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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스콘 14개업체 가격 담합 과징금 4억

    공정거래위원회는 23일 가격 담합 등 부당행위를 한 ㈜아주산업, 중앙아스콘㈜ 등 서울·경인 지역 14개 아스콘 제조업체들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모두 3억 9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아스콘은 아스팔트 콘크리트를 줄인 명칭으로 아스팔트와 자갈, 모래, 돌가루를 섞어 제조해 도로포장 등에 사용된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지난 2004년 3월과 11월 아스콘 판매가격을 규격별로 1t당 약 3000원∼1만 1000원 가량 인상하기로 합의, 가격을 최대 39%까지 인상해 판매했다.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서울광고대상-기업PR대상] SK주식회사 ‘해외유전’편

    [서울광고대상-기업PR대상] SK주식회사 ‘해외유전’편

    SK주식회사는 에너지, 화학뿐만 아니라 운전고객, 생명공학, 인터넷 등의 다양한 사업영역으로 고객만족을 실현하고 있다. 특히 최근 베트남, 페루, 브라질 등지에서 잇따른 성공을 거둔 해외 유전개발 사업을 통해 대한민국을 에너지 독립국으로 만들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2004년부터 전개해온 ‘대한민국 에너지를 만듭니다´ 캠페인은 해외 유전개발을 위한 끝없는 도전과 성공으로 대한민국의 에너지 영토를 전세계로 넓혀가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SK주식회사는, 확률이 극히 낮아 민간기업으로서 투자하기 힘든 해외 유전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지난 20여년간의 노력 끝에 현재 세계 14개국 24개 유전에서 우리의 석유를 개발·생산하고 있다. 또한 전체 매출의 절반인 100억달러 가량의 석유, 화학 제품을 세계 곳곳에 수출하고 있다. ‘제2의 SK´를 건설 중인 중국에서는 수입 아스팔트의 40% 이상이 SK주식회사 제품일 정도로 드넓은 대륙에 우리의 기술로 만든 길이 열리고 있다. 앞으로도 SK주식회사는 우리 경제가 가야 할 곳 어디서나 대한민국의 글로벌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것이 SK주식회사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고객에 대한 보답인 동시에 대한민국 에너지 대표 기업으로서 당연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이만우 상무
  • [신나는 과학이야기] 농구 경기 속에 숨겨진 과학

    11월은 바야흐로 실내 스포츠의 계절입니다. 그 중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종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농구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미 프로농구 경기가 개막돼 내년까지 대장정에 들어갔지요. 그렇다면 이 농구를 조금 더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것은 농구 경기 속에 숨어있는 과학적인 원리를 살펴보면 됩니다. 먼저 농구 경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득점이지요. 득점을 잘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한데 상대 선수보다 높은 점프력과 득점력입니다. 그 중에서 점프력에는 중력의 법칙과 작용ㆍ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되는데, 더 높이 뛰려면 최대한 무릎을 굽히고 발로 바닥을 미는 힘을 증가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발로 바닥을 미는 힘이 증가하면 그 힘만큼 반작용이 생기므로 더 높이 뛸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높이 뛴다고 해도 결국 중력의 법칙에 의해 바닥으로 내려오게 된다는 것은 당연하겠죠. 이밖에도 점프력을 증가시키려면 그냥 뛰는 것보다 달려오면서 가속을 붙이는 도약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더욱 큰 힘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혹시 여러분은 농구코트가 왜 나무 바닥으로 돼 있는지 궁금증을 가져 보신 적이 있나요?그것은 바로 점프력을 높이기 위함인데 나무 바닥이 콘크리트나 아스팔트와 같은 딱딱한 바닥보다는 탄성을 높여줄 수 있다고 하지요. 결국 나무 바닥이 점프력에 도움을 주는 탄성을 더욱 크게 해줘 더 높이 뛸 수 있게 된다는 얘기가 됩니다. 여러분은 농구경기에서 덩크슛을 하는 선수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 선수가 어떻게 덩크슛을 하는지 유심히 살펴보면 다른 선수보다 높은 점프력을 가지기 위한 행동을 볼 수 있지요. 공을 튀기며 달려와서는 골대 근처에서 무릎을 힘껏 굽히고 점프해 골대에 공을 넣습니다. 이런 행동은 바로 탄성을 증가시켜 작용력을 높여 더 많이 점프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면 되지요. 아울러 농구공 속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것도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는 농구공의 색깔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공은 색깔이 전부 흰색입니다. 야구공이나 축구공, 배구공은 분명 흰색인데, 이상하게도 농구공만은 오렌지색을 띠고 있지요. 그것은 왜 그럴까요?가장 큰 이유는 바로 눈의 피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렌지색이 눈의 피로도를 가장 많이 줄여준다고 알려져 있지요. 다시 말해 밝은 색깔일수록 피로도를 증가시키므로 경기의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데 이것을 미리 예방하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로는 농구공의 표면에서 볼 수 있는 작은 돌기들입니다. 왜 그런 작은 돌기들이 농구공의 표면에 있을까요?그것은 바로 공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고 공의 회전력을 증가시키기 위함입니다. 농구에서 공의 패스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패스를 통해 상대방의 수비를 피할 수도 있고 정확한 슛 찬스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이 작은 돌기들이 정확한 패스를 하도록 도와주고, 혹시 있을 수도 있는 미끄러짐을 예방할 수 있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공의 회전력을 증가시켜 공의 정확한 슛을 하게 도와줍니다. 이렇듯 농구라는 종목은 우리가 모르는 과학이 숨겨져 있고 그 과학을 하나씩 알아내는 과정은 또 다른 재미를 줄 수 있습니다. 혹시 이번 주에 농구장을 찾을 예정이 있는 분들은 그 속에 담긴 과학적인 원리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이것이 농구경기를 더욱 재미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배준우 숭문고 교사
  • 中, 804개 가공무역 22일부터 금지 국내 기업 큰 타격 우려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서울 최용규기자|중국은 오는 22일부터 에너지 소비가 많고 환경오염원이 되는 804개 제품에 대해 생산·수출을 규제하는 가공무역 금지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대중국 수출과 중국산 원자재 수입, 기업체의 중국진출 전략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중국 상무부는 5일 해관총서, 환경보호총국 등 3개 부처는 공동으로 ‘가공무역 금지목록’을 마련해 이 같은 내용을 인터넷에 공고하고 오는 22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무연탄, 액화천연가스(LPG), 유기화학물, 화학조미료, 아스팔트 등 224개 제품은 가공수출입이 전면 금지된다. 가구와 광물가공제품 등 503개 제품은 가공수출이, 생석탄 등 77개 품목은 가공수입이 금지된다. 이는 지난 9월 중국 정부가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해 1576개 수출품목에 대해 증치세(부가가치세) 환급률을 대폭 내린 데 이은 후속조치이다. 상무부는 또 22일 이전에 가공무역업을 비준받은 사업체는 허가기간 안에 사업을 종료토록 했다. 상무부는 공고문에서 “이번 조치는 수출가공구역, 보세구 등 특수관리지역에도 적용되지만 공고 이전에 설립된 기업은 제외한다.”고 밝혀 앞으로 이들 품목에 대해서는 추가 사업허가나 사업기간 연장이 없을 방침임을 시사했다. 중국은 싼 인건비와 에너지 자원에 의존한 무역흑자가 계속되면서 외환보유액이 1조달러를 돌파하고 미국으로부터 무역불균형 해소 등 통상압력이 거세지자 이런 조치를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의 가공무역 및 원자재 수출 통제정책으로 중국에 진출한 현지 한국기업의 수출과 중국산에 의존해온 한국 기업체의 원자재 수급에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 중국에 공장설립을 준비해온 한국 기업들도 진출지를 다른 곳으로 조정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산업자원부는 중국의 이번 조치로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 효과를 면밀히 분석한 뒤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ykchoi@seoul.co.kr
  • [한승원 토굴살이] 꼬마 나폴리 연안 이야기

    [한승원 토굴살이] 꼬마 나폴리 연안 이야기

    ㄹ형, 제 토굴 앞에 0자를 가로 눕혀 놓은 듯한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서울을 버리고 온 날부터 ‘연꽃 바다’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 제목으로 장편소설 한 편을 썼습니다. 호수 같은 바다 남쪽에는 고흥반도 산봉우리들이 뻗어나가고, 남서쪽에는 완도의 섬들이 첩첩 떠 있고, 서북쪽에는 장흥과 보성의 산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 콤플렉스가 많은 글쟁이입니다. 그것을 자궁 콤플렉스, 혹은 고향 콤플렉스라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40년 동안 바다 이야기를 써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다 쓰지 못했다 싶어 고향 바닷가로 돌아왔고,‘멍텅구리 배’,‘물보라’,‘바닷가 학교’,‘검은댕기두루미’에 이어, 이 바다에서 생산되는 ‘키조개’ 이야기를 장편으로 쓰고 있습니다. 여성의 음부처럼 생긴 키조개를 통해 우주 시원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마을 앞 연안을 산책하곤 하는 저의 사전 한 구석에는, 그 연안이 꼬마 나폴리라고 적혀 있습니다. 무지개처럼 휘움한 그 연안 동쪽에는, 사자산 엉덩이에 붙어 있는 삼비산에서 흘러온 냇물로 인해 형성된 거무스레한 모래 잔등이 질펀하게 뻗어나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갈매기 청둥오리 해오라기 물떼새들이 찾아오고, 황새와 검은댕기두루미도 한 발로 서 있다가 돌아가곤 합니다. 이사 오던 첫해 한여름에 저는 아침마다 그 연안바다 모래밭을 혼자서 땀 뻘뻘 흘리면서 청소했습니다. 그 모래밭에는 밀려온 쓰레기들이 해전으로 죽어 늘어진 시체들처럼 볼썽사납게 쌓여 있곤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가끔 울력을 하여 그것들을 치우곤 하지만, 다음날 곧바로 불어댄 동남풍으로 인해 쓰레기들은 다시 쌓이곤 합니다. 스티로폼 부표, 헌 그물자락, 페트병, 통발들, 수초들…. 그것들을 제가 혼자서 하루아침에 십m씩 치우곤 한 것입니다. 저혼자서 그 바다를 관리하겠다는 영웅심에서 그런 것도 아니고, 저의 환경 사랑 의지를 만방에 선전하려는 만용이나 허세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유배살이를 자청하고, 스스로를 토굴 속에 가둔 저의 고독과 슬픔과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제 가슴속에 ‘이것은 내 바다’라는 확신을 심고 싶었습니다. 그 바다 한복판에 저의 뿌리를 내리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비지땀 흘리며 하는 저의 도로(徒勞) 같은 몸짓이 보기에 민망했던지 당시의 김면장이 그해 가을부터 공익 요원들을 투입하였고, 이후로 그 바다는 계속 깨끗함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환갑을 두 해 앞둔 때였습니다. 저는 소설 쓰는 틈틈이 저와, 바다와 씨름하며 사는 마을 사람들과 거기에 서식하는 물고기 물새 바람 해 달 별 이슬을 시편에 담았습니다. 그것들을 문학과 지성사에서 세 번째 시집 ‘노을 아래 파도를 줍다’로 펴내 주었습니다. 그 시들은, 토굴에 저를 가두고 기르는 제 자신과 바닷가를 산책할 때마다 저를 늘 환희심에 젖어들게 하는 마을 사람들의 삶과 앞바다와 하늘에 바치는 헌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젊은 조면장이 그 여닫이 연안 모래 언덕 위쪽의 아스팔트길 가장자리 숲에 600m쯤의 소로를 내고 20m 간격으로 저의 시비 30기를 세워 놓았습니다. 저의 시와 짧은 동화와 소설 한 대목들을 새긴 그 비석들은 각기 7t 무게의 바위와 보조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야 할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저의 육중한 흔적들을 그 연안바다 모래 언덕길에 놓아두도록 허락한 것은 저의 허망하고 미련스러운 탐욕이 아닌지, 그 탐욕으로 인해서 나라는 인간이 하나의 상업적인 싸구려가 되고 있지 않은지, 자못 두렵고 부끄럽습니다. 그것을 두려워하고 면목 없어하는 저에게 젊은 면장은 말을 합니다.“이것은 억지로 하고자 하여 된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한 발짝 한 몸짓의 일상이 이 연안 바다 모래밭의 전설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소설가
  • [길섶에서] 어머니와의 여행/염주영 논설실장

    노모를 모시고 안면도에 다녀 왔다. 안면도 여행은 봄철이 제격이지만 가을에도 운치가 있다. 군데군데 하늘을 향해 수십m나 치솟은 소나무숲들이 일품이다. 그 사이로 난 아스팔트 포장길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황금빛 들녘 위로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며 30여분쯤 달려 섬의 남쪽 끝 자그마한 어촌 마을에 당도했다. 마을 어귀에서 운 좋게도 창문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예쁜 오각형 모양의 펜션을 잡았다. 여장을 푸니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다. 토속 내음이 물씬한 누룽지 동동주를 어머니와 나눠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섬 이름처럼 달콤한 안면(安眠)을 즐겼다. 이튿날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지만 일출을 보지는 못했다. 이 지점이 서해안에서 몇 안되는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지만 수평선이 안개에 가려 불그스레한 기운만 감돌았다. 안면도는 서해안 태안반도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길쭉한 섬. 전혀 낯선 곳이지만 어머니 품에 안긴 것처럼 포근하다. 어머니와 여행할 때면 이런 느낌이 좋다. 염주영 논설실장 yeomjs@seoul.co.kr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2) 용인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2) 용인길

    충북 음성군 생극면을 지난 영남대로는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가량이 살고 있는 경기도로 접어든다. 종착지인 서울이 얼마 남지 않아 행인들의 발걸음을 재촉했음 직하다. 교통의 요지인 용인으로 가는 길목인 옛길은 경기도 안성에 첫발을 내디딘다. 경기도 관문인 죽산에서 시작되지만 17번 국도와 맞물려 옛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도로가 직진화되면서 군데군데 남은 길은 인근 마을의 진입로로 사용되고 있다. ●서울 가는 첫길 죽산 죽산에 들어서면서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당간지주와 미륵입상이다. 그나마 옛길의 흔적을 알려준다. 미륵입상 앞에는 향토유적 제20호인 오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다. 도로 서편으로 나있는 좁고 긴 콘크리트 도로는 지금은 사라진 안성선 철도 노반이 있던 자리다. 경부선 천안역에서 출발해 안성평야를 지나 안성에 이르는 철도였다.1927년 9월15일 이천시 장호원까지 개통되었으나 태평양전쟁으로 1944년 11월1일 안성∼장호원이 철거되고 1989년 1월 도로교통의 발전으로 폐선되었다. 정양화 용인시 전통문화연구소장은 “철로가 전쟁물자로 공급되는 바람에 철거됐다.”고 전했다. 500여m쯤 오르면 오른쪽으로 비석거리 마을이다. 옛 과거길이자 관리가 다니던 관도임을 증명하듯 비석들이 즐비하게 서있다. 조선시대 지방 관리들은 자신들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 재임기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영남대로에 공덕비를 세웠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의 공덕비도 섞여 있다. 비석거리를 지나면 말을 바꾸어 타던 분행역터다. 지금은 분행마을이다. 청미천을 넘은 옛길은 17번 국도를 따라 10여㎞를 내달아 용인시 백암면에 다다른다. 국도가 옛길을 덮어 자취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나마 자투리 옛길은 좌항초등학교 쪽으로 접아들면서 잠시 국도와 이별한다. 좌찬역이 있던 좌전마을이다.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은 양옆이 무성한 잡초로 덮여 있다. 동네 한가운데 마을의 입구를 표시하던 비석이 서있었다는 이문(里門)터가 있다. 지금은 매몰돼 초가집 한 채가 덩그러니 자리잡았다. 국도와 다시 연결되는 길목이 좌찬고개다. 이 고개는 박포라는 장수가 정도전의 난 때 이방원을 도와 공을 세웠으나 그 대가가 보잘 것 없다고 비난하다 귀양을 온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박포의 벼슬이 좌찬성이고 귀양지가 좌항리라서 좌찬현이라 불렸다고 한다. 고개는 완만하지만 걸어서 넘기가 쉽지 않다. 좌전마을 뒤편에는 밤나무 5000여그루가 들어선 농원이 있다. ●수탈용 수여선 아스라히 국도 건너 남아있는 옛길에는 의병장 임경재의 비석과 석상이 자리잡았다. 양지 인터체인지를 지난 영남대로는 42번 국도와 만난다. 폐도화되다시피 한 길 옆으로 수인선과 함께 우리나라 첫 협괘열차가 운행되었던 수여선 철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지금은 농로지만 직선으로 곧게 뻗은 것이 철로였음을 짐작케 한다. 일제시대 때 사설철도회사인 ‘조선경동철도’에서 여객열차와 화물열차를 운영하던 것으로 이천쌀과 소금을 강탈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수탈의 현장이다.1930년 개통해 삼박골과 김량천교를 건너 용인으로 들어갔던 이 열차는 1972년 적자운영으로 모습을 감췄다. 인근 양지천에는 일제시대부터 최근에 새로 놓은 다리까지 3개의 교각이 나란이 버티고 있는 일명 3세대 다리가 있어 세월의 흐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다리의 변천사’를 볼 수 있는 실물 박물관인 셈이다. 여기서부터 옛길은 용인을 포함한 수도권의 대규모 택지개발붐에 밀려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인근에 동백지구와 구갈 2·3지구를 포함한 크고 작은 아파트단지가 빼곡히 들어찼다.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에 나타나 있는 영남대로와 지금의 지도를 비교하면서 옛길을 회상하며 대로변을 걷는 모양새다. 그나마 남아있었다던 용인시 처인구청 인근 옛길은 소멸됐고 번잡한 시내 중심가 도로들로 자리메움했다. ●산천개벽의 상징 용인시청 국도를 따라 3㎞가량 지나면 오른쪽으로 기초자치단체의 청사로는 최대규모로 알려진 용인시 행정타운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을 지나 옛길은 잠시 국도 신세를 면한다. 멱조고개부터 어정리를 지나 판교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최근 입주를 시작한 동백지구 연결로로 사용되는 데다 대규모 어정가구단지가 자리잡아 옛길의 정취는 온데간데없다. 대부분 아스팔트로 포장됐다. 길이야 어찌됐든 멱조고개(일명 메주고개)는 나름대로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옛날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부역 때문에 집을 비우게 되었고 시아버지가 대신 나무를 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돌아올 때면 아이를 업고 고갯마루에서 기다렸는데 어느 날 밤이 깊어도 오지 않는 시아버지가 걱정되어 찾아나서다가 길을 잃었다. 한참을 헤매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혹시나 하여 달려갔더니 그곳에는 시아버지가 배고픈 호랑이를 만나 목숨을 내놓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이를 본 며느리는 호랑이에게 배가 고프다면 내 아이라도 줄 터이니 시아버님을 다치게 하지 말라며 아이를 던져주자 호랑이는 아이를 물고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정신을 차린 시아버지가 자신은 늙었기에 죽어도 한이 없을 텐데 어찌하여 어린 손자를 죽게 했느냐고 꾸짖자, 며느리는 아이는 다시 낳을 수 있으나 부모는 어찌 다시 모실 수 있겠느냐며 모셔왔다고 한다. 멱조고개는 이렇듯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사연과 함께 ‘할아버지를 찾아 넘던 고개’라는 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경찰대학 앞을 지나지만 이 길이 영남대로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없다. 그나마 옛 정취를 느끼게 하는 것이 용인 향교이다. 그렇지만 이 향교도 원래는 구성면 마북리에 있었던 것을 이전·복원한 것으로 6·25때 소실된 후 남아있던 부재를 사용해 다시 지은 것이다. 구성동사무소를 지나면 연원마을이다. 이곳도 온통 아파트단지다. 옛날에는 마을 이름었지만 지금은 아파트단지 이름으로 변했다. 바로 옆마을 새터말에는 장승이 있지만 길목에는 월마트가 자리잡아 영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서 옛길은 풍덕천으로 이어진다. 곧바로 수지구청이다.23번 국도를 따라 간다. 풍덕천에서 옛길은 공사가 한창인 판교택지개발지구로 이어져 접근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흔적이 남아있던 낙생초등학교 옆 너더리 마을도 얼마 전까지 부동산중개업소로 가득 찼으나 지금은 개발로 모두 철거돼 사진으로만 남게 됐다. 이어 영남대로는 청계산을 거쳐 종착지인 서울로 치닫는다. 글 사진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판교의 유래 개발이 한창인 판교(板橋)는 옛 명칭이 널다리였다. 마을 이름을 ‘널다리’라고 부르다가 ‘너다리’로, 다시 한자표기인 판교동으로 굳었다.‘널다리’란 이름은 마을 앞을 흐르는 운중천에 넓은 판자로 다리를 놓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해석이 분분하다. 정양화 용인시 전통문화연구소장은 다리의 경우 들(坪)의 뜻을 가지는 이름으로 교각을 나타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 말대로라면 ‘널다리’의 경우 넓은 들판을 가리키는 의미로 해석돼 판교의 명칭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실제로 판교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된 것은 정씨의 해석대로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수 있는 천혜의 ‘넓은 들판’이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최근 자신이 연구한 자료에서 이같은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이 연구자료에 따르면 용인시 원삼면 맹리와 독성리에 각각 위치한 느다리와 쪽다리는 마을이 아닌 들(坪)을 가리키는 이름인데 ‘-다리‘가 들어가기 때문에 흔히 개울에 놓여있는 다리(橋梁)로 생각하기 쉽지만 기흥구의 잔다리와 이웃하고 있는 백암면의 홈다리와 같은 뜻을 가지는 전형적인 땅이름이라는 것이다. 즉 잔다리와 홈다리는 다리(교량)가 아니라 ‘작고 좁은 들(坪)’의 뜻을 가지는 이름이며 느다리와 쪽다리도 같은 발상에서 붙은 이름이라는 것. 잔다리는 현재 마을을 이루고 있고 홈다리도 몇 집이 살고 있지만 느다리와 쪽다리는 그저 들판으로 논이 주를 이루고 있다. 느다리는 구한말 ‘지명지’에 늘다리라고 나오고 있으며 판교평(板橋坪)이라고 옮기고 있다. 또한 쪽다리는 편교평(片橋坪)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늘다리의 경우 ‘널+다리’라고 생각해 널빤지의 뜻을 가진 판(板)자를 쓰고 다리는 교량으로 생각하여 다리의 의미를 지닌 교(橋)자를 사용한 것으로 편교도 조각의 뜻을 가진 편(片)자와 교(橋)를 사용했으니 판교나 편교나 소리나는 발음의 뜻을 임의로 취하여 붙인 표기라는 설명이다. 느다리는 맹골 마을에서 발원하여 미평리의 청미천으로 흘러드는 작은 개울이 있어서 다리(橋)를 놓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쪽다리는 작은 도랑이 전부이기 때문에 굳이 다리를 놓을 필요는 없어 위의 들(坪)로 옮기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판교 시가지 명칭은 판평(板坪)으로 봐야 한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이경형칼럼] 객석 모놀로그

    [이경형칼럼] 객석 모놀로그

    미국 극작가 이브 엔슬러 원작의 ‘버자이너 모놀로그(Virgina Monologues)’가 서울 대학로 한 소극장에서 공연중이다. 평소 입에 담기 어려운 ‘여성 성기’의 금지된 언어들이 도발적으로 쏟아지면서 객석은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맛본다.“이게 음식이야, 늘 먹고 싶다고 말하게.”라는 대사에서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출산의 숭고함을 묘사하는 ‘나 거기 있었다’에서는 장내가 숙연해지기도 한다. 최근 국정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객석에서 절로 짜증과 탄식의 독백이 터져 나온다. 헌법재판소장 문제도 그렇다. 눈만 뜨면 법조문만 캐는 그 많은 율사들, 청와대 비서진 등 그 많은 검증기관들, 입법 활동으로 세비 받는 여야 국회의원들 모두가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는 헌법재판소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현직 재판관이 소장 후보로 추천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또 지난 해부터 소장뿐 아니라 재판관도 청문회를 거치도록 절차가 바뀌었다. 이런 변화된 상황에서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에 대비하는 제대로 된 검토 작업이 청와대, 국회, 헌법재판소 할 것 없이 이뤄져야 했다.‘재판관 중에서 임명한다.’(헌법 제111조4항)는 조항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3명의 헌법재판소장은 ‘재판관이 아닌 자’중에서 임명되어 왔다. 대통령이 헌재소장으로 임명해서 재판관직을 겸하게 하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임기 6년에 3년여를 지낸 전효숙 재판관을 임기 6년을 새로 시작하는 재판소장으로 임명하려면, 임기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더라도 ‘사퇴 후 새로운 지명’이라는 편의적 선택을 하기 전에 더 세심한 검토가 있어야 했다. 차기 정권의 임기까지 ‘코드 재판소장’이 헌법 해석의 최고 기관장이 되기에 더욱 그랬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당시 전 재판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에게서 일단 사퇴를 한 뒤, 임명 절차를 밟는다는 통보를 받고 왜 얼른 사표를 냈으며, 좀 더 사려깊은 대응을 할 수 없었던가 하는 대목이다. 과거 권위주의정권 시절처럼 청와대가 내정만 하면 일사천리로 끝나는 시대가 아니지 않는가. 9·15 한·미정상회담을 전후해 대북제재를 둘러싼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주미대사와 청와대가 엇박자를 놓은 것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사실 주요 외교 현안에 관해서는 일선 담당 과장에서부터 장관까지 똑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정상이다. 대사도 본국 정부 훈령에 따라 어휘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선택해야 한다. 이태식 주미대사는 “노 대통령이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 조사를 조기에 종결해줄 것을 미 재무장관에게 요청했다.”고 밝힌 반면, 청와대는 이를 부인했다. 주미대사는 대미외교의 야전사령관이 아닌가. 이런 망신스러운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 결국 청와대 부연 설명에 주미대사관이 꼬리를 내려 일단락되었지만 뒷맛은 영 개운치가 않다. 공정거래위 공무원들의 ‘민간근무 휴직제도’가 그들에게 부당하게 높은 수입을 보장해 주는 빨대로 변질한 것은 또 뭔가. 민·관의 이해 증진과 상호 발전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된 돈맛과 봐주기의 야합을 보는 관객은 목구멍까지 욕이 나올 지경이다. 객석의 독백이 아스팔트 위의 함성으로 가게 해서는 안 된다. 공직자들이 좀 더 지혜롭고 치밀하고 치열한 프로 정신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인가. 본사 고문 khlee@seoul.co.kr
  • [본지 정은주기자 ‘차없는 날’ 참가기] 1시간 달리자 매연에 목 ‘컬컬’

    [본지 정은주기자 ‘차없는 날’ 참가기] 1시간 달리자 매연에 목 ‘컬컬’

    ‘자전거로 서울 도심을 달린다.’ 자전거 초보운전자가 꿈도 꿀 수 없었던 일이 벌어졌다.22일 서울신문이 후원하고 서울시 등이 주최한 ‘2006 차 없는 날’ 행사에서다. 자전거 동호회 회원과 시민 1000여명이 올림픽공원에서 출발해 천호사거리∼어린이대공원∼동대문구청∼종로를 거쳐 서울광장에 도착했다. 낮 12시30분 출발지인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옷과 헬멧을 맞춰 입은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이 ‘차 없는 날(Car Free Day)’ ‘자전거 타는 나라 건강한 나라’라고 적힌 깃발을 나부끼며 출발점에 섰다. 큰 도로에서 난생 처음 자전거를 타는 것이라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자전거의 용감한 행진에 차량들이 주춤거렸고, 정체 현상이 금세 일어났다. 차량들이 신경질적으로 ‘빵빵’거리고, 일부 운전자는 창문을 내리고 삿대질을 했다. 자전거 행렬 사이에 거리가 생기면 무섭게 끼어들었다. 오토바이는 자전거를 장애물로 여기듯 지그재그로 운전했다. 부딪힐 것 같은 섬뜩한 순간이 지나갔다. 교통경찰관 5∼6명이 수신호를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때 택시 4∼5대가 어디선가 나타났다.20여명이 내리더니 교차로마다 서서 자전거가 안전하게 지나도록 도와 줬다.‘녹색강동연대’ ‘21녹색환경네트워크’ 등 환경단체 회원들이 교통정리 자원봉사에 나선 것이다. 자전거로 도심을 달리는 기분은 상상 이상이었다. 아스팔트가 이불처럼 폭신하고 귓가를 스치는 가을바람이 노랫소리처럼 느껴졌다. 행복도 잠시, 시간이 지날수록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종로에 들어서자 더욱 심했다. 차량과 신호등이 많아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그때마다 매연으로 목욕을 했다. 하늘빛도, 시야도 뿌옇기만 했다. 1시간40분의 행진을 끝내고 연거푸 생수 2병을 들이키며 답답한 속을 달랬다. 서울시는 이날 출근시간(오전 8∼9시)교통량을 조사해 보니 지난 주보다 7.4% 줄었다고 밝혔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산이좋아 산으로] 강화 마니산

    [산이좋아 산으로] 강화 마니산

    한반도 최북단의 백두산과 최남단의 한라산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강화 마니산(469m). 단군왕검이 제사를 올리던 참성단을 품고 있는 마니산은 그렇게 한반도의 중심이 된다. 화도면 상방리 마니산국민관광지에서는 917개의 계단길로 겨우 1시간도 채 안 걸려 참성단에 닿을 수 있어 언제나 남녀노소의 발길이 북적인다. 쉽게 내어주는 길은 그만큼 느낌도 짧은 법. 들끓는 인파에 섞이지 않고 에둘러 가는 길을 택하는 것이 좋다. 산 들머리를 마니산국민관광지 대신 한적한 정수사 입구로 삼은 이유다. 서울에서 강화행 버스를 타고, 다시 터미널에서 한참을 기다려 시내버스를 달리는 동안에도 하늘은 내내 흐릿했다. 함허동천을 지나 정수사 입구에 닿았을 때 먼지를 일으키며 버스가 떠난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진 우리 앞에 잘 포장된 아스팔트길이 놓여 있다. 얼마간 오르막을 걷다 뒤돌아보니 멀찍이 바다와 하늘이 맞닿고,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세를 낮추니 길가 이름 모를 풀꽃들이 반가이 눈을 맞춰온다. 전등사, 석모도 보문사와 함께 강화 3대 사찰인 정수사를 살짝 비껴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를 짚어간다. 와르르 무너진 듯 크고 작은 돌무더기가 듬성듬성 박힌 오르막이 꽤나 가파르다. 소나무와 참나무의 적절한 조화 사이 살짝 열린 하늘, 잠시 오솔길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덩치 큰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풀썩 바위에 올라 정상까지 쭉 뻗은 암릉 초입에 서니 어느새 먹빛 구름이 말끔히 걷히고 동막리 장전마을 쪽으로 바다가 퍼런 속살을 드러낸다. 섬 산행의 묘미다. 산길은 이제 바윗길이 된다. 오르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바다는 끝 간 데 없이 아득히 물러나고, 온몸으로 태양을 품은 갯벌은 캔버스 위 덜 마른 유화 같다. 소사나무 군락을 지나 여전히 이어지는 바윗길. 암릉은 오랜 세월 견고하게 쌓은 성곽처럼 산을 남북으로 갈라놓고 있다. 바위와 바위를 이어 건너는 사이, 지도에 정상이라 표시된 지점에 이르렀지만 정상 표지석이나 이정표는 없다. 지도와는 별개로 사람들이나 강화군에서는 참성단을 정상으로 여겨 제단 옆 헬기장에 정상 표지석을 세웠다고 한다. 지도상 정상에서 헬기장까지는 1.2㎞.20분 정도 지나 숲속으로 살짝 내려선 곳에서 참성단 중수비를 만나고 계속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바윗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실질적인 정상, 헬기장에 이르게 된다.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배경삼아 서 있는 단군왕검의 제단 참성단은 그저 바라보고 우러러볼 뿐 들어갈 수는 없다. 하산은 참성단을 살짝 돌아 917개의 계단길로 곧바로 내려가면 30분 만에 마리산기도원에 닿고, 동쪽 능선을 따라 좀 더 가서 단군로로 내려가면 1시간30분쯤 걸린다. # 여행정보 강화에서의 먹을거리는 뭐니뭐니해도 신선한 바다회. 선수포구어판장(032-937-8702)에서 지금 전어 굽는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또한 마니산관광단지 입구 단골식당(032-937-1131)의 꽁보리 산채비빔밥도 유명하다. 글 정수정 사진 남영호(월간 MOUNTAIN 기자) www.emountain.co.kr
  • [OUR STORY] CAR~섹시 레이싱 걸

    [OUR STORY] CAR~섹시 레이싱 걸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인기 키워드 중 하나. 바로 ‘레이싱걸’이다. 무한질주의 자동차 경주장, 신차 발표 등 각종 모터쇼에서도 ‘존재의 이유’를 한껏 뽐내며 없어서는 안될 ‘자동차의 꽃’으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오랫동안 붙잡는다. 소위 ‘쭉쭉빵빵’한 몸매와 아찔한 옷차림, 상큼한 미소로 네티즌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이들은 디지털 카메라와 인터넷 시대를 맞아 새로운 엔터테이너로 당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울러 누구나 ‘찍’으면 그림이 되는 레이싱걸 사진이 인터넷에 오르내리며 많은 팬들까지 확보하고 있는 것. 특히 방송과 연예계에 진출하는 ‘스타’들도 많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바일 화보에도 단골처럼 등장할 만큼 우리곁에 친숙해지고 있다. 이쯤되면 ‘그녀들의 세상 속’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동차 경기가 열린 지난 일요일에 밀착취재했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여자의 변신은 무죄 지난 20일 아침 8시, 자동차 경주가 열리는 서울 ‘용인 스피드웨이’. 경기에 나갈 차들이 스폰서 스티커를 붙이고 경기 등록을 하러 왔다갔다 분주하다. 이때였다. 주차장 쪽에서 눈에 ‘확’띄는 여인들이 아스팔트 위를 사뿐사뿐 걸어온다. 화장도 없는 얼굴에 수수한 청바지, 티셔츠를 걸치고 있어도 ‘레이싱걸’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스피드웨이에 도착해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여자 화장실’. 볼일이 급해서일까? 아니다.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 메이크업실이 바로 ‘화장실’이다.‘백조’같이 곱고 섹시한 미녀들의 메이크업 장소가 화장실이란 점이 다소 의외였다. ‘조잘조잘 재잘재잘’ 무슨 할 이야기들이 그렇게 많은지 1시간여 수다떨며 준비를 마친 미녀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쌩얼’의 수수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화려한 화장과 짧디짧은 치마, 예쁜 귀고리 등으로 단장한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다. # 자동차 레이싱의 꽃 오전 10시. 경기가 시작되자 미녀들도 자동차가 뿜어내는 굉음에 흥분을 하기 시작한다. 바로 팬들을 위한 서비스인 ‘포토타임’에 나섰다. 아주 짧은 상의에 초미니스커트를 입은, 아니 살짝 걸쳤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미녀들의 모습을 찍기 위한 카메라 셔터소리가 요란해진다. 어디 숨어 있다가 나타났는지 자동차 경주 관람은 뒷전이고 그들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팬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주미씨 여기 좀 봐주세요.”라고 하자 벽계수까지 녹였다는 황진이의 미소(?)를 살짝 지어 보인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돌리며 깜찍한 표정을 짓자 어김없이 모든 카메라가 그녀를 향한다.170㎝가 넘는 키에 뒷굽 9㎝짜리 하이힐을 신은 미녀들이 동시에 일어섰다. 쭉 빠진 다리, 잘록한 허리, 풍만한 가슴 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옷을 걸친 그녀들의 몸짓에 따라 카메라들이 이리저리 춤을 춘다. 그야말로 자동차 경주의 꽃이었다. # 우린 백조예요 174㎝의 키에 32-23-35의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하지만 애환도 적지 않다.“비록 저희들이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하는 정주미(25·이하 한국타이어 소속)씨. 한여름의 폭염에다 아스팔트의 지열까지 더하면 숨쉬기조차 힘든 상황임에도 계속 밝은 웃음을 지어야 한다. 차가운 날씨 때에도 마찬가지. 이은미(21)씨는 “감기 때문에 콧물이 나고 머리가 아파서 약을 먹고 나섰는데 팬들은 모르잖아요. 아무 일 없듯 미소짓고 그들과 대화를 하느라고 힘든 때가 많아요.”라고 토로한다. 또 김하나(25)씨도 “저흰 비록 연예인은 아니지만 조금만 자기관리를 소홀히 하면 금방 티가 나요.”라고 하면서 건강 관리에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금방 지장을 초래한다고 고백했다. 극성팬들 때문에 속상한 경우도 더러 있다. 모기에 물려 보기 싫거나, 허리나 배가 살짝 접힌 곳을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려 난감하게 만든다. 하지만 하나씨는 “그래도 저희를 사랑해 주는 팬들이 있어서 행복해요. 초콜릿이나 영양제뿐 아니라 자신이 직접 만든 십자수 쿠션 등을 선물하며 ‘힘내세요’라는 한마디에 보람을 느끼지요.”라며 활짝 웃는다. 이들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포토타임, 팬서비스, 미팅, 다양한 이벤트 진행과 우산을 쓰고 레이서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는 일 등을 했다. 마지막으로 시상식이 진행되면 우승자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옆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나면 하루일과가 끝난다. 과거에는 사회적인 시선에 다소 부담을 느꼈지만 요즘은 아니란다.“레이싱걸이란 직업을 전혀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요.”라는 의미있는 얘기를 던지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 이색 레이싱걸 현재 활동중인 전문적인 레이싱걸은 40여명. 하지만 최근들어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보일 만큼 지원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주부 레이싱걸을 비롯해 패션사업가, 연예인 등 다양한 영역으로 진출하고 있다. ■ 왕언니 강민정 레이싱걸의 ‘왕언니’ 강민정(30·R스타즈소속)씨는 요즘 무척이나 바쁜 사람이다.2001년 모터쇼를 통해 레이싱걸이 된 그녀는 2004년 6월에 결혼한 아줌마로 일과 가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쿠즈플러스에서 열린 ‘페라리 599 GTB 피오라노’ 발표회에서 만난 그녀의 모습에선 전혀 ‘아줌마티’가 드러나지 않았다.175㎝의 늘씬한 키에 빨간색의 섹시한 의상이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요. 결혼해서 지난해까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어요. 물론 집안일은 별로 한 것도 없지만 항상 시부모님을 볼 때 마음에 걸렸어요.” 강씨는 당시 광고기획사에 다니던 남자 친구(지금의 남편)가 권유해 레이싱걸 생활을 시작한 케이스. “결혼할 때 어른들에게 허락받기가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의 직업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보여드렸지요. 남편의 지원사격도 있었지만요.” 지금은 오히려 시부모님이 며느리 사진을 걸어놓을 정도로 열성팬이 됐다. 전시장이나 경기장에서 보여준 고운 자태와는 달리 집에서는 팔 걷어붙이고 빨래·청소하는 억척 아줌마로 변신한다. ■ 사장님 정란선 이렇게 앳되고 예쁜 사장님이 또 있을까. 키 169㎝ 몸무게 49㎏, 까만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TV에서 보았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하 맞다. 정란선(27)씨다. 한때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게 했던 레이싱걸이다. 서울 강남의 조그만 사무실에서 만났다. 정씨는 지난해 5월 레이싱걸을 그만두고 인터넷 패션몰 (RSlook.com)을 열었다. 요즘 주문 들어오는 물건을 포장·배송하는 일로 무척이나 바쁘단다. “제가 원래 옷에 대한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쇼핑몰을 하나 열었는데 팬들이 알고 응원을 많이 해주셔서 지금 너무 행복해요.” 패션 디자이너를 하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옷을 고르고 입는 안목이 남다르다. 파는 옷은 ‘빈티지’풍이 주류를 이룬다.‘로맨틱 카고바지’는 하루에 50여장씩 팔려 나갈 정도로 인기를 끈다. 자신이 직접 모델도 하고 사진도 찍어 운영비를 최대한 아껴 약간의 흑자를 보고 있단다. 또한 얼마전에는 오픈 마켓인 엠플(www.mple.com)에 입점했다. “레이싱걸을 할 때도 최고가 되려고 무척 노력했듯이 새로운 분야에서도 열심히 해서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 레이싱걸 1호 사장답게 반드시 정란선의 독자 브랜드를 갖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 A급 1년 전속금 300만~500만원 레이싱걸 전문 에이전시인 GL P&P의 이혜진(29)실장은 레이싱걸 입문과정에 대해 “보통 전문 에이전시에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보내는 고전적인 방법으로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정된 지망생은 심층 면접을 통해 자질이 있는지를 꼼꼼히 평가받는다. 주로 가을에 새로운 레이싱걸을 뽑아 이듬해 봄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다음은 그가 말하는 레이싱걸이 갖추어야 할 세가지 조건. 첫째 몸매. 기본적으로 키가 170㎝가 넘어야 하며 일반 모델과는 달리 몸매에 볼륨이 있어야 한다. 둘째 소위 ‘사진빨’을 잘 받아야 한다. 레이싱걸의 주된 일이 사진에 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셋째 ‘말’을 잘해야 한다. 팬들과 지근거리에서 접하는 직업이라 조리있는 표현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런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었다고 해도 레이싱걸로 데뷔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 모터스포츠인 자동차 경주시장은 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체나 레이싱팀에 전속계약을 맺어 활동하고 있는 레이싱걸은 고작 40여명일 정도로 수요 또한 적다. 그래서 대부분 모터쇼 등의 행사에 도우미로 활동한다. 자동차 부품업체나 레이싱팀에 속해 있는 A급 레이싱걸이 받는 1년 전속계약금은 300만∼500만원. 이외에 한번 경기 때마다 20만∼40만원 내외의 수당을 받는다. 레이싱걸을 선호하는 이유는 얼굴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 각종 모터쇼나 전시회에 설 때 ‘몸값’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이싱걸은 부업이고 내레이터 모델이 주업인 경우가 많다.
  • 늦여름 피서지 충북영동 물한계곡

    늦여름 피서지 충북영동 물한계곡

    말복과 입추가 지났건만 아직도 무더위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다. 윤달도 끼어 있어 이달말까지 휴가철이 계속된다.시원한 물소리와 소슬바람이 찾는 ‘도시탈출´은 계속 이어진다. 그렇다면 충북 영동의 물한계곡으로 따나보자. 흰 구름과 깎아지른 절벽에 깊고 푸른 소(沼), 아름다운 물소리, 하늘을 뒤덮은 잣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금방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한다. 또한 바위에 걸터앉아 차분하게 가야금 줄을 튕기는 난계 박연선생의 여유가 가득한 충북 영동의 물한계곡은 마지막 더위를 피하기 ‘딱´이다. 충북 영동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영동 민주지산 늦여름 계곡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한가운데 위치한 충북 영동은 경북 김천과 전북 무주에 걸쳐 있는 삼도봉과 민주지산(岷周之山), 각호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이 즐비하며 그 높고 험한 산이 만들어낸 물한계곡을 품고 있다. 여름 땡볕이 아스팔트를 녹여버릴 기세로 덤벼들지만 물한계곡은 예외이다. 태고적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어이 추워’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 시원함이 가득한 곳 황간에서 물한계곡까지 키 작은 감나무 가로수 길을 따라 달리면 어디서 본 듯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고속철도 교각이 초록빛 들녘을 가로지르는 상촌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자 소백산맥이 추풍령에서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불끈하고 일어선 듯한 해발 1242m의 민주지산의 모습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민주지산은 충청·경상·전라의 삼도가 만나는 전략적 요충지로 1000여년 전 백제와 신라가 서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치렀던 역사의 현장이다. 병풍처럼 늘어선 민주지산과 석기봉·삼도봉·각호산의 크고 작은 수많은 계곡에서 흘러내린 깨끗하고 시원한 물이 하나 둘 합쳐지며 20여㎞에 이르는 깊고 아름다운 물한계곡을 만들었다. 물이 차고 맑기로 소문난 물한계곡은 영동 토박이들이 숨겨놓은 피서지였는데 어느새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8월의 폭염을 피해 도시를 탈출한 차들이 물한계곡과 함께 달리는 도로의 가로수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고 마음의 여유를 찾고 있으며 단풍나무와 잡목이 울창한 터널을 만들어 하늘조차 보이지 않는 계곡엔 마지막 무더위를 피해 한가함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도시는 몇 주째 계속되는 폭염에 몸살을 앓고 있지만 햇살 한 줄기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 계곡엔 서늘한 한기만 흐를 뿐이다. 물도 얼마나 찬지 2분 이상 발을 담그기가 힘들 정도다. 그래도 아이들은 물장구를 치며 ‘깔깔’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조그만 그물로 ‘워워워’하며 산천어, 갈겨니, 피라미 등과 숨바꼭질하는 즐거운 목소리가 깊은 계곡에 메아리친다. 또 계곡 한쪽에는 빨갛게 익은 수박과 노란 참외, 맛난 점심이 둥둥 떠다니고 돗자리를 깔고 앉아 아이들의 재롱을 즐거워하는 어르신들의 밝은 미소가 가득하다. 정말 물한계곡 어디를 둘러보아도 ‘무더위’는 찾을 수 없다. 물한계곡은 꺽지 쉬리 퉁가리 산천어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온갖 이름 모를 새들과 매미가 깊은 계곡에서 한여름 연주회를 갖는 생태계 보고. 푸른 이끼가 가득한 바위 주변의 맑고 투명한 물속의 물고기들은 잘 꾸민 어항을 보고 있는 듯 잊고 지냈던 마음속의 여유가 조용히 찾아든다. # 하늘을 뒤덮은 초록의 물결 물한계곡 피서와 민주지산 산행은 다정한 연인관계. 물한계곡 주차장에서 민주지산이나 삼도봉까지는 왕복 4∼5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다. 입구에 시골 할머니들이 더덕 등 각종 산나물들을 팔고 있으며 민박, 식당 등이 즐비하다. 불과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잠깐 걸었는데 땀이 비 오듯 한다. 하지만 계곡을 따라 등산로에 들어서자 갑자기 ‘에어컨’을 틀어놓은 사무실에 들어 온 것 마냥 시원한 바람이 느껴진다. 역시 때묻지 않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대단했다. 박연 선생이 타는 거문고 소리처럼 ‘콸콸콸’ 때론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참으로 아름답고 시원했다. 민주지산은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가 각축을 벌인 역사의 무대다. 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민주지산의 원래 이름은 백운산(白雲山)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민주지산으로 바뀐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유래에 관계없이 요즘은 ‘백성이 주인인 산’(民主之山)으로도 많이 불린다. 삼도봉과 민주지산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있는 전나무숲까지는 20여분. 미니미골과 음주암골, 쪽새골, 배나무골, 그리고 각호골에서 발원한 계곡물이 수시로 아름다운 소(沼)를 만들고 때로는 등산로를 가로막는다. 이끼 낀 징검다리가 ‘통통’뛰어 건너며 잠시 손이라도 담그면 시원함이 온몸을 전기처럼 타고 흐른다. 초보자들은 평탄하고 완만한 삼도봉 코스를 오르는 게 좋다. 민주지산 코스는 삼도봉 등산로에 비해 훨씬 가파르고 험할 뿐 아니라 등산로가 수시로 사라지기 때문에 자칫하면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다. 하지만 어김없이 눈높이 나뭇가지에 ‘민주산악회’,‘오봉등산회’ 등 붉고 노란 리본이 구세주처럼 나타난다. 물한계곡은 폭만 줄어들 뿐 8부 능선을 오를 때까지 물 흐르는 소리가 메아리친다. 이따금 협곡을 방불케 할 정도로 계곡이 깊어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했었다고 해도 믿을 만한 넓고 깊은 초록빛 소들이 이어진다. 민주지산에서 석기봉을 넘어 삼도봉 능선에는 철따라 철쭉, 진달래, 단풍나무들이 군락을 이루어 등산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약 2시간이며 종주가 가능하다. 드넓은 들국화밭이 펼쳐져 있는 각호골 입구는 만나기 힘든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 흥겨운 가락에 상큼한 와인이 어울릴까 ‘덩덩 덩∼덕쿵’하는 가락과 ‘에에∼이요’라는 우리 소리에는 보통 걸쭉한 막걸리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는 25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난계국악축제’에는 흥겨운 우리 소리와 ‘와인’을 마시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햇볕이 따가운 8월, 충북 영동에서는 포도가 한창이다. 영동지역의 포도는 당도가 높으며 알이 굵고 실해 전국에서 으뜸으로 친다. 와인 제조공장은 국내에서 와인에 대한 제조과정을 한눈에 보고 이해 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와인 공장인 ‘와이너리투어’를 할 수 있는 와인코리아(043-744-3211,www.winekr.co.kr)가 있어 축제의 즐거움을 더한다. 당도가 높은 국산 ‘캠벨얼리’ 포도로 만들어지는 ‘샤토마니’는 영동읍 매천리 일대 지하 토굴 속에서 참나무통에 담겨 숙성된다. 이 토굴은 일제가 탄약저장을 위해 군사용으로 팠지만 사계절 13℃의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 포도주 숙성고로 안성맞춤이다. 와이너리 투어는 포도농가 방문, 포도따기, 와인 숙성창고 및 와인제조공장 견학, 와인 시음 등으로 진행되며, 산지 가격으로 포도 및 와인도 구입할 수 있다. 또한 힙합이나 재즈는 익숙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국악’이란 낯설고 고루한 음악을 쉽고 재미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관악·현악·타악기 체험은 물론이고 8가지 재료에 의한 악기를 만드는 ‘악기공방’(금부, 석부, 사부, 죽부. 포부, 토부, 혁부, 목부)에는 전문가의 시연과 체험을 할 수 있는 별도공간도 있으며 피리를 멋지게 불었던 난계 박연선생을 소재로 한 공연 ‘역사추리극 박연’, 열린 국악무대 등 다양한 국악체험과 포도먹기, 대형포도밟기, 와인만들기 등 재미난 이벤트도 가득하다.(043)740-3224. #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황간나들목에서 빠져나와 매곡을 지나 임산과 하도대교를 지나면 물한계곡이 시작된다. 도마령까지 완전하게 포장이 되어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다. 가족과 함께라면 기차여행을 추천한다. 영동역에서 축제장까지 지척이며 막히는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며 피곤만 쌓이는 자동차여행보다 KTX로 대전역에서 내려 영동역까지 환승하는 열차를 이용하면 좋다. 축제기간에는 KTX를 이용한 패키지 여행상품을 이용하면 더욱 편리하다.(1577-7788) 청정수인 영동계곡에서 만든 ‘우렁쌈밥’이 별미. 쫄깃한 우렁이를 넣고 끓인 담백하고 구수한 된장에 상추, 쑥갓, 배추 등 유기농 야채를 함께 먹는 맛은 영동의 별미. 폭포가든(043-742-1777). 금강변에서 사육한 오리에 각종 한약재를 넣어 특유의 맛과 형을 자랑하는 토방(043-745-5689)의 오리백숙, 민물고기에 인삼 대추를 넣고 끓인 어죽이 맛있는 선희식당(043-745-9450)도 추천할 만한 식당이다. 숙박은 물한계곡 입구에 상촌황토방산장(043-743-9992), 계곡황토민박(043-745-3359) 등 민박이 밀집해 있다.
  • 열대야, 농촌보다 도시에 왜 많이 발생할까

    열대야, 농촌보다 도시에 왜 많이 발생할까

    요즘 밤이 무섭다는 말을 한다. 잠 못 이루는 ‘열대야(熱帶夜)’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루한 장마가 끝나자마자 전국이 폭염에 휩싸이면서 밤에도 뜨거운 열기가 전혀 식을 줄 모른다. 애써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지만, 뒤척이다 이내 일어나기 일쑤다. 열대야 현상은 왜 발생할까. 특히 도심에서 더 흔한 이유는 뭘까. 열대야란 말 그대로 밤에 열대지방 처럼 무덥게 느껴진다는 의미다. 통상 한여름이라도 낮 동안에는 기온이 30도가 넘는 찜통 더위가 지속되다가도 밤이 되면 기온이 내려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열대야가 발생하면 밤 동안의 최저 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다. 열대야는 대개 장마가 끝난 뒤 무더위가 올때 많이 나타난다. 이때쯤이면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로 세력을 확장하게 된다. 때문에 온도가 높고 습기를 많이 품은 공기가 한반도 전역을 덮어 찌는 듯한 더위를 느끼게 된다. 게다가 동해안 등에서는 동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태백산맥을 넘는 동안 기온이 올라가면서 내륙쪽에 뜨거운 공기를 불어 넣는 ‘푄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엘니뇨와 라니냐 현상에 따른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전체적으로 기온이 상승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달궈진 지표면의 열기가 밤에는 잘 식지 않는다는데 있다. 한낮에 강한 열을 받은 지표면은 밤에 복사열을 내뿜는데, 이것이 오염물질이나 주변 지형 또는 건축물 등에 막혀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대기 중에 떠돌기 때문이다. 복사냉각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밤에도 고온현상이 지속되는 일종의 대기역전(정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사막지대에서는 낮 기온이 40도를 넘는데 반해 밤 기온은 추위를 느낄 정도로 떨어지는 것과 정반대라고 이해하면 쉽다. 한적한 농촌보다는 대도시에서 열대야 현상이 더 많이 나타난다. 이는 도시화 현상에 따른 ‘열섬현상(heat island)’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콘크리트 건축물과 아스팔트 구조물로 뒤덮인 대도시는 녹지가 많은 시골 지역에 비해 태양열을 받아 쉽게 달궈진다. 도심에는 자동차가 뿜어내는 배기가스, 큰 빌딩 등에서 나오는 연기, 에어컨에서 나오는 배출열 등 각종 인공열이 많이 발생한다. 이렇게 뜨거워진 공기가 상층부에 다다랐을때, 매연이나 스모그 등 이산화 탄소층에 부딪혀 다시 내려오면서 기온 상승을 돕는다. 또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등 인공 시설물 등은 빛을 흡수하는 효율이 높아 흡수한 빛을 적외선 방사의 형태로 외부로 다시 내보내 대기의 온도를 더욱 높이게 된다. 특히 같은 도시라도 도시 외곽에서 중심부로 갈수록 기온이 더 올라간다. 또 도심이라 하더라도 숲이나 녹지가 발달하지 못한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높고, 구름이 많을 때 밤 기온이 잘 내려가지 않는다. 기상청에 따르면 열섬 현상에 따른 열대야로 대도시와 주변 중소도시, 또는 농촌과의 아침 차이가 최대 6∼7도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도시 내에서 기온이 같은 지점을 선으로 연결시켜 보면 도심에서 시가지 주변으로 향할수록 온도가 낮게 되기 때문에 그 모양이 섬 지형도의 등고선과 비슷한 형태를 띠게 된다. 반면 농촌 등 녹지가 많은 지역은 태양열을 받아도 아스팔트보다 서서히 데워지고 서서히 식기 때문에 열대야 현상이 덜 발생한다. 열대야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동식물의 생태계도 크게 위협을 받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도심에서 밤 늦게까지 매미가 울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렇듯 열대야가 발생하면 잠이 잘 안오게 마련이다. 사람이 잠을 자기에 적절한 온도는 대개 18∼20도로 알려져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 몸밖의 온도가 너무 올라가면 몸 안의 온도 조절 중추가 흥분돼 각성 상태가 된다.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자주 깨게 돼 숙면을 취할 수 없고, 온몸이 뻐근하고 피곤하게 느끼게 된다. 이로 인해 생체 리듬이 깨지면서 낮에는 졸음이 오고 무기력해지는 증상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잠자기 전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해 체온을 떨어뜨리고 육체적인 긴장을 완화해 생체의 리듬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따뜻한 물이나 우유를 마셔 기관지 점막에 수분을 공급하는 것도 잠을 청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태백으로 ‘脫! 열대야’

    태백으로 ‘脫! 열대야’

    콘크리트 도시는 여름의 뜨거운 열기로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아스팔트를 녹여버릴 듯 이글거리는 태양과 무더위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불을 끄고 가만히 누워 있어도 끈적거림과 더위로 잠 못 이루는 열대야…. 이런 도시를 잊고 싶다면 강원도 태백을 권한다. 여름 평균 기온 19℃. 한여름에도 그늘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 ‘어이 서늘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열대야도 없으며 아이들을 괴롭히는 지긋지긋한 모기도 없다.‘오지’인 태백에는 서늘한 기온뿐 아니라 보고 느끼고 즐길 것이 너무 많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야생화의 천국 태백 금대봉 트레킹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은 나무들과 파란 들판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강원도 태백은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2시간 이상을 꼬불꼬불 국도를 달려야 만날 수 있다. 해발 800m 이상의 고원 지대인 태백은 모기가 살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해 한여름 무더위를 피하기에 ‘딱’이다. # 야생화와 나무들의 천국 태백에 들어서는 순간 아름답고 시원하다는 느낌이 확 달려온다. 곳곳에 피어 있는 형형색색의 야생화, 쭉쭉 뻗은 파란 나무들, 산과 산이 이어지는 작은 분지에 시원스레 펼쳐지는 초록의 밭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일상에 찌들었던 몸과 마음이 개운해진다. 이런 ‘눈맛’이 가장 좋은 곳은 금대봉이다. 수십 종의 들꽃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철갈이를 하며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자생 들꽃의 보고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여름 꽃들이 몽우리를 활짝 터트려 반겨준다. 또 형형색색의 얼굴이 바람에 따라 춤추는 풍경은 그야말로 황홀함의 극치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개인 두문동재(해발 1268m)가 출발점인 금대봉 트레킹은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새로 개통된 두문동재 터널 직전에 옛길을 타고 10여분을 오르면 두문동재 정상 휴게소가 나온다. 여기가 출발점이다. 두문동재 정상에서 오른쪽은 함백산이고 왼쪽이 금대봉이다. 산림감시초소 앞의 작은 길을 따라가면 된다. 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들이 많기 때문에 초소에서 간단한 ‘입산신고’를 받는다. 금대봉 가는 길은 등산이라기보다는 산책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산길에 들어서자마자 낯선 이방인을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잠자리’. 계속되는 궂은 날씨 탓인지 흙길에 힘을 잃고 앉아 있던 녀석들이 놀라 후닥닥 날아간다. 어떤 녀석은 어깨에 내려앉고는 움직이질 않는다. 손으로 ‘툭’쳐야 날아간다. 두문동재에서 출발해 5분쯤 걸으면 오른쪽에 높이 5m 정도의 안테나가 서 있다. 이 안테나는 금대봉 트레킹의 중요한 이정표 가운데 하나다. 금대봉으로 가려면 이 안테나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나 있는 능선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나무로 우거진 숲길이다. 등산로 양가에는 어여쁜 꽃들이 반긴다. 수줍은 듯 보라색 머릴 숙이고 있는 잔대, 이제 막 꽃잎을 터뜨리려는 비비추, 하얀 꽃잎이 하늘거리는 개망초 등이 모여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눈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다 머리를 흔들거리며 재잘거리는 노래에 신바람이 나 걸음도 가벼워진다. 금대봉까지는 20분이면 족하다. 푹신푹신한 흙길을 걸으며 만나는 꽃들과 대화를 나눈다. 능선 길에서 만나는 빨간색의 동기꽃, 나무 아래에서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이질풀. 첫날밤의 설렘에 발그스레해진 새색시 같은 얼굴. 아무 꾸밈이 없는 그 자태가 너무 고와 가던 길을 멈추고 아련한 추억에 빠져본다. 이 꽃 저 꽃에 눈을 맞추다 보니 어느새 금대봉 정상(1418m). 금대봉임을 알리는 작은 표지석 그리고 ‘양강발원봉’이라고 씌어진 나무판자 하나가 박혀 있을 뿐이다. 금대봉을 양강발원봉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금대봉 기슭 황지못에서 시작된 물이 남동쪽으로 낙동강을 이루고 검룡소에서 흘러간 물이 북서쪽으로는 한강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발 아래로 백두대간의 준령들이 펼쳐지는 장쾌함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여기에서 다시 내려가도 좋고 시간이 있다면 분주령을 거쳐 검룡소로 내려서는 약 6㎞ 코스를 택해도 좋다. 일반적으로 3시간이면 넉넉하다. 금대봉에서 오른쪽은 매봉산이고, 왼쪽은 분주령이다. 분주령으로 가는 길에도 색색의 꽃들이 발길을 잡는다. 씹으면 단맛이 난다는 보라색 꿀풀, 핑크빛의 소담스러운 노루오줌, 노란 웃음이 싱그러운 기린초도 예쁘다. 금대봉 정상에서부터 40분쯤 걸어가면 ‘고목나무샘’ 방향으로 가는 길과 우암산 쪽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두 길은 30분쯤 뒤에 만나지만 고목나무샘 쪽으로 가는 편이 좋다. 우암산 능선길은 인적이 드물고 등산로에 풀들이 우거져 자칫 길을 잃기가 쉽다. 우암산 기슭에는 벌개미취와 개망초가 드넓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분주령 코스에서 이곳만큼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는 곳은 없다. 우암산 기슭에서부터 분주령까지는 약 2.5㎞로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이제껏 걸어왔던 길과 마찬가지로 갖가지 야생화들이 웃고 떠들며 반겨준다. 분주령은 200평 남짓한 작은 개활지로 아담하고 아늑하다. 분주령에서 내리막길로 2㎞쯤 가면 트레킹의 종착역인 검룡소가 나온다. 주의할 점은 검룡소에는 대중교통 수단이 없다. 택시나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곳까지 1시간 남짓 걸어가야 한다. # 여기도 끝내줘요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검룡소는 태백에 갔다면 꼭 한번 들러야 할 곳. 검룡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0여분 동안 계곡 따라 걸었다. 검룡소에서 흘려 내린 물이라서일까. 유난히 맑고 투명했다. 이마에 약간의 땀이 송골송골 맺힐 무렵 이정표를 보고 계곡을 건넜다. 갑자기 펼쳐지는 낙엽송의 쭉쭉 뻗은 자태와 싱그러운 나무 내음에 가슴이 탁 트인다. 무더운 태양도 사라지고 오직 나무와 풀들만이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나무터널이다. 정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신선한 공기이다. 나무터널을 빠져나가자 검룡소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위쪽 석회암 바위에 오르자 물이 솟아오르는 조그만 소(沼)가 보인다. 바로 여기가 한강의 발원지라는 검룡소.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 흐른 물줄기가 만든 물결 무늬를 따라 흡사 용틀임을 하는 것처럼 ‘콸콸콸’ 소리를 내며 흐른다. 너무 웅장하고 아름답다. 아니 신비롭다. 넓이 2m 정도의 조그만 소에서 하루에 2000t이 넘는 물이 솟아오른다니 자연의 경이로움에 고개가 숙여진다. 태백 시내 중심에 있는 낙동강의 발원지로 하루에 5000t이 넘는 물이 솟아오르는 황지연못, 강물이 큰산을 뚫고 지나가며 석문을 만들고 깊은 소를 이루었다고 이름 붙여진 천연기념물 417호 구문소 등을 빼놓으면 안 된다. # 입으로 찾은 태백의 맛 태백은 한우고기로 유명하다. 워낙 오지다 보니 농가에서 키워 고기 맛이 일품이다. 푸른 초원에서 방목으로 자라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다. 그 중에서 태백 시내에 있는 충남실비식당(033-552-5074)이 유명하다. 주인이 직접 태백에서 자란 한우 고기를 적당히 숙성시켜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끝내준다. 또한 후식으로 나오는 국수는 면발이 쫄깃하며 개운한 국물맛이 좋다. 등심 1인분에 2만 2000원, 국수 2000원. 또 태백에는 닭갈비가 독특하다. 보통 닭갈비 하면 춘천을 떠올리지만 태백에도 그들만의 맛있는 닭갈비가 있다. 태백 닭갈비는 춘천식처럼 고기와 야채를 기름에 볶는 것이 아니고 소의 각종 잡뼈로 우려낸 육수를 자작자작하게 부어 조린다. 고추장 양념과 고구마 등 야채와 닭갈비 등 넣는 재료는 똑같지만 육수를 넣고 조려서인지 담백하고 느끼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소주 한잔과 곁들이면 그야말로 환상적이다.2인분이 기본으로 1만 3000원이다. 태백시내에 여러 닭갈비집이 있지만 승소닭갈비(033-553-0708)가 맛있기로 소문났다. 태백에서 인심이 제일 좋은 고원기사식당(033-553-6462). 보통 찌개가 1인분에 4000원. 정갈하고 깔끔한 밑반찬이 8가지 정도 따라 나온다. 그런데 혼자서 된장찌개를 시켰건만 밥이 두 공기나 나온다. 공깃밥을 추가하지 않아도 무조건 밥을 더 준다. 그냥 할머니의 넉넉한 인심이다. 또한 찌개와 함께 오징어나 제육볶음 요리가 보너스로 나온다. 원래는 두 사람 이상이 식사를 해야 준다지만 애교를 부리면 얻어먹을 수 있다. # 즐길 거리 가득한 강원랜드 태백에 갔다가 시간이 남으면 승용차로 5분여 걸리는 ‘강원랜드’도 가볼 만하다. 물론 카지노를 이용하라는 것은 아니다.2층에 마련된 인공호수에서는 매일 밤 환상적인 분수쇼가 펼쳐진다.‘따라라라∼라라라’ 백조의 호수 등 20여곡의 음악에 맞춰 춤추는 다양한 형태의 물줄기의 묘기, 거기에 여러 색의 조명과 레이저가 더해져 그야말로 환상적인 여름밤을 선사한다. 또한 국내에서 사용된 적이 없는 최신의 조명기술들을 갖춘 루미나리에가 밤마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25만개의 전구가 만든 길을 따라 걸으면 연인은 사랑을, 가족은 행복을 가슴 한구석에 간직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이밖에 폐석탄 부지에 자리잡은 99m짜리 국내 최고의 인공폭포, 호텔 3층 카사시네마에서 무료로 펼쳐지는 댄스, 마술, 연주 등 어우러지는 버라이어티 쇼도 볼 만하다. 평일엔 저녁 7시, 주말엔 오후 2시, 저녁 7시로 약 1시간 동안 펼쳐진다. 또 강원랜드 지하 1,2층에 자리잡은 테마파크는 4D 입체시네마와 자동차경주, 행글라이더글 8개의 어트렉션(탑승물)과 실내 수영장 등도 있어 아이들과 하루를 지내기에 그만이다.1588-7789,www.kangwonland.com # 여행정보 중앙고속도로 제천나들목을 나와 38번 국도를 타고 영월을 지나 사북, 고한을 거치면 태백에 도착한다.38번 국도가 영월까지는 4차선으로 확장되어 좋지만 그 이후로는 아직도 꼬불꼬불 고갯길이 이어지므로 운전에 주의해야 한다. 숙박시설은 가덕산 훈련장 근처 하늘못펜션(033-553-3997), 황지동에는 대현장여관(033-552-3337)이 있고 강원랜드 근처 고한, 사북 등지에는 모텔이나 민박을 하는 곳이 많다.
  • 눈물 글썽이며 ‘빗물밥’ 끼니

    눈물 글썽이며 ‘빗물밥’ 끼니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상월오개리. 백두대간의 허리를 타고 흘러내린 이름모를 산봉우리의 품에 내려앉은 이 마을은 지난 15일부터 쏟아진 폭우로 날벼락 같은 산사태를 만났다.2박3일간 전화와 전기, 수돗물이 끊겼고 밖으로 통하는 길이 모두 사라져 외부로부터 고립돼 있었다. 17일 낮 12시 진부면사무소를 떠나 자동차로 10분 정도 가자 아스팔트가 무너져 내려 도로가 완전히 끊겼다. 걸어 오르기 시작한 고갯길 곳곳에서는 무너진 옹벽 더미와 쓰러진 나무가 흉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인가 대부분이 흙에 잠겨 지붕만 간신히 보였다. 도로 가드레일은 엿가락처럼 휘었다. 30분쯤 걸어 고개 둘을 넘으니 만만찮은 급류가 나타났다. 발을 디디니 허리춤까지 물이 차오른다. 산골짝 경사를 타고 요동치며 흐르는 빠른 물살은 몸무게 74㎏의 기자를 몇번이나 휘청이게 했다. 흙탕물로 된 바닥은 푹푹 밑으로 꺼져들어갔다. 비슷한 급류 하나를 더 넘어 30분쯤 골짜기 걸음을 재촉하니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50여가구가 사는 상월오개1리 경로당에는 산사태로 집을 잃은 15가구 3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앉아 빗물로 지은 밥을 먹고 있었다. 씻기는 커녕, 옷조차 제대로 여미지 못한 상황. 산사태로 집이 무너져 내려 48시간 동안 묻혀 있던 은모(49·여)씨의 주검을 이날 오전에야 겨우 찾아내서인지 모두의 표정은 진흙빛이었다. 임연홍(48)씨는 “3년전 남편을 보내고 4남매를 힘겹게 키워내더니 결국 저렇게 가고 말 줄 누가 알았겠나. 둘째아들(고2)과 둘째딸(중2)은 이제 누가 돌보느냐.”며 눈물을 글썽였다. 집들은 대부분 흙에 잠겨 있었다. 조종례(77·여)씨는 1시간30분 동안 매몰된 집에 갇혀 있다가 주민들에 의해 겨우 구조됐다.“쾅 하는 소리가 나더니 지붕이 어깨에 턱 내려 앉더라고. 그 순간 ‘죽는구나’하는 생각 밖에 없었지. 이것봐, 온몸이 멍투성이잖아.”매몰돼 다친 김찬성(87)씨 등 3명은 2m가 넘던 급류가 허리까지 내려 앉은 이날 낮에야 병원으로 보낼 수 있었다. 오후 2시쯤 진부농협에서 보낸 라면과 국수 2상자,2ℓ들이 물 18통이 마을에 도착했다. 하지만 차로 50분 거리에 있는 평창군청에서 오전에 보냈다는 구호물자는 도착하지 않았다. 저온저장고 5개에 보관된 감자와 브로콜리, 상추와 냉이버섯 등 애써 키운 농작물은 정전으로 썩어간다. 경로당 LP가스가 다 떨어져 밥을 짓기 위해 인가의 남은 LP가스통을 떼어오는 위험한 모습도 보였다. “라디오를 들으니 평창군 복구가 80%가량 됐다던데 말도 안되는 소리지. 연락줄이 다 끊겨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데.”청년회장 양주환(55)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고개를 하나 더 넘어 30분쯤 걸으니 거문리가 나왔다.100여가구가 사는 거문리에도 산사태로 40여가구 70여명의 이재민들이 거문초등학교에 모여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남오(58)씨는 “만나면 다들 살아 있어 다행이라는 인사를 한다. 구호물자는커녕 다친 사람조차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오후 5시 현재 강원도 평창군에서는 이재민 2900여명, 사망자 7명, 실종자 3명이 발생했다. 진부면 마평리와 거문리 등은 고립이 풀리지 않았다. 진부의용소방대 신락균(48) 부대장은 “고립된 지역과는 연락조차 닿지 않아 사망·실종자가 크게 늘어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평창 특별취재팀
  • [씨줄날줄] 아름다운 길/육철수 논설위원

    인간과 자연을 잘 어울리게 이어주는 끈은 ‘길’이 으뜸이 아닐까 싶다.‘산’과 ‘강’도 친밀하나, 그건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생긴 것들이다. 그러나 길은, 사람이 자연과 어우러져 발자국을 남겨야만 제구실을 하게 된다. 인간의 숨결과 체취가 한번도 스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길은 엄밀히 따져서 없다. 그래서 길은 인간과 자연이 서로 만나 이루어낸 ‘접점’과도 같은 것이다. 인간끼리의 ‘소통’이라는 깊은 의미도 지녔다. 인생이 길에 비유되는 것도 이런 친밀감이 바탕이다. 꼬불꼬불한 길, 울퉁불퉁한 길, 죽 뻗은 신작로는 우리네 인생들과 너무 닮았다. 하지만 좁고 꼬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길에는 인정과 여유, 특히 자연의 정경과 여운이 담겨있다. 이런 길은 유독 인간만 맞아들인다. 따라서 산길, 들길처럼 사는 인생이라고 해서 슬퍼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속도와 경쟁 같은 ‘이물질’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만도 훌륭한 인생이 아닌가. 인공의 길은 멀리 2300년전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엔 길이 침략과 권력의 상징이었다. 로마는 소금운반로를 마찻길로 바꾸어 놓았다. 세계 요로를 연결하는 길을 수십만㎞ 닦았고, 일부 도로에는 아스팔트를 깔고 배수로까지 설계했단다.“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거저 나온 게 아니다. 반면 현대식 도로는 차량이동과 물류운반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당연히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길의 본래 모습이 아니다. 걸어서는 얼씬도 할 수 없고, 터널이다 교량이다 해서 산을 뚫고 강을 가로질렀으니 자연도 상처투성이다. 이런 각박함을 깨달았는지, 최근 건설교통부는 전국의 ‘아름다운 길’ 100곳을 선정했다. 미관·역사성·기능성을 고려했다고 하나, 역시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 바다와 섬을 벗삼은 남해의 창선·삼천포 대교, 가로수가 멋들어지게 울창한 담양의 메타세쿼이아길, 영남 선비들의 땀방울이 맺힌 문경새재,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으뜸인 덕수궁 돌담길 등이 여기에 꼽혔다. 길에는 인생이 있다는데, 아름다운 길에는 ‘아름다운 인생’이 있을 법도 하다. 이번 여름휴가엔 아름다운 길, 아름다운 인생을 찾아 홀가분한 마음으로 길을 떠나보자.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만화인생 40년 허영만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만화인생 40년 허영만

    ‘사이(間)예술’이라고 한다. 익살과 재치로 그 사이를 춤추듯 넘나든다. 마른 나무에 꽃을 피우게 하는 시(詩)적 감동도 담겨 있다. 특유의 과장과 생략으로 경묘(輕妙)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렇다.‘만화’라 한다. 눕거나 엎드리거나, 혹은 떼굴떼굴 구르며 보면 더욱 재미있어진다. 학창시절 한번쯤 안 빠져본 사람이 있을까. 수업시간에 ‘지리부도’로 앞을 가로막고 몰래 보다가 들켜 혼났던 일, 끼니를 건너뛰며 동네 만화가게 들락거리다가 어머니한테 야단맞았던 일, 이에 대한 몰입의 추억은 어른이 돼도 늘 화젯거리의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비트´등 15편 히트작 영화나 드라마로 만화가 허영만(60)씨. 이 시대의 최고 만화가로 인기몰이를 한다. 그 비결이 뭘까. 나이 예순이면 게으름으로, 혹은 쌓은 명성으로 어느 정도 느슨해질 법도 한데 결코 아니다. 젊은이 못지않은 창작열정으로 고삐를 죈다. 또한 굽힐 줄 모르는 치열한 자기관리의 고집과 도전 정신으로 변화무쌍한 대중문화계를 파고들고 있다. 요즘 들어서도 음식만화 ‘식객’은 드라마로 준비 중이고 도박만화 ‘타짜’는 한창 영화촬영 중일 만큼 대중문화의 장르를 여전히 뛰어넘는 주인공이다. 허씨는 올해로 만화계에 입문한 지 꼭 40년을 맞는다. 그동안 ‘비트’‘퇴역전선’‘아스팔트 사나이’ 등 무려 15편의 히트작이 영화 또는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사오정 시리즈를 유행시킨 ‘날아라 슈퍼보드’는 애니메이션으로는 방송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오!한강’은 서울대 학생회 필독서로 선정됐고 ‘태양을 향해 달려라’는 70년대 스포츠만화를 이끌기도 했다. 허씨는 그렇게 시대가 흘러도 대중문화의 한 중심에서 살아왔다. 지난주 서울 강남구 수서역 근처의 작업실에서 허씨를 만났다. 오피스텔 초인종을 눌렀더니 뜻밖에도 큰 개 한마리가 꼬리를 치며 가장 먼저 반긴다. 맹인 안내견같이 생긴 순둥이였다. 개 이름을 물었더니 영국산이어서 ‘처칠’이라고 했다. 허씨는 연재만화의 스케치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 옆자리에는 보조팀 4명이 색깔을 칠하는 등 작업을 돕고 있었다. 사방 벽 책장에는 자료집이 빼곡히 꽂혀 있어 평소의 준비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작업실 옆방으로 자리를 옮겨 허씨와 마주 앉았다. 스포츠형의 짧은 머리여서 그런지 나이가 50대 초반으로 보인다고 하자 그냥 멋쩍게 웃으며 “그런 얘기 종종 들어요.”라고 했다. 먼저 40년 만화인생에 대한 소회를 물었다.“방송 프로그램에 ‘가요 반세기’라는 말이 있잖아요. 벌써 (자신의) 만화 반세기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피력했다. 이어 “한 가지 일만 해왔다는 게 고맙고…, 종이와 연필 들고 다닌 세월이었지요.”라고 했다.(90년이 넘는 우리나라 만화역사의 절반을 차지하는 셈이다.) 그동안 수십 편의 만화를 그렸는데 가장 아끼는 작품이 어떤 것이냐고 했다.“전부 다 소중하지만 그중 ‘망치’‘오!한강’‘각시탈’‘사랑해’‘식객’ 등을 꼽을 수 있겠네요.”라고 대답했다. 문득 만화란 무엇이냐는 우문을 던졌다. 그러자 지체없이 “청량음료지요. 매번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라고 전제한 뒤,“답답할 때 떠나는 것처럼 (갈증을)충족시켜 주기 위해서는 재미와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또한 적절한 생략과 과장이 필요하지요.”라고 설명했다. ●치열한 도전정신으로 대중문화계 우뚝 진도 안 나갈 때는 어떻게 할까.“밤새 낑낑댑니다. 어떨 때는 새벽 두세시에 광화문 네거리에 나가 돌아다니기도 하지요.”라고 했다. 또한 “줄거리 쓸 때가 가장 어려워요.‘식객’인 경우 식욕을 느끼게 해줘야 하거든요. 사진도 많이 찍지요. 도축장의 경우 400장 정도 찍었어요. 연재를 하려면 최소 스토리 60개를 준비한 뒤 시작합니다.”고 했다. 아울러 연재 중에도 강원도나 전라도로 계속 돌아다니며 현장취재를 해야 독자들의 입맛에 맞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철저한 준비와 취재, 각고의 노력이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그의 이름을 지탱해 주는 요인임을 알 수 있었다. 폭력물이니, 무협물이니 하는 대중의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혼자만이, 즉 ‘허영만식’의 독특한 장르를 추구해와 많은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 유혹이 많은 바깥 대중문화에 시선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대중을 이끌고 가는 방식이다. 그는 평소 1등에 연연하지 않는다.‘5위권 안에만 들면 된다. 난 나의 길을 가자.’고 다짐하며 나름대로의 마음 단련을 한다. 그럴 것이 70년대엔 이상무씨,80년대에 이현세씨가 최고였을 때도 자신만의 길을 가면 된다며 묵묵히 자기관리에 열중했다. 요즘 만화계의 현실에 대해 “사회적인 제약도 없어졌는데 오히려 과거보다 분위기가 더 가라앉아 있어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영화나 연극처럼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고 인터넷과의 관계 설정도 필요할 때입니다.”라는 설명이다. 만화가들 또한 발로 뛰면서 취재를 하는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8남매 중 셋째인 그는 어릴 적부터 늘 만화와 가까이 있었다.‘코주부삼국지’ 등 누나와 형이 보던 만화를 즐겨 봤다. 또 사무라이 소설을 자주 읽었다. 초등학교 때에는 남다른 그림솜씨로 공부가 끝나면 학교에 남아 혼자 환경정리를 도맡아 했다. 중학교 때에는 명작 위인전을 많이 접했다. ●‘허영만 사단´ 현재 문하생 10여명 원래 미대에 진학하려고 했으나 부친의 멸치사업 실패로 인해 포기하고 고향인 여수를 떠나 서울로 상경, 만화에 입문한다. 이때가 66년 1월. 이후 박평일·이향원 등의 문하를 거쳐 74년 ‘소년한국일보’ 신인공모에 ‘집을 찾아서’가 당선되면서 정식 만화가로 홀로서기를 한다. 당시 심사를 맡았던 신동우 화백은 “우리 시대는 이제 갔다.”고 할 정도로 허영만의 천부적인 감각과 소질에 찬사를 보냈다. ●“아이디어 얻으려 새벽까지 광화문 배회” 예견은 빗나가지 않았다.‘각시탈’(74년),‘태양을 향해 달려라’(77년),‘망치’‘벽’(88년) 등 거의 매년 베스트셀러를 내놓으며 만화계를 주도했다.88년에는 문하생이 무려 23명까지 달했다. 하지만 작품성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새삼 마음을 고쳐먹고 문하생을 6명으로 줄이는 등 돈보다 작품의 생명력 강화에 정성을 쏟았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른바 ‘허영만 사단’이라고 하는 문하생은 10명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윤태호나 김준범 등이 현재 만화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요.” 만화 외에는 어떤 일에 관심을 둘까. 그는 ‘산사나이’라고 할 만큼 산을 좋아한다. 등반가 박영석씨와 함께 해외 원정도 4차례나 했다. 에베레스트는 해발 6400m까지 올랐다가 고산병으로 도중 하차했다.2년 전에는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산행멤버는 15명 정도. 또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도봉산에서 야영하고 아침에 작업실로 곧장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 산은 그에게 정신적 휴식의 공간이자 작품구상의 장소이기도 하다. 산행할 때마다 스케치북을 놓지 않는다. 이밖에 요즘에는 약간 멀리하고 있지만 골프 20년 경력(베스트 스코어는 1언더파)에다 바다낚시도 가끔 즐기기곤 했다. ●교육만화 준비중… 에베레스트도전 ‘산사나이´ 허씨는 요즘 교육만화를 준비 중이다. 어린이들이 나중에 커서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담은 만화다. 이를 위한 자료수집을 거의 끝냈고 연말쯤이면 선보일 수 있다고 했다. 판타지 만화에 대해서는 “당분간 현실적 만화를 계속 그릴 작정입니다. 나중에 손자·손녀를 보게 되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라고 대답했다. 슬하에는 아직 미혼인 아들과 딸 둘을 두었다. 직장에 다니는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 그림을 잘 그린다. 가족 중 유일하게 아버지가 그린 만화에 대한 모니터와 평론역할을 하고 있다. 딸은 현재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 중이다. 기회를 봐서 부녀 공동전시회를 생각 중이라고 귀띔했다. 주말매거진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7년 여수 출생 ▲66년 여수고등학교 졸업 ▲66년 서울에서 만화계 입문 ▲74년 소년한국일보 신인공모에 ‘집을 찾아서’로 입선 ▲99년 스포츠조선에 ‘타짜’ 연재 ▲2002년 동아일보 ‘식객’ 연재 ●주요 작품집 태양을 향해 달려라(77년), 변칙복서(83년), 무당거미(84년), 퇴역전선·고독한 기타맨·오!한강(86년), 망치·벽(88년), 날아라 슈퍼보드(90년), 아스팔트 사나이(92년), 비트·세일즈맨·미스터Q(94년), 오늘은 마요일(95년), 안개꽃 카페(96년), 사랑해(98년), 타짜(2000년) ●상훈 대한민국 만화·애니메이션대상 만화대상(04년), 오늘의 우리 만화상(04년)
  • 한국 ‘모래유전’보유국 된다

    우리나라도 `오일샌드(Oil Sand) 광구´를 갖게 될 전망이다. 2일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는 이달 중 캐나다 앨버타주 콜드 레이크에 있는 오일샌드 광구 인수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정세균 산자부 장관은 최근 콜드 레이크의 오일샌드 생산현장을 방문, 광구 인수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될 수 있도록 지원을 했다. 석유공사가 인수하게 될 오일샌드 광구는 가채매장량이 2억 5000만배럴에 이르고 하루 최대생산량 3만∼3만 5000배럴 기준으로 약 20년 동안 생산이 가능하다. 석유공사는 본계약이 체결되면 2008년 생산시설 공사를 시작하고 2010년에는 본격적인 상업생산에 돌입해 하루 최대 3만 5000배럴의 원유를 생산할 계획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자주 개발한 유전의 일일 생산량 11만 5000배럴의 30%에 해당하는 물량이다.●오일샌드는 아스팔트처럼 끈적한 원유성분(비투멘·Bitumen)을 10% 이상 함유한 모래 또는 사암을 말한다. 주로 시추정(井)에 뜨거운 스팀을 불어넣어 석유성분을 녹인 뒤 뽑아내기 때문에 생산비용(배럴당 20∼25달러)이 비싸 지금까지는 주목받지 못했다. 캐나다(매장량 1752억배럴)는 베네수엘라(2700억배럴)에 이은 세계 2위의 오일샌드 보유국이다.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마니아] 오프라인 모터사이클

    [마니아] 오프라인 모터사이클

    모터사이클로 비포장도로를 달리면 온몸에 전율이 느껴진다. 터질 듯한 엔진 소리에 심장이 뛰고, 넘어질 듯한 곡예 운전에 긴장감이 감돈다. 모터사이클과 자연과 하나가 된다. 그러나 보는 것과 달리 스포츠 모터사이클은 안전하다. 보호 장비를 완벽하게 착용하는 데다 산이나 경기장에서만 주행하기에 교통사고 염려가 없다. 속도도 시속 60㎞를 넘지 않는다. 국민생활체육 마포구 스포츠 모터사이클 연합회 회원들은 “아이들과 함께 산과 들에서 스포츠 모터사이클을 즐기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오토바이 타는 게 스포츠라고?’ 국민생활체육 마포구 스포츠 모터사이클 연합회 회원들이 자주 받는 질문이다. 그렇다. 이들은 모터사이클을 타고 산이든, 들이든 흙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리지 않고 누빈다. 바로 비포장도로(오프라인) 모터사이클 마니아들이다. 모터사이클(motorcycle)은 여러 가지로 불린다. 바이크(bike)라고도 하고, 도로교통법에서는 이륜자동차로 분류된다. 오토바이시클(autobicycle)을 일본식으로 줄여 ‘오토바이’라고도 한다. 모터사이클은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질주하는 ‘온라인’과 흙길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오프라인’으로 나뉜다. 마포구 스포츠 모터사이클 연합회는 오프라인을 즐긴다. 스릴이 넘치지만 안전하기 때문이다. ●차량 없는 흙길 달려 ‘상대적 안전´ “자연은 관대하니까요.” 오프라인이 인라인에 비해 더 안전한 이유를 묻자 홍성찬(42·무역업)씨는 “흙길에서 넘어지면 땅이 몸을 받아준다.”며 이같이 말했다. 오프라인 모터사이클이 더 안전한 이유는 많다. 우선 사륜구동차(승용차)와 부딪칠 걱정이 없다. 산악이나 경기장에서 달리기 때문에 넘어져도 차량과 충돌할 위험이 적다. 게다가 속도가 도로에서 주행할 때보다 훨씬 느리다. 지형이 험하다 보니 시속 60㎞를 넘지 못한다. 도로에선 시속 200∼300㎞ 달리기 때문에 작은 실수도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보호장비가 튼실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헬멧과 부츠, 팔꿈치·무릎 보호대, 상반신 보호대, 장갑 등을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 그래서 구경나온 가족들도 “모터사이클을 비포장도로에서만 탄다면 레저활동을 해도 된다.”고 동의한다. ●상하좌우 요동… 운동효과 뛰어나 스릴이 만점이다. 국제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한 조성호(37·KTN코리아 사장) 연합회 사무장은 “도로에서 타는 모터사이클은 속도감으로 스릴을 느끼지만, 비포장도로에선 말을 타듯이 산악 지형물에 따라 공중으로 날고 땅에 떨어져서 훨씬 재미있다.”고 말했다. 좌우, 위아래로 요동치는 모터사이클 위에서 자세를 유지하다 보면 온몸에서 땀이 흐른다. 위준태(37·건축설계)씨는 “온라인이 평면적이라면, 오프라인은 입체적”이라면서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까지 쓰다 보니 운동 효과도 탁월하다.”고 했다. 올라가기 힘든 지형은 100㎏짜리 모터사이클을 끌고 걸어가야 하니 더욱 그렇다. 포장도로에서 타다 지난해 말 오프라인을 시작한 김철희(46·인테리어업)씨는 실력을 쌓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선수들이 6∼7m 점프하고,20∼30m 공중에 떠있는 모습을 지켜보면 전율이 느껴진다.”면서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 그런 경지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에선 모터사이클의 배기량이 중요하지만, 오프라인에선 운전자의 기술력이 스릴을 좌우하는 열쇠다. ●30~40대가 주축… 전용 경기장 절실 오프라인 모터사이클이 레저 스포츠로서 매력적인데도 동호인 수는 제자리걸음이다.2000명 정도로 추산되며 마포구 협의회에서 1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모터사이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가장 큰 장애물이다. 조 사무장은 “오프라인 모터사이클은 새로운 놀이 문화를 갈망하는 30∼40대가 주축으로 발전하는데 일반 시민들은 10대 ‘폭주족’을 연상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사회적 인식 탓에 전용 경기장이 하나도 없다. 그는 “놀이공원에 가족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모터사이클 경기장을 마련하고, 이런 곳에서 체계적으로 안전 교육을 진행해야 도로 사고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레포츠용 모터사이클 종류 (1)ATV:사륜자동차 형태의 산악용 모터사이클. 사륜 구동 방식과 이륜 구동 방식이 있다. (2)트라이얼:실내의 인공 장애물이나 산속의 험난한 자연 지형물을 주행하는 사이클. 속도가 느리다. 안전을 생각하며 운동량을 높이고자 하는 동호인들이 즐긴다. (3)랠리:사막에서 대륙을 횡단하는 사이클. 장거리 비포장 도로를 여행하고, 도로 주행도 가능하다. (4)엔드로:하드코어 형태로 비포장을 달리는 익스트림 사이클. 순발력이 뛰어나 한국 산악 지형을 자유롭고 빠르게 주행할 수 있다. 차량에 따라 도로 주행도 일부 가능하다. (5)모터크로스:엔드로에 비해 날렵하다. 헤드라이트가 없어 장거리 주행은 불가능하지만 자유로운 점프가 가능한 경기용 사이클다. (6)FX 바이크:산악 자전거와 산악용 모터사이클의 중간 성격으로 새로 등장했다. 도로주행이 가능하다. ■ 도움말 마포구 스포츠 모터사이클 연합회 ■ 모터사이클 안전하게 즐기려면… 스포츠 모터사이클을 즐기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운전면허증은 따로 필요없다. 도로교통법이 적용되지 않는 산악 지형이나 경기장에서 모터사이클을 타기 때문이다. 나이, 성별과 관계없이 취미, 여가 활동으로 즐기면 된다. 그러나 도로에서 125㏄ 이상의 모터사이클을 몰려면 면허증을 따야 한다. 국민생활체육 마포구 스포츠 모터사이클 연합회는 동호회 신입 회원을 대상으로 매주 토·일요일 교육시간을 마련했다. 장기적으로는 청소년과 일반인을 위한 교육도 계획하고 있다. 모터사이클을 처음부터 구입할 필요는 없다. 기본 운행방법을 배울 때까지 연합회가 빌려준다. 그러나 보호장구는 구입하는 게 좋다. 헬멧, 부츠, 팔꿈치·무릎보호대, 티셔츠, 바지 등을 모두 갖추려면 100만∼150만원이 든다. 그러나 동호인 카페에서 중고를 찾아보면 훨씬 저렴하다. 첫 교육시간에는 시동을 끄고 모터사이클 위에서 기본 자세를 배운다. 요동치는 사이클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훈련이다. 다음으로 각 장치의 기능을 익힌다. 이론교육이 끝나면 공터에서 8자 주행연습을 한다. 좌·우 커브를 도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서다. 평균 하루면 기본 주행을 습득할 수 있다. 이후에는 연습만이 남았다. 공터에 장애물 코스를 만들어 놓고 산악의 험한 지형을 피하거나 타고 넘는 방법을 체득하는 것이다. 자신감이 생기면 모터사이클을 승용차에 싣고 실전에 나선다. 장흥이나 일산, 판교 부근에 크고 작은 산에서 즐긴다. 잘 타는 사람을 선두와 후미에 두고, 등산객이 다니지 않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게 안전하다. 선수로 활동하는 조성호 연합회 사무장은 “포장도로에서 모터사이클을 타본 경험이 있으면 오히려 자신의 실력을 과신해서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면서 “비포장도로에선 속도를 크게 줄여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세한 사항은 연합회 홈페이지(cafe.daum.net/foxpeople) 참조.
  • “교황 바오로2세 방한 의전 9개월간 준비”

    현직 공무원이 10여년 동안 의전(儀典) 업무를 수행하며 겪은 경험담과 의전상식 등을 담은 책을 발간했다. 국무총리 소속 행정정보공유추진위원회에 파견 중인 행정자치부 정현규 서기관은 오랜 의전 실무경험을 토대로 ‘글로벌시대의 의전행사 성공전략’(도서출판 창보)이란 책을 21일 발간했다. 책에는 각종 의전에 대한 이해, 의전행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소개하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옛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공항 환영행사 등 각종 행사와 관련된 에피소드 등이 담겨 있다. 그는 198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에 대비해 9개월 전부터 준비를 해왔으며, 특히 교황이 비행기에서 내려 땅에 입맞춤하는 ‘친구(親口)’ 행사 때 당황했던 당시 상황 등을 흥미롭게 소개했다. ‘친구’를 하기 위해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흙이 있어야 하는데 활주로의 두꺼운 아스팔트를 가로 세로 약 1m 넓이로 파내고 부드러운 흙을 채워넣는 방안 등이 검토됐었다고 한다. 하지만 1회 행사를 위해 활주로를 훼손한다는 지적에 부딪쳐 논의 끝에 살수차로 물청소만 했다고 설명했다. 정 서기관은 또 과거 임금들의 돌림을 ‘조(祖)’와 ‘종(宗)’자로 사용한 유래에 대해서도 소개했다.조선 태조 원년에 정해진 ‘조공종덕(祖功宗德)의 원칙’에 따른 것으로, 왕이 죽은 뒤 중신회의를 통해 재위기간에 국가에 공이 많으면 조(祖)를, 국가에 덕을 많이 쌓았으면 종(宗)을 붙이도록 했다는 것이다. 예포(禮砲)를 발사할 때 행사 때마다 똑같이 21발을 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나 국왕 등 국가원수에게는 21발을, 부통령이나 국무총리급·우리나라의 3부요인·국무위원급은 19발을, 각 부처의 차관이나 중장은 17발을 발사한다고 설명했다.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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