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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실 교육으로 나사렛대 3.0시대 열겠다”

    “내실 교육으로 나사렛대 3.0시대 열겠다”

    “나사렛대 3.0시대를 성공적으로 열겠습니다.” 임승안(64) 나사렛대 신임 총장은 지난 2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대학의 질적 성장을 일굴 때”라며 이같이 밝혔다. 1954년 오은수 미국 선교사가 서울 목동에서 비인가 신학교를 세워 초석을 다진 시기가 1.0시대, 1980년 정규 대학으로 인가받고 충남 천안시 쌍룡동 지금의 터로 옮겨 와 2개 학과 300명이 40개 학과 6000명으로 양적 성장을 이룬 시절이 2.0시대라면 올해부터 3.0시대를 맞는다는 것이다. 이 대학은 지난해 교육부 평가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받았다. 4, 5대 총장을 지낸 그가 구원투수로 나서 지난 1일 7대 총장에 취임했다. 그는 먼저 교수와 직원 등으로 구성한 총장 자문단을 만들기로 했다. 여기에 법률, 정책 등 외부 전문가 40명이 참여해 대학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학과 조정 등 구조개혁과 각종 아이디어를 모아 대학의 장기 비전을 세운다는 구상이다. 임 총장은 ‘베스트 & 그레이트’ 경영문화 조성에 힘을 쏟을 각오다. 이 전략에 탄탄한 기초, 시대에 맞는 변화와 교육, 목표 달성에 따른 보상, 시대를 앞서는 도전, 함께하는 삶 등 정신이 들어 있다. 임 총장은 “이 문화 아래 지식 중심에서 삶과 생활을 중시하는 학교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 똑똑할 수 없고 다 바보일 수 없는 게 사회다. 미국이 대단한 것도 다양한 삶과 생활을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학과를 통폐합하고 평생교육원, 자원봉사센터 등 사회봉사 교육과 시설을 확충하겠다”고 강조했다. 나사렛대는 장애학생이 가장 많고 재활복지 부문에서 최고의 대학으로 평가받는다. 총장실은 매우 소박했다. 임 총장의 말은 조근조근했고 몸짓은 겸손했다. 그는 “정직·성실하고 서로 돕는 인재를 양성하겠다”며 “‘글로컬’(글로벌+로컬)에도 힘써 이들이 천안 지역 기관, 기업에 진출하도록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경호병은 왜 황제를 죽였을까?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경호병은 왜 황제를 죽였을까?

    ​ 역사상 가장 '변태적인' 황제, 칼리굴라 ​세계사의 폭군 열전에 네로와 함께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인 칼리굴라. 일반에게는 칼리굴라의 엽기적인 변태 행각을 그린 영화 '칼리굴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펜트하우스'가 제작에 참여하고, 몇 차례 감독이 바뀌는 곡절을 겪은 끝에 완성된 '칼리굴라'는 극도의 포르노성으로 사람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아예 등급을 받지 않고 전세극장을 얻어 상영했다는 이 문제의 영화를 보고 나면, 과연 저 끔찍한 변태 행각이 인간성의 한 단면인가 회의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세계사 속에서도 문제적 인물로 꼽히는 이 칼리굴라를 한번 톺아보기로 하자. ​ ​먼저 칼리굴라는 본명이 아니라 별명이다. 그의 본명은 가이우스 카이사르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게르마니쿠스가 사령관으로 있는 라인 방면 군단 병영에서 자란 연유로 작은 군화를 신고 다녔는데, 이 귀여운 아이가 병사들의 마스코트가 되어 '작은 군화'란 뜻인 칼리굴라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이다. 라인 방면의 게르마니아 군단은 로마군에서도 최강을 자랑하는 정예 병력으로 게르마니쿠스를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부대였다. 황실의 일문이었던 그의 가족사는 비참했다. 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의 양자이자 가장 유력한 차기 황제 후보였던 아버지는 젊어서 병사하고, 어머니와 두 형은 할마버지인 티베리우스에 의해 국가반역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당했다. 하지만 얄궂게도 가족을 파탄낸 그 티베리우스에 의해 칼리굴라는 3대 황제로 등극했다. 음울하고 늙은 황제가 죽고, 24살의 젊고 잘생긴 젊은이가 황제로 등극하자 로마 시민과 원로원은 환호했다. 칼리굴라만큼 절대적인 인기를 엎고 제위에 오른 황제는 일찍이 없었다. 하지만, 칼리굴라의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참혹했다. 시민들의 인기에 민감했던 칼리굴라는 치세 초기에 세금을 축소하고 검투사 시합과 전차경주 대회를 부활하는 등,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들을 시행하여 시민들은 물론, 원로원과 군대에 이르기까지 인기가 높았다. 또한 나름대로 선정을 편다는 평가도 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파탄나고 말았다. 원인은 뜻밖에 찾아온 병이었다. 즉위한 지 7개월 만에 고열로 쓰러진 뒤 심하게 앓은 다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는데, 그 뒤부터 정신의 균형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병의 후유증으로 정신에 이상이 생겼던 것이다. 그 후유증은 제국 전체에 재앙을 가져다주었다.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을 할 수 없게 된 칼리굴라는 미친듯이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검투사 시합을 과격하고 참혹한 내용으로 바꾸는 한편, 화려한 만찬과 도박을 일삼았으며, 돈을 마구 뿌려대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차를 끌어온 인부에게 거액을 안겨주는 등 국고를 탕진해 재정을 파탄시켰다. ​국고가 비자 칼리굴라는 세목을 하나 신설했다. 땔감에 세금을 붙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무덤이 되었다. 로마의 위정자들은 세정에 극히 신중했다. 세목을 늘이거나 세율을 올리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바로 민중의 반란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민중 반란은 군대로도 막기 힘들다. 군이 바로 민중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칼리굴라는 또 누이들과 근친상간을 하고 자신과 누이 드루실라를 신격화시킨 데 이어, 신들과 같은 복장을 하는 등의 기행을 일삼았다. ​칼리굴라의 악행 목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남의 아내를 침실로 끌어들이고 그 일을 자랑삼아 떠들어대는가 하면, 궁 안에 매음굴을 지었으며, 사자와 싸움 붙일 죄수들이 다 죽어버리자, 근위병에게 명령해 경기장 맨 앞의 5줄에서 구경하던 관중들을 끌어내어 사자밥으로 던졌다는 얘기도 전한다. 또한 "나를 두려워하기만 한다면 날 증오해도 상관없다"라면서 공포 정치로 귀족들을 통제하려 했다. ​​하지만 칼리굴라에 대한 끔찍한 악행 기록의 상당 부분이 100년 뒤의 사람인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열전> 에서 나왔음을 고려하면 헛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2세기 즈음에 떠돌아다니던 루머들을 모아서 기술한 게 많았기 때문이다. 시중 루머란 흔히 그렇듯이 과장되거나 왜곡, 창작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 어쨌든 칼리굴라의 이 같은 실정은 즉위 초의 뜨거웠던 인기를 재처럼 차갑게 식게 하기에 충분했다. 민심이 썰물처럼 칼리굴라를 떠났다. 민심이 떠나면 반드시 반정의 칼날이 등 뒤로 다가오는 법이다. 역사를 보면 폭군과 독재자들의 말로가 대략 그랬다. 민심 이반이 무서운 것은 그 때문이다. 칼리굴라의 경호 체계는 완벽했다. 최정예병인 근위대가 그를 둘러싸고, 근위대 장교들은 모두 충성도 높은 게르마니아 군단에서 차출된 병력이었다. 그러나 칼리굴라는 자기에게 누구보다 충성스럽다고 믿었던 그 게르마니아 장교의 칼날에 목숨을 잃었다. ​민심이 떠나면 반정의 칼날이...​ 운명의 순간을 재연해보면 이렇다. 서기 41년 1월 24일, 황궁이 있는 팔라티노 언덕에서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고, 오전에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한 칼리굴라는 점심을 먹기 위해 황궁으로 통하는 지하도를 빠져나가려 할 때 근위장교 사비누스가 칼리굴라에게 그날의 암호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때 칼리굴라는 웃으며 "유피테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뒤에서 경호하고 있던 근위대 대대장 카시우스 카이레아가 "그래? 그렇다고 해주지."라고 외치며 고개를 돌린 칼리굴라의 턱을 그대로 칼로 내리쳤다. 칼리굴라가 비틀거리자 다음 순간 사비누스의 칼날이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칼리굴라는 바닥에 쓰러져 게르만 근위병들을 큰 소리로 부르며 "나는 아직 살아 있다!"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카이레아의 "다시 내리쳐!" 하는 명령에 부하 병사들은 저항하는 칼리굴라에게 30여 차례 칼질을 해대 숨통을 끊어버렸다. 이때 황제의 가마꾼들이 장대를 들고 칼리굴라를 지키기 위해 저항했고, 칼리굴라의 외침을 들은 게르만 근위병들이 달려왔을 때는 황제는 물론, 그의 네번째 아내인 카이소니아와 한살박이 딸 드루실라도 죽어 있었다. 암살자들이 드루실라를 유모에게서 빼앗아 지하도 벽에 내동대이친 것이다. 카리굴라의 일족은 이렇게 지상에서 사라졌고, 그의 통치는 3년 10개월 만에 참혹하게 막을 내렸다. 칼리굴라의 나이 29살 때였다. ​​사건의 추이를 따라가보면, 카이레아는 부하들에게 명령해 게르마니쿠스의 동생이자 칼리굴라의 숙부인 클라우디우스를 찾아오게 한 다음, 그를 데리고 근위대 병영으로 가서 병사들에게 '임페라토르!'라는 환호를 받게 했다. 원로원은 이를 추인할 수밖에 없었고, 새 황제가 된 클라우디우스는 자신을 황제로 만들어준 카이레아에게 황제 살해죄로 자결을 명령했다. 카이레아는 한마디 변명도 없이 명령을 받아들여 자결했고, 사비누스도 얼마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머지 관련 병사들의 죄는 불문에 부치는 선에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여기서 세계사의 미스터리 하나가 탄생했다. 황제가 암살당했는데, 그 암살 동기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 암살자들은 황제를 죽었을까? 원로원이 개입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돈으로 매수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그들이 자결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을 보면 설득력이 없다. 두 사람은 이력을 살펴보면 그 해답이 나올지도 모른다. 50대의 카이레아와 사비누스는 전장에서 뼈가 굵은 군인이었다. 삶과 죽음이 난무하는 싸움터에서 평생을 보낸 사내들이란 뜻이다. 더욱이 카이레아는 칼리굴라가 2살 때 병사폭동으로 게르마니쿠스 가족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았을 때, 감연히 칼을 빼들고 폭도로 변한 병사들 앞을 가로막고 나서 그 가족을 지켜낸 내력이 있었다. 그때 그는 백인대장이었다. 그의 생애는 게르마니쿠스 가족과 동행했다. 칼리굴라의 근위대 대대장으로 온 것도 그 흐름이었다. 그는 평생 결혼도 하지 않았다. 생김새도 단아하고 목소리도 가늘어서 칼리굴라는 동성애자라고 놀리며 ​'프리아포스(Priapus;남성 생식력의 신 또는 남경), 베누스(비너스)라는 멸칭으로 부르곤 했다. 물론 아버지 같은 친근감으로 응석부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사자는 멸시감으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그것만으로 황제를 죽이는 대역죄를 저지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 밑바닥에는 자기가 평생 목숨 걸고 지켜온 로마와, 가족처럼 여기던 칼리굴라가 망가져가는 모습을 더이상 지켜볼 수가 없어 결행한 것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원래 로마인은 가족 문제는 가족이 해결한다는 의식이 강했다. 그리고 황제에게는 무엇보다 유능하고 덕망이 두터워야 한다는 덕목을 요구했다. 그것이 나라를 떠받치는 기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장교에게 도덕성이 심히 의심스러운 질문을 한 황제가 있었다. 장교는 농민 출신으로 병영에서 30명의 역사급 병사들을 레슬링으로 차례대로 꺾었던 역대급의 한 장사였다. 젊은 황제가 그 장사에게 한 여자들과 30번 계속 그 짓을 할 수 있겠냐고 묻자, 장사는 순간 입을 다물고 물러나와서는 그 황제가 살아 있을 동안 다시는 로마에 발걸음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그 황제는 얼마 후 암살당했고, 농민 출신의 그 장사는 다시 군문에 들어와 요직을 거치면서 나중에는 군단의 추대를 받아 황제가 되었다. 막시미누스 트라쿠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황제 암살은 로마 권력투쟁사의 한 특징이다. 위의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황제들은 언제라도 제거되었다. 칼리굴라의 암살은 그 테이프를 끊은 것이었다. 어쨌든 두 군인은 새 황제의 자결 명령을 받자 한 마디 변명도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쩌면 군인으로서 싸움터에서 죽지 못한 자신들의 운명을 잠시 한탄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거사는 칼리굴라의 재앙을 조국에서 걷어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40]텃밭에 핀 붉은 양귀비꽃, ‘약손’의 비밀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40]텃밭에 핀 붉은 양귀비꽃, ‘약손’의 비밀

    중국과 영국이 벌였던 아편전쟁은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의 하나로 꼽힙니다.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확보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일군 영국이 떼돈 좀 벌어보겠다고 중국 전역에 막대한 양의 아편을 풀어 폐해가 속출하자 청나라 황제였던 선종이 아편 교역금지령을 내리고, 특사를 파견해 영국의 아편상들을 척결하도록 했지요. 아편 때문에 나라가 무너질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러자 아편을 식민지 교역의 ‘전략상품’으로 내세워 큰 재미를 보고 있던 영국이 엉뚱하게도 자국 무역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중국에 군대를 출병시켜 벌어진 전쟁, 바로 아편전쟁입니다. 그 아편 바람에 중국이 초토화했고, 중국과 교역을 하던 우리 나라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속절없이 아편의 덫에 걸려 신음해야 했었지요.  결국,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구축한 영국의 해군력에 청나라가 굴복해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는 유명한 난징조약이 맺어졌습니다만, 역사를 바꾼 이 전쟁의 빌미가 된 것이 바로 아편(阿片)입니다.  ‘할양’이라는 용어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한일병탄을 앞두고 우리 나라도 일본에 많은 땅을 할양했고, 이곳을 무대로 일인들은 야금야금 조선을 먹어치웠으니까요. 그 때부터 일본은 우리 나라 곳곳에 ‘작은 일본’을 만들어 식민지 경영을 시작했습니다. 한일병탄 후에야 온 나라가 다 그들 땅이었으니 할양이라는 말을 쓸 이유도 없었지요. 그 때 일인들은 스스로를 ‘내지인’이라고 불러 ‘조센징’이나 ‘반도인’이라며 비하했던 우리들과 차별화했고, 거주지 등 생활권도 따로 꾸렸는데, 이 때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 말이 바로 ‘혼마찌’나 ‘사꾸라마찌’ 같은 용어들이었습니다. 국권 침탈보다 먼저 이뤄진 할양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통 효과 뛰어난 아편  아편이라는 말은 아편의 영어 표기인 ‘Opium(오피엄)’에서 따온 차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 모르핀의 원료이기도 한 아편은 중추신경을 마비시켜 강력한 진통작용은 물론 경련을 진정시키거나 설사를 멈추게 하는 등 활용 범위도 무척 넓었습니다.  그러나 중독성이 강해 한번 습관성에 빠지면 ‘목은 잘라도 아편은 못 끊는다’고 할 정도였답니다. 값도 비싸서 한번 의존성에 빠져들면 살림은 물론 삶 자체가 거덜나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러니 중국이 영국을 상대로 아편전쟁을 벌인 게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도 영국이 동인도회사를 통해 인도의 벵갈지방에서 대량으로 재배, 생산해 중국에 퍼뜨린 이 아편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에 출병한 청나라 병사들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바로 그 영국산 아편이 퍼졌다니 말입니다.  이런 아편은 우리의 민간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더러는 의아해 하기도 하겠지만, 약도 의사도 없던 시절에는 아편만큼 요긴한 상비약도 없었습니다.  ●아편 혹은 앵속(罌粟)  마당 한켠의 토담을 끼고 돌면 탱자나무에 둘러싸인 텃밭이 있었습니다. 넓이가 어지간한 집 마당보다 훨씬 넓었으니 아마 너댓 마지기는 됐을 것입니다. 평수로 따지면 1000평쯤 되었겠지요.  집 안쪽으로 이어진 토담을 따라 텃밭 안쪽으로 들어가면 어른 키를 훌쩍 넘을만큼 높다랗게 아주까리며 옥수수가 자라 있었고, 그 옆에는 당귀와 모시풀 등속이 심어져 있었는데, 그 안쪽에서 양귀비가 몰래 자라고 있었습니다. 높다란 흙담에 가려지고, 골목길 쪽으로는 무성한 탱자울에 당귀와 아주까리 등이 숲을 이뤄 밖에서는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할머니의 영역’이었습니다.  텃밭에 심은 고추며 채마밭 고랑을 따라 아침, 저녁으로 이곳을 찾은 할머니는 양귀비 꽃이 피면 혼잣말로 “앵속, 참 곱다”면서도 누가 볼세라 꽃잎을 다 따내 버리곤 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더러 앵속 단속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등잔 밑이 어두웠던지 단속반이 떠도 주로 외진 산비탈의 뙈기밭이나 뒤지지 마을 가운데 있는 텃밭까지 뒤지지는 않았거든요.  어린 제가 봐도 그 꽃은 참 붉고 예뻤습니다. 텃밭에 살랑∼ 바람이라도 스치면 가는 꽃대궁 위에서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나온 꽃잎이 하늘거리는 모습이 너무 뇌세적이어서 보고 있노라면 불현듯 목줄기가 타드는 듯한 충동이 일곤 했습니다.  시골에서 살다보면 오래 기억에 남는 색조의 충동이 그것 뿐만은 아닙니다. 빨간 고추잠자리가 무리지어 나는 방죽 너머로 해가 막 넘어갈 때면 노을이 마치 잉걸불처럼 이글거리기도 했고, 이슬이 찬 9월이면 매운 맛이 들어 붉어지는 고추가 또 보기만 해도 화닥거릴 정도로 붉었습니다. 홍시로 익어가는 땡감이야 그렇다 해도 그 감나무 잎에 단풍이 들면 붉은 색조가 한 순간 마당 한켠을 뜨겁게 물들였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옻이 오를까봐 곁에 가지도 않았던 옻나무 잎도 가을이면 정말 다가가 만져보고 싶을만큼 붉어져 길 가다가 한참을 바라보고 서있기도 했습니다.  양귀비 꽃잎은 이런 붉음을 무색하게 할만큼 선연하게 붉었습니다. 붉다 못해 검어 보이거나, 붉은 꽃잎의 가장자리에 흰 테두리를 둘러 붉음이 더 선명하기도 했던 그 꽃잎을 똑똑 따서 버리는 할머니에게 “왜 꽃을 따버리느냐”고 물으면 “글씨, 앵속은 나라에서 못 키우게 하니 그렇지”라고 말하곤 했지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 어렴풋 그 꽃의 정체를 알아갔지만, 그 꽃에서 ‘기막힌 약’이 생산된다는 건 몰랐습니다.  꽃이 피었다 지면 할머니는 대나무를 삐져서 만든 손칼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씨방에 죽죽 칼집을 내곤 했습니다. 그러면 이내 하얀 수액이 칼집을 따라 배어나곤 했는데, 그 이후엔 어떻게 처리를 했는지 잘 모릅니다. 예닐곱 시절의 기억이지만, 딱지치기도 해야 했고, 자치기도 했야 했으니, 그 또래 아이들이 다 그렇듯 저도 나름 바쁜 축이어서 맨날 할머니 치맛자락만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거든요.  나중에 할머니가 보리알만 한 아편을 비닐에 싸서 앞닫이 속에 깊숙이 넣어둔 걸로 봐서는 씨방의 상처 자국에서 솟아 적당하게 굳어진 양귀비 수액을 따모아 잘 개어서 보관했던 것 같습니다. 손끝에 따모은 수액을 손으로 개면 이내 검은 고약처럼 변했지요. 마치 옻나무 수액처럼.  ●의사도 없고 약도 없으니  참 아픈 곳이 많았던 시절이었고, 세상이었습니다.  물론, 병원도 없고, 약도 없어 어지간한 고통은 다 참고 견뎠지만, 그러다가 고질이 된 통증이 적지 않았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마디마디 관절염과 치통, 결핵에 해소와 천식을 갖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고, 아이들은 시나브로 횟배앓이를 하거나 동통이 지독한 몸살에 크고 작은 외상도 많앗습니다.  형제가 많았던 우리도 번갈아가며 배앓이를 하곤 했는데, 배가 한번씩 뒤틀리기 시작하면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나자빠져 뒹굴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얼른 할매한테 가봐라”시며 등을 떠밀었고, 그러면 득달같이 할머니 방으로 달려가 그 ‘명약’을 청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윗목 앞닫이를 열고 잘 감춰둔 그 약을 꺼내 손칼 끝으로 깨알만큼 떼어낸 뒤 입안에 넣어주시고는 배를 살살 쓸어주셨습니다.  배앓이에 부대낀 탓인지, 그 약의 효험 때문인지 한동안 뒹굴다가 잠이 들었고, 자고 나면 씻은 듯 고통이 사라져 다시 마당으로 나가 언제 그랬냐는 듯 천방지축 뛰어놀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절제없는 아편은 ‘마약(魔藥)’  새삼 말하지 않아도 아편은 매우 위험한 약물입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성은 습관성에 빠지는 것이지요. 질병 때문에 몰핀을 자주 사용하는 환자들은 내성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의료용으로 사용하는 몰핀은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으며, 처방이나 사용에도 엄격한 약전 기준을 적용합니다.  물론, 최근 통증의학 분야에서는 이런 진통제를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처방하는 추세가 뚜렷합니다. 환자가 극심한 통증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보다 마약성 진통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득이 많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용하는 진통제는 비록 아편 성분이 든 마약성일지라도 중독 등 위험 부담이 적습니다. 전문의들이 정해진 기준과 준칙에 따라 적절하게 통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사도, 약도 귀했던 예전에는 통증이 반복될 때마다 아편을 쓰다가 중독에 빠져 종국에는 패가망신한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통증이라고 하면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질병은 통증을 수반합니다. 특히, 처음에는 통증과 무관하다고 여기는 질환도 마지막은 통증으로 귀결하는데, 암도 그렇고, 고혈압이나 당뇨병도 예외가 아닙니다. 통증의 정도도 다양합니다. 현재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통증 척도인 VAS 기준에 따르면, 총 10단계 중 1단계는 통증이 없는 상태, 10단계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단계에 해당합니다. 통증이 8~9단계 정도에 이르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여기게 되니까요.  그러니 따지고 보면 고통을 못 견뎌 아편을 쓸 수밖에 없었던 사람 탓이라기보다 그런 고통을 해결해주지 못한 몽매함과 미개함, 거기에서 비롯된 낙후한 의료시스템과 보건안전망의 부재 탓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세상이 다 그랬으니 그걸 탓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입니다.  한 때는 우리나라가 ‘마약청정국’이었습니다만, 요즘 들어 갈수록 마약 밀수량이 많아지고, 유통량도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마약은 퇴폐적인 향락의 주술(呪術) 같은 것이어서 마약 밀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 사회의 건전성이 훼손되는 징후라고도 봐도 틀리지 않습니다. 물론 의료용 마약의 소비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이고, 마약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충족시키는 많은 방법 중 하나라는 강변에 동의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이 가진 본연의 성정을 왜곡하는 물질인 데다 습관성의 폐해가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부담없이 되돌아보는 약손의 추억이지만, 거기에는 이런 위험도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일까요. 할머니는 절대로 한 사람에게 이 약을 두 번, 세 번 잇따라 쓰지 않았습니다. 어제 아팠던 배가 오늘 다시 아파도 할머니는 “약 다 쓰고 없다”며 배만 쓸어 주셨는데, 아마 아편의 중독 위험성을 알고 계셨던 게 틀림없는 듯 합니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은 수많은 아들과 딸들이 또한 이 세상을 만들어 냈으니, 알아도 모른 척 했던 약손의 효험을 새삼 의심하고 지워버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체온으로 전해진 그 약손의 사랑이야말로 지금은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참으로 외경스러운 ‘내리사랑’의 기억이니까요.  jeshim@seoul.co.kr
  • [고전으로 여는 아침] 지팡이

    [고전으로 여는 아침] 지팡이

    나이 들어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게 지팡이는 무척 미더운 존재입니다. 지팡이를 길동무 삼아 들로 산으로 꽃 구경 단풍 구경도 가고, 말벗을 찾아 길을 나설 수도 있으니, 지팡이 덕분에 정신이 상쾌해진다는 표현도 과장이 아닙니다. 또 지팡이 덕에 조금씩이라도 운동을 할 수 있으니, 몸이 개운해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렇게 고마운 지팡이를 보다가 성현의 생각은 혼란한 나라를 지탱해 줄 지팡이로 옮겨 갑니다. 답답한 백성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고 피곤에 지친 몸을 활기차게 하며,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사회를 안정시킬 지팡이가 무엇일까를 고민합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누군가 뛰어난 사람이 나와 무언가 훌륭한 일을 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화분에 물을 주는 것도,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 주는 것도, 우울해하는 친구를 크게 한 번 웃기는 것도, 소신을 지키다 불이익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고 힘을 실어 주는 것도, 관심 있는 시민 단체를 후원하는 것도, 국민의 뜻을 존중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품을 줄 아는 훌륭한 지도자를 뽑는 것도 모두 내가 누군가의 지팡이가 되어 주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자기 자리에서 조금씩 짐을 나누어 지고 누군가의 버팀목이 돼 준다면 ‘큰 바위 얼굴’은 기다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성현(成俔·1439∼1504) 조선 초기의 학자·문신. 자는 경숙(磬叔), 호는 용재(?齋)·부휴자(浮休子)·허백당(虛白堂), 본관은 창녕. 대사헌,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으며, 당시의 음악을 집대성한 ‘악학궤범’을 편찬했다. 청백리에 뽑힐 만큼 소박한 삶을 누렸다. ‘허백당집’, ‘용재총화’, ‘부휴자담론’ 등을 남겼다. 시호는 문재(文載)다. 하승현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www.itkc.or.kr) ‘고전산책’ 코너에서는 다른 고전 명구나 산문, 한시 등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 英 70년 끈질긴 사회복지 연구…출산·교육정책 바꾸다

    英 70년 끈질긴 사회복지 연구…출산·교육정책 바꾸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46년 3월 영국에서는 ‘더 라이프 프로젝트’(The Life Project)라는 이름의 장기간 추적조사가 시작됐다. 관련 연구진은 당시 1주간 태어난 아이 수천 명의 출생부터 이후 지금껏 살아온 과정을 관찰·기록했다. 이 조사가 의미 있는 이유는 이후 1958년, 1970년, 1990년 등에도 같은 조사를 반복, 현재 조사 대상자는 5세대에 걸쳐 7만여 명으로 확대된 세계 최장 기간의 ‘코호트 연구’(추적조사 연구)라는 점이다. 사실 조사내용은 대부분 기밀이지만, 5년 전부터 이 조사에 참여 중인 헬렌 피어슨 박사(유전학)는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그 일부를 공개하고 ‘무엇이 어떤 사람을 행복하고 건강하며 성공하게 하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하게 하는지’ 그 실마리를 밝혔다. 이 조사는 대상자 자신은 물론 대상자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와의 인터뷰 등 청취 조사를 통해 인간 삶의 모든 사항을 추적 조사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6000건이 넘는 논문과 책이 발표되고 있으며, 태아의 성장부터 사람의 만성 질환, 노화에 관한 사람들의 이해를 깊게 했다. 또한 임신과 출산, 교육 등 영국의 다양한 정책에도 영향을 끼쳤고 현대 사회에 불평등과 비만 등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밝혀내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1946년 3월 초 1주간 아이를 낳은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인터뷰 등을 시작했다. ‘아이에게 모유를 충분히 먹이고 있는가?’, ‘아기용품에 얼마를 쓰고 있으며, 자신에게는 얼마를 투자하고 있는가?’ 등 매우 세세한 질문에 따른 답변을 분석했다. 그 결과, 최하층에 속한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최상층에 속한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이보다 사망률이 70%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영국 정부는 이런 결과에 충격을 받아 1948년에 의료비의 자기 부담금을 거의 없애거나 무료로 하는 국민보건서비스(NHS)를 시작했다. 또한 임신과 출산에 관한 사항을 전부 무료화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이 결과는 출산과 육아 휴가, 가족이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충실화하는데도 관련됐다. 그다음 이 조사가 영향을 준 부분은 교육이었다. 영국의 중등교육은 1944년부터 시험 결과로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하고 고전중등학교(secondary grammar school)와 기술중학교(secondary technical school), 근대중등학교(secondary modern school)라는 세 학교로 나눠 교육을 시행하고 있었다. 이는 시험 결과를 중시해 명목상 출신이나 계급에 좌우 없이 성적이 뛰어난 아이가 좋은 학교에 갈 수 있게 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노동자 계급층의 자녀는 중산층이나 상류층 자녀보다 시험 성적이 나쁜 것이 이 조사로 밝혀져 가난한 아이들의 재능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따라 1965년 영국 노동당은 성적 순위에 따라 학교를 가리지 않게 하기 위한 않는 종합중등학교(comprehensive school)의 확대를 내세웠다. 사실 지금도 중등교육은 성적별로 나눠야 하는지 종합 교육을 해야 좋은지에 대한 찬반양론이 갈리고 있지만, 이 조사 연구 프로젝트는 영국의 교육제도에 큰 영향을 줬다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사진=더 라이프 프로젝트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나우! 지구촌] 친모 대신, 자신을 학대한 양모를 선택한 아이,왜?

    [나우! 지구촌] 친모 대신, 자신을 학대한 양모를 선택한 아이,왜?

    '때리지 않으면 재목이 못된다(不打不成材)’, ‘매를 맞고 자란 아이가 효자된다(棍棒底下出孝子)’ 중국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중국에서도 아동학대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그러나 대다수 중국 부모들의 관념 속에 ‘아이를 훈육차원에서 때리는 것’과 ‘법률 위반’은 여전히 별개의 일이다. 2014년 조사결과, 84%의 중국부모들이 아이를 때린 경험이 있으며, 아이를 때린 부모 중 88% 역시 부모로부터 맞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즉 ‘맞은 아이’가 커서 ‘때리는 부모’가 된다는 말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지난해 3월 중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난징(南京) 아동학대’에 대한 후속 여론이 분분하다. ‘가정교육’과 ‘가정폭력’, ‘가장의 권위주의’와 ‘미성년자의 인권보호’의 경계는 어디인가? ‘매질은 인성교육에 필요한가?’ 중국 사회는 다시금 질문을 던진다. 중국 사회가 공분한 ‘난징 아동학대’ 지난해 3월 중국은 ‘난징 아동학대(南京虐童)’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9살 어린이 스샤오바오(施小宝)가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양모로부터 몽둥이와 줄넘기로 온 몸에 끔찍한 매질을 당했다. 학교 교사는 아이의 몸에 난 상처를 보고 아동학대를 의심해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 사진을 접한 네티즌들은 공분했다. “아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경찰은 무엇을 했나?”, “가해 부모를 처벌하라!”는 질타가 이어졌다. 경찰은 아이의 양모 리정친(李征琴·51)을 ‘고의상해죄’로 체포했다. 그러나 학대 부모가 엘리트 출신의 ‘부유층 집안’ 이라는 사실에 중국사회는 또 한번 놀랐다. 양모인 리정친은 지역 유력방송국의 기자로서 부국장 직함을 가졌고, 남편은 20년 넘게 변호사로 활동해 왔다. 학대 부모는 저소득층, 저학력자라는 통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경찰은 리정친에게 ‘고의상해죄’를 적용해 징역 6개월을 구형했다. 그녀는 교도소에서 6개월을 복역하고, 이달 13일 출소했다. 가해자 ‘양모’ 앞에 무릎 꿇은 피해아동의 ‘친모’ 지난 13일 중국 매스컴은 리정친의 출소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모여 들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펼쳐졌다. 친모 장춘샤(张传霞)와 아들 스샤오바오(施小宝)가 리정친 앞에서 무릎을 끓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는 것이다. 장춘샤는 “언니, 미안해요!”라며 읍소했고, 스샤오바오는 “엄마, 엄마…”하고 부르며 리정친을 끌어 안았다. 이렇게 세 모자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한참을 울었다. 리정친은 스샤오바오를 만나기 전 호텔에 들러 목욕재계를 할 수 있도록 부탁했다. 깨끗한 모습으로 아들 스샤오바오를 만나고 싶었다. 세 모자는 마주 앉았고, 리정친은 마음을 가다듬고 스샤오바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누구랑 살고 싶니?”… 아이는 한참 대답을 망설이다 리정친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렇게 심한 매질을 당했던 아이가 어째서 양모와의 삶을 선택한 것일까? ‘정직’을 가르치고 싶었던 양모의 매질 4년 전 리정친은 시골에서 어려운 살림에 아이 셋을 키우는 사촌 여동생 장춘샤를 만났다. 장춘샤는 막내둥이 스샤오바오를 키우는 일이 막막했다. 리정친은 동생에게 본인이 아이를 키우겠다고 제안했다. 대도시에서 좋은 학교에 보내준다는 사촌언니가 한없이 고마웠다. 리정친은 당시 여섯 살인 스샤오바오를 데려오며, “너의 친엄마는 나, 리정친이다”라고 말했다. 스샤오바오는 이후 리정친을 친모로 생각하며 지냈다. 그러나 시골에서 올라온 스샤오바오는 문제가 많았다. 세수하고, 밥 먹는 것부터 다시 가르쳐야 했다. 리정친은 스샤오바오를 가장 좋은 유치원에 입학시키고, 초등학교 역시 최고 명문학교로 보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이의 과제를 일일이 돌보며 가르쳤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놀림을 받던 스샤오바오는 리정친의 도움으로 성적이 향상되며 자신감도 생겼다. 그러나 스샤오바오는 걸핏하면 거짓말을 일삼았다. 리정친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직한 삶’에 어긋난 것이었다. 지난해 3월 31일 스샤오바오는 “학교에서 어문 시험 1등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스샤오바오의 거짓말을 알아챈 리정친은 아이에게 매질을 가했다. 이미 전에도 한 학기 내내 ‘숙제가 없다’는 거짓말에 속았던 터였다. 리정친은 순간 치솟는 분을 삭히지 못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매질을 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이성을 잃었다. 3일 후, 상처 가득한 아이의 사진이 인터넷에 올랐고, 양모는 ‘악모(恶母)’로 불리며 경찰에 체포됐다. 아이는 ‘누구의 아들’로 살아야 하나? 리정친은 본인의 매질이 심했고, 잘못된 행동이었음을 시인했다. 그녀는 혁명가 집안에서 태어나 엄한 군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8명의 자녀들은 자라면서 맞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녀는 “가장 심하게 맞으면서 자란 형제가 가장 출세한 인물이 되었다”고 밝히며,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기 위해서 매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리정친은 양모가 감옥에 있는 동안 친모와 생활해 왔다. 그러나 “친모와의 삶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조금도 안 좋아요”라고 말했다. 엄마(리정친)가 밉지 않느냐는 질문에 “엄마가 밉지 않아요. 모두 나를 위해 그러신 거에요”라며 엄마를 두둔했다. 이미 아이에게 ‘엄마’는 리정친의 존재를 의미하며, ‘낳은 정’보다 ‘기른 정’에 더 길들여졌다. 친모 역시 “스샤오바오가 다시 농촌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며, “언니가 계속해서 아이를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리정친은 본인의 잘못을 용서해준 아이의 선택이 고맙고, 다시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그러나 그녀는 법적으로 양육권을 박탈당했다. 아무리 친부모와 당사자가 양모와의 삶을 원해도 법률의 문턱을 넘어서긴 힘들어 보인다. ‘우주 비행사’가 꿈이라는 스샤오바오, 아이는 ‘누구의 아들’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사진1,3,4=신징바오/ 사진2=징화스바오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화폭에 담은 ‘추억 속 한옥’

    화폭에 담은 ‘추억 속 한옥’

    한옥과 한글에 천착해 작업해 온 한국화가 김도영의 여덟 번째 개인전이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 6층)에서 열리고 있다. 한옥 자체가 지닌 기하학적인 구조에서 출발한 작가의 작업은 극히 사적인 기억들을 반추해 작가 특유의 안온한 감성으로 수용함으로써 연민을 자아내는 단계로 발전한다. 이번 전시에는 이전의 작업에 비해 훨씬 여유로운 공감을 확보한 화면에 공간의 깊이와 넓이를 가늠하게 하는 한옥을 담은 신작들을 선보인다. ‘여름 향기’, ‘그대에게로’, ‘일상의 여유’, ‘아이의 자리’ 등 아련한 추억이 느껴지는 담담한 작품들이다. 김상철 평론가는 작가의 작품에 대해 “과거 대가족 중심의 삶에 대한 회상과 유년 시절에 함께했던 인물들에 얽힌 내밀한 사연들을 통해 한옥을 인문학적으로 재해석했다”며 “진지한 사유와 삶에 대한 건강한 인식, 따뜻한 정서에 대한 이해는 동양 회화가 지향했던 근본적인 특징을 확인하게 한다”고 평했다.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02)720-4354.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늘어나는 가족 범죄… 도덕성 회복 절실”

    “늘어나는 가족 범죄… 도덕성 회복 절실”

    “친부모가 아이를 해치고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끔찍한 일들이 자꾸 벌어지는 것은 정치, 경제, 사회에 걸쳐 우리 사회의 도덕성이 총체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허만기(88) 도덕성회복국민연합 총재는 친모의 학대 끝에 숨진 뒤 암매장된 안모(사망 당시 4세)양 사건과 같은 끔찍한 범죄가 우리 사회에 계속되는 것과 관련해 “정의감이 파괴되고 이로 인해 정체성이 상실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범국민적인 도덕성 회복운동을 제안했다. 성균관유도회 총재를 지내고 논어, 맹자 등 고전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허 총재는 “도덕이란 천지와 인류사회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고 규범”이라고 소개하면서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성(誠), 신(信)이야말로 우리가 다시금 되새겨야 할 소중한 삶의 지표”라고 강조했다. “노자 도덕경에는 인간의 온갖 실책과 과오, 불순한 기도가 인간 전체의 삶을 왜곡하고 파괴한다고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한쪽에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자기의 역할과 사명이 끝나면 흔쾌히 물러설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제13대 국회의원이자 헌정회 회원으로 정치 원로인 그는 최근 여야의 원칙 없는 ‘막장 공천’에 대해 도덕성의 타락을 보여 준 극명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북한이 연초부터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하는 등 국가적으로 위기가 왔는데도 정치인들은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기득권 쟁탈전과 파벌 싸움에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대유학자 동중서(董仲舒)는 국가가 정치를 잘못하면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괴질이 속출해 결국 나라가 망한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정치가 대화와 협상을 통한 화합의 광장이 돼야지 저주와 복수가 난무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허 총재는 “세계적 석학인 아널드 토인비도 ‘효’ 사상을 강조한 바 있다”면서 “효와 경로효친은 동서고금을 넘어 인간성과 인격의 원천으로 인간 세계 불변의 질서이자 가치”라고 밝혔다. 이어 “효는 인간의 최고선이고 도덕성의 척도”라면서 “경로효친은 인간 사회의 최고 질서로 도덕성의 원초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 총재는 마지막으로 “사람은 가슴을 열고 바른 마음과 올바른 기운을 품어야 한다”면서 “그렇게 돼야 선악과 정사 그리고 옳고 그름을 구분해 역동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배우를 꿈꾸는자, 무명을 견뎌라

    배우를 꿈꾸는자, 무명을 견뎌라

    가난한 연극배우가 우울하다는 건 편견… 실제론 좋아하는 일하는 행복한 사람들 끝까지 버티는 사람만이 배우될 수 있어 이젠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빠 되는 게 꿈… 코믹한 천만 요정? 나만의 향기 만들 것 관객들이 믿고 찾아보는 배우. 그리고 삶이 묻어나는 배우. 오달수(48)가 정의하는 대배우다. 1990년 극단 연희단거리패에서 시작한 연기 인생. 그는 얼마만큼 대배우에 다가갔을까. 생애 첫 영화 단독 주연작인 ‘대배우’(30일 개봉)에서 박찬욱 감독을 패러디한 캐릭터 ‘깐느 박’으로 함께한 선배 이경영은 시사회에서 “지금 내게 대배우는 오달수”라고 평하기도 했다. “나중에 선배가 함께 담배를 피우며 ‘내가 달수를 너무 띄워줬나?’ 하시더라구요. 저를 곱씹어 볼 수 있는 농담을 하셨다고 봐요. 대배우를 찾기 힘든 시대에요. 쉽게 만날 수도, 나오기도 힘들죠. 저는 꿈도 못 꿔요. 늙어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해도 대배우라는 소리를 한 번 들을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그냥 배우라는 말을 듣는 자체가 영광스럽죠. 언젠가 이윤택 선생님께서 10권짜리 희곡 전집을 내셨을 때 한 질을 보내주셨어요. ‘배우 오달수에게’라고 사인을 하셔서. 배우라는 호칭을 함부로 안 쓰시는 분인데…. 그것만으로도 영광이었죠.” 대학로를 전전하는 20년 무명 배우 장성필을 연기했다. 아동극 전문이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박쥐’에서 인연을 맺은 연출부 동생에게 언젠가 ‘입봉’(감독 데뷔)할 때 함께하겠노라고 했던 약속이 파트라슈(‘플란더스의 개’) 분장을 뒤집어쓰게 했다. 막상 시나리오를 받아들었을 땐 반갑거나 기쁘지 않았다. 외려 마음이 무거웠다. 자신이 걸어왔던 길과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영화가 연극배우에 대한 오해를 풀어줄 것 같다며 웃는다. “대중들은 연극배우들의 행복한 순간은 별로 상상되지 않나봐요. 시사 뒤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영화를 보니까 연극배우들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고. 찢어지게 가난하고 힘들어 죽겠는 데 억지로 연극 하는 사람은 없어요. 좋아하니까 즐겁고 행복하게 무대에 서죠. 무명 20년이라고 하면 우울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무명 20년이면 어때?’라는 배우들이 대부분이에요.” 26년간 행복한 배우로 살아왔지만 가족 생각을 하면 억장이 내려앉는 순간도 많았다. 잠시 가족과 이별하게 된 장성필이 영화 오디션에 악착같이 매달리는 이유 또한 가족이 옆에 없는 게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운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국민배우이자 극단 선배인 설강식(윤제문)을 납치까지 한다. 설경구, 송강호, 최민식을 ‘짬뽕’한 캐릭터다. “아이가 생겼을 때 겁이 덜컥 났어요. 새벽에 일어나 분유를 데워 먹이고 그럴 때 한 번은 불을 켰더니 방바닥에 내려놓은 분유통에 개미들이 줄을 지어 달라붙어 있는 거예요. 빨리 환경을 바꿔주고 싶은데 당장 그럴 능력이 없는 저 자신을 보며 비애를 느꼈죠.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는 게 꿈이에요. 지금도 잘해주지 못하고 바빠서 미안할 뿐이죠. 영화를 많이 하고 안 하고를 떠나 연기하는 저를 보며 딸이 자랑스러워 하는 게 보람이죠. 이제 고1이라 철이 들어 혼자 보러 다니기도 하는 데 ‘아빠, 이번엔 연기 괜찮더라’고 품평하기도 해요. 지금까지 연기해보고 싶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아 어찌나 고마운지….” ‘천만 요정’. 관객 1000만명 이상을 동원한 우리 영화 13편 중 7편에 나왔다. 그의 이름 석 자가 충무로 흥행 공식과 마찬가지다. 요즘 들어선 코믹한 양념으로 뿌려지는 일이 잦아진 느낌도 든다. 그런데 그의 생각은 달랐다. “외국에 조 페시라는 배우가 있어요. 비슷비슷한 캐릭터를 하는 것 같은 데 소비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가 나올 땐 그만의 향기가 있죠. 관객들은 ‘또 저거야?’라고 하기 전에 그 배우에게서 또 다른 무엇인가가 나올 거라고 상상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게 배우의 향기가 아닐까 싶어요. 저도 그런 향기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죠.” 오늘도 오달수라는 배우의 등을 보고 따라가는 수많은 후배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삶은 참 복잡할 것 같지만 어마어마하게 단순하다고 생각해요. 하면 하고, 말면 말고. 배우가 꿈이라면, 배우를 하고 싶다면 시간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정말 배우가 될 때까지 잘 버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톡! 톡! talk 공무원] ‘글 쓰는 공직자’ 홍종의 공무원인재개발원 주무관

    [톡! 톡! talk 공무원] ‘글 쓰는 공직자’ 홍종의 공무원인재개발원 주무관

    “어린 시절엔 책이 부족해 형, 누나 교과서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활자중독에 가까웠죠. 초등학교 때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더니 32색 크레파스를 주더라고요. 유치하지만 크레파스에 감동해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하지만 제가 기술을 배우길 바라셨던 부모님의 뜻을 차마 꺾진 못했죠.” 국내 아동문학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홍종의’라는 작가를 한 번쯤 들어봤을 터다. 1996년 통일 후의 가상 현실을 그린 ‘철조망 꽃’이라는 단편 동화로 등단한 홍종의(54) 주무관은 1988년에 기술직(현 관리운용직) 경력경쟁채용으로 공직에 발을 들였다. 그는 29년째 경기 과천에 위치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의 전산망을 책임져 온 기술 전문가다. 지금은 50여편의 장·단편 동화를 펴낸 아동문학계 중견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아동문학계의 거목인 고 윤석중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5년에 제정된 ‘윤석중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공무원 신분인데, 작가로서 이름이 더 알려지는 것이 조심스럽다는 홍 주무관을 23일 정부과천청사에서 만났다. “대학 때는 부모님 반대로 문예창작학과 특채 입학 기회를 흘려보내고, 기술 분야를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적성에 맞질 않아 방황도 했죠. 결국 20대 후반에 정보기기운용사 등 각종 기술직 관련 자격증을 따 경력경쟁채용을 통해 공무원이 됐습니다.” 그가 다시 펜을 잡은 것은 못다 펼친 꿈 때문이었다. “공무원 생활을 하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그래도 뭔가 허전했어요. 그토록 원하던 글 쓰는 일과 무관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죠.” 글을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에 홍 주무관은 주말이 되면 도서관으로 향했다. 등단의 기회를 잡은 것은 1996년이었다. “일을 하면서 글을 쓰는 게 녹록진 않았죠. 그나마 제가 신춘문예 공고를 본 후 한 달 안에 쓸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 원고지 250매 분량의 단편동화였어요.” 등단한 지도 벌써 21년째다. 아동문학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현실·체제 비판이 숙명인 문학 작가로서 공무원이라는 신분은 큰 제약이 될 수도 있었지만 역으로 남들이 쓰지 않는 소재까지 시야를 확장하는 동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가 쓴 문학 작품의 소재는 다문화, 결손가정 등 취약계층부터 소방관, 통일 등까지 다양하다. 2007년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를 다룬 작품 ‘낙지가 돌아왔다’(2013년)처럼 시사적 이슈를 다루기도 했다. 작가이기 전에 인재개발원 전산망 관리자인 그는 매일 오전 4시에 기상한다. 늦어도 오전 7시까지는 출근해 각종 통신 장비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홍 주무관은 “전산망 관리 업무는 사용자들이 불편함 없이 PC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일찍 가야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평소엔 기계를 다루지만 주말이 되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유년기 때 감성을 끄집어낸다. “작가 스스로가 ‘동화 속 아이’가 되어야만 독자들에게 단숨에 읽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홍 주무관은 전했다. 그는 1.5㎞ 길이의 인재개발원 둘레길의 나무, 바위 등에 대한 스토리텔링 작업을 도맡았다. 홍 주무관이 창작한 이야기는 인재개발원을 이용하는 공무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저는 누구나 한 가지 일에 1만 시간을 쏟으면 전문가의 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을 믿어요. 다른 분들에게도 일과 후나 주말에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데 매진해 보시길 추천드려요. 생활에 활력도 되고, 뜻밖의 성과를 얻게 될 때도 있으니까요.” 글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新국토기행] (65) 전남 해남군

    [新국토기행] (65) 전남 해남군

    대한민국 최남단에 있는 해남은 ‘한반도의 땅끝’이란 브랜드 이미지로 유명하다.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반도 형태로 동서 간 44.2㎞, 남북 간 54.8㎞, 1013.3㎢ 면적의 전남에서 가장 넓은 지역이다. 특히 면적의 34.5%인 349.5㎢의 광활한 농경지는 전국 최대 규모로 청정 땅끝 바다와 함께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명품 농수산물을 생산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다. 전국 12대 고품질 브랜드쌀에 최다 선정된 대표 명품 쌀 ‘한눈에 반한 쌀’을 비롯해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해남배추, 전국 최초 수산물 유기인증을 획득한 해남김, 지리적 표시제로 품질을 인정받는 전복 등 농수산물은 풍요로운 해남을 대표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땅끝마을, 신비스러운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문화유산 등 발길 닿는 곳마다 보석 같은 관광지들이 산재해 있다. 2012년부터 3년 연속 합계 출산율 전국 최고를 기록하면서 최근에는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싱가포르 등 해외 언론까지 비결을 취재하러 오고 있다. 땅끝이란 심리적 거리감이 있지만 교통망이 발달하면서 호남고속철(KTX)을 이용하면 넉넉잡아 3시간 안에 서울에서 닿을 수 있다. 당일로도 오감만족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 볼거리 한반도의 남쪽 끄트머리이자 대륙의 시작인 땅끝마을은 한 해 80여만명의 관광객이 찾아 망망대해 바다에 맞서 또 다른 희망을 담아 간다. 땅끝 바다가 마주 보이는 사자봉 정상에 선 전망대를 통해 아련한 서해의 섬과 오가는 고깃배, 노을 물드는 바다 등 그림 같은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높이 400여m의 사자봉까지는 바다의 경치를 감상하며 천천히 올라갈 수 있는 모노레일이 운행되고 있어 땅끝의 또 다른 명물이 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인 46만 2000㎡(약 14만평)에 이르는 매실농원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선 1만 4000여 그루의 매실나무에서 일제히 희고 붉은 꽃을 피워 낸다. 홍매화, 백매화, 청매화 등 각양각색의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은 영화 ‘너는 내 운명’, ‘연애소설’ 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땅끝 주변에는 고운 모래로 이뤄진 유명 해수욕장이 곳곳에 있고 체험어장, 해양자연사박물관 등도 있어 가족단위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다. 송호리 해수욕장 인근에는 땅끝오토캠핑리조트가 조성돼 있다. 캐러밴 10대, 오토캠핑장, 야영장 등 부대시설을 갖췄다. 땅끝에서 북평, 북일면을 잇는 해변도로도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졌다. 한자리에서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두륜산 대흥사 일원은 연간 70여만명이 찾는 해남의 대표 관광 명소로 전남도가 최근 발표한 ‘전남 으뜸경관 10선’에 선정됐다. 두륜산 중턱에 자리잡은 대흥사는 백제시대 창건돼 서산대사의 법맥을 이은 13대 종사와 13대 강사를 배출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1000개의 옥불이 모셔진 천불전과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었던 서산대사의 유품이 보관된 표충사, 조선 차의 중흥기를 만들어 낸 초의선사의 일지암 등 발길 닿는 곳마다 찬란한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대흥사까지 오르는 십리 숲길 또한 각양각색의 난대림이 터널을 이루고 있고 계곡과 물이 어우러져 구곡구유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또한 1.6㎞ 거리의 국내 최장 두륜산 케이블카를 타고 고계봉에 오르면 새순이 돋아나는 두륜산의 봄과 멀리 다도해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날씨가 맑은 날은 제주도 한라산까지 볼 수 있다. 해남읍 연동리에는 국문학의 비조라 일컬어지는 조선시대의 시인인 고산 윤선도의 종가가 있다. 고산 윤선도 고택은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적인 종택이자 전통 고가로 잘 알려져 있다. 500년 된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녹우당’으로 불리는 사랑채와 한때 아흔아홉 칸에 달했던 수백년 된 고택 곳곳은 그 자체로 오랜 역사와 전통의 고즈넉한 멋을 풍기고 있다. 고산 윤선도 전시관에서는 국보 240호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과 고산의 어부사시사 등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지녔던 윤씨가 인물들의 가보들을 둘러볼 수 있다. 고산 문학의 배경이 된 금쇄동과 수정동이 있어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자연 속에서 은둔하며 살아갔던 고산의 심경을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이 산재해 있다. 2007년 개관한 우항리 공룡박물관은 400여점의 공룡 관련 화석과 희귀전시물들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공룡박물관이다. 아시아 최초로 전시되는 알로사우루스 진품화석, 높이 21m에 이르는 조바리아, 공중에 재현된 우항리 익룡 등 45점의 공룡 전신화석 등이 갖춰져 있다. 각종 전시물의 거대한 위용은 타임머신을 타고 공룡의 세계에 도착한 듯한 착각을 들게 하기 충분하다. 박물관은 시대별 공룡실, 중생대 재현실, 해양파충류실, 익룡실, 새의 출현실, 거대 공룡실 등 전시실과 공룡 관련 영상을 상영하는 영상실, 어린이 공룡교실 등이 있다. 공룡박물관과 연결된 황산면 우항리는 천연기념물 394호로 세계 최대의 익룡 발자국 등 희귀한 공룡유적으로 가득한 곳이다. 이 일대의 해안가를 따라 5㎞에 이르는 공룡 화석지는 공룡 발자국 등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생물 교과서다. 이곳은 세계 최대 익룡 발자국(25~30㎝)과 세계에서 유일하게 익룡·공룡·새 발자국 화석이 함께 발견된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물갈퀴새 발자국 화석 등 화려한 수식어를 몰고 다니는 세계적인 화석지로 알려졌다. 야외공원에도 실물 크기 공룡들과 놀이시설이 넓게 조성돼 가족단위 관광객과 어린이 체험학습 장소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문내면의 우수영 앞바다는 거센 물살로 인해 조류의 흐름이 우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해 ‘울돌목’이라고 부른다. 울돌목에서 1597년 음력 9월 16일 이순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은 단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격파해 세계 해전사에 유례없는 대전승으로 기록되고 있는 명량대첩을 이끌었다. 이순신 장군이 강조했던 ‘필사즉생 필생즉사’(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전투 장소다. 이를 기념해 조성된 우수영 기념공원에는 명량대첩비와 임진왜란 당시 사용했던 각종 전술 장비들을 보여 주는 전시관 등이 마련돼 있어 소중한 역사체험의 현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인근에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충무사도 있다. 명량대첩 시기를 즈음해 매년 가을 명량대첩제가 개최된다. 해상전투 재현, 조선시대 문화 체험 등의 행사가 열려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우수영은 임진왜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우수영 강강술래가 전해 내려오는 고장이기도 하다. 해남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먹거리 한국 대표 하얀 명품쌀… 해풍이 키운 초록 배추… 국민 간식 노란 고구마 <명품쌀> 해남 옥천농협의 ‘한눈에 반한 쌀’은 2003년부터 지금까지 총 10차례에 걸쳐 소비자가 뽑은 전국 고품질 브랜드 쌀에 선정됐다. 13년 연속 전남 10대 고품질 브랜드쌀로 선정된 우리나라 대표 명품 쌀이다. 재배 초기부터 고품질 생산과 품종 혼입 방지를 통한 엄격한 유통관리로 2005년에는 전국 최초 러브미 인증을 받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영국·독일 등 유럽에 수출을 개시했고 올해는 중국 쌀 수출 가공공장으로 선정되는 등 외국에서도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배추> 해남은 전국 최대 배추 주산지로 겨울배추 기준으로 전국 생산량의 80%를 차지할 정도다. 해남배추는 중부지역의 작기가 짧은 배추에 비해 70~90일을 충분히 키워 내 쉽게 무르지 않고 황토땅에서 해풍을 맞고 자라 미네랄이 풍부하다. 특유의 단맛도 가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절임배추로 김장 문화가 확산되면서 해남산 절임배추의 인기도 상종가를 보이고 있다. <고구마> 노오란 속살에 달짝지근한 맛으로 늦은 저녁 시간 출출할 때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 간식거리로 그만인 게 바로 고구마다. 고구마의 명성을 지켜 온 지역인 만큼 웰빙 자연식으로 영양도 듬뿍 담겨 있다. 해남고구마는 전국 생산량의 12%, 전남 생산량의 52%가량을 차지한다. 생육에 적합한 기후와 토양은 물론 전국 최초 조직배양 무병묘 육성 등 품질 향상을 위한 노력은 해남고구마를 전국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잡게 했다. 해남고구마는 2008년 지리적 표시 42호로 등록됐다. <김> 청정한 땅끝바다에서 나는 김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담은 바다의 선물이다. 전국 최대 물김 생산지인 해남군은 지난해 8만 9000t의 물김을 생산해 사상 최고액인 660억원의 전체 위판액을 기록했다. 특히 전통 지주식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는 황산면 지주식 김은 2014년산 김이 전국 최초로 친환경 유기수산물 인증을 받은 데 이어 2015년산 김도 인증을 획득하면서 고품질 해남 수산물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토종닭> 해남읍에서 삼산면으로 넘어가는 돌고개를 중심으로 토종닭과 오리 요리 전문점이 단지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육회에서부터 불고기, 백숙, 닭죽까지 토종닭을 이용한 코스 요리로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또한 음식점마다 한방전복탕, 닭날개구이, 묵은지 삼계탕, 소금구이 등 다양한 요리법을 개발해 선보이는 해남의 대표 먹거리촌이다. 해남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법정서 아델 ‘헬로’ 개사해 반성한 피의자…판결은?

    법정서 아델 ‘헬로’ 개사해 반성한 피의자…판결은?

    “And your honor I‘m sorry, sorry, sorry, sorry.” (존경하는 판사님 잘못했습니다) 최근 미국 워시트노 카운티 법정에서 판결을 앞둔 피의자 브라이언 얼 테일러(21)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부른 노래다. 영국 팝가수 아델의 노래 ‘헬로’(Hello)를 개사했다. 옛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하고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는 본래 노래에서 옛 애인은 판사와 피해자, 자신의 어머니가 됐다. 불법 감금과 총기 은닉 휴대 등 중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던 그는 법정에 선 뒤 자신의 반성문을 노래로 만들어왔다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존경하는 판사님, 내가 저지른 모든 일에 대해 사과하고 싶습니다. 내가 선택한 이 삶을 잘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판사님 알아주세요. 내가 그 가능성을 없애서 판사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엄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피해자도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판사님.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이에 판사는 “노래에 소질이 있다”며 칭찬했지만, 혐의에 대해서는 17년 징역형을 내렸다. 한편 테일러는 이번 재판 외에도 절도죄와 신용 카드 개인 정보 유출 혐의 등에 대해 오는 24일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사진·영상=M Live/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자신이 벤 나뭇가지에 봉변당한 나무꾼☞ “죽어도 못 보내!” 신부 입장 중 드레스에 뛰어든 아이
  • 제프 버클리 미공개 음원 23년 만에 공개

    제프 버클리 미공개 음원 23년 만에 공개

    단 하나의 정규 앨범을 남기고 요절한 비운의 천재 뮤지션 제프 버클리(1966~1997)의 미공개 음원이 23년 만에 공개됐다. 소니뮤직은 버클리의 두 번째 유작 ‘유 앤드 아이’를 발매했다. ‘유 앤드 아이’는 버클리의 첫 번째 스튜디오 세션 레코딩으로 녹음 시점은 1993년 2월이다. 1994년 정규 1집 ‘그레이스’를 발표하기 1년 6개월 전이다. 밥 딜런의 ‘저스트 라이크 어 우먼’, 레드 제플린의 ‘나이트 플라이트’ 등의 커버곡과 자작곡 ‘그레이스’ ‘드림 오브 유 앤드 아이’의 데모 버전 등 10곡이 수록됐다. 앨범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스케치성 녹음이기 때문에 완성된 풀밴드 편곡은 아니지만 기타 한 대에 얹은 버클리의 목소리는 소극장 라이브와 같은 느낌을 준다. 자신을 키워 주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사랑을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유명 싱어송라이터 팀 버클리가 친부다. 제프 버클리는 생전 선배 가수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밥 딜런과 레드 제플린이 그의 팬이며 데이비드 보위의 경우 버클리의 1집을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앨범으로 꼽기도 했다. 라디오헤드와 뮤즈 등 후배 가수에게도 큰 영향을 줬다. 유명 음악잡지 ‘롤링스톤’은 그를 역대 최고 보컬리스트 100명 중 한 명으로, 1집을 역대 최고 앨범 500개 중 하나로 선정했다. 그는 2집 ‘마이 스위트하트 더 드렁크’를 녹음하던 중 익사 사고로 세상을 떴다. 미완성 2집과 라이브 앨범 등 사후에만 10개의 앨범이 쏟아졌다. 최근 전기 영화 ‘굿바이 버클리’가 국내에서도 개봉돼 그의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3300㎞를 걸었다, 나를 찾았다

    3300㎞를 걸었다, 나를 찾았다

    영화 이야기 한 자락. 지난해 개봉됐던 미국 영화 ‘어 워크 인 더 우즈’다. 로버트 레드퍼드(80)가 여행가인 빌 브라이슨을, 닉 놀테(75)가 친구 카츠 역을 맡았다. 전체적인 얼개는 단순하다. 장례식장에 다녀오던 빌이 난데없이 완주에 무려 5개월 이상 걸린다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도전에 나서고, 이 여정에 판이한 성격의 카츠가 합류하면서 빚어지는 사건들을 그렸다. 시골마을에서 봉변을 당하고, 야생 곰을 만나 죽을 고비도 넘기고, 심지어 조난까지 겪는다. 새 책 ‘할머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도 이와 비슷하다. 영화보다 무려 80년 전에 실제 있었던 영화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와 다른 점은 주인공이 여성 혼자였고, 영화와 달리 중도 포기 없이 완주했다는 것이다. 그 기간만 무려 146일. 오로지 두 발로 삶의 무게에 맞선 3300㎞의 여정이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미국 조지아주부터 메인주까지, 애팔래치아 산맥을 따라 14개 주에 걸쳐 있다. 1921년 조성이 시작돼 1937년쯤 얼추 완성됐다. 미국 내에선 ‘3대 트레일’로 꼽히는, 트레커들의 ‘로망’이다. 우리의 ‘백두대간 종주’쯤 될까. 거리로야 견줄 수 없지만, 도전과 성찰이라는 걷기의 본질적인 면에서는 같지 싶다. 1955년 5월 3일. 오하이오 촌구석에 살던 예순일곱 살의 엠마 게이트우드가 애팔래치아 트레일 앞에 선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도보여행길이다. 그가 가족들에게 남긴 말은 “어디 좀 다녀올께!”가 전부다. 열한 명의 자녀와 스물세 명의 손자손녀를 둔 어머니이자 할머니가 했다고는 보기 힘든 행동이다. 이후 방울뱀의 습격, 추위와 배고픔 등 야영지의 수많은 밤을 견뎌낸 엠마는 146일째 되던 날 마침내 종착지인 캐터딘 산 정상에 이른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홀로 완주한 첫 번째 여성이 되는 순간이다. 그는 이에 머물지 않고 꾸준히 도전에 나서 세 차례나 완주에 성공했다. 이 길을 세 번 완주한 이는 남녀를 통틀어 그가 처음이다. 엠마는 35년 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열한 명의 아이를 키워낸 어머니였다. 그는 고통의 세월을 견디다 쉰네 살에 이혼에 성공한다. 그가 평온한 노년을 뿌리치고 애팔래치아로 향한 이유는 뭘까. 수없이 쏟아진 질문에 그는 그저 그러고 싶었다고만 답했다. 누구도 그의 속내를 짐작할 수는 없지만, 수십년 동안 짊어졌던 삶의 상처와 고통들이 동력이 됐을 거란 추정은 할 수 있겠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수협 첫 여성 임원 강신숙 이사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수협 첫 여성 임원 강신숙 이사

    “진주가 있으면 뭐합니까, 꿰어야 보배죠, 저의 가치를 알아봐 주시고 그 가치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진주를 꿰어준 회장님을 비롯한 모든 수협 임직원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강신숙(55) 수협 지도경제상임이사를 만나려 했던 것은 수협 최초의 여성 등기임원이라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었다. 여상(女商) 출신이라는 게 눈에 들어왔고, 친화력 속에 숨어 있을 법한 그녀의 치열한 삶이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것이 더 궁금했다. → 수협 54년 역사상 최초 여성 임원이다. 힘은 뭔가. -최연소 여성부장, 최초 여성본부장, 최초 여성 임원까지.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에 목표를 설정한 것은 아니지만 주어진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겠다는 목표의식과 끊임없는 도전, 긍정적인 몰입이 여성 임원이 될 수 있었던 자양분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 이 자리까지 올라올 것으로 생각했나. -수협에 몸담고 생활한 지 3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입사 당시에는 임원이 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말단 행원 시절엔 고객의 자산증식에 도움되는 최고의 금융전문가가 되고자 했고 지점장이 되어서는 남들이 인정하는 지점장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 여성 후배들에게 큰 희망이 됐을 것 같다. -수협의 분위기는 보수적이다. 고위직 같은 자리에 보이지 않는 벽, 즉 유리천장이 있다. 수협의 유리천장이 깨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여성 후배들이 미약하지만 저를 롤모델로 삼고 벤치마킹해서 도전했으면 싶다. 누구도 걷지 않았던 길을 처음으로 걸은 셈이기 때문에 그만큼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 계속해서 1등을 달려왔다. 쉽지 않은 길이었을텐데. -애사심이 있었고, 업무에서 최고가 되려는 욕심도 있었다. 언제 나 자신에게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내 평소 철학이다. 그 길을 쫓아갔더니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내 인생의 8할은 수협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 아내·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요즘은 국가적으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고, 맞벌이가 보편화되다 보니 워킹맘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관대해진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 가사의 대다수는 여성의 몫인 것 같다. 나 또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두 아이를 기르는 엄마로서 힘든 적도 많았고, 마음의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난 사회에서의 일과 가정은 철저하게 구분했다. 출근할 때는 엄마·며느리가 아닌 회사 직원으로서, 퇴근 후에는 가정주부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가족들의 응원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 → 성공할 수 있겠구나고 느낀 시점이 있었다면. -여성 최초 본부장이 되었을 때 막연히 임원 도전 목표를 세운 것 같다. →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세안을 할 때, 칫솔질을 할 때, 거울을 볼 때 항상 마인드 훈련을 해왔다. “나는 잘할 수 있다”, “입꼬리는 항상 올리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고객을 맞이하자” 등의 말을 수없이 되새겼다. 내 자신한테 하는 훈련을 아침마다 수없이 반복했다. 그 결과 사람들을 대할 때뿐만 아니라 매사에 항상 자신감 있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걸 보고 그런 평가를 내린 것 같다. → 그렇게 하다 보면 외롭거나 공허하지 않았나. -많았다.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뚫기 위해, 보이지 않는 남성 위주의 조직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 → 앞으로 계획은 뭔가. -3월 3일 취임한 이후 어깨가 한층 무거워졌다. 그래서인지 새벽 2시만 되면 눈이 떠진다. 어떻게 하면 두 마리 토끼, 건전성과 수익성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때문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92개 조합, 435곳의 영업점 수익을 올릴 수 있을지, 마케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3월 말까지 구상했던 것에 대해 구체적인 세부계획을 세워 4월 1일 수협중앙회 창립기념일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오나. -주인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애사심이 있기에 주인의식도 나온다. 그리고 긍정적 몰입과 열정, 끊임없는 도전이 큰 에너지가 된 것 같다. 하지만 때로는 피곤할 때도 있다. 원형 탈모증이 생겨 머리에 주사도 맞았다. 눈에서는 실핏줄도 터졌다. 몸이 먼저 반응하더라. 하지만 난 그게 슬픈 게 아니라 오히려 기뻤다. 내가 죽을힘을 다해 하고 있구나, 이게 열정이구나고 생각했다. → 도전은 계속되는 건가. -이제 저의 목표는 ‘강한 수협, 돈되는 수협’이다. 수협 임직원이 하나 되어 명실상부한 어업인을 위한 수협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 가족한테도 한마디 해달라. -제가 수협 최초의 여성 임원이 되기까지는 가족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회사일로 힘들어 할 때 가족들이 저에게 했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고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었던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도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으면 한다. → 박수 치고 있을 여성 후배한테도. -수협에서 누구도 걷지 못한 길을 만들어 왔다. 도로에 비유하자면 1차도로를 2차도로로 만들어 놓은 셈이다. 그래서 여성 후배들은 2차도로에서 3차도로로 넓혀 신선한 길을 계속해서 달려주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가가 되라고 강조하고 싶다. 끊임없이 실력을 키우고, 준비하고, 항상 깨어 있고, 긍정적인 생각과 열정을 가지고 쉼 없이 도전을 하다 보면 나보다 좋은 성과를 거두리라 생각한다. 최용규 부국장 ykchoi@seoul.co.kr ■강신숙 이사는 전북 순창 출신으로 소녀시절 스튜어디스가 꿈이었다. 1979년 수협은행에 들어와 오금동지점장, 심사부장, 강북지역금융본부장, 강남지역본부장, 부행장을 지냈다. 전주여상과 방통대를 졸업했고, 연세대에서 정치행정학 석사를 받았다.
  • [톡!톡! talk 공무원] 이경민 특허청 심사관

    [톡!톡! talk 공무원] 이경민 특허청 심사관

    “공직자로 변신해 업무가 바쁜 것은 별반 다르지 않지만, 계획적이고 예측 가능한 생활이 가능해졌습니다.” 삶의 가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경민(41) 특허청 차세대수송심사과 심사관은 국내 굴지 대기업의 전도유망한 연구원에서 공직자로 변신한 사례다. 대기업 입사와 2010년 뒤늦은 결혼, 출산 등으로 숨 가쁘게 돌아가던 일상은 2012년 공무원인 부인의 세종시 발령으로 변화를 맞았다. 논의 끝에 내린 결론은 “가족끼리 떨어져 살지 말자”였다. 그가 꿈꿨던 연구원 대신 가족에 무게를 둔 것이다. 때마침 민간경력특채(5급)가 도입돼 특허 공무원의 길을 선택했다. ‘부창부수’라고 부인도 2015년 특허청으로 길을 돌렸다. 이 심사관은 “박사후 연구원(포스닥)까지 마친 후 공직자로 변신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면서도 “기업에 근무할 땐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게 돼 아이와 대화도 변변찮아져 늘 미안했는데 이제 많은 시간을 함께한다”며 웃었다.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자평하면서도 ‘두 동강’ 난 급여에 집사람이 가끔 후회하는 것 같다고 살짝 귀띔했다. 현재 그는 해양플랜트와 선박 분야 특허심사를 담당하고 있다. 기계항공을 전공했고 경력도 있지만 과거 근무경험을 지닌 심사는 불허하기 때문이다. 가끔 선배 심사관이 민간 재직 때 발명자로 참여한 특허를 심사하면서 관심을 가져줄 때는 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특허 생산자와 심사관의 차이에 대해 “개발자는 실패 때 자신의 노력으로 회복할 기회를 맞지만 심사관은 독점적인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기에 판단을 둘러싸고 고민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또 조금만 다듬으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강한 발명이 많다며 특허 출원서에 대한 관심 부족을 아쉬워했다. 그는 “짧은 심사 경력이지만 대기업 출원에도 빈틈을 수두룩이 본다”면서 “게임도 컴퓨터보다 사람과 하는 게 어려운 것처럼 출원서에 발명자의 의도를 잘 녹여야 어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생활의 변화에는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오전 7시 출근하는 유연근무제를 신청해 오후엔 육아를 분담하고 있다. 다만 출원물량에 비해 심사관이 부족해 퇴근 후에도 업무에서 손을 뗄 수는 없다. 최근 활발해진 민간 전문가의 공직 채용엔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시했다. 이 심사관은 “민간의 경쟁력을 공직에 도입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특허청 심사관처럼 실적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분야의 경우 비교·평가할 수 있지만 법과 제도, 예산에 맞춰 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에서 민간 출신이 전문성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기업의 고위 간부가 임금 등 처우와 미래를 포기하고 국·과장으로 공직에 들어오는 모험을 걸 수 있을까에 대해선 의문”이라며 “공직을 경력관리 수단으로 활용하면 곤란하다”고 끝을 맺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반려동물 행복 관악에 답 있다

    전국 반려동물 1000만 마리 시대를 맞아 서울 관악구가 동물 복지 실천으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회 만들기에 나선다. 첫 번째로 반려동물에 대한 교육 과정을 전국 최고의 수의사와 함께 만들었다. 관악구는 오는 30일부터 8주 동안 매주 수요일 관악구 평생학습관 5층 대회의실에서 서울대 동물병원 교수진과 수의사가 강사로 직접 나서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행복한 삶’ 강좌를 연다고 15일 밝혔다. 강좌는 사람과 반려동물이 함께 사는 세상, 고양이의 삶, 우리 아이가 아파요, 반려동물의 올바른 영양학, 반려 특수동물들의 매력 등 현재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뿐 아니라 앞으로 기르고 싶은 이들의 흥미를 끌 만한 다채로운 내용으로 꾸며졌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인구는 점점 늘고 있지만 유기동물 발생, 아파트 등 공동주택지에서 동물 소음과 냄새 등으로 말미암은 이웃과의 다툼 등 문제점도 그만큼 늘고 있다”면서 “반려동물과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 이웃 등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마련된 무료 강좌이니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말했다. 참여를 원하는 주민은 오는 29일까지 구청 평생학습관(02-879-5679)으로 신청하면 되며, 60명까지 선착순 마감 예정이다. 유 구청장은 이번 강좌에서 동물을 삶의 동반자로 여기는 반려동물 문화가 더욱 확산하기를 기대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미얀마Myanmar가 버마Burma에게

    미얀마Myanmar가 버마Burma에게

    미얀마를 다녀온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보다 두 번째가 더 좋다고. 처음엔 발전하지 않아서 불편하지만, 두 번째는 변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느낀다고. 그러나 어쩌나, 미얀마는 지금 격변하고 있다. 반세기 넘는 군사 독재가 끝나고 민주정부가 들어섰다. 나의 첫 미얀마 여행. 미얀마가 변해서 좋았다. 미얀마는 다시 버마가 될까? 최근 투자차 미얀마에 간다는 지인을 만났다. 사람들은 그와 마주칠 때마다 ‘어디 간다고 했지? 라오스? 캄보디아?’라고 묻곤 했었다. 만약 그가 미얀마가 아니라 버마라고 말했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1983년 버마현재의 미얀마 수도 랑군현재의 양곤에서 일어났던 폭발사고 뉴스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100년 이상 영국의 지배를 받았고 반세기 이상 자의 반, 타의 반 고립주의를 펼쳤던 사회주의 국가. 1958년부터 몇 차례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 독재와 권력의 부패로 내정이 어렵고 국민들의 삶이 곤란한 나라 말이다. 1974년부터 불려 왔던 ‘버마 사회주의 공화국’은 1989년 군사 정권에 의해 ‘미얀마 연합’으로 바뀌었다. 당시 수도 랑군은 양곤이 됐다. 양곤은 ‘갈등의 종식’이라는 뜻. 하지만 이름을 바꾼다고 갈등이 금세 종식되지는 않았다. 1990년에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 여사가 이끄는 NLDNational League for Democracy당이 압승을 거두었지만 조직적인 방해로 정권 이양은 좌절됐다. 지난 연말 양곤을 방문했을 때 미얀마는 반세기 만의 민주화를 눈앞에 둔 과도기였다. 25년 만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다시 치뤄진 총선에서도 결과는 역시 NLD당의 압승. 그러나 과거 실패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분위기는 낙관적 기대 속에서도 조심스러웠다. 삶의 풍경은 역사책 속의 버마와는 많이 달랐다. 콜라도, 양담배도, KFC도, 아메리카노도, 아웅산 수치 여사의 기념 티셔츠도 원 없이 유통되고 있으니, 미얀마는 이제 더 이상 닫힌 나라가 아니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나라다. 아직은 조금 불편할 뿐. 1989년 버마에서 미얀마로의 국명 개칭, 양곤Yangon에서 네피도Naypidaw로의 수도 이전 등 군사 정권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뤄졌던 결정들이 다시 원상복귀될지는 미지수다. 더 급한 문제들이 산재해 있으므로. 양곤은 다만 느릴 뿐 농담 같지만 사진만 보고도 한눈에 라오스나 캄보디아, 심지어 미얀마의 다른 도시와도 구분되는 양곤의 거리 풍경을 찾고 싶다면 오토바이가 열쇠다. 1999년부터 양곤 시내에서는 오토바이 운행이 금지되었기 때문. 우편배달부, 교통경찰 등 특수한 경우에만 예외가 적용된다. 그러나 오토바이가 없다는 사실이 교통체증 해소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아직 택시미터기가 보급되지 않아서 요금을 흥정하고 타야 하는 상황. 후진적인 시스템이라고 툴툴 거리며 기본적인 ‘바가지’를 각오했지만, 결론적으로 상황은 그 반대였다. 극심한 교통체증을 바라보며 택시 안에 앉아 있자니 시시각각 요금이 올라가는 미터기가 없어서 오히려 다행인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기사는 내내 평상심을 유지한다. 그것은 마치 미얀마의 현주소, 그리고 사람들의 태도처럼 느껴졌다. 해외기업들의 투자가 급증하고, 그에 다른 경제 성장의 속도는 빠르지만 부족한 인프라 문제는 잦은 충돌을 일으킨다. 전력생산량이 부족해 정전도 잦다. 하지만 단련된 인내심과 낙관주의, 다문화를 초월하는 종교적 정체성 그리고 다소 내성적인 그들의 성격은 조급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100년이 넘는 영국의 통치조차 이 나라의 자부심과 심성을 흔들지는 못했다. 1948년에 독립에 성공하자 미얀마는 영어식 도로명을 모두 버리고 미얀마어로 교체했다. 그 자부심의 상징이 바로 쉐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다. 높이가 무려 100m나 되는 황금탑. 처음에는 고작 10m에 불과했던 탑을 10배 높이로 키운 것은 각 왕조와 백성들이 헌납한 금과 보석들만이 아니었다. 언제라도 찾아와 헌화하고 기름을 붓고 소원을 비는 마음들이 만들어낸 ‘공든탑’이다. 그 마음을 피부로 느껴 보라는 듯 쉐다곤 파고다는 맨발로만 입장할 수 있다. 돌마루를 걷는 맨살의 긴장을 풀어 주는 것은 낮 동안 달구어진 지열의 온기다. 그리고 모든 것을 허락한다. 경건한 기복의 장소임은 물론이고 가족에게는 최고의 나들이 장소, 연인에게는 데이트 장소가 되어 주며, 한 해 760만명에 이르는 관광객의 호기심 어린 눈길까지 모두 받아 준다. 종교의 자유는 있지만 이데올로기의 자유는 통제됐다. 15년 넘게 정부의 감시와 연금 속에 살아야 했던 아웅산 수치 여사가 산증인이다. 15년 동안 통행조차 금지되었다는 그녀의 집 앞 도로는 이제 관광버스가 꼭 한 번 들르는 명소가 됐다. 아웅산 장군의 초상화 아래 굳게 닫힌 철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것이 고작이지만 과거에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녀의 얼굴이 박힌 티셔츠와 각종 기념품이 흔하게 목격될 만큼 미얀마 정치의 공기는 바뀐 상태다. 이제 남은 숙제는 크로니군부와 결탁해 부를 축적한 소수 기득권 세력의 개혁이지만 그것이 민주화보다 어려운 과제일 수 있다는 우려가 앞서는 이유는 우리 역사의 투영일지도 모르겠다. ●높고 아름다운 탁발 문화 미얀마의 착한 기업들 미얀마에서 기부와 자선은 부자들만의 몫이 아니다. 누구든 나눌 수 있는 것을 나눈다. 스님들은 발우에 고기가 들어오면 고기를 먹고, 밥이 오면 밥을 먹는다. 또 발우가 넘치면 더 가난한 사람들과 나눈다. 미얀마의 사회적 기업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 나는 그것이 탁발 문화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예쁘고 좋으면 사야지 포멜로Pomelo 문전성시였다. 소수부족의 여성들이 수공예로 만들었다는 소품은 고리타분하지 않았다. 각 부족의 전통 유산을 모던한 디자인으로 재해석한 소품들은 귀엽고, 세련되고, 컬러풀하며, 경제적이기까지 하다. 마음속으로 천 가방 하나를 점찍어 두고 가게를 한 바퀴 돌고 나니 물건이 사라졌다. 예쁜 것을 보는 눈은 다 똑같은 모양이다. 또 놓치기 전에 천막천을 재활용한 것 같은 명함지갑은 나를 위해, 출산을 앞둔 후배를 위해 예쁜 유아용 턱받이를 하나 샀다. 아이가 착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포멜로가 비영리 사회적 기업이기 때문. 판로를 확보하기 어려운 영세사업자, 장애인 등 40개 이상의 파트너 그룹을 지원하고 있다. 쉽게 말해 수백명의 가난하지만 재능 있는 장인들이 포멜로를 통해 생계를 보장받고 있는 것이다. No (89) 2nd floor, Thein Phyu Road, Botataung Township, Yangon, Myanmar 10:00~22:00 +95 1 295 358 www.pomelomyanmar.org ▶강한 여자는 빵을 굽는다 양곤 베이크 하우스Yangon Bake House아메리카노와 달달한 케이크를 주문했다. 옆 테이블의 외국인은 브런치 메뉴의 햄버거와 샐러드를 먹고 있었다. 역시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미얀마의 평범한 빵집 풍경. 그러나 이 곳 역시 누군가에게는 ‘기회와 희망의 일터’다. 양곤 케이크 하우스는 여성들에게 10개월 동안 제빵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빈곤층 여성들의 삶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마련.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직장에서 돈을 벌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바람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빵 같은 기호식품을 그저 돕자고 먹어 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양곤 베이크 하우스의 빵과 케이크들은 맛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맛있는 빵을 먹는 평범한 행위가 미얀마 여성들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다니, 꿈의 이스트가 잘 부풀고 있다. Pearl Condo, Block C, Ground Floor, Kaba Aye Pagoda Road, Yangon, Myanmar 7:00~19:00 +95 1 925 017 8879 www.yangonbakehouse.com ▶미얀마 예술가들의 서바이벌 골든밸리 아트갤러리Golden Valley Art Gallery 골든밸리라는 동네 이름이 무색하게 관광버스가 접근할 수 없는 비포장 도로였다. 그래도 5분이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족히 15분은 걸은 것 같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아트 갤러리. 44명의 미얀마 예술가들이 그린 200점의 작품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잠시의 어리둥절함을 접고 나니 한 장의 초상화를 배경으로 두 남자가 서 있는 초상화가 눈에 들어왔다. 그림 속 초상화의 주인공은 미얀마 미술계에 현대 서양화 화풍을 확립한 미술가 우바난U Ba Nyan이고 두 명의 남자는 그의 제자 두 테인 한U Thein Han과 현재 85세에 이른 우룬계U Jun Gywe다. 골든밸리 아트갤러리는 이들의 계보를 4대째 이어 오고 있다. 미얀마의 미술교육은 민간의 후원으로 겨우 유지되고 있다. 전업 작가로 생계를 꾸려 나가기 힘든 그들에게 작업 공간과 식사를 제공하고 작품 판매 대행하는 것이 바로 골든밸리 아트갤러리의 역할이다. 1987년부터 시작한 갤러리의 운영자 역시 화가 출신인 피터Peter와 비키Vicki 부부다. No. 54/D, Golden Valley, Bahan Township, Yangon, Myanmar +95 1 513621 www.gvmyanmarartcentre.com ●2개의 날개로 날다 세도나 호텔 양곤Sedona Hotel Yangon ‘오바마가 묵었던 호텔’이라는 설명은 꽤 함축적이다. 국빈을 모실 만큼의 호텔이라는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하지만 오바마도 모르는 세도나의 이야기가 있다면, 이건 설명이 필요하다. ‘한 20분이면 도착합니다.’ 한밤중에 도착한 공항에서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드물다. 예상치 못했을 만큼 선선한 밤공기에 익숙해질 때 즈음 호텔에 도착했고. 체크인도 일사천리라 침대로 직행하는 길은 순탄하기만 했다. 2시간 반도 시차는 시차인지라 한국은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한밤중. 곯아떨어지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커튼을 열었을 때 비로소 발견한 것은 통유리를 통해 훤히 안이 들여다보이는 욕실이었다. 필요에 따라 열고 닫을 수 있는 스크린을 설치해서 넓은 공간감을 노린 설계다. 갈색 목재로 차분하게 마감한 객실은 세련되면서도 가볍지 않은 느낌. 호텔의 전체 인테리어를 관통하는 디자인 패턴은 미얀마의 그 유명한 우산빗살 문양이다. 로비의 높은 천장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유리조형물도 우산을 형상한 작품들이다. 벽면에도 카페트에도, 심지어 화장실 표지판 위에도 반복된다. 침대 조명의 생김새도 자세히 보니 접힌 우산 모양이다. 책상 위 등으로 시선을 옮기니 이건 미얀마의 전통칠기 밥그릇 모양이다. 양곤에 도착해 아직 어느 곳도 방문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들의 자긍심 어린 문화유산들을 이미 호텔에서 만나기 시작했다. 사웅Saung라는 전통악기도 객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몇해 전 양곤에 왔을 때도 세도나 호텔에 묵었다는 동행이 그 사실을 이틀 후에 깨달은 이유는 우리가 머문 인야 윙Inya Wing이 지난해 10월 가동을 시작한 신축 빌딩이었기 때문이다. 1996년에 세운 가든 윙Garden Wing과 합하면 총 객실 수가 797개나 된다. 이미 맛과 서비스로 소문난 가든 윙의 레스토랑들이 있으니 인야 윙에서는 부대시설을 늘리기보다는 세련된 스타일과 품격에 더 신경을 쓴 것으로 보였다. 29층 높이에 431개의 객실과 미얀마 최대 규모라는 피트니스 센터는 물론 사우나와 자쿠지, 수영장과 테니스 코스를 갖추었을 뿐 아니라 요가와 줌바Zumba 클래스 콘텐츠도 확보했다. 식음료 시설로는 올데이 다이닝이 가능한 드퀴진D’Cuisine과 듣기만 해도 시원한 아이스바Ice Bar만 추가했다. 세도나 호텔에는 미얀마 디자이너 모 홈Mo Hom의 부티크숍이 입점해 있는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파리로 패션 공부를 떠나기 전 그녀가 세도나의 모기업인 케펠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는 것. 이제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 돌아온 그녀의 의상들은 미얀마 전통 원단을 사용하고 있지만 파리에서도 도쿄에서도 통할 만큼 모던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품숍은 명품 시계 브랜드인 프랭크 뮬러Franck Muller와 바케 & 스트라우스Backes & Strauss다. 객실의 욕실 어메니티는 록시땅 브랜드로 통일하여 여성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2011년 테인 세인Thein Sein 대통령 취임부터 민주화 개혁 개방을 추진해 온 미얀마는 2014년 미국의 경제제재 완화 이후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지난해 미얀마의 실질 GDP 성장률은 8%대 후반. 그 징표가 바로 호텔 업계의 활황이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몰려들면서 호텔 수요가 급증했고, 이미 세계적인 체인들이 속속 추가 건설을 발표한 상황. 이런 환경에서 싱가포르 계열의 호텔 세도나가 기존 호텔의 규모를 2배로 확장한 것은 선견지명이 분명하다. 호텔에서 불과 15분만 이동하면 유럽풍 건물 사이로 노점이 어지럽고 급격히 늘어난 차량의 숫자로 교통지옥을 이루는 변화의 길목에 접어드는 도시. 세도나 양곤호텔은 그곳으로부터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경계선에서 바깥세상과의 접점으로 존재하고 있다.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넓고 푸른 인야 호수는 양곤에 있는 2개의 호수 중 하나이자 아웅산 수치 여사의 집을 품고 있는 곳이다. 한국도 멀지가 않았다. 호텔 바로 맞은편에는 베트남 시행사 HAGL이 5,0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는 대형 쇼핑몰 미얀마 플라자가 12월 초에 개장했다. 미얀마 최고급 쇼핑몰로 더 페이스샵, 토니모리, 비타 500, 락앤락 등도 입점한 상태였다. 한식당 서라벌, 디저트 브랜드 K스노우맨도 개점했다. 요즘 미얀마의 외식계의 핫 아이템은 패스트푸드점, 그 중에서도 지난해 10월에 들어온 KFC. 미얀마 플라자에서 과연 그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세도나가 시범 가동을 시작한 지난해 10월과 그랜드 오픈을 계획하고 있는 올해 3월 사이에는 단순히 5개월이라는 시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이 진행된 총선과 그 결과로 인해 더욱 가속화될 미얀마의 개방을 생각하면 두 지점의 미얀마는 어쩌면 전혀 다른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새가 양쪽 날개로 날아가듯, 미얀마도 균형을 찾지 않겠는가. 세도나의 2개 윙이 클래식과 모던이라는 조화를 이루었듯 말이다. 케펠 랜드Keppel Land Hospitality Management세도나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케펠 랜드 호스피탤리티 매니지먼트사에서 운영하고 있다. 미얀마 양곤과 만달레이의 세도나 호텔뿐 아니라 베트남 하노이와 호치민에서도 세도나 스위트Sedona Suites를 운영 중이다. 세도나 호텔 양곤Sedona Hotel Yangon No. 1 Kaba Aye Pagoda Road, Yankin Township Yangon, Myanmar +95 1 860 5377 www.sedonahotels.com.sg 글 천소현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노중훈 취재협조 세도나 호텔 양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커버스토리] 공포로 태어난 AI, 인류의 친구로 성장했다

    [커버스토리] 공포로 태어난 AI, 인류의 친구로 성장했다

    약 50년 전 ‘스페이스 오디세이’ 첫 등장형체 없이 우주선 시스템 조작 인간 공격 세계 톱클래스의 바둑 기사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결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잔뜩 부풀고 있다. 전체 다섯 번으로 이뤄진 승부에서 초반 두 판을 이 9단이 거푸 패하는 바람에 인공지능에게 인류가 ‘대체’될 수 있다는 원초적 불안감마저 솟아난다. 인간은 이미 자동차를 발명해 인류 발전의 수레바퀴를 끌었던 말들을 역사의 전면에서 퇴장시킨 바 있다. 산업혁명기에 공장 자동화로 길거리로 내앉은 노동자들이 기계 파괴 운동을 벌였던 기억도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일찍부터 인공지능 또는 인공지능 로봇을 호환 마마처럼 그려 왔다.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의 원형을 마련한 첫 영화는 걸작 SF로 손꼽히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다. 이 영화에는 할(HAL)9000이라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등장한다. 수백만년 전부터 인류를 진화시킨 검은 돌기둥 모노리스의 기원을 찾아 목성으로 향한 우주선 디스커버리호에 장착됐다. 승무원들은 오작동을 일으킨 할9000을 정지하려고 하자 우주선 시스템을 조작해 승무원들을 공격한다. 형체는 없지만 승무원과 체스도 두고 사적인 대화도 나눈다. 불리한 상황에 처할 때는 화해를 청하거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하는 등 매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인공지능 개념이 실제 1956년에 생겼다고 하니 영화의 상상력은 놀라울 정도다.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SF 공포물 ‘에이리언’(1979)에서 과학장교 애시로 탈바꿈해 등장한다. 우주 화물선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흉폭한 우주 생명체와 맞닥뜨린 승무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뒤늦게 로봇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애시는 우주 생명체를 군사 무기로 사용하려는 회사의 명령을 받고 승무원들의 죽음을 방조한다. 여주인공 리플리가 ‘에이리언2’(1986)에서 또 다른 로봇 비숍을 만나 1편에서의 트라우마를 드러내기도 한다. 또 다른 걸작 SF ‘블레이드 러너’(1982)를 보면 유전학적으로 만들어진 유기체 로봇 레플리칸트가 나온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정의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철학적인 돌직구를 던지는 작품이다. 이 같은 주제 의식은 이후 등장하는 SF 영화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레플리칸트는 인간과 동등한 지적 능력에, 더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갖춘 존재다. 전투나 우주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입된다. 하지만 수명은 4년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소모품 취급을 받는다. 우주에서 폭동을 일으킨 뒤에는 지구에 거주하는 게 금지된다. 블레이드 러너는 지구에 불법 잠입한 레플리칸트를 ‘폐기’하는 게 임무다. 인간이 하기 벅찬 일을 레플리칸트가 대신해 줘 어찌 보면 풍요로워야 할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에 비쳐지는 세상은 빈민가가 넘쳐나는 디스토피아의 세상을 보여준다. 수많은 질문을 던져 반응을 보는 방식으로 인간과 레플리칸트를 구분하는 보이트캄프 테스트라는 게 등장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오늘날 인공지능 판별법인 튜링 테스트와 같은 개념이다. 인공지능은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터미네이터’(1984)와 워쇼스키 자매의 ‘매트릭스’(1999)에 이르러서는 인류 전체의 평화를 위협하는 ‘절대 악’으로 절정을 찍는다. 인공지능이 정보를 통제하고 로봇이 사람을 지배한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스카이넷은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인류를 없애기 위해 핵전쟁을 일으키고 로봇 군대를 만들어 얼마 남지 않은 인류와 현재, 미래, 과거를 오가며 전투를 벌인다. ‘매트릭스’의 인공지능 시스템도 스카이넷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구를 파괴한 해로운 존재로 인류를 인식한 인공지능은 지구의 새로운 주인이 돼 인간을 가상 공간에 가둬 놓고 사육하며 인간의 생체 에너지로 살아간다. 인공지능이 마냥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2000년을 전후로 인류와의 공존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도 나오기 시작한다. 불안과 공포가 여전히 깔려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희망도 이야기하는 것이다.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바이센테니얼 맨’(1999)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에이. 아이.’(2001),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SF 액션물 ‘아이, 로봇’(2004)이 그렇다. 인공지능 로봇으로 인간의 삶이 보다 자유롭고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유토피아적 상상력이 살짝 엿보인다. 물론 인간과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소모품처럼 사용되고 버려지는 영화 속 로봇 입장에선 디스토피아일 수 있겠다. 대부분 각 가정에까지 인공지능 로봇이 보급되는 세상이 배경이다. 로봇들은 집을 청소하고, 정원을 가꾸고, 물건을 배달하며, 식당에서 시중을 들고 애완견과 아이들까지 돌본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온갖 궂은일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들은 인간이 누리는 편의와 풍요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인간의 감정이 깃든 로봇이 등장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을 한다. ‘바이센테니얼 맨’의 마틴, ‘에이. 아이.’의 데이빗, ‘아이, 로봇’의 써니 모두 인간에게 애정을 느끼고, 사랑을 갈구하고, 인간을 동경하거나, 인간처럼 되기를 원한다. 써니의 경우 인류와 갈등을 일으키는 로봇 무리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2014년 개봉해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인터스텔라’에도 사각 블록 모양의 인공지능 로봇 타스가 나온다. 조금은 평면적이기는 한데 사람 입장에선 가장 긍정적인 인공지능 로봇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주인공과 함께 우주 탐사에 나선 이 로봇이 멸망 위기에 직면한 인류가 생존하는 데 결정적인 조력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SF 영화에 대한 토양이 척박한 한국에도 매우 드물지만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는 작품이 있다. 2011년에 나온 옴니버스 영화 ‘인류멸망보고서’에는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단편 ‘천상의 피조물’이 실려 있다. 이 작품에는 해탈의 경지에 오르는 승려 로봇이 등장한다. 올해 1월 개봉한 ‘로봇, 소리’에서도 인간과 교감하며 동반자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나온다. 잃어버린 딸을 찾아 전국을 헤매는 아버지의 여정을 함께한다. 모두 인공지능 로봇과 적대적인 관계보다는 공존의 가능성을 내비치는 작품이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사고뭉치 아이, 엄마의 식단으로 개선 가능”(英 연구)

    “사고뭉치 아이, 엄마의 식단으로 개선 가능”(英 연구)

    아이의 문제 행동을 영양 보충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나 나왔다. 영국 옥스퍼드대 등 연구진이 문제 행동이 보고된 10대 초중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12주 동안 비타민과 미네랄, 오메가3 지방산(이하 오메가3)이 함유된 영양 보충제를 먹게 해 문제 행동을 개선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결과는 아이들의 식사에 영양소가 부족하면 뇌 건강에 좋지 못한 영향을 줘 반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기존 여러 연구에 증거를 더한다고 말한다. 특히 오메가3는 건강한 뇌 기능에 꼭 필요한 영양소로 알려져 있는 데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절제력 향상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증상 감소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위해 런던 동부 대거넘에 있는 종합중등학교 로버트 클락 스쿨에 다니고 있는 13~16세의 건강한 학생 196명을 대상으로 보충제 섭취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조사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선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영양 보충제를 제공하고 나머지 그룹에는 위약(僞藥)을 줬다. 그리고 연구 동안 아이들의 혈액 표본을 채취해 비타민과 미네랄, 오메가3 수준의 변화를 측정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아이들의 영양소 수치는 초기에 낮았지만 조사 동안 보충제를 섭취한 그룹에서는 현저한 증가가 나타났다. 또한 연구진은 아이들의 행동을 평가하기 위해 검증된 측정 도구인 코너스 평정 척도를 사용해 절제력과 감정 문제 등을 확인했다. 그 결과, 보충제를 섭취한 그룹의 행동은 개선됐지만 위약을 처방받은 그룹의 행동은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연구진은 조사 동안 최소 3회 이상 비행을 저지른 가장 나쁜 문제 행동을 보인 아이들에 관한 자료에 주목했다. 이 그룹에 속하는 평균 아이는 한 주에 한 번 즉 12주 동안 12건의 문제 행동을 일으켰고 일부 학생은 30건의 문제 행동을 일으켰다고 한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로 영양을 보충하면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사례가 50%까지 떨어졌다고 밝히면서 오메가3로 반사회적 행동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 학술지 ‘주의력 장애 저널’(Journal of Attention Disorders)에 실렸던 한 연구논문에서는 ADHD 증상이 있는 10대 아이들에게 오메가3와 오메가6 지방산을 함께 섭취하게 한 결과, 처방약인 리탈린만큼이나 효과가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오메가3는 고등어나 연어, 정어리 같은 기름진 생선에 주로 들어 있는 데 오늘날 아이들은 이런 음식 대신 설탕이나 다른 몸에 좋지 않은 지방이 많은 음식을 먹는 경향이 커 영양 결핍이 생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번 연구를 이끈 존 스타인 옥스퍼드대 교수는 “아이들의 식단에 보충제를 더하는 것으로 행동을 개선할 수 있었다”면서 “영양 결핍이 반사회적 행동과 관련이 있어 식단을 바꾸면 사교적 행동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증된 검사로 평가한 결과 영양 보충제가 아이 행동의 악화를 막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이번 연구에 수석 연구원으로 참여한 조너선 탐맘 하트퍼드셔대 박사는 “이번 결과도 중요하지만, 우선 부모는 식단 변경을 통해 자녀의 비타민과 미네랄, 오메가3 수준을 높이는 시도를 해야만 한다”면서 “이 방법이 실패했을 때만 보충제 섭취를 시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우리가 아이들의 식단을 조사했을 때 3명 중 1명은 감자칩이나 과자 등 지방과 설탕 함량이 높은 음식을 먹고 있었다”면서 “그들의 식단은 형편없었다”고 말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과일과 채소, 그리고 기름진 생선으로 식단을 바꿔 영양 수준을 높이면 문제 행동을 개선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보고 있다. 탐맘 박사는 “학교 관점에서도 이런 결과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면서 “우리 연구는 영양소가 아이들의 인지 건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더 확실한 증거를 더한다”면서 “이번 연구결과는 공중 보건 정책과 식이 섭취를 개선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목적에서 건강은 물론 개인과 사회의 삶에 혜택을 줄 수 있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영국 영양학 저널(British Journal of Nutrition) 최신호에 실렸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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