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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붓이 남긴 명상…한지 위의 치유

    붓이 남긴 명상…한지 위의 치유

    ‘기구한 인생’으로 말하자면 작가 김민정(55)의 삶이 바로 그랬다. 1962년 광주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 그는 1980년 홍익대 미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결혼을 감행하면서 부모님과 의절하고 가시밭길을 걷기 시작했다. 병적으로 아내를 의심하고, 걸핏하면 폭력을 휘둘렀던 첫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7년 만에 끝났다.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면서도 대학원까지 마친 뒤 “성공하기 전에는 돌아오지 말라”던 어머니에게 두 아이를 맡기고 1991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인간으로서, 엄마로서, 작가로서 모두 실패한 채 이국 땅에서 새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은 그에게 너무나 큰 고통이었지만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대학에 들어가 다시 붓을 잡았다. 작업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극복해 나가던 그는 자선경매 전시에서 수호천사처럼 나타난 이탈리아인 남자와 결혼하고 생활도 안정을 찾아갔다. 이탈리아에 정착해 작업한 지 10여년이 지났을 때였다. 수묵으로 음악의 리듬감을 표현하던 그는 붓으로 선을 그리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다른 방법을 고민하던 중 종이와 불이 만나 그려내는 자연스러운 선에 사로잡혔다. “촛불이나 향불이 만들어내는 선에 몸을 맡겼어요. 불은 세속적인 삶의 격정과 욕망을 말끔하게 정화하고 나의 숨결을 옮겨 새로운 이미지로 남았습니다.” 한지, 먹, 불을 매체로 독창적인 작품 활동을 하는 김민정의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현대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종이, 먹, 그을음: 그 후’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전시에서는 작가의 작업세계 전반을 볼 수 있다. 채움과 비움의 순환적 관계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피에노 디 부오토’(2008)부터 신중하게 태워낸 한지 조각을 겹겹이 붙여 시적인 음율이 느껴지는 ‘스토리’와 ‘스트리트’ 시리즈, 한지의 앞면과 뒷면의 색감 차이와 한지의 물성을 살린 ‘인사이트’, 경쾌하고 즉흥적인 붓질과 섬세하고 절제된 태우기가 어긋나게 배접된 ‘페이징’(Phasing) 시리즈 등 총 30여점을 선보인다. ‘비어 있음 속의 충만’이라는 뜻의 ‘피에노 디 부오토’는 작게 태워진 구멍을 보다 크게 태워진 구멍으로 덮어가기를 반복해 만든 작업이다. 채움과 비움의 관계는 양가적이면서도 동시에 순환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원을 반복적으로 겹치면서 비움이 모이면 가득 차 오른다는 것을, 비우면서 채워진 것은 다른 커다란 비움으로 회귀된다는 철학적 사색을 가능하게 한다. 전시장 안쪽에 자리한 ‘페이징’ 시리즈는 종이, 먹, 불로 대변되는 작가의 모든 것이 응집된 결정체다. 태권도 2단인 작가가 기를 모아 한지에 먹으로 붓질을 하거나 물감을 흩뿌린 후 그 위에 얇은 한지를 덧대고 바탕의 윤곽을 그린 뒤 향불로 태운다. 그런 다음 원래의 한지와 구멍 난 한지를 엇갈리게 붙이는 것으로 작업을 완성한다. 작가는 “나도 이제 작가가 됐다는 기쁨, 한지로는 더이상 잘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만족감을 안겨줬던 작업”이라고 소개했다. “한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아름답고 완벽한 존재”라고 말하는 작가는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이탈리아 유학을 떠났을 때도 한지 뭉치를 품에 안은 채 비행기에 올랐다”고 회고했다. 수백, 수천 장의 한지를 초나 향에 그을리고 태우는 것을 반복하는 일은 그에게 명상의 행위라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작업에 집중하다 보면 부질없는 집착도 남김없이 태울 수밖에 없다. “종이를 태울 때 잡생각을 하면 불이 확 붙어 종이가 타기 쉬워요. 그래서 아예 잡념이 없죠. 불 자체도 바라보고 있으면 좋고, 저 자신이 ‘공순이’가 되는 느낌이 너무 좋아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태웁니다. 부질없는 반복적이고 사색적인 작업 과정 자체가 명상과 치유의 과정이 되는 것 같아요.” 김민정의 작품은 새털처럼 가볍지만 그의 인생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함도 느껴진다. 미니멀한 작품은 모진 풍파를 겪은 뒤 고요해진 그의 삶을 보는 것 같다. 반복적인 수작업의 결과물로 남는 그의 작품은 한국의 단색화 작업과 결을 같이하면서 미국과 유럽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내년 초엔 영국 런던의 화이트큐브에서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다. 힘들었던 과거도 이젠 웃으며 털어놓을 정도로 단단해졌다는 작가는 프랑스 남부의 생폴드방스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전시는 오는 10월 8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그것이 알고싶다’…천사목사와 정의사제? 봉사 뒤의 은밀한 거래

    ‘그것이 알고싶다’…천사목사와 정의사제? 봉사 뒤의 은밀한 거래

    16일 밤 방송되는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살아온 것으로 사회적 명성을 쌓고 존경을 받아온 전직 사제와 여성 목사의 진실을 파헤친다.이날 ‘그것이 알고싶다’ 1093회는 ‘천사목사와 정의사제 -헌신인가, 기만인가’라는 제목으로 전파를 탄다. 2015년 7월 소설가 공지영씨와 전직 천주교 신부 김씨 간에 고소 사건이 불거졌다. 평소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잘 알려져 있던 유명 작가와 전직 사제 간의 진실 공방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두 사람 모두 평소 사회 문제에 발 벗고 나섰던 일명 블랙리스트 작가와 정의구현사제단 신부였다는 점에서 논란은 컸다. 김씨는 면직이 부당하다며 교구를 고소했고 교구는 이례적으로 김씨의 면직 사유를 공개하기까지 했다. 누구보다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세상의 빛이 되고자 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씨가 신부라는 자격을 잃고 법적 공방을 펼치며 구설수에 오르게 된 원인에 관심이 쏠린다. 공개된 김씨의 면직 사유는 놀랍게도 천주교 사제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십계명 중 제 6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 위반이었다. 면직 사유서에 등장한 추문의 주인공은 이씨였다. 현재 김 전 신부와 함께 장애인 복지 센터를 운영하는 이 여성은 이른 바 한국의 마더 테레사라는 이름으로 이미 언론에도 수차례 소개되었고, 입양아를 키우며 장애인을 섬기는 개신교 여성 목사로 SNS상에서도 이미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김 전 신부와 이씨는 천주교 사제와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미혼모로서 처음 만났고 김 씨가 면직된 후 에는 함께 장애인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설과 관련한 의혹들에 대해 제보가 이어졌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것뿐 아니라 이 목사의 행적에 문제가 있어왔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미혼모라는 신분으로 입양아를 키우며 25년 동안 장애인을 섬겨 왔다고 주장하는 이 목사의 삶이 전부 거짓일 거라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 목사의 입양아 실제 양육자는 ‘첫째 아이가 입양된 지 얼마 만에 (24시간) 어린이집으로 온 거였어요?’라는 질문에 “10일 정도 됐었던 것 같아요, 10일 정도. 왜냐면 배꼽이 떨어지기 전에. 어린이집에서 떨어졌으니까. 어느 날은 본인이 TV에 나가야 하는데 아이들 자료가 있어야 된다. 그러니까 아이들 앨범을 만들어 와라…”라고 말했다. 한 제보자는 “항상 그 여자 만나려고 장애인이 모는 BMW가 그 앞에 대기해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 목사가 늘 자랑하던 입양아들은 실제로 남의 손에 길러지고 있었으며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사랑을 빙자하여 후원금 명목으로 돈을 뜯어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세상에 알려져 있는 이 목사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두 사람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평생 봉사와 희생을 해왔고, 좋은 곳에 쓰기 위해 후원을 받아 실제로 좋은 곳에 썼다”고 제기된 모든 의혹들을 부인하고 있다. 이 목사는 “저는 장애인 복지 지금까지 18살 때부터 해 오면서 월급 한 푼 받아 본 적도 없고, 이걸 통해서 제가 수입을 얻어 본 적도 없고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했다. 제작진은 복수의 제보자를 통해 두 사람의 음성이 담긴 녹취 파일과 메시지 내용 등을 입수했다. 수차례 언급되는 전 국회의원들의 이름과 이 목사의 은밀한 돈벌이에 대한 비밀이 담긴 파일 속 내용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한 제보자는 “뭐 X값이라 해가지고 2백, 3백만원씩 수금하러 돌아다녔는데 그걸 말하는 사람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도대체 이들이 운영하는 시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인지, 이들의 비밀이 지금까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지에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또 그동안 무보수로 봉사해 왔다는 이 목사가 어떻게 수많은 부동산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이번 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블랙리스트 작가와 전직 천주교 사제 간의 법정공방으로 출발한 한 복지시설의 운영에 관한 상반된 주장을 검증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240번 버스 ‘전복’ 사건/황수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240번 버스 ‘전복’ 사건/황수정 논설위원

    서울 신내동에서 건대입구역을 거쳐 논현동까지. 이 노선의 버스는 240번. 인터넷을 하는 사람치고 이 노선버스를 모르면 며칠 새 ‘간첩’이 됐다.아이가 혼자 버스에서 내렸는데도 기사가 아이 엄마를 내려 주지 않고 달렸다는 글이 인터넷 게시판에 처음 올랐다. 비정한 버스 기사에 비난 댓글이 들끓자 이례적으로 서울시와 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버스 기사의 딸은 눈물의 해명 글을 올렸고, 상황을 분석했더니 기사의 잘못이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성난 여론은 이번에는 아이 엄마한테로 갔다. ‘맘충’이라는 원색적 표현까지. 한 개의 진실에 여론은 저 혼자 손바닥 뒤집기. ‘240번 버스 이야기 전복 사건’쯤 되겠다. 60세의 버스 기사는 여론의 뭇매에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들끓었던 여론은 지금 한마디 변명이 없다. 대중이 분노하는 대상은 어떤 순간에도 존재하는데, 그 어느 순간에도 책임지는 주체는 온데간데없는 것. 이것이 인터넷 여론이 살아가는 방식이 됐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힘이 나날이 강성해지고 있다. 공격 대상을 찾아 부리부리한 눈동자를 굴리고, 먹잇감이 마땅찮으면 행간을 뒤져서라도 꼬투리를 잡고야 만다. 요 며칠 호되게 홍역을 치른 최영미 시인 게시글도 엉뚱한 쪽에서 사달이 났다. 최 시인이 집 없는 설움을 페이스북에 구체적(?)으로 하소연한 것이 화근. “내 로망이 (미국의 여성 시인) 도로시 파커처럼 호텔에서 살다 죽는 것”이라며 홍대 앞 어느 호텔이 방을 내준다면 평생 홍보대사를 자임하겠다는 글이었다. 삽시간에 최 시인은 갑질의 주인공이 됐다. 240번 버스 사건과 최 시인 해프닝에는 공통분모가 잡힌다. 인터넷 여론은 불길을 터주는 데로 정확히 가서 다분히 맹목적인 불씨를 옮겨 붙인다는 점이다. 불길의 방향이 애초에 달랐다면 어땠을까. 시인의 로망이 한낱 ‘지상의 방 한 칸’이라는 사실 쪽으로 불길이 열렸더라면. 갑질 공분이 아니라 가난한 시인을 향해 쓸쓸한 연민이 활활 타올랐을 수 있다. 진실과 상관없이 소재가 자극적일수록 인터넷 커뮤니티는 빨리 달궈지고 넓게 퍼진다. 전문가들의 견해가 그렇다. 속도로 파편화된 인터넷 공간에서 사람들은 ‘이야기’에 목말라 있다. 추문이든 미담이든 소재는 불문. 기억을 풍성하게 하고 삶에 더운 호흡을 불어넣는 진짜 이야기의 부재 시대. 삭막한 인터넷을 누비며 어쩌면 우리는 모두 얼치기 이야기꾼들이 되고 있는지 모른다. 하루하루 수명을 연장하려고 이야기를 짜내는 ‘천일야화’의 셰에라자드를 흉내 내는.
  • 사회가 만든 상처 혼자 아물 수 없다

    사회가 만든 상처 혼자 아물 수 없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김승섭 지음/동아시아/320쪽/1만 8000원“네 몸은 네가 챙겨야지.” 어른들에게 흔히 듣는 말이다. 그렇게 알고 살았다. 내 몸은 내가 건사하는 것이라고. 병은 내가 타고난 유전자나 내가 어디선가 옮아왔을 바이러스나 유해물질들에 의한 것이라고. 진단과 치료는 온전히 개인의 몫이라고 말이다. 196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로세토 마을은 이 ‘오래된 믿음’을 흔든다. 미국으로 옮겨온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공동체였던 마을 주민들을 치료하던 의사들은 희한한 현상을 목도한다. 술과 담배를 달고 살고 비만 인구도 많은데 유독 심장병으로 죽는 사람이 적었다. 로세토에서 1.6㎞ 떨어진 같은 이탈리아 이민자 마을 방고 주민들은 같은 물을 먹고 같은 병원을 다녔다. 하지만 심장병 사망률(1955~1961년)은 로세토의 2배를 훌쩍 넘었다. 그 이유를 탐구한 1964년 한 연구는 의학 논문에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이야기를 전한다. ‘로세토 마을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사람들이 삶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그들의 삶은 즐거웠고 활기가 넘쳤으며 꾸밈이 없었다. 부유한 사람들도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옷을 입고 비슷하게 행동했다. 로세토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그 공동체는 계층이 없는 소박한 사회였으며 따뜻하고 아주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였으며 서로를 도와주었다.’(290쪽) 로세토는 부모가 죽으면 이웃들이 아이를 돌봐준다는 무언의 약속이 있는 공동체, 시간당 8센트라는 가혹한 임금을 받는 채석장 근로자들을 위해 신부가 임금 인상을 이끌어 내는 공동체, 이웃들이 빈곤한 이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공동체였다. 한마디로 개인의 위기에 공감하고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가 개인의 몸을 구한 셈이다. 사회역학자인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 교수는 “로세토 마을은 어떤 공동체에서 우리가 건강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다는 확신,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함께해 줄 것이라는 확신은 기꺼이 힘겨운 삶을 꾸려 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라고. 공동체와 분리돼 살아가는 개인은 없다. 때문에 사회의 구조와 그로 인한 상처는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 흔적을 남긴다는 게 저자와 저자가 몸담은 ‘사회역학’의 기본 전제다. 한마디로 건강은 공동체의 책임이라는 요지다.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어떤가. 사회역학자로 쌍용차 해고노동자, 세월호 생존 학생, 소방공무원, 동성애자, 재소자 등의 건강 연구를 진행해 온 저자는 실업과 고용불안, 차별, 혐오, 재난 등 사회적 요인이 어떻게 개인의 몸을 고통으로 몰아가는지 데이터로 꼼꼼히 증명한다. 그의 연구에 드러난 한국은 ‘노동시장에서 가장 약한 사람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잔인한 논리로 운영되는’ 사회이자 ‘패자부활전이 존재하지 않는, 안전망 제로의’ 사회였다. 특히 2009년 이후 29명이 숨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의 비극은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몸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당시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의 50.5%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걸프전 참전 군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유병률(22%)의 2배를 훌쩍 넘는 것이다. 쌍용차 사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자 재취업 지원 등 적극적인 노동시장 프로그램에 가장 적은 돈을 투자하는 나라라는 현실에서 빚어진 참사였다.실업률 증가가 자살률에 영향을 주지 않는 북유럽 국가들은 공동체의 수준이 어떻게 개인을 구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1991년 경제위기를 겪으며 10%의 노동자가 직장에서 떨려난 스웨덴에서 자살률이 꾸준히 줄어드는 이유로 해고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터로 복귀하도록 하는 공적 안전망에 주목했다. 이는 인간을 대하는 한 사회의 철학과 자세를 압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습기 살균제 희생자들, 삼성반도체 암 환자들, 세월호 유가족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상처와 고통을 ‘타인의 문제’로 분류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의 상처 입은 몸은 약자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저급한 사회구조가 만든 것이고, 이들의 치유는 원인 해부부터 해결까지 모두 사회 전체적인 치유 작업이 이뤄져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는 저자의 믿음은 아득한 현실에서 내딛는 한 걸음으로 읽힌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신주아, 태국 재벌과 결혼했는데 2세 걱정 ‘대체 왜?’

    신주아, 태국 재벌과 결혼했는데 2세 걱정 ‘대체 왜?’

    신주아가 앞으로 태어날 2세에 대한 걱정을 토로했다.16일 방송되는 TV조선 ‘사랑은 아무나 하나’ 2회에는 지난주에 이어 프랑스, 파라과이, 알래스카 국제부부의 두 번째 이야기가 그려진다. 파라과이 부부 박영민(61)씨의 딸 박제이(20)양은 파라과이를 대표하는 톱 모델이다. 이날 방송에서 박제이 양은 과거 학창시절 인종차별 받았던 사연을 공개하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혀 주변의 안타까움을 샀다. 스튜디오에서 이야기를 듣던 신주아는 “남 얘기 같지 않다. 나중에 내 아이가 소심해질 것 같아 걱정이다”고 말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특히 방송 직후 각종 포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는 것은 물론 SNS 동영상 조회 수 50만을 돌파하며 화제가 된 파라과이 최고 톱 모델 박제이 양과 아버지 박영민(61) 씨의 갈등이 예고돼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또한 알래스카에 33년 째 거주하며 남편의 무관심에 힘들었다는 알래스타 부부 최연경(56) 씨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이에 신주아는 “외국에 있으면, 남편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큰 의지가 된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연락도 없이 늦었을 땐 “죽이고 싶었다!”고 말해 현장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이에 “지금 사이가 안 좋네”라는 김용만의 말에 신주아는 “현재는 사이가 무척 좋다”고 해명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참신한 기획과 화려한 출연진으로 방송 전부터 주목 받고 있는 TV조선 ‘글로벌 부부 탐구생활 - 사랑은 아무나 하나’는 세계 각국에 살고 있는 글로벌 부부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과 애환을 들여다본다. 김용만, 주영훈, 신주아의 진행으로 머나먼 타지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은 글로벌 부부의 생생한 삶의 모습이 방송된다. 16일 오후 11시 방송.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우리 아이에게 맞는 새로운 직업은?…‘청소년 생각배움 지원사업’ 확대

    우리 아이에게 맞는 새로운 직업은?…‘청소년 생각배움 지원사업’ 확대

    청소년들에게 미래의 새로운 직업을 소개하고 스스로 직업을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서울 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확대 운영된다.서울시와 서울산업진흥원(이하 진흥원)은 2015년부터 운영해온 ‘청소년 생각배움 지원사업’을 올해 서울 내 88곳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리는 학생 5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다고 15일 밝혔다. 이 사업은 청소년에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역량을 배양하여 미래 변화를 인식하고 신직업을 탐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미래의 변화 속에 ‘나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신직업 아이디어를 상상하며 미래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 진흥원의 설명이다. 올해의 경우에는 미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직업과 관련된 가상의 회사를 설립하고 브랜딩과 마케팅을 해보는 ‘드림메이커(Dream Maker)가 되자!’와 세계적인 미래학 이론을 통해 지역 사회의 미래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학생 스스로 역할을 탐색하는 ‘미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또 미래 직업인의 삶을 체험하는 ‘드림런웨이(Dream Runway)’ 등의 커리큘럼으로 구성돼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해 청소년 생각배움 지원사업이 실시됐던 서울 중앙중학교의 한 교사는 “진로교육에 연극을 활용하여 아이들이 무대를 통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고, 교사의 입장에서도 새로운 교육변화의 흐름에 발맞추어 새로운 시각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마장중학교의 한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 모두의 만족도가 높았으며, 새로운 교육 참관을 통해 학교 현장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매년 하반기에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이 모여 ‘생각나눔’ 축제를 개최한다. 올해는 다음달 17~1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 야외공간에서 개최된다. 진흥원은 “‘생각나눔’ 축제는 생각배움 프로그램을 통해 발굴한 신직업 아이디어와 미래 사회에 대한 변화한 인식,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 등을 상호 공유하는 축제의 장”이라면서 “다양한 생각배움 프로그램을 자유로이 경험하고 새로운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전시장과 체험교실로 구성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생각나눔’ 축제는 관심있는 학생, 학부모, 교사, 시민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캡틴 삼촌과 천재 소녀의 감동 스토리…‘어메이징 메리’ 예고편

    캡틴 삼촌과 천재 소녀의 감동 스토리…‘어메이징 메리’ 예고편

    영화 ‘어메이징 메리’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7살 수학 천재 소녀 메리는 해변가 조용한 마을에서 삼촌 프랭크와 함께 살아간다. 메리의 할머니는 세계적인 수학계 저명인사다. 그녀는 메리가 세상을 바꿀 수학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할머니와 달리 삼촌 프랭크는 메리가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이는 촉망받던 천재 수학자였지만 불행한 죽음을 맞은 그의 누나이자 메리 엄마의 바람이기도 했다. 결국 두 사람의 갈등은 특별한 천재 소녀 메리를 둘러싼 법적 분쟁으로까지 이어진다. 영화 ‘어메이징 메리’는 숫자에 특별한 재능을 지닌 아이 ‘메리’(맥케나 그레이스)와 평범한 행복을 꿈꾸는 삼촌 ‘프랭크’(크리스 에반스)가 천재를 원하는 세상 앞에서 사랑과 용기로 담대하게 살아가는 감동 스토리다. 공개된 예고편에는 아름다운 영상미와 7살 천재 소녀 ‘메리’의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이 가득 담겨 있다. 특히 ‘프랭크’와 ‘메리’의 일상이 영화의 따뜻한 감성을 예상케 한다. 영화는 ‘500일의 썸머’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통해 장르와 세대를 넘나들며 감성을 관통하는 탁월한 연출력을 선보인 마크 웹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여기에 ‘설국열차’, ‘어벤져스’ 시리즈의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은 아역 배우 맥케나 그레이스의 사랑스러움이 눈길을 끈다. 추석 연휴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감동 스토리를 예고하는 ‘어메이징 메리’는 오는 10월 4일 개봉한다. 12세 관람가. 문성호 기자 sunngho@seoul.co.kr
  • 암 완치한 9살 소녀, 암 환자들 도우려 팔찌 회사 차려

    암 완치한 9살 소녀, 암 환자들 도우려 팔찌 회사 차려

    암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9살 소녀가 암에 걸린 친구들을 돕기 위해 팔찌 회사를 차렸다. 2년 넘게 고통스런 항암치료를 견딘 후 성공적으로 암을 물리친 베카 살민스(9)는 12일(현지시간) 미국 NBC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베카는 2014년 9월 8일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당시 6살이었던 베카는 “나는 엉덩이가 아프다고 투덜대며 병원 침대에 앉아있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병실로 들어와 제가 암에 걸렸다고 말했죠. 전 엄마에게 ‘암이 뭐예요?’ 라고 물었고 엄마는 ‘병이야, 머리카락을 모두 잃게 되지’라고 답하며 울기 시작했어요”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때부터 2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베카는 끊임없이 치료를 받았다. 엄마 셰리는 “그 지독한 날들을 단 하루도 잊지 못해요. 딸의 척추 아랫부분에 꽂힌 수 많은 바늘, 반복되는 병원 입원행, 원치 않았던 치료 부작용 등 너무나도 긴 여정이었죠”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힘들고 기나긴 시간을 묵묵히 버틴 베카에게 마치 보상이 내려진 것처럼, 지난해 11월 13일 베카는 마지막 치료를 끝으로, 암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이 됐다. 그러나 암 치유과정 동안 자신의 삶이 어땠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베카는 암에 걸린 친구들과의 인연만큼은 이어나가고 싶었다. “난 그저 평범한 아이가 되길 원했고, 많은 것을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건 지금 병원 침대에 누워 치료 받는 아이들이 바라는 것이기도 하죠. ‘우리 언제 집에 가요?, 친구들과 언제 놀 수 있어요?’라고 묻는 아이들에게 제가 받은 행운을 되돌려 주고 싶었어요.” 지난 2월 베카는 수영복 재료로 팔찌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고, 아빠와 함께 ‘노츠 앤 애로’(Knots and Arrows)라는 이름의 회사를 차렸다. 회사는 팔찌를 판매한 수천 달러의 수익금을 소아 암환자를 연구하거나 돕는 여러 자선단체와 도움이 필요한 가족들에게 기부하고 있다. 베카의 엄마는 “우리는 운이 아주 좋았어요. 딸이 살아남아서 아빠와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 우리가 입은 축복을 되돌려 줄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이에요”라며 부녀를 지지했다. 끝으로 베카는 “사람들이 팔찌를 통해 ‘위대한 것은 작은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몇 살이든, 어떻게 생겼든, 무슨 행동을 하든 누구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전하고 싶어요”라며 자신의 바람을 덧붙였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아이 키우기에 가장 힘든 나라…1위는?

    아이 키우기에 가장 힘든 나라…1위는?

    부모로서 한 가정을 꾸려나가기란 이만저만 힘든 일이 아니다. 특히 아이를 키우며 일을 병행하는 건 도전과도 같다. 그런데 특히 ‘이 나라’에 사는 부모의 경우 아이를 키우기가 더욱 힘들다고 한다. 12일(현지시간) 영국 전문가 시장(Expert Market)은 자체 보고서를 통해 부모가 살기에 가장 최악인 국가로 미국을 선정했다. 전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일반 가정을 꾸리기에는 최악의 장소로 꼽힌 셈이다. 해당 보고서는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평균 연간 근무시간, 법적 유급 휴가 일수, 여성 유급 육아휴가와 남성 유급 육아휴가를 비교해 37개 국가를 분석했다. 그 결과, 부모가 아이를 키우며 살기에 가장 나쁜 나라로 미국, 멕시코, 코스타리카가 상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칠레, 이스라엘, 터키, 아일랜드, 뉴질랜드 그리고 스위스 순이었다. 이들은 유급휴가를 보장하지 않고 남녀 육아 휴직 기회가 부족해 일과 생활의 균형이 고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 공정노동기준법(Fair Labor Standards Act)은 고용주에게 유급 휴가를 제공하도록 규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부모를 위한 법정 유급 휴가도 부족해 육아 계획을 세우기 힘들며 작업 환경에 좌우되는 실정이다. 반면 핀란드는 높은 금액의 유급 연간 휴가 덕분에 일과 삶의 균형이 잘 지켜지는 국가 1위를 차지했다. 핀란드 다음으로는 유급 출산 휴가 시 85주까지 임금 전액을 제공하는 에스토니아와 평균 51.2주의 유급 출산 휴가를 보장하는 호주가 그 뒤를 이었다. 인디펜던트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유급 출산 휴가는 평균 2.8주로 정기적인 급여를 받는 수준에 그친다고 한다. 한편 일본은 실제 남성에게 30.4주의 육아 유급 휴가를 제공해 최고점수를 얻었고, 노르웨이는 낮은 평균 근무시간으로 우세를 보였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월드피플+] “내 딸이 당신 가슴 속에…” 낯선 이와 눈물의 만남

    [월드피플+] “내 딸이 당신 가슴 속에…” 낯선 이와 눈물의 만남

    "당신 가슴 속에 내 딸의 폐가 숨을 쉬고 있네요" 지난해 6월 20일 부모라면 누구도 받고싶지 않은 비극적인 소식을 담은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딸이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것. 그리고 얼마 전. 악몽같은 현실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부모는 낯선 여성을 꼭 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가슴 속에서 딸의 폐가 숨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미국 NBC뉴스는 장기기증 가족과 수혜자의 가슴 아프지만 따뜻한 만남의 사연을 전했다. 사연의 주인공은 장기기증자의 부모인 레이와 안젤라 저스티스 부부와 수혜자인 재키 프라이스다. 저스티스 부부의 금지옥엽같은 딸 사만다는 워싱턴D.C.의 한 도로에서 트럭에 치여 숨졌다. 불과 20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도 잠시 저스티스 부부는 딸의 장기를 이식하는 고귀한 선택을 하게 된다. 이같은 희생으로 사만다는 생면부지의 5명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1년 여가 흐른 최근 저스티스 부부는 한 낯선 여성으로부터 장문의 편지를 받았다. 바로 사만다의 폐로 새로운 삶을 얻게 된 25세 여성 재키였다. 그녀는 "사만다의 폐가 내 안에서 숨을 쉰다"면서 "내가 지금 여기에 살아있는 것은 그녀 덕분"이라고 편지에 적었다. 이렇게 편지를 계기로 저스티스 부부와 재키는 지난 10일 만났고 서로를 꼭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숨진 사만다의 엄마 안젤라는 "당신 가슴 속에서 내 딸의 아름다운 영혼이 숨을 쉰다"면서 "생전 딸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쁜 아이였다"며 눈물을 훔쳤다. 고귀한 희생 덕에 새로운 인생을 얻게 된 재키 역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1년 전 만 해도 폐병으로 인생의 마지막으로 향하던 그녀에게 오늘날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재키는 "나에게는 고귀한 선물이 저스티스 가족에게는 비극이었다"면서 "뭐라고 감사의 말을 해야할 지 표현조차 못하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어 "앞으로 계속 저스티스 가족과 연락하며 만남을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커버스토리] 공무원과 엄마 사이… 아슬아슬 외줄 타기

    [커버스토리] 공무원과 엄마 사이… 아슬아슬 외줄 타기

    공무원 워킹맘은 민간 워킹맘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육아휴직을 최대 3년까지 쓸 수 있고 직장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엄마 공무원들이 호소하는 고충을 들어 보면 공직사회 역시 ‘육아 천국’과는 거리가 멀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부처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정부세종청사를 찾을 때마다 공무원 워킹맘을 격려해 화제가 됐다. 지난 1월 휴일에 출근했다가 과로로 숨진 세 아이 워킹맘 김모 사무관이 일하던 보건복지부 사무실을 찾아 애도했고(아래 사진), 며칠 뒤에는 공정거래위원회 직원식당에서 육아휴직에서 복귀했거나 다자녀를 둔 직원 20여명을 불러 함께 점심을 먹었다. 공무원 워킹맘들은 다자녀 공무원의 보직 우선 선택권, 정시 퇴근 보장, 육아 안식제 도입, 청사 어린이집 확충 등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둔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그 이유를 들어 봤다.●30대 중반 기획재정부 여성 사무관 “엄마, 오늘도 집에 못 오는 거야? 새벽에 올 거야? 어제는 언제 왔다 갔어?” 휴대전화 영상통화가 연결되자 아이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다.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다. 가슴을 문지르며 말문을 연다. “응, 엄마 새벽 3시에 들어갔다가 재준이(가명) 자는 거 보고 나왔지. 오늘은 못 갈 거 같아. 할머니랑 먼저 자고 있어, 알았지?” 오늘은 8월 24일, 벌써 2주째 7살 아들을 못 봤다. 일주일 뒤 국회에 내년도 예산안을 제출할 때까지는 계속 이런 신세일 것이다. 사무실이나 국회 복도에서 매일 밤 9시 영상통화를 하는 것 외에 아이에게 해줄 게 없다. 아이도 안다. 매년 되풀이되는 일이니깐. 나는 엄마 공무원이다. 기획재정부에서도 업무 강도가 세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예산실에서 일한다. 예산안을 짜는 6~8월은 물론 예산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뛰어야 하는 10~12월은 지옥처럼 바쁘다. 집이 세종이라 국회가 열리면 짐 가방을 꾸려 서울 여의도 호텔에서 장기 투숙한다. 아이는 친정부모님께서 맡아주신다. 내일이면 일흔이신 두 분이 50년 넘게 산 서울 집을 떠나 나 때문에 세종에 내려오셨다. 딸이 죄인이다. 요새 아이 때문에 걱정이 많다. 엄마가 옆에 없어서인지 정서적으로 불안해 보인다. 어쩌다 쉬는 토요일 오전이면 내 옆에 붙어서 좀체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공원에 나가 같이 자전거도 타고 놀고 싶은데 몸은 피곤하고 토요일 오후부터는 또 사무실에 나가 일을 봐야 한다. ‘여유로운 부서에 가 볼까. 아니면 좀 덜 바쁜 부처로 옮겨 볼까’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고생한 게 아까워서 안 되겠다. 몇 년만 더 버티면 승진하고 인정도 받을 텐데 그동안의 희생이 물거품이 될까 두렵다. 화가 나는 건 왜 이런 고민을 엄마들만 하느냐는 거다. 나처럼 애가 있는 동기 남자 사무관들은 이런 고민 안 한다. 일과 육아 사이의 번민은 늘 일하는 엄마들의 몫이다. ●30대 중반 외교부 여성 서기관 9월 3일 일요일, 모처럼 여유로운 오후다. 집에서 남편, 7살 아들과 함께 뭘 먹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했다는 소식에 잠깐의 평화는 무참히 깨졌다. 칭얼대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겨 두고 부랴부랴 사무실에 출근했다. 내가 하는 일이 늘 그렇다. 외교부는 업무 특성상 엄마의 특수성을 아무리 배려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 본부에 있을 때에는 그나마 낫지만 결국 국외 근무를 피할 수 없다. 외교관 남편을 따라나가는 아내는 제법 있지만 외교관 아내를 따라 외국에 가서 애를 키우겠다는 남편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자 선후배, 동기들은 친정엄마나 시어머니와 함께 해외 공관에 나간다. 나도 내년에 미국 공관에 나갈 때 시어머니를 모시고 갈 생각이다. 남편은 한국에 떨어져 있고 만리타국에 시어머니와 함께 살며 애를 키우고 일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현지에서 애를 봐 줄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야근 상황이 생기거나 하면 대처가 곤란하니 엄두가 안 난다. ●39세 한 사회부처 여성 사무관 나 자신을 포기한 삶이 익숙해졌다. 한때 영화광이었는데, 영화관에 가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11살 아들과 7살 딸을 키우는 나는 12년째 ‘독박육아’ 중이다. 후배들은 친정이나 시댁 도움 없이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일하는 나를 대단하다고 치켜세운다. 하지만 겨우겨우 하루를 버텨 가는 처지라 과연 잘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새벽 6시 전에 일어나서 아이들 밥상을 차린다. 초등학생은 학교에서 아침을 안 준다. 집에서 아침을 먹여서 보내야 한다. 아이 둘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정 바쁘면 아침을 건너뛸 수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죽 등 간단한 아침을 먹여 주기 때문이다.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면 아이를 찾아 데려다 놓고 다시 부엌에 들어간다. 저녁을 차리면서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하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면 어느덧 자정이다. 이렇게 산 지 한참 됐다. 물론 지금보다 아이들이 더 어릴 땐 퇴근해서 집에 가면 이유식을 만들어 얼려 놔야 하고 젖병 소독하고 할 일이 더 많았다. 5시간밖에 못 자니 늘 잠이 부족하다. 7시간만 잘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40대 초반 여성 검사 “이모님, 오늘 꼭 끝내야 하는 사건이 있어서요. 조금만 더 있어 주시면 안 될까요? 11시까지는 꼭 갈게요.” 피의자들 앞에선 당당하게 큰소리치던 나도 아이를 봐주는 육아도우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여성 검사에게도 육아는 피해 갈 수 없는 문제다. 수사 업무의 특성상 야근이 잦은 탓에 엄마 검사는 육아도우미 사이에서 ‘기피 대상’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보모를 구하지 못해 친정이나 시댁 부모님 손을 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 때문에 육아휴직을 ‘쉬었다 오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도 불편하다. 직접 아이를 키워 보면 육아가 일하기만큼 어렵다는 걸 금방 알게 될 거다. 경력 단절에 대한 고민도 적지 않다. 보통 검사 2~3년차에 특수부 등 잘나가는 부서에 갈 기회가 생기는데 하필 그때가 결혼과 출산을 많이 하는 시기다. 그 시기에 출산휴가를 다녀오면 원하는 부서에 가기 힘들어진다.●35세 경제부처 여성 사무관 3살인 첫째가 밤새 열에 시달렸다. 체온이 40도를 넘기자 겁이 덜컥 났다. 중요한 정책 발표를 앞두고 있어 차마 휴가를 낼 수도 없다. 지난번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출근할 수 없다고 전화했다가 과장님께 혼쭐이 났다. 그때 느낀 설움과 당황함이 떠올라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하는 수 없이 10분 거리에 사는 친정엄마에게 ‘SOS’를 쳤다. 평소에도 어린이집 등·하원을 도맡아 주시는데 오늘은 더 죄송해서 엄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서둘러 집을 나왔다. 오전에 집에 전화해 보니 첫째가 수족구 판정을 받았다. 아플 아이보다는 과장님 얼굴이 먼저 스쳤다. 수족구는 전염병이라 일주일 동안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할 것이다. 한 살 둘째와도 격리해야 하니 나와 남편 둘 중 하나는 휴가를 내야 한다. 변호사인 남편은 재판 때문에 안 된다고 할 게 뻔하다. 결국 내가 철판을 깔아야 한다. 예전보다 대우가 좀 나아져서 엄마라고 하면 정시 퇴근을 눈감아 주고, 회식에서 빠져도 크게 뭐라고 하진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육아 문제로 돌발 휴가를 쓰는 건 어렵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세종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서울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서울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패러다임 바꾸는 ‘양천 스마트 시티’… 미래 도시 그린다”

    [자치단체장 25시] “패러다임 바꾸는 ‘양천 스마트 시티’… 미래 도시 그린다”

    ‘스마트 시티’가 뜨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정부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스마트 시티는 도시에 4차 산업혁명을 접목한 신성장 동력 핵심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정부 역량을 모아 스마트 시티를 국가적 시범 사업으로 추진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전국 곳곳에서 관련 포럼도 줄줄이 열리고 있다. 서울 자치구 중 스마트 시티 구축을 선도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전문가들은 양천구를 최적지 중 한 곳으로 꼽는다. 내년이면 1985~1988년 차례로 건립된 목동아파트 1~14단지의 재건축 연한이 도래, 구를 새롭게 정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양천구에선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지난 8일 구청을 찾았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기다렸다는 듯 스마트 시티 얘기부터 꺼냈다. 목동아파트 1~14단지 재건축을 기점으로 양천구를 스마트 시티로 만들겠다고 했다. 지금껏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원대한 포부이자 계획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왜 스마트 시티인가. -스마트 시티는 도시 패러다임을 확 바꾸는 혁명적인 변화다. 기존엔 교통체증이 심하면 도로를 신설해 문제를 해결했다. 인프라 공급에만 치중했다. 하지만 스마트 시티는 교통량 정보, 운전자 습성 등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해 운전자에게 내비게이션으로 우회도로를 안내한다. 도시 기능의 효율화를 통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도시라 할 수 있다. →스마트 시티 구축안은 언제부터 생각했나. -내년이면 양천구가 개청한 지 30년이 된다. 이젠 30년 이후를 내다보고 준비해야 한다. 양천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목동아파트 재건축을 중심으로 한 스마트 시티 구축이 양천의 미래 비전이라는 답을 얻었다. 스마트 시티 구현은 서울에서 양천구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왜 목동인가. -목동아파트 1~14단지 392개 동에는 2만 6629가구가 산다. 양천구 전체 가구 중 15.05%에 달한다. 면적도 209만 7152.2㎡로 구 전체 면적의 12%를 차지한다. 이 아파트 단지들의 재건축 연한이 다가왔다. 지금이 주민들에게 스마트 시티를 제안하고 논의할 최적의 시기다. 단지별 4명씩 총 56명이 참여하는 주민참여단을 구성했는데, 주민들과 충분히 논의하려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민들이 스마트 시티 구축 계획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이후에 재건축해야 한다. 관 주도의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개발이 아닌 주민 참여를 통해 삶의 질을 한층 높여야 한다.→스마트 시티를 어떻게 구현하겠다는 건가. -목동아파트 재건축은 단순히 주택 재개발로 끝나선 안 된다. 난개발은 더더욱 안 된다. 단지별로 제각각 개발하면 주거시설들만 들어서게 된다. 주거시설이 늘어 구민이 증가하면 잘못하다간 도시가 마비된다. 주차장을 하나 예로 들겠다. 목동아파트 단지는 주차 문제가 심각하다. 지하주차장이 없어서다. 재건축만 한다면 단지별로 지하에 주차 공간을 마련하면 된다. 하지만 스마트 시티를 구축하려면 아파트 단지와 단지 지하 공간을 연결해야 한다. 주차장만 만드는 데서 벗어나 주차 공간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스마트폰과 주차 시스템을 연계해 주차 공간을 검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차할 곳을 찾아 헤매는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목동 주민들만 좋은 거 아닌가. -절대 그렇지 않다. 스마트 시티 구축은 목동아파트 재건축을 동력으로 삼아 하나의 도시를 새로 만드는 거다. 구 전체가 완전히 달라지는 거다. 주차장을 예로 들었는데, 지하 공간을 구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거다. 이제 시작 단계다. 환경적인 측면도 고려해 울창한 숲과 녹지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등 준비할 게 많다. 올해 1월 스마트 시티를 구현할 미래도시기획단도 꾸렸다. 기획단 조사 결과와 전문가, 주민 의견을 수렴해 재건축을 통한 스마트 시티 구축 효과와 개발 온기가 구 전체에 미칠 수 있도록 하겠다. 김 구청장은 30년을 내다보는 미래 비전으로 여성친화도시·출산친화도시도 제시했다. 그는 ‘여성이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하다’는 생각으로 올해 초부터 여성친화도시 조성에 주력했다. 지난 5월엔 여성친화공간인 ‘양천맘카페’를 개관했다. 저소득층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여성에게 필요한 경제 교육이나 생활강좌 등도 하는 일자리·경제·마을 커뮤니티 공간이다. 7월엔 ‘목4동시장 공동주차장·공유센터’가 문을 열었다. 센터엔 부모의 양육 부담을 덜고, 육아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아이와 부모를 위한 공간인 ‘해우리 아이맘카페’와 ‘장난감도서관’을 조성했다. 여성가족부에 여성친화도시 인증도 신청, 12월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출산친화도시 조성도 체계적으로 진행한다. 지난 1월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일·가정 양립을 위한 가족 친화적 직장문화와 육아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학부모의 보육료 부담도 덜었다. 민간어린이집 아이들도 국공립어린이집과 똑같은 혜택을 받도록 추가경정예산을 편성, 보육료 차액 부담금을 지원했다. 반쪽짜리 무상보육이 아닌 실질적인 무상보육을 실현했다. 지난 3년간 구립어린이집을 27곳 늘렸고, 내년까지 40곳을 확충할 계획이다. 아이들의 창의력과 모험심을 키워 줄 창의어린이놀이터, 아빠 육아를 돕기 위한 베이비존 등 동네 곳곳에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놨다. →왜 여성친화도시, 출신친화도시인가. -구청장 선거 당시 여성이자 자녀를 둔 엄마로서 양천구를 엄마들이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는 모토를 내세워 당선됐고, 관심을 가져 왔다. 여성친화도시, 출산친화도시는 여성을 우대하고 여성의 편리만을 도모하려는 정책이 아니다. 여성이 일하며 자아실현도 하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기 좋은 도시환경을 만드는 게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철학으로 만들어 왔나. -아이를 낳는 것뿐만 아니라 키우는 과정에서 부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들을 펼치는 게 중요하다.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공공기관에서 아이들을 책임지고 양육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아이맘카페, 장난감도서관, 동네마다 건립한 작은 도서관 등이 대표적이다. 양천에는 다른 구보다 아이 키우기 좋고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공공기관이 많다. →젊은 엄마들이 좋아할 것 같다. -예전엔 돌아다녀도 구청장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어느 날 한 분식집에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둔 젊은 엄마가 알아보고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해 깜짝 놀랐다. 연예인도 아닌데 쑥스러웠지만 코끝이 찡했다. 젊은 엄마들이 저를 알아본다는 거, 이건 엄청난 변화다. 젊은 엄마들은 구에서 날 위해 해 준 게 뭐가 있느냐는 생각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젊은 엄마들이 구에서 펼친 정책들을 체험해 효과를 보는 것이다. 그동안 아이를 데리고 갈 곳이 없고 믿고 맡길 데도 부족했는데, 이젠 달라졌다는 걸 실감하는 것이다. 아토피·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상담과 치료를 해 주는 아이원건강센터, 아이맘카페, 작은 도서관 이런 것들이 학부모들 피부에 가닿은 것 같다. 젊은 엄마들이 일 참 많이 하시는 것 같다고 할 때 뿌듯하다. 요즘은 장애 임산부들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장애인친화병원을 지정해 이들 여성이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고 검진도 받고 출산도 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 김 구청장은 작은 거인이다. 겉은 부드럽고 왜소해 보이지만 속은 큰 뜻과 추진력으로 꽉 차 있다. 그런 그가 내년 큰 날개를 펼치려 한다. 스마트 시티 구축이라는 전대미문의 실험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려고 한다. 김 구청장은 인터뷰 말미에 지역민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스마트 시티는 우리의 삶을 180도로 바꾸는 도시 혁명입니다. 주민들께서도 나서서 민관이 함께해야 양천구의 대변혁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용어 클릭] ■스마트 시티 텔레커뮤니케이션(원격통신체계) 기반시설이 인간의 신경망처럼 도시 구석구석까지 연결된 똑똑한 도시를 말한다. 미래학자들이 예측한 21세기의 새로운 도시 유형이다. 도시 구성원 간 네트워크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고 교통망이 거미줄처럼 효율적으로 구축된 게 특징이다.
  • 「오늘」 행복하면 돼

    「오늘」 행복하면 돼

    “일은 일” 유연하고 역동적인 삶의 방식 가난해도 뜻밖의 풍요로움과 활기 넘쳐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여유와 자신감 노동 중심·성과주의 돌아보게 만들어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오가와 사야키 지음/이지수 옮김/더난출판/224쪽/1만4000원 ‘지금 이곳’에서 행복한가. 이 질문에 주춤거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다. 당신도 나도 ‘언젠가 어딘가’를 위해 현재를 끊어 팔아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헌납하기 때문이다.그 헌납이 쌓인 결과는 결국 행복일까. 역시 답은 계속 유예된다. 결국 우리는 무엇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지 알 수 없게 돼 버렸다. 이것이 근면한 노동과 성과주의를 상찬해 온 근대 이후 노동관과 자본주의 경제의 산물이다. 불안과 초조, 위기감을 동력으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대부분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평생직장, 연공서열식 임금이 보장되지 않는 시대에도 ‘일을 그만두지 않는 것’은 더욱 견고한 미덕이 됐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한쪽에서 우리는 늘 일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꿈꾼다. 그것이 현대인의 영원한 욕구불만이다. 이런 대다수의 현실에 기묘한 균열을 내는 사회가 동시대에 존재한다. 인구 66%(2006년 기준)가 노점, 영세 제조업, 날품팔이, 일용직 노동 등 비공식 경제활동으로 먹고사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도시에서다. 정규직이 거의 없어 직업 서열이 무너진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다. 일본 문화인류학자인 저자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탄자니아 북서부 도시 므완자에서 직접 헌 옷 행상을 하며 이 ‘비현실적인’ 공간에 뛰어들었다. 15년 이상 현지 상인의 장사 관행과 생계, 사회적 관계를 조사한 그는 현대사회에서 패배, 혹은 낙오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오늘을 사는 삶’에서 주류 경제에서는 짐작할 수 없는 활기와 풍요로움, 대담함을 포착한다. 이 연구로 그는 일본의 권위 있는 학술상인 산토리학예상을 수상하며 일본 인문학계의 차세대 사상가로 떠올랐다. 저자의 연구 작업을 도와준 므완자의 부크와, 하디자 부부의 노동기만 봐도 ‘오늘을 사는 삶’의 유연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버스 호객꾼으로 일하던 부크와는 날품팔이를 하며 샌들 장식 일을 시작하는가 하면, 트럭 운전사로 일하다 건설 현장의 날품팔이로 그때그때 바뀌는 상황에 따라 일자리를 즉흥적으로 바꾼다. 재봉일을 하던 그의 아내 하디자는 신발 장사를 하다 천 장사에 나서고 침대 시트에 자수를 놓거나 도넛을 팔며 살림을 떠받친다. 한 가지 일에 실패해도 바로 다른 일에 도전하고, 남편이 쉬면 아내가 손을 걷고 나서며 생계 다양화 전략을 편다. “일은 일”이라는 표현을 곧잘 하는 이들은 장기간의 계획도, 대규모의 투자도 불가능한 자신들의 현실에 맞게 유연하고 역동적인 노동 방식을 활발하게 구가한다. 한 방면의 프로가 아니라 다양한 방면의 제너럴리스트로, 어떤 조건에서도 맞서는 적응력을 키우는 셈이다. ‘어떤 일이든’이라고 말하며 일로 사람의 가치를 줄 세우는 선진사회의 위선이 발붙일 수 없는 삶의 현장인 셈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이들 개개인은 영세하지만 이들이 몸담은 아프리카와 중국 사이, 아프리카 국가끼리의 교역 시장 규모는 거대하다. 이 보이지 않는 경제권의 규모는 18조 달러를 웃돌고 세계 16억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많은 인류학자가 우리보다 가난한 사회에서 뜻밖의 풍요로움을 발견하고 감동하듯, 저자는 이들의 ‘하찮은 경제’, ‘수상한 경제’가 가진 힘이 기존 주류 경제의 불행과 부작용을 바꿀 가능성에 주목한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하지만 이들의 얼굴엔 활력이 깃들어 있다. 실패의 가능성은 크지만 기회를 움켜잡고 뭐든 도전해 보는 대담함이 동력이기 때문이다. ‘불안 때문에 불확실성을 기회라고 여길 수 없는 사회는 병든 것일지 모른다’는 저자는 매일 표류하고 부유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탄자니아 도시민들의 여유와 자신감을 이렇게 풀이한다. ‘그것은 직업을 전전하며 얻은 경험(지식)과 곤란한 상황을 헤쳐 나왔다는 긍지, 자신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남는 재주를 틀림없이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자부심이자 우발적인 만남을 계기로 몇 번이고 일상을 다시 사는 재주다. 살아 있다는 것만을 근거로 삼는 듯한 여유와 자신감이다.’(214쪽) “오늘을 사는 삶의 방식이 현재의 인간관과 사회관을 뒤흔들어 새로운 인류 문명의 가능성을 개척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말은 ‘오늘을 사는 삶에 대한 내성이 극도로 낮은’ 일본, 그리고 닮은꼴인 우리 사회의 폐부를 깊숙이 찌른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어렵지만 결혼·직장 둘 다 가능… 여성 차별에 당당히 맞서라”

    “어렵지만 결혼·직장 둘 다 가능… 여성 차별에 당당히 맞서라”

    “나는 늘 말해요. 모든 걸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고요. 결혼, 아이, 직장 등…. 하지만 좀더 인내심을 가져야 해요. 자신의 가치를 두고 모든 각도에서 무엇인지를 알고, 어떤 삶을 보낼지를 말이죠.”한국을 방문 중인 국제통화기금(IMF) 사상 첫 여성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7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 이삼봉홀에서 열린 ‘한국 교육시스템의 미래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에서 “한국 여성들은 결혼과 가족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결혼과 부모 역할, 직장 생활을 조정했는지 궁금하다”는 한 대학생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그런 생활을 하는 것이 완벽하지도, 쉽지도 않다”면서도 “그렇지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오랜 기간 변호사였는데, 아이가 있었다”면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승진이 동료들보다 1년 정도 뒤처졌지만 나는 아이들이 자라나는 걸 보며 기쁨을 느꼈고, 훨신 풍부한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결혼과 직업 여성의 삶이 쉽지 않지만, 가능하다는 것을 먼저 경험한 여성으로서 조언했다. 그는 1조 달러(약 1130조원)를 주무르는 세계 금융계의 큰손이지만 이날 행사에서는 마치 딸에게 이야기하듯 대화를 풀어나갔다. 그는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150여명의 학생에게 차별에 당당히 맞설 것을 주문했다. 그는 “직장에서의 성차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라는 질문에 “우리는 여성으로서 더욱 독립적이고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직장에서 차별받았을 때 나는 그곳을 떠났다. 정당하지 않은 차별은 용인할 수 없다”며 “나의 성별이 아닌 잠재력을 알아보는 다른 직장으로 옮겼다”고 밝혔다. 1981년 미국 소재 세계적 로펌인 ‘베이커 앤드 매킨지’에서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99년 이 로펌 최초의 여성 대표가 됐다. 비미국인으로서 첫 로펌 대표이기도 했다. 2011년 7월 IMF 총재에 오른 라가르드는 지난해 연임이 확정됐다. 프랑스 대외통상장관, 농업수산장관, 재무장관을 지냈다. 앞서 그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아시아의 지속성장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IMF와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피터슨연구소(PIIE) 공동 주최로 열린 국제회의에서 “노동시장에서 성별 격차를 메우는 것으로 국내총생산(GDP)을 일본에서 9%, 한국에서 10%, 인도에서 27%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고령화로 경제 생산성이 떨어지는 데 대응해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효과가 있었던 방안은 여성노동력의 비율을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그녀의 삶… 진실인 듯 진심인 듯

    그녀의 삶… 진실인 듯 진심인 듯

    처음엔 극장 개봉 생각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혼자만의 영화가 아니기에 결심하게 됐다. “감독이랑 결혼할 생각도 없었는데 지금 살고 있고, 너랑 똑같은 딸 낳아 고생해 보라던 엄마는 이제 저보다 더한 딸을 낳았다며 놀리세요. 예기치 못한 일들이 계속 펼쳐지지만 재미있네요. 이 작품의 배급, 홍보, 프로듀서 등을 맡은 분들이 모두 영화 일을 하다 만난 친구들이에요. 10년, 20년 동지죠. 맨날 술잔을 나누며 영화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다가 생겨난 갈증을 푼 셈이에요. 함께 뜨개질하거나 마사지 받고 쇼핑도 할 수 있었겠지만 우리는 영화 이야기를 하다 끝내 만들고 개봉까지 하게 됐네요.”배우 문소리(43)가 ‘입봉’한다. 각본, 연출에 주연까지 도맡은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가 오는 14일 개봉한다. 한창 영화에 목말랐을 무렵, 중앙대 대학원에서 연출 제작을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만든 단편 세 개를 묶었다. 영화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오가며 관객들을 헷갈리게 하고 또 큰 웃음을 준다. 말하자면 캐릭터는 실제인데 펼쳐내는 이야기는 가상이다. 문소리는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 또는 진심”이라고 설명했다. 한때 잘나갔던, 지금은 일감이 끊긴 데뷔 18년차 배우 문소리의 삶이 그려진다. 화려한 여배우가 아니라 엄마, 아내, 며느리 등 평범한 생활인으로서의 모습이 그려진다. 스트레스는 술로 풀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고, 요양원에 있는 시어머니를 모시는가 하면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딸도 건사한다. 때로는 지질하지만 때로는 유쾌하다. 문소리와 함께 작업했던 기라성 같은 감독들은 그의 입봉작에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박하사탕’(1999)을 통해 배우로 데뷔시키고 ‘오아시스’(2002)로 베니스영화제 신인 여우주연상을 안긴 ‘문소리 아빠’ 이창동 감독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어떻게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냐며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해주겠다고 손사래 쳤다는 후문. ‘지구를 지켜라’,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로 유명하고, 요즘 ‘1987’ 촬영에 한창인 남편 장준환 감독은 “처음치고는 나쁘지 않았다”고 했단다. “다른 것보다 여배우 이야기로 알았는데 자신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관객 분들을 만날 때 정말 좋았어요. 변영주 감독님이 ‘이 영화 진짜 웃겨, (임)순례 언니 긴장해야 해’라고 했다는데, 진짜 재미있는 변 감독님을 웃겼다는 게 뿌듯하네요.” 여배우를 넘어 여성의 삶을 다룬 탓에 젠더 영화가 아니냐는 평가도 나오지만 문소리는 테두리 안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화를 왜 하는지, 영화가 우리 인생에 무엇인지,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인지 그런 질문들을 저 자신과 영화계 동료들, 또 관객들에게까지 나누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요즘 여성 영화가 부족해 직접 메가폰을 든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그건 뭐 할리우드 언니들도 마찬가지더라고요. 그런데 영화사를 보면 한때는 여배우 영화만 나오던 시절이 있었어요. 어쩌면 저는 시대를 잘 타고나서 배우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요. 그냥 아쉬워한다고 시대가 바뀌고 처지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영화가 싫으면 관두면 되는데 너무 좋아하니 도대체 영화랑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앞으로도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자는 생각이지요.” 어떤 배우로 남고 싶냐는 상투적인 질문에 문소리는 잊혀져도 상관없다는 예상치 못한 답변을 한다. “문소리는 잊혀지더라도 제가 고민하고 만들었던 작품, 훌륭한 감독님들과 작업했던 영화들이 오래오래 시간을 견디며 힘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베니스에서 신인 배우에게 주는 마스트로이안니 상을 받았을 때만 해도 마스토로이안니가 누구시래, 하면서 받았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8과 2분의1’ 등 그분이 출연한 작품을 봤더라고요. 부끄럽게도 배우를 몰랐는 데 그 작품은 이미 저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죠. 언제가 찾아간 오즈 야스지로 무덤 묘비명에 ‘없을 무’자가 쓰인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문소리라는 브랜드보다는 그저 작품으로 남고 싶습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아름답지만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 같은 삶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아름답지만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 같은 삶

    때린 사람은 잊지만 맞은 사람은 잊지 못한다고 했던가. 이마무라 쇼헤이(1926~2006)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이야기는 ‘인과응보’라는 서사 구조 또는 틀을 벗어나서 성립되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그래서 복수극은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되어 왔다. 최근 한국에서는 막장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음모와 복수가 극에 달한, 그래서 세네카의 비극을 전형으로 하는 유혈과 권모술수를 뛰어넘는 상상 이상의 구조까지 다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점점 더 많은 양의 약을 먹어야 병이 다스려지다 결국 약이 듣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야행성 동물’이라는 뜻을 지닌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2016)의 경우도 매우 정교하게 짜여진 지능적 복수극이 줄기를 이룬다. 열정과 사랑만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두 젊은 남녀는 결혼에 이르지만 현실이라는 벽을 실감하며 헤어진다. 이후 남자가 여자에게 복수한다. 어찌 보면 진부한(?) 내용이다.하지만 이 영화가 남다른 것은 진부함을 매우 세련되게 포장할 줄 아는 감독, 아니 디자이너 톰 포드(1961~ )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2009년 ‘싱글 맨’을 통해 영화감독으로 신고한 그가 7년 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사라질 뻔한 구찌의 명성을 되살린 재능 있는 디자이너의 두 번째 영화답게 대도시 LA 소재 수잔(에이미 애덤스)의 집과 그의 갤러리, 식당 등에 놓인 의상과 현대 미술품, 인테리어 디자인, 소품들은 감각이 세련되다 못해 완벽한 것처럼 보인다.영화는 두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풀어낸다. 수잔은 오래전 헤어진 전남편 에드워드(제이크 질런홀)가 보내온 소설 한 권을 받는다. 출간 전 가제본이다.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제목이 달렸다. 수잔은 소설을 펼쳐 읽는다. 영화는 소설 속 이야기가 또 하나의 영화로 이어지는 액자형 구조다. 영화 속 에드워드는 소설에서는 토니다. 제이크 질런홀이 번갈아 가며 연기한다. 아니, 에드워드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등장하지 않으니 토니를 연기한 셈이다. 영화 속 시공간은 LA이고 액자 속, 즉 소설에서의 시공간은 톰 포드가 자란 텍사스 사막이다. 극과 극의 조건이다. 인간의 우아함으로 가장된 끝없는 욕망을 상징하는 화려한 LA와 삭막하고 야성적이며 자연의 힘이 지배하는 텍사스 오지에서 같은 사람, 다른 이름의 에드워드와 토니는 결은 다르지만 끔찍한 일을 각각 겪는다. 그리고 수잔은 소설을 읽으며 에드워드와 지낼 때 밤잠을 이루지 못하던 자신의 별명이 ‘녹터널 애니멀스’였다는 것을 떠올리며 이 모든 일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깨어질 것 같은 유리그릇처럼 겉으로 행복했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나약한’ 에드워드의 낭만적인 태도와 요령 없는 문학도로서의 삶이 가져다 줄 생활의 불편함에 수잔은 고민한다. 이때 문득 나타난 아찔하게 잘 생기고 세련되고 섹시한 남자를 만나 뱃속에 있던 에드워드의 아이를 지우고 새로운 선택을 한다. 그 후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교양 있고 패셔너블한 생활과 모던하고 럭셔리한 저택 ,그리고 매우 정련된 취향의 부르주아지로서의 삶이다. 소설 속 토니는 딸과 아내를 데리고 주말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마르파다. 텍사스주 서남단, 애리조나 주와 멕시코의 경계에 있는 작은 도시다. 댈러스에서 차로 7시간이나 걸리는 사막의 오지 중 오지다. 영화 ‘자이언트’의 배경으로 유명해졌다. 오늘날 현대 미술 마니아들이 미니멀리즘의 성지로 여기는 곳이다. 바로 도널드 저드(1928~1994)가 1986년 세운 미술관 치나티 파운데이션이 있어서다. 면적 137만 5931㎡(약 40만평)의 미술관은 군부대였던 곳을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의 지원으로 구입해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크기의 미니멀리즘 대표작들을 모아 놓았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토니가 마르파에 가려 했던 까닭은 치나티의 상징적인 모순이었을 것이다. 원래 미니멀리즘은 ‘단순한 형태를 통한 진리를 탐구’하는 것으로 작품에 ‘본질적인’ 아우라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용과 크기 때문에 개인이 만들거나, 후원하거나, 소장하기 힘든 작품을 기획하고 만들어내며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 디아가 후원한 대형 작품이 만들어지면서는 본래의 소박한 물질 또는 형태의 본질이나 진리보다는 ‘텅 빈’ 작품에 무언가 ‘본질적인 것’을 덧씌우는 일로 변질되었다. 따라서 미니멀리즘의 제도적 구분과 모순되는 상황은 세속화, 물질주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반된 미니멀리즘의 처지를 보면 오늘날 현대미술은 보통 사람의 상류사회 진입을 막는 문지기 역할을 한다는 합리적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재화가 곧 지위의 상징인 마당에 자본주의가 더욱 발달하며 누군가와는 차별화된 시각적 지위의 증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가치 있는 존재다. 수잔의 갤러리와 거실은 이런 차단 효과를 극대화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작품에도 놀라지만 그 값에 다시 한번 놀란다. 영화 전개상 꼭 필요한 그림은 검은 바탕에 흰 글씨인 ‘리벤지’(REVENGE)와 리처드 미즈락(1949~ )의 사진 ‘장총을 든 남자’, 데이미언 허스트(1965~ )의 ‘성세바스티아누스의 격렬한 고통’ 정도다. 알렉산더 칼더(1898~1976)의 모빌이나 로버트 폴리도리(1951~ )의 ‘마리 앙투아네트의 침실’과 ‘마라의 죽음’ 같은 사진, 그리고 토니 스미스(1912~1980)의 조각이나 침실에 걸린 마크 브래드퍼드(1961~ )의 그림, 존 커린(1962~ )과 제프 쿤스(1955~ )의 조각은 아비투스(Habitus), 즉 계급 지위를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문화적 취향을 과시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계통이나 맥락 없이 부와 교양을 동시에 드러내며 그 주인이 누리는 현재의 지위와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강변할 뿐이다. 그림은 걸릴 곳에 걸려야 하고 조각은 있을 곳에 있어야 한다. 말과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수잔의 아무 생각 없는 말이 에드워드에게는 상처가 된다. 가해자는 잊을 수 있지만 피해자는 잊을 수 없다는 사실은 차갑고 투명해 아름다운 유리그릇의 깨어지기 쉬운 속성과 같다.
  • 40일 새 잇달아 숨진 30대 부부…남겨진 다섯 아이들

    40일 새 잇달아 숨진 30대 부부…남겨진 다섯 아이들

    불과 한 달여의 간격으로 세상을 떠난 젊은 부부와 남겨진 다섯 아이들의 기구한 사연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4일자 보도에 따르면 영국에 살던 우메나 우비아로(38)와 아내 마케다 우비아로(38) 부부는 불과 40일 간격으로 각각 세상을 떠났다. 부부는 대학에서 처음 만난 뒤 2004년 결혼식을 올려 다섯 아이를 출산해 행복한 삶을 살던 중 두 사람 모두 대장암 판정을 받는 불행이 겹쳤다. 3년 전 아내인 마케다가 먼저 대장암 투병을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남편 우메나까지 대장암 판정을 받으면서 부부의 힘겨운 투병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던 지난 7월 29일, 아내가 대장암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남편은 이미 병세가 위중한 상태여서 아내의 장례식을 제대로 치르지도 못했다. 장례식을 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한 가족과 친구들은 5일 아내 마케다의 장례식을 치르기로 결정했는데, 안타깝게도 장례식 하루 전인 지난 4일, 남편 역시 숨을 거두고 말았다. 30대 부부의 연이은 사망은 남은 다섯 아이에게 비극이 됐다. 두 사람에게는 7~19세의 자녀 5명이 있었고, 이들은 불과 40일 만에 부모를 모두 잃은 고아가 됐다. 두 사람의 친구들은 아내 마케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남은 아이들을 위해 온라인 기금모금사이트 ‘고펀드미닷컴‘(GoFundMe.com)을 통해 기금을 모으고 있었다. 아내가 떠난 뒤 보름 넘게 흘렀을 때, 남편은 이 사이트에 개설된 페이지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아내를 잃었고 아이들은 엄마를 잃었다”면서 “이런 나와 내 가족들을 응원해주는 모든 분께 감사함을 전한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아내의 장례식 하루 전에 세상을 떠났고, 고펀드미닷컴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현지시간으로 5일 기준, 남은 다섯 아이를 위한 기금은 약 3만 6000파운드(약 5300만원) 가량 모였다. 자세한 내용은 고펀드미닷컴(https://www.gofundme.com/support-omena-ubiaro-and-family)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신의 분노를 산 천사…‘다크니스: 타락천사’ 예고편

    신의 분노를 산 천사…‘다크니스: 타락천사’ 예고편

    영화 ‘다크니스: 타락천사’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다크니스: 타락천사’는 천국에서 추방당한 천사가 자신이 죽게 만든 아이의 부모를 찾아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공개된 예고편은 자신이 맡은 아이의 탄생을 지켜보는 천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진 않을 거예요”라는 신부의 의미심장한 대사는 미스터리한 천사의 존재를 궁금케 한다. 이어 아이에게 위협이 가해지는 불길한 징후는, 아이의 삶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한다. 자신이 지키지 못한 아이의 부모를 찾아간 천사가 아이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 ‘마틴’을 위로하는 과정과 함께 영화는 아이의 죽음이 남편 ‘폴’ 때문이라고 생각한 마틴의 위험한 복수 과정을 보여준다. ‘다크니스: 타락천사’는 멕시코 국제 영화제, 월드페스트 휴스턴 영화제 수상을 비롯하여 다수 영화제에 노미네이트되며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이다. 작가, 프로듀서, 감독까지 폭넓게 활동하고 있는 자밀 델라비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영화 ‘다크니스: 타락천사’는 오는 9월 7일 개봉 예정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84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군주론·에밀·사상계… 인간의 삶을 비춘 ‘어둠의 책들’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군주론·에밀·사상계… 인간의 삶을 비춘 ‘어둠의 책들’

    때는 1762년, 한 지식인 청년이 로마 당국의 수배를 피해 스위스로 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수백년이 흐른 다음에도 전 세계 사람들이 그 이름을 기억하고 그가 쓴 책으로 공부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청년 지식인은 오직 진실을 탐구하고 그것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지금까지 여러 어려움을 참아냈지만 로마 가톨릭의 분노를 산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의 책은 모두 불태워졌고 목숨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문제는 그가 최근에 쓴 책 한 권으로부터 비롯됐다. 책 제목은 ‘에밀’이고 이처럼 위험한 책을 쓴 사람은 장 자크 루소( 1712~1778)다.현대를 살아가는 그 누구도 이제는 ‘에밀’을 두고 신성모독의 죄를 범한 위험천만한 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이는 ‘사회계약론’과 함께 루소의 대표적인 저작이고 교육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봤을 중요한 사상서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출간됐을 당시에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에밀이라는 한 아이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이야기를 다루며 그의 교육과 성장에 관한 견해를 써 내려간 ‘에밀’에서 루소는 자연친화적인 교육방법이야말로 최상의 지성을 길러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종교를 밑바탕으로 한 당시 사회 분위기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루소가 주장한 자연종교이론과 성직자를 비판하는 문장은 가톨릭교회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결국 ‘에밀’은 금서(禁書)로 지정되어 모두 회수되었고 루소에게는 수배령이 내려졌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 여럿이 모여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금지 사항을 만들었다. 처음엔 맹수나 다른 부족의 공격으로부터 구성원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함께 지켜야 할 규칙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사회 규모가 커지면서 권력자들이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됐다. 국가는 국민의 행동과 생각을 통제할 필요가 있었고 이와 반대로 자유와 진리를 추구하는 지식인들은 가장 위험한 존재였다. 특히 그들이 쓴 책은 사람들의 생각을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검열의 대상이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지금 우리가 훌륭한 인류의 유산이라고 말하는 수많은 책들이 실은 금서였다. 그것을 쓴 저자는 물론 읽거나 책을 갖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진리를 향해 걸음을 옮긴 선구자들이 있었기에 인간의 삶은 조금씩 발전할 수 있었다.오늘날 이탈리아의 정치가, 역사학자인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수많은 정치인과 기업인들에게 삶의 교과서가 된 이 책은 마키아벨리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출판조차 될 수 없었다. 메디치 가문의 편에 서서 정치를 하다가 붙잡혀 고문을 당하기도 한 마키아벨리는 석방된 이후 숨어 지내면서 편지글 형식으로 ‘군주론’의 초안을 완성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자신이 다시금 정부에 기용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군주론’은 그만큼 획기적인 책이었다. 그러나 이 원고는 아예 출판될 수 없었고 일부 사람들만 단편적인 내용을 조심스레 돌려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결국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이 출판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이 책은 그가 숨을 거두고 몇 년이 더 흐른 1532년이 되어서야 정부의 허가를 받아 세상에 나오게 됐다.비슷한 시기 영국에선 정치가 토머스 모어가 장차 ‘유토피아’라고 불리게 될 책을 집필하고 있었다. 1516년 처음 출판됐을 때 이 책은 당시 관례에 따라 “사회생활의 최선의 상태에 대하여 그리고 유토피아라고 불리는 새로운 섬(島)에 관한 유익하고 즐거운 저작”이라는 긴 제목을 달고 있었다. 모어는 저작을 통해 당시 영국사회가 갖고 있던 문제점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뛰어난 통찰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그런데 출판된 후 200년 이상 흐른 1789년에 가톨릭교회는 이 책의 내용이 종교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이유를 들어 금서로 처리했고 시중에 있는 모어의 모든 책을 회수하도록 명령했다.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금서도 늘어났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위대한 서사시 ‘신곡’은 190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는 금서로 취급됐다. 대문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편지글 형식으로 쓰인 소설로, 이루지 못한 사랑에 좌절하여 주인공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내용이 큰 줄거리다. 현대에는 괴테와 그의 작품을 가지고 학술 논문을 쓸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출간 당시에는 젊은이들이 책에 영향을 받아 자살하는 사건이 이어지자 서점에서 이 책을 팔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루쉰의 소설 ‘아큐정전’, 조지 오웰의 ‘1984’ 같은 명작들도 한때는 금서였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 보면, 비교적 최근까지도 상당히 많은 금서가 존재했다. 사회를 통제할 목적으로 금서 목록을 만든 것은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남쪽에선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관한 책들이 줄줄이 금서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특히 남북의 이념 대립이 극에 달했던 1970~80년대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 자체가 억압됐던 시기였다. 금서 목록만 해도 상당한 분량이었다. 우선은 ‘마르크스’나 ‘레닌’ 같은 단어가 제목이나 본문 목차에 들어가 있다면 거의 무조건 금서 처분을 받았다. 그들이 쓴 책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사회과학, 정치철학을 다루고 있는 연구서들도 이적출판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책들이 대학교 주변 사회과학서점을 중심으로 불법 유통될 수밖에 없었다. 잘 알려진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저자가 소련에서 활동한 일이 있다는 이유로 불온서적으로 취급했다. 프레이리의 교육연구서 ‘페다고지’는 민중교육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금서가 됐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체 게바라 등 혁명가와 관련된 서적 역시 출판이 금지됐다. 외국 번역서뿐만 아니라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같은 책도 금서였고 김지하 시인의 ‘황토’, ‘오적’처럼 국가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것이라면 문학작품도 금서 처분을 받았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조태일의 ‘국토’, 김정환의 ‘해방서시’, 신경림의 ‘농무’ 역시 1980년대까지 불온서적으로 분류됐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억압과 통제의 역사도 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굳이 헤겔의 유명한 ‘정반합 이론’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세상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함께 공존할 때 인류는 비로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또한 어두움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 진리는 영원히 가둬 놓을 수 없다는 것 역시 역사를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저절로 일어난 것은 아니다. 올바른 가치를 위해서라면 목숨마저 아끼지 않고 붓을 손에 들었던 용기 있는 개인들이 있었기에 역사는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이다. 카프카의 말대로 책은 그야말로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려 물을 흐르게 하는 도끼와 같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당신은 여전히 만인의 공주”...다이애나 사망 20주기 추모물결

    “당신은 여전히 만인의 공주”...다이애나 사망 20주기 추모물결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지났지만, 영국인들은 ‘만인의 공주’(the People’s Princess)를 잊지 않았다. 다이애나의 사망 20주기인 31일(현지시간) 그가 생전에 살았던 영국 런던의 켄싱턴궁 주변이 추도객들의 꽃과 양초, 편지들로 가득 찼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추모객들은 영국 전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모여들었다.  다이애나가 살아 있었다면 같은 나이였을 55세의 호주 여성 마라 클레미치는 다이애나의 20주기를 맞아 시드니를 떠나 런던을 방문했다. 그는 “다이애나의 삶 자체가 바로 다이애나였다. 그는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고 말했다.  다이애나가 사망한 당일에도 켄싱턴궁을 찾아 헌화했던 캐시 마틴은 “다이애나는 아름답고, 따뜻했다. 그에게는 ‘인간애’가 있었다”면서 “다이애나의 얼굴을 떠나지 않았던 미소는 대중들에게 특별한 의미였다”고 회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다이애나는 그녀의 생애 동안 영국인의 정서에서 멀어진 왕실을 뒤흔들었다. 그는 에이즈 환자의 손을 잡아주었고, 자신의 생활에 대해 언론에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면서 “영국인들은 그녀를 사랑했다. 여전히 그렇다”고 평가했다.  다이애나의 아들인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는 이날 켄싱턴궁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인 하루 전인 30일 켄싱턴궁 안에 마련된 화이트가든에서 어머니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은 켄싱턴궁 공보실을 통해 “켄싱턴궁을 찾아주셔서 감사하다. 수많은 꽃과 편지, 그리고 메시지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영국 신문은 다이애나 20주기를 주요 뉴스로 다뤘다. 텔레그래프는 ‘우리는 모두 그날 누군가를 잃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1면에 배치했다. 더타임스는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가 켄싱턴궁 화이트가든을 거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1면에 실었다. 더선도 1면에 ‘그녀는 아직 만인의 공주’라는 기사를 썼다.  다이애나가 숨진 프랑스 센강 북쪽 알마터널에도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오전 7시쯤 터널 위쪽에 설치된 조형물 ‘자유의 횃불’ 앞에 꽃다발을 놓고 떠났다. AP통신은 이 조형물이 애초에 다이애나와는 상관이 없었지만 다이애나가 목숨을 잃은 이후로 비공식적인 다이애나 기념물이 됐다고 소개했다.  파리 시민 이브 데밀로는 “다이애나는 강인한 성품을 지닌 현대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패션 아이콘이기도 했다. 나는 정말로 그녀를 사랑했다”고 말했다. 영국인 린다 그랜트는 “마치 어제 일 같다. 우리 가슴에 그녀가 아직도 있다. 그녀는 절대 사라지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애도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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