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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키울래” 입양 희망자 쇄도

    브라질의 한 호수에서 비닐 봉지에 담긴 채 떠다니다 극적으로 구조된 2개월 여자아기를 입양하겠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AP통신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마추어 작가가 촬영한 구조 장면이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돼 입양을 희망하는 100여명과 얼굴을 한번 보겠다는 사람들이 아기가 입원한 병원에 몰려드는 바람에 업무가 마비되고 전화도 불통됐다고 영국의 BBC방송 인터넷판도 전했다. 이 아기는 지난 28일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북쪽으로 340㎞ 떨어진 팜풀하 호수를 떠다니던 널빤지 위에 붙여진 검정색 비닐 봉지 속에서 발견됐다. 누군가 보통 슈퍼마켓에서 나눠주는 이 봉지 속 아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널빤지를 댄 것이 틀림없었다. 막대기를 이용해 널빤지를 호수 바깥으로 끌어낸 두 사람의 목격자는 봉지 속에서 핑크빛 드레스를 입은 아기를 발견했다. 목격자 중 한명인 호세 다 크루즈는 글로보 텔레비전과 인터뷰에서 “처음엔 고양이 울음처럼 들렸는데 시간이 갈수록 커져 내 주의를 끌었다.”고 말했다. 아기는 근처의 벨로 호리존테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간호사들은 이 아기가 몇 시간 전에 퇴원된 아기라고 경찰에 신고했다. 예정일보다 일찍 세상에 나온 이 아기는 2개월 동안 인큐베이터 병동에 입원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경찰은 아기가 구조된 이튿날 호수에 버려 아기를 살해하려 한 혐의로 시모네 카시아노 다 실바(27)를 남자친구 집 앞에서 체포했다. 그녀는 살해 의도는 없었으며 아이를 양육할 돈이 없었기 때문에 몇명의 홈리스들에게 아기를 넘겼을 뿐이라고 발뺌했다. 병원 대변인은 “이 아기가 매우 건강한 상태여서 퇴원해 보호 시설에 수용될 예정이며 가족에게 돌려보낼지, 아니면 계속 수용할지 여부는 법원에서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BBC는 전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이태현 뒤집고 백두봉 박영배, 세대교체 선언

    모래판은 세대교체를 간절히 원했고,‘골리앗 킬러’ 박영배(24·현대삼호중공업)가 그 중심에 우뚝 섰다. 프로 4년차 박영배는 30일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설날장사씨름대회 백두급 결승에서 ‘황제’ 이태현(30·현대삼호중공업)을 2-1로 제압하고 차세대 기수임을 선언했다. 4강에서 ‘아마추어 돌풍’ 이충엽(수원시청)을 들배지기와 밀어치기로 누르고 결승에 선착한 박영배의 상대는 각종 대회 36회 우승 및 통산 최다승(468승)과 최다상금(5억 8146만원)에 빛나는 이태현.유연한 허리를 바탕으로 대학과 프로에서도 ‘테크노골리앗’ 최홍만(25)을 거푸 꺾어 골리앗 킬러라는 별명을 얻은 박영배였지만 덩치와 기술을 겸비한 이태현과의 상대 전적에서는 3전전패의 절대 열세. 더군다나 백두급 최단신인 박영배의 신장은 184㎝에 불과해 이태현(197㎝)을 뽑아들기엔 힘겨워 보였다. 하지만 은퇴 뒤 요리사를 꿈꾸는 ‘신세대 씨름꾼’ 박영배는 결코 기 죽지 않았다. 첫 판을 들배지기로 따낸 뒤 두번째 판을 배지기로 내줬지만, 마지막 판에서 신기에 가까운 뒤집기로 이태현을 모래판에 뉘었다.생애 두번째 타이틀인 동시에 2년연속 설날장사. 박영배는 또한 지난 92년 시작된 설날장사대회에서 2연패를 한 유일한 씨름꾼으로 기록됐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우즈, 올 시즌 첫 출전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올시즌 처음으로 미프로골프(PGA)투어에 모습을 드러낸다. 최경주(나이키)도 한 주 동안의 휴식을 마치고 필드에 복귀한다. 지난해 상금, 다승, 세계랭킹 1위,‘올해의 선수’ 등 모든 타이틀을 석권한 우즈가 올시즌 첫선을 보일 무대는 27일부터 미국 샌디에이고 인근 라호야의 토리파인스골프장 남코스(파72·7208야드)와 북코스(파72·6874야드)에서 치러질 뷰익인비테이셔널(총상금 510만달러).우즈는 지난해 이 대회에서 통산 세번째 우승을 차지해 올해는 2연패이자 통산 4승에 도전하는 셈. 올해 골퍼로서 절정기인 30대에 접어든 우즈가 이 대회 2연패를 발판으로 ‘2인자 그룹’과의 차별성을 더욱 뚜렷하게 할지 여부가 주목된다.2인자 그룹의 선두주자이자 역시 이 대회에서 통산 3승을 거둔 필 미켈슨과의 시즌 첫 승 경쟁도 관심거리다. 한편 시즌 초 두차례 PGA 투어 대회에 출전한 뒤 한 주를 쉰 최경주는 시즌 첫 ‘톱10’ 입상을 목표로 출사표를 냈다. 그동안 6차례 이 대회에 출전해 2002년 공동 18위가 가장 좋은 성적인 최경주는 이 대회 상위권 입상을 통해 올시즌 4년만에 상금 20위권 재진입 여부를 타진한다. 차세대 스타로 떠오르는 재미교포 최제희(22·미국명 제이 최)도 국내팬들의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어바인 캘리포니아대(UC 어바인)에 재학 중인 최제희는 지난해 뷰익아마추어인비테이셔널 전국 대회 우승으로 올해 이 대회 출전권을 따냈다.곽영완기자 kwyoung@seoul.co.kr
  • “스타더스트 우주먼지 100만개이상 입자 채집”

    “스타더스트의 우주 먼지 채집 결과는 기대 이상의 엄청난 성공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18일(현지시간) 우주 먼지를 채취하고 지난 15일 7년 만에 텍사스주 휴스턴 존슨 우주센터(JSC)로 귀환한 스타더스트호의 성공에 과학자들이 흥분했다고 밝혔다. 스타더스트 분석단장인 도널드 브라운리 워싱턴대 교수는 “먼지 흡수통을 열고 에어로젤 채취기를 들어냈는데 7년간의 우주여행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채취기에서 수백개의 입자들을 볼 수 있었으며, 그 중 특히 큰 입자 두 개는 에어로젤 내부에서 ‘폭발’해 과학자들을 열광시켰다.”고 밝혔다. 인간이 만든 가장 가벼운 물질인 초저밀도 신소재 에어로젤은 우주복 등에 쓰이는데, 스타더스트가 빠른 속도로 혜성과 만날 때 ‘먼지잡이 장갑’ 역할을 해 이번 성공의 초석이 됐다. 먼지 채취기에는 100만개 이상의 행성 간 입자들이 들어 있었다. 가장 큰 것은 1㎜였고, 에어로젤에 생긴 충격 흔적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사람의 새끼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였다. 스타더스트호가 수집한 먼지는 태양계의 역사를 밝혀내기 위해 전세계 200명의 과학자들에 의해 분석된다. 공개 과학 프로젝트인 ‘스타더스트 앳홈(Stardust@home)’ 홈페이지에서 “가상의 현미경”이란 프로그램을 내려받으면 아마추어들도 과학자들을 도와 우주 먼지를 분석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 이미 7만 2000명이 등록, 우주 먼지 분석작업을 돕겠다고 나섰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스포츠 Tips]

    ●삼보란 삼보는 ‘무기없는 호신술’이라는 뜻의 러시아어 ‘SAMozashchita Bez Oruzhiya’의 줄임말이다. 구 소련의 각 지역에 내려오던 토룬타, 루차카나리아 등 고대레슬링 기술과 몽골씨름 바흐가 뼈대를 이루며 유도도 큰 영향을 주었다. 지난 1938년 전 소련 체육스포츠위원회에 의해 체계화된 뒤 러시아의 ‘국기’로 발전했으며, 현재 세계연맹은 전세계 47개 회원국을 거느리고 있다. 삼보마니아로 알려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은 명예총재를 맡고 있다. 스포츠삼보와 컴뱃삼보의 두 종류로 나뉜다. 스포츠삼보는 아마추어 레슬링의 경기방식으로 공식 인정받았으며, 컴뱃삼보는 KGB나 공수부대 정예요원들의 실전격투기로 발전했다. 펀치나 킥을 금지하는 스포츠삼보와 달리 컴뱃삼보는 척추 및 낭심 공격 등을 제외한 모든 공격을 허용하고 있다.
  • [골프소식]

    ●스포츠서울골프닷컴(sportsseoulgolf.com)이 ‘이안아파트컵 스포츠서울골프 해외골프대회’ 참가자를 모집한다.2월16∼20일 태국 칸차나부리의 미션힐스골프장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아마추어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선착순 100명. 참가비 82만원.(02)536-0081.●한국프로골프협회(회장 박삼구)가 올해 20개 대회 일정을 잠정 확정했다. 안에 따르면 4월13∼16일 스카이힐제주오픈을 개막전으로 금호아시아나오픈까지 상반기 7개 대회를 치르고, 독일월드컵축구 본선 기간인 6월과 장마철인 7월 중순까지는 휴식기에 들어간 뒤 7월 말부터 11월 초순까지 13개 대회를 연다는 계획. 지난 2004년 첫 대회를 치른 뒤 중단됐던 한·일프로골프대항전도 60만달러의 상금을 내걸고 재개된다.●한양골프기계(대표 김시명)가 국내 업체로는 처음으로 중국업체와 합작으로 ‘렌원항시 한양골프연습장 유한회사’를 설립했다.1차 57만달러(자본금 40만달러)의 합작투자 규모 가운데 중국측이 현금 30만달러를, 한양은 10만달러와 기계 설비를 제공한다.
  • [프로배구 V-리그] 현대 최다 14연승 ‘고공비행’

    ‘무적함대’ 현대캐피탈이 아마추어 초청팀 한국전력을 제물로 프로배구 최다 연승 신기록 행진을 이어갔다. 현대는 18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벌어진 프로배구 V-리그 홈경기에서 좌우 공격수 숀 루니와 후인정을 빼고도 팀 최고 득점을 올린 송인석(21점)을 앞세워 정평호(26점)가 버틴 한국전력을 3-1로 제압했다. 이로써 현대캐피탈은 프로 출범 이후 최다인 14연승을 내달리며 17승1패를 기록,2위 삼성화재(13승4패)와의 거리를 승점 4점차로 더 벌리며 선두를 굳게 지켰다. 반면 한국전력은 지난 14일 풀세트 접전 끝에 같은 초청팀 상무에 덜미를 잡힌 이후 3연패,3승15패의 부진한 성적으로 꼴찌에서 허덕였다. 한전은 끈끈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정평호가 공격을 주도했지만 송인석과 박철우가 좌우에서 맹폭을 퍼붓고 이선규 윤봉우가 중앙에서 버틴 현대의 무력시위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현대는 첫 세트 정평호의 과감한 공격에 뚫려 시소게임을 벌였지만 16-15에서 송인석이 스파이크를 잇달아 성공시켜 3점차 리드를 잡은 뒤 24-23에서도 송인석의 오픈 강타로 세트를 마무리했다. 2세트에서도 현대는 14-14의 팽팽한 균형을 이선규의 속공을 시작으로 연속 7점을 쓸어담은 뒤 부상에서 복귀한 신경수 백승헌까지 공격에 가세, 세트스코어 2-0으로 앞서며 14연승을 재촉했다. 한전의 반격에 주춤한 현대는 듀스 끝에 3세트를 내줬지만 4세트 윤봉우 박철우가 연속 블로킹과 직선공격을 차례로 성공시키며 힘이 빠진 한전의 추격에 찬물을 끼얹었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프로배구 V-리그] 현대 ‘네트 위의 네트’로 12연승 질주

    `무적함대´ 현대캐피탈이 프로 통산 최다 연승 기록을 수립하며 우승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렸다. 현대는 15일 천안에서 벌어진 프로배구 V-리그 홈경기에서 이경수와 용병 키드 등이 결장한 ‘이빠진 호랑이’ LG화재를 3-0으로 가볍게 제압했다. 이로써 현대는 지난달 14일 LG전 이후 파죽의 12연승을 기록, 삼성화재가 갖고 있던 종전 연승 기록(11연승)을 갈아치웠다. 속공 득점 5개와 블로킹 3개로 든든히 팀 승리를 받친 현대 센터 윤봉우는 2세트 막판이던 19-10에서 LG 홍석민의 오픈공격을 가로막아 프로 첫 팀 통산 500번째 블로킹의 주인공이 됐다. 아마추어팀 상무와 한국전력에 이어 전날 삼성에 또 발목을 잡힌 LG는 이날도 현대와의 ‘0-3 징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4연패,4위 상무에 승점 2차로 쫓기며 3위 자리까지 걱정하게 됐다. LG는 ‘체력 관리’에 들어간 이경수와 무릎 부상중인 키드의 공백이 못내 아쉬웠다. 지난 3라운드까지 아마추어 2개팀과 프로 3개팀에 두들겨 맞아 ‘동네북’으로 전락한 대한항공은 마산경기에서 상무를 3-1로 격파하고 시즌 첫 2연승, 중위권 진입의 발판을 마련했다.2위 삼성화재는 대전에서 한국전력을 3-0으로 셧아웃,3연승을 질주했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장애우엔 저렴하게 무대의상 대여”

    “땀 흘려 마련한 무대 의상, 함께 나눠야죠.” 한세대학교가 국내 대학 최초로 무대의상 전문제작과 대여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말 기독교 문화예술 공연을 위한 무대의상 디자인 개발 인력사업팀 ‘한세 커스튬’을 꾸린 것.그동안 뮤지컬 공연을 직접 열며 축적한 노하우를 국내 다른 공연예술 단체와 나누기 위해서다. 김성혜 한세대 총장은 11일 “그동안 학교 차원에서 수차례 공연을 하며 철저한 고증에 현대적인 요소를 접목시킨 무대의상을 100벌 이상 갖췄다.”면서 “의상 마련에 고민하는 공연 기획사나 단체들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한세대는 2004년부터 공연의 질을 높이기 위해 미국 코너스톤 프로덕션과 산학협정을 맺고 매년 2차례 이상 뮤지컬을 무대에 올렸다.한세대 공연은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과 미국 중국 등에서 한국을 찾은 교환학생이 함께 하는 국내에서는 보기드문 영어 뮤지컬로 정평이 났다. 지난해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독교 뮤지컬 ‘투 프롬 갈릴리’와 ‘더 프라미스’ 공연을 성황리에 개최하기도 했다.오는 4월 말에는 미국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의 하나이자,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의 합작품인 ‘어메이징 조셉’을 공연한다.한세대 대학원 뮤지컬학과 학생들은 공연 연습에 땀흘리는 것 외에 50∼60벌에 달하는 의상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김 총장은 “상업 공연 외에도 아마추어 단체는 물론, 장애우 단체에 이르기까지 가격에 상관없이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프로배구 V-리그] “노병은 살아있다”

    삼성화재가 돌풍의 상무를 상대로 사흘전 맞수 현대캐피탈에 당한 패배를 분풀이하며 3라운드를 마무리했다. 삼성은 11일 마산에서 벌어진 프로배구 V-리그 경기에서 ‘갈색폭격기’ 신진식(20점)의 맹활약을 앞세워 ‘이등병’ 장광균(9점)이 분전한 상무를 3-0으로 완파했다. 지난 8일 현대에 3-1로 패해 정규리그 우승이 가물가물해진 삼성은 그러나 중간성적 11승4패를 기록, 선두 현대(14승 1패)에 이어 승점 3점차 2위를 굳게 지키며 3라운드를 마쳤다. 서른살을 넘겼지만 신진식의 기량은 여전했다. 화려한 레프트 공격은 물론 리베로 뺨치는 리시브와 상대 빈 곳을 노리는 서브에이스, 단신에도 불구하고 상대 공격 루트를 꿰뚫는 블로킹 등 ‘멀티플레이어’다운 모습을 드러내며 팀 최고 득점을 엮어냈다. 아쉬운 건 1개 차이로 놓친 ‘트리플 크라운’. 백어택과 블로킹 각 4개를 솎아내며 지난달 3일 개막전에서 이경수(LG화재)가 프로에서 처음 일궈낸 기록에 한 발 다가섰지만 서브에이스 단 1개가 모자라 두번째 주인공이 되진 못했다. 아마추어 초청팀으로 프로무대에서 첫 3연승을 일궈낸 데 이어 이전 경기에서도 LG화재를 격파하는 등 돌풍을 일으킨 상무는 주포 주상용 조승목이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무너졌다. 앞서 열린 여자부 경기에서는 국가대표 센터 정대영이 혼자 30점을 쓸어담은 현대건설이 원년 챔피언 KT&G에 3-2 역전승을 거두고 중위권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KCC프로농구] 동부, 역시 삼성 잡는 ‘매’

    02∼03시즌 중앙대 졸업반 김주성(27·동부·205㎝)의 프로 데뷔는 농구팬을 설레게 만들었다. 적수가 없던 ‘국보센터’ 서장훈(32·삼성·207㎝)과의 토종빅맨 대결이라는 볼거리가 생겼기 때문.쏟아지는 비교를 자존심이 강한 서장훈은 무척이나 꺼려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최고’라는 수식어를 놓아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5년 후배와의 비교를 용납하기 힘들었다. 루키 시절 김주성은 대선배와의 비교가 우쭐할 법도 했지만 언제나 “장훈이형은 최고예요. 영광이죠.”라며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쑥쑥 성장한 김주성은 언젠가부터 막상막하의 실력을 뽐냈다.02∼03시즌 8000만원으로 서장훈(당시 4억 3100만원)의 5분의 1도 안됐던 몸값도 수직상승을 거듭, 지난해 공동연봉왕(4억 2000만원)에 올랐다.11일 원주치악체육관에서 두 팀은 시즌 네번째 대결을 펼쳤다. 삼성은 지난 시즌부터 플레이오프(3패)를 포함해 7연패를 당하는 등 동부만 만나면 꼬리를 내렸다.‘징크스’를 깨기 위해 2년여 동안 원주 원정시 애용했던 식당을 바꾸기까지 했다. 물론 서장훈도 김주성의 동부에게 이기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또 한번 동부의 손을 들어줬다. 경기내내 서장훈(22점 6리바운드 3어시스트)과 매치업을 이룬 김주성(18점 7리바운드 4어시스트 2블록슛)은 자신있게 미들슛과 골밑슛을 펑펑 터뜨렸고, 리바운드 다툼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동부가 프로농구 홈경기에서 94-81, 완승을 거두며 삼성전 연승행진을 ‘8’로 늘렸다. 선두 삼성과는 불과 반게임차.‘쌍포’ 손규완(20점·3점슛 4개)과 양경민(19점)은 추격의 고삐를 죄어올 때마다 외곽포를 터뜨려 승리를 거들었다.반면 삼성은 연승행진을 ‘5’에서 마감했다. 한편 모비스도 크리스 윌리엄스(31점 10리바운드 9어시스트)를 앞세워 오리온스를 90-85로 따돌리고 공동 2위를 유지했다.원주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소니오픈] 또 미셸 위가 왔다

    [소니오픈] 또 미셸 위가 왔다

    ‘1000만 달러의 소녀’ 미셸 위(17)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다시 한번 도전한다. 오는 13일 새벽 안방인 하와이 호놀룰루의 와이알레이골프장(파70·7060야드)에서 개막될 PGA투어 소니오픈(총상금 510만달러)에 출전, 컷 통과를 노리는 것. 미셸 위가 PGA 무대에서 ‘성대결’을 펼치는 것은 이번이 4번째다.2004년과 지난해 소니오픈에 거푸 출전했고, 지난해 8월 존디어클래식 등 지금까지 3번 PGA 투어 대회에 출전했다. 올해까지 치면 소니오픈에만 3년 연속 출전하는 셈. 첫번째 도전에 나선 2004년 소니오픈에선 1타차로 컷오프됐고, 지난해엔 완패를 했지만 3번째 해인 올해는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충만해 있다. 무엇보다 아마추어로 출전했던 지난 두해와는 달리 올해는 프로로 신분이 바뀌었다. 여성 선수의 PGA 투어 컷 통과는 지난 1945년 베이브 자하리아스(미국)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나오지 않은 대기록이지만 이번 대회에서 미셸 위가 컷을 통과할 것이라는 주변의 기대는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1년 전에 비해 파워도 향상됐고 약점으로 꼽히던 쇼트게임과 퍼팅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미셸 위의 스윙 코치 데이비드 레드베터는 “미셸 위는 이제 드로, 페이드 등 다양한 샷을 구사할 줄 안다. 그리고 그린 주변에서도 상황에 맞는 각종 어프로치 샷을 완비했다.”며 컷 통과를 낙관한다. 대회가 치러질 와이알레이골프장이 미셸 위의 집에서 15분 거리에 불과해 평소에도 자주 연습 라운드를 치렀던 곳이라는 점도 기대를 높이는 대목. 미셸 위는 “모두들 내가 컷을 통과하길 바라고 있다. 나도 그러고 싶다.”면서 “이틀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 아닌가. 좋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컷 통과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한편 개막전인 메르세데스챔피언십에서 다소 부진한 출발을 했던 ‘탱크’ 최경주(나이키)도 당당한 우승 후보의 한 명으로 출사표를 냈고, 위창수(테일러메이드)도 동반 출전한다. 곽영완기자 kwyoung@seoul.co.kr
  • [프로배구 V-리그] ‘아마’ 한전, LG화재 잡았다

    아마추어 ‘도깨비팀’ 한국전력의 반란은 언제까지 이어질까.10일 구미에서 벌어진 프로배구 LG화재와의 시즌 3차전. 양팀 출전선수 평균 신장에서 무려 4㎝나 밀렸지만 한전은 결코 작지 않았다. 평균 연령에서도 2살 아래. 프로배구 원년의 ‘늙다리팀’도 더이상 아니었다. 블로킹만 17개. 초청팀의 서러움을 도약대 삼은 한전의 높이는 오히려 LG보다 한뼘 높았다. 지난해 성탄절에 이어 이날도 LG를 3-1로 잡는 반란을 일으켰다. 한전의 ‘발전기’는 정평호(22점) 이상현(12점) 강성민(15점) 등 ‘젊은피’. 삼성화재 시절 호화멤버에 밀려 벤치만 지키다 상무 제대 이후 한전에 둥지를 튼 정평호는 이경수(LG)에 이어 프로 통산 두번째로 공격득점 500점을 돌파하며 LG 코트를 농락했고,‘원조 한전맨’ 강성민도 반타작의 공격성공률을 뽐내며 한전의 붙박이 레프트를 굳혔다.68년 멕시코올림픽 여자팀 멤버 이은옥(58)씨의 아들인 이상현은 혼자 7개의 블로킹을 잡아내며 LG의 고공폭격을 번번이 막아냈다. 지난해 국가대표팀 감독을 꿰찬 공정배 감독의 지략도 고비마다 멤버 교체의 휘슬을 불어대는 등 프로감독 못지않게 무르익어 이날 7번째 주전선수로 불릴 만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국제강-철인 3대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국제강-철인 3대

    대궁(大弓)양행, 남선(南鮮)물산, 조선(朝鮮)선재, 동국(東國)제강…. 고 대원(大圓) 장경호 회장이 1929년 설립한 가마니 회사 대궁양행을 시초로 한 동국제강그룹의 사명 변천사에는 웅대한 포부가 담겨있다. 활을 숭상하는 민족사를 표방한 대궁이나 바다건너 남쪽으로 뻗어나가길 소망한 남선, 조선, 해뜨는 나라의 긍지를 담은 동국 등 장경호 회장이 강조한 민족사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974년 락희(현 LG), 삼성, 현대, 한국화약에 이어 5대 그룹까지 올라섰던 동국제강그룹은 잇단 계열분리로 인해 지난해 4월 현재 자산 5조 8000억원으로 재계 26위에 랭크돼 있다. 하지만 가마니와 못을 팔며 시작한 이 전통의 그룹은 3세인 장세주(53) 회장대에 이르러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인수전에 뛰어들고 IT사업에 진출하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지남철로 수집한 철사 토막에서 연산 860만t체제로 장경호 창업주는 1899년 동래군 사중면 초량동에서 부농인 부친 장윤식씨와 모친 문염이씨 사이의 4남 2녀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지금의 부산 초량동 중앙시장 주변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창업주는 1913년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보성학교에는 부산출신 유학생이 단 두명 있었는데 나머지 한명이 4·19직후 과도정부 수반이었던 허정씨다. 둘은 광복 이후 각각 정치인, 기업가로 재회했는데 허정씨가 정계 은퇴 후 어렵게 살 때 장 회장이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장 회장은 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 맏형 장경택씨가 운영하던 목재소 일을 돕고 농사를 크게 짓고 있던 두 형에게 가마니를 공급하는 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30세 되던 해인 1929년 대궁양행을 설립, 본격적인 가마니 장사에 나서면서 사업인생을 시작했다.1935년에는 남선물산을 세워 수산물 도매업, 미곡사업, 창고업 등으로 발을 넓혔다. 장 회장과 철(鐵)과의 인연은 우연찮게 시작됐다. 남선물산 창고에서 신선기(伸線機)를 설치해 철사와 못을 생산하던 재일교포가 창고에 화재가 발행하자 장 회장에게 신선기를 넘긴 것이다. 동국제강의 모태가 된 조선선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당시 장 회장은 검정 고무신을 신고 보퉁이를 맨 채 지남철을 들고 다니며 고철을 수집해 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동국제강의 연간 철강 생산량은 유니온스틸을 합쳐 무려 860만t에 이르지만 그 출발은 길거리에 굴러 다니는 쇠붙이였던 것이다. 한국전쟁 후 재건사업으로 못 수요가 폭발하자 조선선재는 큰 돈을 벌게 됐고 1954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동국제강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민간 제철소 시대를 개막했다. 당산동 공장으로는 늘어나는 철강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장 회장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분개 소금’으로 유명했던 부산시 남구 용호동 일대 갯벌을 매립해 20만평 규모의 부산제강소를 완공한다. 1965년에는 50t 규모의 국내 첫 ‘고로(高爐)’를 준공, 한국 철강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당시 동국제강의 위상은 박정희 대통령이 1964년 부산제강소를 방문, 종합제철소 건설을 맡아달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장경호 회장은 “종합제철소는 민간기업이 하기에는 역부족이므로 국책사업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완곡히 사양했다. 이후 정부는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포항제철을 설립, 오늘날 포스코를 탄생시켰으니 장 회장이 박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한국 철강사가 새로 씌어질 뻔했다. ●아내 반지를 빼서라도 투자하겠다, 강철왕 송원 장상태 장경호 창업회장이 동국제강그룹의 기틀을 닦았지만 장 회장은 워낙 불심(佛心)이 깊어 수시로 절에 들어가 100일간의 수행정진에 들어가는 등 현대적 의미의 경영자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동국제강의 본격적인 역사는 1956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당시 부흥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던 고 장상태 회장이 전무로 입사하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큰 형(고 장상준씨)과 공직에 있던 둘째 형(고 장상문씨)과 함께 동국제강을 키워 온 장상태 회장은 1964년 동국제강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2세경영’을 시작했다. 장 회장은 2000년 4월 지병으로 별세할 때까지 국내 첫 후판공장 설립, 부산신철(현 한국특수형강) 설립, 동일제강 인수, 한국철강·한국강업 인수, 연합철강·국제기계·국제통운 인수, 기업 상장, 직류전기로 도입, 포항 후판공장 준공, 국내 첫 항구적 무파업 선언, 부산제강소의 포항 이전, 일본 가와사키제철(현 JFE스틸)과의 포괄적 협력 체결 등 굵직굵직한 발자국을 남겼다. 64년 취임 당시 4만 8000t에 불과했던 동국제강의 철강 생산량은 2000년 705만t으로 147배 증가했다.5억 6000만원이던 매출은 1조 5442억원으로 불어났다. 장 회장은 약간의 여유만 생겨도 설비투자에 나섰는데 주변에서 자금 걱정을 하자 “내 아내의 반지를 빼서라도 투자금을 마련할 테니 설비만큼은 최고를 써라.”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장 회장의 존재감은 JFE홀딩스 스도 후미오 사장이 동국제강 사보 편찬팀과의 인터뷰에서 “장 회장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 때문에 지금도 동국제강 본사에 있는 장 회장 흉상 앞에 설 때면 자연스럽게 차렷자세로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게 된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스도 사장은 2005년 4월 방한했을 때도 경기도 광주에 있는 장 회장 납골탑을 참배하는 등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디지털경영 시도하는 3대 장세주 회장 동국제강은 장상태 회장 별세 직후 포항제철 사장을 역임한 김종진씨를 부회장으로 영입,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은 취임 1년여만인 2001년 7월 헬기를 타고 경남 거제의 대우조선소를 방문하다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졸지에 수장을 잃은 동국제강 계열사 사장단은 ‘회장 주청의 글’을 통해 당시 장세주 사장을 회장으로 추대키로 하지만 장 사장은 본인의 미흡한 점을 이유로 몇번을 사양했다. 장 사장은 선친과 교분이 두터웠던 박태준(현 포스코 명예회장) 전 국무총리와 해외 철강업계 수장, 모친인 김숙자(74)여사 등에게 차기 회장감을 상의했고 10여일의 고민끝에 “이젠 자네가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박태준 회장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장세주 회장은 중앙고와 연세대를 졸업하고 학사장교(ROTC)로 포병장교 근무를 마친 뒤 미국 타우슨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1978년 말단 사원으로 입사, 경리부·일본지사·인천제강소장·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쳐 98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가 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입사 22년만인 2000년이다. 장 회장은 “동국제강에 입사해 부장때까지 다른 신입사원들과 똑같이 현장에서 일하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술도 마시곤 했다. 아버지는 늘 현장에 있으라고 강조하셨는데 현장에서 쇳가루를 마시고 커야 나중에 본사에 오더라도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회고했다. 귀공자풍의 장 회장은 골프, 스키 등 만능 스포츠맨이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들이 즐기는 스노보드도 수준급이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스키를 즐겼던 선친과 많이 닮았다. 골프실력도 남다르다.74년 한국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를 만큼 프로급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과 ‘자웅’을 겨룰 정도다.2오버파 정도를 친다고 한다. 장 회장은 또 어린시절을 함께 보낸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도 친분이 두텁다. 방 사장과 허광수 회장이 사돈이고, 장 회장 역시 범 LG가(家)와 사돈이어서 눈길을 끈다. 장 회장 취임 이후 동국제강은 매출이 2001년 1조 7852억원에서 2004년 3조 2674억원으로, 순이익은 149억원에서 4562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장 회장은 2004년 7월 동국제강 창립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CI(기업이미지)를 선포하면서 2008년 그룹 매출 7조원 달성 목표를 내걸었다.2005년 들어 휴대전화 부품 제조업체인 유일전자(현 DK유아이엘)와 시스템통합업체인 탑솔정보통신(현 DK유앤씨)을 인수하는 등 IT영역으로도 발을 뻗고 있다. 중앙기술연구소 설립,MBA급 인재 100명 육성, 경영혁신운동 가동 등 인재육성과 기술개발에 정성을 쏟고 있다. 장 회장이 2005년 7월 ‘그룹경영회의’에서 주문한 내용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동국제강의 ‘체질’을 바꾸고 싶어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경영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 철강업, 물류업 등 우리 사업의 개념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선대 회장 시대의 경영패턴과 지금 시대에 해야 할 일이 바뀌었다는 점을 인식하자.” ●창업회장 시절의 수수한 혼맥 장경호 창업회장은 보성고보 2학년 때 같은 고향 출신의 추명순씨와 결혼, 슬하에 6남 5녀를 뒀다. 창업회장이 성사시킨 11번의 혼사 가운데 유력가문이라고는 동명목재뿐이다. 장남으로 동국제강 회장을 지낸 고 장상준씨는 부산에서 사업을 하던 박상선씨의 딸 명년씨와 결혼,4남 2녀를 낳았다. 장상준씨의 장녀 옥자씨는 부산세무서장을 지낸 송귀범씨와 결혼했고 장남인 세창씨는 타워호텔 회장이었던 고 남상옥씨의 딸 덕자씨와 결혼했다. 덕자씨는 남충우 타워호텔 회장의 누나로 남덕우 전 국무총리의 사촌동생이다. 차녀 옥빈씨는 태광그룹 이임룡 창업주의 둘째 아들인 고 이영진씨와 결혼했다. 장상준 회장의 자녀들은 동국제강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조선선재 경영을 맡았는데 선친에 이어 아들들도 일찌감치 유명을 달리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1978년 시집 ‘여(旅)’를 펴내는 등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장남 장세창 전 동일제강 사장은 2000년 지병으로 별세했고 차남인 장세명 전 조선선재 사장도 2005년 12월2일 59세로 사망했다. 조선선재는 곧바로 장세명 전 사장의 아들인 장원영씨를 대표이사로 추대해 새출발했다. 보스턴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원영씨는 불과 서른살이다. 3남인 장세승(57)씨는 조선선재 상무로 일하고 있다. ●불사를 이어받은 둘째 창업회장의 둘째 아들인 고 장상문씨는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공직자의 길을 걸었다. 장상문씨의 부인은 부산의 대표기업이었던 동명목재 창업주인 고 강석진 회장의 딸 강정자(76)씨다. 장경호 창업회장과 동향인 강 회장은 같은 불자로 친분이 두터웠다. 외무부 차관보, 스웨덴·멕시코 대사, 유엔대사 등을 역임한 장상문씨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1989년 사재 10억원을 출연해 전통문화 전문 출판사 ‘대원사’를 세웠다. 대원사는 현재 그의 아들인 장세우(57)대표가 맡고 있다. 장상문씨가 3대 이사장을 지낸 불교진흥원은 선친이 1975년 임종 직전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국불교의 중흥을 염원하는 서한과 함께 헌납한 31억 6000만원(현재가 2000억원)으로 설립됐다. 불교진흥원 초대 이사장은 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인 구태회 당시 제2무임소장관이 맡았다. 동국제강과 LG그룹은 이후 사돈지간으로 발전하는 등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2004년 동국제강 창사 50주년 기념식에 구본무 LG회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었다. ●두 아들을 장교로 보낸 장상태 장남인 장상준씨가 일찍(1978년) 타계하고 차남은 회사 경영에 뜻이 없던 터라 동국제강은 3남인 고 장상태 회장 체제로 운영돼왔다. 부산 동래고와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장 회장은 미국 미시간주립대 석사를 마치고 귀국, 잠시 부흥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다 1956년 동국제강 전무로 회사에 발을 내디뎠다. 장 회장은 부산에서 무역업을 하던 김영희씨의 외동딸인 김숙자씨와 결혼해 2남 3녀를 뒀다. 김숙자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온 미모의 재원이었다. 김숙자씨는 시부모, 시동생 등 대가족을 모시고 살았는데 워낙 검박한 시아버지가 생활비(당시돈 500원)를 매일 매일 나눠주는 바람에 살림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남편인 장상태 회장도 농림부 장학금으로 미국유학을 다녀오면서 부친이 용돈을 많이 주지 않아 고생을 했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도 미국 유학시절 부친이 차를 사주지 않아 걸어다녀야 했다고 한다. ROTC 출신인 장남 장세주 회장은 상명여대 교수를 지낸 남희정(44)씨와 결혼했다. 두 아들은 아직 학생이다. 막내인 장세욱(44) 동국제강 전무는 육사 41기생으로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96년에야 동국제강에 입사했다. 이후 남가주대 MBA를 졸업했다. 장 전무는 소위시절 친구 소개로 경제기획원 차관, 산업은행 총재, 금호석유화학 회장 등을 역임한 김흥기씨의 딸 남연(42)씨와 연애 결혼했다. 장 전무의 처남도 육사를 졸업했다. 장 전무는 “원래는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선친의 권유로 진로를 바꿨다.”고 말했다. 장상태 회장의 장녀인 영빈씨는 지병으로 이미 세상을 떴다. 차녀인 문경(48)씨는 울산대 의대 교수로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의사인 윤준오(52)씨와,3녀 윤희(45)씨는 부산지역 실업가이자 8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 이학만 화양실업 회장의 아들 철(47)씨와 결혼했다. 이철씨는 현재 철강유통회사인 세광스틸 사장이다. ●강철가문의 철 박물관 장상태 회장의 바로 아랫동생인 장상철씨는 부산제강소 공사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등 동국제강 경영에 활발히 참여하다 1991년 세상을 떴다. 장상철씨 사후 유족들은 세연문화재단을 설립해 고인의 뜻을 이어갔다. 세연문화재단은 2000년 충북 음성에 세연철박물관을 개관, 전통제철 복원실험, 대장간 조사 등 철강문화 발굴·보급에 힘쓰고 있다. 장녀 인경(47)씨가 관장을 맡고 있다. 장남인 세훈(44)씨는 동국제강 계열사인 국제기계 전무로 일하고 있고, 차남 세한(41)씨는 철강판매사인 ㈜동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차녀 은주(45)씨의 남편인 송봉헌(49)씨는 주 인도 공사다. ●불사와 사업을 동시에 장경호 창업회장의 5남인 장상건(71) 동국산업 회장은 부산지역 사업가인 김대성씨의 큰딸 명자(64)씨와 결혼,1남 3녀를 뒀다. 장 회장은 부산상고와 동국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 동국제강 감사로 입사했다. 이후 동국제강 부사장, 동국건설 사장을 지낸 뒤 1977년부터 동국산업 경영을 맡아왔다. 장경호 창업회장이 1967년 설립한 대원사가 전신인 동국산업은 2001년 동국제강에서 계열분리됐고 현재 동국S&C, 대원스틸, 한려에너지개발, 동국내화, 신안풍력발전, 고덕풍력발전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장상건 회장의 형인 고 장상준 회장 자손들이 운영하고 있는 조선선재 지분도 16.6% 갖고 있다. 동국산업은 현재 장상건 회장의 외아들인 장세희(38) 전무(경영관리본부장)가 21.52% 지분으로 최대 주주다. 장 전무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96년 동국산업에 입사했다. 장 전무의 부인은 동방그룹 창업주인 김용대 회장의 차녀 유경(36)씨다. 장 회장의 차녀 혜경(42)씨는 김장&리 법률사무소 설립자인 고 김흥한 변호사의 아들 유동씨와 결혼했다. 아직 미혼인 막내 혜원(36)씨는 국민대 시각디자인과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화려한 혼맥, 눈부신 성장 장경호 창업회장의 여섯 아들 가운데 현재 가장 주목받는 이는 막내인 장상돈(69) 한국철강 회장이다. 경복고와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2년 조선선재에 입사, 동국제강 상무·전무를 거쳐 82년 한국철강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85년부터 98년까지 동국제강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고 2001년 한국철강을 갖고 독립했다. 한국철강은 계열분리 뒤 환영철강, 영흥철강, 대흥산업을 인수하며 한국특수형강, 세화통운, 마산항5부두운영과 함께 6개 계열사를 거느린 철강 전문그룹으로 도약했다. 한국철강 자체만으로도 지난해 매출 6861억원, 순이익 1120억원을 거둔 알짜기업이다. 환영철강 역시 매출이 4000억원이 넘고 한국특수형강도 지난해 매출이 2500억원에 달한다. 장 회장은 동국대 재학시절 이화여대 미대생이던 신금순(66)씨와 연애결혼했다. 장인인 신종식씨는 한때 동국제강 계열사인 부산신철(현 한국특수형강) 사장으로도 일했었다. 장 회장은 3남 2녀를 뒀는데 혼맥이 가장 화려한 편이다. 장남인 장세현(42) 한국특수형강 대표이사 부사장은 뉴욕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한국철강에 입사했고 환영철강 부사장을 거쳤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화학과와 일본 와세다대학원을 나온 차남 장세홍(40) 한국철강 전무는 고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차녀인 박은경(34)씨와 결혼했다. 박 전 회장은 재계혼맥이 두텁기로 유명한데 맏사위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아들인 김선협씨, 셋째 사위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차남인 허재명 일진소재산업 대표이사다. 3남 세일(35)씨는 영흥철강 기획이사를 맡고 있다. 차녀인 인영(38)씨는 구두회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의 장남 구자은(42) LS전선 상무와 결혼했다. 구 명예회장은 구인회 LG 창업주의 동생이다.LG가와 동국제강의 남다른 인연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ukelvin@seoul.co.kr ■ 장씨일가 불교와 인연 동국제강 장씨 일가를 이야기하면서 불교와의 인연을 빼놓기 어렵다. 창업주인 고 장경호 회장의 묘비에는 ‘대원거사(大圓居士)’라고 새겨져 있다. 부인 고 추명순씨도 적선화라는 법명으로 통했다. 장 회장이 불교에 귀의한 계기는 17세 때 목격한 막내동생의 죽음이다.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으로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된 장 회장은 양산 통도사 주지 구하 스님을 통해 처음 불교에 눈을 뜨게 된다. 이후 1925년 통도사에서 첫 안거를 하면서 인생의 방향을 잡았고 수시로 금강산 마하연, 통도사, 청도 운문사, 부산 금정사, 금정산 무위암 등에서 안거와 정진을 거듭했다. 장 회장의 불사는 이후 불서보급사 설립, 대중포교당인 대원정사 설립 등으로 발전한다.1973년 대원불교대학까지 설립한 장 회장은 죽음을 예감한 1975년 스웨덴 대사로 있던 차남 장상문씨에게 불사를 부탁하고 사재 30억원을 불교사업에 희사, 대한불교진흥원을 탄생시킨 뒤 스스로 자리에 누워 입적했다. 그가 임종 직전 남긴 열반송은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곧 부처이니 이를 믿고 깨달으라.’는 말로 끝난다. 창업 회장을 이어받은 장상태 회장도 부산제강소를 이전하면서 1996년 100억원을 출연해 대원복지재단(현 송원문화재단)을 설립, 장학사업·아동복지사업 등을 펼치며 선친의 유지를 이어갔다. 장 회장은 또 2000년 임종 직전 화장을 부탁해 장묘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는데 이 역시 그의 불심과 무관치 않다. 부인 김숙자씨, 아들인 장세주 회장, 장세욱 전무도 이미 화장을 약속했다. 창업회장이 생전에 불사를 부탁한 둘째 아들 장상문씨는 1981년 대원정사 이사장과 신행단체인 대원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선친이 못다이룬 사업에 속도를 냈다. 장상문씨는 1989년 불교진흥원 이사장에 취임한 뒤 불교계의 숙원이었던 불교방송을 개국하는데 성공했다.UN방송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초대 불교방송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장상건 동국산업 회장도 현재 대원정사 이사장직을 맡아 선친의 뜻을 받들고 있다. 동국산업은 1992년 재단법인 ‘불이원’을 설립, 소외된 이웃을 돕고 있다. 장 회장은 2004년 12월 부산에 대원정사 지원을 마련, 불교 포교에 힘을 쏟고 있다. 또 2005년에는 사재를 털어 부산 대원불교대학을 개교, 부산·경남지역 불교 인재 양성에 나섰다. 장상건 회장과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이 불교계열인 동국대를 졸업한 것도 이 집안과 불교와의 남다른 연을 짐작케 한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FA컵, 박지성 출격·이영표는 불투명

    이영표(29·토트넘)의 부상 정도가 예상보다 가벼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영표의 에이전트사인 지쎈은 6일 “구단 의료진의 정밀진단 결과 뼈나 인대는 다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다.”면서 “오는 14일 자정으로 예정된 리버풀과의 원정경기 출전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8일 열리는 잉글랜드 FA컵 레스터시티전 출전은 불투명하다. 지쎈측은 “구단 의료진은 FA컵 출전도 가능하지만 무리한 출전에 따른 부상 악화 등을 우려해 출전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말했다.이영표는 지난 5일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시티전 도중 오른 무릎을 다쳤다. 한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25)은 9일 오전 1시에 열리는 FA컵 3라운드(64강전) 버튼 알비온전에 출전한다. 박지성으로서는 상대가 아마추어팀인 만큼 2호골을 뽑아낼 가능성이 커졌다.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주말탐방] 심마니

    [주말탐방] 심마니

    “심∼봤∼다∼.” 깊은 산속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심마니(혹은 심메마니)의 목소리는 마치 산을 닮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벅참과 혼자만의 횡재를 잊는, 그저 산에 감사하는 탄성일 뿐이다. 산의 영험함을 아는 사람들이기에 항상 겸손, 절제의 미덕을 실천하며 살아가기 때문일 게다. 속세의 삶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팍팍해지지만 산을 믿고 산과 함께 사는 심마니들의 삶은 그래서 산처럼 욕심이 없고 우직스럽기만 하다. 수백년 묵은 산삼 한 뿌리에 수억원을 호가한다는 그럴듯한 소문으로 산삼이 ‘로또’로 여겨지고 있는 세태다. 그러나 대부분 심마니들의 실상은 이와는 거리가 있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본다. ■ 심마니들의 삶과 애환 심마니들은 “운이 좋아 십수년생짜리 산삼이라도 몇 뿌리 캐면 몇백만원을 벌어 그럭저럭 생활을 이어갈 뿐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어쩌다 몇천만원을 호가하는 천종산삼이라도 캐면 돈을 좀 만져볼까. 그것도 중간상인이나 장사꾼들이 많이 챙겨가 별반 남는 것도 없단다. 진짜 심마니들은 그저 욕심을 절제하고 산이 좋아 산삼을 찾을 뿐이다.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려지는 수백년짜리 산삼도 대부분 뻥튀겨 놓은 얘기일 뿐 알고 보면 십수년짜리가 수두룩하다는 것이 안목있는 심마니들의 귀띔이다. 심마니 경력 21년의 베테랑 정재후(50·한국심마니협회 경기도 연천지부장)씨는 “최고 산삼으로 치는 천종산삼도 백년 전후가 대부분이다.”며 “매스컴에서 떠드는 산삼을 보면 10년 남짓된 산삼을 100년 이상된 것으로 둔갑시켜 파는 것이어서 답답하기만 하다.”고 씁쓸해했다. 정 지부장은 “산삼은 영물이다 보니 캐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정해져 있는 것 같다.”면서 “산삼을 캐놓으면 생면부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꿈속에서 이곳에서 산삼을 구해 먹으라고 알려다.’며 찾아 오곤 해 깜짝깜짝 놀란다.”고 신기해한다. 심마니들은 “우리나라 산삼은 별자리에서 하늘의 천제가 거처한다는 자미성(紫微星)의 영향을 받아 약효가 가장 좋다.”고 입을 모은다. 믿거나 말거나 심마니들 사이에 전해지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이 때문에 이들은 간혹 신비로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산삼을 얻기 위해 이런저런 금기사항을 지켜야 하고 길몽을 꾸어야 한다는 것도 심마니들 사이에 믿음으로 자리하고 있다. 더구나 심마니들의 산속 생활에는 일반인들과 다른 독특한 습속과 일반인들이 알아 듣지 못하는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단지 산삼을 캐는 것을 목적으로 산을 잘 알고 산을 생업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일까. 최근 몇년 사이 실직자들이 늘면서 아마추어 심마니(천둥마니)들이 많이 생겨나 심마니들의 삶도 세상사와 무관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지만 심마니들은 저마다 가슴속 깊은 곳에 아픈 상처 하나씩은 묻고 산다. 그들은 그만큼 한(恨)이 많아 산속에 묻혀 산과 더불어 세상을 잊고 살아간다. 병원에서 암 말기 사형선고를 받고 산을 찾은 사람, 잘나가던 직장에서 쫓겨나 죽으려고 산을 찾은 사람…. 이런저런 사연을 안고 산을 찾았다가 짧게는 5∼6년 길게는 20∼30년까지 심마니로 눌러 사는 사람들이 많다. 몇년 전부터 한국심마니협회가 생겨 사람 됨됨이를 보고 회원을 들이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심마니협회에 들어오면 산삼 보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춘천에 본부를 두고 있는 한국심마니협회 박만구(47·심마니경력 15년) 회장은 “심마니들은 단순히 산삼만 캐는 사람들이 아니라 산을 사랑하고 보호에 앞장서는 사람들”이라면서 “더불어 옛날부터 이어져온 심마니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켜가는 무형문화 지킴이”라고 강조했다. 일반인들은 단순히 산삼을 캐는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심마니의 본래 역할은 한국 산삼을 후세에까지 이어지도록 보존하고 약효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일도 한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일을 하면서 현재 협회에 가입된 전국의 심마니는 300명가량 된다. 이 가운데 심마니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70% 정도로 파악된다. 박 회장은 “최근에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산삼 관련 동호회와 중국·러시아 등지의 외국 산삼을 한국산으로 속여 파는 문제까지 다양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급격히 늘어난 각종 산삼 관련 동호회들이 대형 버스 등을 동원, 한번에 수십명씩 산을 헤집고 다니며 어린 산삼까지 닥치는 대로 캐가 아예 씨가 마르고 있단다. 또 약효가 떨어지는 중국 산삼을 마치 한국 산삼인 것처럼 국내에 유통시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 ‘고려산삼’을 도용해 해외에서 유통되는 사례의 대부분이 중국·러시아산으로 알려지고 있어 산삼 보호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정부차원의 산삼인증과 심마니들의 무형문화 보존이 절실하다.”며 대책을 호소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심마니들의 불문율 요즘도 전통 습속을 고집하는 심마니들이 산을 찾아 산삼을 캐는 모습은 경외스럽다. 산에 오르기 전에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입산 이후 산행에서의 질서까지 일사불란하게 규칙을 따르는 심마니들의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채삼단(심마니 그룹)을 구성할 때는 혼자 가는 경우가 드물고 대부분 리더격인 ‘어이마니(혹 어인마니)’를 중심으로 3명,5명,7명 등 홀수로 정한다. 산삼 채취에 나서는 일수도 3일(사흘 한삼),5일(오일 한삼),7일(치일 한삼) 등 홀수로 정한다. 하산 날짜도 홀수로 한다. 여자는 절대 포함시키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산으로 떠나기 전 몸을 깨끗이 씻고 떠난다. 초상집을 다녀온 사람이나 부정한 것을 겪은 사람은 함께 산행을 할 수 없다. 산행에 함께 올랐어도 어이마니의 지시와 통제에 따르지 않을 때는 가차없이 하산시키는 엄격한 규율이 지금도 불문율처럼 지켜지고 있다. 이들은 산에 오르기 전에 입산제를 지낸다. 돌로 1m 정도의 간단한 제단을 쌓고 그 안쪽에 막대를 옆으로 걸고 한지에 실을 묶어 건다. 촛불을 붙이고 제물을 올릴 때는 술과 포, 과일을 놓고 쌀을 21번 씻어 뚜껑을 열지 않고 지은 밥을 솥째 올려놓는다. 제례는 고축문과 함께 여러번 정성을 들여 절하며 지낸다. 일단 산에 오르면 집단생활을 원칙으로 한다. 큰 바위 밑을 이용하거나 나무움막을 지어 ‘모둠(산막의 심마니 은어)’을 세우고 기거하게 된다. 모둠을 세운 뒤에는 낮잠을 청하며 꿈을 꾸기를 기원하기도 한다. 산삼을 캤을 때는 다시 산신께 제사를 지낸다. 심마니들의 산삼 채취과정은 제사에서 시작해 제사로 끝난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산삼 어떻게 어디서 자라나 인삼의 씨앗이 산삼이 되려면 새똥에 묻어 처음 떨어져서 싹이 난 1대(수명 10년 정도), 이 삼의 씨앗이 떨어져 다시 삼이 된 2대(수명 15년 정도), 다시 이 삼의 씨가 떨어져 산삼이 된 3대(수명 20년)…. 이런 식으로 7대 이상 지나야 100년 이상을 사는 천종산삼이 된다. 오래 대를 이어가야 산삼 수명이 늘고 뿌리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오가피과에 속하는 산삼을 숲속에서 초보자들이 구분해 내기란 쉽지 않다. 우리나라 산삼은 깊은 산속이면 어디든 분포해 있지만 위도 38도를 중심으로 한 강원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많이 자라며, 이 지역에서 캔 산삼이 약효도 좋다. 특히 해발 1000m가 넘는 설악산, 오대산, 가리왕산, 방태산, 계방산 등 강원도 유명산과 명지산, 화악산, 지리산, 대둔산, 덕유산 등에 많이 자생하고 있다. 산삼이 자라는 여건도 산의 7부 능선쯤 서북쪽 그늘진 곳으로, 적당히 습기가 있으면서 배수가 잘되고 기름진 흙을 좋아한다. 식생률은 대략 7대 3 정도로 음지를 선호한다. ‘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낸다.’는 신비의 명약 산삼은 먹는 방법도 독특하다. 산삼을 먹기 전날 회충약을 먹고 다음날 저녁 빈속으로 대추씨 몇알을 먹는다. 그런 뒤 산삼을 먹으면 된다. 다만 가을 산삼은 뿌리만 먹지만 봄 산삼은 잎부터 줄기, 뿌리 순으로 천천히 많이 씹어서 먹은 뒤 잠을 자는 게 약발을 제대로 받는 방법이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심마니들의 은어에 담긴뜻은 “흑조 고무하야 알릴 적에 마당삼, 줄삼, 떼삼밭으로 인도해 주옵소사. 육구만달이, 칠구두루붙이, 천년덥석부리, 만년동자삼밭으로 인도해 주옵소사.” (까마귀-심마니들의 길조-울며 알릴 때에 산삼이 많이 난 곳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최고의 가치가 있는 산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심마니들이 산신제를 올릴 때 읽는 축문의 일부분이다. 일반인들은 무슨 말인지 통 알아듣지 못하는 말뿐이다. ‘덤팽이(안개), 줄맹이(비), 메차리(이슬), 노래기(해), 달(불), 숨(물)’ 모두 생소하다. 요즘 심마니들은 이같은 은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아직도 자신들만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옛날부터 사용해 오던 비밀언어를 선별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같은 특수한 채삼용어는 예부터 면면히 심마니들을 통해서만 이어져 오고 있다. 산삼을 캐기 위한 신앙 기원적인 의미도 있지만 집단 이익을 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같은 구성원들 사이에서만 통용돼 왔다. 심마니들 사이에 믿음의 부적처럼 전해오는 꿈에 얽힌 이야기도 신비롭다. 꿈속에 할머니가 나타나 무를 뽑으라고 했다든지, 여자와 동침하는 꿈을 꿨다면 심마니들은 백발백중 산삼을 캐는 길몽으로 꼽는다. 실제로 설악산 휘운각 계곡의 ‘무네미’가 ‘목네미’로 바뀌어 불리게 된 사연도 꿈속에 심마니가 지고간 망태기(베낭의 일종) 속에 개가 목만 내놓고 있어 ‘이 목(언덕)만 넘으면 산삼이 있다.’고 믿게 됐고 실제로 언덕을 넘어 봉정암 쪽으로 가다 산삼을 캤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이같은 이야기는 예부터 구전되며 설화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심마니들 사이에 전해지는 ‘항아리 심’ 얘기나 ‘파계승과 산삼’ 얘기도 산삼을 캐는 꿈 이야기다. 일반인들에게는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아직도 심마니들은 길몽을 신봉하고 있다. 실제로 꿈을 꾸고 산삼을 캤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산을 오르는 심마니들은 오늘도 길몽을 소원한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데스크시각] 체육계 수장과 정치인/김민수 체육부장

    수장(首長)이라는 말이 있다. 주재(主宰)하는 사람에서 비롯됐지만 근래에는 특정 집단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데 쓰여왔다. 그런데 수장은 과거 부족사회에서 자질이나 인격에 바탕을 둔 비공식적 지도자인 장로(長老) 등과는 다소 다르다. 그렇다고 정치적으로 큰 권력을 쥔 존재와도 구분된다. 과거에는 이런 수장의 건강 상태가 사회와 자연의 질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겼다. 수장이 노쇠하거나 병들면 수장을 살해하고 새로 수장을 선출하는 관습도 있었다고 한다. 또 이상 기후나 흉작도 수장의 탓으로 돌리는 일도 드물지 않았단다. 어쨌든 최근 수장의 개념을 제도틀 안에서 막강 권력을 휘두르기보다는 인격과 지혜로 집단을 이끄는 리더라고 정의해도 무방할 듯하다. 수장이라는 말이 일반에 널리 통용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포츠계에서는 경기단체장 등을 수장이라고 즐겨 불러왔다. 아마도 경기인들이 앞서 정의한 리더가 돼 주길 원해서가 아닐까 싶다. 특히 지난해에는 수장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다. 연초에는 체육계 수장인 대한체육회장 자리를 놓고 ‘음모설’로 잡음이 일더니 세밑에는 프로야구의 수장인 총재 자리를 둘러싸고 ‘사전 내정설’로 시끄러웠다.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 용기를 불어넣겠다는 스포츠계가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으리라 본다. 작금의 체육계 잡음은 현 정치권과 경기인 등 비정치권의 자리 다툼 양상이다. 누가 자리에 앉아도 스포츠 발전에 매진한다면 불협화음은 일지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 체육계 수장에 올랐던 상당수 정치인들은 일보전진을 위해 와신상담하는 자리, 또는 말년의 소일거리 정도로 여겨왔던 게 사실이다. 이들 선배 탓에 정치인 출신들이 환대를 받지 못해왔다. 그 밥그릇에 그 나물이 아니냐는 얘기다. 서구의 스포츠는 1900년을 전후해 이 땅에 상륙했다. 이후 선교와 교육의 목적으로 학원스포츠로 발전했고 각 동호회는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대한체육회의 전신인 조선체육회가 1920년에 발족했다. 당시 장두현 회장 등 수장들은 오로지 스포츠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쏟아냈다. 이후 한국스포츠는 서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으로 큰 전기를 맞았다. 당시 수장들은 정치·경제계 거물들이 맡아 재력을 바탕으로 두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재벌 수장 덕분에 흥청거렸던 체육계가 지금껏 당시를 그리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후 각 단체들은 착실한 자구책 마련보다는 손쉬운 ‘재벌 수장 모시기’에 열중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두번째 전환기는 1998년 ‘IMF직격탄’을 맞으면서 찾아왔다. 기업들이 스포츠에서 하나 둘씩 발을 빼면서 종목마다 팀해체가 속출, 최대의 시련을 겪었다. 재력있는 수장 모시기가 쉽지 않자 각 협회는 ‘돈줄’을 끌어올 정치 실세 영입에 박차를 가했다. 스포츠 문외한인 정치인들은 언론에 노출빈도가 높은 스포츠 종목 수장 자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해당 종목에 애정이 없는 데다 이따금 얼굴만 내미는 ‘얼굴 마담’에 불과했다. 이에 염증을 느낀 각 단체들은 사단법인화를 통해 뒤늦게 살아남기에 나서는 긍정적인 효과도 가져왔다. 최근 세번째 바람이 불었다. 몇년전부터 여권 인사들이 줄지어 체육단체장에 오르기 시작해 체육회 회장으로 이어졌다. 체육회장과 국민체육진흥공단, 아마추어 4개 종목은 물론 농구와 배구 등 프로스포츠에서도 정치인들이 자리했다. 경기인들은 불만의 소리를 높였지만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 출신 수장의 대미는 지난해 말 프로야구판에서 장식됐다. 두산그룹 ‘형제의 난’으로 오는 3월 수장의 자리에서 물러나려던 박용오 총재가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의 사전 내정설이 불거지자 서둘러 사퇴했다. 네티즌과 시민단체들은 ‘또 낙하산 인사’라며 분노했지만 결국 한국야구위원회는 마땅한 후보를 내세우지 못해 신 전 부의장의 취임이 굳어졌다. 진정 마땅한 후보가 없었을까. 서로의 눈치를 보며 앞서서 고양이목에 방울을 달지 않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것은 무엇일까. 주어진 권리를 애써 외면하는 야구계의 오랜 악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초창기 선배 수장들처럼 순수한 열정과 애정으로 땀흘리는 모습을 정치인 출신 단체장들에게 또 기대해본다. 김민수 체육부장
  • [제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본선 1회전] 험난한 프로기사로의 길

    [제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본선 1회전] 험난한 프로기사로의 길

    제1보(1∼8) 현대바둑의 시작은 1945년 광복 후 일본에서 바둑 공부를 하던 조남철 9단이 귀국한 해부터로 규정짓고 있다. 일본 프로면장이 있던 조남철 9단 외에도 10명의 노국수들이 처음으로 프로기사가 되었다. 이후 추천입단과 전국아마추어대회 우승자를 입단시키다가 54년에 처음으로 입단대회가 생겨났다. 이후 1년에 두 차례 각 2명씩 총 4명의 입단자를 배출했다. 그러다 70년대 중반 대한기원 파동을 거치면서 77년부터 82년까지는 1년에 2명만이 입단의 관문을 통과됐다. 그리고 86년 연구생 입단대회 제도가 생기면서 만 19세가 넘는 성인은 프로기사가 되는 방법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88년에 일반인 입단대회가 부활하면서 다시 1년에 4명의 프로기사를 배출하기 시작했고,90년부터는 여자프로기사 2명을 더해서 6명을 선발하게 됐다. 다시 98년에는 일반인 입단대회를 2번으로 늘려서 총 8명을 선발하게 됐고,2000년부터는 지역연구생에서 1명을 더 추가하여 9명을 선발하는 현재의 제도가 됐다. 그런데 이러한 정규 입단대회 이외에도 특별입단이라는 조항이 있다.1979년부터 시작된 세계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한국기사가 우승하지 못하자 우승하면 특별히 입단시켜 준다는 제도를 만든 것이다. 그 외에 중국기원에서 활동했던 황염 4단이나, 러시아에서 유학왔던 샤샤와 스페다 등 외국 출신 기사들에게 기회를 제공했던 적도 있다. 세계아마추어선수권대회 우승으로 프로기사가 된 이는 김창우 4단이 처음이고, 이어서 유재성 3단, 이강욱 초단이 있다. 본국의 유재성 3단은 80년생으로 99년에 우승하여 프로가 됐다. 유3단은 김원 도장 출신이다. 연구생 때부터 발군의 실력자로 인정받았지만 온순한 성격 탓에 험난한 입단대회에서 아깝게 미끄러졌었는데 세계아마추어선수권전에서는 모처럼 뚝심을 발휘했던 것이다. 한편 김대용 2단은 85년생으로 2002년에 입단했다. 권갑룡 도장 출신으로 연구생 마감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입단한 것이어서 본인도 무척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오늘의 대국자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서 입단의 관문을 뚫었지만 프로무대에서는 사실 이렇다할 성적을 낸 적이 없다. 그러나 두 기사는 이번 기에서 모처럼 예선의 관문을 뚫고 본선에 진입했다. 모처럼의 본선인 만큼 각오도 남다를 터. 다크호스가 되기에 충분하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상설 e스포츠경기장 개장

    상설 e스포츠경기장 개장

    세계 최초의 e스포츠 상설경기장이 마침내 국내에 문을 열었다. 한국e스포츠협회는 29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e스포츠 상설경기장 개관식을 가졌다.e스포츠 상설경기장 개설은 프로게이머들의 숙원이었다. e스포츠 상설 경기장은 전용면적 400평 규모로 용산 민자역사 아이파크몰 9층에 완공됐다. 공인 대회 개최가 가능한 중앙무대와 70석 규모의 보조경기장이 들어서 있으며 중계실, 통신실 등 방송설비가 갖춰져 있다. 최대 관람인원은 800여명 규모다. 한국e스포츠협회는 상설경기장 운영을 통해 아마추어 리그와 e스포츠 공인 종목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30일 스페셜포스 종목의 프로게이머 발굴을 위한 커리지 매치를 개최하고 2006년 한해동안 6개의 아마추어 리그를 신설해 연간 500회 이상의 경기를 개최할 계획이다. e스포츠 상설경기장 개관으로 한국 e스포츠는 800명 규모의 본격적인 관전형 스포츠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또 2006년에는 상설경기장에서 국제대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이같은 e스포츠 인프라 확충과 세계화 노력은 e스포츠가 정식 스포츠 종목으로 채택되는 데 탄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03년 11월 e스포츠를 99번째 정식 체육종목으로 지정했다. 부대행사로 의원들과 프로게이머의 e스포츠 시연이 펼쳐졌다. 진영·맹형규 의원은 김대겸·조현준 선수와 팀을 이뤄 카트라이더 게임 대전을 펼쳤다. 축하행사로는 임요환·최연성·이윤열 등 프로게이머들이 팀을 이룬 e스포츠 대전이 열렸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올 스포츠라운지에서 만난 사람들

    2005년 서울신문 ‘스포츠라운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아름다운 스포츠맨’이었다. 경기장을 주름잡던 왕년의 스타들과 막 꽃망울을 터뜨린 꿈나무들 그리고 코트의 뒤안길로 접어든 이들까지. 이들이 한결같이 보여준 건 열정과 집념,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다. ●잡초라 부르지 말라 스포츠는 강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의 장외룡(46·12월9일자) 감독은 이를 분명히 입증했다. 지난 1989년 몸 하나만 믿고 대한해협을 건너 한국인 최초의 J-리그 사령탑으로 활동하다 올해 초 한국무대로 복귀했다. 신생구단 인천을 맡았지만 상황은 열악 그 자체. 그러나 그는 잡초 같은 팀을 시즌 챔프전까지 이끈 뒤 ‘우승 같은 준우승’을 이끌며 준우승팀 감독으로는 최초로 K-리그 감독상을 받았다. 한국 남자배구의 산실이었던 한국전력을 이끄는 공정배(43·3월11일자) 감독의 별명은 ‘고아원 원장’이다. 해체, 방출 등으로 갈 곳 없는 선수들을 모았다. 비록 아마추어 초청팀으로 프로판에 뛰어들었지만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는 끈끈한 조직력으로 팀을 무장시켰다. 지난 시즌 LG화재와 대한항공 등 프로팀을 연파하며 상대 감독을 갈아치운 그는 4월 생애 처음으로 남자국가대표팀 감독에 올랐다. ●내일은 거목 ‘B형 남자’ 김현섭(20·8월25일자)은 분명 한국 경보의 희망이다.176㎝,58㎏의 깡마른 체구의 그는 터키 이즈미르에서 열린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남자 경보 20㎞에서 대회 종목 사상 최초로 한국에 은메달을 안겼다.5년 전 속초 설악중학교 때 육상에 뛰어든 그는 지난해 7월 세계주니어선수권 1만m에서 몇 걸음 차이로 3위에 올라 변방에서 우울해하는 한국 육상인들을 흥분시키며 최초의 올림픽 육상 금메달도 점치게 했다. 유도의 샛별 김재범(20·7월22일자)은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원희(24)의 아성(73㎏급 이하)을 무너뜨린 주인공이다. 이원희의 시대가 당분간 지속되리라던 주위의 일관된 예상을 깨고 일약 스타가 됐다.‘고교 괴물 투수’ 한기주(18·4월22일자)는 졸업도 하기 전인 지난 6월 프로야구 기아에 입단, 한국판 랜디 존슨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설 곳은 코트뿐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10년 남짓동안 중앙대와 기아로 이어지는 ‘무적함대’를 이끌었던 ‘농구 대통령’ 허재(40)와 강동희(39·이상 7월1일자). 이들은 각각 프로농구 KCC 감독과 동부 코치로 변신, 이제는 서로 두뇌싸움을 벌이며 변함없는 농구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한국판 제리 웨스트’ 박수교(49·4월8일자)는 전자랜드 감독에서 단장에 올라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때 최강을 자랑한 현대건설의 여자배구 최다 우승(10회)을 이끈 장소연(31·1월28일자)도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무대를 호주로 옮긴 뒤 아마추어팀을 이끌며 백구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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