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뷰] 붉은전사의 끝없는 도전
꿈이 아닌 눈부신 현실로 우리 앞에 다가온 월드컵 4강,세상의 모든 눈과 귀를 멀게 한 붉은 전사의 끝은 어디인가.부산에서 시작된 승리의 퍼레이드는 대구와 인천을 거쳐 ‘우리의 16강 소원’을 완성했고,그래도 여전히 승리에 굶주린 ‘어린 개떼’들은 대전의 기적과 빛고을 광주의 감격을 뒤로 하고 마침내 요코하마로 가는 마지막 고향역,서울로 입성하고 말았다.
처음 우리의 희망은 소박했다.월드컵 1승만으로도 가슴 벅찰 수 있었고,꿈의 16강 진출만으로도 그동안 참담했던 월드컵 출전의 수모를 모두 갚을 수 있었다.그러나 세계최강 아주리 군단을 넘고 무적함대 스페인까지 침몰시킨 지금,붉은 전사는 ‘발칙하게도’ 월드컵 64번째 마지막 경기의 주인공으로 다가오고 있다.끝이 다가올수록 기적의 마침표는 점점 더 우리의 희망을 조여오지만,우리는 이제 남은 두 경기를 축제의 끝이자,기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우리에게 요코하마가 마지막이 되건,대구가 마지막이 되건 이미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며,신화가 아닌 현실이기 때문이다.
월드컵은 늘기적의 팀을 만들어 내곤 했다.66년 영국월드컵에서 북한은 이탈리아를 꺾고 기적의 8강을 이루어냈고,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유럽의 변방 벨기에는 4강에 오르며 공포의 ‘붉은악마’신드롬을 낳았다.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카메룬은 전대회 우승국 아르헨티나를 격침시키고 아프리카 최초로 8강에 올랐다.94년 미국월드컵에서는 그 전까지 단 한 번의 승리도 없었던 불가리아가 4강에 진출하며 발칸반도의 혁명을 일으켰다.그리고 98년 프랑스월드컵에 처녀출전한 신생독립국크로아티아는 골잡이 수케르를 앞세워 3위에 올랐다.
따지고 보면 한국은 늘 있어왔던 월드컵 이변의 후계자인 셈이다.그러나 끝나지않은,현재진행형인 붉은 전사의 도전은 남다른 데가 있다.그것은 그 도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과거 돌풍 국가들이 한 번도 오르지 못한 결승전 파티가 강력한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도전은 우승을 향한 도전이며,반란은 완벽한 꼴찌의 반란이다.개최국이면서도 예선통과에 비관적이었고,당초 우승확률 100분의 1에 불과했던 한국은 그 1%의 가능성을 99%의 현실로 바꿔가고 있는 중이다.
요코하마로 가기 위한 독일전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도전을 약속해 놓고 있다.축구변방국의 전인미답의 결승전 진출,그것은 월드컵 역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폴란드·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에 이어 독일마저 넘어선다면,붉은 전사는 신세기에 유럽 중심의 축구지형을 새로 그리게 할 것이다.
그리고 요코하마에 붉은 물결이 넘실대며,일본 열도로 진군하는 대사건을 기다려보자.붉은 전사와 붉은악마의 끝은 더 이상 경기결과로 종료될 수 없는,지속가능한 시작을 보게 한다.
이동연/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