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읽는 동화(끝)] 다람쥐 무이의 봄/오주영
다람쥐 무이는 창을 활짝 열었어요. 향긋한 봄바람이 집안으로 들어왔어요. 무이는 바람을 흠뻑 들이켰어요.
“킁킁, 달콤한 제비꽃 냄새랑…. 킁킁, 기분 좋은 냄새가 섞여 있어.”
무이는 갑자기 배가 고팠어요. 제비꽃 요리가 먹고 싶었어요.
“그게 어디 있더라…”
무이는 책장에서 책을 찾았어요.
“찾았다!”
‘다람쥐를 위한 간단 봄 요리 100가지’라는 책이었어요. 무이는 책에 쌓인 먼지를 팡팡 털었어요. 콜록콜록 기침을 했어요. 의자에 앉아 책을 펼쳤어요.
“새봄에 먹는 제비꽃 무침, 35쪽.”
무이는 35쪽을 폈어요.
“재료. 2인분. 뿌리를 뗀 제비꽃 줄기 한 움큼, 참깨 가루 한 숟갈, 간장 한 숟갈, 맛술 약간, 소금 약간.”
무이가 볼을 긁으며 말했어요.
“맛술 약간과 소금 약간? 약간이 얼마큼이지?”
무이는 다음 쪽의 ‘만드는 법’을 읽었어요.
“첫째, 제비꽃 줄기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뺍니다. 둘째, 참깨 가루 한 숟갈에 간장을 한 숟갈 섞고, 맛술과 소금을 적당히 쳐서 소스를 만듭니다. 셋째, 제비꽃 줄기에 소스를 뿌려 먹습니다. 맛술과 소금을 적당히 치라니, 적당히는 얼마큼이람.”
무이는 책을 덮었어요. 까딱까딱 의자를 흔들며 중얼거렸어요.
“요리책은 정말 어렵구나.”
무이는 요리를 그만둘까 생각했어요. 그때 다시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왔어요.
무이는 홀린 듯 의자에서 일어났어요. 파란 웃옷을 입고 밀짚모자를 썼어요.
“제비꽃 무침에 들어갈 맛술이랑 소금의 양을 알아봐야겠어.”
무이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향했어요. 무이가 한 번도 다니지 않았던 길이었어요.
무이는 냇가를 따라 길을 걸었어요. 보송보송한 새싹이 발밑을 간질였어요.
“이봐, 이봐. 멈춰!”
다급한 소리가 들렸어요. 무이가 깜짝 놀라 멈춰 섰어요. 무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렸어요.
“움직이지 마!”
다시 소리가 들려왔어요. 무이가 하늘을 보았어요. 갑자기 무이의 모자가 하늘에 딱 달라붙었어요.
“어? 뭐지?”
깜짝 놀란 무이가 바닥에 쿵 주저앉았어요. 모자는 여전히 대롱대롱 떠 있었어요.
노란 줄무늬 거미가 투덜거리며 줄을 타고 내려왔어요.
“이것 봐. 내 소중한 끈끈이 끈에 네 모자가 걸렸잖아. 난 짚으로 만든 모자는 안 먹는데.”
가만히 보자, 투명한 거미줄이 반짝반짝 빛났어요.
무이가 말했어요.
“못 봐서 미안해. 너 제비꽃 무침에 맛술과 소금을 얼마나 쳐야 하는지 아니?”
“제비꽃 무침? 난 몰라. 그렇지만 옆 나무의 거미 아가씨는 알지도 몰라.”
“물어봐 줄 수 있니?”
“좋아. 우선 벌레가 잡힐 때까지 기다려. 거미 아가씨는 맛있는 선물을 좋아하거든.”
무이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어요.
“그럼 안 되겠다. 나는 지금 배가 고픈걸.”
무이는 다시 냇가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어요.
햇볕이 점점 뜨거워졌어요. 바람이 잠시 멈추었어요. 무이는 풀숲의 그늘로 들어갔어요. 그늘 속에는 초록 개구리가 앉아있었어요.
“좋은 날씨지?”
무이가 인사했어요.
개구리가 쉰 목소리로 말했어요.
“하늘은 맑고, 햇살은 밝아. 켁, 그러니 정말 나쁜 날씨야.”
“맑은 날을 싫어하니?”
“구름이 잔뜩 끼는 날이 좋아. 거기다 비까지 내리면 더 좋고.”
개구리는 힘없이 덧붙였어요.
“이런 날에는 목이 아파서 노랫소리가 갈라져버리는 걸, 켁켁.”
“저런.”
개구리가 너무 구슬피 말해서, 무이는 제비꽃 무침에 맛술과 소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아냐고 물을 수 없었어요.
풀숲이 바스락거리더니, 꽃 모자를 쓴 개구리 아가씨가 얼굴을 내밀었어요.
“얘, 더운데 뭐하니?”
개구리가 까슬까슬 갈라진 목소리로 노래를 했어요.
“뜨거운 해보다 뜨거운 마음, 켁. 내가 누굴 기다리고 있었게? 켁켁.”
개구리 아가씨가 빙긋 웃으며 개구리 옆에 앉았어요.
무이는 다시 냇가를 따라 걸어갔어요.
나뭇잎이 바람에 파르르 떨었어요. 냇물도 파르르 떨었어요. 꽃다지가 살랑살랑 몸을 흔들었어요. 무이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걸었어요.
무이는 하늘을 빙빙 돌며 춤을 추는 얼룩 나비를 보았어요.
“나비야, 혹시 제비꽃 무침에 넣을 맛술과 소금의 양을 아니?”
나비가 외쳤어요.
“저리 가. 말 시키지 마. 나비 아가씨한테 춤을 보여드려야 해.”
그래서 무이는 꽃다지 위에 앉아있는 나비 아가씨에게 물었어요.
“제비꽃 무침에 맛술과 소금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알고 있니?”
“음, 글쎄….”
얼룩 나비가 무이의 코앞까지 날아와 화를 냈어요.
“저리 가. 말 시키지 마. 나비 아가씨는 내 춤을 봐야 해.”
“아, 알았어.”
무이는 나비를 피하다 발을 헛디뎌 냇가로 주르륵 미끄러졌어요.
“어어어어?”
무이가 냇물에 텀벙 빠져버렸어요. 무이는 떠내려가며 팔다리를 허우적댔어요. 다행히 무이의 앞발에 나무뿌리가 잡혔어요. 무이는 뿌리를 붙잡고 엉금엉금 뭍으로 올라왔어요.
“휴, 내일 할 목욕을 오늘 해 버렸네.”
무이는 철퍼덕 주저앉았어요. 눈앞에 제비꽃이 가득 핀 벌판이 펼쳐졌어요. 벌판 한 가운데 둥근 바위집도 보였어요.
“저 집 주인은 제비꽃 무침에 넣을 맛술과 소금의 양을 알 거야!”
무이는 바위집 앞으로 뛰어가 외쳤어요.
“계세요?”
“잠깐만요.”
바위집의 문이 열리고, 걸레를 쥔 다람쥐 아가씨가 걸어 나왔어요. 무이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어요. 아가씨에게서 마음이 붕 뜨는 신비하고 기분 좋은 향기가 났거든요.
무이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어요.
“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비꽃 무침이, 그러니까…”
다람쥐 아가씨가 팔짱을 끼고 무이를 지긋이 보았어요.
무이의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어요.
“꼬르륵, 꼬르륵, 꼬르르르륵!”
다람쥐 아가씨가 킥 웃었어요.
“새봄맞이 청소가 끝나면 맛있는 점심을 만들 거예요. 청소 좀 도와주실래요?”
무이는 서둘러 외쳤어요.
“예, 좋아요. 좋습니다.”
무이는 멋지게 청소를 도왔어요. 앞으로 뒹구르르, 옆으로 데굴데굴 굴러 거실 바닥을 찰박찰박하게 만들었지요. 아가씨는 걸레로 바닥을 깨끗이 닦아냈어요.
청소가 끝나자 다람쥐 아가씨가 들판의 너른 바위 위로 제비꽃 무침을 내왔어요. 무이는 다람쥐 아가씨와 제비꽃 들판에 앉아 점심을 먹었어요. 민들레차도 함께 마셨어요. 따뜻한 햇볕이 무이를 뽀송뽀송하게 말려주었어요.
무이는 다람쥐 아가씨와 인사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향했어요.
돌아오는 길에는 저절로 어깨가 들썩여졌어요. 보드라운 바람이 무이의 등을 밀어주었어요.
무이는 얼룩 나비 둘이 함께 팔랑팔랑 춤추는 걸 보았어요. 개구리 둘이 더위를 피해 헤엄치는 것도 보았어요. 거미줄은 텅 비어 있었어요.
무이는 집으로 돌아와 파란 웃옷을 옷걸이에 걸었어요. 그러고 나서야 무얼 깜박했는지 깨달았어요.
“앗, 제비꽃 무침에 맛술과 소금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물어봐야 하는데!”
무이는 흐뭇하게 중얼거렸어요.
“내일 다시 가서 물어봐야겠는 걸.”
●작가의 말
겨울이 깊어지고 있다. 아니, 봄이 가까워지고 있다. 단단하던 땅이 푸슬푸슬해지고, 초록 잎이 곰실곰실 돋아날 봄이 기다려진다. 봄이 오면 모두들 움츠리고 있던 어깨를 펴고 기지개를 켜겠지. 동물들은 제 짝을 찾아 부지런히 돌아다닐 거다. 생동하는 봄을 동화에 담고 싶었다.
●약력
창비 제13회 좋은 어린이책 창작동화 저학년부문 대상. 현재 단국대 대학원(문예창작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저서: 동화집 ‘이상한 열쇠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