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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데이 시리즈] 사연따라 연예 반세기(演藝 半世紀)…그 시절 그 노래①

    [선데이 시리즈] 사연따라 연예 반세기(演藝 半世紀)…그 시절 그 노래①

     작사자(作詞者)도 작곡자(作曲者)도 모른채 설움 싣고  나라 뺏긴 슬픔 노래하던 창가(唱歌)의 시절  가수도 없었다. 노래를 전파시킬「레코드」도「라디오」도 나오기 전, 그래도 유행가는 있었다. 누가 가사를 만들고 누가 작곡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노래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입에서 입으로 전파됐다. 대중 가요의 요람기로 꼽는 1910년대-.    [學徒歌 전후]  ①청산 속에 묻힌 옥도/갈아야만 빛이 나네/낙락장송 큰나무도/깎아야만 동량되네  ②공부하는 청년들아/너의 직분 잊지 마라/새벽 달은 넘어가도/동천조일 비쳐온다  ③유신문화 벽두초에/선도자의 책임 중코/사회진보 깃대 앞에/개량자된 임무로다  ④농상공업 왕성하면/국태민안 여기있네/가급인족 하고보니/국가부영 이 아닌가    최초의 대중 가요로 꼽는「학도가(學徒歌)」가사다.  요즘 말로 대중가요지 그때는 특정한 지칭이 없었다. 창가(唱歌)라고도 하고 신민요(新民謠)라고도 했다.「창가」는 1904년에 처음으로 소학교 교과 과정에 끼였다.  1910년에 처음으로 소학교 교과서로서「보통교육 창가집 제1집(普通敎育 唱歌集 第一輯)」이 발간된 것을 미루어 보아 10년대를 전후해서 신식노래인「창가」가 생겨난 것 같다.  신민요는 우리 고유 민요와 구분해서 붙인 명칭이다.  「유행가(流行歌)」는 훨씬 뒤에 붙여진 이름이다. 신민요가 기생들 사회에서 주로 불려졌다면 창가는 학생층에서 불려졌다.  이때 창가집에는 군가, 양악, 지금의 대중 가요조 노래가 뚜렷한 구별없이 수록되었다. 나중에야 대중 가요조의 노래는 창가(唱歌)에 新자 하나를 더 붙인 신창가집(新唱歌集)에 구분해 실었다.  『학도가』는 신창가집(新唱歌集)에 수록되었다고 한다(형석기·刑奭基씨 말). 최초의 소학교 음악 교과서인「창가집(唱歌集)」에도 수록됐다는 사람이 있었으나 이 책자는 그 행방을 감춰 확인할 수가 없다.  따라서 작사, 작곡자도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평양 숭실(崇實)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김인식(金仁湜)씨가 작곡했다는 설이 있고 그때 일본 사람들의『철도가(鐵道歌)』(철도개통 기념가) 곡을 따온 것이란 설이 있다.  소위 신식 노래라고 하는 것을 한국인 자신이 작곡하여 부른 것은 극히 적고 대개가 외국 곡조에다가 가사를 붙여 불렀다는 점에서 볼때「철도가」쪽의 가능성이 크다.(황문평·黃文平씨 말)  가사는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선생이 평양에 대성(大成)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에게 부르게 했다는 말이 있다. 또 다른 설은 윤치호(尹致昊)씨가 만들었다는 주장. 윤치호(尹致昊)씨는 그때 개성 송도(松都)중학교 교장이었다.  이 노래가 처음 개성쪽에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김수린·金壽麟씨 말)는 의견을 뒷받침하는 것이 된다.  어쨌든 이 교훈적인 노래는 학생 층에서 시작하여 전 국민에게 굉장한 전파력으로 유행했다.  당시 동경(東京)유학생들이 방학을 끝내고 일본(日本)땅으로 건너갈때 동대문(南大門)역(지금 서울역)「플래트 폼」에서 곧잘 이 노래를 합창했다 한다. 엄격히 따져서 요즘 말하는 대중가요와는 퍽 다른 점이 있지만 대중들 사이에 널리 유행한 신식 노래임은 틀림없다.  이『학도가』는 나중에 한국 최초의 직업가수 채규엽(蔡奎燁)이「레코드」에 취입했다. 따라서 채규엽(蔡奎燁)은 한국 최초의「레코드」가수다. 그는『오너라 동무야, 강산에 다시 되돌아 꽃은 피고, 새는 이 봄을 노래하자, 강산에 동무들아 모두 다 모여라, 춤을 추며 노래 부르자』하는『봄노래』와『희망가(希望歌)』를 불러「레코드」시대의 여명기를 장식했다.  『희망가(希望歌)』의 가사는『이 풍진 세상을 만나면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 』(1절)라는 것으로『희망』이기보다 자포자기적인 내용이다.  나라를 빼앗긴 젊은이들이 암담한 장래를 생각하며 화풀이도 제대로 못하는 울분을 가락에 실은 것이라 할까? 이 노래 역시『학도가』와 비슷한 시기인 1910년대 전후해서 유행한 것으로 작사, 작곡자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대중가요가 지나치게 비탄 절망적인 내용이라는 비판은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직업가수가 생기기 이전의 구전(口傳) 노래부터 이 비탄조는 한국 대중가요의 속성이요 운명이었다.  교훈적인『학도가』『권농가』와 종교 계통의『불어라 봄바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눈물, 탄식, 향수를 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게 유랑(流浪)의 노래들이다.『피 식은 젊은이 눈물에 젖어, 낭만과 설움에 병든 몸으로 북국한설「오로라」로 끝없이 가는, 애달픈 이 가슴 누가 알거냐』(『유랑자(放浪者)의 노래』, 작사·작곡자 미상),『흘러가는 이 신세 물에 뜬 버들잎, 흐르고 흘러서 어디로 가나, 정든 고향집이 차마 그리워 해 다 지고 저문 길 눈물이 아득하네』(『유랑인(流浪人)의 노래』, 김서정(金曙汀) 작사·작곡), 나라를 잃은 젊은이들이 낯선 만주땅, 산해관(山海關), 연해주(沿海州)로 정처없이 떠나는 모습들이 담겼다. 그야말로 희망도 장래도 없는「피 식은 젊은이」들의 넋두리다.  우리나라 처음의 무대가수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노래가 연극 공연의 중간에 불려져 막간가수란 말이 전해 온다.  1922년에 최초의 연극단체인「토월회(土月會)」가 조직되었는데 이 토월회(土月會)가 연극 공연 막간에 노래를 불렀다. 토월회(土月會)는 당시 동경(東京)에 유학, 신교육을 받은 박승희(朴勝喜)가 조직한 학술평론회였다. 여기의 멤버는 김기진(金基鎭), 이서구(李瑞求), 김을한(金乙漢), 김복진(金復鎭), 김기창(金基昶), 안석주(安碩柱), 이백수(李白水), 복혜숙(卜惠淑), 이승만(李承萬), 이정숙(李貞淑), 윤수선(尹水仙), 연학연(延鶴年), 이덕경(李悳卿) 등 이었다. 24년 7월에 조선극장(서울 인사동에 있었음)에서 신극을 공연하면서 막간에『아리랑』을 불렀다는 것. <계속>  <趙 觀 熙 기자> [선데이서울 73년 1월1일 제6권 1호 통권 제221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성북 아리랑 축제’ 개막

    ‘성북 아리랑 축제’ 개막

    성북구가 2일 조선시대 때 누에치기의 풍요를 기원하며 왕비가 집전했던 선잠제향(先蠶祭享)을 재현하는 행사를 시작으로 ‘2011 성북 아리랑 축제’에 들어갔다. 선잠은 누에치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신(神)이고, 제향은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이날 선잠제향에선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선잠단지에 이르는 약 800m 구간에서 취타대가 함께하는 왕비와 공주의 웅장한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2011 성북아리랑축제는 이날 선잠제향 외에 ▲3일 성북구민의 날 기념식과 책 읽는 도시 선포식, 구민 체육대회 및 장기자랑(월곡 인조잔디축구장) ▲4일부터 28일까지 북페스티벌(지역 도서관) ▲11일부터 6월 3일까지 찾아가는 예술무대 행복공감(구청 잔디마당, 성북천 바람마당 등) ▲22일 제4회 성북다문화음식축제(성북동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로 한 달여간 계속된다. 920-3048.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퀸 연아’의 러브레터…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주말

    ‘퀸 연아’의 러브레터…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주말

    시상대에 오른 ‘피겨퀸’ 김연아(21·고려대)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손으로 눈가를 쓸어내렸지만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다. 억울함이나 아쉬움은 아니었다. 김연아는 “그곳에 서 있다는 것 자체로 눈물이 났다.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그냥 줄줄 눈물이 났다. 힘든 시간을 보낸 뒤 오랜만에 시상대에 섰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13개월 만의 복귀전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김연아는 지난달 30일 러시아 모스크바 메가스포르트 아레나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프리스케이팅에 전통민요 아리랑을 편곡한 ‘오마주 투 코리아’를 들고 나와 128.59점을 받았다. 탁월한 표현력을 앞세워 예술점수(PCS) 66.87점을 챙겼지만, 점프 실수로 기술점수(TES)가 61.72점에 그친 게 뼈아팠다. 쇼트프로그램(지젤) 1위를 차지했던 김연아는 총점 194.50점을 얻었지만, 실수 없는 연기를 선보인 안도 미키(일본·195.79점)에게 뒤집기를 허용했다. 2009년 세계선수권 이후 2년 만의 정상 복귀도 물거품이 됐다. 랭킹 1위 복귀도 미뤄졌다. 준우승 포인트 1080점을 보태 2위(4264점)로 한 계단 올랐지만, 카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4341점)가 동메달로 972점을 추가하며 아슬아슬하게 1위를 지켰다. 긴 공백을 뚫고 다시 정상권 실력을 과시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김연아는 초반부터 흔들렸다. 트리플 살코-더블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 중 토루프를 싱글처리했다. 이어진 트리플 플립도 1바퀴밖에 뛰지 못해 겨우 0.5점을 받았다. 정상적으로 뛰었다면 기본점 5.3점을 받을 수 있는 점프. 김연아는 “처음에 더블 토루프를 실수하면서 긴장했는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래서 플립도 주춤했다.”고 설명했다. 점프 판정도 다소 박했다. ‘폭풍 가산점’을 받던 교과서 점프들이 짠 점수를 받았다.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점프는 가산점(GOE) 1.6점을 받았고, 그 외의 점프도 1점 이상 GOE가 붙지 않았다. 지난해 올림픽 때 모든 점프에 1점 이상 붙었던 걸 생각하면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여왕은 “만족한다. 작은 차이로 졌지만 꼭 금메달을 따기 위해 참가한 건 아니었다. 홀가분하다.”고 의연하게 대답했다. 이번 메달은 색깔을 떠나 의미가 크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찾아온 심리적 허탈감을 이겨내고 다시 빙판에 섰다는 점 때문이다. 김연아는 “올림픽 이후 다시 경기에 나서기로 마음먹고도 고비가 많았다. ‘내가 도대체 뭘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고 돌이켰다. 동기부여가 그만큼 힘들었다는 뜻. 20세 숙녀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일들도 잇달아 터졌다. 어머니 박미희씨가 대표이사로 올댓스포츠를 설립했고, 전 소속사 IB스포츠와는 지루한 법정분쟁을 벌였다. ‘찰떡호흡’을 과시했던 브라이언 오서(캐나다) 코치와는 진실게임을 펼치며 불미스럽게 헤어졌다. 피터 오피가드(미국) 코치와 새로 손을 잡고, 훈련장소도 생소한 로스앤젤레스(미국)로 옮겼다. 도쿄(일본)에서 예정됐던 세계선수권은 지진으로 연기돼 한달간 국내에서 담금질을 했다. 컨디션도 페이스도 흐트러진 상황. 김연아는 “실전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나쁜 말이 나올까 봐 걱정했다. 여기까지 오기 참 힘들었는데 잘 이겨냈기 때문에 은메달로 상을 주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결과에 얽매이기보다 좋은 연기로 호평받는 게 목표였다. 실수는 있었지만 잘 이겨냈다고 생각한다.”고 웃었다. 김연아는 1일 갈라쇼에서 ‘불릿프루프’를 선보이며 대회 일정을 모두 마쳤다. 강한 비트의 음악에 맞춰 어깨를 들썩였지만, 발목 통증 탓인지 표정은 썩 밝지 못했다.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 올댓스포츠 대표는 이날 “사실 연아가 프리스케이팅을 앞두고 오른쪽 발목이 아프다고 했다. 연아는 핑계처럼 보일까봐 부상 얘기는 하지 않는 아이”라고 설명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이지아 위자료 2억원설·갤럭시S2 궁금하네~

    [NATE 검색어로 본 e세상 톡톡] 이지아 위자료 2억원설·갤럭시S2 궁금하네~

    서태지와 이지아 사태의 후폭풍은 거셌다. 연예인 등 수많은 주변 인물들이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가운데 특히 이지아의 재산권 관련 소식이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이지아의 최측근이 서태지가 이지아에게 집을 줬다는 소문과 위자료 수십억원설 등을 부인한 뒤 이혼 당시 2억원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주장하면서 누리꾼들의 ‘광클’이 이어졌다. 이지아가 서태지와의 이혼 판결문에 나오는 ‘spousal support’(이혼수당)에 대한 해석 오류로 금전적 지원을 포기했다는 보도가 나돌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아울러 이번 사태의 피해자 가운데 한명인 배우 정우성이 지난달 25일 새벽 서울 청담동의 한 고기집에서 절친 이정재와 밤새 술을 마시고 만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누리꾼들은 이를 검색어 순위 4위에 올렸다. 이날 정우성은 연인 이지아로 인한 마음 고생을 이정재에게 털어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차세대 스마트폰 시장의 화제작 ‘갤럭시S2’는 지난달 28일 국내 출시되자마자 단박에 검색어 2위 자리를 꿰찼다. ‘갤럭시S2’는 삼성전자의 디스플레이·퍼포먼스·콘텐츠·리더십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제품으로, 속도감 개선과 ‘갤럭시S’ 보다 1㎜ 줄어든 초슬림 디자인이 자랑이다. 3위는 재·보선 결과가 차지했다. 4·27 재·보궐선거 결과 최대 격전지인 분당을과 강원지사 등 이른바 ‘빅4’ 가운데 민주당이 2곳, 민주노동당이 1곳, 한나라당이 1곳에서 승리를 거둬 사실상 야권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아이패드2 국내출시(5위)에 이어 ‘건강보험료 폭탄’이 6위에 올랐다. 4월 25일 월급날을 맞은 직장인들에게 올해 새로 정산된 건강보험료가 부과됐는데, 1인당 평균 2배 가까이 올랐던 것. 7위는 세계피겨 선수권대회에서 2위에 머무른 피겨 여왕 김연아의 몫이었다. 김연아는 4월 30일 ‘세계피겨 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에서 ‘아리랑’을 편곡한 ‘오마주 투 코리아’에 맞춰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지만 2위에 그쳤다. 특히 김연아는 시상식에서 눈물을 쏟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여중생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하는 등 극악한 범죄를 저질렀던 김길태에게 대법원이 원심대로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8위. 이어 프로야구 KIA 투수 서재응의 공에 머리를 맞은 SK 박진만이 9위, 인천의 현직 중학교 여교사가 체험학습 현장에서 남학생에게 체벌을 가하는 동영상은 10위에 올랐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ISU 세계선수권] 김연아, 세계선수권 쇼트 삐끗해도 1위…13개월 공백은 없었다

    [ISU 세계선수권] 김연아, 세계선수권 쇼트 삐끗해도 1위…13개월 공백은 없었다

    음악이 끝나자 ‘비련의 여주인공’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은 소녀’로 돌아왔다. 지난해 토리노세계선수권 이후 13개월 만에 앉은 키스 앤드 크라이존.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더니 전광판에 65.91점이 뜨자 그제서야 ‘휴’ 하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피터 오피가드 코치는 대견한 듯 제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시즌 초반 대회를 통해 프로그램을 점검하고 감각을 끌어올렸던 다른 선수들과 달리 1년의 실전 공백이 있었지만, 여전한 연기로 그동안의 공백을 무색하게 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피겨퀸’이었다. 김연아(21·고려대)가 돌아왔다. 13개월의 빈틈을 느낄 수 없는 무대였다. 당연하다는 듯 순위표 맨 윗자리를 꿰찼다. 김연아는 29일 러시아 모스크바 메가스포르트 아레나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첫날 여자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65.91점을 얻어 1위에 올랐다. 기술점수(TES) 32.97점에 예술점수(PCS) 32.94점을 보탰다. 안도 미키(일본·65.58점)와 크세니아 마카로바(러시아·61.62점)가 그 뒤를 이었다.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일본)는 58.66점으로 7위에 머물렀다. 김연아는 이날 전체 선수 중 마지막인 30번째로 은반에 올랐다. ‘주인공은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말처럼 단연 돋보였다. 바로 전 링크를 수놓았던 ‘라이벌’ 아사다가 트리플 악셀을 뛰는 ‘점프 기계’ 같았던 반면, 김연아는 작품에 녹아드는 완벽한 감정 표현으로 차원이 다른 예술성을 선보였다. 아돌프 아당 작곡의 ‘지젤’이 흘러나오는 동안 김연아는 그저 ‘사랑에 배신당한 여인’이었다. 환희, 설렘, 절망,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2분 50초 동안 촘촘하게 풀어냈다. 첫 점프로 예고했던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단독 점프로 처리하며 삐걱댔지만, 두 번째 트리플 플립에 더블 토루프를 붙여 콤비네이션으로 처리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플라잉 싯스핀에서 마음을 가다듬은 김연아는 더블 악셀(기본점 3.3점)을 깔끔하게 소화했다. 김연아가 ‘지젤’의 하이라이트로 꼽았던 스텝은 실전에서 더 화려하게 구현됐다. 다이내믹한 배경 음악에 맞춰 배신당한 여인의 복잡한 내면을 애절한 표정으로 녹여냈다. 눈빛과 손짓 하나에 온갖 감정이 변화무쌍하게 전해졌다. 이날 처음 공개한 드레스도 몰입을 도왔다. 어깨를 드러내고 허리 부분이 파인 짙은 드레스는 파격적이면서도 절제된 우아함을 선보였다. 하늘거리는 스커트는 ‘순박한 시골 처녀’의 처연한 아름다움을 더했다. 김연아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후 “긴장을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첫 점프가 부담스러웠나 보다. 완벽한 프로그램을 보여주지 못한 게 속상하지만 그래도 1등을 해서 기쁘다.”며 웃었다. 이어 “다른 연기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정신이 없다. 원래 잘하지 않는 실수라 놀랐지만 평정심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쇼트프로그램 1위로 건재함을 과시한 김연아는 30일 밤 전통민요 아리랑을 편곡한 프리스케이팅 ‘오마주 투 코리아’를 앞세워 정상 탈환에 박차를 가한다. 최종 순위는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점수의 총점으로 가려진다. 2009년 세계선수권(미국 로스앤젤레스) 이후 2년 만에 ‘월드챔피언’을 노린다. 올 시즌 휴식을 취하느라 3위(4024점)까지 떨어진 ISU랭킹도 우승포인트 1200점을 받아 ‘톱’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한·일 피겨 아이콘’ 13개월 만에 숙명의 대결

    ‘한·일 피겨 아이콘’ 13개월 만에 숙명의 대결

    ‘동갑내기 라이벌’ 김연아(21·고려대)와 아사다 마오(일본)가 만난다. 지난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토리노세계선수권 대회 이후 13개월 만이다. 김연아가 올 시즌 그랑프리시리즈를 건너뛰는 동안 아사다는 2014소치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의욕적인 시즌을 보냈다. 아사다가 주춤하지만 주니어 시절부터 공고한 ‘양강체제’를 구축했던 둘의 격돌은 여전히 최고의 ‘흥행카드’다. 29일 여자싱글 쇼트 경기를 앞두고 은반은 이미 후끈 달아올랐다. ●연아의 예술 VS 아사다의 기술 김연아는 모스크바에서 두번의 공식연습을 통해 ‘교과서 점프’가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감정표현은 더 농익었고 섬세해졌다. ‘피겨퀸’은 높은 기술에 도전하기보다 예술성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반면, 아사다는 유일한 무기인 트리플 악셀(3회전 반)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매진했다. 성공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여자선수 중 유일하게 실전에서 시도하는 데다 올 시즌 ISU의 규정변화로 ‘밑져야 본전’이 됐다. ISU는 ‘조금 부족한 점프’(UR)를 새로 만들었다. 관전포인트다. 지난 시즌까지 4분의1회전 이상 부족한 점프는 다운그레이드를 줬지만, 올 시즌에는 UR로 분류해 기초점의 70%를 준다. 질 좋은 점프와 조악한 점프의 점수 차가 줄어든 셈. 아사다의 트리플 악셀은 그동안 더블 악셀(당시 3.5점)로 처리될 위험성이 컸지만, 바뀐 규정에 따라 엉성하더라도 기본점(8.5점)의 70%인 6점을 받는다. 실제로 아사다는 지난 2월 4대륙선수권 쇼트프로그램에서 어정쩡한 트리플 악셀을 뛰고도 UR로 처리됐다. 가산점(GOE)에서 2.29점 감점됐지만 지난 시즌 더블 악셀로 처리됐던 걸 생각하면 ‘짭짤’하다. 김연아는 어김없이 주무기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기본점 10.1점)를 들고 나왔다. ‘지젤’(쇼트)과 ‘오마주 투 코리아’(프리)에서 모두 첫 점프로 배치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연속점프로 초반부터 가산점을 듬뿍 챙기겠다는 속셈. 김연아는 구성요소 점수(Program Components, 기술·동작·연기·안무·해석)에서도 ‘우월한’ 점수를 받기 때문에 ‘클린 연기’를 한다면 바뀐 규정도 큰 장애가 되지 않을 전망이다. ●연아의 평창 VS 아사다의 센다이 ‘한·일의 아이콘’으로 사랑받는 김연아와 아사다는 어깨에 고국의 희망을 얹었다. 김연아는 전통민요 아리랑을 편곡한 오마주 투 코리아로 한국에 감사메시지를 보낸다. 또 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의 홍보대사로 힘을 보탠다. 김연아는 3수에 나선 평창의 ‘얼굴마담’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지난해 밴쿠버올림픽에서 전설적인 점수(228.56점)로 피겨퀸에 올라 이름값은 충분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감동의 연기를 선보인다면 더욱 힘을 보탤 수 있다. 김연아도 “좋은 성적을 내면 평창유치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열의를 보였다. 대회가 끝나고 후보도시 브리핑(5월 18~19일·스위스 로잔)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의 개최지 선정 투표(7월 6일·남아공 더반)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아사다는 대지진으로 고통받는 국민에게 힘을 주겠다는 각오가 오롯하다. 대회 유니폼 앞면에는 상장(喪章)을 달고, 뒷면에는 ‘되살아나는 일본’이란 글귀를 스티커로 붙이기로 했다. 당초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던 대회(3월 21~27일)가 지진으로 미뤄지면서 홈팬들의 열광적인 성원은 없어졌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 희망을 전할 수 있게 됐다. 대회 후에는 피해자를 돕기 위한 자선공연도 치를 계획.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훌륭한 연기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우선이다. 아사다는 “나의 연기로 국민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28일 결전지인 메가스포르트 아레나에서 열린 쇼트프로그램 조추첨에서 김연아는 전체 30명 선수 가운데 30번을 뽑았다. 공교롭게도 아사다는 29번째다. 이로써 숨막히는 ‘라이벌 대결’은 쇼트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게 됐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ISU 세계선수권대회] 아리랑 선율에 ‘감동’… 스파이럴에 ‘감탄’

    [ISU 세계선수권대회] 아리랑 선율에 ‘감동’… 스파이럴에 ‘감탄’

    ‘피겨퀸’ 김연아(21·고려대)가 “한국에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표현했던 ‘오마주 투 코리아’가 베일을 벗었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 중인 김연아는 27일 대회 장소인 러시아 모스크바 메가스포르트 아레나에서 두 번째 공식 연습을 하며 올 시즌 프리스케이팅 오마주 투 코리아를 처음 공개했다. 연습인데도 박수가 터져 나올 만큼 뭉클하고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이틀 전 공식 연습 때 쇼트프로그램 ‘지젤’을 통해 사랑의 기쁨과 아픔을 표현했던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우아함을 과시했다. 익숙한 전통민요 아리랑을 기반으로 했지만, 관현악으로 웅장하게 편곡해 세련되고 역동적인 느낌을 살렸다. 기술적으로는 지난해 프리스케이팅 ‘조지 거슈인의 피아노협주곡 F장조’와 큰 변화가 없다. 올 시즌 ISU 규정 변화로 더블 악셀이 두번으로 제한돼 더블 악셀-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트리플 살코-더블 토루프 점프로 바꿨을 뿐이다. 레이백 스핀이 추가된 것도 달라진 점이다. 그 외는 지난 시즌과 순서만 다를 뿐 구성요소는 같다. 하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한국적 정서인 한(恨)이 아리랑의 구슬픈 리듬에 녹아 있다. 잔잔한 선율 속에 뛰어오르는 김연아의 첫 점프,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는 고고하고 단아하다. 슬픔에 빠지려는 찰나 역동적인 리듬이 흘러나오고 슬픔은 이내 감동적인 에너지로 승화된다. 이나바우어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더블 악셀-더블 토루프-더블 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는 단연 압권이다. 김연아가 백미로 꼽은 부분은 스파이럴이다. 김연아는 “프로그램 마지막 부분에 아리랑이 흐르면서 스파이럴을 할 때가 작품의 포인트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고조의 슬픔을 뚫고 터져나오는 웅장한 아리랑 선율과 김연아의 우아한 활주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3분 30초가량 응축됐던 격정적이면서도 구슬픈 감정이 두 팔을 뻗고 선 스파이럴과 함께 녹아내리는 순간이다. 피겨팬들도 가장 감탄한 장면이다. 김연아는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데이비드 윌슨 안무가 등 외국인들도 뭉클하고 감동적이라고 하더라. 한국 사람이 느끼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지젤 못지않게 기대가 커서 긴장했지만 훈련을 하며 괜찮아졌다.”고 했다. 이어 “모스크바에 일찍 도착(22일)해서인지 오래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빨리 경기했으면 좋겠다. 자신감 갖고 긴장하지 않으면 연습 때만큼 잘할 걸로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일본)는 이날 첫 공식 훈련을 치렀지만 주 무기인 트리플 악셀에서 흔들리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아사다는 “대회 2연패를 기대하지만 준비한 것을 보여주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첫 훈련치고는 괜찮았다.”고 위안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나와 통일] (9) 현정화 前 탁구국가 대표팀 감독

    [나와 통일] (9) 현정화 前 탁구국가 대표팀 감독

    1991년 4월 29일 남북한 7000만명의 시선이 지름 40㎜짜리 흰색 공 하나에 집중됐다.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 ‘코리아’로 출전한 리분희·유순복(이상 북한), 현정화팀의 여성단체전 결승전. 3시간 40분에 걸친 숨막히는 접전 끝에 우승 금메달을 따낸 이 시합은 아직도 탁구사(史)의 명승부로 꼽힌다. 20년이 지난 2011년 그날의 감동과 선수들의 우정을 영화로 제작한다. 영화 ‘코리아’의 시나리오 작업부터 출연배우들의 연기지도까지 애정을 아끼지 않고 있는 현정화 당시 국가대표 선수를 만났다. 그는 금메달을 땄을 때 “아, 우리가 작은 통일을 이뤘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영화배우 하지원이 본인 역을 맡는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 -하지원씨는 내가 추천했다. 시크릿 가든이 막 끝날 때쯤이었는데, 하지원씨의 연기가 마음에 들었었고, 주변에서도 “너랑 닮은 것 같다.”고 했다(웃음). 리분희 역할은 배두나씨다. →영화에서 새로 드러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영화에는 연애 에피소드가 추가됐다. 북한 남자선수와 남한 여자선수의 애정전선이 형성되지만, 대회가 끝나면서 남북으로 갈라진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다. →벌써 20년 전 일인데 영화로 만든다고 하니까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당시 영상을 다시 봤다. 경기하던 장면, 리분희 선수와 만났을 때와 헤어지던 모습 등을 다시 보니까 가슴이 울컥했다. 불현듯 리분희 선수도 보고 싶고. →리분희 선수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가. -1993년 국제대회에서 보고 못봤다. 최근에 듣기로는 2010 광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왔다고 한다. 장애인 스포츠 지도자 활동을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녀가 뇌성마비여서 이쪽으로 더 관심을 가졌다고 들었다. →리분희 선수를 만나면 하고 싶은 얘기는. -세월이 20년이나 흘렀고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각자 결혼을 했고, 아이들도 낳았고, 지도자를 했다. 다시 만나면 수많은 얘기를 쏟아놓을 것 같다.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있는지 물어보고 도와주고 싶다. →리분희 선수와 원래 친했나. -1986년 국제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워낙 라이벌이었지만 내가 언니라고 부르며 따랐다. 만날 때 카세트테이프나 한국 드라마 테이프를 건네주곤 했다. 한국이 어떻게 사는지, 가요,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다. 돈은 얼마나 버는지도 궁금해 했다. 당시에도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코리아’는 남북 단일팀의 합숙기간 30일, 시합 16일 등 총 46일간의 기록이다. 남북한 선수들은 46일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때로는 동료로 때로는 형제, 자매처럼 살가운 시간들을 보냈다. 긴 시간 함께 지내면서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다. -사실 여자 선수들은 드라마틱한 에피소드가 없었다. 각자 방에 찾아가서 놀고 수다를 많이 떨었다. 이십대 초반의 여자들이다 보니 남자 친구가 공통의 화제가 됐다(웃음). 리분희 선수는 동료선수인 김성희와 사귀고 있는데 결혼할 거라고 했고, 나는 김성만 선수와 결혼할 거라고 했다. 둘만 아는 비밀이었다. 마지막 날에 엄마가 챙겨주신 반지를 줬다. 내 이름이랑 리분희 선수 이름이 쓰여진 한 돈짜리 금반지다. 영화에서는 내가 끼고 있던 반지를 주는 것으로 나온다. →일본에서의 합숙생활은 어땠나. -일본은 매우 미묘한 곳이다. 우리 덕분에 처음으로 민단과 조총련이 만났다고 했다. 우리가 일본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합숙을 했는데 지역마다 민단과 조총련이 환영회, 환송회를 열어주었다. 헤어질 때는 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가장 긴장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중국과의 결승전 게임스코어 2대2였다. 경기 전에 유순복 선수한테 가오쥔을 이길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아, 이젠 졌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유순복 선수가 1세트를 19점으로 이기고 2세트에서도 21대 19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이겼을 때 기분은 어땠나. -이번에 영상을 보니 탁구 테이블 하나에 쏠린 관중석의 눈들이 보이더라. 한꺼번에 환호하고, 이긴 순간 기자들이 확 뛰쳐 나오는 것도 보였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땐 너무 많이 울어서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경기하면서 한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그때는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왜 그렇게 울었나. -내가 경기를 끝냈으면 그렇게 안 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게 있었던 것 같다. 남북한 7000만 동포가 지켜보고 있었고, 기자들이나 단장님, 남북 관계자들이 그런 사실을 많이 주입시켰었다. 특이한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가 해냈구나!’ 그런 느낌이었다. →시상식 때 아리랑이 나왔는데 기분이 어땠나. -아리랑이 사실은 가락이 매우 슬픈 노래다. 희비가 교차했다. 기쁘다기보다는 슬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끝나면 우리는 헤어질 것이고 단일팀은 연속적으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약간 미묘한 감정이 있었다(당시 남북 합의 하에 국기는 흰 바탕에 파란색 한반도가 그려진 ‘한반도기’, 국가는 ‘아리랑’을 연주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하나된 남북이 세계 정상에 섰다.’고 대서 특필을 했다. -그 시합을 계기로 남북한 스포츠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질 거라고 기대했다. 정말로 ‘아, 통일이 되는구나.’ 했다. 그러나 남북 청소년 축구 단일팀이 단 한번 이뤄진 후 그 다음부터는 교류가 없었다. 나중에서야 정치적으로 반짝했던 이벤트였구나 생각했다. 나중에 리분희 선수를 다시 남북한 선수로 만났다. 나는 태극기, 그쪽은 인공기를 달았다. 나는 남북 단일팀 당사자였기 때문에 당시에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느꼈었다. 그런데 다시 적으로 맞붙게 되니까 기분이 미묘했다. 나는 남북 분단을 몸으로 느낀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그런 고통을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인 이벤트를 할 바에야 차라리 단일팀 같은 거 하지 말고 각자 국가를 인정하고 사는 게 낫다는 마음이 굳혀졌다. →아이들한테도 그런 얘기 하나. -우리 딸이 11살인데 이런 얘기는 잘 모른다. 이번에 영화가 나오면 통일에 대한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통일을 잊고 사는 세대 아닌가. 나는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세대지만 아이들 세대는 나름의 인생계획이 있고, 그 삶을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아 하는 세대다. 누구를 도와주고 끌고 가겠다는 생각이 부족하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그건 영화사도 마찬가지다. →영화 제작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 -1년 전쯤 감독님한테 영화 얘기를 들었다. 이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감사했다. 전쟁영화를 만들 수도 있지만 직접적인 아픔을 주는 것이고 문화적인 소재는 간접적이지만 더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고, 남북 선수로 나오는 20명에게 매일 3시간씩 탁구를 가르치고 있다. 앞으로도 탁구 장면을 찍을 때 디테일한 기술적인 면 등 모든 것들을 가르쳐 줄 예정이다. →통일이 되기를 바라나. -나는 사실 반반이다. 원하는 것도 있고 그냥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다.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통일이 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장기적으로는 준비를 해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빠져서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도와줘야 한다. 정말로 손을 떼어버리는 상태까지 가면 안 되지 않나. →통일에 기여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스포츠만큼 (남북 간)물꼬를 트기에 좋은 게 없다. 정치적 배경 없이 순수하게 교류하고, 남북을 오가면서 시합을 하다 보면 종목도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지 않겠나. 스포츠도 이제는 마케팅이다. 관심 있는 기업도 생기고, 북한을 도울 수 있는 길도 생긴다. 북한 친구들은 실력은 있는데 돈이 없어 대회에 못 나온다. 차비가 없어 스무 시간 넘게 차를 타고 중국 대회밖에 못 나가고 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무조건 돕겠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현정화 “1991년 세계탁구 金 따고 작은 통일 느껴”

    현정화 “1991년 세계탁구 金 따고 작은 통일 느껴”

    1991년 4월 29일 남북한 7000만명의 시선이 지름 40㎜짜리 흰색 공 하나에 집중됐다. 일본 치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 ‘코리아’로 출전한 리분희·유순복(이상 북한), 현정화팀의 여성단체전 결승전. 3시간40분에 걸친 숨막히는 접전 끝에 우승 금메달을 따낸 이 시합은 아직도 탁구사(史)의 명승부로 꼽힌다. 20년이 지난 2011년 그날의 감동과 선수들의 우정을 영화로 제작한다. 영화 ‘코리아’의 시나리오 작업부터 출연배우들의 연기지도까지 애정을 아끼지 않고 있는 현정화 당시 국가대표를 만났다. 그는 금메달을 땄을 때 “아, 우리가 작은 통일을 이뤘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영화배우 하지원이 본인 역을 맡는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 -하지원씨는 내가 추천했다. 시크릿 가든이 막 끝날 때쯤이었는데, 하지원씨의 연기가 마음에 들었었고, 주변에서도 “너랑 닮은 것 같다.”고 했다.(웃음) 리분희 역할은 배두나씨다.   이번 영화에서 새로 드러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영화에는 연애 에피소드가 추가됐다. 북한 남자선수와 남한 여자선수가 애정전선이 형성되지만, 대회가 끝나면서 남북으로 갈라진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다.   벌써 20년전 일인데 영화로 만든다고 하니까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당시 영상을 다시 보게 됐다. 경기하던 장면, 리분희 선수와 만났을 때, 헤어지던 모습 등을 다시 보니까 가슴이 울컥했다. 불현듯 리분희 선수도 보고싶고.   리분희 선수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가? -1993년 국제대회에서 보고 못봤다. 최근에 듣기로는 2010 광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왔다고 한다. 장애인 스포츠 지도자 활동을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녀가 뇌성마비여서 이쪽으로 더 관심을 가졌다고 들었다.   리분희 선수를 만나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가? -세월이 20년이나 흘렀고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각자 결혼을 했고, 아이들도 낳았고, 지도자를 했다. 다시 만나면 수많은 얘기를 쏟아놓을 것 같다.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있는지 물어보고 도와주고 싶다.   리분희 선수와 원래 친했나? -1986년 국제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워낙 라이벌이었지만 내가 언니라고 부르며 따랐다. 만날 때 카세트 테이프나 한국 드라마 테이프를 건네주곤 했다. 한국이 어떻게 사는지, 가요,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다. 돈은 얼마나 버는지도 궁금해 했다. 당시에도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코리아’는 남북 단일팀의 합숙기간 30일, 시합 16일 등 총 46일간의 기록이다. 남북한 선수들은 46일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때로는 동료로 때로는 형제, 자매처럼 살가운 시간들을 보냈다. 긴 시간 함께 지내면서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다. -사실 여자 선수들은 드라마틱한 에피소드가 없었다. 각자 방에 찾아가서 놀고 수다를 많이 떨었다. 이십대 초반의 여자들이다보니 남자 친구가 공통의 화제가 됐다.(웃음) 리분희 선수는 동료선수인 김성희와 사귀고 있는데 결혼할 거라고 했고, 나는 김성만 선수와 결혼할거라고 했다. 둘 만 아는 비밀이었다. 마지막 날에 엄마가 챙겨주신 반지를 줬다. 내 이름이랑 리분희 선수 이름이 쓰여진 한 돈 짜리 금반지다. 영화에서는 내가 끼고 있던 반지를 주는 것으로 나온다.   일본에서 합숙생활은 어땠나? -일본이 매우 미묘한 곳이다. 우리 덕분에 처음으로 민단과 조총련이 만났다고 한다. 우리가 일본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합숙을 했는데 지역마다 민단과 조총련이 환영회, 환송회를 열어주었다. 헤어질 때는 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학생들이 한반도기 모양의 수를 놓아서 가져오거나 한반도 모양의 떡을 만들어 가져오면 잘라서 먹고 웃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1991년 2월 12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체육회담에서 남북단일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분단 후 46년만에 처음이었다.   당시 탁구 단일팀이 어떻게 구성됐나? -어떻게 구성하게 됐는지 그 배경은 모른다. 통일부에서 주선해서 급하게 진전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스포츠 교류를 통해 물꼬를 트려고 했던 것 같다.   가장 긴장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중국과의 결승전 게임스코어 2대2였다. 마지막 게임에서 유순복 선수가 가오준 선수를 이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경기 전에 유순복 선수한테 가오준을 이길 자신이 있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아, 이젠 졌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유순복 선수가 1세트를 19점으로 이기고 2세트에서도 21대 19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이겼을 때 기분은 어땠나? -이번에 영상을 보니 탁구 테이블 하나에 쏠린 관중석의 눈들이 보이더라. 한꺼번에 환호하고, 이긴 순간 기자들이 확 뛰쳐 나오는 것도 보였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 땐 너무 많이 울어서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경기하면서 한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그 때는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왜 그렇게 울었나? -내가 경기를 끝냈으면 그렇게 안 운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게 있었던 것 같다. 남북한 7000만 동포가 지켜보고 있었고, 기자들이나 단장님, 남북 관계자들이 그런 사실을 많이 주입시켰었다. 특이한 상황이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해냈구나!” 그런 느낌이었다.   시상식 때 아리랑이 나왔는데 기분이 어땠나? -아리랑이 사실은 가락이 매우 슬픈 노래다. 희비가 교차했다. 기쁘다기 보다는 슬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끝나면 우리는 헤어질 것이고 단일팀은 연속적으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약간 미묘한 감정이 있었다. (당시 남북 합의 하에 국기는 흰 바탕에 파란색 한반도가 그려진 ‘한반도기’, 국가는 ‘아리랑’을 연주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하나된 남북이 세계 정상에 섰다.’고 대서 특필을 했다. -그 시합을 계기로 남북한 스포츠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질 거라고 기대했다. 정말로 “아, 통일이 되는구나.” 했다. 그러나 남북 청소년 축구 단일팀이 단 한번 이뤄진 후 그 다음 부터는 교류가 없었다. 나중에서야 정치적으로 반짝했던 이벤트였구나 생각했다. 나중에 리분희 선수를 다시 남북간 선수로 만났다. 나는 태극기, 그쪽은 인공기를 달았다. 나는 남북 단일팀 했던 당사자였기 때문에 당시에 우리가 하나라는것을 느꼈었다. 그런데 다시 적으로 맞붙게 되니까 기분이 미묘했다. 나는 남북 분단을 몸으로 느낀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그런 고통을 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인 이벤트를 할 바에야 차라리 단일팀 같은 거 하지 말고 각자 국가를 인정하고 사는 게 낫다고 마음이 굳혀졌다.   아이들한테도 그런얘기 하나? -우리 딸이 11살인데 이런 얘기는 잘 모른다. 이번에 영화가 나오면 통일에 대한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통일을 잊고 사는 세대 아닌가. 나는 통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한 세대지만 아이들 세대는 나름의 인생계획이 있고, 그 삶을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아 하는 세대다. 누구를 도와주고 끌고가겠다는 생각이 부족하다. 그런 생각을 가르쳐주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그건 영화사도 마찬가지다.   영화 제작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 -1년전쯤 감독님한테 영화 얘기를 들었다. 이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감사했다. 전쟁영화를 만들 수도 있지만 직접적인 아픔을 주는 것이고 문화적인 소재는 간접적이지만 더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고, 남북한 선수로 나오는 20명에게 매일 3시간씩 탁구를 가르치고 있다. 앞으로도 탁구 장면을 찍을 때 디테일한 기술적인 것 모든 것들을 가르쳐 줄 예정이다. 하지원씨가 운동신경이 좋아서 자세도 좋고 잘 따라온다. 당시 촌스러웠던 내 커트머리를 그대로 했다.(웃음)   통일이 되기를 바라나? -나는 사실 반반이다. 원하는 것도 있고 그냥 ‘안했음 좋겠다.’는 생각도 있다.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통일이 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장기적으로는 준비를 해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빠져서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도와줘야 한다. 정말로 손을 떼어버리는 상태까지 가면 안되지 않나.   스포츠인으로서 통일에 기여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스포츠만큼 (남북간)물꼬를 트기에 좋은 게 없다. 정치적 배경없이 순수하게 교류하고, 남북을 오가면서 시합을 하다보면 종목도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지 않겠나. 스포츠도 이제는 마케팅이다. 관심있는 기업도 생기고, 북한을 도울 수 있는 길도 생긴다. 북한 친구들은 실력은 있는데 돈이 없어 대회에 못나온다. 차비가 없어 스무시간 넘게 차를 타고 중국 대회 밖에 못나가고 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무조건 돕겠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아리랑 위성에 잡힌 ‘지구의 블랙홀’ 어떤 모습?

    아리랑 위성에 잡힌 ‘지구의 블랙홀’ 어떤 모습?

    지구의 블랙홀로 불리는 멕시코의 신비한 섬과 풍광이 우리나라 위성에 포착됐다. 아리랑 2호가 멕시코 동남부 킨타로 주에 있는 홀박스 섬과 유키탄 반도의 북동쪽 끝에 있는 얄라우 호를 촬영한 위성사진이 과학 사이트 스페이스닷컴에 지난 15일 공개됐다. 마야어로 ‘블랙홀’이라는 뜻을 가진 홀박스 섬 옆에 있는 바다는 매우 깊기 때문에 물이 까맣게 보인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거대한 암흑 구멍으로 보여 지구의 블랙홀로 불린다. 아리랑 2호와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한 유럽우주기구(ESA) 측은 “카리브해와 걸프해가 만들어내는 에메랄드 빛 바다와는 대조적으로 맑은 물이 가득 채워진 깊은 바위 구멍이 신비롭게 포착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길이 12km, 폭 1.5km의 바다에는 해양생물들의 거대한 보고로도 잘 알려져 있다. 수백 종의 돌고래와 거북들이 서식하며, 세계에서 가장 큰 상어 종인 고래상어 떼가 한해 5개월 동안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스페이스닷컴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트위터(twitter.com/newsluv) 
  • 제주의 밤 볼거리 풍성

    제주의 밤 볼거리 풍성

    ‘낮에는 관광지로, 야간에는 공연장으로’ 제주의 야간 관광문화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국내 유명 공연들이 속속 제주에 진출하면서부터다. 사실 제주의 밤은 특별한 볼거리가 없어 국내·외 관광객들로부터 큰 불만을 샀다.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비언어극 난타에 이어 점프, 아리랑파티 등이 제주에 전용공연장을 개설, 밤에도 볼거리가 풍성한 제주로 바꾸어 놓을 전망이다. 지난 2009년 제주에 진출, 제주영상미디어센터 예술극장에 전용관을 마련한 ‘난타’는 그동안 제주를 찾은 관광객 14만여명이 야간공연을 즐겼다. 이 가운데는 일본과 중국 등 동남아 관광객이 11만여명을 차지하는 등 외국인 관광객들의 야간 볼거리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제주관광공사 관계자는 “난타의 세계적인 유명세 등으로 낮에는 관광을, 야간에는 난타공연을 보고 싶다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며 “야간 볼거리는 관광객들의 만족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제주를 찾은 9000여명의 수학여행단도 제주에서 난타 공연장을 찾았다. 제주 S여행사 관계자는 “유명 공연을 접하기 어려운 시골지역 수학여행단이 낮에는 관광을, 야간에는 공연을 관람하는 제주 수학여행 문화가 확산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난타는 수학여행단 등 제주를 찾은 단체 관광객이 원하는 시간에 공연을 하기도 한다. 태권도 등 무술을 소재로 한 코믹 퍼포먼스 ‘점프’도 제주에 전용극장을 운영한다. 제작사인 ㈜예감은 최근 제주 한라대와 협약을 맺고 오는 28일부터 800석 규모의 한라대 아트홀 대극장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기 야간 공연을 진행한다. 또 타악 솔리스트인 최소리 감독이 이끄는 ‘아리랑 파티’도 16일 제주 전용관을 개장한다. 태권도, 타악, 한국 무용 그리고 젊은이들의 문화 아이콘인 비보이가 결합된 작품.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에 문을 여는 전용관은 실내 1000석과 야외 2000석 규모로 특수효과 등 국내 최고 수준의 무대장비를 갖췄다. 한라산과 산굼부리, 성산일출봉 등 제주의 자연을 무대에 옮겨오는 등 가장 제주다운 것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제주도는 야간 관광 활성화를 위해 제주시 산지천변 일대에 문화관광 야시장을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도 관계자는 “이들 유명 공연이 속속 제주에 진출하면서 관광객들의 야간관광 선택의 폭이 넓어질 전망”이라며 “풍물시장 등 야간 관광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몸 바쳐 독도 사랑한 아버지 피가 내몸에 흐른다”

    “몸 바쳐 독도 사랑한 아버지 피가 내몸에 흐른다”

    세월은 떠난 많은 사람을 지운다. 하지만 독도가 시름에 잠기는 이맘때라도 꼭 흐려진 기억에서 끄집어내야 할 사람이 있다. 이덕영. 울릉도 사람. 독도를 제몸처럼 사랑했던 사람. 그 사랑이 지나쳐 제명을 다 채우지 못한 사람. 푸른독도가꾸기 초대회장. 바위섬 독도에 푸른 나무로 옷을 입힌 사람이다. 1980년대, 뜯어말리는 경찰과 싸워가며 회원들과 함께 울릉도에서 흙을 퍼다 나르고, 그 위에 해송과 동백과 향나무와 야생화들을 가져다 심은, 미련하고 고집 센 사람. 그는 1998년 1월 23일 나이 마흔아홉에 죽었다. 타계도, 별세도 아니고, 죽었다. 일본 열도 남쪽 도고섬 앞바다에서. 시신은 뗏목 위에 묶어 놓은 한쪽 다리뿐. 나머지는 며칠 뒤에야 찾았다. 독립운동에 뒷돈을 댔던 선친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핏속에 반일(反日), 항일(抗日)의 유전자라도 담겼던 것일까. 이덕영은 어릴 적부터 머릿속에 ‘우리땅’이, 가슴 속엔 ‘반일’이 가득했다고 한다. 음악가 한돌이 ‘홀로 아리랑’을 지을 때 영감을 받았다던, 그의 울릉도 집에 켜켜이 쌓여 있던 역사책 2만권이 그 증좌의 일부다. 석포에 살면서도 일본식 지명이 싫어 홀로 정들포마을이라고 불렀다. 우리 들꽃에 빠져 전국 방방곡곡을 돌기도 했다. 1997년 겨울 어느 날. 대구로 나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아들 병호를 이덕영은 불쑥 찾아가 불러냈다. 그러곤 국밥 한 그릇을 사 주며 “아버지, 멀리 다녀와야 한다. 당분간 보기 힘들 거야.”라고 했다. 멀쩡한 농협을 다니다 때려치우고는 뭘 하는지 밖으로 돌며 걸핏하면 며칠씩 집을 비우고 가산도 거의 털어먹은 아버지를, 병호는 그날 마지막으로 봤다. 이덕영은 동료 3명과 함께 러시아로 떠났다. 그리고 12월 31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뗏목 ‘발해 1300호’에 올랐다. 발해 건국 1300주년을 맞아 옛 조상의 동해 개척사를 재연하겠다며 험한 바다에 몸을 맡겼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함흥, 강릉, 울릉도, 부산, 일본으로 바닷물길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뗏목으로 입증하고, 이를 통해 발해의 문물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흘러간 역사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거사(擧事)’였다. 동해와 독도의 주인이 정녕 누구인지, 일본은 똑똑히 지켜보라는 시위였다. 무모했다. 용기보다는 결기와 오기였다. 출항 15일째인 이듬해 1월 14일 이덕영의 동료 21세기 바다연구소 소장 장철수는 항해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내가 왜 탐험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심신이 피곤하다. 어제 예기치 않은 해류에 밀려 자칫 울릉도와 독도마저 보지 못하는, 그래서 곧장 일본으로 빠지는 사태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했다. 그래서 행여 (일본) 경비정에 몰려 나가는 보기 싫은 장면이 연출되지 않을까 해서’ 닷새 뒤인 19일에는 또 이렇게 적었다. ‘폭풍우에 계속 동쪽으로 밀린다. 이 방향이면 오키섬으로 가지 않겠나 싶다. 일본으로 간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1. 우리 어선을 나포하지 말라, 2. 바다는 넓다. 바다를 통해 더불어 사는 민족이 되길 바란다. 영원한 제국이란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다시 나흘 뒤인 23일. ‘바다가 거칠어진다. 교신이 빨리 되길 바란다. 우리 탐험대가 맞은 가장 위험한 상황이다. (중략) 나라에 짐이 된다는 게 부담스럽다. 더욱이 오늘 한·일 어업협정이 일방적으로 파기되었다는데, 그들의 속셈이 드러났다고 보여진다. 무엇보다 내가 의연해지고 싶다. 미래와 현재의 공존과 조화. 바다를 통한 인류의 평화 모색. 청년에게 꿈과 지혜를 주고 싶다. 탐험정신. 발해의 정신.’ 일지는 거기서 끝났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해를 따라 내려온 이들 4명은 부산을 거쳐 제주로 향하다 폭풍우가 집어삼킨 뗏목과 함께 일본 오키 제도의 도고섬 앞에서 스러졌다. 독도 지킴이의 소임도 그렇게 끝났다. 눈엣가시와도 같은 이들을 일본 당국이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았다는 논란, 심지어 일본 해경에 구조됐다가 다시 뗏목으로 내몰린 뒤 죽음을 맞았다는 의혹이 따랐다. 하지만 그러든 말든 세월은 흘렀고, 이들의 이름도 서서히 세상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 갔다. 13년이 지났다. 이덕영의 아들 병호(30)씨를 지난 6일 울릉도에서 만났다. 아버지의 비보에 이어 6개월 뒤 벼랑에서 차가 구르는 사고로 어머니마저 잃은 고등학생 병호의 아픔을 그는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가리고 있었다. “다 잊고 싶었죠. 애써 그렇게 했습니다. 그땐 너무 어려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어머니마저 떠나 버린 현실에서 그냥 벗어나고만 싶었습니다.” 대학을 나와 직장을 잡은 한참 뒤까지 아버지가 누구였고, 무엇을 했는지 애써 되짚으려 하지 않았고,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울릉도 선착장에 있었다. ‘안용복 재단’이라고 적힌 노란 점퍼를 수십명과 함께 입고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독도로 향하는 길이었다. “지난 2월 초 경북도청의 담당 국장께서 찾아와 ‘제2, 제3의 이덕영을 만들어 보지 않겠느냐’고 하셔서 숙고 끝에 재단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용복 재단은 17세기 말 일본에 끌려가서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주장하며 거꾸로 일본 막부의 사과를 받아내고 돌아온 어부 안용복을 기리고 독도 수호 의지를 다지기 위해 지난 2008년 경상북도 주도로 만들어진 재단이다. 민간 차원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독도를 찾도록, 그래서 독도가 외롭지 않도록, 그래서 일본이 더는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지 못하도록 하는 일을 맡고 있다. 사회에 나와 무역회사를 다니고 운동처방사로도 일하던 이씨는 재단 측의 참여 제의를 접하고는 ‘아버지가 지니셨던 정신에 어쩔 수 없이 매력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했다. “좋아하던 일도 때려치우고 재단에 참여하게 된 걸 보면 아무래도 아버지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를 이어 독도 지킴이로 나선 소감을 물었다. “학교 행사로 독도를 찾은 한 아이가 그러더군요. ‘갈매기똥밖에 없는 돌산인데, 왜 난리야. 그냥 일본에 줘 버리지….’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안 되겠구나, 큰일 났다 싶었죠. 후세뿐 아니라 우리 기성세대조차 국토의 소중함, 중요함을 잘 모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피는 못 속이는 걸까. 독도를 어떻게 해야겠느냐고 물으니 말이 빨라졌다. “관심이죠. 지속적인 관심 말입니다. 사람들이 가 봐야 합니다. 일본은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독도의 중요성, 필요성…. 심지어 지금 교과서에다가 자기들 영토라고까지 표기하며 아이들을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한데 우리나라는 독도에 대해 별다른 교육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관심만 갖는다고 독도 문제가 풀리겠느냐’고 물었다. 단호했다. “우리가 관심만 기울인다면 그것 말고 어떤 노력도 필요 없습니다. 우리 땅이라는 걸 우리가 알고 있는데,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제대로 알고만 있다면 이 상황은 변하지 않습니다. 뭐가 터졌을 때에만 피켓 들고 난리를 칠 게 아닙니다. 독도가 우리에게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후대에 얘기해 줘야 합니다. 그럼 냄비처럼 쉽게 끓다가 별안간 잠잠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일본의 중학교 교과서 검정 발표를 하루 앞둔 29일 다시 그에게 전화했다. 독도 안 갑니까. “며칠 뒤에 또 갑니다. 카메라 들고….” 그새 아버지에게 한발 더 다가서 있었다. 진경호·최여경기자 jade@seoul.co.kr
  • [대한민국 오디션 공화국] “나도 꿈 이룰 수 있다” …감동의 대리만족

    [대한민국 오디션 공화국] “나도 꿈 이룰 수 있다” …감동의 대리만족

    오디션은 ‘경청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아우디레’(audire)에서 유래했다. 특정 배역에 어울리는 영화·뮤지컬 배우, 가수를 선발하는 것을 지칭하던 오디션이 최근에는 일반인 중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뽑거나 연예인들끼리 경쟁 시키는 서바이벌 형태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 TV의 경우, 5~6년 전만 해도 천덕꾸러기 신세이던 오디션 프로그램이 이제 가장 ‘핫’(Hot)한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가수, 아나운서, 모델, 심지어 기자와 카레이서까지 오디션으로 뽑는 세상이다. ●케이블發 열풍, 지상파·공연계로 확산 케이블 채널에서 시작된 오디션 열풍은 지상파 방송3사가 가세하면서 전방위로 확산되는 추세다. 방송3사 가운데 가장 먼저 오디션 프로 ‘위대한 탄생’을 도입한 MBC는 ‘슈퍼스타K’(오디션 열기에 불을 붙인 케이블 프로그램)의 아류라는 초기 비판을 딛고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끌어내 싱글벙글하고 있다. 여세를 몰아 오디션으로 아나운서를 뽑는 ‘신입사원’을 시작했다. SBS는 6월 말 뮤지컬, 연극, 영화, 드라마 등 여러 장르에서 활약할 연기자를 뽑는 ‘기적의 오디션’을 시작한다. KBS도 같은 달 코미디, 클래식 음악, 뮤지컬 등 특화된 장르의 예비스타를 뽑는 ‘도전자(가제)’를 선보인다. 케이블채널 아리랑TV는 취업 서바이벌 프로그램 ‘컨텐더스’를 통해 기자를 오디션으로 선발한다. 케이블 TV는 아예 해외에서 ‘대박’을 터트린 오디션 프로 판권을 사들여 한국판을 내보내고 있다. 온스타일의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와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 tvN의 ‘코리아 갓 탤런트’와 ‘오페라스타 2011’가 대표적인 예다. 오디션 발원지인 공연계도 일반인 대상 오디션을 적극 늘리고 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던 창작 뮤지컬 ‘김종욱 찾기’는 다음 시즌에 출연할 배우를 뽑는 ‘슈퍼스타 Kim’의 오디션을 실시한다. 인터넷으로 모집한 100명의 일반인이 심사단이다. 심사단은 오는 28일부터 제작진과 함께 캐스팅 노하우를 ‘열공’(열심히 공부)한 뒤 1인 1표를 행사하게 된다. 공연제작사 오디뮤지컬컴퍼니는 연예기획사 DSP미디어와 손잡고 ‘뮤지컬 아이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100대1의 경쟁을 뚫고 세 차례 관문을 통과한 10명을 다음 달 8일 개막하는 뮤지컬 ‘그리스’ 무대에 세워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전문 카레이서이기도 한 ‘한류 스타’ 류시원은 지난달 카레이서 오디션을 실시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디션 프로가 ‘한물 간’ 장르로 여겨졌다는 사실이다. SBS는 2001년 가수 선발 ‘영재육성 프로젝트’를 시도했고, KBS는 MC와 연기자를 각각 뽑는 ‘MC 서바이벌’(2004)과 ‘서바이벌 스타 오디션’(2006)을 선보였다. 모두 성적이 신통찮았다. 그랬던 오디션이 역설적이게도 케이블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상파보다 시간 제약 등이 덜한 케이블 TV는 수용자 처지에서 도전자들의 성장 과정에 주목했다. 그 결과, 공급자 위주의 선발 기능에 그쳤던 지상파와 달리 시청자들과 함께 만들어간다는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었다. ●스타보다 일반인 리얼 도전기에 공감 ‘슈퍼스타 K’를 제작한 케이블 채널 Mnet의 방송제작사업부 홍수현 국장은 “오디션이 TV를 집어삼킨 가장 큰 이유는 공감과 감동이라는 두 가지 코드를 동시에 만족시켰기 때문”이라면서 “도전자가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로 하여금 ‘나도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과 대리만족을 심어준다.”고 강조했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인기의 연장선에서 인기 요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 안우정 MBC 예능국장은 “몇 년 전부터 MBC ‘무한도전’이나 KBS ‘1박2일’처럼 짜인 대본이나 특별한 연출 없이 자연스러움 속에서 재미와 감동을 찾아가는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대세로 자리잡았다.”면서 “스타들의 새로운 도전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이 일반인들의 리얼 도전기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오디션 프로가 각광받았다.”고 분석했다. 리얼 프로그램의 생생한 감동과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팽팽한 긴장감 내지 의외성이 오디션 열기를 극대화했다는 설명이다. 슈퍼스타K의 경우처럼 지원자를 탈락시키는 서바이벌 과정에 ‘대국민 문자투표’라는 이름으로 시청자들을 참여시킨 것도 인기에 한몫을 했다. 전화나 문자 한 통으로 다른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그렇다면 열기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안 국장은 “지상파의 경우 제작비 등의 제약 때문에 오디션 규모가 작았지만 간접 광고 규제가 풀렸기 때문에 앞으로 상당 기간 (오디션 프로) 제작이 이어질 것”이라면서 “해외 프로그램을 통해 부쩍 높아진 시청자들의 수준을 감안할 때 차별성은 기본이고, 구성과 연출이 탄탄한 웰메이드 오디션 프로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나윤선 “4인 4색의 화음 비빔밥처럼 즐기세요”

    나윤선 “4인 4색의 화음 비빔밥처럼 즐기세요”

    #장면 1. 의류회사 홍보실에서 카피라이터로 8개월을 보냈지만, 일이 손에 붙지 않았다. 결국 사표를 던졌다. 친구는 음악을 권했다. 건국대 불문과에 다닐 때 프랑스대사관 주최 샹송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전력’ 때문. 하지만 내키지 않았다. 뮤지컬 배우인 어머니를 보며 자랐기에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알았다. 우여곡절 끝에 데모 테이프는 김민기 학전 대표에게 전달됐고, ‘지하철 1호선’의 주인공이 됐다. #장면 2. 창작 뮤지컬 ‘번데기’와 음악극 ‘오션월드’에 출연했지만, 밑천(?)이 드러나는 기분. 이럴 거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여섯의 나이에 훌쩍 프랑스로 떠났다. 파리의 재즈스쿨인 CIM에서 평생 관심도 없었던 재즈 보컬을 공부했다. “재즈라곤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음악하는 친구가 재즈가 음악의 뿌리이니 이걸 해야 다른 것도 쉬워질 거라고 하더라.” ‘직딩’(직장인)에서 뮤지컬 배우로, 다시 세계적인 재즈 보컬리스트로 변신을 거듭한 나윤선(42)의 얘기다.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 아프리카 음악가들이 뒷받침하는 재즈계에서 아시아 가수는 명함을 내밀기도 어렵다. 하지만, 나윤선은 예외다. 지난해 발표한 7집 ‘세임 걸’(Same Girl) 앨범으로 동양인 최초로 프랑스 재즈차트 4주 연속 1위. 1월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카데미 오브 재즈’(L’Académie du Jazz)에서 재즈 보컬 부문 최우수 아티스트(The Prix du Jazz Vocal)로 뽑혔다. 파리의 집과 연습실을 오가며 이달 말 내한공연 준비에 바쁜 나윤선을 13일 전화로 만났다.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 음반으로 뽑혔다. ‘아카데미 오브 재즈’에서는 재즈 보컬 최우수아티스트로 뽑혔다. 물이 올랐다는 생각이 들 법한데. -물론 아니다. 다만 프랑스에서 받은 상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는 콩쿠르가 아닌 다음에야 외국인에게 상을 주는 나라가 아니다. 음악 쪽에서는 ‘아카데미 오브 재즈’가 유일한데 그나마 다이애나 크롤 같은 스타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받은 건 기적이다. 갈 길은 멀지만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게 사실이다(웃음). →음악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없는 가정환경(아버지는 나영수 국립합창단장, 어머니는 국내 뮤지컬 1세대 성악가인 김미정)이다. 어릴 땐 한 번도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을 안했나. -전혀 없었다. 부모님도 강요를 안 했다. 다른 애들 다 하는 피아노 정도. 다만 아버지가 항상 새벽 3~4시까지 연습하고 집에 늘 음악을 틀어놓으니까 따로 음악공부를 하지 않아도 귀는 트이게 된 것 같다. →이쪽 일을 시작한 건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인데. -김민기 선생님이 나에게 가만히 서서 노래만 하면 되는 역할을 줬다. (못 추는) 춤을 추지 않아도 됐다. 나만 1인 1역이었다. (왜 뽑으셨는지) 영원한 미스테리다(웃음). →뒤늦게 유학 가서 재즈를 하려니 힘들었겠다. -CIM을 비롯해 동시에 3곳을 다녔다. 하나만 다녀서는 도저히 못 따라가겠더라. CIM은 5년을 다녔고 재즈 보컬로 ‘디플롬’(diplôme·학위)을 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그 질문이 제일 어렵다. 다만 어디를 가든 ‘아리랑’을 부르는데 목청껏 따라부르며 눈물을 흘리던 폴란드 사람들을 잊을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폴란드인들이 유독 음악적 감각이 좋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는 23일 서울 LG아트센터를 시작으로 광주(25일)·통영국제음악제(27일)에서 공연한다. 이전과는 무엇이 다른가. -서울·광주 공연은 울프 바케니우스(기타)와 랄스 다니엘손(베이스·첼로), 뱅상 페라니(아코디온)의 조합으로 처음 호흡을 맞춘다. 모두 정상급 솔리스트인 데다 이런 조합으로 공연하는 건 처음이라 더 설렌다. 4명의 솔리스트가 모여 화음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나도 궁금하다. 비빔밥을 먹을 때 각 재료가 씹히는 맛이 모두 다르고 각각의 맛이 다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딱 그런 경험을 할 것 같다. 한마디로 귀가 굉장히 즐겁다고 생각하면 된다. 통영에서는 울프와 듀오로만 공연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피겨여왕’ 연아 귀환 미뤄지나

    ‘피겨여왕’ 연아 귀환 미뤄지나

    일본 대지진으로 ‘여왕의 귀환’도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피겨퀸’ 김연아(21·고려대)의 복귀 무대로 관심을 끌었던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가 정상적으로 개최될지 불투명하다. 대회는 오는 21일부터 7일간 일본 도쿄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강진의 진원지 센다이는 도쿄에서 380㎞ 떨어져 있지만 도쿄에서도 여진이 발생하는 데다 교통마비, 방사능 유출 등 추가위험이 우려되는 만큼 대회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 교도통신은 13일 “대회가 취소되거나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ISU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스피드스케이팅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10~13일·독일 인젤)에 참석 중인 오타비오 친콴타 ISU 회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연맹(JSF)에서 ‘요요기체육관은 대회 개최에 문제가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러나 상황이 변하고 있다. 아직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날 ISU 홈페이지를 통해 ‘강행의지’를 밝혔던 것에서 양보한(?) 모양새. 그러나 “이번 대회는 방송사, 스폰서, 선수 등 많은 이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만큼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고 우유부단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당장 20일 선수들의 첫 연습이 잡혀 있다. 일주일 안에 상황이 수습돼야 가능한 일이다. 대회를 강행해도 문제는 있다. 선수와 관중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데다 축제 분위기도 썰렁해질 수밖에 없다. 피겨 전문기자 필립 허시도 LA타임스에서 “아사다 마오, 다카하시 다이스케 등 일본 선수들의 정신적 충격을 고려해야 한다. 관중들이 피겨 이벤트를 즐길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대회 연기를 주문했다. 미국 LA에서 훈련 중인 김연아도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피겨퀸은 올 시즌 그랑프리시리즈를 모두 건너뛰고 이번 세계선수권을 복귀 무대로 잡았다. 발레곡 ‘지젤’로 쇼트프로그램을 준비했고, 아리랑을 피처링한 ‘오마주 투 코리아’로 프리스케이팅을 연습해 왔다. 올림픽 금메달을 다퉜던 아사다와의 ‘리턴매치’로 관심도 증폭됐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우리 이름은 마헬리 羅·스밀라 金”

    “우리 이름은 마헬리 羅·스밀라 金”

    움푹 파인 눈과 두꺼운 쌍꺼풀. 영락없는 마야인의 모습이었다. 그 사이로 흑단 같은 머릿결과 동그란 콧볼이 보였다. 전형적인 한국인의 외양이다. 100년의 세월을 넘어서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아 온 이들은 멕시코 한인 이민자 4세대인 마헬리 나(22)씨와 스밀라 김(20)씨. 106년 전 막막한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로 간 이민자의 후손 중 처음으로 한국 땅을 다시 밟은 ‘애니깽의 후예’들이다. ●“한국 동경” 한국대학에 입학 멕시코를 떠나 조상의 나라 한국을 찾아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는 두사람을 28일 만났다. 나씨는 인천대 무역학과 입학이 결정돼 2일 입학식에 참석하고 꿈에 그리던 한국 대학생이 된다. 김씨는 지난해 9월 이화여대 경영학과에 입학, 전공 공부를 하고 있다.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의 아버지까지 거쳐 올라가야 비로소 만나는 한국인의 혈통이기에 겉모습에서 단번에 한국인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듯했다. 그러나 떠듬떠듬 한국말을 이어가는 그녀들의 말투, 할머니의 아버지를 그리며 한국을 상상했다는 소회 속에서 그들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동족 의식과 정체성이 오롯이 드러났다. ●10년 전까지 ‘꼬레아노’ 차별 멕시코에서의 나씨와 김씨의 형편은 조금 달랐다. 한인 후손 3세인 김씨의 아버지는 2남 1녀 자녀들에게 항상 ‘한국인의 후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메리다에서 사탕공장을 운영하고 장사를 했던 김씨의 할머니는 1905년 당시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멕시코로 넘어온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손자들에게 종종 하셨다. 김씨의 증조부는 멕시코에 도착해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함께 배를 타고 온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인터넷을 통해 한국 문화를 자주 접했다는 김씨는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증조부와 외증조부가 한국분이셨고 집에서도 한국 이야기를 많이 해서 나는 언제나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고 말했다. ●인터넷 통해 한국 문화 접해 인터넷을 통해 본 한국 젊은이들의 문화를 동경하면서 김씨는 스스로 “한국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전해 들었던 한국을 직접 접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면 나씨에게 한국은 생소한 나라다. 벽돌을 나르는 막일을 하며 생계를 잇는 나씨의 아버지는 자신의 조상인 한국인에 대해 좀체 말하려 하지 않았다. 한국인 후예들을 바라보는 멕시코 현지인들의 차별적인 시선 때문일 것이라는 게 나씨의 해석이다. 최근에는 좀 나아졌으나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멕시코인들은 한인 후예들을 ‘꼬레아노’라고 부르며 보이지 않는 차별을 가했다. 한국인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800여명의 한인 후손들이 레판 마을에 모여 살면서 차별을 피해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일구려 한 결과였다. 레판 마을에서 태어난 나씨는 한인 후손들과 어울리며 살았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는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런 나씨에게 한국을 알게 해 준 것이 1999년 레판 마을에 세워진 무지개학교였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김무선(73)씨가 세운 무지개학교는 멕시코에 남겨진 애니깽의 후예에게 한글과 태권도, 아리랑 등의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곳이다. 180여명의 한인 후예가 공부하고 있는 레판 마을 무지개학교에서 나씨는 가장 두각을 보인 학생이었다. 김무선 교장은 “마헬리 나는 전교생 중 학업 성적이 가장 뛰어났다.”면서 “이런 학생이 한국에서 공부한 뒤 다시 멕시코로 돌아와 봉사하는 것이 한인 후손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판단해 유학을 주선했다.”고 말했다. 나씨와 김씨의 한국행이 결정된 뒤 남은 가장 큰 문제는 학비였다. 멕시코에서도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어서 한국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나씨와 김씨가 멕시코에서 한국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을 지켜본 김 교장은 그들의 꿈이 좌절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다. 애니깽의 후예 중 처음으로 한국에서 공부하는 사례였기에 이번에 좌절하면 어렵사리 이어진 한인 후손과 한국의 인연이 또다시 기약 없이 끊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멕시코와 한국을 오가면서 발품을 판 결과 나씨는 기업은행으로부터, 김씨는 삼성꿈재단의 도움을 받아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두 학생의 한국행이 성사됐지만 김 교장의 근심은 끝나지 않았다. 나씨와 김씨의 한국 유학을 지켜본 뒤 한국으로 유학을 하겠다는 학생들이 점차 늘고 있어서다. 그들의 꿈이 기특하지만 지원해 줄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나 도움 없이는 힘든 상황이다. 김 교장은 “한두명일 때는 일일이 장학재단의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청할 수 있었지만, 멕시코 무지개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200여명의 학생들을 모두 지원해 줄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멕시코 각지에서 모여드는 한인 후예를 교육시키기 위해 멕시코 수도인 멕시코시티에 제3의 무지개학교를 짓고 싶다는 계획도 당장은 버겁다. 김 교장은 “100년이 넘도록 잊혀 온 애니깽의 후예들이 한 세기가 지나서야 비로소 한국을 기억하고 돌아오려 하는 만큼 정부와 국민들의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카탄 무지개학교 후원 계좌: 016-064779-01-011(기업은행 김무선)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빅뱅·서태지, 고교 음악교과서에 실렸다

    빅뱅·서태지, 고교 음악교과서에 실렸다

    ‘이문세와 빅뱅이 부른 ‘붉은 노을’을 들어보고 시대의 차이에 따른 음악적 특징을 비교해 보자.’ 올 새 학기에 고등학교에서 사용될 태성출판사의 ‘고등학교 음악’ 6단원 ‘우리 시대의 음악’편에 실린 내용이다. 23일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전국 고교에서 새 학기부터 사용될 새 음악교과서 3종에는 인기 아이돌그룹 노래가 실리는 등 청소년의 기호와 눈높이에 맞춰 대중음악 비중이 부쩍 늘었다. 태성출판사 음악교과서에는 아예 ‘대중음악의 세계로’라는 소단원도 있다. 윤심덕·이미자·산울림·조용필 등 1920년대 대중가요의 탄생기부터 2000년대 댄스음악과 아이돌 그룹 출현까지를 시대별로 훑었다. 박영사의 음악교과서도 ‘우리의 대중가요’ 소단원에서 유영석의 ‘네모의 꿈’,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 악보 등 다양한 대중가요가 나온다. 금성출판사 음악교과서도 박춘석의 ‘아리랑 목동’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까지 다채로운 대중가요가 실렸다. 교과부 관계자는 “고전음악이나 가곡 일색이었던 음악 교과서에서 이처럼 최신 아이돌까지 다룬 것은 처음”이라면서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유발해 학습 효과를 거두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내달 일본서 컴백하는 김연아 ‘피겨퀸의 아리랑’ 응원영상 공개

    내달 일본서 컴백하는 김연아 ‘피겨퀸의 아리랑’ 응원영상 공개

     1년여만에 은반에 컴백하는 ‘피겨여왕’ 김연아(21·고려대)를 응원하는 ‘피겨퀸의 아리랑’ 동영상이 공개돼 네티즌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김연아는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이 동영상은 김연아의 지난 해 활약상을 파노라마 방식으로 담았다. 웅장한 음색의 아리랑을 배경으로 활용해 탄성을 자아낸다. 또 캐나다 동계올림픽이 끝난 지난 해 3월 토론토에서 김연아와 저녁식사를 함께 한 ‘골든 제로 디너파티’ 의 참석자 인터뷰도 실어 당시의 추억과 감동을 되새겨 준다. 삼성전자가 만든 이 행사는 1682대1이란 엄청난 경쟁률 끝에 10명이 행운을 잡았었다.  이 동영상은 김연아가 도쿄에서 아리랑을 각색한 ‘오마주 투 코리아’로 펼칠 프로그램에 대한 궁금증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동영상에서는 ‘당신의 응원이 감미로운 음악이 되고, 당신의 함성이 아름다운 점프가 됩니다’라는 자막도 곁들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벤쿠버의 감동을 떠올리게 해 울컥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는 반응이다.  한편 삼성전자는 ‘김연아 세계선수권대회 응원단’ 이벤트를 3월 15일까지 진행한다. 도쿄 경기 관람 기회와 함께 현지 숙박 및 항공권까지 지원한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대전현충원 안장묘 국내 최다

    대전현충원의 안장 묘가 서울 동작동 서울현충원을 추월했다. 1982년 첫 안장 후 29년 만이다. 국립대전현충원은 지난 20일까지 유성구 갑동 매장묘역에 5만 4778위가 안장돼 서울현충원의 5만 4443위를 넘어섰다고 21일 밝혔다. 1956년부터 안장을 시작한 서울현충원이 1985년 만장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매장을 중단한 것도 이런 결과를 낳았다. 대전현충원은 지금도 1만 500위의 매장묘 여분이 남아 있다. 이곳은 나들이객도 많아 지난해 방문객이 220만명으로 서울 217만명을 앞질렀다. 서울현충원은 전체 143만㎡ 중 묘역이 24%인 35만㎡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현충원에는 이승만·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과 한글학자 주시경, 물산장려운동을 주도한 조만식, 시인 이은상 등이 안장돼 있다. 대전은 국가원수로 최규하 전 대통령만 안장돼 있지만 마라토너 손기정, 아동문학가 윤석중, 민족영화 ‘아리랑’ 제작자 나운규,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전 사무총장,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등도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평창의 꿈★ 특별법으로 지원할 것”

    “평창의 꿈★ 특별법으로 지원할 것”

    정부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 특별법 제정을 통해 강력히 지원하겠다고 거듭 천명했다. 정부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평가단의 강원도 평창 실사 사흘째인 18일 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프레젠테이션에서 올림픽 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재정 및 법적 지원, 세관 및 출입국 절차 등에 대한 정부 보증을 약속했다. 평창유치위는 “현행 법령만으로도 올림픽 개최가 가능하지만 특별법 제정을 통해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특별법이 제정되면 조직위원회 관련 시설 건립과 수익사업이 더욱 손쉬워진다. 또 동계올림픽 개최 때 적자가 발생하면 중앙정부와 강원도가 공동으로 보증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IOC 평가단은 프레젠테이션을 받은 뒤 빙상경기장이 몰려 있는 강릉으로 이동, 현장 점검을 벌였다. 강릉의 ‘코스탈 클러스터’에는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 아이스하키, 컬링 등이 열리는 빙상장이 들어선다. 평가단은 강릉 영동대에 위치한 제2아이스하키 경기장 건립 예정지를 방문한 뒤 강릉 선수촌과 컬링, 피겨스케이팅, 스피드스케이팅장 예정지를 차례로 둘러봤다. 코스탈 클러스터는 컬링이 열리는 강릉빙상장만 완공된 상태여서 나머지 경기장에서는 대형 LED 전광판을 통한 3D(입체화면) 프레젠테이션을 펼쳤다. 강릉빙상장에서는 도민 2018명으로 구성된 연합 합창단이 ‘아리랑’과 스웨덴 출신 팝그룹 ‘아바(ABBA)’의 ‘아이 해브 어 드림(I have a dream)’을 합창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또 드림프로그램에 참가 중인 외국 청소년 35명이 스케이팅을 펼치자 일부 평가위원이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하도봉 유치위 사무총장은 “강릉에서 수만명의 시민들이 환영행사에 참여해 평가위원들이 속한 국가의 국기를 흔들었고, 지나가는 택시 기사까지 경적을 울리며 지역민들의 유치 열망을 보여줬다.”면서 “마지막까지 낮은 자세로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평창에는 김황식 국무총리를 비롯한 동계올림픽 관련 부처 장관들이 대거 출동했다. 김황식 총리는 평가단 초청 만찬을 열었고, 평창에 상주하다시피 하는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맹형규 행정안전부, 이귀남 법무부, 진수희 보건복지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과 조현오 경찰청장도 배석했다. 평가단은 실사 마지막 날인 19일 4개 주제의 프레젠테이션을 받은 뒤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평창 현지 실사를 총평한다. 평창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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