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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사와 다산, 김환기가 숨쉬는 곳… 현세의 ‘무릉도원’속으로

    추사와 다산, 김환기가 숨쉬는 곳… 현세의 ‘무릉도원’속으로

    한양도성 순성이 도성 안팎으로 확대될 무렵 많은 사람들이 찾은 곳이 북악산과 인왕산, 북한산으로 둘러싸인 부암동이다. 인왕산 북벽 기슭 청계동천과 북악산 북벽 기슭 백석동천은 신선들이 사는 별천지, 동천복지(洞天福地)를 꿈꾼 곳이다.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다. 어지러운 세상 잠시 잊고 꿈꾸듯 무릉도원을 걷는다.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고 상명대 앞 삼거리에서 내렸다. 버스 정류장 앞 건널목을 지나면 석파랑(石坡廊)이 나온다. 대원군 이하응의 호 ‘석파’를 딴 이름이다. 1958년 소전 손재형이 석파정에 있던 일곱채 건물 중에서 별당 석파랑만을 현재 위치로 옮겨 지었다. 1819년 대과에 급제한 추사 김정희는 아버지 유당 김노경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연행에 나선다. 1820년 1월 추사는 보소재 석묵서루에서 담계 옹방강(1733~1818)을 만난다. 스승 초정 박제가가 세 차례 연행하면서 옹방강과 교류했던 것에 비춰 보면 아마도 초정이 만나라고 권고한 듯하다.추사는 청나라 금석학의 대가 담계 옹방강을 깊이 흠모하면서 당호를 보담재(寶覃齋)라고 짓는다. 전국에 있는 비석을 탁본해 첩을 만든다. 원형을 간직한 우리나라와 중국 비석 글씨를 연구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산에 있는 비석이 진흥왕순수비라는 사실을 밝힌다. 스승 옹방강은 한나라 훈고학과 송나라 성리학을 서로 보완해 경학을 한다. 한송불분론(漢宋不分論)이다. 추사는 스승을 좇아 성리학과 청나라 고증학을 절충함으로써 북학의 틀을 확고히 하고 개화를 준비한다. 그러나 또 한 번 북청 유배길에 오르면서 모든 게 산산이 부서진다. 대신 유배지에서 붓 천 자루를 몽당붓을 만들고 벼루를 열 개나 밑창 내고서 추사체를 완성한다. 추사를 찾아 나룻배를 타고 서귀포까지 온 사람이 있다. 제자 이상적이다. 제자 이상적의 절개에 감복한 추사는 자신의 심경을 한 장 그림으로 표현한다. ‘세한도’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집은 김흥근의 부암동 별서 삼계동산정 별당 월천정(三溪洞山亭 別堂 月泉亭), 즉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의 석파정 석파랑(石坡亭 石坡廊)이다. 송백은 석파정 정원수다. 추사와 이상적이다. 서울미래유산인 석파랑의 주인 소전 손재형은 22세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연이어 7회나 입선 또는 특선을 한다. 1933년부터 선전 심사위원 연 3회, 광복 후 국전(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연 8회 역임한다. 홍익대 미대 교수를 지냈다. 1944년 미군의 공습이 연일 계속되는 도쿄로 가서 세한도를 되찾아 온다. 세한도에 등장하는 석파정 별당을 옮겨 짓고 석파랑이라 부른다.석파랑에서 다시 도로를 건너 직진하면 도롯가에 멋진 정자, 세검정이 나타난다. 광해군은 어머니 인목대비를 경운궁에 유폐시킨다. 또 인목대비의 아들 영창대군을 강화로 유배 보내고 사실상 살해한다. 폐모살제(廢母殺第)한 광해의 패륜을 응징하기 위해 1623년 인조반정을 단행한다. 김류·이귀·심기원·김경징 등 반정공신들은 세검정에 모여 반정을 모의한 후 칼을 씻으면서 결의를 다진다. 반정군은 모화관에서 심기원의 병사와 합류한 후 창의문을 부수고 창덕궁을 점령한다. 광해군은 역모의 기미를 알았지만 적극 대처하지 않았는데 이는 김개시라는 상궁 때문이다. 실록은 상궁 김개시를 다음과 같이 평한다. “김상궁은 이름이 개시(介屎)로 나이가 차서도 용모가 피지 않았는데, 흉악하고 약았으며 계교가 많았다. 춘궁의 옛 시녀로서 왕비를 통하여 나아가 잠자리를 모실 수 있었는데, 인하여 비방으로 갑자기 사랑을 얻었다.” 실록에서는 보기 드물게 여자의 용모와 잠자리 비방 등을 직접 거론한다. 김개시는 광해의 총애를 받는다. 그런데도 그냥 상궁으로 머물렀다. 세검정에는 남인 다산 정약용의 흔적도 남아 있다. 목멱산(남산) 아래 명례방(명동) 집에서 벗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1791년 신해년 여름 어느 날 다산이 말을 타고 창의문 밖으로 냅다 달린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세검정에 올라 자리를 벌이니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 산골 물이 사납게 들이친다. 그날 다산이 세검정에서 벗들과 노닐었던 기록, ‘유세검정기’에서 세검정을 이렇게 즐기라고 일러 준다. “세검정의 빼어난 풍광은 오직 소낙비에 폭포를 볼 때뿐이다. 그러나 막 비가 내릴 때는 사람들이 옷을 적셔 가며 말에 안장을 얹고 성문 밖으로 나서기를 내켜 하지 않는다. 비가 개고 나면 산골 물도 수그러들어 버린다. 이 때문에 정자가 저편 푸른 숲 사이에 있는데도 성중의 사대부 중에 능히 이 정자의 빼어난 풍광을 다 맛본 자가 드물다.” 세검정에서 하천을 따라 걸어가다가 오른쪽 골목길로 접어들면 별서 터가 나온다. 그야말로 서울 시내에 있는 보물이다. 별서 터에는 사랑채와 안채 등 두 채 집터와 연못 두 개와 정자 한 개 그리고 우물 등이 있다. 처음 별서정원을 가꾼 사람은 연객 허필(1709~1768)이다. 표암 강세황과 절친했다. 두 사람 다 시서화에 능했기 때문에 연객이 그린 그림에 표암이 시를 짓기도 하고 표암이 그린 그림에 연객이 찬하기도 했다. 연객 허필이 이곳에 별서를 조영했을 때는 그저 소박한 띠집이었다. 사랑채와 안채, 연못과 정자를 조영한 사람은 추사의 생부 유당 김노경이다. 연객과 유당에 이어 이곳 백석동천에 별장을 소유했던 사람은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아들 박종채(1780~1835)다. 한 가지 궁금하다. 1935년까지도 멀쩡하던 연못 정자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나?별서 터에서 산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왼쪽 길가에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 각자한 바위가 나온다. 백석동천에서 말하는 백석은 열선도(列仙圖)에 등장하는 신선 백석생(白石生)이 들어가 살았던 백석산(白石山)이다. 백석생은 백석을 삶아 식량 삼아 먹으면서 백석산에서 살았다. 하늘로 오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늘 위 신들의 세계라고 해서 인간세계보다 반드시 즐거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난해서 돼지 살 돈도 없었던 백석생은 양을 사서 십여 년 길렀다. 많은 돈을 벌어 내단약 금즙(金液)을 사서 먹고 백석산으로 들어갔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보다 오래 사는 것을 더 귀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노불사의 신선이 노니는 동천복지(洞天福地)를 구현하고자 했기 때문에 동천이라 했다. 산속 깊은 곳에 있다고 믿었던 신선들이 사는 별천지를 일컬어 동천복지라 한다. 일반적으로 속세와 격리된 산속 살기 좋은 땅을 뜻한다. 백석과 동천을 서로 엮으면, 백석산 깊은 곳 백석생이 사는 동천복지와 같은 별천지가 된다. 그야말로 신선이 노니는 도교적 이상향, 백석동천이 바로 이곳이다. 백석동천의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커피프린스’를 촬영한 카페가 나온다. 북악산 성곽과 인왕산 성곽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산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오른쪽 골목길 아래로 돌아들면 환기미술관이다. 김환기는 1913년 2월 27일 전남 신안군 기좌도에서 태어났다. 김환기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는 광복부터 한국전쟁까지다. 1948년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한다. 서울대 미술학부를 만든 동양미술사학자 근원 김용준과 교유하면서 우리 고미술과 한국미를 새롭게 발견한다. 산 중턱에 걸린 달, 길게 날아가는 학, 매화 긴 가지 등 한결같이 예서를 방불케 한다. 파리 시기를 통해 오히려 한국미를 확신한다. 김환기에게는 기좌도도, 서울도, 파리도 작았다.전환점은 1963년부터 1974년까지 뉴욕 시기다. 파리가 아닌 뉴욕에서 정점을 찍는다. 1969년 김환기는 뉴욕에서 절친 김광섭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실의에 빠진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주제로 마지막 시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제목으로 전면점화(全面點畵)를 그린다. 환기미술관에서 김환기 그림을 다시 본다. 김환기의 점화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가득 메운 고구려 사람들이 입은 땡땡이 옷이다. 도교사원 운주사를 가득 메운 석탑과 석상이다. 김광섭의 시를 가득 메운 별이다. 김환기, 그림, 별, 김광섭 그리고 시! 한양성곽 4소문 중 하나로 북소문 창의문을 만든 것은 1396년이다. 임진왜란 때 타고 없는 문루를 1741년 중수하기는 했으나 4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원래 위치를 지키는 문이다. 사람들이 창의문을 기억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인조반정 당시 반정군이 이 문을 지나 창덕궁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광해군 15년 1623년 세검정에서 결의를 다진 반정군과 능양군(훗날 인조)의 친정군이 합류해 창의문을 깨고 창덕궁으로 들어간다. 광해는 역모의 상소를 읽었지만 무시했다. 반정군이 창의문 밖에 모여 있다는 밀고까지 받았지만 반정군에 합세한 훈련대장 이흥립의 소극적인 대처로 이 또한 무효였다. 어머니 인목왕후를 폐위하고 동생 영창대군을 죽였다는 게 반정의 명분이었다. 그러나 광해의 가장 큰 실책은 ‘왕기(王氣)가 있다’는 이유로 동생 정원군(인조의 친부)의 아들 능창군(인조의 동생)을 유배 보낸 것이다. 유배지 강화에서 능창군은 목매 자결한다. 결국 광해가 능창군을 죽인 셈이다. 능창군의 형 능양군이 가만히 있다면 그게 패륜이다. 둘째는 이곳의 유명한 치킨집과 연관시켜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 때문이다. 분명 봉황인데 사람들은 자꾸만 닭이라고 한다. 봉황 모가지를 닭 모가지처럼 그리기도 했다. 창의문 밖에서 바라본 부암동 형상이 마치 지네와 같아 지네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지네의 천적인 닭을 길렀다. 그래서 부암동에는 독특한 맛으로 유명한 치킨집이 많다. 글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그 외 부암동 일대의 서울미래유산 세이장 1974년 지어진 주택이며, 건축가 김수근이 직접 살기도 한 건물 체부동 성결교회 벽돌 쌓기 방식으로 1920년대 건립된 교회 서촌 한옥밀집지역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들로 구성된 독특한 경관이 형성돼 있는 마을 통인시장 각 점포의 개성과 이야기를 담은 작품 전시 등 문화와 예술이 함께하는 재래시장 김봉수 작명소 1958년쯤 개업해 같은 지역에서 2대째 가업을 이어 오고 있는 작명소 이상의 집 시인 겸 소설가 이상이 1912년 백부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기거했던 가옥의 터 ●다음 일정 : 제9회 잠실의 추억●출발 일시 : 25일 오전 10시 출발●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민간에 맡기는 美, 국가가 이끄는 中…4차혁명 무한경쟁

    민간에 맡기는 美, 국가가 이끄는 中…4차혁명 무한경쟁

    [미래 보는 눈 바꿔야 경제가 산다 (3)앞으로 더 걸어가려면] ⑦美中 비전과 전략은 4차 산업혁명 이후 세계의 패권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전문가들은 새 시대를 이끌어갈 미래기술을 어디서 선점하는지에 따라서 국제질서가 크게 지각변동할 것으로 진단한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는 그 시기를 확 앞당겼다. 세계 각국은 저마다 특색을 살려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민간 주도의 자유로운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미국, 탄탄한 수요를 바탕으로 정부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중국. 20일 미래를 대비하는 두 국가의 비전과 전략을 들여다봤다.●혁신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 몰리는 까닭은 실리콘밸리는 미국 신산업 혁신의 본거지다. 서남부 캘리포니아 일대의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곳으로 전자산업이 육성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가까운 스탠퍼드대, 버클리대 등 명문대학이 포진하고 있어 인재 수급에도 어려움이 없다. 과거 실리콘밸리 조성 당시 주 정부가 강력한 세제 혜택을 준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미국 전체의 벤처자금의 30% 이상이 몰려 있으며, 주요 벤처캐피탈(VC) 대부분이 이곳에 포진하고 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이만한 환경을 갖춘 곳이 지구상에 더 없다는 뜻이다. 아마존, 테슬라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기업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는 실리콘밸리는 4차 산업혁명의 전진기지로 활약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는 규제가 거의 없다. 실리콘밸리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미국에서는 ‘임의고용’ 원칙에 따라서 고용주와 직원 모두 ‘언제든지 해고 가능하며, 사직서를 제출할 수 있다’는 내용이 고용계약서에 명시돼 있다. 그만큼 유연성이 확보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 사이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의 근간이 되는 제도라고도 하겠다. 게다가 실리콘밸리에는 근무시간에 대한 규제도 없다. 캘리포니아주 노동법에서는 연장근로시간을 법으로 규제하지 않는다. 주당 최장 근로시간 제한에 대해서도 별도의 규정이 없다. 안전망 없는 해고와 과로를 종용하는 근로문화로 대립적이고 전투적인 노사관계가 형성된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지점들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업들의 합종연횡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아마존은 지난달 실리콘밸리의 자율주행기술 스타트업 ‘죽스’(Zoox)를 인수했다. 투자 금액은 당초 12억 달러(약 1조 4450억원)로 알려졌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죽스의 직원 10%가 감축될 우려가 생기자 1억 달러를 추가로 지원키로 결정했다. 죽스의 직원들이 퇴사했을 때 기술 유출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한 것이다.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은 그간 홀푸드(유기농식품 전문 슈퍼마켓), 자포스(온라인 신발 의류 업체) 등 유통업체를 주로 인수했지만, 이번에는 전혀 다른 업종과의 결합을 시도한 것이다. 애플은 2010년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인공지능(AI) 관련 스타트업을 가장 많이 인수한 기업이다. 외신 등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5월 머신 러닝 스타트업 ‘인덕티브’(Inductiv)를 인수했다고 밝혔다. 애플의 AI 비서 ‘시리’를 고도화하기 위해서다. 구글도 뒤지지 않는다. 지난달 캐나다의 스마트 안경 개발사인 ‘노스’(North)를 인수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구글 글라스’라는 스마트 안경 프로젝트에 본격적인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리콘밸리의 성공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정부의 어설픈 개입으로는 신산업 생태계를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민간이 스스로 주도할 수 있게끔 해야 더욱 창의적이고 번뜩이는 혁신이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용민 코트라 실리콘밸리무역관 관장은 “혁신적인 기술을 갖춘 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 몰리는 이유는 법인 설립부터 투자 유치, 투자 회수까지 가능한 기업 생태계가 완벽하게 구축돼 있기 때문이지 정부의 정책이 좋아서가 아니다”라면서 “한국도 다양한 경험을 가진 우수한 인재가 기업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이것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투자부터 회수까지 기업 경영 생태계가 작동할 수 있는 법안을 구상하고 발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이 패스트 팔로어에서 생태계 창조자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 구성원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격려하는 문화가 마련돼야 한다”면서 “당장 성과가 나지 않아도 일정 기간 기다리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인내 또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계 어느 곳보다 시장경제 원리 잘 작동하는 中 지난 5월 22일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리커창 총리의 정부업무보고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중국이 앞으로 어느 분야에 방점을 찍고 국가를 운영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행사다. 리커창 총리는 ‘디지털 경제’를 17번이나 언급했다. 중국의 정책적 관심사가 디지털 쪽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하겠다. 코로나 시대를 맞으면서 이런 변화는 더욱 두드러졌다. 지난 4월 국무원 상무회의에서도 리커창 총리는 온라인 근무, 원격의료 등 디지털 기술 관련 인프라 구축을 강조했다. 중국은 철저히 계획적이다. 중앙정부가 깃발을 들면 금융 등 유관기관이 따라가는 모양새다.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면 생태계가 형성되는 식이다. 그렇다고 중국의 시장 생태계가 약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한 전문가는 “세계 어느 곳보다도 시장경제 원리가 잘 작동하는 곳이 중국이다.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중국이 앞으로 신형 인프라 구축을 위해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진 규모는 40조 위안(약 6881조 2000억원)이다. 중국이 최근 ‘스마트굴기’에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최근 경험한 미중 무역분쟁의 탓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뒤 화웨이, 푸젠진화 등 중국 주요 기업들을 제재하기 시작하면서다. 중국은 ‘기술독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칼을 갈았다. 코로나19 여파로 세계적으로 ‘기술 민족주의’가 두드러지면서 첨단기술 산업 육성을 위한 중국의 열망은 더욱 강해졌다. 김동수 산업연구원 동북아산업실 연구위원은 “중국에서는 AI를 통한 원격의료, 개인정보 활용 등 새로운 먹거리가 되겠다 싶으면 정부가 진입장벽을 나서서 없애 준다. 나라가 굉장히 크지만 의사결정은 역동적으로 이뤄진다”면서 “그렇게 방향을 정한 뒤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어마어마한 기업들이 생기고 이를 지원하는 민간기업들이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中 근대화 치수의 상징 싼샤댐… 부실공사 오명에 붕괴 공포 퍼져

    中 근대화 치수의 상징 싼샤댐… 부실공사 오명에 붕괴 공포 퍼져

    세계 최대 수력발전… 최고 수위 10m 남겨만리장성 후 32조원짜리 최대 토목사업“쓰촨 지진은 저수량 390억t 압박 탓” 주장정부 ‘뒤틀린 댐 사진’ 해명에도 민심 우려 중국 남부 지역에 한 달 넘게 폭우가 쏟아져 창장 유역을 중심으로 인명·재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430여개 하천이 범람해 140명 넘게 사망했다. 이재민도 4000만명 가까이 생겨났다. 창장 수계 전역이 넘쳐 4150명이 숨지고 2억명 넘는 수재민이 발생한 1998년 대홍수 참사가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특히 창장에 위치한 세계 최대 수력발전소인 싼샤댐의 수위가 한계치에 다다랐다는 뉴스가 연일 타전돼 중국인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지난 19일 오전 현재 싼샤댐의 수위는 164m로 홍수 통제 수위인 145m를 20m 가까이 넘겼다. 최고 수위인 175m도 불과 10m 남겨 둔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곧 싼샤댐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된다. 전 세계 언론들이 갑론을박 중인 ‘싼샤댐의 미스터리’를 살펴봤다. ●양쯔강 치수는 역대 중국 지도자들의 꿈 20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우리에게 ‘양쯔강’으로 잘 알려진 창장은 중국 대륙 중앙부를 관통하는 하천이다. 아마존강(7062㎞)과 나일강(6690㎞)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 아시아에서는 가장 길다.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해 쓰촨성 청두와 충칭, 후베이성 우한 등을 지나 장쑤성 난징, 상하이 등 19개 성시를 두루 거친다. 창장은 아시아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적 상징으로 쓰인다. 큰 하천을 뜻하는 ‘강’(江)이라는 일반명사는 원래 창장을 가리키던 고유명사였다. 소설 ‘삼국지연의’ 등에서 볼 수 있는 ‘강남’(江南)이나 ‘강동’(江東) 등도 이 강이 기준인 지명이다. 음력 5월 5일인 단오는 초나라 재상 굴원(기원전 BC 343~277)이 나라를 걱정하다가 창장에 몸을 던진 날을 기리는 행사다. 창장은 거대한 규모 때문에 크고 작은 범람이 끊이지 않는다. 이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은 중국 역대 지도자들의 핵심 과제였다. 쑨원(1866~1925)은 창장을 관리해 홍수를 예방하고 전기를 생산하는 것을 ‘치수’(治水)의 실현이자 조국 근대화의 상징으로 봤다. 1919년 출간한 ‘건국방략’을 통해 이 강에 댐을 짓자고 처음 제안했다. 1932년 중국 국민당 정부 수반이던 장제스(1887~1975)도 쑨원의 주장을 받아들여 댐 건설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했다. 마오쩌둥(1893~1976) 역시 이 사업을 지원했지만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으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싼샤댐 건설 사업이 구체화된 것은 1980년대 덩샤오핑(1904~1997)이 관심을 두면서부터다. 개혁개방이 시작돼 중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하자 많은 양의 전기가 필요했다.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는 환경오염 문제로 반발이 많았다. 상대적으로 수력발전소가 정치적인 부담이 적었다. ●세계 최대 규모 때문에 늘 구설 올라 결국 1992년 리펑 당시 국무원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창장 상류인 후베이성 이창의 협곡을 이어 싼샤댐을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공산당 내에서도 건설 능력에 대한 회의론과 환경 파괴, 문화재 수몰 등을 두고 논쟁이 거셌다. 표결 결과 대의원 2608명 가운데 3분의1에 가까운 841명이 반대·기권표를 던졌다. 지금까지도 전인대 역사상 찬성률이 가장 낮은 결정으로 남아 있다. 우여곡절 끝에 1994년 12월 착공식을 가졌다. 댐이 최종 완성된 것은 2009년으로 공사를 시작한 지 15년 만이었다. 싼샤댐은 높이 185m, 길이 2.3 ㎞로 세계 최대 규모다. 저수량은 약 390억t으로 우리나라 소양호의 14배다. 발전기 설비용량도 2250만㎾로 일반적인 원자로 출력의 20배가 넘는다. 워낙 거대한 공사였기에 ‘만리장성 이래 최대 토목공사’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이 댐은 건설 계획안이 공론화된 뒤로 붕괴 우려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사고가 나면 초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댐이 무너져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배후지인 이창에서만 50만명이 희생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한과 광저우, 난징, 상하이에도 큰 피해를 줘 4억명 이상의 이재민이 나올 것으로 추산된다. 대도시 주민들은 교통 체증 때문에 피난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중국이 전쟁을 일으키면 적국이 가장 먼저 싼샤댐을 공격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중국 정부는 부인하지만 댐이 가둬 놓은 엄청난 양의 물이 쓰촨성의 지반을 압박해 대규모 지진의 원인이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1975년 반차오댐 붕괴로 수십만명 사망 지난해 7월 싼샤댐이 전반적으로 휘어진 것처럼 보이는 구글 위성사진이 공개돼 중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중국 매체들은 “위성사진이 보정되지 않아 나타난 단순 해프닝”이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과연 싼샤댐은 붕괴될 가능성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까지 나타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 의혹과 외신 보도는 댐이 부실하다는 주장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되지 못한다. 여러 전문가들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이상 징후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중국 정부도 싼샤댐의 상징성을 감안해 다른 댐보다 더욱 철저히 관리한다. 그럼에도 상당수 중국인들은 싼샤댐이 붕괴될 수 있다고 여긴다. 왜 그럴까. 중국에서는 1975년 8월 태풍 ‘니나’로 동부 허난성의 반차오댐이 허물어져 하루 만에 17만명 넘게 사망한 경험이 있다. 이때 중국인에게는 ‘언제고 댐이 무너질 수 있다’는 트라우마(정신적 충격)가 생겨났다. 중국 토건업계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붕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과 비슷하다. 최근 중국 온라인에서 중국건축과학연구원 황샤오쿤 연구원 명의로 “마지막으로 한 번 말한다. (싼샤댐이 있는) 이창 아래 지역은 달아나라”는 SNS 글이 널리 퍼진 것이 이같은 불안에 기름을 부었다. 중국 언론들이 “해당 글은 내가 쓴 게 아니다”라는 황 연구원의 해명을 전했지만 우려를 말끔히 지우지는 못했다. 중국 언론사들이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는 사실을 주민들도 잘 알기에 이들의 해명 보도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아서다. 싼샤댐이 ‘부실공사와 비리의 온상’이 된 이력도 한몫한다. 이 댐은 공사를 시작할 때 책정한 예산의 두 배 이상인 1800억 위안(약 32조원)이 투입됐다. 요즘 말로 ‘돈 먹는 하마’였다. 대만 등 중화권 매체들은 “싼샤댐 공정에 투자된 공사비 가운데 외국에서 부실 자재를 수입해 사용하는 수법 등으로 6분의1 정도가 빼돌려졌다”고 지적한다. 댐 건설을 제안한 리 전 총리의 측근과 친인척이 조직적으로 관여했다는 의혹은 더이상 비밀도 아니다. 그는 2003년 출간한 ‘싼샤일기’에서 “싼샤댐 프로젝트에 대한 중대한 결정은 모두 장쩌민이 내렸다”고 밝혔다. 책을 집필할 때 중국 최고지도자였던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을 사실상 부실공사 책임자로 지목해 자신에 대한 비리 수사를 원천 차단하려는 ‘물귀신 작전’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댐 준공식에 중국 지도부 불참 2006년 5월 싼샤댐 마무리 공사를 앞두고 열린 준공식에 후진타오 당시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가 불참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이렇게 거대한 토목공사를 마무리하고도 국가 지도자들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당시 서구 매체들은 “그들이 총체적 부실 덩어리였던 싼샤댐 프로젝트를 승인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싶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했다. 수리학자인 황완리(1937~2001) 전 칭화대 교수의 이야기도 자주 오르내린다. 싼샤댐 건설을 반대하다가 중국 정부로부터 배제된 황 교수는 임종 직전까지도 “싼샤댐은 절대 안 된다”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는 싼샤댐에 대해 12가지를 경고했다. 하류 제방 붕괴와 수질 악화, 이상기후 초래, 지진 빈발, 생태계 악화 등이다. 이 가운에 11가지가 적중하고 하나만 실현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바로 ‘댐 붕괴’다. 이렇게 중국 건설업계의 부실 공사와 비리 의혹, 언론 통제, 중국 지도부의 미온적 태도 등이 맞물려 멀쩡한 댐이 큰 비만 오면 언제라도 무너질 것 같은 ‘위험 구조물’로 각인된 것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시속 90만㎞로 우리 은하 이동하는 별, 원인 찾았다

    시속 90만㎞로 우리 은하 이동하는 별, 원인 찾았다

    별들은 모두 고유 방향으로 이동하지만, 그중에는 시속 몇만㎞에서 몇십만㎞에 달하는 고속으로 이동하는 것도 있다. 5년 전인 2015년 발견된 한 백색왜성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완전 새로운 유형의 초신성 폭발 때문에 고속으로 이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론이 제시됐다. 지구에서 용자리 방향으로 약 1430광년 거리에 있는 이 백색왜성은 질량이 태양의 약 40% 수준으로 우리 은하를 시속 90만여㎞(초속 250여㎞)의 고속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영국 워릭대의 보리스 겐지케 물리학과 교수가 이끄는 국제연구진은 이른바 ‘독스’(Dox)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 백색왜성이 부분적인 초신성 폭발을 일으켜 쌍성계에서 튕겨나와 고속으로 이동하게 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 태양과 같은 항성이 적색거성을 거쳐 진화한 모습으로 알려진 대부분의 백색왜성은 주로 수소와 헬륨으로 이뤄진 대기를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독스의 대기에는 수소와 헬륨은 보이지 않고 산소(99%)가 대부분이고 나머지는 네온과 마그네슘 그리고 실리콘이 섞인 대기라는 것이 이전 연구로 알려졌었다. 이에 따라 이번 연구에서는 허블 우주망원경의 관측 자료를 기초로 독스의 대기 화학 조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앞서 나온 원소들 외에도 탄소와 나트륨 그리고 알루미늄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철과 니켈, 크롬 그리고 망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이들 연구자는 독스가 원래 쌍성계를 이루고 있었고 Ia형 초신성으로 대표되는 핵연소형 초신성 폭발을 일으켰지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그 폭발은 부분적인 것(규소 연소 과정까지 진행되지 않았다)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핵연소에 따라 질량의 대부분이 급격하게 없어짐으로써 쌍성계의 균형이 무너진 결과, 독스가 고속으로 튕겨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겐지케 박사는 “이는 아마 지금까지 관측된 적이 없는 유형의 초신성 폭발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Ia형 초신성의 잔광은 니켈의 방사성 동위원소(니켈56)의 방사성 붕괴가 근원이지만, 독스가 일으킨 폭발에서는 니켈56이 소량밖에 생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여 같은 폭발은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겐지케 박사는 “우리 은하에서 초신성 폭발로 살아남은 천체를 관측하는 것은 다른 은하에서 관측되는 수많은 초신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영국왕립천문학회 월간보고’(MNRAS) 최신호(7월 20일자)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32시간 교도소 머물며 두 사형수 집행 지켜본 기자의 르포

    32시간 교도소 머물며 두 사형수 집행 지켜본 기자의 르포

    “여러분은 지금 무고한 남자를 죽이는 겁니다.” 17년 만에 미국 연방정부 차원의 사형 집행으로 세상을 떠난 대니얼 루이스 리가 독극물 주사를 맞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라고 AP 통신의 마이클 발사모 기자가 19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발사모 기자는 지난 14일 인디애나주 테러호트 연방교도소에서 리가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리는 1996년 아칸소주의 총기상 부부와 여덟 살 딸을 납치해 고문하고 살해한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다. 발사모 기자는 리와 같은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사형수 웨슬리 이라 퍼키의 집행 과정도 지켜봐 두 사형수의 마지막 모습을 모두 지켜보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다음은 그의 르포 요지다. 며칠 동안 리의 집행 여부는 법원들을 오가며 엎치락뒤치락했다. 전날 13일에도 기다림은 이어졌다. 대법원의 마지막 결정이 내려지는 동안 다른 기자들과 함께 난 예전에 볼링장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교도소 직원들의 운동 시설로 쓰이는 건물에 들어가 있었다. 중무장 간수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푸른색 의료 마스크를 쓴 채였다. 신원 확인이 끝난 뒤 우리는 두 대의 흰색 밴 승합차에 태워져 짧은 거리를 이동한 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 어느 건물에 들어갔다. N95 마스크에 얼굴가리개, 장갑, 종이가운 등으로 완벽하게 두른 교도소 직원이 공항 검색 때나 보던 비눗방울이 올라오는 스크린을 거치도록 했다. 내 안경까지 가져가 엑스레이 투시를 했다. 그러고도 한참 기다렸다. 간부들은 우리에게 점심이나 먹으라고 해 먹었다. 다시 기다렸다. 자정이 돼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 호텔로 돌아갔다. 새벽 2시 10분쯤 대법원이 집행해도 좋다고 판결했다. 1분 가량 지난 뒤 교도 책임자는 전화를 걸어 새벽 4시 15분에 집행할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다시 교도소로 갔다. 밴 속의 시계가 4시 16분이 된 것을 보고 차에서 내려 처형장으로 향했다. 리는 먼저 도착해 바퀴가 달린 들것에 묶여 있었다. 우리는 작은 관찰 방에 들어갔다. 창문을 바라보고 플라스틱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노트패드, 펜, 작은 손소독제 병, 의자마다 소독용 헝겁이 놓여 있었다. 교도관이 커다란 철제 문을 닫자 굉음이 방에 울려퍼졌다. 그렇게 우리는 갇혔다. 커튼이 쳐졌지만 벽 건너 쪽에서 들리는 소음들을 들을 수 있었다. 아마 곧 처형당할 그이도 우리가 내는 소리를 듣고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모두 불편해 했다. 한 기자는 내게 몸을 기울이며 노트패드에 “법적 이슈가 있어?”라고 적었고, 난 “그런 것 같지”라고 답했다. 그 방에는 시계도 없어 우리가 얼마나 거기 있는지 잴 수도 없었다. 누군가 지금 몇 시인지 아는 사람 있느냐고 물었다. 교도관이 새벽 6시 10분이라고 일러줬다. 모두 깜짝 놀랐다는 듯 침을 삼켰다. 7시 46분이 되자 커튼이 서서히 열렸다. 그때까지 우리 기자들과 루이스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4시간 가까이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어깨를 늘어뜨린 채 묶여 있었고 밝은 푸른 빛 시트로 몸의 대부분을 덮은 채였다. 한 기자가 더 잘 보겠다고 몸을 움직이는 바람에 난 화가 났다. 리와 함께 있던 연방 보안관이 녹색 벽에 기대어 검정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여기는 처형장 안에 들어와 있는 연방 보안관입니다. 더 이상 법적 걸림돌이 없는지요?”라고 물었고, 워싱턴 본부가 저쪽에서 뭐라고 답을 했다. 보안관은 듣고 난 뒤 “전 걸림돌이 없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뒤 리가 마지막 말을 똑바로 날 보면서 남겼다. 그리고 그는 머리를 뒤로 제쳤고, 약물이 빠르게 작용하는 것 같았다. 입술이 금세 푸르스름해졌다. 심장이 멈췄다. 오전 8시 7분쯤 사망이 선고됐다. 난 컴퓨터를 열어 기사를 마지막으로 다듬었다. 그때까지도 내가 방금 한 남자가 죽는 것을 봤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난 그가 마지막으로 본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여러 해 사건 기자로 일했지만 이건 완전 달랐다. 무슨 치료를 받는 것 같았고, 그저 누군가 잠에 빠져드는 것을 지켜본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감상에 젖을 겨를이 없었다. 다음날 사형수 퍼키의 처형이 예정돼 있어서였다. 그는 캔자스주의 이웃 동네 16세 소녀를 납치, 강간하고 80세 노인을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마찬가지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훈련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였는데 저녁이 지나고 밤 10시가 됐다. 교도국은 우리에게 피너츠 칩을 제공했다. 이번에는 호텔로 돌아가지 말고 계속 교도소에 있는 게 낫게다고 했다. 자정이 되기 전 한번 더 음식이 나왔다. 16일 새벽 2시 45분에 전자제품을 모두 내놓고 밴에 타라고 했다. 이번에는 처형장 바로 앞에 차를 갖다댔다. 5시간을 기다렸다. 자리에서 난 깜박 잠이 들 정도로 힘들어 했다. 아침 7시 55분쯤 퍼키의 마지막 법적 다툼이 끝나 관찰 방의 커튼이 열렸다. 우리는 다시 유리 건너 처형장 안을 멀거니 바라봤다. 같은 간부들이 퍼키 옆에 서 있었다. 팔에 검정 가리개를 덮은 그는 자신이 살해한 10대 소녀의 유족과 자신의 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런 소독식 살인(사형을 의미하는 듯함)으로는 어떤 목적도 진짜 이루는 게 없다”며 “고맙다”고 말했다. 난 퍼키의 영적 조언자로 참관한 불교 스님을 힐끗 쳐다봤다. 그는 코로나19를 확산시킬지 모른다며 교도국에 처형 중단 소송을 걸었던 인물이다. 얼굴 가리개 아래 마스크를 쓰고 염불을 외고 있었던 것 같다. 난 그가 바이러스에 걸릴까봐 두려워하는지 궁금했고, 나 역시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궁금해졌다. 몇분 뒤 퍼키가 사망했다는 판정이 내려졌고 커튼이 다시 쳐졌다. 난 32시간 이상을 한 교도소에서 보냈다. 그리고 두 남자가 목숨을 거두는 것을 이렇게 지켜봤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맞춤형 지속가능발전?/안소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열린세상] 맞춤형 지속가능발전?/안소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이 된 지속가능성에는 약지속성(weak sustainability)으로부터 강지속성(strong sustainability)에 이르는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약지속성의 의사결정 기준은 효율성이며, 효율성은 경제이론으로 접근하는 것이 적절하다. 약지속성을 규정하는 내용으로는 합리적 개인에 근거한 시장분석, 자연자본과 인공자본 간 대체가능성, 기술발전에 대한 낙관론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강지속성의 의사결정 기준은 환경윤리에 근거한 제약조건이다. 대표적으로 환경의 건강성을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기준 내지는 임계치 등을 들 수 있다. 강지속성은 자연자본과 인공자본의 대체가능성을 윤리적으로 배척한다. 약지속성이 인간 중심 가치관의 극단이라면 강지속성은 환경 중심 가치관의 극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성장, 사회평등, 환경보호의 조화와 균형으로 정의되는 지속가능발전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약지속성도 강지속성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의사결정은 어느 한쪽에 극단적으로 치우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지속성에 가깝도록 정책목표를 설정할 것인지 아니면 강지속성에 가깝도록 정책목표를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무게중심은 있어야 한다. 이러한 무게중심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해결해야 할 이슈에 따라 다르다’이다. 살짝 비겁하고 무책임하게 느껴져도 어쩔 수 없다. 문제의 본질이 그러하다. 예를 하나 살펴보자. 굳이 그린뉴딜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더라도 정부는 오래전부터 훼손된 육상 및 해양생태계의 건강성 회복을 정책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다양한 생태복원사업을 추진해 왔다. 환경부의 생태하천 복원사업(1987~) 및 습지(갯벌) 복원사업(2008~), 산림청의 주요 산림 훼손지 복원사업(2016~), 환경부ㆍ국토부ㆍ산림청ㆍ지자체 협업으로 진행 중인 한반도 핵심 생태축 연결ㆍ복원사업(2019~)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생태계 건강성 회복이라는 정책목표가 계획 수립을 거쳐 사업 단계로 내려오면 원래의 색깔이 모호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환경백서(2019)에 따르면 생태하천 복원사업은 수질 개선 및 수생태계 연결, 수질 개선을 위한 자정기능, 동식물 서식처로서의 생태적 기능, 심미적 공간으로서 친수기능 향상을 세부목표로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하천으로 요약하고 있다. 최근 갯벌이 생태관광지로 부상하기 시작하면서 습지(갯벌)복원사업에는 복원지역을 생태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 주요 내용으로 포함돼 있다. 복원사업을 보전 및 현명한 이용의 성공모델로 발전시킨다는 의도이다. 제시된 정책목표와 사업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생태복원은 도구이고 인간의 이용이 최종 목적 아닌가 싶다. 조금 양보해서 생태복원을 전제로 한 인간의 이용이라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여전히 환경과 경제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느낌이다. 우리 사회는 생태복원사업을 통해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달성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생태복원과 함께 경제적, 사회적 측면도 고려하고자 하는가. 전자라면 정부부처 주도하에 그 이름에 어울리는 지속가능성을 구현할 수 있도록 정책을 이끌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강지속성에 가깝도록 생태적 건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기준 마련이 최종 목표가 돼야 한다. 후자라면 경제성장, 사회평등, 환경보호를 동일한 의사결정 수준에서 다루되, 이들 간의 상충관계가 주요 의사결정 기준이 돼야 한다. 어떤 가치에 무게중심을 둘 것인지는 다양한 이해당사자 참여를 통한 숙의과정을 전제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금 쉬어 가자. 지금은 한 걸음 물러서서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지속가능성에 대해 다시 고민할 때이다. 해결해야 할 주요 이슈별로 핵심가치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왔던 정책을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정책이슈별로 차별화된 ‘선명한’ 지속가능발전의 경로를 재설정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통일·반독재·저항… 신동엽의 수식어 깨고 싶다

    통일·반독재·저항… 신동엽의 수식어 깨고 싶다

    올해는 신동엽 시인 탄생 90주년을 맞는 해다. 독자들의 뇌리에 서사시 ‘금강’과 서정시 ‘산에 언덕에’, ‘진달래 산천’, ‘껍데기는 가라’ 등으로 남아 있는 선생의 작품 세계는 오랜 금기의 세월을 뚫고 이제 우리 시대의 최전선에 서 있다. 선생의 작품은 분단과 독재 시대에 민족과 저항의 키워드로 줄곧 소환됐고 또 그러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빚어진 인류 문명의 위기에 즈음해서 선생의 시적 사유와 실천과 형상은 어떤 대안적 지평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장남 신좌섭 서울대 의예과 교수를 통해 이러한 선생의 현재적 가치와 그 확장성을 들을 수 있었다.●토착정서의 핵심 가치, 전경인 정신 아들의 입장에서 신동엽 선생의 가장 중요한 저력이랄까 자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가난한 농민으로 태어나 스스로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토착정서랄까 농경정신을 가장 기본으로 생각하신 것이 하나고요. ‘백제’라는 멸망했으나 끊임없이 정신이 호출되는 나라가 다른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아닌 게 아니라 선생은 토착정서를 통해 동학을 비롯한 민중종교 사상을 소화해냈고, 사회주의나 아나키즘도 자기 것으로 거르고 녹여 받아들였다. 이러한 힘으로 선생은 전쟁과 독재 치하에서도 정결하고도 견고한 삶으로 일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인 김수영이 선생을 두고 한 “너무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지 않은 시인”이라는 평이 떠올랐다. 1950년대 한국 시단을 유행병처럼 휩쓴 모더니즘 열풍에서 비켜서면서 신동엽 선생은 등단작 제목처럼 ‘이야기하는 쟁기꾼’으로 훤칠하게 등장한 것이다. 1959년 신춘문예 입선작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를 두고 신동엽문학관장 김형수 시인이 “케이팝 경연대회에 판소리를 들고 나간 격”이라고 한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선생이 강조한 ‘전경인(全耕人) 정신’은 이러한 토착정서의 핵심 가치가 된다. “얼마 전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께서 생태를 이야기하려면 신동엽 시의 도가적 상상력을 읽으라고 한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만큼 아버님은 단순 기능자를 벗어나 온전하게 대지에 뿌리를 내린 정신을 강조하셨죠. 스물두 살에 쓰신 ‘엉뚱한 이론’이라는 산문에서는 두뇌 운동의 탈선과 과잉을 비판하셨는데, 문명의 맹목적 확장을 경계하신 거지요.” 선생의 사유 저변에는 초기부터 노장사상, 원시반본 정신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던 셈이다. 신 교수는 아버지의 현재적 의미를 이러한 대안적 사유 곧 ‘대지적 상상력’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심층적 원천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민족과 저항을 넘어 ‘시인 신동엽’으로 이렇게 신동엽 선생은 ‘민족시인’이라는 그간의 규정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대지, 전경인, 흙 같은 원초적 개념을 통해 아버지의 시가 새로 걸어오는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지향으로 말미암아 선생의 작품은 어떤 시인들보다 내구성과 확장성이 크게 다가온다. 그는 “아버지 앞에 붙었던 통일, 반독재, 저항이라는 호칭이 한 시대의 요청에 의해 주어졌다”면서 이제 수식어가 달라질 때가 온 것 같다고 했다. ‘산문시’나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등을 읽어 보면 신동엽 시인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광범위한 스펙트럼은 사유 체계에서만이 아니라 장르 선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다양한 장르를 통한 실험정신이 선생을 폭넓은 ‘시인 신동엽’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신 교수는 “해방 직후에 가난한 민중들에게 깨달음을 주려면 시와 음악과 무용 같은 종합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고 떠올렸다. 기타를 끼고 살았고, 노래도 잘 불렀던 아버지는 오페레타 ‘석가탑’,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 같은 동시대 누구도 꿈꾸지 못한 양식들을 남겼다. 선생은 서정시, 서사시, 장시, 산문시, 오페레타, 시극, 연극, 방송대본 등에 모두 진력했다. ‘금강’을 술회하는 인터뷰에서는 교향시극 쓰듯이 썼다고 토로했고, 타계 직전에는 서사시 ‘임진강’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이 완성됐다면 한국문학은 빼어난 분단 서사시 하나를 더 간직하게 됐을 것이다. 이제 신동엽 시인의 텍스트는 시전집과 산문전집, 그리고 몇 종의 평전으로 완미하게 정리된 듯하다. 하지만 아들로서는 미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더 방대하고 정치한 자료를 망라한 본격 평전이 나와야 합니다. 쓰는 시절의 한계가 있을 수 있고, 자료의 한계도 있었을 겁니다. 약전(略傳)을 넘어 보완된 자료를 텍스트로 한, 그때는 안 보이던 것을 담은 평전이 나오길 고대합니다.”●외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의 트라이앵글 신 교수의 할아버지는 경북 분이었는데 부여로 흘러들어와 극진한 사랑과 전적인 신뢰로 외아들 신동엽의 큰 힘이 돼 주었다. 그 사랑과 신뢰는 신동엽의 인생 갈피마다 회복과 의지의 원천이 됐을 것이다. 1990년에 돌아가셨으니 아들이 떠난 후 21년을 더 부여를 지키신 것이다. 신 교수의 외할아버지는 사회주의에 바탕을 두고 이론을 전개했던 농업경제학자 인정식 선생이다. 일제강점기 말에 전향을 했고, 해방 후에는 북으로 가셨다. 남쪽에 남겨진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이때부터 힘겨운 생을 사셨다. “어머니를 매개로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연결되는 것을 느껴요. 외할아버지 전집을 읽으면 사라져 가는 농촌문화를 안타까워하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아버지의 생태학적 견지와 어머니의 짚풀문화가 연결되면서, 세 분이 아스라하게 연결되는 것을 느낍니다.” 신 교수의 어머니 인병선 여사는 ‘짚풀문화’에 애정을 가지고 전국을 다니면서 실물적 자료들에 대한 섭렵과 고증과 수집을 마다하지 않았다. 짚풀문화와 관련한 자료 연구로 짚풀문화가로서 입지를 세우기도 했다. 1993년에 개관한 짚풀생활사박물관이 바로 그 결실이다. “그것들은 빨리 삭아 오래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진이나 녹화로 다 기록해 세월이 흘러도 재현할 수 있도록 만드셨어요. 이제 박물관장도 제가 맡았어요. 저희 가계(家系)가 모두 제게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오랜 생애의 빛과 빚을 품은 ‘시인 신좌섭’ 신 교수는 서울대 의예과에 입학한 1978년, 의사라는 안정된 비전을 던지고 10년간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군대를 포함해 13년간 바깥에서 내면을 다지고 돌아왔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사회에 기여하는 의사를 양성할 수 있을까에 최선의 관심을 두고 있다. “제가 주로 하는 일은 가르치는 일과, 숙의민주주의에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을 결합하는 일입니다.” 퍼실리테이션은 사람들 사이에 소통과 협력이 활발하게 일어나 합의에 도달하도록 하는 행위를 말한다. 신 교수는 이러한 범주가 부모님의 생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때 우리는 아버지라는 거대한 산그늘에서 벗어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짐을 지고 그것을 완성해 가는 ‘숙의민주주의자 신좌섭’의 모습에 가닿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전경인’ 정신의 현대적 실현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에게 이처럼 오랜 생애의 빛이자 빚으로 우뚝하시다. 신 교수는 생애에서 두 번의 큰 고통을 겪는다. 2014년에 겪은 참척의 슬픔과 최근에 겪은 병고가 그것이다. 그 과정에서 2017년에 첫 시집을 냈고, 작년에는 아버지 50주기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제부터는 차분하게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 일은 시작(詩作), 아버지와 어머니의 남겨진 일들, 퍼실리테이터로서의 활동일 것이다. 신 교수는 몇 번이고 ‘차분하게’라는 말을 반복했다. 신동엽 선생과 자신의 작품 중 애착이 가는 시편을 들려 달라는 부탁에 신 교수는 아버지의 ‘좋은 언어’와 그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인 자신의 ‘좋은 언어를 주소서’를 조심스럽게 건넨다. 1970년 유고로 발표된 ‘좋은 언어’는 “때는 와요/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이야기할 때”라면서 언어 과잉의 세계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좋은 언어를 주소서’는 시집 ‘네 이름을 지운다’ 마지막에 배치한 작품으로서 “이승엔 더 이상/아름다움을 담을 그릇이 없나니”라면서 아버지에 대한 경모(敬慕)를 숨기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의 작품은 이상적인 새로운 세상에 관해 암시를 주는 작품이어서 정말 아끼고 있다”고 했다. 인병선 여사의 “그의 시는 지금도 살아 있는 생명체로 우리 속에서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 아들에게도 그대로 해당했던 것이다. 신동엽 시인의 ‘전경인’ 정신을, 아들의 웅숭깊은 사유를 통해 새로 만날 수 있었던 한여름 어느 날이었다. 한양대 교수·문학평론가 [용어 클릭] ■전경인(全耕人) 정신은 ‘온전히 토지에 발을 붙이고 사는 존재’라는 뜻으로, 서구사상이나 외래문명에 대응해 온 신동엽 시인의 철학 사상을 뜻한다.
  • 통일·반독재·저항… 신동엽의 수식어 깨고 싶다

    통일·반독재·저항… 신동엽의 수식어 깨고 싶다

    올해는 신동엽 시인 탄생 90주년을 맞는 해다. 독자들의 뇌리에 서사시 ‘금강’과 서정시 ‘산에 언덕에’, ‘진달래 산천’, ‘껍데기는 가라’ 등으로 남아 있는 선생의 작품 세계는 오랜 금기의 세월을 뚫고 이제 우리 시대의 최전선에 서 있다. 선생의 작품은 분단과 독재 시대에 민족과 저항의 키워드로 줄곧 소환됐고 또 그러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빚어진 인류 문명의 위기에 즈음해서 선생의 시적 사유와 실천과 형상은 어떤 대안적 지평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장남 신좌섭 서울대 의예과 교수를 통해 이러한 선생의 현재적 가치와 그 확장성을 들을 수 있었다.●외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의 트라이앵글 신 교수의 할아버지는 경북 분이었는데 부여로 흘러들어와 극진한 사랑과 전적인 신뢰로 외아들 신동엽의 큰 힘이 돼 주었다. 그 사랑과 신뢰는 신동엽의 인생 갈피마다 회복과 의지의 원천이 됐을 것이다. 1990년에 돌아가셨으니 아들이 떠난 후 21년을 더 부여를 지키신 것이다. 신 교수의 외할아버지는 사회주의에 바탕을 두고 이론을 전개했던 농업경제학자 인정식 선생이다. 일제강점기 말에 전향을 했고, 해방 후에는 북으로 가셨다. 남쪽에 남겨진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이때부터 힘겨운 생을 사셨다. “어머니를 매개로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연결되는 것을 느껴요. 외할아버지 전집을 읽으면 사라져 가는 농촌문화를 안타까워하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아버지의 생태학적 견지와 어머니의 짚풀문화가 연결되면서, 세 분이 아스라하게 연결되는 것을 느낍니다.” 신 교수의 어머니 인병선 여사는 ‘짚풀문화’에 애정을 가지고 전국을 다니면서 실물적 자료들에 대한 섭렵과 고증과 수집을 마다하지 않았다. 짚풀문화와 관련한 자료 연구로 짚풀문화가로서 입지를 세우기도 했다. 1993년에 개관한 짚풀생활사박물관이 바로 그 결실이다. “그것들은 빨리 삭아 오래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진이나 녹화로 다 기록해 세월이 흘러도 재현할 수 있도록 만드셨어요. 이제 박물관장도 제가 맡았어요. 저희 가계(家系)가 모두 제게로 흘러 들어왔습니다.”●오랜 생애의 빛과 빚을 품은 ‘시인 신좌섭’ 신 교수는 서울대 의예과에 입학한 1978년, 의사라는 안정된 비전을 던지고 10년간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군대를 포함해 13년간 바깥에서 내면을 다지고 돌아왔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사회에 기여하는 의사를 양성할 수 있을까에 최선의 관심을 두고 있다. “제가 주로 하는 일은 가르치는 일과, 숙의민주주의에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을 결합하는 일입니다.” 퍼실리테이션은 사람들 사이에 소통과 협력이 활발하게 일어나 합의에 도달하도록 하는 행위를 말한다. 신 교수는 이러한 범주가 부모님의 생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때 우리는 아버지라는 거대한 산그늘에서 벗어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짐을 지고 그것을 완성해 가는 ‘숙의민주주의자 신좌섭’의 모습에 가닿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전경인’ 정신의 현대적 실현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에게 이처럼 오랜 생애의 빛이자 빚으로 우뚝하시다. 신 교수는 생애에서 두 번의 큰 고통을 겪는다. 2014년에 겪은 참척의 슬픔과 최근에 겪은 병고가 그것이다. 그 과정에서 2017년에 첫 시집을 냈고, 작년에는 아버지 50주기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제부터는 차분하게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 일은 시작(詩作), 아버지와 어머니의 남겨진 일들, 퍼실리테이터로서의 활동일 것이다. 신 교수는 몇 번이고 ‘차분하게’라는 말을 반복했다. 신동엽 선생과 자신의 작품 중 애착이 가는 시편을 들려 달라는 부탁에 신 교수는 아버지의 ‘좋은 언어’와 그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인 자신의 ‘좋은 언어를 주소서’를 조심스럽게 건넨다. 1970년 유고로 발표된 ‘좋은 언어’는 “때는 와요/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이야기할 때”라면서 언어 과잉의 세계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좋은 언어를 주소서’는 시집 ‘네 이름을 지운다’ 마지막에 배치한 작품으로서 “이승엔 더 이상/아름다움을 담을 그릇이 없나니”라면서 아버지에 대한 경모(敬慕)를 숨기지 않는다. 그는 “어버지의 작품은 이상적인 새로운 세상에 관해 암시를 주는 작품이어서 정말 아끼고 있다”고 했다. 인병선 여사의 “그의 시는 지금도 살아 있는 생명체로 우리 속에서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 아들에게도 그대로 해당했던 것이다. 신동엽 시인의 ‘전경인’ 정신을, 아들의 웅숭깊은 사유를 통해 새로 만날 수 있었던 한여름 어느 날이었다. 한양대 교수·문학평론가 ●토착정서의 핵심 가치, 전경인 정신 아들의 입장에서 신동엽 선생의 가장 중요한 저력이랄까 자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가난한 농민으로 태어나 스스로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토착정서랄까 농경정신을 가장 기본으로 생각하신 것이 하나고요. ‘백제’라는 멸망했으나 끊임없이 정신이 호출되는 나라가 다른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아닌 게 아니라 선생은 토착정서를 통해 동학을 비롯한 민중종교 사상을 소화해냈고, 사회주의나 아나키즘도 자기 것으로 거르고 녹여 받아들였다. 이러한 힘으로 선생은 전쟁과 독재 치하에서도 정결하고도 견고한 삶으로 일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인 김수영이 선생을 두고 한 “너무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지 않은 시인”이라는 평이 떠올랐다. 1950년대 한국 시단을 유행병처럼 휩쓴 모더니즘 열풍에서 비켜서면서 신동엽 선생은 등단작 제목처럼 ‘이야기하는 쟁기꾼’으로 훤칠하게 등장한 것이다. 1959년 신춘문예 입선작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를 두고 신동엽문학관장 김형수 시인이 “케이팝 경연대회에 판소리를 들고 나간 격”이라고 한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선생이 강조한 ‘전경인(全耕人) 정신’은 이러한 토착정서의 핵심 가치가 된다. “얼마 전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께서 생태를 이야기하려면 신동엽 시의 도가적 상상력을 읽으라고 한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만큼 아버님은 단순 기능자를 벗어나 온전하게 대지에 뿌리를 내린 정신을 강조하셨죠. 스물두 살에 쓰신 ‘엉뚱한 이론’이라는 산문에서는 두뇌 운동의 탈선과 과잉을 비판하셨는데, 문명의 맹목적 확장을 경계하신 거지요.” 선생의 사유 저변에는 초기부터 노장사상, 원시반본 정신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던 셈이다. 신 교수는 아버지의 현재적 의미를 이러한 대안적 사유 곧 ‘대지적 상상력’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심층적 원천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족과 저항을 넘어 ‘시인 신동엽’으로 이렇게 신동엽 선생은 ‘민족시인’이라는 그간의 규정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대지, 전경인, 흙 같은 원초적 개념을 통해 아버지의 시가 새로 걸어오는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지향으로 말미암아 선생의 작품은 어떤 시인들보다 내구성과 확장성이 크게 다가온다. 그는 “아버지 앞에 붙었던 통일, 반독재, 저항이라는 호칭이 한 시대의 요청에 의해 주어졌다”면서 이제 수식어가 달라질 때가 온 것 같다고 했다. ‘산문시’나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등을 읽어 보면 신동엽 시인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광범위한 스펙트럼은 사유 체계에서만이 아니라 장르 선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다양한 장르를 통한 실험정신이 선생을 폭넓은 ‘시인 신동엽’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신 교수는 “해방 직후에 가난한 민중들에게 깨달음을 주려면 시와 음악과 무용 같은 종합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고 떠올렸다. 기타를 끼고 살았고, 노래도 잘 불렀던 아버지는 오페레타 ‘석가탑’,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 같은 동시대 누구도 꿈꾸지 못한 양식들을 남겼다. 선생은 서정시, 서사시, 장시, 산문시, 오페레타, 시극, 연극, 방송대본 등에 모두 진력했다. ‘금강’을 술회하는 인터뷰에서는 교향시극 쓰듯이 썼다고 토로했고, 타계 직전에는 서사시 ‘임진강’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이 완성됐다면 한국문학은 빼어난 분단 서사시 하나를 더 간직하게 됐을 것이다. 이제 신동엽 시인의 텍스트는 시전집과 산문전집, 그리고 몇 종의 평전으로 완미하게 정리된 듯하다. 하지만 아들로서는 미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더 방대하고 정치한 자료를 망라한 본격 평전이 나와야 합니다. 쓰는 시절의 한계가 있을 수 있고, 자료의 한계도 있었을 겁니다. 약전(略傳)을 넘어 보완된 자료를 텍스트로 한, 그때는 안 보이던 것을 담은 평전이 나오길 고대합니다.” 한양대 교수·문학평론가
  • “미래 기술 선점하라” G2 메가시티 ‘열전’

    “미래 기술 선점하라” G2 메가시티 ‘열전’

    최근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으로 촉발된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홍콩에 대한 특별대우를 끝내는 행정명령과 홍콩보안법 관련자들과 거래하는 은행을 제재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무역전쟁에서 시작된 갈등에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 대만 독립 문제까지 더해져 이제 양국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양국이 ‘신냉전’에 돌입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두 나라의 혁신을 주도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와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는 미래 기술을 선점하고자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미 두 도시는 오래전부터 ‘열전’에 돌입했다. 전 세계를 이끄는 두 메가시티의 현황을 살펴봤다.■혁신 테스트베드 된 美 샌프란시스코 ‘나스닥지수 1만 돌파를 이끈 시가총액 1조 달러(약 1220조원) 클럽 4곳의 본거지’ ‘공유경제부터 인공지능(AI), 자율주행까지 미래산업의 요람’.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미국 서부의 메가시티 샌프란시스코를 수식하는 매력적인 키워드들이다. 알다시피 샌프란시스코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혁신 테스트베드(시험장)다. 도시 곳곳을 누비는 자율주행 차량이나 배달용 무인 로봇이 여기서는 낯선 모습이 아니다.캘리포니아의 건조한 기후와 사막 지역의 저렴한 지대(地代), 스탠퍼드·버클리 등이 배출하는 우수한 인재가 결합해 반도체 산업이 꽃핀 실리콘밸리가 전 세계 정보기술(IT)의 메카로 떠오른 건 1970년대다. 애플과 인텔의 성공신화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두뇌와 자본을 잘 버무리는 샌프란시스코의 창업 시스템은 이스라엘과 핀란드, 아일랜드, 한국 등이 꾸준히 벤치마킹하는 모델이다. 그러나 이곳의 창의성과 파급력은 어느 국가나 도시도 따라오지 못한다. 샌프란시스코의 4차 산업혁명 역량은 미국을 거세게 추격하는 중국을 압도할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실리콘밸리는 1990년대 ‘닷컴 열풍’으로 넷스케이프와 야후, 시스코시스템 등 인터넷 관련 기업들이 대거 쏟아져 소프트웨어(SW) 스타트업들의 성지가 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기술주 거품이 꺼지고 나스닥 지수도 폭락해 일각에서는 “실리콘밸리는 운명이 다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도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실리콘밸리의 실험은 이어졌다. 구글이 새로운 방식의 검색 엔진을 들고 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고 애플도 MP3플레이어 ‘아이팟’을 출시해 재기에 성공했다. 페이스북(2003)과 유튜브(2005), 트위터(2006), 우버·에어비앤비(2008)가 모두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했다. 지금 샌프란시스코는 5세대(5G) 통신망을 기반으로 공유경제와 자율주행, AI 등 전방위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성공 비결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창업 도전자가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투자 문화와 명시적으로 금지한 것 외에는 모든 것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혁신의 주도권을 시장에 맡기고 업계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는 정부의 노력이 그것이다. 덕분에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주가가 급등해 ‘표정관리’ 중이다. 비대면 기술과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폭발해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5개사의 시가총액은 올해 초 5조 230억 달러에서 지난달 말 6조 700억 달러로 20% 넘게 늘었다. 실리콘밸리의 전기차 스타트업 테슬라도 80년 역사의 도요타를 제치고 시가총액 기준 세계 1위 자동차 회사로 올라섰다. 이들 기업의 선전으로 기술주 중심 나스닥 지수도 1971년 출범 이후 49년 만에 1만선을 돌파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변화의 속도 또한 엄청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의 4대 기술주는 ‘FANG’(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이었지만 요즘은 ‘MAGA’(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애플)로 대체되는 분위기다. 우리나라에서 수십년째 ‘4대 그룹’(삼성·SK·LG·현대차) 구도가 이어지는 것과 대비된다. 이들 MAGA 기업은 모두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넘는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대륙의 4차 산업혁명 이끄는 中 선전 미국에서 샌프란시스코가 혁신을 이끈다면 중국에서는 선전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 광둥성 광저우와 홍콩 사이에 있는 선전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 30만명의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하지만 1979년 ‘개혁개방 설계사’ 덩샤오핑(1904∼1997)이 이곳을 경제특구로 지정하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홍콩과 마카오 자본으로 경공업 공장을 운영하던 선전은 2000년대부터 미국의 전자산업 하청기지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렇게 습득한 선진 기술을 토대로 최근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시대의 흐름을 이끄는 업종을 지속적으로 발굴한 덕분에 중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가 됐다. 1980년 선전의 국내총생산(GDP)은 1억 5000만 위안(당시 환율 기준)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2조 6900억 위안(약 460조원)으로 200배 가까이 늘었다. 선전의 경제 규모는 핀란드나 그리스 등 어지간한 유럽 국가보다 크다. 2018년에는 홍콩도 넘어섰다.중국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위챗’을 운영하는 텅쉰(텐센트)과 중국 1, 2위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중싱통신(ZTE), 세계 최대 드론 제조업체 다장(DJI), 세계적 투자자 워런 버핏이 지분을 인수해 유명해진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 등이 여기에 본사를 두고 있다.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 행사인 ‘국제전자제품전시회’(CES)에 참가하는 중국 업체 1300여개 가운데 절반 이상이 선전에 자리잡은 기업들이다. 지금 이곳의 대표 기업은 단연 텐센트다. 세계 최대 게임 콘텐츠 회사이자 중국 최대 SNS 회사로 코로나19 사태에도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클라우드 서비스 등 미래 산업 전 분야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클래시 오브 클랜’, ‘브롤스타즈’를 만든 게임회사 슈퍼셀(핀란드)과 세계 1위 e스포츠인 ‘리그 오브 레전드’를 개발한 라이엇게임즈(미국)가 텐센트 소유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와 국내 대표 SNS 업체 카카오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텐센트의 시가총액은 7000억 달러 정도로 알리바바와 함께 ‘글로벌 톱10’을 지키고 있다. 최근에는 정보기술(IT)을 총동원해 에너지·운송·물류 효율을 극대화한 신도시 ‘넷시티’를 건설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선전은 ‘창업 용광로’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 용산 전자상가의 20배가량 되는 화창베이 단지에는 전자제품 생산에 필요한 모든 재료와 부품이 구비돼 전 세계 스타트업들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구글과 애플도 여기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설치했다. 선전의 성공신화는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허용한다’는 중국 정부의 육성 철학과 14억 인구의 거대한 시장을 정복하려는 담대한 도전자를 키우는 중국 대기업들의 지원 문화가 만든 합작품이다. 텐센트의 도움으로 초고속 성장 중인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는 알리바바, 징둥 같은 ‘넘사벽’(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상대)을 상대로 “산에 호랑이가 있어도 우리는 산에 오른다”며 도전장을 냈다. 세계 최초로 폴더블 스마트폰을 발표한 선전의 유니콘 기업 ‘로율’ 역시 스마트폰 절대강자인 삼성전자·화웨이 앞에서 “미래를 예측하지 말고 창조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미래 기술 선점하라” G2 메가시티 ‘열전’

    “미래 기술 선점하라” G2 메가시티 ‘열전’

    최근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으로 촉발된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홍콩에 대한 특별대우를 끝내는 행정명령과 홍콩보안법 관련자들과 거래하는 은행을 제재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무역전쟁에서 시작된 갈등에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 대만 독립 문제까지 더해져 이제 양국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양국이 ‘신냉전’에 돌입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두 나라의 혁신을 주도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와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는 미래 기술을 선점하고자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미 두 도시는 오래전부터 ‘열전’에 돌입했다. 전 세계를 이끄는 두 메가시티의 현황을 살펴봤다.【 혁신 테스트베드 된 美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로 대표… 미래 산업의 요람 네거티브 규제·민간주도·패자부활 문화 구글 검색엔진·애플 아이팟… 재기 성공 AI 등 5G통신망 기반 전방위 영토확장 ‘FANG→MAGA’ 4대 기술주 변화 눈길 비대면 기술 폭발로 5개社 시총 6조 달러‘나스닥지수 1만 돌파를 이끈 시가총액 1조 달러(약 1220조원) 클럽 4곳의 본거지’ ‘공유경제부터 인공지능(AI), 자율주행까지 미래산업의 요람’.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미국 서부의 메가시티 샌프란시스코를 수식하는 매력적인 키워드들이다. 알다시피 샌프란시스코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혁신 테스트베드(시험장)다. 도시 곳곳을 누비는 자율주행 차량이나 배달용 무인 로봇이 여기서는 낯선 모습이 아니다. 캘리포니아의 건조한 기후와 사막 지역의 저렴한 지대(地代), 스탠퍼드·버클리 등이 배출하는 우수한 인재가 결합해 반도체 산업이 꽃핀 실리콘밸리가 전 세계 정보기술(IT)의 메카로 떠오른 건 1970년대다. 애플과 인텔의 성공신화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두뇌와 자본을 잘 버무리는 샌프란시스코의 창업 시스템은 이스라엘과 핀란드, 아일랜드, 한국 등이 꾸준히 벤치마킹하는 모델이다. 그러나 이곳의 창의성과 파급력은 어느 국가나 도시도 따라오지 못한다. 샌프란시스코의 4차 산업혁명 역량은 미국을 거세게 추격하는 중국을 압도할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실리콘밸리는 1990년대 ‘닷컴 열풍’으로 넷스케이프와 야후, 시스코시스템 등 인터넷 관련 기업들이 대거 쏟아져 소프트웨어(SW) 스타트업들의 성지가 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기술주 거품이 꺼지고 나스닥 지수도 폭락해 일각에서는 “실리콘밸리는 운명이 다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도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실리콘밸리의 실험은 이어졌다. 구글이 새로운 방식의 검색 엔진을 들고 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고 애플도 MP3플레이어 ‘아이팟’을 출시해 재기에 성공했다. 페이스북(2003)과 유튜브(2005), 트위터(2006), 우버·에어비앤비(2008)가 모두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했다. 지금 샌프란시스코는 5세대(5G) 통신망을 기반으로 공유경제와 자율주행, AI 등 전방위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성공 비결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창업 도전자가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투자 문화와 명시적으로 금지한 것 외에는 모든 것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혁신의 주도권을 시장에 맡기고 업계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는 정부의 노력이 그것이다. 덕분에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주가가 급등해 ‘표정관리’ 중이다. 비대면 기술과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폭발해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5개사의 시가총액은 올해 초 5조 230억 달러에서 지난달 말 6조 700억 달러로 20% 넘게 늘었다. 실리콘밸리의 전기차 스타트업 테슬라도 80년 역사의 도요타를 제치고 시가총액 기준 세계 1위 자동차 회사로 올라섰다. 이들 기업의 선전으로 기술주 중심 나스닥 지수도 1971년 출범 이후 49년 만에 1만선을 돌파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변화의 속도 또한 엄청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의 4대 기술주는 ‘FANG’(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이었지만 요즘은 ‘MAGA’(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애플)로 대체되는 분위기다. 우리나라에서 수십년째 ‘4대 그룹’(삼성·SK·LG·현대차) 구도가 이어지는 것과 대비된다. 이들 MAGA 기업은 모두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넘는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대륙의 4차 산업혁명 이끄는 中 선전】 작은 어촌마을, 경제특구 지정 후 급성장 2000년대 美 전자산업 하청기지로 두각 작년 GDP 460조원… 20년새 200배 늘어 中 IT공룡 ‘텐센트’, 넷시티 건설 포부 밝혀 구글·애플 R&D센터 등 ‘창업 용광로’ 유명 中정부 육성 철학·대기업 지원문화 ‘합작’미국에서 샌프란시스코가 혁신을 이끈다면 중국에서는 선전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 광둥성 광저우와 홍콩 사이에 있는 선전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 30만명의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하지만 1979년 ‘개혁개방 설계사’ 덩샤오핑(1904∼1997)이 이곳을 경제특구로 지정하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홍콩과 마카오 자본으로 경공업 공장을 운영하던 선전은 2000년대부터 미국의 전자산업 하청기지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렇게 습득한 선진 기술을 토대로 최근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시대의 흐름을 이끄는 업종을 지속적으로 발굴한 덕분에 중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가 됐다. 1980년 선전의 국내총생산(GDP)은 1억 5000만 위안(당시 환율 기준)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2조 6900억 위안(약 460조원)으로 200배 가까이 늘었다. 선전의 경제 규모는 핀란드나 그리스 등 어지간한 유럽 국가보다 크다. 2018년에는 홍콩도 넘어섰다. 중국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위챗’을 운영하는 텅쉰(텐센트)과 중국 1, 2위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중싱통신(ZTE), 세계 최대 드론 제조업체 다장(DJI), 세계적 투자자 워런 버핏이 지분을 인수해 유명해진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 등이 여기에 본사를 두고 있다.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 행사인 ‘국제전자제품전시회’(CES)에 참가하는 중국 업체 1300여개 가운데 절반 이상이 선전에 자리잡은 기업들이다. 지금 이곳의 대표 기업은 단연 텐센트다. 세계 최대 게임 콘텐츠 회사이자 중국 최대 SNS 회사로 코로나19 사태에도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클라우드 서비스 등 미래 산업 전 분야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앵그리 버드’를 만든 게임회사 슈퍼셀(핀란드)과 세계 1위 e스포츠인 ‘리그 오브 레전드’를 개발한 라이엇게임즈(미국)가 텐센트 소유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와 국내 대표 SNS 업체 카카오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텐센트의 시가총액은 7000억 달러 정도로 알리바바와 함께 ‘글로벌 톱10’을 지키고 있다. 최근에는 정보기술(IT)을 총동원해 에너지·운송·물류 효율을 극대화한 신도시 ‘넷시티’를 건설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선전은 ‘창업 용광로’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 용산 전자상가의 20배가량 되는 화창베이 단지에는 전자제품 생산에 필요한 모든 재료와 부품이 구비돼 전 세계 스타트업들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구글과 애플도 여기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설치했다. 선전의 성공신화는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허용한다’는 중국 정부의 육성 철학과 14억 인구의 거대한 시장을 정복하려는 담대한 도전자를 키우는 중국 대기업들의 지원 문화가 만든 합작품이다. 텐센트의 도움으로 초고속 성장 중인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는 알리바바, 징둥 같은 ‘넘사벽’(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상대)을 상대로 “산에 호랑이가 있어도 우리는 산에 오른다”며 도전장을 냈다. 세계 최초로 폴더블 스마트폰을 발표한 선전의 유니콘 기업 ‘로율’ 역시 스마트폰 절대강자인 삼성전자·화웨이 앞에서 “미래를 예측하지 말고 창조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인니 해변에 밀려온 새끼 범고래와 셀카 찍은 젊은이들 논란

    인니 해변에 밀려온 새끼 범고래와 셀카 찍은 젊은이들 논란

    최근 인도네시아의 한 해변으로 떠밀려온 새끼 범고래 한 마리에게 현지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셀카를 찍기 위해 뽀뽀하거나 껴안는 등 무분별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인터넷상에서 확산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3년 전쯤 스페인의 한 해변에서 관광객들의 같은 행동으로 새끼 돌고래가 스트레스를 받아 죽었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코코넛 자카르타 등 현지매체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우타라주(州) 볼랑몽온도우의 이노본토 마을에서 지난달 말 해변에 길이 2m가량의 새끼 범고래 한 마리가 길을 잃고 떠밀려왔다. 그날 오전 5시쯤 마을 주민들에게 처음 발견됐던 이 고래는 일단 앞바다로 되돌려 보냈지만, 그 후 다시 얕은 바다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곳에서 해수욕을 즐기던 지역 젊은이들이 새끼 범고래를 발견했고, 그곳으로 수십 명이 몰려들었다. 그때 모습을 담은 영상이 SNS를 통해 확산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이들 젊은이가 새끼 범고래를 만지거나 껴안고 또는 뽀뽀하며 셀카 사진을 반복해서 찍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영상 속 새끼 범고래는 몸 상태가 좋지 않은지 많은 사람이 접촉해도 저항도 하지 못했다. 또한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젊은 성인들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게다가 이들 젊은이는 범고래를 돌고래로 착각한 모양이다. 영상에서 분홍색 히잡을 쓴 한 여성은 새끼 범고래를 껴안고 뽀뽀하며 “안녕! 이 돌고래가 이노본토 해변에 왔다”면서 “이 돌고래는 아마 우리 마을에 축복을 가져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상을 본 현지 인도네시아인 사이에서는 이들 젊은이의 행동에 대해 “그게 무슨 어리석은 짓이냐”, “이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을 필요가 있다”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새끼 범고래는 이후 다른 주민들의 신고로 술라웨시우타라 자연자원보호국의 직원들이 현장에 나와 인계한 뒤 먼바라로 되돌려 보내졌다. 이들 직원은 해당 범고래가 그 후로 다시 해변으로 돌아오는지를 살피기 위해 야간까지도 관찰을 했는데 범고래가 돌아왔다는 보고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주도 마나도에 있는 삼라투랑이대학의 수리야 다르위시토 수산해양학부 강사는 주내에서 새끼 범고래가 해변으로 떠밀려온 사례는 이번이 처음으로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범고래가 해유의 변화나 지진으로 인해 길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 때문에 길을 찾는 감각 기관에 일시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면서 이런 현상은 범고래를 죽음으로 몰아가기 쉽다고 설명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생방송 도중 이가 빠진 여자 앵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생방송 도중 이가 빠진 여자 앵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생방송 도중 이가 빠져 몹시 당황할 법한데도 20년 경력이 있어서인지 여자 뉴스 앵커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방송이 끝난 뒤 자신의 실수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우크라이나 TSN 채널의 앵커 마리치카 파달코가 화제의 주인공. 그녀는 수치스럽다고 여길 만한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뒤 “뉴스 진행자로 20년을 살아왔는데 이건 아마도 가장 흥미로운 경험일 것 같다. 생방송의 묘미는 늘 예측할 수 없다는 데 있다”고 적었다. 동영상을 보면 파달코가 위급한 순간이 닥쳤다는 것을 깨닫고 오른손을 들어 입으로 가져간 다음 다시 내리는데 빠진 이를 받아챈 것이었다. 워낙 빠르고 표정도 바뀌지 않고 어조도 달라지지 않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오죽했으면 동료 방송인 중 한 명이 동영상에 댓글을 달았는데 “넌 매일 이가 빠진 상태에서 일한 것처럼 굴었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녀는 10년 전 딸이 자명종 시계를 갖고 놀다 놓친 것이 자신의 입에 부딪쳐 이가 부러져 간신히 붙들어 매고 있었는데 이것이 하필 생방송 도중에 빠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녀는 누구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라고 스스로도 믿었다고 밝혔다. 이어 동영상을 스스로 공개한 이유에 대해 “솔직히 이 사건이 모르는 채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해서 방송국의 유튜브 채널에도 부러 이 동영상을 올리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먼저 소셜미디어에 올려 돌아다녔다. 그런데 우리는 시청자들이 알아채는 능력을 과소평가했다”고 반성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유격수 운명 받아들인 듯” 허경민이 흐뭇한 김태형 감독

    “유격수 운명 받아들인 듯” 허경민이 흐뭇한 김태형 감독

    김태형 감독이 유격수까지 되는 허경민에 대해 “이젠 운명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며 웃었다. 허경민은 본래 3루수가 주포지션이지만 주전 유격수 김재호의 부진 및 부상으로 지난달 말부터 유격수도 소화하고 있다. 트레이드만 아니었다면 류지혁이 맡았을 자리지만 류지혁이 KIA로 팀을 옮기면서 허경민에게 임무가 떨어졌다. 허경민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유격수 경험을 갖춘 선수였던 만큼 유격수가 낯설지 않다. 실제 경기에 나서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 감독은 “경민이보다 팀에 유격수를 잘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본인이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잘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이어 “이젠 ‘내가 봐야하는구나’를 깨달은 듯하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결국 유격수로 나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받아들인 것 같다”고 웃어보였다. 김 감독은 “허경민이 걱정을 사서 하는 스타일이다. 잘하고 싶어서 그런 거겠지만 좀 더 과감하게 야구를 했으면 한다”며 조언을 남겼다. 투수진의 부진 속에 공격력과 수비력으로 순위싸움을 벌여야 하는 김 감독 입장에선 허경민이 조금 더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날 경기에서도 허경민이 주전 유격수로 선발 출전하는 가운데 허경민은 이번 시즌 0.371의 타율로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공격력은 물론 내야 수비의 핵심인 유격수까지 되다보니 팀에 알토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자유계약(FA) 자격을 얻는 허경민은 팀사정상 뜻하지 않은 포지션을 맡은 덕분에 몸값마저 끌어올리고 있다. 광주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삼성전자, 中企에 스마트공장 설비 구축… 5년간 500억 지원 ‘나눔의 선순환’

    삼성전자, 中企에 스마트공장 설비 구축… 5년간 500억 지원 ‘나눔의 선순환’

    “국민의 성원으로 성장한 삼성은 지금 같은 위기 때 마땅히 우리 사회와 나누고 함께해야 한다. 코로나19로 고통받거나 위기 극복을 위해 헌신하는 분들을 위해 미력하나마 모든 노력을 다해 달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월 코로나19 관련 지원책을 내놓을 때 임직원들에게 당부한 말이다.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삼성의 노력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현재 진행형이다. 삼성은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전 세계 법인에서 십시일반 모아온 마스크를 국내로 공급하거나, 영덕연수원을 치료센터로 내놓고 삼성의료원 의료진을 치료센터에 투입하는 등 다양한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해 왔다. 이에 더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 중소기업의 스마트공장 시설 구축에도 앞장서며 해당 기업의 생산량 증대를 지역사회 환원으로 이끌어내며 ‘나눔의 선순환’을 일으키고 있다. 폭증하는 수요에 어려움을 겪던 국내 코로나19 진단키트, 마스크 제조업체의 제조 공정을 효율적으로 개선해 생산성 향상을 가져온 것이 대표적 예다. 삼성전자는 평균 경력 25년을 자랑하는 생산설비 전문가로 이뤄진 멘토단을 각 기업에 파견해 생산 공정 개선, 효율화, 기술 지도 등을 통해 추가 투자 없이 짧은 시간에 생산량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줬다. 진단키트 업체 솔젠트는 삼성전자의 지원으로 스마트공장 시스템을 도입해 생산성이 73% 증가했다. 지난 5월부터 삼성전자 전문가 16명과 함께 40개의 개선 과제를 발굴해 개선 작업에 나선 코젠다이오텍은 생산성이 79%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보호구 제조업체 오토스윙은 이런 지원으로 고글 생산량을 한 달에 3만개에서 26만개로 8배 넘게 키울 수 있었다. 마스크 제조업체인 레스텍, 에버그린, 화진산업, E&W는 삼성 스마트공장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4개사 합계 일일 생산량이 기존 92만개에서 139만개로 51% 증가하는 효과를 봤다. 최근에는 해외 업체의 생산성 향상에도 기여했다. 폴란드 의류업체인 프탁은 지난 5월부터 폴란드 정부의 마스크 생산 프로젝트에 참여해 마스크를 처음 만들어내게 됐다. 첫 시도라 불량품도 많이 내고 효율적인 생산에 어려움을 겪던 프탁은 삼성전자 폴란드생산법인에서 온 설비·제조 전문가들 덕분에 설비 운영, 현장 관리, 품질 관리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 하루 2만 3000장을 겨우 만들어내던 프탁은 기존의 3배인 6만 9000장까지 생산량을 늘리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처럼 삼성전자는 중소기업의 역량 강화를 위해 2015년부터 추진해오던 스마트공장 사업을 2018년부터 향후 5년간 중소·중견기업에 필요한 종합지원 활동으로 발전시켜 지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중소벤처기업부와 함께 매년 각각 100억원씩 앞으로 5년간 1000억원을 조성해 2500개 중소기업에 스마트공장 설비를 구축해준다. 2018년에는 505개, 지난해에는 570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스마트공장을 완비해줬다. 이와 별도로 회사 측은 중소기업들의 판로 개척·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돕기 위해 추가로 100억원을 수혈해주고 있다. 화장지 제조업체 아이리녹스는 삼성전자의 판로 개척 프로그램에 힘입어 아마존, 이베이에 입점하는 성과를 거뒀다. 괌에 있는 슈퍼마켓 아메리카 그로서리에도 매달 2000만원가량의 제품을 납품하게 됐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잊혀진 천재’ 이창우, 버디 11개 폭주

    ‘잊혀진 천재’ 이창우, 버디 11개 폭주

    김민규 19점 2위… 김주형 컷 탈락 위기‘잊혀진 천재’ 이창우(27)가 돌아왔다. 이창우는 2013년 아마추어 초청 선수로 출전한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동부화재 프로미오픈에서 우승했다. 그해 10월 아시아·태평양 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으로 이듬해 ‘꿈의 무대’ 마스터스 토너먼트 출전권을 따내며 ‘골프 천재’로 불렸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프로 무대에 뛰어들고 이름 석 자는 빠르게 잊혀졌다. 2016년 두 차례 준우승으로 상금 랭킹 6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지난해 2부 투어로 밀려났다. 그러나 퀄리파잉스쿨을 거쳐 1년 만에 코리안투어에 복귀한 그는 올해 개막전과 지난주 군산CC오픈에서 각각 5위, 4위에 올랐다. 2개 대회 연속 ‘톱5’ 입상은 김주형(18)과 이창우 둘뿐. 16일 충남 태안 솔라고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KPGA오픈 1라운드에서는 아예 ‘부활’을 예고하고 나섰다. 매 홀 타수에 따라 점수를 얻는 ‘변형 스테이블포드’ 방식의 이 대회 첫날 그는 보기 없이 버디만 무려 11개를 터뜨려 22점을 쌓아 선두로 나섰다. 라운드를 마친 뒤 이창우는 “최근 몇 년간 골프에 대한 절박함이 없었다”면서 “자신감까지 떨어져 2부 투어도 뛰기 싫어지더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다 지난해 제네시스 챔피언십 공동 39위에 오르며 ‘다시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부진 탈출은 모두 여자친구 덕”이라는 이창우는 “아마 그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쯤 군대에 있었을 것”이라고 웃었다. 지난주 군산CC오픈 최종일 9개의 버디쇼를 펼치며 2위까지 치고 올라갔던 김민규(19)는 이창우에 3점 뒤진 2위에 올라 첫날부터 우승 경쟁에 나섰다. 유러피언프로골프(EPGA) 2~3부 투어를 주무대로 삼다 월요예선을 통과해 군산CC오픈에 출전했던 그는 이번에는 지난 대회 ‘톱5’ 입상 자격으로 출전해 보기는 2개로 막고 이글 1개와 버디 8개를 터뜨리는 맹타를 휘둘렀다. 동반플레이를 한 김주형(18)과 인터뷰에 나선 김민규는 “새 방식의 점수 계산보다 원래 스코어에 신경 썼다”면서 “주형이는 (대회가) 3주 차지만 난 2주 차여서 아직 체력에는 문제가 덜하다. 남은 사흘 동안 잘 먹고 잘 자는 게 정답”이라고 말했다. 반면 “지난 두 대회 빗속에서 연장까지 치르면서 체력을 120% 썼다. 회복 여부가 남은 사흘의 관건”이라는 김주형은 버디와 보기를 4개씩 맞바꾸며 4점을 얻는 데 그쳐 공동 84위로 컷 탈락을 걱정하게 됐다. 태안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인천상륙 지원·삯바느질로 군함 구입 앞장선 ‘6·25 영웅 부부’

    인천상륙 지원·삯바느질로 군함 구입 앞장선 ‘6·25 영웅 부부’

    부부 전쟁영웅. 아마 대한민국 전사(戰史)에 흔치 않은 사례일 겁니다. 초대 해군참모총장으로 국방장관까지 지낸 손원일(1909~1980) 제독과 부인 홍은혜(1917~2017) 여사가 바로 주인공입니다. 손 제독은 2012년 9월, 홍 여사는 지난해 8월 각각 국가보훈처가 지정하는 ‘6·25 전쟁영웅’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부부의 일생은 ‘해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에게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16일 해군에 따르면 손 제독은 1909년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2남 3녀 가운데 맏아들로 태어나 독립운동가였던 부친을 따라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부친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손정도 목사입니다. 1924년에 중국 남경 중앙대 항해과를 졸업한 그는 1927년 중국 해군의 국비유학생으로 3년간 독일에서 수학했습니다. 젊은 시절 고난도 있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일제의 감시를 받던 그는 1930년 일시 귀국했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히게 됩니다. 상해독립단체의 비밀연락원의 임무를 띠고 입국했다는 혐의로 감옥에 가두고 모진 고문을 했습니다. 엄혹한 시절 그렇게 1개월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출감 후 다시 중국으로 건너간 손 제독은 무역업에 종사하다 1945년 광복을 맞아 귀국하게 됩니다. ●1945년 국방경비대 두 달 앞서 해사대 결성 손 제독은 1945년 8월 ‘해군의 씨앗’으로 불리는 ‘해사대’를 결성했습니다. 해군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해 직접 발품을 팔며 어렵게 70명의 대원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해 11월 11일 오전 11시 서울 관훈동 표훈전에서 70명의 해사대 대원이 모여 결단식을 가진 ‘해방병단’이 바로 우리 해군의 모태입니다. 육군의 모체인 ‘국방경비대’보다 2개월 빨리 창설돼 창군의 핵심 조직이 됐습니다. 11월 11일이 해군 창립일이 된 것도 손 제독의 깊은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해군을 ‘바다의 신사’라고 여겨 ‘열 십’(十)과 ‘한 일’(一)을 합친 ‘선비 사’(士)를 뜻하는 11월 11일을 택했습니다. 1946년에는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인 ‘해군병학교’를 세웠습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초대 해군참모총장이 된 그는 이듬해 해병대를 창설, 모든 해군 조직을 외세가 아닌 우리의 손으로 만드는 신화를 썼습니다. 1949년 손 제독은 미국으로부터 전투함을 구입하기 위해 ‘함정 건조기금 갹출위원회’를 구성하고, 장병과 국민 모금운동을 벌여 어렵게 1만 5000달러의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당시 손 제독의 부인 홍 여사는 장병 부인들을 모아 삯바느질로 전투함 구입 자금을 마련하는 데 앞장섰다고 합니다. 손 제독은 정부 지원금 4만 5000달러를 합해 6·25 전쟁 직전 백두산함, 금강산함, 삼각산함, 지리산함 등 4척의 전투함을 구입, 바다를 지키게 했습니다. 그의 선견지명은 놀라운 성과로 돌아왔습니다. 백두산함은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6일 새벽, 무장병력 600여명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하던 1000t급 북한 수송선을 격침시켜 첫 승전보를 올렸습니다. 우리 군의 사기를 크게 높인 것은 물론 북한의 배후 위협 전략을 조기 차단한 값진 승전이었습니다. ●北병력 600명 태운 배 격침, 배후 위협 차단 심지어 그가 일군 해병대는 단독작전으로 1950년 8월 ‘통영상륙작전’을 감행, 적 469명을 사살하고 차량 12대를 노획하는 대전과를 거뒀습니다. 당시 미국 종군기자 마거린 히긴스로부터 “귀신도 잡을 수 있겠다”는 평가를 받아 해병대에 붙여진 별명이 ‘귀신 잡는 해병대’입니다. 동시에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직전 ‘엑스 레이’ 작전을 지시,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던 인천 지역에 잠입해 한 달 동안 북한군 해안포대의 위치와 규모 등 정보를 수집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이는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의 지휘 아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는 데 밑거름이 됩니다. 침투 부대의 활약상은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잘 녹아들어 있습니다. 손 제독은 정전협정 직전인 1953년 6월 국방부 장관에 취임한 뒤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국군묘지(현재의 국립서울현충원)와 국방대학원 설립, 군목제도 및 국내외 위탁교육제도 신설 등이 그가 남긴 유산입니다. 부부는 닮는다고 합니다. 홍 여사의 나라를 위한 헌신도 지극했습니다. 홍 여사는 6·25 전쟁 중 부상당한 해군과 해병대 병사들을 돌보는 데 노력을 다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해인 1951년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공장과 탁아소, 유치원 등을 지어 전사자 가족을 도왔고 부상병을 돕기 위한 모금활동도 펼쳤습니다.●해군사관학교 교가 등 군가 다수 작곡 홍 여사가 해군에 미친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홍 여사는 늘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군가가 없어 일본 군가에 가사를 붙여 부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독립군이나 광복군의 군가를 부르거나 찬송가를 부르는 이들도 드물게 있었지만, 당시엔 창군에 박차를 가하던 때라 이런 문제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홍 여사가 이화여자전문학교(현재의 이화여대) 작곡과에서 수학한 경험을 살려 손 제독이 쓴 가사에 곡을 붙여 한국 최초의 군가 ‘해방 행진곡’을 탄생시켰습니다. 1946년 1월 해방병단이 미 군정청으로부터 정식 군사단체로 승인을 받던 때, 두 사람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군가 해방행진곡도 발표됩니다. 이후에도 그는 ‘바다로 가자’, ‘해군사관학교 교가‘ 등 다수의 해군 군가를 직접 작곡했습니다. 손 제독은 1980년 71세, 홍 여사는 2017년 100세로 타계했습니다. ‘전쟁영웅 부부’의 업적을 이렇게 짧은 글로 정리하는 것 자체가 버거울 정도로 그들은 군과 현대사에 굵은 한 획을 그은 인물이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오바마·바이든·빌 게이츠도 뚫렸다…트위터 사상 최악의 동시 해킹 사고

    오바마·바이든·빌 게이츠도 뚫렸다…트위터 사상 최악의 동시 해킹 사고

    트럼프 해킹 땐 엄청난 파장 일수도 “해커가 내부 직원 매수 의혹” 보도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등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의 트위터 계정이 동시에 해킹을 당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AP통신 등은 15일(현지시간)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의 트위터 계정이 해킹을 당해 “30분 안에 송금액의 두 배를 돌려주겠다”며 가상화폐 비트코인 송금을 요구하는 사기 글이 이들 계정에 한꺼번에 올라왔다고 보도했다. 해킹된 계정에는 미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유명 래퍼 카니예 웨스트·킴 카다시안 부부 등 전 세계 유력인사들이 포함됐고 우버와 애플, 테슬라 등의 공식 트위터도 피해를 입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과 머스크의 계정에는 “코로나19로 지역사회에 환원하려 한다”는 글이, 게이츠의 계정에는 “모두가 나에게 사회환원을 바라고 있고, 지금이 그 시기”라는 글이 각각 올라오기도 했다. 트위터는 해킹 발생 1시간 뒤 이 사실을 알리고, 해킹 피해를 본 계정들의 메시지 게시 기능을 차단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11만 4000달러(약 1억 3700만원) 상당의 비트코인이 유명인사들의 글만 믿고 송금된 뒤였다. 외신들은 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사들의 계정이 무더기로 뚫렸다는 점에서 사상 최악의 해킹 사건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은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만에 하나 그의 계정이 해킹돼 안보 관련 허위 메시지가 뜰 경우 정치·외교적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파장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CNN은 “이들 지도자의 계정이 공격받는다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해킹 사건의 특성상 범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는 관측과 함께 트위터로서는 다시 한번 보안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트위터가 이날 내부 관리자에 대한 해킹으로 트위터 계정이 무더기로 도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가운데, 정보통신(IT) 전문업체 마더보드는 해킹에 가담했다고 주장하는 익명의 정보원을 인용해 해커들이 트위터 내부자들을 돈으로 매수했다는 의혹까지 보도했다. 정보원들은 이 매체에 이번 해킹에 트위터 내부인의 사용자 관리 도구를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이인영 “아들 룸쉐어 했다”…스위스 1년 유학에 4200만원(종합)

    이인영 “아들 룸쉐어 했다”…스위스 1년 유학에 4200만원(종합)

    이인영, ‘아들 호화 유학 의혹’에스위스 체류비 내역 국회에 제출통일부 “한 달에 220만원 정도 사용”“체류비 억측 난무…명백한 허위 주장”전날 ‘1년 학비 1200만원’ 공개 이어 “아들 체류비 14개월간 3000만원”‘아들 호화 유학’ 의혹이 제기됐던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아들이 스위스 유학 동안 사용한 체류비가 14개월간 총 3000만원이라고 16일 공개했다. 전날 1년 간 학비가 1200만원이라고 밝힌 데 이어 1년 2개월 간 머문 체류비를 공개함으로써 이 후보자 아들의 총 유학 비용은 4200만원이 됐다. 이 후보자는 비싼 스위스 물가를 감안할 때 집세 등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 일자 “룸쉐어(공간 일부 임대)를 했다”고 해명했다. “한 달 집세 50만원, 생활비 170만원”“총 월세 580만원, 생활비 2482만원” 통일부는 이날 이 후보자 아들의 해외 체류 생활비 관련 자료를 내고 “월세와 생활비를 포함한 체류비는 전액 후보자 측의 송금으로 충당했다”면서 “송금한 금액은 월세 580만원(5102.5 스위스프랑)과 생활비 2482만원을 합쳐 총 3062만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자 측이 밝힌 아들의 스위스 체류 기간은 2017년 8월∼2018년 10월까지다. 이어 “이는 집세로 월평균 50여만원을 지불하고 생활비로 월평균 170여만원을 사용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물가가 비싼 스위스에서 1년에 학비와 체류비를 포함해 4200만원에 유학을 했다는 것이 가능하느냐는 의문들이 일제히 제기됐다.“4200만원 스위스 유학 정보 좀 공유하자”누리꾼들, 李 해명에 ‘현실과 안 맞다’ 지적 포털사이트 댓글에서는 “‘4200만원으로 스위스 유학 보내기’ 책을 내면 베스트셀러가 되겠다. 정보를 공유해달라”(cxj8***)는 조소까지 터져 나왔다.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내가 스위스 옥탑방에 살 때 한 달에 300만원 이상 집세를 냈다”(viol****)는 댓글도 달렸다. 집세가 비싸기로 유명한 스위스에서 월세 50만원은 터무니 없이 적은 금액이라는 주장이다. 스위스는 지난해 세계 빅맥지수 1위 국가다. 빅맥지수는 각국의 통화가치가 적정 수준인지 살피기 위해 각국의 맥도널드 빅맥 햄버거 현지 통화가격을 달러로 환산한 가격으로 햄버거 가격을 통해 국가간 물가가 비싼지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로 쓰인다. 스위스의 햄버거 가격은 세트 기준 한화 2만원(단품 1만원 안팎) 정도로 비싼 편이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 측은 “학교 친구의 집에 방 1개를 ‘룸쉐어’(공간 일부 임대) 방식으로 빌려 거주했다”고 추가 설명했다. 통일부는 “후보자 자녀의 스위스 체류비와 관련해 지나친 억측이 난무하는 것은 명백한 허위 주장”이라면서 “앞으로는 악의적 왜곡 주장이 나오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자 측은 송금내역 등 증빙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 전날 이 후보자 측은 아들이 1년간 스위스 학교에 다니면서 지출한 학비는 1만 220스위스프랑으로 당시 한화로 약 1200만원이라고 밝혔다.전날엔 아들 학비 공개 “3000만원 아닌 1200만원”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팀에 확인한 결과라며 “후보자의 자녀가 스위스 학교를 다니면서 연 2만 5000달러(한화 약 3000만원)를 지출했다는 보도는 명백한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후보자의 자녀는 학위교환협약에 따라 1년간 (스위스) 해당 학교에 다녔고, 두 학기 동안 지출한 학비는 1만 220스위스프랑으로 당시 한화로 약 1200만원”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해당 학교의 홈페이지만 확인하면 학비가 연 2만 5000달러가 아니라 학기당 5000 스위스프랑, 연간 1만 스위스프랑이라는 것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면서 “악의적으로 왜곡 보도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등록금 고지서와 송금 내역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기현 “학비 포함 전체 체류비 제출하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기현 미래통합당 의원 측은 학비뿐만 아니라 전체 체류비 관련 기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김 의원은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후보자가 ‘민감하다’는 이유로 인사청문 자료 제출을 거부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이 후보자 측이) 야당 의원의 자료 제출 요구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불성실하다”면서 “자녀의 병역의무 이행, 불분명한 스위스 유학 자금 출처, 후보자의 재산형성 과정에 대한 자료, 납세 등 각종 금전 납부 의무와 관련된 기본 체크 사항도 못 주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왜 못 주냐고 했더니 너무 민감해서란다. 민감한 사항인지 아닌지는 국회가 확인할 사항이라고 했더니, 국회가 너무한 것 아니냐며 오히려 큰 소리”라면서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누가 청문위원이고 누가 후보자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李배우자, 아들 디자인학교 이사진 포함스위스 유학 선발 과정 특혜 의혹 제기 앞서 후보자 아들의 스위스 유학을 둘러싸고 ‘호화 유학’ 의혹이 제기됐다. 후보자 아들은 2013년 파주의 디자인 교육기관인 타이포그래피배곳(파티)에 입학했고, 이후 파티와 학사·석사과정 편입 협약을 맺은 스위스 바젤의 북서 스위스 응용 과학예술대학에서 학사 과정으로 1년간 공부했다. 또 당시 파티 이사진에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과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과 함께 이 후보자의 부인이 포함돼, 스위스 유학 선발 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는지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날 여 대변인은 이 후보자의 부인이 파티 이사진에 포함된 부분에 대한 해명 요청에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마 추가 발표가 있을 거로 생각된다”고만 답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잊혀진 골프 천재’ 이창우가 돌아왔다

    ‘잊혀진 골프 천재’ 이창우가 돌아왔다

    ‘잊혀진 천재’ 이창우(27)가 돌아왔다.이창우는 주니어 시절 ‘골프천재’로 불렸다. 2013년 아마추어 초청 선수로 출전한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개막전인 동부화재 프로미오픈에서 우승해 천재성을 입증했다. 그해 10월 아시아-태평양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이듬해 골프선수에게는 ‘꿈의 무대’로 불리는 마스터스 토너먼트에 출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지만 천재성은 빛을 잃었고 이름 석 자는 빠르게 잊혀졌다. 2016년 두 차례 준우승으로 상금랭킹 6위에 올랐지만 그게 다였다. 지난해 투어 시드를 잃는 바람에 2부 투어로 밀려났다. 그런데 퀄리파잉스쿨을 거쳐 1년 만에 코리안투어에 복귀한 그는 확 달라졌다. 개막전과 지난주 군산CC오픈에서 각각 5위, 4위에 올랐다. 2개 대회 연속 ‘톱5’ 입상은 김주형(18)과 이창우 둘 뿐. 더욱이 16일 충남 태안의 솔라고 컨트리클럽(퍼72)에서 열린 KPGA오픈 1라운드에서는 아예 ‘부활’을 예고했다.매홀 타수에 따라 점수를 얻는 ‘변형 스테이블 포드’ 방식의 이 대회 첫 날 이창우는 보기 없이 버디만 무려 11개나 터뜨리며 22점을 쌓아 오후 3시 현재 리더보드 맨 윗줄을 꿰찼다. 버디에 대한 보상 점수는 +2점이다. 종전 스트로크 플레이 방식이었다면 코리안투어 18홀 최소타인 60타에 단 1타가 모자란 기록이다.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실에 들어선 그는 “최근 몇 년간 골프에 대한 절박함이 없었다”면서 “자신감까지 떨어지다보니 작년 2부 투어 조차도 뛰기 싫어지더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창우는 “작년 마지막 대회였던 제네시스 챔피언십에 추천선수로 출전해 공동 39위에 오르면서 ‘다시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을 이었다. “안하던 웨이트 트레이닝도 한다”고 덧붙였다. “부진 탈출은 모두 여자친구 덕”이라는 이창우는 “아마 그 도움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쯤 군대에 있었을 것”이라면서 “오늘 드라이버 샷이 좋아 버디 기회를 많이 만든 데다 퍼트까지 좋았다”고 되돌아봤다.그러면서도 그는 “동반프레이를 한 박상현 선배는 저보다 버디는 절반 밖에 안됐지만 파5홀에서 이글 한 방으로 점수가 비슷해진 걸 보고 스테이블포드 방식의 효과를 실감했다. 내일은 더 과감하게 치겠다”고 다짐했다. 2018년 전관왕 박상현은 이글 1개와 버디 6개, 보기 1개를 묶어 16점을 적어냈다. 태안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이인영, 아들 스위스 1년 유학에 4200만원 들었다…체류비도 공개

    이인영, 아들 스위스 1년 유학에 4200만원 들었다…체류비도 공개

    이인영, ‘아들 호화 유학 의혹’에스위스 체류비 내역 국회에 제출 통일부 “한 달에 220만원 정도 사용”“체류비 억측 난무…명백한 허위 주장” ‘아들 호화 유학’ 의혹이 제기됐던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아들이 스위스 유학 동안 사용한 체류비가 14개월간 총 3000만원이라고 16일 공개했다. 전날 1년 간 학비가 1200만원이라고 밝힌 데 이어 1년 2개월 간 머문 체류비를 공개함으로써 이 후보자 아들의 총 유학 비용은 4200만원이 됐다. “한 달 집세 50만원, 생활비 170만원”“총 월세 580만원, 생활비 2482만원” 통일부는 이날 이 후보자 아들의 해외 체류 생활비 관련 자료를 내고 “월세와 생활비를 포함한 체류비는 전액 후보자 측의 송금으로 충당했다”면서 “송금한 금액은 월세 580만원(5102.5 스위스프랑)과 생활비 2482만원을 합쳐 총 3062만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자 측이 밝힌 아들의 스위스 체류 기간은 2017년 8월∼2018년 10월까지다. 이어 “이는 집세로 월평균 50여만원을 지불하고 생활비로 월평균 170여만원을 사용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일부는 “후보자 자녀의 스위스 체류비와 관련해 지나친 억측이 난무하는 것은 명백한 허위 주장”이라면서 “앞으로는 악의적 왜곡 주장이 나오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자 측은 송금내역 등 증빙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 전날 이 후보자 측은 아들이 1년간 스위스 학교에 다니면서 지출한 학비는 1만 220스위스프랑으로 당시 한화로 약 1200만원이라고 밝혔다.전날 “학비 3000만원 아닌 1200만원”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팀에 확인한 결과라며 “후보자의 자녀가 스위스 학교를 다니면서 연 2만 5000달러(한화 약 3000만원)를 지출했다는 보도는 명백한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후보자의 자녀는 학위교환협약에 따라 1년간 (스위스) 해당 학교에 다녔고, 두 학기 동안 지출한 학비는 1만 220스위스프랑으로 당시 한화로 약 1200만원”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해당 학교의 홈페이지만 확인하면 학비가 연 2만 5000달러가 아니라 학기당 5000 스위스프랑, 연간 1만 스위스프랑이라는 것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면서 “악의적으로 왜곡 보도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등록금 고지서와 송금 내역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기현 “학비 포함 전체 체류비 제출하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기현 미래통합당 의원 측은 학비뿐만 아니라 전체 체류비 관련 기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김 의원은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후보자가 ‘민감하다’는 이유로 인사청문 자료 제출을 거부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이 후보자 측이) 야당 의원의 자료 제출 요구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불성실하다”면서 “자녀의 병역의무 이행, 불분명한 스위스 유학 자금 출처, 후보자의 재산형성 과정에 대한 자료, 납세 등 각종 금전 납부 의무와 관련된 기본 체크 사항도 못 주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왜 못 주냐고 했더니 너무 민감해서란다. 민감한 사항인지 아닌지는 국회가 확인할 사항이라고 했더니, 국회가 너무한 것 아니냐며 오히려 큰 소리”라면서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누가 청문위원이고 누가 후보자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李배우자, 아들 디자인학교 이사진 포함스위스 유학 선발 과정 특혜 의혹 제기 앞서 후보자 아들의 스위스 유학을 둘러싸고 ‘호화 유학’ 의혹이 제기됐다. 후보자 아들은 2013년 파주의 디자인 교육기관인 타이포그래피배곳(파티)에 입학했고, 이후 파티와 학사·석사과정 편입 협약을 맺은 스위스 바젤의 북서 스위스 응용 과학예술대학에서 학사 과정으로 1년간 공부했다. 또 당시 파티 이사진에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과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과 함께 이 후보자의 부인이 포함돼, 스위스 유학 선발 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는지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날 여 대변인은 이 후보자의 부인이 파티 이사진에 포함된 부분에 대한 해명 요청에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마 추가 발표가 있을 거로 생각된다”고만 답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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