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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태 서울시의원 “서울시교육청의 IB 도입, 더 진솔한 자세로 의회 설득하길”

    이종태 서울시의원 “서울시교육청의 IB 도입, 더 진솔한 자세로 의회 설득하길”

    서울시의회 이종태 의원(국민의힘·강동2)이 서울시교육청의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이하 IB) 예산과 관련해 입장문을 냈다. 다음은 서울시의회 이종태 의원 입장문 전문 경기도교육청 임태희 교육감은 신년기자회견에서 “경기형 IB”를 도입, 국제가 공인한 창의적인 인재를 기르겠다“며 경기교육의 대 변화를 예고했다. 대한민국 초·중등 교육과정 혁신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이고 근래 들어 각 교육청마다 문제해결의 열쇠를 IB에서 찾고 있는 중이다. 반면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는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이하 IB) 탐색·연구 및 한국형 바칼로레아 개발을 위한 교육과정 다양화 지원을 위한 서울시교육청 예산 26억 8500만원을 2023년도 예산에서 전액 삭감했다. 서울시교육청의 IB 관련 예산이 불문곡직하고 삭감된 데에는 교육위원회를 설득하고 소통하는데 미흡했던 서울시교육청의 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시교육청의 설명 자료를 보면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시의회 교육위원회에 제출한 ‘2023년도 서울시교육비특별회계 예산(안) 사업별 설명자료’에 의하면 ‘교육과정운영내실화지원’이라는 막연한 명칭의 항목 아래 “서울 미래형 교육과정 개발”, “서울 미래형 교육과정 실행에 대한 역량강화” 등으로 설명되어 있을 뿐 그 어디에도 ‘IB’라는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설명 자료는 조희연 교육감의 혁신학교 교육과정을 보완·강화하려는 사업으로 이해될 여지가 많았다. 교육위원회 질의답변 과정에서도 혁신학교 교육과정의 한계와 반성을 토대로 해 전혀 새로운 ‘IB 교육과정’을 모색하려 한다는 측면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다. 혁신학교 제도에 대한 서울시 학부모들의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기 때문에 시의원들로서는 관련 예산 삭감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교육청이 ‘IB 도입’이라는 측면을 가린 채 왜 이러한 정체불명의 설명 자료를 내 놓았는지 궁금하기 이를 데 없다. 아마도 알맹이 없는 혁신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반성에 기초한 새로운 정책 모색이라는 측면을 부각시키기에는 조 교육감으로서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는 셈이니 조심스러웠을 것으로 짐작해 볼 뿐이다. IB는 길을 잃은 대한민국 초중등 교육과정의 출구역할을 할 수 있는 국제적으로 신뢰받는 교육과정임에 틀림이 없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미래형교육과정’이라는 식의 정체불명의 네이밍에 신경을 쓰기보다 경기도의 ‘경기형 IB도입’처럼 좀 더 솔직하고 선명하게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의원들에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이번에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의 소통부족으로 인한 IB예산 전액삭감에 대해 심히 유감스러울 뿐이다. 오히려 약 26억원보다는 훨씬 더 적극적인 예산편성이 아쉽기 그지없다. 타 교육청과 교육부조차 IB도입을 서두르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는 시기에 서울시교육청만 뒤처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IB는 대학입시와 연계문제로 인해 여러 가지 지적도 있다. 따라서 서울시교육청이 고등학교보다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IB 도입을 우선 검토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마치 조 교육감의 치적처럼 포장하기 위해 ‘서울미래형 교육과정’이라는 식의 타이틀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혁신학교를 통한 교육과정 혁신에 한계가 있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의 토대 위에서 시의회의 협조를 구하기를 조언한다. 끝으로 서울시교육청은 IB도입을 위한 ‘교육과정 다양화 지원사업’ 일정을 더욱 앞당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예산을 편성해 신속히 추경에 반영함으로써 2023년에 계획된 관련사업 일정이 보다 진일보한 사업이 될 수 있도록 시의회에 협조를 요청하기 바란다.
  • ‘색깔 맞춤’ 尹대통령 부부, 문화예술인 신년인사회 이어 음악회 관람 [포착]

    ‘색깔 맞춤’ 尹대통령 부부, 문화예술인 신년인사회 이어 음악회 관람 [포착]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는 4일 저녁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23 문화예술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지난 한 해 코로나19와 경제 위기로 지친 국민의 마음을 달래준 문화 예술인들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신년인사회에는 박정자 배우를 비롯해 송승환 감독, 강수진 발레리나, 석창우 작가 등 원로부터 정은혜 작가, 영제이 안무가 등 신진 예술인까지 80여 명이 참석했다.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외국 다자회의에 가보면 많은 나라 정상들이 우리나라와 뭔가를 도모하고 싶어한다.또 우리나라 문화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그 사례로 BTS(방탄소년단)를 꼽았다. 이어 “우리가 산업만 크고 문화 예술의 수준이 떨어졌다면 아마 우리를 많이 무시했을 것”이라며 “그런데 정말 한국의 내공에 대해 나름 굉장히 존중하고 인정하는 분위기를 제가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국가에서 많이 도와드리지 못했는데,여러분이 이렇게 국격을 많이 키워주고 국민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정서와 문화의 깊이를 심어줘서 정말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충분하지는 못하겠지만,저희도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해 여러분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부부는 옷차림을 초록색으로 ‘색깔 맞춤’ 했다. 윤 대통령은 초록색 넥타이, 김 여사는 초록색 원피스를 각각 착용했다.윤 대통령 부부는 이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 여는 새해, 2023 신년음악회’도 함께 관람했다. 윤 대통령은 착석 전에 관객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좌우에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화가 김현우, 소설가 정보라, 판소리 명창 안숙선씨 등이 자리했다. 윤 대통령 집무실에 걸린 김현우 작가의 ‘퍼시잭슨, 수학드로잉’은 지난해 5월 한미정상회담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시선을 끌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음악회에는 소프라노 조수미, 판소리꾼 배일동, 가수 윤형주를 비롯해 뮤지컬 배우 김준수, 김소현, 김도형 등 다양한 장르를 대표하는 음악인들이 출연했다. 객석에는 각계 주요 인사와 일반 국민 공모자 등 2000여 명이 앉았다. 특별히 소외 계층과 사회적 약자, 장애 예술인, 의사상자 가족, 국가유공자 후손과 전몰장병 가족, 자립 준비 청년, 산재 근로자 가족 등이 초청됐다고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이 부대변인은 지난해 한 병원 화재 당시 환자를 대피시키다가 사망한 간호사 가족들도 초청했다면서 “사회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잊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연 실황은 강원 정선, 경기 안산, 광주, 전남 등의 지역문예회관과 유튜브, 네이버TV를 통해 생중계됐다. 오는 14일 오후 3시 20분 한국방송(KBS 1TV)이 녹화 중계도 한다.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흔하지만 강력한 존재감, 마늘/셰프 겸 칼럼니스트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흔하지만 강력한 존재감, 마늘/셰프 겸 칼럼니스트

    가끔 너무 흔하고 사소한 나머지 존재감을 의심받는 식재료가 있으니, 바로 마늘이다. 한국 음식엔 꽤 많은 양의 마늘이 들어가지만 서양에선 많아도 한 톨 정도. 마늘을 통째로 먹는 우리 입장에선 한 톨은 넣으나 마나 결과물에 큰 차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적은 편이다. 넣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안 넣기엔 찜찜한, 그런 존재라고 할까. 워낙 평범한 재료라 마늘에 대해 누구도 큰 관심을 두지 않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꽤 흥미로운 식재료다. 연유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인류가 식물을 재배하고 먹기 시작할 때부터 마늘은 늘 함께해 왔다. 우리나라 단군 이야기 속뿐만 아니라 서구의 옛 기록과 문헌에서 마늘은 형제인 양파, 리크(파의 일종)와 함께 등장한다. 파속 식물인 마늘과 양파는 생으로 먹으면 고약하게 맵고 알싸한 맛이 나는데 이는 포식자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황화합물 때문이다. 파속 식물의 방어 전략은 꽤 똑똑했지만 간과한 게 있었다. 이 포식자들은 고통조차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단조로운 식단에 강렬한 맛의 콘트라스트를 주는 재료를 일부 포함시킴으로써 지루함을 벗어나 일상의 자극을 얻는 포식자 나름의 생존 전략인 셈이다.마늘은 사촌인 양파보다 수백 배나 더 많은 황화합물을 지니고 있다. 마늘이 악운이나 악귀를 쫓아낸다는 의미를 지니는 건, 그만큼 강렬하게 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악귀도 쫓을 만큼 매운 마늘을 웃으며 생으로 섭취하는 나라는 아마도 대한민국이 유일하겠지만 유럽에서도 마늘을 생으로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만 극소량으로 다른 주 재료로 만든 음식에 알싸한 임팩트를 주는 역할이지 주인공은 아니다. 잘 알려진 제노바식 바질페스토엔 바질과 잣, 치즈와 엔초비뿐만 아니라 생마늘이 조금 들어가야 맛이 완성된다. 달콤하지만 기름진 잣의 맛, 치즈와 안초비의 짭짤한 감칠맛, 바질의 풍부한 향에 마늘의 은은한 알싸함이 더해져야 제대로 된 페스토라 할 수 있다. 서양에서 마늘은 크게 두 가지 용도로 쓰인다. 하나는 마늘의 향을 이용하는 것이다. 스페인의 판콘토마테는 따뜻한 빵에 마늘을 문질러 향을 입힌 후 생토마토를 다져 만든 혼합물을 얹어 먹는 요리다. 생마늘을 다지거나 갈아 토마토에 함께 넣으면 자칫 토마토의 상큼함을 마늘맛이 지배해 버릴 수 있으니 생마늘을 문질러 활용한다. 이탈리아의 알리오 올리오 같은 요리는 파스타를 마늘향이 나는 올리브오일에 버무린다는 개념이다. 마늘을 기름에 튀겨 마늘을 고명처럼 먹는 요리가 아니라 마늘은 향만 뺀 후 버리는 게 일반적이다. 다른 한 가지 용도는 마늘을 익혀 단맛을 취하는 것이다. 마늘에 오랜 시간 열을 가해 익히게 되면 매운맛은 사라지고 깊은 풍미의 단맛이 난다. 고깃집에서 마늘을 굽거나 기름에 튀겨 먹음직스러운 갈색이 되면 촉감은 부드러워지고 캐러멜같이 달콤해진다는 건 한국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아는 내용이다. 마늘에 천천히 열을 가하면 과당이 분해되면서 선명한 단맛을 내고 마치 설탕이 캐러멜화되듯 짙은 갈색으로 변하게 된다.익은 마늘의 매력을 가장 선명하게 확인하는 방법은 마늘 콩피다. 강하지 않은 기름에 장시간 조리하는 요리법을 프랑스 용어로 ‘콩피’(confit)라고 하는데 생선, 고기 등에도 다양하게 쓰인다. 콩피한 마늘을 건져서 음식에 단맛을 주는 부재료로 사용하거나 그 자체로 빵에 발라 잼처럼 먹기도 한다. 마늘을 익히고 남은 기름은 마늘 오일로 쓸 수 있다. 마늘 없이 마늘 향을 주고 싶을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마늘은 껍질 안에 있을 땐 강하지만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빠르게 향과 맛을 잃어버린다. 보통 깐 마늘로 유통되는 마늘은 통마늘을 바로 깠을 때보다 맛과 향이 덜하고 고약한 황화합물 향이 더 강한 편이다. 표면에 상처를 입었을 때 황화합물은 빠르게 공기 중으로 휘발되는데 마늘을 다지게 되면 일종의 황화합물 폭탄이 터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다진 마늘을 너무 오래 보관하면 끔찍한 향이 생성돼 음식에도 좋지 않은 향을 준다. 마늘을 음식에 가장 많이 사용해서 그런지 한국 사람들은 마늘 향에 둔감한 편이다. 마늘을 향을 내는 용도 외엔 거의 쓰지 않았던 이탈리아에선 6개월 정도가 지나서야 겨우 음식에 배어 있는 은은한 마늘 향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니 모든 음식에서 강한 마늘 향을 느꼈지만 이내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어떤 외국인은 한국 공항에 도착하면 마늘 향이 난다고도 한다. 우리는 마늘 속에 살지만 마늘을 느끼지 못한다. 풍요가 오히려 존재감을 없애는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소름끼치도록 맞아”…2023년 예언한 노스트라다무스

    “소름끼치도록 맞아”…2023년 예언한 노스트라다무스

    16세기 프랑스 의사 겸 점성술사인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의 예언이 2023년 새해를 맞아 주목받고 있다. 3일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노스트라다무스의 2023년 예언을 5가지로 정리해 공개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는 사후인 1568년에 완간됐다. 이 예언서에는 1555년부터 3797년까지의 역사적 사건·대규모 재난 등을 예언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가 예언한 2023년의 모습은 크게 ‘악의 세력’이 벌이는 큰 전쟁, 화성의 빛이 꺼짐, 식인풍습, 마른 땅은 더욱 메마르고, 무지개가 보일 때 큰 홍수가 날 것, 나팔이 큰 불화로 흔들림 등 5가지다.“7개월 간의 큰 전쟁, 악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었다” 매체는 “노스트라다무스는 1555년 942개의 예언이 담긴 예언서를 펴냈다”며 “그의 예언은 여러 방향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어떤 의미도 지닐 수 있기 때문에 400년 이상이 지난 지금에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서에 담긴 “7개월 간의 큰 전쟁, 악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었다”는 구절을 언급하며 2023년 ‘큰 전쟁’을 예견했다고 해석했다. 매체는 “이 불길한 예측은 세계를 이끄는 초강대국들 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에 나왔다”고 했다. 이어 “이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절박한 공격일 수도 있고, 중국의 대만 침공이나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으로 인한 미국과 대립일 수도 있다”며 여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믿는 사람들에게 ‘7개월’이라는 서술은 약간의 위안을 줄 수 있다”며 “핵전쟁이 아닌 재래식 전쟁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밀 값이 치솟으면서 사람들은 그의 동료를 먹을 것이다” 매체는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우주기업 스페이스X를 언급하면서 “이 예언이 그에게 경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아마도 그 붉은 행성에 사람을 이주시키려는 그의 꿈은 어떻게든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밀 값이 치솟으면서 사람들은 그의 동료를 먹을 것이다”라는 구절은 경제적 재앙으로 인한 식량 공급망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전했다. 또한 노스트라다무스는 전세계적으로 식량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면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 사이에서 ‘식인 풍습’이 생겨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울러 기후변화로 인한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데 이미 천재지변으로 인한 자연재해는 인류의 고민이다.‘나팔이 큰 불화로 흔들린다’ 부분과 관련해선 데일리메일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 인구의 다수를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며 “동시에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인 부를 키운 슈퍼 부자에 대한 경멸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노스트라다무스는 민주주의 국가 독재 국가에서 모두 계급 간 긴장이 커질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지난해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대생이 의문사한 뒤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는 이란을 포함해 여러 잠재적 시위를 목격했다”면서 올 한 해 잠재적인 폭동이 다수 감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 “2009년 사형 확정된 강호순 떠올라”…이기영과 닮은 이유

    “2009년 사형 확정된 강호순 떠올라”…이기영과 닮은 이유

    택시기사와 동거녀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31)이 과거 최소 두 차례 결혼했고 자녀도 있다는 증언이 나온 가운데, 그가 자신의 범행이 부모나 가족에게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린 것으로 전해졌다. 3일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YTN 뉴스라이더에서 “(이기영이) 상당히 이중적 자아구조를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기영은 평소 자신이 살해한 동거 여성의 개를 산책시키는 등 이웃에 좋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도 전해졌다. 이에 이 교수는 “(이기영이)지인에게 보이는 나, 또는 범행 목적을 위해서 제3자는 무조건 도구에 불과했던 나. 이것은 반드시 분리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 일정한 연쇄 살인범에 있어서도 끔찍하게 시신을 훼손하는 면이 있지만 자신의 가족에 대해선 끔찍이 아끼려는 이중적 자아 구조가 나타났다. 엽기적 범죄자의 특성인데, 그런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사망한 택시기사도 전혀 경계심 느끼지 못했을 듯”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2000년대 후반 경기 서남부지역 등에서 여성 8명을 납치·살해하고, 자신의 장모와 전처를 방화살해한 혐의로 지난 2009년 사형이 확정된 강호순을 떠올렸다. 이수정 교수는 “(강호순도)굉장히 이중적이었다”며 “남들에게 보여주는 얼굴과 피해자와 둘이 있을 때 살해 과정에서의 잔인함과 두 개의 얼굴이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이기영도) 택시기사와 교통사고가 일어났을 때 아마 기사님에게 전혀 경계심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친절하게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결국 (이기영의) 집까지 택시기사가 따라가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라며 “유인을 할 만큼 친절하기도 하고 사회적이기도 한 모습이 있는 사람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달 30일 SBS가 공개한 폐쇄회로(CCTV)영상에 따르면 이기영은 택시기사와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 내릴 때까지 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자신이 건물주이며 거액을 상속받았다는 말, 모두 거짓” 또 이기영에 주변 사람에게 한 이야기 중 상당 부분 거짓이었다는 점도 드러났다. 특히 자신이 건물주이며 거액을 상속받았다는 말은 모두 거짓이며 실제 본인이 번 자산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20일 오후 음주 운전을 하다 접촉사고를 낸 후 택시기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이기영은 수사 과정에서 이씨는 집주인이자 동거녀인 B씨를 살해해 파주 공릉천에 유기했다고 자백했다. 그는 범행 직후 피해자들의 신용카드와 휴대전화를 이용해 돈을 쓰거나 대출을 받는 등의 혐의도 받고 있다. 범죄 심리 전문가들은 이기영의 성향이나 범죄 패턴으로 봤을 때 추가 피해자가 있을 우려가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경찰은 최근 1년간 이기영과 연락한 주변인에 대해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편 이기영은 육군 간부로 근무할 때인 2013년 무면허 음주 운전을 하다 단속하는 경찰관의 손을 무는 등 저항해 군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출소와 전역 후에도 두 차례 음주운전으로 2019년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기영을 상대로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검사를 진행했고, 오는 4일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 자율주행·전동화 한계 뚫는 모빌리티…화성 위의 식사, 스페이스테크까지

    자율주행·전동화 한계 뚫는 모빌리티…화성 위의 식사, 스페이스테크까지

    ‘라스베이거스 모터쇼’라는 별명은 이제 다소 식상하다.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박람회 ‘CES’가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모빌리티 산업을 품은 것이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서다. 전동화와 자율주행 기술의 각축장으로서 CES의 역할은 올해도 계속된다. 다만 5일부터(현지시간) 열리는 ‘CES 2023’에서는 그 한계와 동시에 돌파구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동화는 자동차만을 위한 혁신인가, 그렇지 않다면 과연 어떤 것까지 전기로 움직일 수 있는가.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은 인간을 어느 수준까지 해방할 것인가. CES의 핵심, 모빌리티 업계가 이번 CES에서 던지고 있는 질문들이다. 도로 위 자동차만? 선박·농기계도 전동화·자율주행 혁신 HD현대(옛 현대중공업그룹)은 전동화와 자율주행이라는 ‘도로 위 혁신’을 바다에서도 실현하겠다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참가 기업 중 ‘해상 모빌리티’를 주제로 내세운 곳은 HD현대가 유일하다. 지난해 창사 이후 처음으로 참가한 HD현대는 ‘아비커스’라는 자회사를 통해 해상 자율운항 선박 솔루션을 선보인 바 있다. 이를 더욱 고도화한 자율운항 솔루션 ‘뉴보트’(Neuboat)를 이번에 선보인다. 아울러 공개되는 고성능·고안정 차세대 선박 전기추진시스템(Hi-EPS)도 주목할 만하다. 오너 3세 정기선 HD현대 사장 등 핵심 경영진이 총출동해 해상의 무인화와 전동화의 비전을 소개한다.‘농(農)슬라’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세계 최대 농기계 업체 존디어는 CES 주최 측인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 올해 가장 주목하고 있는 모빌리티 회사다. 존디어가 선보이는 완전자율주행 트랙터는 CTA가 수여하는 가장 높은 등급인 ‘최고 혁신상’을 거머쥐었다. 스테레오 카메라와 인공지능(AI) 센서, GPS 등을 활용해 사람 없이도 알아서 땅을 갈고 농사를 짓는다. 농부가 할 일이라고는 그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혹시 모를 긴급상황에 대비하는 일 정도다. 존디어 최고경영자(CEO) 존 메이어는 이번 CES의 기조연설도 맡아 농업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할 열쇠로 첨단 자율주행 농기계 기술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독일 완성차 자존심 격돌…‘빅테크’까지 가세한 부품·소프트웨어 전쟁 완성차 제조사들의 혁신 경쟁도 불붙는다. 특히 독일 완성차의 두 자존심,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는 이번 CES에서 각각 자율주행과 전동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찍는 기술을 선보일 예정이다. 벤츠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AG 이사회 멤버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마르쿠스 쉐퍼가 자동 차선 변경 등 진보된 자율주행 기술을 소개한다. 올리버 칩세 회장이 직접 기조연설자로도 나서는 BMW는 이날 ‘노이에 클라세’(새로운 클래스)를 표방하는 차세대 전기차 콘셉트를 공개한다.스텔란티스는 ‘트럭 전동화’의 혁신 기술을 전한다. 1회 충전 시 최대 800㎞를 달릴 수 있는 순수 전기 트럭 콘셉트카 ‘램1500 레볼루션’을 선보인다. 프랑스 푸조, 이탈리아 피아트 등 다양한 국적의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스텔란티스는 ‘푸조 인셉션 콘셉트’(차세대 운전석), ‘피아트 메타버스 스토어’ 등 다양한 브랜드의 전동화·디지털 전략을 전시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독일 폭스바겐의 신형 전기차, 스웨덴 폴스타의 첨단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이 소개된다. 부품사들의 활약도 주목된다. 현대자동차그룹에서는 완성차 회사인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올해 쉬어 가기로 정하면서 부품사인 현대모비스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현대모비스는 차세대 기술이 적용된 콘셉트카를 비롯해 대량 생산이 가능한 모빌리티 신기술 19종을 선보일 계획이다. 범현대가 HL그룹(옛 한라그룹)의 계열사인 HL만도와 HL클레무브는 제자리 유턴, 직각주차 등이 가능한 ‘일렉트릭 코너모듈’을 소개한다. 완전자율주행 수준인 레벨4를 겨냥한 차세대 라이다를 선보이는 독일 보쉬를 비롯해 마그나, 콘티넨탈 등 글로벌 부품사들도 출격한다. 이외에도 ‘안드로이드 오토’ 체험 부스를 운영하는 구글을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도 모빌리티 전용 소프트웨어를 선보일 예정이다. 궁극의 이동, 우주로의 도약 이동 수단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온 인간은 결국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 우주로 도약한다. 최근 우주의 상업·경제적인 가치가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뉴 스페이스’ 시대가 열리고 있기도 하다. 이 가운데 지난해 전시 카테고리에 추가된 ‘스페이스테크’는 올해도 뜨거운 화두를 제시하는 흥미로운 콘텐츠로 주목받을 전망이다. ‘화성에서의 식사’라는 제목의 컨퍼런스에서는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 작물 생산 프로젝트 관리자인 랄프 프리체를 비롯한 비헥스, 더스푼 등 세계 각국 푸드테크 기업 관계자들이 우주식량 산업의 발전 방향을 논의한다.
  • 펫커머스 전문기업 지앤원, 후코홀릭 ‘인섹트 독’ 사료 4종 신년 행사 진행

    펫커머스 전문기업 지앤원, 후코홀릭 ‘인섹트 독’ 사료 4종 신년 행사 진행

    “새해 맞아 특별 이벤트 기획, 다양한 이벤트 및 프로모션 전개할 것”펫커머스 전문기업 지앤원(대표 왕지원)은 강아지 식품 브랜드 후코홀릭 ‘인섹트 독’ 사료 4종에 대한 신년 행사를 진행한다고 10일 밝혔다. 2023년 계묘년 새해를 맞아 펼쳐지는 이번 이벤트는 오는 12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전국 25개 몰리스펫샵에서 진행된다. 지난해 9월 출시된 ‘인섹트 독 프리미엄’ 3종과 ‘인섹트 독 오리지널’ 등 총 4종을 대상 한다. 또한 매장 계산대에 샘플과 리플렛 등의 비치, 전 방문객을 대상으로 사료 샘플 무료 증정 행사도 병행될 예정이다. ‘인섹트 독 프리미엄’은 녹색입홍합 추출물을 비롯해 연골의 주요 구성성분인 글루코사민 등이 함유된 ‘인섹트 독 프리미엄 관절’, 80% 이상 식이섬유로 이루어진 차전자피와 지방분해를 촉진시키는 L-카르니틴이 들어있어 효율적인 체중관리가 가능한 ‘인섹트 독 프리미엄 체중’, 오메가3, 오메가6가 풍부한 아마씨 분말과 연어유를 통해 눈물이나 피부질환 예방에 도움을 주는 ‘인섹트 독 프리미엄 피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타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프리미엄 원료가 다수 함유돼 있다. 2017년 출시된 ‘인섹트 독 오리지널’은 소프트 곤충사료로, 가려움이나 눈물, 탈모, 귓병 등 4대 알러지 증상 예방 및 개선에 도움을 주는 저알러지 사료로써 고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이어오고 있다. 지앤원 관계자는 “새해를 맞이하여 후코홀릭 사료에 대한 이례적인 행사를 준비했다”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이벤트 및 프로모션을 전개해나갈 예정으로, 고객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린다”라고 밝혔다. 한편 후코홀릭의 ‘인섹트 독’ 라인은 공식 판매처 푸드펫을 통해 누적 판매 수 100만개를 돌파한 국내 인섹트 사료 1위 브랜드로, 전국 이마트와 스타필드, 몰리스펫샵 등 오프라인 매장을 비롯해 쿠팡 등 다양한 온라인 채널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 금천구, 복숭아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 준공

    금천구, 복숭아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 준공

    서울 금천구는 최근 복숭아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 공사를 마무리했다고 3일 밝혔다. ‘복숭아마을’이란 이름은 1970년대 복숭아꽃이 만발했던 마을의 역사와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지어졌다. 2017년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사업 공모에 선정돼 도로 정비, CCTV 설치 등 범죄예방 환경 조성 사업과 집수리 지원 등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복숭아마을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조성된 주민공동이용시설(독산동 149-61번지)은 2021년 10월 착공해 2022년 12월 16일 지하 1층~지상 4층, 연면적 444.67㎡ 규모로 신축됐다. 지하 1층엔 식당, 1층엔 다목적실이 들어선다. 2~3층은 회의실 및 강당으로, 4층은 사무실로 이뤄졌다. 주민공동이용시설은 저층형 다가구 주택이 밀집한 지역에서 주민 모임과 활동을 위한 소통 공간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복숭아마을 주민공동체 운영위원회가 시설 운영을 맡는다. 상반기 중 개소식을 개최하고,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유성훈 금천구청장은 “복숭아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이 마을의 거점시설이 되어 주민들의 편의를 증진하고, 마을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 ‘아내 이름까지 똑같아’ 마스터스 초대장 아마 골퍼에게 발송

    ‘아내 이름까지 똑같아’ 마스터스 초대장 아마 골퍼에게 발송

    남자골프 세계랭킹 54위 스콧 스털링스(미국)가 2일(현지시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 하나를 올렸는데 1000만회나 공유될 정도로 큰 화제가 됐다. “하루에도 다섯 번이나 메일 함을 뒤지고 있었는데, 어제 이런 DM을 받았다”며 자신에게 전달됐어야 할 초청장을 잘못 받은 사람으로부터 온 메시지를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스콧, 저는 스콧 스털링스라고 합니다. 저도 조지아주에 살고 있고, 제 아내의 이름도 제니퍼입니다”라고 시작한 이 DM은 “오늘 2023 마스터스 초청장을 페덱스로 받았는데, 이건 100%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골프를 치긴 하지만, 와우할 수준은 아니고요. 당신 만큼의 수준은 절대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라고 털어놓고 있었다. 이어 “같은 지역, 같은 이름에 부인 이름까지 똑같아 혼선이 생긴 것 같다. 당신에게 전해줄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다음 글에는 “농담하는게 아니고, 약속한다”고 적고는 초청장을 전달해주겠다며 연락처를 덧붙였다. 미국 골프전문 매체들은 “오거스타가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같은 지역에 사는 동명이인에, 부인 이름까지 똑같을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라며 신기해 했다.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3승을 거둔 스털링스는 2012년과 2014년 두 차례 마스터스에 출전한 이후 9년 만에 다시 오거스타 내셔널 코스에 서는 자격을 획득했는데 마스터스 초청장이 오지 않아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것이다. 팬들은 별로 웃을 일이 없는 새해 벽두에 소소한 즐거움을 하나 제공했다며 무척 좋아라했다. “오거스타에서 누군가는 해고될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하는가 하면, “동명이인인 그가 스털링스의 파3 콘테스트 캐디를 맡아야 해”, “올해 최고의 마스터스 스토리 라인” 등의 반응을 내놓았다. 스털링스는 이웃 스털링스에게 보답으로 마스터스 티켓을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두 부부가 오는 4월 6일 막을 올려 9일까지 이어지는 제87회 마스터스 대회에 재회하거나 실제로 전날 아마 골퍼 스털링스가 파3 콘테스트 캐디로 나서면 최고의 얘깃거리가 될 수 있겠다.
  • 얼마 전만 해도 버스킹하던 캣 번스, BBC ‘사운드 오브 2023’ 뽑혀

    얼마 전만 해도 버스킹하던 캣 번스, BBC ‘사운드 오브 2023’ 뽑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영국 런던의 길거리에서 노래하고 푼돈을 챙기는 버스킹 가수였다. 캣 번스(Cat Burns)란 인상적인 예명을 사용하는 스물두 살 싱어송라이터다. 그런데 BBC 라디오1이 해마다 뽑는 ‘사운드 오브 2023’에, 그것도 네 번째로 선정됐으니 그야말로 인생역전을 이뤘다. 나직하면서도 웅숭깊은 가사가 그의 매력으로 꼽힌다. 앨범이 플래티넘을 기록했고 에드 시런의 경기장 공연에 찬조 출연했다. 정말 믿기지 않은 2022년 한 해를 보냈다. 대중에게 맨처음 자신을 알린 노래는 ‘Go’였다. 당당히 작별을 고하는 노래였는데 3년 전 녹음했던 이 노래가 틱톡에 실리며 새로운 생명을 얻은 듯했다. 지난해 1월 차트 순위 57위로 진입했는데 차츰 오르더니 지난해 6월 2위까지 올라섰다. 그 무렵 샘 스미스가 게스트 버전으로 이 노래를 불렀고, 미국 유명 코미디언 제임스 코든이 진행하는 레이트 레이트 쇼 무대에 서도록 주선했다. 브릿 크리틱스 초이스 상 후보로 지명되며 지난해를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번스는 “‘Go’가 대중에게 날 알릴 노래라고 늘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면서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100만~200만 스트리밍에 이른 것만 갖고도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고 돌아봤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완전 잘될 거라는 자신감으로 충천해 있다. 이 모든 일이 매우 감사하다.” 원하는 대로 다 됐다. 번스는 목적을 갖고 음악을 만들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며 연결하고 견뎌내며 치유하도록 기획한다. “여러분이 연결할 수 있는 팝 음악을 늘 만들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힘겨운 상황을 받아들이고 더 가볍게 느껴지게 하는 노래를 여러분은 찾아 헤맬 것이다.” ‘Free’는 동성을 사랑하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백하고 있다. 이 노래에는 가족에게 어려운 고백을 하는 두려움까지 오롯이 담겼다. 가사는 이렇다. “Built it up so much in my head that I let you down / If you only knew the pain I put my heart through.” 이 노래를 발표한 것은 2021년이었는데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어떻게 커밍아웃할 것인지, 부모들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자 훨씬 잘 받아들였다는 얘기 등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공유했다. 성적 소수자를 인간 이하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번스의 가족도 알게 됐다. 가수였고 가끔 딸과 틱톡에서 함께 노래했던 어머니는 그저 “OK”라며 받아들였지만 며칠 뒤까지 수백만 번의 질문을 퍼부었다. 그의 언니는 “그래, 넌 도대체 어떤 여자애가 좋더냐?”고 물어댔다.어머니가 모은 레코드를 어릴 적부터 듣고 자랐다. 도니 맥클러킨, 킴 버렐, 커크 프랭클린 등의 가스펠 노래와 스티비 원더와 마이클 잭슨 등의 솔 음악을 즐겨 들었다. 어머니는 성가대원이었고 딸에게 함께 하자고 채근했다. 웨일스의 방과 후 클럽이나 여름캠프를 쫓아 다녔는데 디즈니의 고교 뮤지컬 수록곡들을 즐겨 불렀다. 번스는 유망한 농구선수이기도 했다. 코치는 프로에서도 통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생애 전체를 바칠 일은 아니라고 깨닫는 순간이 왔다고 했다. 노래를 쓰기 시작했는데 머릿속의 것들을 모두 오케스트라처럼 엮어내는 일에 짜릿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지미 헨드릭스의 ‘All Along The Watchtower’를 편곡해 들고 나가 브릿 스쿨 오디션에 합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음악으로 인생을 살아도 좋겠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돌아봤다. 열네 살에 입학했는데 Txm.Smrt란 신비스러운 별명으로 통한 친구의 도움을 받게 됐다. 자택 정원에 레코딩 스튜디오를 지어줄 정도로 부잣집 자녀였다. 둘이 함께 번스의 데뷔 EP ‘Adolescent’를 발매했는데 번스가 열여섯 살 때였다. 본인은 굉장히 불리함을 느꼈다고 했다. 성 소수자에 흑인, 에드 시런이나 아델고 비슷한 노래를 부른다는 점 때문이었다. “많이도 싸웠다. 좌절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이 음악은 내가 늘 듣고 싶어했기 때문에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오히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봉쇄 정책이 기회가 됐다. 어머니 집에 붙박혀 레코드 회사의 간섭 받지 않고 틱톡 계정을 개설해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매우 쓸모 있었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고 가사를 쓸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코드 진행을 할 수 있었고 내 노래가 흘러가는 대로 놔둘 수 있었다. 과민행동장애(ADHD)라 일종의 과잉집착 때문에 동영상을 올리고 또 올리고 올리고 했다. 이렇게 하면서 내 진짜 좋은 목소리는 내밀하며 어쿠스틱한 분위기에 어울려 또래 세대의 불안을 완화하는 데 어울린다는 점을 깨달았다.” 노래 제목들을 죽 열거하면 본인의 치료 과정을 돌아보는 느낌이다. ‘Anxiety’, ‘People Pleaser’, ‘Low Self-Esteem’ 등 말이다. 설교하거나 자기연민 따위를 드러내지 않고 그저 옆에 친구가 있다는 느낌을 담았다. “나는 내 노래들과 함께 살고 싶다. 일단은 내가 썼는데 내게 뭔가 각별한 사람이란 느낌으로 썼다. 한동안 그들과 함께 앉아 있고 싶고 내가 지금 통과하는 무엇이든 그들이 날 돕게 만들고 싶다. 그 뒤 궁극적으로는 시간이 됐을 때 세상의 나머지에게 이것을 줄 때가 됐다고 말하면 된다. 그리고 아마도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이노우에 감독 “왜 ‘퍼스트’ 붙였냐 하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이노우에 감독 “왜 ‘퍼스트’ 붙였냐 하면”

    새해 극장가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각본을 쓰고 연출한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이 4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뒷얘기들을 전날 대량 방출했다. 2014년 영화화를 결심한 과정, 제작 뒷얘기, 제목에 담긴 의미까지 털어놓았다. Q. 이 영화 제작은 어떻게 시작됐나? A. 제작 오퍼는 10년 이상 전부터 받았다. 파일럿 영상을 만들어 왔는데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해 거절했다. 다만 짧은 영상을 만드는 과정이 굉장히 힘든데도 계속해서 제안해 주신 제작진의 열의를 느꼈다. Q. 최종적으로 OK한 것은 언제인가? A. 2014년이다. 결정적인 요소는 파일럿 영상의 ‘얼굴’이었다. 강하게 호소하는 듯한 느낌으로, 만든 분의 혼이 들어가 있었다. 기술이나 영상의 퀄리티보다 열의나 영혼 같은 감정적인 부분이 가장 와닿았다. 애니메이션 관련 기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기술은 어디까지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농구 장면의 컴퓨터그래픽(CG)은 10명이 코트 위에서 움직이는 것을 그리는 데 가장 적합한 수단이기에 채택한 것이다. Q. OK를 낸 시점에 직접 각본까지 담당할 생각이었나? A. 그렇지 않았다. 다만 ‘OK’라고 대답한 시점에 어떤 형태로든 관련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야 내가 납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파일럿 필름을 보고 ‘여기는 이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슬램덩크’를 영화화한다면 내가 조금이라도 관여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게 작품에 도움이 되고 독자들도 기뻐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 가장 컸다. Q. ‘관여한다’와 ‘감독을 한다’는 무게감이 다르지 않나? A. 그렇다. 여러 가지 이유로 도달한 결과이지만, 영화 제작에 관해서 초보자인 내가 ‘감독을 하겠다’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의 만화가 활동으로부터의 경험 덕분일지 모른다. ‘마지막 만화전’(2009~2010년 일본 전역 순회)을 진행할 때 이번과 마찬가지로 전시회 관련해서는 초보자로 현장에 들어갔다. 아마추어인데도 중요 인물로 관여했던 여러 차례의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Q.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그림이 그대로 움직이는 듯한 영상이 인상적이다. 어떻게 실현했나? A. 마음속에 ‘이런 느낌으로 하고 싶다’는 이미지는 있어도 그 경험이나 지식은 없었다. 대강의 이미지를 제시하면 그것을 경험 많은 스태프들이 ‘이런 느낌 아니냐’ 해석하거나 전달해줬다. 처음부터 명확하게 ‘여기가 골’이라고 돌진한 것이 아니라 함께 쌓아 올라가며 최종적으로 ‘도달했다!’는 느낌으로 완성했다. Q. 사실적인 농구 표현도 큰 특징이다. 경기 장면을 그리는 데 특히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인가? A. 굉장히 세세한 부분이지만 발을 밟는 방법이나 공을 받는 순간의 신체 반응, 슛하러 갈 때 약간의 타이밍 등 나 자신이 몸으로 기억하는 ‘농구다움’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스태프들이 다 농구를 해본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 뉘앙스를 어디까지 전달할 수 있을지 우려도 있었는데, 제작진들이 실제로 농구를 배우러 가서 직접 플레이를 해봤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바라건대 아직도 농구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이번 작업에 질려 ‘이제 농구는 쳐다보기도 싫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Q. 원작에 나왔던 경기 중간중간에 혼잣말이나 코믹한 장면은 전부 사라졌다. A. 이것도 진행하며 느낀 것이지만, 원작의 세세한 개그는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 만화라면 간단한 코믹 장면을 막간에 넣거나 할 수 있지만 영화는 스크린 사이즈가 일정해 구석구석에 개그를 넣어도 보이지 않는다. 커다란 화면에서 진행된다는 것이 만화와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만화라면 칸 나누기 등으로 답을 찾을 수 있었겠지만 영화에서는 그 방법을 찾지 못했고 거기에 너무 집착하는 것보다 만화는 만화, 영화는 영화만의 즐거움이 있을 것이라 판단해 ‘농구다움’을 우선시하는 결론을 내렸다. Q. 주인공이 강백호가 아니라 송태섭이라는 점에 놀란 팬들도 많을 것 같다. A. 원작과 똑같이 만드는 것이 싫어서 다시 ‘슬램덩크’를 한다면 새로운 관점으로 하고 싶었다. 송태섭은 만화를 연재할 당시에도 서사를 더 그리고 싶은 캐릭터였다. 3학년에는 센터 채치수와 드라마가 있는 정대만, 강백호와 서태웅은 같은 1학년 라이벌이라서 2학년인 송태섭은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송태섭을 그리기로 했다. 원작에 캐릭터의 가족 이야기는 잘 그려져 있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송태섭의 가족 이야기가 상당히 깊게 그려졌다. 연재할 때 나는 20대였기 때문에 고등학생의 관점에서 더 잘 그릴 수 있었고, 그것밖에 몰랐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시야가 넓어졌고 그리고 싶은 범위도 넓어졌다. ‘슬램덩크’를 그린 뒤 ‘배가본드’나 ‘리얼’을 그려온 것도 영향이 있었기에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한다. 원작에서 그린 가치관은 굉장히 단순했지만, 지금의 나 자신이 관련된 이상, 원작을 그리고 난 뒤 알게 된 ‘가치관은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가 있어도 그 사람 나름의 답이 있다면 괜찮다’는 관점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Q. 성우 캐스팅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인가? A. 성질(聲質, 목소리의 질감)이다. 만화를 그릴 때 목소리가 내 안에서 또렷하게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목소리의 윤기, 높낮이, 좀 쉬어 있다든가 굵고 심지가 있다든가 그런 질감이 어렴풋이 있었다. 거기에 맞는 사람을 골랐다. Q. 녹음할 때는 어떤 디렉션을 했나? A.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연기한다는 느낌보다는 그들이 평범한 고등학생이라는 느낌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싶었다. 성우들에게 ‘이 캐릭터는 이런 녀석입니다’라고 설명한 뒤, ‘가급적 평소 톤과 비슷하게 부탁드립니다’라고 디렉션 했다. 녹음을 진행하며 만화를 그릴 때는 캐릭터의 목소리까지 들리지 않지만, 말풍선에 글자를 넣으며 글자의 크기나 말풍선의 모양, 장소 등에서 목소리의 크고 작음이나 말하고 있는 동안의 느낌을 무의식적으로 그 속에 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점이 구체적인 디렉션을 할 때 가장 큰 도움이 됐다. Q. 녹음을 마치고 난 소감은? A. 감동했다. 성우와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몸 하나로 와서 목소리만으로 승부하고 돌아가는 느낌이 검 하나로 싸우는 검사 같아서 멋있었다. 모든 분들이 ‘어떻게 이 녀석을 연기할까?’라고 고심해 주셨다. 녹음을 거듭할수록 좋아지는 것을 들으며 정말 고맙다고 느꼈다. Q. 주제가를 The Birthday와 10-FEET에 맡기게 된 계기는? A. 오프닝의 경우는 하나의 음으로 시작해서 점점 여러 가지 소리로 늘어가는 조금 불온한 분위기의 긴 인트로를 원했다. The Birthday의 팬이었기 때문에 꼭 이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었다. 10-FEET는 엔딩이나 극중 음악에 엄청난 노력을 쏟아주었다. 좋은 데모곡을 많이 내줘 ‘좀 더 이렇게 해도 될까요’라고 요청하면 다른 제안을 주고, 거기서부터 또 몇 번이고 마다않고 세세하게 고쳐주고 정말 고개를 숙여도 부족할 만큼 감사하다. Q. 곡에 대해 구체적인 요청을 한 부분이 있나? A. 기본적으로는 아까 말한 이야기와 동일하게 ‘이런 느낌을 원한다’라는 이미지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조율했다. 곡을 들을 때마다 소리의 힘은 굉장하구나 감탄했다. Q. 스태프들은 감독 판단의 정확성에 놀랐다고 한다. 조금밖에 차이 나지 않는 음원이라도 ‘이쪽은 OK고 이쪽은 NO’라고 흔들리지 않고 판단했다고. A. 내가 전문성이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좋게 말하면 ‘선입견이 없는 만큼 정직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라는 것일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나도 처음이라 정답을 모르기 때문에 내 감각을 총동원해서 처음부터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경험이나 노하우가 없는 탓에 쉴 수 있는 사람도 못 쉬게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 Q. 새로운 도전이었는데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A. 그건 만화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만화 이외의 것들을 여러 가지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 안에서는 단 하나의 길이다. 전부 만화가로서 마주하고 있고, 모든 경험이 만화가로서의 나에게 돌아온다. 미술관 전시나 일러스트 일, 이번 영화도 나에게는 전부 ‘만화는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자신을 깎아 다듬는 것이 결국 좋은 만화를 그리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슬램덩크’ 팬들께 전하는 메시지는? A.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슬램덩크’를 만들었다. 만화는 만화로,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으로, 영화는 영화로, 새로운 하나의 생명으로 만든 작품이다. 결국 뿌리는 다 같고, ‘슬램덩크’를 이미 알고 있더라도, ‘이런 슬램덩크도 있구나’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 [세종로의 아침] 아직 토끼를 맞이하지 못한 당신에게/손원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아직 토끼를 맞이하지 못한 당신에게/손원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그리 달콤하지도 않은 시간이 빠르기는 엄청 빠르다. 벌써 2023년. 이를 토주오비(兔走烏飛)라고 해야 하나. 알기 쉽게 세월이 쏜살같다는 뜻인데, 어딘가 토끼해와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고백하자면 아직 토끼해를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겨우 사흘 실천하다 말 계획조차 갖지 못한 채 새해를 맞으려니 ‘현타’와 ‘멘붕’이 한꺼번에 오는 느낌이다. 최근 들은 말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건 연목토이(鳶目兎耳)다. 솔개의 눈에 토끼의 귀라는 뜻으로, 잘 보는 눈과 잘 듣는 귀를 일컫는다. 출전도 불분명하고 잘 쓰이지 않는 말인데, 아마 토끼해를 맞는 다짐 정도의 의미로 쓴 듯하다. 토끼는 작은 몸에 여러 장기를 갖췄다. 냉혹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다. 우선 번식력이 대단하다. 한 해 여러 번 새끼를 갖고, 한 번에 많은 새끼를 낳는다. 암컷이 복수의 자궁을 가진 덕이다. 튼튼한 뒷다리는 포식자에 대항할 수비형 무기다. 포식자의 눈에 띄면 뒷다리의 폭발적인 힘을 빌려 날쌔게 도망간다. 굴 세 개를 동시에 뚫어 천적을 따돌리는 지략도 가졌다. 이를 선인들은 ‘교토삼굴’이라 했다. 큰 귀도 비슷하다. 보이지 않는 포식자를 파악하는 데 필수다. 체온조절기로도 쓰인다. 토끼의 귀엔 혈관이 많다. 빨리 뛰다 보면 체온도 빨리 오르는데, 귀가 피를 식히는 역할을 한다. 코끼리처럼 체온을 조절하는 공랭식 냉각기를 둔 셈이다. 귀를 잘 이용하는 건 자연계에 속한 동물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토끼도 호랑이도 늘 귀를 쫑긋 세운다. 호랑이는 먹이를 추적하기 위해, 토끼는 포식자를 경계하기 위해 나름 전력을 기울이는 거다. 한데 있는 귀를 잘 사용하지 않는 종족이 딱 하나 있다. 인간이다. 먹이사슬 최상위의 유일무이한 포식자라 그런지 밖의 소리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고, 들려도 자기식으로 해석해 버린다. 인간이 토끼에게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바로 이 쫑긋거리는 귀 아닐까 싶다. 세상이 점점 양극화되는 느낌이다. 잇속과 이념에 따라 편가르기가 횡행한다. 잘 듣기만 해도 참과 거짓을 단박에 분간할 수 있는데도, 굳이 들으려 하지 않는다. 피아를 가르는 건 정치인만이 아니다. 민중 역시 둘 중 하나만 선택할 것을 강요받는다. 다른 목소리를 냈다가는 난타당하기 십상이다. 선택하지 않거나 침묵하더라도 대가는 같다. 회색인,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을 각오해야 한다. 신념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원칙이 흐트러질 때 긴장감을 일깨우고, 공동체의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하지만 흑과 백만 선택하다 보면 극단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입장 바꿔 생각하고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고 세상이 회색빛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새해엔 개성 강한 토끼를 보고 싶다. 검은 가죽 ‘잠바’ 입고, 껌 좀 씹으며, 건달처럼 건들거리지만 제 할 일은 다 하는 토끼말이다. 늘 범에게 쫓기고, 숨죽이듯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까. 개성 강한 토끼가 등장할 수 있으려면 사회가 먼저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 흑백의 사고만으로는 컬러의 세계를 품을 수 없다. 아직 토끼해는 오지 않았다. 띠의 기준이 한 해의 시작 절기인 입춘이냐, 정월 초하루인 설날이냐를 두고 이견은 있지만, 어느 쪽에 비춰 봐도 아직은 호랑이의 해다. 그렇다면 시간은 있다. 여러 사정 때문에 토끼해를 맞는 마음가짐을 여태 새기지 못한 이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가슴에 다짐 하나 새겨 두는 건 어떨까. 올해는 토끼의 귀를 가져 보겠노라고.
  • 콘셉트카·해상 자율주행… ‘모빌리티의 진화’를 만나다

    콘셉트카·해상 자율주행… ‘모빌리티의 진화’를 만나다

    전 세계 정보기술(IT)·가전 업체들이 미래 삶을 변화시킬 기술과 한 해를 이끌어 갈 최신 제품을 선보이는 ‘CES 2023’이 오는 5일(현지시간) 개막한다. 3년 만에 완전한 모습으로 개막하는 지구상 최대 IT·가전 쇼에 전 세계 174개국 3100여개 기업이 참가하는 가운데 국내 기업만 500여곳에 이른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사흘간 열리는 이번 CES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시는 지난 2년간 정상 개최되지 못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2021년엔 온라인 개최됐으며, 지난해 1월엔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기간이 단축됐다. 주최 측인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지난해보다 규모가 40% 이상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난 두 번의 행사 때 ‘직원 안전’을 위해 현장 부스를 설치하지 않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도 전시에 나선다. 방문객도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한 10만명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CES 2020’엔 17만 1000명이 참석했는데, 온라인 참여를 고려하면 이번 전시는 이를 훌쩍 넘어설 것이란 게 업계 전망이다.전체의 75%에 달하는 미국 회사들을 제외하면 한국 참가 기업이 가장 많다. 국내 참가 기업 가운데 350개는 스타트업이다. 주요 기업 중엔 삼성전자, SK그룹, LG전자, 현대자동차그룹, HD현대(옛 현대중공업그룹) 등이 포함됐다. 4대 그룹 총수 중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참석한다. ‘Be in it’(빠져들어라)이란 주제를 내건 이번 행사에 기업들은 한층 진화한 모빌리티, 메타버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휴먼테크 등의 기술을 내세워 참전한다. 미국 반도체 기업 AMD의 리사 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미국 농기계 제조업체인 존디어의 존 메이 CEO, 올리버 칩세 BMW그룹 회장, 카를루스 타바르스 스텔란티스 CEO 등이 기조연설자로 나선다. 자동차 기업 관계자가 기조연설자 4명 중 절반을 차지해 모빌리티 기술이 CES의 대세로 자리잡았음을 증명한다. ‘소비자 가전 전시회’로 시작된 CES는 이제 인공지능(AI), 이동통신, 반도체 등 IT 전반을 아우르는 대표 전시가 됐다. 최근엔 빅테크들이 자율주행과 전기차 등 미래 모빌리티 기술에 뛰어들며 모빌리티 산업의 혁신 경쟁도 주목할 만하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스텔란티스 등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는 물론 보시, 마그나, 콘티넨털 등 부품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미래차 전환의 현재와 미래를 논한다. 올해 두 번째로 참가하는 HD현대는 전동화와 자율주행 기술을 해상에서도 구현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시한다. 매해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로보틱스 등 자동차 회사의 진화를 이야기했던 현대차그룹에서는 부품사 현대모비스가 대표 선수로 참가해 차세대 목적기반모빌리티(PBV) 콘셉트카 등 신기술을 선보인다.
  • 각계각층 대표하는 사람들과 함께… 룰라 브라질 대통령, 세 번째 임기 시작

    각계각층 대표하는 사람들과 함께… 룰라 브라질 대통령, 세 번째 임기 시작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왼쪽 두 번째) 브라질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취임식을 마치고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사람들과 플라나우투 대통령궁으로 향하고 있다. 남미 좌파의 대부인 룰라는 이번이 세 번째 임기로 지난 선거에서 전임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1.8% 포인트 차로 꺾고 당선됐다.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580일간 수감됐던 룰라는 첫 당선 후 20년 만에 다시 대통령직에 올랐다. 취임식 도중 여러 차례 눈시울을 붉혔던 룰라 대통령은 교육, 보건, 아마존 열대우림 보존 등에서 보우소나루 정부의 정책 기조를 뒤집겠다고 약속했다. 브라질리아 AP 연합뉴스
  • 2억 1500만 년 전 양서류도 ‘암’에 걸렸다 [핵잼 사이언스]

    2억 1500만 년 전 양서류도 ‘암’에 걸렸다 [핵잼 사이언스]

    암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보다 훨씬 오래되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오래전 고대인의 유골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중생대 공룡에서도 화석화된 암의 증거를 확인했다. 하지만 암은 뼈에 있는 종양을 제외하면 화석화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 연구가 어렵다. 따라서 척추동물에서 암 화석은 사실 연구가 쉽지 않은 분야로 우연히 발견되는 종양 화석에서 가끔 단서가 발견된다. 최근 폴란드, 미국, 독일 국제 과학자 팀은 폴란드 남서부 트라이아스기 지층에서 가장 오래된 양서류 암의 존재를 확인했다. 중생대의 첫 번째 시기인 트라이아스기에는 아직 공룡은 거대화하기 전이었고 현재는 사라진 거대 양서류인 템노스폰딜이 생태계에서 악어와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연구팀이 폴란드에서 발굴된 종은 2억 1500만년 전 살았던 거대 템노스폰딜 양서류인 메토포사우루스 크라지에조웬시스 (Metoposaurus krasiejowensis)이다. 연구팀은 비정상적으로 자란 종양 덩어리로 의심되는 척추뼈 화석을 조사했다.이 화석 일부를 얇게 자른 후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화석 전체는 고해상도 마이크로 CT로 분석한 결과 2억 1500만 년 전 발생한 암은 지금도 뼈에 생기는 가장 흔한 종양인 골육종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종양이 정상 뼈를 침투한 과정을 상세히 분석해 이 오래된 암이 현재의 암과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마 이 화석의 주인공 역시 현재의 암 환자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종양의 크기로 볼 때 암이 사망 원인일 가능성도 있다. 수억 년 전부터 많은 생명체를 고통스럽게 만든 암은 아직도 정복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암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을 찾기 위한 연구를 계속할 것이다. 
  • 소설, 시간을 저버리지 않는 -정지돈, 박솔뫼, 윤해서의 작품에 나타나는 시간관을 중심으로-/이근희 [서울신문 2023 신춘문예 - 평론]

    0. ‘그림자 개’와 소설 ‘그림자 개’가 있다. 이 개는 “시간과 마음의 연결이 약해진 사람들”에게 나타나 산책을 가자고 요구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시간과의 관계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림자 개’가 누군가에게 나타난다는 것은 삶에 대한 일종의 경고 신호인 셈인데,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위험에 처했음을 깨닫지 못하고 이를 단지 희한하고 우스운 하나의 에피소드로 여겨 버린다. 따라서 그 경고 신호를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림자 개’의 특성을 파악해 두어야 하는데….(박솔뫼,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문학과사회’ 2021년 가을호, 88쪽) 대뜸 이렇게 시작하는 박솔뫼의 소설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는 첫 페이지부터 독자에게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래, ‘그림자 개’라는 것이 있다고 하자. 언뜻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고, 아무튼 이것은 허구의 이야기니까. 그런데 시간과 마음이 어떻게 연결된다는 거지? 그 연결이 약해지는 것이 왜 위험한 거지? 어쩌면 이와 같은 질문은 근대 이후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잊힌, 혹은 불필요한 질문이 돼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똑똑한 그들은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그 질문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고. 어떤 성과나 효용이 발생하느냐고. 그런 것이 산출되지 않고 어떤 답도 도출해 낼 수 없다면 애초에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그러니 그에 대한 생각은 접어 두라고. 시간이니, 마음이니, 관계니, 믿음이니,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할 시간에 한 시간 더 일하거나 한 시간 더 잠을 자 두라고. 그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생산적이라고. 더이상 자신들이 지나온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근대인은 ‘시간과 인간의 관계’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모호한 것 대신 명확하고 검증 가능한 ‘이성과 과학’을 손에 쥐고 더 나은 내일, ‘발전된 미래’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런데 이는 파멸의 길이기도 해서, 인간이 이성의 힘으로 이뤄 낸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도리어 인간을 파괴하는 전쟁과 야만의 시대를 불러오게 된다. 그럼에도 반성 없는 근대의 열차가 질주의 고삐를 멈추지 않던 20세기 초, 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발터 베냐민은 근대의 ‘진보적 시간관’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베냐민에 따르면 근대는 ‘과거→현재→미래’라는 삼분법적 시간관으로 작동되는 것으로, 최종 목적지인 미래를 위해 과거를 망각하고 현재를 폐기시킨다. 그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폭력으로 스러지고 잊힌 과거 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이때 과거는 단순한 사실에 그치지 않고 현재에 의한 ‘기억의 형식’이 되며, 이는 과거가 현재의 기억을 통해 다시 살아날 수도 있음을 뜻한다. 이때 “균질하고 공허”하게 흘러가기만 하는 연속적·진보적 시간의 흐름을 폭파한 후 그 ‘정지의 상태’에서 스쳐 가는 찰나의 기억을 붙잡는 일이 중요한데, 왜냐하면 현재 우리가 인식하지 않는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는 지금 “현재와 더불어”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의 ‘정지의 변증법’은 근대의 진보적 시간관이 토대를 두고 있는 계속해서 앞으로만 발전해 가는 변증법이 아니라 오히려 일단 멈춰야만 한다는 것, 그 정지의 순간에만 가능한 무엇이 있음을 역설한다. 그는 기존의 지배적인 시간의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이상 발터 베냐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최성만 옮김, 길, 2008, 331~345쪽 참조)해 새로운 서사를 (재)구성해 내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자연의 시간은 서사적 방식으로 진술되는 한에서 인간의 시간이 되며, 이야기는 “시간 경험의 특징”을 그리는 한에서만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 폴 리쾨르의 말(폴 리쾨르, ‘시간과 이야기 1’, 김한식·이경래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9, 25쪽)은 베냐민의 역사철학적 사고와 근대 이후 서사의 주요 장르가 된 소설을 함께 생각해 보게 한다. 소설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찰나라도 멈춰 세운 후 그 정지의 시간 속에서 잊힌 한 존재를 기억의 그물로 건져 낼 수만 있다면 이는 인간 삶의 새로운 서사-의미를 만들어 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처럼 인간이 시간과 맺는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한다는 점에서 소설은 ‘그림자 개’와 닮아 보인다. 앞서 미처 살펴보지 못한 ‘그림자 개’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하나. 그림자 개는 그림자로 된 개다. 둘. 그림자 개는 산책을 한다. 셋. 그림자 개는 짖는다.”(‘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88~89쪽) 하나. 소설은 허구로 쓰인 글이다. 둘. 소설은 시간과 마음의 연결을 돕기 위해 이리저리 떠돈다. 셋. 소설은 짖는다. 이 ‘짖음’이 위험에 처한 상황을 알리는 다급한 신호라면 우리는 소설을 그저 상상력으로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로, 현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순진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가벼이 여기고 지나쳐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을 다루는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바라보는 렌즈로서의 시간을 어떻게 구축하며 살아갈 것인지 묻고 따져 보는 실천이 된다. 여기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간을 형상화하는 세 편의 ‘그림자 개’가 있다. 이 글은 그들과 함께 산책을 나서기 위한 하나의 시도가 될 것이다. 1. 소진됨으로써 발생하는 이미지 - 정지돈의 ‘모든 것은 영원했다’(정지돈, ‘모든 것은 영원했다’, 문학과지성사, 2020. 이하 인용할 경우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 1927년 하와이, 독립운동가이자 공산주의자인 ‘현앨리스’의 아들로 태어난 ‘정웰링턴’은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자신의 신념인 공산주의가 실현된 나라를 보기 위해 1948년 체코로 떠난다. 허나 공산주의 사회의 실상은 그가 그토록 꿈꿨던 이상과 달랐고, 정작 그 사회에서 그는 자신이 “열외자”(54쪽)라는 것을 깨달을 뿐이다. 그는 체코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해 비밀경찰에 협조하지만 공산주의자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정신적 고향으로 여겨 온 북한에서는 현앨리스를 비롯한 그의 지인들이 숙청당한다. 그는 미국과 체코, 북한 그 어느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한다. 1963년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는 그의 모습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정웰링턴은 꿈을 꿨고 꿈을 기억하는 것이 오랜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기억이었고 두 세계에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 꿈속에서 정웰링턴은 두 번째 삶을 살았다. 또는 세 번째, 네 번째. 인간은 매일 꿈을 꾸지만 그것을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정웰링턴은 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 다시 잠들지 못했다.(7쪽) 인간은 매일 잠을 자고 꿈을 꾸지만 대부분 그 꿈을 기억하지 못한다. 허나 이날 그는 자신의 꿈을 기억해 낸다. 이후 다시는 잠들지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을 준 “오래된 기억”으로서의 꿈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으나 떠올린 순간 “인생 전체가 쏟아져 내리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꿈을. 그 꿈은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 그는 무엇을 망각해 왔던 것일까? 근대는 위기의 시대라 할 수 있다. (…) 위기는 사실상 ‘위기’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고대 그리스에서 위기는 선택을 의미했다. 옳음과 그름, 구원 또는 심판, 삶 혹은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상황, 찬성이냐 반대냐를 요구하는 시대. 그게 바로 ‘위기’라네. (…) 재밌는 건 그럼에도 최근 지나온 10년을 프랑스혁명 이후 유일하게 위기가 없었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거네.(97쪽) 근대 이후 빠르게 변모해 가는 세계에서 위기는 ‘일상적’인 것이 된다. 그럼에도 2차 대전 이후 냉전의 대립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 가던 지난 10년은 오히려 위기가 없었던 시대였다고 ‘이지’는 말한다. 정웰링턴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그동안 죽음의 위기를 수시로 겪어 온 자신과 가족, 동지들의 삶이 위기가 아니었다고?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깨닫는다. 그들은 죽을 상황에 처하거나 심지어 죽었다고 하더라도 ‘위기’를 겪지는 않았다는 것을.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애초에 무언가를 택한다는 선택권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들은 선택을 내릴 권리 자체를 박탈당한 사람들, 처음부터 “예외적인 존재”(100쪽)였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을 이렇게 배제한 것이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둘 중의 하나가 아니라 두 체제 모두가 그렇게 했다는 것, 즉 두 체제 모두가 ‘근대의 쌍생아’로서 그들을 사회에 포섭하는 동시에 배제시켜 온 공모자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믿었다. 공산주의는 국경과 인종, 성별과 나이를 뛰어넘는다. 자본주의는 반대다. 자본주의는 상이한 욕망과 능력을 먹이로 성장하고 국경과 인종, 성별과 나이를 나누고 계급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게 변했고 그는 이러한 변화를 설명할 수 없었다. (…) 정웰링턴은 생각했고 책에 불을 붙였다. 바삭하게 굳은 ‘레탕모데른’은 잘 타올랐다.(8~9쪽) 1963년의 잠에서 깨어난 뒤 그가 깨달은 것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실상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 둘 다 최종 목적지를 ‘발전된 미래’에 두고 ‘진보적 시간관’이라는 동일한 연료로 달리는 기차였다는 뼈아픈 진실이었다. 이제 겉무늬만 다를 뿐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근대의 두 기관차 모두에 “비상 브레이크”(“마르크스는 혁명이 세계사의 기관차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쩌면 사정은 그와는 아주 다를지 모른다. 아마 혁명은 이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잡아당기는 비상 브레이크일 것이다.”(‘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356쪽))를 걸기 위해 그는 이들이 공유한 시간관 자체와 맞서 싸워야 한다. 그가 ‘레탕모데른’(les temps modernes), 즉 ‘근대의 시간’이라는 잡지를 불태우는 것은 마땅한 수순으로 보인다. 1848년 7월 혁명 발발 당시 파리 곳곳의 여러 사람들이 “시계탑의 시계”를 향해 동시에 총을 쐈던 것처럼(위의 책, 346쪽) 근대 이후 ‘혁명’은 기존 시간관과의 투쟁에서 시작되는 것이리라. 그러나 거대한 근대의 시간에 맞서 “지연된 순간들”을 좋아하고 “목적지가 없”는 이동과 “결과가 없는”(102쪽) 실험을 추구하는 정웰링턴은 무력하게만 보인다. 차차 그는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채 혼자가 돼 간다. 그에게 남은 대화 상대는 과거뿐인 듯하다. 윌리(정웰링턴의 애칭-필자)는 과거가 떠올랐다. 꿈을 기억한 이후 처음 체코에 온 시절이 반복해서 재생됐다. 시간은 기억 속에서 거리를 상실했고 종이를 반으로 접어 펜으로 구멍을 뚫은 것처럼 의식의 지평 위에 14년 전과 14년 후가 겹쳐졌다.(29쪽) 과거를 떠올리는 그에게 처음 체코에 도착했던 14년 전과 14년 후인 지금 현재는 “겹쳐”진다. 시간의 흐름을 건너뛰어 먼 과거의 특정 시기와 현재가 연결된다. 과거의 어떤 선택에 따라 그 이후의 삶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었다. 체코 비밀경찰의 협조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다면? 서둘러 미국으로 돌아갔다면? 북한으로 갔다면? 아니, 애초에 미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꿈을 기억한 1963년의 그날 그가 꿈속에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삶을 살았다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 어떤 꿈도 그를 받아 주지 않았다면. 아무리 많은 삶이 가능했더라도 그것들이 모두 ‘진보의 꿈’으로 귀결될 뿐이었다면. 공간적으로도(“체코와 북한 모두에 거절당한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길 원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135쪽)), 시간적으로도(“정웰링턴의 문제는 자신이 어느 시간대에 존재하는지 모른다는 데 있었다.”(16쪽))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그는 혼란스러움 속에서 하나의 장르를 발명해 낸다. “침묵”(16쪽)이 바로 그것. 이는 소설 속의 그가 행하는 유일한 ‘선택’으로, 그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기를 선택한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허먼 멜빌, ‘허먼 멜빌’, 김훈 옮김, 현대문학, 2015, 22쪽)라며 ‘하지 않음’을 택하는 허먼 멜빌의 바틀비와 극 중간중간 긴 침묵에 골몰하는 사뮈엘 베케트의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들뢰즈는 베케트의 텔레비전 단편극에 대한 글에서 “피로한 인간은 단지 실현을 소진했을 뿐이다. 반면 소진된 인간은 모든 가능한 것을 소진하는 자”라고 둘을 구분한다. 그러니까 ‘피로한 인간’은 오늘의 할 일을 마친 후 집에 돌아가며 피곤해하지만, 밤새 푹 자고 일어나면 내일 다시 일을 하며 무언가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소진된 인간’에게는 이 내일의 실현 가능성이 더이상 없다. 그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 자체를 남김없이 불태워 버렸기에 오늘이든 내일이든 먼 훗날이든 더이상 어떤 것도 할 수 없다.(질 들뢰즈, ‘소진된 인간’, 이정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3, 23~24쪽 참조) 하와이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체코로, 끊임없이 어떤 가능성을 따라 살아온 정웰링턴에게 이제 남은 것은 ‘소진된 가능성’뿐이다. 가능성을 탕진해 온 삶. 그의 “시계는 정지”(96쪽)한다. 윌리는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세계와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나는 가까운 시일 내에 죽을 것이고 사람들이 이를 자살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어에 불과하고 나의 선택은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언어와 숫자, 개념 따위로 수렴되지 않는 것이다.(132쪽) 삶이 정지하는 죽음의 순간 정웰링턴은 가능성 자체의 소진이 무엇인지,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외치는 진보의 폭력성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자살이라 부를 것임을 알지만, 그것은 “단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모든 가능한 것을 소진한 후 맞는 마지막 순간의 정지 속에서 그는 하나의 이미지를 그리는 중이다. 바로 “더이상 가능한 것은 없다”는 이미지.(위의 책, 44~45쪽 참조) ‘진보적 시간’이 주장하는 모든 허황된 것들을 끝장낸 후에야 비로소 발생할 이미지. “죽음과 혼돈의 순간”이 “생성과 창조의 순간”과 동시에 존재하는 “카오스모스의 시간”(위의 책, 119쪽), 그것은 결코 “언어와 숫자, 개념 따위로 수렴되지 않”을 것이다. 2. 끝나지 않는, 끝날 수 없는 산책 - 박솔뫼의 ‘미래 산책 연습’(박솔뫼, ‘미래 산책 연습’, 문학동네, 2021. 이하 인용할 경우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 1982년 3월 18일, 부산 중구 대청동 부산 미국문화원에 방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을 일으킨 것은 당시 고신대 학생이었던 문부식, 김은숙 등으로, 그들은 1980년 5월 광주항쟁 때 자행된 군부의 학살을 비판하고, 또 이를 묵인하고 방조한 미국은 즉각 이 땅에서 물러갈 것을 요구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2021년 박솔뫼는 이 사건을 소재로 한 ‘미래 산책 연습’을 발표한다. 그런데 작가는 같은 소재로 ‘매일 산책 연습’이라는 단편소설을 이미 쓴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작가는 한 번 다뤘던 소재를 왜 다시 써야만 했을까. 두 소설에서 소설을 쓰는 ‘나’의 서사는 거의 동일하다. 다만 차이점은 장편인 ‘미래 산책 연습’에는 ‘나’ 외에 ‘수미’의 서사가 추가된다는 점이다. 이때 두 서사가 지닌 시간축의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 즉, ①‘나’의 서사가 현재의 시점에서 80년대 과거를 돌아보는 회상의 형식이라면, ②수미의 서사는 80년대 과거로부터 현재로 다가오는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간단히 내용을 살펴보면 ①‘나’는 부산의 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난 ‘최명환’과 친해지면서 그녀가 과거에 김은숙을 알았으며, 방화 사건 당일 우연히 김은숙을 목격했음을 듣게 된다. ②광주에 사는 학생인 수미는 감옥에서 출소한 친척 언니인 ‘조윤미’를 맞이하게 되는데, 서사가 진행되면서 밝혀지는 건 조윤미가 부산 미국문화원에 불을 지른 인물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①과 ②의 서사가 번갈아 가며 진행되는 이 장편소설에서 ①의 김은숙과 ②의 조윤미는 서서히 겹쳐지게 된다. 단편에서는 이름으로만 회상됐던 김은숙이 장편에서는 1980년대 당시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인 조윤미로서 소설 속에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총 12개의 장으로 이뤄진 이 소설의 전체 구조도 주목을 요한다. 서사의 흐름을 따르자면 이 소설의 1장은 소설의 처음이 아니라 마지막에 놓여야 한다. 마지막인 12장은 어른이 된 수미가 아픈 윤미 언니를 배웅하며 끝나는데, 이를 이어받기라도 하듯 1장에서의 수미가 좀 전까지 같이 있었던 아픈 윤미 언니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12장 다음에 1장이 오는 것이 인과관계상 자연스럽다. 그러나 1장의 수미가 “그렇다면 어떻게 처음 언니와 만나게 되었는지를 써둬야겠다”(12쪽)고 마음먹은 뒤 써 내려간 것이 바로 다음 장에서부터 전개되는 이 소설의 내용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1장은 분명 이 소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 소설은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과거로부터 다가오는 현재(②)와 현재에서 뒤돌아보는 과거(①)가 서로 물고 물리는 것을 전체적인 구조로 형상화하고 있다.1) 이제 소설의 형식에서 보이는 이러한 시간적 특성이 내용의 측면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김은숙-조윤미’는 1982년 당시 88올림픽 준비를 중단하라고 비판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가 ‘82년도에 생각한 88년도’와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88년도는 그 모습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겉으로는 ‘화합과 전진’이라는 올림픽 슬로건이 내세워졌지만, 실상 이면에서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집을 빼앗기고 사회에서 배제돼야만 했다. 국가는 이를 은폐한 채 “성공적인 88올림픽”(97쪽)을 홍보해 왔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제와 폭력은 그 후로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은, 아니 오히려 더 강화된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나라에서 쓸어 버려도 좋다”거나 “부족하고 모자라 보이는 사람들은 흐름에서 탈락되어 죽어 버려도 좋다”는 말, “손이 없는 자가 빵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당연한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148~149쪽)와 같은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떠도는 것이 지금 이 사회의 모습 아닌가. 이러한 모습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어쩌면 거듭되는 기득권의 지배와 ‘경쟁에서의 승리’만을 향해 달려가는 이 흐름에 맞서기 위해서는,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고문당하는 소리를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193쪽) 지워 버리는 기차 소리에 맞서기 위해서는, 지금-현재에 하나의 “매듭을 지어 버리는 일”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미국이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는 미래를 연습하였을지는 알 수 없었다. 불을 붙인 이후의 시간을 미래라 생각하였을지도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들은 그런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어땠을지는 알 수 없지만 끝을 내고 매듭을 지어 버리는 일,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 일이 필요할 때가 있을지 모른다.(91~92쪽) ‘그런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의 사건을 일으킬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1980년 광주에서 억울하게 죽어 간 자들의 목소리, 그 외에 다른 원천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곳곳에서 수수께끼처럼 제시되는 대목들, “내가 갖고 싶은 미래가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아름다운 과거로 여겨”(18쪽)진다거나 “미래는 꼭 다음에 일어날 것이 아니고 과거는 꼭 지난 시간은 아니”(91쪽)라는 부분에 대한 해석도 가능하겠다. 즉,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미래는 ‘발전된 미래’라는 진보적 시간관으로서의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사람들이 꿈꿨던 미래, 그러나 실현되지 않은 것이기에 “슬픈 과거”(140쪽)인 미래, 그렇기에 지금 여기로 가져와야만 하는 미래-과거가 된다. 이때 우리는 ‘미래 기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보았던 사쿠라이 다이조의 연극 중에는 ‘미래 기억’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연극이 있었다. (…) 그러니까 다른 시간을 살 수 있었다. 미래를 살고 와야 할 것을 살아 낸다면 미래를 기억이 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153쪽) 현재의 내가 과거의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꿈꿀 때 미래는 꼭 다음에 오는 일이 아니고 과거 역시 그저 지나간 일이 아니게 된다. 이렇게 시간은 “뭉쳐지고 합해지고 늘어나고 누워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과거의 사람들이 꿈꾼 미래를 지금 여기서 기억하며 살아간다면. 따라서 ‘미래 기억’은 바라는 일이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 일이 실현될 오늘을 살아가는, 일종의 수행적인 행위가 된다. 1980년에 기억하는 2000년처럼. 1980년 겨울, 광주 전남 지역의 미술인들은 ‘2000년을 위한 파티’를 연다. ‘2000년’은 광주의 진실이 알려진 미래로, 당시에는 (그리고 지금도) 아직 오지 않은 “민주적인 미래”(193쪽)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확실한 약속이 아니라 “과거의 완결되지 않은 사실”에 발을 딛고서 다른 “미래로의 문”(에밀 앙게른, ‘역사철학’, 유헌식 옮김, 민음사, 1997, 242쪽)이 열리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 문 너머의 세계는 우리에게 예상 가능한 미래가 아니라 “새로운 미래”(153쪽)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흔히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당시 그대로의 완벽한 복원을 바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 그 자체의 완벽한 복원은 불가능함을, 과거를 예상하고 짐작하는 나의 생각이 “착각일 수 있음”(193쪽)을 인정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1980년 5월 27일 아침,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는 도청 앞의 “그 냄새와 공기와 광경을 모르고 모르고 모”(192쪽)르기에. 과거에 대한 ‘살아 있는 기억’을 지닌 역사적 사건의 당사자로부터, 그러한 기억을 지니지 않은 다음 세대를 위한 ‘역사적 기억’으로의 전환(박순석, ‘5,18과 도청’ 토론문, ‘5.18 41주년 기념 학술대회’, 5.18기념재단, 2021, 95~97쪽 참조)은 가능할까? 최명환은 ‘나’에게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14쪽)라고 묻는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묻는, 그래서 ‘미래 기억’적인 이 질문은 지금 우리 사회에 얼마나 유효할까. 과거를 현재로부터 가차 없이 떼어 내 버리는 ‘기억의 위기’인 이 시대에 대응해 예술은 기억을 위한 어떤 “새로운 형식을 창안”(알라이다 아스만, ‘기억의 공간’, 변학수·채연숙 옮김, 그린비, 2011, 16~26쪽 참조)해 낼 수 있을까? ‘미래 산책 연습’은 이에 대한 하나의 응답처럼 보인다. 소설에는 평범한 인물들의 일상적인 생활의 모습이 자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세세하게 묘사된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며 독자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이 인물들을 따라 먹고 마시고 걷게 된다. 그 식당과 목욕탕과 빵집과 카페와 골목의 어디쯤에서, 소설 밖의 독자와 소설 안의 인물이 만난다. 그리하여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기억하는 ①과 과거의 시점에서 미래를 기억이 되게 살아가는 ②가 하루하루 서로 교차될 때 독자는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과거와 현재를 오가게 된다. 물론 역사적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우리가 나 스스로를 사건 당사자의 자리에 놓아 보는 것, 자신을 “한 사람의 시민”이나 “인류의 일원”으로 생각해 보는 것은 “드문 상태”(14~15쪽)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 소설을 읽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상태가 된다. 과거와 현재의 사람들이 만났을 때 서로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을까? “그럴 수는 없”(112쪽)는 것이다. 과거 사람들이 바랐던 ‘미래’를, 그들에 대한 ‘생각하기’와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미래 산책 연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끝날 수 없을 것이다. 3. 눈사람을 만드는 일 - 윤해서의 ‘0인칭의 자리’(윤해서, ‘0인칭의 자리’, 문학과지성사, 2019. 이하 인용할 경우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 앞의 두 소설에는 각각 ‘1960년대 체코의 정웰링턴’, ‘1980년대 부산의 김은숙’이라는 역사적 시공간의 인물이 제시돼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그 인물을 바라보는 현재 작가로서의 ‘나’가 있었다. 반면 이제 살펴보게 될 윤해서의 ‘0인칭의 자리’에는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이나 인물, 그리고 작가로서의 ‘나’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앞의 두 소설에 이어 놓아 보는 이유는 이 소설이 동시대를 역사적으로 사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의 두 소설이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동시대를 사유하고자 했다면 이 소설은 동시대를 사유하기 위해 동시대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듯 보인다. 특정한 플롯이나 줄거리가 없어 보이는 이 소설은 그야말로 실험적이다. 소설 전체에 걸쳐 주인공이라 할 만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으며 여러 인물들(혹은 공간들)은 *을 사이에 두고 매번 달라진다. 행갈이가 되어 마치 시처럼 보이는 이탤릭체의 대목들(대체로 현재형)이 정서체로 쓰인 인물들에 대한 객관적 묘사(대체로 과거형) 사이사이에 흩뿌려져 있다. 예컨대 소설의 첫 문장부터 15쪽까지가 이렇다. * 언제나 사람들은 어딘가에 앉아 있었을 것이고, 어쩌다 일어나 서둘러 걷거나 뛰었을 것이고, (…) * 사는 게 재밌네, 재미있어 사는 게. 그는 혼잣말을 했다. (…) * 화병의 목록은 꽃 이름만큼 많다. 현무암, 화강암, 석회암은 아니다. * 그녀는 6번 출구로 나왔다. 출구 앞에는 영종도에 들어설 오피스텔 분양 (…) * 큰눈물버섯이라는 버섯이 있다. 큰눈물버섯은 눈물버섯속이다. (…) * 그가 후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 문화재해설사는 궁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었다. (…) 작가는 왜 이런 형식으로 글을 쓴 것일까? 만약 작가가 “어떤 한계”에 의해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모든 것은 영원했다’, 150쪽) 이런 기법으로 소설을 쓰도록 만든 그 한계는 무엇이었을까? 계속 변화하고 움직이는 현재, 좀처럼 파악되지 않는 그 현재의 수많은 삶들, 바로 이를 포착해 드러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윤해서가 직면한 어떤 한계가 아니었을까. 마치 한글 문서창의 커서가 깜빡이며 “살았다, 죽었다, 살았다, 사라졌다”(85쪽)를, 어둠 속의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며 “반짝, 어둠”(67쪽)을 반복하듯, 매순간 ‘있다-없다’를 반복하는 이 현재를 도대체 어떻게 붙잡아 그려 낼 것인가. 이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소설은 위와 같은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즉, 논리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정서체(과거형)의 대목 사이사이로, 갑자기 나타나 서사-시간의 흐름을 끊어 버리는 이탤릭체(현재형)의 대목을 등장시켜, 끊임없이 교차되는 시간의 움직임을 매순간 형상화해 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내용적으로 ‘미래 산책 연습’에서 얼핏 보였던 동시대 사회의 모습은 이 소설에서 더욱 전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사람을 넘어뜨려 죽이고도 태연해하고(18쪽), ‘만남의 광장’이라는 식당에서 마주 앉아 밥을 먹지만 상대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 채 자기 식사에만 골몰하고(157쪽), PC방에 앉아 무기를 고른 후 각자의 전장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죽인다(169쪽).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피곤하고, 오직 돈과 휴식만을 원할 뿐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다(61~63쪽). 이러한 사회의 모습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현상인 것만 같고,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대의 사회적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의 또 다른 몇몇 대목은 그 자연스러워 보이는 모습들이 실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이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암시한다. 한 공장에서 비슷한 시기에 집단적으로 백혈병 진단을 받았음에도 어떠한 진상 규명이나 보상도 없이 해고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 지켜보며 45일째 단식 투쟁을 하다 공장 옥상에서 투신하는 사람이 있다(52~53쪽). 과거에 자신들이 행한 잘못이 명백함에도 죽어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일본대사관 앞에는 지금도 소녀상이 있다(117~118쪽). 자신들이 타고 있는 배가 어디로 가는 중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두려움에 떨면서도 믿고 의지할 것이 없어 서로의 작은 손만을 잡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132~135쪽). 단지 소설 속 이야기로만 읽기 어려운 이 대목들은 결코 자연스러워지지 않는다. * 어떤 시간도 공평하게 간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 시간이 무섭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가만히 있는 것들을 자라게 하고, 썩게 하고, 기어이 사라지게 하는. 황홀한 삶을.(199~200쪽)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의 한 화자는 “감자에 싹이 나고, 물 밖의 고기가 썩고, 방충망에 뿌옇게 먼지가 낀다”는 일상적인 생활의 모습에 “비는 내리다 그치고 / 더위가 가고 추위가 온다”는 자연적 흐름을 더해 가며 섭리 같은 시간을 말한다. 그저 가만히 있는 존재들을 “자라게 하고, 썩게 하고, / 기어이 사라지게 하는” 공평무사한 자연의 시간을. 그런데 화자는 이 시간을 무섭다고 여긴 “적이 있다”고, 마치 지나간 일처럼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화자는 시간의 또 다른 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무언가를 사라지게 할 수도 있지만 또한 무언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는, “가능한 것이 사라지게 하는 바로 그 순간에 가능한 것을 창조”(54쪽)할 수도 있는 시간. 이제 200쪽에 이르는 이 소설에서 무심히 세 번 내리는 눈(雪)을 살펴볼 때가 된 것 같다. * 눈이 내린다. 눈이 내려 쌓인다. 쉼 없이 쏟아지는 눈송이들. 골목, 골목에. 모든 기억의 눈꺼풀 위에. 잠잠하라. 잠잠하라.(20쪽) * 눈은 내려 쌓이고, 아무도 밟는 사람이 없어서 발자국 하나 없이 끝내 하얗고.(88쪽) * 죽을 때 죽더라도. 어느 때나 눈사람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눈은 그저 내리고, 어디에나 똑같이 내려 쌓이는데.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드는 건 사람의 일. 눈사람은 누군가의 기억 같아. (…) (174~175쪽) 시간이 공평히 흘러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사라지게 하듯, 눈 역시 “그저 내리고, 어디에나 똑같이 내려 쌓”이면서 땅 위의 존재들을 하얗게 지울 수 있다. 시간은 흐르면서, 눈은 쌓이면서 여기 존재하던 무언가가 더이상 여기 있을 수 없게 한다. 그곳은 새하얀 무(無)가 된다. 그러나 시간이 무언가를 사라지게 하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태어나게도 하듯, 눈 역시 그럴 수 있다. 단, 하나의 조건이 충족됐을 때. 즉, 우리가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드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사람의 일”을 수행할 때. 한 사람을 기억하며 만들어 가는 눈사람은, “모든 눈꺼풀의 기억 위에” 쏟아지면서 “잠잠하라”고, 이제 그만 잊으라고 명령하는 ‘눈-시간’에 저항하는 일이 된다. 어쩌면 이때, “기둥도 뿌리도 없이, 잎도 열매도 없이”(200쪽) 이 지상 위를 떠도는 이들도 저 눈사람 위에서 잠시 쉬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계절의 끝에, 아이들의 침대 맡에, 깊은 꿈속”(175쪽) 곳곳에 눈사람이 놓여 있듯, 이 소설의 곳곳에는 누군가를 간절히 기억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이 땅에 없는 사람을 향해 “하늘에도 지도가 있습니까?”라고 묻는 사람(118~119쪽), 낚시터에 나란히 앉아 주말마다 이곳에 앉아 있던 한 남자를 기다리는 엄마와 딸(179쪽),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다 문득 바다 위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을 보게 되는 그녀(20~21쪽) 등. 이들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고 깊은 고통과 상심을 겪고 있으면서도, 그럼에도 그 한 사람을 끈질기게 기억하고 바라보고 있다. 문득 떠오르는 소설 앞부분의 한 대목. 화병의 목록은 꽃 이름만큼 많다. 현무암, 화강암, 석회암은 아니다.(9쪽) 화병의 목록이 꽃 이름만큼 많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국화꽃, 진달래꽃, 봉숭아꽃, 목련꽃, 벚꽃 등 각각의 꽃에는 저마다 그에 맞춤한 꽃병이 있다는 말일까. 그래서 화병이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들은 더이상 “현무암, 화강암, 석회암” 같은 보편적인 명사에 속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현무암일 뿐인 평범한 돌이 어떤 특정한 꽃을 담아내는 순간 고유한 이름을 가진 화병이 된다. 여기서 ‘화병’을 기억되는 사람으로, ‘꽃’을 기억하는 사람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이때 기억되는 사람은 기억하는 사람만큼 생겨나게 된다. 과거 속에서 이름을 잃은 채 무명(無名)의 상태로 떠돌던 이들을 누군가 기억하는 순간, 그들은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과거의 누군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를 기억하는 동시에 그 자신 또한 상대방에 의해 고유한 존재로, ‘이 화병’에 담긴 ‘이 꽃’이 된다. 이처럼 이 둘은 따로 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있을 때 자신 역시 존재할 수 있는, 서로가 서로를 구성하는 관계가 된다. 마치 한국어에서 “자음과 모음”이 합해져야 하나의 글자가 되는 것처럼. 아이와 부모가 서로를 존재케 하는 것처럼(186쪽). ‘0인칭의 자리’는 더이상 과거를 기억하지 않고 어떤 미래도 떠올리지 않는, 단절된 현재만을 살아가는 동시대를 어두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또한 이 소설은 공허하게 흐르는 시간과 무심히 내리는 눈을 거슬러, 그것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 수도 있다고, 지금도 어딘가에는 눈사람이 놓여 있지 않느냐고 우리를 조용히 일깨운다. 그러므로 폐허 속 잔해들을 그러모아 새로운 무언가를 (재)구성하는 것은 ‘역사의 천사’뿐 아니라 “미약한 메시아적 힘”(‘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332쪽)을 지닌 바로 우리, 인간의 몫이기도 할 것이라고. * ‘0인칭의 자리’에는 한 아들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책장을 정리하다 ‘수학’이라는 책을 펼쳐 보는 대목이 있다. “378쪽. 거기에 유일한 밑줄. 존재성 증명은 정의되는 성질을 가진 물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히는 과정이다.” 이어지는 설명에 따르면 이렇다. 존재성 증명에는 ‘구성적 증명’과 ‘비구성적 증명’ 두 가지가 있는데, ‘구성적 증명’은 명확한 숫자로 답이 존재한다. 1+1=2처럼. 그런데 방정식의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답이 존재하기는 한다는 것, 바로 그 사실을 밝히는 증명도 있다. 명확한 숫자로서의 답은 제시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무언가 “존재하기는 한다”고, 답으로서의 무언가가 “있기는 하다”(109~110쪽)고 증명하는 것이 바로 ‘비구성적 증명’이다. 아들은 궁금하다. 아버지가 밝히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앞에서 살펴본 세 편의 소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간을 다루는 와중에 이 ‘비구성적 증명’을 해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웰링턴을 기억하냐는 ‘나’의 물음에 ‘야넥’은 그의 죽음이 자살인 건지, 그의 목소리나 성격이 어떠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그렇지만 당신이 물으니까 병원 담벼락 안쪽 “그곳에 남자가 있었다”(‘모든 것은 영원했다’, 200쪽)는 것만은 기억이 난다고 말한다. 1980년 5월 광주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부산의 김은숙과 동지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를 고민하던 ‘나’는 그들이 생각한 것은 “그들 자신이 광주에 있었다면”이라는 가정이 아니라 “그때 그곳에 누군가 있었다”(‘미래 산책 연습’, 92쪽)는 과거의 사실 그 자체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카메라 렌즈로 바라본 어머니의 눈빛, 그때까지 자신이 알던 어머니의 눈빛과는 전혀 다른 그 눈빛은 카메라도 아니고 카메라 너머의 자신도 아닌 어떤 것을 보고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눈빛을 찍어 왔다는 한 사진가. 그러나 그 어머니의 눈빛은 “그날 그 자리, 거기 없던 어떤 것”(‘0인칭의 자리’, 30쪽)이었음을 이제는 안다는 그의 고백은 이렇게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없는 모든 곳에 당신이 있어.”(위의 책, 150쪽) 그러므로 위 소설들의 끝에서, 우리는 뜻하지 않은 하나의 초상(肖像)과 마주하게 된다. 깊은 밤, 책상 앞에 앉아 잊힌 존재에 대한 자료를 읽고 그를 상상하며 글을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어떤 사람의 수그러진 뒷모습을. 여기서 우리는 80년대에 태어난 이 젊은 세 작가가 왜 2020년을 전후로 이 작품들을 써야만 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글쓰기는 지금 이 시대의 시간관-과거는 하루 빨리 잊을수록 좋고, 미래는 상상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며, 그저 하루하루의 현재만 생존하라고 명하는-에 대한 하나의 투쟁이자 경고 신호로서, 지금 여기에 도착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작가 개인의 글쓰기는 그를 뛰어넘어 이 시대의 공동체를 위한 글쓰기가 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서로 교차하는 곳에, 희미하게 명멸(明滅)하고 있는 한 존재가 있다. 지금-여기에는 없지만 그때-그곳에는 있었던 누군가를 증명해 내는 일은, 내일-저곳을 이미 기억해 내어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과 같다. 그리하여 만약 소설이 지금-여기에 그들을, 그때-그곳에 우리를 데려다 놓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림자 개’의 특성을 하나 더 추가해 볼 수도 있겠다. 넷. 그림자 개는 그림자 개가 되기 전의 개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개다. ‘그림자 개’의 다른 이름이 ‘믿음의 개’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터. 비록 그것이 한낱 그림자에 그친다고 하더라도 ‘그림자 개’-소설은 끝내 시간을, 그 속의 한 존재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므로. ——————————————————————————————————————————— 1) 그리고 이는 ‘모든 것은 영원했다’에도 적용될 수 있다. 정웰링턴이 자신의 꿈을 기억하는 소설의 첫 페이지는 1963년으로, 서사의 흐름상 그의 유언이 등장하는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와 연결된다. 또 작가로 추정되는 ‘나’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의 시간대를 이 책의 출판 연도인 2020년으로 생각해 본다면 1960년대의 과거(정웰링턴)와 2020년의 현재(‘나)가 마주 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식빵을 사러 가는 소년/이익훈 [서울신문 2023 신춘문예 - 희곡]

    식빵을 사러 가는 소년/이익훈 [서울신문 2023 신춘문예 - 희곡]

    등장인물 : 아저씨·소년 아저씨는 드러그스토어 앞. 지금 막 나왔다. 아저씨: (횡단보도 앞에 있는 소년을 발견하고) 너 또 식빵 사러 가니? 소 년: 네. 아저씨: 오늘도 무화과 잼이랑 먹을 거니? 소 년: 어떻게 말해야 하죠? 아저씨: 왜? 소 년: 오늘은 제가 먹을 게 아니라서요. 아저씨: 그러면 누가 먹을 건데. 소 년: 엄마요. 엄마가 아저씨랑 먹을 거래요. 아저씨: 나? 소 년: 아뇨. 엄마 남자 친구요. 아저씨: 아, 지난번에 말했던 아빠 친구 말하는 거구나. 소 년: 쉿, 엄마가 그 말 하면 싫어해요. 죄책감 같은 게 느껴지나 봐요. 아저씨: 넌 이럴 때마다 참 어른스럽구나. 소 년: 아저씨, 파란불이 되었어요. 소년은 깡충깡충 횡단보도를 건넌다. 아저씨는 횡단보도 건너편 인도에 크게, 깡충, 소리를 외치며 도착한 소년의 뒷모습을 본다. 아저씨는 소년의 뒷모습을 찍고 싶다. 부끄러움이 없는 모습. 아저씨는 부끄러움이 많다. 전화기를 찾는다. 전화기가 없다. 아뿔싸. 방금 산 염색약도 없다. 지갑도 없다. 전화기와 염색약과 지갑을 찾는 동안 소년은 ‘비건식빵전문무인판매가성비갑프랜차이즈’ 매장으로 들어간다. 쉽게 누구나 쓰는 마케팅 용어가 매장 앞에 있다. 무인판매라. 아저씨는 키오스크를 사용할 때마다 뒤의 사람이 재촉할까 조급해져 미안한 마음과 짜증나는 마음 때문에 방금 자신이 사려던 게 뭔지 잊곤 했다. 대면이 좋다. 대면이 좋다라. 아저씨는 드러그스토어 안으로 들어간다.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길에 돌아다닌다. 비가 쏟아진다. 아저씨가 드러그스토어에서 나온다. 약속이나 한 듯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사라진다. 아저씨는 한숨을 짓고 드러그스토어 옆 건물 처마 아래 있다. 아이도 식빵 가게 처마 아래 있다. 아저씨: (소년에게) 거기도 비가 오니? 소 년: 그럼요. 거기가 비가 오는데 여기라고 안 오겠어요. 아저씨: 그렇지. 그런데 너는 이럴 때마다 도인 같다. 소 년: 아저씨야말로 사라졌다가 뽕, 나타났어요. 도인처럼. 아저씨: 내가 그랬어? 뽕! 뽕뽕뽕! 뽕뽕뽕뽕? 소 년: 그만해요. (웃으며) 재미없어요. 사이 소 년: 걱정했어요. 사라져서. 아저씨가 말이 없자 소 년: 집에 있는 책을 읽었어요. 아빠가 두고 간 책들. 묵자. 아저씨: 아빠가 철학을 했나 보다. 소 년: (못 들은 척한다) 아닌가. 노자인가. 어려워요. 아저씨: (못 들은 척한다) 식빵은 샀어? 소 년: 네, 감자가 들어 있는 식빵이에요. 맛있을 거 같아요. 요즘 감자가 제일 핫하다고 해서 샀어요. 철학보다 식빵 얘기나 낫네요. 아저씨: 감자가 요즘 유행이지. 감자튀김, 감자칩, 감자깡, 감자전, 감자프라이, 감자만두, 감자옹심이, 감자전, 영국식감자칩, 프랑스식감자오믈렛, 일본식감자돈가스, 독일식감자사우어크라우트곁들임, 감자회오리튀김, 생감자, 찐감자, 말린감자, 감자술, 감자팩, 감자보디크림, 감자립글로즈, 주식감자…. 소 년: 여기 빵 중에서 제일 비싸요. 아저씨: 너 왜 말을 끊니. 소 년: 재미없어서요. 아저씨: 내가 재미없구나. 소 년: 네. 다른 건 다 1990원인데 이것만 4990원이에요. 아저씨: 비싼 거 샀다고 엄마한테 혼날까 봐 걱정되니? 소 년: 엄마는 날 혼내지 않아요. 미안해하지. 그래서 나는 화가 나요. 아저씨: 그렇구나. 소 년: 혼내는 사람들은 안 미안해하는데 혼내지 않는 사람들은 항상 미안해해요. 미안해하니까 나는 화를 내고 싶은데 화를 못 내니까 나는 화가 다시 나요. 아니, 엄마를 이해하니까, 아니 엄마를 이해해야 하니까 화가 나는데 화가 안 나요. 그래서 결국 화가 나요. 아저씨: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소 년: (물끄러미, 차갑게) 알아요. 아저씨는 비겁하니까. 아저씨: 미안하다. 사이 소 년: 그러나 난 아저씨도 이해해요. 아저씨, 미안해하지 마요. 미안해하면 화가 나요. 화가 나는데 화를 안 내야 하니까 내가 비참해져요. 아저씨: 그래, 더 비겁해지마. 사이 소 년: 따뜻한 걸로 골랐어요. 엄마가 아저씨랑 먹어야 하는 거라. 이거 맛있어야 해요. 아저씨: 비가 계속 온다. 괜찮아? 소 년: 여긴 맞을 만해요. 아니다. 안 맞아요. (식빵 가게 캐노픽스를 가리킨다) 아저씨는요? 아저씨: (처마를 쳐다본다. 그러나 처마라고 할 수 없는 이십 센티 정도의 콘크리트 돌출 형태라 비를 막지 못한다. 요즘 도시에선 함부로 쉽게 비를 피하기도 어렵다. 남의 영업장 앞에서 비를 피하면 장사 방해를 한다고 면박당하고 가로수의 잎은 사지 절단이 된다. 다 아는 마당에 의연할 수 없다.) 여긴 비가 많이 와. (웃으며) 다 젖었어. 소년은 아저씨가 있는 곳, 처마 밑을 바라본다. 개미들에게야 가수 싸이가 흠뻑쇼를 하는 것처럼 물이 쏟아지는 그곳이 신나는 실외 운동장처럼 보이겠지만 살이 처지고 배가 나오고 무릎이 풀리기 시작한 아저씨, 오래 고정 자세로 서 있는 것도 힘들 아저씨에게, 그 땅은 비를 피하기 좁다고 말하기 전에, 우선 처량해 보인다. 소년은 생각한다. 방금 나온 드러그스토어 안으로 다시 들어가 아까는 못 사 온 물건이 있는 것처럼 들어가 잠깐 비를 피하면 좋을 것을 왜 저러고 있는지 답답하다. 물론 안다. 드러그스토어는 아저씨 나이 때 남자가 쉽게 드나들기 편한 곳은 아니다. 소년은 자기가 있는 곳, 식빵 가게 캐노픽스를 쳐다본다. 넓다. 아저씨가 이쪽으로 오면 좋겠다. 그런데 오지 않을 것이다. 아저씨는 왜 고집스럽게 저기에 있을까. 그는 비겁하기 때문일까, 처량하기 때문일까, 어리석기 때문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캐노픽스 위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비를 본다. 빗소리를 듣는다. 소년은 슈만의 Op.68 No.12를 듣는다. 아저씨: 그렇게 보지 마렴. 나쁘진 않아. 남 눈에는 나쁘겠지만 나는 나쁘지 않아. (말꼬리를 흐린다. 마치 영화 ‘부기나이트’ 마지막 장면의 그 남자 같다. 두 손으로 자신 있게 붙잡고 일으켜 보지만 쓰러진 성기는 마음처럼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 타인의 불능을 안쓰럽게 여기겠는가. 그것도 사회적으로 희생하거나 공헌한 바 없는-오락적으로 음지의 쾌락을 준 것으로 사회적 공헌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다른-포르노 배우의 퇴직 직전을. 아저씨는 그 정도 쾌락도 못 되고 그저 처마 밑에 있을 뿐이다. 그깟 비가 뭐 대수라고. 자신감을 억지로 불러 본다. 자신감은 대답이 없다. 사이.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정말 나쁘지 않아. 그다지. (그러나 우스꽝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소 년: (슈만을 다 듣고) 곧, 끝나요, 그래 봤자. 아저씨: 뭐가, 말이니? 소 년: 비요. 비는 더 온다. 아저씨: 그럴까. 소 년: (번개가 친다) 안 그럴 수도 있겠어요. 제가 그리로 갈게요. 아저씨: 너, 우산도 없잖아. 소 년: 둘이 같이 맞아요. 그러면 덜 외로우니까. 아저씨: (혼자 맞는 거에 오래 익숙해서 이런 권유가 실은 무섭다) 그럴래. 소 년: (신호등을 보며) 파란 불이에요. 아저씨: 조심하렴. 소년은 깡충거리며 횡단보도를 건넌다. 소 년: (옷 속에서 식빵을 살짝 꺼내며) 아저씨가 궁금해할까 봐. 아저씨: 그래, 궁금했어. 소 년: 따뜻해요. 아저씨 먹을래요? 아저씨: 엄마랑 아저씨 가져다줘야 한다며. 소 년: 궁금해했잖아요. 감자튀김, 감자칩, 감자깡, 감자전, 감자프라이, 감자만두, 감자옹심이, 감자전, 영국식감자칩, 프랑스식감자오믈렛, 일본식감자돈가스, 독일식감자사우어크라우트곁들임, 감자회오리튀김, 생감자, 찐감자, 말린감자, 감자술, 감자팩, 감자보디크림, 감자립글로즈…. 블라블라 해놓고. (사이) 감자 박사님. 아저씨: 놀리지 마렴. 소 년: 딱 놀려야 좋은 타이밍인데, 놓치지 않을 거예요. 아저씨: 박사 아니야. 그냥, 예전에 글을 썼지. 글을 잘 쓰려고 감자 조사를 했지. 지금은 글도 감자도 모조리 다 실패했어. 나는 실패한 인생이야. 소 년: 알고 있어요. 아저씨는 실패한 인생. 저번에 만났을 때도 그렇게 말했어요. 그땐 양배추를 조사하고 있었는데. 아저씨: 내가? 소 년: 내가 호밀 식빵을 사러 가던 날이었는데요. 아저씨가 내게 식빵 사러 가냐고, 울면서 말 걸었어요. 울면서. 아저씨가 대낮에 울다니. 나는 너무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아저씨를 사랑스럽게 봤어요. 아저씨가 말했어요. 호밀 빵에는 사우어크라우트란다. 샌드위치 만들어 먹으렴, 기가 막혀. 낮술에 취해 있었어요. 나 참 기가 막혀서. 아저씨: 기억나. 소 년: 그때도 아저씨는, 멋있었어요. 아저씨: 내가? 소 년: 실패한 사람들은 다 멋있어요. 성공한 사람들은 다 밥맛이에요. 아저씨: 그렇구나. 사이 소 년: 왜, 라고 안 물어요? 아저씨: 인생에 왜가 어디 있어. 소 년: 알겠어요. (아저씨를 보며) 아저씨가 왜 시에 성공하지 못했는지 알겠어요. 아저씨: 왜? 소 년: 이런. 왜가 없다고 해 놓고. 아저씨: 왜? 소 년: 말 못 하겠어요. 아저씨: 왜? 소 년: 정말 말 못 해요. 아저씨: 그럼 말하지 마렴. 소 년: (소심하게) 왜가 없는 사람이니까. 아저씨: 응? 소 년: 왜를 묻지 않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한다고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말하잖아요. 아저씨: 그런데? 소 년: 그런데 아저씨가 갑자기 왜냐고 물어서, 이건 뭐지, 당황했어요. 아저씨: 비가 그치는 거 같다. 사이 소 년: 여하튼, 그날부터, 사우어크라우트 샌드위치를 해 먹었어요. 맛있었어요. 소금이 처음에 짰는데 시면서도 달아진다는 게 신기했어요. 아저씨: 엄마가 해 줬니? 소 년: 내가 했어요. 그쯤은 저도 할 줄 알아요. 엄마가 음식 해 주는 사람도 아니고. 아저씨: 그렇지. 소 년: 엄마는 그럴 때도 미안해해요. 미안하다고 하면서 나를 안아요. 숨이 막혀요. 싫어요. 엄마 팔에는 온통 낙서에요. 뭘 감추려고 했는지 알 수 없어요. 엄마는 가끔 저에게도 낙서를 해요. 아저씨: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니, 너한테. 소 년: 엄마를 원망하지 않아요. 조금만 더 기다려 줘요. 아저씨: 기다리다 죽을 수도 있어. 소 년: 와우,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다. 아저씨: 우리 엄마도 그랬는데. 우리 엄마는 결국 자기를 죽였지. 나는 엄마를 용서하지 않았어. 용서하고 싶었는데 할 수가 없었어. 내 팔에도 낙서가 있다. 내 팔 좀 볼래? 사이 소 년: 싫어요. 사이 소 년: 그런데요. 감자주식은 뭐예요? 주식감자였나. 아저씨: 그건, 그건. 소 년: 말 안 해도 돼요. 그 정도는 알아요. ‘감’ 자는 아마 감소한다는 ‘감’ 자일 거고. ‘자’는 아마 자본주의 할 때 ‘자’일 거고, 주식은 요즘 영끌한다는 주식을 말하는 거겠죠, 뭐. 아저씨: 잘 아는구나. 소 년: 나는 실패한 사람이 좋아요. 아저씨처럼. 사이 소 년: (식빵을 들이밀며) 먹어도 돼요. 여기엔 제 몫이 있어요. 따끈한 건 제 몫이에요. 그들은 차가운 걸 먹어야죠. 그게 심부름시킨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당연한 몫이에요. 안락을 누리는 사람들의 몫. 아저씨: 미안하지 않아? 소 년: (단호하게) 왜요? 그들이 미안해해야죠. 엄마는 미안해하지만 뭘 미안해하는지 모르는 거 같아요. 그런 사람들한테 미안해할 필요가 없어요. 아저씨: 나는 미안해. 소 년: 제 몫을 나눠 먹어요. 아저씨: 그래도, 좀 그래. 소 년: (채근하며) 그들은 여기 없어요. 눈치 보지 말아요. 우리 같이 먹어요.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아저씨: (소년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래도 미안하지. 그건 네 몫이지, 내 몫이 아냐. 소 년: 이건 우리들의 몫이에요. 아저씨, 나를 부끄럽게 만드네요. (식빵을 옷 속으로 넣으며) 나는 나한테 미안해하는 사람들이 싫어요. 미안하다고 너무 쉽게 성의 없이 점잖게 말하면서 자기만 회피의 천국으로 가요. 아저씨: 미안하게 되었구나. 소 년: (시계를 보며) 저는, 십 분 정도 늦게 들어가는 게 좋겠어요. 그때까지만 같이 있어 줘요. 아저씨. 아저씨: (처마를 보며) 비가 그치는 것 같아. 소 년: 습기를 먹어 빵이 더 폭신폭신해졌어요. (쾌활하게) 비가 오는 날은 빵 만들 때 물을 조금 덜 넣어야 해요. 비 때문에 나는 추운데 빵 때문에 나는 더 따뜻해져요. 아저씨: 정말 비가 조금, 조금 가늘어졌다. 너, 아까 곧 그칠 거라고 하더니. 소 년: 비는 굵기도 하고 가늘기도 하고 굵게 조금 오기도 하고 가늘게 많이 오기도 해요. 갑자기 내려오기도 하고 갑자기 멈추기도 해요. 그걸 몰라요? 아저씨: 너 신기가 있나 봐. 십 분 후에 비가 그칠까? 소 년: 십 분 후? 아저씨: 십 분 정도 늦게 들어가는 게 좋겠다며. 그때까지만 같이 있자며. 소 년: 아저씨? 아저씨: 응. 소 년: 정말 몰라서 그래요? 아저씨: 화났니? 소 년: 비가 와서 안 간 게 아니에요. 엄마가 아저씨랑 하는 일이 아직 안 끝났어요. 아저씨: (소년의 말이 뭘 말하는지 잘 모른다) 우산이 없는데. 소 년: 우산이 없다고 어딜 못 가요? 비가 와서 못 가요? 인생에 우산이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어요. 우산은 다들 멋으로나 쓰는 거예요. 아저씨: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소 년: 이제 팔 분 남았어요. 이빨 닦고, 양말을 신고, 단추도 채우고. 아저씨: 말하고 싶은 게 있어. 내가 담근 사우어크라우트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 그가 죽었어. 그걸 먹어 줄 사람이 이제 없어. 소 년: 알아요. 아저씨가 술에 취해 항상 말했어요. 사이 소 년: 빵 드실래요? 아저씨: 아니. 소 년: 실은, 저도 그랬으면 했어요. 엄마한테 새걸 주고 싶었어요. 남은 건 제가 먹고요. 그 정도가 제일 괜찮아요. 아저씨: 뭐라 할 말이 없구나. 게걸스러운 이 세상에서는, 더욱. 소 년: 이제 오 분 남았어요. 집까지 가면 딱 맞아요. 갈게요. 아저씨 잘 가요. 아저씨: 그래, 비가 다 그쳤구나. 잘 가렴. 소 년: 미안해요. 다음에 제가 그거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 sauer 시큼한, kraut 양배추 / sauer에 망가진, 무기력한이라는 뜻이 있다.) 먹어 줄게요. 아저씨가 해 준 거, 같이 먹어요. 2. 오래된 아파트 단지 놀이터다. 오후, 이 시간. 보통의 아이들은 모두 학원이나 피시방에 있기 때문에 놀이터는 이제 교복 소년소녀들이 담배 피우며 잠깐 부모를 피해 돈을 피해 세상을 씹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나마 이 아이들은 귀여운 구석이 있을 수도. 교복 소년소녀들은 담배를 피우면서 심심하면 시소를 타다가 그네를 타다가, 우리가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말이야, 몇 초 정도 반성하지만, 라이프 이스 고 온, 다시 담배를 피운다. 이럴 때 라이프 이스 고 온을 사용하는 게 맞는지 모르지만 영어를 사용하면, 아이들은 자신들이 약간은 공부를 하는 것 같아 혼란스러우면서 뿌듯하기도 하다. 아직 교복 소년소녀들도 없는 시간. 텅 빈, 잡초만 무성한 곳 벤치에 느긋하게 앉아 아저씨는 셀프 염색을 어느 정도 마쳤다. 이제 셀프 염색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뒷머리를 어찌할까, 언제나처럼 대충 문댈까, 그러다 아니다 싶다. 마지막은 단정하고 싶다. 소년이 놀이터로 폴짝 들어온다. 아저씨: 너구나. 소 년: 네, 저예요. 염색하나 봐요. 어제 산 걸로. 아저씨: 어제 하려다가, 비 오는 날은 염색이 잘 안 되고 흘러내려서. 그동안 비 오는 날 염색하다가 옷을 많이 버렸어. 소 년: 비 오는 날은 밖에만 비가 오는 게 아니니까요. 염색약도 축축해지고 속마음도 축축해져요. 아저씨: 빵은 폭신폭신해지고. 소 년: 재미없어요. 아저씨: 어젠 잘 갔니? 소 년: 잘 갔어요. 엄마가 좋아했어요. 아저씨가 고맙다고 했어요. 아저씨: 나 말이니? 소 년: 아뇨. 엄마 남자 친구요. 아저씨: 아저씨가 너 올 때까지 기다렸나 보다. 인사하려고. 소 년: 단추를 목까지 다 잠그고, 마치 로만 칼라처럼, 그러곤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아저씨는 단정해요. 아저씨: 나도 단정해지려고, 염색을 했어. 소 년: 단정한 아저씨는 재수 없어요. 아저씨: 나도 재수 없니? 소 년: 아저씨 같은 사람이 단정해지면 무서워요. 그 끝을 나는 다 알아요. 사이 소 년: 싫어요. 단정해지지 말아요. 어린 내가 감당하기 어려워요. 사이 아저씨: 아저씨가 빵 먹고 가려고 했나 보다. 네가 사 온 맛있는 빵을. 소 년: 양말도 다 신고 벨트도 풀었던 흔적이 없었어요. 재킷도 다시 입은 흔적이 없었어요. 처음부터 벗지 않았나 봐요. 엄마랑 술도 마시지 않았어요. 나 혼자 별생각을 다 했어요. 그 정도는 해도 되는데. 내가 그 정도 아량은 있는데. 너무 매너가 좋았어요. 아저씨: 좋은 사람이구나. 소 년: 용돈을 주기에 받았어요. 많이 줬어요. 또 빵을 사 와야지. 아저씨랑 엄마가 편하게 쉬게 해 줘야지. 아저씨: 용돈을 받았구나. 소 년: 매너가 너무 좋아서 화가 났어요. 그를 때리고 싶었어요. 용돈을 받아서 나는 화가 났어요. 나는 나를 때리고 싶었어요. 아저씨: 그런 걸 왜 벌써 알았니? 그런 건 모르는 게 나은데. 소 년: 아저씨를 만난 다음부터, 엄마가 몸에 낙서하지 않아 나는 좋거든요. 엄마가 많이 웃어서 좋아요. 엄마가, 씻고 화장하고 몸을 예쁘게 가꿔서 나는 정말 좋아요. 엄마가 더이상 울지 않아서 좋아요. 엄마가 천장에 줄을 달지 않아서 좋아요. 베란다에 기대어 저 아래 높이를 가늠하지 않아서 좋아요. 엄마를 그렇게 만들어 준 아저씨가 너무 좋아요. 그런데, 전, 집에 들어가기 전에 빵에다 침을 뱉어요. 빵은 촉촉해져요. 그래 놓고, 그 침 뱉은 빵을 주고 용돈을 받은 거예요. 전 못된 아이예요. 사이 아저씨: 못된 아이야. 소 년: 네? 아저씨: 못된 아이야. 내 뒷머리 염색 좀 해 줄래? 사이 소 년: 싫은데요. 아저씨: 우선 비닐장갑을 끼고. 소 년: 싫어요. 아저씨: 단정해져도 네가 안다는 그 길로 안 갈게. 소 년: 싫은데. (싫다고 하면서 비닐장갑을 낀다. 포기한 걸까. 믿는 걸까) 아저씨: 냄새가 독하니까, 한 손으로는 코를 막고. 소 년: 아저씨 냄새만큼 독할까. 아저씨: 내 냄새? 소 년: 네. 아저씨: 홀아비 냄새가 나니? 아, 너 홀아비라는 낱말을 아니? 소 년: 그쯤은 알아요. 홀아비는 서 말 구슬을 꿴다! 아저씨: 홀아비가 아닐걸. 구슬이 아니거나. 소 년: 제 말은 홀아비일수록 구슬을 꿰어야 한다! 아저씨: 그럼, 냄새가 안 나겠네. 소 년: 냄새가 나요. 아저씨: 무슨 냄새가 나. 늙은 냄새가 나니? 소 년: (망설이다가) 슬픈 냄새요. 사이 소 년: 슬픈 냄새가 나요. 못 닦은 냄비의 눌어붙은 라면 냄새, 찬밥에서 나는 딱딱한 냄새, 보일러를 켜지 않은 방의 차가운 냄새, 혼자 마시는 소주 냄새, 눈알에 초점을 잃은 냄새, 가누지 못하는 오줌의 냄새, 기름기 없이 가늘어진 흰 머리의 냄새. 아저씨: 혼자 늙는 남자의 냄새구나. 소 년: 그냥 슬픈 냄새가 나요. 심심하고 할 일 없어 아무나하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외로운 냄새가 아니에요. 사랑하는 것을 모두 잃고 광야에 서 있는 남자의 냄새. 곧 자신도 잃을 것 같은, 슬픈 냄새가 나요. 사이 소 년: 그냥 빵 냄새만 맡아도 그 슬픔의 냄새가 사라질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살아요? 제가 좋아하는 명대사가 있어요. 아저씨: 명대사? 소 년: 보족세트와 비빔막국수요! 아저씨: 무슨 영화야? 소 년: 영애 누나랑 혜준이 누나랑 선영이 누나랑 홍내 형아랑 현철이 형아가 아름답고. 아저씨: 그래 그게 무슨 영화니? 소 년: 종준이 아저씨랑 해숙이 아줌마가 너무 멋진 구경이요. 자살을 결심했던 소년은 그 말을 듣고 꿀꺽 침을 삼킨 후 살아가게 됩니다. 아저씨: 명대사구나. 소 년: 그러니, 아저씨도 식빵을 먹어요. 아저씨: 그래. 식빵을 먹어야겠구나. 그럼 우선 염색을 빨리 끝내야겠구나. 멋을 부리고 싶구나. 소 년: 좋아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우선 장갑을 끼고. 그들은 오래 조용히 염색을 한다. 빛을 받아 머리에서 윤이 난다. 염색이 끝난다. 아저씨: 고맙다. 잠깐 기다릴래. 염색했으니 머리를 감아야 해. 창포물로. 소 년: 머리 감고 만나요. 아저씨: 그럴까. 소 년: 잘 감아요. 전, 그사이, 같이 먹을 식빵을 사 올게요. 아저씨: 무슨 빵을 사 올 거니? 소 년: 마늘이랑 양파가 들어 있는 빵을 사 올까 해요. 아저씨: 네가 그런 걸 먹을 수 있어? 매울 텐데. 소 년: 아저씨. 나, 이래 봬도, 엄마 남자 친구가 아빠 친구인 사람이에요. 인생이 이렇게 매운데, 그깟 매운 빵 정도야. 아저씨: 그렇구나. 그래 넌, 그럴 수 있겠구나. 나는 매운 인생을 견딜 수가 없는데. 너는 의젓하구나. 소 년: 아저씨, 머리 감고 나와요. 저는 빵을 사 올게요. 아저씨: 그래. 있다 보자. 아저씨는 염색약 도구를 챙기고 저벅저벅 기쁘게 집으로 향한다. 소년도 식빵을 사러 간다. 깡충깡충. 놀이터는 다시 텅 빈다. 오래. 텅 빈 놀이터. 식빵을 사러 갔던 소년이 빵을 사 온다. 소년은 언제나 그렇듯 빵을 가슴에 품고 있다. 소년은 아저씨를 기다린다. 아저씨가 오지 않는다. 어디선가, 구급차 소리. 소년은 식빵을 결국 혼자 뜯어 먹으며 화가 났다. 오랜 시간 소년을 텅 빈 놀이터에 둔 아저씨가 소년에게 온다. 소년 화가 나서 아저씨에게 달려가 아저씨를 때린다. 소 년: 아저씨. 그렇게 제멋대로 하니 자유로워요? 아저씨: 자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자유롭지 않구나. 소 년: 그럼, 내가 자유롭게 해 줄게요. 죽어 버려. 소년, 깡충 뛰며 아저씨 목을 조르려고 한다. 아저씨: 이제 안 할게. 정말이야. 자유가 뭔지 알고 싶었어. 미안해. 소년, 아저씨의 발목을 때린다. 소 년: 자유가 뭐긴 뭐예요. 자유가 자유지. 아저씨: 자유가 자유구나. 소 년: 엄마는 내게 빵 심부름시킬 때마다 미안해했어요. 미안해하지 말고, 엄마. 낙서나 하지 마. 이미 우리에겐 지울 낙서가 이만큼이야! 아저씨: 그게, 난 힘들구나. 소 년: 이거나 먹어요. 아저씨: (자기 머리를 만지며) 염색이 잘 나왔어. 고마워. 단정하게 잘 가고 싶었어. 사이, 어두워졌다가 환해진다. 다시 놀이터. 놀이터는 조용하다. 소년 혼자 빵을 먹고 있다. 여전히 조용히. 품 안에 넣었던 빵을 새 모이만큼 아주 조금 뜯어서. 다시 품 안에 넣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걸까. 그래 인생을 멀리서 보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평화롭다. 그래 인생을 가까이서 보자. 무슨 일이 계속 일어난다. 그렇다고 평화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볼 것인가. 멀리 볼 것인가. 가까이 볼 것인가. 아저씨가 놀이터로 들어온다. 아저씨 단정하다. 아저씨: 못된 아이야. 소 년: 아저씨. 오우! 몰라봤어요. 아저씨: 너 덕분이다. 나 안 갔어. 가려다 말았어. 소 년: 아저씨를 기다렸어요. 오래 기다렸어요. 그러나 올 거라고 확신했어요. (품 안에 있는 빵을 꺼내며) 이거. 아저씨: 나도, 빵을 기다렸어. 소 년: 절 기다린 거예요? 아니면 빵을 기다린 거예요. 아저씨: 빵을 기다렸지. 네가 사 오겠다고 했던 마늘 양파 빵을. 소 년: 쳇. 아저씨: 삐졌니? 소 년: 조금 먼저 먹었어요. 아저씨: 그 빵을 같이 먹을 너를 기 아저씨: 내가 너 안아 줘도 되니. 살고 싶구나. 소 년: 그럼요. 전 괜찮아요. 언제든 같이 안아요. 다렸지. 사이 아저씨: 그런데, 못된 아이야. 소 년: (소년은 아저씨를 보지 않는다) 네. 아저씨: 너는 식빵을 사러 어디까지 갔니? 소 년: 왜요? 아저씨: 나도 널 너무 오래 기다렸어. 네가 오지 않더구나. 정말 너무 많은 생각을 했어. 날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어. 식빵을 사러 어디까지 갔니? 소 년: 아저씨 같은 사람은 알 수 없는 데로요. 아저씨: 나 같은 사람? 나에 대해 알아? 소 년: (냉정하게) 잘 알아요. 당신 같은 사람들. 떠나간 사람만 그리워하는 사람. 고통 속을 떠도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들. 아저씨: 내가 그랬니? 소 년: 우리 엄마랑 똑같아요. 아저씨: 우리 엄마도 그랬는데. 소 년: 나는 아저씨처럼 안 클 거예요. 사이 소 년: 삶은 멀리 있으면 바로 앞에서 안아 줄 것처럼 오라고 하면서 정작 앞으로 가면 멀어져요. 나는 그걸 알아요. 아저씨: 너는 몰라야 하는 걸 너무 빨리 알았구나. 그래서 재밌니? 소 년: 재미가 없을 게 뭐가 있어요. 빵을 사러 갈 때 매일 달라요. 날씨가 달라요. 재밌어요. 길의 사람들이 늙어 가요. 재밌어요. 나무는 키가 자라고 도로는 파여요. 겨울이 되면 보도블록을 새로 깔아요.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져요. 상처가 나요. 상처가 조금씩 지워져요. 다른 상처가 생겨요. 침을 바르고 약을 바르고 안아 줘요. 몸이 커져요. 비가 오면 차분해져요. 바람 부는 날은 창밖에 화분을 내다 놔요. 아저씨: 비가 오면 비가 새고 바람 부는 날은 지붕이 날아가는 게 아니고. 소 년: 그럼요. 비가 새면 방수공사를 해야겠다, 다른 집 천장은 괜찮을까. 바람이 불면 오즈에 다녀와야겠구나, 같이 다녀와야겠다. 아저씨: 그래서 너는 식빵을 사러 어디까지 갔다 왔니? 어제 그 식빵 집? 소 년: 아뇨. 아저씨 같은 사람은 알 수 없는 데로요. 아저씨, 자꾸 나한테 그런 거 묻지 말고 차라리 빨리 죽어요. 내게 상처만 가득 주고 떠나요. 이기적이고 못된 아저씨야. 사이, 어두워졌다 다시 환해진다. 다시 놀이터. 놀이터는 텅 비어 있다. 아저씨는 자고 있다. 아저씨 옆에 봉지가 있다. 소년이 나타난다. 아저씨 일어난다. 아저씨: 너 또 식빵 사러 가니? 소 년: 네. 아뇨. 아저씨: 네? 아뇨? 소 년: 응, 아니야. 아저씨: 그거 유행하는 말이지. 부정의 긍정 같기도 하고 긍정의 긍정 같기도 하고 긍정의 부정 같기도 하고 부정의 부정 같기도 하구나. 소 년: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 아저씨: 모르겠다. 소 년: 저번에 아저씨 오래 기다렸어요. 화났어요. 아저씨: 염색하고 머리를 감고 나니까 잠이 솔솔 왔어. 그래서 아주 오래 깊은 잠에 빠졌어. 소 년: 저를 잊을 정도로요. 아저씨: 너는 안 잊지. 나를 잊고 싶었어. 잊혀지고 싶었어. 부질없는 아픔과 이별할 수 있도록 김광석의 노래 그날들 가사 중에서. 사이 소 년: 오늘 제가 사 온 빵은 뭐게요? 아저씨: 빵을 사서 오는 길이었구나. 소 년: 네. 그래서 아까 응, 아니야라고 했어요. 아저씨: 오늘은 무슨 식빵을 사 왔니? 소 년: (아저씨에게 식빵을 주며) 테두리에 설탕이 마구 뿌려진 식빵을 사 왔어요. 아저씨: 맛있구나. 소 년: 이건 조금 식어도 맛있어요. 식빵은 식으면 맛이 덜해요. 그래서 품 안에 오래 두느라 저는 좀 힘들었어요. 저번에 아저씨가 안 오기에, 그걸 다 먹었어요. 처음에는 새 모이만큼 먹었는데 결국 나 혼자 다 먹었어요. 아저씨가 안 오니까 무서워서 나중에는 화가 나서 다 먹었어요. 미안해요. 아저씨: 미안하구나. 사람들이 깨워 줘서 일어났어. 소 년: 괜찮아요. 이제라도 잠에서 깨어났으니까. 아저씨: 이거 정말 맛있구나. 꿀맛이다. 소 년: 꿀맛이라뇨. 설탕 맛이죠. 사이 아저씨: 날 좀 안아 줄래. 소 년: (망설임 없이) 기꺼이요. (안아 준다) 사이 아저씨: 이거 정말 맛있구나. 설탕 맛이 이렇게 맛있다니. 참, 이거. (봉지를 열어 보인다) 소 년: 뭐예요? 아저씨: 사우어크라우트야. 같이 먹자. 소 년: 저번에 말했던. 같이 먹어요. 아저씨: 응. 이걸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어. 같이 못 가서 항상 미안해했어. 소 년: 그 사람은 그걸 원하지 않을 거예요. (사우어크라우트를 먹으며) 맛있다. 짠맛이 단맛이 되었어. 시고 달콤하고 짜고 고소해요. 아저씨: 다행이구나. 다행이야. 이제 살아야겠어. 그만해야겠어. 사이 아저씨: 내가 너 안아 줘도 되니. 살고 싶구나. 소 년: 그럼요. 전 괜찮아요. 언제든 같이 안아요. 끝.
  • 체조합시다/김사사 [서울신문 2023 신춘문예 - 소설]

    체조합시다/김사사 [서울신문 2023 신춘문예 - 소설]

    이것은 아시아나 스포츠 상설 매장에서 산 트램펄린. 공중부양. 수양은 뛰고 있다. 흔들리고 있다. 조금씩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다. 전시제품이므로 모서리 변색 있음. 그러나 탄력 좋음. 아시아나 아저씨는 이것이 아주 튼튼한 물건이라고 말했고 정말 그렇게 생겼으니 괜찮겠다 싶지만 수양은 어쩔 수 없이 좀 무서워진다. 그녀는 변색한 트램펄린 모서리를 손톱으로 살살 긁으면서 물었다. 아저씨. 만약 부러지면 어떻게 할 건지? 그건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요 아가씨…. 맞는 말이다. 수양은 칼을 팔러 가기 전에 튼튼하고 단단한 물건들을 생각하며 오십 분씩 뛰었다. 붉은 벽돌과 철제 의자 강화유리로 된 창문 그리고 칼…. 트램펄린 앞에는 높이 백칠십 센티미터짜리 거울이 있고 수양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열심히 뛴다. 이것은 은근히 땀이 나는 일이므로 겨울에는 얇은 반소매 티셔츠만 입고 뛰어야 하고 여름에는 다 벗고 뛰어야 한다. 뛰어오를 때는 정말로 공중부양하는 기분이지만 그것은 기분일 뿐이고 어쨌든 떨어지는 일이다. 수양이 영양제나 선크림이나 치약이나 칫솔이 아니라 칼을 파는 이유는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무서워서라도 사 준다는 말이다…. 수양은 칼 판매상이다. * 수양은 택기와 알고 지낸 지 꽤 되었고 택기의 사육장에 가 본 적도 있다. 사육장은 동굴처럼 길고 캄캄해서 거기에 무엇이 있기는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고 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빴다. 수양이 택기야 저렇게 하면 토끼가 살 수 있냐 너무 어둡지 않냐 물었을 때 택기는 원래 조명을 켜 두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어두운 거니 묻자 기주가 깜박한 거라고도 했다. 사육장 입구에는 파란색 파라솔이 있었고 그 아래로 작은 탁자와 바퀴 달린 접이식 침대, 플라스틱 의자를 두었다. 의자에는 헐렁한 러닝셔츠와 익은 노른자색 사부 반바지를 입은 사람이 늘어져 있었는데, 수양은 그 사람이 말로만 듣던 기주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택기의 둔하고 쓸모없는 동생 기주. 네가 바로 기주다. 기주는 고개를 뒤로 기울인 채 눈을 감은 모습이었고 무릎 위로 까만 총이 놓여 있었다. 택기야 저거 진짜 총이냐. 비비탄총이지. 그렇구나 난 또. 정오를 지나던 때였으므로 하늘을 향한 기주의 얼굴은 서서히 달궈지는 중이었다. 그늘을 벗어난 얼굴 위로 노랗고 깨끗한 햇빛이 일렁거렸으니 기주는 잘 먹고 잘 자라는 중인 아이처럼 보였다. 스포츠머리에다 늘 하얀 두건을 쓰는 택기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수양은 기주의 뺨 위로 조심스레 검지를 얹었고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미세한 따듯함을 느꼈다. 택기가 토끼 한 마리를 잡아 사육장 밖으로 걸어 나왔을 때, 그의 표정은 중요한 약속을 앞둔 사람처럼 신중하고 뻣뻣했다. 기주는 그때까지도 절대 깨지 않았으므로 수양은 택기야 기주가 졸고 있어… 하고 작게 속삭였다. 택기는 기주가 졸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척을 하는 거라고 말했다. 잿빛 토끼는 몸집이 컸다. 그냥 큰 게 아니라 아주 컸다. 택기는 자이언트 토끼라고 말했다. 크고 따듯하고 순한걸. 택기야 이 토끼는 정말로 순하다고. 털에 파묻힌 토끼의 눈이 마름모 모양이었기 때문에 수양은 토끼의 미간을 마름모꼴로 문질렀다. 몸집이 큰 것과는 별개로 토끼는 부드럽고 무른 표피를 가져서 조금만 세게 쥐면 으스러질 것 같았다. 수양이 토끼도 우는가 어떻게 우는가 기억이 나지 않네 하자 택기는 토끼를 가리켜 커서 문제다, 크고 소리도 없어서 문제다, 하고 중얼거렸다. 그게 왜 문제야. 커야 더 좋지. 너는 토끼로 요리하는 요리사니까 커야 좋은 거지. 개새끼들이 도망을 간다고. 토끼는 개새끼가 될 수 없었지만 택기는 달리 부를 말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도망을 간다니 탈출한다는 것인가. 어떻게 탈출해. 이렇게 큰데. 크기가 이런데. 가끔 유연한 토끼들이 있다고 해도 토끼는 액체가 아니므로 수양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택기가 하는 탕집은 사육장과 마주 보고 있고 탕집 주방 쪽창은 사육장 입구를 향해 나 있었다. 택기는 하얀 두건을 쓰고 방수 앞치마를 두른 모습으로 탕을 끓인다. 매일 그렇게 한다. 그러다 보면 택기의 몸에서는 아주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수양은 택기의 냄새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택기가 한참 탕을 끓이다가 쪽창을 쳐다보면 토끼 두어 마리가 잔디밭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택기와 단번에 얼굴이 마주치고 어떤 때는 뒷모습이 보이지만, 뒤돌아 있던 놈도 언젠가 택기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어 있고 그러다가 산으로 사라진다고 했다. 택기는 개새끼들이 사람을 놀릴 줄 안다고 싫어했다. 사실 토끼는 번식이 빠른 동물이라서 두어 마리가 없어진다고 문제 되는 것은 아니었는데 택기는 기주더러 탈출하는 놈들을 되는 대로 잡아내라고 거기에 앉혀 두었다. 기주는 그동안 뭔가를 잡아낸 적이 없다. 쟤는 아무것도 못 잡아. 택기가 말했다. 기주는 여태껏 바닥에만 비비탄을 쏘아 댔기 때문에 기주가 앉은 부근으로는 잔디가 자라지 않았고 살짝 젖은 토양이 드러났다. * 수양은 이제 택기의 탕집에서 칼을 팔게 되었지만 원래는 여기저기에서 잘 팔고 다녔다. 모르는 집의 문을 두드리고 칼 세트를 재빠르게 보여 준 뒤 현관에 걸터앉아서 800방짜리 숫돌에다 느릿느릿하게 칼을 갈고 이것 보세요 참 쉽지요 하는 일을 잘했다. 배낭에 챙긴 A4 용지 다발 중 한 장을 꺼낸 뒤에 막 갈아 낸 칼로 비스듬히 잘라 내고 한번 해 보세요 정말 부드럽고 예리하지요 하는 일도 잘했다. 가끔은 몇 달 전에 팔았던 집에 가서 또 팔아 내고 이번에는 업그레이드되었으니 다르다고 거짓말하는 일도. 그런 일을 못 하게 된 것은 어느 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의 집에 갔기 때문인데, 그가 원로 마술사였다는 소문이 있다. 그는 특히 손도 대지 않고 멀리 있는 폭죽을 터뜨리는 마술을 잘했는데 그것만큼 사람들의 반응이 좋은 게 없어서 터뜨리고 터뜨리다 귀가 먹었다고 했다. 어쨌든 수양은 원로 마술사쯤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수양이 아무리 이것 보세요 이것 보세요 해도 칼을 제대로 보지 않았고 대신 전화기를 들었다. 수양은 그날 처음으로 지구대에 가 보았는데, 눈썹이 짙고 목소리가 큰 박 순경은 그냥 말하는 것이지만 소리 지르는 것처럼 들리는 볼륨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당신은 당신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알 필요가 있어요 알아야 해요 하며 조금은 간절한 표정으로 수양의 손을 꼭 붙잡았다. 박 순경의 손바닥이 참 축축해서 수양은 이 사람 겁이 많은 사람이잖아 생각했고 앞으로는 그런 식으로 칼 파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졌다. 그래도 수양은 칼 파는 데 재능이 있었고 다른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지구대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서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하지 하며 트램펄린을 뛰었다. 뒤통수가 팽팽하게 조여드는 느낌이 들자 수양은 앞으로도 트램펄린 타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멈추고 싶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기운이 빠져서 잠들었다. 다음 날에는 오전 다섯 시에 잠에서 깼다. 잠 없는 노인들이나 일찍 나가는 공장 사람들한테는 그만큼 이른 시간에 찾아가서 칼을 파는 수밖에 없었으니 수양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 노력하는 편이었는데 그것이 그만 몸에 익어 버린 것이다. 잠자는 동안에는 땀을 조금 흘렸다. 날이 점점 더워져서 그랬다. 수양은 택기가 토끼탕을 잘 끓인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택기가 만든 탕을 먹어 본 적이 없고 그때까지 택기의 얼굴을 본 적도 없었지만, 오가는 길에 택기의 탕집을 자주 보았고 거기에는 늘 사람이 많았으니 그런 집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택기의 탕집 앞에는 국도가 있고 작은 산도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그 작은 산이 국내 100대 명산 중 칠십 번째나 팔십 번째쯤 되었다. 수양은 그 산이 얼마나 명산인지 궁금했다. 지구대에 다녀온 다음 날, 수양은 일찍 일어나게 되었으니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싱크대에서 미지근한 물로 얼굴을 씻어 낸 뒤 밖으로 나가 아주 천천히 걸었다. 그녀는 무척 여유로운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차분한 음악을 듣고 따뜻한 차를 끓여 마신 뒤에 산책하기를 즐기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몸을 앞뒤로 조금씩 흔들어 가며 걸을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수양은 칼을 팔러 갈 때 주로 흰옷을 입었는데, 가장 친절하고 상냥해 보이면서도 미묘하게 위협적인 색깔이 바로 흰색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그런 식으로 칼을 팔지 않게 되었으나 자연스레 흰 옷을 골라 입었다는 사실이 좀 웃겼다. 어디서 자꾸만 하나둘하나둘하나둘하나둘 하고 조금도 쉬지 않고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수양은 곧 택기의 탕집 앞 잔디밭에 다다랐고 거기에서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열을 맞춰 잔뜩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니 저건… 새천년 체조잖아. 수양은 원래 칼을 잘 파는 사람이었지만 그날처럼 칼을 많이 팔아 본 적은 없었다. 하나둘하나둘하나둘 구호는 알맞게 외치는데 동작은 전혀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이 체조를 끝내고 명산이라는 산을 탄다고 우르르 사라졌을 때, 수양은 생각을 하자 생각을 해, 하며 걷던 길을 다시 걸었고 명산 앞에 있는 ‘명산 앞 간이 휴게소’로 들어섰다.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서는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만두를 팔았는데 택기의 탕집만큼은 아니더라도 장사가 잘됐다. 여기까지 따라오기는 했으나 산을 타기 싫은 아이들이 김밥과 만두를 먹고 있었고 산 타는 사람들만 노리는 일명 등산객 전문 린치족들이 교복을 꼬박꼬박 챙겨 입은 모습으로 담배를 계산하는 중이었다. 수양은 매운맛 만두를 사서 전자레인지에 돌린 뒤에 자리에 앉았다. 김이 나는 만두를 젓가락으로 조금씩 잘라 먹으며 산을 타는 사람들에게 칼을 팔아야겠어 하고 중얼거렸다. 김밥과 만두를 먹던 아이들에게 혹시 칼을 사겠니 물었지만 아이들은 무시했고 김밥에서 빼낸 단무지만 계속해서 찔러 댔다. 수양은 왠지 섭섭해져서 입을 쩝쩝 다셨다. 그래 역시 어른들에게 팔아야겠지…. 수양은 하나둘하나둘하나둘 체조하던 사람들이 내려올 때까지 만두를 야금야금 베어 먹다가 벽걸이형 선풍기의 약풍을 맞으며 졸았다. 그러곤 결국 그들이 다시 돌아오는 데 무려 여섯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저렇게 작은 산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그만큼이나 걸린단 말인가. 알 수 없었지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수양은 사람들이 손바닥을 짝짝 부딪치며 내려와서는 곧장 택기의 탕집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집으로 달려가서 칼 세트와 함께 A4 용지가 든 배낭을 챙겼는데, 그 사람들 앞에서는 종이를 자르는 시범 따위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그런 것들을 챙기지 않았다. 택기의 탕집 앞에는 하얀 두건을 쓰고 분홍색 방수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서 있었다. 그것이 바로 택기였다. 택기는 탕집 입구로 들어서려는 수양을 붙잡았다. 탕을 드시려면 예약을 하셔야 하는데요. 저는 탕 먹으러 온 사람 아니거든요. 그런 음식은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럼 왜 들어갑니까? 칼을 좀 팔고 싶어서요. 택기가 수양의 팔뚝을 가볍게 내려놓으며 약간의 미소를 지었을 때 수양은 이 사람이 설마 나를 좋아하게 되었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택기의 손바닥이 너무 두꺼웠고 반짝거리는 그의 분홍색 앞치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그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길 바랐다. 탕이 싫으면 뭘 좋아하시죠. 택기가 물었다. 저는 감자튀김을 좋아해요. 수양이 대답했다. 산을 좀 타 봤다 하는 사람들은 주로 택기의 탕집에 모인다. 수양이 테이블 여러 개를 이어 붙인 곳으로 다가가서 제 칼을 좀 보시겠어요 하면 어어 그렇지 봐야지 하는 사람들이었다. 수양의 칼은 그다지 특별한 게 아니었고 일주일에 두어 번 방영하는 홈쇼핑 식칼과 유사한 모양새였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수양이 칼을 꺼내 들 때마다 마술을 본 것처럼 좋아했다. 제 칼을 좀 사시겠어요 하면 당연히 사 줘야지 이걸로 기필코 그놈을 죽이고 말리라 그런데 아가씨는 누군가? 하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칼을 사게 되어 있다. 수양은 매일 아침 몸을 앞뒤로 흔들며 산책하게 되었다. 하나둘하나둘하나둘 체조하는 사람들을 지켜본 뒤 명산 앞에 있는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 앉아 조금 식은 만두를 먹었고 할 일이 없어지면 린치족들의 대화를 엿들어 보려 했다. 그들은 늘 길쭉한 막대 모양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중얼거렸다. 그게 어떤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택기는 수양의 칼을 사지 않았지만 매일 웃는 얼굴 모양의 동그란 감자튀김을 내 주었고 수양은 그것을 천천히 먹어 치웠다. * 기주야 너는 왜 토끼를 잡지 못하니. 수양은 매일 택기의 탕집에서 칼을 팔게 되었으므로 기주의 얼굴도 매일 보았다. 택기는 두피부터 손등과 발가락까지 온몸에 땀이 많은 편이었는데 기주는 그렇지 않았다. 기주는 파라솔 아래 탁자 앞에서 밥을 먹고 침대나 플라스틱 의자에서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고 하여튼 그런 식으로 종일 바깥에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도 바짝 마른 풀 냄새나 무언가를 태우는 냄새 같은 것만이 났다. 밥을 먹고 나서는 바닥에다 비비탄총을 쏘고 종아리나 팔뚝 주위로 부채질을 조금 하다가 신문에서 오려 낸 스도쿠를 한참 붙잡고 있었는데 빈칸을 모두 채우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수양은 접이식 침대 위에 누워서 천천히 복식호흡을 했다. 언젠가 그것이 송장 자세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아주 편안해진다. 너는 왜 토끼를 못 잡냐고. 몰라. 그걸 왜 몰라, 보고 있는데 왜 몰라. 그냥 잠깐 눈을 감았는데 밖으로 나와 있었어, 저기에 서 있었어. 토끼를 왜 좋아하나. 누가? 여기 오는 사람들이. 정력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대. 토끼는 조루라던데?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일간 신문에서 오려 낸 스도쿠가 바람에 날아가도 기주와 수양은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내일은 또 다른 스도쿠가 배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주는 공중에서 나부끼는 스도쿠 종이를 보며 이마를 조금 구겼고 모든 것이 무게중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사람의 심장은 아주 미세하게 왼쪽으로 치우친 상태이므로 무게중심도 왼쪽에 있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모두의 왼쪽 엉덩이는 조금 더 눌려 있고 작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왼쪽으로 살짝 돌아앉게 되어 있다고. 안 그래도 사람이라면 모두 그런 편인데, 기주는 특히 자신이 왼쪽으로 조금씩 돌아앉는 상상만 해도 본능처럼 왼쪽으로 이끌리고 그래서 자꾸만 왼쪽을 주시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토끼들은 하필 오른쪽에서만 출몰하고 그런 이유로 도저히 놈들을 발견할 수가 없다고. 그렇지만 기주가 신경을 써서 오른쪽으로 돌아앉아 보아도 변하는 건 없었다. 어떻게 해도 토끼들은 탈출하고 기주는 밥을 먹고 있었거나 스도쿠를 풀고 있었거나 눈을 감고 있었거나 무게중심 때문이었거나 무슨 무슨 이유로 토끼를 발견하지 못했다. 뒤늦게 산 쪽으로 멀어지는 토끼를 발견하고 아아아아 토끼가 나타났다 지금은 멀어지는 중이다 하고 소리를 지르면 택기가 뛰어나오지만 이미 모든 게 사라지고 난 뒤였다. 수양은 사라진 토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전에 살아 있기는 한 건지 궁금해졌다. 이만큼이나 사라졌으면 이미 산에는 토끼가 천지일 텐데 산을 타는 사람들은 자꾸만 택기의 탕집에 와서 토끼탕을 먹었고 산을 타다 토끼를 본 사람은 없다고 하니 저녁에는 산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수양은 보이지가 않네 여기로 좀 와 봐라 이리 좀 와라 하며 산을 오르다 페도라를 만났는데, 그가 페도라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페도라는 까맣고 큰 페도라를 쓰고 있었고 걸친 옷이 없었다. 아주 깊은 페도라여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페도라는 줄무늬 사각팬티만 입은 모습으로 큰 소나무를 껴안고 있었는데 팔이 긴 편이어서 편안하고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몸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 같았다. 수양이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서 만난 린치족들을 떠올리며 옷까지 모두 벗겨 가다니 정말 답도 없는 놈들이로군, 하자 페도라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산을 타고 또 탔지요. 그러다 보니 점점 더워져서 옷을 한 꺼풀씩 벗었고 이것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벗을 때마다 길을 잃는 기분이더군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는 했다만 뭐라고 했던가요…. 페도라는 여기에서 말을 멈추고 목을 가다듬더니 얇고 연약한 목소리를 내었다. 우리는 아주 건강해 너무 건강해 우리는 내일이 없는 사람이에요 하면서 나를 지나쳤습니다. 정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외우는 일은 잘해서 말이죠. 밤이 되니 추워져서 나무를 안고 싶었습니다. 그는 손가락을 세워 모자와 팬티를 가리켰다. 이건 제 자존심이라 남겨 두었습니다. * 택기의 손은 두껍다. 손등은 거칠지만 손바닥은 부드러워서 영 이상한 손이다. 수양은 택기가 탕집 안에서 날카로운 칼을 다루다 그 손까지 어떻게 해 버리는 건 아닌가 가끔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은 없다. 산을 타고 온 사람들은 자리를 떠날 때까지 쉴 새 없이 떠들기 때문에 괴로울 만큼 시끄럽고 그것은 모두 택기의 탕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므로 택기는 자주 지치고 늘어진다. 늘어진 택기는 수양의 집에서 잠을 잔다. 택기의 탕집과 택기와 기주가 사는 집은 아주 가까이 붙어 있는데도 택기는 가끔 수양의 집에서 자겠다고 성가시게 굴고 징징거리다 결국 그렇게 했다. 수양은 이제 칼 가는 시범을 보일 필요가 없지만 습관처럼 칼 가는 연습을 하고 트램펄린을 탔다. 그만 타. 왜. 나 머리가 아파. 이것만큼 긴장되는 게 없다고. 수양이 칼을 갈고 있으면 택기가 조용히 옆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허공에다 수양과 같은 동작으로 칼을 갈아 보고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다. 요리하는 택기는 두건을 쓰는 데다 표정도 굳어 있으니 어느 폭력배의 막내쯤으로 보이는데, 이럴 때는 바보 같은 표정을 지으니 정말 바보 같았다. 그러다가 너무 집중하면 택기의 작은 입술이 동그랗게 벌어지고 침이 떨어진다. 수양은 그때마다 택기의 목에 하얀 수건을 매 주었다. 아무리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도 침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수건을 매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택기는 칼 가는 시늉을 한참 하고 나서 미끄러지듯 바닥에 드러눕는다. 택기야 내일은 몇 마리나 잡냐. 아마 스물세 마리. 그렇구나 바쁘겠다. 택기와 수양은 아무 사이도 아니지만 가까이 붙어 잔 적이 많고 그러다 보니 서로에게 바로 오늘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면 수양은 아무래도 칼 있는 집에서 하는 건 좀 그렇지, 하고 택기에게 말을 걸고 택기는 나도 방금 개새끼들 잡고 와서 좀, 이라고 대답한 뒤 눈을 감았다. 기주 말로는 자기 몸은 왼쪽이 더 무겁대. 걔는 원래 헛소리를 잘해. 나 어제 페도라를 봤어. 어디서 파는데. 아니 페도라 쓴 사람 봤다고. 어디서 봤는데. 산에서. 산에서 그런 걸 왜 쓰고 있어. 내가 박 순경을 불렀어. 박 순경은 왜. 데려가 줄 것 같아서 불렀어, 진짜 데려가더라. 택기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토끼를 잡아야 하고 수양은 흔들흔들 걷는 산책을 해야 하므로 그때쯤이면 수양이 이제 자자, 하고 그들은 잠을 잤다. 그런데 그날따라 택기가 수양의 팔뚝에 얼굴을 비벼 댔고 수양은 그것이 아주 뜨겁게 느껴졌기 때문에 택기의 얼굴이 언제부터 뜨거웠는지 궁금해졌다. 택기야 너는 왜 요리를 잘하냐. 사실 택기는 요리를 썩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탕집은 택기의 고모가 소유하던 것이었는데, 그녀는 매일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들기 전 택기와 기주의 얼굴을 조심스레 붙잡고 볼 키스를 해 주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당시의 택기는 이미 어른이었고 그런 일이 시들했지만 어린 기주는 그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고모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생활력이 강했으나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으므로 종일 동물을 관리하고 탕을 끓이는 일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이제는 정말 견딜 수 없겠다고 느낄 때마다 탕집을 찾는 사람들은 늘어나기만 했다. 고모는 하루하루 침실 방문을 잠그고 우는 일을 반복했으며 아주 먼 곳에 사는 친구와 긴 통화를 이어 가다 결국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데, 수양은 도대체 그 고모가 어디로 떠났다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말이 되냐. 말이 안 될 건 뭐지 나는 거짓말을 안 하는데. 택기가 말했다. 택기와 기주는 그녀가 아주 먼 곳에 있다던 친구를 찾아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고모로부터 딱 한 번 받은 엽서에는 그런 소식이 적혀 있지 않았고 감기는 걸리지 않았니 하는 식의 시답잖은 안부와 함께 탕을 맛있게 끓이는 조리법이 정갈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그보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 고모는 택기 앞으로 분홍색 방수 앞치마가 담긴 택배를 보냈다. 멀리 있는 곳에서 모텔 장사를 시작했으며 경치가 좋다는 내용의 쪽지를 함께 남기곤 연락이 닿지 않았으므로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밤마다 전화를 걸었던 누군가가 정말로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고모가 보낸 엽서 앞면에는 어떤 지역의 문화재 사진이 크게 붙어 있었는데 기주는 택기 몰래 그곳으로 찾아가기 위해 짐을 꾸렸다가 들킨 적이 있다. 어쨌든 택기는 돈 때문에 요리사가 되었고 자꾸자꾸 토끼를 잡고 자꾸자꾸 탕을 끓이다 보면 다 잘하게 되어 있다고도 말했다. 실망이야. 대대로 내려오는 명장 집안인 줄 알았는데. 택기는 이제 내가 명장이 되겠어 하고 속삭였다. * 수양은 아침 식사로 매운 컵라면을 먹은 뒤 집을 나섰다. 그날따라 날이 무척 더웠다. 이상하게도 수양은 배가 아주 헛헛한 기분이었고 뜨겁기도 해서, 어쩐지 저녁이 되면 배가 몹시 고파지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원한 게 먹고 싶다 차갑고 시원한 게, 하며 걸었다. 탕집 앞에서는 하나둘하나둘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대신 몸을 꼭 죄는 회색 양복을 입은 페도라가 서 있었다. 그는 양손을 주먹 쥔 채 정면을 바라보았다. 산 타는 사람들은 구호를 외치는 대신 바둑판처럼 깔끔한 간격을 유지하며 페도라를 마주 보았다. 그 속에서 러닝셔츠를 입은 기주의 뒷모습이 함께 보였다. 바닥에 놓인 시디플레이어에서 노래 전주가 흐르자 수양은 트로트잖아, 했고 가장 뒤에 서 있던 짧은 파마머리 여자가 뒤돌아 이건 샹송이야 아가씨, 하고 단호하게 속삭인 뒤 고개를 돌렸다. 페도라는 긴장한 것처럼 보였는데 정말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오른손을 올려 가슴 부근을 꼭 쥐더니 툭 하고 가볍게 무릎을 꺾어 쓰러지자 산 타는 사람들과 기주가 똑같은 모션을 했다. 왼쪽 가슴 위로 손을 얹고 살며시 주먹을 쥔 뒤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바짝 서 있던 잔디가 푹푹 꺼지는 소리가 얕게 들렸다. 움직임 없이 서 있는 것은 수양과 탕집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던 택기뿐이었다. 페도라는 곧바로 일어나 정자세를 취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유연하고 부드러웠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를 따라 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반복되었고 사람들은 산을 타기 위해 흩어졌으며 페도라는 시디플레이어를 들고 잰걸음으로 멀어졌다. 수양은 그날 밤에 페도라를 다시 만났다. 그는 기주와 함께 접이식 침대에 앉아서 사육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페도라는 페도라를 쓰지 않은 채였고 품이 큰 티셔츠와 반바지에 납작한 가죽 슬리퍼를 신었다. 얼굴 끝이 뾰족한 데다 길쭉하고 마른 몸을 가지고 있어서 물 위에서 흔들리는 수생식물 같은 모습이었다. 침대 옆 의자에는 박 순경이 등을 둥그렇게 말고 앉아 기주의 스도쿠를 대신 채우고 있었다. 수양은 그 모습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에 저것이 진짜인가 생각했다. 날이 더웠으므로 휴게소에 들러 과일과 빙과류를 사 오던 길이었고 기주가 수양을 발견하고서 손을 흔들었기 때문에 그들 넷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기주야 택기는 어디 있냐. 사육장에. 또 토끼 잡으러 갔냐. 그래야 내일 팔지. 그렇긴 하지. 수양은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었다. 페도라가 수양에게 수양씨 반갑습니다 하자 수양이 네 페도라씨, 하고 대답했다. 페도라씨와 박 순경님은 왜 여기에 있나요. 저는 지금 박 순경의 집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요. 그날부터요. 수양은 페도라의 어조에서 어느 해안지역을 떠올렸으나 구태여 말하지는 않았다. 기주는 수양에게 페도라가 극장에서 일했다고 일러 주었고 수양은 배우이시군요, 하며 페도라를 바라보았다. 페도라는 그렇다면 그렇고 아니라면 아닌 것도 같다고 대답했다. 박 순경은 수양의 노란 장바구니에서 크림 맛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더니 수양의 칼로 참외를 깎아 탁자 위에 한 조각씩 올려 두었다. 모두 참외를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박 순경은 시간 간격을 두고 참외 다섯 개를 깎아 냈는데, 넷은 그것을 모조리 해치웠다. 탁자 한쪽에 쌓인 참외 껍질이 아주 얇게 깎인 모양새여서 박 순경은 그런 일에 소질이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페도라는 수양이 페도라씨, 하고 부를 때마다 턱 끝을 당기며 조금씩 새는 웃음을 참았다. 한때 자신이 그런 별명으로 불렸다고 했다. 그래서 배우라고요 아니라고요. 극장은 극장인데 영화를 보여 주는 극장은 아니고요…. 카바레라고 더 많이 부르던데요…. 그러면 가수인가 보군요. 그것도 애매한 것이 나는 노래에도 소질이 있었지만 다른 것을 조금 더…. 페도라는 관광지에 있는 관광 카바레 출신으로, 밤무대 가수를 노렸으나 실력이 그만큼은 되지 못해서 코미디와 차력을 하다가 나중에는 가수 뒤에서 춤을 추는 댄서가 되었다. 그는 주로 샹송 가수의 뒤편에서 팔다리를 부드럽게 흔들며 흐느적거리는, 춤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춤을 추었다. 노래의 분위기에 맞춰 페도라를 쓰고 실크 셔츠를 입었으므로 전체적으로 잠들기 직전인 사람이 몽롱한 정신으로 침실이나 거실을 슥슥 걸어 대는 느낌이었다. 샹송이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것과는 별개로 카바레에서 잘 통하는 장르는 아니었으니 샹송을 부르던 여자 가수와 페도라가 무대에 올라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대체로 에이급 무대가 시작되기 전에 잠깐 세워지거나 펑크 난 공연을 메우기 위해 급조하는 식이었다. 원형 무대를 둘러싸고 앉거나 서거나 춤추거나 하며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이미 정신이 나간 상태여서 이런저런 욕을 하고 술이나 음식 던지기를 좋아했으며 샹송 가수와 페도라에게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짧은 공연을 마치면 유령처럼 사라지던 샹송 가수와 페도라가 ‘덜떨어진 듀오’로 불리게 된 것은 어느 날 페도라가 춤을 추다 크게 미끄러졌기 때문이었다. 그의 춤에는 정교함이나 정신 집중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으니 그는 늘 언제쯤 이따위 춤을 그만두게 될 것인가 골몰하며 춤을 추었다. 그 일은 다만 페도라의 정신이 다른 데 있었고 밑창이 닳아 본드 칠을 한 그의 구두가 미끄러운 무대 바닥을 견디지 못해 생긴 불상사였을 뿐이지만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페도라가 마치 허공에서 날아온 강렬한 펀치를 맞고 쓰러진 사연 있고 가련한 남자로 보였다. 그가 쓰러져 있는 동안 샹송 가수는 엉덩이를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클라이맥스를 불렀다. 샹송 가수는 주로 앙리코 마시아스의 ‘추억의 솔렌자라’를 불렀는데 그것은 프랑스의 민요를 빌려 만들어진 노래였고 그날 샹송 가수가 부르던 노래 역시 그것이었다. 아무래도 민요라는 것이 공동체적이면서도 신비스러운 것이라… 라고 페도라는 덧붙였다. 그 노래는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 프랑스인이 아니고서야 웬만한 사람들은 들어 보지도 못했을 곳이 솔렌자라였지만 어느새 솔렌자라는 모두에게 추억의 솔렌자라가 되어 있었다. 페도라가 쓰러지자 사람들이 무대를 주시하기 시작했고 이내 샹송 가수의 목소리를 따라 흥얼거렸다. 무대 아래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던 안내요원은 두 손을 입가로 모은 뒤 야 이 새끼야 계속해, 계속하라고. 멈추지 마!라고 외쳤다. 안내요원과 페도라는 가끔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다. 그가 주춤거리며 일어서자 누군가 휘파람을 불었고 누군가는 소리를 질렀다. 그날부터 샹송 가수와 페도라는 ‘덜떨어진 듀오’로 불리며 완벽한 B급이 되었다. 페도라는 완벽한 B급이 된 이후로 춤을 그만두고 마임을 했다. 주된 특기는 역시 쓰러지거나 넘어지는 것이었고 그중에서도 ‘화살 맞는 남자’를 가장 잘했다. 어떤 식으로 화살을 맞게 되는지는 매번 달라졌기 때문에 ‘덜떨어진 듀오’가 무대에 오르면 페도라는 먼저 무대 앞으로 한 발짝 나서서 말했다. 오늘은 도망치다 화살을 맞는 소년입니다 이번에는 사랑하는 사람 대신 화살을 맞는 남자입니다 하는 식이었다. 페도라는 관광 카바레의 유명 인사가 되어서 ‘덜떨어진 듀오’가 아닌 ‘페도라’로 불리기 시작했다. 카바레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이미 페도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는 어떤 이유로 화살을 맞는 콘셉트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무엇보다 페도라 역시 그 일을 자꾸만 반복하다 보니 정말로 자신이 화살을 수없이 맞아 본 가슴 아픈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 감정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화살을 맞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일어나느냐였는데, 사람들은 원하는 것이 많았다. 화살을 맞고 쓰러진 뒤에 재빨리 일어나 정면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자세였다. 그 외에도 아주 천천히 일어나거나 몸을 조금씩 굴려 일어나거나 하는 많은 방식이 있었다. 화살을 맞는 모습이 리얼하게 느껴지는 것보다도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는 일이 중요했다. 크고 동그란 무대를 둘러싼 사람들은 무대 앞 바리케이드에 달라붙어 페도라를 향해 다트를 던지는 듯한 가벼운 자세로 툭툭 한 손을 뻗거나 활시위를 당기는 척했고 그러면 페도라는 타이밍을 노려 바닥으로 주저앉아야 했다.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사람들이 외치는 순간 알맞은 자세로 일어나는 것이 핵심이었다. 어느 틈에 관광 카바레 포스터에는 깊고 검은 페도라를 쓰고 하관만을 드러낸 페도라가 매력적으로 미소 짓는 측면 모습이 들어섰다. 그들의 캐치프레이즈는 ‘페도라는 무조건 일어난다’였다. 사람들이 ‘화살 맞는 남자’를 원한 것은 물론이고 페도라 역시 그런 일에 사로잡혔으므로, 그는 넉넉한 실크 셔츠 대신 흰색 쫄쫄이만을 입고 무대에 서게 되었다. 쫄쫄이는 페도라가 자세를 달리할 때마다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근육을 치밀하게 보여 주었다. 무대 조명 아래에서 길쭉하고 마른 페도라는 석고상처럼 보였다. 페도라는 그날 아침 택기의 탕집 앞에서 ‘화살 맞는 남자’를 시도할 때 입은 양복이 박 순경의 것이라고 했다. 가장 작은 사이즈를 찾느라고 고생했습니다. 그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기주는 페도라를 향해 떼돈을 벌었냐고 물었다. 물론 그렇지요. 페도라가 답했다. 페도라가 점차 이름을 알리면서 샹송 가수는 잊히게 되었다. 그녀는 카바레에서 완전히 떠나기로 한 날 분장실로 페도라를 불러내었고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자다가 화살이나 맞아라…. 그는 그날의 분장실과 샹송 가수를 상기하며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끝내줬지요. 그는 잠시간 굉장한 화살을 맞은 기분을, 그것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화살이라는 기분을 온몸으로 느꼈고 ‘페도라’로 사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는 이제 밝은 낮부터 일하는 직업을 얻고 싶어졌으므로 골목길에 커피숍을 차렸는데, 그곳은 분명 커피숍으로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또 다른 카바레가 돼 버리고 말았다. 카바레의 단골들은 종종 무리 지어 커피숍에 들렀다. 그들은 테이블에 앉아 페도라가 내린 커피를 음미하고 얌전히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일을 반복하다 어느새 에이프런을 두른 바리스타 페도라의 구역을 침범했고, 손수 커피를 내려 마신 뒤 커피값과 팁을 금고에 채워 넣기 시작했다. 장소는 달라졌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페도라는 또다시 화살 맞는 남자가 되어서 쓰러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카바레의 단골들은 매일 아침 일찍 경직된 얼굴로 찾아와서 페도라의 쇼를 관람한 뒤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돌아갔다. 커피숍을 접고 책 대여점과 노래 연습장을 차례로 열었지만, 그것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다. 끝으로 번 돈을 모두 까먹은 페도라가 백화점 주차요원이 되었을 때는 그가 들고 있던 주홍색 경광봉마저 화살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는 멀리 도망쳤고 그렇게 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그들은 아주 캄캄한 시간까지 파라솔 아래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줄곧 무덥고 눅눅했다. 페도라의 이마에서 땀이 죽죽 흘러내려 턱 끝에 매달렸다. 기주는 비비탄총을 매만졌고 수양은 사육장 천장에 달린 노란 조명을 바라봤다. 박 순경이 수양씨 아직도 칼을 파신다고요, 하고 물었다. 정말 이상하시네 나한테 왜 자꾸 그러세요. 수양은 억울한 기분으로 되물었다. 저 사실 산을 잘 탑니다. 순경님이 산을 잘 타는데 나더러 어쩌라고요. 저도 린치족이었습니다. 뭐라고요?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박 순경은 코끝을 조금 긁적이다 또다시 수양의 장바구니를 뒤적였다. 이제는 깎아 먹을 참외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날씨가 참 덥네요 같은 말만 몇 번 더 했다. * 페도라는 매일 시디플레이어를 들고 나타났고 사람들은 새천년 체조를 하는 대신 화살 맞는 사람들이 되어 갔다. 쓰러졌다 일어나는 순간에는 분위기가 고조되었기 때문에 모두 흥분한 모습으로 크게 숨 쉬었다. 방수 앞치마를 두른 택기도 종종 수양과 나란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주로 산 타는 사람들 한복판에서 왼쪽 가슴을 그러쥐고 쓰러지는 기주를 구경했다. 택기야 기주가 제일 열심인 거 아냐. 쟤가 얼마나 땀이 없는데 저렇게 축축해지다니. 택기는 가만히 기주를 보다 사육장으로 걸어 들어가서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시디플레이어의 노래는 한 시간가량 반복 재생되었으므로 사람들은 한 시간 동안 화살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수양은 이른 오전마다 택기의 탕집 앞에 서서 기주와 페도라를 번갈아 보며 시간을 보내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런 뒤에는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 갔다. 페도라는 일이 끝난 후에 시디플레이어를 챙겨 신속하게 걸었다. 아무래도 박 순경과 함께 아침을 먹기 위한 속도일 거라고 수양은 생각했다. 페도라의 ‘화살 맞는 남자’가 또다시 유명해지자 화살 맞는 사람이 되겠다는 이들은 끊임없이 늘어났다. ‘화살 맞는 산악 동호회’ 슬로건이 걸린 전세버스가 페도라를 찾아온 날에는 분반이 필요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먼저 맞는 조와 나중에 맞는 조로 나뉘었다. 그날의 페도라는 이전보다 땀을 많이 흘렸고 모든 일을 마친 뒤 ‘명산 앞 간이 휴게소’ 쪽으로 걸어가는 수양을 불러 세웠다. 수양씨, 칼을 파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다 알면서 왜 그러세요. 페도라가 입가를 우물우물 달싹였다. 나를 죽여 주십시오…. 수양은 그 순간 몹시 울고 싶어졌다. 나는 칼 파는 사람이지 칼 쓰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하고 말한 뒤 침을 삼켰다. 잘 알고 있습니다. 페도라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깊게 미소 지었다. 수양은 바로 그 미소가 한때 관광 카바레 포스터 속에 자리했던 그의 모습임을 알 수 있었다. 수양씨, 나는 이제 평생 이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페도라는 느린 걸음으로 멀어졌다. 페도라의 속도가 아주 느렸기 때문에, 수양은 그의 크기가 도저히 작아지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다시 걸었고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 앉아 만두를 베어 먹다 다리를 덜덜 떠는 린치족과 눈이 마주쳤다. 이봐, 한가하면 우리랑 놀지 그래? 우리는 꽤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나는 칼 파는 사람이다…. 어쩌라고! 크게 외친 린치족이 도망쳤다. 흐트러진 플라스틱 의자를 보던 수양은 애매한 기분이 되어서 린치족의 목소리를 되새겼다. * 페도라가 자취를 감춘 어느 아침에도 시디플레이어는 잔디밭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산 타는 사람들과 기주는 화살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착실히 열을 맞췄다. 기주가 시디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 택기가 사육장 밖으로 뛰어나왔다. 수양은 사육장 바깥으로 몸을 내민 잿빛 토끼를 단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너는 그때 그 토끼구나. 너는 지금까지 계속 거기에 있었구나…. 잿빛 토끼 뒤로 몇 마리의 토끼들이 튀어나와 잔디밭 위에 선 사람들 사이를 헤집었다. 빠르고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오랫동안 화살 맞기를 훈련한 기주는 교묘한 움직임으로 발밑의 토끼를 피할 수 있었으므로, 끊임없이 화살을 맞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정면을 바라보는 자세를 취했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고꾸라지다 분산되었다. 몇몇이 토끼를 잡기 위해 두 손을 죄며 바닥 가까이 몸을 숙였고 토끼는 매끄러운 몸짓으로 벗어났다. 택기가 기주의 비비탄총을 손에 들었지만 비비탄이 다 떨어져 틱틱 소리만 났다. 제법 많이 사라진 토끼 때문에 택기는 한동안 탕집 문을 닫았다. 박 순경은 꽤 오랜 시간 페도라를 찾다 ‘명산 앞 간이 휴게소’ CCTV에 찍힌 그의 마지막 흔적을 확인한 뒤 조용해졌다. 화면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기주야 너는 이제 화살을 맞지 않니. 나는 이제 다 해냈어. 화살 맞는 사람들은 드문드문 찾아오다 발길을 끊었다. 페도라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그에 대한 모든 것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수양은 이제 페도라의 옆얼굴이나 자세, 목소리와 같은 것들을 묘연한 실루엣만으로 떠올렸다. 그러고는 택기와 잠을 자거나 트램펄린을 타거나 칼을 갈았다. 깰 생각 없이 느슨하고 풀어진 얼굴로 잠을 자는 기주의 뺨 위로, 수양은 그들이 아주 처음 만난 날처럼 손가락을 얹었다가 뗐다. 박 순경은 새로 마련한 자신의 과도로 참외를 깎았다. 그는 매일 누군가 내버려 둔 스도쿠를 채워 넣는 데 몰두했는데, 어떤 날에는 작은 탄성과 함께 저기에 토끼가, 하며 잔디밭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건 진짜 토끼야, 진짜다. 작게 속삭인 수양이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러나 방수 앞치마를 한쪽 어깨에 걸친 택기가 탕집 처마 아래에 서서 그곳을 바라보기만 했으므로 수양은 걸음을 멈추었다.
  • [이용한의 절묘(猫)한 순간들] 눈길 날아서 오는 고양이/고양이 작가

    [이용한의 절묘(猫)한 순간들] 눈길 날아서 오는 고양이/고양이 작가

    “나는 엄청 빠르지. 아마 안 보일 거다.” 이번 겨울에는 눈이 자주 내렸다. 보름 전 폭설이 내리던 날이었다. 산 밑에서 노는 아톰에게 “밥 먹자!” 하고 불렀더니 정말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날아서 순식간에 내 발 밑에 와 있었다. 두다닥두다닥 냥발굽 소리와 함께 한바탕 눈보라를 일으키며 내 앞에 당도한 설표(?) 한 마리. 이 순간만큼은 달린다는 표현보다는 ‘날아서’라는 표현이 제격이었다. 육중한 몸매에 그렇지 않은 날렵함이랄까. 고양이를 왜 ‘나비’라고 불렀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도 평범한 풍경이 아닌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눈길에서 마치 시베리아 야생 고양이 한 마리가 사냥감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본 기분이었다.그리고 나는 운 좋게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데 성공했다. 촬영 때는 보이지 않던 아톰의 표정이 사진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뭔가 “바쁘다 바빠!” 다급하게 서두르면서도 비장하고 결연한 표정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흩날리는 눈과 희부연 논두렁과 용맹한 아톰이 만들어 낸 그림 같은 풍경. 사실 사진을 찍을 때는 대상의 디테일한 표정이나 동작이 주변의 풍경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고양이를 찍을 때면 핀이 나갔는지 여부도 결과물이 나와 봐야 알 수가 있다. 다만 내 경험으로 이럴 때는 십중팔구 핀이 나가 고양이의 디테일한 표정이 뭉개지기 십상이다. 실제로 그동안 아톰이 달려오는 장면을 수없이 찍어 봤지만 제대로 그 모습을 담아낸 건 서너 컷에 불과하다. 사진에 나온 아톰은 올해 네 살이고, 이번이 묘생 세 번째 겨울이다. 녀석은 묘생 첫 겨울부터 눈을 좋아했다. 녀석이 보낸 첫 겨울은 몇십 년 만의 최강 한파였고 폭설도 잦았더랬다. 그해 34㎝의 폭설이 내린 적도 있는데, 아톰은 전생에 무슨 시베리아 야생 고양이라도 됐었는지 폭설 속을 신나게 누비고 다녔다. 그러니 올해 이 정도 눈쯤은 녀석에게 대수롭지 않은 것일 수도. 눈을 좋아하는 건 형제지간인 아쿠도 마찬가지다. 아쿠와 아톰은 폭설이 내리면 한바탕 눈밭에 나뒹굴며 레슬링을 하고 마당에서 뒷산까지 우다다를 한다. 눈이 쌓여 미끄러운 나무도 곧잘 탄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여러 고양이가 있지만 이렇게 눈밭을 냥루랄라 쏘다니며 신나게 노는 고양이는 이 두 녀석밖에 보지 못한 것 같다. 일반적으로 고양이는 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눈밭에서 뛰어노는 고양이가 마냥 신기할 수밖에. 다들 경험해 봤겠지만 눈밭에서 놀면 두 배로 힘들고 두 배로 허기가 진다. 그래서일까. 밥 먹자고 부를 때 아톰이 그 먼 거리를 두 배로 빠르게 날아서 오는 것도.
  • 한양 수복 도모, 삭녕군 주둔 중 왜적 기습에 순절 [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한양 수복 도모, 삭녕군 주둔 중 왜적 기습에 순절 [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류성룡은 ‘징비록’에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켰지만, 이순신을 제외하면 아마도 가장 공들여 서술한 인물이 경기 감사 심대(沈岱·1546~1592)가 아닐까 싶다. 심대는 세자를 교육하는 세자시강원의 종3품 보덕(輔德)이었다. 이후 경기 감사에 임명된 그는 사방에 왜적이 들끓는 상황에서도 숨어들기는커녕 깃발을 앞세우고 풍악을 울리며 당당하게 행차하곤 했다. 나아가 ‘한양 수복’을 공언하면서 도성 내부의 호응을 이끌었으니 왜적에게는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었다. 심대는 오늘날의 경기도 연천과 강원도 철원에 걸쳐 있던 삭녕에 머물고 있다가 왜적의 기습으로 순절했다. 심대는 1572년 문과에 급제하고 홍문관 요직을 섭렵한 대표적 문관이다. 그럼에도 경기도 용인에 있는 무덤 앞의 안내판조차 ‘심대 장군 묘역’이라 적어 놓았다. 선조실록을 보면 임진년 7월 17일 보덕 심대는 정3품 좌부승지로 승진해 임금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필하게 된다. 이후 7월 25일 ‘경기 감사 심대에게 가자(加資)하라’고 했으니 일주일 만에 종2품 관찰사에 오른 것을 알 수 있다. 삭녕에서 전사한 것이 9월 1일이니 감사 재임 기간은 한 달을 조금 넘는다. 한양 수복을 위해 군사를 정비하던 그의 의기(義氣)는 그만큼 인상적이었다.●류성룡 “출전하면 어떤 위험도 안 피했다” 왜란 당시 심대의 행적은 류성룡이 쓴 글을 가감없이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징비록’은 심대를 두고 ‘대단히 정의로운 사람인 까닭에 왜란이 발발하자 분을 참지 못했다. 그때부터 명령을 받아 출전하게 되면 어떤 위험도 피하지 않았다’고 했다. 류성룡은 심대를 용기 있는 인물을 넘어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리고 있다. 글을 읽다 보면 심대에 대한 깊은 애정마저 느껴진다. 조정의 핵심 요직에 있었던 두 사람은 실제 친분도 상당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임진년 5월 3일자 선조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이때 전라도 관찰사 이광이 병사들을 이끌고 올라오다가 공주에 이르러 경성이 벌써 함락되고 대가(大駕)가 서쪽으로 거둥했다는 소문을 듣고 드디어 병사들을 철수하여 본진으로 돌아갔다. 선조는 날마다 남쪽을 바라보며 원군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충청도 관찰사 윤선각 역시 오지 않았으므로 개탄한 지 오래다. 보덕 심대가 자신이 남쪽으로 떠나 이광에게 명을 전달하겠다고 자청하자 선조가 매우 기뻐하면서 당상관으로 승직할 것을 명하니 심대는 울면서 굳이 사양했다.’ 심대는 왜군에 육로가 모두 끊긴 상황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심대는 결국 이광을 만났고 임금의 뜻을 전하며 질책하자 이광이 비로소 윤선각과 더불어 병사를 합쳐 다시 북상을 시작했다. 심대가 평양으로 돌아가 이 사실을 전하니 선조와 조정은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북상한 이광의 전라도, 윤선각의 충청도, 김수의 경상도 등 하삼도(下三道)의 대군이 용인 광교산에서 소수의 왜군에게 패퇴했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삼도 근왕병이 허무하게 무너지자 서울 수복의 꿈은 깨지고, 조정의 희망도 사라져 갔다.이런 상황에서 심대가 아무도 입에 올리지 못하던 ‘한양 수복’을 다시 외치면서 어두워졌던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류성룡은 가능성이 없는 듯해도 대의(大義)에 합당하면 기꺼이 뛰어드는 지사적 기질을 심대에게서 읽었다. 하지만 류성룡은 ‘징비록’에 심대의 한없는 자신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우려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숨기지 않았다. ‘징비록’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해 가을, 심대는 권징의 후임으로 경기 감사에 임명되어 출발했다. 가던 길에 안주에 머물고 있던 나를 백상루로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이야기 끝에 심대는 적을 만나면 직접 나가 싸우고야 말겠다는 뜻을 펼쳐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를 달래며 말했다. “옛말에 밭을 가는 일은 종에게 시키라고 일렀네. 그대는 선비라 싸우는 일에는 서투를 테니 그만두게. 대신 양주 목사 고언백이 대단히 용감하고 뛰어나니 그에게 군사를 넘겨주게. 그가 병사를 이끈다면 큰 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네. 부디 조급하게 덤비지 말게.”’ 제주 출신 고언백(?~1608)은 훗날 도성 탈환에 공을 세운 명장이니 류성룡의 판단은 정확했다. 당시 양주는 태조의 건원릉을 비롯한 능침이 밀집한 고을이었다. 그러니 조선의 역대 양주 목사에게는 왕실의 중요한 능침을 지키는 엄중한 역할이 주어졌다. 고언백은 양주로 침입하는 왜적을 물리치는 전과를 여러 차례 거두며 경기도 방어사에 올랐다. 정유재란 때도 경기도 방어사로 전공을 세웠고, 선무공신 3등에 책록됐다. 선조실록에도 ‘경기 관찰사 심대가 조경을 대장으로 삼고, 최몽성에게 동로병마를 지휘케 하고, 고언백에게 서로병마를 지휘케 했다’는 대목이 보인다. 심대가 류성룡의 조언을 아주 허투루만 들은 것은 아니라는 방증이다.하지만 류성룡의 충고에 심대는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예, 예” 했을 뿐 별로 마땅치 않은 눈치였다고 ‘징비록’은 적었다. 류성룡은 혼자 떠나는 그가 걱정되어 활에 능숙한 군관 장모를 딸려 보냈다. 전쟁의 와중이라고는 하지만 경기도 관찰사에 임명된 인물이 혈혈단신으로 임지로 떠나려 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류성룡이 심대에게 딸려 보낸 군관 장모(張某)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아쉽다. 그는 삭녕에서 심대를 보호하다 장렬하게 순국했다. 번암 채제공(1720~1799)이 지은 심대 신도비 비명에도 ‘장성(張姓) 군관’이라고만 적혀 있다. 이후 류성룡은 말단 군관 장모와 연락병을 통해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한번은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경기도는 왜적의 피해가 극심합니다. 하도 불을 질러대고 약탈을 일삼아 성한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전에 감사나 관원들은 깊은 곳에 숨어 지내거나, 다닐 때도 평복을 입어 왜적의 공격을 피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감사는 왜적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순시할 때 공문을 띄워 알리는 것은 물론 깃발과 나팔을 앞세웁니다.’ 이런 소식을 들은 류성룡은 심대에게 부디 조심하라는 편지를 여러 차례 띄웠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심대는 “한양을 회복할 것”이라면서 군사를 모았다. 한편으로 심대는 도성 내부에 사람을 침투시켜 공격이 이루어졌을 때 내응할 사람들을 모으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도성 내부 사람들은 나중에 왜적에 부역했다는 죄를 뒤집어쓰지 않을까 두려워하게 됐다. 연명부에 이름을 적어 보낸 도성 내부 사람이 하루에 1000명을 넘기도 했다. 경기 감사가 도성 내부와 소통하며 이곳저곳을 거리낌없이 내왕하니 왜적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자들도 활개칠 수밖에 없었다. 심대가 삭녕군에 머물러 있을 무렵 정보를 수집한 왜군이 밤을 이용해 습격했다.●피신 권유에 “여기가 죽을 곳”이라며 활쏴 심대의 최후는 채제공의 신도비명에 자세히 적혀 있다. ‘그때 철원의 적이 얕은 여울을 몰래 건너 한밤중에 들이닥쳤다. 장씨 성을 가진 군관이 곧장 장막 안으로 들어가 “상황이 급박합니다. 빨리 나가서 뒷날을 도모하소서”했다. 공은 천천히 객사에서 나가 큰 나무에 기대어 앉아 “여기가 내가 죽을 곳”이라며 왜적에 활을 쏠 뿐이었다. 왜적은 “감사는 어디에 있는가” 했다. 군관은 “내가 감사다”하고 외쳤고 왜적은 그의 목을 베어 갔다. 하지만 역적의 편에 선 자들이 감사가 아니라고 하자 마침내 심대와 삼종사관 윤경원, 강수남, 양지를 살해했다.’ 이후의 이야기는 다시 ‘징비록’을 인용한다. ‘왜적이 물러가자 경기도 백성들이 심대의 시신을 거두어 삭녕의 임시 무덤에 모셨다. 며칠이 지나 왜적이 다시 나타나 시신의 머리를 베어 갔다. 그러곤 서울로 가져가 종로 한복판에 매달아 놓았는데, 두 달이 지나도록 얼굴빛이 산 사람처럼 빛났다. 그의 충심에 감동한 사람들은 재물을 모아 왜병을 매수한 다음 머리를 찾아 강화도로 옮겼다가 왜적이 완전히 물러간 다음 시신과 함께 고향에 보내 장사 지냈다.’ 심대는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호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청원군에 봉해졌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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