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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멸종」 황새 들여왔다/러서 2마리… 텃새로 정착시킬 계획

    국내에서는 멸종된 천연기념물 199호 황새가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17일 하오6시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한국교원대 박시용·김수일교수는 『러시아생태환경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아무르강유역에서 채취한 황새알에서 부화된지 2개월된 암수 두마리를 들여왔다』며 『키 80㎝,몸무게 3㎏정도로 건강한 상태에서 러시아를 출발했으나 현재는 16시간여의 열차·비행기여행으로 극도로 피곤한 상태』라고 밝혔다. 황새는 우리나라에서도 서식한 텃새였으나 60년대 들어 농약사용이 늘면서 그 수가 줄어들다가 충북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에 살던 마지막 1쌍가운데 수컷은 71년 밀렵으로,암컷은 94년 농약중독으로 죽어 국내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교원대 「황새보존연구센타」는 충북 청원군 조치원 캠퍼스내의 미호천에 농촌환경을 조성해 황새가 서식할 수 있는 생태계를 복원한뒤 이들을 종조로 삼아 텃새로 정착시킬 계획이다.〈이지운 기자〉
  • 연해주 농업(시베이아 대탐방:72)

    ◎외국과 「합작농장」 설립… 적자영농 탈피/한국 「고압」 95년 진출… 30만달러 투자/1처만㏊ 경작,콩 등 800만t 수확/현대서 17층 비즈니스센터 신축… 내년 가을 완공 연해주의 우수리스크 서쪽 미하일로프스키군내에 위치한 이메니 순얏센 농장.6천6백㏊나 되는 광활한 들판.끝이 안보인다.콩(대두)등 농작물 파종 준비작업이 한창이다.한국과 러시아간 농업합작이 작년부터 처음으로 이뤄진 3개 러시아 농장중 하나다. 고합은 작년에 이곳 농장중 1천㏊를 대상으로 합작사업을 시작했다.30만달러를 투입,농기계 구입 및 영농비 등에 썼다. 작년에는 여름에 날씨가 나빠 작황이 좋지않았다.㏊당 8백㎏씩 총8백t 수확에 그쳤다.당초목표 1천3백t에는 크게 못미쳤다.베네랄 종자를 심은 곳은 ㏊당 9백㎏,프리모르스카야종자를 심은 곳은 6백㎏씩 수확을 거둔 셈이다.그래도 합작하지 않은 지역의 수확량이 ㏊당 4백㎏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대단한 수확이다.과거 자금부족으로 엄두도 못냈던 농약과 비료를 합작을 계기로 처음 사용했기 때문이다.날씨만 좋았으면 ㏊당 1.5t까지 가능했을 것이라는 얘기다.5월20일 파종해 10월말부터 11월초까지 추수작업이 끝났다. ○합작 희망농장 계속 늘어 어쨌든 합작덕택에 수확량이 늘어나 콤바인(2억루블) 두대와 트랙터(8천5백만루블)도 사들였고,28만루블(약4만8천원)이던 직원 3백명의 월급을 올해부터 50%씩 인상할 수 있게 됐다.자연히 인근 다른 농장에서도 합작하자고 줄을 섰다. 우수리스크농대를 나와 다른 농장에 있다가 농장직원들의 선거에 의해 작년 3월 이곳 농장장으로 부임,합작을 성사시킨 미하일 파블류크(32)는 『러시아와의 농업합작은 장기적으로 전망이 매우 밝다』고 말한다. 현재 러시아농장들은 물론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페레스트로이카 이전에는 국가가 트랙터 콤바인 등을 싸게 대주고 비료도 무상으로 줬으나 이제는 기계값은 한껏 오른 반면 곡물수매가는 너무 낮은 실정이다.정부로부터 빌려온 기름값으로 콩 2백50t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수확량중 15%는 껍데기로 갈아내고 30%는 국가에 반납하고 나면 남는 양은 많지 않다.양이 적어 작년에는 전량 내수판매했다.올해부터는 한국으로 들여온다. 구소련시절만 해도 콩이 ㎏당 45코페이카로 l당 7코페이카였던 기름값의 6.5배였으나 지금은 콩이 ㎏당 1천2백60루블로 l당 1천5백루블인 기름보다 오히려 싸졌다.그래서 예전에는 ㏊당 콩 수확량이 3백㎏만 되도 이익이었지만 지금은 최소한 6백㎏은 돼야 한다. 농장을 개인에게 불하해준다고 해도 희망자는 단 1명,1백20㏊를 원할 뿐이었다.자본없는 농사가 이익이 없고 힘들기 때문이란다. 이 농장에서 15년간 일해온 예브도키야 푸르사(54·여)부농장장은 『이 상태대로라면 미하일로프스키구역내 9개 농장중 1∼2년내에 절반도 안남을 것이고 러시아농장 전체의 70%가 올해나 내년중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쉰다. 고합은 지난해 연해주지역의 농업합작을 전담할 회사를 설립했다.합작회사 이름은 연해주를 뜻하는 프리모리예와 코리아의 앞자를 따서 프림코로 정했다.순얏센농장 6천6백㏊와 부근 크레모프스키농장 4천6백㏊중 각각 1천㏊씩이 시범합작대상이었다.아무르주의 6천6백㏊는 별도다.연해주 60만달러를 포함,총 1백90만달러를 투자했다.당초목표는 연해주서만 2천5백t 수확 목표였으나 아무르까지 합쳐 콩 1천5백t씩,총 3천t을 수확했다. ○밀·보리·축산에도 손 대 올해는 합작대상면적을 연해주 1만1천3백72㏊로 늘렸고 아무르주는 그대로다.투자액도 올해는 연해주에 1백74만달러를 증액,총투자액이 3백64만달러에 달한다.작년에는 콩만 심었지만 올해는 콩 뿐 아니라 밀 보리 옥수수 등과 축산까지 합작대상이다. 농업합작 대상면적을 점차 늘려 99년에는 연해주 9개농장 4만3천㏊ 전체와 아무르주 5만㏊ 등 총 9만3천㏊가 되도록 할 계획이다.99년까지 총 2천5백만달러를 투자한다. 프림코 부사장을 겸하고 있는 고합 블라디보스토크 지사 유영대 차장은 『가능성은 무한하다』면서 『일본의 경우 민간업체의 해외농업에 대해 동일가격 우선구매나 세제 지원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는데 비하면 우리나라는 식량안보차원에서 제도적 뒷받침이 아쉽다』고 말한다.물론 농업합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일이후에 대비하는 원대한꿈도 담겨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시청 뒤편.블라디보스토크 비즈니스센터 건설작업이 한창이다.현대가 91년부터 추진했으나 연방세 면제 여부 문제때문에 지연되던 끝에 연해주지사가 연해주에 꼭 필요한 시설이고 연방세 감면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 보내 우여곡절끝에 작년 10월에야 착공됐다.현재 바닥에 파일을 박는 공사를 끝내고 기초공사단계다.내년가을이면 완공예정이다.물론 정정불안없이 순조로울 경우에 그렇다는 얘기다.완공되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번듯한 초현대식 건물로 기록되면서 새로운 명소로 등장한다.미국 일본을 비롯해 어느 나라도 시도하지 못한 대형사업이다.무모하지 않느냐는 시각마저 있다.그러나 위험에는 그만큼 기회도 따른다는 정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이 작용했다. ○자재는 1백% 한국산 3천1백24평 부지에 지하 2층,지상 17층으로 직원숙소를 포함해 연건평 6천9백99평이다.1층에는 백화점 수영장 커피숍 양식당,지하1층에는 뷔페식당 한식당 이·미용실 남녀사우나헬스클럽 등이 들어선다.2층에는 연회장과 은행,3층에는 사무실,4층에는 오피스텔,5∼11층에는 객실과 클럽이 들어선다.사무실타입 29실을 포함,객실이 2백57개다. 현대는 자재를 1백% 한국에서 들여온다.울산에서 배편으로 30시간 걸린다.총투자는 5천1백70만달러.주세와 시세는 면제받는다.그러나 연방세 1천3백만달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사회간접자본시설 건설비용으로 2백24만달러를 이미 전달했다.토지는 블라디보스토크시가 제공,시와 현대측이 3대7의 비율로 50년간 운영관리한다.운영은 금강개발이 맡는다.한국·일본의 총영사관과 대한항공 등이 이미 입주를 신청해온 상태여서 사업전망은 밝다.8∼11년이면 투자금 회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현대건설 블라디보스토크 비즈니스센터 건설사무소의 김진호 부장은 『급속히 발전하는 세계최대항구인 블라디보스토크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말한다. 발해문화의 무대였던 연해주에서 한국인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 국경 무역도시 블라고베시첸스크(시베리아 대탐방:69)

    ◎호텔마다 중국인… 하루 평균 수천명 왕래/중국인 시장에 보따리장사 5백여명 몰려 북적/의류 등 종류 다양… 싼값에 러시아인 즐겨 찾아/지류 200여개·길이 4480㎞ 아무르강은 동북아서 “최장” 하바로프스크에서 아무르주의 수도 블라고비셴스크행 비행기에 올라타니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것은 온통 산악지대뿐이었다.마을은 가뭄에 콩나듯 나타났다.그러다가 아무르주로 접어들면서 대평원들이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아무르주가 러시아 전체 콩생산의 80%를 차지하는 농업지대라는 사실이 실감났다.극동지역 최대 곡창인 것이다.동북아시아에서 가장 긴 아무르강의 모습도 굽이굽이 보였다. 블라고비셴스크는 중·러간 최대 국경무역도시다.그에 걸맞게 시내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로비에는 중국인들 모습뿐이고 중국말 소리가 떠들썩하다.로비 한쪽 벽에는 「금연」이라고 한자로 써있다.여기가 혹시 중국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다. ○극동 최대의 곡창지대 시외곽에 있는 중·러국경 세관도 물론 중국인들로 가득했다.세관주변에서는 불과수백m 폭의 아무르강 건너편 중국쪽으로 농촌촌락과 대형건물이 보인다.다른 나라라기 보다는 차라리 이웃마을처럼 느껴진다.한 세관직원은 『하루평균 여름에는 수천명,겨울에는 1천명정도씩이 각각 국경을 넘어 오고간다』고 말한다.강이 얼기 전에는 60인승 배편으로 다니지만 일단 얼어붙으면 얼음위를 버스편이나 도보로 다닌다.보통 11월말부터 강이 얼지만 얼음이 1m이상 두꺼워지는 12월말 정도부터 차를 이용한다. 아무르강은 상류가 11월 상순,하류는 11월 중순에 얼어붙어 평균 결빙기간이 11월11일부터 다음해 4월28일까지 1백64일동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요즘은 지구온난화 탓으로 점차 결빙시기가 늦어진다고 한다.연중 절반남짓 전구역 항행이 가능한 셈이다. 러시아는 중국과 연결하는 다리를 블라고비셴스크의 카니 쿠르간이란 마을에 건설할 계획이다.아직 착공은 물론 구체적인 일정도 안잡혔지만 다리가 건설되면 차편으로 연중 교류가 가능해진다.농사와 고기잡이에 의존해 생활하는 이 마을 주민들이 다리건설에 거는 기대는 크다.빅토르 지코프씨(51)는 『다리가 빨리 세워져 우리 마을이 발전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블라고비셴스크 시장.단층인 이 시장건물 안쪽의 러시아상점은 매우 한가롭기만 하다.그와는 대조적으로 바깥마당 한쪽 편에 있는 중국인시장은 하루종일 북적거린다.약 5백평 면적에 중국인 상인 5백∼6백명정도가 좌판을 깔고 앉아 있고 러시아인 고객들이 좁은 틈새를 비집고 다니며 쇼핑을 즐긴다.손뼉을 쳐가며 손님들의 관심을 끄는 모습이 흡사 서울의 남대문시장을 방불케 한다.가전제품,의류,주방용기,장난감 등 없는게 없다.중국상인들 대부분이 아는 러시아말은 숫자 등 장사에 필요한 간단한 수준에 불과하다.그래도 의사소통이 안돼서 러시아인들에게 물건을 못파는 일은 없다.필요하면 손짓 발짓을 쓰더라도 결국은 다 통하게 마련이다. 중국상인들은 8∼30일짜리 입국비자를 받아 러시아에 들어온다.93년부터 입국조건이 강화돼 보름짜리 비자를 얻는데만 1백만루블(약17만원)이나 든다.당연히 불법 장기체류로 눌러앉는 경우가 많다.그러다보니 여기저기서 수시로 돈을 뜯길 수밖에 없다. ○중국연결 다리 건설추진 치전틴양(28)은 흑룡강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한뒤 회사를 다니다가 월급이 적어 그만두고 4년전부터 직접 장사에 뛰어들어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초기에는 짭짤하게 재미를 봤지만 요즘은 관세,기숙사비,시장자리세가 모두 비싸져 별로 남는게 없다고 한다. 연길에서 왔다는 한 40대 조선족 여상인은 의류를 가져와 파는데 『여관에서 한달에 양백(2백)달러(약 15만5천원)를 달라고 하고,자리세 하루 2만5천루블,월 관리비 30만루블씩 내다보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남좋은 일만 시키는 셈』이라고 말한다.2천루블(약 3백50원)짜리 여성용 팬티같은 것들을 팔아가지고는 벌이가 시원치 않다는 얘기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물건을 사러 원정온 스베틀라나 스베드룩양(23·여)은 『이 곳에는 값싼 물건들이 많아서 대량 구입해간다』고 말한다. 아무르강은 하이라르강의 원류에서 시작돼 중·러국경을 따라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하바로프스크 오른 쪽에서 우수리강을 합쳐 북동쪽으로 흐르면서 수없이 휘어진 다음 동해와 오호츠크해를 연결하는 태평양의 타타르해협으로 흘러나가는 강으로 중국에서는 흑용강이라 부른다.백두산 천지에서 시작해 삼강구까지 전장 1천7백㎞를 흐르는 송화강을 비롯,시르카 제야 브레야 우수리 아르군강 등 지류가 200개나 되고 전체길이는 4천4백80㎞로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길며 러시아 전체를 통틀어서도 두번째로 길다.본류만 2천2백40㎞,유역면적 1백85만5천㎢,연평균 유량은 1백93억2천만㎥다. 아무르강에는 연어 송어 잉어 붕어 등 상업적 가치가 있는 25종을 포함,러시아강중 최대인 99종이 서식할 정도로 어류가 풍부하다. 아무르강의 포장수력은 4억ㄹ㎾h.지류인 제야강에서 발전시설을 건설중이다.수력발전잠재력은 높지만 홍수범람방지책도 수립해야 하기 때문에 개발은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러시아는 1689년 중국과 체결한 네르친스크조약에서 아무르강유역으로부터 철수하기로 동의했다.그후 1858년 아이훈조약에 의해 아무르강 북쪽이 추가로 러시아령에 포함됐고,1860년 북경조약으로 우수리강 동쪽지역의 영유권도 확보했다.블라디보스토크의 역사도 이때부터 시작된다.1924년 중·소협정으로 국경재협상을 시작키로 했으나 재협상이 늦어지고 있다. ○불법 장기체류자 늘어 양국의 이념분쟁과 중국의 문화대혁명으로 67년부터는 양국간 변경무역이 전면 중단됐고 국경분쟁으로 군사긴장도 고조됐다.69년 아무르강 다만스키섬에서 양국국경수비대가 교전,다수의 사망자를 내는 등 한동안 적대관계가 지속됐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관계개선과 함께 교역이 증가했다.87년에는 개인기업을 포함,모든 기업이 외국기업과 직교역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93년 2월에는 변경무역제한조치를 전면 취소했다.양국간의 교역량은 80년대말까지 꾸준히 증가했고 93년에는 80억달러를 기록,최고조에 달했다가 94년에는 50억달러로 감소했다.양국은 구상무역에서 경화결제방식으로 전환하는 등 쌍무교역증대에 힘을 모으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웃한 대국 러시아와 중국.한없이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 극동의 관문 하바로프스크(시베리아 대탐방:68)

    ◎군수산업 민수전환 붐… 시장경제 “몸살”/수송비 등 부담에 합작회사 무역 치중/물가고속 선업 늘어 구소련 체제에 “향수”/평균 월급 110만루블… 게란 10개 5천루블 하바로프스크시는 인구 62만명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이어 극동 제2의 도시다.극동의 관문으로 항공·철도 등 교통요충지이자 극동의 산업중심지다. 그러나 러시아가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겪고 있는 물가앙등과 실업률급증 및 저임금에 관한 한 하바로프스크 주민도 예외는 아니다.오히려 더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하바로프스크주 경제위원회의 발레리 쇼로코프 부위원장은 『하바로프스크주 기계공업은 기계 및 부품의 70∼80%를 유럽쪽 러시아에서 실어오는데 거리가 멀어 수송비부담이 큰데다가 이곳에 몰려 있는 수많은 군수업체가 민수로 전환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고 실업자가 늘고 있다』고 말한다.예를 들면 석탄값에 비해 수송비가 두배다.공장은 많지만 경쟁력은 떨어지는 실정이다. 92∼93년에는 합작기업이 1백개이상 생겨나 잘 나가는 듯했으나 94년초 관세가 대폭 오른 뒤 외국인투자도 떨어졌단다.합작회사중 다수는 제조는 안중에도 없고 무역에만 치중한다는 것이다. ○항공·철도 교통 요충지 쇼로코프 부위원장은 『군수업체에서 95년부터 50가지 생필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2005년까지 경제구조개선계획을 세워놓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불투명한 장래를 걱정한다.수송비를 낮추는 방식으로 극동의 자원을 활용해 경제구조를 조정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극동의 정유소 두곳은 모두 하바로프스크주에 있다.61년 역사의 하바로프스크정유소는 그동안 직원을 많이 줄였지만 아직도 1천3백명에 이른다.서시베리아 튜멘에서 사오는 원유는 t당 90달러(약 7만원)에 수송비 45달러를 더하면 가공이전상태에서 국제가격보다 높다.수출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상태다. 빅토르 레메카 부사장은 『주문이 줄어들어 운영하기가 어렵고 대책을 모색중이지만 사실 대책이 없다』면서 『중앙정부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정치에 밀려 경제는 뒷전』이라고 불만을 토로한다.하바로프스크시내에서 유통되는기름중 이 공장에서 대는 것은 45%에 불과하다.나머지는 앙가라스크 등지에서 직접 가공해오거나 수입된 것이다.생산량이 얼마나 줄었느냐는 질문에 『업무상 비밀』이라며 입을 다문다. 정유소 현장을 안내한 1급기사 타마라 셰골례바(여)는 『95년 생산량이 4년전인 91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고 귀띔한다.23년째 이 공장에서 일해왔고 월급은 1백20만루블(약 20만원)이란다.콤소몰스크나 아무레의 정유소도 사정은 비슷하다. 하바로프스크 식료품시장.실내에서는 과일·야채·육류·치즈 등 주로 식료품을 팔고,야외에서는 철물점·잡화상·양말 몇켤레 놓고 파는 상인초년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상인만 1천여명이다.장보러 나온 시민으로 북적댄다.특히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당 감자·양배추 1천루블(약 1백70원),당근 3천루블,오렌지 1만루블,포도 1만1천루블,계란 10개에 5천루블 등이다.러시아인의 월평균 급여가 1백10만루블(약 19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싼 편이 아니다.엔지니어로서 출장가기 전에 늘 시장에 나와 물건을 대량 사간다는올레그 보그단씨(40)는 『92년 가격자유화 이후 물가가 너무 자주,많이 올라 시장보기가 겁난다』고 말한다. ○수송비가 석탄값 2배 시장 실내 야채코너에서 김치·당근 등 야채를 조리해 파는 김춘권씨(여·58)는 월수입에 대해 『그냥 조금 번다』면서 『이제는 열심히 일하는 만큼 잘 살 수 있다』고 말한다.8세때인 48년 함흥에서 하바로프스크로 이주해와 남편(65)및 아들가족과 함께 사는데 크게 여유는 없지만 어려움도 없다고 했다.한인들은 근면성이 높아 평균적으로 러시아인에 비해 못사는 사람이 적다는 말도 했다. 닭고기코너에서 일하는 라리사 콘트라체바양(21)은 ㎏당 1만1천루블씩에 팔고 총판매액의 1.5%를 수당으로 받는다.월평균 20만∼30만루블(약 4만3천원)선이다.『사회주의시절에는 이러지 않았다는데 지금은 먹고 살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야외에서 철물을 파는 미하일 시르만씨(61)는 캄차카의 선박수리공장에서 일하다 몇년전 퇴직했다.장사로 월평균 1백50만루블정도 벌고 연금 34만루블을 합하면 넉넉치는 못해도 그런대로 살 만하단다.그는 『전에는 하루 8시간만 일하면 됐지만 이제는 돈을 벌려면 더 일해야 한다』면서 『당장은 어렵지만 이 시기를 넘겨야 시장경제로 넘어갈 수 있다』고 낙관론을 폈다. 하바로프스크 인투리스트호텔 옥상 기관실에 근무하는 보리스 파우토프씨(54)는 24시간 철야근무하고 이틀씩 쉬는데 월 50만루블을 받아 방3개짜리 집세로 22만루블씩 내고 나면 먹고 살기가 빠듯해 주말농장에서 야채 등을 기른다면서 페레스트로이카 이전 시절이 그립다고 했다. 하바로프스크주 청사앞 중앙광장에서 한장에 8천루블씩 받고 사진을 찍어주는 40대남자는 회사에서 해고돼 작년가을부터 이 일을 하는데 월평균수입이 80만루블에 불과해 밑천이라도 있으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단다.이름은 밝히면 안좋을 것같다고 했다. ○북한,벌목사업소 진출 체제변화에 대해 이같이 찬반양론이 엇갈리기는 하지만 돌이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현지신문에는 컴퓨터전문가·법률가·은행가 등을 월급 1천3백50만루블(약 2백30만원)에 모신다는 구인광고가 게재된다.서민 생활수준과는 대조를 이룬다. 시장부근 상점진열대에 놓인 카메라렌즈 필터의 가격은 3천루블,그림엽서는 20장에 5백루블(약 85원)이다.컵라면 4천루블,이태리타월 1만루블과 어울리지 않는다.계획경제시절의 관성 때문에 공급은 쉽게 줄어들지 않는 반면 수요는 급속히 줄어들기 때문에 제값을 못받아도 계속 만들어낸다. 하바로프스크 동남쪽 아무르강가에 북한 벌목사업소가 있다는 현지안내인의 말을 듣고 따라 나섰다.최근 벌목공의 남한귀순이 늘어나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니 섣불리 접촉할 생각은 포기하는 게 좋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붉은 벽돌로 된 담장으로 둘러싸인 벌목사업소 겸 벌목공 숙소단지였다.「우리식대로 살아가자」는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벌목공 20여명이 작업을 나가기 위해 사업소 앞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으나 안내인은 괜히 봉변당하지 말라며 끝내 말렸다.하는 수 없이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빙빙 돌며 사진만 몇장 찍다가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이역만리 극동에서마저 분단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하바로프스크=김주혁·유재임 특파원〉
  • 북 식량난 심각 3∼4월이 고비/공외무 밝혀

    【파리=박정현특파원】 공로명외무장관은 8일 『북한의 식량난이 심해 오는 3∼4월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원조 외무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를 방문중인 공장관은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외무장관 및 아무르 무사 이집트외무장관과 잇따라 회담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고 배석했던 김명배아프리카·중동국장이 전했다. 공장관은 또 『북한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정세를 오판,강한 군사력으로 부분전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며 『따라서 한국은 국방에 신경을 쓰면서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스라엘핵 논의 촉구/애 외무장관

    【카이로 AFP AP 연합】 이집트는 26일 이스라엘의 핵무기문제를 대아랍 평화회담에서 논의할 것을 요구했다. 아무르 무사 이집트 외무장관은 이날 에우드 바라크 이스라엘 외무장관이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회담하고 돌아간뒤 기자들에게 『핵문제가 논의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협상할 수 없다』고 밝혔다.
  • 17일간의 종착역 블라디보스토크(시베리아 대탐방:40·끝)

    ◎극동 최대 군항 개방화로 산업도시화/경제력 앞세운 일기업 대거 상륙… “작은 일본”/엔화는 「제2화폐」… 한국 기업도 15개업체 진출 러시아에 사는 유대인은 주로 러시아제국이 동폴란드를 합병한 뒤 대거 이주해왔다.기록으로는 1897년 리투아니아,벨로루시,우크라이나 등 유럽쪽 러시아영토에 4백여만명의 유태인이 살았다고 한다.그러나 러시아인들 사이에 전통적으로 반유태 사상이 워낙 강해 이들은 모스크바등 대도시로는 거의 진출할 기회가 봉쇄돼 있었다. 이후 볼셰비키혁명에 유태인들이 적극 가담하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다소 호전됐다.트로츠키,스베르들로프,지노비예프,카메네프 등 쟁쟁한 유태인이 볼셰비키의 지도급 인사로 참여했다.그러던중 스탈린 시절인 1931년 도처에 흩어져살던 유태인을 위해 자치공화국을 세우기로 결정하고 하바로프스크주 남쪽 현재의 예브로이자치주에 비로비잔시를 건설했다.그리고 자치공화국이 선포됐지만 이 시베리아 오지로 이주를 원하는 유태인이 없었다.초기주민은 3만명 미만이었다.그나마 스탈린이 죽자 대부분 떠났고 이후 이스라엘,미국으로 이민이 허용된 뒤 이곳에 남은 유태인은 2천∼3천명을 헤아릴 정도가 됐다. ○유태인 비율 8% 불과 현재 전체주민에서 유태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7∼8%에 불과하고 주민 대다수는 러시아인이다.그런데도 공식이름은 여전히 「예브레이(유태인)자치주」이니 유태인 없는 유태인자치주가 된 것이다. 예브레이자치주로 들어서며 모스크바와의 시차는 7시간으로 벌어졌다.BAM으로 연결되는 지선이 지나는 이즈베스트코브이역을 지나자 곧바로 주도인 비로비잔에 도착했다.역이름을 러시아어와 유대어로 나란히 써붙여놓은 게 이채롭다.비로비잔은 비로강을 낀 항구도시로 18 97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로프스크까지 철도가 건설되자 시베리아화물을 이 철도로 연결하며 크게 성장했다.이후 1915년 아무르철도가 완공되고부터는 철도역 기능만 하고 있다. 하바로프스크시로 접근하며 아무르철교를 지난다.짙은 황토색의 강물은 폭이 한강의 10배는 족히 됨직한 규모이다.이렇게 강폭이 넓은 탓에 철교는 하나 있지만차가 다니는 교량은 아직 없어 페리로 실어날라야 한다.낮1시55분 하바로프스크역에 도착했다.역광장에는 하바로프스크를 세운 예로페이 파블로비치 하바로프장군의 동상이 세워져있고 여행중 처음으로 역사 전광판에 네온사인 광고가 등장했다.일본합작은행인 듯한 「하코뱅크(은행)」광고판이었다.드디어 일본영향권에 들어온 것이다.상점에는 한국의 음료수,초콜릿 등도 즐비하다. ○철로변엔 활엽수 장식 20분 정차한 뒤 남진을 계속하자 산천경계는 완전히 시베리아와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베료자,침엽수림은 사라지고 오직 활엽수만이 철로변을 장식한다.인구 60만명의 하바로프스크는 극동지방의 주도권을 놓고 연해주 주도인 블라디보스토크와 수십년간 경쟁관계를 유지해왔다.혁명직후 볼셰비키들은 오랜전통의 블라디보스토크보다는 하바로프스크를 더 좋아했다.그래서 이곳을 극동의 노보시비르스크로 만들려고 했다.1·2차 세계대전 중간시기에 블라디보스토크는 군항으로 발전됐고 반면 하바로프스크는 극동의 행정수도로 발전됐다.2차대전 뒤 블라디보스토크가 군사도시로 외부와 고립되자 하바로프스크는 극동 제1도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그러다 지난 92년 1월1일을 기해 블라디보스토크가 개방되면서 양자관계는 재역전됐다.하바로프스크에 있던 외국 상사,공관들 대부분이 블라디보스토크로 자리를 옮겨갔다. 모스크바를 출발한지 17일만에 마침내 종착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역에 도착했다.역사에 쓰인 모스크바로부터의 거리는 9천2백88㎞를 가리키고 있다.역사는 출발역인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블역과 똑 같은 양식으로 지어져있다.「의사 러시아식」으로 불리는 독특한 중세러시아 목조건축양식이다.블라디보스토크는 정복자 모라비요프 아무르스키의 이름을 딴 작은 반도 남단에 세워졌다.그곳의 작은 만을 끼고 양언덕에 도시가 건설됐다.수심이 깊고 파도가 직접 들이치지 않는 이 만 때문에 군항이 됐다. 지난 92년 1월1일 도시가 개방되던 날 취재왔을 때와 비교하니 불과 3년여만에 이렇게 많이 변할 수 있나 눈을 의심할 정도다.한마디로 「작은 일본」이라고 할 정도로 일본의 영향안에 들어 활기에넘친 개방도시가 됐다.이곳은 1919년부터 22년까지 일본이 미·영과 함께 점령했던 곳이다.일본은 이후 70여년만에 경제력을 앞세워 다시 이곳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거리를 다니는 차량은 모두 일제 중고차들이다.백화점의 물건도 일제 투성이고 엔화는 루블에 이은 제2의 화폐로 통용된다. ○한국산 식품류 등 많아 이 틈을 비집고 아이스크림,주스,양말,신발 등 한국산 식품류,생필품들이 진출해 있다.92년 한국총영사관이 문을 열었고 같은해 대한무역진흥공사도 이곳에 무역관을 열었다.현대·대우·고합 등을 비롯해 15개 업체가 현지사무소를 열고 있다.하바로프스크,나홋카 등 나머지 극동지역에 현지 지사나 사무실을 연 한국업체는 모두 30개사가 넘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기차로 꼬박 1주일이 걸리지만 비행기로는 불과 9시간이면 간다.하지만 긴 기차여행을 통해서 듣고보는 이점도 적지는 않다.기차가 가면서 주변의 모든 게 변했다.날씨,토양,사람,심지어 베료자나무의 굴곡까지 달라졌다.철도와 함께 러시아의 역사가 흘렀고 도시의 흥망이 달라졌다. 여행을 마치며 러시아와 관련된 정책을 짜거나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러시아를 상대로 일을 하노라면 짜증스런 일들이 많을 것이다.이곳 사람들이 합리적인 원칙을 갖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 사회주의 시절의 일처리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많다.이들로 인해 좌절감,실망감에 부딪칠 때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한번 타보라.다소는 위안을 받을 것이다.러시아가 얼마나 위대한 잠재력을 가진 나라인지 조금은 실감케 될 것이다. 모스크바행 아에로플로트기가 블라디보스토크 상공을 날아오르자 다시 북으로 끝 없이 이어진 검푸른 타이가 삼림이 눈아래 펼쳐진다.
  • 극동의 관문 하바로프스크(시베리아 대탐방:39)

    ◎승무원들,중간역 「반짝 시장」서 돈벌이/차창밖엔 입영행렬… 징집제도 우리와 비슷/아루르주 경계 지나니 어느덧 극동지역에 밤 12시20분,치타역에서 블라디보스토크행 열차를 탔다.노보시비르스크를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는 「로시아호 8번」 특급열차였다.출발지만 다를 뿐 모스크바발 「로시아 2호」와 「로시아 8호」는 같은 특급열차로 하루씩 번갈아 동시베리아를 지나간다. 역에서는 군사도시답게 입영하는 젊은이 수십명이 열지어 기차에 오르고 있다.러시아는 우리같이 의무병제도다.현재 복무기간은 18개월인데 옐친정부는 이를 2년으로 늘리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입대연령은 만 18세.15세가 되면 주거지에 신고를 하고 17세때 1차 신체검사를 받고 입대 직전 한번 더 신체검사를 받는다.징집면제제도도 있어 우리와 비슷한 면제대상기준이 마련돼 있다.부모 한쪽이 없거나 영세민,결혼해 자녀가 3명이상 혹은 어린 자녀가 있을 시,대학생 등은 입영이 면제된다. ○만 18세되면 군입대 간밤에는 계속 비가 내렸다.이튿날아침 7시30분.체르니세프스키역에 도착했다.어느덧 평원이 사라지고 조그만 언덕·강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동시베리아·극동지역의 전형적인 풍경인 「소프키」라고 부르는 낮은 산들이 나타나며 우리여행도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실감시켜주고 있다.차창밖 산천이 우리나라와 흡사한 모습을 띠기 시작했기 때문이다.기차는 북진을 계속,금광지대인 모고차를 지나 아무르주 경계를 향해 나간다.마침내 시베리아가 끝나고 극동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도중 실카강변에 있는 스레친스크시는 19 15년 시베리아철도의 아무르선이 완공되기 전까지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종착역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당시 모스크바에서 싣고 온 화물과 승객은 이곳에서 실카강의 증기선으로 갈아타고 아무르강을 따라 하바로프스크로 갔다.이후 아무르노선이 완공되며 중요성을 상실,지금은 인구 불과 1만명의 쇄락한 도시가 됐다.하지만 지금도 이 스레친스크에서 모고차까지의 치타 동북부지역일대는 유명한 금광지대이며 식품가공·가구 등 소규모 산업지대가 만들어져 있다. 모고차시는 아무르선 건설 때 만든 도시다.아무르철도는 이 부근에서 아무르강을 따라 거의 나란히 달려 하바로프스크까지 연결된다.한때 모고차시는 시베리아 「금광의 수도」로 불릴 정도로 금광이 많은 곳이다.모고차란 도시이름도 「황금의 바닥」이라는 뜻의 예벵키어다.하오6시20분 마침내 치타주의 마지막역인 말러 코발리역을 지났다.「작은 대장장이」란 뜻의 이름이다.이로써 시베리아와는 작별을 고했다. 북동진을 계속하던 열차는 아무르주의 스코보로디노에서 남쪽으로 급회전해 하바로프스크로 연결된다.특히 치타에서 모고차까지 구간은 지난해 마지막으로 전철화된 곳이다.대시베리아철도중 하바로프스크에서 우수리스크까지는 유일하게 전철화가 안된 곳으로 현재 공사가 진행중이다.우수리스크부터 블라디보스토크 구간은 최근 전철화가 끝났다.실개천·나무·작은 들판등 대자연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식당음식 점점 비싸 식당칸의 음식값은 모스크바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더 비싸지더니 아무르주로 들어서며 똑같은 메뉴가 다시 10%이상비싸졌다.민망한 듯 식당칸 주인은 『중간도시에서 음식재료를 계속 사야 하는데 재료값이 동으로 갈수록 더 비싸지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오지수당으로 임금이 높아지면서 물가도 따라 오른 것이다. 아무르주에 이르러 아무르강은 마침내 대하로 변하며 중·러국경을 이룬다.마찬가지로 하바로프스크부터 아래쪽 연해주 남쪽으로는 우수리강이 양국국경이다.아무르주의 첫번째 역은 예로페이 파블로비치.하바로프스크주를 정복해 건설한 예로페이 파블로비치 하바로프스크장군의 이름을 딴 마을이다. 아무르주의 스코보로디노역은 북쪽 BAM철도의 수도로 불리는 튄다역으로 연결되는 교차역이다.그리고 튄다를 통해 야쿠츠공화국의 금광중심지인 알단지구로 연결된다.이 아무르∼야쿠츠철도는 1925∼37년에 건설됐다. 승객서비스에는 관심도 없던 우리 객실의 승무원 부부는 스코보로디노역에 기차가 도착하자 「본업」인 자기영업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노보시비르스크에서 싣고온 콜라·맥주·치즈·버터 등 각종 물건 수십상자를 웃돈을받고 이곳 상인에게 넘기는 일이다.빈병도 모아 넘기는데 러시아인은 기차를 탔다 하면 내릴 때까지 보드카를 마셔대기 때문에 빈병수입 또한 만만치 않을 것같다. ○동해까지 2천8백㎞ 밤중에 지난 스바보드늬역은 1912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의 아들인 알렉세이왕자의 이름을 딴 알렉세예프스크이던 것을 혁명 뒤 「자유」라는 뜻의 스바보드늬로 바꾼 곳.제야강을 따라 남서쪽으로 블라고비센스크로 연결되며 한때 금광행정본부가 있던 곳이다.블라고비센스크는 아무르 제일의 도시로 중국과 국경인데다 항구도시란 이점으로 인해 활발한 국제무역도시가 됐다.겨울에 아무르강이 얼어붙으면 강을 걸어 양국 무역상이 오가는데 시베리아에서 제일 큰 중국시장이 성행하는 곳이기도 하다.아무르강은 제야강과 합쳐진 지점에서 동해까지 거리가 2천8백24㎞,그 이전의 상류까지 합하면 4천4백㎞를 흐르는 장강이다. 국민학생 수십명이 식당칸으로 우르르 몰려간다.여름방학을 맞아 부리야트·치타주에서 블라디보스토크해안의 사나토리(휴양소)로 가는 학생들인데 각학교에서 우수학생을 선발해 1개월동안 휴양소로 보낸다고 한다.인솔교사는 1개월 경비가 1인당 1백만루블인데 특별히 주정부와 후원하는 보험회사에서 반반씩 부담한다고 설명한다.소련시절에는 청소년동맹이다 해서 방학이면 무조건 국가경비로 단체여행을 보냈는데 이제는 돈 있는 집 자녀가 아니면 이런 장기여행은 꿈꾸기 힘들다. 아무르주를 지나 하바로프스 크라이(대주)로 진입하며 모스크바와의 시차는 1시간이 더 추가돼 7시간으로 벌어진다.곧바로 「유태인이 살지 않는」 유태인자치주 예브레이로 들어섰다.이곳 역시 웃지 못할 사연을 담고 있는 곳이다.
  • 러 아무르·연해주 북 콜레라 비상/북 벌목공 취업 임시중단

    【모스크바 연합】 북한의 콜레라환자 집단발병설과 관련,러시아 연해주주정부가 러·북한국경을 통제한데 이어 이웃 아무르주정부도 콜레라 유입을 막기 위해 북한 벌목공의 현지취업을 임시중단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이타르 타스통신이 하바로프스크발로 21일 보도했다. 이타르 타스통신은 주경계내에 있는 베르흐네 부레인스크지역의 북한벌목장에서 일한 벌목공의 취업을 당분간 허가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이와 함께 현지주민의 북한여행과 북한지역 여행객의 현지방문도 금지됐다고 전했다. 아무르주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북한지역에 콜레라가 창궐하고 있다는 소식에 따른 것으로 주정부당국은 콜레라 특별방역대책도 함께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 치타의 보따리 장사(시베리아 대탐방:38)

    ◎중·몽골·조선족 잡화상 몰려/1백만루블 주고 비자받아 대부분 불법체류/옷가지·그릇 취급… 루블화 하락에 본전 못건져 중국인 암시장 시베리아인은 중국인시장을 「암시장」이라고 부른다.활기찬 자본주의시장분위기에 대한 거부감을 은연중에 나타낸 호칭이라고 생각된다.울란우데 중심가에 있는 중국암시장은 3천평정도의 넓이에 수천명의 인파가 몰려 북적대는 명물이다.물건을 파는 사람은 대부분 동양족으로 중국·몽골인,그리고 간간이 연변의 조선족이 바로 그들이다.어린이 장남감·빗·주방용기·옷·운동화 등 온갖 것을 다 갖다 판다. 몽골인은 1985년부터,중국상인은 이곳에 개방바람이 한창이던 89년부터 드나들기 시작했다고 한다.용케 장사에 필요한 러시아말을 몇마디씩 배워 손님을 부르는데 러시아인에게는 그게 바로 큰 구경거리다.그런데 2년전부터 부리야트정부에서 이들의 입국조건을 강화시켜 비자발급을 제한하고 큰돈을 요구하는 등 갖은 제약을 가한다고 한다. ○85년이후 대거 몰려 이곳 시간으로 밤 9시20분 치타행 열차를 탔다.침대칸을 못구해 칸막이도 없는 객차에 80여명이 꽉 들어찬 3등열차를 탔다.통로의자도 펴서 침대로 쓰도록 해놓았기 때문에 사람이 지나다닐 때마다 몸을 빼 비켜주어야 했다.밤새도록 가래소리를 쿨룩거리는 노인,끊임없이 먹고 마셔대는 사람,라디오소리,서민특유의 부산함등 때문에 좀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장사하러 왔다는 20대후반의 연변여인을 기찻간에서 만났다.결혼하고 10일만에 남편과 함께 중국돈 3만원을 빌려 『목돈을 벌려고』 왔는데 남편은 한달도 못돼 이혼하고 돌아가버렸다고 한다.조선족은 주로 치타·이르쿠츠크·울란우데에 많이 모여 사는데 이 여인이 들려준 이들의 사는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우선 국경에서 보름짜리 입국비자를 얻는 데 1백만루블이 든다.그러니 한번 들어왔다 하면 모두 불법체류로 눌러앉는다.이걸 아는 러시아당국에게 이들은 「밥」이나 다름없다.수시로 돈을 뜯어가고 물건을 팔면 거기서도 20%는 꼬박꼬박 자릿세를 뜯긴다.더 큰 문제는 루블시세가 계속 떨어지는 것.힘들게 벌어놓으면 루블값이 떨어져본전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다.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숨겨갖고 가던 달러를 세관에서 몽땅 뺏기는 일도 허다하다고 한다. ○허름한 여인숙 생활 멀리 떨어져 살아도 동족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연변 보따리장수의 삶이 궁금해 치타에 도착한 뒤 그들이 산다는 변두리의 여인숙을 찾아가 보았다.가스타흐여관이라고 이름을 대니 택시운전사는 금방 그곳을 찾아냈다.워낙 중국상인이 많이 드나들고 험하기로 이름난 곳이기 때문이었다.5층짜리 공동주택인데 모두 일하러 나가고 몸이 아파 쉬는 중국인 부인네 몇명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녹물이 뚝뚝 떨어지는 공동취사장,방마다 발디딜 틈도 없이 꽉 들어찬 침대들… 하루 방값이 1만루블,우리 돈으로 2천원미만의 노무자숙소였다. 치타주에 들어서며 모스크바와의 시차는 6시간으로 늘어났다.치타역에 도착한 것은 상오8시15분.진눈깨비가 펄펄 내리고 있었고 모스크바와의 거리는 6천74㎞를 가리키고 있다.드디어 시베리아의 마지막 주에 도착한 것이다.동쪽의 아무르주부터는 극동에 속한다. 변경도시인 치타는흑해의 세바스토폴처럼 전형적인 군사도시다.「자바이칼군관구」사령부가 있고 국경수비사령부가 위치해 있다.마침 도착한 날이 국경수비군의 날이라 저녁 시내광장에서는 대중가수가 대거 참석한 가운데 요란한 위문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치타는 군사도시로서의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1653년 정복자 비케토프장군이 바이칼을 출발해 아무르쪽으로 향하던 정복길에 잉고다강변에 작은 겨울요새를 건설한 것이 이 도시의 출발점이다.그뒤 코사크군인들이 정착해 만주·중국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군사도시로 키워 1851년에는 자바이칼 코사크군사령부가 들어섰다.이 코사크사령부 건물은 지금 자바이칼 철도청사로 쓰이는데 건물측면 출입구 벽에 「작은 치타의 역사는 바로 전러시아의 역사」라는 전설적인 코사크사령관 크라포트킨장군의 말이 새겨져 있다. 1900년 시베리아횡단철도가 이곳을 통과했다.당시 시베리아철도의 종착역은 치타 동쪽의 스레친스크였다.그리고 1903∼1905년 치타와 스레친스크 중간에 있는 카림스코예역에서 남으로 지선을 건설,만주의 하얼빈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연결됐다.그뒤 스탈린때인 1937년 치타주가 정식으로 만들어지며 치타시는 그 행정수도가 됐다. ○북서 모란식당 경영 16세기까지 이곳은 만주땅이었다.국경을 맞닿은 때문인지 지금도 몽골과는 매우 밀접한 유대를 맺고 있는 것같았다.취재단이 머무르는 중에도 몽골문화의 날 행사가 한창이었다. 중앙광장에는 몽골풍물행사가 열리고 몽골의 추발산시 출신 화가들이 몽골스텝을 주제로 그린 유화전시회를 열고 있고 시립문화관에서는 몽골의 전통의상·보석·장신구 등을 전시해놓고 있다. 러시아에서 군사도시는 대개 높은 문화수준을 유지하는 게 이채롭다.제정러시아시절부터 상류층에 속하던 군인부인들이 높은 문화의 향유자였기 때문이다.이곳으로 유형온 12월당원 부인중에도 당대에 이름날린 여류문인이 많았다.군사도시답지 않게 도시 곳곳에 발레극장·도서관이 들어서 있다.특히 시베리아 최대의 군사박물관이 이곳에 있다. 도착한 이튿날에는 실내체육관에서 학생댄스경연대회가 열렸다.이 지역에 있는 6개 댄스학교 학생의 졸업경연대회였다.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 졸업반까지 모두 2백∼3백명이 화려한 무도복을 갖춰 입고 등에 번호판을 달고 저마다 춤솜씨를 뽐냈다.왈츠·마주르카 등 제정시절 유행하던 춤에서부터 최신 서양댄스까지 다양한 춤솜씨를 보여주었다.관람석에는 학부모가 꽉 들어차 도시잔치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1년의 절반이상이 혹한인 이 척박한 땅에서 함께 웃으며 춤도 추고 발레도 하며 문화생활을 영위해나가는 인간의 생명력에 야릇한 경외감을 느꼈다.저녁에는 북한에서 진출한 모란식당에서 모처럼 불고기와 냉면으로 포식했다.평양에서 왔다는 여지배인은 김일성배지를 단정히 달고 있었다.『장사가 잘되느냐』는 물음에 『평일에는 하루손님이 10명도 채 안된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뷔페」라고 부르는 간이식당이 더러 있지만 주민 38만명의 도시에 레스토랑은 이곳을 포함해 2곳밖에 없다.형편이 어려워 레스토랑은 생일잔치 등 큰 일 때나 한번씩 이용하는 곳으로 인식돼 있다고 한다.
  • 이라크·요르단/석유협정 체결

    【바그다드 AFP 연합】 이라크와 요르단은 11일 합작회사 설립과 송유관 건설이 포함된 석유사업계획에 관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고 이라크 관영 INA통신이 보도했다. 아무르 알 라시드 이라크 석유장관과 이 각서에 서명한 사미 알 다르와제 요르단 에너지장관은 INA통신과의 회견에서 『이 각서는 가까운 장래에 시행될 일련의 합작사업을 위한 시발점이며 현안의 가장 중요한 사업중에는 이라크산 석유를 요르단의 알 자르카 정유소로 보낼 송유관 부설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 자바이칼 지방(시베리아 대탐방:36)

    ◎손꼽히는 밀 주산지… 목축 성행/몽고계 울란우데역은 마치 한국의 시골역/주변 사람들 손짓·표정이 한민족과 똑같아 이르쿠츠크역을 출발한 기차는 곧장 일직선으로 남하한 뒤 바이칼호수 남단을 싸고 돌며 다시 북동진한다.출발 30분만에 유명한 알루미늄공장이 있는 샬리호프역을 지났다.이어서 기차는 이르쿠츠크라는 도시이름을 만들어준 이르쿠츠크강 뒤편의 산을 감싸고 돈다.이곳은 지진대라서 험한 단층 바윗돌로 이루어진 산들을 많이 지난다.리스트비양카에서 「바이칼 순환선」이 연결됐던 남쪽 슬루지양카도 「단층돌」이라는 뜻의 러시아어 「슬루다」에서 따온 이름이다.슬루지양카는 1904∼1905년 바이칼 순환선이 건설되며 역으로 출발된 뒤 계속 발전,1936년 정식으로 도시가 됐다. ○두개의 철로 합쳐져 1시간이 지나자 왼편 차창 아래편으로 바이칼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며 숨바꼭질을 시작한다.가랑비가 흩뿌려 시야가 좋지 않은 게 흠이다.산 정상에 있는 파스역을 지나며 모스크바를 출발한지 보름여만에 처음으로 터널을 지나갔다.바이칼호수의 주항구도시인 쿨툭에서 두번째 터널을 지난 뒤 얼마 안있어 슬루지양카역에 도착한다.이곳에서 바이칼순환선과 대시베리아철도는 만나 하나로 합쳐진다.산을 넘는 동안 열차 앞뒤로 각각 2대씩 전동차가 붙어 끌어주고 밀어주는 게 재미있다. 1949년 이르쿠츠크∼슬루지양카간 단축노선이 완공되며 바이칼순환선 시대는 막을 내렸다.이 단축노선을 건설한 이유는 여러가지 경제적인 이점도 있었겠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그 직전에 이르쿠츠크∼리스트비양카를 연결하는 노선이 이르쿠츠크 수력발전소 건설로 모두 물에 잠겨버렸기 때문이다. 슬루지양카에서 조금 더 달리면 바로 바이칼호수의 오염주범으로 지목받는 셀룰로오스 콤비나트(공장)가 있는 바이칼스크역이 나온다.1961년 이 공장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이주해와 1966년 정식 도시가 된 곳이다.모스크바 시간으로 낮 12시30분 바이칼스크역으로 진입하면서 셀룰로오스 콤비나트의 거대한 굴뚝들이 검은 연기를 내뿜는 게 보인다. ○호수엔 낚시꾼 몰려 드디어 본격적인 바이칼 순환관광이 시작됐다.북동진을 시작하며 왼편차창으로 수평선이 마치 동해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졌다.열차는 때로 호수쪽으로 7∼8m씩 바짝 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기막힌 경관을 눈앞에 펼쳐준다.호수는 때로 10여m 높이의 파도가 치기도 한다.그래서 철길을 보호하기 위해 호수가에 방파제를 쌓은 것이 곳곳에 보인다.북동진하는 5여시간 동안 줄곧 바이칼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로 변해 있다.곳곳에서 강태공들이 낚싯대를 호수에 드리우고 있다. 수네지나야강을 지나며 기차는 이르쿠츠크와 부랴트공화국 경계를 넘는다.호수 동안을 따라 올라가던 열차는 마침내 오바르트역을 지나며 바이칼과 작별을 고하고 본격 동진을 시작한다.「오바르트」는 「방향을 돌린다」는 뜻.이후 셀렝긴스크역에 도착하기까지의 지역은 셀렝가강이 호수로 흘러들면서 형성된 거대한 삼각주다. 옆칸의 젊은 여자승객이 복도바닥에 있는 네모난 뚜껑을 좀 열어달라고 부탁한다.왜 그러는지 몰라 의아해하면서 손잡이를 잡아당겨 열었더니 놀랍게도 그 밑에 작은 칸막이 방이 만들어져있고 우유·소시지 등 먹을 것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승객들을 위한 음식물 보관소였는데 겨울철에는 자연냉장고가 되는 곳이었다.척박한 자연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귀중한 지혜인 것이다. 열차안에서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자바이칼 코사크 병사 한명과 어렵게 몇마디 말을 나누었다.얼마나 무뚝뚝한지 말을 붙이기까지 여간 힘든 사람이 아니었다.「자바이칼」이란 말은 바이칼 뒤쪽이란 뜻.행정단위는 아니지만 예부터 지리·역사적 단위로 불려온 이름이다.현재 부랴트공화국과 치타공화국이 이 자바이칼에 해당된다.자바이칼은 일명 「다우리아」라고도 하는데 이는 자바이칼 지방의 특유한 스텝을 일컫는 말.좋은 스텝 덕분에 이 지역은 러시아전역에서 손꼽히는 밀 주산지가 됐다. 기차칸에서 만난 이 코사크병사로부터 그들의 생활에 대해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코사크는 몇가지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군복바지옆에 단 줄의 색깔로 소속을 구분한다.예를 들어 자바이칼 코사크는 노란색 줄,이르쿠츠크 코사크는 붉은색,돈 코사크는 청색줄,카자흐스탄·우랄의 코사크는 녹색 띠를 달고 다닌다. ○유목전통 아직 남아 이들은 현재 연방의 행정·군대조직과 완전 별개인데 그러면서도 철저한 자체규율·조직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각 지역에는 아타만이라고 부르는 사령관이 있고 그 밑에 각급 지역별로 지휘관이 세분돼 있다.지금은 국경수비 등 옛날의 임무가 없어졌기 때문에 생계수단을 마련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그래서 철도 보안요원이나 관공서 경비업무 등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우리 일행이 탄 울란우데행 기차의 종착지인 블라고비센스크는 바로 아무르 코사크의 수도로 과거 자바이칼 코사크의 총본부가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1920년부터 1922년 사이에 잠시 존재했던 극동공화국의 수도였던 곳이기도 하다. 모스크바시간으로 하오 4시20분 드디어 울란우데역에 도착했다.마치 영천이나 진주역 같은 우리나라 시골역에 온 기분이다.우리와 똑같이 생긴 시골사람들이 플랫폼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이 너무 낯익은 정경들이다.말이야 다르지만 이야기 도중 하는 손짓·표정·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자태들이 영락없는 우리 민족의 동류들이다.부랴트는 몽골족의 일파이니 「동족」임이 분명하다. 부랴트인들은 이 부랴트공화국 외에도 바이칼 서쪽의 이르쿠츠크주 안에 자치구가 있고 동쪽으로 치타주 안에도 자치구가 있다.바이칼을 기준으로 동서로 갈라진 부랴트인들 사이의 생활·풍습은 서로 확연히 다르다.바이칼 서쪽 부랴트는 거의 러시아화된데 반해 이 동쪽 부랴트는 아직 자기들의 생활관습을 유지하고 있다.서쪽 사람들은 러시아의 영향이 컸고 동쪽 사람들은 몽골의 영향권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쪽 부랴트에는 볼거리가 참 많다.지방으로 가면 아직도 평원에서 말 달리는 사람들이 있고 활쏘기 경연대회도 벌어진다.몽골의 유목전통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 유형의 수도 이르쿠츠크(시베리아 대탐방:34)

    ◎왕정반란 「12월 당원」들의 마지막 안식처/유형 온 주모자가 살았던 주택을 박물관으로/앙카라 강변엔 17세기 「시베리아 정복탑」 우뚝 이르쿠츠크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명물은 앙가라강변에 세워진 시베리아 정복탑이다.총독청사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오벨리스크다.동진하던 러시아 정복자들은 17세기말 이곳에 이르러 가쁜 숨을 내쉬고는 잠시 정복의 발길을 멈추었다.그리고는 이곳에 높이 10여m의 대형 정복탑을 세워 그동안의 공적을 자축했다.정복의 상징인 대형 쌍독수리 문양 아래 모라비요프·아무르스키·스페란스키 등 정복자들의 이름이 쓰여져있고 「시베리아 정복자들에게 영광있기를」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철도 개통… 도시 부흥 이르쿠츠크는 1686년 정식 도시가 된 뒤 성장을 거듭,1764년에는 이르쿠츠크 구베르니(주)의 수도가 됐다.그러나 도시발전의 진짜 전기는 1898년 시베리아철도가 이곳을 통과하면서 찾아왔다.따라서 3년 뒤면 동시베리아 철도가 개통된지 1백주년이 된다.당시 이곳은 주도 였기 때문에 동시베리아의 철도업무를 이곳에서 관장했다.관공서 거리였던 칼 마르크스거리에는 당시 이르쿠츠크·부리야티·치타주의 철도를 총괄하는 동시베리아 철도청이 있었다.4층짜리 대형 대리석건물인데 혁명 전 세워진 건물원형에다 혁명 뒤 소비에트식 건물장식을 곳곳에 덧붙이고 역시 혁명성이 강한 대리석 조각까지 건물상단 곳곳에 만들어 붙여서 연대불명의 이상한 건물이 돼버렸다.시베리아 곳곳에 이런 식으로 옛건물에 사회주의 장식을 덧붙여 건물의 원형을 훼손시킨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르쿠츠크는 혁명 전 러시아 유형의 수도였다.특히 1825년 왕정에 반대기치를 내걸고 반란을 일으켰던 「데카브리스트」(12월당원) 주모자들 대다수가 이곳으로 유형 와 생을 마쳤다.사회주의 시절 볼셰비키들은 이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을 혁명의 시작이라고 추앙했다.그래서 이곳은 혁명의 성지 같은 곳이 됐다.당시 데카브리스트들이 유형 와 거처했던 집을 개조해 박물관으로 만들고 성역화해 놓은 이들의 무덤이 곳곳에 있다. ○교회에 구경꾼들 몰려 제르진스키거리에있는 「돔 무제 데카브리스트」는 1826년부터 30여년간 12월당 혁명주모자들 수명이 유형생활을 했던 집을 박물관으로 꾸민 대표적인 명소다.12월당 혁명은 1825년 알렉산더 1세가 후사 없이 죽고 그의 동생인 니콜라이 1세가 뒤를 이어 즉위할 즈음에 일어났다.당시 군대내에 왕정폐지를 주장하던 비밀결사조직인 12월당원 5백여명이 「새 차르즉위 반대,공화정 수립 지지」를 내걸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나드광장에서 무력저항을 시작한 것이다.25년 12월14일 하오3시 직후였다.물론 이 저항은 왕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분쇄됐고 이후 주모자 5명은 처형되고 나머지 주모자급 1백28명이 모두 시베리아로 유형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이들은 중죄인으로 유형지에서도 모두 죽을 때까지 카타르가(쇠족쇄)를 차고 살아야했다.박물관 자료에는 당시 12월당원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한 「북 소사이어티」와 키예프를 중심으로 한 「남 소사이어티」등으로 나뉘어 이미 광범위한 비밀세력을 형성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데카브리스트들의 박물관,그들의 무덤이 있는 교회입구에는 반드시 늘어서서 여행객들을 맞는 불청객들이 있다.바로 구걸꾼들.입구의 좌우로 10여명씩 늘어서서 연신 성호를 그으면서 자비를 구하는 데 도저히 그냥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이들을 위해 잔돈을 준비하는 것도 신경써야 할 일이다. 이르쿠츠크는 폴란드인들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도시다.제정 러시아시절부터 러시아에 이주해온 폴란드인의 정신적 수도 같은 곳이고 폴란드인들의 대성당이 이곳에 있다.시베리아 폴란드인들도 유형 와 정착한 사람들이다.나폴레옹시대가 지난 1861년 당시 바르샤바가 있는 동폴란드는 러시아영토였다.1861년부터 63년까지 폴란드인들은 거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그러나 이 독립운동은 실패로 끝났고 1만여명이 시베리아로 유형을 왔다.이들의 주유형지가 바로 이르쿠츠크였고 그들의 친척·후손들이 지금도 이 일대에 모여살게 된 것이다. 주청사 바로옆 「폴란드혁명거리」에 위치한 폴란드성당인 「성모 무염시태(무염시태)성당」도 1884년 이들이 세운 것이다.소련시절 교회가 폐쇄된 채 국유화돼 시립 파이프오르간 연주장 등으로 쓰이다 지난해말 건물 일부가 폴란드신도들에게 되돌려졌다.폴란드에서 파견돼온 베르다벳다라는 젊은 수녀는 현재 이르쿠츠크 오블라스치(주)에 약 3천여명의 폴란드인이 사는 데 매주 3백여명의 신자들이 참석해 미사를 올린다고 했다.이곳 뿐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크라스노야르스크·옴스크 등 시베리아 여러 곳에 폴란드성당이 있는 데 하나 같이 교회건물 반환문제를 놓고 러시아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다. ○폴란드 혁명거리로 모스크바에도 많은 폴란드인이 살고 폴란드 성당이 2곳 있는 데 이들은 시베리아 폴란드인들과는 또 다른 이주배경을 갖고 있다.우크라이나·벨로루시 등 서부러시아는 과거 폴란드의 지배를 받았다.당시 그곳에 살던 폴란드인 다수가 모스크바로 옮겨가 살았다.특히 폴란드인들은 교육열이 높아 모스크바의 각종 대학·인스티튜트(단과대학)등에서 공부했다.소련시절에는 모스크바 거주 폴란드인수가 10만명을 넘었다.모스크바의 가톨릭교회도 소련시절 국유화됐는 데 최근 반환을 요구하는 폴란드인들과 시정부가 맞붙어 유혈충돌까지 벌어졌다.모스크바 폴란드성당건물은 외양만 교회이지 시정부에서 건설회사 사무실로 사용해 내부는 완전히 일반 사무실처럼 바뀌어 있다.러시아전역이 마찬가지지만 국유화된 교회는 이렇게 사무실로,창고로,때로는 감옥으로도 바뀌어 철저히 파괴됐다.모스크바의 폴란드성당은 몇개월 전 건물일부가 반환돼 폴란드인들과 모스크바에 주재하는 외국인 가톨릭신자들이 그곳에서 미사를 본다. 이르쿠츠크의 폴란드성당 멀지 않은 곳에는 주청사건물을 비롯한 정부청사들이 들어서있다.시베리아의 각 도시들이 마찬가지지만 주도에는 주청사·지방의회·지방선거위원회 등과 함께 연방대통령 대리인의 집무실이 나란히 들어서 있는 게 흥미롭다.93년말 새헌법 채택으로 지방정부의 자치권을 대폭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자신의 심복들로 임명하는 지방관을 보내 주정부의 일을 감독·감시토록 하는 것이다.그래서 주민이 선거로 뽑은 주지사·시장과 이 대통령 대리인 사이에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 BAM 철도(시베리아 대탐방:33)

    ◎지도에 없던 「극비 철도」… 스탈린이 계획/타이셰트∼콤소몰스크나아무르 총 3,200㎞/일제위협 대비 41년 착공… 84년 전구간 개통 이르쿠츠크에서 북으로 우스치림스크댐까지 거대한 인공호수가 돼있다가 이후부터 실제로 강의 모습으로 흐르기 시작하는 앙가라는 북으로 주경계를 넘어 크라스노야르스크주로 들어가 서쪽으로 가서 에니에시강과 합쳐진 다음 북극해로 들어간다.크라스노야르스크주의 보쿠차느이시가 있는 지점의 앙가라강에는 지금 제4의 댐건설이 한창 진행중이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는 시베리아여행중 제일 친절한 승무원을 만나서 비교적 유쾌한 여행을 즐겼다.모스크바교외에 산다는 이 젊은 여승무원은 한번 기차를 타면 2명이 1조가 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왕복 15일 밤낮을 쉬지 않고 교대로 일한다고 했다.그 다음 2주일을 쉬고 다시 2주일 동안 기차를 타는 것이다.보통 체력과 인내심이 없이는 지탱하기 힘든 직업임에 틀림없다.왜 많은 승무원들이 하나같이 불친절하고 신경질적이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했다. ○바이칼호 북단을 지나 이르쿠츠크주 초입에 있는 타이쉐트는 20세기 최대의 대공사로 러시아인들이 자랑하는 BAM(바이칼∼아무르철도)철도의 시발점이다.이곳에서 시작된 BAM철도는 동쪽으로 거의 직선거리로 진행해서 바이칼호수 북단 위쪽을 지나 종착역인 하바로프스크주의 콤소몰스크나아무르시까지 이어진다.총길이 3천2백㎞에 달하는 구간이다.이곳에서 지선으로 남쪽의 하바로프스크를 통해 다시 대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 철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건설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30년대 중반 스탈린이었다.가장 큰 이유는 바이칼호수 남단을 우회하는 대시베리아철도가 당시 일본의 점령하에 있던 만주국경과 너무 가까워 안보면에서 문제가 크다는 것이었다.이후 계획을 완성해 착공한 것은 41년이었다.바이칼호 북쪽은 바위·험로가 첩첩한 난공사구간이다.당초 대시베리아철도가 호수남단을 우회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첫번째 구간으로 아무르주의 스코보르디노∼튄다 사이의 공사가 시작됐다.일차적인 목적은 남쪽의 기존 시베리아횡단철도역인 스코보로딘을 통해 치타주로부터 공사장비·인력 등을 실어나르기 위해서였다. 이 구간은 2차대전 발발 직전인 41년 완성됐으나 이후 전쟁으로 모든 작업이 중단됐다.모든 물자·인원을 모두 서쪽 전선으로 보냈기 때문이다.종전 직전인 45년 공사가 재개돼 콤소몰스크나아무르에서 태평양연안의 군항인 소베츠카야 가반항까지 구간이 착공됐다.블라디보스토크가 일본군에 의해 점령될 경우에 대비해 태평양함대를 이곳으로 옮길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태평양함대 이동 목적 그 다음부터 본격적인 구간공사가 시작됐다.46년이전에 타이쉐트∼브라츠크구간은 완공돼있었다.브라츠크의 목재·메탈·철 등을 서쪽으로 실어나르기 위해서였다.따라서 BAM공사의 실제 시발점은 브라츠크인 셈이다.46년부터 이후 51년까지 브라츠크에서 동쪽으로 계속 공사가 진행됐다.브라츠크에서 강항인 우스트구트까지 구간이 완공됨으로써 BAM철도는 레나강과 연결되게 됐다.레나강을 통해 실어온 주변의 목재들은 우스트구트에서 철도로 실어 러시아 각지로 운반해 나갔다. 이후 브레즈네프시절인 77년 콤소몰스크나아무르에서 튄다까지 구간이 완공돼 BAM의 동쪽구간이 완성됐다.당시 중소관계가 악화돼자 중국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안전철도 건설의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판단,공사에 박차를 가한 때문이다.BAM은 일명 「젊은 영웅들의 철도」라고 불린다.기차에서 만난 튜멘주의 건설노동자같이 젊은 콤소몰 청년들이 대거 건설현장으로 동원됐기 때문이다. 지난 84년 처음으로 동서 전구간이 연결돼 기차가 운행했다.그러나 토넬느이에 있는 터널 1곳은 아직 미완성인 채 우회로를 통해 기차가 다니고 있다.현재 미완성 구간은 토넬느이∼탁시모간 15㎞이다. 스탈린시절 BAM철도 건설은 1급비밀로 속해 지도상에 나타나지 않았다.물론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수용소 죄수들이 동원됐다.이 철도가 지도상에 처음 나타난 것은 55년이었다고 한다.브라츠크발전소 건설을 발표하면서 이곳에 철로가 있으며 이 철로를 이용해 발전소를 건설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복선·전철화작업 진행 현재 BAM은 전구간 복선·전철화 작업이 진행중이다.그러나 아직은 경제적으로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철도란 건설 뒤 10∼15년 지난 뒤부터 철도주변에 개발효과가 가시화되는 게 보통이기 때문에 조만간 이 지역에도 경제개발붐이 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덕분에 일찍이 외국인에 개방된 곳이다.바이칼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는 이미 1930년대부터 시작됐다.따라서 우리가 묵은 인투리스트호텔은 입구에서부터 서구화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새벽에 체크인하는데도 교대근무자들이 친절히 맞아주었고 엘리베이터는 금성사제품,객실 세면대에는 한국산 비누·치약·샴푸 등이 깨끗이 준비돼 있는 등 여행중 최고로 쾌적한 인상을 주었다.객실의 냉장고도 다른 지방의 호텔에서 같이 「탱크 굴러가는 듯한」요란한 소음을 내는 러시아제 대신 말끔한 한국산 냉장고가 갖추어져 있다.우리나라 관광객들도 많이 들르는듯 한식당·일식당도 있고 호텔 로비 곳곳에 한국어 안내판이 나붙어 있다. 현재 인구 60만명의 이르쿠츠크시는 1661년남쪽의 몽골·중국으로부터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로 출발했다. 이후 1686년 군사요새로서의 제한된 역할을 마감하고 정식도시로 재출발했으며 1698년 중국과의 교역이 시작되면서 이르쿠츠크는 매우 중요한 교역중심지로 부상했다.도시가 커지면서 17 64년에는 당시 이르쿠츠크 구베르니(주)의 수도가 됐고 총독의 집무처가 들어섰다.그래서 이곳에는 「벨르이 돔(백악관)」으로 불리는 순백의 당시 아름다운 총독관저가 지어져 지금 빼놓을 수없는 관광명소가 돼있다.가가린프로스펙트에 있는 이 건물은 현재 이르쿠츠크 시립도서관이 입주해 있는데 유명한 이탈리아 건축가 크바렝키가 설계한 작품이다.
  • 무바라크 애 대통령 암살 모면/괴한 6명에 피격… 무사

    ◎에티오피아 방문 취소 귀국… 범인 셋 사살 【아디스아바바·카이로 로이터 AFP 연합 특약】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26일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6명의 괴한들로부터 총격을 받았으나 부상없이 암살위기를 모면한채 급거 귀국했다고 이집트 국영 TV가 밝혔다. 괴한들은 지프차로 무바라크 대통령 일행의 자동차행렬을 세운 뒤 되돌아가려는 차량을 향해 총을 발사했고 경호원들이 이에 응사하면서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으며 현장에는 유혈이 낭자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아프리카단결기구(OAU)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한 무바라크 대통령은 승용차를 타고 공항에서 회담장으로 가던 중 시내 팔레스타인 외교대표부 앞에서 6명의 괴한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현지 관리들과 목격자들이 전했다. 현지의 한 보안관리는 괴한 6명중 『이집트 경호원이 괴한 2명을,에티오피아 경호원이 1명을 살해했다』면서 다른 피해자는 없다고 전했다. 한편 무바라크 대통령은 아무르 무사 외무장관에게 회담 참석을 지시한뒤 곧바로 1㎞가량 떨어진 공항으로 되돌아가 이집트로 귀국했고 제나위 에티오피아 대통령은 공항에서 무바라크를 환송하며 심심한 유감의 뜻을 밝혔다.
  • 아무르강 다리 건설 합의/러­중,월내 서명

    【북경 AFP 연합】 중국의 이붕 총리는 다음주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무르강에 다리를 놓는 합의문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러시아 소식통들이 23일 밝혔다. 이붕 총리는 3일간의 일정으로 25일 러시아를 방문할 예정인데 이 기간에 다리문제를 비롯해 교육,환경,범죄와의 공동대응 등에 합의할 방침이다. 아무르강 다리는 양국의 국경도시인 중국 흑강성의 흑하와 러시아 극동의 블라고베쉔스크를 연결한다.
  • 제2부 시베리아 횡단철도/“출발” 모스크바(시베리아 대탐방:16)

    ◎총길이 9,288㎞… 러시아의 대동맥/시경계 벗어나면 별장 「다차촌」이 눈앞에/출발 1시간만에 차창밖은 침엽수림으로/철길따라 늘어선 「베료자」 숲은 “러시아인의 정서” 서울신문 창간50주년기념 특별기획연재물 「시베리아 대탐방」은 지난 주 15회로 1부를 끝내고 이번 주 16회부터 제2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시작한다. 본사 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과 사진부 송기석 특파원이 20여일동안 이 열차를 탑승,철도주변의 모습과 자원,자연환경 등을 컬러사진과 함께 재미있고 생생하게 전할 예정이다. 시베리아 대탐방 제2부는 주2회 수요일과 목요일에 연재한다. 하오 2시 정각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기점인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블역을 출발했다.출발한지 불과 35분만에 북부시경계를 벗어나 모스크바주(오블라스치)로 들어서자 곧바로 확트인 대지가 차창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그리고 대지와 숲 사이로 러시아인들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재산목록 1호 「다차」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다차는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별장」이지만 호사스런 별장이 아니라 그곳에서 남새도 키우고 신선한 공기속에 이웃들과 보드카도 실컷 마시는 주말농장같은 곳이다. 다차의 어원은 러시아어 「다바치(받다)」에서 유래된 것.제정 러시아시절 황제 차르가 총애하는 귀족들에게 땅떼기를 선사한데서 나온 말이지만 소비에트시절 일반노동자들에게 골고루 보급돼 지금은 모스크바시민 70∼80%가 다차의 주인이다.5월부터 겨울이 시작되는 9월까지 매주 금요일 하오만 되면 다차로 향하는 시민들로 모스크바시의 외곽도로는 지독한 교통체증을 빚을 정도다.물론 주말이면 모스크바 시내는 완전히 빈도시가 되다시피 한다. 다차 마당에 나와 감자를 심는 사람들의 모습이 간간이 보인다.러시아인들은 봄 5월15일을 기준으로 감자씨를 뿌리기 시작한다.특별한 이름이 붙은 절기는 아니지만 이날이 지나면 혹독한 추위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는 속설 때문이다. 다차촌이 시작되며 러시아인들의 정서적인 심벌,「베료자」나무들이 나타난다.목재로 쓸 수 있는 나무는 아니지만 시베리아끝까지 줄곧 길동무가 될 나무들이다.우리의 백양목과 비슷한데 우랄에서 동시베리아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고 겨울이 물러가면서 연푸른 잎을 달기 시작하기 때문에 우리의 시베리아 횡단길에 계절의 경계를 알려주는 「잎의 화신」역할을 하게된다.우리에게는 베료스카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이는 베료자에 예쁘고 귀여움을 나타내는 접미사 「카」가 덧붙은 말이다. 다차촌은 모스크바 시경계를 중심으로 반경 2백50㎞까지 계속된다.그리고는 황량한 대지와 베료자숲이 계속되다가 다음 도시의 다차촌이 또 나타난다.대도시 주위에는 반드시 다차촌이 형성돼있다. 출발 한시간이 지나자 푸슈킨의 이름을 딴 푸슈키노역이 지나고 역한편에 증기기관차 시절의 유물인 사일로같이 생긴 물탱크가 지나간다.높이 20여m에 붉은벽돌과 나무로 만들어 지나는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시설이다. 시베리아철도는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하바로프스크∼블라디보스토크간을 제외 하고는 전구간이 전철화됐다.따라서 물태크는 이제 역할이 없어진 철도의 장식품에불과하다. 우리가 탄 차는 종착역이 블라디보스토크인 「러시아2호」특급열차.방 하나에 침대 2개가 마련돼 있어 객차 한칸에 승객수는 20명안팎에 불과한 최고급 이다.격일로 홀수날만 모스크바를 출발하는데 종착역까지 계속 갈 경우 6박7일이 걸리기 때문에 좋은 이웃을 만나는게 보통 복이 아니다. 모스크바에서 야로슬라블까지를 시베리아철도의 제1구간으로 부르는데 이는 건설기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 구간은 두단계로 나누어지는데 첫째 구간은 모스크바에서 세르기예프 파사드까지로 1862년에 건설됐다.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로 뻗는 최초의 철도인 것이다.이 선은 1870년에 2단계로 야로슬라블까지 연장됐다.세르기예프 파사드는 당시 러시아제국의 종교적인 수도였다.지난 91년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 볼셰비키의 이름을 딴 자고르스크로 불렸으며 모스크바에 들르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명승지다.그 다음 야로슬라블은 종교적인 의미 외에도 모스크바에 있는 공장들을 볼가강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산업적인 고려 때문에 건설됐다.이구간이 개통됨으로써 모스크바에서 생산된 각종 공산품들은 당시 가장 가까운 볼가강 항구인 이 야로슬라블을 통해 카스트로마·니즈니노보고르드·체복사리·카잔등 볼가강변의 크고 작은 도시들로 공급될 수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시베리아행 열차의 종착역은 야로슬라블이었는데 이 때문에 모스크바의 시베리아철도 출발역 이름은 야로슬라블역이다.모스크바의 역 이름은 모두 행선지 이름을 따서 만든게 재미있다.예를들어 레닌그라드로 향하는 열차가 출발하는 역은 레닌그라드역이다.키예프로 가는 열차는 키예프역,백러시아로 가는 열차는 백러시아역…하는 식이다. 출발 1시간이 지나면서 차창의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한다.침엽수림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침엽수·활엽수의 혼재상태가 이어진다.벌써 타이가(삼림지대)의 분위기가 나타나는 것이다.모스크바에서 멀어질수록,그리고 타이가에 가까워질 수록 침엽수의 몫이 더 많아진다. 계속되던 다차촌은 세르기예프 파사드를 기점으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20년대 최대 출판단지(콤비나트)였던 프라우다신문이 종업원들을 위해 만든 다차촌 「프라브딘스키」역을 지나면서 다시 막막한 베료자숲이 대지를 수놓기 시작했다. ◎횡단철도란/수도 모스크바서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연결/1891년 첫삽,25년만에 완공… 6박7일 걸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시베리아대지를 가로질러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총길이 9천2백88㎞에 달하는 세계 최장의 철로이다.특급열차로 달릴 경우 꼬박 6박7일이 걸리는 거리다.지구둘레의 3분의 1에 가까운 거리며 시간이 바뀌는 시간대만도 7개나 지난다.일명 「대시베리아철도」로도 불리는 이 철도는 제정러시아 때인 1891년5월19일 착공돼 25년만인 1916년 쿠즈네츠∼하바로프스크 구간을 끝으로 완공됐다.물론 많은 구간은 기존 노선을 보완해 연결했다.이 철도의 등장과 함께 지구의 최대 자원보고인 시베리아도 본격개발의 계기를 맞았다.인구유입이 촉진돼 철로변을 중심으로 잇따라 대도시가 등장했고 대학·도서관·극장등이 들어서 문화적 대변혁을 가져왔다. 특히 2차세계대전중 모스크바·레닌그라드등 유럽쪽에 있던 많은 공장·문화기관들이 이 철도를 따라 대거 시베리아로 옮겨져 이 지역의 현대화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지금은 최대 공업지대인 우랄지구·쿠즈네츠탄전·북부의 석유·가스산지를 유럽쪽으로 연결해 주는 러시아의 산업 대동맥 구실을 하고있다. 2차대전 종전 직후부터 전노선의 전철화가 시작돼 75년 거의 마무리됐으며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하바로프스크∼블라디보스토크구간을 제외한 전구간이 전철화됐다.현재 대시베리아철도는 연방철도부 산하에 반독립기구로 우랄철도부·옴스크철도부·사할린철도부 등 약 20개의 지방 철도부가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앞으로 전구간 복선화·전철화,그리고 바이칼∼아무르구간(BAM철도)완공과 함께 만성 적자를 탈피하기 위한 서비스 개선,경영합리화 등이 과제로 남아 있다. 현재 유럽으로 가는 우리나라 화물의 일부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 철도를 이용해 육로로 값싸고 빠르게 운송되고 있다.앞으로 남북관계가 원만히 풀리면 직접 육로로 유럽까지 연결해줄 철도가 바로 시베리아 철도라 이 철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더 하다.
  • 서엔 석유·동엔 목재 무진장(시베리아 대탐방:7)

    ◎「시베리아의 지리적특색」프리발료프스카야 교수에 듣는다/“지방 영향력 점차 커져 중앙 통제력 약화/대러시아 경협은 지방정부와 손 잡아야” 시베리아는 흔히 「세계최대의 대륙」「인류의 마지막 남은 자원의 보고」라고 일컫는 경이의 땅이다.세계지도를 펴놓고 보면 중국대륙 이북에서 시작해 북극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 모두 시베리아땅이다.그러면 정확하게 시베리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일컫는가.러시아의 시베리아전문가가 말하는 시베리아 땅은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4개권역을 분류 『러시아인들중에서도 우랄산맥 동쪽에서 베링해에 이르는 땅이 모두 시베리아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요.하지만 이 넓은 땅은 우랄,서시베리아,동시베리아,그리고 극동지역으로 크게 4분됩니다.이 구분은 역사·문화적인 기원을 갖지만 그뒤 만들어진 행정·경제적인 구획과도 일치하기 때문에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생 시베리아만을 연구해온 러시아 아카데미산하 지리연구소의 헨리예타 프리발료프스카야 교수(여·65)는우선 시베리아의 정의부터 설명했다. 먼저 우랄산맥을 중심으로 조성된 우랄지구는 러시아내에서 가장 발전된 공업지대이다.페름지구(오블라스티),스베르들로프스크지구,우드무르트공화국,바시키르스토스탄공화국(발음하기가 어려운 탓인지 옐친대통령도 텔레비전에 나와서 항상 틀리게 말하는 지명),첼리아빈스크공,오렌부르크지구,쿠르간이 행정구역상 우랄에 속한다.이중 스베르들로프스크가 가장 공업화된 곳이고 쿠르간지구가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물론 행정단위와 지리적 구분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예를 들어 코미공화국은 우랄산맥에 있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시베리아이다. 우랄산맥 이동에서부터 서시베리아가 시작된다.세계최대의 석유·가스매장지대가 바로 이 서시베리아지대이다.튜멘공화국의 한티만시는 석유,야말로네네츠는 가스의 최대매장지대이다.그외 옴스크지역,노보시비르스크,톰스크지역,그리고 연중 광부파업이 끊이지 않는 석탄주산지 케메로보지역,알타이공화국이 서시베리아땅이다. 『동서시베리아를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남부시베리아에서 발원해 북극에 이르는 장대한 예니세이강입니다.스탈린시대 시베리아개발이 시작되면서 이 지리적·역사적구분이 동서시베리아의 경제적 특징과 일치하면서 그대로 행정적인 구분으로 굳어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서시베리아가 세계적인 석유산지라면 동시베리아는 예니세이강과 세계최대 담수호인 바이칼호에서 발원한 앙가라강을 이용한 수력발전과 비철금속·목재의 주산지이다.동시베리아에는 우선 북극에서 시베리아남부까지 이어지는 러시아최대 단일기초행정구역인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이 있다.이 지역에는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공업도시로 유명한 비철금속 주산지 노릴스크시가 있고 에벤키민족공화국,그리고 2년전 크라스노야르스크지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지금은 자체 대통령을 뽑고 완전한 독립국행세를 한다) 하카스공화국,투바공화국 등이 속해있다.그리고 남동쪽에는 바이칼호수가 있는 이르쿠츠크지구가 있고 최근 새로운 금광들이 발견되면서 「시베리아의 용」으로 재탄생하겠다고 선언한 브리야트공화국,일제하 우리 선조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한 중심지중 하나인 치타공화국이 동시베리아에 속한다. 통일 뒤 우리 민족의 생명줄이 될지도 모르는 대역사인 야쿠츠가스관으로 유명한 야쿠츠(연방해체 뒤 사하공으로 개명)공화국에서 남동으로는 시베리아가 아니고 극동이다.야쿠츠공화국의 미르니시는 러시아 최대의 다이아몬드 산지이다.그외 우리에게 흑룡강으로 더 잘 알려진 아무르강을 낀 아무르지역이 있고 스탈린치하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하기까지 20여만명의 한인들이 살았던 한맺힌 프리모르스크지역(연해주)과 하바로프스크지역이 극동에 속한다. 그외 명태잡이로 유명한 캄차카지구,카략스키자치공,마가단지구,2년전 마가단에서 독립을 선언,어엿한 독립공화국이 된 추코트공화국,일제강제징용 한인들의 피맺힌 사할린땅도 극동에 속한다. ○사할린은 극동 소속 헨리예타 교수는『현재 시베리아일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자치붐』이라고 소개했다.그리고 이 자치는 카프카스지방의 체첸인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자치라기보다는 경제자립을 위한 자치의개념이다.2년여전에는 시베리아공화국결성을 기치로 내건 시베리아당이 출현된 적도 있으나 지지를 얻지못해 사라졌고 극동공화국,크라스노야르스크공화국창설 등을 내건 정당들이 있었으나 구체적인 계획안이 발표된 적은 없다.물론 이런 움직임이 경제적 차원을 넘어 정치적 구심운동으로 발전된다싶으면 중앙정부에서 어김없이 제동을 건다.『60년대초 시베리아일대의 지방정부대표들이 모여 공동개발위원회를 만들려고 하다가 흐루시초프의 반대로 중단됐지요.중앙정부 나름대로 개발계획이 있다는 이유였습니다.지금은 중앙정부 지시 없이 삼삼오오 뜻맞는 지방정부들끼리 개발협력을 도모합니다.예를 들어 스베르들로프스크,첼리아빈스크,페름지구 대표가 모여 3지방정부간 경협을 도모합니다. 석탄산지인 케메로보공과 금속산지인 스베르들로프스크는 구상무역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그는 밝혔다. 사유화도입 이후 소유형태가 복잡해지면서 공장들끼리 독자적으로 협조관계를 구축하기도 한다.『과도기인 지금은 국가소유,국가와 지방정부 합작소유,그리고 지방정부소유 등 3가지 소유형태가 공존하고 있습니다.이런 소유형태의 복잡성이 개발을 저해하는 주요인이 되기도 합니다』라고 진단했다.소유권을 둘러싼 분쟁도 있고 곳곳에 부패한 관료,간부들이 결탁해 공장자산,이익금을 빼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헨리예타 교수가 현재 시베리아가 안고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는 것은 바로 환경문제였다.『가장 심각한 곳은 우랄지대입니다.우랄은 러시아의 가장 오래된,그리고 최대산업지대인데 비철·철·화학 등 대부분의 중공업·공해산업들이 바로 이곳에 집중돼 있습니다.수백만명이 환경재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특히 중공업체들이라 환경분야를 개선시키는 현대화작업이 어려워 빨라도 20∼25년간은 환경문제가 개선될 희망이 없지요』 특히 심각한 것은 공기오염.공기오염의 주범은 금속산업인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경공업은 불황으로 문을 닫은 업체가 많은데 이 금속산업은 비교적 호황을 누려 계속 가동되고 있어 환경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핵안전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55년도 첼랴빈스크원전사고는 그 영향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그외 페름지역의 대규모 화학단지에서 폐수들이 정화안된채 카마강으로 흘러들어,물오염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우랄지역도 환경재해지역으로 선포해 집중관리를 해야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서시베리아는 한마디로 석유산업의 중심지.주로 북극쪽에 집중돼 있으며 야말반도는 최대 가스매장지대이다.그러나 너무 혹한지대라서 외지에서 노동자들을 데려와 2주간씩 교대로 작업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야말반도는 따라서 젊어서 목돈을 모으려는 러시아인들이 줄지어 모여드는 곳이다.열악한 작업조건 때문에 특별히 높은 임금을 주기 때문이다.이곳에서는 원주민들과의 마찰이 문제이다.넨츠,한티,만시족등 북극 소수민족이 순록사육으로 생계를 이어왔는데 가스파이프를 건설한답시고 곳곳에 숲을 없애고 길을 닦는 바람에 이들의 삶의 터전이 파괴됐기 때문이다.그외 서시베리아 남부에는 러시아최대 석탄산지인 쿠즈바스탄전이 있어 연중 파업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최근 석탄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어 76개에 이르는 석탄회사중 35개가 적자에 허덕이고 21곳은 문을 닫았다고 헨리예타 교수는 설명했다.그래서 한때 시베리아학문,문화의 중심지로「아카데미 고로드」(학문의 도시)칭호를 받은 노보시비르스크가 있는 서시베리아는 지금 전반적으로 심한 경제난을 겪고있다. ○3개 지방정부 경협 동시베리아는 서시베리아에 비해 비교적 늦은 70년대에 조성된 산업지대이다.주로 남부에 밀집된 이들 산업지대의 가장 큰 특징은 예니세이강을 따라 발달된 수력에너지산업과 비철금속·임업이다.크라스노야르스크와 브라츠크지구는 러시아최대의 알루미늄·임업의 중심지이다.세계최대의 원자재공급시장이 바로 동시베리아인 것이다.따라서 원자재산업이 발달된 남동부일대는 비교적 부유한 경제형편을 누리고 있다.한예로 사하공화국(극동에 속함)은 자치공화국 자격으로 외국과 원료공급을 독자적으로 체결추진해 풍족한 재정형편을 구가한다.현재 지방공화국들은 연방정부와 약속에 따라 무기등 일부전략상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체적으로 생산,판매할 수있게 돼있다. 하지만 세금·국고보조 등 경제적 이득을 둘러싼 중앙·지방정부간 마찰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헨리예타 교수는 지적했다.『어떤 공화국은 세금을 얼마 내는 데 우리는 왜 더 내야 하느냐,왜 누구한테는 더 연방보조금을 많이 주느냐』는등 크고 작은 마찰들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지방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이같은 불평불만은 더 많아졌다.반면 민족적 갈등은 아직 크지 않다고 한다.하지만 『1백여 소수민족이 분포돼 있기 때문에 정치·경제적으로 통합필요성이 있다해도 문화적·역사적 차이 때문에 큰 결속력을 갖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예를 들어 브리야트,투바지역은 칼미크공화국과 함께 러시아내 3대 불교지역이다.같은 브리야트족도 바이칼호수를 기준으로 서쪽의 러시아화된 부류와 동남쪽의 보다 전통적인 부류로 나뉘어지는 등 민족적 요인은 너무 복잡해 전문가라도 좀체 가닥을 잡기가 힘들다는 설명이었다. 결론적으로 『시베리아는 너무 광대하고 복잡해서 중앙정부가 일사불란한 통제를 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고 그는 단언했다.중앙정부는 환경·세금·기간시설건설 등 공통적인 분야만 간여하고 나머지 개발계획 등은 모두 지방정부로 이관시켜 독자적인 발전방향을 잡도록 해야 한다는 게 헨리예타 교수의 결론이다.
  • 러 연해주­아무르주 2억여평/고합그룹서 농장 개발

    고합그룹은 오는 99년까지 러시아의 연해주 1억3천평의 경작지에 1천2백만달러,아무르주 1억5천만평에 1천3백만달러 등 총 2억8천만평에 2천5백만달러를 투자,농·축산사업을 하기로 했다. 연말까지 고합이 2백만달러를,러시아측은 같은 액수의 농지와 농기계,창고 등 현물을 50대50의 비율로 투자한다.합작기간은 영구이며 생산된 농축산물은 매년 똑같이 분배한다. 또 연해주의 해안지역인 올가지역과 포시에트지역에 수산업과 축산,관광 등을 종합한 수산종합단지건설도 연해주 주정부와 추진중이다. 올해부터 매년 콩과 밀을 각각 8만t씩 생산,이 가운데 50%를 국내에 들여올 예정이다.소는 1만5천마리를 키울 계획이다. 고합그룹의 상임고문 김한곤씨(전 농림수산부차관)는 『러시아와 국내의 식량부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업으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 “「오진우사망」북군부 대변화 신호탄”/「김정일버팀목」붕괴이후 분석

    ◎「차기 총참모장 성향」 북향방 좌우할것/러 유학 신세대장교 개혁주도 가능성/최평길 연세대교수 함북 북청의 물장수아들,국민학교 중퇴의 북한혁명 1세대 군최고지도자인 78세의 오진우가 김일성의 뒤를 이어 사라져 갔다. 김일성이 모택동군 휘하 동북항일연군 게릴라부대를 이끌 때부터 참가한 오진우는 1937년 일본 관동군의 토벌에 밀려 50명 안팎의 김일성 게릴라 부대가 러시아땅 하바로프스크에 밀려갈 때도 충실한 김의 전사로 행동을 같이한다. 장차 한반도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 전위무력부대로 사용할 수 있겠다하여 당시 소련극동군사령부는 아무르강 언덕에 88독립저격여단을 만들어 중국게릴라 지도자 주보중을 정점으로 한인 김일성을 1대대장으로 한 정보정탐 훈련팀을 키우고 있었다. 1대대장 김일성 대위밑에는 3개 중대와 1개 경비소대가 있고,1중대에는 3개소대가 있었는데 1중대장은 후일 인민군 3군단장과 부총리를 역임한 최용진,1중대 1소대장은 6·25당시 탱크사단장을 지내고 전사한 유경수,부소대장이 바로 오진우였다. 북한인민무력부는 행정부의 국방부같이 정상적 정부기관에 소속되지 않고 북한최고 정부지도 기관인 중앙인민위원회 국방위원회 직속 별동대로 존재하고 있다. 1백52개 여단과 사단으로 구성된 지상군 65%가 휴전선에 전진배치되어 있다.해·공군사령관,전차·기계화군단사령부,평양방위사령부,해·공군사령부를 직접 관장하는 인민군 총참모장을 지휘하는 인민무력부장은 김일성이 죽은 권력공백기간에 가장 위협적이며 권력승계자인 김정일로서는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서서히 수면위로 부상하는 개혁파·우파,또는 반김정일파 등 어느 정파도 인민군을 끼지 않고는 북한정권을 장악할 수가 없다.북한군은 어떤 의미에서 김일성 이후 시대의 「사회안정자」또는 북한정권 정파에 대한 캐스팅 보트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정치의 키를 쥐고 주변 국가에 위협적으로 등장하는 북한이 내놓을수 있는 유일한 세계화의 상품인 군사력의 실질 관리자가 사라진 이 시점에 차기 인민무력부장,인민군총참모장,그에 따른 군수뇌부 이동과 권력승계,정치향방,핵무기 개발 여부등은남북관계 변화에 매우 큰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아마도 같은 혁명1세대인 현 총참모장 최광이 인민무력부장이 되고,총참모장으로는 같은 혁명1세대인 이을설·김봉율 아니면 2세대에 해당하는 김광진이 기용될 수도 있다.이 경우는 현재 인민군 지휘체계의 골간을 크게 바꾸지 않고 김정일의 정권장악을 위해 김일성이 미리 마련해놓은 군지휘부가 유지되는 것이며 현체제가 안정돼 있다는 지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또하나의 가능성은 설사 최광·김광진 등이 인민무력부장이 되더라도 인민군 총참모장이 혁명 2∼3세대에서 나오는 경우,그리고 그들 성향이 개혁지향일 경우 북한 정국의 향방이 크게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오진우의 사망은 김일성 시대의 사병화된 김일성군의 개념이 서서히 사라지고 전문직업군,변화의 촉진제가 될 효율화된 군이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줄잡아 1만5천명 정도의 북한장교는 러시아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고,3백명의 젊은 대위·소령급장교(나이는 28∼30살)들이김일성에의 맹목적 충성심과 탁월한 부대지휘능력을 인정받아 엄선되어 모스크바 고급군관학교에 5년장기 유학훈련을 받은 바 있다. 최근에 보내진 장기유학장교단은 1년은 러시아어를 배운후 4년간 소속병과훈련을 받았다.그런데 이 시기가 고르바초프가 등장하고 또 옐친이 직선제 러시아대통령으로 당선되며 동구의 김일성인 루마니아 차우셰스쿠가 처형되고,체코의 무명 지하극작가 하벨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때였다.공산체제 붕괴와 자유시장체제로의 전환을 현장에서 경험하고,한국무역진흥공사의 전시장과 한국기업들의 러시아 진출을 직접 체험한 이들은 훈련이 끝날 무렵인 1991년경에는 크나큰 심경의 동요를 겪었다. 그들은 주석직은 직선제로,조선노동당이 유일합법당이라면 국민투표로 인민들의 신임에 맡기자는 논의를 한 끝에 훈련종료 직전에 모두 평양으로 송환되었다. 이들은 지금 북한군을 실병지휘하는 대대장·연대장으로 있으며 만만찮은 개혁세력으로 잠재해 있다.이들 유학장교단은 혁명1세대가 계속 자리를 차지하든,2∼3세대가 계승하든군의 중요 간부로 활약하게 마련이이여서 김정일 권력승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앞으로 이들은 식량난 가중으로 주민봉기가 일어날 경우 정보사찰안전조직의 장악,개혁파 지도계층과의 연계 등으로 개혁의 핵심역할을 할 것이며 그들의 운신폭은 계속 넓어질 것이다. 오진우의 죽음은 이같은 북한 인민군의 군사·정치적 변화의 중요한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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