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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三雄칼럼-실용학문과 학력파괴의 전당

    한국사회의 ‘고질적 괴질' 두가지는 지역감정과 학력차별이 아닐까. 선거철도 아닌데 지역갈등이란 괴질이 기업의 구조조정과 빅딜을 가로막고, 대통령이 경찰인사에 앞서 특정고교 문제를 언급해야 할 만큼 학벌과 학맥이 공정인사를 저해한다. 우리가 IMF시련을 겪는 배경에는 지역감정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논리의 경제행위와 사회 각분야 고위직의 근친상간적 ‘동창생조직'도 빼놓을수 없다. 구정권의 무리한 삼성자동차허가나 한보·기아그룹 봐주기행태, 여기에 상하좌우로 특정고·특정대학 동창생끼리 얽히고설킨 관료집단의 조직이 비판과 견제기능을 상실하면서 건강성을 잃게 되었다. IMF위기 속에서 지역감정이 다소 완화되는 듯하다가 최근 재발한 것과는 달리 ‘학력파괴'는 대단히 바람직한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여전히 일류대 지망생과 고시응시생이 줄을 서는 한편에서는 4년제 대학졸업생이 다시 전문대로 역류하거나 방송통신대학을 지망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일류대나 4년제대학 졸업장이 출세나 부를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출세'의 보증수표가 되었던 명문대 졸업장은 실력과 창의력을 중시하는 흐름속에서 효력을 상실한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이다. 미국에서는 고교재학생이 대학진학보다 실력으로 승부를 걸겠다며 직장을선택한 청소년이 수만명에 이르며, 요즘 일본 아사히신문은 주요인사들의 약력소개서에 학력표시 대신 출생과 경력만 소개한다. 제도권 대학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방송통신대학 육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있다. 대학교육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게 대학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거나 시민 재교육을 통해 복지구현에 힘써온 이 대학은 27년동안 재적생·재학생·동문등 100만 가족을 자랑하는 국내 유일의 원격교육기관이다. 방송대학은 金大中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창조적 지식과 정보중심의 지식기반 국가를 바로세우는, 그리하여 제2건국을 위한 문화운동으로서의 교육기관을 표방한다. 실력과 창의성, 진정한 공동체의식으로 사회의 미래를 선도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일을 우선과제로 삼는다. 이에 따라 학벌이나 인맥, 요령에 의해 성공을 꾀하는 태도와 학벌위주 교육이 야기하는 문제점을 타파하자는 것이다. 지난 2년동안 잇따라 교육부가 선정한 교육개혁추진 우수대학에 뽑힌 방송대는 방송강의 디지털화 등 첨단 시스템을 기반으로 학생들에게 높은 수준의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등 국민의 평생교육기관으로 육성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다. 실용학문과 학력파괴를 통한 능력위주 인물배출을 위해서는 방송대학 육성이 시급하다. 현재 21만명이 재학중인 방송대학의 예산중 국고지원금이 40%수준에 불과한 것은, 일반 국립대학의 70% 수준에 비해 지나친 홀대라 하겠다. 방송대는 일반 대학과는 달리 서민대중에게 고등교육을 하는 평생교육기관인 만큼 충분한 국고지원이 필요하다. 더불어 이 대학은 순수 학술적인 내용을 넘어 실용학문쪽으로 다가가겠다는 목표는 21세기 우리 교육의 방향과도 일치한다. “방송대는 우리사회 민주화의 시금석이다. 방송대가 성공하면 그만큼 우리사회의 학력차별이 사라지고 지식민주화가 진전될 것이다”란 학교 관계자의 주장이나, “金대통령이 서울대나 사관학교 졸업식참석도 중요하겠지만 방송대 졸업식에 참석하여 학력차별과 실용학문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모습이 절실하다”는 곽노현교수의 바람은 전체 방송대인의 소망일 것이다. 방송대 육성으로 ‘고질적 괴질'중 우선 학력차별 한가지만이라도 철폐시켰으면 한다. 주필 kimsu@deahanmaeil.com
  • 親日의 군상:8/월북무용가 崔承喜(정직한 역사 되찾기)

    ◎日帝에 국방헌금 내고 ‘舞踊報國’ 맹세/15세때 日 유학… 귀국후 세계순회공연하며 대활약/1942년 6개월간 만주 돌며 130여회 日軍 위문공연/해방후 前歷 비난 피해 남편과 월북… 北韓정권 참여 □엇갈리는 親日 평가 “예술위해 불가피” “자의적 친일 활동” 근대 이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중에서 ‘스타중의 스타’는 누구일까? 1930년대 당시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무용가 崔承喜도 그중의 한사람이다. 崔承喜는 세계적인 무용가라는 찬사를 받은 ‘전설적 예술가’였다. 바로 그 崔承喜가 최근 우리사회에서 ‘부활’하고 있다. 지난 6월 북한국적의 재일교포 무용수 白香珠씨가 내한공연을 통해 崔承喜의 춤사위를 완벽에 가깝게 복원한데 이어 한달 뒤인 7월에는 그의 이름이 국내 한 일간지에 대서특필되었다. 崔承喜(1911∼?). 언제적 이름인가. 그의 이름 앞에 ‘월북무용가’란 수식어가 필요할만큼 우리 귀에 낯선 이름 崔承喜. 해방후 남편을 따라 월북,북한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는 반세기 가까이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 왔다.그가 ‘최모(某)’에서 ‘崔承喜’라는 이름 석자를 되찾은 것도 90년대 들어서다. 암울한 일제하 미국과 유럽·중남미 등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식민지 조선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던 ‘조선의 꽃’ 崔承喜. 그러나 그는 남한에서는 ‘월북예술가’라는 이유로,북한에서는 ‘반(反)혁명분자’로 낙인찍혀 남북한 모두에서 외면당해 왔다. 격동의 우리 현대사가 지하창고에 가둬 뒀던 한 천재 예술가를 ‘역사의 양지녘’으로 이끌어내 보자. 崔承喜는 한일병합 이듬해인 1911년 서울 종로에서 양반집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26년 숙명여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당초 도쿄음악학교에 진학할 작정이었으나 연령미달로 입학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던중 큰 오빠 崔承一의 권유로 당시 일본 최고의 무용수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공연을 관람한 것이 계기가 돼 그의 문하에 입문했다. 해방후 그에게 쏟아진 ‘친일파’라는 비난은 그의 출생시점과 그가 일본으로 무용공부를 떠나면서부터 예고된 것인지도 모른다. 열여섯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3년간이시이 문하에서 무용공부를 한 崔承喜는 29년 귀국,서울 적선동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차렸다. 이듬해 2월 그는 경성(京城)공회당에서 제1회 신작발표회를 가졌는데 첫 공연 치고는 성공작이었다. 이 때 공연한 한국무용 ‘영산춤’ 등은 한국인이 춘 최초의 독자적 춤공연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무용사에 한 획을 그은 일로 기록되고 있다. 이듬해인 1931년 그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가이자 당시 와세다대학 재학생이던 安漠(본명 安弼承)과 결혼,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최승희연구가 鄭昞浩(중앙대·무용과) 명예교수는 그들의 결혼배경을 두고 “崔承喜는 공연기획 분야에서 천재적인 安漠의 능력을,安漠은 崔承喜의 인기를 사회주의 건설에 이용하기 위해서였다”고 분석했다. 해방후 崔承喜의 월북은 그의 남편 安漠의 권유가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安漠은 북한정권에서 평양음악학교장·문화선전부 부부장(차관)을 지냈으나 58년 숙청의 비운을 맞았다. 한편 崔承喜는 33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이시이 문하로 들어갔다. 남편 安漠이 ‘조선독립음모사건’으로 구속되자 정치적 압박과 경제적 곤란까지 겹쳐 더이상 국내에서는 활동이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두번째 일본행은 의외로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쿄로 돌아온지 두 달만에 그는 한 잡지사 주최 여류무용대회에서 ‘신인 스타’로 떠올랐다. 그 때 그가 춘 춤은 ‘에하라 노아라’라는 전통 조선무용으로 술에 취한 자기 아버지의 굿거리 춤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1934년 도쿄에서 개최된 그의 제1회 신작발표회를 통해 그는 명실공히 ‘톱스타’로 자리를 굳혔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는 “崔여사가 추는 조선무용을 보면 일본의 서양무용가들에게 민족의 전통에 뿌리박으라는 강력한 가르침을 볼 수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선인 최초의 무용가’라는 점이 의외로 일본사회를 강타하여 그에게 광고모델 요청이 쇄도했다. 하늘을 찌를듯한 그의 인기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여세를 몰아 그는 마침내 해외공연을 추진하였다. 중일전쟁 발발 이듬해인 38년 2월 그는미국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시작으로 해외공연길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프랑스 파리 공연에 이어 스위스·이탈리아·독일·네덜란드 등 유럽공연을 마쳤다. 이무렵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40년 브라질 공연을 시작으로 우루과이·아르헨티나·페루·칠레·멕시코 등 중남미지역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40년말 2년여 해외공연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오자 일제 당국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인기를 군국주의 전쟁에 활용할 속셈이었다. 결국 그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친일대열에 들어서게 된다.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崔承喜 부부는 궁성(宮城),메이지신궁(神宮),야스쿠니신사(神社)을 참배하고는 ‘무용보국(報國)’을 맹세하였다.(‘報知新聞’40년 12월7일) 며칠 뒤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구미(歐美)공연 때 마음이 든든한 것은 위대한 일본의 국력 덕분이었는데 새삼 조국에 감사하는 마음을 강하게 가졌다”며 친일성향을 드러냈다. 그의 친일과 관련,빼놓을 수 없는 일화 한토막.아사히신문 41년 2월5일자에는 ‘일독(日獨)헌금 교환,독일인 기사와 崔承喜씨’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내용인즉 일본회사에 근무하던 한 독일인 기사가 귀국하면서 여비의 일부를 국방헌금으로 써달라고 이 신문사에 기탁한 일이 있은 후 이번에는 유럽공연을 다녀온 崔承喜가 두 차례의 독일공연에서 생긴 수입금을 독일육군병원에 헌금하려고 가져왔다는 것. 이 무렵 崔承喜는 일본을 ‘조국’이라고 불렀다. 또 춤을 통해서도 그의 친일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일본춤의 비중이 점차 증가한데다 춤동작에서도 일본 전통춤인 ‘노(能)’가 차츰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가 공연 수익금의 일부,혹은 전부를 국방헌금으로 바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 부터다. 그는 수 차례에 걸쳐 일본군부와 조선군사령부 등에 국방헌금을 바쳤다. 41년말 ‘대동아전쟁’(소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예술가들까지도 전선(戰線)으로 내몰았다. 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42년 2월초 그는 일본군 위문공연차 만주·중국으로 향했다. 8월까지 6개월 동안에 무려 130여 차례의 위문공연을 하였는데 당시 그의신분은 일본 육해공군 촉탁이었다. 해방때까지 그의 일본군 위문공연은 계속됐다.그는 상하이 주둔 한 일본군 부대에서 위문공연을 하다가 일본패망 소식을 접했다. 해방이 되자 그에게는 중국 현지에서부터 ‘친일파’란 비난이 쏟아졌다. 이듬해 5월 귀국해 보니 사정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일전력(前歷) 때문에 그는 남한 땅에서는 설 땅이 없었다. 결국 그는 귀국한지 두 달도 채 안돼 남편을 따라 월북하였다. 격동기를 살아오면서 공과(功過)가 교차된 崔承喜의 일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여기에는 변호와 비판이 엇갈리기 마련이다. 무용학자 鄭昞浩 교수는 崔承喜의 친일행적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그는 예술을 위해 친일을 했을 뿐”이라며 그가 한국무용사에 남긴 업적에 무게를 실어준다. 반면 金鍾旭(서지연구가·60)씨는 “崔承喜는 도일 직후부터 본명 대신 일본식 이름(崔承子,사이쇼코)으로 활동한 열성 친일파”라며 그의 친일성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전성기 시절 ‘반도의 무희(舞姬)’‘민족의 꽃’으로 불리며 조선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崔承喜. 식민지시대와 분단기를 거치면서 그에게 씌워진 ‘친일(親日),친공(親共)’의 굴레가 ‘역사의 화해’를 볼 날은 과연 언제일까. ◎崔承喜의 知人들/동서양 명사들과 골고루 교분/美 소설가 존 스타인벡/영화배우 찰리 채플린/로버트 테일러·게리 쿠퍼/화가 피카소·시인 장콕토/周恩來 등과도 친교 전성기 당시 崔承喜는 ‘톱스타’답게 각국의 최정상급 명사·예술인들과 교류를 맺고 있었다. 우선 일본 체류시절 그를 후원해준 사람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와 민예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등 당대 일본 최고의 지성인들이었다. 그와 교류한 서양인으로는 미국공연 시절 사귄 지휘자 스토코프스키,소설가 존 스타인백·루이스 레에나·존 그로프,영화배우 찰리 채플린·로버트 테일러·게리 쿠퍼 등이 있다. 유럽에서는 화가 피카소를 비롯하여 시인 장 콕토,소설가 로맹 롤랑·미셀 지몽,영화배우 샬 보아에이 등이 그와 친교를 맺고 있었다. 또 중국인으로는 周恩來 총리,무용가 梅蘭芳 등이그의 후원자이자 벗이었다. 국내에서는 呂運亨·宋鎭禹 등 민족진영 인사와 남편의 동지이기도 한 朴英熙·韓雪野 등 카프계열 작가들이 그와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다. 파리공연 때 그는 피카소로부터 그림 한 점을 선사받은 적이 있다. 시가로 수억대를 호가하는 이 그림의 행방을 두고 安씨집안(시댁)과 崔씨집안(친정)간에 한 때 불화가 있었던 적도 있다.
  • 동아시아 4개국 뉴리더/경제위기 안풀려 속앓이

    ◎오부치­새내각 불신 높아 엔화가치 하락세/추안­경제 회복기미 없어 지지율 떨어져/하비비­민주화 열망으로 지지율 상승추세/에스트라다­빈곤대책 못내놔 국정 운영 어려움 【도쿄=黃性淇 특파원】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일본 총리를 비롯,최근 1년새 등장한 4명의 동아시아 뉴 리더들이 국민들의 변덕스런 지지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아시아 경제위기에 따른 여파다. 경제 위기에 대한 국민들의 민감한 반응들이 그때 그때의 지지율로 이어지면서 정책추진 등에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경제지표라고 할수 있는 환율과 주가도 함께 널뛰듯 해 이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오부치 총리는 90년대 들어 내각 지지율 최저라는 불명예를 안고 정권을 출범시켰다. 지지율이 33.1%(요미우리신문 2일자),32%(아사히신문,도쿄신문 3일자) 등으로 조사돼 새 내각에 대한 불신이 높은 상태. 오부치 총리가 선출된 지난 7월30일 141엔이던 대(對)달러가치가 하락을 거듭,3일엔 한때 145엔까지 폭락하기도 했다. 오부치에 거는 경제회복 신뢰감이 반영된결과로 지지율과 엔화가치가 연동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태국의 추앙총리는 노동쟁의나 군중시위 등에 의한 사회불안 요소가 줄었는데도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어 고민이다. 지난 3월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77%에 달하던 지지율은 3개월만에 61%로 떨어졌다. 경제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는게 결정적인 이유다. 그러나 중산층 이상의 지지가 높은데 위안을 삼고 있다. 하비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최악의 상황에서 출발한 덕을 보고 있는 경우다. 32년간 철권통치의 수하르토로부터 식량난·권력투쟁의 악재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자카르타 북부에선 반(反)화교폭동이 자주 일어나는 등 사회혼란에 정정(政情)불안마저 겹쳐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 경제상황은 나쁘지만(80%)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절반(47%)에 가깝다. 민주화의 열망이 지지로 이어져 정권 초기보다 지지율이 상승하는 추세. 지난 6월말 취임한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령은 아직 지지율에 큰 변화는 없다. 그는 라모스 전 대통령(24%)보다 높은 대선 득표율(39%)을 보였지만대선공약인 빈곤 대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해 ‘서민의 입맛’을 맞추지 못하면 국정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 그래서 경제위기 상황에서 운신의 폭이 이들 중 가장 좁다는 지적도 있다.
  • 아사히신문 유권자 1,100명 대상 조사

    ◎“日 차기총리 고이즈미 선호”/18%로 1위… 가지야마 1% 차로 2위/오부치·고노 동률 3위­미야자와 5위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 자민당 총재와 함께 다음 일본 총리 후보로 고이즈미 쥰이치로(小泉純一郞) 후생상이 일단 관심을 끌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13,14일 일본의 유권자 1,100명을 대상으로 차기 총리감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고이즈미 후생상이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외상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고이즈미 후생상은 지지율 18%를 차지했고 가지야마 세이로쿠 전 관방장관이 17%로 뒤를 이었다.당내외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돼 온 오부치 외상은 14%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외상과 동률 3위에 그쳤다.그는 자민당 최대 파벌인 오부치파 회장이다.한편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전 총리는 6%로 네번째였다. 그러나 이들 상위권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율은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들을 지지하지 않는 부동표가 31%나 됐다.하나같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갈 리더십이 결여되어 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일단은 오부치 외상이 유리한 고지에 올라 있다.최대 파벌의 회장 이며 주류인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미야자와파) 간사장,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와타나베파) 정조회장 등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오부치 외상에게는 인상을 남길 만한 업적이 없다는 게 약점이다.한 TV방송은 오부치 외상이 지금의 일본 왕이 즉위할 당시 관방장관으로 연호가 ‘헤이세이(平成)’으로 정해졌다고 발표한 것이 유일한 ‘업적’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고이즈미 후생상은 3대째 의원을 세습하고 있는 정치명문 출신으로 직설적인 발언,우편저금을 비롯한 우정사업의 민영화론 등으로 유권자들의 신망을 얻었다.그러나 당내에서는 ‘한마리 이리’로 취급당할 만큼 지지기반이 취약하다. 가지야마 전 장관은 경제적 비전을 제시한 점,비주류의 지지를 받는 점,경제계에서 지지가 높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당내에서 지지기반이 약하기는 마찬가지.당내에서 안정 세력 구축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점쳐진다.
  • 파키스탄/“核미사일 곧 실험발사”/개발책임자

    ◎射程 700㎞… 1년내 2,000㎞도 추진 【이슬라마바드·도쿄 AP AFP 연합 특약】 파키스탄은 핵탄두를 운반할 새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중이며 ‘며칠 안에’ 발사실험을 실시할 것이라고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책임자들이 1일 밝혔다. 파키스탄의 핵 에너지위원회 사마르 모바릭 만드 박사는 네이션 데일리와의 회견에서 수일 안으로 사정거리 700㎞의 ‘샤힌Ⅰ’ 미사일 발사실험을 실시할 것이며 1년 안에 사정거리 2,000㎞인 ‘샤힌Ⅱ’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도 시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만드 박사는 “‘발사실험을 하라’는 정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며 “지상실험 결과 샤힌Ⅰ 미사일은 매우 정확했으며 700㎞를 7초만에 도달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파키스탄의 핵실험을 주도한 압둘 카데르 칸 박사는 금세기 안에는 결코 추가 핵실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파키스탄은 인도와의 핵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언제든지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파키스탄의 정책은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의 협상을 통해 현안을 푸는 것”이라며 “인도의 긍정적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 日 국회 전쟁피해 조사委 추진/의원 30명 이내로 구성

    【도쿄=姜錫珍 특파원】 최근 일본 야마구치지방법원이 한국 종군위안부에 대해 국가배상을 인정한 판결을 내림에 따라 일본 국회내에 전쟁중 아시아 국민들에게 끼친 피해실태를 해명할 초당파 조사회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4일 보도했다. 신문은 민주당의 다나카 고우(田中甲) 중의원 등 의원들이 초당파의원연맹을 만들어 이번 정기국회중 ‘항구평화조사회설치법안’(가칭)을 제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그러나 국가의 손해배상에 대한 각당의 의견이 달라 법안 제출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다나카 의원 등이 준비하고 있는 법안은 국회에 30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조사회를 설치,관계부처에 자료제출을 의무화하는 한편 조사항목으로 종군위안부와 강제연행 외에 생·화학무기의 생산·사용 등도 포함시킬 예정이라는 것이다.
  • 미즈시마 아사호 와세다大 교수 아사히신문 칼럼(해외논단)

    ◎日 평화활동 확대할때 일본정부는 일·미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의 실행을 위해 관련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으나 지금 일본이 해야할 일은 군사활동의 확대가 아니라 평화활동의 확대라고 일본 와세다대학의 미즈시마 아사호 교수(헌법학 전공)가 주장했다.그는 군사면이 강조된 일·미 안보조약을 민주주의와 기본인권의 가치를 공유하는 ‘일미우호조약’으로 바꾸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아사히신문에 실린 그의 칼럼을 요약한다. 입법작업의 기본원칙은 명확한 법률용어를 사용하여 오해가 없도록 해야하는 것이다.그러나 일본정부가 일·미 방위협력지침의 실행을 위해 국회에 제출한 ‘주변사태 법안’은(해외파병과 무력사용 등을 금지한) 헌법9조와의 저촉문제 이전에 여러가지 법률제정에 있어 근본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日·美 방위협력지침의 문제 먼저 법안 제목인 ‘주변사태’의 개념자체가 매우 애매하다.그것은 지리적 개념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나 그때그때 일어나는 사태의 규모와 상황 등에 따라 결정되는 개념이라고생각할 수 밖에 없다.일본정부가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고 하는데는 특정 지역·해역을 정해 미군과의 협력의 장을 제한하는 표현을 가능한한 피하려고 하는 의도가 숨어있다.정부내에는 ‘주변’을 극동이라고 보는 경향도 있다.그러나 ‘적’의 범위를 분명히 하지않음르로써 그 애매함이 억지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주변사태 개념이 미국과의 군사협력 범위를 넓히는 공간적 개념뿐만 아니라 어느 의미의 시간적 개념을 동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현재의 자위대법은 유사(有事)사태를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과 그러한 위협이 있을때로 규정하고 일·미 공동작전도 일본과 주일 미군기지에 대한 무력공격이 있을때 가능하도록 되어 있으나 새로운 법안은 상당히 빠른 단계에서 대응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태’의 단계에서 대응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한신(阪神) 대지진이후 자위대의 출동이 재해파견의 경우 빨라졌다.하지만 전투부대로서의 출동은 법적으로 제한을 받고 있다.그러나 미군에 대한후방지원이라는 간접적인 형태의 경우 출동요건이 완화됐으며 그것은 중대한 의미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새 법안은 ‘일본을 방위한다’라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위대와 그 관련법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 될지 모른다.그것은 실질적으로 일본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전수방위개념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헌법의 전수방위개념 깨져 새 법안은 또 미군과의 협력에 있어서 신속성과 효율성을 우선하고 있다.국회에 대해서는 사후 보고만으로 충분하다고 규정하고 있다.‘군사적 합리성’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보면 가능한한 현장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타당할지 모른다.그러나 국민주권국가에서 그러한 현장판단만을 우선하는 것은 헌법의 제약이 없는 미국과 같은 ‘보통 국가’에서도 허용되지 않는다.헌법상 외국에 대한 무력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일본에게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군사적 합리성’ 우선의 발상은 무기사용 규정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새 법안 2조는 무기사용 요건을 확대하여 소형무기에 한정하지않고 있다. 선박검사활동과 수색구조활동은 해상자위대의 함정과 헬기가 담당하도록돼 있는 가운데 요건만 갖추면 고성능 기관포와 속사포 등의 사용도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그런 의미에서 새 법안은 일본이 자체 영역외에서 무력행사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기본권 중시 우호협약 전환 지금 일본의 대외정책에서 요구되는 것은 헌법에 기초한 ‘평화적 합리성’이지 ‘군사적 합리성’은 아니다.이때문에 군사적 역할의 확대를 규정하고 있는 새 법안은 폐기돼야한다.새로운 일·미 방위협력지침도 마찬가지다.군사동맹적 색채가 짙은 일·미 안보조약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민주주의와 기본적 인권의 가치를 공유하는 ‘일·미 우호조약’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그것이 헌법이 규정한 국제협조주의의 진정한 구체화이다.
  • 日 정부 “불만” 학계 “당연한 귀결”/위안부 판결 각국 반응

    ◎미 적극 환영… “놀랍고도 예리한 판결”/중 관계자 “모든 희생자에 배상 마땅” 【도쿄=姜錫珍·워싱턴=金在暎·베이징=鄭鍾錫 특파원】 일본의 야마구치(山口)지법 시모노세키(下關)지부가 한국인 출신 종군위안부에 대한 국가배상을 인정한데 대해 일본정부는 유감을 표명했으나 일본의 전후문제 전문가들은 28일 이를 환영하고 종군위안부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일본 정부가 장기간 피해회복을 방치해온 ‘현재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베(神戶)대학의 무네이 가이코(棟居快行) 교수는 이 판결에 대해 “종군위안부 문제는 옛 일본헌법하의 과거 사실만이 아니라 전후 장기간 당사자의 피해회복을 방치해온 현재의 문제로 봐야한다는 견해를 나타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연립여당중의 하나인 사민당의 이토 시게루(伊藤茂) 간사장도 28일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하여 대응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한번 더 진솔하게 생각할 가치가 있는 판결”이라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종군위안부 문제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자민당의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간사장은 기자회견에서 “판결을 잘 읽어보고 논평하겠다”며 자세한 언급을 유보했으며 무라오카 가네조 관방장관은 27일 “정부가 주장해온 내용의 일부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며 항소의 뜻을 시사했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그러나 ‘획기적 판결’이라며 환영을 나타냈고 도쿄신문도 사설에서 ‘사회정의와 도덕에 충실한 판결’이라고 밝혔다.하지만 보수적인 산케이신문은 ‘잘못된 판결’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미국 언론들은 27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국가배상 판결을 주요기사로 보도했으며 중국단체도 환영을 표시했다. 미국의 ABC,NBC,CBS등 3대 TV와 CNN,MSNBC 등 뉴스전문 방송들은 27일 위안부 3명에게 30만엔씩 지불하도록 판결한 것은 놀랍고도 예리한 판결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방송들은 특히 원고들이 명백히 승리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 정부는 완전히 패배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중국의 중국전쟁보상요구위원회의 퉁 젱 위원장은 27일 “이번 판결이 때늦은 감은 있지만 좋은 출발이다.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들 3명만이 아니라 모든 희생자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한·미·일 안보협의 中 참여 요청

    【도쿄=姜錫珍 특파원】 한·미·일 3국은 한반도 유사시 방위협력을 논의하는 3국 안보협의에 중국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27일 보도했다. 한국은 지난해부터 3국간 방위협력을 위해 행해지고 있는 방위당국자 협의에 대해 중국이 경계심을 가질 것을 우려,지난해 5월 2차회의에서 미·일 양국의 이해를 얻어 이같은 의사를 중국에 전달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한국은 중국에 대해 ‘정식 참가도 좋고 옵저버로서 참가해도 좋다’고 중국측에 의사를 타진하고 있으며 중국은 처음에는 ‘검토하겠다’고 말했으나 결국 참가하지 않아 이번 3차 협의도 세 나라 방위당국자만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 美,유사시 구출대상 日人 제외/가이드라인 정비

    ◎他동맹국과 형평 고려 연료·부품만 협력 【도쿄 연합】 새로운 미·일 방위협력 지침(가이드라인)의 실시와 관련,일본정부가 국회에 제출하려는 주변사태법안(가칭)에 해외 일본인 구출을 위해 미국과 협력한다는 문제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14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해외 일본인 구출문제는 작년 9월 합의된 신방위협력지침에서 미국에 의한 ‘대일(對日)협력’의 요체였으나 법 정비 단계에서 미국이 난색을 표명,일본이 수용했다. 신 방위협력지침은 주변사태가 발생할 때 미·일 양국의 비전투원(일반시민)을 제3국으로부터 안전한 지대로 철수시킬 필요가 있을 때에 대한 조치를 규정하고 있다. 즉 미·일 양국 정부가 각각의 국민 구출에 책임질 것을 확인하고 서로가 적절하다고 판단될 경우 각각의 능력을 상호 보완적으로 행사하되 ▲수송수단의 확보 ▲수송 ▲시설의 사용 등에 대해서는 계획 및 실시에 있어서 조정·협력한다는 것. 그러나 이 지침에 따른 부차적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비전투원 구출작전’(NEO)에 일본인 구출을 포함시키는 문제에 대해 미국은 다시금 신중한 입장을 표명했는데 그 이유는 다른 동맹국으로부터 이같은 성격의요구가 없어 형평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아사히신문은 설명했다. 결국 양국은 신 방위협력지침의 표현보다 크게 후퇴,구출작전 때에 필요한 연료와 식량,부품 등의 상호 제공에 그치는 것으로 결착했다.
  • 증시·외환시장 ‘꽁꽁’… 경기 불투명/日 금융대개혁 시행 파장

    ◎ㅔ저업경기 판단지수 94년이후 최저 기록/엔화 달러교환·해외계좌 개설 크게 증가/개인금융자산 안정성 높은 우편저금 몰려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 금융빅뱅이 지난 1일 드디어 막이 올랐다.일본은 2000년대 초까지 금융관련 각종 규제를 철폐시켜 ‘시장의 활력’이 다시 찾아들도록 하려 하고 있다. 1일부터 실시된 것은 개정 외환관리법과 개정 일본은행법 등이다. 개정 외환관리법 골자는 개인과 기업이 외환을 보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있도록 하는 것.개인은 외화로 지불행위를 할 수 있다.외환구좌를 개설하고 해외에서 자유롭게 결제할 수도 있다.외환 거래 영업도 원칙상 자유롭게 허용됐다.기업은 수출입 대금을 은행을 거치지 않고 상계시킬 수 있다. 그러나 빅뱅 실시 첫날부터 시장은 심술을 부리고 있다.증시와 외환시장은 얼어붙고 기업들의 경기전망은 바닥을 치고 있다.설상가상,무디스는 지난 3일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부정적’으로 한단계 하향조정했다. 좀더 지켜봐야 겠지만 증시는 수일째 활력을 찾지 못한채 정부의 기대를 무색케 했다.특히 빅뱅 실시 직후인 1,2일 연속 도쿄증시는 1만5천700엔대로 폭락했다.엔화 역시 6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만큼 가치가 폭락했다. 빅뱅 실시와 동시에 발표된 일본은행의 기업단기경제관측조사에서 주요제조업체들의 업황(業況)판단지수(DI)가 마이너스 31을 기록했다.주요 비제조업,중소 제조업,중소 비제조업 모두 마이너스 30대를 기록,전업종에 걸쳐 무차별적으로 경기가 어둡게 전망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상대로 되고 있는 것도 있다. 아사히신문은 2일 뉴욕등 외국의 금융기관에 엔화를 달러로 교환,예금하는 건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고 전한다.이자율이 높은 외국으로 자금이빠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1백만달러의 ‘소규모’ 구좌가 크게 늘고 있어 중산층 이상의 여유 자금이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외국으로 탈출하기 어려운 개인 자금들은 안정성이 높은 우편저금으로 몰려들고 있다.요미우리신문 조사에 따르면 ‘이익이 적어도 안전한 것’을 선택하겠다는 비율이 72%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NEC등 유수의 기업들은 수출입액을 상계한 차액결제제(네팅)를 일제히 도입했다.NEC의 경우 은행에 물던 수수료만 연간 10억엔 이상을 절약할 수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얼어붙은 시장,수익과 안전성을 향해 발걸음을 서두르는 자금의 흐름­빅뱅의 시작은 혼돈이었다.
  • 현대무용가 安信姬(이세기의 인물탐구:166)

    ◎섬광 폭죽인듯 폭발하는 춤사위/대한민국무용제서 대상·개인연기상 등 휩쓸어/‘지열’로 일 국제페스티벌 딛고 아시아 스타 浮上 스포트라이트속에 정지된 安信姬의 포즈는 ‘그 자체가 춤의 시(詩)’라고 할 수 있다.신체의 사선(斜線)을 축(軸)으로 삼아 아이키도 돌기며 바운징으로 그가 돌아가야할 ‘길’에서 배회하고 ‘섬과 섬사이’를 떠돌면서 고뇌하는 현대인의 이미지를 불꽃같은 감성으로 춤추어 낸다.‘춤은 춤으로 보여주고 들려준다’는 그는 공연때마다 ‘무진장의 에너지를 폭죽처럼 터뜨리고’‘내쏘듯 날카로운 섬광’을 무대중앙에 흩뿌리기도 한다.안신희란 존재는 이미 ‘춤과 사색,행위의 철학’을 빼고는 말할 수 없는 무용가이다.어느때는 ‘조롱에 갇힌 새’,어느때는 ‘이 세상의 모든 자유를 지닌 해방감’에서 단순한 극과 극이 아닌,중용의 조화를 얻기 위한 내심의 춤을 구축하기 때문이다.‘춤’은 그의 ‘숙명’이자 잠시도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천부의 인연으로 그는 언제부턴가 ‘춤의 심연’에 깊이 빠져버렸다. ○“춤은춤으로 보여준다” 그가 만든 춤중에서 특히 관객의 시선을 끈 것은 지난 83년 일본 현대무용협회와 코파나스회가 공동주최한 제1회 국제 현대무용페스티벌에서 춤춘 ‘지열(地熱)’을 들 수 있다.‘지열’은 서구적인 차별성과 한국적인 특성을강조한 작품으로 춤추고 났을 때의 무용수는 한바탕 굿판을 끝낸 신들린 무녀(巫女) 모습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긴 박수소리와 함께 그가 도취에서 깨어나자 일본 매스컴들은 그를 일약 ‘아시아의 신데렐라’로 부상시켰고 아사히신문과 주간‘아사히 저널’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신비로운 무대’제하로 ‘이번 축제에서 오늘의 춤을 보여준 것은 객석에 시종 싸늘한 긴장을던진 안신희의 지열이 단연 압권’이라는 평을 보냈다. ‘지열’을 전환점으로 그는 다시 대한민국 무용제에 ‘섬’으로 도전했고 시인 정현종의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구절과 ‘그 섬에 가고 싶다’는 테마로써 ‘섬은 다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다’는 섬의 이상향을 역동적으로 풀어나갔다.그리고 그는 더이상 여러그룹속의 안신희가 아닌 대한민국 무용가로 떠올랐다.무용인 최대의 영예인 대상·개인연기상·미술상을 한꺼번에 수상하는 과정에서 평론가 박용구 조동화 김영태씨는 ‘뛰어난 리듬감각과 문학적 작품성은 올해 무용계가 얻은 최대의 수확’임을 전제,‘스타성이 있는 현대무용가’로서 ‘박력과 자기춤에 몰입하는집중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며 ‘자기 욕심을 포기할줄 모르는 안무가’로평했다. ○활화산­불생의 무용 안신희는 전남 구례에서 양조장과 정미소,과수원을 경영하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어릴때는 부친 安基浩씨를 따라 풍광이 수려한 지리산에 오르거나 섬진강 지류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춤의 흐름을 몸속에 싹 틔울수 있었다.초등학교 5학년때 집안이 서울로 이사,그때까지는 ‘장래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가 없었으나 배화여중때부터 춤추기 시작하여 ‘악바리’‘연습벌레’라는 별명을 들을만큼 춤에 대한 강한 집념을 불태웠다.그때도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포즈에 한치의 흔들림을 용납하지 않아 이완과 수축,스피드와지속이라는 범위속에서 반드시 명확성과 평정성 민감성을 끌어냈고 ‘완벽’이라는 해답을 얻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첫무대는 74년 스승인 육완순교수가 안무한 ‘슈퍼스타’다.‘늘씬한 키에 쭉뻗은 몸매,아름다운 외모가 풍기는 이지적인 분위기’로 그는 다음해엔 1개월간 미국공연,83년까지 유럽순회공연에 합류했다.그는 크거나 작은 어떤무대도 겁내지 않는 무대체질이 천성이기도 하다.한때는 알렉산더 고두노프의 예술성과 테크닉,극적인 춤의 특성에 매료되었고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적 카리스마,마곳 폰테인의 지고지순한 삶을 선망하면서 직관적인 선택과 엄격한 훈련으로 불균형과 비대칭,현대생활에서의 불확실성과 다양성을 은유적으로 부합시키는 무용구조를 성립해 나갔다. 그의 무용의 길은 한동안 탄탄대로 였으나 대학 3학년때 부친의 사업실패로 대학원진학을 앞두고 고향인 구례에 칩거한 적이 있다.그러나 ‘무용의 길은 너무 멀다’는 것과 ‘예술가는 어려움을 이길줄 알아야만 거듭난다’는뼈아픈 경험끝에 무용없이는 ‘공기없이 사는 것처럼’ 무의미하다는 결론아래 한때는 밤낮없이 기도에 매달려야 했다.끝내 ‘하나님이 대로(大路)를 열어주실 것같은 강한 암시’를 받았고 그 시절에는 적선동에 방한칸을 얻어 신촌까지 걸어다니면서도 다시 ‘춤출수 있다’는 기쁨과 샘솟는 창작의지로 창작무용들을 얼마든지 만들어냈다.‘교감’‘13월의 여행’‘청동무늬’‘전설’등은 그때의 산물이다. ○미­유럽순회 공연도 원로 평론가 박용구씨는 ‘안신희는 마치 불을 보면 뛰어드는 나비처럼 그의 춤은 자신의 몸을 사르는 활화산의 무용이자 불새의 무용이며 그의 춤에접하면 고압선에 감전된듯 강한 전율을 느낀다’고 평한다.최근의 그의 춤은 무르익은 성숙을 보이면서 아무런 틀에도 얽매이지 않는 지상 최대의 자유를 춤으로 구조화하는 시기다.객석의 애증의 그림자마저 읽게된 그는 자연과 문화와의 경계선을 추구하면서 리처드 버크의 ‘갈매기’처럼 더높이 더멀리 날기 위한 모든 과정을 뛰어넘고 있다.실제로 그의 무용언어는 연극적 대사가 느껴지는 절규와 경악과 유기적인 삶의 풍경을 흐르는 강물처럼 표현해 낸다.가족은 그의 무용적 삶을 이해하는 부군 韓基天씨와 아들 누리(12살)가 있다.오늘의 한국무용을 수놓고 있는 수많은 별들 중에서 안신희가 이룬 성좌는 누구보다 밝고 극명하다.한때는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슬픈’ 희비애락에 침몰되기도 했으나 이제는 몸속으로부터 솟구치는 득의의 춤을 추게 되었고 쏘는듯 날카로운 춤의 빛줄기는 관객의 가슴에 언제라도 진한 감동을 던져준다.그는 자기 세대에서 만인의 시선을 받는 춤꾼으로서 지금부터가 ‘안신희 무용’을 위한 비상(飛翔)직전의 출발선상에서 고고하게 서있다. ◇연보 ▲1957년 전남 구례출생 ▲1974년 육완순무용단 ‘슈퍼스타’출연 및 미국지역순회 공연 ▲1983년 안신희 무용발표회,육완순무용단 ‘슈퍼스타’유럽순회 공연 ▲1984년 이대 교육대학원졸업,프랑스 소르본대학 무용과수업 ▲1992년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과 레닌그라드국립발레단 합동공연 ‘만가’출연(소련 모스크바·레닌그라드) ▲1993년 대전 EXPO개막축제안무 ▲1996년 서머아트페스티벌 및 빛고을창작무용제 ‘꾼들’안무·출연 ▲1998년 5월 국제현대무용페스티벌 ‘존재’’고향에 대한 보고서’ 안무·출연 한국현대무용협회 및 한국현대무용진흥회이사,21C선교무용위원 현대무용분과위원장,한국예술종합학교강사 대한민국무용제 신인상(81년) 대한민국무용제·대상 및 개인연기상(83년) 코파나스상(84년) ‘2천년대를 달리는 한국의 예술가’(92년)선정,‘부상하는 한국의 아티스트’ 선정
  • 美,日에 집단적 자위권 촉구/외교평의회 보고서

    ◎“TMD체제 등 미 작전 참가 확대” 【도쿄 연합】 미 외교문제평의회(CFR)는 일본에 대해 헌법상 금지돼 있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촉구하고 전역미사일방위(TMD) 체제 참가를 요구하는 보고서를 마련했다고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31일 워싱턴발로 보도했다. CFR은 또한 냉전종결에도 불구하고 미·일 안보체제는 강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에 따르면 미·일 안보체제의 문제점을 검토해온 CFR은 미·일 안보조약이 ‘한반도와 타이완해협 등에서의 위기로 갑자기 붕괴될지도 모른다’며 강한 우려를 표시하고 ‘안보체제 강화가 가장 우수한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일본이 ▲미·일 안보조약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포함,일본 자위대가 미군의 작전에 계획단계에서부터 참가할 수 있도록 합의를 이뤄내야 하며 ▲TMD를 비롯 장기적인 무기조달계획 책정에 관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미국에 대해 ▲미·일 안보의 중요성을 의회와 국민에게 납득시키고 ▲오키나와 주둔군을 포함,아시아지역 미군 배치에 유연성있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 日,재외국민 투표권 부여/공직 선거법 개정안 마련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이 재외국민에 대해서도 오는 2000년부터 투표권을 부여하게 될 것이라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31일 보도했다. 일본 여야 정당은 외국에 거주하는 50만명의 재외국민에 대해 중참의원 선거 비례구에 한해 투표권을 부여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의견을 모았으며 개정안은 이번 국회 회기중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 개정안은 그러나 선거구는 후보자가 많아 충분히 주지시키는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 등을 이유로 당분간 투표권을 비례구로 한정키로 했다.
  • 일,폐기물 북에 불법 수출/알루미늄 제련사 8년간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의 한 알루미늄 제련회사가 제련과정에서 나오는 유해 산업폐기물인 알루미늄 찌꺼기(잔회)를 지난 8년동안 북한에 대량으로 불법 수출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15일 보도했다.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나고야시의 알루미늄 2차 제련회사는 일본내 재이용 수요가 거의 없는 알루미늄 찌꺼기의 처리를 위해 북한과 수출계약을 맺은뒤 실제로는 운임 창고비용 등 경비를 전액 부담하는 방식으로 북한에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지난 90년부터 수출을 시작,지난해 일본 국내에서 폐기되는 양의 14%에 해당하는 1만6천300t을 수출하는 등 지난 8년동안 수출량이 5만1천t에 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 후생성과 나고야시는 이같은 행위가 사실상의 산업폐기물 수출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고 ‘폐기물 처리 및 청소에 관한 법률’ 위반 협의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 일제 1944년 조선인 28만 징용/각의 자료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제의 조선인 강제징용이 절정에 달했던 1944년도 일본 도·도·부·현별 연행예정자 수를 표시한 당시 각의 결정 첨부자료가 밝혀져 일제의 강제연행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27일 보도했다. 재일 한국인과 일본인 학자들로 구성된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이 최근 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찾아낸 이 자료는 44년 12월28일자 경찰관 증원 등에 관한 ‘내무부 내 임시직원 등 설치 외 5칙령 개정의 건’이라는 제목의 각의결정 첨부자료 가운데 포함돼 있다. 일제의 연도별 강제연행수를 밝힌 자료로는 전후에 작성된 ‘미국전략폭격조사단보고서’가 있는데,이 보고서도 44년도 연행자수를 28만304명으로 적고 있어 이번에 밝혀진 연행예정자 수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 “한반도 해빙 시작됐다”/국민의 정부 출범­해외반응

    ◎일 총리 “한국 발전위해 협력 아끼지 않을것”/주요 언론들 “민주주의 한단계 더 성숙” 강조 【워싱턴〓김재영·뉴욕=이건영·북경=정종석·도쿄=강석진·파리=김병헌·모스크바=유민 특파원】 미국·중국·일본·러시아·유럽 등 세계 각국은 25일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을 일제히 환영하고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과 한반도의 화해를 위한 새로운 시대가 개막됐다고 강조했다.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총리,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등 세계 지도자들은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한다”고 밝히고 김 대통령의 당선을 계기로 한국과의 우호관계가 더욱 증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시모토 일본총리는 “김대중 대통령이 매우 어려운 때에 대통령에 취임했다”고 지적하고 “일본은 한국의 발전을 위해 가능한 모든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정부도 ‘김 대통령의 취임을 환영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한·중간의 선린우호관계가 유지·발전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프랑스 외무부도 공식 환영성명을 발표하고 ‘한국이 정치·경제 등 여러면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됐다’고 지적했다. 세계의 언론들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며 미국의 CNN 방송은 취임식을 생중계했다.AP·AFP 등 세계적 통신사들도 김 대통령의 취임을 긴급 뉴스로 보도한후 남북특사교환 제의 등을 비롯한 취임사와 경제문제 등 앞으로의 과제를 자세히 전했다. 미국의 ABC방송은 “한국을 21세기로 이끌고 갈 새 대통령은 ‘컴백 키드’(재기의 천재) 그 자체”라며 김 대통령의 곡절많은 정치인생 역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뉴욕 타임스 등 미국언론과 아사히신문,요미우리신문 등 일본언론 그리고 캐나다 멕시코 언론 등도 김 대통령의 당선으로 여·야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며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단계 더 성숙됐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는 ‘한국의 희망의 날’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김 대통령의 취임은 경제의 개방과 정치적 책임이 동아시아의 금융위기를 치유할 수 있는 지의 여부를 시험하는 시작이라고 말했다.신문은 또 난관을극복하는 김 대통령의 경력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가 이뤄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할지 모르지만 지난 12월 대통령선거이후 그가 해낸 업적은 낙관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시아 월 스트리트 저널은 김대중 대통령의 성공은 권위주의적이고 독재적인 아시아적 가치에 매달리고 있는 다른 아사아 국가들도 언젠가는 한국의 뒤를 따를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주의가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는데 최선의 정치제도임을 입증하면 그의 대통령 취임은 한국뿐만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한·미·일 방위협력 유사시 대비 강화/일 아사히신문 보도

    【도쿄 연합】 한국과 미국,일본의 방위당국은 북한의 자체붕괴를 비롯한 한반도 유사시의 역할분담 등 구체적 협력방안을 검토하기 위한 3국간방위협의를 강화하기로 했다고 아사히신문이 13일 보도했다. 아사히는 미·일 양국 방위소식통을 인용,3국은 올해 최중요과제의 하나로 협의의 ‘긴밀화,정기화’로 정하고 한국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새 정부가 출범한 뒤 오는 3월초순 서울에서 차기 협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3국간 방위협의 강화 배경으로 지난 2년 동안 한·미 양국간에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대비한 문제를 논의해왔으나 지난해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이 책정됨에 따라 한­미,미­일간의 협력문제를 새로 검토할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일,6개국 평화공동선언 큰 관심

    ◎새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변화에 주목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언론들은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지난 11일 중국 강택민 국가주석에게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한 6개국 선언을 제안한데 대해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일본 언론들은 중국 신화사통신이 회담 내용을 전하고 있지 않지만 한국측이 북경주재 한국특파원들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강주석이 제안에 찬동하는 입장을 보였다고 덧붙이고 있다. 일본이 ‘6자’ 형태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동북아 안보의 최대관건인 한반도 협의의 틀에 자신들도 참여할 마당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미일,중일,러일 양자간 안보 협의는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지만 아직은 동북아 안보 무대에서 기대한 만큼 영향력을 확보해 나가지는 못하고 있다.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특히 안보와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한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디 때문이다. 더우기 남북한 미국 중국으로 구성된 4자회담이 한반도 협의의 기본 틀이 된 다음에는 이를 지지하고 한미 양국으로부터설명을 듣는 수준에 발이묶여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4자회담이 제안된 직후 일본과 러시아로 부터는 6자,7자(유엔까지 포함) 협의가 바람직하다는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아 왔다. 한편 일본 언론들은 6자 구도가 ‘불쑥’ 제안된 점과 관련,차기 정권의외교 안보 정책의 주요한 변화가 아닐까 주목하면서도 4자회담과의 정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는 등 실현여부에 대해 신중한 예측을 내놓고 있다. 아사히신문과 도쿄신문등은 중국도 한반도 안정을 위해서는 러시아와 일본의 참여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면서도 북일관계 개선,북한의 수용여부 등 여러 문제가 남아 있어 실현여부는 불투명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 일 언론 “한일관계 악화 우려”/어업협정 파기 도쿄 표정

    ◎일부선 “반일감정 장기화 안될것” 느긋 【도쿄=강석진 특파원】 한일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일본은 한국의 반발 양상을 주시하면서 당분간은 반일감정이 사그러들기를 기다리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치권은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무라오카 가네조(촌강겸조)관방장관은 “감정적인 반응은 쌍방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냉정하고 건설적인 대응이 중요하다”고 ‘병 주고 약 주기’식의 충고를 했다. 일본 수산업계는 협정 파기를 일제히 환영했다.그러나 일부에서는 한국이 자율규제를 철폐함에 따라 연근해 어장이 황폐화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또 제주도 연근해 조업 어민들은 어업협정 파기에 반대하기도 했다.수산회사를 경영했던 한 관계자는 “좋은 어장을 잃게 된다”고 우려했다.그러나 이런 목소리는 매우 미약한 상태. 일본 주요 언론들도 24일 사설등을 통해 파기 경위와 당위성 등을 설명하면서 한일 양국 관계 악화를 크게 우려했다. 언론들은 대체로 교섭 조기 재개 등을 촉구했으나 일부에서는 설 연휴가 있어 파기로 인한 반일감정이 장기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느긋한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또 일본이 과거 성능이 우수한 일본어선들의 이익보호를 위해 기국주의를 주장했으며 한국 어장을 황폐화시킨 사실 등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지않은 채 한국 어선들에 의한 최근의 피해만을 집중 부각시켰다.아사히신문과 도쿄신문 등은 이번 결정이 한일관계 전반을 고려하기 보다는 어업 이익을 우선시킨 것이라면서 이번 결정이 현명한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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