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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 신부 8인의 한국생활 3년 그후

    베트남 신부 8인의 한국생활 3년 그후

    KBS 1TV ‘러브인아시아’는 30일 오후 7시 30분에 한국과 베트남 수교 20주년 기념으로 특집 ‘8인의 신부’를 방송한다. KBS와 베트남 국영 방송사 VTV가 공동기획으로 만든 이 프로그램에는 베트남 하이퐁에서 경북 예천으로 시집 온 8명의 베트남 신부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2009년 예천에 사는 농촌 총각 8명이 베트남행 비행기에 올랐다. 예천군의 주선으로 베트남 하이퐁에 사는 아가씨들과 만나게 된 것. 3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경기도 안산 시화공단에서 10년 넘게 일하다 부모님이 계신 고향을 찾은 정재완(41)씨와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구두 공장에서 일을 하다 맞선 자리에 나오게 된 팜티쑤언(25)씨. 두 사람은 이 맞선 자리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한국 생활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었던 팜티쑤언씨에게 한국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그녀는 고추 농사며 송이 캐기, 밭농사까지 짓지만 남편은 아직 한국 사정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경제권을 넘겨주지 않는다. 3년 전 함께 결혼한 다른 아내들은 국적도 따고, 다른 일도 하며 자유롭게 살고 있는데 농사일에 매여 아무것도 못 하고, 생활비도 못 받는 것이 억울한 팜티쑤언씨는 경제권을 갖기 위해 남편과 마주 앉았다. 2009년 아버지의 권유로 예천군에서 주선하는 맞선 자리에 합류하게 된 정민경(43)씨는 그곳에서 아내 당티히엔(25)씨를 만났다. 결혼 전 동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하다 2007년 고향으로 내려 온 정씨는 쉽사리 마음을 잡지 못했다. 그런 정씨가 당티히엔씨를 만나 가정을 꾸리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착실하게 농사 짓고, 농한기에는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정씨가 기특한 아버지는 아들이 이렇게 변한 것은 다 며느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아버지는 친정어머니가 보고 싶다며 우는 며느리를 위해 발 벗고 나서서 안사돈을 모셔 오기도 하고, 며느리에게 차를 사준다며 고추를 사다가 말리기까지 한다. 문제는 이 모든 결정을 시아버지 혼자 한다는 것. 시어머니는 며느리 위하는 것도 좋지만 늘 맨 마지막에 이런 사실들을 아는 것이 불만이다. 언어도, 문화도, 생활방식도 다른 한국 남자와 베트남 여자의 만남. 닮은 부분보다는 다른 부분이 많은 이들이 만나 맞춰가는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지기도 하지만 함께 행복하자는 생각 하나로 서로를 선택했다. 과연 이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이며 현명하게 갈등을 풀어갈 수 있을까.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커버스토리] “백수1년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어… 죽어라 일한 젊은 날 억울”

    [커버스토리] “백수1년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어… 죽어라 일한 젊은 날 억울”

    “도대체 난 그동안 뭘 한 걸까. 삶에 아무런 낙이 없다.” 박명식(54·가명)씨는 요즘 멍하게 앉아있는 일이 잦다. 무얼 해도, 누구와 있어도 도통 재미가 없다. 때로는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때로는 콱 죽어버릴까 싶다. 가족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해본 게 언제인지, 부부관계를 한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생수와 떡을 넣은 단출한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를 때면 초라한 기분이 들어 참을 수가 없다. 살아온 세월에 대한 허무와 배신감, 살아갈 세월에 대한 공포와 암담함. 절망이란 게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2년 전 건설회사에서 퇴직한 뒤 야심 차게 치킨 전문점을 창업했지만 쫄딱 망해 퇴직금마저 날린 뒤 이런 증상이 시작됐다. ●봄:청도 촌놈, 개천 출신 용을 꿈꾸다 박씨는 그 유명한 ‘58년 개띠’다. 6·25 전쟁 후 태어난 1955~63년생 ‘베이비붐’ 세대 중에서도 사람 수가 가장 많기로 유명한 1958년생이다. 그는 질곡의 현대사만큼이나 격동의 50년을 살았다.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2남 4녀 중 첫째로 태어난 그의 소원은 오직 쌀밥을 배불리 먹는 것이었다.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경북 청도 ‘촌놈’은 대구로 유학을 떠나 명문 국립대 기계공학부에 들어갔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지만 박씨에게 데모(시위)는 사치였다. 과외수업과 막노동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며 근면 성실하게 대학을 졸업했다. ●여름:유능한 사회인, 든든한 가장 일자리는 널려 있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큰 어려움 없이 서울에 있는 큰 건설회사에 들어갔다. 삼시 세끼를 직장에서 해결하며 밤낮 없이 일했다. 27세 되던 1985년 봄엔 중매로 만난 참한 아가씨와 결혼했다. 서울 단칸방에 살면서도 야근 후 나눠 먹는 붕어빵 하나에 부부는 깔깔댔다. 사글세를 내고 남은 월급은 대부분 시골 가족들의 생활비로 보내졌지만 일할 곳이 있고 쌀밥이 있기에 마냥 행복했다. 이듬 해 딸이 태어났고, 자식에겐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힘든 줄 모르고 일했다. 야근은 일상이었고 휴가는 남의 일이었다. 직장에 한 몸 바치는 게 당연한 줄만 알았다. 아들도 얻었다.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이사를 반복했다. ‘내집’만 있다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았다. 그는 마침내 1994년 경기도 성남 분당 신도시에 새로 지어진 31평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가을:52세 직장 퇴출, 좌절의 문턱 인생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젊고 똑똑한 부하 직원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직장에서 그의 입지는 차츰 쪼그라들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바뀌는 흐름과 유행을 좇아가기 버거웠다. 영어는 또 왜들 그렇게 잘하는지, 그는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추진력도 예전 같지 않았고 자신감도 확연히 떨어졌다. ‘꼰대’로 취급받는 걸 느끼며 박씨는 막연히 은퇴를 예감했다. 그래서일까. 2010년 쉰둘의 나이로 회사에서 잘렸을 때 그는 애써 태연한 척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실제로 큰 충격을 못 느꼈으니까. 딱 100일을 동분서주한 끝에 퇴직금 1억원으로 경기 용인 수지에 통닭집을 냈다. 그러나 창업은 쉬운 게 아니었다. 대접만 받아 왔던 그는 서비스업에서는 젬병이었다. 대우받고 살다가 갑자기 몸을 낮추려니 배알이 꼴렸다. 손님들을 살갑게 대하는 것도 어려웠고, 젊은 아르바이트생들을 다루기도 버거웠다. 계산과 서빙에 잔 실수도 많았다. 새벽까지 술 손님을 상대하느라 건강도 축났다. 신메뉴와 세련된 인테리어로 단장한 경쟁업체도 잇달아 들어섰다. 아내와도 자주 싸웠다. 결국 반 년도 안 돼 빈손으로 가게를 접었다. 정말 끝이었다. 50평생을 제대로 놀아 본 기억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는데 남은 건 달랑 50평짜리 아파트 하나였다. 박씨는 “팽팽하던 고무줄이 끊어진 느낌이었다.”고 했다. ●겨울:절망… 처자식보다 산이 더 좋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년간은 ‘백수’로 살았다. 직장이 없어지니까 특별히 만날 사람도, 할 일도 없었다. 격의 없이 술잔을 주고받던 사회 친구들과는 대부분 연락이 끊겼다. 아니, 박씨 스스로 끊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는 “괜한 자격지심 때문에 내가 먼저 피한 적이 많다.”고 했다. 동창 모임에도 몇 번 나가봤지만 아직 일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샘이 나서 움츠러들었고 같은 처지의 친구들은 궁상맞아서 싫었다. 아내와도 영 어색해졌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삼시 세끼 끼니를 챙겨 줘야 하는 남편을 뜻하는 ‘삼식이’라는 말이 등장했을 땐 굴욕적이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대학생이 된 자식들과도 서먹해졌다. 할 말이 없고 어쩌다 대화를 해 보려 해도 관심사나 가치관이 달라 몇 마디 이어지질 않았다. 아내와는 여자친구 얘기며 학교 얘기며 일상을 속속들이 나누는데 아빠만 시쳇말로 ‘왕따’를 시키다니. ‘여태껏 누구 때문에 풍족하게 먹고 자고 입고 다녔는데’라고 생각하니 괘씸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아이들과 소소한 일상 얘기를 해 본 기억이 없었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 인간관계에 대한 서운함은 물론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사무치게 밀려든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으면 안 되는데. 젊은 시절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데’ 사춘기가 다시 오는 건가 싶었다. 사는 게 아무런 재미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가족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왠지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제대로 놀 줄도 몰랐다. 넘치는 시간이 고역이었다. 가장 우울한 건 통장 잔고가 팍팍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버는 건 없는데 씀씀이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대학생 두 명을 키우다 보니 등록금만 매년 2000만원 가까이 들어갔다. 둘째가 군대에 간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게다가 장남인 박씨는 고향 청도에 혼자 사시는 홀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마음의 짐까지 보태졌다. 이젠 ‘100세 시대’라는데 나의 노후만 대비해도 모자랄 판국에 뒷바라지해야 하는 자식과 부모 사이에 끼어 그저 답답할 뿐이다. 그래서 박씨는 오늘도 멍하니 앉아 울음을 삼킨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깔깔깔]

    ●스튜어디스 팔순이 넘은 할아버지가 해외여행을 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기상 악화로 비행 중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자, 어여쁜 스튜어디스가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 드렸다. 비행기가 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하고, 스튜어디스는 할아버지를 부축해 비행기 출구 쪽으로 모시고 가 인사를 했다. 그렇게 스튜어디스는 친절한 미소를 띠며 할아버지를 배웅했다. “할아버지 몸 건강히 안녕히 가세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아가씨, 비행기가 흔들릴 때 무서우면 또 내게로 와요. 내가 언제든 아까처럼 손을 꼭 잡아 줄 테니!” ●난센스 퀴즈 용 두 마리가 죽을 각오로 싸운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용용죽겠지.
  • 슈베르트 가곡 페스티벌

    예술가곡 전문연주단체 리더라이히가 22~26일 서울 서초동 모차르트홀에서 ‘슈베르트-101개의 눈물, 101개의 보석’을 주제로 독일 가곡 페스티벌을 연다. 지난해 말러 서거 100주년을 맞아 말러 가곡 전곡을 공연한 리더라이히는 이번에는 슈베르트를 조명한다. 슈베르트 가곡이 많이 연주되지만 대부분 ‘겨울나그네’와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백조의 노래’ 등 연가곡 중심이다. 리더라이히는 닷새에 걸쳐 ‘물레 가의 그레트헨’처럼 괴테의 시에 선율을 붙인 가곡(22일), 슈베르트 후원모임 ‘슈베르티아데’에서 부른 가곡(23일), 독일가곡 오디션 선발자들이 부르는 가곡(24일), 슈베르트가 이루지 못한 사랑과 변치 않는 우정을 담은 가곡(25일), 자연의 소리를 품은 아름답고 발랄한 가곡(26일) 등을 선사한다. 3만원. (02)533-0084.
  • 사연따라 연예반세기(演藝半世紀)…그시절 그노래(13)

    사연따라 연예반세기(演藝半世紀)…그시절 그노래(13)

     남인수(南仁樹)의 생애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동반자라면 바로 작곡가 박시춘(朴是春)을 꼽는다. 그들은 같은 시기에 작곡가 가수로 출발해서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30년 세월을 마치 한몸처럼 살았다. 작곡가·가수의「콤비네이션」이 이들만큼 척 들어맞아 오래 변치 않은 예도 드물다. 남인수(南仁樹)가 인기가수로 한 세대를 주름잡았다면 그에게 노래를 대어준 박시춘(朴是春)은 남인수(南仁樹)를「스타」로 만든「스타·메이커」다.    본명이 박순동(朴順東)인 박시춘(朴是春)은 밀양(密陽) 태생, 밀양(密陽)보통학교를 나왔다. 14살에 가출해서「카페」의「보이」노릇, 무성영화 순읍대(巡邑隊)의 견습 기사로 10대를 보냈다. 특별히 음악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는 가요 반세기에 가장 우수한 작곡가로 군림했고 오늘까지 3천여곡의 대중 가요를 발표했다. 선천적인 재능 탓(때문)일까. 7살부터 날린 북솜씨로 무성영화 순읍대(巡邑隊)에 들어  아닌 게 아니라 그는 7살 때, 밀양(密陽)보통학교 운동회에서『브라스·밴드』의 북을 맡아 신동(神童) 소리를 들었다 한다. 그가 14살때 전남 순천(順天)으로 가서 무성영화 순읍대의 한「멤버」로 채용된 것도 이 북 솜씨 덕이었다. 그 때의 순읍대란 활동사진을 가지고 경향 각지를 순회 상영하는 영사반. 영화의 주인과 영화를 돌리는 기사, 육성으로 해설하는 변사, 그리고 손님을 끄는 악사로 구성돼 있었다. 석양 무렵이면 손님을 끌기 위해서 나팔을 불고 북 치며 교외를 도는데 마침 북잡이가 없어서 대신 북을 쳐 준 것이 주인의 눈에 든 것. 일본인 주인은 그 뒤 박시춘(朴是春)을 일본으로 데려가 가요계「데뷔」의 길을 터 준 것이다.  연예계를 향한 충동은 좀더 어려서부터다.  『아버지(朴源居씨)가 밀양서 사설권번(卷番)을 차리고 있었다. 기생들의 노래 소리가 끊일 날 없었다. 병아리 기생들은 1주일에 한번씩 남도잡가 같은 노래 시험을 치렀는데 나는 그들의 노래를 하도 들어서 4살 때부터 가사를 모두 외웠다. 기생 시험생들이 나를 등에 엎고 다니며 노래 가사를 일러 달라고 조르던 일이 생각난다』(박시춘(朴是春)씨 말)  남도잡가 기사 일러주며···기생 등에 업혀 지내기도  「한량」이던 아버지는 그가 11살때 세상을 떠났고 5남매의 3째이던 그는 14살에 집을 뛰쳐 나왔다. 가세가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몰락했기 때문이다. 전남 여수(麗水)에서 일본인 부부가 경영하는「카페」에(원본 글자체는 거꾸로 찍혔음) 들어가 소년「지배인」으로 취직. 이것이 서울을 중심으로 일본, 만주(滿洲)를 유랑한 방랑 반평생의 시작.  북을 쳐 주다가 무성영화 순읍대의 대원이 된 박시춘(朴是春)은 순읍대의 본부인 일본(日本) 구주(九洲)「미야사끼」(宮崎)에 갔다. 거기서 일이 없는 겨울 한철을 연주 공부로 채웠다.「트럼페트」「트럼본」「기타」「바이얼린」「피아노」등, 지금의 박시춘(朴是春)이 연주할 수 있는 악기의 기초공부는 모두 그곳에서 터득했다는 것. 물론 선생이 있는 게 아니고 그저 악기가 있으니까 혼자 연습한 것이다. 이것이 그에게 작곡가의 길을 터 주는 계기가 됐다.  그를 발탁한 사람은 극작가 이서구(李瑞求). 이(李)씨는 그때「고베」(神戶)에 있는「시애론·레코드」의 문예부장이었다. 악기를 만지며 흥이 이는 대로 만든「멜러디」를 보고 이서구(李瑞求)는 박시춘(朴是春)을「시애론」에 입사시켰다. 작곡·연주를 겸한 본격적인 연예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34년에 귀국해서 남인수(南仁樹)를 만났다. 그때 남인수(南仁樹)는 17살의 떠꺼머리 총각이었고 박시춘(朴是春)은「하이칼라」의 신식 멋장이, 22살의 한창 나이였다.  첫 취입곡이 그 유명한『애수의 소야곡』『범벅 서울』그리고 두 사람이 OK로 옮기면서 쏟아져 나온『꼬집힌 풋사랑』『감격시대』『항구의 청춘시』등, 어쨌든 이들「콤비」의 노래는 나오는 대로「히트」했고 8·15 해방까지 계속되었다. 한번 OK에 전속된 뒤로는 OK가 없어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박시춘(朴是春)의 곡은 남인수(南仁樹) 이외에도 많은 가수에 의해「히트」됐다. 김정구(金貞九)의『왕서방 연서』『앵화 폭풍』『항구의 선술집』,이난영(李蘭影)의『산호빛 하소연』『바다의 꿈』『괄세를 마오』, 장세정(張世貞)의『금단의 꽃』『남장 미인』, 현인(玄仁)의『신라의 달밤』『러키 서울』- 그리고 범국민가요가 되다시피한『전우여 잘 자거라』『승리의 용사』『전선야곡』등도 박(朴)씨의 작곡.  레코드사(社) 문예부장이던 이서구(李瑞求)씨가 발탁  61살이 된 요즘도 박시춘(朴是春)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유행가의「멜러디」를 생산하고 있다. 160cm 남짓한 짤막한 키에 미소년 같은 얼굴, 그의 표정은 언제나 장난기가 가득찬 홍안 미소년이다. 조그만 일에도 흥겨워 하고 적당히 감상적인 성격이 어쩌면 타고난 대중가요 작곡가다.  『한때 좋아하던 아가씨가 있었다. 관철동(현재 서울 종로구)에 있는「미야고」라는「바」의 19살짜리 여급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찾아볼 수 없게 미인이었고 마음씨도 고왔다』  그 미인한테 반해서 박시춘(朴是春)은 2년간 그「바」의 단골손님이 됐다. 25살때의 일이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모양인데 그 아가씨는 끝내 이 인기 작곡가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기생이란 자신의 위치와 일류 인기 작곡가의 처지가 행복한 결합일 수 없다고 판단한 때문이었을까.  말하자면 박시춘(朴是春)은 실연을 한 셈인데 그때 만든 노래가『영자야 가거라』다. <영자야 가려므나, 네 맘대로 가려므나, 못믿을 사람아, 네가 찾는 세상은 화류계 나라, 춘향이는 못될 망정 정개는 절개, 그, 어이 값 없으랴->  박시춘(朴是春)은 지금도 한잔 얼큰해지면 30여년 전, 돈과 인기와 젋음이 절정이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멋과 낭만을 무엇보다 사랑했던 전형적인 대중가요 작곡가. 낭만이 메말라 가는 사회에서도 가요계의 원로 박시춘(朴是春) 자신만은 결코 대중가요 같은 낭만을 잃지 않고 있다. <조관희(趙觀熙) 기자>[선데이서울 73년 4월 1일 제6권 13호 통권 제233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9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저작권, 판권 등 지적재산권은 서울신문의 소유입니다. 무단 전재, 복사, 저장, 전송, 개작 등은 관련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 [씨줄날줄] 기업형 룸살롱/육철수 논설위원

    7년 전 이맘때쯤. 서울 강남의 1급 룸살롱 마담이라고 밝힌 한연주씨는 ‘나는 취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펴내 화제가 됐다. 룸살롱에 대한 그의 정의(定義)는 학자들의 그것과 달리 현장감이 묻어난다. 그에 따르면 룸살롱의 등급은 시설이나 술값에 따라 나눌 수도 있으나 기본은 ‘아가씨’라는 것이다. 아가씨들에 대한 봉사료가 10만원이고 2차가 절대 없는 곳이 1등급이란다. 이른바 ‘텐프로’(10%) 아가씨들이 일하는 곳이다. 다음은 ‘점오’(15%를 의미함)라 불리는 곳. 텐프로 못지않은 아가씨들이 있지만, 봉사료가 다소 저렴하고 2차를 나가는 종업원과 그러지 않는 이가 반반씩 섞인 곳이라고 했다. 그 다음엔 아가씨들 모두 2차를 나가는 곳이며, 여기까지가 룸살롱에 속한다고 소개했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저서 ‘룸살롱공화국’을 보면 룸살롱은 광복 이후 1960년대 ‘요정’의 바통을 이어받아 1970년대부터 유행했다고 한다. 1990년대에 들어 권력·재력·폭력이 유착하면서 급성장했다. 얼마나 붐을 탔으면 공급이 한정된 룸을 잡으려면 10대1이 넘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 했을까. 룸살롱에선 정치인과 공무원 등을 상대로 한 억대의 향응과 뒷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룸살롱에서 벌어지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추태와 탈선 소문도 꼬리를 물었다. 지난해 건설회사 사장 출신인 정용재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쓴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이란 책은 현직 검사들을 실명으로 거론하고, 낯 뜨거운 그들의 행태를 미주알고주알 폭로해 검찰조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룸 100개가 넘는 ‘기업형 룸살롱’이 성행한 것은 최근 10년. 한씨는 저서에서 “강남에는 50~60개의 1급 룸살롱이 있다.”면서 “모두 막대한 세금을 내고 합법적으로 영업하는 기업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요즘 검찰이 수사 중인 ‘어제오늘내일’(YTT)이라는 국내 최대의 룸살롱은 마담·접대부 등 1000여명이 종사하는 기업형이다. 그런데 9만여회의 성매매, 30억원의 탈세를 저질렀다가 들통났다. 검찰은 또 최근 5년간 관할 서울 강남경찰서를 거쳐간 경찰관 700~800명에 대해 전면적인 ‘과거사 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물론 경찰의 반발은 만만치 않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라나? 검찰이 룸살롱 연루 공무원들을 수사하기에 앞서 검찰 관계자부터 조사했으면 명분도 서고 모양새도 훨씬 더 좋았을걸 그랬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21일 TV 하이라이트]

    ●모범시민(KBS1 밤 12시 20분) 아내, 딸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이끌어가던 클라이드 셸턴은 어느 날, 집에 쳐들어온 강도들에게 아내와 딸을 모두 잃는다. 눈앞에서 아내와 딸이 무참히 살해되는 걸 목격한 그는 1년 동안 재판을 끌면서 수백만 달러를 쏟아붓는다. 하지만 자신의 증언은 의식이 불분명했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아 재판에서 질 위기에 처한다. ●스펀지(KBS2 밤 8시 50분) 추석과 관련된 모든 범죄에 대처하는 법을 공개하는 내용으로 추석 특집을 꾸몄다. 첫째 방법은 빈집을 두고 떠나는 귀성객을 위한 ‘사전 신고제’다. 프로그램에서는 장기간 집을 비울 시 관할 파출소에 미리 신고하면 경찰들이 하루 여러 차례 순찰을 돈 후 현재의 방범 상태를 직접 영상으로 찍어 보내주는 제도를 공개한다. ●TV속의 TV(MBC 낮 12시 15분) 안방극장은 지금 만능 엔터테이너 시대다. 한 분야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다른 분야에 진출하는 스타들. 그중에서도 특히 가수들의 연기자 변신은 이제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을 정도다. 하지만 연기자들의 역습이 시작됐다. 브라운관에서 진지하게 연기하던 그들이 숨겨둔 끼를 발산하며 무대를 장악하기 시작했는데…. ●좋은 아침(SBS 오전 9시 10분) 29살 장미선씨는 부지런한 어촌 아가씨다. 하얀 피부에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투박한 어부 옷을 입고 거친 바다를 헤치며 고기를 잡는다. 약해 보이는 작고 가녀린 체구로 열심히 놀리는 동작 하나하나에는 어설픈 모습이 전혀 없다. 가족을 위해 씩씩하게 험한 바다 일도 척척 해내는 미선씨의 바쁘지만 행복한 일상을 따라가본다. ●명의(EBS 밤 9시 50분) 단단한 뼈 속에 자라는 암, 골육종은 뼈 속에 발생하는 악성 종양으로 암세포로 이루어진 나쁜 뼈를 만들어낸다. 과거 절단과 항암만이 최선이었던 골육종 치료법에서 벗어나 최근 뼈의 기능을 그대로 살리기 위한 다양한 수술법이 등장했다. 그 노력의 현장을 정형외과 전문의 전대근 과장과 김한수 교수를 통해 살펴본다. ●대뜸토크(OBS 밤 7시 5분) 대선 주자와 대선 정국에 영향력을 미치는 정치인을 찾아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는 솔직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번주 주인공으로 새진보정당추진회의 노회찬 대표를 대뜸 찾아간다. 그에게 통합진보당 분당에 얽힌 사연과 신당권파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12번째 대통령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 [깔깔깔]

    ●아들 낳아줘 어떤 할아버지가 자식들이 준 용돈을 모아 외국 여행을 가려고 외환은행에 갔다. 은행창구에서 직원 아가씨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아가씨, 돈 좀 바꿔 줘요. 은행직원: 네, 그러면 애나(엔화) 드릴까요? 딸나(달러) 드릴까요? 귀가 잘 안 들려 희미하게 듣고 있던 할아버지는 생각했다. ‘어허! 나이도 젊은 아가씨가 참 당돌하네.’ 그러고는 할아버지가 하는 말. 할아버지: 이왕이면 나는 아들 낳아줘. ●난센스 퀴즈 ▶아이스크림 차가 교통사고가 났다. 왜 사고가 났을까? 차가와서. ▶운전자들이 배워야 하는 춤은? 우선멈춤. ▶목수도 고칠 수 없는 집은? 고집. ▶곰이 사과를 먹으면? 베어.
  • [중국통신] “접대여성, 처녀 아니잖아!” 신고한 황당 男

    ’처녀 여학생 대기’라는 광고를 보고 성매매를 시도했던 한 남성이 ‘거짓 광고’에 실망해 경찰에 신고를 하는 황당한 일이 있었다. 타이완(臺灣) 둥썬신원(東森新聞) 13일 보도에 따르면 후(胡)씨는 지난 8일 사업차 찾은 후난(湖南)성 주저우(株洲)시를 찾았다가 일을 마친 뒤 숙소로 돌아간 새벽 2시 경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섹시한 외모의 처녀 여학생, 가정 형편이 어려우니 도와달라.”는 내용의 음란광고 문자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후씨는 곧바로 휴대전화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후씨의 방으로 두 명의 여성이 찾아왔지만 후씨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노출이 심한 옷에 짙은 화장을 한 여성들은 외모부터 말투까지 전혀 ‘학생스럽지’ 않았던 것. 심지어 거리낌 없이 방문을 여는 여성들은 ‘처녀’와도 거리가 멀어보였다. 아차 싶은 후씨는 “필요 없다.”며 여성들을 되돌려보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여성들은 “처녀가 맞다.”며 오히려 후씨를 몰아붙였고, 급기야 방안까지 들어와 침대를 차지했다. 경찰을 부르겠다는 후씨의 협박에도 여성들은 굴하지 않았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경찰을 부른 후씨. 원치 않는 관계는 피할 수 있었지만 후씨는 ‘사상교육’ 처분을 받았다. 경찰 조사 이후 후씨는 “아가씨 광고는 믿을 것이 못된다.”며 억울한(?) 발길을 돌렸다. 중국통신원 홍진형 agatha_hong@aol.com
  • [보고 듣고 즐기세요] 연극·뮤지컬

    ●연극 ‘허풍’ 16일까지 서울 동숭동 이랑시어터.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의 ‘할 수 없이 의사가 되어’를 한국적 정서에 맞게 번안한 극단 성좌의 작품. 원작은 주인공 스가나렐과 그를 골탕 먹이기 위해 억지로 의사를 만드는 부인, 사랑을 얻기 위해 벙어리 흉내를 내는 아가씨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 ‘허풍’에서는 의사가 아니라 무당이 된다. 힙합, 국악, 비보잉, 슬랩스틱코미디가 어우러진 ‘퓨전 마당놀이’를 표방한다. 1만~3만원. 070-8804-9929. ●뮤지컬 ‘비지터’ 28일까지 서울 돈암동 아리랑아트홀. 루퍼트 부르크의 연극 ‘리투아니아’를 원작으로 하며, 극단 주변인들의 김성진 대표가 서충식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와 공동연출했다. 돈에 눈이 어두워 살인을 한 가난한 가족의 비극적인 운명을 실감나게 그렸다. 고정희와 추정화, 최재림, 황성현, 김보경 등 실력 있는 배우들이 포진했다. 3만원. 010-4760-2461.
  • 때론 소비현장, 때론 생계현장… 女, 격동의 공간을 지배하다

    식민지 시절 일본인이 점령했던 지배의 공간, 전쟁의 포화가 휩쓸고 간 참담한 폐허, 민주화 열기로 뒤덮인 목마름의 해방 공간, 첨단의 유행과 패션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소비와 향락의 최일선…. 세대와 연령에 따라 서울 한복판 명동은 각양각색의 얼굴로 각인된다. 명동은 그렇게 다양한 성격의 땅이지만 늘 남성과 생산보다는 여성과 소비의 인상이 짙었다. 지금도 그 인상은 여전하다. 전국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 전국 최고의 상권, 외국인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공간, 보행객의 최고 밀집 지역 명동. 그곳에서 여성은 언제나 소비에 치우친 존재일까. 여성 학자가 쓴 ‘명동 아가씨’(김미선 지음, 마음산책 펴냄)는 그 ‘소비적이고 여성들의 발걸음이 몰리는’ 명동을 뒤집어본 흥미로운 책이다. 6·25전쟁이 끝난 뒤 허무와 비감이 무성했지만 상권이 형성되고 번창했던 1950∼60년대의 명동을 저자는 새롭게 되살려 놓았다. 당시의 여성 잡지와 일간지 기사며 사진, 행정지도, 당사자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 명동이 마치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본 손금처럼 생생하다. 저자는 전후의 명동이 소비·문화·생존의 공간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지금의 명동을 일군 주인공이 바로 여성이었음을 강조한다. 저자가 훑어내 보여 주는 명동의 궤적을 보자. 총성이 그친 후 도시 재건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명동은 국가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사회복지부, 상공부, 증권거래소 등이 들어섰고 전쟁 중 폐업했던 백화점 개점과 함께 양장점이며 미용실이 들불처럼 빠르게 거리를 점령했다. 그렇게 요동치는 명동에서 여성은 소비와 노동의 주체였다. “시일에 맞춰 (옷을) 완성하기까지 밤이 이슥하도록 일을 해야 하고 정열을 소모시켜야 한다.” “손님들이 바쁘다고 성화를 부릴 때는 손끝이 말을 듣지 않아서 울고 싶어진다.” 당시 디자이너와 미용사로 일했던 여성들의 회상은 그 증거나 다름없다. 일부 여성이 누리고 치장했던 사치와 소비의 한켠에선 전쟁으로 가장을 잃어 생계를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여성들이 즐비했다.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함께했다 할지라도 누구의 경험을 중심으로 해석하고 쓰이느냐에 따라 그 공간의 역사는 달라진다.” 저자는 지금도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변화무쌍한 공간 명동을 빌려 결국 이렇게 말한다. “전쟁으로 인한 ‘폐허’와 ‘허무’가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여성들은 부딪쳐 싸웠고 도전했다.” 1만 30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부고] 영화 ‘스팅’·뮤지컬 ‘코러스 라인’ 작곡가 마빈 햄리시

    [부고] 영화 ‘스팅’·뮤지컬 ‘코러스 라인’ 작곡가 마빈 햄리시

    영화 ‘스팅’(1973)의 주제곡과 뮤지컬 ‘코러스 라인’(1985)을 만든 미국의 유명 작곡가 겸 지휘자 마빈 햄리시가 6일(현지시간) 미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 68세. 햄리시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추억’, ‘소피의 선택’, ‘스타탄생’, ‘돈을 갖고 튀어라’, ‘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 등 40여편의 할리우드 영화 음악을 만들었다. 또 ‘작별인사하는 아가씨’, ‘성공이라는 달콤한 향기’ 등 여러 편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작곡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인 코러스라인은 1975년 초연 이후 현재까지도 최장기 공연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 그는 특히 3번의 아카데미상과 2번의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문화·예술계의 그랜드슬램으로 불리는 오스카, 그래미, 에미, 토니, 퓰리처 등 5개 상을 모두 받았다. 1944년 6월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난 햄리시는 아코디언 연주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줄리아드 음대와 퀸스칼리지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다. 그는 뉴욕필하모닉과 로열필하모닉관현악단, 런던교향악단 등의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올림픽 끝나면 뭘 보지?

    올림픽 끝나면 뭘 보지?

    “올림픽 이후는 우리가 책임진다!” 때가 때이다 보니 TV는 런던올림픽에 점령당했다. 연일 태극 전사들이 흘렸던 땀의 결실을 전하느라 여념이 없다. 뜨거운 올림픽 열기 속에서 방송가는 신작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올림픽 이후를 준비 중이다. 특히 올림픽 시작 전에 종영한 작품이 많아 신작 드라마가 대거 쏟아지면서 안방극장에 대대적인 물갈이가 예상된다. 판타지 사극이나 타임슬립(시간이동) 드라마, 학원물 등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가 각축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추적자’ 떠난 월화극, 누가 메울까 월화극은 시청률 20%를 넘기며 화제 속에 종영한 ‘추적자’의 빈자리를 메우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눈길을 끄는 작품은 ‘태왕사신기’, ‘모래시계’ 등을 만들었던 김종학 감독-송지나 작가 콤비의 새 드라마 ‘신의’. 오는 13일 SBS에서 시작하는 이 작품은 고려시대 무사 최영(이민호)이 부상을 입은 노국공주를 치료하기 위해 현대의 여의사 은수(김희선)를 700년 전 고려 시대로 데려간다는 내용이다. 올초부터 유행처럼 번진 시간이동이라는 소재가 다소 식상해 보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김-송 콤비의 호흡과 6년 만에 안방극장에 컴백하는 김희선의 연기 등이 관전포인트다. 6일 첫 방송하는 KBS 새 월화드라마 ‘해운대 연인들’은 부산 해운대를 배경으로 기억을 잃은 엘리트 검사와 당찬 부산 아가씨의 좌충우돌 로맨스를 그렸다. 올해 초 영화 ‘돈의 맛’과 ‘후궁:제왕의 첩’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던 김강우와 조여정이 각각 남녀 주인공을 맡아 드라마 흥행에 도전한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현재 방영중인 MBC 의학드라마 ‘골든 타임’과 뜨거운 시청률 경쟁이 예상된다. MBC는 올림픽 기간에도 ‘골든 타임’을 정상 방송하는 등 고정 시청층 선점에 고심하는 모양새다. ●‘각시탈’ 주도 수목극도 지각변동 예상 KBS ’각시탈‘이 선전하는 수목 안방극장에도 신작 드라마 2편이 15일 동시에 출격한다. 벌써 화제를 모으는 작품은 군을 제대한 이준기의 첫 복귀작인 MBC ‘아랑사또전’. 경남 밀양의 아랑 전설을 모티브로 삼았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게 된 진실을 알고자 하는 천방지축 처녀귀신 아랑(신민아)과 귀신 보는 능력을 갖고 있는 까칠한 사또 은오(이준기)가 펼치는 유쾌한 판타지 사극이다. 로맨틱 코미디극 ‘환상의 커플’의 김상호 감독과 사극 ‘별순검’ 시리즈의 정윤정 작가가 어떤 시너지 효과를 보여줄 것인지 기대된다. SBS의 ‘아름다운 그대에게’도 밝은 느낌의 학원 드라마. 일본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높이뛰기 금메달리스트 강태준(민호)을 만나기 위해 금녀의 구역인 남자 체고에 위장전학을 감행한 남장 미소녀 구재희(설리)의 좌충우돌 생존기를 그리고 있다. 남녀 주인공을 비롯해 이현우, 서준영, 광희 등 출연진 면면이 ‘꽃미남 군단’으로 불릴 만하다. 연예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가 처음으로 제작 및 기획에 뛰어든 드라마로 성공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현재 방영중인 ‘각시탈’이 시청률 탄력을 받은 상황이라 후발 주자들의 진입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품’ 12일 종영… 새 주말극 2편 경쟁 시청률과 화제성의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SBS ‘신사의 품격’이 오는 12일 막을 내림에 따라 주말극도 새판 짜기에 들어갔다. ‘신품’ 후속작 ‘다섯손가락’은 천재 피아니스트들의 사랑과 그룹 후계자 자리를 둘러싼 암투와 복수를 그린 작품. 인기 드라마 ‘아내의 유혹’를 쓴 김순옥 작가의 신작. 극중 피아니스트를 꿈꾸다가 굴지의 재벌그룹의 부인이자 두 아들의 어머니가 되는 채영랑 역은 채시라가 맡았다.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아들 역으로 주지훈, 지창욱이 출연한다. MBC도 ‘닥터진’(5일 종영)의 후속으로 ‘메이퀸’을 내놓는다. 울산을 배경으로 조선업에 투신한 젊은이들의 야망과 사랑을 담았다. 김재원이 자기중심적이며 자유분방한 해풍그룹의 후계자 강산, 한지혜는 강산의 연인이자 해양 전문가로 성장하는 해주, 재희는 강산과 연적 관계를 형성하는 창희 역을 맡았다. 김유정, 박지빈 등 아역스타들이 대거 출연한다. 올림픽으로 생긴 2주간의 공백 덕에 드라마 제작 현장에는 숨통이 틔었지만, 수두룩한 신작에 긴장감은 늦추지 못하고 있다. 김영섭 SBS 드라마국장은 “상반기 시청자들은 사회·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추적자’처럼 장르성이 강하고 현실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갖춘 드라마를 선호했다.”면서 “하반기에 방송사별로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가 쏟아지는 만큼 배우들의 얼굴 보다 좋은 기획, 이야기의 힘으로 시청자들과 공감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三代의 이야기속 질곡의 한국사 100년이…

    三代의 이야기속 질곡의 한국사 100년이…

    일제강점기와 분단, 6·25 전쟁, 1950년대 빈곤과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 발전, 1970·80년대 민주화로 이어지는 격동의 세월은 역사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집안이든 삼대(三代)의 인생을 털어 보면 행복 또는 불행의 형태로 100여년의 근·현대사들이 씨줄날줄로 촘촘히 엮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만화가 정용연(44)의 3권짜리 ‘정가네 소사’(휴머니스트 펴냄)에는 그 정씨 집안 남자들과 며느리, 손녀의 인생을 통해 어쩌면 그렇게 한국사가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을까 싶은 내용이 섬세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전남 장성 출신의 증조할아버지는 한학자로, 아버지 정동호에게 명심보감이며 한학을 가르쳤다. 만주로 이전해 농사를 지었지만 수확하기 전에 해방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귀국길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의무병이었던 아버지는 한학을 배운 덕분에 군대에서 일본어 의학책을 읽으며 의술을 익혔지만,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인 탓에 무면허 의사로 살아야 했다. 학업을 연장하기에는 찢어지게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전북 김제평야 천석지기의 아들이던 외할아버지는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식민지 한국에 돌아왔지만 금광을 찾아 헤매다 가산을 모두 탕진했다. 첩에게 남편을 빼앗기고도 무너진 가정을 일으켜 세운 사람은 외할머니. 곱게 자란 양반집 아씨가 비단을 팔러 다니며 자식들을 키웠다. 성냥 공장에서 일하던 소녀는 무면허 의사 아버지와 만나 살림을 꾸렸지만, 서울 산동네를 전전하며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밖에 정가네 소사에는 빨치산이 된 육촌 할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엮여 육군사관학교 진학이 좌절된 형이나, 이발 기술로 돈을 벌었지만 못된 아가씨에게 홀랑 날리고 1980년대 중동개발 붐이 일 때 사우디로 간 순호 당숙, ‘청량리 588’의 서러운 아가씨가 있다. 또한 정부가 농가의 수입원으로 세계은행에서 돈을 빌려 양잠을 권유했지만, 핑퐁 외교의 결과로 일본이 비단실 수입처를 중국으로 바꾸는 바람에 모두 빚더미에 올라앉았던 1970년대 농촌 현실 등이 독자들을 매콤하고 아련한 1970~80년대의 추억으로 인도한다. 그래픽 노블 분위기의 자전 만화인데 정용연 작가는 “외할아버지를 방탕하게 그리고 아버지를 무능하게 그리게 돼서 정말 미안한데, 사실과 다르게 포장하기는 어려웠다.”고 30일 말했다. 정 작가는 “기억에 의존해 쓱쓱 그린 만화가 아니라 보이스카우트의 복장이나 순호 당숙의 이발소에 걸린 1983년 3월의 달력, 아버지의 군복 등 대부분 고증을 거친 것으로 생활사 사료로도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헹궈 줄 때 조리개를 이용한다든지, 가스레인지 탓에 사라진 귀한 성냥의 존재 등도 신기하다. 옴니버스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에피소드가 겹치기도 하는데, 기억을 덧댄 부분이 풍성해서 지루하지는 않다. 7년에 걸쳐 600쪽의 원고를 그렸다. 이 책을 기획한 위원석 교양만화 주간은 “100년 역사가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려져 있다.”면서 “웹툰에 익숙한 청소년들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적지 않아 한 번쯤 꼭 읽어봐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朴 “호남 가장 많이 찾았다” 非朴 “朴 역사인식이 문제”

    朴 “호남 가장 많이 찾았다” 非朴 “朴 역사인식이 문제”

    26일 광주 염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 첫 합동연설회의 열기는 뜨거웠다. 민주통합당의 ‘텃밭’임에도 수천명의 지지자들이 몰려들었다. 박근혜 후보를 비롯한 총 5명의 후보들은 연설회장으로 들어서면서 지지자들의 연호에 일일이 악수로 화답했다. 당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 후보와 비박(비박근혜) 후보들 간의 신경전은 초반부터 치열했다. 박근혜 후보는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통해 군부 독재에 대한 ‘사과’의 의미를 표현했다. 반면 김문수 후보는 5·16을 ‘대한민국 헌정사를 중단시킨 군부 쿠데타’로 규정하고 ‘박근혜 대세론’을 ‘이회창 대세론’과 대비시키며 대립각을 세웠다. 김 후보의 동영상이 중간에 끊겨 다시 상영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임태희 후보는 유일하게 지인의 찬조연설로 동영상을 대신했다. 박근혜 후보는 합동연설회에 앞서 광주 망월동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 헌화·분향하고 영령들의 넋을 기렸다. 최근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박 후보의 발언으로 ‘역사인식 논란’이 벌어진 상황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박 후보는 연설에서 5·16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호남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박 후보는 “지난 2004년 당 대표가 된 이후 제일 먼저 찾은 곳이 호남이었고, 가장 많이 찾은 곳도 호남이었다.”면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매듭을 풀고, 영남과 호남의 매듭을 풀어, 팔도가 하나 되는 국민 대통합을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박 후보는 또 “다음 달이면 김대중 전 대통령 3주기를 맞게 된다. 살아생전 김대중 대통령이 저에게 ‘국민 화합의 최적임자’라고 말씀해 주셨다.”며 호남 민심을 파고들었다. 이에 비박 후보들은 박 후보의 ‘역사인식’을 문제삼으며 각을 세웠다. 김태호 후보는 “젊은이들은 새누리당이 답답하고 구닥다리라고 말하는데,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는커녕 ‘5·16은 혁명이었다.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왜 쿠데타는 쿠데타고 혁명은 혁명이라고 시원하게 인정하지 못하나. 왜 진심으로 사과하지 못하나.”라고 힐난했다. 임태희 후보도 “5·16 지지가 50%가 넘는다고 하면서 반쪽 지지만 확고히 잡으면 된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역사파괴적 발상’ 아니냐.”고 비판했다. ‘박근혜 사당화’ 논란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문수 후보는 “제가 입당한 지 19년이 됐지만, 박근혜 후보는 탈당했다가 다시 들어왔다.”면서 “입당 19년 만에 이렇게 불통과 독선에 숨이 막힌 적이 없었다. 새누리당의 사당화와 독선을 누가 해결하겠나.”라며 박 후보의 ‘사당화 논란’을 언급했다. 김태호 후보 역시 “당내 민주주의가 실종됐다. 소통도 없고, 대화도 없다.”면서 “총선 이후 마치 대선에서 이긴 것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임태희 후보는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호남의 상당수 지역구에 공천을 하지 못한 데 대해 “4년 전 선거에는 31개 지역구에 전원 공천했는데, 이번에는 30개 지역구 중 13곳으로 절반에 가까운 곳이 공천을 못 받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지지율이 상승 추세인 안철수 전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에 대한 견제도 있었다. 김문수 후보는 “(박근혜) 대세론이 급격히 붕괴되고 있다. 안철수에게 역전당하고 있다.”면서 “안철수 같은 무경험자, 무자격자가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수 있겠나. 저는 면허와 자격이 다 있고, 안철수를 꺾을 수 있는 유일한 후보다.”라고 역설했다. 김태호 후보는 “안철수가 양식장에서 자란 양식 횟감이라면 나는 거친 파도와 싸운 자연산 활어 횟감이다. 안철수의 안풍, 김태호의 태풍으로 박살내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후보들은 저마다 지역 갈등을 넘어 통합을 이룰 후보임을 강조했다. 김문수 후보는 “저의 처가는 순천이고, 저는 호남의 사위”라면서 연설 무대로 부인 설난영씨를 불러 어깨 위로 하트 모양을 만든 뒤 “저는 30년간 매일 동서화합을 실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상수 후보는 “김문수 후보는 사모님이 호남분이지만, 제 첫사랑은 광주아가씨였다.”면서 “광주 시민들이 두번째 사랑을 달라.”고 호소했다. 광주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강남 최대 룸살롱은 ‘비리 살롱’…무허가 룸 수십개 증축 수십억대 탈세·비자금

    서울 강남 최대 규모의 룸살롱 ‘어제오늘내일’(YTT)이 많게는 74개나 불법으로 룸을 증축, 탈세 창구로 악용해 온 의혹이 제기됐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탈세 규모만 수십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YTT 실소유주인 김모씨는 탈세, 공무원 상납 등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다. 23일 검찰 등에 따르면 YTT가 관할 강남구청에 신고한 룸 수는 세울스타즈호텔 지하 1~3층 106개다. 그러나 호텔 홈페이지에 실린 YTT의 룸은 180개이다. 업소의 한 관계자는 “150~180개의 룸을 운영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44~74개의 룸이 불법으로 운영되는 셈이다. 이 관계자는 또 “신고하지 않은 무허가 룸은 탈세 창구로 악용되며, 영업 이익은 장부에 기록되지 않아 국세청에도 포착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강남 일대에는 YTT처럼 인근 건물과 비밀 통로로 연결해 무허가 룸을 운영하는 업소들이 많다.”면서 “카드깡 등의 수법을 통해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전했다. 강남소방서 관계자는 “룸이 불법 증축됐다면 점검 과정에서 확인해 시정명령을 내렸을 텐데 YTT는 지금껏 시정·보완명령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YTT 실소유주 김씨는 호텔 3~4층에도 각각 14개와 10개의 룸을 갖춘 업소를 두고 있다고 구청에 신고했다. 하지만 호텔 2~3층에는 새벽 2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영업하는 룸 100여개를 갖춘 이른바 ‘2부 클럽’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클럽 관계자는 “홈페이지 광고보다 좀 적은 80여개의 룸을 갖추고 있다.”면서 “2시간 30분 시간제로 운영되며, 2차는 나가지 않는다. 비용은 아가씨 팁 10만원, 기본 주대 13만원 등 일반 가라오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클럽도 무허가 룸이 56~76개나 되는 셈이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김회종)는 YTT 실소유주 김씨가 무허가 룸 등을 통해 마련한 비자금을 경찰 등에게 정기적으로 상납한 것으로 보고 탈세 규모와 상납 대상자 등을 캐고 있다. 또 경찰과 관할 지자체 공무원, 소방서 관계자 등이 YTT의 불법 증축을 알고서도 묵인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불법 증축과 탈세가 가능했던 구조적 비리를 캐고 있다.”면서 “양주 공급업체 등도 탈세에 가담했는지 등 큰 틀에서 YTT의 불법·비리를 캐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훈·홍인기기자 hunnam@seoul.co.kr
  • [서울광장] 법의 낭비가 많은 사회/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법의 낭비가 많은 사회/임태순 논설위원

    대한뉴스에 나오는 1970년대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장면을 보면 우리에게도 저렇게 공권력이 서릿발 같던 시절이 있었던가 싶다. 머리 스타일과 옷 입는 건 개인의 자유이건만 덥수룩한 장발의 젊은이가 머리를 조아리고 20대 아가씨들도 줄자를 재는 경찰에게 입도 벙긋 못하고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경찰이 시위대에 폭행당하는 것이 다반사인 요즘으로선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새만금 건설, 천성산 도롱뇽 사태를 불러온 KTX 건설,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대형 국책사업에 대한 격렬한 시위는 서로간의 시각이나 견해 차가 커서 빚어지는 일종의 양심범, 확신범의 영역이라고 쳐서 논외로 하자. 하지만 전력 수요가 많은 여름철 전력 성수기를 맞아 에어컨 가동 위반업소를 단속하는 것만 해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 문 닫고 영업하면 손님이 들어오지 않는데 어쩌란 말이냐며 종업원들이 단속공무원에게 눈을 부라리는 걸 보면 권한이 주어져 있다 하더라도 단속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데 공감이 간다. 공권력이 약화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은 국민의 권리의식이 높아진 것을 꼽을 수 있다. 과거 같으면 공권력에 대해 따지는 것은 생각도 못했지만 높은 교육과 해외 견문 등을 통해 보고 듣는 게 많아진 시민들은 법 집행에 호락호락하지 않다. 또 환경·인권 등 부쩍 힘이 커진 시민단체들은 이론을 바탕으로 정부정책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조직력까지 갖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정권이 보수·개혁으로 교체되면서 정부 정책의 가변성도 높아지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얼마 전 실시한 전국 단위의 학업성취도 검사만 해도 민주통합당이 정권을 잡으면 폐지되거나 규모가 축소되지 않을까 싶다. 또 성장이냐 분배냐에 따라 금융·조세 등 경제정책은 물론 복지·노동정책이 180도 선회하기도 하니 정책의 정통성, 일관성은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약화됐다고 할 수 있다. 또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행정기관 스스로 신뢰를 갉아먹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공권력이 조롱당하고 희화화된다. 공권력이 약화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한다. 단속의 약발이 먹혀들지 않으면 공무원들은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한다. 처벌이 강화되면 법을 잘 지킬 것이라는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 일례로 얼마 전 행정안전부는 운전 중 담배꽁초 투기행위에 대해 벌점 10점을 부과하는 것 외에도 범칙금을 3만원에서 5만원으로 인상했다. 꽁초 투기에 대해 평소 3만원의 범칙금을 꾸준히 물렸으면 질서가 잡혔을 텐데 범칙금 인상만으로 투기행위를 잡으려 하니 잘될지 의문이다. 이처럼 과태료, 벌금을 상향조정하고 형량을 높이는 법의 낭비 사례는 여기저기서 쉽게 발견된다. 그러다 보니 법전은 누더기가 되고 법조문은 사문화되고 만다. 문을 열고 에어컨을 가동하다 적발되면 과태료를 물리는 절전대책만 해도 장사를 하는 영세사업자들에겐 엄청난 부담이다. 1차 적발 50만원, 2차 100만원, 3차 300만원을 물리는데 단속공무원이 웬만큼 강심장이 아니라면 주의를 주는 선에서 그치지 실제 과태료를 부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위반행위에 대한 과중한 처벌은 일시적으로 효과를 거둘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차 효력을 잃는다. 시민들이 불만을 쏟아내고 저항하면 공무원들도 단속에 나서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죄에 대해서는 거기에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 하고 그 수위는 국민들이 공감하고 감내할 만한 수준이어야 한다. 과도한 처벌은 공권력에 대한 저항과 불신을 불러오고, 결국 공권력의 집행력이 약화된다. 공권력의 권위, 위엄이 손상됨은 물론이다. 공권력이 작동하지 않으면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정책 집행의 사회적 비용만 커지는 고비용-저효율의 악순환 늪에 빠진다. 국민소득 2만 달러의 시대에는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고효율-저비용 사회로 전환할 때가 아닌가 싶다. stslim@seoul.co.kr
  • 식물을 뿌리로 한 인류문화의 유사성 과연 우연일까

    버드나무는 땅이 끝나고 물이 시작되는 지점, 쉽게 말해 물과 뭍의 경계에서 잘 자라는 나무다. 여기서 ‘물가’는 종종 다른 세계, 예컨대 삶과 죽음의 세계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는 동서양이 비슷하다. 조경학자 고정희가 지은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나무도시 펴냄)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버드나무를 마녀들의 나무라고 부른다. 마녀들이 자신이 속한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는 통로로 이용한다는 뜻에서다.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채찍질하는 나무를 연상하면 알기 쉽다. 해리 포터 등 주인공들이 버드나무 둥치에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 수없이 마을을 오갔던 장면 말이다. 우리나라에 전해 오는 버드나무 관련 이야기들도 대체로 ‘서늘한’ 편이다. 하룻밤 풋사랑을 기다리다 죽은 천안삼거리 능수버들 처녀 이야기가 그렇고, 고구려 시조 주몽의 아버지인 해모수를 사랑한 버들꽃 아가씨 ‘유화 부인’ 설화도 애절하다. 특히 이규보의 서사시 동명왕편에 등장하는 유화 부인 설화는 영국 웨일스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는 케리드웬 여신의 이야기와 절묘하게 겹친다. 그뿐 아니다. 천안삼거리 능수버들 처녀 이야기는 보헤미아 지방의 젊은 부부 전설과 얼개가 놀랍도록 빼닮았다. 하나의 식물을 두고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구조의 이야기들이 전해져 오는 게 단순한 우연일까. 책은 이처럼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한 식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16세기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튤립부터 2억 7000만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나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은행나무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곁을 한결같이 지켜 온 식물들이 인류의 삶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살피고 있다. 수로 부인의 진달래와 마고 여신의 복숭아나무, 심청의 연꽃처럼 우리의 신화와 전설에 담겨 있는 식물은 물론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라는 누명을 쓰게 된 사과나무와 비너스의 눈물이 변해서 생겨난 양귀비, 게르만 족에게서 거의 유일한 나무로 추앙받았던 마가목 등 서구 문화권에서 주목받았던 식물들이 책의 주인공이다. 저자는 헌화가와 함께 전해지는 수로 부인 설화에서 지중해의 플로라 여신이 떠오른다며 식물을 뿌리로 한 인류 문화의 유사성에 주목한다. 태초에 물과 연꽃만이 있었다는 이집트와 인도의 창조신화 또한 놀랍도록 닮아 있고 연꽃에서 솟아오르는 우리의 심청전 또한 재생설화란 측면에서 그와 맥을 같이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심청이 연꽃을 타고 지상으로 돌아온 까닭을 치유와 위로를 담당했던 신과 자연의 역할에서 찾으며 인류를 보살펴 온 식물의 넉넉한 품을 강조하는 저자의 분석이 인상적이다. 1만 68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티베트 무인구 첫 횡단 박철암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티베트 무인구 첫 횡단 박철암 교수

    지구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가 얼마든지 많을 것이다. 하여 그곳을 탐험하는 것은 새로운 역사를 쓰는 일이다. 무인구(無人區)라는 말을 들어봤을까. 티베트 장북고원(藏北高原) 해발 5000m 지점에 있다. 인류 문명의 모든 기기가 정지되는 곳이다. 잘 가던 시곗바늘이 멈춰버린다. 나침반도 작동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발사된 총알도 날아가지 않는 ‘수수께끼의 땅’이다. 티베트 무인구는 국가금구(國家禁區) 지역으로 지도에서조차 지명을 찾을 수 없는, 세상과의 만남을 거부하는 곳이다. 수억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혀 있는 심오한 곳이다. 말 그대로 자연의 장엄함과 태고의 신비가 펼쳐진다. 티베트 사람들은 현세나 내세에서도 인간이 어떠한 방법으로도 생존할 수 없는 땅으로 여긴다. 한반도 면적과 비슷한 22만㎢의 광활한 규모임에도 사람이 살지 않는 오지다. 대신 스라소니, 곰, 늑대, 황양, 야생 당나귀 등이 천국처럼 살고 있다. 원로 탐험가 박철암(88) 경희대 명예교수(중문학)는 2007년 세계 최초로 티베트 고원지대 무인구 2200㎞를 횡단했다. 1990년 한국 최초로 티베트에 들어간 이후 30차례나 다녀왔고 무인구 횡단은 11번 도전 끝에 성공했다. 중국 정부에서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곳이지만 그의 끝없는 집념에 탄복해 중국 측 지질학 박사 1명, 의사 1명, 통신원 1명, 티베트 지질학 연구원 1명, 호수학 박사 1명 등 9명의 수행원과 함께 탐험대를 조직해 마침내 평생의 꿈을 이루며 새 역사를 썼다. 그는 2007년 12월 티베트 과학조직위원회로부터 ‘장북고원 무인구를 세계 최초로 탐험한 과학자’라는 호칭과 함께 표창까지 받았다. 그런데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다시 한번 무인구를 꿈꾸고 있다. 다음 달 티베트에 가서 무인구 출입 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남·북극 이어 제3극 무인구 그는 1962년 한국 최초로 히말라야 원정에 나서 당시 화제가 된 주인공이다. 그때 다울라기리 2봉(네팔과 티베트 접경지역 위치)에 도전했고 1971년에는 로체샤르에 도전한 경력도 있다. 이런 과정에서 티베트 고원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티베트 무인구만 생각하면 지금도 어린 소년처럼 마음이 막 설레지요. 더 늙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무인구에 가고 싶습니다. 미지에 도전한다는 것은 늘 행복이자 즐거움입니다. 북극과 남극은 난센과 아문센이 탐험했고 제3의 극인 무인구는 박철암이 탐험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어요. (잠시 생각하더니) 1988년 중국이 티베트를 개방했다고 했거든요.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 티베트에 처음 갔을 때를 잠시 회고한다. “해발 5250m 히말라야를 넘어 티베트에 들어가 한 고원지대에서 잠시 앉아 쉴 때였죠. 마침 유목민 아가씨가 양 떼를 몰고 가고 있었습니다. 17살 정도 됐나요. 그런데 그 아가씨가 꽃을 입에 물고 그걸로 피리 소리를 내는 것이에요. 꽃 이름을 물었더니 파파화(巴巴花)라고 하더군요. 얼마나 아름답던지 별천지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티베트의 꽃을 수집하고 연구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지요.” 박 교수는 당시 한 명언을 떠올렸다고 한다. ‘누가 말했던가, 누구라도 티베트 창탕고원에 단 1분만이라도 설 수 있으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라고!’ 이후 티베트의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500여종의 식물을 수집, 1998년에 ‘티베트의 꽃과 생물’이라는 책을 세계 최초로 발간하게 된다. ●대륙의 버뮤다 삼각지 무인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6년 6월이었다. 티베트 라싸대학 총장을 만났을 때 박 교수는 무인구 얘기를 처음 듣게 됐다. ‘과거에도 사람이 전혀 살지 않았고 앞으로 100년 후에도 사람이 살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또 ‘국가금구 지역이니 절대 가면 안 된다.’라는 말을 듣고 더욱 궁금해졌던 것. 이때부터 누구도 해보지 않았던 무인구 탐험이라는 목표를 세우게 된다. 무인구에는 정말 모든 기기가 정지되는 곳일까. 그러자 지체없이 무인구의 위치부터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티베트의 아리(阿里)고원 일부 지역과 장북고원의 서북부, 동북부의 광대한 지역을 창탕고원이라고 합니다. 창탕은 북방의 하늘이라는 뜻이지요. 무인구는 그 창탕고원의 최북쪽에 위치하며 쿤륜(崑崙)산맥, 커커씨리(可可西里)산맥과 인접하고 있습니다. 서남으로 히말라야산맥과 깡디스(崗底斯)산맥, 넨칭탕구라(念靑唐古拉)산맥, 그리고 헝뚜안(橫斷)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지요. 무인구의 장서깡르산(藏色崗日山)과 서우깡르산(色烏崗日山)의 중간 지역에 이르면 모든 기기의 작동이 정지됩니다. 시계가 멈추고 라디오 소리도 정지되며 자동차 엔진도 꺼진다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지요. 마치 남태평양의 버뮤다 해협을 지나는 배들이 가라앉듯이 말입니다.” 정지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시 말해 지구상에는 북극과 남극, 그리고 제3의 극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무인구이며 극 중의 극이다.”고 강조하면서 “알 수 없는 광물체와 수많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고 설명한다. “한번은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티베트에 같이 갔던 한 대원이 호수에 물을 길으러 갔다가 개울에서 머리를 감았는데 귀국해서 얼마 되지 않아 머리털이 귀 뒷부분만 남겨놓고 몽땅 빠져버렸습니다. 머리가 다시 자라기 시작한 것은 3개월 후였습니다. 또 고원지대를 지날 때였는데 땅속에 있는 흑사(黑沙)를 발견한 적도 있었지요. 놀라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무인구는 1억년 전에는 바다였고 그래서 신비한 화석과 호수가 많습니다.” ●경희대 산악반 이끌고 히말라야 첫 등반 그가 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어릴 적부터였다. 해발 2000m가 넘는 평안북도 낭림산맥의 동백산 밑에서 자랐다. 어른들로부터 ‘동백산 위에 뱃조각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하루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동백산으로 올라갔다. 마타리꽃이라는 야생화 속을 걷는 산길이 무척 좋았다. 산을 처음 알았고 이후 산을 좋아하게 됐다.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 스승한테 ‘옥배에 술을 마시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어 곤륜산에서 포부를 펴라.’는 말을 듣고 히말라야에 대한 야망을 키워나갔다. 1947년 북한산 백운대에서 열린 한국산악회 주최 등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학우 두 명과 팀을 이룬 것이 나중에 경희대 산악부의 시초가 됐다. 이후 1950년 안나푸르나와 1953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이어 1956년 마나슬루를 오르는 일본과 유럽의 산악인들의 성공 소식을 전해 듣고 히말라야 진출의 의지를 더욱 다지게 됐다. 경희대 산악반을 이끌고 한국 산악 사상 첫 히말라야 등정에 나서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던 것. 하지만 출발부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당시 정부에서는 ‘가면 뼈도 못 추릴 정도로 위험한 곳’이라고 하면서 선뜻 허가를 해주지 않았다. 결국 ‘등정대’가 아닌 ‘정찰대’라는 이름으로 출발해야 했다. 따라서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할 수 없이 집을 팔아 비용을 마련했다. 또 현지 지도를 구하지 못해 일본에 들러 손으로 그린 약도를 받아들고 떠나야 했다. 다시 무인구 얘기로 돌아온다. “1년 중 8개월은 매우 추우며 특수한 자연 환경 덕분에 무인구는 신비스러운 면모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과 고원, 신비스러운 소금호수, 그곳에만 서식하는 야생동물과 조류, 고산식물들이 태초의 모습 그대로 펼쳐져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지요.” 노() 탐험가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히말라야에는 6000m급 이상 봉우리가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 이는 앞으로 후배들이 오를 산이다.”면서 “인류의 역사는 그 시대를, 특출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개척돼 왔다. 지구상에는 어느 분야에서든 미지가 있다. 그 미지를 알아내는 일 또한 우리 후배들의 몫이다.”라고 강조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원로 탐험가 박철암 경희대 명예교수는] 평남 낭림산맥 동백산 자락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제 때 만주에서 독립단을 찾아갔다가 광복 후 월남했다. 경희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중어중문학과 교수, 한국특수체육회 이사, 대한산악연맹 이사, 한국대학교수협의회 이사, 경희대 기획관리실장, 한국히말라야클럽 초대회장, 한국티베트탐험협회 초대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산군 탐사기(山群 探査記)’, ‘티베트의 꽃과 생물’, ‘지도의 공백지대를 가다’ ‘티베트 무인구 대탐험’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명예교수로 한국히말라야클럽 명예회장, 한국티베트탐험협회 명예회장 등을 맡고 있다. 1962년 한국 최초로 히말라야에 진출했으며, 1971년 최초로 8000m급 로체샤르를 원정했다. ‘무인구’라는 말을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한 탐험가로 2007년 세계 최초로 티베트 무인구 횡단에 성공했다. 무인구의 생태계 연구자료를 수집한 공로를 인정받아 티베트 과학조직위원회로부터 ‘장북고원 무인구를 세계 최초로 탐험한 과학자’임을 증명하는 인증을 받기도 했다.
  • [깔깔깔]

    ●의사와 환자의 대화 의사:저한테 오시기 전에 어디 딴 의사한테 가 봤나요? 환자:아니요. 이 근처에 있는 약방에 갔었습니다. 의사:참 답답한 사람들이군요. 그래, 그 약사가 뭐라고 얼빠진 소릴 하던가요? 환자:이 병원에 가서 선생님을 뵈라고 하던데요. ●참 다행이야 바람둥이 남자가 달콤한 말로 아가씨를 유혹해서 호텔까지 데리고 가는 데 성공했다. 방으로 올라가기 전 그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양심의 가책을 받을 것 같아 머뭇거리면서 말을 꺼냈다. “사실은 나 말이야…. 사실은 나 유부남이야.” 그러자 아가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뭐예요~ 난 또 호텔비가 없다는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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