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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가을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로 변신 기대하세요”

    “올가을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로 변신 기대하세요”

    오케피·삼총사·노트르담 드 파리 이어 대작 ‘아이다’서도 공주 역 꿰차 “2005년 초연 때 한눈에 반한 작품” 배우 윤공주(35)의 질주가 거침없다. 올 한 해만 보더라도 뮤지컬 ‘오케피’(2015년 12월 18일~2월 28일), ‘삼총사’(4월 1일~6월 26일), 현재 출연 중인 ‘노트르담 드 파리’(6월 17일~8월 21일)에 이어 차기작 ‘아이다’(11월 6일~2017년 3월 11일)까지 쉴 틈이 없다. 다음 작품을 위한 연습 기간이 길어야 두 달밖에 안 된다. 공연 일정이 겹칠 땐 연습 시간마저 따로 낼 여유조차 없다. 이처럼 빠듯한 일정 속에서 매 공연마다 맡은 배역을 제대로 소화해내는 게 가능할까. 지난 11일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장에서 만난 윤공주는 “캐릭터를 바로바로 전환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일정이 겹칠 땐 어쩔 수 없이 몸을 두 배로 움직여야 하지만 보통 작품 속 캐릭터를 무대에 재현하는 데 한 달 반 정도 연습하면 된다”면서 “연습하면서 상대방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작품 속 캐릭터가 나온다”고 했다. 윤공주는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원작의 에스메랄다를 무대에 오롯이 되살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2013년 공연에서 에스메랄다 역을 처음 맡았다. “3년 전보단 여유가 생겨 작품 전체를 넓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에스메랄다를 더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나이가 들어 에스메랄다의 순수함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돼 순수한 영혼을 표현하는 데 힘을 쏟았어요. 관객분들께서 집시 여인의 자유로운 영혼을 공감하실 수 있었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윤공주는 콰지모도 역에 캐스팅된 홍광호, 케이윌, 문종원과 교대로 호흡을 맞춘다. “똑같은 캐릭터를 연기해도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매력도 달라요. 그래서인지 석 달 가까이 공연을 해도 지겹지 않고 매일매일 무대가 새로워요. 광호는 정말 귀엽고, 케이윌은 순수하고, 종원 오빠는 디테일한 연기가 정말 뛰어나요.” 윤공주는 2001년 뮤지컬 ‘가스펠’ 앙상블로 데뷔했다. 2007년 ‘맨 오브 라만차’의 알돈자 역이 배우로서 큰 전환점이 됐다. “어린 나이에 너무 어려운 역을 맡았던 것 같아요. 알돈자는 뮤지컬 작품 속 캐릭터 가운데 가장 힘든 역할 중 하나로 통해요. 무대에 오를 때마다 감정이나 체력 소모가 엄청나죠. 그 역을 한 이후부턴 해마다 여러 작품을 해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게 됐어요.” 뮤지컬 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건 2~3개월 장기 공연을 이어갈 수 있는 체력이다. 녹화·편집을 해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무대에서 ‘라이브’로 살아 있게 노래하고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컨디션 관리는 삶 자체가 됐어요. 늘 두세 시간씩 걷거나 운동도 해요. 체력만큼은 자신 있어요. 지금도 20대의 체력을 유지하고 있어요.” 윤공주는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이 끝나면 잠시 쉰 뒤 곧바로 ‘아이다’ 연습에 돌입한다.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파라오의 딸인 암네리스 공주, 그리고 이들에게 동시에 사랑받는 장군 라다메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그는 2005년 ‘아이다’ 초연 때 공연을 처음 보고 한눈에 반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랑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았고, 음악도 무대도 탁월했다. “그동안 앙상블로, 암네리스 역으로 여러 번 오디션을 봤는데 번번이 떨어졌어요. 인연이 아닌가 싶어 포기하려다가 용기를 내 지난해 아이다 역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합격했어요. 아이다는 여배우라면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역할이에요. 윤공주가 드디어 ‘공주’가 된 공연, 기대해 주세요.”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월드피플+] 심장에 15개 구멍있는 아기의 기적 생존기

    뇌척수막염으로 며칠 못 살 것으로 여겨졌던 한 신생아가 의료진의 예상을 깨고 기적을 이어가고 있는 사연이 공개돼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8일(현지시간) 현재 영국 버밍엄 아동병원에서 지내고 있는 생후 6개월 된 여자 아이 타이거-제이드 자비스를 소개했다. 아이 엄마 사만다 올솝(29)은 임신 23주차 정기 초음파 검사에서 태아의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정기 검진을 받으며 자연분만을 계획해왔지만, 36주차 검진에서 아이의 심박수가 급격히 떨어진 것으로 나와 버밍엄하트랜드병원에서 응급 제왕절개술을 받아야만 했다. 심지어 그녀는 그 큰 수술을 혼자 견뎌내야만 했다. 갑작스러운 수술 일정으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남편 러셀 자비스(34)가 일 때문에 곁에 없었던 것. 이렇게 해서 지난 2월 6일 타이거-제이드가 태어났지만 숨을 쉬지 않아 위급한 상황이 이어졌다. 아이는 곧바로 인공호흡기를 갖춘 신생아 병동으로 이송된 끝에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산모는 아이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아이의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세균성 수막염을 의심했다. 아이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척추 아랫부분에 바늘을 꽃아 골수를 뽑아내는 요추천자 시술을 받아야 했다. 하루 뒤, 아이 엄마와 아빠는 갓 태어난 딸이 세균성 수막염을 갖고 태어났으며 이번 주말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남편 러셀은 “직설적인 말이었다”면서 “의료진은 우리에게 자신들이 시시각각 대처하고 있지만, 아이가 월요일까지 우리와 함께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의료진은 아이가 걸린 세균성 수막염의 원인을 찾지 못했지만, 강력한 항생제 치료를 시도했다. 그런데 의료진의 우려와 달리 아이는 생후 6일째부터 점차 회복하기 시작했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는 며칠 뒤 현재 머물고 있는 버밍엄 아동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리고 2주 뒤 인공호흡기의 도움 없이 스스로 호흡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생후 3주가 됐을 때 의료진은 항생제가 제대로 작용해 아이는 수막염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진단했다. 올솝은 “의사들은 뇌 스캔을 찍고 모든 것이 좋아 보인다고 말하면서도 뒤늦게 증상이 심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면서 “단지 내게는 그녀가 살아 있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병원에서 지내야만 한다. 왜냐하면 선천적으로 심장에 15개의 구멍이 있어 호흡 곤란 등 여러 건강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23주차 검사에서 심장 결합이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태어날 때까지 그 심각성을 알 수는 없다고 한다. 올솝은 “그건 정말 스트레스였고 걱정은 그때부터 시작됐다”면서 “엄청난 충격이었고 가족처럼 다루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3일 아이는 심장에 있는 두 개의 큰 구멍을 매우고 협착된 판막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아이의 심장에는 여전히 여러 구멍이 남아 있어 앞으로 추가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현재 아이는 하루 18시간 동안 정맥을 통해 직접 영양분을 공급받는 완전정맥영양(TPN) 시술을 받아야 해서 여전히 병원에 머물고 있다. 또한 아이는 선천적으로 내반족을 갖고 태어나 성장하면서 보행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희소성 왜소증의 한 유형을 보이는 증상이 있어 가족은 안타까운 마음에 유전자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에 대해 아이 아빠는 “이 같은 상황까지 가면 안 되지만, 딸은 강하다”면서 “아이는 지금까지 모든 상황을 겪으면서도 울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나와 사만다를 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계속 함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부는 딸이 앞으로 가능한 한 정상적인 삶을 살길 바랄 뿐이라면서 그래도 올해 안에 함께 집에 갈 수 있길 원한다고 말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며칠 못 살 것” 의료진 예상 깬 ‘기적의 아기’

    “며칠 못 살 것” 의료진 예상 깬 ‘기적의 아기’

    뇌척수막염으로 며칠 못 살 것으로 여겨졌던 한 신생아가 의료진의 예상을 깨고 기적을 이어가고 있는 사연이 공개돼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8일(현지시간) 현재 영국 버밍엄 아동병원에서 지내고 있는 생후 6개월 된 여자 아이 타이거-제이드 자비스를 소개했다. 아이 엄마 사만다 올솝(29)은 임신 23주차 정기 초음파 검사에서 태아의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정기 검진을 받으며 자연분만을 계획해왔지만, 36주차 검진에서 아이의 심박수가 급격히 떨어진 것으로 나와 버밍엄하트랜드병원에서 응급 제왕절개술을 받아야만 했다. 심지어 그녀는 그 큰 수술을 혼자 견뎌내야만 했다. 갑작스러운 수술 일정으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남편 러셀 자비스(34)가 일 때문에 곁에 없었던 것. 이렇게 해서 지난 2월 6일 타이거-제이드가 태어났지만 숨을 쉬지 않아 위급한 상황이 이어졌다. 아이는 곧바로 인공호흡기를 갖춘 신생아 병동으로 이송된 끝에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산모는 아이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아이의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세균성 수막염을 의심했다. 아이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척추 아랫부분에 바늘을 꽃아 골수를 뽑아내는 요추천자 시술을 받아야 했다. 하루 뒤, 아이 엄마와 아빠는 갓 태어난 딸이 세균성 수막염을 갖고 태어났으며 이번 주말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남편 러셀은 “직설적인 말이었다”면서 “의료진은 우리에게 자신들이 시시각각 대처하고 있지만, 아이가 월요일까지 우리와 함께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의료진은 아이가 걸린 세균성 수막염의 원인을 찾지 못했지만, 강력한 항생제 치료를 시도했다. 그런데 의료진의 우려와 달리 아이는 생후 6일째부터 점차 회복하기 시작했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는 며칠 뒤 현재 머물고 있는 버밍엄 아동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리고 2주 뒤 인공호흡기의 도움 없이 스스로 호흡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생후 3주가 됐을 때 의료진은 항생제가 제대로 작용해 아이는 수막염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진단했다. 올솝은 “의사들은 뇌 스캔을 찍고 모든 것이 좋아 보인다고 말하면서도 뒤늦게 증상이 심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면서 “단지 내게는 그녀가 살아 있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병원에서 지내야만 한다. 왜냐하면 선천적으로 심장에 15개의 구멍이 있어 호흡 곤란 등 여러 건강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23주차 검사에서 심장 결합이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태어날 때까지 그 심각성을 알 수는 없다고 한다. 올솝은 “그건 정말 스트레스였고 걱정은 그때부터 시작됐다”면서 “엄청난 충격이었고 가족처럼 다루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3일 아이는 심장에 있는 두 개의 큰 구멍을 매우고 협착된 판막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아이의 심장에는 여전히 여러 구멍이 남아 있어 앞으로 추가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현재 아이는 하루 18시간 동안 정맥을 통해 직접 영양분을 공급받는 완전정맥영양(TPN) 시술을 받아야 해서 여전히 병원에 머물고 있다. 또한 아이는 선천적으로 내반족을 갖고 태어나 성장하면서 보행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희소성 왜소증의 한 유형을 보이는 증상이 있어 가족은 안타까운 마음에 유전자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에 대해 아이 아빠는 “이 같은 상황까지 가면 안 되지만, 딸은 강하다”면서 “아이는 지금까지 모든 상황을 겪으면서도 울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나와 사만다를 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계속 함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부는 딸이 앞으로 가능한 한 정상적인 삶을 살길 바랄 뿐이라면서 그래도 올해 안에 함께 집에 갈 수 있길 원한다고 말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지는 걸 모르던 미선아 단 한번 비껴간 이번 화살 큰 선수 되는 보약 될 거야”

    “지는 걸 모르던 미선아 단 한번 비껴간 이번 화살 큰 선수 되는 보약 될 거야”

    ‘세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11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양궁 개인전 경기가 끝난 뒤 문형철(58) 양궁 대표팀 총감독의 표정은 오묘했다. 이날 장혜진(29·LH)이 금메달을 따내며 지금까지 양궁에서 나온 3개의 금메달을 모두 가져왔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엿보이는가 하면, 올림픽보다 어렵다는 국내 선발전을 1위로 통과했지만 결국 8강에서 탈락한 최미선(20·광주여대)에 대한 안쓰러움도 묻어 있었다. 먼저 4년 전 런던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4위로 아깝게 미끄러진 아픔을 딛고 2관왕을 차지한 장혜진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문 감독은 “(장)혜진이가 이번 선발전에서 3등으로 선발될 때부터 단체전에 폐를 안 끼치는 선수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그리고 혜진이가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딸 때 잘 쐈다. 거의 10점을 쏘면서 리드를 했기 때문에 자기가 할 몫을 다했다고 생각했다”며 “오늘도 훈련할 때 보니 진짜 편하게 즐기는 양궁을 했다. 별 욕심 없이 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혜진이는 여자 양궁 대표팀의 주장이다. 늘 배려하는 삶을 사는 사는 아이다. 그래서 이렇게 큰 메달을 얻을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라고 덧붙였다. 반면 8강전에서 첫 발을 5점에 쏘며 멕시코의 알레한드라 발렌시아에게 0-6으로 완패한 최미선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최미선은 올해 국내외 대회에서 단 한차례도 1위를 놓치지 않아 기보배(28·광주시청)와 함께 강력한 2관왕 후보로 거론됐었지만 이날 올해 첫 패배를 기록하며 펑펑 눈물을 흘렸다. 문 감독은 “(최)미선이 같은 상황에서 안 울면 이상하다. 얼마나 힘들게 준비를 했느냐”라며 “한국 양궁만큼 준비·투자·노력 삼박자 따라올 팀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 그만큼 준비를 해 놨는데 어이없게 실패하니까 우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선이는 파죽지세로 잘하는 아이었는데 이런 시련을 얻게 됐다”며 “가장 까다로운 경쟁자였던 대만의 탄야팅이 8강전에서 먼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느슨해져 긴장이 풀리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첫 발을 실수하니 당황스러워서 아마 게임을 못 풀었던 것 같다. 미선이가 탈락한 뒤 ‘툭툭 털고 또 가서 응원을 해 줘야지 언니들이 힘내지 않느냐. 서운해 하지 말고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내기로 하자’고 위로해 줬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이 큰 교훈이 될 것이다. 자기가 관리를 잘하면 앞으로 두 번 더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나이도 된다”고 덧붙였다. 리우데자네이루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게스트하우스 더한 아파트 단지 ‘서산 양우내안애’, 특화 커뮤니티 시설 도입

    게스트하우스 더한 아파트 단지 ‘서산 양우내안애’, 특화 커뮤니티 시설 도입

    집이 단순 ‘주거 공간’에서 벗어나 ‘원스톱라이프’ 주거 형태로 진화하면서 건설사들도 커뮤니티 시설 도입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에 눈높이가 높아진 수요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새롭게 선보이는 아파트에 특화된 커뮤니티 시설을 도입하고 있다. 가구 당 주차공간 확보와 더불어 공원과 광장 등 여가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들을 조성하는 등 입주민 삶의 질 향상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실제 주택시장에서도 커뮤니티시설 등 상품성을 지닌 아파트들이 수요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 충남 서산시에서는 양우건설이 선보인 ‘서산 양우내안愛 퍼스트힐’이 게스트하우스 등의 커뮤니티 시설을 내세워 분양 마감을 앞두고 있다. 84A 타입 등 일부 주택형이 완판된 가운데 막바지 분양을 진행 중인 서산 양우내안애는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 593-13에 들어선다. 이 아파트는 부춘산 자락에 위치한 가운데 관공서와 편의시설이 이미 갖춰진 서산도심에 자리했다. 인근 대산산업단지, 서산테크노밸리, 서산일반산업단지까지 차량으로 10분대 거리로 출퇴근이 가능하며 29번, 32번 국도와 649번 지방도를 통해 대산항, 태안, 당진으로 이동이 편리한 교통 여건을 지녔다. 단지에서 학돌초, 부춘중이 도보 10분내에 위치해 가까우며 단지 내 어린이집이 마련돼 있다. 양우앞마당으로 이름 지어진 광장에는 어른과 아이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을 조성했으며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에서나 가능했었던 게스트하우스 공간은 입주민들의 편의 도모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산산업단지, 서산테크노밸리, 서산일반산업단지로 향하는 관문에 위치해 단지에서 차량으로 10분대 거리에 출퇴근이 가능하며 29번, 32번 국도와 649번 지방도를 통해 대산항, 태안, 당진으로의 이동이 수월하다. 현재 선착순 동호지정 분양 중인 양우내안애의 분양가는 3.3㎡당 700만원 대부터 책정됐으며 모델하우스는 충남 서산시 석남동에 위치해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함부로 애틋하게 시청률 ‘더블유’ 결방하니 ‘9.9%’ 김우빈 수지 포기

    함부로 애틋하게 시청률 ‘더블유’ 결방하니 ‘9.9%’ 김우빈 수지 포기

    수목드라마 중 유일하게 정상 방송한 ‘함부로 애틋하게’가 시청률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12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1일 방송된 KBS2 수목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 12회는 전국 기준 9.9%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전회 방송이 기록한 7.9%보다. 2.0% 포인트 상승한 수치로 오랜만에 상승세를 탔다. ‘2016 리우올림픽’ 중계로 인해 경쟁작인 MBC ‘더블유’(W)와 SBS ‘원티드’가 결방하며 나홀로 방영된 ‘함부로 애틋하게’가 그 덕을 톡톡히 보게 됐다. 이날 ‘함부로 애틋하게’에서는 신준영(김우빈 분)이 노을(수지 분)로부터 “이제 진짜 끝”이라는 문자를 받고 좌절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신준영은 “나는 내가 세상에서 꾸었던 가장 마지막 꿈을 포기한다”며 “내가 내 남은 삶동안 해야 할 일은, 을이와 그림같은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을이에게서 앗아버린 진실과 정의를 다시 그 아이에게 돌려주는 일이다”라고 생각했다. 이어 신준영은 “을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내가 떠난 뒤 길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반드시 올 맑고 따뜻한 봄날이기를 바라며”라고 쓸쓸한 독백을 했다. ‘함부로 애틋하게’ 13회는 오는 17일 수요일 밤 10시에 방송될 예정이다. 사진=KBS ‘함부로 애틋하게’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사설] 일자리 창출 못하면 ‘400조 예산’ 의미 없을 것

    내년도 정부 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 각 부처가 요구한 내년 예산은 400조원에서 1조 9000억원이 모자라는 398조 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조선·해운 등의 구조조정 및 실업대책, 양극화 해소를 위한 긴급 복지 예산 등 재정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 최종 정부안은 4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 정부 예산이 386조 4000억원이니 각 부처가 요구한 예산은 11조 7000억원 늘어난 셈이다. 현재 국회 심의 중인 추가경정예산 11조원을 반영하지 않은 올 예산 대비 증가율은 3% 정도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복지 분야와 군인들의 복지 향상을 위한 국방 예산이 각각 5.3%씩 증가했다. 누리과정 예산 등 교육부문과 창조경제를 뒷받침하는 연구개발(R&D) 예산은 3%가량 늘리겠다고 한다. 그러나 도로나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은 15.4%, 외교통일 분야 예산은 경색된 남북 관계를 반영해 5.5%나 줄었다. 내년도 예산의 특징은 재정 건전성을 고려한 점이 눈에 띈다. 최근 몇 년 동안 정부 부처가 요구한 예산 증가율은 연평균 6%에 육박했다. 아울러 정부 각 부처가 새로운 사업보다는 현상 유지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도 반영됐다. 이는 SOC 사업예산의 축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복지 분야와 국방 분야 예산의 증가는 우리나라가 직면한 현안이라는 점에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 내년도 예산에서 가장 역점을 둬야 할 분야는 누가 뭐래도 복지 분야, 이 가운데서도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 창출은 비단 청년들에 국한된 문제라기보다는 국민 모두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생존의 문제다. 이는 또한 양극화 해소와도 맞닿아 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 정책이 주로 인력 양성에 맞춰져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일할 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교육 훈련을 받는다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을 육성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회 통과가 더욱 어려워진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통과시키는 게 중요하다. 정부, 여당과 야당은 양보할 건 양보하면서 협치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출산장려금 확대 등 재정 지출 외에 안심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하기 전에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책이 중복되고 미흡한 부분이 없는지 예산안을 세밀하게 검토하기 바란다.
  • “부디 아이들에게 헬멧을 씌워주세요” 울먹이며 호소하는 엄마

    “부디 아이들에게 헬멧을 씌워주세요” 울먹이며 호소하는 엄마

    엄마 엠마에게 조지아는 늘 씩씩하면서도 예쁘기만 한 딸이었다. 하지만 '그날 그 사고' 이후 딸은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병실에 누워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엄마는 페이스북에 매일처럼 울먹이며 스케이트보드나 오토바이를 타는 아이들에게 헬멧을 꼭 쓰게 할 것을 당부하는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 영국 본머스에 사는 조지아(19)는 지난 8일 친척 동생들과 함께 스케이트보드를 타겠다며 집 근처로 나갔다. 30분 쯤 지난 뒤 한 아이가 헐레벌떡 달려와 조지아의 끔찍한 사고 소식을 전했다. 사고 현장을 보니 조지아는 도로 바닥에 누워 있었고, 급히 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울먹이면서 페이스북 동영상을 남겼다. 엠마는 병원 앞에서 "10대 아이들이 헬멧을 쓰고 보드를 타는 게 그리 멋져보이지 않아 한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제발, 제발 조심해주길 바라요"라고 울음을 머금은 채 얘기했다. 그는 또한 "딸 조지아는 경사가 심한 언덕에서 보드를 탄 것도 아니예요. 돌에 부딪쳐서 떨어졌고 머리를 다치고 심한 경련을 일으켰죠"라고 말한 뒤 "딸에게 헬멧을 쓰라고 말해야 했고, 헬멧을 씌웠어야 했는데…"라며 울음을 참지 못했다. 이 페이스북 동영상은 91만명이 넘는 누리꾼들이 봤고 12000회 가까이 공유됐다. 엠마는 페이스북에 '조지아 온 마인드'라는 제목의 페이지를 만들어 보드, 자전거 등을 탈 때 쓰는 헬멧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한편, 조지아의 쾌유를 비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조지아는 현재 각종 뇌관련 문제로 치료 받으며 안정제를 맞고 있는 상태다. 의사들에 따르면 어느 정도 안정을 찾기는 했지만, 앞으로 어떨게 될지는 여전히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엠마는 "차라리 무릎이 부러지고 팔목이 부러졌어야 했는데, (헬멧을 쓰지 않는 바람에) 머리가 다치고 말았다"면서 "부디 여러분 아이들이 보드를 타거나 자전거를 탈 때 헬멧을 꼭 씌워주기를 바란다"고 연신 당부했다.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뇌척수막염 아기…“며칠 못 살 것” 의료진 예상 넘어 기적

    뇌척수막염 아기…“며칠 못 살 것” 의료진 예상 넘어 기적

    뇌척수막염으로 며칠 못 살 것으로 여겨졌던 한 신생아가 의료진의 예상을 깨고 기적을 이어가고 있는 사연이 공개돼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8일(현지시간) 현재 영국 버밍엄 아동병원에서 지내고 있는 생후 6개월 된 여자 아이 타이거-제이드 자비스를 소개했다. 아이 엄마 사만다 올솝(29)은 임신 23주차 정기 초음파 검사에서 태아의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정기 검진을 받으며 자연분만을 계획해왔지만, 36주차 검진에서 아이의 심박수가 급격히 떨어진 것으로 나와 버밍엄하트랜드병원에서 응급 제왕절개술을 받아야만 했다. 심지어 그녀는 그 큰 수술을 혼자 견뎌내야만 했다. 갑작스러운 수술 일정으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남편 러셀 자비스(34)가 일 때문에 곁에 없었던 것. 이렇게 해서 지난 2월 6일 타이거-제이드가 태어났지만 숨을 쉬지 않아 위급한 상황이 이어졌다. 아이는 곧바로 인공호흡기를 갖춘 신생아 병동으로 이송된 끝에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산모는 아이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아이의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세균성 수막염을 의심했다. 아이는 정확한 진단을 위해 척추 아랫부분에 바늘을 꽃아 골수를 뽑아내는 요추천자 시술을 받아야 했다. 하루 뒤, 아이 엄마와 아빠는 갓 태어난 딸이 세균성 수막염을 갖고 태어났으며 이번 주말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남편 러셀은 “직설적인 말이었다”면서 “의료진은 우리에게 자신들이 시시각각 대처하고 있지만, 아이가 월요일까지 우리와 함께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의료진은 아이가 걸린 세균성 수막염의 원인을 찾지 못했지만, 강력한 항생제 치료를 시도했다. 그런데 의료진의 우려와 달리 아이는 생후 6일째부터 점차 회복하기 시작했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는 며칠 뒤 현재 머물고 있는 버밍엄 아동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리고 2주 뒤 인공호흡기의 도움 없이 스스로 호흡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생후 3주가 됐을 때 의료진은 항생제가 제대로 작용해 아이는 수막염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진단했다. 올솝은 “의사들은 뇌 스캔을 찍고 모든 것이 좋아 보인다고 말하면서도 뒤늦게 증상이 심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면서 “단지 내게는 그녀가 살아 있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병원에서 지내야만 한다. 왜냐하면 선천적으로 심장에 15개의 구멍이 있어 호흡 곤란 등 여러 건강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23주차 검사에서 심장 결합이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태어날 때까지 그 심각성을 알 수는 없다고 한다. 올솝은 “그건 정말 스트레스였고 걱정은 그때부터 시작됐다”면서 “엄청난 충격이었고 가족처럼 다루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3일 아이는 심장에 있는 두 개의 큰 구멍을 매우고 협착된 판막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아이의 심장에는 여전히 여러 구멍이 남아 있어 앞으로 추가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현재 아이는 하루 18시간 동안 정맥을 통해 직접 영양분을 공급받는 완전정맥영양(TPN) 시술을 받아야 해서 여전히 병원에 머물고 있다. 또한 아이는 선천적으로 내반족을 갖고 태어나 성장하면서 보행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희소성 왜소증의 한 유형을 보이는 증상이 있어 가족은 안타까운 마음에 유전자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에 대해 아이 아빠는 “이 같은 상황까지 가면 안 되지만, 딸은 강하다”면서 “아이는 지금까지 모든 상황을 겪으면서도 울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나와 사만다를 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계속 함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부는 딸이 앞으로 가능한 한 정상적인 삶을 살길 바랄 뿐이라면서 그래도 올해 안에 함께 집에 갈 수 있길 원한다고 말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치매노인·아이 실종 막아 주는 ‘성동 안전 팔찌’

    치매노인·아이 실종 막아 주는 ‘성동 안전 팔찌’

    “지역 주민의 행복한 삶을 위한 최우선 명제는 ‘안전‘이다.”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의 구정 철학이다. 따라서 성동구는 스마트워치 등 첨단 장비를 이용해 주민 안전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로 했다. 성동구는 오는 11월까지 구청 5층의 U성동 통합관제센터를 개선해 치매 노인이나 지역 어린이의 실시간 위치를 찾아주는 ‘주민 안전 팔찌’ 사업을 시작한다고 8일 밝혔다. 이번 사업에 따라 스마트워치나 전용단말기를 가진 치매 노인이나 어린 자녀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변 폐쇄회로(CC)TV를 이용, 현재 상태 등을 알아볼 수 있게 됐다. 특히 갑자기 집을 나간 치매 노인이 있는 가정이 주 대상이다. 이정원(48)씨는 “얼마 전 치매를 앓는 어머님이 밤늦은 시간에 집을 나가셔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면서 “안전 팔찌 사업은 치매 어르신 보호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아주 필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구는 이번 사업을 위해 스마트관제센터 서버와 스마트 기기를 연결하는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오는 11월까지 장비 세팅을 마치고 바로 시범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관제센터 관계자는 “요즘 가장 많은 요청이 치매 부모님 찾기”라면서 “안전 팔찌 사업이 시작되면 정확하게 빨리 어르신의 위치와 상태 등을 파악, 가족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능형 관제시스템’을 갖춘 U성동 통합관제센터는 CCTV에서 집단싸움, 배회 거동 수상자, 교통사고 등 특수상황을 자동으로 인식해 즉각 관제센터 근무자에게 알려주고 있어 문제 발생 시 즉각 대처할 수 있다. 또 ‘체납차량 탐지 시스템’을 통해 관내 공영주차장 12곳과 불법 주정차 단속 및 방범 CCTV 475개에서 수집된 차량 번호를 전국 체납 대포차 자료, 수배 도난 차량 자료와 실시간 자동으로 비교한다. 관계자는 “통합탐지시스템 구축 전에 비해 체납차량 보관건수가 58% 증가했으며 체납징수 효과도 1400%나 증가했다”고 말했다. 정 구청장은 “U성동 통합관제센터의 다양한 사업을 통해 빈틈 없는 공공안전시스템을 확보하고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스마트 안전 도시 성동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서울 성동구, 치매 부모님을 위한 ‘주민 안전 팔찌‘에 첨단 스마트를 입힌다

    서울 성동구, 치매 부모님을 위한 ‘주민 안전 팔찌‘에 첨단 스마트를 입힌다

    “지역 주민의 행복한 삶을 위한 최우선 명제가 ‘안전‘이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구정 철학이다. 따라서 성동구는 스마트 위치 등 첨단 장비를 이용, 주민 안전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로 했다. 성동구는 오는 11월까지 구청 5층의 U-성동 통합관제센터를 개선해서 치매 노인이나 지역 어린이의 실시간 위치를 찾아주는 ‘주민 안전 팔찌’ 사업을 시작한다고 8일 밝혔다. 이번 사업에 따라 스마트 워치나 전용단말기를 가진 치매노인이나 어린 자녀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변 폐쇄회로(CC)TV 이용, 현재 상태 등을 알아볼 수 있게 됐다. 특히 갑자기 집을 나간 침해노인이 있는 가정이 주 대상이다. 이정원(48)씨는 “얼마 전 치매를 앓는 어머님이 밤늦은 시간에 집을 나가셔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면서 “안전 팔찌 사업은 치매 어르신 보호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아주 필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구는 이번 사업을 위해 스마트관제센터 서버와 스마트 기기를 연결하는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오는 11월까지 장비 세팅을 마치고 바로 시범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관제센터 관계자는 “요즘 가장 많은 요청이 치매 부모님 찾기”라면서 “안전 팔찌 사업이 시작되면 정확하게 빨리 어르신의 위치와 상태 등을 파악, 가족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능형 관제시스템’으로 갖춘 U-성동 통합관제센터는 CCTV에서 집단싸움, 배회 거동수상자, 교통사고 등 특수상황을 자동으로 인식해 즉각 관제 센터 근무자에게 알려주고 있어 문제 발생 시 즉각 대처할 수 있다. 또 ‘체납차량 탐지 시스템’을 통해 관내 공영주차장 12곳과 불법 주정차 단속 및 방범 CCTV 475개에서 수집된 차량 번호를 전국 체납 대포차 자료, 수배 도난 차량 자료와 실시간 자동으로 비교한다. 관계자는 ”통합탐지시스템 구축 전 대비 체납차량 보관건수가 58% 증가했으며 체납징수 효과도 1400%나 증가했다”고 말했다. 정 구청장은 “U-성동 통합관제센터의 다양한 사업을 통해 빈틈없는 공공안전시스템을 확보하고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스마트 안전 도시 성동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매매혼부터 염산 테러까지…‘악몽’ 된 신부 지참금 문화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매매혼부터 염산 테러까지…‘악몽’ 된 신부 지참금 문화

    방글라데시에 사는 리파 라니 판딧(23)은 끔찍한 염산 테러의 후유증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피부에 큰 흉터가 생긴 것뿐만 아니라 장기에 큰 부상을 입어 먹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다. 지난해, 그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긴 사람은 다름 아닌 시부모였다. 판딧의 부모는 결혼 당시 사돈에게 보내기로 했던 결혼 지참금을 보내지 못했고, 이에 분노한 시부모는 그녀의 입을 강제로 벌려 염산을 들이부운 뒤 이를 삼키게 했다. 비뚤어진 결혼 지참금 문화가 낳은 비극적인 사고였다. ●본 의미는 서로의 집안에 주는 재물 결혼 지참금이란 혼인 시 신랑이 신부 또는 신부가 신랑의 집안에 주는 재물을 뜻한다. ‘매매혼’(賣買婚)의 일종으로도 볼 수 있으며 수세기 동안 이어져 온 문화로서 특히 이슬람, 힌두 문화권일수록 더 강하게 나타난다. 그리스와 로마 등 유럽부터 인도와 파키스탄, 중국 등 아시아와 말라위를 포함한 아프리카까지 상당수의 국가에서 관례처럼 굳어져 있다. 국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신부가 신랑의 집안에 결혼 지참금을 제공했고, 이때 제공받은 금품 및 현금은 신랑의 집에 귀속됐다. 반면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에는 신랑이 자신의 형편이나 능력에 따라 신부 측에 지참금을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파키스탄과 중국, 태국, 아프리카 등지는 일반적으로 신랑이 신부에게, 인도와 방글라데시 등지에서는 신부가 신랑에게 지참금을 건네야 결혼이 성사된다. ●2012년 인도서만 8233명 살해당해 문제는 사랑의 결실이라는 결혼을 지참금이라는 재물이 막아서면서 살인 및 인신매매, 조혼 등의 부작용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혼 지참금으로 악명이 높은 나라는 인도다. 인도 국가범죄기록국(NCRB)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인도 전역에서 8233명이 ‘다우리’로 불리는 결혼 지참금으로 인한 갈등으로 살해됐다. 인도 정부는 지참금 풍습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경제가 성장하면서 더 호화롭고 많은 지참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문화 속 남존여비사상도 한몫 문화 전반에 여전히 뿌리내린 남존여비 사상도 이러한 부작용에 한몫을 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아들을 얻지 못한 것도 모자라, 훗날 결혼을 시킬 때에는 고액의 지참금까지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여자아이들을 낙태하는 부모가 급증했다. 지난해 4월 마네카 간디 인도 여성·아동발달부 장관에 따르면 매일 2000명의 아이가 자궁 속에서 살해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신부가 지참금을 받는 나라에서는 지참금을 챙기기 위해 여성을 ‘거래 품목’으로 여기는 현상도 발생한다. 2010년, 30대 중국 여성 톈위핑(田玉平)은 지참금에 눈이 먼 어머니 탓에 12년 동안 무려 8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해야 했던 기구한 삶을 언론에 폭로해 충격을 안겼다. 아프리카에서는 부모들이 교육비와 생계비를 감당하지 못해 십대 초반의 어린 딸을 시집보내는 조혼이 성행한다. 신랑은 신부의 출산 및 노동력의 대가로 신부 부모에게 지참금을 지불하는데, 이 때문에 어린 여자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조혼을 강요당한다. 세계에서 조혼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말라위의 2012년 국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여성 중 19세 이전에 결혼한 여성 비율은 49.6%에 달한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있는 어린 신부들이 지참금의 대가로 원치 않는 성관계와 출산, 가사노동에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삼국지 ‘고구려 지참금 풍습’ 기록 중국 진(晉)나라 학자가 쓴 문헌 ‘삼국지’에는 고구려의 지참금 풍습이 언급돼 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혼담이 오간 뒤 결혼을 원하는 남성은 재물과 돈을 들고 여성의 집을 찾았다. 그리고 여성의 집 뒤편에 마련된 ‘사위막’이라는 움막에서 지내며 갖은 노동을 견뎌야 했고, 이후 두 사람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나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야 일가족은 남편의 부모 집으로 건너가 살 수 있었다. 조선 연산군 8년에는 딸을 시집보내는 양반가에 함이 들어오는 날을 반드시 신고하도록 하는 법이 등장하기도 했다. 신부 측이 함을 들이는 날에는 궁에서 의녀가 파견됐고 지나치게 호화로운 물품은 없는지, 함의 규모가 필요 이상은 아닌지 등을 일일이 검사했다. 이 법은 지참금, 그러니까 ‘함값’을 마련하지 못해 결혼을 못하는 남성들이 많아지자 나라가 내놓은 대책이었다. ●예단·예물·함 등의 문화로 남아 유교사상이 뚜렷한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예단과 예물, 함 등의 결혼 문화는 여전히 한국 사회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가 늘면서 예단과 예물, 함 등이 축소되는 분위기가 짙지만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고가의 혼수품이나 명품 예물, 호화로운 함을 요구하다가 벌어지는 촌극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지참금이 없는 결혼은 법적으로 무효로 규정하기까지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는 ‘강제성이 없는’ 문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참금을 둘러싼 염산 테러, 살인 등 온갖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여기에는 종교와 사상이 한몫을 차지하며 대부분의 피해자는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은 여성이다. 인류사회에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전통이자 문화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그 무엇도 생명과 인권보다 존귀할 수는 없다. 결혼의 조건은 입에 염산을 들이붓고 몸에 불을 붙이게 만드는 지참금이 아니다. 비뚤어진 조건을 강요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야 하는 이유다. huimin0217@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소설가 조정래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소설가 조정래

    “아유, 덥지? 자자, 이리 와. 빨리 웃옷 벗고 여그 에어컨 바람 좀 쒸여. 어서 어서.” 지난달 20일 오후 경기도 분당 집에서 만난 조정래(73)는 편안해 보였다. 신작 장편 ‘풀꽃도 꽃이다’ 집필 때문에 9개월 동안 이어졌던 ‘글감옥’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 돼서였을까. “그란디, 뭐 인터뷰허고 자시고 헐 거시 뭐 있겄어? 태백산맥도 글코, 아리랑도 글코, 내 얘기야 많이들 알려진 것인디. 커피 한 잔씩 허면서 그냥 편하게 놀다들 가면 되제.” 서재에서 이어진 대화는 유쾌했다. 그리고 그의 이번 휴식이 길지는 않을 것임을 알게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래야, 이제 그만 부처님 앞으로 가야겠다.” 고3 때인 1961년 9월 어느 날, 아버지는 나를 앉혀놓고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라고 하셨다. 아버지 손에는 ‘조계사 승적 168호’라고 일련번호가 매겨진 승적(僧籍)이 들려 있었다. 속명 ‘조정래’, 법명 ‘인천’(?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나는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우리 가족이 전쟁의 난리 속에서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했던 것은 다 부처님의 가호 덕분이다. 형은 장남이어서 좀 그렇고, 차남인 네가 부처님 앞에 일생을 바치는 게 좋겠다.” 배신감이란 이런 것일까. 며칠 전 “남자가 장성하면 무릇 호(號)를 가져야 하는 법”이라며 갑자기 ‘하늘을 벗한다’는 뜻의 ‘인천’이란 이름을 주신 게 결국 아들을 중으로 만들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던 건가. “아, 아버지. 저, 저는 문학을 할 겁니다.” 하지만 그 정도 응수쯤은 이미 아버지의 계산 속에 들어 있던 듯했다. “그건 출가해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니냐. 만해(한용운) 선생을 봐라. 종교도 문학도 다 이루시지 않았느냐.” 아아, 나는 과연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을까. “아유, 만해 선생은 100년에 한번 날까 말까 하는 엄청난 분이시잖아요. 어떻게 제가 감히….” 그 말에 아버지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셨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남자로 태어나 연애 한번 못해 보고 중이 되는 위기를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다. -아버지 조종현(1906~1989)은 시조시인이자 승려였다. 예전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의상대 해돋이’가 아버지의 작품이다. 열여섯에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출가한 아버지는 불법 공부의 높은 경지에 다다라 스물넷에 그 어렵다는 법사 시험을 통과했다. 설법을 전문으로 하는 일종의 교수가 됐는데, 승려들의 비밀결사 ‘만당’(卍黨)에 참여해 만해 스님과 항일운동도 함께 했다. 아버지는 선암사에서 결혼을 한 최초의 승려가 됐다. 당시 일제 총독부가 불교를 장악하기 위해 젊은 승려들을 결혼시켜 일본식 대처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1943년 선암사에서 4남 4녀의 네째이자 둘째 아들로 태어난 것은 일제 황국화 정책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해방 후 좌익, 우익 투쟁의 소용돌이에서 빨갱이로 몰려 절을 떠나야 했는데, 이후 갖은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부처님을 등지고 사는 것을 늘 안타까워하셨다. 나를 승려로 만들려고 하셨던 것도 그런 죄의식의 소산이었던 것 같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 아버지가 벌교상고 교사로 가면서 나는 벌교 북국민학교 3학년으로 전학을 했는데, 그때부터 최고의 낙은 형이 부잣집 친구에게서 빌려다 주던 학생잡지 ‘학원’을 받아보는 일이었다. 내 관심은 잡지 속의 중고생 문예투고였다. 그걸 보면서 동시를 짓고 동요를 지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면 이 잡지에 실린 나의 글을 볼 수 있겠지.’ -“이게 다 네가 지은 것들이냐?” 국민학교 4학년 어느 날,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가 내가 쓴 작문을 들고 계셨다. 밥 먹을 때 쩝쩝 소리도 못 내게 했던, 늘 엄했던 아버지. 도둑질이라도 하다 들킨 양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낱장에 쓰면 되겠느냐”며 학교에서 버려진 시험 답안지를 수십장 묶어 이면지 공책을 만들어 주셨다. “여기에 적어야 글들이 안 없어지지.” 아버지는 잘 썼다, 못 썼다 단 한마디도 안 했지만, 조용히 공책을 만들어주는 모습을 보며 ‘칭찬을 저렇게 표현하나 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당시는 종이가 거칠고 잘 찢어져 사람들이 그걸 ‘똥지’라고 불렀는데, 나는 그 종이 묶음을 ‘똥지 문집’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즈음부터 학교에서 글짓기를 했다 하면 나는 수필이건 동요건 동시건 전교 1등을 했다. -1959년 서울 보성고에 입학하면서 방대한 양의 책읽기가 시작됐다. 학교 도서관에서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같은 명작들을 타는 목에 냉수를 들이켜듯이 독파했다. 하지만 남들이 느끼는 만큼의 감동은 내게 오지 않았다.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가슴이 떨리지가 않아.’ 그럴수록 마음 한편에서는 ‘나도 좀더 나이 먹으면 이 정도는 쓸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차올랐다. 고1 나이에 꽤나 기가 승하고 방자했던 셈인데, 그런 내가 은근히 좋기도 했다. -미치도록 글을 쓰고 싶었지만 학교 문예반에는 갈 수가 없었다. 당시 우리 보성고 문예반은 보성중 문예반과 통합으로 운영됐는데, 지도교사가 하필 보성중에 교편을 잡고 있던 아버지였다. 한 교실에 앉아 아버지 지도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민망했다. 그래서 운동을 했다. 태권도부, 역도부, 등산반을 두루 섭렵했는데 그 덕에 요즘 말로 ‘몸짱’이 됐다. 가슴둘레가 1m가 넘고 턱걸이는 60개를 넘게 했다. -“너도 아버지처럼 굶어가며 살려고 그러니. 제발 상과대학을 가라.” 내가 국문과에 가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기함을 하셨다. 당시는 국문과가 ‘굶을과’로 통하던 때였다. 그러나 나는 “굶지 않고 작가의 길을 걷겠다”고 몇 번을 어머니에게 다짐을 한 끝에 1962년 결국 동국대 ‘굶을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정말로 결심했다. 아버지처럼 처자식 배를 곯리지 않을 것이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질 것이다, 아이를 여덟이나 낳은 부모님과 달리 하나만 낳을 것이다(아들이 태어나고 15년 후에 태백산맥이 그렇게도 잘 팔릴 줄 알았더라면 셋쯤은 낳았어도 됐는데, 내 인생에 가장 실패한 계획이 가족계획이다). -대학에 들어갈 때 내 꿈은 다른 대부분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소설가도 아니고 수필가도 아닌 시인이었다. 정말 열심히 시를 썼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고민이 깊어 갔다. 남들은 일주일에 한 편 쓰기도 벅차다는데 나는 서너 편이 그냥 써졌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가 자꾸 길어지고 늘어지는 데 있었다. 내 시의 함축과 절제는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교내 ‘문학의 밤’ 행사에서 1학년 동기 중 유일하게 시 낭독자로 뽑히기도 했지만, 뜻대로 시가 안 되는 데서 오는 우울감은 도통 가시지 않았다. “나는 시는 안 된다. 소설로 바꾸자.” 답답한 마음에 떠난 겨울방학 무전여행.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사흘간 어지러이 내리는 눈발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나의 시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소설로의 전향은 꽤 괜찮은 성취로 이어졌다. 2학년 때 교내 문학상에서 단편 ‘비탈진 음지’로 장원을 했다. 그때 상금 탄 걸로 같은 과 친구들한테 술 한번 사고, 당시 뭇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입학 동기 김초혜(시인)에게 손지갑을 사줬다. 그녀와는 군 복무 중이던 1967년 평생의 언약을 맺었고 1970년 동구여상에 함께 교사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우리를 ‘잉꼬부부’라고 불렀다. -문단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 나는 금세 공처가로 소문이 났다. 사람들에게 나는 한술 더 떠 “조정래는 공처가가 아니라 놀랄 경(驚)자를 쓰는 경처가다. 마누라만 보면 무서워서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문학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작가입네 예술가입네 하면서 방탕하게 살고 바람 피우는 것 같은 이상한 짓들을 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문학은 형식적인 몸짓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충실한 내용으로 해야 한다고 스스로 경고했고, 주색잡기 같은 걸로 아내의 속을 썩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내가 눈부시지 않고 미우면 하루인들 어찌 살겠는가. 사람들에게 말한다. 내 왼팔은 50년 동안 아내가 잡고 다녀 망가졌고, 오른팔은 글을 쓰느라 망가졌다고. -1972년 동구여상을 떠나 중경고로 옮기고 얼마 안 돼 10월 유신이 선포됐다. 예비역 장성 출신인 교장은 “역사적 영단을 적극 지지해야 한다”며 흥분을 했는데, 나에게는 참기 힘든 압박의 시작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미국을 비판한 ‘누명’, 연좌제를 비판한 ‘어떤 전설’, 월남전을 비판한 ‘청산댁’ 같은 작품으로 교장에게 미운털이 박혀 있던 터였다. 시시콜콜 트집을 잡는 바람에 위경련이 생겼고, 결국 죽지 않으려고 사표를 던졌다. 이후에는 출판사를 경영하기도 하고 차리기도 하며 경제적 여력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는데, 어느 정도 굶지는 않겠다는 믿음이 선 뒤 나는 글쓰기로 다시 돌아와 방대한 양의 소설을 써내기 시작했다. -1983년 9월부터 1989년 10월까지 6년여에 걸쳐 월간 ‘현대문학’에 ‘태백산맥’을 연재했다. 위로 쌓아 내 키만큼 되는 200자 원고지 1만 6500매 분량이 쓰였다. 한국의 작가들, 특히 전쟁을 겪은 우리 세대에 있어 분단은 문학의 원류 내지 본류라고 할 수 있다. 분단이야말로 우리 삶을 옥죄는 고통의 핵심이다. 소년 시절에 겪은 상처와 고통, 같은 민족끼리 싸운 아픔, 여전히 분단돼 있는 상황은 내가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제공한다. 태백산맥 이전에도 내 작품의 70%가 분단을 소재로 했던 이유다. 단편이 호미로 골짜기 하나를 파는 정도라면 중편은 골짜기 2개, 장편은 골짜기 3개를 파는 데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단편이나 중편, 장편으로는 태백산맥에 있던 그들이 왜 짐승이 아닌 사람인지, 왜 그들이 그래야만 했는지를 도무지 담아낼 수가 없었다. 1986년에 ‘태백산맥’이 단행본으로 발간되고 나서 한 달 정도가 지나자 미처 인지를 찍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책이 팔려나갔다. 태백산맥을 쓰면서, 또 영화화되면서 겪은 우익단체 등의 협박과 훼방 같은 것들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1994년 4월 우익단체에서 고발당한 사건의 경우, 2005년 5월에 무혐의 처분을 받기까지 무려 11년 동안이나 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했다. -후배들이 나에게 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난 “나는 소설로 참여한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가투(가두투쟁)를 안 했으니 가투를 해 본 너희들이 그 소재로 소설을 써보라”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체험은 있지만 치열성이 없었고, 그래서 고민과 사명감과 역사의식을 작품에 담아내질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려면 하루 8시간 노동하는 보통 사람들의 두 배,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바쳐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래서 수십년 동안 글감옥에 갇혀 먹고 자고 쓰는 것이 연속되는 생활에서 16시간 노동을 다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켜 나 자신을 이기고 싶었다.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소설가 조정래 치열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시대와 사회의 아픔을 문학에 녹여낸 우리 시대의 대표 작가다. 탄탄한 구성과 깊은 통찰력, 실증적인 취재에 기반한 왕성한 활동은 작품의 수에서도 유례가 없다는 평을 받는다. 20세기 한국사 3부작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1500만부 돌파라는 출판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1943년 전남 승주군(현 순천시) 출생 ▲순천 남국민학교, 벌교 북국민학교, 광주서중, 서울 보성고, 동국대 국문학과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단편집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한(恨), 그 그늘의 자리’ ▲중편집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비탈진 음지’, ‘황토’, ‘인간연습’, ‘사람의 탈’, ‘허수아비춤’, ‘정글만리’, ‘풀꽃도 꽃이다’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 ‘황홀한 글감옥’, ‘조정래의 시선’, ‘조정래 사진여행: 길’(사진앨범)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 ‘신채호’, ‘안중근’, ‘한용운’, ‘김구’, ‘박태준’, ‘세종대왕’, ‘이순신’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광주문화예술상, 만해대상, 현대불교문학상 등 수상
  • 아자벨 위페르 주연 ‘다가오는 것들’ 티저 예고편

    아자벨 위페르 주연 ‘다가오는 것들’ 티저 예고편

    “왜 그걸 말해? 그냥 모르는 척하고 살 순 없었어?” 2016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은곰상)을 수상해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 ‘다가오는 것들’이 9월 개봉을 앞두고 티저 예고편을 공개 했다. ‘다가오는 것들’은 모든 것이 떠나가는 순간,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을 마주한 한 여성의 감정을 밀도있게 담은 작품이다. 파리의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나탈리(아자벨 위페르)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다. 또 홀어머니의 딸로서, 바쁘지만 행복한 날들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갑작스러운 고백으로 그녀의 평화롭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공개된 예고편은 ‘사랑과 영혼’ OST로 잘 알려진 ‘언체인드 멜로디(Unchained Melody)’ 아카펠라 버전의 음악과 함께 조용한 삶을 사는 교사 ‘나탈리’의 독백이 시작된다. ‘나탈리’의 심정은, 파스칼의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암흑뿐이다. 자연은 내게 회의와 불안의 씨만 제공한다. 이것이 내가 보고 괴로워하는 것이다”라는 ‘팡세’의 구절로 대변한다. 또 프랑스 외곽의 한적한 숲을 걷는 ‘나탈리’의 모습은, 그녀에게 떠나간 것과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케 한다. 칸,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총 5회나 수상한 이자벨 위페르 출연과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수상 경력이 있는 프랑스의 미아 한센 러브가 연출을 맡았다. 흔들리는 한 여성의 감정을 섬세하고 따뜻하게 풀어낸 ‘다가오는 것들’은 9월 개봉 예정이다. 15세 관람가. 102분. 사진 영상=찬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닥터스 김래원 박신혜, 13년 ‘썸’ 끝내고 공식연인 “반갑게 맞긴 어렵겠다”

    닥터스 김래원 박신혜, 13년 ‘썸’ 끝내고 공식연인 “반갑게 맞긴 어렵겠다”

    인기리에 방송중인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하명희 극본·오충환 연출)의 박신혜가 처음으로 시작한 연애의 설렘과 할머니를 향한 애틋한 그리움, 아직 용서할 수 없는 아버지를 향한 미움까지 혜정의 미묘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시청자들을 함께 몰입하게 만들었다. 1일 방송된 ‘닥터스’ 13회에서는 드디어 설레임 폭발, 사내 연애를 시작한 혜정과 지홍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어렵게 시작한 두 사람의 사랑은 그만큼 달콤했다. 혜정은 당직도 아니면서 슬쩍 들른 지홍과 이어폰을 나눠 끼고 병원 산책로 데이트를 하는가하면 구내식당에서 둘이서 밥 먹기 위해 신호를 주고 받고 파란, 인주에게 지홍의 여자친구로 소개받는 등 달콤한 연애의 행복을 맛본다. 산책로를 걸으며 길 한켠의 꽃에 “혜정아 안녕~”하고 인사하는 지홍의 모습과 “누군가의 삶으로 들어가는 모험이 시작됐다”며 지홍을 집까지 바래다주는 혜정의 모습은 시청자들도 함께 행복하게 했다. 그러나 혜정의 아버지를 만났다는 지홍의 얘기에 굳어진 혜정의 얼굴과 지홍이 꺼낸 할머니 얘기만으로도 촉촉해진 혜정의 눈빛은 그녀의 오랜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트 데이트 후 함께 저녁을 먹다가 지홍이 준비한 국이 왠지 할머니의 국밥 같다며 좋아하던 혜정은 그 국이 혜정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할매국밥 집에서 사온 것임을 알고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상대방의 인생에 들어가는 일이 연애의 시작이다. 역으로 내 인생에 들어오려는 상대방도 반갑게 맞는 일이기도 하다. 반갑게 맞기는 정말 어렵겠다”는 내레이션에 이어진 혜정의 어두워진 눈빛은 연애의 시작과 함께 지홍이 자신의 인생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해야 하는 당황스러움을 암시했다. 첫 연애의 설렘 속에서도 자신의 인생에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것이 익숙치 않은 당황스러움을 눈빛과 표정으로 전달한 박신혜의 열연이 빛났다. 한편 13회 방송에서는 아내를 잃고 홀로 해와 달 형제를 키우는 바람(남궁민 분)이 아이의 수술비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에피소드가 그려져 시청자들을 함께 가슴 아프게 했다. ‘닥터스’ 14회는 8월 2일 화요일 밤 10시 전파를 탄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새누리 김순례 의원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새누리 김순례 의원

    새누리당 김순례(61·비례대표) 의원은 1일 “기성 정치인들이 쉽게 공감하지 못했던 부분에 소신을 갖고 일하겠다”면서 “아동, 여성, 장애인 등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을 잘 알고 이를 치유하는 게 이 시대의 과제”라고 밝혔다. Q. 정치를 왜 선택했나. A. 소명. 경기 성남시에서 37년간 약국을 운영하며 가장 낮은 곳에서 별의별 애환을 갖고 있는 분들을 만났다. 동네에 약국이 하나밖에 없어 출산 직후에도 매일 자정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덕분에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살았다. 우리 삶에 가까이 있는 정치의 중요성을 인지했다. Q. 어떤 국회의원이 될 건가. A. 게으르지 않은 국회의원. 권력을 잠시 빌렸으니 이를 국민들에게 고루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치인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 어디든 갈 것이다. 남들은 미래 계획을 많이 세우지만 저는 늘 현재를 철저히 산다. Q. 최대 관심사는. A. 자폐아동 진단 및 치료. 아들이 어린 시절 미미한 자폐 증세가 있어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아픔의 맛을 잘 안다. 자폐는 불치라는 고정관념과 막연한 무지 때문에 많은 아동들이 치료 시기를 놓친다. 특히 지적장애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정책적 배려가 더 미흡하다. 자폐아동의 부모들도 똑같이 세금을 내며 살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선입견 때문에 공동체로 인식되지 못하고 소외됐다. 희망을 주고 싶다. 저희 아이는 심한 경우는 아니었고, 지금은 잘 자라 한 가정을 이뤘다. 그러나 작은 바늘에 찔린 상처나 큰 칼로 찔린 상처나 느끼는 고통은 같다는 걸 안다. Q. 자폐아동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A. 국가 조기진단체제 도입. 과거에 암은 극복이 안 되는 질환이었다. 그러나 2003년부터 정부에서 계획을 수립한 뒤 70~80% 호전됐다. 자폐도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 자폐는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미국의 ABA(응용행동분석) 프로세스에 따르면 조기 발견을 통해 이 스펙트럼에 있는 3세 미만 아동들을 2, 3년 집중교육할 경우 89% 상태가 호전된다는 연구가 있다. 영유아 건강검진시스템을 강화해 자폐아동을 조기에 발견하도록 해야 한다. 자폐 치료가 주로 사설 기관 위주로 이뤄져서 비용이 매우 비싼 점도 개선돼야 한다. Q. 또 다른 주력 분야는. A. 소외된 사람들.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소비자 피해구제, 범죄피해자 지원, 성희롱 2차 피해방지 등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범죄피해자를 위한 예산이 1000억원이 넘는데 주체가 법무부, 여성가족부, 경찰청 등으로 쪼개진다. 아동복지 예산이 70억원이 넘는데 관련 수탁기관만 7개다. 이를 아동권리복지진흥원으로 통합해 보다 효율적으로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1호 법안으로 지난달 29일 제출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프로필 ▲1955년 서울 출생 ▲숙명여대 제약학과 ▲경기 성남시약사회 회장, 성남시의회 의원, 대한약사회 부회장, 여약사회 회장,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수석부회장
  • [열린세상] 입을 닫고 귀를 열자/이은경 한국여성변호사회장

    [열린세상] 입을 닫고 귀를 열자/이은경 한국여성변호사회장

    접촉 사고 때 첫 번째 행동 수칙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일 게다. 큰 목소리가 늘 옳은 게 아닌데도 말이다. 이 말은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 이기고 지는 게 더 중요하단 걸 가르친다. 그렇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 큰소리부터 치면서 이기고 봐야 한다. TV 프로그램도 그런 거 같다. 요즘 방송국마다 앞다투어 내보내는 게 마치 경기하듯 경연을 벌이는 거다. 아마추어뿐 아니라 기성 가수들도 누가 더 잘 불렀는지 승패를 가려야만 시청률이 나온단다. 단순히 노래 자체를 즐기는 것으론 부족한 게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그렇듯이 날 때부터 인생의 승패를 단정하는 사회, 삶 자체가 토너먼트 경기처럼 끝도 없는 경쟁과 승리에 내몰리는 곳이라면 ‘옳고 그름’의 문제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말 게다. 과거 대한민국은 언론이 통제되고,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 시절이 있었다. 힘 있는 자들의 일방적인 소리만 들렸던 그 시절 옳다고 생각되는 소리를 내기 위해선 거리로 나서야 했다. 당시는 핍박받는 소리였다. 크고 작은 소리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에 관한 소리였다. 그 목소리들이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이끌었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는 어떠한가. 목소리를 내는 창구가 다양해지고, 불특정 다수인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이 갖가지 정보를 쏟아내면서 솔직히 어느 목소리가 진실이고, 어느 목소리가 거짓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온통 큰 목소리에 둘러싸여 세상이 점점 더 혼란스럽고, 삶은 더 큰 피곤함에 내몰려 있는 게 리얼한 현실 아닌가. 저마다 굉음을 내며 소리의 자유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의 목소리는 타인의 목소리란 한계가 있다. 각자의 목소리가 소음이 아닌 화음이 되게 하려면 타인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런데 경기하듯 치열하게 살아 내야 하는 사회에서 남을 이기는 게 우선이고, 이기는 것만이 삶의 목적이라면 우린 두 귀를 막고 내 주장만 큰 소리로 외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 좌우(左右), 동서(東西), 빈부(貧富), 신구(新舊) 모두 각자의 편에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더 큰 소리를 지른다. 거리에서, 인터넷에서, 심지어 언론들까지. 과연 언제까지 이 소모적인 편 가르기를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피로감이 목에 차오른다. 격한 다툼에 귀도 먹먹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도 없다. 아니,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는 것 같다. 나만 잘살면 되는 극도의 이기적 사고가 배금주의와 결합해 인간의 감정은 스스로 통제도 안 되는 것 같다. 불신과 반목은 양심이란 단어를 조롱거리로 만들고, 미움과 분노는 조그만 잘못도 용납하지 않는다. 제발 대한민국은 경쟁과 승리라는 쾌속마의 고삐를 늦춰야 한다. 이를 위해 귀부터 열어야 한다. 나의 목소리보다 작은 소리를 듣기 위해 내 소리를 조금 줄여도 좋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 승리 대신 옳음을 말하는 소리는 큰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을지 모른다. 아마 들려도 매우 작은 소리일 게다. 양심의 소리 말이다. 화려한 겉포장을 걷어 내고 그 속의 진실을 발견코자 잠시라도 좋으니 입을 닫고 귀를 여는 여유를 갖자. 진실이 어디 있는지,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양심의 바탕 위에 내 목소리를 상대방의 소리에 맞춰 나갈 때 꽹과리 같은 큰 소리가 아니라도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여도 아름다운 화음이 들릴 수 있다. 그 소리는 따뜻한 소리, 건강한 소리일 게다. 이젠 크고 강한 소리가 대한민국을 끌고 나가는 걸 멈추자. 작고 아름다운 소리가 들릴 수 있게 작은 노력을 시작하자. 지금까진 적이라 여겼던 옆 사람에게 작은 소리로 말해 보자. ‘수고했다’고. 현란한 움직임 대신 작은 몸짓으로 이 나라의 변화를 꿈꾸어 보자. 격한 외침보다는 부드러운 속삭임이 진정성 있지 않은가. 사랑이 그렇듯 말이다. 거리에 나서지 않더라도, 거창한 구호를 외치지 않더라도 ‘이건 아닌데’ 하는 나지막한 소리가 이 나라를 움직이면 좋겠다. 이기는 게 행복이 아니라 함께하는 게 행복이란 말을 내 아이들이 믿고 살았으면 좋겠다.
  •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그녀에게 장미가 아니라 벼룩을 바친 시인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그녀에게 장미가 아니라 벼룩을 바친 시인

    시인이라면 잊지 못할 연애시 한편은 남기고 죽어야 한다. 내가 읽은 가장 재미난 연애시는 존 던(1572~1631)의 ‘벼룩’(The Flea)이다. 이 벼룩을 좀 보아요, 그리고 그 속에서 당신이 날 거절함이 얼마나 하찮은 일인지 보세요. 이놈은 먼저 나를 빨고, 이제 그대를 빨아, 이 벼룩 속에 우리의 두 피가 섞였지요 이것은 죄도 아니고, 수치도 아니며, 처녀성의 상실도 아님을 당신도 알고 있지요. 그런데 이놈은 구혼하기도 전에 즐기며 두 사람의 피가 하나로 된 것을 실컷 먹어 배가 불렀지요, 그러니 이는, 아 정말이지, 우리가 하고 싶은 것 그 이상이네요 오 멈추세요, 한 마리 벼룩 속의 세 목숨 해치지 마세요, 이 속에서 우리는 거의 결혼, 아니 그 이상을 했지요. 이 벼룩은 당신과 나,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결혼 침대이며, 혼례식을 올린 성스러운 곳이요; 비록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고, 당신도 내켜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미 만났고, 이 흑옥(黑玉)의 살아 있는 벽 속에 숨어 있지요 비록 당신은 나를 죽이는 습관이 있지만 거기에 자살을 추가하지는 마세요, 그리고 셋을 죽여 세 가지 죄를 짓는 신성모독을… 하하-. 연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데 ‘벼룩’을 이용하다니! 남들은 징그러워 오래 쳐다보지 않는 벌레, 무서운 전염병을 옮기는 벼룩을 보며 남자와 여자의 피의 ‘혼인’을 떠올린 참신한 발상에 나는 탄복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두 대상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것이 상상력이다. 하긴 사랑도 전염병이니, 벼룩과 연애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곤 할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를 만난 적은 없으나, 존 던은 무척 귀여운 남자였을 것 같다. 벼룩을 보며 웃을 여자가 있을까. ‘벼룩’을 읽으며 웃지 않을 여자가 있을까. 이렇게 재치 넘치는 언어로 구애하는 남자한테 안 넘어갈 여자가 있을까. ‘여자를 웃게 하면 그녀의 침대에 반쯤은 걸터앉은 거나 마찬가지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의 피가 하나로 된 것을 실컷 먹어 배가 불렀지요’(pampered swells with one blood made of two)는 임신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두 번째 연을, 무심코 벼룩을 때려 죽이려는 애인을 말리는 구어체 감탄사인 “Oh stay,”(오 멈추세요)로 시작해 극적인 긴장감을 높였다. ‘흑옥(黑玉)의 살아 있는 벽’은 벼룩의 검은 몸체를 말한다. ‘벼룩’처럼 재기발랄한 연애시를 쓴 사람이 훗날 세인트폴 대성당의 사제가 되었으니, 존 던의 파란만장한 삶 자체가 한편의 시대극이다. 던은 1573년 런던의 유서 깊은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상인이었던 아버지는 던이 세 살 때 죽었고, 던의 어머니는 ‘유토피아’를 쓴 토머스 모어의 조카딸이었다. 토머스 모어는 헨리 8세에 의해 대법관에 임명되었으나 반역죄에 몰려 처형당한 가톨릭 성인이다. 수장령을 선포한 헨리 8세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의 재위 기간에 가톨릭 순교자의 피가 흐르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던의 생이 순탄할 리 없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3년 공부했지만 가톨릭 신앙 때문에 영국 성공회의 충성맹서를 하지 않아 학위를 따지 못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도 공부만 하고 학위를 따지 않았다. 1593년 가톨릭 신부를 도와주다 체포된 동생 헨리가 감옥에서 죽자, 던은 가톨릭 신앙에 회의를 품게 된다. 상속받은 상당한 유산을 여자와 여행으로 탕진하고, 런던으로 돌아온 던은 당대 정계의 실력자인 토머스 에저튼 경의 비서관이 되었다. 에저튼의 후원 아래 착실한 경력을 쌓던 던은 스물여덟 살 되던 해에 에저튼의 조카딸인 열여섯살의 앤과 사랑에 빠졌다. 1601년 앤과의 비밀결혼이 발각되어 던은 해고되고 결혼식의 증인이었던 신부님과 함께 투옥되었다 곧 풀려났다. 앤의 사촌이 젊은 부부를 위해 시골에 피난처를 제공했고 부유한 친척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결혼축시를 써 주거나 법률 자문을 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다. 앤은 15년의 결혼생활 동안 12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6명만 살아남았다. 사십 세가 되도록 가난을 면치 못하던 던은 1615년에 성직에 들어갔다. 제임스 1세에 의해 성공회 사제로 임명되며, 드디어 오랜 돈 걱정이 끝났는데 1617년에 부인 앤이 열병을 앓다 사망한다. 던은 ‘가장 잘 선택되고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여인, 가장 귀엽고 순결한’ 아내를 기리는 비석을 세워 앤의 죽음을 애도했고 다시 결혼하지 않았다. ‘하나님 밑에서 그의 유해와 그녀의 유해가 합쳐져 새로이 결혼할 것을 서약하노라’는 비명(碑銘)이 말해주듯 두 사람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의 짝이었다.
  • 투견장에서 구출돼 ‘제2의 견생’ 사는 개

    투견장에서 구출돼 ‘제2의 견생’ 사는 개

    체리 가르시아는 까만 눈, 코, 입, 펄럭이는 귀를 갖고 있다. 까무잡잡한 털을 매력포인트로 자랑하는 11살 먹은 핏불 종 반려견이다. 체리는 고양이와 뒹굴거리며 노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아장거리는 아기들과 껴안기를 즐긴다. 또 중학생 아이들이 배를 만져주는 걸 기쁨으로 여긴다.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잘 따르며 귀여운 짓 마다하지 않는,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9년 전의 체리라면? 그는 피가 흐르고 살점이 떨어지는 링 안에서 싸워왔던 맹렬한 파이터였다. 체리는 어릴 때부터 작은 자극에도 눈빛을 번뜩이며 발톱을 세우고 송곳니를 드러내던 투견으로 자라왔다. 그는 2007년 '배드뉴즈케늘'이라는 불법투견단체에서 극적으로 구조됐다. 투견은 미국에서 공공연히 진행됐고, 동물보호단체의 노력이 있음에도 쉽게 근절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미식축구 NFL 스타였던 마이클 빅이 '배드뉴즈케늘'에 관여됐음이 확인되며 체리를 포함해 50마리의 투견들이 피튀기는 살육터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물론 구조된 뒤에도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를 지우지 못했다. 바짝 엎드려 마구 짖는가하면 손길조차 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체리를 입양한 새로운 가족이 나오면서 그에게는 '제2의 삶'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함께 아무런 적의 없이 뒹굴 수 있는 고양이 친구가 생겼고, 뒷마당에서 함께 놀아주는 가족들이 있으며, 개 아이스크림을 눈치 보지 않고 먹어도 되는 기회도 가졌다. 체리를 입양한 폴 피아콘은 "사람들은 링 위에서 피 흘리며 싸우는 투견들은 우리가 키우는 유순한 반려견과 다르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체리는 그게 잘못된 생각임을 확인시켜줬다"면서 "체리가 원하는 것은 그저 행복과 사랑 그 자체일 뿐"이라고 말했다. 체리는 최근 '견생 최고의 날(Dog's Best Day) 비디오 주인공으로 출연해 더없이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마음껏 뽐내기도 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로체 남벽, 영석이형과의 약속”

    “로체 남벽, 영석이형과의 약속”

     “높이 3300m의 수직 빙벽 앞에 서면 실로 압도되는 느낌이 대단합니다. 베이스캠프에서 곧바로 달라붙어 캠프1부터 캠프5까지 설치한 뒤 다시 내려와 하루에 한 캠프씩 올라가 엿새째 정상을 공략하고 다시 닷새 걸려 내려옵니다. 두 발을 동시에 붙이고 서 있을 만한 틈도 없어요. 낙석도 많고 강풍도 불고 정말 힘든 곳입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의 남동쪽에 붙어 있는 로체(8516m)를 발아래 둔 이는 많다. 하지만 남벽을 통해 정상을 밟은 이는 아직 없다. 러시아 군인팀과 일본 등반대가 올랐다고 주장했지만 객관적 인증을 받지 못했다.  다음달 중순 출국해 ‘4전5기’에 나서는 홍성택(50) 대장을 지난 20일 서울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에서 만나 ‘이제 그만 가라’는 소리를 듣는데도 한사코 도전에 나서는 이유를 들어봤다. 그는 허영호(62), 엄홍길(56), 2011년 안나푸르나(8091m) 남벽에서 저세상으로 떠난 박영석 등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인 셋 모두와 함께 세 차례 이상 등반을 한 귀하디 귀한 존재다. 로체 남벽은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세계 두 번째로, 그것도 아홉 봉우리에 새 루트를 내고 4곳은 동계에 올랐던 예지 쿠쿠츠카(폴란드)가 1989년 10월 24일 추락사한 곳이다. 1979년 로체 정상을 밟았던 쿠쿠츠카는 14좌 완등 2년 뒤 다시 이곳 직벽에 도전했다가 8300m 지점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홍 대장은 “첫 14좌 완등자 라인홀트 메스너(72·이탈리아)가 ‘21세기에나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일찌감치 포기한 것은 이곳을 오르는 게 14좌 완등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임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네 차례 도전해 쓰라리지만 값진 교훈을 쌓았다. 1999년 8월 첫 원정 때 7000m밖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멋모르고 덤볐던 것 같다. 원정 비용을 미처 다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났다가 철수하면서 장비들을 팔아 대원들 밥을 먹일 정도였다. 빚을 갚기 위해 영어학원에서 일하며 받은 월급을 아내 몰래 빼돌려 갚았다”고 돌아봤다.  홍 대장은 8년 뒤인 2007년 2월 엄홍길 대장과 함께 원정대를 꾸렸다. 엄 대장은 로체샤르(8400m)로 진행해 후배들 시신을 화장하는 끔찍한 충격을 견뎌내며 ‘16좌 완등’에 성공했으나 로체 남벽으로 향하던 홍 대장은 또 물러나야 했다. 소수 정예 원정대로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교훈을 얻었다.  2014년 9월 세 번째 도전 때는 캠프4(8200m)까지 올랐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70일의 등반 기간이 지나 또 돌아서야 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네 번째 도전. 3억 5000만원을 들여 21명으로 원정대를 꾸려 캠프4에서 정상 공략에 나섰지만 시속 150㎞ 강풍에 텐트가 날아가 정상을 300m 남기고 내려왔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했다. “전에는 셰르파들의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제가 지난 6월 7일 출국해 한 달 동안 네팔에 머무르며 셰르파들을 훈련시키고 정찰을 마쳤습니다. 현재 대원 둘은 알프스에서, 셰르파 둘은 K2에서 고소 적응 중입니다. 날씨만 도와준다면 100%는 아니지만 성공할 것으로 자신합니다.”  해외 등반가들도 성공할 것이라고 응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NGC)이 원정 비용 일부를 부담하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도 그만큼 성공 가능성을 믿는다는 방증이다. 로체 남벽의 세계 초등은 산악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 된다. 해마다 최고의 활약을 펼친 산악인에게 주어지는 황금피켈상도 한국인 최초로 그의 몫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영석 대장과의 약속이 이런 흔들림 없는 도전, 집착의 출발점인지 모른다. “제가 1995년 에베레스트 북동릉 ‘세컨드 스텝’을 개척한 것을 보고 박 대장이 ‘너 참 대단하다. 나랑 함께 로체 남벽 가자’고 지나가듯 얘기한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안나푸르나 남벽으로 (박 대장이 마지막 산행을) 떠나기 사흘 전 ‘안나푸르나 다녀오면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를 산에서 극지로, 탐험가의 길로 이끈 것도 박 대장이었다. 홍 대장은 1992년 카자흐스탄 칸뎅그리(7110m)를 오른 것을 시작으로 5극지(1993년 에베레스트, 1994년 남극, 2005년 북극, 2011년 그린란드, 2012년 베링해)를 세계 최초로 모두 밟았다. 2013년에 그 경험을 책 ‘아무도 밟지 않은 땅 5극지’에 녹였는데 산악계 원로 중의 원로인 김영도 선생이 이끄는 ‘산서회’에 불려나가 분에 넘치는 찬사를 들었다. 산에 가면 볼펜을 쓰지만 영하 35도면 “아 따듯하네”라고 말하는 극지에서는 고추장과 된장만 빼고 모든 것이 얼어붙어 연필로 쓴다. 로체 남벽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20년의 경험을 오롯이 책으로 내겠다고 했다.  그에게 탐험이란 무엇일까. “사실 14좌 완등은 이미 2000년대 들어 세계 산악계의 관심이 시들해졌습니다. 형들이 다 올랐고. 극지야말로 내게 도전과 시련,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시련으로 여겨졌습니다. 베링해 횡단에 한 차례 실패했던 영석 형이 이런저런 조언을 해 줬는데 우리가 무사히 횡단하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극지에서의 위험과 산에서의 그것은 비교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게는 등반보다 탐험이 훨씬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집니다.” 우리 시대 탐험가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우에무라 나오미(1984년 사망)와 닮은 점이 많다고 했더니 그는 “아뇨, 그 모든 과정을 혼자 해낸 우에무라와 대원들을 데리고 한 절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로체 남벽이란 거대한 도전을 마치고 나면 허탈감이 몰려올지 모를 일이다. 해서 조심스레 그 다음 행보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홍 대장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청소년들을 모아 북위 66도 33분을 가상의 원으로 연결한 ‘아틱 서클’을 돌아오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NGC에도 얘기해 일단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산에 가거나 탐험을 하면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고 하는데 한 나라와 민족이 성장하기 위해선 먼저 도전정신이 활짝 피어나야 합니다. 모든 나라의 성장에 탐험이 선행됐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광화문에 우마차가 다니던 시절에도 일본은 히말라야 원정대를 보냈습니다. 도전하지 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일깨우고 싶습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지면에 미처 옮기지 못한 홍성택 대장의 삶 얘기를 온라인에만 공개한다.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유도를 했다. 용인대 85학번인데 2학년 말 상대 선수와 연습하다 상대 선수가 다쳐 유도복을 벗었다. 보리 팔아 유도 시키고 대학까지 보냈는데 집안 반대가 말할 수 없었다. 괴로움을 떨쳐 내려고 산으로 향했는데 잘 맞았다.  형(허영호, 엄홍길, 박영석)들의 눈에 든 것이 타고난 체력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형들이 그냥 서 있으라고 하면 서 있는 등 뭐든 시키는 대로 해서 그랬던 것 같다. 덕분에 유도만 했더라면 체육관을 운영하며 애들만 상대했을텐데 세상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느껴 후회는 털끝만큼도 없다.  등반가와 탐험가의 길 가운데 가장 위험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1992년 러시아 칸뎅그리(7010m)에 갔을 때일 것 같다. 눈사태가 텐트를 덮쳐 옆의 후배 둘이 계곡 아래로 떨어졌는데도 세상 모른 채 잠에 빠져 있었다. 가위눌리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눈더미에 눌린 텐트 천장이 얼굴을 덮쳐 누르고 있었다. 정말 조금씩 미세하게 손을 움직여 바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텐트를 찢었는데 칼이 제대로 펴지지 않아 나중에 보니 손에 피범벅이었다. 그렇게 텐트를 째서 숨쉴 틈을 만들자 로프에 걸려 구사일생으로 벼랑을 올라온 후배들이 손으로 눈을 파내고 있었다. 이틀을 굶은 채로 베이스캠프로 내려왔다.   1996년 다울라기리(8167m)에 이어 오른 시샤팡마(8026m)도 잊을 수 없다. 엄홍길, 박영석 대장과 셋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뭉친 산행이었다. 캠프 2를 출발했는데 카메라 필름을 빠뜨린 것을 깨닫고 형들에게 혼날까봐 얘기도 못한 채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챙긴 뒤 다시 캠프 2로 향하다 크레바스에 빠지고 말았다. 50m쯤 되는 아가리 입구에 처박혀 옴짝달싹 못하면서 소리를 질렀지만 들릴 리 없었다. 어쩌다 천신만고로 빠져나와 합류했더니 온갖 상소리와 함께 “젊은 놈이 빠져 가지고 형들에게 저녁 짓게 하고 어디서 놀다 온다”고 혼났다. 2005년인가 영석 형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왜 이제야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하더라.  베링해 횡단이 가장 힘들고 무서웠다. 북극해에서 태평양으로 빠져나가는 유빙을 타고 넘어야 한다. 그 속도가 대단해 정말 위협적이다. 유빙끼리 충돌하며 내는 굉음도 소름끼친다. 그 유빙 위에서 어느 순간 1m 이상 높은 곳으로 개썰매를 들어 올리고 뛰어 올라야 한다. 동상은 기본이고. 그렇게 베링해를 건넜더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대단한 미치광이들이 왔다며 반겼다. 시애틀 한인회 분들이 그곳까지 비행기로 날아와 환영해주시고 현지 방송과 인터뷰도 주선해주셨는데 서둘러 귀국하고 말았다. 한인회 분들은 “출연하면 미국 전역에도 방영돼 어렵게 살아가는 교민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며 간청했는데 그 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지금이라도 용서를 빈다고 말하고 싶다. 로체 남벽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박영석 대장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1995년 에베레스트 북동릉을 박 대장 인솔 하에 한왕용(50·세계 13번째 14좌 완등자), 나관주(37) 등과 올랐는데 한국 산악의 미래를 이끌 주역들이 뭉쳤다고 해 화제가 됐다. 내가 세컨드 스텝의 30m 직벽을 개척한 것을 보고 영석 형이 “너 참 대단하다. 나중에 나랑 함께 로체 남벽 가자”고 했다. 당시는 스쳐 지나가듯 말해 그저 그런가 했다.  2011년 영석 형이 안나푸르나 남벽으로 떠나기 사흘 전 신동민과 술 먹다가 느닷없이 그 얘기를 다시 꺼내며 무작정 함께 가자고 했다. 난 당시 베링해 도전을 준비하고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형이 안나 성공하고, 내가 베링해 횡단 끝내면 뭉치자고 해 그러자고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박 대장, 강기석과 함께 운명한 동민이가 유독 집에 돌아가지 않으려 했던 기억이 난다.  외할아버지가 목사셔서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다. 산이나 극지에서도 곧잘 기도를 올린다. 유치할 정도로 자기 중심적인 기도다. 살려달라고,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애원한다. 환청을 자주 듣는 편인데 라틴어를 들은 적도 있다. 그때마다 멈추고 다음 기회를 노린다. 그렇게 해서 신기하게 목숨을 구한 적도 여러 번이다.  칸뎅그리 등반에서 돌아와 빚으로 남은 원정 비용을 갚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영어학원에서 일했다. 비서실 아가씨와 눈이 맞아 1996년 결혼했다. 프로포즈도 하지 않고 으레 결혼해야지 하면서 식을 올렸다. 형들에게 결혼한다며 아내 사진을 보여줬더니 농담하지 마라, 이런 미인이 너랑 결혼할 리가 있느냐고 했다. 나중에 직접 신부를 만난 영석 형이 자꾸 너 같은 게 무슨 결혼이냐고 하지 말라고 했다. 신혼 집들이라며 2박3일 내내 술을 마셔대 아내가 지금도 그때 얘기를 한다.  고등학교 3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있다. 내가 산에서 생을 마쳐도 혼자서 자식들 건사하고 키워낼 수 있는 여자여야 결혼한다고 생각했다. 늘 내가 없더라도 잘 살라고 얘기한다.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로체 남벽을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산에 가면 이 훌륭한 음식을 그때 한숟갈이라도 더 먹을걸 하고 생각날 때가 있다. (큰 산에 갔다가 돌아올 때) 공항에 내리자마자 내가 지금 뭘하고 있지? 라고 물을 때가 있다. 여기 있으면 산이 그립고, 산에 있으면 여기와 가족이 그립고. 가족이 결국은 원동력 아니겠는가. 갈 때와 올 때가 똑같아야 한다. 사고로 죽거나 대원들이 다치면 정상을 밟아도 성공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홍성택이 걸어온 길 ▲1966년 3월 13일 ▲경북 구미 출생 ▲구미 고아초-구미 현일중·고-용인대 유도학과-고려대 체육교육학과 석사 ▲1992년 칸뎅그리 등정 1993년 에베레스트 등정 1994년 남극점 스키·도보 탐험 1999년 로체 남벽 1차 도전 2005년 북극점 스키·도보 탐험 2007년 로체 남벽 2차 도전 2011년 그린란드 북극권 종단 2012년 베링해 도보 횡단 탐험 2014년 로체 남벽 3차 도전 2015년 로체 남벽 4차 도전 2016년 로체 남벽 5차 도전 예정 ▲1994년 대한민국 체육포장, 2011년 한국 탐험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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