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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사 부부가 예배뒤 신도들과 ‘스와핑’ 충격

    목사 부부가 예배뒤 신도들과 ‘스와핑’ 충격

    미국의 한 목사가 성경공부시간과 예배 이후에 교회 관계자와 성관계를 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뉴저지주에 위치한 교회의 밀러(48)목사는 평소에 부정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소셜네트워크 사이트를 비난하고 결혼관계의 소중함을 얘기해왔다는 점에서 더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사건은 그의 부정을 알아챈 여성신도들의 고발 이후, 그가 부정을 저지른 교회 관계자들에게 페이스북의 계정을 없애거나 탈퇴하라는 명령을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APP에 따르면 그의 부정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었다. 이미 그는 2003년에 교회관계자와 성관계를 저질러 재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재판에서 그의 아내도 교회 관계자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는 재판정에서 “나와 아내, 그리고 교회관계자 부부 넷은 서로 파트너를 바꾸며 관계를 가졌다. 우리는 그것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얘기하고 웃으면서 이를 즐겼다.”고 말했다. 성관계를 인정하면서도 그는 “목사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 친구로서 상대방에게 힘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변명했다. 또한 “나로 인해 목회활동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면서 “이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다. 사회적인 논란으로 인해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우려를 표했다. 사진=밀러목사 부부 서울신문 김성수 수습기자 2skim@seoul.co.kr
  • [G20 재무회의] “밀리면 끝장”… 신라의 달빛 아래 선 ‘환율의 錢士들’

    [G20 재무회의] “밀리면 끝장”… 신라의 달빛 아래 선 ‘환율의 錢士들’

    ①시장친화적 개혁주의자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61)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사회주의자이면서도 시장 친화적인 개혁주의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경제학 교수 출신으로 2007년 10월부터 IMF를 이끌고 있다. 1976년 사회당에 입당한 뒤 파리 인근 사르셀시의 시장을 지냈다. 1991년 프랑스 산업부장관에 오른 뒤 1997~1999년 재무장관을 역임하며 국제경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영어와 독일어에 능통하며 재무장관 재직 당시 유럽 단일통화인 유로화 채택 협상에 관여했다. 최근 환율 전쟁과 관련해 위안화 저평가가 세계경제 긴장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해 서방 중심의 경제 논리를 드러냈다. ②경제·외교 정통한 중국통 로버트 졸릭(57) 세계은행 총재는 경제와 외교에 정통한 ‘부시 가문의 사람’이다. 부시가(家) 2대에 걸쳐 국무부 부장관 등 공직을 두루 거쳤다. 무역대표부 대표 시절엔 중국과 타이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스와스모어대에서 역사학, 하버드대에서 법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그가 2007년 국무부를 떠나자 중국 외교부가 “중·미 양국의 신뢰 증진을 위해 노력한 인물”이라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미·중 간 환율 갈등에 대해서는 중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평소 “역사는 이웃을 가난하게 만드는 정책에는 미래가 없다는 점을 보여 준다.”고 자신의 경제철학을 피력했다. ③비서방 출신 첫 사무총장 멕시코 출신인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은 미국과 서방 지역 이외에서 선출된 첫 번째 인물이다.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직업관료 출신으로 1994년 멕시코의 경제위기 극복에 상당한 역할을 하며 국제사회에 이름을 알렸다. 영국 리즈대에서 경제학 학·석사 학위를 딴 뒤 멕시코 국립개발은행장을 거쳐 1994~1998년 외무장관, 1998~2000년 재무장관을 지냈다. 2000년에는 스위스 다보스 세계 경제포럼이 발행하는 월드링크지가 선정한 ‘꿈의 정부’의 재무장관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는 ‘환율 보호무역주의’가 세계 경제에 재앙을 가져온다며 미국과 중국에 냉정해질 것을 주문하고 있다. ④적극적 재정책 中성장 주역 셰쉬런(謝旭人·63) 중국 재무부 부장은 금융위기 이후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중국 경제성장에 공헌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1990년 재정부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 공공서비스 지원 확대, 농업세 폐지 등 개혁적인 정책을 주도해 왔다. 1947년 10월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에서 태어나 1967년 닝보시 진하이기계공장(鎭海機械廠)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1980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90년 재정부 종합계획사 부사장을 시작으로 중앙금융업무위원회 부서기, 국가경제무역위원회 부주임 등을 지냈다. 2003년 중국 최고의 세무관인 국가세무총국장을 거쳐 2007년부터 재무부 부장을 맡고 있다. ⑤중국의 앨런 그린스펀 별명 저우샤오촨(周小川·62) 중국 인민은행장은 ‘중국의 앨런 그린스펀’으로 불린다. 중국 장쑤(江蘇)성 출신으로 아버지 저우젠난은 전 국가주석 장쩌민과도 인연이 깊었다. 1975년 북경화공학원을 졸업하고 1985년 칭화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1년 중국은행 부행장으로 금융계에 들어왔다. 국가외환관리 국장,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 등 요직을 거친 뒤 2002년 칭화대 동문인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부상하면서 인민은행장으로 승진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따른 금융시장 개방과 중국은행·공상은행의 증시 상장을 주도했다. 또 위안화 고정환율제 폐지 등 시장경제 친화적 개혁을 단행해 서방으로부터 평가를 받았다. ⑥일본 제로금리 단행 시라가와 마사아키(61) 일본은행 총재는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경제학 교수 출신이다. 최근 경기 부양을 위해 ‘포괄적인 통화정책 완화’를 기조로 잡고 제로금리를 단행하는가 하면 외환 시장에도 개입했다. 도쿄대 경제학부 졸업 직후인 1972년 일본은행에 입행해 2006년까지 34년간 경력을 쌓았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땄고 교토대에서 공공정책 교육부 교수를 역임했다. 일본은행 뉴욕 주재 참사와 국제국 참사를 거쳐 국제 금융에도 조예가 깊다. 총재 취임 당시 주요 기관의 수장을 맡았던 경력이 전무해 지도력이 약점으로 꼽히기도 했다. ⑦英 고강도 예산긴축 행보 조지 오스본(39) 영국 재무장관은 지난 5월 취임 당시 만 38세로 124년만에 가장 젊은 재무장관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학생 시절부터 단짝인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강도높은 예산 긴축안을 밀어붙이는 등 과감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세계적 벽지회사 ‘오스본 앤드 리틀’ 공동 창업자의 장남으로 명문 사립학교인 세인트폴스쿨과 옥스퍼드대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졸업 후 언론사 시험에 낙방한 뒤 방향을 정치로 틀어 1994년 보수당 연구조직에 몸담았다. 2001년 체셔 지역 하원의원이 됐으며 2004년 보수당 예비 내각의 재무장관이 되는 등 초고속 승진을 계속했다. ⑧친 월가… 아시아전문가 티머시 가이트너(49) 미국 재무부 장관은 친 월가(街) 인사로 분류되며 대표적인 아시아통이다.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 시절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를 주도적으로 해결했다. 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3년 다트머스대에서 아시아학 학사, 1985년 존스홉킨스대 대학원에서 국제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1988년부터 미 재무부에서 근무했다.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 2001년 국제통화기금(IMF) 정책개발평가국장을 거쳐 2003년 42세의 나이에 IMF 외환위기를 수습한 경험을 높게 평가받아 제9대 뉴욕연준 총재에 올랐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단기채권의 만기를 연장하는 데도 깊숙이 개입했다. ⑨대공황 연구 권위자 벤 버냉키(57)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 출신으로 2006년부터 연준 의장을 맡고 있다. 2005년 6월부터 백악관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맡아 부시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자문했다.1930년대 대공황 연구의 권위자로서 전임 의장인 그린스펀에 비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다소 온건한 입장을 취하고 성장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3년 12월 미국 조지아주에서 태어났고 1975년 하버드대 경제학 학사, 1979년 매사추세츠공과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탠퍼드대, 프린스턴대 등에서 FRB의 역할 등에 대해 연구했다. ⑩서브프라임 위기대응 호평 ‘유로존의 수호자’로 불리는 장 클로드 트리셰(68) 유럽 중앙은행(ECB) 총재는 프랑스의 공무원 출신이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을 인정받아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42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나 낭시의 국립광업학교를 나와 1966년 파리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딴 뒤 파리정치학 연구소, 파리 고등행정학교를 거쳤다. 금융감독원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1978년 대통령 경제고문 등을 거쳐 1993년 프랑스 중앙은행의 총재가 됐다. 2003년 유럽 중앙은행의 제2대 총재로 임명됐다.
  • [세계 장기 독재자들] 北 현대사 첫 3代세습 착수…이집트·카자흐도 대물림 수순

    [세계 장기 독재자들] 北 현대사 첫 3代세습 착수…이집트·카자흐도 대물림 수순

    28일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윤곽을 드러낼 김정일 후계체제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 것인지가 관심의 핵심이다. 민주 발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서 부자나 형제가 권력을 이어받는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러나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권력의 3대 세습은 근대 역사에서 유례가 없다.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를 계기로 지구촌 독재권력의 실상을 긴급 점검한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7·8월호와 미국 중앙정보국(CIA) 팩트북을 바탕으로 10년 이상 장기집권 중인 독재자 22명과 장기독재자 자리를 세습한 독재자 3명 등 모두 25명의 면면과 유형을 추적했다. 세습은 전·현직 독재자 집권기간을 합산했다. 장기 집권하는 독재자들을 권력쟁취 과정을 기준으로 보면 먼저 옛 소련에서 분리독립한 4개국과 과거 김일성 국가주석이 통치하던 북한에서 보듯 ‘건국의 아버지’라는 정통성에 기대어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혁명이나 쿠데타를 통해 기존 체제를 뒤엎고 권좌를 차지한 경우도 있다. 아프리카는 대부분 여기에 해당한다. 독재자 중에서도 가장 퇴행적인 경우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독재자가 된 경우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46년간 ‘건국의 아버지’로서 통치하던 아버지 김일성 국가주석이 사망한 뒤 16년째 북한을 지배하고 있다. 두 사람을 합하면 집권기간이 무려 62년이나 된다.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후계자가 될 경우 3대 세습이라는 현대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북한과 혈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역시 아버지였던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의 뒤를 이었다. 쿠데타 성공 이후 29년간 권력을 갖고 있던 아버지가 2000년 사망한 뒤 아들 바샤르는 국민투표에서 97.2% 찬성으로 대통령이 됐다. 2007년에도 97.6% 찬성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과거 한국의 군사독재정권에서나 보던 득표율을 대내외에 자랑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북한과 시리아뿐이라는 비아냥을 받는다.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은 대통령이던 부친 게이다르 알리예프가 숨진 뒤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올랐지만 대규모 부정선거란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소련공산당 정치국원 겸 소련 제1부총리를 지냈던 게이다르는 아제르바이잔이 옛소련에서 분리독립한 뒤 권력을 잡았다. 그의 아들 일함은 국영석유회사 부사장으로서 1994년 서방 에너지기업들과 석유개발 계약을 성사시키며 존재감을 드러낸 이후 국회의원과 총리 등을 거치며 꾸준히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카스피해에 위치한 전략적 입지와 석유자원 등을 바탕으로 2006년에는 미국을 방문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도 했다. 쿠바는 조금 특이한 경우다. 전임자인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과 라울 카스트로 현 의장 모두 바티스타 친미 군사정권을 몰아낸 혁명지도자였다. 동생 라울은 형 피델이 집권한 49년 동안 국방장관 등을 거치며 정권의 한 축을 담당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사람’으로 기네스북에까지 오른 형 피델이 2008년 물러난 뒤 자리를 이어받은 동생 라울 의장은 현재 경제개혁조치를 연달아 발표하는 등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라울 의장은 지금도 국가평의회 회의장에 형의 자리를 비워놓고 자기는 두 번째 자리에 앉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때 한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아프리카 대통령은 단연 가봉의 ‘봉고’였다. 1975년과 1984년, 1996년, 2007년 등 무려 네 차례나 한국을 방문했다. 2003년 부성(父姓)을 의무적으로 덧붙여 쓰게 하는 민법 통과 이후 봉고온딤바로 성을 바꿨다. 지난해 그가 사망한 뒤 아들 알리 벤 봉고온딤바는 41.7%의 득표로 대통령 자리를 이어받았다. 장기집권 중인 독재자 가운데 세습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차남 사이프 알 이슬람 무아마르 알카다피는 일곱 아들 가운데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차남으로 후계수업 중인 차남 가말도 내년 대선이 후계 여부를 가릴 분수령이 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카자흐스탄을 20년째 통치 중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맏딸 다리가 나자르바예프는 오는 2012년 대선에서 대권을 이어받을 후보로 꼽힌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사설] 과연 외교부뿐인가… ‘특채’ 전면 조사하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딸의 부적절한 특별채용과 관련, 그제 사퇴의사를 밝혔다. 유 장관 딸의 특채가 불거진 뒤 나온 외교부 간부들의 언행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게 한둘이 아니다. 공직자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다. 일부 간부들은 “장관 딸이라고 시험을 볼 자격까지 박탈하는 건 가혹하다.”거나 “외교부 자녀들이라고 자격을 갖췄는데도 들어오지 못하는 건 역차별 소지가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말처럼 들린다.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고쳐 쓰지 않는 법이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아버지가 장관으로 있는데 딸이 공채도 아닌 특채를 통해 지원하고, 또 합격할 수 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이 큰 문제다. 그런데도 외교부 간부들은 엉뚱한 말을 한다. 어떤 간부는 “장관 딸인 줄 몰랐다.”는 거짓말까지도 뻔뻔하게 했다. 기가 막힐 일이다. 더구나 채용자격까지 바꿔가면서 유 장관 딸만 합격시킨 8월31일은 김태호 국무총리·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도덕성 문제로 자진사퇴한 지 이틀 뒤다. 이렇게 감(感)도 없는 외교관들이 닳고 닳은 주요 나라 파트너를 상대로 제대로 국익을 대변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외교부에는 외교관 자녀 3명이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행정안전부 특별인사감사팀은 유 장관 딸을 포함해 외교관 자녀 특채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철저히 가려내 관련자들을 엄중 문책해야 한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실시한 외무고시 2부시험 합격자(22명)의 41%(9명)가 외교부 고위직 자녀들이다. 이 시험은 외국에서 초등학교 이상의 정규과정을 6년 이상 이수한 자로 응시자격이 제한돼 외교관 자녀에게 유리하다는 비판이 처음부터 있었다. 공직 특채의 문제는 외교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어학이라는 특수성에다 특권의식까지 있다 보니 외교부에 상대적으로 문제가 많을 수 있지만 다른 부처에도 정도의 차이일 뿐 특혜와 불공정성 여지는 있을 수 있다. 감사원이 하든 다른 기관이 하든 전 부처를 대상으로 특채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전면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필수이자 선결과제다. 공직이 깨끗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
  • [특파원 칼럼] 오바마와 시시포스/김균미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오바마와 시시포스/김균미 워싱턴 특파원

    지난 1일 미국 언론들에 실린 사진 한 장이 시선을 잡아끈다. 취임 1년7개월 만에 흰머리가 부쩍 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뒤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이집트와 요르단 등 중동의 정상 4명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다. 1년여의 외교적 노력 끝에 2008년 12월 중단됐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상을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중재하는 순간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란 핵과 북한 핵 문제 등에 치중하면서 상대적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소홀히’ 다뤄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제 이라크에서 전쟁활동 종료를 선언하고, 아프간 상황도 새 전략에 따라 내년 중 일부 철군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이란 핵 문제는 유엔 안보리 추가제재로 가닥이 잡혔다. 급한 국제적 현안들이 하나 둘 방향을 잡아가면서 미국의 오랜 숙제인 중동평화협상이 무대 전면에 다시 등장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은 미국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 간의 특별한 동맹관계와 미국 내 막강한 유대인 영향력, 중동지역 안정과 안정적인 원유 공급 등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다 보니 1970년대 이후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거의 한 명도 빠짐없이 임기 중 중동평화 협상 중재에 나섰다. 1978년 지미 카터 대통령은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캠프 데이비드로 불러 열흘간의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평화조약을 이끌어냈다. 1991년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요르단, 팔레스타인 등 중동국가들과 만나 팔레스타인 자치와 평화협정 문제를 다뤘지만 협상은 진척을 보지 못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3년 백악관에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과 함께 오슬로협약에 서명했다. 그러나 가장 민감한 예루살렘의 지위, 최종 국경문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이스라엘 내 고향 귀환 문제 등은 나중으로 미루며 갈등의 불씨를 남겨놓았다. 클린턴은 2000년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자치정부 간 후속 평화협상을 중재했지만 예루살렘 지위 문제로 결렬되며 2차 봉기를 촉발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사정도 비슷하다. 첫번째 임기 중반인 2003년 이집트의 휴양도시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3단계 중동평화 로드맵을 이끌어냈지만,로드맵은 이행되지 않았다. 결국 임기 말인 2007년 메릴랜드 애나폴리스에서 다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로드맵 이행을 압박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처럼 중동평화협상은 미국 대통령들에게 있어서 조금 진전하는 듯하다가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의 바위와도 같다. 북한 문제도 중동평화협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클린턴 대통령이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내며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듯했지만 2차 북한 핵 위기가 터졌다. 첫번째 임기중 대북 강경책을 폈던 부시 대통령은 대북정책을 바꿔 2005년 북한과 9·19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북한의 1차 핵실험 등으로 6자회담은 다시 어그러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에 대화 가능성을 열어놨지만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2차 핵실험으로 상황은 악화됐고, 그나마 호전 기미를 보이던 북·미 관계는 지난 3월 천안함 사건으로 다시 한번 급랭하며 원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성과에 쫓겨 원칙을 굽히기보다는 이번 기회에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가 읽혀진다. 오바마 대통령은 1년 시한을 제시하며 중동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을 것을 독려하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제재 수위를 높이면서도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으며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밀어올리기 시작한 중동평화와 북한이라는 바위가 시시포스의 바위와는 달리 고개를 넘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kmkim@seoul.co.kr
  • [8·15 특별사면] 美 대통령 사면권 행사

    사면의 역사는 함무라비 법전까지 거슬러간다. 영국에선 헨리8세가 1535년 사면권을 장악했고, 미국 연방헌법은 ‘대통령은 형의 집행정지 또는 사면을 명하는 권한이 있다.’고 규정한다. 전쟁과 반란 중 국가를 방어하는 예외적 경우에 사용하려고 사면권을 도입했지만, 오늘날 대통령은 정치적, 개인적 동기로 사면권을 행사해 원래 의도를 벗어난다는 비판을 종종 받고 있다. ●클린턴, 탈세 이복동생 사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8년 임기를 마치고 백악관을 떠나는 날 140명에 대한 특별 사면령에 서명했다. 클린턴의 이복 동생 로저 클린턴(마약 소지 혐의)과 4800달러 탈세 혐의로 수사를 받던 도중 스위스로 도망간 갑부 마크 리치도 포함됐다. 그러나 규모면에서는 우리나라와 비교가 안된다. 미국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가장 많이 사면한 대통령은 린든 존슨으로 4년 동안 960명(연평균 240명)이었다. 가장 인색했던 대통령은 아버지 조시 부시로 74명(연평균 18.5명)에 불과했다. 최근 경향을 살펴보면 클린턴은 396명, 아들 부시는 190명을 사면했다. ●린든 존슨 4년간 960명 최다 대통령이 사면에 신중한 이유는 여론의 집중 공격을 받기 때문. 사면권은 삼권분립의 원칙을 벗어나 행정권이 사법권의 판단을 변경하는 것이라 그 이유가 명백하고, 합당해야 한다고 미국인은 믿는다. 잭 월턴 전 미국 오클라호마 주지사는 사면권을 수백명에게 남용하다 탄핵되기도 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뒤틀린 권력의 횡포 멈추지 않는 한 ‘생존의 망루’는 오늘도 계속 세워진다

    뒤틀린 권력의 횡포 멈추지 않는 한 ‘생존의 망루’는 오늘도 계속 세워진다

    문학은 늘 더디다. 현실이 저만큼 달려가고 한참 뒤에 흩뿌려진 기억의 잔해들을 주섬주섬 챙기곤 한다. 그 기억의 인류사적 의미를 문학적으로 해석하고, 근원적 성찰을 시도한다는 명분의 작업은 느릿느릿하기 일쑤다. 문학에 주어진 몫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늘 안타깝다. 현재 이곳에 드리워진 짙은 그늘에 대해 조금만 더 발빠른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욕망하는 것은 일부 독자들만의 마음은 아니다. 현상이 아닌 근원을 좇되 지금 이 자리에서 성찰해 내기를, 권력의 폐단을 외면하지 않되 조금 더 단호하고 분명하기를, 문학에 바라는 문단 안팎의 끊임없는 요구다. 여기, 주원규(35)가 있다. 지난해 7월 내놓은 소설 ‘열외인종 잔혹사’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불쑥 문단에 이름을 알린 그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천하무적 불량야구단’, ‘무력소년 생존기’ 등 구체적 현실에 기반한 상상력의 서사와 간단치 않은 입심으로 존재감을 확연히 알렸다. 그의 시선이 이번에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꽂혔다. 신작소설 ‘망루’(문학의문학 펴냄)는 지난해 1월 6명의 애꿎은 목숨을 앗아간 서울 용산 철거지역 참사를, 한국사회 성역으로 꼽히는 종교 권력과 결부시켜 다루고 있다. 금기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이미 문학적 성취다. 그러나 소설은 보편적인 리얼리즘 문학 방식을 뛰어넘어 재림예수를 전면으로 다루는 신학의 관점 속에 신과 인간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성큼 내딛는다. 소설은 손에 꼽히는 큰 규모인 세명교회의 부자 세습과 탐욕에서 출발한다. 아들은 위조된 외국대학 신학박사 학위로 목사 자격과 자질 논란 속에서도 무난하게 아버지의 교회를 인수한다. 그리고 교회 맞은편 시장을 철거한 뒤 교회 종합레저쇼핑몰 건설을 추진한다. 목사 안수를 앞둔 주인공 민우는 2세 목사의 설교문 대필로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며 생활한다. 그런 와중에 신학대 동기인 윤서가 철거지구 투쟁에 나서며 재림예수 존재를 얘기하자 종교적 혼란에 빠진다. 주원규는 마사다 요새에 올라가 탐욕과 야만의 로마제국에 맞서 싸우다 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00년 전 유대의 역사 속에서 용산 참사 철거민들을 기억해 낸다. 망루 위로 올라가 비극적 최후를 마친 철거민의 모습이 그대로 겹쳐진다. 주원규는 4일 서울 광화문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이 순간도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망루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는 한 승자와 패자, 가해자와 피해자, 가진 자와 잃은 자 식의 구분은 무의미하다.”면서 “이 소설이 지금도 망루에 오르는 고단한 삶을 꾸려가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 자신 소설가이면서 기독교 목사다. 총회신학연구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그는 15년 전 경기 성남 철거지구에서 연대투쟁을 펼친 경험이 있다. 지금은 특별한 거점 없이 카페 등을 옮겨다니며 대안 교회(Nomad Church·교회없는 교회)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권력과 자본에서 자유로운 종교 공동체를 지향한다. 용산에 세워진 망루는 불타 허물어졌지만 ‘제2의 용산’이라 불리는 홍대 앞 철거지구 두리반 식당 건물에는 또 다른 망루가 세워져 있다. 용산이나 두리반이 아니더라도 뒤틀린 권력이 결합한 탐욕과 횡포가 멈추지 않는 한, 생존의 망루는 계속 해서 세워질 수밖에 없고 또 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문학적 치열함과 진정성을 앞세워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주원규는 기성 문단이 미처 보여 주지 못하는 문학의 존재 의의를 한껏 증명한 셈이다. 다만 대형 교회의 부자 세습, 교회에 예속된 전도사, 철거반대 투쟁을 벌이는 철거민 등 몇몇 인물 사이의 관계가 다소 상투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소박한 전형에 그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그 어떤 아쉬움도 현실의 문제를 종교적 성찰을 통해 탁월하게 반추해 낸 미덕을 흐리지는 못한다. 글 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최종원 민주당 의원 “연예인의 정치 참여 자유로워야”

    최종원 민주당 의원 “연예인의 정치 참여 자유로워야”

    일요일이던 지난 1일 오후. 뙤약볕이 내리쬐는 대학로는 젊은이들의 열기로 더욱 뜨거웠다. 왁자지껄한 카페 한구석에 앉아 있는 그에게선 아직 ‘배우’의 모습만 보였다. 대학로에서 40년을 보낸 연극인 최종원이 이제 여의도로 둥지를 옮긴다.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말이다. 지난 4월 무대에 올렸던 ‘포옹 그리고 50년’이 당분간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다. 그는 듣던 대로 직설적이었다. 정치 의식도 확고한 듯 보였다. ‘정치 새내기’ 최종원은 “나이 60에 신념 꺾고 눈치 보며 정치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국회의원 재·보선에 나간다고 했을 때 반응은. -가장 존경하는 신구·임동진 선배가 ‘너는 정치를 잘할 것이다. 도전해 보라.’고 권유했다. 후배들도 출마를 반겼다. →여전히 연예인들의 정치 참여를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누구를 지지하느냐와 별개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연예인도 당연히 정치적 견해를 밝힐 권리가 있다. 이를 나쁘게 생각하는 시선이 문제다. 개그맨 김제동이 전 대통령 장례식에서 사회를 본 게 무슨 잘못인가. 정치적인 소신을 밝힌 연예인의 활동 공간이 좁아진다면,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후퇴다. →예전에도 많은 연예인들이 국회의원을 지냈다. 어떻게 평가하나. -연예인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도 문제가 되진 않는다. 정치를 잘했냐, 잘못했냐가 중요하다. 이해랑, 신영균, 신성일, 최무룡, 강부자 등 많은 선배들이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그나마 이순재 선배가 소신껏 정치를 한 것 같다. →정치에 관심 있는 연예인이 많은가. -잘 모르겠다. 예전과 달리 정치에 선뜻 나서는 분위기가 아닌 건 확실하다. 이번에 나를 도와주고 싶어했던 후배들이 많았지만 결국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정치를 잘할 것 같은 후배 연예인이 있나. -역시 잘 모르겠다. 문성근, 권해효, 김제동 정도면 잘 하지 않을까? 남을 속이지 않고, 남의 상처를 보듬을 만한 사람들이다. →연예인 출신인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은 어떻게 평가하나. -이창동·김명곤씨는 그나마 틀에 박힌 관료 체계를 고치려고 노력했고, 선·후배들의 고언을 잘 받아들였다. 유 장관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모든 예술 분야에서 비판이 나온다. 문화 분야의 수장으로 100년 대계를 고민했어야 하는데, 문화예술계를 좌파와 우파로 가른 뒤 능력과 상관없이 좌파로 분류된 인사들을 쫓아냈다. ‘연기자 유인촌’을 좋아했던 국민들도 ‘장관 유인촌’에 대해서는 실망했을 것 같다. →연극이 정치에 도움이 될까. -연극은 수없는 연습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구현하는 예술이다. 살인자의 모습도 아름답게 연기해야 한다. 살인할 수밖에 없는 당위를 충분히 객석에 전달해야 아름다운 연기가 된다. 가슴속에 진실을 안고 연기한 것처럼 정치도 진실되게 하면 될 것 같다. →의원에 당선돼 보니 어떤 작품이 특히 기억에 남나. -1980년대 출연했던 ‘리어왕’이다. 우리 지역구에는 어렵게 사는 노인들이 참 많다. 아들은 돈 벌러 도시로 나간 뒤 연락이 끊기고, 며느리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 어쩔 수 없이 어린 손자들을 키우는 분들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 광야에서 쓸쓸히 죽어간 리어왕의 모습이 현실로 와 닿는다. →언제부터 정치를 꿈꿨나. -1967년부터 1년 동안 태백 탄광에서 일했다. 그때 경험이 사회적인 의식을 결정하는 계기가 됐다. 대학 진학 당시 연극과와 정외과를 놓고 고민한 적이 있다. 만약 연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정치인이나 노동운동가가 됐을 것이다. →출마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 -이광재 강원지사의 직무정지가 결정적이었다. 애초 이 지사가 국회의원에 출마할 때 내게 찾아와 도움을 청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한 번만 한다고 생각하고, 주민들이 원할 때 스스로를 던져라.’고 말했다. 이 지사가 추진했던 일을 내가 마무리 짓고 싶었다. 나보다 어리지만 정치적으로 지향해야 할 모델이다. →어떤 정치를 하고 싶나.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 그러나 옳고 그름은 안다. 권모술수, 당리당략과 타협하지 않고, 휩쓸리지 않겠다. 지위와 명예는 40년 연극무대에서 다 이뤘다고 생각한다. 환갑 이후 ‘인간 최종원’이 이웃을 위해 뭘 해야 할지 생각하고,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 →머릿속에 그렸던 정치와 ‘현실 정치’는 다를 텐데. -정치인으로 사는 것에 약간의 불안감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강한 애착을 느낀다. 선거운동할 때도 동네 어르신들께 ‘자주 찾아오지 못할 것이다. 또 당선되기 위해 경·조사 찾아다니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시류에 오락가락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검증받고 싶다. →박근혜 전 대표를 높게 평가한다고 했는데. -세종시 논란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는 모습이 좋았다. 천재지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자기 말에 책임지는 게 바로 정치인의 신뢰라고 본다. →국회 상임위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로 정해졌다. 특별히 관심 갖는 분야가 있나. -종편채널 문제를 좀 짚고 싶다. 대형 신문사가 방송을 소유하고, 방송이 난립하는 게 과연 옳은지 의문이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볼 드라마가 없다는 것도 큰 문제다. 시·군·구마다 모두 근사한 문화예술회관은 갖췄는데, 그 공간을 채울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최종원 의원은 익살스러운 연기로 사랑을 받은 명배우 출신이다. 1970년 ‘콜렉터’를 시작으로 연극 무대에 데뷔해 영화 ‘투캅스’, KBS 드라마 ‘왕과비’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강원 태백, 60세 ▲태백공고·서울연극학교 ▲연극연기자그룹 회장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열린우리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 위원장 ▲백제예술대학, 대구과학대학 겸임교수 ▲광주영화제 집행위원장 ▲환경부 홍보대사 ▲한국예술산업진흥회 이사장 ▲부인 정영애씨와 2녀
  • [7·28 민심 르포] 강원 원주

    [7·28 민심 르포] 강원 원주

    “우리가 더이상 ‘물감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겠다.” 7·28 재·보선이 치러지는 강원 원주의 민심에는 분노와 박탈감이 묻어났다.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 실패에 대한 상실감이 극도에 달했다. 지난 6·2지방선거에서도 지역구 출신이었던 한나라당 이계진 후보보다 민주당 이광재 후보에 대한 지지가 월등히 높았다. 이번 보궐선거에서도 분위기가 이어질 조짐이 엿보인다. 원주에는 강원도의원 출신의 한나라당 이인섭(47) 후보와 변호사를 지낸 민주당 박우순(60) 후보가 맞붙었고, 여기에 3선 국회의원과 강원도지사 등을 역임한 무소속 함종한(66) 후보가 나오면서 보수층의 표를 나눠 갖게 됐다. 게다가 시민들은 첨단의료복합단지가 대구에 유치된 것을 두고 “여권의 정치적 논리에 밀려 뺏겼다.”고 입을 모았다. 거기서 오는 실망감이 ‘텃밭’을 뒤집었다는 분위기다. 단구동에 사는 택시기사 박용태(49)씨는 “당연히 원주가 되는 줄 알고 특성화 고등학교까지 유치했는데 갑자기 대구가 돼 버렸다. 특히 일자리 없는 사람들은 실망이 더했다.”고 전했다. 자유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30대 중반의 원모씨도 “그동안 강원에서 한나라당을 밀어줬지만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면서 “수도권에 다 퍼주고 서울 집값만 올려놨다. 민주당이 돼서 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명륜동 남부시장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50대 여성은 “가족들과 친구들이 모두 한나라당을 지지했다가 몇 년 사이에 민주당으로 쏠리고 있다.”면서 “민주당을 뽑아야 우리처럼 조그마한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여당) 텃밭이었던 만큼 뚜껑을 열어 봐야 안다.”는 분위기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중앙동 자유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강연희(55·여)씨는 “그래도 아버지(대통령)가 있는 당이 돼야 잘 이끌어서 발전할 수 있다.”면서 “특히 이번에 젊고 참신한 후보가 나왔으니 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단계동에 사는 한호동(57)씨는 “이광재 강원지사의 직무정지 상태로 도정의 공백이 길어져서 불안하다. 안정적으로 일할 국회의원이 필요하다.”면서 이 후보 지지의 뜻을 밝혔다. 이 지사에 대한 직무정지도 표심을 자극했다. 중앙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이승주(45)씨는 “아예 선거판에 못 나오게 하든가, 당선되자마자 정지시킨 것은 너무하다.”고 지적했다. 태장동에 사는 임동이(41)씨도 “민주당을 찍어야 이 지사에게 힘이 실릴 것 아니냐.”면서 “더이상 물감자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보여 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60~70대 고령층에서는 함 후보에 대한 지지세가 꽤 높았다. 택시기사 김학대(59)씨는 “어차피 (임기가) 1년 반밖에 안 남았으니 원주를 잘 알고 바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면서 함 후보를 지지했다. 남부시장에서 만난 최모(74)씨도 “TV 토론회를 보니까 다른 후보들은 정치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까지 줄곧 한나라당을 지지했지만 이제 불신이 너무 크다.”면서 “두 나라당, 세 나라당에다가 이제는 말도 안 되는 성희롱당까지 됐다.”고 비판했다. 원주 허백윤기자·이슬아 인턴기자 baikyoon@seoul.co.kr
  • “수몰된 청춘아, 집으로 돌아가…”

    “수몰된 청춘아, 집으로 돌아가…”

    16일부터 23일까지 딱 1주일간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핼리혜성’은 여러 번 놀래킨다. 우선 무대 한가운데 물을 채운 호수를 만든 독특한 설정이 눈에 띈다. 코러스로 나오는 다섯 명의 배우들은 스스로가 호수의 잔잔한 물결이 된다. 등장인물이 과거를 회상할 때는 동네친구들로 나와 신나게 같이 놀며 극에 진입했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바람소리, 새소리를 내며 배경효과 정도로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그런데 스토리는 신파에 가깝다. 큰돈 없이도 오순도순 지내는 혁준, 혁택 형제는 살던 마을이 댐 공사로 수몰되면서 서울로 나간다. 먼저 자리잡겠다며 사업을 일으켰다가 망한 혁준은 암으로 죽어가는 엄마에게 술에 취한 채 돈 내놓으라 호통치고,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명주는 술집에 나간다. 혁준의 죽음 때문에 혁택과 명주가 뗏목을 타고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도입부도 왠지 가족사의 아픔을 치유하는 자궁으로의 회귀같다. 무대에 비해 스토리가 약한 게 아닌가 싶은데, 후반부로 갈수록 극은 물의 이미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신파 기운을 싹 걷어낸다. 궁금해서 대본을 받아보니 깔끔한 단편소설을 보는 듯 해서 다시 한번 놀랬다. 이름을 보니 연출자와 같다. 세련된 극본과 연출의 힘을 선보인 이양구(36)씨를 지난 20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작품 구상은. -제가 수몰마을 출신이에요. 충북 청풍면 단돈리. 지금 충주댐이 있죠. 수몰된 뒤 전기도 없는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어릴 적 그 얘기들을 정리해보고 싶었어요. 원래는 2007년 대학(중앙대) 졸업작품으로 쓴 거에요. 무대에 물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프로무대에 서기 어렵다고 봤는데 이렇게 운이 닿네요. 솔직히 얘기 자체는 촌스러울 수도 있는데, 있는 그대로의 상처를 남겨보자고 생각한 겁니다. 2009년 중앙대와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의 대학에서 교환공연 제의가 오자 마땅한 작품이 없던 중앙대는 이미 졸업한 이양구씨의 작품을 추천했다. 덕분에 베이징 공연이 성사됐는데 눈물바다를 이뤘다. 수몰지구 얘기는 우리에겐 지나간 일이지만 중국엔 현재진행형이어서다. →안 그래도 연출에 비해 스토리가 진부한 게 아니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개발시대 사람들의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 사람들은 혁준처럼 청춘과 꿈마저 모두 수몰시킨 사람들이에요. 남은 건 이제 껍데기밖에 없는, 죽은 거나 다름 없는, 그래서 슬픈 사람들이에요. 자살은 내적인 죽음을 뜻하는 겁니다. 딸은, 왜 기형도 시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죠. 이 동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공장으로 간다는. 요즘 시대엔 무럭무럭 자라 술집으로 간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진부해도 그렇게 밀고 나간거죠. →극 전체 넘치는 물의 이미지가 인상적이었는데. -얘기가 진부할 수 있어 물이라는 오브제로 돌파하려 했습니다. 물이 배우들 다리를 적셔 바짓가랑이를 척척하게 만드는 것으로 현실에 발 묶인 인물들을, 혁준이 물에 푹 젖어 무거운 점퍼를 억척스레 껴입는 것으로 짊어진 삶의 무게를, 혁준이 화내며 벗어던진 점퍼를 엄마 순녀가 받아안는데 그 점퍼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로 어미의 피눈물을, 인물들이 물길을 건너가면서 밟는 디딤돌의 배치를 통해 소통이나 단절 같은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결국 무대 중앙에 고인 물은 수몰지구에 꿈과 희망을 함께 묻어야만 했던 사람들의 눈물인거죠. 원형이라 인물들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거울의 이미지도 되고요. →어린 시절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됐나요. -그건 모두가 느꼈으면 하는 부분입니다. 연습 때 배우들도 정말 많이 울었어요. 낡은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저마다 가족관계에서 오는 상처 하나씩을 지니고 있더군요. 모두가 앓고 있었던 얘기였던 겁니다. 때문에 극 마지막에 “엄마 걱정하시니까 너희들도 그만 놀고 어여 집에 가.”라고 하는 순녀의 대사는 사실 관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대학 졸업무대 때는 “그럼에도 인생은 눈부시다.”는 말로 마무리했는데 이번에 추가한 겁니다. 몇 해가 또 지나고 나니 그래도 돌아갈 곳은 가족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걸 추가하고 싶었습니다. 이양구씨는 2008년 ‘별방’으로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됐고, 2009년에는 영 아티스트 프런티어로 선정됐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으로는 삼청교육대나 지존파 사건 등 ‘사회성 짙은 작품’을 꼽았다. 언제쯤 볼 수 있겠느냐는 질문엔 “좀 천천히 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신춘문예 당선자라 극본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데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일이 많이 밀려 있단다. 남들은 그의 이런 ‘촌놈 마인드’를 높이 사지만, 스스로는 좀 더 냉정해져 작품 다듬는데 시간을 더 쏟고 싶은 욕심이 있다. 참, 핼리혜성은 76년을 기다려야 한 번 관찰할 수 있다는 그 혜성이다. 깨어서 지켜보든 자느라 모르든, 누구에게나 한 번은 왔다 가는 ‘눈부신 인생’의 한 순간을 상징한다.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씨줄날줄] 병역기피 논쟁/최광숙 논설위원

    “평안도의 양덕, 성천의 매 잡는 사람은 40호만 두게 하고, 그들에게는 병조에서 차첩(임명장)을 주게 했다. 첩이 없이 행세하는 자는 그 고을 관청에 군인으로 편입시키니 이 때문에 혁파된 시파지(매를 기르는 사람)가 수백호나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의 한 대목이다. 당시 매 사냥에 나선 임금의 수레 뒤를 따르며 보필했던 이들에게는 부역을 면제해 줬다. 자연 군역을 피하려는 이들이 청탁도 넣고 허위로 매 사냥 자격증도 위조해 사회문제가 됐나 보다. 조선시대에는 심지어 군역을 피하기 위해 승려가 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병역기피 논쟁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시기는 1997년 대선 때가 아닌가 싶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아들 정연씨의 병역 사유가 논란이 됐다. 키 179㎝의 정연씨가 45㎏의 체중미달로 병역면제를 받은 것이 여론의 집중 포화를 받은 것. 아들은 소록도의 봉사활동으로 참회했으나 그 아버지는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그 이후 공직사회에서는 ‘한 자리’ 하려는 아버지의 출세길을 막지 않으려는 공직자들의 아들들이 줄줄이 군입대를 자원하는 풍토가 생겨났다. 대통령은 군통수권자이다 보니 어느 나라에서나 대선후보의 병역문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영국 옥스퍼드대로 유학가면서 병역의무가 면제됐다. 베트남전을 피하기 위한 병역기피가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대선전에서 한때 병역 논란에 시달렸다. 한 시민단체가 주 공군 방위군에서 복무했다는 부시의 병역기록을 증명해주는 이에게 5만달러를 주겠다며 의문을 제기하면서다. 전당대회를 앞둔 한나라당에서 병역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당 대표경선에 나선 안상수 후보의 군 면제 사유는 ‘고령’. 홍준표 후보가 이를 문제삼고 나섰다. 20세 때 징병검사 기피로 시작된 병역문제는 입영연기, 기피, 입영후 귀가, 보충역으로 이어지다 32세에 병역에서 해방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에 안 후보는 “고시 공부하러 산에 가면서 통지서를 받지 못한 것이지 범법으로 입대를 기피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날 선 병역기피 논란에 안 후보가 ‘좌파 주지’로 지목했던 명진 봉은사 주지 스님이 “병역기피는 할 수 있어도 진실을 기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거들고 나섰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거론하며 병역의 의무를 강조하는 것보다 ‘진실’을 감출 수 없다는 말이 더 무섭게 들린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손자 돌잔치 가던 할아버지, 딸과 함께 참변

    손자 돌잔치 가던 할아버지, 딸과 함께 참변

    인천대교 인근에서 발생한 고속버스 추락사고의 현장검증이 4일 실시됐다. 사고를 조사중인 인천 중부경찰서는 이날 오후 1시20분부터 도로교통공단, 119 등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마티즈 승용차가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도로에 멈춰 선 순간부터 사고 고속버스가 10m 아래 공사현장으로 떨어지는 순간까지 전반적인 사고 경위를 재연했다. 마티즈 승용차의 운전자 김모(45·여)씨는 마티즈 승용차를 대신한 경찰 순찰차 뒷좌석에 앉아 자신의 주행 경로를 차근히 설명했다. 현장에 도착한 유족 및 부상자 가족 30여명은 사고 현장과 고속버스가 추락한 공사현장을 둘러보며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일부 유족은 오열과 함께 경찰의 현장검증과 사고 조사에 불만을 터뜨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유가족 대표를 맡은 고(故) 노정환(49)씨의 처남 황병원(54)씨는 “요금정산소와 사고 지점 거리가 얼마 안 되는데 고속버스 운전기사가 얼마의 속도로 달렸기에 이렇게 큰 사고가 나느냐.”며 경찰의 설명을 요구했다. 인천 버스 추락사고에선 특히 경북 경주지역 주민들의 희생이 컸다. 숨진 12명 가운데 지역민이 모두 7명이나 된다. 4명도 중경상을 입었다. 희생자 중에는 일가족 4명과 2명이 들어 있어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인천에 사는 손자 돌잔치에 가려고 아내, 딸, 외손자와 함께 버스에 올랐던 설해용(60)씨가 딸과 함께 숨지고 아내와 외손자는 중경상을 입었다. 경주시는 사고 당일 밤에 시청에 상황실을 설치하고 부상자와 유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이태현 부시장과 직원 2명을 현장에 파견했다. 버스의 출발지인 경북 포항시도 상황실을 설치하고 현장에 직원을 급파하는 등 신속한 대응체제에 나섰다. 포스코는 인천에서 발생한 버스 추락사고로 해외출장에 나섰던 직원이 숨지거나 중상을 입자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포스코 기술연구원 제선연구그룹 소속의 서인국(52) 그룹리더와 이시형(45) 전문연구원 등 2명이 호주 출장을 위해 사고버스를 탔다가 이씨는 숨지고 서씨는 중상을 입은 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숨진 이씨는 광석 전문가로 서씨와 함께 이날부터 오는 10일까지 포스코의 서호주 광산 신규개발 지분투자 참여를 위한 기술조사를 위해 호주로 출장을 떠날 예정이었다. 인천대교 추락사고를 낸 천마고속 측은 사고 직후 사장과 간부 등 20여명을 현장에 급파해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처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 회사는 115대의 버스를 보유하고 매일 수도권 등 전국을 대상으로 노선을 운행하고 있다. 경주 한찬규·인천 김학준기자 cghan@seoul.co.kr
  • “오바마의 미국, 부시때보다 좋아”

    “오바마의 미국, 부시때보다 좋아”

    한국을 비롯한 세계 22개국 중 21개국의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재임때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더 높아졌다. ●한국 58→70→79% 3번째로 높아 미국의 조사전문기관 퓨 리서치센터가 지난 4~5월 세계 22개국, 2만 479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7일(현지시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18세 이상 남녀 706명 가운데 79%가 미국을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한국의 대미 호감도는 조사 대상국 중 3번째다. 대미 호감도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58%였으나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인 2008년 70%로 급등한 이후 계속 높아졌다. 미국에 가장 높은 호감을 나타낸 국가 1위와 2위는 아프리카의 케냐와 나이지리아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버지 고향인 케냐에서는 94%, 나이지리아에서는 81%가 미국을 좋게 봤다.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은 2008년에 비해 17% 오른 58%가 미국에 호감을 표시했다. 심각한 재정위기에 빠진 유럽을 구하기 위해 미국 재무부와 손을 잡은 독일과 프랑스의 대미 호감도는 2008년에 비해 각각 1%와 2% 떨어져 63%와 73%를 기록했다. 2008년 독일은 32%, 프랑스는 31%나 상승했었던 것과 비교, 다소 주춤한 편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파병에 대한 미국과 독일·프랑스의 입장 차이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케냐 94% 등 阿 호의적 역사적으로 미국과 마찰이 많았던 러시아도 2년 전 조사 때보다 호감도가 11% 오른 57%를, 일본은 7% 상승한 66%였다. 일본의 경우, 54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뤄 집권한 민주당이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의 마찰을 빚는 등 불편한 관계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집트 5%↓… 터키와 함께 최저 반면 터키와 이집트, 파키스탄의 대미 호감도는 각각 17%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특히 이집트는 2008년 조사에 비해 호감도가 5% 하락, 조사국 가운데 유일하게 부시 행정부 때보다 떨어진 국가다. 한편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는 중국인의 91%가 자국의 사정이 좋다고 응답한 반면 한국인의 80%는 경제가 좋지 않다고 답했다. 또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자국팀이 우승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브라질의 75%가 우승을 확신했다. 스페인은 58%, 아르헨티나는 43%, 독일은 36%, 프랑스는 24%만이 우승을 점쳤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힐러리 美국무, 한국 적극적 지지 표명 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다녀간 지 닷새가 넘었지만, 외교가에서는 그의 기자회견 내용이 여전히 화제다. 힐러리가 지난 26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넘치도록 드러낸 한국에 대한 지지 입장이 어디에서 비롯됐느냐는 것이다. 당시 힐러리는 “북한 지도자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면서 초강경 어조로 한국 편에 섰다. 우선 9·11테러 이후 변화된 미국의 동맹관(觀)이 이번에 힐러리의 입을 통해 확인됐다는 시각이 있다. 정부 소식통은 31일 “미국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만 해도 세계 유일의 강국으로서 결정은 미국이 하고 동맹국은 돈이나 내는 존재로 인식했던 게 사실”이라면서 “9·11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동맹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생각이 변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어려울 때 도움을 받으려면 동맹이 위기에 처했을 때 팔을 걷어붙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겼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힐러리가 개인적으로 한국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가 미 국무부 관리들로부터 들은 내용은 이렇다. 힐러리는 지난해 2월 국무장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방한, 이화여대를 찾았다. 그때 접한 한국 여대생 특유의 발랄함에 ‘매료’됐다는 것이다. 당시 2000여명의 학생들은 연설에 나선 힐러리에게 떠나갈 듯한 환호와 함께 20여 차례나 박수세례를 퍼부어 그녀를 들뜨게 했다. 힐러리가 한·중·일 순방 과정에서 만난 3국 관료들의 스타일도 호감도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중국과 일본 장관은 아랫사람이 써준 것만 앵무새처럼 읽는 데 반해 한국 장관들은 자유스러운 대화로 회담에 임해서 친숙하게 느껴졌다고 하더라.”라고 미국 관리들의 말을 전했다. 물론 개인적인 호감도와는 별개로 철저히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힐러리가 강한 지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천안함 사태를 한·미·일 3각 동맹을 다지면서 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호기로 삼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고전톡톡 다시읽기] ‘오디세이아’서 찾은 ‘멘토’ 유래

    오디세우스의 고난에 찬 귀향길과 아버지의 행방을 쫓는 텔레마코스의 여행길에는 언제나 아테네 여신이 함께한다. ‘오디세이아’ 전편에 걸쳐 아테네의 활약은 눈부시다. 예정된 시간을 넘겨서도 귀향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위해 아테네는 올림푸스의 신들에게 그의 귀향을 탄원하고, 그가 낯선 곳에 갈 때마다 환대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며, 이타케로 돌아온 오디세우스가 구혼자들에게 복수할 때에도 함께하며, 전운이 감도는 이타케에 평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애를 쓴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소식을 듣기 위해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네스토르와 메넬리우스를 방문할 때에도 아테네는 그의 여행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매번 자신의 모습을 바꿔 가면서 응원한다. 아테네는 자주 멘토르의 모습을 하고 텔레마코스 앞에 나타나는데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기 전, 친구인 멘토르에게 아들을 부탁하기도 한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을 떠나 있는 동안 멘토르는 텔레마코스의 선생이자 친구, 아버지의 역할을 도맡아 하며 그가 훌륭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친구인 멘토르와 멘토르로 분장한 아테네의 도움으로 당당한 성인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멘토’라는 말은 이러한 배경에서 만들어져 온 것이다. 서울신문 · 수유+너머 공동기획
  • [문화마당]북한강/신동호 시인

    [문화마당]북한강/신동호 시인

    물푸레나무 그림자가 출렁인다. 강은 흘렀다. 강은 저 깊이 살찌는 소리를 내며 부풀어갔다. 겨울을 지나고, 짧은 우기를 지나 수면이 눈부시게 반짝이면 안개는 일찍 골짜기로 기어들었다. 등줄기에 땀을 머금은 채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때 이르게 강으로 몸을 던졌다. 강은 울렁였지만 그것도 잠시, 고요의 뒤로 물러났다. 오월의 강은 소풍날 찍은 흑백사진의 뒤에서, 성장통의 쓸쓸한 날을 보내던 안개 속에서, 큰아버지의 장송곡이 울리던 긴 밤에도 그저 흘렀다. 오랜만에 북한강 굽이를 돌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를 지났다. 어린 날 구만리는 포병부대의 잦은 훈련과 전쟁의 상흔이 박힌 거먹다리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강은 범람했지만 소리만 요란했지 마당까지 올라오진 않았고, 가문 날에도 새벽이면 잉어들이 뛰었다. 산기슭에는 옥수수가 자랐다. 봄볕 가득히 파로호의 담수는 푸르렀다. 먼지를 풍기며 지나는 군용트럭이나 화천발전소에 파견된 소부대의 아침 구보 소리가 아니었다면 여긴 전방마을이 아니었다. 고봉준령이 연이어 손을 잡은 첩첩산중의 조용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오늘 이 길은 평화의 댐까지 관광객을 이끌고 있다. 수복지구의 아이들은 어른들의 갈등을 몰랐다. 반공웅변대회에서 상을 타면 하루종일 강가에 나가 머리를 적셨고 낡은 탁자 끝에서 벌어지던 어른들의 싸움을 그냥 취기 탓으로 생각하면 되었다. 따뜻했고 나른했다. 강물 때문이었다. 잠시도 멈춰 있는 것 같지 않았지만 또 변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강은 내게도, 네게도, 우리에게도 공평하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거기서 아이들은 커갔다. 쫓치기는 아이들의 낚시 방법이었다. 버려진 그물을 강에 드리우고 나뭇가지를 수면으로 휘두르면 피라미나 똥고기 같은 게 걸려들었다. 조숙한 아이들은 대낚시를 배웠다. 미끼를 갈고 제법 기다림에 익숙해지면서 소년이 되어갔다. 릴낚시는 불끈 솟은 근육 같았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을 낚싯줄에 걸어 되도록 멀리 던져 보냈다. 몇 번이나 허망한 세월이 빈 낚시로 걸려들었으나 가끔 커다란 누치와 힘겨루기를 하면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릴은 스무 살의 나이만큼 빠르게 감겼다가 다시 꿈꾸듯 풀려나갔다. 강은 흘렀다. 시간은 지나고 늘 진실은 밝혀졌다. 방과 후 강가로 졸졸 쫓아다녔던 잡종개 해피는 기력을 잃은 이모의 부엌에서 삶아졌다. 그걸 십년이 지나서야 고추밭 모종을 하다 듣게 되었다. 그날 밤새 해피를 찾아다녔던 상실감이 나를 의심 많은 어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일까. 평화의 댐이 생기면서 파로호는 점점 말라가고 하늘을 까맣게 뒤덮던 까마귀도 어디로 가고 없다. 무용담을 입에 달고 살던 상이용사도, 전쟁 전 인공치하에 살던 토박이 농사꾼도. “1986년 전 국민을 공포에 빠뜨린 이른바 금강산댐 소동. 그해 10월30일 전두환 정권은 북한이 비밀리에 200억t 저수용량의 금강산댐 건설계획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이 댐이 붕괴될 경우 서울은 12~16시간 내에 물바다가 되고 여의도 63빌딩의 3분의2, 국회의사당의 지붕 부분만 남게 된다는 충격적인 상황과 함께 제2의 남침이라 호들갑을 떨었다. 국민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성금운동으로 6개월 만에 630억원을 모금했다. 1987년 시작된 평화의 댐 공사는 2005년 10월 총 3995억원이 투입된 끝에 완공됐다. 이후 실제 금강산 댐의 저수 용량은 정부 발표치의 8분의1도 안 되는 26억t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평화의 댐은 호우대비용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금강산댐 위협은 터무니없이 과장되었으며 정권 유지 차원의 국면전환용 사기극으로 밝혀졌다.” 언제였을까, 강은 흘렀다. 맥국으로 불리던 시절에서부터 일제시대 거먹다리가 놓이던 시절까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아직 이 땅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시절에도 흘렀고, 그 모든 걸 결딴낼 듯 대립하는 마음들이 사라진 이후에도 흐를 터이다. 안개 자욱한 이 오월의 국토를.
  • [세대공감] 어버이날 전상서

    [세대공감] 어버이날 전상서

    가정의 달 5월이다. 어린이날, 부부의 날, 어버이날 등 챙겨야 할 기념일도 많다. 이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뜻깊게 여기는 날은 단연 어버이날. 한 포털사이트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8%가 어버이날을 5월의 가장 중요한 기념일로 꼽았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작지만 정성이 가득한 선물, 사랑이 가득 담긴 편지를 준비해보자. 세대 간의 대화와 소통이 부족한 요즘, 어버이날은 부모님과 자녀 간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비싼 선물보단 손수 만든 카네이션·요리를 인천 주안동에 사는 이유선(26·여)씨는 어버이날 아침엔 꼭 앞치마를 두른다. 대학 입학 후 7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부모님께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 끝에 가장 자신 있는 ‘요리 선물’을 택한 것. 이씨는 “다른 무엇보다 부모님을 향한 마음과 정성을 듬뿍 담을 수 있는 요리가 가장 좋은 선물인 것 같다.”고 말했다. 비싼 돈을 들여 백화점에서 사는 선물보다 자신의 마음을 직접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이씨가 만든 요리에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직접 만들었던 ‘종이 카네이션’에 담긴 정성이 그대로 녹아 있다. 이씨는 “어린 시절에는 몇 시간을 꼬박 투자해 분홍색 습자지로 카네이션 두 송이를 만들어 부모님 가슴에 달아드렸다.”면서 “이제는 내가 하는 요리에 그 정성을 담는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현재 음식 제조업체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씨는 어버이날 며칠 전부터 어머니, 아버지가 난생 처음 맛보는 요리를 준비하기 위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총동원한다. 지난해 어버이날엔 차돌박이냉채 샐러드와 월남쌈 바비큐립을 요리했다. 이씨는 “어버이날 아침에 한 상 거하게 차려놓으면 엄마가 특히 좋아한다.”며 “부모님이 딱 하루 쉬시는 날이잖느냐.”며 웃어보였다. ●실속있는 선물·현금 솔직히 더 반가워 반면 부모님 입장에서는 물질적으로 의미있는 선물을 기대하기도 한다. 정성이 듬뿍 담긴 자녀의 선물도 좋지만 현실적으로 갖고 싶었던 선물이나 용돈이 더 반갑다는 것이 솔직한 반응이다. 직장 5년차인 아들과 2년차 딸을 둔 오정애(58)씨는 2년 전부터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갖고 싶은 선물을 자녀들에게 은근슬쩍 내비친다. 물론 자식들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다. 지난해 어버이날 오씨는 마침 똑 떨어진 기능성 화장품을 선물로 받았다. 아들은 피부에 탄력을 준다는 에센스와 크림을, 딸은 눈주름을 개선한다는 아이크림을 선물로 준비했다. 물론 오씨가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으면 받을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어버이날을 며칠 앞둔 아침식사 자리에서 오씨는 “쓰던 화장품이 다 떨어져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눈치 빠른 딸은 오씨의 마음을 읽고 오빠와 자신이 나눠서 어버이날 선물을 준비했다. 오씨는 “미리 나에게 필요한 것을 말해주니 애들이 선물 고민을 하지 않아서 더 좋다고 한다.”면서 “자식들의 정성도 물론 좋지만 내가 받고 싶은 선물에 정성을 더하면 더 좋은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부대로 찾아온 아버지 발 씻겨드리며 화해 ‘이런 말하기 너무 어색한데요. 아버지. 그 동안 이 말을 하기가 왜 그렇게 어색했을까요. 사랑해요. 고맙습니다.’ 인천 부평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는 최용완(29) 상병은 펜대를 놓으며 눈물을 닦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께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 뒤다. 때늦게 입대할 때까지 부모님 속을 참 많이 썩였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겠다며 스무살이 훌쩍 넘어서 가출도 했었다. 집에서 용돈을 끊자 학원 강사를 하며 군 입대도 미루고 또 미뤘다. 아버지 말씀을 따르기가 죽기보다 싫었던 적이 있었다. 입대를 하고 보니 부대에 ‘예비 아버지학교’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매년 어버이 날 부대 장병들이 아버지들을 모시고 그동안 부자 사이에 가슴 터놓고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하는 시간이다. 첫째 날은 장병들이 스스로 아버지의 입장에서 가상의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최상병은 지난해 어버이날, 아버지 최씨가 되어 젊은 시절 방황하던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썼다. 최씨는 “스스로를 타이르는 편지를 쓰며 그동안 자신을 보듬어 준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예비 아버지학교’ 이튿날에는 직접 부대로 찾아온 아버지를 만났다.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 발도 씻겨드리면서 아버지와 아들은 금세 ‘친구’가 됐다. 모든 과정을 마치면 달콤한 외박도 나갈 수 있다. 최상병은 올해 어버이날에도 ‘예비 아버지학교’에 참석할 예정이다. 그는 “처음에는 외박 때문에 참석했는데, 이제는 아버지가 오시는 게 반갑다.”면서 “군대에 와서 처음으로 어버이날을 기다리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원 윤석준(54)씨 역시 군대시절에 부모님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3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윤씨는 지금도 군대에 있을 때만큼 어머니를 그리워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3년간의 군 생활 동안 3번의 어버이날을 맞은 윤씨는 당시 적은 군인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 어머니 선물을 장만했다. 입대 첫해 어버이날에 맞춰 휴가를 나온 윤씨는 당시 이병 월급 3000원씩을 모아 어머니의 블라우스를 샀다. 윤씨의 부대로 종종 면회를 오시던 어머니께서 변변히 입을 게 없다며 아쉬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해서였다. 당시 윤씨의 어머니는 “군인 월급이 얼마나 하는데 이런 걸 다 사왔냐.”고 타박하시면서도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다음 번 면회 때부터는 항상 윤씨가 사드린 분홍색 블라우스를 입고 오셨다. 윤씨는 “나이가 들면서 어버이날에 좋은 선물도 해드리고 여행도 보내드렸지만, 어머니는 그때 사드린 블라우스를 가장 마음에 들어 하셨다.”면서 “아무래도 군대에 있으면 부모님 생각이 가장 애틋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노릇한 큰오빠… 이젠 고맙다고 말할래요 서울 상계동에 사는 조인순(48·여)씨에게 큰 오빠 형서(66)씨는 아버지나 다를 바 없다. 조씨가 여덟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큰오빠가 가장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7남매 중 막내인 조씨는 유난히 큰 오빠를 잘 따르며 그를 든든한 아버지로 여기며 살아왔다. “어려서 길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오빠를 부르면서 집으로 달려왔어요.” 조씨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오빠가 자상하게 등을 토닥거려 주기도 하고, 한마디로 아버지 같았죠.”라고 말했다. 조씨는 “오빠가 동생들 공부시킨다고 집도 못 사고 고생도 참 많이 했어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항상 큰 오빠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온 조씨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면서 고마움을 자주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다 3년 전 겨울, 큰 오빠가 중풍으로 쓰러졌다. 조씨는 “먹고 살려고 그랬다고는 하지만 제가 그래서는 안 되죠. 오빠 몸이 저렇게 되고서야 철이 들었어요. 저에게는 아버지 같은 오빠인데…”라고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큰오빠가 쓰러진 해부터 조씨는 어버이날이면 큰오빠 집을 찾는다. 늘 아버지처럼 든든했던 오빠가 누워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슴 아프지만, 어버이날에라도 그동안 마음속으로만 품어왔던 오빠에 대한 고마움을 더 이상 감춰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큰오빠랑 언니 옷도 해드리고 부족한 솜씨지만 오빠가 좋아하는 음식도 만들어드려요.”라고 말하는 조씨는 “지금까지 못했던 거 어떻게 다 갚죠.”라며 다시 눈물을 터트렸다. 윤샘이나 김양진기자 sam@seoul.co.kr ■ 어버이날의 유래 1956년 ‘어머니날’ 시초…부모님 돌아가셨을땐 가슴에 흰색 카네이션 우리나라의 어버이날은 1956년 5월 8일 국무회의에서 지정된 ‘어머니날’에서 시작됐다. 17회까지 이어진 어머니날은 이후 1973년 3월 30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서 명칭이 ‘어버이날’로 변경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버이날은 본래 우리나라에서 생긴 것은 아니었다. 사순절의 첫날부터 넷째 주 일요일에 어버이의 영혼에 감사하기 위해 교회를 찾는 영국·그리스의 풍습과, 1910년경 미국의 한 여성이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교회에서 흰 카네이션을 마을 교인들에게 나누어 준 데서 비롯됐다. 미국 버지니아주 웹스터에 살던 자비스 부인은 교회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활동을 해 마을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다. 자비스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 부인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많은 학생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도식을 열었고,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자비스 부인의 딸 안나는 흰색 카네이션을 나누어 주었다. 이후 흰색 카네이션을 가슴에 다는 것이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추모의 표시로 정착됐다. 그러다 1914년 미국의 제28대 대통령 토머스 우드로 윌슨이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정하면서부터 정식 기념일이 됐다. 이후 지금까지도 미국에서는 5월 둘째 주 일요일에 어머니가 생존한 사람은 빨간 카네이션을, 어머니가 죽은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각종 집회와 행사를 연다. 어머니날은 선교사들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파됐고 1956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공식 지정하면서 해마다 지켜지게 됐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도시와 길] 대전 중앙로

    [도시와 길] 대전 중앙로

    대전 중앙로엔 도시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도시의 탄생에서 침체기까지 그 흥망성쇠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각종 신도시 개발로 명성이 다소 떨어져 있지만 중앙로는 여전히 대전의 중심 도로이다. 중앙로는 대전역에서 충남도청까지 뻗어 있다. 1.2㎞ 길이다. ●대전역과 더불어 대전 도시형성의 시발점 이 길은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오면서 완전히 뚫렸다. 충남도청 이전으로 대전역에서 도청까지 ‘한 일(一)자’로 훤하게 닦였다. 이전에는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대전역이 생기고 7년 후 300여m 앞에 목척교가 건설되면서 중앙로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역전에서 남북으로만 뻗던 도로가 비로소 동서로 뚫린 것이다. 오래 전 대전역 주변에 거대한 밭이 있었다. 주민들은 이곳을 ‘한밭’이라고 불렀다. 대전(大田)이란 지명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송백헌 충남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옛날에는 ‘회덕’이란 지명을 많이 썼는데 경부선이 뚫린 뒤 대전을 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경부선이 대전지역을 동서로 갈라놓으면서 역전 중앙로 주변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역 뒤쪽은 낙후돼 갔다. 송 교수는 “전(田)자가 주둥이가 4개이기 때문에 말 많은 동네가 됐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면서 “영남, 호남, 원주민과 이북 등 기타 외지인이 대전 인구를 4등분하고 있어 가장 텃세가 없는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대전역이 대전의 관문 역할을 하면서 일제강점기엔 역과 멀지 않은 중구 대흥동 일대에 일본군 장교 관사 등이 포진했다. 중앙로가 대전의 중심지로 도시발전을 이끌고 그 위치를 굳건히 지킬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전역과 중앙로는 대전 도시형성의 시발점이다. ●왕복 6차선 중앙로 양쪽으로 건물 즐비 중앙로가 완전 개통되기 전에 중구 선화동 갤러리아백화점 동백점(옛 동양백화점)~도청 사이에는 과수원이 있었다. 동양백화점은 이곳에 있던 재판소가 1937년 지금의 대전세무서 건물로 이전하면서 들어섰다. 동양백화점은 대전 최고의 백화점으로 군림하다 10년 전 한화에 인수됐다. 왕복 6차선의 중앙로 양쪽에는 건물이 도미노처럼 이어진다. 최신 건물도 있지만 오래된 건물이 대다수다. 리모델링해 그나마 노후된 느낌은 덜하다. 목척교 주변에 있는 ‘다비치안경’건물은 1937년 지어졌다. 조선식산은행 건물로 사용되다가 광복 후 1997년까지 산업은행 대전지점으로 쓰였다. 층고가 높은 2층짜리 이 건물은 간결하면서도 장중한 멋을 풍긴다. 당시 만주와 독일에서 화강석과 테라코타를 수입해 지었다고 한다.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 19호로 지정돼 있다. 광복 후에도 중앙로의 명성은 퇴색되지 않았다. 한국전쟁 때 옛 상공회의소 건물은 뉴스의 공급처였다. 옥상에 거대한 스피커 4대를 사방으로 설치하고 지역 아나운서들이 마이크에 대고 직접 뉴스를 전달했다. 30분씩 하루 3차례 방송했다. 전쟁 때여서 라디오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현재 삼성화재가 매입, 사옥으로 쓰고 있다. ●2012년 말 충남도청 이전… 상권침체 우려 중앙로 근처에 있는 제과점 ‘성심당’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국내외 유명 제과점이 입성해도 대전 시민들은 성심당 빵과 케이크를 최고로 친다. 송 교수는 “6·25 전후로 중앙로 부근에 ‘태극당’ ‘승리당’과 문학과 지성사 상임고문인 문학평론가 김병익씨 아버지가 운영하던 ‘삼성당’이 있었는데 성심당만 남아 옛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회고했다. 그는 “6·25 때 미군 B29가 폭격을 퍼부었는데 2㎞쯤 떨어진 대흥동까지 철로가 날아왔다.”면서 “상공회의소 건물에 미군 포로를 세워놓아 이곳과 충남도청 등 건물만 부서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중앙로는 1960년대 중반 공모를 통해 이름이 붙여졌다. 1981~91년 중앙로 밑에 지하상가가 들어섰다. 의류, 음식점 등 600여개 가게가 밀집해 있다. 전성기를 누리던 이 상가는 1999년 대전시청이 둔산신도시로 이전하면서 침체기를 맞았다. IMF 구제금융도 한몫 했다. 이재봉 중앙로지하상가 운영위원장은 “601개 점포 중 빈 곳이 60개에 달했는데 지하철이 뚫린 뒤 유동인구가 30% 늘고 빈 점포도 10곳으로 줄었다.”면서 “중앙로가 부활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2012년 말 충남도청이 이전하면 또 타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주말 데이트] 한국계 아랍 코미디언 정원호

    [주말 데이트] 한국계 아랍 코미디언 정원호

    “한국과 아랍국간 문화적 간극을 줄일 수 있는 가교가 되겠습니다.” 중동에서 코미디언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원호(29)씨가 아버지의 나라를 처음 방문한 뒤 벅찬 소감을 전했다. 중동지역 TV에 방송될 한국관광 홍보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전국 유명 관광지를 돌아본 그는 지난 15일 한국관광공사로부터 명예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 무슬림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메신저가 될 그를 지난 23일 서울 청계천로 한국관광공사에서 만났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사우디와 요르단 왕 등의 전담 지압사로 활동했던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요르단 등 아랍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았다. 따라서 사실상 아랍어가 모국어다. 집에서도 영어를 주로 사용해 한국말은 거의 할 줄 모른다. 어렸을 때는 생경한 외모 탓에 놀림도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쉬 접하기 어려운 외모다 보니 주목을 많이 받고, 거북스러운 일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당연한 현상이라 생각했죠. 그 관심들을 좋게 활용하려 노력했고요.” 원체 부끄럼을 잘 타고, 소심한 성격이었던 그이지만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려 애쓰다 보니 점차 사교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게다가 한류의 영향으로 중동 국가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지면서 되레 친구 삼자는 사람들이 늘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를 중심으로 활동중인 정씨는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랍권에서는 꽤 유명한 코미디언이다. 10대부터 연극에 심취했던 그는 2007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는 3인조 정치 풍자 코미디팀 멤버로 코미디쇼에 출연하면서 연예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사우디 국영방송 mbc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다 느닷없이 캐스팅돼 데뷔하게 된 것. ‘악의 축’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 이란, 이라크 등 3개국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것을 풍자한 데서 비롯한 이름이다. 이란, 이집트, 팔레스타인 등 중동계 미국인 3명으로 운영되던 ‘악의 축’ 팀은 이름에 걸맞은 팀 구성을 위해 북한 출신 코미디언 섭외에 나섰지만 여의치 않자 정씨를 섭외했다. 그는 유창한 아랍어와 뛰어난 재담으로 팀의 주축 코미디언으로 성장했다. ‘악의 축’ 팀과 함께 중동 지역을 순회하며 27회의 공연 동안 2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아랍권 스탠드업 코미디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후 중동 최대 코미디 프로그램인 ‘쇼타임’ 채널의 ‘프라이데이 나이트 라이브’에서 공동 MC로 활약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현재도 연예계 소식을 전하는 ‘쇼 미 모어’(Show Me More)라는 주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정씨는 한국관광공사의 초청으로 13일부터 열흘 동안 서울을 비롯해 제주와 부산, 경기도 가평 남이섬 등 한국의 유명 관광지들을 빠짐없이 둘러 봤다. “각 지역에서 3~5분 정도 미니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했어요. 지역별로 25~30곳 정도를 두세 달에 걸쳐 제가 진행하고 있는 TV 프로그램 등에 방영할 예정이에요.” 코믹에피소드 형식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은 5월 초 중동의 주요 방송사를 통해 아랍권에 소개될 예정이다. 그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지역은 제주. “성산 일출봉 풍경은 정말 스펙터클하더군요. 지구에서 뭔가 솟구쳐 오르는 듯한 파워를 느꼈어요. 중동에서 한국은 산업국가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실제 와 보니 자연 경관이 볼 게 많더군요. 아랍권 국가들은 여행 목적지로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 인접한 무슬림 국가들을 선호했는데, 한류 등의 영향으로 한국이 급부상하고 있어요. 지금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는 과도기인 거 같아요.” 정씨는 음식이나 숙소 등에서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지만, 외국 여행자를 위한 영어 안내판이 좀 더 늘었으면 좋겠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의 국적은 한국. 당연히 여권도 우리 외교통상부에서 발행한 것을 쓴다. 그는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국가도 늘어 한결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고 자부심을 드러낸 뒤 “돌아가면 한국어 공부 먼저 하겠다. 한국 사람들은 다양하면서도 보수적이다. 한국 관광의 명예홍보대사로서 한국과 아랍 간 문화적 차이를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글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사형수·피해자 부모 이야기 ‘기묘여행’ 연출 류주연씨

    사형수·피해자 부모 이야기 ‘기묘여행’ 연출 류주연씨

    “심각하고 어둡다고요? 아니에요. 소재가 특이해서 그렇지, 웃기는 연극이에요.” 25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 연극 ‘기묘여행’(극단 산수유)을 올리는 류주연(39) 연출의 말이다. ‘기묘여행’은 사형수 부모와 피살자 부모가 함께 사형수를 면회 가는, 말 그대로 기묘한 여행을 다룬 작품이다. 강호순·김길태 사건 덕분에 사형 부활 논의가 나오는 형국인지라, 오해의 소지가 있겠다. 소재만 특이할 뿐, 웃기는 연극이라니…. “생활 속의 희극적 요소를 짚어내는 세밀한 대목 때문에 그래요.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작품관처럼 희극이란 게 결국 누군가의 아픔 때문에 가능하거든요.” 가령 차마 눈을 마주칠 수 없어 곁눈질로만 보다 보니 가해자 엄마는 피해자 부모의 오른쪽 얼굴만 완벽하게 기억한다던가, 이들 간 첫 만남 장소가 하필이면 노래방이라던가 하는 대목들이다. 그래서 주변 반응도 엇갈린다. 연출가 선배들은 한창 들끓어오른 사형제 논의 때문에 연극적인 측면에서 손해 보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고, 배우들은 체호프적인 캐릭터가 살아 숨쉰다며 “내친 김에 일본투어도 가자.”고 한다. ●“피해자 부모역 남명렬·예수정 출연 감사” 그가 큰소리치는 것은 ‘비빌 언덕’이 있어서다. 용서와 복수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심리를 밀도 있게 그려내야 할 피해자 부모역에 남명렬·예수정 두 배우가 캐스팅됐다. “예수정 선생님은 제가 연극학교 다닐 때 진짜 선생님이기도 했어요. 부탁드리기 어려웠는데 쉽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지난해 격찬을 받은 ‘경남 창녕군 길곡면’ 덕도 봤다. 남명렬은 이 작품을 보고 류주연의 연출력을 인정했고, 흔쾌히 출연을 약속했다.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경상도부부의 일상을 다룬 작품이다. 연극의 대중화·상업화를 내건 연극열전이 작품성을 보완하기 위해 우수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1~2편씩을 선택해 무대에 올리는 ‘연극열전 초이스’에 뽑혔다. 오는 8~10월 석 달 동안 공연된다. 류 연출은 개인적으로는 사형제를 반대한다고 했다.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도 남명렬의 “죽일 수 없다.”를 꼽았다. “복수하겠다지만, 사형수 앞에서 땀만 뻘뻘 흘리다 나와서는 애꿎은 인형만 찌릅니다. 그런데 인형일 뿐인 데도 배우 입장에서는 굉장히 연기하기가 어렵다고 해요. 관객 분들도 그 장면에서 그런 감정을 꼭 느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연극 자체는 열린 결말이다. 사형제 존폐 논란 자체보다 가해자와 피해자 부모들처럼 남겨진 이들이 겪어야 하는 “그 펄떡이는 감정”에 공감해 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사형제에 반대” 두 부모 간 만남을 주선하는 코디네이터와 피의자보호센터 자원봉사자의 존재도 눈길을 끈다. 코디네이터는 전직 교도관으로 사형을 집행해 본 경험이 있고, 자원봉사자는 아버지를 살인범에게 잃었던 기억이 있다. 아픔과 강박을 어떤 식으로 치유해야 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인물들이다. 작품은 류 연출이 4~5년 전 일본에 갔다가 발견한 일본의 극작가 고죠우 도시노부의 원작을 연극화한 것이다. 고죠우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테러와의 전쟁’을 보며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사형제 자체보다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보복감정을 다룬 이야기인 셈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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