유는 뭘까. ‘갯마을 하진이’(박형진 지음, 보리 펴냄)는 그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으며 부대꼈던 어린시절의 기억을 정겹게 반추한 책이다. 고향 전북 부안군 변산 모항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50대 중반 농사꾼 시인의 유년담. 들로 산으로, 바다로 어울려 쏘다니며 울고 웃던 고향 친구들과의 천진난만한 이야기들을 축으로 어렵던 그때 그 시절을 수채화처럼 풀어낸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구수한 호남 사투리로 끌어간, 동화 같은 사건들. 배 속의 회충 탓에 반복하던 배앓이, 명절에만 먹어보는 흰 쌀밥의 희열, 어른들의 눈을 피해 해대던 밭 서리…. 동네를 휘젓고 다니던 악동들의 천진한 놀이며 장난에 얹힌 추억들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40대를 넘긴 세대라면 너나 없이 겪었을 배고팠던 시절의 추억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그 공유의 시간들이 간절해진다. 책은 단순한 추억 건져내기에 머물지 않은 채 묘한 페이소스를 전한다. 무난하게 읽히는 낭만과 추억의 이야기들엔 시인 특유의 앙금들이 또렷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고향을 등진 이웃들, 벌어먹고 살 거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거나 가출한 친구들…. 편하게만 읽어도 좋을 어린시절의 추억 여행에 담긴 상실과 그리움의 메시지는 어른, 아이의 관심을 모두 잡아끄는 독특한 울림으로 살아난다. 고향을 떠나버린 친구들을 향해 저자인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집을 떠나 돈 벌어 오겠다는 동무들은 이제껏 단 한명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보고 싶어지는 날이면 하진이는 갯벌로 나가 바다를 바라봅니다. 그 애들도 하진이를 그리워할까요?” 95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생명의 窓] 교육과 불만 공화국/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생명의 窓] 교육과 불만 공화국/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공자는 누구보다도 배우기를 좋아했다. 이른바 그의 ‘호학’(好學) 정신이다. “열집이 사는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신의와 충절을 지키는 사람이 있겠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不如丘之好學)이라고 했다. 배우는 것이 좋아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심지어 몸이 늙어가는 것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한 가지 예로 주역(周易)을 좋아하여 열심히 읽느라 책을 매고 있던 가죽끈이 세번이나 끊어질 정도였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다. 공자는 또 “알기만 하려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之者)고도 했다. 무슨 일을 하는데, 그 일 자체가 좋아서 즐겨 하는 것과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있다. 좋아서 자발적으로 하는 것은 신이 나서 하게 되지만, 해야 되기 때문에 억지로 하게 되면 신명나게 할 수가 없다. 같은 소설책이라도 자기가 좋아서 읽게 되면 한자리에서 다 읽게 되지만, 학교 숙제로 읽어야 한다면 계속 남은 책장을 세며 읽게 된다.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막 끝내고 공부를 하려는데, 엄마가 들어와 공부하라고 소리치면 공부하려던 마음이 싹 가신다. 신나게 하던 일마저도 멍석을 깔아주고 하라고 강권하면 할 맛이 사라진다. 피아노 배우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 한 아이가 집에 새로 들여온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 보니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이쪽저쪽 건드리니 각각 다른 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했다. 계속 피아노를 치다가 보니 간단한 노래도 칠 수 있게 되었다. 신이 났다. 그러자 어머니가 바이엘·체르니 교본도 사주고, 선생님도 붙여주며, 피아노를 좀 더 체계적으로 배워 보라고 한다. 전보다 더 잘 치게 되고 더 즐겁다. 그러다가 동네 피아노 콩쿠르가 있으니 나가 보겠느냐고 한다. 일등을 해도 좋고 일등을 하지 않아도 좋다. 피아노 치는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고, 피아노를 더 잘 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라서 좋다. 일등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 피아노를 신나게 치며 즐기는 삶을 산다는 것 자체가 만족스러운 것이다. 이렇게 즐기다가 저절로 실력이 점점 좋아져 결국 훌륭한 음악가가 된다. ‘스스로 동기가 유발된’(intrinsically motivated) 경우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 아이는 엄마의 강권에 의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엄마는 딸이 피아노를 쳐서 동네 콩쿠르에서 일등을 하면 딸의 장래에도 좋고, 자기의 자존심에도 보탬이 된다고 생각해서 딸에게 피아노를 시킨다. 딸은 피아노가 별로였지만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열심히 연습한다. 엄마가 옆집 아이를 보라고 다그치기에 옆집 아이보다 더 연습을 많이 해서 꼭 그 아이를 이기고 콩쿠르에서 일등을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동네 콩쿠르에서 일등을 하지 못했다. 너무 분하고 슬프다. 그동안 죽으라고 피땀 흘려 연습한 것이 모두 허사요, 시간낭비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왕 연습한 것이 아까워 다시 열심히 연습해 다음 콩쿠르에서 일등을 했다. 그러나 기쁜 것도 한순간.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허탈하다. 경쟁에 져도 불만, 이겨도 불만이다. 외부에서 ‘동기가 강요된’(extrinsically motivated) 경우다. 왜 공부하는가? 한국에서의 공부란 대부분 어릴 때부터 부모의 강권에서 시작된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별별 공부를 다 시킨다. 그 공부는 경쟁에서 이긴다고 하는 목적 하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하면 지나칠까? 모르던 것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얼마나 기쁜가.”하는 공자의 호학 정신에서 너무 멀다. 어떻게 해서라도 ‘엄친아’처럼, 혹은 그보다 더 좋은 성적을 얻어 사회적으로 성공한다는 치열한 경쟁의식 하나로 악전고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다가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해도 물론 허탈하고, 비록 이룬다 해도 역시 허탈하다. ‘불만 공화국’에 자살률 상위국, ‘행복지수’(GNH) 하위국. 이것이 우리가 교육에서 바라던 바일까? 더 많은 학생들에게서 호학의 자세를 보고 싶다.
  • 옛 모자·신발, 우리 민족 삶 엿보다

    옛 모자·신발, 우리 민족 삶 엿보다

    진정한 패셔니스타의 완성은 모자, 신발 등 작은 액세서리로 이뤄진다. 굳이 멋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짚신에 국화 그리기’, ‘개구멍에 망건 치기’ 등 속담들만 봐도 모자와 신발은 백성들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집에서는 정자관 또는 사방관을 쓰고 있다가 궁에 들어설 때는 사모를 챙겨 썼다. 눈이 펑펑 내리거나 비가 오면 가죽신에 털벙거지 또는 갓 위에 기름종이로 만든 갈모를 얹었다. 아이들은 앙증맞은 조바위로 귀여움을 뽐냈고, 스님들은 소나무 뿌리에 붙은 송라로 만든 승립으로 한껏 멋을 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20일부터 ‘머리에서 발끝까지’라는 주제로 모자, 신발 특별전을 연다. 오는 6월 13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전시는 남녀노소 또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의 전통 문화로 남겨진 ‘패션 장신구’들이 벌이는 한마당 잔치다. 조선 후기 지름 70㎝가 넘는 커다란 갓을 쓰던 시절부터 시작해 근대화의 상징과 같은 중절모를 거쳐 삐딱히 눌러쓰던 교련 모자까지 아울렀다. 또한 비단 위에 구름 무늬를 새긴 운혜, 당혜와 사슴 가죽으로 만든 녹비혜, 백목화 등의 명품 신발부터 비올 때 신는 나막신, 민초들이 신던 미투리, 산간지방의 겨울나기 필수품 설피, 저승길 발품 팔던 종이로 만든 지혜(紙鞋), 검정고무신 등까지 다채롭게 갖췄다. 양반들이 쓰던 갓의 시대적 변천사도 재미있다. 17세기 지름 72.3㎝에 모정(帽頂·갓모자) 19.5㎝의 넓은 갓은 64.5×19㎝로 점차 줄어들며 갓끈 등으로 멋을 부리던 것이 대원군 시절의 의관 개정을 즈음해 25×10.7㎝로 확 줄어든다. 1920년대 엘리자베스 키스와 1950년대 폴 자클레의 판화를 통해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갓, 방갓, 남바위 등 모자를 쓴 모습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이와 함께 입자장 박창영, 화혜장 황해봉, 화관 족두리 박성호 등 중요무형문화재 장인들의 시연도 눈길을 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힘있는 김태호가 땡긴대이” “정치 물 덜 든 이봉수가 낫제”

    “힘있는 김태호가 땡긴대이” “정치 물 덜 든 이봉수가 낫제”

    4·27 재·보선의 격전지로 꼽히는 경남 김해을.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 사이로 이제 막 정치의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가 야권 단일화의 주인공으로 결정되고 하루가 지난 13일, 지역 최대 행사인 가야문화축제가 시작된 데다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 추모 분위기까지 무르익으면서 시민들의 선거 입담이 김해 전역을 휘감았다. 김해을은 장유신도시와 내외동, 진영이 전체 인구(28만여명)의 85%를 차지한다. 유권자들의 마음에는 인지도와 지역 발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당보다는 인물 위주로 선택하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인지도’는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가 앞섰다. 봉황동 일대에서 열린 가야문화축제 현장을 찾은 주부 한모(59)씨는 “허우대도 좋고 잘생겼다 아이가. 머라 해도 김해가 발전하려면 든든한 인물이 확 땡긴대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장유신도시 대형마트 앞에서 만난 한 40대 주부도 “도백을 지낸 김 후보가 안 낫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5년째 택시운전을 한다고 밝힌 박원호(52)씨는 “이 후보가 좀 물이 덜 들어서 정치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김 후보는 어차피 김해 사람도 아이다. 중앙에서 그래 깨지고 (김해에) 올라카면 좀 일찍 오든가….”라며 말문을 닫았다. ‘지역 발전’은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이 맞춰졌다. 대규모 개발·유치 정책보다 복지에 대한 갈증이 많았다. 장유신도시에서 주유소를 경영하는 김용식(54·대청리)씨는 “장유만 해도 인구가 12만명인데 변변한 복지관 하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파트 단지마다 작은 도서관이 있었는데 예산 문제로 건립이 중단되자 주부들의 원성이 높았다. 장유 팔판마을에 사는 주부 강모(44)씨는 “문화적 자부심을 뺏긴 것 같아 속상하다. 겉 말고 속 살림살이를 책임질 수 있는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해을은 또 아파트값 상승세가 전국 최상위권이고, 중소공단·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은 편이다. 지역 주민들의 고달픈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김 후보는 여당 프리미엄을, 이 후보는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이미지를 나눠 가졌다. 내외동 전통시장에서 14년째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이진숙(57·여)씨는 “대형 마트가 들어서면서 사는 게 힘들다. 암만 해도 힘 있는 여당 후보가 잘 해결해 주지 않겠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창원공단에서 야간근무를 마치고 장유신도시의 한 대형마트에 들른 이정석(56)씨는 “이 후보가 비정규직의 고충을 잘 알더라. 김 후보는 청문회에서 발개벗겨졌으면 자숙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비교했다. ‘노무현 향수’는 여전히 김해의 상처로 남아 있었다. 노 전 대통령과의 거리로 보면 이 후보가 김 후보보다 가깝다. 내외동 중앙로의 한 공원에서 만난 김삼진(47) 씨는 “김해는 노 대통령 덕을 많이 본 곳이다. 한 획을 그은 분 아이가. 노 대통령과 같이 일한 후보에게 끌린다.”며 잠시 먼 산을 쳐다봤다. 대학생 이동현·서한울(23)씨도 “노무현 영향이 큰 건 사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 후보와 이 후보는 장유신도시 번화가에 각각 캠프를 차렸다. 그것도 마주보는 건물에다. 캠프 사무실은 지근거리지만 두 후보를 바라보는 민심의 길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김해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유니세프 “카다피 저격수, 어린이 노렸다”

    “5일 동안 밤낮으로 애썼지만 결국 어젯밤 떠나보내고 말았네요.” 리비아 제3의 도시인 미스라타의 히크마 병원에서 근무하는 심장·폐 수술 전문의 라마단 아테와는 지난 7일 영국 선데이타임스 기자에게 이 같은 비보를 알렸다. 전날 아침 이 한살배기 아이를 만났던 기자는 10일 기사를 통해 “얼굴을 다 덮을 정도로 긴 속눈썹을 가진 아름다운 아이였다.”고 돌아본 뒤 이곳 아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 아이는 6살짜리 언니와 함께 부모님 차 뒷좌석에 타고 있던 중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 친위 병력의 총격을 받았다. 언니는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숨졌다. 이처럼 부모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아이들조차 언제 카다피군의 타깃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고아들의 삶이 처절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 트리폴리가의 한 학교에는 생후 수개월~15세 아이들 105명이 담요 한장에 의지해 지내고 있다. 정부군을 피해 이곳으로 도망쳤지만 학교라고 안전할 리 없다. AP통신에 따르면 저격수 여러 명이 배치돼 활동 중인 곳이 바로 트리폴리가 인근에서 가장 높은 ‘인슈어런스 빌딩’이다. 마리시에 메르카도 유니세프(UNICEF) 대변인은 8일 기자들에게 “미스라타 저격수의 표적 중 어린이들이 있다는 믿을 만하고 일관성 있는 보고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의약품과 식료품을 공급하기 위해 미스라타로 출발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저격수들이 어린이를 노리고 있다는 보고에 대한 조사도 벌일 예정이다. 40일 넘게 정부군이 장악하고 있는 미스라타에서는 지금까지 최소 수백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물에서 자유롭지만 뭍에서 살아갈 숙명

    ‘세상 모든 것은 물에서 시작되었고, 모든 것은 물로 되어 있다.’라고 2000여년 전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얘기했다. 대단히 낮은 단계 유물론의 시작이었다. 과학적 사실이야 일찌감치 부정되었지만 구병모(34)의 장편소설 ‘아가미’(자음과모음 펴냄)에 있어서 탈레스의 이론은 여지없이 들어맞는다. 소설 속 인물들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도, 현실에 쫓겨 선택하는 삶의 마지막 공간도, 삶을 새로 시작하는 공간도 모두 강이나 호수, 혹은 큰비와 같은 물이다. 이미 ‘위저드 베이커리’로 판타지를 리얼리즘과 결합시키는 만만치 않은 솜씨를 과시한 구병모의 두 번째 장편이다. 강렬한 물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풀어내는 판타지는 역시나 독특하다. 삶의 벼랑 끝에 몰린 아버지에게 안겨 호수에 들어갔다 자신만 가까스로 살아남은 아이는 ‘곤’이다. 출입이 금지된 호수 마을에서 고기를 잡으며 사는 노인과 외손자 강하가 구해낸 곤이는 놀랍게도 몸에 아가미와 비늘이 있다. 그는 회칼에 난자되는 원초적 공포를 안고 바깥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간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는 기이한 능력을 지닌 곤이는 필연적으로 물 안에서 푸근함을 느낀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사회적 관계가 끊어졌다 하더라도 물에서 목숨을 잃을 뻔하다가 다른 이에 의해 구해진 곤이는 필연적으로 다른 이와 관계로 얽혀지게 돼 있다. 강물에 빠진 해류를 구해내는 것은 곤이의 몫이다. 마약에 찌든 모습으로 십수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강하의 생모 이녕에게 모성애에 기반해 원초적 성애의 기운을 되찾게 해 주는 것도 곤이의 역할이다. 그러고 보니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모두 물에서 시작되었고 물로 되어 있다. 강하, 해류는 말할 것도 없고, 이녕(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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