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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존재 의미 되묻는 日 희곡 ‘친구들’

    일본의 대표적 극작가 아베 고보의 ‘친구들(友達)’이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다.지난 93년 예순아홉의 나이로 타계한 아베 고보는 생전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될만큼 탁월한 소설가이자,연극집단 ‘아베 고보 스튜디오’를 거점으로 독자적인 연극활동을 편 극작가로도 이름높다. 이번 무대는 국립극단이 올 한해 의욕적으로 기획한 ‘한·중·일 동양3국연극 재조명시리즈’의 하나로,‘아Q정전’(중국)‘무의도기행’(한국)에 이은 마지막 작품.일본 신극협의회,베세토 일본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선정된‘친구들’은 67년 발표이후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물론이고 미국 브로드웨이,유럽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 각광받는 일본의 대표 희곡이다. 국내에서는 70년대초 영역본을 중역해 간이극장에서 잠깐 공연된 적이 있지만 원문을 그대로 옮겨 정식 무대에 올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국립극단이 일본 작품을 공연하는 것도 처음이어서 의미가 더욱 새롭다. ‘친구들’은 실제 일어나지는 않지만 ‘있을 법’한 얘기를 통해 인간존재의 의미를 되묻는 블랙코미디.어느날 밤 결혼을 앞둔 독신 샐러리맨 아파트에 아홉명의 낯선 일가족이 들이닥치면서 극이 시작된다.이들은 공동체의식과 휴머니즘이란 ‘선의’를 내세워 자신들의 ‘침입’을 정당화하는가 하면,‘친구’라는 미명하에 집주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한다. 폭력을 쓰지않는대신 ‘미소’와 ‘딴소리’로 일관하는 이들에게 경찰도 별 도리가 없다. 다수의 자유를 주장하는 민주주의 혹은 공동체의식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우스꽝스런 현실에 대한 신랄한 조롱인 셈이다.연출을 맡은 임영웅씨는“웃으면서 보지만,보고나면 소름끼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극중 공동체의식은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임씨는 “공동체의식은 군국주의,제국주의의 광기와도 연결된다”며 “일본 우익이 한반도 침략을 ‘내선일체’‘대동아공영’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립극단 단원으로 지난해 TV드라마 ‘홍길동’에 캐스팅된 이후 ‘흐린날에쓴 편지’‘토마토’등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탤런트 김석훈이 주연을 맡았다.“대사가 많은데다 주로 고성을 질러야 돼 체력소모가 많다”는 그는갑자기 스타가 된 이후 점점 본래 모습을 잃고 있는 듯한 요즘의 자신과 극중 주인공간에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예진흥원장인 차범석씨가 원작에 충실한 번역을 했으며,‘명성황후’에서진가를 발휘한 박동우(무대미술)최보경(무대의상)이 스태프로 참여한다.15∼24일 국립극장 소극장.(02)2274-1151∼8. 이순녀기자 coral@
  • 26일 칸초네와 영화음악이 만난다

    아름다운 선율의 이탈리아 칸초네(상송)와 영화음악 만으로 짜여진 음악회가 열린다. 한우리예술기획이 오는 26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 전당에서 여는 ‘칸초네와 영화음악의 밤’은 소프라노 신애경,차수정,최성숙,우영주,테너 권순길,이광순,오경식,장세완,바리톤 김범진,정효식 등 중견 성악가 10명이 출연,이탈리아 칸초네와 영화속의 명곡을 들려준다. 연주곡목은 ‘오 솔레미오’‘돌아오라 소렌토로’‘무정한 마음’‘푸니쿨리 푸니쿨라’ 등 칸초네와 영화음악 ‘사랑은 아름다워라’‘추억’ ‘영광의 탈출’ ‘라라의 테마’ 드라마 모래시계 주제가 ‘백학’ 등 익숙한 곡들이다.반주는 아베크앙상블이 맡았다.(02)583-1863. 강선임기자 sunnyk@
  • 소프라노 박미혜 24일 독창회

    소프라노 박미혜 연주회가 24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열린다. 예술의 전당이 마련한 ‘한국의 아티스트 시리즈’ 세번째 무대로 슈베르트와 카치니,바흐-구노의 ‘아베 마리아’를 한 자리에서 들을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박미혜는 서울대와 미 줄리어드 음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난 87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무대에 데뷔했다. 이번 연주회에선 바흐의 ‘칸타타 199번’ 중 ‘내 마음은 기쁘고’ 모차르트의 콘서트 아리아 217번 ‘열렬한 애인같은 마음을 지니시니’ 등을 들려준다.여기에 국내 초연되는 브라질 출신 작곡가 빌라 로보스의 ‘아마존의밀림’은 작곡가의 대륙적인 기질이 웅장하게 표현된 작품으로 환경보존과인류애를 노래하고 있다. 장윤성이 지휘하는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에 월드비전 어린이합창단이함께 출연한다.(02)580-1300. 강선임기자sunnyk@
  • 새 음반

    ◆조선펑크 인디밴드 ‘크라잉 너트’ 독집과 ‘아우어네이션’ 1∼3집 시리즈를 제작한 ‘드럭’이 만들었다.영미권 펑크밴드들의 모방에 그쳤던 펑크 장르를 한국인의 정서로 재해석했다는 의미에서 ‘조선펑크’란 이름을 붙였다. ‘황야의 무법자’(크라잉 너트)‘18크럭 한국을 떠나다’(18크럭)‘엄지손가락’(쟈니로얄) 등 대표적 인디밴드 6팀의 18곡을 담았다.드럭. ◆디바리아 오페라 아리아를 대중음악의 감성에 맞게 소화해 낸 음반으로 타이틀 ‘디바리아’에는 디바의 아리아라는 의미가 담겨있다.이 음반에서 가장 주목할부분은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를 리메이크한 부분.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소프라노 카렌 커밍스가 부른 이 노래는 무척 매력적이다.이밖에도 커밍스는 푸치니의 ‘투란도트’중 ‘아무도 잠들지 못하리’ 그리고 장 자크 베네의 영화 ‘디바’에서 선보인 카탈라니의 ‘라 왈리’중 ‘나는 멀리 떠나야해’를 담았다.(주)명음레코드◆블랙스트리트 '파이널리' ‘노 디기티’로 헤비 R&B의 바람을 일으켰던 그룹 블랙스트리트가3년만에 내놓은 앨범.블랙스트리트는 마이클 잭슨의 ‘리멤버 더 타임’ 등 수많은히트곡을 만든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가 94년 결성했다.데뷔앨범 ‘블랙스트리트’와 96년 ‘노 디기티’가 수록된 2집 ‘어나더 레벨’은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다.재닛 잭슨과 스티비 원더,마이아,메리 J 블라이지 등이 게스트로 참여했다.유니버설. ◆지구속의 여행 로커이면서 아카데믹하고 실험적인 연주를 들려주는 릭 웨이크만이 25년만에 같은 주제로 내놓은 음반.웨이크만은 앨범 서문을 통해 74년 당시 음반녹음을 할때만해도 테크놀러지 부족으로 하고 싶은 것과 할수 있는 것 사이의 괴리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이를 보상받기라도 하듯 그는 이번 앨범을내면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잉글리시 체임버 합창단을 동원하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EMI.
  • 여성수도자 북한어린이돕기 ‘합창’

    종교간의 울타리를 넘어 북녘 어린이를 돕자는 여성수도자들의 합창이 울려퍼진다.불교 비구니와 천주교 수녀,원불교 정녀(貞女)들로 이루어진 삼소회(三笑會)는 오는 5월 8일 오후 3시,7시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북녘어린이돕기 삼소음악회’를 연다. ‘은혜·사랑·자비’란 주제 아래 펼쳐질 제1부에서는 120여명의 합창단이 ‘목숨들 꽃처럼 어울려’라는 삼소회 노래를 시작으로 ‘예불가’ ‘사은님,사은님’ ‘아베마리아’등을 들려주고 이해인 수녀가 자작시 ‘새롭게하나되는 기쁨으로’를 낭송한다. 2부에서는 범패 예능보유자 동회스님(자인사)의 무대,수녀로 구성된 ‘사랑의 이삭줄기’의 대중가요 및 팝송공연,정녀들의 국악 한마당,삼소회 중창단의 동요 메들리,정을스님의 독창 등이 펼쳐지고 남성 수도자들의 찬조출연도 곁들여진다. 삼소회가 이처럼 대규모 공연을 벌이는 것은 88년 10월 3일 호암아트홀에서 서울장애자올림픽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마련한데 이어 이번이 두번째.그뒤 각 종교인이 참석하는 연합행사에 초청돼 찬송가,찬불가,원불교 성가를번갈아 불렀다. 원불교와 천주교,불교의 여성 수도자들이 모임을 결성한 것은 88년 3월쯤.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6명이 ‘원(圓)·천(天)·불(佛)’이란 이름으로 등산 및 대화모임을 가져오다가 장애인올림픽 기금마련 공연을 계기로 삼소회로개명했다. 삼소회 회원은 대부분 출가한지 20년이 넘는 중견들로 소임이 무거워 좀처럼 틈내기 어렵지만 매달 셋째주 화요일에 정기모임을 갖고 봄가을로 정기총회를 연다.또 수시로 봉사활동에 나서는데 지난 91년엔 합동시화전을 열어뇌성마비 장애자들과 제3세계 굶주린 어린이를 도왔고 96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를 위한 위령제를 열기도 했다. 박찬기자
  • 김택수 세계랭킹 1위 점프

    김택수(프랑스 캉클럽)가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김택수는 최근 세계탁구연맹(ITTF)이 발표한 랭킹포인트에서 451점을 받아베르너 샬라게르(오스트리아 390.5점)를 큰 점수차로 제치고 선두에 올랐다. 올시즌 김택수는 카타르오픈과 잉글리시오픈에서 각각 준우승했고 크로아티아오픈에서 8강에 오르는 등 안정된 기량을 발휘했다.
  • [부활절 특집]“예수의 부활생명 나눠 민족위기 극복”

    4일은 부활절이다.부활절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을 축하하는 날로 성탄절과 함께 기독교가 가장 중히 여기는 축일이다.부활절을 맞아 국제대학생선교회(C.C.C) 원로 디렉터인 김준곤(金俊坤·75)목사로 부터 부활절의 의미와 부활절을 맞는자세 등을 들어보았다. ▒부활이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인데 요즘 일반인에게는 물론 일부기독교인조차도 이를 관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복음의 핵심입니다.그러나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없지 않은 것같습니다.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공적이면서도 증인과 증거를 내세울 수 있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믿는 자들은 결코 그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특히 예수님의 부활은 4가지 진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4가지 증명이란? 먼저 진리가 거짓에 승리한 것을 증명합니다.그리고 선이 악에 승리한 것을 입증하고 있고,사랑이 증오를 극복하고 승리한 것을 입증합니다.마지막으로 생명이 죽음에 승리한 것을증거하고 있습니다.때문에 부활을 단순히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특히 IMF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을 나누는 일입니다.이 부활생명이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 역사할 때 우리 민족이 처한 총체적위기는 극복될 것입니다. ▒부활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요. 부활은 더 이상 기독교인들에게만 의미있는 일이 아닙니다.십자가에 매달렸던 예수께서 다시 부활하신 것은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주려는 뜻이었습니다.사랑과 화해,희생,봉사,나눔,섬김의 메시지이지요.그리고 절망에서 소망을 볼수 있도록 해줬습니다.오늘날 세계가 봉착한 인종문제나 종교갈등,도덕적 타락은 물론 우리의 남북문제나 지역감정,노사,빈부,세대간,계층간 갈등문제 등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문제들은 이같은 예수님의 부활의 메시지속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가난하고 고통받는,소외된 자들이 부활의 축복을 받을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굶주리는 북녘동포들을 도와주고 우리사회에 만연된 문제를 풀기 위해 특히 믿는 자들이 불씨가 돼 이웃과 고통을 나누는 운동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또 살벌한 사회분위기를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분위기로 바꿔가야 할 것입니다.이를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자기 자신과의 관계,타인과의 관계,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그렇게 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처한 신앙문제나 도덕적 타락,자연환경의 파괴문제에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절을 맞아서 특별히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은? 우리는 현재 남북통일의 강가,21세기의 강가에 서 있습니다.우리는 새로운천년을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맞이해서는 안됩니다.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가 처한 위기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믿는 자들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십자가의 신앙과 부활의 능력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21세기를후손들에게 존경받는 유산으로 남겨주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죠. 부활절을 맞아 예수님의 부활 메시지를 사랑과 화해와 도덕의 부활로 맞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김목사는 올해 초 3일동안 여의도에서 금식기도회를 개최,여기서 모아진 1억원의 헌금을 결식아동돕기에 쓰는 등 몸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오고 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사우스웨스턴 침례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80년 복음화성회 대회장,84년 세계교회기도성회 준비위원장을 맡은 바 있으며 현재 기독교21세기운동 한국대표,한국대학생선교회 총재를 맡고 있다.저서로 ‘예수칼럼’ ‘영원한 생명언어’ ‘김준곤 문설집’(전6권)등이 있다. 朴燦 - 부활절 교리와 풍습 ‘부활’은 기독교의 중심 교리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지 3일째 되는 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며 그리스도가 이렇게 죽음을 정복함으로써 모든 신자들이 ‘죄와 죽음·악마’를 물리친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하게 되리라는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부활절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성탄절과 함께 그리스도교회의주요축일이다.영어이름 ‘Easter’의 기원은 정확히 알수 없으나 8세기 앵글로색슨족의 사제인 비드는 앵글로색슨족이 숭배하는 봄의 여신 ‘에오스터(Eostre)’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했다. 매년 날짜가 바뀌는 절기가 실린 교회력 전체가 부활절 날짜에 따르고 있어 한 해 예배를 위한 전례력도 부활절을 중심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부활절은그리스도교에서 1년중 가장 중심이 되는 절기이다. ▒부활절의 날짜 서방 그리스도인들은 춘분(3월21일경) 무렵이나 춘분 다음만월(滿月 부활절 달)이 지난 후 첫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념한다.그러나 만월이 일요일인 경우 다음 일요일이 부활절이 된다.따라서 부활절은 대개3월 22일과 4월 25일 사이가 된다. 부활절 날짜를 산출하는 방법은 8세기까지 기독교 여러 분파에서 많은 논쟁을 거친 끝에 결정됐다.그러나 동방정교회에서는 다른 계산법을 따라 서방교회와 일치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1주나 4주,5주 후에 해당된다. ▒종교의식 부활절 전야예배는 2세기경 기독교 예배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할무렵 주일성찬에 앞서 성서를 읽고 ‘시편’을 노래하는 주말 전야예배에서비롯됐다.예배순서는 ‘새로운 불의 강복’ ‘부활절 촛불점화’ ‘성구봉독’ ‘세례반 강복’ ‘세례’ ‘부활절 미사’ 등으로 이루어진다. 새벽예배는 주로 개신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부활절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부활의 영광’을 보여준다는 믿음에서 시작됐다.미국 펜실베이니아베들레헴에서 시작된 새벽예배는 이제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 초교파적으로열리는데 TV와 라디오로 중계될 정도로 관심이 높다. ▒부활절의 관습 유럽인들의 고대의식과 상징 표현에서 전래된 것이 많지만그중에서도 새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는 ‘계란나누기’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관습이다.‘계란나누기’는 십자군전쟁에서 유래했다.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십자군부대로 출정한 남편을 가진 한 여인이 고향을 떠나 방황하던중 자신을 정착하게 해준 마을 이웃들의 따뜻한 정에 대한 감사표시로 계란을 삶아 줬는데 바로 그 날이 부활절 날이었다.그녀는 그 계란으로 전쟁에서 돌아와 자신을 찾아 헤매던 남편을 만나게 됐는데이후 매년 부활절이면 부부는 계란에 아름다운 그림과 글씨를 써서 사람들에게 선물했고이것이 부활절에 계란을 나누는 유래가 됐다고 한다. 朴燦- 부활절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1885년 부활절 아침,외국선교사들이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한국 개신교회는 일제하에서도 교파별,지역별 연합예배를 갖고 ‘민족의 부활’을위해 기도했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부활절 연합예배는 1947년 조선기독교연합회가 서울남산에서 1만5,000명의 기독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것이 처음이다. 한국전쟁 중에는 피난지 부산에서 고통받는 민중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도록 역할을 했으나 4.19 혁명을 거치면서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나 1962년부터 10년동안은 정치적 상황과 연합예배에 대한 개신교내 교파간 입장 차이로 분열된 가운데 부활절 연합예배를 갖기도 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가맹교단과 비가맹교단이 각각 남산과 덕수궁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렸던 것. 70년대 유신체체하에서도 분열과 갈등을 겪었다.그러나 75년부터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보수와 진보교단이 연합하여 예배를 갖다 96년부터는 장충체육관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갖고 있다. 한편 지난 90년부터는 남북교회간에도 부활절 축하 메시지를 나누어 오고 있다. 朴燦- 개신교 오늘 138개지역 연합예배 4일은 기독교 최대의 경축일인 부활절이다.이날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난 날.20세기의마지막 부활절을 맞아 개신교 가톨릭 성공회 등 기독교계 교단은 부활절 연합예배,예수부활 대축일 미사 등을 통해 부활의 기쁨과 함께 그리스도의 부활에 담긴 참뜻을 새겼다. 개신교는 오전 5시30분 서울 장충체육관을 비롯한 전국 138개 지역에서 예년과 같이 연합예배를 올렸다.부활절 연합예배는 수많은 교파와 교단으로 나뉘어 있는 개신교계가 이를 초월해 함께 하는 유일한 행사.올해는 예장통합과 합동,감리교 등을 비롯한 30여개 주요 교단들이 참여했다. 장충체육관에서는 이날 0시부터 철야기도회에 이어 오전 4시30분 목회자와신학생들을 중심으로 신앙간증과 찬양,기도회로 시작,5시30분부터 1만여명의 신자들이 함께 한 가운데연합예배가 거행됐다. 길자연(예장합동 총회장·왕성교회 당회장)부활절 연합예배 대회장의 사회로 시작된 연합예배는 강만원 기장 총회장의 기도와 김삼환 명성교회 담임목사의 설교,이경운 예장대신 총회장,김재룡 예성 총회장의 축도 순으로 이어졌다. 연합예배위원회는 이에 앞서 지난 3월27일부터 일주일동안 ‘남산 걷기대회’‘찬양 대축제’‘민족화합을 위한 한국교회 지도자 회개기도회’‘십자가 대행진’등 갖가지 축하행사를 펼쳐 부활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가톨릭도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각 교구별로 4일 정오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예수부활 대축일 미사’를 올린다.가톨릭은 부활절 일주일전부터 시작되는 성주간(Holy Week)의 전례에 따라 성(聖)목요일 성유축성 미사,성금요일주님 수난예식에 이어 토요일 오후 8시부터 9시30분까지 성토요일 부활 성야미사를 드렸다. 성공회도 4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의 대한성공회 대성당을 비롯한 전국의 150개 성당에서 ‘부활 대미사’를 올린다.성공회는 고난주간(성주간)동안 매일 예식을 올렸다.월화 수요일은 미사와 함께 기도,신앙강화에 힘쓰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성금요일에는 수난예식,토요일 오후 7시 중심예식인 부활밤 예절을 드렸다. 한편 기독교 신자들은 사순절에서 부활절까지 40여일동안 매일 정해진 시간 성경을 읽으며 자기근신의 시간,기도,묵상의 시간을 가졌다.기간중 특별금식과 단식을 하면서 이를 통해 모아진 헌금은 불우이웃을 위해 쓴다.성공회도 사순절 기간동안 금식을 권장하면서 신자들에게 미리 주어진 극기헌금함에 모인 동전등 헌금을 불우이웃과 북한동포돕기에 쓸 계획인데 지난해는 동전으로만 4,000여만원을 모았다고 밝혔다. 朴燦
  • [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의 군상(27) 崔麟

    1949년 3월 20일 서울지방법원(구 대법원 건물)대법정.법정안은 발디딜 틈도 없이 초만원이었다.오후 1시 정각 검찰관과 재판관이 입장하자 재판이 시작되었다.재판관의 뒤로 법정 정면에는 중앙에 태극기를 두고 한 쪽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인 위창 오세창(吳世昌)이 쓴 ‘민족정기(民族正氣)’라는 휘호가 걸려 있고 다른 한 쪽에는 ‘3·1독립선언서’가 걸려 있었다. 피고인석에는 백발에 수척한 모습의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그의 나이 71세,이름은 최린(崔麟)이었다.‘3·1의거’ 당시 오세창과 함께 민족대표 33인으로 활동했던 바로 그 최린이었다.그는 반민특위가 활동을 개시한지 5일만인 49년 1월 13일 명륜동 자택에서 체포돼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33인중의 한 사람으로,청장년 시절 항일운동에 몸바쳤던 그가 해방된 조국의 법정에서 민족반역자로 지목돼 심판을 받는 것은 민족의비극이었다. 재판이 시작되자 서성달(徐成達) 검찰관이 그의 죄상을 읽어내려갔다.‘▒죄명:반민법 제4조 2항(중추원 참의),3항(칙임관이상의 고관),10항(친일단체의 수뇌간부)위반.▒범죄사실:피고인 최린은 함경남도 함흥 출생으로 일본 명치대학 법과를 졸업하여 보성중학교장 및 보성전문 강사를 역임하고,기미독립운동시 33인의 1인으로서 천도교회의 대표로 기독교,기타 종교단체와 연합하여 독립운동을 추진하였음으로 인하여 형무소에서 3년간 복역하고,그 후 천도교 중앙종리원 등 장로로 있었던 자인 바, 1)1934년 이른 봄부터 1937년까지의 약 2년여,1939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시까지의 약 5년여에 도합 7년여간 조선총독부의 유일한 자문기관인 중추원 칙임 참의로서 조선총독의 자문에 의하여 총독정치에 기여하고, 2)…’.이어서 검찰관이 기소장 낭독을 마치자 사실심리에 들어갔다. 서순영(徐淳永) 재판장이 경력을 물은 뒤에 “기미독립선언을 주도한 피고가 왜 일제에 협력하게 되었는가?”라고 물었다.그는 “기미년 당시 일제에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고 해서 그들은 그 후 나를 주목하고 위협하고 또 유혹하여 끝내 민족을 배반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오직 죄스럽고 부끄러울뿐이다”며 뒤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최린(1878∼?,창씨명 佳山麟)은 함경남도 함흥 태생이다.그의 집안은 중인출신으로 상당한 재산이 있었다고 한다.후에 그가 출세와 신분 상승을 위해권력에 집착한 것은 그의 출신 성분이 한 원인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같은중인 출신인 육당 최남선(崔南善)의 변절에 대해서도 이같은 논리를 펴는 견해도 있다. 청년시절 그가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애국자임은 사실이나 그 무렵그의 민족의식에 대해서는 회의론을 펴는 견해도 만만찮다.1909년 일본유학을 마치고 귀국,천도교 인사들과 교류하고 있던 그는 1차대전 종결후 ‘민족자결주의’ 물결과 1919년 2월 도쿄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선포하자 이에 고무돼 ‘3·1독립선언’에 가담하였다. ‘3·1의거’ 당시 그의 민족의식이 투철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그가 이 일로 체포돼 재판정에서 행한 발언을 보면 추측할 수 있다.그는 “조선이 병합된 것은 러일전쟁의 당연한 결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며,또 당시 조선의 정치는 지독한 악정이어서도저히 조선의 안녕·행복을 유지·증진하기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병합에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피치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1919.7.17 예심조서)고 진술하였다. 또 독립선언서 선포와 관련,“…본래의 의사는 극히 온건한 수단에 의하여선언서를 발표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인민을 선동하는 것 같은 문귀 등은피한 것이므로 우리들의 선언서를 본 사람은 그러한 폭동에 가담할 리 없으리라고 생각한다”(일자 미상)고 진술하였다. 첫번째 진술은 일제의 ‘한일합병’ 논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다.두번째 진술내용은 자신들이 주도한 ‘3·1의거’를 ‘폭동’ 운운하고 있는 그가 과연 ‘민족대표’였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또 재판장이 ‘현재의 조선인의 지모와 실력으로 독립국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대해 그는 “일본정부의 도움을 얻으면 독립국으로 설 수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결국 그가 말한 ‘독립국’은 일제의 통치를 사실상 인정한 범위 내에서의 ‘자치국’ 정도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이는 그가 나중에‘자치운동’에 나서는 것과 무관치 않다. ‘3·1의거’로 의거 당일 일경에 체포된 그는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1921년 12월 22일 일제당국의 ‘배려’로 가출옥하였다.‘3·1의거’ 이후 새로 부임한 사이토(齋藤實)총독은 그가 표방한 ‘문화정치’의 전위대로 최린을 이용할 작정이었다.그의 가출옥 배경에는 사이토의 정치참모인 아베(阿部充家,‘京城日報’사장 역임)의 공작이 있었다. 그가 가출옥한 직후 아베가 사이토에게 보낸 편지에 ‘…오늘날의 형세로보아 민원식·선우순 따위의 운동으로는 도저히 일대 세력을 이룩하기는 어렵고,간접사격으로…일을 꾸미자면…여기에는 이번에 가출옥한 위인들 중 최린이 안성맞춤의 친구입니다…’(1921년 12월 29일자)라는 귀절이 보인다.‘기미독립선언서’ 작성자로 최린보다 앞서 가출옥(1921.10.19)한 육당 최남선이 아베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런 내용이 들어있다.‘…이번에 최린군을비롯하여 제군의 출감을 보면서 백열(柏悅)의 정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특히 당사자들도 선생에 대해 깊이 감사드리고있습니다… ’(1921년 12월 25일자,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서 입수) 1926년 9월 그는 일제의 경비지원으로 구미 각처로 여행을 떠났다.당시 파리에 체류중이던 여류화가 나혜석(羅蕙錫)과의 염문이 떠돌던 시기가 바로이 무렵이었다.그 해 10월말 일본에 도착한 그는 다시 아베를 만나 “오늘날 조선의 독립이 불가능하다는데 확신을 하고 있으며 조선의회 설치가 조선민심의 안정을 꾀하는데 가장 긴요하고,나도 민중의 신임만 얻으면 조선의회의 한 사람이 되기를 사양치 않겠다”며 ‘조선자치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가 처음으로 ‘친일’을 표방하고 나선 것은 1933년말 ‘대동방주의(大東方主義)’를 내걸고 일선융합(日鮮融合)을 외치면서 부터다.이듬해 4월 그는 중추원 칙임참의가 되더니 8월에는 ‘시중회(時中會)’라는 친일단체를 만들어 ‘동아(東亞) 제(諸)민족은 일본을 맹주로 하여 매진할 것,특히 조선은 일선융합(日鮮融合)·공존공영이 민족갱생의 길’이라고 외쳤다. 37년 다시 그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사장에 취임하였으며 이 해7월 7일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전쟁보도를 적극 독려하였다.이 무렵 그는 총독부의 전시 최고심의기구인 조선총독부 시국대책조사위원회,후방지원기구인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등에 참여하면서 전쟁지원에 협조하기도 했다. 또 1941년 8월에 결성된 임전대책협의회 위원을 거쳐 10월 이 단체가 윤치호(尹致昊)계열의 흥아보국단과 통합,조선임전보국단으로 재탄생하자 단장에 취임하였다.징병제 선전과 학병권유에 앞선 것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일제 패망직전인 45년 6월에는 조선언론보국회라는 친일언론단체를 조직,회장으로 활동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짧은 ‘항일’에 비하면 그의 ‘친일’은 길고 열렬했다.해방후 천도교측은 그의 죄를 물어 은퇴를 권고하였으나 그는 거부하다가 결국은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였다.반민특위에 구속돼 민족반역자로 심판대에 올랐던 그는 49년4월 20일 3회 공판 끝에 병보석으로 석방됐다.재판과정에서 그는 다른 피고인에 비해 비교적 솔직한 참회로 재판부와 방청객들로부터 동정을 샀다.심지어 그는 “민족앞에 죄지은 나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사지를 찢어 죽여라”고 사죄해 법정안을 온통 울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6·25전쟁 와중에 납북된 이후 그의 행적은 알 길이 없다.반민특위 재판과정에서 그는 친일한 동기를 ‘늙은 노모에게 불효를 할 수 없어 망명도,자살도 하지 못하고 일본 군문(軍門)에 항복했다’고 털어놓았다.결국 그는 부모에 대한 효(孝) 위에 나라에 대한 효,즉 충(忠)이 있음을 몰랐던 셈이다. 정운현
  • 스승과 제자가 함께하는 하프연주회

    스승과 제자가 함께 하는 하프연주회가 열린다. 하피스트 조민정이 고교 입학을 앞둔 제자들과 함께 갖는 연주회가 그 것.19일 목포 문화예술회관을 시작으로 20일 남원 국립민속국악원,23일 원주 치악예술관에서 모두 오후 7시 공연을 갖는다. 협연자는 김화영,이주영,박혜영으로 이들은 각각 서울예고 계원예고 경북예고(대구)입학을 앞두고 있다.홍익초등학교 3년 윤라영도 출연한다. 아베마리아를 시작으로 모차르트 ‘교향곡 4번 1악장’,슈트라우스 ‘왈츠’,살제도 ‘룸바’를 4중주로 들을 수 있으며 카르돈,헨델의 곡을 하프 독주로 감상할 수 있다. 조씨는 서울대 음대와 미 맨하튼,뉴욕음대에서 각각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 한양대 계명대 이화여대에 출강 중이다.그는 “하프를 알리기 위해 하프 연주를 들을 기회가 적은 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姜宣任
  • 친일의 군상(22회)-독립선언서 기초 崔南善

    육당(六堂) 崔南善을 ‘역사의 저울’에 달면 공(功)으로 기울까,과(過)로기울까? 공과가 교차되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참으로 어렵다.견해나 입장에따라 한 쪽으로 기울기 쉽기 때문이다.육당 최남선(1890∼1957)이 바로 그런 인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육당은 3·1의거 당시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문필가·출판인 등으로 알려진 인물이다.70이 안되는 생애를 살다간 그지만 그가 문화사 분야에서 남긴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다. 육당은 1907년 18세의 나이로 출판사인 신문관(新文館)을 설립,계몽도서를출판하였다.또 이듬해에는 종합잡지 ‘소년(少年)’을 창간,창간호에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게재한 사실은 우리 문화사 첫 페이지에기록돼 있다. 육당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민족적 면모는 그가 3·1의거 때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사실이다.문체를 두고 지나치게 나약하다거나 한문투라는 비판적인 견해도 있지만 그는 이 일로 31개월간 감옥살이를 하였다.그러나 그는 다른 독립운동가들이받은 건국훈장을 받지 못했다.이유는 간단하다.그의 친일행적 때문이다. 친일파 중에는 초창기 민족진영에서 활동하다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진 일제말기에 가서 친일로 변절한 사람이 상당수 있다.그러나 육당은 사정이 다르다.1921년 10월 가출옥으로 석방된 그는 출옥 직후부터 일제와 ‘교감’을 하고 지냈다. 출옥 이듬해 그는 16년동안 운영해온 신문관을 그만두고 동명사(東明社)를설립,주간지 ‘동명(東明)’을 창간하였는데 창간과정에서부터 일본측 인사로부터 도움을 받은 구석이 역력하다.출옥후 육당이 일본인 거물인사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잡지는 ‘동명(東明)’이라는 이름으로 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중략).잡지건은 진력한 성과가 가까운 시일안에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금후의처분은 모든 것을 하나로 하여 선생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이 편지는 본지가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입수,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임) 특히 이 편지의 첫 부분과 끝 부분을 보면 정말 이 편지를 육당이쓴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지난날 (선생께서) 경성(京城,서울)을 출발하실 때부친과 함께 역까지 달려갔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정각에 늦어 실례가 많았습니다.”우선 보고(報告)를 드리면서 이것으로 붓을 놓겠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사이토(齋藤實)총독의 정치참모이자 총독부 일어판기관지 ‘경성일보(京城日報)’의 사장을 지낸 아베(阿部充家)였다.‘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애국지사 육당 최남선의 면모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3·1의거가 발생한지 불과 2년 9개월만의 일이다. 육당이 친일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것은 1928년 10월 총독부의 역사왜곡기관인 ‘조선사편수회’의 편수위원직을 수락하면서부터다.조선사편수회는1911년 총독부가 ‘구습(舊習)제도의 조사와 조선사 편찬계획’을 목표로 발족한 단체.본래 목적은 조선을 영구히 강점하기 위해 조선인을 일본인으로개조한다는 ‘동화주의(同化主義)’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 편찬하려는 조선사는 식민사관에 의한 조선사 왜곡이 주목적이었다.육당은 편수위원으로 위원회활동에도 참여하였으며 실무자로 직접편찬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1928년∼36년).이밖에도 그는 총독부가 위촉하는 여러가지 위원직을 수락,일제에 협조했는데 이 공로로 그는 중추원 참의(주임관 대우·1936.6∼38.3)를 지냈다. 육당의 대표적인 친일행적중의 하나는 만주에서 있었다.중추원 참의를 물러난 직후인 1938년 4월 그는 만주행에 올랐다.처음 맡은 직책은 만주의 친일지 ‘만몽일보(滿蒙日報)’의 고문자리였다.원래 이 자리는 秦學文이 있던자리였는데 진씨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그 자리를 물려받은 것이다.1년뒤그는 다시 만주국의 엘리트 양성기관인 건국대학(建國大學) 교수로 부임하였다.대우는 칙임(勅任)교수에 월급은 400∼500원으로 최상급이었다.(‘삼천리’1938년 5월호). 사학자로 육당과는 절친한 친구였던 위당(爲堂) 鄭寅普선생이 그의 집 대문앞에 술을 부어놓고 “이제 우리 육당이 죽고야 말았다”며 대성통곡을 한것은 그가 건국대학 교수로 부임한 것을 두고 한 것이었다.육당은 이 대학예과에서 만몽(滿蒙)문화사를 강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건국대학 교수 재직중 그는 1940년 10월에 조직된 ‘동남지구 특별공작후원회본부’의 고문직을 맡기도 했다.이 단체는 일본 관동군의 반공·선무(宣撫)공작을 지원한 친일단체로 독립군과 항일빨치산을 상대로 한 귀순공작이 주임무였다.이 단체의 총무 朴錫胤은 육당과 처남-매부간으로 나중에만주국 외교부 조사처장,‘매일신보’ 부사장 등을 지냈다. 육당의 친일은 일제 말기까지 계속됐다.4년 7개월간의 만주생활을 청산하고 1942년 11월 귀국한 그는 칩거하면서 집필활동에 전념하였다.그러던중 이듬해말 총독부의 부탁으로 李光洙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 유학생들을 상대로 학병지원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훗날 육당은 자신의 학병권유가 마치 조국의 광복을 대비하여 ‘민족 기간요원 양성’을 위한 행위였던 것처럼 변명하고 있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다.속으로는 일제패망을 확신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당시 그는 일제의 필승을 장담하면서 대일본제국의성전(聖戰)을 위해 조선청년들이 전쟁터로 나가 죽어야 한다고 공언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면,그는 학병권유를 한 반면 그의 3남은 그와 정반대편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경도(京都)상고 출신으로 동경(東京)제대 법학부에 재학중이던 그의 3남 漢儉(1922∼?)은 학병출진을 끝까지 거부하다가 해방을 맞았다.해방후 월북하여 문학대학·김일성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던 그는 부친의 친일행적 때문에 적잖은 곤욕을 치뤘다고 한다(북한 고위직 출신 신모씨 증언). 49년 1월 초부터 반민족행위자 검거에 나선 반민특위는 2월 들어 문화계 인사를 손대기 시작했다.2월 7일 마침내 육당의 우이동 집에 특위 조사관들이들이닥쳤다.자택에서 ‘조선역사사전’의 원고를 집필중이던 그는 “시대적현실을 역행할 수 없다”며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같은 날 세검정에서는 춘원 李光洙가 체포됐다.일제하 문화계의 양대 거물이었던 두 사람이 ‘역사법정’에 끌려나온 것이다. 마포형무소 수감시절 육당은 ‘자열서(自列書)’라는 일종의 ‘반성문’을쓰기도 했다.“내가 변절한 대목,즉 왕년에 신변의 핍박한사정이 지조냐학식이냐의 양자중 하나를 골라잡아야 하게 된 때에 대중은 나에게 지조를 붙잡아라 하거늘 나는 그 뜻을 휘뿌리고 학업을 붙잡으면서 다른 것을 버렸다.대중의 나에 대한 분노가 여기서 시작하며 나오는 것을 내가 잘 알며 그것이 또한 나를 사랑함에서 나온 것도 내가 잘 안다”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학문을 위해 지조를 버렸다.이 선택을 그는 ‘변절’이 아닌 ‘방향전환’이라고 했다.명색이 학자를 자처한 그가 지조와 학식을 별개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그에게 지조있는 지식인이 되어줄 것을 기대한 자체가 조선동포들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심산 金昌淑선생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을 때의 일이다.한번은 전옥(典獄,교도소장)이 육당이 쓴 ‘일선융화론(日鮮融和論)’을 갖고 와서는 읽고 감상문을 쓰라고 했다.심산은 첫 몇 장을 읽고는책을 전옥에게 던지며 이렇게 호통쳤다.“나는 반역자가 미친 소리로 요란하게 짖어대는 흉서(凶書)를 읽고 싶지 않다.기미년 독립선언서가 남선(최남선)의 손에서 나오지않았는가.이런 사람이 도리어 일본에 붙어 역적이 되었으니 비록 만 번 죽여도 그의 죄가 남는다”고.
  • 나이지리아 軍政 유화 스케치/사형선고 정치범 16명 감형

    【라고스·아부자 AFP DPA 연합】 나이지리아 재야 지도자 모슈드 아비올라의 옥중 사망으로 촉발된 폭동이 9일에도 계속되면서 인명피해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아비올라의 사인 규명을 위한 국제검시단이 이날 도착했다. 라고스를 비롯한 나이지리아 각지에서는 상오 한때 소강국면을 보이던 소요사태가 다시 악화,방화와 폭력 등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아비올라가 속한 부족인 요루바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라고스와 아베오쿠타, 이바단 등지에서만도 폭동으로 인한 사망자가 최고 45명에 달하는 것으로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한편 나이지리아 군사정부는 9일 쿠데타 기도 혐의로 체포돼 사형 등을 선고받은 16명에 대해 ‘화합’ 차원에서 감형조치를 내렸다고 발표했다.
  • 나이지리아 폭동 진정 국면/“아비올라 시신 부검뒤 국장”

    ◎45명 사망 【라고스 AFP DPA 연합】 나이지리아 재야지도자 모슈드 아비올라의 옥중사망으로 촉발된 폭동으로 사망자가 45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나이지리아 대부분 지역의 폭동이 9일(현지시간)들어 일단 진정됐다. 이는 당국이 아비올라의 고향인 아베오쿠타에 야간통행금지령을 내림에 따라 질서가 다소 회복된 것으로 폭동의 재발 가능성은 남아있다. 앞서 나이지리아의 신문인 ‘밴가드’는 아베오쿠타와 라고스에서 각각 15명이 숨지고 이바단에서도 10명이 사망해 사망자가 45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또 남부의 이페 마을에서는 폭동발생 뒤 58명의 정치범이 석방됐다고 보도했다. 폭동 사망자 수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는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병원측도 집계를 내지 못해 사망자 수는 크게 엇갈리고 있다. 챔피온 신문은 폭동 사망자 수를 밴가드보다 훨씬 낮은 20명으로 보도했으며 AFP소식통들은 15명이 숨진 사실을 확인하면서 다만 사망자가 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아비올라의 부인 중 한명인 두베 오니트리 아비올라는 당국이 아비올라의 시신에 대한 부검이 끝난 뒤 라고스에서 국장을 치르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말했다.
  • 나무 솎아줘야 잘 큰다/간벌후 키 2배·부피 8배로

    나무가 목재로서 가치를 지니게 하려면 간벌(間伐·솎아베기)을 하는 것이 좋다.간벌한 나무와 간벌하지 않은 나무는 성장에서 큰 차이가 난다.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공동운영위원장 崔冽)이 잣나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간벌을 한 나무는 10년간 반지름이 8㎝ 자란 반면 간벌하지 않은 나무는 3㎝ 밖에 자라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간벌을 한 25년생 잣나무는 간벌하기 전 15년동안 자란 6㎝를 포함해 반지름이 14㎝인데 비해 간벌하지 않은 나무는 9㎝에 그쳤다.잣나무는 15년쯤 자란 뒤 간벌을 한다. 나무는 간벌을 하면 크기는 2배,부피는 8배로 각각 늘어난다.베어내는 나무를 감안하더라도 부피로 따질 때 평균 3.2∼3.4배 이득이다.넓어진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작은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작은 동물들의 휴식처와 미생물의온상이 되기도 한다.간벌재는 홍수 때 물막이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동안 솎아베기,가지치기,덩굴 제거 등 숲 가꾸기를 등한시해 나무의 성장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더디다.그 결과 1㏊당 임목축적률(나무의 부피)이 선진국은 150㎥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3분의 1인 50㎥에 불과하다.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은 앞으로 임목축적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숲 가꾸기에 앞장서고 있다.그렇게 되면 현재 연 180억t인 산림의 수자원 보유능력이 240억t으로 늘어나고,연 34조원인 산림의 공익적 가치가 60조원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羅雲奎 아리랑’ 연내 돌아온다/日 필름 소장가 반환의사 표명

    ◎26년에 개봉한 민족영화 1호 ‘민족 영화 1호’로 꼽히고 있는 ‘아리랑’ 필름이 빠르면 올해안에 우리나라 영화팬에 선뵐 예정이다. ‘아리랑’은 우리나라 영화의 선구자이며 독립운동가인 춘사(春史) 羅雲奎 선생이 제작,1926년 10월 개봉한 항일(抗日) 무성(無聲)영화다. 국민회의 金元吉 정책위의장은 29일 “일제에 의해 강제 폐기된 것으로 알려진 ‘아리랑’ 필름이 현재 일본인 영화필름 수집가인 아베씨(82)가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일본 정부와 협의,필름의 연내 반환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金의장은 “아베씨는 아리랑 등 지난 20년부터 45년 해방때까지 제작된 60여점의 우리나라 영화 필름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소개하고 “金大中 대통령이 일왕에게 이 필름의 반환을 요청하면 돌려줄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여권은 오는 10월로 예정된 金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맞춰 일본의 대중문화 개방문제와 연계,이 필름의 반환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 나운규 아리랑/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한국영화의 신화로 남아있는 ‘아리랑’은 1926년 4월말 지금의 고려대 근방인 안암골에서 처음 크랭크인했다. 당시 안암골은 기와집 한채와 초가집 10여채만이 있는 첩첩산중이었다고 기록된다. 촬영기간은 4개월, 제작비는 1천200원, 필름 길이는 9천 피트로 조선총독부 완공과 함께 같은해 10월에 단성사에서 개봉되었다. 영화 광고용으로 사진엽서가 제작되었고 김치담그기다듬이질 널뛰기등 한국적 정서가 담긴 사진을 배경으로 ‘아리랑 타령’ 한글가사에 일본어로 토를 단것이 눈에 띤다. 일제하의 억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첨단적인 몽타주기법을 사용한 것등은 영화미학상으로 높이 평가된다고 평자들은 말한다. 羅雲奎가 직접 대본을 쓰고 감독·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3·1만세사건과 연루된 한 대학생이 고향에 내려와있다가 여동생을 겁탈하려던 일본순사의 앞잡이를 낫으로 찔러죽이고 두손이 묶인채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는 스토리로 진행된다. 그러나 영화에 담긴 뜻은 동생과 동생을 구하려던 대학생은 ‘조국’의 상징이며 일제 앞잡이는‘일제 강점(强占)’으로 표현되어 억압됐던 민족감정을 일시에 유발시킨 저항영화로 유명하다. 그 ‘아리랑’필름이 일본에 있다. 그리고 일본으로부터 돌아올지도 모른다. 항일(抗日)로 일관된 영화내용때문에 필름이 강제수거, 폐기되는 바람에 우리에겐 없는 것을 일본인 컬렉터가 소장하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93년에도 소장자인 아베 요시시게(安部善重)씨는 나운규의 아들인 나봉한감독을 통해 필름을 반환하겠다고 해서 영화계를 들뜨게 한적이 있다. 이번에도 金大中 대통령 방일(訪日)때 ‘필름의 정식반환을 요청하면 돌려줄 의사가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반환의 논의가 어떻게해서 중단됐는지는 알수 없으나 일제하의 민족증언을 스크린에 담아냈다는 점에서도‘아리랑’은 우리에게 소중한 영상자료임에 틀림없다. 예술은 놓일자리에 놓여야 빛나고 쓰일자리에 쓰여야만 가치가 살아나는 법이다. 어두운 창고안에서는 한낱 낡은 필름에 지나지 않을수도 있다. 예술자료가 예술적 사료(史料)로서 빛날수 있도록 순수한 협조를 기대하는 바이다.
  • 모차르트의 음악세계 탐험

    영화로,태교 테이프로,IQ 높이는 명약으로,카페 상호로 일상생활에서 이리저리 스치게 되는 모차르트.쉽되 격조 흘러넘치고 선명하되 들을수록 절묘한 짜임새 덕에 모차르트 음악은 어느것보다 ‘대중적’ 클래식으로 사랑받는다. 35년 생애에 결코 작지 않은 음악세계를 일군 모차르트를 체계적으로 탐험할 기회가 생겼다.한국페스티벌앙상블 봄축제 ‘모차르트 일대기’(6일∼11일 하오 7시45분 한국페스티벌앙상블홀)는 모차르트 음악을 소주제로 갈래 지어 정리해 보는 음악회. ‘신동시절의 작품’(6일)에선 바이올린 소나타 1번,‘런던 연습노트’ 등 잘 연주되지 않던 어린 모차르트의 작품을 모았다.연주도 ‘한국 모차르트’를 꿈꾸는 5∼10세의 새싹들이 맡았다. ‘유일한 단조곡’(7일)은 천진하기만 한 것 같은 모차르트 세계에 어른거린 흑점같은 소수 단조곡들을 구경할 기회.‘유명아리아’(8일)는 오페라 아리아들을 훑는 무대며 ‘영화속의 모차르트’(9일)에선 ‘아,이게 모차르트였구나’ 탄성과 함께 배경음악이 궁금했던 그 영화들을 떠올릴수 있다. ‘종교음악’(10일)에선 ‘아베 베룸 코르푸스’ 등 모테트,‘교회 소나타’ 등 챔버,미사곡 등을 준비했다.11일 현악4중주 23번,피아노소나타 17번,교향곡 ‘쥬피터’ 등 ‘장르별 최후의 작품’으로 ‘최후’를 마감한다.739­3331.
  • 일본문학의 정체는 무엇인가/문학과 지성사간 ‘일본 현대문학사’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체계적 정리/요시모토 바나나 등 소장작가도 탐구 무라카미 하루키나 무라카미 류 등 일본 작가들의 소설은 국내 젊은 독자층에게 큰 인기를 얻고있다.일본문학이 이처럼 우리 독서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는 거의 마련돼 있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최근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일본 현대문학사’(전2권,호쇼 마사오 등 지음,고재석 옮김)는 일본문학의 정체를 밝힌 역사개설서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만하다. 이 책은 지난 90년 일본 쇼가쿠칸에서 간행된 전35권의 쇼와문학 전집중 별권인 ‘쇼와문학사’를 우리말로 옮긴 것.1920년대의 다이쇼(대화)시대부터 반세기를 넘는 쇼와(소화)시대,그리고 오늘의 헤이세이(평성)시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현대문학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일본에서는 1955년 이후 기존의 문학사 기술방법과는 달리 주관주의를 배제하고 현상을 객관적으로 관찰,기술하는 새로운 조류가 싹트기 시작했다.이 책은 기존의 실증적이고 문단사적인,틀에 박힌 문학사에서 벗어나 문화사적이고 정신사적인 문학사를 지향한다.그런 점에서 그 시각은 사뭇 도전적이다. ‘쇼와문학사’의 저자인 히라노 겐(평야 겸)은 쇼와문학을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신감각파’에서 비롯된 모더니즘 문학,그리고 사소설의 3파 정립구도로 파악한다.이러한 도식은 특히 1935년을 전후한 일본 순문학의 상황을 적절하게 보여준다.이 시대 문학의 두드러진 특징은 전향문학에서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사소설로 되돌아간 것처럼 모더니즘을 계승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소설로 기울어진 모습을 볼 수 있으며,나아가 사소설로 흡수되는 형태로 3파가 접근했다는 것이다.요코미츠 리이치 등의 신감각파가 소설을 지적이고 관념적으로 구성하려고 했다면 이토 세이나 아베 도모지,호리 다츠오로 대표되는 쇼와 초기의 모더니즘은 외국 소설의 기법을 받아들여 소설의 내면화와 의식화를 더욱 밀고 나갔다는 사실도 밝힌다.이 책에서는 또한 1921년에 나온 잡지 ‘씨뿌리는 사람’(종시く인)에까지 소급해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수맥을 더듬는다. 이책은 히카리 아가타·아오노 소·마루야마 겐지·미타 마사히로·고바야시 교지·요시모토 바나나 등 90년대 신세대 작가들을 ‘감수성과 감성의 역사’라는 주제 아래 다룬다.이 책에서는 특히 ‘키친’으로 ‘해연’문학상을 받은 요시모토 바나나를 적극적으로 평가한다.1980년대 말엽,쇼와문학의 말기는 바로 ‘요시모토 바나나 현상’으로 그 대미를 장식했다는 것.대개 젊은 여성들이 화자로 나오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현대인의 이야기 또는 우화로 읽힌다.이단이나 이화성을 제거한 지극히 평범한 감성과 감수성이 그의 소설의 또다른 특징이다. 일본의 소장 학자들은 일본의 ‘근대’와 ‘문학’,그리고 ‘기원’을 고찰하기 위해 우리 문학에 주목하고 있다.우리 학계에서도 그에 못지않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지는 미지수이다.이와 관련,역자인 동국대 국어교육과 고재석 교수는 “일본문학사를 모르는 한 한국 근·현대문학사의 기원과 생성을 본격적으로 살펴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 홈리스 피플/임영숙 논설위원(외언내언)

    “오늘밤 짚과 덮을 것과 먹을 것을 적당한 장소에 모아놓고 플래카드를 걸어놓아 잘 보일 수 있도록 불빛을 밝혀 주십시오.집 없는 사람들이 어디서나 그 불빛과 플래카드를 보고 찾아가서 몸을 녹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겨울 54’라는 영화와 샹송의 실제 주인공으로 국내에도 알려진 아베 피에르는 세계 2차대전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1954년 겨울 라디오방송을 통해 이렇게 프랑스 국민들에게 호소했다.그 결과 “지난밤 길거리에서 잠을 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는 제목의 기사가 다음 날 아침신문에 실렸고 프랑스 정부는 집없는 사람들을 위한 비상주택단지 건설 예산을 책정했다. 버려진 폐차속에서 얼어죽은 아이와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노파를 보고 방송국으로 달려간 그는 현재 세계 40여개국에 퍼져 있는 엠마우스 공동체의 창립자.쓰레기나 고물을 모아 길거리에서 헤매는 부랑아들에게 집과 먹을 것을 제공한 그의 평생에 걸친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일정한 거처없이 떠도는 홈리스 피플(homeless people)은 늘어만 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불어닥친 이후 지하철 서울역 등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다.그 중에는 집이 있지만 빚쟁이를 피해 나온 부도기업 사장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뉴욕이나 도쿄 지하철역의 노숙자들은 국가가 제공하는 수용시설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삶의 한 형태로서 그같은 생활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러나 지금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우리 주변의 노숙자들은 타의에 의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들이다. 이들에게 잠자리와 일거리를 마련해 주는 정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할 것이다.동사자를 걱정해야 할 겨울은 다행히 지나갔지만 앞으로 정리해고 바람이 불어닥치면 실업자가 3백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도 있고보면 무심히 넘길 일이 아니다.사회적 안정 없이는 경제회복도 어렵다. 당국의 정책적 노력 못지않게 종교계 역할도 필요하다.아베 피에르가 그랬듯 길거리에서 헤매는 이들을 위한 긴급구호 활동에 종교계가 나서야 한다.물론 가톨릭이 서울에서만 8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등 많은 종교단체들이 사회복지 활동을 하고 있지만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펴야 한다.한국 종교가 기복신앙에서 벗어나 참다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 ’98 수출 구매상담회 성황

    ◎65개국 바이어 1,300명 몰려 북적/환율 영향… 저가로 고품질 구입 호기로 판단/첫날 1억달러 계약… 4억달러 판매 무난할듯 13일 상오 10시 서울 삼성동 종합전시장(KOEX) 1층.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주최로 12일부터 열리고 있는 ‘98 수출구매상담회’ 제8회의실은 1천300여명의 해외 바이어와 3천여명의 국내 제조업체 대표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루마니아 헝가리 폴란드 이탈리아 노르웨이 베네수엘라 등 세계 65개국에서 몰려든 바이어들은 원화환율 급등으로 값이 싸진 질 좋은 한국상품을 사기 위해 활발한 상담을 벌이고 있었다.이들로서는 이번 상담회가 고품질의 저가제품을 찾을 수 있는 호기인 셈이다. 컴퓨터와 부품 및 액세서리를 수입하기 위해 방한한 루마니아 CTi 컴퓨터사의 율리나 키르제씨(30·여)는 “한국산 컴퓨터와 부분품들은 루마니아에서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면서 “가격만 마음에 들면 파트너 관계를 맺고 계속 수입할 생각”이라고 했다.전기램프와 모터를 사기 위해 온 러시아 ERA사의 트라센코 블라디미르씨(42)는 “지금까지 유럽산 제품을 구입해 왔으나 한국산 제품이 원화급등으로 싸졌기 때문에 수입선을 돌리기 위해 상담을 하고 있다”며 “가격이나 품질은 적정 수준”이라고 만족을 표시했다.그러나 아프리카나 중남미 등 개도국에서 온 바이어들중 일부는 아직 한국제품의 가격이 ‘높은 편’이라고 털어놨다.도어록 수입을 위해 상담자를 찾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한 수입상은 “한국제품은 탐이 나지만 나이지리아의 소득수준에 비해 고가로 생각되기 때문에 중고품이라도 수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18일까지 열리는 이번 상담회에서 무공은 당초 약 3억달러의 상담실적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목표수정이 불가피해졌다.첫날 계약실적이 1억달러를 넘어서 이번 행사를 통해 4억달러어치 이상의 수출이 가능할 것으로 무공은 보고 있다.이용승 무공 시장개발처장은 “한국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다 국내 업체들도 내수 판매부진을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상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폴란드 섬유직물 수입상 6개사와 함께 방한한 MRS사의 로버터 말리노프스키 사장은 금강화섬으로부터 9천만달러어치를,유리섬유로부터 1천만달어치를 수입하기로 계약했다.네덜란드의 현대자동차 수입업체인 아베미 그룹의 윔함센 부사장은 자동차 부품만 2천만달러어치 수입키로 했다.13일에도 곳곳에서 굵직한 계약이 체결됐다.덴마크의 냉장고 생산업체인 GRAM사는 국내 모터제조회사인 성신과 냉장고 및 냉동고용 전기모터에 대해 약 6백만달러어치의 수입상담을 벌였다.GRAM측은 성신의 가격과 품질을 높게 평가했다.성신 관계자는 “국내 가전 3사에 모터를 공급하면서 품질을 인정받은 게 해외에서도 신뢰를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성신은 지난 해 650억원의 매출을 올린 중소기업이다. 러시아 바이어들을 위해 자원봉사 통역을 하고 있는 이정민씨(26)는 “현장에서 바이어와 제조업체를 연결해 주면서 한국의 경제를 이끌어 가는 수출증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며 “그러나 행사규모가 큰 반면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러시아 바이어들이 국내 제조업체를 찾지 못해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 도쿄증시 권총 인질극/대장상 면담요청 40대 남 6시간 난동

    【도쿄 연합】 우익단원을 자처하는 40대 남자가 13일 도쿄증권거래소 건물에 권총을 들고 침입,대장성 부감리관 1명을 인질로 잡고 6시간 동안 인질극을벌 인뒤 하오 6시30분쯤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 남자는 미쓰즈카 히로시 대장상과의 면담및 하오 증권거래 중단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인질로 잡혔던 아베 마사히로 대장성부감리관은 무사히 구출됐다. 또 인질 소동에도 불구하고 이날 증권거래는 예정대로 이뤄졌다. 경찰 조사결과 범인은 85년 미군주택건설에 반대,요코하마 방위시설국에 화염병을 던졌다가 체포된 바 있는 우익단원으로 최근에는 “금융 빅뱅으로 미국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있다”며 정부의 경제정책을 강력히 비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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