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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통서기장 전금철/일본 입국신청

    【도쿄 연합】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장 전금철이 내달 3일부터 일본 오사카(대판)에서 열릴 제3회 한국학국제학술심포지엄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에 입국허가를 신청했다고 아사히(조일)신문이 14일 보도했다. 전금철은 북한의 대한및 대일정책 책임자로,일본정부는 전의 방일이 대일정책 전환의 징후일 가능성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입국을 허가할 방침이라고 전해졌다.
  • 일 역사교과서 기술 한국부문 문제없다/문부성 결론

    【도쿄=강수웅특파원】 일본정부는 한일간의 역사에 관한 일본 각급 학교 교과서의 기술이 미흡하다는 사회당의 지적에 대해 교과서 내용이나 현행 교과서 검정제도에 문제가 없다는 문부성 견해를 마련,사회당에 전달키로 했다고 아사히신문이 12일 보도했다. 문부성은 이 견해에서 역사교육과 관련,『(문부성은) 한국및 동남아 각국의 역사교육에 대해 전부터 적절한 교육을 실시하도록 지도해왔다』고 주장했다. 문부성은 교과서 기술에 대해서도 『검정제도는 1차적으로 집필자의 판단에 맡겨져 있으나 아시아 각국의 역사에 관해서는 지난 82년 역사교과서의 내용이 한국및 중국과 외교문제로 발전됐던 것을 계기로 검정기준을 개정,적절히 대처해왔으며 앞으로도 이같은 취지에 맞춰 노력하겠다』고 밝혀 현행 교과서에 특별히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 “북한인민들 「통독」 알면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

    ◎서울신문,김현희 단독 인터뷰 KAL858기 폭파범 김현희(28)는 북한의 김일성에 대해 『그는 거짓말장이이며 타고난 독재자,통일의 훼방꾼』이라고 규정하고 『지금은 이름조차 들먹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은 『신문ㆍTV를 통해 동서독의 통일을 보고 부러웠다』고 소감을 밝히고 『북한은 김일성의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운,환경이 다른 폐쇄사회이기 때문에 당장의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지만 인민들이 진실을 알게 되면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울신문사는 지난 6일 국내 언론사로서는 최초로 당국의 협조를 얻어 상오 10시부터 2시간30분 동안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김과 독점 인터뷰했다. 이 자리에는 서울신문사의 주선에 의해 제휴사인 일본 도쿄(동경)신문을 비롯,아사히(조일) 산케이(산경)신문도 동석했다.
  • 자유인 김현희 서울신문과 첫 단독인터뷰

    ◎“시장서 쇼핑해도 저를 알아보는 사람 없어요”/김일성 기만 깨닫고 증오감 느껴 자백/남해안 바닷가ㆍ제주도 가보는 게 소원/성경ㆍ이야기국사 등 읽으며 사회적응 노력/통일 앞당겨져 부모ㆍ형제 빨리 만나봤으면… 김현희는 역시 예뻤다. 그녀에 대해서는 두가지 측면에서의 관찰이 가능하다. 하나는 북한의 선발된 특수공작원으로서 1백여명이 넘는 무고한 KAL기 승객과 승무원을 무참하게 살해한 테러리스트였다는 점. 또 하나는 만일 그녀가 이같은 기구한 운명을 타고나지 않았던들 그녀 또한 양가의 맏며느리로서 남편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아내이며 주부로서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한 여인이 아닌가 라는 것이다. ○유족들에 용서빌어 따라서 「테러리스트」와 「미녀」를 동시에 만나 『당신은 스스로를 미인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무차별 질문공세를 펴야만 하는 기자의 심정은 착잡했다. 『저는 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부족한 점이 많고 평범한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도 큰 죄인을 살려준 것은 과분한 은혜입니다. 대한민국과 인민들이 살려주신 의미를 바로 알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김현희는 지금 용서를 빌고 있다. 하나님의 용서를 기구하며 유족들의 용서를 바란다. 그러나 그 용서는 힘든 것임을 그녀 자신이 너무도 잘 안다. 『성서를 읽지 않고 하나님을 모를 때는 왜 나만 이렇게 기구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기구한 운명을 비관하고 생의 의욕을 잃고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와서 하나님을 알고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성서를 읽음으로써 이런 시련속에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있다고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흰 칼라를 받친 보라색 투피스에 머리를 묶은 김현희는 화장기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분만 가볍게 바른 얼굴이었다. 특별회견이 진행되는 2시간30분 동안 그녀는 때로는 입술을 깨물며,때로는 미소짓는 여유를 보이며 최근의 일과 신앙생활,앞으로의 생활계획과 소망,자신의 의식변화,북한에서의 공작원선발과정 및 훈련내용,김일성체제에 관한 인식,북한의 체제변화예상 등에 관해 또박또박 답변했다. 회견도중 어느 대목에서는 긴장이 되는 듯 심호흡을 하기도 했으며 대담하는 기자를 바라보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눈을 약간 아래로 깔고 깜박거렸다. 현재 김현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에의 적응문제이다. 본인의 표현대로 『사면은 됐으나 저지른 죄는 가셔지지 않았으며 유가족의 슬픔도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이며,직업선택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또 그럴 상황도 아니다. 『지금 생활면에서 불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북에서 성장했으며 큰 죄를 지은 사람을 인민들이 어떻게 받아주실지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면에서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에게는 역시 문제가 있었다. 우선 어휘의 문제이다. 김현희의 말씨가 이북 사투리라는 점은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인민들이 어떻게 생활하는가를 보기 위해 새벽에 남대문ㆍ동대문시장에 가 본 일이 있다』 『남한 자본주의 사회는 창발성을 발휘하는 사회』,또는 『저도 조선사람이기 때문에 된장국ㆍ김치를 좋아한다』라는 등 때때로 튀어나오는 생경하거나 북한전용의 어휘는 얼마간거부감을 일으켰다. 이날 김현희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5번,「조선」이라는 표현을 3번이나 썼다. ○수영장 아직 못가봐 김현희는 아직 지방까지는 돌아보지 못했으나 서울근교는 거의 다 구경했다. 민족역사에 관심이 많아 덕수궁ㆍ창경궁ㆍ비원은 물론,독립기념관ㆍ현충사도 둘러보았다. 그녀가 시장ㆍ백화점 등에 외출할 때 처음에는 『아,김현희가 아닌가』라고 알아볼까봐 겁이 났었으나 특별히 변장은 하지 않았다. 『여기는 남에게 신경쓰는 일이 없는지 물건파는 사람이 한번도 알아본 일이 없었습니다』 현재 상태에서 김현희가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은 남해안 바닷가와 제주도이다. 『북한사람의 소망은 거의 그렇지만 저 역시 남해안과 제주도에 가보는 것이 꿈입니다. 제주도에 가는 것은 「언니들」과 의논해 본 일이 있으나 아직 실현되지 못했으며,남해안에서는 수영을 하기보다 그곳 경치를 보고싶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수영실력은 공작원훈련을 통해 2㎞까지 헤엄칠 수 있는 정도지만 남한에서는 아직 수영해 본 일이 없다. 김현희의 사회적응에 있어서 다른 하나의 문제는 의식의 순화이다. 그녀는 아직도 명곡보다는 행진곡을 더 좋아한다. 이날 회견에 앞서 서울신문사의 협조에 의해 동석하게 된 일본도쿄(동경)신문과 아사히(조일)신문 기자들이 강아지 인형들을 선물했을 때 그녀는 『감사합니다』라며 기쁜 표정을 짓기도 했으나 28살이라는 그녀의 나이 때문이었는지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통일을 저해하는 88올림픽을 반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했습니다. 그것은 전투임무였으며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중앙당을 위해,통일을 위해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테러의식이 순화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침상의 베갯머리가 썩도록 눈물을 흘리고 참회해야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엄청난 결과를 빚은 KAL기 격추범행에 대해 비록 비행기가 떨어지는 현장을 목격했다거나 시체의 참상을 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 결과를 충분히 실감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었다. 『제가 실제로 격추현장을 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무고한 동족을 죽이는 잔인한 행위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부모형제가 잘못될까봐 두려워 자백도 안했으나 진상이라도 바로 알려드려 유족들에게 사죄하고 다시는 지구상에 이같은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 자백하게 되었습니다』­그녀는 바레인에서 검거된 후 자살할 생각도 했었다. 또 법정에서 유족들에게 매도당했을 때도 『왜 그때 바레인에서 죽지 못했는가』라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레인에서의 자살생각은 검거에 따른 「공작실패」가 그 원인이었으며 사실상 기회가 없어 실행을 못했던 것 뿐이었고 법정에서의 괴로움은 『사람의 죄는 하나님이 판정해 주신다』고 목사님이 많이 위로해 주어 견딜 수 있었다. 김현희의 하루 일과는 대개 아침 6시30분 기상으로부터 시작된다. 일어나면 성경을 공부하고 청소ㆍ식사준비를 한다. 체조도 거르지 않는다. 8시부터는 식사,9시부터의 오전시간에는 수사기관 또는 다른 곳에서 의뢰하는 북한실태에 관한 원고를 쓴다. 오후에는 사회적응을 위해 역사소설ㆍ간증소설ㆍ교과서 등을 읽는다. 요즘 읽고있는 책은 간증소설과 김동길교수의 「너와나의 사랑을 위하여」이며,시리즈로 된 「이야기 국사」도 본다. 오후에는 지난날을 반성하는 수기를 쓰고 있으며 TV를 보거나 소설을 읽는다. 가끔 외출도 하지만 정해진 것은 아니다. 오늘(6일)아침 읽은 성경구절은 잠언 3장 5ㆍ6절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그녀가 매일 읽고 있는 성경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야고보서 제1장 2절로부터 4절까지이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하려 함이라』 ○부모생존 위해 기도 김현희의 신앙생활은 지난해 2월부터 시작되었다.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수사관들이 성경과 불교서적 등을 갖다주며 읽어보도록 권고했다. 성명말씀은 처음 대해본 것이었는데,잠언중에 좋은 구절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과 모르는 단어가 많던 차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목사님을 소개받게 되고 지정된 장소에서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 김현희가 이날 회견에서 잠시 입술을 깨물다 대답한 대목은 이런 질문 때문이었다. ­혹시 꿈에 부모형제나 고향산천을 보는 일은 없습니까. 『그거야 뭐,누구나 다 부모형제 그리워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도 꿈속에서 자주 봅니다. 범행을 자백하기 전에는 부모형제가 큰 영향을 받지 않을까 고민해 왔습니다. 지금은 수용소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을 것입니다. 저로서는 다만 기도로써 남북통일이 되어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때까지 살아있기만을 바라는 바입니다』 김일성에 대한 김현희의 인식은 「위대한 수령」으로부터 「가장 증오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다. 『그에 대한 인식은 검거 후 8일만에 자백할 때부터 달라진 것입니다. 자백하게 된 동기는 북한에서 남한에 대해 「미국의 식민지」이며 「군사파쇼정권」이라고 교육받았으나 그것이 아니며 김일성이지금까지 인민을 기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때문이었습니다. 자백을 하고 나서는 한때 김정일의 지시를 잘못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혹은 한국의 일면만 보고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회의도 했었으나 날이 가면서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또 「미제」는 조선전쟁을 일으켰고 남한을 강점했으며 통일을 방해하는 철천지 원수라고 교육받았고,「일제」도 36년간 조선을 강점하고 학살ㆍ강탈을 일삼은 원수라고 해서 적대감정을 가졌으나 여기서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세계는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식민지가 아니고 서로 하나가 되어 도와가며 발전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8살 때 공작원으로 18살 때 공작원으로 선발됐던 김현희는 「통일을 위해 중앙당에 의해 선택된 사람」이라며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통일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고 각오했다. 육체적ㆍ정신적으로 많은 단련을 받았다. 그녀를 감상적으로 「미녀」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산이다. 위장된 일본공작원화 훈련을 위해 81년과 82년 1년6개월에 걸쳐 일본인화교육을 받았으며,중국인화 교육도 받은 전문테러리스트였다. 그녀는 「이은혜」라는 일본인 여선생과 생활하면서 언어 뿐만 아니라 일본생활ㆍ풍습ㆍ지리ㆍ역사를 익혔다. 태이프를 통해 야마구치 모모에,가토 도키코,시마쿠라지요코의 노래를 배웠으며 지도를 놓고 신주쿠(신숙)의 이세탄(이세단)백화점은 어떻고,유락조(유락정)는 젊은이들의 영화관이 많다는 것도 배웠다. 따라서 선생 「이은혜」로부터는 거의 일본인처럼 되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신문과 「문예춘추」같은 잡지도 술술 읽게 되었다. 김현희가 「이은혜」를 일본에서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으로 생각하는데에는 근거가 있다. 은혜 자신이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라고 말했고,조총련계 학생들이 까만 치마에 흰저고리를 입은 것을 보고 부러워 어릴 때 그것을 해달라고 어머니에게 졸랐더니 『그것은 조선사람만이 입는 것』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일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는 것이다. 또 은혜는 「조선사람」의 흉을 많이 보았다. 『조선사람은 밥먹고 물로 울럭울럭하며 입가심을 하지않나,국에 밥을 말아 훌훌 먹는다. 또 크기를 표시하는데도 일본사람들은 동그렇게 표시하는데도 조선사람들은 팔뚝을 내밀고 길이로 나타낸다』고 흉보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는 일본여인이라고 단정했다. 대학에 다닐 때에는 엄격한 통제로 인해,그뒤 공작원이 되어서부터는 사회와 동떨어진 생활을 해와 이성교제의 기회가 없었다는 김현희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기자와 악수했다. 그녀의 손은 부드러웠으나 감춰진 힘이 느껴졌다. 역시 그녀는 웃어서는 안되는 테러집단의 예쁜 인형의 그림자였다.
  • 일 해군징용 한인명부도 발견/1천여명 신상기록

    【도쿄 연합】 일본 후생성이 강제로 끌어온 한국인 육군 군인ㆍ군속의 명부를 보관해온 사실이 밝혀진 데 이어 구 복원부가 작성한 해군 징병자 명부와 사망자 명부 등도 일부 남아 있음이 민간단체의 조사에 의해 확인됐다고 아사히(조일)신문이 7일 보도했다. 일본 변호사연맹과 조총련으로 구성된 「조선인 강제연행진상조사단」이 찾아낸 「조선출신 사몰원육군및 해군군인군속 어유골 등 봉안명부」라는 표제의 명부는 후쿠오카(복강)지방 복원부와 오지방 복원부가 패전후에 작성한 것으로 1천6백70명의 이름과 사망장소ㆍ사인ㆍ사망상황ㆍ본적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 일제징용 한인 5만명 명단/일 후생성 보관 확인/일지

    ◎반일 「요시찰 노무자」 1천4백명 명단도 【도쿄 연합】 일본이 2차대전중 군인ㆍ군속으로 강제로 끌려왔던 한국인 강제징병자 명부의 일부가 후생성 지하창고에 보관돼 있음이 밝혀졌다고 아사히신문이 5일 보도했다. 명부에는 입대 날짜와 부대명,계급,전속부대 등의 경력과 함께 사망 또는 도주여부가 상세히 기록돼 있으며 모두 1백10권에 달하는데 권당 3백∼6백명씩이 수록돼 있어 명부에 실린 인원만도 5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정부는 지금까지 한국정부를 비롯,희생자 유족회등 관계기관의 거듭되는 징병ㆍ징용자명부 공개요구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만을 수록한 군인명부는 없다』고 버텨왔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들 명부는 2차대전직후 구 일본군이 작성,전후에 설치됐던 복원성을 거쳐 47년 후생성에 인계된 것으로 45년 1월1일 현재 「외지」부대에 배치돼 전투에 참가했던 한국인 육군 사병들의 창씨개명한 이름이 부대별로 적혀 있으며 아들 또는 남편이 징병당하는 바람에 고국에서 빈집을 지키게 된 사람의 이름도 기록돼 있다.일본은 2차대전중 일본 후생성의 공식조사로도 한국인 24만2천명을 강제징병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일본정부는 지금도 한국인 유족으로부터 『사망통지를 받지 못했다』는 등의 문의가 오면 이 명부를 토대로 사망통지서를 발행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일본 후생성당국은 이번 명부에 대해 『문제의 명부는 외지부대에 국한된 불완전한 것이고 프라이버시의 문제도 있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었다』면서 『앞으로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와는 별도로 탄광등에 끌려온 한국인중 처우개선을 요구하거나 반일운동을 벌이다 일본 특별고등경찰(특고)에 의해 「요시찰인물」로 지목돼 감시를 받던 강제징용자 1천4백여명의 명단이 도쿄도내에 있는 국립문공서관에 보관돼 있음이 5일 밝혀졌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 문서는 일본 각지의 특고가 공장ㆍ탄광 등 강제노동현장에서 처우개선을 요구하고 독립을 주장하는등 「불온언동」을 하던 한국인 노동자의 동향을 실명으로 기록한 문서철 10점으로 6백여쪽이 넘는 방대한 서류도 포함돼 있다.
  • 북한 경제 위기 시인/정준기 대외연락위장/개방정책 가능성 시사

    【도쿄 연합】 북한 대외문화연락협회 위원장 정준기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솔직히 인정했으며 이는 북한이 경제면에서 부분적으로나마 개방정책을 취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아사히신문이 4일 평양발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정준기가 일조 우호방문단을 수행취재중인 일본 기자들과 회견한 자리에서 『최근 3∼4년간 큰 가뭄이 들어 「식량정책」이 일부 영향을 받았다』면서 『인민이 유복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평등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정준기는 북한이 추진중인 제3차 7개년계획(87∼93년)에 관해 설명하는 가운데 『현재의 석탄 생산량은 8천5백만t으로 목표량 1억2천만t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철강 생산량도 7백만t에 그쳐 목표량 1천만t에 미달되고 있다』고 구체적 수치를 들어 설명했다. 한편 아사히는 정이 이례적으로 구체적 수치를 들어 가며 북한이 놓여 있는 경제상황을 솔직히 밝힌 것은 정치적으로는 노동당 일당독재를 유지하고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세습체제를굳히면서도 소련·동구 등 국제정세의 격변을 받아들여 경제면에서는 부분적이나마 개방정책을 취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 서울신문 「까투리」만화 일왕 사과문안 바꿨다/일 시사주간지

    ◎“「가슴아프게」는 통속적”… 「통석의 염」으로 지난 5월 노태우대통령의 일본 방문때 당초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로 돼있던 아키히토(명인)일왕의 대한사과 표현이 마지막 단계에서 『통석의 염을 금치 못한다』로 바뀌게 된 것은 5월17일자 서울신문의 연재만화 「까투리여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아에라(Aera)지 6월5일자 보도에 따르면 솔직하고 알기 쉬운 것을 좋아하는 아키히토의 성격에 따라 대한사과발언 내용은 처음 알기 쉬운 『가슴아프게 생각한다』로 결정됐었는데 한국의 유행가 「가슴아프게」를 일왕이 사죄의 노래로 연습하고 있다는 내용의 「까투리여사」만화를 보고 통속적이란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본정부내에서 대두돼 결국 『통석의 염을 금치 못한다』로 바뀌게 됐다는 것. 아에라지는 『사죄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하는 것』이라는 한국언론의 지적도 소개하면서 노대통령 방일시 가이후(해부)총리가 약속한 사죄방안들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으면 앞으로 아키히토일왕이 한국을 방문할 때 대한사죄발언이 또다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동구권언어 배우자” 일본열도에 강습 붐(세계의 사회면)

    ◎민주개혁뒤 문호개방 여파/주요 소비시장으로 떠올라/헝가리ㆍ체코어등 7개강좌에 수강생 올들어 갑절 급증 일본의 동구권어 학습열이 뜨겁다. 지난해 베를린장벽 붕괴와 차우셰스쿠대통령 처형등 일련의 민주화 개혁과 문호개방의 여파로 동구권이 새로운 주요소비시장으로 부각됨에 따라 동구어의 주가가 급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동구어붐은 중국이 지난해 천안문사태를 계기로 민주개혁을 거부함에 따라 중국어의 인기가 크게 떨어진 것과 대조를 이루며 나란히 민감한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영어와 서구권언어에 편중돼 왔던 일본내 외국어학전선에 일대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모두 45개의 외국어강좌를 개설해놓고 있는 도쿄의 대학서림어학아카데미의 경우 7개 동구권언어강좌의 수강생은 요즘 72명으로 지난해의 35명에 비해 2배이상 증가,동구어의 주가상승을 단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주1회 수강에 6개월 코스인 헝가리어강좌는 지난해 15명 정원의 3분의1에 불과한 5명만이 등록했으나 올해 4월 개강때는 정원을 다 채우고도 4명이 대기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단1명도 등록하지 않았던 체코어강좌는 올해 11명이 수강하고 있다. 외국법인을 고객으로 하는 부동산 회사에 근무하며 헝가리어강좌를 듣고 있는 한 여성은 『이제까지는 헝가리어에 인연이 없었으나 동구민주화혁명으로 급속히 가까워 지게됐다. 영어는 요즘시대에 웬만한 사람이면 다할줄알지만 동구어는 배우려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몽고어도 지난해 단1명도 없었던 수강생이 올해는 13명으로 늘어났으나 중국의 티베트어강좌는 작년 14명에서 올해 2명으로 줄었다. 티베트는 계엄령이 최근 해제됐으나 수도인 라사 주변이 현재도 폐쇄상태인 반면 몽고에는 민주화바람이 거세게 불고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이 학원관계자는 풀이했다. 아사히문화센터의 체코어과는 개강 14년만에 처음으로 정원(10명)을 초과한 14명이 등록,정원을 늘려 강좌를 운영하고 있고 이미 개설된 헝가리 체코어 강좌외에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어 강좌를 4월부터 신설,높은 인기를 얻고있다. 금년봄 「동구신시대로」라는 주제로 개최한 어학제에는 1백80명이나 참가,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독일통일과 EC통합에 따라 자유경제권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도 독어와 동구권어 수강열기를 더해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독어전문인 도쿄의 하이델베르크어학원은 상오 9시30분부터 하오 5시30분까지 주5일씩 3개월기간으로 특별집중코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정원을 꽉 채워 16명이 강의를 듣고 있다. 수강자의 대부분은 기업에서 파견한 회사원이며 특히 은행원들이 많다. 『작년에는 겨우 10명내외 였는데 동구를 포함한 금융시장의 개방이 임박함에 따라 급증한 것같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다음 강좌는 2개반으로 늘려야할 것같다』고 학원 관계자는 말했다. 뉴오타니호텔은 불가리아 소파아에 있는 호텔에 기술제공을 중단한지 8년만인 금년 1월 재개하면서 현지에 파견할 사원 2명을 불가리아어특별집중코스에 다니도록 하고 있다. 2년후 가동을 목표로 헝가리에 합작회사설립을 추진중인 스즈키자동차공업사도 『헝가리에는 자동차공장이 없어서 헝가리어로 된 부품 등 기술전문용어가 적기때문에 앞으로는 거꾸로 헝가리인을 일본으로 초청,일본어 및 기술연수를 시킬 필요가 있을 것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으로 동구권어의 지속적인 인기와 함께 중국어도 곧 인기를 회복,인근 아시아국가의 언어수강열기가 높아지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예상이다.
  • 징용명부 또 발견/일 북해도서

    【도쿄 연합】 2차대전때 일본탄광에 끌려간 한인 4천여명의 명부를 포함한 1백24점의 자료가 최근 북해도 개척기념관에서 발견되었다고 아사히(조일)신문이 16일 보도했다. 이들 자료는 당시 약1만7천명의 한인을 강제 동원했던 북해도내 만자ㆍ일조천염ㆍ북탄등의 탄광이 전후 이곳에 기증한 것으로 방대한 광산자료 가운데 극히 일부분이라고 아사히는 전했다. 「광부명부」ㆍ「조선모집」이라는 겉표지를 한 이들 명부에는 본적ㆍ출생지ㆍ가족관계가 개인별 카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한편,도망ㆍ사망 등의 사고자 명단도 별도 보관돼 있다고 이 신문은 밝혔다.
  • 중국,언론사에 군파견/「천안문」 동조자 심사 강화

    ◎사회과학원등 공공기관에도 【도쿄 연합】 중국 공산당은 조직개편과 감독강화등을 이유로 당 기관지 인민일보와 고급지 광명일보를 비롯하여 공산주의 청년당,사회과학원 등에 인민해방군 소속 현역군인을 지도간부로 보낼 방침이라고 아사히(조일)신문이 중국 소식통의 말을 빌어 10일 북경발로 보도했다. 아사히는 이들 기관이 지난해 민주화운동 당시 많은 동조자를 내 천안문 사건이후 일부 간부가 교체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고 말하면서 공산당 조직부는 운동 참가자들에 대한 심사진행과 함께 민주화운동의 재발을 막기위해 군인을 파견,군대내의 정치위원 역할을 맡기기로 이미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작년 천안문 사태 이후 민주화운동 참가에의 책임을 물어 인민일보의 사장과 편집장,광명일보의 편집자등 최고간부들이 사임했고 공산청년단과 사회과학원은 책임자 교체설이 한때 나돌았다.
  • “한국에 한수 졌다”일 외교 자성론/한ㆍ소정상회담에 착잡한 반응

    ◎“왜 화려한 워싱턴무대 활용 못했나”비난도/“대소경협의 라이벌로 등장”재계서도 우려 사상 최초의 한소수뇌회담을 지켜보는 일본의 시각은 복잡하다. 「한소국교합의를 환영한다」 (요미우리) 「역시 남북대화가 열쇠다」 (아사히)라는 6일자 신문사설들이 보여주는 바와같이 표면상으로는 이번 회담의 성과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이것이 동북아시아에 미칠 영향에 대해 분석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외교ㆍ경제상으로 『무엇인가 한 수 졌다』는 자책감에 빠져있는 것도 사실이다. NHK­TV가 매일밤 11시부터 방송하는 「미드나이트 저널」의 5일밤 해설은 이런 분위기를 짐작케 해준다. ▲캐스터=최근들어 한국의 노태우대통령의 활약이 매우 두드러지는데요,이번 한소정상회담도 그 타이밍이 아주 절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것을 착안할 수 있었을까요. ▲이다(반전)해설위원=그렇습니다. 타이밍이 정말 좋았습니다. 노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만해도 전혀 그런 눈치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미국ㆍ캐나다ㆍ멕시코방문계획을 취소하고 일본에만 온 것이어서 그런 계획이 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했습니다. ▲캐스터=노대통령은 이제 세계에 영향력을 미칠만한 인물로 부상했습니다. 미소만 띠는 그 얼굴에서 어떻게 그런 추진력이 나오는지…. 이런 취지의 해설대담이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우리 일본외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불만감이 역연했다. 이날밤 9시 뉴스시간에서는 외무성 구리야마쇼이치(요산상)사무차관도 나와 『일본정부는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답변했다. 한소정상회담이 결정됐을 당시의 사카모토 미소지(판본삼십차)관방장관의 기자회견내용도 이런 분위기를 뒷받침해준다. 『우리가 한 수 뒤졌다,그런 차원에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깨끗한 히트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일본정부는 이번 한소정상회담과 미소수뇌회담이 한반도정세 및 일소관계의 앞으로의 전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이들 정상회담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스탬퍼드대학에서의 연설등 아시아ㆍ태평양정책에 관한 일련의 발언내용에 대한 분석에 착수했다. 세계 초일류의 경제대국임을 자랑하는 일본이,그것도 동북아시아의 중심국인 일본이 이번 한소정상회담에서만은 외교상으로 한국에 기선을 제압당했다는 충격을 도처에서 드러내 보이고 있다. 현재 일본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미소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내년 일본을 방문,근본적인 협의를 하겠다』는 발언에 큰 위안을 받고 있으며 한국정부가 김종휘 청와대 외교안보보좌관을 특사로 보내 한소회담의 결과를 일본에 설명하겠다는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NHK­TV가 방송했던 구리야마차관과의 대담에서처럼 현재의 일본은 세계정세에 영향을 미칠 외교전략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수동적 외교」에 머물러 있다고 자책한다. 이번 한소회담을 보는 일본경제계의 반응도 대단히 민감하다. 한국과 소련은 이번 정상회담결과 민간 베이스의 무역ㆍ투자교류로부터 차관의 공여를 포함한 국가차원의 경제교류로 심화시키는 준비를 끝냈다. 일본의 재계수뇌들은 이것이 아시아 지역의 긴장완화에 직결되는 것은 물론 심각한 상태를 더해가고 있는 소련경제의 재건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련정부의 고위관계자가 『대소경제협력에 소극적인 일본에 실망한 결과 소련은 한국에 접근했다』라는 워싱턴에서의 발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같은 발언을 한 인물은 다름아닌 프리마코프 소련대통령평의회 사무국장이어서 반응의 심각도를 더한다. 프리마코프사무국장은 지난 4일 『우리는 일부 일본기업에 실망한 결과 한국경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일본에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들 안건의 진전상황에 따라서는 『지불지연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소련경제의 리스크(위험)의 크기와,풍부한 자원 및 거대한 소비재시장이라는 매력 사이에서 딜레마의 고뇌가 생길 수도 있다』고 예상한다. 어쨌든 이번 한소정상회담 결과 한국이 대소경제협력면에서 일본의 새로운 라이벌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려 하지 않는다. 경응대 고비키 마사오(소차목정부)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소련으로 본다면 일본을 상당히 의식,견제하고 있으며 목표는 차라리 일본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일본 각계의 인식은 한소정상회담 이후에 생겨났다. 일본은 왜 미소 정상회담의 화려한 무대를 이용할 생각을 못했는가. 구리야마차관의 「수동형외교의 자책」은 일본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결론처럼 들린다. 이제는 일본외교의 능력을 시험할 시기라는 지적이다.
  • 노대통령 정상회담 여로

    ◎“독일처럼 성과기대”… 레이건,노대통령 성원/“세계적 빅뉴스”… 3천여명 몰려 보도 경쟁/회담장주변 「외교구역」 선포… 삼엄한 경비/고르비 연설 인기… 행사장 참석회비 무려 1천달러 ○숙소 찾아와 20분 면담 ○…노태우대통령은 방미일정 첫날인 3일 하오(이하 현지시간·한국시간 4일 상오) 레이건 전미대통령으로부터 전격적인 면담제의를 받고 숙소인 페어몬트호텔에서 20여분간 만나 한소 정상회담등에 관해 논의. 레이건 전미대통령은 노­고르비회담이 개최되는 4일 아침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조찬을 갖고 의견을 나눌 예정인데 이날 하오 갑자기 노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면담을 제의. 이날 하오 6시15분 노대통령숙소로 온 레이건 전미대통령은 『다시 만나서 반갑다』며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으며 노대통령은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 더욱 건강하다』며 미소로 답례. 노대통령은 『각하께서 8년간 미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힘의 우위 바탕위에 자유세계 진영을 끌어와 오늘의 변화를 오도록 했다』며 레이건 전미대통령의 업적을 평가하고 『내일 아침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을 만나시면 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전달해 달라』고 당부. 노대통령은 이어 『각하께서 재직하실때 북한의 김일성이 개방세계로 나오도록 한미양국이 공동노력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내가 여기 온 것은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개방세계로 나오도록 하기위한 것』이라고 강조. 레이건 전미대통령은 『대통령재직시 베를린에 가서 동서독 장벽이 허물어져야 한다고 연설한 바 있다』고 상기시키고 『한국의 통일도 동서독처럼 빠른 시간내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고 기원. ○한쪽선 반대시위도 ○…한소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샌프란시스코는 2일만해도 양측의 선발대와 일부 보도진으로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으나 노대통령이 3일 상오 도착한 후 활기를 띠기 시작. 노대통령이 숙소인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인 페어몬트 호텔에 도착하자 호텔앞에는 노대통령의 한소 정상회담을 환영하는 주민들과 한소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동포들의 반대가 어우러져 미묘한 대조를 연출. 우리의 전통무술인 국술원 관계자와 동포 및 미국인 수련생등 1백여명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양손에 들고 북장단에 맞춰 『대한민국 만세』 『노태우대통령 환영』 구호를 외쳤다. 환영시위대 바로 옆에서는 한청연·한겨레애국청년학생회 회원 50여명이 징·쾡과리 등을 두들기면서 『즉각 중단하라 영구분단 음모』라고 외치면서 한소 정상회담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노대통령의 도착장면을 취재하던 미국기자들과 길가던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호기심에서 열심히 취재하거나 지켜보면서 관심을 표명. ○일본언론들 높은 관심 ○…한소 정상회담에 관한 외국언론들의 관심이 큰 것은 미 언론보도로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본언론들이 특히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 주목. 요미우리·아사히·마이니치·교도통신 등 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워싱턴과 서울특파원들이 샌프란시스코로 몰려와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어 한소 정상회담에 대한 일본의 관심이 얼마나 큰가를 반영. 일본언론의 서울특파원들은 정상회담후 우리측 발표와 관계자들로부터의 취재를 담당하고 워싱턴 특파원들은 소련측 발표나 관계자들로부터 뒷얘기를 취재하기 위한 것이라고. 우리 언론사들도 청와대 출입기자 이외에 각사에서 정치·외신·사진기자들을 추가로 파견하는 외에 워싱턴 로스엔젤레스 뉴욕주재 특파원들을 투입,치열한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호텔예약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요행 호텔을 구하더라도 호텔비가 하루 이틀사이에 크게 뛰어올라 있음을 드러냈다. 우리측 대표단과 수행원들이 묵고 있는 페어몬트와 마크 홉킨스호텔에 인접한 스탠퍼드 코트호텔은 이틀전만 하더라도 1인1실에 1백56만달러의 숙박비를 요구했으나 취재진이 몰려들면서 하루 2백10달러를 받고 있다. ○취재석만 1천5백개 ○…고르바초프의 샌프란시스코 방문을 취재하기 위해 소련측에 출입증 발급을 신청한 취재진은 2천여명으로 추산된다는 관계자의 설명. 소련측은 우리 대표단이 들어있는 페어몬트 호텔의 그랜드 볼룸에 프레스센터를 설치했는데 취재진의 좌석만 1천5백석을 준비해 취재진의 규모를 짐작케 했다. 소련측의 프레스센터 설치에는 수십만달러가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필요한 자금은 뱅크 아메리카그룹 허스트계 신문은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지,휼렛패커드,건설사인 벡텔사 등 15개 기업체와 개인들이 헌금으로 마련된 것. ○미언론,회담의의 강조 ○…워싱턴 미소 정상회담 종료와 함께 한소 정상회담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미국언론들은 4일 노태우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샌프란시스코회담이 『아시아에서도 냉전구조가 퇴색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가장 명백한 징표』라고 지적. 4일자 LA타임스지는 한소 정상회담의 의의를 미소 정상회담 못지 않게 강조하는 칼럼을 실어 눈길. 브라운대학 하버드대학의 객원연구원인 크래머씨는 미소 정상회담이 양국간 이견을 보이고 있는 재래식무기감축협상과 독일통일문제에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한데 비해 한소 정상회담은 한반도,더 나아가 동서관계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주장. 그는 한소 정상회담이 단순히 한소 관계개선에 머물지 않고 한소간 수교,그리고 남북한 긴장완화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분석. 그에 따르면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돌발적 행동 가능성도 배제키 어려우나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대소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소련과 관계가 증진된 남한과의 진지한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 ○3국 경호팀 합동 근무 ○…한소 정상회담이 열리는 샌프란시스코시당국은 양국정상의 경호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 미 경호대(SS)는 소 KGB와 한국 경호팀과 합동으로 경호업무를 펼치고 있는데 이들은 미 연방수사국(FBI)과 고속도로순찰대,샌프란시스코·스탠퍼드경찰들로 부터도 도움을 받고 있다. ○…미국무부는 3일 한소 정상회담이 열리는 페어몬트호텔과 그 주변을 특별외교구역으로 선포,경찰력을 외곽에 배치하는 등 삼엄한 경비. 노대통령의 숙소이기도 한 페어몬트호텔주변이 특별외교구역으로 지정됨으로써 이 지역에서는 시위 등이 일체 금지되고 유사시에는 호텔측의 동의없이 즉각적인 법집행이 가능하게 됐다는 것. 이에따라 일부 반한단체의 시위계획도 헌팅턴공원과 다른 지역에서 하도록 지정됐다고. ○역대 대통령들묵은 곳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이 열리는 페어몬트 호텔은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의 언덕배기인 놉힐에 위치해 샌프란시스코만을 굽어보는 지상 22층 객실 6백개의 초특급 호텔로서 미국및 외국 원수들이 즐겨찾는 명소. 이 호텔은 당초 1906년 준공예정으로 1902년에 착공됐다가 준공직전에 대지진이 발생,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으며 그후 1년의 공사끝에 샌프란시스코 대지진발생 1주년인 1907년 4월18일 개업. 연회및 회의실 24개도 갖춘 이 대형 호텔은 자체 오케스트라를 갖고 있는 그랜드 볼룸은 2천5백명이 식사를 나눌 수 있는 규모. 호화호텔답게 하루 숙박료만도 최저 2백만달러에서 최고 6천달러에 이르는데 호텔의 소유주는 뉴욕의 부호 벤자민 스위그씨의 아들 리처드 스위그씨.
  • “동북아 긴장완화의 새 디딤돌”/한ㆍ소정상회담… 일 각계의 반응

    ◎“일도 평양과 적극접촉,북한개방 도와야/대소 경협엔 난제 많아 성급한 기대 금물” 미소정상회담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미국을 무대로 한국의 노태우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대통령간 사상 최초의 한소 정상회담 개최가 전격적으로 결정된 사실은 「아시아 신시대」를 예고하는 역사적인 것이라고 일본 각계에서는 받아들이고 있다. 4일 하오(한국시간 5일 상오 8시)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이번 회담에 의해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및 동유럽의 격변에 따른 유럽에서의 긴장완화의 물결이 동아시아에도 파급될 것인가 여부가 특히 주목을 끄는 대목이라고 일본의 각계 인사들은 지적하고 있다. 한소 접근의 의미와 한반도정세,나아가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에 미치는 영향을 일본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아사히(조일)신문이 정리한 일본조야의 반응을 소개한다. ▷정계◁ 노태우대통령은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일본을 방문,한일간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와 회담을 끝낸 뒤 쉴새도 없이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회담이 성사된 셈인데 그같은 노대통령의 의향은 방일중 일본측에는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노­가이후회담에 배석했던 일본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과의 대화계속등 동아시아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굳은 결의가 엿보였다』고 말했다. 사카모토 미소지(판본삼십차)관방장관도 『한국정부에 허를 찔렸다는 기분은 없으며 오히려 휼륭한 크린히트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며 회담의 성과에 기대를 표시했다. 이처럼 일본정계에서는 여ㆍ야당을 불문하고 한소 정상회담이 동아시아에도 긴장완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전 부총리는 『소련은 동구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을 안전보장상의 위성국으로 묶어둘 필요보다는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오히려 한소관계가 진전돼 긴장완화가 추진되면 주한 미군의 대폭 삭감 또는 철수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전략적 계산을 하고 있을지 모르며 앞으로는 북한이 이같은 움직임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느냐가 관심의 초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7월중에 사회당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할 예정인 구보 와다루 사회당 부위원장은 『아시아라고해서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편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라면서 『북한이 다시 고립의 길을 걷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대미관계가 개선될 징후도 보이고 있는 만큼 일본도 지나치게 한국을 의식할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계◁ 그간의 교류에 비추어 언젠가 그렇게 될 것으로 생각은 했지만 예상보다 빨리 왔다는 반응이 주류다. 이시카와(석천)일본 상공회의소장은 『양국 정상이 만나 국교가 수립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면서 『양국 관계발전이 일본과 소련의 경제협력이나 무역에 직접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모 대기업의 소련담당 책임자는 『일본은 수십년에 걸친 거래를 통해 대소 경제협력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지적하고 『우선은 한국의 솜씨를 한번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많다』고 말해 성급한 대소 경제교류에주의를 환기시켰다. ▷학계◁ 고마키(소목)아시아 경제연구소 국제교류실 차장은 『한국의 북방외교에는 사회주의국가와의 교류를 추진함으로써 북한을 국제사회에 끌어들이겠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고 말해 한소 양국의 정치ㆍ경제적 이해가 일치했기 때문에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중국문제 전문가인 나카지마(중도)교수(동경외국어대)는 『북한은 국제적 고립을 각오하고 있기 때문에 한소정상회담으로 당장 어떤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한소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서는 앞으로 남북대립 이외에 다른 좌표축이 설정될 것이 분명하며 그를 위해서는 일본과 북한이 양호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북한,대소관계 격하 가능성/일지 한반도에 일시적 불안 올지도

    【도쿄 연합】 한소 정상회담이 열려 소련이 한국과 국교를 수립키로 결정하면 북한은 이에대한 반발로 주소대사를 대리대사급으로 격하시키거나 유학생을 불러들이는등의 강경 대응책을 취할 가능성도 있다고 아사히(조일)신문이 2일 북한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보도했다. 이 신문은 평양방송을 통해 보도된 북한의 군축및 대화제의와 관련한 해설기사에서 북한전문가들 중에는 최근 소련의 일련의 변화때문에 한반도 정세는 오히려 긴장이 높아질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고 전하면서 일부에서는 북한이 외교관계를 격하시키는등의 강경대응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 신문은 북한이 1일 내놓은 군축및 대화제의는 『신선미가 없다』고 지적하고 소련과 경제ㆍ군사적으로 매우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 대소국교를 단절까지는 하지 못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북한으로서는 소련의 비중이 동구제국과는 다르기 때문에 강경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고 전했다. 니케이(일경)신문도 동구 소식통의 말을 인용,『하나의 조선이라는 원칙을 지키려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소련과의 단교조치도 불사하는 고립정책을 밀고 나갈 가능성이 있다』면서 한소 정상회담이 한반도의 긴장완화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한국의 기대와는 달리 한반도 정세는 일시적으로 불안해질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또 북한이 1일 갑자기 군축과 대화제의를 해온 것은 한국을 중심으로 미국과 소련이 북한을 제쳐놓은 채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려는 데 대해 초조감을 느낀 결과로 받아들이는 견해가 많다고 소개했다.
  • 동북아에도 「신데탕트 바람」분다/한ㆍ소 정상회담의 파장

    ◎모스크바­북경­평양은 어떻게 보나/북한에 개혁압력 부수효과 기대 모스크바/신중한 반응속 새 기류 관망자세 북경/대소 의존 고려,대항조치 없을 듯 평양 오는 4일 하오 4시(한국시간 5일 상오 8시)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는 사상 최초의 한소정상회담이 냉전후의 세계재편을 가속화 시키리라는 것은 틀림없다. 아직 국교조차 없는 한소양국의 정상이 이처럼 전격회담을 갖는 것은 냉전후 재편성되는 국제정세의 급전개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필연적으로 아시아 태평양의 장래에 새로운 개혁의 물결을 초래하리라는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한다. 노태우­고르바초프 회담은 동북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일본의 언론과 외교소식통들이 분석한 동북아시아 관련국가의 표정을 정리해본다. ▷모스크바◁ 한소 정상회담에 관해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소련의 한 관계자는 31일 워싱턴에서 『이것은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비약적인 발전』이라고 말하고 국교정상화를 중심으로 경제협력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협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회담에 관해 『소련과 북한간의 사전협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주목할만한 발언을 했다. 이 관계자는 한소 정상회담이 소련과 북한과의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논평을 회피했으나 소련측에는 한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일방적으로 진척시킴으로써 북한에 개혁을 촉구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 소식통은 또 『이니셔티브는 한국측에 귀속한다』고 밝혀 이번 정상회담이 한국측의 적극외교에 의해 성사된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편 아사히(조일)신문은 1일자 모스크바 특파원발신 기사에서 『한소정상회담이 갑자기 실현되는 배경에는 양국의 국교정상화를 이룩함으로써 한반도정세의 교착상태를 타개하고 경제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아시아ㆍ태평양지역에의 외교공세를 본격화 하겠다는 소련측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전했다. 또 소련이 지금까지 대한 관계개선에 신중한 방식을 취해왔다는 사실을 생각할때 이번 일거에 수뇌회담으로 비약한 것은 그동안 「장애」가되어온 북한의 대응에 하나의 단호한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유럽을 무대로 진행되고 있는 서방측과의 협력관계에 있어서 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의 규제완화문제등 생각대로 본격화 되지 않고 있는 현재의 상황타개를 노린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소련의 한반도문제 전문가들도 미소 수뇌회담에 맞춰 노태우­고르바초프회담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소련에 있어서는 아시아에 대한 외교정책의 흐름의 일환이다. 중국과의 관계도 개선되었기 때문에 「다음은 한국」이 라는 논리이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르바초프 정권의 대아시아정책은 86년 7월 아시아의 안전보장체제 확립을 호소한 블라디보스토크 연설에서 시작됐으며,88년 9월에는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행한 연설에서 직접적으로 대한관계에 언급,한소접근의 흐름이 본격화 했다. 그를 위해서는 남북분단ㆍ대립이 계속되는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불가결하며 대공산권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북방정책을 표방한 노대통령과생각의 일치를 보았다고 아사히신문은 지적했다. 모스크바의 동양학연구소 한반도문제 전문가나 프라우다지의 저명한 정치평론가도 노­고르바초프 회담소식에 『전혀 들은 바 없다,정말인가』라고 되물었으며 외무성 정보국도 묵묵부답이었다고 전했다. 그만큼 이번 회담은 전격적이며 고도의 「정치적」인 것이었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북경◁ 한소 정상회담에 관해 중국측은 일응 「무관심」을 가장하고 있다. 31일 이 문제에 관해 논평을 요청받은 중국 외무부대변인은 『그것은 그들 양쪽(한국과 소련)의 일이다』라고만 답변,중국과는 관계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중국공산당의 강택민총서기도 이날 일본 창가학회 이케다(지전) 명예회장과의 회담에서 한소 정상회담의 평가에 대해 『중국은 남한과 경제ㆍ무역을 중심으로 민간 왕래를 계속하고 있다. 한소 정상회담은 미묘한 문제이나 우리는 북한과의 관계에 유의하고 있다. 역사적인 관계가 있고 통일이 중요하다. 남북통일을 바란다』며 직접적인 논평을 피하고 중국의 원칙적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다. 그러나 중국이 내심으로는 한소접근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고 일본언론들은 분석한다. 정경분리라는 명목하에 실질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파이프는 굵어지기만 한다. 그러나 소련처럼 한국을 정치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 중국의 약점이다.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외에 지난해 천안문사건이후 국제적으로 고립돼버린 중국에 있어서 북한은 일당독재를 견지하는 극소수의 맹우이다. 한국을 인정하는 쪽이 경제적으로는 유리하다는 것은 알면서도 외교ㆍ국방ㆍ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볼때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중국의 일반대중이 북한을 보는 눈은 따뜻하지 않다. 중소논쟁이 벌어지면 북한은 중국편에서 서지 않고 『배반했다』라고 대중은 보고 있다. 게다가 공식적으로는 말하지 않고 있으나 북한정권의 「세습」을 강력히 비판한다. 중국국민의 기분은 북한보다는 남한쪽에 기울어 있다. 소련의 한국접근이 어디까지 이루어질 것인가. 그 결과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중국지도부는 그것을 신중히 지켜보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중국의 앞으로의 한반도정책에 영향이 나올 것이라고 일본에서는 보고 있다. ▷평양◁ 한소 정상회담의 실현은 한국외교의 승리이며,북한에 있어서는 믿었던 한쪽 기둥이 완전히 붕괴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일본언론들은 지적한다. 요미우리(독매)신문은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경제적ㆍ군사적 원조를 받고 있는 이상 소ㆍ북한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키는 대항조치를 취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북한은 중국에 더 한층 기울어져 소련을 견제함과 동시에 대미ㆍ대일정책에서는 점차 융화적인 자세를 보이며 한국에 대해서는 남북대화에 관한 제안공세 등으로 쫓기고 있는 국면의 타개를 꾀할 것이라고 일본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 “동북아에 새평화기류 형성”기대/“한ㆍ소 관계 개선”미ㆍ일의시각

    ◎북한에 충격… 무언의 개방압력 일언론/동구수교 이어 또 하나의 승리 WP지 노태우대통령이 오는 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사상 최초로 긴급 한소정상회담을 갖는다는 빅 뉴스는 도쿄(동경)외교가에 큰 충격을 주었다. 외교소식통들은 한반도문제가 앞으로 세계의 새로운 초점이 될 것으로 전망함과 동시에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연내 소련과 국교수립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본의 언론들도 이번 한소 정상회담에 비상한 관심을 표명하면서,이의 실현은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정세를 펼치려는 한국의 적극외교가 가져온 획기적인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당초 한소 정상회담의 가능성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오는 6월5일 미국방문을 끝내고 귀국하는 도중 극동의 캄차카에 들러 아시아ㆍ태평양 정책에 관한 중요연설을 할 것이라고 보도된 30일 하오부터 점쳐지기 시작했다. 지난 86년 블라디보스토크연설,88년의 크라스노야르스크 연설에 이은 이번 캄차카연설은 고르바초프의 포괄적인 아시아 외교연설의 제3탄이 되는것으로,동북아시아의 중심국가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과의 사전협의를 거쳐 극동아시아지역에의 안정과 평화,나아가 한반도통일문제에 관한 새로운 제안이 있지 않을까라고 외교 관측통들은 전망했었다. 이번 한소 정상회담에 관해 도쿄(동경)신문은 『한소 양국의 국교수립과 경제협력,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정세를 중점적으로 논의할 전망』이라고 분석하고 『정상회담의 실현은 사상 초유의 일일뿐만 아니라 제2차대전 이후 남북한으로 분단된 한반도정세에 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소련정부는 지난 3월 소련을 방문한 김영삼 민자당대표최고위원과의 회담에서 한국과의 국교수립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으나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국교수립의 시기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신중한 자세를 보여왔다』고 말하고 『그러나 최근 소련매스컴에는 북한의 체제를 비판하고 개방ㆍ민주화를 요구하는 기사가 몇차례에 걸쳐 등장하는 등 현저한 변화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아사히(조일)신문도 해설기사를 통해 『소련의 대한수교수립은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크다』고 분석하고 『노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한반도 정세에의 영향력행사를 요청하는 한편 양국의 조기 국교수립을 강력히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한국정부가 이번 회담계획과 관련,이정빈 외무부 제1차관보를 미국에 긴급파견했으며 북방외교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박철언 전정무1장관이 최근 동구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미국에 들른 사실에도 주목했다. 그러나 이 신문은 북한이 한소 정상회담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소련은 동맹국인 북한의 태도에 여전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어서 이번 회담결과의 성패는 소련측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요미우리(독매)신문은 노­고르바초프의 회담은 지금까지 소련의 개혁과 동구의 변혁에도 불구하고 외형상으로는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던 한반도의 냉전구조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워싱턴의 서방측 소식통의 말을 인용,『이번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노대통령은 양국 경제협력의 가일층확대 이외에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소련의 영향력 행사,사할린잔류 한국인의 모국방문등에 관해 소련측의 협력등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신문은 또 『소련과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목표로 하는 한국의 북방외교는 남북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환경조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 때문에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특히 북한의 개방화촉진이 초점이 될 것이며 미일을 비롯한 서방측이 우려하고 있는 북한의 핵개발의 공포도 토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요미우리신문은 워싱턴의 소식통들이 이번 회담에서 『조기 국교수립등의 의제가 결실을 맺기에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고도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담실현자체만으로도 획기적인 일이며 한국ㆍ북한에 대한 일ㆍ미ㆍ중ㆍ소의 크로스 승인에 한발 더 다가설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이와 함께 노대통령은 워싱턴을 방문,이번 한소 수뇌회담의 결과를 포함,미국정부와 서방측의 대소ㆍ대중ㆍ대북한정책을 검토ㆍ재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방미중 노태우대통령과 회담을 갖기로 동의한 것은 소련의 주요 대한관계개선조치로서 북한의 김일성에겐 외교적 모욕이 될 것이라고 31일 뉴욕타임스지가 보도했다. 타임스지는 소련언론이 개방문제와 관련하여 김일성의 통치를 비난하고 있는것과 때를 같이해 노­고르바초프회담이 열린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소련에 대해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촉구해온 미국관리들은 노대통령을 미국에서 만나기로 한 고르바초프의 결정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타임스지는 한국문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이번 회담은 ▲한소관계정상화의 행보가 빨라지고 ▲소련이 북한보다 한국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북한에게는 타격이 될 것이라고 풀이했다. 타임스지는 최근 소ㆍ북한관계는 마찰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지적하고 그 예로 북한의 핵무기 안전협정체결 지연에 대한 소련의 불만,북한의 소련특파원 추방,소련언론의 북한관,소련역사가의 남침설 및 김일성정체폭로등을 지적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이번 회담은 노대통령이 북한지지국들을 상대로 추진해온 문호개방정책의 승리』라고 보도했다. 포스트지는 『소련은 북한으로부터 서서히 손을 떼고 있으며 이번 회담은 서울의 모스크바 동구 잠식에 화를 내 온 평양을 격분 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포스트지는 이번 회담에서 노ㆍ고르바초프는 전면외교관계 수립방침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 회담을 일괄적으로 지지할 것이나 보수주의자들은 소련과의 급속한 화해에 대해 못마땅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워싱턴타임스지는 이번 회담은 노대통령의 북방정책의 극적인 성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 「통석의 염」 의미 “사죄한다” 내포/일 외무성 보도관

    【도쿄=강수웅특파원】 아키히토(명인) 일왕이 노태우대통령에게 밝힌 일본의 과거사 사죄발언중 「통석의 염」은 「사죄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다고 일 외무성의 와타나베 보도관이 밝혔다고 26일 일본의 아사히 신문이 보도했다. 와타나베 보도관은 이 deepest regret를 apologize(사과하다 사죄하다)로 받아들여도 좋다고 도쿄주재 외국기자단에 설명했다고 이 신문이 전했다.
  • 교민들 눈물 닦으며 노대통령 환송/동경∼서울 여로 이모저모

    ◎가이후,“기술이전” 촉구하자 “노력하겠다”/일 프레스클럽 회견뒤 「진실일본」 휘호남겨 ○따뜻한 환대 감사 ▷2차 정상회담◁ ○…노태우대통령과 가이후 일본총리의 26일 상오 2차 정상회담은 1차 정상회담과 마찬가지로 개별회담과 확대정상회담의 순서로 1시간30분동안 진행. 상오 9시 회담장인 영빈관 2층 사이란노마홀(채란간)에 들어선 가이후총리는 양측 배석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곧이어 입장한 노대통령과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교환. 회색 싱글 차림의 노대통령과 연회색 싱글차림의 가이후총리는 전날밤 총리주최 만찬이 늦게까지 계속됐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기색없이 환한 얼굴로 기념촬영을 위해 잠시 포즈. 이 자리에서 노대통령은 『짧은 방문기간동안 따뜻하고 정성어린 환대에 감사한다』며 일본 정부의 세심한 배려에 인사.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는 이어 30여분동안 개별회담을 가진 후 장소를 소회의실로 옮겨 외무·법무·상공·과기처장관 등 관계장관들을 배석시킨 가운데 50여분간 확대회담을 계속. ○일 성의 거듭 촉구 ○…노대통령은 26일 상오 예상보다 18분 정도 길어진 확대정상회담에서 『내가 일본을 방문한다고 하니까 한국의 기업인들이 찾아와 88년 올림픽이 끝난 뒤 일본으로부터 기술이전이 중단됐다고 하더라』고 소개하고 『한국기업인들이 가까운 일본을 놔두고 미국·유럽 등 먼곳에 가서 기술을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니 일본을 가까운 나라로 생각하겠느냐』며 일본측의 기술이전 확대를 강력히 촉구. 이에대해 가이후총리는 『기술이전은 정부차원에서 할 수는 없고 민간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그러나 대통령께서 간곡히 말씀하시니 기업인들에게 이야기해 기술이전을 활발히 하도록 조언하겠다』고 약속. 가이후총리는 이어 『한국에 기술이전을 하려 해도 한국의 투자환경이 미흡하고 한국기업인들이 정당한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으며 한국의 노사분규 등으로 일본 기업인들이 꺼린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국내 사정을 거론했는데 노대통령은 『투자환경이 좋지 않다고 하는 것은 옛날 특혜를 누리던 시절을 생각하기 때문이고 노사분규는 성장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 곧 안정될 것으로 생각하며 이제 한국기업인들이 공짜로 기술을 얻으려는 사람이 없다』고 설명하며 일본측의 성의를 거듭 촉구. ○방한 초청에 사의 ▷일왕과의 작별◁ ○…노대통령 내외는 상오 11시 숙소인 영빈관에서 아키히토(명인) 일왕 부처와 작별인사를 나누면서 방일기간중의 환대에 사의를 표시. 노대통령 내외는 작별인사차 영빈관을 방문한 아키히토 일왕 부처를 현관에서 영접,2층 아사히노마로 안내하여 10여분간 환담.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도쿄에 머무르는 동안 일왕 부처와 일본 국민들이 보여준 따뜻한 환대와 배려에 감사한다』며 일왕및 일본지도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번 방일이 결실있는 성과를 거둔 데 대해 만족을 표명. 노대통령은 이어 일왕이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이에대해 아키히토일왕은 방한초청에 사의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 내외와 아키히토 일왕 부처는 환담이 끝나자 기념촬영을 했으며 아키히토 일왕 부처는 아사히노마 입구 홀에서 대기하고 있던 우리측 공식수행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노고를 치하. 아키히토일왕은 최호중외무·이종남법무장관에게 『여러가지 유용한 얘기를 많이 나눴느냐』고 한일 외무장관회담에 관심을 표시했고 박필수상공·정근모과기처장관에게는 『충분한 논의를 했느냐』고 역시 관심을 표명. ○기자 2백90명 참석 ▷일본기자클럽 회견◁ ○…26일 일본기자클럽 오찬회견이 열린 도쿄 우치사이 와이초(내행정) 프레스클럽 10층 국제회의장에는 2백60여명의 내외기자와 30여명의 사진기자가 입장해 초만원. 이날 사회를 맡은 미즈카미 겐야(수상건야)이사장은 노대통령을 소개하면서 『지난 87년 여당총재로서,그리고 선거를 앞둔 대통령후보로서 이곳을 방문했던 노대통령이 한국의 대통령으로 이곳을 다시 방문하겠다는 당시의 약속을 지켜 찾아준 것을 마음으로부터 환영한다』고 말했으며 노대통령은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물어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인사. ○…1시간45분여에 걸친 식사와 기자회견이 끝나자 노대통령은 일본기자클럽을 위해 「진실일본」이라는 휘호를 남겼으며 미즈카미 사장은 관례대로 만년필을 선물하며 『이것으로 2개째』라고 조크. 노대통령은 만년필을 받아들고 『지난번에는 펜이 칼보다 무섭다는 말을 남겼으나 이번에는 없을 「무」자를 남기고 싶다』고 피력. ○일일이 악수교환 ▷교포리셉션◁ ○…노대통령은 이날 오사카 국제공항 라운지에서 35만 관서지방 재일교포를 대표해 참석한 1백20여명의 교포들을 위해 리셉션을 마련,이들을 격려. 하오 3시40분쯤 부인 김옥숙여사와 함께 리셉션장에 입장한 노대통령은 교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다과를 들며 이들의 애환을 듣고 『용기를 잃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 달라』고 당부. 노대통령은 『우리 동포들이 가장 많이 살고있는 오사카를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처음 방문해서 여러분의 건강한 모습을 뵙게 되니 참으로 기쁘다』며 『짧은 시간이지만 오사카에 사시는 동포들을 꼭 뵙고 가야겠다는 생각에서 이처럼 바쁜 걸음을 하게됐다』고 설명. 이날 노대통령이 약20분 가까이 연설하는 동안 10여차례의 박수가 이어졌는데 노대통령 내외가 『몸 건강히 잘 계세요』라며 라운지를 나서자 교민들은 곳곳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환송. ○5분간 귀국인사 ▷서울공항◁ ○…노대통령 내외는 26일 하오 6시50분 특별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강영훈국무총리,이연택총무처장관,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의 기내영접을 받은 뒤 3군 군악대의 팡파르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트랩에서 태극기와 노대통령의 캐리커처 수기를 흔드는 1천2백여명의 환영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 감청색 싱글차림의 노대통령과 미색 한복을 입은 김옥숙여사는 트랩에서 내려와 3군의장대를 사열한 뒤 김재순국회의장,이일규대법원장및 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김종필최고위원 내외와 각료,민자당 3역,3군총장 등과 악수를 교환. 노대통령은 김대표최고위원·김최고위원에게 『여러가지로 고맙습니다. 성원해주신 덕분입니다』라고 인사했으며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증정받은 뒤 5분간 귀국인사. 노대통령은 인사말을 끝낸 뒤 환영인파의 맨앞줄로 가 일일이 악수하고 하오 7시15분쯤 군악대의 주악이 흐르는 가운데 환영객의박수를 뒤로 하고 헬기편으로 청와대로 출발.
  • “일왕 사과로 「감정의 골」메워지길”

    ◎“통석의 염”… 일 정계ㆍ언론의 반향/직접적 사죄 아니지만 진전 언론/솔직한 표현… 천황 방한길 터 정계/우파정치인들은 침묵ㆍ공산당선 “위헌” 주장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한일간 현안의 초점이 되어 왔던 「과거문제」에 관한 아키히토(명인)일왕의 발언내용은 일본언론과 국민들에게 여러가지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습니다』라는 24일 저녁 궁중만찬석상에서의 일왕의 발언은 일본의 책임을 명시한 것으로서 한일양국국민의 감정의 갭을 메울 수 있는 제1보라고 일본언론들은 받아들이고 있다. 아사히(조일)신문은 25일자 2면 해설기사에서 『천황의 발언은 84년 전두환대통령이 방일했을때 소화천황의 발언내용을 답습하면서도 식민지 지배의 책임이 일본에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명확히 하고 「불행한 과거」에 대한 생각을 솔직히 나타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은 한국측이 계속 요구해온 직접적인 「사죄」만은 피했으나 소화일왕의 「참으로 유감」이라는 것보다는 한층 깊은 표현이어서 양국관계는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25년만에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고 논평했다. 도쿄(동경)신문도 사설을 통해 『헌법상의 제약이 있는 가운데 상당히 진전된 표현으로 「과거」에 언급했다』고 평가하고 『누가 가해자이며 누가 피해자인가를 명확히 나타냈으며 표현도 인간미가 있고 알기 쉬웠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비 온뒤 땅이 굳는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과거를 씻고 우호협력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향상,사할린거주 한국인의 귀국협력,원폭피해자에의 원조액 증가,과학기술 및 원자력분야에서의 협력 등 많은 과제에 대해 일본정부는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한편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전총리는 『지난 84년의 발언을 인용하는 형식을 취해 시대의 흐름을 잘 처리했다』고 말하고 『(이 발언으로)천황의 방한은 가능해졌다고 생각하며 또 그렇게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천황을 정치의 장에 끌어 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등 반발을 보여온 민자당간부들은 냉철한 자세로 언급을 회피했으며 『일본이 무릎을 꿇고 빌라는 말인가』라는 망언을 했던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간사장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솔직히 받아 들이고 있다』고만 말했다. 이에 대해 야당 각 당은 공산당을 제외하고는 노대통령의 방일을 환영함과 동시에 일왕의 발언에 대해 『상징천황으로서의 기분을 솔직히 표현한 것』(사회당 납택부서기장)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사회당은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의 사죄에 대해서도 『때가 늦었다고는 하나 지금까지 역대 총리의 발언 가운데 가장 진전된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민사당은 『일본국민의 감정을 대변하는 것이다. 한국민에게도 그렇게 이해되었으면 한다. 이것이 새로운 한일관계확립의 초석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산당은 『천황은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갖지 않는다고 명기하고 있는 헌법에 반하는 것』(김자서기국장)이라고 비판했다. 일왕의 발언은 일반국민들사이에도 이론이 분분하다. 일왕의 발언내용에 「일본의 행위에 의해」라는 구절을 넣을 것을 주장해온 전 방위대학교장 이노키 사사미치(저목정도)씨는 『대단히 만족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소화천황의 발언에는 어느쪽이 가해자고 피해자인지 확실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던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됐던 불행한 시기」라며 가해자를 명확히 했다. 그런 내용 이하로는 앞으로도 한국대통령이 방일할때마다 문제화될 것이며 그 이상 깊은 내용이어서도 안된다. 나는 안전보장의 관점에서 사죄토록 주장해 왔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졌다. 이것으로 양국에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사할린거주 한국인문제에 간여하고 있는 다카기 겐이치(고복건일)변호사는 『사죄는 명확히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과거의 잘못은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일본이 과거에 대해 책임을 지고 청산ㆍ보상할 의무가 있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이 없다. 한국인들에게는 아직 불충분한 내용일 것이지만 한일간에 남아있는 문제에 대해 일본측이 해결에 전력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고 해석한다면 큰 의미를 갖는다. 어쨌든 구체적인 전후처리를 하는데 새로운 한일관계의 구축을 지향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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