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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동석 평론가의 뉴스 품은 책] ‘프라하의 도살자’ 궤적으로 읽는 2차세계대전

    [장동석 평론가의 뉴스 품은 책] ‘프라하의 도살자’ 궤적으로 읽는 2차세계대전

    독일 베를린 무연고 묘지에 묻힌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묘가 파헤쳐졌다고 한다. 하이드리히는 나치 비밀경찰 게슈타포를 창설하고, 유대인 학살 최종 시나리오인 ‘최종 해결 방안’을 입안한 인물이다. ‘프라하의 도살자’, ‘피에 젖은 사형집행인’으로 불린 잔혹한 인물이었다. 그는 1942년 체코 레지스탕스에 의해 암살됐다. 나치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암살단원 고향 마을 리디체를 완전히 파괴했다. 프랑스 작가 로랑 비네의 ‘HHhH’는 하이드리히 암살 작전을 소재로 한 역사소설이다. 제목 ‘HHhH’는 ‘Himmlers Hirn heißt Heydrich’의 약자로, ‘힘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라는 뜻이다. 작가는 역사 기록을 꼼꼼히 찾아내 인물들을 재구성하면서 자신의 취재와 집필 과정을 작품에 녹여 내는 등 역사소설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 줬다. 나치 치하 체코의 암울한 현실과 이해득실을 따져 움직이는 사람들의 음침한 내면을 보여 주며 적나라한 인간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1942년 5월 27일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 총독인 하이드리히가 테러를 당한다. 어렵사리 의식은 회복했지만 감염 때문에 일주일 만에 숨을 거둔다. 나치는 즉각 계엄령을 선포하고 암살범 색출에 나선다. 이내 체코 레지스탕스를 대부분 진압한다. ‘유인원 작전’으로 명명된 이 작전은 체코 망명정부가 잠입시킨 공수부대원 요제프 가브치크와 얀 쿠비시가 단행했다. 그들 역시 한 교회 지하실에서 격렬하게 저항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체코 레지스탕스 대원들의 행적과 내면을 따라가던 작가는 한편으로 하이드리히의 생애와 주변 인물, 즉 히틀러와 힘러, 괴링, 아이히만 등과의 접점을 자연스럽게 들춰낸다. 암살의 진상과 하이드리히 주변 이야기가 중구난방 교차하는 게 다소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집요하게 찾아낸 기록에 따른 내용으로 당대의 역사적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발로 뛰며 찾아낸 기록을 있는 그대로 기술해 당시 유럽 정세는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의 막전막후 이야기를 제법 큰 흐름 속에서 읽어 낼 수도 있다. ‘HHhH’를 그저 흔한 팩션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하이드리히의 묘가 헤집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HHhH’를 다시 꺼내 읽으며 연합군이 극우집단 나치 숭배를 막기 위해 묘지 표식을 지우도록 한 조치를 생각한다. 생각은 이어진다. 친일부역자들은 왜 여전히 그리고 버젓이 국립묘지 혹은 노른자 땅에 묻혀 있는가.
  • 반성하는 학살자 반성없는 범죄자, 용서는 가능한가

    반성하는 학살자 반성없는 범죄자, 용서는 가능한가

    모텔에서 투숙객을 살해한 ‘한강 시신 훼손’ 사건의 피고인, 장대호에게 엊그제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용서를 구하고 싶지 않다’던 장대호는 손톱만큼의 반성도 없었다. 유족에 대한 사죄와 뉘우침은커녕 취재진에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용서받지 못할 자’를 떠올렸을 것이다. 만약 장대호가 사과나 반성을 했다면 용서받을 수 있었을까. 사건을 나치와 홀로코스트 피해자 유대인의 관계로 옮겨 보자.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장교가 임종 직전 한 유대인 앞에서 사죄하고 용서받았다면 진정 용서받은 것이라 할 수 있을까.‘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는 제2차 세계대전기 한 나치 장교와 유대인 사이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모티프로 엮은 책이다. 저자는 ‘유대인 말살정책’의 총책인 아돌프 아이히만을 비롯해 무려 110명의 나치 전범을 색출해 심판대에 세운 ‘나치 헌터’ 시몬 비젠탈(1908~2005)이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유대인인 비젠탈은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의해 일가친척 89명을 잃고 아내와 단 둘만 살아남았던 인물. 그는 강제수용소에서 수용돼 있던 중 죽음에 임박한 한 나치 장교의 병실에 불려가 놀라운 말을 듣게 된다. “수백명의 유대인을 좁은 집에 몰아넣은 뒤 불을 질렀고, 온몸에 불이 붙은 채 탈출하려는 사람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범죄사실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는 나치 장교 앞에서 침묵한 채 병실을 나섰던 비젠탈은 이후 번뇌에 빠졌다. ‘용서했어야 할까’, ‘나의 용서가 모든 유대인들을 대신할 수 있을까.’비젠탈은 그 체험을 자전적 소설로 담은 ‘해바라기’를 1969년 발표하면서 이런 화두를 던졌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그 물음에 전 세계 지식인, 종교인, 예술가 53명이 답변을 전해 왔고 소설 ‘해바라기’에 그 답변들을 묶어 1976년 출간한 게 ‘모든 용서는…’이다. 이번 한국어판은 1997년 개정판을 옮긴 것으로 2006년 ‘해바라기’라는 이름의 한국어판에 빠진 부분을 모두 수록한 완결·완역판인 셈이다. 53인의 글은 가치관과 입장에 따라 다양하다. ‘섣부른 용서는 희생자에 대한 배신’,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라면 하느님조차 피고인일 뿐’, ‘그의 인간성에 경의를 표한다’…. 이탈리아 화학자 프리모 레비는 ‘만약 그를 용서했다면 더 큰 고통에 직면했을 것’이라 단언하고 미국 철학자 허버트 마르쿠제는 ‘섣부른 용서는 악을 희석시킬 뿐’이라고 거든다. 미국의 유대교 신학자 앨런 버거는 ‘값싼 은혜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런가 하면 달라이 라마는 ‘기억하되 용서하라’고 일갈하며 데스몬 투투 주교는 ‘용서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독자들은 이 화두를 놓고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를 놓고 많은 상념에 빠져들 듯하다. 특히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일본군 위안부처럼, 엄연하지만 여전히 가해자의 사죄 없는 역사의 아픔에 포개져 더 혼란스럽다. 그럼에도 용서와 화해의 방향은 또렷하게 다가온다. ‘용서는 상대방에 대한 진실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유대역사기록센터’를 설립해 나치 전범을 추적했던 비젠탈은 1996년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 옛 유고슬라비아의 테러 주동자들을 단죄하도록 촉구했다. “보스니아 사태는 그야말로 반인류적인 범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종 청소며 남녀노소를 불문한 민간인 학살이며 무슬림 여성에 대한 강간 등 비록 홀로코스트라는 이름을 붙이진 않았지만 그들은 이미 그 당시의 공포를 상당 부분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강제수용소에서 나치 장교를 용서하지 못한 일을 두고 번뇌에 빠진 비젠탈에게 유대인 친구가 던졌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그렇게 끙끙 앓는 소리를 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일단 우리가 이 수용소에서 살아남고 이 세상이 모두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사람들이 서로를 동등한 인간으로 보게 된 다음이라면 그 용서니 뭐니 하는 문제를 놓고 토론할 시간은 충분히 있을 거야.”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문화마당] 추천도서는 왜 문학이 중심이어야 하나/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문화마당] 추천도서는 왜 문학이 중심이어야 하나/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얼마 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21세기 가장 뛰어난 책’ 100권의 목록을 발표했다. 2009년 맨부커상 수상작인 힐러리 맨틀의 ‘울프 홀’이 1위에 올랐다. 올리버 크롬웰의 일생을 다룬 이 소설은 늑대가 되는 권력의 무자비한 속성에 대한 뛰어난 탐구이자,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인간성의 심연을 해부한 언어의 혁신이며, 현대 영국(인)의 뿌리를 파고들어 영국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좋은 작품이다. 뒤를 이은 것은 마릴린 로빈슨의 ‘길리어드’, 스베틀라나 알렉세이비치의 ‘세컨드핸드 타임’,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 W G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 필립 풀먼의 ‘황금 나침반’, 타네하시 코츠의 ‘세상과 나 사이’, 앨리 스미스의 ‘가을’, 데이비드 미첼의 ‘클라우드 아틀라스’,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의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등이다. 10위까지가 모두 문학이다. 논픽션으로는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이 13위,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여섯 번째 대멸종’이 15위,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이 18위,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21위, 앤드루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이 23위에 올랐다. 21세기가 스무 해밖에 지나지 않은 만큼, 때 이른 목록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목록의 책들 중 서가에 있는 책들을 훑어 뽑아서 살펴보았다. 하나하나 너무나 훌륭한 책이기에 독서를 권장할까 싶어 길게 옮겨 적고, 떠오르는 생각을 몇 마디 덧붙여 둔다. 먼저, 대답부터. 사서 한 분이 페이스북에 이 목록을 공유하면서 몇 권이나 번역됐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확인해 보니 한국에서 출판되지 않은 책을 세는 게 훨씬 빨랐다. 1990년대 말 편집자 문화가 안정적으로 정착된 이래, 우리 독자들이 읽을 만한 최상급 해외 교양서적이 수년 안에 국내에서 출판되지 않은 경우는 드문 듯하다. 사명감 넘치는 분야별 전문편집자들이 해외 출판 현황을 수시로 조사하고 주요 서적의 출판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을 고려하면 당연하다. 물론 번역에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학술출판의 경우에는 번역을 천시하는 정부와 대학의 형편없는 정책으로 인해 일부 지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 분야에서 주요 서적이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 이번 목록만 해도 이름 낯선 작품들 역시 검색하면 이미 한국어판이 나와 있어 편집자로서 무심했다 싶어 부끄러울 정도였다. 다음, 이 목록에서 주목할 부분은 문학작품이 다수라는 점이다. 전체 100권 중 논픽션은 25권 내외에 불과하다. 경제경영·자기계발·실용서적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머지 책은 장편소설·시집·회고록·그래픽노블 등 모두 문학이다. 몽테뉴 스타일의 지적 에세이도 있다. 왜 문학이고, 또 문학이어야 할까. 비문학은 독자를 전문가로 만들지만, 문학은 독자를 시민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문학은 우리가 보고 말하고 듣고 느끼는 방식을 정련한다. 우리 시야를 확장하고, 우리 감각을 증강하며, 우리의 어휘를 풍요롭게 한다. 또 문학은 타자의 기쁨과 슬픔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우리 경험을 늘리고 감정을 풍부하게 만든다. 이러한 목록을 만든 것은 시민들 전체가 함께 읽어 공통의 시민성을 배양하자는 뜻이다. 문학은 무엇보다 감정교육이다. 나름의 직업적 전문성을 가져야 밥을 벌지만 타자와 감정을 제대로 공유할 수 없다면, 함께 살아갈 수 없다. 아우슈비츠의 아이히만처럼 ‘느낄 수 없는 괴물’, ‘멀쩡한 사이코패스’이니까 말이다. 문학은 우리가 아이히만이 되지 않도록 방부한다. 좋은 문학을 읽을수록 시민성에 대한 감각도 늘어난다. 따라서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이런 목록을 만들 때 문학을 중심에 놓는 것이 마땅하다. 게다가 문학 독자는 다른 책도 잘 읽지만, 다른 책 독자는 자기 분야 책만 주로 읽으니, 문학을 진흥하는 것이 곧 독서를 진흥하는 일이기도 하다.
  • [법인의 활발발] 인문적 공권력을 희망한다

    [법인의 활발발] 인문적 공권력을 희망한다

    내가 살고 있는 해남에 있는 공공도서관은 주민들과의 소통이 활발하다. 특히 ‘옴마, 도서관이 말을 해야’라는 팟캐스트는 도서관의 직원들이 창안했다. 책을 좋아하는 지역의 사람들이 출현하고 직원들은 그들을 돕는다. 직원들도 인문학 공부에 열심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아이디어를 얻고 필자와 강사를 발굴한다. 도서관 직원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로 홍보하는 글은 내용과 글맛이 참신하다. 일들이 재미있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들이 하는 일은 예산과 인력, 법과 제도와 조직이 있으니 효과가 배가된다. 인문적 상상력과 공권력이 어울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구태도 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몇몇 도서관은 그저 기계적이다. 인사권자가 관심을 가지면 열심히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형식적이다. 그런 공무원들의 특징은 규정에만 어긋나지 않으려 한다. 자리보전과 진급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최근 세월호 참사의 진상조사를 방해한 공무원들의 변명을 언론을 통해 들었다. ‘위법인지는 알았지만, 위에서 시키니까 했다’거나 ‘별다른 생각 없이 규정대로 했을 뿐이다’라고 자신들의 행위를 항변했다. 그들이 부당한 정책과 행위에 대해서는 거부할 수 있는 공무원 행동강령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자리에 대한 불안과 저항할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다른 요인을 생각해 본다. 결정적으로 인문적 사고가 결여돼 그런 것은 아닌지? 인문정신과 인문적 삶이 어찌 공무원에게만 해당하겠는가. 다만 법을 실행하는 힘, 즉 공권력을 가진 집단이기에 인문정신의 결여는 크고 작은 곳곳에서 21세기 아이히만을 출현시키고 있고, 그 폐해는 결코 작지 않다. 인문이란 무엇인가. 인간사회에 대한 통찰과 해석이고, 자유로이 상상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재구성하는 정신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살아가는 삶을 통찰하는 인문정신은 그저 주어진 대로, 예전부터 이어 온 대로, 별다른 생각 없이 사건과 사물을 보지 않는다. 전통과 편견과 연고의 틀을 벗어나 주체적으로 바라본다. 인문적 삶은 애민과 여민동락의 세상을 지향하기 때문에 사람과 생명을 새롭게 바라본다. 애민의 인문정신은 저항하고 소신을 지켜 내는 삶으로 이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목민심서’의 저자 다산 정약용의 사례를 보자. 다산 정약용은 황해도 곡산 부사로 1년 11개월 동안 재직했다. 그 시절 ‘이계심 사건’이 곡산에서 발생했다. ‘사암선생연보’와 ‘자찬묘비명’의 기록을 토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계심은 곡산 백성이다. 이전 원님 때 아전이 농간을 부려 포군에게 바치는 군포 40자의 대금으로 돈 900냥을 대신 거두었으므로(본래는 200냥을 거두어야 했음) 백성들의 원성이 시끄럽게 일어났다. 이계심이 백성 1000여명을 인솔하고 관청에 들어와 항의하니 부사가 벌을 주려 했다. 그러자 1000여명이 벌떼처럼 일어나 이계심을 둘러싸고 계단으로 올라가며 소리를 지르매 천지가 동요했다. 아전과 관노비들이 몽둥이를 들고 쫓아내자 이계심이 달아나 버려 오영에서 기찰해 붙잡으려 해도 붙잡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부임차 곡산 땅에 이르자 이계심이 백성이 괴로워하는 사항 10여 조목을 들어 기록해 올려바치고는 길가에 엎드려 자수했다. 옆 사람들이 체포하기를 청했으나 “내가 그러지 마라. 한번 자수한 사람은 스스로 도망가지 않는다”라고 했다. 나중에 석방하면서 말했다. “관장이 밝게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까닭은 백성들이 자기 몸을 위해서지만, 교활해져 다른 백성들이 당하는 폐막을 보고도 관장에게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 같은 사람은 관에서 마땅히 천 냥의 돈을 주고서라도 사야 할 사람이다”.다산은 이계심을 공권력에 도전하는 불순분자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정직하게 권력기구의 잘못을 인정했다. 저항하지 않는 민중의 비겁함도 지적했다. 자유로운 시선, 주체적 시선, 그러니까 인문적 시선으로 판결을 내린 것이다. ‘목민심서’의 방향은 애민이고 동락이다. 그 바탕은 정직하고 용기 있는 시선과 저항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조사를 방해한 공무원들을 보면서 인문적 공권력을 상상한다. 철학과 가슴이 있는 공권력을 희망한다.
  • ‘나치 전범’ 아이히만 체포 에이탄 별세

    ‘나치 전범’ 아이히만 체포 에이탄 별세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붙잡아 법정에 세운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전설적인 요원 라피 에이탄이 23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 92세. BBC 등에 따르면 에이탄은 1960년 5월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의 실무 책임자였으나 1950년 전범수용소를 탈출해 아르헨티나로 도피한 아이히만의 체포작전을 이끌었다. 아이히만은 이듬해 이스라엘 법정에서 반인도 범죄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고 처형됐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홀로코스트 기획자 아이히만 체포한 라피 에이탄 92세 일기로

    홀로코스트 기획자 아이히만 체포한 라피 에이탄 92세 일기로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의 요원으로 독일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체포에 공을 세운 라피 에이탄이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에이탄은 23일(현지시간) 텔아비브의 이칠로프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부인 미리암과 결혼해 세 자녀를 뒀다. 그는 1960년대 옛 서독 검찰로부터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숨어지내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여덟 명의 특공대를 이끌고 아르헨티나에 잠입해 아이히만을 체포, 이스라엘 법정에 세운 공로로 유명해졌다. 아이히만은 홀로코스트로 600만명 이상을 학살한 혐의가 인정돼 1962년 교수형이 집행됐다. 모사드를 만든 초기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국내와 해외 파트를 모두 경험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첩보 영웅 중 한 명”이라며 “내 친구”라고 표현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네타냐후와 사이가 좋지 않은 루이벤 리블린 대통령은 트위터에 글을 올려 “임무와 옳다고 믿는 바에 열심이었던 타고난 투사였다”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1926년 영국이 통치하던 팔레스타인의 한 키부츠에서 러시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에이탄은 텔아비브 북쪽 라맛 하샤론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48년 끝난 독립전쟁에서 부상했지만 국내 첩보를 담당했던 신베트에 들어가 능력을 발휘해 신베트와 해외 첩보를 담당하는 모사드의 중앙 국장을 모두 지냈다. 고인은 2011년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며 “제임스 본드의 절반도 안되는 완벽히 평균적인 인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1980년대 미국 애널리스트 조너선 폴라드를 포섭해 수천 건의 극비 문서를 빼돌리게 사주했던 인물로 밝혀졌다. 연방수사국(FBI)은 폴라드의 신원이 탄로난 뒤 에이탄에 대한 체포영장까지 발부했다. 폴라드는 1985년 체포된 뒤 30년 동안 복역했다. 고인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중도주의 정당 길(Gil) 당 의원을 지냈으며 한때 연금 담당 장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유대인 1000명 구한 신들러, 5000명 구한 스페인 외교관 산즈 브리즈

    유대인 1000명 구한 신들러, 5000명 구한 스페인 외교관 산즈 브리즈

    영화 ‘신들러 리스트’로 널리 알려진 독일 기업인 오스카 신들러가 홀로코스트에서 구한 유대인은 1000여명이다. 그런데 스페인의 외교관 앙헬 산즈 브리즈는 헝가리 유대인 5000명 이상을 아우슈비치 송환 위기에서 구해내 ‘부다페스트의 천사’로 불렸는데도 오늘날 스페인 사람들조차 그의 존재를 잘 모른다. 영국 BBC가 19일 나치의 헝가리 침공 75주년을 하루 앞두고 산즈 브리즈가 유대인들을 구한 과정을 자세히 소개해 눈길을 끈다. 1944년 3월 19일 홀로코스트 총책임자인 SS 친위대장 아돌프 아이히만이 부다페스트로 옮겨왔다. 대략 100만명으로 추산되던 헝가리 유대인을 뿌리부터 제거하기 위한 ‘마가레뜨 작전’이 실행됐다. 33세의 산즈 브리즈는 스페인 대사관의 상업 참사관으로 일하다가 침공한 지 몇주 되지 않았는데도 SS 친위대가 벌써 40만명 넘게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치로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스페인 외교관들은 보호 여권이란 것을 발급해 수많은 유대인을 구한 스웨덴 외교관 라울 왈렌베리를 따라 하기로 했다. 왈렌베리는 나중에 옛 소련군에 붙잡힌 뒤 사라졌는데 소비에트 감옥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나치 수용소들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보고가 계속 들어오자 산즈 브리즈는 파시스트 정권인 프랑코 정부에 편지를 보내 참상을 알리고 유대인들을 구할 방법을 찾아보자고 호소했다. 하지만 나치와 전쟁에 협력하던 본국 정부는 몇달 동안이나 머뭇거렸다. 답답해 하던 그는 직접 나서기로 했다. 영사관 기록을 위조하고, 헝가리 유대인은 아슈케나지가 대세를 이루는데도 세파르딕 유대인에게 난민들에게 국적을 부여하기 위해 1924년 제정됐다가 폐기된 스페인 법률을 적용해 국적을 부여했다. 유대인들을 부다에 있던 스페인 대사관에 숨겼고, 현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먹였다. 나치와 헝가리 파시스트 조직인 ‘애로 크로스’ 순찰대와 맞섰고, 연합군의 공습이 쏟아지는 가운데 유대인들에게 처마 밑을 내줬다. 산즈 브리즈가 1944년 12월 스페인 정부에 보낸 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난 겨우겨우 200명의 세파르딕 유대인을 스페인이 보호한다는 점을 헝가리 정부로부터 공인받았다. 이 200명의 군대로 200개의 가족을 만들어냈다. 이 200개의 가족은 다시 무한대로 증식됐다. 200보다 늘어나면 결코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 딱 200명씩 늘렸다.” 산즈 브리즈의 아들 후안 카를로스는 “아버지는 각자에게 편지를 써줬다”고 말했다. 그는 외교관이란 캐릭터와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현지 법률보다 인권을 앞에 뒀고, 난민을 보호하기 위해 외교 면책권을 이용한 첫 번째 사례 가운데 하나였다. 외교 목적이 아닌 건물에 국기를 꽂고 가짜 여권을 발급하는 등 외교관이 해서는 안될 행동을 앞장서 했다. 352명에게 임시 여권 232개를 발급해줬고, 1898통의 보호 편지들, 45명의 세파르딕 유대인들에게 15개의 진짜 여권을 발급했다. 11개의 아파트 건물을 임대해 대략 5000명의 유대인들을 스페인 보호 아래 머물게 했다. 최근 세상을 떠난 제이미 반도르는 2013년 스페인의 RNE 공영 라디오와의 인터뷰를 통해 전쟁 후 가족과 함께 바르셀로나로 이주한 사연, 스페인 난민으로 살았던 고단한 삶에 대해 털어놓았다. “방 둘에 조그만 거실 딸린 아파트에서 51명이 살았다. 비좁은 데다 배고프고 추웠고 벼룩이 들끓었다. 위생은 엉망이었다. 그 많은 인원이 화장실 하나로 버텼으니 당연했다. 그러나 최악은 공포, 아우슈비츠로 보내질지 모른다는 공포였다.”나치 점령 하의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지 몇주 안된 몸으로 어머니, 형제들과 함께 산즈 브리즈가 세운 안가 중 한 곳에 머물러 목숨을 구한 에바 베나타는 “신들러보다 더한 영웅”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스페인 대사관이 보낸 보호 편지를 갖고 있었다. 스페인 대사관은 나치 점령 전에 탈출한 할머니가 마드리드에서 써보낸 엽서의 우표를 근거로 보호 편지를 써준 것이었다. 베나타는 한 번도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이 없는데 아버지는 이른바 죽음의 행진이 벌어지던 1945년 초 세상을 떴다. 헝가리를 탈출한 이들은 탄지에르에 머무르다 나중에 결국 스페인에 정착했다. 산즈 브리즈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1944년 11월 부다페스트를 떠났다. 상관들은 소련 군에 보복을 당할까봐 우려했다. 외교관 커리어에 복귀했지만 반이스라엘 노선을 표방한 프랑코 정부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센터가 주는 공로훈장을 1966년에야 뒤늦게 받았다. 나치의 패망이 확실해지자 뒤늦게 유대인들을 구하라고 전통을 보냈던 프랑코 정부는 1970년대 중반 민주주의를 회복한 뒤 자신들이 유대인 구호에 앞장섰다는 식으로 증언해달라고 산즈 브리즈에게 강요했다. 그는 마지못해 동의했는데 아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1980년 세상을 떠났을 때 스페인 일간 ABC 지면에 실린 부고에는 부다페스트의 일이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 아들은 “아버지와 그 일로 대화를 하지도 않았다. 집에서 입에 올릴 얘기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고통스러워 한 것이 분명했고, 그래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황규관의 고동소리] 제주 제2공항의 상투성

    [황규관의 고동소리] 제주 제2공항의 상투성

    제주도와 국토부가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 건설하려는 제2공항 문제로 제주도는 최근 가장 핫(?)한 곳이 됐다. 사실 제주도와 국토부의 논리는 그 세세함을 따지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냥 상투적인 개발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이 막무가내로 4대강 사업을 밀어붙였듯이 말이다. 제주도는 최근 제2공항 문제뿐만 아니라 비자림로 확장 공사 문제, 영리병원 개원 문제로 조용할 날이 없는데, 여기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듯 보인다.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줄곧 지켜보고 나서 발견한 개념으로 알려진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에서 ‘평범성’을 뜻하는 ‘banality’는 진부함, 상투성의 뜻에 더 가깝다고 한다. 풀어 말하면 악은 기왕의 습관, 옳음, 상식에 대한 물음이나 회의를 배제한 상투적인 사고의 결과라는 것이다. 제주도는 이미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그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서귀포 시내에서 한라산 쪽으로 가는 중산간 지역에 ‘헬스케어타운’ 개발을 중국 자본에 허가해 주었다. 이게 오늘날 국내 제1호 영리병원이 되려 하고 있는 애벌레였다. 박근혜 정권 때 일이나 정확히 말하면 어느 정권이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강정 해군기지는 노무현 정권 때 시작돼 이명박 정권 때 일단락됐고, 영리병원 문제와 제2공항 문제는 박근혜 정권 때 시작돼 현 문재인 정권에 들어서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4·3 70주년 추념식 때 국가폭력을 사과하고, 4·3은 대한민국 역사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을 위해 제주 섬사람들을 학살한 가해의 역사이며, 제주 섬사람 입장에서는 그것에 대한 저항의 역사다. 역사를 말할 때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국가 입장에 서곤 하지만, 국가 바깥에서 보면 국가의 역사란 결국 전쟁과 폭력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국가가 우리의 실존을 강제하고 있는 현실을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의 역사를 그냥 내면화하고 마는데, 그것이 아무래도 번민을 덜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근대 국가는 누구의 국가인가? 거칠게 표현하자면 자본을 위한 국가이며 완곡하게 말해도 국가는 경제성장을 위한 추동 장치의 성격을 아주 많이 갖는다. 제주도를 찾는 방문객이 많아져서 현재 제주공항의 수용 능력으로 실제 감당이 되는지 어쩌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에 대한 세밀한 데이터는 나 같은 사람의 뇌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주도 자체가 그 방문객들을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항 문제를 떠나 제주도 사람들의 삶이 수많은 ‘손님’들의 방문에 힘들어한다는데 그보다 합리적인 제2공항 건설 여부의 척도가 있을 수 있는가? 무언가를 속이려고 하거나 또 다른 노림수가 있는 측의 말은 대부분 번다하고 논리가 복잡하다. 진실을 가급적 은폐해야 그 위에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짓고, 짓기 위해 다른 존재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그것을 건설이라고 말한다. 훼손을 보호라고 속이며, 비참을 풍요라고 부른다. 백번 양보해서 그 사업이 타당성을 갖는지 묻지도 따지도 않는다. 2019년에 혜성처럼 등장한 사자성어(?)인 ‘예타면제’만큼 그것을 상징하는 언어를 나는 알지 못한다. 국가의 개발 사업은 언제나 돈의 문제다. 당장의 지원금이든 개발 이후의 경제 효과든 어쨌든 돈으로 주민들을 나누고 공동체를 교란한다. 그리고 공동체의 혼란을 언론은 ‘찬반으로 갈리다’라고 부르며, 전문가들은 원인과 맥락이 삭제된 저울을 제시한다. 언제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경제성장’이라는 지독한 망상장애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만한 ‘절대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경제성장’이라는 괴물을 괴물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뿐이 아니라 학문도, 문학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 즉 아무 물음 없는 상투적인 사고(다른 말로 하면 사고하지 않는 사고)라면 어쩔 것인가? 이미 그 결과는 차고 넘치다 못해 우리를 지치게 하지 않는가?
  • 희생자가 된 가해자 ‘기억’들로 고발하다

    희생자가 된 가해자 ‘기억’들로 고발하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철학사상가 한나 아렌트(1906~1975). 그는 단지 독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이른바 ‘집합적 유죄’에 단호히 반대했다. 대신 개개인의 죄의 유무는 속한 집단이 아니라 인간 개인이 저지른 일의 내용과 결과에 따라 판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식민주의 집단학살, 홀로코스트, 인종청소, 조직적 성폭력 같은 반인륜적 범죄의 단죄와 처벌은 가해자들에게만 해당될까. 그 후손인 전후 세대는 책임에서 자유로울까. 반인륜적 범죄와 관련해 가장 큰 모순은 가해자와 희생자의 뒤바뀜, 혹은 뒤섞임이다. 특히 가해자와 공범자가 피해자로 둔갑하기 일쑤다. 역사의 영역에서 그런 모순은 문서 기록을 근거로 산 자가 죽은 자를 심문하고 재단하는 실증주의 탓에 발생한다. 그 방법론에 대한 회의와 개선의 목소리가 부쩍 높아지고 있다. 이른바 ‘기억 연구’다. 과거에 벌어진 복잡한 양상을 추적하려면 기억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대안이다.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도 ‘기억 연구’ 쪽을 택하고 있다. 그 지론은 이렇다. ‘전후 세대들은 과거사에 대한 직접적 책임은 없다. 하지만 과거사를 끄집어내 성찰하고 또 그 성찰의 기억을 지키고 끊임없이 재고해야 할 책임은 전후 세대에게 있다.’과거사 단죄 차원에서 가장 두드러진 가해자, 희생자의 전복 사례는 오스트리아에서 찾을 수 있다. 오스트리아인들은 스스로를 히틀러의 첫 번째 희생자로 여긴다. 그러면서도 히틀러 군대에 복무한 자국 병사들은 의무를 다했다거나 심지어 영웅적이었다고 말한다. 반면 히틀러 군대에서 탈영한 병사들은 전우를 버린 배반자로 몰아 댄다. 하지만 각종 통계는 인구 비율상 오스트리아인들이 독일인들보다 더 적극적인 히틀러 협력자였음을 증거한다. 폴란드도 마찬가지다. 나치 점령기 폴란드에선 숨어 있는 유대인을 밀고하거나 사냥하듯 잡으러 다니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폴란드인이 홀로코스트 공범자였다는 사실은 ‘희생자 민족’이라는 역사적 이미지에 철저히 가려진다. 저자가 특히 강조하는 점은 민족, 국가에 한정된 ‘민족주의 기억’을 탈영토화하고 유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개별적인 과거사 반성은 이제 기억의 공유와 연대 쪽으로 번지고 있다. 과거사의 단죄와 해결에서 실증적 사실보다 기억과 증언을 중시하게 된 첫 사례는 1961년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 재판이다.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아이히만 재판을 지켜본 연구자들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증언에 주목했고, 이를 계기로 홀로코스트 연구는 문서 자료에서 생존자 증언으로 중심이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기억 공유와 연대의 대표적 사례는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북쪽 작은 도시 글렌데일의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다. 가주한미포럼은 그해 7월 글렌데일 중앙도서관 앞에 동상을 세우고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촉구했다. 한국과는 전혀 상관없는 소도시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들어선 까닭은 무엇일까. 사정은 이렇다. 주민의 40%가 아르메니아계로 알려진 글렌데일에는 해외에서 가장 큰 아르메니아인 공동체가 있다. 그 아르메니아인은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 오스만제국으로부터 집단학살을 당한 ‘기억’이 있다. 저자는 이를 놓고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의 기억이 글렌데일 아르메니아인들로 하여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사례에 얹은 저자의 질문이 의미심장하다. ‘베트남 전쟁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잔학 행위엔 책임이 없다면서 왜 1945년 이후 태어난 일본의 전후 세대에게는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 끝난 일본 제국주의의 잔학한 통치에 대한 책임을 묻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까. 저자 자신도 밝혔듯이 딱부러진 건 없다. 하지만 ‘곤혹스러운 과거 앞에 당당한 사람보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더 건강한게 아닌가’라는 답을 던진다. “기억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 임정 수립 100주년 역사서 옥석 가리기

    올해는 3·1 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정부에서 지난해부터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분위기를 띄우고 있습니다. 출판계도 최근 여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관련 서적이 간간이 보이더니, 최근에는 인문·사회 분야뿐 아니라 어린이 책과 소설 분야에서 활발히 책이 나옵니다. 관련 정보는 물론 일제강점기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직접 좇은 책, 독립운동가를 소재로 한 소설 등이 눈에 띕니다. 책을 접하면 우선 반갑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솔직히 지난해까지만 해도 다들 별 관심 없었으니까요. 다양성 측면에서 이런 책은 많이 나와야 합니다. 다만, 최근 경향에 맞춰 이벤트성으로 낸 책들도 눈에 보입니다. 역사는 역사가만 다루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불분명한 사실을 마치 사실인 양 기술하거나 왜곡하는 일, 제대로 된 조사 없이 자료를 마구 짜깁기해 책으로 내놓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게다가 이런 책일수록 재미가 없고 구성도 투박합니다. 이벤트에 맞춰 급하게 내놓으려면 자료 조사도 미흡했을 것이고, 당연히 재미가 떨어질 겁니다. 기본적인 사실이 어긋나고 주장을 내세우면서 결국 엄숙하고 비장하라고 강요합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독자들은 이런 분야 자체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주 읽었던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반비)은 역사를 어떻게 다루느냐를 보여 준 책이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예술관이라 불리는 독일 베를린시의 역사 기억 방식을 보여 주는 조형물들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조형물, 광고물 하나에도 오랜 기간을 들인 까닭에 굉장히 세련된 느낌을 줍니다. 버스 광고 형식으로 소개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에 관한 정보라든가, 2700여개가 넘는 유대인 추모비 등은 직접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100주년이어서, 그저 광풍처럼 한 번 쓸고 가는 게 아니라 오래 노력하고 공들인 책을 만나고 싶습니다. 다행히 출판사 몇 곳이 이런 책을 준비 중이라 하니, 책골남이 옥석을 골라 다음 기회에 소개하겠습니다. gjkim@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광기의 시대 되새기는 하얀 책장

    [그 책속 이미지] 광기의 시대 되새기는 하얀 책장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백종옥 지음/반비/240쪽/1만 8000원독일 베를린시 훔볼트대 건너편 베벨 광장에는 한 변의 길이가 1m 20㎝인 정사각형의 투명 유리창이 있다. 이스라엘 예술가 미하 울만이 만든 ‘도서관’이란 작품이다. 가까이서 보면 지하로 하얀 책장이 언뜻 비친다. 책장 크기는 가로, 세로가 각각 7m 6㎝, 높이가 5m 29㎝로, 14칸짜리 책장은 텅 비었다. 1933년 5월 10일 광기에 사로잡힌 나치 선전관 괴벨스가 이 광장에서 2만권의 책을 불태웠던 일을 상기하고자 1993년 만들었다. 신간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은 베벨 광장 도서관을 비롯해 노이헤바헤의 추모소, 코라베를리너 거리의 2711개 유대인 추모석, 실슈트라세 버스 정류장의 아돌프 아이히만에 관한 광고판 등 베를린 곳곳에 스며든 10가지 기념조형물을 살핀다. 예술적 완성도가 뛰어난 데다 시민들과 호흡하도록 설계한 기념조형물은 ‘도시 전체가 기념 공간’이라 불리는 베를린의 세련된 역사 기억 방식을 보여 준다. 동시에 공공장소에 세운 위인들의 동상이나 대형조형물을 비롯해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은 채 세운 조형물로 역사를 기억하라고 강요하는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뒤집어 생각해 보면 필연인 역사는 없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필연인 역사는 없다

    현대사 몽타주/이동기 지음/돌베개/422쪽/2만원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 수용소로 보낸 나치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1961년 재판을 취재한다. 재판장에 선 아이히만은 어수룩하기 그지없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상부에서 지시한 사항을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고 이름 붙였다.●“악의 평범성보다 능동적 폭력 주목해야 아렌트의 생각은 옳았을까.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각종 사료와 자료, 증언에 기초하면 아이히만은 유대인 절멸을 지지했던 신념에 찬 나치였다. 그는 1941년 나치 지도부가 유대인 절멸을 결정했을 때 학살 현장을 수차례 답사하고, 더 효율적으로 학살할 수 있도록 아랫사람들을 지도했다. 나치가 패망한 뒤 신분을 숨긴 채 살며 옛 친위대 동료에게 “1000만명의 유대인을 죽였으면 만족했을 것이다. 난 일반적인 명령 수행자가 아니었다”고도 말했다.이동기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의 신간 ‘현대사 몽타주’는 다소 도발적인 책이다. 책의 부제로 붙인 ‘발견과 전복의 역사’라는 말이 심상찮다. 현대사 사건에서 새로이 사실을 ‘발견’하고, 인습적인 역사 해석을 ‘전복’한다는 뜻에서 붙였다. 쉽게 말해 우리가 아는 현대사 사건들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고 권유하는 책이다. 예컨대 저자는 그동안 세상의 한켠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겨졌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관해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법정 연극에 속았다고 해서 악의 평범성 자체가 무의미하지는 않다. 아렌트의 주장대로 전체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압도하고 보편적 판단 능력을 앗아간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근대 관료제나 악의 평범성 문제보다 지배 체제와 다양한 폭력 행위자들이 능동적으로 펼치는 상호작용을 통한 과격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유대인 구한 나치 대위 ‘선의 평범성’ 사례로 저자는 악의 평범성을 뒤집는 다른 사례로 ‘선의 평범성’을 제시한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는 저서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나치 수용소에서 살 수 있었던 이유를 이탈리아인 로렌초에게서 봤다. 로렌초는 여섯 달 동안 그에게 매일 빵 한 조각을 가져다주었고, 옷과 엽서를 건네주기도 했다. 레비는 “선행을 행하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범한 그의 태도를 보면서 수용소 밖에는 아직도 올바른 세상이 존재할지 모른다고 믿었다”고 서술한다. 카를 플라게 나치 대위는 나치의 학살에 충격받고 독일 점령지 리투아니아에서 약 1000명 이상의 유대인을 구했다. 플라게는 나치 패망 이후 자신을 의인으로 내세우기는커녕 “나는 나치 동조자”라며 부끄러워하며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책에서는 제1·2차 세계대전, 1945년 종전, 1955년 반둥회의, 1968년 청년봉기, 1989년 독일 통일을 비롯해 주로 전쟁과 냉전 시대의 현대사 여러 사건을 제시하고, 기존 역사와 다른 시각에서 해석한다. 이를 몽타주(조합)하면서 저자는 “역사에서 구조와 필연이 아닌, 인간의 의지와 선택을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역사는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필연적 결과’임을 강조하는 E.H 카의 역사 인식론에 관한 반박이기도 하다. 예컨대 1차 세계대전은 유럽 열강의 구조적 대립과 갈등의 산물이었다는 게 기존의 평가다. 저자는 “유럽 열강의 안보동맹이 약했기 때문에 동맹끼리 신뢰하지 못했고, 정치 지도자들의 오판으로 전쟁의 방아쇠가 당겨졌다”고 주장한다.●저자의 물음… “당신이 생각하는 역사란” 우리의 역사 인식에 관해 던지는 냉혹한 질문도 다시 생각해볼 만하다. 저자는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국정 한국사 교과서에 관해 “1920년대 이탈리아 파시즘이 권력을 장악한 뒤 역사 교육을 통제하고, 1933년 독일의 나치가 권력을 잡고 나서 시도했던 행위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건국을 둘러싼 좌우 진영의 대립에도 날 선 비판을 날린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하자는 뉴라이트 진영 주장을 놓고는 “친일 부역 세력에게 건국공로자의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서”라고 꼬집는다. 1919년 상하이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보자는 반대 의견에 관해서도 “국민 주권의 기본적 조건과 실천 없이 국가 건설이라 부를 수 없으며, 독립운동단체나 망명정부 탄생을 건국이라 하는 사례도 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1919년 건국론, 1948년 건국론, 그리고 건국론 무용론을 교과서에 그대로 싣고 학생들이 토론해 스스로 견해를 세우도록 보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국에 의미 없이 세워지는 위안부 소녀상과 우후죽순 난립하는 역사박물관에 관해서도 좀더 면밀하게 따져볼 것을 제안한다. 400여쪽이 넘는 책에서 결국 저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역사란 무엇인가?’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유럽 상영 영화광고에 ‘나치 휘장’이 지워진 까닭은?

    유럽 상영 영화광고에 ‘나치 휘장’이 지워진 까닭은?

    독일과 유럽 여러 국가들의 나치와 관련된 과거청산이 얼마나 엄격하고 철저한 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언론에 소개됐다. 지난 6일(현지시간) 영국 유력언론 더타임스는 영화 ‘오퍼레이션 피날레’(Operation Finale)의 유럽판 광고에서 나치 모자에 있는 휘장이 지워진 채 홍보됐다고 보도했다. 넷플릭스가 배급을 맡은 오퍼레이션 피날레(감독 크리스 와이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나치 친위대(SS) 장교이자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잡기 위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요원들의 활약을 담고있다. 악명높은 전범인 아이히만은 유대인들을 체포해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죽음의 수용소로 강제 이주시키는 계획을 설계한 인물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8월 말 개봉했으며 영국의 유명배우인 벤 킹슬리가 아이히만 역을 맡았다.    문제가 된 것은 바로 광고였다. 아이히만이 쓴 나치군 모자에 특유의 휘장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광고에는 감쪽같이 지워져있다. 이는 독일과 유럽의 많은 국가에 적용되는 강력한 법 때문이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독일은 십자가 모양의 하켄크로이츠 문양을 비롯한 나치 상징물 사용을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했다. 또한 나치식 경례, 휘장, 배지 등을 공공장소에 전시할 경우에도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이 때문에 공공장소에 부착될 수 있는 영화포스터에 나치 휘장이 못들어 간 것으로 다만 영화 속에서는 이를 허용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뜨거운 논란이 된 일본 해상자위대 욱일기 게양의 귀감이 된다. 욱일기는 하켄크로이츠와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침략을 상징하는 전범기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남들보다 잘살려 하고 최선 다한 것뿐” 자기 성공만 생각… 사회적 불의엔 둔감 현재 美우선주의·극단적 인종주의 득세 평범한 이들의 각성·용기 있는 행동 제안 어느 독일인의 삶/브룬힐데 폼젤 지음/토레 D 한젠 엮음/박종대 옮김/328쪽/1만 5000원흔히 평화로 가는 길의 가장 큰 적은 침묵이라 한다. 독일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는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담은 1963년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역사속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들이 아니라 상부의 명령에 순응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어느 독일인의 삶’은 그 ‘악의 평범성’을 파고든다. 나치 독일 수뇌부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브룬힐데 폼젤(1911~2017)의 생전 증언을 통해서다. 나치 국민계몽선전부를 이끈 요제프 괴벨스(1897~1945)의 최측근 비서이자 속기사로 살았던 삶을 분석한 전기적 비평서. 나치의 부상과 현 상황을 오가며 평범한 사람들의 각성과 용기 있는 처신을 심각하게 짚는다. ‘나치당의 뇌’로 회자되는 괴벨스는 나치 선전과 미화의 총책이었던 핵심 인물. 히틀러가 죽은 다음날 포위된 벙커에서 자살했다. 폼젤은 ‘나치 나팔수’ 괴벨스의 최측근 여인이다. 베를린의 부유한 집에서 자라나 나치당에 가입했고 방송국에서 일하다가 1942년부터 독일 항복 때까지 괴벨스의 비서이자 선전부의 속기사로 활동했다. 러시아군에 체포돼 5년간 특별수용소에 수감됐다가 풀려났고 지난해 1월 106세로 사망했다. “어떻게든 남들보다 잘살려고 하고, 맡은 일에서 최선을 다해 인정받으려 한 게 그렇게 잘못된 일일까요?” 폼젤의 증언은 일관된 맥락을 유지한다.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나치당에 가입한 뒤 방송국에 취직했고 선전부에 들어갔을 때도 선택받은 것 같아 기분 좋았을 뿐이라고 한다. “대수롭지 않은 일들을 다뤘고, 의무를 다한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졌었다”고 말한다. 그 일관된 항변은 나치의 지향과 만행의 심각성을 몰랐다는 쪽으로 모아진다. “난 그 시절 껍데기로만 살았어요 어리석게도”, “1933년 이전 유대인 문제를 생각한 이들은 소수였어요. 나중에 우리는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베르사유조약으로 사기당했다고 배웠어요. 우리는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무슨 일이 닥칠지 전혀 몰랐어요.”…. 폼젤은 소련군이 베를린에 진입해 시가전을 벌이던 전쟁 막바지에도 도주하지 않고 벙커에서 타자를 쳤다. 히틀러의 공식 항복을 알리는 깃발도 직접 만들었던 그가 히틀러와 나치의 위험성이며 만행을 정말 몰랐을까. 이 대목에서 토해 낸 증언이 도드라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러니 져야 할 책임도 없죠. 혹시 나치가 결국 정권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독일 민족 전체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만요. 그건 우리 모두가 그랬어요.” ‘개인주의와 사회공익이 충돌할 때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책은 바로 그 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당시 독일 국민은 ‘위대한 조국’과 ‘경제적 번영’이라는 구호에 압도당한 채 극우 포퓰리스트들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지금은 어떤가. 미국 우선주의와 극단적 인종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옮긴 이는 이렇게 비교한다. “우익 포퓰리스트들은 오래전 나치가 유대인에게 그랬듯 난민들을 사회적 혼란과 고통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개인적 이기주의와 민족적 우선주의를 부추긴다. 80여전 전 나치의 부상 과정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저자는 마지막까지 폼젤에 대한 평가를 유보한 채 독자들의 몫으로 남기고 있다. 그저 이렇게 묻고 있다. “자기 자신의 성공과 물질적 안정만 생각하고 사회적 불의와 타인에 대한 차별에는 둔감한 수백만 명의 폼젤은 여론을 조작하는 권위적인 시스템의 견고한 토대다. 우리는 이대로 비겁하게 숨을 것인가, 아니면 맞서 싸울 것인가.”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그 판결의 보폭만큼… 역사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 판결의 보폭만큼… 역사는 앞으로 나아갔다

    재판으로 본 세계사/박형남 지음/휴머니스트/408쪽/2만원1894년 프랑스 파리 주재 독일대사관 쓰레기통에서 군사 기밀이 담긴 명세서 한 장이 발견된다. 서명자로 ‘무뢰한 D’가 적혀 있어 포병 대위 드레퓌스가 스파이로 몰린다. 그의 필적과 명세서의 필적이 닮지 않았음에도 군부는 그를 범인으로 몰아간다. 그해 12월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한다. 그러나 이후 실제 범인이 보병대 소령 에스트라지라는 사실이 알려진다. 1898년 1월 소설가 에밀 졸라가 신문 ‘로로르’에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형식의 ‘나는 고발한다´를 내며 분위기가 급변한다. 유죄로 확정됐던 사건은 결국 1900년 11월 재심을 거쳐 1906년 무죄로 돌아선다. 드레퓌스가 스파이냐 아니냐를 두고 프랑스가 둘로 나뉜 채 12년 동안 대립한, 이른바 ‘드레퓌스 재판’이다. 이 재판은 프랑스가 봉건 잔재를 떨쳐버리고 20세기 초 공화주의적 민주 사회로 나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관용을 뜻하는 ‘톨레랑스’라든가 사회 참여에 나서는 학자를 뜻하는 ‘지식인’이란 개념도 이때 생겨났다.시대의 변곡점에는 언제나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옳고 그르냐를 따진 재판이 있었다. 신간 ‘재판으로 본 세계사´는 이런 재판들을 다룬다. 30년간 재판을 해 온 서울고등법원 박형남 부장판사가 고대 아테네부터 현대 미국까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15개 재판을 가려 뽑았다. 정치적(카틸리나 재판, 찰스 1세 재판, 마버리 재판), 경제적(로크너 재판), 사회적(소크라테스 재판, 드레퓌스 재판, 아이히만 재판, 미란다 재판), 문화적(드레드 스콧 재판, 브라운 재판), 종교적(토머스 모어 재판, 갈릴레오 갈릴레이 재판, 세일럼의 마녀재판), 젠더적(마르탱 게르 재판, 팽크허스트 재판) 갈등과 분쟁을 두루 다룬다. 재판의 시작, 당시 사회 상황, 이후의 결과 등이 어떠했는지를 쉽게 풀어 썼다. 재판에 얽힌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예컨대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드레퓌스 재판’과 많이 닮았다. 대학생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사망하자 격분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김기설씨의 분신자살이 이어졌는데,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는 유서 대필과 자살 방조 혐의로 김씨의 선배 강기훈씨를 기소한다.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필적 감정 결과를 근거로 1992년 강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다. 강씨는 2007년 재심을 청구했고, 2015년 무죄가 선고되면서 1심 선고 이후 23년 만에 진실이 바로 섰다.최고 권력자를 처단한 ‘찰스 1세 재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재판은 국가의 최고 권력이 왕에게 있는가, 국가와 인민에게 있는가를 묻는 주권의 문제를 다룬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다시금 확인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은 특히 최근 논란이 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의 계엄령 문건과 맞물려 사법부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 탄핵 선고를 기각했다면 어땠을까. 군대가 무력으로 반발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잠재우려 준비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섬뜩하다. 이 밖에 노동자의 최대 노동시간을 법으로 규제하는 법을 다룬 1905년 ‘로크너 재판’도 지금 상황에서 곱씹어볼 만하다. 이 재판은 뉴욕주 의회가 제과점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주당 60시간, 하루 10시간으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하면 업주를 형사처벌하는 ‘제과점법’을 미국 연방 대법원이 1905년 위헌 결정하면서 논란을 불렀다. 당시 대법원은 노동자보다 업주의 손을 들어줬지만, 판결이 내려지고 나서 40여년 후인 1938년 미국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제한했다. 재판 당시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눈감고 기업가의 이익을 옹호해선 안 된다”는 소수의견을 낸 홈스 대법관의 지적은 지금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돌이켜보면 역사는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집약될 때, 혹은 그런 갈등이 폭발한 이후 크게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사법부가 올바르지 못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지만, 역사라는 큰 흐름은 과거 잘못된 판단을 바꾸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역사는 꾸준히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중요 재판 사례로 다시금 깨닫는다. 앞선 대통령 시절, 이런 흐름을 거스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협잡과 공작을 일삼았던 법원행정처가 누구보다 이 책을 먼저 읽어야 할 것 같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씨줄날줄] 박근혜 선고 TV 중계/김균미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박근혜 선고 TV 중계/김균미 수석논설위원

    1961년 4월 11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600만명을 추방하고 학살한 전직 나치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세기의 재판’은 전 세계 37개국에 최초로 TV 생중계돼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제작진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아이히만 쇼’가 지난해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국내 개봉돼 화제가 됐었다.법원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을 TV로 생중계하기로 3일 결정했다. 1심 선고 재판이 생중계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오는 6일 오후 2시 10분에 열리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선고 재판을 법원 내 자체 카메라로 촬영해 외부에 송출하는 방식으로 생중계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7월 개정된 대법원 내부 규칙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이 생중계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구속 기간이 연장된 뒤 재판을 보이콧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은 선고 재판에도 출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순실씨에 대한 선고 공판은 공익 달성보다 피고인들이 입을 손해가 더 크다며 생중계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재판이 생중계된 첫 사례는 2013년 3월 21일 대법원 심리로 열린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이 남편 동의 없이 갓난아이를 데리고 돌아간 사건이다. 이후 통진당 이석기 재판, 세월호 승무원 재판,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생중계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73년 만들어진 ‘법원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에 따라 재판장이 허락할 경우 재판 개시 전 사진 촬영 등이 허용돼 왔다. 해외에서도 재판을 생중계하는 범위가 넓어지는 추세다. 미국은 1976년 앨라배마주와 워싱턴주가 TV 중계를 허용한 이후 현재 워싱턴DC를 제외한 50개 주가 원칙적으로 생중계를 하고 있다. 백인 전처와 애인을 살해한 미국프로축구(NFL) 최고 스타 O J 심슨에 대한 재판은 1994년 6월부터 1년 넘게 TV로 생중계돼 어지간한 프로그램보다 시청률이 높았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영국 대법원은 재판 전 과정 생중계를 허용하지만 1심 중계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일본은 생중계는 허용하지 않고 첫 재판 시작 전 법정 모습을 촬영하는 정도만 허용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1심 선고 TV 생중계는 다시는 대통령들이 법정에 서는 일이 없도록 그 엄중함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돼야 의미가 빛을 더할 것이다. kmkim@seoul.co.kr
  • 홍순명개인전 ‘장밋빛 인생’

    홍순명개인전 ‘장밋빛 인생’

    제 17회 이인성 미술상 수상자 홍순명의 개인전이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회화작업 외에도 설치, 판화, 입체, 미디어 아트, 조각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는 ‘장밋빛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정치·시회적쟁점을 머금고 있는 주변풍경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전시에서는 ‘사이드 스케이프’, ‘메모리 스케이프’, ‘사소한 기념비’, ‘장밋빛 인생’ 등 4가지 주제로 작업한 최근 10년간의 주요 연작 100점을 선보인다. 캔버스 총 3500점으로 이뤄진 방대한 작업이다.‘사이드 스케이프’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오랜 기간 동안 집중해 온 연작으로 온·오프라인에서 수집한 언론보도 사진을 재편집한 후 뉴스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배제한 주변풍경을 담아낸 것이다. 사건의 진실은 일반적으로 주목하는 대상이 아닌 다른 곳에 존재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메모리 스케이프’는 각종 사고현장에서 수집한 오브제에 보도 사진에서 추출한 이미지가 담긴 캔버스를 덧입혀 만든 조각과 회화가 결합한 작품이다. 사건 현장의 목격자이자 현장의 기억을 담은 기념물로 내부 오브제가 부식되어도 형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여러 겹 이상의 캔버스 천을 겹겹이 쌓아 붙여 만든다. ‘사소한 기념비’ 시리즈는 세월호 사건 현장인 팽목항에서 수집한 사물들을 투명 랩으로 감은 오브제로 공기방울로 올라오는 희생자들의 마지막 호흡과 투명하게 응집된 분노, 추모의 감정을 담아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캔버스 304점(35cmX40cm)이 모여 하나의 대형작품(280cmX1,520cm)을 이루는 ‘세월호 시리즈-건져진 세월호 외’를 처음 소개했다. ‘장밋빛 인생’ 시리즈는 사건 주변부뿐만 아니라 이면을 구성하는 광범위한 하위 구조를 탐구하는 작업이다. 유대인 수백만 명을 학살 수용소로 이송시킨 ‘아돌프 아이히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에 종사했던 영국의 대표적인 제국주의자 ‘세실 로즈’, ‘4대강’ 등 어두운 실상의 단편들을 장밋빛으로 슬프도록 화려하게 표현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김나현 큐레이터는 “동시대 사건들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홍순명작가의 작품을 통해 무심하게 지나쳐버린 우리의 주변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관심을 가져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홍순명작가는 부산대학교 미술교육학과와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하고 2016년 필리핀 마비니 갤러리, 2014년 미메시스 아트뮤지엄, 2012년 사비나미술관, 2009년 쌈지 스페이스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작가의 예술세계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아티스트 토크는 11월 4일 오후 3시 열린다. 전시는 내년 1월 7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퍼블릭뷰] 마음에 드는 예보와 정확한 예보… 어떤 공무원을 원하세요

    [퍼블릭뷰] 마음에 드는 예보와 정확한 예보… 어떤 공무원을 원하세요

    새 정부의 출범이 다가오는 가운데 현재의 과도정부가 많은 현안을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서 ‘공무원의 소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 하니까 소신을 갖고 일한다는 것은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고 국익에 충실하다는 뜻일 것이다.#여론도 소신 없는 공무원 키우는 데 ‘기여’ 정부가 탈정치화돼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역할이 특히 강조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무엇이 국익인지 정의하는 것 자체가 정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공무원이 자신이 정의한 국익에 따라서만 공무를 수행한다면 우선 민주주의의 기본 취지에도 맞지 않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느 나라의 최고소득세를 40%로 할지 또는 50%로 할지는 성장과 분배 중 어느 쪽에 우선순위를 둘 것이냐 등을 고려한 정치적 결정이 돼야 한다. 공무원 개개인의 선호에 따라 결정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소신은 어떤 때 필요할까. 미국의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세계 2차대전 후 아르헨티나로 도주했다가 1960년 이스라엘에 잡혀 간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한 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악의 평범함(banality of evil)에 관한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았다. 아이히만이 사악한 성격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은 별로 없이 무조건 상관의 명령만 충실히 이행한 어리석은 관료였을 뿐이라고 결론 내림으로써 논란의 대상이 됐다. 수백만명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결과를 가져온 명령을 별 소신 없이 그대로 이행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판단은 비교적 분명하다. 그러나 공직사회의 현실에서 실제로 다루는 많은 일들은 그렇게 분명한 판단을 적용하기가 어렵다. 규제를 강화해서라도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국익에 중요하다는 소신을 가진 공무원은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집권한 정치지도자의 명령에 어떻게 해야 ‘영혼이 없는 관료’가 되지 않을까? 어떤 때는 정치뿐 아니라 여론도 소신 없는 공무원을 키우는 데 기여한다. 민주사회에서 국민 여론이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공무원이 여론의 눈치만 보고 합리적인 정책 대안들을 제시하지 못하게 된다면 결국 국민이 손해를 보게 된다. 전기요금을 올려서 전기 사용량을 줄이는 대신에 석탄 발전소를 더 지어서 값싼 전기를 제공하려고 하면 미세먼지가 악화된다. 그러나 이처럼 어려운 선택을 국민들에게 제시해 칭찬을 받는 게 아니고 여론의 질타를 받는 분위기라면 공무원은 보신주의가 된다. 예를 들어 날씨가 좋다고 예보를 했다가 기상이 나쁘면 예보자에게는 비난이 쏟아지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예보자로서는 날씨가 나쁠 것이라고 예보하는 게 안전한 것과 같은 이치다. #소신 있는 공무 추진 평가해 주는 성숙함 필요 이제는 ‘마음에 드는’ 일기예보보다 ‘정확한’ 예보가 우리 모두의 공익에 부합함을 분명히 할 때가 됐다. 어렵지만 중요한 선택을 국민들에게 그대로 제시하는 소신 있는 공무원을 평가하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어떤 정치지도자를 선택하느냐 못지않게 우리의 앞날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관가 블로그] ‘공무원 영혼 이식법’ 통과될까

    [관가 블로그] ‘공무원 영혼 이식법’ 통과될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도 지시 무조건 이행서 비롯 “앞으로 회의 자료는 어떻게 메모해야 할지 고민이에요.”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공직사회에도 쓰나미와 같은 충격을 몰고왔다. 대통령의 지시를 열심히 수첩에 받아 적던 고위공무원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면서 공무원들 사이에 ‘수첩 금지령’까지 나돌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의원 시절부터 메모광으로 유명해 수첩에 꼼꼼하게 받아 적는 것을 강조했기에 100만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수첩에 기록하는 것이 미덕으로 통했다. 하지만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과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깨알같이 기록한 수첩은 박근혜 정부의 치명타로 돌아왔다. 비밀 유지가 필요한 회의는 녹취나 수첩 반입이 금지되고 달랑 포스트잇 몇 장에 간단히 메모하는 분위기였는데 이것도 최씨의 자필 포스트잇이 지난 24일 법원 증거물로 채택되면서 어려워질 전망이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스파이 영화 속 ‘007’처럼 5분 뒤에 폭발하는 문서로 지시사항을 전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할 정도”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수첩에 열심히 받아 적으면 오히려 눈총을 받는 상황에서 되려 “상사의 무리한 지시는 받아쓰기하듯 수첩에 남겨야겠다”고 말하는 공무원도 있다.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 등 국회의원 38명이 발의한 국가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공무원들 사이에서 ‘공무원 영혼이식법’으로 통한다. 최순실 사태가 상사의 지시에 ‘노’를 외치지 못하는 공무원들 때문에 커졌다는 인식 때문에 나온 법률안이다.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은 “현행법은 ‘복종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나 위법·부당한 명령에 대한 행동지침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며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말했듯 ‘나는 시키는 대로 실천한 하나의 관리였을 뿐입니다’란 공무원들의 자기 변명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법률 개정 이유를 밝혔다. 위에서 시키면 무조건 따르는 ‘영혼 없는 관료들의 무책임’이 국정농단 사태에 큰 역할을 했다며 국가공무원법 57조 복종의 의무에 ‘다만, 직무상 명령이 위법한 경우 복종을 거부하여야 하며 이로 인하여 어떠한 인사상 불이익 처분도 받지 아니한다’란 단서를 신설했다. 의원입법이 실제 법률로 통과되는 비율은 20% 정도지만, 정치적 사태로 발의된 입법안이라 원안대로 법이 개정될지는 미지수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표창원, 유진룡 언급하며 “공익제보자 보호제도 개선 절실”

    표창원, 유진룡 언급하며 “공익제보자 보호제도 개선 절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27일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직접 봤다고 폭로한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언급하면서 공익제보자 보호제도 개선이 절실함을 역설했다. 표창원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유진룡 “청문회 나갔으면 김기춘 따귀 때렸을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공익제보자 보호제도 개선 절실합니다. 입법추진하겠습니다.”라고 서두를 꺼냈다. 이어 “90% 공무원이 양심적이라는 말에 공감하지만 침묵하는 양심은 불의의 편”이라며 “2차대전 나치 부역자들과 일제 부역자들의 ‘나는 시키는 대로 충실히 지시에 따랐을 뿐(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변명은 전범재판을 통해 부정되었고,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 1960년대 예일대 심리학과 밀그램 박사 연구팀의 실험 결과에 따른 인류의 자각과 법제도 개선 및 교육 이후 유효성을 상실했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 공무원은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에 정한 바에 따라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충실히 직무에 임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을 시 단순 방관한다 하더라도 공직범죄의 공범과 부역자가 되어 역사와 국민 앞에 영원한 죄인이 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유진룡 전 장관은 지난 26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2014년 7월 퇴임 한 달 전쯤 블랙리스트를 직접 봤다”면서 “청와대에서 A4용지에 빼곡히 수백 명이 적힌 리스트를 조현재 당시 문체부 차관을 통해 자신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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