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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형, 아들 윤상훈과 ‘해피투게더’ 출연

    박근형, 아들 윤상훈과 ‘해피투게더’ 출연

    15일 밤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는 가족 특집으로 배우 박근형과 싱어송라이터 겸 배우 윤상훈, 야구선수 홍성흔과 아역배우 홍화리, 걸그룹 레인보우 재경과 그룹 엔플라잉 김재현이 출연했다. 이날 박근형은 아들 윤상훈에 대해 “음악을 직접 작사, 작곡하고 노래도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다. 연기를 권유해 연기 활동도 한다”며 “원래는 박상훈인데 무자비하게 성을 바꿔버렸다. 상당히 불쾌하다”고 소개했다. MC들이 성이 다른 이유를 궁금해하자 윤상훈은 “박상훈 보다 윤상훈이 더 부드러운 어감이어서 예명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홍화리 홍성흔 붕어빵 부녀, ‘해피투게더’ 동반 출연

    홍화리 홍성흔 붕어빵 부녀, ‘해피투게더’ 동반 출연

    15일 밤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는 가족 특집으로 배우 박근형과 싱어송라이터 겸 배우 윤상훈, 야구선수 홍성흔과 아역배우 홍화리, 걸그룹 레인보우 재경과 그룹 엔플라잉 김재현이 출연했다. 이날 홍화리는 아빠 홍성흔을 소개해 달라는 말에 “야구선수를 오랜 시간 하고 있다. 늙었는데도 야구 열심히 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는가 하면 홍성은의 토크를 가로채가는 등 야무진 입담을 과시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박근형, 아들 윤상훈과 ‘해피투게더’ 동반 출연 “싱어송라이터+배우”

    박근형, 아들 윤상훈과 ‘해피투게더’ 동반 출연 “싱어송라이터+배우”

    15일 밤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는 가족 특집으로 배우 박근형과 싱어송라이터 겸 배우 윤상훈, 야구선수 홍성흔과 아역배우 홍화리, 걸그룹 레인보우 재경과 그룹 엔플라잉 김재현이 출연했다. 이날 박근형은 아들 윤상훈에 대해 “음악을 직접 작사, 작곡하고 노래도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다. 연기를 권유해 연기 활동도 한다”며 “원래는 박상훈인데 무자비하게 성을 바꿔버렸다. 상당히 불쾌하다”고 소개했다. MC들이 성이 다른 이유를 궁금해하자 윤상훈은 “박상훈 보다 윤상훈이 더 부드러운 어감이어서 예명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해피투게더 홍화리, 홍성흔 붕어빵 ‘깜찍 미모+야무진 입담’ 미소가 절로~

    해피투게더 홍화리, 홍성흔 붕어빵 ‘깜찍 미모+야무진 입담’ 미소가 절로~

    15일 밤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는 가족 특집으로 배우 박근형과 싱어송라이터 겸 배우 윤상훈, 야구선수 홍성흔과 아역배우 홍화리, 걸그룹 레인보우 재경과 그룹 엔플라잉 김재현이 출연했다. 이날 홍화리는 아빠 홍성흔을 소개해 달라는 말에 “야구선수를 오랜 시간 하고 있다. 늙었는데도 야구 열심히 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는가 하면 홍성은의 토크를 가로채가는 등 야무진 입담을 과시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윤상훈, 박근형 아들인데 성이 윤씨? “무자비하게 성 바꿔서 불쾌하다”

    윤상훈, 박근형 아들인데 성이 윤씨? “무자비하게 성 바꿔서 불쾌하다”

    ‘해피투게더 박근형 아들 윤상훈’ 배우 박근형의 아들 윤상훈이 화제에 올랐다. 15일 밤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는 가족 특집으로 배우 박근형과 싱어송라이터 겸 배우 윤상훈, 야구선수 홍성흔과 아역배우 홍화리, 걸그룹 레인보우 재경과 그룹 엔플라잉 김재현이 출연했다. 이날 박근형은 아들 윤상훈에 대해 “음악을 직접 작사, 작곡하고 노래도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다. 연기를 권유해 연기 활동도 한다”며 “원래는 박상훈인데 무자비하게 성을 바꿔버렸다. 상당히 불쾌하다”고 소개했다. MC들이 성이 다른 이유를 궁금해하자 윤상훈은 “박상훈 보다 윤상훈이 더 부드러운 어감이어서 예명으로 했다”며 “내가 처음 음악 한다고 했을 때 호적에서 파버리겠다고 소리치셨다. 드라마 대사를 실제로 들었다. 아버지 특유의 성량으로 ‘호적에서 파 버릴 거야’라고 해 정말 충격 받고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네티즌들은 “박근형 아들 윤상훈, 훈훈하네”, “박근형 아들 윤상훈, 안 닮았어”, “박근형 아들 윤상훈, 이준인줄 알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윤상훈 인스타그램(박근형 아들 윤상훈)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해피투게더 홍화리, 깜찍 미모+야무진 말솜씨 ‘시청자 눈도장’

    해피투게더 홍화리, 깜찍 미모+야무진 말솜씨 ‘시청자 눈도장’

    15일 밤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는 가족 특집으로 배우 박근형과 싱어송라이터 겸 배우 윤상훈, 야구선수 홍성흔과 아역배우 홍화리, 걸그룹 레인보우 재경과 그룹 엔플라잉 김재현이 출연했다. 이날 홍화리는 아빠 홍성흔을 소개해 달라는 말에 “야구선수를 오랜 시간 하고 있다. 늙었는데도 야구 열심히 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는가 하면 홍성은의 토크를 가로채가는 등 야무진 입담을 과시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해피투게더 홍화리 “아빠 홍성흔, 늙었지만 야구 열심히 해”

    해피투게더 홍화리 “아빠 홍성흔, 늙었지만 야구 열심히 해”

    15일 밤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는 가족 특집으로 배우 박근형과 싱어송라이터 겸 배우 윤상훈, 야구선수 홍성흔과 아역배우 홍화리, 걸그룹 레인보우 재경과 그룹 엔플라잉 김재현이 출연했다. 이날 홍화리는 아빠 홍성흔을 소개해 달라는 말에 “야구선수를 오랜 시간 하고 있다. 늙었는데도 야구 열심히 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는가 하면 홍성은의 토크를 가로채가는 등 야무진 입담을 과시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박근형 아들 윤상훈, 일상 셀카도 ‘훈훈’

    박근형 아들 윤상훈, 일상 셀카도 ‘훈훈’

    15일 밤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3’는 가족 특집으로 배우 박근형과 싱어송라이터 겸 배우 윤상훈, 야구선수 홍성흔과 아역배우 홍화리, 걸그룹 레인보우 재경과 그룹 엔플라잉 김재현이 출연했다. 이날 박근형은 아들 윤상훈에 대해 “음악을 직접 작사, 작곡하고 노래도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다. 연기를 권유해 연기 활동도 한다”며 “원래는 박상훈인데 무자비하게 성을 바꿔버렸다. 상당히 불쾌하다”고 소개했다. MC들이 성이 다른 이유를 궁금해하자 윤상훈은 “박상훈 보다 윤상훈이 더 부드러운 어감이어서 예명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하정우 “대중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영화란 무엇인지 감독 입장에서 알고 싶었죠”

    하정우 “대중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영화란 무엇인지 감독 입장에서 알고 싶었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스크린 속 멋진 몸뚱아리의 화려한 액션도, 가슴 먹먹하게 하는 절절한 눈빛도, 키득거리게 만드는 해학도 모두 배우들이 펼쳐 낸다. 촬영팀, 조명팀, 미술팀, 의상팀, 음악팀, 소품팀 등 수없이 많은 이들의 열정과 눈물이 더해져야 겨우 영화 한 편이 완성된다. 그럼에도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는 명제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대중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영화란 무엇인지 감독의 입장에서 알고 싶었습니다. 감독이 된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웃음의 코드를 의심하며,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버리는 과정이었지요. 저는 더이상 변명할 수 없는 감독이니까요.” 지난 12일 서울 중구 삼청동 한 찻집에서 하정우(37)를 만났다. 2013년 데뷔작 ‘롤러코스터’에 이어 새해 벽두부터 ‘허삼관’을 연출해 내놓았다. 이제 어엿한 ‘감독’으로 호명되기에 손색이 없다. 그의 첫 작품(롤러코스터)은 난해한 웃음 코드로 ‘마니아용 블랙코미디’라는 묘한 평가를 받았다. 관객은 27만명에 그쳤다. 첫 영화는 연출에 대해 갓 틔운 열망의 싹이었다. 그는 “사실 ‘롤러코스터’는 독립영화로 봐야 되는 것 아니냐”고 계면쩍게 웃으면서도 “첫 영화를 찍고 난 뒤 나 혼자만 웃긴다고 생각했고, 호흡이 빨랐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허삼관’을 찍으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웃음을 찾으려 노력했다”면서 “이번 영화를 찍으며 많이 고민했고, 열정을 쏟았고, 최선을 다해 만들었던 만큼 어떤 평가가 나오더라도 이게 나의 한계일 것”이라고 말했다. ‘후회 없이 만들었다’는 하정우식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이다. 하정우는 감독이기 전에 배우다. 꼬박 10년 동안 하정우는 강렬한 이미지로 늘 대중 곁에 있었다. ‘추격자’에서 평범한 이웃이자 끔찍한 살인마로 주변을 맴돌았는가 하면, 가난과 멸시가 서러웠던 ‘황해’의 조선족 청년이었고, ‘범죄와의 전쟁’의 조폭 두목이거나 , ‘베를린’의 버림받은 북한 비밀요원이었으며, ‘군도’에선 우직히 떨쳐 일어서는 민중들의 맨 앞에 선 순박한 도치였다. 그렇기에 갑작스러운 감독 변신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보면서 막연히 영화감독이 되는 모습을 꿈꿨다”면서 “2012년 ‘베를린’ 촬영을 모두 마친 뒤 프랑크푸르트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문득 영화를 한 번 찍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감독 변신의 계기를 설명했다. “연기도 점점 매너리즘에 빠지는 듯했고, 배우로서 제가 성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도 컸습니다. 영화를 찍어야 배우로서 계속 활동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가 연출과 주연을 맡은 ‘허삼관’은 피, 자체를 서사의 씨줄로 삼고, 가족의 의미를 날줄 삼아 풀어낸 작품이다. 중국 소설가 위화(余華)의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한국적 상황에 맞게 각색했다. 1953년, 그리고 1964년 충청도 공주로 시간과 공간을 틀었다. 원작 속 개인의 유장한 인생 흐름은 없지만, 피의 서사는 오롯이 남았다. 아버지 허삼관에게 피는 생존의 수단이었고, 힘겹고 가난한 시절, 가족을 이루게 해주는 필수적 요소였다. 영화 속 일락이는 11년 동안 듬직하게 첫째 아들 노릇을 했건만, 제 피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순간 허삼관에게 “사람들 없을 때는 아버지라고 하지 말고, 아저씨라고 불러”라는 얘기를 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영화 후반부 아버지는 피붙이 아닌, 아픈 일락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피를 판다. 하정우는 “단순한 복고적 정서 되살리기를 피하기 위해 인물의 관계와 갈등에 더욱 집중하고, 미술과 음악 등 감각의 차이를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준비된 감독 하정우의 흔적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는 순천 야외 세트장의 잘 자란 옥수수를 표현하기 위해 봄에 미리 심어놓는 꼼꼼함까지 선보였다. 또 감독 의자와 카메라 앞을 바삐 오가는 와중에도 세 아들 일락, 이락, 삼락이를 연기한 남다름(13), 노강민(10), 전현석(9) 등 아역배우들을 살뜰히 챙겼다. 스태프들에게 “고함 치지 말고, 욕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우디 앨런이나 찰리 채플린처럼 진한 페이소스가 있는 웃음을 그리는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세 번째 작품은 마흔 살 넘어서나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래 봤자 2~3년 남았다. 감독 욕심이 크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지구촌 책세상] ‘세기의 두 여인’ 재클린·브룩 실즈의 인생

    [지구촌 책세상] ‘세기의 두 여인’ 재클린·브룩 실즈의 인생

    어렸을 때 TV나 영화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좋아했던 외국 여성들이 있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이자 ‘우아함의 아이콘’ 재클린 케네디 여사와 이 세상 최고 미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배우 브룩 실즈다. 워싱턴DC 서점 신간 코너에서 기자의 눈길을 끈 책 두 권은 재클린의 일생을 다룬 전기 ‘재클린 부비어 케네디 오나시스: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왼쪽)와 실즈가 직접 쓴 회고록 ‘작은 소녀가 있었다: 엄마와 나의 실제 이야기’(오른쪽)다. 비슷한 흑백사진 속 재클린과 실즈의 모습은 이들의 속 모습도 궁금하게 만들었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재클린은 이름이 길다. 결혼 전 이름인 재클린 부비어와 첫 번째 남편 케네디의 성, 두 번째 남편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의 성이 붙었다. 이미 세간에 알려졌듯 부유한 집안 출신의 지식인이었던 재클린은 야망이 큰 정치인 케네디와 결혼했고 30대 초반 ‘퍼스트레이디’ 자리에 올라 화려한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케네디의 암살 이후 미망인이 됐고 오나시스와 재혼한 후 또 미망인이 되면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유명한 전기작가 바버라 리밍은 재클린의 학창 시절과 케네디와의 짧으면서도 강렬했던 결혼 생활 속에서 자신의 삶에 열정적이었던 여성 재클린 부비어를 찾는다. 저자는 그러나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재클린의 결혼 생활은 결코 순탄치 않았고 케네디의 암살을 목도한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렸다는 사실도 공개한다. 자살 충동까지 느낀 재클린은 오나시스와 재혼하지만 파파라치들에게 쫓기는 인생 속에서 자아를 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저자는 20세기 가장 유명한 여성인 재클린을 “가장 오해를 받은 여성”이라고 평가한다. 실즈가 쓴 엄마와 딸(자신)의 이야기도 책 표지 사진과 달리 그리 밝지만은 않다. 실즈만큼 아름다운 엄마 테리는 딸을 가진 다른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딸을 보호하고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했지만 그들의 관계는 평탄치 않았다. 생후 11개월 때 아기 모델로 시작해 영화, TV를 누비고 다니며 ‘아역 스타는 장수하기 어렵다’는 통념을 깼던 실즈의 성공 뒤에는 엄마라는 고마운 존재가 있었지만 인기가 높아질수록 ‘기획자’ 역할을 하던 엄마와의 의견 차는 커졌다. 엄마는 특히 술에 의지하다가 알코올중독으로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실즈는 그러나 2012년 엄마가 숨을 거둔 뒤 쏟아지는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나는 엄마를 이상적으로 그리거나 그녀를 비난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라고.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올해 세상을 떠난 세계 주요인사들 - AFP 선정

    올해 세상을 떠난 세계 주요인사들 - AFP 선정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부터 미국 할리우드 배우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로빈 윌리엄스까지, 올 한해 사망한 주요 유명인사를 AFP통신이 소개했다. ‘2014년 주목할 만한 사망’(Notable death in 2014)이라는 타이틀로 공개된 이 목록을 살펴보고 한해를 돌이켜보는 것은 어떨까. ■ 1월 아리엘 샤론=이스라엘 총리로 2005년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 철수라는 역사적 정책을 주도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8년간 혼수상태로 투병 끝에 텔 아비브 근교 병원에서 11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밀라노 스칼라극장 음악감독,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역임하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세계적인 수준의 음악축제로 격상시켰다. 긴 투병 생활 끝에 볼로냐에서 20일,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트 시거=미국인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와 함께 미국의 저항적인 프로테스트 포크를 발전시킨 중요 인물로 꼽힌다. 뉴욕 시내의 병원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맥시밀리안 쉘=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오스카 수상 배우. 영어권에서 독일어를 쓰며 성공한 몇 안되는 배우로 영화 ‘젊은 사자들’로 데뷔, ‘뉘른베르크의 재판’에서 피고측 변호인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병에 의해 28일,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2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미국의 오스카 배우. 2005년 영화 ‘카포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2012년 ‘마스터’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유작으로는 ‘헝거게임’ 시리즈 등이 있다. 뉴욕의 집에서 2일 약물과다 복용에 의해 46세 나이로 사망했다. 셜리 템플=미 할리우드의 영원한 아역 스타로 결혼 이후 정치에 입문해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1935년 아역 부문 오스카상을 수상해 역대 아카데미 최연소 수상을 기록했다. 캘리포니아주(州) 자택에서 10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파코 데 루치아=스페인의 기타리스트로 플라멩코 기타의 전설로 불렸다. 플라멩코에 재즈, 록, 보사노바, 탱고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결합한 ‘뉴 플라멩코’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고 전 세계 플라멩코 기타리스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심장마비로 25일,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3월 제라르 모르티에=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감독. 10년간 브뤼셀의 라 모네 왕립극장을 이끌며 유럽 변방이던 이 극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 사망 이후 잘츠부르크 축제의 총감독을 맡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암으로 투병생활 끝에 8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메드 테잔 카바=10년 넘게 이어온 시에라리온의 내전 종식을 이끈 대통령. 빈민 구제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수도 프리타운의 집에서 13일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4월 미키 루니=미 할리우드의 전설적 배우이자 아역스타. 17세 때였던 1937년부터 1958년까지 출연한 ‘하디 보이스’ 시리즈에서 앤디 하디를 연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8번이나 결혼했으며 말년에 자식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긴 투병생활 끝에 7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치스 겔도프=영국의 패션 아이콘이자 탤런트로, 음악을 통한 자선활동 단체 ‘밴드 에이드’를 결성한 영국 가수 밥 겔도프의 딸이다. 영국 자택에서 7 일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2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 작가. 중남미 문학의 거장으로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 이래 가장 인기 있는 스페인어권 작가로, 스페인어로 출간된 책 가운데 성경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멕시코 수도 멕시코 시티에 있는 집에서 17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윈 틴=미얀마 군부독재에 항거한 최장기수이자 아웅산 수치 여사와 함께 제1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창설한 언론인. 수감 뒤 여러 국제 언론자유상을 받았고, 석방 뒤 2011년 민정 이양 때까지 NLD를 통해 정치 활동을 계속했다. 양곤 종합병원에서 21일,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밥 호스킨스=영국의 연기파 배우. 1980년 영국 갱스터 영화의 클래식으로 불리는 ‘롱 굿 프라이데이’를 통해 데뷔한 뒤 차가운 악당과 런던 토박이 캐릭터로 많은 영화팬의 사랑을 받았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폐렴에 의해 29일,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5월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공산주의 정권 시절 폴란드의 마지막 대통령. 공산당 제1서기로 있던 1981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옛소련권 국가의 첫 자유 노동조합인 연대노조(솔리대리티)를 탄압하는 등 민주화 염원을 억압했다. 수도 바르샤바의 병원에서 25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야 안젤루=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여류시인이자 배우이며 민권 운동가이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69년 소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로 흑인 여성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끊임없는 작품활동과 더불어 작곡과 영화 출연 등 왕성한 문화 활동을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자택에서 28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6월 토미 라몬=미국 펑크 밴드 ‘라몬즈’에서 생존하고 있던 마지막 오리지널 멤버.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출생 이름은 토마스 어델리. 미국 뉴욕에서 11일 암으로 65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 7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알 마드리드의 전 선수. 5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냉전 종결의 일익을 담당한 옛소련 마지막 외상으로 전 그루지아 대통령이다. 긴 투병 생활 끝에 7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로린 마젤=미국의 지휘자 겸 작곡가. 타계 직전까지 활동하며 약 7000회 무대에 섰고 음반 300장 이상을 발매했다. 미국·유럽의 오케스트라 10여 곳을 상임 지휘자로서 이끌었다. 버지니아 자택에서 13일 폐렴 합병증으로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나딘 고디머=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겸 반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 반대운동) 활동가.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13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니 윈터=미국의 전설적인 블루스 가수. 2003년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미국의 음악잡지 ‘롤링스톤’에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에서 63위에 오르기도 했다. 스위스 취리히 근교의 호텔에서 16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8월 로빈 윌리엄스=미국의 오스카 수상 배우이자 코미디언.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역으로 열연,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있다. 또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어거스트 러쉬’ 등 장기인 코믹 연기를 비롯한 뛰어난 연기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11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한 채 발견됐고 자살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 구글 검색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이기도 하다. 로렌 바콜=미국의 전설적인 여배우. 명배우 험프리 보가트의 파트너로 많은 영화에서 공연했고, 결혼까지 한 ‘가장 행복한 여배우’로 유명세를 탔다. 바콜은 보가트와 최고화제작 ‘키 라르고’를 비롯, ‘소유와 무소유’, ’다크 패시지’, ‘명탐정 필립’ 등 많은 영화에서 같이 출연했다. 12일 뉴욕 자택에서 갑작스러운 뇌졸증으로,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제임스 폴리=미국 언론인. 20일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수니파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되면서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IS가 살해한 최초의 서양인으로 기록됐다. 리차드 아텐보로=영국 배우이자 프로듀서이며 영화감독이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쥬라기 공원 개발자로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34번가의 기적’에서는 산타 클로스 역을 열연한 바 있다. 감독으로서도 맹활약해 영화 ‘간디’를 통해 아카데미 작품상 등 8개 부문을 수상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24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9월 이언 페이즐리=영국의 전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총리로, 북아일랜드의 독립에 반대했던 개신교계 민주통합당의 설립자이다. 2007년 신페인당과의 북아일랜드 공동자치정부 출범에 동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긴 투병 생활 끝에 12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0월 장클로드 뒤발리에=아이티의 전 독재자. 1971년 19살 나이에 ‘파파 독’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버지 프랑수와 뒤발리에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뒤발리에는 ‘베이비 독’으로 불리며 1986년까지 15년간 아이티를 철권 통치했다. 4일 심장마비로,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유럽의 3대 석유기업에 드는 프랑스 기업 ‘토탈’의 최고경영자(CEO). 1974년 토탈의 회계부서에서 근무하기 시작해 2007년 CEO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비행기 사고로 20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클 사타=잠비아 대통령. 삼수 끝에 2011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선동가적인 기질에 독설로 유명해 ‘킹 코브라’란 별명을 갖고 있다. 빈민옹호 정책을 써왔으며 자국 탄광에 대한 중국의 투자에 강력히 반대해왔다. 건강 이상으로 영국 런던에서 치료 중이던 28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1월 마니타스 드 플라타=프랑스 로마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생전 녹음한 80여장의 음반들은 9300만장이나 판매되면서 플라멩코 음악을 대중화했다는 평을 얻었다. 남프랑스의 노인 시설에서 4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크 니콜스=영화 ‘졸업’으로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감독. 위트 넘치고 사회풍자적인 작품을 영화와 TV, 연극 등 다양한 장르로 선보였다. 19일 심장마비에 의해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스페인 알바 공작부인, 마리아 델 로사리오 카예타나 피츠-제임스 스튜어트=세계에서 가장 많은 칭호를 가진 귀족. 폐렴을 앓은 뒤 남부 세비야의 자택에서 20일, 88 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바=레바논 출신으로 아랍권에서 가장 유명한 여가수이자 여배우. 1927년 ‘쟌넷 페갈리’란 이름으로 태어났으나 나중에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아랍어로 아침을 뜻하는 ‘사바’로 불리기 시작했다. 수도 베이루트 교외의 호텔에서 26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필립 휴즈=호주 크리켓 선수. 25일 시드니에서 열린 경기 도중 공에 머리를 맞아 혼절하고 이틀 뒤인 27일 불과 2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P.D. 제임스=‘추리소설계(界)의 여왕’으로 불리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여성 추리소설 작가. 예리한 직관을 가진 수사반장 애덤 달글리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 소설은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잇따라 드라마로 방영됐고, 세계적으로 수 백만부가 팔렸다. 옥스퍼드 자택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2월 벨기에 파비올라 왕비=고(故) 보두앵 1세의 아내. 후손이 없어 보두앵 국왕의 동생인 알베르 2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2012년 재단을 설립해 조카들과 가톨릭 자선단체에 자금을 지원했으며 이는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는 것이란 비판을 받았으며 연금 삭감으로 논란을 해결했다. 가톨릭과 아동복지 문제에 헌신해 존경을 받았다. 긴 투병 생활 끝에 5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비르나 리지=이탈리아 출신 여배우. 1960년대 할리우드에 진출해 영화 ‘25시’등의 작품에서 열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4년 ‘여왕 마고’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004년 이탈리아 골든 글로브 공로상을 수상했다. 수도 로마의 집에서 17일,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 코커=영국 출신의 전설적인 록가수. 1968년 비틀즈의 노래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럼 마이 프렌즈’와 ‘유 아 소 뷰티풀’을 커버해 스타덤에 올랐다. 말년에 폐암을 앓았으며 21일 미국 콜로라도 자택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진=TOPIC/SPLASH NEWS(www.topicimages.com)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김소현 “오늘은 내가 걸스데이” 요정 자태 ‘MBC 방송연예대상’ 올킬

    김소현 “오늘은 내가 걸스데이” 요정 자태 ‘MBC 방송연예대상’ 올킬

    ‘MBC 방송연예대상 김소현’ 아역배우 김소현이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천사같은 자태를 뽐냈다. MBC ‘쇼 음악중심’의 MC로 활약 중인 김소현은 29일 서울 마포구 상암 신사옥에서 열린 ‘2014 MBC 방송연예대상’에 참석했다. 이날 김소현은 화이트 드레스를 입고 청순한 미모를 과시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김소현은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가수 홍진영, 걸스데이 유라, 혜리와 함께 걸스데이 ‘달링’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김소현의 인형 같은 미모와 깜짝 댄스실력이 감탄을 자아냈다. 이날 김소현은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쇼 음악 중심’ MC 자격으로 샤이니 민호, 블락비 지코와 함께 뮤직토크쇼 부문 인기상을 수상했다. 사진=MBC(김소현)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올해 사망한 세계 주요인사 살펴보니…

    올해 사망한 세계 주요인사 살펴보니…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부터 미국 할리우드 배우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로빈 윌리엄스까지, 올 한해 사망한 주요 유명인사를 AFP통신이 소개했다. ‘2014년 주목할 만한 사망’(Notable death in 2014)이라는 타이틀로 공개된 이 목록을 살펴보고 한해를 돌이켜보는 것은 어떨까. ■ 1월 아리엘 샤론=이스라엘 총리로 2005년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 철수라는 역사적 정책을 주도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8년간 혼수상태로 투병 끝에 텔 아비브 근교 병원에서 11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밀라노 스칼라극장 음악감독,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역임하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세계적인 수준의 음악축제로 격상시켰다. 긴 투병 생활 끝에 볼로냐에서 20일,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트 시거=미국인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와 함께 미국의 저항적인 프로테스트 포크를 발전시킨 중요 인물로 꼽힌다. 뉴욕 시내의 병원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맥시밀리안 쉘=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오스카 수상 배우. 영어권에서 독일어를 쓰며 성공한 몇 안되는 배우로 영화 ‘젊은 사자들’로 데뷔, ‘뉘른베르크의 재판’에서 피고측 변호인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병에 의해 28일,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2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미국의 오스카 배우. 2005년 영화 ‘카포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2012년 ‘마스터’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유작으로는 ‘헝거게임’ 시리즈 등이 있다. 뉴욕의 집에서 2일 약물과다 복용에 의해 46세 나이로 사망했다. 셜리 템플=미 할리우드의 영원한 아역 스타로 결혼 이후 정치에 입문해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1935년 아역 부문 오스카상을 수상해 역대 아카데미 최연소 수상을 기록했다. 캘리포니아주(州) 자택에서 10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파코 데 루치아=스페인의 기타리스트로 플라멩코 기타의 전설로 불렸다. 플라멩코에 재즈, 록, 보사노바, 탱고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결합한 ‘뉴 플라멩코’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고 전 세계 플라멩코 기타리스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심장마비로 25일,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3월 제라르 모르티에=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감독. 10년간 브뤼셀의 라 모네 왕립극장을 이끌며 유럽 변방이던 이 극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 사망 이후 잘츠부르크 축제의 총감독을 맡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암으로 투병생활 끝에 8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메드 테잔 카바=10년 넘게 이어온 시에라리온의 내전 종식을 이끈 대통령. 빈민 구제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수도 프리타운의 집에서 13일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4월 미키 루니=미 할리우드의 전설적 배우이자 아역스타. 17세 때였던 1937년부터 1958년까지 출연한 ‘하디 보이스’ 시리즈에서 앤디 하디를 연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8번이나 결혼했으며 말년에 자식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긴 투병생활 끝에 7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치스 겔도프=영국의 패션 아이콘이자 탤런트로, 음악을 통한 자선활동 단체 ‘밴드 에이드’를 결성한 영국 가수 밥 겔도프의 딸이다. 영국 자택에서 7 일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2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 작가. 중남미 문학의 거장으로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 이래 가장 인기 있는 스페인어권 작가로, 스페인어로 출간된 책 가운데 성경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멕시코 수도 멕시코 시티에 있는 집에서 17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윈 틴=미얀마 군부독재에 항거한 최장기수이자 아웅산 수치 여사와 함께 제1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창설한 언론인. 수감 뒤 여러 국제 언론자유상을 받았고, 석방 뒤 2011년 민정 이양 때까지 NLD를 통해 정치 활동을 계속했다. 양곤 종합병원에서 21일,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밥 호스킨스=영국의 연기파 배우. 1980년 영국 갱스터 영화의 클래식으로 불리는 ‘롱 굿 프라이데이’를 통해 데뷔한 뒤 차가운 악당과 런던 토박이 캐릭터로 많은 영화팬의 사랑을 받았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폐렴에 의해 29일,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5월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공산주의 정권 시절 폴란드의 마지막 대통령. 공산당 제1서기로 있던 1981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옛소련권 국가의 첫 자유 노동조합인 연대노조(솔리대리티)를 탄압하는 등 민주화 염원을 억압했다. 수도 바르샤바의 병원에서 25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야 안젤루=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여류시인이자 배우이며 민권 운동가이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69년 소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로 흑인 여성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끊임없는 작품활동과 더불어 작곡과 영화 출연 등 왕성한 문화 활동을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자택에서 28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6월 토미 라몬=미국 펑크 밴드 ‘라몬즈’에서 생존하고 있던 마지막 오리지널 멤버.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출생 이름은 토마스 어델리. 미국 뉴욕에서 11일 암으로 65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 7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알 마드리드의 전 선수. 5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냉전 종결의 일익을 담당한 옛소련 마지막 외상으로 전 그루지아 대통령이다. 긴 투병 생활 끝에 7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로린 마젤=미국의 지휘자 겸 작곡가. 타계 직전까지 활동하며 약 7000회 무대에 섰고 음반 300장 이상을 발매했다. 미국·유럽의 오케스트라 10여 곳을 상임 지휘자로서 이끌었다. 버지니아 자택에서 13일 폐렴 합병증으로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나딘 고디머=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겸 반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 반대운동) 활동가.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13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니 윈터=미국의 전설적인 블루스 가수. 2003년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미국의 음악잡지 ‘롤링스톤’에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에서 63위에 오르기도 했다. 스위스 취리히 근교의 호텔에서 16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8월 로빈 윌리엄스=미국의 오스카 수상 배우이자 코미디언.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역으로 열연,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있다. 또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어거스트 러쉬’ 등 장기인 코믹 연기를 비롯한 뛰어난 연기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11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한 채 발견됐고 자살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 구글 검색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이기도 하다. 로렌 바콜=미국의 전설적인 여배우. 명배우 험프리 보가트의 파트너로 많은 영화에서 공연했고, 결혼까지 한 ‘가장 행복한 여배우’로 유명세를 탔다. 바콜은 보가트와 최고화제작 ‘키 라르고’를 비롯, ‘소유와 무소유’, ’다크 패시지’, ‘명탐정 필립’ 등 많은 영화에서 같이 출연했다. 12일 뉴욕 자택에서 갑작스러운 뇌졸증으로,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제임스 폴리=미국 언론인. 20일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수니파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되면서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IS가 살해한 최초의 서양인으로 기록됐다. 리차드 아텐보로=영국 배우이자 프로듀서이며 영화감독이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쥬라기 공원 개발자로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34번가의 기적’에서는 산타 클로스 역을 열연한 바 있다. 감독으로서도 맹활약해 영화 ‘간디’를 통해 아카데미 작품상 등 8개 부문을 수상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24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9월 이언 페이즐리=영국의 전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총리로, 북아일랜드의 독립에 반대했던 개신교계 민주통합당의 설립자이다. 2007년 신페인당과의 북아일랜드 공동자치정부 출범에 동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긴 투병 생활 끝에 12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0월 장클로드 뒤발리에=아이티의 전 독재자. 1971년 19살 나이에 ‘파파 독’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버지 프랑수와 뒤발리에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뒤발리에는 ‘베이비 독’으로 불리며 1986년까지 15년간 아이티를 철권 통치했다. 4일 심장마비로,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유럽의 3대 석유기업에 드는 프랑스 기업 ‘토탈’의 최고경영자(CEO). 1974년 토탈의 회계부서에서 근무하기 시작해 2007년 CEO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비행기 사고로 20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클 사타=잠비아 대통령. 삼수 끝에 2011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선동가적인 기질에 독설로 유명해 ‘킹 코브라’란 별명을 갖고 있다. 빈민옹호 정책을 써왔으며 자국 탄광에 대한 중국의 투자에 강력히 반대해왔다. 건강 이상으로 영국 런던에서 치료 중이던 28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1월 마니타스 드 플라타=프랑스 로마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생전 녹음한 80여장의 음반들은 9300만장이나 판매되면서 플라멩코 음악을 대중화했다는 평을 얻었다. 남프랑스의 노인 시설에서 4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크 니콜스=영화 ‘졸업’으로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감독. 위트 넘치고 사회풍자적인 작품을 영화와 TV, 연극 등 다양한 장르로 선보였다. 19일 심장마비에 의해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스페인 알바 공작부인, 마리아 델 로사리오 카예타나 피츠-제임스 스튜어트=세계에서 가장 많은 칭호를 가진 귀족. 폐렴을 앓은 뒤 남부 세비야의 자택에서 20일, 88 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바=레바논 출신으로 아랍권에서 가장 유명한 여가수이자 여배우. 1927년 ‘쟌넷 페갈리’란 이름으로 태어났으나 나중에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아랍어로 아침을 뜻하는 ‘사바’로 불리기 시작했다. 수도 베이루트 교외의 호텔에서 26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필립 휴즈=호주 크리켓 선수. 25일 시드니에서 열린 경기 도중 공에 머리를 맞아 혼절하고 이틀 뒤인 27일 불과 2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P.D. 제임스=‘추리소설계(界)의 여왕’으로 불리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여성 추리소설 작가. 예리한 직관을 가진 수사반장 애덤 달글리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 소설은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잇따라 드라마로 방영됐고, 세계적으로 수 백만부가 팔렸다. 옥스퍼드 자택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2월 벨기에 파비올라 왕비=고(故) 보두앵 1세의 아내. 후손이 없어 보두앵 국왕의 동생인 알베르 2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2012년 재단을 설립해 조카들과 가톨릭 자선단체에 자금을 지원했으며 이는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는 것이란 비판을 받았으며 연금 삭감으로 논란을 해결했다. 가톨릭과 아동복지 문제에 헌신해 존경을 받았다. 긴 투병 생활 끝에 5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비르나 리지=이탈리아 출신 여배우. 1960년대 할리우드에 진출해 영화 ‘25시’등의 작품에서 열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4년 ‘여왕 마고’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004년 이탈리아 골든 글로브 공로상을 수상했다. 수도 로마의 집에서 17일,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 코커=영국 출신의 전설적인 록가수. 1968년 비틀즈의 노래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럼 마이 프렌즈’와 ‘유 아 소 뷰티풀’을 커버해 스타덤에 올랐다. 말년에 폐암을 앓았으며 21일 미국 콜로라도 자택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진=ⓒAFPBBNEWS=NEWS1(위), TOPIC/SPLASH NEWS(www.topicimages.com)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K팝스타4 릴리M, 알고보니 아역배우 ‘연기+노래’ 매력폭발에 심사위원 광대승천

    K팝스타4 릴리M, 알고보니 아역배우 ‘연기+노래’ 매력폭발에 심사위원 광대승천

    K팝스타4 릴리M, 알고보니 아역배우 출신? 호주영화 출연모습 보니 ‘청순미모’ 눈길 ‘K팝스타4 릴리M’ ‘K팝스타4’에 출연한 참가자 릴리M이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은 가운데, 그녀가 출연한 영화가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8일 방송된 SBS ‘일요일이 좋다-서바이13벌 오디션 K팝스타 시즌4’(이하 ‘K팝스타4’)에서는 2라운드 랭킹 오디션이 진행됐다. 이날 가능성조 오디션에서 무대에 선 릴리M은 데미 로바토의 ‘스카이스크래퍼’를 선곡해 나이에 비해 파워풀하고 소울풀 한 음색으로 곡을 소화해냈다. 릴리m의 노래가 끝난후 박진영은 “내가 고맙다. 정말 놀랍다”며 “전혀 배우지 않았는데 완벽한 호흡 발성을 한다는 것이 대단하다. 완벽해서 할말이 없다”고 칭찬했다. 유희열 역시 “마치 자기 앨범에 있는 노래를 했다. 어린 친구들에게 ‘기성가수 따라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런 부분이 없었다. 그냥 원곡가수 같았다. 정말 큰 기대를 하겠다.”고 말했다. 양현석은 “앞으로 10년 동안 못 볼 것 같다는 생각이 제작자로서 든다”며 “나중에라도 YG엔터테인먼트에 와준다면 YG엔터테인먼트가 크게 성공할 것 같다”고 극찬했다. 한편 호주 멜바른 출신의 릴리 M(릴리 머로우)은 호주 영화 ‘날씨맨의 우산’(The Weatherman’s Umbrella)에 출연한 바 있다. 당시 영화에서 릴리M은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과 청순한 외모로 보는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진=영상캡쳐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맥컬리 컬킨 근황, ‘불우했던 유년시절부터 충격적인 사망설까지’ 현재 모습은?

    맥컬리 컬킨 근황, ‘불우했던 유년시절부터 충격적인 사망설까지’ 현재 모습은?

    맥컬리 컬킨 근황, ‘불우했던 유년시절부터 충격적인 사망설까지’ 현재 모습은? ‘나홀로집에 맥컬리 컬킨’ 크리스마스 특선영화 ‘나홀로 집에’에 출연해 인기를 모은 배우 맥컬리 컬킨의 근황이 화제다. 맥컬리 컬킨은 1991년 나홀로 집에1에 출연해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영화 흥행에 힘입어 맥컬리 컬킨은 ‘젊은 예술가상 영화부문 최고 아역배우상’ ‘미국 미디어워드 영화부문 코믹배우상’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 유망남우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손에 쥔 맥컬리 컬킨은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맥컬리 컬킨의 재산을 둘러싼 부모의 반복된 이혼과 소송은 그의 마음을 병들게 했고 마약 중독에 빠지기도 했다. 또한 2008년에는 친누나 다코타 컬킨이 달려오는 차에 뛰어들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재 맥컬리 컬킨은 ‘피자 언더그라운드’라는 음악 밴드에서 보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자 언더그라운드는 60~70년대 미국 락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패러디한 밴드다. 한편 맥컬리 컬킨은 지난 4월 자신의 사망설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자 공식 트위터를 통해 직접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 맥컬리 컬킨은 흡사 죽기 직전인 듯 혼이 나간 표정으로 동료에게 기대 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순회공연 중이다, 멍청한 사람들아”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사진=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맥컬리 컬킨 근황, ‘벗겨진 이마 포착’ 아역시절 현재사진 비교보니 “경악”

    맥컬리 컬킨 근황, ‘벗겨진 이마 포착’ 아역시절 현재사진 비교보니 “경악”

    맥컬리 컬킨 근황, ‘벗겨진 이마 포착’ 아역시절 현재사진 비교보니 “경악” ‘나홀로집에 맥컬리 컬킨’ 영화 ‘나홀로 집에’에 주연으로 출연했던 배우 맥컬리 컬킨의 근황에 네티즌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맥컬리 컬킨은 1991년 나홀로 집에1에 아역배우로 출연해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는 영화 흥행에 힘입어 ‘젊은 예술가상 영화부문 최고 아역배우상’ ‘미국 미디어워드 영화부문 코믹배우상’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 유망남우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할리우드 대표 아역배우가 됐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손에 쥔 맥컬리 컬킨은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맥컬리 컬킨의 재산을 둘러싼 부모의 반복된 이혼과 소송은 그의 마음을 병들게 했고 마약 중독에 빠지기도 했다. 한편 현재 맥컬리 컬킨은 ‘피자 언더그라운드’라는 음악 밴드에서 보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자 언더그라운드는 60~70년대 미국 락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패러디한 밴드다. 사진=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맥컬리 컬킨 근황, ‘벗겨진 이마 포착’ 과거사진 비교보니 “경악+충격”

    맥컬리 컬킨 근황, ‘벗겨진 이마 포착’ 과거사진 비교보니 “경악+충격”

    나홀로집에 맥컬리 컬킨 근황, ‘벗겨진 이마 포착’ 과거사진 비교보니 “경악+충격” ‘나홀로집에 맥컬리 컬킨’ 영화 ‘나홀로 집에’에 주연으로 출연했던 배우 맥컬리 컬킨의 근황에 네티즌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맥컬리 컬킨은 1991년 나홀로 집에1에 아역배우로 출연해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는 영화 흥행에 힘입어 ‘젊은 예술가상 영화부문 최고 아역배우상’ ‘미국 미디어워드 영화부문 코믹배우상’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 유망남우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할리우드 대표 아역배우가 됐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손에 쥔 맥컬리 컬킨은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맥컬리 컬킨의 재산을 둘러싼 부모의 반복된 이혼과 소송은 그의 마음을 병들게 했고 마약 중독에 빠지기도 했다. 한편 현재 맥컬리 컬킨은 ‘피자 언더그라운드’라는 음악 밴드에서 보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자 언더그라운드는 60~70년대 미국 락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패러디한 밴드다. 사진=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맥컬리 컬킨 근황 “사망설 나와” 얼마나 불우한 시절 보냈길래 “누나도 교통사고 사망”

    맥컬리 컬킨 근황 “사망설 나와” 얼마나 불우한 시절 보냈길래 “누나도 교통사고 사망”

    맥컬리 컬킨 근황 맥컬리 컬킨 근황 “사망설 나와” 얼마나 불우한 시절 보냈길래 “누나도 교통사고 사망” 크리스마스 특선영화 ‘나홀로 집에’에 출연해 인기를 모은 맥컬리 컬킨(34)의 근황에 네티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맥컬리 컬킨은 현재 ‘피자 언더그라운드’라는 음악 밴드에서 보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자 언더그라운드는 60~70년대 미국 락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패러디한 밴드다. 맥컬리 컬킨은 지난 4월 자신의 사망설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자 공식 트위터(@cheesedayz)에 직접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 맥컬리 컬킨은 흡사 죽기 직전인 듯 혼이 나간 표정으로 동료에게 기대 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순회공연 중이다, 멍청한 사람들아”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1991년 나홀로 집에1 흥행에 힘입어 ‘젊은 예술가상 영화부문 최고 아역배우상’ ‘미국 미디어워드 영화부문 코믹배우상’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 유망남우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너무 어린 나이에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손에 쥔 맥컬리 컬킨은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맥컬리 컬킨의 재산을 둘러싼 부모의 반복된 이혼과 소송은 그의 마음을 병들게 했고 마약 중독에 빠지기도 했다. 2008년에는 친누나 다코타 컬킨이 달려오는 차에 뛰어들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7세인 1997년에는 배우 ‘레이첼 마이너’와 결혼했다가 2년 뒤에 결별했다. 2004년 배우 ‘밀라 쿠니스’와 만났지만 2011년 헤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맥컬리 컬킨 근황 “사망설 나와” 얼마나 불우한 시절 보냈길래 ‘불편한 진실’

    맥컬리 컬킨 근황 “사망설 나와” 얼마나 불우한 시절 보냈길래 ‘불편한 진실’

    맥컬리 컬킨 근황 맥컬리 컬킨 근황 “사망설 나와” 얼마나 불우한 시절 보냈길래 ‘불편한 진실’ 크리스마스 특선영화 ‘나홀로 집에’에 출연해 인기를 모은 맥컬리 컬킨(34)의 근황에 네티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맥컬리 컬킨은 현재 ‘피자 언더그라운드’라는 음악 밴드에서 보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자 언더그라운드는 60~70년대 미국 락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패러디한 밴드다. 맥컬리 컬킨은 지난 4월 자신의 사망설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자 공식 트위터(@cheesedayz)에 직접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 맥컬리 컬킨은 흡사 죽기 직전인 듯 혼이 나간 표정으로 동료에게 기대 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순회공연 중이다, 멍청한 사람들아”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1991년 나홀로 집에1 흥행에 힘입어 ‘젊은 예술가상 영화부문 최고 아역배우상’ ‘미국 미디어워드 영화부문 코믹배우상’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 유망남우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너무 어린 나이에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손에 쥔 맥컬리 컬킨은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맥컬리 컬킨의 재산을 둘러싼 부모의 반복된 이혼과 소송은 그의 마음을 병들게 했고 마약 중독에 빠지기도 했다. 2008년에는 친누나 다코타 컬킨이 달려오는 차에 뛰어들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7세인 1997년에는 배우 ‘레이첼 마이너’와 결혼했다가 2년 뒤에 결별했다. 2004년 배우 ‘밀라 쿠니스’와 만났지만 2011년 헤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영화 多樂房] 맵 투 더 스타

    [영화 多樂房] 맵 투 더 스타

    25일 개봉한 ‘맵 투 더 스타’는 ‘스파이더’(2002), ‘폭력의 역사’(2005), ‘이스턴 프라미스’(2007) 등을 통해 날카로운 시선과 독창적인 영화 세계를 보여주었던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감독의 신작이다. 스타의 사생활이라는 소재는 영화에서 자주 다루어져 왔지만, ‘맵 투 더 스타’는 보다 집요하게 그들의 정서적 불안을 파고든다. 광기를 배태한 등장인물들의 불안은 ‘배우’보다 ‘스타’로서의 정체성에 집착하는 흐려진 시야와 그들 각자의 어두운 가족사로부터 비롯된다. 스타가 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것은 그 자리를 지켜내는 것이기 때문일까. 크로넌버그 감독은 어떤 치료도, 상담도, 명상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들의 복잡하고 날 선 심리를 낱낱이 해부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스타라는 존재의 본질과 실체를 찾아가도록 그려놓은 지도라고 할 수 있다. 목적지로 가는 길에서 관객들은 스타의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들을 먼저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의문의 소녀 ‘애거서’가 LA에 도착해 렌터카 운전기사이자 배우 지망생인 ‘제롬’과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애거서가 한물간 여배우 ‘하바나’와 아역 스타인 ‘벤지’의 중간에서 양쪽 모두의 운명을 쥐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하바나는 역시 아름답고 재능 있는 배우였던 자신의 어머니가 젊은 시절 연기했던 배역을 맡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하바나는 그것이야말로 죽은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애증, 열등감 등을 넘어서는 최선책이라 믿지만, 캐스팅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편 어린 나이에 시작된 벤지의 연예계 생활은 열세 살밖에 되지 않은 그를 너무 빨리 추잡한 어른들의 세계로 보내놓는다. 약물 중독으로 물의를 일으킨 후, 벤지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촬영에 들어간다. 중년 여성인 하바나와 소년 벤지는 모두 ‘스타’의 언저리에서 환각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들의 정신적 고통은 각각 경련과 구토라는 물리적 증세로 표면화된다. 여기에 애거서를 포함한 세 인물들 사이는 여러 공통점들로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령, 어린 시절 화상을 입어 흉터가 남아 있는 애거서는 화재 사고로 죽은 하바나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고, 애거서가 본 아이들의 환각은 현재 벤지의 환각과 퍼즐처럼 짜맞춰진다. 그 가장 밑바닥에 근친에 대한 상처와 두려움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곧바로 신화적 모티브와 맞물린다. 하바나와 벤지가 동성 부모에게 느끼는 묘한 적대감, 불과 물의 대비되는 이미지 등은 이를 견고하게 뒷받침해 준다. 극중 애거서가 소개한 자신의 시나리오처럼, 감독은 ‘고대 신화 같지만 가식적이지는 않은’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게 긴장감과 논리를 잃지 않던 영화는 결말부에서 파국으로 치달으며 신화의 비극성을 미학적으로 드러낸다. 다음 세대로 고스란히 대물림되는 가족의 비극과 치부가 작금의 현실과도 잘 맞아떨어지기에 더욱 진중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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