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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따릉이 1일권 1000원…서울 누비는 ‘두 바퀴 행복’

    [커버스토리] 따릉이 1일권 1000원…서울 누비는 ‘두 바퀴 행복’

    >> 한강 코스 평지여서 어린이·여성 타기에 좋아…중간에 대여소 찾기 힘들어 아쉬워 ●혼자서 즐기는 낭만 한강 코스의 매력은 바람이다. 영화 ‘비트’(1997년)에서 정우성이 가슴으로 바람을 맞을 때의 그 기분이랄까. 스트레스를 풀고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출발해 홍제천 자전거도로, 망원 한강공원, 마포대교를 지나 5호선 여의나루역에서 끝난다. 대부분 평지여서 어린이나 여성들이 즐기기에도 좋다. 거리는 약 11.5㎞. 완주하는 데 1시간 정도가 걸렸다. 초보자라도 2시간 정도면 되겠다. ‘1일권’을 갖고 있고 1시간 내에 반납만 하면 추가 비용 없이 반복해서 빌릴 수 있지만 이 코스는 중간에 대여소를 찾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지난 17일 오전 11시 20분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1번 출구에 있는 ‘서울시 공공자전거(따릉이) 대여소’에는 13대의 자전거가 있었다. 8대는 대여된 상태였다. 처음에는 이정표가 없어서 막막했다. 이때 당황하지 말고 1번 출구를 나오는 방향으로 2분을 가면 불광천변 자전거도로에 진입할 수 있다. 계단을 따라 따릉이를 들고 내려가야 했다. 따릉이 무게가 16.7㎏으로 성인 남자가 들기에도 다소 버거웠다. 이곳만 지나면 자전거에서 내릴 필요 없이 코스 끝까지 내달릴 수 있다. 불광천은 곧 홍제천을 만나는데 이 지점에서 우회전한 뒤 10분 정도 홍제천을 따라 달리면 강변북로를 만나는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은 경기 고양시 방향이고 왼쪽은 마포대교 방향이다. 왼쪽으로 틀어서 홍제천교를 건너면 넓게 펼쳐진 한강을 마주할 수 있다. 이후부터 길은 단순하다. 한강을 오른쪽에 끼고 직진하면 된다. 망원 한강공원, 양화대교, 서강대교, 마포대교 등을 지나게 된다. 이 구간은 약 6㎞ 정도인데 속력을 내봤다. 구간 평균 시속은 14.6㎞였다. 따릉이는 산악용 자전거나 로드 바이크에 비하면 느리지만, 시원한 강바람에 ‘댄싱’(일어서서 속력을 내는 자전거 주법)이 절로 나왔다. 자전거 진입로를 통해 마포대교로 올라서니 생명의 다리가 펼쳐쳤다. ‘힘든 일을 모두’, ‘지나가는 바람이라’, ‘생각해 보면 어떨까?’라는 글귀가 이어졌다. 마포대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들어섰다. 한강공원과 이어진 여의나루역 1번 출구 옆 대여소에서 따릉이를 반납했다. 이용 시간은 68분. 1시간이 초과돼 1000원을 추가 결제했다. 따릉이 앱을 보니 소모한 열량이 385.7㎉였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4대문 코스 고궁·미술관 등 들를 수 있어 인기…숭례문 제외 주요 지점마다 대여소 ●역사문화 탐방 지난 17일 직접 돌아본 4대문 코스는 창덕궁~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경복궁~세종문화회관~덕수궁 돌담길~숭례문(약 8㎞)으로 이어진다. 코스 전체를 도는 데 약 50분이 걸렸다. 외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코스지만 학생들의 역사교육 코스로도 추천할 만했다. 단, 시내 중심가를 돌기 때문에 다른 차량에 주의해야 한다. 숭례문을 제외하면 주요 지점마다 공공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대여소를 정류소 삼아 자전거를 맡기고, 고궁과 미술관 등을 관람해도 좋겠다. 낮 12시 창덕궁의 ‘매표소 앞 공공자전거 대여소’에서 출발했다. 이름과 달리 대여소는 매표소 앞이 아니라 ‘단봉문’(丹鳳門) 앞에 있다. 안국역 3번 출구에서 400m, 돈화문에서 10m 떨어져 있다. 페달을 밟아 돈화문을 지나자마자 왼편 첫 골목(창덕궁로)에 들어서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250m쯤 달렸다. 이어 왼편의 오르막길(창덕궁1길)로 방향을 틀었다. 이 길은 재동초등학교 삼거리와 만났다. 삼거리에서 정면에 보이는 오르막길(북촌5길)로 접어든 후 송원아트센터 앞에서 왼쪽의 윤보선길로 빠졌다. ‘안동교회’ 때문이다. 1909년 서울 북촌의 한 양반이 지었다는 고풍스럽고 아담한 교회다. 윤보선길을 빠져나오니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와 만났다. 우회전해 율곡로를 따라 150m 정도 달리자 짙은 적색으로 칠한 자전거 우선도로가 나왔다. 이후 경복궁 광화문을 지나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까지 약 1㎞를 맘껏 내달렸다. 광화문 전에 있는 동십자각에서 삼청로로 우회전하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도 들를 수 있다. 경복궁역 4번 출구에서 횡단보도를 건넌 후 광화문 삼거리로 되돌아와 세종대로로 진입했다. 정부종합청사부터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 세종대로 사거리까지 자전거 전용도로는 없지만 차도가 워낙 넓어 자전거 타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서울시의회를 지나 덕수궁 대한문에서 덕수궁길로 꺾었다. 돌담길을 따라 300m쯤 달리다가 정동교회 앞 로터리에서 왼편(서소문로11길)의 언덕을 올랐다. 붉은 벽돌로 지은 배재학당 역사관을 지나 서소문로를 만났다. 길을 건넌 후 좌회전을 해서 300여m를 달리니 시청역 8번 출구였다. 이곳에서 우회전하면 숭례문(崇禮門·국보 1호)이 시야에 들어온다.숭례문광장까지 달린 후 잠시 숨을 고르고,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광화문 2번 출구의 공공자전거 대여소까지 내달린 후 자전거를 반납했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틀어 앉은 경복궁과 쭉 뻗은 광화문 광장이 빚어내는 풍경이 웅장하고 시원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상암 코스 자연과 도시의 매력이 공존하는 곳…메타세쿼이아길 500m 하이라이트 ●가족과 오르는 하늘공원 상암 코스(7㎞)는 자연과 도시의 매력을 동시에 지녔다.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역(지하철 6호선)에서 출발해 하늘공원 외곽을 둘러싼 가로숲길을 지나면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빌딩숲이 펼쳐진다. 영화·정보기술(IT) 체험 등 즐길거리도 많다. 지난 17일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1번 출구 ‘홈플러스 앞 대여소’에서 따릉이(서울시 공공자전거)를 빌렸다. 1번 출구에서 나오는 방향으로 홈플러스 지상 주차장을 지나면 바로 마포구 시설관리공단으로 넘어가는 횡단보도가 나온다. 시설관리공단 뒤가 평화의 공원 정문이다. 보행·자전거 겸용 산책로를 따라 숲과 연못이 펼쳐진다.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해 달려도 공원 입구가 나온다. 내리막길의 짜릿함도 맛볼 수 있다. 평화잔디광장 앞 대형 의자 조형물에서 바닥분수로 향하는 넓은 길이 내리막의 시원함을 선사한다. 평화의 공원을 여유 있게 둘러본 후 하늘공원으로 갈 계획이라면 ‘서울시 공공자전거 운영센터 앞 대여소’에서 따릉이를 반납한 뒤 다시 빌리면 된다. 바닥분수에서 평화의 길로 내려와 왼쪽으로 틀어 공원을 가로질러 달렸다. 곧 구름다리(하늘공원 월드컵육교)가 나타났다. 건너면 하늘공원이다. 하늘공원 계단 입구 왼편으로 약 400m의 자전거길이 나타났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다 막다른 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상암 코스의 하이라이트인 하늘공원 ‘메타세쿼이아길’이 나온다. 500m의 길 양측에 높이 35m, 지름 2m의 가로수가 빽빽했다. 잠시 자전거를 끌며 ‘걷기용 오솔길’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나무 벤치도 곳곳에 있었다. 이 길 끝에 있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우회전해 달리면 인조잔디구장, 농구장 등이 있는 난지천공원이 나온다. 공원을 끼고 달리다 난지천공원 입구 교차로에서 우회전해 다시 내달리면 디지털미디어시티 교차로를 만난다. 여기서 좌회전해 약 500m를 직진하면 누리꿈스퀘어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누리꿈스퀘어를 정면에 두고 우회전해 월드컵북로를 따라 상암초등학교까지 가면 도로 끝에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와 만난다. 600m 떨어진 상암사거리까지 연결돼 있는데, 자전거 전용도로지만 차량을 조심해야 한다. 볼라드(차량진입 방지 말뚝)가 없어 자전거가 다니지 않으면 택시나 시내버스가 자전거 전용도로를 침범하기 일쑤였다. 상암 코스는 자전거 하이킹만 즐기면 약 50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여러 곳을 들르고 천천히 둘러보기를 원한다면 넉넉하게 3시간 정도 잡는 게 좋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여의도 코스 지하철 5·9호선과 대여소 가까워…갈대·호수·꽃 어우러진 생태체험 ●연인과 벚꽃 만끽 지난 16일 공공자전거를 타고 돌아본 여의도 코스는 연인과 함께 다가오는 봄을 느끼고 싶다면 적극 추천할 만했다. 벚꽃이 만개하는 4월이 가장 아름다운 코스지만, 역설적으로 그때는 피하는 것이 좋다. 벚꽃 축제(4월 4~10일) 때는 인파로 점령될 테니 말이다. 벚꽃이 많이 져 아쉽긴 해도 타는 것 자체만 생각하면 외려 4월 말이 더 추천할 만하다. 여의도역~샛강생태공원~한강공원~여의도나들목~여의도공원(약 6㎞) 코스를 완주하니 약 1시간이 걸렸다. 여의도 둘레길의 절반 정도를 돈 셈이다. 오후 1시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1번 출구 앞. 낮 최고 기온이 14도를 기록했고 날씨도 맑았다. 35대의 자전거가 거치된 대여소에는 10대의 따릉이만 남아 있었다. 여의도에는 모두 26개의 대여소가 있는데, 여의도역 대여소가 자전거 수도 많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편해 이용자가 많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여의나루역(5호선), 샛강역(9호선), 국회의사당역(9호선) 등의 대여소도 접근성이 좋다. 여의도역에서 사학연금회관 건물과 광장아파트를 오른쪽에 끼고 300m가량 직진하자 횡단보도 건너편에 생태공원 표지판이 보였다. 진입로는 경사가 심해 따릉이에서 내린 뒤 안전하게 이동했다. 처음에는 무성한 갈대 사이로 비포장도로가 잠시 이어지다 금세 자전거도로가 시작됐다. 갈대와 억새, 호수, 꽃들이 어우러진 생태공원의 풍경은 아이들의 생태 체험 공간으로도 좋았다. 한강공원 인근에는 공공자전거 대여소가 없었다. 국회를 끼고 돌아 서강대교 남단까지 가야 진미파라곤 앞 대여소에 반납할 수 있다. 라이딩을 마치고 인근 한강 여의도 공원에서 돗자리를 깔고 물빛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관람하는 것도 좋을 듯했다. 여의도 공원까지 가보고 싶어 서강대교를 지나 여의도나들목에서 좌회전해 여의도공원으로 들어섰다. 이곳에서는 자전거 속도를 한강공원에 비해 크게 줄여야 한다. 보행자도로와 자전거도로의 구분도 명확하고, 자전거도로의 폭도 넓지만 초보자나 어린이도 많기 때문이다. 여의도공원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앞에 대여소가 있다. 만일 더 달리고 싶다면 여의도공원으로 진입하지 말고 직진해서 여의나루역, 한강공원, 63빌딩, 샛강 코스 등을 지나 여의도를 한 바퀴 일주하면 된다. 쉬지 않고 페달을 밟으면 통상 2시간 정도 걸린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커버스토리] 서울시 선정 ‘공공자전거 4대 코스’를 달리다

    [커버스토리] 서울시 선정 ‘공공자전거 4대 코스’를 달리다

    4대문·한강·여의도·상암코스…문화·상쾌·벚꽃길·숲길 ‘매력 직장이 서울 중구 을지로1가에 있는 손수민(28·여)씨는 얼마 전부터 ‘따릉이’에 푹 빠졌다. 따릉이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공자전거의 별칭이다. 짙어 가는 봄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기는 아쉬웠던 손씨. 자전거로 경복궁, 덕수궁 담장길을 달리며 온몸으로 봄기운을 느끼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아침에 자전거를 갖고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누군가 손씨에게 따릉이를 소개했다. “자전거에 장점이 100개쯤 되고 단점이 10개쯤 된다고 칠 때 가장 큰 단점은 아무 때나 타기가 어렵다는 거잖아요. 점심을 일찍 먹고 시청역 근처 대여소에서 따릉이를 빌려 경복궁, 세종문화회관,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오면 기분이 너무 상쾌해서 오후 업무 능률도 쑥쑥 오르죠.” 공공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서울시가 18일 ▲4대문 ▲한강 ▲여의도 ▲상암 등 공공자전거로 즐길 수 있는 대표 코스 4곳을 선정했다. 시는 “8㎞ 구간의 4대문 코스에서는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등 고궁과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세종문화회관 등 문화·예술 공간을 즐길 수 있고 한강 코스는 11.5㎞로 4개 코스 중 가장 길지만 오르막길이 없고 도로가 잘 닦여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여의도 코스’ 6㎞에는 샛강생태공원의 풍경과 벚꽃길의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메타세쿼이아길이 압권인 ‘상암 코스’는 자연과 도심의 정취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다. 시는 4대문, 신촌, 상암, 여의도, 성수 등 5개 구역의 150개 대여소에서 2000대의 공공자전거를 운용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오는 7월까지 동대문, 용산, 영등포, 양천구 등에 대여소를 신설해 450개로 늘리고 전체 자전거 수도 5600대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요금은 ‘서울자전거 따릉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티머니 카드, 후불교통카드 등을 통해 결제할 수 있다. 이용권은 1일권(1000원), 1주일권(3000원), 30일권(5000원), 180일권(1만 5000원), 1년권(3만원)으로 나뉜다. 1일권은 회원이 아니어도 이용할 수 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한강 코스 평지여서 어린이·여성 타기에 좋아…중간에 대여소 찾기 힘들어 아쉬워 ●혼자서 즐기는 낭만 한강 코스의 매력은 바람이다. 영화 ‘비트’(1997년)에서 정우성이 가슴으로 바람을 맞을 때의 그 기분이랄까. 스트레스를 풀고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출발해 홍제천 자전거도로, 망원 한강공원, 마포대교를 지나 5호선 여의나루역에서 끝난다. 대부분 평지여서 어린이나 여성들이 즐기기에도 좋다. 거리는 약 11.5㎞. 완주하는 데 1시간 정도가 걸렸다. 초보자라도 2시간 정도면 되겠다. ‘1일권’을 갖고 있고 1시간 내에 반납만 하면 추가 비용 없이 반복해서 빌릴 수 있지만 이 코스는 중간에 대여소를 찾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지난 17일 오전 11시 20분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1번 출구에 있는 ‘서울시 공공자전거(따릉이) 대여소’에는 13대의 자전거가 있었다. 8대는 대여된 상태였다. 처음에는 이정표가 없어서 막막했다. 이때 당황하지 말고 1번 출구를 나오는 방향으로 2분을 가면 불광천변 자전거도로에 진입할 수 있다. 계단을 따라 따릉이를 들고 내려가야 했다. 따릉이 무게가 16.7㎏으로 성인 남자가 들기에도 다소 버거웠다. 이곳만 지나면 자전거에서 내릴 필요 없이 코스 끝까지 내달릴 수 있다. 불광천은 곧 홍제천을 만나는데 이 지점에서 우회전한 뒤 10분 정도 홍제천을 따라 달리면 강변북로를 만나는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은 경기 고양시 방향이고 왼쪽은 마포대교 방향이다. 왼쪽으로 틀어서 홍제천교를 건너면 넓게 펼쳐진 한강을 마주할 수 있다. 이후부터 길은 단순하다. 한강을 오른쪽에 끼고 직진하면 된다. 망원 한강공원, 양화대교, 서강대교, 마포대교 등을 지나게 된다. 이 구간은 약 6㎞ 정도인데 속력을 내봤다. 구간 평균 시속은 14.6㎞였다. 따릉이는 산악용 자전거나 로드 바이크에 비하면 느리지만, 시원한 강바람에 ‘댄싱’(일어서서 속력을 내는 자전거 주법)이 절로 나왔다. 자전거 진입로를 통해 마포대교로 올라서니 생명의 다리가 펼쳐쳤다. ‘힘든 일을 모두’, ‘지나가는 바람이라’, ‘생각해 보면 어떨까?’라는 글귀가 이어졌다. 마포대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들어섰다. 한강공원과 이어진 여의나루역 1번 출구 옆 대여소에서 따릉이를 반납했다. 이용 시간은 68분. 1시간이 초과돼 1000원을 추가 결제했다. 따릉이 앱을 보니 소모한 열량이 385.7㎉였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4대문 코스 고궁·미술관 등 들를 수 있어 인기…숭례문 제외 주요 지점마다 대여소 ●역사문화 탐방 지난 17일 직접 돌아본 4대문 코스는 창덕궁~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경복궁~세종문화회관~덕수궁 돌담길~숭례문(약 8㎞)으로 이어진다. 코스 전체를 도는 데 약 50분이 걸렸다. 외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코스지만 학생들의 역사교육 코스로도 추천할 만했다. 단, 시내 중심가를 돌기 때문에 다른 차량에 주의해야 한다. 숭례문을 제외하면 주요 지점마다 공공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대여소를 정류소 삼아 자전거를 맡기고, 고궁과 미술관 등을 관람해도 좋겠다. 낮 12시 창덕궁의 ‘매표소 앞 공공자전거 대여소’에서 출발했다. 이름과 달리 대여소는 매표소 앞이 아니라 ‘단봉문’(丹鳳門) 앞에 있다. 안국역 3번 출구에서 400m, 돈화문에서 10m 떨어져 있다. 페달을 밟아 돈화문을 지나자마자 왼편 첫 골목(창덕궁로)에 들어서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250m쯤 달렸다. 이어 왼편의 오르막길(창덕궁1길)로 방향을 틀었다. 이 길은 재동초등학교 삼거리와 만났다. 삼거리에서 정면에 보이는 오르막길(북촌5길)로 접어든 후 송원아트센터 앞에서 왼쪽의 윤보선길로 빠졌다. ‘안동교회’ 때문이다. 1909년 서울 북촌의 한 양반이 지었다는 고풍스럽고 아담한 교회다. 윤보선길을 빠져나오니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와 만났다. 우회전해 율곡로를 따라 150m 정도 달리자 짙은 적색으로 칠한 자전거 우선도로가 나왔다. 이후 경복궁 광화문을 지나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까지 약 1㎞를 맘껏 내달렸다. 광화문 전에 있는 동십자각에서 삼청로로 우회전하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도 들를 수 있다. 경복궁역 4번 출구에서 횡단보도를 건넌 후 광화문 삼거리로 되돌아와 세종대로로 진입했다. 정부종합청사부터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 세종대로 사거리까지 자전거 전용도로는 없지만 차도가 워낙 넓어 자전거 타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서울시의회를 지나 덕수궁 대한문에서 덕수궁길로 꺾었다. 돌담길을 따라 300m쯤 달리다가 정동교회 앞 로터리에서 왼편(서소문로11길)의 언덕을 올랐다. 붉은 벽돌로 지은 배재학당 역사관을 지나 서소문로를 만났다. 길을 건넌 후 좌회전을 해서 300여m를 달리니 시청역 8번 출구였다. 이곳에서 우회전하면 숭례문(崇禮門·국보 1호)이 시야에 들어온다.숭례문광장까지 달린 후 잠시 숨을 고르고,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광화문 2번 출구의 공공자전거 대여소까지 내달린 후 자전거를 반납했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틀어 앉은 경복궁과 쭉 뻗은 광화문 광장이 빚어내는 풍경이 웅장하고 시원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상암 코스 자연과 도시의 매력이 공존하는 곳…메타세쿼이아길 500m 하이라이트 ●가족과 오르는 하늘공원 상암 코스(7㎞)는 자연과 도시의 매력을 동시에 지녔다.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역(지하철 6호선)에서 출발해 하늘공원 외곽을 둘러싼 가로숲길을 지나면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빌딩숲이 펼쳐진다. 영화·정보기술(IT) 체험 등 즐길거리도 많다. 지난 17일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1번 출구 ‘홈플러스 앞 대여소’에서 따릉이(서울시 공공자전거)를 빌렸다. 1번 출구에서 나오는 방향으로 홈플러스 지상 주차장을 지나면 바로 마포구 시설관리공단으로 넘어가는 횡단보도가 나온다. 시설관리공단 뒤가 평화의 공원 정문이다. 보행·자전거 겸용 산책로를 따라 숲과 연못이 펼쳐진다.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해 달려도 공원 입구가 나온다. 내리막길의 짜릿함도 맛볼 수 있다. 평화잔디광장 앞 대형 의자 조형물에서 바닥분수로 향하는 넓은 길이 내리막의 시원함을 선사한다. 평화의 공원을 여유 있게 둘러본 후 하늘공원으로 갈 계획이라면 ‘서울시 공공자전거 운영센터 앞 대여소’에서 따릉이를 반납한 뒤 다시 빌리면 된다. 바닥분수에서 평화의 길로 내려와 왼쪽으로 틀어 공원을 가로질러 달렸다. 곧 구름다리(하늘공원 월드컵육교)가 나타났다. 건너면 하늘공원이다. 하늘공원 계단 입구 왼편으로 약 400m의 자전거길이 나타났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다 막다른 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상암 코스의 하이라이트인 하늘공원 ‘메타세쿼이아길’이 나온다. 500m의 길 양측에 높이 35m, 지름 2m의 가로수가 빽빽했다. 잠시 자전거를 끌며 ‘걷기용 오솔길’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나무 벤치도 곳곳에 있었다. 이 길 끝에 있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우회전해 달리면 인조잔디구장, 농구장 등이 있는 난지천공원이 나온다. 공원을 끼고 달리다 난지천공원 입구 교차로에서 우회전해 다시 내달리면 디지털미디어시티 교차로를 만난다. 여기서 좌회전해 약 500m를 직진하면 누리꿈스퀘어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누리꿈스퀘어를 정면에 두고 우회전해 월드컵북로를 따라 상암초등학교까지 가면 도로 끝에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와 만난다. 600m 떨어진 상암사거리까지 연결돼 있는데, 자전거 전용도로지만 차량을 조심해야 한다. 볼라드(차량진입 방지 말뚝)가 없어 자전거가 다니지 않으면 택시나 시내버스가 자전거 전용도로를 침범하기 일쑤였다. 상암 코스는 자전거 하이킹만 즐기면 약 50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여러 곳을 들르고 천천히 둘러보기를 원한다면 넉넉하게 3시간 정도 잡는 게 좋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여의도 코스 지하철 5·9호선과 대여소 가까워…갈대·호수·꽃 어우러진 생태체험 ●연인과 벚꽃 만끽 지난 16일 공공자전거를 타고 돌아본 여의도 코스는 연인과 함께 다가오는 봄을 느끼고 싶다면 적극 추천할 만했다. 벚꽃이 만개하는 4월이 가장 아름다운 코스지만, 역설적으로 그때는 피하는 것이 좋다. 벚꽃 축제(4월 4~10일) 때는 인파로 점령될 테니 말이다. 벚꽃이 많이 져 아쉽긴 해도 타는 것 자체만 생각하면 외려 4월 말이 더 추천할 만하다. 여의도역~샛강생태공원~한강공원~여의도나들목~여의도공원(약 6㎞) 코스를 완주하니 약 1시간이 걸렸다. 여의도 둘레길의 절반 정도를 돈 셈이다. 오후 1시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1번 출구 앞. 낮 최고 기온이 14도를 기록했고 날씨도 맑았다. 35대의 자전거가 거치된 대여소에는 10대의 따릉이만 남아 있었다. 여의도에는 모두 26개의 대여소가 있는데, 여의도역 대여소가 자전거 수도 많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편해 이용자가 많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여의나루역(5호선), 샛강역(9호선), 국회의사당역(9호선) 등의 대여소도 접근성이 좋다. 여의도역에서 사학연금회관 건물과 광장아파트를 오른쪽에 끼고 300m가량 직진하자 횡단보도 건너편에 생태공원 표지판이 보였다. 진입로는 경사가 심해 따릉이에서 내린 뒤 안전하게 이동했다. 처음에는 무성한 갈대 사이로 비포장도로가 잠시 이어지다 금세 자전거도로가 시작됐다. 갈대와 억새, 호수, 꽃들이 어우러진 생태공원의 풍경은 아이들의 생태 체험 공간으로도 좋았다. 한강공원 인근에는 공공자전거 대여소가 없었다. 국회를 끼고 돌아 서강대교 남단까지 가야 진미파라곤 앞 대여소에 반납할 수 있다. 라이딩을 마치고 인근 한강 여의도 공원에서 돗자리를 깔고 물빛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관람하는 것도 좋을 듯했다. 여의도 공원까지 가보고 싶어 서강대교를 지나 여의도나들목에서 좌회전해 여의도공원으로 들어섰다. 이곳에서는 자전거 속도를 한강공원에 비해 크게 줄여야 한다. 보행자도로와 자전거도로의 구분도 명확하고, 자전거도로의 폭도 넓지만 초보자나 어린이도 많기 때문이다. 여의도공원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앞에 대여소가 있다. 만일 더 달리고 싶다면 여의도공원으로 진입하지 말고 직진해서 여의나루역, 한강공원, 63빌딩, 샛강 코스 등을 지나 여의도를 한 바퀴 일주하면 된다. 쉬지 않고 페달을 밟으면 통상 2시간 정도 걸린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도희 “타이니지 중단은 회사의 선택, 솔직히 힘든 시간 보내”

    도희 “타이니지 중단은 회사의 선택, 솔직히 힘든 시간 보내”

    감칠맛 나는 사투리 연기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배우 도희가 팔색조 매력이 담긴 패션 화보를 공개했다. 얼마 전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엄마’에서 한 남자만을 바라보는 지고지순한 콩순이 역을 그만의 색깔로 멋지게 소화해 내며 대중들의 눈길을 끌었다. 더불어 연기 때문에 바쁘게 살고 싶다며 할수록 욕심이 생긴다는 도희는 어느새 여배우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게 되었다. 펠틱스, 레미떼, 아키클래식 등으로 구성된 총 3가지 콘셉트로 진행된 패션 화보 속 그는 청순함과 시크함 그리고 러블리한 매력을 한껏 발산했다. 첫 번째 콘셉트에서는 화이트 원피스를 착용해 단아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으며 이어진 콘셉트에서는 슬리브리스와 핫팬츠를 매치해 사랑스러운 느낌을 더했다. 또한 양갈래로 땋은 헤어가 발랄한 이미지를 배가시켰다. 마지막 콘셉트에서는 블랙 점프 수트를 착용해 그간 볼 수 없었던 고혹적이면서 우아한 자태를 뽐냈으며 관능적인 눈빛으로 시크한 무드를 자아냈다. 화보 촬영 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얼마 전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엄마’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멋진 말로 포장해서 표현은 못하지만 많이 얻어가는 작품이다. 연기적인 부분, 사람 그리고 추억도 많은 작품이다”고 전했다. 특히 한 남자만을 바라보는 지고지순한 콩순이와 닮은 부분이 있냐는 질문에 “보통 나쁜 남자라서 좋아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콩깍지가 씌워지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쉽게 질려하는 스타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지금의 배우 도희를 있게 해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대해 연기를 진지하게 생각했다며 특히 그는 “‘응사’가 종영된 후에도 종종 만나기도 했고 지금도 단체 채팅방이 그대로 있다. 그리고 함께 출연했던 성균오빠는 내 남편이기도 했고 14살 차이가 나는데 딸처럼 많이 챙겨주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같은 응답하라 시리즈인 ‘응답하라 1988’에 대해 “너무 재미있게 봤다. 그리고 극중 보라 역할이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그 캐릭터 자체에 시선이 가고 마음이 간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또한 ‘응답하라 1994’ 이후 ‘배우병’ 소문에 대해 묻자 “‘SNL코리아6’에서 다루기 전에 그런 소문이 있더라. 나도 나중에서야 그런 소문을 접했는데 많이 당황했었다”고 황당한 마음을 전하기도. 걸그룹 타이니지 활동 중단은 회사의 선택이었다며 그는 “‘응답하라 1994’를 기준으로 우리가 두 번 정도 음반을 발매했다. 그 이후 솔직히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은 사실이긴 하다”고 많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최근 사진작가 로타와 작업했던 화보의 반응에 대해 “나도 화보가 나온 사진을 보면서 ‘내가 너무 이상했나?’, ‘내가 그런 식이었나?’ 생각을 하긴 했다. 그래서 사실 공개된 컷들이 아쉽기는 했지만 새로운 경험을 한 사진이어서 괜찮았다”고 괜스레 웃음을 보였다. 아담한 신체 사이즈 때문에 불편한 점이 있냐는 질문에는 “솔직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의상 때문에 제한이 많다. 그리고 연기적인 부분에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것들이 있긴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나만의 색깔들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본인의 신념을 전했다. 그는 “애교가 많은 스타일은 아니다. 선배님들이 나에게 군대 후임, 할머니 같다고 한다(웃음). 내 나이 또래 같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는지 때로는 아줌마 같다고 할 때도 있고 남자 같은 느낌이 있다”고 자신의 성격을 말했다. 모태솔로라고 밝힌 도희는 “올해 목표가 남자 친구를 만나는 것이다. 아니 매년 목표다”며 이상형에 대해 “서인국 선배님은 오랜 팬이고 아직까지도 팬인데 덩치가 있고 잘 웃고 이런 외모적인 것들이 이상형으로 비슷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와 이야기가 잘 통하고 예의바른 남자가 좋다”고 자신의 이상형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 2016년도 바쁘게 지내고 싶은 욕심도 있고 새로운 역할과 작품을 통해서 발전된 모습들을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내 목표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앞으로 드라마뿐만 아니라 스크린에서도 다양한 모습을 전한다는 도희의 연기를 기대해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하! 우주] 지구에 드려진 ‘달 그림자’…우주에서 본 일식

    [아하! 우주] 지구에 드려진 ‘달 그림자’…우주에서 본 일식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 현상을 우주에서 본다면 어떤 모습일까?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은 지구로부터 약 160만 km 떨어진 곳에서 촬영된 일식 현상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지난 9일 일식이 아시아를 중심으로 1년 만에 펼쳐진 가운데 우주에서 본 달은 지구에 짙은 그림자(本影)를 드리웠다. 우주에서 촬영된 여러 장의 사진으로 만든 영상을 보면 달은 지구를 미끄러지듯 돌면서 검은 그림자를 남겼다. 일반적으로 인공위성은 지상 400km 위에 떠있어 지구와 달의 모습을 이처럼 동시에 담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진은 어떻게 촬영됐을까? 그 비밀은 NASA가 쏘아올린 심우주 기상관측위성(DSCOVR)에 있다. NASA는 지난해 2월 민간 우주업체인 스페이스X의 팔콘9 로켓에 위성 DSCOVR을 실어 우주로 발사했다. 이 위성은 일반적인 다른 위성과는 달리 지구로부터 평균 160만 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지구와 달의 거리가 약 38만 km, 국제우주정거장(ISS)이 약 400km 상공 위에 떠있는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 수 있는 셈. 이같은 이유로 DSCOVR은 시간만 잘 맞추면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달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생생한 사진을 찍기위해 DSCOVR 위성에는 지구 다색 이미징 카메라(에픽·EPIC)라는 특수한 장비가 실려있다. 카메라와 망원경이 결합된 에픽(EPIC·Earth Polychromatic Imaging Camera)은 가시광선, 적외선, 자외선 영역의 이르는 다양한 이미지를 포착한다. 흥미로운 점은 DSCOVR의 주목적이 이번처럼 지구 촬영은 아니라는 점이다. DSCOVR은 태양에서 날아오는 태양풍을 관측하는 것이 주역할로 이 때문에 태양에서 약 1억 4800만㎞ 떨어진 지점까지 날아간 것이다. DSCOVR은 하루 6번 씩 태양의 움직임을 촬영해 지구에 전파 교란등을 야기하는 흑점 폭발을 더 빨리 예보할 수 있게 해준다. 곧 태양이 지구에 미치는 유해한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제작된 위성으로 지구 대기 속 오존층과 에어로졸 수치도 측정한다.  DSCOVR 프로젝트 과학자 아담 서보는 "지구의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달의 그림자가 이동하는 것을 담아낸 매우 희귀한 사진"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일식 현상은 이날 우리나라 전역에도 나타났다. 한국천문연구원은 오전 10시 10분부터 1시간 9분가량 해의 일부분이 검게 변하는 부분 일식이 일어났다고 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해외여행 | 이탈리아-스테디셀러Steady Seller는 ‘뻔’하지 않다

    해외여행 | 이탈리아-스테디셀러Steady Seller는 ‘뻔’하지 않다

    세 번째 방문이었다. 폼페이를 거쳐 소렌토, 포지타노, 아말피를 거치는 그 뻔한 ‘이탈리아 남부 일정’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매번 ‘새로운 여행’이다. 스테디셀러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포지타노를 색깔로 정의하자면 무지개색이다. 알록달록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때문이다●폼페이Pompei이탈리아 ‘최후의 도시’폼페이를 모를 사람이 있겠는가. ‘이탈리아 남부의 한 도시’라는 수식어보다는 ‘최후의 도시’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곳, ‘폼페이’다.폼페이는 기구한 역사를 지닌 곳이다. 서기 79년 8월24일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화산재가 도시를 찰나에 삼켜 버리기 전까지, 이곳은 로마 귀족들이 휴양지로 즐겨 찾던 곳으로 지중해 해안에서도 최대의 풍요를 누리던 곳이다.베수비오 화산은 폭발 후 단 2분 만에 최대 6m의 높이로 이곳을 덮어 버렸다. 풍요를 누렸던 도시는 자연의 힘 앞에서 맥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다시 발견되기까지 찰나의 순간을 오랜 세월 간직한 채 분출물 속에 묻혀 있었다.폼페이가 다시 발견된 건 16세기로 알려져 있다. 폼페이 위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건물과 라틴어가 새겨진 대리석 조각과 옛 로마 시대의 수도관이 발견되면서다. 폼페이는 그렇게 ‘전설’에서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그러나 당시는 본격적인 발굴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이곳의 가이드에 따르면 본격적인 발굴은 1748년 나폴리 왕의 지시로 시작됐다. 당시에 폼페이 광장과 공중목욕탕, 돌기둥 등이 복원됐다,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며 체계적인 발굴을 통해 폼페이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게 되었다. 당시 이탈리아 국왕인 빅토르 에마뉴엘 2세는 고고학자인 주세페 피오렐리를 발굴대장으로 임명하고 조직적인 발굴을 지시했다. 유적에 대한 구획 정리와 함께 본격적인 수리와 보존이 이뤄지게 됐다. 또 발굴단은 유적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빈 공간에 석고나 시멘트를 부어 넣어 당시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해 냈으며, 이 방식을 통해 가구, 집기, 문 등을 복원했다. 한 번쯤 사진으로 봤을 화산가스에 괴로워하며 죽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렇게 복원됐다.폼페이는 여전히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다. 폼페이의 약 30%가 땅속에 남아 있다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도시가 묻히기 전까지 지중해 해안에서도 최대의 풍요를 누리던 곳이다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는 화산폭발 당시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해 냈다폼페이는 ‘끝’이 아닌 ‘ing’폼페이 입구에 들어서자 언제나 그랬듯 을씨년스럽다. 날씨도 흐렸지만, 화산재가 뒤섞여 있는 이곳 특유의 토양색이 그 기분을 더한다. 현대의 계획도시만큼이나 격자형으로 짜인 도로망도 대단하지만, 폼페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수도관’이다. 약 1,940년 전의 수도 인프라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 기반을 잘 갖춰 놓았다. 물탱크를 갖춘 공공수도는 격자형 길을 따라 가느다란 수도관을 설치해 도시 곳곳으로 이어지게 했다. 발달한 수도시설 덕택에 온탕은 물론 냉탕과 사우나까지 갖춘 공중목욕탕도 있었다고 하니, 그 당시 기술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짐작케 한다.폼페이 한 골목으로 들어가면 당시의 홍등가를 복원해 놓은 곳이 있는데, 재미난 사실은 당시 폼페이의 유흥문화가 이 수도시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납으로 만든 수도관으로 당시 폼페이 사람들은 납중독을 앓게 됐으며, 그로 인해 폼페이가 최대의 환락 도시가 됐다는 주장이다.2006년 일반인에 공개된 폼페이 홍등가도 폼페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적 중 하나다. 복층 구조 건물에는 각 층마다 5개의 방과 1개의 화장실을 구비해 놓고 있으며, 벽면에는 이 홍등가에서 제공했던 다양한 ‘서비스’가 그림으로 묘사돼 있다. 특히 2층은 지위가 높은 손님들을 위한 곳으로 매트리스가 얹혀 있는 돌침대가 있는 등 실내장식이 1층보다 화려하다.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폼페이에는 여러 곳의 사창가가 있었으나 대부분의 매춘장소는 가게 건물 꼭대기에 방 하나만을 두고 운영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또 이곳에서 일한 매춘부들은 대부분 그리스나 동양 출신의 노예들이었으며, 이곳을 이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최대 와인 1병 값의 8배 수준이었다고 한다.이 밖에 폼페이의 야외극장, 야외 경기장과 광장의 모습은 당시 폼페이의 풍요를 그대로 전하고 있다. 놀라운 건 여전히 약 30%가 찰나의 모습을 간직한 채 땅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길을 따라 설치해 놓은 수도관이 여전히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홍등가에는 당시 모습을 재현한 침대는 물론, 제공했던 서비스가 그림으로 묘사돼 있다●소렌토Sorrento바다 요정의 땅 폼페이에서 남부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가파른 절벽이 내리꽂히는 듯한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이탈리아 남부의 첫 번째 대표도시 소렌토를 마주한다.소렌토는 캄파니아주 소렌토반도에 위치한 아담한 어항이다.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의 휴양지였던 카프리와 함께 아름다운 바다로 유명하다. 소렌토라는 지명 또한 로마인들이 이곳을 그리스 신화 속 바다의 요정인 ‘시레나Sirena의 땅’이라는 뜻으로 ‘수렘툼Surrentum’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이탈리아 남부 도시들이 그러하듯 소렌토 또한 절벽 위에 위치해 있다. 구불구불한 지역적 특성으로 소렌토 해안에서는 날이 좋을 때면 나폴리는 물론 폼페이를 삼켰던 베수비오 화산까지 볼 수 있다.소렌토의 바다가 유독 아름다운 것은 지중해 덕이라는 것이 가이드의 말이다. 겨울철에 비가 많이 내리는 특성 덕분에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푸름을 유지하며, 다른 바다에 비해 염도도 2~3도가 높아 플랑크톤이 자라지 못해 어패류도 거의 없기 때문이란다.소렌토역 앞 광장에서 중심지로 가는 길엔 청동상이 하나 있다. 이탈리아의 민요이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작사한 ‘잠바티스타 데 크루티스Giambassista De Curtis’다. 민요 발표 80주년을 기념해 지난 1982년에 세워졌다. 이 노래는 소렌토를 이탈리아의 대표 관광지 중 한 곳으로 만들어냈다. 소렌토에 주민보다 여행객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소렌토의 중심지는 걸어서 30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이곳 주민들의 대부분은 어업보다는 레스토랑, 상점 등을 운영하며 관광객을 대상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중심지 또한 온갖 상점이 즐비하다. 특히 소렌토의 특산물인 레몬과 오렌지로 만든 술과 비누, 과자 등이 진열돼 있고, 레몬이 그려진 벽화와 기념품들이 유독 많이 보인다.소렌토는 주민 대부분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살아가는 한적한 도시다소렌토의 특산물은 레몬이다. 소렌토에 가면 레몬으로 만든 술은 물론 과자, 비누 등 다양한 물건을 만날 수 있다포지타노에서는 길을 잃어도 무방하다. 도시가 워낙 작기 때문이다. 골목을 따라 숨어 있는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포지타노Positano파스텔톤 풍경 하나면 충분해 소렌토를 출발해 해안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소렌토와는 또 다른 모습을 간직한 도시 ‘포지타노’가 나온다.소렌토가 레몬과 오렌지로 대변되는 ‘노란색’ 도시라면, 포지타노는 ‘무지개색’ 마을이라고 말하고 싶다. 소렌토가 품은 푸른 바다와 해안절벽에 더해 알록달록한 색감을 자랑하는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모습은 포지타노만의 매력이다.포지타노에서는 파스텔톤 집들의 매력에 취해 어지럽게 마을을 감싼 골목을 거닐다 보면 으레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러나 마을이 워낙 작아 길을 잃어도 무방한데다, 사실 이곳의 매력은 길을 잃어야 그 빛을 더한다. 골목마다 늘어선 작고 예쁜 가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좁은 건물 사이의 틈으로 바라보는 포지타노의 풍경 때문이다. 포지타노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곳’ 1위에 뽑힌 건 그래서다.마을 곳곳에 있는 별장은 할리우드의 톱스타들의 것일 만큼 아말피는 유럽 최고의 휴양지 중 한 곳이다아말피의 대표적 관광지는 성안드레아 대성당이다●아말피Amalfi이탈리아 남부 해안도시의 대명사 포지타노에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면, 여행자들이 으레 ‘이탈리아 남부 해안도시’를 일컫는 뜻으로 부르는 ‘아말피 해안도로’의 바로 그 ‘아말피’가 나온다.소렌토도 포지타노도 아말피도 모두 그 도시 규모나 크기를 따지기에는 사실 너무 비슷해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아말피도 인구 5,000명을 조금 넘는 아주 작은 어촌마을이다. 그럼에도 아말피는 1년 내내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해안, 남부 도시 중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며 유럽 최고의 휴양지 중 한 곳이 됐다. 마을 곳곳에 있는 고급 별장은 할리우드의 톱스타들의 것이며, 아말피 앞 해안에 떠 있는 수많은 요트들 또한 그들의 것이라고 한다.아말피 역시도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도 30분이면 마을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데, 이곳의 대표적 관광지로 아말피의 두오모 성안드레아 대성당이 있다. 한때 해상왕국으로 명성을 떨쳤던 곳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성당은 크고 화려하다. 그러나 이탈리아 여행 중 흔히 만날 수 있는 다른 도시들의 두오모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9세기에 지어진 후 로마, 비잔틴, 아랍, 고딕 등 다양한 양식으로 증축된 탓이다.사실 세 번째 아말피 방문에서야 새롭게 안 사실이 있다. 그리스 신화 속 헤라클레스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인은 일찍 세상을 뜬다. 그 슬픔에 헤라클레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이 여인의 시신을 묻기로 하고, 그 무덤을 지키기 위해 마을을 만들기로 한다. 그 여인의 이름은 ‘아말피’. 바로 이 곳, 아말피에 그 여인이 묻혀 있다는 것이다. 여행지가 ‘뻔’함에도 여행이 ‘뻔’하지 않은 이유도 그러하다. 늘상 새로운 것을 얻어 가기 때문이다.AIRLINE이탈리아를 가는 가장 편한 방법 알리탈리아Alitalia항공은 이탈리아 대표 항공사 중 한 곳으로, 이탈리아어로 ‘날개’를 뜻하는 ‘Ala’와 이탈리아Italia가 합쳐져 만들어진 이름이다. 2015년 6월5일부터 인천-로마 직항노선을 주 4회 운항하기 시작했다. 알리탈리아항공은 이 노선에 비즈니스석 20석, 프리미엄 일반석 17석, 일반석 213석을 갖춘 에어버스사의 A330-200 기종을 투입해 운항 중이다. 대한항공의 인천-로마 노선과 공동 운항하고 있으며,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타고 온 것으로 유명하다. 인천-로마 노선은 매주 월, 수, 금, 일요일 오후 2시5분 출발해 당일 오후 7시 로마에 도착한다. 로마-인천 노선은 현지시각으로 화, 목, 토, 일요일 오후 3시 출발해 다음날 오전 10시25분 인천에 도착한다. 알리탈리아항공은 한국 취항 후 더 나은 서비스 제공을 위해 지난해 자사 리브랜딩Rebranding을 마쳤다. 새롭게 내외부를 리노베이션하고 객실을 모두 개보수했다. 여기에 향상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도입했다. 2편 이상의 한국 영화는 물론, 10편 이상의 한국어 자막 또는 더빙된 콘텐츠를 제공해 한국 탑승객들의 편의를 도모했다.글·사진 신지훈 기자 취재협조 알리탈리아항공 www.alitalia.com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전투병과 첫 女장군 송명순 예비역 준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전투병과 첫 女장군 송명순 예비역 준장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송명순(58) 예비역 준장은 아담한 체구에 밝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한 모습을 보여 줬던 그는 인터뷰 며칠 후 메일 한 통을 보내왔다. 당초 거부했던 인터뷰를 수락하게 된 이유였다. “전역을 하고 보니 지금 이 시간에도 전후방 각지에서 열심히 복무하고 있을 후배들에게 해 준 게 없더군요. 선배의 말 한마디지만 사랑하는 여군 후배들이 조금이나마 힘을 내고 희망을 품었으면 싶네요. 오늘부터 봄 날씨라는 예보가 있더군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너 거기서 군인들한테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해 주는 건 아니지?” 1980년 2월 대학(영남대 정치외교학과 76학번) 졸업식 날, 간호장교 시험에 붙었다는 친구에게 나름대로 유머러스한 인사랍시고 건넨 말이었지만 딱히 농담이라고만 하기도 어려웠다. 내 머릿속의 여군에 대한 인식이 딱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여자도 장교가 될 수 있구나.’ -취업을 준비하고 있던 그해 12월 초였다. 대구 중구의 맥화랑에서 친구를 만나고 나오는데 옆 건물 담벼락 게시판에 ‘여군 장교 모집’ 공고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화랑 옆에 있는 게 대구지방병무청이란 걸 그때 비로소 알게 됐다. 간호학과에 들어간 친구가 떠올랐다. 호기심에 빼꼼히 상담실 문을 열었다. 여군 부사관이 반갑게 맞았다. 그는 나를 앉혀 놓고 장장 3시간에 걸쳐 여군이 되면 뭐가 좋은지를 설명했다.(여군 장교 지원자가 없다 보니 모집에 성공하면 담당자에게 따로 수당을 준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러나 여군에 지원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평생 통제된 생활을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그냥 일어서려는데 담당자가 너무도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붙잡았다. 결국 지원 신청서를 쓰고 나왔다. ‘시험 보러 안 가면 그만일 텐데,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건 오산이었다. -다음날부터 집 전화기에 불이 났다. 병무청 담당자였다. 처음에는 “훌륭한 결심을 왜 바꾸셨느냐”로 시작하더니 내가 완강하게 버티자 “지원을 취소하면 헌병대 군인들이 데리러 갈 수밖에 없다”로 거의 협박조로 변했다. 하지만 막판의 한마디가 나의 오기에 불을 댕겼다. “경쟁률이 10대1입니다. 우수한 인재가 이렇게 많이 지원한 건 처음인데 붙는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일단 시험이나 한번 보시죠.” 지금 생각해 보면 별말도 아닌데, 그때는 그 말이 왜 그렇게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1981년 1월 초 대구역에서 서울행 군용열차에 올랐다. 시험 장소는 용산 국방부 근처의 여군훈련소. 집에는 친구들 만나러 간다고 둘러댔다. 첫날밤을 간호장교 친구 집에서 묵었다. “명순이 넌 정말로 못 할 일이야. 숨 막히는 상명하복 문화를 너 같은 성격에 행여….” 아침에 일어나니 친구는 이미 출근했고, 머리맡에 고향 갈 차비와 함께 쪽지가 놓여 있었다. ‘명순아, 아직도 안 늦었어.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나는 돈을 챙겨 넣고 시험장으로 갔다. 시험은 필기, 면접, 체력검정으로 나뉘어 2박 3일간 이어졌다. -시험에 붙긴 했는데, 새로운 걱정이 밀려왔다. 아버지에게야 어떻게든 이해를 구할 수 있겠지만 어머니는 당최 자신이 없었다. 합격 사실을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저절로 들통이 나고 말았다. 기무대에서 신원조회를 위해 집에 전화를 몇 차례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집에 없었다. 매번 어머니가 받으셨는데 딸 찾는 남자 목소리가 1주일 정도 이어지자 “대체 무슨 일로 그러느냐”고 물으시게 됐다 “따님이 여군 장교 시험에 합격해서 신원조회차 전화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전화도 못 끊은 채 혼절하셨다. -아버지께서 우리 4남매를 집합시켰다. 당시 큰오빠는 한국전력 고리원전에서 일하고 있었고, 둘째 오빠와 여동생은 대구에서 대학에 다녔다. 전원 반대였다. “군인이 얼마나 힘든데 여자가 군대를 가냐.” 큰오빠가 가장 심하게 반대했다. “오빠, 합격하고도 입대를 안 하면 행정 기록에 평생 빨간 줄 같은 거 남는대.” 군인 출신인 아버지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둘러대다니. 드디어 아버지가 말문을 열었다. “명순이는 어릴 때부터 아들 같은 딸이었다. 충분히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내가 못 간 길을 네가 가겠다고 한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그러나 어머니는 달랐다. 평생을 바랐던 ‘교사 딸’에 대한 미련을 내가 소령 계급장을 달 때까지도 버리지 못하셨다. -육군 공병이었던 아버지는 6개월마다 교량 하나씩을 짓고 부대를 옮겼다. 강원 횡성에서 태어난 나의 어릴 적 추억이 이곳저곳에 다양하게 남아 있는 이유다. 어머니는 이런 환경을 탐탁지 않아 하셨다. 우리들 교육 때문이었다. 8남매 중 맏이로서 동생들을 책임지느라 많이 못 배운 게 평생의 한이 된 분이셨다. 4남매만큼은 안정적으로 공부를 시키고 싶어 하셨다. “여보, 군인 그만두고 고향으로 가서 장사라도 합시다.” 아버지는 어머니 말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분이셨다.(아버지는 2013년 암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아내를 그리워하다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게 1965년, 내가 일곱 살 때였다. -나는 경북 경주의 작은 동네에서 ‘가게 하는 집 딸’로 통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면서 110m 허들 육상선수로 꽤 소질을 인정받았고, 공부도 남에게 뒤지지 않았다. 중3 어느 날 대구 경북여고에서 누군가 집으로 찾아왔다. 어머니에게 “따님을 육상선수로 스카웃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 명순이가 시험으로도 그 학교 충분히 갈 수 있는데 운동 특기생으로 보낼 이유가 있나요.” 어머니의 바람에는 내가 얌전히 자라 교사가 되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된 뒤부터는 그런 어머니에게 실망을 안기는 일이 잦아졌다. 딸을 통해 못다 한 꿈을 이루려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사춘기의 열병 같은 것이었다. 딱히 이렇다 할 말썽을 피운 건 아니었지만 빈둥거리는 시간이 늘었고, 성적이 그에 비례해 곤두박질했다. 경북대 영문과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저 대학 안 가고 돈 벌래요. 오빠들 등록금 대기도 빠듯하잖아요.” 경제적으로 부담이 컸던 아버지가 내심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10년, 20년 지나 봐라. 여자들 사회활동이 얼마나 활발해질 텐데…. 절대로 안 될 말이야.” 아버지가 손수 후기대학인 영남대의 지원서를 받아 오셨다. 아버지의 선견지명은 그대로 통했다. 여군 장교 지원 조건이 ‘4년제 대학 졸업자’였으니 말이다. -기함하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1981년 3월 용산 여군훈련소에 입소했고, 그날부터 후회가 시작됐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는 간호장교 친구의 만류가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올랐다. 구보 등 고된 훈련은 둘째치고 음식이 입에 안 맞아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40㎏ 언저리의 체중으로 그 힘든 훈련들을 견뎌내야 했다. -틀에 박힌 생활, 충성심과 국가관 교육 등 모든 것이 낯설었다. 학생대장(소령)이 수양록(일기)을 점검할 때면 매일같이 빨간 줄이 죽죽 그어졌다. ‘군대를 선택하길 참 잘했다’ 같은 식으로 써야 하는데 내 수양록에는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다’와 같은 군대 금기어들이 수두룩했다. ‘이렇게 쓰면 훈련소에서 내보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일부러 그렇게 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선택한 길, 스스로 책임진다”는 각오가 차츰 커져 갔다. -1981년 9월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임관을 했다. 상관들은 우리들 20명에게 “외출할 때 버스 타지 말고 택시를 타라”고 했다. 군복 입은 여군, 특히나 위관급 계급장을 단 여자 장교는 동물원 원숭이만큼이나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1982년 육군본부에 배치됐다. 주한 외국대사관의 군인들을 상대하는 무관 연락장교를 맡았는데, 정문을 지키는 의장대 군인들이 외국대사관 군인들의 출입을 막는 일이 잦았다. 어느 날 화가 나서 중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경비소대장에게 달려가 마구 따졌다. 그도 지지 않았다. “감히 소위가 중위에게 하극상을 하나?” “우리가 지금 계급으로 일하는 거예요?” 그때의 중위가 지금의 남편이다. 3년 연애를 하고 결혼했는데 양쪽 집안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똑같이 결혼 상대가 ‘군인’이라는 이유였다. 남편은 2011년 중령으로 예편했다. -1983년 4월 미국 텍사스 공군기지 안에 있던 영어전문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는 내가 이후 통역 등 영어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군대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뒤 내가 세운 원칙은 “기존의 여군 선배들이 걸었던 ‘여군의 길’은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남자와 같은 능력을 갖춰야 기회가 온다고 생각했는데 그 전기는 1990년 여군병과가 사라져 내가 보병병과로 편입되면서 찾아왔다. 더 많은 보직을 경험할 수 있었다. 1992년부터 1년 4개월간 특전사 여군을 지휘했다. 대테러팀, 고공강하팀, 패러글라이딩팀에 소속돼 고공 낙하산과 래펠을 탔다. 가슴에 ‘공수 윙마크’를 달았다. -“여군대대를 없애 주십시오. 250명 부사관에게 고유의 병과를 부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육군본부 여군대대장(중령)으로 근무하던 1999년, 육군참모차장에게 나는 강한 어조로 건의했다. 당시 육군본부 내 남자 사병과 여군 부사관 간에 차별이 너무 심했다. 남자 사병들에게는 정신교육을 없애고 PC방까지 만들어 주면서 여군에 대해서는 계급이 더 높은데도 취침 때까지 정신교육에 점호를 시켰다. 사병들은 대학을 다니다 온 우수한 인재들이 많고 여군 부사관들은 전문대나 고등학교 출신이 많다는 편견도 크게 작용했다. 여군 부사관이 사병의 복사 심부름을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사병들이 여군 부사관을 무시하고 경례도 하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났다. ‘우리 여군 부사관들이 고작 행정 보조나 하려고, 차 심부름이나 하려고 들어온 게 아니지 않은가.’ -얼마 후 점호가 사라지고 야근도 탄력적으로 바뀌었다. 3년 후에는 여군대대가 없어졌다. 각자 병과를 받아 각 부대로 흩어졌다. 그동안의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일부 여군 부사관들은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지금은 전방 어느 부대에도 여군이 있다. 여군대대가 아직까지 존속했다면 여군 1만명 시대(올 연말 1만 490명 예상)가 이렇게 빨리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1년 말 한미연합사령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중령으로서 한미연합사에 배속된 첫 여군이 됐다. 대령 진급 후 2006년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연대장을 맡았는데, 이때 7명의 연대장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2007년 대구 2작전사령부의 작전처 민사심리전과장으로 가면서 ‘민군작전’(안정화 작전)에 발을 들였다. 북한과의 전쟁 상황에서 한·미 연합군이 북으로 진입하게 되면 북한 주민을 어떻게 관리할지 계획을 세우는 작전이었다. 당시 한국군은 전투에서의 승리에만 관심이 있었지만 이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여러 나라에 진주한 경험이 있는 미군은 민군 작전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전투에 이겨도 전쟁에 질 수 있다”는 개념을 이때 갖게 됐다. 그 경력을 인정받아 2010년 여군 최초로 합동참모본부에 발을 디뎠는데, 이 경험이 장군 진급으로 이어진 결정적인 이유라고 믿는다. -2011년 1월 1일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차장을 맡으면서 여성 처음으로 ‘별’을 달았다. 아이들에게 큰절을 했다. 부모가 1년마다 가방을 싸는 군인이니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도 못 했는데, 미안하고 고마웠다. 2014년 가을부터 대구가톨릭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국가안보론과 리더십 수업을 하는데, 아무래도 많이 받는 질문은 남성 중심의 조직에서 어떻게 장군까지 올라갔느냐는 것이다. 매번 답은 똑같다. “내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했고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인 세상의 변화, 조금씩 유연해진 군 조직,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후배 여군들에게는 ‘여성성을 버리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꼭 필요하다면 모를까 공연히 남자 대 여자로 겨루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회는 결국 공생이고 상생이니까요.” 김태균 사회부장 windsea@seoul.co.kr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송명순 예비역 육군 준장은 국내 최초의 전투병과 여성 장군이다. 간호병과에서는 2001년 첫 여성 장군이 나왔지만 실제 전투와 작전을 수행하는 여군으로는 2010년 12월 별을 단 송명순 장군이 처음이다. 1981년 장교로 임관해 32년간 육군본부, 특전사령부, 작전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을 두루 거친 뒤 2012년 12월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차장을 끝으로 전역했다. 육본 여군대대장 시절 스스로 여군대대의 해산을 상부에 건의해 관철시킴으로써 잡다한 행정업무의 굴레에 갇혀 있던 여군들을 야전 현장으로 이끌어냈다. 이를 통해 ‘여군 1만명 시대’를 앞당기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4년부터 대구가톨릭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958년 강원 횡성 출생 ▲경북여고·영남대 정치외교학과·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1군사령부·특전사령부 여군대장 ▲육군정보학교 영어학 교관 ▲육군 비서실 대외의전장교·여군대대장·여군담당관 ▲육군훈련소 제25교육연대장 ▲제2작전사령부 민사심리전과장 ▲한미연합사 민군작전계획과장·민군작전처장
  • (영상) 레이디 가가, 아카데미 시상식 축하 무대 ‘잔잔한 울림’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 축하 무대가 팝 가수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공연으로 꾸며졌다. 29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레이디 가가는 영화 ‘더 헌팅 그라운드’(The Hunting Ground)의 OST ‘틸 잇 해픈스 투 유’(Til It Happens to You)를 불렀다. #Oscars: Watch @LadyGaga perform ‘Til It Happens to You’, up for Best Original Song tonight https://t.co/cv45ZqaBaE https://t.co/dXWQvkAOvC — Hollywood Reporter (@THR) 2016년 2월 29일 그간 난해한 의상으로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였던 레이디 가가는 이번 무대에서는 비교적 평범한 흰 드레스를 입고 등장,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폭발적인 가창력을 뽐냈다. 특히 팔에 성폭력과 관련된 메시지를 적고 등장한 수십 명의 엑스트라와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잔잔한 울림을 선사했다. 한편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레버넌트’로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사상 처음으로 수상의 기쁨을 맛봤다. 여우주연상은 ‘룸’의 브리 라슨이 받았다. 각본상은 토마스 맥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 각색상은 아담 맥케이 감독의 ‘빅쇼트’가 챙겼다. 사진=ⓒ AFPBBNews=News1, 영상=Hollywood Reporter/트위터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진짜 사나이’ 나나 예쁜 척(?)에 중대장 버럭☞ 아카데미 시상식 흑인 사회자 뼈있는 농담
  • [아카데미 시상식] 알리시아 비칸데르, ‘대니쉬걸’로 여우조연상 수상

    [아카데미 시상식] 알리시아 비칸데르, ‘대니쉬걸’로 여우조연상 수상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대니쉬걸’에 출연한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29일 오전 10시(이하 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의 수상자로 호명됐다. 이날 후보에는 알리시아 비칸데르(대니쉬 걸) 케이트 윈슬렛(스티브 잡스) 루니 마라(캐롤) 제니퍼 제이슨 리(헤이트풀8) 레이첼 맥아담스(스포트라이트)가 올랐다.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훌륭한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며 “나를 믿어준 감독님과 최고의 연기를 해준 에디 레드메인에게 감사하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오스카상’이라고도 불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 영화업자와 사회법인 영화예술 아카데미협회(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 Sciences)가 수여하는 미국 최대의 영화 시상식으로 1929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88회를 맞았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조지 밀러 연출) ‘스포트라이트’(토마스 맥카시 연출) ‘마션’(리들리 스콧 연출) ‘브루클린’(존 크로울리 연출) ‘룸’(레니 에이브러햄슨 연출) ‘빅쇼트’(아담 맥케이 연출)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연출) ‘스파이 브릿지’(스티븐 스필버그 연출) 등 8개 작품이 선정됐다. 더불어 브라이언 크랜스톤(트럼보)을 비롯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마이클 패스벤더(스티브 잡스) 에디 레드메인(대니쉬 걸) 맷 데이먼(마션)이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놓고 경쟁한다.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는 케이트 블란쳇(캐롤) 제니퍼 로렌스(조이) 브리 라슨(룸) 샬롯 램플링(45년 후) 시얼샤 로넌(브루클린) 등이 이름을 올렸다. 감독상 또한 치열한 경합이 예상된다. 레니 에이브러햄슨(룸)부터 아담 맥케이(빅쇼트) 조지 밀러(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토마스 맥카시(스포트라이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등이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후보가 됐다.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은 ‘스포트라이트’가 받았으며 각색상은 ‘빅쇼트’에게 돌아갔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아카데미 시상식]‘대니쉬걸’ 알리시아 비칸데르, “여우조연상 받았어요”

    [아카데미 시상식] 알리시아 비칸데르, ‘대니쉬걸’로 여우조연상 수상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대니쉬걸’에 출연한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29일 오전 10시(이하 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의 수상자로 호명됐다. 이날 후보에는 알리시아 비칸데르(대니쉬 걸) 케이트 윈슬렛(스티브 잡스) 루니 마라(캐롤) 제니퍼 제이슨 리(헤이트풀8) 레이첼 맥아담스(스포트라이트)가 올랐다.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훌륭한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며 “나를 믿어준 감독님과 최고의 연기를 해준 에디 레드메인에게 감사하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남우조연상은 ‘스파이 브릿지’에서 소련 스파이로 열연한 마크 라이런스가 수상했다. 이미 무대에서 정평 난 배우인 그는 크리스천 베일(빅쇼트), 톰 하디(레버넌트), 마크 러팔로(스포트라이트), 실베스터 스탤론(크리드) 등 남우주연상 못잖은 쟁쟁한 스타군단 후보들을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오스카상’이라고도 불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 영화업자와 사회법인 영화예술 아카데미협회(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 Sciences)가 수여하는 미국 최대의 영화 시상식으로 1929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88회를 맞았다. 사진=AFPBBNews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캐나다 로키의 속살을 만나다 쿠트니 로키

    캐나다 로키의 속살을 만나다 쿠트니 로키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캐나다의 로키가 아니다. 과거 일확천금을 꿈꾸던 사람들이 모인 캐나다 골드러시의 중심지였던 쿠트니 로키는 이제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독특한 겨울스포츠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100년이 넘은 알파인 마을들에서 로키의 속살을 만났다. 캐나다의 동서를 잇는 기찻길이 만나다 쿠트니 로키 여행은 크레이겔라히Craigellachie에서 시작되었다. 캐나다의 동서를 잇는 기찻길, 캐네디언 퍼시픽 레일웨이Canadian Pacific Railway는 1885년 이 작은 도시에서 완성됐다. 각각 동쪽과 서쪽에서 출발한 기찻길이 바로 이 도시에서 만난 것이다. 크레이겔라히에 오기 위해 밴쿠버 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고 1시간 만에 켈로나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차를 타고 2시간 정도 달려야 크레이겔라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꽤나 먼 길을 왔지만 여전히 브리티시컬럼비아주였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크기의 캐나다를 동서로 잇는 기찻길이라니 그 길이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180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19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골드러시 시대에 캐나다 서부지역에서 채굴된 각종 광물들을 옮기기 위해 설치된 이 기찻길은 아직까지도 캐나다의 주요 화물 운송을 담당하고 있다. 철로의 마지막 못이 박힌 장소는 ‘라스트 스파이크Last Spike’라는 이름의 명소가 되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화물열차가 지나는 기찻길 옆에서 마지막 못을 박는 기념사진을 찍고, 기찻길이 지나는 모든 캐나다 주州의 이름이 적힌 기념비도 구경한다. 100년이 지나도록 수많은 이야기를 대륙을 가로질러 운반했을 기찻길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Revelstoke레벨스톡 인간과 자연이 만나 역사를 만들다 기찻길이 완성되었다는 도시를 지나 기찻길 덕분에 생겨났다는 또 다른 도시를 찾았다. 레벨스톡은 1880년대 캐네디언 퍼시픽 레일웨이CPR가 개통되면서 형성된 도시로 도시의 이름 역시 자금난을 겪던 CPR을 구제하고 선로를 개통시킨 영국의 귀족, 레벨스톡경의 이름에서 따왔다. 인간이 만들어낸 열차와 광산업으로 도시가 성장했지만 레벨스톡의 자연환경은 사람들에게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다. 겨울에는 1m가 훌쩍 넘게 쏟아지는 눈 때문에 눈을 털어내기 쉬운 양철지붕을 고집해야만 했고 높은 산에서 일어나는 눈사태에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하지만 100년이 넘게 이 산간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자연을 이해하며 살아가는 법을 점차 터득했다. 현재 레벨스톡에는 캐나다눈사태협회 본부가 설치되어 전국의 눈사태를 예보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또한 눈이 많은 환경을 적극 활용해 겨울 스포츠의 도시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인간과 자연이 만나 함께해 온 도시에는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 과자집 사이를 걷는 달달한 산책 레벨스톡은 100년이 훌쩍 넘은 도시이기에 다운타운 역시 그 세월을 간직하고 있다. 여느 알파인 타운과 마찬가지로 뾰족한 지붕을 가진 과자집 모양의 주택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다. 다운타운으로 향하는 입구에는 레벨스톡을 상징하는 그리즐리 베어의 동상이 우뚝 서서 방문객을 환영한다.마을을 가장 잘 아는 방법은 레벨스톡 박물관에 가보는 것이다. 마을사람들이 직접 운영에 참여하는 작은 박물관은 오래된 우체국 건물을 수리해서 사용하고 있다. 32년째 레벨스톡에서 살고 있다는 아담한 체구의 캐시 할머니가 안내해 주시는 박물관에는 처음 미 대륙의 서부를 탐험하며 컬럼비아강을 따라 지도를 그렸던 데이비드 톰슨David Thomson의 발자취와 1920년대 캐나다의 스키점프 챔피언인 넬스 넬슨Nels Nelson의 활약상도 담겨 있다. 박물관을 나와 다운타운의 메인 거리를 걷다 보면 작은 로컬 커피숍과 레스토랑들이 자리하고 있다. 눈이 많은 산악 마을인지라 따뜻한 커피 혹은 런던 포그London Fog 한 잔이면 차갑게 얼어붙은 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다. 런던 포그는 홍차에 거품을 많이 낸 따뜻한 우유를 넣고 바닐라 시럽을 첨가한 달달한 음료로 이 지역 커피숍에서는 쉽게 만나 볼 수 있다. 저녁에는 이 지역의 로컬 맥주를 즐겨 보는 것도 좋다. 레벨스톡에서 잘 보이는 커다란 설산, 마운틴 벡비Mt. Begbie의 이름을 딴 맥주는 100% 천연원료로 만드는 이 지역의 맥주이다. 빙하에서 녹아 내려온 물을 사용해선지 그 맛 또한 일품이다. 산악 마을에서의 식사 메뉴로는 엘크 혹은 바이슨 스테이크를 추천한다. 로컬 와인과 함께 생전 처음 먹어 보았던 스테이크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레벨스톡 박물관315 First Street West, Revelstoke, BC V0E 2S0 월~금요일 10:00~17:00, 토 11:00~17:00, 일 휴무일반 CAD5, 60세 이상 & 청소년 CAD4, 가족 CAD12(12세 이하 무료)+1 250 837 3067 www.revelstokemuseum.ca Woolsey Creek Bistro600 Second St West, Revelstoke, BC V0E매일 17:00 오픈바이슨 CAD27, 엘크스테이크 CAD29www.woolseycreekbistro.ca ▶Theme Park놀라움이 가득한 유령마을 쓰리밸리 고스트 샤토Three Valley Ghost Chateau 유령마을. 이름만 들어도 오싹해진다. 챙 넓은 카우보이모자에 가죽점퍼를 입은 백발노인이 마을 입구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면 더욱 무서울 것이다. ‘세 개의 계곡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이름이 붙여진 쓰리밸리 고스트 샤토는 사실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고 서 있는 3성급 호텔이다. 하지만 호텔보다 더욱 유명한 것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고스트타운이다. 1800년대 후반 이후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하자 번성했던 광산타운들은 유령도시가 됐다. 지역의 유지이자 유명한 수집광이었던 고든 벨Gordon Bell은 사라지는 유산들이 안타까워 크고 작은 물건들을 하나씩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결국 건물까지 수집하기에 이르렀다고. 각 지역에서 오래된 교회, 상점 건물들을 하나씩 옮겨 와 골드러시 당시의 마을을 복원하여 테마파크처럼 만들었다. 기찻길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지역이기에 북미에서 가장 크다는 기관고와 6개의 열차도 수집했다. 20여 개의 올드카가 시대별로 차고를 가득 채우고 있고 각각의 건물 안에는 당시에 사용되던 숟가락부터 오래된 가구까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컬렉션이 가득하다. 혹시라도 이 소중한 공간에 화재가 일어날까 염려되어 아예 타운 내에 소방서까지 마련해 둔 이 수집가의 열정에 감탄을 거듭하게 된다. 쓰리밸리 고스트 샤토 4월 중순~10월 중순 성인 CAD12, 청소년(12~17세) CAD7, 어린이(6~11세) CAD5, 가족 CAD30(5세 이하 무료) +1 250 837 2109 www.3valley.com 가이드였던 백발노인 셰인은 수집가의 오랜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그는 옛 기차역을 복제하여 만든 고스트타운의 입구 앞에서 나무로 만든 투박한 피리로 기차 경적 소리를 들려주었다. 달리지 않는 기차가 머무는 고스트타운의 경적 소리가 사방으로 겹겹이 둘러친 로키 산맥까지 힘차게 울려 퍼졌다. 여유롭게 만나는 로키의 속살 마운트 레벨스톡 국립공원Mount Revelstoke National Park는 국립공원치고는 작은 규모에 속하지만 주변 산세와 컬럼비아강Columbia River을 따라 자리 잡은 레벨스톡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1914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니 그 역사도 벌써 100년이 넘었다. 잘 관리된 도로가 산 정상까지 놓여 있어 누구나 레벨스톡에서 차를 타고 쉽게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장점. 정상을 5분 정도 남겨 놓은 지점부터는 생태환경 보존을 위해 개인 자동차의 출입을 제한한다. 그 때문에 국립공원에서 운영하는 셔틀을 타고 올라가거나 20분 정도의 트레킹을 해야만 했다. 바늘같이 뾰족하게 솟은 침엽수들이 하늘을 향해 촘촘하게 뻗어 있는 사이로 짧은 산책을 했다. 아침의 공기가 갓 떠 놓은 약수처럼 아삭했다. 코로 한껏 들이마시니 겨울 냄새가 났다. 곧 하얗게 눈이 덮일 것만 같은 느낌. 해발 1,933m의 정상에 올라가니 산불을 관찰하기 위한 작은 관망대가 있다. 레벨스톡산 정상에서 보는 로키 산맥은 평평하고 넓으며 각 산맥의 봉우리들이 제 모습을 고스란히 내보인다. 해발 2,000m 이상의 높은 봉우리에는 천년만년 녹지 않는 빙하가 있다. 또 다른 국립공원인 글래시어 국립공원Glacier National Park의 새하얀 봉우리가 레벨스톡산 정상에서 바라다보인다. 빙하를 따라 시선을 조금만 내려 보면 나무가 잘 자라지 않아 고스란히 땅을 드러내고 있는 알파인 그리고 침엽수들이 대부분인 서브알파인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쿠트니 로키 지역은 고산 초원지대Alpine Meadow가 많아 가파른 코스를 피해 여유롭게 트레킹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특히 따뜻한 계절에는 초원 가득 피어나는 야생화가 아름다워 세계 각지의 하이커들과 사진가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마운트 레벨스톡 국립공원 국립공원은 1년 내내 개방하지만, 몇몇 구간과 안내시설은 눈이 많은 10월에서 5월 사이는 운영하지 않는다. 트레킹을 하고 싶다면 매일 업데이트되는 홈페이지의 트레일 컨디션 리포트Trail Condition Report를 확인하자. 어른 CAD7.8, 어린이 CAD3.9, 가족(최대 7인) CAD19.6 +1 877 737 3783 www.pc.gc.ca(‘Mount Revelstoke National Park’ 검색) ●Nelson넬슨 깊은 산 속 작은 샌프란시스코 “곧 미니사이즈의 골든게이트브릿지가 보일 거예요.”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말 ‘금문교’가 나타났다. 호수가 좁아지는 길목을 연결하는 커다란 오렌지색 다리는 크기도, 색깔도, 모양도 샌프란시스코의 그것과 닮았다. ‘커다란 오렌지색 다리Big Orange Bridge’를 줄여 ‘밥B.O.B’이라고 불리는 이 다리는 넬슨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히피들의 성지라는 별명을 가진 넬슨은 쿠트니 로키에서 가장 젊고 예술적인 도시로 유명하다. 음악, 미술, 영화 등 예술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라면 찾고 싶어질 넬슨의 다운타운에는 크고 작은 아트숍, 캐나다의 현대 팝이나 포크음악을 즐길 수 있는 소규모 공연장, 중고 책이나 음악CD 등을 판매하는 오래된 서점 등이 자리하고 있다. 산비탈에 위치하고 있는 넬슨을 가장 제대로 둘러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자전거 투어. 그냥 자전거보다는 오르막길을 쉽게 오를 수 있는 전기자전거를 탈 수 있다면 가장 좋다. 핸들의 버튼만 눌러도 앞으로 쌩 나가고 오르막길에서 힘을 쓰지 않아도 되니 타는 재미가 있다. 넬슨 자전거 투어의 백미는 호수를 따라가는 자전거 길이다. 넬슨의 랜드마크인 밥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고 푸른 잔디가 깔린 공원에서 공놀이를 하는 캐나다 가족도 만나 볼 수 있다. 여름에는 호수에서 카약 등 수상레포츠도 즐길 수 있다. 넬슨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는 베이커 스트리트Baker Street다. 예술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넬슨은 독특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모두 베이커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위치해 있다. 베이커 스트리트의 한 카페에서 발견한 빙고게임이 도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설명해 준다. 길 쪽으로 난 테라스에 앉아 거리를 바라보며 빙고판에 적힌 장면을 볼 때마다 체크해서 빙고를 만드는 게임이다. 빙고판에는 요가매트, 머리를 묶은 남자, 깃털귀걸이, 음악페스티벌 입장권 팔찌 등 지극히 히피스러운 장면들이 담겨 있다. 쿠트니 로키에 살고 있다는 가이드 앤디에게 이 빙고판을 보여 주자 넬슨의 이미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며 웃는다. 넬슨은 넬슨만의 매력이 있다.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도 존중받을 수 있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매력. ▶Hotel유령과 함께하는 파티의 밤 흄 호텔Hume Hotel 넬슨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으스스한 매력이다. 지하묘지가 있다는 소문부터 시작한 무서운 이야기는 오렌지색 다리를 건너자마자 위치하고 있는 오래된 흄 호텔로 이어진다. 무려 1898년에 만들어져 100년이 넘은 호텔은 오랜 시간만큼이나 독특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물론 보수와 개조를 거쳐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는 않지만, 벽돌로 만들어진 벽난로와 오래된 엘리베이터, 미로처럼 뻗어 있는 비밀통로들이 세월을 드러낸다. 이러한 호텔의 매력을 강조하기 위해 흄 호텔에서는 가끔 손님들을 위해 호텔 곳곳에 숨겨진 비밀의 방들을 둘러보는 유령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호숫가를 따라 운행되는 오래된 트램은 1년에 한 번 핼러윈 때가 되면 유령 트램으로 변신한다. 넬슨에서 활동하는 ‘초자연적현상연구회’는 핼러윈마다 넬슨 시내를 돌아다니며 각 명소에 얽힌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령 투어를 진행한다. 흄 호텔 422 Vernon Street, Nelson, BC V1L 4E5 +1 250 352 5331 www.humehotel.com ●Heli-skiing & Cat-skiing차원이 다른 겨울스포츠의 천국 쿠트니 로키의 겨울스포츠는 차원이 다르다. 잘 다져진 스키 슬로프와 곤돌라가 아닌, 아무도 없이 고요한 설원 한가운데, 자연이 만들어 놓은 슬로프를 따라 스키를 타고 내려올 수 있다. 쿠트니 로키는 캐나다에서도 헬리스키Heli-skiing와 캣스키Cat-skiing의 천국이라고 불린다. 슬로프 없는 곳에서 내려오는 백 컨트리 스키가 더욱 일상적인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하얀 설산, 헬리스키 헬리콥터를 타고 설산을 올라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헬리스키는 모든 스키어의 로망이다. 처음 헬리스키에 대해 상상했을 적엔 마치 익스트림 스포츠 영상에서 본 것처럼 헬리콥터에서 직접 뛰어내려야 하나 하고 걱정을 했지만 그건 오해였다. 아직 스키 시즌이 아니라 헬기투어만 하고 돌아왔지만, 사방이 눈으로 뒤덮인 로키 산맥 사이를 날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경험이었다. 실제 헬리스키를 하게 되면 소복하게 쌓인 눈 위로 헬리콥터가 착륙할 때 날리는 눈보라의 장관도 멋지지만 헬리콥터에서 내린 후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음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다가 헬리콥터가 사라지면서 찾아오는 설산의 고요함을 만나게 된단다. 쿠트니 로키에는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다양한 난이도의 헬리스키 코스가 있다. 망설여지는 이유가 가격이라면 그룹의 크기별로 다양한 헬리콥터가 있어서 비용부담도 줄일 수 있단다. 신개념 스키여행, 캣스키 캣스키는 요즘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스포츠로 캣Cat이라고 불리는 설원용 전동차를 타고 산을 올라 백 컨트리 스키를 즐기는 것이다. 최대 14명 정도의 스키어가 탈 수 있는 이 전동차 내부에는 따뜻한 커피와 간단한 음식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캣스키의 장점은 한 번 나가서 여러 코스를 돌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한 번 출동하면 코스 길이에 따라 다르지만 3~4회 정도 스키를 타고 내려올 수 있다. 캣스키의 가장 큰 장점은 헬리스키처럼 자연의 설산 위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올 수 있지만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는 것. 더 많은 인원이 함께 이동할 수 있기에 금액을 나눠서 부담하기도 좋다. 다른 코스로 이동하는 시간에 차 안에서 따뜻한 음료도 즐길 수 있으니 더욱 좋다. ▶Tip쿠트니 로키에서 스키 즐기기 뭉치면 더 즐거운 스키 타기쿠트니 로키에는 스키 리조트가 많고 각각의 거리도 가까운 편이다. 차를 렌트한다면 이동이 어렵지 않으니 일정 내내 하나의 리조트에 있기보다는 여러 개의 리조트를 돌아다니면서 다른 슬로프를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 헬리스키나 캣스키를 탈 때는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과 그룹을 만드는 것이 좋다. 실력이 비슷해야지만 그에 알맞은 코스를 선택할 수 있고 모두 함께 스키를 즐길 수 있다. 가이드가 없이는 할 수 없기 때문에 가이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스키를 떠나기 전 가이드와 원하는 일정과 코스를 충분히 상의하자. 꽁꽁 얼어붙은 몸을 녹이는 노천온천 쿠트니 로키는 겨울스포츠만큼이나 노천온천도 유명하다. 낮에는 설원에서 겨울을 만끽하고 밤에는 따뜻한 온천에서 몸을 녹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의 스키 리조트 근처에는 온천 리조트가 있으므로 둘 중 한 곳에 묵으면서 오고가면 된다. 스키를 타지 않아도 괜찮아, 헬리투어 꼭 스키를 타야지만 헬리콥터를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봉우리 가까이로 다가가 빙하를 구경할 수 있는 헬리투어는 쿠트니 로키의 아름다운 광경을 하늘 위에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겹겹이 둘러싼 산맥 사이로 빙하가 녹아 만들어낸 맑은 호수와 작은 마을들은 마치 장난감 세상을 둘러보는 듯 아기자기하고 아름답다. 파일럿이 전해 주는 산 봉우리에 얽힌 전설이나 마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30~40분 정도 비행할 수 있다. ▶travel info AIRLINE쿠트니 로키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와 알버타주, 그리고 미국과 경계가 맞닿아 있다. 밴쿠버 혹은 캘거리에서 켈로나 혹은 크랜브룩으로 국내선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넬슨을 방문하고 싶다면 밴쿠버에서 캐슬가로 가는 방법이 제일 가깝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에어캐나다가 인천-밴쿠버 직항편을 운행 중이다. TRANSPORTATION캐나다횡단고속도로Trans-Canada Highway 1번이 캐네디언 퍼시픽 레일웨이CPR: Canadian Pacific Railway를 따라 쿠트니 로키를 지나간다. CPR은 화물열차로만 운영되고 있어 차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며, 적설량이 많을 때를 제외하면 도로 사정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카페리를 타고 호수를 건너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캐나다 사람들도 많이 이용하는 루트라 이용이 쉽고 가격도 무료다. CAFE오소 네그로Oso Negro커피 로스터이자 카페인 오소 네그로는 이 커피맛을 찾아 쿠트니 로키 곳곳에서 원두를 사러 찾아올 정도로 유명하다. 독특한 구조의 정원과 건물 장식으로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단델리온 라떼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음료로 민들레 가루를 넣은 라떼다. 604 Ward Street, Nelson, BC osonegrocoffee.com/cafe 에스프레소 CAD2, 민들레라떼 CAD2.75 HELI-TOURS하이 테라인 헬리콥터High Terrain Helicopters넬슨의 외곽에 비행장이 위치하고 있으며 코카니 빙하Kokanee Glacier와 발할라 마운틴Valhalla Montain 투어를 할 수 있다. 4인승 작은 헬리콥터부터 10인승의 헬리콥터까지 여러 대를 구비하고 있으며 벌써 25년째 운영 중인 베테랑이다. 3인부터 탑승이 가능하며 가격은 30분 투어에 1인당 CAD199부터다. www.htheli.com SKI RESORT레벨스톡 마운틴 리조트Revelstoke Mountain Resort레벨스톡 시내와 가깝고, 가장 최근에 생긴 편이라 신식 시설을 갖춘 스키 리조트다. 52면의 스키 슬로프가 존재하고 가장 긴 슬로프는 15.6km에 달한다. 해발 1,713m까지 리프트로 올라갈 수 있는 데다 산을 둘러싸고 내려오는 완만한 슬로프가 있어 초보자도 산 정상에서부터 내려오는 스키를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레벨스톡에서는 거의 2,000km2에 달하는 대지에서 헬리스키나 캣스키를 즐길 수 있다. 2950 Camozzi Rd, Revelstoke, BC +1 250 814 0087 www.revelstokemountainresort.com HOT SPRING할씨온 핫스프링 Halcyon Hot Springs로키 산맥과 호수를 비경으로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노천온천은 굉장히 로맨틱하다. 온수 자쿠지가 두 개, 냉수 자쿠지가 하나 있으며 커다란 수영장도 갖추고 있다.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온천을 즐길 수 있으며 탈의실과 샤워실도 크고 넓다. BC-23, Nakusp, BC +1 250 265 3554 www.halcyon-hotsprings.com 아인스워스 핫스프링Ainsworth Hot Springs산 중턱에서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아인스워스 리조트의 온천은 동굴이 있어 독특하다. 말발굽 모양으로 생긴 동굴 속에 온천을 만들었기에 스팀이 빠져나가지 않아 더욱 따뜻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다. 1회 입장권 혹은 하루 이용권을 구입할 수 있다. 3609 Highway 31. Ainsworth Hot Springs, BC +1 250 229 4212 www.hotnaturally.com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윤지민 취재협조 캐나다관광청 keepexploring.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The Best 시티] 동학부터 4·19혁명까지… 살아 있는 ‘백성의 역사’를 거닐다

    [The Best 시티] 동학부터 4·19혁명까지… 살아 있는 ‘백성의 역사’를 거닐다

    4월 개관 근현대사기념관서 순례길 시작… 북한산 따라 4·19민주묘지 등 이어져 강남 안 부러운 언덕길 카페거리도 생겨 우이동~신설동 잇는 경전철 내년 개통… 50분 걸리던 거리 20분 만에 이동 가능 “강북구는 대한민국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최고의 역사문화 관광지입니다.” 오는 4월 문을 여는 근현대사기념관 앞에서 박겸수 서울 강북구청장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수유동 4·19길에 들어선 아담하고 환한 인상의 근현대사기념관은 건축 공사는 끝났지만 아직 전시 준비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근현대사기념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는 우이~신설 경전철역 가운데 하나인 ‘4·19사거리역’이 들어선다. 경전철 역에서 근현대사기념관까지 올라가는 야트막한 언덕길은 북한산 국립공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둘레길 가운데 하나인 ‘순례길’과 바로 연결된다. 동대문구 신설동과 강북구 우이동을 잇는 11.4㎞ 구간의 경전철은 올해 말까지 공사를 끝내고 내년에 개통할 예정이다. 모두 13개의 역 가운데 강북구에는 8개의 역사가 들어선다. 현재 역 이름 짓기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동대문구인 신설동역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역사는 성북구다. 경전철은 버스나 지하철 환승으로 50분이 걸리던 우이동과 신설동 구간을 20분에 주파한다. 승객이 2호선, 7호선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지하철 4호선의 혼잡도를 줄이고 역사문화관광도시 강북구를 서울시민 누구나 편리하게 찾는 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동북 지역의 발전을 이끌 드넓은 물꼬가 트인 것이다. 박 구청장은 근현대사기념관 개관과 경전철 개통으로 강북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이 빛을 발할 것이란 기대에 부풀었다. 역사문화관광도시 강북구는 그가 2010년 구청장에 처음 취임할 때부터 꿈꿨던 구상이다. 근현대사기념관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1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자마자 결정한 것이다. 박 시장은 “근현대사박물관은 너무 세고 근현대사기념관으로 갑시다”라고 제안했고, 박 구청장은 “박물관이든 기념관이든 ‘관’ 자만 붙으면 좋습니다”라고 화답했다.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시작하는 북한산 자락 순례길을 따라 우이동에서 국립4·19민주묘지, 순국선열묘역, 북한산 국립공원 등을 축으로 약 22만㎡ 부지에 각종 시설 등을 갖췄다. 가족이 1박 2일 동안 동학혁명부터 4·19혁명까지 뜨거웠던 역사의 고비를 한 번에 느끼도록 강북구 역사문화관광 코스를 설계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운영을 맡은 근현대사기념관은 전체 면적 897㎡에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16위 전시관과 역사체험관 등을 갖춘다. 강북구 초·중·고교 학생들이 모금한 2300만원의 기금으로 김구의 흉상을 근현대사기념관 앞뜰에 세울 예정이다. 김구에 이어 이준, 손병희, 이시영, 신익희, 김창숙, 여운형 등 16명의 독립운동가이자 애국지사 흉상을 모두 세워 사진 찍기 좋은 역사 명소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근현대사기념관 건립 예산은 서울시에서 44억원을 투입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을 제작해 배포하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만든 곳이다. 역사관이 한쪽으로 쏠릴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해 박 구청장은 “민족문제연구소만큼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관련해 풍부한 자료를 갖춘 곳은 없다. 연구소는 사관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고 사실 중심으로 근현대사기념관을 운영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올해는 우이동에 가족캠핑장과 야외수영장도 마련할 계획이다. 예술인촌도 조성해 서울시민들이 굳이 경기 이천이나 전남 강진까지 가지 않고도 도자기 굽는 법을 체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꾸라지 체험장과 딸기밭도 만들어 가족이 강북구에 오면 다채로운 체험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역사문화벨트가 조성되면 북한산 둘레길 주변의 역사문화자원들을 돌아본 뒤 우이동 캠핑장에서 숙박을 하고 다음날엔 북한산에 오르면서 여가를 즐기는 1박 2일의 스토리텔링 관광 코스 및 청소년들의 수학여행 코스가 완성됩니다.” 박 구청장이 2002년 구청장 선거에서 패하고 강북구 구석구석을 훑으며 구의 발전을 위해 꿈꿨던 구상의 완결판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는 “서울 종로나 중구에 가면 볼 수 있는 광화문, 경복궁, 창경궁 등은 어디까지나 왕과 지배층 양반의 문화”라며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한 격동기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진정한 백성의 문화를 보고 싶다면 강북구로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현대사기념관이 문을 열면 첫 손님은 강북구 학교의 교사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구청장은 이미 교사를 위한 근현대사 연수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교장 등 교사들과 처음으로 근현대사기념관 산책을 하며 프로그램을 알릴 계획이다. 핫 플레이스를 카페 주인들이 가장 먼저 알아봤다. 이미 2년여 전부터 4·19사거리부터 근현대사기념관을 지나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에는 카페 골목이 조성됐다. 바리스타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차린 전망 좋은 대형 카페도 여럿 있어 결코 강남의 카페거리가 부럽지 않다. 게다가 북한산의 봉우리를 마주하며 커피 장인들이 내린 차를 음미하는 것은 강북구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강북구가 인정한 맛집 ‘대보명가’는 남성용, 여성용 약초밥을 따로 짓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학교 3학년 때 근현대사를 배우는데 골치 아프게 역사책을 외울 필요 없이 강북구에 하루 답사를 오면 교과서가 그대로 머릿속에 저장됩니다.” 박 구청장은 ‘살아 있는 역사교육장 강북구’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시리아 난민에 희망 주자” 2020년까지 8조원 지원

    어렵게 시작된 3차 시리아 평화회담이 4일 만에 중단된 가운데 국제사회는 시리아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지난해보다 확대하기로 했다. 4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4차 시리아 인도적 지원회의’에 참석한 70여개국 대표들은 시리아 난민 구호를 위해 2020년까지 최소 70억 달러(약 7조 9000억원)를 내놓기로 했다. 작년보다 늘어났으나 유엔이 요청한 금액(90억 달러)에는 다소 못 미친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희망을 주는 게 교육받은 시리아인의 탈출을 누그러뜨리고 잃어버린 세대의 급진화를 막는 최선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9일 유엔 중재로 개막한 시리아 평화회담은 러시아 공습 문제로 파행을 거듭하다 결국 중단됐다. 스테판 데 미스투라 유엔 시리아담당 특사는 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시리아 평화회담이 25일까지 ‘일시 중단’된다고 밝혔다. 시리아 정부와 반정부군 간 회담이 진척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러시아가 시리아 반군의 주요 거점인 알레포 지역에 대규모 공습을 감행한 것이 회담 중단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반군 대표단인 ‘고위협상위원회’(HNC)는 예정돼 있던 데 미스투라 특사와의 회동을 취소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가볼만한 전통시장] 맛깔 나는 시장

    [가볼만한 전통시장] 맛깔 나는 시장

    명절엔 역시 전통시장이 제격이다. 대형 마트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고유의 맛과 멋이 살아 숨쉰다. 한국관광공사에서 가볼 만한 전통시장 여섯 곳을 소개했다. 상인들이 젊어요… 전주 남부시장 충남 아산의 온양온천시장은 ‘배부르고 등 따뜻한’ 시장이다. 온양은 휴양 기능을 하는 행궁이 자리한 왕의 휴양지였고, 온양 장터는 행궁 수라상에 식재료를 공급했다. 그 명맥을 이은 온양온천시장은 상설 시장과 함께 ‘맛내는 거리’ 등 다양한 테마 거리로 운영되고 있다. 온양온천시장 골목에서 만나는 추억의 온천탕은 겨울이면 훈훈함을 더한다. 강원 강릉의 주문진수산시장은 영동지방에서 가장 규모가 큰 어시장이다. 항구로 들어오는 어선마다 복어, 임연수어, 도치, 가자미, 대구 등 제철 생선이 가득하다. 생선은 경매를 거쳐 순식간에 사라지고, 횟집과 난전으로 뿔뿔이 흩어져 손님을 기다린다. 난전에서 흥정하는 맛도 쏠쏠하다. 말만 잘하면 오징어와 멍게를 덤으로 받을 수 있다. 전북 전주의 남부시장 청년몰과 야시장은 시장의 활력을 되찾게 한 명물이다. 청년몰의 슬로건은 ‘적당히 벌고 아주 잘살자’이다. 먼저 젊은 상인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고, 이를 주변과 나누자는 뜻이 담겼다. 남부시장 야시장도 둘러볼 만하다. 매주 금·토요일 오후 6시에 시작된다. 작은 이동 판매대 35개에 음식과 수공예품이 다양해 전주 시민과 여행자에게 인기를 끈다. 대장간 구경할래요… 광주 송정5일장 경북 경주의 대표 시장은 경주역 앞 성동시장이다. 1만 3200㎡(4000평) 면적에 600여개 상점이 빼곡하다. 어물전마다 조기, 문어 등 제수 용품을 장만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소금에 숙성시킨 상어 고기, 이른바 ‘돔배기’도 눈에 띈다. 먹자골목 탐방은 성동시장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우엉김밥, 쫄깃한 찹쌀순대, 단돈 5000원짜리 뷔페 등이 발걸음을 잡는다. 광주광역시에서는 말바우시장과 송정 5일장이 대표적이다. 말바우시장에선 ‘할머니 골목’이 특히 유명하다. 구례와 순창 등에서 첫차를 타고 온 할머니들이 직접 키운 신선한 채소를 판다. 송정 5일장은 송정역에 KTX가 서면서 인기가 높아졌다. 목포 낙지, 벌교 꼬막 등 질 좋은 해산물과 신선한 채소가 수북하다. 요즘 보기 드문 대장간도 있다. 제주에서는 세화해변 옆의 세화민속오일시장이 이름났다. 규모는 아담해도 없는 것이 없는 시골 장터다. 드물게 바다 가까운 곳에서 열려 장보기를 마치고 여유로운 바닷가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고고한 자태’의 은빛 갈치와 분홍빛 옥돔, 잘 마른 고등어 같은 특산품을 만날 수 있다. 시장에서 직접 고른 물건은 택배로 부쳐 준다. 관광객도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서동철 칼럼] 조성진과 문화산업

    [서동철 칼럼] 조성진과 문화산업

    대부분의 청중은 평생 그렇게 오래 환호하고 박수를 친 기억이 없지 않았을까 싶다. 주인공인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처음 경험하는 환대였을 것이다. 전 세계 어떤 연주회장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환호성이었다. 그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의 모습이다. 1등부터 6등까지 입상자가 초청됐지만, 사실상 우승자 조성진의 금의환향(錦衣還鄕)을 축하하는 자리라는 것은 다른 출연자들도 이미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 음악사에서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은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입상했다는 소식 자체는 이제 전혀 놀랍지 않다. 지난해만 해도 조성진에 앞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벨기에의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는 폴란드의 쇼팽 콩쿠르,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의 하나로 권위를 인정받는다. 그럼에도 조성진의 경우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거창하게 음악사까지 거론한 것은 회사 동료의 말 한마디 때문이다.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자 조성진의 쇼팽 연주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했다. 음악담당 기자를 상당 기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말이 통할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그래도 하는 일이 다른 회사 동료 사이에 피아니스트를 화제로 대화를 나눈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더욱 놀란 것은 그가 ‘조성진의 수상’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조성진의 연주’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동료는 조성진이 아니라도 음악을 좋아하고 자주 들을 것이다. 그래도 그의 입을 열게 한 계기는 조성진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조성진의 음악보다 그의 단아한 외모에 반한 소녀 팬도 왜 그가 1등을 차지했는지 궁금하고 확인하고 싶어 한다.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실황 음반이 벌써 8만 5000장 넘게 팔리고, 갈라 콘서트를 한 차례 추가해도 순식간에 매진되어 암표가 나돈 것도 기존 음악팬에 새로운 ‘조성진 팬덤’까지 대거 가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정부를 대표해 축전을 보냈다. “우리나라 음악인들의 뛰어난 예술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한편 클래식 음악의 저변이 더 넓어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앞으로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도록 더욱 매진해 달라”고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김 장관의 기대는 이미 충족되었다고 해도 좋다. 사실 아담 하라셰비치와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개릭 올슨, 크리스티안 지머만, 당타이손, 스타니슬라프 부닌, 윤디로 이어지는 면면을 보면 조성진은 쇼팽 콩쿠르 우승 자체로 우리 음악인의 예술성을 충분히 세계에 알렸다. 음반 판매고와 갈라 콘서트의 열기를 보면 저변 확대도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당부는 오히려 문체부에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문체부는 ‘돈을 잘 쓰는 방법’을 고민하는 부처로 태어났지만, 어느 사이 ‘돈을 잘 버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부처로 탈바꿈했다. 지금 문체부의 관심은 당장 돈이 벌리는 한류(韓流)에 집중된 듯하지만, 한류가 만들어 내는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1월 수출이 지난해보다 18.5%나 감소한 것도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황에만 이유를 돌릴 것이 아니라 값싼 물건을 많이 내다 파는 시대가 지났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문체부가 문화산업에 힘을 기울이는 것은 미래 먹거리를 창조하는 차원에서도 당연하다. 하지만 문화산업 자체에만 치중해 문화로 높아진 대한민국의 이미지로 부가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생각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당장 1억원을 넘나드는 현대자동차의 신형 ‘제네시스 EQ900’을 해외 소비자들이 한국의 무엇을 믿고 선뜻 구입할 것인가 고민해 봐야 한다. 이미지를 만드는 마케팅에 조성진보다 좋은 소재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 돈을 잘 써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방법은 많다. 조성진이나 음악 뿐이겠는가. dcsuh@seoul.co.kr
  • “고음악은 무대에 선 연극배우 말하기의 예술 같기도 하고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지요”

    “고음악은 무대에 선 연극배우 말하기의 예술 같기도 하고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지요”

    오늘 ‘우리 시대으 바로크’ 공연  “음악 한다 하면 다 조성진, 사라 장처럼 반짝이는 솔리스트를 꿈꾸지, 조연은 되고 싶어 하지 않잖아요. 저야 제가 선택한 악기니 반주 역할이라도 꾸준히 했죠. 그러다 보니 사명감이 생기데요. 그게 벌써 40여년이네요.”  1979년 피아노를 전공하던 한 여대생은 독일문화원에서 낯선 악기를 만났다. 14세기에 만들어진 피아노의 전신으로 건반악기지만 악기 내부에서는 하프나 류트처럼 현을 뜯어 소리를 내는 하프시코드(쳄발로)다. 국내에 하프시코드가 고작 2~3대 있던 시절이었다. 유신으로 학교 안팎이 어지럽던 때 여대생은 이 낯선 악기에 운명을 걸기로 했다. 국내 하프시코드 1세대인 오주희(59)씨 얘기다. ●하프시코드는 약방의 감초 같은 존재 “제 체구가 작아서 피아노는 ‘열정 소나타’라도 한번 치면 드러누울 정도로 힘들었어요. 하프시코드는 아담하고 차분한 것이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듯 관객들에게 말을 걸 수 있겠더군요. 화성과 리듬의 뼈대를 잡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요. 리더 타입은 아닌데 없을 때는 새삼 존재감이 드러나는 공기 같은 존재, 약방의 감초랄까요. 저와 비슷했어요(웃음).” “선생님 말씀대로 고악기의 매력은 무대에 선 연극배우를 떠올리면 돼요. 무대 위 배우의 다양한 발성, 즉흥성과 맞닿아 있거든요. 그래서 고음악은 ‘말하기의 예술’(art of speech) 같아요. 특히 바로크 바이올린에서 쓰는 거트현(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현)은 자세나 가하는 압력이 조금만 달라도 변화가 곧장 나타나기 때문에 다양한 뉘앙스를 표현할 수 있죠. 가능성의 문이 열린다고 할까요.” 지난 2일 오주희씨의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만난 바로크 바이올린 연주자 사토 슌스케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사토는 요즘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가운데 한 명이다. 4일 금호아트홀의 ‘우리 시대의 바로크’ 시리즈 공연의 첫 주자인 두 사람은 이날 바흐의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연습이 한창이었다.  두 살 때 처음 바이올린을 쥔 사토는 열 살 때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데뷔할 정도로 모던 바이올린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미국, 프랑스, 독일의 엘리트 음악 코스를 거치며 바로크 바이올린으로 노선을 바꿨다. 2010년에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국제콩쿠르에서 2위 수상과 동시에 관객특별상을 수상하며 고음악계에서 젊은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현재는 고음악 연주단체인 콘체르토쾰른, 네덜란드바흐소사이어티에서 악장으로 활약하면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음악원에서 바로크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다. ●고음악 연주할 때 살아 있는 음악 깨달아 “모던 바이올린을 하면서는 늘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이 있었어요. 바흐는 ‘고귀하고 깔끔하게’ 연주해야 한다는 식으로 통상 기대하는 스타일이 있어요. 거기에 동의할 수가 없더라고요. 바로크 바이올린과 만나면서 비로소 클래식도 아름다움뿐 아니라 낯설고 충격적인 면, 추한 면 등 다양한 얼굴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국경과 세대, 시대를 넘어 두 사람은 “고음악은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입을 모았다. “작곡자와 연주자가 분리된 게 20세기 초부터예요. 특히 요즘 현대음악 작업하는 걸 보면 작곡자가 연주자 위에 서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명령하는 이상한 위계질서가 생겼어요. 하지만 바로크 음악은 작곡가가 최소한의 지시만 하면 그 안에 느낌은 연주자가 채워 넣어요. 재즈 음악처럼 정답은 없어요. 그래서 고음악을 연주할 때마다 ‘음악이 살아 있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사토)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누리과정 예산 대란과 솔로몬의 지혜

    누리과정 예산 대란과 솔로몬의 지혜

    서로 자기 아이라고 싸우는 두 여인에게 아이를 잡아당겨 차지한 사람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말에 서로 당기던 중 한 여인이 포기하자 그 여인이 진짜 엄마라고 판결한 솔로몬의 판결은 너무나 유명하다. 누리과정 예산을 서로 떠넘기며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중앙정부와 교육감을 보면 아이를 끝까지 잡아당길 뿐 놓으려고 하는 측은 없어 보인다. 훗날 사람들은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오늘의 갈등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교육감들에 따르면 누리과정 예산 문제는 기재부의 예측과 달리 지방재정교부금이 충분히 증가하지 않아 발생한 사태이다. 추가 지원이 필요한 금액도 2조원 정도여서 국가 전체 예산 규모나 새해 예산에서 각 지방에 내려 보낸 선심성 예산에 비하면 그리 큰돈도 아니다. 또한 법적으로 중앙정부에게 예산 마련 책임이 있고, 예산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중앙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만들 수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중앙정부 예산을 사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한 예산이다. 지방교육재정이 열악하여 누리과정 예산을 부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한 푼도 추가 배정할 수 없다고 하는 중앙정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교육감들의 주장이다. 중앙정부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관련법 시행령이 개정되어 누리과정 예산 마련 책임은 교육청에 있고, 학생수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예산은 줄지 않았으므로 여력이 충분하며, 실제로 이월금도 많다. 그리고 무상급식 전면 실시, 수학여행비 보조 등 객관적으로 보아 전혀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다양한 선심성 예산과 교육감 공약 사업 등에 예산을 펑펑 쓰고 있는 상황이므로 교육감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측의 싸움을 지켜보노라면 저출산, 인구절벽, 재정위기 등에 대해 걱정하는 참어미가 있기는 하는 것일까 하는 걱정이 든다. 잘 아는 것처럼 갈등의 출발은 무상급식 전면시행이다. 일부 진보교육감들이 이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되자 우리사회의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 논쟁이 치열해졌다. 그런데 보편적 복지는 근로의욕 저하는 물론 국가재정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하던 측이 대선공약으로 영유아교육 전면 무상이라는 또 다른 보편적 복지 공약을 내걸고 정권을 잡았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양측은 자신들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힘을 이용해 상대방은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힘겨루기와 감정 싸움이라는 잡아당기기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아이의 고통은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솔로몬은 어찌했을까? 아마도 잡아당기기를 중단시키고 둘다 거짓어미라고 선포했을 가능성이 있다. 누리과정 예산 관련 갈등은 향후 다른 사안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당장의 해결책과 더불어 장기적으로 필요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당장 시도해야 할 것은 비공개적 비공식적인 만남을 갖는 것이다. 잘 아는 것처럼 공개적인 협상자리는 결정된 사항에 사인하는 자리이지 거기에서 협상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협상이라는 것은 서로 상대에게 줄 것이 있을 때 가능하다. 비공식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다보면 서로의 관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양보하며 상대에게서 얻어낼 것이 반드시 눈에 보일 것이다. 교육감들은 비록 자신의 공약사업이라고 할지라도 아담 스미스가 말한 ‘중립적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 불요불급한 것이 아닌 것들이 무엇인지를 살펴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줄이는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중앙정부 또한 한 푼도 추가로 줄 수 없다는 입장에 한 발 물러나 기존의 복지예산이나 기타 공약 사업 예산에서 줄이려는 노력을 보이는 부분에 상응하는 매칭 펀드 형식으로 혹은 다른 명목으로라도 누리과정의 어린이집 예산의 상당 부분은 당분간 지원하는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도마저도 거부하는 측이 있다면 그들은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국민을 우롱하는 집단이며, 장기적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노력과 별도로 중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 인도의 경우 총리가 내세운 공약은 모두 곧바로 집행하는 대신 입법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선거에서 승리하면 총리가 내세운 공약 등을 바탕으로 집권 5년간의 분야별 국가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국회는 예산과 함께 그 계획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도록 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비록 공약으로 내걸었다고 하더라도 타당하지 않거나 예산 확보가 어려운 사업은 예산 지원 사업에서 빠지게 된다. 우리의 경우에는 이러한 시스템이 없다보니 대통령을 비롯한 시도지사와 교육감 등 각 기관의 장이 선거에서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공약을 남발하고, 집권하게 되면 그 공약을 지키기 위해 기본적인 예산마저 삭감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중앙정부대로 지방정부와 교육청은 그들 나름대로 특히 예산과 관련된 공약의 경우에는 해당 의회를 통과시키도록 하는 등의 검증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당선되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게 될 것이고, 당선된 후에는 이를 지켜야 하는 부담 때문에 당선자뿐만 아니라 그 돈을 부담해야 하는 국민들도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 구축과 함께 필요한 것은 무책임하게 무리한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출마자를 국민이 걸러낼 수 있도록 국민 스스로를 교육시킬 시민운동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아울러 국민의 담세율, 복지의 범위와 수준 등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지속적인 국민대토론회 개최도 필요하다. 누리과정 예산 문제는 우리가 잘 계획하고 극복해나간다면 미래의 다양하고 더 큰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능력을 기르는 데 필요한 예방주사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 ‘야외 박물관’ 전북 군산…낡은 시간으로의 여행

    ‘야외 박물관’ 전북 군산…낡은 시간으로의 여행

    전북 군산은 근현대사의 야외 박물관이다. 그만큼 시간을 박제한 듯한 풍경들이 널려 있다는 뜻이다. 낡은 시간들만 가득한 풍경 속에서 뜻밖에 수많은 젊은이들과 만난다. 그것도 관광객들 가운데 압도적 다수다. 놀라운 일 아닌가. 까닭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어두운 근대의 기억 속에서 환한 미래를 캐낼 수 있을지 기대되는 장면이다. 반면 해망동 달동네가 사라진 건 뼈아프다. 그 자리에 공원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째보선창’ 뒤편 산자락을 올망졸망 채웠던 허름한 집들은 벌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관광에 도움이 되는 일제의 기억은 남기되 ‘현대의 흑역사’는 없애겠다는 뜻일까. 좋은 관광자원 하나가 하릴없이 스러졌다. 그래도 군산엔 여전히 돌아볼 곳이 많다. 군산은 1899년 개항했다. 동시에 일제 자본도 밀려 들어왔다. 이들은 군산을 호남 지역에서 생산된 곡물을 수탈하는 근거지로 삼았다. 1933년의 경우 국내 총 쌀 생산량이 1630t이었는데 이 가운데 무려 53.4%인 870t이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군산 도심엔 이처럼 일제강점기 경제 수탈과 문화 침략을 보여 주는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日수탈의 전초기지 흔적된 근대건축물 근대건축물이 몰려 있는 곳은 장미동이다. 얼핏 장미꽃이 연상되지만 한문으로는 쌀(米)을 저장했다 해서 장미동(藏米洞)이다. 수탈의 전초기지였던 군산을 상징하는 지명처럼 들린다. 들머리는 근대역사박물관이다. 근대역사거리의 모든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거리와 상가 모습 등 볼거리도 만들어 뒀다. 박물관 오른쪽은 옛 군산세관이다. 1908년 벨기에에서 수입한 적벽돌로 지어졌다는 서구풍의 건물이다. 서울역사, 한국은행 본점 건물과 함께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박물관 왼쪽으로 해망로를 따라 300m쯤 내려가면 일제가 식민지 지배를 위해 세웠던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과 만난다. 1922년 지어졌는데, 당시 경성(서울)을 제외하고 가장 웅장한 건물이었다고 한다. 1980년대 나이트클럽으로 전락했다가 지금은 군산근대건축관으로 쓰인다. 그 아래는 옛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건물이다. 현재는 군산근대미술관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근대 건축물들은 대부분 박물관이나 갤러리, 공연장, 체험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박물관 뒤는 진포해양테마공원이다. 이곳에선 뜬다리(부잔교)를 봐야 한다. 밀물 때 뜨고 썰물 때 내려오는 다리다. 간만의 차가 큰 군산항에서 조금이라도 더 쌀을 많이 가져가기 위해 만들어졌다. 해망로를 건너면 옛 도심인 영화동이다. 골목에 들면 1980년대 풍경이 확 펼쳐진다. 길 끝자락에 ‘초원사진관’이 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에서 정원(한석규)과 다림(심은하)이 만나고 헤어졌던 주무대다. 영화 속 한석규가 찍어 준 심은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주차단속 요원 심은하가 타고 다니던 티코도 주차돼 있다. 사진관 현관문이 심은하가 던진 돌에 깨진 채였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더 안쪽의 신흥동은 유지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다. 이 가운데 ‘히로쓰 가옥’은 국내 일본식 주택 가운데 형태와 특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건물로 평가받는다. 근세 일본 무가의 고급주택 양식으로 지어졌다. 고풍스런 건물 사이로 운치 있는 정원과 수영장, 온실 등을 갖췄다. 동국사는 일본풍의 사찰이다. 일본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지붕이 높고 이국적이다. 절집 끝엔 ‘평화의 소녀상’이 서 있다. 2015년 8월 세워졌다. 잔잔한 표정으로 동국사 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소녀상 앞은 77개의 검정 타일로 조성한 사각 연못이다. 대한해협을 상징하는 것으로 소녀상의 얼굴이 비치도록 설계됐다. 경암철길 마을도 멀지 않다. 협궤 철도가 놓인 철로변 풍경이 발길을 잡아끄는 마을이다. 철길이 놓인 건 1944년께. 한 용지 제조업체가 원료 등을 실어 나르기 위해 조성했다. 철길 길이는 2.5㎞ 정도. 최근까지도 실제 열차가 철길에서 채 1m도 떨어지지 않은 판잣집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곤 했다. 열차는 2008년 7월 운행이 중단됐지만, 낡은 판잣집 사이로 난 철길은 여전하다. 군산 외곽의 임피역도 둘러봐야 한다. 일제가 수탈을 목적으로 세운 군산선의 간이역이다. 단정하고 아담한 역사가 인상적이다. 열차를 활용해 만든 박물관도 볼만하다. ●금강하구둑 나포들녘 가창오리 군무 군산에 모여든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착취해 얻은 재물로 부자가 됐다. 특히 구마모토, 시마타니, 히로쓰, 모리기쿠, 미야자키 등 군산 5대 부호의 명성은 일본 땅에서도 유명했다. 문화재와 골동품에 관심이 많았던 시마타니 야소야는 거둬들인 물품들을 보관하기 위해 건물을 지었는데, 이게 발산리의 시마타니 금고(등록문화재 제182호)다. 무려 3층짜리 건물에 각종 미술품과 골동품들이 빼곡했다고 한다. 발산초등학교 뒤편에 있다. 시마타니가 일본으로 반출하려던 석등(보물 제234호)과 오층석탑(보물 제276호)도 교정 뒤뜰에 있다. 다행히 여러 문화재들이 일본으로 반출되기 전에 해방이 됐고, 시마타니는 빈손으로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최대 농장주로 꼽히는 구마모토는 1932년 당시 땅이 3500정보(여의도의 약 13배)에 달했다. 그가 개정동에 지은 별장이 지금의 ‘이영춘 가옥’이다. 한식과 양식, 그리고 일본풍의 중복 구조로 지어졌다. 바닥은 티크목으로 짜여졌고, 그 위에 외국산 샹들리에와 고급 가구 등이 빼곡해 당시 일본 지주들이 토지 수탈로 얻어 낸 부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하루 여정의 끝엔 금강하구둑이 있는 나포 들녘을 찾아간다. 저물녘이면 어김없이 가창오리의 경이로운 군무가 펼쳐지는 곳. 그래서 겨울철 군산과 가창오리는 서로 ‘연관 검색어’다. 최근까지 15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금강하구둑 일대에서 관측됐다. 겨울이 끝을 향하고 기온이 올라갈수록 가창오리의 숫자도 늘어나는 게 일반적이다. 금강 너머 충남 서천 쪽에서 보는 군무도 빼어나다. 글 사진 군산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3) →가는 길:3000원짜리 통합 입장권을 구입하면 근대역사박물관(454-7870)과 근대미술관, 근대건축관, 진포해양공원 위봉함을 모두 둘러볼 수 있다. 가창오리 탐조는 금강 변에 조성된 탐조회랑에서 본다. 주소는 나포면 옥곤리 955-14다. 군산철새전망대에서 6㎞ 떨어져 있다. 군산시청 문화관광과 454-7870. →맛집:시청 인근 서원반점(445-7718)은 잡채밥이 맛있다. 주문과 동시에 요리한 볶음밥에 잡채를 얹어 내는데 맛도 좋고 양도 푸짐하다. 현지인들도 줄을 서서 먹어야 할 만큼 인기다. 오후 3시쯤이면 재료가 떨어져 문을 닫는다. 한주옥(443-3812)은 꽃게장 백반으로 알려진 집이다. 1만 2000원(1인)에 게장과 생선회, 생선국을 곁들인 백반을 즐길 수 있다. 근대역사박물관 인근 영화동에 있다. 군산회집(442-1114)은 신선한 생선회를 맛볼 수 있는 집이다. 해망동 뒤편의 옛 ‘째보선창’ 인근에 있다. 항도호텔 앞 경선옥(442-3337)은 아욱국과 콩나물국밥만 내는 집이다. 특히 된장으로 끓여 내는 아욱국이 시원하다. 이성당 빵집, 짬뽕으로 이름난 복성루도 근대문화거리 내에 있다. →잘 곳:항도호텔(445-4151)은 군산 최초의 호텔을 리모델링한 곳이다. 옛 모습을 잃은 건 아쉽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이 묵어 가는 등 역사적 공간인 것만은 분명하다. 별관에 사우나를 갖춰 겨울 여행에 맞춤하다. 값도 일반실 기준 6만원으로 무난한 편. 내비게이션엔 항도장(신창동)으로 나온다.
  • 똑닮은 ‘도플갱어’ 두 여성 DNA 테스트 받아 보니…

    과연 세상에는 나와 똑같이 닮은 사람 소위 '도플갱어'가 존재할까?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ABC뉴스는 아일랜드에 사는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서로 닮은 생면부지 두 여성의 사연을 전했다. 현지에서 자동차로 불과 1시간 거리에 사는 두 여성의 이름은 각각 니암 기니(27)와 아이린 아담스(28). 나이도 비슷한 두 여성은 약간의 메이크업만 하면 서로 구분하기 힘들 만큼 똑 닮았다. 사실 기니는 지난해 여러 차례 언론보도를 통해 세계적인 유명세를 누렸다. 지난해 초 그녀는 '세상에 나와 닮은 꼴이 6명은 존재한다'는 속설을 접한 뒤 친구들과 SNS를 통해 도플갱어를 찾아내는 ‘트윈 스트레인저스’(Twin Stranger)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후 기니는 정말 이탈리아에 사는 자신과 똑닮은 루이사 구이자르디와 카렌 브래니간 등을 찾아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세번째 도플갱어가 된 아담스의 경우 그녀의 친구들이 유명해진 기니와 닮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인연이 됐다. 특히 비슷한 나이와 지역이라는 사실 때문에 혹시 두 사람이 혈연관계가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됐다. 기니는 "아담스를 처음 본 순간 내 자신을 보는 기분이었다"면서 "비슷하게 생긴 눈, 코, 입 뿐 아니라 대화할 때 얼굴 표정과 미소, 손짓 또한 너무 유사했다"며 놀라워했다.   이번에 두 사람이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실제로 혈연관계인지 DNA 테스트를 했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 두 사람이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태어났을 가능성은 0.0006%, 부모 중 한 명의 피를 받았을 가능성은 0.1%, 2만 년 전 같은 조상에 뿌리를 두고있을 개연성은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기니는 "과학적으로 보면 남남이지만 우리는 확실히 같은 조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서 "도플갱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며 정말 미스터리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김현회의 축구싶냐] 성남 황진성, “포항? 섭섭하면서 고마운 팀”

    [김현회의 축구싶냐] 성남 황진성, “포항? 섭섭하면서 고마운 팀”

    지난해 12월 초, 서울 모처에서 황진성을 만났다. 일본 생활을 마무리하고 국내 복귀를 노리던 상황에서 황진성의 진솔한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듣고 인터뷰 기사로 내려했다. 하지만 쭉 이야기를 듣고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적이 확정되면 그때 다시 인터뷰하자.” 원소속팀인 포항과의 이적료 문제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자칫 민감한 발언을 했다가 K리그 복귀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황진성의 K리그 복귀라는 ‘단독보도’가 눈앞에 있었지만 그래도 선수가 우선이었다. 민감한 사안을 속 시원히 털어놓은 황진성이 피해를 입는 걸 원치 않았다. 그때 황진성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형. 대신 이적이 확정되면 다시 형한테 모든 걸 다 털어 놓을게요.” 그리고 한 달 뒤 황진성은 성남FC 유니폼을 입었고 약속대로 그는 가장 먼저 나에게 그간의 일을 상세하게 털어놓았다. 아직도 포항의 ‘검빨 유니폼’이 더 익숙해 보이는 그의 가슴에는 성남의 상징 까치가 새겨져 있었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2012년 포항 유니폼을 벗고 벨기에와 일본 등을 거치며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던 황진성과의 인터뷰를 지금부터 공개하려 한다. 반갑다. K리그 복귀를 축하한다. 고맙다. 나도 한국이 너무나 그리웠다. 성남 유니폼을 입고 이제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전남 순천에서 동계훈련을 하고 있다. 프로에 와서 이렇게 힘든 동계훈련은 처음인 것 같다. 당신과 성남의 조합은 아직 어색하다. 이적 소식이 터졌을 때 당황한 이들도 많았다. 사실 K리그 클래식 몇 구단과 K리그 챌린지 구단 등 여러 팀과 접촉을 했었다. 그런데 성남 김학범 감독님이 나를 원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남을 택했다. 국내 복귀를 원했던 가장 큰 이유가 경기에 많이 나서고 싶다는 점이었는데 김학범 감독님과 함께하면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적료 문제도 잘 풀렸다. 혹시 성남시의 산후조리비 지원을 노리고 성남을 택한 건 아닌가. 그건 아니다. 우리 부부는 아직 아이가 없다. 알겠다. 성남 이적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후 다시 자세히 나누기로 하고 그 동안의 근황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해보자. 좋다. 그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당신에게 털어 놓으려 한다. 사실 그 동안 국내에 복귀하려면 포항에 거액의 이적료를 줘야했고 포항과 적대적인 상황이 되는 걸 원치 않아 최대한 말을 자제했었는데 이제는 일이 잘 풀려 조금 솔직해져도 될 것 같다. 솔직하게 이야기했다가 믿었던 나에게 낚이는 수가 있다. 일단 2012년 포항과 결별하고 벨기에에 갔을 때의 상황부터 이야기 해보자. 2013년 시즌이 끝난 뒤 당연히 포항과 재계약을 할 줄 알았다. 2003년부터 이 팀에서만 11년을 뛰었기 때문에 내가 포항을 떠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당시 군대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상까지 당하고 말았다. 상황이 꼬여 포항 구단과 결별을 해야했고 어쩔 수 없이 다른 팀을 찾아야 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포항에만 11년을 있었고 유소년 때까지 포함하면 13년 동안 같은 유니폼만 입었는데 포항을 떠나야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포항을 떠나 벨기에 2부리그 투비즈로 이적한 것도 참 생소한 일 아닌가. 내가 서울신문으로 이적한 것보다도 더 뜬금없다. 나는 2003년에 포항에 입단했는데 흔히 말하는 ‘계약금 세대’다. 국내의 다른 팀으로 이적할 경우에는 이적료가 발생한다. 나도 정확한 계산법은 잘 모르지만 뭐 전년도 연봉과 영입할 팀이 제시할 연봉에 몇을 곱하고 여기에 나이를 나누고 이런 복잡한 계산을 하면 내 이 이적료가 10억 원에서 13억 원 사이라고 하더라. 사실 포항과 결별할 때만 하더라도 K리그내 여러 빅클럽과 영입 이야기를 주고 받았었는데 이적료가 너무 컸다. 생각해보라. 당신이라면 나처럼 나이도 있는 선수를 10억 넘는 이적료를 주고 데려가겠는가. 당연히 안 데려간다. 10억이면 차라리 어리고 잘하는 문창진이나 이광혁 같은 선…. 조용히 하고 내 이야기를 더 들어보라. 알겠다. 결국 내가 갈 수 있는 국내 구단은 없었다. 이 이적료라는 게 국내 이적시에만 발생하는 거라서 어쩔 수 없이 해외로 눈을 돌려야 했다. 그때 나에게 연락이 온 곳이 바로 ‘스포티즌’이었다. 스포츠 마케팅과 매니지먼트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는데 처음에는 사기꾼들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그런데 직접 그 회사의 심찬구 사장과 통화를 해보고는 믿음이 생겼다. 비전이 명확한 회사더라. 이 스포티즌이 인수해 운영하는 팀이 바로 벨기에 2부리그 투비즈였고 나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구단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어떤 선수를 영입할 것인가가 뚜렷하고 명확했고 성적도 벨기에 2부리그에서는 선두권을 유지할 만큼 좋았다. K리그에서만, 아니 포항에서만 11년을 뛴 내가 새로운 무대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셈이라고 생각하고 투비즈 입단을 확정지었다. 포항 영일대해수욕장에서 생선구이만 11년을 먹다가 벨기에 와플을 현지에서 먹는 기분은 어땠나. 영일대해수욕장이 어딘가. 처음 들어본다. 아, 2012년에 포항을 떠나서 잘 모르나본데 북부해수욕장이 2013년부터 영일대해수욕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거 참 포항에 대해서 이렇게 모르나. 그런가. 내가 없는 사이 포항도 변하고 있다는 걸 잘 몰랐다. 사실 처음 벨기에에 갈 때는 어느 정도 고생을 예상했다. 외국 생활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장도 한국 분이었고 한국 직원들도 많아 외지에서 외롭게 생활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한국 분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고 현지 선수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그리고 선수는 원래 첫 경기가 굉장히 중요한 법인데 교체로 투입된 첫 경기 첫 터치로 어시스트를 했다. 운 좋게 첫 경기를 잘 치르니 많은 분들이 인정해 주시더라. 그렇게 처음 선수 등록 문제로 벤치를 지킨 두세 경기를 제외하고는 14경기에 나서 3골 4도움을 기록했다. 나에게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내 꿈이 벨기에 여행 한 번 가보는 것이다. 부럽다. 2부리그 팀이었고 경기장도 아담해 관중이 몇 만명씩 들어차는 팀은 아니었다. 하지만 항상 오시는 분들이 꼭 홈 경기마다 찾아오신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그날은 완전히 동네 축제가 열렸고 경기 전부터 다들 모여서 맥주를 마시며 웃고 즐기는 분위기가 대단했다. 경기가 끝나고도 관중들이 바로 집에 가는 게 아니라 구단 스태프, 선수들과 함께 모여서 맥주를 마시며 축구에 대해 대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참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단장님이 브뤼셀 시내에 무척 좋은 집을 구해주셔서 편하게 생활했다. 운동을 하느라 현지에서 여행을 많이 다니지는 못했지만 그 생활 자체가 나에게는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은 짧은 벨기에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떠났다. 교토상가가 다음 행선지였다. 투비즈에 처음 입단할 때도 그쪽에서 나를 위해 모든 조건을 양보했다. 겨울 이적시장이 열리고 나를 원하는 팀이 있다면 조건 없이 이적료도 받지 않고 보내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겨울 이적시장이 열린 뒤 일본 교토상가에서 제안이 왔고 투비즈 구단에 솔직히 말씀드렸더니 “우리 팀에서 몸을 잘 만들어 더 좋은 조건으로 팀을 옮겨 다행이다”라는 말과 함께 흔쾌히 내 이적을 허락해주셨다. 비록 교토가 J2리그 팀이었지만 1부리그를 오가는 실력이었기 때문에 내가 가서 잘하면 함께 승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J2리그행이 다소 자존심이 상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정말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하느냐라고 믿었다. 그런데 희망을 품고 떠난 당신은 정작 교토에서 보여준 게 별로 없다. 휴, 말하자면 길다. 부상 이후 컨디션이 좋은데도 감독이 나를 쓰지 않고 교체로 넣는 것 아닌가. 이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몇 번이나 감독을 찾아가 면담을 했다. “내가 지금 컨디션이 좋다. 선발로 뛰고 싶다. 보여줄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러면 돌아오는 답변은 항상 같았다. “네가 잘하는 것도 알고 있고 좋은 선수라는 것도 인정한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그러다 나를 전반기 막판 세 경기 정도에 선발로 내보냈는데 전반기가 끝나고 그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이 됐다. 그런데 이후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준비가 돼 있고 잘할 자신이 있는데 교체로나 조금씩 뛰니까 몸 관리도 힘들었다. 15분, 20분, 어쩔 때는 2분, 3분 경기에 나서는데 어떻게 계속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겠나. K리그에서 그렇게 인정받았던 당신이 J2리그에서 그런 대접을 받았다는 건 우리 집 귀한 자식이 남의 집에서 눈칫밥 먹고 고생하는 것 만큼이나 화가 난다. 그래서 지난해 여름에 다시 국내 복귀를 알아봤다. 그런데 역시나 이적료 문제가 큰 걸림돌이었다. 포항과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결국 교토를 떠나 J2리그 파지아노 오카야마로 이적했다. 내가 교토를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카야마 구단에서 제안을 해왔는데 이적료 문제로 국내에 돌아올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오카야마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오카야마에서의 활약은 어땠나. J2리그 소식은 우리나라에서 접할 기회가 별로 없다. 좋았다. 잘해보자는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고 감독도 나를 잘 챙겨줬다. 그런데 이 팀이 J2리그에서도 그리 강하지 않은 팀이다보니 전술이 상당히 수비적이었다. 공격형 미드필더가 없는 3-4-3 포메이션을 썼는데 그러니 당연히 공격형 미드필더가 가장 잘 맞는 내가 장점을 모두 발휘할 수는 없었다. 윙포워드를 맡게 됐는데 일단은 안정적인 수비를 우선시하는 팀이어서 공격보다도 수비 가담이 더 중요했다. 그 와중에도 비록 공격 포인트로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프리킥이나 슈팅이 골대에 맞고 나오는 등 나름대로 아까운 장면을 많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수비형 전술을 쓰고 공격형 미드필더가 없어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긴 했다. 무려 13년 동안이나 포항에서 살던 당신이 3년 동안 팀을 세 번이나 옮기며 저니맨이 돼 가던 모습은 안타깝다. 이것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 힘들기도 했지만 재미있는 생활이었다. 포항에만 계속 있었는데 새 집도 알아보고 차도 좋은 차를 번갈아 타보는 경험은 그 동안 해보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투비즈에 있을 때는 한 달에 한 번씩 렌트카를 구단에서 바꿔주는데 이런 기분을 느껴본 것도 처음이었다. 어느 정도 급의 차를 랜덤으로 한 달에 한 번씩 교체해주는 방식이었고 타보지 못한 차도 바꿔가며 다양하게 타봤다. 이번 달엔 폭스바겐을 타고 다음 달에는 일본차를 타는 식이었다. 운이 좋으면 업그레이드도 해주더라. 투비즈에서 나름대로 여러 차를 타보며 자동차 전문가가 됐다고 생각하는 내가 보기에는 그래도 폭스바겐 골프가 제일 낫더라. 뭐 이런 경험은 저니맨이 아니면 해보지 못할 경험들 아닌가. 폭스바겐이 배출가…. 다음 질문은 뭔가. 반대로 첫 해외 생활이 생소했던 점은 없었나. 벨기에에 있을 때 깜짝 놀랐다. 훈련장에서 감독과 선수가 막 언성을 높이면서 싸우는 일도 종종 일어났기 때문이다. 서로 치고받기 직전까지 막 싸우다가 훈련이 끝나면 감독하고 선수가 어깨동무를 하고 웃으면서 돌아가더라.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운동 프로그램도 한국과 달라 신선했고 일본의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도 인상적이었다. 생소했지만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도 내 몸이 K리그의 시계에 맞춰져 있다는 건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12월 말에 휴가를 어느 정도 보내면 이제 슬슬 포항 가는 비행기 티켓도 끊고 송라 클럽하우스로 돌아갈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10년 넘게 지속된 그 생활을 이제 하지 않게 되자 너무나도 어색하더라. 벨기에는 여름에 시즌을 시작해 그 다음 년도에 시즌이 끝나기 때문에 겨울에도 경기가 계속 있지 않다. 이때쯤이면 연말 연휴를 보내야 하는데 계속 운동을 하고 있는 건 내게 익숙한 경험이 아니었다. 10년 넘게 몸에 밴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거다. 하지만 당신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아예 짐을 다 챙겨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포항과의 이적료 문제 때문에 국내 복귀가 사실상 불가능했던 상황 아니었나. 이전에 몇 번 포항 구단과 이야기를 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는데 그래도 포항과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나이도 있고 연봉도 있어 포항이 나를 영입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적절한 이적료만 받고 나를 풀어주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더라. 사실 정확한 계산대로 해 10억 원 넘는 이적표를 지불하고 나를 데려갈 구단이 있겠나. 포항 구단에서 이적료 문제를 많이 양보해줬고 어느 정도 합리적인 선을 정해줬다.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 구단별로 “이 정도 이적료라면 황진성을 풀어주겠다”고 한 것이다. 이때부터 몇몇 국내 구단과 구체적인 이적 협상을 벌일 수 있었다. 오카야마 구단 또한 계약 기간이 1년 더 남아 있었는데 처음 계약할 때부터 한국으로 복귀하게 되면 보내주는 걸로 이야기가 돼 있었다. 사실 포항이 재계약 불가 방침을 통보했을 때는 섭섭한 감정도 있었지만 이적료 문제와 관련해 많은 도움을 주고 협조해준 부분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한다. 포항의 양보가 없었더라면 나는 국내에 돌아올 수 없었다. 하지만 성남은 정말 의외의 선택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일단 김학범 감독님이 나를 원한다는 게 컸다. K리그 복귀에 대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팀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김학범 감독님이 나를 원한다는 소식을 에이전트를 통해 듣고 확신이 들어 성남행을 결정했다. 이적료 문제는 포항과 성남이 원만하게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직접 만난 김학범 감독은 어떤가. 물론 이미 계약서에 사인했으니 지금 후회해도 이거 빼도 박도 못한다. 사실 포항에 있을 때는 상대팀의 김학범 감독이 무척 무섭고 엄해 보였다. 그런데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같이 훈련해 보니 굉장히 장난도 잘 치시고 유쾌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훈련을 할 때면 정말 엄격하게 변한다. 지금 동계훈련이 프로 입단 후 가장 힘든 것 같다. 성남의 동계훈련을 겪은 이들은 모두 혀를 내두르더라. 도대체 어떤 훈련을 하기에 그렇게 다들 앓는 소리를 하는 건가.성남의 동계 체력 훈련은 K리그 구단의 동계 훈련 중 가장 힘들다고 정평이 나 있다. 체육관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곳곳에 마련된 19가지 훈련을 정해진 숫자대로 3회 연속 쉬지 않고 소화해야 하는데 사이클부터 시작해 트렘폴린, 다섯 가지 스텝 훈련, 모래주머니를 등에 진 채 갖가지 동작을 반복하는 스트레칭과 코스를 반복해서 뛰는 순서로 이어진다. 로프를 양손에 쥔 채 위아래로 흔드는 마지막 코스까지 소화하면 다들 쓰러질 정도다. 지금은 아직 공을 가지고 하는 훈련이 아니라 이런 체력과 근력 운동을 위주로 하고 있다. 여기저기 그동안 팀을 옮기면서 운동에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을 벗어나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지금이 몸은 피곤해도 행복하다. 음식도 해외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잘 맞는다. 나같이 다이어트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효과 만점이겠다. 당신은 아마 한 나절 훈련을 하고 도망갈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은 당신과 김두현의 호흡을 기대한다.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지만 포지션이 겹치는 걸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에서 (김)두현이 형과 처음으로 공을 찰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클래스가 다른 선수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또한 2006년 성남과 수원의 K리그 챔피언결정전 1차전 성남 홈 경기를 치를 때 관중석에서 두현이 형의 플레이를 지켜본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두현이 형이 중원의 장악하면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었다. 아직은 체력 훈련 위주라 함께 공을 차지는 못했지만 예전부터 한 팀에서 꼭 한 번 함께 해보고 싶은 형이었다. 두형이 형과 한 팀에서 뛴다는 건 기분 좋고 설레는 일이다. 일단 지난 시즌 두현이 형과 (황)의조가 공격의 주축이었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다양한 공격 루트를 만든다면 기쁠 것 같다. 두현이 형과 포진션이 겹친다는 지적도 있지만 나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익숙한 반면 두현이 형은 어느 포지션이건 소화가 가능하다.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성남 유니폼을 입은 당신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도 포항과의 맞대결을 벌써부터 상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많은 이들은 당신이 포항을 상대로 어떤 경기를 펼칠지 기대하고 있다. 벨기에와 일본에 있을 때도 포항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은 꼭 챙겨봤다. 결별 과정에서 섭섭한 감정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게는 프로 생활을 처음 시작한 의미 있는 팀이다. 포항에서 젊고 좋았던 시절을 보냈고 이적료 문제도 포항이 잘 풀어줬다. 오는 4월 2일 성남 홈에서, 그리고 6월 15일 스틸야드에서 맞대결이 예정돼 있는데 막상 포항과 경기를 하게 된다면 어떨지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특히나 스틸야드에 서면 어떤 느낌일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전반전이 끝나고 습관적으로 홈 라커룸으로 들어가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포항은 나에게 특별한 구단이지만 이제는 내가 이겨야 하는 상대이기도 하다. 그래도 여전히 포항 팬들은 당신과의 좋은 추억을 많이 떠올린다. 그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내가 성남으로 이적한 뒤에도 많은 포항 팬들이 나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시더라. 그분들한테 보답하는 길은 경기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분한 사랑을 보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할 따름이고 포항으로 돌아가 이 사랑을 다 보답해드리지 못하게 된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성남의 선수로서 성남 팬들에게도 한마디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성남 유니폼을 입었으니 성남의 전통에 누가 되지 않도록 멋진 플레이를 선보이고 싶다. 외국에 있으면서 다른 건 다 괜찮았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동료들과 대화하면서 하나의 마음으로 경기에 나서던 K리그 시절이 그리웠다. 외국에서는 내 플레이에만 집중했는데 나는 동료들과 하나로 뭉쳐 뛰는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이제 성남에서 동료들과 하나가 돼 즐겁게 축구하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성남의 오랜 팬 ‘샤다라빠’에게도 한마디 해달라. 포항에서 내가 잘하고 있을 때 좋은 내용으로 만화에 한 번 등장시켜 주셔서 잊지 않고 있었다. 앞으로 성남 선수가 됐으니 더 잘 부탁드린다. 그리고 건강을 위해 이제는 살을 좀 뺐으면 한다. 당신을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오래 오래 보고 싶어서 하는 말이다. 황진성은 더 이상 K리그에서 ‘원클럽맨’이 아니다. 11년 동안 포항 유니폼을 입고 스틸야드를 누볐던 그는 이제 성남에서 새로운 축구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그가 포항을 대하는 감정은 참으로 미묘하다. 포항은 황진성에게 처음으로 기회를 준 곳이자 꿈을 키워준 구단이면서도 작별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황진성은 성남 유니폼을 입고 포항을 상대하게 됐다. 이 스토리가 K리그를 더 풍부하게 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돌고 돌아 다시 K리그 무대에 선 황진성의 올 시즌 활약을 기대한다. 축구칼럼니스트 김현회 footballavenu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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