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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대통령·고르비,크렘린대좌 2시간15분(모스크바 여로)

    ◎“모스크바여 영원하라” 노어인사에 박수/푸시킨 시구 인용… “지금은 기적의 순간이다”/“한국젊은이 고속전철 타고 시베리아 올 날 멀잖았다” ▷정상회담◁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역사적인 모스크바정상회담은 14일 상오 11시1분(한국시간 하오 5시1분)부터 2시간15분 동안 크렘린궁내의 소련연방최고회의 건물 4층 대통령회의실인 올드 레드룸에서 진행. ○화기 넘친 분위기 노 대통령이 먼저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건네자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밤새 편히 지내셨느냐』고 물었고 이에 노 대통령은 『아주 편안하게 잘 지냈습니다』라고 대답. 양국 대통령은 사진기자들의 요청을 받고 잔뜩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손을 맞잡고 잠시 포즈. 노 대통령은 본격회담에 앞서 고르바초프의 얼굴사진이 큼지막하게 표지에 실린 「페레스트로이카」 한국어판 책 1권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선물. 노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우리의 만남이 한반도의 얼음을 깨는 일』이라고 언급했던 점을 상기시킨 뒤『나의 이번 모스크바방문이야말로 양국 관계에 봄을 열고 씨앗을 뿌려 양국민 모두가 풍성한 열매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시대를 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희망.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회담과정에서 17일부터 열리는 소련최고인민회의 준비와 관련한 자신의 연설문 마무리 문제와 소련 국내문제를 둘러싼 여러 첨예한 대립과 논쟁상황 등을 숨김없이 털어 놓았는데 노 대통령은 자신의 6·29민주화선언과정에서의 어려웠던 과정을 설명하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위로.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냉전체제 와해 등 최근의 변화와 페만사태 등에 관해서도 의견을 교환. 노 대통령이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통일 방안에 대해 설명하자 전적인 지지와 동감을 표시했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과거에는 강대국이 자신의 의지를 약소국에 강요하던 시대가 있었으나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단언.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구라파에 평화가 왔듯이 아시아에도 평화가 와야 하며 모든 문제를 군사력을 사용,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물론 아시아는 유럽과 여러 조건이 다르다. 그러나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도 평화의 질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노벨평화상 수상자답게 「평화」를 강조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완화,평화정착이 아태지역 평화의 관건임을 거듭 확인. 한편 김종인 경제수석은 정상회담에 앞서 카운터 파트인 마슬류코프 제1부수상과 30분 동안 별도 협의를 가졌다. ○올 노벨상 수상 축하 ▷공식만찬◁ ○…노 대통령은 이날 하오 7시부터(한국시간 15일 새벽 1시) 약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고르바초프 대통령 주최의 공식만찬에 참석. 노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올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고 『이는 각하께서 용기와 신념,탁월한 지도력으로 온 인류의 한결같은 소망을 실현하고 있는 데 대한 세계의 평가를 반영한 것』이라고 피력. 노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 각하 내외분의 건강과 행운을 위하여,소련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그리고 한소간의 영원한 우의를 위하여 축배를 들자』고 제의하고 「발쇼예 쓰빠시바」(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 ○…소련에서의 첫 밤을 보낸 노 대통령은 14일 상오 10시(한국시간 14일 하오 4시) 크렘린궁 외곽의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내 무명용사묘에 헌화하는 것으로 이틀째 일정을 시작. ○무명용사묘에 헌화 메드베데프 대통령위원회 위원과 소콜로프 주한 소련 대사의 안내로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에 도착한 노 대통령은 스미르노프 모스크바 주둔군 사령관의 영접을 받은 뒤 3군 의장대를 사열. 노 대통령이 의장대를 사열하는 동안 군악대는 차이코프스키의 진혼곡을 연주했는데 선두의 헌화병은 소련군의 독특한 걸음걸이로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 이어 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라고 쓰인 붉은 색 리본이 달린 화환을 무명용사묘에 헌화하고 양국 국가가 울려퍼지는 동안 중절모를 벗어 묵념. 이날 헌화에는 최호중 외무,박필수 상공,김진현 과기처 장관과 이홍구 대통령정치특보,김종인 경제수석비서관 등 수행원들이 참여. ○…노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14일 하오 고르바초프 대통령 부인 라이사 여사의 안내로 크렘린궁내 박물관을 둘러본 뒤 30여 분 간 환담. 김 여사는 박물관에 도착해 미리 대기하고 있던 라이사 여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는데 13일 공식환영행사에서 이미 한차례 만난 탓인지 친근감있게 가벼운 포옹을 교환. 두 대통령 부인은 박물관장과 함께 러시아 황실의상과 칼 등 무기들이 진열된 전시장을 둘러보고는 궁전내 파인애플룸에서 자녀·의상·부군에 대한 내조 등을 화제로 환담 후 기념촬영. ○…노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13일 저녁 9시(현지시간)의 TV뉴스를 통해 소련국민들에게 처음 소개돼 관심이 집중. 이날 TV에 소개된 노 대통령 방소 관련화면은 공항도착 장면과 크렘린궁내의 공식환영행사 등으로 약 4분간에 걸쳐 방송. ○「크라시바야」 연발 소련 체신부에 근무하는 실라 니콜라에바씨(여·40)는 TV를 보면서 「크라시바야」 「오친 크라시바야」(대단히 아름답다)를 연발. 그녀는 한복의 맵시와 김 여사가 가진 조용하고 아름다운 분위기가 잘 조화돼 환상적이라고 감탄. 소련국민들의 미에 대한 정서는 유럽보다 동양인들의 그것에 더 가까운 것으로 설명되곤 한다. 소련인들의 이런 정서 때문에 김 여사가 보여주는 특유한 분위기는 그 동안 소련을 방문했던 어느 나라의 퍼스트레이디보다 더 강렬하게 소련인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는 것 같다. ◎「임양 구속」,대북정책 역행 아닌가/법질서 무시한 행동은 처벌 마땅 ▷모스크바대 연설◁ ○…노 대통령은 이어 하오 3시30분부터 모스크바대학을 방문,교수·학생들을 상대로 「냉전의 벽을 넘어,평화와 번영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2시간 동안 연설. 노 대통령은 『모스크바대학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많은 개혁의 지도자들을 배출했다』고 경의를 표하고 투르게네프·곤자로프·체호프·칸딘스키 등의 문호와 벨린스키·게르첸·웨르나드스키·켈디쉬 등 이 대학 출신 사상가와 학자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 노 대통령은 『이 대학이 낳은 문호 곤자로프는 러시아인으로는 첫 한국견문록을 남겼다』고 「인연」을 강조하고 『그는 길에 깊이 패인 수레바퀴 자국들을 보고 한국인이 근면하고 생활력이 강한 것을 알았으며 신기하게도 가난한 사람까지 시를 쓸 만큼 학식이 있었다고 썼다』고 설명. 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은 우리 두 나라의 새로운 만남을 시인 푸시킨이 노래한 「기적의 순간」처럼 경이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야 뽀옴뉴 추우드노예 므그노베니예/뻬레 더 므노이 야비일라시 뜨이」(나는 기적의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라고 러시아말로 푸시킨의 시구절을 인용. 노 대통령은 『나는 서울을 출발한 한국의 젊은이들이 고속전철을 타고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모스크바의 젊은이들과 어울려 스톨홀름으로,파리로,이스탄블로 여행을 떠나는 내일이 올 것을 확신한다』는 말로 연설을 끝내고 「마스끄바,베치나야 찌베 슬라바」(모스크바여,영광이 영원하여라) 「발쇼에 쓰빠시바」(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러시아어로 인사. 노 대통령은 연설을 마치고 3명의 학생으로부터 임수경양 처벌과 국가보안법 폐지,한소 경협과 개발도상국에서의 경제발전 문제,청소년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즉석 답변. 노 대통령은 첫번째 질문 학생이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는데 평양축전에 참석한 여학생을 엄벌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겠느냐』고 물은 데 대해 『우리 정부는 학생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게끔 절차를 만들어 놓고 있다』면서 『그러나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몰래 다녀온 데 대해서는 우리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담담하게 답변. 노 대통령은 이어 『만약 북한에서 남한을 몰래 다녀갔다면 10배 20배의 벌을 받았을 것』이라고 부연설명했고 학생들은 이에 박수로써 호응.
  • 레바논 민병대 본격 철군 개시

    【베이루트 UPI 연합】 레바논의 민병대 대원들이 10일 베이루트시로부터 철수하기 시작했으며 레바논군 병력들이 15년간의 민병대 통치를 종결짓고 내전으로 피폐된 베이루트시를 통일하기 위한 계획을 관할하기 위해 배치되기 시작했다고 보안소식통들이 밝혔다. 이 소식통들은 친시리아 시아파 아말 민병대가 이날 새벽 베이루트 남쪽 교외의 진지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수백명의 아말 민병대원과 여러 무기를 운송하는 자동차와 장갑차량의 행렬이 레바논 남부로 향하고 있는 것이 목격됐다. 메이 카할레 대통령궁 대변인은 UPI통신에 『우리는 내각이 베이루트를 비군사화 하기로 결정한데 발맞추어 아말 민병대원이 베이루트로부터 철수하기 시작한 것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 레바논,「평화정착의 길」 아직 멀다/기독교 민병대 투항뒤의 앞날

    ◎15년 내전 종식 최대 장애물 제거 일단 성공/시리아 도움 없인 시아파 세력 등 통제 불능/파탄된 경제 재건 자체적 해결 기대 어려워 흐라위 대통령이 아운 장군의 항복을 받아내 15년에 걸친 레바논 내전 종식의 최대 장애물을 제거 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시리아에 지원을 요청한 절묘한 시기포착이 주효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레바논은 본래 이스라엘과 시리아,이라크 등 주변 각국과 미국,프랑스 등 서방진영의 이해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곳이어서 어떤 나라라도 쉽사리 군사행동을 취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러나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강제합병과 지난 8일 발생한 이스라엘경찰의 팔레스타인인 학살로 다른 이해당사국들의 행동이 제약을 받게된 반면,시리아만이 비교적 자유로운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됨으로써 시리아군을 주축으로 한 레바논 정부군의 전격 공격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라크군의 철수를 중동정책의 최우선목표로 삼고 있는 서방진영으로선 시리아군이 레바논에서 군사작전을 펼친다해도 어떤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입장에 있었다. 그것은 시리아를 반이라크 대열에 묶어놓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인 학살사건으로 유엔에서 이스라엘 규탄 결의안이 채택될 만큼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여론이 악화된 시점에서 자신들이 지지하는 아운 장군이 넘어지는 것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당장은 속수무책으로 있는 외에 뾰족한 수를 찾기 힘든 입장이었다. 아운 장군의 민병대 역시 이라크에 대한 금수조치의 여파로 이라크로부터의 무기공급이 차단돼 이미 군사적 입장이 상당히 약화돼 있었던 참이었다. 이같은 타이밍을 놓치지 않은 흐라위 대통령의 레바논 주둔 시리아군에 대한 지원요청은 의외로 손쉽게 아운 장군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운 장관의 축출이 레바논 내전 종식에의 최대 장애물 제거로 평가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레바논에 내전이 끝나고 평화가 정착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어려운 문제들이 남아 있다. 우선 레바논내에는 아운 장군외에도 많은 정파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아운은 흐라위에 반대하는 많은 세력들중 가장 대표적인 세력에 불과하다. 드루즈파와 마론파 등 기독교세력,헤즈볼라와 아말 등 이슬람교 시아파세력 등 많은 세력들이 독자적인 무장을 갖추고 있는데 흐라위 대통령은 시리아군의 도움이 없으면 이들 세력의 어느 하나도 손쉽게 통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들 각 세력들은 서로를 불신하는 것은 물론 흐라위정부도 불신하고 있으며 서로 복잡한 적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결국 흐라위가 아운 장군 축출에는 성공했지만 사실상 레바논을 통치하는 것은 흐라위가 아니라 시리아군의 군사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레바논 전 국토의 약 70% 정도를 시리아군이 통제하고 있다. 따라서 흐라위로선 당장은 시리아군의 군사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이란,이라크 등 주변국들이 시리아가 레바논에 장기적인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중동의 새 강자로 부상하는 것을 언제까지 용납할 것이냐가 문제다. 현재 쿠웨이트사태와 이스라엘 경찰의 팔레스타인 학살로 야기된 긴장이 어느 정도 완화됐다고 판단하면 주변 각국이 또다시 어떤 형태로든 레바논에 개입하려 들 것이고 그럴 경우 레바논은 또다시 혼돈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둘째로는 15년 내전이 가져온 경제의 피폐화를 흐라위 대통령이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느냐가 문제가 된다. 레바논경제의 하부구조는 15년에 걸친 내전으로 철저히 파괴돼 처음부터 다시 재건하지 않으면 안될 실정에 놓여 있다. 레바논의 경제학자들은 이같은 경제의 하부구조를 재건하는데 최소한 2백10억달러의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의 타이프에서 합의된 평화안은 사우디가 레바논의 경제재건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 주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사우디는 현재 쿠웨이트 사태로 중동지역에 파견된 다국적군의 주둔비를 대느라 레바논에까지 눈길을 돌릴 여유가 없게 됐다. 결국 현재로선 레바논의 경제재건은 이룰수 없는 꿈에 불과하다고 할수 있다. 수많은 정파간 대립에 따른 정치불안정과 치유불능 상태에 빠진 경제파탄으로 레바논의 앞날은 결코밝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운 장군의 축출에 기대를 거는 것은 지난해 사우디에서 합의된 평화안을 다른 모든 정파가 받아들였음에도 아운 장군 홀로 이를 거부함으로써 평화안이 실현되지 못했던 때문이다. 따라서 아운 장군의 축출이 레바논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첫 걸음의 시작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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