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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인사이트] “혁명 7년간 나아진 게 없다”… 아랍국가들 ‘제2의 봄’ 조짐

    [글로벌 인사이트] “혁명 7년간 나아진 게 없다”… 아랍국가들 ‘제2의 봄’ 조짐

    “친구들이 앞, 뒤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쓰러져 죽어갔죠. 아직도 7년 전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2011년 1월, 스물아홉 살 청년이었던 모하메드 소게이어는 ‘아랍의 봄’ 진원지인 튀니지에서 일어난 ‘재스민 혁명’ 주역이다. 소게이어는 시디부지드 시청 앞에서 청과물 노점상을 하던 20대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경찰의 노점 압수에 항의하며 분신자살을 하자 친구들과 함께 거리로 나와 ‘타도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당시 대통령)’를 외쳤다. 독재 정권과 실업 등으로 분노에 찬 시민들의 궐기로 벤 알리 전 대통령은 부아지지가 숨진 지 열흘 만에 사우디아라비아로 도망쳐야 했다. 마침내 시민들은 24년간 권력을 누려 온 벤 알리 전 대통령을 스스로의 힘으로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 중동·아프리카 사상 최초로 민중이 독재정권을 몰락시킨 것이다. 그해 혁명은 인근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모로코, 예멘, 바레인 등으로 번졌다. 이집트에서는 독재를 이어 오던 무하마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했고, 리비아에서는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예멘에서는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정권에서 내려오면서 아랍의 봄이 찾아왔다.지난 1월 14일, 소게이어는 수천명의 시민들과 또다시 거리로 나왔다. 재스민 혁명 7주년을 맞은 이날 수도 튀니스에서는 혁명을 기념하는 행진이 평화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어둠이 내리면서 튀니스의 빈민가인 에타다멘을 중심으로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이 발생했다. 시민들은 경찰에 돌을 던졌고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를 진압했다. 매년 1월 튀니지에서는 재스민 혁명 기념일을 전후로 시위가 발생하지만, 정부의 긴축정책 발표가 나온 올해 초 시위는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 20여개 도시에서 800명 이상의 시민들이 체포됐으며 시위 과정에서 1명이 숨졌고 수십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란·요르단·알제리서도 반정부 시위 소게이어는 “튀니지에서 현재 젊은이들이 살아갈 방법은 없다고 보면 된다”며 “내 또래의 젊은 남성들이 결혼이나 가정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오랫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현재 카페에서 일하며 일당 6~8달러로 생활한다는 그는 “혁명에 희망을 걸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면서 “아랍의 봄 이후 대중의 분노는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랍 각국에서 경제 불황에 대한 불만이 커져 ‘아랍의 봄’이 다시 발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지난 5일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이란에서도 지난해 12월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로 금융기관 도산, 고물가, 실업률 상승 등을 막지 못해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데 이어 요르단과 알제리에서도 올해 초 식량 가격 인상과 공공 지출 삭감에 반발한 반정부 행동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튀니지는 2011년 혁명 이후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이룬 나라이지만, 정치적 업적이 경제적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튀니지는 경제 붕괴를 피하기 위해 2015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28억 달러(약 3조 130억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았으나 경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최대 문제는 44%에 달하는 실업이었다. 튀니지 정부는 IMF의 긴급 조치 요구에 올해 초 공무원 채용 제한, 조기 퇴직, 임금 동결 등의 긴축 방안과 세금 인상안을 내놓았다. 고통스러운 긴축 프로그램이 가동되자 실업난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민들은 7년 만에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사우디 반발 심해 며칠 새 보조금 부활 ‘아랍의 봄’ 당시 많은 아랍 국가가 혁명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후 대부분은 불안한 시민들을 억제하기 위해 강압적인 통치 체제로 되돌아갔다. 문제는 ‘경제’였다. 그동안 중동 국가 운영의 핵심은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는 대신 ‘오일 머니’로 벌어들이는 국가 수입을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낮은 유가가 지속되면서 이들 국가들은 경제 불황과 예산 적자, 쌓여 가는 외채에 시달려 재정 고삐를 조여야 했다. 올 초 아랍 지역에서 연이어 벌어진 반정부 시위는 그동안 식량과 연료에 대해 보조금을 넉넉히 지급하는 것으로 민심을 달래 온 아랍 정부들이 재정적자 때문에 보조금을 줄이고 세금과 공공요금을 올리자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이집트도 IMF 구제금융을 120억 달러(약 12조 9100억원)나 받았고 보조금을 대폭 삭감했다. 지난해 8월 전기요금을 최대 42% 인상하고,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면서 인플레이션은 한때 30년 이래 최고치인 30% 가까이 치솟았다. 이집트 청년 실업률은 30%를 웃돈다. 다만 독재정치가 강화된 탓에 국민 불만은 억눌려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개혁과 민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는 경제구조 개혁의 일환으로 연료 보조금 축소와 부가가치세(5%) 도입을 단행했지만, 불만이 들끓자 며칠 만에 공무원과 군인에 대한 보조금을 부활시켰다. ●아랍 평균 실업률 30% ‘세계의 2.5배’ 전문가들은 강압적 통치와 국가보조금이 결합된 기존의 안정 유지 시스템을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했다. 아랍 국가들이 아랍의 봄 이후 이 시스템을 개혁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청년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역에서 실업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이 치명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아랍 국가들의 평균 실업률은 약 30%로 세계 평균인 약 12%보다 2.5배 높다. 라구이 아사드 미국 미네소타대 교수는 “중동 지역의 문제는 교육 성취율이 높아진 새로운 구직자들을 취약한 민간 부문이 흡수하지 못해 더욱 악화된 것”이라면서 “국가가 물러나면 민간 부문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아랍의 봄 이후 충족되지 않았던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도 지난 1월 “여러 아랍 국가에서 들끓는 국민들의 불만은 더욱 긴급한 조처가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면서 아랍 국가들을 향해 “일자리 창출을 가속화하라”고 경고했다. IMF는 아랍 국가들이 일자리를 늘리는 동시에 현재의 광범위한 보조금 제도보다는 빈곤층을 위한 현금 지급과 같은 보장 계층이 확실한 사회 보장 제도를 구축하기를 원하고 있다. ●“위기 극복 못하면 새로운 IS 나올 것” 마르완 무아세르 전 요르단 부총리는 “현 체제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새로운 정치·경제 담론을 내놓지 못하면 새로운 버전의 이슬람국가(IS)가 등장할 것이고, 현재의 사회 균열을 메우지 못한다면 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아랍의 봄을 맞게 될 것”이라면서 “아무도 7년 전 아랍의 봄이 일어날지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제2의 아랍의 봄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촛불시위는 ‘연대의 힘’ 보여준 사건”

    “촛불시위는 ‘연대의 힘’ 보여준 사건”

    ‘여자들은 자꾸…’ 등 세 권 동시 출간 “미국의 반전 운동가 조너선 셸은 혁명의 발원지는 결국 사람들의 심장이라 했죠. 보통 사람들이 연대를 통해 차이를 없애고 함께 두려움을 극복하는 순간이 변혁의 순간이 되는 걸 우리는 역사 속에서 많이 봐왔어요. 평범한 일상에서 놓치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연대의 순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의 예가 바로 한국의 촛불시위였죠. 그 결과 정권 교체가 성공적으로 이뤄졌고요. (트럼프 정권의) 미국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비법을 전수해 주세요.”(웃음)정치·철학·역사·문화를 넘나드는 통찰력 있는 에세이로 유명한 미국 저술가이자 사회운동가인 리베카 솔닛(56)이 “정의와 자유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힘이 여러 방식으로 펼쳐지는 나라에서 책이 출간돼 영광”이라며 “(미국의 정권 교체에도) 행운을 빌어달라”며 눈을 찡긋했다. 25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사옥 50주년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다. 이날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창비), ‘걷기의 인문학’(반비·개정판), ‘어둠 속의 희망’(창비·개정판) 등 세 권을 한꺼번에 펴낸 솔닛은 세계적인 페미니즘 저자로 꼽힌다. 솔닛은 “세 권의 책 모두 기존의 고정관념에 시야가 가려 보지 못했던 이야기에 대한 탐색이자 오래된 이야기를 깨뜨린다는 점, 저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특히 절판됐다 이번에 재출간된 ‘걷기의 인문학’에 들여보낸 새 서문에서 그는 한국의 촛불시위와 중동 전역을 휩쓴 아랍의 봄 시위 등을 “공적 공간에서 육체적으로 한데 모이는 경험, 눈으로 확인하는 경험,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경험,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걸어가는 경험”이라고 일컬으며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다운 힘의 경험”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신간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에서 데이트 폭력, 여성 혐오 살인, 디지털 성범죄 등 다양한 주제로 침묵을 거부하고 발화하기 시작한 여성들에 대해 짚은 그는 현재 미국 백악관도 여성 혐오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여성 혐오의 문화, 백인 우월주의가 팽배해 있는 곳, 남성성을 강화해 여성을 과거의 성 역할로 복귀시키려는 곳이 바로 현재 미국의 백악관입니다. 여성의 성기를 움켜쥐었다는 얘기를 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그로테스크하고 부끄러운 상황이죠.” “책을 통해 여성을 구시대적 성 역할에 얽어매려는 시도 등 여성에 대한 도전이 강화된 상황에서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인가, 행복한 삶이 인생의 목적에 타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는 그는 소셜 미디어라는 새로운 도구와 전략으로 무장한 새 세대의 페미니즘 물결을 낙관했다. “역사를 긴 호흡으로 바라보면 우리가 승리하는 중이라는 메시지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요즘도 전 세계에선 끔찍한 여성 인권 유린이 이뤄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성 차별 문제는 수천년간 지속돼 왔어요. 이걸 50년이란 짧은 시간 안에 다 해결할 순 없죠. 좌절해선 안 됩니다. 제 한평생 봐온 것은 여성의 삶이 변화하고 개선되어 왔다는 겁니다. 한국의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여성 BJ에 대한 살해 위협 등 한국의 여성 혐오 현상만 봐도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위협을 느끼고 있고 페미니스트들의 작업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증거예요.” 그는 페미니즘이 인권 운동의 한 부분이란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무기 살상, 가정 폭력, 빈곤, 사회적 불평등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페미니즘 운동의 진정한 의미이죠. 이처럼 페미니즘은 다양한 불평등 이슈와 교차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때문에 여러 문제와 통합해 접근한다면 페미니즘 운동은 궁극적으로 여성의 해방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해방을 이끌 거라 믿어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3000년 전 지중해 문명 흥망성쇠와 오늘

    3000년 전 지중해 문명 흥망성쇠와 오늘

    고대 지중해 세계사/에릭 클라인 지음/류형식 옮김/소와당/388쪽/2만 5000원 미국의 저명한 고고학자인 저자는 기원전 15세기부터 지중해 지역에서 형성됐던 청동기 문명을 인류 역사상 최초의 글로벌 체제라고 이야기한다. 이집트, 그리스 미케네, 시리아 지역의 히타이트 등이 국제 교류를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뒷받침하는 예로 크레타 섬의 그 유명한 크노소스 궁전에서 발굴된 벽화를 꼽기도 한다. 소를 타고 넘는 역동적인 모습을, 물감을 벽에 집어넣어 함께 말리는 프레스코 양식으로 표현한 이 벽화와 유사한 벽화들이 이집트 델에드다바, 이스라엘 델카브리, 터키 알랄라크, 시리아 콰트나 등에서도 발굴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약 300년간 번성했던 지중해 청동기 네트워크는 기원전 12세기 들어 갑자기 몰락하고 만다. 저자는 지중해 청동기 문명의 흥망성쇠를 지중해 각지에서 발굴된 점토판 외교 문서, 3000년간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던 무역선에서 건져 올린 유물 등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소설처럼 흥미지진하게 들려준다. 그러면서 “자연재해, 대규모 이주, 이주민과 정착민의 전쟁, 질병 등 다양한 원인이 한꺼번에 닥쳐와 지중해 청동기 문명이 막을 내리고 그 폐허에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 문명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저자가 지중해 청동기 문명의 형성과 성장, 균열과 몰락에 주목하는 까닭은 인류 역사상 두 번째 글로벌 체제인 당대에 던지는 시사점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 아랍의 봄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현대의 글로벌 경제, 국제 관계 및 체제와 긴밀하게 뒤엉킨 미국·유럽의 자산과 투자, 동아시아와 중동 산유국 등을 언급하며 “현대 사회와 유사하게 서로 긴밀하게 엮이어 있다가 무너졌던 3000년 전의 문명이 남긴 흔적들을 검토해 봄으로써 무언가 배울 점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애플은 지고 페이스북은 이기고… 험난한 중국의 상표권 소송

    애플은 지고 페이스북은 이기고… 험난한 중국의 상표권 소송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 사이트인 페이스북이 중국에서 ‘페이스 북’(face book)이란 브랜드를 등록한 회사를 상대로 한 저작권 소송에서 승소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9일 보도했다.  페이스북은 인터넷 사용자가 7억명인 중국 시장 진출이 막혀 있는데 이번 판결은 중국 정부가 페이스북에 대한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있다는 신호라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이번 소송과 관련 있는 한 변호사에 따르면 베이징 고급인민법원은 광둥성에 있는 중산펄리버드링스라는 회사가 2014년에 ‘페이스’와 ‘북’ 사이를 띄어쓴 ‘페이스 북’이라는 이름으로 상표권을 등록한 것을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 업체는 포테이토 칩이나 채소 통조림 같은 식품을 생산한다.  중국 현행법상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를 보유한 다국적 기업은 중국 내에서도 이 상표가 잘 알려졌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페이스북은 세계에서 인터넷 이용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중국 정부에 구애해왔다.  이 회사의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는 지난 3월 중국을 방문해 인터넷 분야를 담당하는 류윈산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면담했으며 최악의 스모그 속에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조깅하기도 했다.  FT는 페이스북 금지 조치가 해제된다고 하더라도 엄격한 조건이 따를 것이라고 전했다.  페이스북은 2011년 아랍의 봄 혁명 때 민주화 시위대의 소통 수단으로 위력을 발휘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은 지난주에 언론을 통해 알려진 애플의 저작권 소송 결과와 엇갈린다.  중국에서 애플의 아이폰(iPhone)이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도 베이징 고급인민법원은 중국의 가죽제품 업체 신퉁톈디가 ‘IPHONE’이라는 상표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애플은 최고인민법원에 상고하기로 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모바일 픽!] 시리아女 헤어스타일로 본 100년史

    [모바일 픽!] 시리아女 헤어스타일로 본 100년史

    오래 지속된 내전과 이슬람국가(IS)의 준동으로 중동 국가 시리아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전에 없던 수준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이런 관심은 알아사드 대통령 가문의 2대에 걸친 철권통치,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오랜 내전 등의 이슈로 인해 정치 및 군사 측면에 집중된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국민 생활상의 사소한 변화가 국가의 흥망을 가장 잘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영상 전문 웹사이트이자 유튜브 채널인 ‘컷닷컴’(Cut.com)이 시리아 여성들의 지난 100년간 스타일 변화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동영상을 제작해 시선을 모았다. 이번 영상은 컷닷컴이 연재하고 있는 동영상 시리즈 ‘미용의 100년’(100 years of beauty)의 20번째 에피소드로 마련된 것이다. 그간 컷닷컴은 이 시리즈를 통해 남북한의 스타일 변화상을 서로 비교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온 바 있다. 영상의 기본 형식은 1명의 모델을 기용, 특정 국가 여성들의 패션 트렌드 변화를 10년 단위로 연이어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영상은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정치색’이 짙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시리아 국민의 민의를 대변하면서 동시대 여성들의 정신과 외모에 큰 영향을 미쳤던 상징적 인물들을 선정, 그들의 스타일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 컷닷컴에 따르면 시리아 여성들의 스타일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오스만 제국의 시리아 통치 말기인 1910년대부터다. 영상 속에서는 회색 스카프로 머리를 가린 채 옅은 화장과 보수적 헤어스타일로 꾸민 모습으로 묘사된다. 20년대 1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유럽 열강은 중동에의 식민지배에 나서자 프랑스 또한 시리아 내 시아파 분파인 알라위파와 연합, 시리아인 사이에 분란을 조장하며 식민통치를 시작했다. 이 시기 시리아의 주권확립과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싸우며 ‘아랍의 잔다르크’로 불렸던 ‘나지크 알아비드’의 스타일은 당대 여성들에게 귀감이 됐다. 알아비드의 패션은 시리아의 전통과 주권국가로서의 미래를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었다고 컷닷컴은 평가한다. 30년대로 넘어와 시리아는 프랑스의 식민통치에 대한 분노정서에 휩싸여 있었으나, 동시에 집중적으로 서양문물에 노출됐다. 당시 활동한 대표적 여가수 아스마한은 이 모순적 상황을 잘 대표하는 인물이다. 서구식의 화려한 헤어스타일로 치장한 그녀는 프랑스의 억압에 적극 저항하던 가문의 일원이기도 했다. 40년대에도 아스마한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이 시기 그녀는 이전보다도 짙은 입술 색, 진주목걸이, 머릿수건 등을 포인트로 삼았는데, 이는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 시리아 수니파 정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일시적으로 안정됐던 당시 정세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안정세는 50년대에 깨지고 만다. 49년부터 54년까지 시리아에서는 다섯 차례의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는 등 혼란상이 발생했었다. 이시기의 미의 기준이 된 인물은 52년 시리아 미인대회 수상자 레일라 티브리즈 토우마다. 63년, 아사드 가문이 이끄는 바스(Ba’ath)당이 군부 쿠데타를 일으키고 사회주의 정권이 자리를 잡는다. 이러한 억압적 분위기에 시리아 국민들은 타국가 국민들과 유사하게 예술적 저항을 시작하는데, 진한 눈 화장과 두건으로 꾸민 당대 소설가 가다 알사만의 강렬한 스타일도 이런 경향을 따른 것이다.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던 70년대를 지나 80년대에는 하페즈 알아사드가 이끈 인종청소가 시작됐으며 수천 명의 희생자를 발생시킨 82년 하마(Hama) 학살 등 거대 규모의 참극이 벌어졌다. 하페즈 정권은 90년대가 끝날 때까지 지속됐다. 이 시기동안 여성들의 스타일은 과거에 비해 급격히 수수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2000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잡은 바샤르 알아사드는 지금까지 독재정치를 이어나가고 있다. 2000년대를 상징하는 여성상으로는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인 여배우 파드와 솔리만이 꼽혔다. 2010년대, 중동 전역을 물들였던 아랍의 봄 운동에 영향을 받아 시리아에서도 반정부 평화시위가 시작됐다. 그러나 알아사드가 이를 무력으로 잔인하게 진압하며 내전이 시작됐다. 컷닷컴이 2010년을 대표하는 시리아의 얼굴로 꼽은 것은 반정부 시위에 나서 시리아 국기가 그려진 손가락을 내뻗고 있는 한 어린 소녀다. 사진=ⓒ컷닷컴/유튜브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굴곡진 100년史와 함께 변천한 시리아 여성 패션

    굴곡진 100년史와 함께 변천한 시리아 여성 패션

    오래 지속된 내전과 이슬람국가(IS)의 준동으로 중동 국가 시리아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전에 없던 수준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이런 관심은 알아사드 대통령 가문의 2대에 걸친 철권통치,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오랜 내전 등의 이슈로 인해 정치 및 군사 측면에 집중된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국민 생활상의 사소한 변화가 국가의 흥망을 가장 잘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영상 전문 웹사이트이자 유튜브 채널인 ‘컷닷컴’(Cut.com)이 시리아 여성들의 지난 100년간 스타일 변화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동영상을 제작해 시선을 모았다. 이번 영상은 컷닷컴이 연재하고 있는 동영상 시리즈 ‘미용의 100년’(100 years of beauty)의 20번째 에피소드로 마련된 것이다. 그간 컷닷컴은 이 시리즈를 통해 남북한의 스타일 변화상을 서로 비교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온 바 있다. 영상의 기본 형식은 1명의 모델을 기용, 특정 국가 여성들의 패션 트렌드 변화를 10년 단위로 연이어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영상은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정치색’이 짙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시리아 국민의 민의를 대변하면서 동시대 여성들의 정신과 외모에 큰 영향을 미쳤던 상징적 인물들을 선정, 그들의 스타일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 컷닷컴에 따르면 시리아 여성들의 스타일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오스만 제국의 시리아 통치 말기인 1910년대부터다. 영상 속에서는 회색 스카프로 머리를 가린 채 옅은 화장과 보수적 헤어스타일로 꾸민 모습으로 묘사된다. 20년대 1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유럽 열강은 중동에의 식민지배에 나서자 프랑스 또한 시리아 내 시아파 분파인 알라위파와 연합, 시리아인 사이에 분란을 조장하며 식민통치를 시작했다. 이 시기 시리아의 주권확립과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싸우며 ‘아랍의 잔다르크’로 불렸던 ‘나지크 알아비드’의 스타일은 당대 여성들에게 귀감이 됐다. 알아비드의 패션은 시리아의 전통과 주권국가로서의 미래를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었다고 컷닷컴은 평가한다. 30년대로 넘어와 시리아는 프랑스의 식민통치에 대한 분노정서에 휩싸여 있었으나, 동시에 집중적으로 서양문물에 노출됐다. 당시 활동한 대표적 여가수 아스마한은 이 모순적 상황을 잘 대표하는 인물이다. 서구식의 화려한 헤어스타일로 치장한 그녀는 프랑스의 억압에 적극 저항하던 가문의 일원이기도 했다. 40년대에도 아스마한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이 시기 그녀는 이전보다도 짙은 입술 색, 진주목걸이, 머릿수건 등을 포인트로 삼았는데, 이는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 시리아 수니파 정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일시적으로 안정됐던 당시 정세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안정세는 50년대에 깨지고 만다. 49년부터 54년까지 시리아에서는 다섯 차례의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는 등 혼란상이 발생했었다. 이시기의 미의 기준이 된 인물은 52년 시리아 미인대회 수상자 레일라 티브리즈 토우마다. 63년, 아사드 가문이 이끄는 바스(Ba’ath)당이 군부 쿠데타를 일으키고 사회주의 정권이 자리를 잡는다. 이러한 억압적 분위기에 시리아 국민들은 타국가 국민들과 유사하게 예술적 저항을 시작하는데, 진한 눈 화장과 두건으로 꾸민 당대 소설가 가다 알사만의 강렬한 스타일도 이런 경향을 따른 것이다.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던 70년대를 지나 80년대에는 하페즈 알아사드가 이끈 인종청소가 시작됐으며 수천 명의 희생자를 발생시킨 82년 하마(Hama) 학살 등 거대 규모의 참극이 벌어졌다. 하페즈 정권은 90년대가 끝날 때까지 지속됐다. 이 시기동안 여성들의 스타일은 과거에 비해 급격히 수수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2000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잡은 바샤르 알아사드는 지금까지 독재정치를 이어나가고 있다. 2000년대를 상징하는 여성상으로는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인 여배우 파드와 솔리만이 꼽혔다. 2010년대, 중동 전역을 물들였던 아랍의 봄 운동에 영향을 받아 시리아에서도 반정부 평화시위가 시작됐다. 그러나 알아사드가 이를 무력으로 잔인하게 진압하며 내전이 시작됐다. 컷닷컴이 2010년을 대표하는 시리아의 얼굴로 꼽은 것은 반정부 시위에 나서 시리아 국기가 그려진 손가락을 내뻗고 있는 한 어린 소녀다. 사진=ⓒ컷닷컴/유튜브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거꾸로 간 이집트, 붕괴 직전 시리아… 신기루 같은 ‘아랍의 봄’

    [글로벌 인사이트] 거꾸로 간 이집트, 붕괴 직전 시리아… 신기루 같은 ‘아랍의 봄’

    ‘봄은 없었다.’ 2011년 1월 14일 튀니지의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의 하야 성명은 중동·아프리카에 거대한 시민혁명을 촉발시켰다. 재스민혁명으로도 불리는 ‘아랍의 봄’이다. 과일 행상을 하던 20대 청년이 경찰 단속에 항의하며 몸에 불을 붙인 게 도화선이 됐다. 이후 주변국들로 불똥이 튀었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 등이 잇따라 사임하거나 성난 군중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20~40여년간 철권통치를 이어온 독재자들은 불과 1년 사이에 축출됐다. 5년이 지난 지금 ‘아랍의 봄’은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독재자를 몰아낸 민주화 바람 뒤에는 부족·종파 간 갈등이 불거졌고, “빵과 자유를 달라”던 외침 이후에는 더욱 가혹한 경기 침체가 닥쳤다. 주민의 삶은 더 팍팍해졌고, 모든 게 아랍의 봄 탓이라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21일(현지시간) 시리아 중부도시 홈스에서는 연쇄 차량 폭탄테러로 최소 57명이 사망했다고 현지 국영 TV 등이 전했다.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의 시아파 사원에서도 폭발로 최소 83명이 숨졌다. 북부 외곽 알레포에서는 러시아의 공습으로 이슬람국가(IS) 대원 50명 이상이 숨지는 등 대규모 유혈사태가 잇따랐다. 사망자 대다수는 민간인이었다. 시리아에서 5년째 계속되는 선연한 피냄새가 아랍의 봄 현주소를 대변한 셈이다. 민주화라는 ‘이상’이 힘의 공백이란 ‘현실’에 밀리면서 혼란은 극대화됐다. 쿠데타와 내전, 극단주의 무장단체 IS의 발호는 혼란을 부추겼다. 이집트에선 또다시 군부가 등장했고, 리비아는 국토가 동서로 갈라져 좀처럼 분열의 끝을 알 수 없다.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은 튀니지나 모로코에서도 정치·경제적 불안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봄은 왔으나 한겨울 냉기가 넘치는 아랍의 봄을 놓고 “이런 혼란을 겪으려고 우리가 혁명을 했나”란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들릴 정도다. ●이집트 다시 독재 정권… 시리아 24만명 희생 민주화 성공 사례로 꼽혔던 이집트는 거꾸로 갔다. 지난 12일, 30년간 철권통치를 이어온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퇴임 5주년을 맞았으나 혼란의 종점은 보이지 않는다. 2011년 11월 이슬람 극단주의를 표방한 무슬림형제단이 선거를 통해 합법적 정부를 수립했으나 2013년 압둘팟타흐 시시가 주도한 군부 쿠데타로 독재 정부로 회귀했다. 시시는 스스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이 됐다. 올해에도 민주화 운동의 성지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을 봉쇄하고 대대적인 반정부 인사 탄압을 이어 갔다.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이집트에선 지금까지 최소 4만명이 반정부 시위로 체포됐다. 독재에 맞섰던 리비아, 예멘, 시리아에선 내전으로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리비아와 예멘은 독재자를 축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정권 이양 과정에서 내전에 휘말렸다. 리비아는 42년간 독재를 펼친 카다피가 시민군에 사살된 뒤 불과 한 달 만인 2011년 11월 과도정부를 구성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일 정부를 출범시키지 못하고 있다. 종파·부족 간 분열 탓이다. 수도 트리폴리에 거점을 둔 세력과 토브루크에 거점을 둔 세력이 서로 정통 정부라며 경쟁하는 사이 북부 해안 지역을 IS와 알샤바브 등 극단주의 단체들이 점령했다. 예멘은 2012년 2월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이 선출돼 평화적 정권 이양에 성공했다. 하지만 경제난이 발목을 잡았다. 2014년 9월 연료비 인상에 반대하는 시아파 후티 반군이 수도 사나를 공격했고, 이듬해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연합군이 참전하는 종파 간 내전을 불러왔다. 시리아는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퇴진을 거부했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5년째 반군과 내전을 이어오면서 벌써 24만명 가까운 국민이 희생됐다. 수니파 반군을 지원하는 미국, 영국 등 서방국과 시아파인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러시아, 이란이 전선을 형성하면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시리아 북부 락까를 근거로 한 IS가 세력을 넓히고, 자치정부를 구성한 쿠르드족 문제까지 겹치면서 혼란은 커졌다. 여기에 수니파 국가인 터키와 사우디가 개입을 선언하면서 ‘완전한’ 휴전이 가능할지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내전을 피해 시리아를 탈출한 500만명 가까운 난민 상당수가 유럽으로 건너가면서 유럽까지 시리아 내전의 후폭풍에 휘말린 상태다. 바레인에선 시민 봉기가 끊이지 않는다. 국민 다수를 차지한 시아파는 수니파 왕정 타도를 부르짖고 있다. 발원지인 튀니지는 2014년 민주 정부를 수립했으나 경기 침체와 정치 불안정으로 위태로운 줄타기를 이어 가고 있다. 실업률은 15%에 육박했다. 2011년 7월 입헌군주정을 출범시킨 모로코도 경제난 탓에 정국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종파 간 갈등·쿠르드족 문제 불씨로 남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칼럼에서 “이 지역에선 힘의 공백뿐 아니라 ‘가치의 공백’도 큰 문제”라며 “과거 서구 열강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발흥한 ‘아랍민족주의’가 아랍 국민 대다수를 한데 모을 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랍국은 서구 제국주의가 인위적으로 국경을 긋고 식민통치한 뒤 불과 반세기 전에야 독립한 나라가 대부분이다. 국민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이 부족한 데다 냉전시대를 거치며각기 미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아 독재자들이 철권통치를 공고히 했다. 서방국이 나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이유다. 일각에선 유럽 민주화에 200년, 아시아가 50년 가까운 기간이 소요된 만큼 벌써부터 아랍의 봄의 성패를 논하는 건 무리라는 분석도 있다. 이런 가운데 아랍권에선 포스트 아랍의 봄을 둘러싸고 급변하는 정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시아파 국가에 영향력을 확대 중인 이란과 쿠르드족 문제다.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의 득세는 아랍의 봄으로 상처 입은 주변 시아파 무슬림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질 전망이다. 쿠르드족도 문제가 될 공산이 크다. 중동 국가는 쿠르드족 자치권을 놓고 큰 갈등을 빚고 있다. 이라크 전쟁과 시리아 내전의 가장 큰 수혜자는 서방 국가의 도움을 얻어 이 지역에서 자치정부를 수립한 쿠르드족이다. 이들은 향후 아랍권 안보에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예컨대 터키에만 1500만명의 쿠르드족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쿠르드노동자당(PKK)을 통해 정치적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시리아 북부에 근거한 쿠르드 무장조직인 인민수비대(YPG)와 연계되면서 터키는 남과 북이 쿠르드 세력으로 둘러싸인 상황이 됐다. 쿠르드족을 탄압해 온 터키 정부로선 쿠르드족 단체들과 사실상 전쟁을 수행 중이다. 미국의 역할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아랍권 독재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수니파 반군을 지원해 온 미국은 알카에다와 IS라는 괴물을 키운 장본인이다. 하지만 최근 시리아 휴전협정을 주도하면서 복잡한 이 지역 정세에서 서서히 발을 빼려 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미국이 등을 돌리면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부는 러시아와 이란을 등에 업고 가혹한 탄압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 반군 상당수는 같은 수니파 계열인 IS로 합류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현재 미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골치 아픈 상황”이라며 “오바마 행정부는 내부적으로 이제 중동에 다시 군사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는 만큼 휴전 성립이야말로 미국이 도출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봄은 없었다”… 청년들의 분노

    시아파 수천명 페인트 폭탄·화염병 투척 경찰과 충돌… ‘종파 간 내전’ 확전 우려 입헌군주국 바레인에서 2011년 촉발된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 5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화염병과 페인트 폭탄이 등장한 시위에서 이슬람 시아파 시위대는 소수 수니파 지배층을 대변하는 왕정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서 자칫 종파 간 내전으로 확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AP 등 외신은 14일(현지시간) 바레인 수도 마나마 남부의 시아파 거주지를 중심으로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고 전했다. 시위대는 아랍의 봄 봉기 당시 중심지였던 펄 광장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들고 거리에 나섰다. 청년 수백명이 이끄는 수천명 규모의 시위대는 인근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화염병을 투척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주요 길목을 선점한 진압 경찰의 최루가스에 막혀 하루 만에 해산했다. 바레인 경찰은 시위를 주도하고 공공 기물을 파손한 혐의로 미성년자 등이 포함된 청년들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바레인의 정치 상황을 거론하며 이번 시위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1971년 영국에서 독립한 바레인에선 1999년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가 왕위에 오른 뒤 철권 통치가 이어지고 있다. 의회도 왕정의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에 2011년 아랍의 봄 시위 당시에는 걸프지역 국가 중 가장 많은 15만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하지만 하마드 국왕은 같은 수니파 왕정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의 지원을 얻어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3000명 이상이 투옥됐고, 사망자가 속출했다. 국제앰네스티(AI)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 5년간 바레인에서 폭력과 고문이 일상화됐다고 지적했고,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바레인을 미국의 불쾌한 우방으로 꼽았다. 바레인의 시위 확산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중동에서 수니파와 시아파 간 종파 대결구도가 확고해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하마드 국왕은 수니파의 비호를 받고 있어 국민의 다수를 이루는 시아파는 늘 왕정에 불만을 품고 있다. 지난달에는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적 충돌 속에 바레인 정부가 이란 혁명수비대와 연계된 테러조직을 검거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은 지금까지 바레인 내정에 표면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있으나, 입장을 바꿀 경우 언제든지 내전이 불거질 수 있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자생적 테러리스트·서방 공격 본격화… IS테러의 진화

    프랑스 파리 테러로 최소 132명을 숨지게 한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용의자 다수가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 국적자로 드러났다. 14년 전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9·11 테러 용의자 다수가 친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었지만 그래도 그 안에 미국 국적자는 없었던 점과 대비된다. 테러 대상이 된 국가의 학교를 다녔던 극단주의자, 즉 ‘토종 테러리스트’가 출현한 것은 기존의 테러 대응 방식이 시효를 다했음을 보여준다. 각국이 공항 검색을 강화하고 테러 공습에 참여하지만 ‘테러 공포’가 사그라들지 않는 상황이 됐다. 극단주의자들이 일으키는 ‘유목형 테러’ 앞에서 경계 대상이 ‘이방인’이었다면 같은 학교와 슈퍼마켓을 공유하던 청년이 돌변해 일으키는 ‘정주형 테러’ 앞에선 ‘이웃’ 모두가 경계 대상이 되는 신뢰의 위기가 닥쳤다. 더욱이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 국면에서 ‘제국 대 악의 축’이란 전선이 뚜렷했다면 이제는 ‘제국 내부 모순’이 테러 자양분을 제공하게 됐다. 11·13 파리 테러 용의자인 오마르 이스마일 모스테파이(29)가 프랑스 학교에서 교육받은 알제리계로 2013~14년 시리아에서 테러 훈련을 받은 점에 비춰 보면 모스테파이의 극단주의가 알제리계에 대한 사회·경제적 차별에서 배태됐는지, 시리아 내전 이후 정치 지형 속에서 이식받은 것인지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이다. 외부 영향에 취약한 10~20대가 자생적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파리 테러는 IS가 본격적으로 서방 테러에 나섰다는 증좌다. 뉴욕타임스(NYT)는 “IS가 시리아와 이라크 거점 지역에서의 전투보다 세계 곳곳에서의 테러에 전력을 집중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꿨다”고 15일 분석, 보도했다. 지난달 31일 이집트 시나이 반도 상공에서의 러시아 여객기 폭발 테러, 지난 12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의 자살 폭탄 테러에 이어 파리 테러를 잇따라 벌이며 IS가 서방에 선전포고를 했다는 얘기다. 3번의 테러로 인한 사망자 수는 최소 399명으로, IS가 2주 만에 시리아에 가 본 적도 없는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증폭시켰다. 불과 2주일 만에 서방에 ‘테러 공포’를 확실히 심었듯이 IS는 이미 중동 지역에서 알카에다와 다른 전략, 다른 역량을 선보인 바 있다. 2004년쯤 알카에다의 이라크 지부였던 IS는 이라크 후세인 정권에서 군과 정보기관에 속해 있다 이라크전쟁 뒤 미군에 의해 축출당한 군부 세력을 영입한 2010년 이후부터 세를 크게 키웠다. 테러단체로 지목됐던 알카에다와 다르게 IS는 정통 이슬람 국가를 자처했다. 내전 중인 시리아로 진출해 락까를 점령한 IS는 다시 이라크로 눈을 돌려 제2도시인 모술을 점령했다. IS는 집단 학살, 인질 살해, 성노예화, 고대 유물 파괴 등을 자행했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신들을 정통 무슬림 국가로 홍보했다. 미국 정보당국 등은 IS를 추종하는 트위터 계정이 5만여개, 계정별 팔로어가 평균 1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부터 유럽과 미국 등지에선 IS 추종자임을 밝힌 ‘외로운 늑대’에 의한 테러 시도가 여러 차례 적발됐다. 서방 정보기관은 외로운 늑대가 양산되는 현상을 청소년들의 일탈 행위쯤으로 치부했지만 실상 IS는 지난해부터 외로운 늑대를 전략적으로 양성했다. 반테러 분석가 할린 감비르에 따르면 ▲이라크·시리아 전선 구축 ▲중동 지역 테러 집단과의 연계 ▲서방 외로운 늑대 양성이 IS의 3대 전략에 포함됐다. IS 본거지인 시리아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다시 주목받게 됐다. 사실상 실패한 국가로서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민주화를 주창했던 이들에게 폭격을 가해 반군으로 만들었고, IS에 대항하지 못하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퇴위시키자는 미국 등 서방과 그를 그대로 권좌에 두고 재무장시키자는 러시아가 맞서고 있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IS 궤멸을 위한 지상군 투입을 꺼리는 가운데 서방 정보기관의 오래된 예언이 맞아떨어진 대목도 있다. 중동 지역 정세가 안정되지 않는 한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단체가 궤멸돼도 또 다른 테러 세력이 등장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은 9·11 테러 이후 14년 만의 11·13 테러로 증명됐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새벽 대사관 향해 기관총 40여발 난사

    새벽 대사관 향해 기관총 40여발 난사

    12일 새벽 1시 20분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한국대사관. 대사관저와 2층짜리 대사관 건물로 구성된 한국대사관 쪽으로 무장 괴한이 탄 차량이 접근해 경비초소를 향해 기관총 40여발을 무차별 난사했다.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의 트리폴리 지부 소속으로 알려진 괴한들의 공격으로 대사관을 경호하던 리비아 내무부 소속 외교단 경찰관 3명 중 2명이 총탄에 맞아 숨졌다. 총격 당시 한국대사관 숙소에는 외교관 2명과 행정직원 1명 등이 남아 있었지만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트리폴리에 있는 외국 공관에 대한 무장단체 공격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1월에도 아랍에미리트(UAE)대사관과 이집트대사관이 폭발물 테러를 당했다. 그런데 당시 무장단체가 건물을 붕괴시켜 대형 인명 피해를 노렸다면, 이번 한국대사관 공격은 업무가 끝난 한밤중 건물보다 사람을 겨냥해 조준 사격하는 방식으로 자행됐다. 때문에 외교부 관계자는 “가해자가 대사관을 겨냥했는지 아니면 반군 경찰을 겨냥했는지 아직 의도를 알 수 없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총격 두 시간여 뒤 새벽 3시가 넘어 IS 리비아 트리폴리 지부를 자처하는 단체가 발표한 내용을 봐도 범행 동기는 여전히 모호하다. 이들은 트위터에 “IS 트리폴리 지부는 다음과 같이 발표한다. 트리폴리의 준드 알킬라파는 한국대사관 경비 2명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IS 리비아 지부는 지난해 10월 부상한 무장단체다. 해당 트위터에 ‘타라불루스’라는 해시태그가 붙어 있어 IS의 산하조직 중 윌라야트 트리폴리타니아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보통 IS가 테러를 자인할 때 특정 국가 대사관 등을 지목하는 데 비해 이번 트위터 메시지에서 ‘한국대사관’이 아닌 ‘한국대사관 경비 2명’을 지목한 점이 이례적이란 평가다. 그러나 지난 1월 시리아에서 IS가 일본인 인질을 참수했듯이 전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IS 지부가 서방이 아닌 아시아 국가를 공격했을 여지도 열려 있다. IS 격퇴 작전에 직접 나선 적이 없고 인도적 지원만 하는 한국을 공격, 격퇴 작전에 연루된 비서방 국가에까지 경고를 보냈을 가능성이다. 한편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리비아의 장기 내전 상태가 악화 일로를 겪자 지난해 7월 정부는 튀니지에 임시 사무소를 마련했다. 이종국 주리비아 대사도 튀니지에 머물고 있다. 이날 테러를 계기로 외교부는 리비아 대사관에서 2명씩 교대로 근무 중인 외교관들을 튀니지로 재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이집트 또 축구장 참사… 경찰·팬 충돌 최소 30명 사망

    이집트 카이로에서 8일 밤(현지시간) 경기장에 입장하려던 축구 팬과 경찰이 충돌해 최소 30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날 사고는 이집트 프리미어리그 자말레크와 ENPPI 간 경기가 예정된 카이로 동북부 에어디펜스 스타디움에서 1만명 가까운 축구 팬이 입장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이집트 총리실은 관중들의 무질서가 사태를 초래했다며 이후 예정된 모든 국내 리그 경기를 무기한 연기했다. 하지만 CNN은 자말레크의 팬클럽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인용, 사고가 경찰과 시민 사이의 오랜 숙원(宿怨) 탓에 불거졌다고 분석했다. 이집트 경찰이 좁고 철조망이 쳐진 문 한 곳만을 개방하고 팬들을 입장시키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일어났고, 이때 경찰이 갑자기 예고 없이 최루탄을 발사하면서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는 설명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말을 빌려 경찰이 쏜 최루탄에 7세 아이가 맞아 그 자리에서 숨지고 축구장 안팎이 피바다를 이뤘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경찰이 출입문을 봉쇄한 채 소요 사태에 놀라 뛰어나오던 수천명의 입장객을 향해서도 최루탄을 난사했다고 덧붙였다. NYT는 이 같은 이집트의 축구장 소요 사태가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집트에서는 ‘아랍의 봄’ 이듬해인 2012년에도 카이로 북쪽 포트사이드의 축구장에서 축구 팬과 경찰이 충돌해 74명이 사망하고 1000여명이 부상을 입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이 사건은 양 팀 축구 팬 사이의 폭력 사태가 단초가 됐으나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등장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과 무슬림형제단의 폭정에 반한 소요 사태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이집트 법원은 2013년 경찰 측 피고 대부분에게 무죄를 선고한 반면, 축구 팬 21명에게는 사형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다시 40여명이 죽고 수백명이 다치는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다. 외신들은 이를 아랍의 봄 이후 가중된 사회불안이 배출구를 찾지 못해 빚어진 참사라고 해석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스티븐 내들러 지음, 김호경 옮김, 글항아리 펴냄)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명언으로 기억되는 네덜란드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는 급진적 사상가였다. 대표 저술 ‘신학정치론’(1670년)에서 성경은 신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문학작품이며, 참된 신앙은 제도화된 종교와 상관이 없고, 종교가 근대국가의 통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등 놀랄 만큼 전복적인 사유를 드러내 당대 유럽 철학계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당시 신성모독적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혔던 ‘신학정치론’은 스피노자가 주저인 ‘윤리학’을 쓰던 도중 갑작스럽게 신학과 정치적 문제로 관심을 급전환해서 썼던 책이다. 스피노자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는 스피노자가 왜 다분히 돌발적으로 ‘신학정치론’을 집필했는지 배경을 짚어준다. 성경을 정치개입 수단으로 이용하는 당시 풍토를 비판한 스피노자는 철학적 사고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정을 지지했다. 464쪽. 2만 5000원.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마이클 S 최 지음, 허석재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근대 국가의 대형 운동장과 고대 그리스 극장은 왜 모두 안쪽을 향한 원형으로 지어졌을까. 2008년 한국의 촛불시위, 2010년 아랍의 봄 국면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한국계 미국인으로 게임이론을 전공한 저자(UCLA 정치학과 교수)가 그 해답을 제시한다. 책에 따르면 사람들이 한데 뭉치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공유한 결과가 아니라 ‘메타 지식’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참여할 것이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고, 다른 사람들도 참여할 것이란 사실을 내가 알며, 다른 사람이 참여할 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도 아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쇄적 과정’이 전제됐다는 것. 이 같은 공유지식이 얼마나 잘 형성되느냐는 사회적 네트워크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게임이론을 사회과학 문제에 접목시켜 대중의 집합행동, 정치적 권위의 형성과 유지 등 다양한 사회현상을 분석한다. 170쪽. 1만 5000원. 사일런스(존 케이지 지음, 나현영 옮김, 오픈하우스 펴냄) ‘무정형성의 음악’으로 서양 현대 음악사를 개척한 천재적인 작곡가 존 케이지(1912~1992). 그의 음악 세계와 철학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1937~1961년에 각종 매체에 썼던 그의 기고문과 에세이, 강연문 등 23편이 담겼다. 현대음악, 실험음악, 실험음악사, 무용, 예술가론 등 다방면의 주제를 다양하게 다뤄 케이지의 예술관을 입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소리와 소음, 무와 유, 사유와 현상, 우연과 필연, 정확성과 부정확성 등 경계를 오가며, 수많은 예술가들이 아무런 저항감 없이 받아들인 기성의 개념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무용, 미술, 건축, 연극, 영화, 문학 등 전방위로 영향을 끼친 케이지의 독보적인 실험정신은 마치 그림을 그리듯 글자를 배열한 독특한 원고에서도 웅변된다. 악보에 음표를 그려 넣듯 텍스트를 실험한 케이지의 아이디어를 책갈피에서 확인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354쪽. 2만 8000원. 미래와 만나는 한국의 선비문화(한영우 지음, 세창출판사 펴냄) 원로 한국학자인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한국의 선비정신을 조명한 역사서다. 우리의 전통 선비정신을 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해당하는 미덕으로 꼽는 저자는 대한민국의 성공배경을 한국인 전체를 관통하는 그 정신 덕분에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선비정신이야말로 우리 조상이 물려준 우수한 문화적 유전인자이며 교육열, 성취욕, 근면성, 협동정신, 통합학문을 추구한 유교전통 등에 그 정신이 배어있다는 것. 책은 한국인의 선비정신을 우주관, 윤리, 예술, 정치로 나눠 특징을 살피고 그 전통이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어떻게 변용됐는지, 8.15광복 이후 서양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보여준 빛과 그늘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진단했다. 그러나 물질만능주의, 이기주의, 강자 위주의 사회질서 등 서양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드러낸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모도 지적했다. 332쪽. 2만원.
  • 투표시간까지 연장하며… 각본대로 권좌 오른 그들

    ■ 이집트 시시, 대통령 당선 확정… 최종 투표율 50%도 안 돼… 정당성 얻으려다 출발부터 ‘굴욕’ 압둘팟타흐 시시(60) 전 이집트 국방장관이 결국 새 대통령이 됐다. 선거일을 하루 연장하면서까지 투표율을 끌어올리려고 했지만 예상보다 저조한 결과에 시작부터 ‘굴욕’을 겪었다. 3일(현지시간) BBC방송 등에 따르면 이집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26~28일 치러진 대선 개표 결과 시시가 득표율 96.9%로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안와르 엘아시 선관위원장은 유권자 5400만명 중 시시가 2378만 표를 획득했으며 유일한 경쟁자인 함딘 삽바히는 3.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최종 투표율은 47.4%에 불과했다. 2012년 대선 투표율 52%보다도 4% 포인트가량 낮다. 당초 시시는 대선 투표율이 74% 정도는 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해 7월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전 대통령을 몰아낸 그는 이번 투표율을 통해 전 정권 축출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국민의 지지를 확인하려고 했으나 되레 정치적 타격만 입었다. 시시는 첫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제 이집트 재건을 위해 일해야 할 시간”이라며 자축했지만 당장 해결할 과제가 산더미다. 무르시 지지파는 ‘제3의 혁명’을 촉구하며 벌써부터 반발하고 있다. 빈약한 경제도 걱정이다. 낮은 외국인 투자와 관광객 축소로 이집트는 수년간 빈곤 상태다. 아랍의 봄 이후 가계경제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못 느낀 이집트인들이 민주화보다 경제 부흥을 외친 시시를 선택한 만큼 경제난 타파가 시급하다. 일각에서는 이런 상황 속에서 시시가 공포정치를 펼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미 이집트 내무부는 인터넷 감시를 확대하기로 했다. 미 백악관은 이날 “정치적으로 제약된 상황에서 선거가 치러졌다는 주장이 나오는 만큼 대통령이 국민의 보편적 권리를 보호하는 개혁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시리아 알아사드 3선 연임 확실시… 투표자 많단 이유로 5시간 연장… 동·북부선 투표 못해 ‘반쪽 대선’ 3년 넘게 이어진 내전으로 16만명이 숨진 시리아에서 3일(현지시간) 대선이 실시됐다. 결과는 5일 나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바샤르 알아사드(48) 대통령의 3선 연임이 확실시된다. 어차피 이번 선거는 알아사드가 당선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반쪽짜리’ 선거이기 때문이다. 반군이 장악한 동·북부 지역에 투표함조차 설치되지 않아 수백만명의 표가 공중에 날아갔고, 상대 후보들은 인지도가 낮아 경쟁력조차 없었다. 투표는 당초 오후 7시 종료 예정이었지만 “투표 대기자가 너무 많아 시간을 연장한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원칙 없는’ 발표에 밤 12시쯤 끝났다. 시리아 국영 사나(SANA) 통신 등은 이날 오전 7시부터 유권자들이 전국 9601곳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앞으로 7년 동안 시리아를 통치할 대통령을 선출하는 투표권을 행사했다고 보도했다. 시리아 내무부는 유권자가 1580만명이라고 밝혔지만 알레포를 비롯해 약 60%에 이르는 정부군 통제 밖의 지역에선 투표가 진행되지도 않았다. 난민 270만명 가운데 20만명만 투표권이 허용됐다. 이에 대해 CNN은 “역사상 가장 괴이한 민주주의의 패러디”라고 촌평했다. 마리 하프 미 국무부 부대변인도 이번 대선에 대해 “불명예스러운 선거”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대선 후다. 알아사드가 또다시 당선되면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에 이어 일가가 60년 동안 시리아를 통치하며 2대째 장기 독재를 이어가게 된다. 이미 알아사드 일가의 독재 정권 타도를 내걸고 2011년 3월부터 이어진 내전으로 시리아 국민 3분의1이 난민이 됐다. 특히 선거를 통해 명분을 쌓은 알아사드가 대대적인 반군 진압에 나설 것으로 예측돼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테헤란의 봄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취임 6개월 만에 수도 테헤란에 외국 기업인들로 해빙의 봄이 오고 있다고 AFP와 파이낸셜타임스 등이 3일 전했다. 지난해 8월 4일 취임한 로하니 대통령은 그해 11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을 받아들이면서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가 크게 완화됐다. 오는 11일은 1979년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란 혁명 발생 35주년이어서 로하니 대통령의 점진적 개혁이 주목을 받고 있다고 알자지라방송의 인터넷 영문판이 보도했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게리 시크 교수는 이란 혁명을 2011년 중동에서 발생한 ‘아랍의 봄’과 대비시켜 “종교적 극단적인 입장을 취했던 이란 혁명이 중도 실용적 노선으로 진화한 특이한 혁명”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20일부터 6개월 시한으로 경제 제재 조치가 해제됨에 따라 서방 측 기업가들이 이란을 경쟁적으로 찾고 있다. 잠정적으로 해제된 제재가 앞으로 더 풀릴 가능성도 높아 석유와 가스 시설과 관련된 기업인들이 이란 고위층과의 협력 관계를 맺기 위한 물밑 협상에 들어갔다. 프랑스 최대 민간 경제단체인 기업인연합회 소속 110개 이상의 회원사 대표로 구성된 방문단이 3일부터 사흘간 테헤란을 방문, 경제 협력방안을 모색한다. 정부 관계자들이 동행하는 대표단에는 자동차기업 르노와 푸조, 에너지 기업 토털, 통신사 오랑주 등 여러 분야의 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네덜란드와 독일 기업 대표단도 이란을 방문한다. 스웨덴의 카를 빌트 외교장관은 3일, 폴란드의 라도슬라브 시코르스키 외교장관은 이달 말쯤 이란을 방문해 외교, 경제 협력을 논의할 예정이다. 또 444일간 대사관 직원 인질 사태를 겪었던 미국의 일부 기업은 다른 나라를 통해 우회적으로 이란 진출 협상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2016년 미국 대선 출마가 유력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상원 민주·공화 양당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이란 추가 제재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 무슬림형제단 활동 금지 판결 親무르시 세력 총선 참여 불가

    무함마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의 기반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이 해산될 위기에 처했다. 23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집트 카이로 법원은 최대 이슬람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의 활동을 전면 금지하고 최종 판결 전까지 이들의 재산에 대해 몰수 명령을 내렸다고 현지 일간 알아흐람이 보도했다. 이로써 무슬림형제단은 보유해오던 건물, 자산, 현금을 사용할 수 없게 됐으며, 내년 초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총선에도 직접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이집트 군경이 지난 7월 무함마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의 강제 축출 이후 그의 지지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을 겨냥해 온 대대적인 단속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법원은 “무슬림형제단이 종교(이슬람)를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이용했고, 전술로 폭력을 사용해 왔다”고 지적했다. 앞서 세속주의 성향의 이집트 정당인 타가무당은 테러리스트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이 종교를 정치적 도구로 악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 같은 법원의 판결에 대해 무슬림형제단은 영국 런던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법원의 판결은 과도한 것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무슬림형제단이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군부의 시도인 것은 분명하다”며 “(이번 판결은) 이집트를 또다시 독재와 폭압 속으로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1928년 영국의 이집트 식민통치 시기에 조직된 무슬림형제단은 무슬림형제단 본부를 비롯해 2011년 시민혁명 ‘아랍의 봄’ 이후 창당된 자유정의당, 지난 3월 설립한 비정부기구(NGO) 등 크게 세 조직으로 구성돼 있다. 한편 아랍의 봄 때 물러나 지난달까지 수감생활을 해온 무바라크 전 대통령과 사적으로 대화를 나눈 한 의사가 몰래 보관해오던 대화 내용의 녹취록을 공개했다고 뉴욕타임스가 24일 보도했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미국이 2005년부터 자신을 몰아낼 의도가 있었고, 군부지도자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국방장관이 무르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줄로 알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후 (군부가 무르시 전 대통령을 강제로 몰아낸 것을 보고)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고 덧붙였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법원, 무바라크 석방 명령… 이집트 반정부 시위 다시 불 붙나

    법원, 무바라크 석방 명령… 이집트 반정부 시위 다시 불 붙나

    지난달 3일 이집트 군부가 무함마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을 강제 축출한 뒤 최악의 유혈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011년 아랍의 봄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고 재임 기간 부패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됐던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석방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9일 DPA통신에 따르면 이집트 수도 카이로 형사법원은 재임 시절 대통령궁 관리 비용을 빼돌리고 시위대를 강제 진압한 혐의로 수감생활을 해 온 무바라크의 석방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이집트 군부가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을 체포해 이송하는 과정에서 최소 36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데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석방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정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이집트 내무부는 18일 오후 무르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을 경찰 수송 차량에 태워 카이로 외곽 아부자발 교도소로 이동하던 중 무장괴한의 총격을 받아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반면 무슬림형제단 측은 이번 사건을 ‘정부의 의도적인 암살’로 규정,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이집트 독립 기관인 경제·사회적권리센터(ECESR)에 따르면 지난달 3일 군부의 무르시 축출 이후 계속된 반정부 시위와 군경의 강압적 시위 진압으로 1300여명이 사망하는 등 인명피해가 늘고 있다. 특히 수감자들의 사망 원인이 당초 정부의 주장과 달라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내무부 관계자는 이날 저녁 “경찰이 여러 대의 수송차에 600명의 수감자를 태워 이동하던 중 사망자 대부분이 경찰이 쏜 최루 가스에 질식돼 숨졌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AP 통신이 익명의 관계자 말을 인용해 “(정부의 주장과 달리) 사망자 일부는 무슬림형제단 소속이 아닌 일반 시민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해 시위대의 반발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시나이반도에서 경찰이 탄 버스가 로켓 공격을 받아 최소 24명이 숨졌으며, 팔레스타인 국경인 가자 지역 라파 마을에서도 경찰 2명이 공격을 받아 부상당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위클리 포커스] 이집트 사태 ‘아랍의 봄’과 다른 점은

    [위클리 포커스] 이집트 사태 ‘아랍의 봄’과 다른 점은

    이집트 군부의 쿠데타로 이슬람주의 정권이 무너지면서 2011년 ‘아랍의 봄’을 통해 민주화 혁명을 이룬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이 또 다른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튀니지, 리비아, 예멘 등 아랍의 봄을 겪은 인접 국가들이 이집트처럼 혼돈에 빠질 가능성은 적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아랍의 봄이 오랜 독재에 대한 시민들의 압축적인 여망으로 촉발된 것이라면 이번 이집트 사태는 새로 출범한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의 미성숙한 국정 운영 능력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이집트 국민 대다수는 무르시가 권력 독점에만 주력하고 경제 악화, 치안 부재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해 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올해 초부터 무르시 퇴진 시위를 벌여 왔다. 이집트 재무부에 따르면 시민혁명 이전 5%를 넘었던 경제성장률은 2010~2011년 1.8%로 추락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2%대 초반을 기록했다. 박 연구원은 “경제난이 계속되면 이집트 국민들의 시위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무르시가 물러난 게 끝이 아니라 차기 정권이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걸프 지역의 왕정 국가들은 아랍의 봄 때와 같이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한 국가의 풍족한 사회복지 혜택 덕택에 국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일 가능성은 적은 편이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지난 60년간 핵심 권력을 거머쥔 채 실세 역할을 해 온 이집트 군부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아랍의 봄 진원지이자 이집트의 이웃 국가인 튀니지의 경우 벤 알리 전 정권의 장기 독재로 인해 군부 세력이 약해져 있기 때문에 이집트 군부처럼 시위를 주도할 구심점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장 센터장은 “알제리나 예멘은 아직도 군부가 많은 부분을 장악하고 있기는 하나 이집트에 비해 시민사회의 성숙도와 조직력이 떨어지는 데다 국민들이 군부에 의한 권위주의적인 안정에 기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야권 지도자인 무함마드 엘바라데이(71)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과도정부의 신임 총리에 지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통령궁 언론 담당관은 “아들리 알 만수르 임시 대통령이 임시 총리를 아직 공식 임명하지 않았다”면서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무르시의 지지 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이 창당한 자유정의당을 비롯한 이슬람 정당은 엘바라데이를 지명한 데 대해 즉각 반발해 그의 총리 임명이 향후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7일 AP통신에 따르면 이란은 최근 이집트 군부의 무르시 축출을 ‘부당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이는 무르시 실각 이후 이란 정부의 첫 공식 반응으로, 이란 외무부의 압바스 아락치 대변인은 이날 무르시 지지 세력에 무르시의 복권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을 당부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집트 군부 무르시 축출] 카이로 정국 시계 ‘O’…권력다툼땐 ‘아랍의 봄’ 능가하는 혼란 올 듯

    [이집트 군부 무르시 축출] 카이로 정국 시계 ‘O’…권력다툼땐 ‘아랍의 봄’ 능가하는 혼란 올 듯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군부에 의해 쫓겨나면서 이집트 정국이 시계 제로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조만간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군부와 세속주의자, 무슬림형제단 간의 치열한 권력 다툼이 벌어질 경우 ‘아랍의 봄’을 능가하는 혼란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일(현지시간) 오후 9시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은 무르시의 대통령 권한을 박탈하고 이슬람 율법을 강조한 헌법의 효력을 전면 중지한다고 밝혔다. 이집트를 철권통치한 호스니 무바라크를 몰아내고 들어선 무르시 정권을 집권 1년 만에, 그것도 본격적인 반정부 시위 나흘 만에 끌어내린 것이다. 국영 TV로 전국에 생중계된 이 발표 직후 무르시는 공화국 경비대에 가택연금을 당했고 그의 지지 기반인 무슬림형제단(MB) 핵심 멤버들은 출국금지 조치와 함께 체포됐다. 조기 대선·총선 실시 방침을 밝힌 군부가 아들리 알 만수르 헌법재판소장에게 임시 대통령직을 맡기기까지 겨우 반나절이 걸렸다. 군사독재 타도 30년 만에 얻어낸 민주화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오히려 시위대는 군부를 환영하고 있다. 2년 전 과도정부를 세운 군부에 민권 이양을 요구했던 시위대의 모습과는 180도 달랐다. 이번 시위에서 충돌을 빚었던 세속주의 야권과 무슬림형제단의 관계도 변화무쌍하다. 2년 전 힘을 합쳐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했던 두 세력은 대통령이 하야한 뒤에는 서로 비방을 퍼붓더니 무르시가 취임한 이후에는 또다시 유혈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들은 목적이 같으면 허물없는 동지가 됐다가도 정세가 바뀌면 언제든 상극으로 바뀔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군부의 권력 이양이 늦어질 경우 내전에 버금가는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래 이집트를 이끌어 갈 새로운 지도자를 찾는 과정도 안갯속이다. 현재의 가장 유리한 세력은 군부다. 초대 대통령 무함마드 나기브를 비롯해 가말 압델 나세르, 안와르 사다트, 무바라크까지 네 명의 지도자를 잇달아 배출한 군부는 지금도 이집트 정치·경제·사법 분야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권력 중추인 최고군사위원회(SCAF)와 최상위사법기구인 최고헌법재판소(SCC) 모두 군부가 차지하고 있으며, 이집트 경제의 40%도 군부가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60년간 실권을 유지해 온 군부가 이번 시위 과정에서 보여준 결단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1928년 서구 지배와 왕정정치 타파를 목표로 탄생한 무슬림형제단 역시 이집트를 대표하는 세력이다. 이슬람이라는 정신적 코드를 바탕으로 권력 내부의 막강한 네트워크와 지지 세력을 보유한 덕에 역대 정권과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다. 2000년대 온건 노선으로 돌아선 무슬림형제단은 급기야 지난해 자유정의당(FJP)을 창당해 제1당에 오르더니 정치 신인인 무르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비록 지금은 수세 국면에 놓여 있지만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수백만 지지자와 함께 타흐리르 광장으로 나온 다음 정국 혼란을 틈타 정권을 재차지할 수도 있다. 무바라크 퇴출에 이어 무르시까지 무너뜨린 세속주의 세력 또한 이집트 핵심 권력이다. 야권인 구국전선(NSF)은 아랍의 봄 시위를 주도한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대선 후보로 추천할 것으로 보인다. 황병하 조선대 아랍어과 교수는 “현재 야권 내부에는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이슬람주의자와 콥트 기독교도 등 각계각층의 세력이 참여하고 있어 정치적인 단결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다”며 “지난 대선 때처럼 야권 후보가 난립할 경우 군부나 무슬림형제단에 정권을 다시 내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아버지 부시’ 중환자실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H W 부시(88) 전 미국 대통령이 감기 증세로 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병세가 악화돼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 아랍의 봄 혁명으로 축출된 호스니 무바라크(84) 전 이집트 대통령도 건강이 악화돼 27일(현지시간) 이집트 검찰이 그를 군 병원으로 이송할 것을 명령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시위대 학살 혐의로 지난 6월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에도 감옥 화장실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친 이후 정밀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바 있다. 한편 넬슨 만델라(94)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은 입원한 지 3주 만에 퇴원했다고 남아공 대통령실이 이날 밝혔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글로벌 시대] 혼란의 중동, 모순 속 미국/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글로벌 시대] 혼란의 중동, 모순 속 미국/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독재자들을 쫓아낸 ‘아랍의 봄’은 이슬람 세계와 서구의 관계에 새로운 희망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는 더욱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고, 서방세계와의 대립과 긴장은 더 커졌다. 지난달 리비아 벵가지에서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가 피살 당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50여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다쳤다. 이슬람 비하 영화에 대한 반발로 무장 공격과 시위 등이 이슬람 세계를 덮은 것이다. 사태는 잠잠해졌지만 갈등의 골과 충돌 위험성은 더 커졌다. 이슬람 비하 영화가 계기가 돼 촉발됐지만 그 원인과 연원은 깊고 오랜 역사를 가진 까닭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출범 이후 내걸었던 ‘새로운 중동정책’에도 회의가 높아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6월 이집트 카이로 방문에서 미국과 이슬람 간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했다. 미군의 이라크 완전 철수, 아프간에서의 단계적 철군 등도 이뤄졌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여전히 이스라엘에 기울어져 있고, 분쟁도 그치지 않고 있다. 이란 핵무기 개발 의혹을 둘러싸고 미국의 무력 공격 가능성도 여전히 높다. 이슬람권의 반미 감정은 오히려 커졌다. 오바마는 집권 초 국제연합 안보리 결정에 따른 팔레스타인 사태 해결, 이스라엘 정착촌의 추가 건설 중지 등 긍정적인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중동 각국에 대한 정치·군사적 간섭은 그치지 않았다. 오바마의 정책도 부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바마는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와 전략적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아랍의 봄을 지원하고 이끌었다. 이 지역 국민들도 자유와 안정,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높았었다. 그러나 아랍의 봄은 혼란과 갈등, 충돌과 불신을 더했다. 미국의 전통적인 일부 중동 맹방들에 대한 영향력은 줄어들었고, 상호 지지도도 감소했다. 아랍의 봄 이후 중동에서 미국의 능력과 역할이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오바마의 중동정책은 여러 도전을 받고 있다. 우선, 이집트와 리비아 등에서 독재자들이 쫓겨났지만, 대신 이슬람 세력의 영향력이 커졌다. 냉전 이후 미국 중동정책의 제1 교두보였던 이집트는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인 이슬람형제단이 권력을 잡았다. 지난 6월 말 취임한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은 미국에 친구도 아니고 적도 아닌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과 이란을 방문해 친선을 다지는가 하면 16차 비동맹회의에 참석하는 등 전임자와는 전혀 다른 국제적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으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상태다. 아랍의 봄은 나날이 커지는 이슬람 중산층의 요구를 만족시켜줄 수 없었다. 또 이슬람 세계에 만연해 있는 빈곤과 부패, 빈부 격차와 경제·정치적 모순도 국민들의 기대를 어그러뜨리고 있다. 리비아의 경우 국가가 무장세력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무장한 민병세력들이 각지에 난립해 중앙정부는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도 못하고 각 지역 세력도 통제하지도 못하고 있다. 아랍의 봄을 열었던 이슬람 세계의 평등과 민주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과 힘은 오히려 반미주의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이슬람과 서구세계와의 화해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오바마의 이상은 빛이 바래고 있다. 이슬람 세계의 생각과 지향점을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서구와, 서구식 민주주의 및 언론자유를 강조하는 서구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슬람 세계 사이에서 그 같은 이상이 좌초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슬람의 오랜 역사와 전통, 드높은 자존심과 평등의식을 미국과 서구세계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최근 사태에서 보듯 문명의 충돌은 결코 빛바랜 명제가 아닌 듯하다. 서로의 문화와 가치관에 대한 이해의 심화는 국제화된 세계 속에서 더욱 필요한 덕목이다. 최근 뜨겁게 벌어진 동북아시아의 영토 분쟁도 이슬람과 서구의 충돌처럼 역사와 가치관, 자존심과 문화가 막후에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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