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외교채널’ 상설화 제의
|자카르타 이지운특파원|“제일 뒤떨어진 게 외교분야지….”
1일 백남순 북한 외무상의 말은 남북간 ‘외교’의 현주소를 드러낸다.남북 외교 고위당국자들은 이날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열린 자카르타에서 4년 만에,사상 2번째로 만남을 가졌다.
이 말은 “군사분야를 포함,그간 남북이 많은 진전이 있었다.외교분야에서의 협력관계가 (남북간) 전면적인 협력에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덕담 뒤에 나왔다.백남순 외상은 “4년 만에,반가운 일”이라고 인사하는 반 장관에게,“반갑기두 하구….한민족으로서 피도 하나,언어도 역사·문화도 하나인데 외국서 이렇게 남북으로 갈라 앉아서 얘기 나누니까 수치스럽기도 하지….”라고 말했다.
반 장관이 이날 남북 외교장관회담에서 ‘남북간 외교채널 상설화’를 제의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그간 남북간에 상설화된 외교채널은 전무했다.이번 만남도 사실상 급조된 것이다.만남의 대원칙에 관한 논의는 ‘유엔’ 채널로,실무적인 논의는 주 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을 통해 이뤄졌다.
반면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장관급회담은 벌써 14차례나 열려 상설화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된다.남북경제협력추진위도 9차까지 열렸으며 사회문화분과회의 구성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특히 북핵 문제가 지난 주 3차 6자회담을 계기로 본격적 협상단계에 들어선 만큼 외교채널 상설화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날도 이 문제에서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반 장관은 “한국은 대통령,장관에서부터 국장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일상적인 대화채널을 갖고 있는데 남북간에는 이런 의미있는 채널이 없지 않느냐.바람직하지 않다.”고 채근했다.
이에 백 외상은 “뉴욕(유엔)채널이 있지 않느냐.이를 주요 문제 협의하는 통로로 만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전략적 대화채널은 시기상조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민족공조를 위해서 고무적인 일”이라고 답했다.딱 부러진 거절도,직접적인 개선 의지를 내보인 것도 아닌 셈이다.북한은 민족 내부의 문제라는 차원에서 장관급 회담에는 적극적으로 임하고는 있지만,상대 국가의 실체를 인정해야 하는 외교채널의 상설화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아왔다.
따라서 북한이 진일보한 입장을 취하더러도 당분간은 남북간 외교 채널을 신설하기보다는,뉴욕 채널을 통로로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북한은 아울러 북핵 문제와 관련,“주변국들의 보상이 빠르면 빠를수록 핵 동결기간도 단축될 것”이라며 조속한 보상대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편 남북은 회담 마지막 날에 열리게 마련인 ‘여흥 만찬’(Gala Dinner)을 즐기지 못할 전망이다.회원국 외교당국자간 친목을 다지는 이 자리에서 각국 외교장관들은 노래와 춤 등으로 ‘장기자랑’을 해야 한다.한국은 예전에 ‘쿵따리 샤바라’에 맞춘 허슬로 인기를 끈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불참키로 했다.3일 예정된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회담 준비 때문에 서둘러 귀국해야 하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물론 김선일씨 사건 발생 이전에 잡힌 일정이다.
하지만 김씨 피살사건 등 국내 정치사정 때문에 ‘춤추는 행사’엔 불참할 수밖에 없는 고민도 있어 보인다.북한도 첫 무대에서 어떤 프로그램으로 나설지 주목되나,‘관람’ 정도에 그칠 것 같다는 게 중론이다.
jj@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