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아이 삶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지역주민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거액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라이터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취득세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339
  • [여기는 중국] ‘한 지붕 두 가족’ 조강지처와 불륜녀의 기묘한 동거

    [여기는 중국] ‘한 지붕 두 가족’ 조강지처와 불륜녀의 기묘한 동거

    “저는 원고의 딸이자 피고의 딸이기도 하다”고 입은 연 19세 여성은 “나의 아버지가 20대 불륜 여성 오 모 씨와 그의 아이들을 집 안으로 데려와 기묘한 관계의 동거를 강요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6년 동안 계속된 기형적인 동거 형태의 이 집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법정에 선 이 여성의 한 마디는 현지 언론과 주민들의 주목을 받으며 논란이 집중된 상황이다. 최근 샤먼(厦门) 후리취(湖里区) 법원에서 열린 이혼재판 증인대에 선 샤오왕 양은 원고 진 씨와 피고 왕 씨 두 사람의 자녀다. 재판을 통해 공개된 재판문에 따르면 원고 진 씨와 피고 왕 씨는 지난 2002년 결혼 후 같은 해 딸 샤오왕 양을 출산했다. 그러던 중 샤오양이 9세가 됐던 지난 2010년 친모 진 씨는 20대 여성 오 모 씨를 가정 영어교사로 채용했다. 문제는 가정교사로 채용된 오 씨가 진 씨의 남편 왕 씨와 불륜 사이로 발전한 것. 당시 두 남녀의 불륜 행각은 가정교사 오 씨의 배가 불러오면서 조강지처 진 씨에게 발각됐다. 가정교사 오 씨가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게 된 진 씨는 지난 2013년 6월 왕 씨와 쌍방합의 이혼 후 딸 샤오왕 양과 함께 거주해왔다. 오 씨가 가정교사로 진 씨 집으로 들어온 지 불과 3년 만의 파경이었다. 그로부터 진 씨가 남편 왕 씨와 이혼한 지 불과 1개월 후 불륜녀 오 씨는 왕 씨와의 사이에서 첫 아이를 출산, 혼인신고를 마쳤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왕 씨는 오 씨와의 혼인신고 후 불과 2개월 만에 또 다시 이혼을 결정했다. 이어 같은 해 10월에는 조강지처 진 씨를 찾아와 재결합을 요구했다. 하지만 더 기가 막힌 것은 조강지처 진 씨와의 재결합 직후 이듬해였던 지난 2014년 2월 불륜녀 오 씨는 왕 씨의 두 번째 아이를 출산했다고 통보해왔다. 이에 남편 왕 씨는 불륜녀와 두 자녀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조강지처인 진 씨와 딸 샤오왕 양에게 이들과 함께 동거하겠다는 결정을 통보했다. 당시 진 씨 모녀가 거주하고 있던 아파트 실소유권을 가졌던 왕 씨가 경제권을 남용해 강압적인 결정과 통보를 해왔던 것. 남편과 이혼 당시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던 조강지처 진 씨는 왕 씨의 이 같은 황당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샤오왕 양의 교육 및 생계를 위해 기묘한 동거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샤오왕 양은 법정에 서서 “어머니는 나를 혼자서 키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불륜을 저지른 아버지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줬다”면서 “하지만 그 후 우리 가족이 사는 집에 오 씨와 그녀의 아이들이 다시 찾아와서 함께 살자고 요구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들이 이 같은 기묘한 동거 형태는 무려 6년 동간 계속됐다. 방 2개 규모의 작은 아파트 중 큰 방에서는 불륜녀 오 씨와 그녀의 두 자녀, 왕 씨까지 총 4명이 차지했다. 작은 방은 조강지처인 진 씨와 그의 딸 샤오왕 양이 거주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올 5월 무렵 샤오왕 양이 19세가 되면서 조강지처 진 씨는 왕 씨에게 이혼하겠다는 결정을 통보했다. 진 씨는 “딸을 데리고 이 집을 떠나겠다”면서 “그동안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참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고, 아이가 이미 성인이 되었으니 독립하는 것이 맞다”면서 이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재판이 열린 직후에도 줄곧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던 왕 씨는 법관의 중재가 진행되자 그제서야 이혼에 동의했다. 재판 도중 왕 씨는 “불륜이라는 프레임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첫째 부인이었던 진 씨와 이혼 후 오 씨와 결혼했는데 이것이 어떻게 불륜이냐. 오 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그게 사유가 무엇에 기인했든 생명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축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진 씨에게 줄 수 있는 재산은 분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면서 “겨우 집 한 채를 지니고 있는데 이 집에는 아직 다 갚지 못한 대출금도 많다”고 설명했다. 재판 중 원고 진 씨는 부부의 유일한 재산인 아파트 한 채를 남편 왕 씨에게 양보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부동산은 진 씨와 왕 씨가 결혼 당시 구매한 부동산으로 현재 시가 약 305만 위안(약 5억20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이에 상응하는 금액을 양육비로 지급받고, 남아있는 일부 대출금에 대해서는 남편 왕 씨가 전부 갚는 것으로 합의했다. 진 씨와 샤오왕 모녀는 재판이 끝난 직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6년 동안의 인내의 세월이 몹시 안타깝다”면서 “드디어 이 기형적인 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능한 한 이상한 동거 형태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삶과 생활을 시작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한 권의 책은 예술이자 삶… 오늘도 또 다른 운명을 펼친다

    한 권의 책은 예술이자 삶… 오늘도 또 다른 운명을 펼친다

    늦가을로 접어드는 서울 중구 한길사 ‘순화동천’에서 그를 만났다. 새삼 그를 만나기로 한 건 이번에 신작 ‘그해 봄날’이 나왔기 때문이다. ‘출판인 김언호가 만난 우리 시대의 현인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그 책에는 한국 현대사의 최전선에 섰던 열여섯 분의 삶과 언어가 담겼다. 그 책에 관한 이야기, 걸어온 책 인생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물론 김언호는 세상이 다 아는 우리나라 대표 출판인이다. 그는 1975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되고 그 이듬해에 한길사를 창립한 이래 45년 동안 우리 인문·사회·예술 분야의 중요한 책들을 최량의 품격으로 펴낸 출판인이자 스스로 중요한 책을 저술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 결과가 그동안 ‘책의 공화국에서’, ‘한 권의 책을 위하여’, ‘책들의 숲이여 음향이여’,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 등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계보를 잇는 ‘그해 봄날’은 그의 정신적 수원(水源)이 돼 준 당대 현인들과의 만남을 기록한 현대 지성사라고 불릴 만한 결실이 아닐 수 없다.●‘그해 봄날’의 현인들을 찾아 ‘그해 봄날’은 1980년 ‘서울의 봄’을 함축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봄이자 김언호 개인에게는 이 책 속 주인공들과 만나게 된 봄이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다루어진 거인들을 그때부터 만나기 시작했다. 시대는 암담해져 갔지만 이분들과 새로운 미래를 구상했던 시절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감사하기만 하다. 코로나19와 함께 꼬박 1년여의 시간을 바친 이 책에서 그는 이분들에 대한 해설이나 논평을 가급적 삼가고 “해석을 앞세우지 않고 현인들 육성을 충실히 받아 적는 기록자”이고자 했다. 누군가의 치열한 생애는 다른 누군가의 기억과 기록을 통해 역사가 된다. 이 책에 기록된 열여섯 분의 삶과 언어는 김언호의 시선을 통해 한 시대의 증언과 사표와 지도가 됐다. 그해 봄날부터 이분들이 건넨 정신사의 울림과 떨림이 아직도 깊고 융융하기만 하다. 그는 이렇게 선명하고 아름다운 현대사의 인물지(誌)를 낱낱의 충실성과 정성스런 헌정으로 완성함으로써 스스로 ‘한 권의 책’이 됐다. 김 대표는 그분들과의 만남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국가 사회적 공공재이고, 흘러간 옛 기록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현재형임을 알려 준 것이다.“험난한 시절 저는 이 현인들을 만나고 책을 만들면서 불굴의 용기를 얻었습니다. 또한 인간의 길을 배웠습니다. 이 땅 젊은이들에게 우리 시대의 현인들의 생각과 실천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목록은 함석헌, 김대중, 송건호, 리영희, 윤이상, 강원용, 안병무, 신영복, 이우성, 김진균, 이이화, 최영준, 이오덕, 이광주, 박태순, 최명희 선생들이다. 정치인, 사상가, 예술가, 언론인, 학자가 망라됐다. 그 가운데 그는 함석헌을 맨 앞에 수록했다. “인생의 스승을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함석헌 선생을 꼽는다”는 그는 “선생은 우리 모두의 스승”이라며 “지금도 우리에게 탕진되지 않는 감동과 영향력을 주고 있다”고 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1980년대 지성사를 가로질렀던 함 선생은 걸출한 사상가이자 평화주의 종교인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특별히 내 기억에는 ‘수평선 너머’라는 시집을 남긴 시인으로 남아 있는 함 선생의 육성이 잠시 떠올랐다.●책과 함께하고 책을 확장해 간 삶 김 대표의 고향은 경남 밀양이다. 그는 거기서 농사지으시는 부모님 밑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농사일과 책 만드는 일이 비슷한 것 같아요. 손이 조금이라도 더 가면 반듯해지고 풍부해지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시골에는 책이 없었고 당연히 서점도 없었다. 그러다가 그는 부산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 앞 책방을 통해 책의 세계를 발견한다. 보수동 책방 골목은 그야말로 황홀한 책의 난장이자 유토피아였다. 그곳에서 ‘사상계’를 만났다. 서울에서 대학 시절 동대문에 줄지어 서 있던 헌책방을 열심히 찾아 민족사적 해석과 전망을 내놓은 책들을 열심히 읽었다. 그때 인문, 사회, 역사, 철학이 한 몸이라는 걸 배웠다. 그가 창립한 출판사 ‘한길’은 우리말로 ‘큰길’, ‘하나의 길’ 혹은 ‘마당’이나 ‘광장’을 함의한다. 어쩌면 그 ‘한길’로 김 대표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엄혹한 시절을 걸어갔을 것이다. “너무도 어려웠지만 오히려 그 시대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혹했던 시대가 더 치열한 사유와 고민과 전망을 만들어 냈으니까요.” 김 대표는 그러한 사유와 고민을 ‘책’이라는 전망으로 담아냈다. 책을 만드는 시간은 그에게 둘도 없이 귀한 만남을 가능하게 했다. 시대정신이 사람들을 발견하게 했고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중요성을 통찰하게 해 주었다. “1980년대를 여러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때를 책을 만들고 책을 읽는 시대였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길사가 1979년 출간한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당대의 금기를 깨면서 한국사의 실증과 해석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야말로 시대를 움직인 책인데 어쩌면 시대가 그 책을 요구했을 것이라고 김 대표는 술회한다. 김 대표는 책을 만드는 일을 넘어 여러 출판 관련 일에 나선다. 그는 1998년 한국출판인회의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1기 위원을 지냈고, 2005년부터는 한국·중국·일본·타이완·홍콩·오키나와의 출판인들과 동아시아출판인회를 조직해 출판운동에 나섰다. 1980년 후반엔 파주출판도시 건설, 1990년대 중반에는 예술인마을 헤이리를 설계에 큰 역할을 하면서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도 역임했다. 출판 관련 운동을 확장하면서 그는 출판인들과 함께 출판문화를 발전시키려는 지속적인 실천을 해 왔다. 이 점, 김 대표를 설명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축일 것이다. “파주출판도시도, 예술인마을 헤이리도 모두 혼자는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한 시대를 고민하는 분들과 함께하는 운동으로만 가능했지요.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혼자 열 걸음 걷는 것보다 손잡고 함께 한 걸음 걷는 일이 훨씬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 대표는 ‘책’이라는 단어에 꽂힌 사람이다. 원래 ‘冊’(책)이란 죽간을 끈으로 엮어 놓은 모양을 본뜬 일종의 상형문자가 아니었던가. 최근 책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디지털이라는 무형의 문화가 발전했지만 김 대표는 여전히 ‘책향’(冊香)과 함께 살아가는 ‘책’의 사제다. “책은 세계에 눈뜨게 해 주는 유일하고 강력한 힘”이라는 그는 “책을 통해서만이 삶의 가치를 알아가고 개인과 사회를 설계해 갈 수 있다”고 역설했다. 김 대표는 그러한 믿음을 반세기 동안 책을 만들면서 굳히게 됐다고 고백한다. ‘책’이라는 경이로운 발명품을 통해 인류는 진화해 왔고 한국 사회도 이만한 발전을 해온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디지털의 힘은 정보의 집적에 있고 종이책은 그야말로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도 그의 움직일 수 없는 지론이었다. 책을 읽고 만들고 써온 그의 일생도 이러한 믿음 위에서만 가능했을 것이다.●예술로서의 ‘한 권의 책’ 연전에 그는 출판인으로서의 경험을 담은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을 통해 책에 바치는 헌사를 완성한 바 있다. 그는 “서점은 태생적으로 시민사회”라고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때 우리는 서점에서 만났고 시간을 죽였으며 거기서 좋은 책을 발견하고 기뻐하지 않았던가. 옆구리에는 책을 끼고 가방에는 세계의 가능성을 담고 다니지 않았던가. 그렇게 한 시대의 빛으로 가득한 서점의 광휘를 아름답게 담은 결실이 ‘세계서점기행’이었다. 이제 그는 어떤 책을 읽고 내고 써 갈까? 그는 “고전 문제작을 읽음으로써 사람은 성장하게 되는 것 같다”며 고전을 강조했다. 특별히 감염병과 관련해 재난의 근원과 진단과 처방에 관련한 인문학적 비전을 담은 책들을 생각하고 있다. 김 대표는 책 만들기와 책 읽기 없이는 창조적이고 품격 있는 사회를 구현할 수 없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앞으로도 그는 ‘한 권의 책’이 한 시대의 생각과 말씀을 담아낸다는 정신으로 쉬지 않고 책을 펴낼 것이다. 그는 국가가 개입해 도서관을 풍요롭게 구축해 가야 한다고 마지막으로 역설했다. “마을마다 도서관이 있어야 합니다. 문화 선진국들은 도시 곳곳에 도서관이 있어서 좋은 책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지요. 책이라는 희망을 아이들에게 전해 줄 수 있는 도서관 정책이 긴요합니다.” 김 대표는 ‘한 권의 책’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한글이 아름답듯이 그것을 담아내는 책도 아름답다고 말한다. 영국 아티스트 윌리엄 모리스를 통해 ‘아름다운 책’을 배웠다는 그는 모리스가 말한 “인간의 예술품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이 건축이고 그다음이 한 권의 책”이라는 말을 거듭 말했다. “한 권의 책은 운명입니다. 운명을 걸고 책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고민하고 있어요. 물론 그 고민은 제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 의의이기도 합니다.” 책 만드는 운명을 사랑하는 ‘작가 김언호’의 생각과 실천이 ‘그해 봄날’처럼 쏟아지는 늦가을이었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엄살이라고요?” 가장 개인적인, 아픔에 관한 고백들

    “엄살이라고요?” 가장 개인적인, 아픔에 관한 고백들

    통증은 철저히 개인적이어서, 남들에게 이해받기 어렵다. 원인을 알지 못하면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가장 개인적인 영역을 설명하려는 두 에세이의 출간은 그런 점에서 반갑고 용기 있는 시도다.이다울 작가의 ‘천장의 무늬’(웨일북)는 느닷없이 찾아온 원인 모를 고통에 대해 썼다. 씨름판에서 두 배 몸집의 아이를 넘겨 젖힐 만큼 힘이 넘쳐흐르던 소녀에게 갑자기 통증이 찾아온다. 양치를 할 때 턱이 벌어지지 않고, 신발을 신다가 병뚜껑을 열다가 온몸에 쥐가 난다. 걸을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온갖 병원을 다녀 봐도 병명을 찾지 못한 그에게 붙은 세간의 딱지는 ‘엄살’ 또는 ‘게으름’이었다. 작가는 한기에 예민한 통증을 유난스럽게 생각하는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오래 서 있을 수 없는 탓에 원하는 일자리에 지원하는 것조차 연습이 필요하다. 통증은 식욕의 부재와 우울감을 불러오고,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의 구분을 만들어 간다. 침대에 누워서는 아픔과 무관하게 즐길 수 있는 낭독회와 전시회를 상상한다. ‘천장의 무늬’라는 제목에는 그가 침대에 누워 있으며 보냈을 그 시간과 공간, 불안과 상상이 얼룩져 있다. 강이람 작가의 ‘아무튼, 반려병’(제철소)은 16년 차 직장인으로서 겪은 ‘잔병치레의 역사’다. 잔병이 만든 ‘수동태의 역사’와 더불어 아픔의 틈새를 건드리는 게 특징이다. 작가에겐 소위 ‘저질 체력’, ‘약골’,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등의 별명이 붙었다. 첫 직장에서는 폭음으로 숙취와 각종 위장병을 얻었고, 과로에 시달렸던 두 번째 직장에서는 허리 디스크를 얻었다. 긴 재활치료 끝에 사직서를 내는 그에게 두 번째 직장의 본부장은 말한다. “너 일이 싫은 건 아니잖아? 라꾸라꾸침대 놔 줄 테니 중간중간 누워서 일해.”(24쪽)작가는 타인의 아픔에 관한 우리의 양태를 ‘공감’의 뜻을 가진 두 단어로 설명한다. ‘같이, 일치하게’라는 뜻을 가진 접두사 ‘sync-’가 붙은 ‘sympathy’는 상대의 상황을 내 경험 중 비슷한 경험을 불러들여 느끼는 것이다. 아프다는 상대 앞에서 자신의 비슷한 경험을 전시하듯 늘어놓으며 ‘별것 아니라는’ 투로 치부하는 경우다. 그는 우리에겐 ‘안으로’라는 뜻을 가진 접두사 ‘en-’이 붙는 ‘empathy’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상대방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태도다. 책들은 나의 아픔과 타인의 아픔을 함께 경청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천장의 무늬’에 적힌 집필 계기가 주는 울림이 크다. ‘이 책은 억울함에서 시작되었다. 나의 몸과 아픔이 납작해지는 것을 구해 내려는 시도에서였다. (중략) 모두의 아픔이 보다 자세히 말해졌으면 좋겠다. 엄살이라는 말이 우리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적고 말하고 듣는 일이 원활해졌으면 한다.’(5~6쪽)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1975~80년 13명 여성 살해한 ‘요크셔 리퍼’ 코로나 치료 거부해 사망

    1975~80년 13명 여성 살해한 ‘요크셔 리퍼’ 코로나 치료 거부해 사망

    1975년부터 1980년까지 영국 요크셔와 맨체스터 일대에서 13명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요크셔 리퍼’ 피터 섯클리프가 코로나19 치료를 거부해 74세 삶을 끝냈다. 1981년 종신형을 선고받고 30년 동안 여러 건강 문제로 브로드무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다 2016년 카운티 더럼의 HMP 프랭크랜드 병원에 이송됐는데 최근 코로나19 감염 판정을 받고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주장해 스스로 삶을 접었다고 BBC가 13일 전했다. 그의 연쇄 살인은 범죄학 교과서에 실릴 만했다. 망치나 스크루드라이버, 흉기 등을 써서 시신을 토막낸다고 해서 ‘요크셔 리퍼’로 불렸다. 첫 번째 희생자는 1975년 10월 리즈에서 네 아이를 키우던 엄마인 윌마 맥칸(당시 28)이었다. 망치로 내리쳐 쓰러뜨린 뒤 15차례 흉기로 찔렀다. 다섯 살 때 그의 손에 어머니를 잃은 리처드 맥칸(50)은 “어두워서 어머니의 시신을 보지 못했는데 그것이 천만다행인 일이었다”고 돌아본 뒤 섯클리프의 죽음으로 “뭔가가 일단락된 것 같다”는 소감을 남겼다. 섯클리프를 오래 추적했던 전직 경찰 봅 브리지스톡은 그의 죽음에 “눈물 한 방울 비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리처드는 BBC 브랙퍼스트 인터뷰를 통해 “오랫동안 그는 여론의 관심을 받아 우리가 고통스럽게 계속 새 소식을 전해왔다. 어쩌면 이렇게 끝날 일이었다. 난 많은 가족들, 살아남은 아이들이 그가 세상을 떠난 소식에 기뻐할 것이라 믿고 그들은 그렇게 느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2010년쯤 그는 더 이상 화를 내면 안된다고 생각해 섯클리프를 용서했다고 털어놓은 뒤 “그가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유감스럽다. 내가 화를 내는 데 세월을 허비했던 과거 같으면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어미니 윌마의 뒤를 이어 이듬해 1월 에밀리 잭슨(42), 1977년 2월 아이린 리처슨(28, 이상 리즈), 2개월 뒤 패트리샤 앳킨슨(32 브래드포드), 같은 해 6월 제인 맥도널드(16 리즈), 같은 해 10월 진 조던(21 맨체스터), 이듬해 1월 이본느 피어슨(22 브래드포드)과 헬리 리트카(18 허더스필드), 같은 해 5월 베라 밀워드(41 맨체스터), 다음해 5월 조세핀 휘태커(19 핼리팩스), 4개월 뒤 바버라 리치(20 브래드포드), 이듬해 8월 마게리트 월스(47), 3개월 뒤 재클린 힐(20, 이상 리즈)이 차례대로그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브래드포드 출신의 탱크로리 운전사였던 그는 13명의 여성 말고도 7명을 더 살해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이 윤락녀들을 살해하는 것이 “신이 부여한 임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살해한 여성 모두가 그런 여성은 아니었다. 경찰관 150명이 심문한 용의자와 증인, 유족 등이 1만 1000명 이상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것은 수사 과정에 섯클리프도 아홉 차례나 심문을 받았지만 계속 빠져나가 범행을 계속 저질렀다는 점이다. 나중에 보니 그의 범행 기록을 경찰끼리 제대로 인계하지 않아 체포에 필수적인 정보를 빠뜨리는 일이 많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엉터리 수사가 진행되는 바람에 선덜랜드 억양이 강한 존 험블이란 범죄자가 자신이 진범이라고 경찰에 거짓말을 늘어놓는 바람에 수사력을 낭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섯클리프에게 당할 뻔했던 피해자가 그 지방 사람 말투였다고 증언해도 경찰은 한사코 험블을 진범이라고 우겨 망신살이 뻗쳤다. 험블은 지난해 사망했는데 자신이 연쇄살인범이라고 구장하는 편지, 녹음 기록을 조작해 언론과 경찰을 속였는지 동기를 밝히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안드레아 보첼리 신보 ‘Believe’ 발매…엔니오 모리코네 미공개곡 포함

    안드레아 보첼리 신보 ‘Believe’ 발매…엔니오 모리코네 미공개곡 포함

    이탈리아 출신 세계적인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가 지난 7월 별세한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의 미공개곡 등이 담긴 새 앨범을 발매했다. 유니버설뮤직은 보첼리가 음악 인생을 걸어오며 자신은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곡들을 모은 앨범 ‘빌리브(Believe)’를 13일 발매했다고 밝혔다. 앨범에는 17곡이 수록된 가운데 특히 모리코네의 미공개곡 ‘Inno Sussurato’가 포함됐다. ‘조용한 찬가(속삭임)’라는 뜻의 제목으로 작은 속삭임이 인류 전체의 기도로 확장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곡이라고 유니버설뮤직은 소개했다. 앨범에는 또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함께한 ‘피아니시모(Pianissimo)’와 ‘아이 빌리브(I Believe)’, 미국 싱어송라이터 앨리슨 크라우스와 함께한 듀엣곡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등도 실렸다. 디럭스 버전에는 지난 4월 코로나19로 봉쇄돼 텅 빈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에서 부른 ‘어메이징 그레이스’ 솔로 버전 등 세 곡이 추가 수록됐다. 이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4164만 뷰(9일 기준)를 기록하기도 했다. 유니버설뮤직은 보첼리가 고심 끝에 담은 수록곡들을 통해 전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가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전하며 “보첼리는 이 세 가지 열쇠는 어떤 종교적 신념을 가졌는지에 관계 없이 우리 모두의 삶에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돈보단 소소한 행복 아는 로지나 닮고 싶었죠”

    “돈보단 소소한 행복 아는 로지나 닮고 싶었죠”

    “틀에 박힌 걸 하는 게 안정적이라 좋다지만, 결국 나다운 것을 보여 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해서 프로그램을 열 번 이상 바꿨어요.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은 아리아도 불러서 좋아하게 만드는 것 또한 도전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나다운 레퍼토리로 고쳤죠.”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이 발매한 소프라노 박혜상의 데뷔 앨범 ‘아이 엠 헤라’(I Am HERA)에는 한국 가곡이 두 곡 담겼다. 서정주 시·김주원 작곡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같이’와 나운영 작곡의 ‘시편 23편’이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오드포트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유를 묻자 박혜상은 “한국인이기 때문이라는 게 가장 쉬운 답이 되겠지만”이라고 운을 떼더니 “저의 자유로운 정신(free spirit)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난 5월 DG 본사와의 전속계약은 박혜상에게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코로나19로 계획했던 오페라 무대가 줄줄이 취소되는 가운데서도 독일 베를린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장소를 옮겨 가며 녹음을 할 수 있게 된 기회를 얻은 것도 “축복” 자체였다. DG와 전속 계약을 체결한 한국인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이후 박혜상이 두 번째였고, DG엔 코로나19 상황에서 녹음을 한 것도 박혜상이 처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첫 앨범에 어떤 레퍼토리를 짜야 할지 조언을 구하자 대부분 ‘노란 딱지’(DG 레이블)의 전통을 들어 ‘틀’을 권했다. 기본적인 레퍼토리를 짜봤는데 어쩐지 ‘이게 맞나’라는 의문만 커졌다. 결국 틀을 깨고 자신을 찾기로 했다. “아프리카, 스페인 등 낯선 노래들도 잘할 수 있다”는 그는 “가곡이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표현하기 가장 제격이었고, DG에도 낯선 한국 가곡으로 경계를 허물어 보고 싶다는 도전감이 생겼다”고 했다. 도전은 꽤 성공적이다. DG 측 반응도 뜨겁다.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을 졸업한 뒤 메트로폴리탄 등 오페라 무대에서 주로 활동한 박혜상은 DG 계약에 결정적인 기회가 된 로시니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로지나를 떠올렸다. “부와 명예를 위한 삶이 아닌 작고 소소한 행복에서 오는 가치를 아는, 자아가 강한 사람이라 생각해서 닮고 싶었어요.” 그는 작고 소박한 데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고 했다. 수브레트 아리아를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오페라 디바도 좋지만 드러나지 않아도 꼭 필요한 존재, 그게 제가 생각하는 음악의 가치예요. 오페라는 혼자 하는 게 아니고 항상 동료가 필요하거든요. 제 일을 묵묵히 하며 누군가를 서포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DG앨범에 가곡 담은 소프라노 박혜상 “‘나다운 음악’으로 틀 깨고 싶었어요”

    DG앨범에 가곡 담은 소프라노 박혜상 “‘나다운 음악’으로 틀 깨고 싶었어요”

    “틀에 박힌 걸 하는 게 안정적이라 좋다지만, 결국 나다운 것을 보여 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해서 프로그램을 열 번 이상 바꿨어요.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은 아리아도 불러서 좋아하게 만드는 것 또한 도전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나다운 레퍼토리로 고쳤죠.”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이 발매한 소프라노 박혜상의 데뷔 앨범 ‘아이 엠 헤라’(I Am HERA)에는 한국 가곡이 두 곡 담겼다. 서정주 시·김주원 작곡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같이’와 나운영 작곡의 ‘시편 23편’이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오드포트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유를 묻자 박혜상은 “한국인이기 때문이라는 게 가장 쉬운 답이 되겠지만”이라고 운을 떼더니 “저의 자유로운 정신(free spirit)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난 5월 DG 본사와의 전속계약은 박혜상에게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코로나19로 계획했던 오페라 무대가 줄줄이 취소되는 가운데서도 독일 베를린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장소를 옮겨 가며 녹음을 할 수 있게 된 기회를 얻은 것도 “축복” 자체였다. DG와 전속 계약을 체결한 한국인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이후 박혜상이 두 번째였고, DG엔 코로나19 상황에서 녹음을 한 것도 박혜상이 처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첫 앨범에 어떤 레퍼토리를 짜야 할지 조언을 구하자 대부분 ‘노란 딱지’(DG 레이블)의 전통을 들어 ‘틀’을 권했다. 기본적인 레퍼토리를 짜봤는데 어쩐지 ‘이게 맞나’라는 의문만 커졌다. 결국 틀을 깨고 자신을 찾기로 했다. “아프리카, 스페인 등 낯선 노래들도 잘할 수 있다”는 그는 “가곡이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표현하기 가장 제격이었고, DG에도 낯선 한국 가곡으로 경계를 허물어 보고 싶다는 도전감이 생겼다”고 했다. 도전은 꽤 성공적이다. DG 측 반응도 뜨겁다.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을 졸업한 뒤 메트로폴리탄 등 오페라 무대에서 주로 활동한 박혜상은 DG 계약에 결정적인 기회가 된 로시니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로지나를 떠올렸다. “부와 명예를 위한 삶이 아닌 작고 소소한 행복에서 오는 가치를 아는, 자아가 강한 사람이라 생각해서 닮고 싶었어요.”‘그는 작고 소박한 데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고 했다. 수브레트 아리아를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오페라 디바도 좋지만 드러나지 않아도 꼭 필요한 존재, 그게 제가 생각하는 음악의 가치예요. 오페라는 혼자 하는 게 아니고 항상 동료가 필요하거든요. 제 일을 묵묵히 하며 누군가를 서포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콜로라투라로도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박혜상은 “저는 숟가락만 얹을 뿐”이라며 내내 겸손했다. “저는 인연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제가 잘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지 않고 만난 모든 사람과의 소중한 인연들이 하나 하나 쌓이고 소중하단 마음이 들어요. 제가 할 일은 열심히 연습해서 그 분들에게 자랑스러운 소프라노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조수미, 신영옥, 임선혜 등 훌륭한 선배들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선배들이 먼저 가주신 길을 덕분에 가고 있고, 저는 그보다 조금 더 가도록 노력하는 게 제 뒤에 올 후배들을 위해 해야할 몫”이라면서 “먼저 가주시고 길을 닦아주신 선생님들과 자기 스스로 길을 개척했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존경하고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박혜상은 담담하게 말했다. “음악가들이 평생 동안 완전히 만족할 만한 앨범은 나오지 않는다고들 해요. 그런데 저는 앨범을 통해 발전하고 그 뒤를 돌아봤을 때 그 과정들이 자랑스럽도록, 그렇게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 순간에 만족하는 게 아니라 순간엔 아쉬울지 모르지만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제 자신을 보고 앞으로 갈 용기를 갖게 되는 성악가가 되고 싶어요. 응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차분한 목소리에 단단한 힘이 실렸다. 박혜상은 오는 14일 군포문화예술회관에서, 24일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각각 리사이틀을 갖고 관객들과도 만난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신간] 빗장을 열다/이정순 시인

    [신간] 빗장을 열다/이정순 시인

    문학은 어떤 말의 어떤 속성, 함축성, 감정 유발성, 경험 등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다양한 삶의 테두리로 형성된다. 즉 문학은 인간이 가진 정서의 표현이며, 사회구성원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글을 통해서 상호 가치를 공유한다고 할 수 있다. 글이라고 모두 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함축적이고 정서를 유발하는 글, 서술한 자체로 충족된 의미 있는 세계를 이루는 작품들이 문학의 가치다. 이같은 문학의 한 장르인 시는 인간 내면의 세계를 경험과 융합하는 정신적인 활동이다. 문맥속에서 언어 조작에 대한 충실성을 도모하는 것이 기본적인 맥락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경험의 시학’에 대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시는 경험의 편차로 만들어진다. 한 편의 시는 기억의 근본으로 드러내기 기법과 감추기 기법의 편차를 시 속에 화자를 투영해 감각적인 표현을 사용해 마무리된다. 이정순 시인의 새 시집 ‘빗장을 열다’(그림과책)는 현대 시가 가진 맥락 속에서 경험 소재로 감각적인 형상을 다양하게 표현한 작품집이다. 표제 시 ‘빗장을 열다’는 화자의 경험적인 맥락을 통하여 시적인 전개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득한 장독대 주인 손길 기다림에 지친 몰골 그제 내린 빗물인지 눈물인지 점점이 얼룩 흔적들 밀려드는 설움 눈 설레 마주한 날 자드락 비 몰아친 날 햇빛 짱짱한 날 분주하던 어머니 투명한 그리움 한바탕 쓸고 닦고 어머니 마중하고픈 오늘 -‘빗장을 열다’ 중에서 문학평론가 김환철 시인은 “문을 닫고 가로질러 잠그는 막대기인 ‘빗장’을 시의 소재로 도입해 추억의 경험을 독자들에게 인지시키는 동시에 그리움을 발현시키는 소통의 창구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빗장’이라는 매개체로 어머니가 계실 것 같은 공간 속에 어머니의 손길이 닿은 화초, 대청마루, 장독대 등 추억의 사물들을 도입하여 어머니에 대한 간접적인 만남을 꿈꾼다. 지금은 화자의 곁에 없는 어머니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이 작품에 다양한 시어들을 통해 녹아있다. ‘한바탕 쓸고 닦고 어머니를 마중하고픈 오늘’에서는 어릴 때 집안 청소를 해 놓고 칭찬받고픈 아이의 마음이 투영돼 있으며 돌아가신 어머니가 오신다는 동화적이 판타지적 요소도 결합됐음을 알 수 있다. ‘빗장을 열다’는 시공을 초월한 장면과 교감을 통한 기발한 상상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하고 있다. 김 시인은 “이정순 시인의 작품세계는 시인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시적 미학으로 발전시키고 있으며 실존적인 체험을 통해 기억을 복원하고 재현해 시인의 특유한 시선으로 시를 전개하고 있다”며 “특유한 미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직관적인 표현을 초월해 상상력의 도입과 판타지적인 동화 요소를 결합해 이정순 시인만이 가지고 있는 독창적인 시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빗장을 열다’는 제17회 풀잎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한국시사문단작가협회 우수 시집으로 선정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기도민 절반 “집값·양육부담에 결혼 않겠다”

    경기도민 절반 “집값·양육부담에 결혼 않겠다”

    경기도민의 절반 가량은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비혼과 저출생의 원인으로는 높은 집값과 사교육비 등 경제적 부담을 꼽았다. 경기도는 지난달 16~18일 도민 2000명을 대상으로 ‘결혼, 자녀, 저출생’과 관련한 도민 인식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11일 발표했다. ‘결혼을 해야 하냐’는 물음에 52%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지난 2017년 63%, 2019년 54%보다 낮아졌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20~40대는 47%만이 결혼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20~40대 여성 응답은 각각 32%, 40%, 40%로 더 낮았다. ‘자녀가 있어야 하냐’는 물음에는 65%가 “그렇다”고 답해 2017년(74%), 2019년(69%)에 비해 긍정 답변이 줄었다. 20~40대는 58%가 ‘그렇다’고 응답했으며, 이 가운데 20~40대 여성 응답은 각각 42%, 51%, 59%로 더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비혼율이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집값, 전월세 등 과도한 주거비용 부담(31%)이 1순위로 지목됐다. 이는 지난해(25%)보다 6%p 증가한 결과로, 최근의 부동산가격 상승세가 반영된 것으로 도는 분석했다. 이어 출산·양육 부담(25%), 개인의 삶·여가 중시(18%) 등이 높았다. 우리 사회 저출생 문제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86%가 ‘심각하다’고 답했다.저출생의 원인으로는 양육비·사교육비 등 경제적 부담(33%), 집값 등 과도한 주거비용(18%), 개인의 삶 중시(13%) 순으로 꼽았다. 남성은 과도한 주거비용(24%)을 여성(12%)보다 2배 높게, 여성은 개인의 삶 중시(16%)를 남성(10%)보다 높게 꼽았다. 가장 시급한 저출생 대책으로는 고용·주거 등 안정적 기반마련 지원(36%)이 꼽혔고, 다음으로 아동수당, 의료비, 교육비 등 경제적 지원(18%), 국공립 어린이집·유치원 확충, 돌봄서비스 확대(16%), 근로시간 단축, 육아휴직 등 아이 돌보는 시간 보장(15%) 순이었다. 이번 조사는 경기도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도민 2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10월 16일부터 18일까지 자동응답조사 방식으로 실시했으며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2.2%p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원피스’ 말고 ‘입법 노동자’ 류호정, 나의 진짜 꼬리표 [아무이슈]

    ‘원피스’ 말고 ‘입법 노동자’ 류호정, 나의 진짜 꼬리표 [아무이슈]

    정의당 류호정의 국감 활약은 그의 ‘분홍색 원피스’만큼 인상적이었다. 삼성을 정조준하는 대범함과 숨진 노동자 복을 입고 나타나는 영리함도 보였다. 1992년생 의원을 향한 시기, 질투, 의심의 눈초리 속에서도 ‘잘한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늘었다. 지난 1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513호에서 요즘 가장 바쁜 그를 만났다. 그는 뜨거운 이야기를 하면서도 시원하게 잘 웃었고, 솔직한 화법을 썼다.●어릴 적부터 ‘간 큰’ 내가 ‘정치’ 뛰어든 이유 - 정치를 의식하면서 살았나요. 이를테면 국회의원이 되어야지…. “아니요. 오히려 어머니는 ‘평범하게 살아라. 그래야, 세상이 너에게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거기에 맞춰 살았고요. 그러다 직장에서 성추행을 겪고 노조 설립을 추진하다 권고사직을 당하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모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기만 한다면,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든 세상이 질문하지 않을 텐데. 그게 진짜 설명이 필요 없는 삶이 아닌가?’라고.” -내가 평범해지는 대신 세상을 바꾸겠다 생각한 거네요. “그렇죠. (웃음) 세상이 좀 더 나아질 수는 없을까? 아, 세상을 바꿔보자.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로.” -보통 사람들은 조직에 자신을 맞추고, 집단에 녹아들고 싶어합니다. 게임회사 재직 때 장기자랑 건으로 인사팀 관계자를 쏘아붙인 일화도 있더군요.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왔다’고. 그 대범한 성격은 어디서 온건가요. 타고난 건가요. “어머니도 저더러 ‘어릴 때부터 애가 간이 컸다’고는 하시더라고요. (웃음) 하지만 그보다는 행동하거나 말하지 못했다가 후회한 경험들이 쌓이고 말하지 않는 게 더 괴롭다는 걸 깨달았어요. 행동하고 나서 힘든 게 차라리 낫다는 걸 체득한 거죠. 직장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성추행과 갑질 피해를 본 후배를 도운 것도 그런 맥락이에요. 행동하는 게, 제가 행복해지는 길인 거죠.” ●의원회관 513호… 노란색 대자보? 류 의원은 덩치 큰 가구 대신 스타트업 사무실을 연상케 하는 빈 백(bean bag)을 방에 들여놨다. 여기저기 놓인 노란색 소품이 창밖의 은행나무와 묘하게 어울렸다. 문에는 ‘비동의 강간죄를 소개하고 싶어 대자보를 붙입니다’라고 쓰인 노란색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그는 자기 1호 법안인 ‘강간죄 개정안’(강간의 정의를 폭행과 협박에서 상대방의 동의 여부, 위계 위력으로 확장하자는 안)에 동참 할 의원을 찾으려고 회관 곳곳에 포스터를 붙였다. 지난 8월 발의한 이 법안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 비동의 강간죄, 진행사항은 어때요. “법사위 의원님들 찾아가기도 하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해요. 다들 눈치를 자주 보시는 것 같아요. (종교계 눈치요?) 한편으로는 왜 여성의 표는 의식하지 않지?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 공감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 거지? 화가나요. 신중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놈의 신중 때문에 많은 제도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신중’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두려움, 두려움에 대한 변명이죠.”●문 대통령 향해 “기억하시느냐” 화제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1인 시위 중에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기억하시느냐’고 외친 일도 주목받았어요. 시선을 끄는 방법을 아는 것 같아요.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요. (시위를 한 지) 막 40일이 넘었는데 그 사이에 60명이 넘는 노동자가 현장에서 돌아가셨어요. 우리나라가 OECD 산업재해 사망률 1위 국가인데 이런 사고가 나면 기업들은 보통 변명을 해요. 노동자 개인의 과실이다. 실상은 안전 시스템의 미비, 효율만 따지는 기업문화가 문제라는 거죠. 이건 우리가 비용 효율만 따져가며 기업들에 특혜를 늘려줘서 그런 건데, 이제 정상으로 돌릴 때라고 생각해요. 민주당에서도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하루빨리 준비가 되길 촉구해야겠죠.” - 정치를 하면서 참고하는 모델이나 영향을 준 사람이 있나요. “딱히 롤모델이라는 건 없지만,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분이라면 이정미 정의당 전 대표님이 떠오르네요. 예전에 게임회사 과로사 사건 뒤에 이 전 대표님 의원실에서 나섰고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을 돌았는데, 그때 (회사가) 떼먹은 야근수당을 주더라고요. (웃음)” - 본인이 자주 이야기하는 ‘약자의 무기’로써 정치가 작용한 거군요. “네. 일상 속에서 정치가 이렇게 효과를 발휘하는구나! 체감했죠. 예전 회사에서 부당해고 사례가 몇 건 있어서 당시 회사 임원이 증인으로 나갔는데 그걸 주도한 것도 이 전 대표님 의원실이었고요. 여러 영향을 받았죠.”●“멘사 회원? 굳이…결과로 보여주고 싶다” 정의당 비례 1번으로 주목받고 대리게임 의혹을 치렀으며 박원순 조문 거부와 본회의 원피스 복장으로 단숨에 논쟁의 중심에 선 그다. 파격만 있을까 의심했는데, 정쟁에 가려 잊고 있었던 ‘입법 노동자’의 본모습이 엿보였다. - 아참, 멘사 회원이라면서요? “전 민망해서 이걸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데…. (웃음) 무엇보다 행동과 결과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최근에는 총선 1호 공약인 포괄임금제 금지법 공동발의 요청을 했습니다. 공짜 야근 이제 그만 없애야죠. 최대한 많은 여야 의원의 서명을 받아 곧 발의할 예정입니다. 채용비리처벌법, 임금체불방지법 그리고 부당권고사직방지법을 담은 청년 노동자 보호 3법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게임’, ‘노동’, ‘원피스’, ‘최연소’ 등등. 정치인 류호정에게 여러 꼬리표가 달렸어요. “저는 ‘정의당 류호정’으로 있고 싶어요. 정의당엔 정말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분들이 많이 계셔요. 큰 정당, 큰 단체에 여러 차례 민원을 넣다가 결국 안 돼서 여기로. 그래서 전 필요할 때 마지막에 곁에 있어주는 사람. 어쩌면 그게 거대 양당이 할 수 없는 정의당 만의 역할이기도 하고요.” ●류호정 TMI… 그녀의 가방엔 뭐가 있을까21대 최연소 정치인, 정의당 류호정 의원의 가방 속엔 무엇이 들었을까.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류 의원은 ‘흔쾌히 가방 문을 열어젖혔다. 노란색(정의당의 상징 색) 스포츠 브랜드 배낭에서 나온 아이템은 태블릿PC와 무선이어폰, 화장품 파우치, 볼펜, 휴대용 게임기, 휴대용 칫솔 그리고 ‘민총이(민주노총 캐릭터)’ 엠블럼. 이것도 저것도 ‘노란색’ 천지다. 분당에서 지하철로 출퇴근을 한다는 그는 이동 중에 간간히 휴대용 게임기로 ‘모여봐요 동물의 숲’(닌텐도 스위치의 인기 타이틀)을 하고 있다고 했다. 류 의원은 게임광이다. 이화여대 재학 당시 리그오브레전드(LoL·이하 롤) 대리게임 의혹을 겪고 사죄도 했지만, 게임 자체를 그만두진 않았다. 그는 이번 국정감사를 끝내고 지난 주말 롤 ‘골드티어’(중상위권 레벨)를 찍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동안 게임 할 시간이 없어 레벨이랄 게 없었다고 했다. 스트레스 해소도 목적이지만 롤을 매개로 청년들과 더 편하게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 밖에도 류 의원에 대한 TMI(Too Much Information). 음악은 즐겨듣지 않지만, 라디오는 챙겨 듣는다. 즐겨 듣는 라디오는 없고, 주파수 잡히는 대로 듣는 편. 아이 패드로는 조간 뉴스를 꼼꼼히 챙기고, 힐링이 필요할 때는 고양이와 새 영상을 찾아본다. 가장 최근에 산 아이템은 스마트워치(애플 워치)다. 밀려드는 연락을 바로바로 확인하기 위한 용도라고.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이근아 기자 leeguenah@seoul.co.kr
  • 2200년 대한민국 서울, 인간과 ‘인공’의 구직난… ‘진짜 인간’ 의미를 묻다

    2200년 대한민국 서울, 인간과 ‘인공’의 구직난… ‘진짜 인간’ 의미를 묻다

    영화 ‘구직자들’은 200년 후 미래를 다루며 SF 영화를 표방하고 나섰지만, 배경은 전혀 SF스럽지 않다. 서울 청계천 일대의 마천루와 을지로의 철공소 골목, 인력시장을 헤매며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 등은 우리네 일상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대랑 보급된 인공인간의 존재를 등장시켜 ‘진짜 인간’의 의미를 묻는 것이 영화의 ‘진짜 의미’이므로,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게 된다. ●인간 위해 만든 인공인간 일자리 위협 2200년 대한민국. 정부는 인공인간, 즉 복제인간으로 사람들의 삶을 유지시키고 있다. 인간들이 납부하는 의료보험료로 만들어진 ‘인공’은 원본 인간의 건강을 위해 이용되고, 그 전까지 국가기간산업이나 공공 근로에 투입된다. 편의점의 ‘1+1’ 삼각김밥을 나눠 먹으며 우연히 동행하게 된 두 구직자에게도 사연은 있다. 진짜 인간(정경호 분)은 아픈 아이의 비싼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동분서주 중이고, 청년 인공(강유석 분)은 원본 인간의 보험 해지로 인해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처지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인공을 만들었지만, 인간도 인공도 편치 않은 것이 2200년의 대한민국 모습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인공은 인간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인간들은 돈을 구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인간이라는 자신의 정체성마저 매매하게끔 내몰린다. 인공은 인간의 지위를 사 ‘진짜 인간’이 되는 데 혈안이 된다. 황승재 감독은 영화 중간중간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물으며 약 100명의 인터뷰 장면을 삽입했다. 여기서 영화는 SF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다. 인터뷰이들은 각자 삶, 죽음, 행복,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무겁게 생각들을 이어 나간다. 배우 봉태규도 인터뷰이 중 한 명으로 등장해 삶이 거듭되어도 더 나은 방책이라는 것은 없더라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심지어 2200년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21세기 현재의 모습과 흡사해 보이는 것도 사람들이 21세기를 유토피아로 상정한 탓이라는 데서는 맥이 탁, 풀린다. 지금도 힘든데, 200년 후에는 지금을 그리워한다. ●인터뷰이 100명에 듣는 인간 존재 의미 인간도 인공도, 200년 후에도 처절하게 일자리를 찾는 모습을 통해 영화는 우리가 영원히 쓸모를 고민하는 구직자임을 일깨운다. 황 감독은 “용도를 정해 두고 만든 게 복제인간인데, 인간 역시 쓸모 있게만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가 비인간적인 사회에 대한 타개책까지는 내놓지 않지만, 인터뷰이 100명의 대답들 속에서 각자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도 있겠다. 오는 12일 개봉. 전체 관람가.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리뷰] 평생을 구직하는 인간들… 영화 ‘구직자들’

    [리뷰] 평생을 구직하는 인간들… 영화 ‘구직자들’

    영화 ‘구직자들’은 200년 후 미래를 다루며 SF 영화를 표방하고 나섰지만, 배경은 전혀 SF스럽지 않다. 서울 청계천 일대의 마천루와 을지로의 철공소 골목, 인력시장을 헤매며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 등은 우리네 일상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대랑 보급된 인공인간의 존재를 등장시켜 ‘진짜 인간’의 의미를 묻는 것이 영화의 ‘진짜 의미’이므로,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게 된다. 2200년 대한민국. 정부는 인공인간, 즉 복제인간으로 사람들의 삶을 유지시키고 있다. 인간들이 납부하는 의료보험료로 만들어진 ‘인공’은 원본 인간의 건강을 위해 이용되고, 그 전까지 국가기간산업이나 공공 근로에 투입된다. 편의점의 ‘1+1’ 삼각김밥을 나눠 먹으며 우연히 동행하게 된 두 구직자에게도 사연은 있다. 진짜 인간(정경호 분)은 아픈 아이의 비싼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동분서주 중이고, 청년 인공(강유석 분)은 원본 인간의 보험 해지로 인해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처지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인공을 만들었지만, 인간도 인공도 편치 않은 것이 2200년의 대한민국 모습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인공은 인간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인간들은 돈을 구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인간이라는 자신의 정체성마저 매매하게끔 내몰린다. 인공은 인간의 지위를 사 ‘진짜 인간’이 되는 데 혈안이 된다.황승재 감독은 영화 중간중간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물으며 약 100명의 인터뷰 장면을 삽입했다. 여기서 영화는 SF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다. 인터뷰이들은 각자 삶, 죽음, 행복,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무겁게 생각들을 이어 나간다. 배우 봉태규도 인터뷰이 중 한 명으로 등장해 삶이 거듭되어도 더 나은 방책이라는 것은 없더라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심지어 2200년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21세기 현재의 모습과 흡사해 보이는 것도 사람들이 21세기를 유토피아로 상정한 탓이라는 데서는 맥이 탁, 풀린다. 지금도 힘든데, 200년 후에는 지금을 그리워한다. 인간도 인공도, 200년 후에도 처절하게 일자리를 찾는 모습을 통해 영화는 우리가 영원히 쓸모를 고민하는 구직자임을 일깨운다. 황 감독은 “용도를 정해 두고 만든 게 복제인간인데, 인간 역시 쓸모 있게만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가 비인간적인 사회에 대한 타개책까지는 내놓지 않지만, 인터뷰이 100명의 대답들 속에서 각자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도 있겠다. 오는 12일 개봉. 전체 관람가.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카불 대학 여학생 하쉬미 “개강 첫날 테러 공격에 친구들이요…”

    카불 대학 여학생 하쉬미 “개강 첫날 테러 공격에 친구들이요…”

    아프가니스탄 카불 대학에 다니는 스무 살의 프레슈타 하쉬미라고 합니다. 위 사진은 제가 개강 첫날인 지난 2일 강의실 앞 화단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나무들이 죽 늘어선 저희 교정은 아름다웠고 가을날의 햇볕은 다사로웠지요. 뒤쪽 강의실에서 사예드 라텝 모자파리 교수님이 평화와 분쟁 해결책 첫 강의를 시작하셨어요. 교수님은 “학사과정 5학년 수업을 이제 시작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차에 치이지 않는다면 말이지요”라고 농담을 하셨어요. 50명이 강의실에 앉아 교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였는데 전 옆의 친구에게 윙크를 하며 “교수님이 자살폭탄 공격은 빠뜨렸네”라고 농을 했고요. 그런데 조금 이따 정말로 자살폭탄 공격이 학교 정문에서 일어났어요. 6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하는 과정에 교수님들과 학생 등 19명과 테러 용의자 셋 등 22명이 숨졌어요. 총성이 복도와 교실에 반사돼 들리고 수류탄 터지는 굉음도 들렸어요. 학생회 임원인 전 “창문 밖으로 뛰어 나가지 않으면 다 죽을 것”이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친한 친구들이 수십명의 뒤를 따라 일층 강의실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지려 했으나 지바 아슈가리는 창문 틀에 걸린 채로 수류탄 파편에 맞아, 하시나 함다드는 심장마비로 세상과 작별하고 말았어요. 지바는 늘 “언젠가는 외교관이 될거야”라고 말했고, 하시나는 우리 반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였어요.9·11 테러와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침공한 2001년을 전후해 태어난 저희 세대는 부모나 할아버지 세대가 누리지 못한 평화가 주어지면 우리 사회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설과 변화를 이뤄낼 것이란 기대를 받으며 자랐어요. 인공지능이나 화성의 생명체, 기후 변화를 많이 얘기해요. 널리 알려진 대로 아프가니스탄은 25세 미만이 전체 인구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젊은 나라예요. 반면 자녀에게 고등교육을 시킬 만한 경제력이 있는 가족은 얼마 되지 않죠. 그날 참사 이후 저희 교정에서도 추모 집회가 이어졌는데요 “학생들을 죽이면 미래도 없어진다” “학생들을 공격하는 일은 이슬람적이지 않다”는 플래카드가 많이 눈에 띄었죠. 이슬람 국가(IS)가 이 끔찍한 테러의 배후임을 자처하는 동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어요. 해서 영국 BBC 기자들이 캠퍼스를 찾아 저랑 친구들을 인터뷰해 8일 소개했어요. 하지만 이 동영상은 가짜인 것으로 믿어져요. 탈레반 산하 하니카 조직이 벌인 짓인데 이를 호도하기 위해 가짜 동영상을 배포한 것이란 분석입니다. 저희 학교 정책 및 공공행정과의 사미 마흐디 강사는 당시 화상을 입었는데 16명의 학생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그려 트위터에 올리고 추모의 글을 남기셨어요. 아흐마드 알리는 검고 꿰뚫어보는 듯한 눈으로 그려졌는데 책을 많이 읽어 급우들이 궁금한 것들을 묻곤 했던 학생이었으며, 로키아는 얌전한 얼굴과 다정한 미소로 기억되며 돈벌이에 급급한 가족을 위해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으며, 마지막 수업 도중 소하일라란 학생이 자신의 질문에 답했을 때 중간에 끊고 피하는 바람에 간신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며 용서를 빌었어요. 여기서 잠시, 그의 트위터 글을 옮겨볼게요. ‘소하일라 잔아, 내가 미안하구나! 내가 네 답을 중간에끊었을 때 네가 상처받을지 몰랐단다. 수업이 끝난 뒤 넌 답이 잘못됐느냐고 물어왔지. 난 아니라고 했고, 네 답은 완벽했다고 말했어. 그러자 넌 답이 틀렸기 때문에 내가 말을 끊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지. 내가 네 말을 끊지 말았어야 했어. 네 얘기를 들은 기회는 영원히 찾아오지 않게 됐구나.’ 검정 히잡을 쓰고 둥근 검정테 안경을 쓴 그녀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남미 혁명가 시몬 볼리바르에 관한 선홍빛 책에 핏방울이 튄 사진은 소셜미디어에서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어요. 마흐디 강사님은 저희 세대가 이전 세대와 완전히 다르다고 말씀하세요. 태어나자마자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했고 표현의 자유, 선거, 소셜미디어. 정치나 사회문화 이슈에 대해 터놓고 말하는 능력을 길렀다는 것이지요.그는 가장 잊지 못할 학생으로 매력적인 미소를 지닌 무함마드 라히드를 꼽았어요. 스물두 살에 세상을 떠났어요. 늘 “삶이 무엇을 가져다주든 관계없이 살아가야 한다. 늘 미소를 잊지 말라”고 친구들에게 얘기했답니다. 물론 우리 20대 중에도 일부는 탈레반의 선전에 넘어가 정부 책임만 성토하곤 해요. 교육을 두려워하고 교육을 받았다는 이유로 해치려 한대요. 또 일부는 두렵고 체념해 밀입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요. 실제로 제 친구 중에도 불법으로라도 유럽에 건너가 공부를 계속한 뒤 고국에 돌아와 봉사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저희 대학 홈페이지에 “교육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무기”라고 강조돼 있어요. 하지만 저희 지식으로 무장한 세대는 가장 큰 시험을 앞두고 있어요. 보고 싶은 벗들이 죽는 모습을 봤던 터라 쉽게 잊지 못하는 것이지요. 저도 한밤중 깨어나곤 해요. 내가 볼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봤어요. 제가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와 같은 감정을 두 번 다시 느끼지 못할 거예요. 지금 우리는 이 전쟁의 참화 숲에 갇혀 있어요.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정경심 “이번 사건 수십년 인간관계 송두리째 무너뜨려…삶에 회의“

    정경심 “이번 사건 수십년 인간관계 송두리째 무너뜨려…삶에 회의“

    “이번 사건은 지난 수십년 간의 저의 인간관계를 송두리째 무너뜨렸습니다.”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 임정엽) 심리로 진행된 정경심(58) 동양대 교수의 결심 공판에서 최후진술에 나선 정 교수는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이렇게 말했다. 앞서 검찰이 징역 7년과 벌금 9억원, 추징금 1억 6000여만원을 구형할 때 눈물을 훔쳤던 정 교수는 최후 진술을 하는 과정에서도 수시로 북받치는 감정을 제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정 교수는 이번 사건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동양대 표창장 위조 혐의에 대해 “최성해 당시 동양대 총장에게 (표창장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면 (최 총장이) 발급 사실을 어떻게 알았겠으며, (최 총장에게) 표창장을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겠느냐”고 반문했다. 입시비리 전반에 대해서도 “결혼 이후 계속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아이 학업을 철저히 챙기는 극성 엄마가 될 수 없었다”는 입장을 취했으며, 사모펀드 비리에 대해서는 “공직자였던 배우자(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항변했다. 정 교수는 이번 사건으로 자신이 받은 상처와 고통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한 순간 저와 아이들, 친정 식구들, 시댁 식구까지 망라해 온 가족이 수사대상에 오르고 언론에 대서특필되며 파렴치한으로 전락하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봤다”면서 “사는 것에 대해 심각한 회의에 빠졌다”고 말했다. 내내 혐의를 부인하던 정 교수 진술 말미에 다소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나와 내 가족이 누린 삶에 대해 통상적 기준으로 판단하면 예외적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저희에게 주어진 혜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왔다는 가능성”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검찰은 정 교수의 범행을 박근혜·최서원(본명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빗대며 “도덕적 비난을 넘어선 중대 범죄”라면서 중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입시비리에 대해 “부의 대물림, 합격이라는 목표를 위한 도를 넘는 반칙, 입시시스템의 공정을 해진 범죄 행위”라고 비판했으며, 사모펀드 비리는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조국(55) 전 법무부 장관의 지위를 이용해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인 조범동과 상호이익을 추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의 선고 기일은 다음달 23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소녀들이 새 삶의 열매 맺도록”… 6호 보호처분시설 ‘나사로 청소년의 집’

    “소녀들이 새 삶의 열매 맺도록”… 6호 보호처분시설 ‘나사로 청소년의 집’

    ※ 서울신문의 ‘소년범-죄의 기록’ 기획기사는 소년범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youngOffender/ ----------------------------------------------------------------------------------------------- “나는 받기보다 주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받는 것들을 고맙게 여기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고봉밥이 담긴 식판을 앞에 둔 40명의 소녀가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한목소리로 생활다짐을 외친다. 6호 보호처분(복지시설 보호)을 받은 여자 청소년이 지내는 경기 양주 ‘나사로 청소년의 집’이다. 소녀들은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동안 심리 상담·미술 치료를 받고 피아노 치기, 밴드활동 등 취미 생활도 하면서 검정고시도 준비한다. 이곳에선 정해진 규칙에 따라 먹고 자고 생활해야 한다. 화장도 휴대전화도 금지다. 잘 곳도, 먹을 것도 어느 하나 일정치 않았던 밖과는 사뭇 다른 생활이다.아이들은 가정과 학교, 사회로부터 배우지 못한 것들을 차근차근 배운다. 양보하기, 예쁜 말 쓰기, 건강한 밥 먹기, 싸우지 않기 등이다. 사회와 단절된 생활, 아이들은 작은 것에도 ‘집착’한다. 이를테면 펜, 편지지, 스티커와 같은 것들이다. 누가 더 예쁜 것을 많이 갖고 있느냐로 서열이 결정될 때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아이들이 관계 맺음과 소통에 서툰 것에서 기인한다. 김자경 사무국장은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많아 신입교육 때는 경청과 의사소통 교육을 하고 갈등 상황이 있을 땐 자기 감정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법을 가르친다”고 했다. 교사들이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부분은 성교육이다. 성경험이 있거나 성폭력·성매매 등 피해에 노출된 아이들이 많아서다. 산부인과 치료비도 시설 살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지난여름엔 3박 4일간 성교육 캠프도 진행했다. 성매매·조건만남 등 그간 사회에서 경험한 성관계에서 성을 ‘도구’처럼 여겼던 아이들은 “처음으로 존중받는 기분이었다”고 전했다. 나사로의 집 임상심리상담원 교사는 “‘콘돔을 꼭 써야 한다’는 식의 교육을 넘어 ‘너는 소중한 존재이기에 너의 몸을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걸 가르치고 있다”고 설명했다.생활관리는 ‘열매·씨앗제’로 한다. 생활규칙을 잘 지켰을 때는 열매, 어겼을 때는 씨앗을 준다. 예전엔 벌이나 격려라는 말을 썼는데 ‘성장의 밑거름’이란 긍정적인 말로 바꿨다. 씨앗이 쌓이면 담당 판사에게 알려 처분을 변경하거나 시설에 머무는 기간이 연장될 수 있다. 열매를 모으면 부모나 친구에게 전화하는 기회가 추가된다. 김 사무국장은 “아이들의 변화를 볼 때 보람이 있지만 퇴소 후 가정과 학교, 사회가 아이를 받쳐 주지 못해 다시 비행을 저지르는 상황이 가장 안타깝다”면서 “시설당 임상심리상담원이 1명뿐인데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취약한 경우가 많아 치료 인력이 충원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씨줄날줄] 아동학대/이동구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아동학대/이동구 수석논설위원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말은 100여년 전 프란시스코 페레(1859~1909)라는 스페인 교육자가 남긴 말이라고 한다. 아이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며 어떠한 억압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육철학을 실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평생 우리나라의 어린이를 위해 살아온 소파 방정환(1899~1931)의 삶과 닮았다. 소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어린이날과 ‘어린이’란 단어는 어린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춰 준 것으로 평가된다. 어린이를 늙은이, 젊은이와 대등하게 격상시킨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어린이는 새로운 시대의 새 인물인 것을 알아야 한다. 어린이의 얼굴을 보라. 이 세상의 평화라는 평화는 모두 그 얼굴에서 우러나는 듯 고요하고 평화롭다” 등 소파가 남긴 명언들은 지금도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어린이집’은 만 6세 미만 어린이의 공간이다. 유치원이 정규 교육과정 전에 기초적인 공동체 생활을 익히는 교육공간이라면 어린이집은 보호하고 양육하는 보건복지의 공간이다. 더구나 어린이집은 다른 친구들을 처음 접하는 사회적인 장소이다. 그런 만큼 국가나 사회의 여느 시설보다 안전하고 엄격하게 관리돼야 한다. 이런 공간에서 어린아이들이 학대를 경험하거나 목격하게 된다면 그 어린이는 평생 사람에 대한 불신과 공포, 사회에 대한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도 있다. 학대의 사전적 의미는 ‘몹시 괴롭히고 혹독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학대행위는 더욱 나쁜 것으로 비난받고 처벌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힘없는 노인이나 어린이 등 약자를 괴롭히는 학대 행위는 특히 엄벌돼야 한다. 영유아보육법 개정에 따라 2019년 6월부터 모든 어린이집은 3년마다 의무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시설이나 위생상태, 보육교사 수 등 어린이들을 돌보는 데 문제가 없는지를 국가가 확인하는 제도이다. 이에 따라 어린이집에는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야 한다. 이를 통해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아동학대 행위가 세상에 드러난다. 최근엔 울산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어린이의 목덜미를 잡고 바닥에 내팽개치는 CCTV 장면이 공개되면서 전 국민적인 공분을 사고 있다. 보육교사 2명이 6명의 아이들에게 수십 차례에 걸쳐 학대 행위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경찰조사를 받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6만여명의 시민들이 아동학대 관련자들의 엄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보육교사들에 대한 처우 개선을 기본으로 해 아동학대 행위를 막을 묘안을 빨리 찾아야 한다. 보육교사도 나라의 동량을 키운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 “안 써도 다 살아요… 신박한 비움은 곧 나눔이거든요”

    “안 써도 다 살아요… 신박한 비움은 곧 나눔이거든요”

    “제게 비움은 곧 나눔과 연결되어 있어요. ‘나누는 정리’에 욕심이 있다고 할까요. 다른 사람에게 더 가치가 큰 것들을 나눠서 시설 퇴소 아동이나 미혼모 가정에 기부하려고 해요.” 최근 서울 강남구 소속사 사무실에서 만난 배우 신애라는 tvN 예능 ‘신박한 정리’를 통해 보여준 정리 철학을 설명하는 데 공을 들였다. “생활이 분주하게 느껴질 때, 물건에 빼앗기는 에너지가 너무 크다고 생각할 때 정리를 한다”는 그는 정리가 단순히 버리는 것이나 인테리어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싶다고 강조했다.그 진정성 때문인지 직접 기획 아이디어를 낸 ‘신박한 정리’는 ‘정리 붐’을 다시 일으키며 순항 중이다. 원래 다른 예능 프로그램을 제안했던 방송사와 제작진을 설득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이왕이면 보는 분들이 삶의 질을 올릴 수 있는 예능을 하고 싶어서 저와 생각이 맞는 전문가도 열심히 찾아 추천했다”는 그는 나중엔 일반인 집에도 찾아가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채널A ‘요즘 육아 금쪽 같은 내 새끼’에서는 육아전문가 오은영 박사와 함께 육아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도 하고 있다. 미국에서 상담심리학과 가정사역 공부를 마치고 간만에 복귀해 예능을 통해 새 전성기를 맞은 셈이다. “아주 넓은 울타리에 아이들을 방목하는 게 교육관”이라고 밝힌 그는 싱어송 라이터를 꿈꾸는 아들의 일에도 절대 나서지 않는다. 무엇을 할지 직접 찾지 않으면 아이의 경험이 되지 않기 때문에, 부모 눈에 실패가 보인다고 먼저 말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그의 교육관에 대한 이야기 역시 ‘정리관’ 만큼 귀에 쏙쏙 박혔다.최근에는 7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 ‘청춘기록’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예능에서 드러난 가치관과 180도 다른, 아들 일에 물불 안 가리는 ‘헬리콥터맘’ 김이영으로 변신했다. 원래 하희라가 연기한 사혜준(박보검 분)의 엄마 역을 제안받았지만, 김이영 역을 해보겠다고 역제안해 맡은 캐릭터다. MBC ‘사랑을 그대 품 안에’(1994)에서 진주 역할을 하겠다고 먼저 의견을 밝혔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그는 “주인공이 아닌 역할도 처음이고, 나와 다른 점도 많지만 그래서 더 재밌었다”며 “헛똑똑이, 푼수의 모습도 있지만 밖에선 아주 작은 여지도 안 주는 다층적인 역할이라 이후 연기생활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MBC ‘사랑이 뭐길래’(1991) 이후 29년 만에 같은 작품에서 재회한 하희라와 티격태격 호흡도 돋보였다. “신인 시절 연기가 너무 어려워서 화장실에서 울다 친해졌다”는 두 사람은 아들을 곧 군대에 보낼 나이에 다시 만나 주인공들을 빛나게 했다. “이제 세월이 흘러 허리도 아프고 아들이 입영통지 받을 나이가 됐다는 게 신기하다고 서로 공감하면서 즐겁게 연기했어요. ‘그때는 우리가 청춘이었다’는 회상도 하고요. 그래도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아요.” 오랜만의 드라마 현장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신애라는 쉰을 넘긴 지금, 연기 인생의 두 번째 막을 열 예정이다. “주연이 아니어도 좋고, 뽀글파마하는 역할도 좋아요. 대본만 보내주세요. 단, 차인표씨랑 같이 작품 하는 것만 빼고요. 가족이 일로 너무 연결되는 건 싫거든요. 하하”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비움은 나눔, 연기는 즐거움” 제2의 전성기 연 신애라

    “비움은 나눔, 연기는 즐거움” 제2의 전성기 연 신애라

    ‘신박한 정리’ 아이디어 내... “보는 분들 삶의 질 올라가길” “제게 비움은 곧 나눔과 연결되어 있어요. ‘나누는 정리’에 욕심이 있다고 할까요. 다른 사람에게 더 가치가 큰 것들을 나눠서 시설 퇴소 아동이나 미혼모 가정에 기부하려고 해요.” 최근 서울 강남구 소속사 사무실에서 만난 배우 신애라는 tvN 예능 ‘신박한 정리’를 통해 보여준 정리 철학을 설명하는 데 공을 들였다. “생활이 분주하게 느껴질 때, 물건에 빼앗기는 에너지가 너무 크다고 생각할 때 정리를 한다”는 그는 정리가 단순히 버리는 것이나 인테리어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 진정성 때문인지 직접 기획 아이디어를 낸 ‘신박한 정리’는 ‘정리 붐’을 다시 일으키며 순항 중이다. 원래 다른 예능 프로그램을 제안했던 방송사와 제작진을 집요하게 설득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이왕이면 보는 분들이 삶의 질을 올릴 수 있는 예능을 하고 싶어서 저와 생각이 맞는 전문가도 열심히 찾아 추천했다”는 그는 나중엔 일반인 집에도 찾아가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채널A ‘요즘 육아 금쪽 같은 내 새끼’에서는 육아전문가 오은영 박사와 함께 육아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도 하고 있다. 미국에서 상담심리와 가정사역 공부를 마치고 간만에 복귀해 예능을 통해 새 전성기를 맞은 셈이다. “아주 넓은 울타리에 아이들을 방목하는 게 교육관”이라고 밝힌 그는 싱어송 라이터를 꿈꾸는 아들의 일에도 절대 나서지 않는다. 아이가 무엇을 할지 직접 찾지 않으면 아이의 경험이 되지 않기 때문에, 부모 눈에 실패가 보인다고 먼저 말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그의 교육관에 대한 이야기 역시 ‘정리관’ 만큼 귀에 쏙쏙 박혔다. 특히 소신대로 실천하며 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여기, 지금’(Here and Now)라는 자신의 인생 모토를 꼽은 그는 “미래 세대에 대한 고민은 하지만, 제 미래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는다”며 “현재에 집중하는게 나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7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 ‘청춘기록’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예능에서 드러난 가치관과 180도 다른, 아들 일에 물불 안가리는 ‘헬리콥터맘’ 김이영으로 변신했다. 원래 하희라가 연기한 사혜준(박보검 분)의 엄마 역을 제안받았지만, 김이영 역을 해보겠다고 역제안해 맡은 캐릭터다. MBC ‘사랑을 그대 품 안에’(1994)에서 진주 역할을 하겠다고 먼저 의견을 밝혔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그는 “주인공이 아닌 역할도 처음이고, 나와 다른 점도 많지만 그래서 더 재밌었다”며 “집에선 헛똑똑이, 푼수의 모습도 있지만 밖에선 아주 작은 여지도 안 주는 다층적인 역할이라 이후 연기생활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청춘기록 김이영, 새로운 도전... 하희라와도 ‘엄마 케미’MBC ‘사랑이 뭐길래’(1991) 이후 29년 만에 같은 작품에서 재회한 하희라와 티격태격 호흡도 돋보였다. “신인 시절 연기가 너무 어려워서 화장실에서 울다 친해졌다”는 두 사람은 아들을 곧 군대에 보낼 나이에 다시 만나 주인공들을 빛나게 했다. “이제 세월이 흘러 허리도 아프고 아들이 입영통지 받을 나이가 됐다는 게 신기하다고 서로 공감하면서 즐겁게 연기했어요. ‘그때는 우리가 청춘이었다’는 회상도 하고요. 그래도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아요.” 오랜만의 드라마 현장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신애라는 쉰을 넘긴 지금, 연기 인생의 두 번째 막을 열 예정이다. “주연이 아니어도 좋고, 뽀글파마하는 역할도 좋아요. 무서운 역할도 해보고 싶고요. 대본만 보내주세요. 단, 차인표씨랑 같이 작품 하는 것만 빼고요. 가족이 일로 너무 연결되는 건 싫거든요. 하하”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비행(非行)은 시작됐다 [소년범-죄의 기록]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비행(非行)은 시작됐다 [소년범-죄의 기록]

    ① 평범한 소년은 어떻게 범죄자가 됐나 서울신문은 평범한 소년이 어떻게 범죄의 굴레에 갇히는지 확인하고자 지난 6개월간 보호처분을 받은 79명의 아이들을 직접 만났다. 심층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통해 소년범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 건 국내 언론 사상 이번이 첫 시도다. 죄목은 절도, 폭력, 사기, 무면허 운전 등으로 다양했지만 소년들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절대적인 가해자는 없었다. 어른들의 무관심과 배제 속에 범죄를 되풀이했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또래의 세계에서 발을 빼지 못했다. 열여덟 가영이, 열아홉 재영이 그리고 열다섯 민혁이를 통해 소년범의 세계를 옮겨 적는다. 아이들이 사회적 낙인의 짐을 짊어지지 않도록 진짜 이름은 숨겼다. 인터뷰는 소년범 6호 보호처분 시설인 경기 양주 나사로 청소년의 집과 전북 고창 희망샘학교, 1호 처분을 받은 아이들을 위탁하는 법무부 산하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의 서울 은평구 서울서부지소와 광주남부지소 등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 ※ 서울신문의 ‘소년범-죄의 기록’ 기획기사는 소년범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youngOffender 차털이·조건사기·폭력··· 18살 가영이 “친구의 배신, 그 때부터 날 놓았어요” “차털이(문이 열려 있는 차 안에 있는 돈을 훔치는 것), 폭력, 절도해본 적 있고요. 아, 조건사기(조건만남을 위해 성매수남을 부른 뒤 돈만 빼앗는 것) 쳐봤어요. 이번엔 보호관찰 위반 때문에 왔고요.” 동그란 안경에 하나로 단정하게 묶어 올린 머리, 말간 피부의 가영이가 무심하게 자신의 비행을 읊었다. 벌써 두 번째 6호 처분(아동복지시설 보호)이다. “공부를 잘한 건 아닌데 원래는 긴 치마도 입었고 착한 애였어요. 엄마 말도 잘 듣고.” 가영이는 어색한 듯 웃었다. 비행의 시작을 묻자 미간을 찌푸렸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중 2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학교 친구들한테 술이랑 담배를 배우긴 했는데요, 걔네한테 배신당한 게 큰 충격이었어요. 그 이후로 저 자신을 완전히 놓아 버린 거 같아요.” 그 무렵 가영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사이버 폭력을 당했다. 믿을 만하던 친구들에게 연애 고민을 털어놓았던 게 시작이었다. “걔, 걸레래ㅋㅋ”, “순진한 척 하더니 뒤통수 쳤어” 친구들이 올린 일명 ‘저격글’(특정인을 공격하고자 올리는 글)은 꼬리표처럼 가영이를 쫓아다녔다. 학교에선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 숨어 펑펑 울었고, 그런 학교가 싫어 꾀병을 부렸다. 외로운 마음에 페이스북으로 만난 친구들을 오프라인에서도 만나기 시작했다. 결국 자퇴했고, 각자 다른 이유로 가출한 친구들과 모여 모텔을 전전했다. 회복하지 못한 피해의 경험이 가영이에게 비행의 씨앗이 됐다. 서울신문 자체 설문조사 결과 가영이처럼 학교폭력(11.8%)이나 가정폭력(17.6%), 기타 폭력(7.1%)의 경험이 있다고 말한 아이들이 꽤 많았다.가영이가 열 네살부터 지금까지 겪은 경험 대부분을 부모님은 알지 못했다. 많은 부모가 아이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는다. 아이들의 78.5%도 주보호자와의 관계가 좋은 편이라고 답했다. 그렇지만 많은 아이들은 어려움을 겪을 때 주보호자(32.4%) 보다 또래 친구나 애인(44.5%)을 먼저 찾는다고 답했다. 보호자에게 도움을 요청해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지도 않았지만, 애초에 소년들은 문제를 덮거나 그 상황을 벗어나는 데 급급했다. 소년들의 18.2%는 생활에서 어려운 점으로 가족과의 갈등을 꼽기도 했다. 그런 부모에게 아이의 비행은 갑작스럽다. 처음 절도 혐의로 파출소에 간 가영이를 마주한 엄마는 울며 가영이의 뺨을 때렸다. 가영이는 그런 엄마에게 맞서 싸웠고, 자해를 시도했다. 가영이는 애초 사이버 폭력의 피해자였던 순간에 엄마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제가 늦둥이 막내딸이에요. 밖에서 괴롭힘 당했다고 하면, 아빠·엄마 마음 아프게 할까 봐, 말 못하고 밖으로만 돌았거든요. 근데 그 이후로, 엄마한테 더 큰 상처를 줬어요. 제가 뭐에 씌었었나 봐요.” ‘대출놀이’ 휘말려 금은방 턴 19세 재영이“학교도 보육원도 저를 내치기 바빴어요” 재영이는 지난해 금은방을 털었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정도의 비행은 했지만, 절도까지 하게 될 줄 몰랐다는 재영이는 “제 삶이 좀 버라이어티하죠?”라며 멋쩍게 웃었다. ‘대출놀이’의 보증을 잘못 선 게 화근이었다. 대출놀이는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돈을 빌려주고 50%가 넘는 높은 이자로 되갚는 일종의 10대들의 고리대금업이다. “친구가 선배한테 빌린 원금이 70만~80만 원이었는데, 며칠 만에 250만원으로 불어 났어요. 친구는 당연히 튀었죠. 그랬더니 불똥이 보증 선 저한테 온 거에요. 친구는 전화를 안 받고, 선배는 ‘대신 갚으라’고 독촉했어요. 사정을 아는 또 다른 선배가 불러내 ‘돈 필요하지 않느냐.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고 금은방 털이를 시키더라고요. 반협박이었죠.” 대가는 혹독했다. 6호 보호처분 시설에 들어가자마자 고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자퇴하지 않으면 퇴학 처리하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보육원에서 나고 자란 터라 대신 학교 문제를 처리해줄 보호자도 없었다. 발만 동동 구르다 결국 자퇴를 선택했다. “나름 명문고라서요, 저 같은 문제아가 있으면 학교에 먹칠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졸업장은 받고 싶었는데, 계속 선생님이 몰아붙이니까 퇴학당하면 정말 큰일 나겠다 싶었어요.”보호자라고 생각한 보육원도 등을 돌렸다. “보육원에서 저 같은 애는 감당 못 하겠대요. 새 쉼터 찾느라 퇴소가 늦어졌어요.” 재영이처럼 ‘부모와 선생님이 자신을 문제아 취급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렇다’ 혹은 ‘매우 그렇다’고 답한 아이들은 각각 29.2%, 27.8%로 절반을 넘었다. ‘시설에서 무슨 생각이 가장 많이 났냐’고 묻자 한참 말이 없던 재영이는 휴대전화만 만지작대다가 입을 뗐다. “금은방 주인아저씨요.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아저씨가 경찰서에서 ‘이런 애들 감방 넣어야지’라고 호통 치셨거든요. 계속 그 얼굴이 생각나요. 그 사람도 피해자잖아요.” 또래의 외면이 두려웠던 아이들사회가 외면해 다시 범죄 늪으로 10대의 세계는 노골적이다. 또래에게 힘으로든 돈으로든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한 살 차이라도 깍듯하게 존댓말을 쓴다. 재영이처럼 말도 안 되는 선배의 차털이 제안도 거절하기 힘들다는 게 아이들의 공통된 얘기였다. 아는 선·후배가 많을수록 인맥을 잘 관리한 유능한 친구가 된다. 또래와 어울릴 때, 10대는 용감해진다. “처음엔 장난으로 ‘저거 훔쳐볼까?’하다가 갑자기 한 명이 눈빛이 바뀌면서 이래요. ‘진짜 할래?’ 그때부터 걷잡을 수가 없는 거에요. 여기서 빼면 나약한 놈 되는 거에요”라는 재영이 말처럼 물러서면 또래 세계에서 밀려난다는 걸 10대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어울리다 보면 비행에 무뎌진다. 범죄 수법을 공유하고 서로를 위험에 끌어들인다. 소년원을 다녀온 친구에게 차털이를 배웠다는 열다섯 살 민혁이는 한 번에 900만원도 벌어봤다. 친구들과 300만원씩 나눠 갖고 명품 옷을 사니 며칠 만에 다 썼다. 심심할 땐 턴 차를 운전해 친구들 드라이브도 시켜줬다. 승용차에 7명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린 적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쓰릴’ 있었어요. 10대들이 무면허 운전으로 큰 사고 내는 기사 저희끼리도 다 보는데요, 전 안 죽을 거 같아요. 운전은 제가 잘 하거든요.” 아이들은 죄의 무게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랑 노는 애들은 다 그러니까’다. ‘주변에 비행 경험이 있는 친구나 선후배가 많았냐’는 질문에 ‘그렇다’ 혹은 ‘매우 그렇다’고 답한 아이들은 55.7%에 달했다. 민혁이는 범행한 순간을 지금은 후회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퇴소 후 친구들이 또 놀자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하는 척하면서 그냥 재껴야죠. 완전히 거부하기 어렵다면….” 민혁이가 씁쓸하게 웃었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건 단순히 민혁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절반(33명) 이상의 아이들은 “친구에 휩쓸려 비행을 저지른 것이 후회된다”면서도 “보호처분 이후에도 관계를 끊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소년에게 친구란 부모 이상의 친밀감과 안정감을 주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부모를 비롯한 사회 속 어른들이 소년들이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다. “어려울 때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민혁이는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저 이미 나쁜 애로 찍힌 거 아닌가요? 사회 나가면 나쁜 짓 하는 애들한테 ‘내 꼴 안 나려면 정신 차리라’고 꼭 얘기할래요.”※ 본 기획기사와 인터랙티브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함께한 남친, 남편 됐지만 그날 돌아가도 같은 선택

    함께한 남친, 남편 됐지만 그날 돌아가도 같은 선택

    결혼 생각 없어 남자친구와 낙태 결정요양 없이 레지던스서 몸 겨우 추슬러“낙태, 여성 생애 전체 영향 주는 경험 처벌로 통제하려는 제도 재고했으면 ”민서영(40·가명)씨는 14년 전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미역국을 끓여 줬던 남자친구는 지금의 남편이 됐다. 민씨 부부 사이에 아이는 없다. 그날의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도 민씨는 “다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씨는 26살 때 6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중 피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3주가 지나자 몸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테스트기로 확인해 보니 두 줄(임신 양성 반응)이 떴다. 임신과 결혼 생각이 없던 민씨는 남자친구와 상의 후 아이를 지우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수술 비용은 남자친구가 마련하고, 병원은 민씨가 알아봤다. 여의사가 있는 병원을 찾아 낯선 지역을 헤맸던 기억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처다. 수술 후 몸조리는 사치였다. 민씨는 “낙태도 출산과 마찬가지로 요양이 필요한데 그런 서비스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돈이 없던 민씨 커플은 적당한 레지던스를 빌려 몸을 추슬러야 했다. 민씨가 낙태를 고민했을 무렵 미혼인 직장 동료의 임신 소식을 들었다. 남자친구와 결혼 계획이 있던 동료는 임신 사실을 공개하고 직장 사람들의 축복을 받았다. 얼마 후 그 동료가 자연유산으로 태아를 잃자 따뜻한 위로가 쏟아졌다. 임신도 낙태도 숨겨야 했던 민씨의 사정과 너무 달랐다. 떠나보낸 아이를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던 민씨는 4년 전 절을 찾아가 아기를 위한 제사를 지냈다. 임신과 낙태를 겪으면서 민씨는 임신 자체가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임신 초기부터 호르몬 변화 등 많은 증상이 나타났다. 민씨는 “밤에 잠을 자는데도 온몸에 피가 도는 느낌이 생생하게 들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임신과 출산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는 점이 큰 무게로 느껴져 낙태를 더욱 신중하게 결정했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14년이 지난 지금도 민씨의 낙태 사실을 모른다. 동성 친구들의 위로와 공감이 큰 힘이 됐다. 민씨는 “임신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기에 낙태를 해본 여성도, 하지 않은 여성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다”고 전했다. 그는 “낙태는 여성의 몸을 넘어 생애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경험”이라면서 “처벌로써 낙태를 통제하려는 제도를 다시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